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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눈에 보이는 대로 배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사람은 어떻게 배울까? 책보면서 깨우치고 학교에서 습득하며 살아가면서 여러 모양으로 배운다. 생각보다 우리는 ‘보면서’ 배운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목격하고 흉내내면서 내 것을 만들고 인성을 형성한다. 책이나 학교보다 눈으로 보면서 실제로 경험한 일들로부터 훨씬 많이 배운다.대선정국. 담론 주제가 위중하고 정치에는 모두 관심이 높은지라 국민의 흥미를 사로잡는다. 언론의 눈을 통해 ‘보이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필자에게 깊은 우려를 가지게 한다. 정치의 현실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게 숙명이라지만 정도(正道)가 있고 금도(禁道)도 있는 게 아닌가. 원칙도 없고 소신도 바르지 못한 모습을 흔하게 목격하는 국민은 지치다 못해 나라의 앞길을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국민이 특히 다음 세대가 무엇을 배울까 우려가 앞선다.거짓말. 돌아서서 살피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당당하게 한다. 실수로 발설한 거짓말도 끝까지 진실이라 우긴다. 처음부터 진실을 말하길 원하지만, 혹 실수였다면 바로 사과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눈덩이처럼 불어난 산더미 거짓된 모습이 정치의 현실이라면 국민은 또 얼마나 가여운 처지가 되고 마는가. 개인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었다면 당연히 나라와 국민 앞에 거짓을 고하고 속속들이 살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숨겨서 될 일이 아니다. 디지털과 온라인, 4차산업혁명은 거짓을 드러내는 데에도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뿌리채 드러나 형편없는 창피를 당하기 전에 국민 앞에 정직해야 한다.말을 바꾸는 일. 평균적으로 지능이 높아져서 그럴까, 했던 말을 교묘히 바꾸며 빠져나간다. ‘법적으로는 모르지만 도의적인 책임은 지고’ 미끄덩거리며 꼬리를 뺀다. 실질적인 책임과 분명한 사리판단은 언제나 남의 몫이고 자신은 어느 틈에 그 자리에 없다. 유체이탈.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 말을 바꾸고 사라져 버린다. 거짓과 악행의 증거와 자취는 감쪽같이 없애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으로 행동한다. 국민은 무엇을 배울까. 거짓과 위선을, 말과 훈계로 경계하기 보다 저렇듯 뉴스 속에서 목격하고 경험하며 실증적으로 체득하게 되지 않을까. 궂은 일에 걸리면 핸드폰들은 파쇄되거나 사라질 터이다. 거짓말을 하면서 태연히 눈을 부릅뜨지 않을까.공정과 상식, 정의와 올바름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는다. 국민의 눈에 목격되어야 하고 경험과 기억 속에 들어와 박혀야 한다. 보고 듣는 것은 늘 거짓과 위선인데 어떻게 공정과 정의로 세상을 물들일 것인가. 공의가 물같이 흐르려면 거짓없는 사람을 흔하게 만나야 한다. 상식이 가득한 세상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상식에 맞게 살아내야 한다.남들은 몰라도 나는 나를 안다. 거짓을 저지른 당신은 그것이 거짓인 줄 스스로 안다. 필요한 건 용기. 나라가 선진국으로 우뚝 서기 위하여, 거짓을 떨치는 당신의 용기를 ‘보고’ 싶다. 사람은 본 대로 배운다.

2021-09-15

무인자동결제 점포, 언커먼스토어

무인자동결제 점포, 언커먼스토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세계 최초의 무인매장은 2018년부터 문을 연 미국의 아마존 고로, 주로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여의도 더 현대 서울 6층에 들어선 약 10평 규모(33㎡)의 언커먼스토어가 최초다. 주로 소매 패션잡화와 생활용품, 자체 개발한 굿즈와 식음료 등 200여 개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해당 앱(현대식품관 to home 앱)을 깔고 입장하기 버튼을 눌러 QR코드를 생성한 고객에 한해 스피드게이트에 스캔 후 입장이 가능하다. 미리 깔아놓은 앱에는 결제카드를 사전 등록해야 하며, 원하는 제품을 선택한 후 들고 나가면 사전 등록한 카드로 자동 결제되는 시스템이다.서울 삼성동 코엑스 언커먼스토어도 마찬가지 방식이다. 매장 입구에서 사용자 인증 후 QR코드를 발급받은 뒤 원하는 상품을 골라 나가면 결제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방식이다. 편의점 곳곳에 달린 라이다 센서와 인공지능 카메라가 고객의 위치와 상품의 종류를 파악한 뒤 매대에 내장된 무게 감지 센서를 통해 고객이 실제로 상품을 실제로 집어갔는지 알아내는 원리가 적용됐다. 고객이 어떤 물건을 몇개 집어갔는 지 정확히 파악해 결제되고, 매대에 있는 음료수를 몰래 마시고 다시 넣어놓을 경우에도 매대 상품의 무게 변화를 감지해 결제가 된다.유통 사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한 것을 리테일테크(Retail-tech)라고 하는 데, 머신러닝, 로보틱스, 안면인식, RFID, 인공지능(AI), 3D 프린팅,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빅데이터 등이 적용돼 있다.우리 사회가 4차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하나 둘 채워지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9-15

이재명 대세론은 굳어질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과반이상을 확보해 가고 있다. 대선의 향방을 가늠한다는 충청 세종 경선에 이어 대구경북, 강원 경선에서도 그의 대세는 유지되고 있다. 관심의 초점인 46만명의 1차 선거인단 선거에서도 이재명의 지지율은 과반을 넘었다. 현재 경선의 누적 집계도 이재명 51.41%, 이낙연 31.08%, 추미애 11.35로 나타났다. 다급한 이낙연 후보가 국회의원직 전격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지만 전세를 바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이재명의 대세론은 이낙연의 결선 투표론을 누를 가능성이 높다.우선 이재명의 선거 슬로건이나 공약이 선명성에서 이낙연 후보를 앞서고 있다. 어느 대선에서나 후보의 슬로건은 당시의 시대정신에 부합해야 한다. 이재명의 공정사회 건설을 위한 ‘이재명은 합니다.’는 이낙연의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보다 메시지의 호소력이 강해 보인다. 이재명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분명하지만 이낙연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이다. 대중의 설득력은 이재명이 강하고 이낙연이 약하다. 갑자기 등장한 검찰의 ‘고발 사주’의혹은 윤석열의 ‘공정’프레임을 뒤흔들었으며 그 덕은 홍준표와 이재명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후보의 인물 평가는 그의 공약이 아니라 그 실천력이 담보에 있다. 이재명의 기본소득론과 이낙연의 신복지론은 사실상 차이가 없고 대동소이하다. 그렇지만 그간의 정책 토론과정에서 보여준 이재명의 간단명료한 답변과 임기응변력은 그의 과단성을 잘 보여주었다. 이낙연은 부드럽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했을 뿐이다. 이러한 코로나 위기 상황이 지속될수록 유권자들은 결단력과 실천력이 담보된 사람을 선호한다. 이재명은 코로나 초기부터 신천지 본부를 찾아가고, 유흥업소까지 직접 찾아가 단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후보의 도덕성 보다는 그의 결단력이나 실천의지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선거의 대립 구도 면에서도 이재명이 이낙연 후보 보다 유리하다. 경선 초반부터 당내의 세력판도는 친문이 비문을 압도했다. 이낙연은 친문 적자를 내세우고, 이재명 후보는 이제 비주류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야권이 정권 교체를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여권의 비문 비주류가 유리할 수 있다. 또한 지역구도 면에서도 경북 출신 경기 지사 이재명이 유리하다. 이낙연은 결국 광주 전남의 절대적 지지로 열세인 국면을 전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호남인들은 선거 때마다 본선 경쟁력 우선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10월 10일 민주당 최종 경선일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다.25일의 광주 전남선거에서 이낙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압도하기는 어렵다. 이재명 후보가 호남선거에서도 우세하거나 대등할 경우 이재명의 대세론은 완전히 굳어질 것이다. 부산 경남에 이어 경기 서울 등 수도권 선거에서는 이재명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 상황의 경쟁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이나 경륜, 도덕성보다는 본선 경쟁력과 실천 능력을 더욱 중시할 것이다.

2021-09-15

주문을 외워보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지금 사람들은 주문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 가장 풍성한 한가위이지만, 세상은 악몽 같은 일들로만 가득하다. 깨고 싶어도 좀처럼 깰 수 없는 악몽. 악몽이 가장 힘든 것은 꿈의 주체가 비록 나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명절을 앞두고 좋은 말만 하고 싶지만, 도저히 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선거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를 제외하고 악몽 아닌 곳이 과연 어디 있을까! 손님이 실종된 가게, 멈춰버린 공장, 문을 닫은 대학교, 사람이 사라진 거리, 친구와 웃음을 잃은 학생 등 우리 사회는 분명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다. 그 악몽은 마치 개미지옥과도 같다.명절 또한 악몽 속에 갇혔다. 사람으로, 정으로 가득해야 할 명절이 비어 간다. 이대로 가다간 명절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오는 먼 과거 유산이 되고 말 것이 뻔하다. 비어 가는 고향이 그나마 잠시 고향다움을 찾던 때가 명절이었다. 그런데 고향에도 이젠 명절이 없다.우리나라 명절에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에 갈 생각으로 힘듦을 견뎠다. 그러면 고향과 명절은 어김없이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충전해주었다. 우리 사회가 그나마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명절과 고향의 희망 순환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고향과 명절이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진 것이 정(情)이다. 정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이다. 사랑, 이해, 배려, 나눔 등의 출발점은 정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절대 잊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이 정인데, 지금은 어떤가!정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탐욕심, 사악함, 이기주의 등이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가 공포 영화 속 장면과 다른 것이 뭐가 있을까!영화 속 내용이 현실이 되기 전에 우리가 하루빨리 되찾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른이다. 흔들리는 우리 사회를 바로 잡아줄 모범이 되는 어른! 정이 없어진 것도 바로 어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이 가득하던 시절엔 우리에게도 늘 삶의 귀감(龜鑑)이 되어주던 어른이 있었다. 그 어른을 본받기 위해, 그리고 그들처럼 살기 위해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다.그것이 곧 공부였다. 학교는 그것을 가르치는 곳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범으로 삼을 어른이 없는 시대에 학교도 가르쳐야 할 내용을 잃어버렸다.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어른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우리 사회가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어른보다 더 어른다운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 다시 정이 부활하기를 마음으로 그 아이들이 외치는 주문을 전한다.“우리는 하나입니다. 모두 하나 되어 높이 날아봅시다. 외칩시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이 주문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리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1-09-15

