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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름다운 노메달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노관중으로 치루어진 도쿄 올림픽에서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되었다.한국은 금년에 메달 수로 10위안에 들지 못하면서 최근 올림픽 성적으로는 저조한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그러하지만 아름다운 노메달에 대한 찬사들이 많아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여자 배구다. 여자 배구는 선수 모두 혼신의 투혼을 발휘하여 4강에 들었으나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4강까지 가는 길에 숙적인 일본, 터키를 이기면서 아주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메달을 못딴 것에 대해서 팬들은 원망하지 않고 공항에 도착한 선수들을 따듯하게 환영해 주었고 주장인 김연경 선수는 갈채를 받았다. 최선을 다한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높이뛰기 최상혁 선수도 한국 신기록을 세우면서도 4위에 머물어 노메달이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항상 웃는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팬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남자 다이빙의 우하람을 또 빼놓을 수가 없다. 한국 신기록을 세우면서 선전했던 그는 비록 4위에 그쳤지만 멋진 모습이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수영의 자유형 황선우 선수 역시 아름다운 노메달이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한국 신기록,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면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거의 반세기만에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보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무명의 한국 선수가 츨전하여 선전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는 모습들이 보였다.올림픽 하면 우리는 항상 금메달 중심으로만 관심을 가져왔다.그러나 진정 메달의 색깔을 뛰어넘어서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고 정성을 쏟는지의 그 과정을 귀하게 보는 게 더 아름답다고 본다. 럭비는 12등, 꼴찌를 하였지만 첫 출전에서 많은 이들의 격려와 찬사를 받았다.이제 우리 국민도 성숙한 올림픽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일등지상주의를 벗어나서 그 노력의 과정이 아름답게 평가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되어야 한다.메달을 따지 못하고 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선수들이나 팀들을 비난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왔다. 그러나 가장 문제의 본질은 메달을 따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였었는가, 그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평가가 본질이라고 본다.비록 메달을 땄어도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고 메달을 따지 못하였어도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이다. 야구 등 일부 선수들에 대한 악플이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선수들에 대한 박수갈채는 이번 올림픽의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 전체로 번져나갔으면 한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물론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칭찬, 격려, 이러한 것들이 사회를 건전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전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간에 정책으로 승부하고 서로간에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바래본다. 팬데믹 속에서 치뤄진 도쿄 올림픽은 노메달의 아름다움이 빛난 올림픽으로 큰 의미로 남았다.

2021-08-12

정상화(正常化) 운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서울 종로구 한 고서점 벽에 야권 대선주자의 배우자를 모욕하는 벽화를 그려 논란이 되자 그 벽화를 그리게 한 서점주인은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말을 했다. 타인의 인격을 짓밟은 만행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그야말로 상식이 전도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무엇이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지 혼란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아니 비정상이 오히려 활개를 치고 득세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곧 망국(亡國)의 징조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이 정권 들어 정상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법치, 경제, 외교, 안보, 국방, 언론, 교육 등 어느 하나도 정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라의 기강인 법치가 무너진 것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온통 죄파세력이 장악하고 오로지 저들의 출세와 집권연장을 위해서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는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데도 퍼주기 매표행위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국방은 핵무기를 쥔 적 앞에서 정신적 무장해제를 하고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한사코 거꾸로만 가는 외교로 나라망신을 자초하고, 좌경화된 교육과 언론은 국가의 정체성마저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이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에 국운이 달려있다. 산업화로 굶주림을 벗어나고 민주화로 독재를 청산 했다면 지금은 정상화 운동으로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민주화 과정에 틈입한 불순세력들이 민주화의 기수를 종북·사회주의로 돌려놓은 걸 모르고 그대로 추종해 가다보니 나라 전체가 좌측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상당수의 인사들은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방향을 바꾸었지만, 아직도 무지와 망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권력과 돈에 맛을 들인 대다수의 운동권 출신들은 거머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다보니 나라가 비정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선 우선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 더이상 좌파들에게 정권을 맡겨서는 북한과 베네수엘라 같은 패망의 길을 면할 수가 없다. 비단 좌경화된 이념적 비정상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준법은 물론 상식과 도의가 무너지고 전도되어 불법과 파렴치와 내로남불이 민심을 혼란과 타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것이 민심이다. 히틀러에 열광한 것도 민심이고 스탈린이나 모택동을 지지한 것도, 김일성을 신으로 떠받든 것도 민심이었다. 교활하고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와 표퓰리즘으로 얼마든지 의도대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이 민심이다. 특히나 정보통신이 전 국민을 하나의 그물로 엮어놓은 지금은 왜곡과 거짓선동으로 민심을 뒤집기가 손바닥 뒤집듯 쉬워졌다.양식(良識)과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서 헌신적 역할을 해야 희망이 생긴다. 이런 시국에도 사리분별을 못하고 좌경화된 시류에 편승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역사와 민족에 죄를 짓는 일이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구국의 사명감으로 정상화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것이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2021-08-12

생각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산불이 먼저 일었다. 코로나19로 인류가 시달리기 전에 이미 호주대륙은 화마에 삼켜지고 있었다. 팬데믹이 세계인의 보건과 방역환경을 힘들게 하는 사이에도 산불과 자연재해는 끊이지 않았다. 터키 산불은 온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면서 섬 하나를 집어삼켰다. 동토의 땅 시베리아에도 솟아오른 불길이 잦아들지 않으며 북극 지역마저 위협하는 중이다. 캘리포니아도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인 딕시(Dixie)를 잡지못해 서울의 세 배도 넘는 산야를 잃어버렸다. 캐나다도 이탈리아도 알제리도…, 기후변화로 초래된 높은 온도와 건조한 공기에 강한 바람까지 더해져 누구도 손을 쓸 수가 없다. 코로나19에 빼앗긴 관심은 지구온난화를 살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걱정은 많이 하지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좋은 생각들은 떠올리지만 누구도 행동하지 않는다. 기온상승의 마지노선 1.5도에 달하는 데 20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여름이 이처럼 더웠던 것도 기후변화의 탓일 터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에어컨 과소비와 전력부족을 걱정하면서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코로나19 위기도 빌게이츠(Bill Gates)가 수년 전에 이미 예견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가올 미래는 거의 보이는데 준비는 누가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역사는 그저 기억만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지난날 기억을 살피며 내일을 준비해야 실수가 없다. 오래된 패착에 남 탓만 하다가는 같은 일을 다시 겪지나 않을까. 말로만 넘어가기엔 문제가 심각하다.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이 위험하다.우리에겐 할 일이 많았다. 나라엔 바꿔야 할 일이 한 가득이었다. 국민이 일어나 세상을 바꾸었다. 나라가 바뀌고 상식이 돌아올 줄 알았다. 이제는 모든 게 바로 잡히는가 높은 기대를 걸었다. 기득세력의 반발이든 정권실세의 무능이든 까닭이 있었겠지만,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뒤로 돌아갔나 싶은 가닥마저 보이는 게 아닌가. 나라는 다시 좀스러운 정치배들로 드글거린다. 생각은 듣지도 않고 세력만 불린다. 준비는 부실한데 구호만 가득하다. 정치를 공격과 수비로만 이해하며 국민의 민생은 언제나 뒷자리다. 지구온난화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는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다시 한번 믿어볼 것인지 다시 한번 바꿀 것인지 국민은 혼돈스럽다.세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지만, 사람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생각만 하는 사람은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해 본 사람만 하게 마련이다. 좋은 생각만으로는 나라가 바뀌지 않는다. 착한 태도만으로 좋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바른 생각이 중요하지만 행동 습관이 보여야 한다. 실패를 딛고라도 걸어온 길을 살펴야 한다. 생각만 화려하고 주장이 번들거리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불만으로 가득하나 계획이 없는 이들도 멀리해야 한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행동이 없이는 변화도 없다. 국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2021-08-11

로맨스 스캠

로맨스 스캠은 SNS에서 이성에게 호감을 산 후 결혼 등을 빌미로 돈을 갈취하는 수법을 말한다. 로맨스(romance)와 기업 이메일 정보를 해킹해 거래처로 둔갑시켜서 무역 거래 대금을 가로채는 범죄 수법을 가리키는 스캠(scam)의 합성어다.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해 상대방에게 접근한 후 마음을 이용해서 교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크다. 상대방과 만날 필요가 없이 메시지로 자연스러운 교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년층 이상이 미군사칭에 당하는 일이 많다. 주요 수법은 상대방에게 친근함을 표현하고 이성적으로 어필해 서로 간의 경계심을 허물고, 점차 속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이어지며, 금전을 통장으로 송금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돈을 보내라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기임을 바로 알 수 있지만, 깊은 감정적 교류를 맺은 사이이기에 자신이 사기를 당한 건지 의심할 생각도 없이 돈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자신이 로맨스 스캠을 당했다고 의심되거나 사기를 당했을 때는 지체하지 말고 경찰서나 사이버안전국으로 신고하는 것이 좋다. 또한 모르는 사람의 SNS 친구추가는 되도록이면 피해야 하며, 인터넷에서 연인을 사귀지 말고 오프라인인 집밖에 나가서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당할 확률이 적어진다. 주요 타깃은 한국과 일본, 터키 등 미국의 동맹국이거나 태국 등 친미국가인 사람들이다. 최근 경기 파주경찰서가 ‘로맨스 스캠’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20대 남성과 카메룬 국적의 30대 남성 두 명을 구속해 관심을 끌었다. 소셜 네트워크가 비대면범죄를 늘리는 것도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새 풍속도인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11

윤석열과 최재형의 정치실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 핵심 사정기관 책임자였던 두 분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개혁과 조국 교수 일가 수사 과정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탈 원전관련 감사에서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두 사람 모두 임기 중 공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들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도 야권 후보 중 1, 2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 초년생이며 정치 신인인 셈이다. 과거 정치 경험이 없는 이회창, 고건, 반기문 등도 대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은 과연 대권 도전의 정치실험에 성공할 수 있을까.이 두 분의 정치 행보에는 우선 유사점이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관료 출신이면서도 몸 담았던 문 정권을 강력히 비판하고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점이다. 이들의 대권 도전을 열렬히 환영하고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공직자의 책임을 버린 배신자라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의 지지 기반은 대체적으로 문재인 정권에 불만이 누적된 야당 지지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에 대한 지지는 기존 야당 후보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지지율은 계속 유지될 것인가 일부의 관측처럼 폭락할 것인가.두 후보의 출신 배경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윤 후보의 부친은 대학 교수, 최재형 후보는 전쟁 영웅 대령 가정 출신이다. 두 사람 다 남이 부러워하는 소위 금수저 출신이다. 이들은 검사와 판사 시절부터 원칙과 소신이라는 강직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의 출신 배경은 앞으로 상대할 여권 유력 후보들과는 대조적이다. 이재명 후보는 화전민에다 소년공 출신으로 독학하여 성공했고, 이낙연 후보 역시 빈농의 언론인 출신이다.정치 신인인 두 후보는 정부에 대립각을 세워 비판하고, 정권 교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정치 신인인 이들은 기성 야당 정치인들에 비해 신선감은 준다. 그러나 자신들이 구상하는 확고한 정책비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최근 잦은 말실수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20시간 노동시간 발언에서부터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발언까지 연일 구설수에 올라 있다. 최재형 후보 역시 출마 기자회견에서 산업 규제법이나 대북 정책 현안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하고 사과만 했다. 대선후보의 잦은 말실수나 무지는 후보의 이미지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후보 자질이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 있을까.현재 국민의힘 경선에는 13명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경선이 시작되면 두 분은 초반부터 후발 후보들의 공격 타깃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지지율 차이가 현재처럼 현저할 때는 갈등이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정치 초년생인 이들이 후보 검증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할 지는 의문이다. 당내에서부터 후보들 간의 송곳 검증이 예상되고 있다. 대선 후보 윤석열과 최재형은 이제 오월동주 신세가 되었다. 윤석열의 ‘타이슨 식’ 정치와 최재형의 ‘선비 형’ 정치는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2021-08-11

