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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꿈이 현실이 되다… 꿈을 이룬 그 다음 이야기

이유의 첫번째 소설집 `커트`(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7년 만의 소설집이다. 2015년 장편소설 `소각의 여왕`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2012년 이후 3년 만에 선정된 수상작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커트`에서 작가는 꿈을 꾸고, 이루고, 실패하고, 다시 꿈을 꾸는 반복적인 상황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 “꿈이 그대로 현실이 돼버리는 황당한” 세상 혹은 “이건 진짜 현실이지만, 꿈이라고 열심히 생각하면 정말 꿈이” 되는 더 황당한 세상이 이유의 소설을 통해 실현된다. 특히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과 그 이후에 오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꿈과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이유의 소설은 꿈을 이룬 그 다음의 이야기다. 자면서 꿈을 꾸면 그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세계(`꿈꾸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아 야츠로 떠난 남자(`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공간이동 연구를 성공시킨 천재(`깃털`) 등 모두 꿈을 꾸고 실제로 꿈을 이룬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공간이동은 기본적으로 원본이 완전히 분해돼 사라지고 난 다음 복사본이 인터넷 망을 이용해 다른 장소에서 재조립이 된다는 거거든. 노골적으로 말하면 원래의 내가 없어져야만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는 거지. 내 몸에 담긴 모든 정보가 고스란히 조립된다고 해도 이걸 과연 나라고 부를 수 있겠냐는 거야.”-`깃털`이러한 악몽의 무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으로 이유의 소설은 거울을 마주 세운다. 거울을 마주 놓은 상태에서 들여다보면 같은 이미지가 계속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장면을 누구나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주 놓은 거울은 거울을 보는 주체를 대상화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를”(양윤의) 가져다 놓는다.첫 소설집의 표제작 `커트`는 악몽의 세계를 끊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미용사 `나`는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을 그야말로 한 방에 `커트`, 잘라내버린다. 악무한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썩은 내 나는 머리를 시원하게 잘라버림으로써, 숨통을 틔우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이런 상징적인 행동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서도 등장한다. 추운 도시 야츠에서 꿈을 모두 잃은 그는 동상으로 자신의 발가락 세 개를 잘라야 했다. 야츠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나쁜 기억을 떨쳐내듯 신체의 썩은 일부를 덜어낸 것이다. 악몽이 반복될지라도 썩어가는 부위를 조금씩 잘라내면서 그 자리,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발자국을 남기고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이유가 작품 속 화자들을 다루는 방식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03

제3세대 `청정 석탄화력발전소` 가능성 모색

▲ 하얀석탄“나는 석탄이다.”중진 작가 이대환이 최근 펴낸 `하얀 석탄`의 첫 문장이다.`하얀 석탄`은 최소한 나이를 수만 년 먹은`나, 석탄`을 1인칭 화자로 내세워 작가가 그의 토로를 받아쓴 형식의 글이다. 한국의 바른 전력 정책을 모색하는 책이지만 글은 딱딱하고 건조한 논문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시종일관 문학적인 에세이로 풀어낸다. 누구나 쉽게 읽어낼 표현과 문장으로 가되 문학적 품위가 그 안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내고 있다.중진작가 이대환, 바른 에너지 정책 제안서 `하얀 석탄` 출간한국·일본, 미세먼지·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설비 완성 단계원전 위험성·태양광 발전 등 대체에너지 비효율성 대안 제시이 책에서 `검은 석탄, 더티 에너지`는 미세먼지, 먼지, 더러운 연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오래된 기존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리키고, `하얀 석탄`이란 질산화산소(녹스), 황산화산소(삭스), PM2.5 같은 미세먼지, PM10 같은 먼지, 일반먼지 등을 배출하는 수준이 제로베이스에 가깝고 이산화탄소를 따로 빼돌리는(포집하는) `제3세대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리킨다.한국은 영흥석탄화력발전소 5, 6호기를 가장 깨끗한 석탄발전이라 자랑하는데, 그것은 미세먼지의 배출기준부터가 일본 요코하마 이소코석탄화력발전소에 한 걸음 뒤처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소코석탄발전에도 `하얀 석탄`의 자격을 부여하진 않는다. 그것은 `하얀 석탄`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그 출발선에 서 있는 석탄발전, 2세대 석탄발전의 정점에 도달한 석탄발전이라 규정한다.그러면`하얀 석탄`이라 부를 제3세대 석탄화력발전소는 가능한가? 이 책은 `하얀 석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기술연구와 설비개발이 미세먼지를 거의 완전히 잡아내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려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과 설비를 거의 완성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기술과 설비를 석탄발전에 장착하는 비용이다.이 작가는 물그 상용화 비용은 현재 전력 생산비가 태양광발전이나 LNG화력발전의 절반에 불과한 석탄발전의 전력 요금에 대한 소비자 부담을 조금 올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상승비용은 기존 석탄발전들이 먼지,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통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고 소비자에게 경제적 부담감을 거의 주지 않는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대환 작가이대환 작가는 “작년 경주 강진 이후의 원전 공포와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자리 잡았다. `하얀 석탄`은 미세먼지를 없애고, 핵폐기물과 지진 등 원전의 위험성과 태양광발전 등 대체에너지의 비효율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전력 정책을 모색하는 책”이라고 전했다. 이대환 작가는 포항 출신으로 1980년 국제PEN클럽 한국본부가 주관한 장편소설 현상공모, 1989년 `현대문학` 지령 400호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각각 당선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고향을 지키면서 포항문학의 성장에 앞장서고 한국 최초의 지역 연구 및 시민운동 종합지 `포항연구`를 주도했다. 시대적 격랑에 휘말려 고투해 나가는 인간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한 장편소설`슬로우 불릿`, `붉은 고래`, `큰돈과 콘돔`과 소설집`조그만 깃발 하나``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詩`, 산문집`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무지개`등을 펴냈다. 2004년에는 평전`박태준`을 펴내 “외국에서 출간되는 수작(秀作)의 전기에 비견될 작품이 나왔다”는 찬사를 받았다. 현재 계간문학지`ASIA`발행인을 맡고 있다.한편 `하얀 석탄`은 이대환 작가, 윤민호 일본국제금융정보센터 특임연구위원실장(경영학박사), 임재현 경북매일신문 편집국장 등 세 명이 공동기획하고 이대환 작가가 집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5

“자아는 행위의 주체가 아닌 객관적 대상”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첫 번째 철학 저작인 `자아의 초월성`(민음사)이 국내 초역 출간됐다.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 질문에 대해 사르트르는 자아가 행위의 배후에 있는 모종의 주체가 아니라, 의식의 활동을 통일하는 초월적 대상이라고 논한다. 이러한 새로운 자아개념은 자아의 본질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음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사르트르 사상의 핵심 명제를 예견하고 있다.1933년, 사르트르는 후설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베를린에서 유학하는 동안 후설의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독자적인 의식 이론을 펼친 결과가 곧 1936년에 출간된 사르트르의 첫 번째 철학서`자아의 초월성(La transcendance de l`Ego)`이다. “모든 의식은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가 등장하는 이 책은`존재와 무`라는 현대 철학의 대작을 예비한다.근대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도정에서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토대를 사유 주체인 `나`에서 찾았다. `나는 생각한다(Cogito)`에서 출발한 데카르트 이래 철학의 화두였던 `나`는 세계 전체를 자기 자신으로 환원하고, 타자를 알 수 없는 것으로 기각할 위험을 늘 수반했다.`자아의 초월성`은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 또는 유아론을 비판하며 윤리적·정치적 실천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으려는 사르트르의 지향이 초기부터 일관적으로 견지됐음을 보여준다.사르트르에 따르면 자아는 의식 속에 사는 `거주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대상이다. 자아는 의식의 모든 활동을 통일하는 초월적 대상이다. 우리의 모든 상태, 행위의 배후에 존재하는 자아란 허구이며, 자아는 오로지 반성을 통해서만 출현한다는 것이다. 나, 나의 의식, 나의 내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서양 전통과 결별하며 `내적 삶`에서의 해방을 추구한다.`자아의 초월성`의 1부는 칸트에서 시작한다. 칸트는 주지하듯 모든 표상들의 통일 원리로 작용하는 초월적 통각을 상정했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칸트의 해결이 `사실`의 차원까지 미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여기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가져온다.이어 2부에서는 자아의 구성이 본격적으로 검토된다. 자아 또는 의식과 혼동되곤 하는 `상태`, `행위`, `성질` 등의 요소를 철저히 분석하는 가운데 사르트르의 자아론이 제기된다.“자아는 모든 상태들, 행위들, 성질들의 통일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자체 초월적인 것이다. 그리고 자아의 본질적인 기능은 실제로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실천적인 것이다.”(127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0