끓인 라면, 삶은 라면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물을 데운다 / 라면을 끓일 요량으로 / 봉지를 뜯고 /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 이 한때 / 허기진 오후, / 외출 중인 아내의 빈자리가 / 공복처럼 쓰리다. // 멀리 낮기차 지나가는 소리에 맞춰 / 냄비엔 물이 끓고 / 가지런히 누운 대파를 / 숭숭 썰어 넣는다. / 잘 익은 김치를 / 밥상 위에 올리면 / 더 이상 부러울 것 없는 시간”정구찬 시인의 시집 ‘글씨가 사는 집’(뿌리, 2015)에 실린 시 ‘라면을 끓이면서’의 일부이다. 시인의 말처럼 허기진 오후를 때우는 손쉬운 방법의 하나가 라면 끓여 먹기일 게다. 대파 숭숭 썰어 넣고, 달걀 하나 탁! 깨어 풀면 성찬은 못되어도 일용할 한 끼 양식이 된다. 거기에다 ‘잘 익은 김치’(신 김치도 좋겠다) 한 접시를 더한다면 미각과 후각과 시각까지 만족시킬 만한 꽤 괜찮은 식사가 되지 않을까?1963년 9월 15일은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처음 판매된 날이다. 어느덧 한국 라면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마도 ‘한국인’으로서 라면을 안 먹어 본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듯하고, 라면에 얽힌 이야기 한두 개쯤은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한국 라면이 스무살 되던 해인 1983년 2월에 나는 군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의 토요일 점심 메뉴는 라면이었다. 꼬들꼬들한 네모꼴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찐 라면 2개가 군용 식판에 겹쳐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 스프국물이 부어졌다. 참 낯선 라면이었다. 배가 한창 고플 때니 입안에 욱여넣기는 했으나 이 생각지도 못한 꼴의 라면 먹기가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 주 한 주 지나갈수록 적응이 되었고 제법 맛을 느낄 만해지자, 논산에서의 6주 신병 훈련 과정은 끝이 났다.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따금 그 라면맛이 그립다.용기에 담겨 끓는 물만 부으면 간편히 먹을 수 있게도 되었고 다양한 종류와 조리법으로 라면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부대찌개에도 들어가고 양푼 돼지고기 김치찌개에도 들어가서 부담 없는 값에 푸짐하게 배를 불려주기도 한다. 달걀 하나로도 감지덕지했던 라면이 영화 기생충의 ‘짜빠구리’처럼 한우고기 채끝살을 살포시 얹은 고급진 요리가 되기도 하고, 떡과 만두 몇 점 들어간 라면에서 커다란 홍게에 랍스터가 들어간 값비싼 해물라면까지, 실로 라면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감자와 고구마가 조선 말 춘궁기의 구황식물이었다면 라면은 우리 시대의 구황식물이자 비상식량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선호 음식이 되었다.삶은 라면과 같다. 구불구불 말리고 켜켜이 쌓인 면발은 우리네 인생의 질곡을 보여주는 듯하다. 설익으면 밀가루 씹히는 맛에 떨떠름하고, 잘 삶아 제대로 풀어지면 쫄깃한 면발에 군침이 절로 돌고, 오래 놔두면 붇고 퍼져 먹기 싫어지는 라면처럼 우리 삶의 여정은 라면을 참 닮아 있다.시인은 시의 마지막 연에서 “산다는 것은 / 허기를 다스리는 일 / 권력도 富도 / 라면 한 개의 포만감보다 / 못한 것을”이라고 삶을 풀이한다. 대선의 계절이다. 정치가 우리네 삶의 허기를 달래주고, 라면 한 그릇의 포만감만큼이라도 느끼게 해 주면 좋겠다.

2021-09-14

청년의 날

미래학자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인구를 꼽는다. 그 나라 인구의 수적우세와 확장성이 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력을 비교하는 중요한 잣대로 보통 군사력과 경제력을 드는데,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울 수 있는 핵심적 요소는 역시 인구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대왕은 “백성의 숫자가 국력을 만든다”했다.한 나라 인구 중 청년층의 구성비가 중요한 것은 왕성한 생산력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청년을 위한 기본법을 만들고 청년의 날도 정했다. 때늦은 감 있으나 그나마 청년에 대한 권리보장과 청년문제에 대한 관심을 국가가 가진 것은 다행이다.우리나라에 청년이란 개념은 겨우 100여년 전에 도입됐다. 그 이전까지는 소년과 장년으로 구분했다. 구한말 한국사회는 소년으로 있다가 장가를 들면 장년이 되는 사회다. 개화기 시절, 청년이란 단어가 생겨나자 시중에는 청년이란 이름의 단체가 우후죽순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청년 개념이 어느덧 우리사회에 정착했지만 청년의 연령적 영역은 모호하다. 보통 20대와 30대를 청년층이라 했다. 그러나 요즘은 40대까지도 청년으로 본다는 견해도 있다. 작년 제정된 청년기본법에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으로 규정해 청년의 영역이 조금은 뚜렷해졌다.18일은 두 번째 맞는 청년의 날이다. 경제난과 실업난 등으로 결혼을 포기하고 사는 청년이 늘고 있으나 정부의 뾰족한 대책이 안 보인다. 한 여론조사에서 청년의 70%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어렵고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암울한 미래에 절망을 느낀 청년의 자포자기적 대답같아 가슴이 아프다.우리의 미래를 밝힐 청년에게 용기를 북돋울 획기적 정책과 사회적 관심이 시급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9-14

진정한 강함에 대하여

오낙률 시인·국악인 인간 본성에 해당하는 인심은 세상이 변한다고 따라 변하는 게 아니다. 다만, 세상인심이 어쩌고 하는 것은, 물질문명의 무게증가로 인해 상대적으로 나약해진 인간들이 그 무게를 감당치 못해 발생하는 약간씩의 일그러진 모습일 뿐이다. 언제나 사회적 불안은 인심의 부재로부터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자이거나 사회적으로 강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늘 인심의 도마에 오르곤 해왔다.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서려면 상대적으로 주위 사람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도움에서 얻어진 힘과 지위를 이용해 도리어 그들 위에 서서 군림하고 지배하려 한다면, 또 반대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강자가 있다면 적어도 작금의 현대사회에서는 그 결과가 극과 극으로 나타나 세상인심의 불변함을 절실히 체험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에게 적용되는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권력이 세다거나 힘이 센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또는 건강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본성을 짓누르는 물질의 무게를 잘 극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조그만 물질 앞에서 쉬 무릎이 구부려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질과 연관된 갖가지 유혹을 잘 이기고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인간 그 본성에 충실하려는 사람, 드물지만 이 사회엔 분명히 있다. 해서 오늘날의 진정한 강자는 그 후자의 예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며, 그 후자의 예에 해당하는 사람을 진정한 강자라고 예우함이 마땅하다.사람의 모습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현재의 나타난 모습이 가식이고 그 내면이 진실인 사람, 또 다른 하나는 보이는 현재와 내면이 모두 진실한 사람이다. 십 원 앞에 바들바들 떠는 사람은 그 십 원의 무게만큼, 몇 억의 금전 앞에서 지금껏 잘 지켜오던 양심을 저버리고 마는 사람은 또 그 몇 억의 무게만큼, 그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그 무게에 깔리고 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누가 세상이라는 갤러리를 경영하고 누가 그 고객이더냐/진정한 강자들이 많은 사회 그런 사회가 이뤄지는 그때쯤이면/푸른 하늘 위를 마음껏 날아다니는 은천저수지 잉어떼들의 귀에도/향내 나는 피리소리가 들릴 것이다/단 한 점의 티도 없는 호수의 맑은 물과/구름도 미세먼지도 없는 더없이 푸른 하늘이/어우러져 살맛나는 세상풍경이/늙은 화가의 화폭에도 그려지고/젖먹이 송아지를 부르는 어미소의 울음짓에도/희망의 기운이 넘치고 생일을 맞은/늙지도 젊지도 않은 아낙들의 시 읽는 맑은 음성은/태고와 미래를 있는 둘레길 가에/코스모스 꽃으로도 피어날게다’ -졸시 오낙률 ‘누가 세상이라는 갤러리를 경영 하는가’ 전문작금의 사회는 강자와 약자의 구분을 많이 게을리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으로 생겨나는 갖가지 사회적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삶에 갖가지 위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진정한 강자와 약자를 올바로 구분해내는 것이 미래로 가는 오늘날의 사회가 당면한 최대 과제가 아닐까 싶다.

2021-09-14

예술 소비 운동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얼마 전에 대구 문화방송 ‘시인의 저녁’에 출연한 문무학 시인이 예술 소비 운동을 전개하자는 말을 남겼다. 한 달에 한 권의 시집이나 소설책을 구입하고, 극장이나 미술관, 음악회를 한번은 가보자는 얘기였다. 만일 시민들이 그렇게 한다면, 대구에서 활동하는 가난한 시인과 소설가, 배우와 화가, 음악가의 생계가 해결될 것이라는 확언도 덧붙였다.참 좋은 말씀이란 생각이 든다. 한 달에 5만 원쯤 소비하여 얻어지는 이득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을 위해 지출하는 시민은 시와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보거나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술적 취향과 문화적 소양을 함양하여 시대에 필요한 교양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된다.시인과 소설가, 배우와 화가, 음악가들은 생계로 인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청춘남녀 가운데 예술과 문학에 투신할 인재들도 나올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유쾌한 일인가. 시와 소설, 희곡 같은 문학을 구하지 않고, 예술작품과 대면할 기회를 찾지 않는 인생은 좁고 누추할 수밖에 없다.요즘 ‘케이(K)’라는 글자가 문화-예술 영역에서 대단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케이푸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 영화 그리고 음식이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좋은 일이다. 그렇다 해서 대한민국이 문화와 예술 그리고 문학 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케이’와 연관된 영역은 대중성을 확보한 특정 영역과 집단에 힘입어 제한적인 인기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은 언제나 부지불식간에 불고, 인기도 뜬구름처럼 허망한 것이다. 일시적인 관심과 열기는 생명이 짧기 마련이다. 강하고 든든한 밑거름을 부여해줄 수 있는 너르고 단단한 저변이 필요하다.깊고도 넓은 문화와 예술, 문학에 기초하는 대중예술이야말로 오랜 세월 강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은 자명하다. 젊은이들이 즐겨 보는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 같은 매체를 살찌울 수 있는 문학과 예술의 대양을 준비하자는 얘기다. 모든 예술에는 서사(敍事)가 필요하다. 전후 맥락이 통하고, 시대에 적절한 설득력과 미래기획이 담긴 서사. 건강하고 힘 있는 서사를 가능하게 하는 첫걸음이 예술 소비 운동이다.우리가 한 달에 소비하는 커피 10잔의 비용이 대구와 경북,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예술과 문학을 살찌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시민들이 카페나 도서관, 거리나 광장에서 문학과 예술, 문화를 토론하며 대화하는 장면은 얼마나 기막힌 것인가! 그것이 주식과 부동산, 먹을 것과 입을 것,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대신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어느새 원로가 되어버린 문무학 시인의 백발과 주름살을 보면서, 열렬히 사셨음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구나, 생각한다. 그의 아름답고 절실한 바람이 조속한 시일 안에 꼭 실현되었으면 한다.

