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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선정국 읽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부를 수립한 지 73년이 되는 대한민국은 그동안 6·25전쟁과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항쟁, 대규모 촛불시위 등 몇 번이나 위기와 혼란을 거듭하면서도 상당한 발전을 지속해왔다. 산업화로 일컬어지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불리는 자유민주주의 신장은 서로 길항하면서도 결국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한 단계 더 경제적 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70년 역사는 큰 흐름에서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그 결과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그러나 아직도 균열이 깊은 이념갈등과 핵무장한 북한은 커다란 불안과 위협의 요소로 남아 있다. 일차적으로는 남남갈등으로 대변되는 좌·우 이념의 대립이 국민화합과 나라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군사정권에 이어 문민정부가 시작되자 그동안 탄압을 받았던 좌파들이 양성화되어 세력을 확장해가면서 우파와의 갈등과 불화가 끊이지 않다가 소위 주사파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매우 심각한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백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전기(轉機)가 될 것이다. 좌파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그것은 곧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1980년대 이후 각종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한 좌파세력은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 등이 주도하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마침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친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몰지각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세력이 주축이 된 정권은 얼마 못 가서 그 한계와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 정권은 적폐로 몰아 처벌해놓고 정작 자신들의 비리와 부정을 덮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가 하면 소득주도 성장이란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나라 경제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굴종적 대북정책에 목을 매는가 하면 노골적인 반미친중으로 자유우방들과의 외교를 망치고, 세계 최고 기술력의 원전을 포기하는 대신 자연을 훼손하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태양광발전에 매달리고, 가뭄과 홍수에 대비한 4대강 사업을 악의로 왜곡 폄훼하여 파괴하려는 정권이다.좌파정권의 파렴치와 부도덕성은 대선후보 선출에서 정점을 찍은 것 같다. 운동권 출신 권경애 변호사의 탄식처럼 이재명 후보가 그들의 결론이자 결과일진대,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아직 다하지 않아 새로운 전기가 올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천하에 드러난 그의 패륜적 행태나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나랏돈 퍼주기, 대장동 사건을 비롯한 각종 비리에 버물린 의혹들만 하더라도 도무지 국정을 맡길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2021-11-25

모병제(募兵制)

모병제는 직업군인으로 지원한 사람을 모아 군대를 유지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징집제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세계적으로 보면 과거 징집제를 실시하던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 모병제로 돌아가는 추세여서 우리나라 징병제도 시간이 필요할 뿐 모병제로 바뀌어 갈 가능성이 높다.아직은 남북 대치 등 안보와 관련, 민감한 현안이라 유력 후보들 사이에서는 노골적 공약이 나오지 않으나 반전 기회를 노리는 군소 대선후보들은 내년 대선에 맞춰 모병제를 공약으로 채택해 젊은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준모병제 도입을 공약했다. 전문 부사관을 군병력의 50%까지 확보하고 징병되는 일반병의 수를 줄여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병역의무를 마친 청년에게는 사회진출지원금 1천만원도 제공하자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단계적 모병제를 내세웠다. 2029년까지 의무복무 4년의 전문병사를 혼합 운용하는 징집·모병 혼합형태를 제시했다.일부 군소후보의 모병제 공약이 얼마나 먹혀들지 알 수 없으나 생활밀착형 공약으로서 상당한 관심거리다. 우리나라 징병제는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청년층의 기회비용 상실과 남녀간의 갈등 유발 등 최근들어 자주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정부의 합당한 보상이 없는 부분도 정부의 부담이다. 최근에는 남녀평등 군복무를 이유로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모병제는 인적자원의 질을 높여 정예 부대화하고 현대화, 과학화된 장비로 국방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 등 위협받는 한국 안보와 재정적 문제가 걸림돌이다. 모병제 공약이 특별히 주목되는 만큼 선거에도 먹혀들 지는 미지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1-25

여야 후보의 이미지 정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 선거에 나온 후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이른바 이미지 정치다. 실제로 대선 승부는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적인 우열에 달려있지 않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의 양대 축으로 나눠진 진영싸움이 우선이고, 양 진영의 후보 가운데 어느 쪽이 국민들에게 더 친근하고 설득력있게 다가서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그래서일까. 대선 100여 일을 앞두고 여야 대선후보들은 벌써부터 ‘이미지’경쟁에 나섰다. 무겁고 딱딱한 정책공약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으로 민심을 끌어오려 한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들어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감성 이미지의 정치다. 이 후보는 지난 20일 충남 논산의 재래시장 좌판에서 토란 나물을 파는 노인에게 물건값을 치르며 훌쩍였다. 고인이 된 모친 생각이 났다고 했다. 다음 날인 21일 국립대전현충원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에서는 부인 김혜경 씨와 함께 눈물을 훔쳤다. 최근 있었던 선대위 회의에서도 전국 순회 도중 시장에서 ‘가난한 사람 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우는 사람이 있었다고 소개하며 울먹였다.이 후보가 사흘 연속 눈물을 보이자 이런저런 해석이 나온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라는 자체 평가가 대표적이다. 옷차림도 달라졌다. 경선기간에 말끔한 수트를 입었다면 대선후보 선출 후 본선에서는 클래식한 느낌의 캐주얼 정장으로 바꿨다. 경선 때는 안정감을 주는 게 우선순위였다면 지금은 세련미를 돋보이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이에 맞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역시 최근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부쩍 노력하고 있다. 2030 세대 일각에서 지적하는 소위 ‘꼰대’ 이미지에서 탈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의 헤어스타일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머리에 힘을 주고, 눈썹 메이크업도 짙어졌다. “인상이 달라졌다”는 평이 잇따르고 있다. 옷차림 역시 바꿨다. 경선 때는 간간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본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선이 깔끔한 감색 톤의 정장을 착용하고 있다. 말쑥하고 정중한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다.윤 후보는 공개석상에서 앉은 자세가 달라졌다. 정치 입문 초창기 다리를 과하게 벌리고 앉아 ‘쩍벌남’지적을 의식한 것이다. 메시지도 미리 준비된 원고를 활용해 정제된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실제로 최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출판기념회 축사도 미리 적어온 종이를 보며 진행했다. 하루 한 두 차례 정도 취재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설명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정치 입문 초반 말실수로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했던 윤 후보가 점차 이미지 정치에 적응해가는 모습이다. 과연 누구의, 어떤 이미지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대권을 차지하게 될까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2021-11-25

푸른 풀밭, 쉴 만한 물 가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힘겹게 우물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물을 긷는 한 노인을 보고 자공이 두레박을 사용해보라고 권면했다. 노인은 대답하길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쓰게 되고 기계를 쓰다보면 언젠가는 기계의 종이 되어 버리게 된다”며 두레박의 사용을 거절했다. 두레박을 기계에 비유한 것이다. 기계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인심(人心)이 기심(機心)이 되어 인간본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기계와 자본의 결합으로 이익을 추구하면서 편리함을 극대화 했지만 반면에 지구온난화를 불러와 자연이 파괴되고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으로 동식물의 멸종을 가속화 시켜 지구종말 시계가 1분전으로 다가왔다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경고했다. 생태학자는 이미 기계문명의 질주는 자연을 회복시킬 수 있는 터닝 포인트를 지났다고 하면서 기계와 자연의 공존을 논할 때가 아니라 이제는 자연으로 뒤돌아가야 한다고 했다.정복자적 신학이 주축인 서구신학은 자연에서 생명원리를 제거하고 물체로만 인식하려는 데카르트-뉴튼-베이컨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받아들여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신이 주신 권리라 주장하면서 기계문명을 가속화 시켰다.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로 초래한 기후변화의 위기에 서구기독교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자연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최근에 학자들은 자연의 치유기능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자연을 하루 20분 이상 대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13.4%가 줄어들고, 신체를 강화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엄청난 치유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자연은 정신과 육체만을 치유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루소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 때에는 불평등과 빈부의 양극화와 인간성 소외가 없었다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자연은 사회적 질병까지도 치유하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면서 그 속에 치유의 속성을 넣어 두었다. 영혼이 피폐해진 다윗이 치유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이 다윗을 데려간 곳은 성전이 아니었다. 다윗은 시편에 고백하기를 “그가 나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데려가서 거기에서 내 영혼을 소생 시키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능력이면 어디서나 영혼을 소생 시킬 수 있지만 왜 자연 속으로 데려가서 영혼을 소생 시켰을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서나 똑같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계 속에 묻혀 있으면 내가 기계의 일부라는 생각을 가지지만 자연 속에 들어가면 내가 피조세계의 일부임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은 내 영혼을 소생시킬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것이 우리가 자연을 회복하고 찾아가야 할 이유이다.

2021-11-24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실현될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1921년 상해에서 모택동이 창립한 중국 공산당이 올해로서 창당 100년을 맞이하였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11월 11일 19기 6전 회의에서 ‘역사 결의’를 통과시켰다. 내년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 통치자의 ‘10년 연임’ 원칙을 깨고 3연임의 길을 열기 위함이다. 7천400자의 ‘역사 결의’는 약 28%를 시진핑의 업적과 성과찬양에 할애하고 있다. 시 주석의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신시대를 담은 이 문건은 1945년 모택동의 사회주의 혁명, 1981년의 덩사오핑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이은 세 번째 문건이다. 그는 과연 중국식 굴기(5D1B起)로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할 것인가.시진핑은 당 혁명원로이며 광둥성 서기였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중쉰은 문화 혁명 시 반동분자로 몰려 오지로 추방되었다. 시진핑은 비참한 토굴에서 공부하여 칭화대학 화공학과를 졸업하게 된다. 베이징 대학이 중국 인문사회계의 최고 대학이라면 칭화대학은 자연 공과 계열의 최고 대학이다. 그는 덩사오핑 시절 부친의 복권과 복직으로 공산당에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의 인내력과 뚝심은 과묵한 그의 표정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모택동과 덩사오핑의 반열에 오르려 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앞에는 중국적 대내외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식 개혁·개방 과정의 빈부의 격차, 집권 관료들의 부패는 그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부패 청산이 시진핑의 국정 철학이지만 중국 고위 관료층의 부패는 만연한 실정이며 최고위층 자녀가 국가 기업의 최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 신장 위구르와 티벳의 인권 탄압은 이번 중미 정상 회담에서도 최대 걸림돌이 되었다. 홍콩의 반중 민주화 운동은 시진핑의 잠재적 불안 요인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중국식 시장경제와 경제 발전이 중국 공산당의 중앙 통제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중국제조(中國製造)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한 세계 최강의 건설을 국가 목표로 제시하였다. 미국, 영국, 호주 중심의 오커스(AUKUS)와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쿼드(QUAD)는 사실상 중국을 봉쇄하고 있다. 세계 최강 제국이 되려는 중국몽은 거대 미국에 원천봉쇄 당하는 형국이다. 이번 미·중 정상 간의 3시간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도 미국 바이든의 강력한 제어력 때문이다. 미국은 시진핑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대만의 독자성을 지지하려 한다. 미국의 군사력과 중국 포위 전략은 중국이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이다.시진핑의 중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통해 G2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거대 제국 미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은 덩사오핑 이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교묘한 결합을 시험중 일뿐이다. 중국 공산당은 경제발전에 따라 성장하는 다원주의적, 자유주의적 가치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의 위상강화와 3연임은 결국 권력 독점과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은 정치학의 진리이다. 시진핑은 중국적 현실적 모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21-11-24