계절 아우성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집 앞 도로변에는 벚나무들이 가로수길을 이루고 있다. 줄지어 선 나무들은 계절마다 살아있는 전시회를 연다. 봄에는 화려한 벚꽃으로, 여름에는 짙은 녹음으로,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낙엽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겨울을 건너는 강인함으로! 집 주변에 나무를 비롯하여 자연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자연은 필자에게 철마다 철을 가르쳐준다.그 나무에서 필자는 이번 주 때 이른 낙엽을 보았다. 물론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지를 떠나 하늘하늘 비행을 시작한 잎에는 분명 단풍이 들어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건 단풍이 곱게 든 낙엽이었다. 입추가 지났지만, 불볕더위에 낙엽을 보는 건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연신 감탄사를 불렀다. 입에서는 한동안 “벌써”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그러면서 그 낙엽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자연에는 급격한 것이 없다. 자연은 다음 일을 하기 전에는 항상 준비 기간을 둔다. 밤과 아침 사이에 새벽이 있듯이, 계절과 계절 사이에도 새벽과 같은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자연은 보냄과 맞이함을 충분히 준비한다.먼저 이륙한 낙엽은 나무로부터 중요한 임무를 받았을 것이다. 먼저 가서 때를 살피고 가야 할 때를 알리라고, 또 사람들에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전하라고. 그리고 제발 계절이 가고 있음을 알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라고. 그래서인지 여름 낙엽들의 활동력은 왕성하다. 그 모습은 정찰병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매미 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절규가 낙엽의 절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의 귀를 더 활짝 연다. 그렇다, 자연은 이미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준비는 이번에 끝난 올림픽처럼 결코 맹목적이거나 요란하지 않다. 불볕더위에도 철을 잊지 않고 제 할 일을 하는 자연의 모습은 최선을 다해 올림픽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을 닮았다.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자신의 경기에 완주하는 선수들과 자연의 공통점은 “준비”이다. 그들이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 과정을 잘 알기에 결과를 떠나 우리는 그들에게 경외심 가득한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필자는 지난 주말 새롭게 2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필자는 다시 한번 이 나라 교육의 절망적 상태를 확인했다. 학습 격차를 줄이기 위해 2학기 전면 등교를 한다는 교육 당국에 학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전한다.“거리상 많이 힘들 텐데 왜 서울에서 산자연중학교로 전학을 오려고 합니까?”“학교를 왜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학교에서는 수업도 거의 안 해요. 원격 수업 때는 EBS만 봐요. 학교에 가서는 수업보다 시험을 더 많이 쳐요. 자유 학년제지만, 선생님은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늘 시험 이야기만 해요. 뭔가를 제대로 배우고 시험을 친다면 그래도 덜 억울할 거예요. 정말 학교에는 시험밖에 없어요. 학교 때문에 학원에 가요. 학교 너무 싫어요!” 2학기 준비를 함에 있어 코로나 예방, 학습 격차 해소도 중요하지만, 딱 한 번만이라도 학생의 입장이 되어보면 안 될까!

2021-08-11

물줄기를 찾아서

정미영 수필가 개구리가 없어졌다. 양동이에 넣어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들이 뒷산에 갔다가 개구리를 데려와 거실에 들여놓으려는 것을 내가 손사래 치자 현관에 두었다. 양동이 반쯤 물을 채우고 비닐봉지에서 개구리를 꺼내 담더니,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책을 덮고도 모자라 신발 한 짝까지 올려놓았다.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개구리가 없어진 것이다. 공기가 없으면 죽을 거라 여긴 아들이 손톱만큼 구멍을 열어두긴 했다. 그 곳으로 나온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온 집을 이 잡듯 들쑤셔 찾았다. 신발 속에 들어갔는지, 소파 밑에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식구들을 들들 볶으며 찾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딘가에서 툭 튀어 나오거나 방 안에 죽어있을 거라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행방을 알고 싶었다.주말 아침부터 한 바탕 개구리 소탕 작전을 폈다. 구석구석 한참을 찾았다. 온 식구가 기운 없어 더는 못 찾겠다며 주저앉았다. 나도 지칠 대로 지쳤다. 빨래나 널어야지, 베란다로 가서 햇볕 잘 받을 수 있게 탁탁 펴 널었다. 간만에 베란다 물청소도 해야지, 배수구 옆에 세워둔 빗자루를 들었다.순간 배수구 안에 까맣고 동그란 것이 보였다. 화분에 물주다가 잔돌이 몇 개 빠져 배수구를 막았거니 했다. 손으로 꺼내려다 흠칫 물러섰다. 그 속에 뭔가 움직였다. 나는 두서너 발자국 뒤로 더 물러서서 작은 구멍을 유심히 살폈다.개구리가 쑤욱 튀어 나왔다.드디어 찾았다. 그 작은 구멍에 숨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뼈가 분명히 있을 텐데 작은 구멍에서 길쭉한 고무풍선처럼 몸통을 빼낸 것이 마술 같았다. 저렇게 좁은 틈을 들어갈 수 있으니 양동이쯤이야 쉽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개구리는 양동이 속에서 물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현관에 있던 개구리가 다른 방으로 가지 않고 마루를 가로질러 배수구로 향한 걸 보면 분명 그러했으리라. 간간히 배수구를 타고 흘렀을 물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가 살았던 뒷산의 작은 물줄기를 찾아가듯 밤새 바쁜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 물은 태어난 보금자리요, 생명을 이어주는 감로수기에.나도 언젠가 물줄기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산에 나물을 하러 갔었다. 바구니 가득 나물이 채워질 때쯤이면 목이 탔다. 조금 전까지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른 나였지만 이젠 목마르다고 짜증을 냈다. 할머니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참아 봐라. 이 근방 어디 샘이 있었다 안카나.”나를 다독거렸다. 쉽게 찾을 것 같던 샘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옹달샘 찾아 비탈을 헤맸다. 나는 토끼마냥 그 뒤를 쫓았다. 드디어 물줄기를 찾았다. 땅에 귀 기울이기를 반복하던 할머니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무뿌리 근처에 정말로 손바닥만한 물이 고여 있었다. 겨우 목을 축일 정도였지만 나무 향이 깊게 밴 탓인지, 달콤했다.그 물맛이 그립다. 요즈음은 산을 찾아도 선뜻 계곡물에 목 축이기가 겁난다. 물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므로 모두가 보호해야 한다. 나 또한 내 작은 관심이 물을 지키는데 제일이라 여겨 실천하는 것이 있다.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미용 팩으로 활용한다. 어머님께 배운 것인데 쌀뜨물의 윗물을 버리고 남은 것에 약간의 밀가루와 올리브유를 섞어 걸쭉해질 때까지 젓는다. 그것을 얼굴에 펴 바른 뒤에 약간 꼽꼽해지면 떼어낸다. 곧장 물로 헹구면 물을 더 오염시키므로 꼭 떼어내고 얼굴을 씻는다.물은 누군가에게 소망이고 희망이니 참으로 귀하다. 가뭄이 심할 때는 농부의 소망이 되고, 물 부족 국가에서는 희망이다. 오늘 같이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은 시원한 물이 더 생각난다.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 후,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물줄기를 찾아서 뒷산으로 향한다.

2021-08-11

옛집, 그 그리움의 정경들

참한 색시 얻어 새끼 낳고 알콩달콩 살 거라고 초가삼간 오막살이를 마련했다. 처음 가진 내 땅이라 마음이 뿌듯해 여기까지 내 영역이라고 줄을 긋기는 좀 그랬다.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 돌을 져 날랐다. 하나 둘 쌓아 나지막이 두르다 보니 돌담이 되었다.입구를 비우니 뭔가 허전했다. 지게를 지고 낫을 들고 뒷산으로 갔다. 싸리나무를 추려 한 짐 지고 와 얼기설기 엮었다. 입구에 말뚝 하나 박고 거기에 엮은 것을 붙이니 싸리문이 되었다. 내 집에 잡귀가 들지 말라고 뾰족한 가시가 많은 엄나무도 얹었다. 늘 비스듬히 서 있다고 해서 사립문(斜立門)이라고 불렀는데, 말이 문이지, 사립문은 손님을 막아서지 않았다. 바깥에서 슬쩍 밀면 제가 먼저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집만 있다고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양식을 얻으려면 비탈을 개간해 밭을 만들고 봄이면 논밭을 갈아야 했다. 장날 장터에 나가 대장간에 들러 농기구를 샀다. 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나무나 풀 등을 잘라 손으로 만들었다. 솜씨야 있을까만 손으로 만들면 얼기설기한 대로 살림이 되고 투박한 대로 도구가 되었다.따비 - 쟁기보다 작고 보습이 좁게 생겨, 풀뿌리를 뽑거나 밭갈이를 하는 데 쓰는 농기구.보습 - 쟁기나 극젱이의 술바닥에 맞추는 삽 모양의 쇳조각.극젱이 - 쟁기와 비슷하나 보습 끝이 무디고 술이 곧게 내려감(굽정이).써레 - 갈아 놓은 논의 바닥을 고르거나 흙덩이를 잘게 부수는 데 쓰는 농기구.써레뭉둥이 - 써레의 몸이 되는 나무.고무래 - 곡식을 그러모으거나 펴거나, 밭의 흙을 고르는 데나, 아궁이의 재를 긁어내는 데 쓰는 ‘丁’자 모양의 기구.쇠스랑 - 땅을 파헤쳐 고르거나 두엄, 풀 무덤 따위를 쳐내는 데 쓰는 갈퀴 모양의 농기구.미 - 김을 매거나 감자나 고구마 따위를 캘 때 쓰는 쇠로 만든 농기구.슴베 - 칼·호미·괭이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부분.괭이 - 땅을 파거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날의 모양에 따라 가짓잎괭이, 삽괭이, 수숫잎괭이, 토란잎괭이).여우호미 - 삼각괭이.도롱이 - 짚이나 띠 따위로 촘촘히 엮어 비 오는 날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망태기 - 가는 새끼나 노 따위로 엮어 만든 그릇.낫, 삽, 갈고리, 조리, 멍석, 삿갓, 쑤세, 깔판, 부지깽이, 똬리, 물동이, 뒤주, 주걱, 화로, 곰방대, 굴대, 채, 됫박, 나막신, 짚신, 목침, 풍로, 남포, 등잔, 돗자리, 요강, 물레, 함지박, 광주리, 코뚜레.“새끼 짊어지고 고개를 넘어 닿은 두메, 햇살 맑은 언덕에 터를 다진다. 나무를 잘라 뼈대를 세우고 흙을 이겨 벽을 쌓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을 모아 나지막한 담을 두른다. 가지 닮은 나무 둘 맞대 지게를 만들고 기다란 나무를 낫으로 툭툭 잘라 바지랑대를 세운다. 싸리나무 한 줌 묶어 어지럽게 흩날리는 생각을 쓸어내고, 수수대궁 두엇 꺾어 내면에서 재채기를 일으키는 먼지를 털어낸다. 댕댕이덩굴로 멍석을 짠 다음 그 위에 앉아 말린 옥수수자루로 삶의 뒷면에서 자분거리는 가려움을 긁어도 본다”(‘너와집’/ 김이랑 수필에서 발췌)가을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깨나 콩을 널었다. 뙤약볕에 깨와 콩이 잘 마르면 도리깨를 휘둘러 내려쳤다. 타닥타닥 알곡은 깍지 밖으로 튀어나와 멍석 위에 떨어졌다. 알곡이 다 떨어지면 빗자루로 쓸어 키 위에 담았다. 키를 들고 까불면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은 키 위에 떨어졌다. 곡식에 섞인 검부러기가 나비처럼 날아간다고 하여 이를 나비질이라고 했다.이른 새벽부터 가을마당에 탈곡기가 돌아갔다. 와랑와랑 자욱한 먼지를 피우며 나락을 털어내면 고사리손도 한몫 거들었다. 나락은 가마니에 담겨 곳간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버지가 쌀 한 가마니 지고 장에 간 날, 아이들은 종일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드물게 소고기국이 올랐고 달각딸각 수저 부딪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초가집 용마루를 하얀 달빛이 쓰다듬을 때, 고봉밥을 다 비운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아이들 불룩한 배를 한 번씩 쓰다듬고는 툇마루로 나갔다. 자식을 배불리 먹였다는 포만감에 아버지는 막걸리 한 잔 들이켜며 고단한 하루를 위무했다.사립문은 단지 드나드는 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좋은 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른 아침 사립문을 열었다. 행여 자식이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풍년초 한 대 태우며 사립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아버지는 밤마실 나간 식솔이 다 들어오고 나서야 사립문을 닫았다.지금은 사람도 풍경도 과거로 떠나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그 기억의 조각들은 머릿속에 남아 있다. 가끔 그 시절로 돌아가면 사립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어른거린다.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8-11

