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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었을 때 더 깊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스페인 카미노떼 산티아고, 캐나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과 함께 세계 3대 트레일이라 알려져 있는 존 뮤어 트레일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해피 아일스에서 출발해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휘트니 봉을 지나 휘트니 마운틴 포털에 이르는 225.9마일(363.4km)에 이른다. 곰과 사슴, 빙하시대에서 살아남은 세코미아 나무, 계곡이나 협곡은 물론 드넓은 초원지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호수가 있는 환상적인 꿈의 트레일이다.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석홍 시인이 최근 펴낸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는 시인이 이 트레일을 걸었던 16일간의 여정을 담아낸 책이다.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네팔 히말라야, 티베트, 몽골, 인도 북부지역은 각자 독특한 야성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는 곳이다. 존 뮤어 트레일은 이런 지역과는 달리 종주가 어려운 것은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잠을 잘 수 있는 로지가 있거나 한 곳에서 베이스캠프를 치고 오래 머무는 고산 등반과 달리 매일 걸어서 움직여야 하기에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사전에 퍼밋(등반허가)을 받아야 하고 식량, 장비, 잠자리 등 모든 것을 자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점이다. 한낮에는 30도가 넘는 뜨거운 햇살과 밤이 되면 섭씨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씨, 해발 3천~4천m를 매일 오르고 내려야 하는 트레일이다. 1년에 6개월 정도(5~10월) 밖에 걸을 수 없어 더 매력이 있는 곳이다.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의 국립공원이 어떻게 관리되고 운영되는 지를 알 수 있고 미국의 굴곡진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금이 발견되면서 겪는 인디언과 백인과의 갈등, 환경보전, 시에라클럽의 명성, 밤마다 쏟아지는 별의 향연 같은 자연의 이야기는 물론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생경한 풍경을 통해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놓아 두었을때 더 깊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았다고 담담한 필치로 적었다. 저자는 `사막은 그 품 안에 오아시스를 숨겨서 아름답다`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호수와 호수를, 그리고 고개와 고개를 조화롭게 이어주는 환상의 트레일이라고 했다.이 책은 부산의 향토건설사인 (주)협성종합건업이 설립한 (재)협성문화재단의 프로보노 사업의 하나인 `NEW BOOK 프로젝트`일환으로 선정돼 발간됐다. `NEW BOOK 프로젝트`는 자신이 직접 쓴 이야기를 도서제작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도서제작의 전(全) 과정을 지원해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모전이다.윤석홍 시인은 에필로그에서 “삶이 힘들거나 팍팍해질 때 고통을 감내하며 걸어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벅찬 환희와 작은 성취감이 샘물처럼 솟아날 것이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나 자연을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고 적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4-07

나에게, 세상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임솔아의 첫번째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시인은 2013년 중앙일보신인문학상 시 부문으로 등단한 후, 2015년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출간한 바 있다. 현재 시와 소설을 함께 쓰고 있다.첫 장편소설을 통해 가출 청소년들이 마주한 사회와 그들 사이의 갈등, 폭력 등을 단호한 시선으로 풀어냈던 임솔아는 이번 시집에서도 날카롭고 예민한 감각을 덤덤하게 표현해냈다.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에는 불합리함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차마 적응하지도, 타협하지도 못한 채 놓여 있는 나와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편들이 다수를 이룬다. 이에 더해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한 발 한 발 내 안의 갈등들을 풀어가려는 시도를 담은 시들은 글로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충실히 담아냈다.“지옥 같은 별, 나를 둘러싼 세상에남겨진 나와 또 다른 나이곳을 떠나본 자들은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나를 여기에 둔 채 나는저곳으로 다시 빠져나가서”―`아름다움`부분이 시집의 화자에게 이 세상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름다운 별”이지만, 나에게는 곧 “지옥”일 뿐이다. “기린에 기린이 없”고, “지구에 지구가 없”고, “사람에 사람이 없”는 갖은 모형/가짜들이 가득한 세계 속에서 나 역시 “사람 같은 모형”, 사람이되 사람이 되지 못한 채로 세계 속에 놓여 있다.이러한 현실에서 화자는 자신과 세계 속의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를 인지한다. 즉, 나와 내 주위를 둘러싼 세계와의 간극을 확인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 속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31

위대한 혁명가이자 폭군 마오쩌둥

20세기 현대 중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인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중국 국가주석의 일생을 다룬 책 `마오쩌둥 평전`(민음사 펴냄)이 출간됐다. 이 책에서 저자 알렉산더 판초프는 최근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광범위한 문서를 통해 이전에는 듣지 못한 마오쩌둥의 삶의 궤적을 완전하게 들려준다. 일반인에게 대외비였던 구소련의 비밀문서, 즉 러시아 국립 사회정치사 문서 보관소의 자료를 포함해 최근 중국과 서방에서 출간된 저작물을 토대로 마오의 삶과 경력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이 책은 마오쩌둥의 권력 쟁취 과정과 리더십, 기존에 알려진 옛 소련의 철권 통치자 스탈린과의 관계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자료를 밝힌다.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이상주의자, 내전에 빠진 중국 대륙을 통일시키고 서구 열강이나 일본에 멸시당하던 중국과 중국인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이끈 인물이라는 긍정적 평가 외에도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국내 정책으로 수천만 중국인의 인명 손실에 책임이 있는, 마지막 황제처럼 살고 행동했던 마오쩌둥의 인생과 통치에 대한 이야기가 세밀하게 펼쳐진다.러시아 출신으로 현재 미국 캐피탈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 알렉산더 판초프는 마오쩌둥을 “20세기 위대한 혁명가이자 막강한 폭군”이었다고 묘사하고 “마오쩌둥이 외세의 침략에서 나라를 해방시키는 임무는 성공했으나 독재 수단을 통해 모든 이가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한다.마오쩌둥 통치 시절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되고 정치적으로 양대 초강대국(미국, 소련)과 등거리를 유지하게 됐지만 기만과 폭력을 바탕으로 중국 인민들에게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를 강요하고, 그들을 피비린내 나는 사회 실험의 나락으로 몰고갔다는 것.판초프 교수는 또 마오쩌둥에 대해 `스탈린의 순종적인 학생이자 충실한 추종자`로 묘사하며 자신이 충성하는 보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통을 감내했고 스탈린이 죽어서야 그의 모델에서 벗어나려 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기존 많은 책이 마오쩌둥이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아닌 진정한 중국의 혁명가로 묘사했던 것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책에 따르면 1981년 1월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마오에 대해 “위대한 무산 계급 혁명가이며, 전략가이고 이론가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심각한 과오를 저질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업적 전체를 평가한다면 중국 혁명에 대한 공헌이 과오를 능가한다. 그의 공적이 중요하고 과오는 부차적이다”라고 단언한다.그는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이후 1950년대 초반까지 중국공산당이 모스크바에 계속해서 재정을 의존하고 있었으며 중국공산당은 코민테른(공산주의 국제연합)을 통제하던 스탈린과 측근들과 종속관계였다고 본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운명은 그들에게 달려 있었으며 마오쩌둥이 중국공산당에서 권력의 핵심으로 굴기할 수 있었던 데는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힘이 컸다고 설명한다.저자는 마오쩌둥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는 스탈린을 비롯한 다른 독재자들의 사악한 행위 못지않게 끔찍했으며 그 규모 면에서 훨씬 컸음에도, 여러 면에서 진정한 중국의 영도자이자 외국의 볼셰비즘 원칙을 중국 혁명으로 실천하면서 중국의 전통과 결합시킬 수 있는 이론가였기에 여전히 경외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81년의 발언 이후로 그에 대한 평가를 재론한 적이 없으며, 그의 탄생 주기마다 그가 태어난 후난 성의 사오산충은 10만 이상의 추모 인파가 몰리는 등 현대 중국인에게 마오는 신중국을 건립한 국부, 토종 영웅을 넘어 신격화된 이미지로 남아 있다.이 책은 판초프 교수가 러시아어로 쓴 책을 스티븐 레빈 미국 몬태나대 역사학과 연구교수가 영역한 책`마오(Mao: The Real Story)`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31

“지금도 주인을 잃고 눈물 흘리는 대마도”

소설을 통해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주장했던 역사소설가 신용우 작가가 `대마도의 영토권`에 이어 장편소설 `대마도의 눈물`을 출간했다.이 책은 근대사에 기록하고 싶어도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고 기록하지 못한 역사를 바탕으로, 역사서보다 진실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대마도와 홋카이도 그리고 오키나와를 병탄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러시아·중국·영국의 이해관계 틈바구니에서 아직도 병탄한 채 그대로 지배하고 있는 역사의 실체를 밝힌다.또한 일본은 자신들의 왕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신격화해서 천황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일왕은 일본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우파정권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온갖 추악한 짓을 벌이는 `겐요샤`라는 테러집단을 지원하는 데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으므로 천황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아서 이 책에서는 일왕이라고 칭한다.신 작가는 “문화는 특정 영토의 환경에 따라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생각과 생활전체를 지배하는 고유한 영토문화가 생성되고 발전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말했다.그는 또 “따라서 이질적인 문화를 소유한 침략자가 그 영토를 강점해 자연과 어우러지지 않는 문화를 그 영토에 심을 때, 영토는 괴로움을 못 이겨 두고두고 아우성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며 “대한민국의 선조에 의해서 심어지고 꽃피운 영토문화를 간직한 대마도는 일제의 병탄에 의해서 주인을 잃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넘실거리는 길목에서 대마도는 자신의 슬픈 처지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있다”고 말했다.신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천명하는 `문화영토론에 의한 대마도의 영토권 연구`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마도가 독도와 함께 한국 땅임을 끊임 없이 연구, 주장해 오고 있다.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17-03-31

