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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찔레꽃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찔레꽃 핀 길을 누나는 떠났네/ 동생들 남들처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떠나간 지 석 달 만에/ ‘좋은데 취직해서 몸성히 잘있단다’/ 적어 보낸 편지에도 소액환에도/ 찔레꽃 냄새가 묻어있었네// 달마다 부쳐 오는 우편환으로/ 중학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찔레꽃 냄새의 의미를 차츰 알 것 같았네/ 명절날 어쩌다 집을 찾은 누나의/ 어둡고 퀭한 표정에서 어렴풋이/ 그것이 슬픔의 냄새인 줄을 나는 알았네// 고등학교를 마치던 해 어느 봄날,/ 작은 보퉁이 하나로 돌아온 누나는/ 철지난 꽃잎처럼 시들어 갔네/ 기미와 황달로 누렇게 뜬 얼굴에/ 아침마다 하얗게 분화장을 하고는/ 나를 보고 쓸쓸히 웃어주던 누나// 누나가 묻혀있는 뒷산 언덕엔/ 해마다 오월이면 꿈결처럼 새하얗게/ 분화장한 얼굴로 찔레꽃이 피어/ 흐드러지게 흐드러지게 분냄새를 날리고/ 저승의 기별인 양 적막하게/ 온종일 뻐꾸기가 울고 있었네” - 졸시‘찔레꽃’아까시나무 꽃에 이어 찔레꽃이 한창이다. 아까시나무는 미국 동남부가 원산지이지만 찔레꽃은 우리나라 토종이다. 늦봄에서 초여름까지 들녘이나 산자락에 흔하게 피는 수수한 꽃이지만 향기는 어느 꽃 못지않다. 시골 소녀처럼 순박한 느낌을 주는 찔레라는 이름은 아마도 가시가 많아서 붙은 것 같다. 같은 장미과의 화려한 꽃들의 가시가 근접을 불허하는 도도한 느낌을 준다면 찔레의 가시는 초식동물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생존수단으로 보인다. 찔레꽃이 우리 정서에 깊이 와 닿는 것은 그것이 보릿고개의 막바지에 피기 때문이고, 그때쯤 적막하게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는 까닭일 것이다.보릿고개 언덕에 피던 찔레꽃은 우리네 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초등학교나 겨우 마치고 도시로 가서 ‘공순이’가 되어야 했던 누이들이다. 봉제공장 지하실에서 하루 열 몇 시간 재봉틀을 돌리거나, 제 또래들이 교복입고 통학하는 버스의 안내양이 되어 밤늦도록 졸음을 참아가며 번 돈으로 동생들 학비를 댄 누이들이다. 심지어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간 누이들도 적지 않았다. 소리꾼 장사익은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었다고 노래하는데, 그에게도 무슨 애달픈 사연이 있었는가 모르겠다.너무 뻔한 소리가 되겠지만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데에는 그런 누이들의 땀과 눈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당 몇 백 원의 노동으로 기업을 키웠고, 동생들 공부시켜 인재를 길렀다. 그야말로 산업역군들이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소위 ‘민주화운동’을 하였다는 운동권 대학생들은 오늘날 국가유공자 대접을 받으며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청와대의 요직에 앉기도 하지만,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공순이들은 이름 없는 민초로 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뿐이다.연암 박지원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면서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보고 통곡하기에 좋은 곳이라 했지만, 찔레꽃 피고 뻐꾸기 울면 나도 저 들녘에 나가 술잔을 기울이며 울고 싶어진다. 아프고 서럽게 보릿고개를 넘어온 이 땅의 모든 이름 없는 누이들을 생각하며.

2021-05-27

손정민 씨 아버지의 후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한강에서 숨진 대학생 한 명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강에서 친구와 놀다가 물속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 씨의 아버지는 슬프고 억울하고 후회가 되는 심정을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 올리고 있다. 더구나 경찰 조사가 미진해 한 달 새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면서 손 씨 아버지의 억장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사망의 원인도 모르는 채 외동아들을 화장하여 한 줌의 재로 끌어안을 때 그 아버지의 심정을 과연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그는 자기 심정을 블로그에 올리며 이미 떠나간 아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그 원인이라도 알아야 편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흐느끼고 있다. 최근에 올린 글이 특히 가슴을 두드린다.“왜? 라는 질문이 매시간 끊이질 않는다. 이사 오지 말 걸, 밤에 내보내지 말 걸, 원래 다니던 학교를 그냥 다니게 할 걸, 밤에 한 번만 더 연락해 볼 걸 하는 무한의 후회가 우리 부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라는 포스팅은 읽는 사람들에게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손 씨는 카이스트에 입학해 다니다 중앙대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이스트-의대 라인의 똑똑한 아들을 잃은 그 아버지의 슬픔과 후회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그런데 손 씨 아버지의 기사 댓글을 보면 응원과 위로의 글도 있지만 이러한 후회에 대하여 질타하는 글들도 있다. 무슨 카이스트를 계속 다니지 않은 것까지 후회하느냐 그만 놓아주라 너무 집착한다는 댓글들이다.필자는 손 씨 아버지의 심정을 100% 함께 하고 있다. 손 씨 아버지의 블로그를 읽으면서 문득 18년 전 태풍 매미로 떠난 딸아이를 생각하면서 당시 일기장을 뒤져 보았다.“하늘을 보고 원망도 해보고 땅을 보고 통곡도 해보았지만 넌 곁에 없구나. 네가 하늘나라에 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리고 언젠가 널 곧 보리라고 생각하지만. 대학을 다른 곳으로 보내 줄 걸.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바로 보내 줄 걸. 아빠가 출장 가지 않고 같이 시간을 보낼 걸. 그런 후회가 끝없이 흐르는구나. 아빠의 머릿속에는 “if….” 라는 가정이 매일같이 떠오르는구나. 어릴 때 항상 껴안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어야만 잠들었던 네가 이제 보듬어 줄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뼈를 녹이는 아픔과 살을 도려내는 고통으로 오늘도 지새운다. 딸아, 오늘도 잘 자고 내일 또 만나자.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빠가.”눈물의 일기장을 다시 보면서 손 씨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같은 경험의 모든 아버지의 심정은 같을 것이다. 손 씨 아버지의 후회는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떠나간 사랑에 대한 절절한 아픔이다. 그 후회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모의 절박한 심정이고 고통의 표현이다. 그것이 승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손 씨 아버지의 후회가 무엇일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걸 들어주고,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2021-05-27

보이면 먼저 섬겨라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필리핀의 유명한 부자 사업가의 아들 카풍카우라는 청년이 신학교에 들어갔다.학교에 가 보니 화장실과 욕실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 등 너무 불결해서 불만을 품고 학장에게 갔다.“학장님,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좀 치워주십시오. 깨끗하게 해주세요.”“알았네. 내가 다 알아서 조치할 테니 가 있게.”조금 뒤에 이 학생이 그 화장실에 가 보았다.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씻는 소리, 닦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부를 데려다가 청소하는 줄 알고 들어가 보니 학장님이 직접 청소하고 있었다.“학장님, 청소부 데려다가 시키면 될 텐데 왜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십니까?”“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라네. 교회나 신학교는 일을 보는 사람이 먼저 하는 걸세.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네.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잘못됐다고 보는 사람, 쓰레기를 보는 사람 하나하나가 청소할 때 우리 삶의 주변은 깨끗해질 수 있는 걸세. 자네가 부잣집 아들로 여기 와서 보니까 좀 불결하게 보이지 다른 사람은 별로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니 느끼는 사람이 일하면 이 학교는 깨끗해질 수 있는 거라네.”“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에제 18,31, 복음 환호송).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을 닮아야 할 우리에게 위의 복음 말씀은 매우 전형적이다. 즉,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라는 권고다.그 죄악의 실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적 행태를 들어 그 죄악의 실상을 고발하셨다. 이를테면 본래는 성냥갑 크기의 상자에 중요한 성경 구절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기도하기 위해 고안된 성구갑을 본 크기보다 더 넓게 만들어서는 이를 담는 옷자락 술까지 더 길게 늘여서 많은 성경 메모를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기도하는 척 한다든지, 잔칫집에서나 회당에서 높은 사람들이나 앉는 윗자리를 좋아한다든지,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거나 사람들에게서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버릇 등이었다.이러한 위선의 죄악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새 마음과 새 영으로 겸손하게 서로 섬기는 태도를 주문하셨다.아름다운 섬김의 비밀을 깨닫고 섬기다 보면 여러분의 주위가 180도로 바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보는 사람이 그것을 고치고 바꾸고 줍고 쓸 때, 나 하나가 회개하고 나 한 사람이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나눌 때 우리의 삶, 우리의 주변, 이 나라 모두가 행복하고 밝은 날이 올 것이다.

2021-05-26

언제나 이곳

양태순수필가바닷가를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물빛은 코발트로 반짝이고 밀려오는 물결은 다정한 속삭임처럼 정겹다.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와 비둘기가 엇갈려 날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갈매기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있다. 비둘기가 떼로 몰려서 먹을 것을 에워싸자 갈매기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뒷걸음을 한다. 제 터전을 내어준 갈매기의 눈빛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이곳도 세상의 흐름, 약한 자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장단을 맞추고 있나 싶어 심란하다.내게는 고향의 품과 같은 곳이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만난 바다는 신선한 놀이터였다. 수업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보다 여기가 좋았다. 친구들과 몰려와 파도에 발을 적시며 깔깔거렸던 시간이 셀 수도 없다. 바다란 이름으로 내주는 장소에서 실컷 걸으며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내 안에서 자라는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 편안하고 따듯했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물처럼 이어져 왔다.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친구가 살았던 단층 주택은 허물어져 새 건물이 솟았고, 자주 오르내렸던 야트막한 산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쪽저쪽 모두 높은 건물이 들어서 예전의 장소를 찾으려면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것도 확실히 여기였다가 아닌 이 어디쯤이란 추측만 가능하다. 걷는 내내 과거를 더듬었다. 아련하게 그때의 바다가 그립기는 하지만 시끌벅적하게 바뀐 지금도 나쁘지만은 않다.이곳에서 철의 정원이란 주제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축제가 열렸다. 관람객이 십만여 명이 넘었다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보다. 아직 전시되었던 작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작품을 둘러보며 작가의 덧붙인 설명을 읽었다. 예술가들의 고뇌와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동을 넘어 존경을 보냈다. 스틸은 딱딱하여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내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졌다.내 걸음을 오래 붙잡아둔 작품이 몇 있었다. 둥근 원 안에 꽃잎이 날아가는 듯,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이 표현한 ‘공(空)’이었다. 몸 안에 갇힌 욕심을 비운다는 의미였다. 숲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푸른 숲의 거인’ 앞에서는 숨을 멈췄다. 투명한 거인의 몸을 통과하는 햇살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느껴졌다. 또 한자 나무목을 형상화하고 그 위에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담은 ‘식물적 사유’였다. 나는 ‘식물적 사유’ 앞에서 복잡한 감정으로 서성였다. 식물적이란 말이 마음을 툭 쳤기 때문이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구부리기 어려운 소재로 유연한 사고를 말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식물적 사유란 자신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두루 듣고 마음을 열어 모나지 않는 생각, 나와 남을 아우르는 다양한 생각을 키우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채찍질하는 듯해서 찔끔했다. 나는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러 왔다. 말을 앞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앞뒤 돌아보며 각도를 달리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저 멀리 해안선을 끼고 둥그런 산이 보인다. 부지런히 달려온 파도가 해안에 입 맞추며 하얗게 부서진다. 좀 전에 본 ‘푸른 숲의 거인’이 성큼 걸어 나와 파란 바다를 몸 안에 들이는 듯하다. 담담한 몸짓에 햇살이 지나가며 투명한 꽃송이가 피었다 스러지는 찰나의 광경이 눈에 담긴다.나만의 신화적인 이야기 하나쯤 품고 싶은 날이다. 푸른 바다가 어둠으로 물드는 밤이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미소년이 맑은 트럼펫을 불어준다. 차르륵 차르륵 고운 모래 쓸려가는 반주에 맞춰 갈매기 감춰둔 춤 솜씨 너울너울 펼치다가 웃으며 잠이 든다. 그리하여 이른 새벽에 바다를 찾는 부지런한 이들이 갈매기 낯선 모습을 보며 소소한 근심을 웃음으로 털어버리는 해변을 꿈꾼다. 생각만으로 가슴에 깃털이 자라는 것 같다.바다는 바다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있어 더욱 좋다.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가 타래진 마음을 물결에 풀어내었다. 삼십 년 전에 철없던 소녀를 위로해주었던 그 바다, 오늘은 중년이 된 나를 나무란다. 책망을 들으면서도 포근한 이곳은 언제나 내가 달려올 곳이다. 사소한 이유를 핑계로.

