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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은자동아 금자동아

남녀가 짝을 지으면 하늘에 기원한다, 하늘의 자식 잘 키울테니 참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삼신할매는 이 간절한 약속을 믿고 아이를 점지해준다. 어미는 뱃속 아이를 위해 온갖 지성을 들였다. 음식을 가려 먹었으며 부정한 것은 피했다. 언행도 함부로 하지 않았고 나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새 생명을 맞기 위해 어미의 마음가짐이었다.아이가 태어나면 하나 같이 ‘응애’라고 울음을 터트린다. 이 울음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첫 언어이다. 이 함성을 고고성(呱呱聲)이라고 한다. 가위로 탯줄을 끊어내는 순간부터 아이는 모태에서 독립해 하나의 개체가 된다. 이 독립기념일을 우리는 ‘귀빠진 날’이라고도 한다. 태아의 귀가 산도를 빠져나오면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갓난쟁이의 몸짓은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이를 ‘배냇짓’이라고 한다. ‘배내’는 배 안이며 ‘배냇짓’은 배 안에서부터 한 몸짓이다. 갓난아이는 잠을 자면서 방실거리며 웃거나 눈코입을 찡긋거리는데, 이렇게 귀여운 몸짓이 바로 배냇짓이다. 배냇짓을 학자들은 마주보는 이의 공격성을 누그러트리게 하는 유화적 몸짓이라고 해석한다.배내옷- 갓난아이에게 입히는, 깃을 달지 않은 저고리.배냇니- 젖먹이 때 나서 아직 갈지 않은 이, 젖니.배내똥- 갓난아기가 먹은 것 없이 처음 싸는 똥.배냇머리- 태어난 뒤 한 번도 깎지 않은 갓난아이의 머리털.갓난아기가 풀무처럼 입으로 바람을 불어 대면 ‘풀무질’이다. 입술을 투르르 털며 내는 소리는 ‘투레질’이다.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 ‘죄암’ 또는 ‘쥐엄질’이다. 잠들기 전이나 깬 후에 부리는 투정은 ‘잠투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을 싸대는 행위는 ‘쉬야질’이다.어린아이를 부모는 여러 가지 몸짓으로 얼러 댄다. 어린아이의 겨드랑이를 치켜들고 올렸다 내렸다 할 때, 아이가 다리를 오그렸다 폈다 하는 짓은 ‘가동질’이다. 어린아이를 세워 두 손을 잡고 앞뒤로 밀었다 당겼다 하는 짓은 ‘시장질’ 이다. 어린아이를 곧추세워 좌우로 흔들며 두 다리를 번갈아 오르내리게 하는 짓은 ‘부라질’이다.밉둥이- 미운 짓을 하는 어린아이.옹알이- 생후 백일쯤 되는 아기가 옹알대는 짓.나비잠- 만세라도 부르듯 두 팔을 벌리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배밀이- 배를 바닥에 문지르면서 기어가는 모습.얼뚱아기- 둥둥 얼러 주고 싶은 재롱스러운 아기.이쁘둥이- 이쁜 어린아이.당싯거리다- 어린아이가 누워서 춤을 추듯 팔다리를 춤을 잇따라 귀엽게 움직이다.아망거리다- 어린아이가 괜스레 트집을 잡아 오기를 부리다.조작거리다-걸음발 타는 어린아이가 제 마음대로 귀엽게 자꾸 걷다.자칫거리다- 걸음발 타는 어린아이가 서툰 걸음으로 몇 걸음씩 걷다.아칫거리다- 어린아이가 이리저리 위태위태하게 걸음을 떼어놓다.어린아이가 도담도담 자라 살이 포동포동해지면 ‘옴포동이’라고 하는데, 이맘때면 아이의 몸짓이 다채로워진다. 짝짝쿵 손뼉을 치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도리질’한다. 왼손 손바닥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댔다 떼며 ‘곤지곤지’하고, 두 손을 쥐었다 펴며 ‘죔죔’한다. 그러면 엄마는 어린아이를 따로 세우면서 ‘섬마섬마’ 또는 ‘따로따로따따로’라고 추임새를 넣는다.똥싸개라도 부모에게는 은자동아 금자동아이다. 귀여운 나머지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아이는 ‘응석받이’가 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행위에 적절한 경고를 울리는데, 만져서는 곤란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지려 하면 ‘지지’라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에비’라며 말린다.칭얼거리며 엄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아이를 ‘쫄래동이’라고 한다. 이럴 때 엄마는 아이에게 겁을 주며 달래는데, 이 말을 ‘곽쥐’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대 쥐어 박는 일은 ‘먼지떨음’인데, 그저 엄포나 놓을 양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듯 살살 때린다는 뜻이다. 아우가 생긴 아이가 샘내느라 밥을 많이 먹으면 이를 ‘밥빼기’라고 한다.생의 원점에 이리도 아름답고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 행복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없을까 싶어서 신은 요람기의 기억은 지워지도록 두뇌를 설계했는지도 모른다.아이는 배밀이에서 걸음마를 거쳐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요람기에서 멀어질수록 험한 세상을 맞닥트리고 그 시련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간다. 늙어갈수록 점점 어린아이가 되다가 마침내 삶을 마감한다. 죽기 직전에 누는 똥도 배내똥이라고 하는데, 그 성분이 배내똥과 같다고 한다. 삶과 죽음, 극과 극은 맞닿은 모양이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5-05

5월, 학교에는(上)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린 5월이다. 그래서인지 5월만 되면 설렌다. 이런 필자를 보고 지인들은 5월을 탄다고 놀린다. 다음은 필자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의 시다.“5월엔, 왠지 집 대문 열리듯/뭔가가 확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그곳으로/희망이랄까 생명의 기운이랄까/아무튼 느낌 좋은 그 뭔가가/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5월엔, 하늘도 왕창 열려/겨울 함박눈처럼/만복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든다/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5월엔, 천지를 가득 채우는/따사로운 햇살에/오래 잠겼던 마음의 문 활짝 열고 집먼지진드기 같은 잡념을 태워보자 (….)” (안재동 ‘5월’)지면 관계상 시 전문을 인용하지 못함이 아쉽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특히 선생님께 꼭 작품의 전문을 읽어보실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올해 5월에는 시인의 생각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5월, 이 좋은 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고개 한 번 바로 들지 못하고, 그래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 숨어 있을 희망을 찾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희망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특히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에는 희망의 문이 좀 더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불행한데 부모가 행복할 리 없다. 부모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자신의 힘듦 정도야 거뜬히 이겨낸다. 그게 바로 부모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같은 부모 DNA다. 그 유산으로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어찌 되었든 부모님과 이 나라를 위해서 5월 한 달만이라도 학생들이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그 웃음 속에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찾고, 그 즐거움을 친구들과 나누고 나누어 학교 전체가 즐거움으로 충만했으면 좋겠다.학교만 생각해도 즐거운 웃음꽃이 피는 나라, 그 웃음꽃의 결실로 모두가 행복한 나라의 바탕이 올해 5월에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그러기 위해서 5월 학교를 학생들에게 돌려주자. 단순히 교육과정 채우기식 체험학습이나, 또 의미 없는 학생 동원 행사 따위는 제발 계획조차 하지 말자. 그리고 성적 따위로 학생들을 겁주는 비겁함에서 벗어나자. 교과 진도와 같은 교사 중심의 구시대적 핑계 따위는 생각지도 말자. 이 나라 교육의 종착지인 대학교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제발 잊지 말자.5월 한 달만은 모든 것을 철저히 학생들의 측면에서 생각하자. 학생들이 마음껏 자신의 5월 학교생활을 설계하도록 하자. 만약 학교 교육활동 전반에서 이것이 어렵다면, 교과 수업에서만큼이라도 이것을 실천해보자. 또 5월 한 달이 어렵다면, 정말 단 한 시간만이라도 학생들이 학교와 수업의 주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발 좀 주자.5월 학교에는 2015 개정 교육과정 핵심 역량인 “자기관리 역량, 심미적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중에서 단 하나라도 학생들이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1-05-05

남북 백두대간 종주한 로저 셰퍼드 씨와의 만남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며칠 경북대도서관에서 백두대간 사진전 작가 로저 셰퍼드 씨를 만났다.그는 뉴질랜드 경찰관 출신이며 총리 경호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2006년경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산에 매료되어 현재도 이 땅에 살고 있다. 딱 벌어진 어깨에 탄탄한 체구, 훤칠한 키는 전문 산악인의 요건을 갖춘 듯했다. 그의 사진 개막식에는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어진 사진 설명회에는 20여 명이 남아 그의 북한 백두대간 탐험 경험을 재미있게 경청했다. 북한 소식이 궁금한 현실에서 퍽 유익한 시간이 됐다.분단 이후 세계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그는 한때 대구에도 살았고 지금은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에 살고 있다. 그는 2006년 남쪽의 지리산 산행을 시작으로 2011년과 2012년 북쪽 백두대간을 등반했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개마고원을 거쳐 금강산까지 등정한 소중한 경험을 가졌다. 이번 사진전에서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 50여 장을 공개했다. 그는 한반도의 산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양인들에게 소개하는 하이크 코리아(HIKE KOREA)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나는 경북대 재직 중 통일관련 강의 시 그의 백두대간 종주 MBC 다큐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와의 만남은 초면이 아닌 구면인 셈이다.로저 셰퍼드 씨는 평양소재 조선-뉴질랜드 친선협회 초청으로 북쪽의 백두대간을 등행했다. 북한당국은 처음에는 그의 방북 신청을 거부했지만 순수하게 산을 등산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백두대간은 북쪽의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의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장장 1천700km의 방대한 거리이다.그의 이번 사진전에는 남쪽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쪽의 두류산, 백역산, 고대산, 옥련산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힘 있게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의 정기마저 끊어 버리고 말았다.그는 사진 설명회에서 우리가 궁금해 하는 북한의 산을 재미있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북쪽의 산간 오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도 생생하게 소개했다. 특히 함경도 개마고원 일대의 깊은 산골의 주민들은 자연과 풍토 때문에 많이 다르다는 증언도 했다. 북한의 험준한 산에는 항일 빨치산의 요새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도 했다. 북한 산촌에는 수십 종의 수제 소주가 있고 산천어의 맛이 좋다고 소개했다. 감자를 주식으로 북한 산촌 사람들은 부족함도 만족함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그의 설명회는 북한의 산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산하가 황폐화된 현황을 묻는 질문에 북한의 야산은 황폐화 됐지만 백두대간의 산림은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개마고원 부근의 어느 산은 바위덩이 밑으로 강이 흐르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그는 설명회를 마치면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은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의 때묻지 않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남한사람들이 잘 이해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뉴질랜드인 셰퍼드 씨의 입장이 몹시 부러운 오후가 되었다.

