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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항국제음악제’가 남긴 성과와 숙제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열린 ‘2025 포항국제음악제’가 관객 동원에 성공하는 등 성과가 좋았다. 행사를 주관한 포항문화재단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행사 구성과 운영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잇따르는 등 비판도 만만치 않다. 건물 공사 등 사유로 인해 당초 개최 예정지인 포항문화예술회관이 아닌 포항시청 대잠홀 등 시내 여러 공간에서 분산 개최된 것부터 아쉬움을 남겼다는 뒷얘기다. △포항문화재단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 접근성 개선” 포항문화재단 측은 이번 공연 성과와 관련해 “포항문화예술회관 공사 관계로 부득이하게 분산 개최를 결정했다”며 “효자아트홀, 대잠홀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을 열어 오히려 접근성이 개선됐다”고 자평했다. 이어 “이번 포항국제음악제는 하겐 콰르텟, 소프라노 황수미와 바리톤 사무엘 윤의 듀오 무대,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포항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황제’ 협연 등 세계적 연주자들이 참여한 메인 콘서트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포항 시민뿐 아니라 전국 관객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공연 시간 편중과 장기 일정에 피로감 호소” 7일간의 일정 중 총 14회의 공연이 진행됐으나, 대부분의 공연이 오전 11시와 저녁 7시에 집중된 점이 논란거리가 됐다. 특히 독주회 2회가 평일 오전에 배치되면서 직장인과 학생의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역 주민 A씨는 “낮 공연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일정에 피로감이 쌓였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실내악 중심 구성에 대중성 부족···지역 연계 미흡” 이번 축제의 메인 프로그램은 총 7회로 구성됐으며 관현악 2회, 실내악 3회, 실내악+독주 1회, 성악 1회로 구성됐다. 당초 ‘실내악 축제’를 내세웠으나, 순수 실내악단 공연 비중은 전체의 약 42.8%에 그쳐 예고와 차이를 보였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 대중에게 익숙한 레퍼토리가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음악평론가 B 씨는 “일부 해외 유명 연주자를 초청했으나, 말러 등 난해하다고 여겨지든 곡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 음악계 관계자들은 축제의 지역 연계 부족을 비판하기도 했다. 포항문화재단 측이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한 실내악 중심의 축제로 포항 전역에 음악적 울림을 전했다”라고 했다는 자평과는 다른 반응이 나온다. 지역 음악가 C 씨는 “초청된 연주자들이 단순히 ‘그들만의 잔치’에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개막 공연에서 윤한결 작곡가의 창작곡 ‘별신굿’이 세계 초연되며 지역 전통문화를 접목한 시도에 대해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역민이 공감하기 어려운 난해한 곡들로 연주자 중심의 축제라는 인상을 남겼고 또한 포항 연주자들의 참여가 미미해 지역 연계 측면에서도 부정적 비평을 남겼다.   △“7억여 원 예산 논란···국제적 요소도 미흡” 이번 행사에 투입된 예산은 7억6000만 원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부에서는 “객원 연주자 초청 비용이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비판을 앞세워 예산 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세계적인 현악 사중주단 하겐 콰르텟의 출연이 지역 축제의 정체성과 예산 대비 효과에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음악계 관계자는 “하겐 콰르텟의 공연은 주목받았지만, 다른 국제적 협업이 부재해 ‘글로벌 음악제’로서의 입지가 약화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역 음악가 D씨는 포항국제음악제가 실내악 중심으로 기획됐음에도 불구하고 개막공연에 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별도로 구성해 운영한 점을 지적했다. D씨는 “포항시립교향악단이 이미 폐막일인 13일에 공연을 예정하고 있음에도 불필요한 오케스트라를 임시로 조직해 예산을 낭비한 것 아니냐”며 “지역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채 외부에 의존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 “관객 수요 분석과 예산 투명성 강화해야” 지역 문화예술계는 대안과 관련해 “외부 관객 유치를 위해 저녁 시간대 독창회 확대나 대중적 작곡가의 작품 편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번 음악제는 모든 공연이 무료로 진행되어 객석이 채워지며 지역 문화 활성화의 가능성을 보였으나, 관객 수요 분석과 예산 편성의 합리성 제고가 향후 과제로 남았다”고 평가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3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 모두가 기쁨의 시간 되시길”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라우다떼합창단(단장 박영동)이 24일 오후 7시 30분 포항효자아트홀에서 제18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한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Exultate Deo!(엑술따떼 데오·하느님을 기쁘게 찬양하라)’로, 대림절을 앞두고 신앙적 기쁨과 사회적 나눔을 음악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2006년 창단된 라우다떼합창단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에 소속된 포항지역 가톨릭 신자들로 이뤄진 남녀 혼성 45명의 합창단이다. 올해 새로 부임한 지휘자 구은희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콘체르토학과 외래교수)의 지휘 아래, 종교 음악부터 클래식, 대중 가곡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로 관객과 소통한다. 공연은 그레고리오 성가 ‘하늘은 이슬비처럼(Rorate caeli)’으로 문을 연다. 이어 르네상스 시대 팔레스트리나, 바로크 스카를라티, 현대 작곡가 수산토 요하네스의 성악 작품을 엮은 ‘엑술따떼 데오!(Exultate Deo!)’를 통해 시대별 음악적 여정을 선사한다.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게(An die Musik)’, ‘세레나데(Ständchen)’, ‘송어(Die Forelle)’ 3곡과 함께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로시니의 유쾌한 이중창 ‘두 고양이의 익살스러운 듀엣(Duetto buffo di due gatti)’,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Do-Re-Mi Song)’ 등이 연주되며 다채로운 무대를 꾸민다. 특히 이번 공연은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희망의 노래’를 부제로 내걸었다. 포항 지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무대에 올라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아픔과 신앙 속 희망을 음악으로 조명한다. 이와 함께 루멘청소년합창단이 협연해 ‘진달래꽃’, ‘별 캐는 밤’, ‘이른 아침 안개같이’ 등 한국 가곡으로 순수한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최재영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교구장대리)는 “이번 연주회는 ‘엑술따떼 데오!’라는 기쁨의 노래가 대림절 영성과 어우러지는 자리”라며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순간을 통해 모두가 기쁨의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영동 단장은 “음악은 마음의 다리가 되어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로 잇는다”며 “신앙적 찬미와 사회적 화합을 전하는 무대가 지속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3

[EBS 세계의 명화] ‘비포 선셋’ 22일(토) 밤 10시 45분

EBS ‘세계의 명화’가 오는 22일 밤 10시 45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셋(2004)을 방영한다. 지난주 방송된 비포 선라이즈에 이은 ‘비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시간의 무게를 안고 다시 만난 두 남녀의 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秀作)이다. 영화는 파리의 작은 서점에서 시작된다. 9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단 하루를 함께 보낸 제시(에단 호크)는 여행기를 홍보하기 위해 유럽을 돌던 중, 그곳에서 뜻밖에도 셀린(줄리 델피)을 다시 만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시선에는 여전히 젊은 날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제시의 비행기가 떠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80분. 영화는 실제 러닝타임과 극 중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실시간 구성’으로, 두 인물이 파리의 골목과 카페, 센강변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를 생생하게 따라간다. (마치 로드 무비를 보는 것 같은...) 전작(前作)이 우연과 설렘, 청춘의 낭만을 이야기했다면 비포 선셋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뒤의 현실을 응시한다. 두 사람은 그간의 삶, 관계, 후회, 선택의 결과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상을 좇던 청춘의 감정은 어느새 삶의 무게와 책임 속에서 흔들리고, 서로의 마음속에 남겨진 자리 또한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으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화는, 그들이 여전히 서로에게 깊은 감정적 울림을 남기고 있음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두 번째 기회’와 시간이 가져오는 잔인한 변화다. 영화 속에서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기억과 후회, 그리고 가능성으로 남아 삶을 흔드는 어떤 힘으로 묘사된다. 링클레이터 감독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철학적인 대화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삶은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던진다. 감독은 결말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열린 여운을 남기며, 사랑의 지속성과 관계의 본질을 스스로 되묻게 한다. 이번 방송은 지난주 선보인 ‘비포 선라이즈’와 함께 감상할 때 더 깊은 의미를 전한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젊은 남녀가 하루 동안 비엔나에서 보냈던 첫 만남의 설렘은, 9년이 지나 파리에서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의 성숙하고 복잡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두 작품을 나란히 비교해서 감상한다면, 사랑이 시간을 지나며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떻게 남는지를 더욱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포 선셋은 2013년작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어지는 ‘비포 3부작’의 중간 장.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 깊어지는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는, 성숙한 로맨스의 정점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1-22

