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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선비문화 마을, 덕동 숲

윤영대수필가 지난주 포항문화원의 경북선비아카데미 12강좌가 끝났다. 격조 높은 강의를 들으며 포항지역의 선비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경북지역은 유학의 발상지이자 중심지로 낙동강을 맥으로 삼아 상·중·하로 구분되어 포항지역은 대구 구미 선산과 더불어 낙중학(洛中學)으로 교육의 맥을 이어온 곳이라, 선비정신이 은은하게 배어있고 자취도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알고 그 정신적 향기를 맡아보고 싶어졌다.비 온 후 맑은 가을하늘 아래 기계면을 지나 기북면으로 들어가니 과수원엔 탐스런 사과들이 태양을 닮고 있었고 잠시 후 오덕리 덕동숲에 닿았다. 이 숲은 풍수적으로 조성한 수구막이 숲으로 2006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였고 소담스러운 전통마을을 품고 있다. 입구 노송숲에 ‘덕동국민학교 교적비’가 눈에 띈다. 30년 전 폐교했다는 자리에는 전통문화체험관이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코로나로 방문객이 드문 관내를 돌아보며 볼거리느낌 집, 배움나눔 집, 잠자는 집과 다도와 공예체험실 등을 기웃거리다 뒤뜰로 오면 정겨운 장독대가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덕동민속전시관 앞에 주차하고 보니 덕연관(德淵館)은 닫혀있고 노부부가 낙엽을 쓸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이 여주 이씨 후손인 듯해서 인사를 했더니 전시관 주인으로 이 마을의 고문서 등을 보존하고 있다며, 이제는 마을에 맡겼다고 아쉬운 듯 뒤돌아본다. 앞에는 ‘제4호 기록사랑마을’의 커다란 표석이 보이고 덕연구곡 비석도 있다. 삼기(三奇) 구곡(九曲) 팔경(八景)을 메모하여 둘러보기로 했다.먼저 용계정(龍溪亭)으로 내려갔다. 임진왜란 당시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 선생의 별장으로 이조 말엽 서원철폐에도 용케 화를 면하고 좁은 용계천 바위 벼랑에 서서 맞은편 연어대(鳶魚臺)를 내려다보며 늠름하다. 맑은 개울가 합류대에서 조약돌 하나를 주워 만지작거리며 올라오니 세덕사 터에 수백년 된 와향(臥香)이 세월의 무게를 업고기는 듯한 모습이 신기하다.조용한 골목길을 올라가면 애은당(愛隱堂) 고택이다. 기왓장을 쌓은 입구로 들어가 봤더니 인적이 없어 ‘ㅁ’자 모양이라는 상류층 고택을 살펴보지 못하고 나와 여연당(與然堂)으로 갔다. 정문부가 사위인 이강에게 양도했다는 가옥이다. 자연석 기단 위 툇마루에 마침 노인이 앉아있기에 현판 글씨가 아름다워 허락을 얻고 찍었다. 바로 옆이 사우정(四友亭) 고택, 정면 7칸 ‘一’자 형의 납도리집 사랑채는 긴 마루에 나란히 앉아 담소했을 네 명의 친구들이 그려지고, 담 붙은 근대한옥의 태고와(太古窩) 마루에 잠시 앉았다가 앞길의 덕계서당으로 갔다. 전통건축 중에 서당이 흔치 않아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곳 강의재(講義齋)에 앉아 시 한 수 읊고 싶은 마음을 안고 강둑 길 지나 와룡암으로 갔더니 넓은 반석 위로 깨끗한 개울물이 계절을 씻고 있었다.되돌아오는 길, 섬솔밭으로 들어가 연잎이 고요히 들어찬 호산지당 옆 회나무 우물 ‘회정’에 입도 적셔보고, 이 나라에 군자의 덕을 갖춘 진정한 선비가 나와 국가를 이끌기를 염원하며 구령대 앞에 서니 선비들의 삶을 느낀 오늘의 나들이가 마음에 찬다.

2021-10-31

대마 주산지 안동, 국가 헴프 산업 전초기지되다

권영세안동시장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 연못만 바라보다가 빠져 죽고 말았고, 그 자리엔 수선화가 피어났다. 수선화(narcissus) 향기의 마취 성분에 연유하여 마약을 뜻하는 영어 단어 ‘narcotics’가 유래했다고 한다. 마약은 의학이 발달하기 전 고대부터 고통을 억제하는 민간 요법으로 사용돼왔다. 기원전 3000여 년전 수메르인들이 아편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고, 기원전 1500여 년전 파피루스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동양에서는 기원전 2727년 중국 최초 약물학 서적인 신농본초경에 대마 씨앗을 치료에 사용한 기록이 있고, 삼국지에는 화타가 대마로 마취해 수술했는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 동의보감에도 대마가 오장의 기가 부족할 때, 정신을 맑게 하고 딸꾹질, 타박상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최근 우리나라에서 수 백년간 삼베옷의 원료로 이용해온 대마가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대마 속 유용한 물질이 의약 원료 등으로 활발히 사용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마라고 알려진 대마초(마리화나)는 대마의 꽃이나 잎에서 추출된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이라는 환각 성분을 이유로 역사적으로 숱한 사회적 이슈를 생성하며 부정적 시각을 고착화해왔다.이와 구별하여 ‘헴프’는 대마 속 환각 성분인 ‘THC’(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가 0.3% 미만인 대마식물과 그 추출물을 의미한다. 헴프에는 CBD(칸나비디올)라는 천연 성분이 있어 통증과 염증을 줄이고, 간질 발작을 조절하며 정신질환과 중독을 치료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소아뇌전증, 치매, 파킨슨병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이미 캐나다, 미국, 영국, 호주 등 50여개 국가에서는 의료용 목적으로 대마를 합법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칸나비디올(CBD)은 이미 하나의 새로운 산업 분야로서 매년 20% 이상의 성장세를 어어나가고 있다. 미국 그랜드 뷰 리서치(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27년 전세계 대마 시장 규모는 약 150억 달러(1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9세기 미국의 ‘골드러시’에 이어 대마 산업으로 자금이 몰리며 ‘그린러시’라 불리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마초 합법화 공약과 함께 기대감을 모으던 지난해 12월, WHO 권고를 받아들인 UN 산하 마약위원회가 60년 만에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하는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국내에서도 대마 활용을 위한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 2020년 7월 중소벤처기업부는 대마 주산지인 안동 일대를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 자유특구에 지정했다. 이로써, ‘마약’은 곧 ‘범죄’라는 사회통념과 마약류관리법 등에 막혀 70여 년 동안 시도조차 못한 대마를 활용한 산업화의 문이 비로소 열리게 됐다.안동시 임하면과 풍산읍 일대의 헴프특구에는 2021년까지 약 38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된다. 특구사업에는 (재)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한국콜마(주), (주)유한건강생활, 교촌에프앤비(주), (주)우경정보기술 등 21개의 국내 유수의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안동 대마 재배지에는 최신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팜이 조성됐고, 앞으로 6개 기업에서 약 20톤의 헴프를 재배해 총 62kg의 CBD(칸나비디올)를 추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원료의약품 제조와 전주기 이력관리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대한 실증사업을 추진한다.헴프 활용을 위한 모든 실증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공정 전주기에 대한 표준 방식이 도출되면 이를 근거로, 마약류관리법도 개정될 전망이다. 안동시는 헴프 실증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대한민국 헴프 산업을 견인해나갈 수 있도록 관련 기관, 기업과 협력하고 행·재정적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번 특구 사업으로 30여 개 기업이 안동에 유치되면 신규고용 70여 명과 함께 수출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대형 공장이나 중견 기업이 없는 안동으로서는 청년 일자리 마련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수백년간 옷감으로 활용되며 명맥을 이어온 대마가 바이오 신기술을 만나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고령화, 인구감소에 시달리는 지역 경제에도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1-10-31

직지(直指)

해가 뜨기 전 직지사로 향했다. 두 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라 새벽부터 서둘렀다. 어느 절이나 산사를 제대로 보려면 방문객이 적은 시간에 가야 고즈넉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 차를 세우니 서늘한 아침 공기만 일주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직지’라는 절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다. 지난해 이맘때 즈음, 구미의 도리사를 찾았더니 산책로 끝에 전망대에 오르니 아도화상이 태조산에 절을 짓고 난 후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똑바로 가리키며 저곳에도 좋은 절터가 있다 하여 직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한 가지이다. 또 다른 설은 능여가 절터를 잴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한 데서 붙여졌다 한다.가람 배치가 다른 절과 좀 다르다. 오래된 향기가 물씬한 대웅전의 문살도 도톰했다. 거기다 꽃 문살이 아닌 반듯한 격자무늬다. 담백한 맛이 ‘나는 직지다’ 하는 듯했다. 마침 찾아간 시간이 예불 드리는 시간인지 전각마다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우렁차다. 절의 규모가 크다는 것을 염불 소리로 말해주었다. 스님이 나무아미타불 선창하면 무릎 꿇고 앉은 신도들이 관세음보살 맞받는 것 같다. 골짜기 가득 목탁 소리로 가득 찼다. 직지사에서 처음 느낀 절 분위기다.그보다 더 눈에 뜨이는 차이는 탑이 많다는 점이다. 보통은 일 금당 이 탑 형태이다. 불국사의 대웅전 앞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자리한 모양처럼. 처음 직지사가 세워질 때는 오층목탑이었다는데 지금은 대웅전 앞에 두 개의 삼층탑이 나란히 섰고, 비로전 앞에도 삼층탑이 성보 박물관인 청풍료 뒤에도 삼층석탑이 있다.신라 초기 눌지왕 2년 아도 화상이 터를 잡을 때 만든 오층목탑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머리 깎고 출가한 절이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전각들과 함께 불태워졌다. 지금의 네 개의 탑은 제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터전을 옮겨왔다. 경북 문경군 산북면 옛 절터인 도천사에 쓰러져 있던 석탑 세 기는 1974년 이곳 직지사로 옮겨 복원되었다. 첫 집에서는 나란히 서 있었으나 직지사의 형편에 따라 떨어지게 됐다. 나머지 하나는 구미시 선산읍의 강락사 옛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선산 군청 앞마당으로 옮겼다가 다시 1980년 10월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원래 직지사가 낳은 탑은 없다. 다 데려온 자식인데도 늠름한 모습을 잃지 않도록 돌보고 있는 것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님이 세 자녀를 다 키워 첫 딸은 시집 보내고 두 아들은 도시로 유학을 보낸 그즈음, 시동생이 어린 조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집안 어른들이 모여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가에 대해 논하였지만, 선뜻 맡겠다는 이가 없었다 한다. 그걸 어머님이 품으셨다.새로 이사 온 곳이 낯설어 오줌을 싸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제는 육아를 벗어났다 싶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또다시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의 준비물을 챙기고 학부모가 되어 담임과 상담도 여러 번이었다. 낳은 자식들과 다르게 자꾸만 어긋나가는 아이를 중학생이 될 때까지 돌보셨다. 대학 등록금도 모아서 따로 불러 주시는 걸 본 적도 있다. 지금은 결혼해 아들을 낳아 일가를 이루었다고 명절에 시댁을 찾아오곤 한다.데려온 자식을 내 자식처럼 키우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내가 두 아들을 키우면서 더 깊이 깨달았다. 어진 어머니의 속이 녹아내리는 시간이 쌓인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다들 백수를 사는 인생인데 어머님은 암 투병을 하시다 여든 번째 생일을 하늘나라에서 맞으셨다.직지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바르게 가리킨다는 뜻이다. 어머님이 며느리인 내게 말이 아닌 몸으로 가리킨 것은 바르게 살라는 것이다. 시집와 25년을 살면서 내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신 적이 없다. 그저 몸소 앞서 걸어가셨다. 부족한 것뿐인 며느리지만 데려온 자식도 내 자식이다 ‘직지’ 하셨다. 옮겨온 곳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삼층탑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어머니를 기린다. /김순희(수필가)