2021-05-05

은성수 금융위원장님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생각에 빠져 있다. /연합뉴스안녕하세요. 저는 시와 문학평론을 쓰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30대 후반의 필부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발언이 아니었다면 위원장님을 알지도 못했을 무지렁이가 이렇게 지면을 빌려 편지글을 띄웁니다. 삿되어 보일지라도 눈과 마음을 기울여 읽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이 글은 저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2030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쓰게 한 것이니 말입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저는 가상화폐 투자자가 아닙니다.위원장님께서는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많은 사람이 투자한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세금은 걷겠다”고 하셨지요. 정부가 개입할 시장이 아니라면서 세금은 걷겠다는 황당한 발상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투자자들은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 적 없습니다. 손실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래소의 시세조작이라든가 입출금 시스템의 불안정성이라든가 하는 위험 요소들을 방지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입니다. 투명하고 안정성 있는 거래가 되도록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화시켜 불법 행위들을 감시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투자자들은 얼마든지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제도화할 생각이 없으면 세금을 걷지도 말아야 합니다. 투자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것, 가상화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함부로 내뱉는 말로 시장을 교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4년 전 당시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거래소 폐쇄’ 발언을 한 후 가상화폐 시장은 반토막 났습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사태를 ‘박상기의 난’이라 명명했는데, 4년 후 ‘은성수의 난’이 더 큰 패닉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위원장님께서는 아시는지요? “9월까지 등록이 안 되면 200여개의 가상화폐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신 다음날 가상화폐 시장에는 대폭락이 왔습니다. 위원장님 말씀과 결부시키고 싶진 않지만, 가상화폐가 대폭락한 지난 24일, 강원도에서 코인 투자 실패를 비관한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위원장님의 말씀에 정부가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봐도 될까요? 지난 4년간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제도화해서 투자자 보호 및 과세를 합리적으로 해나가려는 것과는 정반대의 기조를 보이니 착잡할 따름입니다. 세계 최대 디지털 자산 투자그룹인 그레이스케일을 비롯해 테슬라, 넥슨, 골드만삭스, 페이팔 등이 코인 시장에 뛰어드는 등 선진국들은 가상화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른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 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세계 경제 흐름을 역행하려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위원장님의 ‘꼰대’적 인식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는 위원장님의 이 한 마디는 가상화폐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2030세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평생 성실하게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 위원장님을 포함한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노력해서 외국어,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기술 등을 갖추고도 선배들이 채용의 문을 걸어 잠가 취업을 꿈꿀 수 없는 현실, 정작 4050세대는 부동산을 통해 손쉽게 부를 축적하고는 2030세대에겐 온갖 규제로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 절망만을 안겨준 현실…. ‘잘못된 길’은 누가 만들었는지요? 위원장님은 가상화폐가 “이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하셨는데,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로서 젊은이들이 돈을 버는 코인 시장이 영 아니꼬워 보인 건 아니신지요?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합니다. 급여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자취방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불공평한 사회 구조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허락되지 않는 ‘여윳돈’이라는 걸 좀 가져보려고, 치킨 사 먹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애인에게 작은 선물 하나 해주고 싶어 소액으로 코인 시장에 뛰어든 그 청년들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이라 매도하지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길’로 청년들을 내몬 과오부터 반성하시길, 공직자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깨달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1-05-03

근사한 할머니가 된다는 건

10대에서 30대까지 대표하는 MZ세대는 요즘 ‘할매니얼’에 푹 빠졌다. 할매니얼이란 할매와 밀레니얼을 합친 용어로 옛 할머니의 감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할매니얼에 열광하는 이들은 ‘그래니룩’ 을 즐겨 입는다. 그래니룩은 할머니를 뜻하는 그래니(Granny)와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룩(look)을 붙인 합성어로, ‘할머니 같은 패션’을 의미한다. 마치 할머니의 옷장 속에서 발견할 법한 화려한 무늬의 스웨터나 빛바랜 색감의 카디건,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나 몸빼 바지처럼 보이는 통 넓은 바지가 그 예다.실제로 10대 20대가 즐겨 구입하는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도 무릎을 덮는 롱스커트나 꽃무늬 제품이 오랜 기간 인기 순위에 머무르고 있다. 카디건 판매도 전년보다 164%나 늘었다고 한다.광고계에서도 할매니얼 열풍이 불었다. MZ세대가 즐겨 찾는 쇼핑몰 앱인 ‘지그재그’는 배우 윤여정 씨가 대표 모델로 등장한다. “옷 많이 산다고 무슨 법에 저촉되니? 괜찮아 인생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거지. 그러니까, 너희 마음대로 사세요.” 광고 속 윤여정 씨의 대사다.물건을 구매한다는 의미의 ‘사다(buy)’와 인생을 ‘산다(live)’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여 던지는 메시지와 강렬한 이미지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단순히 카피가 좋아서가 아니다. 75세의 윤여정 배우가 내뱉는 대사는 그간 그녀가 지어 왔을 삶의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신뢰를 더했기 때문이다.햇반컵 광고에서는 81세의 나문희 씨가 등장한다. 핵심연구원 A씨의 실종사건을 다루며 추리게임을 펼치는 내용을 선보였다. 공식처럼 젊은 여배우들이 등장했던 화장품 광고에서도 80세 강부자 씨가 모델로 등장한다. 버스 안에서 노래와 랩을 부르며 요즘의 ‘힙한 할머니’의 위세를 보여주었다.‘할매니얼’의 유행은 먹거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식품업계에선 강릉초당두부케이크, 찰옥수수 케이크,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 소위 할머니 입맛이라 불리는 음식들을 심심치 않게 쏟아냈다. 프렌차이즈 카페나 베이커리에서도 MZ세대의 입맛을 노려 양갱이나 약과 같은 간식을 새롭게 내어놓는다거나 쑥, 흑임자, 인절미맛 디저트를 앞다투어 출시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MZ세대가 이토록 할머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레트로 열풍도 한몫했다. MZ세대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시대적 분위기에 새로움을 느끼고 이를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해 놀이처럼 즐긴다.그렇지만 무엇보다 ‘할매니얼’의 중심은 할머니다. MZ세대를 매료시킨 그녀들은 자신보다 어린 세대와의 소통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쥔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동시에 우아하면서도 지적이다. MZ세대는 자신만의 삶과 철학을 지혜롭게 가꾼 여성을 롤모델로 쫓으며 그녀들의 올곧음과 당당함을 선망하는 것이다.유튜브의 영향력도 크다. 131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특유의 유쾌함과 경쾌함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을 나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내 박자에 맞춰 살어.’ 라며 젊은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동시에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간 포기했던 것들을 뒤로 하고 늘 새로운 것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구독자 80만명을 보유한 옷 잘 입는 할머니 ‘밀라논나’의 유튜브도 빼놓을 수 없다. ‘논나의 아지트’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콘텐츠다. 나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깨어 있는 조언과 함께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솔직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따스하고도 섬세한 시각이 MZ세대를 사로잡았다.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이 생을 처음 살아보는 것이므로. 자신이 체득한 지식과 경험은 전부가 아니고,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새롭게 변화 한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맹신이 두렵다. 내가 겪은 고통만 고통이라 여기고, 타인의 고통은 별 것 아니라는 오만 또한 스스로를 과거에 고립시킬 뿐이다. 타인을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의 크기와 다정하고도 자유로움을 지닌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런 고민은 언제나 근사하고 신비롭다.

2021-05-03

디지털 시대의 미술작품과 사라진 원본

대체불가능한 토큰 이른바 NFT라고 하는 것 때문에 미술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NFT는 블록체인의 암호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자산을 뜻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작품들은 그림이나 조각처럼 물질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NFT에서 거래되는 작품들은 디지털로 존재한다. 디지털 미술작품 혹은 디지털화된 미술작품 거래가 논의의 대상이 되면 진본성과 복제 가능성의 문제가 대두된다.미술품의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본성(originality)과 희소성(scarcity)인데 디지털로 존재하는 작품에서는 진본과 복제본의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본과 복제본이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에 자연히 희소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활용한 NFT에서는 이런 문제가 극복된 듯 보인다. 디지털 작품에 고유 인식값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NFT가 어떤 작품의 원본성을 담보해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고유성과 유일성은 보장이 된다.1917년 마르셀 뒤샹이 남성 소변기를 작품으로 제시한 이후 미술은 줄곧 새롭게 규정돼 왔다. 공업적으로 생산된 기성품을 미술품으로 제시한 뒤샹의 레디메이드로 인해 진본의 가치는 희석됐다. 팝 아트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앤디 워홀의 작품들 역시 판화기법 실크스크린을 통해 제작됐다. 판화의 특성상 작품을 찍어내는 원판은 존재하지만 유일한 원본은 있을 수 없다. 인화를 통해 동일한 작품을 기술적으로 재생산 가능한 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복수의 진본이 만들어지면서 물리적으로 동일한 작품들에는 진본성과 희소성의 시장적 가치를 보존해 주기 위해 에디션(edition)이라는 장치가 마련됐다. 일종의 한정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워홀의 팝아트는 대중적 이미지를 재생산해 작품의 형식으로 보여준 것으로 미술 창작의 개념과 방식을 바꿔 놓았고 노동을 통한 직접 제작이라는 고전적 창작 방식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미술작품에는 작가의 손길 혹은 흔적이라는 일종의 신비감과 신화적 요소가 제거됐다.1960년대 이후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술은 더욱 더 개념화되고 관념화되고 비(非)물질화 된다.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나 행위가 미술이 되고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연현상이 미술이 되기도 한다. 고정된 형식을 취하지 않고, 보존할 수 없으며, 물질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해 진본성을 묻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런 성격의 작품들은 기록과 재현의 방식을 빌려 전시되고 보존되고 소유된다.일찍이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년)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미술작품의 미래를 예견한 바 있다. 벤야민의 견해에 따르자면 진본에서는 복제본과 달리 아우라(aura)가 발산된다. 그리고 그 아우라는 감상자들에게 시각적 경험을 초월한 전혀 다른 차원의 미학적 경험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 작품에서는 진본과 복제본은 질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미술에서 진본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는 무엇일까?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진본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작품창작의 과정을 아이디어가 만들어진 순간에서부터 제작과 완성까지의 단계로 본다면 진본성이 발생하는 시점은 어디일까? 일반적으로 미술가가 직접 창작한 작품을 진본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미술품들은 직접 창작이라는 고전적 잣대로 판단될 수 없다. 그리고 미학적 관점에서는 보았을 때 진본성 자체가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진본성의 문제는 오로지 미술품 소유와 소유권의 증명이라는 범주에서만 주요한 담론으로 여겨질 뿐이며 이러한 담론을 응축해 보여주는 것이 NFT를 기반으로 한 미술품의 디지털 자산화 현상이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1-05-03

