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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위기일수록 더욱 빛나는 것

박남서 영주시장 2년여에 걸쳐 우리를 괴롭혀온 코로나19가 잠잠해져 가는 즈음, 수해로 인해 전국이 또 한 번 큰 아픔을 겪고 있다.이번 폭우는 우리나라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고,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수해 피해에 많은 이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다.영주시 역시 수해를 피하지 못하고 집중호우가 지역을 휩쓸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지난 6월 20일부터 한 달간 누적 강수량이 920㎜를 기록한 가운데 7월 14과 15일 양일간 270㎜의 강수량을 기록했다.지금까지 집계된 바에 따르면 영주지역은 이번 집중호우로 도로파손 350건, 하천 유실 336건, 문화재 12곳 등 공공시설 피해액이 247억 원에 달한다.개인 피해 또한 적지 않다. 주택 160채, 축사 6곳, 농작물 928.6ha 등 150억 원의 사유 시설이 피해를 입었다. 무엇보다 토사가 덮쳐 주택이 매몰되는 등 4명의 사망사고를 겪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영주시는 지역의 피해가 잇따르자 집중호우 직후인 지난 14일 경북도 내에서 가장 먼저 공무원 비상근무 3단계를 발령하고 전 직원 재난상황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 피해상황에 대비토록 했다.이어 15일에는 재난현장통합지원본부를 설치하고 이재민 구호, 안전진단, 시설응급복구, 의료 및 방역, 교통대책 등 26개반을 편성해 통합대응체제를 구축, 운영하는 등 시민들의 안전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시가 이렇게 빨리 응급 복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웃을 향한 착한 마음 덕분이었다. 영주시 전 공무원이 투입되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했다곤 하지만 지자체의 대응만으로는 광범위한 피해지역을 빠른 시간에 복구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영주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수마에 상처를 입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수해 현장으로 달려갔다.적십자봉사회와 의용소방대, 육군 제2신속대응사단, 제50보병사단 등 수마에 상처를 입은 주민들의 상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민·관·군이 합동으로 구슬땀을 흘렸다.많은 이들이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손을 내밀어 현재까지 누적 인원 1만 2천여명이 6천800여 대의 장비를 동원해 수해 복구에 손을 보탰다. 이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정부는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위해 지원을 약속했다. 19일 오전 영주시를 포함한 13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영주시는 피해복구비 중 지방비 부담액의 일부를 국비로 추가 지원받아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피해 주민에 대해서는 재난지원금 지원과 함께 국세·지방세 납부유예, 공공요금 감면 등 간접적인 혜택이 추가로 지원될 예정이다.이번 폭우에서 알 수 있듯 기후변화로 자연재해는 최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기후가 변하면서 앞으로 집중호우와 태풍과 같은 자연 재난의 발생 빈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는 것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예방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재난관리체계를 사후 수습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고, 최근 5년을 기준으로 재난 대비 매뉴얼을 재정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영주시는 자연재해 방지 및 선제 대응을 위한 안전 관리체계 구축, 댐·제방 등 재해예방 시설 보강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또 하나 중요한 것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이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온정이 스며들면 못 할 것이 없다고 한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미리 환경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 이웃에 예기치 못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함께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모두에게 큰 힘이 된다.국가와 지자체의 노력, 이웃의 마음이 합해져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욱 안전하고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한다.

2023-08-06

선바위 별곡

저 외로움의 깊이는 얼마일까. 선바위가 망부석처럼 흐르는 강물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계절 따라 햇볕은 빛과 그림자를 얼마나 드리웠는지. 주름마다 검푸른 이끼가 박혀있다. 인고의 세월에도 기울지도 아니하며 선바위가 홀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선바위 옆 가파른 절벽 아래 일제당이 깊은 침묵에 들었다. 구름과 산은 서로 모양을 바꾸는데, 발걸음이 닿기도 힘든 이 깊은 산 속, 선바위와 일제당은 동무처럼 변함없이 지난 시간을 함께했다. 일제당에서 입암서원을 바라본다. 서원 앞쪽으로 흐르는 가사천과 물길을 휘돌게 하는 절벽을 바라보며 많은 가객이 시를 읊었다. 낭낭한 소리들이 귓전에 들리지만 선바위는 내 아버지처럼 침묵했을 것이다.글을 쓰고 싶었던 아버지는 세상의 뒤편에서 폐결핵과 싸웠다. 때때로 피를 토했고 시름시름 야위어 갔다. 학업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가장의 삶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자신의 처지는 굵직한 기둥처럼 가슴에 박혀 언제 삶의 마침표를 찍을지 몰랐다.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세상으로 나갔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가끔 비바람도 몰아쳤다. 여자 혼자 식솔을 먹여 살리려면 너무나 힘에 부쳤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살림은 늘 언제 무너질지 늘 불안했다. 문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막을 힘조차 없었다.아버지의 삶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파도가 길을 내어주지 않으면 갈 수 없었고 바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한 발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멈춰버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자식들의 삶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 아픈 관조였다. 자식이 학교에 가도 한자리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자식이 글을 익히고 글을 쓰고 글처럼 살아낼 동안 아버지는 오롯이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바라지 않고,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서 고독을 받아들였다. 마음속에 묻고 묻어 퇴적되어 온 외로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선바위는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바다로 가고 싶은 꿈을 꾸어 보았으리라. 더 넓은 들판으로 나아가 젊은 기개를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바위는 흘러가는 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그 속에 비치는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며 넓은 세상을 동경했을 뿐이다.빈자리보다는 선자리가 나았다. 비록 병든 아버지였지만 우리 자식들에게는 늘 든든한 아버지의 자리였다. 글을 읽어도 허공에 맴도는 소리가 아니었다. 강으로 바다로 고단한 길을 돌고 돌아와도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았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어느 날 구순의 성상의 아버지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클레멘타인’을 피아노로 치고 싶다며 당장 가르쳐 달라고 채근했다. 아버지는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양쪽 청각을 80% 잃으셔서 장애 판정까지 받으신 아버지가 어떻게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완주한다 한들 그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방법을 생각하다가 스케치북을 꺼냈다. 색연필로 스케치북 위에 건반을 그렸다. 도부터 옥타브 위의 도까지를 글로 쓰고 솔 위에 숫자 3을 썼다. 아버지의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더듬거리다가 다시 악보를 보고 또 더듬거리기를 반복했다. 김경아 작가 무더운 여름날이 지나고 무수한 나무 이파리가 떨어졌다. 겨울 초입에 들었을 때 아버지는 자식들을 모두를 불렀다. 저녁도 먹기 전에 아버지는 홀로 피아노에 앉아 자세를 가다듬었다.‘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아버지의 꿈은 거창하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해가 뜨면 세상에 나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싶었다. 오랜 세월 강바닥 저 밑에 깔려 있던 아버지의 소망이었다.아버지는 굳은 손으로 건반을 짚었다. 한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자식들은 넓은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아버지를 보았다.

2023-08-06

질서 있는 삶

유영희 작가 “우리의 소유와 필요를 확대해가면 갈수록 그만큼 더 운과 역경의 타격에 부닥친다. 욕망의 길은 한계를 지어 제한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정신의 위대함은 위대함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정신의 가치는 높이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질서 있게 살아가는 데 있다.”이 글은 몽테뉴의 ‘에세’에 나오는 몇 구절을 붙인 것인데, 이승연의 ‘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에서 골랐다. 이 문장 중에서 특히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신의 가치를 높인다는 말에 눈길이 꽂힌다. ‘질서 있는 삶’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고 명분에 자신을 매몰시키지 않으며 자신에게 충실한 소박한 삶을 말한다. 이런 질서 있는 삶의 모델 중에 이나가키 에미코도 포함될 것이다.이나가키 에미코는 그의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에서 아사히 신문사를 50살에 퇴사한 이야기를 자세히 썼다. 여기서 그는 회사의 후광을 믿고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는 ‘회사 인간’으로 살면서 소비를 탐했던 이야기, 그러다가 10평짜리 집에서 단촐한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진솔하게 서술한다. 결과만 보면 객기어린 낭만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무척이나 진지하고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여서 무척 공감이 갔다.이나가키는 명문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옷이 즐비한 데도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사고 온갖 요리책을 사서 화려한 음식을 먹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전기를 흥청망청 쓰는 소비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우동으로 유명한 다카마쓰라는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돈 없이 생활할 때의 기쁨을 경험한 것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10여년의 준비 끝에 퇴사하고 나서 그는 에어컨은 물론, 냉장고나 전기밥솥조차 없이 휴대용 버너로 냄비 밥을 하고 10분 만에 끓이는 국을 곁들여 맛있게 먹으며 여러 가지 즐거운 일을 한다. 옷은 서랍장 하나로 충분하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행복한 삶의 질서를 발견하고 마을을 내 집 삼아 회사 사회가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다.그의 삶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 싱글라이프이고, 28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모은 돈이 있으며, 글 쓰는 능력도 남달라서 적은 원고료나마 수입을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정신의 가치이다.얼마 전, 집이 작은데도 정신이 너무 산만해서 공간을 재구성했는데, 버릴 것이 다섯 박스가 나왔다. 특히 옷걸이 50개로 사계절 옷을 다 걸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가해지고 정신이 고양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저 ‘자기 힘에 맞게’ 소유하고 일상을 질서 있게 가꾸어가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덥다. 이런 일상을 살다 보면, 기후 변화도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2023-08-06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어디서 오는가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통계청 자료의 억대 연봉자 추이를 보면 2017년 71만9천명, 2019년 85만2천명, 2021년 112만3천명으로 증가되고 있다. 연봉 1억 이상의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일에 투입하는 시간은 주 5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누가 주는 혜택일까?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된 과학적 관리법을 제창한 테일러(F.W.Taylor)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그가 공장관리자의 직책에 있을 때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관찰하게 된 것이 그 동기가 되었다. 경영의 목적은 사용자와 종업원의 상호 발전에 있으며 종업원 및 기계가 최대의 생산성을 달성할 때 가능하므로 노동생산성이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임금도 복지도 요원할 것이다. 당시 구두공장은 작업자의 숙련도가 생산성을 결정하였기에 노동자는 5년에 한 켤레 밖에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서 대개 맨발이었다. 그러나 생산 공정의 기계화와 공정 최적화로 구두 원가는 몇 분의 일로 감소하였기에 누구나 구두를 신게 되었고 구두공장의 근로자 수는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적은 노동력으로도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닌 생산의 효율과 기술의 발전만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현대를 사는 우리도 알아야 한다.테일러의 생산성 향상 방법은 공정을 세분화하고 분업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생산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작업자들이 특정 작업에 집중하여 더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내도록 했다. 더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 내야 임금을 충분히 지급할 수 있고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붙들어 둘 수 있다고 확신했다.또한 시간 및 동작 연구를 통해 작업의 각 단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동작 방법과 시간을 연구하고 정의하였다. 삽을 예로 들면 비중이 높은 철광석이나 비중이 낮은 톱밥을 한 가지 규격의 삽을 사용하였기에 삽에 담기는 물질이 노동 생산성을 좌우하였다. 테일러는 삽의 규격을 물질의 성질과 작업자의 체력에 따라 최적화시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거기서 얻은 개선 효과를 모두가 누리게 된 것은 물론이다.이와 같은 효과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작업 방법과 절차를 표준화하여 모든 작업자 간에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작업자 간 차이를 최소화하고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제공하여 분야별 맞춤형 훈련은 더욱 생산성 향상을 가속화하는 효과로 나타났다. 테일러의 생산성 향상 방법은 이처럼 현대 산업화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몇십 년 전만 해도 전 국민의 95%가 농사를 지어도 늘 배고팠지만, 이제는 전 국민의 5%만 농사를 지어도 남아도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사회는 ‘전문화’와 ‘분업화’로 변했다. 전문화와 분업화는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아주 싼 가격에도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풍요로움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큰 생산성 향상만이 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23-08-06

