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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왕조 5대 궁궐에서 찾은 역사도시 서울의 품위와 권위

▲ 유홍준 교수 /창비 제공`문화유산 답사 붐`을 일으킨 유홍준(68)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가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10권인`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1,2`를 펴냈다. 햇수로 25년을 맞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380만 명의 독자가 선택한 인문 분야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답사기 9~10권도 예약 판매로만 약 8천 권이 팔렸다.유 교수는 한국 인문서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시리즈로서 38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10권에 서울 이야기를 담았다. 유 교수는 책에서 역사도시로서 서울의 품위와 권위를 조선왕조 5대 궁궐에서 찾고 있다.서울편 첫 권에는 500년 조선역사가 펼쳐진 역사적 현장이자 다른 나라의 궁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종묘 창덕궁 창경궁을, 10권에는 한양도성과 덕수궁, 흥선대원군의 석파정 등 자문밖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9권은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라는 부제를, 10권은 `유주학선 무주학불`이라는 부제를 걸었다.`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는 창덕궁 후원 존덕정에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 주인옹 자서(萬川明月 主人翁 自序)`에서 따왔다.`만천명월 주인옹`이란 냇물은 만 개여도 거기에 비치는 달은 하나인 것처럼 임금은 만백성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 글은 정조가 갖고 있던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궁궐의 주인인 옛 임금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들려주고자 붙였다.유주학선무주학불(有酒學仙無酒學佛),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는 뜻이다.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도장에 새겨져 있는 문구다.그는 서울편에서 현장에서 공간을 경험하며 그곳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뒀다.서울편 답사의 시작은 조선왕조의 상징적인 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 일본의 이세신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조선왕조의 종묘다. 조선왕조 500년이 남긴 수많은 문화유산 중에서 종묘와 거기에서 행해지는 종묘제례는 유형, 무형 모두에서 왕조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이어 창덕궁과 창경궁을 답사하며 왕족들의 삶과 애환, 전각마다 서린 사연을 풀어낸다.두번째 책에는 조선왕조가 남긴 문화유산을 다룬다. 서울의 옛 경계인 한양도성, 덕수궁, 성균관, 무묘인 동관왕묘, 그리고 왕가와 양반의 별서가 남아있는 속칭 `자문밖` 이야기를 담았다.유 교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거대 도시 서울의 문화유산과 역사를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로 바라보는 한편, 그와 얽힌 이야기들을 특유의 편안한 입담으로 풀어냈다.특히 `서울편`에서는`답사기`가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역사, 예술, 문화를 아우르는 방대한 정보를 절묘하게 엮고 쉽게 풀어내는 유 교수의 솜씨가 절정에 다다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우리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오랜 세월 갈고 닦아 유려해진 문장은 생생한 현장감을 담고 있어 독자의 눈앞으로 문화유산을, 그에 얽힌 인물과 사연들을 소환해낸다.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비평적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재미와 지식의 절묘한 균형감이 돋보인다. 이미 `답사기`는 수준 높은 문화교양서이자 기행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만, `서울편`에서는 그간 쌓은 공력이 빛을 발해 새로운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번에 출간된 서울편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古都) 서울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그간 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던 서울의 내력과 매력을 깨우쳐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8-25

치열한 인생, 사랑 하나면 두려울 것 없네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 영원토록 색깔도 변하지 않고 시들어 떨어지지도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바람이 꽃에게도 좋은 바람일까. 꽃은 시들어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열매를 맺어야 꽃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외수 산문집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중 7장 `기다림 속 희망`중에서소설가 이외수(71)는 2014년 말 위암 수술을 받은 뒤 그의 삶을 되돌아보며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책과 강연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1972년 등단한 후 40여 권의 책을 내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쉬운 말로 세상과 소통해 트위터 팔로어도 170만명을 넘는다.2014년 펴낸 책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은 소통법, 생존법, 소생법, 비상법, 사랑법 등에 대해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대중에 비법을 전수하며 호응을 얻었다.그가 최근 펴낸 산문집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해냄)도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의 연장선에 있다.`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은 험난한 인생을 사랑으로 버텨내리라는 다부진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가 매일의 일과를 보내며 집필한 원고는 정태련 화백이 1년여 동안 그려낸 그림 73점과 어우러졌다.전체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이외수 작가가 직접 고백하는 어린 시절 에피소드부터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국내 최초 트위터 팔로어 10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는 소셜 미디어로 끊임없이 독자들과 소통하게끔 만드는 동력이 사실 `외로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지막이 고백한다.`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방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은 어린 시절의 남모를 아픔과도 떼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전쟁에 행방불명이 돼 할머니 밑에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사회적 격변의 시대를 통과해 개인적인 고민이 점차 커져 가는 이때,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나만의 방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삶에 대한 고민으로 지친 이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케 해줌으로써 위안과 안식으로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8-25

여성시에 대한 본질적 독법의 필요성 제시

사실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여러 구조적인 면에서 남성중심의 사회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이 많다. 문학계에서도 여성이 시를 쓰거나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남성의 시쓰기보다 더욱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여성시를 대표하는 김혜순(62) 시인은 최근 펴낸 `여성, 시하다`(문학과지성사)에서 한국 문학에서 여성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하는`것이라고 표현한다.이는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지만 남성에 비해 늘 차별과 혐오, 폭력과 소외의 게토 상태에 노출되어온 여성·몸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유독 한국문학에서 여성시인의 언어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몸에 씌워진 배타적 억압과 구속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타인의 편협한 이해를 요구받아왔다는 것. 여성시인의 언어는 여성시인 스스로가 자신을 이방인, 난민으로 경험, 인식하는 것, 혹은 그에 따른 학습, 사유가 있지 않고는 발화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에게 부과된 정체성(남성들이 발명한 언어, 그 언어로 점철된 시사詩史, 수사와 기호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열되고 투명한 약동의 목소리로 언어를 `몸하고 `시한다`고 이야기 한다.독창적인 어법과 상상력으로 현대시의 새로운 전범이 돼 온 김 시인은 여성시인들이 쓰는 존재론적이고도 방법론적인 그 시적 발성의 주름 깊은 곳에 어떠한 심리적인 왜곡이나 피해자 의식, 악전고투가 숨어 있는지 따로 밝혀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혐오나 교묘한 질시에 대한 내상을 드러내는 고백들 너머 여성시는 왜 가상의 피륙을 짜고 있는지, 텍스트의 짜임 속에 비밀을 감추고, 수치를 일구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위장하는지, 어떻게 다른 시적 영토를 발견하고 그 장소를 운행하는지, 화자의 설정과 그 문체의 결과 틀의 구축이 고백의 내용보다 더한 고백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방이 되는지, 심지어 그 장소 없는 장소에서 어떻게 탈주체화를 실현하는지, 혹은 그 자리에서 공동체마저 꿈꾸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문학평론가 오연경은 김혜순의 시론은 그가 독창적이고 상상적인 언술로 갱신해온 한국 현대시의 미학이 도달한 지점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가부장적 사회의 법과 문학적 보편성의 논리에 갇혀 해석되고 연출되고 박제돼온 여자의 몸, 여성시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제대로 된 독법의 필요성과 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여성, 시하다`에는 강은교, 고정희, 김승희, 김정란, 최승자의 시와 오정희의 소설을 들어 `여성이 시한다`는 것의 의미, 여성시인과 작가가 남다른 발성법과 언어체계, 상상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10편의 글들이 묶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8-25

부테스를 바다로 뛰어들게 한 치명적 음악의 정체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거목이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 수상작가 파스칼 키냐르(69)의 음악 산문집 `부테스`(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교육을 받았고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페스티벌을 기획하기도 한 키냐르는 이 책에서 음악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고 신화와 역사, 형이상학적 사유를 동원해 음악의 본질을 탐구한다.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한 작가가 고대 신화와 문명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음악이 인간에게 건 마법의 정체를 밝히려고 했다.그는 “슬픔의 세계 끝까지 갈 용기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음악이다”라며 음악을 예찬한다.“본래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물로 뛰어드는 욕망”이라며 음악의 힘을 이야기한다.미케네 문명 말엽부터 신비한 전설이 전해져왔다. 새들의 노랫소리에 매료된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뱃사람들은 밀랍으로 두 귀를 막고 바다를 건넜다.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아르고호의 50명의 선원 중에는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오르페우스 외에도 부테스가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 오르페우스는 키타라 연주로 노랫소리를 덮어 자신과 선원들을 치명적 매혹에서 구한다. 부테스는 노랫소리를 쫓아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한다.키냐르는 아폴로니오스의 말을 빌려 음악을 두 종류로 나눈다. `구원의 음악`과 `파멸의 음악`. 부테스를 물로 뛰어들게 만드는 파멸의 음악인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매혹적인 짐승의 목소리로 집단에서의 이탈을 부추긴다. 선원들을 구한 구원의 음악인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사람이 만든 키타라의 음악으로 집단으로의 귀환을 명령한다. 오르페우스의 남성적 음악이 공동체의 일체감을 고취시켜 선원들이 신속하게 노를 젓게 만드는 분절된 음악이라면, 세이렌의 소프라노 노랫소리는 경계 없이 연속된 음악이다.키냐르에 따르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르페우스의 군악(軍樂)이나 심포니, 테크노 음악 같은 사회적 음악이 아니다. 오히려 반(反)사회적이고 치명적 위험을 내포한 세이렌의 노래와 같은 음악이다. 그런데 키냐르는 왜 파멸의 음악을 옹호하는가? 부테스의 `물로 뛰어드는 욕망`을 파헤쳐 오르페우스의 사회적 음악이 억압하고 희생시킨, 그리하여 은폐된 본래의 음악과 그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8-18