‘신성일 기념관’ 반세기 청춘의 얼굴과 마주하다

충무로의 전설이자 한 시대의 청춘을 상징했던 배우 신성일의 기념관이 21일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 문을 열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채운 그의 얼굴이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장면처럼 펼쳐졌다. 흑백 사진 속 날렵한 눈빛, 1970년대 포스터에서 드러난 청춘의 활력, 말년의 단단한 미소가 이어지는 전시 앞에서 관람객들은 저마다 발걸음을 늦추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신성일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온몸으로 견딘 배우였다. 멜로드라마에서는 낭만적인 청춘으로, 액션영화에서는 강인한 남성으로, 시대극에서는 지성과 품격을 갖춘 인물로 관객을 만났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반세기 동안 남긴 538편의 필모그래피는 영화만을 향해 나아간 한 인간의 치열한 발자취였다. 이번에 개관한 기념관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던 신성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1층 ‘뉴스타리움’에서는 스타의 상징성과 영화사적 유산을 모티프로 제작된 실감 영상과 미디어아트가 연속적으로 상영됐다. 2층 상설전시관 1부 ‘별의 찬란’에는 그의 58년 영화 인생을 압축한 디지털 아카이브 월과 실제 서재가 재현돼 있다. 작품 목록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정리된 아트월 앞에서 관람객들은 각자 기억 속 작품을 떠올리며 발길을 멈췄다. 바로 옆 ‘신성일의 서재’에는 배우가 아닌 ‘인간 신성일’의 고요한 내면을 보여주는 책과 포스터, 손때 묻은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영화 포스터를 전시한 곳에서 만난 김혜옥 씨(70·영천시 채신동)는 “연기도 잘하고 잘생기고 멋있어서 신성일 팬이었다. 독보적인 스타였다”며 “예전에 데이트하러 가서 본 ‘맨발의 청춘’ 포스터를 다시 보니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2부 ‘스타스토리지’는 그가 생애 동안 받은 각종 트로피와 상패, 결혼 당시의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스타이자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다. 3부 ‘성일 시네마’에서는 배우에서 감독·제작자로 확장된 그의 예술적 여정을 정리해 한국 영화가 성장해온 과정과 신성일의 역할을 함께 조망할 수 있었다. 시민이 참여하는 체험형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다시 맨발의 청춘’ 체험존에서는 영화 속 음악다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세트에서 직접 연기를 하거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시상식 레드카펫을 연출한 ‘뉴스타 페스티벌’ 포토존에서는 360도 촬영 체험이 가능하며, 마지막 공간 ‘별을 회고하다’에서는 AR 디지털 방명록에 기념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신성일 기념관은 5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빛낸 신성일의 예술과 삶을 보존하고자 그가 생전에 살던 영천시 괴연동 9946㎡ 부지에 건립됐다. 이날 개관식에는 이만희 국회의원, 최기문 영천시장, 김선태 영천시의장, 이춘우·윤승호 경북도의원 등 주요 인사와 김동호·정지영 공동고문,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김병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등 영화계 원로들이 참석했다. 유가족 대표로는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와 신성일의 아들인 강석현 씨가 함께 했다. 배우 엄앵란 씨는 축하 영상을 보냈다. 개관식 현장에는 오랜 세월 신성일을 기억해온 팬들도 눈에 띄었다. 변인자 씨(81·영천 중앙동)는 “영화배우일 때도 멋있었지만 영천에 와서도 멋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영화배우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며 “집 근처에 기념관이 들어서서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유가족 대표인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는 "작은아버님은 이곳에 문화·영화 예술의 성지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늘 이야기하셨다”며 “오늘 그 뜻이 결실을 맺게 돼 감회가 깊다. 기념관이 영천의 문화 발전에도 기여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5-11-21

‘제30회 포항MBC·삼일문화대상’ 대상에 구자현 내집에서의원 원장

포항·경주·영덕·울진 지역 각 분야의 숨은 일꾼을 발굴하는 ‘제30회 포항MBC 삼일문화대상’ 대상 수상자에 구자현씨(포항 내집에서의원 원장)가 선정됐다. 포항MBC와 삼일가족은 억대 연봉의 종합병원장 자리를 포기하고 지난해 5월 장애인과 거동불편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방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집에서 의원’을 설립해 현재 매월 200명의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하고 있는 구자현씨(57·포항시 북구 우창동·외과 전문의)를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또 본상에는 사회봉사 부문 최주화씨(전국소기업총연합 경북포항시지부 회장)를 비롯해 문화예술 부문 최경춘(서예가·유오재서예연구소장), 환경 부문 장은재(이학박사), 교육 부문 이관(동국대 의과대학 학장)씨 등 4명이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경상북도맨발걷기협회와 독도평화호&독도안전요원, 포항YMCA가 각각 특별상을 수상하게 됐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이, 본상 400만 원,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각각 2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3일 오후 6시 30분 포스코 효자아트홀에서 개최되며 12월 중으로 포항MBC에서 방송된다. 포항MBC·삼일문화대상은 향토기업인 삼일가족과 포항MBC가 지역 사회 각 부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 준 개인과 단체에게 시상한다. 지난 1996년 제정된 이후 올해로 30회째를 맞으며 지역 최고 문화상으로서의 전통과 권위를 이어가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0

후회하면서 또 같은 실수···뇌의 작동원리는?

인간은 왜 후회할 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에 빠지거나, 과거의 부끄러움은 선명히 기억하면서도 눈앞의 열쇠 위치는 잊어버리는 모순적인 순간들. 사랑에 빠져 집착하거나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심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최근 출간된 책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알에이치코리아)은 이러한 인간 행동의 미스터리를 신경과학으로 해부하며, 뇌가 만들어내는 감정과 선택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연구해 온 저자 로봇공학자 호르헤 챔과 신경과학자 드웨인 고드윈은 분노, 혐오, 자유의지 등 11가지 주제를 통해 뇌의 작동 원리를 분석한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분노와 혐오의 생물학적 기반이다. 인간의 분노는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위협 상황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이 편도체를 자극해 전두엽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이로 인해 ‘투쟁-도피 반응’이 활성화되며, 평소라면 자제했을 공격적 행동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분노 상태에서 내뱉은 말은 편도체의 명령이지 전두엽의 판단이 아니다”라며 “충동적 행동이 반복될수록 뇌의 보상 체계가 강화돼 분노가 습관화된다”고 경고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혐오가 중독성 강한 쾌락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실험쥐 연구에서 다른 개체를 공격할 때마다 복측피개영역(VTA)이 활성화되며 도파민이 분비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인간 사회에서도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타인종을 배제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증언한 사례는 혐오가 사회적 우월감과 결합해 뇌에 보상 신호를 생성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저자들은 혐오가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진화적 산물이었지만, 현재는 집단 갈등을 증폭시키는 독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SNS 중독처럼 분노와 혐오도 반복될수록 뇌에 각인되어 쉽게 폭발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전두엽 기능 강화 훈련(분노 조절 장애 치료)이나 교육으로 편도체 과잉 반응 억제(혐오 발언 방지) 등을 제시한다. 이 책은 뇌과학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자기 성찰의 도구로 제안한다. 예를 들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편도체가 활성화됐다”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동을 제어할 첫걸음이 된다. 뇌과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20만 명이 넘는 수강생을 보유한 과학 멘토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엑소쌤(이선호)은 “이 책을 읽고 나면 뇌의 구조와 기본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 향상법, 행복한 삶에 이르는 비결 등 일상을 윤택하게 해주는 실용적인 지식도 얻을 수 있다”면서 “사랑, 행복, 죽음과 같은 주제를 깊이 탐구하다 보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자신을 이해하고, 성찰하며, 더 나은 변화를 모색하도록 이끄는 여정으로 안내해줄 것”이라고 평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0