강직·청렴의 표상 성혼의 인간적 삶에 초점

임금을 향해 목숨 걸고 직언을 토해 냈던 강직하고 청렴한 참선비의 표상 성혼의 삶을 그린 `우계 성혼 평전`(민음사)이 출간됐다.성혼은 절친한 친구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 후기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그 삶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시조 “말 없는 청산이요, 태 없는 유수로다….”를 쓴 깨끗한 선비, 성리학의 대가 정도로만 기억된다. 그간 성혼을 조명한 저작이나 논문들도 대개가 그의 학술적 업적이나 문학 세계, 교육 사상 등을 다루고 있다.조선 시대 연구에 매진해 온 원로이자 우리 시대 대표적 국사학자인 한영우 교수는 `우계 성혼 평전`을 통해 “가학(家學)의 전통이 있고, 의식주의 생활도 있고,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도 있는 사람”으로서 성혼의 인간적인 참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다. 이러한 삶의 현장을 알고 난 뒤에야 그의 학문과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성혼은 1535년(중종 35년) 청송 성수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성수침은 조광조의 문인이 돼 벼슬을 포기하고 깨끗한 재야 선비의 길을 걸었는데, 벼슬이 없는 성수침의 삶은 곤궁해 종종 식량이 떨어질 정도로 가난했다. 넉넉지 않은 가세는 아들 성혼에게도 이어져 환곡을 받지 않으면 봄철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항상 생활에 곤궁을 느끼고 살았다. 그나마 가솔이 많지 않아 겨우 자립은 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처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왜란 때 집이 불타 버리고 먹을 양식도 없어 절에서 밥을 얻어먹는가 하면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고 친구에게 옷을 부탁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내기도 했다.이렇듯 궁핍한 생활에도 성혼은 수십 차례 거듭된 임금의 부름을 거절하고 부귀영화를 멀리한 채 파주 우계의 오두막집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는 절친한 친구 이이에게도 가정 형편을 이유로 벼슬하면 언젠가는 이욕에 매달리는 타락한 선비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이이의 벼슬살이를 지켜보며 선조가 진정으로 선비를 등용하고 받아들이는 임금이 아님을 알았기에 더욱 조정에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바깥세상에 대해 관심을 거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한시도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벼슬자리에 갇히거나 당파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꼿꼿이 지킴으로써 임금을 향한 자신의 직언에 더욱 큰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결국 성혼의 삶은 선조의 미움과 반대파의 거센 공격 속에 쓸쓸히 끝나고 말았다.저자 한영우 교수는 전작 `율곡 이이 평전`을 저술하면서 이이와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는 또 한 사람, 성혼을 만났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살아서도 한 몸 같았고, 죽은 뒤에도 함께 문묘에 배향됐다. 성혼은 아버지 성수침의 영향으로 성리학 전도사이자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도인의 경지에 이르렀고, 친구 이이의 영향으로 이기설의 새로운 경지와 나라를 경영하는 경세를 터득했다. 성혼과 이이는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가까운 평생 동지였다. 성혼과 이이는 모두 경장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자신들이 처한 시대가 토붕와해(土崩瓦解), 즉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시급히 경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임금을 압박했다. 둘은 여러 차례 만언(萬言)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와 경연에서의 서슴없는 직언으로 현명한 인재 등용과 공납제도 개선 등을 임금에게 강력히 역설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고, 그 결과는 임진왜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이 책에서 저자는 성혼과 이이 사이에 오간 교류와 토론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를 연 큰 스승들의 학문과 정치적 식견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조선 후기 붕당의 정쟁으로 인해 굳어진 `이이는 노론, 성혼은 소론`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본래 한 몸이었던 두 물줄기의 원류를 바로 보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을을 불사르고 후학을 길러낸 참선비의 모습을 찾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0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11년간 문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해온 작가 명지현의 두번째 소설집`눈의 황홀`(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와 방송사 다큐멘터리 작가로도 십수 년간 일해온 이력의 소유자답게 명지현은 다채로운 소재와 과감한 묘사로 `맵고 독하지만 중독적인 이야기`를 구사해왔다. 그는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2009년 `작가선언69`에 동참해 용산참사 현장에서 1인 시위를,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릴레이 단식을 하는 등 구체적 실천을 꾸준하게 이어온 작가로도 유명하다. “작가란 기본적으로 서러운 자들의 편”이라는 신념과 “머릿속에 다른 세계가 있어, 글을 쓸 때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만의 개성과 창의력이 만나 명지현의 소설 세계에선 진흙 위에 황홀이 핀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찰나의 희열`, 눈이 시릴 만큼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명지현 소설은 발견하고 보여준다.이번 소설집에서는 만들고, 부수고, 또 다시 궁극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호모 파베르(만드는 자)`들, 그중에서도 자기 삶에서 주체성을 되찾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용감한 존재들의 이야기가 단연 돋보인다.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우리의 오늘 앞에 명지현이 펼쳐 보이는 여덟 개의 `다른 세계`, 빛나는 생의 황홀이 열리기 시작했다.명지현은 창작 욕망에 들린 예술가-장인들의 뜨겁고 맹목적인 열정,`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처절한 지향을 오랫동안 공들여 묘사해왔다. 전작들에서 벌레들이 만드는 빛의 회오리를 보겠다고 눈 속에 벌레를 키우다 시각마저 포기해버린 도예가(`충천`)나, 매운 음식에 조금씩 독 가루를 넣어 사람을 홀리는 치명적인 맛을 내는 덕은(`교군의 맛`)이 보여준 예술가들의 광기(狂氣)는 이 작품집에서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표제작 `눈의 황홀`에서는 할머니·어머니·손녀로 이어지는 화장(花匠) 삼대가`진정한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매진하다 못해 `저승에나 가야 본다는 천상의 꽃`을 보려고 자기 목을, 심지어 딸·손녀의 목까지 조르는 괴기한 집착을 다룬다. 지옥에 살더라도 끝내 이루고 말 어떤 경지를 향한 지독한 갈망은 읽는 이를 매료시키고 뜨겁게 한다.작가는 유기된 아이(`실꾸리`), 비혼모(`구두`)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흙과 실리콘 뼈로 만들어진 인간(`흙, 일곱 마리`)이나 김유정 로봇(`단어의 삶`)처럼 비(非)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빼앗긴 존재들을 이야기 주체로 등장시킨다. 특히`흙, 일곱 마리`에 등장하는 흙-인간들은 전쟁터에 팔려 나와 인간 살상 기계로 소모되던 중 동기들과 다시 모여 흙-고양이로 새로 태어나는데, 이를 통해 하찮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함부로 학대하고 조종하려드는 문명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20

삶의 불편한 진실 마주하기, 그러므로 오히려 윤리적인…

▲ 소설가 김살로메“이 소설집을 계기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소설이 오는 대로 받아 적기로 한다. 소설이란 살아내는 사람의 자연스런 방식 안에서 말해지는 거니까.”- 김살로메 소설집`라요하네의 우산`저자의 말 중포항지역 여류 소설가 김살로메씨가 등단 12년만에 첫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문학의문학)을 펴냈다.`라요하네의 우산`에는 표제작 `라요하네의 우산`을 비롯해 `암흑식당`, `누가 빈지를 잠갔나``강 건너 데이지` 등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한 편 한 편이 일정한 성취를 이루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은 섬세한 미문 대신 투박하고도 중성적인 문체로 사회 저변의 다양한 인간상과 관계성, 그리고 개개인의 내면을 다채롭고도 풍요롭게 조명해나간다.세련되고 인공적인 미학이 주조를 이루는 있는 한국단편소설의 조류에서 비켜나 돌밭 길을 가는 듯한 그녀의 소설은 인간 존재의 복합성에 대해 불편할 정도로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소설에서 요구하는 진정한 윤리성과 건강함을 획득하고 있다. 소재에서부터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영역의 폭이 넓고, 대상을 보는 시선도 거리두기 식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객관성은 냉혹하기보다는 심장의 피가 도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읽다 보면 이런 재미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한 번쯤은 찾아오는 소설들이다.김씨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이자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인간들이다. 작품에 뚜렷이 드러나는 대로 꼽아 보더라도, 알비노증이 있는 약사, 무력한 대학의 시간강사, 영세기업 사장과 직원, 혼자 사는 한지인형 제작자, 불륜에 빠져 있는 간호사, 살인을 주도한 무기수, 매춘을 겸하는 텔레마케터, 시대착오적인 가부장, 불법 의료장, 가난한 영세 상인이나 과외교사,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병행하는 고학생, 성폭행범, 시메트리 증후군 환자, 삼류 시인 등이 줄을 잇는다. 이들의 삶은 생물학적인 본성과 경제적인 유인에 크게 휘둘리고 있으며, 그런 만큼 삶의 비속함과 적나라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작품이 재현하는 현실 또한 풍성한 양상을 보인다. 아마추어 독립영화 모임이나, 장애인 단체, 결손 가정 및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사회 교육기관, 북한을 탈출해 나온 새터민 단체, 지방의 문인 모임 등에서, 텔레폰 클럽이나 암흑식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이 대체로 사회의 이면이나 기층에 해당함은 물론인데, 바로 이렇게 사회의 저변을 두루 형상화하는 것이`라요하네의 우산`의 특징이다.▲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박상준 문학평론가(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라요하네의 우산`은 우리들이 흔히 보는 삶의 현장, 공적으로 이야기되는 사회상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는 장을 찾아내어,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인물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있다”면서 “배경 자체가 전적으로 사회의 주변부라 할 수는 없어도 인물들의 삶을 보면 주변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들에 시선을 주어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그 결과 `라요하네의 우산`을 통해 작가가 축조해 낸 것은 우리 사회의 비루한 삶들이 빚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ia) 곧, 환영과도 같은 변화무쌍한 광경”이라고 작품 해설에 적었다.김살로메 작가는 안동 출신으로 경북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폭설`이 당선돼 등단했다.한편 김살로메 작가는 18일 오후 6시 30분 포항 티파니웨딩홀 3층 티파니홀에서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출판기념회를 갖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8

대구박물관, 전시품 이해 돕는 책 발간

국립대구박물관(관장 권상열)은 관람객들의 전시품 이해를 돕기 위해 `도움책-큰글씨 전시설명책-배움책`을 발간했다. `도움책`은 한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전시도록이다. 국립대구박물관 중요 전시품 50여 점을 재미있고 상세하게 소개했다. 특히 `자세히 보기` 칼럼에는 전시품에 얽힌 뒷이야기와 기초지식, 또 다른 정보 등이 담겨 있다.`큰 글씨 전시설명책`은 시각장애인, 노약자 등을 위해 큰 글씨로 제작한 책이다. 박물관 전시 문화재를 관람할 때 글씨가 작아서 읽기 힘들었던 설명문의 글씨를 크게 했다. 관람객은 이 전시설명책을 들고 다니며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다.`배움책`은 문화재를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어린이대상 교육책자다. 고대문화실·중세문화실·섬유복식실의 전시품을 교육 활동지처럼 구성했다. 선생님은 어린이의 문화재 지도를 돕고, 어린이는 문화재를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대구박물관 누리집 일반자료실에서 내려 받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국립대구박물관 관계자는 “`도움책·큰 글씨 전시설명책·배움책`의 발행으로 관람객들이 박물관 전시품을 쉽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문화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 가까이에 있음을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6

