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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장규열한동대 교수일 년 365일 가운데 그래도 해학과 위트가 느껴지는 하루가 있다. 바로 오늘 만우절.악의와 술수를 품은 기만이 아니라 재치와 웃음을 담은 거짓말로 유쾌하게 주고받는 한 날. 만우절이 있어 그나마 숨통을 틔우고 한순간이지만 파안대소로 통쾌하다. 나이와 격식도 잠시 잊고 시름과 걱정을 날려 보내는 상쾌함이 있다. 영어로 April Fool’s Day라니 바보가 되어 오히려 신선하다. 꽉 조여서 여유라고는 한 치도 없는 현대인의 일상 가운데 그래도 이 한 날이 있어 긴장과 경계를 풀어놓는다. 만우절이 지나면 다시 싸움터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모두의 운명이지만, 이 하루를 지어낸 사람들의 지혜가 가상하고 고맙다. 오늘 당신은 어떤 신박한 거짓말로 웃을 것인가.거짓말은 나쁘다. 특히 정치인과 공직자의 거짓말은 그 폐해의 공적인 범위가 상상을 넘기도 하여 심각하기 일쑤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공약과 선언에 신뢰로 다가서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늘상 당하면서도 순박하게 표를 던지는 국민이 결국 그들의 대표를 그렇게 선출하고 만다. 믿지 못하면서도 뽑아 세우는 시민은 책임이 없을까. 믿지 못하겠으니 아예 투표에도 나서지 않는 국민은 또 누구인가. 누가 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자조는 정당한가 아닌가. 거짓과 기만을 워낙 거듭 경험한 국민은 지칠대로 지쳤다. 법과 제도, 윤리와 도덕은 후보들의 술수과 거짓을 막아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미디어로 둘러쌓인 오늘의 선거전에서 후보들의 면면을 세세히 살필 기회는 이전보다 늘어났다. 시민 각자가 팩트와 거짓을 구분해야 한다.정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삶을 위하여 공정하게 판단하는 일도 유권자의 몫이 아닌가. 가짜뉴스와 편향보도의 숲에서도 옥석을 가리는 당신의 표심과 혜안은 살아있어야 한다.여론조사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표심의 향배를 들먹이지만 마지막 결정은 나의 손끝에 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작 이번 선거가 우리 지역에는 없다. 그럼에도 이토록 신경이 쓰이는 일은 삶이 그만큼 힘들고 지쳐있음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다가올 나라의 모습과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아닐까. 나라가 잘 되었으면 하고 하루하루가 나아졌으면 하는 민심은 오늘도 정치의 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정치인 당신들의 언사와 약속에 진정성이 얼마나 실렸는지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얕은 거짓과 약은 술수가 이제는 통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만우절이 선사하는 유쾌함이 정치의 거짓과 기만에 덮이지 않아야 한다.시민이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 언론이 공적인 책무를 적절하게 수행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확인된 팩트에 근거한 기사와 평론으로 승부해야 한다. 공연히 바람을 일으키는 데 몰두하는 언론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정치도구일 뿐이다. 잠시 즐기자는 하얀 거짓말을 넘어 정치술수에 물든 거짓말 잔치는 사라져야 한다.진실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3-31

줌바밍(Zoombombing)

줌바밍은 언택트 시대 화상강의 플랫폼으로 쓰이는 ‘줌(Zoom)’과 폭격을 뜻하는 영어단어 ‘바밍(bombing)’을 붙인 신조어로, 코로나 사태로 늘고있는 화상회의에 허락없이 침입해 온라인 회의나 수업을 방해하는 일을 가리킨다.줌은 클라우드 기반의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중국 산둥성 출신 에릭 위안 최고경영자(CEO)가 2011년 창업했다. 회원 가입 없이 링크만으로 접속이 가능하며, 100명까지 동시 접속할 수 있어 온라인 강의, 웹 세미나 등에 활용된다. 줌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이 증가하면서 이용자 수가 급증했다.그러나 줌은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페이스북으로 전달되는 오류가 발견됐으며, 원격 강의 중 음란물 사진이 화면에 나타나고 인종차별 내용이 채팅창에 도배되는 공격을 받는 등 취약한 보안성으로 문제가 됐다.특히 대학의 경우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비대면 수업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 줌바밍 피해가 끊이지 않고있다. 최근 모 대학 교수의 비대면 화상수업 중 신원미상 인물이 갑자기 들어와 욕설과 혐오표현을 무차별로 쏟아놔 담당교수가 모욕,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에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미 연방수사국(FBI)은 줌의 화상회의 기능 이용 시 회의실을 비공개로 설정하거나 암호를 걸어놓고 절대 전체공개로 설정하지 말 것을 경고했으며, 구글·스페이스X 등 IT 기업들은 직원들의 줌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과학문명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잘못 운용하면 큰 피해를 입히는 ‘양날의 칼’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31

떡 만드는 여자

배문경수필가떡을 만든다. 쌀가루, 소금, 검은콩을 준비했다. 정확하게 그램을 맞춘다. 맵쌀가루를 채에 문질러 두 번을 내렸다. 쌀가루를 만지자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다. 오늘은 콩설기 떡을 만든다. 냄비에서는 서리태가 익는 중이다. 콩 색깔을 닮아서 물색도 검다. 다 익은 콩을 채에 한 번 내려 마른 수건으로 툭툭 쳐서 콩의 물기를 뺀다. 쌀가루에 소금을 적당히 뿌렸다.평생교육원에 떡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다. 열두 명을 뽑는데 이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운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뜬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찜기에 면포를 깔고 검은 콩을 촘촘히 깐다. 남은 콩과 쌀가루를 잘 버무려 가장자리부터 툭툭 치면서 빈틈없이 메운다. 다시 위를 평평하게 고른다. 그리고 대나무 찜기를 양손에 힘을 주어 안으로 민다. 그래야 떡이 익었을 때 찜기에 떡이 붙지 않는다. 그 사이 물이 끓으면 찜기를 올려두고 기다린다.보이지 않는 바닥에 콩을 예쁘게 까는 이유는 떡을 꺼내 뒤집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된다. 안 보인다 싶어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쌀과 콩이 빈틈을 메우듯 속이 꽉 차 뒤집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상대를 감동 시킬 따뜻한 품성이면 좋겠다. 그리고 친하다고 너무 붙어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오래 가는 방법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콩설기 떡이 오늘 나에게 설법한다.어릴 적, 동네 큰 잔치가 있으면 떡을 나눠먹었다. 떡을 얻어먹으려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우연히 들은 떡 타령이 재밌다. 정월 대보름 달떡, 이월 한식 송병, 삼월 삼진 쑥떡, 사월 팔 일 느티떡, 오월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 칠월 칠석에 수단, 팔월 한가위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지역적 특징으로는 산중 사람은 칡뿌리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자떡, 황해도 사람은 서숙떡, 경상도 사람은 기정떡, 전라도 사람은 무지떡이다. 갑자기 떡 부자가 된 기분이다.익은 떡 위에 큰 접시를 대고 뒤집자 콩이 눌러앉은 자리가 갖가지다. 적당한 거리, 촘촘한 것, 드문드문 놓여 제멋대로다. 다음에 떡을 만들 때는 큰 하트 속에 작은 하트 그리고 더 작은 하트를 만들어 내놓으리라. 세상에 대고 사랑한다고 모두 사랑한다고 떠들 생각이다.난 오랫동안 떡을 좋아했고 만들고자 했다. 가까이에 떡 만드는 교육이 있는지 몰랐다. 떡을 찾아 헤맨 시간이 길었다.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떡 방앗간을 했다. 6살 되던 해, 온 가족이 모두 방앗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떡을 만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떡가루를 갈던 기계에서 불이 났다. 그 불은 엄청난 속도로 방앗간을 모두 삼켰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불씨가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방앗간 옆 살림집으로 번진 불은 삽시간에 지붕을 태우면서 너울너울 춤췄다.어린 내가 가족에게 끌려 나와 내의 바람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녀의 춤사위처럼 화려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재산이 일순간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그 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피폐화시켰다. 각자가 살아야 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떡을 만들고 싶어졌다. 떡을 만들면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떡이 가족이었다. 어린 내겐.떡을 만들어 흰 접시에 놓고 보니 첫 작품치곤 훌륭하다. 가슴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상징하던 방앗간, 불, 고통이란 단어들이 툭 하며 떨어졌다. 잘 했어. 내 마음이 나를 위로했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렇듯 위로가 되는 떡을 만들고 싶다. 떡은 사랑이니까.

