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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기적이 아닌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기적이었다. 돌아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길지 않았던 직장생활 끝에 뜻을 정하여 떠나기는 했었다. 준비가 없었기에 매사가 서툴렀다. 그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오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지도교수로 만난 미라클(Gordon E. Miracle) 교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을 낯선 외국인 학생에게 주었다. 직장을 잡아 학교를 떠나기 전날, 교수님과 마지막 마주 앉은 만찬 자리에서 나름 대담한 제의를 던졌다. ‘교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깊으므로 오늘은 무엇이라도 한 자락 갚아드리고 싶습니다.’ 뜻밖의 제안이었을까.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그는 ‘자네를 위해 내가 선생으로 뭘 그렇게 했는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그래도 자네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여길 떠나 만나는 학생들에게 딱 그렇게만 하게나.’충격이었다. 받은 생각을 새기며 돌아서 살아온 삼십 년이지만, 내가 그 말씀을 실천하였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스승과 제자. 그는 선생이라는 내색을 한 적도 없었다. 일상과 일과 가운데 선생이자 동료로서 온 힘을 다해 함께 하였고 모든 가능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그리 하고 있는가. 어느 한순간 받은 큰 도움이 아니라 칠 년을 건너며 날마다 받았던 스승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다. 나를 기억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흉내라도 내어보았는가. 아내가 새 일을 한다니까, 놀랍게도 구순을 넘기신 선생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선생이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끝날 줄 모른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진심과 배려로 가득했던 선생이 그리워진다.스승의 날. 빛바랜 현수막처럼 글자만 성가시다. 마음에 짐이 되어 슬며시 돌아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어느 한 날을 잡아 어색하게 챙길 일이 아니다. 교육의 마당에서 날마다 만나는 선생과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삶을 나누고 믿음을 쌓으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에 끈끈해 져야 하는 게 스승과 제자의 사귐이다. 선생이 교권을 주장하고 학생이 인권을 외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성토와 규탄의 장소라면 모를까 교육과 성장이 일어나는 곳일 수가 없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르침의 의미를 새롭게 살려야 하며 배움의 큰 뜻을 들어올려야 한다. 받을 것을 챙기기보다 나눌 것을 고심해야 한다.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내일을 품은 게 아닌가. 내가 가르쳐 내일이 열린다는 가슴 벅찬 흥분으로 살아야 한다.진심은 통한다. 학생들과 부모들이 인정하고 따라와 주는 일도 선생에게 달리지 않았을까. 온 정성을 들이면 식물도 반응한다는데, 온 마음을 쏟으며 만나는 아이들이 바뀌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스승은 그래서 ‘가르치는 일이 정신적 업무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육체적 노동이었더라’고 하였다. 마음과 몸을 던져 세상을 바꾸시는 선생님들이 저렇게나 많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기적입니다.

2021-05-12

압화를 풀다

배문경수필가얼마전, 유튜브로 수건춤을 보았다. 백년욱은 진분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춤은 거미가 집을 짓듯이 조용했다. 다시 무겁게, 큰 획을 긋듯이 춤추며 수건과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하얀 수건을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보여주는 춤사위에 삶의 희로애락이 묻어났다.도심의 골목 공사현장 구석에 일꾼이 쓰다 만 수건이 땀으로 찌든 채 버려졌다. 수건 가장자리에는 모 초등학교 동기회,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올은 낡아 납작해지고 새겨진 글자도 흐릿해진 채 바닥에 나뒹군다.공사현장 옆, 식당 주변에는 만개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고운 빛깔 그대로 꽃은 두 번 산다. 꽃은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므로 더욱 가벼워진 무게로 연옥을 지난 것일까. 나비의 날개마냥 납작해진 꽃잎이 책갈피에서 잠잔다. 두툼한 주인아저씨의 손에서는 핀셋이 가볍게 춤을 추듯 움직인다.압화, 저 무게 없는 꽃이며 잎들이 사람이 되고 해와 달이 되어 소슬한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나무가 되었다. 압화에는 숱한 사연이 깃들어 있고 한 생을 살아온 이야기꽃이 술술 풀린다.나무에 핀 꽃이 누르미가 되어 빚어낸 장면, 장면은 이야기다.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있고 한가위 보름달 아래 강강술래를 하는 처녀들의 고운 치맛자락이 휘날린다. 꽃잎이 사람의 얼굴이 되고 줄기는 나무가 되어 꽃은 꽃으로 다시 환생한다. 꽃이 만개했을 때, 따온 꽃들은 티슈페이퍼를 깔고 덮고 두꺼운 책 속에서 한동안 잠을 잔다. 아저씨의 젖은 수건에서도 꽃향기가 묻어났다.향기 나는 동백기름을 바르고 쪽진 머리를 하신 어머니는 여름 긴 장마를 걱정스러워했다. 가족들이 쓰고 내놓는 수건을 빨지 못하면 쉰내가 났다. 하루 이틀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면 세탁기도 없던 시절 각자가 수건을 쓰고 빨아서 간수해도 냄새는 떠나지 않았다. 잠시 잠깐 말간 하늘이 보이면 장대를 세워 시원스레 수건을 말렸다. 바람에 수건은 춤을 추었다.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가 마당 가득 들어차는 계절, 밭일 논일에 치쳐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목은 땟물에 젖어있었다. 아버지는 등목을 시원하게 하시곤 흘러내리는 물을 닦으셨다. 머릿수건을 벗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던 어머니는 수건으로 온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어스름한 저녁에 밥상을 물리면 곧이어 밤이 깊었다. 일을 끝낸 깊은 밤에서야 진주 빛이 담겼던 당목수건을 풀었다. 어머니는 더워도 추워도 먼지가 많은 일을 할 때도 집안일을 할 때도 항시 쪽진 머리를 감쌌다. 오랫동안 쪽머리에 비녀를 꼽고 사신 분이었다. 기름을 묻혀 참빗으로 곱게 빗으면 윤기가 났다. 수건은 농사지을 때나 집안일이거나 어린 나의 콧물을 닦아주거나 잔칫집 떡도 담겼다. 어머니의 머릿내와 눈물이 섞여 원숙한 모란꽃 향기가 났다.어머니와 첫 세상을 만난 순간부터 수건과 나는 하나가 되었다. 세수하면서 나의 임무는 사회와의 깊은 호흡을 맞추었다. 씻고 나서야 시작이 되는 사회와 인간관계. 그것이 엇박자가 되면 밀려서 저만치에서 홀로 훌쩍이면 패자의 수건처럼 구겨졌다. 다시 힘을 얻어 세상과 맞장 뜰 때는 바람에 펄럭이는 힘찬 수건 같았다. 수건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인쇄처럼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남았다.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행사, 축하할 일들은 또한 지켜야할 사회덕목 중에 하나다. 두툼하거나 얇은 수건에 따라 경제사정을 읽기도 하고 수를 놓았는지 쿡 찍은 인쇄물인지에 따라 성향을 파악한다. 한 가족이 된 수건에서는 일상이 담겨있다. 일상이란 꽃 한 송이가 핀 수건을 세탁한다.수건에는 삶의 모양을 닮은 꽃이 박혔다. 피어나지 못하고 바로 압화가 된 꽃송이 서너 개가 보인다. 어머니의 탄식이나 아버지의 땀 냄새, 막 학교를 들어가 뛰어다니던 나의 눈물과 콧물,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이어지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추억의 장면들이 수건 속에 있다.수건을 씻어 장대를 세운 빨랫줄에 넌다. 눌려있던 꽃들이 바람결에 선명해지며 돋아난다. 마지막 한 방울의 꽃향기 폴폴 콧등을 간질인다.

2021-05-12

먼 옛날의 아까시 길

순백의 꽃들이 깊어가는 오월이다. 노랑, 분홍의 꽃들이 자리를 내주자 조팝나무, 이팝나무의 꽃들이 하얗게 핀다. 저만큼 나지막한 산등성이도 아까시꽃으로 하얗게 물들고 있다. 바람에 실려 온 아까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향기를 따라가면 유년의 봄날에 닿고 그 고샅길에 어린 내가 있다.아까시 나뭇잎을 들고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놀았다. 개구쟁이들의 놀이에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 가는 이야기였다. 오늘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없다’, 옆집 숙이는 지금 놀러 나올 수 ‘있다’, ‘없다’를 점치며 나뭇잎을 하나씩 떼어냈다. 잎이 서너 개 남으면 어떤 말을 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짧은 고민에 심장이 쫄깃해졌다.나뭇잎 떼어내기 놀이가 심심해지면 우리는 아까시 꽃잎을 따서 먹었다. 꽃잎은 하얀 쌀밥을 한주먹 크기만큼 조청에 묻혀 놓은 것 같았다. 양손에 하나씩 들고 꽃송이에 입을 바로 댔다. 첫맛은 달콤했다. 들고 있던 것을 다 먹으면 낮은 가지를 잡아당겨 또 꽃을 따서 먹었다. 자꾸 먹다 보면 입에서 떫은맛이 나면 우리는 남은 아까시꽃을 한 아름 안고 집에 왔다. 그날 밤, 머리맡에 둔 아까시꽃은 향긋한 꿈길로 들어가는 문지기 역할을 했다.아까시나무는 생명력이 끈질기다. 어떤 이는 그 끈질김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뽑아도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뿌리를 뻗어 가는 집요함에 두 손 두 발을 들어 버린다. 게다가 스스로 독성을 뿜어 근처의 풀이나 작은 나무들이 자랄 수 없게 만든다. 워낙 많은 양분이 필요해 경쟁하는 나무를 일찍이 말려 죽여 버린다. 그뿐인가, 가시가 많아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찔리기에 십상이다.아까시나무가 이 땅에 정착하기까지 수난을 많이 당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을 황폐화하려는 의도로 전국에 심었다고 해서 수난을 받았다. 아까시나무는 번식이 좋아 성장 속도가 빠르다. 그 뿌리가 조상의 무덤까지 침범해 무참하게 잘려 나갔다. 아무리 베어내어도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새순을 올리고 꽃을 피워댄다. 모양새는 봐줄 게 없으나 생존력 하나는 으뜸이다.아까시꽃은 식탁을 향기롭게 한다. 온 나무를 치렁치렁 뒤덮은 짙은 향을 풍겨내는 상아색의 꽃으로부터다. 그 매혹적인 향은 독성이 없어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아까시꽃 한 송이를 묽은 밀가루에 묻혀 튀기면 모양은 그대로 익는다. 노릇한 꽃송이가 입안에서 바삭거리며 사그라지는 식감은 이때만 먹을 수 있는 오월의 별미다. 거기다 말린 꽃송이를 차로 우려서 마시거나 침실에 걸어두면 오월의 아까시 향을 오래도록 맡을 수 있다.아까시꽃 향기는 어둑했던 어머니의 부엌에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었다. 가난한 시골 살림은 일 년 농사를 아무리 갈무리해도 언제나 곳간은 비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산속 비얄밭에 벌통을 갖다 놓더니 양봉을 시작했다. 벌들은 꽃을 찾아 꿀을 모으고 부지런히 벌집을 들락거렸다. 일벌들이 많이 늘어나 여왕벌을 중심으로 분봉해 벌통이 많이 늘었다.아까시꽃이 피면 부모님은 유목민이 되었다. 꽃들이 지면 부모님은 아까시꽃 따라 북상했다. 근처 마을에 짐을 풀어놓고 첫날은 벌통 근처에서 밤하늘의 별이 지켜주기를 바라며 밤을 지새웠다. 낯선 산속의 벌통을 지키며 자식들이 있는 집을 서너 번 오가면 꽃들이 모두 진다. 그러면 벌통을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꿀을 뜬다.이순혜수필가며칠 동안 햇볕이 쨍쨍하면 꿀을 뜰 수 있다. 부모님은 처마 밑에 걸어두었던 말린 쑥을 꺼내고 긴 옷을 입고 특수한 모자를 쓴다. 이때, 말린 쑥에 불을 지피면 매캐한 연기와 진한 쑥 냄새는 벌들로부터 부모님을 보호해준다. 꿀을 뜨면서 자주 연기를 내주어야 한다. 벌통 칸에 붙어 있는 벌들을 살살 쓸어 통에 밀어 넣으면 꿀을 볼 수 있다. 그 꿀들을 큰 깡통에 모은다. 깡통에는 오각형 모양의 집에 살았던 죽은 벌이 드문드문 떠 있기도 했다. 우리는 벌집에서 나온 벌들과 깡통에 묻은 꿀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부모님은 새끼손가락으로 꿀을 찍어 입에 넣어 주었다. 정신없이 달콤함에 빠져 먹다 보면 속이 아려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아까시향이 훅하고 코끝을 스친다. 벌써 오월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월 하순쯤 꽃을 피울 때 인가 했는데, 달콤한 아까시향이 벌들을 불러들이는 중이다. 향기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키 큰 아까시나무가 상앗빛의 꽃송이를 대롱대롱 달고 있다. 한참을 쳐다보았다. 가지에 달린 꽃송이는 고향 집의 하늘을 그리움으로 채우는 봄날이다.

