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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떤 경험

김규종 경북대 교수 개인의 경험과 지식은 그가 지상에 머문 시간의 길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오래 살았다 해서 개인이 도달하는 지적·정신적 성취가 그 시간만큼 깊고 너르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어떤 이는 짧은 생을 열렬하게 불태움으로써 경이로운 높이에 이르기도 한다. 식민지 조선의 시인 소월과 동주, 소설가 김해경과 김유정 같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어떤 교수는 100살이 넘도록 살았다지만, 그가 도달하는 지평은 어느 지점에 멈춰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개인에게 허여된 사유와 인식의 근저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평판이 좋으며 어딜 가나 중간 정도 수준에 머무는 대중의 취향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세상은 넓고 고수는 도처(到處)에 있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우리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먹은 인간들은 종종 이런 명제를 망각한다. 노인을 떠받드는 오랜 전통과 그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철부지 노인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인을 경시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노인도 적잖다. 과연 그런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논어 ‘계씨 편’에는 공자가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누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공부해서 아는 사람, 곤경을 당한 끝에 배워서 아는 사람, 곤경을 당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백성 나부랭이들.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공자는 자신을 공부해서 아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평생 학인을 자처했던 공자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자부심이다. ‘불치하문’ 네 글자에는 학문의 정점을 향해 치달려가는 학인 공자의 모습이 온전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그가 도달한 기막힌 경지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朝聞道 夕死可矣.)얼마 전에 두피를 콕콕 찌르는 통증이 찾아왔다. 누구에게 물어도 뾰족한 대답은 없었다. 뭐 이런 걸로 병원에 가나, 하고 하루를 넘긴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른쪽 눈썹에 상처가 나 있고, 두피 통증은 사라졌다. 아하, 염증이 눈썹 부위로 터져나가면서 통증도 사라졌네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 번째 날 아침에 통증이 불청객처럼 조용히 찾아왔다.통증의학과의 자상한 의사는 대상포진이라고 잘라 말한다. 어이쿠, 이런 일이?! 토요일 오전에 급히 처방을 받고 투약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병원에 입원하여 닷새 만에 퇴원한다. 은퇴를 앞두고 장거리 운전과 강연, 방송과 강의, 논문 발표. 학과 행사 참가 같은 강행군을 한 달 넘도록 이어왔다. 평소에도 하지 않던 일을 몰아서 해치운 것이다.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는데, 길 서두는 나그네처럼 허둥지둥 살아온 게다. 그것의 결과가 대상포진이었다. 허망한 노릇이다. 하지만 하나 배웠다. 마음과 몸의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뻐꾸기가 보름달 환한 저녁에 구슬피 운다.

2023-06-04

경주 도심 곳곳은 관광객 물결로 넘실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 도심 곳곳과 지역 대표 관광지 등에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지난달 대릉원, 불국사, 동궁과 월지 등 3곳을 찾은 관광객 수는 58만7천945명으로 전년 동기(43만5천61명) 대비 35% 증가했다.또 지난 1월부터 정식 집계가 가능한 지난달 황리단길 방문객 143만2천331명을 합치면 총 202만276명으로 5월 경주는 관광객들로 초만원을 이뤘다.지난달 26일 금리단길 ‘불금예찬’ 야시장이 개장하면서 8천명의 인파가 몰려 첫날부터 준비된 먹거리 재료가 소진되는 등 문전성시를 이뤘다.대릉원 무료 개방과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2023 경주 대릉원 미디어아트’가 4일까지 한 달 간 운영됐다. 이번 행사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고고학적 가치를 현시점에서 재고하는 동시에 이를 첨단 ICT와 예술적 가치를 결합한 새로운 시각적 콘텐츠로 연출함으로 관람객들에게 신개념 역사교육의 현장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대릉원 전체를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연출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추가하지 않고 대릉원 고분군의 구조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방향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구성했다.또 미추왕릉 설화를 토대로 제작한 키네틱 그림자 연극, 천마총 내·외부 미디어 파사드, 발굴 유물로 제작한 바닥 조명, 신라의 별자리 라이팅 아트 등 다양한 영역의 미디어 아트는 흥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또한 구도심 중심 상권인 금리단길에서 열리고 있는 골목야시장 ‘불금예찬’이 원도심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다.지난달 26, 27일 이틀간 열린 경주 중심 상권 골목야시장 불금예찬에 약 8천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다녀가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특히 올해 야시장은 지난해 아쉬웠던 부분들이 대폭 보완됐다. 방문객들이 편하게 앉아 생맥주와 먹거리 등을 먹을 수 있는 공간 외에도 셀러와 판매품목도 다양화했다.또 먹거리와 프리마켓 부스를 대폭을 늘려 가리비치즈구이, 오코노미야끼, 육전, 닭꼬치 등 풍성한 메뉴와 함께 다양한 소품을 판매하고 타로카페도 입점 시켜 색다른 재미를 선보였다.야시장은 10월 28일까지 6개월 동안 열린다. 6월과 9월은 매주 금요일, 8월과 10월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야시장이 열린다. 운영시간은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다.경주 동부사적지 ‘첨성대’ 일원 3만9천584㎡ 규모의 단지에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붉은 양귀비꽃과 노란 금영화가 만개해 관광객들을 눈길을 사롭잡고 있다.만개한 꽃양귀비와 금영화는 지난해 가을 파종 후 생육한 꽃으로 더욱 풍성한 꽃을 자랑하고 있다. 또 라넌큘러스, 루피너스, 마가렛 등이 함께 만개해 다채로운 색을 느낄 수 있다.경주 형산강 금장대와 시내 일원을 희망의 연등 불빛으로 수놓았던 ‘2023 형산강 연등문화축제’가 27일일간 대장정을 마치고 29일 화려한 막을 내렸다.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제등행렬은 개막식 무대에서 영마을 삼거리를 지나 봉황대로 이어지는 3.1㎞ 구간으로 취타대를 앞세워 연등을 손에 들고 불빛으로 경주 일원을 가득 채웠다.경주에서만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국악여행도 경주의 새로운 볼거리이다. 공연은 지역 관광명소인 교촌마을, 월정교 광장, 첨성대 광장, 보문호반 광장 등에서 지난 달 20일부터 10월 28일까지 총 20회 펼쳐진다. 지역의 대표 야간관광인 프로그램인 ‘신라달빛기행’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월정교 안내부스에서 백등을 받은 뒤 백등에 손수 그림을 그리고 소원을 적어 나만의 백등을 만든다. 이후 백등을 들고 달빛을 따라 계림과 월성해자, 첨성대를 차례로 둘러보는 일정이다.옛 경주역이 ‘경주문화관 1918’로 탈바꿈하는 등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엔 1918 콘서트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지난달 20일은 ‘소란’, 이달 10일은 ‘KCM원슈타인’ 등 8월까지 총 5회의 미니 콘서트가 펼쳐져 토요일 경주 밤을 들썩인다.매주 열리는 세계 유일의 고분 콘서트인 ‘봉황대 뮤직스퀘어’ 관광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경주는 이제 스마트 관광도시조성, 사계절 축제 운영, 보문관광단지 리모델링 등의 관광산업 혁신을 통해 글로컬 관광도시 조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2023-06-04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

이희정시인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그 자줏빛 모습은시도도, 피로도 없이,도움도, 또한 박수갈채도 없이 일어선다.그 영원한 얼굴 속에서태양은 크나큰 기쁨으로바라본다―오래―오래―금빛에 물들 때까지,밤의 친교를 위해.The Mountains grow Unnoticed,Their purple Figures riseWithout attempt, exhaustion,Assistance or applause.In their eternal facesThe sun ―with broad delightLooks long ―and last ―and golden,For fellowship―at night.―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강은교 옮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서 ‘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자란다(The Mountains grow Unnoticed)’ 전문.1830년은 영문학 시사(詩史)에서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별을 탄생시킨 해이다. 지성과 영원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나는 그녀를 영화 ‘조용한 열정’으로 먼저 만났다. 벨기에와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는 실은 영상시집에 가깝다. 롱테이크 화면 가득 디킨슨의 시편으로 흐르는 절제된 대사는 예술의 슬픈 미학을 느리지만 뜨겁게 담아내고 있다.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시인”이라고 했다. 사랑에 실패한 후 디킨슨은 현실에 대한 문을 완전히 닫았다. 결혼도 물론 거부되었다. 디킨슨의 은둔은 피투성(내던져있음)의 은둔이 아닌 기투성(스스로내던짐)의 은둔이다. “영혼은 선택해서 사귀지, 그리고 닫아버리지” 그녀에게 있어 남성은 성스러운 세계,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영원한 세계 속의 우주’로 대체되었다. 디킨슨은 매일 흰옷을 차려입고 6년 동안 일천여 편의 시를 지었다. 그녀가 평생 쓴 작품 수의 반 이상을 넘는 숫자였고, 1862년 한 해에만 366편의 시를 썼다. 그 비극의 기간은 신생 미국의 역사를 결정짓는 한 격동기였던 남북전쟁(1861~1865)의 시기와도 일치한다. 또한 프래그머티즘과 경이적인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의 내부에서도 단단한 과거가 부서지고 위대한 미래가 태어나려는 과도기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킨슨은 휩쓸리지 않았다. 새로운 미를 추구했으며, 그 어느 것에도 자기를 예속시키지 않고 독자성을 지켰다. 시인 강은교의 해설처럼 “그의 시는 완전히, 홀로, 어떤 ‘이즘(ism)’의 감염도 없이 순수하게, 그만의 양식으로 순화되었다.”생전에 그녀는 단 7편의 시만 발표했다. 당시 여성은 사회 속에서 기능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시(dash)와 대문자의 사용, 행과 연의 특이한 구분 등의 디킨슨의 독특한 작법 스타일이 문제시되어 출판은 어려웠다. 하여 그녀의 고결한 시는 산처럼 “눈치채지 못하게 자랐다” 완전히 가려진 채 시인의 고독 속에서 은밀히 창조되었다. 세상을 향한 그 어떤 “시도도, 박수갈채도 없이 일어선다” 사후 69년이 되는 해 평생을 은둔했던 그녀의 방에선 파시클(fasicle, 손제본) 형태의 1800편에 가까운 시가 발견되었다. 그해 비로소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되어 세상에 나왔다. 디킨슨의 시는 사랑과 불멸, 자연과 신 등 여러 주제로 분류될 수 있으나, 무엇보다 동양의 죽음에 가까운 ‘고독’과 ‘자연에 대한 이해’는 내면의 깊은 심리를 담고 있다. 시어 “밤의 밀교”는 곧 시적인 순간과의 은밀한 친교를 말한다. 고도로 응축된 이미지로 그려진 ‘고독’은 우주로부터 화해하는 몰입의 순간이다. 그녀의 맑은 영혼은 조용하고도 폭발적인 열정의 시를 낳았다. 유월로 들어선 길은 영원의 깊고도 푸른 생명을 노래한다. 해파랑길 18코스 포항 오도(烏島)리 사방기념공원의 긴 수평선과 신록의 봉우리에 눈이 시리다. 커피향 한 올 피워물고 격자로 난 창가에 앉아 기다림을 키우는 대신 ‘고요’를 키워보기로 한다.“태양은 크나큰 기쁨으로, 바라본다―오래―오래―금빛에 물들 때까지”