왕궁 안에 남겨진 신라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 사방을 망라한다.(德業日新 網羅四方)”신라는 그 나라 이름에 담긴 소망처럼 월성을 중심으로 성장해 주변 나라를 통일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한 축으로 번영했다. 실크로드로부터, 그리고 다시 바다로 이어지는 문화 교류의 중심에 서 있었다.이곳이 서라벌로 불리던 때, 월성은 신라의 수도에 위치한 왕궁이었으며 정치·문화·경제의 중심지였다. 약 800년 동안 왕과 왕족 그리고 역사 속 인물들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실크로드를 통해 건너온 많은 외국 사신들이 오가며 다양한 문화가 함께 어우러졌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월성에는 연주하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낫고, 바다의 파도가 잔잔해진다는 피리인 만파식적이 왕실 보물창고인 천존고에 보관되어있었다고 전해진다. 월성은 신라의 국보(國寶)를 보관하던 신성한 공간이기도 했다.안타깝게도 현재 월성에는 드문드문 신라시대 건물을 지탱했던 돌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 긴 역사의 시간이 온전히 땅 속에 남겨져 있음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월성 내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 착수 이전, 2007~2008년 월성 전체에 대한 지하레이더탐사(GPR)를 실시하였다. 마치 우리 몸을 컴퓨터단층(CT)촬영을 통해 투시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지하레이더탐사를 통해 땅 속의 남겨진 건축물의 흔적을 찾아,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월성 내부 3만4천42평의 면적에 2.8m 깊이로 지하레이더탐사를 실시하여 건물의 흔적을 집중적으로 확인하였다. 문(門)의 흔적은 최소 3개소 이상, 건물지는 최소 20개동 이상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14년 월성 내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현재 조사 중인 약 6천400㎡ 범위에서는 17개의 크고 작은 통일신라시대 건물지가 밀집되어 확인됐고, 1만1천여점이 넘는 유물들이 출토됐다. 출토유물과 연대분석 검토를 통해, 약 240년 동안 이어진 통일신라시대 전 시기에 걸쳐 건물지가 지어지고 수리되고, 또 다시 새롭게 지어진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월성에서는 정전(正殿)이라고 불릴 수 있는 중심건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가로축이 긴 회랑형(복도식 건물) 건물들과 그 주변의 벼루 등 유물의 출토 상황을 통해 현재 조사 지역에는 관청(官廳)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발굴조사의 결과는 늘 새로운 발견과 또다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곤 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조사 결과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그때’의 풍경이 궁금해지곤 한다.월성 조사를 통해 확인된 월성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수백 년의 시간이 깃든 월성의 전모를 확인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확인된 몇 가지 힌트들이 우리에게 월성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최문정학예연구사먼저 6천여점이 넘게 확인된 기와이다. 기와는 고대 건축물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목조건물의 지붕에 올라가며 비와 화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가진 재료이기도 하다. 더불어 건물의 경관과 장식, 위용을 돋보이기 위해 쓴 막새(瓦當)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와는 규격화된 형태의 대량생산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공인(工人)집단의 안정적인 생산체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기술을 익히고 운영하며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장소에 기와를 제공했을 신라의 솜씨 좋은 기와 공인들이 떠오른다. 왕궁을 짓고, 또 새로 고쳐 쓰는 동안 그들은 가장 좋은 기와들을 월성으로 보냈을 것이다. 또 월성에는 기와를 쌓아 지붕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월성 내부에서는 흙으로 빚은 그릇, 토기도 다수 출토됐는데 그 중 도부(嶋夫)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도부’가 토기를 만든 사람 혹은 이 과정을 감독한 사람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추정한 연구 결과를 통해 본다면, 토기를 만드는 ‘도부’라는 이름의 사람이 자신이 만든 토기에 이름을 새기는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겠다.우리는 월성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이용되어온 다양한 단면을 찾고자 한다. 더불어, 그 곳을 호령하던 왕의 발자취 뿐 아니라 묵묵히 월성을 쌓고 가꾸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찾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월성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기간을 생각해본다면 조사·연구의 깊이를 가벼이 여길 수 없다.차곡히 쌓여가는 충실한 조사와 연구 성과들이 모여, 우리는 신라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나길 기대한다.월성, 왕궁 안에 남겨진 신라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해 줄 것이다.

2021-05-03

청년들의 취업을 보장하라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국어사전에 캥거루가 미숙한 상태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다른 짐승에게는 없는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어 젖을 먹이고 보호한다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대학을 졸업해 취직할 나이가 됐어도 취직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살거나 취직을 했더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의존하는 청년들을 캥거루족이라 한다.우리나라가 IMF 때 대학가에서 신조어로 유행하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젊은 미혼 30대가 50% 이상이 캥거루족으로 부모와 함께 산다. 이들은 직장이 없는 미취업자다. 당연히 집을 구입 할 돈이 없어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산다.2021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30대 미혼 인구 중 부모와 동거하는 사람의 비율은 54.8%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개발원이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20%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20∼44세 미혼 인구의 세대 유형을 조사한 결과다. 연령집단별로 보면 30∼34세 중 부모와 동거하는 사람이 57.4%, 35∼39세는 50.3%로 각각 집계됐다. 40∼44세의 경우 미혼 인구의 44.1%가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 인구 중 42.1%는 취업을 못한 상태다.코로나19 1일 확진자 수가 600명을 넘는 상황에서 젊은 청년들의 올해 취업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구직급여 수급자는 75만9천명으로 집계됐다. 기존 역대 최대 기록인 2020년 7월의 73만1천명을 뛰어넘었다.2021년과 같은 상황이라면 취업의 기회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 구직자가 넘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캥거루족의 부모님 탈출은 언제 될까? 우리 모두 사회적 책임이 아닌가 싶다. 함께 힘을 합하여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울 한복판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술과 춤으로 사람들의 눈총을 사고 있다. 남의 자식이 아닌 내 자식의 일이다. 우리의 일이다.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해야 청년들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자. 내로남불 나의 일이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말자.통계청 조사대상 미혼인구(20∼44세)를 통틀어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의 비율은 62.3%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 미혼 인구의 경우 42.1%가 미취업 상태이다. 취업자 비율은 57.9%에 해당된다. 우린나라 경제적 자립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청년들의 취업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미혼의 인구가 62.3%이라는 것이다. 청년들이 캥거루족에서 벗어나 취업하고, 결혼해야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주택문제와 취업이 핵심이다. 청년들이 넘을 수 없는 벽의 외침을 듣자. 언제까지 코로나19 탓만 할 것인가. 청년들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년들의 손에 달려 있다. 청년들에게 취업을 보장해야 한다. 나, 너,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2021-05-03

오월의 햇살처럼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비 내린 뒤의 신록이 한결 싱그럽다. 연하던 이파리들이 차츰 짙어져 초록세상을 수놓고 파릇한 보리는 잔잔한 파도의 속삭임처럼 여울지고 있다.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한 ‘오월은 푸르구나’의 가사처럼 5월은 아동들의 꿈이 자라고 마음이 푸른 모든 이의 푸른달이라고도 한다. 오월의 바람과 빛깔, 소리와 향기는 부신 햇살 속에 쏟아지는 자연의 멜로디처럼 들리고 보이고 흐르는 듯하다. 꽃은 피어 절로 지고 잎은 돋아 청록의 몸짓으로 마음의 자극을 주는 계절, 설렘과 희망을 파종하는 봄날이 깊어 가고 있다.나날이 짙어 가는 풀빛과 번져가는 녹엽을 보니 초록동색(草綠同色)이란 말이 떠오른다. 풀빛과 녹색은 같은 빛깔이란 뜻으로,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같은 처지나 기풍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동류를 찾아 모인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유유상종과 비슷한 말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취향이나 생각, 관점이나 신념 등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이같은 동류의식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맺게 하고 친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마치 꽃이나 나무, 풀들이 신록 일색으로 물결치는 것처럼.그러나 아무리 초록이 동색이고 끼리끼리 어울린다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방과의 초점을 맞추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이해와 노력이 있어야 최소한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부류의 구성원이라도 시각의 차이와 주관이 다름을 인정하고, 말 한마디라도 긍정적이고 이타적인 방향으로 주고받으면 한결 부담 없고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즉, 원활한 소통으로 서로가 공감하고 배려와 절제로 상호 존중의 미덕을 지켜나갈 때, 진정한 어울림과 향긋한 초록동색의 넉넉한 초원이 펼쳐질 것이다. 십 수년째 작은 정원이 딸린 집에 살면서 자연의 섬세한 움직임과 미묘한 변화를 가까이서 느끼고 있다. 예컨대 나무나 풀들이 자리잡고 생겨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잎이 돋고 자라는 것 같지만, 옆가지가 서로 부딪치면 적절히 한쪽으로 성장을 멈춘다거나 수분 공급을 중지해 마른 가지로 남겨두는 걸 몇 번씩 지켜봤다. 또한 앞집 담장을 넘어간 담쟁이를 앞집 주인이 매몰차게 다 걷어버리자 몇 년 후에 새롭게 돋아나는 담쟁이가 아무런 유도를 하질 않았는데도 방향을 아예 옆으로만 틀어 올해도 계속 덩굴을 뻗어가고 있다. 수목과 식물들도 이렇게 양보와 절제가 있고 경계와 견제 속에 동류상구(同類相救)로 서로를 지켜가는 듯하다. 해와 달은 모든 사물을 공평하게 비춘다(日月無私照) 해도 자연만물은 저마다의 생김새에 따른 생장과 기능, 번성의 정도가 다르다. 인간의 생리적인 활동과정이나 동·식물의 생태계는 복잡미묘하지만 공통의 요소와 차별화된 부분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해 상생과 공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오월의 햇살은 푸른 숲 잎사귀에 샘물 같은 새뜻함을 적시고 강물 위에 금가루 같은 윤슬을 뿌려주고 있다. 비슷하면 좋아지듯이 초록으로 어우러지는 오월숲처럼 풋풋하고 사랑스럽고 숭고한 나날이 됐으면 좋겠다.

2021-05-03

네이버 웨일

네이버 웨일은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웹브라우저로, 네이버가 3년 안에 국내 브라우저 시장을 석권해 구글 ‘크롬’의 아성을 깨겠다고 선언할 만큼 공을 들인 프로그램이다.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는 Mac OS는 물론 Androids, iOS 모두 지원하기 때문에 모든 사용자가 함께 공유하며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2017년 처음 나온 웨일은 하나의 창을 두 개로 나눠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듀얼 탭’, 처음 보는 단어도 드래그하면 바로 뜻을 알려주는 ‘퀵서치’, 다양한 편의 도구를 한데 모아볼 수 있는 ‘사이드바’ 등 새로운 기능이 깔렸다. 웨일이 처음 선보인 ‘사이드바’는 웨일 브라우저 창을 띄우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도록 단독모드 위젯을 설정할 수 있게 했다. 즉, 한글 파일을 보고 있거나 다른 브라우저를 열어뒀을 때도, 우측으로 마우스를 이동시키면 숨어 있던 사이드바 위젯이 나온다. 사이드바는 북마크·스크랩북·네이버메모 등 여러 편의도구를 비롯해 네이버웹툰·바이브 등 다양한 확장앱을 우측 바 형태에 모아두는 기능이다.네이버 웨일은 PC에서도 모바일 서비스를 그대로 사용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뒀다. 웨일은 PC 웨일에서 검색한 업체에 전화걸기 버튼을 누르면, 바로 핸드폰으로 번호를 전달하는 ‘PC전화’ 기능을, 지난 2월에는 세계 최초로 브라우저 내 화상회의 솔루션인 ‘웨일온’을 출시했다.화상회의를 무료로 시간제한없이 500명까지 시작하고자 한다면 아이콘 클릭 후 회의시작을 눌러 ROOM을 만들고, 내가 원하는 회의, 친구모임 등 원하는 회의명을 설정하고, 회의인원을 모집할 수 있다. ZOOM 화상회의 서비스를 위협할 서비스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눈부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03