2021-05-26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

마음을 내고 때를 잘 맞춰야 볼 수 있는 나무가 있다. 다름 아닌 때죽나무다. 헛걸음 한 번 한 뒤 다시 날을 잡아 포항시 흥해읍 도음산으로 향했다. 한참 오르고야 개울가 중턱에 자리 잡은 때죽나무꽃을 만날 수 있었다.때죽나무는 특이하게 꽃이 아래를 향해 핀다. 종처럼 생긴 하얀 꽃이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다섯 개의 꽃잎을 살포시 펼치면 그 가운데에 노란 수술 열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때죽나무꽃은 띄엄띄엄 감질나지 않게 한 무더기씩 모여 핀다. 마치 소곤소곤 재잘대는 오월의 해맑은 소녀들 같다. 열흘 남짓한 짧은 꽃이 피었다 지면 이어서 때죽나무는 열매를 맺는다.때죽나무 잎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다. 갸름한 잎에 잎맥이 있고 잎자루가 적당한 길이로 달려 여느 나뭇잎과 비슷하다. 만약 나뭇잎을 공장처럼 똑같이 찍어낸다면 자연은 얼마나 단조롭고 심심할까. 다행히 조물주는 아주 조금씩 차이를 두어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잎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마다 얼굴, 길이, 모양, 굵기, 방향 등이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다.꽃이 땅을 바라보고 있어 때죽나무 아래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게 된다. 이곳에 오래 서 있는 나무는 땅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무는 저기 흙 속에서 재잘대는 흙의 소리에 귀를 열어 둘까, 아니면 가지에 물줄기를 밀어 올리느라 애쓰는 것들에 대하여 기도를 내려보낼까. 가끔은 다리가 아파 힘이 들 때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퍼질러 앉아 쉬고 싶기도 하겠다. 나도 땅을 향하여 몸을 낮춰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긴다.봄꽃이 있으면 가을꽃도 있다. 키 큰 나무가 있으면 작은 나무도 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나무가 있고, 푸른 가지만으로 제 역할을 하는 나무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봄에도 꽃을 피우고 가을에도 꽃을 피우고 싶다. 남보다 내가 우뚝 솟길 원해서 기를 쓰며 오르고 또 오른다. 그러다 감당 못 하고 추락해 구겨지고 부서지는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때죽나무처럼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나만큼의 키로도 만족하며 살아가면 추락도 없는 것을.생장만 한다면 때죽나무는 아마도 몇십 미터까지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생장을 멈추기도 하며 겨우 7~8미터 높이에 머문다. 몸피는 한 뼘에서 두 뼘 정도의 굵기로 나무치고는 그다지 넓지 않은 편이다.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쓰임이 많지 않지만, 나무 자체의 매력을 뒤늦게 인정받아 꽃이 아름다운 정원수와 도시의 가로수로도 인기가 있다.때죽나무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물고기를 떼로 죽인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 물고기를 잡을 때, 때죽나무 열매와 잎을 돌에 찧어 흐르는 물에 풀어 놓으면 물에 닿은 물고기가 잠시 몸이 뻣뻣해진다. 아가미의 움직임도 멈춘다. 그러면 떼로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어독을 이용한 방법으로 조상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였다.어머니의 어머니도 때죽나무를 이용해 빨래했다. 논과 밭에서 일한 아버지들의 옷은 켜켜이 묵은 때가 쌓여 있다. 어머니들은 개울가에 모여 빨랫방망이로 두들겨 패도 찌든 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때 때죽나무의 잎을 따 툭툭 짓이겨 물에 풀어 놓으면 힘들게 빨랫방망이를 두드리지 않아도 때를 쉽게 뺄 수 있다. 농사일에 지친 어머니들의 노고를 덜어준 때죽나무는 그래서 우리의 정서와 친근하다.이순혜수필가도음산에는 때죽나무 군락지가 있다. 개울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왼쪽에 나무 테크가 놓인 길이 있다. 그 길 따라 산 중턱쯤에 오르면 때죽나무 군락이 있다. 산 위에서 나는 꽃향기를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 또한 없다. 앵앵거리는 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내준다. 향기가 피워내는 오솔길 따라 걸으면, 숨이 막 차오를 때쯤 하얗게 핀 꽃 세상을 마주한다. 나뭇가지는 햇볕 따라 몸을 뒤트는지 양지바른 곳에 벌써 하얀 꽃들이 흐드러졌다. 아마도 오늘의 향기는 몇 날은 갈 것 같다.산에서는 한 발자국 걷고 두 발자국 쉬기를 되풀이하는 게 좋다. 나무와 나란히 서서 쉬면서 고개를 들어본다. 나무들 사이로 설핏 비치는 햇살이 꽃에 닿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지들이 살랑거리며 맞장구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위로 나비, 벌들이 드나드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 오래도록 머물며 오월의 정취를 만끽했다.꽃들의 잔치는 산 아래에도 있었다. 떼로 모여 있는 유치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무더기 무더기로 핀 때죽나무에 살포시 가 닿는다.

2021-05-26

이재명과 윤석열의 운명적 대결 구도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재명과 윤석열은 수차례의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흔히 여론은 급변하기 때문에 그 결과의 예측은 어렵다지만 대체로 대선 1년 전 여론이 적중했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여야의 후보로 확정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한 치 앞을 예견하기 힘든 대선 정국이지만 이들은 결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명은 민주당 후보의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윤석열 역시 그의 입당과 관계없이 압도적 선두를 지키고 있다. 대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두 사람의 대결구도를 예비 점검해 본다.인생 역정에서도 두 사람은 비슷한 측면이 많다. 이재명은 불우한 청년 시절 노동현장 참여와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했다. 윤석열 역시 고시의 실패와 좌절 끝에 뒤늦게 합격해 검사가 됐다.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시장을 거쳐 연이어 경기지사에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윤석열 역시 검찰 인사에서 소외되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사람이다. 두 사람은 공히 당직과 국회의원직을 거치지 않은 대선 후보이다. 이러한 단순한 경력 구조는 계파와 진영에 구속되지 않는 장점과 조직력의 한계라는 단점도 내포하고 있다.두 사람이 표출하는 간결한 정치적 메시지도 공교롭게도 유사한 측면이 많다. 두 사람의 국정 과제와 비전에 대한 표출 능력도 흡사하다. 이재명은 선거 캠프 격인 ‘성공 포럼’(성장과 공정)을 출범시켰다. 그의 국정 구상을 상징화한 것이다. 윤석열 역시 ‘정의와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다 지난주에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민 연대를 창립시켰다. ‘공정’ 사회지향은 두 사람의 공통분모이다. 이재명은 ‘기본 소득’이라는 이슈를 선점했다면 윤석열은 엄격한 법치의 포청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여하튼 이재명과 윤석열의 메시지는 비교적 간결하고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는 것이 현실이다.대선 정국에서 두 사람이 극복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재명은 정치적 판단이 빠르고 신속한 대처 능력으로 시원한 사이다를 연상시킨다. 비상한 순발력, 결기까지 갖추어 정치 쟁점을 선점하는 능력은 인정되지만 언행이 불안하다는 비판적 평가도 따른다. 윤석열의 과묵한 표정과 뚝심, 간결한 정치 메시지 전달력은 그의 소신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검찰 수장 경력만으로 대선 후보로 적합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재명은 자신에 대한 골치 아픈 송사가 완전히 해소되었지만 윤석열은 장모의 가족 소송이 완전히 해명될지는 의문이다.현재로서는 이재명이 여권의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윤석열은 후보 선호도는 높지만 정당의 지지 지반이 어디인지 분명치 않다. 그의 선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국민의 힘 입당, 제 3 지대 후보, 야권 후보의 단일화 어느 것 하나 평탄한 길은 아니다. 이재명과 윤석열은 여야의 공천을 받아 양자 대결로 갈 것인가 아니면 3당의 후보로 다자 구도에의 선거를 치를 것인가. 앞으로의 전개 양상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대선 정국에는 돌발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9월의 민주당과 12월 국민의 힘의 경선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자.

2021-05-26

따뜻한 경북교육 “대안학교 무상급식비 지원”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021년 5월이 끝나려 한다. 비록 코로나19로 많은 것에 제약이 있지만, 그래도 5월은 5월이다. 가정의 달, 감사의 달 등 5월을 수식하는 말들만 생각해도 마음이 따뜻하다. 5월의 따뜻함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선물로 전달되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기를 희망한다.비록 지구가 사람들로 인해 파멸의 길로 가고 있지만 지구의 희망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의 희망일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감사, 배려, 이해 등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데에 필요한 힘의 원천이 되기를 소망한다.이 소망을 현실로 이루는 주체 역시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꼭 이루고야 마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그 능력 또한 따뜻한 마음에서 온다. 인류를 고통에서 구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코로나19라는 절체절명의 암흑기를 탈출하는 데에 필요한 백신을 만들었다.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코로나19 백신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백신이 있다.그것은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 백신이다. 그 마음 백신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인류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야 백신으로 막으면 되지만,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이나,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막을 백신은 아직 없다.긍정의 힘에 대해서는 굳이 다른 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그 힘을 대표하는 표현이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이다. 긍정을 포괄하는 말이 따뜻한 마음이다. 우리가 따뜻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분명 우리는 긍정의 힘 그 이상의 힘을 얻을 것이다.사회 모든 곳에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만, 특히 더 필요한 곳이 학교이다. 왜냐면 학교는 지구의 미래인 학생들의 마음을 키우는 곳이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떤 마음을 기르느냐는 지구 운명과 직결된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할까!민식이 놀이 등 5월에도 교육계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사건 사고들로 가득하다. 이런 교육계에 백신만큼 반가운 따뜻한 희망 소식이 있다. 바로 대안학교 무상급식비 지원 소식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참 오래 걸렸다. 대안학교 학생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학생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대한민국 학생의 범주 밖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경상북도교육청의 용단으로 드디어 대안학교 학생들도 대한민국 학생의 길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당연한 일을 함에 있어 반대도 참 많았다. 그래도 아직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듯 반대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설득시켜 찬성으로 만든 영웅들이 경상북도교육청에도 있다.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희망을 준 경상북도교육청의 따뜻한 희망 바람이 희망이 무너진 우리 교육계의 희망 재건에 선봉이 되기를 기원한다. 또 꼭 그렇게 될 것임을 필자는 믿는다.