세계 ‘최고령 저자’, 철학적 사색 한층 깊게 풀어내

105세의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신간 ‘김형석, 백년의 유산’(21세기북스)을 펴냈다. 지난해 9월, 103세 251일의 나이로 기네스 세계 기록 ‘최고령 저자’로 공식 인증받은 김 교수는 이번 책으로 평생 탐구해온 철학적 사색을 한층 깊게 풀어냈다. 책은 1부에서 105년의 인생을 통해 체득한 통찰을, 2부에서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철학자의 시각으로 진단하며, 3부에서는 다음 세대를 향한 진솔한 조언을 담았다. 특히 그는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성숙이 인간다운 삶의 완성”이라며 휴머니즘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김 교수는 “돈이나 명예가 아닌 감사와 사랑을 남기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라고 강조하며, “정치·종교·교육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던 그는 어머니의 “스무 살까지만이라도 살아달라”는 기도 속에서 생의 의지를 다졌고, 그 결실은 100세를 넘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증명되고 있다. 건강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일은 건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건강 자체가 일을 위한 도구여야 한다”며 ‘정서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또한 “남을 헐뜯지 않고 분노를 다스리는 것”을 장수의 비결로 전하며, 100세를 넘긴 친구 7명의 공통점을 예로 들었다. 최근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에 대해 “희망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당부한 그는,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와 타르코프스키 영화 ‘희생’(핵전쟁 앞에서도 나무를 심는 의지)을 언급하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미래를 위한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청년 세대를 향해서는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아닌 사랑에서 온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최근 고등학생 대상 강연에서 “연애는 스무 살 넘어서 해야 한다”는 유머러스한 조언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소통할 때마다 젊어지는 기분”이라며 젊은 층과의 교류를 건강 유지법으로 꼽았다. 이번 신간 ‘백년의 유산’은 50대를 대상으로 쓴 전작 ‘백년의 지혜’보다 더 젊은 독자를 겨냥해 집필됐다. “출판사 측에서 30대 독자들도 내 책을 읽는다고 알려줬다. 좀 더 쓸 수 있으면 써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자유가 보장된 사회가 결국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다만 “자유 방임이 아닌 경제적 평등과 빈곤 퇴치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K-컬처의 시대에도 국가 운영은 인간애에 기반해야 한다”며 정치권의 각성을 요구했다. 김 교수는 “죽음은 삶의 완성이자 새로운 시작”이며, “고독은 깊은 사유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사랑·양심·자유·감사는 단순한 덕목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끝으로 그는 “후배와 제자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며 “교육이야말로 희망의 씨앗”이라 강조했다. “휴머니즘이 모든 물질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는 그의 철학은, 효율과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대의 선언문으로 남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0

지난 100여 년간 전 세계 연구소가 과학 발전과 국가 운명에 미친 영향

신간 ‘연구소의 승리’(계단)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전 세계 연구소가 과학 발전과 국가 운명에 미친 영향을 추적하며, 연구소가 단순한 실험실 집합이 아닌 국가 전략의 핵심 제도로 자리 잡은 과정을 조명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에 근무하는 과학자인 저자 배대웅씨는 연구소가 국가가 직면한 약점을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적 장치이자 제도적 발명품이라 설명한다. 독일은 1887년 정밀 측정과 기술 표준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제국물리기술연구소를 설립했고, 일본은 1910년대 서구 모방을 벗어나기 위해 국민과학연구소를 만들었다. 한국도 1959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설립을 통해 국가 R&D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1966년 설립 이후 해외 기술을 국내 산업에 접목해 중화학공업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는 한국의 산업화 전략을 체계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또한 현대 연구소는 국가 단위를 넘어 글로벌 협력의 장으로 진화했다. 팬데믹 시기 백신 개발 속도 향상, 우주 탐사 공동 프로젝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데이터 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연구소가 기술적 성과를 넘어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한다고 강조합니다. 지역 간 경쟁, 정치적 논란 속에서도 연구소가 장기적 혁신의 출발점임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입증하며, 과학기술뿐 아니라 제도·정치·경제적 선택이 결합될 때 새로운 경로가 열린다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0

천년을 넘는 운명적 사랑 ‘별아 내 가슴에’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이하 진흥원)은 경북도·청도군과 함께 제작한 웹툰 ‘별아 내 가슴에’를 20일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전편 공개했다. 이번 작품은 청도군의 역사적·문화적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로 지역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별아 내 가슴에’는 청도 유천문화거리 축제와 보양이목 설화를 모티브로 삼아 천 년의 시간을 초월한 두 남녀의 운명적 사랑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 웹툰이다. 총 5화로 구성된 스토리에는 유천극장, 영신정미소, 구생당약방 등 실제 청도 유천문화마을의 명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해 독자들이 지역의 정취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스토리 작업은 판타지 로맨스 장르에서 활약 중인 이이영 작가가 맡았으며, 작화는 수하 작가가 맡았다. 이 작가는 “유천문화마을이 1960년대 풍경을 간직한 배경을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했다”며 “골목과 건축물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웹툰 속에 녹여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수하 작가는 특유의 부드러운 선과 감각적인 색채로 시대적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종수 콘텐츠진흥원장은 “이번 웹툰이 유천문화거리의 역사적 가치와 공간적 매력을 널리 알리고, 지역 방문객 유치로 이어지는 문화관광효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20

코믹연극 ‘오백에 삼십’ 10주년 맞아 대구서 특별 공연

청년들의 웃픈(웃기고 슬픈) 월세 인생을 그린 연극 ‘오백에 삼십’이 올해로 10돌을 맞아 다시 동성로 무대를 찾는다. 아트플러스씨어터는 코믹연극 ‘오백에 삼십’이 10주년을 맞아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구 동성로 에서 특별 공연으로 관객들을 찾아간다고 밝혔다. 2015년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청년 주거 현실을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담아내며 전국을 순회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가난은 숙명인가’라는 메시지를 축으로, 청년 세대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일상의 무게를 코믹하게 풀어내 관객의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이끌었다. “지속 가능한 명품 연극”이라는 평가와 함께 장기 흥행을 이어온 이유다. 무대는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0만 원의 이른바 ‘돼지빌라’. 떡볶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허덕, 베트남에서 시집 온 흐엉마이, 고시생 배변, 야간업소 종사자 미스조, 폐지를 줍는 할머니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해 우리 주변의 현실적 삶을 따뜻하고도 촘촘하게 그려낸다. 주식회사 아트플러스 홍재임 대표는 “월세 문제를 둘러싼 주인아줌마와 세입자들의 갈등이 고조되며 전개되는 스토리는 웃음 속에서도 씁쓸한 현실을 환기시키며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관람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해 서울 공연을 관람한 직장인 김모 씨(32)는 “너무 웃겨서 공연 내내 배를 잡고 봤는데, 막판엔 눈물이 날 정도로 뭉클했다”며 “요즘 청년들의 현실을 이렇게 재밌게 풀어낸 작품은 드물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 이모 씨(27)는 “극 중 인물 하나하나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같아 더 몰입됐다”며 “10년째 사랑받는 이유를 알겠다”고 평가했다.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6시, 일요일 및 공휴일 오후 2시·5시이며 관람 연령은 14세 이상. 티켓 가격은 정가 5만 원이며, 평일에 한해 SNS 팔로우 할인(2만 원), 직장인 할인(2만2000원), 학생 할인(2만1000원)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 예매는 인터파크, 네이버, 티켓링크 등에서 가능하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1-19

교육극단 나무테랑, 포럼연극 ‘그들의 기억법’ 선보인다

교육극단 나무테랑(대표 이융희)이 다음 달 3일부터 7일까지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에서 포럼연극 ‘그들의 기억법’을 무대에 올린다. 이번 작품은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레퍼토리 공연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연출과 대본은 나무테랑 대표 이융희(49)가 맡았다. 배우 김민선, 김태영, 진여경, 김지원, 김용욱 등이 출연한다. ‘그들의 기억법’은 사랑의 본질과 인간관계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SNS 중심의 소통 문화가 강화되면서, 사람들 간의 공감 능력이 약화되고 관계가 쉽게 왜곡되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작품은 엄마와 딸의 갈등이라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소재로 시작해, 가족 내의 정서적 결핍이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는 구조를 통해 관객들에게 ‘현대인의 행복’과 ‘관계의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포럼연극 형식으로 구성된 점도 특징이다. 공연 중간과 종료 후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대화와 토론이 이어지며,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극의 메시지를 완성한다. 딸은 어린 시절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확신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지만, 현실적 문제 앞에서 사랑의 방식이 엇갈리는 엄마와는 좀처럼 교차점을 찾지 못한다. 이러한 갈등은 점점 미궁으로 깊어지며 스릴 넘치는 상황을 연출한다. 나무테랑 이융희 대표는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자기 안의 감정과 마주하고, 상처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기를 바란다”며 “배우들의 팽팽한 긴장감과 밀도 높은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릴 것” 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나무테랑이 주최·주관하며 대구광역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입장료는 전석 2만 원이며, 청소년·장애인·단체 관객은 1만 원으로 할인된다. 평일은 오후 7시 30분, 주말 및 공휴일은 오후 3시와 6시에 각각 공연한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1-18