美 명문대 졸업생을 통해 본 현대 젊은이의 고뇌

`처녀들, 자살하다`와 `미들섹스`단 두 편의 장편소설로 “오늘날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뉴요커`)라는 평가를 받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프리 유제니디스. 그의 최신작 `결혼이라 는 소설`(민음사)이 출간됐다.십 대 시절의 불안을 다룬 첫 작품인 `처녀들, 자살하다` (1991)는 출간 즉시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문제적인 성장 소설로 알려지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미국 도서관 협회(ALA)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을 뿐 아니라 소피아 코폴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두 번째 작품인 `미들섹스`(2002)는 간 성(間性)으로 태어나 성별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평생 살아간 칼리오페의 이야기를 통해 성과 젠더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20년간 단 두 편이라는 과작(寡作)으로 이미 미국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한 유제 니디스는 2011년 발표한 세 번째 작품 `결혼이라는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저력을 과시했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미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살롱`, NPR이 꼽은 `올해의 책`에 선정됐으며 `살롱`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독자와 평단의 극찬을 동시에 불러모았다. 미국 동부 명문대 졸업생 세 명의 얽히고설킨 인연과 사랑을 통해 현대 젊 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꿰뚫어 그린 이 소설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게 될 `올해의 소설`이 될 것이다.브라운 대학교 영문과 재학 중인 매들린은 아버지가 모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기도 한 중산층 집안의 차녀로, 영문학에 심취해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학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4학 년 마지막 학기에 들어간 기호학 수업에서 우연히 공대생 레너드와 사랑에 빠져 졸업 학기를 연애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대학원 전형에 모두 떨어지고 만다.레너드는 빛나는 지성과 함께 우울한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남자로, 알코올중독인 부모님 밑에서 감정적 불안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명석한 두뇌 덕분에 브라운 대학에 입학한 수재다. 매들린과 레너드는 집안 분위기와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매개로 소용돌이 같은 사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졸업 후 레너드가 유명 생물학 연구소의 인턴 자리를 얻게 돼 매들린과 동거를 시작하지만, 레너드의 조울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연애에도 점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진로와 사랑 모두 삐걱거리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치닫게 된 매들린-레너드 커플은 답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8-18

이차돈의 죽음은 종교적 순교인가 법흥왕이 기획한 정치적 사건인가

신라는 한반도를 통일한 우리나라 최초의 왕국이었다. BC 57년 건국 이래 992년간 56대 왕에 걸친 천년 왕조를 이어온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왕국이었다. 시인이자 일간지 기자인 저자 홍성식씨는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KMmedia 펴냄)에서 신라시대 불교순교자 이차돈(異次頓·506~527)의 순교는 부족 연합체인 신라가 왕권 중심 국가가 되어 가는 과정의 한 상징으로 자리잡는다고 주장한다.이 같은 주장을 위해 저자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해동고승전 같은 고전 문헌을 비롯해 역사와 종교에 관한 최근의 논문들을 전수하다시피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잭슨 브라운 주니어, 춘원 이광수, 미당 서정주, 가스통 바슐라르, 마르크스, 만델라 등의 사례를 들면서 이차돈 순교에 담긴 의미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이밖에도 이차돈 머리가 떨어졌다는 백률사 대숲,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천경림 안에 있었다는 흥륜사 절터, 이차돈 제사를 올렸다는 소금강산 정상, 이차돈 순교비가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등을 현장 답사하면서 이차돈 순교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이차돈의 순교가 신라에 가져다 준 의미를 연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527년 신라의 불교 공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차돈의 죽음이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는 계기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넓게는 신라를 토속 신앙에 바탕을 둔 고대 사회에서 세계사적 보편 질서(보편 종교, 공통 문자, 중앙 집권제 등)에 편입시키는 혁명적 사건으로 새길 수도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히 고대사이면서 현대사이고 지역사이자 보편적인 종교문화사를 복원하는 대규모 작업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박철화 문화평론가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신라사는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일 수도 있다. 반면 그럼에도 이차돈의 순교 설화는 불교 전래의 종교사이자 지금도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교의 문화사이다. 불교는 우리 문화의 한 핵심이어서 이차돈의 순교를 찾아가는 일이란 우리의 정신과 삶의 기원으로 거슬러 오르는 것이기도 하다”고 추천의 글에서 적고 있다.이경재 문학평론가는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이차돈 죽음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이다. 과연 이차돈의 순교는 이차돈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순교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법흥왕에 의해 기획된 정치적 죽음인가? 저자는 쉽게 답을 주기보다는 그 의문을 극한까지 반복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독자에게 사유의 폭을 최대한으로 확장시키는 문학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 홍성식책은 1장 스물한 살 청년의 죽음에 얽힌 의문들, 2장 이차돈과 법흥왕에 관해 당신이 궁금한 것들, 3장 흥륜사, 그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4장 불어오는 바람에 백률사 대숲이 울었다, 5장 신라인들은 `젊은 순교자`를 그리워했다, 6장 불교, 신라의 토착 종교와 갈등을 겪다, 7장 신라 왕조의 기틀을 닦은 법흥·진흥·진지왕, 8장 심층 인터뷰 - 소설가 김성동, “이차돈과 법흥왕을 이야기하기 전, 스스로를 돌아봐야”, 9장 천경림, 비밀과 혼란으로 술렁였던 숲, 10장 이차돈이 꿈꾼 `화엄의 길`은 언제 열릴까, 부록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이차돈과 법흥와이 살던 옛 신라길 등으로 구성됐다. 저자 홍성식(47)씨는 2005년 문예지 `시경`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아버지꽃`, 영화 에세이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여행기 `처음, 흔들렸다`, 정치 칼럼집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등 몇 권의 책을 썼다. 현재 경북매일신문 기획특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8-18

인간이 가진 가장 소중한 감정 `사랑`

베스트셀러 소설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홍신(70)씨가 최근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해냄)을 펴냈다. 역사적·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소설들을 다수 집필했던 김씨는 근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전작 `단 한 번의 사랑`(2015)에서 가슴 깊이 묻어둔 첫사랑을 다시 만나 자신의 모든 걸 바쳐 그 사랑을 완성시키는 연인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침묵의 사랑으로 곁을 지키는 또 다른 성숙한 연인의 모습을 소설화했다.`바람으로 그린 그림`은 사랑의 상처 때문에 더 이상의 사랑을 두려워하는 여인과 가톨릭 신부가 되려던 삶의 진로를 그 여인으로 인해 바꾼 남자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다. 소설은 두 주인공을 1인칭 시점의 화자로 번갈아 등장시키면서 이들의 감정 변화를 면밀히 따라간다. 주인공들의 대화와 독백을 통해 사랑의 매개를 보다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덕분에 사랑의 감동은 극대화된다. 성당에서 복사로 섬기며 신학대학을 꿈꾸던 학생이 7살 연상의 성가대 반주자를 만나 서로를 세례명인 리노와 모니카로 부르며 세속으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려나가는 지고지순한 여정은 진실한 사랑의 가능성과 가치를 보여준다.외아들을 큰집의 양자로 보낼 수 없어 집안 어른들에게 면박을 당하면서도 보란 듯이 자식을 의사로 키워 내보이려는 리노 어머니가 소문난 모범생이었던 모니카를 불러 리노의 공부를 도와 달라 부탁한 것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무르익는가 하면, 모니카가 느닷없이 나타나 해코지하는 옛 약혼자 준걸의 횡포에 못 이겨 은행원과 도망치듯 결혼을 결심하게 되자 리노가 절망에 휩싸이는 등 소설은 사랑의 고조와 좌절을 오가며 성숙해져가는 이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다.김씨는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에 대해 사랑 이야기이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사랑의 본질은 생각하면 할수록 답을 내기가 너무 어려워요. 사랑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숙제로 남을 것 같아서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이제부터는 사회비판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본질에 관한 더 깊은 구조를 다뤄보자는 생각에서 사랑으로, 인간의 본질로 돌아온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그는 “앞으로도 사랑 이야기를 몇 편 더 쓸 것 같다”고 말했다.“사회를 조명하고 역사를 규명하는 소설, 민족사 정리하는 소설, 남과 북을 합일할 수 있는 통일에 관한 소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에 관한 소설은 계속 써야 하고 쓸 것 같아요.”김홍신 작가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자랐으며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소설 `인간시장`을 세상에 내놓으며 한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가가 됐다. 1980년대 실천문학운동에 뛰어들어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매달렸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시민운동 대표로 나서다 국회의원이 됐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8년 연속 의정평가 1등 국회의원(제15·16대)이라는 타이틀까지 덧붙였다. 국회를 떠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년간 두문불출, 역작`김홍신의 대발해`를 완성해냈다. 등단 이후 130여 권의 책을 출간하며 다양한 문학상을 휩쓸어왔다. 박사에 석좌교수 직위까지 얹었다. 전국 각지에서 강연을 열어 인기를 얻었다. 충남 논산시에 올해 집필관이 들어서고 내년 말에는 `김홍신문학관`이 완공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8-11

공간 의미의 재해석… 문학평론의 새바람

“공간이나 장소에 대한 이해가 문학에 대한 이해를 보다 심화시킨다.”문학평론가이자 숭실대 국문과 교수인 이경재(41)씨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합리성을 싣기 위해 아래와 같이 부연한다.“문학에 등장하는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는 그 자체만으로 고유한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까지 문학 연구가 주로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의 문학연구는 `어디서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사실 소설 등 문학작품 속에서 상부구조라 할 수 있는 것은 `인물`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2017년 현재까지 발간된 한국 소설의 절대다수는 주인공으로 설정된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인물이 그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결말이 결정돼왔다. 오늘날의 문학연구가 `인물(무엇이)`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하지만, 이경재 교수는 이런 패턴화 된 문학평론을 거부한다. 소장 국문학자다운 결기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출간된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소명출판)는 이 교수가 그간 쏟아온 `문학적 공간(어디서)`에 관한 연구가 축적된 결과물이다.인물이 상부구조라면 공간은 `토대`다. 이 교수의 주장은 아래처럼 요약될 수도 있다. “인물(상부구조)과 함께 공간(토대)에 관한 연구 또한 문학평론가의 역할이다.”`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는 이 교수가 자신 주장의 현실적 입증을 위해 한국 소설의 배경이 된 공간과 장소를 떠돈 `땀의 기록물`이다.한국 소설 속 배경으로 가장 많이 사용돼온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본 것은 물론, 중국의 북경, 하얼빈, 미국의 뉴욕과 일본의 삿포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베트남의 까마우까지 다녀왔다.그 고생스런 여정의 끝에서 이 교수는 최서해와 한설야, 이기영과 이효석의 문학을 `만주`라는 키워드로 탐구했고, 이상과 이광수, 유진오와 이범선, 이문구와 최인호의 소설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재해석했다.`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의 마지막 6부는 독자들에게 `행복한 책읽기`의 감정을 선물한다. 통상의 문학평론서에서 발견되는 낯선 전문용어와 딱딱하고 학술적인 문장이 없다. 읽기 편한 동시에 재밌다.교양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은 독자들에게 `한국 현대문학의 공간과 장소`를 권한다./홍성식기자

