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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바깥은 여름인데 안에는 눈내리는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위하여…

김애란(37) 작가는 현재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30대 문인 중 대표 주자다.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 때 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어린 나이에 문단에 나온 김 작가는 2013년 역대 최연소로 이상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2011년 출간한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2010년대 대표작가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2012년 펴낸 세번째 소설집 `비행운`은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형식으로(飛行雲),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 불운(非幸運)에 발목 잡힌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 인기를 얻었다.그의 신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은 지난 28일 출간을 앞두고 예약 판매만으로 알라딘 종합 3위까지 올랐다.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단편 7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을 5년 동안 기다려온 독자가 많았다는 방증이다.`바깥은 여름`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단편 7편이 실렸다.가까이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어떤 시간을 영영 빼앗기는 등 상실을 맞닥뜨린 인물의 이야기, 친숙한 상대에게서 뜻밖의 표정을 읽고 느끼게 된 당혹스러움, 언어의 영(靈)이 들려주는 생경한 이야기 등이 김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펼쳐진다.김 작가는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이번 소설집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는 문장에서 비롯됐을 그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內)을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입동`)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버린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말이다.그렇지만 소설은 이 외면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집을 닫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을 잃은 후 `시리(Siri)`에게 `고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던 `나`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은,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겨질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 물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는 것. 그 아득한 질문에 골몰해 있는 `나`는 제자 `지용`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은 후에야 줄곧 외면하려고 했던, 계곡물에 잠기며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지용의 `눈`과 마주한다. 그 마주침 이후 `나`는 이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이 나눠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강아지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모습에서(`노찬성과 에반`), 한 시절을 함께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의 모습에서(`건너편`)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차`는 그간 익숙하게 여겨오던 생각이 깨어질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 `가리는 손`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시차는 잘 안다고 여겼던 인물과 우리 사이에서 생겨난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라는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김애란은 그런 편견들 틈에서 때묻지 않은 깨끗한 자리로 아이를 이동시키는 대신, 또다른 편견으로 `어린아이`를, `소수자`를, `타인`을 옭아맸을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 터져나온 `나`의 탄식 앞에서, 우리는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하며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해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연해질 수밖에 없으리라.그러니 `바깥은 여름`은,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에서부터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밀쳐둔 인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명료한 단어가 아닌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자 한 안간힘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작가가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소설집 편편에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배어 있다.김애란은 `바깥은 여름` 말미에 적었다.“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하면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6-30

개미를 통해 본 곤충사회의 질서와 원리

지난 1990년 책 `개미`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윌슨(88)과 베르트 횔도블러(81)가 공동 출간한 `초유기체:곤충 사회의 힘과 아름다움, 정교한 질서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가 출간됐다. 베르트 횔도블러는 개미의 화학적 의사소통을 비롯한 행동학과 생리학 분야 전문가이며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의 분류와 진화, 생태학과 생물 지리, 사회적 동물의 사회성 진화를 평생 연구해 온 사회 생물학자이자 작가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개미나 꿀벌, 말벌 같은 소위 사회성 곤충의 `군락`을 `초유기체`라는 별도의 생물학적 조직 단위의 하나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 새로운 정의를 뒷받침하는 사회성 곤충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성들과 그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소개함으로써 사회성 곤충 군락 안에 들어 있는 초유기체로서의 질서와 원리까지 알려준다.책에 따르면 초유기체는 역할 분담과 의사소통이 확실하게 이뤄지는 군락이다. 번식을 전담하는 계급과 불임인 일꾼 계급으로 나뉜 군락에서는 분업과 협업이 조직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군락살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집단이 백악기에 처음 지구에 등장해 1억 년이 넘도록 번성 중인 개미다.5년간의 작업을 통해 탄생한 600쪽의 책을 읽다 보면 사회적 곤충의 집합체가 인간 사회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곤충과 인간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성 곤충은 본능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지만 인간에게는 지능과 빠르게 진화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이해하는 잠재력을 통해 우리의 자기 파괴적 갈등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윤희정기자

2017-06-30

나의 오래된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까요?

우울증, 정서불안, 강박증, 콤플렉스, 공황장애 등 일상에서 크고 작은 정신적 좌절을 겪는 현대인들의 상처를 읽고, 심리 치유의 차원이 아닌, 몸, 마음, 감정의 성장이라는 통합적 차원에서 인간을 통찰하는 `트라우마 치유,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나다`(판미동)가 출간됐다. 심리상담 센터의 심리 치유나 현대 의학의 약물 치료로 해결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고통을 오랫동안 치유해 온 저자 윤인모씨가 이론이나 방법론 위주가 아닌 직접 경험한 임상사례들을 생생한 필치로 담았다. 저자는 내담자들의 무의식 풍경과 에너지 상태를 읽고, 그들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그 고통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밝혀 나간다. 몸을 잘 정립하고, 상처투성이인 마음을 치유하며, 갇혀 있는 의식을 확장하도록 궁극적인 해법을 제시한다.이 책에는 인간의 무의식 풍경과 에너지 상태를 읽는 치유가의 시각에서 바라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담겨 있다.남자 친구를 같은 무용단 단원인 친구에게 잃은 뒤로 두 눈이 부풀어 오른다고 여기는 여자 무용수, 아내와의 불화로 내적 공허와 열정 부족에 시달리며 스스로 고아라고 여기고 사는 중견 제조업체 사장. 폭력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에 사회관계에서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결혼 뒤에도 `심약하고 불안한 아내`와 `현명하고 명랑한 아내`사이에서 갈등하다 정신분열에 걸린 주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틱장애와 같은 강박증에 시달리다 삶의 목표를 상실한 청년, 지나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계속 외면하다가 공황장애에 걸려 매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는 여대생, 동물·아기·승려 등 다양한 의식의 스펙트럼을 지닌 분열증형 성격장애 환자….그들은 특수한 병을 앓고 있는 희귀한 사례가 아닌, 다양한 트라우마와 크고 작은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한다. 저자는 이들의 무의식 풍경을 영화처럼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겪는 단절감과 소외감, 불안과 공포, 허무와 절망감 등을 생생히 느끼고 함께 아파한다. 현대인들이 신체적 증상으로 자각하는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많은 증상들이 전생과 현생을 통해 얻은, 무의식에 아로새겨진 상처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저자는 마음의 질병이나 왜곡 등 부정적인 상태를 “확정적인 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부정적인 에너지의 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곧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지식이나 이론을 터득하거나 마음의 위로를 받거나 종교적 신념을 갖거나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내담자 안에 갇혀 있는 불필요한 생체 에너지나 신경학적 장애물을 제거·배출하거나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변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치유가 아닌 성장을 목적으로 하여, 한 인간의 의식과 생명 에너지 단위가 높아질 때 치유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는 언어적 위로로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으며, 약물에 의지해 몸을 피폐하게 하지 않고도, 인간 본연의 생명 에너지를 회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기존의 치유법들과 차별화된다.인간의 무의식 풍경과 에너지 상태, 더 나아가 한 개인의 전생과 현생을 읽는다는 것이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 온 현대인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저자가 밝히듯이 “또 다른 검증과 논의 대상”이 돼야 할 문제이며,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인간이 겪고 있는 원인 불명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 치유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다. 결국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인들의 병적 증상에 대한 백화점식 나열도, 고통받는 이들을 현혹하기 위한 신비주의적인 접근도 아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통찰과 그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크고 작은 정신적인 좌절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이 책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그 삶을 되돌아보는 귀중한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6-23

장편(掌篇)에 실린 장편(長篇) 못지않은 인생 통찰

최근 독자들 사이에서 `짧은소설`이 각광받고 있다. 200자 원고지 10~30매 정도의 짧은 분량 안에 인생과 인간의 번뜩이는 순간을 담아낸 `짧은소설`은 SNS와 모바일환경에 익숙해진 젊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우리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초단편, 나뭇잎이나 손바닥에 빗대 엽편(葉篇)·장편(掌篇)으로도 불리는 짧은 소설은 원고지 20매를 좀처럼 넘지 않는다. 이 짧은소설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 성석제(57)가 새 책을 들고 돌아왔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문학동네)은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2007)과 `인간적이다`(2010)의 원고 일부에 새로 쓴 작품들을 보태 총 55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 있다.시인 성석제가 1994년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산문의 길이에, 시의 함축성을 품고 있으며, 소설의 재기발랄한 서사와 캐릭터까지 담긴 이 책은 이야기꾼 성석제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에서 성석제는 여전히 장르를 넘나들고, 책장이 서너 장 넘어가기도 전에 폭소와 찡한 감동을 선사하며 짧은소설의 미학과 현재성을 입증해낸다.흔히 짧은소설은 `엽편소설(葉篇小說)` `장편소설(掌篇小說)`로도 불린다. 그 분량의 단출함으로 인해 `나뭇잎 한 장`과 `손바닥`에 비유한 것이지만, 성석제의 손바닥소설은 다 읽고 나면 `장편소설(長篇小說)`이 주는 감정에 부럽지 않은 인생에 대한 통찰과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은 지긋지긋하게 사랑스러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성석제식의 해부도이자, 요즘 `문학`과 `책`이 다소 어렵고 멀어 보인다는 이들에게도 거침없이 건넬 수 있는 유쾌한 프로포즈다.성석제는 짧은소설의 매력에 대해 “불꽃이 튀는 듯한, 짜릿한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 번역도 쉽고 장르를 넘나들기도 쉽다. 장르가 세분화하기 이전 우리 마음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사실 장르가 분리되기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나. 오히려 완전성을 담을 수 있다. 통상적인 소설의 구조와는 달리 자유롭고 창의력이 충만한 장르다. 실험정신이 왕성한 작가들이라면 써보고 싶어하는 분야”라고 했다.한편, 성석제는 신작이 담긴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과 함께 데뷔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와 성석제 짧은소설의 백미로 평가받는`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개정판을 함께 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23

