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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천년전 신석기시대 목제 선박·노 발견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 신석기시대에 낚시 도구를 싣고 물고기잡이에 활용한 목제 선박과 이를 젖던 도구인 노가 한꺼번에 울진군 죽변에서 발견됐다.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울진군 의뢰로 2010년 5월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일원 도시계획도로부지에 포함된 조기 신석기 유적 출토 유물을 최근 정리하고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목재 유물 중에 목제 선박 조각과 노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이 중 목제 선박 조각은 현존 길이 64cm에 너비 50cm, 두께 2.3cm로, 편평한 판재 형태를 띠며 가장자리 쪽이 바깥으로 들려 올라간다. 조사단은 “분석 결과 수종은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녹나무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발견된 목재 노는 잔존 길이 170cm×최대폭 18cm×두께 2.1cm. 물에 잠기는 갈퀴 부분은 넓은 사다리꼴이며, 손잡이 부분은 단면 직사각형이고 수종은 상수리나무로 드러났다.더불어 유적 내에서 비록 파손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결합식 낚시의 부품을 비롯한 각종 어로 관련 도구가 출토됐다는 점에서 이들 목선은 어로 행위에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삼한문화재연구원 양하석 조사연구실장은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출토된 이 신석기시대 배와 노는 그 제작 연대는 비봉리 유적과 대략 같은 국내 최고(最古)라는 점에서 이번 발견은 국내 고고학사계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면서“신석기 시대 사회생활과 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말했다.울진/주헌석기자

2012-08-28

경주 읍천 주상절리 천년기념물 된다

`경주 읍천 주상절리군`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2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읍천 주상절리군은 마그마가 다양한 방향으로 냉각이 진행되면서 생성된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柱狀節理·현무암질 용암류와 같은 분출암이나 관입암에 발달하는 기둥 모양으로 평행한 절리)를 비롯한 수평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돼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기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직기둥 형태의 주상절리들과는 달리 발달 규모와 크기, 형태의 다양성 등이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어 지질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는 것. 또 화산암의 냉각과정과 특성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동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연구 자료라고 설명했다.이와함께`포천 한탄강 주상절리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도 같이 지정된다. 한탄강 용암대지가 불무산에서 발원한 불무천에 의해 개석(開析-골짜기가 유수의 침식을 받아 여러 새로운 지형으로 변화하는 것) 되면서 형성된 폭포와 그 주변의 크고 작은 하식동(하천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동굴) 그리고 주상절리, 판상절리(板狀節理-암체를 판상으로 분리시키는 절리), 협곡 등이 잘 발달되어 있다.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경주 읍천 주상절리군`, `포천 한탄강 주상절리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에 대하여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 중에 수렴된이해 관계자와 각계의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공식 지정할 예정이다.경주/윤종현기자yjh0931@kbmaeil.com

2012-06-25

고령 주산성 `대가야 최초 석축산성` 확인

고령군의 주산성이 6세기 전반대 최초 대가야 석축산성으로 밝혀져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고령군은 지난해 12월 5일부터 이달 30일까지 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에 의뢰해 고령읍 지산리 산 54-1번지 일대 5천㎡(총 연장 200m, 폭 25m) 일원에서 주산성 정비복원 유적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대동문화재연구원은 이번 조사에서 대가야 산성으로 알려진 주산성(사적 제61호)이 가야 지역 최초로 6세기 전반에 축성된 석축산성으로 확인했으며 24일 현장 설명회를 개최한다.고령 주산성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673)년 9월에 국원성을 비롯해 목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성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산(耳山)`, 지금의 주산(主山)이 고령의 주산을 의미하는지, 초축 또는 개축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조사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산성의 초축시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성벽 내부 뒷채움석 하부와 외벽 밖 하부 보강석, 보강토 아래의 정지토에서 전형적인 6세기 전반대의 대가야 유물들만이 출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특히 “성벽의 축조에 사용된 석재의 종류나 가공법, 축조법 등이 지산동고분군 일대에서 확인되는 6세기 전반대의 대가야 수혈식석실의 벽석이나 호석의 축조방법과 같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또 “이밖에 성벽 상단부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며 만들어진 배수로, 하부 보강석과 보강토의 축조방법 등이 동시기 신라와 백제의 산성축조기술과 다른 점을 보여 주산성이 대가야 산성임을 명확하게 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주산성 발굴 이전에는 합천의 대야성, 함안지역의 함안산성, 김해지역의 양동산성과 마현산성 등이 가야의 석축산성일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또 학자들 사이에서 6세기 시대 상황에서 가야지역에 거대한 석성의 축조가 불가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하지만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특히 대가야 중심지에서 늦어도 6세기 전반대에 대규모 석축으로 축성된 최초의 가야 석축산성으로서 주산성의 실체가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 고고학계에 논란이 된 `가야지역에 석축산성이 없다`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령/김종호기자 jhk@kbmaeil.com