2017-08-11

`없음`은 오히려 자유에의 갈망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을 맞이한 김경후(46) 시인의 세번째 시집`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이 출간됐다. 상실의 아픔을 간절한 언어로 노래한 두번째 시집 `열두겹의 자정`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 속에서 삶의 고통을 가누는 고독한 시정신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차가운 통찰이 깃든 자유롭고 활달한 이미지 속에 “그로테스크와 서정이, 유머와 불온이, 추와 미가 행복하게 혼숙하고 있”(손택수, 추천사)는 절박하면서도 절제된 시편들이 애잔한 슬픔과 뭉클한 공감을 자아낸다.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잉어가죽 구두`외 5편을 포함해 55편의 시를 4부로 나눠 실었다.김경후의 시는 아프고 쓸쓸하다. 부재와 소멸과 상실로 삶이 `절벽`이 돼버린 세계에서 “침묵에 들러붙어”(`박쥐난이 있는 방`) 살아가는 존재들의 비탄에 잠긴 목소리가 가슴에 사무친다. “세상 모든 정오들로 만든 암캐”의 처절한 죽음을 목격한 이후 “마음에 없는 말과, 말 없는 마음”을 갖게 된 시인은 “뱃가죽이 찢어지는 소리로 울 수 있었다”(`해바라기`)고 말한다.시인은 “나는 많이 죽고 싶다”(`불새처럼`)고 거듭 외친다. 그러나 그 말에 깃든 뜻은 삶의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없음`으로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의지이자 자유에 대한 꿈이다. 어디에도 닿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인 곳, 시인은 이제 “죽은 것을 잃지 않”고 “잃은 것을 잊지 않기”(`침대`)로 다짐하며, “오랫동안 짓밟힐 글자들”(`야간 도로 공사`)과 “잡고 싶을수록 허옇게 부서져버리는 말들”(`수렵시대`)을 가다듬어 `텅 빈 적막` 속에서 `텅 빈 마음`으로 `텅 빈 백지`인 `시`를 꿈꾼다./윤희정기자

2017-08-11

인간혐오자 `나` 그리고 실패한 자본주의

지난 2005년 등단 이후 한국문학의 `무서운 아이`로 불리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여류 소설가 김사과(33)의 두번째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문학동네)가 출간됐다.첫 소설집 `02`에서 절망적인 사회에 대한 분노와 폭력을 쏟아내 `실로 미쳐 날뛰는 일탈과 폭력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는 여전히 암담한 사회를 그리지만 저항 방식은 한층 차분해졌다.`더 나쁜 쪽으로`는 3부로 구성돼 있다.1부의 표제작 `더 나쁜 쪽으로`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폭력적으로 그려왔던 작가의 소설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계기가 된 작품이다. 파편화된 장면들로 이뤄진 단편 `샌프란시스코`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며 소설 속으로 옮겨오고자 하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비, 증기, 그리고 속도`는 이미 짜여진 사회구조 안에서는 제대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인물들의 방황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미래 없는 이들 세대가 감추고 있는 불안감이 서서히 읽는 이를 물들여간다.이어지는 2부에서 작가는 특유의 냉철한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좀더 깊이 관찰하고 비판하는 세 편의 작품들을 선보인다.`박승준씨의 경우`는 고시원에 살며 고급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함에서 옷을 주워 입던 비루한 대학생 `박승준씨`가 우연히 디오르 슈트를 손에 넣으며 힙스터로서의 화려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다.`카레가 있는 책상`은 고시원에서 인스턴트 카레를 먹으며 생활하는 인간혐오자 `나`가 혐오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이천칠십×년 부르주아 6대`는 2070년대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국 재벌이 6대째에 이르렀을 때 벌어질 혼란을 상상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풍자한다.마지막 3부는 작가가 쓴 시들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각각 8편의 시로 구성된 `세계의 개`와 `apoetryvendingmachine`은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하는 시도로 해석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8-11

“법념아, 니는 워커힐 쇼라 카는 거 봤나?”

비단 독실한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향곡(香谷)이란 법호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향곡 스님(1912~1978)은 성철 스님(1912~1993)의 평생 도반이었던 동시에 한국 불교계의 선지식(善知識·수행자들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겉옷은 물론 내의까지 기워 입고 일체의 사치를 부정했던 소탈한 수행자 향곡 스님을 바로 곁에서 3년간 모셨던 경주 흥륜사 법념 스님(72)이 최근 향곡 스님의 일화를 소개한 `봉암사의 큰 웃음`(도서출판 답게)을 출간했다.2015년부터 최근까지 `불교신문`에 연재된 글을 모아 묶은 이 책은 향곡 스님의 인간적인 풍모와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느낌을 준다. 법념 스님의 문장은 쉽고도 간결해서 불교와 관련된 지식을 가지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편하게 읽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종교 관련 서적은 “어렵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주기 십상이다. 하지만, `봉암사의 큰 웃음`은 이런 선입견, 혹은 편견을 훌쩍 뛰어넘는다. 예컨대 이런 대목을 읽어보자.“법념아, 니는 마실에 있을 때 워커힐 쇼라 카는 거 봤나?”“예. 한 번 봤어요.”“그라마 외국 여자들이 상의를 훌렁 벗고 나오는 것도 봤나?”“예. 외국 쇼에서 그런 거 보통입니다.”(중략)“서울 보살들이 날 속이고 델꼬 가서 귀신한테 홀린 줄 알았다. 인자 서울은 오라캐도 안 갈끼다. 망신스러버서 영.”1970년대 서울 신도들의 초청으로 워커힐호텔에서 외국인 쇼단의 공연을 본 향곡 스님이 법념 스님과 주고받은 대화를 옮긴 이 부분에선 향곡 스님의 염결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에 법념 스님의 맛깔스런 문체가 더해져 다소 민망스러울 수도 있는 이 에피소드를 담백하게 만들고 있다.책에선 위와 같은 흥미로운 일화가 여러 편 소개된다. 이 책은 재미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세상과 인간에 관한 자연스런 깨달음으로 안내한다. 이것이 `봉암사의 큰 웃음`이 지닌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다.세상에 얼굴을 내밀어 이름 알리는 것을 삼가고 오로지 불법을 향해 용맹정진(勇猛精進)한 향곡 스님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책 `봉암사의 큰 웃음`.저자인 법념 스님은 1945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 1972년 출가한 비구니 스님이다. 1992년부터 10년간 일본 교토 불교대학 등에서 공부했고, 2013년까지 동국대 경주캠퍼스 강사로 일했다. 2013년 `동리목월 신인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법념 스님은 여행을 좋아해 인도를 십 여 차례 다녀오기도 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08-04

슬픔의 끝장을 보는 힘, 그것은 다시 `사랑으로`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56)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독특하고 매혹적인 시를 쓰고 사진을 찍는,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작가다.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한 그는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사과 여행` `사과밭 사진관` 등 여러 차례 사진전을 열었다.그는 동시 작가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를 비롯해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 등 세 권의 동시집을 냈다.그가 지난 2009년 시집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낸 지 8년만에 시집 `반지하 앨리스`(민음사)를 펴냈다.그는 1990년대에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등의 젊고 파격적인 시집을 내놓으며 가장 전위적인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아왔다.당대의 제도권적 여성 담론을 뒤흔든 가장 전위적인 여성 시인으로 평가받는 그가 10년 만에 선보이는 `반지하 앨리스`에는 연작시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를 비롯해 68편의 시가 실렸다.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반지하에 불시착한 앨리스들의 애환에 주목한다. 그러나 가난의 뿌리를 적나라하게 털어놓는 솔직함에는 언제나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 `사랑`이 있다. “쓸쓸한 나와 같은 너를 찾아/ 슬픔에 목메며/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처절한 고백은 삶의 고통과 아픔에 몰입하는 대신 함께 슬퍼할 사람을 찾고 그 슬픔을 견딤으로써 오히려 슬픔의 끝장을 보는 힘이 된다. 겉치레와 위선 없이 마음의 밑바닥까지 말하는 `반지하 앨리스`는 신현림 시인이 반지하 세계에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보내는 생존신고이자, 함께 더 잘 살아 보자는 위로의 편지다.세상을 바라보던 허무주의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은 세월호 참사와 촛불 집회라는 동시대 사건을 겪으며 애도와 희망 쪽으로 품을 넓혔다. 차 벽과 의경이 아닌 촛불과 시민들로 가득 찼던 광화문 광장은 시인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열어 주는 문학적 사건이 됐다. 시와 더불어 위안부 소녀상과 촛불 집회의 사진을 수록함으로써 더욱 현장감 있게 동시대성을 표현한 `반지하 앨리스`는 신현림 시인이 살아가고 있는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옷을 벗겨 줘, 절망의 옷을절망의 이 옷을 벗겨 줘무력감에 찌든 살과 뼈를 태워 줘물고기처럼 바다 위로 솟아올라다시 펄펄 살아나살아서하늘 끝까지 튀어 오르게”―`절망의 옷을 벗겨 줘``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3`에서`반지하 앨리스`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죽음에 저항하며 삶을 이어나가는 시인의 태도다.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라는 선언적인 제목으로 발표됐던 연작시는 시집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절망으로부터 도약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시에서는 맨몸으로 마주한 두 연인이 있다. `나`의 힘만으로는 떼어낼 수 없는 절망을 벗기 위해서는 `너`의 손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벗을 수 없는 `절망의 옷`을 벗겨 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극복하고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는 이 애틋한 에로티시즘의 순간은 죽음의 반대편에서 생명을 만드는 사랑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아무도 세월에서 빗겨날 수 없기에, 신현림 시인은 더 풍요롭게 나이 드는 법을 택한다. 시간이 쌓여 두툼해진 발은 곧 살아온 삶의 경험과 궤적이다. 인생의 우여곡절로 발바닥에 베긴 굳은살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감각하게 한다.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만지고 맞닿으면서 삶 자체를 음미하는 발은 결국 살아 있기에 얻게 된 새로운 감각이다.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시간을 이겨낸 끝에 쟁취한 작은 평화이기도 하다. 시인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에 감사해 한다.▲ 신현림 작가이번 시집과 같은 제목으로 지난 1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서울 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 `반지하 앨리스`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발휘되는 시인의 예술적 감각을 증명한다. 시인에게 `반지하`는 곧 삶의 터전이다. 시인은 그곳에서 시를 쓰고, 아이를 키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골라낸다. 반지하는 시인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는 근원인 동시에 그 상처를 바탕으로 삶의 애환을 시로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드는 문학의 공간이다. 이름에서부터 지하도 지상도 아닌 경계를 가리키는 반지하는 한 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시인이고, 사진작가인 동시에 화가인, 언제나 경계 사이에 존재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신현림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윤희정기자