내 안에 너 있다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지난해 열지 못했던 포항국제불빛축제가 2년 만에 다시 영일만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지난 20일과 21일 펼쳐진 축제는 예년에 비해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으나 다른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한 축제여서 가슴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축제는 흥겨운 놀이가 중심인 ‘축(祝)’과 제의적 의미가 담긴 ‘제(祭)’를 합쳐서 만든 말이니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을 위무하는 마음과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고자 하는 간절한 기원이 함께 담긴 이번 행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축제가 아니었을까?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던 축제가 다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최근의 ‘위드 코로나’방역지침이 일상회복을 위한 단계적 시행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온·오프라인 병행의 하이브리드 축제라는 신형식의 축제를 실현하였다. 개막식 유튜브 생중계에는 무려 15만여명이 실시간 참여하는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했다.이 축제의 백미는 화려한 연화행사, ‘국제불꽃쇼’이다. 매년 해외의 전문 불꽃쇼 팀들이 참가하여 수준 높은 연화연출을 선보였으며, 국내팀과 치열한 경연을 벌였다. 그러나 올해는 프로그램 이름부터가 ‘미니 불꽃쇼’였다. 대규모의 화려함 보다는 소박하고 절제된 불꽃으로 코로나 극복과 일상 회복의 기원을 담았다. 포항시가 용감하게 축제를 결행한 까닭은 지나치게 위축된 시민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용기의 부여가 필요하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시민들은 흔쾌히 공감하였고, 개막식과 미니불꽃쇼를 전후하여 행사장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그동안 침체됐던 지역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하였다. 물론 안전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뒤따랐다. 행사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백신 2차 접종완료 확인을 거쳐 발열체크와 안심콜 등록 후 입장이 허락되었고, 방역요원의 안내를 준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축제의 성공을 도왔다.필자도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축제의 흥겨움을 즐겼는데, 개막행사 도중 의미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인기 연예인의 축하무대가 한창 진행되던 중 사회자가 무대에 다시 등장하여 잠시 안내 방송을 하였다. 미아를 찾는다는 안내였다.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을 중시한 진행에 참가자들은 모두가 무언의 공감으로 동의하였다. 곧이어 다른 행사 때문에 뒤늦게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경우는 사회자의 등단요청을 정중히 사양하였다.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게 어필하려 애쓰기 마련인 정치인이 공연에 방해가 될까 조심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고, 거듭된 권유에 짧은 인사를 전하며 미아를 찾았는지 염려함으로써 도백(道伯)의 품격을 보여주었다.오래전 어떤 드라마에서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말로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다. 밝은 세상이라 시민들은 이미 정치인의 언어를 다 알고 있다. 수준 낮은 ‘낯내기’ 행태로는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인류에 대한 넘치는 사랑,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내 안에 네가 있음’을 보여줄 때 시민들은 감동하는 법이다. 2년 만에 열린 포항국제불빛축제의 미니 불꽃쇼, 그 뒷맛은 여느 축제의 화려한 불꽃놀이보다 훨씬 더 개운하였다.

2021-11-24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배문경수필가 가을이 익을 대로 익은 날 축제를 즐겼다. 경주 시민이라는 이름 덕분에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화려한 노래와 춤사위가 우리들의 가을에 군불을 지폈다. 고인이 된 이영훈의 자작곡들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맞춰 노래가 울려 퍼졌고,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마음도 아랫목처럼 뜨듯해졌다.그중에서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가슴속에 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두자는 노랫말은 뭉클했다. 삶을 살아내면서 많은 사람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시절 인연이란 말처럼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미련의 끈을 길게 늘였더랬다. 옛사람이 떠난 자리로 새로운 사람들이 틈을 메우는 것을 다 알지 못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다. 그렇게 떠남과 만남이 평생이란 인생을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후배 순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즐겼던 십 대의 노래들은 거의 이문세의 노래로 가득했단다.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는 인기 짱이었다고 말하는 얼굴이 환했다. 그 덕택에 그의 노래 제목이 어린 그녀와 친구들의 모임 제목이름까지 되며 요즘의 BTS만큼의 인기를 누리는 그 가수였다는 이야기가 뮤지컬을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의 노래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색 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어느 학자가 그랬던가. 태어나 십 대까지 듣던 음악이 평생을 찾아 듣는 음악이 된다고. 20대까지는 신곡을 찾아 듣지만 30대가 되면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만 되풀이해서 듣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익숙한 노래들이 음악에 대한 기억저장고에 묻혀 있다가 이따금 사람이 그리울 때 꺼내 듣는다. 그래서일까. 나 또한 나이 차이가 나는 나훈아의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꿈속에 나온 적도 있으니 어른들이 흥얼거리던 그 시절의 노래를 귀 너머로 듣고 자란 탓이겠거니 싶다. 지금도 나는 그의 음악과 열정이 묻어나는 리듬이 흘러나오면 쉽게 따라 하고 어깨가 들썩인다. 그리움처럼 말이다.나의 저장고에 각인된 노래야말로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추억이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중에 앞면을 차지하는 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무라 소지로의 ‘대황하’, 최백호의 ‘작은 잎새’이다. 뒷면은 영화로 채웠다. 사랑스러운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이나 스스로 노래까지 부른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애송하는 노래처럼 쪽지편지로 접어서 마음 저장함에 넣어 두었다.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날, 넷플릭스나 OCN을 통해 다시 보면 추억의 그 영화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을 양산(量産)하는지도 모른다.퇴근하다가 문득 이름이 떠오르면 핸드폰에서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수화기 저편에서 어쩐 일이냐고 묻지만 반가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기억 날 때 전화를 하지 않으면 다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나의 말은 진심이다. 상대도 “ 그렇지, 세월이 너무 빨리 가고 있어.” 너무 바쁜 일상의 급류에 휩싸여 작고 귀한 것들을 잃어갈 때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나를 가다듬게 한다. 오래된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상기의 필름처럼 지나가며 세포 곳곳에 산소를 공급한다. 한동안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옆에서 기차를 바라본 적이 있다. 기차에 탄 사람과 밖에 있는 내가 서로 겹쳐질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린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서로를 단지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란 생각을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더러 데자뷔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처럼 그것은 환영처럼 기억의 저편, 막힌 어느 부위를 긁는 느낌이다.11월 늦가을 들녘을 보니 경주의 벚나무에는 두 번째 꽃이 피고 은행나무는 이미 계절의 여운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였다. 연못에 비친 하늘과 나무가 데칼코마니다. 그리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일까.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낙엽처럼 플레이리스트에서 흩날리고 있다.

2021-11-24

나무를 안다는 것

나무와 친해지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우선 나무의 이름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준다. 다음은 수시로 나무 아래 어슬렁거린다. 나무 아래 의자가 있다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퍼질러 앉아도 무방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으면 나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이제는 나무의 몸피를 살핀다. 안아보고 만져보며 나무의 시간을 읽어낸다.생태공원 오솔길을 걸으면 나무를 많이 만난다. 나무의 생김이나 모양을 보고는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잘 가꿔진 공원에는 친절하게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너의 이름이 뭐니? 궁금해서 나무 가까이 가서 이름표를 들춰본다. 거기에는 이름과 꽃피는 때와 열매 맺는 시기가 적혀있다. 이름을 알고 나면 한결 친해진 듯하다.인터넷을 검색해 꽝꽝나무를 찾아보았다. 두꺼운 잎을 불길 속에 던져 넣으면 잎 속의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여 터지면서 꽝꽝 소리가 난다. 야무지고 단단한 것을 두고 나무의 자생지인 남도 사투리로 ‘꽝꽝하다’고 한단다. 실제로 꽝꽝나무는 잎이 사방으로 빈틈없이 돋아나 단단해 보인다. 그래서 꽝꽝나무라고 한단다.꽝꽝나무를 찾으러 생태공원에 갔다. 회양목과 꽝꽝나무가 비슷해 이름표를 찾아 근처를 헤맸다. 공원 중턱을 다 헤매도 보이지 않던 꽝꽝나무가 공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꽝꽝나무라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나무를 발견했다면 이제는 어슬렁거리기다. 나무의 키가 작아 가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잎이 푸르고 가지들이 빈틈이 없다. 가지에 달린 잎 하나를 만져보았다. 이파리가 푸름을 그득 물고 있다. 꽝꽝하게.어릴 적에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 살았다. 촘촘히 울타리가 쳐져 있어도 듬성듬성 집안이 보였다. 어두워질 때까지 노느라 부모님께 혼나는 날이 많았다. 탱자 울타리 사이로 부모님의 상황을 지켜보다 마당에 들어설 기회를 엿보았다. 막걸리를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할 때다. 구판장에서 집에 오기까지 노란 주전자 속에 찰랑거리는 막걸리를 한두 모금 마셨다. 줄어든 주전자를 들고 탱자 울타리에서 걸음을 멈췄다.탱자나무는 촘촘히 돋아난 가시가 있다. 향기도 은은하고 하얀 꽃과 동그란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신맛이 강해 잘 먹지 않았다. 탱자나무를 가리키는 한자는 지(枳)인 데, 선비들의 문집에 귤의 종류로 감귤, 유자와 등자(橙子)가 언급된다. 등자는 신맛이 강한 광귤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탱자의 다른 이름이다. 등자가 열리는 나무로 부르다가 탱자나무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이순혜​​​​​​​수필가 자귀나무는 생태공원 안쪽에 있다. 새끼손톱 반 크기의 자잘한 자귀나무 잎은 해가 지면 서로 닫히는 수면운동을 한다. 남녀가 사이좋게 안고 잠자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야합수(夜合樹), 합혼수(合昏樹)라 하여 부부의 금실을 상징한다. 또 자괴목, 좌귀목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좌귀나무, 자괴나모를 거쳐 자귀나무로 변한 것이다. 자귀나무의 상태를 살피려고 자주 공원에 갔다. 나뭇잎이 닫히는 그 모호함의 경계에서 관찰하고 싶어 저녁때 가 보았다. 매번 알 수 없었다. 아직도 자귀나무를 알아가는 길이 멀다. 자귀나무는 이른 아침과 어둠이 완전히 내린 후에 보아야 한다.댕강나무는 나뭇가지를 꺾으면 ‘댕강’ 부러진다고 하여 댕강나무라 지었다. 꽃이 핀 댕강나무를 보면 연분홍 꽃이 새 가지 끝에 모여 핀다. 꽃 하나하나는 긴 꽃자루를 가지고 있고 서로 떨어져 있어서, 꽃이 동강동강 피어 있다는 뜻으로 ‘동강나무’라 하다가 댕강나무로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오월에 피는 댕강나무꽃은 가지처럼 댕강거리며 떨어지지 않는다. 향기를 뿜으며 살포시 내려앉는다.층층나무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가지를 살펴야 한다. 층층나무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는 방식은 마주나기, 어긋나기, 돌려나기로 뻗는다. 층층나무는 가지가 거의 수평으로 여러 개가 한꺼번에 돌려나기로 자란다. 마디마다 규칙적으로 층을 이루기 때문에 ‘층층이 나무’라 하다가 층층나무가 되었다. 숲에서 다른 나무를 제치고 빨리 자라는 특성이 있어 폭군 나무라는 이름도 있다.이름을 안다는 것은 인식이다. 생태를 안다는 것은 관심이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친구 맺기이다. 어루만지고 보듬어 준다는 것은 사랑이다. 나무 앞에 서면 나는 나무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2021-11-24