2023-06-04

태풍 마와르의 교훈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달 23일 남태평양 휴양지 괌을 강타한 태풍 마와르는 20년만에 찾아온 슈퍼 태풍으로 괌섬을 단숨에 지옥처럼 만들어 버렸다. 미 정부는 주민 15만명에 대해 긴급 대피령을 내리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때마침 이곳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3천여명도 태풍에 갇혀 마실 물과 음식이 모자라 대혼란을 겪었다. 시속 240km 강풍에 자동차가 날아가고 공항 활주로 붕괴 등 각종 시설물이 파괴되면서 괌섬 자체가 난장판이 돼 버린 것이다.엘리뇨 현상은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수 온난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수년마다 주기적으로 수온이 평소보다 높아지는데, 0.5도 이상 높아진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되면 엘리뇨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기상학자들은 “현재 발생 중인 엘리뇨가 슈퍼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한다.세계기상기구(WMO)도 “5년 안에 인류 역사상 최악의 더위가 올 것”을 경고했다.특히 학자들은 내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지금 지구촌은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 미얀마 등지는 본격적 여름이 오기도 전에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태국 북서부 딱지역은 4월 낮기온이 45.4도를 기록했으며, 방콕과 푸켓 등은 체감온도가 50도를 웃돌아 야외활동 자제령이 내려지기도 했다.폭염과 폭우, 산불, 홍수, 가뭄 등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변화는 지구촌의 위기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괌섬에서 벌어진 태풍 마와르의 급습이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인류가 저질러 놓은 기후 위기에 상응하는 대가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01

시민단체, 탈 벗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시민단체의 ‘감별 작업’이 시작됐다. 가뜩이나 보조금과 기부금 전용, 불투명한 회계 처리로 비판받던 터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설립취지를 벗어난 활동이 계기다.‘정의기억연대’가 단초를 제공했다. 회계 집행 투명성 의혹이 제기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으로 받은 후원금과 보조금을 전 이사장이 사적으로 사용했다. 전 광복회 회장은 독립유공자 자녀들에게 써야 할 돈을 옷값 등 개인 용도로 썼다.시민단체의 부도덕성과 불법이 문제가 됐지만 시민단체들은 침묵했다. 단골로 내던 규탄 성명서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가짜 뉴스로 매도했다. 시민단체의 자질을 의심받았다. 문재인 정권아래서 친 정부 활동에 앞장섰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회비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쪼들리던 살림은 옛 얘기가 됐다. 무늬만 시민단체였다.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회계 부정, 괴담 유포, 폭력 조장’을 시민사회의 ‘3대 민폐’로 규정하고 뿌리 뽑겠다고 나섰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무늬만 시민단체인 곳을 골라내 선별 지원하겠다고 했다. ‘비영리 공익 활동’은 허울뿐이고 엉터리 회계, 가짜 뉴스를 생산·유포한 시민단체가 타깃이다. 참다못한 여당이 특별기구라는 메스를 든 것이다.특위는 기존 시민단체의 문제점을 샅샅이 살펴본 후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태경 특위 위원장은 “시민사회를 탄압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 전자파와 천성산 도룡뇽 논란 등 환경괴담과 5·18 괴담 단체는 콕 집어 대응하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때 윤석열 대통령도 ‘시민단체 불법이익 전액 환수’를 공약한 바 있다.시민단체의 일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일부 민간단체들은 ‘시민단체’ 간판만 내걸고 정치활동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부 고위직 자리에 앉거나 국회의원이 됐다. 어느 새 성공의 지름길이 됐다.암울한 군사정권과 민주화 운동 시기 시민운동은 사회에 등불이었다. 시민운동가의 헌신적인 삶은 사회의 귀감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권력과 유착한 시민단체는 감시의 ‘주체’에서 감시의 ‘대상’이 됐다.노무현·문재인 정권 시절 시민단체 출신은 중앙부처는 물론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중용됐다. 관련 시민단체에는 혈세가 줄줄 흘러들어갔다. 역사의 아픔을 앞세워 개인적인 착복과 출세의 수단으로 삼았다.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여성단체 출신 의원은 민주당의 성범죄 앞에 침묵했다. 환경단체 출신 인사는 태양광을 묵인했다. 모두 본분을 잊었다. 불의와 불법에 눈감고, 귀닫았다. 어용 시민단체의 민낯이었다.시민단체인지 민주당 조직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혈세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세금을 축냈다. 이권카르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손 잡고 나라를 뒤흔들었다. 여론몰이를 했다. 시민사회를 정치집단화했다.정부 여당이 메스를 들이대자 ‘시민단체 재갈 물리기’라고 주장한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시민단체의 본질은 도덕성과 투명성에 있다. 시민단체가 본 모습을 찾길 바란다.

2023-06-01

글로컬대학 30의 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방대학들의 생존을 위해 정부가 제안한 ‘글로컬대학 30’ 신청이 마감되었다. 지난 3월 지역대학의 세계화를 위해 결성된 ‘글로컬대학위원회’가 공고한 후 대학가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터였다. 오늘날 저출산, 수도권 집중이라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지방의 학력 인구가 급감하고 있으니 지방대학을 살려보자는 정책이다. 글로컬(glocal)은 글로벌(global·국제)과 로컬(local·지방)의 합성어로 지역 특성을 살린 세계화, 즉 글로벌 지역주의라는 의미가 있다.현재 전국에는 336개의 대학이 있는데 서울 인천 경기 이외의 지방대는 220개이며, 올해 정시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학과가 전국 26곳으로 이 또한 모두 지방대학이며 비수도권 중 경북이 10개로 최고이고 폐교의 위험도 있다. 정부는 2월 1일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글로컬대학 30 선정 사업’을 제안하고, 지방대학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이끌어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비수도권 30개 대학을 선정하여 5년 동안 대학마다 1천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예비지정의 평가 기준은 비전과 목표의 혁신성(60), 자율적 실행의 성과관리(20), 산학협력의 지역적 특성(20)에 대해 5쪽 분량의 ‘혁신기획서’를 제출받는데 대학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혁신성을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선정했다. 먼저 15개 대학을 선정하고 9월 말에 최종 10개 대학을 지정하면 지자체도 재정지원금을 줄 것으로 기대되어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많은 대학이 통합과 교류협력을 주 과제로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는 33개 대학 중 16개 대학(일반대 13, 전문대 3)이 공모에 신청한 것으로 밝혔는데 포항공대의 실리콘밸리 육성, 한동대의 ESG, 경주대-서라벌대의 문화관광 등이 혁신안으로 선정되어 지방 소멸의 방패가 되었으면 한다.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와 더불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학 교육이 빠르게 확대되어왔었다. 1965년에는 70개 대학이었지만 1995년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 자율화 등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 2000년대 초반에 150개가 넘고 이후 400여 개 가까이 되었으나 근래 폐교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90년대 후반 입시홍보 활동을 하면서 많은 대학의 신설이 걱정되어 출생아 수를 알아봤더니 1960년 100만 명을 넘어 10여 년 가까이 유지되다가 60만 명으로 떨어졌고 2000년경에는 다시 50만 이하로 줄었기에 이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0년쯤에는 입학정원 1천 명인 대학이 100개쯤 사라질까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가는 듯하다.대학의 통폐합과 연합 등으로 인재양성의 전략을 마련하고 있지만, 부산과 충남에서는 대학생들의 반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유연한 학제 운영으로 대학과 지역, 또 산업과의 벽을 허물고 담대한 혁신으로 지역의 산업, 사회 연계, 특화 분야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을 시도하는 대학, 즉 ‘글로컬대학 30’에 선정되어 지역 균형발전의 허브가 되길 바란다.‘말은 나면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옛말이 어색해지도록 지방대학이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길 빌어본다.

2023-06-01

국회의원 특권폐지 국민운동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特權)은 무려 18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없는 특별한 권리가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렇게나 많이 필요한 까닭이 뭔가. 하물며 그 많은 특권은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소위 ‘셀프특권’이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배신감마저 든다. 여야가 헐뜯고 싸우다가도 그 셀프특권을 위해서는 의기투합 한다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특혜만도 다 헤아리기에 숨이 찰 정도다. 1억5천5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비롯해서 연간 입법 활동비로 약 1억200만 원이 지원되는데다 차량 유류비 월 110만 원, 차량유지비 월 35만8천 원, 출장비 연 400만 원, 의원실 보좌직원 업무용 교통비 연 100만 원, 야근식대 연 770만여 원, 현지 출장비 연 91만여 원, 사무실 운영비 연 348만여 원, 소모품 519만여 원, 정책개발비 2천500여만 원, 정책홍보물비 연 1천200만여 원, 문자메시지 및 자료 발송료 1천230여만 원, 명절휴가비 800여만 원 등이다.지난 4월 16일에 발족한 ‘특권폐지운동본부’는 국회의원 전원에게 ‘특권폐지 질의서’를 발송하고 동의 여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질의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국회의원의 연봉이 1억5천500만 원인데, 이것을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월 400만 원 정도)으로 하고,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2. ‘의원실 지원경비’라는 명목으로 정책개발비, 수당 등 다양한 이름의 의정활동 지원비가 1년에 1억200만 원인데, 이를 모두 폐지하고 입법활동 및 기타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필요시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데 동의하는가?3. 보좌진이 7명인데(인턴 2명 추가 채용가), 이들은 의정활동을 보좌하기보다 개인적인 비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고, 보좌진의 상당수는 사실상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재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선거기간에는 보좌진의 거의 전부가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선거운동을 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이다. 보좌진도 국가에서 봉급을 주는 공무원이어서 선거운동을 하는 자체가 불법이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 입법조사처나 예산정책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좌진을 3명으로 줄이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4.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에만 후원금을 1억5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그 밖의 후원금은 받을 수 없게 하며, 선거비용 환급은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5. 국회의원에게 헌법상 부여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오늘날 시대착오적인 규정일 뿐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이 질의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과 태도가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일 터이다. 아무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서 정상배를 위한 정치를 끝장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뤄야 할 때”라는 특권폐지운동본부 장기표 상임대표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3-06-01

‘아빠찬스’

홍석봉 대구지사장 아빠찬스란 자녀가 아버지의 명망과 인맥, 부, 권력 등 사회적 배경을 활용, 입학과 취업 등에 이득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 간부들이 자녀 특혜 채용 사실이 밝혀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의심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선관위원장이 사과하고 전수조사, 대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으나 여론의 불만은 쉽게 숙지지 않고 있다. 여당쪽에서 선관위원장 책임론과 사퇴까지 거론하는 마당이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의 신뢰성과 윤리성을 크게 훼손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선관위의 공직기강이 무너진 탓이 크다.조국 사태때도 아빠찬스가 논란이 됐었다. 교육의 공정성을 무너뜨린 일로 비난받았다. 20, 30대 젊은 층은 심한 상실감과 자괴감에 빠져야 했었다. 우리사회의 불공정의 대표적 사례가 된 아빠찬스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고려와 조선 시대때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나 지위가 높은 관리의 자손을 과거를 치르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음서제도(蔭敍制度)다. 아빠찬스는 현대판 음서제라고도 불린다. 아빠찬스는 선관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엄중한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선관위의 아빠찬스는 공정한 채용과 승진 질서를 해치고, 선관위의 권력과 책임을 남용한 것이다.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는 선관위의 역할과도 상충된다.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한다. 국민의 권리와 이익에도 영향을 미친다.사정기관에 의한 수사와 조직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감사원 등의 외부 통제도 있어야 할 것이다. ‘개천 용’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특권층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31