안갯길 나라

강길수 수필가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았다. 가을 새벽, 아직 어둡다, 첫길이다. 내비게이터도 없던 시절이라 이정표만 따라야 했다. 대청봉을 오른다는 설렘으로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하루 허용 등정(登頂) 인원이 다 차 더는 입산할 수 없다’는 안내원의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우리 일행은 실망했다. 꼭두새벽부터 서둘렀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왕 온 김에 한계령 고갯길이나 다 넘어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인제 방향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짙은 안개가 장막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일행들은 ‘와! 설악산 안개다!’하고 소리쳤지만, 운전대를 잡은 나는 되레 바짝 긴장되었다. 열 명이 넘는 사람의 안전이 내 운전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안개 장막은 쉬 열릴 것 같지 않았다.포항시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두 자릿수를 3일째 이어가고 있다. 걱정이다. 셋째 날의 숫자가 보이는 순간, 그 옛날 한계령 안갯길을 운전해 내려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장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안개 속에 처음 기항지에 내리는 비행기 조종사의 심사와도 같을까. 큰 숨 쉬어 자세를 가다듬는다. 저속으로 차선을 지키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이마에 땀이 송송 났다. 탈 없이 원통에 닿았다.수도권은 ‘거리 두기 4단계 방역수칙’을 시행한 날이 제법 오래되었다. 비수도권은 3단계라 하지만, 온 사회에 짙은 안개가 낀 기분이다. 코로나로 앞당겨진 ‘언택트 시대’, ‘메타버스시대’라고 말하지만, 비대면으로 사는 국민은 안갯속에 사는 마음이다. 게다가 자칭 ‘촛불혁명’을 기치로 내세우며 시작한 현 정부는, 어디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지 안갯길처럼 도통 알 수가 없다.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에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취임사를 들을 때, ‘국가 최고지도자의 취임사가 너무 관념적이고, 정서적이다’란 생각이 들었었다. 뭔가 안개 낀 날처럼 희미하고 몽롱한 기분이었다. 한 나라는 경제와 외교, 치안과 국방, 교육과 문화, 건설과 교통 등 제 분야가 실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공동체다. 구체성 없는 관념과 정서적 수사(修辭)는 들을 때 기분이 좋을 뿐 현실이 되기 어렵다.부뚜막 위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다. 따사한 햇볕에 안개는 걷힌다. 맑은 하늘에서 태양 빛이 식물에 내려앉을 때, 엽록소는 탄소동화작용으로 몸과 잎과 열매를 키운다. 그리하여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도 준비한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안개를 구체적인 기획, 소통과 개방, 협력과 상생의 햇빛을 비추어 걷어 내야 한다.집권 세력이 소위 ‘적폐 청산’의 칼을 안개 속에서 휘두르는 동안 나라는 사분오열로 갈라져 갔다. 젊은이는 거리를 헤매고, 소상공인은 생존에 아우성친다. 진실의 햇볕을 비춰야 할 많은 언론은 진실을 외면한다. 정의가 그 생명일 법조계 천칭의 추는 권력 하수인으로 기울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대규모 부정선거가 일어났어도 피해 야당은 웬일로 침묵하고, 다윗의 단 한 발 돌 무릿매질은 아직 힘이 부족하다.하늘의 개입이라도 필요한 세태인가.

2021-08-10

하루

김규종 경북대 교수 밤새 울어대는 벌레와 지렁이들의 합창으로 선잠에서 깨어난다. 처서 전후부터 울기 시작하는 지렁이의 맑은 음색도 좋지만, 가을 초입을 알리는 풀벌레 울음소리도 그에 못지않다. 어제 아침나절 서울의 후텁지근하고 끈적끈적한 새벽녘의 기억이 잠시 상념에 잠기게 한다.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이토록 다른 세상과 만난다는 일이 낯설다. 그것도 같은 나라 같은 하늘 아래서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하루라는 시간이 제법 길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시간에는 상대성이 개입한다. 상황에 따라서 길게도 짧게도 느껴지는 것이 시간이다. 마음 설레게 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의 찰나 같은 짧음과 지겹고 싫은 관계에서 느껴지는 영겁의 장구함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인슈타인도 미인과 함께하는 시간의 짧음과 뜨거운 화덕 위에서 맛보는 기나긴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성을 말한 바 있다.같은 시간을 달리 경험하는 인간을 생각하면 무상하다는 어휘가 떠오른다. 늘 그러하지 않다는,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 폐부를 찌른다. ‘붓다 연대기’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자명한 사실 하나. 우리 기분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기분과 나쁜 기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 단순하고 명쾌하게 인간의 기분과 감정 상태를 규정한다. 항상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무시로 변하는 감정과 기분!여기서 우리는 항심이나 항상성을 연상한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과 일관성을 유지해나가는 성질 말이다. 자신의 기분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언제나 같은 마음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희일비하지 않는 무거움과 자신을 향한 엄중함이 상존(常存)하는 내면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의 어려움이 손에 닿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동서양 지혜를 다룬 서책마다 등장하는 공통의 문장 있다.“늘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는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제의 위대한 승리와 환희가 오늘과 내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가르침. 하지만 욕망의 화신인 인간은 어제의 축복과 광희(狂喜)가 오늘도 내일도 아니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거기서 좌절과 실의가 생겨난다. 실패는 망각하고, 성공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선택적 기억의 수인(囚人)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허우적대면서….언젠가 김범수의 ‘하루’가 레코드 가게와 방송을 초토화한 적이 있다. 거리에도 광장에도 지하철에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하루’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 부를 수도 없이 어렵고 신비로운 노래 ‘하루’. 고통스러운 이별을 발라드풍으로 애절하게 노래하는 가수의 절규가 저물어가는 하오의 먼지 풀풀 일어나는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풍경. 거기서 되풀이되는 하루와 또 다른 하루의 균질한 시간의 경과.똑같은 색깔과 향기와 무게로 하루가 겹쳐지고 포개지는 날들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청춘의 상실과 비련은 눈물겹다. 그래도 내일은 다른 얼굴의 하루가 되기를!

2021-08-10

위드코로나 시대

백신개발로 곧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툭하면 백신공급 차질을 빚는 우리나라 보건당국의 방역체계를 믿고 있기에도 불안하다. 코로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지금껏 국민은 정부 지침에 잘 따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따라만 하다가는 언제 코로나로 멈춰진 일상을 회복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방역수칙도 곰곰이 따져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환자 수가 조금 감소하면 방역을 풀고, 그 수가 증가하면 방역을 옥죄는 방식만 되풀이할 뿐이지 실제적인 효과를 입증한 적이 없다.모임의 인원도 주먹구구식이다. 예식장에 모이는 사람 수와 종교시설에 모이는 사람 수가 왜 달라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낮에는 4인까지 식사가 가능한데 저녁에는 2명만 하라니 이것 또한 이해가 안 된다.의학 전문가들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계획한 백신 접종률 70%를 달성한다 해도 지금처럼 델타 변이가 판을 치면 코로나19의 유행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주요 선진국이 코로나 방역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전체 확진자 수를 줄이는 것보다 사망률을 낮추고 위중증자 관리에 더 치중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백신접종에 주력하면서 일상과 경제활동의 제약은 푸는 이른바 위드(with)코로나 전략이다.한국의 백신접종 완료율이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변종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음을 던지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전략도 중심을 잡고 위드코로나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1-08-10

