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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동 퀵보드 안전수칙 준수해야

영주경찰서 교통관리계 경위 장주영 요즘 운전을 하다보면 언제 부터인가 편리해 보이지만 위험해 보이는 개인형 이동수단(PM)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PM은 외발 전동휠, 두발 전동휠, 전동퀵보드, 전동스쿠터 등 전기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1인용 이동수단을 말한다.어릴적 시골에서 자라 흔한 버스도 없이 매일 걸어서 등하교를 해야 했던 나는 이런 종류의 이동수단을 상상 하곤 했었는데, 막상 교통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편리함 이면의 위험함이 더 눈에 들어 온다.전국적으로 전동킥보드 사용자는 2019년 4월 3만7천여 명에서 2020년 4월 현재 21만4천500여명으로 6배나 증가했다.이와 관련한 교통사고도 급증 하면서 경찰청에서는 2021년 5월 13일 관련법령 개정을 통해 누구나 운전면허 없이 운전이 가능했던 것을 원동기장치자전거이상 면허를 소지해야 운전이 가능하며 13세미만의 어린이는 사용을 금지 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 중에 있다.2021년 5월 13일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도로교통법은 인명보호장구 미착용 범칙금 2만원, 동승자 과태료 2만원, 원동기장치자전거 이상면허 미소지 범칙금 10만원, 13세미만 어린이 사용시 보호자 과태료 10만원, 동승자 탑승시 범칙금 4만원, 등화장치 미작동시 범칙금 1만원이 부과 된다.또, 약물, 과로·질병 등 운전 범칙금 10만원, 통행방법도 자전거도로 통행 또는 차도우측통행·보도 통행불가, 자전거와 동일하게 음주운전 금지 범칙금 10만원, 측정불응 범칙금 13만원, 신호위반,중 앙선 침범, 보도주챙, 보행자 보호위반시 범칙금 3만원이 부과 된다.범칙금 부과 보다 이용자가 안전수칙을 잘 지켜 운전자 모두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문화가 정착 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

2021-04-14

포항 흥해시장 ‘함께’ 소통하고 ‘함께’ 나아간다

류승호흥해새마을금고 이사장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다. 가벼운 종이 한 장도 함께 들면 옮기기가 더 쉽다는 말로,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여럿이 힘을 합해서 하면 혼자 하기보다 훨씬 쉽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세상을 살다 보면 혼자만 할 수 있는 것보다는 더불어서 힘을 합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상에서 어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혼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제도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여기에 더해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천천히 즐기면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필자는 요즈음 이 말 대신 ‘우리 함께 멀리 가자’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최근 4년 가까이 2개의 상인단체(상인회·번영회)로 나뉘어 있던 흥해시장이 다시 하나로 통합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 큰 흥해발전을 기약하고, 더 멀리 가기 위해서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참 반가운 일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그동안 두 단체는 통합을 위해서 협의와 무산을 여러차례 반복한 끝에 상생 협력을 통한 흥해시장의 활성화 방안 및 향후 새로운 사업들의 방향에도 뜻을 같이하고, 이를 위한 세부적인 회원 통합 부분도 구체화했다.또한, 곧 착공예정인 주차창 확보 문제를 시작으로 그동안 상인회와 번영회로 나누어져서 추진이 계속 미뤄져 왔던 어시장 쪽의 3차 장옥 개축사업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포항시 역시도 이번 통합소식에 지역주민들 만큼이나 반기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특히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흥해시장의 경우, 인근 청하면과 송라면, 신광면까지를 아우르는 북구 권역의 중요한 기초경제의 기반이자, 또한 5일장날은 인근 지역민들까지도 모여드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더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설현대화와 상인역량 강화 등 탈바꿈을 위한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전통시장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지난 3년간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이어온 흥해시장의 상인회와 번영회가 시장과 지역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결단을 해준 것에 큰 박수를 보낸다.‘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여럿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그래서 흥해시장의 이번 통합은 인근 주민들만이 아니라 포항시 전체가 환영하는 소식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이런 지역의 크고 작은 소식들이 모여 ‘함께하는 변화, 도약하는 포항’을 그려가고 있다. 또 그렇게 ‘삶과 도시의 대전환’을 만들어가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2021-04-13

벚꽃과 이화 사이에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쌀쌀하고 바람 불며 비 뿌리던 날이 지나고 그야말로 화사하고 포근한 봄날 하오. 꽃 활짝 피어난 배나무 옆 바위에 앉아 상념에 젖는다. 그때 엥, 소리 내며 벌 하나 배꽃으로 날아든다. 오각형 하얀 배꽃의 내부는 외양만큼이나 정갈하고 허허롭다. 뭐, 가져갈 게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매끈하고 밋밋한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는 꿀벌.민들레는 키가 작아도 빽빽한 꽃잎 안에 꽃가루며 꿀이 그득하다. 벌의 좌우 다리와 온몸에는 노란 화분(花粉)이 공처럼 매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화(梨花)는 아름답고 깔끔한 생김새처럼 내부 역시 단아하다 못해 적막하다. 그런데도 꿀벌은 쉬지 않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저공 비행한다. 참 부지런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고개를 돌리니 벚나무에서 꽃잎 몇 조각이 하늘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진다. 주어진 시간 소진하고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 벚꽃 보노라니 ‘화엄일승법계도’의 문장 하나 떠오른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티끌 하나에도 우주 전체가 들어있다! 떨어지는 미소한 꽃잎 하나에도 우리가 경험하는 지구뿐 아니라, 측량 불가능한 우주 전체가 담겨있다는 사유와 인식.하나에 전체가 들어있다는 인식과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이 한순간이고, 한순간이 곧 영겁의 시간이라는 성찰은 또 어떤가! 문득 허무해지기도 하고, 내가 꼬물거리며 간신히 지탱하고 꾸려가는 삶의 자락들이 돌연 허접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에도 나름의 의미나 무게가 있으리라 위로하면서 자신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삶의 근본원리이므로!다른 한편 신카이 마코토의 만화영화 ‘초속 5센티미터’(2007)가 떠오른다. 첫사랑의 달콤하고도 아픈 기억을 모티프로 펼쳐가는, 기막힌 서사와 장면과 상념의 응어리가 한데 어우러져 숱한 망상과 꿈을 되살려내는 영화. 너무 일찍, 너무 깊게 만나버린 어린 청춘들의 엇갈린 사랑을 담담하지만 후벼 파듯 그려내는 신카이 마코토.어째서 벚꽃은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 속도로 누군가에게 다가서고, 왜 우리는 그 속도로 누군가에게서 멀어지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라, 서서히 준비되고 기획되는 이별의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는 사실은 가슴 저미게 하는 바 있다. 변해가는, 포기해가는,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을 제때 알기만 했다면!….한쪽에서는 한창 피어난 이화가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빛나던 시간대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보내놓고 하염없이 떨어지는 벚꽃이 있다. 피는 것과 지는 것, 태어나는 것과 소멸하는 것, 만나는 것과 헤어지는 것, 이런 순환과 반복의 영원한 도돌이표 안에서 우리 인생은 마지막 그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가?!하지만 나는 허무하고 쓸쓸한 상념을 꿀벌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한다. 맹렬하게 노동하는 녀석에게 삶의 허무 따위를 함부로 말하거나 가르쳐서는 아니 되기에! 봄날의 하오가 긴 그림자 끌며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2021-04-13

서울형 방역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독자적인 서울형 상생방역안을 제시했다. 지역과 업소, 시간 등을 가리지 않는 천편일률적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기존방역 방식에 대한 일종의 쇄신 요구다. 정부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상생방역을 실시하겠다는 전제를 달았으나 정부의 일률적 정책에 맞선 정책안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감이 있다.정부와 여당이 앞으로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지난 1월 권영진 대구시장이 식당 등의 영업시간을 단체장의 권한으로 밤 11시까지 연장했다가 정부 보건당국의 유감 표명으로 되돌린 경우가 있다. 방역기준에 단체장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거의 없다는 반증 사례다.오 서울시장이 제시한 방역안은 일률적 제한에서 벗어나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영업시간 등을 달리 적용하자는 것이 골자다.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의도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희생을 최소화시키고 방역도 막는 상생 전략이라고 하니 업계의 반응도 좋다.그러나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시작할 즈음에 상당한 리스크를 전제로 한 방역안이어서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가 않다.1년여 지내온 한국형 방역은 국민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특히 한 업소의 사고로 업계 전체가 셧다운 되는 방식에 대해 불만이 많다. 단체기합식 방역이란 비난도 나왔다. 반드시 일사불란해야 하는 볼멘소리도 있었으나 바이러스 확산 앞에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가 어려웠다.서울시장의 서울형 상생방역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수용할지는 알 수는 없으나 문제 접근방법에 관해서 서로가 머리를 맞댈 수 있다면 그것이 협치의 한 단면이다. 극한으로 치닫던 여야의 대립이 서울형 방역에서 협치의 모습을 찾을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13

윤석열, ‘윤서결’ 혹은 ‘윤성녈’