한국의 고유한 정서 품은 詩 영어로 풀어 세계에 전하다

포항 출신의 영문학 박사이자 시인인 여국현 씨가 한국 현대 서정시인 36인의 작품 72편을 영어로 번역한 시집 ‘Contemporary Korean Lyric Poems’(우리시움)을 출간했다. 신장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도 번역 작업을 이어온 여 시인의 이번 시집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5 장애예술인 창작 지원사업’ 후원으로 제작됐다. 시집에는 고두현, 김명리, 나종영, 서숙희, 이송희 등 한국 문학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인들의 대표작이 한글 원문과 함께 영어 번역본으로 수록됐다. 2022년 3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웹 매거진 ‘시인뉴스포엠’에 연재된 번역 작품들을 재구성했으며, 일상 속 삶의 의미를 탐구하거나 생태적 상상력, 사회적 상실감 등을 주제로 한 시들이 주를 이룬다. 고두현의 ‘늦게 온 소포’와 김완의 ‘문의 상대성’은 사소한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시적 시선을 보여주며, 권지영의 ‘세월호 아이들을 그리며’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맹문재의 ‘사북 골목에서’는 산업화의 그늘을 담아낸다. 계절의 순환을 인간적 감정으로 연결한 김정원의 ‘낙화’나 홍해리의 ‘가을 들녘에 서서’도 주목된다. ‘가을 둘녘에 서서’는 전통 서정의 면모를 담고있는 반면, 서숙희, 이송희 두 시조시인의 시는 한국 현대시조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국현 시인은 “모든 작품이 감각적 이미지와 정서적 깊이를 중시한다”며 “순간의 정경을 섬세하게 포착한 정한용의 ‘툭, 잎이 지고’나 개인적 추억과 사회적 현상을 교차시킨 김희정의 ‘귀가’ 등에서 한국 시 특유의 미학적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 시인은 중앙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8년 ‘푸른사상’으로 등단하며 본격적으로 시와 번역 작업을 병행해왔다. 그동안 박인환, 임보, 박소원 등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데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 프로젝트다. 그는 “번역과정에서 한국어의 결과 맛을 살리면서 영어권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번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빍혔다. 특히 이번 시집은 K-컬처 열풍 속에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문학평론가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역량 한계로 민간 개인의 노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여국현 시인의 작업은 매우 소중하다”며 “한글과 영어본을 비교하며 읽다 보면 현대 한국 시문학의 뼈대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국현 시인은 이번 작업이 단순한 번역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록 시는 개인적 선호로 선정했으나, 현재 활동 중인 시인들의 대표작을 수록해 현대 한국 서정시의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시집이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시의 매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머지않아 나올 다섯 번째 영역시집을 포함해 앞으로도 한국시의 고유한 정서를 세계에 전하기 위해 번역과 창작에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국현 시인은 중앙대와 방송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 오후 4시에 방송되는 포항 KBS 1 라디오에서 ‘10분 인문학’을, 워싱턴의 한인방송국인 ‘라디오한국’에서 매주 일요일(한국시간) 오전 11시 ‘여국현 시인의 인문학 산책’도 진행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8

“포항지역 사진예술 독창성 이끌 신진 찾아요.”

갤러리 포항(관장 손진국)은 2026년 2월 개관 4주년을 맞아, 지역 사진 예술의 독창성을 이끌어갈 신진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한다. 이번 공모는 포항 사진의 고유한 작가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공모는 포항 지역 기반의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특히 포항에서 활동하는 만 50세 이하 청년 예술가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갤러리 포항은 이번 공모전이 단순한 전시 기회를 넘어 “포항 사진예술의 정체성을 재정의할 기회” 라고 강조했다. 이번 공모를 주최하는 사진연구 모임 공간너머 최흥태 총괄기획자는 “포항은 산업도시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 속에 숨은 자연경관과 인간 군상의 서사를 담은 사진 작품이 많다”며 “신진작가들이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공모를 통해 선발된 2인(또는 팀)이내에게는 총 100만원의 창작지원금과 함께 갤러리 포항에서의 초대전 기회가 주어진다. 특히 전시 홍보물 제작부터 온라인 홍보, 전시 대관료까지 전 과정이 지원된다. 초대전은 2026년 2월 2~3주 간 갤러리포항에서 개관 4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전시한다. 공모전은 포항에서 활동하는 만 50세 이하 예술가로 자격을 제한했다. 다만 학생 신분이라도 포항 출신이라면 지원 가능하며, 타 지역 거주자라도 최근 3년 내 포항에서 전시 경험이 있다면 응모할 수 있다. 팀 단위 지원 시 최대 2인까지 구성할 수 있으며, 팀원 모두 포항 출신이어야 한다. 갤러리 포항은 이번 공모전이 지역 예술계의 ‘세대 전환’ 을 이끌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 3년간 갤러리 포항이 지원한 신진작가 12명은 현재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일부는 포항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응모 방법은 1차, 메일(artph1@daum.net), 2차 포트폴리오 15점으로 갤러리포항에서 직접(10분 이내) 발표한다. 1차 참여자에게는 12월 20일 2차 선정 여부를 통보하며 12월 말에 포트폴리오 리뷰를 통보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8

내방가사로 떠나는 근현대 여행

안동에 위치한 국학자료 연구·보존 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하 진흥원)은 근·현대 시기에 창작된 장편 기행가사 다섯 편을 현대어로 번역한 책 ‘어와 벗님네야 구경가자’를 발간했다. 이번 출간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내방가사를 현대어로 번역해 단행본으로 발간한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책에는 여성들의 여행 경험을 가사 형식으로 기록한 ‘청량산유산록’, ‘관해록’, ‘종반송별(송별답가)’, ‘관해가’ 등 총 5편의 내방가사가 수록됐다. 원문의 운율과 정서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어 번역을 적용했으며, QR코드를 통해 디지털 원문도 함께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학술적 활용을 위해 원문 교주본과 영인도 부록으로 수록했다. 20세기 들어 여성들이 ‘내방’을 넘어 세상과 교류하며 남긴 기록인 내방가사는 당시 사회의 제약 속에서도 여성들이 경험한 자연, 도시, 문물 등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경북 지역 여성들은 봉화 청량산의 절경부터 경성, 인천, 포항 등 근대 도시 경관과 신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노래했다. 이는 한글이 널리 보급되기 전 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감정을 주체적으로 기록한 문학 장르이자,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는다. 김순석 진흥원 인문융합본부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책은 내방가사의 가치를 현대에 재조명하는 계기”라며 “앞으로도 한글 고전문학의 현대어 번역을 지속해 누구나 쉽게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8

곽명희 개인전 ‘404: Connection Lost’ 24일부터 토마갤러리

곽명희 작가의 개인전 ‘404: Connection Lost’가 오는 24일부터 12월 3일까지 대구 토마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는 현대 사회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감정이 흐르는 방식을 관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곽 작가는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이른바 ‘육각형 이론’을 참조해 개인의 성향·능력·조건을 조합적으로 구성해내는 현대적 관계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이는 완전함의 기준을 비판하기보다는, 사회가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어떤 상상력을 불러오는지 탐구하는 관찰의 틀로 기능한다. 작품은 합판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조형적 행위에 기반하며, 여기에 2D RPG 게임 그래픽의 구조와 화면 구성 방식을 적용해 현실 공간을 마치 게임 맵처럼 분절하고 재배치한다. 사회가 설정한 관계의 조건을 ‘게임적 시점’에서 해체·변주(變奏)하려는 시도로, 한지 위로 번지는 먹과 물감의 흔적은 감정의 미세한 흔들림을 드러내며 물질성과 감정의 겹침을 장면화한다. 전시 제목 ‘404: Connection Lost’는 네트워크 오류 메시지에서 차용한 것으로, 연결의 단절을 부정적 사건이 아닌 새로운 관계적 가능성이 열리는 전환의 순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찰나를 2D RPG의 ‘정지된 장면’처럼 포착해 시각적 서사로 확장하며 관람자가 관계의 조건을 다시 감지(感知)하도록 이끈다. 작가는 “관객은 완전함과 불완전함이 교차하는 감정적 구조를 거닐듯 체험하게 된다”며 “제도화된 사랑의 틀을 비튼다기보다, 현대 사회에서 ‘조건이 있는 사랑’과 ‘거래형 관계’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풍경을 탐색하며 관계의 새로운 상상 가능성을 제시한다”며 전시회 취지를 설명했다. 곽명희 작가는 경북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수료했다. 2023년 어울아트센터와 대구아트웨이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봉산문화회관·EXCO·갤러리사이 등에서 여러 기획·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개인 전시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1-17