행복한 가정과 결혼생활을 위한 `감정코칭법`

`행복한 결혼을 위한 7원칙`(문학사상사)은 부부문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가트맨 박사의 행복한 가정과 결혼생활을 위한 `감정 코칭법`이 담겨진 책이다.실용서로서는 매우 보기 드물게 17년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아온 초장기 스테디셀러 `행복한 부부 이혼하는 부부`의 완전 개정판이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수정·보완했다.결혼문제 연구의 권위자인 낸 실버와 함께 펴낸 이 책에서 가트맨 박사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부부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행복한 부부와 이혼하는 부부의 행동패턴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 책은 바로 그 연구 결과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이 책에서 제시하는 일곱 가지 원칙은 독자들이 오래도록 행복하고 조화로운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명료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러한 원칙들은 부부가 갈등을 해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며, 친밀감을 더욱 견고하게 쌓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의 장점은 결혼생활 가운데 마주치는 이런 다름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 당혹스러움을 다독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트맨 박사는 수많은 부부들의 대화와 행동을 연구해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부문제의 일반적 양태를 분석해 제시한다.가트맨 박사는 `행복한 부부는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제목의 추천의 말에서 “책을 읽는 것으로 그치지 말라.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읽기`라면 그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라도 좋으니 몸소 실천해보고 시도해보면서 우리 부부에 맞는 두 사람만의 방법을 발견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적고 있다.가트맨 박사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일곱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원칙1 애정 지도를 상세하게 그려라△원칙2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길러라△원칙3 서로에게서 달아나는 대신 서로를 향해 가라△원칙4 배우자가 당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두려워 마라△원칙5 해결 가능한 문제는 두 사람이 해결하라△원칙6 교착 상태를 함께 극복하라△원칙7 공유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라/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31

연속된 수난의 역사고비마다 들끓었던 폭력의 실체 포착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도둑`으로 등단한 이래 지난 36년간 이상문학상, 단재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 임철우의 다섯번째 소설집 `연대기, 괴물`(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사건들의 기록자”, “기억의 발굴자”이자 “탁월한 서정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임 작가는 역사의 환부를 집요하게 추적해가면서도 절제된 정서와 문학적 깊이를 유지해 오고 있다.이번 소설집 또한 비극을 응시하고 그 연원을 좇아 기어코 악몽 같은 심연을 마주하고야 마는 일곱 편의 소설이 묶였다. 하지만 전작들인 `백년여관``이별하는 골짜기``황천기담` 등에서 임 작가가 마련했던 마술적이고 신화적인 공간, 환상과 위로의 여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작가는 반성하고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못한 채 격변해온 사회,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조그만 숨구멍조차 마련할 수 없게 된 현실을 더 밀도 있게 채워 넣는다. 제목처럼 연속된 수난의 역사를 생의 연대기로 기입해나가며, 그 고비마다 들끓었던 폭력들을 포착해낸다. 대체적으로 요즈음 단편들보다 좀더 긴 호흡으로 씌어진 이 소설들은 일견 쓸쓸하고 어두운 이야기들로 읽힐 수도 있지만 그가 오래 천착해온 `기억과 죽음에 관한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 언어를 넘어서는 공감의 장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표제작 `연대기, 괴물`은 보도연맹 사건부터 베트남 전쟁, 세월호 사건을 잇는 비극의 연대기, 이 연속된 고통을 괴물의 환상으로 겪어내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긴 세월 무연고자로 살아온, 고엽제 후유증으로 물집에 뒤덮인 채 끝내 환각을 쫓아 지하철로 돌진해 생을 마감해버리는 그는 한 세대의 상징적 초상처럼 읽히기도 한다. 제정신으로 버텨내기 어려운 시대, 너나없이 함정으로 빠져들고 광기에 몸을 맡기게 되는 순간, 가해와 피해, 죽음과 살인이 혼재된 긴 흐름을 작가는 서늘하리만치 정직하게 재현해낸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3-24

진짜 성공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힘 `회복탄력성`

`회복 탄력의 힘`(문학사상사)은 독일과 유럽에서 경제 분야 회복탄력성 훈련의 대표적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데니스 모울란 박사가 펴낸 책이다. 심리치료사인 모울란 박사는 `회복 탄력의 힘`에서 과학에 토대를 둔 지식과 자신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가 지니고 있는 회복탄력성 개념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스킬을 소개한다.회복탄력성은 오늘날 심리학, 정신의학, 간호학, 교육학,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뤄지고 있는 개념으로, 크고 작은 역경과 실패를 딛고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인생의 밑바닥`같은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더 높은 성취를 이루어내는 내면의 힘이다.모올란 박사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역경과 실패를 극복하는 특별한 힘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힘든 상황을 극복할 때 쓰이는 `마음의 근력`, 즉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공통점이 있다는 것.모올란 박사는 고도의 회복탄력성을 지닌 사람들은 삶이 그들에게 던져 주는 여러 가지 도전거리에 희망, 평정심, 자신감, 용기, 인간성 그리고 일관성 및 규율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일이 전복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어떤 어려움도 그들의 자존감을 파괴하지 못하며, 그들은 그러한 경험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불확실한 상황과 압박 속에서도 그들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가능한 긍정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반쯤 채워진 물 잔`을 보고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고 말할 수 있는 긍정적인 태도는 그들에게 스스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은 이를 토대로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고 설명한다.특히 회복탄력성이 가장 강한 인물로 평가되는 고(故) 스티브 잡스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회복탄력성 요소 네 가지와 취약했던 세 가지 요소, 그리고 그에게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 욕구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본다.`회복 탄력의 힘`에서 소개하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레시피─9 + X`는 다음과 같다.ㆍ이제부터 새로운 능력을 가져라ㆍ스킬1_사랑하고, 바꾸고, 떠나라ㆍ스킬2_영향력의 레이더를 켜라ㆍ스킬3_생각을 창조하라ㆍ스킬4_감정 레이더를 켜라ㆍ스킬5_길을 가로막는 빙산을 녹여 없애라ㆍ스킬6_생각의 함정을 피하라ㆍ스킬7_긍정하라ㆍ스킬8_마음을 살펴라ㆍ스킬9_커넥션을 하라ㆍ스킬X_사람이 되어라/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3-24

식품학자의 과학적으로 먹고살기

식품학자 이한승은 지난 20년간 방송, 신문,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로 사이비 과학과 뉴스에 난무하는 잘못된 식품 정보를 바로잡아온 전문가다. 하지만 개별 식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저자가 `솔직한 식품`(창비)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그는 과학자는 답을 내주는 사람이기보다는 답을 찾는 방법을 안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잘못된 식품 정보를 독자 스스로 가려낼 수 있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칙들을 알려준다. 책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밥상을 대하는 이들에게 `과학적으로 먹고 살기`를 도와준다.1부에서는 식품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6가지를 바로잡는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음식을 약으로 보는 인식이다.`항암식품`을 먹어서 암을 고치고,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해 질병을 치료하려고 한다. 하지만 식품에는 대개 엄정하게 통제된 단일성분인 약품과 달리 다양한 성분이 뒤섞여 있다.(1장 `식품은 약이 아니다`) `전통음식`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어 몸에 좋다거나, 동의보감과 같은 고서에 실린 음식의 효능을 맹신하는 것도 대표적 오류다. 저자는 이를 `음식 근본주의`라고 꼬집으며 전통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발효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것 역시 이제 상식처럼 돼버렸지만, 사실 발효는 과학적으로 부패와 같은 과정이며 발효음식이 반드시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다.2부에서는 그런 오해를 촉발시킨 원인 제공자들, 정보 수용자, 식품회사, 식품 연구자 각각의 역할을 차례차례 살핀다. 공업용 우지 파동,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 사카린, MSG 등 한국 사회에서 일었던 식품파동을 통해 허황된 홍보나 과장된 보도에 속지 않는 법을 소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24

책으로 다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매체 지향

독서문화 매거진을 표방하는 `월간 독서경영`이 최근 창간호를 펴냈다. `월간 독서경영`은 `월간 출판저널` 발행처 (발행인 정윤희)인 피알엔코리아(주)가 `독서를 통한 성장, 성장을 통한 경영`을 모토로, 우리나라 독서문화의 확산을 위한 매거진으로 독자들과 함께 독서에 대한 담론과 사례를 공유할 계획이다. 내 인생을 경영하고, 조직과 사회, 기업 및 기관 등을 경영자, 독서경영담당자, 독서동아리 등 책 읽는 독자들에게 책으로 다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매체를 지향하고 있다.`월간 독서경영` 창간을 주도한 정윤희 발행인은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이한 `월간 출판저널` 발행인.`월간 출판저널`은 1987년 창간된 출판전문잡지로 2008년 8월 발행처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휴간 당시 수석기자였던 정윤희씨가 독립해 지금까지 햇수로 10년간 한 번도 휴간 없이 발행해 오고 있다. `월간 출판저널`은 지난 6일,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됐다. `월간 출판저널`은 5회째 연속 우수콘텐츠 잡지로 선정됐고,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이하고 9월호에 통권 500호가 된다.`월간 독서경영`은 창간특집 `다시, 독서`라는 주제로 우리사회의 독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은 시인 인터뷰를 통해서 짚어봤다.2017년 제4회 이탈리아 로마재단 국제시인상을 수상한 고은 시인은 신중선 소설가와의 인터뷰에서 “눈이 둘이고 귀가 둘이고 손과 발이 둘이며 서로 대칭을 이루듯 읽기와 쓰기도 양 대칭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쓰는 작가로만 알고 있지만 나는 읽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읽을 때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읽습니다”고 독서를 하면서 느끼는 행복과 의미를 말했다. 고은 시인은 요즘도 한 달에 50여 권의 책을 서점에 가서 직접 산다고 고백한다.창간특집에서 이현청 한양대 교육학 석좌교수는 청소년기의 독서에 대한 중요성과 방안을 제시했고 문화강국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을 통해 우리의 교육정책과 독서문화가 어떻게 바껴야 하는지 보여준다.또한 창간 특집호에는 어머니에 대한 1천통의 감사편지로 유명한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의 독서인터뷰, 리더십 전문가이며 재능교육 사장을 지낸 양병무 재능대학 교수 인터뷰, 독서동아리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 인터뷰, 연합나비독서포럼 김형환 대표 인터뷰가 실렸다.이밖에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의 독서코칭, 김찬배 박사의 변화와 혁신 등 기획연재도 담았다.정윤희 `월간 독서경영` 발행인은 “`월간 출판저널`은 책을 기획하고 출판(생산)하는 출판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면, `월간 독서경영`은 책을 읽고 삶에 실천하는 독자들을 위한 잡지”라고 설명했다.한편 `월간 독서경영`은 독서전문가로 잘 알려진 한근태 박사, 고현숙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등의 독서멘토링도 진행한다.이외에도 독서경영 방법, 독서경영 사례, 전문가들의 독서 멘토링, 독서동아리 사례, 북큐레이션 등 독자들에게 유용한 도서정보도 제공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24

