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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진포 대통령 별장들의 유감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지난달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사실 50주년은 이미 지났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연기됐고, 그래서 뒤늦게 친구들과 함께 기념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100여 명이 참여한 2박3일의 여행은 남해안으로 그리고 해외에서 온 동문 부부들이 함께한 부부여행은 1박2일 동해안으로, 그렇게 여행은 두 번에 나누어져 이뤄졌다.“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는 말이 서양에도 있듯이 틴에이저 시절 사귀고 같이 공부한 고교친구는 가장 친밀감을 느끼고 평생을 가는 친구인 것 같다. 여행은 지난 50여 년의 진한 우정을 다시 음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부부여행 첫날은 월정사 숲길 산책과 길가의 여러 박물관 관람 등이 주문진으로 이동하면서 이뤄졌다.문제는 둘째날 일어났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관람한 후 화진포로 이동하면서 한국 건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별장을 관람하고, 그리고 김일성 별장이라는 곳을 관람하게 되면서 일어났다.이승만 별장을 구경 하면서 생각보다 낡은 모습의 별장이 유지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 관리 자체가 부실해 보였다. 옛 역사를 구현하려면 어쩔 수 없나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김일성 별장을 관람하면서 이상하게 바뀌어 갔다. 그곳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남북한 교류의 사진들과 홍보로 가득하고 이승만 별장보다는 훨씬 최신식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과거 역사의 건물이라기보다는 홍보관 같은 느낌이었다.왜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날 모습이 구현되지도 않았고 구현할 필요도 없는 건물이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돼 있었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정부에 의해서 이런 건물이 세워지고 이렇게 명명 됐을까?원래 그곳은 셔우드 홀의 예배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1890년경 ‘로제타 홀의 일기’를 남긴 로제타 여사의 아들 셔우드 홀은 서울 출생이며 우리 나라에 대한결핵협회를 설립시킨 주인공이다.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결핵을 퇴치시키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판매하기 시작한 2대에 걸친 캐나다 선교사 가족이었다. 이 예배당은 1938년 선교사 셔우드 홀의 의뢰로 독일 건축가 베버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본래 셔우드 홀의 예배당으로 지어졌는데 공산치하에서 잠시 김일성 일가가 휴가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김일성 별장이라 명명했다고 한다.참으로 그러한 명명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캐나다 선교사들의 예배당으로 명명하는 게 맞지 어떻게 김일성 별장으로 이름을 지었을까? 김일성이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건 정치적 상업적인 냄새가 너무 나는듯했다. 실제로 당시 모습도 구현되지 않았고 남북교류의 홍보물로 가득한 건물이었다.진보정권 시절인 2005년 새단장을 하고 그 예배당을 김일성의 별장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전쟁의 원흉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였다.6세 꼬마 김정일이 계단에 앉은 사진이 뭐가 중요하다고 전시까지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에 현재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이승만 별장은 호흡이 곤란한 정도로 습한 냄새 나는 건물로 남겨두고, 김일성 별장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설로, 두 별장은 운영조차 차별이 뚜렷하게 느껴졌다.김진태 강원지사가 2022년 취임하면서 이제 그러한 잘못된 개념을 청산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그러한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다.6·25전쟁으로 수 백만명의 사상자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였다.같이 간 친구 한 명은 공산당의 흔적조차 보기도 싫다고 건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화진포 해변으로 혼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구는 모습을 보았다. 오죽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도 대강 훑어 보았지만, 자세히 본 아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시설과 운영은 먼저 찾았던 이승만 별장과는 확연히 달라서 해외에서 30여 년 살다가 귀국한 동기생 부부들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만 앞섰다. 대통령실이든 강원도지사든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든 누군가 이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김일성 이름을 지우는 게 좋겠다. 그곳은 김일성의 별장이 아닌 선교사 셔우드 홀로 명명되고 다만 김일성이 잠시 지냈다는 역사만 기록하면 될 것 같다.일반인들이 별칭으로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공식 명칭을 그렇게 부르는 건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의 원흉 김일성을 그렇게 대접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이의 상황을 알기 전에는 독일 건축가가 지었다니 동독의 공산주의 건축가가 김일성에게 아부하며 지어진 건물로 오인까지 했었다.지금도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누워있는 셔우드 홀 가족 6명의 영혼들이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기도해 본다. 또한 모든 곳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반하는 흔적들을 말끔히 없애버린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2023-06-11

영양군 양수발전소 유치에 온 군민이 발 벗고 나서다!

오도창 영양군수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지방소멸위기에 직면한 영양군이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해결 대안으로 양수발전소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지난 4월 말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영양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숨죽이던 군민들은 유치활동에 본격 뛰어들었다.영양군은 86%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적정한 고저차와 지역 균형발전 기여도 등 모든 면에서 양수발전소 건립의 최적지이다. 발전소 건립 이후에도 주변 여건의 불확실성이 적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그리고 주민수용성이 탁월하다는 점이 양수발전소 건립의 최적지임을 증명해준다. 양수발전소 유치에 따르는 지역갈등에 의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군민들이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발전소를 유치를 원하고 있다. 사업 준비 단계부터 주민수용성을 적극 고려해 사회적 비용도 최소화했다는 점도 발전소 유치의 최적지임을 뒷받침한다.또한 영양군은 전국 최대의 풍력발전단지를 가지고 있고 인근지역인 울진에 한울원전, 청송, 예천의 양수발전소가 있어 관련 산업에 따른 에너지단지 구축으로 신재생에너지 시너지효과에도 유리한 지역이다.영양군이 유치하고자 하는 양수발전소는 1천MW규모에 총사업비 2조원, 건립기간 14년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군은 2020년 7월에 양수발전소 유치계획을 수립했고 2023년 1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3월부터 읍면, 관내 기관단체 등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 개최 시 홍보활동을 실시했다. 관련 부서인 경제일자리과에서는 무주 양수발전소를 견학하기도 하였으며 4월에는 양수발전소 유치 건의를 위한 경북도지사와의 면담을 가졌다.또 양수발전소 유치 자문간담회 개최하고 국회 방문, 범군민 유치위원회 사전모임, 영양양수발전소 유치추진단 구성 등 적극적으로 발전소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영양군민들도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해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미 국도 31호선 선형개량 예비타당성 통과 때 ‘통곡위원회’를 구성해 영양군민들의 단합된 마음으로 성공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 양수발전소 유치에도 군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유치에 노력할 계획이다.먼저, 지역의 대표성을 가진 각계각층의 대표자 250여명으로 구성된 ‘양수발전소 영양군 유치를 위한 범군민 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범군민 유치위원회는 유치 홍보활동, 서명운동, 지역 여론형성, 대정부 건의 등의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며 읍면 및 범군민 결의대회 또한 추진하고 있다. 양수발전소 유치 신청서 제출까지 군민의 75%인 1만2천명 이상을 목표로 대대적인 범군민 서명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영양군에 양수발전소가 유치되면 특별지원사업비, 기본지원사업비, 사업자지원사업비 등을 포함한 약 936억원 이상의 지역발전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고 연간 14억원의 재산세, 지방소득세 등 세원을 장기적으로 확보가 가능하다.또 양수발전소 건설 이후에는 한수원 및 협력사 관계자 이주, 그리고 시설 운영 과정에서의 지역민 채용으로 150여명의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지역맞춤형 관광자원 확보로 동해권 방문객을 유인 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실제로 양양, 무주, 청평 등 발전소 홍보관의 방문객은 약 10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수변공원, 카페, 전망대 조성 등의 연계 관광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큰 기대효과로는 발전소 유치로 인해 영양군의 생활인구 유입으로 지역 소멸위기 극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특히 발전소 건립으로 도로망 확충,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 지역발전 기반 구축, 주민 복지 및 문화생활, 마을기업 설립지원, 발전소 주변 주민숙원사업의 지속적인 실시로 지역과 상생 협력하는 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지역 소멸위기 극복을 위해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양수발전소 유치에 전 행정력을 집중하고 양수발전소 유치는 그야말로 친환경 성장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인구 증가, 인프라 확장, 관광객 증가의 1석 4조의 기회이기 때문에 영양최대 국책사업인 만큼 영양군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반드시 성사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2023-06-11

꿈을 쏘다

달그락달그락, 콩콩거리는 소리가 난다. 숨소리를 낮추며 소리 나는 쪽으로 깨금발로 걷는다. 까치였다. 사람이 있는 줄 모르는지, 까치는 연통을 계속 쪼아댄다. 까치, 참 오랜만에 본다. 반가운 소식을 물고 왔나, 잔뜩 기대하며 까치의 몸놀림에 눈을 떼지 않는다. 숨까지 참고 지켜보는데 까치는 푸드덕거리며 하늘로 날아갔다.지난달 25일, 첫 한국형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로 향해 날아갔다. 누리호의 3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리 힘으로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을 발사해 서비스할 수 있는 ‘스페이스 클럽’에 11번째로 가입하게 되었다. 18시 24분, 굉음을 내며 누리호가 우주로 날아갈 때, 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태극기를 흔드는 아이 어른 모두 환한 표정이다.이 기쁨을 같이 나눌까 싶어, 하루 늦은 다음 날 전남 고흥으로 향했다. 고흥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길에서 만난 노랗게 핀 금계국은 삼백 킬로가 넘는 길을 환하게 이끌어 주었다. 고속도로 옆에서 노란 꽃물결을 펼쳐주며 ‘어여’ 가보라고 꽃등으로 길 밝혔다. 확 지나가는 꽃등을 오래 담고 싶어 산을 향하면 거기에도 군데군데 꽃물결로 환했다. 기분 좋은 소식을 듣고 고흥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가, 그 길에는 꽃마저 등 밝히고 있었다.수백 킬로를 달려왔는데, 고흥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밀려온 물이 썰물이 되어 빠져나간 듯하다. 우주센터 주변은 우주로 가는 길목이라 아직도 들썩일 줄 알았다. 그런데 학부모 서너 팀, 젊은 연인 한 쌍, 그리고 나뿐이었다. 다행히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하느라 분주했다. 매표소 앞에서 큰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주민등록증은 준비하라고, 그래야만 할인받을 수 있다고 소리 지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모이는 열 명 남짓한 사람이 전부였다. 광장을 휘돌아 보아도 손으로 꼽을 만한 사람뿐이었다.나로우주센터는 우리나라에 한 곳밖에 없는 우주센터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인공위성 발사장이기도 하다. 우주로 향한 꿈과 희망이 시작된 곳이다. 나도 예매하고 우주과학관에 들어갔다.우선, 애니메이션 상영하는 시간에 맞춰 관람했다. 유치원,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영화를 봤다. 1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우주로 향하는 꿈과 희망이 여운으로 남았다. 이 아이들이 우주로 향하는 길에서 꿈을 키우게 해 달라는 소망을 빌었다. 우주과학전시관에는 인공위성과 우주공간이 테마로 구분되어 쉽게 즐길 수 있다. 기본원리를 파악할 수 있는 곳, 로켓 존, 인공위성 존, 우주탐사 존이 있어 관심 있는 곳이 있다면 시간을 넉넉히 두고 구경하는 게 좋다. 우주탐사 존이 발길을 붙잡았다. 우주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할까, 무엇을 먹을까,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평소에 궁금했는데 이곳에는 알기 쉬운 설명과 실제 물건들이 놓여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순혜 수필가 차를 돌려 우주 발사전망대로 향했다. 도착하니 5시다. 한 시간 남짓 관람할 수 있다. 안내데스크에서 매표하고 7층 전망대에 올라갔다. 전망대는 인기가 가장 많은 곳이다. 360도 회전하는 전망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도해를 바라보는 느낌은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한 바퀴 회전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때쯤이면 찻잔이 커피를 훤하게 드러낼 때다. 풍광에 빠져 잠시 잊은 게 있다. 저 멀리 형제섬이 보이고 나로우주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 해상으로 17km 직선거리다. 망원경으로 발사대를 조명했다. 보슬비가 내려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한 곳에 눈을 고정했다. 어제 저곳에서 누리호가 우주로 날아갔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춘 그 언저리에 보슬비인지 눈물인지 눈가가 촉촉하다.다도해 섬들과 나로우주센터에도 어둠이 막 내려앉는다. 못다 이룬 내 꿈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사이, 하늘에 하나 둘 별이 떠오른다.