엇나간 한국정치 대안 `유교정치학 개론`

안외순 한서대 교수가 펴낸 `정치, 함께 살다`(글항아리)는 정치에 관한 유교의 오랜 지혜를 살핀다. 궁극적으로는 유교의 민본과 위민이 민주주의의 민치와 만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질적 민주주의를 도모할 수 있는 일종의`유교민주주의`를 모색한다. 1장에서는 정치학 개론 수준에서 정치와 인간 삶의 불가분의 관계와 그 개념, 정치의 목적, 정치방식, 정치의 요소, 정치과정, 정치변동, 전쟁과 평화에 관한 유교의 통찰력을 이해하고, 유교와 민주주의가 결합해야 하는 필요성을 논한다. 한마디로 `유교정치학 개론`이다. 2장에서는 대표적인 유교 경전인 사서, 즉 논어 맹자 대학 중용 가운데 중요 정치 관련 언술의 번역문을 해설과 함께 실었다. 3장에는 한문 원전을 실어 독자가 이를 직접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다음의 세 가지를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첫째, 우리 인식 속 근대중심주의·서구중심주의로 인해 생겨난 우리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기편견·자기비하적인 측면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 유교정치사상 공부를 통해 `유교민주주의`를 모색하는 것, 마지막으로 현재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가 어디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 현대 대한민국 정치의 약점, 반복되는 정치 사태의 원인, 과정, 결과, 대안에 대해 전통 유교정치 이론은 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3

혜성의 생성·소멸과정에 대한 과학적 해부

우주 과학의 대중화에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은 태양계 안의 행성들과 그 위성들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왔던 태양계천문학의 일인자였다.그의 대표작 `코스모스`(1980)는 천문학 서적인데다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우주의 탄생에서 시작해 은하계의 진화, 태양의 삶과 죽음, 생명의 탄생 과정, 외계 생명의 존재 문제 등이 250여 컷의 사진, 일러스트와 함께 펼쳐진 이 책은 까다로운 우주의 신비를 쉽고 흥미롭게 설명해 우주 과학 연구의 최고 명저로 인정받고 있다.최근 출간된 `혜성`(사이언스북스)은 지난해 12월 20일 칼 세이건 서거 20주년을 기념해 초판본(1985)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초판이 나온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지식과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코스모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과 함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3부작`을 구성하는 이 책은 칼 세이건이 그의 부인이자 과학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앤 드루얀이 함께 썼다.`코스모스`가 우주의 장구한 역사를 풀어냈고, `창백한 푸른 점`이 행성 탐험 역사를 기록했다면,`혜성`은 미신과 맹신의 시대를 극복한 인류의 자서전이자 과학적 탐구 정신이 밝힌 태양계의 창세기라 할 수 있다. `혜성`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그중 1부 `혜성의 본질`은 혜성에 매료된 위대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오랫동안 미신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혜성이 과학적 탐구 대상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그 과학이 밝혀 낸 혜성의 구조와 성분을 소개한다. 고대 문화권에서 재앙의 전조로 여겨진 혜성이 “그 자체로 천체”라고 판단한 아폴로니오스, 세네카 등 선구자들의 시대를 거쳐 주기적 귀환을 예측한 에드먼드 핼리를 만나면서 과학의 승리를 보여주기까지 과정이 유려하게 펼쳐진다.2부 `혜성의 기원과 운명`은 혜성의 생성과 소멸을 태양계의 진화, 대멸종과 연결지어 소개한다. 3부 `혜성과 미래`에서는 우주 탐사 시대에 혜성의 가치와 의의, 전망 등을 논의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3

이 시대 최고 지성의 `인간 탐구론`

영국의 학술지 프로스펙트(Propect)는 현세 최고의 지성인으로 미국의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89)를 2005년 선정했다. 현대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창시자인 촘스키는 자신의 전공인 언어학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수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문가를 뛰어넘는 식견을 보인다. 그가 지성인으로 명성을 얻은 또 다른 이유는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지식을 충분히 소화해 고도의 전문적 식견이 요구되는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내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미래엔)`는 지난 50년 동안 언어학과 인지과학, 사회비평 등의 학문을 넘나들며 연구해 온 촘스키가 자신의 성과를 토대로 인간과 사회에 관한 자신의 핵심 철학을 정리하고 논쟁점을 광범위하게 비평한 `촘스키 인간론`의 정수다.책에서 촘스키는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선천적인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촘스키는 이를 `언어성장`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며 책에서 언어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여러 이론들과 비교하고 분석한다.저자는 이 책에서 처음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정립했던 1950년대 이후 거둔 인지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언어 연구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언어의 사회적 측면과 의사소통, 지시와 관련된 측면을 강조하는 여러 가지 다른 이론을 설명하고 비평한다. 또한 관심을 사회와 정치로 옮겨, 그가 `자유 사회주의`라고 설명하는 입장을 면밀히 탐구하고 철학적으로 옹호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이 책에서 촘스키는 이론 언어학, 인지과학, 과학철학, 과학사, 진화생물학, 형이상학, 지식 이론, 언어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회·정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설명하면서 언어 과학자로서 함축적 의미를 전한다.촘스키는 이 책에서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인간의 근대적인 모습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언어의 어떠한 측면을 연구하든 언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해야 한다. 최소한 암묵적으로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언어에 관한 여러 가지 심각한 질문을 파고드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생물학자도 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눈의 발달이나 진화를 설명하려 들지는 못할 것이다. 언어 탐구도 아와 마찬가지 이치가 작용한다.저자는 인간의 본질을 `개인의`능력이라는 측면에서만 살펴보던 한계를 풀고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 대해 고찰한다. 무엇이 공공선이고 어떤 정치적·경제적 제도가 공공선을 장려하거나 좌절시키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 국가들이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공공선이라는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고집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공공선이 얼마나 역설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3

禪詩, 행간을 살피면 문득 다른 세계가…

먼지 쌓인 옛 문헌들을 탐구해 그 속에서 깊은 통찰을 길어 올려 소개해온 인문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의 신작 `우리 선시 삼백수`(문학과 지성사)가 출간됐다.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시조 삼백수를 가려 뽑고 풀이한 `우리 한시 삼백수: 7언절구 편``우리 한시 삼백수: 5언절구 편`에 이어, 이번에는 스님들의 선시(禪詩) 300수를 소개한다. 고려 중기의 승려 우세 의천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까지 서른한 명의 스님들이 무심한 듯 던지는 다섯 자, 일곱 자의 말. 비슷해 보이지만, 행간을 살피면 문득 다른 세계가 보인다. 소순기(蔬筍氣), 즉 채소와 죽순만 먹고 살아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언어의 매력을 정민 교수의 아름다운 해석으로 만날 수 있다.산속 절의 적막한 풍경, 늙어감의 덧없음, 생의 회한, 무(無) 자 화두, 무생(無生), 깨달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선시는 언뜻 보면 다 그게 그거 같다. 화두처럼 던져져 그 속뜻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정민 교수는 옛 문헌이 익숙지 않거나 불교 용어가 낯선 독자들이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선시 원문을 우리말로 풀이하고 어휘 풀이와 간결한 비평을 덧붙였다. 그는 깊은 사유를 담은 농축된 말에 평을 덧붙이는 것이 오히려 군소리가 될 여지가 있다며 자신의 비평을 하나의 독법으로만 참고할 것을 권한다. 스님들의 정제된 언어는 우리가 생각할 공간을 한껏 넓혀놓는다. 선승들의 말씀을 가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생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삼만 축의 시서에도 들어 있지 아니하고오천 함의 경전과도 아무 관계없다네.말하기 전 담긴 뜻이 이미 새어 나오니문자로 수고롭게 다시 가리키리오.”-`언외(言外)`“아침 내내 밥 먹어도 무슨 밥을 먹으며밤새도록 잠잤어도 잠잔 것이 아니로다.고개 숙여 못 아래 그림자만 보느라밝은 달이 하늘 위에 있는 줄을 모른다네.”-`아침 내내`/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3

“지역민과 함께하는 향토 문화예술”