마음을 다독이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

“많이 힘들고 지치셨나요? 이젠 시(詩)로 위로 받으세요.”시집 `세기말 블루스`로 유명한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56)씨가 마음을 다독이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 91편을 골라 담은 `시가 나를 안아준다`(판미동)를 펴냈다.1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비롯해 여러 시집과 에세이에서 신씨는 내밀한 자기 고백을 통해 많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 왔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의 불안감, 세계화한 시대에 겪는 소외감과 쓸쓸함을 호소력 있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시가 나를 안아준다`는 “자신의 영혼을 만나거나, 힘들 때 영혼을 쉬게 하는 쉼터가 시”라고 생각해온 저자가 단순히 위로와 힐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성장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시와 그림을 엄선했다.이 책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서 자꾸만 들춰보며 읽게 되는 `베갯머리 시`를 표방한다. 괴테, 틱낫한, 잘랄루딘 루미, 니체 등의 시를 담았지만 단선적인 잠언적 성격의 시도 아니고, 자칫 난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는 문학적이기만 한 시도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되 울림이 있는 시를 담았다. 윤동주, 신동엽, 이성복, 정호승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를 비롯해 동서고금을 망라해 좁은 현실에 갇혀 있는 시야를 열어 더 멀리 바라보게 하고 삶에 대한 통찰을 일깨워 주는 시들이다. 또한 레이먼드 카버, 에쿠니 가오리, 웬델 베리 등 국내에 시가 잘 알려지지 않은 문학가의 새롭고 신선한 시들도 만나볼 수 있다.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게, 소박한 듯하지만 참신하고 마음에 울림이 남기는 시들이기 때문에 베갯머리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시들이다.▲ 신현림 시인또한 이미지가 살아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자 시적인 사진을 찍는 사진가로, 대중성과 예술성, 이미지와 텍스트 중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저자가 그림 역시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비파 그림들을 중심으로 파울 클레, 앙리 마틴의 작품을 주로 다뤄 실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시와 기도, 밤과 고독, 성장과 사랑, 감사와 희망을 믿는 저자와 함께 자신의 내면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저자가 시를 통해 보여 주는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의 힘`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고 은은하게 비춰 준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외롭고 불안한 나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밤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읽으며, 시를 읽기 때문에 감사와 희망이 진정 무엇인지 새로이 깨닫게 된다.우리는 마음으로 시를 읽고, 마음을 보듬어 영혼을 성장시킨다. 따라서 시를 읽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길이다.이 책은 시가 일상에서 가장 멀게 느껴지는 사람도 시를 통해 자신이 보다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본래의 자신에 가까워진다고 느끼게 해 줄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3-17

한번 죽고 나서야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2011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황현진(38)의 두 번째 장편소설 `두 번 사는 사람들`(문학동네)이 출간됐다. 황현진은 등단작부터 “정말 하나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라는 평을 들으며, 소설 속 인물들의 “살아 있음”을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예비해온 두 번째 장편소설 `두 번 사는 사람들`을 통해 세계를 살아가는, 혹은 살아낸 사람들의 “누구도 같을 수 없는 삶의 드라마”를 감정의 과잉 없이도 가슴 저릿하게 펼쳐 보인다.소설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라는 이름의 두 남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한다. 1917년생 남자 박정희는 총에 맞아 죽고, 1960년생 여자 박정희는 딸 구구를 낳고 죽는다. 구구의 아버지 조금성은 1917년생 박정희가 태어난 도시에 홀로 하숙집을 꾸리며 억척스레 구구를 키워낸다.금성의 하숙집에는 저마다 남다른 이야기를 지닌 인물들이 큰 물줄기로 흐르는 시내처럼 자연스레 모여든다. 하루 세 끼 홍시만 먹고 사는 홍시 할머니, 컬러TV 만드는 공장에 취직한 기욱과 그의 애인 순점, 운동권 청년 용태 등이 구구네 하숙집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기욱은 감전사고로 숨지고 순점은 사산아를 낳는다.어쩐지 불운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삶의 굴곡들이지만, 움푹 팬 상처의 이면으로 어느새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황현진은 이들의 삶을 결코 불운하거나 불행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한 번 죽고 나서야 또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삶의 비의`를 넌지시 드러내 보여준다. 소설이 구구를 중심으로 한 삼대의 이야기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째보와의 `혼인 불가`를 선언한 뒤로 졸지에 여성운동가가 돼 버린 금성의 어머니 김말녀와,쪼다이지만 마음만은 선량한 금성의 아버지 조복남. 고무공장 직원이지만 투전판으로 출근하는 일이 많았던 정희의 아버지 박두남과 그의 첫번째 아내가 운영하는 미장원에서 일하던 정희의 어머니 두자. 그리고 조금성과 박정희에서 구구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는 수난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해낸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작가의 말`에서 작가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어쩌면 우리는 “여러 번 살고 죽는 게 삶인데, 마치 한 번 살다가 죽을 것처럼 살아가려니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무게에 비례하는 삶의 비의를 발견해낼 수 있다면 덜 고통스럽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또다른 삶을 예비하고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7

그가 말하는 사랑은 두 존재의 융합이 아닌 함께이며 동시에 각각인

신예 시인 김준현(30)의 첫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민음사)이 출간됐다. 시집`흰 글씨로 쓰는 것`에는 `인간적인 것`을 밀어 내려는 척력이 흐른다. 김준현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뿌리 깊게 고정돼 있던 언어, 종교, 사랑이라는 가치들을 흔들고 의심한다. 그는 쓰였지만 보이지 않는 흰 글씨로, 합의되고 분류된 존재에 대해 `있지만 정말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시를 써 나간다. 인간성에 가 닿기 위해 인간으로부터 가장 먼 곳의 감각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김준현의 시 쓰기는 산책이 아닌 순례에 가깝다.“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 귀와 귀로 이어져 있다//귀와 귀가/어긋나는 젓가락처럼 어긋하는 가락처럼/다른 귀와 닮은 귀/(….)속으로 이어지는 두 가지 감정을/하나의 감정으로/믿고 사랑하다가 죽겠다고 말하는 단 하나의 감정으로”(`둘의 음악`중)하나이면서 하나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쓰기. 이것은 시인이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 부정하며 감정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시집의 2부 `둘`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이들은 동일한 기관이지만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양쪽 귀나 이어폰처럼 동시에 같거나 다르게 존재한다. 그는 함께인 것들에 대해 말하지만 함께 있음에도 각각 단독자로서 지닌 차이와 이질성에 주목한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랑의 속성을 거부하며 사랑에 대해 말한다. 김준현이 그려 내는 사랑의 관계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융합이 아니라 함께이면서 동시에 각자로 존재하는 공존이다. 언제나 사랑을 의심했던 섬세한 독자들에게, 이 멀고도 가까운 사랑의 속성을 권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7

냉혹한 CODA의 삶과 농인사회 현실

마루야마 마사키의 추리소설 `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황금가지)는 한 농아시설에서 17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살인사건에 얽힌 전말을 밝히려 하는 수화 통역사의 이야기를 그린 사회파 미스터리다. 촘촘하고 탄탄한 플롯을 바탕으로 청각장애의 세계를 세밀하게 포착한 이 소설은 400여 편의 응모작이 쏟아진 제18회 마쓰모토 세이초 상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단 4편에 불과한 최종 후보작에 선정됐고 출간 후 `코다`를 비롯해 대중에게 낯선 농문화(文化)에 대한 시야를 트이게 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독자들의 입소문을 탔다. 코다(CODA)란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건청인 아이를 일컫는다. 코다인 수화 통역사 주인공의 시각에서 담담하게 풀려 나가는 이야기는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세세하게 보여 주며 깊은 시사점과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모종의 사건으로 쫓기듯이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생활에도 실패한 아라이 나오토는 구직 활동을 하면서 실리적인 이유로 수화 통역 자격증을 취득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수화를 또 하나의 모어로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코다`인 그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데프 보이스`는 수화 통역사란 직업을 택함으로써 아라이의 삶의 방식에 찾아온 변화와 코다인 그가 겪어야 했던 고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아라이는 성장하면서 가족을 비롯한 농인 사회에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점차 멀어진다. 한편으로 비장애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의 몰이해 역시 그에게 아픈 경험을 안긴다. 특히 그의 뇌리에 남은 사건은 경찰서 사무직으로 근무할 당시 농아시설 해마의 집 이사장 살해 용의자인 농인의 취조 과정을 억지로 통역해야 했던 일이었다.그는 성장과정은 물론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중 `언어적 소수자`로 묘사되는 농인들이 던지는 `너는 우리 편인가, 아니면 적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혀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한없이 가까운 주변인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 나가고 목소리를 전달한다.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가 화두인 이 시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큰 울림을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7