새만금 잼버리 대회 난맥상

김규종 경북대 교수 보름 넘게 이어지는 폭염(暴炎)과 열대야가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헤살놓고 있다. 강릉에서는 열대야도 모자라 초열대야까지 나타나는 걸 보니 지구 온난화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는데,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난맥상이 한국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선진국 타령을 해대던 수많은 언론매체에 빨간불이 켜진다.세계 전역 159개국 4만여 명이 참가하는 1천억원 규모의 세계적인 행사를 ‘배추 장사’ 문서 처리하듯 주먹구구식으로 치르려 했던 인사들의 난맥상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새만금이 자리한 전북 부안을 지역구로 둔 이원택 민주당 의원의 1년 전 문제 제기가 사태의 핵심을 찌른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그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잼버리 대회 준비상태를 디테일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보기 때문에 걱정돼서 말씀드리는데, 부처의 장관과 책임자가 혼선이 있는 조건에서 이 행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飛散)먼지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대책, 관광객 편의시설 대책, 영내-외 프로그램을 다 점검하셔야 합니다. 이런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세계의 청소년과 세계가 바라보는 이 대회가 어려운 역경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장관님이 좀 인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이런 문제 제기와 우려에 대해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시종일관 “문제없다, 이미 모든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답변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그녀는 “태풍이나 폭염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모두 준비해 두었다. 이에 대해 보고드리도록 하겠다”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1천명이 넘는 온열 환자가 발생하고, 영국과 미국, 싱가포르가 철수를 결정하는 등 잼버리 대회 난맥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새만금 잼버리에 가장 큰 규모인 4천500명의 참가자를 보낸 영국이 철수를 시작하고, 서울의 호텔로 이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1천200명의 참가자를 파견한 미국과 60명의 참가자를 보낸 싱가포르가 철수를 결정하여 퇴영(退營)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스카우트 연맹은 잼버리 행사 중단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총체적 난맥상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에 김현숙 여가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 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 김윤덕 국회의원이 포진하고 있는데, 이원택 의원이 정곡을 찌른 것처럼, 부처 장관과 책임자가 이미 혼선에 빠진 형국(形局)이다. 잼버리 대회를 최종적으로 지휘하고 책임지는 제도적 장치가 삐걱거리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다.예컨대 지난 6월 초 잼버리 조직위는 배수시설 설치와 포장 공사 비용 56억원, 재난·재해 발생 대비 예비비 14억원, 폭염 대비 물과 얼음 구입 예산 2억4천500만원의 추가예산을 여가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여가부는 20억원 정도를 지원함으로써 파국을 방조한 꼴이 됐다. 어쨌든 이번 대회가 더 이상의 파국 없이 무탈하게 끝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2023-08-06

모방범죄

우정구 논설위원 인간은 모방을 통해서 지식을 축적하고 학습의 효과를 높여간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의 모방은 본능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방을 통해 새로운 창조적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면 모방의 긍정 효과다.그러나 모방 본능이 범죄로 옮겨진다면 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묻지마 흉기난동이 잇따라 터지면서 모방범죄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이 터진 데 이어 분당 서초역 일대에서 또다시 끔찍한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자 하루 사이 온라인상에는 40건이 넘는 살인예고 게시글이 등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중 상당수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장난삼아 글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시민에겐 큰 불안이 아닐 수 없다.경찰이 관련 게시글에 대한 조사에 나서 이 중 18건의 작성자를 검거, 범행 혐의점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이같은 대응이 모방범죄를 근본 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세계에서 안전한 국가의 하나로 꼽히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무차별 흉악범죄가 잇따라 일어난 것에 대해 국민이 받은 충격은 실로 크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에 됐는지 할 말을 잃을 정도다. 더 문제는 범죄를 본뜬 모방범죄가 언제 또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미국에서 탄저병 환자가 속출하자 전 세계에서 흰색가루를 우편물에 넣어 배달하는 가짜 탄저병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모방범죄는 즉각적이고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범죄 장소와 시기, 대상을 예측을 할 수 없어 대응 방법도 마땅치 않다. 경찰이 장갑차까지 등장시키는 초강수를 썼다. 모방범죄 억제에 효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8-06

겨우 인간

이원만 시인 우리는 민주시민을 넘어 이제 ‘생태시민’이 되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롱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도 사람만의 민주주의가 아닌 지구상의 비인간 생명은 물론이고 무기물까지도 함께 민주주의를 누려야 한다는 ‘생태민주주의’를 이야기 한다.숲을 개발하는 곳에서 나무들의 편이 되어 톱날 앞에 몸을 던져 막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멸종동물들을 보호하고 강과 숲에게 법적인 권리를 누리게 하는 입법 활동도 생겨나고 있다. 전 지구적 생태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구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짝짝짝. 다 좋다. 찬성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태시민이 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매일 다른 생명을 먹으면서 우리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가능할까?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이런 물음에 답을 구하지 못하면 갑자기 밥이 소화가 되질 않을 수도 있다. “인간도 동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만물의 영장이라더니 왜 이런 문제 앞에선 동물이래?” 소와 돼지와 닭들이 반격을 할 것 같다.“동물들을 좋은 조건에서 제 본성대로 살게 하고 도축할 때는 고통을 최소화하면 되지 않을까?”고 하면 “민주주의 하자며? 왜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날 먹으려고 그래?” 음메에 꿀꿀 꼬꼬댁 난리를 칠 것 같다. “뭐야? 우리가 잘 키워서 먹겠다는데 그게 자연의 순리 아닌가?” 사람들도 불만 아니겠는가? 어렵다. 생태민주주의도 생태시민도 참 어렵다.죽어서 쓰레기매립장에 버려지는 고래는 관심을 가지고 바다에 데려가서 원래 고래의 죽음과정인 ‘고래낙하’를 하게 해줘야한다는 둥 관심을 가지지만 개와 고양이의 집사노릇은 자처하지만 개를 돌보면서도 삼겹살을 굽고 치맥을 즐긴다. 그러면 하지 말아야 하나? 유엔에서는 공식적으로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지구열대화’를 선언하고 지구에서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시급하게 대응책을 마련해야한고 목소리를 높인다.식물들은 물론이고 동물과 해양생물들이 난민처럼 자신들의 서식처를 떠나 피난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은 인간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 많던 경북의 사과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동해바다의 수온변화에 어종도 달라지고 있다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오지 않아 굶어 죽는 바다표범들의 모습은 멀지 않은 미래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해서 무서운 느낌마저 준다. 이 혼란을 만든 건 우리 인간이다. 뭐라도 할 수 있는 건해야 하는데 생태시민도 생태민주주의도 어렵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난감하다.그래서 겨우 생각한 것이 ‘겨우 인간’이다. 우리의 잘못과 우리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리 심보부터 바꿔보자는 거다. 태생적으로 우리는 훌륭한 인간일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생명을 죽여서 이어갈 수밖에 없는 목숨이라면 최소한 ‘감사하게 먹고 밥값을 하며 살자’는 것이다. ‘생명을 먹어요’라는 책에서 이치다 미치코의 말은 그래서 곱씹어 볼만하다.우리는 우리가 빼앗는 생명의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날마다 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는 우리가 먹는 생명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없이 먹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음식을 남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생명을 먹어요-만만한책방/2022용서할 수 없다, 말도 안 된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인치고는 참 단호하지 않은가? 내게 이 말은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차려야 ‘겨우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동이족은 예로부터 다른 생명을 죽여서 내 목숨을 잇는 태생적인 조건을 슬퍼할 줄 아는 민족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겸손했고 생명을 살리는 것을 잘 했다고 한다. 콩을 심어도 세알을 심어서 땅속의 벌레도 먹고 새도 먹고 나머지 한 알은 인간이 먹으면 된다고 농사를 지은 민족이다.야외에서 밥을 먹으면 ‘고씨네’ 하면서 밥을 새나 벌레들에게 먼저 ‘대접’하고 먹었다. 사람이 먹고 남은 걸주는 게 아니라 먹기 전에 먼저 주는 것이니 ‘대접’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생태시민의 마음가짐 아닐까? 상추를 씻다가 그만 상추 한 잎이 떠내려가자 산 아래까지 따라가 상추 한 잎을 건져왔다는 스님들의 식사법인 발우공양은 지구최고의 식사법이지 않은가.이런 우리 전통을 보면 지금의 생태사상을 뛰어넘는 사상들이 이미 생활화되어 내려왔다. 동학사상을 보면 여자고 어린이고 임금이고 백성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바위 같은 것들도 다 똑같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상을 내면화 할 수 있다면 생태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우리는 ‘겨우 인간’으로 지구의 공동생활자로 계속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겨우 인간’ 아니 ‘겨우 겨우 겨우 인간’이다. 그렇지 않은가?