▲ `포항문화원 소식 26호`죽장 입암시 `만활당` 소개포항 송도동 유래와 전설`그때 그시절 청포도 다방` 실어`향토문화연구` 부문에김준홍 포항대 교수`포항 도시발전과 소비문화` 게재포항문화원(원장 배용일)이 최근 지역민들에게 향토의 문화예술 소식을 전해주고 향토문화를 시민들의 삶 속에 함께 공유하기 위해 펴내고 있는 기관지 `포항문화원 소식 26호` 와`포항문화 제12호`를 잇따라 펴냈다.지난 2006년 4월 창간한 `포항문화원 소식`은 1년에 네 차례씩 계간지로 발간되는데 문화원의 소식과 문화 정보를 속속들이 전해주고 있다.`포항문화원 소식 26호` 에는 `한국美의 산책`, `단상`,`그때 그 시절 포항`,`포항 마을 유래와 전설`, `국보이야기`, `문화원 소식`, `문화가족 동정`등 향토 문화의 과거와 오늘을 살펴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다.`한국美의 산책`은 조선시대 왕이 앉아 백관의 하례를 받고 조회를 행하며 집무를 했던 좌석인 어좌와 죽장입암시 `만활당`을 소개하고 있고 `단상`에서 배용일 원장의`산남의진과 농고 최세윤의 현대적 조명`, 과 박창원 수필가의`겨우살이`를 담았다.`그때 그시절 포항`에서는 박이득 포항문화원 부설 포항문화연구소장의`청포도다방`을, `포항 마을 유래와 전설`에서는 `송도동`을 안내한다.또 `국보이야기`를 통해 211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에서부터 220호 청자 상감용봉모란문 합 및 탁까지, `문화원소식`을 통해 2016 어울누리 문화한마당 참가, 포항교육지원청과 올바른 인성함양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등을 실었다.특히 포항문화원은 월월이청청보존회 2016 전국생활문화제 참가, 제24회 경상북도풍물대축제에서 오천읍 풍무단 차하 수상, 제2회 포항문화연구소 학술심포지엄 등을 소식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알리고 있다.이외에도 문화가족 동정, 독자공간, 포항문화원공고 등 풍성한 소식들로 꾸몄다.포항문화원은 지난 2009년부터 복간호인 제5호를 통해 연 1회`포항문화`를 발간하고 있다.`포항문화 제12호`는 `향토문화연구`, `제언`, `스토리텔링`, `2016 포항문화원에서는`, `독자원고`, `2016 전국한시백일장` 등을 담았다.`향토문화연구`는 권영배 계명대 교수의 `산남의진의 활동과 성격`, 김준홍 포항대 교수의 `포항도시발전과 소비문화의 변화`로 구성돼 있다.▲ `포항문화 제12호``제언`에서는 배용일 포항문화원장의 포항의 분할양상을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신증동국여지승람`등을 통해 살펴보는`포항지역의 흥해군·영일현 양지역에로의 분할편입`과 고 이은민 시인이 1965년 포항 최초의 신문인 동해경제신문 제2호에 예명 이정호로 발표한 시`하한절`을 담았다. `스토리텔링`에서는 김삼일 대경대 석좌교수의 조선시대 여종 단양의 충절을 그린 연극 극본`집신골의 어머니`를 담았고 `2016 포항문화원`에서는2016년 포항문화원 소식을 화보로 담았다.`독자원고`에는 김종일씨의 `문향의 고장에서 태어나 예향의 고장에 가다`, 이미숙씨의 `구름에 달가듯이`, 정영희씨의 `봉화가 간직한 문화유산`등이 실려있다.배용일 원장은 “2017년 새해에는 붉은 닭띠 해의 의미처럼 성실하며 예의바르고 미래에 대처하는 능력을 발휘해 문화가족 여러분이 함께하는 창조적 변화의 주인공이 돼 포항문화원을 앞장서 이끌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11

말기암 선고… 100일 시한부 판정 죽음을 준비하는 유쾌한 하루하루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파우스토 브리치의 데뷔작 `100일 동안의 행복`(민음사)이 출간됐다.파우스토 브리치는 국립 이탈리아 영화학교를 졸업한 재기 넘치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작 `시험 전날 밤`이 `다비드 디 도나텔로` 상을 포함해 여러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으며 `애프터 러브`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말기 암으로 살아갈 날이 100일밖에 남지 않은 남자의 하루하루를 유쾌한 시선으로 그린 `100일간의 행복`은 그의 데뷔 소설로, 20여 개국이 넘는 나라에 판권이 팔리는 쾌거를 이뤘다.`100일 동안의 행복`은 사랑하는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체육 교사 루치오가 갑자기 말기 암을 진단받고 난 후 스스로 조력 자살을 선택해 100일 후에 죽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대인의 불치병 중 하나인 암이라는 소재는 인간사를 다루는 문학과 드라마 분야에서 그동안 다양하게 다뤄져 왔지만, 파우스토 브리치는 특유의 이탈리아적인 감성으로 `죽음`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어떻게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지 그린다.`100일 동안의 행복`은 이탈리아 로마 한복판의 한 평범한 가정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즐거운 독서의 기회가 될 것이다.소설은 갑자기 맞닥뜨린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 선 루치오의 목소리를 시종 유쾌한 어조로 전달한다. 헬스클럽 강사로 건강하기만 했던 자신에게 닥친 `간세포암`이라는 단어 앞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곧 마음을 정리한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채 헬스클럽에서 바람을 피워 아내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던 루치오는 무엇보다 아내 파올라에게 용서받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다.루치오는 장인어른이 만든 도넛을 매일 아침 먹으며 행복을 느끼고,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마지막 100일이라는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 나간다. 마지막에 이르러 루치오는 마지막 소원을 이루려 가족과 함께 하이킹 여행을 떠난다.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지막 여름 휴가라는 것을 모른 채 즐거이 뛰놀지만 떠나야만 하는 루치오의 심정은 절절하다. 루치오가 보내는 100일 동안의 단순한 일상을 그린 이 소설은 가족과 주변 인물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소설은 병과 죽음이라는 대전제로 시작하지만, 시종일관 낙천적이고 경쾌한 문체로 진행된다. 특히나 루치오는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결손가정 출신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 온 캐릭터다. 아내를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따로 청소년 수구 팀을 이끌기도 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는 그는 삶과 사랑에 적극적인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자다. 소설에 색다른 향기를 불어넣는 것은 소설 곳곳에 가득한 이탈리아적인 분위기다. 루치오와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창조적인 발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일화나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의 파우스토 브리치의 문화적 자부심이 느껴진다. 가족 친화적인 문화, 창조적정신, 예술에 대한 애호, 남녀 간의 자유로운 사랑 표현 등, 이 소설에는 이탈리아 작가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비록 삶의 끝이 죽음일지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들의 정신은 부정과 포기가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에 한 줄기 밝은 빛을 던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1-06

좋은 부모되기는 `사랑`이라는 마음 먹기부터

`서천석의 좋은 부모 다이어리`(창비)는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의 저자,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이 제안하는 좋은 부모 되기 실천법이 육아 다이어리 형식으로 엮여 출간된 책이다. 저자는 좋은 부모가 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부모에게 아이에 대한 사랑과 잘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첫 걸음이라고 이야기하며, 거창하고 버거운 목표 대신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는 작은 목표들을 매주 하나씩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다이어리에 담긴 총 52가지 실천 목록 가운데, 자녀가 만 3세에서 초등학생까지라면 대부분을 실천해볼 수 있고, 태어난 지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 혹은 청소년 자녀라면 전체의 70%를, 24개월보다 어린 영아 자녀인 경우 50% 정도 부모가 해볼 수 있는 내용이다.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실천은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목욕탕 가기` `아이와 함께 음식 만들기`등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재미있는 것부터, `퇴근 후 5분, 아이에게 선물하기` `아이에게 사랑의 메시지 전하기`처럼 작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아이 입장에서 일기 써보기` 등은 아이를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천이다.또한 한 해의 시작, 새 학기, 시험, 방학, 가을, 한 해의 마무리 등 시기별로 적절한 실천법을 제시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새 학기에는 아이의 새 교과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활동이, 연말에는 아이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목표 비행기`를 날리는 계획이 담겨 있다.아이를 향한 미션뿐만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를 돌아보는 실천도 있다. “스스로를 아끼는 부모가 아이도 제대로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 `부모의 자기 위안 시간 갖기`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개발하기`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 걸기` 등의 실천을 통해, 부모의 마음속에 있는 어릴 적 자신을 보듬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좋은 부모 다이어리`에는 작은 코너 하나에도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전문가로서의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월간 캘린더 페이지의 `엄마 기분 차트`를 통해 부모 자신의 기분을 수치화 해 그래프로 그려봄으로써 자신의 감정 기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주간 캘린더 페이지의 `이 주의 말 연습`을 통해서는, 아이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나서 후회에서 그치지 말고 어떤 표현이 좋을지 생각해보며 반복적으로 연습하도록 하여 부모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다이어리 곳곳에 실린 따뜻한 일러스트와 서천석의 육아 메시지는, 일상에 지친 부모들에게 작은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저자 서천석씨는 “1년 52주, 52가지 실천법을 다 실천한다면 물론 좋겠지만, `좋은 부모 다이어리`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숙제가 아니다. 어느 주의 실천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잠시 건너뛰어도 좋고, 쉽고 재미있어 보이는 실천을 먼저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위해, 스스로를 위해 지금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이 첫 걸음에서 출발해 작은 실천과 기억들을 쌓으며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데 이 다이어리가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윤희정기자

2017-01-06

“글로벌 금융위기, 인생최고의 두번째 기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버트 기요사키의 신작 `부자 아빠의 세컨드 찬스 `(민음인)가 출간됐다.투자교육 전문가이기도 한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의 세컨드 찬스`에서 부자와 권력자들이 돈, 정부, 은행 제도를 이용해 부를 강탈하는 방법을 살피고, 금융 비상사태 속에서 자산을 확보하는 미래 투자 대비책을소개한다.세컨드 찬스란, 위기를 기회로 바꿀 때 찾아오는 인생의 두 번째 기회라는 의미로, 저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붙잡을 때 세컨드 찬스가 찾아온다고 강조한다. 트럼프 당선 후 세계정세는 정치·경제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혼돈에 봉착했다. 이 책에 의하면 위기라는 키워드가 대두된 지금이야말로 최고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국민을 비호한다는 미명 아래 정책, 제도, 교육, 시스템 등을 통제하며 부를 강탈한 정치 지도자들을 고발하고, 그들의 술수에 흔들리지 않고 부를 지키는 방법을 제시한다.저자는 정책과 제도의 술수에 속지 않고 현명하게 자신의 부를 지키고 늘리는 방법으로 저축보다는 1차적 자원에 투자하고, 부동산을 이용해 현금흐름을 창출하며, 무엇보다 이 모든 시스템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금융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 교육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야를 확보할 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생각의 전환 역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부자 아빠의 생각 전환법- 학교에 다녀라 ▶ 학교에서는 금융 교육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돈을 위해 일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금융 교육은 현금흐름을 창출하여 자산을 획득하는 법을 가르친다.- 실수하지 마라 ▶ 학교에서는 실수를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이 이기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가장 많은 실수를 하는 사람이 이긴다. 실수는 연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수한 성적을 받아라 ▶ 학교에서는 읽고 쓰기를 잘하고 수학을 좋아하면 좋은 성적을 거둔다. 사회에서는 신체·정신·감정·영성 지능이 골고루 발달된 사람이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사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 좋은 직장을 얻어라 ▶ 직장의 안정을 추구할수록 금전적 자유는 줄어든다. 부를 이룩하고 싶다면 재정적 자유부터 획득하라.- 채무에서 벗어나라 ▶ 대부분의 사람들이 빚을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채와 세금을 활용하여 현금흐름을 확보하면 빚도 이득이 될 수 있다. 좋은 빚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 소득 수준 이하로 살아라 ▶ 소득 수준 이하로 사는 것이 검소하고 올바른 삶이라 믿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보다 부유하게 살 권리가 있다. 자산 기둥에 관심을 집중하여 수입을 늘리면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부정행위 하지 마라 ▶ 도움을 구하는 것을 부정행위라고 부르는 유일한 장소는 학교뿐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조언자에게 도움을 구할 때 인생의 기회는 확대된다.- 부자는 탐욕스럽다 ▶ 사람들은 돈의 양이 아니라 돈을 버는 과정 때문에 부자를 탐욕스럽다고 여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나눠 주면서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다.-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 금융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하는 투자는 위험하다. 금융 교육을 받고, 훌륭한 조언자를 두고,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다면 투자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돈을 저축하라 ▶ 저축할 때 우리의 돈은 강탈된다. 현명한 부자는 돈을 저축하지 않지 않고 돈을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1-06