2021-10-31

디지털 디톡스

영어의 블랙아웃(black out)은 정전, 기절, 필름이 끊김 등 여러 경우로 사용되는 단어다. 본래 뜻은 눈앞이 캄캄할 때를 가리키나 우리나라는 대정전이란 말로 표현한다.블랙아웃으로 국가가 큰 소동을 빚은 사례는 2017년 8월 15일 대만의 블랙아웃이 유명하다. 대만 최대 액화천연가스발전소가 멈춰 서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전지역의 64%에 해당하는 828만 가구가 정전이 됐다. 교통신호등 작동이 중단돼 교통대란이 빚어졌고 산업시설 일부도 멈췄다. 때마침 여름철 폭염 중이라 많은 주민이 냉방시설을 가동못해 무더위에 고역을 치러야 했다. 대만의 블랙아웃은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공급 능력이 떨어진 게 근본 원인으로 드러나 탈원전 정책 후퇴의 계기가 됐다고도 한다.디지털 블랙아웃은 디지털 기기들의 작동이 중단되면서 통신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말한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우리 일상생활 어느 곳에도 정보통신 기술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모든 사물들이 정보통신 기술과 거미줄처럼 연결된 초연결사회다. 스마트폰 등 유무선 통신은 물론 간단한 검색이나 신용카드 결제, 증권거래, 교통서비스 등 어느 하나 디지털과 무관한 게 없다.지난 25일 발생한 Kt의 통신 장애는 이런 초연결사회의 취약한 구조를 일깨우게 한 좋은 사례다. 비록 40분 동안이지만 인터넷 사용이 중단되고, 식당과 상점 등에서는 카드 결제가 안 돼 불편을 겪어야 했다.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는 디지털기기 속에 묻혀 사는 현대인에게 전자기기로부터 벗어나 심신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우리도 모르게 빠져든 초연결사회 속에서 한번쯤 일탈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0-28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 넓은 대륙에서 빨리 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나. 멀리 가려면 함께 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 말일게다.요즘 국민의힘 윤석열 전 총장과 홍준표 의원 간 벌어지는 대선 경선판 선두다툼은 ‘함께 가자’는 윤석열 전 총장과 ‘혼자라도 빨리’ 가려는 홍준표 후보의 싸움으로 읽힌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는 전·현직 의원과 당협위원장 영입에 힘쓰면서 당심에서 우위를 지켜나가고 있다. 이에 맞선 홍준표 의원 측은 윤 전 총장의 전두환 옹호발언 파문 등 연이은 실수에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 또 윤 캠프에 합류하는 의원들을 “한 물간 정치인” “구태 정치인”, 심지어 “파리떼”라는 표현까지 들며 맹비난하고 있다. 당심에서 크게 열세인 홍 의원 입장에서는 전·현직 의원들의 윤 캠프행을 폄하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당심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는 데는 홍 의원 자신의 ‘정치적 부덕’이 바탕에 깔려있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홍 의원에 대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남의 말을 경청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평가한다. 그렇다해도 홍 의원이 윤 전 총장 캠프에 합류하는 의원들을 향해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것은 사실 ‘내부총질’이요, 해당행위에 가깝다. 정당정치란 게 뜻이 같고 목표가 같은 사람들끼리 정당을 만들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쟁취하고, 그 뜻을 펼치는 것 아닌가. 만약 홍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윤 전 총장 캠프에 합류한 ‘파리떼’의원들을 모두 내치고, 자신과 함께 한 정치인들과만 대선캠프를 꾸릴 것인가. 그래서야 여야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대선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미우나고우나 모두가 원팀으로 캠프를 꾸려 정권교체에 나서야 할 사람들이다. 마치 다시 안보겠다는 듯 막말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정치란 게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도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이 달라도 나와 그가 생각이 다를 뿐이지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윤 전 총장을 지지한다고 해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현재 윤 전 총장 캠프에는 주호영 의원을 비롯해 현역의원 30여명이 합류했으나, 홍 의원 캠프에는 조경태, 하영제 의원 둘 뿐이다. TV토론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7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후보 합동 TV 토론회에서 “홍 후보는 두 번의 당대표, 두 번의 지사, 5선 의원 등 눈부신 경력에도 불구하고 홍 후보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한다. 저는 정치 초심자인데 많은 분들이 (제 캠프에) 온다. 왜 홍 후보 캠프에는 동료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적나”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나는 26년 동안 단 한번도 계파의 졸개가 돼 본적이 없다”며 자신의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은 계파정치를 배격했기 때문이라고 비껴갔다. 누구든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2021-10-28

‘깐부 정치’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요즘 ‘깐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국영화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깐부’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감 때문이다.필자도 어려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타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같은 편 친구를 ‘깜보’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깐부는 깐보, 깜보, 깜부 등 여러 가지 변형되어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운다.깐부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영어의 ‘콤보(combo)’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늘 밖에서 같이 뛰어놀아 가무잡잡해진 친구를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설은 1986년 나온 까무잡잡한 장두이 주연의 ‘깜보’라는 영화에서 설명되기도 했다.혹시 일본이나 중국이 자기네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근거는 중국의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중국어 발음 ‘꽌보’나 일본어 발음 ‘깐보(かんぽう)’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는 설이 뒷받침 한다. 일본어 지분을 가르키는 ‘카부(株)’가 어원이라는 설까지 등장한다.어원이 무엇이든 간에, 재미있는 것은 ‘깐부치킨’이라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오징어게임’ 이후 엄청난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깐부치킨 창업자가 어릴 때 고향에서 쓰던 말을 한번 써본 건데 ‘오징어게임’으로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오징어게임’ 영화에서 주역의 한 명으로 활약한 배우 오영수가 깐부치킨 광고모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오영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깐부치킨 광고모델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한 이유에 대해 “‘깐부’는 ‘오징어 게임’의 주제에 가까운 단어”이며 영화 중에서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와 배신 등등이 함축된 단어인데 광고에서 이 깐부를 직접 언급하면 작품에서 연기한 장면의 의미가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고사했다고 한다.광고모델은 곧 큰 수입을 의미하는데 광고모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연예계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예술을 존중하는 그런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진다.그렇게 ‘깐부’는 소중한 단어이고 영화 속에서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니꺼 내꺼가 없는 거야.”라고 대화가 오고간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깐부정치’를 생각하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 간의 거친 말로 상대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아직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야당의 예비후보들도 토론회에서 상대를 험한 말로 공격하는 게 다반사이다.최근 정치권에서도 깐부라는 말이 등장해 화제다. 야당의 어느 예비주자는 “우리 깐부 아닌가요? 치열한 경쟁은 하되 품격 있게, 동지임을 잊지 맙시다”라 했다고 한다.또 여당의 원내대표도 “오늘부터 우리 모두는 깐부, 네것 내것 없고 네편 내편도 없다, 우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참 좋은 말이고 멋진 발언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가 ‘깐부 정치’를 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CNN TV에 비추어진 정치 선진국의 국회의 청문회나 토론회를 보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정제된 언어로 토론을 하는 ‘깐부정치’를 종종 보게 된다.험한 말과 인신 공격으로 점철된 한국정치에서 ‘깐부정치’를 언제쯤 보게 될까?

2021-10-28

소통과 ‘쇼통’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21일, 누리호 발사를 앞둔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실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긴장을 하며 발사준비에 신중을 기하고 있던 통제실에 난데없이 이벤트기획사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방송 중계를 위한 무대를 설치하느라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다. 김정숙 여사를 대동한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에 나타나 누리호 발사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 발표를 하기 위해 생긴 일이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성명 발표 뒷배경이 허전하자 기획 책임자가 누리호 발사를 담당해 온 과학기술자들을 뒤에 ‘병풍’으로 동원하기까지 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현장을 지휘한 사람은 이벤트의 달인(?)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었다고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주요 사안은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고,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 약속은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그 대신 ‘쇼통’이란 신개념의 정책(?)을 펼친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국민들과 직접 토론이나 기자회견 등으로 소통하는 대신 마치 쇼(show)를 하듯 일방적으로 보여주기 이벤트를 연출하는 걸 비꼬는 말이 ‘쇼통’이란 신조어다. 그런 전시행정이란 집권자의 치적이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기 마련이다.보여주기 이벤트는 이른바 ‘감성팔이’로 효과를 극대화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판문점 도보다리 이벤트였다. 가설된 나무다리를 남과 북의 정상이 다정하게 걷는 장면은 많은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북한이 당장이라도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서서 남북통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 같은 환상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벤트였다.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는 노벨평화상을 거론할 정도로 고공행진이었다.하지만 김정은의 처지와 속내를 짐작하는 사람들은 ‘4·27 공동선언문’ 따위는 허울 좋은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 핵무장을 더욱 강화하는 근본적인 정책 노선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쇼통의 또 한 가지 전략은 ‘숟가락 얹기’라고 한다. 워낙에 내 놓을 만한 업적이 없을 경우 남이 이룬 성과에 편승해서라도 낯을 내보려는 수작을 말한다. 지난번 굳이 가지 않아도 될 미국 방문을 하면서 요즘 한창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대동한 것이 바로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얼마나 국제무대에서의 존재감에 자신이 없었으면 연예인들을 동원해서 체면을 살려보려는 생각을 했을까.문 정권 초기에는 탁현민이라는 이벤트 전문가를 기용해서 ‘쇼통’의 정책으로 상당한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상식이 있는 국민들은 그것이 자화자찬의 홍보 외에는 실익이 없는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쇼는 쇼일 뿐 현실이 아니다. 쇼가 주는 감동의 효과는 현실에 부닥치면 사그라진다. 그리고 그런 이벤트는 거듭할수록 효과가 줄어들기 마련이다.소통 대신 ‘쇼통’으로 대통령 임기를 다한다면 우리는 그를 ‘쇼통령’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2021-10-28

