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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축일주

육십갑자 중 서른여덟 번째는 신축(辛丑)이다. 천간(天干)의 신금(辛金)은 잘 다듬어진 칼같이 날카롭고, 보석처럼 아름답다. 지지(地支)의 축토(丑土)는 계절로는 겨울이라 땅이 얼고 차갑다. 동물로는 흰 소다.신축일주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형상처럼 지혜롭고 머리가 뛰어나다. 기획력과 창의력은 탁월하다.눈치가 빠르며, 밤하늘의 별처럼 신비스러운 것이나 이상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영감이나 꿈으로 미래를 잘 예측하기도 한다.천간과 지지가 음의 기운으로 냉철하며,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세밀하여 일처리가 빈틈없이 깔끔하다. 유행에 민감하고, 세련미가 넘치며, 타인을 사로잡는 능력도 탁월하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해 시야가 좁고 외골수이기 때문에 편협함이 있다. 매섭기가 그지없으니 내면에 공격성이 숨어 있어 자기 눈에 벗어나면 독설도 서슴지 않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신축일주 남자는 재주와 재치가 있다. 맡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 신의도 잘 지킨다. 배우자를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고, 고생시킬 수도 있다. 여자는 단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미인형의 얼굴이 많다. 또한 총명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자부심도 강해서 아량이 부족하게 보이기도 한다.중국 전한시대 유향이 지은 ‘전국책’ 진책2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강 언덕에 있는 어떤 마을에 처녀들 몇이 있었다.그 가운데 한 처녀의 집이 매우 가난해 밤이 되어도 등불을 켜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밤이 되면 가난한 처녀는 여러 처녀들이 모여 노는 집으로 찾아가서 바느질을 하곤 하였다. 어느 날 여러 처녀들은 가난한 처녀를 더 이상 오지 말라며 쫓아냈다.그러자 처녀는 여러 처녀들을 보고 “나는 우리 집에 등불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와서 불빛을 빌려 써야 했지만, 그게 늘 고맙고 미안해서 언제나 제일 먼저 와서 방도 치우고 자리도 펴 놓았지. 그런데 너희들은 이 사방 벽에 비추어 남아도는 등불 빛 한 가닥이 아까워 나를 쫓아내는구나. 남는 불빛을 나에게 준다고 해서 너희에게 무슨 해가 되냐? 나는 스스로 너희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라고 말했다.여러 처녀들이 수군수군 의논하더니 가난한 처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오라고 말했다. 사람에게는 순화되어야 할 감정이 많이 숨어있다. 남의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이다.신축일주는 하늘은 매섭고 찬바람이 휘날리는 신금(辛金)이지만, 땅은 소(축, 丑)다. 남들 보기에는 힘든 일도 소나 닭 쳐다보듯이 무심하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는 기운이다. 부지런하지만 결코 스마트하지 않는, 좀 늦고 떨떨한 신축! 재주도 메주도 별로 잘하는 것이 없는 신축! 거기다가 생각하는 것도 진취적이지 못하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이고, 옆에서 보면 속이 답답한 경우이다.하늘이 살벌한 신(辛)의 기운으로 매서운 칼날을 들고 있지만, 땅인 소는 알고 있다. 그것이 보석을 나누어주기 위한 하늘의 이치라는 것을. 참으로 소의 커다란 눈망울 같이 순하고 순수하며 따뜻한 눈으로 보아주고 있다. 대체적으로 판단력이 좋고, 신속한 행동을 한다. 약간은 즉흥적이지만, 로맨틱하지는 않다. 남녀 모두가 소위 분위기 파악이 잘 되지 않는 성향이 있어 흠이 될 수 있다.소처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고독하거나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빠지면 깊이 들어가는 기운이 있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습관이 많다.신축일주는 물상으로 언 땅 위에 박힌 보석처럼 침착하고 매사에 신중하기에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해도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겨울의 차가운 환경에서도 봄을 맞이하여 뜻을 펼치기 위한 노력이 남다르다. 늘 불안하고 걱정하는 성격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산다.재물과는 인연이 깊지 못하여 타고난 재능으로 인내하고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허나 시기 질투가 강하여 남과 비교하는 내향적인 성질이지만, 직감과 영감이 뛰어나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많아 종교생활에 적합하다.신축일주에는 효신살(梟神殺)이 있다. 올빼미 효(梟)와 귀신 신(神)을 써서 올빼미 신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동방불인지조(東方不仁之鳥)라 하여 새끼가 성장한 이후 어미 새를 쪼아 먹는 폐륜적인 새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다시 말해 남자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고, 여자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야기하기에 좋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지나친 애정과 간섭으로 생긴 문제다. 자신의 잘못된 점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단점만 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유향이 지은 ‘설원’ 담총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비둘기가 올빼미를 보고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올빼미는 “나는 동쪽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라고 대답했다.비둘기가 왜 이사를 가려 하는지 물었다. 올빼미는 마을사람들이 자신의 울음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비둘기는 올빼미에게 너의 울음소리를 고칠 수 있다면 이사를 가도 되겠지만, 울음소리를 고칠 수 없다면 동쪽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거기 사람들은 여전히 너의 울음소리를 싫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효장동사(梟將東徙)라는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올빼미는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만 탓하면서 단지 사는 곳을 옮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필연적인 사건들과 맞닥뜨린다. 애착, 대립, 관계, 이별, 상실, 성가신 뒤처리 등 사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물론 이런 문제에서 등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전력을 다해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면 그 모든 일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손대기 전에는 힘들었던 일이 생각보다는 가벼운 문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은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3-05-24

더 이상 문은 녹슬지 않는다

정미영 수필가 세상으로 향한 모든 인생길의 시작과 끝은 문이 아닐까. 어머니의 자궁문을 열고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한평생 온갖 종류의 문을 여닫기 반복하다가 마침내 삶의 종착지에는 장례식장에서 생의 문을 닫는다.인생 시계의 가을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지나왔던 무수한 문을 생각해 본다. 자동문처럼 쉽게 열린 적도 있었고, 굳게 닫힌 문을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 겨우 열던 때도 있었다. 돌이켜 보건데 내가 건너왔던 문들은 모두 나의 내력을 지녔다. 가끔은 추억의 빗장을 열고 그 문들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기도 하지만, 오늘은 차마 잊지 못하고 머뭇대며 찾아가기를 별렀던 문을 보러 길을 나선다.학창 시절에 살았던 집 앞에 선다. 문간을 넘나드는 이들의 들숨과 날숨이 대문에 스며든 것만 같아 여기저기 시선을 옮겨본다.내 눈길 끝에 예전의 문소리가 끼익 달려 나온다. 그 당시 우리 식구가 대문을 열고 닫을 때는 유달리 삐걱대는 소리가 잦았다.친정아버지의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던 마음이 대문에 옮겨져 그 아픔의 무게에 짓눌렸던 연유 때문인지 돌쩌귀가 빠져 슬픈 울음소리를 냈다.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을 도맡았다. 어느 해,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다.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잘못됐다.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이 사실을 들은 어머니가 수소문해서 신발 가게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단다.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고 그 즈음 힘들게 겨우 장만했던 집을 내놓을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자식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동안, 아버지의 직장 동료들은 우리 집 형편을 마음 아파했다. 그들의 배려 덕분에 관사로 거처를 옮겼다. 아버지가 빛바랜 문 앞에서 선뜻 집으로 들어오지 못한 적이 많았던 때문이었을까.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한다고 문고리를 붙잡고 미안해할수록 철문은 무시로 아버지의 울분을 받아들였나 보다. 문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주저앉을 것처럼 점차 위태롭게 보였다. 낡을 대로 낡은 문은 바람만 불어도 쩔걱거리며 사위스러운 소리를 냈다. 삭막한 아버지의 흐느낌과 문의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내 불안은 커져만 갔다. 내 가슴에도 붉은 녹과 쇳소리가 선명하게 새겨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그런데 걱정의 종말이 보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파란 페인트를 사가지고 왔다. 비지땀을 흘리며 문고리와 문설주의 돌쩌귀까지 세심하게 덧칠했다. 아버지가 문을 페인트로 단장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무성한 마른 풀로 버석거렸을 아버지의 가슴에 새롭게 푸른 물이 돌았을 것이다. 생기가 돋아나는가 싶더니, 활기가 넘치는 날도 점차 늘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사람에게서 받은 상심과 삶의 고단함을 페인트칠하면서 부려놓으려 애썼던 것 같다.사람과 마찬가지로 문도 상처를 방치하면 안 된다. 아버지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데 힘썼듯이 내세울 것 없던 허름한 문도 녹슨 곳을 사포로 정성껏 문질러 매끈하게 만들자, 공간의 소중한 일부로 재탄생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때의 경험을 발맘발맘 따라왔더니, 가끔 생활에 드리워진 어둠이 걷어지고 환한 희망의 등불 하나 소담스럽게 문에 내걸 수 있었다.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워줘야 했다. 아버지는 공무수행을 떠난 길 위에서 돌아가셨다. 가량없이 날선 세상에서 가족들을 지키려고 했던 아버지는 나에게 문(門)이었다.대문을 쓰다듬어 본다. 삶이 버거울 때 비바람 막아 주고 등을 기댈 수 있었던 문(門)과의 추억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제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 푸른 문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형상은 오롯이 기억될 것이다. 더 이상 문은 녹슬지 않는다.

2023-05-24

소통의 방식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다수의 국어국문학과에는 ‘문학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작품 속 배경이나 작가를 기념하는 문학관을 찾는 행사가 있다. 필자도 학부 시절 순천과 광주 일대를 답사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답사 프로그램은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문학 현장을 찾는 것에 대한 무용론이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주 학부생 40여 명과 목포로 2박 3일 문학답사를 다녀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중단된 문학답사가 부활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신청마감 3일 전까지 신청자가 10명을 넘지 않아서 취소하기 직전까지 몰렸지만, ‘졸업요건’을 강조하며 학생들을 독려한 끝에 간신히 출발할 수 있었다. 애초에 대다수 학생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첫째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식사를 일찍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절반 이상이 빈자리가 되었다. 둘째 날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식사를 마치면 같은 테이블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피하는 쪽을 택했다. 뿐만이 아니라, 둘째 날부터 일정이 빡빡하다는 말이 들려온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학생회장을 통해 들은 말은 이랬다. 우선 날씨가 문제였다. 2박 3일 일정의 첫날은 무더위로, 둘째 날은 비로 인해서 축축하게 젖은 옷을 입고 답사를 진행해야 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쉽게 피로감을 느꼈던 것이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 한 조를 이루어 이동하고 방을 함께 써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낯선 존재와 2박 3일 동안 가깝게 지내는 것이 불편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어색함을 참으며 타인을 알아갔다면, 지금 학생들은 스마트 폰에 의지해 그 시간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둘째 날, 우리 조 학생들과 이동 중에 소나기를 만나서 카페로 이동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우리는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러자 학생들은 당연한 듯 각자의 스마트 폰을 꺼내서 무엇인가를 했다. 몇 분의 침묵이 흘렀을까. 견디지 못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순간 학생들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공기만은 또렷하게 떠오른다.현재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스마트 폰에 익숙한 세대로 낯선 사람과 만나서 자신을 드러내며 대화하는 방식이 서툰 것이 사실이다.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겪으며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 자체를 배운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니 어색함과 불편함에 성급하게 말을 하거나 혼내기보다는 잠시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 날 학교에 도착하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우리 조 학생들을 보니, 내가 2박 3일 동안 너무 조급하게 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은 속도는 조금 늦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번 답사는 나에게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2023-05-24