2021-05-26

그렇게는 대학이 살아나지 않는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대학은 죽었다. ‘벚꽃피는 순서대로’ 죽어갈 것이 아니라 우리 대학은 이미 죽었다. 막상 닥친 문제들을 놓고 보면 딱하기는 하다. 폐교위기에 봉착하여 교직원들에게 체불 임금이 쌓여간다니 어쩌나도 싶다. 청산과 파산 소리까지 들리니 큰일이 났구나도 싶다. ‘한계대학’이라는 새로운 단어에는 대학들이 만난 어려움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예견해 오던 ‘인구격감’ 사태가 실제로 학령인구 연령층에서 전개되면서 대학은 신입생충원에 벽이 생겼다. 대학신입생 모집정원이 고교졸업자수 보다 많아졌다.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므로, 대학정원을 채우기는 갈수록 힘에 부칠 터이다. 그럼에도 ‘입시지옥’ 현상이 개선되지 않는 현상이 신기하기는 하다.모든 게 돈 걱정이다. 대학의 위기라지만 결국은 ‘재정위기’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학생 수가 격감하여 대학 수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게 아닌가.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어 체불임금이 늘어가면 학교경영이 어려워지고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한계대학들로 내몰려 재산청산에 나서 학교재산을 처분하고 법인이사진 직무정지와 함께 폐교수순을 밟는다. 돈 때문에 생긴 문제를 돈으로 해결해 보려하지만 결국 돈이 모자라 학교는 사라진다는 게 벌어질 일의 전부가 아닌가. 대학을 걱정해야 하는데 결국 돈 걱정에 빠진다. 대학이 무엇이며 학생들이 무엇을 하러 대학에 가고 교수들이 무슨 까닭에 대학에 모이는지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다. 대학이 ‘교육’기관이었다는 자각은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대학의 본질을 고민하지 않으므로, 대학은 이미 죽었다.대학의 문제는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구감소를 비롯한 사회구조적 문제, 대학입시제도를 포함한 시스템의 문제, 초중고등학교의 공교육기반 정비문제, 대학교육의 필요를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인식의 문제 등 고민해야 할 가닥이 여러 겹이다. 학생수 감소와 대학수입 격감과 함께 닥친 재정위기에만 천착한 제도정비와 입법고민은 대학문제의 본질을 개선하지 못한다. ‘대학교육’을 초점삼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대학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 첫 페이지부터 다시 고심해야 한다. 재정문제에 지혜를 모음과 동시에 대학의 본질에 관한 적극적인 고민이 없으면 대학이 역동성을 회복하는 일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 본질을 외면한 돈문제 고민은 허망한 제자리뛰기만 반복하게 할 터이다.대학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대학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강의방식이 바뀌고 연구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 대학구성원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부터 교육과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일까지 모두 변화해 간다. 등록금의존도에 충격적일 만큼 대학의 수익구조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교육부와 관련 기관들도 대학이 가진 문제들을 보다 거시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돈으로 대학교육을 건질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육을 살려야 대학이 산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5-26

추억의 싸이월드

싸이월드는 지난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해 10년 만에 이용자 3천200만 명을 모아 전 국민 미니홈페이지 열풍을 불러일으킨 ‘인스타그램의 조상’ 격인 토종 SNS를 가리킨다.2000년대 초반 소셜미디어 시대를 연 싸이월드는 PC 기반에서 모바일 시대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부활을 노렸으나 실패했고, 2019년 10월에는 폐쇄됐다. 싸이월드가 경영난으로 서비스를 중단했을 당시 기준 회원 수는 약 1천100만명, 이 가운데 도토리를 1개 이상 보유한 회원 수만 276만여 명이었고, 이들이 남긴 도토리 잔액만 약 38억4천996만원이었다. ‘도토리’는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를 꾸밀 스킨 또는 아바타를 사거나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을 구입하기 위한 사이버 머니로 싸이월드 운영 당시 1개 100원에 판매됐다.그랬던 싸이월드가 오는 7월 서비스 재개를 앞두고 25일부터 도토리를 전액 현금으로 환불해주고 있다. 싸이월드 운영권을 갖고 있는 싸이월드제트는 25일 오후 6시부터 환불에 나섰다. 환불절차는 싸이월드 과거 이용자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자신이 가진 도토리 개수를 확인한 후,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자신이 가입한 개인계좌로 현금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당시 문화상품권이나 각종 마일리지로 충전한 도토리도 환불 대상으로 포함됐다. 또 ‘싸이월드 코인’으로 바꿔주는 ‘진화된 도토리’를 선택할 경우 기존 잔액의 2배를 코인으로 바꿀 수 있어 싸이월드 과거 이용자들이 묵혀둔 만큼의 이자를 챙길 수 있다.새롭게 부활하는 추억의 싸이월드가 과연 ‘싸이월드 감성’으로 거듭날 수 있을 지 흥미롭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26

노마스크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두 정상의 마스크 벗은 모습이다. 이른바 노마스크 회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171분 동안 마주한 노마스크 정상회담을 두고 매우 기분 좋은 일로 소회를 밝혔다.두 정상의 노마스크 회담은 백신을 맞으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미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세계인에게 백신접종의 중요성을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기도 했다. 또 코로나19에 대한 자신감을 은연중 드러낸 모습이라 하겠다.얼굴의 3분의 2를 가리는 마스크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자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을 멀게 했다는 지적도 자주 나왔다. 마스크 쓰고 두 눈만 드러낸 채 상대방을 바라보면 상대와 마음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 얼굴의 표정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일종의 표현이다. 한미 두 정상의 노마스크 회담은 마스크를 벗은 모습 자체로 웃음과 여유를 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미국의 언론들은 최근 백신접종을 맞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면서 미국내 립스틱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립스틱 가운데 마스크를 써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제품과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 제품들이 인기라 했다.마스크를 벗는 나라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아직 노마스크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우리의 처지가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코로나로 아동들의 마스크 쓰기가 그들의 언어 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마스크를 쓰다보면 소통 기회가 줄면서 성장기 어린이의 언어발달 능력도 떨어뜨린다는 내용이다. 노마스크에 대한 염원이 더 커지는 결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5-25

집을 수리하면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중량 목구조로 신축한 지 어언 7년. 벽면이 들뜨고, 그 사이로 습기 들어오고, 유리창 없는 베란다에는 비바람으로 물이 고이기도 한다. 손을 볼 때가 온 것이다. 와중에 참새들이 극성하여 지붕 틈새마다 둥지 틀고 새끼 키운다고 야단이다. 수소문한 끝에 정직하고 성실한 시공자를 만나게 됐다.“전체적으로 최소 2천500에서 3천 정도 생각하셔야 합니다.”“네?! 승용차 한 대 값이네요!”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애초 집을 지으면서 신중하게 숙고해야 할 것인데, 워낙 단과반이 체질이라 속도전으로 임한 것이 화근이다. “저는 야맵니다!” 그 말 한마디에 훅 가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다. 시골에 목조주택을 신축하는 일은 적잖은 배포와 과단성이 필요하다. 나는 전광석화처럼 밀고 갔다.짜장과 짬뽕 사이의 선택이 어려운 것처럼 건축업자 선택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을 단박에 던져버리고 “잘해봅시다!” 한 마디로 일사천리 밀어붙인 것이다. 뭐, 그렇다고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농촌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행복은 빼놓지 않고 향수(享受)한 까닭이다. 하지만 집도 사람처럼 늙는다.늙고 낡아가는 집을 방치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노자는 그것을 가리켜 “합포지목 생어호말(合抱之木 生於毫末) 아름드리나무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이번에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손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여러 근심 물리치고 “해봅시다!” 하고 수리를 결정했다.꼼꼼하고 매사에 치밀한 성품의 박 대목은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을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마당의 초목 재배치까지 일러준다. 내가 가꿔온 마당을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것이어서 나로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사 와서 심은 여러 나무며 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그것을 제때 손보지 않은 탓에 혼란하다는 것이다.집을 손보면서 집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누추해지기 전에 요모조모 뜯어보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도 누추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만큼 앞서서 질주하는데, 나만 낡은 것을 고집함도 희극적인 일이다. 수구와 보수가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시대착오적인 것을 전통이라고 우기기 때문이다.유연한 자세로 대상을 보고, 변해가는 세태를 주목하면서 나의 삶과 자세를 반추해보는 일은 늦게 늙는 기본이다. 나이 들어서도 천방지축 시대를 앞서가려는 것도 우습지만, 앞장선 사람들을 꽁무니에서 손가락질하는 것도 차마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21세기에 가마나 당나귀 타고 나들이하겠다는 것과 무에 다른가?!집수리가 말끔하게 끝나면 마당 정리는 스스로 감당하려 한다. 방아쇠 손가락만 아니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습하고 더운 주말 오후가 서서히 저문다. 창밖에 새 운다.

2021-05-25

서른 즈음에게

스물 한두 살 때 쯤, 그러니까 일주일에 술을 여덟 번(하루에 두 번 먹던 날 도 있었으니까)쯤 먹던 개망나니 시절, 학교 과방 소파에 누워 노닥거리고 있는데 후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자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고 난 후, 이전 세상을 살았던 위대한 영혼들처럼 스스로도 가장 빛나는 젊은 시절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시절 말이다.“형, 형은 정말 서른까지만 살 것처럼 사는 것 같아요.”“그래? 그럼 그러지 뭐.”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서른이 아주 많은 나이처럼 생각됐고, 서른 살 이후이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서른은 저만치 멀고 시간은 그토록 느리게 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갈 거라는 건 몰랐다. 지독히 안 가던 하루가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흐르더니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서른이 넘어 있었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다를 바 없었다. 그걸 어린 시절엔 몰랐다.커트 코베인은 스물일곱에 죽었다.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윤동주, 이상. 그들보다 좀 더 산 나는 별다른 업적 없이 팔리지도 않는 것들 몇 개 만들고 허송세월 하고 있었다. 공부는 했으나 당장 아는 게 없고, 사랑은 했으나 당장 아무도 없는 나의 서른. 그래서 그 해에 나온 내 앨범 제목이 ‘설은’이었다. 낯설고, 설익고, 서러운 나이인 것 같아서.시간은 조금 더 흘러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다. 설문조사 같은 걸 할 때 이십대 칸 옆의 삼십대 칸에 체크를 하는 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어느 날 서른을 앞둔 가까운 동생 하나와 소주를 한 잔했다. 돌아보니 후배의 질문에 답하던 시절로부터 10년이 훌쩍 흘러 있었다.“형, 내가 이제 곧 삼십대야.”“그러네. 좀 조급해지나?”“그런 건 아닌데. 어때? 삼십대는?”나는 갓 서른이 되었던 때었다면 하지 못했을 대답을 했다.“재밌어. 난 이십대보다 더 좋아.”진심이었다. 서러운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삼십대는 의외로 이십대보다 재미있다. 그때처럼 온갖 것들이 신기하지는 않지만, 그대신 안목과 취향이라는 게 희미하게나마 생겼다. 재밌는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알고 찾아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또 생각해보면 이십대 내내 나는 얼마나 궁핍했는가.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만 원 짜리 한 장을 술값 계산하는 친구에게 쥐어주고 지하철 개찰구를 몰래 넘어가다 붙잡혀 과태료 통지서를 끊어야 했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처럼 나와 우리들의 이십대는 곤궁하고 서글펐다.지금이라고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지지리 궁상을 떨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연애는 또 어땠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김광석 노랫말대로라면 나는 이십대 내내 사랑 한 번 못 해본 가련한 인간일 것이다. 안 아픈 사랑이 없었고 그 앞에 안 서툰 순간이 없었다. 삼십대의 그것은 그때처럼 좌충우돌하는 맛은 없지만 그보다는 평화롭고 때때로 못지않게 뜨겁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슬픈 일은 아닌 모양이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서른이 서러웠던 것은 단지 서른쯤에는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른이 스스로 무언가 이룰 수 있기나 한 나이인가. 십대까지의 내 삶을 온전히 나의 인생이었다고 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그저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착실하게 십대를 마친 뒤에 맞이한 이십대는 비로소 나의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일 뿐이다. 그때 이미 무언가를 이룬 비범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그들이 별난 것이지, 누구에게나 시작은 넘어지고 깨지는 경험의 순간일 뿐이다.서른을 눈앞에 둔 그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이십대보다 좋은 삼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이따금 고개를 드는 내 조급함에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서두를 것 없다고. 지금부터라고.