2021-05-12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카소(1881∼1973)의 한국 전시회가 개최중이다. 천재 화가의 110여점의 작품 전시에 미술 애호가들이 모여들고 있다.오래전 유럽 여행길에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을 찾은 적이 있다. 그 언덕 위 성당 옆 프랑스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 파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피카소도 한때 이곳에서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는 장소이다. 피카소가 자주 찾았다는 길가의 어느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했다.피카소는 스페인 출신 화가이다. 그는 파리에서 그 특유의 입체파 예술혼을 키웠다. 자유분방한 도시 파리에서 피카소는 63세인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인간 얼굴을 한 공산주의’라는 슬로건으로 프랑스의 많은 지식인들을 끌어들였다. 자유분방한 피카소도 ‘계급 없고, 소외되지 않는 공산주의’이론에 현혹되어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특히 의회주의를 통한 민주적 방식의 공산 정권의 수립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프랑스 공산당은 1970년대 약 20%의 지지를 얻었으나 지금은 쇠퇴일로에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피카소가 그린 폭 2m의 ‘한국에서의 학살’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피카소는 6·25 전쟁 이듬해 1951년 이 작품을 완성했다. 프랑스 공산당이 당원인 피카소에 의뢰하여 그린 대작이다. 1950년 한국 전쟁은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파견되고 중공군이 개입되어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이 그림은 총칼을 든 군인들이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 4명과 어린이를 조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약한 여성과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발가벗겨 조준하는 모습은 대단히 끔찍하다. 공산당은 그에게 미군의 전쟁 횡포를 이미지화한 그림을 요구했지만 그것이 드러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북한에서는 피카소의 이 그림을 미군의 만행이라고 선전한바 있다. 북한 당국은 북한 인민군의 양민학살은 없었다고 강변하면서 이 그림이 미군의 황해도 신천 3만명 양민 학살 사건을 상징한다고 선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미군의 학살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평가한다.오히려 스페인 출신 화가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 시 나폴레옹의 침범을 연상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피카소의 이 작품을 모작하여 소련의 폴란드 침공 비판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세계적인 화가 피카소의 이 작품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한국 반입과 전시가 금지되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난 지 어언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6·25를 소재로 한 노래와 영화, 연극은 아직도 도처에 남아 있다. 북한당국은 선전 포스터를 통해 6·25 전쟁 시 미군의 만행을 선전하였다. 세계적인 명장의 손으로 그려진 이 그림의 작품성은 비록 낮지만 전쟁의 비극성을 표출한 것은 틀림이 없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명장 피카소의 그림만큼은 이 기회에 직접 볼 필요가 있다. 피소가 살아서 북한지역을 방문하였다면 어떤 그림 소재를 착상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2021-05-12

5월, 학교에는(中)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5월 학교에는 소설보다 시와 수필이 더 융성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마음엔 시적 감수성이 가득한 시(詩)가, 교사들의 마음엔 깊은 관조(觀照)가 있는 수필이 가득했으면 좋겠다.학생의 마음에 꼭 시의 강이 흘렀으면 좋겠다. 그 강에서 잃어버린 오감을 되찾아 오월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행복 가득한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아빠, 느티나무는 늙은 티를 내는 나무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봐요.” 필자는 지난주 사전답사로 백두대간 수목원을 다녀왔다. 거기에는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많았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가득 안고 마음껏 수목원을 활보했다. 부모들은 아이의 질문에 답하느라 바빴다. 위의 말은 어느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말이다.학생의 창의적 표현을 듣는 순간 필자는 마음이 환해졌다. 학생의 말은 그대로가 시였다. 분명 지금 학생들의 마음에도 엄청난 시적 감수성이 샘솟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시를 배우면 배울수록 학생들에게서 시는 사라졌고, 지금은 멸종 상태다. 그러면서 학교도 사막이 되었다.학생들의 감성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교사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관조(觀照)의 자세다. 관조를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혜로 모든 사물의 참모습과 나아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비추어 봄.” 관조의 대표 문학은 자아 성찰의 수필이다.“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교사의 전신은 스승이다. 스승은 “가르쳐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그 옛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스승을 위해 제자들은 소리높여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스승이 사라지고, 시험을 위한 교과 지식만 전달하는 교사만 남은 지금 학교에는 스승을 위한 노래 대신 청탁 금지법만 남았다. 학생의 마음이 변했듯이 교사의 마음 또한 변했다. 교사의 마음에서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줄고 있다. 교사가 제일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학생이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그런 교사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교사가 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학생이라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그 무너진 하늘에 교육도 깔려버렸다.하지만 필자는 이 나라 교사들에게는 스승 DNA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무너진 교육을 일으켜 세울 힘 또한 교사에게 있다. 이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킨 국민을 길러낸 사람이 바로 이 나라 교사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대로가 수필이었다.5월 학교에는 시험 점수를 걷어내고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가득 담긴 학생들의 시(詩)가 노래로 넘쳤으면 좋겠다. 그 전에 교사들부터 스스로 성적을, 시험을 던져버리고 오롯이 학생들의 마음에 시의 씨앗을 심는 수필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을 잇는 스승의 은혜 노래가 교정 가득 행복하게 울려 퍼졌으면 정말 좋겠다.

2021-05-12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김규종경북대 교수지난 5월 11일은 세 번째 맞이하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1894년 3월 20일 (음력) 봉기한 동학 농민들은 조선의 낙후한 봉건 체제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일제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고자 두 번째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은 그해 4월 7일 (양력 5월 11일) 황토현 전투에서 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하려 했던 동학농민혁명은 오늘도 우리를 비추는 등불이다.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고부(정읍)에서 봉기한 동학 농민군은 파죽지세로 4월 27일 전주에 입성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왕조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여 5월 5일 아산에 청병 3천이 상륙한다. 호시탐탐 조선 침략을 노리던 일본은 5월 6일 인천에 4천 병력을 투입한다. 내정 문제가 국제전쟁으로 비화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지게 된 형국이다.전봉준은 조선 정부와 서둘러 27개 조목의 ‘폐정개혁안’을 맺고 화의한다. 그 가운데 14개 조목이 전하는데, 크게 두 갈래다. 그 하나는 왕의 총명을 가리고 국권을 농락하는 무리를 몰아내고, 탐관오리를 처단하라는 국정 쇄신이고, 그 둘은 민생고를 해결하라는 방책이다. 수령과 관장(官長)들의 적폐를 일소하고, 각종 부역과 세금을 낮추라는 것이다.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런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리가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동학 농민군은 전라도에 집강소 53개를 설치하여 직접 개혁에 나선다. 이에 전라감사 김학진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 ‘폐정개혁안’ 12항이 합의되기에 이른다. 탐관오리와 횡포한 부호, 불량한 양반과 유림의 징벌, 노비문서 소각, 칠반천인(七班賤人)과 백정의 차별철폐, 청상과부의 재혼 허가, 토지 분작(分作) 등이 ‘폐정개혁안’에 담긴다.신분제로 인한 적폐의 누적과 그것이 양산해내는 탐관오리와 유림의 징벌, 최하층 인민의 존중은 조선왕조를 지탱해온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노비문서를 태우고, 과부의 재혼을 허가하며, 토지를 평균하여 분작한다는 것은 혁명 이상을 담고 있다. 1392년 성립하여 장장 500년 세월을 이어온 늙고 쇠락한 왕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 자명하다.나는 토지의 평균 분작에 특히 주의한다. 토지를 경작하는 자가 토지를 소유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천명한 것은 획기적인 사변이기 때문이다.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오랜 불평등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대목 ‘토지의 평균 분작’이다.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LH’ 비리로 다시 불거져 나온 부재지주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동학농민혁명으로 더 크게 들려오는 듯하다.예나 지금이나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명제는 국가의 첫 번째 존립 조건이다.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어느 국가든 정권이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동학농민혁명은 오늘도 명명백백하게 웅변하고 있다.

2021-05-11

연두색 신록 예찬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필자가 고등학교 때 국어책에 ‘신록예찬’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시험에도 잘 나오는 작품이었다. 그때는 시험공부였으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다. 그냥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생각했다.어떤 계절을 좋아합니까? 누가 필자에게 물으면 필자는 봄 또는 가을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신록의 계절이라고 말할 것이다.30대와 40대는 미친듯이 수업만 하다가 60살이 되던 어느날 벚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다. 선배들한테 물어보니까 주변의 자연경관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나이 먹은 것이다. 50대 이후부터 필자는 1년 중 바로 지금, 신록의 계절을 가장 좋아한다. 4월부터 5월 중순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작은 씨눈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색 초록으로 온세상이 물들기 시작해서 하나의 잎으로 만들어질 때까지의 아름다움을 신록예찬이라 한다.“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나의 모든 욕망(欲望)과 굴욕(屈辱)과 고통(苦痛)과 곤란(困難)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수필 ‘신록예찬’중필자는 지난주 보경사와 내연산에 가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보았다.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맑은 신록의 숲속에서 올려다본 푸른 잎사귀들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아름다운 신록을 보며 번잡한 세상에서 잠시라도 떠나 순수하고 맑은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흉중에도, 안전에도 신록이다. 자연 현상에서 느낀 정서적인 체험에 충분한 사색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깊고 확고한 태도와 자연에 대한 심미안적 통찰력을 느꼈다.시간은 흘러도 행복한 기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몸과 마음 부지런히 놀리면 행복이 가까이 온다. 세월은 빠르고 걸음은 더디니 쌈지에 고이 모신 오롯한 기억들 하나씩 풀어 세월 바람에 날려본다.물길 산길 바람길 따라 이어지는 사람 길 그 길 따라 웅숭깊은 인정 길어 올린다.필자는 자연이 주는 혜택과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오월의 신록 내연산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눈과 마음과 가슴을 씻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일체감을 가지면서 신록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싶다.신록의 봄이 가고 초하의 여름이 다가온다. 1년 이상 벗지 못하는 마스크가 날씨가 더워지니 귀찮고 힘들다. 사람들이 어디서나 멀리 떨어져야 한다. 몇몇 나라는 마스크를 벗을 정도 단계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우리도 곧 오겠지. 힘내자. 저 신록을 보면서!