자동차 사고와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살면서 크든 작든 보통 한번쯤은 겪는게 교통사고다. 뒤에서 차가 와서 부딪히거나 차선변경 중 혹은 교차로에서 차끼리 부딪힐 때가 있고 횡단보도나 일반 길에서 차가 사람을 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크게 다치진 않으나 심하게 다친 사람은 뼈가 부러지거나 뇌출혈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자동차 사고가 나면 요즘은 대부분 한의원에 내원해서 치료를 한다. 상태에 따라 침과 부항으로 어혈을 제거하고 근육을 풀어 줄 뿐만 아니라 약침과 추나 거기다가 어혈을 제거하고 면역을 높일 수 있는 한약까지 21일분 처방이 가능해서 한방 치료를 받으면 교통사고의 통증과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을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다.대부분 환자는 사고시 충격으로 몸이 순간 앞으로 쏠렸다 뒤로 휙 제껴지면서 경추와 흉추 등이 과도하게 신전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목과 어깨 쪽의 척추 근육 인대 등이 손상되고 심한 경우 허리 척추의 인대도 손상된다. 이를 채찍질 손상 혹은 편타 손상이라고 하는데 보통 목이 뻐근하고 아프고 심하면 목을 돌리지 못한다. 또 어깨가 뭉치고 심한 경우는 날개뼈에 담이 결린 것처럼 몸을 돌리기가 힘들어진다. 일반적인 담과는 다르게 교통사고로 인한 목과 어깨 통증은 가만히 놔두면 낫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목과 어깨가 굳어가면서 더 심해진다. 허리도 우리하게 아프고 심한 경우 골반쪽으로 날카로운 통증이 생길 수 있다. 목이 너무 심하게 충격 받은 경우엔 두통과 어지럼 구토증도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목을 풀어주고 치료한약을 같이 복용하다 보면 1~2주 내에 두통 어지럼 구토증은 사라지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교통사고로 인한 통증은 잘 낫지 않아 사고가 나면 바로 한의원에 내원하는 것이 좋다. 치료기간은 심하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는 2~4주 정도 꾸준히 치료하면 좋아지고 심한 경우는 3달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치료는 우선 부항으로 사혈을 해서 어혈을 빼주고 침으로 뭉친 근육과 인대 회복을 돕는다. 그리고 약침과 추나 등의 추가 치료로 더욱 확실하게 근육을 풀어주고 한약처방으로 면역력 강화와 근육을 강화 시켜 치료의 마무리를 한다. 환자가 꾸준히 2~4주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대부분은 90% 이상 회복이 된다. 물론 일부 골절 환자 같은 경우엔 뼈가 붙고 나서도 많은 시간을 투자 해야 한다.남자들이 보통 근육이 많고 튼튼해 아픈 것도 덜하고 회복도 빠르다. 몸이 약한 여성의 경우엔 별로 심하게 사고가 나지 않았어도 상당히 심한 통증과 심적 고통을 호소한다. 실제로 교통사고가 나면 한동안 잠도 못자고 밥맛도 없으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운전대를 다시 잡기가 너무 겁난다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라도 한약 처방이 무료로 가능하니 한달 내로 대부분의 증상은 좋아진다. 교통사고로 통증이 생기면 최대한 빨리 근처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후유증을 예방해 건강한 생활을 빨리 되찾자.

2023-05-24

공공기관 억대 연봉을 보는 눈

우정구 논설위원 연봉 1억원대는 샐러리맨들의 꿈이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기업의 수익이 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원 평균연봉이 1억원을 넘는 직장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최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을 통해 공공기관의 기관장 연봉이 밝혀지면서 고액 연봉을 둘러싼 뒷얘기가 무성하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의 기관장 중 29명은 지난해 대통령(2억4천64만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소기업은행과 한국투자공사 기관장의 연봉은 4억원을 훌쩍 넘었다. 국립암센터,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연봉 3억원이 넘는 곳도 많았다.또 연봉을 공시한 공공기관 340곳 중 300곳의 상임기관장 연봉이 공공기관을 관리 감독하는 정부부처의 장관 연봉보다도 많았다.연봉은 그 기관의 운영실적과 기관장의 능력 등을 종합해 지급하지만 억대가 넘는 연봉은 서민층에게는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특히 공공기관은 기업특성상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측면도 많아 지나친 연봉은 국민의 눈총도 받는다.많은 국민이 고금리로 허리가 휠 때 금리 인상의 수혜자인 은행들이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벌여 여론의 비난이 된 것도 국민 정서에 반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적자를 낸 한전이 설립한 한전공대의 교수가 전국 4년제 대학 정교수 평균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연봉으로 치면 1억5천만원에 상당하는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도 세비 만큼 일을 해야 국민의 눈총을 받지 않게 된다.억대 연봉을 받는 공공기관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국가발전과 지역사회 기여에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5-23

글로컬대학이 ‘지방대학의 생존모델’

심충택 논설위원 대학간, 전공·학과 간 경계를 허무는 ‘글로컬 대학’이 곧 탄생한다. 현재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대학은 글로컬 대학 신청마감(31일)을 1주일 앞두고 응모준비에 한창 바쁘다.‘글로컬 대학’은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합친 용어다. 말 그대로 로컬대학을 국제적인 일류대학으로 육성해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정책이다.교육부와 글로컬대학위원회는 다음달 중 15곳 안팎의 예비 지정 대학을 발표한다. 그 후 세부적인 심사를 다시 거쳐 오는 9월까지 10곳을 글로컬 대학으로 최종 선정한다. 선정되는 대학은 앞으로 5년간 1천억씩 지원받는다. 돈 가뭄에 시달리는 지방대학으로선 적지 않은 금액이다. 정부는 오는 2026년까지 모두 30곳의 글로컬 대학을 선정한다. 지방대가 글로컬 대학이 되면 국립대 교수들에게도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줄 수 있고 대기업 인력을 겸임교수로도 활용할 수 있다.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경산에 있는 경일대-대구가톨릭대-대구대가 공동응모하기로 합의했다. 같은 재단인 영남대와 영남이공대, 계명대와 계명문화대, 그리고 안동대(국립)와 경북도립대도 응모를 논의중이다. 국립대인 안동대와 금오공대의 통합논의는 무산됐다. 경북대와 대구교대의 통합에 대한 관심은 컸지만, 학교구성원들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됐다. 반면 부산대와 부산교대는 통합에 합의해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커졌다.교육부가 글로컬 대학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이유는 지방대학을 국제적인 대학 흐름에 합류시켜 생존력을 높여보자는 취지다. 정부가 글로컬대학 선정과 관련해 제시한 주요 가이드라인도 응모대학들이 국제적인 추세에 맞춰 지역·산업 간, 그리고 학문 간 경계를 허물어서 새로운 차원의 대학모습을 제시해 보라는 것이다.응모대학들이 일단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다양한 방법의 통합을 통해 규모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여러 영역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고, 학생들의 연구분야와 역량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다양한 학문 간 협업도 가능해진다. 지금도 국내외 일류대학들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한 전공에 갇히지 않고 여러 분야를 탐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있다.글로컬 대학 출범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방대가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긍정론이 있는가 하면, 일부 지방대만 살리고 나머지 대학들은 고사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과거와는 다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IT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대학의 교육 방법과 내용을 당연히 새롭게 짜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현재 모든 지방대학이 체감하고 있겠지만, 머뭇거리다간 바로 도태된다. 학생 개개인도 하루하루 자기혁신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컬 대학 정책이 취지대로 이행되면, 현재 심각한 소멸위기를 겪는 많은 지방대학의 생존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3-05-23

MBTI 덜어내기

관계란 참 어렵다. 특히 처음 만난 사람과의 관계는 더더욱 그렇다. 일을 하다 그 사람과의 마찰이 생길 때, 또는 타인을 처음 마주할 때 어떤 MBTI 유형일지 궁금해진다.MBTI란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미국 심리학자 캐서린 브릭스가 그의 딸인 이사벨 마이어스을 가르치던 중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성격유형 이론을 근거로 만든 심리검사이다.캐서린 브릭스가 구분한 성격유형은 ‘에너지 방향’, ‘인식 기능’, ‘판단 기능’, ‘생활 양식’의 네 가지 경향으로 구성되며, 4쌍(8가지)의 지표 중 검사 결과를 조합하면 총 16종류의 성격 유형이 나온다.인터넷에 MBTI를 검색해보면 ‘MBTI별 00일 때 반응 모음’, ‘MBTI 별 성격 차이’ 알아보기, ‘유형별 궁합’, ‘유형별 완벽주의 순위’ 등의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1만회, 141만 회 등 높은 조회수를 나타내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두어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다.MBTI 관련 콘텐츠는 늘 끊이지 않는 밈을 생산해내며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를 통해 무분별히 정보를 수집하여 수용해버릴 수 있다는 위험도 크다. ‘판단 기능의 F’는 무조건 공감을 잘 할 것이고, ‘생활 양식의 J’는 무조건 계획을 잘할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또는 나와 잘 맞는다는 이유로 특정 엠비티아이를 선호하거나, 또는 상극이라는 이유로 나와 맞지 않다고 속단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MBTI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개별의 지표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이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수단으로 사용해버린 것이다.한 구인사이트에는 ‘열정적이며 혁신적’인 ENFP를 구한다는 마케터 모집 공고가 올라오기도 했고, 일부 기업은 특정 MBTI 성격 유형은 지원하지 말라거나, 혹은 특정 유형을 선호한다는 모집 공고를 올려 논란이 된 바 있다. 개인의 능력과 잠재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단순 MBTI의 검사 결과지를 통해 개인의 성향을 파악하여 특정 MBTI를 우대한다거나,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차별과 오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만 것이다.실은 나 또한 MBTI 과몰입러로,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처음 만날 때 MBTI를 물어보게 됐다.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또 어떤 점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에 대해 파악했고 의도적으로 행동하려 했다. 타인을 알아가려는 여러 시도와 노력, 대화가 아닌 MBTI에 맞춰 간편하게 그들을 알아가는 쉬운 속단의 방식을 택해버리게 되는 것이다.MBTI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여길 때 오히려 타인에 대한 무시와 배제를 쉽게 선택해버리는 것이 된다. 사람을 분류하기 위한 도구로써 활용하며, 나도 모르게 특정 MBTI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며 계속해서 비좁은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단순 콘텐츠로 즐기며 유머러스하게 소비하는 것은 좋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을 함부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아야 함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안도감, 타인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 모든 인간관계가 조금 더 간편해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건 실은 알량한 자존심일 뿐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낯선 타인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늘 긴장감이 맴돈다. 하지만 그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모든 행위는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를 만든다. 여러 관점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애쓰며 탐구하려는 노력은 결국 더 다양한 세계를 포용할 수 있게 한다.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관계를 일찍 끊어버리고 단정지어 버린 몇몇 타인들이 있다. 단순히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흥미로운 관계를 놓쳐버린 것이다. 타인을 대할 때의 편견, 그리고 너무 MBTI의 틀에 맞추어 누군가를 재단하고 평하는 일은 없어야 함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나를 알아가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때문에 MBTI를 통해 획일화된 나의 모습을 정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얼마나 나를 오해하기 쉽고 넘겨짚기 쉬운 것인지 모른다. 인간은 아주 복잡한 존재이면서 다양한 내면을 가졌으므로 나를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어렵고 복잡한 일일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MBTI에 몰입하여 구분지어 버리는 과장을 덜어내야 한다.