“왕의 온천수와 가장 어울리는 힐링 시조집”

경북 의성출신 시조시인 김락기(60·사진)씨가 최근 시조집 `수안보 속말`을 펴냈다. 이번 시조집은 그의 다섯 번째 작품집이다.우리나라 시조단 최초의 사단법인인 한국시조문화진흥회 제4대 이사장인 김 시인은 “수안보온천을 비롯한 곳곳의 절경을 감상하고, 지역의 아름다움과 한국적 정서를 시조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시조집에는 충주 수안보 관련 예찬 시조 79편이 실렸는데, 시인이 4년간 발품을 팔아 각고 끝에 낳은 겨레의 유구한 정형시다. 충주 14경의 수려한 사진 작품도 수록돼 있다.문학평론가 정유지 박사는 “왕의 온천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힐링 시조집”이라는 평가와 함께 “전통적 한국 정서를 미학적으로 잘 구축하고 있는 가운데 충주 및 수안보온천을 소재로 한 최초의 시조집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평했다.우리 시조의 범국민문학화와 세계화에 밑돌을 놓는 데에 앞장서고 있는 김 시인은 대구고와 단국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오랫동안 몸담았으며, 충주 수안보상록호텔 사장을 지냈다. 고교 때부터 간직해 온 문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3년 늦깎이로 등단해 세계문학상 시조 대상과 시조문학 창간 50주년 기념 작품상, 문학세계문학상 시 대상 등을 받았다.작품으로는 시조집 `삼라만상` `독수리는 큰 나래를 쉬이 펴지 않는다` 시집 `바다는 외로울 때 섬을 낳는다` `고착의 자유이동` 등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30

팔순 원로시인 삶 오롯이 고순도 詩選 100편 실어

원로 시인 황명걸(81) 시인의 시선집 `저희를 사랑하기에 내가`(창비)가 출간됐다.황 시인은 1962년 `자유문학`신인상에 `이 봄의 미아(迷兒)`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등장한 이후 사회참여와 현실비판의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로 1960~1970년대 한국 시단을 풍미했다.시인의 오랜 벗 신경림 시인과 구중서 문학평론가가 첫 시집 `한국의 아이`, 두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 세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서 각 25편씩 가려 뽑은 것을 시인이 일일이 손을 보았고, 여기에 신작시 25편을 더해 모두 100편의 시를 실었다. 지난 54년간의 시적 성취와 시 세계의 변모를 한눈에 살펴보면서 “새삼 시란 무엇이며 시를 읽는 즐거움은 어데서 오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신경림, 추천사)해보게 하는 각별한 의미가 담긴 시집이다.제1부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가난과 슬픔과 역사와 미래가 응축”(구중서)된 시인의 대표작`한국의 아이`를 비롯해 첫 시집 `한국의 아이`에서 뽑은 시들이 실려 있다. 판금 조치라는 수난을 겪기도 한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불 팔아 며칠/솥 팔아 몇끼/마지막 숟갈 팔아 한끼 연명하고는/지어미가 지새끼를/지아비가 지어미를/제가 제 목숨을 끊어 일가족 집단자살”(`그날 호외는`)하고 마는 암울한 사회와 민족분단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을 드러내는 한편, “신문사가 주인인 호텔엔/까맣게 높이 인부들이 매달려/값싼 임금에 유리창을 닦는”(`서글픈 콘트라스트`) 부조리한 현실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다방에 앉아 금붕어마냥 엽차만 꼴깍꼴깍 마시고/(…)/해 떨어지면 그렇고 그런 패들과 어울려/막걸리잔이나 기울이”(`이럴 수가 없다`)는 도시 소시민의 무기력한 생활을 반성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제2부는 두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에 실린 시들이다. 첫 시집 이후 20년의 침묵 끝에 펴낸 이 시집에서 시인은 동아일보사에서 집단해직된 이후 언론자유화운동 시절의 통렬한 사회비판 의식과 북한강변에서 화랑 까페를 운영하며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만년의 순진무구한 사색의 세계를 담은 시편들을 선보인다.제3부에 실린 시들은 세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서 가려 뽑았다. 고희를 기념해 내놓은 이 시집에서 시인은 “드문드문 검버섯 피어 있어/얼굴이 더욱 맑고/연륜과 기품이 엿보이는/아름다운 노인/벽오동이나 은백양/또는 자작나무를 닮은/향기나는 사람”(`아름다운 노인`)이 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노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제4부 신작시에서는 연륜의 깊이가 묻어나는 고매한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전작 시집에서 보인 냉철한 현실비판 의식보다는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른 자로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진솔한 시편들이 감동적이다. 어느덧 팔순의 나이를 넘긴 시인은 “매사에, 사사건건, 사안시하며, 악의에 차서/깎아내리고, 욕지거리하며, 핏대를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별종/싸가지 없는 악종, 구제불능의 망종이었다”(`허튼소리`)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젖기도 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자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30

`카프카`문학의 거짓과 사실에 대하여

“절망하지 말라. 비록 그대의 모든 형편이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이미 일이 끝장난 듯 싶어도 결국은 또 다시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된다.”-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인간 운명의 부조리(不條理)와 존재의 불안을 극한으로 표현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다.40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카프카는`변신``성` `실종자`등 대표작을 남겼으며 죽을 때까지 창작열을 불태웠다. 그는 “한 권의 책은 고통을 주는 불행처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자살처럼,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처럼 충격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묘조 기요코의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교유서가)는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사람, 달리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독일의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문학연구서다.이 책은 기존의 카프카상을 깨고 좀더 인간적이며 생생히 살아 숨쉬는 카프카의 모습을 재구성해 보여준다.저자는 1912년 9월부터 11월까지 약 두 달 반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 기간은 카프카의 생애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작품 활동의 시기였다.`판결`,`실종자`,`변신`은 카프카가 생전에 출간한 작품 가운데 절반에 해당한다.저자는 당시 카프카의 편지, 일기, 산문과 이들 작품을 시간 순으로 독해하면서 카프카의 성장 과정과 주변 환경, 내면을 종횡무진으로 엮어낸다. 그간 작품들 사이의 관련성을 파악하거나 카프카의 생애 전반과 관련지어 텍스트를 독해하려는 시도는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그간 연관이 없었다고 여겨진 텍스트들을 함께 독해해 카프카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고, 카프카 문학의 `거짓`과 `사실`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드러나는 1912년 9월부터 11월까지의 카프카는 거짓말과 연기에 능하고, 사랑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사업에도 자신감을 보이는 강한 사람이고, 강한 아버지에 짓눌린 약한 아들이 결코 아니다. 또한 예술적 측면에서는 “진실을 드러내는 거짓”으로서의 문학, “허위로 가득한 현실 세계를 아무런 허위 없이 재현하는” 문학에 한 걸음 다가서는 불멸의 현대적 면모를 보인다.카프카는 세 번 약혼했다가 모두 파혼했으며 이후 유부녀인 밀레나 예젠스카와 사귀기도 했지만 끝내 결혼하지 않았다. 카프카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 또한 그가 작품 활동에만 충실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오랫동안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카프카가 사랑과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좀더 입체적으로 파악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30

셰익스피어 모든 작품을 단 한권에

시대를 초월한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에 맞춰 문학과지성사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을 출간했다. 이미 국내에서도 `셰익스피어 전집`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권의 단행본 형태로 출간됐지만, 셰익스피어의 `모든`작품이 수록된 전집은 이 책이 처음이다. 더욱이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단 한 권에 담고 있다(1천808쪽).이 방대한 양의 책을 번역한 이상섭(79) 연세대 명예교수는 서양에서 가장 최근에(1990년대) 집단적으로 연구된 성과를 집적해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옥스퍼드 판 셰익스피어 전집`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그 판본 연구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무대 상연`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주목한다.또한 이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의 대부분이`5개의 약세 음절과 5개의 강세 음절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근거로 `셰익스피어는 모든 작품을 운문으로 썼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이 교수는 영어와 한국어가 언어 체계는 다르지만 모든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운율`을 살려 우리말의 `운문`(4.4조와 7.5조 형식의 변형)으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고 그 취지와 성격을 밝힌다.이 책의 번역은 학술적 의미보다는 우리말의 입말로 잘 읽히는 것에 무게중심을 뒀고 실제 공연의 대사로 활용하기에 알맞게 하려고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이 교수는 각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역사·문화·신화·언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거의 매 쪽마다 상당량의 친절한 `주석`(각주)을 꼼꼼히 달았으며, 우리말로 옮기는 게 거의 불가능한 원문인`영어식 말장난들`에 대해서는 원문의 상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 문화에 어울리는 적절한 우리말로 치환함으로써 옮긴이로서의 재치를 한껏 보여준다. 이 교수는 정년퇴임 후 이 `셰익스피어 전집`을 번역하기 위해 자신의 노년 중 꼬박 10년의 세월을 바쳤다.한편 그의 동료 극작가였던 벤 존슨가 말했듯 “한 시대가 아닌 만세를 위한 작가”였던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아름다운 시적 상상력과 인간성의 안팎을 넓고 깊게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보여줬다.그의 희곡은 그때까지의 중세 연극의 평면적이고 진부한 캐릭터가 아니라, 햄릿, 맥베스, 폴스타프 등과 같은 사실적이고 양면성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전위성에 당대에서부터 찬사를 받는다. 그의 작품 속의 허구가 현실 속의 사실을 능가했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2-30