2021-09-14

예민함이라는 능력

“넌 참 예민하고 피곤하다.” 어렸을 때부터 듣던 말이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도 자주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면 발끈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한참 동안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한 행동이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은 일이다.본인이 예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타인의 사소한 언행이 일순간 날카롭게 바뀌어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경험을 말이다. 어떤 순간은 가시처럼 박혀서 꽤 오랫동안 깊은 상처로 남는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이 굉장히 언짢고 불편하다. 이러한 성정에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던 거야. 뿌옇던 유리창이 맑아지는 것처럼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정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불합리한 것들을 발견해냈다. 그건 아주 미세한 지점이었다. 식탁 위의 맛있는 반찬은 항상 오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던가,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쥔 사람은 늘 엄마라는 식의 일들. 나에게 레이스가 달린 불편한 옷을 선물하는 아빠는 어째서 활동성 좋은 옷을 입고 명절에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식구들은 왜 여자들뿐인가. “이건 불공정하다”라고 소리치면 “예민하고 유난이다”라는 답만 돌아왔다.왜 남자애들은 학교 운동장을 누비면서 축구를 하고 제멋대로 웃통을 벗어젖히는 동안에 여자애들은 구석에 그려진 좁은 선에 갇혀 서로를 향해 공을 던져야 하는가. 같은 반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걔들은 원래 그렇다고, 착한 네가 참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에 교복 셔츠 위로 브래지어 자국이 비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겹의 옷을 더 껴입는 일, 선생님의 폭언에도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일, 우등생의 실적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포기하는 일은 여린 마음을 무자비하게 찌르기에 충분했다.나는 끊임없이 분노했다. 그러한 태도로는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부당하다는 말을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다.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라는 판단은 어린 나를 주눅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비난으로부터 나를 방어해야 했다. 나는 주문처럼 외쳤다. ‘이 세계는 원래 그렇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어찌 보면 간편한 일이었다. 그저 내 성격을 탓하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무던해지려고 애썼다. 다양한 삶의 지점에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끼던 물건이 마모되어 돌아와도 무례한 언사를 들어도 참아냈다. 그리고 그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러면 많은 일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니까 나의 사춘기는 나 자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나 자신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명명백백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었다. 나의 비뚤어진 부분을 발견하고 온 힘을 다해서 거부하지만 결국 그런 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나는 어른이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예민함을 받아들였다. 글을 쓰게 되면서 예민함은 귀한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민하다는 것은 삶에서는 불행일지 모르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힘이 된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균열의 지점을 포착하는 능력이 이 예민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때때로 길가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골똘히 쳐다본다. 그들의 고단한 걸음걸이를, 해를 등지고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응시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분명 내게 보이지 않는 서사가 있을 것이라고. 머리맡에 다양한 이야기가 잔뜩 운집해 있기에 언제 쏟아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가시 돋친 서사에 기꺼이 손을 댄다. 따갑고 아프지만 내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기민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러니 자신의 예민한 성정으로 괴로워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아주 귀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숨겨진 경계를 발견하여 아낌없이 꺼내어 놓는 일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그리하여 확장되는 시야는 분명 유의미하다고. 어쩌면 그토록 불편한 우리가 이토록 부당한 세계를 바꿀 수도 있다고 말이다.

2021-09-14

레트로가 지나간 자리에서

영원할 것 같던 레트로 열풍도 이제는 한 풀 꺾인 모양이다. 패션, 음악, 영화, 사진, 음식,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물들이 90년대 감성으로 포장되어 거리를 꾸미던 모습은 우리를 그리웠던 옛 시절로 데려가기 충분했다.듀스를 좋아했던 나에게 ‘여름 안에서’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은 분명 반가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뭉클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레트로가 만든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과거를 회상한다는 건 분명 단순한 되새김질이 아니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 사라진 장소를 거닐었던 순간을 떠올린다는 건 우리의 마음을 손쉽게 간지럽힌다.자그마한 화단이 가운데 놓인 ㄷ자 모양의 슬레이트집, 매일같이 골목길에 모여 고무공을 차고 놀던 친구들, 도무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유치원의 연극,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거닐었던 중학교의 운동장, 하릴 없이 쏘다니던 개천변의 풍경 같은 것들.이제는 사라진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기억이나 학교를 땡땡이 치고 패스트푸드에서 시간을 뭉개던 재수시절 같은 것들은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남은 시간이 아닐까.하지만 그 기억들이 마냥 기쁨과 환희의 시간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과거가 그러하듯 내가 가진 유년의 기억들에는 늘 한편에 얼룩 같은 것이 묻어있다.하교 길에 성폭행을 당할 뻔 했던 누나에 대한 기억,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지긋지긋한 빚쟁이들, 매일같이 친구들과 모여 놀던 골목에서 형들에게 이유 없이 맞았던 기억이나 금품을 갈취당한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단지 가난이라고 말하기에는 일그러진, 나의 그리운 1990년대. 이런 유년의 시간들을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기엔, 나의 마음은 여전히 성글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이런 말을 할 때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레트로 문화라는 건, 그냥 그런 느낌을 즐기는 거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 감성이 ‘그냥’ 즐기기엔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르다. 레트로가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가버린 지금, 안도감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건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마냥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니다.내가 느낀 이질감의 정체는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90년대에 우리가 함께 겪었던 슬픔과 고통들이, 레트로의 열풍 속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 삼풍백화점에서부터 성수대교, 대구 상인동, 씨랜드, 연천 예비군 훈련장, 서해 훼리호…. 그리고 IMF까지.지금 우리가 선 자리는 그런 크고 작은 사건과 참사들 위에 세워진 것 아니었나. 항상 기억하자고 말하던 우리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렇게 슬픔과 고통을 잘라내고 유흥과 부흥을 기워넣고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나는 슬펐던 것 같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나의 슬프고 찬란한 기억이 단지 가벼운 농담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레트로라는 유행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웃고 즐기기에 나는 너무 무거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천성이 그런 탓일 게다. 상품이 되어버린 기억을, 나는 조금 버티기 힘들었다.과거가 돌아온다는 건, 지금처럼 웃고 즐기는 형태로 돌아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건 우리가 은연중에 억압해온 무언가, 우리가 지금의 삶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배제하고 은폐했던 그것이 섬광처럼 우리의 삶을 잘게 찢는 순간도 분명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언젠가 우리 앞에 과거가 돌아온다면, 그건 우리가 레트로 열풍 속에서 삭제했던 부분들이 우리 삶의 한복판에 나타나는 일일지도 모른다.그러니 가끔은 그런 일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을 기쁨과 환희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2021-09-14

서재라는 공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는가

문학사회학자 이언 와트(Ian Watt)는 ‘소설의 발생(The Rise of the Novel)’이라는 책에서 독서대중의 형성과 소설의 발생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그에 따르면 지금 우리에게 고전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을 쓴 작가들이 등장하게 된 현상에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출판인쇄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18세기에 독서대중이 증가하기 시작한 배경이 존재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책과 독서가 이 시기에 급격하게 중간계급의 중심문화가 되어, 이후 백 년 이상 이어졌던 것이다. 바야흐로 사치품이자 자기 과시의 상징이었던 책이, 대표적인 여가 활동의 대상이자, 인간이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완전히 같은 내용, 같은 분량의 글자가 고급 종이를 써서 단단하고 꼼꼼하게 제본된 커다란 판형의 하드커버의 책에 담길 수도 있고, 비록 인쇄상태도 조악하고, 종이로 금방 바스러질 듯 약하긴 하지만 언제나 가지고 다니기 좋은 소프트커버, 내지 문고판의 작은 책에 담길 수도 있다. 자기 과시의 사치품에서부터 여행할 때 언제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일상품까지, 책은 단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는 기호가 아니기 때문이야말로 흥미롭다.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가 하는 것 역시 내가 누구인가 하는 취향이나 기호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애초에 책이란 그것의 물성, 즉 물질로서의 성격을 고려하는 순간,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책을 고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기호로 작동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의 가방 안에 흘깃 보이는 책 한 권만큼 그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기호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때로는 타인으로부터 읽히게 되는 것이 싫어 책에 꼼꼼하게 표지를 싸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역시 소지품으로서 책이 갖는 기호로서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다.당연히, 귀한 책들을 잔뜩 꽂아놓은 서재야말로 과시적 기호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18세기 경제력을 획득한 부유한 상인계급의 사람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서재를 꾸미고 그곳에 2절 정도의 커다란 판형의 책들을 빼곡히 꽂아두고 손님이 방문할 때마다 한 권, 한 권 꺼내 보여주며 이 책을 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눈을 빛내며 늘어놓는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과시의 마음은 오히려 순수한 것이다. 골동 취미의 일부로서 옛 책의 수집과 그 책 속에 담겨 있는 지식을 빌려 자신이 갖고 있는 교양과 지적 취향을 과시하는 셈이다. 별로 해롭지 않은 자기 자랑이다.이처럼 누군가의 ‘서재’를 보는 일은 즐거운 일 중에 하나였다. 내 어린 시절에는 친구의 집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서 내 친한 친구의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른바 서재를 읽는 것이다. 귀한 책들이 많이 모여 있는 서재에서 주인의 자랑이 담긴 설명을 들으며, 눈호강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테지만, 책은 소장하는 물건만은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어지럽게 쌓인 책들 속에서 그것을 소중히 아끼며 꽂아놓은 주인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것이 오히려 더 즐거운 일이다. 그가 모아둔 책들, 그리고 그 책들이 놓여 있는 순서를 읽어가다 보면, 마치 그 사람의 무의식 내부를 들여다보듯, 책의 행간을 읽어내듯, 그 마음을 이해할 듯한 기분이 든다.최근 사람들이 책을 더이상 많이 사지 않게 되면서, 또한 책의 소비가 전자디지털매체로 옮겨가면서 확실히 집안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고 있는 공간은 서재인 것 같다. 우리들 사고의 저장은 웹페이지 접속 기록처럼 온라인 어딘가에 쌓여 있을 뿐, 이제는 서재처럼 슬쩍 훔쳐보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대로 우리들에게 ‘서재’라는 공간은 사라져버린 걸까./홍익대 교수