2023-05-23

록키와 김남국의 실존주의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 록키는 3회전짜리 삼류 복서다. 좋은 선수가 될 재능이 있음에도 고리대금업자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며 인생을 낭비하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무패의 세계 챔피언 아폴로와 타이틀 매치를 갖게 된 것이다. 예정된 상대 선수가 부상을 입어 이탈했는데, 누구도 선뜻 대체자로 나서지 못하던 와중에 록키에게 기회가 왔다. 무명 선수도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 일종의 이벤트성 경기에 광대 역할로 부려진 록키가 과연 1라운드라도 버틸 수 있을까.서른 살이 되도록 삶의 동기와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어떤 일에도 진지해본 적 없는 록키는 자신에게 찾아온 운명적 기회 앞에 최선을 다한다. 자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눈물겨운 훈련을 다 마치고 마침내 시합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밤거리를 걷고 집으로 돌아와선 애인인 애드리안에게 토로한다.“랭킹에도 들지 못하는 내가 뭘 하겠어. 열심히 훈련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난 보잘 것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상관없어. 시합에서 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그가 내 머리를 부숴버려도 상관없어. 15라운드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누구도 그와는 끝까지 못했지. 내가 그때까지 버티면,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냈다는 걸 알게 될 거야”록키는 챔피언 아폴로와 명승부를 펼친다. 피투성이 얼굴로 쓰러지면 일어나고, 쓰러지면 또 일어난다. 15라운드가 끝나는 순간, 록키는 두 발로 선 채 마지막 종소리를 듣는다. 아나운서가 록키를 인터뷰한다. 질문이 이어지는데도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만 부르짖는다. “애드리안! 애드리안!” 울부짖는 그를 향해 애드리안이 멀리서 달려온다. 아폴로가 근소한 판정승을 거뒀다는 결과가 발표되지만 승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링 위로 올라온 애드리안이 “I love you!” 외치며 록키를 끌어안는다. 영화는 챔피언벨트, 돈, 대중의 관심, 명예 따위 세상이 쳐주는 가치들 대신 15라운드를 버텨낸 무명 복서의 개인적 승리를, 사랑하는 이에게 자기 생의 목적과 가치를 증명한 사내의 뜨거운 눈물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아주는 연인의 환한 미소를 비추면서 페이드아웃된다.니체는 죽음이라는 예정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의미 있는 삶을 살아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허망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의 가치와 목적을 스스로 부여하면서 거기에 자기존재를 다 던져 몰두하는 사람을 ‘초인’ 혹은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록키’는 실존주의적 영화고, 록키는 초인이며 영웅이다. 질 것이 뻔한 시합에서 자기 승리를 발견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들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애드리안과 끌어안을 때, 록키는 관중들의 환호성이나 카메라들이 터뜨리는 플래시 등 경기장의 온갖 소란과는 완전히 독립된 그만의 세계에서 무한한 자유로움을 누린다. 자기 삶의 동기를 이데올로기나 신앙 등으로부터 명령받아 타자가 요구하는 가치의 도구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개척하면서 그 과정에 자신을 있는 힘껏 던질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록키는 승리, 명예, 돈 따위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었고,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이 대목에서 나는 뜬금없이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자유가 궁금하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 중에도 코인 거래에 열중한 것을 보면 자기가 정한 가치에 몰두하는 실존주의자가 맞는데, 가난을 장신구로 걸치고 서민 코스프레를 해온 걸 생각하면 모순적이다. 그냥 “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은 돈”이라고 떳떳하게 밝혔다면 그도 편했을 것이다. 돈 말고도 권력이니 명예니 바라는 게 많으니까 두려울 것도 많고, 두려운 게 많으니까 자유롭지 못하다. 당적을 벗었지만 여전히 매여 있는 사람 같다. 무소속인데 오히려 더 강하게 소속된 느낌이다.‘정치적 실존’ 말고 진짜 실존을 위해 의원직까지 다 벗어던지는 게 어떨까. 그리고 코인 거래를 하면 된다. 그래야 돈이 실존인 삶에 다른 눈치 안보는 자유가 생길 테니 말이다.

2023-05-23

촉각으로 감상하는 포스아트 옛 그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코로나의 터널을 벗어나선지 최근들어 축제나 공연, 전시 등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화창해진 날씨에 싱그러운 신록의 물결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볍고 표정도 밝아 보인다. 인근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는 발길도 많아져서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참고 미뤄왔었던 전시회나 문화강좌, 학습모임 등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부담 없이 누리고 즐기는 모습들이 넉넉하기만 하다.요즘은 굳이 미술관을 찾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나 편의, 위락시설 등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나 조각상 등의 예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컨대 길거리 간판이나 가로등, 공원 벤치, 운동시설, 시설 구조물 등에 예술성을 가미해 이색적인 새로움을 주거나 낯선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이른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미술이나 예술작품은 이렇듯 일상에서의 향유와 실생활에 접목될 수 있을 때 보다 능동적이며 그 의의와 가치가 커지지 않을까 싶다.대부분의 예술작품이나 미술품 등은 원작의 보존성을 위해 취급이나 감상에 엄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작품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손으로 만지거나 접촉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기에 ‘눈으로만’ 감상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갤러리 내의 전시품을 실외의 공공미술품 마냥 직접 만져보며 촉감이나 질감을 느껴볼 수 있다면 그 작품에 대한 감상의 폭과 깊이가 한결 커질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장벽 없는 전시개념인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프로그램은 손끝으로 미술작품을 보고 상상하며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며,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촉감으로 작품을 인지,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사려깊은 ‘촉각전시’인 셈이다.최근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배리어 프리 전시회’가 포스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어서 일반인은 물론 특히, 시각예술에서 소외된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포스코의 고해상도 프린팅 원천기술인 ‘포스아트 기술’을 활용해 친환경 철강재 위에 ‘풍속도’‘세한도’ 등 조선시대의 명화를 적층인쇄기법으로 재현한 작품 83점을 6월 중순까지 선보이고 있다. 그와 연계해 지난 주에는 ‘포스아트’의 기술로 평면이지만 입체적으로 구현된 옛 그림의 원본 이미지를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의 ‘옛 그림을 보는 눈’ 주제의 초청특강이 성황리에 열렸고, 생소한 전시회 관람을 희망하는 도내 22개 지역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전문 도슨트의 그림 설명과 함께 손길을 통한 관람의 편의와 안전하고 유익한 작품감상이 되도록 세심히 배려, 지원하고 있다. 기업시민 포스코의 두드러진 기업메세나 활동이 아닐 수 없다.아직은 전시분야에서 배리어 프리의 장벽이 높다 하지만, 작은 생각과 배려들이 일상 속에서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면, 예술작품을 누구나 모두가 똑같이 감상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안배하는 것은 사회적인 역할과 혜안이 아닐까?

2023-05-23

인공지능, 나의 해방일지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일반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예제 코드와 데이터를 사용해서 인공지능을 직접 만들어본 사람들조차도, 꽤 괜찮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적, 재정적, 환경적 비용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코딩대회에서 사람과 경쟁하며 문제를 푸는 AI를 만들어낸 딥마인드의 한 관계자에게 질문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수백 대의 기계를 사용해 AI 모델을 단 한 번 훈련시키는 데만도 꼬박 2주가 필요하다고 답해주었다. ChatGPT 운영비용은 한 달에 최소 300만 달러가 필요하며, 초기 버전에 탑재 되었던 GPT-3 모델을 훈련시킬 때 약 502톤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이는 뉴욕발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기 한 대가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의 500배에 달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그런데 이런 비용 말고 더 중요한 다른 비용이 있다. 바로 인간비용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건널목 신호등을 가리키며 빨간불일 때는 멈춰야하고 파란불일 때는 건너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처럼, 기계에게도 인간이 일일이 각 상황에 맞는 정답을 알려주며 학습시키는 것을 지도 학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주어진 상황에 정답을 부여하는 작업을 보통 레이블링이라고 한다. 오늘날 기계가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고, 120개에 달하는 강아지의 품종을 하나하나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양의 레이블 작업을 수행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선정적이고 부적합한 콘텐츠를 걸러내기 위해서도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물론 ChatGPT도 예외는 아니다.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 위치한 한 기업과 계약을 맺었고, 수백 명의 케냐 사람들은 9시간 교대 근무 형태로 레이블링 작업을 수행했다. 그런데 문제점이 있었다. 시간당 2달러가 채 되지 않는 임금은 사실 나중 문제다. 레이블링 작업이라는 이름하에, 여러 형태의 폭력, 강간, 사형, 아동학대 등의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결과, 이들이 정신 이상 증상을 보인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착취공장이었고, 인공지능을 등에 업고 가는 현대판 노예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에 열광하고 있다.사실 이러한 레이블링 작업은 고등의 전문교육의 기회를 접하지 못한 최빈국 사람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X-ray 사진을 보고 폐렴인지 정상인지를 구분하기 위한 AI, 눈 사진을 통해 백내장을 판별하는 AI도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의 레이블링이 필요하다.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였던 에릭 프롬은 말했다: “과거의 문제는 사람들이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래의 문제는 사람들이 로봇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사실 우리는 여전히 이런 저런 형태의 노예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여전히 해방일지를 쓰고 있는 중이다.

2023-05-23

춘풍추상 vs 내로남불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인들은 흔히 ‘춘풍추상(春風秋霜·타인에게는 부드럽게, 나에게는 엄격하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행태를 보인다. ‘춘풍추상’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가 어렵고, ‘내로남불’은 남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신을 반성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민주당의 경우 문재인정부가 약속했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내로남불이었다. 조국 전 장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문 대통령이 비서들에게 선물한 ‘춘풍추상 액자’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지금도 대장동사건을 비롯한 각종 의혹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 돈 봉투 선거로 수사 중에 있는 송영길 전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 청년들을 기만한 김남국 의원의 ‘코인의혹사건’ 등 그 어디에서도 춘풍추상의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국민의힘 역시 마찬가지다. 내로남불을 타파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공정과 상식’도 선택적이었다. 아·가·패(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패밀리)정부이자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은 ‘인적 편향성’을 말해준다. 편향성은 공정성을 해치는 주범이다. 당대표를 제거하기 위해서 ‘체리따봉’ 문자를 보냈고, 당대표 선거에 개입하여 당내민주주의를 훼손했다. ‘민심’과 ‘당심’ 위에 군림한 ‘윤심’은 결코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다.이처럼 여야의 정치행태는 모두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상대에게는 혹독하다. 의회권력을 가진 민주당은 입법독주를 하고, 집행권력을 가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그 책임은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니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위해 행사되어야함을 망각한 까닭이다.여야는 이분법적 흑백론을 버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은 ‘흑백론이 아니라 회색론’이다. 인간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중간적 존재’인데 서로가 ‘나는 천사고 당신은 악마’라고 우긴다. “나만 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내로남불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그 누구도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종이 도덕정치를 역설한 조광조에게 내린 죄목은 “뜻이 맞는 자들하고만 어울리고 맞지 않으면 배척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군자’, 반대파는 ‘소인’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으니 위선자로 본 것이다. 정치지도자에게 이중기준이 허용되는 것은 내로남불이 아니라 춘풍추상이다. 남에게 관대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한다.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정적(政敵) 아이아스(Aias)의 명예를 회복해줌으로써 양분위기에 있던 그리스 군을 통합할 수 있었고, 엄격한 자기절제로 바다요정 칼립소(Calypso)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춘풍추상의 리더’를 만날 수 있을까?