2023-08-06

포항시민에게 환경경제를 고함

유성찬 (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소설 ‘레미제라블’을 쓴 때가 1862년이다. 소설 속에 주인공 장발장이 하수도를 통해 탈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적어도 1862년에 프랑스 파리 지하에는 사람이 서서 걸어 다닐 정도의 큰 하수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1832년 파리에 콜레라가 유행하여 1833년부터 40년에 걸쳐 하수도 건설에 착수했다고 한다. 하수도라는 환경시설이 파리시민들을 콜레라로부터 구한 것이다.지난해 추석 무렵에 포항 오천의 냉천을 덮쳤던 태풍 힌남노로 인해 9명의 생명을 잃었고, 포스코의 수해손실이 조단위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또 얼마 전 충청권, 경북북부권 집중호우로 인해 경북 예천에서만도 22명이 사망하였다. 금강 미호천교의 둑이 터져, 오송궁평지하차도가 침수되었고 14명의 목숨을 잃었다.지하차도에는 집중호우를 대비해서 펌프가 설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펌프가 아직 설치되지 않았든지, 펌프가 작동되지 않았든지, 아니면 설령 펌프가 작동했더라도 강물의 범람으로 펌프용량의 한계를 넘었을 수도 있다. 단순한 홍수조절장비, 대용량 펌프이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환경시설은 국민들의 안전,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이제는 환경시설, 환경산업 또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산화탄소 제로, 탄소중립을 위한 환경경제와 환경산업은 인류의 생존과 우리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담보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환경산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하폐수 시설이다. 생활하수, 공장폐수도 몇 단계의 하폐수 정화시설을 거치면 2급수 정도의 맑은 물을 만들 수 있다. 물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 아주 중요한 물환경산업이다.그리고 대기오염을 해결하는 환경시설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주요한 굴뚝에는 센서가 달려있다. 실시간으로 다이옥신 등 환경오염물질을 체크하고 있고, 기준치를 넘게 되면 해당기업에 과태료 등 페널티를 매기게 된다.또 생활쓰레기, 건축물폐기물, 의료폐기물 등을 태우는 소각로와 그에 붙어 있는 발전기, 스팀발생기와 같은 에너지시설이 있다. 그래서 쓰레기가 곧 에너지라는 말도 생겼다.가습기살균제 같은 화학물질독성을 관리하는 산업, 아파트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신소재사업, 학교교실의 석면제거 산업, 주유소에서 나오는 고약한 화학냄새나는 VOC가스 재흡수장치사업, 대기오염,수질오염 측정기 제조산업, 쓸러지를 재탄소화하는 에너지산업 등 환경과 관련하여서는 새로운 산업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기업과 공장에서 자동차, 가전제품, 생활편익상품을 생산하면 국민들이 이를 소비하여, 순환경제를 만들어 왔다. 이제는 환경순환경제가 대세가 되어 이 세상의 모든 제품들이 ‘친환경이냐, 이산화탄소를 적게 발생시키느냐’라는 아젠다가 경제와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다. 환경을 이슈로 하는 경제가 국민경제의 대부분이 될 것이다.기후위기를 극복하여 인류의 파멸을 막고,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는 기후변화 상황에서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길은 현재의 모든 경제시스템을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향으로 환경산업시스템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길임을 이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거의 200년을 콜레라로부터 예방해준 파리의 하수도처럼 포항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대기·수질 환경시스템,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로부터 시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물관리시스템, 우리나라 국민경제에서 탄소국경세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탄소중립경제, 2026년 이후, 포스코 철강제품의 유럽수출을 위한 수소환원제철소 등 이 모든 생산활동이 환경경제산업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므로 포항시민들의 환경경제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포스코가 친환경 철강재를 생산하여 탄소국경세에 대한 걱정 없이 세계적으로 철강산업을 리드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현 시점에서 실기를 하면 다른 국가에 의해 추월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포항이 이차전지특구로 지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포항시내 길거리마다 축하현수막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이차전지, 수소연료전지도 환경산업의 일환이지만 포항을 근대화로 일어서게 한 철강산업의 주역,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설에 대해서는 포항시와 포항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지역 위정자들의 탄소중립, 환경경제에 대한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포항의 경제산업을 위해서, 탄소중립경제를 위해서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리튬2차전지 만큼이나 중요하다. 포스코의 철강산업이 일몰(sunset)산업이 아니라면 탄소제로와 환경경제를 이차전지산업과 동일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또 어떤 환경단체는 대안도 없이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에 대해 부정적이다는 소식이 들리기에 NGO로서 탄소제로사회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환경경제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깊은 관심이 우리를 탄소중립사회에서 존재케 할 것이다.

2023-08-06

입법도 특별한 것만 찾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1.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간담회를 하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를 약속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최근의 오송 지하차도 수해 참사가 이태원 참사와 판박이라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2.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 예정인 ‘달빛 고속철도 특별법’에 민주당 의원 168명 전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키로 했다. 이 특별법은 대구와 광주를 1시간 내로 연결하는 고속철도 추진을 골자로 하는 법안으로 양 지역 숙원 사업이다.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의하면 21대 국회 들어 지난달 말까지 1천253건의 특별법이 발의됐다. 가결된 것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 등 188건이다. 특별법은 지난 16대 국회 92건에서 17대 국회 325건, 18대 국회 733건, 19대 국회 832건, 20대 국회 때는 1천275건(가결 231건)으로 증가추세다. 가히 특별법 전성시대다.특별법은 법의 효력이 특정한 사람이나 사항 및 특정지역에 한해 적용되는 법이다.특별법 발의가 느는 것은 기존 법안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도 예외 규정을 두어 관련 사안을 신속 처리할 수 있는 등 입법 과정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특정 이해관계 사안과 현안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입법 형태다.8월 현재 과학수도 대전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특별법과 경남 사천의 우주항공청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과 소외지역을 이유로 만든 특별법이 수없이 많다.특별법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향력이 큰 일반법 개정보다 특별법을 제정, 해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훨씬 효과적이다. 치적과 생색 내기에 도움된다.2000년대 이후 특정 문제나 사건에 관한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특별법이 등장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개발을 위해 특별법을 만든다. 국회 법사위원회가 한때 특별법 제정 자제를 요청할 정도다.특별법이 민원 해소의 일환이 되면서 입법구조가 더욱 복잡해졌다.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법체계 유지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법은 일반법보다 상세하고 난해한 규정이 많아 법률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법률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반면 순기능도 있다. 특별 안건을 세밀하게 규정, 사법부의 자의적 적용을 막고 국민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전문가들은 특별법 홍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별법은 일반법과 비교하면 제한된 범위에 적용되지만, 그만큼 강력한 효력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법 제정은 꼭 필요한 경우만 한정하고, 일반법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세월호 특별법도 국회통과까지 숱한 곡절을 겪었다. 이태원 특별법도 조만간 제정될 태세다. 오송지하차도 특별법도 뒤이을 가능성이 크다. 각종 대형 사건·사고만 터지면 특별법을 만들고 특별히 대우해야 할 판이다. 특별법이 문제 해결의 수단은 되지만 국민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 특별법 제정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2023-08-03

경로사상 알기나 하나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100세 이상 장수한 노인에게 국가가 청려장을 수여한다. 1년생 풀인 명아주의 줄기로 만든 청려장은 가볍고 단단해 노인들이 지니기에 적합한 지팡이라 건강 장수의 상징으로 통한다.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나라에서는 장수한 노인에게 국장(國杖)이라는 이름으로 지팡이를 준 전통이 있다. 시대를 떠나 노인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국가가 장수 지팡이를 통해 예를 표한 사례다.매년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또 10월 한달을 경로의 달로 정해 국가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의식을 북돋운다. 특히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의 공로를 치하하고 시상도 한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노인에 대한 공경의식은 성경에도 나오듯 도덕의 기본이다. 유교문화가 깊은 우리는 삼강오륜을 통해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쳐 왔다.특히 오륜 중 하나인 장유유서 (長幼有序)는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으뜸으로 꼽았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아는 상식이다.어쩌다 노인이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대접받는 세상이 됐는지 어이가 없다. 정치권 중진들 입에서 노인비하 발언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노인에 대한 그들의 평소 사고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최근 더불어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하는 게 합리적”이란 취지의 발언은 정치가 노인을 깔본 또 하나의 사례이다.나도 늙어간다는 단순한 진리조차 까먹고 마구 떠벌이는 일부 정치인의 낮은 수준이 부끄러울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8-03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다. 호박잎이 축축 늘어지고 뿌리가 얕은 풀들은 말라간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척박한 땅의 풀들부터 말라 죽고 말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열악한 생활환경의 사람들이 기상이변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이 여름에도 에어컨이 없는 골방에서 더위를 견디고 있는 노약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여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런 희망의 이정표이기나 한 듯 저만치 입추와 말복이 다가오고 있다.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희망의 밧줄처럼 붙잡게 되는 말 중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이 있다. 유대인들의 신앙교육서인 ‘미드라시’에 나오는 이야기가 어원이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에게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다 내가 전쟁에 이겨서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새겨 넣을 마땅한 문구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것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좋은 상황에서도 교만하지 않을 경구로 삼은 다윗왕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주로 역경에 처한 사람들이 위안으로 삼는 말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많이 나아졌는데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비관하고 좌절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스스로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절망적 상황도 또한 지나갈 것이란 말이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될까.얼마 전에 서울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던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교사의 꿈을 이루었을 터인데, 불과 두 해도 되지 않아 목숨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절박할 압박과 고통이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교육 현장에, 시간이 흐른다고 지나갈 일회성이 아닌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병폐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어떤 상황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게 마련이라는 의미로는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도 있다.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이 말은 과학적 진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양자물리학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은 비었다(空)고 한다. 물질의 기본요소인 원자의 경우 알갱이의 존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규명이다. 그것은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상통하는 말이다. 존재의 주체인 나(我)라고 내세울 본질이 없다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다.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세상에 고정불변이란 없다는 말이고, 절망이든 고통이든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절망의 굴레를 벗고 죽음을 받아들일 여지는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한 보다 깊고 넒은 통찰력과 굳센 삶의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2023-08-03

뜨거운 지구, 열대화가 시작되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7월 중순부터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으며 폭염특보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으로 2일 이상 지속하면 폭염주의보가, 35도 이상이면 폭염경보가 발령되는데, 전국 기상특보 구역 180곳 중에서 40% 이상으로 폭염특보가 확대되어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상향되었다.방에 들어앉아 있어도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을 겪고 있는데 폭우까지 들락거리는 도깨비 날씨에 겹쳐 제6호 태풍 ‘카눈’마저 오키나와를 거쳐 한반도로 방향을 틀지 모른다는 예보에 속은 더 타들어 간다. 7월 말 누적 온열 질환자가 1천명이 넘었고, 10명이 사망했다 하니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마시며 노약자와 아이들 보호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이 뜨거운 여름은 우리뿐만 아니다. 그리스를 비롯한 서유럽이 40도 넘는 폭염에 수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미국도 폭염 지옥에 아스팔트가 흘러내렸고 중국은 50도가 넘는 살인적 기온에 당황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 WMO는 7월 첫 3주의 지구 기온이 섭씨 16.95도로 1940년 관측 이래 최고기간이었다고 발표하였고,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끓는 지구의 시대가 시작됐다”며 온난화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였다.지구 온난화(warming)는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 언급된 용어였는데 지구 대기권의 탄산가스 증가로 인한 태양에너지의 온실효과로 51년 만에 열대화(boiling)로 변경된 것이다. 2015년 파리 기후협정에서 세계는 21세기 말까지 1880년 대비 온도상승을 섭씨 1.5도로 합의하여 그 주범인 탄소배출량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 탄소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주요 G20 나라들은 재생에너지 확대, 친환경 교통수단 도입, 산림 보호 등의 추진과 함께 도시녹지와 도로 및 지붕의 포장법 개선, 쓰레기 줄이기 등의 계획을 확대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이러한 기후변화로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면 산림화재가 빈번히 발생하고 농작물에 영향을 미쳐 식량부족의 원인이 되고 해수면 상승 등 생태계 변화로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는 등 지구의 미래가 걱정된다. 태평양 해수면 온도변화를 가져와서 지구 온난화를 앞당기는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도 이제 낯설지가 않다. 남극지방의 빙하는 지난 40년간 남한의 26배 면적을 녹아내렸고 탄소의 주요 저장소인 호주 동북부와 아마존 등의 열대우림도 기후건조로 35년간 고사율이 2배가 넘었다는 보고도 있다. 야외에서 사람이 느끼는 더위 정도를 나타내는 ‘열 스트레스 지수’도 이번 세기말에는 지금보다 12배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열대화 현상이 탄소배출량 증가 탓만은 아니고 태양의 활동, 지구의 화산 폭발 등 자연적 원인도 있다고 한다. 다음 주말까지 35도 이상의 더위에 땀 뻘뻘 흘려야 한다니 지구 열대화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지구가 병들고 있다. 열병(熱病)이다. 그러나 그 병의 원인에 인간의 책임도 많으니 지구인 모두가 ‘넷 제로 (탄소중립)’등 환경운동을 통해 지구가 앓고 있는 병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23-08-03