잡초를 두려워하라

이창훈 경북도청본사취재본부장 덥다, 너무 뜨겁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핫한 날씨에 도로를 걷다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지만 이맘때면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 또다른 반대급부도 얻는다. 뜨거운 여름 아스팔트나 인도블록의 작은 틈속에서 어김없이 생명의 경이로움을 본다. 블록의 작은 틈바구니와 찢어진 콘크리트 땅속에서 이름모를 풀들이 자신의 머리를 내밀고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소위 이름도 잘 모르는 잡초다. 흔히 잡초는 주로 산과 들판에서 스스로 번식하는 잡다한 풀들을 일컫는다.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식물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결코 나쁜 의미도 아니고 특정한 식물 종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별다른 쓰임새가 없는 것을 흔히 잡초에 비유하는 등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고 있다. 농사에 있어선 재배중인 작물의 영양소를 뺏어먹는 주적이고 제거대상일 뿐이다.하지만 잡초는 무조건 제거대상이 아니다. 뿌리를 깊이 내려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영양분을 퍼 올리는 역할과 더불어 표토층을 보호하는 등 땅을 지키는 일등공신이다.“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보리밭에 밀이 나면 밀이 잡초이고, 도라지 밭에 산삼이 나면 산삼 또한 잡초인 것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잡초와 주초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코로나로 인해 극도로 지쳐가고 있는 국민은 요즘 더 힘이 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터널 속에 갖힌 채 가마솥 더위 속에서도 부족한 전력 때문에 냉방기 온도도 맘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등 그야말로 3중고를 겪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이 민초들이 감내해야 한다. 답답한 현실 앞에서 새삼 지도자의 중요성을 느낀다.현 정부는 백성을 잡초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집권이래 지금까지 야당과 지겹도록 투쟁만 했을 뿐 국가를 위한 백년대계에 어떤 디딤돌을 놓았는가. 안보불안에다 코로나 대처 미흡, 공수처 갈등, 검찰수사권 문제 등 국민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특히 탈원전 정책과 관련, 멀쩡히 완공된 원전 가동을 수년째 미루고 앞선 정부에서 계획된 원전까지 백지화로 돌리는 등의 정책은 국민에 대한 오만이다. 악법도 법이듯 과거정부에서 기획된 정책은 존중되야 하고 바꾸거나 폐기할 경우 보다 엄격히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등 진중한 자세가 필요하다.위정자의 이념이 국익에 우선시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잘못된 정치로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나라를 빼앗기는 것을 경험하는 등 지도자의 중요성을 수천년동안 지켜보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고 따라오라는 식의 정치시대는 이미 끝났다.흔히 잡초는 민초로 여겨진다. 잡풀들이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듯 민초들은 위정자에 밟히고 치이더라도 이 세상을 지탱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수십명의 잠룡들이 각자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진심으로 민초들을 어루만지고 또한 두려워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민초(잡초)는 배를 띄우기도 뒤집기도 한다는 것을 위정자는 알아야 한다. 잡초는 괄시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할 지어다.

2021-08-10

자격을 증명하라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획득했음에도 기뻐할 수 없었다. 일본이 사회인 선수들을 출전시키기로 해 한국의 우승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금메달에 주어지는 ‘병역 면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리그에서 성적이 썩 빼어나지 않았던 내야수 오지환(LG)과 외야수 박해민(삼성)을 선발한 선동열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군 미필 선수에게 병역 혜택을 주기 위한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결국 대표팀은 금메달을 따고도 죄인마냥 고개 숙인 채 입국했다.진짜 촌극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벌어졌다. 선동열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 증언대에 불려간 것이다. 이 국정감사는 야구인과 야구팬들에게 큰 모욕과 상처를 줬다. 한국 야구의 대명사이자 ‘국보’로 추앙받는 위대한 대투수가 국회의원들의 기본도, 상식도, 예의도 없는 수준 낮은 질문에 조리돌림 당하는 모습이 생중계 됐기 때문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선동열 저격수’로 나서서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야구 대표팀이 거둔 성취 자체를 부정했다. 그러고는 오지환과 박해민의 선발에 있어 선 감독의 사심이나 은밀한 청탁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무례한 음모론을 펼쳤다. 선 감독이 어이없어 하자 “사퇴하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김수민 의원(당시 바른미래당)도 거들었다. 1년 전 성적 자료를 들고 와서는 오지환보다 뛰어난 다른 선수를 왜 뽑지 않았냐는 황당한 질문을 했다. 야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문외한들이 평생을 현장에서 살아온 전문가에게 훈수를 뒀다.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대표팀은 일본과 미국에 준결승에서 석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3, 4위 전에서 중남미 야구 강국인 도미니카공화국에게마저 져 동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비록 메달을 얻지 못했지만, 대회 내내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바로 오지환과 박해민이다. 오지환은 팀이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홈런 두 개를 포함한 맹타를 휘둘러 구해냈고,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수비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대회 전 연습경기에서 주자의 스파이크에 턱이 찢어져 다섯 바늘을 꿰맸고, 대회 기간 동안에는 상대 투수의 몸쪽 공에 손등을 강타당해 피멍이 들었음에도 몸을 내던지며 플레이했다. 박해민은 전 경기 1번 타자로 나서 감각적인 타격과 빠른 발로 상대 수비 진영의 혼을 뺐다. 거의 모든 경기에서 1회 첫 타석 출루에 성공했고, 온몸에 흙을 묻혀가며 쉴 새 없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외야에서도 견고한 수비를 뽐냈다. 선동열 감독이 2018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 두 선수를 선발한 것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믿은 까닭이다.두 선수는 실력으로 증명했다. 안타로, 홈런으로, 호수비로, 도루로,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로 ‘국가대표’ 자격이 충분함을 몸소 입증했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 과정보다 국회의원 선발 과정이 궁금하다. 음주운전을 해도, 성범죄를 저질러도, 탈세를 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고 논문을 표절해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국회의원이 돼서는 공약 이행, 입법 발의, 민생법안 처리에 소홀한 채 그 어떤 ‘증명’도 하지 않고 4년 동안 ‘국민의 대표’ 자리를 차지한다는 데 분노가 치민다. 국회 본회의에서 낮잠을 자거나 업무추진비로 부적절한 외유를 즐기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결격 사유가 넘치더라도 유력 정당의 공천 명부 상위에 이름만 올리면 무조건 당선되는 비례대표는 더 그렇다. 자격도, 자질도, 신념도 없는 이들이 기성 정치의 구태를 반복하며 정당이기주의와 기득권을 심화시키고 있지 않는가?국정감사에서 선동열 감독을 몰아세우던 손혜원 전 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해 있고, 김수민 전 의원은 기성 정치의 답습을 벗지 못한 채 지난 총선에서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다시, 오지환과 박해민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종목 대표 선수들은 실력으로, 투혼으로 국민들을 납득시켰다. 이제 두 전직 의원에게, 아니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배지를 달고 있는 동안 대체 무엇으로 ‘국민의 대표’임을 증명했느냐고.

2021-08-10

당연한 사랑은 없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일상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언스플래쉬 하늘이 맑다. 그럴 땐 커피나 차, 과일을 띄운 탄산수를 큰 컵에 담아 창문가로 간다. 느릿느릿 풍경을 곱씹어도 마음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때가 있는데,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얽힐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에서 길을 잃은 경우에 그렇다.최근엔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친구였다. 오랜만에 목소릴 들어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기다리지 못하고 어떻게 지냈느냐고 이것저것 묻기 바빴다. 내 물음은 열 가지가 넘은 반면, 그녀는 ‘다행히 나 안전 이별 했어.’ 라는 한 마디로 대답을 대신했다. 더는 어떤 말도 나누지 못하고, 엉뚱한 리액션만 하다 전활 끊었다. 그녀가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목소리를 되새기며, 안전 이별이란 말은 얼마나 이상하고 슬픈 것인지. 그녀는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친구는 오래 전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했다. 가스라이팅은 늘 대두되는 문제였으나 1970년대 이전엔 이것이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만연하고 당연했기에 그저 신체적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면 정상인으로 치부되고 인정받기도 했다.가스라이팅이란 1938년 연극 ‘가스등’에서 처음 나온 용어다. 극 중 남편은 집 안을 어둡게 만든 다음, 아내가 집이 너무 어둡다고 말할 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네가 잘 못 본거야.’로 시작해서 ‘네가 문제야’라며 아내를 정신병으로 몰아세운다. 그럼 결국 아내는 자신이 잘 못 봤다고 판단하며 무력감에 빠진다. 결국은 아주 밝은 방에서도 ‘방이 왜 이렇게 어둡지?’라고 생각한다.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입맛대로 조종하며, 피해자 스스로 감정과 본능을 의심하게 하는 엄연한 감정 학대다. 그렇게 피해자는 심각한 우울증, 자기 결정 장애에 빠진다. 이것이 끔찍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아주 서서히 발생되어 은밀하고 교묘하기 때문이다. 처음은 아주 사소하고 약한 정도로, 그러면서 서서히 피해자의 말을 듣길 거부하거나, 언어 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며 반박하거나 피해자의 말과 정신을 의심하며 최종적으론 모든 걸 부정하며 신체적인 폭력을 가한다. 피해자는 이 과정을 처음부터 지배당해오므로 결국 현재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든 결정권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게 된다.가스라이팅의 사례는 가정에서도 빈번히 이루어진다.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적인 동시에 다정한 모습을 연기한다. 그렇게 다정하고도 불쌍한 인간상을 연기하다가도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가족의 사랑’이란 구실을 내세워 피해자를 억압한다. “우리 딸은 착하잖아”라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통제하는 경우나, “아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 부모 잘못이니, 내가 죽어야지.”라며 오히려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일례들이 그렇다. 물론 역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사회적인 가스라이팅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깎아 내리면서 자신이 우월해지는 도취감에 빠진 이들은 피해자를 몰아세우며 자신이 추앙받길 원한다. 하지만 이들은 가해자를 통제하며 스스로 가스라이팅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즐긴다. “내가 널 위해 해주는 말이지만”이나, “네 소문이 너무 안 좋게 도니 마음이 아파서 하는 말이지만” 하며 피해자를 불쌍한 입장으로 만들고 자신이 영웅이 되려 하는 진부한 케이스가 그렇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성은 야생마에 끌려가는 기수의 상태라 말했다. 인간의 본능이 사고를 치면 이성은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을 합리화 하거나 수습을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본능에만 집중한다. 늘 드는 의구심이지만 본능에 충실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는가. 다만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나누어 이성과 본성을 동일 선상에 두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은 궤변만 늘어놓는 비논리적인 인간이다. 왜곡과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니,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온전히 회복했으면 좋겠다.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소한 가스라이팅을 마주할 땐, 기꺼이 무관심으로 답을 한다. ‘네, 저는 먹던 케이크나 다시 먹으러 가보겠습니다’란 표정을 예의상 곁들이면서.