2023-05-22

국가보안법이 문제라고?

홍석봉 대구지사장 표현의 자유와 국가 안전이라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지난 19일 ‘야학 선동·국보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은 대구의 60대가 40여 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불법 구금상태서 신문조서 작성, 압수물 불법수집해 증거능력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복역한 작곡가 윤이상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사건 발생 56년 만에 재심 결정을 내렸다.반면 검찰은 최근 북에 ‘충성맹세’를 한 민노총 전 간부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노동단체를 외피 삼아 북한 지령에 따른 정치투쟁 등에 집중하도록 주도한 것”이라고 밝혔다.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키 위한 목적으로 1948년 제정됐다. 하지만 2023년 5월 현재 9건의 헌법소원과 3건의 위헌법률심판청구건이 올라오는 등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라는 ‘폐지론’과 국가 안전을 위한 안전판이라는‘유지론’이 팽팽하다. 국보법수호연대는 얼마 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보법 폐지는 공산혁명투쟁에 고속도로 깔아 주는 격”이라며 폐지 반대론을 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면 자유 대한민국도, 헌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폐지론자들은 철 지난 색깔론과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간첩몰이 공안탄압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이 ‘국가정보원의 간첩 수사권’ 및 ‘국가보안법’ 유지에 찬성했다. 공산 혁명에 동조하는 일부 민노총의 행태까지 한 묶음으로 봐 줄 수는 없지 않나./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5-22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마블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영화다. 지금까지 총 세 편이 만들어진 이 시리즈는 기발하면서도 삐딱한 상상력으로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법을 해체해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은 사명감에 불타는 전형적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우주의 부랑자에 가까운 그들은 각각 어두운 과거와 상처를 지녔으며, 냉소적이거나 유머러스한 태도로 슬픔을 감추고 있다. 슈퍼맨처럼 완벽한 초인이 아닌 이들도 팀으로써 힘을 합치면 우주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1편과 2편이 신적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태어난 스타로드의 이야기를 통해 혈연의 폭력성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얼마 전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볼륨 3’는 공감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확장한다. 3편의 주인공은 ‘말하는 라쿤’ 로켓이다. 완벽한 생물을 창조하기 원하는 생명공학자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동물의 신체를 개조해 지성을 부여하는 실험을 지속하였고, 로켓은 그의 실험 대상이었다. 그 개조 과정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하게 묘사되며, 부작용으로 인해 미쳐 버리거나 죽는 동물들도 많다.영화에는 인간에 의해 희생당한 또 다른 동물이 나온다. 우주로 보내졌던 개 ‘라이카’를 모델로 한 ‘초능력 개’ 코스모이다. 미소 간의 우주 경쟁이 치열했던 냉전 시대, 소련은 유인우주선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인간 대신 개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을 태운 우주선을 발사했다. 발사와 대기권 이탈, 우주공간 진입의 과정이 동물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동물들은 모두 발사과정 또는 우주 진입 이후에 고통스럽게 죽었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안전하게 데려올 계획 자체가 없었다. 우주 왕복선이나 달 착륙, 우주정거장 같은 우주 개발의 성과들은 이 동물들의 죽음 위에서 빛나고 있다.지금 우리가 누리는 과학문명은 수많은 다른 종들의 죽음 위에 세워졌다.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투구게의 피가 꼭 필요한데, 피를 뽑힌 뒤 방생된 투구게는 약해진 탓에 상당수가 죽게 된다고 한다. 또한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백신 수요가 급증하며 투구게를 남획한 탓에 개체수가 급감하여 멸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 밖에도 의약품 개발이나 다른 과학적 목적을 위해 희생된 실험동물의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중장기적으로는 동물실험 없이도 인체에 안전한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에 앞서, 과학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희생된 동물들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들에게 죄스런 마음을 갖도록 하자. 인간에게는 다른 종들을 이용하고 죽일 권리가 없다. 우리의 필요와 이득을 위해서 그렇게 합리화할 뿐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수탈자에 가깝다. 이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2023-05-22

스승의 날을 보내며

김규인수필가 그냥 지나쳐도 그만인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하지만 간단하게 소프트볼을 하며 자축한다. 이제는 감정노동자로 전락해 버린 가르치는 노동자들의 초라한 시간이 흘러간다. 선생들만의 스승의 날 행사가 벌써 몇 년째 이어진다.우리 사회가 요구해서 만들어진 학생 인권조례로 이제는 생활지도는 없고 지식만을 전달하는 교실이다. 세상이 이렇게 험한데 윤리가 필요 있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래도 세상은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에 의하여 돌아간다”는 은사님의 말씀을 학교에서 더는 들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챗GPT가 세상의 많은 것을 바꾸는 요즈음 알량한 지식을 파는 일도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가 없다. 챗GPT에 “너희들이 선생의 자리를 대신할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할까. 어쩌면 신이 나서 바로 지금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집안의 밥상머리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람에 대한 교육이 사라진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의 기를 살리고 아이의 소중한 인권을 지키기 위하여 부모는 아이를 보는 시간도 줄여가며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맛있는 햄버거와 두툼하게 집어주는 용돈으로 부모는 미소 짓지만, 차가운 휴대전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사람다움을 잃어간다.학교에 떠맡겨진 사람 교육은 학생인권조례에 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열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법의 심판을 기다린다. 교육학을 공부하며 교사로서의 의지를 불태우는 선생이 점점 사라진다.매스컴에서는 연일 학교에 관한 기사가 올라온다. 동물의 세계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학교폭력은 끝이 없고 학생과 학부모가 선생을 고소하고 다시 선생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응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눈에 선생이 안 보이는 일이 너무나 잦다. 교직을 떠난 지 일 년이 되어가지만, 학교의 현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갈라버린다. 내가 보는 것이 옳고 상대방은 틀리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아버린다. 이럴 때면 어떻게 살아야 바른 것인지 헷갈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도 세상은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에 의하여 돌아간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기만 한다.그렇다고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간다고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같이’를 찾고 싶다. 그래도 교실에는 아직 선생의 말에 귀 기울이는 학생들이 있고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선생이 있음을 느끼며 살고 싶다.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있는 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지 않은가.웃음 속에 깊이 뿌리 박힌 슬픔과 처진 후배들의 뒷모습을 애써 외면한다. 선생의 옆에는 학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교육은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만들어 내는 하모니임을 아직도 믿는다. 학교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퍼져서 우리 사회를 가득 메우기를 바랄 뿐이다.

2023-05-22

로마네스크 교회건축의 혁신 : 천장 구조의 변화

11세기 초 출현한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은 고대 로마 건축을 닮았다. 비록 지금은 폐허가 되어 옛적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클뤼니에 세워진 수도원교회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위용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우선 로마네스크 교회는 크고 높고 우람하다. 로마네스크를 뒤따르는 고딕은 더 높고 더 웅장하지만 육중하거나 우람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돌의 무게를 극복하고 시각적으로 상승하는 듯 보인다. 로마네스크와 고딕은 건축을 올린 방식과 꾸미는 장식이 달랐다.고딕이 공학적 기술력으로 높이를 추구할 수 있었다면 로마네스크 건축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고딕교회의 겉은 마치 피부에 문신을 새긴 듯 갖갖이 문양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로마네스크는 그렇지 않다. 아주 단순하다. 자전거 바퀴 창살모양의 큰 창이나 외벽에 움푹 들어간 벽감을 마련하여 조각 작품을 올려놓은 정도다. 고딕교회는 섬세하고 복잡하고 현란한 문양으로 빈틈없이 꾸며졌다. 로마네스크는 기껏해야 완만한 아치 장식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로마네스크는 화려하지 않다. 그 대신 명료하다. 단순한 만큼 정갈하다. 나름의 규칙을 지킨 꾸미는 요소들에서 잔잔한 리듬감도 전달된다.중세건축은 암호화된 상징코드이다. 지상에 세워진 하늘의 집. 죄악 된 세상을 이긴 승리의 상징이자 죽음의 해방과 구원의 약속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런 의미가 녹아 있는 교회건축은 위엄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로마네스크 교회가 우람하고 견고한 요새의 모습을 지닌 이유다. 강한 요새, 안전한 피난처, 악과 맞서 마침내 거머쥘 승리와 구원의 약속. 중세 교회건축에는 이러한 상징과 메타포가 담겨 있다. 기독교의 종교성을 집약적이고 종합적이고 직관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높고 웅장한 건축이 필요했다.제한된 기술로 높이 있는 건축을 완성해야 한다면 벽을 두껍게 쌓고 굵고 튼튼한 기둥으로 하중을 바치는 것 이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로마네스크 건축가들도 이 방법을 취했다. 높이 올릴수록 벽은 두터워졌고 벽이 두터워진 만큼 지탱하는 기둥의 크기 역시 비례해 늘어나야 했다. 그 결과 로마네스크 교회는 육중한 무게감과 우람한 몸집을 가지게 되었다.앞선 시대와 비교했을 때 로마네스크 교회건축에서 관찰되는 큰 변화 중 하나는 천장이다. 로마네스크 이전에는 주로 평평한 목조천장이 사용되었다.어떤 경우 천장 없이 지붕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천장은 로마네스크가 완성한 장엄한 석조 건축에 어울리지 않았다. 석조 건축의 보임새에 걸맞는 천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안된 것이 석조로 된 교차 궁륭(groin vault)이다. 궁륭은 둥그스름하게 만든 석조 천장을 말하는데 이미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에서 반원통형 궁륭이 사용되었다. 교차 궁륭은 좀 더 발달된 것으로 반원통형 궁륭 두 개를 서로 교차 시켜 만들어 졌다. 건축의 여러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요소들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한다. 건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적 안정성이다. 형태나 구조의 변화는 역학적 변화를 수반하고 새로운 힘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관계된 요소들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천장의 형태 변화는 벽면 구조의 변화 그리고 건물 층의 분화에 영향을 주었다. 건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가들이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는 기본적인 힘은 하중이다.석조 궁륭으로 천장이 바뀌면서 또 다른 힘이 중요해 졌다. 좌우로 팽창하는 힘은 물론이고 기온 변화에 따른 재료 성질의 변화로 발생할 수 있는 변수까지 예측해야 했다. 십자형 교차 궁륭의 하중은 네 모서리로 집중된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분산하기 위해 건물 내벽과 외벽에 벽기둥이나 부벽이 마련되었고 그 결과 로마네스크 교회의 보임새 또한 달라졌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3-05-22