임자일주(壬子日柱)

이지안作 ‘Protective 2’ 육십갑자 중 마흔아홉 번째는 임자(壬子)다. 천간(天干)의 임수(壬水)는 측량할 수 없는 바다의 심연이며, 지지(地支)의 자수(子水)는 겨울밤의 싸늘한 물이다. 동물로는 검은 쥐다.임자일주는 대양처럼 깊고 넓어 만물을 감싸는 형상이다. 만물을 수용함과 동시에 쓸어버리기도 가능하기에 진취적이고 의욕적이다. 배포가 남다르게 크면서도 용기가 있어 사람들을 잘 다루고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한다. 매사 적극적이고, 보다 앞서나가려 한다. 그러나 결코 가벼운 언행은 하지 않는다. 비밀이 많고 끈질긴 면이 있어 인인자중(忍忍自重)한다.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면모도 함께 볼 수 있어 한 번 화를 내면 절제가 잘 되지 않는다. 자존심과 더불어 경쟁심도 강하여 타인들을 주로 경쟁상대로 여기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마음은 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으며, 빠르게 흐르는 강물이다. 절대 가벼운 성정이 아니며, 끈기와 인내심을 겸비하고 있어 속이 깊고 과묵한 성격이 많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충분한 생각을 한 뒤 말과 행동을 한다. 대체로 직관과 영감이 탁월해 논리적 사고보다는 감각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넓고 깊은 바다 같이 평상시에 평온해 보이지만, 누군가가 해코지를 하면 고집이 대단해지고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독단적 성격이 된다. 그러나 물의 특성으로 지혜롭게 흘러간다.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면이 있어 로맨틱하다고 할 수 있다.황순원(1915∼2000)의 단편소설 ‘소나기’가 있다.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청순하고 깨끗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꽃이 핀 가을 들판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소년과 소녀는 원두막으로 피한다. 빗줄기는 세찼고, 철 지난 원두막은 너무나 허술했다. 소년은 차라리 수수밭에 세워둔 비좁은 수숫단 속으로 들어갔다. 그만 소녀가 안고 있던 꽃묶음을 망가뜨린다. 소년이 꺾어다줄 때마다 한 송이도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한 꽃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지금 망가져버린 꽃으로도 행복하다. 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행복감을 느끼려 했기 때문이다.소녀가 며칠째 개울가에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주머니 안에는 언젠가 소녀가 자기를 향해 던진 조약돌이 들어 있었고, 조약돌을 만지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니 그는 조약돌을 만지면서 소녀의 체취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그러다가 소나기가 내리는 날 소년을 만난 소녀는 그날 얻은 열병으로 죽는다. 마을 갔다 돌아온 아버지의 말을 통해 소녀가 죽기 전에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옷은 소나기로 물이 불어난 개울을 업혀 건널 때 소년의 체취가 얼룩으로 묻어 있던 옷이다.소녀에게도 마지막까지 중요했던 것은 느끼는 것이었다. 느끼려는 사람은 마음을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들 삶에서도 소나기로 인해 불어난 강물 때문에 등에 업고 건네준 소녀 한 사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임자일주 남자는 사회생활을 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좋으며, 결혼 후에도 이성 관계로 인해 풍파를 많이 겪게 된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나, 집안에서는 폭력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다. 여자는 집안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운이니, 복을 지으면 하고자 하는 일에 좋은 결실이 온다.일상생활에서 “임자 만났데”라는 말이 바로 임자일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 아무리 강한 일주라도 임자일주에게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정도로 강한 모습이다. 또한 나이 든 사람들이 부부가 되는 짝을 임자라고 부른다. 임자란 말은 인간이나 물건이 적임자와 연결되어 능력이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때 사용한다. 시쳇말로 ‘개가 개장수 만나는’ 식으로 자신의 급소를 잡은 원수를 만날 때도 쓴다.임(壬)은 천간 중 하나로 수(水)에 해당한다. 수(水)는 숫자로 1이다. 물에서 생명이 시작되므로 물을 첫 번째로 보는 것이다. 자(子)는 지지(地支) 가운데 첫 번째이자 물이다. 그러므로 ‘임자 만났다’는 말은 ‘최고를 만났다’‘제일 강한 상대를 만났다’는 뜻이 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임자에서도 천간 임(壬)보다 지지에 있는 자(子)가 더 근원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임자일주는 추운 겨울 먹이를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는 검은 쥐의 모습이다. 배고픔과 추위에서 벗어나려면 무모한 짓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자성어에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있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즉 도둑을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의미다. 단속하는 자와 단속받는 자가 야합하면 못 할 짓이 없다는 경고다. 그 결과는 몰락으로 끝이 난다. 마치 물에 빠진 생쥐가 되는 것이다.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너무 큰 욕망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파멸한다.하지만 작은 욕망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도 못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더 나은 상황을 욕망한다.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결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혐오하고 외면하기에 급급하다.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까 가슴을 졸인다.사실 결점과 약점은 가장 좋은 스승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를 조용히 귀띔하며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2023-08-02

검은 갈매기의 삶을 반추하다

정미영 수필가 바다를 마주 대하면 마음은 쪽빛으로 물든다. 치열한 일상에서 만나는 내 감정은 뾰족한 선이 많아 마음이 무채색일 때가 잦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면 첨예한 선들이 마모되어 그 틈으로 유채색이 입혀지는 것을 체감한다.한흑구 수필집 복간 기념 릴레이 낭독회의 진행을 맡았던 탓일까. 행사를 마친 뒤, 한흑구 선생님께서 거의 매일 걸으셨던 송도 해변이 보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 이 순간, 윤슬이 리드미컬하게 출렁이는 해수면을 바라보며, 시간을 초월해 선생님의 발자취에 내 발자국을 얹어 본다는 심정으로 모래밭을 거닐고 있다.한흑구 수필집 ‘동해산문’의 ‘수필의 정신’이 떠오른다. “수필은 시의 정신으로 창작되어야 하며 내용은 철학적이어야 된다.” 이 문장처럼 선생님의 작품은 시적이고 자연주의적 철학을 짙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출판사 대표와 편집자가 선생님의 책을 복간하지 않았다면, 결코 우리 앞에 ‘생생한 활자’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50여 년 만에 오늘날의 우리가 읽기 편하게 바꾸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아무리 충실하게 문장을 표현한다고 해도 원작자가 고인이라는 점에서, 작품 편집이 작가가 의도한 대로가 맞는지, 아닌지, 여쭤볼 수 없는 ‘불완전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리라.저 멀리 포항의 시조(市鳥)인 갈매기를 형상화한 송도 폴리를 발견한다. 선생님의 필명인 ‘흑구(黑鷗)’가 연상되며, 자연스레 필명의 유래가 생각난다. 한흑구 선생님께서는 105인 사건의 여파로 미국으로 망명하셨던 아버님 한승곤 목사님이 계신 곳으로 스무 살 때 건너가셨다.일본 요코하마항에서 대양환(大洋丸)을 타고 하와이로 가실 때였다. 검은 갈매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벗어나, 일주일이나 쉬지 않고 쫓아왔다고 했다.조국을 잃어버리고 끝없이 방랑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투영되었던 탓에 검은 갈매기를 뜻하는 흑구를 필명으로 사용하셨단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예전의 파도소리가 아니듯, 흘러가는 구름도 예전의 구름이 아니련만, 내가 마치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전해 듣는 듯 감상에 빠진다.바다에 한참을 머무르며, 선생님의 교우 관계를 떠올려본다. 유치환, 서정주, 조지훈 등과 교유하셨고 죽마고우 안익태와의 우정도 남다르셨다. 선생님께서 미국 음악의 도시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학교 신문학과에서 공부하실 때였다. 영어에 서툴렀던 안익태를 템플대학교 기악과에 입학할 수 있도록 힘쓰시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셨다고 한다.나는 선생님께서 진실하게 사람들과 어울리셨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문득 다자이 오사무를 연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한다고 하는 ‘인간 실격’을 쓴 일본의 유명한 작가다. 그는 선생님과 같은 해인 1909년에 태어났다.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라 불리는 그는 1948년 39살의 나이로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생을 마감했다.선생님께서는 1948년 39살의 나이에 포항에 와 문학 발전에 이바지하셨다. 이렇듯 두 작가의 삶을 비교해 봤을 때 나는 안타깝다. 주변에 문우들이 넘쳐났던 선생님처럼, 한 명이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면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어떠했을까.내가 일제 강점기를 겪었다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것인가. 아마 부정적인 시각을 간직한 채, 앞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품지 못한 채, 생활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순수한 영혼을 지니셨던 것 같다. 아마도 삶의 밑바탕에 문학이 존재했기 때문이리라.“나는 늘 모래밭에, 또는 바다 물결 위에 시를 써보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어느덧 내 가슴에 공명된다.모래밭에 시심(詩心)과 수필을 써 놓고 무심히 고개를 든다. 단 한 줄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으셨던, 한흑구 선생님의 화신일까. 어느 결에 나타났는지 갈매기 한 마리가 바다 위로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2023-08-02