2012-03-23

슬프지만 아름다운 외로운 삶을 그리다

등단 19년 차를 맞는 한강(42)이 첫 소설집`여수의 사랑`(문학과 지성사)을 다시 펴냈다.그간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두 편의 소설집을 펴낸 중견 작가 한강은 이 책을 다시 내면서 이십대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사적인 경험”을 돌아보자, 되살아나는 기억이 “종내에는 숨 막히도록 생생하게 가까워오는 것을 느껴 여러 번 쉬어가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여수의 사랑`은 1995년 출간 당시 초판 해설에서 김병익이 “그녀는 왜 삶의 치욕들을 헤집어, 그들의 고통스런 운명을 잔인하게, 우리 앞에 던져주는가?”라고 말했듯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버리고 지운 기억을 되살리는 지난한 시간을 겪게 한다. 안간힘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왔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인간`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아픈 시간을 깨우는 뼈아픈 각성의 시간이다.한강의 소설을 잡는 손길은 어쩐지 조심스럽고 어쩐지 시작부터 아슴아슴 통증을 일으킨다. 한강의 인물들은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고, 죽음 가까이에서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존재의 `살아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그렇게 매순간 `깨어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 수도의 길인가. 한강이 그려내는 삶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여수는 어딘가 상처 입고 병든 이들이 마침내 이를 서러운 마음의 이름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기쁨에 젖어 외쳐댈 수 있는 환한 마음가짐이기도 하지만 끝내는 이룰 수 없음을 너무나 분명히 알기 때문에 간절한 소망으로 새기는 어두운 느낌이기도 하다. 한강은 어떤 여수의,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는가. 여수는`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태어난 곳일지도 모르며 정선이 버리고 떠나온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짧은 생애임에도 한없이 떠돌며 살아온 사람의 피곤한 `여수`가 역력한 자흔이나, 스스로가 버렸다기보다는 그곳에서 쫓겨나 서울에서 힘들게 살아온 정선이 다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끝내는 향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지점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3-09

전국음택과 후손 상관성, 과학적 분석한 풍수이론

“풍수를 과학화 하는데 기초가 될 수 있는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지난해 공학박사가 과학적으로 풍수를 해명한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됐던 이문호(59) 영남대 신소재 공학부 교수는 흔히 미신으로 여겨지는 풍수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국내 유일의 공학박사다. 그는 명당이나 혈의 구조와 형태에 대해 과학적 이론을 적용해 분석 연구하고 있다.이 교수는 최근 우리들이 풍수를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오묘한 지구:풍수도 과학이다(한국학술정보(주))`를 펴냈다.옥산 이우 선생의 딸 조모의 삶 통해역사 속 숨겨진 여러 여성들 이야기`10년 간의 우리 행복은`도 펴내“우리 땅에서 풍수를 논한 지도 최소한 천 년 이상 되었다. 망국적인 폐단으로 전락한 역사적인 배경이나 서양문물 전래와 보급에 따른 사회 환경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으로 인해 풍수에서 도출된 여러 이론이 제도권에서는 수용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풍수이론들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조사 연구하려는 일체의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논리적인 근거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나름대로의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게 되었고 항시 새로운 이론들이 도출되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수많은 이론들을 정리한 문헌목록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을 정도이다”(`오묘한 지구:풍수도 과학이다` 21쪽)이 책에서는 풍수속의 과학적인 원리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재미있게 이해해 풍수를 미신으로 치부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이 교수는 “풍수를 학문의 한 분야인 풍수학으로 만들기 위해서 풍수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근거가 불명확한 기존의 논리를 과학화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이론을 제시하고 관련 용어를 정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풍수가 우리 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한 지 무려 일천 년이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풍수의 여러 원칙과 이론들은 시대와 환경 혹은 상황에 따라 실생활에 적절하게 적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논리의 전개에는 불분명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기계를 사용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땅속이라는 자연을 관찰하고 조사하고 분석해 사자의 자리인 혈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방법과 그 선정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이 책에는 이 교수와 함께 13명의 풍수학 박사학위과정 연구생들이 함께 동거동락하며 전국 음택들의 유형을 정형화 하고 그 음택들의 후손들을 조사하고 분석한 방법과 결과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고, 음택의 유형과 후손번성과의 상관성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도출해낸 과학적인 풍수이론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고 한다.이 교수는 “현대 의학이 인체에 대해 초음파나 X선, CT 혹은 MRI 등과 같은 여러 기법을 동원해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듯 땅속 모양에도 이와 같은 과학적인 방법과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면서 “이것에 가장 유용한 물리적 성질인 자력을 이용해 지반 탐사를 정확히 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이 기계를 사용해 땅속지형을 실제로 탐사해 명당과 흉당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풍수 과학화의 전개방법을 설명했다.그는 “2001년부터 풍수 관련 책 4권을 펴내기도 했는데, `풍수과학 이야기`에는 기초적인 내용이 쉽게 설명되어 있지만, 이번 책은 `풍수학과 풍수과학의 교과서`로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이 책의 집필 목적을 “풍수지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거나 이를 학문화 하고자 하는 이들을 도와주고, 풍수학이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포부를 밝혔다.한편 이문호 교수는 `오묘한 지구:풍수도 과학이다`와 함께 율곡 이이의 동생인 옥산 이우 선생의 딸이었던 조모의 고단한 삶을 통해 역사 속 숨겨진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10년 간의 우리 행복은(한국학술정보(주))`을 펴냈다.※이문호 교수는1954년 경북 고령 출생인 이문호 교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1년부터 현재까지 영남대 공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과학기술부 신소재위원장, 대구지방환경청 평가심의위원, 대구시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마르퀴즈 후즈후를 비롯한 5개의 세계인명록에 등재돼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3-09

야생에 버려진 고아들의 험난한 삶

등단 17년차, 이제 마흔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영하(44)의 이름 앞에는 `젊은` `파격적인` `도발적인` 등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마도 그것은 `배반` 때문일 것이다. 그는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수많은 독자의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늘 그런 기대를 나름의 방식으로 배반해왔다. 엄숙함이 절대적인 미덕이라 여겨지던 때에는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고 웃는 것밖에는 모르는 반항아마냥 발칙함과 날카로운 유머를 선보였고, 그러한 작가적 이미지가 굳어질 즈음에는 정색을 한 채 엄격하고 진중한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 그것은 꼭 날렵한 펜싱 선수의 검술, 그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며 빠르게 진행되는 사브르 선수의 검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역설적이지만, 독자는 그로부터 기꺼이 배반당할 것을 기대하며 그의 작품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문학동네)는 `검은 꽃``퀴즈쇼`를 잇는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다. 스스로 우울 속으로 걸어들어가서 쓴 고아들의 이야기, 커튼을 내린 방안에서 녹음된 빗소리를 들으며 골방에서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기저에는 슬픔의 덩어리가 몸을 낮추고 한껏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독자가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 몸을 일으키면서 실체를 드러내고 어느 순간 독자를 슬픔으로 물들인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슬픔과 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눈물 흘리는 장면 하나 없이 이루어내는 슬픔의 미학, 이것을 김영하식 슬픔이라고 부를 수밖에는 없겠다. 우연일까. 등단 17년차를 맞이하는 김영하는 17세 고아 소년의 삶과 죽음을 다루면서 자신의 소설 세계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03-09