경계와 구분이 흐려진 자리 나라고 믿던 내가 지워지고…

`제35회 김수영 문학상`수상 시집`감은 눈이 내 얼굴을`(민음사)이 출간됐다.2014년 `문예중앙`신인상으로 등단한 안태운 시인의 첫 시집이다. 액체처럼 유연하게 읽히는 문장들과 그 문장으로 짜여진 시집 전체가 지니는 견고함이 상반된 놀라움을 선사하는 시집`감은 눈이 내 얼굴을`은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막힘없이 고요하게 흐르는 물줄기 같다. 문장은 정련됐고 이미지는 선명하며 구성은 빈틈이 없다. 안태운의 시는 수면 위의 잔잔함과 수면 아래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포괄한다. 수면 아래가 궁금해 자꾸만 그 물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 그것이 시인 안태운이 보여 주는 그의 `첫` 세계다.“ 그는 안에 있고 안이 좋고 그러나 안으로 빛이 들면 안개가 새나간다는 심상이 생겨나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비는 내리고(….)얼굴의 물 안으로얼굴의 물 밖으로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얼굴의 물`에서물의 이미지는 안태운 시집 전반에 걸쳐 `비`, `눈물`, `파도`, `탕`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돼 나타난다. `비`로 내리는 물은 구분된 경계를 무화(無化)시키는 존재다. `안`과 `밖`의 경계는 그로 인해 구분지어진 이들에게 자리를 지정한다는 점에서 인식을 고정시키고 안주하도록 만든다. 안태운의 시에서 모든 곳에 내리고 차오르는 비는 `나의 현실과 타인의 현실`, `내부의 내면세계와 외부의 현실세계`와 같은 구분이 세계에 대한 상투적인 이해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한다. 비는 서 있는 자리에 그어져 있던 경계를 지우고, `나`를 다른 자리로 옮겨 놓다가, 결국은 `나`마저 지워 버린다. 비에 씻겨 나가 `보이지 않는 얼굴`(「얼굴의 물」)은 그 자체로 질문이 된다. 나라고 믿던 내가 지워진 이후,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 흐르는 물이 안팎을 허물어 버린 자리에서 이전에 볼 수 없던 생경한 것을 보는 것, 시인은 이 낯설고 불편한 기회를 권한다.“바라는 사람들 곁에서 네가 낳기로 하고 낳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나는 사람들 곁에 없었다(….)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이내 그것을 그치고 너를 돌아보고 있다 수를 세면서너는 낳기로 하고 그러므로 여덟을 낳고 낳은 후 누워서 바라고 있다 너는 내 얼굴을 찾고 있나 그러나 찾지 못했지 나는 사람들이 되어 울고 있었지”-`낳고`에서흐려진 경계 위에 등장하는 안태운 시의 인물들은 서로 자리를 바꾸며 관계를 분열시킨다. `너는 내 얼굴을 찾고 있나 그러나 찾지 못했지`(`낳고`) 라는 고백은 `너`와 `나`의 구도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네`가 `부서져 나간 자리에 내 몸을 이어 붙인다.`(`원경`)는 진술은 `나`와 `네`가 일치하는 지경에 이르는 이미지를 보여 준다. 안태운의 시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구도를 전복시키며 묻는다. 나는 누구고, 어디에 있는가. 시 속에서 `너`와 `내`가 일치한 것과 같이 독자는 시인이 건넨 질문을 제 것처럼 여기게 된다. 읽는 자와 쓰는 자의 자리도 어느덧 희미해지는 것이다. 시인은 지난한 세계에 대한 질문과 함께 새로운 읽기를 가능케 한다./윤희정기자

2016-12-23

꽃들은 피다가 멈추고 새들도 그러하지만…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설야(48) 시인의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창비)가 출간됐다. 시인은 등단 이후 줄곧 고통받는 민중의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처절한 삶의 경험을 한땀 한땀 엮고 꿰매는 듯한 시적 진성성으로 민중시에 바탕을 둔 새로운 리얼리즘의 시세계를 개척해왔다. 등단 5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냉철한 관찰력과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오르는 뜨거운 언어로 소외된 자들의 궁핍한 삶의 모습과 헛것과 거죽뿐인 음지의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여전히 죽음과 폭력이 도사린 억압과 소외의 시대에 맞서 “내면의 어둠을 삶의 온기와 미래의 동력으로 갱신하겠다”는 ”(최현식, 해설) 결연한 의지가 가슴을 울리는 시편들이 “고통을 뚫고 나오는 진실과 희망에 귀 기울이는 태도와 방법을 넌지시 보여” 주는 “참혹하게 아름다운”(김해자, 추천사) 시집이다.“나는 집 나간 고양이/문 닫은 상점의 우울을 즐기는/나는 뚱뚱한 개 새끼/아무거나 처먹고 검게 탄 인형을 토하는//내가 낳은 그림자를 뭉개며 막차를 쫓는/나는 깜깜한 아버지의 온도/가질 수 없는 사랑만 골라 하지//나는 네 발로 뒤로 걷는 수수께끼/두 발로 거짓말을 즐기는/맑은 날은 깨금발로 금을 밟아/두꺼운 질서를 비웃곤 하지//나는 아무것도 포개고 싶지 않은 낮달/오래된 시계가 버린 그늘/잠자리 눈으로 뒤통수만 바라보는/새끼 고양이들을 자꾸만 죽이는”(`문 닫은 상점의 우울`전문)이설야의 시는 고통의 세월을 건너온 비루한 존재들에게 바치는 `수난곡`과 같다. 그의 시에는 “꽃들이 피다가 멈추고 새들이 날다가 멈추”(`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성냥을 그었을 때`)는 어둠속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로 빼곡하다. 어둠속에서 흰 빛을 찾아 더듬거리는 것이 시인의 운명임을 아는 시인은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겠지만, 흰 빛들을 끌어 모을 것”(시인의 말)이라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혁명을 말하던 책상들”이 “금세 더러워”지고 “햇빛 속으로 망명한 자들”은 “축축한 그림자들을 결국 버”(`레드 멜랑콜리아`)리고 만 이 야만의 시대에 시인은 “모든 경계선을 지워가며” 가슴속에 “새로운 정부”(`날짜변경선`)를 수립하고자 한다. 이제 시인에게 “생의 골목골목은 광장이 되고 광장은 시가 될 것이다”(시인의 말).“내가 머뭇거리는 동안/꽃은 시들고/나비는 죽었다//내가 인생의 꽃등 하나 달려고/바삐 길을 가는 동안/사람들은 떠났고/돌아오지 않았다//먼저 사랑한 순서대로/지는 꽃잎/나는 조등을 달까부다”(`조등(弔燈)`전문)/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2-23

욕구와 충족의 끝없는 연쇄에서 탈출하라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행복의 형이상학`(민음사)이 출간됐다.행복을 말하기 어려운 현실과 만족과 체념을 설파하는 행복론의 홍수 사이에서 바디우가 펼치는 혁신적 행복론이다. 침울한 일상 속에서 빛나는 삶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행복을 선택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행복이란, 주체로 서는 것이다. 지금 이곳 열정과 분노로 가득한 광장에서, 다시는 이전과 같은 세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새로운 행복의 정체가 밝혀진다.언제나 한 편의 시, 두 사람의 사랑, 배움의 기쁨, 거리의 시위와 같은 `가까운` 영역에서 진리를 발견해 온 바디우는 사뮈엘 베케트의 시에서 출발한다.“짐승의 썩은 고기 조각 하나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뭐 입맛만 다실 수밖에. 아니.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이 공백을 열망할 시간. 행복을 알아 갈 시간.”바디우는 말한다. 행복이란 만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일상적 만족을 주는 자잘한 보상들, 훌륭한 직업, 적당한 보수, 무쇠 같은 건강, 명랑한 부부 관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휴가, 유쾌한 친구들, 잘 갖춰진 집, 쾌적한 자동차….”로 이어지는 “평온한 삶”의 목록은 행복과 무관하다. 세계는 기존의 세계 그대로 굴러가기 위해서 기존의 만족에 머무르도록 사람들을 길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욕구와 충족의 끝없는 연쇄에서 벗어나 삶다운 삶, 참된 삶을 추구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참된 삶을 추구하는 도정을 증명하는 표지가 바로 행복이다. 바디우에 따르면 이렇듯 참(Vrai), 참된 삶(la vraie vie) 그리고 행복 사이의 논리적 필연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철학 고유의 욕망이다. “요컨대 모든 철학은 행복의 형이상학이다.”`행복의 형이상학`은 주저인 `존재와 사건`3부작의 마지막 권`진리들의 내재성`(미출간)으로 가는 여정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의 근본적인 위상을 사유하기에 이른 바디우를 보여 준다. 일찍이 랭보가 “진정한 삶이란 없다.”(`지옥에서 보낸 한철`)라고 읊었던 근대 이후, 숱한 사람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숙명과 출구 없는 산문적 현실, 급진적 변화가 차단된 역사에 대해 서술했다. `진정한 삶`, `참된 삶`, `진짜 행복`이라는 말이 조소를 사는 이러한 시대에, 바디우는 우리 모두가 침울한 삶을 빛나는 삶으로 바꾸는 주체로 설 때 행복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단언하는 것이다.이 시대의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급진적인 행동가 바디우는 `진리`와 `주체`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바디우의 행보는 철학사상으로는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역사적으로는 더 이상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실천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철학에 혁신을 요구하며, 누구나 가담할 수 있는 예술, 사랑, 학문, 정치라는 네 영역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바디우는 이번에도 학자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사고의 자극과 활발한 논쟁을 예비한다.나의 문제를 남에게 떠맡기거나, 자포자기하며 축소되지 않고 스스로 진리의 주체로 일어서기를 촉구하는 바디우는 그러한 과정에서 지극한 행복이 온다고 말한다.“참된 이념의 명령 아래 걸어갈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목적지로 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16