일과 삶이 섞이면 욕심이 된다

장규열한동대 교수 대선후보의 아내가 일을 냈다. 배우자의 큰 선거를 돕겠다는 그의 진정을 모르지 않는다. 일을 통해 습득한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경쟁후보의 심리상태를 진단하고 발설하였다. 이를 두고 논란이 있는 가운데 후보자 본인이 아내의 편을 들고 나섰다. 나라의 내일과 국민의 일상이 주제가 되어야 할 자리에 부적절한 주장들이 춤을 추고 있다.필자의 아내가 심리상담전문인이다. 내담자들을 맞아 상담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함께 치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배우자인 필자는 아내가 누구를 만나는지 그들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내가 지키려는 직업윤리는, 내담자와 반드시 직접상담을 통해 상태를 신중하게 확인하고 그 결과를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의 안팎을 본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차단한다. 그런 기본적인 윤리의식이 확인되어야 내담자나 환우는 전문인과 의료인을 믿고 본인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적절한 치유의 과정을 지나게 된다. 만나지도 않았는데 전문인이 임상적 판단을 한다거나 혹 상담을 했더라도 그 내용과 결과가 외부에 공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교육현장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학생들을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만나지만 그들의 학업과 진로 등에 관하여 다른 사람과는 나누지 않는다. 사람을 대상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는 공유하는 자기절제가 성립하는 셈이다. 일의 소위를 나만 간직해야 한다. 대상이 되는 사람이 지극히 민감하게 여길 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전문인에게 있다.대상이 사람이 아니어도 실은 마찬가지다. 일을 통해 알게 된 정보는 그 일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공적으로 습득한 내부정보를 사익을 위해 외부에서 사용할 때 이해의 충돌이 발생하고 직권남용 등의 부적절한 처사가 일어난다. 일을 맡은 내부자가 정보를 외부에 빼돌려 발생하는 권한의 오남용 사례들도 본인의 일을 일로만 지켜야 하는 책임을 벗어날 때 벌어진다. 그와 유사한 의혹이 쌓일 때 시중에 떠도는 범죄혐의의 가능성에까지 나아가게 된다.전문인의 직업윤리는 사회가 질서 있고 조화롭게 굴러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전문인이 지켜야 할 윤리규범을 어길 때 그 직종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 일터에서 획득한 정보는 그곳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공적정보가 사적으로 사용되어 불공정과 비상식이 난무하게 되면, 사회적 정의와 공적 신뢰는 사라지고 만다. 상식과 공정으로 운영되어야 할 사회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굴러가는 정글이 되고 말지 않을까. 사욕의 그늘이 일에도 미쳐 일은 일대로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터이다.직업인의 일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당신에게 그 일이 맡겨진 까닭에 성실해야 한다. 일의 소위를 밖으로 내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은 잘 해야 하지만, 동시에 잘 지켜야 한다. 일을 지켜야 사회가 산다.

2021-10-27

공공와이파이 5G시대

공공와이파이가 LTE 기반으로 제공되고 있던 것이 5G 기반으로 업그레이드돼 약 4배 더 빨라지게 됐다.공공와이파이는 정부, 지자체, 통신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가리킨다. 이번에 5G로 업그레이드되는 공공와이파이는 버스 공공와이파이다.올해 100대 규모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버스 2만9천대에서 5G 기반 공공와이파이가 제공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버스 공공와이파이 5G 시범서비스 개통식’을 열고,‘5G 백홀’을 적용해 기존 LTE 기반 서비스(최대 100Mbps)의 4배 수준인 최대 400Mbps로 속도를 높였다고 했다. 백홀은 상위 기간망과 이동통신 기지국 주변부 하위망을 연결해 와이파이 속도를 향상해주는 전송망이다. 이번 시범서비스는 올해 말까지 전국의 버스 100대에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서비스 안정성과 통신품질, 이용자들의 와이파이 사용유형 등을 점검하고, 내년과 내후년에는 전국 버스 와이파이 2만9천100대에 단계적으로 5G 백홀을 적용해 국민의 공공 와이파이 체감 품질을 개선할 예정이다.또 내년부터 도서관과 보건소, 공원 등 전국 공공장소 1만6천 곳에 공공와이파이를 구축한다. 와이파이 속도 개선을 위해 단계적으로 차세대 ‘와이파이6E’ 기술도 도입하고, 프로스포츠 경기장과 버스정류장 등 밀집도가 높은 공공장소 400여 곳에는 5G 28㎓ 무선백홀과 10기가 인터넷 백홀 기반 와이파이를 시범구축키로 했다.이처럼 공공 와이파이망에 5G서비스가 본격 적용되면 한국인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누리는 디지털 포용 강국으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27

기어가도 옳은 길을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전자제품 수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직하게 일하는데 좀처럼 돈이 벌리지 않았다. 친구가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손님이 수리를 맡기면 고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수리하여 비용을 배로 챙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잉수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고객들이 발길을 돌려버렸다. 그는 크게 뉘우치고 다시 양심적으로 가게 운영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 신뢰가 쌓이게 되고 돌아섰던 고객들이 다시 돌아와서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성공의 비결을 묻자 ‘정직과 신뢰’라고 했다.자공이 공자에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 법을 물었다. 공자는 먹을 것이 풍족하고 군사를 넉넉히 두면 백성이 나라를 믿을 것이라고 했다. 자공이 또 묻기를 그 중에서 하나씩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했다. 하나씩 버려야 한다면 첫째는 군사요, 둘째는 먹을 것이요,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백성들 간의 믿음이라 했다. 국방, 경제가 든든하다 하더라도 백성들 간에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허물어지는 것은 하루아침이라는 것이었다.대장동사건으로 연일 세상이 뒤끓는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차치하고서라도 배분과 관련하여 경제정의는 아님이 분명하다. 작은 것을 투자하여 상식 밖의 큰 이익을 챙겨가는 것과 상상하기 힘든 퇴직금은 경제정의와 거리가 멀고 국민들 간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불의한 방법으로 많이 벌기 보다는 적게 벌더라도 정직하고 정의롭게 버는 것이 우선이다.성경 잠언 16:8에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고 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과연 그 엄청난 소득이 단 한 건이라도 불의하지 않고 한 점 부끄럼 없는 공의로운 소득이었을까? 대선의 과정에서 보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승리하기 위해서 같은 편 끼리도 불의를 행한다.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 역시 성공을 위하여 불의한 방법을 반칙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는가? 우리 사회가 반칙이 난무하고, 반칙이 일상이 되고, 반칙이 통용되는 것을 방치하면 우리 사회는 반칙사회가 되고 결국은 정의를 믿고 사는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져서 파국을 불러온다. 우리는 지금 경제와 국방은 어느 정도 든든한 편이다. 다만 국민들 간에 신뢰는 바닥이지 않을까? 어거스틴은 “잘못된 길에서 달려가는 것보다 옳은 길에서 기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기어가더라도 옳은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2021-10-27

청하하다

배문경수필가 청하에 내렸다. 도로변에 차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섰다. 시장 안쪽을 보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다. 청하(淸河)가 ‘공진’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나면서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 ‘갯마을 차차차’라는 순한 드라마 덕분이다. 억 소리 나는 액션도 대단한 기획 의도도 없는 요즘 보기 드문 소박한 드라마다. 포항 근교 어촌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사랑과 조연으로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정을 나누는 에피소드가 모여 따뜻하게 마음을 덥혀준다.청하라는 지명은 육청에서 유래하여 ‘맑은 시냇물’ 때문에 지었다는 설이 있다. 시냇물은 삶을 거스르지 않고 순하게 흘러 바다에 몸을 맡기고, 그 냇물을 곁에서 보고 자란 사람들은 저절로 순하게 됐다. 그래서 드라마처럼 순박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우리의 마음에 맑고 시원한 물 한 잔처럼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청’하면 치아 사이에 말이 동굴을 빠져나가고 ‘하’소리에 온몸의 나쁜 기운도 덩달아 모두 밖으로 배출하는 모양새다. 고여 있던 마음이든 소리이든 한꺼번에 넓은 바다로 몰려나가 저 넓은 대양이 되는 것이다.그런 청하라서 파도 소리도 순하다. 호미곶에 한 번 부딪힌 물결이 밀려와 은은하고 정다운 파도가 되어 모래펄을 훑고 사라락 부서진다. 파도를 응시한 바위 위 갈매기들은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파도와 동무가 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찬란히 빛나는 모래를 안으러 왔단다.’ 어릴 적 아이들과 손을 잡고 두 패로 나뉘어 왔다 갔다 하다간 틈을 봐서 상대를 잡아당기던, 아련한 추억처럼 파도는 가볍게 밀려와 모래펄 앞에서 나지막한 더미에 몸을 내맡긴다.청하는 바람 소리 또한 착하다. 아름다운 관송전 숲을 통과한 바람은 푸른빛으로 가슴을 쓸어안는다. 아름드리 숲은 청하중학교와 기청산 수목원을 감싸고 있다. 마을 어디에서도 숲을 지나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나무와 꽃이 사시사철 피고, 다양한 새들이 향기에 취해 날아오고 매미와 잠자리, 벌 나비가 수시로 넘나드니 사람과 숲이 동고동락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엔 해가 걸리고 달과 별이 걸린다. 잠자는 시간에도 어둠 속을 지키느라 나무와 별은 밤새 호위무사가 된다.착하고 순한 사람은 얼굴에 ‘나 착함’이라고 새겨져 있다. 내겐 삼십여 년을 함께 사는 순한 어른이 계신다. 시어머님이시다. 쉰 중반에 남편을 여의고 큰아들 가족과 지금껏 함께 산다. 오래전 기사 식당을 했던 솜씨로 만드는 음식은 예사롭지 않다. 더러 이웃에게 김치라도 나눠주면 어머님 솜씨 덕분에 내가 인사말을 늘어지게 듣기도 한다.그 지극정성을 먹고 자란 손자 손녀 셋이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낸다. 현관문을 열면서 “할머니, 할머니” 외치는 아이들에겐 어미는 없고 할머니만 있다. 음식을 오물오물 맛나게 먹으며 눈을 반짝인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이 제일 맛있어.” 그 말에 힘이 나신다는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챙기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오늘도 식탁 앞에서 막내는 갓 만든 김치를 맛보며 엄지 척을 한다.이젠 칠순을 넘은 몸으로도 가족을 건사해주시는 모습에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낄 때가 많다. 따뜻하고 정성들인 음식은 밖에 나가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란 착한 두드림이다. 힘내 살라고 말보다 몸으로 늘 응원해주시니 그 순한 눈빛에서 힘을 받는다. 이젠 좀 편히 쉬시라고 해도 그 일을 관둘 수 없다는 어머님의 얼굴이 ‘청하’하다.맵지 않고 순한 드라마를 보다가 멋지고 황홀한 배경을 보면 어머님을 모시고 간혹 여행을 떠난다. 그곳을 찾아가서 배우가 연기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나도 어머니도 주인공의 순한 몸짓을 흉내 내어 본다. 우린 그 순간 그 누구나가 될 수 있으니까.코로나로 답답한 나를 밖으로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코스모스를 흔드는 바람과 이제 막 머리부터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나무가 떨어뜨리는 잎새. 여행은 한쪽으로만 쏠려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 눈이 깊은 사람이 되게 한다. 10월, 아직 햇살이 눈부시다. 한나절 청하에서 홍반장이 되고 윤혜진이 되어본다.