영화 ‘아마겟돈’

영화 ‘아마겟돈’은 텍사스 크기의 행성이 시속 2만2천마일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해 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행성에 800피트의 구멍을 뚫어 핵탄두를 폭발시켜 행성을 둘로 쪼개 충돌을 피하는 스토리다.실제로 이런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물체를 강하게 충돌시켜 궤도를 바꿀 수 있는지 실험할 우주선이 미국에서 발사돼 화제다. 미래에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할 상황이 됐을 때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생물을 구할 방어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으로, 내년 9월쯤 우주에서 실제 충격 실험이 이뤄진다.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이중 소행성 경로 변경실험(DART)’을 수행할 우주선을 발사했다. DART 우주선의 임무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을 때 인위적으로 비행 궤도를 바꿀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다. DART 우주선은 태양계 소행성인 디디모스(지름 780m)와 디디모스 주변을 공전하는 위성 격의 작은 소행성 디모르포스(지름 160m)에 내년 9월쯤 바짝 접근한다. NASA는 DART 우주선을 디모르포스에 시속 2만4천㎞로 충돌시켜 궤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관찰할 계획이다. 실험에 성공한다면 지구가 소행성에 의해 실제로 해를 입을 가능성이 생겼을 때 대응할 방법이 생기는 셈이다.과학계에선 지름 300m짜리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대륙을 파괴하고, 1㎞ 이상이면 지구 전체에 큰 피해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공룡을 비롯해 전체 생물의 75%가 사라진 6천600만년 전에는 지름 10㎞짜리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는 설명이다. 우주에서 닥쳐올 위기도 유비무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24

생각을 구부리는 두 가지 방법

장규열 한동대 교수 그가 죽었다. 이제는 말이 없다. 겨레와 역사 앞에 치부와 치욕만 남기고 누워버렸다. 듣지 못한 그 한마디가 참으로 아쉽지만, 들었다 해도 선명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막이 내렸음을 확인하며 한숨 돌린다. ‘서울의 봄’ 기운에 찬물을 끼얹으며 들어섰던 군인들 앞에 국민의 시간은 멈추고 말았다. 맨 앞에 섰던 그는 잔인하고 거침이 없었다. 군사반란을 넘어 광주를 도륙함으로 권력을 거머쥐고 무도한 세월을 주도하였다. 찬탈한 자리에 앉은 동안 그 어떤 정책적 성과가 있었다 해도, 수다한 시민이 입은 상처와 무너져내린 헌정질서는 돌이키기 힘든 상흔을 남겼다. 역사 앞에 천추의 오점을 남긴 그를 터럭만큼이라도 인정하는 일은 삼가야 할 터이다. 그가 입을 다물고 사라져버렸다.전횡이 난무하던 시절, 언론이 암흑 속에 신음하였다. 무자비한 언론사 통폐합과 철저한 보도내용 검열을 통하여 치밀하게 통제하였다. 쿠데타의 소위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기도 한동안 힘이 들었다. 자신들을 칭송하거나 유리한 기사거리만 매체를 통하여 전달되었고 국민들은 한동안 사건의 실체를 파악조차 못하는 세월을 보냈다. 오히려 외신을 통하여 해외교포들이 몇 가닥 실체를 알고 지낼 뿐이었다. 언론의 입을 막아 자신들의 악행을 감추었고 국민들은 정보의 그늘에서 억울하고 어두운 채로 수년을 지내야 했다.통제 다음으로, 국민을 위한 언로(言路)를 왜곡하고 어렵게 하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디지털과 온라인의 도래와 시대적 트렌드를 따라 오히려 ‘너무나 많은’ 뉴스를 넘치게 하여 진실과 진정성을 묻어버릴 수도 있다. 한 가지 소식에 관해서도 폭넓고 포괄적인 취재와 보도가 가능해지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검증이 부실한 사실의 전달을 통한 거짓과 가짜뉴스가 넘치게 하여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릴 위험도 있다. 지난 시기에 횡행하던 통제와 검열이 국민의 언로를 차단했다면, 오늘 만난 범람과 혼돈은 정보의 질적 저하와 내용의 왜곡을 불러온다. 지난날 기자정신이 양심바른 보도에 심각한 갈증을 느끼며 신음하였다면, 오늘 언론상황은 고삐풀린 정보의 바다에서 진실을 향한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폭압과 통제로 국민을 힘들게 했던 그를 ‘마지막 독재자’로 기억한다면, 정보의 홍수를 이용해 왜곡과 선동으로 국민을 속일지도 모를 ‘새로운 권력자’의 출현을 경계해야 한다. 조직적 엄호를 배경으로 불의한 권력을 휘둘렀던 그를 기억한다면, 기득권층의 지지를 집요하게 호소하며 권력을 탐하는 무리를 경계해야 한다. 오로지 국민과 나라의 내일을 향한 비전을 설정하고 부당한 세력들과 야합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국정을 살필 리더십을 기대할 뿐이다.역사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던 그를 뒤로 하고, 겨레와 나라가 새로운 용솟음을 다짐하는 몇 날이 되었으면 한다. 민주주의가 실력을 발휘하려면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대선의 과정과 이후의 국정에도 국민이 지폈던 양심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 새 나라를 기대한다.

2021-11-24

오동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랜만에 전남대-경북대 인문대학 교수 모임이 있었다. 작년 7월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에서 개최한 정기 교류 모임 이후 처음이니까, 어느새 1년 4개월이 지나버린 셈이다. 누가 시키거나 바란 것도 아니건만 세월만큼은 꼬박꼬박 어김없이 제 길을 간다. 더러는 무심함을 넘어 냉담함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 시간의 정속 운동이다. 이번에는 여수(麗水)에서 ‘인문학 대중화’를 주제로 하여 활발한 발제와 토론이 오갔다.제한된 인원과 경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지역에 인문학을 보급하려는 노력이 역력하게 개진되었다. 다만 나름의 실천 방향과 방법론과 경륜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서로 배우고 갈고 닦아 앞으로 나아갈 방도와 협력할 지점도 환하게 보이는 것이 유쾌했다. 우리 속담에 이르기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흥미로운 발제와 토론을 뒤로 하고 오동도로 걸음을 옮긴다. 소설(小雪)을 목전에 둔 터라 저녁해가 빠르게 자취를 감추는 날이어서 해거름의 어둠이 이내 찾아든다. 아, 그런데 겨울이 아니라, 5월의 봄날처럼 훈훈한 바람이 갯내음을 전한다. 심훈의 ‘5월의 바다’가 떠오를 만큼 훈풍이 보름달을 두둥실 띄우는 것이다. 간난신고(艱難辛苦)에 시달리던 식민지 조선 아낙의 고단하기 그지없던 삶을 그려낸 심훈의 따사로운 정서와 민족애!오동도 산책길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말끔하게 단장한 길마다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다. 겨울이 닥치고 매서운 바람 불면 선홍색 동백꽃이 다투어 피어났다가 모가지째 툭툭, 소리 내며 지상과 작별할 터. 그 장관(壯觀)이 눈앞에 삼삼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오래전 10시간도 넘게 열차를 타고 처음 밟았던 오동도는 이제 없다. 마음의 고통을 달래려 불쑥 올라탔던 야간 삼등열차의 추억은 아득하게 사라져갔다.먼 화물선과 어선의 등불이 장계의 ‘풍교야박’에 그려진 것처럼 나그네의 객창감(客窓感)과 감상적인 서정을 일깨운다. 어찌 심사가 복잡하지 않겠는가?! 늦어진 저녁 자리에 울려 퍼지는 옛노래 가락이 떠나간 세월을 불러 세운다. 그래, 너는 어디로 갔더란 말이냐?! 우리의 놀랍도록 청정했던 시절과 눈물과 땀방울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모든 사라진 것과 지나간 것이 불러일으키는 애잔함과 향수가 깊게 찾아드는 시각.어쩌면 인문학은 상실과 망각과 추억의 어떤 지점에서 우리의 시공간과 관계와 인연을 반추하도록 인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문학은 어렵게 특화한 신상품이 아니라, 백거이가 주창한 ‘노구능해(老軀能解)’처럼 쉬워야 하리라. 민족시인 김소월이나 윤동주, 이육사의 시 가운데 이해되지 아니하는 시가 있던가! 시는 모름지기 잘 읽히고 받아들이기 편하며 우리의 영혼을 후려갈겨야 하지 않을까.오동도의 밤만큼이나 보름밤의 정취도 여간 깊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사는 정리(情理)가 이런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창공의 달도 했을 터였다.