박창원수필가지난달 4일, 갑작스레 사임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2019년 7월 25일,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제43대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 사퇴하기까지 1년 8개월, 역대 검찰총장 중 이 사람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총장직을 수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임명됐음에도 임명의 이유이기도 했던 바로 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때문에 문재인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재임 기간 내내 권력 핵심과 대립했고, 종종 직무에서 배제되거나 사퇴 압력을 받았다.그러다가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따른 검찰 수사권 박탈 문제에 반발하여 ‘검수완박’이라는 신조어를 남기며 검찰을 떠났다. 떠나는 순간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폭되었고, 지금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그래선지 이곳저곳에서 내가 국어 선생을 했으니까 묻는다면서 윤석열은 [윤성녈]로 읽어야 하는지, [윤서결]로 읽어야 하는지 답해 보란다. 나는 바로 [윤서결]로 발음하는 게 맞다 한다. 왜 이런 논란이 생겼을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대게 [윤성녈]로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방송에서 자꾸 [윤서결] 하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윤석열의 한자명은 尹錫悅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을 [윤서결]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말은 연음 법칙이 적용되어, 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은 앞 음절의 끝소리(받침)를 이어서 소리내기 때문이다. 즉 모음으로 시작되는 ‘열’은 앞 음절 ‘석’의 끝소리 ‘ㄱ’을 이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결] 발음이 되는 것이다.이 경우 서울말에 익숙한 사람들은 [윤서결]로 발음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경상도 방언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발음이 어색하여 곧잘 [윤성녈]로 발음한다. 경상도 방언권의 사람들은 ㅑ, ㅕ, ㅛ, ㅠ 같은 이중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의 앞 음절에 끝소리가 있을 경우 이어서 소리를 내기보다는 이 이중모음 앞에 ‘ㄴ’을 첨가시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단열[다녈]을 [단녈]로, 금요일(그묘일)을 [금뇨일]로, 산유국[사뉴국]를 [산뉴국]으로 발음하게 된다. ‘석열’도 예외가 아니어서 ‘열’에 ‘ㄴ’을 첨가시켜 ‘녈’로 읽는 것이다.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석렬(石烈)’이라는 이가 있다. 이 경우에는 뒤 음절의 원음이 ‘렬’이어서 [성녈]로 읽는 게 맞다. ‘석렬’이 [성녈]로 되는 것은 ‘석’의 끝소리 ‘ㄱ’과 ‘렬’의 첫소리 ‘ㄹ’이 만나면서 자음동화현상을 일으켜 ‘ㄱ’은 ‘ㅇ’이 되고, ‘ㄹ’은 ‘ㄴ’이 된다. ‘매울 렬(烈)’ 자를 쓰는 병렬, 억렬, 삼렬 같은 이름들은 이런 현상을 거쳐 [병녈], [엉녈], [삼녈]로 발음되는 것이다.사퇴 후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 선두 그룹에 올라 선 윤석열. 그가 정치권에 진입하여 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그룹도 있고, 한사코 그의 등장을 막아 보려는 그룹도 있다. 정치활동 찬성편이든 반대편이든 그는 현재, ‘[윤서결]이냐 [윤성녈]이냐’ 하는 논란만큼이나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2021-04-13

나만의 양심냉장고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독자들께서도 1996년에 시작된 TV프로그램 ‘이경규가 간다’의 ‘양심 냉장고’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냉장고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실망스럽게도 양심 냉장고의 주인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무렵 갓 운전면허를 딴 초보운전자 입장이라 그랬을까? 운전면허 시험에나 나올 법한 기초적인 교통법규 지키기가 그리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 양심의 민낯에 놀랐던 기억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작년 연말쯤의 일이다.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려다, 내가 평소 즐겨 쓰는 내비게이션 서비스의 운전 습관 점수를 반영해 일정 점수 이상이면 보험료 할인이 제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비스가 처음 시작되었던 무렵 신기해하며 살펴본 이후, 몇 년 만에 확인해본 내 운전 습관 점수는 76점. 겨우 턱걸이로 보험료 할인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낮은 점수로 인한 실망의 여파는 컸다. 항상 경제속도를 유지하며, 난폭운전이나 교통법규 위반을 절대 하지 않고, 안전 운전 습관이 몸에 밴, 25년 무사고 운전 경력의 자타공인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해 온 터였으니까….공학자답게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스스로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운전 습관 점수는 과속, 급감속, 급가속의 세 가지 항목으로 매겨지는데, 급감속과 급가속에서는 만점을 받았으나, 과속에서 점수가 많이 깎인 것을 알았다. 고속도로 운행이 잦다 보니 흐름을 타며 달린다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과속이 습관이 되었던 모양이다.그날 이후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운전 습관 점수 100점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혼자만의 ‘양심 냉장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100점이 되는 날 나 자신에게 선물할 상품도 미리 결정해 두었다. 그런데, 한번 떨어진 점수를 회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도 규정 속도를 지키는 양심과 끈기가 필요했고, 그런 나를 비웃듯이 쌩하고 추월해 달리는 다른 차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의 강한 멘탈도 필요했다.몇 달의 노력 끝에 내 운전 습관 점수는 97점까지 올랐다. 스마트폰 화면 속 작은 숫자가 가져온 변화는 고속도로에 배치된 고가의 감시 카메라들이나 각종 범칙금의 위협보다 강력했다. 매 주행 후 올라간 운전 습관 점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규정 속도를 더 유심히 살피며 달리게 했고, 점수의 시원한 상승 그래프를 보고 싶은 욕심이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에서도 과속의 유혹을 이겨내게 했다. 단지 숫자 몇 개로 25년차 운전자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 그 서비스는 ‘스마트 기술이 우리 생활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례’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이 글을 쓰면서, 몇 달 전 스스로 정해 놓았던 ‘양심 냉장고’ 상품이 뭐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서 새로운 선물을 하나 생각해야 했다. 그걸 잊어버린 것을 보면, 처음부터 선물 그 자체가 그리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지, 싶다.

2021-04-13

‘왜’를 기억한다는 것

무슨 일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 해 나가다 보면 다른 욕망이 끼어들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며 취업을 했는데, 나보다 앞서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조급해진다.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소홀해져버린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교육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일이라며 교사가 되어서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연봉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주식이나 가상화폐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곤 한다. 돈 벌어서 세계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더니 힘들게 번 돈이 아까워서 못 간다는 친구도 있다. 모두가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 마음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고, 불행하다.나는 분명 즐거워서 음악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기타를 메고 홍대 놀이터나 이대 앞 공터 같은 곳에 나가 앰프도 마이크도 없이 매일 노래를 불렀다. 팁 박스라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면 간혹 천원짜리건 만원짜리건 넣어주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팁을 주면서 신청곡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청곡을 부르는 것보다 자작곡을 부르고 내 이야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었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진 않았는데, 이름을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욕망이 끼어들기 시작했다.“너는 언제 뜨냐?”“네 노래는 언제 노래방에 나오니?”“너도 뜰 수 있을 것 같은데...”“이제 슬슬 TV에도 나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한 해 한 해 갈수록 그 목소리들은 점점 커지고 많아졌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넘기던 나도 나중에는 그런 말들에 부담을 느꼈고, 언젠가부터 마치 그 ‘떠야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내 욕망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그 무렵 한창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었다. 슈퍼스타K, K-Pop 스타, 보이스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하늘을 찔렀고, 스타도 많이 배출해내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가보라고 부추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주입된 ‘떠야한다’는 욕망이 나를 오디션 프로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오디션에서 예선탈락만 반복하던 어느 날, 드디어 TV에 출연하게 되었다. MBC ‘위대한 탄생 3’의 최초 예선을 통과하고 드디어 방송 오디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어느 작가는 내게 따로 제작진이 기대하는 바가 크니 오디션을 잘 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이미 슈퍼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방송 촬영 당일, 나는 처참하게 탈락하고 말았다.“너무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난 들으면서 화가 났어요. 정말 그냥 뜨고 싶어서 나온 것 같아요.”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용감한 형제’의 심사평이었다. 그 독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고 싶어서 나왔냐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었으니까.그날 많이 울었다. 단지 오디션에서 떨어져서가 아니라, 뭘 해도 뜨지 않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무렵, 편도선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다. 목이 아파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음악과 멀어지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 누워 잠자고 책읽기만 반복하다가 지겨워 휴대폰 어플을 뒤적거렸다. 예전에 깔아둔 피아노 어플을 발견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건반을 누르고 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욕심이 생겨 곡을 하나 쓰기 시작했고, 끝내 곡을 완성했다.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렸다. 음악이 이렇게 재미있었다고. 나는 그래서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뜨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그때 그만두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때의 기억이다. 유명해지고 싶고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재미있어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것을 망각하자마자 음악을 하는 게 힘겨웠다. 여전히 재미만 있다면 계속 해 나갈 이유는 충분한 것인데, 그것을 망각한 채 다른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힘들어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미련한 일이다.여전히 내 귀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리고, 다른 욕망들은 언제건 마음을 단숨에 잠식해버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처음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 그리고 병실에서 곡을 만들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마찬가지로 왜 그 일을 시작했는가를 잊고 괴로움만 남은 채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문득 찾아가길 바란다. 어쨌거나 우리는 행복해져야 하니까.

2021-04-12

개인의 시대, 불안과 함께하기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났다. 직장생활 7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 속에서 끝마친 상견례와 주고받은 예물, 예단, 어렵사리 계약한 신혼집의 위치와 남편 될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 헤어지기 직전, 친구는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아?” 딱히 괜찮지 않을 것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내가 걱정이라고 했다.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으냐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누군가에게 내 인생은 유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나는 2019년을 프놈펜에서 보냈다. 거기에서 소설을 썼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향에서 지냈다. 사교활동이나 일을 하는데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 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 커다란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인터넷이나 전화로도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 가능했다.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소속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유로웠고 동시에 불안하고 위태로웠다.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을 가진다. 그곳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약속된 월급을 받는다. 이러한 조직의 형태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특히 코로나19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하나의 직업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일을 개척하는 잡(Job)노마드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프리터 등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직장에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자발적 프리랜서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조직사회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창출하기를 자처하며 삶을 디자인한다. 기업에서 원하는 학벌이나 토익점수, 자격증에 목매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찾고 그것을 노출하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다. 회사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만든 콘텐츠를 내보인다. 우리는 주변에서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를 찾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단독으로 일하는 1인 크리에이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근무 체계에서는 조직의 형태가 흐려지고 오롯이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개인의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직의 보호 아래에서 일을 분담하는 것과는 다르다. 업무적인 실수는 곧바로 개인의 무능과 연결된다. 감당하기에 벅찬 중대한 일 역시 오롯이 혼자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게다가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의 경쟁 대상은 인간을 넘어 로봇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벌써 그렇다. 키오스크로 대체되는 단순 노동 일자리부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 데이터까지. 조직이 만들어놓은 틀을 그대로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개인이 해낼 수 있는 생산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누구나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의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따르지 못할 수 있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은 이렇듯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회사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이 아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을 종용하며 결국 일종의 무대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전언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것은 인간은 태초부터 어쩔 수 없는 불안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물리칠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안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것이다.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는 사회가 녹록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테다. 길을 잃고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럴수록 두려움과 손을 잡고 자신의 고유한 길을 완강하게 걸어가면 된다. 불안을 딛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1-04-12