2021-08-10

사라져 가는 추억의 조각들에 대하여

어머니 엘렌의 75세 생일, 각지에 흩어졌던 가족이 파리 근교의 어머니 집에 모인다. 숲속 호숫가 집은 세 남매가 나서 자란 곳이며 추억과 함께 집안 대대로 타고난 예술적 안목으로 모아 온 미술품과 고가구가 있는 곳이다.엘렌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처리할 물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고스란히 유지하고 보관해 왔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세 남매는 큰 관심이 없다. 집안에 있는 명화와 스케치, 아르누보 양식의 가구들과 꽃병 등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고, 어울려 살았던 터라 세 남매에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오랜 시간 동안 공간을 꾸미고 구축해 놓았을 어머니의 자산 속에서 ‘일상이었던 기억’들은 자식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적인 생활공간에서 일상적인 소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들. 세월의 때를 뒤집어 쓴 ‘기억’의 가치는 늘 그 자리에 있어왔기에 별다른 빛을 발하지 않는다.어머니의 생일에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들이 정원 식탁에 둘러앉은 모습 속에서 일상의 소품이거나 배경이 되어 예술작품들은 늘 그래왔듯이 자리잡는다. 그날의 날씨와 공기, 나누었던 대화와 시선들과 함께 어머니의 자산은 사회적인 의미 이전에 가족들의 기억이 서려있는 일상적인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어머니의 부고를 접하고 가족들은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모인다. 여기서 세 남매는 ‘일상적 의미’를 지녔던 것들의 ‘사회적인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유품의 금전적 가치에서부터 상속할 시에 지불해야할 막대한 세금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서 자잘한 갈등이 일어난다. 그리고 미술관 기증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것들이 공적인 공간에 놓이게 되면서 잃어버리는 것들과 얻게 되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개인의 추억이 담긴 물품도 사회·문화적인 가치를 지니면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적절한 조명에 가치있는 위치를 점하고 전시되는 사물(미술품, 유물)을 바라보면서 그 사물이 애초에 놓였을 위치와 환경, 주고 받았던 추억들은 어찌할 것인가. 쓰다듬고 바라보았을, 바람과 공기와 냄새가 함께했던 추억을 만들었던 무형의 것들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미술관이라는 공적인 공간에 자리잡는 유품들. 보존과 전달, 교육의 측면은 성취했지만 그 속에 누락된 한 가족의 추억은 전달되지 않는다. 사적인 시간을 보내왔던 것들이 공적인, 어쩌면 영원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일상의 용도에서 공적인 용도로 가치를 획득한 것들의 변화를 통해 장남은 “그래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사람들도 잘 보고 있지 않느냐”고 위로한다.일상을 함께 보냈던 것들의 빛이 사라지고 찬란한 역사의 빛을 획득하는 순간에 대한 은유다. 사라진 빛 속에서 기억들, 비밀들, 이젠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함께 사라진다.지금 미술관에서 감상하고 있는 작품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이곳에 전시되고 있느냐의 과정에 대한 영화다. 그 과정 속에서 그 작품과 함께 했을 사람들의 추억과 숨결이 어떻게 전달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더해질 때 작품은 깊이를 더하고 또 다른 아우라를 품는다.이 영화를 사라지는 것에 대한, 혹은 추억에 대한 세대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라고 좁혀서 본다면 아까운 영화가 되어 버린다. 유형을 형성한 세월의 무형의 것들에 대한 전달 방식에 대해서 환기하는 독특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그것은 작품과 유물에 대한 텍스트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며 큐레이팅이 어떻게 되어야하는가를 드라마로 짚어주고 있다. 사물의 가치에 텍스트(스토리, 과정)가 더해질 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들어감을 알 수 있게 해준다.2008년 개봉한 이 영화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20주년 기념작으로 기획되었다. 미술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제작된 이 영화에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그림, 조각, 가구 등 다양한 실제 작품들을 활용하여 촬영이 진행되었다.영화 속에서 오르세 미술관의 진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덤이다./(주)Engine42 대표

2021-08-09

문(文)과 무(武), 두 개의 시호를 얻은 문무왕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죽은 뒤에 얻었던 시호(諡號)는 문무(文武)인데 대부분 문이나 무 하나만 붙인다. 특히 이러한 시호는 나라를 새로 세우거나 그 기틀을 다진 사람에게 올린다는 점에서 특별한 칭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칭호가 문무왕에게는 두 글자가 붙여졌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이 글에서는 7세기 무렵 당시 신라의 상황과 문무왕의 삶을 살펴보고, 그가 특별한 의미의 시호를 두 개나 얻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문무왕의 생전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 김춘추(金春秋)의 아들이자 김유신(金庾信)의 조카였다. 그는 626년(진평왕 48년)에 태어났는데 이 시점을 전후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고,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는 등 어수선했다. 그리고 17살이 되던 642년에는 백제가 신라의 남쪽 거점인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이때 그의 여동생인 고타소(古9641炤)가 백제군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훗날 660년에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당시 태자였던 법민은 의자왕의 아들을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여동생의 죽음이 20년 동안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골치를 앓게 하였다고 말한다.법민에 대한 기록은 한동안 등장하지 않는다. 647년에 일어난 비담의 난을 김유신이 진압한 이후 그의 아버지인 김춘추가 신라의 권력자로 떠오르면서 그의 활동이 다시 드러난다. 650년(진덕왕 4년)에 신라가 당에 보낸 사신이 바로 법민이었는데 당시 황제였던 고종을 만나고 귀국하였다. 또한 654년에 그의 아버지인 김춘추가 즉위하자 병부령(兵部令)이 되었고,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키는 전쟁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미 정치나 외교 그리고 전쟁 경험을 쌓았고, 이러한 경험은 백제 부흥 운동과 고구려 멸망 그리고 나당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란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660년에 법민은 태종무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당시는 백제가 멸망하고, 그 부흥을 외친 백제 유민들이 활동하던 때였다. 또한 옛 백제 땅을 둘러싸고 신라와 당 사이에 갈등이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즉 신라는 옛 백제 땅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했으며, 당은 그 땅에 자신들의 행정구역을 설치하고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그 우두머리로 삼았다. 또한 당은 문무왕과 멸망한 부여융을 만나게 하고 서로 화친하도록 강요했다. 신라의 시각에서 볼 때 백제라는 불씨가 꺼지지 않았으며 언제든 당을 등에 업고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여융과 화친하라는 당의 요구에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백제 부흥군을 진압하고 결국에는 옛 백제 땅을 전부 차지한다. 즉 당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옛 백제 땅을 신라의 영토로 편입하는 실리를 추구한 것이다.문무왕의 양면적인 모습은 나당전쟁 기간 중에 확실하게 드러난다. 나당전쟁의 정확한 시작 시기는 논란이 있지만 대략 670년을 전후한 무렵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신라가 압록강 유역에 있던 당의 거점을 공격한 시점은 토번과 당이 대규모 전쟁을 벌이던 때였다고 한다. 즉 한반도에 있던 당의 군사가 토번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한 틈을 타서 당을 선제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672년에 당과 토번이 화친하면서 동쪽으로 군사력을 집중하여 신라에 큰 피해를 주었다. 이때 문무왕은 재빨리 사신을 보내서 당에게 사죄하면서 공격을 멈추게 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월지로 알려진 연못을 만든 시점도 674년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즉 이때는 당과 토번이 다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시점이기도 하다. 전쟁 도중에 뜬금없이 왕궁을 꾸미는 여유를 부린 것은 문무왕이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여기에는 그가 당에 사신으로 갔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전경효​​​​​​​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 676년 이후 신라와 당 사이에 전쟁은 더 이상 없었지만 곧바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당전쟁 기간은 물론 신문왕대까지 계속된 중앙 군부대의 신규 창설은 전쟁의 위협이 계속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멸망한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을 받아들이고, 통일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문무왕에게 주어졌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5년 뒤인 681년 7월에 문무왕이 죽으면서 남긴 말이 있는데, 그 첫머리에서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신과 인간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고 관리와 백성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만하다’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는 그의 후손들 모두 공감하는 것이기도 했다. 즉 그의 직계 후손들이 더 이상 왕위 계승을 하지 못하고 다른 김씨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할 때에도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은 대대로 종묘에 모시는 조상으로 여겨졌다. 즉 그의 업적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것이다. 그만큼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나당전쟁이라는 사건은 신라인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중심에는 바로 김법민, 문무왕이 있었다. 이처럼 문(文)과 무(武)라는 칭호에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와 군사력을 통해 신라를 구한 신라인들의 문무왕에 대한 평가가 반영되어 있다.

2021-08-09

과학방역인가, 정치방역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방역은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다. 정치가 과학을 지배, 통제하면 방역은 실패한다. 인간은 정치권력을 두려워하지만 바이러스는 영국 수상도 감염시켰다. 과학이 말해주는 방역에 정치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물론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중요하다. 외교를 통해서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여 조기에 집단면역을 달성하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델타 변이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집합금지와 제한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성공적인 방역은 정치와 과학의 유기적 협력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 과학을 지원하는 과학방역’인가, 아니면 ‘정치가 과학을 통제, 악용하는 정치방역’인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은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감염의 위험이 크고 바이러스 변이가 거듭될수록 정치적 판단을 삼가고 과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전문가와 의료인들의 변이바이러스 확산 경고에도 불구하고 방역을 완화함으로써 4차 대유행을 촉발시켰다. 당황한 정부는 방역을 최고단계로 높이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과학적 합리성이 결여된 정치적 판단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정부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한 전형적인 정치방역이었다.방역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방역기획관에 코드 인사를 강행함으로써 정치방역의 의혹은 더욱 커졌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국립암센터의 기모란 교수(암관리학)를 임명한 것은 코로나 방역이 아니라 청와대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기 교수는 청와대 입성 전부터 정부가 의학적·과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방역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방어했던 정치교수(polifessor)였다. 컨트롤타워가 정치성이 강하면 ‘사실(fact)’에 입각한 과학방역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최선의 방역은 신뢰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차별적 영업제한이나 형평성을 상실한 방역조치는 신뢰를 떨어뜨린다. 보수단체의 집회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진보단체에 대해서는 소극적 대응을 하는 것은 정치방역이다. 시민들의 인내와 희생으로 이루어낸 K방역의 성과를 정권홍보에 이용하는 정치방역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문 대통령이 교회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대통령 자신도 “방역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과 의학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좌우하는 방역만큼은 정치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정치가 방역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백신확보와 민생지원이다. 이스라엘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여 이미 ‘부스터 샷(3차 접종)’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직 1, 2차 접종도 지지부진하다. 국민의 삶은 무너지고 있는데 국정을 책임진 정권이 대선 승리에 혈안이 되어 정치방역을 해서야 되겠는가?