경주 창림사 삼층석탑 무구정탑원기 발견

신라 제46대 문성왕 17년(855) 지금의 경주 남산 창림사에 삼층석탑을 건립하면서 그 조성 내력을 적어 봉안한 발원문 실물이 발견됐다.(재)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미등)는 `한국의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 과정에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용주사 효행박물관이 보관중인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를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정밀조사 결과 이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는 문성왕(재위 839~857)이 대중(大中) 3년(855)에 탑을 세우면서 납입한 금동판 형태의 발원문으로 밝혀졌다.이 탑원기는 세로 22.4cm×가로 38.2cm의 판형에, 앞뒷면에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과 발원 내용, 조탑(造塔)에 관여한 인물들이 기록돼 있다.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는 1824년에 석공(石工)이 경주 남산 창림사 삼층석탑을 도괴할 때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당시 금석학에 조예가 깊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이를 모사해 두었으며, 그 모사본은 `경주남산의 불적`(1940년)에 수록돼 세상에 전하고 있으나 원판의 행방은 지금까지 묘연했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는 김정희의 모사본으로만 전하는 것과 내용, 체제, 서체 등이 모두 동일한 것이어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윤희정기자

2012-02-29

문경 봉암사 목조아미타좌상 등 보물 지정

구산선문 봉암사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이 보물로 지정됐다.문경시는 문화재청이 16세기 후반의 불상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성을 띤 점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51.5㎝, 무릎 폭 36㎝로 비교적 크기가 작은 편이다. 불상 안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좌상이 선조 19년(1586)에 나운(雲)과 법정(法正) 두 화원이 조성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얼굴은 둥글고 통통해 복스럽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어깨는 좁아 다소 왜소한 느낌이 들며 불의는 부드럽고 간결한 선으로 표현돼 있다.이런 양식은 제주 서산사 목조보살좌상이나 경주 왕룡원 소조약사여래좌상 등 16세기에 조성된 다른 불상과 비슷하다.▲ 봉암사 목조아미타좌상.특히 복장 유물에서 나온 발원문에는 조성 당시의 임금인 선조와 선조 정비인 의인왕후, 13대 왕 명종의 며느리인 덕빈 윤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이는 봉암사가 창건 때부터 왕실의 지속적인 후원을 받은 사찰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덕빈 윤씨는 12세 때 왕세자빈에 책봉됐으나 이듬해 왕세자인 순회세자가 숨지자 평생 불공을 드리다 생을 마감했다.문경시 엄원식 학예연구사는 “수십년을 홀로 지낸 덕빈 윤씨를 위해 왕실이 불상을 조성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보물지정으로 봉암사는 국보 1점과 보물 6점, 지방문화재 5점 등 12점을 보유한 사찰이 됐다” 고 밝혔다.문경/신승식기자 shinss@kbmaeil.com

2012-02-27

포항중성리 신라비 보물지정

속보=2009년 5월 포항 흥해읍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견돼 본지가 단독 보도2009년 5월 14일자 1면 등 보도한 `포항 중성리 신라비`사진가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됐다.포항시에 따르면 최근 문화재청이 신라 최고(最古) 금석문(石文)인 포항 중성리 신라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천758호로 지정했다.문화재청은 이 비석을 보물로 지정한 근거로“신라의 정치적·경제적 문화내용을 연구ㆍ확정 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고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비 중에서 그 연대가 가장 앞선 비일 가능성이 매우 커 신라의 서예사를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또 “초기적인 석비 양식으로 신라의 지명, 인명, 관직과 관등명 등이 기록돼 있으며 비문 첫머리에 신사(辛巳)라는 간지가 있어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이 비는 2009년 5월 11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성리 주거환경개선 도시계획도로 공사 현장에서 마을 주민 김헌도씨가 발견, 본지에 제보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발견 당시에는 `학성리비`로 보고됐지만 정확한 발견 지점이 학성리가 아니라 중성리로 확인돼 명칭이 교체됐다.최대 높이 104㎝, 최대 폭 49㎝, 두께 12~13㎝, 무게 115kg인 부정형 자연석 화강암 판돌 중 한 면에만 음각으로 한자를 새겨 넣었다.글자는 전체 12행이지만 각 행(行)별로 새긴 글자 수는 차이가 있어 최대 20자까지, 모두 203자 정도가 확인됐고 비석 아래쪽 약 20㎝ 정도 공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비문 내용은 `포항 냉수리 신라비(국보 제264호·503년 제작)`와 비슷하며 토지나 재산권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일종의 판결문 성격을 띤 금석문이다. 또 신라 사회상이나 제도, 관직명, 인명 및 언어사용 관행 등 신라제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최승희기자shchoi@kbmaeil.com