예민함·유머러스함… 시 언어의 맛

서정학(46)의 두번째 시집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1998년 첫 시집 `모험의 왕과 코코넛의 귀족들`을 낸 지 19년 만이다. 시인은 1995년 군 복무 중`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은신처`등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데뷔 당시 “첨단 문명이 낳은 새 문화들에 침윤된 시인은 문화 중독자답게 바로 그것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짓는다”(`문학과사회` 편집동인)는 평을 들었으며, 이후 함기석, 이수명, 이철성 등과 함께 “억압적 질서와 형식을 파기”하는 “신세대 시인”(문학평론가 정끝별)으로 분류되기도 했다.이번 시집에는 그가 지난 시간 동안 써온 시들 중 고심 끝에 고른 서른네 편이 고르게 묶였다. 2017년에 쓴 시들이 담긴`17 흔적`장부터 1999년에 쓴 시들이 모인 `99 반복` 장까지 역순으로 구성돼 있다.이번 시집은 예민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장들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시의 형식이 가진 느슨함을 최대한으로 끌고 나가 그 넓어진 공간에서 충만한 유희를 선보인다.“스무 개가 겨우 천 원이라는 상상 초월 대박 가격에 모든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재료값도 안 나오는 착한 가격! 안 사는 것이 손해! 붉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불어 현수막은 들이닥친 사람들의 발밑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누군가 필사적으로 에펠탑을 향해 소리치며 누군가는 큰 소리로 라데팡스를 향해 울었다. 붉은 나비 같은 유로가 하늘을 향해 아름다운 디자인을 뽐내며 날고 있었다. (중략)이게 다 아름다우면서도 저렴한 프랑스 덕분이다.”-`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전문/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23

인류의 미래를 위한 조건 `문명이 지구에 맞춰야 한다`

지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높은 건물이 솟아 있는 도시,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정리된 논밭, 지구 표면을 사방으로 수놓고 있는 교통기관, 각양각색의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은 모두 문명의 산물이다. 이처럼 문명은 수준 높은 과학 기술과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뒷받침한다. 문명을 설명하지 않고 지구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그러한 시각에서 `지구와 인류의 미래`(문학사상사) 저자 이다 요시아키는 지구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문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 문명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지구과학과 인류학 등으로 서로 동떨어진 채 다뤄지던 지구와 문명은 지구의 생성부터, 생명의 진화,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달을 거쳐 미래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 속에서 한데 어우러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막화, 오존층 파괴, 산성비,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는 물론 인구 폭발과 빈곤 등의 사회 문제가 모두 지구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렇다면 이러한 지구와 문명의 긴장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저자는 문명이 지구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명의 발달은 이미 지구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지구와 문명이 균형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때”임을 역설한다.이다 요시아키는 문명의 발달이 인류의 생활권의 공간적으로 확대를 통해 진행됐다고 봤다. 생활권의 확대는 경제 성장의 동력이다. 생활권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면 문명의 발달은 막다른 벽에 부딪히고 경제는 침체된다. 자전거를 타다가 페달을 멈추면 넘어지는 것처럼 현대의 소비 문명은 생산과 소비를 확대하지 않으면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가올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이다 요시아키는 지구와 문명을 그릇과 요리에 비유한다. 그릇에는 용량이 정해져 있다. 현재는 문명이라는 요리가 지구라는 그릇의 용량에 육박한 시대다. 넘쳐난 음식을 수습해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대부분의 문제들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저지른 일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지구라는 그릇에 맞춰 문명이라는 요리를 바꾸면 된다. 이다 요시아키는 인류가 지속적이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문명이 지구 환경과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명과 지구가 균형을 이루는 이상적인 미래 사회의 모습으로 `순환형 사회` 모델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사회의 통합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능토록 하기 위한 바람직한 변화의 양상을 모색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23

창의력은 즐김과 일상의 관찰에서 동기한다

TBWA코리아 박웅현 대표는 `생각이 에너지다`, `사람을 향합니다`, `진심이 짓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등의 명카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광고계 미다스의 손으로 자리매김한 주인공이다.`여덟 단어`, `책은 도끼다`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인문학 전도사이기도 한 박 대표는 창의력과 진정성을 갈구하는 청년들에게 손꼽히는 멘토다.2030 젊은이들에게 꿈과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강의 프로젝트인 `망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는 그는 또 광고만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콘텐츠를 책과 다큐멘터리, 공연 등 다양한 틀에 접목하는 실험정신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박웅현 대표가 이끄는 TBWA Korea 컨버전스팀 TBWA 0팀이 최근 펴낸 `안녕. 돈키호테`(민음사)는 박 대표의 저같은 재기발랄한 창의력과 상상력이 집약된 책이다.TBWA 0팀은 광고 제작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제작, 디지털, 기획 등 기존 팀의 영역을 허물고,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하나의 팀으로 모였다.`안녕 돈키호테`는 TBWA 0팀이 찾은 `창의력 11조각`으로 구성돼 있다. 박 대표에 의하면, 창의력의 토양은 무엇보다도 좋아서 하는 즐김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천재성의 발현보다는 사소한 일상에 대한 집요한 관찰이다. 또한 창의력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끈기와 용기는 필수라고 한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열한 조각을 4부로 나누고, 각 부마다 박 대표의 주제글로, 그리고 각 장마다 창의력 한 조각에 대한 TBWA 0팀의 카피와 소개글로 시작한다. 또 각 장의 본문은 창의력을 실행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심층 분석, 전문가들의 에세이, 그리고 혁신적인 결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갤러리가 이어진다. TBWA 카피라이터들의 아이디어와 전문가들의 시각이 모두 돋보이는 기획이다.1부 `새롭고 재밌는`에서는 `재밌는` 일을 찾아 `재밌게` 살다 보니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다. 1980년 군부에 의해 폐간된 전설적인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주인공 한창기가 추구한 완벽주의자의 `재미`에서부터 `72초TV`로 대박을 낸 성지환 대표가 즐기는 `재미`까지, 즐거움이 어떻게 창의력을 끌어내어 새로움을 만들어 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2부 `사소하고 위대한`에서는 사소한 일상에서 위대한 창의성을 끌어낸 `집요한 발견자들`을 소개한다. 백자와 비누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여 준 구본창 사진작가, 최초로 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우리 땅을 화폭에 담은 조선 화가 겸재 정선, 지금까지 반복해서 패러디되는 화제의 그림을 그렸던 프랑스 화가 마네, 최초로 웃는 성모를 그렸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네트워크 시대를 예언했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등 미술사에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은 아티스트들을 만나본다.3부 `지치지 않고`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과 늦었다고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본다. 생전에 단 한 편의 그림도 팔지 못했지만 지치지 않고 그렸던 고흐, 쉰네 살에 북극을 탐험한 로알 아문센, 아흔아홉 살에 낸 첫 시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시바타 도요, 낮에는 막노동으로 밤에는 시인으로 살았던 찰스 부코스키, 낮에는 통행료 징수원으로 밤에는 화가로 살았던 앙리 루소, 그리고 열다섯 개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마흔다섯 살에 데뷔하여 감동의 무대를 펼치고 있는 소리꾼 장사익, 이들의 돈키호테력은 가치 있는 일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구하는 힘이었다.4부 `무모하게`는 남들이 감히 선뜻 하지 못했던 모험을 감행한 돈키호테들을 보여 준다. 제주 올레길의 신선함을 어디에서 나왔으며, “병균으로 병균을 이기겠다는” 에드워드 제너의 역발상은 어떻게 실천될 수 있었으며,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던 세종의 돈키호테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박웅현 대표는 “창의력의 반대는 안전함이다”라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16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박사 삶과 업적 기록