2021-05-11

빌바오 효과

빌바오 효과란 문화가 도시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뜻하는 말이다. 쇠퇴해 가던 스페인의 지방공업도시 빌바오가 1997년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시설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경제적 부흥을 꾀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해 빌바오시는 2조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 붙여진 수식어도 유명세만큼 다양하다. 빌바오 효과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미술관, 전시 미술품보다 미술관이 더 유명한 미술관, 유럽에서 3번째로 연인원이 많은 미술관 등이다.특히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쇠퇴해가는 도시가 미술관 하나로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 현실이 됐다. 여기에는 세계적인 미술재단 구겐하임과 도시재생의 의지가 강한 빌바오시, 독특한 디자인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는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 기막힌 조화를 이뤄 기적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대구시가 이건희 미술관 대구 유치에 나섰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로 대구를 빌바오에 버금가는 문화도시로 바꿔봤으면 하는 의도다. GRDP(지역내 총생산) 27년 꼴찌를 하고 있는 대구가 빌바오 효과를 통해 기적의 도시로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스페인 빌바오시가 이룬 기적을 대구라고 못하란 법은 없다. 기적을 이루기 위한 대구시의 의지가 문제다.삼성그룹 태동지라는 연고만으로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할 수는 없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희망하는 많은 도시 중 대구가 가장 적합하다고 인정할 빌바오시 만큼의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대구시의 비책이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5-11

아버지의 안경과 가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무심코 써 본 아버지의 돋보기 / 그 좋으시던 눈이 / 점점 나빠지더니 / 안경을 쓰게 되신 아버지, / 렌즈 속으로 / 아버지의 주름살이 보인다. // 돋보기 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 아버지의 주름살이 / 자꾸만 자꾸만 /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2010년 세상을 떠난 이탄 시인의 마지막 시집 ‘동네 아저씨’(2006, 학이원)에 실린 ‘아버지의 안경’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이다. 시인이 1940년생이었으니 이 시를 지을 무렵에는 그 역시 돋보기 안경을 썼거나 다초점 안경을 썼을 터. 만년의 시인은 안경을 쓰면서 아버지의 안경을 생각하고 아버지의 주름을 읽어내었다. 자신의 노안 안경에 투영된 아버지의 주름은 파도가 되어 그의 가슴 속으로 자꾸 밀려 왔을 것이고,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까지 이어진 긴 세월의 자국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정희성 시인도 이탄 시인의 시와 같은 제목의 시 ‘아버지의 안경’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고 아버지를 노래한다. 아버지의 유품 안경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더듬는 것일 게다.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그 티를 내는 것이 눈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네 아들은 모두 안경을 썼지만 나의 아버지는 안경을 끼지 않으셨다. 그런데, 50대 중반을 넘기시면서 돋보기 안경을 끼셨다. 많지 않은 연세에 병으로 집에 계셨던 아버지는 늘 책상다리로 앉아 오랜 시간 성경을 읽으셨다. 콧등에 안경을 내려 쓰고 성경을 읽으시는 병약한 모습은 신기하게도 영성과 지성을 함께 풍기기까지 하였다.성경을 늘 옆에 두고 읽으셨던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아버지께 가훈을 들은 기억도 없다. 좋아하시는 성경구절도, 가훈도 물려받지 못하였지만, 안경 너머 성경을 보시며 잔잔하게 소리내어 읽으시던 그 모습과 말씀을 좇아 살려 애쓰셨던 그의 삶은 내 눈과 마음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것이 ‘경건한 믿음의 사람, 건강한 생활의 사람’이라는 내 좌우명의 고갱이가 되었다.결혼 후 “서로 돕고 사랑하며 부지런히 배우자.”라는 처가의 가훈을 들었다. 아버님은 당신의 딸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 가훈을 늘 소리내어 말하게 하셨고, 그 말처럼 세 딸들은 어느 집 못지않은 사랑으로 똘똘 뭉쳤고, 열심히 공부했고, 각자 가정을 이룬 지금도 서로 도우며 인생 후반기를 아름답게 보내고 있다. 처가의 가훈은 자연스레 내 좌우명과 더불어 우리 집의 가훈으로 녹아들었다.성경에는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잠언 4장 1절)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다윗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말이다. 솔로몬이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이었다는 말을 후세에 듣고 있지만, 아버지의 교훈이 없었더라면 그의 지혜도 없었을 것이다.가정의 달 5월이 절반 가까이 지나가고 있는데 부모의 자녀 학대라는 어두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님, 어른들의 교훈이 새삼 그립다. 설령 ‘라떼는 말이야’ 식이냐고 구닥다리 취급을 받을지언정 가정마다 가훈을 만들어 보자고 나는 말하리라.

2021-05-11

짙어지는 신록 마냥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신록의 싱그러움이 날로 달로 두터워지고 있다. 풋풋하고 연푸른 잎새들이 일제히 손 흔들고 수수한 이팝꽃과 아카시아꽃이 가세하며 생기를 더하고 있다. 지천에 초록의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 들판이나 산천에는 생명과 성장의 몸짓이 왕성하다. 간간이 송화가루가 누런 연기처럼 날리면서 연초록 물결 위에 희뿌연 꽃빛이 어리는 산야는 푸르고 생기발랄한 수채화를 그려가는 듯하다.파스텔톤 색조에 만화방창한 5월은 정겨움과 은혜와 고마움과 숭고함이 가득한 달이다. 가정의 달이기에 그만큼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배려하고 포용하며 존경하고 기념하는 날이 많은 걸까? 온화한 날씨만큼이나 가슴 따뜻하고 살가운 정으로 사람들은 가족을 보듬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주위를 살펴 하나하나 베풀게 된다. 자라나는 새싹들이나 언제나 고마우신 어버이,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 가정을 이루는 부부 등에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뜻과 정성을 다하고 챙기며 기리는 모습은 정겹고 아름답기만 하다.해마다 오월이면 필자에게는 잊지 못하고 떠오르는 분이 계신다. 아련한 초등학교 5, 6학년 담임이셨던 은사님이다. 어렴풋한 기억 속의 선생님께선 멋쟁이 총각 훈남(?)으로 늘 배움과 운동을 강조하시며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45년이 흘렀음에도 은사님의 모습은 더욱 또렷해지고 베풀어 주신 은덕은 나날이 짙어가는 신록 마냥 한결 두터워지고만 있다. 졸업한지 30년만에 처음으로 전화를 드렸었는데, 당시 포항교육청교육장으로 계시던 은사님께서는 한 세월 저편 제자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들으시며 각별한 반가움으로 한동안 수화기를 놓질 못했었다.2년 간의 담임시절 동안 은사님께선 60여명 학급 학생들의 일기장을 유난히 자주, 철저히 검사하셨다. 일기를 몇일 거른 학생에게는 따끔한 벌을 내리고, 잘 쓴 일기장에는 도움말씀과 아울러 학급 조회시간에 칭찬하기도 하셨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저학년 때부터 듬성듬성 대충 써오던 일기를 아마도 당시 선생님의 훈학방침의 영향으로 그때부터 제대로, 꾸준히, 쉼없이 써야겠다는 마음을 다진 것 같다. 어쩌면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생활 속의 글쓰기와 메모하기를 즐기고 간혹 시조도 긁적이며 글쓰기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십 수년 전 제자의 첫 개인전 때 직접 오셔서 축사를 해주실 정도로 늘 건재하신 은사님께서는 요즘은 매주 실리는 필자의 칼럼 졸고에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한번도 놓치신적 없이 조언과 덕담으로 격려해 주신다.어쭙잖은 글이지만 은사님께서는 언제나 공익의 가치와 공동선의 영향력을 강조하시며 촌철의 혜안으로 마치 45년 전 서툰 일기장에 도움말을 쓰시듯이 알림톡으로 채근하고 가편해 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사제지간의 정은 깊어만 가니 새삼스럽고 그윽하기만 하다.배움에는 끝이 없다. 평생교육이 시사하듯이 인간은 가정, 학교, 직장, 사회 등 전 생애에 걸쳐 학습과 교육으로 이뤄진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敎學相長)하듯이 자연과 인간이 가르치면서 배우고, 가정과 사회가 배우면서 가르치는 학습문화가 조성되길 기대해본다.

2021-05-10

보경사군립공원의 새 이름은?

박창원수필가내연산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고찰 보경사가 있고, 삼십 리에 이르는 긴 계곡을 따라 발달한 12폭포와 선일대를 비롯한 빼어난 경승지가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연산보경사를 찾아가다 보면 보경사군립공원이란 표지판을 만난다. 사람들은 이 표지판을 보고 포항시가 군(郡)이 아닌데, 웬 군립공원이냐고 의아해 한다.보경사가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38년 전이다. 당시 연간 30만 명 이상이 찾을 만큼 동해안 최대의 관광지였던 내연산보경사는 1983년 10월 1일 영일군에 의해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문제는 1995년 포항시·영일군이 통합된 후에도 여전히 군립공원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시·군이 통합됐으면 당연히 시립공원으로 고쳐야지, 통합된 지 27년이 된 지금도 왜 군립공원으로 놔두고 있느냐는 의문을 갖는다.법 조항 때문이다. 종전의 자연공원법에는 “자연공원이란 국립공원·도립공원·군립공원 및 지질공원을 말한다.”고 해 놓고, 이 중 군립공원은 시·군 및 자치구의 자연생태계나 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으로서 시장·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이 지정·관리하는 공원이라고 정의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자연공원법 일부가 개정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군립공원은 군수가, 시립공원은 시장이, 구립공원은 자치구 구청장이 각각 지정·관리한다.”로 바뀌었다. 그래서 최근 포항시는 시립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키로 하고, 시립공원에 어울리는 새 이름을 정하기 위해 5월 14일까지 온라인, 오프라인 상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설문조사의 공원명칭 선택항목에는 보경사시립공원, 내연산시립공원, 내연산보경사시립공원, 진경산수시립공원, 내연산폭포시립공원 등이 올라 있다. 보경사가 들어간 이름이 2개나 되는데, 1983년 군립공원을 지정할 때의 명칭이 보경사군립공원이어서 자꾸 사찰명을 염두에 두는 모양이다. 하지만 전국의 자연공원 중 사찰명이 들어간 경우는 거의 없다. 설악산국립공원, 지리산국립공원, 가야산국립공원, 속리산국립공원, 팔공산도립공원, 선운산도립공원, …. 유명한 사찰을 낀 명산들이지만 그 어디에도 사찰명이 들어간 곳은 없다. 그러기에 보경사군립공원을 대체할 새 이름에 ‘보경사’는 넣지 않는 게 맞다.내연산은 사실 도립공원 급이다. 과거 역사가 그렇고 현재의 자연경관과 문화적 요소가 그렇다. 내연산을 전국에 알린 것은 조선시대 명사들의 글과 그림이었다. 울진의 선비 해월 황여일은 ‘유내영산록(遊內迎山錄)’을 통해, 우담 정시한은 ‘산중일기(山中日記)’를 통해 내연산의 명성을 알렸다. 그림으로써 내연산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한 사람은 겸재 정선이다. 정선은 1733년부터 2년 간 청하현감을 지내는 동안 ‘내연삼용추도’ 등 내연산을 소재로 4점의 그림을 그려 남겼다. 이렇듯 현재의 12폭포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명소와 문화재, 관광객 수 면에서도 보경사는 도립공원 급이다. 차제에 내연산을 도립공원으로 격상시키는 게 어떨까?