2012-02-23

도산서원 등 서원 9곳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은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는 유산들을 앞으로 충분한 연구와 자료 축적을 통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도록 하기 위한 예비목록으로, 이들 서원은 이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됐다.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신청을 한 도산서원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 서원 9곳으로 구성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고 10일 밝혔다.문화재청은 국가브랜드위원회와 공동으로 지난해 4월 서원 세계유산 등재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업무를 진행했으며, 한국서원연합회와 서원이 소재한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서원에 대한 자료 조사와 연구 등 잠정목록 등재에 많은 역할을 했다.이번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된 9개 서원은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과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병산서원,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 충남 노산의 돈암서원 등이다.조효상 문화재청 국제교류과 주무관은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사학 교육의 전형으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면서 “이번에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오른 서원 9곳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된 서원으로서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637개 서원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고 문화유산적 가치가 빼어난 곳들”이라고 말했다.문화재청과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이에따라 서원 소재 지방자치단체와 서원연합회, 서원학회 등 관련 단체들과의 공조를 통해 우리나라 서원문화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한국의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01-11

보물 지정예고 포항 중성리 신라비 “역사·학술적 가치 높다”

제작 시기 지명 인명 관직 관등명 등 기록사회상 언어 등 신라제도 연구 귀중한 자료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신라 비석으로 평가받는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보물로 지정된다.문화재청은 25일 포항 흥해읍 중성리에서 2009년 발견된 중성리 신라비를 국가지정문화재 중 하나인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중성리 신라비는 기존에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꼽히던 국보 제264호 영일 냉수리비처럼 `지역에서 분쟁이 생겨 중앙에서 귀족들이 현장을 방문해 이를 해결한 후 다시 분쟁이 있을 경우 중죄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긴 포고문이다.초기적인 석비 양식으로 최대 높이 104㎝, 최대 폭 49㎝, 두께 12~13㎝, 무게 115㎏이며, 한쪽 면에 203자의 한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신라 비석의 초기 양식을 보여준다. 비문의 내용은 토지나 재산권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일종의 판결문 성격을 띠고 있다.문화재청은 신라의 지명과 인명, 관직과 관등명 등이 기록돼 있고 비석 첫머리에 `신사`(辛巳)라는 간지가 있어 건립 시기를 알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또 당시 사회상이나 제도, 언어사용 관행 등 신라제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했다.학계에서는 중성리 신라비가 간지년인 서기 501년에 제작돼 영일 냉수비(503년 제작)나 울진 봉평비(524년 제작)보다 오래된 신라 최고비(最古碑)로 추정하고 있다.또한 한 지역에서 2기의 비석이 발견된 것은 최초의 사례로 포항은 이번 중성리 신라비 보물 지정으로 고대 신라문화의 요람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두 비가 세워진 포항의 흥해·신광 지역은 신라 왕경사회의 정치·경제·군사적 요충지, 즉 왕경 6부 등의 귀족세력을 유지케 하는 수취제의 직할지와 배후지로서 국가운영의 기반이 됐던 곳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한편, 보물 지정 예고는 30일 이상 관보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공고되며 예고 후 6개월 이내에 문화재위원회의에서 최종 지정 여부가 심의·결정된다. 지정예고 기간에 제출된 의견은 문화재위원회의 지정심의 때 검토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12-26

그곳에 가면 옛숨결이 있다

중앙박물관 -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대구박물관 - 초조대장경 천년기념전 박물관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는 재미를 넘어 감동을 준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옛 선현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박물관을 향해 길을 나서보자. 타임머신을 타지 않더라도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한 공간,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곳들에서 이 마지막 여름 무더위를 아무탈없이 넘길 에너지를 한껏 충전해 올 수 있다.◆국립중앙박물관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가 일반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특별전시회가 9월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박물관 상설전시실의 특별전시실에 마련되는`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에는 풍정도감의궤를 비롯한 귀환 의궤 71점을 포함해 조선후기 강화도 지도와 외규장각 모습을 담은 `강화부 궁전도` 등 유물 165점이 선보인다.이번 전시는 자칫 의궤만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도서전` 성격을 탈피하고자 영상매체를 적극 활용했다.일례로 66세에 이른 영조가 첫 번째 왕비와 사별한 뒤 15세 정순왕후를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이는 의식을 다룬 `가례도감의궤`를 대형 영상물로 재구성해 선보이기도 했다.김영나 관장은 “그림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 등의 소재를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재구성하는 영상기법은 최근 상하이엑스포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도 이런 최신 기법을 적극 활용해 전시를 생동감 있게 꾸미고자 했다”고 말했다.이번 특별전은 외규장각 의궤의 여러 면모를 6부로 나눠 소개한다.도입부에서 의궤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소개하는 데 이어 외규장각 의궤를 내용에 따라 종묘제례나 친경(親耕), 영건(營建. 건축), 녹훈 수여, 왕실 혼례, 책봉, 존호 올리기, 국장(國葬) 등으로 나누어 소개한다.◆국립대구박물관 `초조대장경 천년기념 특별전`국립대구박물관과 ㈔장경도량 고려대장경연구소는 오는 9월18일까지 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초조대장경 천년기념 특별전`을 연다.특별전은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및 대구방문의 해 성공을 기원하고 초조대장경 발원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대구시 후원으로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는 2010년에 제작 완료한 1차연도 초조대장경 복원품 100점과 국보 제246호 `대보적경 권59` 등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초조대장경ㆍ재조대장경, 대구 부인사에서 나온 기와와 석조물을 전시한다.특히 국보 제246호 대보적경 권59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전면을 펼쳐 복원품과 나란히 전시해 진품과 복원품을 비교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1011년에 판각하기 시작해 70여년 동안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뒤 대구 부인사에 보관했으나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으로 소실됐다.초조대장경은 종이와 인쇄기술 등 고려의 문화적 역량이 총집결된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불교계와 대구시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역량이 담긴 위대한 기록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2010년부터 5년 간에 걸쳐 초조대장경 복원간행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그 첫 번째 성과를 선보이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17