2021-05-24

소설 쓰기의 즐거움

왜 소설을 쓰는가? 그 질문에 굳이 답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정말 그럴까? 나는 소설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깜박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쓴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대체 나는 왜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가.’문학을 전공하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문학작품이 좋아서 글쓰기를 시작했던 아이들은 대학이라는 문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나는 그들을 무사히 졸업시키고 대학에 안착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안고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한 글쓰기를 가르친다. 마음 한구석에서 양심이 소리친다. 이게 옳은 것인가? 제멋대로 튀어 나가는 아이들의 문장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 다양한 생각을 기성의 틀에 욱여넣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일까? 학생들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하다.나 역시 대학에서 문학을 배웠다.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했고 위대한 작품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그렇다면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독자는 진정 자의적으로 문학 작품을 선택하고 있는가?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가 보인다.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그쪽으로 발길을 향하게 된다. 책의 겉표지는 화려한 작가의 약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이 작가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모두가 알 만한 유명인이 이 작품을 얼마나 감명 깊게 읽었는지. 그것은 책을 비호하고 있는 굉장한 껍데기이며 선택을 종용하는 목소리다. 신춘문예 역시 그런 시스템이다. 심사에서 운 좋게 선택받은 사람이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수많은 문학상은 문단에 안전하게 편입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세상에 쏟아지고 가지각색의 서사가 범람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글 자체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는 과연 몇이나 될까?등단을 하고 몇 년간은 그 사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 역시 그러한 시스템의 수혜자였으며 내게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문예지에 글을 발표하고 나면 악몽을 꿨고 작은 지적에도 몸을 움츠렸다. 나는 더욱 자신을 채찍질했다. 더 깊이 있는 사유를 해야 해. 적확하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써야 해. 독특한 소재를 찾아서 다층의 서사를 구축해야 해. 그래야만 인정받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어.그때의 나는 단조로운 삶과 미진한 재능을 탓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았다. 소설 쓰기의 괴로움은 소설 쓰기만으로 잊을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예술이라는 가치보다는 내 삶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다니.그러다 한 가지, 너무나 단순하고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 고통의 과정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단순한 재미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컴컴한 미로 속으로 기꺼이 발을 내딛는 욕망이나 충동에 가깝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내 안에 솟아오르는 호기심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나름의 답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 과정을 기록하는 지난한 행위가 쓰기다. 글을 쓰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것. 이후에 남는 건 일련의 발자국이다. 작업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목소리로 박제된다. 시간은 흐르다가 끝나기 마련이지만 소설의 서사는 차원의 벽을 넘어선다. 그러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과거의 망령에 조언을 듣고 미래의 인류와 소통하는 일, 상처를 입고 치유 받는 일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작업에 매료되었고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흔쾌히 선택했다.이것은 비단 소설 쓰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삶의 지점을 향해 간다. 가끔은 이것이 옳은 방향일까에 대해 의심하기도 한다. 내게 재능이 있을까. 온 힘을 다해 당도한 끝이 허무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허공으로 발을 내딛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즐거움’이라고 이름 붙이자. 그 경쾌한 단어를 원동력 삼아서 어리석고 부당한 세계를 향해 기꺼이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1-05-24

자식의 부끄러운 사랑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정철 ‘훈민가’중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에 이어 ‘어버이 날’이다. 3·4대가 한 집에 모여 살던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에 모자가정, 나 홀로 가정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모두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기도 힘든 상황에서 효행이 쉽지 않다.큰아들은 포항에, 작은아들은 서울에, 큰딸은 부산에, 작은딸은 대전에,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님께 한 번 더 찾아뵙고 한 번 더 전화를 해야 한다. 자식들은 알아야 한다. 좋은 옷 사드리고, 용돈 많이 드리고, 맛있는 음식 사드리고,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하면 ‘효도를 잘 한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효도를 돈으로 사는 것이다.물론 많은 용돈,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부모님은 자식들의 행복과 편안함 그리고 안위를 더 궁금해 하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바로 전화 한 통을 하자. 퇴근해서 한다고 미루지 말고 바로 전화를 하자. 부모님은 자식 걱정에 오늘도 늙어 가신다.코로나19가 2년째 계속되면서 마스크 시대, 줌의 인터넷 비대면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모임 금지라는 희귀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어렵고 힘겨운 전쟁 상황 속에서 가족이 같은 지역, 같은 나라 안에서 살고 있다면, 수시로 만날 수 있다는 평범한 일상이 최고의 행복이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정상이 비정상으로 느끼는 요즘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종이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는 삶의 이치 앞에서 그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이 최고의 일이다.그러니 이번 가정의 달 5월에는 특별히 부모님께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랴’ 글처럼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섬길 일 하는 효도하고 부모님 가신 후에 눈물을 흘리는 회한의 아픔은 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이 10년 만에 배 이상 늘어 점차 줄어드는 세계 추세와는 반대인 실정이다.부모님께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해야 한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 제사상에 과일에, 고기에 평소 즐겨 드시던 것을 차려 놓고 효도라고 생각하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살아계신 부모님께 자식의 도리를 똑바로 해서 후회하는 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부모님께 효보다 크고 값진 것이 없을 것이다. 부모님과 대화가 필요하고 자식과 손자의 얼굴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가장 큰 불효에 해당된다. 부모님께 설과 추석, 생신만 챙기는 현실이 부끄럽다.5월 가정의 달이 다 가기 전에 지금 바로 전화해서 ‘사랑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바로 부끄러운 자식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2021-05-24

듣는 책, 읽는 그림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많은 풍경을 접하게 된다. 초록의 잎새가 일제히 손 흔들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오리가 몸짓하며 금계국 노란꽃의 반김이 환호처럼 보인다. 차르륵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와 두 바퀴가 굴러가는 윙윙거림,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정겹고 시원하기만 하다. 거기에 한 쪽 귀로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게 되면 기분은 때에 따라 날아갈 듯 신나기도 한다.그렇게 자전거 타는 재미(?)에 빠져 즐겨 타면서 올해 들어서는 이어폰으로 음악 대신 책을 듣는 쏠쏠함을 누리고 있다.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책을 귀로 듣다니?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책 읽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아닌데,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정말 책을 읽듯이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유익할까?이른바 귀로 듣는 책, ‘오디오북’의 등장 덕분이다. 오디오북이란 책을 음성으로 낭독해 눈이 아닌 귀로 듣는 디지털 콘텐츠이다.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비단 책만이 아니라, 방송이나 뉴스, 학습강좌 등의 왠만한 내용도 거의 모두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보거나 들을 수 있다. 기술의 혁신과 문명의 진보가 갈수록 인간생활에 이로움을 더해주고 있다.바쁜 현대생활에 쫒겨 책을 가까이하기 힘들어지면서 독서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에 오디오북 같은 새로운 독서방법이 주목받고 있다.특히 독서시간이 부족한 바쁜 직장인들에게 최적의 독서방법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시대에 비대면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다.다른 일을 하면서도 책의 내용을 들을 수는 오디오북은 시간과 장소에 제약없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며, 배경음악이나 효과음 등을 적당히 넣어 극적인 효과까지 낼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출퇴근이나 청소, 빨래, 운동, 식사 등을 하면서 청각적인 독서를 하며 상상의 나래를 무한정 펼 수 있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필자는 주로 ‘책 읽는 다락방J’가 들려주는 음성을 즐겨 듣는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라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등의 에세이를 부담 없이 들으며 페달을 밟다 보면, 30여분의 출퇴근 시간이 짧게만 여겨진다. 그래서 간혹 퇴근길에는 연일이나 대송, 강동, 안계 등지로 돌아오곤 하면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담(詩談)을 들으며 들꽃의 향기를 맡기도 하고 들판의 정경을 시처럼 읽기도 한다. 또한 102세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와 ‘선하고 아름다운 삶’ 등의 인생강연을 들으며 내 삶의 노른자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한다.요즘은 이처럼 보고 읽는 것과 듣고 그리는 감각의 영역이 서로 넘나들면서 융복합적인 콜라보로 다양한 콘텐츠를 연출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다채로운 멀티미디어 문화를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즐길 거리’를 취향이나 목적에 맞는 아이템으로 두루 활용하고 접목하면 자신의 삶에 크고 긴요한 도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1-05-24