교육, 기본으로 돌아가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경제가 어렵고 외교가 복잡하다. 안보가 위태롭고 사회도 불안하다. 온 관심과 신경이 대통령실과 국회에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 가닥이 있다. 그런 중에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생각을 놓고 있으면 퇴보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끊임없이 고심하고 지혜를 모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교육이다. 겉으로 중요해 보이는 사회적 관심분야들이 즐비하지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가닥이 교육이다.미국교육의 개혁을 이끌었던 다이앤래비치(Diane Ravitch), 위대한 미국교육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새로운 발상을 여럿 제시하였다.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였고 학교들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줄을 세웠다. 경쟁과 시험을 적극 강조하여 잘하는 학교들을 밀어주었다.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미국교육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였다. 수년간의 시도 끝에 그는 교육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교육개혁이 추진될수록 공교육의 질은 퇴보하고 처음 목표에서 벗어나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기대를 저버린 결과에 실망하였지만, 교육에 관하여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사람을 길러야 하는 교육을 시장논리로 접근하면 오히려 다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우리의 교육개혁을 위한 실험은 실패하였다. 경제적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학교에 진정한 교육적 요소를 불어넣으며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을 가능하게 할 여건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대한민국의 선한 양심’으로 알려진 손봉호 교수는‘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도록 이끄는 일과 기본적 도덕성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혼자서도 배우며 세상을 헤쳐나갈 힘과 누가 보지않아도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용기를 길러주는 것보다 필요한 게 있을까.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교육은 기본을 지켜야 한다. 교육부는 수년 내에 지방대학들 가운데 30개 대학을 선별하여 글로컬대학으로 키운다고 한다.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교육에 적용하고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여 대학들을 줄세우고 탈락하는 대학들이 쏟아져 나올 모양이다. 선발되지 못할 수많은 지방대학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경쟁과 시험, 선발과 탈락의 굴레에만 머무르는 교육의 모습은 처연하다. 학교의 운명이 그저 돈만 바라보게 된다면, 이미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게 아닐까. 교육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서열을 짓고 특권층을 만들며 차별이 생기는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세월도 변하였다. 그간 교육의 주제어가 추격과 경쟁이었다면 이제 세상은 상생과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상상과 창의로 가득한 다음세대를 길러내려면 오늘 우리의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교육개혁에 실패했던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교육에 평생을 바친 노교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경제로 교육을 어찌해 보려는 시각을 거두어야 하고, 나라의 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5-31

책이음카드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연구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모두 놀란다. 문과 창문을 제외하고 삼면을 꽉 채워 천장까지 쌓인 책들을 보고는 꼭 한마디씩 한다. 교수님은 이 책들 다 읽으셨어요? 워낙 자주 받는 질문인지라 대답은 한결같다. “당연히 다 읽은 것 아니다. 수도 없이 여러 번 읽은 책도 있고, 단 한 줄만 읽은 책도 있고 안 읽은 책도 많다. 논문 쓰기 위해 필요한 책은 반드시 사야 해서 갖고 있는 책도 많고 앞으로 읽을 필요가 있어서 사 둔 책도 있다. 저 위 자료집은 대부분 안 읽은 것들이지.”게다가 해마다 2~4회까지 발행되는 몇 권의 학술지며 정기간행물들이 25년이나 보태어졌으니 오죽하랴. 그래도 책에 둘러싸여 지낸 시간은 행복했었다. 은퇴를 몇 달 앞두고 책들을 정리했다. 논문 쓸 일 없으니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을 다 버렸다. 최근에는 학술지가 PDF로도 제공되기도 때문에 더 이상 필요없기도 했다. 그렇게 많이 버렸음에도 책은 1톤 트럭 두 대를 가득 채웠다. 어딘가 둘 곳을 찾아야만 했다. 소중한 나의 책들은 의성의 작은 마을도서관에 임시보관해 두기로 했다.이미 집엔 두 방도 넘쳐 베란다까지 점령한 책들이 있었다. 대학도서관에 8천 권의 책을 기증하고 남은 책들이었다. 2년 전 남편의 연구실을 비운 책들은 따로 서재를 마련할 정도로 우리집엔 책이 많고 많았기 때문에 내 책까지 비집고 들어올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책을 다 함께 모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계획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난 더 이상의 책은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그래도 읽고 싶은 책, 예전 종이신문을 볼 때 주말섹션에 소개되는 신간을 사던 버릇은 여전해서 인터넷으로 종종 소개되는 책의 유혹들이 있었다. 사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공공도서관. 집 가까운 시립도서관을 검색해서 찾아가 바로 발급받은 게 책이음카드였다. 내가 사는 수성구 내에 10곳의 도서관이 있는데 이 모두를 이용할 수 있고, 전국 공공도서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1인당 도서관별로 10권, 최대 30권을 15일간, 나같은 65세 이상 노인은 30일을 대여할 수 있는 고마운 제도다. 카드 만든 김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세 권 빌렸다. 빌려 온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반납 기일을 통보하는 문자가 온다. 날짜 어김없이 반납하게 되는 친절한 정보다.지난해 가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교수와 독일의 외사촌과 그의 작품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몰랐던 작가와 수상작들이었다. 시립도서관에 검색해봤더니 어떤 책은 있고 어떤 건 없다. 있는 책은 대출 중이었다. 대출대기자 명단에 올렸더니 며칠 뒤에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가 왔다. 어디 그 뿐이랴…. 도서관에 없는 책은 희망도서로 신청해 두면 며칠 뒤 책이 확보되었으니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가 또 온다. 친절하고 신속하고 멋진 정보화의 시대를 고마워하며 노후의 즐거운 독서생활을 하고 있다. 책이음카드를 모바일로 등록해 두면 더 편리하다.

2023-05-31

우리아이 건강관리와 성장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자식을 낳아 키우면 그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아플 때는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프다. 밥을 잘먹지 않아도 걱정이고 또래보다 작아도 걱정이다. 감기나 수족구 장염 등 한번씩 전염력이 높은 병이 돌 때마다 다 걸려서 고생 하는 거 보면 차라리 내가 아플 수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키는 유전자에 정해져 있다. 많은 연구가 키는 정해져 있으며 유전자에 정해진 이상은 키울 수 없다고 한다. 어릴 때 헤어져 따로 큰 쌍둥이들을 추적 관찰해서 나온 결론이다. 따라서 애초에 아무리 잘 먹고 건강해도 일찍 클 순 있어도 더 클 순 없다. 아이가 작다고 너무 걱정하는 것도 지나친 걱정인 것이다. 따라서 호르몬 주사든 건강식품이든 정해져 있는 이상의 키는 더 키울 수 없다.그러나 영양공급이 충분하지 않으면 덜 클 순 있다.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게 북한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평균키는 남자 165cm, 여자 154cm이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잘 먹지 못해 오랜 시간 영양 실조를 앓은 북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평균키가 10cm 정도 작다. 한국 남성은 174cm, 여자는 161cm가 평균키다. 탈북민들 유튜브를 보면 북한에선 키가 작았는데 대한민국에 정착 후 고른 영양소 공급으로 키가 많이 커졌다는 소리를 한다. 즉 영양공급에 오랜 시간 제한 되면 키가 덜 클 수도 있다.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어린이들 건강관리와 성장은 이 쪽에 집중된다.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은 같이 간다. 건강하면 성장이 잘 되고 또 성장으로 건강 여부를 알 수 있다. 한의원에선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위장과 배를 튼튼하게 해주는 처방을 많이 사용한다. 밥을 잘 먹게 해주는 것과 한약으로 영양의 불균형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밥을 잘먹고 잘 놀면 자기가 타고난 건강과 키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운동을 하면 밥맛이 좋아지는 걸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밖에서 뛰어 놀기엔 안전하지 않고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 좋은 것이 태권도다. 요즘은 태권도 뿐만 아니라 줄넘기 피구 등 다양한 운동을 배워 올 수 있고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 사회적 정서적으로도 도움된다.간혹 보면 아이를 위해 좋은 것만 먹인다고 직접 한 것만 해 먹이는 엄마들이 많다. 만약 아이가 햄버거나 피자 통닭은 잘먹는데 엄마가 해주는 건 잘 안먹는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씀드린다. 아직은 아이한테 엄마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니 아이가 원하는걸 해주라고 말한다. 너무 아이를 위해도 오히려 아이는 적게 먹고 다른 또래 보다 영양이 부족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건강식만 챙기다가 정작 중요한 밥을 안먹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 어른이야 건강을 위해서 맛이 없어도 먹지만 아이들은 먹지 않는다. 이게 오래되면 위장이 작아지고 더 먹지 않게 된다. 밥을 맛있게 해주고 가끔씩 햄버거 피자 치킨 등 원하는 것도 사줘 많이 먹게 하는 것이 아이들 건강과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무엇이 아이를 진정 위한 길인지 생각해 아이의 건강을 부모가 관리하자.