2023-06-11

변화는 지속 성장의 힘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변화가 끝나면 인생도 끝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동안은 성장 동력이 멈추지 않으나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순간 개인은 기억의 뒤편으로 기업은 사양길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네티즌 사이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귀멸의 칼날’ 도공 마을 편에서 무잔은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는 원칙을 벗어난다는 것이고, 그건 본성을 어긴다는 것이지”라며 변화의 속성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본성은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을 원칙으로 삼아 꾸준히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변화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속도로 스며드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인력거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19세기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마차라는 동물을 이용하는 수송수단이 자리잡고 있던 서양에는 보편화되지 못했지만 일본, 한국, 중국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보편화 되었는데 가마라는 인력을 이용하는 수단이 이전부터 존재했기에 정착하는데 거부감이 덜했던 탓이다. 더구나 가마는 웬만하면 4명, 아무리 적어도 2명이 필요했는데 인력거는 혼자서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흔들림까지 적어 승차감까지 탁월했으니 빠른 대체가 가능했다. 이제는 인력거를 넘어 디지털 혁신이 밀려들고 있다. 아직은 택시업계가 피해를 보니 타다도 우버도 안된다고 하지만 피해가 없는 혁신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창조적 파괴를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영영 아무런 혁신도 할 수 없을 것이다.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며 침공을 감행하여 양국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전쟁의 양상이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전쟁의 게임 체인저는 탱크도 백병전도 아니고 미사일과 드론 전쟁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500km 영토 깊숙하게 드론으로 공군기지를 공습하는 시대인데 군인이 행군하고 유격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군대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마치 백병전에 뛰어들 것처럼 모두 체력 훈련을 다 함께 하는 대신에 드론을 조작하는 군인, 탱크를 조작하는 군인 등 아주 세분화된 전문성으로 나누고 군인들도 자신에게만 필요한 훈련을 받고, 온라인과 메타버스 속에서 게임하듯 Digital Twin으로 사전에 시뮬레이션 하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인구 소멸과 복무 기간이 짧아지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이든 군대든 변화를 하려면 기존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변화는 기존의 선입견을 버리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존 조직의 이해가 아니라 전투력을 유지하고 향상하는 일이 무엇인가가 본질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다.기업의 수명은 짧아지고 인간은 백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길어진 인간의 수명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속 가능 성장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 기업이 한 백 년은 끄떡없겠다는 믿음을 줘야 직원들의 충성심을 견인할 것이다. 그 충성심은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고 기업은 성장으로 보답할 것이다.

2023-06-11

ChatGPT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유영희 작가 두어 달 전 어느 모임에 참여했다. 모임 구성원은 다섯 명이었는데, 명상 안내자와 상담 전문가도 있고, 책을 한두 권 이상 출간한 작가도 두세 명이다. 그런데 그중 작가 두 사람이 ChatGPT를 활용한다면서, 한 사람은 아예 유료로 결재해서 이용한다고 한다. 그동안 ChatGPT 관련 뉴스를 많이 보았어도 인문 분야에서 활용하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고, 게다가 인문학의 최첨단이라고 할 만한 명상 전문가들이 글을 쓰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고 하니 낯설었다.마침 6월3일 한국사고와표현학회의 춘계 정기 학술대회 주제가 ‘인공지능 시대, 사고와 표현 교육의 방향과 과제’여서 참여했다. 인문학 교수와 게임학 교수의 입장 차이가 아주 볼만했다. 인문학 교수는 인공지능이 학습하거나 사고하거나 추론하거나 성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코딩도 배우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뒤이어 발표자로 나선 게임학 교수는 국가의 정책 목표가 전 국민이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장했다. 학술대회가 종료될 때까지 참여하지 못해서 어느 쪽이 우세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인공지능을 둘러싼 이런 논쟁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사실 인문학자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 역시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액, 미국의 정치인 앤드류 양 등과 함께 미래생명연구소 명의로 AI 시스템 개발을 멈추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인공지능 열풍을 보면서 정말 이런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던 터라 인공지능에 반대하는 입장이 솔깃해진다.그러나 AI판 러다이트 운동이라고도 하는 일론 머스크의 이런 주장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영국의 기계 파괴 운동이었던 러다이트 운동도 실패로 끝났으니 말이다. 1876년 영국이 중국에 놓은 오송 철도를 철거했던 청나라도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철도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유럽 각국도 앞다퉈 철도를 깔았으니,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 고대의 노자는 철기 문명의 문제를 비판하며 문자 없던 시대로 돌아가자 외쳤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컴퓨터를 쓰지 않겠다는 미국 시인 웬델 베리의 선택은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할 가치가 있지만, 그것을 사회 전반에 적용하기는 어렵다.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신중한 입장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기술 발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역사를 보아도 실현 불가능하다.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우려가 많았고 부작용도 해결되기 어렵지만,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AI 사용 능력 격차와 그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다. 인문 정신의 존재 이유는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사회 통합을 이루고 인간성을 보호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데 있다. 두어 달 전 모임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ChatGPT를 잘 활용하여 명상을 보급하고 저술 활동 하는 데 도움 받기를 바란다.

2023-06-11

마지막 수업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존재한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과 마지막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첫사랑이나 첫인상 혹은 마지막 잎새나 마지막 수업 같은 말이 생겨난다. 1871년 알퐁스 도데가 남긴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과 1907년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기억에 남아있다.내게도 그런 일이 있다. 지난 목요일 오전 9시, 10시 반 그리고 오후 3시에 마지막 수업을 한 것이다. ‘동서 고전의 만남’, ‘러시아 어문학의 세계’, ‘명저 읽기와 토론’ 세 과목을 종강한다. 대상포진으로 인해 한 주일을 순연(順延)한 결과다. 시간이 여유 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대단한 안타까움 같은 건 없었다.사람들의 질문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온다. “정년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그들이 기대하는 대답은 한결같이 “시원섭섭하시죠!”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시원합니다!”. 섭섭한 것은 전연 없다. 섭섭할 것이 조금도 없는 종강이기 때문이다. 내가 냉정한 인간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수업을 향한 학생들의 자세가 뜨뜻미지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9년 전 선배 교수가 마지막 수업을 한다길래, 교수 휴게실에서 오후 6시 무렵 만나기로 했다. 그분은 오후 6시 반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리 늦었냐?!”는 나의 지청구에 “마지막 수업이잖아!”하고 응수한다. 하지만 그것은 수업 이후 학생들의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교수의 일방적인 판단이다. 정년을 앞둔 교수의 마지막 열정을 이해하는 학생은 완전히 소멸했다. 그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45분을 넘겨 진행한 종강이 어떤 인상을 불러왔을지, 모를 일이다.지난 세기 86년 가을 학기에 ‘19세기 러시아 소설’ 강의가 나의 첫 번째 수업이었다. 강의를 주면서 학과장 교수는 “자네 선배들은 전부 교양 수업을 했는데, 전공 수업은 자네가 처음이야!”하는 말씀을 하셨다. 박사과정생으로 처음 맡은 강의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단편소설 ‘이발사’를 통독한 기억이 생생하다.1987년 봄 학기에는 학부 4학년 전공과목인 ‘러시아 희곡’을 맡아서 열강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대학과 인연을 마감할 시기가 온 것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인연과 관계 속에서 생애를 이어가지만,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사람의 보살핌과 조바심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릴 것인지 궁금하다.한 가지 저어되는 사실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현저하게 드러나는 사회적 수동성이다. 강의실에 들어갈라치면 군데군데 어둡다. 세 군데의 조명 가운데 두 군데의 조명이 꺼져 있기 일쑤다. 그런 어둠 속에서 학생들은 스마트폰 삼매경에 푹 빠져 있다. 강의가 끝난 강의실이 환하고 에어컨이 돌아간다. 요즘 학생들은 자기 이익과 관심 대상이 아니면, 눈감고 지나간다.학생들의 사회적 수동성을 지적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대학은 지금 마구 흔들리고 있다. 지적-정신적 수준보다 중요한 사회적-윤리적 책무가 사라진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23-06-11

대구 최초 시집전문 독립서점

우정구 논설위원 독립영화나 독립음악 등 특정 장르에 독립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의 대표적 특징의 하나가 외부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독립영화가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상업영화와의 차이점은 자금과 배급망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를 살린 영화를 만들어 가는 창작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독립서적도 대형화 추세를 보이는 서점가의 흐름 속에 외부자본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문고의 100의 1도 안 되는 작은 면적과 책을 보유하지만 책방 주인의 취향과 안목으로 채워진 책들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특히 접근성이 용이한 동네 한가운데 자리를 잡으면서 수익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주목받으면서 그 숫자가 점차 늘어간다.한 조사에 의하면 작년 기준으로 전국에 운영되는 독립서점은 모두 815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년보다 70곳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국내 독서인구가 매년 줄어드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온갖 것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독립서점도 전체 수의 약 60%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나머지가 전국지방 곳곳에 분산돼 있어 실제로 대구에서는 아주 드물게 독립서점을 만날 수 있다.최근 대구 앞산 카페골목 입구에 시집전문 독립서점이 생겨 화제다. ‘산아래 詩’(대구시 남구 현충로 7길 6)는 대구경북 시인들의 시집만 판매하는 서점이다. 시집을 출간하더라도 판로가 없어 애를 태우던 지역작가의 작품을 독자와 연결해 주는 역할에 기대가 모아진다. 대구시인협회도 시집전문 서점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지금, 독립서점이 많이 나와 독서 진작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1