군위 화본마을, 낡은 것의 온기

사람 사는 온기로 낯선 방랑객을 맞이하는 마을이 있다. 낡은 것·오래된 것·별것도 아닌 것을 보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작고 아담한 마을이 품은 온기 한 자락으로 도시 생활에 지친 마음을 쉬어가게 만든다. 군위의 산성면 화본마을은 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경관과 문화와 생태 속에서 옛 정감을 방랑객에게 제공한다. 근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화본역 일대와 6~70년대 풍경을 재현해 놓은 ‘엄마 아빠 어릴 적에’ 전시관, 우보면의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를 돌아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낡은 것이 품은 온기가 방랑객의 마음을 녹이는 것이다. 도시민이 바라는 ‘농촌 판타지’, 농촌의 자연 치유력과 재생을 통한 힐링을 군위 화본마을에 가면 찾아볼 수 있다.화본마을로의 여행은 무궁화호를 타고 화본역에 내리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다. 작고 아담한 플랫폼에 발을 디디면 증기기관차의 냉각수확보를 위해 꼭 필요했던 급수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법 커다란 급수탑은 화본역이 근대에 지역의 거점으로서 활발히 운영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천이나 대구, 안동 등으로 나가 농산물을 판매하고 생계를 유지하던 당시, 화본역은 이 지역의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고 전해진다.화본역은 1936년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938년에 기차 운행을 시작하였다. 운행 시기에 맞춰 설치된 급수탑 안에는 내부 물탱크와 파이프 관, 환기구와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문구가 당시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어 근대 소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오래된 기차를 활용한 레일카페에서 차 한잔하고, 플리마켓을 구경하고, 일본식 관사(지금은 숙소로 활용)를 돌아보면서 옛 정취에 취해보는 것도 좋겠다. 아쉬운 점은 이 역이 2024년 12월까지만 기차가 운행되고 마감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의 플랫폼에 발 디딜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느림의 대명사인 무궁화호를 타고 여행하는 낭만은 ‘역’으로서의 기능을 멈추면 박물관 유리 속에 장식된 유물과 다름이 없어질 것이다. 화본역 부근에는 재밌게도 실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전시관이 하나 있다. 1953년에 지어져 2009년까지 학생들이 다녔던 산성중학교 건물을 ‘엄마 아빠 어릴 적에’라는 기억 재현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유리 속 장식품이 아닌 실제로 만져볼 수 있는 물품과 체험할 수 있는 옛 놀이로 채워진 이 장소는 주로 가족과 단체 방랑객이 가보기에 좋다. 메인 전시관에서는 방앗간·시골 찻집·전파상 등 향수를 부르는 60~70년대 화본마을의 거리를 볼 수 있으며, 당시의 학교 교실 속 풍경이나 가정집 등의 생활공간이 재현되어 있으며, 지역민의 손때묻은 생활 소품과 포니 차량도 전시되어 있다. 넓은 운동장에서는 꼬마 기차를 타보고, 양은 도시락을 먹고, 달고나를 만들며, 제기나 팽이 놀이도 즐기고,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보고 만지고 즐기다 보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10월 초에 가을 축제와 12월 초 김장 축제로 지역민과 한시적으로 융화되어 농촌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화본마을은 빡빡한 도시 생활에 상처 입은 영혼이 쉬어가기에 좋은 장소다. 이렇게 도시민이 바라는 추억과 향수는 전시관의 유리 밖에서 소소한 힐링이 되었다.지친 도시민의 소소한 힐링 이야기라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빼놓을 수 없다. 우보면에 있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로 찾아든 방랑객은 영화에서 받은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어 한다. 푸근하고 정겨운 고향마을, 추억과 낭만이 있는 동네 친구들, 자연의 따뜻한 감성이 녹아든 음식,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등 영화에서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고향마을에서 친구들과 보내며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방랑객들은 실제 촬영지에서 주인공이 앉았던 소파에 앉아보고, 요리하던 주방을 살펴보고, 2인용 자전거를 타보면서 영화 속 장면을 되새김질한다. 빡빡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만의 느린 감성이 힐링을 바라는 도시민에게 ‘농촌 판타지’가 되어 치유와 재생을 전달하는 것이다.낡은 것·오래된 것·별것도 아닌 것은 재해석되기 전에는 쓸모없는 것·외면받는 것·버릴 것에 불과했다. 어느 날 주민들 스스로 이러한 장소와 물품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겨운 것·추억이 담긴 것·치유와 재생이 깃든 것이 되었다. 화본역과 ‘엄마 아빠 어릴 적에’ 전시관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와 마을 곳곳의 벽화들을 통해 주민들이 만들어 낸 ‘낡은 것의 온기’가 방랑객을 부른다. 온기가 그리운 도시민이라면 응당 그 부름에 취해 방랑객이 되어 보는 것도 좋겠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5-22

제3차 세계대전은

우정구 논설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다. 전쟁으로 수백만명의 삶이 파괴됐고 세계 경제도 전쟁의 충격으로 궁지에 몰렸다. 그럼에도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간접적 지원이 사실상 전쟁을 거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최근 갈수록 격화되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벌어지는 강대강 대결 국면이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도 있다.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시작해 1945년 9월 2일 종식됐다. 세계 30개국에서 1억명이 넘는 군인이 전쟁에 참여했다. 7천300만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희생자 대부분이 민간인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핵무기가 사용되는 비극을 인류가 경험한 전쟁이다.2차 세계대전 이후 몇 차례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엿보였으나 가까스로 억제됐다. 만약 3차 대전이 일어났다면 인류의 문명은 수십년 후퇴하거나 최악의 경우 인류문명 자체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전쟁 무기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 등 다양한 살상용 무기들이 개발돼 실제로 그 무기가 위력을 발휘한다면 그 결과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1차대전 발발 전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강대강 충돌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지적하고 “3차대전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며 냉전시대 미국 외교계의 거장으로 주목받았던 그의 경고가 주는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우정구(논설위원)

2023-05-21

잔디를 깎다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가 있다. 나는 바닷바람 냄새와 잔디 깎을 때 나는 냄새가 좋다.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바다의 드넓은 인상도 좋았지만, 바다가 풍기는 냄새도 잊을 수 없다. 잔디 냄새가 좋다는 생각이 처음 든 것은 베를린 자유대학 동유럽연구소 앞에서였다. 1989년 4월 어느 맑은 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던 잔디 냄새는 대단한 것이었다.어린 시절 큰집에 가면 잔디에서 온종일 뛰어놀 수 있었다. 일 년에 단 하루, 추석 당일에만 허락된 특별한 행사가 잔디에서 공놀이하는 일이었다. 가난했던 나의 아버지와 달리 집안의 기둥이셨던 둘째 큰아버지는 상당한 부를 축적하셨고, 잔디가 심어진 마당 있는 양옥집에서 사셨다. 부자는 부럽지 않았지만, 잔디만은 부럽기 그지없었다.오랜 세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다가 몇 년 전 청도로 이사 온 후에 나도 잔디 깔린 집에서 살게 되었다. 전통 한옥에는 마당에 잔디를 심지 않는다. 잔디는 무덤에 심는 것이기에, 마당에는 작은 돌이나 흙으로 처리하는 게 관례였다고 한다. 하지만 양키 문화가 대거 이입되면서 잔디를 심는 집이 부쩍 늘었고, 나도 그 대열에 한몫 끼어든 셈이다.보기 좋지만 관리가 쉽지 않은 것이 잔디 있는 마당이다. 더욱이 농가에는 사시사철 곳곳에서 온갖 풀씨들이 날아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멋대로 뿌리를 내린다. 일단 뿌리를 내리고 나면 그들은 수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끝도 없이 피고 지고 또 피어난다. 체면이고 염치고 없는 것들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풀이다.우리 집 마당에서 해마다 세력을 키워가는 상사화, 붓꽃(아이리스), 낮분홍달맞이꽃, 부추, 돌나물, 자주달개비, 민들레, 씀바귀, 들깨 같은 것들은 어디선가 날아와서 저희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생장한 것이다. 이런 녀석들이 잔디와 함께 자라더니, 급기야 괭이밥, 봄까치꽃(큰개불알풀), 벼룩이자리, 개망초, 달개비(닭의장풀), 개쑥갓 등속도 맹렬하게 세력을 키운다.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급습을 감행하는 풀을 ‘잡초’라 부르지만, 나는 ‘불원초(不願草)’라 부른다. 잡놈은 있어도 잡초는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내가 바라지 않았는데 생장하기로 불원초라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강인한 생명력과 불굴의 의지로 언제나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코 중간에 꺾이거나 사라지는 법이 없다.제초제를 뿌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손으로 뽑거나, 예초기로 기세를 제압한다. 오늘 저녁에도 잔디를 깎으면서 온갖 풀들의 얼굴과 대면하면서 옛일을 돌이키는 것이다. 그 많던 시공간과 풀과 인연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생각하면 잠시 아득해진다.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 인연과 사람과 순간과 풀과 꽃들의 행방이 궁금하다.34년 전 동서독 재통일 직전 흐뭇한 냄새를 선사했던 잔디 깎던 노동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에게도 봄날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해마다 봄이 오고, 비가 내리면 잔디를 깎으면서 상념에 젖는 것이다. 아, 세월이여! 추억이여, 인생이여!

2023-05-21

나에게 정치적 편견이 없는가

김진국 고문 지난주 중앙일보가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보도했다. 정치 성향에 따른 확증편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론조사기관 STI가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지지자가 국민의힘 지지자보다 확증편향이 심하다.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편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조사는 먼저 진보·보수 성향 응답자가 좋아할 만한 진짜 뉴스와 가짜뉴스를 각각 하나씩 주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5점 척도로 판별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뉴스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 성향에 유리한 뉴스를 더 믿고, 불리한 뉴스를 덜 믿는 경향을 보였다. 진보 성향 응답자는 진짜·가짜와 상관없이 진보에 유리한 설문을 ‘사실’이라고 보았고, 보수 성향 응답자는 보수에 유리한 설문을 ‘사실’이라고 답했다.이 가운데 민주당 지지자 중 진보 성향 가짜뉴스는 ‘사실’, 보수 성향 진짜뉴스는 ‘거짓’이라고 응답한 사람을 ‘확증 편향층’으로 분류했다. 거꾸로 국민의힘 지지자는 보수 성향 가짜뉴스를 ‘사실’, 진보 성향 진짜 뉴스를 ‘거짓’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포함했다. 그러자 민주당 지지층 36.5%, 국민의힘 지지층 18%가 확증편향층이었다.우리 사회의 진영화가 심각하다. 이 조사에서도 드러났지만 보수 성향인 사람과 진보 성향인 사람은 상대방에게 감정 온도가 매우 낮다. 쉽게 말해 차갑다, 싫어한다는 말이다. 대화는 물론 밥도 같이 먹지 않고, 심지어 결혼 같은 대사에도 영향을 받는다. 사람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확증편향 탓에 서로 다른 사실들로 구성된 역사와 공간에 산다. 대화도 타협도 어렵고, 그저 다투고, 비난하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제한됐다. 그 가치를 되찾기 위해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된 지금 두 진영은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대치한다.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정작 찾으려 한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잃어버렸다.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관용성이다.필자도 평생 기자로 글을 쓰면서 항상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취재한 내용이 사실인가. 나의 판단이 옳은가. 내가 속하지 않은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의 존재 자체가 가져다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전제하지 않으면 토론도, 양보도 없다. 새로운 발견도, 발전도 없다. 그런데 의외로 오만한 사람이 많다. 반대 진영에 유리한 뉴스는 아예 보지 않는다. 그러고도 다 안다고 생각한다.이 조사를 보면 확증편향층이 오히려 정치·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다고 응답했다. ‘매우 관심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37%다. 비확증편향층(24.9%)보다 많다. 또 이들이 정치·사회 현안을 접하는 주요 매체로 ‘유튜브’(21.8%)를 꼽았다. 비확증편향층(8.1%)보다 월등히 많다. 유튜브는 특정 진영의 입맛에 맞는 뉴스와 해설을 제공한다. 편향적인 시각을 더욱 강화한다.그런데도 확증편향층 응답자는 자신이 확증편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확증편향층(3.06)은 비확증편향층(3.22)보다 5점 척도의 가운데인 3에 더 가깝게 스스로를 평가했다. 확증편향이 심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편향적인지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고치지 않는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자. 나의 존재, 지연·혈연·학연 등이 편향성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자. 그래야 우리 사회가 바로 선다.참고로 독자들도 STI가 여론조사에서 사용한 설문으로 자신의 편향성을 한 번 시험해보시라. 이 뉴스가 진짜인가, 가짜인가.① 2022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수가 작년에 비해 여덟 단계 하락했다. (진보 성향 진짜 뉴스)②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진보성향 가짜뉴스)③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추천에 응하지 않아, 북한 인권재단은 7년째 출범을 못하고 있다. (보수 성향 진짜 뉴스)④ 문재인 정부는 비밀리에 6억 달러 규모의 대북 송금을 하였다. (보수 성향 가짜뉴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5-21