2023-05-31

봄비 내리던 날에

윤명희 수필가 새벽부터 내린 비가 종일 갈 것 같다. 주말에 겹벚꽃 보러 우리 동네에 온다고 했는데 비에 다 떨어져 버리면 어쩌나. 연거푸 터져 나오는 기침을 팔뚝으로 막는다. 까똑 소리에 폰을 확인하니 꽃 볼 생각에 벌써 마음이 들뜬다는 영숙씨가 톡에 음악을 올렸다. 클릭하자 바이올린에 실린 이문세의 목소리가 빗속에 스며든다. 기침이 음악을 덮친다.지난 주말에 딸네에 갔다. 기껏해야 일 년에 두어 번 가는 길이 기차의 연착으로 더 멀었다. 이제 괜찮아졌다고 하더니 온 집안이 아직도 감기 중이었다. 오전에 수액까지 맞았다는 딸은 목안이 부어 반가움조차 손짓으로 했다. 손자들의 기침 소리만이 온 집안을 콩콩 뛰어다니고, 먼저 기운을 차렸다는 사위가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손이 가지 않은 욕실에는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고 싱크대에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비스듬히 벽을 기대고 있다.나는 모과차를 끓여 널브러진 딸에게 건넸다. 뜨거움이 목을 적시자 기침이 잠시 멈추는 것 같더니 다시 쇠 긁는 소리를 냈다. 잠시나마 편히 쉬게 방문을 닫아주었다. 열기가 다 식은 건조기에서 마른빨래를 꺼내 갰다. 도시의 공기가 매캐하다. 방과 거실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분해해 씻고 청소기를 돌렸다. 손자는 내 꽁무니에 붙어 서서 아주 옛날에는 다섯 살이었는데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고 자랑한다. 내 입은 웃는데 눈은 자꾸만 딸의 방에 들어갔다.“서울 가니 딸이 감기 중이더라고. 나는 그걸 또 좋다고 가져왔네.”한동안 꼼짝없이 아파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에둘러 단체 톡에 툭 던졌다. 폐를 쥐어짜며 나오는 기침이 목을 할퀸다. 내가 아픈데 겹벚꽃이 뭔 대수라고.“그게 진정한 딸바보. 지금 우리 가족 전체도 일주일째 감기로 엄청 힘든데 나만 멀쩡, 코로나 때도 그랬고. 아빤 늘 말로만 딸바보지? 이땐 뭐라 해야 할까요? ”P선생님이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딸바보로 만든다. 나는 자식 바보와는 거리가 멀다. 밥벌이에 매여, 대학입학과 동시에 타지로 떨어져 나간 딸에게 반찬 한 번 보내지 못했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직장생활의 고단함도 결혼 준비도 딸이 알아서 해야 했다. 아들 연년생을 낳아 힘들어할 때 친정엄마라는 체면치레를 위해 겨우 시간을 냈을 뿐이다.음악을 올린 영숙씨의 답 톡이 올라온다.“아빤 늘 말로만 딸바보지? 저도 우리 아빠한테 이런 말 한 적이 있는데~ 깜놀~ 그때마다 우리 아빠는 방금 우리 딸내미 뭐 하는지 생각했는데 라고 하셨어요.”톡 방이 한참 조용하더니 다시 그녀의 얘기가 뜬다.“에고고~ 딸바보 이야기하시는 통에 아빠 생각이 나서 찔끔찔끔 울다가 통곡합니다. 아침에 할 일도 많은데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이런…. 그래서 적당한 게 좋은 듯요. 저도 우리 딸이 너무 예쁜데 나중에 저 없으면 마음 아플까 봐 혼자만 좋아하고 적당히 하고 무심한 듯 넘어가네요. 딸은 섭섭하겠지만.”그녀가 지금 비와 함께 울고 있다. 다른 이들의 눈물 이모티콘이 여기저기 올라오고, 저마다의 부모 얘기가 한마디씩 뜬다. 가슴을 푹 찌른다. 나는 다시 음악을 클릭한다. 조금 전에 듣던 것과는 음색이 다르다. 물 먹은 이문세의 목소리가 눈을 찌른다.“한없이 사랑하고 그래서 한없이 그리워하고, 또 펑펑 울고. 모든 게 다 아름답습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표현하며 삽시다. 나중은 또 그 때 가서 감당이 되겠지요.역시 어른이신 P선생님이 달랜다. 음악은 흐르고 우리는 말이 없다.딸에게 전화가 왔다. 잠긴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엄마가 내꺼 가지고 갔구나, 그래서 내가 괜찮아졌나보네”그래, 내가 그거라도 해 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 잠시, 나도 딸바보가 되는 순간이다. 기침이 딸에게 다시 갈까봐 얼른 폰을 끈다. 톡 방은 눈물 이모티콘 사이로 비가 내려 고요하다. 겹벚꽃이 떨어져도 괜찮겠다. 꽃은 벌써 우리들 마음에 앉았으니.

2023-05-31

계묘(癸卯)

2023년은 육십갑자 중 마흔 번째에 해당하는 계묘(癸卯)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로, 비 또는 시냇물이다. 지지(地支) 묘목(卯木)은 어린 나무이고, 계절로는 음력 2월이다. 동물로는 검은 토끼다.계묘일주(癸卯日柱)는 천간과 지지가 음(陰)이다. 연약한 모습으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남성적인 면모가 부족하여 자신감, 독립심, 투쟁심이 약하며 소심하고 겁이 많다. 자신의 신념에 애착이 강하여 특정 부분에 고집이나 자부심이 강하다. 무시나 간섭을 받으면 잘 삐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계묘일주의 계수(癸水)는 봄비를 말하고, 묘목(卯木)은 봄의 계절에 어린나무다. 봄비를 맞으며 자라는 작은 나무나 화초의 모습이다. 계묘(癸卯) 글자 모양은 빗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며, 화초의 모습처럼 날씬하여 미남과 미녀가 많고 살찐 사람은 드물다. 물속에서 핀 연꽃같이 기품이 있고, 도도한 외모와 말솜씨가 뛰어나다.일지(日支) 묘목은 도화(桃花)와 천을귀인이 있어 자기 자신을 잘 가꾸고 뽐내며, 나르시시즘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문창귀인(文昌貴人)도 있어 학문적인 습득이 좋으며, 지식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술분야와도 잘 맞아 전문성이 있는 창작과 기획에 재능이 있다. 계묘는 배우자 자리에 천을귀인이 있어 배우자 복이 많다. 비를 맞고 있는 어린 화초의 물상으로 남녀 모두 예쁘고 잘생겼다. 이성에게 인기가 좋아 이성문제로 장애가 생길 수 있다. 그와 같은 사례로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로맨스가 있다.사마상여(기원전 179∼117)는 중국 한나라 때 문장가다. 준수한 외모는 물론 시와 거문고에 능했다. 그는 고을의 부자 탁왕손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17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와 있는 탁왕손의 딸 탁문군이 그의 거문고 타는 모습에 반한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그날 밤 야반도주를 한다.어이없는 애정의 도피행각에 화가 난 탁왕손은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딸을 멀리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네 벽밖에 없던’ 가난한 처지의 사마상여인지라 탁문군은 말과 수레 따위를 처분해 술장사를 시작했다. 그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뒤 탁왕손은 집안사람들의 설득으로 딸에게 재산을 주었고, 두 사람은 고생을 멀리하고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이 무렵 ‘자허부’에 매료된 한 무제가 사마상여를 불러들여 마침내 자신의 문장으로 벼슬을 얻게 되었다.무제의 발탁으로 형편이 나아지자 사마상여가 첩을 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탁문군은 ‘백두음’을 지어 보내 남편의 마음을 되돌렸다. 누군가 사마상여가 뇌물을 받았다고 밀고하자 그는 벼슬에서 과감히 물러났다. 병을 핑계로 나라 일에는 관여치 않고 한가롭게 지냈다. 벼슬에 목매지 않았고, 아내가 과부라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술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술도 나르고 술잔도 기꺼이 닦았다. 아내 탁문군은 글재주가 뛰어났기도 했지만, 격식이나 제도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자립정신을 가졌다. 이천년 전의 여성으로서는 대단한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성이었다. 가도벽립(家徒壁立·집안에 세간은 하나도 없고, 사면에 벽만 둘러 있어 매우 가난하다는 말)은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이야기에 나온 고사성어다.계묘일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귀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성격이 밝고 순수하나 적극성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빈곤하지는 않지만 큰돈을 벌기는 힘이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고 남을 돕거나 베푸는 심성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후기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동생 테오의 이야기다. 고흐와 테오 형제는 목사인 아버지를 둔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고흐는 원래 신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병약하며 가난하고 고생하는 자를 위해 사역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그 당시 실상이 보여주기식 신앙심이라는 것을 알아버리자 고흐는 큰 공허함과 좌절감을 느끼고 말았다.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는 형에게 동생 테오는 대신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했다. 테오는 언제나 형이 미술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고, 고흐는 자신을 알아주는 동생에게 보답하고자 늘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미술중개상 일을 하던 테오는 형을 세상과 연결시켜 주었고, 고흐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충고를 해주었다.평범한 인간들보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났던 고흐에게는 항상 우울증, 공황장애, 정서불안, 신경증 등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정신병동으로 가게 되었고, 세상과 고립되었다. 결국 형이 37세에 자살로 세상을 떠나자, 형의 작품으로 회고전을 준비하는 데 열중했던 테오는 형의 뒤를 따라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33살 테오가 죽자. 29살의 나이에 과부가 된 테오의 아내 요한나에게는 한 살이 된 아들만이 남았다. 예술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던 요한나에게 형제가 나눈 편지는 예술을 가르쳐주며 온갖 그림까지 그려진 편지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요한나는 고흐의 그림과 스케치며 편지를 수습하며 세상에 알리려고 애썼다.남편과 고흐가 나눈 668편의 편지를 공개해 형제의 남달랐던 우애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편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받았던 고흐의 깊은 절망감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요한나는 남편 테오의 무덤을 이장해 형 옆에 영원히 함께 있도록 묻어 주기도 했다.우리는 세상을 혼자서만 살아갈 수가 없다. 항상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빚을 지고 살아간다. 고흐 형제 뒤에는 테오의 아내 요한나의 보이지 않은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 덕분에 고흐의 그림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천을귀인 같은 사람이다.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고결하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훌륭한 행동이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경을 받을 만하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알고, 가까운 것을 통해 먼 곳을 알아야 한다.

2023-05-31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정말 AI일까?

최근 미국의 비영리단체 ‘퓨처 오브 라이프 인스티튜트’(이하 FoLI)에서 ‘거대 AI 실험 일시중지 공개서한’을 공개했다. 서한의 주된 내용은 AI 기술이 갖는 위험성이 인간의 통제 가능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 따라서 전 세계의 AI 개발사들이 6개월 동안 ‘GPT-4’ 이상의 강력한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중단하고 이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과학기술적 모색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FoLI의 입장이다.서한이 공개되었을 때 대중을 놀라게 했던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창업자), 유발 하라리(역사학자) 등 업계의 유명인사 및 석학들이 이 서한에 참여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AI 기술이 갖는 위험성이 현실적 문제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다만 SF 영화의 설정 정도로 치부되었던 AI 기술이 인류에게 핵무기, 인간복제 기술과 같은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때문에 FoLI는 인간과 경쟁하는 AI는 사회와 인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최소 6개월 간 AI 시스템 훈련을 중단하고, 그 기간 동안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에 의한 감시, 감독을 위한 안전 프로토콜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업계는 이 서한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AI 기술 개발 일시 중단이 궁극적인 문제 해결 방안은 아니라고 말하며, 중단을 수행할 주체는 누구이며 모든 기업과 국가에게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워싱턴 대학 컴퓨터공학 명예교수 페드로 도밍고스는 반세기 이상 사용된 인터넷 기술에 대한 규제 및 제한조차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AI 기술에 대한 규제 방안을 6개월 안에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지 현실적인 측면을 지적한다.물론 AI 기술이 갖는 위험성은 분명 현실적인 것이다. 가령 노동 시장을 예로 들자면 최근 중국의 경우 AI 기술의 도입에 따라 약 2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하였으며, 미국의 경우 근시일 내에 전체 일자리의 1/4에 해당하는 약 3천600만 개의 일자리가 AI에 기반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특히 인적 관리 측면에서 대다수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AI에 기반한 알고리즘 시스템에 의한 관리 속에서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면, 노동시장은 이미 AI 기술로 인해 그 저변에서부터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대중이 느끼는 AI의 위험성을 마냥 현실적인 것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AI의 위협은 분명 현실적인 것이지만, 공포감은 SF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에서 기반한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생각. 물론 새로운 기술의 발달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발생시켜 인류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의학 분야와 군사 관련 분야에서 초래된 경험적인 것이겠으나, AI 기술의 실질적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체감에는 인간이 아닌 이종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SF적인 과장이 뒤섞여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러한 비현실적인 공포가 이미 일어난 노동시장과 컨텐츠 시장에서의 변화를 은폐한다는 사실이다. 축약해 말하자면, 상당수 노동자는 이미 AI 기술로 인해 변화한 시스템에 종속돼 있으며, 소비와 향유 역시 알고리즘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 그럼에도 AI가 근미래에 인류에게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대중의 비현실적 공포를 부추기는 동시에, 대다수의 인류가 처한 실질적인 종속과 지배의 구조를 비가시화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더불어 지금 AI 기술에 반대하고 있는 기업가들이 실질적인 AI 기술 시장의 잠재적 참여자들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이 과연 인류라는 대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각 기업의 사적 이익의 추구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만든다.물론 신기술의 개발과 발전에 따른 부작용은 인류가 늘 주의해야 하는 사안. 우리는 이미 핵무기를 통해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해악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을 둘러싼 담론에는 어딘가 석연찮은 게 있다. 여기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 과연 ‘인간’의 가치를 비롯한 정신적인 가치들 뿐인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장의 개척과 형성을 둘러싼 거대 기업들의 각축인 것일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실질적인 위협일까, 아니면 무지에서 비롯된 비이성적인 공포일까. 공포를 부추기고, 공포를 먹고 사는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의심해야 하는 것은 AI 기술일까, 아니면 기술 담론의 참여자들일까.