둘로 나눌 수 있을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문과와 이과는 누가 갈라놓았을까.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초중고 공교육 과정을 지나면서 우리는 문과와 이과 가운데 선택을 한다. 그 기준은 무엇이엇을까. 대체로 수학을 좋아하는지가 자기 판별의 기준이었다. 수학적 사고능력이 소위 이과적 인간이 되기 위한 절대적 기준이 되는 지도 사실은 그리 분명하지 않다. 수학적이며 논리적인 표현 능력은 인문사회, 정치경제 영역에서도 대단히 필요한 소양임이 밝혀지고 있다.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예로 들어보자. 이과적 성향이 다분한 직종으로 여겨지지만, 수학적 기능만으로는 절대로 부족하다. 실제 현장에서는 고도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소양이 필요하고, 분석적 사고능력은 물론 구성원 간 인화적 소통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사람의 소양과 품격을 문과와 이과로 단순하게 둘로 나누어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으로 이해하는 일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오늘날 문제들이 유형별로 생기지 않는다. 기업경영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가정살림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상황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발생하며 균형잡힌 통합적 사고가 언제나 필요하다. 사람을 읽어야 하고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느낌을 짚어야 하고 손익에도 밝아야 한다. 배경지식도 필요하고 미래예측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사람들 사이에 칸을 치고 벽을 만들어 서로 오가는 일마저 막는다. 문과와 이과는 함께 나눌 이야기 소재마저 궁핍해 져서, 사회는 또 다른 양극화를 겪는다. 넘나들기 어려운 섬들이 생긴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능력을 따로따로 구분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이제 접어야 한다. 공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폭넓고 균형잡힌 인성을 형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문학과 역사, 수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배워야 한다.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유네스코(UNESCO)는 21세기에 가르쳐야 할 네 가지 필수영역들로 분석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Creativity), 협력(Collaboration), 소통(Communication)을 들었다. 문과나 이과의 구분은 어디에도 없다. 개별 과목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 전통에 따라 구분된 과목의 이해를 넘어 통합적으로 균형잡힌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게 아닐까. 대학에서도 지나친 세부 전공영역의 구분을 경계해야 한다. 전문지식 심화의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인성의 널푼수를 지향해야 한다.다음세대가 창의와 혁신으로 가득한 내일을 만나려면 다르게 가르치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 문과와 이과 구분에 길들여진 습관을 벗어야 한다. 과학자가 문학에 능하고 역사가가 과학에 밝은 날들이 와야 한다. 새로운 상품개발에 인문학적 경험과 불편함이 스며들고 철학자의 논변에 과학의 발자취가 녹아들 때 비로소 학문 간 균형과 인성 간 조화도 가능해 진다. 인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 지고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에는 배려와 상생의 기운이 돌지 않을까. 포용과 협력이 시대의 기운이라면, 문과와 이과의 구분부터 사라져야 한다.

2023-08-02

라이브 커머스의 질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채팅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상품을 소개하는 스트리밍 방송인 ‘라이브 커머스’가 신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실시간 방송 판매’를 하는 라이브 커머스는 생방송 진행 동안 이용자가 채팅을 통해 진행자나 다른 구매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구조다. 소비자는 방송 진행자에게 채팅 글을 남기며 궁금한 것을 묻고 진행자는 소비자의 질문에 말로 답한다. 다른 구매자들도 방송을 보면서 자유롭게 글을 남기며 물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온라인에 입점한 사업자는 누구나 손쉽게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품 구성과 판매의 폭이 넓다. 방송 중에는 제품 소개뿐만 아니라 일상 공유, 질문과 답변, 현장 이벤트 등이 다양하게 이뤄진다. TV 홈쇼핑보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효율이 높다. 소통과 쇼핑을 결합해 재미와 관심을 높였다. 비대면 온라인 쇼핑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즉석에서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어 소비자 반응이 뜨겁다. MZ세대 취향에도 맞다. 그들이 주요 고객이다.네이버의 ‘쇼핑라이브’, 카카오의 ‘톡 딜라이브’, 티몬의 ‘티비온라이브’등이 대표적인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이다.교보증권에 따르면 국내 라이브 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0년 4천억원에서 2021년 2조8천억원, 올해는 1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업은 성장세지만 아직 인지도가 떨어진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자료에 의하면 현재 라이브 커머스 시장은 온라인 쇼핑에서 2% 수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아직은 갈길이 먼 셈이다. 경북도는 얼마 전 자체 쇼핑몰 ‘사이소’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활용해 호우피해 모금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라이브 커머스의 외연 확대가 놀랍다. 라이브 커머스의 발전이 기대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02

텃밭 1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작년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집을 둘러싼 넓은 빈터, 풀로 가득히 뒤덮여 있는 땅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감당하려면 계획을 세워야겠다 싶어 생각만 하고 풀만 없애는 중이었다. 상추 모종을 사서도 땅에 심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 풀 속에서 이 여린 상추가 어떻게 자랄 수 있을까. 길쭉한 화분을 몇 개 사서 거기에 몇 포기씩 심었을 정도였다.여름 즈음 김장용 배추와 무 모종 한 판, 60포기씩을 사온 남편을 타박했다. 그 많은 걸 어떻게 심고 관리할 거냐면서 투덜댔다. 그래도 사온 걸 어쩌랴. 해가 잘 들 만한 터를 골라 풀을 뽑고 골을 파서 모종을 두 줄 나란히 심었다. 매일 사는 게 아니라 물 줄 일이 걱정이었다. 배추 모종 때문에 주말이 아니라도 틈날 때마다 가서 물을 주어야 했다. 비싼 배추를 먹을 판이었다. 작은 떡잎이 지고 쑥쑥 자라 제법 잎이 이들이들 커질 때 즈음엔 배춧속이 노랗게 꽉 차기를 기대하면서 끈으로 묶어주었다. 이웃 텃밭을 보고 흉내낸 거였다. 그러다 바쁜 일상에 배추를 까맣게 잊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에 화들짝 놀랐다. 배추가 생각났다. 저녁참에 잠시 틈을 내어 황급히 달려갔다. 큰 비닐봉지를 사 들고 가서 배추를 뽑아 담았다. 약을 한 번도 치지 않아서였는지 까맣게 벌레가 낀 배추가 많았다. 성한 걸 골라도 제법 많아 이웃에도 나눠주었다. 나물로도, 물김치로도 꽤 오래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신 이렇게 큰 농사(?)는 짓지 않으리라 결심이 섰다.올핸 수돗가 근처에 작은 텃밭을 일궜다. 물 주기가 편하다는 판단에 고른 터였다. 채소 모종을 이것저것 사 본격적으로 텃밭농사를 해 볼 참이었다. 미리 풀을 뽑고 유기농 퇴비를 사서 흙과 섞어 두었다. 모종은 오일장에서 사기로 했다. 옹기종기 나온 예쁜 모종은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구경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서너 개 정도의 작은 포트에 1~2천 원짜리 모종을 이것저것 샀다. 토마토와 고추는 기본, 파, 가지, 오이, 내가 좋아하는 고수와 청겨자도 샀다. 텃밭을 늘려가며 당귀, 명이나물, 땅콩에다가 양배추를 줄지어 심었다. 안동의 지인이 상추 모종을 잔뜩 보내주셔서 길게 한 줄 심었다. 심을 땐 시들하던 애들이 며칠 지나선 꼿꼿해지다가 제법 실해지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모두의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들르는 최애 스팟이 되었다. 손주가 집주변 이곳저곳에서 가느다란 쇠막대기를 주워 모은 것이 10여 개나 되었다. 지줏대인 것 같다고 했더니 같이 세우자고 한다. 고추와 토마토 모종 옆에 손자는 망치로 박아 세우고 나는 끈으로 묶었다. 후에 제대로 된 지줏대를 사와 더 높게 세웠다.쉼없이 자라는 풀을 갈 때마다, 볼 때마다 뽑아주었다. 고추는 흰 꽃을 핀 데마다 고추를 맺고, 토마토도 조롱조롱 열매를 달아낸다.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는 손녀에게 작은 통을 하나 들려주며 토마토를 따보라고 했다. 네 대답하면서 달려가 토마토 넝쿨 아래에 쪼그리고 앉는다. 빨간 토마토를 똑 따서 하나는 통에 담고 하나는 입에 넣어 오물거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텃밭 재미란 이런 건가 싶었다.

2023-08-02

불안한 마음 달래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많은 현대인들은 정신과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한의원에도 화병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잠을 못자는 등의 환자들이 내원한다. 정신과 질환도 일반 통증질환과 비슷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면 아주 괜찮은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일반 통증질환도 치료 이전에 본인이 몸을 아끼고 운동을 해서 근육과 인대 등을 튼튼하게 만들면 미리 예방이 되고 자연적으로 빨리 회복 되듯이 정신과 질환도 정신을 맑게 하고 강화 시키는 훈련을 하거나 관련 내용을 숙지 한다면 좀 더 빨리 회복하고 예방할 수도 있다.현재 명상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사회가 고도로 발달될수록 개인의 정신문제는 심해져서 선진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오고 있다. 많은 명상 방법이 있지만 아주 간단히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것을 10분만 해도 정신이 멍해지면서 맑아지니 한번 눈을 감고 멍하니 있어보자.방안의 불은 끈다. 은은하게 조명은 있어도 되고 명상 관련 음악을 틀어도 된다. 향을 피워도 되고 향초를 태워도 된다. 심호흡을 간단하게 하고 체조나 간단한 스트레칭 혹은 운동을 한 후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 이게 힘들면 벽에 등을 붙이고 양반다리를 해도 된다.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도 된다. 천천히 본인의 호흡에 집중을 한다. 집중을 하다가 집중이 흐트러지면 다시 호흡에 집중을 한다. 힘들면 눈을 아주 살짝 뜬 뒤 본인 종교에 따라 예수상이나 부처상 같은 것을 눈이 보이는 곳에 두고 집중을 하면 된다. 이는 몸을 이완시키면서도 정신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니 편한 방법을 하면 된다.심리학 책을 읽어도 도움이 된다. 정말 많은 심리학 관련 책이 있는데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베스트셀러를 한 권 택해 읽으면 된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전부다 내 얘기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고 괴로운 이유도 원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읽을 때는 모르겠지만 읽고 나면 마음에 뭉쳤던 응어리가 조금은 옅어지고 괴로움이 감소한다. 실제로 심리치료 중 중요한 것이 내가 처한 괴로운 상황을 마주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회피하고 바로 보지 못하지만 심리학 책을 읽는 자체가 편안하게 내가 처한 괴로운 상황을 마주보게 해주고 또 읽게 되니 자연스레 나의 괴로움이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한 권 읽고 괜찮으면 다른 책들도 찾아서 한 권씩 읽다 보면 나의 괴로움과 좀 더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고통의 원인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고 나의 괴로움이 가장 큰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나의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면 많은 불편함이 이해 된다.태어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이 괴로움 중 많은 부분을 내가 해결할 수도 있다. 방법을 모를 뿐이다. 책을 읽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명상으로 깊은 생각을 하게 되면 조금씩 괴로움의 실이 풀리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바로 책을 읽고 눈을 감아 보자.