2017-08-04

당신은 어떻게 살것인가의 해답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는 이 근원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137억 년 전 우주의 탄생부터 1만 년 전 현생 인류까지 그 전개 과정을 `인간의 위대한 여정`(21세기북스)에 담았다.도구의 사용, 예술의 탄생, 종교의 기원 등 인류가 이룩한 혁신과 창조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을 추적한다.배철현 교수는 진화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등 학계 최신 연구 결과뿐 아니라 종교와 예술에서 말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 그리고 고전문헌학, 철학에서 찾은 인문학적 통찰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배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 이전 원시 인류의 정신사를 추적한다. 우리는 흔히 인류가 원전 1만 년 농업을 발견하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도시와 문화, 문자나 종교와 같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특징들이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6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 문명 발전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뒤집는다.그는 문명과 문자, 종교 등 눈에 보이는 인간의 현상 이면에는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문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문자와 언어가 발명되기 이전에 인간은 이미 타인을 수용하고 배려할 줄 아는 `영적인 인간`이었고, 도시와 문명의 탄생 이전에 나를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는 `더불어 사는 인간`이었으며, 종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인간은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묵상하는 인간`이었다. 배 교수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인간의 궁극적인 조건이 `이타적 유전자` 즉 인간에 내재된 `이타심`이라고 말한다.배 교수는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된 시점이 3만천년 전, 인간이 `깊고 어두운 동굴로 홀연히 들어간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인간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고, 죽은 동료를 위해 무덤을 꾸미는 등 생존과 전혀 상관없는 행위를 하기 시작한다.이들은 일상과 단절된 `구별된 공간`을 구축하고, 적자생존의 삶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희구하며, 그렇게 상상한 것들을 상징 언어와 예술작품으로 구현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숙고하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미래를 계획했다. 이 순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로 도약했다. 그들이 성찰과 묵상을 통해 발견한 것은 우리 안에 숨겨진 위대함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을 묻는 존재다. 이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내면에 잠재돼 있는 `이타적 유전자`를 깨운다. 그리고 이 이타심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배 교수는 이 책을 읽는 목적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점철된 사회에서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삶의 지표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8-04

아름다운 말 한마디, 삶과 영혼이 풍요케 되는

이해인(72) 수녀, 가만히 불러만 봐도 눈꽃송이를 녹일 듯 따스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숙명적으로 사랑하는 시인을 꼽는다면, 아마 그를 첫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어두운 현대인들의 마음에 위로를 전하는 시작을 우리들에게 내어주었다. 그는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이후 현재까지 1천여 편의 시, 16종의 시집을 펴냈다. 시선집, 동시집, 동화집, 산문집, 역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집필했다. 자신을 그득 채우고 넘쳐흐르는 기도와 사랑,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인사로 영글게 한, 저 저서들 또한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그가 최근 수도자로서 시인으로서, 언어를 갈고 닦았던 노력을 글로 엮어 신간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샘터)를 펴냈다.책에는 말 한마디가 때로는 위로와 용기, 때로는 낭패가 된 단상이 단정하게 정리돼 있다.이해인 수녀는 아무리 화가 나도 막말은 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될 때 쓸 수 있는 언어를 연구해봤더니, `보통 일이 아니에요`와 `이러시면 곤란합니다`가 으뜸이더란다. 화날 때 저 두 마디로만 감정을 갈음한다면 세상에 싸움이 날까 싶다.그는 책에서 특히`잘 말하기 연습법`을 제안한다. 거창한 구호나 이론이 아닌, 일상 속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상 매뉴얼로,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일들, 만난 사람들, 그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명사들, 가까운 친지들과의 사연도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두드린다.“여기에 실린 글들은 모두가 언어와 관계된 것들입니다. 제가 평소 삶에서 경험한 것을 썼기에 어떤 논리적인 배움이나 언어학적인 가르침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한 주관적으로 제시하는 내용들이라 모든 이에게 다 해당되는 정답도 아닐 것입니다.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한번쯤 `나도 이제 나만의 고운 말 메뉴를 만들어 볼까?`라고 생각해 주면 기쁘고 고맙겠습니다.” -저자 서문 중에서“고운 말 한마디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빛이 됩니다.”1장에는 곧장 일상에 적용해볼 수 있는 고운 말 훈련 매뉴얼을 담았다. 누구나 일상생활이나 인간관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과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안내한다. 2장에는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마음가짐과 태도 등, 말의 씨앗이 되는 마음에 관해 좀 더 깊숙이 접근한다. 3장에는 저자가 그동안 써온, 말과 글에 관한 단상들을 모았다.본문 사이사이 `따라 쓰며 마음에 새기는 시(詩)` 지면에는 말하기와 관련한 저자의 시 열네 편이 수록돼 있다. 시를 읊조리거나 따라 쓰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 한마디가 우리 삶과 영혼에 미치는 감동과 여운을 음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각 장 끝에는 `스스로 채워 가는 고운 말 수첩`이 있다. 오늘 하루 수집한 고운 말들을 독자 스스로 적어 보는 지면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7-28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대륙 `잠의 세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56)의 신작 장편소설 `잠`(2권·열린책들)이 교보문고 7월 3주(7월12일~18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4위를 차지했다. 출판사 열린책들에 따르면 지난달 출간된 책은 한 달 동안 20만부 넘게 팔렸다.베르베르가 `제3인류`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잠`은 인간이 감히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대륙, 잠의 세계로의 탐험을 그렸다. 꿈을 제어할 수 있거나 꿈을 통해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리는 스펙터클한 꿈속의 모험 소설이다.이 책은 1980년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과학 전문 기자 시절에 썼던 자각몽자에 관한 르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취재 당시 실제로 자각몽을 경험하기도 한 베르베르는 2014년 시작된 불면증을 계기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잠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 및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는 벤조디아제핀과 졸피뎀 등 비대해진 수면제 산업이나 의료계, 언론계, 관광산업 등에 대한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풍자도 여전하다. 특히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베르베르 나름의`잠을 잘 자는 법`이나 `잠을 이용해 공부하는 법`을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크 클라인으로 스물여덟 살의 의대생이다. 자크 클라인의 아버지는 항해사로 자크가 열한 살 때 항해 중에 목숨을 잃었다. 자크의 어머니 카롤린은 유명 신경 생리학자로 수면을 연구하는 의사다. 카롤린은 아들 자크가 어렸을 때부터 꿈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쳤고, 역설수면이라고 불리는 수면의 다섯 번째 단계에서 자신만의 꿈 세계인 상상의 분홍 모래섬을 만들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역설수면 다음에 제6단계가 있다고 믿고 있던 카롤린은 콜럼버스 시대에 탐험가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지도에 테라 인코그니타라고 표기했던 사실에 착안해 수면 6단계를 `미지의 잠(Somnus incognitus, 솜누스 인코그니투스)`이라 이름 붙였다. 수면의 6단계를 찾기 위해 극비리에 수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비밀 실험`을 하다가 사고로 피실험자 한 명이 사망하고, 다음 날 그녀 역시 실종된다.당황한 아들 자크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어느 날, 꿈속에서 20년 뒤의 48세 자크를 만난다. 48세의 자크는 어머니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며 위험한 상황이니 빨리 어머니를 구하러 가라고 권한다. 자크는 꿈속의 만남을 믿지 않고 무시하다가 두 번째로 같은 꿈을 꾼 뒤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꿈의 민족`으로 불리는 수수께끼의 부족이 있는 말레이시아로 향하는데….한편, 법학과 언론학을 공부하고 잡지 기자로 활동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서른살이던 1991년 120여 차례 개작을 거친 `개미`를 출간,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이후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영계 탐사단을 소재로 한 `타나토노트`,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난 인류의 모험 `파피용`, 새로운 시각과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단편집 `나무`, 사고를 전복시키는 놀라운 지식의 향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신화와 과학, 상상력으로 빚어낸 장대한 스케일의 과학 소설 `제3인류` 등 수많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써냈다.그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2천3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교보문고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그는 한국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사랑받은 소설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7-28