현대미술이 태동한 역사적 배경

미술은 하나의 언어이다. 언어의 일차적 기능은 의사소통이며,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공통된 의미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1850년대를 기준으로 미술은 현대미술과 그 이전의 시대로 구분된다. 여기서 1850년대라는 숫자를 절대 불변의 고정적인 숫자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미술의 변화는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거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 정확하고 분명한 시점과는 달리 이해돼야 한다.현대미술의 시작점을 1850년대 혹은 범위를 조금 넓혀 19세기 중반으로 보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미술의 언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1850년대 이전에 나타난 미술만 하더라도 1천5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수많은 양식들이 나타났고, 각각의 양식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나타난 미술들은 형식이나 내용이 너무나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미술들이 지니고 있었던 차이점들을 모두 희석시켜 버렸다.현대미술의 특징은 고전미술과의 비교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서양미술사는 천년의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로 나눠진다. 또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매너리즘이 그리고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사이에 로코코가 과도기적 성격을 띠며 잠시 나타나기도 했다. 각각의 시대는 그 시대의 미술을 특징짓는 형식을 보여줬다. 그것을 양식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서양미술사는 중세에서 낭만주의 미술까지 양식에 의해 시대가 구분됐다고 생각하면 된다.1850년대 이후 미술사의 전개 양상은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하나의 양식이 짧게는 반세기 길게는 수백 년을 지배했던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형식의 미술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세력화되고 권력화 된 미술과 대립하게 된다. 현대미술에 접어들면서 더이상 시대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양식은 사라지게 됐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개인화되고, 개별화된 실험적 미술이 사조, 주의, 운동의 형태를 띠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된다. 양식의 시대에서 이즘(ism)의 시대로의 전환, 다양한 미술 형식의 공존, 이것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징이다. 미술은 시대의 상호작용 속에서 숨을 쉰다. 시대가 변하면 미술이 달라지고, 시대의 변화를 미술이 예견하기도 하며, 미술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 미술을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 세계로 열려 있는 창문에 비유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시대와의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미술을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탐구하는 미술사라는 학문이 가능할 수 있다.19세기 중반 현대미술 태동의 중심지는 프랑스 파리이다. 물론 프랑스 파리를 현대미술의 유일한 발상지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가 현대미술이 시작된 가장 중요한 장소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을까? 19세기 중반 유럽은 정치·사회적으로 대변혁을 경험하고 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앙시앙 레짐으로 불리는 절대왕정의 구체제가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형성되는데 그 중심이 된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산업과 경제구조에도 크나큰 변화가 일고 있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점차 유럽 대륙으로 확산되었고, 산업혁명의 기술혁신은 경제의 중심축을 농업에서 공업으로 옮겨 놓았다. 토지를 기반으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굴뚝에서 연기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도시와 도시가 철도로 연결되면서 이동 속도가 빨라졌고, 이동 속도가 빨라진 만큼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졌고, 생각의 속도, 변화의 속도도 빨라졌다. 무언가가 빨리 움직이게 되면, 누군가는 그 변화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그와 함께 양산되는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대미술이 피어났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1-04-12

옛 지형과 신라… 알천과 북천 그리고 경주

신라왕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완만한 경주 선상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경주 선상지는 크게 고위면과 중위면, 저위면으로 나뉘며 왕경을 비롯한 유적은 주로 저위면과 중위면에 걸쳐 분포한다.경주 선상지는 인간이 생활하기 이전, 빙기와 간빙기 때부터 만들어진다. 경주 동쪽에 위치한 산지에서 자갈과 모래가 그 당시 물길을 따라 옮겨져 마지막 빙기가 끝날 때까지 경주 곳곳에 쌓였다. 현재 경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북천은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물길과 폭을 달리하며 흐르면서 옛 지형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추정 할 수 있는 옛 물길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는데 ①현재 북천 하천제방 정비 이전에 흘렀던 물길 ②동천동 전 헌덕왕릉(사적 제29호) 동쪽부터 약산과 금강산을 따라 용강동으로 흐르는 옛 물길 ③보문동 숲머리마을 부근부터 황룡사(사적 제6호)와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를 거쳐 남천과 서천(형산강)으로 이어지는 옛 물길이다.한편, 문헌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이전까지 알천(삼국사기) 또는 북천(삼국유사)으로 불렸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북천은 경주읍성(사적 제96호) 북쪽을 흐를 때부터 북천이라 주로 불리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쌓은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숲(오리수) 위치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 왕경에서 지방 도시로 전락하고, 몽골 침략 이후 급격하게 쇠퇴해 인구가 줄었던 탓에 현재 북천 남쪽에 있는 전랑지(사적 제88호)와 같은 중요유적은 13세기 후반에서 15세기 후반 사이에 북천 수해로 훼손됐다. 나라에서 경주가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았다면 훼손되지 않았거나 바로 복구됐을 것이지만 현재 유적에 남겨진 흔적으로 보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경주 북천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알천이다.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647년)에 반란을 일으켜 죽은 비담을 대신해서 상대등에 오른 사람 또한 알천이다. 알천은 그만큼 신라와 경주에서 중요한 이름으로 여겨져 왔음은 분명하다.알천 옛 물길 가운데에는 진흥왕(534~576년) 즉위 이후 가장 중요한 국가사업인 황룡사(553년 창건)가 있다. 황룡사가 창건되기 이전 상황은 의외로 단순하지만 신비롭다.황룡사가 새로운 궁궐로 계획되다가 사찰로 바뀐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거대하고 중요한 시설이 지어지기 전 옛 지형과 고고자료는 황룡사 발굴조사가 진전되어, 남쪽 황룡사 광장과 도시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주에서 몇 군데 조사사례가 있는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황룡사 광장과 도시유적 주변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어 6세기대에 처음으로 이곳이 논으로 경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통 논은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주로 평평하고 물이 적당히 있는 곳을 개발하여 경작하는데 이러한 사실로 황룡사 주변이 북천 또는 알천의 영향을 받는 물이 많은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물길 범위 안에 계획되었던 새로운 궁궐의 건립과 이후 황룡사 창건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국가가 주도한 하천 치수사업이 반드시 있어야 가능하다. 황룡사가 지어진 남쪽에서는 옛 물길을 따라 모래와 자갈이 많이 쌓여있는 자연지형을 파서 황룡사가 건립된 사역에 골재로 쌓아 대지를 만든 흔적이 조사됐다. 황룡사 사역에서는 흙둑을 서쪽에 만들어 동쪽부터 서쪽으로 흙과 자갈을 번갈아 쌓은 흔적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월성(사적 제16호) 북쪽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다가 계림(사적 제19호) 부근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 남천으로 합류하는 인공수로(발천)가 있다. 발천은 신라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왕후인 알영이 태어나 목욕을 시킨 곳으로 역사기록은 전한다. 현재 석축으로 둘러싸여 폭이 일정한 발천은 선상지를 만들면서 흘렀던 옛 물길이 지나간 낮은 지점에 있다. 자연하천으로 폭이 넓었던 발천은 방향이 바뀌며 인공수로가 되면서 월성 서쪽을 따라 남천으로 합류하게 됐다.장우영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곳이 개발되기 이전은 자연하천이었고, 역사시대에 하천을 정비해서 인공수로를 만들었던 사실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차례로 조사 중인 동부사적지대(사적 제161호) 일원 발굴 결과로 알 수 있다.발천 옛 물길은 월지와 월성해자에도 영향을 끼쳤다. 동궁을 건설하면서 높게 흙을 쌓고 월지를 만들면서 주변 지하수와 지표수를 이용하여 조경을 염두에 두고 용수를 확보했다. 모래와 자갈로 가득 차 있던 선상지의 옛 물길을 파서 만든 삼국시대 수혈해자도 삼국통일 직후, 동궁과 월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문환경이 바뀌어 조경 성격이 강한 석축해자 단계로 탈바꿈 한다.우리가 사는 신라왕경과 경주는 그러한 땅 위에 지어져, 오랜 시간 동안 서울 또는 경도(京都)로 불리게 되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역사도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21-04-12

쏠림과 균형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간혹 고향을 찾아보면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릴 적 노닐던 등성이나 벌판은 그대론데 집들과 마을 사람들은 낯선 듯 어렴풋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변하는 세상이라 예전의 온전한 고향마을의 정경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갈수록 허물어지고 황폐화돼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서글프기만 하다. 그래도 고향 어귀에 들면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먼 지난날이 손짓하며 부르는 정겨운 세월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옴을 느끼곤 한다.봄날 고향의 들판이나 골짜기, 시내, 언덕배기 어디를 둘러봐도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10여리 떨어진 초등학교엘 걸어 다니면서 배가 출출해지면 길섶과 산자락의 땅찔레와 시금치, 참꽃, 버들강아지 따위를 꺾어 먹고, 놀거나 무슨 일을 하다가 심심해지면 칡뿌리를 캐거나 감꽃을 줍고 아카시아꽃을 따서 먹기도 했었다. 약간 달거나 시큼하고 떫고 쌉싸래한 맛을 느끼며 허기진 배를 달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꿈결처럼 아른거리며 그 감칠맛이 입안 가득 배어 나오곤 한다.“마냥 부풀기만한/설레던 고향 길도/모진 바람 갈퀴 속에/변조되는 쓰라림/빈 가슴 쓸어내리는/가슴 아린 눈물 길//잡초더미 에워싸인/폐허 같은 고향집/마당이며 묵정밭엔/설움만 웃자라고/스산한 바람만 불며/허허롭게 저민다” -拙시조 ‘퇴색’고향을 떠난지 어언 41년, 요즘 같은 봄날이면 풀 냄새 땅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던 고향은 어느새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퇴락해졌다. 60, 70년대부터 시작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농촌인구의 자연감소로 빈집이 많아지고 휴경지가 늘어남에 따라 전답이 수풀되거나 길마저 사라진 곳이 수두룩해진 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농어촌에는 간혹 귀농귀촌도 있긴 하지만, 적막하다 못해 인구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다.그러나 산업화, 도시화로 일자리 마련을 위해 농어촌을 떠났다지만, 도시의 상황은 어떨까? 어느 지역이든 저출산·고령화의 트렌드를 거스르기는 어렵기에 인구감소에 따른 도심 공동화와 도시기능 쇠퇴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가 상당수에 이른다.통계에 따르면 30년 후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6%가 사라지고 지방자치단체 중 30%가 파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경각심을 주고 있다.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국토의 약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해 있는 양상이다. 최근 대구·경북의 행정통합론이나 지자체마다 출산장려로 인구절벽을 줄이고 주소갖기 캠페인 등을 펼치는 것도 결국 도시소멸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연계에서 상생하는 인간사회에 균형과 견제, 평형과 중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자칫 공멸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농이 적절히 어우러지듯이, 큰 세상을 이고 가는 작은 세상과 작은 세상을 품고 사는 큰 세상이 공존 공생하는 조화와 균형으로 지구촌을 이끌어 간다.