2021-03-31

마음 어귀에 음나무를 심고

이순혜수필가봄꽃이 다투어 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고향마을 곳곳에도 이미 복숭아나무가 발그레한 꽃눈을 내민다. 마당 한쪽에 서 있는 음나무도 가지 끝에 봄을 머금었다. 하나도 꾸밈이 없는 봄 햇살이 음나무를 비추고 그 가지에 뭉게구름 한 점 걸려있다. 나무가 있는 한 편의 수채화이다.4월은 꽃들이 그 아름다움을 폭로하는 때다. 그런데 꽃도 아닌 나무에 눈독을 들이는 이가 있다. 한 철, 한 끼의 밥상에 오를 음나무의 새순을 기다리는 옆집 뒷집 아낙들이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활짝 피는 새순을 기다렸다가 한 소쿠리 푸짐하게 따서 데친다. 푸른 냄새가 뒷집 담장을 넘어가고 두레 밥상에 올랐던 새순은 두고두고 우리 집을 대표하는 맛으로 불리었다.쌉싸래한 맛은 잃어버린 입맛을 살린다. 음나무, 오갈피, 두릅나무 새순은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는데 으뜸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는 음나무의 새순을 유난히 좋아한다.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몸이 푸른 기운이 아주 고팠나 보다.음나무 새순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쌉싸래한 그 맛은 중독성이 강해 두고두고 먹고 싶지만, 일 년 내내 푸른 새순을 데쳐 먹기는 어렵다. 짧은 봄날에 도둑눈처럼 왔다가 사라져 들뜬 입맛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음나무의 가지도 귀하게 대접받는다. 거칠고 투박한 나뭇가지 한 줌을 꺼내 대추 서너 개를 넣고 달인다. 달인 물을 꾸준히 마시면 피가 맑아진다. 또 뇌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정혈작용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이로운 나무인가. 무엇보다 마늘, 양파, 된장과 음나무를 넣어 푹 삶은 돼지고기는 보양식의 으뜸이다.음나무는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새순은 쌉싸래한 맛을 내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의 먹이가 된다. 그래서 잎을 보호하기 위해 굵고 험상 맞은 가시를 촘촘히 달고 있다. 또한, 음나무의 가시는 악한 기운을 쫓는 벽사(8F9F邪)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사나운 가시가 빼곡한 음나무의 가지를 문설주에 두기도 하고 마당 대문 곁에도 심었다.음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긴 곳도 있다.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있는 나무는 무려 1천 년을 한자리에서 살아왔다. 고려의 멸망사를 지켜본 나무로. 공양왕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고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켰다.고향 집을 지키는 나무도 음나무다. 예쁜 꽃을 피우지 않고 나비 불러들이는 향기는 뿜지 않지만, 나무로서 단단히 한몫한다. 담장 옆에서 뾰족한 가시를 세운 채 악한 것들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늠름한 모습으로 지키고 섰다. 달이 이울고 별들이 깊은 잠에 빠지는 숱한 날을 함께 하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몇 해 지나 아버지의 죽음까지 지켰다.생명 있는 존재는 사람의 호흡과 함께해야 한다. 붙박이로 있는 물건도 매한가지다. 비어 있는 고향 집을 매번 둘러보는 것만으로 많은 것에 미안했다.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 주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 집을 처분해야 한다는 것을 합리화시켰다. 그런데 딱 하나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것이 바로 대문 곁 음나무였다. 한 집안을 지키던 수호신을 잃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서운함보다는 나를 누가 지켜줄까 하는 허전함이었다.몇 해 전, 나무 시장에서 음나무 두 주를 샀다. 햇볕을 좋아하고 잘 자라는 나무이기에 텃밭 입구에 심었다. 한 계절이 지나고 나무는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리며 연둣빛의 새순을 달고 내게로 왔다. 경이롭다는 말이 이런 건가 보다. 그냥 며칠 동안 음나무 곁에서 서성거렸다. 솜털 같은 잎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서.음나무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나무를 부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각 사람이 가진 추억의 모양이 다르기에 기억의 색깔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남쪽의 꽃소식보다 먼저 찾아올 쌉싸래한 음나무의 새순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한 그리운 맛이다. 이제 겨우 한두 개의 새순을 피워 올린 텃밭의 음나무는 내가 피워야 할 내일의 맛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오늘을 채우면서.봄이 오면 텃밭으로 달려간다. 언제나처럼 음나무의 가지들이 기지개를 켜며 쑥쑥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훔쳐본다. 나무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이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그래, 내가 두 발로 서 있는 나무 곁으로 가면 되는구나.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으니까.알고 보니, 나는 마음 어귀에 음나무를 심었다. 내 안으로 나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2021-03-31

문무대왕면

문무대왕은 신라 30대 왕이다. 태종 무열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유신의 누이 문명왕후다. 김유신 장군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중국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명군이다.기록에 의하면 그는 사후에 있을지 모를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자신의 시신은 화장하고 동해의 큰 바위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지금 사적 제158호로 지정된 대왕암이 그가 묻힌 수중왕릉이다.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감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은 평범한 바위섬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여 있고, 둘레에 자연암석이 기둥 형태로 세워져 있다. 못 안에는 거북이 모양의 돌이 앉혀져 있으나 전해오는 이야기의 실체를 발굴조사에 의해 증명된 적은 없다.다만 외적의 침입에 맞서 사후에라도 나라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문무왕의 호국정신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그의 대를 이은 신문왕이 아버지 왕의 뜻을 실현키 위해 세운 사찰이 감은사라는 것은 이런 역사적 전설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경주는 수많은 역사기록과 전설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문화도시다. 대왕암이 있는 양북면이 다음 달부터 문무대왕면으로 명칭이 바뀐다. 주민들의 전폭적인 찬성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명칭을 행정명으로 바꾸는 것이다.올해 인각사가 있는 군위군 고로면이 삼국유사면으로 바뀐 것처럼 지역의 역사성을 근거로 명칭 변경 움직임은 나름 신선해 보인다. 그 지역의 특산물뿐 아니라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는 데도 한 몫 단단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문화재와 역사의 도시 경주가 이와같은 아이디어를 잘 개발한다면 경주의 브랜드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30