인간은, 삶 속에서 길을 잃지만 진실 또한 배우고

2009년 단편소설 `제니`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기준영은 2011년 장편소설`와일드 펀치`로 창비장편소설상을 거머쥐며 매우 돋보이는 소설적 재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첫번째 소설집 `연애소설`을 묶어낸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소설집 `이상한 정열`(창비)의 표제작`이상한 정열`은 2014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과 문지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황순원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최종후보로 거론되며 빼어난 수작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2016년,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으로 선정되고`조이`는 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에 뽑히며 다시금 기준영 소설의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격렬한 사건도 고통도 없이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준영의 소설은 그럼에도 “삶이라는 이름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무한한 어둠”(추천사 백지연)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삶의 일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인간은 삶이 덧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자각하면서도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이상한 정열`에 몰두하기도 하는 `이상한` 존재이다. `이상함`과 `정열`과 `슬픔`이 삶 속에서 마구 뒤엉킬 때 사람들은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일견 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총 9편을 수록한 `이상한 정열`에는 과연 어떤 생을 살아왔을까 싶은, 삶의 내력이 궁금해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둠을 품고 슬픔을 통과해온 듯한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서늘한 틈새를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을 풀어놓지는 않는다.`불안과 열망`의 `수경`은 사람들에게는 그저`이상한 여자`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돌연 결혼을 미루고 그의 약혼자가 신혼여행지로 가고 싶어했던 브리즈번으로 혼자 떠나온 수경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직업을 거짓으로 꾸며 말하기도 한다. 신상은 거짓으로 꾸며냈지만 실은 이 모든 순간이 수경에게는 `진심`이다. 그저 진심으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졌을 뿐이지만, 약혼자는 수경이 왜 이런 돌발행동을 하는지 어쩌면 끝내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수경은 이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균형을 잡는 일을 잠시 놓았을 뿐이다.`이상한 정열`은 `무헌`을 사로잡은`이상한 정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열기에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작품이다. 무헌은 서른에 만나 7개월을 사귀고 헤어졌던 여자 `말희`와 근 20년 만에 재회한다. 중년이 돼 버린 무헌은 말희를 향한 때늦은 정열에 사로잡히는데, 그는 자신의 인생이 텅 빈 채로 무엇인가를 그냥 건너뛰어버렸다고 느낀다.`4번 게이트`의`나`는 의붓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내 엄마가 편지 한장을 남겨놓고 집을 나가자 친오빠가 아닌 `오빠`와 단둘이 남게 된다. 오빠는 “멍청하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구석”(68면)을 가진 스물여덟 남자인데 `나`는 그런 오빠에게 이상한 다정함을 느낀다.한편 기준영은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세련되고도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며, 그들이 자기 삶의 균열된 지점을 어느정도는 받아들였으리라 짐작하게끔 만든다. 그들은 인생의 어느 기로에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도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16

세계적 비즈니스 리더 40인의 최고 경영전략 `심플함의 법칙`

`싱크 심플- (비즈니스 리더 40인이 선택한 최고의 경영 전략)`(문학동네)의 저자 켄 시걸은 17년간 스티브 잡스 곁에서 애플의 광고와 마케팅을 이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아이맥과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아이(i)` 시리즈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그는 전작 `미친듯이 심플`에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애플의 잇따른 혁신을 가능케 한`심플함`의 11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그후 켄 시걸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 리더 40여 명과 만났다. 현대카드, 밴앤제리스, 홀푸드, 컨테이너스토어, 스터브허브, 웨스트팩 은행 등 제조업부터 유통, 금융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대표였다. 그들은 모두 심플함의 법칙이 자사의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경쟁사들과 어떻게 격차를 벌렸는지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싱크 심플`은 심플함의 법칙을 도입해 성공한 현장의 사례를 두루 소개한다. 목표와 가치관, 내부조직, 브랜드, 규모, 소비자충성도까지, 심플함은 모든 비즈니스 분야에 적용가능하다.△심플한 사명(社命)과 문화가 먼저다△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심플한 브랜드 하나가 회사를 살린다△저항을 줄이는 전략을 세워라△숫자보다 본능을 따르라수천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글로벌기업의 프로세스를 단순화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복잡함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 켄 시걸은 복잡하기로 이름난 금융업계에서 심플함의 전략을 멋지게 성공시킨 사례로 현대카드의 정태영 부회장을 든다. 정태영 부회장이 처음 현대카드·현대캐피탈에 부임했을 때 두 회사의 손실액은 8천960억원에 달했고, 32종 이상의 신용카드 상품을 판매중이었다. 정 부회장은 특징에 따라 신용카드를 단 4종으로 줄였다. `심플함`을 전 회사가 추구해야 할 문화로 삼고, 상품 디자인·의사결정 체계·사무공간을 이에 기반해 변화시켰다. 복잡한 요소를 제거하자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손쉽게 선택할 수 있었고, 현대카드는 소비자와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확보하게 됐다.심플함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지녔다면, 왜 더 많은 기업들이 심플함의 법칙을 적용해 비즈니스를 운용하지 않을까? 아마 대부분의 기업들이 확실한 데이터 없이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각적인 투자수익률을 증명하는 수치 없이는 어떠한 프로젝트도 시작하지 못한다. 이 책의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리더에게는 개인적인 신념을 기반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본능, 그리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능은 마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 생애에 걸친 교육과 경험, 승리와 실패로부터 얻은 배움에서 얻어지는 능력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관점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애착은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형성된다. 소비자경험까지 심플함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16

삶의 마침을 참관하며 몸의 욕망을 내려놓고…

신문기자를 거쳐 번역가, 문학평론가, 출판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한국문학의 역사를 함께 해온 원로 김병익(78)씨의 서평칼럼집 `시선의 저편-만년의 양식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2013년 여름부터 한겨레에 `특별 기고`라는 이름으로 써온 글들을 엮은 것으로, 은퇴 후 마음대로 읽고 쓰고 생각하며 누려온 시간의 기록이다. 이 글들을 써오는 2013년부터 2016년의 시간은 저자가 76세에서 79세에 이르는 시간으로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일 듯하지만, 그사이 `나이 듦`의 죄 많음을 증거하듯 고통스럽게`어린 죽음`을 목격해야 했고, 50년 지기 친구를 앞세운 허탈함과 함께 `비수(悲愁)`의 한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자는 책 읽는 일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유롭지만 방만하며 넓지만 얕고 나직하지만 수선스런 글꼴”이라는 저자의 겸허한 고백은 아마도 그렇게 스쳐온 `현재` 시간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은 특히 저자가 그사이 읽은 70여 권의 목록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목록은 소설에서부터 과학 교양서, 경제학 이론서와 생과 죽음을 고백하는 자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지치지 않는 `탐서`의 마음과 함께 오래 품은 생각도 `책`을 통해 의심하고 자신을 바꾸려는 `배움`의 자세를 엿보게 한다.아직 연재 중인 시점에서 책을 서둘러 내는 것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만난 아내와의 결혼 50주년(golden wedding, 금혼식)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수줍은 고백도 이 책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이 책은 `사유의 도구`로서의 책의 쓰임을 여실하게 담고 있다. 산업화, 과학화, 도시화의 시대에 `발전`을 지지하는 의견과 그것의 위험성을 폭로하는 의견의 책을 고루 읽으며 저자는 이쪽도 옳고 이쪽의 말도 맞다는 딜레마에 부딪힌다. “언젠가 우리는 내핍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붕괴의 길을 택해야 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의 말을 피할 길이 없지만 산업화의 혜택을 과거의 `제로 상태`에서 현재의 `풍요 상태`까지 목도해온 저자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일 것이다.이렇게 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모두 경청하듯, 스스로를 긴장의 줄타기로 내모는 독서를 즐기는 것이다. 또한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이끈 독립운동(`이승만과 김구`)을 생각하며 어떤 주의주장도`하나만`이 옳을 수 없다는 것과 아무리 오래 다듬은 생각도 시대에 맞지 않거나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수정돼야 할 것을 고백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은 저자만의 삶에 대한 정직한 태도와 방식을 잘 보여준다.저자는 “그이는 오랫동안 최선의 삶을 살았고 일부러 음식을 끊음으로써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삶을 마쳤다”(`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헬렌 니어링의 고백을 읽으며 무심한 삶을 졸여오는 죽음의 숭고를 실감하기도 한다. `삶의 마침`을 참관하며 “몸의 욕망을 내려놓고 내면의 고요함을 끼워 넣기”를 권하고 이유이다.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죽음은 고통스런 불안이고 일상으로 겪는 노화는 애달픈 불평이어서, 나이 들수록 게으르고 무모해지는 타성에 이처럼 아름다운 평정의 마음을 바라는 것”이 과람한 욕심이라고 말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이를 거스르려는 괴물스런 노력보다는 고요와 안식을 기도하는 이런 자연스런 노화에서 진정한 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윤희정기자