2023-05-30

수식에 잡아먹히지 않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새벽의 약속’ 등의 작품을 남긴 로맹 가리는 말했다. “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사람들이 나에 관해 쓰는 모든 것에서 매일 나를 보지만 나는 내가 끌고 다니는 그 이미지 속에서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로맹 가리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에밀 아자르를 빼어놓을 수 없다. 어느 날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작가 에밀 아자르는 자신의 이름 이외에 어떤 것도 밝히지 않는다. 그는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대중적인 흥행과 동시에 작품성까지 인정받게 된다. 1980년에 로맹 가리가 권총 자살을 하면서 놀라운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에밀 아자르가 사실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이다.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몰랐다. 에밀 아자르의 정체에 관해 추측하던 사람들은 문장과 문체의 유사성에 집중하면서 그가 로맹 가리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어놓았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와 기자들은 “로맹 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고 말했고 “로맹 가리는 이미 끝난 작가. 그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도 단언하기도 했다.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글을 썼다. 거기에 그는 책을 어떻게 출판할 것인지에 관한 지침을 적어놓았다. “사람들이 만들어 준 얼굴”이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를 말하며 그를 두고 떠들어대던 사람들의 오만함을 고발한다.이것은 비단 한 작가의 일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들어 준 얼굴”은 우리에게도 존재하며 일상적인 삶에서 쉽게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불량한 태도로 학교에서 모두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학생이 있다. 그의 이름을 말하면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던 어느 작문 시간,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이야기를 과제로 내어놓은 학생이 있다. 이름을 지우고 진행된 평가이기에 그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불량 학생의 작품. 그 역시 자기 작품이 그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게 될지 몰랐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그날 이후로 불량 학생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학생으로 불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작가의 꿈을 꾸게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자기를 꾸며주는 수식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불량한 학생의 글을 마음 다해 꼼꼼하게 읽어봤을까? 더 나아가 그것이 정말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그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 타인의 평가 혹은 사회적 시선, 그것도 아니면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 갇혀서 우리는 진짜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는 평생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더 좋은 대학 출신이 되고 싶고,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이 나를 더 대단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내가 만든 수식에 내가 잡아먹히게 되는 것이다. 본질이 사라지고 수식만 남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 삼성 다니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불편해진다. 그런 식으로 자신이 온전히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두려운 일이다.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로맹 가리조차 자신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가늠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가끔은 나 자신의 시선마저 신뢰하기가 힘들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는 건 허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무슨 말을 들었을 때 행복한지, 어떤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가슴이 뛰는지. 그런 작업이 지속되면 자연스레 나만의 중심이 잡힌다.삶을 살다 보면 인생의 물살이 우리를 밀어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물살에 휩쓸릴 순 없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전진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인지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을 힘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이나마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2023-05-30

포스텍 의대설립… 논리적 타당성이 중요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 포항출신 김정재·김병욱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 정책토론회’는 상당히 타이밍을 잘 맞춘 행사였다.연구중심 의대의 핵심분야인 바이오산업 동력확보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데다, 최근 의사정원 확대가 민감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대구·경북 시도민은 특히 지난 2020년 대유행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상급(대학병원) 의료기관과 백신산업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열이 펄펄 나는 코로나 환자 수천명이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때, 우리 사회는 의료시스템 마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미국의 제약회사인 화이자와 모더나가 백신개발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우리는 바이오산업 선진국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국회 토론회 방향을 ‘한국형 보스턴 클러스터 첫걸음’으로 잡은 것도 적절했다. 미국 보스턴 클러스터에는 세계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제약회사와 명문대학이 몰려 있다. 모더나와 바이오젠 등 글로벌 제약회사, 하버드대와 MIT,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등이 보스턴 클러스터의 핵심멤버다.보스턴 클러스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우수 인재가 모이고, 바이오 벤처 창업이 확대되면서 세계적 신약기업들이 탄생했다.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현실화되면 포항이라고 해서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김철홍 포스텍 의과학전공 주무교수가 토론회에서 포항지역 의료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미래산업을 제안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김 교수는 포항지역 내 병원들이 ‘포스텍 협력병원’으로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여기에 바이오 헬스 기업 등이 더해져 ‘바이오 헬스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토론회에서는 포스텍 의대 설립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김무환 포스텍 총장)가 챙겨야 할 주요과제도 제시됐다.‘포스텍이 의대를 설립할 역량이 있느냐’ 여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일이다. 포스텍이 계획하고 있는 교육과정은 ‘2-4-2’(MD-PhD-MD) 커리큘럼이다. 임상실습 전 기초의학과 임상이론 등을 2년간 교육받고, 4년간 전일제 연구프로그램을 통한 박사과정 후, 다시 2년간 의무석사과정으로 돌아와 임상실습 교육을 마치는 과정이다. 정원은 50명이다.의사과학자의 자질을 담보하려면 무엇보다 교수 규모와 수준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신찬수 한국의과대학 이사장이 “현재 포스텍에 290명의 전임 교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말씀하신 수준의 의대를 유지하려면 200명가량의 신임 교수를 채용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장이 다소 섞이긴 했지만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서는 분야별 우수 교수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포스텍이 이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성사되려면 반드시 재원확보를 비롯한 논리적 타당성이 전제돼야 한다.

2023-05-30

나랏돈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사회에 “나랏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나랏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줄줄 샌다는 뜻인데도 그런 나쁜 관행이 지금도 여전한 모양이라 걱정이다.나랏돈은 엄밀히 따지면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 주머니서 나온 세금으로 국가가 살림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대신해 국가 공직자가 그 돈으로 나라 살림을 살아가는데, 알뜰살뜰 살지 않으면 국민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국민이 낸 세금을 잘 쓰고 있는지 감시하고 감독하는 곳은 국민이 뽑은 국회다.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를 대표해 국민이 낸 세금이 적재적소에 쓰이고 있는지 행정부와 국가기관을 감시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우리나라 예산 규모도 이제 600조원을 넘었다. 선진국 반열에 들면서 복지비 등 쓸 곳이 많아진 탓이다. 하지만 규모가 큰 만큼 돈이 짜임새 있게 설계돼 필요한 곳에 제대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운영하고 감시하는 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한다.감사원이 최근 정부 지원 비영리 시민단체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결과, 10개 민간단체 대표 등이 국고보조금을 임의대로 횡령하고 마구잡이 쓴 것이 밝혀졌다. 일부 민간단체는 대표자의 자녀 사업비나 주택 구입비로 국가 돈을 사용한 것이 드러났고, 가족들은 그 돈으로 콘도나 골프를 했다고 한다. 또 정부가 사회보장 수단으로 지급하는 실업급여를 타내기 위해 편법과 도덕적 해이가 난무하면서 고용보험기금도 이제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나랏돈 빼먹기에 혈안이 된 사회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30

성숙한 인공지능을 기다리며

이상산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장 인공지능의 시대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할 토대가 되었다. 학습에 사용할 데이터는 양적으로 폭발하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정보는 이런 데이터의 양과 다양성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SNS에 게시되는 데이터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 노출하기에 편향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에 매몰된 우리는 편향과 오류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견해를 더욱 강화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인공지능의 시대, 특별히 생성형 인공지능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술 발전의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술만능주의에 빠지고 있지는 않은지 유의해야 한다. 인공지능 분야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더라도, 그 기술은 불가피하게 데이터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효과적인 생성형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에는 인간의 평가가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보여주고 싶은 것만 노출하는 SNS, 대화와 토론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온라인 매체들에 포위된 우리는 편향된 데이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데이터는 대상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주체의 관점을 반영한다. 편향을 줄이려면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의 한계로 관찰하지 못한 영역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까지의 인공지능은 지식의 가공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접근 가능한 데이터에 의존하고, 모델이 예측한 결과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평가 또한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신뢰도는 사용한 데이터의 품질과 평가에 참여한 인간의 수준에 따라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인공지능이 생성한 불완전하거나 악의적인 정보로 인한 사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에서 문체위 소속 이상헌 의원이 대표 발의한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 법률개정안은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공개할 때 인공지능에 의한 제작물임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입법 취지에 무책임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오남용을 방지하려 한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에서 이와 같은 입법 활동이 활발하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이 장기적으로 근거 데이터와 학습 방법을 밝힐 수 있는 책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로의 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오늘날 인공지능은 사용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는 지식의 영역을 다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인공지능에게 공감과 지혜를 기대할 수 없다. 편향 없는 데이터에 기반하고 성숙한 인간이 평가에 참여해야 바람직한 인공지능의 개발이 가능하다. 오늘의 인공지능은 힘은 세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춘기 모습이다. 기술이 견인하고 법과 제도가 틀을 잘 잡아야 균형 잡힌 인공지능이 가능하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내일, 성숙한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기대한다.