봄날

김규종 경북대 교수주말에 오신 봄비로 대지가 촉촉하고, 대기는 청명하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지만, 봄날의 정취를 완상하기에 모자람은 없다. 토평(土平) 들과 천변을 향하는 걸음걸이 가볍고, 콧노래 절로 나오는 봄날. ‘동심초’에서 시작하여 ‘4월의 노래’를 거쳐 ‘하얀 목련’을 지나 소월의 ‘못 잊어’로 마무리하는 홀로 ‘걷는’ 노래방. 창고 그늘 밑에 있던 젊은 농부가 슬며시 외면해주는 덕에 황망한 얼굴의 홍조는 겨우 모면한다.흡족하게 내린 비로 논과 밭이 모두 흐뭇한 표정이다. 마늘과 양파가 훌쩍 자라나고, 웃자란 청보리는 적잖게 넘어져 있다. 지난겨울 추위 견디고 시퍼렇게 자라난 보리가 바람에 넘실댄다. 어설픈 날갯짓으로 까마귀는 ‘서(西)으로’ 길 재촉하고, 풀숲의 장끼 푸드득, 소리 내며 밭고랑 사이로 숨어든다. 노란 나비 춤추듯 날고, 곤줄박이 하나 전선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발치에는 풀들의 경연이 한창이다. 노랗고 하얀 민들레와 키가 훌쩍 큰 냉이, 여린 몸에 노란 꽃을 단 꽃다지, 자주색 광대나물과 앙증맞은 제비꽃, 과수원 일부를 저희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큰개불알풀, 이제 막 세력을 확장하는 살갈퀴와 우슬(牛膝), 냉이를 닮았으되, 더 크고 거칠지만 둥근 지칭개, 먹을 수 있을까, 오해 부르는 개쑥갓까지 초록 융단이 깔렸다.길을 걷노라니 완만한 능선 선보이는 장중한 남산 홀로 우뚝하다. 산의 발치에는 진달래와 녹음이 제법 찾아들었고, 종아리 부근에는 자두꽃 자못 화사하다. 허리 부근엔 하얀 산벚꽃이 봄날의 환희를 노래한다. 딱 거기까지였다. 작년 이파리 단 갈색 활엽수들이 아직 겨울에 잠겨 있다. 상록수들만 예나 지금이나 초록으로 대견하지만, 그리 환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가던 길 멈추고 상념에 든다. 산 아래는 봄날의 기쁨과 약동으로 넘쳐나는데,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겨울 아닌가?! 빛나는 꿈의 계절을 완상하지 못하고 침묵에 잠긴 산꼭대기. 봄은 산 아래서 시작하여 등성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다. 하지만 단풍의 가을과 삭풍의 겨울은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등성이 거쳐 아래로 내려온다. 산에서 좋은 것은 아래에 있고, 고단하고 괴로운 것은 위에 있다.우뚝한 정상이 있기에 아래쪽 뭇 생명은 봄날을 노래한다. 정상에는 비바람과 땡볕, 칼바람과 눈보라 거세고, 환희의 날들은 훨씬 짧다. 산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꼭대기에 서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더 많은 것을 감내하라! 편하고 쉽고 달콤하며 아늑한 것은 아래 생명에게 넘겨주어라. 단, 정상에 있기에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전망과 장쾌함을 보상으로 받는 것이라고.하지만 인간 세상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모든 것을 혼자 가지려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사랑까지 독점하려 든다.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데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이제 그만하고 웃으며 양보하고, 나누며 물러서면 어떻겠는가, 하고 말이다. 질시의 시선 받는 고독한 강자가 아니라, 축복과 박수를 받는 그런 부류가 되기를!….

2021-03-30

봄비에 매화가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양철지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듯하다. 비에 젖어 떨어진 매화꽃잎이 가는 붓으로 곱게 그린 듯 아름다워 밟기가 조심스럽다.옛 선비들은 ‘송,죽,매’를 세한삼우라 하여 작품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는데, 소나무와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변함없는 모습이, 매화는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모습이 미학의 상징이 된 것이다.조선의 화가 김홍도는 가난했으나 매화를 무척 좋아해 모처럼 그림을 팔아 3천 냥이 생기자 2천 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매화음(梅花飮)을 즐겼다. 결국 배고픈 식솔들의 몫은 200냥에 불과했으니 문인묵객들의 영감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나무였던가 보다. 퇴계 이황의 ‘저 매화나무에 물주라’는 유언은 유명하다.퇴계는 매화를 유달리 좋아해 100수가 넘는 매화시를 남겼으며, 말년을 보냈던 도산서원은 지금도 매화동산이라 부를 정도로 매화가 많다. 그는 매화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단양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외모며 글솜씨가 뛰어난 관기 두향을 몹시 사랑하게 됐는데, 풍기군수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관기를 데리고 가지 못하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결국 두향을 혼자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이별을 슬퍼하며 매화화분을 선물로 보냈다. 이별이 너무 길어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하였고, 관직을 떠난 퇴계는 도산서원에 은거하며 매화사랑에 집착했는데, 아마도 두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매화를 심고 꽃이 필 때면 밤이 깊도록 그 곁에서 시간을 보냈고, 매화를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술을 마시곤 했다. 두향이 보낸 매화는 도산서원 입구에 심어져 대를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도 꽃을 피우고 있다니 간밤의 봄비에 그 꽃잎도 거의 내렸으리라.포항미협과 광양미협이 격년제로 교류전을 주관한다. 광양을 방문하는 해에는 섬진강 매화마을에 들러 매향에 취하곤 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화축제가 취소되었으나 매화마을은 상춘객들로 넘쳐나 꽃보다 사람이 많다는 소식에 씁쓸한 마음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문화관광 수입을 기대하며 각종 축제를 연다.매화축제도 전국의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봄을 즐기는 방법으로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다. 봄을 즐기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느끼는 것이다. 매화가 꽃을 피우는 것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후손을 남기기 위함이며, 꽃이 그토록 고운 것은 모진 겨울 추위에 인고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매화를 사랑한 까닭은 매화의 삶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나이 많은 매화를 고매(古梅)라 한다. ‘높고 뛰어나다’는 뜻의 ‘고매(高邁)’가 연상되는 말이라 어감이 좋다.고매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도와 제2도시의 수장을 뽑는 선거전이 치열하다. 오랜 코로나불황으로 빈사상태인 국민들에게 기쁨이나 위로가 될 내용은 없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언행과 LH사태 등이 불신을 끝 모르게 키우고 있다.“매 일생 한이나 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매화를 사랑한 옛 선비들의 기개가 그리운 봄날이 속절없이 깊어간다.

2021-03-29

지속의 힘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봄의 잔치가 시작되는 모양새다. 전령으로 피어나던 매화, 갯버들에 이어 산수유와 진달래가 짙은 색감을 드러내더니 목련과 벚꽃이 우아하면서도 현란하게 꽃망울을 터트린다. 앞다투어 피는 것 같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가 있고, 표연히 흩날리며 돋아나는 잎새에 미련없이 꽃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군데군데 알록달록, 멀리 가까이 파릇 푸릇한 봄날의 산자락과 들녘은 온통 파스텔톤이다. 양광과 난풍 속에 바야흐로 환희 같은 자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나무건 풀이건 봄날에 꽃을 피우고 움을 틔운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땅 속에서 생명수를 찾아 뿌리가 쉼없이 물을 길어 올리고 자양분을 흡수하는 자생적인 일손을 멈추지 않았었기에 개화와 생동의 설레임을 맛보는 것이다. 얼핏 보면 당연하고 무덤덤한 것 같지만,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뿌리에서 밑동, 줄기, 가지로 이어지는 물오름 작용이 끊이질 않았었기에 초목은 소생과 개화로 번성하는 것이다. 자연에 물이 오르고 만물에 생기가 도는 3월은 그래서 ‘물오름달’이라고도 한다.식물에 있어서의 필수적인 물오름은 생명의 원천이요 성장의 근간이다. 그러나 뿌리를 통해 스며든 물이 가지 끝으로의 이동이 줄어든다거나 공급이 중단된다면 이내 시들거나 메말라 고사하게 될 것이다.단순해 보이는 초목의 생장이 이럴진대, 하물며 인간에게는 다양하고 미묘하며 고차원적인 물오름 현상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각양각색의 물긷기(?)를 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는 것이리라.어떤 뜻이나 꿈을 계속적으로 지켜나가기란 정말 만만찮은 일이다. 누구나 마음먹기는 쉬워도 꾸준한 실천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간에 회자되는 괄목할만한 일들은 대체로 수많은 반복과 지속이 만들어낸 각고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끊어질 듯 이어지며 거듭되는 물오름의 창조적 노력으로, 울음인 듯 웃음인 듯 신열로 복받치는 꽃망울처럼-.비단 돋보이고 주목받는 시도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든 한 우물을 꾸준히 파게 되면 소기의 목표에 근접하고 최소한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테면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생활 속의 운동을 꾸준히 실천한다거나 독서, 시낭송 등 자신의 취향에 맞는 취미활동의 지속으로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누려가는 일들은, 자신을 새롭게 키워가는 도전이자 약속인 것이다. 실제 필자의 주위에선 1년 이상을 여명 속에 맨발로 해변을 걸으며 일출을 맞이하고, 한편으론 해양 쓰레기까지 수거하는 플로깅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지인은 주말마다 맨발산행을 하기도 하고, 한 직장 동료는 새벽녘에 강둑을 어김없이 걸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반복은 기적을 낳는다고 했던가. 지속하는 습관과 반복하는 연습은 꿈의 현실화에 도움을 준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시사하듯, 끊임없는 연마와 꾸준한 습작, 지침없는 훈련을 통해 성취해가는 결실은 찬사와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줄 것이다.