해답에 집착하기보다 새롭게 질문하라

우리는 많은 책을 읽지만 막상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책 읽기의 달인을 찾아본다. 인문학자로부터 깊은 독법을 배우기도 하고, 또 정치인, 광고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책에서 어떻게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찾는지 엿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뇌과학자는 책을 어떻게 읽을까?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먼저 질문한다. 남들이 제시한 답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것이 더 큰 차원의 통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만 그럴까? 우리도 당장 문제가 코앞에 닥쳤다고 편리한 해결책만 찾으면 결국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지 않았던가. 본질을 꿰뚫는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깊게 생각해 보고 반대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저자에게 이러한 가능성을 열어 준 세계가 바로 책이다. 특히 여기 소개되고 있는 책들은 모두 저자에게 참신한 영감의 원천들이었다.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르트르와 랭보로부터 역발상의 지혜를 보여 주는 역사학자, 지식보다 진실을 추구했던 전문가들, 그야말로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실천하는 책 읽기를 보여 준다.김대식 교수는 10대 때부터 그리스 비극 같은 여러 고전을 독파해 온 책벌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민음사)는 `빅 퀘스천`으로 독서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저자에게 지적 상상력을 제공한 책들을 향한 `오마주(hommage)`다. 과학자의 `빅 퀘스천`은 바로 이 책들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다.학자들에게 늘 자료가 풍부한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에서도 문제 해결을 돕는 정보가 다 내 손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미메시스`에서 제한된 정보가 오히려 풍부한 해석을 나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아우어바흐의 통찰을 통해 김대식 교수는 현실에 제한받지 말고 진실을 찾을 것을 제안한다.어떤 책들이 과학자의 사고력에 영향을 주었을까는 매우 궁금한 점이다. 특히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언급된 책들은 모두 저자가 아끼는 작품들이다. 19세기 시인 랭보,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 카프카,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등이다.저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읽고 영웅이 되려고 고군분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실 가장 추구하는 것은 작은 행복에 있다고 말한다. 또 사르트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함께 혼자` 사는 태도를 제안한다. 이처럼 위대한 작가들로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거대한 물음의 조각들을 찾아 나간다.AI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로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기존의 룰만을 따를 수 없기에 무엇보다도 현상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사고력이 필요할 때다. 이제 남들이 정한 룰 안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그 룰 자체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룰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김대식 교수는 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코앞의 문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기계가 언젠가 질문할 수 있는 이 위험한 질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계는 무엇을 원할까? 왜 기계는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왜 인간은 존재해야 하는가? 이 거대한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말이다.”사실 우리의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우리는 여전히 남들이 다 하고 남은 `설거지` 연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뿐만이 아니다. 철학, 역사, 사상 다 마찬가지다. 새로운 질문보다는 남들이 이미 다 풀어 본 교과서적 문제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남들이 이미 다 보고 깔끔하게 앨범에 정리한 사진들이나 다시 정리하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모든 진정한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기원은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이 아닌, 남들의 답에서 시작했다. 시작을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 주어진 답의 형식적 순결에만 집착한다.이제는 창조적인 파괴가 필요하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기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독서광이었던 저자의 읽기 스펙트럼은 고전에서 현대까지, 문학에서 인문학으로, 자연과학에서 기술과학으로, 종횡무진 확장되고 있다. 나만의 읽기 혁명을 실천하고 있는 과학자의 책 읽기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될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3-10

“스스로 노력하며 끊임없이 진보하고 굳세게 항쟁했던 인물”

13세기 초 세계적인 대제국 몽골제국을 일궈낸 칭기즈칸(1162~1227·아명 테무친). 그는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군주다. 그가 건설한 대제국은 로마제국보다 두 배 컸고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보다는 4배나 큰 규모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이기도 했다.영웅이 늘 그러하듯 테무친 역시 어린 시절부터 고난을 겪었다. 아홉 살 때 그의 부친이 독살된 뒤 하루아침에 풀뿌리를 캐고 들쥐를 잡아먹으며 지내는 고초를 겪었다. 결혼 한 달여 만에 부인은 다른 부족에 납치됐다.아버지를 죽인 원수, 아내를 빼앗은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었다. 복수는 그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됐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타타르 부족을 적으로 삼았고 부인을 되찾기 위해 첫 번째 전쟁을 시작했다.사람을 쓸 때도 주인을 배신하는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주가 있다면 민족과 출신을 묻지 않았고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이나 이전의 적도 과감하게 기용해 인재를 구했다.서방정벌 역시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됐다. 1219년 칭기즈칸은 무역을 위해 450명 규모의 상단을 조직해 호라즘에 파견한다. 그러나 상단이 호라즘 변방의 오트라르 성(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도착하자 성주인 아날추크(가이르칸)가 상인들을 죽이고 상단의 재물을 빼앗았다.분노한 칭기즈칸은 사흘 밤낮을 단식하며 `저를 도우시어 저에게 복수할 힘을 달라`고 기도한 뒤 산에서 내려와 서방정벌에 나섰다.중국 베이징대 교수였던 주야오팅은 `칭기즈칸 평전`(민음사)에서 칭기즈칸을 무엇보다 스스로 노력하며 끊임없이 진보하고 굳세게 항쟁했던 인물로 평가한다.먼저 칭기즈칸은 기존 씨족 부락의 한계를 타파하고 십진 단위의 천호제를 실시했다. 천호제하에서 군대와 백성은 하나였고, 성인 남성은 모두 군역을 졌다. 오로지 전쟁에 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 민족을 조직한 것은 칭기즈칸이 처음이었다. 그는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확립한 아흔다섯 개의 천호군에 의지해 금나라와 서하를 차례로 패배시키고 서방을 정복했다.칭기즈칸은 그 자신이 뛰어난 전사였을뿐더러 전략 전술에 정통하고 치국의 도를 아는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였다. 상대방 부족이나 나라 간의 갈등을 이용할 줄 알았고, 몽골 부족의 규모와 상황에 맞게 군사 조직과 정책, 기율을 채택했다. 적군의 포로를 활용해 전선에서 바로 인력을 획득하고 보충하는, 즉 `적의 힘에 의지해 적을 공격하는` 책략으로 몽골의 수적 열세를 극복했다.책을 번역한 이진복 서울사이버대학 외래교수는 “저자는 중국인의 입장에서`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의 관점 아래 칭기즈칸을 중국인의 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면서 “책을 읽을 때 칭기즈칸의 생에 전반에 관한 상세한 내용뿐 아니라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정책인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 투영돼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윤희정기자

2017-03-10

마침표보다는 물음표로 정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뿐

여류 김개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문학동네)가 출간됐다. `시와 반시`에 시를,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은 성인의 언어와 어린이의 언어를 혼용해 독특한 시어를 구사한다.빛과 어둠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대비시킨 이 시집에 대해 평론가 황예인은 이렇게 말한다.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를 읽으며 할 수 있는 일은 이 어둠의 독특한 속성들을 찾아내 기록해두는 일일 것이다. 한 시인이 집요하게 반복하며 그려낸 그만의 독특한 어둠의 무늬를 우리가 배워온 어둠의 이미지들로부터 분리시켜 더 선명하게 만드는 일. 때로는 그게 읽는 일의 전부인 것 같다.”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됐다.각 부의 머리말이 돼준 소제목 `울면서도 웃었어`, `우선 좀 혼탁해져야겠다`, `소리에도 베인다는 말`에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그득 배어 있다. 사실 이 시집은 손에 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술술 읽어 넘길 수 있는 그런 유의 시집은 아니다. 한 편 한 편 한 연 한 연 한 문장 한 문장이 아프기 때문이다. 짙기 때문이다. 질기기 때문이다. 상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의 `나`이며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황예인 평론가는 해설에서 “이 시집을 김개미 시인의 도저한 사춘기가 오롯이 기록된 뜨거운 일기장이라 부르고 싶”다고 적고 있다.김개미 시인에게 시인만의 사춘기는 일정 기간 끓어올랐다가 식은 나날이 아니고 평생 계속될 물음표라는 것이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어서이다. 어려서 늙었고 늙어서 어릴 거라는 것. 정답을 찾지 않고 정답을 향해갈 뿐이라는 것. 어쨌거나 마침표로 단정짓는 단아함보다는 물음표로 갈고리를 거는 호기심에 더한 재미를 느낄 거라는 것.“나는 왜 개미들의 행진을 쫓아가는”(`복숭아뼈에 고인 노을`)지 명백히 이해했다면 쫓지 않는 것은 어른이고 그럼에도 종종걸음으로 쫓고 있는 것은 어린이일 것이다. 동시와 시 모두를 섭렵하고 있는 김개미 시인에게서 독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영역도 아마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정의할 수 없는 우리의 나고 감이라는 이야기의 똥줄일 것이다. “무서운 건 쥐/ 쥐는 안 망해/ 할미꽃 뿌리를 던진 항아리 속에서/ 흰 구더기들만 죽어/ 고요하게 풀을 기르지”(`고요한 봄`)라는 시에서 짐직 유추할 수 있듯 비유와 사유의 교차에서 가르침은 하나 없고 말해주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겸손함으로 이 시집은 단단히 채워져 있다.이 시집은 완벽하게 새로운 스타일의 사랑 시집으로 읽혀도 좋겠다. “흐린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우리의 임무는/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 해가 떠도 해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하얀 밀림의 시간`)이 바로 사랑일지니 나는 궁금할 따름이다. “왜 아무 때나 한숨을 푹푹 쉬게 되는지. 왜 돌멩이를 걷어차게 되는지. 왜 사타구니가 손을 끌어당기는지.”(`무료한 아이들`). 사랑이라는 알 수 없음, 사랑이라는 설명 불가의 덩어리와 놀기 위해 이 시집은 태어났다. 키보다 빨리 자라는 궁금증을 점점 더 증폭시키며 이 시집은 `놀고 있다`. 이 시집의 건강함은 “매일 한 가지씩 시시한 것들이 생”(`무료한 아이들`)겨나기에 “공벌레처럼 혼자서도 똘똘 뭉칠 수밖에”(`무료한 아이들`) 없게 된 우리들의 생명력이 점점 자생력을 더욱 갖추게 된다는 사실에 입각한다. “나의 역할은 눈코입이 없는 구슬. 차이고 밟혀도 명랑하게 굴러다니는 것.”(`잔인한 동거`)이라지 않은가.김개미 시인의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는 시인 안의 어린이가 없었다면 쓰일 수 없는 시집이다. 우리 안의 어린이가 있다면 우리 이야기로 기꺼이 다 읽어낼 시집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10

“정치 혐오는 지배자에게 우리 운명 맡기는 것”