`신라의 문자` 보러 오세요

경주문화재연구소 연말까지 상설전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신라의 문자` 상설 전시회를 올 연말까지 유물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문화재청 50주년 및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최를 기념해 최근까지 경주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 중 문자가 새겨진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한다.기록이 많지 않은 고대의 신라사를 연구하면서 문자가 새겨진 신라의 각종 유물은 신라의 정치, 경제, 제도 등의 사회상과 생활·정신문화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이번 전시에는 율령반포(법흥왕 7 : 520년) 이전 신라가 지방에 대한 통제권을 넓히는 과정에서 지방민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내용이 담긴 포항 중성리신라비(501년 추정, 현존하는 신라의 가장 오래된 비)와 영일 냉수리신라비(503년 추정, 국보 제264호, 복제품), 경주 남산신성의 축조와 관련된 남산신성 제10비 등을 비롯해 문자가 새겨진 중요 유물들이 공개된다.또 올해 사천왕사지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추정 사천왕사 사적비(事蹟碑) 편과 이수(비석 윗부분의 용무늬 장식) 편도 이번 전시회를 통해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개한다.삼국통일 이후 신라왕경의 확대 사실을 보여주는 문자가 새겨진 기와류, 음식과 관련된 토기류,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 목간(木簡), 여러 용도로 사용했던 인장(印章)들도 함께 전시된다. 이외에도 각 유적지에서 발굴 조사한 명문이 있는 자기류와 고고학적인 현장에서 유적의 연대를 살필 수 있는 동전들도 함께 전시돼 경주지역에서 출토된 문자가 새겨진 다양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는 신라인의 생활상을 그대로 전하는 1차 사료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신라의 역사, 그리고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증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17

포항 용계정 등 3개소 명승 지정

문화재청 포항 용계정과 덕동숲, 안동 만휴정 원림, 진도 운림산방이 각각 국가지정문화재 중 하나인 명승으로 지정됐다.8일 문화재청에따르면 포항 용계정과 덕동숲, 안동 만휴정 원림은 문화재청이 지난 2009년 경북지역에 대한 별서 명승 자원조사에서 발굴해 별도 용역을 통해 명승 지정을 추진했고 진도 운림산방은 전라남도 진도군의 신청에 의해 명승 지정이 이뤄졌다고 밝혔다.포항 용계정과 덕동숲(명승 제81호)은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 180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546년에 건립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북평사를 지낸 정문부의 별장(경북 유형문화재 제243호)과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숲, 자연계류 등이 잘 어우러진 명소다. 조선 중기 여강이씨의 집성촌으로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여 `덕동(德洞)`이라 불리고 있다.안동 만휴정 원림(명승 제82호)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의 문신 김계행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별서인 만휴정(경북 문화재자료 제173호)과 폭포, 산림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는 명승지이다.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한 진도 운림산방(명승 제80호)은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만들어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활동을 하던 곳이다.한편 명승은 유적과 더불어 주위환경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을 국가가 법으로 지정한 곳으로 문화재청은 1962년부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현재 전국에 80곳을 명승으로 지정하고 있다.일단 명승지로 지정이 되면 그 구역 내에서는 현상 변경은 물론 동식물 ·광물까지도 법률로 보호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1-08-09

울진서 국내 최대 상어이빨 화석 발견

울진 인근 해안에서 국내 최대 크기의 신생대 상어 이빨 화석이 발견됐다.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는 1일 이 이빨 화석을 공개하고 이 상어 이빨이 “경사(이빨 측면) 길이가 최대 107mm, 높이가 102mm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상어이빨 화석 가운데 최대 크기이며, 영화 `죠스`의 상어와 가장 가까운 종류”라고 밝혔다.이 화석은 지난 5월19일 어업에 종사하는 진영국씨가 우연히 발견해 기증했으며, 이후 센터에서 연구를 진행했다.그 결과 이 이빨 화석의 상어는 현존하는 상어 중 가장 큰 몸집을 가진 백상아리(Great white shark)나 이미 멸종된 상어인 메갈로돈(megalodon)의 이빨에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톱니구조가 뚜렷이 드러났다. 특히 이빨의 톱날 구조는 신생대의 대표적인 대형 육식성 상어 종류인 메갈로돈과 형태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고 센터는 말했다.이 화석을 연구하고 있는 센터의 임종덕 연구관은 “메갈로돈은 최대 몸길이가 15~18m, 몸무게 50t까지 이르는 거대한 상어로, 2천8백만년에서 150만년전에 서식했다”면서“이번 연구를 통해 신생대 한반도 해역에 서식한 메갈로돈은 몸 길이가 10m가 넘을 정도로 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당시 환경도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8-02