2022 대선의 필승 키워드 ‘혁신’과 ‘중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했던가? 성난 민심이 배를 뒤집었다. 4연승 후 서울·부산 보선에 참패한 여당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 당황하고 있다. 그렇다고 승리한 야당의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2022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어서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革新)’과 ‘중도(中道)’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워드(key word)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는 중도정신으로 혁신하고, 혁신을 통해서 중도의 마음을 얻는 정당이 승리한다. 공정과 통합을 위한 혁신과 중도가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혁신이란 무엇인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 진보는 진보를 내려놓고, 보수는 보수를 내려놓아야 혁신할 수 있다.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흑백논리’와 ‘내로남불’은 진영정치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인지를 말해준다. 이념에 갇힌 좌우 꼴통들의 수구적 행태로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가 비판을 수용하여 혁신하지 못했으니 참패한 것이다. 권력도 술처럼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중간(中間)이 아니라 근본(根本)바탕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이다. 중도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며, 극단적 견해를 삼가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신이다. 정치적 중도층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정도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정의·실용을 지향하는 심판관이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유권자들의 성향은 대체로 중도 48%, 보수 25%, 진보 27% 내외로 분석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극단적 지지층’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중도’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제3지대 인물들도 일제히 대선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 민심을 얻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어떻게 민심을 얻을 수 있나? 혁신과 중도다. 이 두 개념은 제3지대 인물, 예를 들어 현재 대선후보 지지도 1위인 윤석열과의 연대도 가능하게 해주는 필승의 키워드이다. 어느 진영이든 혁신을 부정하면 중도가 이탈함으로써 패배할 수밖에 없다.나라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정치인(statesman)들의 정당은 제대로 혁신할 것이지만, 나를 위해 나라를 이용하려는 정치꾼(politician)들의 정당은 속임수를 쓰려고 할 것이다. 중도를 우습게보고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합리적인 중도는 ‘누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실정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임을 깨달아서 과감히 혁신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중도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대권을 잡게 될 것이다.

2021-05-03

교도소 갈 각오를 해야 하는 기업인

심충택논설위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 2월 22일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거 출석시켜 ‘산업재해 청문회’를 연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그날 위안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사기·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TV에 방영됐다. 윤 의원이 요통으로 인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나온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향해 “증인은 포스코에서 노동자들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야단치는 장면은 핫 이슈가 됐다. 관련 기사에는 ‘어이가 없다’,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등등 윤 의원을 비꼬거나 비난하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최 회장은 취임 후 기업경영에 사회적·환경적 책임과 수평적 거버넌스 개념을 도입해 포스코의 이미지를 혁신하고 있는 인물이다.윤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에도 관여해왔다. 중대재해법은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 씨 사고를 계기로 민주당에서 발의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조만간 시행령이 확정되면 내년부터 법률효력이 발생한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의 입법취지, 실행가능성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시행령을 마련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중대재해법은 하청 업체를 포함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게는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상시근로자 5인이상 50인미만 기업은 3년유예) 시행되면 산재 발생 가능성이 상존(尙存)하는 조선·철강·화학·건설업종 CEO들은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 반응이다. 법률 내용 중 형사처벌 근거가 되는 경영진 과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의도를 가진 ‘고의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더라도 재해만 발생하면 대부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대구경영자총협회도 최근 대구지역 국회의원과 기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법률의 ‘보완입법’에 대해 논의했다. 금형·주물업 등 대구시내 공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뿌리산업 기업인들이 특히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뜨거운 쇳물이나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공정이 있는 업종이라 직원들이 잠시만 방심해도 산재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중대재해법의 바탕에는 우리나라 기업이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시키며 성장했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근로자 안전을 침해하는 것은 범죄행위이고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일리(一理)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산재사고의 모든 책임을 기업주에게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유지하더라도 개인이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예방이 불가능한 사업장도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 중에는 만약 사고가 나서 사장이 구속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무거운 처벌보다는 기업이 안전시스템 점검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2021-05-02

묘비명(墓碑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명예로운 인물로 남아야 한다는 뜻이다.묘비명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짧은 문구를 묘비에 새긴 글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덤 앞 묘비에는 죽은 사람의 생전 공덕이 많이 새겨진다. 특히 서양의 경우 묘비명이라 해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미리 써놓거나 준비를 하는 관습이 있다. 촌철살인하는 내용도 많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전하는 인생 철학이나 교훈이다.프랑스의 대표적 소설가인 모파상은 남부럽지 않은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으나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글을 남겼다.“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번역된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보는 내용이다.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은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평소 생각을 묘비에 담았다. 중광 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는 말로 괴짜스님다운 글을 남겼다. 누구의 말이든 죽음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라 생각하면 심오함과 진지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장례를 마친 정진석 추기경의 무덤 앞에는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라는 묘비명이 새겨졌다.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것”을 사목 목표로 삼았던 정 추기경의 뜻을 기린 글이다. 바지 한 벌로 18년 입을 정도로 검소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장기와 가진 모든 것을 내주고 떠났다. 독선과 분열,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그가 남긴 나눔의 정신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02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관광섬

김병수 울릉군수코로나19시대 2년차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국가적으로 관광사업과 소비가 위축되었고, 울릉군도 예외 없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울릉군은 여러 가지 비전을 품고 있고, 그중 핵심비전은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관광섬 조성’이다. ‘꿈이 있는 친환경섬 건설’이라는 군정 목표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관광자원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대표적으로 ‘해담 길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담길은 울릉도 둘레 길의 이름으로 동해의 맑고 깨끗한 해안과 아름다운 내륙을 동시 감상할 수 있는 울릉도만의 독특한 길이다.해담길 조성사업은 2022년까지 사업비 30억 원을 투입해 길이 약 40km, 총 8가지 코스로 구성된 걸으면서 힐링하는 ‘걷는 길 개발’ 사업이다.육지의 어느 지역에서도 만날 수 없는 내륙 및 해안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이뤄져 관광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생태관광 섬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울릉군은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및 홍보 진행 중이다.단체관광이 주류를 이루던 과거 모습과 달리 커플·신혼부부를 비롯한 가족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개별관광객 위주의 관광상품과 함께, 울릉의 숨겨진 자연관광을 활용한 울릉 힐링로드 등 시대 흐름에 맞는 관광상품을 준비하고 있다.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울릉군은 올 3월 23일 울릉도 특산물에 대해 협업 네트워크 구축 업무협약을 구리농수산물공사와 체결했고, 앞으로 농수산물 유통 및 출하를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여 울릉군 농어가소득 증대에 크게 보탬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4월 20일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판매 업체인 현대홈쇼핑과 울릉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현대홈쇼핑 본사에서 체결했고, 현대홈쇼핑이 보유한 다양한 방송채널을 통해 울릉군의 청정 농·수특산물 판매확대 및 홍보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대 홈쇼핑은 앞으로 울릉도 1DAY 특집전 기획 생방송 판매·홍보, TV홈쇼핑 상생 프로그램 LIVE 방송 진행, 라이브커머스 쇼핑라이브를 통한 LIVE방송 진행, 각종 매체를 통한 상호 홍보 등을 할 계획이다.특히 서울의 유명 농수산물 시장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을 통해 울릉도의 우수한 특산물을 서울시민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울릉도 농수특산물의 안전적인 팔로를 개척 농어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토록 하겠다.울릉도의 생채나물 유통활성화를 위해 울릉농협과 협력하여 사업비 8천만원으로 ‘울릉산채 선도유지 현장실증 시범사업’을 진행, 산채의 선도유지 저온유통 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귀농인을 위한 빈집수리 및 소득지원사업과 축산농가를 위한 축산물 생산·유통기반 조성과 방역지원, 산채재배농가를 위한 인력·농기계보급지원과 생채나물 유통활성화를 통해 농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농업인 삶의 질을 향상해가고 있다.생채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업비 1억원으로 3월~5월 기간 중 생채 수매분에 한해 육·해상 유통물류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지갱이, 명이나물, 우산고로쇠 수액 등 우수한 품질의 울릉 특산품 소비를 증대시키고자 최선을 다하겠다.저출산·고령화 등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울릉군 인구가 감소 추세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구 정책 홍보와 맞춤형 인구교육 등으로 인식 개선을 꾀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하겠다. 정주여건 개선, 출산·양육 지원, 교육·환경 지원을 다양한 사업들로 진행하여 인구 이탈을 방지하고, 내부 인구 증가와 외부 인구 유입이 촉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특히, 전입을 장려하기 위해서 ‘귀농인 정착지원 사업’을 진행, 울릉도를 방문한 도시민들에게 울릉군을 삶의 터전으로 홍보, 이를 통해 귀농을 목적으로 전입온 분들께는 농기계 구입 지원, 저장고·모노레일 설치지원, 주택 리모델링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인구 1 만명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21-05-02

고방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다.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그 순간 멀리 사는 할머니를 불러오고, 과묵한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게 만든다. 온 가족이 자신을 향하게 해 놓고 옹알옹알 시를 뱉어낸다.아이들의 몸은 이야기 가득한 언어의 창고다. 수많은 낱말이 뒤섞여 복잡하기만 한 저장고에서 매주 한 편의 시를 끄집어내 주는 일이 내 몫이다. 아이들이 교실에 도착하기 십 분 전에 미리 칠판에 초성 찾기 할 자음 두 개를 적어준다. 잠시도 가만히 있기 힘든 2학년과 힘이 넘쳐나는 3학년 친구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집중력을 발휘한다.낱말을 찾아내는 친구들에게는 ☆을 주는데, 그것을 모아 선물을 받을 수 있어서 아이들은 눈과 손에 불을 켠다. 선물이라고 해야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우개, 공깃돌, 퍼즐 같은 천 원이 넘지 않는 가격의 소품이다. 다만 여러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을 받은 세 명이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니 받는 영광을 쟁취하려고 온몸을 쓴다. 자신의 몸 속 여러 방에서 낱말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무진장 노력한다.어릴 적 우리 집에는 방이 많았다. 부모님이 쓰시는 안방, 마루를 사이에 두고 갓 시집온 숙모와 삼촌 사이에 남동생이 끼어서 자고 싶어 했던 건넛방. 건넛방과 벽을 사이에 둔 뒷방까지가 안채에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사랑채에 기거하셨고 나와 언니는 사랑채 윗방에 지냈다. 식구들이 잠자는 방 말고도 디딜방아가 차지한 방과 소들이 허연 하품을 하는 외양간, 그 옆에는 짚이며 땔감이 가득 쌓인 헛간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기에 우리 집이 최고의 장소였다.그중에 내가 자주 숨어든 곳은 고방이라 불리던 창고였다. 문을 열면 젤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곡식을 담는 그릇들이다. 내 키보다 높은 시렁에는 채반에 갖가지 나물 말린 것과 계절 과일이 숨겨 있었다. 바닥에는 아이 하나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 단지가 둥글둥글 앉았고, 그 위 광주리에는 이름은 분명 있지만 내가 모를 뿐인 나물 말린 것들도 수북이 담겨 있다. 한쪽에는 콩이며 팥이 든 자루가 서로 기대고 있어서 내가 한 귀퉁이에 숨으면 감쪽같아서 숨기에 안성맞춤이었다.그곳은 할머니의 보물창고였다. 손님들 손에 들려온 과자 종합선물세트는 우리가 한꺼번에 다 먹어치울까 봐 높이 올려두고는 어르고 달랠 때 하나씩 선을 보여주셨다. 내가 몰래 들어가 맛난 걸 찾아내려고 해도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무서운 도깨비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아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 언니와 같이 들어가 뒤져봐도 어느 단지에 또 어느 상자에 달콤한 과자가 들어있는지 찾아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하지만 고방 주인인 할머니는 들어가자마자 금방 곶감이나 유과를 손에 들고나오셨다. 보기에 엉망으로 뒤섞인 내용물들이 할머니 눈엔 훤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어지러워 보이는 그곳에 할머니는 나름의 법칙으로 곡식과 과일과 달콤이들을 숨겨놓으셨다.아이들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잘도 시를 꺼내놓았다. 그 시들을 수업시간만 음미하고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다. 한 편 한 편 엮어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고 싶었다. 교실에서 연필로 쓴 시를 집으로 보내면 부모님들이 읽어보고 휴대폰에 써서 내게로 다시 보내진다. 모은 시를 한 권으로 만드는 게 내 몫이다.아이들의 시집을 편집하느라 한 달을 고스란히 집중했다. 강의가 끝나는 날 하얀 표지의 ‘보물창고’를 받아든 아이들에게 자기 시 한 편씩 낭송하게 했다. 공책이 아닌 시집에 인쇄된 자신의 시를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또랑또랑했다. 책을 받아본 부모님들이 문자로 전화로 감동을 전해왔다. 아이들의 시가 시인의 시 같다고 까르르 웃어넘기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귀에 와 닿았다. 그 순간 할머니가 고방에서 꺼내주던 과자의 달콤한 향 같은 것이 온몸에 퍼져갔다. 아이들이 나를 그리운 어린 시절로 데려다준다. /김순희(수필가)