피아니스트 서주희의 깊어진 성숙과 음악 세계로 초대

섬세한 해석과 단단한 음악적 개성을 갖춘 피아니스트 서주희가 오는 21일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국내외 무대를 넘나들며 솔리스트·실내악 주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그는 이번 공연에서 바로크 이후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통해 자신만의 해석을 선보일 예정이다. 독일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그를 두고 “매우 음악적이며 응집력 있고 에너지 넘치는 개성 있는 연주”라고 평했고, 피아니스트 알프레도 페를은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음악적 지성, 성숙미를 갖춘 예술가”라고 호평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 전문연주자과정과 데트몰트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거친 그는 ARD 국제콩쿠르 본선 진출, 데트몰트 리스트 국제콩쿠르 2위 등 유럽 주요 무대에서 주목받아왔다. 귀국 후에도 그의 행보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독주회, 대구음악제, KBS-FM 실황 연주, 야나첵 현악 4중주단과의 협연 등 다양한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어내고 있다. 2016년부터는 대구청년클래식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지역 음악계 저변 확대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이화여대·경북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파르트의 Variations for the healing of Arinushka로 문을 연다. 이어 베토벤 소나타 ‘열정(Appassionata)’로 고전적 긴장미를 드러낸다. 휴식 후에는 지역 작곡가 이철우의 독주곡 ‘내 안의 아름다운 세상’ 중 ‘위대한 신의 선물’ 네 악장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마지막은 슈만의 Fantasie Op.17로 장대한 감정의 흐름을 완성한다. 공연은 오후 7시 30분. 전석 2만 원이며 예매는 티켓링크에서 가능하다. 주최는 뮤직플러스, 후원은 이화여대 음악대학 동창회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데트몰트 국립음대가 맡았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1-17

“가볍게 보며 웃을 수 있는 가족이야기”

포항의 김순희(57) 수필가의 세 번째 수필집 ‘수니일긔’(태백사)가 출간됐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써온 일기에서 비롯된 수필들이다.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신문 연재와 저술 활동까지 이어진 그의 글쓰기 원천은 바로 ‘일기’였다. 종이 일기를 2005년부터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 썼고 2012년 아이패드를 구입한 뒤로는 카카오스토리, 밴드, 인스타그램까지 확장됐다. 그렇게 20년간 쌓인 방대한 기록 중 2017년까지의 에피소드를 추려 이번 책에 담았다. 김 작가는 이번 책을 “가족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친척이나 친구들도 가끔 등장하죠. 화장실이나 소파 옆에서 가볍게 펼쳐보며 한 번쯤 웃을 수 있는 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소개한다. 책 표지는 고흐의 ‘아몬드 꽃이 피는 나무’다. 많은 이들이 하늘색 배경의 그림만 알고 있지만, 고흐는 붉은 바탕의 그림도 그렸다. 김 작가는 오래전 고흐에 대해 글을 읽다가 붉은 배경의 그림을 발견하고 다음에 책을 내면 꼭 표지로 쓰고 싶었다고 한다. 또 “제목도 세로로 배치해 ‘난중일기’나 ‘문화유산 답사기’처럼 오래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표지가 독특하다는 반응이 많고, 편집과 디자인 모두 직접 했다는 말에 놀라는 분들이 있단다. 3시간 만에 완독했다는 독자부터 초등학생 자녀가 킥킥대며 읽는 모습, 지인이 자신의 가족과 닮은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연락까지 이어졌다. 지난 1일 그림책 서점 ‘책방그린’에서 열린 북토크에선 ‘글쓰기의 진정성’이 화두였다. 그는 “여동생이 죽은 오빠의 초등 1학년 때 그림일기를 모아 책으로 출간한 사례를 보며, 사소한 이야기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신춘문예 당선 직후부터 10년간 습작을 거듭했다. 세 명의 스승을 찾아다니고도 부족한 듯해서, 3년 동안 매일 5매씩 썼다. 첫 책 ‘작가와 비작가’에 이어 6년 만인 2022년 기행문 ‘포항·경북 여행기’를 펴냈고, 올해 10월 예술인복지재단 지원을 받아 세 번째 책 ‘수니일긔’를 완성했다. 역사 교사인 남편은 여행 가이드이자 글의 첫 독자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남편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예요. 대화의 90%가 농담이죠. 30년 결혼 생활 동안 다툼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던 건 남편 덕분”이라고 말한다. 두 아들과 오랜 지인들에 대한 감사함도 책 곳곳에 녹아있다. 그는 “현재 글을 쓰는 사람이 곧 작가”라며 “초심으로 돌아가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책이 손에서 떠나 독자에게 흘러간 지금, 5년 내에 ‘수니일긔 2’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필라테스로 체력을 기르고 독서 모임에서 낱말을 모으는 중이다. 독자들이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김순희 작가의 수필집 4집을 기대해 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7

“새로운 언어와 기법 탐구···내 자유의 영역”

대구시 중구 이천로 206에 위치한 갤러리CNK에서 오는 12월 27일까지 프랑스 파리 출생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출신 추상화가 탕크(TANC·Tancred Perrot·46)의 개인전이 열린다.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활동해온 탕크는 과감한 색감과 즉흥적인 터치로 유명하다. 탕크의 작품은 기계 음악의 비트와 자연의 색감에서 영감을 받아 즉흥적 상태에서 밀도와 정확성을 동시에 표현한다. 아시아 여러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가진 그는 동양 철학과 서정성을 담아내 평론가들로부터 ‘동양화의 재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탕크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 집안에서 자라면서 다양한 도구와 재료로 판타지 피규어를 칠하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다. 청소년기에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영향을 받아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그래피티와 레터링을 시작했다. 그래피티는 그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고, 이는 그의 작품에 힘과 리듬, 감정을 더하는 계기가 됐다. 탕크는 최근 자신의 작업의 핵심이 ‘회화의 적용에 대한 탐구’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매체를 길들이고 통제하며, 동시에 우연이 스며드는 과정을 즐긴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언어를 탐구하는 과정이 자유의 공간이라고 믿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탕크의 매체 실험의 결과를 볼 수 있으며, 유화에서 스프레이 페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시도들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회화와 조각처럼 깎아낸 표면, 긁어낸 질감들로 구성돼 있다. 2019년에는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어 역동적 질감이 돋보이는 오일 페인팅을 포함한 25점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기법과 잉크를 캔버스에 직접 분사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탕크는 나비가 화면에 날아들어 서클을 그리듯 손짓을 따라 캔버스 안에 점들을 남긴다. 동양의 절제미를 연상케 하는 여백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층마다 조금 다른 액션의 작품들로 배치된다. 전시장 1층에는 그의 대표적 작품 경향이기도 한 퍼포먼스적인 행위의 작품에 그 이미지들을 다시 재배치하여 또 다른 차원의 공간감을 보여주는 신작들로 채워진다. 전시장 2층과 3층 공간에서는 물감을 흘려내리듯 뿌려서 색의 폭포수와 같은 대형 작품들과 수업 시간 낙서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듯 무의식적인 행위를 반복하며 제작된 그의 또 다른 대표작들이 전시된다. 그리고 그의 액션으로 끝없는 공간감과 깊이를 보여주는 블루 추상 풍경 작품들이 마치 예술 작품이 펼쳐지는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듯 설치돼 있다. 탕크는 “새로운 언어와 기법을 탐구하는 것은 내 자유의 영역이자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다. 반복적 작업은 감금으로 느껴지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그린다’는 생각이 늘 맴돈다. 이번 전시는 유화부터 스프레이 페인트까지 다양한 매체 실험을 통해 한국 최초로 선보이는 독창적 기법들을 담았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7

경주 오아르미술관 ‘올해의 건축 베스트 7’