‘마처 세대’를 위하여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우연히 SNS 친구의 담벼락에서 노후 빈곤에 대한 고민을 읽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월급만으로는 노후대비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투자를 해야 한다.’는 재테크 유튜버의 말을 인용하면서 투자의 위험이 만만치 않으니, 과연 투자가 답일까?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딱히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미 작년 집값 상승 시기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하여 고통 받는 영끌족도 많고, 빚투한 사람들도 주식 하락으로 영혼이 털리고 있다. 게다가 회복 기회가 적은 중장년에게 투자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SNS를 보며 다른 사람 따라하지 말고, 할인한다고 사지 말고, 주식이나 코인 같은 투자도 하지 말고 오로지 저축으로 1억을 모으라는 돈쭐남 김경필의 조언이 더 실속 있어 보인다.이렇게 돈 벌기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이유는 현재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2020년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와 2022년 신한미래설계보고서에서를 보면, 노후 필요자금으로 가장 많은 응답은, 퇴직 후부터 30년 정도 더 살 것을 가정하고 5억에서 10억이었다고 한다. 최소한 5억이 있으면 어느 정도 노후가 안전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최선일까 의문이 든다.아버지는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13년간 투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웃공동체가 없었던 것을 더 힘들어하셨다. 물질적 궁핍은 절약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웃공동체는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노년이 되면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사례도 많다.노년 1인 가구의 급증 역시 노년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2021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 비율이 33%이고, 그 중 60세 이상의 1인 가구 비율이 35%라고 한다. 그런데 2050년에는 전체 가구의 40%가 1인 가구이고, 그중 60세 이상의 가구가 59%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 연령대에 걸쳐 1인 가구가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취약한 상황이니, 노년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서는 사회 안전망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는 제도적으로 사회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사회 안전망 못지않게 사회 연결망도 중요하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봉양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고 이름지어진 ‘마처 세대’에게 적절한 크기의 사회 연결망은 노년의 어려움 해결에 도움이 된다. SNS를 잘 활용하면 생활에 활력이 된다. 혼자 있는 법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적절하게 사회관계를 유지할 줄 아는 것도 노년의 지혜이다. 국가는 사회 안전망을 탄탄하게 갖추고, 개인은 자기에게 맞는 사회 연결망을 유지할 수 있다면 노후의 공포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일에 기여하고자 지난겨울 동네 통장에 지원했다. 4대1의 경쟁률에 탈락했지만, 그 자체로 사회 연결망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어 의미 있었다.

2023-05-21

기업 생존 무기, 행동규범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일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 생존경쟁의 세상에서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일의 경쟁력이고, 결국 사람의 경쟁력으로 집중된다.필자는 사람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올바른 철학과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다. 그 구성원의 가지고 있는 올바른 철학과 가치관은 기업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만들어 준다.데니 밀러가 연구한 세계적인 장수기업들의 공통점은 그들만의 독특한 철학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이 있다는 것이다. 잘되는 기업들은 위기를 겪을수록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위기 때 경영진과 종업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냉정하게 대처하고, 지혜를 발휘해 그 문제를 해결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후에는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 더욱 결집한다는 것이다.이 철학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행동규범(行動規範)을 만들고, 30년을 넘게 몸소 실천해 온 곳이 있다. 이 행동규범은 위기가 발생할수록 빛을 발휘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할 자연재해의 혼란 속에서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재기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포항제철소 제강부 피해복구 사례이다.제강부에는 독특한 행동규범이 있다. “근무와 휴식을 명확히 구분하고 규율 있는 동작과 선명한 자세를 갖는다. 유능한 기술자가 되기 이전에 성실한 공민으로서의 인격도야에 힘쓴다. 문제는 거론에 그치지 말고 실행 가능한 대안의 모색으로 해결한다.” 등이다. 이 행동규범은 직원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고 제강인으로써 자부심을 가지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제강부는 힌남노 태풍으로 냉천 범람 피해가 발생하여 공장 전체가 물에 잠겼을 때 주변에서는 3개월 이내에 공장 가동은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러나 전 직원이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모두가 복구 작업에 참여한 결과 5일 만에 공장을 정상 가동 시켰다. 이 시간은 고로를 살리기 위한 골든 타임을 넘지 않아 고로를 정상가동 시켰고, 제철소 전체를 정상화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또한 제강부 행동규범에 나와 있는 것처럼 실행 가능한 대안이 쏟아져 나왔다. 조명도 없고, 물도 없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지혜를 발휘하였다.수중 펌프를 가동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기차 EV6에 들어간 V2L 기능을 활용하여 낮에는 배수펌프를 가동하고 밤에는 사무실 불을 밝히는 데 전지를 활용한 사례, 가정용 헤어드라이어와 농기계인 고추 건조기를 집에서 회사로 가지고 와서 전자기판, 전기 기기를 건조하여 50시간 이내에 복전한 사례, 제강에서 사용하는 90t 중량의 커다란 빈(空) 슬래그 포트(Slag Pot)를 활용해 한 번에 많은 양의 빗물을 담아 반나절 만에 지하 침수 부위 내 우수를 제거한 사례이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역사는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라고 했다. 우리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등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나아가야 하겠다.

2023-05-21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서 열려야 한다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시가 올해 역점을 둔 단 하나의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2025 APEC 정상회의’유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를 뜻하는 APEC은 전 세계 인구의 약 40%, 교역량은 50%, GDP는 62%에 달한다.사실상 이 경제협력체가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중·일·러 4강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1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개최 도시가 얻게 될 유무형의 사회경제적 유발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각국 정상을 비롯해 6천여 명이 넘는 정부각료, 기업인, 언론인이 참가하는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전 세계의 매스컴을 통해 개최도시가 집중 조명된다. 반드시 경주가 유치해야하는 이유다. 여러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세계에 알리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정부에서 유치도시 선정을 위한 공식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뜨겁다. 지금 경주와 경쟁하고 있는 도시는 부산, 제주, 인천이다.우리 경주만 유일하게 기초자치단체이고 다른 경쟁도시는 모두 광역지자체다. 표면상 불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APEC 정상회의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개최하는 것이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APEC의 관례이기도 하다.정부의 국정목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잘사는 지방시대 실현’을 위해서라도 지방도시인 경주에서 유치해야할 충분한 명분과 당위성이 있다.정상회의가 단순히 회의만 한다면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면 그 도시는 반드시 경주가 되어야 한다.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고 상상해 보자. 행사가 열리는 11월은 형형색색의 단풍이 최절정에 달하는 시기다. 세계 정상들이 한복을 입고 불국사, 동궁과 월지, 첨성대, 월정교 등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진다면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가 아닐까.이외에도 경주 유치의 당위는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유산의 보고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도시로 한국의 찬란한 문화를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주다. 한마디로 가장 한국다운 도시인 것이다. 지난 수년간 APEC 교육장관회의, 세계물포럼, UN NGO컨퍼런스, 세계원자력국제대회 등 대형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과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각국 정상과 배우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경호와 안전면에서도 어느 곳보다 최적이다. 정상회의가 열릴 화백컨벤션센터와 경주보문관광단지는 회의장과 숙박시설이 밀접해 이동 동선이 매우 짧을 뿐 아니라 다른 경쟁도시와 달리 바다에 접해있지 않고 호리병처럼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정상 경호와 안전에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다. 2005년 APEC이 부산에서 개최됐을 때도 한미정상회담은 경주서 열렸는데 회담장소인 보문단지 일대가 경호에 최적지였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선보이기 위한 적지 또한 경주다. 경주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월성원자력발전소, SMR 연구개발의 전초기지가 될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양성자가속기센터, 경주 e-모빌리티 연구단지가 있다. 특히, 최근 SMR 국가산업단지 선정은 세계에 우리 원전산업을 세일즈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포항, 울산, 구미 등 산업도시와 인접한 경주는 다양한 산업시찰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이기도 하다.혹자는 유치 경쟁에 있어 정치 논리나 힘의 논리를 이야기한다. 우리 경주는 20년 전에 태권도공원을 유치하고자 도전했다가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태권도의 발상지이자 역사문화도시인 경주에 오는 것이 당연함에도 실패하고 말았다.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이제 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줄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경주사람을 만나면 누구라도 APEC 이야기만 하더라는 이야기가 들려야 한다.절박한 시민들의 뜻과 의지와 열정이 모인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반드시 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경주시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모든 역량을 모아 유치 활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2023-05-21

바람은 어쩌다가 몰려다니는 것일까

외할머니는 바람을 몰고 다녔다. 사방 십 리에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생김새는 여장부 같고 목소리까지 짧아 강단이 있었다. 아이들은 할머니 집을 지날 때 머리카락이라도 보일까, 몸을 담벼락 아래로 낮추고 깨금발로 걸었다.외삼촌도 가는 곳마다 바람을 일으켰다. 인물 좋고 언변이 좋았기에 늘 사람들의 중심에 섰다. 근거 없이 떠도는 풍문도 외삼촌의 입술을 스치면 솔깃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거짓도 진짜처럼 믿어 외삼촌의 말에 따라 이 마을 저 마을 땅문서가 들썩거리기까지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를 도모하던 외삼촌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야반도주였다. 외할머니집 앞에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장독 질자배기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술기운으로 내지르는 고함이 골목을 울렸다. 어떤 이는 대문을 밀치고 들어와 입에 거품을 물고 삿대질을 해댔다. 심지어 파출소 소장까지 찾아와 외삼촌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며 해가 질 때까지 안방에 드러누웠다. 사나워진 민심은 오래도록 대문 앞을 뒤흔들었다.이런저런 소문이 마을에 날아들었다. 외삼촌이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뱃일한다더라, 서울 어느 뒷골목에서 봤다더라, 헛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건너 사실처럼 담장을 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도 낯선 사람이 다가와 넌지시 묻기도 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소문이 잠잠해지면 또 다른 소문이 바람을 타고 왔다.풍문도 뜸할 무렵이었다. 새벽 동살과 함께 소식 하나가 대문을 두드렸다. 외삼촌이 죽었다는, 꽤 구체적인 소식이었다. 울부짖을 법도 하련만, 외할머니는 사람들을 물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태연하게 이부자리를 갠 다음 앉은뱅이 경대를 끌어당겼다. 속내는 감출 수 없다는 듯 빗을 드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외삼촌이 뿌린 씨앗은 곳곳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외할머니는 여장부답게 그것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사과하고, 물어주고, 때로는 자식 대신 잘못을 빌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강단 있는 오지랖이 통했는지, 엉키고 꼬였던 사태는 빨리 수습되었다.거울 앞에 꼿꼿하게 앉은 모습은 외할머니만의 시위였다. 바람 앞에 먼저 나서 잡다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지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에게 빗질은 마음을 흐트러트리는 바람을 변주하는 의식이었고 비녀는 마음을 단속하는 빗장이었다.“음” 이순혜 수필가 비녀를 지르는 소리는 숱한 언어를 함축하고 있었다. 대범한 여장부라고 해서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으랴. 외할머니도 자신을 단속하던 모든 것을 풀어헤친 채 목 놓아 울고 싶었으리라.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회한,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통한, 부유하는 감정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다가 밖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칠 때 외할머니는 단음절로 묶어 내뱉었다.언제부턴가 외할머니는 경대 앞에 앉지 않았다. 마실이라도 나갈 때면 치맛자락을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렸다. 그 후 나는 경호원이 되어 나들이를 부축했다. 외할머니의 모습이 시나브로 헝클어지고 당신 스스로 빗질할 기력을 잃자, 마음의 빗장도 낡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비녀를 지르지 않은 날이 늘었다. 외할머니는 더는 허리를 세우지 못하고 다음 세상으로 가는 문의 빗장이 열리려는지, 며칠 동안 가만히 누워 눈망울만 끔뻑거렸다. 자정이 넘어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외할머니는 눈을 감았다.할머니의 영정 앞에 향내가 피어오르고 대문에 조등이 내걸렸다. 외할머니의 오지랖이 얼마나 넓었는지 멀리서도 조문객이 찾아와 회자정리(會者定離)를 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삶을 한데 모아 간단한 말로 비녀를 질렀다.“ 저 노인네, 이제는 쉴 때도 되었다.”바람 많은 삶답게 할머니가 떠나는 날에도 바람은 불었다.