2021-08-09

별똥별쇼

깜깜한 밤하늘에서 유성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진풍경을 펼쳐 보일 때가 있다. 바로 별똥별쇼가 펼쳐질 때다.별똥별은 유성의 다른 말로, 혜성,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티끌이나 먼지가 지구 중력에 이끌려 대기 안으로 들어오면서 대기와의 마찰로 불타는 현상을 말한다. 유성이 비처럼 쏟아질 때 유성우라고 한다. 유성우는 1년에 3~4차례 나타난다.국립과천과학관은 3대 별똥별 중 하나인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오는 12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한다고 9일 밝혔다.페르세우스 유성우는 유성의 복사점이 페르세우스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름 붙여진 것으로 1월의 용자리 유성우, 12월의 쌍둥이자리 유성우와 함께 연중 3대 유성우 중의 하나로 꼽힌다.페르세우스 유성우는 밝고 화려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페르세우스 유성우는 태양풍에 의해 혜성이나 소행성의 궤도에 남아 있는 잔해물 사이를 지구가 통과(공전)하면서 발생한다.매년 7월 17일에서 8월 24일 사이 지구가 스위프트·터틀 혜성의 궤도를 지나면서 많은 유성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떨어진다.국제유성기구(IMO)는 올해 페르세우스 유성우의 극대시기를 8월 13일 새벽 4시경으로 예보하고 있으며, 시간당 최대 110개의 유성을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생방송은 12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과천과학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된다.옛날 선조들은 별똥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했다. 화려한 별똥별쇼를 보며 코로나로 힘겨운 서민들의 애환이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빌어보자./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09

‘하란사’를 만나다

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지난주에 수많은 화제를 낳은 ‘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의 최신작 ‘하란사’(특별한서재출판)를 읽었다. ‘하란사’를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권비영 작가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나는 ‘덕혜옹주’를 읽고 권비영 작가의 팬이 됐다.지금은 권비영 작가가 회장을 역임했던 울산소설가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소설 21세기’를 1년에 4번 받아볼 정도니 정말로 ‘찐팬’이 된 셈이다. ‘하란사’를 입수해서 하룻밤 사이에 다 읽어버렸다. 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서 말 그대로 끝 장까지 본 것이다. 하란사에 대한 수식어는 의외로 많다. ‘이화학당 최초 기혼자 입학생(1896)’, ‘최초 미국 자비유학생(1900)’, ‘조선 여성 최초 미국 학사학위 취득(1906)’, ‘이화학당 최초 한국인 대학교수(1911)’, ‘정동제일교회에 한국 최초 파이프오르간 기증 설치’(1918), 그리고 ‘여성 운동가’이자 ‘조선 독립운동가’이다. 이러한 하란사의 화려한 이력과 함께 작품 속에는 당시 시대가 그러하듯이 파란만장한 그녀의 일생이 전개된다.하란사는 1872년 평안남도 안주(安州) 출생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가정사가 없다. ‘하란사’는 이화학당에 입학해 세례를 받고 얻은 영어 이름 ‘낸시(Nancy)’의 한자 음역으로 ‘란사(蘭史)’라 하고,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른 것이다. 어린 나이에 상처한 나이 많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신식교육도 받게 되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오게 되지만, 평범한 결혼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미국 유학 중에 그녀는 의친왕 이강(1877~1955)을 만나게 되고, 이후 이강의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의친왕 이강은 덕혜옹주(1912~1989)와는 이복 남매지간이다. ‘하란사’에는 덕혜옹주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이강을 놓고 볼 때 덕혜옹주와의 접점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란사는 고종황제의 영어 통역과 국제정세를 알리기 위해 궁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란사가 궁에서 어린 덕혜옹주와 멀리서나마 마주쳤을 가능성을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란사 이야기 끝에서 덕혜옹주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덕혜옹주’와 ‘하란사’를 읽다 보면 권비영 작가는 그 시대를 살다온 사람처럼 당시의 생활상을 현실감 넘치게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작품 내용 중, 1919년 의친왕 이강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외우는 하란사의 모습이 가장 절정에 이른 장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강과 함께 허름한 노인으로 변장을 하고, 국내를 빠져나가 상하이로 가는 도중 이강은 잡혀 국내로 송환되었고, 하란사는 그곳에서 독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호시탐탐 그녀를 제거하려는 일본의 계략에 결국 독립이라는 큰 뜻을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달리한 하란사.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올 여름에는 권비영 작가의 최신작 ‘하란사’를 읽으면서 더위와 코로나를 한 방에 날려버렸으면 좋겠다.

2021-08-09

욕망의 왜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더위의 막바지인 말복(末伏)이지만, 좀체 꺾일줄 모르는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세 만큼이나 끈질긴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복날을 나타내는 복(伏)은 엎드린다는 뜻으로, 가을의 서늘한 금기(金氣)가 여름의 무더운 화기(火氣)를 두려워하여 세번(초복·중복·말복) 엎드리고 나면 무더위가 거의 지나가게 되는 셈이라 한다. 이른바 삼복 중에는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거나 기운이 허약해져서 건강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해진 심신을 안정시키고 더위를 잊기 위해 청유(淸遊)하거나 탁족(濯足)을 하고, 보신(補身)음식을 먹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건강한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지긋지긋한 코로나에 시달리는데 더위마저 먹게 된다면 심신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조차도 힘들어지게 된다. 소나기는 피해가는 게 낫다고, 코로나든 더위든 조금만 더 엎드리고 몸을 사려 조심하고 회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감하고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독불장군처럼 볼썽사나운 돌출행위로 괜스레 된서리를 맞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폭염과 전염병에 맞닥뜨리기 보다 몇 번 수그리거나 낮추면서 분위기와 여건에 맞게 순응하고 처신해야함은 비단 삼복(三伏)에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예컨대 일상이나 주변에선 간혹 무지와 독선, 욕심의 남발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보도되거나 일어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판이다. 세상사 요지경(瑤池鏡)이라서 그러는 걸까? 세상이나 만물은 자연이 그러하듯이 음양과 오행에 따라 조화와 질서가 생기고, 상생상극의 이치와 순리 속에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변화와 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대자연계에서도 상생상극의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가듯이 인간사회 역시 개인이나 조직이 화합하고 상충, 상반되는 논리와 견해에 따라 티격태격하는 ‘부조화의 조화’ 속에서 천태만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대부분의 부조화는 관점이나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과 갈등으로 나타나고, 아집과 욕망에 사로잡힌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으로 표면화하게 된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나 집단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그들의 노선을 지키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진실을 곡해, 호도하여 합리화시키거나 집요하게 선전, 회유를 조장하기도 한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오해와 갈등을 불식시켜야 함에도, 수시로 말을 바꾸고 억측과 왜곡으로 전(煎) 뒤집듯이 순식간에 번복을 일삼는데 무슨 수로 문제해결과 합목적적인 조화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형적인 표리부동이요 자가당착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인간과 사회생활의 기본은 믿음과 약속이다. 믿음이 없으면 일어서지 못하듯이(無信不立), 신의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고 의지하기 어렵다. 철석같이 믿어왔던 사람이 욕망의 왜곡 같은 불신과 의문, 위선적인 행태를 일삼는다면 실망감을 넘어 환멸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우연히 쳐다본 석양 무렵의 하늘에 야누스 형상 같은 구름이 바람에 쓸리고 있었음은 무슨 연유였을까? 사람은 어울림의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귀하다는 배려와 존중으로 겸손과 양보의 마음을 서로 나눌 때, 조화로운 공감의 꽃이 피어나리라.

2021-08-09

부스터샷 갈등

백신 면역효과 증대를 노린 부스터샷(추가접종)을 두고 세계 각국이 신경전이다.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미국, 유럽국가 등을 겨냥해 백신공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오는 9월 말까지 부스터샷을 유예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전 세계는 40억회 분의 백신을 접종 중에 있지만 80% 이상이 중상위 소득국가에 집중돼 가난한 국가에 대한 백신공급이 시급하다는 것이 WHO의 입장이다.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은 WHO의 촉구에도 자국민에 대한 부스터샷 준비를 서둘고 있다. 부스터샷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부스터샷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총리가 나서 “부스터샷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은 전세계가 공유 할 것”이라며 부스터샷 실행에 대한 자국 옹호에 나섰다. 부스터샷을 준비 중인 미국도 백신공급 확대와 부스터샷은 동시에 할 수 있어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영국과 독일도 이달부터 부스터샷 도입에 들어간다.선진국이 부스터샷을 서둘고 있는 것은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자국민 보호 대응전략이다. 현재 백신을 1회 이상 접종받은 인구의 비율은 북미와 유럽은 60%에 달하고 아프리카는 고작 3.6%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부스터샷보다 백신공급이 낮은 국가에 대한 접종률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으나 강대국의 이기적 결정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부스터샷 갈등은 인도적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나 자국민 우선보호 논리 앞에 백신 양극화 벽은 더 높아만 간다.백신 양극화 속에 한국의 포지션이 궁금하다. 잘하는 쪽일까, 못하는 쪽일까. 한국은 7월말 현재 1차 접종률 37.4%로 세계 90위 수준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8-08

‘立法독재’에 취해 있는 정치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대통령과 국회의원, 민선단체장처럼 선거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가 언론이다. 누구에게도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 그들은 권력감시와 비판기능을 하는 언론만 통제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파워를 가지게 된다.집권여당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16건을 병합한 위원회 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4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해당 안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범여권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찬성표를 던졌다.민주당은 내일(10일) 상임위(문체위)를 열어 법안 의결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현재 문체위 전체 위원 16명 중 민주당 의원이 8명이고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까지 합치면 9명으로 과반이 되기 때문에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이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될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은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을 물리는 것이다. 현행 언론중재법으로도 기사의 ‘허위·조작’이 확실하다면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굳이 중대재해법과 같은 ‘언론 징벌법’을 무리하게 제정하려는 것은 집권당에 찍힌 언론사를 손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이 법안이 제정되면 정치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불리는 비판적 기사에 대해 이 법을 근거로 배상금 청구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크다.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허위·조작기사’라는 게 기자가 범죄의식을 가지고 쓰지 않는 이상 판단기준이 모호하다. 이 때문에 언론사 사회부에 근무하는 사건·사고 담당 기자라면 언제든지 ‘허위·조작기사’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을 취재할 때 기자들은 경찰의 수사내용을 위주로 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데, 만약 경찰이 수사방향을 잘못잡아 ‘우발적 범죄’를 ‘계획적 살인사건’으로 몰고 갈 경우 기자는 100% ‘허위·조작’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다. 부지런한 사회부기자라면 이러한 경우를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취재활동을 한다. 이러한 기사마다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기자나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전제군주적인 발상인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이 정부가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박탈)에 나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공감이 간다.지난주 공개된 문체위 법안소위 속기록을 보면, 이 법안 소관 부처인 문체부 차관과 국회 입법조사처조차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기자가 본연의 업무인 기사를 쓸 때마다 자신의 가정과 회사의 운명까지 걱정해야 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가.