경주 노서동 고분군 인근에 위치한 오아르미술관(OAR Contemporary Art Museum·관장 김문호)이 2025년 한국건축가협회상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됐다. 개관 6개월 만에 누적 관람객 18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건축적 완성도와 문화적 상징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한국 건축계의 주요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해로 48회를 맞은 한국건축가협회상은 건축가의 창의적 성취와 사회적 기여를 기리는 권위 있는 상이다. 협회는 올해 ‘땅의 해석’, ‘쓰임’, ‘새로운 시도’, ‘완성도’ 네 가지 기준으로 총 72개 작품을 심사했으며, 오아르미술관을 “역사적 풍경과 현대 건축 언어의 정교한 결합”으로 평가했다. 오아르미술관은 신라 시대 다섯 개의 왕릉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주 노서동 고분군 일대에 들어선 '왕릉뷰(View) 미술관’이다.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가 설계를 맡았고, ㈜제효가 시공을 담당했다. 건축 콘셉트는 “왕릉이 미술관의 소장품이 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구현됐다. 유현준 교수는 신라 왕릉과 황리단길 사이의 대지 조건을 창의적으로 해석해 종이접기 형태의 이중 박공지붕(double gable roof)을 설계했다. 지붕은 대릉원 방향으로 점차 낮아지며 시선을 유도하고, 옥상은 전시 공간으로 확장된다. 관람객은 네 가지 장면을 통해 “장소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교차하는 풍경”을 체험할 수 있다. 첫째, 가로 30m, 높이 12m의 통유리 창에 고분이 반사돼 건물 자체가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다. 둘째, 내부 대형 파노라마 창을 통해 고분의 곡선이 풍경화처럼 드러난다. 셋째, 1층 커피바 뒤편의 스테인리스 거울에 고분이 비치며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넷째, 옥상 루프탑 테라스에서는 고분과 경주의 전통적 도시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심사위원단은 오아르미술관에 대해 “역사와 일상의 경계에서 현대 건축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세련되게 구현한 작품”이라 평가하며 “전통적 맥락과 현대적 재료의 조화로 경주의 풍경을 재해석한 건축적 제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상은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가 협력한 성과를 종합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7

당신의 건강, 한 걸음 더 깊게 들여다봅니다.

한국경제TV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신개념 건강 토크쇼 ‘닥터 인사이트, 몸쓸이야기‘가 11월 22일(토) 낮12시 첫 방송을 시작한다. 단순한 건강 정보 전달을 넘어, 각 분야 전문의와 교수들이 직접 출연하여 그들의 건강 비법은 물론 그간의 임상 경험에서 깨달은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방송인 정가은씨가 진행을 맡아 특유의 유쾌하고 뛰어난 공감 능력을 뽐낼 예정이다. 첫 방송에서는 <왜 해부학과 교수가 비타민을 연구 했을까?> 라는 주제로 서울대 해부학과 강재승교수의 압도적인 비타민의 능력에 관한 강연을 시작으로 피부과 전문의 강진수 원장의 <기미 · 잡티와의 뜨거운 안녕>, 안과 전문의 이동호 원장은 노안을 교정할 수 있는 <노안 수술과 관리법>, 마취통증의학과 윤장용 원장은 <허리디스크와 척추협착증의 이해와 치료>, 마지막으로 정형외과 전문의 전용철 원장의 노화로 생길 수 있는 <어깨 질환 증상과 예방법>에 대한 강의가 진행 된다. 우리 ‘몸에 쓸모 있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시청자 여러분의 건강한 삶을 위한 새로운 해답을 찾아주고 실제 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건강 꿀팁으로 가득할 한국경제TV ‘닥터 인사이트 : 몸쓸이야기‘는 매주 토요일 낮 12시에 방영된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5-11-17

최정상급 솔리스트 앙상블 감상 기회

대구콘서트하우스의 대표 공연 시리즈 ‘명연주시리즈’가 오는 23일 오후 5시 그랜드홀에서 ‘정명훈 실내악 콘서트’로 올해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무대는 피아니스트 정명훈을 필두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첼리스트 지안 왕, 비올리스트 디미트리 무라스 등 세계 클래식계가 주목하는 최정상급 솔리스트들이 함께해 기대를 모은다. 정명훈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초대 수석 객원지휘자, 도쿄 필하모닉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명예 음악감독 등 오랜 기간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약해왔다. 동시에 그는 세계 각지의 무대에서 실내악 공연을 꾸준히 선보이며 음악적 역량을 확장해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지휘자이기 이전의 음악 인생을 시작한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올라, 오랜 음악 동반자인 지안 왕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 또한 2015년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2022년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주목받은 양인모와의 협업을 통해 해외 유명 페스티벌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특별한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여기에 벨기에 출신의 비올리스트 디미트리 무라스(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교수 역임)가 합류해 앙상블의 깊이를 더한다.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의 정통 실내악 명곡으로 구성되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음악적 깊이와 인간적 고뇌가 어우러진 무대가 될 예정이다. 1부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21번’으로 문을 연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직후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며, 슬픔과 고뇌가 담긴 유일한 e단조 기악 작품이다. 양인모의 섬세한 해석으로 모차르트의 내면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어지는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D장조’는 ‘유령’이라는 별칭이 붙은 곡으로, 베토벤의 원숙기 걸작 중 하나다. 2부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가 연주된다. 이 곡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영감을 받아 ‘베르테르’라는 부제가 붙었으며, 브람스가 평생 품었던 클라라 슈만에 대한 감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박창근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은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서는 정명훈과 세계적 솔리스트들이 빚어낼 음악적 교감이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며 “듀오부터 콰르텟까지 다채로운 편성의 실내악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라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6

선광 스님, 조계종 9교구본사 동화사 새 주지에 당선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신임 주지에 선광스님이 당선됐다. 조계종 선거관리위원회는 14일 오후 1시 동화사 설법전에서 ‘동화사 주지 후보자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를 개최하고 선광스님을 선출했다. 이날 선거에는 선거인단 296명중 264명이 참석했다. 개표 결과 선광스님이 119표, 법광스님이 86표, 홍관스님이 57표를 얻었다. 무효표는 2표다. 당초 5파전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던 선거는 혜범·현장스님의 사퇴로 선광스님과 홍관스님(제2석굴암 주지)·법광스님(전 능인학원 이사장)만 참여하는 3파전으로 진행됐다. 선광스님은 중앙종무행정 절차 등을 거쳐 4년간 동화사 신임 주지로 활동하게 된다. 선광 스님은 당선이 확정된 후 “본사주지는 주어진 권한으로 교구스님들의 수행을 돕고 포교의 역량을 키우는 자리”라며 “오늘부터 대중스님들께서 동화사 정상화의 염원을 담아 저에게 부여한 주지라는 권한으로 한국 불교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대구, 경북 불교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고 밝혔다. 선광 스님은 1977년 조계사에서 출가했다. 1985년 서울 호압사 주지, 1995년 조계사 총무, 2003년 동화사 호법국장, 2004년 동화사 총무국장, 2008년 안일사 주지를 지냈으며 현재 18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번 주지 선거는 동화사가 겪은 일련의 위기 상황 이후 치러졌다. 앞서 지난 3월 조계종 중앙종회가 동화사의 팔공총림 해제를 결정하면서, 동화사 측은 해제 결의에 불복해 ‘총림 해제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이후 조계종 중앙징계위원회는 ‘동화사가 특별 감사 행정 명령을 거부하고, 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종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점을 사유로 동화사 주지 혜정 스님의 직무를 정지했고 혜정 스님이 주지직을 내려놓으면서 산중총회가 치러지게 됐다. ‘총림(叢林)’은 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지역 불교의 중심 사찰을 뜻한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11-14