2021-10-27

배롱나무, 너를 보며 붉은 차 한잔을

누구나 한 번쯤 열정을 불태우고 싶을 때가 있다. 붉게 타오르는 마음을 일으켜 무엇을, 모든 것을, 더 많은 것을 이루려 두 주먹 꽉 잡는다. 마음과 달리 팍팍한 오늘 하루를 살다 심장의 박동이 느려지고 현실과 자주 타협한다. 뜨겁던 마음이 재처럼 사그라질 때, 배롱나무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배롱나무를 쓰다듬으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배롱나무를 만지면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나무의 수피는 상처가 났다가 아물어 딱지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생각과 다르게 나무는 매끈하고 부드러워 자꾸 만져보고 싶을 정도다.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고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제아무리 예쁘고 향기로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짧은 시간 동안 제 할 일을 다 하고 떨어지고 만다. 예쁜 꽃은 예쁘게 피워 사람의 발길을 들게 하고, 향기로운 꽃은 나름의 향기를 뿜어 나비와 벌이 찾게 한다. 배롱나무는 붉은 정열을 타고 나지 않았을까. 며칠도 아니고 백일동안 붉은 꽃을 피워 사람을 끌어당기니 말이다. 옛 선비들은 뜰에 배롱나무를 심어놓고 수시로 가까이했다. 다른 나무와 다르게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어 그 붉은 꽃의 정열을 삶에서 배우고 싶어서이다. 배롱나무는 주로 서원의 뜰이나 성인들이 살았던 마당 한쪽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선계를 상징하기도 한다.해마다 여름이면 습관처럼 찾는 곳이 있다. 안동 병산서원에 피어난 배롱나무꽃을 보기 위해서다. 배롱나무의 꽃이 내 눈에 든 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는 잊을 수가 없다. 봄이면 파릇한 기운으로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푸른 물결로 출렁이고 붉은 꽃망울이 흔들렸지. 가을이면 저다운 색깔로 익어가는 것을.서원의 복례문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늘과 땅의 진리를 해독하고자 숱한 날을 공부에 정진하고 가끔은 배롱나무 곁에서 시 한 수 읊고 마음의 영역을 넓혔을 것이다. 천자문을 읽을 줄 안다고 세상을 다 깨우친 것이 아니듯 삶을 학문만으로 다 여물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마음을 풀어놓으니 걸음마저 느릿해진다. 이순혜​​​​​​​수필가 백일동안 피고 지기를 마친 배롱나무를 다시 보러 갔다. 병산서원이 아닌 경주시 현곡면 용담정이다. 숲길이 아담하고 가파르지 않아 두어 시간 나들이로 제격이다. 이곳은 동학의 발생지이며 천도교의 성지다. 용담정 마루에 앉아 오감을 열어놓고 배롱나무를 멍하니 바라본다. 고요가 깊어지면 마음 한 곳에서 부싯돌이 일어 뜨거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맞잡고 용담교를 건너 작은 폭포를 휘감아 내게로 온다. 점점 더 크게 요동하며 지난여름에 붉게 꽃피운 배롱나무에 닿는다. 다음 꽃을 더 붉고 정열로 피우고자 배롱나무를 붙든다.성삼문 ‘백일홍’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서로 백일을 바라보니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숲길을 돌아 한적한 카페에 머문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 창밖에는 배롱나무 가지가 가을바람에 살랑거린다. 지난여름 뙤약볕에 백일동안 붉은 꽃을 피운 나무는 이제 내 찻잔에 들었는가, 그동안 식어버린 정열을 다시 불태우리라.

2021-10-27

어느 파독 간호사의 메시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극과 극인 계절을 경험하는 10월이다. 30℃를 훌쩍 넘는 가을 폭염(暴炎)에서 도로 결빙 주의를 알리는 가을 한파주의보까지! 폭염에서 한파까지는 단지 며칠에 불과했다. 2021년 10월을 경험한 사람에게 여름과 겨울 사이의 시간을 묻는다면, 그들은 며칠이라고 말할 것이다.가을 장마, 가을 폭염, 가을 한파!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사람 사는 사회가 혼돈의 극치일 때도 자연만큼은 철을 지켰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 않다. 분명 자연은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지구, 자연, 생태, 환경, 사람, 공생, 나눔, 배려” 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기만 할 뿐 실천은 늘 남의 일이다.그래도 이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자연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자연의 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과 코로나로 흉흉한 학교와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주 ‘기계면 현내2리’에서 있었던 살아있는 교과서 밖 위인(偉人)의 선행 실천기를 전한다.주인공은 마을 경로당이 낡은 것을 보고 기꺼이 큰 기부를 한 파독 간호사 1세대 ‘도자야’여사다. 다음은 1965년 2월에 독일로 건너간 도자야 여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독일에 간 이유?) 당시 한국 경제와 집안 사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파독 간호사 모집에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습니다. 외화를 벌어오면 나라와 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독일 생활에서 힘들었던 점은?) 외국이다 보니 너무 생소했습니다. 일단 언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장 지독한 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먼저 생활이 맞지 않았고, 문화도 생소해서 적응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외국인이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도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독일이 제2의 고향이지만, 그 당시는 몇 번이나 집에 오고 싶었고 울며불며 가족을 생각해서 버틴 게 벌써 56년입니다.”“(기부를 결심한 이유는?) 항상 독일에서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2년 전 기계에 와서 경로당을 봤을 때 시설이 많이 노후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기계는 부모님이 저에게 주신 고향입니다. 어르신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면 어떨지, 편하게 지내실 곳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기부금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기부를 했습니다.”“(일반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 코로나 시대에 다들 힘들지만 조금만 더 힘내고 주변도 돌아보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아서 조급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천천히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은 취업난에 너무 고생이 심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희망을 항시 포기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면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고생고생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노력과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삶의 지혜란 이런 것이 아닐까!

2021-10-27

무엇이 선거판을 이렇게 만들었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내년 3월 9일 대선이 4개월 남짓 남았다. 여당은 이재명 후보를 대선 후보로 결정했지만 아직도 경선의 후유증은 가시지 못했다. 야당 윤석열과 홍준표 후보의 2강 구도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미지수다. 당내 경선에서부터 여야 후보 간 헐뜯고 비난하는 혼탁한 선거판이 재연되고 있다. 우리의 후진적이고 고질적인 선거 풍토가 개선되지 못한 결과이다. 11월 5일 야당 후보가 확정되면 후보 간 폭로와 비난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비난과 저주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 나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부끄럽다.이 나라 선거판이 이토록 혼탁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가 기본적으로 진영 논리로 극한 대결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는 겉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진영의 논리를 무조건 옹호하고 있다. 상대의 잘못은 추호도 용서하지 않는 비정상적 선거 풍토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이번 대선에서도 ‘내로남불’의 논리가 작동되고 선거판은 더욱 혼탁 과열되고 있다. 우리의 정당정치가 전근대적인 붕당정치에 길들여져 머문 결과이다. 이러한 정치 구도 하에서 여야는 네거티브나 마타도어를 승리의 수단으로 삼는다. 네거티브는 게임이론상 상대를 인정치 않고 나만 살자는 이론이다. 이 나라의 선거가 너와 나의 공생이 아닌 승자 독식 독점 구도이다. 전쟁처럼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판에도 뇌물용 돈 다발, 개에게 주는 사과, 양두구육의 인형, 손바닥의 주술 문자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네거티브와 해괴망측한 마타도어까지 동원되고 있다. 정책 검증은 사라져 버리고 상대를 무조건 흠집 내고 ‘아니면 말고 식’ 폭로전이 이어져 더욱 한심스럽다.이러한 선거 풍토에는 편향되고 갈라진 언론마저 한몫하고 있다. 진영언론의 가짜 뉴스, 오보 등 무책임한 보도행태가 선거판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선거판의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를 바로 잡아야 할 언론마저 진영논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의 편 가르기 식 편향된 보도는 선거판을 더욱 혼탁케 하는 주범이다. 언론자유를 앞세운 유튜브나 개인 미디어까지 동원되어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이를 심판할 정치 평론가들도 진영의 이익을 옹호할 뿐 공론의 장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시민 사회의 여론은 더욱 양분되고, NGO의 공정 비판과 견제 기능마저 마비되고 있다.결론적으로 우리 혼탁한 선거판은 진영의 대결, 악의적 선거 전술, 불공정한 언론의 3중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비극적 결과이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아직도 조선조의 사색당쟁의 후진적 붕당 정치를 반추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정치는 겨우 반독재 민주화 단계를 넘었으나 성숙한 사회 민주화 단계는 넘지 못했다. 이제 우리 정치도 사이비 진영정치의 한계를 극복하여 다당제가 공존하는 내각제를 적극 검토할 시점이다. 우리의 시민 사회의 민도는 아직도 가짜 뉴스나 네거티브, 흑색선전에 취약한 수준이다. 우선 우리의 편향된 언론은 대오각성 하여 언론의 정론직필 기능부터 회복해야 한다.

2021-10-27

일본과 중국의 문학을 읽자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23일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이었다. 상강 절기를 며칠 앞두고 내린 된서리와 무서리 때문에 일부 언론은 앞다투어 ‘가을의 실종과 겨울의 도래’를 재잘거렸다. 어디 그뿐인가?! 한반도에 봄과 가을이 완전히 실종된 것처럼 호들갑 떠는 자들도 적잖았다. 여기 동조하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보노라니 부아가 치미는 것이었다. 대체 왜들 저러는 걸까?!자연은 일탈하는 듯하다가도 슬며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법이다. 우주 운항의 법칙이 어느 날 돌변함은 지구 종말이 다가왔다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지경까지 이른 상황은 아니다. 한두 가지 변화로 전체를 예단함은 오류와 제휴하는 첩경이다. 그래서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하는 영어 속담도 있는 게다.각설하고, 상강 무렵이면 떠오르는 한시(漢詩)가 있다.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가 남긴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칠언 고시 스물여덟 글자로 가을의 서정과 나그네의 우수에 찬 심사를 그림처럼 포착하는 솜씨는 달인의 경지와 멀지 않다. 나이 50이 넘어 과거에 두 번째 낙방한 우울한 마음을 서리 내리는 시절과 절묘하게 배합한 ‘풍교야박’.원문을 보자.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우리말로 바꿔본다.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구나. 강가의 단풍나무는 고깃배의 등불과 마주 보고 쓸쓸하게 잠들어 있네.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는 한밤중의 종소리가 나그네의 배까지 들려 오는구나.” 여러분은 이 시를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시는가?!첫 줄에서는 깜장의 까마귀와 서리의 흰색이 대비되고, 서리 가득한 한밤중에 들리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중첩된다. 소리와 색깔의 공감각이 문득 화합한다. 둘째 줄에서는 단풍나무와 고깃배의 등불이 붉은색으로 마주하고 있다. 여기서 방점은 ‘쓸쓸하게’ 혹은 ‘슬프게’라는 부사어에 있다. 조락을 목전에 둔 단풍과 하릴없는 고깃배의 등불이 화답하듯 어울려 잠든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세 번째 줄에서는 장면이 고소성 밖 한산사로 일신된다. 장소변화는 정황의 급변을 불러온다. 그것이 네 번째 줄에 고스란히 담긴다. 시인이 잠들어 있는 나룻배에 들려 오는 한밤중의 종소리. 그는 지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전전반측(輾轉反側) 불면의 밤과 대면하고 있다. 고향의 늙은 처와 장성한 자식들을 바라볼 면목이 없는 것이다.나는 ‘풍교야박’을 소주의 풍교에서 만났다. 그때 일본 관광객들이 시에 보여준 친근함은 놀라웠다. 그들은 중학교 국어책에서 ‘풍교야박’을 배웠다 한다. 우리는 어떤가. 단 한 편의 중국인과 일본인 작가의 시나 소설, 희곡도 초중등 국어 교과서에 없을 것이다. 21세기를 살면서 좌우에 포진한 나라의 문학에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가?! 어디 내놔도 꿀릴 것 없는 대한민국이다. 이제라도 그들의 시와 소설, 희곡을 넉넉한 마음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2021-10-26