2021-04-12

학생은 학교가 답이다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코로나속보] 2020년 3월 1일 오전 9시 기준 국내 총 확진자 3천526명(하루 새 +595), 사망자 17명(+1) 2020년은 학교가 참 어수선한 한해였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1년 4월 11일 확진자 614명 서울 2단계 지방 1.5단계를 유지하고 있다.일선 학교에서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한다. 원격수업의 장기화로 학생들의 교육격차가 심화되고 학생들은 밤과 낮이 바뀌어 생활하는 문화가 생겼다. 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가정의 학부모님은 학부모님대로 어려움을 겪는 이중적 고충을 겪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이 한때 유행을 했을 정도이다. 고충을 알만하다.비대면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침 조·종례를 줌으로 하고 교과수업은 EBS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서 선생님이 동영상 수업을 올리거나, 줌을 통해 쌍방향 수업을 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쌍방향 수업은 많은 선생님이 선택하지 않은 수업방식 중 하나이다.필자 또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모든 수업을 직접 해본 경험을 비추어보면 그중에서 줌을 통하여 쌍방향 수업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고 질문하고 답변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점도 많다.하지만 이것 또한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비대면 수업이 아니라 학력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하는 수업이다. 등교 수업을 확대해야 한다. 아니 전면 등교 수업을 해야 한다. 학교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 학생과 학교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안전하다.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필자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텅 빈 운동장이 아닌, 텅 빈 교실이 아닌, 학생들과 함께 운동하고 수업하기를 바란다. 학생이 없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학생과 함께 하고 싶다.학교 현장은 어느 곳보다 방역을 준수하고, 등교 전 건강상태의 자가진단, 식당 청결상태, 사회적 거리두기 줄서기, 식당 테이블 인원 줄이기, 학생과 교사 마스크 착용하기 등 의심환자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등교 수업을 통해 교육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방법을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학교 정상화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현재 유치부·초등학교 1·2학년·고3학년 학생은 매일 등교하기로 발표를 했다. 하지만 집에 혼자 남아 있는 학생은 안전한지 그리고 학력 격차는 누가 해소 해 줄 것인가. 이제는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방법의 하나가 철저한 방역을 통해 학생은 학교로 등교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학생이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이 최고이다.변화를 좇아가지 말고 미래로 앞서가야 한다. 현재만 바라보지 말고 역발상을 통해 행동하고 극복하자. 과감하게 그리고 변화에 도전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자.

2021-04-12

포슬린 아트

포슬린 아트는 유약처리 된 백자 위에 특수안료와 오일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뒤 구워내는 도자기 공예를 말한다.포슬린(Porcelain·자기)과 아트(Art·예술)의 합성어로, 18세기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도자기 공예다. ‘포슬린’은 흙으로 구워 만든 백색 상태의 도자기, 즉 초벌이 된 백자를 가리킨다. 포슬린 아트는 포슬린 페인팅(Porcelain Painting)이라 불리기도 한다.유약을 발라 구운 도자기 위에 다시 무늬나 그림을 그린 후 700℃~ 850℃정도의 저온에서 굽는 ‘상회(上繪) 기법’을 사용하며, 보통 1~4단계의 소성(燒成·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려 가마에 구워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포슬린 아트 재료는 의외로 간단하다. 유약을 바론 백색의 하얀 도자기를 준비하고, 포슬린 안료는 가루로 돼있고, 붓끝에 오일을 살짝 묻힌 뒤 희석시켜 사용하면 된다.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시대가 길어지면서 홀로 작업할 수 있는 취미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포슬린 아트가 각광을 받고있다. 특별한 그림 실력이 없어도 도안을 따라 예쁘게 색칠해서 관심이 있다면 초보자들도 금방 예쁜 작품을 만들수 있다.포슬린 아트의 대표적인 사례는 주로 그릇에 꽃무늬를 그리는 것이다. 그림소재는 다양하지만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꽃그림 접시가 포슬린 아트의 결과물이다.요즘에는 도자기에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애완동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다. 도자기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장식품이나 식기로 사용할 수 있어 더 친근하다는 이들이 많다.그림을 그린 뒤 가마에 구워지면 나만의 포슬린 아트가 완성된다. 코로나19가 만든 새 유행풍속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12

미지의 영역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사람은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조 해리의 창이라는 심리 이론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네 가지 정보 영역이 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공개 영역,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아는 맹목 영역,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숨긴 영역, 그리고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미지 영역이다.영화 ‘퍼스트 리폼드’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 미지의 영역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메리의 남편인 환경 운동가 마이클은 메리에게 50년후 최악의 지구 상태를 예견하며 낙태를 종용한다. 메리는 하필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목사 톨러에게 찾아와 마이클을 설득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마이클은 자살하고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장례식을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톨러 역시 마이클처럼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덕 자본가를 응징하려다가 자살로 생을 마친다. 메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남들 눈에도 아기를 출산하고 싶은 순수한 여인일 뿐인데, 메리가 만난 남자들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으면 의문이 풀릴까?‘프로이트 이후’는 현대정신분석학의 발달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 영국의 대상관계 정신분석 이론가인 페어베언은, 초기에 내적 대상으로 형성된 대상과의 관계 양식은 이후에도 반복되어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메리가 이렇게 비슷한 유형의 남자와 만난 것은 초기에 형성된 내적 대상의 영향으로 비슷한 유형의 두 남자를 선택하게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쁜 남자에게 고통 받은 여자가 다시 선택한 남자 역시 이전 남자와 비슷한 유형인 경우가 많다.게다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간과하거나 뜬금없다고 여기는 ‘마법의 시간 여행’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여행은 메리의 무의식이 두 남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이클이 죽은 후 메리는 무서운 꿈을 꿨다며 한밤중에 목사를 찾아와 이 여행을 제안한다. 메리는 목사를 바닥에 눕게 하고 자기는 목사 위에 엎드려 온몸을 밀착시킨 다음 목사에게 자신의 호흡과 눈움직임, 손움직임을 따라하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처음 간 곳은 숲이다. 그러나 곧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의 넓은 도로가 나오고 뒤이어 폐타이어가 화면을 채운다. 그 시간여행을 마친 후 톨러 목사는, 풍요로운 삶 교회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덕 자본가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노해 자살폭탄 테러를 준비한다. 메리는 구원자가 아니다.자기 자신과 남에게 알려져 있는 공개적 영역이 아무리 순수해보인다고 해도 미지의 영역에 드리운 어두움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커서 공개적 영역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반복을 끊기 위해서는 미지의 영역을 공개 영역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미지의 영역이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노력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21-04-12

자랑스러운 우리 항공기술

윤영대수필가코로나 4차 유행을 걱정하는 뉴스로 마음이 심드렁한 지난 9일 오후 TV 화면이 바뀌면서 ‘하늘을 열다. KF-21 한국형 전투기 출고식’ 영상이 뜬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천공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시제품 1호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행사였다. 최초의 국산 전투기 개발의 기틀을 마련하고 하늘을 향한 도전을 이룬 항공산업의 주역들을 보며, ‘아! 우리 대한민국도 전투기를 만드는 자랑스런 국가가 되었구나’하고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전투기의 눈’이라는 최신 레이더 AESA 등 최첨단전자장비를 갖춘 KF-X는 ‘21세기 한반도를 수호할 전투기’라는 의미로 KF-21로 명명하고 공모를 통해 ‘보라매’라고 부르기로 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첨단 국산 전투기 개발을 천명한 이래 지지부진하다가 2010년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여 현 KF-16보다 상위기종으로 날개를 편 것이다.최대속도 마하 1.8, 무장 탑재 7.7t이 가능한 이 스텔스 전투기 ‘보라매’는 개발비 8조8천억의 단군 이래 최대사업으로 기술과 개발 의지를 묶어 국산화율 65%를 달성하고 수십조 원의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신화를 만들 전망이다. 시제기는 지상 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내년 7월 첫 비행을 할 예정이며 2028년까지 우선 40대를 공군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4.5세대 초음속 전투기 개발의 세계 8번째 생산국이 되는 것이다.이미 1999년 우리의 기술로 기본훈련기 KT-1 ‘웅비’를 만든 이래 2003년 고등훈련기 KT-50 ‘골든 이글’로 초음속을 돌파하여 세계 12번째로 초음속비행기 개발국이 되었으며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하였고, 2013년부터 FA-50 경전투기로 개량하여 자주국방의 힘으로 우리의 영공을 지켜오고 있다.해방 후 공군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육군항공대로 시작해서 1949년에 공군으로 독립하였고, 당시 ‘공군의 아버지’ 최용덕 장군이 ‘우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펼쳐 최초 경비행기 ‘부활호’를 띄운 지 70년 만에 전투기까지 만드는 쾌거를 이루었다.또 헬기 기술은 2012년 KUH-1 ‘수리온’을 최초 개발하여 세계 11번째 나라가 되었고, 이것을 경찰용 ‘참수리’ 소방용 ‘한라매’ 뿐만 아니라 산림감시용으로도 배치하여 활동하고 있다.우주로 나아가는 꿈도 펼치고 있다. 1992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하며 우주개발에 첫발을 내딛고 세계 25번째 인공위성 보유국이 된 후, 무궁화, 아리랑 등 15개나 쏘아 올렸다. 2013년 우리 손으로 만든 나로호 발사로 국민의 환호를 받았으며, 최근 10년간 천리안 위성 3개를 궤도에 올려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젊었을 때 공군 조종사를 빨간 마후라, 보라매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 보라매들이 초음속 전투기 보라매를 타고 우리의 한반도 영공을 지켜나가는 든든함을 보리라. 그리고 우리의 첨단 항공기술력으로 자주국방의 힘을 다지자.