2021-05-02

죽비소리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이른 봄꽃이 필 무렵부터 시작하여 산천에 녹음이 짙어진 지금까지 주말마다 대구에 다녀오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피치 못할 일로 가는 먼 길이지만 고속도로 주변은 넘쳐나는 연초록의 물결로 ‘신록예찬’이 절로 떠오르는 황홀한 풍경이라 이를 매주 감상하는 것은 행운이다. 돌아오는 길, 무심히 차창 밖을 보다 깜짝 놀랐다. 온통 누렇게 색이 변한 대나무 숲을 만났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도 변함없이 푸름을 자랑함으로써 군자의 절개를 상징하여 사군자의 하나로 불리는 대나무가 이 초록의 계절에 어찌 저리 되었는가.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백년에 한 번 핀다는 ‘대 꽃’이 핀 것일까?대나무는 평생에 한 번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여느 식물들과 달리 꽃가루 번식이 아니라 뿌리로 번식한다. 더 이상 뿌리로 번식할 수 없을 때 꽃을 피우는데, 그러니까 죽기 전에 마지막 의식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대나무의 죽음이 특별히 장엄한 까닭은 죽음을 무릅쓰고 꽃을 피워 종족보존의 본분을 다하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죽음공부’를 하는 지인이 있다. 죽음이란 것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피해 다니다가 어느 날 막다르고 후미진 곳에서 강도에게 급습 당하듯 맞닥뜨려야 하는 험악한 얼굴이 아니라 가능한 한 ‘살아서’ 죽음의 순간을 실감하고 싶어서라 한다. 그의 지인 중에는 죽음이 완전 소멸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한다. 죽음 후에 아무것도 없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죽는 걸로 끝이라면 구태여 착하게,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사람답게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고작 몇 십 년 사는 거, 나 위주로 살면 그 뿐이다. 그렇지 않고 잘 죽을 준비를 위해 필요한 것이 죽음공부다.‘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란 묘비명을 남기며 모든 이로부터 추앙받던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 소식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였다. 각막기증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주고 떠난 고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 미사가 치러진 명동성당에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별다른 조각 장식이 없는 삼나무로 짠 관 위에는 성경책 한 권만 놓여 있는 소박하여 더욱 엄숙한 장례 미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추모사,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알려주셨다.”처럼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고층아파트 불빛을 등지고 한 구비만 돌아들면 산골마을로 변하는 우리 마을의 초입에는 길 좌우로 키 큰 왕대나무들이 즐비한 구간이 있다. 마치 대나무 열병식이나 대나무 터널을 연상케 하는 이곳을 통과하며 이웃에 사는 선배는 여기가 마치 인간계와 자연계의 경계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굳이 그 말이 아니더라도 필자 역시 그곳을 지날 때면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전생과 현생, 혹은 현생과 내생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을 느끼곤 한다.군더더기 없이 살기 위해 속을 비운 대나무, 하늘 향해 곧게 자란 성깔 있는 존재, 대쪽 같은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죽비소리 ‘타닥!’, 굽은 등줄기를 내리친다.

2021-05-02

이팝나무 하얀 꽃잔치

윤영대수필가이제 계절의 여왕, 오월이 왔다. 우리는 아직도 ‘코로나 거리두기’라는 사슬에 묶여있는데 계절은 자연의 왕성한 힘을 부추기면서 찬란하게 피었던 벚꽃이랑 봄꽃들을 떨구어내고 봄비에 씻겨 아름답게 단장한 새 얼굴들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있다.길을 지나다 보면 하얀 꽃나무가 아름다운 가로수가 되어 줄지어 있는 곳이 눈에 많이 띈다. 이팝나무다. 언제부터인가 가로수로 심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로변이나 마을 길에도 5월이면 하얀 꽃들의 잔치를 즐길 수가 있다. 푸른 연록색 잎 가지에 하얀 꽃송이가 소복소복 쌓여있어서 늦봄에 흰눈이 내린 듯 신기하다. 배고팠던 옛 시절 밥사발에 소복이 담긴 흰쌀밥처럼 보여서 ‘이밥’ 나무라 했고 또 입하(立夏)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입하목, 입하나무로 불렀다가 다시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영어로도 하얀 눈꽃(snow flower)이다.입하는 ‘여름에 든다’는 절기이며 보리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의미로 맥량(麥6DBC), 초여름이라는 맹하(孟夏)라고도 하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계절이며, 고추 오이 가지 등 열매채소를 심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생각나는 흰 쌀밥 꽃, 그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경관을 보고 싶어 흥해향교 숲을 찾는다. 하마비가 서 있는 언덕바지에 주차하고 오르면 태화루의 시원스러운 팔벌림 옆에는 백 년은 넘었을 이팝나무 거목들이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다. 아니, 오월의 여왕이 하얀 비단옷을 입고 환하게 맞이하는 듯하다. 닫혀있는 문을 살포시 밀고 들어서면 명륜당도 고요하고 돌계단을 올라 대성전 뜰에 서니 막 송홧가루 날리기 시작하는 소나무가 묵상하듯 단정하다. 검은 기와지붕 위로 드리운 하얀 이팝나무꽃의 흑과 백, 파란 하늘 아래 울창한 푸른 숲의 청과 녹-이 자연의 어울림은 봄의 여왕이 주는 선물이다.옆에 있는 임허사 절의 독경 소리에 이끌려 좁은 길을 지나 올라서니 상수리나무와 어울려 많은 이팝나무의 흰 꽃들이 한껏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 옥성리 이팝나무군락지는 큰나무 26그루가 있어 작년 12월 천연기념물 제56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제일의 군락지다. 그런데 표지판은 경상북도기념물 제21호, 아직 바뀌지 않았네…. 운동시설과 쉼터 등 깨끗하게 꾸며진 언덕을 이리저리 천천히 걷다가 큰 이팝나무 둥치를 가슴에 안고 귀를 데어보니 조용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어젯밤 사이에 내린 빗방울로 하얀 꽃들은 더욱 얼굴이 곱고, 그래도 다 채우지 못한 이팝나무 모습의 미련에 시내 ‘철길숲’공원으로 달려갔다. 철도의 흔적을 따라 길게 조성된 Forail 산책길은 코로나에 지친 시민의 힐링 공간이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쌀밥 꽃들의 하늘거림 아래로 마스크를 쓴 채 가족 나들이하는 모습은 희망이다.5월은 또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는 몸매 고운 오월의 여왕이 하얀 모시옷 입고 너울너울 살풀이춤을 추는 이팝나무 숲길을 걸으며 바이러스의 횡포를 날려버리고 서로의 사랑을 듬뿍 느껴보자.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이다. 오월을 밝은 마음으로 맞이하자.

2021-05-02

걱정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 살았다. 그는 만약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면 몸을 지탱할 곳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 걱정남을 위로하는 친구 위로남이 있었다. 이 위로남이 걱정남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하늘에는 공기가 쌓여 있을 뿐이네. 공기가 무너질 리도 없고, 설사 무너진다 해도 다칠 이유가 없네. 우리는 이미 공기 가운데서 움직이며 숨 쉬고 있지 않은가. 왜 괜한 걱정을 하나?”“땅은 흙이 쌓여 이루어진 것일세. 사방에 꽉 차있는 흙이 어디로 꺼지겠는가? 저 수많은 사람과 무거운 집, 태산까지도 받쳐주는 대지가 아닌가? 괜한 걱정일랑 말게”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기우(杞憂)라는 말이다. ‘기 나라 사람의 걱정’ 다시 말해 쓸데없는 걱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가 임상연구원으로 있었던 하버드 의과대학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조지 월튼(George Walton)의 연구에 의하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없는 사소한 일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 4%,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 4%”라고 한다.유난히 걱정이 많은 분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위의 기 나라 사람처럼 현실적 고통보다 부정적 상상 속의 고통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날 확률이 적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걱정을 많이 한다. 자동차하면 사고, 아이가 학교에서 약간 늦게 오면 유괴, 밤거리하면 강도, 내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실패, ‘내가 하면 되는 일이 없어’라는 식으로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차분하게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바로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경향이 높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제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 “이거 큰 일 났구나.”라고 생각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부정적 상상에 의한 공포로 호랑이가 잡아먹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스스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호랑이 굴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그러나 걱정이 많은 사람은 이런 부정적인 사고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걱정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첫째,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걱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지기 때문이다.1987년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웨그너 (Daniel Wegner) 교수의 실험에서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거야, 걱정은 쓸데없는 거야.”라고 생각할수록 걱정들이 더 많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히려 “나는 지금 이런 걱정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수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둘째,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10분만 걱정하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평소 걱정 때문에 시간이 많이 빼앗긴다고 걱정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걱정을 멈추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그저 걱정만 하자. 단, 걱정을 할 때는 지침이 있다.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걱정들을 하나씩 글로 적어보자. 걱정들이 글로 정리되어 옮겨지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글을 쓴 후 차분히 읽어보자. 가능한 타인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의 걱정을 살펴보자. 지금 걱정에서 더 나은 해결책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일들이 실제로 내게 닥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소한 일을 내가 걱정으로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차분히 걱정들을 적고 읽다보면, 내가 그토록 괴로워하던 걱정이 실제로는 그토록 괴로워해야 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셋째, 걱정 시간이 아닌데도 걱정이 된다면, 걱정의 초점을 다른 것으로 돌리면 된다. 특정한 대안을 떠올려서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 것을 ‘초점 전환(focused distraction)’이라고 한다. 특히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에서 생각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면 더욱 도움이 된다.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을 감각이라는 영역으로 전환해보자. 음악 소리에 집중해도 좋고, 아로마 향에 집중해도 좋고, 아름다운 풍경에 집중해도 좋고, 호흡에 집중해도 좋다. 신체 감각으로 있는 그대로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면 된다. 걱정이라는 생각의 영역을 신체 활동이라는 영역으로 전환해도 좋다. ‘단순 반복 행동’에 몰입하는 것이 좋다. 설거지를 해도 좋고 청소를 해도 좋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해도 좋다.