2023-08-02

여당은 ‘수도권·무당층 民心’을 경청하라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저께 SNS를 통해 “나는 총선까지 쳐냈지만, 이준석도 안고 유승민도 안고 가라. 가뜩이나 허약한 지지층이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당내 쓴소리에 귀를 닫는 ‘쫄보정치’를 그만두고, 외연확장에 힘을 쏟으라는 충고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국민의힘이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이 아니라 용산탕’이라는 말은 김기현 대표체제 이후 계속 회자돼 왔다. 윤석열 대통령 측근 일색으로 당이 운영돼 견제·자정·확장 기능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집권당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져 있으니,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총선 직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7%(한국갤럽)에 달했다는 사실을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내년 총선 판세는 중도·무당층이 결정한다. ‘여의도 제1당은 중도·무당층’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윤 대통령 최측근인 장제원 의원도 최근 “내년 총선은 국민의힘 지지층 35%, 민주당 지지층 35%를 제외한 나머지 30%의 무당층이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중도·무당층은 주로 수도권과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에 집중돼 있다. 지난 총선기준, 수도권은 253개 지역구 중 절반에 가까운 121개의 의석을 가지고 있다. 2030유권자 수는 1천400만명이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총선주자들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당의 다양성은 공천과정에서 정확하게 나타난다.국민의힘이 수도권과 무당층 민심을 끌려면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끊임없이 윤 대통령과 집권당을 향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쓴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 이준석은 최근 ‘여의도 재건축 조합’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채널에는 지난 3·8 전당대회 당시 당 대표와 청년최고위원 후보로 나섰던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이기인 경기도의원도 출연하고 있다. 이준석은 지난 2021년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젊은 당원들과 2030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로 36세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된 인물이다.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구속에 대해 윤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서 풍수전문가가 다녀간 것에 대해 “국가안보상 중요한 시설을 결정하는데 왜 풍수 보는 사람이 나타나느냐”며 쓴소리를 했다.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로선 ‘적어도 이준석·유승민과는 같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유상범 당 대변인은 홍 시장 발언에 대해 “해당(害黨) 행위자가 책임을 안 지면 제대로 된 정당이냐”는 식으로 비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현 상황이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총선은 8개월 조금 더 남았다. 총선 판세를 결정할 수도권과·중도층 민심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그들이 원하는 총선메뉴는 무엇이든 수용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2023-08-01

굿바이 코로나?

우정구 논설위원 굿바이 코로나 맞나? 끝난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재유행할 우려가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하루 확진자 수가 5만명을 넘었다. 지난 1월 이후 6개월여만에 다시 5만명대에 들어선 것이다.지난 6월 일상회복 조치로 코로나19를 가볍게 보고 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신규 확진자 수는 현재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 당분간 확진자 증가세가 더 이어질 것 같다는 전망이다.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3천만명이 넘는 국민이 감염되고 3만명 이상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3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국민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국민적 트라우마가 심한 질병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처럼 코로나 재유행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그렇다.그럼에도 정부는 이달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낮춘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남아 있는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하고 확진자 전수 감시도 중단할 예정이라 한다.전문가들은 최근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는 “정부의 방역정책 완화와 거듭된 변이 출현에 따른 면역력 약화가 원인”이라 말하고 “정부가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을 떨어뜨릴 메시지를 남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노약자나 만성질환자는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바이러스는 원래 여름철에는 활동성이 떨어지나 지금 이 시기에 확진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실내 활동이 많은 겨울철 대유행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보건당국은 정부의 대응 역량이 충분하다 밝히나 국민 각자가 마스크 착용 등 대응력을 갖추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01

이열치열 여름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염천 폭서의 성하(盛夏)에 청산녹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국 대부분이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연일 찜통더위에 온열질환으로 인명피해까지 속출하니, 폭우와 폭염의 기승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상이변과 기후위기는 지구촌 곳곳에서 극명하고도 심각한 자연재난을 초래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날씨에 민감해서 괜한 기우(杞憂)로 여긴다거나 위축돼서는 안되겠기에, 지난 주말 아침 배낭 매고 더위도 즐길(?) 겸 한여름 속으로 거침없이 길을 나섰다.일행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싣고 싱그러운 들판을 지나 울창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울진군과 봉화군 경계의 답운치 고개에 이르러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했다. 안개가 자주 끼어 있어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하다는 답운(踏雲)재에서 능선을 타고 통고산(1067m)을 오른 후 계곡을 따라 자연휴양림 쪽으로 하산하는 비교적 순탄한 코스다. 더욱이 산행 기점이 해발 600여 미터라 약간 선선한 느낌이 들었고, 모처럼 산을 찾게 돼서 그런지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세답게 등산 초입부터 수목이 우거져 햇볕은 잎사귀 사이로 겨우 비춰 들었다. 고산지대의 고요한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들의 합창이 산객을 반겨 맞는 환호처럼 들리고, 길섶에서 만나는 산나리꽃과 패랭이꽃은 청초한 자태로 제 멋을 떨구며 미소 짓는 듯했다. 장마가 끝나고 습기가 남아있는 등산로 주변으로는 이름모를 버섯들이 자주 눈에 띄는가 하면, 군데군데 우람하게 호위하듯 서있는 금강송은 모진 풍상을 이겨낸 낙락장송답게 꿋꿋한 기상이 서리는 듯했다.능선따라 바람따라 소요하듯 완상하며 새소리와 매미울음의 추임새 속에 몇 차례 구슬 같은 땀방울로 산길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다다른 정상, 10여년 전엔가 메마른 겨울에 오르고 온통 초록에 젖듯 여름날에 다시 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산은 이렇듯 오르는 자에게 늘 길을 열어주고 넉넉함과 뿌듯함을 안겨준다.“신발끈에 조인 의지/대찬 걸음으로//풀섶에 머문 꿈/땀방울로 말아내면//호방한 너울로 손짓하며/반겨 맞는/등성이//구름바다에 섬으로 뜨는/서리서리 얽힌 정//바람 결에 실어 보낸/원색의 외침 너머//창망한/메아리로 굽이치는/산정무한의/수묵화” -拙시조 ‘山行記’중(1995)하산길은 언제나 여유롭고 홀가분한 듯하지만,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높은 곳에 있을 때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居高思墜)’ 늘 경계하라는 가르침은 비단 산행 뿐만이 아니라, 직장이나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상황에서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내려오고 물러날 때가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불볕더위에 아랑곳없이 이열치열로 산행을 하거나 맨발걷기로 애써 땀을 흘리고 움직이는 것은 극기와 내성(耐性)을 다지는 것이 아닐까. 별천지에 간 듯, 온통 초록 숲과 녹음에 어우러져 깊은 산골짝 석간수의 청량함까지 온몸으로 느끼고 즐긴 꿈결 같은 여름산행이었다.

2023-08-01

공교육 붕괴에 얽힌 복잡성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어느 젊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의 충격이 지속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학부모의 ‘갑질’에 젊은 선생님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겪은 부당함을 학교에 호소했으나 적절한 해법이 마련되지 못하자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학생 인권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전 정부와 진보 교육감의 학생 인권을 강조한 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선생님의 비상식적인 체벌이 많았다.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선생님에게 손찌검당한 기억이 선명하다. ‘갑’의 입장이던 선생님이 ‘을’의 위치에 있던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용납되던 시절에 체벌과 폭력의 경계는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훈육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학생들의 인권에 주목한다는 것은, 교육의 영역에서 기존의 갑을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학생은 계발시켜야 하는 대상, 선생님은 계발의 주체로 보는 것이 전통적 관점이라면, 이제는 선생님이 학생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며 그 잠재된 가능성을 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을 입시라는 단일한 목적으로 수렴시킬 것이 아니라, 학생 각각의 특성을 존중하며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 인권과 선생님의 인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다.그런데 왜 다시 역전된 갑을 관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지만, 일단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전히 공고한 학벌사회는 공교육 붕괴라는 결과를 낳고 이는 다시 교사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렸다. 경쟁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동의 관계를 학습하지 못한 부모의 내면은 자식 교육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 자식이 손톱만큼이라도 손해 본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렵다. ‘강남’에 입성한 계급의 상대적 우월감은 이런 심리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심리는 단지 초등학생의 부모에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학생의 수강 신청이나 학점에 대한 민원을 넣는 학부모를 만나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이처럼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서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애꿎은 학생 인권조례를 탓하고 있다.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할 능력이 없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다. 반복하건대 사교육 시장, 교권, 지방대학의 위기 등 올해 들어 제기된 교육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복잡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이번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출산을 고민하던 지인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뉴스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학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문제는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2023-08-01