2021-03-29

쓸쓸한 삶 속에서 발견된 찬란한 작품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연출한 존 말루프는 동네 벼룩시장 경매에서 수십만장의 필름이 들어있는 상자를 단돈 400달러가 채 안되는 돈으로 낙찰받는다. 그가 집필중이던 역사책에 쓸 시카고의 옛날 사진을 위해 낙찰 받은 물건이지만 사진을 스캔하면서 그가 원하던 사진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 사진의 촬영자였던 비비안 마이어를 구글로 검색해보지만 전혀 정보가 없다. 스캔했던 사진들을 사진 공유 사이트에 올려 좋은 반응들을 확인하고는 전시회를 추진한다. 그리고 그 전시는 흥행에 흥행을 거듭하며 전세계 순회전시까지 이어진다.여기까지는 천재적인 작가의 성공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주인공인 작가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 말루프 감독이 낙찰 받은 필름은 고인의 유품으로 단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사진작품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어떤 삶을 살다 갔길래 이 많은 사진과 그녀의 자잘한 유품들을 남기고 떠났는가를 추적한다.‘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몇 가지의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그 질문은 감독이 직접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진행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기저에 깔린 것으로, 스스로 그 질문을 던지지 않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질문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몇 개의 질문은 직접적으로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저에 깔린 묵직한 질문들은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비비안 마이어’의 생애를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깔끔하게 풀리지 않고 과제로 남는다.1926년 미국 뉴욕 출신으로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보모로 생업을 삼고 사진을 찍으면서 미혼으로 평생 외롭고 가난하게 살다가 2009년 시카고에서 생을 마감한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그녀의 작품과 함께 펼쳐진다. 신문 스크랩과 영수증, 기차표와 메모 등 그녀의 유품들을 정리하며 단서들을 이어 붙이며 비비안 마이어의 생을 따라간다.그 여정 속에서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들을 남겼는가’도 궁금하지만,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들을 전혀 발표하지 않았던가’에 무게감이 실린다. 전자의 의문은 작가의식에 관한 고찰이다. 그녀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는 짧거나 길거나 그녀가 길렀던 아이들과 그녀를 기억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그들의 기억에 담겨있던 비비안 마이어는 친절하고 다정하거나, 괴팍하고 이기적이며, 심술궂은 사람이었고, 따뜻하거나 어두운 사람이며 즐거운 사람, 염세적인 사람 등으로 평가가 갈린다. 그녀의 삶 속에서 독특한 이력을 토대로 작품 속에 담긴 예술적 의미들을 더듬는다.이는 분명한 작가의식과 주제의식을 가지고서 촬영된 사진의 예술적 평가를 작가론과 함께 작품론으로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제 후자의 질문이었던 ‘왜 그녀는 이토록 많은 사진작품을 전혀 발표하지 않고 생을 마감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질문은 작품으로 인한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느냐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진행형으로 남는다.영화는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라질뻔했던 한 명의 천재적인(?) 작가를 발견한 과정과 그녀의 삶을 추적하는 것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녀가 잠시 살기도 했고 먼 친척이 있는 프랑스의 시골 사진관에서 그녀의 사진을 관광상품으로 팔고 싶어했음을 확인한 것이 전부다. 이것으로 온전히 그녀가 작품 발표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평가하기엔 미흡하다.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녀의 작품 속에서 정작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현상을 만난다. 두 번째 의문이 확실하게 풀리지 않고서, 그녀의 삶에 대한 스토리와 알려지지 않은 삶을 살다간 신비로움이 더해지면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그녀는 만족하고 있는가.지금 그녀의 작품으로 인해 받는 보상은 온전히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감독도 이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부채의식을 어떻게든 덜고 싶었음을 읽을 수 있다.흥미롭고 감동적인 영화가 끝나고(2013년) 난 이후 벌어졌던 저작권 수익 상속에 관한 법적인 진행(2018년)을 보면서 감독도 풀지 못했던 현실의 숙제가 남아서 진행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녀의 삶에 대한 감동과 함께 쓸쓸함과 서글픔이 밀려온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1-03-29

쪽샘 44호 출토 ‘신라 행렬도’의 발견과 의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8년째 한 기의 신라고분을 발굴 중이다. 바로 쪽샘 44호 적석목곽묘이다. 지름 약 30m로 중형급에 해당하는 무덤인데, 연구소에서 2007년 폐고분(廢古墳·무덤인지 아닌지 조차 불분명한 상태의 무덤)상태인 것을 처음 확인하고 2014년부터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작년 연말 출토유물과 무덤의 구조 등 그간의 발굴성과에 대한 대대적인 현장공개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발표 이전인 2019년에도 주목할 만한 유물에 대한 공개가 있었다. 소위 ‘선각문(線刻文·토기 표면에 여러 가지 그림을 선으로 새긴 무늬) 장경호(長頸壺·목이 긴 항아리)’가 바로 그것이다. 선각문 장경호에는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다양한 모습의 인물, 동물 등이 새겨져 있었고 전체적인 그림의 내용이 마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행렬도(行列圖·왕이나 귀족들이 말이나 수레를 타고 호위 군대를 거느린 채 나들이하는 모습 등을 그린 그림)를 닮아 있었다.44호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덧널무덤)의 북쪽 호석(護石·둘레돌) 바깥으로는 큰 항아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것이 확인되었는데, 무덤 축조가 완료된 후 일정 기간 동안 후손들이 무덤에 찾아와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다. 커다란 항아리 외에도 작은 항아리와 접시, 흙으로 만든 방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사에 쓰고 그대로 버리고 간 것이다.그런데 이 유물들 가운데 장경호 한 점이 완전히 파괴된 채 파편으로 확인되었다. 파편을 하나하나 세척하고 복원해보니 놀라운 모습이 드러났다. 말 탄 사람, 활 쏘는 사람, 춤추는 사람, 멧돼지, 사슴, 호랑이 또는 개 등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도 새겨져 있었다. 최대한 복원을 시도하였지만, 아쉽게도 문양은 전체의 절반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신라에서는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놀라운 그림이었다.신라에서는 토기 표면에 다양한 문양을 새긴 것이 확인된다. 주로 기하학적 문양이나 말 문양, 사람 문양을 비교적 간단하고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이 일반적이다. 일종의 패턴 문양처럼 토기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44호에서 출토한 선각문 장경호는 신라는 물론이고 주변 가야, 백제 지역에서도 확인된 바 없는 상징적 유물이다.44호 출토 선각문장경호는 용기의 추정 복원 높이가 약 40cm 정도 되는데, 문양은 주로 장경호의 목 부분(頸部)부터 몸통(胴體部)까지 걸쳐 있으며, 총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 부분은 다시 2단으로 나눠지는데, 팔 벌린 사람 또는 나무를 형상화한 기하문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다. 몸통 부분에는 파도나 구름을 형상화한 기하문이 반복해서 그려져 있다. 주된 문양은 모두 어깨 부분에 그려져 있는데, 다양한 동물, 인물들이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먼저, 말을 탄 인물과 말들이 행렬하는 장면이 상하 2열로 표현되었다. 말의 머리 부분에는 갈퀴를 의도적으로 묶어서 뿔처럼 묘사하였다. 그 뒤로 2명의 사람이 있는데 바지와 치마(또는 두루마기)를 입은 것이 표현되어 있고, 옷소매가 늘어진 모습에서 고구려 무용총의 춤추는 사람 모습과 매우 흡사한 장면이다. 다시 그 뒤로는 활을 쏘는 사람, 암수 사슴, 멧돼지, 호랑이 또는 개로 추정되는 동물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수렵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맨 마지막에는 말 탄 사람과 그 옆을 따르는 개와 같은 동물이 표현되어 있다. 말 탄 사람은 모든 문양들 중에서 가장 크게 그려져 있어 이 행렬의 주인공으로 추정된다.심현철 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전체적인 문양의 내용은 화면상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행렬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말 탄 인물이 있고, 기마행렬과 무용(舞踊), 수렵(狩獵) 등의 내용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행렬이라는 큰 주제를 바탕으로 무용, 수렵과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복합 구성인데, 신라 회화 관련 자료 중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선각문 토기보다도 회화성이 우수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특히, 무용, 수렵 등의 내용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내용 구성과 많이 닮아 있어 신라와 고구려의 교류 관계 등을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밖에는 신라인의 사후 관념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문양의 내용 구성이나 표현방식 등이 새롭게 확인되어 신라 회화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이렇듯 이 선각문장경호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비록 전체의 절반 정도 밖에 확인되지 않아 많이 아쉽지만, 깨어진 모든 파편이 확인되어 완전한 형태로 확인되었다면 지금까지 확인된 모습 외에 또 어떤 내용들이 그려져 있었을지, 우리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2021-03-29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신고제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주택 임대차(전월세) 계약 때 임대계약 당사자, 보증금, 임대료, 임대기간, 계약금 및 중도금과 잔금 납부일 등의 계약 사항을 30일 내에 시·군·구청에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다.지난 2019년 8월 발의된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에 포함돼 오는 6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전월세 신고만으로 확정일자, 전입신고가 동시에 이뤄지며, 모든 세입자가 자동으로 법적인 대항력을 갖게 돼 빌라, 다세대 등도 빠짐없이 보증금 보호를 받게 되는 장점이 있다.국토부는 전월세 신고제 후속 작업으로 새 제도를 시행할 지역 범위, 신고 의무 대상 등을 확정해 이르면 이번주 안에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예고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신규, 갱신, 변경 계약일로부터 30일 안에 세입자 혹은 집주인이 임대차 신고를 무조건 해야 한다. 계약금액, 계약일자, 면적, 해당 층수 뿐 아니라 추가로 갱신 여부, 계약기간 등 상세정보를 ‘정부24’홈페이지나 주민센터 등에 신고해야 한다. 30일 안에 신고하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된다.다만 보증금이 1천만원 이하거나 월세 5만원 이하 등 소액인 경우나 임대료를 조정하지 않고 계약을 자동 연장하는 ‘묵시적 계약’, 그리고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고 세들어 사는 무상 임대차도 신고 의무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집주인 입장에선 임대료 수입이 100% 공개되기 때문에 늘어난 세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다.집값을 잡겠다던 문재인 정부 들어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게 전셋값이다. 집없는 서민들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부동산정책에 가슴 조마조마한 나날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3-29