2021-05-02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 울릉도·독도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애국가의 가사대로 동해물이 마른다면 울릉도와 그 부속섬 독도는 어떤 모습일까? 독도는 자그마한 돌섬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보는 독도는 해저로부터 높이 약 2천300m에 달하는 거대한 화산체의 정상부일 뿐이다. 약 460만년전 해저 화산분출로 생성된 독도보다 훨씬 뒤늦게 약 250만년전 생성을 시작한 울릉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높이는 987m이지만, 그 실제 높이는 무려 약 3천100m에 다다른다.지난 2012년 12월, 환경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품은 지질학적 가치에 주목해 울릉도·독도와 주변 해역을 제주도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하였다. 2021년 현재, 경북도 2개소(울릉도·독도, 경북동해안)를 포함하여 전국에 13개소의 국가지질공원이 지정되어 있다.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에는 이중분화구, 주상절리, 시스택, 해식동굴, 해식절벽 등 다양한 지질학적 특성과 함께 성인봉 원시림, 알봉, 용출소, 죽도, 관음도, 삼선암, 코끼리바위(공암), 태하해안산책로 및 대풍감, 황토굴, 도동해안산책로, 저동해안산책로, 죽암 몽돌해안, 학포해안, 거북바위 및 향나무자생지, 봉래폭포, 국수바위, 버섯바위, 노인봉, 송곳봉 등 울릉도의 지질명소와 함께 독도에는 숫돌바위, 독립문바위, 삼형제굴바위, 천장굴 등 지질명소가 있다. 그야말로 섬 전체가 지질명소이다.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산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섬 전체가 화산암과 화산쇄설성 퇴적암류로 구성된 독도는 폭발성 화산분출과 동해의 거센 파도에 깎이면서 다양한 화산암층, 주상절리, 해식동굴, 해식절벽 등이 존재한다.250만 년 전부터 생성을 시작해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약 5천년 전에 마지막 분출이 일어난 울릉도는 성인봉, 나리분지(칼데라), 알봉으로 구성된 이중화산의 형태를 띠고 있어 지질학적으로 매우 큰 가치가 있다.성인봉 원시림은 성인봉을 중심으로 나리분지 일대에 넓게 분포한다. 해발 약 360m에 위치한 나리분지는 동서방향으로 약 1.5㎞, 남북방향으로 약 2㎞에 이르는 울릉도의 가장 넓은 평지이다. 울릉도는 전체 면적의 약 67.7%가 해발 200m 이상일 정도로 지형이 매우 가파르다.성인봉 원시림에는 생성이후 육지와 격리된 탓에 섬말나리, 섬바디, 우산고로쇠, 섬백리향, 섬쑥부쟁이, 울릉산마늘(명이) 등 30여종의 울릉도 고유 식물들이 자생한다. 세계 섬 중에서 가장 많은 향상진화 특산식물 보유지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식물 진화 자연실험실이다.울릉도는 단단한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토양이 만들어지기가 어려워 식물이 살기에 힘든 땅이었다. 하지만 나리분지 알봉이 생성될 무렵인 약 5천년 전에 마지막 화산폭발로 부석들이 울릉도 전 지역을 덮었고 많은 양의 화산쇄설물들이 퇴적되었다. 부석질의 화산쇄설물은 쉽게 풍화되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층을 만들어 오늘날의 원시림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과거 비옥한 산림과 함께 현재는 더덕밭으로 유명한 죽도 또한 마찬가지이다.나리분지의 특징적인 지질구조와 풍부한 적설량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겨울 강수량이 가장 많은 울릉도의 기상 특성은 물이 풍부한 섬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하수로 발전하는 곳이 울릉도이기도 하다. 도동항과 저동항을 잇는 해안산책로는 울릉도 화산활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묵직한 지질교과서이다. 울릉도 북서쪽에 자리잡은 꼬끼리바위(공암)는 원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깍이면서 외딴 바위를 만들었으며, 또한 아치형 해식 동굴을 만들었다. 울릉도 북동쪽에 위치한 해안절경인 삼선암 또한 원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약한 부위가 파도에 의해 침식되면서 현재의 시스택 구조가 되었다.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2019년 울릉도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울릉도의 관광만족도는 다소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울릉도의 생태자원 가치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주고 있었다.울릉도의 관광 만족도 개선을 위해서는 생태자원을 기반으로 한 울릉도 고유의 생태관광 프로그램의 적극적 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관광객들은 해설사가 동행하여 울릉도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관광형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울릉군에서는 20여명의 국가지질공원 해설사를 두고 있으며, 사전 예약제를 통하여 울릉도(독도)의 지질학적 가치와 그 땅에 기대어 사는 주민의 삶을 알리고 있다. 울릉도와 그 부속섬 독도는 섬 전체가 야외자연사박물관이요, Eco-Lab (자연생태실험실)이라 할 수 있다.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본다. 그것이 또한 울릉군의 부속섬 독도를 지키는 길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향한 긴 여정도 시작되고 있다.

2021-05-02

경제계 상소문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상소문 형식으로 꼬집은 시무 7조의 청원이 화제를 뿌렸다. 20만명 이상 청원이 올라온 이 글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옛날식 상소문 형식에다 명쾌한 문장 전개로 세인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상소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다. 그 내용은 건의, 청원, 진정 등에서부터 개인적인 감사의 표시까지 매우 다양하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관료와 학자, 유생이 올린 상소는 수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상소는 관직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 유생까지 말할 수 있는 제도여서 당시 왕과 소통하는 창구로서 역할도 했다.조선시대 1만여 유생들이 올린 만인소(萬人疏)를 보면 당시 비록 왕권사회라지만 언로가 열려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시대 최초의 만인소(1792년)에는 영남유생 1만57인이 참여했다. 그들은 사도세자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내용으로 상소했다. 상소문 중에는 지부상소(持斧上疏)라는 것이 있는데, 목을 내놓고 상소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선조 때 왜국의 사신 목을 베고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조헌의 상소가 그것이다. 선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훗날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수모를 겪었다.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하는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의 탄원이 청와대에 전달됐다. 경제단체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 부회장 공백에 대한 광범위한 경제계 우려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보다 앞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0%가 그의 사면에 찬성을 표했다. 백신과 반도체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대해 그의 역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인다. 대개 상소란 민심을 바탕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이 높다. 상소를 접한 청와대의 생각이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29

시험대 오른 윤석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권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여론조사서 대선후보 적합도 1위로 나오는 윤 전 총장이 매우 유력한 대권주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윤 전 총장의 대권가도는 아직 멀고도 멀다. 윤 전 총장이 맞닥뜨릴 가장 큰 난관은 아직 한번도 정치권의 검증대에 오른 경험이 없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우리 정치권의 인물검증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장관직을 맡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국회 인사청문회지만 그 험난함 때문에 고사하는 이들이 많아 장관 후보를 뽑기가 어려울 정도다.실제로 학계에서 명망이 높은 분이나 고위공직자로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온 이들 가운데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허망하게 낙마한 경우가 적지않다. 대표적인 게 자녀병역 특혜나 학위논문 표절, 친·인척의 부동산 투기행위, 아이들 학군배정과 관련한 위장전입, 기타 업무와 관련한 특혜시비 등이다. 예전에는 논문을 쓸 때 표절여부를 그리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기에 학계 출신의 상당수는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고위공직자 자녀들 상당수가 병역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아파트나 땅 투자로 재테크한 경우 역시 부동산 투기란 비판을 받았고,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명문학군에 위장전입했던 사실이 발각돼 낙마한 경우도 많았다. 정작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업무적 능력이 문제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국회 인사청문회는 약과다.대권고지를 향한 인물 검증은 강도 자체가 다르다. 정치권 전체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물고뜯는다. 당연히 훨씬 가혹한 기준이 적용된다. 지난 대선 때 대선출마의 뜻을 밝히며 귀국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대선 불출마선언을 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당시 반 전 총장은 국외에서 주로 활동을 했기에 정치적인 공격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고, 외교장관에 임명될 때도 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그래서 대권 출마선언 직후부터 시작된 반(反) 반기문 세력의 파상공세가 더욱 힘겹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물론 윤 전 총장은 반기문 전 총장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있으며, 윤 전 총장에 필적할 만큼 지지율 높은 후보가 아직 없다는 것은 큰 메리트다. 다만 윤 전 총장이 국민의 힘으로 입당해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거쳐야 하는 게 부담이다. 당내에서 이끌어 줄 친윤파 의원이나 조직도 없어 후보로 확정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윤석열 신당을 만드는 것도 정치신인으로서 쉽지않은 일이다. 이 와중에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은폐·축소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된 전력이 있는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29일 자신을 기소한 윤 전 총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정치권 검증의 신호탄일 뿐이다.윤석열에 대한 검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1-04-29

윤여정 신드롬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제 이름은 윤여정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제 이름을 ‘어영’ 혹은 ‘유정’이라고 부르는데요. 제 이름은 ‘여정’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용서하겠습니다.”배우 윤여정으로 온 나라가 흥분에 휩싸였다.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를 통해 오스카 조연상을 받은 것이다. 연기상으로는 한국인 최초이고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라고 한다.지난해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적과 같이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당시도 연기상에서 한국인이 수상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고 더구나 2년 연속 한국영화 또는 영화인이 아카데미 시상대에 오르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올해 나이 일흔 넷의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믿기 힘든 순간을 한국영화 102년 역사에 남긴 것이다.‘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절대적인 기회를 준 사람이긴 하지만 윤여정 개인의 노력이 돋보인다. 전세계에의 각종 영화상에서 무려 42개의 트로피를 받으면서 정점의 오스카상으로 마무리 한 것이다.본격적인 소감에 앞선 윤여정 특유의 농담에 시상식 장내에 웃음이 번졌다. 이미 앞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당시 “‘고상한 척(snobbish)’ 하는 걸로 유명한 영국인들”이란 뼈 있는 농담으로 화제가 됐던 윤여정이었고 이날도 브래드 핏 제작자에게 “드디어 만났네요. 영화 찍을 때 있었나요?”라고 하면서 재치있고 유창한 영어 솜씨로 때때로 던지는 유머도 전세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지금 열광하고 있는 윤여정 신드롬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첫째, 자기 분야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은 결국 인정받는다는 전문성이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윤여정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정말 열심이었다. 중간에 10여년의 미국생활의 공백기를 딛고 귀국해 다시 차근차근 연기의 전문성을 쌓아 나갔다.둘째, 국제성이다. 한국어로 인터뷰하라는 요청도 있지만 국제어가 된 영어로 BBC, CNN 등 전 세계 매스컴에 자신을 알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어로 농담까지 겯들이는 모습은 그녀의 국제성이 앞으로 그녀의 국제성으로 높여 줄 것이다.셋째, 남을 배려하는 겸손한 이미지이다. 자신은 “최고”가 아니라 “최중”이 되자고 외치며 같이 경쟁한 후보들을 일일이 칭찬하고 자신에게는 조금 행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윤여정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노력을 통한 전문성, 그리고 국제적 감각으로 무슨 일이든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절대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윤여정의 초기 데뷔 시절 어딘가 부족한 듯한 연기를 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걸어온 길에 경의를 표한다. 그건 우리 모두가 배워야할 길이다.윤여정 신드롬을 마냥 즐기고 싶다.