땅 속 유적의 씨앗으로 엿보는 신라인의 정신문화

안소현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우리는 반려식물을 가꾸고, 꽃다발을 선물한다. 봄꽃놀이를 즐기며, 숲에서 휴식과 위안을 얻는다.이렇듯 식물은 우리에게 정신적 풍요를 선사한다. 땅 속 유적에서 발견되는 씨앗과 열매를 통해 옛 사람들은 어떤 식물을 자원으로 이용했는지 알 수 있다.선조들의 옛 생활상을 전시하는 박물관에서 불에 탄 쌀이나 도토리를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적에서 발견되는 식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먹거리 혹은 도구로 만들어 쓰는 실용적인 쓰임 외에도 옛 정신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성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신라의 왕이 대대로 기거했던 왕궁인 월성(月城·사적 제16호). 해자(垓字)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외부와의 경계로 삼기 위해 성벽 외곽에 땅을 파 만든 도랑이다.월성 해자 발굴조사에서 확인되는 과거의 씨앗 중에, 신라인의 머릿속, 마음속 식물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지금까지 월성 해자가 조사된 구역에서만 2만개가 넘는 가시연꽃의 씨와 다양한 종류의 수생식물 씨가 출토됐다. 약 1600년 전에 가시연꽃을 비롯한 수생식물 군락이 해자에 자랐음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해자의 수심과 주변 환경이 어떠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가시연꽃은 오래된 연못이나 저수지에 주로 자라는 한해살이 식물이고, 지름이 1m 이상으로 크게 자라는 가시투성이의 둥근 잎을 수면에 띄우고 생활한다. 식물체 전체가 가시로 덮여 있고, 여름에는 자주색의 꽃을 피우는 가시연꽃은 사진 촬영의 소재로도 인기가 높다.가시연꽃의 씨는 검인(芡仁)이라 하여, 왕실 제사를 지낼 때의 제사 음식으로 올려졌다. 가시연꽃은 한 개의 열매 안에 100여개의 많은 씨가 영글어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고도 한다.또한 신령에게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징표로서 땅과 물에서 난 다채로운 식재료를 바치는 의미에서 못(澤)의 산물로서 진헌된 것이라 여겨진다. 옛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국가제사에 이용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신라시대의 상황은 문헌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필자는 얼마 전 절기 상 춘분(春分)날, 신라의 김(金)씨 임금님께 제를 올리는 행사인 춘향대제를 취재하기 위해, 경주 숭혜전(崇惠殿·경북문화재자료 제256호)을 다녀왔다.전통을 계승하려는 참봉단의 정성과 노력으로 특별히 올해의 제사에는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는 검인(가시연꽃 씨), 능인(마름 열매), 진자(개암나무 열매)를 제사 음식으로 올리는 뜻 깊은 자리였다.월성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씨앗이 1600년 전의 옛날에도 신라 임금의 제사에 이용됐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해자에 남겨진 씨앗은 왕궁에서 심고 가꾸어 이용되었던 식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아마 신라인들도 가시연꽃의 씨를 정성껏 채집해 선대의 임금을 기리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을까.자(紫)색은 신라인에 있어 특별한 색이었다. 왕족과 신분이 높은 귀족들만이 자색의 관복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귀한 색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왕궁의 못에서 자주색의 꽃을 피우는 가시연꽃에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또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자료는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은 잣이다.보통 우리가 먹는 잣의 부분은 딱딱한 껍질 속의 종자에 해당한다. 먹고 난 후의 남겨진 흔적이라면, 딱딱한 씨껍질을 깨부순 파편의 형태로 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해자에서는 같은 위치에 정교하게 구멍을 뚫은 잣 껍질이 여러 개 확인됐고, 끈 같은 것에 꿰어서 이용한 무엇인가로 추정됐다. 장식용이었을까, 아니면 염주 알처럼 이용된 것일까.귀한 식재료를 먹지 않고, 가공하여 다른 어딘가에 이용했을 신라인의 의도가 궁금한데, 그것을 바로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지금도 필자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는 잣 껍질을 꿰어서 쓰는 풍습이 있을지, 또 옛 문헌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찾아보고 차차 밝혀나가야 할 부분이다. 잣은 하나의 솔방울에 수많은 씨를 맺는 식물로, 자손 번창의 의미가 있어 지금도 껍질을 깐 잣은 결혼식 폐백음식에 이용되기도 한다.땅 속 씨앗을 찾아내고 조사하는 일, 식물에 얽힌 전통 풍습에 대한 조사 연구를 통해 옛 사람의 마음 속 식물의 의미를 발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21-05-24

비운의 걸작

“나는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이른 아침 작업대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온종일 작업에만 몰두 했다. 그리고는 사나흘은 붓이라고는 손에 잡지 않고 그려 놓은 것을 그저 서너 시간씩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고의 걸작 ‘최후의 만찬’ 제작 과정을 목격했던 도미니크회 수도사 마테오 반델로가 남긴 기록이다. 밀라노의 실권자 로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의 의뢰로 1495년경 시작된 ‘최후의 만찬’은 1497년 거의 마무리 되었다. 레오나르도의 걸작이 그려진 곳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이다. 이곳은 도미니크회 수도원 교회로 ‘최후의 만찬’은 수도사들의 식사공간인 체나콜로의 한 쪽 벽면에 그려졌다. 청빈한 구도자의 삶을 살던 수도사들이 식사하는 장소에 ‘최후의 만찬’ 장면이 그려진 것은 종교적으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최후의 만찬’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이 가진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 수도사들이 매 끼니마다 동참하고 있음을 뜻한다. 반델로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레오나르도는 코르테 베키아의 기마상 작업을 하다가 뭔가 못 마땅한 일이 있으면 작업을 멈추고 ‘최후의 만찬’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도착한 그는 작업대에 올라가 몇 번의 붓질을 한 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레오나르도의 이러한 변덕을 예술가에게 내재된 천재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반델로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원하는 시간에 그림을 그리다 또 순식간에 손을 땐 작업 방식을 통해서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프레스코는 물로 섞은 석회 반죽을 벽면에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해 그림을 마무리해야만 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프레스코는 하루에 작업 할 수 있는 면적이 아주 제한적이다. 그리고 프레스코의 결정적인 단점은 한 번 그리면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프레스코의 이러한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기름과 유약을 사용했다. 그런데 물과 기름이 섞일 리가 없다. 결국 레오나르도의 잘못된 재료 선택으로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엎친 데 겹친 격으로 그림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500년 밀라노에 대홍수가 일어났다. 작품이 그려진 공간이 완전히 침수되면서 그림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프란체스코 스카넬리가 남긴 1642년 기록은 작품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후대에 손상된 그림을 구하기 위해 몇 차례 보수 작업이 감행되었다. 그런데 잘못된 복원이 오히려 작품 손상을 악화 시키는 결과를 불러 왔다. 게다가 1800년대 독일의 대문호 볼프강 괴테가 남긴 글에 따르면 엄청난 폭우가 몰아닥쳐 최후의 만찬이 또 다시 침수되었다고 한다. 연속된 불운에도 불구하고 30여 년 간 복원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최후의 만찬’이 조금씩 옛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됐는데, 그만 독재자 무솔리니가 나타나 벽화복원 총책임자를 해임해 버리는 바람에 복원 작업은 지연되고 말았다.1908년부터 루이지 가베나기라는 뛰어난 복원가가 투입되었고 그리스도의 왼손 원형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걸작의 불운은 계속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8월 14일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가 폭격을 당하고 말았다. 공습 직전 쌓아 놓은 모래주머니 덕분에 간신히 ‘최후의 만찬’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걸작을 살리겠다는 노력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복원 전문가 마우로 페치올리의 노력으로 벽화는 옛 색감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작품의 원형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되었던 ‘최후의 만찬’은 1978년에서 1999년까지 첨단장비와 최신 복원 기술을 동원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미술사학자

2021-05-24

인생 그림책에서 배운다면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평균 수명이 늘고 있다. 2011년 남자 76.8세, 여자 83.6세이던 것이 202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는 80.5세, 여자는 86.4세라고 한다. 주위에 90 넘은 어르신들도 눈에 많이 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위기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위기는 자기 삶에 대한 불만족감이 커지는 데서 온다. 경제적 문제나 건강 문제도 삶에 대한 만족감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만족감이 크면 경제나 건강 문제도 극복하기 쉬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힘 기르기가 중요해지는 이유다.바로 며칠 전은 우연이 겹친 날이다. 도서관에서 ‘100 인생 그림책’을 빌린 날, 몇 달 전 가입한 북클럽에서 굿즈로 ‘인생 노트’를 보내주었으니 말이다. ‘100 인생 그림책’은 100살까지의 삶을 나이마다 한 장면으로 표현한 책이다. 저자 하이케 팔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초등학생부터 아흔 살 할머니, 여러 국적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명망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시리아 난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 나이에 당신이 배운 것은 무엇이냐고. 노후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60세 이후의 장면에 눈길이 더 간다.68세에 어쩌면 너만의 정원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 70세에도 자신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으며, 생전 처음 해본 일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발견은 나이듦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준다. 이런 장면들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 크게 공감이 된다.‘인생 노트’는 시기별로 자신의 감정, 행동, 기호 등을 기록하도록 질문으로 구성된 책이다. 책이라지만 내가 칸을 채워야 하기에 노트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스스로 만드는 인생 그림책이라고나 할까? 그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등을 채우다 보면, 그때가 또렷이 기억나면서 내가 배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 사노 요코는 암 진단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대신 병원비로 재규어 대리점에 가서 잉글리시 그린의 재규어를 샀다고 한다.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 하면서. 그녀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서 마음에 드는 재규어를 살 수 있었던 것은 평상시에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등의 에세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과 기록을 꾸준히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평소 기록하는 힘을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93세에 쓰신 자서전 제목도 ‘대한인의 방랑과 사랑-공룡 발자국 같은 기억들’이다. 그것을 통해 아버지는 인생의 시기마다 무엇을 배웠는지 발견하셨고, 그 발견을 통해 또 많은 것을 배우셨다.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삶을 위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더 중요해진다. 지난 시간 배운 것을 떠올려보자. 이런 발견은 동료와 같이 하면 더 좋다. 뜻이 맞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인생 그림책을 같이 읽자고. 인생 노트도 채운다면 금상첨화다.

2021-05-24

붉은 달

붉은 달, 일명 ‘블러드 문(Blood Moon)’이 26일 밤 뜬다. 블러드 문은 태양광이 지구 대기에 굴절돼 달이 붉은빛을 띠게 되는 현상이다. 주로 개기월식 때 볼 수 있다.한때 불길함의 상징이었던 붉은 달은 과학으로 설명 가능해진 이후 ‘신기한 우주쇼’로 여겨진다. 월식은 태양-지구-달 순서로 나열되고,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완전히 들어가면서 발생한다.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들어가더라도 지구의 대기를 지나며 굴절된 태양광이 달에 도달할 수 있다. 지구 대기에 태양광이 굴절되는 과정에서 빛의 산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이때 빛의 색을 결정하는 파장에 따라 산란되는 정도가 다르다. 빛의 대기 산란은 파장이 짧은 푸른색 대역에서 많이 일어나고, 붉은색 파장 대역의 빛은 상대적으로 덜 산란돼 투과된다. 결국 산란이 많이 일어나는 푸른 빛은 모두 흩어져 달에 도달하지 못한다. 태양광이 대기에서 굴절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원리로 푸른 성분은 산란되고, 평소보다 붉은빛이 달에 도달, 반사 후 우리 눈에 비치게 되는 것이다.빛의 산란 때문에 낮에는 푸른 하늘이 해 질 녘과 해 뜰 녘에는 붉게 물든다. 해 질 녘과 해 뜰 녘에는 빛이 대기에서 더 먼 거리를 이동하며 푸른 파장 대역의 빛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월식은 날씨가 좋더라도 도심에서는 관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국립중앙과학관은 26일 오후 7시30분부터 유튜브 채널 ‘과학관TV’로 개기월식을 생중계하며, 월식 원리와 현상을 설명할 예정이다.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개기월식은 지난 2018년 7월28일에 있고, 다음 개기월식은 2022년 11월 8일에 볼 수 있다. 신비로운 우주쇼는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24

국민의힘 당대표 적임자는?