종이화폐의 위기

몇 해전 한국은행이 돈의 유통과정을 살펴 화폐의 수명이나 환수율 등을 발표한 적이 있다.화폐 중 수명이 가장 긴 화폐는 1만원권으로 10년1개월로 조사됐다. 1천원권은 4년4개월, 5천원권은 3년7개월로 가장 짧은 수명을 보였다. 5만원권은 2006년 처음 선을 보여 충분한 기간이 경과하지 못해 정확한 유통 수명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화폐의 수명이란 사람의 손을 많이 거치면서 더이상 사용이 불가능해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기간을 말한다. 1천원권과 5천원권이 1만원권보다 수명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시중에서 유통되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또 한국 사람의 76%가 1만원 이하의 물품을 구입할 때는 현금을 쓰며 화폐 환수율이 가장 떨어지는 화폐는 5만원권이라 했다.화폐의 생성 역사를 보면 아주 오래전 물물거래하던 물품 화폐시대에서 금속 화폐로 지금의 종이화폐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카드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종이화폐도 사용률이 급격히 떨어져 지금은 비현금 결재비율이 90%에 이른다. 이런 추세에 맞춰 디지털 화폐 등장이 예고되는 것도 눈길이 간다.디지털 화폐란 금전적 가치를 전자적 형태로 저장해 유통하는 통화다. 가상화폐와 달리 정부의 통제하에서 발행됨에 따라 종이 화폐 시스템에서 등장하는 카드사가 빠지고 정부와 소비자만 존재하는 구조다. 화폐 관리가 용이하고 제조비용 절감과 위조·횡령 등의 방지도 쉽다.우리나라에서 돈 만드는 일을 전담하는 한국조폐공사가 사업 전환을 고민중이라 한다. 한때 공기업으로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쌓던 직장이 창립 후 처음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산업계 전 분야에 부는 디지털화 바람으로 종이화폐도 이제 서서히 수명을 다해가는 모습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0-26

한글 생각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그 낱낱의 말은 다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 준 거룩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1947년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우리말큰사전’의 머리말 일부다.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온갖 고난을 겪은 ‘우리말’이 흩어진 글자와 단어들, 방언과 속어들, 기억들, 옛 이야기들, 꿈과 마음들, ‘엄마’와 ‘윤슬’과 ‘미리내’와 ‘개여울’들, 그 모든 처절한 뼈와 살들을 겨우 한 데 모아 몸을 갖췄다. 한글학자들의 감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전 세계에 현존하는 약 3천 개의 언어 중 고유한 사전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단 20여개에 불과하다.2019년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헌신한 조선어학회 한글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주인공 김판수(유해진)는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간다. 그는 소매치기로 먹고 사는 즉자적인 인물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말은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말은 곧 ‘우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대자적 존재로 변화한다.판수의 자기존재 전환은 까막눈인 그가 한글을 깨우쳐 나가는 학습과 함께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어의 아름다움, 우리말을 지키고자 민중이 흘린 피, 땀, 눈물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그리스 크레타 섬은 400년 동안 터키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했다. 크레타 출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미할리스 대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노인은 웃었다. “내가 고생고생하면서 글자를 배운 이유, 이제 알겠지? 이 마을 벽이란 벽은 한 군데도 빼놓지 않을 테다. 교회 종탑에도, 회교 사원에도, 내 죽기 전에 써둘 테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한 글자씩 쓰고 그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자기 솜씨를 감상했다. 그는, 가로로 긋고 세로로 긋기만 해도 목소리, 그것도 우렁찬 함성이 되는 신비에 어리둥절했다. 이런 부호가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그저 텅 빈 채 묵묵히 서 있던 담벽과 대문이 이제 소리 높이 자기네 희망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었다.”조선어학회 한글학자들은 말의 해방이 곧 정신의 해방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은 총탄 빗발치는 전장에서 싸운 독립군 못지않은 것이다.우리는 한국어를 지켜낸 이들의 위대한 희생을 기억하면서, 노래를 지어 부르고, 시와 소설을 쓰고 읽고, 줄임말과 합성어와 신조어 등으로 우리말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해야 한다.‘말모이’ 후반부에 판수의 중학생 아들 덕진이 여동생 순희를 업고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요양병원에 5년째 누워 있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할머니는 일본군 전투기 활주로가 있던 마을에서 태어나 청력이 온전치 않았다. 당연히 말의 배움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는 ‘요이땅’, ‘벤또’, ‘요시’ 같은 일본말을 자주 했는데, 볕 좋은 날이면 혼자 마당에 앉아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셨다.“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말큰사전’ 머리말에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조선말은 조선 사람에게 너무 가깝고 너무 친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조선 사람에게서 가장 멀어지고 설어지게 되었다”고. 우리는 모두 ‘엄마’, ‘아빠’, ‘해’, ‘달’, ‘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를 배우며 울긋불긋 말의 꽃이 피어나던 모국어 마을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얼마 전 한글날이었다. 2012년 공휴일로 재지정된 후 역사적 의미보다는 ‘노는 날’로 여겨진다. 국문학과 졸업 시험에 토익 성적을 제출해야 하고,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풍조 속에서 이런 글은 고리타분한 것일지 모른다.다만, 드라마와 케이팝 열풍으로 전 세계인들이 한글을 주목하는 지금, 나는 우리말이 세계시민의 ‘제2외국어’쯤 되는 꿈을 꿔본다. 그러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도 나올 것이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망상은 볕 좋은 주말 낮잠에 이미 전송해뒀다.

2021-10-26

비접종자가 살아가는 법

최근 화이자 1차 접종을 맞았다. 평소 피부알레르기를 심하게 앓고 있던 터라 백신 접종을 망설이고 있었지만, 백신 미접종자로 회사 내 카페와 식당 출입이 제한되자 오랜 고민 끝에 접종을 결심하게 됐다.그 전에 물론 피부과도 몇 차례 들러 여러 의사 소견을 들어봤지만 큰 위험은 없겠으나 부작용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고 했다.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해서 접종을 결심하게 되었고 실제로 백신 접종을 해주었던 의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호쾌하게 주사를 놓아주었다.그렇게 화이자 1차를 맞은 첫날과 이틀은 무리 없이 지나갔다. 괜히 겁먹은 건 아닐까 생각하던 와중 문제는 3일째부터 시작됐다.심장 부분이 아프면서 저릿하더니 목에는 이물감이 걸린 듯 호흡이 불편해졌다. 먹는 즉시 게워냈고 두통과 울렁거림도 찾아왔다. 근처 약국에 들려 증상을 호소했더니 진통제를 추천해줬다.다음날, 진통제를 먹고 나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자 결국 오전 업무를 중단하고 병원으로 향했다.회사 근처 내과 2곳을 들렸으나 백신 이상증세 환자는 예약이 아니라면 당일 진료를 보지 않는단 황당한 말을 들었다. 듣자하니 이상증세 환자 예약은 2주나 밀려 있어서 오늘 신청하면 2주 뒤에나 진료 볼 수 있단 말을 했다. 그 말을 두 군데서 들으니 아찔해졌다.그렇게 병원을 나와 다음 내과를 찾으러 지도를 켰으나 이미 회사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들 밖에 남지 않았다.응급실 밖에 답은 없는 것인지, 그곳에선 기다림 없이 진료와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곧 회사로 돌아가야 했고, 책상 위에는 맡은 업무가 한참이나 밀려있었다.결국 급한 마음에 눈앞에 보이는 이비인후과에 들어갔고, 다행히 그곳에선 진료를 받아주었지만 대기시간이 무려 삼사십 분 즈음 걸렸다. 겨우 진료를 보았는데 의사와 간호사의 얼굴은 지칠대로 지쳐 보였다.의사는 나 같은 환자가 하루에도 많이들 온다며, 이런 증세는 아주 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앓고 있는 증세에 맞게 약 몇 가지를 처방해줬다. 별 수 없었다. 30분 간 수액을 맞고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회사에선 맡은 업무를 하며 나와 같은 이상증세를 겪는 이들을 인터넷과 유튜브로 찾아보았다. 가슴 통증은 물론이고 겨드랑이 멍울, 두드러기, 미각 후각 상실은 물론이고 심할 경우 시각 상실, 심지어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겨드랑이 멍울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앓고 있는데 이러한 부작용을 제대로 명시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또한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대처도 피해 지원도 나서지 않고 있는 상태이니 난감했다. 이상증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병원 정보 또한 인터넷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급한대로 근처 응급실에 연락해보니 3시간 대기는 물론이고, 각종 검사 비용은 오롯이 내가 떠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검사를 받고 나면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런 와중 10월 23일자로 전국민 70% 백신 접종 완료율을 도달했다. 방역당국이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 기준을 내세운 퍼센트율을 넘어선 것이다. 단계절 일상회복은 곧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뜻인데 위드 코로나란 코로나19의 완벽한 종식을 막는다기 보단, 그간의 방역 체계를 바꾸어 코로나 19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전환 개념이다.현재 위드 코로나 시대에 직면하게 되면서 백신 패스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접종 완료자에 한해 공공시설 이용 제한을 완화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신 접종을 마친 이에겐 백신 패스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는 QR정보로 접종 여부를 파악하여 경기장이나 다중이용 시설 출입 이용이 허용된다.그러나 백신 패스가 강행되는 분위기가 되자 접종을 중단하려는 이들이나 미접종자들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백신 접종에 개인의 선택권이 전혀 존중받는단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기저 질환 환자는 애초부터 선택권이 없을뿐더러, 나의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하는 주변의 압박과 환경은 분명히 존재했었다. 이렇게 맞는다 하더라도 알 수 없는 부작용과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단 외면의 상황에 처하니 이젠 2차를 맞을 엄두가 안 난다.더군다나 부스트샷 권장과 새로운 AY 4.2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이라니. 미접종자들이 점점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은근한 압박과 함께 계속해서 소외될 뿐이다.