2021-04-29

미국과 중국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인 조선말기는 지리멸렬한 정국이었다. 오랜 당파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된데다 국제정세에 무지몽매한 조정은 불어 닥친 외세의 바람에 갈팡질팡하고,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19세기 말에 네 차례나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 비숍 여사는 조선인들의 가난과 불결, 게으름에 놀랐다고 한다. 조선의 백성들이 가난한 것은 노동의 의욕이 낮고 따라서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인데 이는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절망과 체념이 백성들을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만든 거라는 결론이었다. 거기다 상류층은 사치와 방탕에 절어 있었다고 한다. 맹자에 나오는 ‘國必自伐然後人伐之(나라는 스스로 망할 짓을 한 후에 다른 사람이 멸망시킨다)’는 말처럼 조선은 이미 곳곳에 패망의 징조를 보이는 나라였다.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된 것은 미국의 원폭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때문이었다. 타력에 의해 불시에 해방은 되었지만, 막상 나라를 다시 일으킬 준비는 되어 있질 않았다. 당연히 좌왕우왕하고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었다. 식자층의 과반수가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고 국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찬성한다는 실정에 남쪽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수립된 것에는 미군정과 이승만의 의지와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미국과 동맹을 맺고 비호와 원조를 받은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혜택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김일성이 도발한 6·25전쟁에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도움이었다. 미국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 때 대한민국은 없어지고 우리는 지금 김정은을 절대 존엄으로 떠받들어 모시고 사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비록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도운 것이라 한들 그것이 우리나라를 살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일이다. 반면에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으면 남북은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압록강까지 진격을 해서 한반도의 통일은 눈앞에 둔 순간 중공군의 침입으로 무산이 된 것은 천추의 한으로 남을 일이었다. 전쟁의 발발에서 병력투입까지 중공은 명백히 대한민국의 적국이었다.지금 대한민국 정부의 요직을 장악한 주사파들 중에는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것이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6·25전쟁에 미군이 참전해서 적화통일을 막은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미군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노선이 반미친중 정책이다.반대쪽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겉으로는 아닌 척 위장을 하더니 차츰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분명한데도 경각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사코 엇길로만 가는 정권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2021-04-29

달동네 같은 교회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한국 건축의 아버지 김수근씨는 “우리 선조들은 집을 건축할 때에 집 없는 이들이 묵어갈 사랑방을 두었다”면서 건축에는 반드시 이웃과 함께할 공간이 포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 승효상은 “무엇이 진정한 건축인가?”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달동네를 방문하게 되었다. 달동네는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라 서로 필요한 자원을 나누며 살았다. 단칸방이라 집에서 모일 수 없어 지형을 따라 생성된 좁고 굽은 길에서 모였는데 그 길은 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 놀이터요, 치유가 이루어지는 병원이요, 물자를 나누는 시장이요, 삶을 공유하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이 길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활의지를 다지고,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 승효상은 달동네의 길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건축의 길을 찾았다.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교회란 무엇인가?”하고 묻자 교황은 “교회는 야전병원과 같은 곳”이라 했다. 야전병원은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해서 다시 전쟁터로 돌려보내는 재활의 장소이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상처입은 사람이 치료받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곳이 교회라는 뜻이다. 도시건축학자들은 야전병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달동네라고 했다. 달동네는 인생의 낙오자들이 잠시 머물러 살면서 재활의 의지를 다지고 다시 나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미관을 해친다는 명분으로 달동네를 없애려 하지만 달동네가 사회에 기능하는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기에 선진국가에서는 하나 이상의 달동네를 존속 시키고 있다. 미국의 할렘, 영국의 이스트런던, 프랑스의 아롱디스망이 그것이다.나사렛은 로마에 의해 파괴된 세포리스라는 도시에서 시오리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은 멸시받고 천대받은 인생의 낙오자들이 사는 달동네와 같은 곳이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속담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철저히 버림받은 달동네였다. 그곳이 바로 예수의 고향이었다. 그곳에서 예수는 버려지고 상처입은 자들의 재활 치유자였고, 삶을 공유하는 희망의 예언자였고, 생명의 길을 제공하는 자였다. 당시 성공한 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축제를 즐겼지만 실패한 낙오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성전출입이 금지 되었다. 예수는 이들을 위한 축제를 갈릴리 빈들에서 열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불러온 달동네의 축제이다. 이 축제 정신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초대교회로 이어졌고 오늘의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야전병원은 오늘의 달동네이며 오늘의 교회는 달동네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2021-04-28

인연을 짓다

정미영수필가벚나무 꽃자리마다 초록빛이 시(詩)처럼 흩날리는 봄날이다. 나는 도서관을 향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책과 먼저 눈인사를 나눈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사이를 오가며 서너 권의 책을 꺼내 들면, 작가의 소중한 글을 제각각의 공법으로 알차게 꾸민 출판사의 노력이 표지부터 물씬 전해진다.책을 펼치면 주옥같은 언어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인생의 세밀한 구석들을 명증하게 들추어내는 책을 들여다볼 때면, 수필을 쓰는 나로서는 자극을 받을 때가 많다. 나도 우리네 인생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를 사용해 진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내 수필 속 청신한 문장들이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선명하게 돋을새김 되어 빛나면 좋으련만.독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임계점이다.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자분자분 문장을 음미하다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책에 몰입하게 된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순간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창조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치유받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책에서 얻은 순도 높은 깨달음을 공유하는 데에는 독서 모임이 제격이다. 나는 포항시립도서관에서 인문학 독서회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덕분에 회원 분들과 어우렁더우렁 ‘책수다’를 떨고 있다.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행복해질 거야.’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문장을 빌려 독서회를 기다리는 내 설레는 마음을 표현해 본다. 우리는 책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문장과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자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책 향기를 맡으며 우리들 내면이 성숙해지기를 바랄 때도 있다.책은 타인과 소통하는 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내 생활을 잠시 멈추고, 문을 활짝 열어 내 주위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뜻에서 독서회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미 타인과 소통하고 있다. 회원들은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말하며 고단한 등을 토닥여 주고는 함께 눈물 흘릴 때가 있다. 삶의 깔딱고개를 넘어오느라 숨이 찬 것을 잠시 내려놓기도 하고, 자녀와의 부대낌 속에서 겪는 속상함을 이야기하면서 치유 받기도 한다. 시나브로 우리는 책을 통해 기꺼이 동반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나는 독서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회원 한 분이 내게 책을 선물해 주셨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받은 속상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심리 책을 섭렵하고 있는 중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 상처를 보듬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고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위로를 받았다며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단다.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내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독서회는 꿈 씨앗이 영글어 가는 곳이다. 좋은 책은 꿈을 잃고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되돌려 주거나, 혹은 꿈을 잃어버린 채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세상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의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자신만의 꿈 씨앗을 싹 틔우고 튼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다.회원 분들은 품이 넉넉한 탓에 누구라도 환영한다. 책을 읽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 찾아왔든, 사람이 그리워 찾아왔든, 항상 밝게 ‘손 내밈’을 한다. 독서회는 왜 질리지도 않고, 계속 참여하고 싶고, 옆에 영원토록 붙잡고 싶은 것일까. 우리 회원 분들이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희망의 언어를 책 속에서 찾아내어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곡진하게 기원해본다.나는 지금, 독서회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짓고 있다.

2021-04-28

유년의 봄

하늘이 참 맑은 날, 바람 한 자락에 꽃 소식이 묻어왔다. 먼저 나서는 마음 따라 자두나무 과수원으로 향했다. 밭둑에는 쑥, 냉이, 민들레꽃이 나붓이 엎드려 있고 나무들은 하늘 아래 햇볕 바라기 중이다. 어우렁더우렁 자두나무 사이를 걷는데, 아찔한 향기에 취해 잠시 걸음을 멈춘다. 꽃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가지를 뒤덮은 나비 떼가 파르르 날갯짓한다.나무가 열매보다 먼저 꽃을 피운 길이다. 향기 없는 꽃이 있을까마는 여느 꽃보다 자두 꽃의 진한 향기가 온몸에 밴다. 목련처럼 인심 넉넉한 꽃송이를 피워 사람을 불러들이지도 않고, 앙증맞은 꽃을 나무에 달아 놓고 화르르 떨어져 버린 벚꽃도 아닌. 자두는 순백의 꽃잎에 꽃 수술을 촘촘히 새겨 놓았다. 봄볕 아래 참 해사하다.하늘 아래 거저 피는 꽃이 있으랴. 비와 바람과 눈보라 그리고 살갗을 에는 한파를 견뎌낸다. 강산이 서너 번 변한 때에 나무는 나무껍질에 숨구멍을 내면서 제 몸을 키운다. 불규칙하게 세로로 갈라진 몸피를 보니 삼십 년쯤 되었을까. 나무의 몸통이 검고 골이 깊을수록 나무가 견디었던 시간이다. 그러면서 나무는 봄이면 가지를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꽃을 피워 나비를 부른다.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다. 고향 집 앞마당 우물가에 자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키가 크지 않아 가지에 열매를 늘어지게 달고 있는 자두나무를 만만하게 보았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 나무에 올라갔다.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자두 하나씩 나눠 주며 으스대고 싶었다. 마지막 한 개를 따려다 가지가 부서져 나무에서 떨어졌다. 순간, 기절했다. 내 머릿속의 기억 한 부분을 완전히 지워 버린 사건이었다. 부모님은 다음 날, 자두나무를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자두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향에서는 자두를 ‘왜추’라고 불렀다. 왜추의 맛은 고향처럼 내 몸에 각인 된 그런 맛이었다. 첫 아이를 배고 입덧이 왔을 때 왜추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무더위에 지치고 입맛 헛헛한 날, 과일가게에 있는 진한 보랏빛의 자두를 보자 침샘이 자극했다. 잊혔던 고향의 입맛을 불러왔다. 잘 익은 자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과즙이 터지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고였다. 고향 집 왜추나무의 추억을 불러들여 입덧의 고비를 넘겼다.자두나무는 초봄에 하얀 꽃을 피우고, 늦은 봄에 잔가지 하나에 초록빛 작은 열매를 열 개 정도 맺는다. 오월이 오면 농부의 일손이 바빠진다. 일일이 나무를 돌아보며 적과해서 튼실한 것 하나만 남긴다. 남은 작은 열매는 여름의 뙤약볕을 견디면서 붉은색으로 익어간다.자두는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까? 자두나무는 16세기부터 1920년 사이에 자주색을 띠는 서양 개량종이 들어와 이름이 자도(紫桃), 자리(紫李) 등으로 불렸다. 지방별로 제각각 불리던 재래종 오얏과 섞여 쓰이며 점차 ‘자두’로 통일된 듯하다.오얏꽃의 꽃말은 순박, 순백, 열매의 모양을 본떠 순수, 다산, 생명력의 뜻이 있다. 맑고 순결하고 고귀한 오얏꽃은 조선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1892년 처음 등장했다. 대한제국이 건립된 후에는 황실에서 쓰는 물건에 오얏꽃 문양이 그려져 사용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오얏꽃 무늬의 은잔이 전시되어 있다. 덕수궁의 석조전, 운현궁 양관, 포항의 호미곶 등대의 천장에도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오얏꽃 문양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한때는 인정전의 오얏꽃 문양이 일본인이 설치한 벚꽃 모양과 비슷해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일본이 대한제국의 품위와 권위를 떨어뜨리려 오얏꽃 문양을 만들어 수치와 굴욕을 주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국가가 아닌 한 가문에 의해 지배되는 왕조라는 뜻으로 낮추기도 했다.이순혜수필가또한, 자두나무와 관련된 고사성어도 있다.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오얏나무는 그리 크지 않으면서 열매를 많이 맺으니 그 나무 아래서 쓸데없이 의심을 살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일 거다.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이야기다. 이 화사한 봄날, 자두나무에 걸어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오늘따라 향기롭다.“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복숭아꽃 오얏꽃 아기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내 유년의 풍경에는 오얏꽃이 빠지지 않는다. ‘고향의 봄’을 읊조리며 들길을 걷는다.