`무진기행`·`인간실격` 특별판 출간전국 동네 서점 130곳서만 판매

민음사가 국내 최초, 동네 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책을 펴냈다. 기존`세계문학전집`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두 종을 특별판으로 제작해서 전국의 동네 서점 130여 곳에서만 판매하기로 했다.`무진기행`은 한국 문단에 `감수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살아 있는 전설 김승옥의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불안, 살아남은 자의 우울과 부끄러움을 포착한 걸작 단편집이다.이번에 `쏜살 문고 동네 서점 에디션`으로 새로이 편집, 출간된 `무진기행`에는 한국 단편 문학의 걸작이자 가장 많은 이들에게 필사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무진기행`을 비롯해 1965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서울 1964년 겨울`과 도시 생활자의 욕망과 우울을 조형해 낸 `역사`, 그리고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번민해야 하는 한 인간의 하루를 그려 낸 `차나 한 잔`에 이르기까지, 전후 `살아남은 자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담은 네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돼 있다.일본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되는 다자이의 `인간 실격`은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 세상과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처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며 순수하고 깨끗한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 가는, 이른바 `패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요조를 둘러싼 위선적이고 상식적인 인간들이 거리낌 없이 드러내 보이는 추악한 모습은, 이 사회의 틀에 젖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성을 촉구한다.이 이벤트에는 경상북도 aired, 오늘은 책방, 몰리북, 삼일문고, 달팽이 책방· 대구시 고스트북스, 더폴락, 차방책방, 책방이층, 태성서적 등 전국 방방곡곡의 독립 서점들이 함께 참여한다.인터넷 서점과 대형 체인 서점에서 판매하는 `디자인 특별판`은 그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시도된 적이 많았지만, 동네 서점에서만 판매되는 책이 나오는 것은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책방의 운영 방식도 다른 데다 지역적으로도 흩어져 있어서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동네 서점들의 속성상, 이러한 집합적 기획이 실행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서점을 살리자는 말만 높았지, 출판계의 독자 이벤트는 대부분 대형 체인 서점과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진행돼 오히려 동네 서점을 소외시키곤 했다.이번 이벤트는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민음사와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 그리고 독립 서점 51페이지 김종원 대표가 기꺼이 수고를 더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동네 서점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었다.이번 쏜살 문고 특별판(동네 서점 에디션)은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 체인 서점에서는 전혀 판매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이 각 지역에 있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직접 살펴보고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독자들이 동네 서점에 가야 할 이유와 계기를 제공하려는 새로운 시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7-28

스티븐 킹, `미스터 메르세데스` 후속작 출간

전 세계적으로 누적 판매치 3억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 생애 첫 탐정 추리소설로 집필한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후속작 `엔드 오브 왓치`(황금가지)가 출간됐다. 퇴직 형사와 미치광이 테러리스트의 숨막히는 대결을 소재로 한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국내에서도 출간 직후 3개월만에 3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스티븐 킹 소설 중 역대 최고 판매치를 경신한 화제작이다. 이번 신작에서 스티븐 킹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미스터리 판타지`를 추리 장르에 접목해 놀랍고 흥미로운 작품을 선보인다.전작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 자살 폭탄 테러에 실패한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디는, 테러를 저지당하면서 받은 물리적 충격 덕분에 기이한 능력을 얻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가 조종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오랫동안 브래디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던 호지스는 최근 잇달아 벌어진 자살 사건이 그의 짓이라 의심하면서, 둘은 또 한번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특히 스티븐 킹은 이번 작품에서 게임기와 웹사이트를 통해 무한히 퍼져나가는 연쇄 자살을 소재로 삼아, 늘어나는 소셜 미디어의 폐해와 자살, 그리고 게임 중독 등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가장 민감한 이야기를 소설에 밀도 있게 담아낸다.빌 호지스 3부작은 첫 작품인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필두로 외전격인 2부 `파인더스 키퍼스`를 거쳐 2016년 `엔드 오브 왓치`를 끝으로 완간됐다.특히 첫 작품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최근 벌어진 영국 콘서트장 테러 사건과 차량 돌진 테러 사건이 소설에서 예견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스티븐 킹은 이 첫 추리소설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추리상인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으며, CWA(영국추리작가협회상) 등 유수의 추리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올해 8월부터 드라마로 방영 예정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7-21

숨가쁜 `가속의 시대` 그 흐름을 이용하라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자랑하는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64)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3차례나 수상한 언론인이자 현대사회의 세계화를 다룬 책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등으로 세계적 인지도를 얻은 인물이다.자신의 칼럼의 생명은 `현장 취재`라고 할 만큼, 그는 최첨단 기술의 도시 실리콘밸리에서 포화에 휩싸인 전쟁터까지, 세계 곳곳을 직접 발로 누비며 글을 쓴다. 변화와 혁신의 현장감부터 전쟁으로 신음하는 약자의 고통까지 생생하게 전달하는 그의 글은 그래서 읽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신작 `늦어서 고마워`(21세기북스)에서 프리드먼은 현재를 `가속의 시대`로 정의하고 이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답한다.6년간 혁신과 변화의 순간을 취재하고 분석한 내용과 그의 세계관을 오롯이 담아 가속화 돼가고 있는 발전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낙관적인 자세로 미래를 논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변화 속으로 담대히 뛰어들라”고 제안한다.프리드먼은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세 가지 힘, 즉 기술 발달, 세계화, 자연 환경이 폭발적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재를 `가속의 시대`라 부른다. 이 책에서는 이 변화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분석하고, 가속화가 우리의 일터, 정치, 지정학, 윤리, 공동체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기하급수적 변화가 당혹감이나 절망감을 줄 수 있지만 겁먹거나 후퇴하지 말고 잠시 멈춰 지금 이 시대에 대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지금 같은 숨 가쁜 변화의 시기에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그 변화에서 도망치려 하지 말고 그 흐름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먼저 서론인 1부 `통찰을 위한 시간`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이 책의 제목이 `늦어서 고마워`가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론인 2부 `가속의 시대`에서는 급변의 물살을 타고 있는 세계를 분석하고, 3부 `혁신의 시대`에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결론인 4부 `신뢰의 닻`에서는 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번영할 대안을 찾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프리드먼은 책에서 상대가 약속에 늦는 바람에 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잠시 멈춰서,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 또한 그 에피소드에서 나온 것이다. `늦어서 고맙다`는 제목은 잠시 늦어지더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뜻이다.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를 뒤바꾸고 있는 거대한 힘을 `컴퓨팅 기술`, `세계화`, `기후 변화` 3가지로 꼽고, 2부에서 그 변화의 양상을 살핀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마치 급류에서 계속 노를 저으며 물결을 타는 것처럼, 변화를 관리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 원리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과 세계화, 환경 변화만큼 빠른 속도로 노를 젓는 것, 즉 `역동적 안정성`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역동적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것은 바로 `기술 외의 모든 일에서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토머스 프리드먼은 혁신을 이뤄야 할 대상으로 정부와 기업, 한 사회를 이루는 공동체 전부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가속의 시대에 걸맞은 일터와 정치, 지정학, 윤리, 공동체를 다시 상상하고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먼저, 일터에서는 인간이 정확히 무엇을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무엇을 기계와 `함께`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사람들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정치 영역에서는 냉전 시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전통적인 좌파-우파 정당 체제를 사회적 복원력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는 약한 나라는 절벽으로 내몰고 강한 나라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세계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관리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도덕의 혁신도 필요하다. 개인의 힘과 기계의 힘이 너무나 커지는 바람에 인류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가 돼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순간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가치를 모두에게 확산시킬 수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혁신이 필요하다. 다양한 인구 구성을 촉진하고 정착시키며 더 건강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고 평생학습 기회를 만들며, 정부-민간의 파트너십을 확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토머스 프리드먼은 4부 `신뢰의 닻`을 통해서 실제로 그 같은 정치가 이뤄지고 있는 자신의 고향, 미네소타를 보여주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7-21

`문학과 지성` 시인선 통권 500호 기념시집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불을 기억하고 있는 까마득한 석기 시대,돌을 깨뜨려 불을 꺼내듯내 마음 깨뜨려 이름을 꺼내가라”- 황지우, `게 눈 속의 연꽃`에서지난 40여 년간 한국 현대 시사에 선명한 좌표를 그려온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어느덧 통권 500호를 돌파해 기념 시집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시작한 문지 시인선은 시인 211명의 시집 492권과 시조시인 4명의 시선집 1권, 연변 교포 시선집 1권, 평론가 10명이 엮은 기념 시집 6권 등으로 이뤄진 한국 최초, 최대 규모의 시집 시리즈이다. 최근 통쇄 82쇄를 돌파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에서부터,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통쇄 63쇄),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52쇄),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46쇄) 등 당대의 굵직한 베스트셀러이자 꾸준한 스테디셀러들을 다종 보유하고 있다. 격동의 역사와 함께 꾸준히 변화해온 문학의 현장 한복판에서 인간과 삶에 대한 본질적 탐문을 참신한 언어와 상상력으로 묻고 답해온 많은 시인들의 뜨거운 열정이 담긴 문학적 `사건`으로서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2017년 여름 500호를 맞았다.시인선이 시작된 지 12년 만에 100호가 출간된 이래, 약 6~8년 주기의 속도로 100권씩 시집이 누적돼왔다. 발문에서 평론가 조연정이 지적했듯, 지난 40년간 한국 사회에서 문학의 위상이, 특히 시의 위상이 어떻게 축소되어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일정 기간 동안 큰 편차 없이 차곡차곡 시집을 출간한 일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또한 올해 출간된 도서를 포함한 시인선 전체 499권 중 약 88%에 해당하는 439권이 한 회 이상 중쇄됐다는 사실은,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자족적인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닌 독자와 세계를 향해 꾸준히 나아갔다는 증거라고 읽힐 만하다.500번째 시집이자 시리즈 내 전종을 대상으로 기획된 기념 시집`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는 초판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세월에 구애됨 없이 그 문학적 의미를 갱신해온 시집 85권을 선정해, 편집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오생근, 조연정의 책임하에 해당 시집의 저자인 65명의 시인마다 각 2편씩의 대표작을 골라 총 130편을 한데 묶었다. 제목은 수록작 중 황지우 시인의`게 눈 속의 연꽃`의 구절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의 일부를 차용했고, 시와 함께 발문과 시인 소개, 그리고 그간의 시집 목록 등으로 구성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7-21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그 중심에 칼을 겨누다