모욕감에 대처하는 법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모욕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모욕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모욕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쑤퉁의 ‘쌀’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우룽의 이야기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모욕의 무게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고향에 홍수가 나서 먹을 것이 없어 우룽은 석탄 수송 기차를 타고 도시로 오지만 도착하자마자 부두 깡패에게서 심한 모욕을 받는다. 대홍기 쌀집에 가서 하인으로 써달라고 사정하지만 펑 사장과 그의 두 딸 쯔윈, 치윈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우룽은 증오의 화신이 되어 대홍기 쌀집을 차지하고 와장가의 두목이 되어 잔인하게 복수하고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윌리엄 어빈의 ‘알게 모르게, 모욕감’이라는 책에서는 모욕이라고 느끼는 여러 상황을 소개하면서 자존감이 낮거나 자아상이 취약할 때 모욕을 참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모욕 평화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덕을 쌓아 안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면 남이 나를 모욕할 수 없으니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한다.그러나 이런 처방을 우룽에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덕을 쌓기 위해서는 덕을 쌓겠다는 의지가 먼저 있어야 가능하고 그런 의지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덕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우룽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굶어 죽었고 동냥으로 연명해온 처지라 덕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설사 어느 정도 덕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받은 모욕은 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심각한 물리적인 가해를 동반했다.우룽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 아큐의 대응은 좀 다르다. 루쉰의 ‘아큐정전’에 나오는 이 사람은 모욕을 당해도 마음속으로 자기가 이긴 것이라며 정신승리법을 사용하여 모욕을 견딘다. 그 역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은 함부로 모욕한다.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우룽과 아큐는 사회적 지위가 무척 낮다는 것이다. 주먹이든, 재화든, 지식이든, 권력이든 한쪽이 극단적으로 많으면 그렇지 못한 상대방을 모욕할 가능성이 많다. 아큐가 정신승리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우룽보다 형편이 나아서 움막같은 집이나마 돌아가서 몸을 뉘일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룽이 아큐보다 모욕감을 더 크게 느낄 가능성이 많다.윌리엄 어빈도 사회적 지위 차이가 클수록 약자가 모욕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같은 언행이라도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욕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는데,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심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면서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모욕 금지법 같은 물리적 방법은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하면서 내면의 덕 쌓기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모욕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욕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권력 관계가 평등해질수록 모욕하기 어려워진다. 내면의 덕 쌓기도 물론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좁혀야 한다. 이런 사회 환경이 만들어지면 모욕의 힘은 약해지고 내면의 덕 쌓기도 수월해진다.

2021-03-29

너의 MBTI가 궁금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으레 나누게 되는 말들이 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등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저런 것을 묻고 답한다. 혹자는 ‘호구조사’를 하는 것이냐며 냉소를 보내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행동이 상대를 향해 손을 내미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상대의 일면을 파악함과 동시에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컨대 중앙동에 거주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 거기에 슈크림 빵이 맛있는 제과점 있잖아요”와 같이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소소하고 작은 공감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서로를 향한 친밀도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요즘은 이 ‘호구조사’에 재미있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된 것 같다. 상대의 MBTI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다. MBTI 성격유형 검사는 꽤 이전부터 밀레니엄 세대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잠깐의 성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관심은 지금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청년층 사이에서는 이 검사를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며 인간을 판단하는 과학적 근거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다. 12분 이내에 주어진 질문에 따라 답을 내리게 되고 그에 따라 개인을 16가지 심리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자신의 MBTI가 무엇인지 알려주면 단번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상대가 자신을 ‘ENFP‘라고 한다면 그는 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적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시도하는 전망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신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혹은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같은 질문을 하는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요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의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이런 현상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MBTI 테스트가 유행하기 전, 우리는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개인의 성격을 규정짓곤 했다.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활발하고, AB형은 종잡을 수 없이 독특하다는. 혹은 황소자리는 고집이 세고, 물병자리는 지적 호기심이 많다는 식으로. 거기엔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우리는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왜 우리는 자꾸만 자신을 틀에 가두어버리는 것일까? 자기 존재를 타인과 분별할 수 없이 동일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우리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골몰한다. 그건 너무도 관념적인 일처럼 여겨진다. 당장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와 비교하면 사소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꼭 풀어야 하는 숙제처럼 존재에 관한 질문을 간직하고 있다.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낸다. 살면서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것은 삭제할 수 없다. 그것이 바보 같고 멍청한 일일지라도. 나라는 사람을 임의로 규정짓고 거기에 따라서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꼭 필요한 일이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나와 같은 유형의 동료가 있다는 건 감정적 유대를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문을 품게 한다. 짧은 질문과 답으로 개인을 완전하게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양한 문학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생물인지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분명하고 환한 빛으로 길을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갈지 모른 채 표류하는 인간들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모호한 결론에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존재라고 말이다.그러니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정의 내릴 필요는 없다. 그건 자기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두는 것이 된다. 그보다 내 안에 다양한 면이 있다고 인지하고 그에 관해 얘기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관계란 상대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한다.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런 질문도 좋겠다. 당신은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지. 타인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건 알면서도, 매번 무력하게 미궁 속에 빠질지라도 말이다.