2021-05-10

어느 봄에 만난 사람들

원고에 치여 정신없이 바쁘던, 책상 앞에 앉아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이건 아니야!’ 하고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뜯던 어느 봄날, 나는 밀린 일을 제쳐두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중에도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며칠째 제자리만 맴도는 문장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암담한 폭풍처럼 몰려왔다.나는 누가 봐도 우울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집 근처의 공원에 당도했다. 벤치에 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조랑말을 끌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조랑말이라니.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평일 대낮에 조랑말을 산책시키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말을 묶고 있던 로프를 나무 밑동에 매고 빗을 꺼 내들어 털을 빗겨주기 시작했다. 조랑말은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느리고 우아하게 발밑의 풀을 뜯어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봄날의 볕을 온몸으로 느끼던 그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유유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나는 점점이 사라지는 남자와 조랑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이 장면을 누가 믿겠어.그렇게 다시 벤치에 앉아 있는데 이번에는 외발자전거를 타는 아저씨가 내 앞을 지나갔다.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면서 요란스럽게 외발자전거를 타는 그를 보고 킥킥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엉덩이를 죽 빼고 위태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경이로워 보였다. 외발자전거를 타는 일은 그에게 꼭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일처럼 보였고 동시에 정말이지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그날 만났던 사람들은 지난한 현실에서 빗겨 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에서 벗어나 다른 온도의 시간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통장의 돈을 차곡차곡 불리는 시간에 뗏목으로 망망대해를 건너고 자전거로 알프스산맥을 넘는 사람들처럼. 돈을 받거나 사회에 강요되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목표와 즐거움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이들이 떠올랐다.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실존적이고 원시적인 삶을 산다. 그는 종교나 학문, 국가 등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드러낸다. 물레를 돌리는데 거슬린다는 이유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감정이 차오르면 자갈밭 위에서 춤을 춘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동시에 나는 우리 청년 세대를 본다. 냉소와 허무를 모자처럼 쓰고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는 젊은이들. 그것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내 주변에 실재하는 친구들의 삶이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눈을 가린 채 미로 속을 걷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공장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자문하면서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 앞을 더듬거리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기계처럼 돈을 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아생전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등바등하면서.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급이 늦어지는 원고료에 조바심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여유를 갖지 못한다. 돈도 벌고 인정도 받기를 원하지만 헛물만 켜는 가난한 작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닌가. 이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고뇌한다. 인생에 대한 자유를 구속하고 내면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곤 한다. 낭만과 자유라는 관념을 우습게 여기고 현실적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다.그럴 때면 어느 봄날에 만났던 조랑말과 위태롭게 외발자전거를 타던 남자를, 조르바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조르바는 이렇게 말했다.“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2021-05-10

부재를 견디는 방법

엄청나게 살갑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나는 하나뿐인 여동생과 꽤 친한 편이다. 사실 우리가 친한 편인 줄 몰랐는데, 친구들을 보니 의외로 동생과 별 용무 없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례가 드물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그래도 어디 가면 사진도 찍어 보내고, 서로 누굴 사귀면 그런 이야기도 공유한다. 동생은 디자이너이고 유행에 민감한 편이라 내가 앨범을 만들거나 책을 쓸 때 모니터링을 부탁하기도 하고, 디자인 작업을 맡기기도 한다. 이만하면 다른 집에 비해 돈독하게 지내는 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동생뿐만 아니라 아버지와도 나는 대화가 많은 편이다. 친구들은 아버지와 대화 나누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아버지와 나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한다. 내 일에 관한 이야기, 주변 친구이나 친척들 이야기, 야구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리고 동생 이야기. 가급적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찾아가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려 한다. 아버지도 내가 갈 때마다 밥도 차려주시고, 핸드드립 커피까지 내려주시고, 돌아갈 때는 주차장에서 차 빼는 것까지 봐 주시곤 한다. 아버지는 내게도 충분히 다정하시지만 동생에게는 몇 배나 더 다정하다. 나와 대화하시는 목소리 톤이 도~ 정도라면 동생에게는 미~ 정도의 톤으로 이야기를 하신다.이런 우리 집 분위기가 부럽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그렇게 돈독할 수 있냐고, 원래부터 집안 분위기가 그랬냐고 묻곤 한다. 나는 아버지가 원체 다정하시고 나도 동생도 그런 영향을 받아 그렇다고 대답을 하곤 하는데, 사실 우리 셋이 다른 집보다 좀 더 끈끈하게 뭉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부재.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어느정도의 연민을 가지고 있다.‘집안의 기둥은 아버지’라는 것이 전통적인 관념이지만 우리집은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경제적인 것들이야 언제나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은 항상 어머니가 맡았다.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별로 챙겨 본 적이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챙기고, 나도 어머니가 챙기고, 동생도 어머니가 챙겼다. 아버지와 나와 동생 사이에 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입을 거쳤다. 나와 동생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머니께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그것을 아버지께 상의하는 식이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그 역시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를 교육하는 역할, 그리고 아버지를 독려하고 살피는 역할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집 자체였다. 아버지와 나와 동생은 그 안에서 서로 다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그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은 집안을 지탱하는 중심축이 사라져버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가정이 붕괴할지도 모를 위기를 의미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은 그야말로 가정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어쨌거나 우리는 어머니 없이 평생을 버텨야 한다. 우리 셋 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가 조금씩 어머니의 역할을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없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조금씩 더 서로를 염려하고 챙기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와 나, 동생이 모두 이러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더욱 다정해졌고, 나와 동생은 철이 조금 빨리 들었다. 슬픈 마음은 똑같을 것이 분명했기에 우리는 서로가 안쓰러웠고, 그런 서로를 위해 각자가 나름의 다짐을 했던 것이다.어머니가 떠나신 지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들에 익숙해졌다.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재미난 먹이사슬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가 내게 진지한 말씀을 하시면 거역하기 어렵기만 한데, 아버지는 동생에겐 꼼짝도 못하신다. 아버지께는 버릇없이 굴 때가 많은 동생은 어려운 결정을 하기 전에 항상 내게 상의를 해 오고, 내 의견을 결코 허투루 듣지 못한다. 나와 아버지와 동생이 가위 바위 보처럼 물고 물리는, 이 기묘한 먹이사슬은 달리 말하면 서로 의지하기 위해 터득한 하나의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의 가슴속에 있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이제는 부족하게나마 메울 줄 알게 된 것이다.

2021-05-10

뿌듯하게 손에 잡히는 바로 그때 빠져나가 저 멀리 물러나는 진실

지금 여기 수많은 타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진짜 모습은 파악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가 달려가면서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조차 동시에 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리 앞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눈은 우리의 머리의 앞쪽, 우리가 달려가는 방향을 향해 직선을 이루고 있는 지평선을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렇게 달려가듯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눈앞만을 바라보기 급급할 뿐, 우리가 놓여 있는 전체의 상을 조감하는 시선을 가질 수 없다.작가 이상(1910~1937)은 빛의 속도 이상으로 달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는 눈앞의 시선과 조감하는 시선을 동시에 얻는 상상적 풍경을 그리고자 했다. 그가 썼던 ‘삼차각설계도 연작’이나 ‘오감도 연작’의 시들이 바로 그렇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따라 빛의 속도 이상으로 달려 수많은 ‘나’를 만나는 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소설 ‘날개’를 지나 ‘동해’로 넘어가면서 이상은 자신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알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울창한 삼림 속을 진종일 헤매고 끝끝내 한 나무의 인상을 훔쳐오지 못한 환각의 인(人)”임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선언했다. 빛의 속도를 거론하며 13인의 아이들이 펼쳐놓았던 조감하는 시선을 통해 고리타분한 세상에 저항했던 야심만만했던 이상은 결국 자기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의 똑같이만 보이는 표정들이 담고 있는 의미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거나, 혹은 절망한 척을 했던 것이다.하나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의미나 색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시대의 과제가 종료되어 그 시대가 갖는 의미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아직 삶의 열기가 남아 있는 엇갈리는 시선이 아니라 그것을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조감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그 조감의 시선이 허용될 것인가. 시대를 기록하는 작가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의 소설 ‘덤불 속(1922)’은 바로 이러한 작가의 딜레마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덤불 속에서 ‘타조마루’라는 도적이 아내를 말에 태워 데리고 가고 있던 무사를 공격하여 무사를 죽이고 아내를 겁탈한다. 그 사건의 주변에서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제각기 증언한다. 결국 무녀에 의해 죽은 무사의 혼령까지 초혼하지만 그 사람들이 심문에서 답한 내용은 다 각자 자기의 입장에 근거해서 자기가 볼 수 있는 시선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나무꾼과 탁발승, 도적 타조마루, 무사의 아내와 무사의 혼령까지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심문 내용을 모아두었을 뿐인 이 짧은 소설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지금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각각의 눈으로 본 세계들의 총합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조감하는 눈으로 내려다본 한 차원 위의 세계가 될 수 없다는 이른바 불가해성에 대해 말한다. 눈앞에 달린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모두 마찬가지라는 사실만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1988)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몽(羅生門·1915)’과 이 ‘덤불 속’을 합쳐, 영화 ‘라쇼몽’을 만들었다. 그는 ‘라쇼몽’의 이야기를 겉의 액자로 사용하고, ‘덤불 속’의 이야기를 속 내용으로 넣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라쇼몽 아래에서 비를 긋다가 추위와 배고픔에 누각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이들의 소설 속 이야기는 ‘덤불 속’의 아귀다툼을 증언하는 탁발승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인간을 자기 눈앞의 시선에 붙드는 것은 결국 자기의 절박한 상황이다. 그럴 때 진실은 언제나 저 멀리 물러나고 만다./홍익대 교수

2021-05-10

신라 왕궁 속의 동물 이야기 - 곰은 왜 해자에 있었을까?