일본의 세계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1·2권(문학동네) 한국어판이 지난 12일 국내 출간됐다. 지난 2월 24일 일본 신초샤에서 출간한 지 138일 만이다. 일본 출간 당시 130만 부 제작 발행으로 화제가 됐다.일본 출판계에서도 전례가 없던 초판 부수와 책에서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언술되는 `난징학살사건`에 대한 일본 현지의 이슈가 우리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한껏 고조돼 출판사로 한국어판 출간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기도 했다.1권 `현현하는 이데아`와 2권 `전이하는 메타포` 두권으로 이뤄진 소설은 아내에게 갑자기 이별을 통보받은 30대 중반의 초상화가가 불가사의한 일에 휩쓸리면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내용을 담았다. 난징대학살 등 과거사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일본 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서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도모히코의 미발표작인 일본화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모차르트 오페라`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 아스카 시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 그림을 가지고 내려온 뒤로, `나`의 주위에서 기이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골짜기 맞은편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 와타루가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하고, 한밤중에 들리는 정체 모를 소리를 좇아 집 뒤편의 사당으로 가보니 돌무덤 아래에서 방울이 울리고 있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돌무덤을 파헤쳐보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어놓은 듯한 원형의 석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앞에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과 똑같은, 수수께끼의 구덩이에서 풀려난 `이데아`가.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고독한 여행, 구덩이와 벽 등의 폐쇄공간, 불가사의한 존재와의 만남,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세계 속 독자적인 요소들이 집대성돼 있다. 오페라, 클래식, 재즈, 올드 팝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인물의 심상을 대변하고, 주인공 `나`와 멘시키, 그리고 멘시키와 13세 소녀 마리에의 관계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작품으로 꼽았으며 직접 번역까지 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오마주로도 읽힌다. 주인공의 기이한 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는 에도시대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쓴 괴이담 `하루사메 이야기`가 직접 인용되는데, 이 역시 하루키가 예전부터 즐겨 읽으며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던 작품이다. 작가생활 초기에 그가 주로 썼던 일인칭 시점으로 돌아온 것도 `하루키 월드`의 매력이 한층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모험담은 `태엽 감는 새`부터 `1Q84`까지 기존 장편소설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플롯이지만, 이번에는 그에 더해 현대사 속 실제 사건을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중이었다가 나치 저항운동에 휘말렸고,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동생은 난징전투에 투입되어 강압적 명령에 의한 학살을 체험하고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어떤 의도로 창작했는지, 왜 발표하지 않고 천장 위에 숨겨두었는지 수수께끼로 가득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에는 그런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려 한 노화가의 의지가 생생히 드러나 있다. 또한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상실감과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동시에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아마다 도모히코의 의지를 잇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의 유사 부자관계 역시 전작들에 비해 보다 유기적이고 심층적으로 그려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또한 `나`가 집을 나와 한 달여간 정처 없이 여행하는 도호쿠 지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남은 곳으로, 하루키는 재작년 가을 직접 이 지역을 차로 여행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 전반에 치유와 재생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추상적 개념, 불교적 색채를 지닌 고전소설 등을 주요 모티프로 등장시키면서도 이야기의 골자는 현실의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나이에서 오는 책임감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작가 인생 40여 년. 한때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이제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현세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소설 속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가 그렇듯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농축한 결과물이다. 현대사회에서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이야기가 어떤 힘을 지니는지, 소설가가 안팎의 문제에 맞서 싸워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동안 `무국적 작가`로 불려온 하루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놓은 대답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7-14

미제 살인사건 해결 과정 그린 정통 추리소설

국내 최대 추리소설 마니아 커뮤니티 `하우 미스터리`의 부운영자이자 코너스톤 판`아르센 뤼팡 전집`을 감수한 추리소설 전문가 나혁진의 장편 추리소설 `낙원남녀`(황금가지)가 출간됐다. `낙원남녀`는 하드보일드 느와르부터 액션 스릴러, 본격 추리까지 다양한 장르의 추리소설을 써 온 나혁진 작가의 신작이다.이 작품은 가상의 공간인 낙원아파트를 배경으로 2년 동안 미제로 남아 있던 한 건의 살인 사건과 한 건의 상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정통 추리 소설이다. 동시에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극으로 고민이 많은 2~30대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범죄에 휘말린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한 젊은 여성이 용기를 갖고 원래의 삶을 다시 살아나가는 모습을 다룬 성장기이기도 하다.조그맣고 낡은 낙원아파트에는 `낙원회`라는 이름의 자원 봉사 모임이 하나 있다. 그런데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이들이 모여 있는 이 모임의 회원 두 명이 연속해서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사건 하나. 동네의 걸어 다니는 소문 제조기, `최순자` 아주머니 교살 사건. 그녀의 시체는 낙원아파트 관리사무소 내의 낙원회 의자 위에서 발견된다.사건 둘. 미모의 여비서 유지혜 피습 사건. 그녀는 후문의 화단 위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긴급 호송된다.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은 바로, 낙원회 소속이라는 것. 알부자 전직 대령, 생기발랄 가수 지망생, 평범한 직장인 부부, 인기 드라마 작가, 중후한 외모의 음대 교수로 이뤄진 나머지 회원들은 그저 평범해 보이기만 하는데, 과연 이들 중에 정말로 자신의 이웃의 목을 조르고 배에 칼을 꽂은 범인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7-14

웹툰처럼 쉽게 읽히는 청소년을 위한 소설 시리즈

시험공부에 찌든 청소년들에게 책읽기 좋은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출판사 창비가 최근 기존의 소설집이나 작품집에 살렸던 단편 청소년소설 가운데 흥미롭고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작품들을 일러스트와 함께 꾸민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를 선보였다.어린 시절 동화는 좋아했지만 점점 책 읽기에서 멀어진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책읽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는 1차분으로 공선옥의 `라면은 멋있다`,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김중미의 `꿈을 지키는 카메라`, 박상기의 `옥수수 뺑소니`, 배미주의 `림 로드` 등 9권이 나왔다. 배명훈의 `푸른파 피망`, 정소연의 `이사` 등 SF 소설도 포함됐다.작품들은 현직 국어교사들에게 자문해 선정했다. 100쪽을 넘지 않는 분량과 한 손에 잡히는 판형, 다채로운 삽화로 마치 웹툰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다.이중 적극 추천할 3권을 소개한다.△중견 소설가 공선옥의 밝고 명랑한 청소년소설 `라면은 멋있다`=여자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사 주기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민수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애쓰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건강한 기운을 전한다. 어떤 처지에 있건 삶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공선옥 소설 특유의 개성과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정윤의 삽화는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위트 있게 담겼으며, 복고풍 색감으로 채색되어 매력을 더한다.△작가 성석제의 잊을 수 없는 삶의 순간을 그린 성장소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성장의 과정에서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기로와 평생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좌절의 경험을 섬세하고도 진지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어떠한 선택이 잘못됐는지 아닌지를 가르는 것은 결국 이어지는 삶의 태도에 달렸다는 점을 묵직하게 전하며 긴 여운을 안긴다. 교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그림은 작품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더욱 깊은 감동을 더한다.`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이름을 알린 `백선규`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백선규와 어린 시절에 같은 학교를 다녔던 여성의 시점을 교차해 보여 주면서 이들의 선택이 각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촘촘하게 그린다.△다양한 이들이 모여 사는 푸른파 행성 청소년의 힘으로 일구어 낸 색다른 평화 이야기 배명훈 작가의 `푸른파 피망`=작가 배명훈은 독자의 인식 폭을 넓히는 경이로운 발상과 위트 있는 문장, 재기 넘치는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이번 작품은 서로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행성 `푸른파`를 배경으로, 보이지 않는 `구분선`에 집착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유쾌하게 비튼 SF다. 여러 동화 작업에 참여하며 쾌활한 그림을 그려 온 국민지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가 글과 조화롭게 호응하며 재미와 활력을 더한다.미래에는 어쩌면 각기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 한 행성에 모여 살지도 모른다. 행성 `푸른파`처럼. 공전 주기가 다른 별에서 온 주인공 `나`와 채은신지는 누가 나이가 더 많네 적네 하면서 티격태격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처럼 평화롭던 푸른파 행성에 갑작스럽게 전쟁의 기운이 드리운다. 주인공 `나`에게 전쟁이란 다름 아닌 친구를 갈라놓는 일이다./윤희정기자

2017-07-14

보도연맹사건을 둘러싼 인물과 삶에 대한 추적

장편소설 `밤의 눈`으로 “비극적인 분단 한국사의 핵심을 파고들어 역사적 진실과 개인의 내면을 생생하게 되살렸다”는 찬사를 받으며 2013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조갑상(68)의 신작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창비)가 출간됐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30여 년 동안 세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만을 발표한 과작의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2009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발표된 작품들이 묶였다. 탄탄한 구조 안에 존재론적 고독과 둔중한 근현대사를 주로 담아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역사 속의 개인을 집요하게 조명하며 묵묵히 시대를 증명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 천착해온 소재인 `보도연맹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을 포함해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어지는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으로 “이전보다 더 냉정하고 엄격하게 역사를 상대한다.”(해설, 양경언)보도연맹은 해방 이후 좌익 쪽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1948년에 만들어진 교화 단체로, 이승만 정권 아래 좌익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가입시키며 30만명 규모로까지 확대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른바`빨갱이`를 색출하기 위한 예비 검속이라는 이름 아래 군경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포함,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한 일을 `보도연맹 사건`이라고 한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계속된 좌우대립과 군부정권의 사건 축소, 은폐 작업으로 피해자가 빨갱이, 사상범으로 낙인찍혔으며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작가 스스로 “애도 불가능한 죽음”이라고 명명한 보도연맹 사건은 소설가 조갑상에게 가장 중요한 테마이자 작가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오랜 시간 긴 애도를 하듯이 여러 작품에서 이 주제를 변주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보도연맹 사건과 관련된 여러 층위의 삶을 각기 다른 시간대에서 조명하는 방식으로 “어떤 이들에겐 살아 있는 진실이었을 이 사건을 삶의 원체험 자체로” 살리며 “가장 추상적인 사유체계라 할 법한 이데올로기의 동기들이 실은 얼마나 구체적으로 생의 갈피를 뒤흔드는지 예민하게 잡아”(해설)챈다.▲ 소설가 조갑상`병산읍지 편찬약사`에서 보도연맹 사건은 처형을 앞둔 보련원들이 탄 차에 장인을 태워보낸 박 영감의 이야기(`해후`), 아버지를 잃고 오히려 반공에 대한 강박만 생긴 채 열성적인 극우보수가 돼 결국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홧김에 죽어버린 김영호씨의 이야기(`물구나무서는 아이`) 등에서 직접적으로 소환된다. 특히 표제작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보도연맹 사건을 병산이라는 지역의 읍지 편찬 과정을 통해 정면으로 그린 작품이다. 읍지 편찬위원회로부터 읍지의 역사 부분 편찬을 의뢰받은 주인공 이규찬 교수는 초고를 작성하면서 과거 보도연맹 사건을 겪었던 지역으로서의 병산을 부각시키지만 편찬위원회는 “좌빨 글 싣는”(`병산읍지 편찬약사` 71면)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기록 자체를 줄여달라고 요구한다. 소설은 이 교수가 해당 내용을 스스로 검열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과거의 일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기억할 의무를 지닌 한 개인이자 역사학자로서의 고민을 낱낱이 드러낸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7-07