2021-03-29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올 초엔 내내 우울했다.가깝게 지내던 K형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형은 마흔을 앞 둔 나이에 암을 발견했고, 일 년 정도 병마와 싸우다 잠들었다. 누구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냐마는 형의 죽음은 유독 안타까웠다.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젊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동안 너무나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형은 의사였다. 뒤늦게 시작한 의학전문대학원 시험 준비가 좀 오래 걸린 편이었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한 번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국가고시에 매달리고, 고되다는 전문의 과정을 거쳐서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엿한 의사가 되었고 재작년에는 사람 좋고 능력도 있는 분을 만나 결혼도 했다. 그 고생을 해서 의사가 되었으면 사치도 좀 부리고 이래저래 으스댈 만도 한데 형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초창기에 나온 스마트폰을 십 년 씩이나 쓰고, 차 욕심이 없다며 버스와 지하철을 고집하다가 끝내 300만원 짜리 중고차를 하나 샀다고 자랑을 하던 사람이었다. 생전 멋 한 번 부릴 줄 몰랐고, 비싼 술 한 번 먹으러 가자고 이끄는 일도 없었다. 나는 도대체 형은 의사 월급 어디다 쓰는 거냐며, 그 돈 쌓아뒀다 도대체 뭐할 거냐고 놀리곤 했다. 원하던 바를 이룬 뒤에도 성실하고 검소했던 사람. 누구도 형의 찬란한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그런 형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을 때 형을 아는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공부에 이십대를 통째로 바치지도 않았을 거고, 공부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누릴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지냈을 텐데. 그랬더라면 이렇게 떠났더라도 조금이나마 덜 아쉬울 텐데. 그런 생각에 나는 더 깊이, 오래 속상했다.몇 해 전에도 나는 가까운 형을 한 명 잃었다.S형은 얼마 전 떠난 K형과 비슷한 나이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S형의 삶은 K형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른 나이에 모두가 부러워 할 만 한 직장을 얻어 순탄한 생활을 했지만, 형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결국 형은 모두의 ‘미쳤다’라는 이야기들을 외면하며 퇴사를 했고 마음껏 배우 생활을 했다.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그래도 회사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간 것이 그로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두 형의 삶과 죽음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당장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데 미래를 위한 투자나 희생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일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가끔 주변 친구들의 앞날 걱정을 들어보면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금방 마흔이 되고 시간은 점점 빨리 가니까 또 금세 쉰이 될 텐데, 만약에 그때 더 이상 우리를 찾아주는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기술 없는 노년의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래 봐야 몇 가지 안 되고, 그러니 사람들은 그 직업들을 향해 모여들어 치열하게 경쟁할 텐데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돈을 모아 자영업을 해도 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렇게 망하면 또다시 그 경쟁 속에 던져질 것이 분명하다. 혹시 모를 노후를 위해 일찌감치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 둬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자격증을 따야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을까. 행사장으로 가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한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우리 둘 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말았다.나는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일 따위 하지 않고 지금 당장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즐기며 사는 삶이 정답인지, 아니면 혹시 모를 미래를 미리 착실하게 대비해가며 살아가는 삶이 정답인지. 애초에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지금 내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2021-03-29

어떻게 살 것인가?

서수백대구가톨릭대 교수어느 날 뉴스를 보는 중에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사고 부동산 관리로 생계를 이어가겠다는 한 청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지나치는 우스갯말이 아니라 현실의 말이었다. 믿기지 않는 집값 이야기와 부동산 투기 문제로 떠들썩한 시국에 젊은이들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씁쓸하기 그지없다. ‘세상이 어찌되려고 하나….’, ‘이 나라를 어쩌나….’하는 난데없는 나라 걱정을 하며 몇 번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냉철한 판단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다.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나는 영화나 책을 두 번 이상 보거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벌써 세 번째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간의 품격’이다.“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라는 이 책의 주제 문구가 나와 내 삶에 변화를 줄 듯했다. 그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으리라….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톡톡히 겪으며 한 인간으로의 소명을 다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나로 하여금 몇 번을 다시 읽게 했다. 그것은 단순히 훌륭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모진 삶에서 나를 어떻게 다스리고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깨우치게 하는 이야기다. 현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전에 없던 갑질 행태, 사람에 대한 수저 논란으로 평등한 인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불쌍하기까지 한 갑들의 우월감이나 을이 겪는 비참한 패배감은 우리 사회에 더 큰 무력감과 분노를 퍼뜨렸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은 역사를 거스른 세상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하다.정치인들의 대중적 TV프로그램 출연은 그들 또한 국민과 함께하는 한 사람이라는 인간미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TV프로그램 속 정치인들을 보는 데 그들의 화려한 이력은 2차적인 문제가 된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성숙한 품성을 지닌 아이로 훌륭히 길러내었다는 데 감동을 하고 진실한 사랑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배우자와의 소탈한 일상과 서로의 삶에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는 부부의 모습에 나와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배움의 자세를 갖게 된다. 어찌 보면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라 더 큰 한숨이 쉬어질지도 모르겠다. 이 한숨이 결론이 되지 않도록 정치인들의 신실한 자세를 기대한다.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나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등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이 또한 그릇된 것을 바로잡고 올바로,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외침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 앞에 내 개인을 보호하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공동 삶의 범위에서 찾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교육자로서의 사명, 책임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거듭하는 일상이다.

2021-03-28

보이지 않는 손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아침에 일어나면 휴대폰을 열고,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날도 노트패드에 깔아두고 재미 삼아 하는 그림 색칠하기 앱을 열었더니 ‘앱을 중지했습니다’라는 표시가 뜬다. ‘이상한데, 그럴 리가….’ 하며 빠져나왔다가 다른 앱에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다. 카톡 대화도 안 되고 네이버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지난 23일 아침의 일이다. 황당해하며 ‘앱 설정’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해보다가 ‘아! 혹시 해커의 장난이 아닐까?’ 하며 얼른 덮어버렸다.매일 들춰보던 앱을 열어보던 아내도 안된다며 포기하고 “당신이 너무 사용하니까 고장 났다.” 하며 핀잔을 준다. 그럴지도 모른다며 오후에 판매점에 가보려고 했다.한참 후에 관련 앱뷰를 삭제하거나 새로 깔면 된다고 하는 긴급공지가 떴고, 구글은 오후 3시가 지나서야 사과문을 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앱이 업그레이드되면서 기존의 앱과 충돌하며 일어난 사고라는 것이다. 다음 날 기사를 보니 이동통신 3사에 수만 건의 오류 문의가 접수됐고 서비스센터에도 수리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네이버는 디도스(DDOS) 공격으로 빚어진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신고했고 방송통신위원회도 사태의 원인을 분석한다고 한다. 하루만에 문제가 해결됐지만 나의 머리에 맴도는 것 하나, 디지털 사회가 안고 있는 위험성이다. 누군가가 악성 코드를 심거나 데이터를 조작하여 전체 통신망을 흔들거나 마비시켜 사회적 환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업데이트하라는데 데이터 손실은 없을까? 자료가 새어나가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초기 버전으로 바꾸거나 저장공간을 정리하는 등 임시방편으로 해결한 사람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최근 과기정통부의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 보듯이 고령자,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등의 정보 의존성이 점점 높아지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문득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빅 브러더’가 생각난다.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또는 사회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하기야 오웰이 미래라고 한 그 40여 년 전의 텔레그래프가 이제 CCTV로 발전하여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프로그램 하나의 잘못으로 수많은 폰 이용자들이 무기력하게 된 아침, 만일 그것이 인위적인 빅 브러더의 짓이었다면,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내용이었다면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얼마든지 네트워크의 통제 조작이 가능하리라. 그러니 빅 데이터를 이용하여 미디어도 통제하고 정보를 왜곡하고 민중을 유혹하는 독재 권력이 안 생긴다고 어찌 단언하겠는가. 디지털 정보로 사회와 문화를 장악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일상의 지식을 얻고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인간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미래의 자율주행 자동차와 배송 드론 같은 운행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먹통으로 되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너무 편한 디지털 시대만을 꿈꾸지 말자.