지금 경주의 첨성대를 가면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곳이 보입니다. 이곳은 신라 천년의 궁성인 월성유적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월성유적 주변을 둘러싼 해자에서는 신라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밝혀주는 다채로운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해자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한 동물과 식물, 나무에 관한 유물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고, 이 글에서는 신라인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대부분의 유적에서는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경주 월성유적은 해자라는 물이 흘렀던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 많은 동물뼈, 식물의 씨앗, 목제품 등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5세기 무렵의 신라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동물과 식물 그리고 나무를 알려주는 것입니다.현재 월성유적에서 확인된 동물은 멧돼지류(가축인 집돼지와 야생 멧돼지를 포함), 소, 말, 개, 곰, 소형사슴 등의 포유동물이 많습니다. 그리고 상어, 돌고래와 같은 바다의 동물, 꿩과 같은 날짐승까지 다양한 동물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해자에서 확인된 동물은 신라 왕실에서 먹고 이용한 후에 해자 속에 남겨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해자 속 대부분의 동물은 고기의 섭취라는 목적이 큰 동물이 많습니다. 물론 소와 말은 당시의 중요한 노동력이나 죽은 후에는 고기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곰은 식용의 목적이 크지 않은 동물입니다. 그리고 유적에서 확인되는 사례도 흔치 않은데 월성유적에서는 다수 확인되고 있습니다.현재 월성유적의 해자에서는 곰의 뼈가 10여점 확인되고 있습니다. 곰뼈는 하악골(아랫턱뼈),요골(앞팔뼈)과 종골(발뒤꿈치뼈), 상완골(윗팔뼈), 대퇴골(허벅지뼈) 부위의 뼈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요골과 종골이 가장 많이 출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자에서 확인된 부위는 고기가 많지 않은 부위이고 종골의 경우 해체 후에 버리는 부위이기도 합니다. 그런 부위의 뼈가 왜 신라의 왕궁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일까?사실 신라시대 사람들이 동물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뼈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신라시대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삼국사기’에 신라인의 곰 이용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곰의 가죽을 이용해 군대의 깃발 장식을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곰의 가죽 중에서도 뺨, 팔, 가슴의 가죽을 이용해 깃발 장식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월성유적에서 확인된 곰은 하악골(아래턱뼈)은 뺨, 팔은 요골이 해당하고 아래턱뼈에는 해체할 때 남은 흔적도 확인됩니다. 그리고 군권의 장악은 왕의 권위와 관련되고 이런 군대의 상징인 깃발은 왕실과 관련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라 왕성의 주위에서 군대 깃발의 제작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신라 왕실에서 운영한 관청 중에는 가죽의 무두질과 제품을 만드는 관청을 설치해 관리하고 있었음이 ‘삼국사기’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성의 해자 주변 유적 조사에서도 철공방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유구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왕궁의 주변에 이러한 물품의 제작과 관련된 유물이 다수 확인되고 있는 것은 가죽과 관련된 제품이 월성 주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가죽의 무두질에는 물을 이용하거나 동물의 뇌수(腦髓)를 이용하는 방법이 알려져 있습니다.월성 해자 속의 동물 중에도 두개골이 깨진 상태로 출토하는 것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해자 주변에 왕실과 관련된 수공업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월성 해자 속에서 확인된 곰뼈는 신라시대 군대의 장식품을 만들기 위해 가져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결과는 문헌 기록과 발굴 조사 결과가 일치하고 있어 신라시대 왕궁의 생활 모습을 사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김헌석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해자에서 출토하고 있는 동물뼈는 신라시대 왕궁에서 이용한 동물이 어떠한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입니다. 해자에서 확인된 멧돼지종류는 육류의 섭취를 위한 것으로 소와 말은 육류 혹은 의례의 도구로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뼈와 같이 특수한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버린 것들도 다수 섞여 있을 것입니다.아직 월성 해자에서 출토한 동물뼈는 정리 과정에 있습니다. 정리를 진행해 나간다면 신라시대 동물을 이용한 모습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을 가져와서 어떻게 해체하고 먹었는지 그리고 해자에 버리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이러한 동물의 이용방식을 지금의 우리와 비교하면서 동물을 바라보던 신라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2021-05-10

‘긱 워커’ 전성시대

긱 워커(Gig Worker)는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해 단기로 계약을 맺고 일회성 일을 맡는 등 초단기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들을 이르는 말이다.코로나19(COVID-19) 장기화로 인한 경기불황으로 소득이 줄면서 정규 근무시간 이외 여유시간을 활용해 부가적인 수입을 얻는 ‘긱 워커’들이 스타트업이 만든 독특한 일자리를 기반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디지털 물류 스타트업인 ‘디버’의 경우 1만3천여명 이상의 배송 파트너가 등록, 고객이 퀵배송을 신청하면 거리·평점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배송 파트너가 30초~1분내 배정된다. 크라우드 소싱(일반인 자원 활용)을 통한 퀵서비스 플랫폼이다.반려동물 돌봄서비스 스타트업인 ‘도그메이트’에도 2만2천여명의‘펫시터’가 몰렸다. 펫시터는 활동 가능한 지역·일정을 선택, 월 50만원가량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긱 워커를 겨냥한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도 뜨고있다. ‘크몽’과 ‘숨고’가 대표적이다. 크몽은 디자인, IT·프로그래밍, 영상·사진·편집, 마케팅 등 10여개 영역에서 400여개 카테고리, 총 25만건의 전문가 매칭이 가능하다. 주로 중소기업이나 창업자들이 크몽을 찾아 서비스를 구매하고 있으며, 지난해 각 분야 전문가 상위 10% 평균 수익이 IT·프로그래밍 3억4400만원, 디자인 1억6700만원, 영상·사진·음악 8500만원으로 집계돼 ‘전업 긱 워커’로 발전하고 있다.숨고는 인테리어와 청소 등 ‘홈서비스 고수 매칭’을 기반으로 등록된 고수만 50만명 이상이며, 웨딩플래너, 헬스트레이너, 회계사, 가죽공예사, 미용사 등 직종도 다양하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불러온 취업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눈부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10

삶은 계속 이어진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어린 시절 동화는 왕자와 공주가 만나 고난을 겪고 결혼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고정관념에 의문을 품고 왕자와 공주의 결혼 이후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런 결말이 완결된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엘윈 브룩스 화이트의 대표작 ‘우정의 거미줄’ 역시 그런 완결된 결말을 보여준다. 샬롯이라는 거미는 돼지 윌버의 친구가 되어주고 도살의 위험에서 구해준다. 돼지 품평회장에서 샬롯이 알을 낳고 삶을 마치자 윌버는 그 알을 지켜준다. 윌버가 샬롯에게 은혜를 갚는 것처럼 보여서 완결된 느낌을 준다.그러나 화이트의 다른 작품 ‘스튜어트 리틀’은 좀 다르다. 이 작품은 5센티미터 생쥐 크기로 태어난 스튜어트가 자기 집에 날아들어온 마갈로라는 새를 사랑하는 이야기다. 어느날 갑자기 마갈로가 떠나자 북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는 확신만 가진 채 북쪽으로 가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가 기대하듯이 마갈로를 만났다는 결말은 없다.어떤 독자들은 이런 결말에 불편해한다.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긴장과 갈등까지 갖추어지면 완벽하다.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인 더 하우스’에 나오는 제르망 국어 선생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제르망은 작가를 꿈꿨으나 실패하고 학생들의 시시한 작문을 채점하며 투덜거린다. 어느 날 클로드의 작문에 큰 관심을 갖게 되어 글쓰기 지도를 시작한다. 클로드의 작문은 주말에 친구 라파의 집에 놀러 가서 가족을 관찰한 글인데 친구의 엄마에 대한 묘사가 많다.그런데 이 영화에는 사실주의 작가 플로베르가 배경과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도 플로베르 고등학교이고, 플로베르의 작품 ‘단순한 영혼’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단순한 영혼’은 기존의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고 충직한 하녀 펠리시테의 삶을 밋밋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클로드 역시 발단 전개 등의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 내용을 묘사했다. 플로베르처럼 냉정하게 보라는 제르망의 조언을 따라 3분 경과, 5분 경과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라파 가족의 대화와 행동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르망은 클로드에게 주제가 무엇이냐, 독자를 정해야 한다, 남의 가족을 떠벌이는 느낌이다, 갈등이 없다, 독자에게 궁금증을 던져라, 긴장을 만들어라 등의 비평을 하면서 지도한다. 급기야 제르망은 클로드의 글을 계속 보고 싶어서 클로드가 라파의 집에 계속 가서 수학을 가르쳐주게 하려고 수학 시험지까지 빼주어 라파의 성적을 올려준다.결국 이 일로 제르망은 해고되고, 부인에게 이혼 통보까지 받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클로드는 공원 의자에 앉아 제르망에게 계속하자고 한다. 이런 결말을 통해 오종 감독은 진짜 결말, 분명한 결말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왕자와 공주는 행복한 결혼 이후에도, 샬롯의 알들도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스튜어트가 마갈로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스튜어트의 삶은 이어진다. 어느 이야기에도 완결된 결말은 없다. 삶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2021-05-10

방관자 그리고 ‘김부겸’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스포츠계의 학교폭력 사건을 기폭제로 ‘학교폭력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가 연예인과 일반인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최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도 어린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다고 밝혔다.“요즘 왕따라고 해서 아이들끼리 편을 만들어 누군가를 괴롭히는 문화가 있는데 과거에도 유사한 일들이 많았다. 나도 시골에서 올라온 처지라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당연히 센 놈들을 따라다녔다”며 “부끄러운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다.”고 밝혔다.학교 폭력이 발생한 당시에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인 경우가 많고, 시간이 많이 지나 증거 확보가 어려우며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 처벌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하지만 지금은 피해자가 피해사실에 대해 소셜 미디어에 글을 업로드 하고 이슈화시키며 심지어 여론재판까지 이뤄지고 있다.스포츠계 학교폭력의 사례로 크게 이슈화된 이다영, 이재영 선수의 학교폭력 형태를 살펴보면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런 피해는 일어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피해자들에게 강제로 돈을 걷고,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들까지 욕하는 것은 물론, 새로 산 물건을 빌려 달라 강요하고 심부름을 시키고 이에 불응하면 칼을 갖다 대며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더럽다’, ‘냄새 난다’라는 폭언은 물론 본인들만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나쁜 행동을 강제로 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서울시교육청에서는 학교 운동부 폭력 예방 및 근절 대책으로 학교폭력 가해 학생으로 조치를 받게 된 학생 선수는 일정 기간 훈련·대회 참가 등 학교운동부 활동을 제한하고 특히 전학이나 퇴학 조치를 받게 된 중·고등학생은 체육특기자 자격을 상실시킨다고 한다.이달부터는 ‘학교체육진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출입구 등 기숙사의 사각지대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해 보인다.사회 이슈가 되어 대통령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 체육 분야 그늘 속에선 폭력이나 체벌, 성추행 문제 등 스포츠 인권문제가 제기되어 왔다”며 “이런 문제가 근절될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 한번으로 뿌리 깊은 문제가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다.연예계에서도 학교폭력 미투가 불거져 논란이 되고 있다.어떤 배우는 일부 학교폭력을 인정하면서 드라마 방영 중 주연배우가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를 몰고 왔고 30억 손해배상소송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TV조선 ‘미스트롯2’ 참가자도 학교폭력을 인정하며 자진하차 했고 여러 연예인들에 대한 학교폭력 논란이 잇따라 불거졌다.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가해자 중심으로 사회 이슈가 되고 있지만 단순히 제도적 처벌과 피해자와 가해자만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방관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방관자들은 폭력현장에서 침묵함으로 암묵적으로 폭력을 용인하고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 상황을 지속시키며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가해자의 요구에 따라 동조해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동시에 피해자로 바뀔 수 있는 과도기적 특성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있다.따라서 학교에서도 가해자, 피해자 위주의 학교폭력상담보다는 예방적 측면에서 방관자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직장 내 괴롭힘, 따돌림도 존재하기에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는 학교나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회의 전반적 문제가 투영된 것이기에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가정, 학교, 청소년기관을 비롯한 민간단체, 지역사회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연대하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만 근절될 수 있다.약자, 피해자를 볼 때 공감과 분노, 죄의식, 죄책감을 느끼며 인권과 폭력에 대한 인식개선과 태도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 함께 체계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고려아연 회장과 사돈지간이고 고려아연은 낙동강 상류 환경문제의 대명사인 영풍제련소가 속한 영풍그룹의 핵심 회사이다. 김부겸 후보자는 지금까지 영풍제련소 환경문제에 방관자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기존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센 놈들을 따라 다녔다며 학폭까지 고백한 김 후보자, 이젠 영풍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서도 진솔한 입장을 밝혀야 할 때다.적어도 일국의 국무총리가 되려는 인물이라면 방관자가 돼선 안 된다. 방관자를 총리로 두면 국민이 너무 서글퍼지지 않겠는가.