2023-05-30

5월을 보내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보리누름의 즈음에 초목은 더욱 푸릇푸릇하다.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푸르름인데 군데군데 맥랑(麥浪)이 이는 들판엔 누렇거나 갈빛을 띄며 보리가 익어가니 이른바 맥추(麥秋)이다. 푸르른 초목의 캔버스에 누런 보리물결의 채색은 선명하면서도 대조적이다. 강물이 푸르니 새가 더욱 희게 보이고(江碧鳥逾白) 산이 푸르니 꽃빛이 불타듯 더욱 붉게 보이는 것(山靑花欲然)처럼, 이따금씩 배경의 빛깔이나 상태에 따라 어떤 사물과 대상이 두드러지거나 각광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강둑에 줄지어 서서 노란 웃음꽃을 피우는 금계국도 대조적인 인상을 준다. 연녹색과 초록의 줄기에 돋아난 잎들 사이사이로 샛노란 꽃을 아기자기하게 품고 피우며 가볍게 살랑거리는 자태는 앙증스럽기만 하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길섶의 들꽃이나 야생초쯤으로 여겨져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하나씩 노란 꽃잎을 흔들며 길손을 반기고 온몸으로 환호하니 자연히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배경이 되거나 어쩌다가(?) 주연으로 부각되는 기회가 있기도 할 것이다.“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 걸….//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는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중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과 향기로 하루하루 자신만의 꽃봉오리를 피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꽃밭을 이루고 숲을 키워가듯이,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의 꽃’을 피우며 사회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것이리라. 꽃을 피운다는 것은 에너지를 응축시켜 절정으로 치닫는 것이다. 노력하고 인내하고 도전하고 진취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재능을 한껏 불살라 꿈을 향한 도움닫기를 줄기차게 펼치는 것이다.불꽃놀이는 꿈의 결정체를 벅차고 강렬하게 터뜨려서 순간적이지만 스러져서 외려 아름다운 불꽃예술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꿈이나 꽃이 피어나는 과정의 형상화를 불꽃으로 승화시켜 ‘찰라 예술’로 연출함으로써 생생한 감동과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주 형산강 둔치에서 4년만에 열린 ‘2023년 포항국제불빛축제’에 25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호응이 컸다. 명실상부한 전국 3대 불꽃축제의 면모를 보이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코로나19 태풍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 포항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불빛을 선사했다.감사와 사랑으로 5월을 마무리하며, 마침 6월부터는 ‘노 마스크’에 이어 ‘격리’도 해제되어 사실상 40개월만에 엔데믹(감염병의 풍토화) 전환에 진입하니 완전한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 나누고 베풀며 아끼고 챙겨주는 배려의 꽃이 찬란한 기쁨의 폭죽으로 옴팡지게 터지길 기대해본다.

2023-05-30

‘대구경북 인공위성’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5월 25일 오후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또한 우리 기술로 제작된 위성 8기를 싣고 고도 550㎞까지 진입하여 모든 위성을 목표 궤도인 여명-황혼 궤도에 분리했다. 곧이어 분리된 8기의 위성 중 주 탑재위성인 차세대 소형위성 2호와 쌍방향 교신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조건인 누리호의 목표 궤도 정상 진입과 주 탑재위성의 정상 작동을 모두 충족한 것이다. 이번 결과는 1993년 6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발사한 KSR-Ⅰ호 이래 30년 만의 쾌거이다.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은 1992년 초보 수준의 과학위성 우리별 1호이다. 이때는 5개월이나 지나 정식으로 궤도에 진입하여 작동을 시작하였으나 이번에 쏘아 올린 차세대 소형위성 2호는 바로 궤도 진입 후 작동을 시작했다. 이번 성공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실용급 위성의 우주 수송능력을 갖춘 미국, 러시아 등 6개 나라에 이어 7번째 국가로 우주강국 G7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지구를 비롯한 우주 전체를 실험하고 연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우주산업과 이와 연계된 비즈니스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이번 발사체 누리호와 8개의 인공위성은 상업용 우주선과 위성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로 의미가 크다. 이번 8개의 인공위성은 북극해빙변화, 산림생태변화, 해양환경오염탐지 등 지구관측이나 우주의 날씨 변화, 방사능 분포 탐지 등 순수 연구목적이 대부분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운영하는 주요 인공위성은 KOMPSAT 시리즈(지상관측), 천리안 시리즈(기상 및 환경), KITSAT 시리즈(교육및실험), COMS(통신, 해양, 기상), 넷츠 시리즈(통신 실험), 아리랑 시리즈(국방, 지상 관측) 등 다양하나 상업적 활용은 제한적이다.상업용 인공위성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며, 통신 위성, 위성 방송, 지상 관측 위성, 탐사 및 과학 위성 등으로 분류된다. 통신 위성은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인텔사트(Intelsat), SES 등이 주요 서비스 제공자이다. 위성 방송은 TV와 라디오 등을 위성으로 전송하여 방송되며, 디렉TV, 스카이 등이 대표적인 서비스 제공자이다. 지상 관측 위성은 기상 예보, 환경 모니터링 등에 활용되며, 랜드사트, 스푸트니크 등이 주요한 위성이다. 탐사 및 과학 위성은 우주 탐사와 천문학적 연구를 위해 사용되며, 히슬리 암스테드, 찬드라얀-1 등이 대표적이다.이러한 상업용 인공위성들은 지역개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위성 통신은 지역 사회의 디지털 접근성을 높여 비즈니스,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혜택을 제공한다. 위성 방송은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널리 보급하여 관광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촉진한다. 지상관측 위성은 자원 관리, 환경 모니터링, 재난예방 등을 통해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원한다. 다가올 미래에는 대구경북지역의 농림수산업 지원 및 도시 관리, 재난·재해 대응과 탄소 모니터링 등에 특화된 ‘DGSat(대구경북 인공위성)’의 운영이 기대된다.

2023-05-29

비행기 비상구

홍석봉 대구지사장 여객기의 좌석은 중간 중간에 1열 정도 빈 좌석열이 있다. 통상 비상구를 내기 위해 비워둔 곳이다. 이 곳 뒷 자리는 자연히 공간이 넓다. ‘비상구 석’으로 불리는 이 자리는 항공 여행객들의 선호도 1순위다. 비상구 석은 앞 좌석이 없고 다리를 뻗을 수 있어 일부 항공사는 일반 석보다 비싼 값에 판매하기도 한다.대부분의 항공사는 이 좌석은 예약시 좌석 지정이 불가능하다. 비상구 옆 좌석이라 체크인 카운터에서 건강한 성인 남성 위주로 배정한다. 상당수 항공사는 비상구 좌석 배정 조건으로 영어에 능통할 것을 요구한다. 비상 사태 발생 시 이 자리에 앉은 승객이 승무원의 지시 사항을 알아듣고 비상구를 열고 다른 승객들이 비상구로 대피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고려한 것이다.지난 26일 제주에서 대구로 오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 대구공항 착륙 직전 213m 상공에서 30대 남성에 의해 비상구 출입문이 열리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외신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올 초 러시아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 이르아에로 항공 전세기가 러시아 동부 한 공항에서 이륙 직후 뒷문이 열려 회항한 사례가 있다. 민항기가 개문 운항한 사례는 국내 처음이다. 국내에서 두 차례 항공기의 비상구 개방 사고가 있었으나 모두 운항 중이 아닌 주기, 또는 지상 이동 중 발생한 사고다.항공보안법에 승객은 항공기 내에서 출입문, 탈출구, 기기의 조작을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시 출입문을 조작한 사람은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아시아나 항공은 사고 후 같은 기종의 비상구 옆 좌석 판매를 중단했다고 한다. 황당무계한 사고가 잦다. 요지경 세상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29

자본의 사생활, 편의점에 진열된 인생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의 표지. 동네마다 자리했던 슈퍼나 작은 구멍가게들을 대신해 어느새 전국 곳곳에 모두 같은 모양과 같은 구성을 하고 있는 편의점이 들어찬 시대가 되었다. 밤새 운영한다는 의미의 ‘편의(convenience)’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 되고, 이젠 편의점 없는 한국 사회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난 뒤 남아 있는 한국 사회의 풍경을 회고한다면, 아파트와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빼고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적 상징이 되는 공간이 존재한다면, 편의점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상징적인 공간인 셈이다.한국에서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처음 생긴 것은 80년대 말이었다. 24시간 일용품을 구입한다는 편의점이라는 콘셉트는 그것을 처음 경험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분명 신기한 곳이었을 테지만, 그 신기함이 일상으로 바뀌지 않으면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어떠한 의미도 갖기 어렵다. 당연하게도 한국에서 최초의 편의점은 실패하고 문을 닫았지만, 이후 90년대 초부터 편의점 공간은 하나씩 생기기 시작해서 이제는 거리 어디를 가나 편의점을 만날 수 있다.편의점에서 우리는 일상을 산다. 때를 놓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컵라면과 도시락을 사고, 힘들었던 하루를 소박하게나마 기념하기 위해 캔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고, 급하게 필요한 물티슈나 칫솔 등을 사기도 한다. 가끔은 아무 것도 살 것이 없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러, 투플러스 원으로 파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봉지를 사들고 오게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라는 것만큼 인간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없다면, 편의점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어느 것 하나도 비싼 것 없는 것들 사이를 고민하는 현대의 인간의 소비야말로 현대 인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명품의 소비처럼 계층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우리는 일상을 사고, 일상에 머물기를 바란다.한국 사회에 문득 등장한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담긴 의미를 가장 본격적으로 관찰하고 의미부여했던 작가는 아마도 김애란일 것이다. 2003년에 발표했던‘나는 편의점에 간다’라는 소설에서 작가 김애란은 도시 변두리에 살고 있는 젊은 여성의 관점에서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한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살폈다. 바로 직전까지 친밀한 가족에 기반한 서로에 대한 관심의 시대를 보내왔던 한국 사회에서 편의점은 물건을 사고 파는 것 이외에는 쓸데없는 관심을 주고 받지 않는 산뜻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거대한 관대’의 공간이야말로 관계의 압박에서 질식해가던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축복만 되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다. 20년 전 한국은 집단적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로부터 개인들의 사회로 이전했으며, 이제 모두 외로운 섬이 된 인간들은 서로 연결되길 바란다. 재작년 출간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작가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은 우리가 편의점이라는 공간 속에서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바란다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 속에서 편의점은 서로에게 아무도 기대하지 않게 된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끝끝내 놓지 않는 공간이다. 편의점은 발주와 폐기 사이에서 일상이 존재하는 곳이고, 고객과 진상 사이에서 인간이 만나는 곳이다. 누구나 가야만 하는 곳이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20년을 사이에 두고 나온 두 편의 소설을 읽으며, 편의점에 진열된 우리의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편의점과 또 다른 편의점 사이를 흘러가고 있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5-29