포항의 위기

김유복 포항사회네트워크 대표 세월이 참 빠르다. 봄꽃 향기가 가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월이다. 세계적 기후변화로 한여름 같은 더위가 일찍 찾아오고 지난해 태풍으로 파괴된 피해복구가 아직도 절반을 넘지 못했다는데 올해는 폭우가 더 극성을 부릴 예상이라니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연초 필자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라는 글로, 지난해 ‘힌남노 태풍’으로 엄청난 재난을 겪은 우리지역의 위기를 관(官)과 민(民) 그리고 기업(企業)이 총망라한 지역 공동체가 하나 되는 ‘원팀’으로 뭉쳐서 극복 해 나가자고 주장한 바가 있다.당시, 남구 곳곳이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포스코만 하더라도 1조3천여억 원이란 천문학적 손실을 입어 지역민들의 간담을 쓸어내렸었다. 포스코는 그러나 특유의 내재된 정신력과 지역 민·관·군의 적극 지원에 힘입어 135일 만에 복구를 완료해 냈다. 포스코의 복구 과정들은 지역민들과 하나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시민 응원 속에 ‘제2의 영일만 기적’을 현실화 할 이차전지 소재부분 육성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지역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앵커기업인 포스코퓨처엠(전 포스코케미칼)이 삼성SDI와 역대 최대 규모인 총액 40조 원에 달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이차전지) 소재(양극재)를 10년간 공급하기로 한 계약을 맺은 것부터 이차전지 양극재 생산 세계 1위를 다투는 에코프로그룹의 6개사가 영일만산단에 ‘포항캠퍼스’를 조성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한 본격적인 생산 활동에 들어가면서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이런 동력들은 포항이 또 한 번 도약 할 수 있는 희망과 함께 6월중 결정 될 국가첨단산업법 시행에 따른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에 포항시가 가장 유력하게 부각하게 만든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실제 이차전지 업계에선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에서 포항이 타 도시를 월등히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있다. 지난 2월말부터 지금까지 4개월 가까이 이강덕 시장이 와병으로 부재(不在)하면서 컨트롤 타워 공백으로 인한 시정 난맥상 등 후유증이 들려오고 있다. 에코프로그룹을 진두지휘하던 총수도 최근 사법처리 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5일 ‘포스코홀딩스 본사이전 포항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포스코회장 퇴진 범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 평가에서 지역 주요 산업과의 연계 발전 가능성과 특화단지를 대상으로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 생태계 구축이란 항목이 있다. 포항은 누가 뭐래도 기업도시다. 50만 도시의 위상을 위태롭게 하는 인구절벽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업유치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 상황에서 포항은 우선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에 사활을 걸어 반드시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 당연히 시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총력전을 펼칠 필요가 있다.필자는 포스코홀딩스대책위의 포스코 회장 퇴진 궐기대회 소식을 듣고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 평가단은 과연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포항시는 과연 포항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고 홍보해도 될까, 앞으로 관과 시민이 기업 운영에 관여하는 포항에 대기업들이 내려올까 등 여럿 상념들이 스쳐갔다.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는 법으로 보장받는다. 그러니 포스코 회장 퇴진 집회는 추진하는 이들의 자유다. 다만, 포스코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는 범대위가 포항시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인지는 묻고 싶고, 꼭 집회를 해야 한다면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 이후에 할 것을 권하고 싶다.포항은 현재 50만 도시가 붕괴됐다. 수도권 경제 집중으로 미래도 불투명하다. 기로(岐路)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총체적 위기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많다. 평생 포항서 살아왔고, 앞으로 뼈를 묻을 필자도 기우는 고향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이차전지특화단지 선정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적어도 포항사회는 자그마한 지혜가 필요하다. 기회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2023-06-08

반려동물 시집살이

홍석봉 대구지사장 한 모임에서 반려동물이 화두가 됐다. 한 친구가 애견 세 마리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개를 돌보느라 꼼짝 못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 마리는 열 여덟살이다. 인간 나이로 백 살이 넘는다. 요즘 다리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해, 똥오줌을 받아내고 식사 때마다 챙겨줘야 한다.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어른 돌보듯 한다. 은퇴 후 집에서 소일하는 친구지만,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하루 종일 반려견 뒷바라지에 매달린다.애견을 챙기는 일이 힘들면서도 18년 동안 가족같이 함께 생활해 온 터다. 정리를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가족들만 바라보며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기는 강아지를 보면 재롱부리는 손주들 못잖다.그동안 반려견 두 마리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 애견장례식장을 이용해 장례비용만 한 번에 50만 원이 들었다. 병 들어 동물병원에라도 가면 20~30만 원 씩은 보통이다. 요즘엔 반려동물 보험 상품도 나오고 있지만 적잖은 금액이 부담이다. 반려견을 떼어놓고 멀리 휴가나 며칠씩 묵는 나들이는 생각지도 못한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숙박지나 숙소를 찾아야하고 호텔을 이용하면 그만큼 경비가 많이 든다. 한 친구는 반려동물 때문에 최근 20년 동안 해외여행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휴일 날 동네 공원에는 반려동물과 산책을 나선 이들이 많다. 곳곳에 영역 표시를 하는 모습에 낯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이젠 일상이 됐다. 애호가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반려동물 시집살이가 녹록치 않다.반려견이 죽으면 애견동호회에서 부고도 돌리고 부조도 하며 이별을 함께 슬퍼해 준다. 바야흐로 반려동물 천국인 세상이 됐다.펫코노미 시장도 덩달아 진화하고 있다. 그 끝을 모를 정도다. 반려동물이 거의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천400만 명 시대다. 항공업계는 멍멍이 기내식을 검토하고 있다. 가구와 치킨업계 등 펫 산업 진출이 잇따른다. 전용 소파에 펫 마루까지 등장했다. 보험사들은 보장을 강화한 반려동물 보험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주인이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정신질환진단비까지 준다. 털날림 등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까지 챙긴다. 반려견의 사고까지 보장해 준다. 반려인 사망 때 반려동물을 돌볼 수 있는 보험도 있다. 경북 봉화엔 펫고교까지 생겼다.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어린아이 키우는 것과 같다. 각종 예방접종은 필수다. 배변, 산책 훈련도 시켜야 한다. 훈련이 안 된 반려동물은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 자칫 반려동물 혐오와 분쟁 소지가 없잖다. 소음은 가장 고민거리다. 반려동물 유기와 학대행위도 늘어난다. 인명을 해치는 사고도 적지 않다.반려동물은 인간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지만 불편과 예기치 않은 사고는 감수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책임과 의무가 필수적이다. 단단히 시집살이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2023-06-08

서민음식 라면

우정구 논설위원 전세계에서 1천억개가 넘는 라면이 매년 소비되고 있다고 하니 라면은 지구촌의 주요 식량인 셈이다. 각종 재난이 발생하면 먹거리 대용품으로 가장 먼저 라면부터 전달된다. 국가별로는 중국에서 소비량이 가장 많지만 1인당 소비량은 한국이 단연 1등이다. 라면 덕에 한국인의 1인당 면소비도 세계 1위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9월 등장한 삼양라면이 효시다. 이때 가격은 100g당 10원이다. 소맥분과 우지가격 인상을 이유로 7년 후인 1970년 20원으로 올랐다. 내용량도 120g으로 올랐다.1978년 50원으로 인상되고, 1981년에는 100원으로 인상된다. 당시 자장면 500원, 곰탕 1천200원, 냉면 1천300원 정도 했으니 라면은 상대적으로 싼 음식이라 할만 했다. 지금 라면 한봉지가 1천원 정도 하니 60년만에 100배가 오른 셈이다.그렇지만 오랜 세월동안 라면은 김밥 한 줄과 함께 한끼 식사로서 충분해 가성비면에서 서민층에게는 최고의 음식으로 인정을 받아왔다.일본도 라멘이란 이름으로 라면을 팔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즉석요리를 하는 인스턴트 식품 개념이나 일본은 국수처럼 정식 면요리의 하나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라면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서민음식의 자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라면의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13.1%, 2년전보다 24.1%가 올랐다. 라면과 김밥 한줄이 1만원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민들이 비교적 부담없이 찾을 수 있었던 서민음식인 라면값 인상 소식에 서민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8

화산불 위령제를 보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현충일 아침, 베란다에 조기(弔旗)를 달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영일만 건너 포스코가 조용하고 아파트엔 태극기의 일렁임도 없다. 또 그냥 놀아버리는 국가추념일이 된 듯하다. ‘화산불 위령제’에 가는 길,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은 보지 못해 허탈한 마음으로 화진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예전에는 50사단 해안훈련장이 있었던 곳, 지금은 모든 건물이 철거되어 모래밭이 적막하다. ‘썩은 숭이네 고랑’이라는 이곳에서 매년 현충일에 임진왜란 때 왜구들과 싸웠던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임란 화산불 전몰호국영령 위령제’가 열린다. 2005년부터 향토 애림(愛林)단체인 노거수회(老巨樹會)가 정성껏 모셔오고 있는데 올해는 김인술 회장을 비롯한 15명의 회원들만 모여 조촐하게 제상을 차렸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지방 국회의원, 시장과 교육장, 군 장병 등 많은 인사가 모여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살풀이춤 등 고전무용과 헌다례(獻茶禮)가 풍성하게 치러졌었다.초대 회장이었던 이삼우 기청산식물원장의 해설을 들어보면 80년대 초부터 몰두해온 향토사 발굴과정에서 이곳 모래더미에 묻혀있는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전쟁사를 알게 되었단다. 임진왜란 무렵 이곳 대진항에 진을 친 왜군이 노략질을 일삼자 송라찰방(옛 역참관원)이 월포 수군만호군과 의병 등 300여 명을 이끌고 화산불 남쪽의 큰 숲인 대동수(大東藪)에 모였다가 야간에 기습 공격하여 싸운 결과 양쪽 모두 전멸 상태가 됐고 지휘관들은 도망가버려 역사의 기록 없이 잊혀진 전투가 되어 구전으로만 전해온다는 것이다. 수차례 유적지로 만들려고 했지만 ‘기록에 없다’란 이유로 아직도 연초록 갯방풍의 줄기가 기어 다니는 모래밭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화살촉도 발견되고 바람이 모래를 날려버리면 유골도 곳곳에 노출되어 골곡포(骨谷浦)라 했고, 일제시대 때 송라초등학교의 일본인 교장이 고요한 달밤에 이곳을 찾아와 제물을 바치고 통곡을 했다는 주민들의 말도 전해진다.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사라져버려 수백 년 거들떠보지도 않던 무명용사들의 원혼을 기리기 위하여 노거수회는 매년 해당화를 심고 동해안 최남단 자생지로 복원하여 전몰장병들의 혼령이 붉은 해당화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꿈꾸면서 가꾸어 왔다. 간단히 음복하고 소나무 숲 사잇길을 걸으면 드문드문 붉은 해당화가 낮게 피어있고 주황색 열매가 곱다. 매년 캠핑카들이 진을 치던 이곳을 철조망으로 막아두었으니 그나마 숲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푸른 동해의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지키고 있다. 모래밭에서 새끼를 돌보고 있는 멸종위기 2급의 쇠제비갈매기 부부를 찍고 있는 사진작가들도 보인다. 화진해수욕장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 언젠가 이곳에 위령비를 세우고 소담한 생태공원으로 꾸민다면 일본인들도 오지않을까?7번 국도로 오다가 보경사 입구 광천리에 있는 한미해병충혼탑에 올라갔다. 84, 89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한미 해병 52명의 영혼을 지키려 89년에 건립한 탑 앞에 서서 동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현충일 호국의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2023-06-08