온실 속의 ‘금쪽이’들

서이초 교사 A씨가 학부모의 도 넘는 민원 제기와 폭언, 갑질, 교권 침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A씨 담당 학급의 한 학생이 급우의 이마를 연필로 그어버리는 학교 폭력을 저질렀는데,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의 학부모가 ‘금쪽 같은 내 새끼’를 싸고돌며 A씨를 몰아세운 게 원인으로 지목되는 중이다. 해당 건 외에도 그동안 얼마나 들들 볶아댔을까.지난 5개월간 서이초 교무실에 접수된 공식 민원은 11건인데, 내용이 기가 차다. “하교 시간에 솜사탕 상인이 있어 학생 통행이 위험하다고 항의함”, “담임교사의 생활지도와 교과지도, 수행평가에 6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함”, “방과 후 통기타 수업 중 아이가 기타 연습을 안 해와 강사에게 혼난 것을 항의함”, “교문 앞 교통 통제를 해달라고 함”, “교통 통제를 하지 말라고 함” 따위다.요즘 학부모들은 교사 개인 연락처로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고 문자를 보낸다. “여행 가지 마라”, “SNS 하지 마라”, “어머니 장례는 3일인데 왜 5일이나 휴가를 내냐” 등 학부모들이 보낸 메시지를 보니 천박하기 그지없다.나는 미혼이다. “자식이 없으니까 모른다”고 하겠지만, 요즘 부모들 하는 걸 보니 자녀 양육은 경험의 차원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그러니 말하련다. 제발 작작 해라. 호들갑 좀 그만 떨고 오지랖도 적당히 펼쳐라. 언제까지 갓난아이 업어 키우듯 할 텐가? 당신들의 자녀는 애완동물이 아니고, 생각과 표정 없는 인형도 아니다. 저마다 하나의 독립된 우주이고, 개별적인 인격체다.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개입도 정도껏이다. 학교와 교사를 믿지 못하고, 아이 친구들을 믿지 못하겠으면 그냥 집에서 홈스쿨링을 해라. 세상이 삭막하고 위험해진 건 사실이나 요즘 부모들이 자식 키우며 벌이는 극성들을 보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서이초 교사 A씨의 비극이 바로 그 경우다.도대체 왜 이럴까? 우리 부모 세대는 요즘처럼 극성맞지 않았지만, 일부 ‘맹모삼천지교’가 없진 않았으니 한번 따져보자면 ‘내 새끼만큼은 안 굶기겠다’는 오기로 그랬던 것 같다.그런데 요즘 내 또래 부모들은 결핍 없이 자라놓고는 왜 이 난리법석일까? 한국사회의 스노비즘이 가장 큰 병폐일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영심과 속물근성이 풍요 속의 결핍을 과잉생산해내는 시대다. 높은 수준의 경제력을 지닌 고학력자 부모들은 자식을 의사, 판검사, 대기업 임원으로 만들어야만 상류사회에서 면이 서고, 풍족하지 않은 부모들은 빠듯한 형편에도 내 새끼 기죽지 않게 온갖 귀하고 좋은 건 다 먹이고 입힌다. 아이와 함께 100만원이 넘는 호텔에서 바캉스 하는 게 유행이다.인스타그램을 보면 내 또래 부모들의 일상에 ‘I(나)’는 없고 ‘아이’만 있다. 자신을 지워낸 자리에 자녀만 두는 헌신적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하지만 내 아이만 소중한 게 아니라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 서이초 교사 A씨는 교실에서는 선생님이었지만, 교실을 나서면 이제 스물세 살 된 꽃다운 청년이자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행히 내 주변의 부모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배려를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괴물이 되는 일부 극성 부모들이다. 제 자식은 제멋대로 날뛰어도 우쭈쭈 감싸면서, 그 미성숙한 ‘덩어리’를 사람 만들겠다고 애쓰는 교사들에게 폭언과 갑질을 일삼는다. 옳지 않은 짓이다.그래, 당신들이 학생일 땐 ‘미친개’라든가 ‘마귀’ 같은 별칭으로 불린, 선생 자격도 없는 교사들이 학교에 있었다. 그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도 이해불가다. 착하고 성실한 요즘 선생님들이 무슨 죄가 있나? 이제는 달라졌다. 교사들의 인식도 바뀌었고, 교육 현장의 분위기도 쇄신됐다. 제발 믿고 맡겨라.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개입, 지나친 집착이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란다. 온실 속 화초는 자꾸 만지면 시든다. 열대어는 수온과 빛과 먹이와 산소 등을 섬세하게 관리해줘야 하지만, 그 관리가 필요 이상으로 과하면 스트레스로 죽는다. 당신들의 ‘금쪽이’도 마찬가지다.

2023-08-01

적절히 화를 표출하기

분노는 거듭 분노를 낳을 뿐이다. /언스플래쉬 대중교통을 탈 때 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2시간 40분 거리의 열차 이동 내내 큰 소리로 통화를 주고 받는 사람, 휴대폰으로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사람, 어린 아이가 복도를 뛰어다녀도 가만히 지켜보는 부모 등 어느 곳을 가도 온갖 소란 속에서 아주 많은 피로를 느끼고 있다.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피로를 감당해 내느라 필요 이상의 너무 많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쉽게 낳기 마련이라서, 결국 어딜 가도 너무 많은 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여기저기서 얻은 스트레스 꾸러미를 집으로 돌아와 하나씩 풀 때, 건강한 사람들은 취미를 통해 푼다지만 나는 아주 가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다. 무작정 러닝머신에 올라가 걸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놓고 매운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려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는 쉽지 않다. 결국 책상에 앉아 나는 무엇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조금씩 생각하다보면 무언가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 화가 발생했는지 알게 된다.상황을 인지해서 종이 위로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부려놓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조금씩 해소된다. 하지만 내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될 때에는 벽에 부딪힌 듯한 막막한 심정을 느낀다.때마침 ktx 열차에 앉아 수많은 소음에 둘러 쌓여 강현식, 최은혜 저자의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를 읽고 있다. 책은 오랜 기간 내제된 ‘화’로 인해, 마음이 병들고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 바깥에서는 늘 친절한 사람이지만 유독 집에서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 화를 내는 방법을 몰라 난처한 사람, 버림받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 파괴를 일삼는 사람, 상대가 화를 내면 마음이 돌아서 모든 관계를 끊는 이들의 일화가 차례대로 나온다.이들의 공통점은 화를 너무 폭발적으로 내거나, 또는 화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결핍이 있었고, 치료받을 기회나 상황을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상처를 방치하며 자라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가지는 불만이나 화를 표출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무리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또는 불편한 감정을 한 개인이 참고 넘어가면 모든 상황이 다 해결된다고 여기며 상황을 무마시킨다. 유년시절부터 분노는 늘 숨겨야만 하고 적절히 화를 표출하여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선 학습하지 않기에 더 큰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고 만다.화를 참고 억누를수록 분노 표출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해한다거나 타인에게 엉뚱한 방향으로 큰 분노를 표출하게 되어 상황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 분노는 거듭 분노를 낳을 뿐이고 특히 타인에게 전염성이 높아 이성적으로 판단이 불가능한 분노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내가 지금 어떤 것에서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지 뚜렷하게 바라보며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인지만으로도 화는 느닷없고, 마냥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게 되고 내가 지속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났는지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책에서도 분노를 느낀다면 나의 의견을 전달한 후 해결책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이해해보며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책은 계속해서 말한다.오래된 상처를 꺼내어놓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은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대개 트라우마 속에는 해소되지 못한 화가 감추어져 있고, 늘 화를 감추고 억누르며 살아왔기 때문에 화가 난 순간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란 큰 어려움이 따른다.하지만 분노라는 실타래를 조금씩 풀게 되다보면 어느 순간 쉽게 풀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 상담과 치료를 진행하던 이들이 점차 화를 적절히 표현하게 되는 부분을 읽다보면 나 또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꼈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뿐만 아닌 타인에게도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23-08-01

영농형 태양광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7월 26일 대구시청에서 대구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 27개 부서장으로 구성된 탄소중립지원단 및 9개 구·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제1차 대구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제1차 대구기본계획)’ 수립 중간보고회가 개최됐다. 이 계획은 2021년 9월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의 규정에 따라 수립하는 법정계획이다. 또한 지난 4월에 확정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제1차 국가기본계획)’의 하위 계획으로 반드시 연계해 수립되어야 한다.‘제1차 국가기본계획’은 지난 정부에서 국제사회에 약속한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는 유지하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산업부문 감축 목표는 낮추고 대신 그 양만큼 전환과 국제 감축 부문 목표를 높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환 부문에서 석탄발전은 감축하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현행 9%에서 2030년 22% 이상으로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러한 기조는 ‘제1차 대구기본계획’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대구시의 2019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약 5% 정도에 불과하다.대구시의 부문별 에너지 소비현황을 보면 2019년 기준 가정·상업이 38%, 수송 33%, 산업 26% 정도로 산업 부문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가정·상업과 수송 관련 부문이 더 높고 이를 합하면 71% 정도에 달한다. 따라서 이 비율만큼 시민 중심으로 탄소중립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대구시 내 기존 도시화된 개발지역에서는 높은 땅값, 낮은 주민 수용성, 전력계통망 부족 등 많은 문제로 인해 태양광, 폐기물, 바이오 및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은 한계에 봉착해 왔다.지난해 12월 한화자산운용이 3조원을 투자하여 대구시 17개 산업단지 지붕에 총 1.5GW 규모의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을 제안하였다. 대구시는 이 사업을 ‘그랜드솔라사업’으로 명명하고 대구시 탄소중립 정책 선도 5대 대표과제로 추진한다, 이 사업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는 최대 95만톤으로 대구시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1천869만톤)의 약 5% 정도로 적지 않지만,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필요하다. 마침 이러한 상황에서 금년 7월 1일 대구시 면적의 약 70%나 되는 군위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군위군의 토지이용현황을 보면 2020년 기준 임야와 전·답이 각각 75%와 14.2%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 농업 중심지역이다. 따라서 대구시 탄소중립 정책도 큰 변화가 전망되는데, 임야의 비율이 높아져 숲 조성을 통해 탄소흡수량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제1차 국가기본계획’에서 농촌 재생에너지 확대사업 모델로 제시한 ‘영농형태양광’ 발전시설의 대규모 도입도 전망된다. 이 시설은 농작물 재배지 상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농산물과 전기를 병행 생산한다. 최근 다양한 작물에 대한 실증연구에서 특히 녹차, 무화과와 포도는 더 많은 수확률을 보여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2023-07-31

이승만과 트루먼, 69년 만의 재회

홍석봉 대구지사장 트루먼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우리 국민의 생존과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트루먼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 한민족을 일제 치하에서 해방시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 때는 미군 파병을 결단,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했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동안 한국에선 푸대접 받았다. 이승만이 독재자로 평가절하된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트루먼이 맥아더의 원폭 투하 요구를 거절, 북진(北進) 통일이 좌절됐다고 믿어왔다. 맥아더를 치켜세우기 위해 트루먼을 깎아내린 것이었다.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맥아더 동상은 최근까지 좌파 단체들에 의해 모욕당하기도 했지만 인천 자유공원에 당당히 서서 한국의 발전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에 반해 트루먼 동상은 임진각 한구석에 초라하게 방치돼 있는 형편이다. 평가절하됐던 트루먼이 이승만과 함께 호국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에 나란히 섰다.이승만과 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지난달 27일 칠곡 다부동 현장에서 열렸다. 다부동은 한국전쟁에서 연합군이 승기를 잡은 역사적 장소다. 민간 주도로 만든 두 동상은 2017년 완성됐으나 마땅히 세울 곳을 찾지 못하다가 경북도와 칠곡군의 도움으로 다부동에 안착했다. 양 대통령은 1954년 8월 5일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의 트루먼 자택에서 처음 만난후 69년 만에 다부동에서 동상으로 다시 만났다. 제막식 날은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자 ‘유엔군 참전의 날’이기도 해 의미를 더했다.북한의 기습 남침에 즉각 대응한 이승만과 트루먼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표상이 된 두 사람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31