미지의 공포와 마주하다 치명적이고 아름다운 SF

`X구역`이란 가상의 장소를 둘러싼 기이한 현상을 스릴러와 서스펜스의 성격을 가미홰 섬뜩하고도 매혹적으로 풀어낸 SF 시리즈, 서던 리치 3부작(황금가지)이 출간됐다. 환경 재앙이 벌어졌다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30여 년간 격리된 미 남부의 `X구역`을 파헤치려는 탐험과 이곳에 관련된 사안을 다루는 비밀스러운 정부 기관 `서던 리치(Southern Reach)`의 전모가 세 권에 걸쳐 기괴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서던 리치 3부 작은 전 세계 30여 개국에 판권이 판매됐으며, 1권인`소멸의 땅(Annihilation)`은 네뷸러 상과 셜리 잭슨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또한`엑스 마키나`의 알렉스 갈런드 감독, 나탈리 포트먼 주연의 영화로 제작 중이며 2018년 공개될 예정이다.시종일관 심리적 긴장감을 주는 이 시리즈의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생생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페이지를 넘기기 불안하게 하는 한편으로, 다음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한다.`소멸의 땅`에서는 X구역을 탐험하는 12차 탐사대의 여정이 대원 중 한 사람인 생물학자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사실 `환경 재앙`은 X구역을 폐쇄하며 정부가 댄 표면상의 이유일 뿐, 이곳이 외부 세계와 경계를 이루며 형성된 원인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서던 리치가 보낸 역대 탐사대들이 목격한 X구역 안은 원시적으로 변해 버린 자연이었다. 또한 기이하게도 이곳에서 첨단 기기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다녀온 탐사 대원들은 거의 기억을 잃거나 암에 걸리는 등 고통스러운 말로를 겪는다. 생물학자는 X구역에서 발견한 동물 혹은 괴물들이 무언가 다른 `존재`에게 사로잡힌 것 같은 기이한 감각을 느낀다. 생물학자의 탐사와 바깥세계에서 경험한 그녀의 삶이 교차돼 진행되면서 X구역의 비밀이 어느 정도 풀리고 인간의 파괴적인 면모가 이곳의 발생에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 암시되지만, 그만큼 새로운 의문들이 제기된다. 이러한 의문들은 서던 리치의 신임 국장 `컨트롤`의 조직 내의 비밀을 파헤치는 `경계 기관`에서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또다시 풀리지 않는 숙제를 남기고 `빛의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X구역을 둘러싼 의문들은 현실에서 자연과 우주의 많은 이치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처럼 결국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마치 출구 없는 미궁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시리즈는 그럼에도 X구역이란 기이한 영역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듯한 강렬한 여운과 함께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이로움을 함께 선사한다.저자 제프 밴더미어는 아내인 앤 밴더미어와 함께 페미니즘 SF 선집`혁명하는 여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기획의 SF 판타지 기획하며 SF.판타지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편집자이기도 하다. `이중 도시`의 차이나 미에빌과 함께 위어드 픽션(엄격한 장르 구분이 생기기 이전인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등장했던 비현실적인 배경과 사건을 다룬 사변소설의 한 형태)을 계승하는 현대 작가로 손꼽히는 그는 서던 리치 3부작을 통해 대중적인 성공과 평단의 지지를 얻었다. 작중 X구역의 묘사는 세인트 마크스 국립야생동물 보호구역, 보태니컬 해변 주립 공원, 밴쿠버 섬의 퍼시픽 림 국립 공원, 부모님을 따라 어린 시절에 지냈던 피지 섬 등의 지역을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윤희정기자

2017-07-07

비열한 먹이사슬의 세계, 최상위 포식자는…

한마디의 군살도 허용하지 않는 듯한 단단하고 정확한 문장, 깊고도 오래 숙고된 주밀한 서사, 예상을 뒤엎는 전복과 재전복의 전개로 단편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는 신예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됐다. 2013년 단편 `전복`으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4년간 꾸준히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한국 소설의 새로운 지대를 형상화해왔다는 평을 받아온 김덕희의 첫 소설집 `급소`가 바로 그것이다.우선 표제작 `급소`는 작가의 세계관·소설관이 가장 응축된 작품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발은 수달, 꼬리는 쥐를 닮은 늪돼지들이 출현해 강 주변 습지의 생태계를 장악한다. 그 탓에 강과 연못에서는 토종 어류뿐만 아니라 배스와 황소개구리조차 개체 수가 가파르게 줄어든다. 여기에 정부가 포상제를 도입하니 인간 사냥꾼들이 등장하는데, 늪돼지 수는 줄지만 먹이사슬이 작동한다. 장이라는 인물(장정근)처럼 살육에 능한 사냥꾼만이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는데, 그도 최상위 포식자는 아니다. 먹이사슬의 좀더 위쪽에는, 사냥꾼들의 수확물 일부를 갈취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관리와 경찰들이 있다. 작가의 눈에 비친 이 악무한의 먹이사슬의 세계.흥미롭고도 주목할 만한 것은 줄거리가 구성되는 방식이다. 이 소설의 열여섯 살 일인칭 서술자(장민호)는 태어날 때부터 아비 없이 지냈고, 열여섯에 어머니로부터 밀려나 아버지에게로 와 또다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처절히 노력하지만, 결국 아버지가 휘두른 골프채에 급소를 맞고, 급기야 존속(어머니) 살해 혐의로 체포되기에 이른다.장과 서술자 나가 부자관계라는 것도, 나가 미필적 고의에 의해 어머니를 숨지게 한 다음 아버지를 찾아온 아들이라는 점도, 경찰이 찾아온 것이 아버지의 살인사건이 아니라 아들의 살인사건 때문이라는 점도 모두 결말에서야 놀라운 반전으로 밝혀진다.그제야 독자는 작품 앞부분에서 작가가 세밀한 실마리들을 아주 정교하게 매설해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그동안의 소설 읽기 체험을 재반추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소설들이, 모두 이와 같이 빼어난 전복과 재전복의 장치를 정교하게 내장하고 있다는 점은 빼놓을 수 없는 이 책의 매력이다.소설 속 인물들이 설 수 있는 땅을 찾지 못해 낯선 어딘가에서 안착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아홉 편의 소설 전반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등단작이기도 한 `전복`에서는 고향을 떠나 원룸에 기거하다 자살하거나 신경증 증상을 겪게 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단자화된 현대인의 초상이 새겨지며, `절차가 있습니다`와 `하울링`에서는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끊임없이 여행과 일탈에 대한 강박적 욕망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그려진다. 언어를 가진 지배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묘한 갈등이 놀랍도록 아름답게 형상화된 `낫이 짖을 때`에서도 주인공 수복과 그의 아버지는 주어진 환경을 이탈하려는 자에게 가해지는 처벌을 가장 두려워한다.이러한 두려움, 이러한 불안은, 애초에 무언가로부터 떨려나왔다는 불안에서 발원돼 지금 있는 이곳에서마저 떨려나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한층 더 전도된다. 항상 여기 아닌 어딘가를 꿈꾸며, 동시에 여기 아닌 어딘가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역설의 불안에 휩싸이는 것은 그들만의 모습일까./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7-07

미국 대표작가 애드거 앨런 포 유일한 장편소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유일한 장편소설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창비)가 출간됐다.주인공 아서 고든 핌이 청년 시절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난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가 포와 출판사 편집자가 이야기 안팎을 넘나들며 허구와 실제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소설이다.난파와 선상반란, 식인 행위, 신대륙 발견 및 원주민과의 전투 등 서사적 흥미 요소와 당대 실제 탐험기의 논픽션적 요소, 그리고 이후 단편소설들에서 포의 작풍을 특징지은 음울한 세계관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근대인 포의 문학적 성찰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소설은 해상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항해 지식, 그리고 위기 상황 속 인간의 행동과 감정, 의식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서술 과정에서 작가 포가 등장하기도 하고 출판사의 개입이 후기 형식으로 소설의 일부가 되며 복합적인 서사가 완성된다.독특한 형식 때문에 이 작품은 한동안 미완성작으로 오해돼 왔다. 원고를 교정하던 핌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마지막 두세 챕터를 상실했다는 결말부의 내용을 이유로 이 소설은 그간 단편소설가로서 포의 명성에 비해 저평가돼 왔다. 현재는 이런 비평적 오해가 수정돼 이 역시 의도된 소설적 장치로 봐야 한다는 것이 주류 독법으로 확립돼 있으며, 작품이 지닌 주제의식과 문학사적 가치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이 작품은 모험담의 형식을 빌려 서구의 근대주의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다. 표면적으로는 모험소설 장르 특유의 서사, 즉 서구 `문명`의 시선으로 `야만적`인 문화를 `발견`하고 `정복`하는 서사를 취하지만, 모험의 주체인 서구인들 자신의 야만성과 비합리성, 비이성적 행동 등이 곳곳에 드러난다. 가령 핌은 항해의 치명적 위험성을 알고 난 후 모험에 더욱 이끌리고, 죽음의 고비에서 절대 금기인 죽는 상상을 참지 못하는 등 이상심리를 겪는다. 더욱이 `야만성`의 대명사인 식인 행위는 `야만인`으로 지칭되는 미지의 땅 주민들이 아니라 핌을 포함한 서구인 선원들 가운데서 벌어진다. 핌은 모든 비이성적 사건이 곧 야만적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일갈한다. “이 명백한 무정함에 대해서 나를 비난하려는 사람이 있거든 내가 그때 처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본 다음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150면) 포는 이 작품에서 서구인의 편협한 시각을 비판하고 문명과 관습을 상대화하면서 모험소설의 전형성을 뛰어넘는다.미국 청년 아서 고든 핌은 친구를 따라 남태평양행 고래잡이배에 몰래 올랐다가 겪은 구사일생의 이야기를 후일담 형식으로 들려준다. 선상반란에 휘말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난파당해 동료들을 잃고 가까스로 구조된 뒤에도 핌은 남극에 대한 호기심으로 항해를 계속해 미지의 땅에서 낯선 부족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포라는 작가의 권유로 이야기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30