침략으로 얼룩진 중앙유럽의 2000년 역사

마틴 래디의 ‘중앙유럽 왕국사’는 다양한 민족과 제국의 교차를 통해 형성된 중앙유럽의 복합적 정체성과 역사적 변화, 그리고 이 지역의 유럽 평화에 미친 결정적 역할을 분석한 역작이다.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자리한 중앙유럽의 2000년 역사를 통찰력 있게 조명한 역작 마틴 래디의 신간 ‘중앙유럽 왕국사’(까치)가 출간됐다. 이 책은 침략과 정복의 피상적 서술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제국이 교차하며 형성된 복합적 공간으로서의 중앙유럽이 어떻게 변화와 통합을 주도해왔는지 규명한 역작이다. 저자는 중앙유럽을 지리적 명칭이 아닌 ‘민족 상호작용의 현장’으로 재정의하며, 고대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천하는 정치적·군사적 경계 속에서 이 지역의 독특한 정체성을 추적한다. 중앙유럽의 역사는 고트족, 훈족, 아바르족, 슬라브족, 몽골족, 오스만족 등 수많은 민족의 유입과 융합으로 직조됐다. 4세기부터 시작된 이민족의 침공은 신성 로마 제국의 분열을 초래했고, 1000개가 넘는 소국가들이 각자의 자치를 누리는 다원적 체제를 낳았다. 특히 헝가리와 폴란드는 몽골 침략 이후 독일계 이주민을 적극 수용하며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다. 이주민들에게 부여된 자치의 권리는 마을 단위부터 왕국에 이르기까지 의회 형성의 토대가 됐으며, 중세 중앙유럽은 “공동체 정부와 공화주의적 실험의 본산”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강력한 왕조가 등장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정치는 점차 위로부터의 통치로 대체됐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마법을 활용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통치 체계를 확립했으며, 17세기 관방학의 발전은 국가의 국민 통제력을 강화했다. 이는 이후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중앙유럽은 종교개혁과 민족주의, 클래식 음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는 관용적 분위기가 조성됐고, 그림 형제 같은 학자들은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며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다. 한편 빈과 헝가리에서는 음악가가 단순한 배경음악 연주자가 아닌 청중의 경배를 받는 예술가로 격상되며 교향곡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제1·2차 세계대전은 이 지역의 다문화적 공존을 파괴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탄생한 신생국들은 단일 민족주의를 추구하며 소수 민족을 억압했고, 20세기 중반 소련 점령기에는 민주화 열망과 정치적 혼란이 교차했다. 오늘날에도 중앙유럽은 정치적 부패와 외부 세력의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저자는 이 지역이 유럽 전체의 평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슬라브 동유럽학과 교수인 저자 마틴 래디는 합스부르크 제국과 헝가리·루마니아 역사에 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중앙유럽사 전문가다. 그는 이 책에서 폴란드, 체코, 우크라이나, 스위스 등 과거 중앙유럽 왕국들의 공통점인 민주주의 전통과 귀족 문화뿐 아니라 인종 청소, 스탈린주의 등 어두운 역사까지 균형 있게 다룬다. 특히 “중앙유럽은 단순히 지리적이 아니라 정치·문화적으로 유럽의 중심”이라며 전 세계의 이해관계가 얽힌 현대 사회에서 이 지역의 안정이 갖는 의미를 역설한다. 해외에서 출간 직후 월 스트리트 저널은 “마틴 래디는 길고 복잡한 과거의 가닥을 능숙하게 풀어내 끔찍한 전쟁터이자 서구 민주주의의 요람으로서의 중앙유럽을 조명한다”고 평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대중성과 학문적 성취를 갖춘 최고의 책“이라 극찬했다. 다만 방대한 시대를 아우르는 만큼, 독자에 따라 일부 장은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책 말미에 약어와 인명 색인이 상세히 수록돼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빠르게 확인하며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각 장마다 핵심 주제를 명확히 분리해 독자가 내용을 단계별로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기에 용이하게 구성돼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3

내리막에 들어선 기축통화의 미래···최후의 승자는

미국 하버드대 국제경제학 교수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로고프는 신간 ‘달러 이후의 질서’(윌북)를 통해 달러의 위상과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미래를 심층 분석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럽 부채위기 등을 예측한 경제 석학으로서, 그는 이번 책에서 “달러 패권은 이미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다”고 단언하며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의 도래를 예고한다. 로고프 교수는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달러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과정을 추적한다. 현재 달러는 글로벌 외환 거래의 90%, 원유 결제의 80%를 차지하며 압도적 지위를 유지 중이다. 그러나 저자는 “2015년을 정점으로 달러의 독점적 영향력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근거로는 미국 GDP 대비 글로벌 경제 비중 감소, 천문학적인 국가부채(5경 원 이상), 트럼프 재선으로 인한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을 제시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속한 경제 연합체 브릭스(BRICS)의 위안화 결제 확대, 페트로위안화 시도 등 중국의 도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로고프는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장벽을 높이면 오히려 달러 이탈 속도를 가속화할 것”이라 경고한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자본이득세 인상(최대 20%)은 글로벌 자본 유출입을 위축시킬 위험 요소로 지적된다. 그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한다. “법정통화와 민간 통화의 경쟁은 정부가 규칙을 정하는 게임”이라며 규제 권한이 없는 암호화폐가 장기적으로 승리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결제 수단은 지하 경제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연간 1조 달러에 달하는 국가부채 이자 부담과 정치적 극단주의는 달러 신뢰도를 갉아먹는 내부 요인으로 작용 중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동맹국과의 균열을 초래하며 달러 블록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로고프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을 “달러 이후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로 꼽았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 조선업에 관세 폭탄을 예고한 것에 대해 “한국은 조선업 선도국인데 왜 협력 대신 징벌적 조치를 취하느냐”며 비판했다. 한국 경제가 암호화폐 기반 결제 시스템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금융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몰락과 달리 한국이 혁신과 개방경제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점을 높이 평가하며, 향후 미중 갈등 속에서 균형 잡힌 전략을 주문했다. 로고프는 달러가 단기적으로 급격히 추락하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과거 70년의 특권적 지위는 점차 축소될 것”이라며 다극화된 통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피할 수 없다고 예측한다. 이에 따라 각국은 달러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면서도,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지적한다. 로고프는 “달러 이후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은 동맹국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동시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새로운 금융 질서에서 독자적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함을 역설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3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 실장이자 국내외 유수의 정원을 설계해온 조경가 박원순씨가 신간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은행나무)를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국내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 ‘박원순의 도시의 정원사’를 재구성한 것으로, 정원이 인류 역사 속에서 권력·미학·철학과 어떻게 교류해왔는지, 현대 사회에서 도시와 환경 문제에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지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박 작가는 정원을 “땅을 캔버스로 삼은 예술이자 수학·과학·건축이 융합된 문명의 집결체”로 정의한다. 단순히 식물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인류가 이상향을 구현해온 상징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에덴동산, 무릉도원, 타지마할, 베르사유 정원 등 역사 속 정원은 권력의 표현이자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활용됐다. 르네상스 정원의 대칭적 구조나 영국 풍경식 정원의 유기적 배치는 미적 감각과 과학적 계산의 결합으로 탄생했으며, 식물 배치를 통한 생태계 관리 등 실용적 지혜도 담겼다. 현대 정원은 도시민을 위한 휴식처로 진화했다. 뉴욕 센트럴파크,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정원 등이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커뮤니티 가든, 스마트 정원으로 확장돼 사회적 약자 포용과 도시 열섬 현상 완화에 기여한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샹젤리제 녹지화 프로젝트처럼 글로벌 차원에서도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정원은 생태적 대안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끼, 고사리 등 원시 식물은 공기 정화와 정신 건강 개선 효과가 입증되었으며, 생물다양성 보존과 트라우마 치유에도 도움을 준다. 박 작가는 “정원은 인간성 회복과 생태계 복원의 출발점”이라며 “비록 작은 공간이라도 정원을 가꾸는 일은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3

일상의 잔재에서 피어나는 기억의 미학 — 나인경 사진전 ‘Still Remains’

제10회 대구사진비엔날레 프린지포토페스티벌에 참여한 사진작가 나인경이 개인전 ‘Still Remains’를 열고 있다. 전시는 11일부터 16일까지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450길의 예술상회토마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제목처럼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을 주제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친 흔적들—냉장고 속 남은 음식, 식기, 말라버린 채소 등—을 통해 기억과 감정의 층위를 탐구한다. 작가는 이러한 오브제를 단순한 잔재로 보지 않고, 삶의 흔적이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감각적 단서로 바라본다. 나인경은 주부이자 학원 운영자로서 빠듯한 일상 속에서 놓친 시간과 감정을 시각화한다. 썩어가는 과일이나 시든 채소는 돌보지 못한 시간의 상징이자, 과거의 감각이 여전히 현재에 머무는 존재다. 작가는 이러한 대상들을 응시하며 “사라져가는 순간을 다시 붙잡는 행위”로 카메라를 들었다고 말한다. 작업은 기억이 떠오르는 과정을 세 가지로 분류해 보여준다. △무의지적 기억은 감각 자극을 통해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으로, 중첩된 이미지와 흐릿한 초점으로 표현된다. △의지적 기억은 스스로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으로, 구도와 시선의 의도가 분명하다. △감정 기억은 사건보다 정서가 중심이 되는 기억으로, 명암 대비와 겹침을 통해 감정의 잔향을 시각화한다. 예술상회토마 관계자는 “나 작가는 여러 각도와 거리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겹쳐 구성하는 ‘레이어링(layering)’ 기법을 활용, 기억이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여러 시간과 감정이 교차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나인경은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은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억의 흐름을 기록하는 방식”이라 정의한다. 일상의 사소한 흔적이 예술로 전환되는 이 순간, 관객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Still Remains)’의 의미를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1-12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가···“ 김살로메의 ‘뜻밖의 카프카’