2021-04-11

뜻하지 않은 곳에서

최미경동화작가평일 오전 도서관에 갔다. 코로나로 전면 개방은 되질 않지만 대출, 열람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도서관 로비에 전시된 책 한 권 집어 들고 로비에 띄엄띄엄 배치된 소파에 잠시 기대앉았다. 유리천장으로 해가 쏟아낸 빛물이 그대로 쏟아져내려와 나의 무릎과 어깨 그리고 머리가 투명하게 젖어가는 듯 했다. 불쑥 보르헤스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천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천천히 들어 올려 더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조금씩 더 깊게 책에 집중할수록 눈앞에 흐르는 한 줄의 문장과 귓가에 흐르는 맑고 차가운 한 줄의 공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씩 일어나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마음에 무언가 가득 차올랐다. 행복이었다.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마음은 늘 불안과 걱정을 반복했고 실망과 미움이 지속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대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에 대해 분노하며 잃어버린 것에 대해 화도 나고 예민해져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해보겠다는 마음에 몸은 항상 몹쓸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라는 것이 나 혼자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난관과 마주쳤을 때마다 불안은 더해 졌고 그 불안이 우울을 데려다놓기도 했다.네 개의 계절을 다 보내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아이들은 정상등교를 하지 못하고 사적인 모임도 어렵다. 그렇게 보면 작년 이맘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장치를 우리 몸과 마음은 그 1년의 시간동안 배우고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영위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섬세한 삶의 관찰자 눈이 바로 그것이다.매일 매일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일, 보고 싶은 이와 전화해 점심약속을 잡는 일, 주말이면 아이들과 근처 미술관에 가서 새로 바뀐 작품에 대해 수다를 떨었던 일, 공원을 거닐며 큰 소리로 웃고 김밥이며 과자를 나누어 먹었던 일, 도서관 3층 쉼터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던 일, 영화관에서 셋째의 팝콘을 집어 먹던 일 등등 정말 아무렇지 않게 했던 모든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1년 동안 깨달았던 것이다.그리고 다시, 봄을 전진하는 이 시공간에서 우리는 감사한다. 가족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하고 아이들 뺨에 입 맞출 수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한다. 예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미술관의 그 공간에 대해 감사하며 띄엄띄엄 순번대로 앉을 수 있는 도서관의 그 공간에 대해 감사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고 신나게 뛰어 놀 수 있으며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고 또래와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한다.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천천히 하며 책을 덮고 책이 전시된 로비를 돌아서 한껏 충전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왔다.

2021-04-11

열등감은 나의 힘이다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우리가 일상에서 “자존심이 강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용하는 ‘자존심’이라는 단어는 좀 다른 의미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자존심, 정신의학적으로는 오히려 ‘열등감’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들은 사소한 말에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남이 자기를 무시 한다고 화를 낸다.못생긴 사람에게 못생겼다고 하는 건 잔인(?)하지만 정확한 말이다. 그러나 상대는 무척 자존심 상해한다. 외모에 자신이 없는 열등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정신과 의사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은 존재로 태어났으며, 열등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외모, 돈, 학벌, 능력 등에 대해 모두 저 마다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열등감 자체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그런데 왜 열등감의 결과가 다른 것인가? 누구는 열등감에 지배당해 평생을 열등감의 노예로 살고, 누구는 열등감을 성공의 동력으로 삼는다. 예를 들면, 학력이 낮으니 남에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열등감을 부정적으로 표출하는 것이고, 학력이 낮으니 남보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열등감을 바람직하게 표출하는 것이다.물론 학력이 낮은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학력 때문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관적 해석일 수 있다. 실제로 남들이 자신의 낮은 학력을 무시했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하는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열등감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중요하다.열등감은 “내가 부족한 점이 있음을 느끼는 상태 즉 부족감이다. 누군가는 열등감에 짓눌리고 좌절한다. 열등감이 자신을 미워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방향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향으로, 다시 말해 불행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열등감을 부정하려 하지 말고 무작정 억압하려 하지 말고, 내 안의 열등감을 찾아서 먼저 마주해 보자. ‘완벽한 나’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자. 그리고 “난 부족해”라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고 수용하자. 이 순간 열등감은 새로운 에너지로 변환될 준비를 한다.헬렌 켈러는 자신의 부족과 불완전을 긍정적 동기 부여로 삼고 도전의 원천으로 삼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녀는 생후 19개월 때 뇌척수막염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인해 시청각장애인이 되었다. 7살 때 인생의 스승이자 친구가 된 앤 설리번을 만나 퍼킨스 맹인학교에 입학하여 정식 교육을 받고, 이후 1904년 비장애인도 힘들다는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할 무렵에는 5개 국어를 습득했다. 그녀는 수많은 기고문을 쓰고,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13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녀는 세계를 다니며 강연 활동을 하였고, 1937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잃지 마라”고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또한,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활발한 사회 운동을 했다. 1955년 하버드대는 그녀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는 하버드대가 여성에게 수여한 최초의 명예 학위였다. 또한, 1964년에는 미국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미국자유훈장을 받았다.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19세기에서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인물은 나폴레옹과 헬렌 켈러다.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다 실패했다. 헬렌 켈러는 세계를 마음의 힘으로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을 남겼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헬렌 켈러를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여성”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헬렌 켈러의 말 중에 인상적인 것이 있다.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득하다.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다.”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오히려 건설적인 활동으로 승화한 의지의 인물다운 생각이다. 이렇게 신체적 열등과 같은 어려운 여건을 오히려 건설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모범이 되었다.사람은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사람의 발전이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지닌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우리가 ‘완벽하지 않음을 수용하는 용기’, ‘불완전할 용기’가 필요하다.살아가는 동안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채우면 된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잘 채워지지 않는 것이라면, 다른 것으로 채우면 된다. 공부에 소질이 없다면, 자신이 소질이 있는 분야를 열심히 하면 된다. 굳이 자신이 부족한 부분으로 채울 필요는 없다.우리는 모두 열등감을 갖고 있지만, 열등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자. 그리고 이를 극복하여 더 나은 삶을 향해 노력하자. 열등감은 현재보다 더 나은 나를 위한 자아실현의 원천이다. 열등감은 나의 힘이다.

2021-04-11

독도 바다의 사계절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서는 2014년 개소 이래 현재까지 평균 1달에 한번 꼴인 총 90차례에 걸쳐 독도 조사를 수행해 왔다. 한 겨울에 독도를 다녀왔고, 수온 30도에 육박하는 한 여름의 독도를 보아왔고, 며칠간을 독도에 머무르며 독도의 수중을 살피기도 하였다. 드론으로 독도와 독도 바다속의 변화상도 관찰해 왔다. 독도마을어장을 관리하는 울릉군 도동어촌계와 함께 해조류를 주 먹이로 하는 성게 구제작업도 함께 진행했고, 독도의 바다를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독도해양관측부이 장비 점검도 수시로 진행했다. 독도소방헬기추락사고 때는 독도 현장조사의 경험을 살려 수중CCTV를 활용하여 현장수색에 참여하기도 했었다.그동안 전용조사선이 없어 낚시선, 어선을 임차한 조사가 대다수여서 많은 한계가 있었지만, 내년에는 다목적 독도(울릉도) 전용 소형 조사선이 취항할 예정이라 더 풍부한 독도 조사가 기대된다.육지에도 4계절이 있듯이 독도 바다에도 수온의 분포에 따라 계절마다 다른 분포가 나타난다.독도 바다는 표층수온이 섭씨 약 10도 이하로 연중 가장 낮아지는 2~3월 사이에 한겨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무렵 독도는 강한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상하로 잘 혼합되어 때로 수심 150m까지도 수온이 거의 섭씨 10도로 일정하다. 독도의 겨울에 정착하는 일부 어류들은 찬 수온에 적응하면서 바위틈에 몸을 감추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연중 가장 빈번하게 물개, 물범 같은 해양포유류들이 3월을 중심으로 독도에서 자주 목격된다. 독도의 겨울 바다는 또한 대황, 감태, 미역 같은 바닷말류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기간이다.겨울철에 연중 가장 약해진 대한해협을 통과한 대마난류의 세기가 봄철에 접어들면서 점차 강해지면서 독도 바다의 봄이 시작된다. 이 무렵 독도에는 주로 2월 말부터 독도에 찾아오기 시작한 괭이갈매기가 독도 주변을 쉼 없이 누빈다. 5월 초 무렵 독도 바다의 표층수온은 섭씨 약 15도 내외까지 상승한다. 겨울철에 보이지 않던 어류들이 봄철에 접어들면서 따뜻해진 대마난류를 타고 올라와 독도에 정착하기 시작한다.독도 바다는 표층수온이 연중 가장 높은 섭씨 25도 내외를 보이는 7~9월 사이에 바다의 여름 풍경을 보여준다. 수온이 상승하면서 미역과 같은 바닷말류는 엽체가 녹아 없어지고 줄기 일부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뜻한 대마난류를 따라 독도에 온 파랑돔, 줄도화돔과 같은 열대성 어류들을 독도의 여름 바다에서 만날 수 있다. 독도 주변 바다는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가장 높은 표층수온 상승률을 보이는 해역이라, 이러한 열대 및 아열대 어종들을 여름철뿐만 아니라 다른 계절에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표층 아래로는 겨울철에 러시아 인근에서 형성된 차가운 물이 여름철에 독도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때로는 수심 50m 근처까지도 수온이 섭씨 5도까지 크게 낮아지기도 한다.10월 중순에 접어들면 대마난류의 세기가 점차 약해지면서 표층 수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떨어져 바다의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표층 수온은 12월에는 섭씨 약 13도 내외로 다시 낮아진다. 가을철에 접어들면서 여름철의 남풍 계열의 바람 대신 북풍 계열의 바람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바닷물의 상하층 혼합이 활발해져 때로 수심 100m근처까지도 표층과 수온 차이가 거의 없이 수온이 수직적으로 일정해진다.제주도의 토착종이었던 아열대성 어종인 자리돔은 가을이 깊어지면서 수온이 차가워지면 울릉도를 떠나 다시 제주도로 돌아갈까? 비록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들 아열대성 어류들은 수온이 차가워지는 겨울철에도 독도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수중 암초 주변에 주로 서식하는 습성을 갖는 어류들은 독도의 바위틈에 최소한의 움직임을 유지한 채 다시 따뜻해지는 독도 바다를 기다리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독도 바다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격한 해양환경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표층수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바다의 여름이랄 수 있는 수온 20도 이상의 날수도 예년과 다르게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해양생물에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해상기상악화 또한 예전과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표층수온 증가와 바다의 여름기간 증가는 아열대성 혹은 열대성 해양환경으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주요 어장의 변화, 먹이 생물의 변화에 따른 어류 성장률의 변화, 어류 산란 패턴의 변화 등 다양한 변화가 예측될 수 있다.독도 바다는 한반도 해양환경변화를 가장 잘 감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독도는 오늘도 해류를 따라 독도를 찾아온 혹은 독도에 기대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뭇 해양 생물들에게 삶의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021-04-11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숙제