2021-11-23

가정맹어호

세금 이야기를 하면 자주 등장하는 고사성어가 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는 뜻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다. 예기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산을 넘어가던 중 세 개의 무덤 앞에서 흐느껴 우는 여인을 발견한다. 사연을 알아보니 산 중에 살다보니 호랑이에게 시아버지와 남편이 잡혀 죽었고, 이제는 아들마저 호랑이 밥이 됐다고 한탄했다. 공자는 그러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이곳에 살면 무거운 세금을 내거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당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가렴주구란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산을 뺏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당시 전국시대는 패권다툼으로 전쟁이 끊이는 날이 없어 벼슬아치들의 세금횡포가 횡행했다.정부가 올해 종부세를 대폭 인상 고지하면서 종부세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다. 1주택 종부세 대상자가 수백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고 2주택 이상자 가운데는 1억원의 고지서를 받은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납세자 1천여명이 위헌소송 준비에 나서면서 현정부의 종부세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내려질지 관심이다.세금은 국민이면 누구나 내야 할 법적 의무다. 그렇지만 국민으로부터 거두는 세금은 투명하게 집행해야 할뿐 아니라 징수 과정도 정당해야 한다. 세금의 보편성이나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금 부과에 앞서 국민적 정당성 확보도 반드시 필요하다.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면 국민생활이 피폐해지고 민심이반이 일어나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옛 성현의 경고는 새겨 둘만하다. 이번 종부세에 대한 저항은 세금으로서 과도했다는데 초점이 있다. 법적 판단에 따라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금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1-23

수능을 마친 학생들에게

2022학년도 대학 수능 시험이 무사히 치러졌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맞이한 두 번째 수능인데, 지난해만큼 혼란이 생기지는 않아 다행이다. 날씨도 도와줘서 ‘수능 한파’ 없이 포근한 늦가을 날씨 속에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으니 이제 푹 쉬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못 잤던 잠도 몰아 자길 바란다. 물론 논술, 면접고사로 또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야 할 테지만 말이다.지난봄부터 가을까지 격주 금요일마다 한 남자고등학교에 가 강의를 했다. 문예창작부 동아리 학생들을 지도하는 외부 강사로 초빙되어 작년 그리고 올해, 두 해 동안 학생들을 만났다. 드론, 악기, 합창, 요가 등 여러 동아리들이 있는데, 문예창작부에는 우선지망한 동아리 정원초과로 떠 밀려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1, 2학년생 서른 명 중 자기 의지로 온 건 예닐곱 남짓. 학교는 ‘문집’이라는 결과물에만 관심이 있지 동아리 수업 과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의욕 없이 좀비처럼 끌려와 앉은 학생들은 엎드려 졸거나 수학 문제집을 풀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서너 명은 눈이 빛났다. 그 눈빛들과 함께 벚꽃 지나고 장마 지나고 단풍까지 왔다. 지난 10월, 마지막 수업을 했다. 학교 행사로 한 주 거른 것의 보강이어서, 담당교사는 출석 의무 없이 학생들 자율에 맡겼다. 서른 명 중 절반인 열다섯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예정된 두 시간 수업이 학교 사정에 의해 30분으로 단축됐다. 그저 학생들과 인사나 나누기로 하고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먼저 “개인은 엄격한 비개성화 연습을 거쳐, 자신을 온통 가로지르는 다양함, 자신 속을 헤집는 강렬함들을 향하여 스스로 열린 상태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이름을 얻게 된다”던 철학자 질 들뢰즈의 문장을 들려주었다. 12년간의 제도권 교육을 통해 ‘비개성화 연습’을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돼서 여행, 예술, 사랑 등 세상의 온갖 감동들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가치관과 세계인식을 전환케 하는 낯선 충격들을 직접 찾아 나서라는 의미에서였다.그리고 20대, 30대를 먼저 살아본 입장에서 사족처럼 말을 보탰다. 하나, 운전면허를 최대한 빨리 따라. 둘, 여행을 다녀라. 셋, 일기를 써라. 넷, 고전 영화를 보고 고전 음악을 들어라. 다섯, 비속어ㆍ욕설을 쓰지 마라. 여섯, 모든 여성에게 친절해라. 일곱, 직접 요리를 해라. 여덟, 꾸준히 운동해라. 아홉, 자기계발서를 읽을 바엔 그냥 책을 읽지 마라. 열, 취미를 가져라. 열하나, 군대를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젊은)꼰대 소리를 했다.그러고는 내 은사이신 장석주 시인의 시 ‘내 스무 살 때’를 읽어주었다. 장석주 시인은 내가 스무 살이던 해의 어느 늦가을, 고종석 작가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 ‘성년의 문턱에 선 아들에게’를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에게 읽어준 적 있다. 그 글에는 “순금의 정신은 상상 속의 엘도라도가 아니라 바로 네 둘레에 있을 수도 있다 (…) 독립적이 되도록 애써라. 소수자들과 연대하려고 애써라”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때 온몸이 떨리는 감동을 받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참 한심했었지, 그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 투성이었지 (…) 불안은 나를 수시로 찌르고/ 미래는 어둡기만 했지/ 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바다 속을 달리는 등 푸른 고등어 떼처럼/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줄도 몰랐지”(장석주, ‘내 스무 살 때’)마지막 수업으로는 짧고, 인사치고는 꽤 긴 30분이 끝나자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지루한 시간이 마침내 끝났다’며 기뻐하는 의식만이 아님을 나는 알 것 같았다. 며칠 지나 한 학생에게 “문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선생님 덕분에 시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제가 쓴 글들을 한 번씩 보여드려도 될까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세상은 멈춰도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어디론가 가고 또 어디론가 온다. 그렇게 서로 닿는다.수능을 마친 학생들 모두 이제 세상을 향해 스스로 열린 상태가 되어 진정한 자기 이름을 얻게 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순금은 자기 안에 있다는 비밀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2021-11-23

층간 소음이라는 딜레마

화이자 2차를 맞고 돌아온 토요일 오전이었다. 1차 때 부작용을 심하게 앓던 터라 일주일 전부터 컨디션 관리에 들어갔었고, 지레 겁먹었던 시간에 비해 접종은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1차 때도 접종 당일엔 아무런 느낌이 없다 2-3일째부터 부작용이 시작되었으니 무리하지 말자 싶어 재빨리 집으로 향했다.집으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려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암막 커튼을 치고 잠을 자려는 찰나에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지는 반년 전에 이사온 옆집. 그 주인이 키우는 작고 하얀 말티즈였다.후에 알았지만 이는 분리불안 증세 중 하나로 보호자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초조함과 불안을 느껴 하울링을 낸다는 것인데, 문제는 내가 사는 낡은 오피스텔은 방음이 전혀 되질 않는 다는 것이었다. 짧게는 한 두어시간만에 끝나지만 대게는 주인이 올 때까지 울음이 이어져 소음이 내내 지속된다. 이 문제는 6개월 째 매일 진행되고 있었고, 사실 강아지 울음소리 말고도 새벽 3-4시까지 이어지는 큰 티비 소리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이 문제를 그냥 참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참다못한 어느 날엔 포스트잇으로 정중히 부탁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강아지가 분리불안을 앓고 있단 걸 전혀 몰랐으며, 앞으론 주의하겠다는 다소 심플한 대답이었다. 그 뒤론 조금 소리가 잦아드는 듯 했지만 역시나 길게 가진 못했고 얼마 못 가 모든 상황이 전과 똑같아 졌다.이것 말고도 많은 부분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마주해야 하는 이웃이니 모든 걸 감안하고 이해해보고 싶었지만, 특히 몸이 아프거나 예민한 날엔 어찌할 수 없이 날이 섰다. 결론은 음료수를 들고 찾아가보기도, 경비실에 안내 방송을 부탁 드려봐도 진전되는 부분이 하나 없어서, 이 사람은 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과연 있는 것인지. 정말 뾰족한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인지 아득해지고 말았다.그러다 며칠 전 뉴스에서 코로나 19로 인한 층간소음 문제가 급증하고 있단 뉴스를 보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이나 재택근무로 인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전보다 늘다보니 층간 소음 관련 민원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것인데, 한국환경공단의 자료를 빌려와보자면 올해 1월부터 시작하여 8월까지의 층간소음 민원 전화상담 접수 건수는 총 2만2천861건으로 지난해의 1만7천114 건을 뛰어 넘는 급증세를 보였다고 한다.하지만 문제는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센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환경부와 국토부가 운영하는 층간 소음 센터에선 변호사나 주택관리사 등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소음을 측정하고 중재하는 방안도 마련되어 있지만 사실 이마저도 명쾌한 해결 방법이 되진 않는다. 최근 5년간 600여 건의 측정을 시도했으나 층간소음으로 인정받은 건 단 7%밖에 되질 않을 정도로 미미한데다 대부분 그저 ‘중재’를 권고한다는 것에 그치고 만다.이를 보며 많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실 그리 도움 되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건축법 규정이나 개선점 하나 없이 두루뭉술한 말이 오가는 동안 층간 소음에 대한 피해 사례는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가장 최근엔 인천 한 빌라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인한 칼부림 사건도 있었다. 경찰에 신고했단 이유로 보복하기 위해 아랫집을 찾아가 칼을 휘두른 것인데, 바로 옆엔 경찰까지 있던 상황이었지만 커져 가는 상황을 말리지 못하고 끝내 피해자가 발생하고 말았다.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선 큰 발소리를 줄여달라는 한마디에 5분도 안 되어 피해자의 집을 두드리며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다. 동영상으로도 증거물이 남아있지만 접근 금지 등의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층간 소음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점점 가열화되고 있는데 법은 여전히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끝내 피해자여야만 하고 가해자는 끝끝내 죄를 저질러 사건을 일으킨다.언제부턴가 집이 마음 불편한 곳이 되었는지 생각하다보면 서글퍼진다. 이웃 간에 원만한 대화로 이 문제가 정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든 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젠 내 집 안 조차 결코 안심할 수 없다.