2021-09-13

신라 최초 여왕의 염원이 깃든 곳 분황사

분황사(芬皇寺)는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되어 지금까지도 법등(法燈)을 이어온 사찰이며, 오랜기간 유지되었던 사찰인 만큼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해서도 다양한 기록을 접할 수 있다. 특히 분황사는 신라 칠처가람(七處伽藍·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사천왕사, 담엄사) 중 한 곳이기도 하다.신라는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타국의 침략에 대항하는 등 호국불교의 면모가 강하였다. 칠처가람 역시 신라 전 영토를 불국토로 여기는 것으로 그 가운데 분황사가 포함되었다는 점은 당시 신라 사회에 큰 영향력 있는 사찰이었음을 보여준다. 분황사는 황룡사·황복사 등과 같이 신라 왕실을 의미하는 ‘皇’자를 사용한 왕실사찰이다.또한 문헌기록에는 ‘왕분사(王芬寺)’라고도 하였다. ‘분(芬)’자가 향기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분황사는 ‘향기로운 임금의 절’이라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향기로운 임금’은 바로 분황사의 창건주인 선덕여왕을 말하는 것이며, 이를 뒷받침 하듯 1915년 발견된 분황사 모전석탑의 사리함에서 금바늘과 바늘통 그리고 실패와 가위 등 여성들이 주로 사용한 물건들이 사리장엄구에 포함되어 있었다.이렇듯 분황사는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7세기 중엽부터 지금까지도 사찰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분황사는 정문을 지나면 일제강점기(1915년)에 수리된 모전석탑, 화쟁국사비편, 삼룡변어정 우물, 조선 광해군 원년(1609)년에 건립된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해 석등과 많은 초석, 허물어진 탑의 부재였던 벽돌 모양의 돌들만이 남아 있다. 고찰(古刹)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람 영역은 불국사, 해인사와 비교하면 좁게만 느껴진다.특히, 사찰의 주요 구조는 부처를 봉안한 금당(金堂)과 사리(舍利)를 모신 탑(塔)이므로, 탑과 금당이 일직선에 놓이도록 배치된다. 그런데 현재 분황사에는 금당인 보광전의 입구가 서쪽으로 향하여 전탑을 바라보고 있지 않아 특이하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분황사에 대한 궁금증은 1990년부터 시작된 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를 통해 해소할 있었다. 발굴조사는 20년간 이어져 2012년에 마무리되었고, 그 결과 분황사는 창건 당시 품(品)자형의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사찰에서 탑을 중심으로 동·서·북쪽 세 곳에 법당을 배치하는 방식) 가람(伽藍)으로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일탑삼금당식의 가람구조는 고구려에서 시작되었지만, 분황사의 가람배치는 고구려의 것과 똑같은 구조는 아니었다. 신라만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이 등장한 것이며, 분황사에 이것이 적용된 것이다. 창건 당시 3금당은 모두 남향으로 탑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시기에 일탑일금당식으로 변화했고, 조선시대에 들어 현재 모습의 분황사 가람이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또한 분황사 경내 위치한 모전석탑(방형모전석탑·方形模塼石塔)은 신라 유일한 전탑형식의 석탑으로 국보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9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석탑은 분황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이외에도 분황사 남북 외곽지역에서 당간지주·담장·축대·건물지·배수로 등이 확인되어 분황사 전성기의 사역 범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학술자료들을 확보하였다. 고소진 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분황사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가로 15줄, 세로 15줄의 바둑판전(42×43㎝, 높이7.8㎝)과 동궁과 월지와 황룡사지 등에서 출토되었던 숟가락의 거푸집이 있다. 그리고 1차 중건 중문지에서 출토된 치미를 통해 전성기 분황사 건물 규모를 가늠 할 수 있다. 특히, 분황사에서는 고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연화문, 보상화문, 당초문, 용문, 비천문 등의 다양한 기와가 출토되어 기와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분황사가 위치한 구황동에는 황룡사지, 황복사지, 미탄사지 등 사찰들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황룡사를 제외하고는 그 창건과 존속시기가 명확하게 알져지지 않았으나, 분황사와 공존하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찰은 유일하게 분황사뿐이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또한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존재가 한국 역사에서 유일무이 하듯이, 분황사 역시 신라 최초의 품자형 일탑삼금식 가람양식과 모전석탑을 가진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9년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는 사적 548호로 지정되었다.‘삼국유사’ 권1 기이편 선덕왕지기삼사조(善德王知幾三事)에 나오듯 자신의 죽는 날까지도 미리 예측할 정도인 선덕여왕은 자신의 염원을 담아 분황사를 세웠으며, 그의 염원은 최초의 여왕인 자신이 신라와 이 땅에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 것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2021-09-13

기술인의 쾌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 두 차례 비가 오고 나니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푸르름을 더해간다. 정갈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결에 들판의 알곡이 여물어 가듯이, 도처에서는 이러저러한 선행과 희소식이 들려온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죽장면의 수해현장을 근 4주째 빠짐없이 찾아 복구와 지원의 일손을 보태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기술인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명장’ 선정 등의 기쁜 일들이 잠시나마 코로나의 시름을 잊게 해준다.대한민국명장이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지칭한다.이러한 제도는 1986년부터 시행돼 고용노동부에서 고시한 37개 분야 97개 직종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자를 대상으로 기계, 재료, 전기, 통신, 조선, 항공 등의 산업분야와 금속, 도자기, 목칠 등의 공예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서류, 현장심사를 통해 선정한다.국가가 인정한 최고의 장인(匠人)이기에 선정되기까지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대한민국명장에 포항지역의 명문사학 출신의 포스코 기술자가 선정돼 화제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그 뿐만이 아니라 2명의 우수숙련기술자 선정을 비롯하여, 이미 2015년에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돼 산업과 국가 발전에 공로가 인정되는 자에게 수여하는 ‘산업포장’까지 이번에 함께 받아서 경사를 더했다. 특히 4명 모두 같은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출신의 15회 동기생으로 포항제철소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채롭기만 하다.우수숙련기술자와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초가 있었을까? 수 없는 학습과 좌절, 부단한 인내와 의지로 현장에서의 기술력과 활용성의 가치를 드높이며 정성과 최선을 다한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력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듯이, 어쩌면 서럽도록 힘겨운 노력과 눈물겨운 정성이 빚은 선물 같은 결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했던가. 포철공고는 어느덧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국가산업정책에 부응하는 고급인력 양성, 전문성과 인성을 겸비한 철강분야의 융, 복합 전문기술교육으로 4차 혁명시대를 이끌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인재를 육성, 배출하는 명문사학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많은 변화와 성장의 50년 역사 속에 전국적으로 1만5천여명의 동문들이 산업현장과 문화예술계 등 각계각층에서 저마다의 재능과 기량을 발휘하며 소임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명장 선정과 산업포장 수훈은 이러한 맥락에서 포공인(浦工人)의 저력을 만방에 드러낸 명문교육의 소중한 결실이다.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듯이(人無遠慮 難成大業), 특히 교육이나 인재양성은 먼 장래를 내다보며 원대한 계획과 치밀한 준비로 지속적인 창의와 혁신이 있어야 개인의 성취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21-09-13

정리와 절제, 윤택한 삶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산천의 초목이나 들판의 잡풀이 무성하다가 한숨 돌리는 계절, 추석이 다가오는 이맘 때가 되면 의레 하게 되는 것이 벌초(伐草)다. 저마다 부모 또는 선조의 묘소를 찾아 웃자란 풀을 베어내고 산소 주변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둥치를 베며 주위가 훤하고 깨끗해지도록 일손을 모으고 정성을 다한다.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으며 조상을 기리고 섬기는 마음에서 해마다 애써 풀을 내리고 정리하게 되지만, 일단 벌초를 하고 나면 보기에도 그리 시원하고 깔끔하지 않을 수 없다.비단 그와 결부되는 맥락은 아니겠지만, 일상 중에 물건을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고 나면 가슴 속까지 후련해지고 마음이 개운해짐을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리라는 것은 생활공간이나 주변 여건, 업무환경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과 변화를 수반하는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최근에 필자가 관심있게 시청했었던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만의 공간인 ‘집’의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에 행복을 더하는 노하우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기업체 정리 컨설팅에 많은 도움과 요령을 십분 활용하기도 했었다.이른바 ‘정리’란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사용빈도와 기간에 따라 명확히 구분하고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10년 전 필자가 컨설팅한 H중공업의 혁신활동 첫 단계로 정리활동 차 공장 내 불필요한 물품에 레드 카드(Red Card)를 부치도록 했었는데, 전체를 다 부착한 후에는 공장 여기저기가 붉게 물들어 마치 가을단풍으로 착각할 정도로 즐비했었다. 정리 활동 후 불필요한 물건이 없어짐에 따라 공장 내부는 넓어졌고, 직원들의 환경관리 수준도 향상되었다.정리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게 되면 혁신의 절반이 완성되는 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기업이 성공적으로 정리활동을 했던 비법이라 한다면, 첫째 아까워도 과감하게 버렸다는 점, 둘째 기간 내에 과잉으로 신청하여 가지고 있던 물건을 꺼내 놓으면 책임을 묻지 않고 상을 주었다는 점, 셋째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경영진부터 현장직원까지 전원이 참여했다는 점 등이라 할 수 있다.정리하는 능력을 일상적으로 반복하게 되면 습관이 되고, 좋은 습관은 그 사람의 인생도 성공하는 인생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버리고 비우며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며, 적당함과 적절함의 균형을 유지하고 관리하기란 생각보다 만만찮은 일이기 때문이다.“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채울 수 없다”는 말처럼 정리는 단순히 현장의 변화만을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개인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는데 도움을 준다. 정리하는 습관과 절제하는 노력은 저마다의 일상을 깔끔하게 하고 그 삶을 윤택하게 채워주는 힘이 있기에, 아무쪼록 정리활동을 습관화하여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달성하길 기대해 본다.