2021-10-26

시는, 노래한다

김소월이 1925년 낸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표지. 시는 노래한다. 저만치서, 계속해서. 노래하고 있었다, 저만치서 계속해서, 언제까지나.시란 본디 언어의 일정한 나열에 음률을 붙여 노래하기 위한 목적의 것이었다. 조금 과장을 덧붙인다면, 음률을 붙이기 위해 정형화된 시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많은 가수들의 노래 가사나 마찬가지였던 것이 아닐까. 음악이 먼저였을지, 언어의 나열이 먼저였을지, 그것은 알기 어렵지만 말이다. 음률에 신경써 언어를 나열하려면, 단어나 음절의 개수에도 신경 써야 하고 반복에서 오는 맺음과 이어짐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른바 두운이나 각운이다. 학생 시절, 음수율이니 음보율이니 그것이 노래인지도 모르고 배웠던 시의 운율은 사실 노래였다. 그것을 알고서 나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적 규칙이 있는 시들은 대개 누군가 거기에 음률을 붙여 노래를 불렀던 것들이다. 향가니, 고려가요니, 악장이니 시조니, 하는 것이 모두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어딘가에 새겨진 문자의 특별한 나열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거기에 깃들어 있던 누군가의 노래는 휘발되어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언어는 노래의 흔적이다. 지금은 노래를 목 놓아 불렀던 그 사람의 그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던 절박한 마음이나 악기의 소리나 목소리 역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어떤 집에 살았던 누군가 떠나간 다음에 그를 모르는 다른 사람이 그가 남겼던 흔적을 통해서 그의 삶의 활동들을 짐작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시를 읽으며, 그 노래를 떠올리는 것은.노래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언어의 자유를 획득한 자유시의 이념이 제기되고 그것이 일반화된 지금, 시는 읽는 것이다. 서가에서 시집을 골라 펼치고 눈으로 읽는다. 유독 세계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이나 그것을 포착해내는 언어의 해상도가 뛰어난 시인이 만들어낸 놀라운 언어의 연결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물론 자유시를 읽는 것은 귀가 즐거운 경험은 아니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경험이다. 그렇게 지금 시와 노래의 가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김소월 시인. 하지만, 가끔씩, 눈앞에 펼쳐지는 현란한 언어에 눈이 피로해질 때쯤, 서가에 꽂힌 김소월(1902∼1934)의 시집을 펼치면, 시는, 노래한다. 시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비록 ‘진달래꽃’의 원본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귀해져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재현물에 불과하지만, 시인 김소월이 시를 공부하고 언어를 고르며 흥얼거렸을 콧노래는 흔적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만,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분명 노래가 내 귀를 울린다.김소월은 우리 시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노래로 불린 작가이다. ‘진달래꽃’이나 ‘개여울’, ‘엄마야 누나야’,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등 예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가수들이 김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김소월의 시집을 펼쳐 읽으며 내가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사실 그 가수들의 노래일지도 모른다. 시에 노래가 한 번 깃들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고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문자의 나열로만 남은 김소월의 시를 그토록 많은 가수들이 노래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은 그의 시가 민요에 뿌리를 두고 있어 형식적 정형을 띠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 단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김소월의 시 속에는 천연덕스럽게 노래로 부르고는 있지만, 말로는 못할, 말로는 못했던 복잡한 감정의 잔여가 들어 있다. 시를 처음 읽을 때는 그 형식적 정형이 완벽해서 그 복잡한 감정을 눈치 채기 어렵지만, 세상을 살아가다가 무심코 말로는 바뀌지 않은 감정이라는 경험을 공유했을 때, 김소월의 시를 제멋대로 흥얼거리게 될 때, 시는, 노래한다. 비로소 노래하기 시작한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1-10-25

신라 사찰의 분포와 왕경의 형성과정

신라 왕경은 내외를 구분하는 외성(外城)이 없어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신라 당대에는 자연 지형이나 환경 등이 그 구분을 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울러 사찰, 왕릉, 산성과 같은 국가적 중요시설 등도 그 경계로 이용한 듯하다. 신라 왕경의 사찰은 그 분포양상을 보았을 때 중고기 때에는 서천 주변, 6세기 중엽 월성 주변, 7세기 후반 낭산 일원과 토함산 북록, 8세기 중엽 형제산, 토함산 남록, 8세기 후반 이후에는 오늘날 경주시 외곽지역까지 단계적으로 확장되어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찰의 분포양상과 입지는 신라 왕경의 형성 과정과 방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신라 중고기 사찰의 분포는 당시 경주 분지의 고지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비롯해 서천 동안에 분포하는 중고기 사찰은 대부분 구하도나 습지를 피해 미고지(微高地)에 건립됐다. 이러한 양상은 마랍간기 경주 분지 내 적석목곽묘가 용천천이나 습지를 피해 축조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6세기 초까지 신라 왕경의 중요시설은 수해로부터 피해가 적은 안전한 장소를 선택해 입지했다.진흥왕 14년(553) 월성 동쪽에 신궁(新宮)을 지으려고 시도했다. 이때의 신궁은 단순히 기존의 왕궁인 월성에 더해지는 의미보다는 지리적 한계가 있는 월성을 극복하고 대신하기 위한 시설이다. 진흥왕은 신궁 건설을 통해 왕경의 새로운 구도를 개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월성 동북쪽에 습지로 남아 있던 넓은 공간을 신궁 조성의 대상 부지로 선택했고, 이곳을 매립하고 개간했다. 비록 왕궁을 짓지 못하고 사찰, 즉 황룡사로 고쳐짓게 되었지만 분명 진흥왕의 신궁 건설은 왕경의 대대적인 개발을 염두 한 것으로 보인다. 황룡사 조성 후 왕경의 도시기반시설과 중요 건축물은 월성과 황룡사 주변에 집중되었고, 천주사, 분황사와 같은 국가사찰이 주변에 건립되었다. 이후 왕경의 개발은 황룡사 동편인 낭산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낭산은 7세기 전반 선덕여왕릉이 입지하면서 주변 개발이 점차 이뤄지고, 사천왕사(679년), 황복사(구황동 삼층석탑·692년 조성)와 같은 중요사찰이 조성될 무렵 낭산은 왕경 중심부에 완전히 포함되었다.신라 중대 전반 왕경의 사찰은 낭산 일원에서 가장 활발히 조성되었다. 이 시기 낭산은 왕경의 내외의 경계를 짓는 장소로 인정되며, 이 경계지점에 호국사찰의 상징인 사천왕사가 조성된 것은 매우 의도적인 입지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사찰 분포의 변화는 7세기 후반 문무왕대 대규모 토목공사에 따른 왕경의 재개편과 관련된다. 또한 682년 감은사 조성 이후 왕경과 동해안을 오가는 경로가 활성화 되는데, 이 경로는 낭산 북쪽을 지나 명활산, 천군동사지, 고선사, 기림사로 이어져 동해안 감은사로 연결된다. 특히 이러한 사찰들은 왕경과 동해안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요지에 입지하고 있어 각 사찰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다양했을 것이다.신라 중대 후반에도 여러 사찰이 새롭게 조성되었지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토함산의 불국사일 것이다. 앞선 시기 낭산 주변으로 분포하던 사찰은 토함산 일원까지 그 분포 범위가 확대 되었다. 이는 성덕왕 21년(722) 축성된 모벌군성(毛伐郡城·722년), 즉 관문성과 관련될 수 있다. 즉 관문성 축성 이후 오늘날 경주 외동일대까지 안전한 방어체제가 구축되었고, 이에 왕경의 중요시설은 토함산 일원까지 확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이 경로에는 신라 중대 후반부터 여러 사찰과 함께 왕릉(성덕왕릉, 원성왕릉 등)이 조성된다. 한편 이 무렵에는 동해안으로 오가는 또 하나의 길이 형성되었다. 오늘날 토함산 남록을 통한 길인데, 이 길에는 불국사(740년경)와 장항리사지(8세기 중엽)와 같은 사찰이 입지한다.신라 하대에는 왕경 전역에 중·소규모의 사찰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주변 산지에 들어선 소규모 불교유적(마애불 등)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이러한 현상은 신라 하대가 되면 지방 호족의 후원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지방에서 많은 불사가 있었다고 하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경주지역 신라 사찰의 분포 현상을 참고한다면 신라 하대에도 왕경 외곽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문무왕대 이어 애장왕7년(806)에 사찰 창건과 불사에 대한 금령(禁令)을 제정한 것은 신라 하대 들어서 그만큼 많은 사찰이 새롭게 건립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동하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신라 중고기나 중대에는 비교적 특정 지역(서천 주변, 월성주변, 낭산 주변, 왕경-토함산 일원)을 중심으로 사찰이 분포했었다. 또한 신라 중대까지 왕경 내 주요사찰의 분포를 살펴보면 가장 북단은 현곡면의 나원리사지(7세기 후반·북단)이고 가장 남단은 토함산의 불국사(8세기 중엽·남단)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신라 하대에는 사찰의 분포가 왕경 외곽으로 보다 더 넓게 퍼져있다. 즉 왕경 중심부를 기준으로 사방에 모두 사찰이 들어서는 변화를 보인다. 왕경 북쪽은 오늘날 현곡면을 넘어 안강읍, 강동면 일대까지 사찰이 분포하고, 동남쪽은 외동읍, 남쪽은 내남면 일원까지 사찰이 건립되었다. 동쪽에는 주로 토함산, 운제산, 함월산 등 동해안 경로 상에 사찰이 추가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서쪽으로는 서천을 지나 오늘날 서악동, 효현동, 율동, 건천 일대까지 사찰이 분포하는 양상이다.신라 왕경의 사찰은 신라 중고기 서천주변에서 시작해, 6세기 중엽 월성 주변, 7세기 후반 낭산 일원과 토함산 북록, 8세기 중엽 형제산, 토함산 남록, 8세기 후반 이후에는 오늘날 경주시 외곽지역까지 단계적으로 확장되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찰의 위치나 분포만으로 왕경의 범위나 발전의 전 과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찰의 분포양상은 신라왕경의 형성과정과 순서, 그리고 경로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2021-10-25

감나무와 새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무엇을 해도 좋을 가을날이 정갈하게 여물어간다. 억새가 손짓하는 산과 들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좋고, 도시의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기에도 좋으며, 풍성한 축제마당에 빠져 코로나 블루의 갑갑증을 떨쳐버리는 것도 좋을 일이다. 풍요로운 계절에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때가 되면 유난히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 감미로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가지마다 주황색의 등을 켜는 감에 대한 얘기다.유년시절의 가을, 고향집 뒷밭과 언덕에는 온통 주홍빛 감이 오지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지나면 논밭의 모자라는 일손을 거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편으론 다 익은 감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곶감으로 말리거나 큰 단지에 감잎과 함께 탱탱한 감을 켜켜이 쟁여놓는 일을 할머니와 수시로 하곤 했었다. 냉장고가 아직 보급되지 않아서 겨울날의 꿀맛 같은 별미와 허기를 달래기 위한 채비를 가을부터 했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감조리개를 이용하거나 큰 감나무에 올라서 감을 따는 일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다. 긴 대나무 장대 같은 막대기 끝에 V홈을 파서 감이 달린 가지를 끼워 돌리는 방식으로 꺾어서 감을 따는 것은, 장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팔의 힘과 끝부분을 가지에 정확하게 맞추는 집중력이 있어야 했다. 또한 ‘감나무에서 떨어지면 약도 없다’는 말처럼 약하고 미끄러운 가지를 잡거나 디디고 감을 따는 것은 위태롭기 이를ㅑ 데 없었지만, 공중곡예(?) 하듯이 노련하게 손발을 옮겨가며 몇날 몇일 감을 따야만 했었다. 그렇게 감을 따다 보면 더러 홍시도 나오기 마련인데, 감밭에서 먹는 홍시는 그야말로 꿀보다 더한 맛이랄까! 그러한 꿀맛 같은 감 맛이 어릴 때부터 입에 배어선지 필자는 감나무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좁지만 우거(寓居)의 뜰에는 감나무가 십 수년째 네 그루나 자라고 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담장 곁으로 단감이나 대봉감이 익어가는 모습에서 입맛을 돋구며 은근 슬쩍 한 개씩 따먹곤 했었는데, 아뿔싸 올해는 그러한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수년째 까치밥을 먹는 재미삼아(?)로 봄날부터 집을 찾아드는 몇 종의 새들이 감이 채 익기도 전에 먹잇감으로 쪼아먹어 거의 모든 감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그저 좋고, 때에 따라 새들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미묘한 소통의 방식까지 읽게 된 필자로서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새들끼리는 “저 집에 가면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항상 있어” “가을이면 맛있는 감들이 우릴 기다려” 라고 짹짹거리며 자주 폴폴 날아와 떫은 대봉감까지 저지레를 한 것으로 보인다.먹이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하며 재잘대는 새들이 가을의 한자락을 앗아간 것 같아 약간 떨떠름(?)하지만, 새들과의 공생은 마냥 정겹고 아름답지 않을까?