2021-11-23

출토 금속유물과 보존처리의 역할

금속은 청동기시대·철기시대처럼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언급될 만큼 고대부터 친숙하게 사용된 재료이다. 출토되는 금속유물들은 주로 금·은·동·철·납·주석 등의 재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만든 장식품이나 무기, 생활도구들이다.아주 오래전부터 고대인들이 만들어 사용한 이러한 물건들은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어 유물이 되고, 관련 역사학자들이 이를 연구함으로써 당시의 금속 제작 기술 수준이나 문화의 발전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경주를 예로 들어보면, 신라가 천년 동안 유지되면서 생산한 다양한 문화 유적지들이 즐비한 곳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는 금속유물의 수량 역시도 매우 많고, 다양하다. 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경주에서는 사람이 생활하던 주거지부터 죽은 자의 무덤, 각종 건물이나 사찰 등 유적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금속유물들이 출토된다.각종 생활도구들 중에는 지금도 사용되는 솥이나 망치와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의례행위 도구나 무기, 장식품들 중에는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유물이 상당수를 차지한다.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유물의 모양을 되찾아주어야 하는데, 알다시피 금속은 흔히 ‘녹이 슨다.’라고 하듯이 쉽게 부식되고, 깨지거나 변형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금속유물은 출토되는 수량은 많지만 온전한 모습이 거의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금속유물들을 연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보존처리를 진행하게 된다. 이건 일종의 선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출토되는 금속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은 크게 보면 ‘기록-처리-기록’의 과정을 거친다. 보존처리 과정 전반에 걸쳐 유물을 가까이 놓고 관찰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정보들을 최대한 기록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발굴보고서에 반영되고, 전시나 교육, 관련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보존처리 기록에는 보존처리 전과 후의 유물 사진, x-ray 촬영을 통한 보이지 않는 균열과 문양들, 분석 장비를 이용한 유물의 성분분석 결과, 유물의 무게나 크기의 변화, 보존처리에 사용한 약품의 종류 등이 포함된다.이러한 정보를 이용하면 발굴현장에서 출토되는 비슷한 모양이나 상태의 유물을 보존처리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또한 관련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유물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에게도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수장고에 보관하면서 금속유물에 손상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면서 안정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기초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처럼 금속유물을 보존하고 처리하는데는 조심스러운 여러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금속유물을 보존처리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대 사회의 기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금속유물의 보존처리는 단순히 녹이 슨 부분을 제거하고, 지저분한 곳을 닦아주며, 깨진 부위를 붙이거나 복원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단순한 기술적 보존처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유물의 크기나 상태에 따라 처리기간은 다르지만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을 계속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실체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을 통해 유물을 관찰하다보면 과거의 조상들이 이 유물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떠한 기술을 적용하였으며, 얼마나 정교한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역사는 복원되고 연구되는 것이다.이러한 관찰을 통해 고대 사회의 제철기술, 장식기술과 같은 금속 가공기술부터 금·은·동·철·청동 등의 재료 특성과 같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이렇게 확보된 정보들은 고고학, 미술사, 공예사 등의 관련 학문에서 더 다듬어져서 고대사회의 모습을 유추하는데 활용된다. 고대 금속유물의 연구 과정은 이처럼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진행된다. 심명보학예연구사 지금은 금속을 생산하고 제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리하며, 더욱 정밀한 물건도 많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책에서 보는 낡고 보잘 것 없는 녹슨 철기 유물 한 점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금속제품은 부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들이 사용했던 화려하면서 섬세하고, 강인하면서도 실용적인 금속제품은 긴 시간이 지나 다소 빛을 바래서 우리 앞에 유물로 나타났지만 그 가치는 여전히 빛나야 하는 소중한 것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우리 역사의 찬란했던 과거 흔적을 찾아 가고 조상들의 금속공예, 더 나아가 당시의 생활문화가 재조명 받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공유하는 것이 보존처리의 역할인 것이다.

2021-11-22

감정의 질감, 시선이라는 오브제

사진이 발명되기 전인 18세기 말, ‘정혼자에게 보낼 딸의 초상화를 그릴 것’ 귀족 부인의 지시는 정략 결혼을 거부한 딸의 초상화를 몰래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산책친구로 위장한 화가 마리안느는 프랑스 어느 작은 섬으로 향하고 대저택에 머물면서 귀족 부인의 딸 엘로이즈를 만나게 된다. 마리안느는 산책시간 동안 엘로이즈를 관찰하고 기억을 더듬어 초상화를 완성해 간다.사실성을 중시하던 고전미술은 초상화에 있어서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돋보이게 해야한다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를 위해 초상화는 법칙이 만들어지고, 법칙 속에서 의뢰자의 만족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그것을 위해 화가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했다. 대상을 고정화시켜 놓은 상태의 작업이 아니라 한정된 조건 속에서 진행되는 초상화 작업은 고도의 집중과 기억의 형상화가 필요한 것이다.정상적인 초상화 작업이 모델과 화가의 마주보는 시선이라면, 마리안느의 초상화 작업은 일방적이다. 산책의 시간 동안 눈치채지 못하게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해야하는 마리안느의 일방적인 시선과 풍경을 담으며, 아득한 어느 곳으로 생각과 시선이 머무는 엘로이즈의 자유로운 시선이 산책길을 걷는다.두 여인의 만남과 시선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저택과 외딴 섬의 풍경 속에 놓인 사람들. 그들 주변을 감싸고 도는 소리와 풍광들이 낮과 밤을 반복하는 사이 의뢰받은 초상화는 완성에 이른다. 관찰이라는 목적성을 가진 시선과 그 시선 속에 묘한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대상자. 이 둘 사이는 완성된 초상화를 엘로이즈가 혹평하면서부터 두 가지 본연의 세계로 들어선다.마리안느가 완성한 초상화는 엘로이즈를 그리고 있지만 그녀를 위한 초상화가 아니다. 그 그림을 통해 신부감을 확인하고 감상할 밀라노에 있는 이름 모를 예비 신랑의 평가를 고려하고 있다. 18세기 후반 당대의 규칙과 관습에 따라 제작된 그림 속에서 엘로이즈는 “당신이 본 내가 이랬나요?”라며 ‘생기’와 존재감’이 없다고 말한다. 화가인 마리안느 조차도 자신의 시선 속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을 감춘 채 대상을 일반화해서 작업을 완성했다.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을 닮지도 않아서 슬프네요”라는 엘로이즈의 평가 속에 함유된 의미는 감정의 교감과 진실을 말한다. 생기와 존재감이 없는 초상화 앞에서 “존재감이란 그저 진실되지 않은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마리안느의 대답에 엘로이즈는 “어떤 감정들은 아주 깊”다고 응수한다. 규칙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진실되게 자신의 감정을 담은 작품일 때 비로소 온전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의미다.초상화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떠나려는 마리안느에게 그동안 화가 앞에서 포즈 취하기를 거부했던 엘로이즈가 기꺼이 마리안느의 모델을 자처한다. 이 순간 화가는 ‘생기’와 ‘존재감’이 담긴 작품을 담아야한다는 작가정신의 각성이라는 첫 번째 본연의 세계로 들어선다.존재감을 위해 진실된 순간, 아주 깊은 곳에 감추어 두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연에 들어선다. 이제 일방적이었던 시선은 마주보는 시선으로 교차된다. 화가와 모델로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사회적 관습과 위계질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떠나 ‘협력자’이며, 연인으로 동등한 시선을 주고 받는다.영화의 중심에 남성은 없다. 모든 전개는 여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부재와 밀라노에 존재하는 정혼자와 임신을 하게 된 하녀 소피의 상대가 누구인지 조차도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체적인 여성과 평등, 귀족과 화가, 하녀라는 신분까지 같은 높이의 시선과 동일한 공간 속에서 한시적이나마 평등하게 놓인다. 그리고 이들이 자유로우며 평등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화덕을 배경으로 수평으로 놓인 탁자 앞에서 세 사람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리잡는다.음악을 최대한 배제하고 바람과 파도 소리, 미세한 일상의 소리들로 채워 나간 영화는 딱 세 번 화면 속에 음악을 담는다. 절제된 음악 사용은 감정의 분기점마다 놀라운 효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마지막 장면은 모든 복잡미묘한 감정을 담아 슬프며 장엄하게 폭발시킨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1-11-22

상생의 고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와 인접한 공원 등성이에 특이한 조형물이 등장했다. 멀리서 보면 야트막한 산 위의 무슨 롤러코스트 같기도 한데,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계단으로 이뤄진 공중의 길 같은 철구조물이 지난 주 후반에 공개됐다. 시간과 공간의 마법에 걸리게 한다는 이른바 ‘Space Walk’가 포항시 환호공원 산마루에 은빛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포스코가 ‘환호공원 명소화’ 계획에 따라 3여년 전부터 다각적인 검토와 설계, 제작, 시공을 거쳐 지난 주에 완공하고 제막과 함께 시민들에게 오픈한 것이다.스페이스 워크라는 작품명은 마치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클라우드(Cloud·구름)’라는 애칭처럼 예술 위, 구름 위에서 마치 공간과 우주를 걷는 듯 신비로운 경험을 하며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체험형 조형물이다. 이러한 조형물은 포스코의 기획으로 독일의 세계적인 부부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가 디자인하고 포스코건설이 제작, 설치하여 포항시민에게 기부한 국내 최대 크기의 체험형 작품이다. 주 재료는 포스코에서 생산한 탄소강과 스테인리스강으로, 자연재해의 이슈인 태풍과 지진 대비를 위해 구조설계의 기준을 강화해서 조형물의 안정화와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한다.조형물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Space Walk 시민 Open Day’는 그야말로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축하비행 에어쇼를 비롯하여 노래와 연주, 댄스 등의 공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한 켠에서는 초청된 시민들에게 조형물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담은 글귀를 붓글씨나 캘리그래피로 써서 나눠줬다. 또한 풍선아트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흥미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따끈한 붕어빵을 구워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한편, 행사장 입구와 주차장 등지에서는 교통안내와 인원통제를 하며 시민들의 첫 조형물투어가 안전한 가운데 흥미롭고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배려했다.이러한 일련의 나눔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7개 재능봉사단이 참여하여 특유의 재능과 기량을 다양하고 특색 있게 펼친 것이다. 포항의 색다른 랜드마크가 될 조형물을 기부하고 오픈하는 자리에 포스코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이벤트로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준 것 같아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더욱이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의 위축 속에 이와 같은 조형물투어는 일상의 돌파구 같은 문화적인 단비(?)가 아닐까 싶다. 포항제철소는 현재 총 41개 재능봉사단을 운영하며 임직원들의 특기와 기술을 이용하여 필요로 하는 곳에 맞춤형 재능봉사를 실시하는 등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베풂과 나눔, 상생협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스페이스 워크를 천천히 걸으며 철로 그려진 우아한 트랙의 곡선처럼 포스코의 제반 사회공헌활동이 지역사회 곳곳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착실하고 더불어 함께 걷는 기업시민의 발걸음이 지역과 회사를 연결하는 상생의 가교로 작용해 사회공익가치로 온기를 더해가고 생기를 불어넣는 나눔문화의 고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2021-11-22