2021-08-08

이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김락기 시조시인·칼럼니스트 지금은 혼재사회 시대다. 자연과 사회 환경이 뒤섞이다 못해 혼돈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듯하다. 일반인의 상식과 이전에 겪던 순리는 힘을 잃었다.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촌의 삶을 온통 뒤바꿔놓고 있다. 변이·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왕의 독감바이러스를 밀어내고, 우리네 안방을 차지하면서 백신을 무력화하는 것 같다. 이로 인해 깊어지는 건 비대면 사회다. 일본 도쿄 무관중 올림픽 경기나 계좌입금 경조사, 재택근무, 밀키트 배달주문 같은 단면들로 알 수 있다. 통계청은 작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1~2인 가구가 60%에 이른다고 했다. 혼자만의 비대면 세계 속 생활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것이 일상화될수록 필연적으로 자기만의 생각이나 상상력이 보다 더 활용된다. 상상력은 시세계의 공기라 할 수 있다. 평소 잊고 지내던 공기를 새삼 들이마시듯 이제 상상력은 일상인 누구나 수시로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시인만의 주된 전유물이 아니다. 시세계의 상상과 일상의 현실이 혼재하는 시대, 코로나19 대처에 백신투여와 거리두기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아픔이 크다. 당국은 면역력 강화조치와 더불어 치료제 개발,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 비대면·대면 연계 생활의 주도면밀한 체계적 일상화로 서민생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환상과 현실이 융합된 확장현실(XR)이 화두가 되는 이즈음, 이른바 메타버스 세상이 바투 다가왔다.한편 정치적 분야의 우리네 혼재사회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요지경 세상이다. 신비롭기는커녕 그저 기이·혼탁·불순한 혼돈사회다. 여야가 따로 없다. 국리민복보다 사리사욕에 매몰되어 이합하는 붕당 무리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도토리 키재기식의 후보들이나 어느 당대표의 경박한 언행, 그간 여러 번 겪어오면서도 누구로든 정권교체만 하면 된다는 발상들…. 한심하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은 물론 작년 4·15 총선 부정선거(설)는 사전투표로부터 여태 대법원 선거재판에 이르기까지 비정상 정국상황임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다. 사전 투표제 폐지와 완전 수개표 같은 제도적 보완 없이는 정권교체가 쉽지 않을 거다. 되레, 이런 상황은 머잖아 수렁에서 이 나라를 구할 크나큰 인물의 출현을 예고하는 징조일지 모른다.끝으로, 참과 거짓을 잣대로 하여 일반인이 살아가는 유형을 살펴본다. 거짓인 줄 알면서 이를 두둔하거나 모르는 체 눌러 사는 사람, 거짓을 참인 것으로 알고 거짓이라 하는 이를 도리어 나무라는 사람, 거짓인 줄 알고 이를 참되게 바로 잡고자 하는 사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서민들에게 시시비비를 묻기가 난감하다. 나부터 어느 부류인지 자문해본다. 거대담론을 꺼내다 말고 용두사미로 그친다. 단시조로 해량을 구한다.‘XR의 길’코로나는 미물인가저 하늘의 전령산가 여야정 분탕질로한 치 앞이 안 보여도정신줄단디 붙들 때새길 번히 나투리.

2021-08-08

입추, 가을이 온다는데…

윤영대수필가 입추(立秋), ‘가을이 들어선다’는 절기이다. 그런데 연일 35도를 넘는 폭염과 열대야로 가을을 마중하기 어렵고 기후변화와 온난화에 대한 미래에의 두려움만 커지는 듯하다.그동안 열기를 띤 도쿄올림픽 경기를 늦은 밤까지 보며 더위를 잊곤 했지만 이제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어게인’을 외치며 열심히 싸운 선수들의 땀방울을 생각하며 10위권을 벗어난 결과는 잊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축하하자.입추의 첫 닷새 초후(初候)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중후에는 흰 이슬이 진하게 내리고 말후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듯한 요즈음이다. 중국 남동해에서 발생한 제9호 태풍 루핏이 먼 남쪽 바다를 지나게 되는 말복쯤에는 이 무더위도 엎드리려나…. 가을의 첫 결실인 노란 옥수수 한 소쿠리 사서 삶아 먹으며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한가함으로 바캉스 못 가는 마음이라도 달래야겠다.코로나19의 4차 유행 열기로 전국 일일확진자는 1천800명을 돌파하여 기록을 경신하였고 이에 질세라 포항도 24명을 넘어 최대 기록을 세우고 거리두기 3단계의 2주 연장에 들어갔다. 이러한 사태에서 백신 접종도 온라인 예약으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지만 8월 중순부터 접종하게 되는 18세 이상 49세까지의 국민에게도 가능한 빠른 기간 내에 백신 접종을 마쳐 좀 편한 마음으로 이 더위를 이기고 맑은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역병 창궐에 따른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머리에 두고 가족의 무병과 국가 사회의 안전을 위해 자중자애하는 정신으로 여름 휴가철을 현명하게 보내야 할 것이다.집에서 종일 에어컨 틀고 TV 보며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가까운 문화복지 시설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찾았더니 여의치 않아 내친김에 시골집으로 갔다. 무성하게 자란 뽕나무 가지에 덥힌 접시안테나가 TV 화면을 어지럽히기에 잠시 작은 가지를 치고 나니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팔뚝엔 풀모기에 물린 빨간 자국들이 가득하다.해거름 무렵 마음을 털려고 형산강 둔치로 가서 포항운하관을 둘러보고 송도 끝 모래사장에 갔더니 바다를 나는 패러글라이딩 모습이 활기차다. 큰 전구 모양의 바다전망대인 투명한 워터폴리 안으로 올라가면 송도 바다 전망과 찬란한 포스코의 야경이 가슴에 찬다. 모래사장 복원을 하는 송도해변을 지나 포항운하를 따라오다가 동빈다리를 건너니 ‘그린웨이 프로젝트’인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빨리 친환경 녹색도시가 만들어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일그러진 시민의 숨결을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영일대 해수욕장으로 가서 발열 검사 후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생명의 노래, 물결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샌드아트 패스티벌이 꾸며져 있다. 가까이 살펴보니 표면에 모래를 입힌 섬세한 조각품들이 사랑스럽다. 입추의 저녁 바람에 밀려오는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의 간질임에 되돌아보니 샌드아트 ‘바다의 여신’이 웃으며 속삭인다. ‘곧 가을이 올 거예요.’라고.

2021-08-08

변화·혁신·도전, 군민들과 함께한 민선7기 취임 3주년

김학동예천군수 ‘경북의 중심, 도약하는 예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뚜벅뚜벅 황소와 같이 흔들림 없이 현장을 누빈지 벌써 3년이 지났다.‘경북의 중심, 도약하는 예천’이라는 슬로건에는 예천군으로 경북도청이 이전해오고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예천군이 반드시 ‘경북의 중심도시’로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 설정과 함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예천군 행정이 전심전력하겠다는 다짐과 결의가 담겨져 있다.공직자들 모두가 경영마인드로 무장하고 변화와 혁신으로 도전적인 행정을 추구해온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다.지난해는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로 매우 힘들고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 군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고, 예천군은 군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튼튼한 방역위에 경북의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시킨 결과 예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의미있는 성과들을 만들어냈다.아시아육상연맹이 주최하는 2022년 아시아U20육상선수권대회를 군 단위 최초로 유치했으며, 대한육상연맹의 육상교육훈련센터 유치로 교육 및 훈련 인원이 매년 2~3만 명으로 예상되며 기존 전지훈련 및 각종 대회 인원을 모두 합하면 약 16만5천여 명이 예천을 방문할 것으로 보여 수백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유발돼 지역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공영주차장 조성, 전선지중화, 간판정비, 도시 재생사업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살기 좋은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신도시복합커뮤니티센터 착공, 주민자치센터 개소, 도시공원 조성, 등산로 정비사업을 추진해 좋은 호응을 얻었다. 또한, 국도비 공모사업에 적극 대응한 결과 총 2천억 이상의 예산을 확보하는 유례없는 성과를 달성, 성취감이 매우 컸고 제2농공단지의 성공적인 기업 유치와 ‘부자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업시설 현대화, 예천한우 브랜드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왔다.지난해 중앙 및 경북도로부터 40개 분야에서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괄목할만 성과를 거뒀다. 지역의 인재들이 다양한 호기심과 경험으로 미래 꿈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미래교육지구 지정과 함께 교육소외지구 교육여건 개선 사업 등으로 명품교육 1번지 예천을 만드는데 초석도 다졌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역 교육 사업에도 적극 지원했다.이러한 결과로 2021년도 대학입시에서 관내 3개교 졸업생 290명 중 95.9%인 278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이제 남은 1년의 임기 군정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소중한 시간이다.예천읍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뉴딜사업, 전선지중화사업, 도시미관개선사업 등에 속도를 더하고, 한천과 남산·개심사지 오층석탑 공원과 폐철도부지를 집중 개발하고, 그 중심에 박서보 화백 미술관을 건립해 예천관광의 거점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명품 도청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2022년 6월까지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완공하고, 신도시 2단계 개발 계획에 중학교 신설과 병의원 유치, 생활체육시설 확보 등 신도시민들의 요구 사항이 반드시 수용되도록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군민들의 소득 증진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인구유입을 위해 군유지에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유치하고 제2농공단지 분양을 조속히 완료하고 제3농공단지 조성사업을 앞당겨 지역경기활성화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농축산업 현대화와 유통 구조 개선을 통한 지역농산물 경쟁력 확보 및 판로 개척으로 농가 소득 증대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예천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화합을 위한 친절·미소운동, 뚜벅이 걷기운동, 클린예천 만들기 등의 ‘예천사랑운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를 당한다는 생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군민들과의 약속인 공약사항을 군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지난 3년 동안 차곡차곡 실행했다. 이제는 예천군의 잃어버린 50년을 되찾아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남은 1년 임기는 ‘마부작침(磨斧作針)’ 자세로 매진할 것을 약속한다.

2021-08-08

친구가 보내온 사진 한 장, 이태리타올에 ‘다 때가 있다!’라는 글귀가 적혔다. 몸에 끼인 때와 삶에 걸쳐진 시간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말이라 슬쩍 웃음이 난다. 때는 때 맞춰 씻어내야 하니 더 적절한 표어 같다.시시때때로 꽃이 핀다. 대한민국은 꽃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일 년 내내 다른 도시에 뒤질세라 꽃축제가 이어지고, 카페도 커피 맛보다 정원에 핀 꽃이 더 손님을 불러들인다. 수국 맛집, 야생화 맛집, 해바라기 맛집에서 찍은 사진들이 sns를 통해 내게 당도한다. 꽃공화국 시민답게 보는 즉시 길을 나선다.꽃의 절정을 보러 갔다. 백일동안 붉은 꽃이라 백일홍이라 이름 붙여진 배롱나무 군락지 명옥헌에 가려고 새벽길을 나섰다. 포항에서 담양까지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선 길이니 가보자하고 대구를 지나 전라도 경계선에 들어서니 다행히 서서히 비의 양이 줄었다. 담양은 가로수조차 배롱나무라 길 양옆으로 마중 나와 붉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았다. 명옥헌 주차장에 내리자 보슬비가 오락가락했다.비를 흠뻑 머금은 정원이 더 붉었다.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서 색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정원 연못에 떨어진 꽃잎이 한가득 떠다녀 꽃무늬 카펫을 덮은 듯했다. 나무에 열린 꽃이 반, 세찬 비에 떨어진 꽃이 반이었다. 떨어진 꽃이 비 덕분에 오래 촉촉하니 제모습 그대로였다. 비가 와서 꽃의 절정을 보는 게 어려울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8월 중순의 강렬한 햇살을 비가 가려주어 꽃을 더 오래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좋은 풍경을 보러 매년 가자고 손가락 걸며 약속했다.벌써 4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3년 전에는 나서다가 어긋나 대구 화목정 백일홍을, 다음 해는 안동 병산서원 백일홍으로 대신했다. 지난해 이맘때의 백일홍이 절정이었으니 하고 찾아가면 한철이 이미 지난 끝물이다. 며칠 더 먼저 와보리라 하고 다음 해 오늘 찾아가면 봉오리가 미쳐 열리지 않기 일쑤다. 절정인 날에 걸음 하기가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은 때를 맞추기 쉽다. 8월에 들어서면서 오며 가며 살펴볼 수 있어서다. 명옥헌의 경험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얼른 길을 나서리라 마음먹고 기다렸다.올해 점찍어 둔 곳은 종오정이다.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최치덕의 유적지이다. 영조 21년에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려고 일성재를 짓고 머무를 때, 학문을 배우려고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귀산서사(龜山書社)와 함께 건립한 것이다. 8월이면 연못에 연꽃이 한껏 꽃대를 올리고 둘레에 백일홍이 가지를 늘어뜨려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소나기 예보가 있던 주말 오후, 비가 아직이지만 집을 나섰다. 천북쪽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넓은 들에서는 소나기가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어릴 적엔 들 끝에서 달려오는 소나기보다 걸음이 느려 힘껏 달려가도 집에 다다르기 전에 몸이 흠뻑 젖곤 했다. 이젠 천리마 같은 차를 가졌으니 소나기를 따라잡기도 하고 비를 피할 수도 있다.천북 무궁화 가로수가 끝나는 지점에 길섶으로 들어서면 금방 종오정이 나타난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붉은 백일홍이 가득한 고택이 눈에 들어오고, 꽃소식을 들은 사람들로 작은 동네가 수런거렸다. 집 주변으로 보랏빛, 분홍빛의 어린 배롱나무도 색을 보태고 있었다. 연꽃은 아직 절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못 옆에 까치발을 한 백일홍은 홍조 가득한 새색시처럼 바알갛게 가지를 물들였다. 그 아름다움에 화룡점정을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소나기가 찍어두었다. 화라락 떨어진 꽃잎으로 꽃그늘이 가득 만들어졌다. 흠…. 깊은 호흡으로 잠시 꽃멍을 때렸다.돌아오는 길에 서산을 보니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노을이 진다. 시(時)를 맞춰 갔더니 때마침 뭉싯한 구름이 꽃처럼 붉어지는 하늘에 시(詩)를 적는다. 장관이다. 다 때가 있다. /김순희(수필가)