2021-09-13

너를 찾아가는 길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J는 중학생이다. 진로에 고민이 많다. 지금 원하는 일, 신나는 일이 있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그 일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면 나서기 어려울 것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어야 시도할 수 있을 텐데, 불확실한 시대라 더 불안할 것이다. J의 고민을 듣다 보니 책 두 권이 생각난다.E.B.화이트의 동화 ‘스튜어트 리틀’은, 그의 대표작 ‘샬롯의 거미줄’보다 마음이 더 가는 작품이다. 주인공 스튜어트 리틀은 마음씨 좋은 스튜어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생쥐다. 인간이 쥐를 낳았다니, 이런 설정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튜어트 부부는 생쥐 아들을 아무 편견 없이 아들로 받아들인다. 그 덕분에 생쥐 아들은 큰 불편 없이 밝게 자란다. 부부가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마음을 여러 번 졸이지만, 큰 문제는 없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온 새에게 반하지만, 새는 계절도 바뀐 데다 이웃집 고양이의 습격 계획을 알게 되자 북쪽으로 떠난다.여기서 끝나면 그래도 평범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스튜어트 리틀은 새를 만나러 떠난다. 생쥐가 도중에 만나 생쥐 여인을 마다하고,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새를 찾아 떠나는 모습이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오묘한 감동을 준다.그림책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는 더 해피엔딩이다. 이 책은 ‘스튜어트 리틀’과 비슷하면서도 결말이 다르다. 북쪽에 사는 곰은, 한 계절 같이 지낸 새가 따듯한 남쪽으로 떠나자 새를 찾아 남쪽으로 온다. 그러나 새는 이미 다시 북쪽으로 떠난 후다. 곰이 보낸 편지도 하나도 못 읽었다. 곰은 실망하지만 다른 새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북쪽으로 오고, 드디어 새를 만난다.곰이 새를 찾아 남쪽으로 떠난다는 것도 어리석어 보이고, 가만히 있었어도 다시 새를 만났으리라는 어김없는 사실은 곰의 여행이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새를 찾아 떠난 곰과 가만히 앉아 새를 기다리는 곰이 같은 곰은 아니다.디즈니 버전 ‘스튜어트 리틀’이 뻔한 가족주의로 끝나서 실망했는데, 원작은 전혀 다르다. 사람 부부 사이에서 생쥐가 태어난다는 설정도 너무 이상하고, 그 생쥐가 새를 사랑해서 먼 길을 떠나는 결말은 더 낯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운이 남는다. ‘세상 끝에 너에게’에 나오는 곰 역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림도 정말 좋다.문학에서 느끼는 감흥이 금방 힘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문학은 동시에 불가능성에 대한 싸움이다. 삶 자체의 조건에 쫓기는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꿈꿀 수 있다”고 한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처럼, 사람은 문학을 통해 꿈꿀 힘을 얻는다.‘스튜어트 리틀’이 새를 만나러 내딛는 발걸음이 행복한 것처럼, 지금 내가 원하는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그러다 보면, 곰이 만난 새들처럼 뜻밖의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이 말을 J에게 건네고 싶다.

2021-09-13

생활형 숙박시설 청약열풍

수도권 아파트 값 폭등이후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등으로 청약열기가 옮겨가고 있다. 청약·대출·전매의 벽이 높은 아파트와 달리 규제 문턱이 거의 없다 보니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가장 청약 열기가 뜨거운 생숙만 해도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이 적용돼 법적으로는 ‘주택’이 아니다. 집으로 잡히지 않아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가 중과되지 않는다. 만 19세 이상이라면 청약통장이 없어도, 다주택자여도 거주지역과 관계없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다. 청약 당첨 후 계약금 10%만 내면 바로 전매도 가능하다. 무주택 세대주·부양가족 수·청약통장 가입기간 등 주택 분양시장의 허들은 굉장히 높은 데 반해, 생숙 등의 경우는 규제가 자유롭기 때문에 투자 수요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비주택 상품은 무엇보다도 청약에 따른 불이익이 전혀 없다. 당첨 직후 형성되는 웃돈, 이른바 ‘초피’를 노리고 청약한 후 예상대로 웃돈이 형성되지 않으면 당첨을 포기하면 그만이다. 청약 신청금이 있지만, 당첨·계약 여부와 무관하게 100% 환불된다. 그래서 원금 손실 걱정이 전혀 없는 ‘로또’로 불리기도 한다.그러나 전문가들은 투자 접근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비주택 상품은 아파트보다 훨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생숙의 경우 일부 중개업소는 “실거주나 임대가 가능하다”고 광고하지만, 주거 목적 이용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도 낮고 거래량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경기 위축 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상품이다.특히 수익률을 강조하지만 보장된 확정 수익률은 없는 만큼 투자금액 대비 수익률이 나올 수 있는지 철저하게 따져보고 접근해야 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9-13

‘청년의 날’을 맞으며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9월 달력을 보면 붉은 날짜 한 묶음은 추석 연휴 기간이다. 그런데 작은 글씨가 많이 보이기에 살펴보니 4일 ‘지식재산의 날’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날이고, 7일은 ‘푸른하늘의 날’로 우리 정부가 주도해서 제정된 최초의 유엔 공식기념일이며, 또 ‘사회복지의 날’과 ‘곤충의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18일은 ‘청년의 날’이다. 2020년 8월 ‘청년기본법’이 시행되며 청년의 권리보장 및 청년발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청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9월의 셋째 토요일이 된다. 청년 나이는 기존 만19세부터 29세까지였으나 이 법에는 만19세부터 34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청년이라는 말은 개화기 시절 가장 인기 있는 유행어였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퇴조되었다가 1920년경 새로움과 신문명의 문화 운동 주역이 되어 다시 부각되었었다. 그때까지는 소년-장년의 구분이었는데 그 사이에 청년이 끼이게 된 것이다.최근 UN은 체질과 평균수명을 고려하여 0~17세를 미성년, 18~65세를 청년, 66~79세를 중년, 80~99세를 노년, 100세 이상을 장수 노인이라는 5단계로 구분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개념으로 청년세대는 20~30대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청년세대를 ‘N포 세대’라 부른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를 넘어 취업, 주택,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는 세대를 비유한 말이다. 이렇듯 청년들의 최대 고민은 취업과 장래의 불확실성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청년부채 증가 및 실업과 해고 등의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 복지포인트를 비롯하여 집 마련을 위한 청년우대형 청약통장 제도를 두고 있지만 현재 15~29세 청년실업률은 10% 정도이고 전세 대출도 급증하는 암울한 현실이다.그리고 가장 문제인 점은 매스컴에 자주 보도되는 청년들의 죽음이다. 특히 고독사(孤獨死)가 2020년 4천200여 건으로 3년 사이 58%나 증가한 것을 보면 사업실패와 경제적 어려움보다 사회의 소외와 단절, 무관심 등 가족의 붕괴, 1인 가구의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보여 ‘청년 맞춤 복지정책’과 사회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어느 지자체의 청년창업 지원방안으로 단순히 임대료와 설비지원을 한 청년 몰(Mall) 사업의 실패 소식을 접하고 보면 ‘청년수당’ 등 무조건적인 금전 지원보다는 그들이 진정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사회안전망 구축 등 심리지원 인프라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최저임금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노동계는 또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수많은 중소 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늘어나 폐업을 한다면 그나마 자신의 생활 소비방식을 줄인 채 적은 급료나마 받으며 꿈을 키워가고 있을 알바생들은 또 어떻게 될는지…. 임금문제는 청년실업이라는 큰 숲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청년의 날을 맞이하여 국가의 내일을 짊어지고 갈 청년들의 꿈을 키워주고 그들의 고민을 포용하며, 고립되어가고 있는 20~30대 청년세대 문화 해결을 위한 현명한 정책을 생각해 보자.

2021-09-12

보이지 않는 것들

조현태​​​​​​​수필가 전래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홀아비가 역시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과부를 맞아들여 새 가정을 이루었다.동갑 나기 두 아들을 키우게 된 이 여인은 마음씨가 착한 부인이었다. 특히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이 부인의 자세는 참으로 만인의 귀감이 될 만 하였다.부인은 전실 소생이나 자기 소생이나 한 결 같이 대하였다. 혹 선후를 가를 일이 생기면 언제나 전실 자식을 앞세웠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전실 자식은 점점 비루먹은 강아지 꼴인데, 그 부인의 친자식은 탐스럽게 잘 자라는 것이다.보기에는 전실 자식에게 더 잘 하는 것 같은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 부인을 의심하기도 했다. 남들 앞에서는 전실 자식을 위하는 척하면서 남이 안 볼 때는 전실 자식을 구박하는 영악한 여인인가 하고. 그러나 부인의 행동을 면밀히 살펴보면 남이 있든지 없든지 부인의 태도는 한결 같았다.어느 날 남편이 우연히 부인이 잠든 방을 보게 되었는데 부인은 전실 자식을 품에 안고, 자기 자식은 건너편에 누인 채 잠자고 있었다. 이를 본 남편은 부인을 의심한 것을 크게 뉘우쳤다. 전실 자식과 부인이 데리고 온 자식에 대한 발육 상태의 차이는 순전히 생리적인 차이라고 믿게 되었다.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집안의 중요한 일로 먼 길을 떠났다가 새벽녘에야 집에 돌아왔다.남편은 집안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방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날도 부인은 전실 자식을 자기 품에 안고 자고 있었고, 부인의 친 자식은 건너편에 뉘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인의 몸에서 이상한 기류가 나와 품에 안은 전실 자식을 건너 뛰어 부인의 친자식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아, 그렇구나,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민담 같은 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인간 세상에는 물론이요 식물이나 동물의 세계에도 마찬가지다.특히 자신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양심이나 정신적 측면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윤색되지도 않는다 하겠다. 이 특징은 남에게보다 자신에게 도드라지기 때문에 스스로 속이지도 못한다.이름하여 ‘자신과의 싸움’ 또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한다.어질고 좋은 마음을 양심(良心)이라 한다면 인간 사회를 이것 하나로 꾸려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원망도 불평도 없을 것이요, 거짓과 사기로 봉합하는 일이 없이도 남에게 무한한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다.대단히 진부하고 바보스러운 헛소리 같아도 또 한 번 강조하고 싶은 말.“초개만큼이라도 양심을 속이지 않으면서 다함께 살아가자.”

2021-09-12

‘산소카페’ 청송

청송(靑松)군의 지명은 푸른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 면적의 82%가 임야며 그 중 수목의 60%가 소나무다. 청송을 대표하는 국립공원 주왕산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00곳 중 다섯 번째 손꼽히는 명소다. 주왕산에는 왕버들이 물에 잠긴 채 자란다는 주산지가 있다. 물에 잠긴 왕버들과 함께 엮어내는 주산지 주변의 풍광은 신비하고도 아름답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4계절 변화의 아름다운 모습이 소개돼 더 유명해졌다.청송군의 인구는 모두 2만4천여명이다. 면적은 대구와 비슷하나 인구는 대구의 100분의 1정도다. 산지와 임야로 둘러싸여 공기가 맑아 청송을 ‘산소카페’라 부른다. 옛부터 청송은 경북의 오지(奧地)다. 오지란 내륙의 섬이란 뜻으로 두메산골을 이르는 말이다. 교통이 불편해 사람 발길이 잦지 않으나 그만큼 청정지역이란 말이다.청송은 2011년 국내서는 9번째 슬로우시티 지정을 받았다. 슬로우시티는 자연환경을 위협하는 대량 소비와 무분별한 바쁜 생활을 배격하는 친자연적 생각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지역민이 주체가 돼 지역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지키자는 것으로 패스트 푸드 음식의 등장에 자극받아 이탈리아 한 작은마을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동참하는 도시가 늘고 있다.현대 문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도시의 전통과 환경을 지키며 삶의 질을 존중하는 성숙된 삶을 꿈꾸는 운동이다. 속도경쟁에 끌리지 않는 인구 5만 이하 도시만이 슬로우시티에 가입할 수 있다.청송군이 국제슬로우시티연맹이 주는 도시정책 분야 2021년 국제슬로우시티 어워드를 수상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 선정 등 ‘산소카페’ 도시 청송군이 가진 친환경적 콘텐츠와 노력이 돋보이는 결과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9-12