2021-03-28

왜 행복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한 나무꾼이 뭉뚱한 도끼로 땀을 흘리며 무척 열심히 나무를 베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나무꾼에게 “도끼날이 뭉뚱하니, 도끼날을 갈고 나무를 베시죠”라고 권했다. 나무꾼이 “제가 너무 바쁩니다. 도끼날을 갈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나그네에게 말한다. 이 나무꾼은 어리석은 사람일까? 지혜로운 사람일까?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나무 베는데 6시간이 주어진다면, 도끼를 가는데 4시간을 쓰겠다”고 했다. 나무꾼의 목적이 나무를 많이 베는 것이라면, 우리 인생의 목표는 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우리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어떤 일을 할 때면, 열심히 하라고 배웠다. 힘들면 힘내라고 배웠다. 물론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하다. 힘들 때 힘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뭉뚱한 도끼날을 갈지 않고 나무를 베는 어리석은 나무꾼처럼, 우리도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어리석게 사는 것은 아닐까?우리가 보다 행복하려면 먼저 행복에 대한 통찰력을 깨우치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지혜, 마음공부를 하고 인생을 사는 것은 어떨까? 행복의 문은 아는 만큼 열린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들 때 힘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하고 싶다면 나를 만나는 시간, 마음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생각인지, 감정인지, 행동인지 알고 열심히 하고 힘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위의 나무꾼은 방향성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방향성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동대구역에서 서울을 가기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타야하는데, 혹시 반대편 방향인 부산행 기차를 탄 적은 없는가? 반대편 기차를 타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편 기차를 탔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이를 알아차리고 다시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기차를 갈아탔을 것이다.그러나 우리 인생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면서, 불행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본인이 불행으로 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이 나에게 준 비난, 경멸, 조롱의 말에 화가 나고 분노에 시달린다. 사람이 화를 낼 때 나오는 숨을 냉각시킨 뒤에 그 침전물을 쥐에게 주사했더니 쥐가 단 몇 분 만에 죽었다는 실험이 있다. 우리가 화를 낼 때 진짜로 독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분노는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행복은 남이 나에게 선물처럼 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아내는 나에게 잔소리를 안 하고,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따르며, 친구들은 나를 좋아 한다면, 대개는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불행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가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면 이는 타인 의존적 삶이지 주체적 삶이 아니다. 행복은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어떤 부모도 사랑하는 자녀가 불행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자녀를 불행하게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자녀를 불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 자살률은 1위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스트레스와 자살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성적이다. 물론 부모가 자녀들이 커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녀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겠지만, 과도하고 일방적인 요구는 자녀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고, 자존감의 성장을 방해하고, 심지어 그들을 자살로 내몰 수도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님을 안다. 부모의 바람과 자녀들의 수용성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한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어렸을 때 몰랐던 것처럼, 부모들의 바람은 모른다. 자녀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현재의 부모들이 어렸을 때 그토록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와 자녀의 관계가 사랑으로 가득차고 자녀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유턴해야 한다.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왜 행복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우리는 행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행복을 창조하는 능동적 존재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나를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해지는지를 알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나의 자녀와의 관계가 사랑으로 가득하고 자녀가 더 행복해지는지를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타인을 더 배려하고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지를 알 수 있다.우리는 지금 행복에 대한 통찰력을 깨우쳐주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지혜, 마음공부가 절실히 필요하다. 마음공부를 위해서는 먼저 좋은 글이나 책 읽기, 좋은 강연 듣기, 명상을 하자.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을 들여다보는 힘을 갖자. 혼자하기 어렵다면 전문가를 찾아 마음 처방전을 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

2021-03-28

메타분석에 근거한 운동과 암의 상관관계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부경대 겸임교수최근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 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4%였으며, 남자(80세)는 5명 중 2명(39.8)%, 여자(86세)는 3명 중 1명(34.2%)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암 치료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국내 100만 명을 넘었다. 이같이 주위에서 암환자나 암을 치료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암은 흔한 병이 되었다.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신체활동은 암 발생에 대한 예방효과가 있으며, 암환자에게는 암의 진행 정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알려지면서 운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하지만 요즘처럼 인터넷, 도서, 환우회 모임 등에서 암 관련 정보들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상황이 오히려 환자들의 불안감을 증가시키고 적합한 치료를 받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메타분석에 근거한 정보 제공이 필요한 이유이다.암 치료가 끝난 직후 지친 몸을 이끌고 운동을 시작한다는 결심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운동에 담을 쌓고 지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암이 없는 사람에게 운동이 웰빙(well-being)이라면 암환자에 운동은 생존(being) 그 자체이다. 이처럼 암환자에게 운동은 건강한 사람의 운동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암환자가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유부터 알아보자.운동이 암 관련 사망률을 줄이고, 무엇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수명 연장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이 하나만으로 운동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운동이 암 치료의 효과 자체를 높여준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운동은 항암화학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감소시키고 여러 증상을 개선시켜 치료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컨디션을 최적화한다는 것이 다수의 연구 결과들에서 나타난 공통점이다.운동과 암에 관한 메타분석 연구에서 운동은 암환자에게 나타나는 피로와 통증을 줄이며 불면증을 해소하고 심지어 호흡곤란까지도 해소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운동은 암환자에게 나타나는 암 유발 피로, 체력 감소, 신체적인 기능, 체구성 요소 변화, 삶의 질 및 면역력 감소를 포함하는 암 유발 마커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완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규칙적인 운동은 암을 예방하고 이미 암에 걸린 경우라도 그 증세 개선 및 전이, 재발 방지에도 효과가 있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 경험자가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운동을 언제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도 유연성운동, 근력운동, 유산소운동 모두 필요하다. 한 메타분석을 통한 연구에서 운동 중 특히 스트레칭, 요가 등 유연성운동은 여성 환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으로 다른 운동에 비해 어깨 관절의 가동범위 증가와 더불어 피로를 효율적으로 제거하고 수면 장애를 제거하는 동시에 불안이나 스트레스 등 심리적 중재에도 매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암의 예후에 운동을 통한 제지방율의 증가를 강조하고 있다. 매일 하루 30분 이상의 적당한 강도의 걷기운동이 암 예방과 진전 및 예후에 효과가 있으며. ACSM(미국스포츠의학회)에서도 암 생존자들에게 운동은 안전한 활동으로 오히려 비활동적인 삶의 위험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으로는 일주일에 150분 이상의 적당한 운동과 일주일에 2번 정도의 격렬한 유산소운동을 권장하고 있으며, 탄력밴드 등을 이용한 주 2회의 저항운동을 병행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유산소 운동은 양질의 산소를 공급해주고, 적당한 활동을 통해 인체의 순환을 촉진시켜주며 암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햇볕을 쪼여 피부에 비타민을 형성하게 하여 암환자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표적인 방법이다.또 다른 연구에서는 저항운동, 유산소운동 프로그램을 적용한 복합운동은 유방암 생존자들에게 삶의 질과 근력을 증진시켜 유방암 부작용으로 발생되는 근력감소, 상지의 병력과 불편함, 림프부종 및 감소된 삶의 질을 회복하는 데 효과적이다 밝혔다.최근 암 중재에 관한 운동 시기와 운동 강도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암환자들의 운동중재 시기는 암의 종류나 운동의 종류 및 개인적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암에 대한 운동중재 효과는 대부분 운동의 강도가 저강도보다는 중강도에서 효과적이고 운동의 기간도 많을수록 염증 마커나 암의 예후에 효과적인 것으로 밝히고 있다. 가능하다면 다양하고도 더 많은 운동과 신체활동을 장시간, 장기간 동안 수행하며 점진적으로 운동 강도를 높여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뜻이다.흔히 “운동은 스스로 해나가는 항암치료이며 자신을 위한 보약이다” 말한다. 운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건강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할 수 있다.