조선시대 ‘부처님 오신 날’의 풍경

장심학의 문집 ‘강해집’중 ‘관등기’ 일부분. /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의 총아, 고도서(https://book.ugyo.net)’ 4년 만이다. 그동안 코로나19 방역 제한으로 조용히 지나갔던 부처님 오신 날, 4년 만에 방역 조치가 완전히 해제되면서 마스크 없는 봉축 법요식이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열렸다. 오색 연등으로 뒤덮인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신도와 시민 1만여 명이 모여 법요식을 치렀으며, 대통령도 참석해 축사를 했다. 올해는 더구나 부처님 오신 날이 토요일이라고 대체 휴일이 주어짐에 따라 사흘 연휴까지 생긴 바람에 전국이 더욱 들썩였다. 비가 예고된 궂은 날씨였지만 사찰을 찾는 신도와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나들이에 나선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몸살을 앓았으며,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공항은 북적였다. 오랜만에 ‘부처님 오신 날’이 축제 분위기와 함께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지나갔다. 물론 모두가 종교적 차원의 관심은 아니었지만, 황금연휴와 함께 시작한 부처님 오신 날이라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봉축 법요식을 지켜보고 또 축하했다. 1841년(헌종7) 음력 4월 초파일, 포항 출신의 장심학(張心學·1804~1865)은 서울에서 화려하게 열린 관등(觀燈) 행사를 다소 놀란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당시 경험했던 ‘부처님 오신 날’의 풍경을 기록해 ‘관등기(觀燈記)’를 남겼는데, 이 글은 장심학의 문집인 ‘강해문집(江海文集)’에 수록되어 있다. 장심학은 글의 첫머리에서 “임금 즉위 7년 신축(헌종7, 1841) 윤3월에 춘당대에 직접 나오셔서 인재를 선발했다. 시험에 떨어진 나는 한양을 구경하다가 마침 4월 8일을 만났으니, 풍속에서 이른바 석가(釋家)가 태어났다고 하는 날이다.”라고 기록하며 자신이 서울에서 석가탄신일을 보내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 해 윤3월 13일 헌종은 춘당대에서 경과정시(慶科庭試)를 설행(設行)하고, 문과(文科)에서 이호형(李好亨) 등 19인을 뽑고 무과(武科)에서 나경준(羅敬俊) 등 218인을 뽑았는데 안타깝게도 장심학은 이 시험에서 낙방했다. 37세의 청년 장심학은 이왕 먼 길까지 온 차에 서울을 구경하기로 마음먹고 거리를 돌아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장심학은 이어서 “신라나 고려의 사람들은 이날에 등을 달고 술잔을 올려 빌면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였는데, 말세의 풍속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라고 기록했다. 숭유억불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불교를 배척한 시대였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4월 초파일에 관등 행사를 치렀고, 이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풍속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장심학은 계속해서 연등을 거는 장대를 어떻게 만드는지 연등의 모양은 얼마나 다채롭고 화려한지 그리고 연등이 무수하게 걸린 풍경은 어떤 모습인지를 아주 자세하고 또 실감나게 묘사했다. 석양 무렵 종로의 거리 양쪽에 남극과 북극이 하늘을 지탱하는 듯 서 있는 장대들과 그사이에 매달아 놓은 연등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것은 가로로 이어 연결하니 꿰어놓은 구슬 같고, 어떤 것은 수직으로 이어서 드리우니 매달아 놓은 옥 귀걸이 같았다. 어떤 것은 둥글게 묶으니 반짝이는 구슬 모양이 되며, 어떤 것은 연등으로 글자를 만들었으니 천세태평(千歲太平), 수복(壽福) 등과 같은 모양이었다.”라고 기록했다. 이날 장심학의 눈에 비친 서울 도성은 집마다 연등으로 장식하고 창문은 비단으로 꾸민데다가 시장과 기루(妓樓)의 주렴도 화려하고 사치스럽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낯선 광경이었던 것이다. 가장 압권은 도성의 남녀들이 관등놀이를 한다고 모여드는 순간이었다. 장심학은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이날 저녁에 도성의 많은 남녀들이 남북의 산 중에 높고 트인 곳에 올라 관등놀이를 하였다. 고운 옷에 향낭을 차고서 진홍색 비취색 옷으로 물들이며 구름과 안개처럼 무리지어 늘어서서 떠들썩하게 노래를 불렀다. 연하게 저민 고기 안주와 요란스럽게 울리는 현(絃)과 관(管)의 악기소리는 또한 하나의 태평한 시절을 함께 즐기는 것이었으니, 영남 사람으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지방 출신이었던 그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다. 그 규모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현재 우리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장심학은 서울의 화려한 모습과 수많은 인파에 그저 할 말을 잃고 압도되었을 것 같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1819년(순조19) 김매순(金邁淳·1776~1840)이 저술한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도 4월 초파일에 석가의 탄신을 기념해 연등을 만들어 매다는 풍속의 기록이 있다. 민가와 관청, 시장에서는 모두가 등간(燈竿)을 세워 연등을 매다는데 등간은 십여 길(대략 18m)이나 되는 여러 개의 대나무를 엮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등간 위를 비단 깃발로 장식한 후 갈고리 달린 막대기를 가로대고 갈고리에 줄을 얹어 그 줄의 좌우끝이 땅 위에까지 내려오게 한 다음 그 줄에 연등을 매달고 밤이 되면 줄을 잡아올려 공중에 연등이 달리게 하는 것이다. 등은 마늘, 외, 꽃잎, 새, 짐승 같은 형상의 것, 또 누대(樓臺)와 같은 것들이 있어서 각양각색으로 꾸며져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키는 어렵다고 했다.

2023-05-29

바다에서 새 희망을, 도약하는 대한민국

주낙영 경주시장 제28회 바다의 날 기념식이 31일 경주엑스포대공원 백결공연장에서 열린다. 바다의 날 행사가 경주서 개최되긴 이번이 처음이다.바다의 날은 해양자원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해양수산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국가기념일이다. 그간 경주는 역사문화유적으로 가득한 도시로 알려진 까닭에 내륙 도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하지만 경주는 북쪽의 포항과 남쪽의 울산 사이로 44.51km의 해안선을 따라 드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도시다. 부산이나 인천처럼 큰 항구는 아니지만, 2025년 개항 100주년을 맞는 감포항을 비롯해 12곳의 어항이 있고, 또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업인도 상당수다.또한 아름다운 해양경관도 자랑거리다. 천연기념물(제536호)로 지정되고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주상절리군’이 대표적이다.이곳은 과거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던 탓에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해안초소가 철수하고 국민 모두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관광자원이 됐다.특히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도 빼놓을 수 없다.이곳은 삼국통일의 과업을 완수한 신라 30대 ‘문무대왕’이 영면해 있는 곳으로 세계 유일의 수중왕릉이다.죽어서도 동해의 큰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호국·위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는 2021년 4월 이곳의 행정구역 명칭을 ‘문무대왕면’으로 개명했다.또 이곳에선 문무대왕과 관련한 관광 및 성역화 작업도 한창인데, 그 첫 번째 사업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 중인 ‘문무대왕해양역사관’이다.이 뿐만이 아니다. 경주시는 경북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함께 문무대왕릉 인근에 오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6500억원을 들여 SMR(소형모듈원자로) 연구·개발을 위한 국책연구소를 조성하고 있다.이 연구소의 명칭도 그의 이름을 딴 ‘문무대왕과학연구소’다.이곳서 연구·개발하게 될 소형모듈원자로는 상용화 후 첫 번째 적용 대상은 선박과 해양플랜트가 유력하다.또 이와 연계한 45만평 규모의 SMR국가산단이 정부 주도로 오는 2030년까지 이곳에 조성된다.‘혁신 해양산업, 도약 해양경제, 함께 뛰는 대한민국’이라는 올해 바다의 날 주제가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과거부터 바다에서 많은 것을 얻어왔고, 경주는 신라시대부터 바다를 통해 전 세계와 교류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하지만 여전히 국민 상당수는 해양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전 세계 해양산업의 부가가치는 급증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경주에서 열릴 제28회 바다의 날을 통해 가깝고도 멀었던 바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국민 모두가 몸소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3-05-29

심은 대로 거둔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결국, 노조가 제 발등을 찍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다. 민주노총의 일탈에 정부가 메스를 들이댔다. 건설노조의 노숙집회가 계기다.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린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주 건설노조의 노숙집회로 서울 도심의 교통이 마비됐다. 집회현장은 쓰레기장이 됐다. 정부·여당엔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던 민노총을 손 볼 수 있는 호기가 됐다. 정부·여당은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와 출퇴근 시간대의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민노총 등의 불법 집회 및 시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확성기 소음, 도로 점거 등 국민이 참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제한과 고삐를 풀어준 탓이 크다. 집회 참가자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공권력을 조롱하는데도 경찰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노조는 국민적 공분을 샀다. 법 위에 군림하며 공권력도 마음대로 손 대지 못했다. 경찰은 적극 저지도 않았다. 잘못하다가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자칫 옷을 벗을지도 모른다. 슬슬 뒷걸음질쳤다. 그 게 현재까지의 모습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경찰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정부의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건설노조의 집회가 노조에게는 부메랑이 됐다. 앞서 검경은 건설 현장의 비노조원 채용 방해, 뒷돈을 노린 업무방해, 갈취 등을 수사했다. 노조 간부 다수가 기소됐다. 정부는 관행이 된 노조의 횡포를 근절, 건설 현장의 정상화를 꾀하려 했다.정부·여당은 이참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개정하고 경찰의 공무집행 시 사고에도 면죄부를 줄 작정이다. 공감대도 이뤄졌다. 불법시위에 속수무책이었던 경찰을 보며 불법시위에 학을 뗀 국민의 질책이 힘이 됐다. 게다가 야간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가 법률 미비로 사각지대가 돼 있었다. 노숙집회가 무시로 벌어졌다. 대응 방법은 없었다. 2015년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 사건 이후 관련 책임자들이 처벌받았다. 시위대응은 위축됐다. 살수차도 전량 폐기됐다. 마땅한 묘책이 없던 터였다. 건설노조의 노숙집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노동계는 정부·여당이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훼손하고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며 반발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민노총이 보여준 퇴영적 모습과 불법시위에 지쳤다. 종북 바라기는 국민에 외면당했다. 더는 약자 코스프레가 통하지 않는다.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근로자들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것과 같이 집회 및 시위의 공포와 불편에서 벗어날 자유도 있다. 민노총은 이제 정치와는 절연하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근로자의 지위 향상과 권익 도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폭력 없이 말이다. 노조가 반국가적, 반사회적 단체로 주홍글씨가 새겨져서야 되겠나. 정부와 노조는 법질서를 바로 잡고 올바른 집회·시위 문화를 정착시키길 바란다. 다시는 국민 불편이 없어야 한다.

2023-05-25

연등(燃燈)

우정구 논설위원 “등에 불을 밝힌다”는 뜻의 연등은 불교문화권에서 널리 성행하는 불교의식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전국에서 행해지는 연등행렬은 연등과 관련한 대표적 불교 행사다. 우리나라는 신라 때부터 연등행사가 있어 그 역사가 1천200년이나 된다. 202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됐다.불교서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을 지혜에 비유한다. 불상 앞에서 불을 밝히는 연등을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하며 매우 소중히 여기는 문화다. 부처님 오신 날에 법당에 등불을 밝히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무명을 밝히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의 의식이다.불교 서적 현우경에 나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하나의 등이 부자가 바치는 수많은 등보다 공덕이 크다는 것을 교훈으로 한다. “물질이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소중하다”는 부처님의 사상을 표현한 말이다.내일은 불기 2567년을 맞는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음력으로 4월 8일이다. 우리나라는 1975년부터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불교 종주국인 인도는 물론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도 석가탄신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히 열린다.과일 등을 팔아 평생 재산을 모은 할머니가 학교에 그 재산을 기부하고,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소년소녀 가장의 살림을 돕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있다. 꼭 내가 넉넉해야 어려운 이웃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빈자일등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도 꽤 있다. 이처럼 부처님의 지혜로 세상의 빛을 밝히는 사람이 있음에 우리 사회는 그래도 훈훈하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25