장미 아가씨들

강길수 수필가 장미 아가씨들이, 펜스 담장 바깥으로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웃기 시작했다. 방송국 주물 펜스형 담장이다. 오월 중순이 되자, 해맑은 장미 웃음이 절정이다.출근 때 보다, 퇴근 때가 장미 웃음이 더 예쁘고 많다. 왠지, 동남쪽으로 더 많이 얼굴을 내밀고 웃기 때문이다. 며칠간은 풋풋한 고운 장미 얼굴에 취해 오갔다. 어느 날 퇴근길에, ‘꼭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북한 응원단 아가씨들 같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마, 부산 아시안게임 때였지 싶다.담장 바깥으로 하나같이 얼굴을 내밀고, 활짝 웃는 장미꽃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의 어디가 닮아 그런 생각이 났을까. 아름다워서? 여럿이 몰려 있어서? 전체 모습이 닮아서? 일사불란해서? 요정처럼 나타나서?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당시 북한 응원단은, ‘미녀 응원단’이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여, 마음에 남았다가 장미 웃음에 되살아났으리라.따져본다. 사람과 차량이 많이 다니는 정문 앞 큰 도로는 방송국의 북쪽이다. 장미가 저절로 북쪽으로 꽃이 더 많이 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식물은 햇빛 쪽으로 더 자라지 않는가. 하면, 인위적 무엇이 작용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연구자처럼 장미꽃과 가지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역시 그랬어. 내 예상은 맞은 거야. 장미 가지들을 누가 일부러 담장 대공 사이 밖으로 끌어내고, 어떤 것은 철사로 대공에 묶기까지 한 게 아닌가. 장미꽃들은 사람에 의해서 억지로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웃었던 게다. 장미들의 고통이 가슴에 전류로 흐르는 듯했다. 장미를 아프게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했던가. 식물은 사람과 동물이 자기를 어떻게 처분하든, 묵묵히 당하며 자신을 내어줄 뿐이다. 가꾸는 대로 자라나고 열매 맺는다. 미생물에서 인간에게 이르기까지 식물을 먹지 않고 사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저 장미 나무들은 사람이 몸을 옥죄는 폭압을 가해도 열심히 꽃 피워 봄을 아름답게 비췄다.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린 지 올해로 21년째다. 그때 배를 타고 부산에 와서 해맑게 웃는 얼굴로 남녘 동포들을 설레게 했던 북한 응원단…. 꼭 장미 아가씨들 같았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행동과 유니폼도 관심거리였다. 반면, 어딘가 조금은 불안해 보이고, 부자유스럽게 느껴지던 기억도 있다. 우리 사회의 자유분방함과 북한 응원단의 기계 같은 움직임이 대비된 게 아닐까.그랬다. 담장의 장미 아가씨들과 북한 여자응원단은 인위적 통제를 받는 점이 닮았던 거다. 하지만, 북한 응원단의 젊음은 그들 체제의 일사불란을 뛰어넘었기에, 우리 국민의 가슴엔 오월의 장미 웃음 같았으리라. 담장의 장미 웃음도 오월 속으로 가고, 유월이 왔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같은 인위적 일사불란 사회를 추구하는 세력도 있다고 본다. 겉으론 그럴싸해도, 그 안엔 자유와 민주가 없다.호국의 달 유월을 맞아 드는 생각은 바로, 자유와 민주다. 국민과 우방이 피로써 지켜낸 자유, 민주의 가치는 목숨만큼이나 고귀한 것이니까.

2023-06-08

눈이 부시게

배문경 수필가 얼마 전 응급실로 할머니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쓰러진 채 삼일을 꼼짝도 못한 채 견뎠다고 했다. 대퇴부 골절이었고 딸이 집에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집으로 찾아가서 발견되었다. 움직이지 못한 며칠은 지옥이었으리라. 물 한 모금, 휴대폰을 할 수도, 살려달라고 해도 들리지 않을 암흑의 밤낮을 보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사월 초파일 백률사를 딸아이와 찾았다. 날이 날인만큼 사람들로 북적였고 대웅전까지 등을 달 생각으로 이름표가 없는 등만을 쫓아 가파른 길을 올랐다. 그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고 70대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뒷걸음으로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황급히 나는 환자의 의식 상태를 체크했고 주위사람들에게 119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뇌출혈과 경추손상이 걱정되었지만 목을 조금 움직이는 상태였고 두통을 호소했다. 외출혈은 없었지만 뇌출혈은 충분히 의심스러웠다. 환자는 두부(頭部) 밑 통증을 계속 호소해서 옆 사람에게서 손수건을 얻어 밑에 깔아주고 상태를 체크하며 안정을 유도했다. 119 구급차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 이제 거의 다 되었다는 생각에 걱정 말라는 말로 계속 도닥였다. 구급대원이 구급차에서 내려 환자이송을 준비할 때 맥박과 호흡, 경추 손상 없음, 뇌출혈이 우려된다는 소견을 119대원에게 전했다. 신경외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줄 것을 요청했다. 환자는 들것에 의해 구급차에 옮겨져 사이렌소리를 내며 사라져 갔다.나는 다행이란 생각에 흙이 잔뜩 묻은 치마를 툭툭 털며 일어나 대웅전을 향해 걸었다.곁에 있던 딸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난 엄마처럼 못했을 것 같아. 119부르세요” 이 정도는 했겠지만 침착하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쳐다보는데 약간 기분이 좋았다. “할 수 있어. 너도, 이제 봤으니까.” 나는 웃었다. 사고를 지켜보며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비슷한 일이 생각난다. 작년 지인이 하는 세계적인 행사에 의무실을 담당했다. 이틀의 일정이었고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부르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달려갔더니 참가자 한 사람이 빗길에 미끄러져 옆으로 쓰러져있었다. 전체적인 상황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목이 옆으로 비틀려 있었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의식을 확인하고 움직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119를 불러달라고 주위에 요청했다.곁에 본인이 갖고 있던 옷가지가 있어 몸을 고정시키고 맥박과 의식을 체크했다. 귀에 피가 나는 것이 걱정이었다. 병원에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을 수도 있고 뇌에 문제가 심각한지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환자를 다독이며 구급차를 기다렸고 경추손상 우려가 있으니 조심히 이동시켜달라고 얘기하고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구급대원은 함께 병원에 가서 상태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근처에 있던 자가용으로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 직원들에게 상황과 상태설명을 다시 진행했다.뇌CT에서 뇌출혈 소인은 없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귀에서 피가 나는 것은 알 수가 없다며 연휴기간이라 닥터가 없으니 이비인후과가 있는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집이 울산인 환자와 친구가 울산에 있는 병원을 연결했고 나는 사설 구급차를 연결해서 급하게 환자를 다시 이송시켰다.며칠이 지나고 그 환자는 고맙다며 전화로 안부를 전해왔다.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며 다음에 찾아뵙고 식사 대접하겠다는 말을 덤으로 주었다.작년의 사고와 올해의 사고를 통해 정말 작고 사소한 행동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119구급대가 있어 너무 감사했다.나는 늘 죽음 가까이에 선 간호사다. 오늘처럼 삶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역량으로 최선을 다해 삶에 더 머무르도록 돕는다. 희미해져 가던 그들의 삶이 조금 더 눈부시게 빛나도록 거든다. 내 직업의 힘이다. 딸도 눈부신 직업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2023-06-07

갑진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 한 번째는 갑진(甲辰)이다. 천간(天干)의 갑목(甲木)은 기세 좋게 자란 큰 나무의 모습이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는 비옥한 땅이다. 그곳에 뿌리내린 웅대한 나무의 형상이다. 동물로는 푸른 용이다.갑진일주는 하늘에는 천둥이 치고, 땅에는 풀이 있는 연못이다. 속이 깊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으며, 내심 비밀도 많다. 우레가 초목을 치는 형상이니 기세가 등등하다. 고집과 자존심이 강하고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감정이 앞서기에 언행이 거칠 수가 있지만, 뒤끝이 없는 특징이 있다.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맡아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또한 식복을 타고났기에 욕심이 많고 경쟁심도 상당하여 조금씩 저축하기보다는 한 방에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버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돈 때문에 망할 수가 있기에 평상시에는 남에게 베풀고, 상대방에게 피해주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원한 쌓는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경쟁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일처리에 있어서는 속전속결이지만, 그만큼 포기도 빠른 편이다. 그래도 속마음은 따뜻하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려는 심성이 있어 주변사람을 배려한다면 그나마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갑진은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적극적인 추진력 때문에 사회활동을 하면서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앞에 나서기를 좋아한다. 명예심이 강하여 쉽게 만족하지 않는 까다로운 성격으로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단점이 있다. 독선적인 모습으로 주변의 적을 만들어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기에 많은 위기를 겪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그리스 문학의 창시자 호메로스의 영웅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시칠리아 해변에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히게 된다. 폴리페모스는 양을 기르면서 섬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거인 괴물이었다.오디세우스와 12명의 부하들을 동굴에 가두어 놓고 거대한 돌로 입구를 막았다. 매일 끼니로 두 명의 부하들을 잡아먹는다. ‘인육을 드셨으니 포도주를 맛보시지요.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라고 건네주면서 이름은 ‘우디스(아무도 아닌)’라고 알려 주었다.포도주에 취하여 잠든 사이에 불타는 장작개비로 외눈을 찔렀다. 그는 몸서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키클롭스들이 도와주러 달려왔다. 동료들이 “누가 그랬냐?”고 묻자 “우디스가 나를 속였어, 나를 죽이려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시큰둥하며 돌아가 버렸다. 그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부하와 함께 양의 배 아래에 매달려 탈출할 수 있었다.오디세우스는 지혜와 용기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도망가면서 그를 놀리듯 자신의 진짜 이름을 이야기하는 우유부단함과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외눈박이 거인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장님이 된 그는 아버지에게 복수해줄 것을 애원했다. 포세이돈의 분노로 10년 동안 죽을 고생하다가 부하들은 다 죽고 홀로 귀향한다.인간은 자기가 사는 환경에 따라 모습과 행동이 달라진다.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모양과 풍습이 다르다고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은 그 나름 질서와 관습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환경에서 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갑진의 특징은 청룡백호라 변화무쌍하고 변덕이 심하다. 굳센 기운과 강한 성품으로 타인의 도움도 없이 일처리도 신속하고 정확하다. 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질도 있다. 이런 성향 때문에 대립이나 다투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갑진일주 남자는 이성을 보는 눈이 높아 매력적인 여성 또는 미인을 선호한다. 그로 인해 피곤해질 가능성도 있다. 여자도 이성에 대한 운이 있는 편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을 하면 애정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한 태도로 인해 갈등의 소지가 있다. 무능한 남편을 만날 확률이 높아 본인이 가정을 꾸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남녀 공히 자기주장이 강하고 지지 않으려는 속성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직접 해야만 한다. 즉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함부로 충고해서는 안 된다.중국 한나라 때 낙양에 큰 가뭄이 들었다. 낙양의 신통력이 있는 무당들이 남산에서 행해지는 나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노인에게 “남산에 있는 큰 못에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릴 수 있는 신령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불러 낼 수 있습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그 노인은 “교룡(蛟龍)을 말하는 것이오? 그놈을 이용해서 비를 빌릴 수는 없소. 설사 그놈을 이용하면 비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큰 근심 걱정거리가 뒤따를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백성들이 저마다 “지금 지독한 가뭄으로 마치 장작불이 타는 아궁이 속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가 없는 형편인데 한가롭게 뒤탈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겠소?”라고 말했다.그리고는 무당들과 함께 남산의 큰 못가에 모여서 교룡에게 빌기 시작했다. 세 번째 제사 술잔을 다 올리기 전에 교룡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대며 기어나왔다. 이어서 가슴이 오싹하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태풍이 휘몰아쳐 나무뿌리가 뽑히고, 사흘 동안 폭포같은 비가 내렸다. 낙양 주위에 있는 모든 강이 넘쳐서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큰 홍수를 당했다. 그때서야 노인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을 후회하였다. ‘욱리자’ 노반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인간은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비굴해진다. 상대 기분을 맞추기 위해 좋은 말로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때는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아부로 바뀐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원하는 것을 가지거나 얻으면 지난 일을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욕망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망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급한 경우에도 멀리까지 살피고 떳떳하고 정당한 방법을 써야 한다.