심충택논설위원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주 부처님오신날 동화사 법요식에 참석해 “대구는 우리당의 뿌리다. 당의 뿌리에 계신 분들이 그동안 당을 지켜왔고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내년 정권교체에 대한 마음이 모아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민의힘 일부 당권주자들로부터 ‘영남당’이니 ‘꼰대당’이니 하는 조롱 섞인 소리를 들으며 서운해 했던 대구·경북 지역민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대구·경북은 보수정당의 각종 선거나 당 혁신 발표 때마다 지금처럼 ‘왕따’의 대상이 돼 왔다. 지난해 4·15 총선 때도 김형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TK 등 영남에 눈물의 칼을 휘두르겠다”며 이 지역 현역 중진들을 대거 물갈이 했다. 총선결과 영남 지역 의원 중 절반에 가까운 26명(48.1%)이 초선 의원들로 채워졌다. 4·15 총선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1명 중 영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 54명(53.4%)에 이르렀지만, 대구·경북 유권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대부분 기대이하의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당원(대의원·책임당원·일반당원) 투표 70%, 일반 여론조사 30%로 승부가 결정난다. 전체 책임당원의 60% 가까이 분포하고 있는 영남지역 여론이 선거판세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권을 잡으려면 영남 정당으론 어렵다”(홍문표 의원)는 소리가 나오고 있고, 일부 소장파 주자들은 ‘영남·중진 배제론’을 마치 유행가처럼 외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국민의힘은 6·11 전당대회가 끝나면 바로 대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권에 욕심을 내 지역감정을 들먹이며 당을 삼삼오오 분열시켜서는 절대 안된다. 그 후유증은 대선 판세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대선을 안정적으로 치르려면 영남지역의 적극적인 지지없이는 불가능하다.이런 맥락에서 나경원 전 의원이 “영남이 4년간 궤멸 위기였던 당을 지켜 정권을 견제하는 야당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정권 교체의 희망이 보이게 된 것이다. 당의 쇄신과 변화라는 의지에는 공감하지만 영남과 비영남을 나누고, 선수와 나이로 나누는 프레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오는 28일 예비경선을 앞두고 있는 당권주자 8명의 초반 판세를 보면 정치경륜이 돋보이는 중진들은 당내 지지에서, 개혁을 앞세운 소장파들은 일반 여론조사에서 자신하는 분위기다. 각종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중진그룹으로 분류되는 주호영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 소장파 그룹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김웅·김은혜 의원 등이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번에 선출될 국민의힘 당 대표는 차기 대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만들어 정권교체를 성공시켜야 하는 등 매우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고도의 정치력과 지혜가 요구되는 자리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전당대회가 모든 지역과 세대, 계층이 같이 할 수 있는 외연확장의 무대가 돼야 한다. 그래야 당 대표도 통합적 리더십을 가지고 내부 갈등 없이 대선을 치를 수 있다.

2021-05-23

마크롱 모델

2017년 5월 임마뉘엘 마크롱은 당시 39살의 나이로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다.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은 양당체제 중심의 프랑스 정당정치 구조의 대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마크롱이 창당한 중도성향의 앙마르슈는 창당 1년만에 젊은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66%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을 확정하자 전 세계도 놀랐다.반면 프랑스 우선주의와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그리고 외국인과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전면에 내세운 극우파의 국민전선은 참패의 고배를 마셨다.마크롱이 이끄는 중도신당은 정치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와 온 국민을 위한 기회 진작 등 좌파정치를 표방했다. 또 경제적으로는 우파에 가까운 친기업적 정치를 추구하는 정파 이념을 내세웠다. 집권 이후 그는 자유무역과 개방정책을 앞세우며 마크롱식 경제개혁을 밀어붙여 갔다. 마크롱 취임 후 2년이 지나면서 프랑스 경제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늘고 청년이 창업을 시작하고 프랑스를 떠났던 부자들이 돌아왔다. 강성 노조에 맞선 과감한 노동정책과 부유세 폐지와 같은 경제 유인책으로 프랑스는 마크롱의 구호처럼 “일하는 프랑스”로 바뀌어 갔다.김종인 국민의 힘 전 비대위원장이 자주 거론하는 한국판 마크롱 등장을 두고 정가의 뒷말이 무성하다.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이어 최근에는 김동연 전 부총리까지 마크롱 모델에 비유해 또다시 화제를 뿌렸다.마크롱 모델은 앞서 보았듯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제3지대를 통한 정치 등장과 경제의 성공적 부흥 등이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 정치에 회자되는 마크롱 모델에 대한 궁금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23

울릉도-독도간 최단거리 바위에 명칭 부여 필요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독도에 관해 가장 익숙한 숫자 중의 하나가 울릉도와 울릉도의 부속섬인 독도간의 최단거리 일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에 관해 정부부처 기관마다 측정 기준점 및 측정 방법이 달라 독도의 지리적 위치 홍보에 혼란이 발생함에 따라 지난 2005년 6월 28일 정부 부처 합동으로 울릉도와 독도간 거리 등 독도 현황을 고시했다. 이 고시에 따르면 울릉도와 독도간 거리는 87.4km(47.2해리, 1해리=1.852km), 한반도 본토에서 독도간 거리는 216.8km(117.1해리), 독도와 오키섬간 거리는 157.5km(85.0해리)이다. 이러한 거리는 썰물에 의한 간조시의 해안선을 기준으로 한 최단거리로 정의했다.육지에서는 미터법 단위를 사용하지만, 바다에서 거리는 흔히 해리(nautical mile)라는 단위를 쓴다.1해리는 1.852km로 위도(latitude) 1분의 거리와 같다. 흔히 배의 속도는 노트(knot)를 쓴다. 1노트는 1시간에 1해리(위도 1분)가는 속도에 해당한다.독도는 일본의 오키섬 보다 울릉도에서 70.1 km 더 가깝다. 이러한 울릉도와 오키섬에서 독도까지의 거리 차이는 단순히 울릉도가 독도에서 더 가깝다라는 단순한 비교에 그치지 않고, 울릉도에서는 맑은 날 독도를 볼 수 있지만, 오키섬에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독도를 결코 볼 수 없다는 명백한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그러면 울릉도와 독도사이의 최단거리인 87.4km(47.2해리)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결론적으로 울릉도에서 독도 방향의 혹은 독도에서 울릉도 방향의 가장 바깥쪽 무인도서간 거리이다. 울릉도의 경우 저동항 인근의 도동항로표지관리소(행남등대) 주변의 무인도서(북위 37도 29분 6.012초, 동경 130도 55분 16.243초)가 최단거리의 기점이다. 독도의 경우 독도 서도 북서쪽의 무인도서(북위 37도 14분 36.832초, 동경 131도 51분 40.991초)가 기점이 된다.그러나 이러한 바위들은 아쉽게도 공식명칭이 없다. 울릉도 기점바위의 경우, 울릉도에서는 이 지역을 살구나무에서 유래한 행남(杏南)이라 부르고 있어 울릉도 민간단체인 울릉문화유산지킴이에서는 이 바위를 살구바위라 부르자고 제안한바 있다. 독도 기점 바위의 경우, 독도를 연구하는 해양학자들에 의해 이 바위를 흔히 똥여라고 부르고 있다.아직까지 이러한 바위들에 공식명칭조차 없는 것이 아쉽다. 특히, 살구바위는 저동항 인근에 위치해 어선 왕래가 매우 빈번하고 선박 항해시 좌초 우려가 매우 크다. 이 바위에 독도 최단거리 기점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멋진 디자인으로 무인등표를 설치, 상징성과 함께 항해의 안전을 도모하면 어떨까?한반도 본토와 독도간 최단거리인 216.8km(117.1해리)는 경북 울진군 죽변등대 부근의 가장 바깥쪽 독도 방향 바위(북위 37도 3분 27.343초, 동경 129도 25분 52.188초)에서 독도 서도 남서쪽의 보찰바위(북위 37도 14분 22.982초, 동경 131도 51분 41.637초)까지의 거리이다. 보찰바위라는 지명은 거북손이라고도 불리는 해산물인 보찰을 닮았다는데서 유래한다.울진 죽변등대 인근의 기점바위는 독도간 최단거리의 기점이 되기도 하지만, 한반도 본토와 울릉도간 최단거리의 기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반도 본토와 울릉도 및 독도간 최단거리의 죽변등대 인근에 위치한 한반도 본토 기점 바위에도 아직 바위의 이름조차 부여되지 않았다.최단거리의 기점 바위들은 무인도서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무인도서는 단순한 바위가 아니다. 무인도서에는 통상 해조류가 풍성하게 자라 어류의 산란장 및 서식장으로서 해양생태계의 보고를 이룬다.또한 최외곽 무인도서는 해양영토의 경계를 결정하고 해양영토 주권을 지키는 근거가 된다. 아직 울릉도와 독도에는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수십개의 무인도서가 있다. 바위에 애정을 듬뿍 담아 멋진 이름을 지어 생명을 불어넣어보자.그것이 울릉도와 독도가 탄생할 때부터 수백만년동안 숱한 파도에 맞서 지탱해 온 무인도서 혹은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이 아닐까?독도의 여러 바위에도 명칭 부여가 필요하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와 함께 89개의 크고 작은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이 4천285㎡로 가장 넓은 군함바위로부터, 면적이 불과 4㎡로 가장 작은 삼형제굴 인근의 이름 없는 바위까지 89개의 바위들이 있다. 이들 89개의 부속도서의 면적을 합하면 2만5천517㎡로, 전체 면적이 18만7천554㎡인 독도의 13.6%에 해당한다. 89개의 부속도서 중에 14개 정도만이 그나마 공식 명칭을 부여받고 있다.일본 국토지리원이 제작한 전자국토Web(https://maps.gsi.go.jp)에서는 독도 동도를 여도(女島)로, 서도를 남도(男島)로 표기하고 있으며, 보찰바위를 남서암(南西岩), 지네바위를 평도(平島), 삼형제굴을 오덕도(五德島)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2021-05-23

‘K-바이오 랩허브’ 최적지 포항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중소벤처기업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K-바이오 랩허브’ 사업의 구축 후보지 선정을 위한 사업공모가 지난 5월 12일 발표되었다.K-바이오 랩허브는 미국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핵심기관인 ‘랩센트럴(Lab-Central)’ 성공모델을 벤치마킹하여 국내에서도 바이오분야 핵심시설과 장비를 집적화하고, 산·학·연·병 협력 네트워크와 투자 시스템 등이 통합된 한국형 랩센트럴(이하 랩허브)을 구축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미국의 랩센트럴은 혁신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바이오 스타트업 기업에게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공간과 사무공간 지원, 대학병원 임상 연계, 법률·특허·운영 자문과 투자를 비롯해 보안, 청소, 냉난방, 생물안전, 공동 물품구매, 쓰레기 처리 등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126개의 기업지원과 약 6.7조원의 투자유치 그리고 2천395개의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를 얻은 것으로 보고되었다.국내에서 처음으로 추진되는 이번 사업은 K-바이오 랩허브를 구축하기 위한 후보지를 공모하는 사업으로 국비 지원 예산 규모가 2천500억 원이며, 지자체가 부담하는 최소 제안 요건(850억원)을 포함하면 총사업비가 3천300억 원 이상되는 사업이다. 치료제와 백신 등 신약개발 창업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선정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유망 바이오 벤처기업이 집적화(바이오 클러스터)되고 이를 통해 바이오 산업 도시라는 브랜드 가치와 함께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이어질 수 있어 많은 지자체가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K-바이오 랩허브 사업에 선정되는 지자체는 주요 시설과 전문 서비스(후보물질 발굴부터 비임상 단계까지 필요한 분석·검사·제조 등 일괄 지원), 협업 및 성장지원 프로그램 등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주요 시설로는 창업기업 입주 및 커뮤니티 공간, 핵심 연구 공용장비(300여종), 동물실험시설, 생물안전 연구시설(BL-3, ABL-3), 의약품 품질관리생산시설(GMP), 생화학 폐기물 처리시설 등의 창업기업 입주 공간과 연구개발을 위한 시설 등이다. 또한 전문 서비스 지원을 위한 구조분석 장비, 약효 효능평가장비, 단백질 분리정제 장비, 약물 동태분석 장비 등을 구축해야 하며 국내외 제약사와 병원 등과 임상 단계 협업 지원 등 오픈이노베이션 허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중기부는 지난 25일까지 유치의향서를 받고, 6월 14일까지 지자체로부터 사업계획서를 접수받아 서류평가와 현장평가를 거친 뒤 7월까지 후보지 1곳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이후 예비타당성 평가를 통과하면 2023~2024년 공간 조성을 마친 후, 2025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최근까지 포항(경북)을 비롯해 대전, 인천, 충북 오송, 대구 등지에서 출사표를 던지고 K-바이오 랩허브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항은 바이오 벤처 입주시설, 최첨단 연구장비와 연구기관, 우수한 바이오분야 전문인력 등을 갖추고 있으며 40여개의 바이오 벤처기업이 집적화되어 있어 이를 기반으로 K-바이오 랩허브 사업 유치에 나섰다. 그동안 ‘K-바이오 랩센트럴 유치위원회’(공동위원장 이강덕 포항시장, 김무환 포스텍 총장, 장순흥 한동대학교 총장) 출범, 실무추진단을 구성했다. 또 랩센트럴의 본고장인 미국 보스턴대 김종성 교수를 초빙하여 ‘보스턴 바이오혁신 생태계; 알려진 비밀과 숨겨진 비밀’을 주제로 세미나도 개최했다. 포스텍, 네오이뮨텍 등 바이오 제약분야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모여 자유로운 토론과 대화를 하기 위한 혁신 커뮤니티인 ‘제1회 포항혁신살롱’를 개최하여 K-바이오 랩허브 사업 유치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또한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 16일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만나 K-바이오 랩허브의 최적지는 포항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건의하는 등 포항에 K-바이오 랩허브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산·학·연·관·병이 매우 긴밀하게 협조하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코로나19 펜데믹 사태로 인해 전 세계가 치료제나 백신과 같은 신약 개발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이번 K-바이오 랩허브사업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지자체별로 바이오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바이오 벤처기업과 제약기업이 서울, 인천, 대전 등에 밀집되어 있어 지방의 우수한 인재와 기업들이 빠져나가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인재와 기업의 누수를 막고, 바이오기업을 지역에 유치하려는 전폭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특히 포항은 2021년 4월 기준 50만4천103명으로 50만명이 무너질 위기에 봉착해 있어 국가적으로 인구감소, 지역소멸 등의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방 중심의 미래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1-05-23