20세기 입자 물리학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위인들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이론물리학자 고(故) 이휘소(1935~1977) 박사의 40주기(16일)를 맞아 `이휘소 평전`(사이언스북스)이 복간됐다.수많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에 핵심적인 공헌을 하며 `노벨상 메이커`라고 불리던 이 박사는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를 넘어 20세기 세계 최정상급 물리학자들의 귀감이자 롤 모델이었다. 최근에는 2012년 발견됐던 힉스 입자의 이름을 명명한 사람 역시 이휘소 박사라는 사실이 밝혀져, 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이휘소 평전`은 이휘소 박사의 제자였던 고(故) 강주상 전 고려대 물리학과 명예교수가 펴낸 책이다. 2006년 처음 출간됐으나 현재는 절판됐던 것을 새롭게 펴냈다.저자는 이휘소 박사의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자료와 이휘소가 어머니에게 보냈던 100여 통의 편지, 이휘소와 다른 학자들 간 서신 왕래 파일 등을 토대로 당대 최고 수준의 이론물리학자로 평가받던 이휘소 박사의 삶을 복원해냈다.책은 크게 6부로 구성된다. 1~3부에서는 물리학자로 성장해 나가는 이휘소의 모습을 다룬다.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전쟁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휘소는 전과가 불가능한 한국을 떠나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경제적, 문화적 어려움을 극복하며 꿋꿋이 물리학의 길을 걷는 그가 결국 `상아탑 인간`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겨 있다. 특히 5장 `소립자 물리학이란`은 앞으로 이휘소의 생애와 업적을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입자 물리학의 기초 지식을 다룬다.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해 온 강주상 교수가 직접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일반 독자들도 어려운 전문 지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4부 `스토니 브룩 시절`은 유력한 노벨상 후보이자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만든 `노벨상 메이커` 이휘소를 보여준다. 11장 `스토니 브룩 시절`에서 이휘소는 공간 반전 대칭의 깨짐에 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양진녕의 권유를 받고 스토니 브룩 대학교 교수로 부임한다. 이곳에서 게이지 이론에 관한 그의 연구가 시작됐다.12장 `게이지 이론`에서는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로 고심하던 헤라르뒤스 토프트와 마르튀니스 펠트만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노벨 물리학상을 안긴 일화가 소개된다. 13장`노벨상 메이커`에서는 그가 `노벨상 메이커`로 불리게 된 또 다른 일화가 소개된다. 재규격화 문제는 표준 모형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재규격화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그저 하나의 가설로만 치부됐던 스티븐 와인버그의 논문 `경입자 모형`은 이휘소와 토프트의 문제 해결 이후 궁극적 이론인 표준 모형으로 각광받게 됐다. 더불어 와인버그와 같은 수준에 도달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던 압두스 살람 역시 이휘소가 재조명해 표준 모형은 곧 `와인버그-살람 모형`으로 불렸다. 살람은 곧 업적을 인정받아 1979년 와인버그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16

포항 교사 수필가 김희준씨 `눈내리던 밤` 출간

포항에서 활동중인 수필가 김희준(사진·54)씨가 최근 수필집 `눈 내리던 밤`(북랜드)을 펴냈다. 영천이 고향인 김씨는 동화작가 고 손춘익 선생의 추천으로 `포항문학`에 작품을 발표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는 중견 수필가다.책은 작가가 30년 가까이 포항 지역에서 중등학교 역사교사로서 살아오며 쓴 70편의 수필 작품 중에서 32편을 골라 묶어낸 첫 작품집이다.작품들은 가족, 제자, 친구, 동식물을 따뜻하고 깊은 애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진한 감동을 준다. 불교와 유교 문화, 어머니라는 소재를 통해 디지털 세대가 잃어버린 한국인의 정서를 경상도 사투리와 한문 언어를 통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동서양의 역사와 고전, 종교를 삶 속에서 재발견하여 쓴 인문학적인 글쓰기는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져 울림이 크고 무게감 있는 미학을 빚어냈다.임완숙 시인은 발문에서 “초고를 받아들고 나는 밤을 새워 단숨에 읽었습니다. 너무도 재미있고 감동적이라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지요. 한편 한편이 그대로 동화(童話)였고 시(詩)였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주형 시인은 서평에서 “현대인에게 길과 시간의 박물관 같고, 경전 같은 책이다”라고 했다.책은 1부 백목련 지는 봄날에, 2부 감꽃, 3부 반딧불이, 4부 님은 먼 곳에 등 4부 32편으로 구성돼 있다.김희준 작가는 `수필시대` 신인상, 대구일보 수필공모전, 교단수기 공모전 등에서 수상하고 포항문인협회, 보리수필문학회, 청하(靑荷)문학회,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16

김락기 시인 `몸·선·길에 관한 담론` 출간

경북 의성 출신의 중견 시조시인이자 자유시인인 산강 김락기 시인이 최근 자신의 7번째 창작시조집인 `몸·선·길에 관한 담론`(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출판부)을 펴냈다. 이번 시조집에서 시인은 현대시조는 자연과 인생 상찬뿐 아니라 세상 삼라만상 무엇이든지 소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그동안 천문 우주와 같은 거시세계나 양자, 전자 같은 미시세계, 나아가 형이상의 개념까지도 소재로 시조를 써 왔다. 이번 시조집에서는 제목 그대로 몸과 얼굴의 각 부위나, 직선, 공제선 등 여러 선, 각종 길 등에 대해 예리한 시각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제1장은 닭의 1년 출생 성장 과정을 12달 시조로 쓴 `시조 월령가`, 제2장은 `얼굴 해부`, 제3장은 `몸에 대한 해부`, 제4장은 `선에 관한 탐구`, 제5장은 `길에 관한 편상(片想)`으로 나눠 모두 94편 143수의 시조작품이 수록돼있다. 기하학상의 특별한 선이나 몸속 장기 등은 시조의 제재로 잘 사용하지 않던 것들이다. 각 편은 그 소재에 대한 현상이나 본질 묘사에다가 인생사나 우주 원리를 엮어서 함께 표현함으로써 현대시조 창작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수화 회장은 작품 평설에서 “한국 전통시 율려정신의 구현이며, 산강 시조 특유의 응축과 발화로 고요하게 움직이는 우주생명의 훔치의식은 삼라만상 최고의 만트라(詩)”라고 호평했다.김락기 시조시인은 작년까지 3년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직을 맡아 전국 규모의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을 개최해, 일반국민을 상대로 시조 보급과 진흥에 앞장서 왔으며, 작년 말에는 충주 수안보 지역을 소재로 해 창작한 시조집, 역작 `수안보 속말`을 펴낸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16

굴종의 시대… 자유에의 갈망은 얼마나 위태로웠던가

▲ 소설가 황석영한국문학계의 거장 소설가 황석영(74)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자전(自傳)적 에세이 `수인`(문학동네)을 펴냈다. `수인`은 작가가 2004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자전적 장편 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를 대폭 개작하고 보탠 것이다.원고지 4천매, 책으로 두 권 분량에 베트남전 참전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방북 후 탈옥 등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작가의 삶과 사유를 털어놓는다.현대사의 숱한 굴곡과 파란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겪어온 그가 자신이 지나온 파란만장한 삶, 자유를 위해 `시대의 억압`과 맞서온 불꽃같은 여정을 생생한 필치로 증언한다.1943년 만주 창춘(長春)에서 태어난 황석영은 평양 외가를 거쳐 1947년 월남, 서울 영등포에 정착했다. 1962년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린 작가는 1966년 해병대에 입대하고 베트남전쟁에 파병된다. 참전 경험은 장편 `무기의 그늘`(1988)의 토대가 된다.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유신독재의 어둠에 맞서 동료들과 함께 저항하다 5·18 광주항쟁을 맞았고,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198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한 황석영은 독일·미국 등지를 떠돌다가 1993년 4월 귀국 직후 체포됐다. 그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1998년 3월까지 옥살이를 했다.책은 1993년 작가가 방북과 뒤이은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안기부에 끌려가 수사관들에게 취조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야기는 감옥 안에서 보낸 5년의 시간과 유년부터 망명 시절까지의 생애, 두 시간대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그리고 감옥 바깥의 시간은 다시 순서를 달리해, 1985년 광주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출판한 후 처음으로 한반도를 벗어나 바깥 세계를 경험한 뒤 민주화운동과 방북, 망명,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먼저 이야기한 다음, 시간을 거슬러 가족과 함께 월남한 다섯 살 무렵으로 돌아가 한국전쟁과 4·19, 베트남전쟁을 겪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5·18 광주항쟁을 맞기까지의 기억을 되짚어나간다. 감옥 안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을 나누는 이러한 구성으로 인해 `수인`은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작가가 좁은 감방 안에서 지금까지의 생애를 간절히 더듬어보는 듯도 하고, 또는 현실의 시간 가운데로 불쑥불쑥 감옥에서의 장면들이 꿈처럼 끼어드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를 통해 작가의 삶은 단순히 시간순으로 나열되는 대신 방북과 망명, 투옥이라는 결정적 계기들을 중심으로 재배치돼 더 깊은 의미를 얻는다.무엇보다 그의 삶의 커다란 분수령이 된 5년간의 수인의 삶. 작가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시대의 감옥 안에서 그는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스스로 시대를 짊어지고자 했던 작가에게 감옥이란 무엇이며,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 작가의 자유로운 정신을 가두고자 한 시대란 또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말한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라고./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6-09