“최종적으로는 정치의 창조적 가능성을 인정하고 참여해야 한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가 아수라 같은 오늘을 만들었다.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대표자가 아닌 지배자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다. 설사 선한 지배자라 하더라도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 악한 지배자도 선한 대표자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슈톰카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불신의 제도화를 통해 신뢰를 만들어낸다”- `한국사회, 어디로?`중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혼돈과 정체에 빠진 한국사회, 그 본질적 문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극복하며 더 나은 사회로 전진할 것인가?”`한국사회, 어디로?`(아시아)는 최근 탄핵 정국 막바지를 맞아 혼돈이 더욱 커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해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4명의 학자의 `더 나은 한국 사회로 가기 위한 길`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책이다.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80),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80), 송호근(61)·장덕진(51)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가 `미래전략연구`시리즈로 기획한 여섯 번째 단행본인 이 책에서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통해 이번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책은 `좌 촛불, 우 태극기`- 이 상충 에너지가 어떤 정권을 만들든 그들 세력이 가장 먼저 세심히 살펴봐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이고, 그들 세력이 가장 공들여야 하는 시대적 책무는 그것을 시민과 더불어 극복하고 치유하는 길을 닦는 일이라는 당대 석학들의 고뇌 어린 목소리들과 그 실증을 담았다. 김우창 교수와 송복 교수는 당대 최고 석학으로서 가히 경지에 도달한 그 인문적이고 역사적인 사유를 진지하고도 감동적인 교향악처럼 한국사회에 들려준다. 송호근 교수는 실증적이고 분석적인 통찰력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겸비한 보기 드문 학자로서 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장덕진 교수는 실증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의 세례를 받은 세대의 대표적인 학자답게 세 필자의 사상과 통찰력에서 나오는 주장들을 다양한 경험적 증거들에 근거한 변주를 보여준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송호근 교수가 집필한 1장은, 한국이 당면한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를 시민민주주의로 설정하고, 그것의 미시적 기초로서 `시민성 배양`을 강조하고 있다. 2장에서 송복 교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한국인의 의식전환 문제를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일반 국민의 `문치의식`에 대한 재고(再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 고위직층의 `희생의식`에 대한 제고(提高)다. 김우창 교수가 집필한 3장은, 우리 사회가 보다 인간적인 사회가 되고 그러한 사회의 안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살만하고 좋은 사회가 되는 데에 필요한 교육과 문화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심오하고 광범하면서도 정연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4장은 장덕진 교수가 김우창, 송복, 송호근 교수의 `더 나은 한국사회를 위한 사유와 제언`을 여러 나라의 경험적 증거에 견줘 그 정당성을 증명해주는 글이다.김병현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장은 “우리 사회에는 거대담론적인 미래전략도 있어야 하고,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도 있어야 한다. 거대담론적인 미래전략 연구가 이상적인 체제를 기획하는 원대한 작업에 주력한다면,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 연구는 가까운 장래에 공동체가 당면할 주요 이슈들을 예측하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작업에 주력한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더 나은 한국사회`를 위한 길을 안내하는 것에 이 책의 방점이 있다”고 전했다.한편 지난 2013년 2월 출범한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미래사회를 조망하고 대응전략을 탐색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으며, 그 결실들로서 `박태준미래전략연구총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03

`코스모스`의 인기 비결, 그리고 한국교육의 해묵은 병폐

한국 천문학계 원로 학자 홍승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 교수의 첫 단독 저술 대중 과학서 `나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가 출간됐다. 이 책은 명저 `코스모스`로 우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의 `코스모스`가 한국 독자들에게 오기까지의 역사와 `코스모스`의 핵심 내용, `코스모스`의 성공 비결 등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책은 지난해 5월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 있네` 3주년 기념 강연을 완전 수록한 것으로, `코스모스` 번역 뒷이야기, `코스모스`의 성공비결, 자신의 삶과 한국 지식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이 책은 크게 여섯 꼭지로 구성돼 있다. 첫째, 한창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50대 후반의 서울대 교수가 `코스모스`라는 대중 과학서, 그것도 한때는 `과학 전도사`로 살짝 낮춰 봤던 칼 세이건의 책을 번역하게 된 “저간의 사정”이 흥미진진하게 설명돼 있다.둘째, 모두 13개 장으로 이뤄진 `코스모스`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며 칼 세이건의 자신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전략”이 “뻔한 사실에서 울림 깊은 진실을 찾아내는” 것임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셋째, `코스모스`가 국내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홍승수 교수에 따르면,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지구 생명의 출현과 진화, 그리고 인류 문명의 현재와 미래를 빅뱅(big bang·대폭발)에서 비롯한 우주 진화의 거대한 시공간적 틀에서 조망”한다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림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특히 “자기 조상의 시원을 빅뱅의 순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가슴이 설레지 않을 한국인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는 홍승수 교수의 반문은 칼 세이건의 성공 비결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넷째, 이러한 비판적 책읽기를 통해 홍승수 교수는 칼 세이건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 지식 사회의 한계, 그리고 그러한 지식 사회를 잉태한 한국 교육의 문제를 비판한다. 문과, 이과 분리 교육이 낳은 “해묵은 병폐”를 극복할 방법을 “융합의 전범”을 보여 준 칼 세이건의 글쓰기에서, 그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 근대 교육의 당사자인 홍승수 교수 자신의 경험과 반성을 토대로 한 것이라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다섯째, 이번 강연을 기획한 과학과 사람들, 사이언스북스의 스태프들과 홍승수 교수의 제자들로 현재 학계와 문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윤성철 서울대 교수,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박순창 메타스페이스(주) 대표 등이 무대에 올라 함께 좌담을 나누며 청중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내용이다. 홍승수 교수의 인간적인 면모와 강연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그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살짝 엿볼 수 있다.여섯째, 앞에서 언급한 좌담에 출연한 제자들과 과학과 사람들 원종우 대표,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명현 박사의 추천사가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03

언어라는 슬픈 도구가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

실험적이고 낯선 느낌의 시를 주로 써온 박상순(55) 시인이 네 번째 시집`슬픈 감자 200그램`(난다)을 펴냈다. `러브 아다지오`(2004) 이후 1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해석과 의미화를 거부하는 5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렸다. 한국 시단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독특한 개성과 그만의 리듬으로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한 박상순 시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내 보일 수 있게 완벽하게 세팅된 무대다.시인은 현실세계의 단면이나 인간의 감정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대신, 오로지 언어로써 쌓아올린 하나의 세계를 감각하라고 권유한다.일견 그래왔던 것처럼 녹녹하게 읽히는데 그 뒷맛은 녹록치가 않다. 꿈틀대는 말의 뼈마디가 유연하기 그지없는데 그 부드러운 관절들의 춤을 뭐라 제목 짓기 또한 만만치가 않다. 무작정 덮어놓고 좋은데 그 좋음을 도통 설명할 길이 만무하다면 그 좋음은 실로 진실이고 진심이 아닌가.시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유가 반짝이는데, 시마다 반짝이는 자유 속에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규율이자 규칙이 새로 반짝여서 속도를 내어 걷다가도 이내 멈춰서서 나를 찾게 되니 이처럼 끝도 없이 나, 나라는 자의식을 물고 늘어지는 시집이 또 있겠나 싶은 감탄을 참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슬픈 감자 200그램`은 언어라는 슬픈 도구가 얼마나 풍요롭게 시의 잔치를 벌일 수 있게 하는지 그 일련의 과정들을 몹시도 아름답게 복작거리는 말과 그 말맛의 다채로움으로 펼쳐보이며 우리를 흥분시킨다.“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실인데 또 잘못 알았음. 아뿔싸./ 겨울이 왔음/ 창밖엔 크리스마스트리 반짝이는데, 누가 있겠음?”(`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부분)시인은 1991년 등단 이후 줄곧 낯설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써왔다. 난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시들로 2000년대 중반 평단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소위 `미래파`의 토양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세상은 지각이나 감각 또는 인지의 결과와는 다른 것일 수 있고, 나는 그 한계 안에 있다. 허구처럼 보이는 사건들과 이미지로서의 환영을 교차하면서, 미미한 나의, 문제와, 절박하게, 침통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대면하고자 했지만, 더 즉물적으로 그것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어떠한 의미도 배제해야 한다”고 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3-03

`자유로 버스에서의 나와 무장공비` 객관을 놓아버린 역사의 공간화

서효인(36) 시인의 세번째 시집 `여수`(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분노를 비틀어 뿜어내며 오늘의 소년소녀들에게 메시지를 투척하던 첫 시집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정치·경제·사회적 폭력의 지도를 그려내던 두번째 시집이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상온에 가깝다.서효인이 그려온 시의 궤적으로 미뤄보자면 이 변화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어질 폭력의 세계에 응전하기 위한 대안 모색이자 일종의 시적 성장일 것이다.끓는점을 높이고 깊이를 더한 `여수`에서 시인은 `역사의 공간화`를 시도한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과거와 현재가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역사가 겹쳐지면서 서효인이 스쳐간 어딘가는 객관적 `공간`이기를 멈추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유일무이한 `장소`가 된다.“수평적 공간뿐 아니라 공간의 위아래를 꿰뚫는 수직의 시간, 공간이 품고 있는 분위기와 공기를 예민하게 캐치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하는 서효인의 시에서 공간은 시간의 체취가 담겨 있는 곳이다. `여수`속 63편의 시들 가운데 50편의 제목이 공간과 관련된 것인데, 크게는 서울, 목포, 여수처럼 지역의 이름이거나 연희동, 이태원, 금남로 같은 도시 안의 구역, 자유로와 올림픽고속도로처럼 지역들을 잇는 길들, 작게는 학교 연못이나 주차장까지를 포함한다.이 시집의 발문을 담당한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서효인의 세번째 시집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장소들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사적 기억에 공적 역사가 중첩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곳들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자유로 위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의 나와 1968년의 무장공비 김신조가 오버랩되고(`자유로`), 체육관에서는 1970년대의 프로레슬링과 1980년대의 체육관 선거, 최근의 외국 뮤지션 공연이 동시에 펼쳐진다(`장충체육관`). 성장과 가족사, 조문, 짧은 여행, 출퇴근과 일상의 범위를 넘지 않는 여정들이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들, 역사가 공간화된 장소들”, 사적 기억과 공적 기억 들이 누적·교차된 서효인의 장소들은 그러므로 여기 아닌 어딘가로 도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겹쳐 밟았을 언젠가의 누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치밀한 기록, 지리지로 읽히곤 한다. 시간과 공간이 세로축과 가로축이 돼 만날 때 장소는 생명을 얻는다. 그 교차 지점에 서효인의 시가 위치한다.“사람이 죽는 일은 거대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잠자코 앉거나 서서, 각자의 도착지를 생각할 것이다. (….)사방이 어두운 역, 전철은 대체 여기서 왜 멈추는 것일까. 지축역 지난다. 상주의 표정은 전철에서 빈자리를 찾는 것처럼 조급하면서 평온했다. 사람이 죽었지만 거대한 일은 아니다. 지축역을 묵묵히 지나는 우리에게는 다발로 묶인 시신도 그다지 큰일은 아닐 것이다. (….) 지축역에서 모두가 작은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각자의 휴대폰을 본다. 날마다 죽는 사람은 분명히 있고, 이유를 물을 경황 없이 다음 역이 온다. (….) 슬픔을 자랑하지 않으려 흔들리는 지축을 붙잡은 노인과 내가 노약자석 앞에서 잠시 겹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제 갈 길을 간다. 지축역 지난다. 별일 없었다.”―`지축역` 부분/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24