바깥은 여름인데 안에는 눈내리는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위하여…

김애란(37) 작가는 현재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30대 문인 중 대표 주자다.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 때 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어린 나이에 문단에 나온 김 작가는 2013년 역대 최연소로 이상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2011년 출간한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2010년대 대표작가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2012년 펴낸 세번째 소설집 `비행운`은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형식으로(飛行雲),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 불운(非幸運)에 발목 잡힌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 인기를 얻었다.그의 신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은 지난 28일 출간을 앞두고 예약 판매만으로 알라딘 종합 3위까지 올랐다.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단편 7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을 5년 동안 기다려온 독자가 많았다는 방증이다.`바깥은 여름`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단편 7편이 실렸다.가까이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어떤 시간을 영영 빼앗기는 등 상실을 맞닥뜨린 인물의 이야기, 친숙한 상대에게서 뜻밖의 표정을 읽고 느끼게 된 당혹스러움, 언어의 영(靈)이 들려주는 생경한 이야기 등이 김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펼쳐진다.김 작가는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이번 소설집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는 문장에서 비롯됐을 그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內)을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입동`)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버린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말이다.그렇지만 소설은 이 외면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집을 닫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을 잃은 후 `시리(Siri)`에게 `고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던 `나`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은,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겨질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 물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는 것. 그 아득한 질문에 골몰해 있는 `나`는 제자 `지용`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은 후에야 줄곧 외면하려고 했던, 계곡물에 잠기며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지용의 `눈`과 마주한다. 그 마주침 이후 `나`는 이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이 나눠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강아지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모습에서(`노찬성과 에반`), 한 시절을 함께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의 모습에서(`건너편`)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차`는 그간 익숙하게 여겨오던 생각이 깨어질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 `가리는 손`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시차는 잘 안다고 여겼던 인물과 우리 사이에서 생겨난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라는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김애란은 그런 편견들 틈에서 때묻지 않은 깨끗한 자리로 아이를 이동시키는 대신, 또다른 편견으로 `어린아이`를, `소수자`를, `타인`을 옭아맸을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 터져나온 `나`의 탄식 앞에서, 우리는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하며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해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연해질 수밖에 없으리라.그러니 `바깥은 여름`은,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에서부터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밀쳐둔 인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명료한 단어가 아닌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자 한 안간힘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작가가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소설집 편편에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배어 있다.김애란은 `바깥은 여름` 말미에 적었다.“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하면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6-30

개미를 통해 본 곤충사회의 질서와 원리

지난 1990년 책 `개미`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윌슨(88)과 베르트 횔도블러(81)가 공동 출간한 `초유기체:곤충 사회의 힘과 아름다움, 정교한 질서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가 출간됐다. 베르트 횔도블러는 개미의 화학적 의사소통을 비롯한 행동학과 생리학 분야 전문가이며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의 분류와 진화, 생태학과 생물 지리, 사회적 동물의 사회성 진화를 평생 연구해 온 사회 생물학자이자 작가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개미나 꿀벌, 말벌 같은 소위 사회성 곤충의 `군락`을 `초유기체`라는 별도의 생물학적 조직 단위의 하나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 새로운 정의를 뒷받침하는 사회성 곤충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성들과 그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소개함으로써 사회성 곤충 군락 안에 들어 있는 초유기체로서의 질서와 원리까지 알려준다.책에 따르면 초유기체는 역할 분담과 의사소통이 확실하게 이뤄지는 군락이다. 번식을 전담하는 계급과 불임인 일꾼 계급으로 나뉜 군락에서는 분업과 협업이 조직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군락살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집단이 백악기에 처음 지구에 등장해 1억 년이 넘도록 번성 중인 개미다.5년간의 작업을 통해 탄생한 600쪽의 책을 읽다 보면 사회적 곤충의 집합체가 인간 사회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곤충과 인간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성 곤충은 본능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지만 인간에게는 지능과 빠르게 진화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이해하는 잠재력을 통해 우리의 자기 파괴적 갈등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윤희정기자

2017-06-30

나의 오래된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까요?

우울증, 정서불안, 강박증, 콤플렉스, 공황장애 등 일상에서 크고 작은 정신적 좌절을 겪는 현대인들의 상처를 읽고, 심리 치유의 차원이 아닌, 몸, 마음, 감정의 성장이라는 통합적 차원에서 인간을 통찰하는 `트라우마 치유,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나다`(판미동)가 출간됐다. 심리상담 센터의 심리 치유나 현대 의학의 약물 치료로 해결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고통을 오랫동안 치유해 온 저자 윤인모씨가 이론이나 방법론 위주가 아닌 직접 경험한 임상사례들을 생생한 필치로 담았다. 저자는 내담자들의 무의식 풍경과 에너지 상태를 읽고, 그들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그 고통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밝혀 나간다. 몸을 잘 정립하고, 상처투성이인 마음을 치유하며, 갇혀 있는 의식을 확장하도록 궁극적인 해법을 제시한다.이 책에는 인간의 무의식 풍경과 에너지 상태를 읽는 치유가의 시각에서 바라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담겨 있다.남자 친구를 같은 무용단 단원인 친구에게 잃은 뒤로 두 눈이 부풀어 오른다고 여기는 여자 무용수, 아내와의 불화로 내적 공허와 열정 부족에 시달리며 스스로 고아라고 여기고 사는 중견 제조업체 사장. 폭력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에 사회관계에서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결혼 뒤에도 `심약하고 불안한 아내`와 `현명하고 명랑한 아내`사이에서 갈등하다 정신분열에 걸린 주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틱장애와 같은 강박증에 시달리다 삶의 목표를 상실한 청년, 지나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계속 외면하다가 공황장애에 걸려 매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는 여대생, 동물·아기·승려 등 다양한 의식의 스펙트럼을 지닌 분열증형 성격장애 환자….그들은 특수한 병을 앓고 있는 희귀한 사례가 아닌, 다양한 트라우마와 크고 작은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한다. 저자는 이들의 무의식 풍경을 영화처럼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겪는 단절감과 소외감, 불안과 공포, 허무와 절망감 등을 생생히 느끼고 함께 아파한다. 현대인들이 신체적 증상으로 자각하는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많은 증상들이 전생과 현생을 통해 얻은, 무의식에 아로새겨진 상처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저자는 마음의 질병이나 왜곡 등 부정적인 상태를 “확정적인 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부정적인 에너지의 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곧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지식이나 이론을 터득하거나 마음의 위로를 받거나 종교적 신념을 갖거나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내담자 안에 갇혀 있는 불필요한 생체 에너지나 신경학적 장애물을 제거·배출하거나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변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치유가 아닌 성장을 목적으로 하여, 한 인간의 의식과 생명 에너지 단위가 높아질 때 치유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는 언어적 위로로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으며, 약물에 의지해 몸을 피폐하게 하지 않고도, 인간 본연의 생명 에너지를 회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기존의 치유법들과 차별화된다.인간의 무의식 풍경과 에너지 상태, 더 나아가 한 개인의 전생과 현생을 읽는다는 것이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 온 현대인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저자가 밝히듯이 “또 다른 검증과 논의 대상”이 돼야 할 문제이며,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인간이 겪고 있는 원인 불명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 치유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다. 결국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인들의 병적 증상에 대한 백화점식 나열도, 고통받는 이들을 현혹하기 위한 신비주의적인 접근도 아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통찰과 그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크고 작은 정신적인 좌절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이 책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그 삶을 되돌아보는 귀중한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6-23

장편(掌篇)에 실린 장편(長篇) 못지않은 인생 통찰

최근 독자들 사이에서 `짧은소설`이 각광받고 있다. 200자 원고지 10~30매 정도의 짧은 분량 안에 인생과 인간의 번뜩이는 순간을 담아낸 `짧은소설`은 SNS와 모바일환경에 익숙해진 젊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우리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초단편, 나뭇잎이나 손바닥에 빗대 엽편(葉篇)·장편(掌篇)으로도 불리는 짧은 소설은 원고지 20매를 좀처럼 넘지 않는다. 이 짧은소설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 성석제(57)가 새 책을 들고 돌아왔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문학동네)은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2007)과 `인간적이다`(2010)의 원고 일부에 새로 쓴 작품들을 보태 총 55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 있다.시인 성석제가 1994년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산문의 길이에, 시의 함축성을 품고 있으며, 소설의 재기발랄한 서사와 캐릭터까지 담긴 이 책은 이야기꾼 성석제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에서 성석제는 여전히 장르를 넘나들고, 책장이 서너 장 넘어가기도 전에 폭소와 찡한 감동을 선사하며 짧은소설의 미학과 현재성을 입증해낸다.흔히 짧은소설은 `엽편소설(葉篇小說)` `장편소설(掌篇小說)`로도 불린다. 그 분량의 단출함으로 인해 `나뭇잎 한 장`과 `손바닥`에 비유한 것이지만, 성석제의 손바닥소설은 다 읽고 나면 `장편소설(長篇小說)`이 주는 감정에 부럽지 않은 인생에 대한 통찰과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은 지긋지긋하게 사랑스러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성석제식의 해부도이자, 요즘 `문학`과 `책`이 다소 어렵고 멀어 보인다는 이들에게도 거침없이 건넬 수 있는 유쾌한 프로포즈다.성석제는 짧은소설의 매력에 대해 “불꽃이 튀는 듯한, 짜릿한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 번역도 쉽고 장르를 넘나들기도 쉽다. 장르가 세분화하기 이전 우리 마음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사실 장르가 분리되기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나. 오히려 완전성을 담을 수 있다. 통상적인 소설의 구조와는 달리 자유롭고 창의력이 충만한 장르다. 실험정신이 왕성한 작가들이라면 써보고 싶어하는 분야”라고 했다.한편, 성석제는 신작이 담긴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과 함께 데뷔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와 성석제 짧은소설의 백미로 평가받는`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개정판을 함께 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