테헤란에서 만난 낯선 나와의 동행

정영효 시인의 산문집 `때가 되면 이란`(난다)은 난다 출판사가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시작된`걸어본다`열세번째 책으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떠났다. 정영효 시인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참여 작가로 선정돼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테헤란에 머무는 동안 쓴 글들을 엮었다.다른 나라, 그것도 한 도시에서 세 달 동안 지내는 일은 꽤 흥미로운 사건이다. 테헤란에서의 `생활` 혹은 `여행`. 그 사이에서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이 내용의 큰 줄기를 차지한다. 이란과 테헤란의 종교·정치적 상황에 대한 내용도 그 안에 담겨 있다.각각의 장은 테헤란에서 마주친 `사물`중심으로 구성됐다. 사물은 낯선 환경과 문화를 마주했을 때 가장 빠르게 그 `낯섦`을 확인해준다. 또 일상과 역사를 요약하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테헤란이란 도시를 한꺼번에 바라보기보다는 천천히 바라보기 위해 정영효 시인은 사물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대상이 된 사물들은 테헤란에만 있는 것들은 아니다. 테헤란은 이란을 대표하는 도시이자 이란 전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에 등장하는 사물과 거기서 비롯된 생각은 테헤란뿐 아니라 이란에 대한 내용까지 뻗어나간다.여행지의 사람과 사물과 풍경은 그곳의 분위기와 맞닿으며 고유한 대상으로 자리한다. 매일 지나치는 거리와 건물. 낯선 물건과 음식.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율.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이념. 테헤란과 밀착된 이런 것들이 그를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이끌어냈다.여행과 산문이 서로 힘을 보태어 나온, 여행과 산문이 적당한 거리로 서로를 교환하면서 탄생한 이 책을 통해 이란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6-09

현대인에게 권합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식

MBC 스페셜 `지방의 누명`방영 이후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버터와 고기를 마음껏 먹어도 탄수화물만 줄이면 살이 빠진다는 이 매력적인 사실은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거나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열광케 했다. 하지만 건강 의학 5개 학회에서 반대 성명을 내는 등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식단에 대한 반발 역시 못지않았다. `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판미동)은 찬사와 논란의 중심에 선 고지방저탄수화물의 핵심 원리인 `케톤체`에 대해 주목한다.케톤체란 인체가 지방을 분해할 때 생기는 물질로 당질을 제한하고 지방 섭취를 늘리면 그 수치가 향상된다. 지금까지 케톤 수치가 높으면 건강에 적신호를 알리는 경고로 알려져 왔지만 이 책의 저자인 무네타 의사는 실험을 통해 태아와 신생아의 케톤체 농도가 기준치의 20~30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아기가 포도당이 아닌 케톤체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왔고, 인류가 케톤체 대사를 기본으로 해 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을 통해 케톤 수치를 향상시키면 인류가 지금껏 지탱해 온 인체 엔진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다. 이것이 탄수화물 식단으로 점철된 현대인에게 고지방저탄수화물 케톤식을 권장하는 핵심 이유다.저자 무네타 테츠오(70)는 당질 제한식으로 당뇨병 임신, 임신성 당뇨병 치료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케톤체 최고 권위자로 일본 최초로 융모와 태반의 케톤 수치를 측정해 태아가 고농도의 케톤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밝혀냈고, 당질 제한으로 인슐린이나 약제 없이 임신성 당뇨병을 비롯한 1형, 2형 당뇨병까지 관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6-09

오직 두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

“특별한 부녀가 있다. 딸은 아버지에게 맞추어진 삶을 살고, 아버지는 평생 딸을 기이한 방식으로 옭아맨다.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지만 딸은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 믿는다. 희귀 언어 사용자 같은 두 사람.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딸. `오직 두 사람`은 서로에게는 `오직 한 사람`이므로,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 속에 그녀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마주하게 된다.”(김영하 소설 `오직 두 사람`)한국 대표 소설가 김영하(48)의 신작 소설집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를 포함해 일곱 편이 실렸다. 지적인 즐거움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한껏 맛볼 수 있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 소설적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현실 밀착적인 정공법이 돋보이는 작품을 통해 그는 이번 소설집에 한 인간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부터 다종다양한 관계의 모순, 더 나아가 소위 “신의 뜻”이라 비유되는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인간의 고뇌까지 담아낸다.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장해온, 이른바 “김영하 스타일”이 총망라됐다.소설가 김영하는 1996년 아이러니와 허무주의가 짙게 풍기는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한국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의 소설은 90년대 서울의 권태와 소외를 보여준다. 국내외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이 90년대와 2000년대 한국의 급격한 문화 변화를 담았다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2014년 겨울에 발표한`아이를 찾습니다`를 기점으로 그전과 그후의 삶과 소설 모두 달라졌다. 그 이전에 쓰인 소설 `옥수수와 나` `최은지와 박인수` `슈트`에서는 무언가를 잃은 인물들이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자기기만에 가까운 합리화로 위안을 얻고 연기하듯 살아가는 데 반해, 그 이후에 쓰인 소설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속 인물들은 “자위와 연기는 포기한 채 필사적으로 `그 이후`를 살아간다.”/윤희정기자

2017-06-09

대한민국 대학 서열, 믿을만한가?

`대학평가 전문가`로 알려진 서의호 포스텍 교수가 최근 `일등대학 꼴등대학`(마인드탭)을 펴냈다. 한국대학랭킹포럼 대표와 영국 타임스고등교육(THE) 평가자문위원으로 있는 그는 포스텍에선 대학평가위원장을 맡아 2010년 포스텍을 THE 평가 28위에 올려놓았다. 주요 세계 대학평가 가운데 국내 대학 최고 순위로 남아있다.`일등대학 꼴등대학`은 서 교수의 대학평가위원장을 지낸 지난 10년 간의 다양한 경험으로 각종 자료를 모아 집필했다.서 교수는 “본인으로서는 아직 부족한 책이고 좀 더 다듬어야 하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심정으로 썼다”면서 “이 책을 통해 전통적인 대학 서열에 허점이 있는가? 각종 매체의 대학 서열을 믿을만 한 것인가? 대학 서열을 바뀔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일등대학 꼴등대학`은 대학과 신분동질화(SS) 욕구, 대학 서열(랭킹) 바뀔 수 있다,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인가?, 대학 서열(랭킹)의 허와 실, 바람직한 대학상 등 5장으로 구성돼 있다.서 교수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현상인 로젠탈 효과를 소개하면서 우리 사회의 강박적 교육 시스템을 반성하고 우리 자녀들이 적성에 맞고 행복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또 그는 수험생들의 대학선택에 있어서 소위 `신분동질화(Status Synchronization·자기자신을 그 집단의 신분과 동질화 시키려는 욕망)`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면서 수험생들이 신분동질화에 의한 대학선택과 실제로 나타난 대학간의 우열에 기초한 대학 선택에 있어 최적의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이 필요함을 주장한다.서 교수는 능력이 존중되는 사회 등 바람직한 대학상으로 사회적 수요에 부합하는 전공, 차별화된 교육모델, 사회가 인정하는 교육성과 등을 꼽고 대학의 서열을 피할 수 없다면 일등대학이 되기 위한 노력은 선의의 경쟁이라고 말한다.그는 “경쟁에 있는 곳에 서열은 항상 존재한다. 국가도 서열이 있고 모든 제품에는 제품별로 서열이 있다. 올림픽은 메달로 서열을 메긴다. 대학의 서열을 피할 수 없다면 일등대학이 되기 위한 노력은 선의의 경쟁이다 그리고 일등대학과 꼴등대학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수험자의 몫일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서의호 교수는 1989년부터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협력 및 대학평가 위원장으로 오랫동안 이 분야를 연구해왔다. 2014년 URFK(한국대학랭킹포럼)를 창설해 한국대학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인지도 확장을 위해 노력하며 독일 드레스덴 공대, 일본 동경공대, 중국 베이징교통대, 브루나이 국립대 등 해외 대학과 국내의 여러 유수 대학에서 대학평가에 대하여 강연하고 자문해 왔다. 현재 THE(TIMES HIGHER EDUCATION)의 평가자문위원, UEMC(포스텍 대학평가위원회) 위원장, URFK 대표 등으로 있고 IREG(INTERNATION RANKING EXPERT GROUP)에서 한국을 대표하고 있으며, 톰슨로이터, 엘즈비어 등의 학술정보기관의 각종 회의에 초대돼 강연하고 있다. 경기고, 서울대·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에서 공학석사, UNIVERSITY OF ILLINOIS(UIUC)에서 경영학 박사 취득 후 미국 테네시공대, 오클라호마 주립대 등의 교수를 거쳤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5-26