인종과 신분으로 바라본 현대 미국사회 민낯

`하얀 이빨`로 세계 문단의 일약 스타가 된 영국의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41)의 세 번째 장편소설 `온 뷰티`(민음사)가 출간됐다. 이미 케임브리지 대학교 영문과 재학 시절 단편 소설과 에세이를 여러 편 발표하며 출판사 편집자들의 눈에 띈 제이디 스미스는 스물다섯 살에 `하얀 이빨`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새로운 살만 루슈디` 또는 `포스트모던 찰스 디킨스`라는 찬사와 함께 여러 유명 작가와 비평가의 호평을 받았으며, 휘트브레드 신인 작가상, `가디언` 신인 작가상, 커먼웰스 신인 작가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 `그랜타가 뽑은 최고의 젊은 작가 20인`에, 2006년 `타임이 뽑은 100대 영문 소설`에 선정됐다.`사인 파는 남자`(2002)에 이어 세 번째 장편 소설 `온 뷰티`(2005)를 출간한 그녀는 커먼웰스 작가상과 오렌지 상을 수상했고,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최근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백인 우월주의가 우세하면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점점 힘을 얻어 가고 있는 지금, `온 뷰티`가 그리는 미국 사회의 모습은 예리하기 이를 데 없다.`온 뷰티`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 극단에 위치한 두 중산층 지식인 가정의 모습을 통해 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모순적 상황을 지적이고 꿰뚫는 듯한 필체로 쓴 소설이다. 전작 `하얀 이빨`에서 영국 내의 문화적 차이와 인종 간의 갈등을 흥미진진하고 위트 넘치게 그려냈던 제이디 스미스는 이번 작품에서는 무대를 미국으로 옮겨, 인종적, 사상적 갈등을 겪는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미시적 시점에서 다룬다. 이 소설은 트럼프의 당선이 얼마나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지 그 배경부터 시작해, 더 나아가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정체성 문제까지 아울러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훌륭한 리얼리즘 소설이다.하워드 벨시 가족은 미국 사회의 신분 격차와 인종을 뛰어넘은 개방적인 가족의 전형이다. 중하층이었던 부모 밑에서 자라 대학 교수라는 상류층으로 진입한 백인 하워드 벨시와, 몇 세대에 걸쳐 노예 계급에서 우연한 기회에 주인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통해 거부로 올라선 흑인 시몬즈 집안의 딸 키키, 그리고 그 둘이 낳은 세 자녀는 계층적으로는 상류층 지식인 계급이지만, 백인 일색의 동네에서는 `흑인 혼혈`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학문적 성향 역시 매우 진보적인 하워드 벨시 교수는, 자신과 다르게 사사건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킵스 교수에 대해 상당한 불편함을 느낀다.한편 몬터규 킵스 교수는 하워드 벨시와는 달리 흑인이면서 백인 여성과 결혼한 전형적인 `흑인 보수주의자`다. 흑백 사이에서 언제나 백인 보수 진영의 편을 들어 왔던 킵스 교수에 대해 하워드 벨시는 언제나 자신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일례로 학내에 우호적인 의견이 퍼져 있는 `어퍼머티브 액션(미국에서 주립대 입학이나 공무원 채용 시 인종이나 소수계를 우대하도록 한 소수 계층 우대 정책)`에 대해 킵스 교수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벨시 교수와 동료들은 뜨악한 반응을 감추지 못한다. 이 두 교수의 적대적인 입장은 학내 갈등뿐만 아니라 학문적 입장, 자녀 양육 문제에 있어서도 사사건건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모순되는 입장을 대변하는 벨시 가, 그리고 킵스 가는, 두 자녀인 제롬과 빅토리아가 사랑에 빠지면서 얽히고 설킨 갈등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책장을 놓기 힘들 정도로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와 제이디 스미스 특유의 예리하고 생생한 문체와 어우러져 강력한 매력을 더한다./윤희정기자

2017-02-24

숲으로 간 시인, 마침내 삶의 주인이 되다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난다)가 재출간됐다. 같은 제목으로 지난 2008년 출간됐다가 오랜 기간 절판 상태에 놓였던 이 책을 도종환 시인이 몇 년에 걸쳐 하나하나 다듬고 새로이 증보해 근 10년 만에 다시금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이 책은 2004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시인이 보은 법주리 산방에 머무는 동안 쓴 산문을 엮은 것으로, 자신을 도시라는 이름의 사막에서 구해내 숲속의 청안한 삶으로 되돌려보낸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담아낸 기록의 산실이다.시인에게 도시는 도처에서 모래바람 같은 것이 몰려와 눈을 뜰 수가 없는 사막 같은 곳이었다. 도시에서 그는 뜻이 있어 세상의 큰일을 도모했으나 원한 바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몸은 온전치 못하고, 마음도 균형을 잃은 채 밥벌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렇게 숲으로 들어갔다. 깊은 산중에 집을 짓고 홀로 텃밭을 일구며 몇 해를 지냈다.“내가 살고 있는 곳이 사막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떠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모래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벗어나고 싶습니다. 파도치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숲 우거진 그늘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나무 아래 진종일 누워 있고 싶습니다. 먹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나무의 그림자나 비릿한 물 냄새를 덮은 채 누워 잠들고 싶습니다. ”(217~218쪽)숲에서 시인은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지어 먹었고, 텃밭에 푸성귀를 심어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했으며, 끼니를 세끼에서 두 끼로 줄여야 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다. 겨울에는 짐승들 먹을 시래기와 밤을 내다놓았고, 봄에는 할머니들을 따라다니며 나물 뜯는 걸 배우다 산천이 온통 먹을 것으로만 보일까 두려워했다. 여름에는 아까시나무 꽃, 조팝나무 흰 꽃을 보며 빛깔로 화려하기보다 향기로 진하기를 소망했고, 가을에는 가을바람 한줄기가 마음을 다독이는 걸 알았다.숲속에서 자연과 동물과 함께 지내는 일상을 통해 시인은 천천히 삶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 기쁨을 느꼈다.먹을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으면서 낭비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삶의 기쁨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기쁨은 생명의 기쁨이자 고통 속의 기쁨이다. 우주의 일부이자 전체가 되는 기쁨이다.“그렇습니다. 신체의 욕망에 갇힌 채 새로우면서도 쾌락적인 것, 자극적이면서도 크고 많은 어떤 것을 찾아가다가 만나는 흡족함과 이 기쁨은 다릅니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육신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가는 길과 생명의 길은 다릅니다. 이 기쁨은 고통 속에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고통을 만나 그 고통 속에서 나를 해체하고 다시 태어나면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찬물에 손을 담그며, 땀을 흘려 일을 하며, 험한 길을 걸으며, 내 하루치의 목숨에 대해 뼈저리게 생각하며 내 삶의 주체를 바꿔가는 동안 내게 찾아오는 기쁨입니다. ”(272쪽)▲ 도종환 시인시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에서도 그대로 행하고자 노력한다. 지난 세월을 보아도, 앞으로 걸어갈 길을 짐작해보아도 그렇다. 따라서 이 책은 철저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고자 하는 한 인간의 간절한 물음이다. 기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문장은 숲에 있던 그가 사막에 있는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절절한 물음을 품고 사는 것은 곧 기도다. 그렇게 기도가 된 물음만이 타인에게로 가 닿는다. “그대가 사막에 있다면 다시 숲으로 오시도록 부르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와 닿는다면,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막에 있는 이들을 영혼의 거처인 청안의 숲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시인 도종환의 초대장이자 기도문이다.“너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사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싫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살고 싶어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황폐해지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풍요로워지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독한 사람이 되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너 때문에 내가 선하게 변하는 곳, 그곳이 숲입니다.”(309쪽)/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24