제2석굴암 건립 찬반 논란

불국사 측 옛것 보전관리 어렵다며 추진관광용 대체시설 필요-환경훼손 맞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토함산 석굴암 근처에 석굴암과 똑같은 제2석굴암 건립이 10여년 만에 다시 추진돼 논란을 부르고 있다. 문화재 보존 및 관람 편의를 위해서는 건립이 필요하다는 당위론과 원형 보존론이 맞서는 것이다. 21일 문화재청과 경주시청·불국사 등에 따르면 최근 불국사 측은 경주시청에 제2석굴암 건립 계획서를 제출했다. 불국사측은 기존 석굴암이 보호막인 유리벽으로 차단돼 있어 습기가 차는 등 보존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어 관람용 모의 석굴암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 석굴암에서는 관람 공간이 12㎡ 정도 밖에 안 돼 관람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기도 하다. 현재의 석굴암은 일제에 의해 변형된 것으로 알려져 원형 복원 필요성 또한 제기돼 있는 상태다.이번에 다시 추진되는 제2석굴암 건립에 대해서는 문화재청도 적극적이어서, 불국사 제안을 받아 내년도 예산에 사업비를 반영, 타당성 조사, 공청회, 학술대회 등의 절차를 거칠 계획까지 세웠다. 때문에 10여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어떻든 건립사업이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경주 지역 향토사학계, 시민단체, 관광업계 등은 대체로 환영의 뜻을 밝히며 사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역 향토사가 A씨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에 대해 원형은 보전하면서 대체시설을 만들어 공개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며 일본 나라시의 고송총과 중국 둔황석굴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런 유적들에서는 본체 인근에 복제시설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관람시킨다는 것.또 다른 향토사가 C씨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국보급 문화재를 접하는 시간이 1분도 채 안 돼서야 어떻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 목적을 위해서도 1대1 구조의 대체시설이 건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일부 사학자들은 주변 경관에 영향을 주는 신축·파괴·벌채 행위를 금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존권고와 배치된다면서 제2석굴암 건립에 부정적이다.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화여대 명예교수)은 “석굴암 인근에 이 시설을 설치하면 유적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채 그런 일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제2석굴암 건립은 지난 2001년 문화재청과 불국사 측이 유적 보존과 관객 접근성 확보 등을 내세워 추진하려다 학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경주/윤종현기자yjh0931@kbmaeil.com

2011-06-22

“암각화 디지털콘텐츠 박물관 건립 필요”

칠포리 암각화 국제학술대회 요지 칠포리 암각화 발견 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영일만 선사시대와 칠포리 암각화` 종합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박문하(동대해문화연구소장)= 암각화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이러한 관심을 관심을 이끌기 위해 암각화 디지털 콘텐츠 박물관을 건립할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이럴 경우 박물관건립의 현실적 한계성은 있는지, 또는 건립할 경우 방법과 가능성은 무엇인가?▲김기덕(건국대학교 교수)= 디지털 콘텐츠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자료의 공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DB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디지털 컨텐츠 박물관은 IT개념을 도입한 박물관이다. 빨리가 아니라 먼저가 우선인 사회가 되고 있다. 빨리는 아날로그 시대의 미덕이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먼저”가 미덕인 사회이다. 칠포리 암각화는 추상 암각화의 메카이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DB구축을 한다면 가능하며, 스토리텔링의 소재로도 좋다.- 이하우(선사미술연구소장)= 온라인을 통한 암각화의 소개로 오프라인으로 칠포리 암각화를 보러 오도록 만들자.-강호진(포항지역사회연구소)= 칠포리 암각화를 소개하는 알기 쉬운 아동용과 성인용 책자를 저술해 이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사회자 및 학회 관계자= 자료를 충분히 정리해 발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김용우(동대해문화연구소)= 칠포리 암각화는 바닷가에 위치하지만 오랜 세월 해풍에도 잘 보존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석재 문화재를 보존할 기법이 개발이 됐는가?▲임권웅(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보존처리는 풍화 및 훼손을 늦추는 것이지 이를 멈추게 하는 기법은 아니다. 잘못된 보존처리는 오히려 풍화를 더 빨리 초래할 수 있다. 현재로서 적절한 대안은 보호각 등을 세워 보호하는 것이다.▲에르텐 바타르(내이몽골대학교 교수)= 칠포리 암각화의 자생설에 동의한다.- 채미하(경희대학교)= 동해문화권을 벗어나 다른 문화권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할 것이다.▲윤명철(동국대학교 교수)= 다른 문화권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것이며, 국내적으로 영일만, 울산만, 삼척만에 대한 상대비교 연구를 했으며, 영일만은 대외교류적 위치에 적합하다. 그러나 칠포리 암각화가 자생적이라는 설에 동의할 때 대외 교류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최기주(청암문화재연구원)= 암석에 따른 풍화작용을 기록하였는가? 암각화학자들이 현지조사를 할 때 암각에 새겨진 성혈 및 문양의 크기 변화 등을 기록하여한다. 이것이 향후 보존에 중요한 기록이 될 것이다.▲이상목(울산암각화전시관)= 울산암각화전시관의 경우 교육과 학습부문에 대해 많은 치중을 한다. 암각화전시관의 주된 고객은 어린 학생들이다. 이들의 부모와 같이 오게 되고 이런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암각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성인들도 자연스럽게 암각화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다. 즉 암각화에 대한 관심층을 그 만큼 확대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관심층을 확산시켜야 한다.▲장장식(사회자, 국립민속박물관)= 암각화에 대한 보존과 활용도 중요하고 향후 암각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학회차원에서 해외번역 사업도 벌여야 하며, 암각화를 쉽고 재미있게 널리 알릴 수 있는 책자 등도 발간하여 일반의 관심을 널리 알려야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3

“포항·영일만 토착주민의 자생적 문화”