2023-06-07

회전근개 통증과 오십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군 중 제일 많은 게 통증이다. 목 어깨 허리 팔꿈치 무릎 등 다양한 통증 환자들이 한의원에 내원한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회전근개 관련 어깨 통증이라고 할 수 있다. 목과 이어지는 승모근 쪽 어깨 뭉침이 아니고 어깨 관절면을 따라서 발생하는 통증과 함께 어깨를 완전히 올리지 못하는 질환군이 가장 치료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어깨가 아파서 오면 구별해야 할 것이 목과 이어지는 승모근 날개뼈가 뻐근하고 결리는 것으로 왔는지 아니면 어깨 관절쪽이 아프고 어깨를 드는게 힘든지 구별 해야 한다. 전자는 어렵지 않게 치료가 가능하지만 후자는 어렵다. 회전근개 파열, 충돌증후군, 석회화된 건염, 오십견 등 다양한 병명으로 한의원에 내원 한다. 어깨를 과다사용해서 그런 경우가 많고 사고로 크게 꺾이거나 부딪힌 경우 등에서도 발생한다.병의 특징은 팔을 위로 올려보면 끝까지 올라가지 않고 통증이 심하다. 특히 밤에 잘 때 너무 아파서 깬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본인의 팔이 올라가지 않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 때는 양팔을 올려서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대부분의 원인은 회전근개의 문제로 발생하는데 파열, 굳음, 염증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 하나 결과는 어깨의 심한 통증과 거상제한으로 나타난다.간단하게 뭉쳤거나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고 어깨 자체가 굳고 틀어져서 팔이 올라가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라 잘 낫지 않는다. 팔은 구조적으로 여러 근육들이 팔을 붙잡고 지지해주는 형태로 되어 있어 회전근개의 문제로 인해 어깨쪽 문제가 생기면 불안정성과 고착으로 인해 풀리지가 않는다. 오십견 같은 경우는 의학적 관찰로 보면 2~3년이 지나면 운이 좋아 자연적으로 풀린다고 할 정도니 그 심한 정도를 알 수 있다. 허리 디스크 환자보다 훨씬 어렵고 난치다.치료는 최소 3개월을 기준으로 잡고 통증의 감소를 목표로 치료를 시작한다. 어깨 움직임이 완전 정상화 되는데는 더 오랜 시일이 걸려서 우선 어깨 통증의 감소와 팔의 움직임 개선을 목표로 치료 한다. 가장 기본적인 치료는 부항과 침 치료다. 한달을 기준으로 밤에 잘 때 아파서 깨지 않는 걸 목표로 치료 한다. 처음 며칠은 치료 후 욱신거리고 아플 수 있으나 반복해서 치료를 받으면 점점 줄어 든다. 치료 효과가 극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꾸준히 치료하면 한달 정도면 밤에 잘 때 아파서 깬다는 소리는 줄어든다.팔의 움직임 개선까지 목표로 치료를 한다면 무조건 추나를 같이 해야 한다. 약침도 같이 맞아주면 좋다. 추나 비용이 좀 들지만 실비보험에 든 사람이면 침과 추나 비용은 보전이 되니 할 수 있으면 침과 부항 추나를 같이 받는 게 좋다. 때에 따라선 어깨쪽을 풀어 주는 한약을 병행 해야 할 때도 있다. 오래 걸리긴 하지만 치료를 하면 통증은 어느 정도 잡히고 추나까지 해준다면 팔의 움직임도 많이 개선될 수 있다.회전근개 관련 어깨 통증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병이라고 표현을 한다. 어디서든 치료를 한다면 몇 개월은 한다 생각하고 치료를 시작하면 일상생활 불편함은 덜 수 있을 것이다.

2023-06-07

디지털 리터러시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챗 GPT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뜨겁다. 2022년 11월 처음 공개된 챗 GPT는 5일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넘길 만큼 세계인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난 지금 챗 GPT가 상징하는 생성 AI의 연구와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AI가 열어젖힐 새로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지금은 잊힌 감이 있지만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당시에도 ‘인류의 위기’까지 거론될 만큼 시끄러웠다. 많은 대학에서 ‘코딩’을 교양필수로 지정하며 컴퓨터 언어를 익히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일로 홍보했다. 그러자 초등학생까지 코딩 과외가 유행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AI가 뒤바꿀 인간의 미래를 질문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 y)’ 개념이 있다. 리터러시(Literacy), 즉 읽고 쓰는 능력의 디지털 버전으로 디지털 시대의 정보를 이해하고 디지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도 2022년 신입생부터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 강화를 목표로 파이썬 프로그램 등을 가르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코딩을 할 수 있는 문과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의 스펙으로서 말이다.하지만 생성 AI의 등장은 프로그램 언어를 모르는 프로그래머를 만들 수 있다. 2016년 알파고 이후 AI의 진화는 계속되어서, 지금 이런 형태의 AI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일론 머스크, 유발 하라리 등이 AI 개발을 6개월 중단하자는 서한에 서명했다는 뉴스는 속도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갖는 위험성을 반증한다. 비록 AI의 진화 속도를 인간의 힘으로 누르더라도 큰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다. AI가 인간과 똑같은 로봇 속에 들어가는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미래를 질문하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순히 컴퓨터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의 빠른 진화로 변화하는 현실문화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좀 더 명확히 정의될 필요가 있다. 기술의 속도, 그 자체를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문학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의 리터러시 능력 향상에 있었다. 물론 당시는 활자 문화 시대의 읽고 쓰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텍스트를 읽고 비가시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힘들을 인식하고 교직하며 글로 쓰는 행위는 디지털 시대에도 똑같이 이루어진다.챗 GPT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지는 고도의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히 이공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의 복잡성을 연결하여 근본을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단순하게는 챗 GPT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2023-06-07

TV 수신료의 운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TV수신료는 1963년 처음 징수됐다. 당시 돈 100원을 냈다. 그 때만해도 TV보급률이 낮아 일부 부유층만 TV를 보유하고 있었다. KBS 징수요원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TV를 확인, 징수했다.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TV보급률이 높아졌다. 일일이 방문 확인이 어려웠다. KBS는 1994년 한전에 징수업무를 위탁, 전기요금과 합산 청구했다. 이 때부터 전국민은 TV 시청료를 강제 징수당했다.TV수신료는 1981년부터 2천500원으로 정해져 전기요금 고지서에 포함돼 청구된다. KBS2가 광고를 받고 있기 때문에 수신료 비중은 45% 정도라고 한다. KBS는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로 비난받았다. 적자 누적으로 재정위기에 부딪히자 공영방송 존립을 위해 필요하다며 시청료 인상을 꾀했다. 국민 반응은 냉랭했다.대통령실이 나섰다. 방송통신위와 산자부에 KBS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권고했다. 방통위는 조만간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할 전망이다.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통합 징수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불편 호소와 변화 요구를 반영했다.대통령실이 TV 수신료 징수 방식을 국민참여토론에 부치자 방송의 공정성 및 경쟁력, 방만 경영 등 문제가 지적됐고 수신료 폐지 의견이 제기됐다. 사실상 세금과 다름 없다는 의견이었다. 국민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면 상당수 시청자들이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KBS의 수익구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KBS노조가 사장과 이사진의 전원사퇴를 촉구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편향 방송의 자업자득이다. TV수신료 분리 징수 결정을 보면서 30년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07

스무살 정신으로 돌아가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갓 스무살 축구선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나라 안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그들이 보내오는 소식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어른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아이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국내뉴스로 국격이 내려가는데 해외뉴스가 나라체면을 붙들고 있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와 국방에 날마다 낙제점수가 쌓여가는데 스포츠 한 방에 백점 기분이 되어 하루가 즐겁다.이겨놓고도 태도가 놀랍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모두가 서로를 칭찬할 뿐이다. 천금같은 골을 넣고도 잘 올려준 코너킥 덕분이라고 했다. 승리를 따낸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을 다독이고 선수들은 하염없이 동료들을 챙긴다. 나라야 어찌 되든 내 자리만 지키는 이 나라 정치판과 얼마나 다른가. 국민이 어찌 살든 내 욕심만 채우려는 어른들과 얼마나 다른가. 뻔히 보이는 실수에도 남들만 탓하는 그네들과 참으로 다르다. 어쩌다 좋은 일에는 자기자랑으로 침이 마르는 당신들과 너무나 다르다. 힘들고 어려워도 욕심없이 서로 부추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무살 정신이 부럽고 자랑스럽다. 어디까지 이길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감독은 바로 앞 경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했다.스무살 그들이 나라 안 어른들보다 백 배는 멋지다. 이기고도 한없이 소박한 청년에게 배워야 한다. 끝없는 탐욕을 날마다 들키는 나라 안 어른들이 창피할 일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달리고 달리는 너희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정치판 악다구니에 식상한 국민들이 새벽잠과 싸워가며 축구경기에 몰두하는 까닭이 있다. 빈껍데기 약속들과 거짓말 스테레오에 지칠대로 지친 시민들이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에 집중하여 열심히 달리고 욕심없이 함께 땀흘리는 팀스피리트를 청년들의 축구경기에서 드디어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나라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구하지 못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보통사람이 힘을 모아 지킬 뿐이다. 어려운 경제도 허장성세 한 방에 풀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국민이 티끌모아 쌓아올릴 때 나아질 터이다. 무엇을 해도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길러온 실력으로 오늘의 최선을 던지는 젊은 선수들이 고맙고 고맙다. 자신이 힘든 만큼 함께 달린 동료들도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고개숙일 줄 아는 청년들이 너무나 귀하다.다음 경기에 기대가 높이 걸린다. 이기든 지든 온 힘을 다해 달려줄 선수들에게 높은 기대를 건다. 화려한 정치 술수보다 그네들의 축구실력이 훨씬 정직하고 순수하다. 경기 내내 보여줄 거짓없는 열심과 욕심없는 협력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내일의 경기에도 혼신의 열정을 다하여 이겨주길 간절히 원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젊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멋지게 싸워 줄 것으로 기대한다. 쉬운 경기가 없고 쉬운 정치가 없다. 나라를 책임진 당신들도 스무살 정신을 다시 찾았으면 한다.