미지의 현상에서 느끼게 되는 원초적 공포 다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스티븐 킹의 2014년작`리바이벌`(황금가지)이 번역 출간됐다.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저자가 같은 해 출간한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함께 `시카고 트리뷴`이 선정한 2014년 화제의 책 12선에 꼽힌 인기작이다.기타리스트가 된 소년과 신을 등진 목사의 평생에 걸친 기이한 인연과 거기에서 비롯된 초자연적인 공포를 다뤘다. 근래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끈 대작들을 연이어 발표해 온 스티븐 킹은 `리바이벌`에서 자신의 초기 작품들에서 드러냈던 장기를 십분 발휘해 미지의 현상에서 느끼게 되는 원초적인 공포를 흡인력 넘치는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담았다.저자는 아서 매컨의 `판이라는 위대한 신`,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 H. 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면서 “오랜만에 초자연적 공포를 다룬 본격 호러를 쓰고 싶었다.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현재 `리바이벌`은 `안녕, 헤이즐`의 조시 분 감독이 영화화를 준비 중이며, 제이컵스 목사 역으로 새뮤얼 잭슨이 물망에 올라 있다.이야기는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제이미 모턴이 그의 인생을 뒤흔든 `제5의 인물이자 변화 유발자이자 숙적`인 제이컵스와의 만남을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가정의 막내아들인 제이미는 여섯 살 때 처음으로 마을에 새로 부임해 온 목사 제이컵스와 조우한다.전기에 비상한 관심이 있던 제이컵스는 여러 가지 실험과 발명품을 통해 단박에 제이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자신의 기술을 발휘하여 일시적으로 목소리를 잃은 제이미의 형 콘래드를 치유하는 기적까지 일으킨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고 절망에 빠진 제이컵스는 가족의 장례식 이후 집전한 설교에서 신앙을 모독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다.성장하면서 기타를 접하며 록의 세계에 빠져든 제이미는 약물에 중독되고 밴드 동료들에게도 버려져 그야말로 바닥을 치던 30대 중반에 우연히 `번개 사진사`로 탈바꿈한 제이컵스와 재회한다. 그리고 대니, 댄, 찰스, 찰리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전직 목사와 또다시 결별과 만남을 반복하며 파국적인 결말로 치닫는다.`리바이벌`은 보다 기나긴 세월 동안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실감과 절망을 낱낱이 보여 줌으로써 더욱 비정하고 지독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어찌 보면 작품 후반부에서 실체가 드러나는 초자연적인 공포 보다도 이러한 부분들이 더 소름 끼치는 감각을 선사하며 스티븐 킹표 공포소설의 진가를 드러낸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17

지난 반세기 가장 빛나는 미래 예견 SF명저

SF문학계 거장 아서 C. 클라크(1917~2008)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클라크의 대표작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가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시작해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1982),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1985), `3001 최후의 오디세이`(1996)까지 이어지는 4부작이다. 이 가운데 `3001 최후의 오디세이`는 국내 SF마니아들이 번역해 돌려읽은 적이 있지만 정식 출간은 처음이다지난 반세기 가장 사랑받았던 그의 전설적인 시리즈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 진화에 대한 통찰과 우주를 향한 무한한 상상력을 담아내어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빛나는 SF로 사랑받은 시리즈로서, 저자인 아서 C. 클라크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의 3대 작가로 꼽힐 뿐 아니라 `통신 위성`과 `인터넷`, `우주 정거장`, `핵발전 우주선` 등 현대 과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래학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의 대표적인 상징인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은 현재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의 주력 산업인 인공지능의 롤모델로 회자되고 있으며, 소설에서 묘사된 `섭동 기동`은 실제로 10여 년 후 보이저 1호가 동일한 조건에서 실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그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묘사한 장면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부분들이 많다.대표적으로 영화에서는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가 목성을 목적지로 하고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디스커버리 호가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속력을 올린 다음 목적지인 토성으로 날아간다. 디스커버리 호가 이용한 이 `섭동(攝動) 기동`은 11년 후 우주선 보이저 1호가 같은 장소에서 실제로 정확히 그대로 이용해 많은 이들의 경탄을 자아냈다.아서 C. 클라크가 예견했던 것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45년 발표한 `정지궤도`에 관한 논문이다. 논문에서 인류의 로켓 기술이 발달한다면 지구 상공에 위성을 쏘아 올려 특정 궤도에 위성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고, 위성은 지구의 자전과 같은 속도로 돌며 통신이나 방송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아서 C. 클라크 /황금가지 제공세계 최초 정지궤도용 통신 위성이 발사된 때가 1963년이니 아서 클라크의 아이디어는 시대를 약 20년이나 앞선 셈이다. 이 외에도 유선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과 핵추진 우주선, 우주 정거장과 우주 방위 시스템, NASA 등에서 현재 연구 중이며 일본 학자들이 최근 그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우주 엘리베이터` 등이 모두 그의 소설 속에서 가장 먼저 선보여졌다.미래에 대한 그의 놀라운 식견은 인류의 과학 발전과 우주 여행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대표적인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을 내딛은 그 순간에, 아서 C. 클라크가 바로 이 우주시대를 열었다는 격찬을 보내기도 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2-17

시 언어의 투명성… `날이미지` 오규원 첫 시집 46년만에 복간

한국 현대 시사에서 시적 방법론에 대한 가장 첨예한 자의식을 지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시의 언어와 구조`의 문제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탐구했던 시인 오규원(1941~2007). 10권의 시집과 4권의 시론집· 시 창작이론서를 비롯한 30여 권의 저서를 통해 언어로써 세계의 구조를 갱신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마와 싸우는 내내 시적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투명성을 보여줬다.오규원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 속 시와 언어의 존재론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누구보다 앞서 던지며, `이념`과 `관념`, `주관`과 `감상`에 경사돼온 한국 현대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본격적으로 진행시킨 장주인공이다. 전통적인 시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적 경향을 모색하는 데 전념했던 그의 첨예한 시론은 `관념의 구상화`-`관념의 해체·해방`-`현상 읽기`-`날이미지`라는 미학적 입장으로 나아가며 그를 한결같은 한국 현대시의 전위로 있게 했다. 그의 `시론`으로서의 이론적 가치뿐만 아니라 시 창작 교육의 교본으로 익숙한 `현대시작법`(1990)은 실제 습작에 대한 사례 분석과 시적 언술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으로 개념적인 시론의 한계를 돌파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20여 년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몸담으며 유수의 많은 제자 작가, 시인들을 길러낸 훌륭한 선생이기도 했던 그의 10주기를 맞아 첫 시집 `분명한 사건`(문학과지성사)이 46년 만에 복간됐다.`문학과지성 시인선R`의 열한 번째 시집인 작품집에는 시인의 시적 존재가 여전한 현재형으로 살아 숨 쉰다. `분명한 사건`은 등단한 해를 전후로 7년간(1964~1971) 쓴 시들에서 30편을 추려 묶은 것으로, 출간 그해는 시인의 연대기에서 전기로 기록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이번 복간 시집에는 35년간 그와 문우로 지낸 문학평론가 김병익의 발문 `오규원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와 송구`가 함께한다. 이 글에서 김병익은, 잡지 간행이 녹록지 않던 시절, 당시 태평양화학 홍보실에서 일하던 오규원이 경제적으로 문지에 도움을 준 사연을 비롯해, 40여 년을 이어 오는 문지시인선의 디자인 장정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8) 등의 표지를 오규원이 직접 맡게 된 일화와 추억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그의 극도의 정밀성을 근접촬영 수법으로 획득해 나름의 방식으로 개념화한 `날이미지`의 시들”에는, “오직 투명한 시선과 거기에 포착된 사물의 순수한 형상과의 직절한 교호만이 존재했다. 그 극도의 객관성을 통해 역으로 그는 이 세상의 유정(有情)한 공감을 감염시키고 있는 것이었다”는 비평적 시선으로 옮겨간다. 생명의 소진에 다가선 오규원과의 영원한 작별을 돌아보는 자리를 `말 없는 우정`으로, 다시 `분명한 사건`으로 복원해내는 글 말미의 소회는 깊은 감동을 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7

책이 된 `역사저널 그날` 태조~순종 조선 500년 역사를 바꾼 `그날` 조명

총 여덟 권으로 구성된 `역사저널 그날`(민음사) 조선 시대 편이 완간됐다.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의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와 깊이를 온전히 책으로 담은 시리즈다. 지난 2015년 2월 출간된 1권(태조에서 세종까지)으로 시작해 지난달 출간된 8권(순조에서 순종까지)에 이르기까지 만 2년에 걸쳐 나온 이 시리즈는 역사를 바꾼 결정적 `그날`을 주제로 역사 대중화의 흐름을 이끈 토크쇼 방송 프로그램에 깊이를 더해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트에는 태조에서 순종까지 500여 년간을 다루는, `역사저널 그날`의 엄선된 에피소드 61개가 시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또한 특별 부록인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조선의 그날`이 포함돼 있어 조선의 역사를 이미지와 그래프, 지도를 통해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지난 2013년 가을에 첫 방영을 한 KBS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의 대중화라는 흐름을 가장 먼저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여러 출연자가 그날의 주제를 수다로 풀어나간다는 신선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울림을 전해 주며 재미와 깊이를 모두 잡았다는 찬사를 받았다.`역사저널 그날`은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그날`의 주역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재치 있고 유쾌한 수다를 통해 전달한다.`역사저널 그날`의 가장 큰 장점은 지면으로 그대로 옮겨 온 생생한 대화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수다를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다 보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개성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역사저널 그날`이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고 대화의 즐거움, 나아가서는 토론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준다는 장점이 눈길을 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0