2021-05-09

당뇨병 관리·예방 위한 근거 중심 맞춤형 운동법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부경대 겸임교수최근에 발표된 ‘국민건강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당뇨병 유병률은 남자 12.9%, 여자 7.9%이며, 남녀 모두 연령이 높을수록 높다. 또한 당뇨병 인지율은 71.5%, 치료율은 66.2%, 유병자의 조절률은 31.1%, 치료자의 조절률은 25.8%이다.이같이 당뇨병 치료율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었으나 조절률은 다른 만성질환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사망률은 증가하여 현재 우리나라 국민 사망원인의 5위를 차지하고 있다.운동은 당뇨병 환자의 치료요법으로 권장되고 있다. 하지만 운동은 신체 건강한 사람에게도 일종의 자극이나 부하로 여러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데, 당뇨병 환자의 경우 예상하지 못하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과학적 근거 중심의 맞춤형 운동법이 필요한 대목이다.우리나라 당뇨병 환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운동은 걷기와 등산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같은 유산소 운동은 최소 8주 이상 잘 통제된 상태에서 실천을 해야 최대산소섭취량과 혈액 내의 혈중 지질 및 혈당 변화가 나타나지만 체중의 변화는 크지 않다는 것이 그동안의 연구결과이다. 하지만 비만이나 당뇨병이 있는 사람의 경우 에너지의 이용률이 불균형하기 때문에 지방의 산화량을 증가시키는 유산소 운동이 중요하다. 지방산화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의 운동이 필요하다.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비만이나 당뇨와 같은 질환이 있는 사람은 저강도, 즉 최대산소섭취량의 약 40~50% 정도의 운동 강도를 권장하고 있다.미국당뇨병학회에서는 당뇨병 환자에게 주당 700~1천200칼로리를 소모하는 것이 당뇨병성 합병증이나 사망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제2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열량의 소비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운동 강도로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 유산소 운동으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매번 최소 60분 이상 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걷기 운동의 경우 체력이 약한 사람은 운동 강도가 낮은 대신 운동량을 증가시켜 1일 에너지소비량을 증가시켜야 하며, 체력이 좋은 사람은 속도를 증가시키는 등 중강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을 하여야 체중감소와 혈당조절 등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그런데 당뇨병 환자들은 신체적 한계, 개인적인 취향, 시설의 이용도 등의 이유로 인해 유산소 운동과 같은 한 가지 운동만 실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운동 편식은 지루함과 운동능력 향상의 한계를 가져와 운동의 중도포기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유산소와 저항운동을 혼합하는 복합운동이 중요한 이유이다.이전에는 고혈당증과 당뇨병성 고혈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저항성 운동은 당뇨병 환자에게 권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여러 연구에서 주당 150분 이상의 저항성 운동은 당뇨병 위험이 약 34%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되면서 운동치료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게다가 저항성 운동을 기피하는 이유가 무거운 바벨이나 머신만 사용하는 운동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탄력밴드, 짐볼 등과 같은 소도구를 활용한 중강도의 저항운동은 운동 시 가동범위가 넓고 위험성이 적어 운동초보자에 적합하며, 운동의 다양성과 즐거움을 더해주어 장기적인 운동효과를 증가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저항성 운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중강도 이상이 돼야 한다. 중강도 이상의 저항성 운동은 기초대사량을 증가시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고, 근력을 강화시켜 장시간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주며 노화로 인한 근력 손실도 막아준다. 또한 저항성 운동은 지속시간이 48시간 이상으로 유산소 운동보다 운동효과를 더 길게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제 2형 당뇨병 환자에게 근육량의 증가는 근섬유 모세혈관과 비율을 증가시켜 근육 내 글리코겐의 저장능력을 향상시키고 골격근 조직 내 미토콘드리아의 양을 증가시켜 당화혈색소, 최대산소섭취량 등 임상적 향상의 효과가 나타난다.다만, 당뇨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운동 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유산소 운동의 경우 총운동량을 늘리기 위해 오랜 시간 운동을 하게 되는데, 당뇨병 환자의 경우 일시적인 저혈당 증세와 근육의 과다사용으로 근육 손실 등이 나타날 수 있어서 전문가의 정기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저항성 운동의 경우에도 순간적으로 무거운 중량을 버티기 위해 호흡을 멈추게 되는 ‘발살바 메뉴버’ 현상이 나타는데, 이러한 호흡법은 복압이 높아져 순간적 의식상실, 고혈압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항성 운동 중 호흡은 근육 수축 시 내쉬고 근육 이완 시 호흡을 들이쉬는 것이 안전하다.결과적으로 당뇨병과 관련한 운동의 효과와 지속성을 위해서는 한 가지 운동만 수행하는 것보다 유산소, 저항성, 스트레칭 등 과학적 근거 중심의 다양한 운동을 번갈아 활용하며 자신에 맞는 운동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권장된다.

2021-05-09

혁신, 기업 성장의 무기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수많은 기업들의 흥망사를 분석했던 지브랏(Gibrat)은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생존의 비결은 바로 유연한 적응력, 즉 변화라 했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과 도약을 위해 우수기업의 혁신활동을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전문 컨설턴트를 초빙하여 변화를 시도하지만 무늬만의 혁신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변화와 혁신은 기획하고 추진하기는 쉬워도 꾸준히 실행하여 열매를 맺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최근의 산업현장은 잦은 인명사고에 따른 부실한 안전관리와 환경사고에 따른 문제 등으로 상당히 심각한 선결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기본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적당주의 관행이나 능률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기업경영의 방향성이 현실과 부합되지 않아서 사고가 빈발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기업체 내에서의 혁신과 변화만 제대로 추진하고 정착하게 된다면 재해나 사고를 상당 부분 방지하고 근절시킬 수 있다고 본다.이른바 혁신이란 생산활동의 현장에서 불합리를 찾아 시정 보완하고, 인적·물적인 결함과 낭비를 없애고 환경과 안전, 생산 기반을 효율적으로 확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유지해가는 전방위적인 개선활동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혁신활동을 어떻게 펼쳐나가는 것이 좋을까? 모든 일에는 순서와 경중완급이 있듯이 표준화되고 정례화된 매뉴얼이나 성공사례를 표본으로 한 혁신활동의 전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여 단계적, 주기적인 활동과 반복 확인을 지속적으로 이행해 나가면 된다고 본다. 이에 필자는 개선현장의 현업에서 약 15년 간 기업의 성장과 생존의 중요 요소인 혁신활동 컨설팅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긴요한 노하우와 체험담을 공유하여 기업체와 공공업체는 물론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사고와 재난을 예방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데 적으나마 도움을 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첫번째 소개할 테마는 5S활동이다. 5S란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로, 혁신활동의 바탕이 되는 다섯가지의 활동유형을 일본어 영어식으로 표기했을 때 첫 자가 모두 S로 시작하기에 5S라 한다. 이러한 5S활동은 생산현장을 명랑하고 쾌적한 분위기로 바꾸는 기본활동이며, 기업의 숨쉬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10여 년 전 알루미늄 생산공장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공장 곳곳에 쌓여 있는 분진과 널브러진 자재들로 인해 숨쉬기가 힘들고, 일 보다는 매일매일 청소하는 것에 지쳐 있었다. 가장 먼저 5S활동을 통해 먼지 발생원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자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결과, 현장이 깨끗해지고 안전해짐은 물론 품질과 생산도 좋아지는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였다.5S활동이 바탕이 되는 혁신활동은 몇몇 사람의 솔선이나 참여가 아닌, 모두가 합심해서 한마음 한 뜻으로 협력하고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촛불처럼 금세 꺼져버리는 일회성 활동이 아니라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미래 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는 변혁의 횃불처럼 앞길을 환하게 밝혀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2021-05-09

칠포리 암각화의 꿈

윤영대수필가춘천시 중도의 선사유적지 훼손에 대한 뉴스를 듣고 포항의 선사유적이 생각나 칠포리 암각화를 둘러보고 싶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무려 6개 구역 16개 바위에 96점 암각화가 있단다. 이 칠포리 암각화는 1989년 처음 발견된 이후 추가로 찾아내어 우리나라 최대 암각화군을 이루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등록되어 있다. 분포도를 보니 모두 십 리 안팎의 거리에 모여 있어 하루 만에 다 답사할 수 있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맨 먼저 간 곳은 도로변 사다리꼴 암각화. 조용히 둘러보고 근처 A구역으로 갔다. 커다란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 주차하고 숲으로 올라가니 암각화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깨끗한 돌길과 아치형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눈에 들어오는 큰 바위 하나, 멀리서도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검파형 암각 6개가 선사시대로 나를 이끈다. 원시 부족 때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새겼을 암각이 연약한 사암질의 바위 표면에서 비바람에도 잘 버티어주었구나 하며 꼼꼼히 둘러보았다. 바로 아래 좁은 계곡에 비스듬히 박혀있는 바위에는 큰 검파형 암각이 있어 가지고 간 줄자로 위아래 면의 크기와 높이도 재보았다. 갑자기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다.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존재하는 우리 한반도, 그곳에 암각화가 가장 많은 포항 칠포에서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암각화를 직접 보며 그 가치를 되새기는 즐거움은 크다. 부근의 넓은 바위에도 암각화가 있는데 나에게는 잘 보이지를 않았다. 도판 하나를 그려두었으면 좋을 텐데…. 입구에는 인물상도 있다는데 표지도 없고 주민에게 물어도 모르겠다고 한다.다음은 바다 쪽 B구역, 길 한켠에 주차하고 입구 표지를 찾았으나 없다. 답답한 마음에 곤륜산 정상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오르려고 가보니 입구에는 주차장이 있고 시멘트 포장길이 잘 닦여져 있다. 정상에서 보니 칠포 앞바다와 흥해 벌판이 시원스럽게 가슴에 들어온다. 내려와서 물회 한 그릇 먹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바로 길을 건너 올라가면 된다고 가르쳐 준다.길 건너에는 펜션과 카페의 간판은 요란한데 암각화 표지판은 없다. 눈치껏 숲을 헤쳐가니 긴 바위가 누워있고 설명판 2개가 서 있다. 일반적 설명뿐이라 바위 위를 오르내리며 겨우 윷판 모양과 인물화를 찾았다. 그리고 아래 삼거리의 작은 팻말을 따라 제단바위를 찾아가서 많은 성혈을 헤아려 보고 아랫마을의 원형점 군락을 찾았더니 주민도 잘 모른 체 쓰레기에 덮여있다.우리나라 제일의 암각화군을 둘러보기가 참으로 힘든다. 나머지를 포기하고 신흥리 오줌바위를 찾아가도 입구 팻말이 없고 인적도 드물어 겨우 주민에게 길을 물어 오르니 넓은 바위 위 별자리 성혈이 피곤한 몸을 달래준다.암각화를 한나절에 다 찾아보겠는 생각은 꿈이었나보다. 입구안내판도 없고 주차할 곳도 마땅찮고 주민도 잘 모르는 칠포리 암각화군, 그 문화적 가치를 가볍게 보는 허술한 관리가 염려된다. 암각화 주위에 어지럽게 새겨진 낙서들로 보아 그 훼손이 두려워 표지판을 두지 않았나? 칠포리 암각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도 될 가치가 있을 듯한데 기억 속에 묻히는 암각화(暗刻畵)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2021-05-09