2021-04-28

코인 환치기

환치기는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 계좌를 만든 후에 한 국가의 계좌에 입금한 후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금액을 현지화폐로 인출하는 불법 외환거래 수법을 일컫는다.이러한 환치기는 세금탈루나 외국에서 사용할 유흥자금 또는 해외도박·마약밀수 등의 불법자금을 조달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인 K씨가 모 은행에 계좌(환치기 계좌)를 개설한 뒤 중국 현지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원하는 조선족들에게 일정 수수료를 떼는 조건으로 송금액을 받고, K씨와 연결이 되어 있는 현지 환전상이 가족에게 해당액수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외환의 지급, 영수시 상대국 통화로의 환전절차 없이 ‘환(換)을 바꿔친다’고 해서 ‘환치기’ 라고 불린다. 특히 최근에는 자금 출처 조사가 어려운 비트코인이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비트코인을 이용한 ‘코인 환치기’가 성행하고 있다. 수법은 기존 환치기와 비슷하다. 환치기 조직이 외국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입한 뒤, 국내 가상화폐 전자지갑으로 보내고, 국내조직이 가상화폐를 팔아 원화로 출금하는 방식이다. 은행을 통해 돈을 송금하면 환전 기록이 파악되지만, 가상화폐로 주고 받으면 파악이 불가능한 점을 악용한 것이다.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이런 환치기 자금으로 외국인이 사들인 국내 아파트가 14채, 163억 원어치에 이른다. 더구나 4월 들어 2주 사이 시중 은행을 통해 중국으로 송금된 돈만 해도 지난해 월 평균의 10배에 이르는 1천억원을 훌쩍 넘었다니 걱정이다. 비트코인이 새로운 국제금융수단으로 막 떠오르는 마당에 환치기수법에 악용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런 일이다. 비트코인이 불법 환치기에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정비가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28

교육이 녹아내린다

장규열한동대 교수국격이 높아졌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에 올랐다 하고 문화강국으로 위상도 한결 날아오른다. K-Pop은 지구촌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글로벌 영화계에는 우리 감독과 배우들로 넘실거린다. 지구 위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이 없는 곳이 없으며 가는 곳 어디에서도 이제는 소외되지 않는다.필자가 미국대학에서 가르쳤던 1990년대에만 해도 나라의 위상이 오늘같지 않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언제였나 싶다. 이제는 어깨 펴고 다닐 만하다. 코로나19의 광풍이 걷히고 나면 그런 변화를 확인하러 나가봐야겠다. 그랬던 시절에도 우리 마음에 비수처럼 번득였던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다. 교육.잘살아보려는 다짐 덕이었는지,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배경이 되고 아이들도 잘 따라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가 회원국들의 교육상태를 비교하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 PISA에서 한국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 실력은 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랬던 실력이 이제는 조금씩 꾸준히 내려간다고 한다. 학력과 인성이 균형있게 자라야 하는데, 학력의 평균적인 하향추세는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교육을 비롯한 교육환경의 출렁거림 가운데 학력격차의 심화와 학력수준의 하향세는 더욱 시름을 깊게 만든다. 방역이 중요한 만큼 경제도 살려야 하지만, 미래를 담보할 교육의 기틀은 지켜야 한다.최근 한 시민단체의 조사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을 전후로 중학교에서는 학력중위권이 상하위권으로 분산되는 ‘학력 양극화’현상이 나타났으며 고등학교에서는 중위권과 상위권이 줄고 하위권이 증가하는 ‘학력저하’ 현상이 드러났다고 한다. 이미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학력저하 현상에 코로나19의 영향이 더해진 결과로 보인다. 온라인과 비대면수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가운데,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사교육이 세차게 작동하여 학력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아닌가도 싶다. 교육당국은 ‘내려가는 비탈’에 선 학력저하 현상을 면밀히 분석해 장기적인 회복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건강을 위한 방역에 성공하더라도 교육의 뿌리가 흔들린다면 그보다 큰 실패도 없지 않을까.초중등학교 교육의 성패는 대학에서도 감지된다. 교수들이 평가하는 대학신입생들의 기초학력도 해가 갈수록 내려간다고 한다. 학문적 성과는 하루아침에 초인이 가져오지 않는다. 산적한 과제들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서도 함께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갈 후학들이 계속 튼실하게 자라나야 한다. 성장과 발전의 바탕에는 든든한 공교육이 있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학력저하는 위험하다. 밝은 내일을 열어내기 위해서도 실력있는 집단지성이 살아있어야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인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배워서 익히고 다듬어 숙성한 사람들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서로서로 아는 게 많아야 한다. 실력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갈고 닦아야 쌓이는 게 실력이 아닌가. 실력있는 국민이 나라를 세운다.

2021-04-28

‘문빠’와 ‘태극기’는 언제쯤 퇴장할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분단과 6·25 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화, 민중 항쟁과 촛불혁명은 오늘의 분열된 정치 지형을 낳았다. 흔히 우리는 아시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를 받는다. 샤츠 슈나이더가 말하는 정당간의 정권 교체로 아시아 최고의 정치의 발전을 이룬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상호 부정과 거부라는 독특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문빠’와 ‘태극기’라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간의 왜곡된 이념 갈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태극기 부대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박근혜 탄핵을 극력 반대하면서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절대 신뢰하고 현재도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이 나라의 두 번의 군부 쿠데타까지 정당시하고, 선독(善獨)의 당위성을 주창한다. 지역적으로 영남을 주축으로 연령적으로는 60대 이후 세대가 많다. 이들은 반공에 철저하고 진보 정권을 좌파 용공 정권으로 간주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퇴진을 거듭 주장한다.한편 문재인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 옹호하는 세력을 ‘문빠’라고 부른다. 보수 진영은 그 중 ‘대깨문’을 친문 보위 세력의 핵심으로 본다. 이들은 이 나라를 망친 장본인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이라 보고 이들을 극히 혐오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적극 지지한다. ‘문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지를 무조건 존중하고 추종한다. 대통령을 향해 ‘인이 마음대로 해’라는 맹목적 정서가 깔려 있다. 이들은 보수가 재집권하면 나라가 거덜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촛불정권의 주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그러나 위의 ‘태극기’ 부대도 ‘문빠’ 집단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양쪽 모두 참 보수도 참 진보도 아닌 사이비 이념의 맹신자들이다. 이들 중엔 보수나 진보의 참뜻도 모르면서 상대를 감정적으로 비난 거부한다. 보수주의 원조 에드먼트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과격성을 반성하면서 자유라는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자고 주장하였다. 진보는 정치 개혁이나 혁명을 통해 인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다.‘태극기’나 ‘문빠’는 본질에서 너무 이탈해 진영 프레임에 빠져 있다. 모두 이성적이지 못하여 상대에 대한 적대감만 노출하고 있어 이 나라 정치 발전에는 백해무익한 세력들이다.이러한 적대적 세력 간에는 화해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서로 자신은 애국자이고 상대는 매국노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상대를 적대시 하는 감정 프레임의 노예가 되어 있다. 정치인들은 목전의 이익 때문에 이들을 교묘히 정치에 이용한다. 이들은 대체로 정치의식 수준은 낮으나 정치에 과잉 동조하는 세력이다. 우리 정치를 부정적으로 활성화 시킬 뿐이다. 이제 친박과 친문에 기생했던 ‘태극기’와 ‘문빠’는 퇴장할 시간이다. 그 시점은 내년 대선이 끝나는 지점이며 빠를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2021-04-28

학교 외딴섬, 시험도(試驗島)의 비극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선생님, 저 영어 90점 맞을 거예요! 이거 복사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서울에 사는 학생이 월요일 등교하자마자 영어 선생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종이 파일을 건네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부탁한다.“90점!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런데 이번 시험 쉽지 않을 거야. 괜찮겠어.”“그럼요, 걱정 없어요. 주말 동안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이게 그 증거에요.”영어 선생님께서는 학생이 건넨 종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셨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선생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몇몇 부분을 수정해 주셨다. 학생은 선생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바로 질문했다. 선생님께서는 반갑게 답해 주셨다.“친구들과 시험 범위를 나눠서 요약하기로 했는데, 큰일 날뻔했어요. 감사합니다.”학생은 너무 즐거워했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저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 학생을 필두로 교무실 앞에는 정리한 자료의 복사를 부탁하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밝은 모습에 주말 내내 무겁기만 하던 필자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주말, 필자는 시험공부에 몸살을 앓는 학생들을 보았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독서실이 있는데, 밤이면 간혹 어린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아파트 놀이터로 나온다. 뭔가에 잔뜩 화가 난 그들의 모습은 필자를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시험 포기했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혼잣말만 하고 나가버리고, 인터넷 강의는 들어도 모르겠고, 엄마한테 그냥 학원 보내달라고 했어. 학교가 왜 있는지 모르겠어.”비록 필자와 거리는 있었지만, 학생들의 한숨과 원망 가득한 말은 너무도 또렷하게 들렸다. 학원에 가기 위해 일어서는 학생을 붙잡고 필자는 말해 주고 싶었다.“얘들아, 모르는 것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여쭈어봐.”하지만 필자는 돌아올 답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내 포기했다. 일요일 늦은 밤, 학교 시험을 위해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성난 그림자가 필자를 노려보았다. 그 학생이 떠나고 남아 있던 학생들은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이 가는 곳이 집과 독서실이 아님을 필자는 직감으로 알았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들을 필자는 잡아주지 못했다.죄책감으로 시작한 월요일, 어느 학생의 하소연을 듣는 순간 필자는 더 큰 죄인이 되었다.“오늘 시험 치는데, 선생님들이 틀린 문제 수정한다고 하도 다니셔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다 못 풀었어요. 근데 선생님들은 시험 방해한 거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세요.”시험에 갇힌 4월 학교는 의사소통이 단절된 섬이다. 그 섬 안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세상은 코로나19를 핑계로 귀를 닫았다. 5월 함성보다 더 큰 학생들의 원성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거듭 부탁하지만, 그 파도가 학교를 휩쓸기 전에 시험에 대해 제발 다시 생각하자.

2021-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