심충택논설위원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4·7 재보궐선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한 말이 계속 귀에 남는다. 당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의제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 말이 내년 대선 전(前)에 야당이 풀어야 할 핵심적인 숙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한 것은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 야당지지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다음 달로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의 외연 확대를 위해 뉴페이스들이 지도부에 진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도 “과거에는 정당이 다선의원 중심으로 지도부를 구성했지만 국민의 의식도 많이 변한 만큼 초선의원들이 당권도전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응원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5분연설’로 유명해진 윤희숙 의원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30세대 공략에 앞장섰던 이준석 전 최고위원 등이 소장파 당권도전자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역동성과 적극성, 신선함을 함께 갖춘 젊은 정치인들이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한다.국민의힘 내부에선 당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당 대표로 추대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김 전 위원장은 재임 중 호남민심에 다가서며 당의 외연을 확장시켜 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종인 위원장이 선거승리의 마술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동행하려면 김 전 위원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에는 당 대표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욕구충족을 위해서라도 내가 물러나야지. 상황 바뀐다고 돌아가거나 하는 일은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대권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야권에서는 이미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예비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 주말 윤 전 총장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30년 구형을 내린 장본인”이라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앞으로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복당,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합당, 전당대회 과정 등에서 심각한 내부분열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돼, 국민으로부터 자만(自滿)에 빠졌다는 비난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전 분열과 반목을 막고 외연을 확장할 지도자를 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국민의힘은 어떤 방식으로든 윤 전 총장, 안 대표와 힘을 합쳐서 내년 대선을 치러야 승리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으로서는 국민의힘이 윤 전 총장과 안 대표를 포용하면서 야권 전체의 대선주자를 만들어낼 리더십이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 국민의힘이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윤 전 총장, 안 대표와 같이 경쟁력 있는 대선주자들과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하면 정권교체는 물 건너간다는 점이다.

2021-04-11

주권재민(主權在民)

조선시대 임금의 언동을 기록한 일성록에는 매년 마지막 날에 헌민수(獻民數)가 기록된다. 헌민수란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지역과 전국 8도의 호구 수와 남녀별 인구가 조사된 인구통계 기록이다. 특히 임금은 헌민수를 받는 날이면 임금이 직접 절을 하는 등 경건한 의식절차를 가졌다고 전한다. 이는 그해 조사된 백성의 수는 곧 나라의 근간이며, 임금이 받들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에서다.헌민수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겠는다는 것은 지금의 주권재민 사상과 비슷하다. 당시 국가가 비록 왕권체제였지만 권력의 근원이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헌법에 명기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적 사고와 맥락을 같이 하는 내용이다.“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고 비유한 군주민수(君舟民水)가 바로 이런 개념이다. 백성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짚을 수도 있다는 말은 백성이 곧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늘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을 잘 쓴다. 백성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위정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민심은 언제든 지지를 거둔다. 정치인이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진보 20년 집권론’을 꺼냈던 더불어 민주당이 서울·부산에서 실시된 4·7 재보선에서 대참패를 당했다. 1년전 국회의원 180석을 건졌던 총선 결과와 180도 뒤바뀐 결과란 점에서 민심의 엄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민심은 영원하지도 않지만 국민을 섬기는 정치에 대해 배신도 않는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 사상이야말로 새롭지도 않지만 정치권이 똑똑히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11

부치지 않은 편지

이바름행정교육팀포항시의 기민한 정치적 반응에 박수를 보낸다. 김태성 해병대1사단장이 해병대사령관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포항시는 김 사령관을 명예포항시민으로 임명했다. 9일 이강덕 포항시장이 직접 해병대1사단까지 방문해가면서 떠나는 임의 발걸음을 붙잡고서 시민증서를 건넸다.김태성 해병대사령관 내정자는 지난 2019년 5월 포항 해병대1사단장에 임명됐다. 직전 사단장이자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조강래 소장의 후임자였다. 조 장군 당시 해병대 1사단에서는 마린온 추락사고부터 탄약고 폭발사고, 청룡회관 민간 위탁 문제 등 악재에 악재를 거듭한 최악의 상태였다. 해병대를 향한 내·외부적인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김 내정자는 구원투수로 분해 사단장 자리에 앉았다.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문제들에 더해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지기만 했다. 마린온 추락사고는 여전히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심판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탄약고 폭발사고는 1년 반 조사 후에도 ‘원인을 알수없음’으로 남았다. 청룡회관은 민간 위탁 후 임금 미지급 등 다양한 문제가 터져나왔다. 현재도 청룡회관은 연이은 공고에도 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더욱이 지난 2019년에는 해병대 격납고 건설과 관련해 주민들과 크게 마찰을 빚었고, 최근 장기면 수성사격장 사태에서 해병대는 철저하게 국방부 뒤에 숨어있는, ‘약자 코스프레’에만 열중했다. 불난집에 기름붓듯, 수성사격장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해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모두가 김태성 내정자가 있을 때의 사건들이다.그런데도 포항시는 명예포항시민증을, 그것도 직접 찾아가서 줬다. 김 내정자 취임 이후 통합방위작전계획 수립과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포항시 통합방위태세 확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준 데 감사하고, 재난발생 시 병력을 지원해줬으며, 일손 부족 농가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역대 사단장들 중 안 그런 사람을 손에 꼽기가 힘든데 말이다. 어려운 명분을 찾지말고 차라리 솔직하게 사령관이 됐으니 포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현안에 방관자에 가까웠던 그에게 주어진 명예시민증은 “2년여 동안 포항시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번 명예시민증은 앞으로 포항시를 위해 많은 일을 해달라의 의미에 더 가깝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많은 군인들에게 ‘좋은 지휘관’으로 기억되고 있는 김태성 내정자가 포항시민에게도 ‘좋은 명예시민’으로 기억되길. 명예포항시민으로서 이름값을 해주길 기대한다. /bareum90@kbmaeil.com

2021-04-11

농작업 대행서비스, 영양군이 대신해드립니다

오도창영양군수영양군은 지난 시절 고추재배로 인구 7만이명이 넘었다. 영양읍내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군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다. 농사는 여전히 영양군민들의 삶의 중요한 근간이다.올해 1월 영양군 인구는 1만6천670명이다. 이중 65세가 넘는 인구가 6천245명으로 37.4%를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의 인구는 여전히 농사를 주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다.고령자의 대부분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 이들은 영양지역 특성상 고추, 사과 등을 비롯한 수작업이 많은 농작물을 주로 재배하다보니 농번기 일손이 크게 부족하다.농번기 일손부족으로 농작업이 지연되고 차질을 빚어 어려움을 겪는 농민을 대상으로 일부 중개업자들이 높은 품삯을 요구하거나 농사일에 익숙한 인부들을 다른 곳으로 투입하는 등의 일이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품삯을 주고 인부를 고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농촌에서 일손을 구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농가소득이 줄어드는 마당에 인건비가 급상승하고 있으니 농민들의 걱정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전국적으로 일손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민관이 협력해 인력은행을 운영하고 있다.사회봉사명령 대상자들을 농작업 현장에 투입하고, 각 기업은 1사1촌 자매결연을 맺고 농촌 일손을 거든다. 하지만 농번기 일손부족 현상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어 농촌지역 지자체들이 본격적인 지원체계를 갖추고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이에 군은 농번기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시도한 외국인 계절근로자사업 진행과 빛깔찬일자리지원센터를 운영해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그래도 부족한 일손은 농작업 대행반 서비스 운영으로 완전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농작업 대행반은 201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기계화가 가능한 밭갈이, 이랑 만들기, 피복작업을 대행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농업인들이 고령화로 인해 농기계 사용에 있어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농기계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영농인력부족 등 농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 경영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사업 추진 첫 해인 2019년도에는 사업비 2억을 들여 379농가에 219ha를 지원했으며 2020년도는 사업비 2억5천만원 가량을 투입해 530농가, 347ha를 지원했다.2020년 12월에는 간담회를 개최하고 농가, 농작업 대행반, 사업추진 관련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그간 2년 동안의 사업을 평가해 2021년에 추진할 사업의 미비점을 보완하도록 하는 시간을 가졌다.지원대상은 당초 관내 70세 이상 고령농가에서 2020년 여성단독 농업인, 2021년 장애인(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등록된 농업인으로 지원범위가 확대 돼 왔다. 군에서 추진하는 농작업 대행 서비스는 개별적으로 실시되던 농작업 대행 업무를 제도권 안에서 추진함으로써 체계적인 농업 지원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하지만 아직 보완할 점도 있다.읍·면 작업 대행반별로 농작업비 단가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위탁영농 농업법인에 대해 농기계 구입비를 지원해 대행사업 단가를 인하하고 농작업 대행 단가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향후에는 점진적으로 이 서비스의 미비점을 보완한다면 지역 고령 농업인들의 농지 이용률을 높이고 농업생산성을 향상시켜 농가 소득을 증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영양군민들이 농번기에 농작업 대행서비스를 잘 이용해 농가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21-04-11