외교관 가족의 빗나간 특권

심충택논설위원정부 부처를 대표해서 해외 대사관에서 근무한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아내가 고가 도자기 밀수 의혹에 휩싸여 물의를 빚고 있다. 박 후보자는 지난 2015~2018년 주영(駐英) 한국대사관에서 공사참사관으로 재직할 당시 부인이 1천점이 넘는 도자기 등을 관세를 내지 않고 ‘외교행낭(외교관 이삿짐)’으로 반입해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그는 지난 4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집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다고 했지만, 야당에서는 “외교관 신분을 이용해서 수천 점의 도자기를 이삿짐으로 위장해 들여와 사적으로 판매까지 한 파렴치의 끝판왕”이라며 맹비난을 하고 있다. 김근식 국민의힘 전 비전전략실장은 페이스북에 “박 후보자 부인의 도자기 밀수의혹은 가장 악질적인 경우”라고 올렸다.국제사회에서는 외교관 밀수행위가 북한의 전매특허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주체코 북한 외교관이 현지 사업가에게 접근해 무기와 드론을 구입하려다 체코당국에 적발됐으며, 2015년에는 남아공 주재 북한 대사관 외교관이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매하다 체포돼 추방됐다. 2019년에는 또 다른 북한 외교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상아를 밀수하다 네덜란드 당국에 적발됐는데, 당시 “아프리카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생계비와 평양에 보낼 충성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밀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해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가 현직 이란주재 북한 외교관이 금과 현금 밀수에 가담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북한이 해외 외교관을 통해 무기와 사치품을 상습적으로 밀수하는 것은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파견 대상 국가에서 누리는 다양한 특권 때문에 가능하다. 외교관은 파견국을 대표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다양한 혜택을 보장받고 있다. 외교관과 그 가족에게는 1961년 만들어진 ‘외교 관계에 대한 빈 협약’에 따라 면책특권이 적용된다. 범죄행위를 하더라도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 신체불가침 특권이 있다. 외교관 가족(본인, 배우자, 자녀)에게 자동으로 발급되는 외교관 여권은 공항에서 VIP의전 혜택을 받으며 파견대상 국가에서 조세면제도 받는다. 최근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서울의 한 의류 매장에서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면책특권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벨기에 현지 언론을 통해 상세하게 전해져 대사 부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위공무원의 배우자가 외교관시절 대량으로 사들인 도자기를 무관세로 국내반입해서 만약 판매까지 했다면 분명한 범죄행위다. 외교관 특권은 사적이익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감사원이나 외교부는 박 후보자 부인사건을 계기로 해외 외교관과 그 가족의 공직기강 문제를 대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 남평문씨 세거지 목화밭 앞에는 고려말 외교관이었던 문익점 동상이 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은 백성을 위해 붓뚜껑 속에 목화씨를 숨겨와 우리나라 의복문제를 해결한 문익점에게서 외교활동의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2021-05-09

무책임 정치

민주주의 정치에는 두 가지의 핵심적 과정이 있다. 하나는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뽑아준 유권자에게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다. 선거 과정에 내세운 약속이 바로 공약(公約)이며 공약을 잘 이행하는 것이 책임있는 정치다.책임정치는 선거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직에 선출된 이후 평상시에도 책임을 느낄 줄 알아야 민주주의 정치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권력을 거머쥔 정치가가 선거 과정에 공언했던 약속을 내팽개친다면 왕권정치와 다를 바없다.정치가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온다. 미국이 재앙적 코로나19를 경험한 것은 전임 대통령인 트럼프의 무책임한 정치적 스탠스에 있다. 노마스크와 코로나 위험의 심각성을 고의로 축소하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미국에서만 20만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인 인도에서 하루 40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코로나 참사가 일어난 것도 정치인의 무책임에 있다.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지 못한 정치인의 수수방관이 사태를 키웠다.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표를 얻겠다는 생각에 국민의 안위는 물론 국가의 장래도 무시했다.포퓰리즘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은 남미 등의 사례에서 이미 많은 학습을 했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의 정책제안이 기가 차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학진학을 않는 사람에게 세계여행비 1천만원을 지급하자고 하자 이낙연 전 대표는 군복무자에게 3천만원의 사회출발자금을 지급하자고 했다. 이에 뒤질세라 정세균 전 총리는 신생아에게 1억원짜리 미래통장을 주면 어떠냐고 했다. 이쯤되면 포퓰리즘도 도를 넘은 수준이다. 무책임한 정치라 비난받아도 마땅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09

못마땅한 ‘도로 영남당’ 프레임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선거전이‘도로 영남당’논쟁 속에 시작돼 대구·경북지역 정치권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국민의힘 책임당원 60%가 영남에 몰려 있어 TK 지역 표심이 당락을 좌우하는 게 현실이고, 이 와중에 터져나온 영남배제론은 당내 분열만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도로 영남당’주장 자체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이 국민의힘 내부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내건 프레임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도 그 프레임이 언론이나 국민의힘 당내외에서 적지않은 반향을 얻자 노골적으로 ‘도로 영남당’주장으로 당 내홍을 부채질하고 있다. 논란이 커진 것은 국민의힘 일부 당권주자가 이같은 영남당 논란에 편승하면서부터다.국민의힘 4선의원인 홍문표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홍 의원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출마 선언을 한 뒤‘비영남 당 대표론’을 강조했다. 대구·경북 정치권 관계자들은 비영남 대표론의 근거로 ‘도로 영남당’을 거론한 것은 민주당의 프레임에 걸려드는 처사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비영남출신 초선의원으로서 당권 선거에 나선 김웅(서울 송파갑) 의원은 “영남 배제론은 흑색선전이자 프레이밍”이라며 “우리당의 본질은 영남이다. 당이 제일 어려웠을 때 지켜준 사람들에게 지금 와서 물러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영남당 극복론’을 설파했다. 당권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상위랭크된 이유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차라리 아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면 초선 의원을 내세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한 것처럼 향후 김 의원이 국민의힘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얼마나 공감을 얻을 지 관심거리다.도로 영남당 논란이 지속되자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한 5선의원인 정진석 의원이 나섰다. 그는 ‘영남당’논란에 대해“영남 유권자의 정서를 후벼파는 것이며, 자해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1년 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전라도면 어떻고 경상도면 어떻고 충청도면 어떤가”라며 “적들이 우리에게 거는 영남당 프레임을 스스로 확대 재생산하면, 정권교체고 뭐고 다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정 의원의 지적처럼 영남지역을 주요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삼고있는 국민의힘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마냥 영남당이란 프레임을 두려워하는 것은 넌센스다. 오히려 영남지역 인물들이 당의 중추가 돼 당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호남이 텃밭인 민주당을 호남사람들이 중심이 된다고 호남당이라고 비난하거나 호남배제론이 나온 적 없지 않은가. 손자병법에 장계취계(將計就計)란 말이 있다. 상대편의 계략을 미리 알아채고 그것을 역이용하는 계책을 가리킨다.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여권이 건‘도로 영남당’ 프레임을 뛰어넘어 장계취계의 비책으로 쇄신과 통합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코로나19로 침체된 민생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편안하게 할 대안정당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보여주길 기대한다.

2021-05-06

세기의 이혼

세기의 결혼이라고 하면 영국 왕실의 결혼식을 먼저 연상한다. 얼마 전 99세의 나이로 숨진 영국 왕실의 필립공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결혼이 그러했고, 그의 아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식이 또한 그러했다.필립공은 여왕의 남편으로서 70여년 영국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을 함께해온 왕실의 충실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찰스 왕세자는 1981년 전 세계 7억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중계된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고 두 아이까지 낳았으나 끝내 이혼을 한다. 왕위계승 1순위자와의 결혼으로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던 결혼도 뚯밖의 불화로 이혼으로 이어지고 만다. 다이애나비는 이혼 다음해 파파라치의 추적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숨지는 비극적 종말을 고해 세인을 더 안타깝게 했다.찰스 왕세자와의 이혼으로 그녀는 왕족의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엄청난 재산을 위자료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기의 결혼식이 세기의 이혼으로 끝난 사례다.2019년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인 아마존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가 부인과 이혼을 선언하면서 세계 언론은 세기의 이혼이라 불렀다. 그의 부인은 이혼 위자료로 아마존 주식의 25%를 받게 됐는데, 이는 아마존 전체 지분의 4%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40조원에 달한다. 부인은 단숨에 세계 최고의 부호 자리에 오르게 됐다.IT업계 전설로 통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 빌 게이츠가 그의 부인과의 이혼을 선언, 화제다. 세계 4대 부호로 손꼽히는 그의 재산 약 145조원의 분할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더 관심이다. 베조스가 약 40조원의 재산을 분할한 전례에 비춰볼 때 또한번의 세기의 이혼이 탄생할 전망이다. 서민에게는 소설같은 이야기로 들린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5-06

대중 외교, 베트남에서 배워라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2017년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은 최악의 외교 실패의 참사였다. 차관보급 인사의 공항 영접부터 세끼 연속 문 대통령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혼밥’에다 팔을 툭툭 치며 인사를 하는 중국 외교부장의 외교 결례, 그리고 중국 경호원들의 한국 기자 폭행까지 최악의 굴욕적인 외교 모습이었다.그리고 작년 초 중국발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추켜세웠다. 한국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보다 정치외교가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그러나 곧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니까 중국의 일부 지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14일 격리기간을 요구하고 한국인을 기피 하였다. 오히려 중국이 “정치 외교 논리보다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다”라고 했으니 한국으로서는 참기 힘든 굴욕적인 순간이었다.상황 초기 한국의 의료진들이 중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한 입국금지 내지는 입국제한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또 시진핑의 방한 계획에 차질이 올까 봐 전전긍긍하며 골든타임을 놓쳤다.그리고 돌아온 건 중국의 한국 조롱이었다. 마스크를 보내준다고 조롱기 섞인 제의도 한다. 대중 굴욕외교의 문제는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대중, 대북 외교는 한마디로 ‘비굴’그 자체이다.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대꾸도 못한다. 온갖 욕을 듣고도 그저 묵묵히 참는 굴욕적인 모습이다. 북한과도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겉도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공공연한 한국 원망과 비난에 길들여지고 있다. 북한의 한국 비난과 욕설은 그 도를 넘고 있는데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한국의 대중, 대북 아부에 대하여 돌아오는 건 조롱과 멸시뿐이다.이런 가운데 베트남의 대중 외교가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남중국해섬 영유권 등으로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도에 남중국해가 아니라 자기 나라 기준으로 이름을 정해 동해로 표기한다.베트남은 중국의 윽박지르기 영토 주장을 또박또박 거르지 않고 논리적으로 반박해왔다. 중국이 거대 군함을 출동시키면 베트남도 당당히 군함을 내보내어 맞섰다. 이런 당당한 베트남을 중국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다.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한심한 착각과 중국 비위를 맞추면 평화가 올 거라는 대중국 굴종외교 등으로 한미 한일 동맹에 금이 가고, 중국에 냉대 받고, 북한에 모욕당하고 있다.이제 베트남식 ‘당당한 외교’를 배워야 한다.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중국에게도 할 말은 하고 북한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그러한 외교의 힘은 한·미·일의 돈독한 동맹에서 나올 수 있다. 한국 정부의 ‘당당한 외교’를 보고 싶다.