2021-08-08

여야 대선 예비후보의 ‘원팀’ 실종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다.최근 대선 예비후보들의 행보는 폭염과 열대야에다 동남아 스콜이 복합된 날씨만큼이나 정제되지 않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특히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 모두 이른바 ‘원팀’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모양새를 달리하면서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도출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당내 경선을 앞두고 명목상 ‘원팀’을 강조하면서 이재명·이낙연 두 예비후보를 필두로 후보 검증이라는 말로 이전투구를 넘어 과열 비방전 상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름하에 이낙연 전 대표 측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공격하는 배우 김부선씨를 선거판에 출연시켰고 이 지사 측은 이 전 대표와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의 친분설을 제기하며 당내 강성 지지층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등 네거티브 비방전으로 가열됐다.여당 내 대선 예비후보 중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삐거덕거림은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잡다한 집안싸움으로 비치기 충분하다.후보들 간 선을 넘은 상황에서 원팀이라는 구호가 아득하게만 보이는 것은 불문가지다. 과거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서로 적자임을 강조하며 밥그릇 싸움을 하던 양상과 거의 비슷하게도 보인다.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이같은 행보에 동참했다. 4일 국민의힘은 대선주자들의 제1호 행사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생수와 마스크, 삼계탕 등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실시했다.이 자리에 김태호·안상수·원희룡·윤희숙·장기표·장성민·하태경·황교안 등 8명의 대선주자만 참여하고 나머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박진 의원은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다만, 최 전 원장은 부인인 이소연씨가 대신 참석했다.당 대선 경선 과정의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이준석 대표와 서병수 대선 경선준비위원장도 함께 했지만, 5명의 대선주자 불참으로 당내 첫 대외행사는 결국 반쪽짜리로 전락하고 마는 결과를 도출하게 됐다.이에 하태경 의원 등은 SNS를 통해 불참한 대선주자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등 ‘원팀’이미지가 사라졌음을 알렸다. 여야 할 것 없이 이같이 당내 대선 주자들 간 엇박자 행보는 결국 당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자신만의 정치일정을 버릴 수 없다는 점이 노출된 셈이다.여당은 서로 친문의 적자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 상태고 국민의힘은 당보다는 개인의 일정이 우선되는 아이러니를 표출해 ‘뭐가 중한디’라는 말이 나오기 충분하다. 이런 정치권의 모습은 결국 대선이나 지방선거 등은 국민과는 상관없는 ‘자신들만의 리그’라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여야 모두 요즘 날씨처럼 뜨거운 열기만 있고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구호처럼 당내에서부터 먼저 정립돼야 유권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동안의 선거가 증명했다.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투표로서 말해줄 일만 남았다.

2021-08-05

아, 대한민국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올림픽 개막식에 각국의 선수들이 입장하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총 206개 참가국 가운데 참가선수의 규모만도 12번째이고, 역대 메달획득 성적도 1984년 이후로는 대부분 10위권 내에 들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을 치른 1988년에는 메달성적이 세계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스포츠 경기가 국위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참가선수의 규모와 성적의 우위는 국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200여 국가 중에 상위 5% 내에 든다는 건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그런 국격에 오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MBC방송이 이번 올림픽 개막식을 중개하면서 몰상식한 짓을 저질러 세계인의 지탄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에 분노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몰상식한 정도를 넘어 비열하고 사악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아이티를 소개할 때는 시위대 사진과 대통령 암살사건을 내보낸 것처럼 그 나라들이 대한민국을 소개할 때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과 광주사태의 영상을 내보내면 뭐라고 할 것인가. 좌파노조가 장악한 방송이 온갖 편파방송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더니 급기야는 온 세계에 내놓고 나라망신을 시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일제의 식민통치와 6·25전쟁의 참화로 세계 최빈국이었던 시절을 겪어온 세대로서는 세계 10위권에 든 대한민국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열악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맨주먹과 피땀으로 일군 나라였다. 다른 나라의 구호물자로 허기를 때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경제뿐만 아니라 스포츠까지 세계 상위권에 드는 강국으로 보무당당하게 입장하는 걸 보고 어찌 가슴 벅차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회가 없을 것인가.한편으로는 올림픽조차 참가를 못 하는 세계 최하위권 빈민국인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겨레가 이렇게도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스러움이 북받친다. 그것은 곧 한사코 통일을 가로막는 만고역적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에 대한 원한과 분노이기도 하다. 통일이 시급하고 절실한 이유는 우선 기아와 폭정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구해내야 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치면 세계 굴지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단은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이라는 걸 모르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 체제를 비호하고 동조하는 정권이나 세력들은 민족의 반역으로 엄단하고 척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 심각한 것은 국민의 상당수가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 현실로나 사회주의·전체주의로 가면 패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투철한 반공정신을 기반으로 한 때문이라는 걸 패망 직전의 북한이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의 좌파 정권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은커녕 정체성마저 부정하고 폄훼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국민들이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

2021-08-05

성공의 비결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야권통합은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에게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를 봐도 그렇다. 당시 보수층은 두 후보를 지지했다. 한 명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후보였고, 또 한 사람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였다. 보수의 분열은 패배를 불렀다. 보수층이 지지한 홍 후보와 안 후보의 득표수를 합해보니 문재인 당선자의 득표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픈 회한으로 남았다.그런데 이번에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있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합당무산론이 떠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 표현을 빌리면 아예 ‘요란한 승객’으로 몰리고 있다. 국민에게 야권대통합을 약속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양당 통합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이 준 지상과제로, 이것을 거스르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합당을 압박했다.이 대표는 특유의 화법으로 “예스(Yes)냐, 노(No)냐”라고 을러댔다. 이에 맞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금 여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합이 야권보다 높아 야권이 위기 상황이고, 이대로 가면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야권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플러스 통합론’을 설파했다. 중도 성향의 국민의당이 국민의힘에 흡수돼 소멸하는 방식의 합당으로는 외연 확장 효과를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다. 달리 말해 당별로 경선후보를 확정한 후 단일화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이 모두가 합당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일환일 수 있다.그러나 이 대표와 안 대표간 감정싸움은 우려스럽다. 안 대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낼 때 ‘예스까? 노까?(항복할래? 안 할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 대표의 태도가 고압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친일몰이를 넘어서는 전범몰이는 신박하다”고 비꼬았다. 이대로라면 안 대표가 독자출마하겠다 해도 이상치않다. 하지만 극적 타결 가능성은 남아있다. 안 대표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했던 것처럼 정권교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 사례를 들었으니 두고볼 일이다.물은 100℃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끓지않는다. 99℃에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시험도 1점 차이로 합격·불합격이 갈린다. 올림픽에서도 불과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바뀐다. 더 이상 길이 없다 싶을 때 한걸음 더 내딛어야 변화가 온다. 피겨요정 김연아는 훈련을 하다보면 근육이 터져버릴 것 같고, 숨이 목끝까지 차올라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올 때 그 순간을 참아낸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다.국민들은 내년 대선에서 여야간 멋진 승부를 기대하며 야권통합 논란을 지켜보고 있다. 야권이 대통합을 위한 마지막 1도를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2021-08-05

“졌잘싸”

코로나로 관중 없이 진행되는 도쿄 올림픽에서는 유난히 페어플레이 선수나 팀이 주목을 받는 일이 많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아예 언론에 노출되지 못하던 과거의 모습이 줄고 스포츠 정신을 살린 선수나 팀이 언론에 자주 부상한다.우리나라도 금메달리스트만이 스포트라이트 되지 않았다. 열심히 시합을 준비한 선수의 피와 땀과 눈물이 관중을 감동시켰다. 여자배구의 김연경 선수를 세계가 극찬한 것도 메달 획득을 염두에 둔 칭찬은 아니다.이번 올림픽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남자 럭비팀이 그러했다. 참가 12팀 중 꼴찌를 했으나 열악한 여건에서 처음 본선에 진출한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꼴찌’란 칭찬이 뒤따랐다. 유도 중량급의 조구함 선수가 비록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관중의 박수는 쏟아졌다.“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졌잘싸”라 부른다. 과거 한국 축구팀이 세계 강호를 만나 좋은 경기를 펼쳤을 때 졌지만 잘 싸웠다고 했던 것이 유래가 돼 이렇게 불리게 됐다고 한다. 예상을 뛰어넘어 잘 싸운 선수를 격려할 때 “졌잘싸”란 말을 자주 쓴다.전쟁에 비유한다면 계백장군이 국가 명운을 걸고 결사항전했던 황산벌 전투 같은 것을 “졌잘싸”라 부를 수 있다. 비록 백제는 망했으나 황산벌 전투의 계백장군 기상은 오랫동안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도 금메달보다 잘 싸운 선수를 격려하고 스포츠 정신에 충실한 이를 칭찬하는 문화가 정착해 기분 좋은 모습이다. 스포츠 정신이란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승부하는 것에 있다. 승자는 겸손하고 패자는 예의바른 태도를 보일 때 품격이 있는 것이다. 네거티브에 빠진 우리 정치권도 “졌잘싸” 문화를 본받으면 어떨까./우정구(논설위원)

202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