2023-05-21

룰(Rule)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김남국 의원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코인투자 논란이 가속되고 있다. 그동안 절약과 가난의 삶을 “라면만 먹는다. 낡은 신발을 신는다” 등으로 유권자들의 동정심과 후원을 구했던 그가 수십억이 넘는 코인 가상재산을 갖고 있다고 하니 유권자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회기 기간 중 자주 자리를 비우면서 가상코인 투자를 했다는 게 보도되면서 문제의 핵심이 급격히 의원 직분 태만으로 이동하고 급기야는 그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법안에 참여했기에 로비가 있었던가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자아내고 있다.룰(Rule)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사실상 미국과 같은 준법이 잘 지켜지는 곳에서 기인한다. 미국에 처음 간 사람들은 자동차 정지선에 꼬박꼬박 서는 룰을 잘 지키는 미국에서 왜 쇼핑카트는 주자장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지 이해가 늘 안된다.결국 룰은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이다. 미국서는 정지선을 안지키다 적발되면 큰 벌금이 나온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논리라면 쇼핑카트를 아무데다 놓으면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룰이 없으니까 쇼핑카트가 아무데나 어지럽게 놓여있다. 한국에서 100원 짜리 동전을 넣어서 카트를 쓰고 다시 카트를 정리해야 100원 동전을 찾는 간단한 룰로 한국의 소핑카트는 잘 정리된다. 결국 어떤 국민이든 법을 잘지키는 국민이라는 선입견은 없다. 누구든 어떤 나라 국민이든 룰과 형식에 의해 질서가 지켜 지고 있는 것이다.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는 대학가의 시험 커닝(시험 부정)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정치적인 부정과 독재에 항거하면서도 그 자신은 커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모순된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포스텍 재임 기간 중 시험 커닝이 없는 깨끗한 캠퍼스를 경험했다. 포스텍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처럼 ‘어너코드’(Honor Code·시험치기전 양심선언)가 있어 커닝없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국학생 한 명이 시험종료 시간을 지나 30초 정도 더 답변을 작성했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몇 개월에 걸쳐 학교에 소명하는 작업에서 고생했던 경우를 보았다. ‘어너코드’와 커닝에 대한 엄격한 스탠포드의 룰과 형식은 결국 스탠포드 학생들의 내용을 지배하게 되었다.“제도는 사람을 유혹한다”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교수들은 공정한 평가가 유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커닝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은 그들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자명하다.정부가 교차로 꼬리물기 금지 캠페인을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고 운전자의 이기주의의 산물인 꼬리물기는 사실상 후진 한국운전문화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30여 년 전 미국서 귀국한 직후 포항에서 한번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잠시 멈추고 주위를 살피고 전진하는데, 왼쪽 길에서 오는 차에 받쳤다. 그때서야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눈치껏 가야하고 꼬리물기가 일반화돼 있다는 걸 알았다. 반면 미국에선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선 모든 차는 정지해 사거리에 진입한 순서대로 진행하도록 돼 있다. 이 제도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철저히 지켜지고, 어기게 되면 벌금을 물도록 되어 있다.사실 교차로 꼬리물기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의 꼬리물기다. 고속도로에서도 뒤에 오는 차가 더 빨리가라고 경적소리를 내기도 한다.한국 교통문화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이러한 후진성이 ‘적당주의’와 관련이 있고, 그러한 적당주의는 룰과 형식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체계를 좀더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운전자, 보행자의 교통규칙을 룰과 형식의 관점에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김남국 의원의 문제도 룰과 형식의 강화로 막을 수 있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룰과 형식에서도 문제를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한 행동들 코인 가상제도 투자, 회기 기간 중 좌석 이탈, 재산목록에 가상재단 불포함 등등은 모두 불법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 가상재산도 재산목록에 포함해야 한다는 룰 개정은 늦은감이 있지만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 가상재산도 언제든지 현금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국회 개정 시간에는 특정한 이유없이 자리를 무단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룰을 ‘어너코드’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자리를 떠날 수 있다면 그건 나라일을 의논하라고 국회의원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다양한 방법으로 국회의원 윤리를 위반한 의원은 다음에는 공천될 수 없다는 룰도 필요한데 최근 민주당은 오히려 공천 룰을 약화 시켰다는 전언이다. 하자가 있는 후보가 공천되도록 룰을 약화시켰다는 룰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룰을 거꾸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김남국 의원 사태를 계기로 룰과 형식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러한 강화를 통해 내용이 향상되는 그런 사회, 그런 국가를 기대해 본다.

2023-05-21

스포츠과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대한민국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은 1976년 8월 1일 몬트리올에서 나왔다. 그 당시 한국 스포츠는 인간의 한계만을 시험대에 올려 지켜보던 시대였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 1개에서 시작해 88서울올림픽과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를 획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이렇게 단기간에 세계 최상의 경기력을 갖추게 된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특히나 아시아인은 인종학적으로 불리하다고 여겨졌던 올림픽 수영에서 금빛 물살을 가른 박태환과 스피드 스케이팅의 모태범, 이상화, 그리고 고난이도 기술 개발로 자신의 이름을 딴 체조의 양학선까지도 스포츠과학의 지원으로 철저히 분석되고 연구된 결과물이 적용된 성과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이렇듯 엘리트스포츠의 세계적인 도약을 위해서 스포츠과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과학은 엘리트선수의 경기력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경기력은 체력뿐만 아니라 기술, 심리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과학은 이러한 경기력 결정요인을 실험 도구와 첨단장비를 이용해 측정, 분석하고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 방법과 훈련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엘리트스포츠에서 체력은 경기력을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인인데, 무엇보다 측정과 평가 방법이 중요하다. 과거 체력 측정은 100m 달리기나 오래달리기 또는 윗몸일으키기와 같은 단순한 방법으로 실시되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다양한 측정 도구와 방법이 이용되는데, 근관절기능검사는 선수의 관절 가동 범위 및 근력, 그리고 운동부하검사는 산소 운반체계 능력으로 나타내는 최대산소섭취량과 운동 수행을 예측하거나 훈련 강도를 평가하는 데 활용되는 젖산역치를 측정한다.이에 더해 스포츠과학은 운동 지속 시간과 에너지 소비 형태를 측정해서 각 종목별로 요구되는 에너지 시스템을 분석하여 효율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100m 달리기의 경우 약 98%의 인원질 시스템(ATP-PC)과 약 2%의 무산소성 해당과정과 젖산 시스템으로 에너지 대사가 이루어지고, 마라톤의 경우 약 95%의 유산소 시스템과 5%의 젖산 시스템으로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같이 종목에 따라 쓰이는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은 개별 선수의 체력 상태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스포츠과학은 선수의 역학적 기술과 지각-동작 기술을 측정, 분석해 경기력 향상에 기여한다. 영상 장비를 이용한 빠른 신체 움직임의 순간 위치 변화와 힘의 작용에 대한 분석은 잘못된 동작을 교정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게다가 선수의 연속 동작과 움직임 분석을 위해 비디오 영상분석 장비도 활용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자세 교정 등으로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따는 데에 기여도는 상당했다.엘리트선수의 경우 경기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안구추적기는 안구 움직임을 촬영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가 부착된 장치를 머리에 착용하여 선수가 보는 장면과 눈동자 초점이 한 화면에 나타난다. 이러한 장비를 이용한 측정과 분석은 패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키커의 어깨와 공을 차는 다리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배드민턴에서 상대방의 라켓을 든 팔과 머리 사이의 공간에 시선을 집중하여 공이나 셔틀콕의 방향을 예측하는 훈련에 적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과학은 심리검사를 통해 엘리트선수의 심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심리기술훈련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다시 말해 스포츠현장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심리의 역할은 시합이나 훈련 상황에서 선수 스스로 심리상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심리기술을 훈련하는 데 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환경과 실제 경기하는 환경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여러 요소들은 선수들의 불안, 각성 혹은 집중력 등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최근에는 전통적인 심상 훈련에다 과학을 접목해 실제 상황과 유사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을 적용한 심리기술훈련이 적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2020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 금메달 3관왕인 안산 선수를 배출한 양궁 국가대표팀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과학은 엘리트스포츠 영역에서 체력과 기술, 심리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은 엘리트스포츠뿐 아니라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생활 스포츠에도 응용되고 있다. 생활 스포츠 참가자의 건강 및 체력 상태를 측정, 분석해 다이어트, 부상 및 운동 상해 예방, 재활 등 운동치료에 맞는 운동 유형을 찾고 빈도, 시간, 강도를 정해 운동 효과를 드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2023-05-21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스승의 날이 되면 나의 휴대폰이 바빠진다. 옛 제자들의 전화와 문자, 그리고 카톡이 나의 기억을 일깨워준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오는 제자들의 반가움을 듣노라면 교단에 섰던 40여 년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행복한 마음으로, 나 또한 구순(九旬)이 되신 은사님에게 전화를 드린다. 사제지간, 그 가르침의 은혜와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빌어본다.코로나19 기간 동안 서먹했던 ‘스승의 날’ 행사가 밝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요즈음의 교육계를 생각해 본다. 스승의 날이면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던 제자들의 밝은 웃음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 꽃바구니와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교직 사회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도 늘어났고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체벌 전면금지로 교사들의 수업권마저 침해당했다는 마음에 사기가 떨어졌다는 반응도 87%가 넘는다고 하니,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도 멀어지나 보다.교육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교(敎)는 아들에게 효도(孝)의 가르침으로 회초리(6535)를 드는 모습인데 요즈음은 체벌이라는 심한 비난을 듣고 있으니 육(育)의 뜻처럼 아기를 품에 안듯 안아주지 못한 탓일까? 따뜻한 가르침으로 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해주는 ‘참스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간에 인생 경험의 가르침 책무를 다할 때 국가는 굳건하게 일어설 것이다.가르치는 사람을 스승, 선생, 교사라고 부른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만 있을 뿐 스승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교사들의 자책성 발언인지 학생들의 비판적 외침인지…. 스승은 삶의 지혜까지 심어주는 큰 사람이고 선생 또한 함부로 대하지 못한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높임말로 가르친다는 교원 또는 교사의 직함일 뿐이다. 전교조라는 교원들 모임을 보면 ‘가르치는 노동자’라는 말일 텐데 사랑스럽고 귀한 자식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어찌 노동에 비할까? 그러니 교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건 아닌지…. 어쨌든 교육자들은 인간적 사랑과 지적인 열정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며 국가의 동량(棟樑)을 키운다는 마음으로 참된 스승으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교육의 방향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그러나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듯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미래의 국민을 가르쳐야했지만 그동안 정치적 사회적 틀 속에 묶여 근시안적 변화로 메꾸어왔다. 조국 근대화, 국민교육헌장 반포, 반공교육, 민주화운동 등으로 길을 헤맸다고 하지만 그래도 현재와 같은 번영된 나라를 만들어 온 것은 교육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사는 최고 인기직종의 하나였으나 이제는 추락하고 있다. 교총의 조사에 의하면 22년도 교권침해 상담처리 건수가 520건으로 늘어났고 명예퇴직도 증가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교직 사회가 되어버렸다.교권 존중과 스승 존경의 사회 풍토 위에 국가 교육의 미래를 그려보며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 본다.‘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2023-05-18