치매와 신문읽기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대략 75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그러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치매에 걸리는 환자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치매환자는 앞으로 더 빠르고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보건당국은 치매환자가 2024년에는 100만명을 돌파하고 2039년에 200만명, 2050년에는 3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현재 65세 이상 노인층의 치매 유병율은 10%다.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설명이다. 치매를 관리하는 비용도 지속 늘고 있다. 2019년 국가의 치매관리 비용은 연간 14조원이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라면 2050년에 가서는 134조원으로 늘어날 것 같다고 한다. 연간 관리비용을 환산하면 치매환자 1인당 2천74만원의 관리비가 드는 셈이다.치매와 노령화는 직접적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현재 건강보험료 중 진료비 지출이 65세 이상 인구에서 41.6%를 차지하고 있어 노인층의 건강관리가 향후 국가의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치매는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43%의 노인이 암보다 치매를 더 무서운 질병으로 손꼽았다.지난 7일은 65회 신문의 날이었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실비 벨빌 교수는 치매 예방의 최선 방법이 게임이 아니고 책이나 신문읽기와 같은 고전적 두뇌 활동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치매연구 의사들은 신문읽기는 집중력, 기억력, 언어능력 등 다양한 인지영역에 도움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100세 시대 치매를 이기는 방법으로 신문읽기를 권장하면 좋을 듯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08

승자의 저주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제1야당인 국민의힘 압승으로 끝났다.그러나 보궐선거 결과를 지켜보는 대구·경북 정치권은 오히려 뒤숭숭한 표정들이다. 승자의 저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미국의 종합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에서 근무한 카펜, 클랩, 캠벨 등 세 명의 엔지니어가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고,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92년 발간한 ‘승자의 저주’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1950년대에 미국 석유기업들은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는데 당시에는 석유매장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다. 기업들은 석유매장량을 추정해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는데 입찰자가 몰리면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2천만 달러로 입찰가격을 써낸 기업이 시추권을 땄지만 실제 석유매장량의 가치는 1천만 달러에 불과했고, 낙찰자는 1천만 달러의 손해를 보게됐다. 이때의 상황을 카펜과 클랩, 캠벨은 ‘승자의 저주’라고 이름 붙였다.이같은 승자의 저주는 경쟁입찰이나 기업MA에서 자주 일어나며, 때로는 정치판에서도 일어난다. 예를 들면 올해 초 서울시장 선거가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을 때만 해도 상당수 국민의힘 지지자들 가운데서는 “서울시장 선거는 지는 게 대선에는 더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현재 국민의힘이 야당으로서 너무 무기력하고, 구심점이 확보되지 않고 있기에 서울시장 선거 패배를 계기로 완전히 판을 갈아엎는 체질개선으로 정계개편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보선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애초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돼 온 부산시장 선거는 물론이고 박빙승부가 예상됐던 서울시장 선거까지 국민의힘이 압승한 4·7보궐선거 결과는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보선 결과가 더불어민주당의 내로남불, 부동산정책 실패 등에 대한 심판이 결과로 나타난 것일뿐 국민의힘을 지지해서가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특히 이제까지 3% 이내 차이로 승부가 갈렸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20%에 육박하는 18.32%의 표차로 승부가 갈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존 여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도 있지만 야당도 획기적인 변신 없이는 언제든 지지율을 철회할 수 있다는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다. 차기 당대표 주자로 유력한 정진석 의원이 “포스트 김종인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 자칫 자리 싸움, 세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선 승리에 자만해 예전 고질병인 적전분열 자중지란을 되풀이할 경우 민심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대구·경북을 텃밭으로 둔 국민의힘이 정권교체를 이루고 싶다면 화합하고, 통합하고, 개혁해야 한다. 대선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1-04-08

포스텍, 위기를 기회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포스텍이 재정난을 겪어 국립대 전환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는 교수, 직원, 재학생 뿐만 아니라 동문, 학부모, 명예교수 및 포항시민들, 포스텍을 아끼는 국민들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사회에서 가볍게 논의된 사항이고 포스텍 총장의 해명성 메시지가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이 보도의 충격은 가시지 않고 있다.어떤 포스텍 재학생이 SNS에 올린 글에서 국립대 전환은 “포스텍의 카이스트 하위호환”이라는 말이 나온다. 포스텍의 카이스트와의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서 나온 단어이기에 충격적이다. 87년 개교한 포스텍의 기세는 서울대, 카이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와 경쟁한다는 기개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포스텍은 국내 1위라는 자부심이 확고했다.1994년 한국 최초로 중앙일보 국내대학 랭킹이 발표되었고 포스텍 1위, 카이스트 2위, 서울대 3위가 신문지상에 대서 특필 되었다. 이 당시 입시처 자료에 의하면 동시합격자의 선택에 있어서 포스텍과 카이스트는 50:50의 호각세를 보였다.2004년 영국의 QS-THE가 합동으로 세계랭킹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세계랭킹의 표준모델이 되었다. 2007년 포스텍에 국제화위원회(UGC)가 발족되어 대학 랭킹에 절대 요소인 국제화에 대한 박차를 가했고 2010년 3월 포스텍은 영어공용화 캠퍼스 선언을 했다. 연이어 포스텍 경쟁력위원회(UEMC)가 발족되어 국제화와 국제평가를 통한 포스텍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이 진행 되었다.2010년 QS, THE가 분리되어 첫 랭킹을 발표했을 때 THE에 의해 포스텍은 세계 28위(카이스트 79위, 서울대 109위)로 단연 국내 1위로 발표되었다. 한국대학이 이룩한 최고의 랭킹이며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포스텍은 국내 1위로 평가되면서 설립 50년이하 대학에서는 세계 1위라는 금자탑을 세웠다.상황은 이후 변화했다. 본부의 분위기가 “평가가 왜 중요한가? 연구만 잘하면 된다. 미국대학들은 그런데 신경 안쓴다”로 바뀌면서, 상황은 변했다. 포스텍은 연구력과 평판도에서 하락하면서 세계랭킹에서 국내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50년이하 세계대학 1위의 자리도 지킬 수 없었다.카이스트-포스텍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대학의 경쟁은 스피드(연구)만을 측정하는 스피드 스케이팅이 아니며 종합예술을 다루는 피겨스케이팅과 같은 것이다.이제 포항과 한국의 자존심 포스텍도 “응답하라 ! 2010”를 외칠 때가 되었다. 대학, 동문, 명예교수들을 어우르는 공동체를 만들고 연합 위원회를 만들어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세계 랭킹에서 이룬 최고 랭킹은 서울대 36위, 카이스트 39위이지만 포스텍은 28위이다. 여전히 포스텍은 세계랭킹에서 한국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다. 포스텍은 이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2021-04-08

이율배반(二律背反)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기독교 성서의 세례요한은 예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난 유대의 선지자였다. 제사장 스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요르단 지역의 광야에서 낙타가죽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다.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며 갈릴리 요단강 가에서 세례를 베풀고 설교를 하였다. 예수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과 부유한 상류층인 사두개인들까지 세례를 받으러 오자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가져오라’고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해서도 준열하게 질책하다 감옥에 갇혔다. 헤롯은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따르는 무리가 많아 민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죽이지를 못하다가,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춘 의붓딸 살로메가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요한의 목을 요구하자 쟁반에 담아 선물로 주었다.문익환은 1918년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다. 목회일 뿐만 아니라 신학대학의 교수이자 사회운동가, 통일운동가, 참여시인으로도 활동했다. 친구이자 사회운동가인 장준하의 의문사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여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등 반독재 운동을 하다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재야 민주세력 결집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통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당시 진보 기독교인들의 인식에 따라 김일성과 회담하고자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방북을 결행했다.문익환 목사의 방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세례요한을 떠올리며 일말의 기대를 했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온 그의 전력을 감안할 때 헤롯왕을 꾸짖은 세례요한처럼 동족살상 전쟁의 원흉이자 북한주민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종신 집권하는 희대의 독재자 김일성에게 준열한 질책이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순교의 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참으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는 평양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일방적으로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말만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김일성을 만나 얼싸안고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배신과 분노를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어떤 논리나 변명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이율배반이고 자가당착이자 정신상태를 의심케 하는 일이었다.북한은 세계최악의 세습독재 국가다. 그래서 유엔은 2003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왔다.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매춘, 영아살해, 외국인 납치 등 인권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의 보장을 촉구하는 것이 그 결의안의 주요 내용이다. 한국의 현 정권은 3년 연속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정의를 위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정부가, 민주화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한 정권이 정작 동족인 북한의 인권을 외면한다는 건 참으로 해괴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상식과 정상의 회복이다.