보이지 않는 개선의 중요성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는 살면서 그냥 보이는 것으로 쉽게 사물을 판단하고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도 그 사람의 옷차림이나 인상, 태도 등 보이는 모습만으로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는 경향이 크며, 그 사람의 성장과정이나 인성 등 내면적인 면을 생각하고 파악하는 것에 소홀해질 수 있다. 우리가 눈(目)을 표현할 때 육안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인 심안, 혜안, 천안 등의 단어도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기업(企業)이라는 한자의 어원적인 의미는 ‘사람(人)이 일(業)로 머무른다(止)’는 뜻이다. 기업에 일하는 사람이 머무르기 위해서는 보이는 부분인 이익창출이 이어져 일하는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돼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인 일을 통해 개인의 성장과 발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장의 낭비를 발굴하고 제거하는 개선활동인 것이다.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직원의 능력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며, 이를 통해 원가가 절감되어 이익이 창출되는 부분은 가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생산현장에는 고객이 주문하는 품종과 수량이 수시로 변동되므로 재료, 설비, 사람이 투입되고 대응하는 제조과정에서 불필요, 불균일, 불합리 등의 낭비요인이 따르게 된다. 이를테면 과잉생산·재고·운반·가공·동작·불량·대기 등에서 오는 낭비가 손실을 초래하고 원가를 잡아먹는 ‘7대 낭비’로 일컬어진다. 이 중 가장 나쁜 낭비는 ‘과잉생산’이며 고객이나 후공정이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에 제품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창고나 저장공간이 필요하게 되며 재고가 쌓이고 대기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또한 저장공간이 부족해져 또 다시 이동과 동작이 발생하며 재취급하는 과정에서 잘못하여 많은 사람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제품이 재차 불량이 되는 낭비의 악순환이 되기도 한다. 물론 과잉생산을 포함하여 생산과정에서 유발되는 각각의 낭비는 별개적으로 수시 발생하기도 한다.필자가 수년 전 컨설팅한 내화물 생산공장에서는 과잉생산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집중했었다. 즉, 7개의 품목을 1주일간 1일씩 생산하여 창고에 대량으로 저장하여 출하량에 대응하던 공정을 제품별 준비교체 전담반을 신설하여 획기적으로 품명교체 시간을 줄이고, 일별 출하량에 맞춰 하루에 3~4품목씩 2일 패턴으로 주 3회 생산하도록 종류와 수량을 평준화하여 공정 내 저장공간과 재고를 50% 이상 현저하게 절감하여 낭비를 줄인 사례가 있다.이렇듯 현장의 보이지 않는 낭비를 구분하여 보이도록 하고 지속적으로 공정의 레이아웃과 생산능력을 개선해 나간다면, 불필요한 생산으로 인한 과잉생산의 낭비와 재공, 재고의 낭비가 대폭 줄어 전반적으로 회사의 이윤창출이 가능해진다. 거기에 직원들의 낭비 발굴과 개선하는 역량까지 향상돼 공간적으로는 일하는 직원과 회사가 좋아지고, 시간적으로는 지속발전가능한 영속기업이 될 것이다.

2021-11-22

스윙보터의 표심:공정과 실용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스윙보터(swing voter)’는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영논리에 갇힌 꼴통진보나 꼴통보수와는 달리,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후보의 인품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분석, 평가함으로써 합리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들이다.내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스윙보터, 즉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어서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여당의 이재명은 대장동게이트, 야당의 윤석열은 고발사주 의혹을 받고 있으며, 사생활 문제와 가족의 비리 등으로 지도자로서의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 문화일보 보도(11월 2일)에 따르면 두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똑같이 60%를 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도 50%를 초과할 정도로 역대급이다.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스윙보터는 누구인가? 그들은 이념적으로 볼 때 ‘중도층’이며, 연령별로는 ‘2030세대’가 그 중심에 있다. 중도층과 2030의 표심이 같을수록 더욱 강력한 캐스팅 보트가 된다. 좌우의 극단층은 자기 진영의 후보를 선택한 후에 그 정당성을 합리화하지만, 중도층은 후보의 인품과 정책을 비교분석한 후에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특히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2030세대는 진영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제든지 표심을 바꿀 수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생각 없는 극단층은 목소리가 커서 지지성향이 드러나지만, 침묵하는 부동층의 마음은 투표일까지 안개속이다. 정국을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다.그렇다면 스윙보터들의 표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과 ‘실용’, 즉 ‘공정한 과정’과 ‘실용적 결과’에 있다. 정의는 진영논리에 갇힌 ‘선택적 정의’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공정과 정의’를 선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국민과의 약속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대장동게이트’이건 ‘고발사주의혹’이건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는 특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이나 공수처의 수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한편 이들이 추구하는 ‘실용’은 특정 이념에 구속되지 않고 실질적 이익을 쫓는 정치행태를 말한다. 2030세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입시비리나 부동산 폭등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을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면 보수 또는 진보라는 정치이념은 중요하지 않다는 실용적 입장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4·7 재보선의 승리를 통해서 실용적 투표가 갖는 위력을 확인한 바 있다.내년 대선은 ‘집토끼’보다 ‘산토끼’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경쟁구도이다. 때문에 스윙보터들, 즉 ‘2030세대와 중도층에 대한 확장성’ 여부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물론 승자는 이들이 추구하는 ‘공정’과 ‘실용’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메시지와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다.

2021-11-22

종부세 폭탄론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이중과세이며 위헌이라는 주장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국 시도별, 주택유형별, 공시가격 구간별 주택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의 주택 1천834만4천692가구 가운데 1가구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 11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총 34만6천455가구로 전체 주택의 1.9%에 불과하다.지역별로는 서울이 1가구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인 공시가격 11억원 초과 주택이 총 30만가구(전체 주택 291만6천535가구 중 10.3%)로 가장 많았다.경기가 3만4천919가구(전체 주택 445만 9천963가구 중 0.8%)로 뒤를 이었다. 부산은 전체 주택 125만8천384가구 가운데 0.5%를 차지하는 6천410가구, 대구가 전체 80만3천305가구 가운데 0.4%를 차지하는 3천201가구, 대전이 전체 주택 49만2천185가구 가운데 0.5%를 차지하는 702가구가 공시가격 11억 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문제는 국세청이 올해분 종부세 납부 고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하자마자, ‘종부세 폭탄’에 대한 아우성이 커지고 있는 것.올해부터 종부세율은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이나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경우 기존 0.6∼3.2%에서 1.2∼6.0%로 2배 가까이 올랐다. 2주택 이하도 0.5∼2.7%에서 0.6∼3.0%로 상향됐다. 정부가 부담 경감을 강조한 1주택자 역시 세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단일부동산에 대한 종부세 과세는 약탈이며, 이중과세이고 위헌”이라고 주장해 종부세 폭탄론에 힘을 보탰다.조세저항을 일으킨 종부세의 운명이 어떻게 결말지어질 지 궁금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22

포항과 세계 최고 철강사

김유복전 포항뿌리회 회장 지난 8일과 9일 이틀 동안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36차 글로벌 철강전략회의(Steel Sucess Strategies)에서 글로벌 철강전문분석기관인 월드 스틸 다이나믹스(WSD)가 발표한 글로벌 철강사 경쟁력 평가 결과, 대한민국 포항에 본사를 둔 포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뽑혔다는 내용이 국내 언론사의 주요 기사로 보도됐다. 12년 연속으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보도에 의하면 포스코는 고부가가치제품, 가공비용, 기술혁신, 인적역량, 신성장사업, 투자환경, 국가위험요소 등 7개 항목에서 2년 연속 만점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2018년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취임 이래 강조해온 미래성장동력을 위한 선제적 시재확보, 부채비율 감소 활동 등을 통한 재무건전성 항목 또한 만점을 기록하며 8.54점(10점 만점)으로 종합 1위를 했다.1999년 설립된 WSD는 매년 전 세계 주요 35개 철강사들을 대상으로 23개 항목을 평가하고 이를 종합한 경쟁력 순위를 발표해 오고 있다. 이 순위는 글로벌 주요 철강사들의 경영 실적과 향후 발전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참고지표가 된다. WSD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를 선정하며 포스코의 실적 회복,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 변신, 세계 철강업계 탄소중립 추진 리더십 등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포스코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철강 수요산업 침체로 유례없는 경영위기를 겪었으나 지난 3분기 연결기준 매출 20조 6천억 원, 영업이익 3조 1천억 원을 기록하며 1968년 창사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포스코는 올해 친환경 철강 제품 판매 강화, 이차전지소재 및 수소사업 확대 등 친환경 소재 전문 메이커로 사업구조를 전환해 나가고 있다. 지난 10월 철강업계 최초로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논의하는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을 성공적으로 주최하는 등 세계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협력 방안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이렇듯 포스코의 괄목할 만한 성장 기저(基底)에는 CEO를 비롯한 전임직원들의 열정적인 헌신과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직원들의 헌신, 노력뿐만 아니라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창업정신과 함께 53년의 긴 세월동안 굳건한 믿음으로 상생해 온 지역사회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포스코가 세계최고 철강사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우리 지역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은 사실이다. 조국근대화를 이룩하는 산업화의 일등 공신인 포스코가 철강산업을 일구어 온 역사와 함께 포항의 역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50만 대도시 면모를 갖춰 온 것은 틀림이 없다. 12년 연속 세계 최고 철강사로 선정된 포스코의 영광에 박수를 보내며 반세기의 역사를 넘어 100년 기업으로 지속 발전하기를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세계최고 철강사를 둔 포항도 그에 못지않은 도시로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지난 18일 포항 환호공원에 333m 하늘길을 걷는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가 준공식을 가졌다. 2019년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포스코가 117억 원을 기부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 최대 체험형 조형물이 철강도시 포항의 랜드마크로 멋진 경관을 자랑하며 시민들에게 공개됐다.‘클라우드(Cloud, 구름)’라는 작품명으로 세계적 작가의 설계로 건립된 ‘스페이스 워크’가 포항과 포스코 상생의 상징으로 길이 남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 고맙다. 포항이 세계 최고 철강사 포스코와 함께 최고 도시가 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곳곳에 느껴지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살아나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역경제가 어젯밤 영일만을 훤히 밝힌 포항국제불빛축제의 불꽃처럼 찬연히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포스코가 기업시민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With Posco’, ‘With Pohang’으로 함께하며 세계 최고 철강사의 영예를 포항시민과 공유해 포항이 더욱 살기 좋고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한편으로 세계 최고 철강사를 가진 포항은 철강산업의 굳건한 바탕위에 수소, 이차전지, 바이오, 의료산업, AI 등 첨단산업을 융합하여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역량을 결집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도 경북도와 포스텍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렇듯 포항과 포스코가 동반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시민들과 하나 되는 협력정신이 세계 최고 철강사와 최고 도시가 가져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일 것이다.포항 발전이 포스코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이 됐음을 공감하고 ‘포스코 사랑, 포항 사랑’의 아름다운 공생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포스코의 세계 최고 철강사 선정을 축하드린다.