2023-06-07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곧 일본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한동안 잠들기 전에 유튜브 속 일본 여행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도톤보리에서 꼭 먹어봐야 할 초밥집이나 타코야끼집, 우메다의 쇼핑센터나 각종 오사카 관광 스팟을 체크하며 구글 지도를 하트 마크로 점찍어 두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처음 가는 해외 자유여행이라 더욱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늘 여행은 즉흥적으로 떠나는 타입이라 잠은 아무데서나, 먹는 것도 아무거나 먹으며 하루 온종일 정처 없이 걸어 다니곤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다르다. 얼마나 들떠있는지 여행 일정을 스스로 난생 처음으로 계획해서 모든 일정을 문서로 정리했을 정도다.‘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대학 졸업 이후 홀로 자유 기차여행을 떠났을 때다. 당시 만나던 연인과 헤어진 이후 이별의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당시 코레일에서 내일로 티켓을 끊으면 무궁화호에 한해서 기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수중에 있던 아주 적은 금액의 돈과 배낭만 챙겨 들고선 서둘러 기차에 올랐던 여행이었다.처음으로 향한 곳은 포항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이면서 푸른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다 싶어 택한 곳이었다. 포항역에서 내리자마자 역에 배치된 관광지 팸플릿을 보았고 별 다른 고민 없이 호미곶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당시 불안으로 휩싸인 적막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가까웠기에, 재빨리 파도와 갈매기 그리고 밝고 활기찬 관광객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로 적막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급해져선 간단히 숙소에 들려 배낭을 내려놓고 휴대폰과 카드만 챙긴 채 호미곶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분명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지도대로 따라가 버스 환승을 하려 했지만 어느 작고 외진 마을에 내리고 말았고 환승할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점점 해는 지고 있었고, 마을은 조용했으며 마을회관조차 인기척을 찾을 수 없어서 계속 초조한 마음이 더해졌었다. 정처 없이 걷던 와중 다행히 나와 비슷한 처지의 관광객을 만나 정신을 차리고 택시를 불러 겨우 호미곶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겨우 도착해서 해가 지는 것을 멍하니 앉아 보고 있는데 그때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이 여행은 아무래도 도망에 가까운 것이구나. 아무리 낯선 곳으로 멀리 도망친다 한들 뜨겁고 눅눅한 후회의 감정은 떨어트릴 수 없는 거로구나, 하며 물거품이 되어버린 모든 것들을 바라만 보았던 여름날의 습한 기억이 잔잔히 남아 있었다.당시의 무력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 온종일 낯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더 물 수 없도록 몸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포항 다음은 부산, 그리고 경주 그 다음은 진주를 오가며 낯선 이들을 만나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고 또 헤어지며, 수많은 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녔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시큼하게 파랗던 하늘, 묵묵히 우거진 초록과 그늘을 내어주던 커다란 나무들, 깊은 골목에서 묵묵히 머무르고 있는 오래된 집과 사람의 흔적들은 쓸쓸함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와중에 자꾸만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게끔 했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들은 이토록 묵묵하고도 견고한데, 나는 왜 작은 이유로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아리송한 의문은 더욱 외로운 도피로 느껴지게끔 했다.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가라앉는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을 위한 짐을 싸다 불쑥 그날의 기차 여행이 떠오르고 말았지만 이젠 과거의 기억 위로 새로운 짐을 챙겨 넣을 수 있게 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도 하고, 사랑과 존중의 깊이를 다시금 헤아리면서 더는 과거 어린 날의 나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지도, 필요 이상으로 애틋해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6월의 일본은 덥고 습하므로 얇고 가벼운 옷 위주로 잘 개어 넣고 다음으론 편한 잠옷과 슬리퍼를 담는다. 기초 화장품과 약, 액세서리류는 작은 통에 소분해서 투명 파우치에 챙겨 넣는다. 그렇게 새로운 여행의 기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이번 여행은 과거의 후회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닌, 좋음을 가득 채워 올 여행을 할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이와 나란히 낯선 길을 걸을 것이고,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을 먹고, 그 나라의 언어를 쓰고, 역사적인 곳도 방문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을 오랫동안 누리며 가득 담아올 것이다.

2023-06-06

향기로운 봄날의 금강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정지용, ‘향수’)아까시 꽃냄새가 흐르고, 청보리밭이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면 충북 옥천 안남면 지수리, 금강 청동여울의 봄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금강의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나는 봄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굽이쳐 흐르는 금강에서 루어 낚시를 즐긴다. 루어 낚시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길, 금강휴게소에서 라바댐 지나 금강4교, 보청천 합수부 원당교 앞 엘도라도 펜션, 청마교, 합금교, 가덕교 콧구멍다리 또 지나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길을 달리다 멀리 지수리 취수탑이 보이면 마음의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게 된다.언제 와도 고향집 같은 ‘등나무가든’에 짐을 푼다.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이다. 주인 어르신 내외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낚시에 미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집을 찾았는데, 그렇게 드나든 지 벌써 10년쯤 됐다.할아버지 할머니와 여기 함께 살던 손자는 자기가 키우는 햄스터를 내게 자랑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새 대학생이 돼 타지로 나갔다고 한다.아저씨는 숙원사업이던 마당 연못을 만들어 5짜 쏘가리 두 마리, 4짜 붕어 몇 마리, 잉어, 마자 등등을 넣어두셨다.내가 마당에 주차하고 내리자마자 이것 좀 보라며 얼마나 자랑을 하시는지.아주머니는 대뜸 “더 훌륭해졌네” 하신다. 나는 뭐가 훌륭한지 모르면서, 어떡해야 훌륭해질 수 있는지 모르면서 어떻게든 훌륭해지기로 마음먹는다.낚시 준비를 해서 청마대교 밑 여울로 들어갔다. 쏘가리가 나오면 제일 좋고, 끄리 손맛만 봐도 좋다. 역시나 막무가내 우당탕탕 끄리가 루어에 달려든다.힘이 제대로 붙은 끄리들을 연신 낚아내며 손맛을 즐기고, 잡자마자 사진만 찍고 다시 놓아주는 걸 반복하는데, 저쪽 다리 건너편에 한 백발 어르신이 앉아 낡고 엉성한 낚싯대로 낚시 중이다. 물고기는 못 잡고 강물 위로 흐르는 구름과 바람과 봄볕만 빈 바늘로 건져내고 있다. 그러다 겨우 끄리 한 마리를 잡아내셨다. 하지만 그 한 마리 낚은 게 전부다.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르신이 낚싯대를 접더니 겨우 잡은 그 한 마리 맛없는 끄리를, 기생충 감염의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녹슨 칼로 회 떠 초장 찍어 잡수는 게 아닌가. 나는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어르신이 좀 측은했다. 어르신은 내가 팔뚝만 한 끄리 수십 마리를 잡았다가 다시 놔주는 걸 다 봤을 테고, 낡고 망가진 낚싯대와 빈 그물이 꼭 자신의 나이든 처지처럼 여겨져 쓸쓸했을지도 모른다.끄리 몇 마리를 잡아 어르신께로 갔다. 도마에 묻은 핏물과 마구 썰어 뭉개진 회가 비위생적으로 보였지만 괘념치 않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끄리회 한 점을 정말 맛있게 씹으며 소주를 들고 계신 어르신께 “끄리회 맛있죠. 회 뜨기 좋은 놈으로만 몇 마리 챙겼는데 혼자 먹기엔 많네요.” 큰놈 세 마리를 드리고는 말없이 다시 내 낚시 자리로 왔다. 보리밭에는 초록 바람이 불고, 강물냄새가 머리칼에 배여 마음까지 향기로운 봄날의 금강……오후 다섯 시, 맑은 강물과 해거름이 뒤섞여 금강이 그야말로 금빛 비단처럼 미끄러진다. 낮 동안 잠잠했던 아까시 향기가 노란 송홧가루와 함께 강물에 실려 오는데, 아아 그 달콤하고 아찔한 들숨!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나는 석양에 취해 꽃내음에 취해 그리고 여기저기서 퍽퍽 루어를 때리는 끄리의 손맛에 취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황홀하다. 아까시 향기와 노을이 강과 나를 삼킬 때, 그 오감의 충만함에 내 영혼도 삼켜진다.늦은 저녁, 등나무가든 마당 평상 위에 아주머니께서 닭도리탕 술상을 봐두셨다. 이 집은 백숙, 닭도리탕, 민물매운탕 등을 하는데, 아주머니 솜씨가 끝내준다. 매콤한 닭도리탕에 술잔을 비우는 사이 다리 밑을 흐르는 여울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화음을 이룬다.맑고 향기로운 평화가 감도는, “밤하늘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금강 지수리, 세월이 아무리 지난다 한들 이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2023-06-06

“전기 많이 쓰는 기업 경북도로 오세요”

심충택 논설위원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해 재선 직후, 민선8기 경북도 준비위원회와 국민의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임기 중에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을 하겠다고 강조했을 때 대부분 반신반의했다. 이 지사는 당시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도 “KTX 요금을 거리에 따라 부과하듯이 전기요금도 발전소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소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요금을 책정하면 원자력발전소와 거리가 가장 먼 수도권이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인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이미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시행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지역구 의석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다들 생각했다.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지난달 25일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의 근거를 담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 지사의 요구가 현실화됐다. 특별법 제45조에는 ‘전기 판매사업자는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하여 기본 공급약관을 작성할 때에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법안 공동 발의자는 국민의힘 박수영(부산 남구갑), 민주당 김성환(서울 노원구병)·양이원영(비례대표) 의원이다. 경기도 행정부지사를 역임하며, 수도권 소재 전력소비가 많은 기업을 꿰뚫고 있는 박 의원은 이미 대규모 데이터센터들을 PK(부산경남) 쪽으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현재 전력효율화와 지역균형 발전차원에서 데이터센터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고 있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경우 그만큼 전력 공급을 위한 고압송배전 설비가 필요한 것도 정부로선 부담이기 때문이다.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분산법 국회통과의 후속조치로 시행령 및 시행규칙, 고시안 마련에 착수했다. 경북도가 최근 전기료 할인 폭이나 감면 방안 등이 담길 후속조치 마련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응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경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의 중심지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25기의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12기(경주 5기·울진 7기)가 경북에 있다. 12기 원전 설비용량은 총 11.4GW에 이른다. 원전부담을 안고 사는 경북 동해안 지역 주민과 기업들에게 저렴한 전기요금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도 밝혔듯이, ‘분산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균형 발전이다. 현재는 원전이 집중된 영남권 지자체나 원전이 하나도 없는 수도권 지자체의 전기요금이 똑같다. 이로인해 전력소비가 엄청난 분야(데이터센터나 반도체, 2차전지 등)의 기업들도 원가부담 없이 수도권에 공장입지를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분산법에 의해 전력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의 요금 차이가 많이 날 경우 관련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원전주변 산업단지를 물색할 수밖에 없다.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국가 전체로는 송전비용 절감을, 발전지역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업에는 생산비용 절감을 이끌어내는 일석삼조 효과가 있다.