2021-10-25

메르켈 리더십이 한국정치에 주는 함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독일의 위대한 정치지도자, 앙겔라 메르켈(Angela D. Merkel)은 최초의 여성·동독·과학자 출신 총리이자, 최연소(51세)·최장수(16년) 총리이며, 스스로 물러나는 최초의 총리다. 독일은 물론 각국의 언론·학자·정치인들이 “세계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지도자”, “폭풍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정신적 지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등 그녀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이러한 존경과 박수는 어디에서 오는가? 메르켈이 독일과 유럽 그리고 세계에 커다란 업적과 교훈을 남겼기 때문이다. 독일경제의 회생과 정치적 양극화의 극복,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중재외교를 통한 EU의 안정화, 시리아 난민문제의 해결 등 내정과 외교의 성공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이른바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티 리더십의 실체를 분석해보면 ‘합리·실용·신중·중재·포용·통합·행동’ 등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 메르켈의 신중함은 토론과 타협, 그리고 합의를 이끌어낸 힘의 원천이었다. 과학자로서 합리주의는 이슈를 사실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다루고, 그 대책을 합리적으로 모색케 했다. 독일 보건장관 슈판(J. Spahn)은 “메르켈이 과학자처럼 일한다.”고 했는데, 이는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고 선입견을 갖지 않음을 말한다. 과학적 근거에 대한 신뢰, 열린 토론, 예측가능성은 과학자로서의 ‘합리적 규범’이 정치에 투영된 것이었다.무티 리더십은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며, 개혁과 통합의 열린 정치를 추구한다. 메르켈은 중재와 협력을 위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대연정(大聯政)을 세 차례나 성공시킨 ‘협치(協治)의 달인’으로서,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였던 독일정치를 혁신하였다. 이를 두고 영국의 포트러프(M. Qvortrup) 교수는 “독일 정치판을 정치보다 정책 토론장으로 바꾸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말보다는 결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 메르켈의 실용적 리더십이 가져온 결과였다.메르켈 리더십이 한국정치에 주는 함의는 매우 크다. 베버(M. Weber)는 “민주주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라고 했다.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에 철저했던 메르켈수상’과 자신의 ‘신념윤리에 매몰되었던 문 대통령’의 행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야당과의 관계에서 메르켈은 ‘정책토론’으로 성과를 거두었지만 문 대통령은 ‘정치공방’으로 허송세월했다. 메르켈은 포용력을 발휘하여 ‘행동으로 협치’를 증명하였으나 문 대통령은 ‘말로만 협치’를 외쳤을 뿐이다. 독일은 메르켈의 합리적·실용적·포용적 리더십으로 국론분열이 가장 적은 민주국가로 발전한 반면, 우리는 대통령의 편협하고 독선적인 리더십 때문에 나라가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다.“무지와 편협의 장벽을 허물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메르켈의 설파는 외눈박이 진영정치에 갇힌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2021-10-25

팬데믹 vs 엔데믹

팬데믹(Pandemic)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즉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것이라면 코로나 엔데믹(Endemic)은 코로나19와 함께 동행하는 위드 코로나시대에 코로나가 특정한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그런 현상 또는 그런 병으로 취급되는 것을 말한다.엔데믹 종류로는 인플루엔자(독감),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일본뇌염, 장티푸스, 콜레라 등이 있다. 이같은 진단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역내거시경제조사기구(AMRO)가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병을 뜻하는 팬데믹에서 주기적 감염병을 뜻하는 엔데믹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한 데 따른 것이다.최근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도 코로나19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처럼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감염병이 발생하는 엔데믹이 올 수 있다고 했다.실제로 모든 식당과 카페의 영업제한을 풀고도 7개월째 코로나를 잘 억제해온 나라가 있다. 바로 덴마크다. 지난 4월부터 클럽까지 봉쇄를 풀었지만 3차 대유행때의 1/4수준으로 4차 대유행을 막고 있다.특히 코로나 사망자는 100만명 당 1명 아래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덴마크가 코로나 엔데믹으로 성공한 요인은 코로나19가 주는 국민의 정신적 고통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백신 부작용 가능성을 처음부터 투명하게 알려 신뢰도를 높였고, 16세 이상 성인인구 접종완료율 73%를 달성할 수 있었다. 자율성을 강조해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등 방역지침이 일상생활에 스며들도록 했다.결국 높은 백신접종률과 국민의 자발적 방역이 위드 코로나의 성공비법이자 코로나 엔데믹 시대의 묘방이라는 얘기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25

함께 끄는 대한민국

조현태​​​​​​​수필가 유럽 어느 목장에 종자가 좋은 말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그 말 네 마리를 구입하였다. 그는 이 네 마리의 말들은 나란히 매어 마차를 끌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멀쩡해 보이는 말들이 농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말들이 만나기만 하면 사납게 날뛰고 서로 싸우며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말들을 나란히 매어 마차를 몰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말들이 따로 흩어져 있으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함께 모이기만 하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먹이를 주며 달래보기도 하고 채찍으로 벌을 주기도 해 봤으나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농부는 고민에 빠졌다.오랜 고심 끝에 수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 말들을 잘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했다. 수의사도 농부의 설명을 듣고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수의사는 네 마리의 말들을 마구간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씩 따로 있도록 칸을 질렀다. 말들은 여전히 옆 칸에 있는 말을 의식하며 소란스럽게 으르렁거렸다. 수의사는 칸막이에 적당한 창을 뚫었다. 그리고 창마다 몇 가지 놀이 기구를 매달아 두었다. 말들이 머리로 툭툭 받아치며 돌릴 수 있는 바퀴모양의 장난감, 발굽으로 쳐서 한 쪽에서 다른 칸으로 넘길 수 있는 공, 끈에 매달아 흔들리도록 만든 알록달록한 인형 등의 놀이 기구였다.말들은 이런 장난감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말들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자 수의사는 한 주간에 한 번씩 말들의 자리를 교대로 바꾸었다. 놀이기구를 통해 서로 호감을 조금씩 나타내며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마리의 말들은 차츰 차츰 서로간의 적대감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네 마리의 말들은 매우 친한 사이로 변했다. 드디어 네 마리 말을 한 마차에 나란히 매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서로 머리를 부비고 핥아주며 친해졌다. 네 마리 말들은 마차를 놀이기구 다루듯 주거니 받거니 재미있고 신나게 몰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혁명’중.사람들이 사는 사회에도 여러 가지 공동체가 있다. 가정, 학교, 직장, 종교, 각종 단체 이를테면 체육, 음악, 미술, 문학, 과학, 농업, 상업, 공업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저항감과 반발심, 적대감이 있을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미워하여 지나치게 거북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공동체나 개인이 그 수의사와 같은 처방을 받을 수야 없지만 적어도 적개심은 없어야 동행이 가능하다.어떤 형태로든 같은 방향으로 달리거나 행동해야 공동체 또는 전문인이 아니겠는가. 동행하지 않으면 위의 책에서 말하는 말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대한민국이 넘어야 할 고지가 바로 코앞이다. 누리호 발사를 온 국민이 지켜보며 필시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같은 생각이 곧 동행이다. 함께 뭉치지 않으면 경제적, 정치적 식민화가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2021-10-24

10월의 마지막 날

윤영대수필가 10월 달력을 자세히 보니 국경일 2개, 법정기념일 7개 외에도 많은 ‘~의 날’이 있는 문화의 달이다. 또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도 있어 노란 국화꽃으로 화전도 부쳐 먹고 유자를 잘게 썰어 꿀물에 타서 화채를 만들어 마시기도 하는, 가을의 으뜸가는 상달이라는데 벌써 마지막 주일이다.풀잎에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는 벌써 지났고, 하얀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을 맞고 보니 산과 계곡엔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이고 아름답게 활짝 핀 국화를 시샘하듯 들판엔 코스모스와 구절초의 무리가 한창 나풀댄다. 기러기 날아가는 황금 들판에는 농부들이 추수를 마무리하며 겨울 맞을 준비로 바쁘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 벌레들은 숨어버린다. 이렇게 자연은 풍요롭고 알뜰한 계절을 베풀어 주는데 복잡한 정치벌판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슨 씨를 뿌리는지 온갖 시끄러운 말과 행동이 어지럽다. ‘된서리가 내리면 온 천지가 깨끗해진다’는 말처럼 서리 내려 맑게 씻었으면 한다.이번 10월은 날씨가 참 변덕이 심했다. 월초엔 30도를 웃도는 110년 만의 무더위가 덮치더니 곧이어 수도권에 113년 만의 가을 폭우가 내렸었고 또 보름도 지나기 전 중순엔 64년 만에 전국적으로 이른 한파 특보가 발령됐었다. 갑작스런 기록에 ‘가을이 사라졌다.’는 우려 섞인 말들도 나왔다. 경기 성남의 대장동이라는 조용한 마을에 택지개발 사업을 벌여 수천 배의 떼돈을 번 50억 클럽 얘기도 떠도는 것을 보니 기후위기와 함께 우리 사회도 위기가 온 탓일까 매우 걱정된다.이제 반소매, 짧은 바지, 엷은 속옷 모두 벗어 빨아 넣고, 긴 옷에 두꺼운 옷을 꺼내입고 추워지는 계절에 대응하듯 우리 국민들도 정치계의 비바람에 진흙탕물 튀기지 않도록 맑은 마음으로 조심해 가야겠다.시골집 대문간의 작은 감나무에는 주먹만한 홍시가 여남은 개나 열렸고 석류도 탐스럽게 입을 벌리는데 이른 아침 나가보면 그 밑자락엔 단풍잎이 떨어져 가을바람에 휩쓸려 다니고 겨울의 전령사 흰서리가 돌담 아래서 희끗거린다. 코로나 거리두기도 완화되어 다음 달이면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어 모임이나 영업시간 제한도 풀리고 코로나와 같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니 반갑다. 국내외서 백신 여권 말이 나오자 벌써 자가격리가 없는 11월을 내다보며 해외여행의 주문도 늘고 있다고 해서 나도 쓸쩍 꿈을 꾸어본다.문화의 달 10월엔 많은 축제가 몰려있다. 포항시도 스틸아트페스티벌, 거리예술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문화도시로의 위상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고 이제 그 축제들도 끝나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다. 어린이들은 큰 호박에 눈 코 입 등을 파서 괴물 마스크로 변장하고 장난도 치겠지만, 가족들과 차분한 마음으로 예술회관이랑 미술관 등으로 문화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겠다.10월의 마지막 날이 오면 즐겨 불러보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떠오른다. 가로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툇마루에 앉아 고구마 구워 국화주 한 잔 마시며 이 계절을 노래하고 싶다.“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2021-10-24