카카오의 ‘골목상권 지배’ 위험상황

심충택 논설위원 과거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었던 김종인 위원장이 음식 사업가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에 대해 “이런 사람도 대선주자로 거론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나도 그가 출연하는 TV프로를 자주 보는 편인데, 우리 경제의 실핏줄인 골목상권 활성화와 영세 자영업자의 붕괴를 막기 위한 그의 노력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어려움에 처한 전통시장 상인과 젊은 창업자들에게 상권분석과 창업 컨설팅, 신메뉴 솔루션을 제공하며, 가게를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성공적인 성과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소비자들은 동네가게가 공기나 물처럼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니까 그 중요성을 잊고 산다. 사실 동네가게는 공동체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한다. 동네가게들이 장사가 안돼 하나둘 문을 닫게 되면 공동체 경제활동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그 수입으로 가족생계를 유지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가게주인들의 수입에 따라 공동체 전체가 활력이 넘치기도 하고 생기를 잃기도 한다. 요즘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동네상권이 빈사(瀕死)상태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기업들이 소비자 입맛에 맞춰 막힘없이 동네상권 진출을 하고 있으니 자본력이 약한 가게들이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최근에는 수많은 골목가게들이 카카오그룹 때문에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카카오는 영업제한을 받고 있는 대형마트와는 달리 미용실 같은 골목가게 영역에도 진출하면서 ‘카카오공화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참여연대 등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을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고 골목상권 생태계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카카오그룹 계열사는 지난 2015년 45개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118개로 늘었다. 자영업자들은 “카카오가 대리운전, 꽃 배달, 미용실 등 대부분 소상공인의 영역에서 낮은 수수료로 경쟁사를 몰아내고, 이후 독점적 위치를 활용해 플랫폼 수수료와 이용 가격을 인상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카카오의 영업영역이 갈수록 커지면서 골목상권을 구성하고 있는 가게들이 하나하나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카카오에 종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골목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배달플랫폼으로 나가는 광고료, 수수료 등을 떼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다.자영업자들은 카카오그룹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이처럼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 시장 독점 후 가격 인상과 같은 시장 지배의 문제가 숨어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카카오의 골목상권 사업 확장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논리인 ‘승자독식’ 현상을 정부가 방관할 경우 결국엔 카카오그룹의 영역확장에 골목가게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카카오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은 골목상권의 토대인 영세자영업자들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2021-09-12

독도 관련 예산 국비 미편성 유감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최근 발표된 2022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독도현지 조사연구 활성화 및 전문화 예산 10억원과 국립 울릉도독도 생태연구센터 건립을 위한 설계비 3억원이 해양수산부 및 환경부 등 관계부처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기재부의 예산 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미편성되었다.특히 2개 사업은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독도 지속가능위원회 결정에 의해 2016년 독도 지속가능한 이용 기본계획에도 포함됐지만, 수년째 답보 상태라 매우 아쉽다.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을 계기로 경상북도의 독도 수호 대책 및 해양영토주권 강화 차원에서 2014년 울릉도에 개원한 해양연구기관으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위탁운영을 맡고 현재 17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그동안 국비 지원 없이 경북도와 울릉군의 운영비 지원만으로 운영해오면서 개원 이후 지금까지 100여 차례 걸쳐 독도 현장조사를 활발히 수행해왔다. 독도 바다사자 유전자 정보 확보, 이상고파에 따른 독도 해안선 변동 정밀 모니터링, 독도 수온변동 정밀 모니터링, 독도 아열대화에 따른 신종 해양생물 보고, 실시간 독도해양관측부이 장기 운영 등을 수행했다.특히, 이러한 독도 정밀 조사는 전용 연구선이 없이 낚시선, 어선 등을 임차하여 수행한 연구라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울릉도에 위치한 독도 연구의 지리적 장점과 독도 연구에 대한 연구원들의 열정과 현장 경험을 살려 묵묵히 연구를 수행해 왔다.다행히 2022년에는 45톤급 다목적 독도(울릉도) 전용 연안 연구선이 취항 예정이라 독도 해양연구뿐만 아니라 육상 생태 연구 등 독도 연구자들의 획기적 연구 인프라 개선이 기대되지만, 내년 국비 예산 미편성으로 연구선 운영 및 독도 연구 활성화에 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기지는 또한 2018년부터 해양수산부에 의해 국내 독도 연구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독도특수목적입도객지원센터 운영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비 지원없이 자체 예산으로 시험운영 되다보니 센터 운영에 큰 한계가 있다. 특히, 기지 장기 근무 희망자가 있음에도 기재부의 출연연구기관 인력 관리풀로 인해 인력 충원이 사실상 불가능해 근무기간 3개월로 한정된 임시직의 순환 채용으로 센터 및 기지 인력을 보완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지는 또한 동해안 최초의 해양보호구역인 울릉도 해양보호구역 지정 관련하여 해양보호구역 방문자센터로 지정받고 2021년말 방문자센터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되면 2022년부터 동해 해양생태계의 오아시스로서 울릉도 및 독도의 해양생태적 가치를 대면 및 온라인 방식으로 널리 홍보할 예정이다.또한 기지에서는 그동안 국가해안쓰레기 모니터링 정점에서 제외되었던 울릉도 모니터링을 울릉도(독도) 해양생태계 보호 관리차원에서 2019년부터 모니터링을 수행해오고 있으며, 내년 독도 연구선이 취항하면 독도까지도 확장할 예정이다.이렇듯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독도 연구 및 교육 부분에서 울릉도에 위치한 유일한 자연과학 연구기관으로서 그리고 국가의 울릉도(독도) 연구 거점 기관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고려할 때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울릉군과 경상북도의 지원을 넘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울릉도와 독도는 한반도 내륙과 각각 최단 130㎞, 217㎞ 떨어진 상태에서 200만년 이상 격리된 지리적 특징과 우리나라 유일의 대양섬으로서 독특한 기후환경 조건으로 인해 전 세계에 울릉도(독도)에만 서식하는 약 40여종의 특산식물이 서식하고 있다.특히, 울릉도(독도)는 전 세계 대양섬 중에서 가장 높은 식물 종분화율을 보이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특징적인 식물 분포는 제주도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지질학적 특징과 함께 2020년 태풍 마이삭때 보여주듯 파고 19.5m의 상상을 초월한 자연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다. 화산이 만들고 바람과 파도가 다듬은 울릉도(독도)는 대한민국 최고의 야외 자연사 박물관이며 자연생태 실험실이다. 하지만 그 가치와 위상에 비해 그동안 지리적 접근성과 현장 중심형 연구 인력 한계로 연구가 매우 단편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국립 울릉도독도 생태연구센터가 울릉도에 반드시 설립되어야 하는 이유이다.울릉도(독도)의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은 곧 동해 해양영토 수호와 독도영토주권 수호이며, 바다사자(강치) 남획이라는 생태적 범죄를 저지른 일본에게 독도를 관리하는 진정한 주인은 대한민국임을 보여주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독도는 울릉도와 연계하여 과학으로, 생태적으로 지켜야 할 때이다.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은 “국가는 독도 관련 연구기관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기재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해본다.

2021-09-12

선진국 당했다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개도국의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정부 간 기구인 UNCTAD는 지난 7월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마지막 날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선진국지위를 인정했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바뀐 국가는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개방과 자유무역에 기반 한 다자체제에 대한 일관된 정책과 행동이 유엔 회원국들을 통해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아, 우리도 드디어 선진국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선진국? 우리가? 왜?”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뭘까? 우리가 의도하여 주도적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선진국 당했다!’는 표현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우리가 그동안 먹고 살기위해서 키워온 능력이 ‘따라 하기’가 아닌가.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깃발을 들고 맨 앞에 서야 한다니 그게 가능할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그러던 어느 날 “CJ ENM, ‘인터스텔라’ 프로듀서와 손 잡고 케이팝 영화 제작”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팝을 소재로 한 영화 ‘K-Pop: Lost in America’(가제)를 만드는데 연출은 윤제균 감독이, 린다 옵스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는 기사였다. 그 외에도 소니픽처스가 케이팝 걸그룹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 데몬 헌터스’를, 배우 레벨 윌슨이 감독 데뷔작인 할리우드 영화 ‘서울 걸즈’를 제작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세계문화를 주도하던 미국이 스스로 케이팝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좁은 국내음악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 음악활동의 새로운 영역을 찾기 위해 글로벌시장진출을 시도했던 BTS. 이 한국의 아이돌그룹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만들어진 가수, 립싱크, 음악성보다는 잘생긴 외모와 춤 잘 추는 청년들의 모임정도로만 생각했던 편견을 깼다. 그리고 많은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고 열광하는 문화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것을 노래와 춤, 외모와 비주얼, 오디오적인 매력을 두루 갖춘 퍼포밍 아티스트가 만드는 예술로 ‘케이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견고한 자신들만의 기준이 존재하는 음악생태계에 변종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기록소년단’은 각종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새로운 큰 흐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주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케이팝이 어떻게 주류가 될 수 있었는가. 음악평론가 김영대는 케이팝의 성공요인을 “우리음악이 아니었기에 어떤 제약 없이 자유롭게 멋있고, 트랜디 하고, 힙한 좋은 메시지를 담은 좋은 음악만을 추구한 것, 한계가 존재하지 않아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매력에 빠진 외국 작곡가들과의 협업으로 미국대중에게 독특하고 재밌는 새로운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노래를 창작한 것”이라고 말한다.BTS는 한국시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을 통해 ‘한국만의 정교함’을 완성할 수 있었고 세계시장에 맞는 현지화전략으로 보편적이고 세련된 한국만의 팝음악을 탄생시켰다. 영미권산업이 직접 만들지 않은 최초의 글로벌 팝 슈퍼스타의 탄생이다. 독특하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동반한 최신의 멋진 음악이라는 기존미국대중음악에는 없던 음악, 케이팝의 매력이 지금 세계대중음악을 선도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케이팝의 발전경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이유를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근거 중 하나인 셈이다.백범 김구선생은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전까지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장르’를 시작한 케이팝 보유국은 선진국이다. 선진국 당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노력으로 선진국이 되었다는 근거 하나를 찾은 셈이다. 그러고 보니 드라이브 스루, 검진키트와 함께 세계의 모범이라는 케이방역, 케이드라마, 많은 영역에서 케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우리가 선도적으로 주도하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코로나시대를 지나는 지금, 우리가 선진국의 국민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BTS처럼 ‘기존의 시스템에서 일등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일과 소비에 탕진하던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자만으로 가득했던 ‘호모사피엔스’에서 지구의 모든 생물들과 공생하는 ‘호모 심비우스-공생인(共生人)’으로 진화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다가도 “어, 우린 시원한데 저기 밖에 있는 길짐승들은 어쩌지?”라며 에어컨을 끌 수 있을까? 쾌락과 중독에서 지성과 영성으로 우리 ‘욕망의 거리두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불금의 저녁, 치맥 대신 책읽기와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 삶의 리듬이 그렇게 바뀌기 전까지는 우리가 ‘선진국 당했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2021-09-12