2023-06-06

NGO 정신

우정구 논설위원 NGO는 비정부기구, 비정부단체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순수 민간단체다. 영어로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으로 표기한다. 대개 그 출발점은 1863년 스위스에서 시작한 국제적십자사 운동을 손꼽는다. 국제적십자사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네트워크 중 하나다.NGO란 용어가 국제사회에 널리 사용된 것은 UN이 주관하는 국제회의에 민간단체들이 본격 참여한 1970년대부터다.NGO는 입법, 사법, 행정, 언론에 이어 제5부(제5권력)라 불린다. 정부와 기업에 대응하는 제3섹터라고도 한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시민사회가 직접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단체여서 시민운동의 중심에 선 단체다. 때론 정부가 추진하기 어려운 분야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나서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시민단체가 이러한 NGO 정신에 입각해 등장해 경제, 환경 등 각 분야별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시민단체는 어떠한 정치적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비정부기구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각 나라 안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가 이미 100만개를 넘어선 것은 민간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NGO가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한 청렴이 전제돼야 한다. NGO의 부정 비리는 정부와 기업을 견제할 능력을 상실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정부가 비영리 민간단체의 대규모 부정 비리를 적발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의 건전성이 위험에 빠졌다는 경고다. NGO 정신을 다시 생각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6

인공지능 규제와 데이터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심상치 않게 들린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을 지금부터 통제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SF영화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생성형 AI가 학습에 이용된 데이터의 출처와 저작권 등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인공지능법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데이터의 위험도에 따라 인공지능 기술을 금지, 고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 위험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 금지된 인공지능에 해당될 경우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을 금지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규제들이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사실 기술 규제는 비단 인공지능만의 이슈가 아니다. 기술에 대한 규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다. 아무리 완벽한 기술이라 할지라도 그 파급효과까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술 규제는 기술이 조금은 제한된 환경에서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인공지능 규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어야 할까? 유럽연합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유럽연합의 인공지능 규제 법안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결국 요지는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보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있어 활용되는 데이터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활용, 시장에서의 경쟁, 기술 그 자체의 진보에 있어서 데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인공지능 경쟁은 사실상 데이터 경쟁임을 의미하며, 좋은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다른 시사점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완전한 지식의 공유는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보편적 지식 확산에 기여하더라도 여전히 학습한 데이터의 가치에 따라 지식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될 것이며 이는 지금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 뿐만 아니라 여러 구성원들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기술규제의 설계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앞선 사례들을 통해 파악한 것처럼, 인공지능 규제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양질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동시에 우리 사회 안의 지식 불균형 혹은 인공지능으로 인한 정보 차별을 방지 또는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규제가 단순히 기술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데이터에 대한 규제인 것을 기억하자.우리가 결국 지금 더 보호해야하는 것은 최첨단의 기술이 아니라 남들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고유한 데이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기업과 젊은 청년들이 인공지능 시대에서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인공지능 규제가 마련되길 바란다.

2023-06-06

한흑구 문학의 자취를 찾아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가벼운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바람을 타고 두둥실 하늘을 떠가는 구름처럼, 버스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차창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 속을 누비니 가뿐하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의 여유와 쉼표 같은 떠남이던가. 큰길에서 벗어나 군데군데 샛노란 금계국이 반겨 맞는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지나 다다른 곳은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이다.포항의 시인묵객들과 화가, 예인, 가인 등이 안동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으로 시작되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의 배경지가 포항(도구리)이고, 일제강점기 이후 포항에 살면서 주옥같은 수필 명작을 남긴 한흑구 선생의 ‘이육사의 청포도’ 수필 등과의 연관성이 있기에, ‘한흑구 문학, 그 자취를 찾아서’란 명목으로 포항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곧 2022년 3월에 출범한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기념사업을 단계적,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육사(陸史) 이원록의 삶과 문학작품, 편지 등을 정리, 비치, 조명하고 있는 이육사문학관은 그의 작품과 짧은 생애만큼이나 단출하고 정갈하다. 육사선생의 고향마을 원촌리 북미골 어귀에 자리잡아 시인의 작품을 닮아선지 화려하지 않고 검박하다. 2004년 개관한 이육사문학관은 차분한 회백색톤의 전시관과 생활관, 생가를 옮겨와 복원한 육우당(六友堂), 사색마당, 수경시설 등으로 조성돼 있으며, 2017년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곳이기에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돼 있고 안동시내와의 원거리 등으로 접근성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인근에 시비공원과 수필에 등장하는 지명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취 등으로 고향이라는 테마와 스토리가 많은 문학관이기도 하다.전시관 실내외 곳곳을 둘러본 후 문학관장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문학관 운영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의 문학관 건립과 초기운영은 지자체의 몫이다가 민간위탁운영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예산부족 등 운영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운영업체 자구책으로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스토리 체험형 문학테마 발굴이나 청포도 와이너리, 청포도빵 등의 브랜드화로 별도의 수익사업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가칭 ‘한흑구문학관’ 건립, 운영 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구름꽃 피는 하오의 원촌마을을 뒤로 하고 일행은 한흑구문학비가 있는 내연산 계곡으로 향했다. 등산로 초입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문학비를 둘러보며 한흑구문학비의 건립 내력을 더듬어 보고, 선생의 보경사 앞 회화나무를 소재로 쓴 수필 ‘노목을 우러러보며’를 낭독하기도 했다. ‘1987년에 이곳엘 처음 찾았던 필자로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진 곳에서 외롭게 서있는 시비가 아쉽게 여겨졌음은 나만의 기우였을까? 안동과 보경사를 두루 거친 문학기행의 취지와 성과가 올곧게 반영되어 흑구선생의 문학적인 업적이 재조명되기를 사뭇 기대해본다.

2023-06-06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지 마라

김진국 고문 “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배우 김광규는 이 대사로 떴다. 부산 조폭들을 그린 영화 ‘친구’에서 고교 교사로 나와 이 대사를 날리며 학생들을 구타했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학생 신상을 탈탈 털었다. 아버지 직업은 물론 말하자면 숟가락 개수까지 조사했다.유오성이 (우리 아버지는) “건달”이라고 대답한 뒤, 선생님의 매질에 발끈해 뛰쳐나가자 김 씨가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다 똑같았다. 학부모는 달랐다. 직업이 다르고, 재산이 달랐다. 부모를 살피면 학생은 뒷전이 된다.가계도에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엿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본데없다’라는 말이 큰 욕인 것도 그런 맥락이다. 책보다는 경험으로 배우던 시절 가족과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했다. 그러나 편견이 더 많다. 한 배에 난 동기 간에도 다른 구석이 많다. 부모 직업이라는 안경으로 학생을 보면, 공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정지아 씨는 같은 반 친구로부터 “느그 아부지가 빨갱이람서?”라는 말을 들은 뒤로 ‘천형(天刑)’처럼 외톨이로 살았다고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부모가 ‘빨갱이’ 노릇한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나면서부터 낙인이 찍혔다. 혈통을 무시할 건 아니지만, 개인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이다.고려와 조선에는 음서(蔭敍)제도가 있었다. 5품 이상 고위 관리 자제는 시험을 보지 않고도 하급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고관이면 ‘빽’으로 관직을 얻었다는 말이다. ‘뼈대’가 있다느니, ‘씨’가 훌륭하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시험을 쳐서 합격하지, 왜 몰래 뒷구멍으로 들어가나.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건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업은 덕분이다. 야당 내에도 정권 교체의 1등 공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많다. 조 전 장관이 한 일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핏대를 올리는 통에 그 부담을 몽땅 민주당이 떠안았다.조 전 장관 말마따나 모두 개천의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가 행복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렇지만 내 자식은 부모 힘으로 용을 만들려고 하면서, ‘너희들은 가붕개로 살아라’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방아쇠도 정유라 씨의 ‘엄마 찬스’다. 정 씨가 페이스북에 “능력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올리면서 민심이 폭발했다.자녀 문제는 영원한 약점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필부야 그 본능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공직을 맡은 사람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리는 모양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두들겨 맞는 문제 대부분이 자녀 욕심이다. 정권이 뒤집히는 일을 두 번씩이나 겪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2022년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 대학 교원과 미성년 자녀가 공동 저자로 등재된 논문이 1천33편이나 된다. 새 정부가 발탁한 사람도 줄줄이 ‘아빠 찬스’ 의혹으로 물러났다.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의대 편입,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 장학금 수령에 발목이 잡혔다. 부모야 자기가 지은 죄니까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식은 왜 죄인을 만드나.선관위 고위직들이 자녀 채용과 승진에 ‘아빠 찬스’를 썼다는 의심을 받았다. 지난해 김세환 전 사무총장에 이어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지난달 말 자녀 채용 부정 의혹으로 퇴진했다. 채용 6개월, 1년 만에 승진도 했다. 사무와 감사를 총괄하는 사람들이 모두 연루됐다.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드러난 의심 사례만 10건이다. 아빠 찬스, 세습 채용이란 말까지 나온다. 외부조사를 하면 얼마나 더 많을지 알 수 없다. 감시받지 않은 조직인 탓이다.어디 선관위뿐이겠나. ‘아빠 찬스’는 이념과 여야,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 노조는 고용세습 단체협약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일부가 특혜를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고용 기회를 박탈당한다.사회 전반을 뒤져 불공정 채용과 승진은 뿌리 뽑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04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 이미 도를 넘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 의원들의 탈선(deviant behavior)이 심상치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탈당, 사퇴, 구속되는 사태까지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비리와 비행이 터질 때마다 여야는 상대만을 극렬하게 비판 비난한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엄청나지만 의원들의 진정한 반성이나 자각은 찾아 볼 수 없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그러나 최근 진보를 자처한 민주당의 탈선은 보수정당에 못지않게 빈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념이나 무늬만 진보이지 비리와 탈선은 보수 정당에 못지않다. 정치권은 비리가 노출될 때마다 부패 척결이나 정치 개혁을 외치지만 의원들의 탈선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와중에서도 양대 정당 지지율이 30%대를 유지하니 지극히 한심한 작태이다.최근 민주당의 돈 봉투 관련 스캔들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과거 배고픈 야당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패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그들이 과거 야당일 때는 진보와 개혁을 외치면서 도덕성면에서는 집권 보수당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부패 척결, 약자와의 동행, 사회정의 실현을 당의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그것이 당시에는 상당히 먹혀 들었다.김대중 대통령 이후 세 번이나 집권한 민주당은 보수 기득권 정당이 될 정도로 변질되었다. 지난 집권당 시절 서울, 부산, 충남지사의 성 스캔들은 성추문 정당으로 낙인 찍혀 지방 선거의 패배로 이어졌다. 지난 송영길 당대표 선출과정의 돈 봉투 배포 의혹은 당의 이미지를 또 다시 추락시켰다. 현금을 돌렸다고 의심받던 두 의원은 탈당하였다. 연이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는 그 개인뿐 아니라 당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가뜩이나 당대표 사법 리스크로 휘청거리던 판에 의원들의 비리는 당을 더욱 위기로 몰고 있다.집권 정당 국민의 힘에도 탈선과 비행의 전통은 민주당에 못지않다.해방 후 장기 집권 보수당은 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의 국고 환수액은 각기 2천억 원을 훨씬 넘었다. 전두환은 추징금 922여억 원이 아직 미납 상태다.이회창 당 대표 시절의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변호사비 대납 등 금전 문제로 구속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측근비리와 부정으로 탄핵까지 선고받았다. 최근 곽상도 의원은 50억 뇌물 수뢰 혐의는 재판에 계류 중이다. 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겸직 금지된 12건의 변론을 재임 중 수임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최근 경실련조사에서 임대업을 겸직한 국회의원이 수두룩하고 재산증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전체 의원들의 주식이나 가상자산을 정밀 조사한다면 여당의원 역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이 같은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행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의 근원이 된다. 의원들의 이러한 탈선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뿐 아니라 정치적 냉소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야 모두 정치인들의 탈선이나 비행을 질타하지만 소나기만 지나면 모두 잠잠해진다.정치인들의 비행과 탈선 바탕에는 거대한 여야의 공존구도가 버티고 있다. 양대 정당은 상호 묵인과 야합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특권부여 등 기득권 보장에는 여야가 구분 없이 잘 협조하였다. 국회의원의 세비인상과 연금, 겸직, 특권 부여에는 여야가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지방의회에도 의원 세비 심의위원회가 조직되어 그들의 세비 인상을 통제하는데 국회에는 그런 장치마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의원 정수 조정이나 의원 선출 방식마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공천이나 기득권 포기하는 의원은 없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항상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지능화되고 증가된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를 근원적으로 막을 장치는 마련할 수 없을까.우선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 장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회 자율적 정화 장치인 윤리위원회만으로 의원들의 탈선까지 막을 수 없다. 언론의 국회에 대한 감시 비판 기능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언론, 시민 단체, 유권자 단체마저 진영정치로 인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공정한 감시나 비판을 원천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구도 하에서 여야 정치인들의 탈선과 비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내년 총선은 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정치 문화에서 깨끗한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양식 있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이 정치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2023-06-04