문무대왕면, 새로운 명칭과 함께 새로운 꿈을 꾸다

주낙영경주시장경주시 양북면이 2021년 4월 1일부터 ‘문무대왕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일제 강점기에 단순히 방위에 기초해 붙여진 지명인 ‘양북면’이 역사와 고유성을 띤 ‘문무대왕면’으로 거듭나게 됐다.양북면이 문무대왕면으로 바뀌게 된 배경은 2015년부터이다. 주민들 사이에 지역 특색을 살리는 지명을 만들어 지역 명칭을 변경하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2020년 6월 읍면동 명칭변경 수요조사에서 지역 20개 마을 중 13개 마을에서 명칭 변경에 동의해 명칭변경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같은 해 10월 실시한 행정구역 명칭변경 주민설문조사 결과 1천288세대 중 1천137세대(88.3%)가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새 명칭 조사에서 ‘문무대왕면’이 76.5%로 압도적인 선호도를 나타냈다.새 명칭 조사에서 문무대왕 관련 명칭까지 포함하면 94.3%의 선호도를 나타내 문무대왕면 주민들의 문무대왕릉에 대한 자부심과 문무대왕과 함께 하는 지역명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음이 드러났다.이렇게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한 왕의 뜻이 묻힌 세계 유일 해중릉인 문무대왕릉이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켜 온 동해 바닷가 지역은 ‘문무대왕면’으로 재탄생했다.문무대왕면으로의 명칭 변경과 함께 경주 내륙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동해안 지역이 새로운 관광메카로 거듭난다.먼저 삼국통일 위업을 이룬 문무대왕을 기념하는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2023년까지 지어진다.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은 사업비 121억원을 들여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17번지 일원 대본초등학교 폐교 9천102㎡ 부지에 지어진다. 1층에는 문무대왕 청소년아카데미를 비롯해 해양마린스쿨, 체험장, 카페 등이 들어서며, 2층에는 문무대왕관, 신라해양실크로드관 등의 시설이 마련된다. 역사관이 조성되면 문무대왕의 삼국통일 과정과 만파식적 설화를 중심으로 하는 문무대왕 수중릉, 이견대, 감은사지 일대의 역사유적을 흥미롭게 소개한다.‘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들어설 대본초등학교에는 5월 삼국통일의 대업과 애민정신의 큰 뜻을 계승하기 위한 ‘문무대왕 유조비’가 세워졌다. 유조비는 삼국통일을 이룬 해인 676년을 상징하기 위해 6.76m 높이의 문무대왕의 유언이 새겨진 비석으로 제작돼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또 경주시는 매년 7월 21일을 문무대왕의 날로 정해 문무대왕의 업적을 기린다. 이 날은 문무대왕이 돌아가신 681년 음력 7월 1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문무대왕 전국 자전거 대회가 열린다. 역사 유적지와 자연 환경을 즐길 수 있는 자전거 대회를 문무대왕 기념주간에 개최함으로써 문무대왕의 애국·애민 정신을 기릴 계획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하지만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전국 자전거 이용자들의 축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청소년들에게 문무대왕릉 일대에서 독도까지 이어지는 해양영토 체험을 통해 바다를 제2의 국토로 보는 인식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문무대왕 청소년 해양학교도 추진된다. 해양학교는 해양 관련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경주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선진해양도시 방문 및 해양분야 체험활동으로 해양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다.푸른 하늘과 산, 바다 등 천혜의 자연, 문무대왕 수중릉(사적 제158호) 및 호국정신이 깃든 감은사지 3층석탑(국보 제112호) 등의 유적, 새로이 조성되는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및 지역축제 등으로 문무대왕면은 환동해권역의 ‘해양역사 테마관광 도시’로 비상할 것이다.문무대왕면은 새 명칭과 함께 역사문화와 해양레저를 아우르는 관광벨트로 비상할 것이며 내륙지방의 동부사적지, 보문단지와 함께 경주 관광의 한 축이 될 것이다.

2021-05-23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태순수필가자리돔은 대방어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쓰인다. 방어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바늘을 살아 있는 자리돔의 배에 꽂아 물속에 넣으면 자리돔은 해류를 타고 활발히 움직인다. 방어를 잡기 위한 눈속임이다. 어부들은 그것으로 방어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유인책으로 잡아놓은 자리돔을 양동이에 담아 바다에 흩뿌린다. 그러면 식탐이 많은 방어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자리돔을 쫓아 죽을 자리로 들어온다.물고기는 작을수록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종을 보존하기 위한 계책인 듯싶다. 바다에는 덩치가 크거나 사납게 생겨서 먹는 양이 무시무시한 물고기들이 많다. 일대일로 만나면 백전백패니 여럿이 힘을 합하면 생존율이 높아질 것을 알고 있는 행동이다. 이동하면서 죽임을 당한 물고기는 미끼가 된 상황이다. 누구라고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선택되어졌고 동료를 살린 셈이다. 내 몸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몸을 살찌운 행동이다. 사람살이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발버둥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 누군가는 자신의 결을 지운다. 누구보다 여리지만 따스한 마음을 품은 이가 그리해야 할 것 같은 환경을 받아들였다. 부지런히 일해서 모은 대가를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용했다.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가 투명해질 때까지 계속한다.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 있었다. 스스로 미끼같은 존재가 되어 외풍을 막아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십대에 가정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고 그보다 어린 나이에 부엌살림을 도맡았다. 위아래로 두 살 터울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혼자 동분서주하며 묵묵히 불어오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덕분에 다른 형제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크게 고생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 나였다.전래동화에 ‘은혜 갚은 까마귀’가 있다. 그 동화를 읽을 적에는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하지 싶었다.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진정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제적인 것이든, 마음적인 것이든 받은 것을 갚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또한 갚음은 받은 사람에게 직접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삶의 깊은 이치가 숨어있는 듯하다. 나는 받은 만큼 갚음을 하지 못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미끼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해야할 무게인 미끼, 내가 속한 가정의 구성원을 잘 먹이기 위해 나름의 물살을 가르며 위험 요소를 요리조리 피하느라 겨를이 없었다. 더러는 황금을 건 미끼를 덜컥 물어서 곤두박질 끝에 벗어나느라 눈을 부릅뜨고 앞만 보고 달린 탓도 있다.삶은 계산기를 두드려 답이 나오는 숫자놀음이 아니다. 상황에 따른 미지수가 등장하고 미지수를 풀이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직선으로 답을 구하다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 많은 변수를 만나 돌고 돌아가느라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아서 행복이라는 글자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누구를 위해 내가 살았다는 말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방어의 미끼가 될 운명이라 생각지 않은 자리돔이다.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먹이 사냥을 하고 해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비늘을 세웠다 눕혔다 해가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다. 그런 중에 미끼가 되어 방어를 살찌게 하고 살찐 방어는 사람이 먹는 것이다. 자리돔이 생명의 위험을 느껴서 내가 동료 대신 방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리라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런 흐름에 의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잡아먹힌다. 우리는 누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까. 아마 방어를 먹으며 덕분에 잘 먹었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사람을 만날 때면 번드레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감사한 마음을 잘 전하고 있는지는 먼 후일에나 들이대보는 소소한 잣대일 뿐이다.모든 생물들의 삶은 종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 미끼가 되기도 하고 미끼를 먹기도 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둥글게 순환한다. 그 속에서 받아든 날들을 낱장으로 깁는 치열한 작업의 중심에 내가 있다. /양태순(수필가)

2021-05-23

안전속도 5030 지키기

윤영대수필가전국적으로 ‘안전속도5030’정책이 시행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교통사고 예방과 보행자 교통안전 향상을 위해 도심지 간선도로에서는 50㎞, 주택과 상가 등이 인접한 이면도로에서는 30㎞로 하향 조정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2019년 4월17일 개정되어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실시된 것이다. SNS 등에는 굼벵이가 되어버렸다는 둥 불만 섞인 말들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미 서울, 부산의 일부 지역에서 시행해본 결과 보행자 사망자가 30% 이상 감소되었다고 하니 모두 잘 적응해나가야 하겠다.이 정책은 세계보건기구와 OECD의 권고도 있었다고 하는데 속도를 10㎞낮추면 10명 중 사망자수가 9명에서 5명으로 감소해 이미 37개국 중에서 31개국이 시행하고 있어 교통사고율 3위인 우리나라로서는 늦은 편이다.그동안 60㎞로 달렸던 운전감각이 갑자기 50㎞로 달리면 좀 느린 듯하고 특히 학교 앞에서는 30㎞로 달려야 하니 그야말로 걸어가는 듯하겠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바람직한 조치이고, 60에서 50으로 속도를 낮추면 제동거리도 짧아져 사망가능성도 30%정도 감소한다고 하니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더욱더 잘 지켜야 한다.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의 자료를 들여다보니 전국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22만 건 이상이고 사망 3천 명, 부상 34만여 명이라니 깜짝 놀랐다. 일일 평균 사망자는 8.4명, 부상자는 9백 명 정도가 된다. 자동차 1만대 당 사고자료(2020년)에는 포항시가 101건(전체 2천537명)에 사망 1.78명 부상 157명이며,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의 사고도 많다고 하니 끔찍하다.이러한 상황인데도 ‘세금 더 거두려고 한다’ ‘생각이 비현실적이다’ ‘도로사정을 고려해 차등 허용하라’는 반대 의견도 있고, 저속운행에 따른 매연에 의한 환경문제와 연비 하락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니 잘 이해시켜 나가야 하겠다. 신호 주기도 조절하고 교통표지 및 노면 표시와 같은 교통 시설물들을 정비해 스마트 교통체제를 갖추어 제한속도 감축에 따른 통과시간 등에 대한 우려도 없애고 중앙분리대, 갓길, 도로폭의 여유 등 도로사정에 따라 녹색 흐름을 잘 주도해 안전한 교통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칠 전 환호동 언덕길을 돌아내려 오는데 앞차가 갑자기 정지하듯 빨간 미등이 켜지기에 ‘아차!’ 하고 보니 제한 속도 30이고 CCTV도 있다. 이 넓은 길에 노인복지회관이 있어서 30일까? 내 차의 계기판은 50을 가리키고 있었다. 속도위반에 대한 과태료와 범칙금도 개정되었다. 20~40㎞ 초과시에는 승용차 범칙금이 6만원이니 벌금을 물뻔 했다. 이번 5030규칙은 유예기간 3개월 후에 일제단속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제 바뀌어진 교통법규에 대응하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경우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좋겠다.한국도로교통공단의 사물인지능력 실험에서 주행속도 50㎞로 할 경우 평균 인지능력이 52% 증가하고 30㎞인 경우 56% 증가한다고 하니 천천히 운전하면서 보행자와 교통약자에 대한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