인간 존재에 대한 밀도 있는 탐구와 삶에 대한 성찰

`문단의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한국 시단의 원로 민영(83) 시인의 시전집(창비)이 출간됐다.1959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60년 가까운 시력(詩歷)을 쌓아온 시인은 우리 역사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밀도 있는 서정적 탐구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깃든 견결한 시세계를 일관되게 보여줬다.이번 전집을 준비하면서 시인은 첫 시집 `단장(斷章)`(1972)부터 마지막 시집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2013)까지 아홉권의 시집에 실린 409편의 시를 한편 한편 일일이 손봤으며, 여기에 최근작 10편을 더했다. 이 전집을 통해 목숨의 불꽃이 다하는 그날까지 시를 쓰는 것만이 유일한 노동이자 기쁨이라 여기며 평생을 오로지 시의 외길을 걸어온 노시인의 연륜과 기품이 서린 시정신을 엿볼 수 있다.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방 후에는 여러 객지를 떠돌면서 신산한 삶을 살아온 민 시인은 실향민으로서 분단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끊임없이 노래해왔다. 그런 만큼 그의 시편은 철저히 고향에서 발원해 고향으로 귀일하려는 생래적 슬픔을 오롯이 담고 있다. 이렇듯 “두고 온 고향 생각”(`용인 지나는 길에`)과 아련한 추억 속에서 “저 멀리/북만주 땅에 누워 계”신 아버지와 “저 산 너머/용인 땅에 누워 계”(`다시, 이 가을에`)신 어머니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사뭇 애절하기만 하다. 비록 “육신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고요히 감은 영혼의 눈”(`꿈`)에는 또렷이 떠오르는 고향 마을을 애달피 노래하며 노경(境)의 시인은 늘 그리운 향수에 젖곤 한다.시인은 단아한 형식 속에 민중적 정서를 민요조 가락에 실어 일상의 소재를 평이한 언어로 형상화한 서정시의 한 절정을 일궜다. 그러나 시인의 관심은 비단 평온한 서정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노숙자들이며 철거민들처럼 “작고 하찮은 목숨”(`별꽃`)을 살아가는 소외된 존재들에게도 애틋한 연민의 눈길을 건넨다. 그런가 하면 “몸 안에서 출렁이던/생명의 물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모기에 관한 단상`)는 그 자신은 겸허한 자세로 삶을 받아들이며 황혼의 길목에서 “눈부신 여명을 맞이하기 위해”(`여명`) 희망의 불꽃을 지핀다.등단 이후 줄곧 올곧은 시정신을 견지하며 “소용돌이치는 탁류의 세월”(`바람 부는 날`) 속에서 “슬픔으로 얼룩진”(`流燈`) 역사를 깊이 투시하며 서정성을 추구하던 시인은 후기에 이르러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은 성찰과 차분한 관조의 세계를 펼쳐왔다. “흙에서 태어난 자는/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만추`)는 삶의 진실을 되짚어보고, 때로는 “거칠고 사나운 역사”(`이 가을에`)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대한 울분을 토로해내기도 했다.스물다섯에 문단에 나와 “전쟁의 불길과/혁명의 연기로 뒤덮인 세기말”(`묘비명`)의 시대를 헤쳐온 시인은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천민자본주의의 나라”(`오월, 그리고 어느날`)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때로는 서글픈 일이기도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시가 “순금의 燈”(`국화`)이 돼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5-26

조선조 대표적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정책 주문

조선의 대표적인 개혁군주 정조가 신하와 유생들에게 나라의 정책 등에 관해 질문한`책문(策問)`을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풀이한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판미동)가 출간됐다. `책문`은 왕이 신하와 유생들에게 나라의 정책과 나아갈 방향에 관해 연구와 대책을 주문한 사료(使料)로, 이 책은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제48권제52권에 실려 있는 78가지 책문 전체를 현대적 관점으로 풀어 쓴 것이다. 시대적 차이와 왕실의 문체라는 벽에 의해 쉽게 읽을 수 없었던 기존의 `홍재전서`와 달리,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인문 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힘써 온 신창호 교수가 정조의`책문`을 쉬운 우리말로 완역한 최초의 단행본이라 할 수 있다.이 책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앞으로 함께 정치를 펼쳐 나갈 인사들과 함께 인재등용, 문예부흥, 민생과 복지, 균형발전 등 모든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자 했던 기록으로서, 정조가 꿈꾸던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과 최고지도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대책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도자의 관점과 생각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바탕으로 항상 신하들에게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독려했던 최고지도자로서의 정조를 재발견하도록 한다. 이 책에 드러난 정조의 진지한 성찰과 민생을 향한 치열한 태도, 인간의 올바른 길을 추구하면서 함께 힘써 나라를 바르게 운용하려는 모습은 혼란스러운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사회는 양반만이 과거를 통해 중앙관직에 진출할 수 있고, 노론과 소론의 당파에 따른 당쟁이 극심한 시기였다.하지만 정조는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를 갈망해 적극적인 탕평책을 실시했고 당파에 구애받지 않고 인물과 실력 중심의 관리를 등용하는 대통합정책을 펼쳐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경제적·사회문화적 부흥기를 이끌었다.사회 안정과 균형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정조는 모두가 맡은 바 직분을 다해 찬란한 봄과 같은 활력이 넘치는 나라를 바랐다.각 책문은 환곡의 병폐와 관리의 폭정을 막고 나라의 균형발전을 꾀하던 정조의 애민정신은 물론이고, 국가의 자원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노인을 공경하고 절기를 따르는 풍습이 바른지 등에 대해서도 살피던 지도자의 세심한 마음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멀리 떨어진 함경도와 제주도 등지의 지방 특성에 맞춘 정책에 관해 자문을 요청하고, 문화와 함께 군사·안보적으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대목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안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또한 경전 공부와 시와 음악 등의 예술, 문체의 사용과 천문 등의 과학에 관한 책문에선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을 갖춘 학자군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민심을 화합하고 혁신을 선도한 지도자 정조의 모습을 통해, 이상적인 인본주의적 지도자상을 되새기게 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5-26

인생을 타고 흐르는 남북분단 비극

남북분단의 가슴아픈 현대사를 배경으로 사십여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세상과 가족,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한 사내의 이야기를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박성신 작가의 장편소설 `제3의 남자`(황금가지)가 출간됐다. 사업 실패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 채 고시원을 전전하던 최대국은 어느날 한 남자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최대국의 친부인 최희도가 총에 맞아 중태이며, 아버지 대신 수첩을 찾아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제시한다. 아버지와 의절한 상태였지만 보상금에 욕심이 났던 최대국은 덜컥 제의를 수락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아들 최대국의 시점과 젊은 시절의 아버지 최희도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아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과거사를 한발한발 따라가는 한편, 이를 통해 간첩, 안기부, 요정정치, 납북사건 등 6~70년대 한국 사회의 굵직한 사건을 절묘하게 작품에 녹여낸다.`7년의 밤`의 저자인 정유정 작가는“치밀한 플롯, 매력적인 캐릭터, 탁월한 `밀당` 능력 등은 이 작가가 신예라는 걸 잊게 만든다”라고 호평했다.최대국은 사업에 실패하고 빚쟁이에 쫓기며 자살을 꿈꾸는 남자다. 세 번째 자살에 실패한 날, 공원에 앉아 있던 그에게 한 사내가 접근한다. 사내는 최대국의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사이이며, 아버지가 조금 전에 총상을 입고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전한다. 보험이나 유산이라도 챙길 요량으로 사내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으나, 총상을 입은 환자를 허름한 개인병원에 둔 것이나 총격 사건처럼 큰 사건에 고작 한 명의 형사가 어설프게 조사하는 게 온통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사내가 아버지의 수첩을 찾아주면 3억을 주겠다는 말에, 의심을 접고 단숨에 제안을 받아들이는데…./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5-19

삶이란… 예측 불허와 아이러니의 내재 그리고 행복

김주영 작가가 2013년 대하소설 `객주`(전 10권) 완간 이후 처음으로 신작 장편소설 `뜻밖의 生`(문학동네)을 출간했다. 올해로 등단 47년, 여든을 목전에 둔 일흔아홉이라는 나이에도 작가는 끝까지 펜을 놓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고향 청송에 내려가 집필에 몰두해 새 소설을 내놓았다. 한 사람의 일생을 유년부터 노년의 시간까지 그려낸 `뜻밖의 生`은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노장만이 쓸 수 있는 삶의 혜안이 담긴 소설이다.삶의 예측 불허함, 행복의 본질, 세계에 내재된 아이러니를 천부적인 이야기꾼 김주영답게 강렬한 서사로 풀어냈다. 작가는 한 인간이 생을 살아내며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그러면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도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통해 삶의 본질과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뜻밖의 生`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매일 연재한 작품이다.항구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는 노인 박호구는 한밤중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여인 최윤서와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남장을 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녀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투명한 말로 노인의 마음을 연다. 노인은 그녀와 대화하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기 시작한다.`뜻밖의 生`은 두 시점을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하나는 노인이 된 박호구, 또하나는 소년 박호구이다. 소년 박호구는 도박판에 목숨을 거는 타짜 아버지와 무당을 신봉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그 어떤 따뜻한 손길 한번 받지 못한 채 자라난다. 어린 박호구는 친구들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하며 관심의 허기를 달랜다. 그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그런 박호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유일한 존재는 옆집에 사는 젊은 여인 단심이네다. 음악을 하겠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진 남편을 기다리며 병든 시아버지를 보필하고 있는 그녀는 외로운 박호구에게 한 줄기 빛이 돼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사라진 남편을 찾아 마을을 떠난다.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소년은 어머니의 마음을 무당에게서 자신으로 돌리기 위해 굿판에 불 붙은 쥐를 풀었다가 어머니와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그는 어린 나이에 고향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소년 박호구는 막막하고 험난하며, 기묘한 인연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김주영 작가한편 노인 박호구는 매일 밤 포구의 화롯가에 앉아 온기를 나누며 조금씩 그녀와 가까워지고, 떠돌이 매춘부인 그녀는 차츰 노인에게 마음을 연다. 그들은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외로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뜻밖의 生`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한 소년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다. 박호구는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사건들 속에서 인생을 배워나간다. 우연히 조우하는 생의 민낯은 때로 잔인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된다. 그 우연하고 뜻하지 않은 이야기 속에는 불행도 행복도 있다. 그리고 이별도 있고 새로운 만남도 있다. 소설은 가장 불행한 순간에 오히려 행복을 맛볼 수 있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불행을 맛볼 수도 있는 게 바로 인생이라고 말한다. 행복과 불행은 분리돼 있지 않으며, 어쩌면 그것은 전적으로 삶을 겪는 이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5-19