한국, 3차산업혁명 문턱서 좌절위기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1차 산업혁명은 1760년대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에 비해 미국은 1800년대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1900년대 전반기에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탄소중립의 세계적 구루 제레미 리프킨에 의하면, 경제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3가지 요소에 전반적인 변화가 상호작용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첫째 동력원으로써 에너지, 둘째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 셋째는 운송·이동 수단의 변화다. 이들이 상호작용해서 경제적 변화와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19세기 후반에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미국은 유럽보다 100년 늦게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20세기에는 저렴한 석유를 바탕으로 한 중앙제어식 전력과 전화, 라디오, TV, 그리고 전국 도로망을 달리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상호작용하며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현재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3차 산업혁명의 동력원인 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바탕의 에너지원으로 바뀌고 있으며, 디지털화한 재생에너지 기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과 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 및 연료전지, 그리고 디지털화한 운송·물류망이 상호작용해 3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1차 산업혁명 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말기로 산업혁명이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갔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 있었다. 해방 후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보다 100년 늦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군사정부에 의해 1차 산업혁명, 70년대와 80년대에 2차 산업혁명이 뒤늦게 일어났다. 그후 21세기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와 각종 디지털 산업, 제조업이 가장 발전된 나라가 된 상태에서 선진국과 동시에 맞았다.그러나 지금 3차 산업혁명 와중에도 대한민국은 없는 것 같다. 아직 전반적인 국민 의식은 1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치인과 관료들도 2차 산업혁명 시대에 안주하고 있다. 최첨단 기업들 또한 2차 산업혁명기 ‘제조업 시대’의 유혹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외면하고 있다.3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각종 디지털 기기, 반도체, 전기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도 의식과 가치관은 과거에 안주하고 있다.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아직도 개발도상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다. 전 세계는 유럽 선진국을 필두로 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뒤처지고 있다.지난해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49%를 넘어섰고, 미국도 30%를 향해가고 있다. 심지어 중국조차 28~29%에 달하고 일본도 25%를 넘어섰다. 반면 우리나라는 7.2%다. 재생에너지 시범지구인 제주도가 재생에너지 18%를 달성했지만, 송배전 선로 부족으로 지난해 103차례 셧다운 사고가 났다.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발생할까. 탄소중립 실천에 국가들이 미적거리자 글로벌기업들이 나서서 RE100(제품생산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주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까지 나서서 CF100(원자력까지 포함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안 되느냐며 글로벌 조류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공산품은 수출과 무역에 연관되어 있는데도 산업현장에서는 공장 지붕에 만이라도 태양광을 설치하자고 해도 “나라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며 딴전을 피운다.쌀이 남아돌자 ‘콩 심으라, 팥 심으라’하면서도 농지 태양광 설비는 법으로 규제해 놓고 ‘땅이 좁아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분산에너지여서 수많은 마이크로 송배전망이 필요한데도 그간 이를 대비하지 못해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18%에 셧다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총체적인 부실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탈원전을 폐기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정책도 함께 폐기해버린 듯하다. 선진국 문턱에서 맥을 놓아버린 모양새다. 탄소중립 정책은 에너지 자립,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충분히 이 땅에 내리쬐는 햇볕과 바람을 이용해서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데도 딴전을 피우고 있다.송배전망을 촘촘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간 참여 등 한전 단일 판매망 변화가 필요한데 오히려 한전 국유화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수백·수천 년간 관리되어온 농촌의 전답을 이용하여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하면 농촌도 회생하고 국토 균형 발전도 이루고 에너지 자립도 가능한데 땅 없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행위는 마을에서, 도로에서 500m 이격거리를 두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데 시·군 당국과 시·군 의회가 경쟁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대한민국은 3차 산업혁명 요소들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국가다. 세계에서 휴대폰과 TV, 자동차 배터리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세계 각국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의 의식 부족으로 3차 산업혁명 문턱에서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 선도국으로 가느냐, 후진국으로 퇴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23-06-04

중고 거래의 딜레마

유영희 작가 옳고 그름을 무 자르듯이 딱 자르기 어려운 경우는 많지만, 절약이나 친환경 같은 이슈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옳음의 범위에 속한다. 제리 스피넬리의 ‘돌격대장 쿠간’은 초등 고학년이 읽을 만한 동화책인데도, 그 안에 담긴 주제는 비폭력, 친환경, 성 평등 등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옳음이 무엇인지 편안하게 보여주어서 재미있게 읽고 주변에 많이 추천하기도 했다.주인공 존 쿠간은 언제나 새 옷을 입고 고기를 즐겨 먹으며 특유의 적극적 성격으로 학교에서 ‘핵인싸’다. 그런데 전학 온 펜 웹은 중고 옷만 입고 온 가족이 채식주의자인데 남다른 친화력으로 금세 여자아이들한테도 인기 많은 ‘핵인싸’가 된다. 쿠간은 그런 웹을 싫어하지만 웹이 쿠간의 할아버지를 위해 자기가 너무나 아끼는 흙을 기꺼이 내어주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그토록 혐오하던 중고 물건을 사며, 백화점 건립 반대 운동에 참여한다. 이 책에는 소비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듬뿍 담겨있다.나 역시 당근마켓이라는 중고 거래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당연히 가장 먼저 들어가 보는 곳이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슬그머니 들어가 본다. 작은집으로 이사하면서 많은 물건을 판매한 곳이기도 하다. 새 것을 살만큼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착한 소비를 한다는 자부심도 조금은 있다. 옷만 가지고 보면, 2019년 기준 생산량은 대략 1천300억 개, 이중에 버려지는 옷이 최소 920만 톤 이상이라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소각되는 과정에서 대기가 오염되고, 소각하지 못한 옷은 쓰레기 산을 이룬다고 하니, 나 한 사람이라도 중고 옷을 이용하면 옷 생산량이 줄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요즘 들어 현실에서는 중고 물품 이용이 정말 옳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나처럼 중고 마켓 물건이 싸다고 쉽게 사다가 물건이 쌓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고 마켓을 믿고 소비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제 유튜버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중고 마켓에 내다 팔 생각에 옷이나 물건을 많이 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중고 물품을 이용하는 것이 친환경적이거나 절약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것도 없는데 괜히 검색하느라 시간 버리는 것도 문제다.중고 물건 이용의 또 다른 문제는, 분명히 자기 물건을 샀는데도 중고 마켓에 팔기 위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책도 마찬가지다. 새 책을 사도 나중에 팔 생각에 마치 빌린 책처럼 밑줄도 못 긋고 메모도 못한다. 이러다 보니, 내 책인데도 읽기가 불편하고 읽은 것 같지 않다. 중고 거래를 위해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이한 소비 현상이 벌어지니, 중고 물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질문하게 된다.옛사람들이 만든 오래된 그릇이나 가구를 보면, 은근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 정도의 품질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오래 쓰는 것이 환경도 보호하고 삶의 질도 높인다는 오래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2023-06-04

미래를 향한 삶과 기업혁신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삶을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대체로 어렵다고 말하지만 의외로 간단히 알 수 있다. 지금 자신의 생각과 습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꿈과 비전으로 정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충족 요건을 목표로 설정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면 그 결과만큼 내 미래는 그려진다.‘계획한 만큼 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계획이 수립되려면 꿈이 있어야 하고 시간 개념이 들어간 꿈과 목표가 설정되어야 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다.이를테면, ‘20년 내 회사에서 기술명장이 되겠다’라고 하면, 기술명장의 요건을 목표로 세우고 매년 계획을 실행하면 20년 내에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기업의 미래 예측은 여러 대내외 변화와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현재에 직면한 경영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모습의 밑그림을 그려서 그 실현한 결과가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스마트팩토리로 성공한 독일의 지맨스도 99%의 생산자동화시스템을 완성했지만 미래를 계획하고 실행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모습은 기대 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향한 혁신은 대체로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디지털화와 인공지능이다. 기업은 디지털화와 인공지능기술을 채택하여 생산과정을 혁신해야 한다. 센서, 빅데이터, 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등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로봇 공학과 자동화이다. 미래는 로봇이 일하고 사람이 행복한 유토피아 세상을 열어간다고 한다. 일은 적게, 쉽게 하고 충분한 휴식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세번째, 친환경에너지이다. 지구촌 온난화 현상으로 이상 기온과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전기, 수소차 등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산업이 발전해나가야 한다. 네번째, 혁신적인 조직문화 구축이다. 기업의 습관화는 조직문화의 근간이며 혁신은 조직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 실패를 용납하고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야 한다. 미래는 창의성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지원하고 있는 P사는 스마트 제철소 비전을 갖고 단계적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여 로봇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 제철소가 되면 정비의 기능이 커지며, 최근 협력 정비사는 미래 전문성과 정비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룹사 격으로 출범한다. 농경시대 손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화, 자동화 하며 일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은 지구촌 과학기술 문명이 어떻게 변화하여 우리 앞에 다가올 지 상상하기 어려운 스피드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될 것이다.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구조, 일과 삶의 균형을 고려한 일자리 형태, 정신 건강과 행복을 위한 프로그램 등이 더욱 중요시 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미래의 혁신은 자율주행자동차처럼 삶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고, 기업에서는 지속 가능한 경영과 최적 생산시스템화를 통해 생존 경쟁력을 높여 기업복지는 물론 시민과 함께 인류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일을 하게 된다. 개인과 기업의 미래는 계획하고 실행한 만큼 그려진다.

2023-06-04

춘앵각

우정구 논설위원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평양, 개성, 진주 등과 함께 대구도 기생이 많은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의 대구시 중구 종로 일대는 기생들이 자주 나들이하는 장소였고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은 기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일부러 종로 거리를 찾아나서기도 했다고 한다.당시 기생 세계도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고급기생은 붉은색 양산(紅傘)을, 그보다 낮은 기생은 푸른색 양산(靑傘)을 썼다. 푸른색 양산을 쓴 기생이 붉은색 양산을 쓴 기생을 만나면 길을 양보하는 등 깍듯한 예의를 차렸다.어느 기생 열전에 나온 이야기의 한 토막인데, 실제 대구 종로 가구골목 일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기생을 둔 요정이 50군데나 됐다. 요정(料亭)이란 기생을 두고 술과 요리를 파는 고급 요리집이다. 지금은 사찰로 바뀐 서울의 대원각이나 삼청각은 서울서 유명한 요정이다.춘앵각은 1970년대 대구 대표 요정이다. 옛 만경관극장 인근에 자리한 춘앵각은 당시 대구에서 행세 꽤 한 정, 재계 인사라면 한번쯤은 들른 곳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도 대구 방문 때면 이곳서 식사를 했다. 정치적으로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한 장소다.6·25때 남하한 나순경이 1969년 요정으로 문을 열었고, 온갖 일화를 남기고 2003년 문을 닫았다. 최근 영화관 업체가 춘앵각을 매입하면서 곧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는 소식이다.비록 요정이지만 대구 사회의 숱한 일화를 간직한 장소란 점에서 철거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가 적지 않다. 대구 근대역사 골목길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니 대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춘앵각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