2016-12-09

버지니아 울프·헤밍웨이·호손… 한손에 잡히는 고전 5選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출판사 민음사가 세계 문학 거장 전집에 바탕한 새로운 총서 `쏜살 문고`를 최근 펴냈다.지난 1998년부터 350여 권에 이르도록 전 세계의 문학을 국내에 널리 알리고, 시대를 초월한 고전을 정확한 우리말로 소개해 온 `세계 문학 전집` 중에서 끊임없이 사랑받아 온 다섯 명의 작가를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새로운 편집과 디자인, 좀 더 가벼운 가격으로 펴냈다. 한 손에 잡히고 휴대하기 용이한 판형과 완독의 즐거움을 선사해 줄 200쪽 안팎의 부담감 없는 분량,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가볍게 구입해 읽을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과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참신한 디자인, 이와 더불어 민음사가 줄곧 지켜온 양서(良書)를 향한 집념과 인문학에 대한 열정까지 빠짐없이 담아냈다.이번에 선보이는 5권의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너새니얼 호손의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어니스트 허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 토마스 만의 `키 작은 프리데만 씨` 등이다.민음사 측은 “쏜살은 1966년 창립된 출판사 민음사의 로고 `활 쏘는 사람`의 정신을 계승한 작은 총서입니다. 가벼운 몸피에는, 이에 어울리는 인생의 경구, 때로는 제법 묵직한 사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우리의 활시위를 떠난 화살들이 아름다운 글줄로 독자의 가슴에 가닿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밝혔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자기만의 방`부분)20세기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수많은 에세이와 소설을 남긴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말해 버리고 말기에는 부족한, 이를테면 `여성 문학`을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그 미래를 밝힌 글이기도 하다.버지니아 울프는 묻는다. 왜 언제나 남성들만이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지는가? 여성은 아이들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데…. 그리고 주장한다. 만약 여성이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를 찾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여성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으리라. 그 두 개의 열쇠는 바로 고정적인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그래, 모든 이들의 젊음은 꿈이야.” -F. 스콧 피츠제럴드`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 담아진 미국문학의 거두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 다섯 편은 파란만장한 작가의 일생을 보여 주는 동시에 `재즈 시대의 메아리(호황과 대공황의 풍경)`를 고스란히 들려주는 작품들이다.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에선 영웅적으로 그려진 재즈 시대의 사랑과 비극이, 이들 단편 소설에서는 취기가 가시고난 다음에 찾아오는 현실 감각처럼 통렬하게 드러난다. 이어서 `기나긴 외출`은 매우 짧은 소설이지만 피츠제럴드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서정적인 소품이다. 그리고 이 책의 표제작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피츠제럴드의 뛰어난 상상력과 재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한데 섞인 놀라운 작품이다. △너새니얼 호손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진정한 아름다움…. 넌 내 가슴에서 떠난 거야. 다시 돌아올 수는 없어.” - 너새니얼 호손너새니얼 호손은 19세기 초 미국 소설의 든든한 초석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한 미국 낭만주의 소설가다. 에머슨, 소로 등이 인간 정신과 인류의 진보를 신뢰한 데에 반해, 호손은 어두운 내면적 삶, 무의식의 세계, 죄와 악의 문제 등 이른바 인간이 지닌 `검은 힘`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집요하게 탐험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필요한 것은 밝은 불빛과 어떤 종류의 깨끗함과 질서야.” -어니스트 헤밍웨이`깨끗하고 밝은 곳`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들은 건조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하드보일드 문체`의 아래에 감춰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헤밍웨이 문학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바다 속에 잠긴 빙산의 뿌리를 탐사하는데에 더없이 훌륭한 길잡이가 돼 줄 만하다. 특히나 매우 짧은 글이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말대로 걸작 반열에 오른 `깨끗하고 밝은 곳`을 읽어 보면, 헤밍웨이 특유의 정돈된 문체와 선명한 주제 의식이 정교하게 짜여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끝내 파멸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 인간 존재의 위대한 힘을 그린 `킬리만자로의 눈`과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는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들을 압축해보여 주는 듯한 수작이다. △토마스 만 `키 작은 프리데만 씨`20세기 독일 문학의 정점이자 가장 위대한 소설가 토마스 만의 초기 단편 소설은 친가와 외가, 시민성과 예술성, 북독일과 남독일 등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긴장 관계가 빚어낸 산물이다. 훗날 대가가 될 싹을 보여 준 첫 작품 `타락`과 작가의 핵심 모티프라고 할 수 있는 삶과 예술의 갈등 문제를 오롯이 담아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는 토마스 만의 문학 내부로 들어서는 데에 훌륭한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9

여성이므로 느끼는 모종의 불안

일상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기원을 천착하는 신인작가 강화길의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문학동네)이 출간됐다. 그는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황석영, 최인석으로부터 “꾸밈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나가는 작가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갓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점에 이미 “주제를 장악하는 힘”을 내재하고 있었던 믿음직한 소설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이후 강화길은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86년생 여성으로 살아오며 느꼈던 모종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가상현실`로서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그런 만큼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장면들은 동시대 여성의 일상 경험과 맞닿아 있다.표제작`괜찮은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 함께 살 집을 보러 떠나는 `나`의 이야기로, 공간적 배경이 시종일관 남자의 차 안으로 고정돼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며칠 전, 남자는 `나`를 (실수로) 밀쳐 다치게 했는데 상처를 돌봐주려는 남자의 배려는 오히려`나`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팔을 들어올리는 것 같은 남자의 사소한 행동들마저 위협적으로 느낌에도, `나`는 왠지 남자에게 거절을 할 수 없다. `나`를 다치게 했던 그의 행위가 정말 실수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2-09

하이드리히 암살 전말 생생히

히틀러의 후계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의 막전막후를 담은 장편소설 `HHhH`(황금가지)가 출간됐다.`HHhH`는 프랑스 공쿠르상과 일본 서점대상 해외도서 부문 1위, 미국 비평가 협회상 파이널 리스트 선정을 비롯해 뉴욕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등 전 세계 유수 언론매체의 극찬을 받으며 화제를 불러모았다.저자 로랑 비네 스스로 `토대 소설(infra novel)`이라고 명명한 `HHhH`는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 오디오와 속기 자료를 토대로 에피소드와 대사를 구성하고, 여기에 저자의 취재 및 집필 과정까지 소설로 담아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역사 소설을 선보였다.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내부 정보기관의 책임자로서 나치스의 정치 공작과 비밀 작전을 모두 지휘하는 천재적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며, 인류 최악의 사건으로 불린 유대인 말살 계획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친위대 사령관은 히틀러였지만 사실상 모든 작전은 하이드리히가 지휘했기 때문에 당시`히틀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고 불린다`라는 말이 항간에 떠돌았다고 한다.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은 영화 `새벽의 7인`의 소재가 된 적 있으며, `HHhH` 역시 세드릭 히메네즈 감독에 의해 영화화 돼 2017년 개봉 예정이다.로랑 비네는 초반부터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해놓고 소설을 집필한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나치, 그리고 당시 국제 정세를 상세히 사실에 입각해 묘사하는데, 이때 저자는 소설 집필을 위해 사건 현장을 방문하거나 관련 인물을 인터뷰하는 과정, 때론 오디오 자료나 속기 등을 토대로 정확한 대사를 소설에서 구현할 방법에 대한 고뇌, 역사 속 인물들의 행동과 결과에 대해 주관적 견해까지 그대로 글로 담아낸다. 저자는 이를 통해 독자에게 압도적인 현장감을 주는 한편, 이전 역사소설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특히 작품의 마무리에 이르러, 저자는 상상력만으로 집필된 짧은 소설적 구성을 추가함으로써 역사적 진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교차되는 순간 배가되는 감동과 놀라운 경험을 독자에게 전한다. 이러한 시도는 큰 화제를 불러모았으며. 영국의 `가디언`은 `힘이 넘치는 엔딩`이라 평가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

“점점 홍학으로 변한다 햄버거 가게 노인은 내 천적 물수리다”

신인작가 오한기(31)의 첫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문학동네)가 출간됐다.2012년 `현대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2015년 첫 소설집 `의인법`을 출간한 바로 다음해,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소설 중 가장 뛰어난 일곱 편을 선정해 시상하는 제7회 젊은작가상에 단편소설 `새해`가 수상하면서 작품세계를 알렸다.`홍학이 된 사나이`는 2013년 모바일진 `서울생활`에 6화까지 연재되다가 중단됐고 2년 후인 2015년 `언리미티드에디션―서울 아트북페어`(독립출판물 마켓·페스티벌)에 참여한 후장사실주의자들의 문예지 `매널리즘` (analrealism vol.1)에 전재되면서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500매에 조금 못 미치는 경장편 분량의 이 소설은 질서정연한 논리와 인과관계는 없지만 신선하고 힘과 매력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홍학, 그 붉은 동물로 변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초현실적 스토리에 시 형식의 독백이나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오한기 작가나는 홍학이다. 외삼촌에게 물려받은 펜션 110호에 살며 글을 쓰는 나는 점점 수컷 홍학으로 변한다. 펜션 근처 원자력발전소를 둥지로 여기지만 햄버거 가게 노인은 원전 철거를 주장한다. 나는 노인을 홍학의 천적 물수리라고 생각한다.나는 저수지 보트에서 잠자는 소녀를 발견한다. 이름은 DB.`디럭스 버거`의 줄임말. 죽기 전에 이 세상 모든 햄버거를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DB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잃고 물수리의 도움을 받는다. 햄버거를 공짜로 만들어 주던 물수리의 도움은 곧 끔찍한 학대로 바뀐다. 나는 도망쳐 나온 DB를 지키려 하고 물수리는 나를 계속 찾아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