논 사잇길

강길수 수필가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뒤처질세라 엄마 치맛자락 따라 바지런히도 오르던 그 옛날, 논대로골의 다랑논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다랑논 사잇길은, 두 사람이 비켜 가기도 버거운 길이었다. 그게 어제 같은데, 지금은 타향에서 승용차를 몰고 아스팔트 논 사잇길을 가고 있다. 세월은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텃밭 가는 길이다. 2차로 아스팔트 포장 지방도로다. 농사철이면 농기계들이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걷는다면 반 시간은 걸릴 거리의 도로 양쪽으론 드넓은 논이 펼쳐진다. 길가에 몸 붙여 사는 식물들을 벗하며 텃밭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로수 없는 도로이지만, 이름 모르는 풀들이 열 지어 서서 오가는 이들에게 응원단처럼 환호를 보낸다. 걷거나 자전거로 지나다니는 사람도 가끔 있다.철 따라 이곳저곳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이따금 작은 나무들이 함께 살기도 한다. 길가 풀, 나무들은 오가는 이들의 계절 묵시록이다. 길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들이 어우렁더우렁 잘도 살아가는 모습은 늘 희망이다. 삶이란 사람에게나 식물에나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자기 태어난 고향의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고향은 온갖 생명체, 나아가 모든 존재에게 부여된 운명이다.지방도를 벗어나 농로를 얼마큼 가야 우리 텃밭이다. 이곳 길은 오른쪽은 논, 왼쪽은 밭, 미곡건조장, 산 자드락, 논 등이 혼재한다. 요즈음은 도시 근교뿐만 아니라, 시골의 웬만한 농로는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어 왕래가 편리하다. 원화의 환율 상승에도, 한국의 2022년 국민 소득은 3만2천661달러란다. 또 2022년 5월, 유엔 통계국은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하였다.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선진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이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많다고 본다. 눈에 안 보이는 것들과 보이더라도 국민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 가령, 사회 지도층의 국가공동체에 대한 의식 수준, 소득분배구조, 기초질서 같은 것들이다.우리 지역의 눈에 보이는 결점 중 지적하고픈 하나가 있다. 텃밭에 오갈 때 다니는 논 사잇길의 농번기 모습이다. 논갈이나 모심을 때면, 트랙터 등 농기계의 바퀴에 낀 논흙을 치우지 않고 도로에 나와 이동한다. 그때 제법 많은 논흙이 길바닥에 떨어져 다른 차량의 운행을 방해한다. 나도 흙덩이를 피해 곡예 운전을 하곤 한다. 비와 바람이 흙을 치워버릴 때까지 노면은 지저분하고 흙먼지도 펄펄 날린다.선진국에 이런 모습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회의 구석진 문제들을 찾아내고 개선해야 할 책무는 누가 맡아야 할까. 당연히 공직자다. 그 많은 공무원과 기초, 광역,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서 무얼 할까. 선진국이란, 윤택한 가운데 자유와 인권이 있는 사회, 작은 것까지 질서가 바로 선 나라가 아니겠는가. 선출직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우선 해야 할 것은, 사회의 작고 구석지고 어두운 곳들을 찾아 잘 보살피는 일이라 본다. 그럴 때, 농번기 논 사잇길도 흙덩이 없이 깨끗해질 테니까.

2023-05-25

부처님 오신 날 축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27일은 음력 사월초파일, 불기(佛紀) 2567년 ‘석가탄신일’인데 2018년부터 ‘부처님 오신 날’로 되었다. 1975년에 공휴일로 되었고 올해부터 대체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음력 공휴일인 설날, 추석과 더불어 평달만 휴일이다. 그래서 올해는 27일부터 3일 연휴가 된다.불교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많이 믿는 종교이지만 석가탄신 기념일은 같지 않다. 한국 대만 중국 등은 음력 4월 8일이지만 태국 미얀마 베트남 등 남방 불교국가들은 각각 다른 날로 하고 있다. 일본은 불교 신자가 많지만 양력 4월 8일을 ‘하나마쯔리’라는 축제로 즐기고 북한은 공휴일이 아니란다.석가모니가 태어나서 외친 “하늘 위 하늘아래 나보다 존귀한 사람 없다.(天上天下 唯我獨尊)”라는 마음으로 6년간 수행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36세에 부처가 되었고 금강경과 법화경 등 불전으로 번뇌와 헛된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덧없는 인생을 가치 있게 살라는 완벽한 지혜를 주고 있다.초파일에는 많은 축제가 열린다. 연등회, 제등행렬, 관등놀이뿐 아니라 방생이나 탑돌이 등도 있고 민속행사로 확대되었다. 연등(燃燈)은 ‘불꽃을 태운다’는 의미로 석가가 가르친 깨달음, 즉 마음을 밝힌다는 뜻에서 제등행렬, 관등놀이 등 등불을 밝히는 지혜의 축제가 많다. 이 중 연등회는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고, 무형문화재 122호인 가장 대표적인 행사인데 4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올해부터 문화재 관람료가 없어졌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사찰을 찾아가서 오색 연등(蓮燈)을 달며 가족의 행복을 발원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이들 행사는 이미 시작하였는데 경주는 ‘형산강 연등축제’를 지난 3일부터 ‘마음의 평화, 지혜의 등불’이라는 표제로 금장대 부근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고, 포항은 지난 13일에 장미꽃 만발한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연등축제를 봉행하여 용 코끼리 공작새의 커다란 등을 끌고 흥겨운 농악대 취타대와 함께 오거리까지 제등행렬을 한 바 있다. 왜 부처님 오신 날의 3일 연휴에 하지 않고 2주일을 당겼을까?부처님 오신 날 27일 앞뒤 3일간 ‘포항 불빛축제’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형산강 체육공원에서 개최할 예정인 국제불꽃축제는 ‘불과 빛의 도시, 포항’을 알리고자 2004년에 첫 불꽃을 터뜨렸는데 이번에도 포스코의 야경을 배경으로 필리핀 이탈리아 스웨덴과 한국이 참여한 국제불꽃 쇼가 부처님 오신 날을 더욱 빛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불꽃 쇼는 27일 밤 9시부터 1시간 동안 찬란한 불꽃을 하늘에 터뜨릴 것이고 마지막 ‘그랜드 피날레’는 한국이 장식한다. 26, 28일 밤에는 시민 디자인 불꽃 쇼가 우리의 마음을 밝게 비추고, 어둠 속에서 분탕질이나 하고있는 정치계에 진정 밝은 깨달음을 주었으면 좋겠다.부처님 오신 날 탑돌이 행사는 부처님의 큰 뜻과 공덕을 기리는 민속행사로 확대되어왔으니 반듯한 석탑을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며 개인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해 보자. 나무아미타불.

2023-05-25

축제도시, 포항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지역마다 축제가 있다. 하필 코로나19 탓에 몇 년 동안 숨을 죽였던 축제의 기운이 나라 안에 넘실거린다. 적지 않은 재원을 써가며 진행하는 축제는 무엇인가 거두어야 한다. 지역은 축제를 왜 하는가.포항은 4년 만에 포항국제불빛축제를 쏘아 올린다. 2004년에 자그마하게 시작했던 행사가 오늘만큼 성장한 일은 수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아진 결과다.슬로건 “Light on 포항, 밤하늘을 비추다’에 맞추어 축제를 펼쳐 올린다. 다른 곳은 몰라도, 포항에는 이 축제에 분명한 까닭을 싣는다. 알려지기로 하룻저녁 불꽃놀이가 초점이라지만, 포항의 축제는 이름부터 다르다. 불과 빛, 도시의 열정을 한데 모아 ‘불꽃’을 터뜨리지만, 포항은 은은하고 꾸준한 희망의 빛이 넘치는 지역이고 싶다. 이 도시에 기대어린 내일이 있음을 밝히고 싶고, 사람을 모으는 정성이 환하게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다. 시민들에게 젊은 가슴이 넘침을 확인하고 싶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외지인의 발길을 목격하고 싶다. 축제가 모든 이들에게 소망의 불씨를 살려내는 이벤트가 되었으면 하고, 사흘 축제가 지난 뒤에도 긴긴 여운을 남겼으면 한다.시민들이 손수 만드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었던 소양과 재능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지역의 스토리가 보란 듯이 무대에 올려져야 한다. 포항문화재단이 주관하지만,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축제를 구현해야 한다. 시민들이 ‘우리들의 축제’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으면 한다. ‘퐝거리퍼레이드’에 사람들의 열정이 보였으면 하고, ‘시민디자인불꽃쇼’에서 시민의 상상과 창의를 목격했으면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손길이 모아진 축제에서 지역의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고 외지인의 부러움도 한껏 살아나지 않을까. 시민참여형 축제가 포항에서 불빛처럼 타오르길 기대한다.포항시는 축제를 도시브랜딩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지역에는 포항국제불빛축제 외에도 다양하고 풍성한 축제 프로그램이 있다. 예산을 소비하고 빈축만 사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축제마다 독특하고 분명한 지향성을 확인하고 지역의 열정과 기대가 한데 어우러지는 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포항에서만 발견하는 지역정체성을 확인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바다와 철강의 이미지를 살려야 하고 도시와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분위기를 드러내야 하며 유구한 전통이 숨쉬고 싱싱한 내일이 꿈틀거림을 확인해야 한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행복한 도시가 되어야 하고 기꺼이 서로 도우며 함께 발전하는 지역임을 보여주어야 한다.‘축제도시 포항’에서 기대와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도시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려야 하고, 상생과 협력의 기운이 이 도시에 충만함을 자랑해야 한다. 메인이벤트인 불꽃의 향연에는 도시의 열정이 한껏 발산되어야 하고 지역의 탄성이 마음껏 터져나와야 한다. 축제는 지역을 하나로 묶어내는 시간이어야 하고 외지인의 관심이 지역으로 모여드는 계기여야 한다. 오래간만에 축제의 열기에 흠뻑 취하고 싶다!

2023-05-24

이슬람과 돼지고기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 북구 대현동 경북대 인근의 이슬람 사원 건립 갈등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 혐오와 차별 정서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사원 건립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이 삶은 돼지머리를 전시하고 돼지고기를 나눠 먹는 등 인종차별과 인권 침해가 벌어졌다. 이슬람 사원 반대를 위한 ‘돼지머리 시위’는 이제 외신에 까지 등장,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경북대 학생들은 이슬람 혐오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권위까지 나서 ‘이슬람 문화 비하와 적대감을 부추기는 행위’이자 ‘인종과 종교를 이유로 한 소수자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표현’이라며 자제를 촉구했다.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힌두교도는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무슬림은 이 계율을 자신들의 공동체 안팎에서 철저히 지킨다. 돼지 사육조차 않는다.이슬람은 왜 돼지고기를 이렇게 금지할까? 코란에는 돼지고기 금기가 명시돼 있다. 코란의 명령이다. 그 이유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바로 중동지역의 환경설이다. 고대 중동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동물이 소, 양, 염소 세 동물이었다. 이 동물들은 풀, 짚, 나뭇잎 등 거친 섬유질 먹이를 먹는 반추동물이다. 인간이 먹지 않는 풀 등을 먹고 고기와 젖을 제공한다.반면 돼지는 잡식동물로서 되새김질을 하지않아 풀이나 짚 등 섬유소가 많은 식물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대신 섬유소가 적은 밀, 옥수수, 감자, 콩 등을 먹는다. 인간과 먹을 것을 두고 경쟁관계가 됐다. 또한 돼지는 건조한 중동 지역에 적합지 않다. 사육에는 시원한 그늘과 물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금기 동물이 됐다고 한다.자고로 음식 갖고 장난치는 법은 아니라고 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