남북한 작가들 `북한인권`을 외치다

“북한 인권 문제는 진보, 보수와 상관없는 인륜, 인간의 문제입니다”최근 출간된 `금덩이 이야기`(예옥) 는 탈북 문인과 국내 문인이 함께 북한 인권 문제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남북한 작가들의 공동소설집은 지난 2015년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후원으로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방민호 작가가 주도했다. 방 작가는 “북한에서 고난을 겪다 남쪽으로 와 소설의 형식으로 떠나온 땅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는 귀한 작가들, 그리고 북의 일이 북의 일이 아니요 남의 일이자 세계 전체의 일임을 의식하고 있는 남쪽 태생의 작가들, 이 양쪽의 작가들이 하나 된 염원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인권이야말로 보수나 진보를 따지지 말아야 할 인간의 기본이다. 탈북작가층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문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문학인의 도리”라며 “이번 소설집은 첫 번째 책보다 리얼리티가 강화됐다”고 전했다.소설집에는 도명학·윤양길·이지명·김정애·곽문안·설송아 등 탈북작가 6명이 단편소설을 1편씩 냈다. 이경자·박덕규·이대환·유영갑·이성아·정길연·방민호 등 그동안 남한 문단에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쏟아온 작가들의 작품을 합해 13편이 실렸다.`북한 인권을 말하는 남북한 작가의 공동 소설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집에는 북한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삶과 꿈이 담겨 있고, 이들과 가까이 있는 남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무엇보다 여전히 북한의 현실과 그로부터의 탈출,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 등에 관해 해야 할 말들이 무수히 남아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탈북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배고픔`과 `가난`에 관해 여러 작품들이 그 끔찍한 실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이지명의 `금덩이 이야기`는 정치범관리소에서 만난 윤칠보 노인의 비극적인 사연을 드러낸 작품이다. 맏딸은 굶어 죽고, 작은 딸은 실종된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내마저 집에 홀로 남겨둔 채 관리소로 들어온 윤칠보는 그곳에서 영수를 만나 자신의 집에 금덩이가 묻혀 있다고 꼭 나가서 그것을 확인해달라고 말한다. 노인은 죽고 영수는 풀려나 약속대로 노인의 집을 찾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은혜가 노인의 딸이었음을, 노인이 말한 금덩이는 노인의 아내를 가리키는 것임을 비극적으로 깨닫는다. 은혜, 노인의 아내까지 모두가 가난으로 죽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일말의 희망마저 발견할 수 없는 북한 사회의 단면을 투박하지만 강렬하게 드러낸다.김정애의 `밥`도 마찬가지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남한에 정착해 원 없이 “흰쌀밥”을 먹는 `지금`은 향이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고, 엄마와 둘만 남한으로 내려와 있는 상황은 늘 마음의 짐이 된다. 향이 엄마가 남편과 어렵사리 전화를 연결해 탈출을 종용하면서도 결코 북으로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밥`의 문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절실하고 갈급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윤양길의 `어떤 여인의 자화상`은 불구가 돼버린 남자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불구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 희생과 인내로 점철된 결혼 생활 등은 익숙한 서사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북한 사회의 어떤 실상들과 끝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들은 인상적이다. 남편의 자살과 `나`의 어쩔 수 없던 `다른` 임신, 그리고 그 아이를 “당신처럼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칠 영웅으로” 만들겠다는 마지막 다짐의 장면은 지독한 아이러니로 읽힌다. 이대환의 `중량초과`는 남한과 북한 사회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평양의 민족작가대회로부터 시작해 남한의 노동 파업 전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법정에서의 증언 혹은 검찰에서의 신문처럼 서술되는 목소리는 남한과 북한 사회가 모두 `중량초과`의 상태임을 씁쓸하게 드러낸다. 작가에 따르면 누군가는 계속 부족하고 다른 누군가는 늘 넘쳐흐르는 비균형의 사회는 남북한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소 희극적인 서술로 이뤄진 이 작품은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의 비극성이 부각된다.설송아의 `제대군인`은 군 제대 후 극도로 생활이 어려워진 북한사회를 마주한 철혁이 절도 행각을 통해 자기 운명을 다시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제 북한 사회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사회로 뒤바껴버렸고 자신에게 다가올 파국을 예측하지 못한 채 철혁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급기야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열차에서 물품을 빼내다가 군인들에게 적발돼 총을 맞고 철혁은 사망한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부유한 화순을 만나고 난 후 철혁에게 찾아오는 변화인데 북한 사회 역시 자본의 격차가 엄연하고 그것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이경자의 `나도 모른다`, 방민호의 `시간여행`, 박덕규의 `조선족 소녀`는 북한 사회와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남한의 시선을 각각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 작품은 모두 문학이라는 예술로 이들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며 올바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0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 그들의 존재가 특별한 이유는…

개나 고양이 같은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이제는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장난감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애완동물`보다 인생의 동반자라는 의미가 강조된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최근 출간된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문학과지성사)은 수의사 이원영씨가 반려동물과 공존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책이다.반려인이자 수의사인 저자가 직접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만남, 이해, 교감, 매듭, 공존` 5개의 키워드로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을 집 안에 들이는 순간부터 각 단계별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과 문제 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각 장 말미에는 수의사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들―반려동물을 키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중성화 수술 여부, 발병률 1순위 질환, 안락사에 관한 궁금증 등―에 대한 답을 간략히 정리해 실용성을 더했다. 또한 `여백이`를 쓴 `봉현` 작가의 실제 이야기로 구성한 여섯 편의 일러스트를 실어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준다.기존의 반려동물을 다룬 책들이 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나 상식을 알려주는 매뉴얼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이 책은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본질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나 태도는 무엇이며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한지, 그들의 존재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지,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상황 속에서 한번쯤 고민하고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짚어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10

일상의 나쁜 습관만 고쳐도 고질적 통증을 줄일수 있다

“잘못된 것을 그만두면 올바른 것은 저절로 이뤄진다.”앉기, 서기, 걷기, 호흡 등 일상의 움직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고질적인 통증과 긴장을 줄이고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이끄는 `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판미동)이 출간됐다.`인간의 몸과 마음은 사용(use)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전파한 고전이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알렉산더 테크닉의 창시자 프레더릭 알렉산더(1869~1955)의 대표작으로, 삼면거울을 방에 설치해 9년간 자신의 몸을 관찰하며 어떻게 `알렉산더 테크닉`을 발견하고 적용했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체험담과 그 핵심 원리가 상세히 담겨 있다.이 책은 1932년 출간 당시 작가 올더스 헉슬리, 철학자 존 듀이 등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추천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시작된 `알렉산더 테크닉`은 목과 허리의 통증 및 각종 만성질환 치료, 운동·감각·인지기능 향상, 스트레스 감소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디-마인드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호흡, 발성, 자세, 움직임에 있어서 사상가, 정치가, 연기자, 무용가, 성악가, 연주가 등에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에 예일대, NYU, 줄리어드 음대, 영국왕립연극원, 영국왕립음악학교, 런던드라마스쿨 등 세계적인 예술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베네딕트 컴버배치, 휴 잭맨, 키아누 리브스, 줄리엣 비노쉬, 폴 매카트니, 스팅, 마돈나 등 수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훈련했다. 인간의 한계와 잠재력을 끌어올리려는 저자의 열망, 의지와 인내, 탐구심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알렉산더 테크닉의 핵심은 고착화된 몸과 마음의 불균형적인 습관을 스스로 인지해 인체의 잘못된 사용을 자제하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데 있다. 이는 치료 요법, 정형화된 운동법이나 바디워크가 아닌, `알렉산더 테크닉, 내 몸의 사용법` 감각 및 운동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교육을 뜻한다. 자신에게 구두로 디렉션(지시)을 줘,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행해 왔던 심신의 습관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방식, 다시 말해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힘과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원리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 현대인들의 삶을 바로 잡는 새롭고 탁월한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다.미숙아로 태어난 프레더릭 알렉산더는 호흡계 질환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할 정도로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배우와 셰익스피어 낭송가로 명성을 얻었으나, 공연 중 목이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문제에 부딪혔다. 다양한 의학 치료를 받아도 호전이 없자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로 결심하고 방에 삼면거울을 설치한 뒤 낭독할 때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9년에 걸쳐 관찰한 끝에 `알렉산더 테크닉`을 창안했다. 알렉산더는 이 원리들을 스스로에게 충실히 적용해 목과 성대의 문제를 비롯해 고질적으로 앓아 왔던 호흡계 질환까지도 모두 해결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체 기능과 사용법을 바로잡는 방식으로 의사들도 치료하지 못했던 만성 질환 환자들을 완치시켰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 배우 헨리 어빙 경, 철학자 존 듀이, 작가 올더스 헉슬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찰스 셰링턴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알렉산더 테크닉을 통해 치료를 받았고,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알렉산더는 일상에서 걷고, 앉고, 서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는 등의 행위가 나쁜 습관 속에서 이뤄지는 것, 즉 심리적-육체적 메커니즘을 해로운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만병의 근원임을 발견했다. 알렉산더 테크닉의 진정한 가치는 이를 일상으로 가져와 매 순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또한 이 책에서는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통합적인 `자신(self)`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원리와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에서 본능적이고 습관적으로 행해 왔던 것들을 멈추고, 그 방향을 재설정하는 자기 판단의 기준을 세우도록 돕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03

삶에 대한 비애·회한·유머·감동 동시에 담아내

`망상, 어(語)`(문학동네)는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내기의 목적`이 당선돼 등단한 김솔의 기발한 `짧은소설` 36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김솔은 등단작부터 “패기 있는 작품”, “발상도 좋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좋다”(심사평)라는 평을 들으며, 기존의 어느 작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던 기발한 소재와 이국적인 문체로 새로운 스타일리스트의 탄생을 알렸으며, 이후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그 잠재력을 놀라운 수준으로 드러냈다.`망상, 어(語)`는 오랜 습작기 때부터 채집해온 “세계의 믿지 못할 이야기”들을 특유의 몽환적인 문장들로 풀어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한 믿기 힘든 이야기, 작가 자신이 오랜 직장생활과 외국생활에서 경험한 웃지 못할 비애와 생경한 이야기들이 통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김솔은 소설의 시간과 공간, 국적, 심지어는 성별까지 뒤섞어버린 채 오롯이 `이야기하다`라는 행위 자체에 골몰한다. 대개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짐작되는 지점이 있는데, 김솔의 소설에서는 작가의 모습을 헤아리기 어려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솔은 오로지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야기가 말해진 이후의 세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그러면서 단편소설보다도 훨씬 짧은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비애와 회한과 유머와 감동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김솔은 엄연히 우리 주위를 살지만 어딘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받곤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면서, 그들의 모습은 결코 유별난 것이 아니며 정작 이상한 것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이 세상이라고 역설한다.누구에게나 자신만 아는 망상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이따금씩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을 겪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누군가의 몸속에서 수술 도중 실수로 남겨둔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은 아닐까 상상할 수도 있다 (`환각지통`). 아니면 어린 시절 사고로 미각을 잃은 남자에게, 사는 데 꼭 기억해야 하는 맛은 무엇일까 느닷없이 물을 수도 있다 (`미각`). 어쩌면 김솔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강력한 우승 후보이면서도 다른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쯤 출발하는 것으로 고국 이라크의 현실을 알리고자 한 모하메드 압둘 (`그들만의 올림픽`)이나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전자발찌를 드러내 보여야 했던 남자 (`의심`)처럼 자신의 삶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꿈과 유머와 망상을 차압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