포항 칠포리 암각화(경북 유형문화재 제249호)는 우리나라 암각화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중요한 유적이다.포항 흥해읍 칠포리 201번지와 334번지 해안도로변, 749번지 등 곤륜산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암각화는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다른 지역 암각화가 사실적 표현의 그림인 반면 추상적 표현의 유일한 암각화로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독자적 형상으로, `한국식 암각화`유적의 발상지로 평가되고 있다.또 청하면 신흥리 오줌바위 별자리형 구멍바위 유적은 천문관측유적으로 희귀한 암각화이며 기계면 인비리 암각화는 1985년 발견 당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동해면 석리 인면암각화는 2000년 초에 발견될 만큼 포항지역은 암각화 군집지라 할 수 있다. 인비리 암각화는 국내 최초의 고인돌 암각화로 이름 높은 것이다.그 외에도 신흥리 천문유적이나 눌태리의 윷판형암가화를 비롯해 별자리형 바위구멍 등 다양한 선사유적들이 포항지역 도처에 발견되고 있다.이처럼 포항지역은 암각화유적의 분포와 그 내용의 다양성으로 인해 명실상부한 `암각화의 고장` `선사미술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선사·고대 정신세계는 물론 영일만 지역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지난 11, 12일 이틀간 포항 칠포파인비치호텔 세미나실에서 열린 `영일만 선사시대와 칠포리 암각화`주제의 국제학술대회는 포항시가 영일만 지역의 선사문화의 연구동향과 칠포리 암각화의 학술 연구 방향 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지난 1990년 발견 이후 20년 동안 칠포리 암각화 자료 발굴과 정리, 연구에 노력해온 한국암각화학회는 이날 행사를 주관해 암각화 발견 발견 이후 그 내용과 유래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던 칠포리 일대 암각화의 의의와 상징세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암각화 보존을 위한 과학적 방법의 이해와 암각화의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짜임새 있는 행사를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강봉원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가 주제 발표한 내용은 칠포리 암각화 문화의 생성은 포항·영일만 지역의 토착 주민들의 내재적·독자적인 문화발전의 맥락에서 이뤄진 자생적 암각화라는 것을 규명했으며 건국대 김기덕 교수가 발표한 칠포리 암각화의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은 세계 암각화 연구에 있어 한반도 암각화의 세계화로의 문을 폭넓게 열어주었다.이로써 한국암각화회는 한반도 암각화유적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고 `추상 암각화의 메카`로 불려지는 칠포리 암각화가 한국암각화에 있어 본격적인 연구시점을 찾아내는 중요한 자리가 됐다.학술대회에는 세계 암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중국 내몽골 인산암각화 연구자인 쉬잉 내이몽골대 교수와 동국대 윤명철 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8명의 전문가들이 발견과 연구, 출현과 배경, 변천, 보존과 활용,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 등 부문에서 주제발표했다.또한 채미하(경희대)·김인희(전북대)·하문식(세종대) 교수와 박문하(동대해문화연구소 이사장)·황인(향토사학자)씨 등 15명이 토론과 종합토론에 참여했다.2일차인 12일에는 흥해 칠포리 일대 암각화, 청하 신흥리 오줌바위 암각화, 기계 인비리 암각화, 동해 석리·상정리 암각화 현장답사로 이어졌다.한편 국보 제288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해 있는 울산에는 2008년 5월30일에 울산 암각화박물관이 문을 열어 지난 4월까지 32만1946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매년 특별전과 문화강좌, 한국암각화 유적조사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3

문경서 통일신라 금동불상 7점 출토

국군체육부대 이전예정지 광림사 절터 추정 경북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 445번지 일원 국군체육부대 이전예정지에서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고려시대 중·후기까지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가 발견됐다.이곳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7점도 무더기로 수습됐다.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이희준)은 조선시대 지도나 문헌에 오정사(烏井寺)라는 사찰이 있던 곳으로 기록된 이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광림사`(廣林寺)로 추정되는 옛 절터의 적심(積心) 건물터 9동, 축대시설 6기, 부속시설 8기 등이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이곳에서는 금동불상 7점과 `광림사`라는 글자를 적은 명문기와 등이 출토됐다.연구원은 적심건물지 1~4호에는 `광림사부`(廣林寺付)라는 기와가 다수 확인됐으며 건물터가 확인된 층위 양상과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등의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조선시대에 오정사라는 사찰이 들어서기 전 통일신라시대 후기 이래 고려시대 중(후)기까지는 이곳에 광림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금동불상 7점은 모두 광림사의 대웅전 터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적심건물지 2호 내부에서 수습됐다.이들 불상 중 금동여래입상 4점과 금동보살입상 1점은 부식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나머지 2점은 훼손이 심해 형태를 추정하기 힘든 상태다. 현상태 기준으로 가장 큰 것이 길이 19㎝이며, 그 외 불상은 12~17㎝ 정도다.불상 중 2점은 몸체를 대좌와 함께 주조한 것으로 드러났다.연구원 측은 “이들 불상은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 등으로 정교하게 제작돼 한국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윤희정·신승식기자

2011-04-22

천마도의 `천마`는 정수리 뿔 달린 `기린`?

1996년 적외선 촬영 `신라 천마도` 진짜 모습 공개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에서 수습한 신라 천마도(天馬圖)가 진짜 모습, `맨얼굴`을 드러냈다. 연합뉴스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29일 개막하는 특별전에 이 천마도가 출품되는 것을 계기로 지난 9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천마도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촬영한 관련 적외선 사진 10여 장을 입수해 24일 공개했다. 이 적외선 사진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96년 `문화재와 보존과학 97`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그 전해에 이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촬영한 것이다. 당시 사진들은 1장을 제외하고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 1장도 전체 사진이 아니라 특정 부분만 공개됐을 뿐이다. 이 적외선 사진들에는 천마도가 현재까지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국사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책자에 실린 천마도나 국립경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천마도가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기 때문으로, 기존 천마도 사진은 적외선 사진을 통해 드러난 천마도의 생생하면서도 세부적인 모습들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천마도는 더욱 생동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이번에 연합뉴스가 공개한 적외선 사진을 보면 `천마`의 정수리에 외뿔사진 위 원점선 모습이 완연히 보인다. 이는 천마도의 `천마`가 말이 아니라, 실은 정수리에 뿔이 하나 난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아프리카 기린과는 관계없음)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주목되고 있다. 다만, 이 `정수리 뿔`이 목덜미를 따라가면서 그려져 있는 갈기들의 일부분인지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 `정수리 뿔`은 그 위치가 정확히 정수리 위이며, 나아가 목덜미를 따라가며 그린 다른 갈기 그림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굵을뿐더러, 표현 양식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천마도는 천마를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형상화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은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연합뉴스