2021-05-23

차박(車泊)

류영재포항예총 회장방황이 일상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간단한 취사도구와 얇은 텐트를 짊어지고 떠났으니 일종의 캠핑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에 돈이 없기도 했지만 명색 무전여행이었으니 당연히 빈주머니여서 가능하면 걸었고, 버스나 기차를 무임승차하거나 요금을 구걸해 해결하기도 했다. 해인사 부근을 돌아오는 정도였으니 오늘날이라면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닌데 천신만고 하였고, 그 고난의 길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젊음과 친구에 대한 믿음이었다. 무모한 일이었고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귀한 경험이었으며 내 삶의 자양이 된 소중한 추억이다. 궁핍하던 시절이었으나 인심은 넉넉했고, 춥지 않은 계절을 택했으니 어디에다 잠자리를 정하더라도 추위에 떨지는 않을 것이며, 사회안전망이 최소한의 안전은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신뢰가 믿는 구석의 전부였다. 해인사에서는 입장료를 내지 않고 경내에 잠입하기 위하여 험악한 산길을 우회하느라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경주 남산 일대를 휘돌다 옥룡암 입구에 살던 고모네를 찾아가서 밥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올 차비를 얻기도 했다.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고모님 댁 방문을 추억하며 지금은 멀리 서산에서 살고 계시는 늙은 고모님의 안부가 염려되어 종종 전화를 드리는데, 이제 귀까지 어두우셔서 전화로 소통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니 세월이 무상함을 실감하게 된다. 캠핑이라 하면 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문명 세상을 떠나 자연의 품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자연과 더불어 즐기면서 심신을 수양하는 캠핑은 꽤 괜찮은 레저 활동이다. 더구나 요즘은 오랜 코로나로 인하여 지쳐버린 심신을 달래 줄 탈출구가 필요한 때인지라 가족들의 휴일 여가활동으로 인기다. 요즘은 ‘차박’이 대세라 한다. 차 안에서 먹고 자면서, 자연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코로나 시대 비대면 여가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레저 활동으로 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SUV자동차의 수요도 많아졌고, 드물게 보이던 캠핑카가 요즘은 도심의 골목에서나 한가한 주택가의 공원 주차장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자연을 즐기겠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문제는 환경이다. ‘차박’하기 좋은 동해안 곳곳이 버려지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였다.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쓰레기가 쌓여 간다. 각종 술병과 음료 캔, 먹다 남은 음식물까지 여러 종류의 쓰레기가 뒤섞여 있고, 화장실에 남겨진 시민의식도 낙제점이다. “쓰레기만 갖다 버리면 또 괜찮아. 변기에다가 음식물 넣어서 막혀가지고…. 엉망으로 해 놓지요.” 청소용역 직원의 하소연이 듣기 민망하다. 지자체마다 이달부터 시간제 공공 근로자를 더 많이, 더 자주 투입하고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무질서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란다. 비대면 시대에 대세로 떠오른 ‘차박’과 환경문제, 근본적인 대책은 바로 시민의식에 있다.

2021-05-23

헤라클레스의 사과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영웅 헤라클레스가 길을 가다 조그만한 사과를 발견했다. 하찮은 사과가 길을 막는다는 생각에 발로 툭 찼다. 사과는 길밖으로 사라지지 않고 곱절로 커졌다. 화가 난 헤라클레스가 방망이로 때리자 사과는 더 커졌다. 때리면 때릴수록 커지더니 아예 길을 막아버렸다. 헤라클레스가 화를 참지못한 채 집채만한 사과와 씨름하고 있을 때 ‘지혜의 여신’아테네가 나타났다. 여신은 사과에게 다정하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어루만졌다. 그러자 사과는 원래의 모습으로 작아졌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분노의 사과’이야기다.최근 정치판에서 헤라클레스가 방망이로 사과를 때린 것과 같은 현상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우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 전 총장은 울산시장 선거개입의혹사건과 월성원전 사건 등에 대해 수사를 지시하면서 현 정부와 각을 세웠고,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이 윤 전 총장을 때리면 때릴수록 ‘살아있는 권력도 봐주지 않고 수사한 검찰총장’이란 그의 명성은 산처럼 높아졌다. 급기야 총장직을 물러난 현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1위로 치솟는 이변이 일어났다.야권의 또 다른 대권주자로 회자되는 최재형 감사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적절성에 관한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여권이 강도높은 비판공세를 퍼부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 원장을 향해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고 공격할 정도였다. 그 결과 최 원장은 원칙을 지키는 ‘반문 투사’가 됐다. 여권이 휘두른 방망이 덕분에 유명해진 셈이다.평범한 월급쟁이 ‘진인 조은산(필명)’이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것도 같은 코스를 밟았다. 그가 상소문 형식의 시무7조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처음 올렸을 때는 동의자 수가 2만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국민들의 호응이 미미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보름동안 조회를 막았고, 이 사실이 언론의 보도로 알려지면서 뒤늦게 공개되자 재공개 사흘 만에 청원인이 20배로 불어나 40만명을 넘었고, ‘시무7조 신드롬’으로 번졌다.지난 10일 취임4주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대통령이 현 정권에 관련된 울산시장 선거개입의혹, 월성원전 사건 등에 성역없이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봐주지 말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김오수 후보자에게 공개적으로 지시할 의향이 없느냐.” 문 대통령은 “원전 수사 등 여러 가지 수사를 보더라도 이제 검찰은 별로 청와대 권력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냥 “검찰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말고 철저히 수사하면 된다”라고 명쾌한 답을 내놨으면 좋았을 것을….야권은 즉각 “공정한 수사지시의 의지가 없음을 다시 밝힌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청와대 관련 사건 검찰수사팀은 인사조치로 공중분해된 상태다.현 정부는 아직도 헤라클레스의 사과가 길을 막은 이유를 모르는듯 싶다.

2021-05-20

칠전팔기(七顚八起)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어느 날 신문기자가 링컨에게 질문했다. “당신의 놀라운 성공과 존경받는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에 링컨은 주저없이 “다른 사람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링컨은 23세에 주의원 선거에 낙마한 뒤 29세에는 의회의장 선거에 떨어지고 국회의원 선거, 부통령 선거, 상원의원 선거 등에 줄줄이 낙선한 경험이 있다. 그의 정치 이력 중 10번의 선거에 도전해 7번의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그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비유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의 속뜻은 실패를 거울삼아 열심히 전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링컨의 실패담은 실패라는 쓰라린 경험을 교훈을 발판 삼아 성공한 경우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제목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 기업을 이룬 그는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으로 기업을 키워갔다. 칠전팔기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끝까지 버티는 끈기가 필수라 한다.프로골퍼 이경훈 선수가 미국 진출 6년만에 미국 프로골프 투어(PGA)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 국적 선수로는 8번째다. 특히 그는 미국 2부 투어에서 3년을 뛰고 1부 투어로 올라와 80번째 출전만에 우승을 해 그의 승리를 두고 79전 80기의 승리라 부른다.코로나로 축 처져 있는 국민에게 79전 80기의 소식은 용기를 불어 넣어줄 만한 낭보로 들린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5-20

포스텍, Again 2010!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EAIE 참석차 프랑스 낭트에 도착한 건 14일 저녁이었다. 호텔에 도착해 이멜을 열어보니 The Times 에서 이메일 한통이 와 있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28위! 한국시간 오전 2시이다. 총장님에게 이메일을 쓰고 나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다이얼을 돌려 깨워드렸다. 총장님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포항에서 낭트에서 한숨도 못자는 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2년간의 시간들이 흥분속에 흘러간다…. 엠바고(Embargo·보도통제)를 지켜야 하는 24시간은 24년만큼 길었다. 랭킹이 무언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학교를 흥분시키고 한국 전체를 들끊게 하는가? Give up or Give in(포기하지 않으면 전력투구 하라).왜 포스텍은 일류대학으로 시작되었나? 연구를 잘해서? 교수가 일류라서? 실험기자재가 좋아서? 돈이 많아서? 불행하게도 이건 정답이 아니다. 포스텍이 일류가 된 건 김호길 총장이 280점 이하는 뽑지 않겠다는 호언 때문이었다.능력을 평가하는 건 개인이건 단체건 어려운 일이다. 평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뿐만 아니라 각 기준의 비중 또한 중요하다. 포스텍의 능력을 최대로 평가 받기 위해 우리가 뛰어다닌 거리는 얼마일까? 아마도 먼 훗날 회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말한다면 자화자찬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피곤으로 부르튼 입술을 씹으면서 오늘 저녁 TV 뉴스를 들여다 볼 평가위 스태프와 POSMIT 연구원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포스텍의 역량은 정당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기준의 잘못으로 그리고 기준의 비중의 편중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 28위 달성은 우선은 연구를 잘하신 교수님들의 몫이다. 그러나 실력이 올바르게 평가되도록 환경을 조성한 우리의 전략적인 노력도 돋보인다. 오늘 이메일로 수고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그 메시지와 영광을 포스텍 모든 구성원과 나누고 싶다. 그리고 묵묵히 지금 잠을 청하고 있을 그 평가위에서 수고한 스태프, 연구원들에게 그동안 수고했으니 오늘은 푹 잠들라고 다독여 주고 싶다.정확히 11년 전, 2010년 가을에 프랑스 낭트에서 쓴 글을 읽으며 포스텍의 현재 세계 랭킹을 생각해 보았다.몇일 후 6월 초에 세계적 대학 랭킹 기관 QS가 월드 랭킹을 발표한다. 지금으로서는 포스텍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작년에는 77위였다. 한국 내 위치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물론 랭킹이 대학을 평가하는 절대 잣대는 아니다. 그러나 경쟁대학들과의 경쟁에서 랭킹에서 밀리면 다른 강점들이 평가 절하 되는 문제가 있다. 서울대, 카이스트, 연고대 등에 비하여 또 MIT 스탠포드 등에 비하여 현저히 역사가 짧은 포스텍은 일단 랭킹에서 이들을 압도하거나 챌린지 할 수 있어야 한다.포스텍은 ‘3년 내에 세계 30위’라는 목표를 세우고 ‘AGAIN 2010!’을 외쳐야 한다. 재단, 대학, 교수, 직원, 동문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포스텍은 한국의 1위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