윤동주 탄생 100주년되살아오는 그의 시·삶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의미있는 해다. `윤동주 전집`(문학사상사)은 이를 기념해 출간한 윤동주 특별판이라고 할 수 있다.`윤동주 전집`은 윤동주가 발표한 시 97편과 산문 4편을 빠짐없이 담고 있으며, 해설 자료를 덧붙여 윤동주 시의 올바른 이해와 감상을 돕고 있다. 그의 문학작품들은 모두 꼼꼼한 검수과정을 거쳐 온전한 형태로 게재하고 있어 혹여 잘못 알려지고 있는 정보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보다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를 위해서는 국내외의 저명한 저자들의 연구논문이 준비돼 있다. 이는 모두 윤동주와 그의 시 세계를 살피는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려 뽑은 것이다.부록으로 다루고 있는 윤동주에 내려진 판결문 전문과 그 입수 경위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윤동주와 관련한 단행본 및 논문 목록을 게재해 연구를 필요로 하는 독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윤동주의 가계도와 연보, 작품 연보 또한 잘 정리돼 있다.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뒤 그 원고본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정병욱의 주선으로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빛을 보게 됐다. 이 시집이 발간되면서 비로소 윤동주는 시인이 됐다. 참혹한 죽음을 당한 뒤에야 그는 빛나는 시인으로 살아난 것이다.윤동주의 시는 순결한 동심 지향적 세계와 함께 실향 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의 많은 작품에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특히 식민지 상황에 대한 불안 의식과 함께 끝없는 자기 성찰이 특이한 긴장을 드러낸다.그의 시가 내적으로는 자아에 대한 성찰을, 외적으로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합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그의 시들은 시대적인 고뇌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으며 현실의 괴로움과 삶의 어려움을 철저하게 내면화하여 그 시적 긴장을 지탱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시인 윤동주의 시인다움을 말해주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5-19

개인과 세계의 본질적 불화에 대해

2014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정영수 작가의 첫 소설집 `애호가들`(창비)이 출간됐다.등단작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쓴 작품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는 “어느 고요한 순간에 느껴지는 매력적인 서정성과 유머”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정 작가의 등단작 `레바논의 밤`과 2015년 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로 선정된 `애호가들`을 포함해 총 8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작가는 각 작품에서 삶의 고통을 통째로 견뎌내는 듯한 신고의 감정을 표출하며 개인과 세계이의 본질적 불화를 예민하게 그려낸다.엉망진창의 세계에 그럴듯한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풍자와 서정, 유머로 세상을 더욱 어지럽게 버려둔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지루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불가해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전율의 순간을 보여준다.`애호가들`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모두 기나긴 지루함에 포섭”된 채 견디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애호가들`에서 이런 일상의 지루함은 인물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정확하고도 예민하게 드러나며 작품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접속법 하나 이해하지 못하고 한 학기에 책 한권도 성실하게 읽지 않는, 형편없으면서도 성의까지 없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인물(`애호가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적 병증에 시달리며 병원을 전전해 받아온 약을 매일 먹고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밖에도 나가지 않은 채 외주 편집일을 하는 인물(`하나의 미래`), 하루 종일 초록불이 들어오면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작업만을 반복하고 일상의 변화라고는 일주일을 주기로 바뀌는 사내 식당의 반찬뿐인 인물(`특히나 영원에 가까운 것들`) 등 작가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로 인물들이 겪는 지루함을 그대로 전달한다.또한 `애호가들`은 지긋지긋한 세계와의 불화를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결의 재미를 자아낸다. 대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발생한 피해자로서의 `나`를 동시에 가해자의 위치에 놓으며 “풍자의 시선을 체험하게 하는 것을 넘어 풍자된 세계 자체를 체험”하게끔 한다거나(`애호가들`), 친구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듣고서도 상식적인 감정 교류에 미숙한 주인공을 내세워 “결정적으로 특별하다고 여긴 사건의 유일무이함에 대해서 의심”하도록(`지평선에 닿기`) 한다. 이처럼`애호가들`은 단순한 풍자를 사용하거나 상식적인 감정선을 따라가지도 않으면서, 이 사건들을 독특한 리듬으로 배치하며 “삶의 무미건조함과 지긋지긋함을 반전시키기보다는 반사”시켜, “엉망인 세계를 구조적인 모양으로 덩어리째 토해놓”(해설)는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5-19

홀로서기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뭘까

▲“스물에 미련해지지 않으려면 부모를 떠나야 하고 마흔에 어리석지 않으려면 스승을 떠나야 합니다.”카이스트의 물리학도에서 출가의 길을 택한 도연 스님이 자존, 관계, 공부, 소통 등 홀로서기를 위해 필요한 지혜를 전하는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판미동)가 출간됐다.한국과학기술원(KAIST)·한국에너지기술원(KIER)·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에서 박사급 연구원들에게 에너지 명상을 가르쳐 온 명상 지도자, 외교부 산하 NGO 단체와 서울시교육청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청소년 대안교육과 봉사활동을 이끌어 온 열혈 활동가, SNS 활동과 방송 출연을 통해 대중들과 만나고 서울 봉은사에서 청년부 지도법사로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젊고 친근한 스님…. 출가 후 10년간 카이스트 학생이자 출가 수행자로 살아오며 정신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맞닥뜨린 자존, 관계, 공부, 소통, 욕망, 자유, 사랑 등에 대한 젊은 날의 고민들과 마음을 보듬는 치유의 문장들이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어우러진 책이다.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물리학도의 꿈을 키우던 도연 스님은 왜 갑자기 마음의 세계에 천착하는 불교에 귀의하게 됐을까? 그는 카이스트에 입학하면서 눈에 보이는 목표를 위해 경쟁하고, 자신의 가치가 성적으로만 평가되는 시스템 속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낮아졌고, 부모와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긋났으며, `공부`에 회의를 느끼다가, 끝내 외부와의 `소통`을 닫게 됐다. 결국 그가 출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정답`을 위해 `경쟁`하는 데 익숙했던 습관적인 삶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 그리고 생활의 계율을 바로 세워 좀 더 자신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또 그것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이 책의 제목인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는 진정으로 홀로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찾으려 노력해야 하며, 안정적이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출가한 스님이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독립 선언을 하려는 청년이든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별다르지 않다. 결국 출가(出家)란, 단순히 삭발하고 승복 입고 아침 예불을 하며 채식주의자로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집을 떠나는 것, 즉 물질의 풍족함과 몸의 편안함, 마음의 안락함을 제공하는 자신에게 익숙한 가치관과 관념을 떠나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 된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독립이다.▲ 도연스님그러한 존재의 독립을 위해 필요한 자존, 관계, 공부, 소통의 지혜를 이 책은 총 4부로 나눠 전한다. 1부 `자존`에서는 자신감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외적 목표의 성취로 인해 채워지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스스로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해 주는 상태에서 발현된다고 말하며 나만의 가치를 찾고 그것을 실현함으로써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용기를 북돋는다. 2부 `관계`에서는 세상의 모든 행복과 불행은 관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관계를 지혜롭게 정리하거나 개선하는 쪽으로 마음을 낼 것을 권한다. 3부 `공부`에서는 단순히 입학과 취업을 위한 공부를 생각 없이 되풀이할 게 아니라 공부의 본질에 대해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행복을 위한 공부를 모색한다. 4부 `소통`에서는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듣지 말고 세상의 모든 인연에 진심으로 다가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4-28