군인은 ‘공짜 인력’이 아니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집중호우가 한반도 거의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직후,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던 해병대원 故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를 찾던 중 갑작스럽게 하천 지반이 내려앉으며 해병대원 세 명이 물에 빠졌고, 두 명은 헤엄쳐서 빠져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채 상병은 그러지 못했다.당시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에게는 가장 기본적 안전장구인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폭우로 인해 하천의 수량과 유속이 급격히 증가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원들은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더구나 이들은 수중구조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인력도 아니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안전불감증을 다시 한번 상기시킴과 동시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청년들을 얼마나 허술하고 박하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은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남성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대외적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선전되지만, 정작 그 의무를 다하는 주체인 청년들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군인들이 외출·외박을 나가는 소위 ‘위수지역’의 물가가 유독 높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징병된 청년들을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다. 이번 폭우와 같이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지역사회에 큰 피해가 발생하면 신속한 복구를 위해 군이 대민지원에 나선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 활동의 일환이며 군 이미지 향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희생이 따른다면 어불성설이다. 하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들에게 상부에서 ‘해병대임을 알리는 빨간색 상의’ 착용을 지시했다는 언론보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대민지원인지를 되묻게 한다.故 채수근 상병의 소속 부대인 해병 제1사단은 작년 가을 태풍 힌남노로 인해 경주와 포항 일대에 막대한 호우 피해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투입되어 활약한 바 있다.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이러한 활동은 대단히 고맙고 소중한 도움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故 채수근 상병과 같은 불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 의미 또한 퇴색될 수밖에 없다.이제 군인을 ‘공짜 인력’으로 생각하는 일은 그만두자. 그들도 군인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와 동등한 사람이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천연자원이 없어 사람이 최고의 자원’이라는 나라에서 사람의 가치와 목숨을 가장 하찮게 취급하는 아이러니한 일들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 수뇌부의 인명 경시 경향과 안전불감증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모병제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가주의·권위주의적 가치들이 힘을 잃은 현재, 징병제야말로 ‘열정페이’로 유지되는 가장 거대한 시스템이 되었다. 언제까지 애국심을 이유로 청년들의 시간과 생명을 착취할 것인가. 휴전 중인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모병제 전환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2023-07-31

이제는 죽음에 대해 답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죽음이 계속된다. 그 죽음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죽음을 본다. 그 죽음에 대하여 울분을 토하며 격분해도 그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죽음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죽음에 우리는 아직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학부모의 도를 넘은 항의와 전화에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어야 할 교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달리했다. 한쪽만을 바라본 법의 폐해가 발생하고 이미 여러 명의 교사가 목숨을 잃었어도 우리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저 교사의 죽음을 바라보기만 한다.신림동의 ‘묻지마 살인’에 대하여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비난만 할 뿐 그렇게 지나왔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였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슬픔의 자리에 꽃은 쌓여가는데, 문제 역시 그대로인 채로 쌓여만 간다. 혹시 내가 그 대상자가 아니라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어처구니없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망연자실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여러 번의 신고 전화가 관련 기관으로 걸려 왔는데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고,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제방을 넘어 지하차도로 들어찬 물은 차도를 달리던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서로가 상대가 잘못했다는 말만 하느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도 어렵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생각은 없는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사회를 살피는 감시 카메라는 더 늘어난다. 매스컴은 홍수를 이루고 심지어 개인 방송하는 크리에이터도 늘어나 많은 사람이 아는데도 왜 이런 불행한 일이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가. 죽음이 던지는 계속된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죽은 자들은 어서 답을 달라고 하는데 속 시원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인간이 쌓은 경제적인 부로 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하는데 삶은 더 힘들어진다. 안전을 위한 법은 늘어나고 난간을 지지하는 지지대는 굳건하게 세워지지만, 삶과 죽음은 편리한 삶의 도구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 가장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야 할 주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에 속수무책이다. 사람 사이에는 어떤 안전장치를 해야 할까.다양한 삶으로 정작 가까워야 할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혼자만의 시간과 생각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 주위에 푸른 하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자기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자기 자식보다 남의 자식이 누리는 행복을 보며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낸다.판단의 기준은 자신이 된다. 남의 행복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볼 줄도 모른다. 이 세상을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옆의 사람들이 있어야 내 삶이 더 단단해진다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나의 주위에 사람이 있음을 느껴보고 몸이 불편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이라도 주위를 향해 돌릴 때 세상은 더 살만하지 않을까. 이제는 죽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한다.

2023-07-31

이야기가 살아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벽은 이야기를 품는다. 바위에 그림을 새긴 구석기의 벽도 있고, 사후세계관이 그려진 고분벽화도 있다. 분필로 ‘00바보’라고 낙서한 옆집 벽도 있고, 공공미술로서 특별한 주제를 표현한 벽화마을이나 거리도 있다. 벽에 담긴 이야기는 책에 담긴 것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이야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고 사랑받는데 다른 이야기는 외면받고 지워지기도 한다.대구에는 사랑받는 이야기를 품은 벽화거리가 하나 있다. 그곳은 오래된 골목에 한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덧입힌 곳이다. 다리를 꼬고 기타를 치는 그, 마이크와 하모니카를 앞에 둔 그, 오토바이를 탄 그, 포장마차 사장이 된 그. 아름다운 노래 가사와 슬픈 목소리와 환한 웃음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광석이 벽마다 그려져 있다. 익살스러운 옆집 아저씨처럼 활짝 웃고 모습이 어둡고 낡았던 좁은 골목길을 환하게 밝힌다.‘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2010년 슬럼화되던 방천시장과 그 일대를 살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그의 음반 ‘다시 부르기’와 ‘그리다’를 혼합해 거리의 이름을 정하고, 대구의 미술작가 20명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노래만큼이나 다양한 김광석을 만들어냈다.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한 볼거리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있어요. 그 상처는 반드시 누군가 보듬어 안아야만 해요. 제 노래가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되었으면 해요. (1995년 샘터 9월호 인터뷰 중에서)’ 이 거리에는 그의 말처럼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벽마다 새겨져 있다. 김광석을 형상화한 벽화나 동상, 지금도 애잔한 그의 목소리, 유품이나 콘서트 영상을 볼 수 있는 스토리하우스, 그의 노래를 재해석한 버스킹(busking),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노래 가사에 사람들은 마음을 연다.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등 그의 노래는 태어난 이래로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친구가 되어 줬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대구의 도시재생사업 중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던 것은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나와 이웃의 이야기가 거리에 수놓아졌기 때문이다.소규모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벽화거리 조성은 2006년 ‘아트인시티’때부터 도시재생사업으로 활용되었다. 나눔·희망·주거환경 개선·관광 활성화 등 공공의 목적을 내세워 주로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의 미관을 정비하기 위해 채택되었는데, 특히 우범지역의 범죄 발생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지금은 벽화마을이나 거리가 조성되지 않은 지자체를 찾아보기가 더 힘들 정도로 범람한 상태다.대구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마다 벽화마을이나 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마비정 벽화마을, 구룡산 해맞이마을, 옹기종기 행복마을, 두류 벽화미로마을, 이천동 99계단 벽화거리, 이인성 화가 벽화거리, BTS 뷔 벽화거리, BTS 슈가 벽화거리,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들안길 시화거리, 영남대로 과거길 벽화골목, 칠성시장 역사벽화길 등 곳곳에 그려졌다. 작은 공원이나 학교 담벼락 또는 계단, 가로등이나 전봇대 등에서도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술가, 벽화시공업체, 봉사자 등 벽에 그림을 그리는 주체도 다양하다.사실 모든 벽화마을이나 거리가 다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벽이 품은 이야기가 마음의 현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특색 없는 꽃이나 나무 등과 같은 자연을 그리고, 원색을 심하게 사용하고, 일관된 주제가 없으며, 예술가의 창의적 표현이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실거주자의 사생활을 침범하여 불화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벽화가 지워지기도 한다. 부동산 가격이 요동쳐 외부 자본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가난이 상품화되고, 낭만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건 비일비재다. 페인트라는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이나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 경우도 있다.‘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본래 도시순환도로 옆에 있는 어두침침하고 푹 꺼진 좁은 골목길이 었다. 오래된 회색빛 시멘트벽이 무심하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그 거리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되살아나고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벽화를 그려 공간을 재정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광석의 삶과 노래’라는 치트키가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주민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과 잘 유지되는 사후관리, 시대에 맞춰 변하려는 노력도 몫을 한다. 물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겠지만 말이다.수많은 벽화가 전국 방방곡곡 마을과 거리에 무분별하게 그려졌다. 대구에 그려진 벽화마을과 거리도 꽤 많다. 벽은 자신의 품은 이야기를 그저 드러낼 뿐이다. 단순히 도시의 미관 정비와 관광상품화가 아닌 진정한 도시재생으로서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벽이 품은 이야기가 마음의 현을 움직이는 그런 이야기이길 바라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7-31

마음을 글로 쓰는 일의 어려움

인간이 글쓰기로 무언가를 표현해 온 역사는 꽤 길 것만 같지만, 그것은 그리 길지만도 않다.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대해 느끼고, 배우고, 말로 그것을 표현하고, 또 글로 그것을 표현해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이제 무언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쯤에는 인간의 감각은 둔해지고, 지력은 쇠퇴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예술 중 문학이라는 것이 늘 기괴한 착상과 화려한 수사로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그렇게 단순하기 그지 없는 세계로 돌아오고 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내뱉는 말과 글은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다.인간은 글쓰기라는 미디어를 가지고 세상을 그려내기도 하고, 저 멀리 바깥에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그려내기도 한다. 글쓰기를 가지고 재현하는 세계는 결코 구체적이지도, 감각적이지도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억지로 쥐어짜낸 확신이 아니라면 가지기 어렵다. 특히 어떤 인간의 마음속을 흘러가고 있는 생각이라면 더욱 그렇다. 단지 있었던 일을 글쓰기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도 같은 흔들림을 옮기는 일은 그래서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소설은 대부분 인간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물론 흥밋거리로 읽는 소설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언어예술로 간주되곤 하는 소설이라면 대부분 세상의 일들을 살피거나 인간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생각이나 심리를 그려내는 것을 마치 자기의 사명인 양 간주해왔다. 세상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과 마음속을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글쓰기는 분명 다른 글쓰기와는 조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심리가 흘러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들은 문학 내에서도 예술적인 작가로 분류되는 것이 아닐까.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20세기 초반 자신이 태어났던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그 사회상 위에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를 얹어 두어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예술적 아이콘이 되었다. 물론 조이스 이전에도 인간의 심리를 언어로 그렸던 작가들은 많았지만, 우리가 그로부터 심리주의 소설의 기원을 삼는 것은 그가 처참하고도 궁핍한 당시의 현실 위를 흘러가는 인간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얹어두었기 때문이다.지금의 소설 작가라면 누구나 이런 방법을 쓰고 있지만, 100년 전 조이스가 시도했던 일종의 심리주의, 조금 더 정확히는 심리적인 실재주의의 방법론은 인간의 마음을 글쓰기로 묘사해내는 데 고심했던 다른 작가들이 찬탄할 혁명적인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조이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여느 소설과 같이 먼저 인물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 아일랜드의 거리들이 들어오고, 그리고 배경음악처럼 세계 위에 보이스 오버되어 인물의 마음이 속삭이기 시작한다. 조이스와 같은 시대의 평론가들이 그의 심리묘사를 음악성에 빗대었던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이다.사실 제임스 조이스는 1930년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백석이나 박태원 등이 그를 좋아해 자주 소개하곤 했다. 그가 한국과 똑같이 식민지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의 작가라는 동질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도구로 인간의 마음을 그토록 세련되게 그려낸 작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여전히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그렇게.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