코로나19 재택치료 확대… 국민불안 크다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다음달 초 위드코로나 전환을 예고함과 동시에 재택치료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재택치료 확대 이유는 무증상이거나 경증인데 굳이 병원 혹은 생활치료센터에 격리함으로써 의료인력과 의료시설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재택치료시스템을 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원할 경우 보건소에서 확진자의 건강상태나 거주환경을 확인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한다. 대상자로 결정된 확진자는 건강관리 앱을 설치하고 하루에 2번씩 건강 모니터링을 실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비대면 진료를 통해 약을 처방받는다. 감염자의 격리관리를 위해 대상자는 GPS기능이 탑재된 안전보호 앱을 설치해야 한다. 확진 후 10일째가 되면 검체검사 후 격리해제 되는 식으로 운영된다.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재택 치료를 받는 환자는 2천280명(수도권 2천176명·비수도권 104명)이다. 재택치료에 대해 일선 보건소에서는 인력도 없고 경험도 없다며 답답해 하고 있다. 정부는 생활치료센터와 유사한 수준(환자 100명당 간호사 최소 3~5명, 의사는 최소 1~2인 정도)으로 보건소에 의료인력을 배치할 예정이지만, 보건소에서는 이미 백신 접종과 선별진료소 운영으로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재택치료까지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도권 보건소에서는 이미 재택치료자를 내버려둔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감염병 전문가 중에는 재택치료 확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택치료 환자가 늘어나면 관리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우선 환자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다. 지난 20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를 받던 환자가 확진 다음날인 21일 병원 이송 중 숨진 사건은 이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 재택환자가 입원할 병원이 미리 지정돼 있어야 하는데, 이 원칙이 안 지켜져 병원을 수소문하는 과정에 치료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고 한다. 재택치료 환자가 외부에 몰래 돌아다녀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무단이탈을 막으려는 조치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애플리케이션(앱) 의무 설치가 아직 유명무실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에 의하면 “재택치료가 끝날 때까지 앱을 설치하지 않았는데도 아무 제재가 없었다”는 환자 반응도 있다. 재택치료 규정상 보건소 협력병원은 하루 1, 2차례 비대면으로 확진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환자가 자신을 담당하는 의료기관도 모른 채 지내다가 재택치료 시작 5일째가 돼서야 협력병원의 연락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한다.재택치료에 대한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모델이 확립되기까지는 전국 지자체가 이 시스템을 동시에 가동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확진자가 급속도로 쏟아질 수 있고 위중증 환자관리도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위드코로나는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거쳐 시행돼야 한다.

2021-10-24

중국산 김치 공포

중국에는 김치와 전혀 다르지만 김치의 대표적 번역어로 파오차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파오차이는 채소를 염장한 중국의 절임배추를 이르는 말이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국의 김치를 그렇게 부른다. 만드는 방식이나 모양도 김치와 다르다. 오히려 서양의 피클에 가깝다.파오차이는 한국 김치가 중국으로 본격 수출되기 전에는 중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쓰촨지방의 향토음식에 불과했다.그러던 것이 2020년 11월, 중국의 환구시보가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을 받아 국제 김치시장의 기준이 됐다는 보도를 하면서 마치 중국이 김치 종주국인 된 듯한 논란을 자주 일으키고 있다.올 1월에는 중국의 최대 유튜버 ‘리즈치’가 김치를 직접 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물에는 중국의 전통요리라는 해시태그까지 달아 이를 본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중국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김치가 한류를 타고 국제적으로 크게 인기를 누리자 이를 계기로 중국이 김치 종주국 행세를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동북공정처럼 김치를 통해 또다시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했다.이런 가운데 중국산 김치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동영상이 최근 또다시 나돌아 충격을 주었다. 붉은색 양념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한 여성이 밟고 있는 모습의 영상이다. 과거 알몸 배추로 국민에게 쇼크를 주었던 중국산 김치의 비위생적 제조과정을 다시 연상케 한 동영상이다. 식약청이 비식품 물질이라고 뒤늦게 해명을 했지만 중국산 김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신감은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 식탁 깊숙이 들어온 중국산 김치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24

혁신적인 인구정책만이 미래를 보장한다

고윤환 문경시장 인구지진(Age quake)이 가속화 되고 있다.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는 27만 명, 사망자는 30만 명으로 사망자수가 출생자수를 추월하는 데드크로스가 시작되며 우리나라는 인구지진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이로 인해 도시 지역은 계속되어 상승하고 있는 높은 집값, 교통 혼잡, 환경 문제 등 과밀·혼잡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 농촌의 경우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 심화로 활력은 저하되고 지속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문경의 경우에도 인구구조 변화와 기간산업의 사양화에 따른 도시성장의 정체로 사회·경제·문화 등 지역쇠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문경시 인구는 석탄산업 시기인 1970년대 최대 16만 명까지 증가했으나 1980년대 이후 폐광과 함께 급속히 감소되었으며, 현재는 7만~8만 명으로 인구가 유지하고 있으나, 청년 인구 및 40대 인구 감소세, 50대 인구 증가 둔화, 60대 이상 고령인구 증가의 양상을 띄고 있다.먼저, 청년층이 희망하는 가치 있고 보람된 일자리, 높은 집값에서 벗어난 안정된 사회 정착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곳, 장·노년층이 희망하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 인생 이모작, 사회적 인정 등에 대한 욕구를 달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 공간으로 농촌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귀농·귀촌·귀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그동안 문경시는 귀농인 보금자리 운영, 귀농인 소득작물 시범 사업, 체계적 영농 교육과 경영컨설팅 지원 등 적극적인 귀농·귀촌 시책을 추진해 2019년 1천 51세대, 1천350명, 2020년 1천164세대, 1천399명을 문경에 정착시켰다.또한, 문경의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1.29명으로 전국 평균 0.837명, 경북 평균 1.00명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농촌의 빈집을 활용해 예비 귀농인들이 1년간 살아보도록 하는 귀농인 보금자리 사업은 농촌살이를 체험하며 주택과 영농기반 확보, 영농컨설팅과 현장교육 등 정착을 위한 임시거주지 역할을 하며, 2014년부터 61세대 142명이 이용해 정착 인원은 37세대 84명에 이른다. 많은 귀농·귀촌 희망자들의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거주지이다.농촌에 방치되거나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는 빈집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치안과 안전, 경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을 내 기존 주민이 고령화로 사망하거나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집이 발생하고, 타 지역에 거주하는 자녀가 상속받아 관리가 소홀해지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방치되고 있는 빈집의 주된 원인은 소유자가 빈집을 매매 또는 임대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농촌 빈집을 정비·활용하는 데 주요한 장애 요인이 된다.반면, 신규택지를 개발하여 분양하는 경우 막대한 설계비, 상하수도, 도로, 터 닦기, 그 외 기반시설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 구매자에게 높은 가격에 분양할 수 밖에 없고,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정책으로 도시민들이 2억 원을 초과하는 농어촌주택 구입 시 1가구 2주택 적용으로 세제상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문경에서는 최근 문경살리기 범시민운동 추진본부가 출범하고, 문경을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경사랑 주소갖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농촌에서 살아보기를 준비하는 도시민들에게 주거를 임대·지원하는 문경형 경량철골조 모듈주택사업 예비 수요조사가 실시됐다.경량철골조 모듈주택 사업은 귀농·귀촌을 고민하고 있지만 막상 집을 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농촌에서 살아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귀농·귀촌에 대한 실패확률을 줄여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고자 구상됐으며, 귀향·귀농·귀촌인에게는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 시골 곳곳에 방치되었던 폐가나 빈집을 정비함으로써 지역에는 주거 환경개선 효과와 지역경기활성화 등 1석 3조의 효과가 기대 된다.

2021-10-24

탐추

독서모임에서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고 느낌을 나눴다. 밑줄 친 문장 중에 풍류에 대해 정의를 해 놓은 부분이다. 그림 설명해주는 손철주님은 봄이면 탐매하러 가자고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몇 날 몇 시에 모여서 2박 3일 일정으로 매화 향기를 느끼러 가니 참석하라고 말이다. ‘탐매’라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나온다. 탐매하다, 탐매객, 이런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매해 탐매를 떠난다고 하니 그게 바로 풍류라고 한다. 그럼 나도 풍류객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찾아 나서니 말이다.지금은 가을, 오늘은 구절초를 보러 갔다. 서악동 도봉서당 뒤에 구절초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지 몇 년째인데 이제야 가게 되었다. 일하는 지인들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어스름 녘에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눈앞이 환하다. 삼층탑 주변에 하얀 꽃잎으로 수를 놓았다. 구절초가 언덕을 덮고 있다.해가 산 너머 집으로 서둘러 가느라 붉은 그림자가 서악동에 내렸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꽃밭을 눈에 넣어야 했다. 차에서 내리니 서늘한 기운이 골짜기에 가득할 뿐 늦은 시간이라 인적은 끊겼다. 그래서 구절초밭이 온통 우리 차지였다. 밭고랑 사이를 거닐자 은은한 가을 저녁 향내가 풍겼다. 아, 좋다~하는 소리가 서로의 입에서 나와 미소짓게 했다.언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탑 주변을 하얀 구절초 병정들이 에워쌌다. 그 옆으로 서당 기와의 색이 짙어 꽃이 더 환하게 돋보였다. 골짜기를 둘러싼 소나무 숲은 어두워져도 꽃밭엔 어둠이 더디게 내렸다. 덕분에 천천히 구절초를 탐하는 시간을 가졌다.일행 중에 오 학년 사내아이 둘이 구절초 사이로 뛰어다녔다. 사진을 찍어 저녁을 먹은 후 포토제닉상을 뽑겠다고 했더니 카메라를 향해 열심히 포즈를 취해준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과 안성기의 명장면도 재현하고, 어깨동무도 했다가 슈퍼맨도 되어주었다. 별 이야기 아닌데도 까르르 웃고 조잘거리는 소리가 꽃이 피어나는 소리와 닮았다.깜깜해져 꽃이 보이지 않을 때 즈음 산을 내려왔다. 구절초를 간직한 서라벌 하늘 위로 달이 둥실 떠올랐다. 달이 이지러진 곳 하나 없이 동그랗다. 오늘이 보름인가, 달력을 찾아보니 음력 시월 십육 일. 어제가 보름이었다. 낮 동안 포항은 종일 비가 내려 꽃을 보러 못 가겠구나 했다가 오후 5시쯤 구름이 걷혔다. 경주로 와보니 땅이 젖지 않아 여긴 비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래서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또 느꼈다.도솔 마을에서 경주의 맛을 느끼며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멋진 사진의 주인공에게 문화상품권을 주기로 해서인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른 셋이 사진을 돌려보며 어느 게 더 좋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두 아이에게 ‘천원이라 미안해’하며 만 원짜리 상품권을 줬더니 받자마자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그 얼굴이 구절초처럼 방싯거린다. 아이들이 꽃보다 곱다.가장 행복할 때는 맛있는 거 먹으면서 다음에 뭐 먹을지 의논할 때이다. 구절초 보고 와서 남은 가을에 어디로 탐추하러 떠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양의 핑크 댑싸리가 시월 말이면 절정이고, 안동 시내 낙동강 둔치의 핑크뮬리 보고 헛제삿밥 먹는 코스도 좋다. 경주 최제우 동상이 있는 천도교 성지 용담정으로 가는 길이 은행나무 가로수이다. 곧 노랗게 물들어 우리를 부를 것이다. 조금 멀리 눈을 들면 순천만의 낙조가 보인다. 갈대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면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노을을 보면 좋은 곳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파주출판단지 지혜의 숲의 높은 책장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면 더없이 좋은 여행이 된다. 가을을 탐할 곳이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배불리 가을을 채우고 경주의 밤거리를 걸었다. 보름달이 더 높이 솟았다. 아이들이 신나서 앞서서 뛰어갔다. 달을 배경으로 한 컷의 꽃 사진을 더 찍었다. 신라의 달밤이다. /김순희(수필가)

202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