스피노자의 궁극적 목표는 훌륭한 삶·행복한 삶

스피노자는(1632~1677)는 18세기 계몽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서구 최초의 근대적인 철학자다.철학과 정치학의 통섭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전력투구했던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훌륭한 삶, 행복한 삶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그는 물질적 풍요에도 인간의 삶이 비참함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무지와 망상, 분노와 증오, 갈망과 탐욕, 시기와 질투, 교만과 불신 등에 사로잡혀 존재의 본질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따라서 그는 감정의 메커니즘을 구명해 감정에 발목 잡힌 인간의 삶을 구하고 권력에 대항하는 철학을 통해`풀뿌리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스피노자는 300여 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과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유일한 진리,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는 올곧음에서 우러나오는 삶에의 긍정은 우리 시대에도 놀라움과 경이로 다가온다.`스피노자의 귀환`(민음사)은 현대철학과 스피노자의 긴밀한 관계를 추적하며 그의 눈부신 사유를 펼쳐 놓았다.프랑스 현대철학과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치밀한 연구로 널리 알려진 서동욱과 진태원의 기획 아래 백승영, 김은주, 김문수, 서동욱, 진태원, 박기순, 진태원, 조정환, 최원 등 국내 정상의 철학 연구자 8인이 공동 저자다.이 책은 현대철학의 여명기에 선 세 사상가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에서 시작한다. 1부에서는 서구의 전통적 가치를 전복한 니체,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트, 정서가 가지는 근본적 의미를 간파한 하이데거 철학 속에서 스피노자의 흔적을 추적함으로써 어떻게 스피노자가 현대철학을 미리 달성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낸다.2부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인 라캉, 들뢰즈, 푸코, 바디우의 쇄신에 개입한 스피노자를 보여준다. 스피노자와 마주쳤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을 감당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주체 이론을 전개한 라캉, 초월적인 절대자를 제거한 스피노자적 내재성의 바탕 위에서 존재론을 구축한 들뢰즈, 스피노자의 이름을 내세운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았으나 스피노자와 동일하게 실체성보다 관계의 관점에서 개체와 권력을 조망한 푸코, 스피노자가 명시적으로 말한 것 배후에 숨겨진 층으로부터 철학적 영감을 길어 낸 바디우를 탐구한다.3부는 현대의 대표적인 진보적 정치 철학과 스피노자의 마주침을 다룬다. 스피노자의 인간학을 배경으로 이데올로기론을 구축한 알튀세르, 유물론으로서 스피노자 철학이 발휘하는 정치적 힘을 다각도에서 탐구한 네그리, 스피노자에게서 자연학적·정치학적 아포리아를 발견하고, 이것을 예속에서 해방으로의 이행에 자리 잡은 불가결한 요소로 부각한 발리바르를 살펴본다.4부는 현대 스피노자 연구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두 철학자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 그리고 앙드레 토젤이 각자 수행한 두 편의 대담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두 학자는 스피노자가 어떻게 현대의 연구 토양으로 귀환했는지, 그리고 스피노자가 스며든 그 토양 속에서 어떤 문제들과 더불어 현대철학이 성장했는지를 세밀하고도 넓게 그려 보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4-28

지성과 권력 결합의 산물 `지성주의` 반발로 나타난 반지성주의로 본 미국사

현대 지성사의 고전인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교유서가)가 원서 출간 후 반세기 만에 국내 초역됐다. 1964년도 퓰리처상 넌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이 책에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식인 전통의 저류에는 복음주의 신앙에 입각한 민중의 반권위주의적 심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핵심에는 지식을 독점하는 엘리트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1952년,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지성`과 `속물`이 대립하는 구도였다. 결국 아이젠하워가 압승했고, 이로써 미국 사회가 지식인을 거부한 것으로 이해됐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 `반지성적`이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자기평가에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형용어가 됐다.저명한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이런 정치적·지적 상황에 촉발돼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을 축으로 미국사를 되짚는다. 청교도주의와 건국의 정신을 재검토하고 18세기 중반 식민지 아메리카에 확산된 신앙부흥운동에서 20세기 후반의 빌리 그레이엄에 이르는 계보, `전문가`의 등용을 둘러싼 지식인과 정치의 갈등, 경제계에 스며든 실용주의, 존 듀이의 교육사상, 마크 트웨인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학 등을 자세히 살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의 이런 정신 풍토를 비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란 무엇이고 지식인은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할 힘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반지성주의`라는 말은 이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의 관련 논의를 계기로 일반적으로 통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미국에서 반지성주의적 현상은 이미 식민지시대부터 나타났고 1950년대에 두드러졌다고 본다. 대개는 “데이터나 증거보다 육감이나 원시적인 감정을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태도나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반지성주의는 실제로는 좀더 다의적인 관점을 내포한다. 또한 저자는 이 말이 반드시 부정적인 뉘앙스만 가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지적 권위나 엘리트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에는 반지성주의적 관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성과 권력이 결합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반지성주의의 원동력이며, 반지성주의가 부정하는 것은 `지성`자체가 아니라 `지성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지성주의는 `반-지성`의 사상이 아니라 `반-지성주의`의 사상인 것이다. 반지성주의의 출발은 신 앞의 평등이라는 종교적 확신에 근거해 지상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정신이다. 종래의 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성을 낳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힘은 사회의 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4-28

타자의 시선에 비춰지는 거울화 된 개인의 비극

신예 최영건(27) 작가의 장편소설 `공기 도미노`(민음사)는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계층, 서로 다른 성별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불화와 반목을 세밀화처럼 근접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누군가는 타인을 지배하려 들고 누군가는 그 지배에 기꺼이 종속되고자 하며 누군가는 그 속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발악한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악하는 이 `충돌의 문학`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인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 온 `현대성`의 얼굴이다.매사에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의 연주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운영하는 카페뿐 아니라 그녀의 인생마저도 할머니에게 귀속돼 있다는 것만 빼면 평범해 보이는 인생이다. 할머니와 재혼할 예정인 할아버지를 할머니의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방문한 집에서 연주는 서로를 깊이 반목하는 가정을 목격한다. 불화는 소설의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 나간다. 연주와 할머니의 불화, 연주와 애인의 불화, 연주와 아르바이트생의 불화…. 갈등은 폭발적으로 증폭하다 연주의 체념으로 힘없이 봉합된다. 번번이 체념을 거듭하는 연주는 점차 스스로가 세계로부터 소외되고 있음을, 타인의 감정 사이에서 소진되고 있음을 느낀다. 한편 그녀와 한발 떨어진 관계에 있는 사람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타인과 충돌하며 상처받고 상처 주기를 계속한다.혐오의 안쪽 혐오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읽어 내는 키워드이자 가장 문제적이고 논쟁적인 정서다. `공기 도미노`는 세대, 계층, 젠더에 따른 갈등 상황에서 발생하는 타자 혐오와 자기혐오 등 혐오의 감수성이 촉발되는 현장을 여섯 개의 장을 통해 그린다. 6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각 장마다 초점 인물과 갈등의 주체가 바뀐다. 인물들은 극렬하게 대립하거나 미묘하게 갈등한다. 여느 작품들과 달리 갈등은 개인의 내면에 기미나 흔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표출되고 분출된다.`공기 도미노`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여러 개의 중심을 만드는 소설이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춰지고 드러난다. 타자의 시선에 비춰지는 거울화된 개인이야말로 이 소설의 내적 구조다. 연주는 할머니에 의해, 할머니의 애인에 의해, 할머니의 애인의 며느리에 의해 평가된다. 그녀가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도, 그녀의 남자친구도, 남자친구의 친구도 연주를 평가한다.한편, 타자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 공유하는 비관적인 세계관은 타자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인물들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어떤 성격은 사라지고 어떤 성격은 남는다. 어떤 마음은 부수어지고 어떤 마음은 부순다. 타인과 자아가 부딪치는 타자의 최초, 자아의 최후, 그 연약하고 예민한 바깥은 `공기 도미노`가 발견한 비극의 장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4-21

“우리는 아직 맘껏 푸르르다”

“신록풋풋하고 예쁜 처녀가짙어져만 가네짓은 사내들의 날씨에도새침새침 비껴가네햇살잔치꽃잎은 지고짙은 분을 바른 도시의자욱한 황사 속으로봄, 지나가네" - 조현명 시 `봄이 지나간다`포항지역 문단을 대표하는 시동인 푸른시(회장 김말화)는 최근 열여섯 번째 동인지 `푸른시 2017 제16호`를 출간했다.시동인 푸른시는 지난 1999년 포항문인협회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인 11명으로 결성돼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활발한 창작 활동으로 이미 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동인이다.현재 활동회원은 손창기, 조현명, 김말화, 김성찬, 김동헌, 김선옥, 남정화, 조혜경 등 8명이다.이들은 매월 1회 합평을 통해 창작욕을 다지는 한편 매년 문단의 중견시인을 초청해 시인과 독자가 함께 어울리는 `푸른시인학교`를 열어 왔다.이번에 출간된 `푸른시`제16호에서는 `특집시인`으로 지난해 푸른시인학교 초청시인이었던 전동균 시인의 대표 시를,`지역 초대 시인`에는 울산문인협회 이강하, 정연홍, 박정옥, 신혜경, 한영채, 황지형, 권기만, 엄계옥 시인의 시를 실었다.전동균 시인은 제16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6년 `소설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등을 냈다.`권두시론`으로 이영광 시인의 `막힌 자리에서 오래 머물기-시와 시쓰기에 대한 단상`을 실었는데 시를 쓴다는 것은 침묵 속에 깊이 내려가 마음의 어둠에 명멸하는 빛을 건져 오는 일과 비슷하며, 늘 낯선 더듬거림이거나 뜻밖의 단말마이거나 말이 안 되는 말인 때가 많음을 피력한 글이다.동인 작품으로는 신작시 64편과 최광임 시인(두원공과대 겸임교수)의 해설 `빛과 색과 소리의 말들 혹은 삶의 스펙트럼들`을 실었다.김말화 푸른시 회장은 “`시는 세상의 푸르름이다`라고 선언하며 시작한 17년 전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열정을 불태울 우리는 동해에 서 있는 소나무처럼 아직 맘껏 푸르다”면서 “푸른시가 시와 세상의 아침에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4-21