김천 미래 먹거리 3대산업 ‘전기차·자동차튜닝·드론’ 육성

김충섭 김천시장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가솔린, 디젤) 퇴출로 내연기관차 판매금지가 확대되고 있다.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금지하고, 독일·인도는 2030년, 영국·EU·중국·일본은 2035년, 프랑스는 2040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우리나라 서울도 2035년부터 신규 등록 및 운행을 금지할 계획이다.세계 주요국 자동차 업계도 제각각 내연기관차 판매규제에 맞춰 판매중단과 전기차 전환 시기를 정하거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차박 광풍과 캠핑 수요가 늘면서 기존 차량에 캠퍼(취사·취침 시설을 비롯해 캠핑에 필요한 설비를 갖춘 분리형 부착물)를 설치하는 ‘자동차 튜닝산업’이 미래 성장가능성이 높은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드론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ICT 등 4차 산업시대 다양한 기술을 합쳐 응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혁신 산업이다.드론 서비스, 첨단 항행시스템, 영상 관제, 부품과 제작 등 다양한 산업 생태계에서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전기 자동차에 캠퍼를 설치해 가족들과 캠핑을 즐기면서, 드론이 배달하는 택배를 받는 시대의 도래가 머지않았다.김천시는 4차산업 혁명시대를 이끌어갈 ‘첨단교통 특화도시’, ‘스마트물류 거점도시’조성을 기반으로 전기차, 튜닝카, 드론산업-3대 산업을 신성장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고 물류교통의 허브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다.2018년 10월 국토교통부는 김천혁신도시를 ‘첨단미래교통안전 클러스터’로 지정했다.이에 따라 김천혁신도시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단지 전체가 ‘국가혁신 융복합단지’로 지정돼 2028년까지 국·도비 약 550억원을 투입해서 전기차 5대 부품 개발 및 상용화를 목표로 사업이 추진 중이다.2020년 8월 개소한 ‘첨단자동차 검사연구센터’는 8천969㎡ 부지에, 23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으며, 첨단자동차 관련 전문인력 양성 및 교육을 통해 연간 1만명 이상의 교육생이 연구센터를 방문하게 되며, 첨단 안전장치 검사기술연구, 수소버스 검사기술 연구 등의 RD 과제를 수행한다.김천1일반산업단지에 추진되고 있는 40만6천637㎡ 규모에 548억원이 투입되는 ‘자동차서비스 복합단지’는 튜닝 관련 기업이 집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405억원을 투입해 올 하반기 착공 계획인 5만3천㎡ 규모의 ‘튜닝카 성능안전시험센터’는 튜닝 관련 인증과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지역거점 드론실기시험장’은 개령면(덕촌리) 일원에 5만8천㎡ 규모로 297억원이 투입돼 조성될 예정으로, 비가시권 전국최초 드론조종 자격제도 운영을 위한 연구개발, 실기시험 및 관련 교육을 맡게 되며, ‘드론특별자유화구역’선정으로 드론산업의 선도도시로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와 더불어 김천1일반산업단지 내에 총 1만1천㎡ 부지에 총사업비 177억 원을 투입해, 1단계-스마트물류 테스트베드(2023년), 2단계-물류정보센터(2028년), 3단계-지능형 물류센터 구축으로 ‘남부권 스마트물류 거점도시’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그리고 ‘스마트그린물류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2025년까지 290억원의 사업비로 ‘도심생활물류 통합플랫폼’, ‘도심형 친환경 근거리 배송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며 (주)쿠팡, (주)이삼사, (주)메쉬코리아 등 11개의 첨단물류 혁신기업이 참여할 예정이다.김천시는 지난해 혁신도시 이전공공기관인 한국도로공사와 ‘스마트물류 거점도시’ 육성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올해부터 ‘스마트물류센터’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지난 5월에는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는 ‘디지털 물류 서비스 실증’ 공모사업에도 선정됐다. 김천시는 이러한 제반여건을 활용해서 교통중심도시를 넘어 미래 물류교통의 허브도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21-09-12

도동서원의 녹턴

쇼팽의 ‘녹턴’을 들었다. 빗소리클래식이라고 제목을 붙여 비 오는 오후에 친구가 배달한 음악이다. 피아노 소리에 빗소리를 더한 앙상블이 듣기 좋아, 해질무렵부터 틀어놓았더니 두 시간이 후룩 지났다.빗소리 듣기에 좋은 곳을 다녀왔다. 대구의 도동서원이다. 조선의 성리학자 김굉필을 기리는 곳으로 건축미가 돋보이는 곳이다. 특히 중정당의 기단이 압권이다. 돌의 크기와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이라 마치 몬드리안이 무채색으로 무늬 꾸미기를 기단에 그려 놓은 듯하다. 멋진 그림에 취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우산을 가져간 터라 얼른 폈다.해설사는 비가 흠뻑 내린 날에 기단이 최고로 아름답다며 오늘 잘 왔다고 신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 무늬를 만든 것은 전국에서 몰려든 학생들이다. 각자의 고향에서부터 돌을 짊어지고 와 스승을 추모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단을 올렸다. 다른 서원이 똑같은 크기로 반듯하게 쌓은 것과 달리 크기가 다른 돌을 깎아 맞추며 빈틈없이 쌓다 보니 최대 12각인 돌도 있다고 해서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았다. 돌을 줄눈을 맞추지 아니하고 불규칙하게 쌓는 허튼층쌓기를 해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는 사이 돌에 빗물이 스며들며 색이 더 짙어졌다. 빗소리클래식을 듣기 좋은 날이다.기단에는 용머리 네 개가 있는데 이는 과거에 급제해 등용하라는 의미와 물을 상징해 목조 건물을 화재로부터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단 위 강당의 기둥은 나무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둥그렇다. 나무는 금강송으로 배에 싣고 낙동강을 통해 들여왔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 위쪽엔 흰색 띠를 둘렀다. 이것을 상지라고 하는데, 멀리서도 이곳이 성인을 모신 서원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상지를 두른 곳은 전국에서 도동서원이 유일하다. 김굉필이 유학자 중에 젤 위, 조선 5현의 젤 앞자리 ‘수현’이란 뜻이다.수현을 모시는 서원이라서인지 도동서원은 담장도 특별하다. 환주문을 끼고 나지막하게 쌓은 흙담에도 빗발이 서렸다. 여느 담장에는 암기와만 넣어서 쌓는 거랑 다르게 수기와 끝의 수막새를 섞어 음과 양의 기운을 맞추었다. 덕분에 독특한 디자인이 완성됐다. 긴 시간 빗물을 머금었다 말리며 더 단단해져 수백 년의 세월을 몸에 새겨넣었다. 좋은 황토로 쌓아서 비가 오니 붉은색이 더 진해졌다. 전국 담장 중 이곳을 최초로 1963년 보물(제350호)로 지정한 이유가 충분해 보였다.담장 말고도 건물 벽마다 무늬가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수월루가 수리 중이라 문간채로 들어가도록 길을 내었는데 흙벽에 숭숭숭 박아넣은 돌의 모양이 정겹다. 전사청과 기숙사 건물인 거인재, 거의재의 벽은 민무늬이다. 다음으로 볼거리는 마당에 서서 보면 중정당 오른쪽이 교장 선생님이 쓰신 방인데 다른 방보다 한 걸음 뒤로 달아내 책을 많이 보관했다고 한다. 뒷벽의 무늬는 마치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책장 같다. 학자의 기운을 받으려고 서재 앞에서 찰칵, 기념사진을 남겼다.2019년 7월 유네스코는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년),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년),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2년),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년),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년), 대구 도동서원(1605년), 경북 안동 병산서원(1613년),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년),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년) 이렇게 9곳이다. 이토록 어여쁜 대구 도동서원이 뽑힌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홉 곳 중에 오늘 도동서원을 보았으니 이제 네 곳이 남았다. 남계, 필암, 무성, 돈암서원도 곧 정복해 보고자 한다.건물 구석구석을 돌아 나오니 주차장 마당에 400살의 품이 너른 은행나무 사이로 저녁이 내린다.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조용한 밤의 분위기를 살린 서정적인 피아노곡인 쇼팽의 녹턴을 떠올리게 한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노란 단풍이 들 때 또 오라는 선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김순희(수필가)

2021-09-12

부모님 집에 안전을 선물하세요

황태연 영주소방서장 때 늦은 가을장마가 지나고 나니 후덥지근 했던 날씨가 꺾이고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연휴가 며칠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다가온 추석이 마냥 기쁘진 않다.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첫 발생자 이후 현재 4차 대유행이 이어지고 있고, 정부는 최근까지도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예년 같으면 가족 친지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만, 코로나19로 야외가 아닌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어느 때보다 주거공간에서의 안전이 중요해지고 있다.하지만 우리의 주거공간은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다.소방청 따르면 2021년 상반기 화재통계를 분석한 결과 전국에서 1만9천300건의 화재로 161명이 사망하고, 1천61명이 부상을 입었다. 장소는 25.9%가 주거시설로 나타났다.화재의 원인은 부주의가 50%로 가장 많았으며, 전기적 요인이 23.4%, 기계적 요인이 10.9%순으로 나타났다.우리가 편하게 쉬어야할 공간에서 부주의로 인해 화재가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은 가정의 안전과 화재예방을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 일환으로 소방은 2012년 2월부터 모든 주택에 주택용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했다.화재 발생시 가장 중요한 것이 초기진압 및 인명 대피인데 이 역할을 화재초기에 주택용 소방시설이 담당한다.전국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은 2019년 56%에서 2020년 62%로 상승하고, 그 결과로 화재 사망자는 10% 감소했다.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는 주택화재 사망자 저감에 큰 효과가 있음을 입증해 준다.정부 정책에 병행해 영주소방서에서도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의 지속적인 홍보와 소방안전교육을 실시중이다.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 댁에 주택용 소방시설이 없다면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해 “안전”을 선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2021-09-09