역사와 진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역사(歷史)란 말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와 그것을 토대로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역사를 포함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물론 후자이다. 역사가들은 문서나 기록, 증언 같은 사료를 기반으로 사실을 추론하고 재구성하여 역사로 남기지만 그것에는 집필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정사(正史)로 인정된 역사라 할지라도 새로운 사료의 발견으로 뒤집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혼란과 격동의 역사였다. 육백 년을 이어온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의 식민통치, 해방과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쳐 4·19 혁명에다 5·16 군사정변, 5·18 광주사태 등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잇달았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부분 지금도 진행 중이다.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좌·우로 편을 갈라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태라 어느 편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과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비록 사실을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대립하고 있는 한 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만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분명 역사의 왜곡이고 오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올해로 5·18 광주사태는 43주년이 된다.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조문에까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 정권은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5·18 광주사태를 일단락 지우려 했지만 불신과 반발의 여론도 적지가 않아서 분열과 갈등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 역사적 평가는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으로 섣불리 속단하고 규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불행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한 어떤 언로도 강제로 봉쇄해서는 안 된다.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위헌의 소지가 있는 특별법은 폐지가 되어야 하고, 유공자들의 명단과 당시의 행적도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국민들로부터 유공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증하는 길이다. 한편으로는 무기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등의 폭력을 선동하고 주동한 자들을 색출하여 그 의도와 목적의 진의도 밝혀야 한다. 고정간첩과 같은 불순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지도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민주화란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특정지역이나 특정인들의 전유물일 수는 없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해온 측면이 없지 않은 광주사태의 평가는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지역적, 정파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배제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오로지 객관적이고 엄정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론을 분열하는 의혹을 불식하고 광주사태가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되는 길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학자 E.H.카의 말도 새겨볼 만하다.

2023-05-18

두바이식 개발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시가 지난달 신공항 특별법 통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대구경북 신공항 개발과 후적지 조성을 위한 해외시장 벤치마킹에 나섰다.홍준표 대구시장과 이만규 시의회의장 등 일행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등지를 둘러보고 두바이 개발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 등을 직접 만나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두바이의 성공 사례 등을 현장 확인할 예정이라 한다.홍 시장은 시장후보 시절 “군 공항이 이전한 후적지를 24시간 잠들지 않는 두바이식으로 개발해 대구의 성장을 이끌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어 그의 이번 두바이 방문에 각별한 관심이 쏠린다.두바이는 아랍계 자본과 서방 자본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대규모 투자가 일어난 곳이다. 이곳은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 토호국 중 하나이자 최대 도시다. 초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세계 각국이 두바이 방식을 모델로 앞다퉈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첨단 우량기업 유치와 각종 규제 철폐를 통해 글로벌 관광·상업시설을 조성한 두바이는 21세기 가장 빠른 성장을 한 도시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특히 두바이 공항내 경제특구인 DAFZ는 각종 면세 제도와 외국인의 100% 지분 허용으로 글로벌 기업 1천800개가 입주해 있다.2006년 두바이를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곳은 한강의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도 “두바이를 성공시킨 지도자의 상상력과 리더십에 감탄한다”고 말했다.홍 시장의 말대로 규제를 풀고 두바이처럼 대규모 쇼핑센터 등을 조성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단계이나 두바이식 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5-18

정치인보다 고수인 후흑(厚黑)

홍석봉 대구지사장 정치인들의 후안무치에 머리에 쥐가 난다. 공정과 상식, 도덕성은 오간데 없다. 나만 괜찮으면 그만이다. 책임과 의무엔 오리발이다. 위선의 극치다.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곤욕을 치렀다. 일각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며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구명작업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벌떼처럼 덤벼 들었다. 자성 발언을 하고 김 의원을 비판한 의원들을 맹폭했다.파렴치의 전형이다. 국민을 무시한 발언과 행동에 다름아니다. 민주당의 한계다. 그래도 선거철이 닥치면 표를 구걸할 터이다. 유권자들은 또 억지춘향격 피해자 코스프레와 애걸에 속아 넘어간다.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1년동안 방탄과 입법 폭주로 일관했다. 186석 의석을 무기로 입법 횡포를 일삼았다. 그러다가 돈 봉투와 코인에 발목 잡혔다. 정쟁만 있었다. 견제와 균형은 실종됐다. 국민 피로감만 높였고 분열만 부추겼다. 민생은 뒷전이었다. ‘탈당’ 꼬리자르기는 단골행사가 됐다. 이후 슬그머니 복당시켰다. 파렴치와 위선의 절정이다. 한데 민주당 정치인 보다 더 센 고수가 등장했다. ‘개딸’이다. 이들은 여론 동향은 안중에도 없다. 지탄받는 정치인의 역성을 드는데 열중한다. 그들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무차별 폭격한다. 정의와 공정, 도덕성엔 귀막고 눈감았다. 김남국을 감싸고도는 ‘개딸’들의 행태다.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지낸 박지은은 “팬덤의 목소리가 곧 당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그게 투영되지 않았을 때 문자폭탄, 폭력을 저지르면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팬덤정치의 폐해를 지적했다. 개딸들이 우리 사회 지고의 가치인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후흑학(厚黑學)은 청나라 말기 이종오(李宗吾)가 쓴 책으로 중국 3대 기서(奇書) 중 하나다. 순자의 패도사상을 발전시킨 학문이다. 후흑(厚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친 말로 ‘뻔뻔함’과 ‘음흉함’을 뜻한다. 후흑학은 심오한 함의를 지녔다. 이종오는 조조와 유비, 손권, 제갈량, 사마의,한신, 항우, 장량, 범증 등 제왕과 호걸을 후흑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재조명했다.영웅호걸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까발렸다. 속마음이 뻔뻔하고 음흉한 인물들에 불과하다고 적시했다. 조조는 속마음이 시커맸다. 친구와 황후, 황자까지 죽이며 “내가 남에게 버림 받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겠다”고 했다. 유비는 조조와 여포, 유표, 손권, 원소 등에게 빌붙어 양쪽을 오간 ‘비굴한 이중인격자’로 깎아내렸다. 결국 뻔뻔하고 음흉한 사기꾼 같은 인간들의 성공기다.낯 두껍고 마음이 검은(후흑) 이들이 출세하는 세상이다. 사회의 비난과 질시는 그냥 무시한다.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가 된다. 착한 사람은 ‘가붕게’일 뿐이다. 어떻게 정치계에 후흑의 인물들이 판 치고 있는가. 국회의원을 손안의 구슬로 아는 ‘개딸들’은 또 어떠한가. 부도덕과 부정과 불법이 일상화된 후흑이 횡행하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2023-05-18

손자의 말말말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손자는 종종 재미있는 어휘를 제 맘대로 사용하여 날 웃게 한다. 작년 어느 날 아침 유치원 등원 중이었다. 챙겨야 할 것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할머니가 깜빡 잊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손자가 묻는다. 왜 깜빡깜빡해요?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몇 살이냐고 또 묻는다. 67살이라고 말하며 리얼미러로 뒷자리의 손자를 살폈다. 손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나는 7살인데 할머니 많이 컸네.” 파안대소했다. 그래그래 할머니 많이 컸지? 웃고 또 웃었다. 손자는 나의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누가 더 크냐고 묻는다. 그들은 왜 키를 묻느냐고 의아해한다. 키를 묻는 게 아니고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를 묻는 표현이라고 하면 재밌다고 껄껄 웃는다. 그 후 친구들과 만나면 어디 많이 컸나 보자라며 농을 하곤 한다.2년전 설연휴였다. 코로나19 중이어서 설날은 쇠는 둥 마는 둥했다. 설 다음날 아들네랑 손주들을 데리고 자연휴양림으로 놀러갔다. 눈발이 날렸고, 눈 구경 힘든 대구 아이들인지라 그것만으로도 신나했다. 얇게 깔린 눈을 긁어모아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며 재미있어했다.이튿날 가까운 절에 올라갔다. 하얗게 눈 쌓인 작은 절은 참 예뻤다. 가파른 계단을 뛰어올라 절문 앞에 멈추더니 손주들은 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자동차 사게 해주세요, 난 커다란 인형 사게 해주세요. 애들의 소리를 들으신 것인지 주지스님께서 나오셔서 애들 손을 잡고 종무실로 이끄셨다. 스님께 세배하면 세뱃돈 줄게 그러면 자동차도 인형도 살 수 있지. 스님께는 세 번 절하는 거라고 하자 삼배를 공손하게도 했다. 스님은 빳빳한 세뱃돈을 많이도 주셨다. 절 안마당에는 눈이 꽤 쌓여있었다. 눈밭에 아예 누워 뒹굴며 정신없이 노느라 땀에 눈에 온몸이 푹 젖었다. 그렇게 실컷 놀고 내려와 점심을 먹는 식당에서였다. 손자가 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느닷없는 질문에 며느리는 너희 낳았을 적에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놀러갔을 때라며 다시 묻는다. 며느리는 제주도 갔을 때라고 대답했다. 내가 손자에게 되물었다. 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손자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지금, 지금이 제일 행복해.”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어버이날 풍습이 달라졌다. 유치원 때는 카드나 종이꽃을 만들어 주더니 이젠 우편으로 편지를 보낸다. 수신인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보내는 주소는 학교에서 일괄 쓴 것 같고, 받는 주소는 제 엄마가 쓴 듯했다. 보내는 이의 이름과 받는 이의 이름은 손자가 직접 썼다. 빨간 새(닭인가 했더니 앵무새라고 했다)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종이에 쓴 사연은 짧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의집에서 일을 같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랑해요. 이건 올림. 우리 부부는 편지를 사진으로 찍고, 액자에 넣어야지 부산 떨며 감동해했다. 이튿날 아들네 집에 갔더니 제 부모에게 보낸 편지 사연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엄마 아빠 평생 사랑해요. 평생 잘 사세요.”

2023-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