2021-11-21

구미 ‘비밀의 정원’을 깨우다

장세용 구미시장 고즈넉한 가을의 끝자락,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걷고 싶은 계절이다. 언제든 찾아갈 자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코로나19 팬데믹 위기는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현대사회에서 녹지공간은 시민의 삶과 도시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교통이나 치안보다 공세권과 숲세권(공원과 녹지 주변)을 주거 공간 선택에 있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최첨단 산업도시라 자부하는 구미시 역시 신성장산업 육성 못지않게 녹지공간 조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단 구미뿐 아니라 현재 대다수의 도시들이 도시공간구조를 재편하고 도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 중이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녹색생태 도시로의 전환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질병, 기후, 경제 위기 등 도시와 인류가 직면한 시대적 요구와 무관치 않다.최근 구미시는 산림청과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 실시한 녹색자금 지원 ‘치유의 숲’ 전국 공모 사업에 최종 선정되면서 선산 산림 휴양타운 조성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32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제법 큰 산림 프로젝트다.이번 사업은 무엇보다 지방정원 조성이 핵심이다. 선산읍 노상리 일원 30ha 부지에 들어설 물소리정원, 시민참여 정원, 빛의정원 등의 6개 테마 정원은 우리 구미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숲속 지방정원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동안 사업의 예산 확보를 위해 산림청과 경북도 관련 부서를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른다.한때 우리는 정원을 집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 정도로 인식했지만,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 개최 이후 정원의 위상은 현저히 달라졌다. 정원법이 생기고 관련 정책들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국내 등록 정원도 늘어나 현재 순천만 국가정원과 태화강 국가정원을 비롯한 지방정원 2곳 등 전국에 등록된 정원이 총 44곳이다. 조성 중인 정원도 20여 군데가 넘는다니 정원에 대한 관심과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다. 정원이 개인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진화하는 중이다.구미는 정원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산업이 발달한 첨단도시지만 구미의 이면에는 천혜의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자원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 해답을 찾아 정원도시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현재 구미시는 2007년 사용이 종료된 구포매립장 상부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차별화된 테마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주민참여형 치유정원과 숲을 품은 자연친화 에코정원, 감각적 놀이 활동이 가능한 감성정원은 도시민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지역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다른 한 곳은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찾아오는 해평습지다. 비옥한 농경지와 배후습지가 발달돼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오는 해평습지는 경북을 대표하는 생태습지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필자는 해평습지가 순천만 국가정원이나 태화강 국가정원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지방정원조성을 시작으로 해평습지를 국가정원으로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려 한다. 낙동강 인근에 분포되어 있는 해평습지 일대를 복원해 수변생태공간과 두루미 서식지, 시민들을 위한 생태체험 공간 등 구미의 자연과 문화가 살아 있는 거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마침 정부가 추진하는 두 축인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의 맥락으로도 정원조성의 경제·사회적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구미의 정원조성사업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행정의 노력만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 시민과 경북도민의 협조와 참여가 필요하다. 이제 숨어있는 구미 비밀의 정원을 깨울 때다.

2021-11-21

왕릉 가는 길

늘 지나쳐 가기만 했었다. 경주 산림연구원에서 통일전으로 달려가다 보면 헌강왕릉이란 표지판이 휙 다가왔다 사라진다. 산기슭으로 오르면 능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는데 매번 모른 척 지나왔었다. 오늘은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산책가자 하니, 그곳이 떠올랐다.역사 선생이란 이름으로 평생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남편에게 헌강왕은 신라 몇 대 왕이냐 물었다. 검색해 보아야 안다고 하니, 역사무지랭이인 나와 다를 바 없네 하고 놀리니,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중요한 업적도 없는 왕까지 어찌 아느냐고 받아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신라의 왕이 몇 명이었는지 배운 기억이 없다. 조선시대는 ‘태정태세문단속 예성연중집단속’ 이러면서 운율까지 넣어 외웠지만, 삼국시대는 먼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경주 가까이 살아서 그 유명한 선덕여왕이 27대 왕으로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삼국 통일에 힘쓴 이들을 모신 통일전에 차를 세웠다. 지난주 노랗던 은행잎 가로수 길은 겨우살이 준비를 끝낸 듯 빈 가지만으로 손님을 맞는다. 주차장 가에 ‘동남산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섰다. 교촌마을에서 시작해 서출지까지 걷는 코스인데, 헌강왕릉을 지나가도록 길을 표시해 두었다.헌강왕릉을 향해 가다 보니, ‘정강왕릉’이란 표지판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표지판의 손짓을 따라 올려다보니 살짝 오르막길이었다. 소나무들이 도열한 병사들처럼 능까지 이어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걷기에 좋은 산책로였다. 소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곳에 철모르는 진달래 두 송이가 폈다. 늦가을 숲에 봄처녀 진달래가 길을 잃었나 싶어 가까이 가서 눈맞춤을 해줬다. 갈바람에도 떨지 말고 잘 견디라고 속삭여주었다.정강왕릉은 추석에도 벌초를 받지 못한 듯 억새를 머리에 가득 이고 있었다. 둘레에 복원하다 남은 석재들이 누워 제자리를 찾아주길 기다린다. 둘레솔 덕분에 그래도 능이라는 모습을 잃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형의 능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내려가야 하나 싶었는데, 헌강왕릉으로 가는 길이 옆으로 나 있다. 가을 햇살이 따가운데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을 가니 참 좋다. 누런 솔잎이 떨어져 걷는 이에게 푹신한 발걸음을 안겨준다. 소나무 사이로 늦가을 들을 지나오며 서늘해진 바람이 스친다. 마른 잎들이 바스락 몸을 떤다. 길 곳곳에 망개 열매가 빨갛게 익었고, 건너기 상거러운 골짜기에는 나무다리도 놓아 300m 거리에 형이자 선왕인 헌강왕릉까지 숲길이 이어졌다. 숨이 차기도 전에 봉긋한 능이 나타났다. 동생이 누운 자리에 비해 사람의 손길이 더 갔는지 봉분이 멀끔하다. 양식이나 크기는 두 능이 거의 똑같지만 정강왕릉에 경주시의 관심이 덜 미친 것 같다.삼국사기에서는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경주 남산동에 있는 이 능을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실제 정강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무덤의 양식은 9세기 말엽에 재위한 정강왕 때보다 좀 더 이전 시기의 양식이기 때문에 제47대 헌안왕의 무덤이 아닐까 했다. 그러면 정강왕이 묻힌 무덤은 어디일까? 진덕여왕릉으로 알려진 고분 뒤에 있는 대형 봉토분을 왕릉으로 본다면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다른 곳이라 해도 형제의 능은 지금처럼 꼭 붙어 있다. 우리의 무관심을 형제애로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동남산 가는 길로 길을 잡았다면 숲으로 꼭 오르길 바란다. 많이도 말고 5분이면 능에 다다른다. 일타쌍피, 한꺼번에 두 개의 능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날이 좋은 날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좋고, 바람이 많은 날은 숲이 온화하게 감싸주어서 좋다. 여러 날 중에 가장 좋은 날은 사진작가들이 새벽녘에 찾는다는, 비 온 다음 날 아침이다. 안개가 소나무 사이로 거닐다 능 앞에서 하늘로 오르는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주말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안개에 둘러싸인 왕릉을 볼 좋은 기회이다./김순희(수필가)

2021-11-21

포항 과메기

과메기는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이때가 지나 과메기를 맛보려면 또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 제철 음식이 좋은 것은 싱싱하고 맛있고 영양가도 높기 때문이다.포항은 과메기 집산지다. 전국 과메기 생산의 95%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과메기가 전국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겨울철 밥상이나 식당에 과메기가 등장할 만큼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으니 격세지감이 있다. 주생산지인 포항도 과메기 덕분에 과메기 도시로 유명해졌다. 과메기가 음식으로 고안된 것은 내륙지방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만들어진 것과 비슷하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 안동에서 생선 맛을 보려면 소금으로 간을 쳐 잘 보관해야 가능하다. 안동의 고등어 간잡이는 생선을 소금으로 절여 숙성시키는 기술자란 뜻이다. 생선을 주로 먹는 나라마다 간잡이가 있다.과메기도 겨울철에 많이 잡히는 청어나 꽁치를 오래 두고 먹고자 고안한 방법이다. 꽁치를 그늘에 늘려두고 바닷바람에 얼렸다 녹혔다 하며 말린 후 먹는 요리다. 일본 내륙지방 교토에서도 청어의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훈제와 말리는 과정을 거쳐 만든 ‘미가키 니싱’이란 과메기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 과메기는 말리는 과정에서 맛이 담백해지고 영양가도 높아진다.포항 구룡포과메기 서울홍보 및 체험행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다. 올해는 ‘과메기 도시락에 날개를 달다’를 주제로 했다. 코로나로 등장한 배달트렌드에 맞춰 언제 어디든 과메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콘셉트로 삼았다.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해 판매가 잠시 주춤했다. 올겨울은 위드 코로나와 함께 포항 과메기가 다시 대박났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21

유력 대선후보들의 ‘열린귀’ 아쉽다

심충택 논설위원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경주 도림사 대나무 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삼국유사 설화는 정치권력의 ‘막힌 언로(言路)’를 풍자한 글이다. 현 정권의 메인스트림인 586세대도 대학시절 언론의 자유를 목말라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했던 의사표현의 도구는 신문방송이 아니라 대자보였다. 그러면 그들이 180석 국회의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현 정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열려 있는가.지난해 한 대학생이 대학 구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법원이 유죄(벌금 50만원) 판결을 내린 것은 현 정권의 언론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씌워 기소를 하고,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말까지 가동하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위에서 언론에 대한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 관련 법안을 패키지로 논의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언론사의 취재행위를 법으로 차단하고 대자보시대를 열자는 것과 다름없이 생각된다. 문제는 차기 유력 대통령후보들의 언론관도 현 정치권력과 다름없다는 점이다.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와 관련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우리의 카톡, 텔레방 댓글로 커뮤니티에 열심히 써서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을 알리자”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4일 경남 거창군청 앞에서도 지지자들에게“기울어진 운동장, 나쁜 언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즉흥연설을 했다. 이 후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일 때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언로가 막혀 소통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변의 충고를 듣는 것을 꺼려해 중진급 국회의원들도 그의 방을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윤 후보가 기자들과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언론 인터뷰 등을 최소화하고 기자들이 캠프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대선 경선기간 동안 그의 캠프는 ‘서초동 캠프’라고 불렸다. 캠프가 마치 검찰청처럼 폐쇄적이고 관료화돼 있다는 의미다.유력 대통령 후보 모두 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은 가까이하고, 비판언론은 멀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근본적 기능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자이자 비판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언론은 권력자들의 홍보도구가 아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에게 언론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버리고 언론의 견제 비판 기능을 즐길 줄 아는 철학을 가지길 권한다. 권력자가 비판의 소리를 포용하는 역량이 없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뒤끝이 좋지 않았다.