평화·공존 위한 아시아 인권체제 구축 입론

`아시아 인권공동체를 찾아서: 지역 인권체제의 발전과 전망`(창비)은 오늘날 아시아의 지역통합이라는 흐름을 염두에 두고, 지난 수십년간 변화해온 아시아 인권체제를 규범·기구·이행이라는 세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아시아 전역을 포괄하는 인권체제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치밀하게 타진한다.저자 백태웅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1980년대 이른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옥고를 치렀던 한국 민주화운동의 기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인권법을 연구하는 학자가 돼 현재 유엔인권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인권법학자로서의 역량을 결합해 쌓아올린”(조효제) 저자의 남다른 이력이 세계 여느 지역에 비해 뒤처진 아시아 인권법에 대한 문제의식의 시발점이 됐다.이 책은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23개국(남한·북한·중국·일본·몽골·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버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동티모르·베트남·방글라데시·부탄·인도·몰디브·네팔·파키스탄·스리랑카)을 중심으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이런 의문들에 하나씩 답하면서 아시아 지역 인권체제의 발전을 전망한다.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이 담당할 역할과 위상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 인권체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시아에는 지역 인권체제가 자리 잡지 않아 역내 민주주의·평화·안정·번영에 지장이 있다는 사실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아시아의 이러한 예외적 지체성을 정면으로 다룬다. 아시아에 잠재한 인권체제 현실을 짚어내는 한편, 이것이 가시적으로 발전할 조건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인권법학자로서의 역량을 결합해 쌓아올린 아시아 인권체제 구축이라는 입론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 민중에게 소중한 지적·실천적 자산이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4-21

페미니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눈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은 미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운동가 벨 훅스가 요령부득한 학술용어만 가득한 두껍고 난해한 책이 아닌, 간결하고 명확해서 대충 건너뛰며 읽지 않아도 되는 친절한 페미니즘 입문서를 꿈꾸며 직접 써내려간 책이다. 미국에서 첫 출간 후 20년 넘게 페미니즘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는 페미니즘 분야의 고전이라 할 만한 이 책은, 과거 국내에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출간됐으나 절판됐다. 2015년 미국에서 출간된 개정판을 저본으로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펴내며 원제를 살리고 번역 또한 새로이 했다. 본문 뒤에는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해제를 실었다. 권김현영의 해제는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을 차분히 되짚으며 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이 책이 유효한지 그 의의를 짚어본다.벨 훅스는 페미니스트 하면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 남자를 혐오하는 여자들이라는 편협한 이미지를 곧장 떠올리는 사람들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녀는 특유의 직설적인 문체와 통쾌한 논리로 여성의 몸, 여성에 대한 폭력, 연애와 결혼, 양육, 일터에서의 여성 등 여성의 삶 전반에 걸친 페미니즘 정치와 그 실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보여주면서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혐오운동`이 아닌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기 위한 운동`임을 강조한다. 또한 페미니즘 운동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끔 돕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해방운동임을 보여줌으로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전한다.벨 훅스는 여자라고 무조건 페미니즘 정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며, 가부장제 사회에 사는 그 누구라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닌, 남성중심주의임을 거듭 강조한다. 따라서 그녀는 페미니즘적 각성을 중요하게 본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제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십대 소녀였던 그녀는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한편, 착취나 억압 체계의 피해자가 돼 거기에 저항한다고 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대중매체나 주변 환경, 부모에 의해 성차별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역설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4-21

“피고 지는 꽃떨기로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원로 시인 천양희(75)가 여덟 번째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1965년 등단한 시인은 절실한 언어로 특유의 서정을 노래하며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로 등단 52년을 맞은 시인은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박두진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현실적 절박성에서 비롯한 고통과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절제된 시적 언어로 적어내며 고귀한 삶을 향한 간곡한 열망을 구체화해왔다. 일상어로 담담하게 적힌 시편들에는 시인의 부끄러움과 자책,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비애와 연민 등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어떤 것도 지나치게 격발되지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되는 포용력과 균형감을 발견할 수 있다.천양희 시는 중기로 접어들며 점차 삶과 사람과 자연을 잇는 깊은 통찰이 두드러지는 동시에, 시를 향한 굳은 의지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이번 시집에는 사물들이 서로 겯고틀며 함께 서는 자연의 이치를 발견·체화하며 이 동력으로 절망을 통과해 시로 나아가고자 노력해온 시인의 힘찬 여정을 담은 61편이 묶였다.시집에서는 언어의 유희가 도드라진다. 빛과 어둠, 탁상시계와 탁상공론, 일이 꼬일 때마다 생각나는 새끼 꼬는 사람 등 말놀이가 넘쳐난다. 그러나 시적 모더니즘을 위한 유희가 아니라 삶에서 건져낸 통찰이 그런 말놀이를 가능하게 했다.“전주에 간다는 것이진주에 내렸다독백을 한다는 것이고백을 했다너를 배반하는 건바로 너다너라는 정거장에 나를 부린다” - `저녁의 정거장`부분천양희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외형적 특징은 고전적 형식미다. 시어를 반복하고 중첩하거나 동음이의어 및 유사어를 써서 말맛을 높인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김명인은 이러한 말놀음(pun)이 유희를 넘어서 “고통과 갈등을 여과시켜, 성찰의 순도를 높여가려는 시인의 의도가 비로소 구체화”된 결과임을 지적한다.“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내 音色이 달라졌다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빛이란 걸 알고 난 뒤내 독창이 달라졌다▲ 천양희 시인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나는 골똘해졌네” -`생각이 달라졌다`부분초기 천양희 시에서 한층 더 도드라졌던 젊은 날의 비애가 점차 더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언어에 감싸여 삶의 깨달음으로 진화했다. 이는 막막한 허방을 허우적거리며 고통과 자책으로 웅크렸던 나날들을 견디며 뼈에 새기는 각성을 시에 덧붙여온 천양희 시인만이 다다를 수 있는 삶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희수의 나이에 이르러 시인이 도달한 시적 경지는 그의 삶이 깊어진 정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시인은 이 시집으로 “절망하고 부정하고 수긍하며 엎질러버리는 세월일지라도 피고 지는 꽃떨기로 난만한 봄은 어김없이 찾아”(김명인)온다는 말을 조심스럽고도 분명하게 전해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4-14

한눈으로 보는 비행기 110년 역사

`비행기 대백과사전(The Aircraft Book: The Definitive Visual History·사이언스북스)`은 인류 역사에 날개를 달아 준 비행기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DK 대백과사전 시리즈의 최신작이자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도감형 비행기 대백과로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항공 우주 박물관과의 협력 작업의 결실이기도 하다. `비행기 대백과사전`은 하늘을 탐험하고자 하는 인류의 열망을 선보인다.1783년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여정은 1903년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호 이후 F-22와 활공 로켓에 이르기까지 850대 비행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비행의 역사를 따라간다.시대의 아이콘격인 비행기들이 연대순으로 나열된 이 책에서는 각 비행기의 최고 속도와 엔진 사양 등의 제원, 제작 비화, 근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또한 그중에서도 엄선한 비행기를 심층 분석하는 페이지가 마련돼 있다. 샛노란 경비행기 파이퍼 J-3 컵, 슈퍼마린 스피트파이어, F-86 세이버, 콩코드 등 14가지 비행기의 내장 및 외장, 조종석의 상세 사진과 설명이 펼쳐지는 것이다. 동시에 아름답고 부르너-윙클 버드 모델 A-T `비행기` 51쪽에서 정교한 비행기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비행의 원리와 전문 용어 정보를 아울러 접할 수 있다. 드 하빌랜드 집시 1, 프랫앤휘트니 R-1830 트윈 와스프, 롤스로이스 페가수스 등 거대한 비행기를 공중으로 띄우는 강력한 엔진의 내부도 살펴볼 수 있다.`위대한 항공기 제조사` 10곳을 심층 분석한 이 책의 페이지들은 비행기 발달사의 산 증인인 포커, 세스나, 보잉, 에어버스, 록히드 등 쟁쟁한 항공 회사들의 연혁과 대표적인 걸작의 탄생 비화를 들려준다.전 세계 각지의 항공우주박물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색인항목만 1천500개에 달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7-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