인간관계의 미세한 결을 밀도 있게 그려내는 서사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는 포항 중진 소설가 김살로메(58) 작가의 신작 소설집 ‘뜻밖의 카프카’(아시아)가 출간됐다. 2017년 ‘라요하네의 우산’ 이후 8년 만에, 소설집으로는 두 번째 선보이는 이번 작품집에는 ‘헬리아데스 콤플렉스’, ‘내 모자를 두고 왔다’, ‘뜻밖의 카프카’, ‘안개 기둥’, ‘무거운 사과’ 등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결’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한층 단단해진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관계망에 대한 감각을 조명한다. 김살로메 작가는 ‘2025년 경북문화재단 예술작품 지원 사업’ 일환으로 출간된 이번 소설집 ‘뜻밖의 카프카’에서 소설을 “허구의 틀로 진실을 발설하는 불온한 매혹”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소설 속 모든 인물이 자신의 분신이라며, 이들을 통해 복합적인 내면을 변주하며 삶의 진정성을 묻는다고 말한다. ‘뜻밖의 카프카’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관계의 균열과 회복, 타인에게 닿으려는 인간의 무의식적 몸짓을 통해 “제대로 살아내기” 위한 근원적 질문에 사로잡힌다. 작가는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다정’과 그 ‘다정’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천천히 탐색한다. 쇠우리에서 벗어나는 작가의 독특하고 의미 있는 출구가 제시된다는 점에서 표제작인 ‘뜻밖의 카프카’는 단연 주목해볼 만한 작품이다. 마흔이 코앞인 주인공 로사는 쇠우리와 같은 일상의 소외와 고독에 힘겨워하는 여성이다. 이 작품에서 놀라운 것은, 그러한 소외와 고독을 낳는 존재들이 다름 아닌 로사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뜻밖의 카프카’는 “원룸에 도착해서 로사가 한 일은 미희의 팬티를 치우는 일이었다”라는 ‘뜻밖의 문장’으로 시작될 만큼, 미희는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로사에게 가장 먼저 부탁을 한다. 그러나 나중에 미희야말로 로사에게 치명적인 독과도 같은 존재였음이 밝혀진다. 로사는 미희와 연관되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진실과 마주하고야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사가 택한 길은, 오롯한 결단을 통해 관계에 구걸하지 않는 단독자가 되는 것이다. ‘뜻밖의 카프카’의 주인공인 로사가 보여주는 이러한 결기는, 그녀가 대학 시절 독서 모임에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읽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로사는 카프카를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오롯한 단독자로 살다가 간’ 인물로 이해해 왔던 것이다. 로사가 이해한 대로라면, ‘단독자로서의 카프카’를 불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로사의 결단은 단독성(Singularity)의 철학적 의미와 맞닿아 있다. 단독성이란 고유한 것으로서,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적인 원천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단독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만 참된 관계는 시작되고 그로부터 윤리와 정치도 가능해질 것이다. ‘뜻밖의 카프카’ 속 인물들은 일상의 균열 속에서 인생을 배워간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작가는 그것을 거창한 구원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일상의 언어로 써 내려간 그녀의 문장은 조용하지만, 그 여운은 깊고 오래간다. 김살로메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인간 내면의 온기와 윤리, 그리고 뜻밖의 구원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다.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해설 ‘결정된 세계와 그 너머’에서 “김살로메의 소설은 존재의 단독성과 윤리적 실천이 만나는 서사의 힘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공감과 연대의 생명길을 아로새긴다”라고 평했다. 김살로메 작가는 경북 안동 출신으로 경북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폭설’이 당선돼 등단했다. 영남일보 문학상과 천강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집에는 ‘라요하네의 우산’,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엄마의 뜰’ 등이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1

인공지능과 예술의 만남 ‘POMA 아카데미’ 개강

포항시립미술관(관장 김갑수·POMA)은 현대사회의 주요 변화와 담론을 각계 전문가의 시선으로 조명하는 ‘2025 POMA 아카데미’를 개최한다. 올해 아카데미의 주제는 ‘인공지능 시대, 예술하기’로, 오는 15일·29일·12월 6일 세 차례에 걸쳐 공학·미술·문학 분야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이 불러온 사회적·예술적 변화를 다각도로 탐색한다. 첫 강연(15일)은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및 인공지능대학원 이남훈 교수가 ‘최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동향과 미래’를 주제로 진행한다. 그는 AI 산업의 급속한 성장 뒤에 가려진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부담과 인프라 리스크를 지적하며, 지속가능한 AI 기술의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두 번째 강연(29일)에서는 서울대 디자인학과 교수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배재혁 작가가 ‘예술을 위한 기술, 인간을 위한 예술’을 주제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논한다. 그가 속한 미디어아트 그룹 팀보이드(teamVOID)는 배재혁 작가를 비롯해 공학도 출신 예술가 송준봉, 석부영이 결성한 창작팀으로, 로봇팔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마지막 강연(12월 6일)은 포스텍 화학공학 박사이자 소설가인 지동섭 작가가 ‘AI 시대의 문학: 기술과 예술 사이’를 주제로 펼친다. 그는 AI가 문장과 서사를 생산하는 시대에 문학의 인간적 감성 가치를 성찰할 계획이다. 김갑수 관장은 “AI 기술이 일상에 스며들며 예술은 인간 본질을 되묻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번 아카데미가 기술과 예술의 공존 방안, 인간다움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1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 노르웨이 챔버 오케스트라 공연

(재)대구문화예술진흥원 대구콘서트하우스(관장 박창근)는 오는 17일 오후 7시 30분 그랜드홀에서 '2025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의 하나로 노르웨이 챔버 오케스트라 공연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18세기 고전음악부터 현대음악, 북유럽 민요, 그리고 팝 음악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져 관객에게 폭넓은 음악적 항해를 선사한다. 1977년 창단한 노르웨이 챔버 오케스트라는 북유럽 최고의 연주자 26명으로 구성된 대표적 챔버 오케스트라로, 정교한 음색과 혁신적인 무대 구성으로 클래식계의 찬사를 받아왔다. 이번 월드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는 6명의 연주자들이 참여해,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신들만의 감성과 에너지로 해석해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카타리나 첸, 사라 로즈 앙젤리크 외빙에, 비올리스트 한네 모에 셸브레드, 마르테 그림스루드 후숨, 첼로 아우든 산비크, 올레 에이리크 레에가 무대에 올라 현악기의 풍부한 질감과 정교한 앙상블을 선사한다. 1부는 첼로 독주로 아벨의 ‘아르페지오 d단조’로 문을 연다. 이어 퓰리처상 수상 작곡가 캐롤라인 쇼의 ‘석회석과 펠트’, 베토벤의 ‘현악 3중주 3번 G장조-스케르초’가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의 절묘한 호흡으로 연주돼 고전적 균형미를 전한다. 이후 색다른 변주가 펼쳐진다. 덴마크 민요 ‘Stædelil’와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통해 북유럽의 서정성과 낭만주의의 깊은 정서를 선사한다. 공연의 후반부에서는 클래식의 경계를 넘어선 색다른 선율이 이어진다. 팝의 거장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 세계적인 K-POP 그룹 BTS의 ‘Dynamite’가 현악 6중주 편곡으로 새롭게 탄생하며 무대에 활력을 더한다. 아벨에서 베토벤, 그리그, 쇤베르크를 거쳐 BTS까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시대를 잇는 음악 여정을 선사하는 이번 무대는 이건(EAGON) 기업과의 공동 기획으로 전석 무료로 진행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