2021-04-08

4월 학교에는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내 4월은/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3월에 피었던 꽃향기와/4월을 기다렸던 꽃향기 고스란히 내 안으로 스며들어/눈빛에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향기를 나누며/향기를 즐기며/아름다운 4월을 만들고//싱그러운 5월을 맞을 수 있게/마음을 열어 두어야겠어요//4월에는/한 달 내내 향기 속의 나처럼/당신에게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마주 보며 웃을 수 있게/그 웃음이 내 행복이 될 수 있게” (윤보영, ‘내 4월에는 향기를’)최근 필자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시이다. 중간에 생략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전문을 인용한다. 필자가 이 시에 매료된 이유는 필자가 원하는 학교 모습이 이 시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또는 나)” 자리에 “학교”를, “당신” 자리에 “학생”을 대입해서 읽어보면 필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4월 학교에 행복이 넘치기를 바라면서 패러디한다.“학교 4월은/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중략) 4월에는 한 달 내내 향기 속 학교처럼/학생에게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마주 보며 웃을 수 있게/그 웃음이 학교 행복이 될 수 있게”향기가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음껏 웃으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학교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 기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나라 학교 현장이 얼마나 살벌한지는 잘 알 것이다.“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한 청소년의 수가 10년 새 가장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학생들의 정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중략) 학생 10만 명당 극단적 선택한 학생은 2020년 2.75명으로 2.71명을 기록한 2009년보다 높았다.”학생들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즐거워야 할 학교가 어쩌다가 학생들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곳이 되었을까! 다음은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를 다룬 언론 자료이다.“극단적 선택 추정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41.8%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우울 등 정신질환(12.8%), 가정불화(12.8%), 성적 문제(7.8%) 순으로 나타났다.”이 자료만 보면,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원인이 학교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최선을 다해 얻은 자료일 것이다.하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순서가 크게 바뀔 수밖에 없음을 안다. 당장 학생들이 우울 등 정신질환을 겪는 이유를 생각해보자.4월 들면서 학원과 독서실에 자리가 없다고 한다. 특히 독서설에 오는 학생의 학년이 많이 낮아졌단다. 그중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유독 많다고 한다. 중학교 첫 정기고사에 가위눌린 중학교 2학년 학생을 보면서 학교와 자유학년제의 모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4월을 향기 넘치는 말로 시작하려 했는데 또 실패다. 지금부터라도 4월 학교에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그것도 학생들이 행복한 향기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평가제도를 확 뜯어고치자!

2021-04-07

예수를 배신한 제자 두 사람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세상살이에서 배신은 큰 상처를 남긴다. 인간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원수를 만드는 배신사건은 비일비재하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랑하던 사람의 배신, 제자의 스승 배신, 믿었던 친구의 배신, 심지어 부모 형제간에도 배신은 종종 있다. 오늘처럼 각박해지는 이익사회에서는 배신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배신의 결과는 원망과 보복, 눈물과 고통을 수반한다. 얼마 전 임영웅이라는 무명가수는 ‘배신자’라는 노래로 ‘미스터 트롯’에서 1위에 올랐다. 그의 감성적인 음색도 좋았지만 그 가사가 이 시대의 아픔을 대신했기 때문이다.코로나 상황에서도 성당과 교회는 지난주 부활 축일을 조용히 치렀다.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도 두 명의 제자로부터 배신당한다. 마르코 복음에는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한 예수님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어부에서 제자로 전격 발탁된 베드로의 배신이 등장한다. 그는 예수님 곁을 지키며 착실히 예수의 구원 사업을 돕던 사람이다. 예수가 총독 빌라도 앞에 불려가 재판을 받을 때 그는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당신도 예수님과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 라는 물음에 그는 극구 부정했다. 예수의 예언대로 그는 새벽닭이 두 번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를 배반했다. 권력과 죽음의 공포 앞에 나약해진 베드로의 모습이다.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대표적인 배신자이다. 그는 예수가 총애하여 돈 주머니까지 맡긴 재정 책임자이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도 유다는 예수께 비스듬히 기대고 있다. 그러나 계산에 빠른 그는 은전 30냥에 스승 예수를 팔아넘겼다. 이 세상에도 권력자의 측근 중 공금을 횡령한 사람은 많지만 유다처럼 주인을 팔아넘긴 사람은 드물다. 결국 그는 스승 예수의 처형 소식에 몹시 후회하고 목을 매 자살했다. 산티아고 성지 순례 출발지 성당 벽에는 자살한 유다의 비참한 모습과 그를 어깨에 메고 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조각되어 있다.결국 배신당한 예수는 재판에 회부된다. 유태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의 처형을 빌라도 총독에게 촉구한다. 당시 관례에 따라 빌라도가 예수의 처형 여부를 물었을 때 광장의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친다. 빌라도는 예수의 방면을 제안했지만 무지하고 성난 군중들은 그의 처형을 촉구한다. 당시 군중들로부터도 배척당하는 예수님의 수난 모습이다. 역사에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 군중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중우(衆愚)정치의 비극을 자주 접한다. 오늘날 인기 영합적인 포퓰리즘의 결과가 두렵다. 부활주일을 지났지만 제자들의 예수 배반 사건이 머리에 맴돌고 있다.혼탁한 인간 세상의 배반은 흔히 엄청난 보복으로 이어진다. 악이 악을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이다. 혼탁한 정치판에도 배반에 대한 앙갚음은 이어지고 있다. 오늘 한국 정치 역시 상대 죽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와 같은 방식인 보복으로 문제를 해결치 않았다. 자신의 행위를 뉘우친 베드로에게는 천국 문의 열쇠를 안겨주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유다를 원망은 했지만 보복치 않았다. 부활절은 예수의 지극한 사랑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2021-04-07

When life hands you a lemon, Make lemonade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미국 사람들은 자동차 범퍼에다 여러 가지 종류의 스티커를 많이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많은 범퍼 스티커 가운데 이런 스티커 하나를 본 적이 있다.“아주 쓰고 신 레몬을 주거든 그것을 레모네이드 차로 만들어라(When life hands you a lemon, Make lemonade).”이 말은 쓰디쓴 인생의 경험이 오히려 달콤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축복으로 변모할 수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신 레몬을 달콤한 레몬차로 만들어 마시라는 말이다.인생 여정 가운데 때때로 생각밖에 어려움을 통해서 근방이라도 낙심되고 절망스러워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에서 포기하지 않고 딛고 일어설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그 고난은 결코 인생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신약성경에서 세상적인 모든 스펙을 쌓고 출세 가도를 달리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의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에는 늘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래서 항상 고난도 즐거워하고 고통도 기뻐한다’라고 고백하였다.한자로 된 사자성어로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쓴 것이 다하면 달콤한 맛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고생(苦生)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과 상통된다고 볼 수 있다.우리는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고, 즐겁다고 느낄 때도 있으며, 고생스럽다고 느낄 때도 있다. 바꾸어 애기하면 낙(樂)을 찾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어렵고 힘든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는 뜻이다.세상 일은 돌고 도는 것인 만큼 힘든 고비를 참고 넘으면 평탄한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영국 속담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모든 구름의 뒤는 은빛으로 빛난다)’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내일에 대한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 앞에 놓인 크고 작은 고난의 현장에서 지금 무진장 쓰고 시어서 입에 댈 수도 없는 레몬이지만 지혜를 구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시큼 달콤한 맛있는 레몬차로 바꾸어 마실 수 있다면 고난이 유익이며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이 삶의 비밀을 알고 나면 엄청난 시험과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울면서도 찬양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더 달콤한 차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며 내일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2021-04-07

민들레

정미영수필가민들레는 할머니와 나의 추억이 담긴 꽃이다. 사물은 사연이 담기는 순간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런 연유로 해마다 나의 봄은 민들레가 필 무렵 시작된다. 민들레를 보아야 마음에서 진정한 봄을 받아들인다.돌아가신 할머니는 봄날 입맛이 없을 때 뒷산을 찾았다. 민들레로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민들레를 캐고 난 뒤, 집에 돌아와 민들레밥과 민들레된장국을 상 위에 정성스럽게 올렸다. 된장국을 숟가락 가득 입안에 떠 넣으면 민들레 특유의 은은한 향이 온몸 가득 퍼졌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다.봄비 그친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양지바른 산기슭과 밭둑 언저리에 피어난 민들레를 캐기 위해 어린 나를 앞장 세웠다. 할머니는 호미로, 나는 숟가락으로, 줄기를 조심스레 잡은 뒤 뿌리를 캐서 흙 털기를 반복했다. 칡 바구니 가득 민들레를 캐고 나면 민들레 내음이 손가락 사이에 뱄다.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서 둥글게 말고 있던 등을 펴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는 붙박이처럼 제자리에서 민들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할머니는 민들레처럼 살면 좋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가 좋다면서. 민들레는 아무데서나 싹이 잘 트고 잘 자란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에도, 먼지가 겹겹이 쌓이는 길바닥에도, 무심한 사람들에게 밟혀도 죽지 않는다. 씨앗들은 멀리까지 날아가 부지런하고 야무지게 살아간다.할머니 역시 강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육 남매를 키웠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깊은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자식들을 위해 삭여야 할 때가 있었다. 삶이 주는 무게가 무거워 주저앉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기에, 생활의 역경을 이겨나갔다.할머니는 생활에 대한 막막함의 농도가 짙어질 때면 가끔 나를 붙잡고 말했다.“영아, 할매는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고 싶데이.”민들레처럼 어디론가 날아가고자 꿈꾸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말투에는 삶의 고단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민들레는 봄이 멀어질 무렵이면 바람에 몸을 싣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는 낯선 땅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곳에서 싹을 틔운다. 할머니는 살면서 문득문득 자신을 가두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남편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때마다 민들레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진정한 삶은 남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고자 노력할 때 주어지는 것이리라.세월은 할머니의 바람을 앗아갔다. 할머니 몸 군데군데 민들레 갓털처럼 버짐이 번졌다. 고달픈 생활 속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던 중에 치매 증상이 생겼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자유롭게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라는 갇힌 공간에 모셨다.할머니가 하루빨리 호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민들레의 재생력을 빌려서라도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져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민들레는 뿌리를 열 토막으로 잘라 땅바닥에 던져두면 열 포기의 민들레가 돋아난다. 잘라진 민들레 뿌리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난다. 그러나 내 바람은 끝끝내 부질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아 저 멀리 하늘로 떠나셨다.나는 올해도 민들레꽃과 함께 봄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할머니의 품이 민들레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민들레는 할머니에 대한 내 슬픔의 인자를 내포하고 있다.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또한 담고 있다.아파트 화단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민들레꽃이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민들레 향기를 닮은 추억들이 바람결에 실려 온다. 민들레가 할머니로 변신하여 자유가 되고 희망이 되어 바람결에 변주된다. 손을 뻗어 가만히 꽃잎을 쓰다듬으니, 봄과 이어진 연결 고리 하나가 내 손으로 건너온다.

202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