2009-09-25

영주 `괴헌고택` 국가지정문화재 된다

문화재청, 중요민속자료 지정 예고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5호인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에 있는 `괴헌고택(槐軒古宅)`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8일 “사당ㆍ사랑채ㆍ안채가 유교사상에 입각한 위계질서에 따라 각기 고유영역을 이루며 배치됐고, 구조양식 또한 위계에 따라 각기 다른 격조를 지닌 괴헌고택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예고 했다”고 밝혔다. 지정 대상은 건축물 4개 동(정침ㆍ사당ㆍ방앗간채ㆍ대문채)과 토지 1필지(2천030㎡)다. 이 괴헌고택은 입향조(入鄕祖. 처음 정착한 조상) 김세형(世衡)의 8대손인 김경집(慶集,1715~1794)이 정조 3년(1779)에 `소쿠리형` 또는 `삼태기형`이라 일컫는 풍수지리설의 명형국지(名形局地) 한가운데 지은 집으로 아들 김영(塋, 1789~1868)이 분가할 때 물려주었다고 한다. 김영은 회나무가 가득한 집이라는 뜻에서 이 가옥의 당호(堂號)를 `괴헌`(槐軒)이라 했다. 괴헌고택은`一`자형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튼 `口`자형 몸채가 자리를 잡고, 몸채 우측 뒤편 높은 공간에는 사당 구역이 존재한다. 사당은 별도의 담을 둘렀으며 협문을 통해서만 출입하게 했다. 사당을 더욱 신성한 장소로 느끼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이 고택은 제작 연대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성주단지를 비롯해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유물과 전통문화를 온전하게 보존, 전승해 왔다. 선대에서 물려받은 유물 대부분은 경북 영주 소재 순흥 소수박물관에 지난 6월 기증됐다. 또한, 사랑채와 안채를 비롯한 몸채의 곳곳에 생활의 편의를 위해 쪽마루와 많은 수납공간을 두고 있으며,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위한 작은 환기창과 고창을 각 방의 여러 곳에 내는 등 쪽마루·수납공간·환기창·고창 등이 발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윤희정기자

2009-09-09

문무왕릉비 조각 200년만에 재발견

그동안 실물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던 문무대왕릉비(文武王陵碑片·문무왕 재위 661~681)의 상단 부분이 발견돼 학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3일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시 동부동 A씨 수돗가에서 빨랫돌로 사용한던 돌이 문무대왕릉 비편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크기 40X66cm인 이 비편은 상단 부분이 주택 내 수돗가 마당에 시멘트로 박혀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진정환 학예연구사는 “장기간 노출에 의해 표면이 훼손되고 가장자리 부분 등의 일부는 마모가 심한 상태이나, 비문의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비편으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서 밝히지 못한 일부 글자에 대해서도 실제 비편과 비교하면 추가적인 판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석의 뒷면에 새겨진 비문의 잔존 상태도 주목된다. 682년 경주 사천왕사에 세워졌던 문무왕릉비는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洪良浩·1724~1802)의 이계집(耳溪集)에 1796년(정조 20년) 비편들이 발견됐던 사실이 처음 전하고 있다. 또 이 비편들의 탁본이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1793~1853)에게 전해져 그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비문이 실렸다. 그러나 비편의 실물들은 그 뒤 행방을 알 수 없게 됐으나, 1961년 비석의 하단 부분이 경주시 동부동에서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09-09-04

“현존 最古 신라비는 재판 판결문”

지난 5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에서 발견돼 현존 최고(最古) 신라비로 분석된 `포항 중성리신라비(浦項 中城里新羅碑)`는 재산 분쟁과 관련한 판결 내용을 담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발견 직후 이 비석을 경주로 옮겨 분석 중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이에 적힌 비문을 판독한 결과 기존에 발견된 영일 냉수리 신라비와 마찬가지로 “재물(또는 토지 등 재산)과 관련된 소송의 평결문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는 비석에는 “과거에 모단벌(牟旦伐·인명으로 추정)의 것(재물)을 다른 사람이 빼앗았는데 그 진상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며, 향후 이에 대한 재론을 못하도록 한다”는 평결 내용을 적었으며, 이런 평결에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관련 인물 등을 밝혀 현지인 등과 후세에 경계를 삼는 내용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이 `중성리비`는 발견 당시에는 `학성리비`로 보고됐지만, 정확한 발견 지점이 학성리가 아니라 중성리로 확인돼 명칭이 교체됐다. 이 중성리비는 최대 높이 104㎝, 최대 폭 49㎝, 두께 12~13㎝, 무게 115kg인 부정형 자연석 화강암 판돌 중 한 면에만 음각으로 한자를 새겨 넣었다. 글자는 전체 12행이지만, 각 행(行)별로 새긴 글자 수는 차이가 있어 최대 20자까지, 모두 203자 정도가 확인됐고, 비석 하단부 약 20㎝ 정도의 공간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았다. 비면 맨 위쪽 일부와 우측면 일부가 결실됐을 뿐, 글자 대부분은 판독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라고 연구소는 밝혔다. 이 비문이 제작 시기는 논란이 있지만 비문 첫 대목에 신사(辛巳)라는 간지가 보이며, 비문 내용이나 표기법 등으로 볼 때, 신라 지증왕 2년(501)보다 늦을 수는 없고, 이보다 60년이 빠른 또 다른 신사년인 441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중성리비는 “지금까지 최고(最古) 신라비로 알려진 영일 냉수리비가 503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현존하는 최고 신라비가 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연구소는 이 비문에 대한 조사 결과를 `포항 중성리신라비`라는 보고서로 발간하는 한편, 1일자로 연구소 홈페이지(www.gcp.go.kr)에 이 책자 원문을 모두 공개해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연합뉴스

200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