2021-05-06

가정의 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한다. 유엔에서는 가정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정부와 민간의 인식을 재고할 목적으로 매년 5월 15일을 ‘세계 가정의 날’로 제정했다. 우리나라도 1994년부터 같은 날에 ‘가정의 날’ 기념행사를 열어오다 2004년부터는 5월을 ‘가정의 달’로 공식화했다.농경사회에서 가족과 가정은 삶의 근간이었다. 3, 4대가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대가족제도에서는 출산과 양육은 물론 교육, 경제, 문화 등의 활동이 대부분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다.우리나라는 수천 년 이어오던 농경사회가 반세기 전쯤에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돈독하던 가족제도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몇 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부부와 한두 자녀의 핵가족으로 분화된데 이어 자식이 없는 부부나 한부모와 자녀, 독거노인이나 혼자 사는 미혼 남녀의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전통적인 가족이나 가정의 개념도 따라서 변질될 수밖에 없다.2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자식이 아버지의 성(姓)을 따라야 한다는 경우는 22%에 불과하고 부모 중 어느 한 쪽의 성을 따라도 괜찮다가 47%, 굳이 부모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경우도 31%나 된다고 한다. 족보나 조상을 따지는 일 따위는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일본인 사유리가 결혼을 하지 않고 기증받은 정자로 아이를 낳아서 화제와 논란이 되고 있다. 입양이나 미혼모들에 이어 또 다른 가족의 형태가 생겨난 셈이다. 심지어는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남녀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가족의 형태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가정과 가족의 붕괴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가정의 달이 생겨난 이유일 것이다.초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걷지만 사람은 출생해서 저 혼자 걷는데 일 년이 넘게 걸린다. 거기다가 성인이 되어 자립하기까지는 2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만큼 가족에 의존하는 기간이 길다는 얘기다. 앞으로는 또 어떤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아직은 결혼한 부모로 인해 태어나고 양육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대다수이고 그렇게 형성된 유대관계가 인간관계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다.아무튼 전통적인 가정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구조적인 측면도 있지만 가치관의 변화도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인습에만 묶여 옛것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지만, 개인적 편익이나 경제적 이해 때문에 가족이 불화하고 가정이 와해되는 것은 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 된다. 돈이나 권력, 학벌이나 명예의 고위층에 올랐던 사람들이 가족의 문제로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바꾸어 말하면 돈이나 권력, 학벌이나 명예 따위로는 살 수 없는 더 근본적이고 소중한 것이 가정에는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족 간의 사랑과 헌신, 건강한 가정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심성과 가치관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는 걸 되새기는 오월이다.

2021-05-06

디지털 광고

디지털 광고는 인터넷, 모바일 등 기존 전통매체 외에 온라인으로 소비되는 모든 광고를 일컫는다. 포털사이트 검색부터 소셜미디어(SNS), 유튜브 영상까지 모든 종류의 광고가 여기에 포함된다.집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고, 스마트TV로 유튜브를 틀어 놓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에 따라 광고를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에 맞춰야 한다. 이같은 광고 소비 패턴의 변화는 광고업체들에게는 큰 숙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포털사이트 등에 몰리는 소비자들의 성격은 어떻게 다른지, 또 그들의 소비유형은 어떤지, 어떤 광고가 잘 먹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다.국내 광고업체들의 경영전략도 ‘디지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일기획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국내 매체별 총광고비’에 따르면 광고시장은 크게 방송, 인쇄, 디지털로 구분된다. 디지털 시장 규모는 2015년 3조원에서 2020년 5조7천억원으로 커졌다. 2배에 가깝게 늘었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9%에서 47.6%로 확대됐다. 디지털 광고 시장이 전체 광고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인쇄와 방송 시장은 줄었다. TV·라디오 등 방송은 4조2천억원에서 3조5천억원으로 약 7천억원 줄었고, 신문·잡지 등 인쇄광고 시장은 1조9천억원에서 1조6천억원으로 약 3천억원 감소했다. 5년 동안 전체 시장규모가 크게 바뀌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신문과 방송의 몰락’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디지털광고 시장 확대로 요약되는 광고시장의 재편은 신문·라디오·방송 등 전통매체들에게 새로운 생존전략이 필요해졌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05

오월의 기억

장규열 한동대 교수4월이 잔인한 달이라면, 5월은 포근한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도 있다. 하필 같은 달에 모여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우선 어린이날.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절에 소파 선생이 우리의 앞날은 어린이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닌가. 어른들이 잘난 재주를 부린다 한들 미래는 어차피 다음 세대가 맡아야 한다. 어린이를 정성으로 기르지 못하는 백성에게는 내일이 없다. 어린이가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새로운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어른의 세계가 아무리 복잡하여도 어린이를 바로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아이들 없이는 내일도 없다. 청년세대가 출산을 꺼리는 세태도 곰곰이 짚어봐야 한다.어버이날. 모든 존재는 어버이로부터 시작됐다. 기쁨과 쓸쓸함, 즐거움과 외로움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어버이로부터 시작했다. 삶이 가능한 시작에 어버이가 있었던 기억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닌가. 내가 걸어갈 내일 모습을 보여주는 이도 어버이가 아닌가. 사노라면 애증이 섞이고 희비가 엇갈리지만 온갖 일들의 시작에 어버이가 계셨음을 새겨보아야 한다. 어버이가 바라보는 어린이는 누구일까. 아이들은 들은대로 자라기보다 본대로 자란다. 어린이가 따라 배우는 어버이가 있고, 어버이가 조심해야 하는 어린이가 있다. 두 날을 잇달아 붙인 까닭이 아닐까. 조금 떨어져 둘이 하나가 되라는 21일은 부부의 날. 저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만난 일만 해도 기적이 아닌가. 당신과 내가 이룬 집에서 피어난 이야기는 꿈인가 생시인가.5월은 ‘함께 하는 비밀’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이 홀로는 절대로 살지 못한다. 식탁에 올라온 고마운 반찬 한 자락에도 수많은 이들의 수고가 스며있다.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 인연과 우연이 겹치며 날들이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맨 처음 기적이 어버이와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내 어버이와 내 아이들만 해도 놀라울 판에, 살면서 만나는 도움의 손길과 의지했던 기억들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도 온전한 오늘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빼놓을 수 없는 도움은 스승으로부터 받았던 배움이 아닌가.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물론이며 살면서 만났던 배움의 흔적은 잊을 수가 없다. 배우고 가르치며 부추기고 이끌어가며 삶의 수레는 오늘도 나아간다. 만난 것도 놀랍지만 배운 일은 기적이다.돌아보면 실수투성이에 흠결만 한가득이다. 어린이에게 따뜻하지 못했으며 어버이에게 무심했던 데다 배우자에게 퉁명스러웠으며 스승은 잊고 살지 않았는가. 5월은 미안한 마음을 일깨우고 감사한 생각을 일으킨다. 돌아가 돌이키려 하지 말고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하라’는 어느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다. 나를 만들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살면서 만날 사람들과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꿈을 꾸어야 한다. 혼자는 못한다.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지어가야 한다.

2021-05-05

봄편지

양태순수필가공원에 운동을 갔다. 어느새 철쭉이 활짝 봄을 맞이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잎들의 부지런함이 어여쁘다. 봄물을 길어 올린 싱그러움에 취해 걸음에 봄바람이 실렸다.맞은편에서 오는 부녀와 스쳐 지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걷는 방향을 바꾸어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귀를 쫑긋 앞으로 모았다. 드문드문 들리는 내용은 딸이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 읊으면 아빠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별거 없구나 싶어 앞질러 가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부러웠다. 부러움이 커질수록 아픔으로 피어나는 얼굴, 내 아버지였다.철이 들기 전, 아버지는 다른 세계로 떠났다.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는 핏줄 말고는 너무 미미했다. 그래서 떠나보낸 슬픔이 깊은 줄도 몰랐다. 늘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허전함에 문득문득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에 눈이 갔다. 그것이 다였다.기억 속 아버지는 남 같은 아버지였다. 한 방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지만 직접 소통이 없었다.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말이 전달되고 답이 돌아왔다. 내 잘못을 나무라는 일조차 어머니의 입을 빌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밖에서 놀다 집에 왔을 때 방에 아버지만 있으면 들어가기 어색해 도로 골목으로 발을 돌렸다. 어렵기만 한 아버지에게 내가 한 말은 밥 잡수세요와 다녀오셨어요, 정도였다.딱 하루, 그날은 예외였다. 내가 중학생이었고 추석을 앞둔 어느 밤이었다. 식구들은 다른 방에 있었고 나만 아버지와 한방에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중개인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마음속을 다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묻고 나는 대답을 했던 듯싶다. 소재가 바닥 날 때쯤 윗방에서 어머니가 장에서 사온 추석빔을 입어 보라고 불렀다. 얼마나 반갑던지 냉큼 일어섰다.중학생이었던 그날 밤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도 안 된다. 아버지와 나는 무릎걸음 세 번만큼 떨어져 앉았고, 나를 향해 맘껏 드러내지 않은 잔잔한 표정이며 내가 일어섰을 때 차마 잡지 못하는 아쉬운 눈빛은 생생하다. 그 장면을 수십 번 그려보았으나 제법 길었던 시간에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깜깜할 뿐이다. 잿더미를 헤집듯이 아버지의 갈피를 뒤적이고 뒤적여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살면서 아버지를 돌아보는 날은 기일이나 어버이날이었다. 나와 아버지가 만났던 시간에는 추억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다 작은 에피소드를 건지겠다고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희미해진 여줄가리를 촘촘히 엮었다. 가장 큰 소득은 서로를 오롯이 보았던 그 밤이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조각이었다. 그러나 되살려놓은 장면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란 이름으로 뜨거워졌다.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낸다는 것은 때로는 한 모금 물이 간절한 식물처럼 애가 타기도 하지만 내일이라는 새날이 있어서 힘을 내 하루하루를 이어 일생을 이룬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길 위에서 나름대로 부딪히고 견뎌오면서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내세울 것도 없고 빛나지도 않지만 내 노력의 결과이니 소중하게 여긴다.지나온 굽이의 어느 날에는 아버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생은 오십을 넘기면서 종착역에 닿아 멈추었다. 나는 어렸고 사는 동안 살가운 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키웠던 애정의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진 수십 년을 곱씹는 동안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와 형제로부터 전해 들었다. 너무나 작은 추억의 부스러기로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차지한 내 마음자리는 늘 축축하고 아리다.철쭉이 한창인 공원에서 낯선 부녀로 인해 아버지를 만난 날이다. 언젠가 마주하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본다.“많은 날을 기억하지 못해 죄송해요” 숨을 삼켰다.“그날 밤의 눈빛을 이제는 놓을래요. 그러나 내 아버지였음은 잊지 않을게요” 소리맴이 길다. 내 안에 갇혀있던 울새를 날려 보낸다.

202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