2021-11-21

선비가문의 전통, 양동마을

윤영대수필가 경주 양동마을은 500년 전통을 가진 역사 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설창산을 업고 넓은 안강 들판의 정기를 안으며 기와집과 초가집 150여 채가 하늘의 별처럼 어울려있는 성라고택촌(星羅古宅村)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이 되어 처가입향으로 집성촌을 이룬 씨족 마을이며 우재 손중돈(愚齋 孫仲墩)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먼저 이향정(二香亭)에 갔으나 안뜰의 향나무를 보지 못하고 내려와 마을체험관에서 여러 가지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나온 학생들과 섞여서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인 심수정(心水亭)으로 올라갔다. 농재 이언괄(聾齋 李彦适)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고 ‘마음을 고요한 물 같이 가져라’는 뜻이다. 우람한 느티나무 숲 정자에서 바라보는 마을 정경 또한 일품이다. 근처 강학당을 보고 큰길을 따라 거림(巨林)까지 올라가서 안골로 들어갔다.큰우물에서 두레박도 올려 보고 능선 바로 아래 지어진 근암고택과 상춘헌, 사호당 등 이씨 집안 고택을 살펴보았다. 전통적 남녀유별 생활상이 엿보이고 사랑채와 화단이 멋있게 배치된 뜰을 기억하며 내려와서 깨끗한 마을 길을 걷는 마음은 평온하다. 서백당(書百堂)이 새겨진 큰 바위 옆 흙담 길을 오르면 경주 손씨의 대종가로 이 마을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가 지었다는 송첨종택(松7C37宗宅)이 있다. 대학자 손중돈과 이언적이 태어난 명당 터라기에 사랑채 쪽으로 들어가니 밑둥치부터 세 가지로 자라서 혼자 숲을 이룬 500년 된 향나무가 풍성한 품을 내어준다. 서백당 누마루에서 사진을 찍고 ‘참을 인(忍)’자 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 선비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고택 이름들은 옛날 살았던 주인의 호를 땄단다.옆 언덕의 낙선당을 들렀다가 앞쪽 산길을 올라가니 안계 댐 공사로 이곳까지 옮겨온 경산서당(景山書堂)이 대문을 열어 반긴다. 조용한 안뜰로 들어가면 높은 기단 위 강단의 마루에 걸린 현판들의 가르침이 훌륭하다.안골 언덕에 올라 성주봉을 보면 고즈넉하고 멋스런 기와집 26채를 품은 마을은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정주형 문화유산’이다. 물봉골 대성헌을 보고 양동마을의 대표적 저택인 보물 제411호 무첨당(無5FDD堂)에 갔다. 깨끗하고 커다란 사랑채 마루에 걸린 많은 현판 중에 ‘좌해금서(左海琴書)’란 특이한 글씨체는 ‘영남의 대표 가문’이라는 대원군의 죽필(竹筆)로 쓴 글이다.국화꽃이 고운 큰길 개울가 연못에는 선비들의 마음처럼 수련이 자라고 있다. 보물 제412호 향단(香壇)길은 한양으로 올라간 형을 대신해서 동생 이언괄이 노모를 모셨다는 곳, 독특한 화려함이 돋보이는 고택이다. 마지막으로 앞 언덕에 있는 보물 제442호 관가정(觀稼亭)으로 갔다. 누마루가 멋있는 청백리 손중돈의 간결한 살림집이다. 향나무들이 허리 굽혀 넘보는 담장 밖으로 나와 평화로와 보이는 마을을 나서면 안강 들판을 씻어온 형산강둑엔 하얀 갈대가 하늘대고 있다.

2021-11-21

기억과 망각의 싸움

조현태​​​​​​​수필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자 대문 우편함에 눈길이 갔다. 자질구레한 자동납부 통지서와 얇은 책 한 권이 꽂혀있었다. 이미 납부된 요금은 이메일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따로 영수 통지서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매번 우편으로 발송되니 본척만척하고 휴지통에 던졌다. 이런 통지서를 모두 생략한다면 엄청난 종이와 재원이 절약될 텐데. 책만 가지고 들어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뒤적거렸다.두어 시간 지났을 때, 전화할 일이 있어 휴대폰을 찾으니 없었다. 아차! 자동차 거치대에 두고 왔구나. 그새 부재중 착신이 네 개가 떴다. 차례대로 전화를 했더니 하나같이 전화도 받지 않고 뭐가 그리 바쁘냐고 타박이었다. 여차저차 하였다고 설명하자 정신을 어디다 두고 그러느냐는 핀잔까지 했다. 근래에 깜빡증이 점점 늘어난다.살다보면 이러한 깜빡증이 아니라 영원히 잊어버렸으면 더 좋을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반세기가 지나도 또렷이 남아있으니 오히려 애석하다. 특히 가슴깊이 새겨졌던 아리고 쓰린 생채기에 대한 기억은 왜 잊어버릴 수 없을까.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애꾸눈이라고 놀림 받던 기억, 삼층 옥상에서 추락하여 죽지 않고 발목만 박살났던 사건, 애인 빼앗기고 사기 당해도 대거리 한 번 못하고 풀이 죽어 술만 퍼마시던 아픔…. 차라리 야생동물처럼 몇 초 만에 잊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듬어보면 뼈아픈 추억이 쉽사리 되살아나는 감정은 그 당시에 새겨진 상처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불행이 싫어서 얼른 잊고 싶은 반면 행복은 좋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을까. 그러면 행복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만큼 평생 동안 잊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았던 행복은 상처만큼 오래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 행복이 보장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아팠던 것만큼 오래 간직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좀 더 행복하고픈 욕심이 작용하니까.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 할 터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은 항상 미완성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욕심’을 빼면 ‘미완성’도 없어지는 계산이 된다. 그렇다면 빨리 잊을수록 좋을 것 같은 아픔은 왜 미완성이 없을까. 당연히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행복이 되려면 더 이상 행복하려하지 않아야 하리라.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사소한 일이든, 생명을 잃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든 망각했다는 것은 같다. 하찮은 일은 용서되기 때문에 또 잊어버려도 되고, 대단한 일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좋았던 것은 기억할수록 좋고, 나빴던 일은 잊을수록 좋지 않은가.기억과 망각이 맞서 싸운다면 어떨까. 싸워서 이긴 자의 쾌감보다 패배한 자의 처절함이 훨씬 더 진할 터이고, 패배는 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을 바에는 질 것을 염려해야 할 터이다. 여차하면 시비나 걸고 상대를 깔아뭉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삶의 방식이 너무 식상하다. 기억과 망각이 손잡고 미완성에 도전하는, 그래서 끝없이 노력하고 삶을 경영하면 좋겠다.

2021-11-21

킹메이커

로저 스톤은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던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인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그는 정치인이자 타고난 선거 전략가로 평가를 받았지만 권모술수에 능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정치 자문가인 동시에 ‘더러운 사기꾼’으로도 통했다.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는 로저 스톤의 탁월한 전략이 있었다. 그는 트럼프와 30년 지기로 같이 활동하면서 그의 개인 정치고문 역할을 줄곧 해왔다. 둘은 여러 면에서 궁합도 잘 맞았다고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톡톡 튀는 발언 가운데는 로저 스톤의 조언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그의 정치적 신념을 엿보게 하는 말로 그가 자주 쓴 표현 중 “완전 무명보다는 악명이 낫다”는 말이 유명하다. 그는 스스로 스톤의 법칙을 만들어 그 룰에 따라 정치 전략을 구사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말 것” “모든 것을 부정할 것” “공격당하면 반격할 것” 등이 핵심이다.그의 정치 역정은 미국 넷플릭스에서 ‘킹메이커’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그는 2019년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돼 4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이용, 그를 감형한다. 사상 최악의 부패행위라는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그해 11월 실시될 선거에 그의 정치 전략이 필요했었다는 분석이다.우리 정치사에도 킹메이커가 등장한다. 노태우,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김윤환 전 의원과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킨 김종필 전 총재 등이 그들이다. 내년 대선을 두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이해찬 전 대표의 킹메이커 역할론이 등장했다. 선거 열기 속에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8

아수라 vs 내부자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과거 개봉한 영화 두 편이 화제다. 바로 영화 ‘아수라’와 ‘내부자들’이다.두 영화는 모두 국산영화로 정치권력의 부패를 다룬 영화인데, 묘하게도 현재 여야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설정이어서 공교롭다고 해야할 지,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할 지….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최근 SNS에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장동 특혜 의혹’을 거론하면서 “이름하여 ‘대장동 개발사업’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는 ‘아수라’의 악취가 풍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화 ‘아수라’를 빗대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한 것이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아수라’는 2016년 개봉한 영화다.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부패한 박성배(황정민)와 시장의 비리를 캐내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 그 사이에 낀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물고 물리는 정치범죄 스릴러물이다. 영화에서는 안남시의 부동산 개발사업과 이를 통해 시장 박성배가 각종 이권을 챙기고 범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 배경이 된 안남시라는 도시명부터 이재명 후보가 시장으로 재직했던 성남시를 연상시키는 데다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영화 줄거리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경선단계부터 시작해 ‘아수라’ 영화를 적극 소환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양상이다.민주당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을 공격소재로 소환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이 영화에 나오는 부패 정치인 장필우와 겹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을 향해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선 후보 장필우처럼 ‘X라 고독하구만’ 대사를 반복하며 소주 드실 날이 머지않았다”라고 했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은 2015년 개봉했다.기 의원이 언급한 장필우는 부패 정치인으로 재계, 언론과 결탁해 대권을 넘보는 인물로, 과거 조폭과의 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장필우는 결국 각종 비리가 드러나 파멸의 길을 걷는 데, 영화 말미에 쓸쓸하게 소주를 마시며 “X라 고독하구만”이란 대사를 내뱉는다.정치 권력의 부패를 다룬 두 영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크게 주목받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정치권의 부패와 해악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적지않았지만 유달리 두 영화는 영화배경이나 인물설정이 현 여야 후보와 닮은 꼴이라 공교롭다.이런 영화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마 정치에 대한 환멸이나 염증,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제작자의 의도야 정치권력의 부패를 정면비판하고, 이런 정치인들을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두 영화가 그린 인물이 무작정 비현실적이란 단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다.그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영화를 불러들이니 그게 서글플 따름이다.

202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