낙하산 인사

11년 전 일이다. 현직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외교부에 특채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일으키자 시중에는 똥돼지라는 말이 유행했다. 똥돼지란 말의 이미지는 복돼지와는 다르게 놀고먹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말이다. 특채직원처럼 외부에서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이 일은 제대로 않고 직장의 밥만 축내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특채의 의미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채를 통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조직 내 폐쇄적 인사 관행도 경계한다. 전문성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스카우트해 조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수도 있다. 운용하기에 따라 회사도 얻는 이득이 많다.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20조 규모 펀드사 요직에 내정된 것이 알려져 특채 시비로 시끄럽다. 청와대는 아니라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같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낙하산 인사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문 정부 인사를 ‘캠코드’ 인사라 부르는 이유다. 대선 캠프 출신이나 코드 인사, 더불어 민주당 출신이 낙하산 방식으로 공공기관 요직을 차지한 데서 나온 신조어다.특히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세운 현 정부의 낙하산 특채는 숫자적으로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많아 내로남불의 대표적 케이스로 손꼽힌다.국민의 힘 서일준 의원이 공공기관의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 등을 통해 취합한 자료에 의하면 정부산하 공공기관 임원 728명의 13.6%인 99명이 문 대통령 대선 캠프 내지 민주당 출신 친여 인사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문 정부의 낙하산 인사 빙산의 일각 아닐까 싶다.코로나 위기와 함께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 마음에 상처를 줄까 두렵다. 반칙과 특혜의 고리를 끊겠다는 대통령의 초심은 어디에 간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1-09-09

필사즉생의 선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얼마 전 영남지역 일간지 서울취재본부장 몇명이 만난 자리에서 여야 대선 경선과 대선 향방을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대체적인 결론은 여당 대선 경선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간 승부가 이 지사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분위기이고,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간 승부가 남았는 데, 홍 의원의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것인지 눈여겨볼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다만 의견이 갈린 대목은 야당 후보로 윤 전 총장이 됐을 경우 대선 본선 승부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일부는 윤 전 총장은 개인적인 약점이 많은데다 평생 검사로서 살아온 이력이 전부여서 국가발전에 대한 비전이나 경륜을 펼쳐보일 게 별로 없어 이재명 후보의 상대가 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에 코로나 팬데믹에 제대로 대처못해 중·소상공인들을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고, 부동산값 폭등으로 집없는 서민들을 더 서럽게 만든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정권교체론에 공감하고 있어 검찰개혁의 파고에 맞서 홀로 버텨온 윤 전 총장의 뚝심과 결기, 카리스마라면 여당후보와 당당히 겨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아직 오지않은 미래의 정답을 누가 알 것인가. 그날의 토론은 그저 정치부 기자들의 ‘막말 대잔치’로 자리가 파하고 말았지만 입맛은 썼다.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정책이나 코로나 백신정책에서 실패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차치하고, 일자리정책이나 소주성 경제성장정책 등 정책실패가 적지않은 데도 야당인 국민의힘이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휘어잡지 못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저 자리싸움에 연연하고, 내것 챙기기에 바쁜 보수야당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상당수 국민들이 실망한 탓일 수 있다.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세불리를 절감한 이 전 대표가 최후의 충격요법으로 내세운 카드로, 대세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것은 필사즉생의 결의로 읽히니 반전의 계기가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선언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지사직 사퇴선언과 맞물린다. 원 전 지사의 결연한 행보가 제대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대선에 임하는 사람이라면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국민의힘 대선후보 중 홍준표 의원의 지지율 상승세가 심상치않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홍 의원이 처음으로 윤 전 총장 지지율을 꺾고 1위를 차지했다고도 한다. ‘무야홍’(무조건 야당후보는 홍준표)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 선거는 한마디로 하늘과 땅에 운명을 맡기고 겨루는 건곤일척의 승부일 수 밖에 없다. 이쯤되면 홍 의원도 정권교체에 온몸 던져 헌신하겠다는 결의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는 게 옳다.노자는 도덕경에서 “무릇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고 했다. 홍 의원의 결단을 지켜보자.

2021-09-09

9월의 기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 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길을 거닐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 꿈을 쓰고/ 꿈을 노래하고/ 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 떠나지 말게 하시고/ 이 가을에/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수녀(修女)의 신분이기도 한 이해인 시인의 ‘9월의 기도’란 시다. 시인의 감성에 신앙인의 영성이 깃들어 가을 하늘처럼 높고 청명하다. 이 시에서처럼 꿈과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여름의 열기가 차츰 가라앉는 9월이면 우리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종교인이 아니라도 저 하늘에다 무언가 빌고 싶어진다. 하늘이 높푸르고 햇볕이 정갈해지고 바람이 상쾌해져서 온 누리가 정복한 은총으로 가득할 때, 문득 인간사를 돌아보게 되고 몇 마디 간절한 기도의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바람이 서늘해진 가을이 오고 있지만 대선정국은 오히려 열기를 더하고 있다. 열기가 증가할수록 혼탁해지는 것이 정치권의 열역학법칙이라고나 할까, 갈수록 온갖 권모술수와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양상이다. 민심도 그에 따라 갈팡질팡 이리저리 휩쓸리고 부화뇌동하여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룬다. 부디 이 뜨거운 혼란과 혼탁의 도가니에서 정의롭고 후덕한 인품의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그래서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 서로가 적개심을 버리고 화합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내년 대선에서는 부디 편을 갈라서 내편이 아니면 다 적이고 악이라는 적패몰이로 반목과 증오를 조장하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뽑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라면서 자기편 사람들만 먼저인 정권, 인권을 내세우면서 정작 폭정과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세습독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만 전전긍긍하는 정권, 탈북한 청년들을 포승으로 묶어 강제로 돌려보내는가 하면 안타깝고 간절한 통일의 염원을 담은 대북전단까지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정권, 언론과 검찰과 법원까지 같은 패거리들로 장악해서 저들의 실정과 비리를 덮으려는 수작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정권, 민심을 현혹하기 위한 퍼주기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는 정권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높은 수준의 품격이나 지성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수신제가는 갖춘 인물이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패륜과 비행이 일반화되는 천박하고 패역한 사회로 타락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성향이 비뚤어지면 그것에 동조하고 아부하는 세력들이 모여들어 득세를 하게 마련이고, 그렇게 혼탁해진 윗물이 아랫물까지 오염시킨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배웠다. 언젠가 방한을 한, 아역스타로 이름을 날린 미국의 여배우가 어린 나이에도 참 당찬 말을 했다.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불평할 권리가 없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불평하는 세상을 바꾸려고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2021-09-09

나이가 어때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미국 직장에서 나이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입사 원서에도 나이를 쓰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나이가 승진 등에 기준이 되지 않는다.미국대학은 한국대학처럼 65세에 정년 퇴임하지 않는다. 각 교수가 판단하여 자기가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스스로 은퇴한다.지난주 한국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원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향해 “너무 오래 살았다. 100세 정도에는 판단이 흐려진다.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다. 약 80세 정도가 그런 적정 수명 한도선이 아닐까 생각한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변호사가 있었다. 김 교수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친일적 발언을 했다는 주장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덧붙여 존엄사의 적정 연령이 80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곡기를 끊어 스스로 떠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고 한다.필자는 그의 SNS에 “그 나이에 가보지 않고 그 나이 사람을 평가할 때(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으나) 나이를 언급하여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비판은 아닙니다. 20년쯤 후에 본인이 언급한 나이가 되었을 떄 하신 발언을 되돌아볼 때 아마도 깊이 사과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그의 답은 “내가 무슨 말을 왜 했는지 알고나 아무 소리나 하시오”였다. 그래도 욕설이 없었으니 다행이었다.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누구든 비판할 수 있고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다. 그건 개인의 사고가 자유로운 민주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판을 하면서 상대의 나이를 거론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도 사고가 잘못될 수 있고 나이 든 사람도 판단력이 정확할 수 있다. 매주 평균 한 개의 강연을 100세 나이에 전국을 누비면서 소화하고 있는 김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데 기억력이 뚜렷하고 사고가 정확했다. 소위 좌측 사람들의 대물림인지 사회의 어른을 공격하는 태도는 오래전에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곰곰 생각해보니 그들이 떠받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해봤던 경험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참 별 꼴 다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5년 모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화를 터뜨리며 터뜨린 발언이다.80대 중반의 고령의 김수환 추기경이 “요즘 나라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으로 갈라져 있어 너무 걱정스럽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친북 인사들을 싸고도는 데 대해 “우리가 간판만 대한민국이고 지배하는 사람들은 영 다른 생각을 가진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한 발언에 대한 반응이었다.패륜이란 말이 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그러짐, 또는 그런 현상. 국어사전은 패륜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패륜적 발언을 즉시 멈추어야 한다. 누구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이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그 나이를 거론하면서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도대체 “나이가 어때서?” 젊은 당신의 사고가 훨씬 위태롭다.

2021-09-09

십리동행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제 동원되어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일을 하였다. 특히 군인들이 전장으로 이동할 때에 자신의 배낭을 짊어지게 하여 운반하게 했는데 법령으로는 1마일 즉 오리까지만 허용했다. 간간히 이 법을 어긴 병사들이 있었는데 감봉과 명예전역, 매질로 다스렸다는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다. 강제하는 법은 오리까지만 허용하였다. 피 지배계급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억울하게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만일 점령군의 한 사람이 그의 배낭을 지고 오리를 가자고 강요하거든 십리를 가 주어라”(성경영역본)고 했다. 그것은 개인에게는 선을 베푸는 행위이지만 한 편으로는 지배자의 정복전쟁을 도우는 악행이기도 하다. 라인홀드 니버는 “불의한 사회 속에서 행한 선한 행위는 불의한 일을 도운 것이 되기에 무효”라고 했다. 에밀 부루너도 “잘못 탄 기차 안에서의 선행은 무효다”라고 했다. 그런데 왜 예수는 십리동행을 하라고 했을까? 예수는 로마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힘으로 강제하여 평화를 이루는 이른바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를 추구하였다. 로마는 평화를 이루는 길은 전쟁으로 세상을 정복하여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서 ‘벨룸로마눔-로마의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의 대동아전쟁의 목적을 동북아평화라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수는 평화는 끝없이 베푸는 선행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로마와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한때 이스라엘도 로마와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평화를 되찾기 위하여 마카비는 창칼을 들고 반란을 일으켜 잠시 독립을 쟁취하고 평화를 얻는다. 그러나 폭력의 힘으로 얻는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후 70년 이스라엘은 더 큰 로마의 폭력에 의해 완전 멸망한다. 예수는 이 일을 예견하여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했다.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한 로마는 세월이 흘러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후에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죽기 전 했던 말로 알려진 “나는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려 했지만 실패하였는데 저 청년 예수는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하였다”는 말과 같이 로마 황제가 사랑의 힘에 굴복한 것이다. 십리동행을 말한 예수의 가르침은 물리적 힘이 강제하려는 세상을 향해 다른 길을 제시한 것이다.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었다. 강제하는 힘과 힘의 대결로 결코 세상의 평화가 오지 않음을 우리는 다 경험하였고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제3의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