2021-03-28

“윗물이 맑아야”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을 이렇게 풀이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바람에 의해 눕는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기 마련이라 했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뜻이다. 윗사람이 부당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아랫사람도 따라서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친 말씀이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우리 속담에서 윗물은 부모나 권력자 등 사회지도층을 말한다. 부모의 행동과 말은 자식이 본받게 마련이고 사회지도층의 행동 양식은 오로지 백성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20년도 우리나라 고위공직자의 재산 현황을 들여다보면 가히 놀랍고 충격적이다. 부동산에 대한 고위공직자의 애착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번에 느끼게 한다. 중앙정부 공직자 759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388명이 본인이나 가족 명의의 토지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집이 두 채 이상인 다주택자도 148명이나 됐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엄중한 다주택 억제조치에도 여전히 많은 공직자는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6명의 1명꼴인 49명이 다주택자였다. 지방의회 의원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와 사회 지도층의 부동산 보유는 정부 정책의도와는 아주 먼 거리에 있다.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 규제를 외쳐도 그들에겐 마의동풍인 셈이다.그들이라고 부동산을 소유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유독 부동산에 많은 재산이 쏠려 있는 것 자체가 국민의 눈총 깜이다. 코로나로 하루하루 생계 위협을 받는 서민이 받을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 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3-28

대구경북 합쳐야 살 길 생긴다

심충택논설위원사회 전 분야에 걸쳐 확산하는 ‘섹트주의’를 보면 나라 앞날이 걱정이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니편 내편’으로 나누어 싸우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오죽하면 친여권으로 분류돼 왔던 조남관 검찰총장대행조차 최근 대검 간부회의에서 친(親)정권 검사들을 겨냥해 “검찰 조직이 편을 나누기 시작하면 공정과 정의를 세울 수 없다”며 공개 비판했겠는가.나는 검찰조직의 섹트주의보다 더 치졸하고 역풍이 거센 것이 ‘지역별 편가르기’라고 생각한다. 4월 7일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이 가덕도 신공항을 이용해 부산시민과 대구시민을 이간질하게 한 행위는 우리 역사상 길이 남을 섹트주의의 전형이다. 어떻게 한솥밥을 먹고 있는 식구와 다름없는 사람들을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편가르기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현 국가권력자들의 행위와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구와 경북도 섹트주의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한뿌리에서 태어난 시·도민들은 지금도 콩 한 쪽을 나눠 먹는 사이로 지내고 있지만 대구시와 경북도 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정부 공모사업이나 기업 유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 출혈경쟁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시·도간 연계되어 있는 각종 현안이 숙원(宿願)으로 남아 있는 게 한두 건이 아니다. 경산~하양간 대구지하철 연장, 대구~칠곡~구미간 광역철도망 건설, 대구취수원 이전문제, 포항신항 물동량 유치 실패 등이 주요 사례다. 민선 4·5기와 6·7기에 추진됐던 경제통합 추진위원회와 한뿌리 상생위원회가 별 성과를 못 낸 것도 따지고 보면 섹트주의 탓이다.곧 주민여론조사 절차를 밟게 될 대구경북 행정통합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도 ‘니편 내편’ 의식 때문이다. 지금 대구는 각종 경제·사회지표에서 광주보다도 더 처지는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경북은 얼마 안 가면 주민이 없어 소멸할 시·군이 줄지어 있다. 현 행정 시스템으로는 누가 시장, 도지사가 돼도 문제를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다. 역대시장이나 도지사가 역량이 부족해서 상태가 이렇게 악화한 것은 아니다. 비수도권의 어느 자치단체도 혼자 힘으로 수도권 블랙홀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행정통합 후의 대구경북이 어떤 위상을 가질지 예측하기가 어렵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니편 내편’ 출혈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대구는 포항이나 경주, 안동, 구미 등과 같은 행정구역이 되면 유서깊은 관광지와 공단, 해양을 낀 큰 도시로 변모한다.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도시가 된다는 말이다.최근 대구, 경북, 부산, 경남, 울산 등 영남권 5개 시·도와 4개 연구원(대구경북·부산·경남·울산연구원)이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 ‘영남권 그랜드 메가시티’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같은 이유에서다. 먼 훗날 이 지역이 지명조차 잊혀져 가는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살림을 합쳐 생존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통합으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들은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된다. 새로운 길이 바로 고속도로 일 수는 없지 않은가.

2021-03-28

목련꽃 그늘 아래서

하루를 꽃그늘 아래서 보냈다. 목월 시인의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노랫말처럼 목련이 키를 한껏 키운 곳으로 소풍을 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가 열심히 수 놓은 꽃잎들이 봄기운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 목월 시인이 이것을 보고 썼구나. 이 그늘 아래서 젊은 베르테르가 쓴 편지를 읽고 있으면 새의 날개옷 같은 하얀 꽃잎이 편지처럼 나리겠지.불국사 주차장에서 동리목월문학관으로 가는 길, 연못 위로 다리 하나가 놓였다. 입구에 자목련 세 그루는 아직 입을 다 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새 같다고 하니 함께 간 E는 촛불을 켠 것 같다 하고, S는 꽃등 같다고 거들었다. 자목련이 아직 새의 부리같이 꽃잎을 맞은편을 향해 지저귄다. 오늘이 절정인 백목련이 환하게 웃는다. 다리를 건너니 양쪽에서 가지를 뻗어 나와 하늘을 덮었다. 목련 이불이다.목월 시인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주라서 그런가. 키 큰 목련이 유독 많다. 작정하고 목련 투어를 나선 날이니 한 곳을 더 찾아갔다. 오래전 4월 5일, 아직 식목일이 공휴일이던 때에 남편을 만나고 첫 야외데이트 날에 경주 남산을 올랐었다. 포석정에 주차를 하고 오르는 산책로는 길이 좋아 이야기하며 걷기 안성맞춤이다. 산 중턱 너럭바위에서 싸간 김밥과 커피를 마시고선 반대편 통일전으로 내려왔다. 그날 통일전에 들어가니 목련이 많이도 심겨 있었고 그 꽃들이 막 피기 시작해서인지 넓은 뜰에 향기가 그윽하게 번졌다. 목련도 향기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그곳을 30년 만에 다시 찾았다. 목련이 폈을까, 올해 꽃이 빨리 와서 이미 져버리진 않았나, 그 사이 정원수가 바뀐 건 아닐까 걱정을 하며 들어섰다. 내 걱정이 쓸데없다는 듯 기와를 인 담장 옆으로 흐드러지게 목련이 일렁거렸다. 키가 아주 높진 않아서 꽃 속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였다. 반들거리게 닦아 놓은 정자에 오르니 경주의 자랑거리인 능선이 멀리 보이며 들 풍경이 환하게 펼쳐졌다. 목련 나무가 발아래 있어서 올려다보는 것과 또 다른 감흥을 느끼게 했다.수백 장의 사진을 찍은 우리는 이제 카메라는 내려놓고 마루에 철퍼덕 우리도 내려놓았다. 평일에 통일전을 찾는 이가 거의 없어서 넓은 정원이 다 우리 것이었다. 꽃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봄바람을 즐겼다.그러다 목련꽃 그늘 아래 섰으니 우리도 시 한 편을 읊어 보자고 했다. 내내 흥얼거린 4월의 노래가 목월 시인의 시이니 읽어주겠다고 하니까 “무슨 노래요?” 한다. 검색해서 들려주었더니 함께 간 두 여인이 처음 듣는 노래라는 것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나, 음악 시간에 불러본 적 없느냐 했더니 없단다. 나보다 열세 살 어린 그들의 교과서와 내 것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 대신 ‘오~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아야’ 이 곡으로 수행평가를 했단다.초등 4학년 담임이 풍금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들려주신 날, 노래가 너무 예쁘고 좋아서 그 자리에서 다 외워버렸다. 중학교 합창 대회 때는 ‘카프리섬’과 ‘오 솔레미오’를 연습했더랬다. 음악 시간에는 음악실로 이동해서 선생님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가곡을 배웠고, 그때 듣고 배운 것들로 평생을 읊조린다.아들에게 학창시절 음악 시간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자습이었다고 한다. 음악 선생님도 그닥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다고 하니 미술도 저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체육까지 하지 말라면 남학생들이 들고일어날까 봐 그나마 공 하나 던져주면 신이 났었다고 한다. 그러니 ‘4월의 노래’도 목련화도 듣느니 처음이란다. 아들이 나이 들며 목련 나무 아래서 흥얼거릴 가곡이 있으려나 싶어 안타까웠다.아직 3월인데 아파트 화단에 목련꽃은 벌써 지고 연두 잎이 돋았다. 더 북쪽인 서울에도 목련이 핀다니 목월 시인의 ‘4월의 노래’가 이젠 ‘3월의 노래’로 바꿔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해 본다. /김순희(수필가)

2021-03-28

흙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의 중요성

이승율청도군수인간이 언제나 걱정해야 하는 것이 먹거리다.우리의 조상은 ‘의식주(衣食住)의 해결이 가장(家長)의 덕목’으로 챙길 만큼 먹거리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가장 슬픈 것이 배고픔을 참는 것이다”란 말이 회자할 정도로 먹거리의 중요성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지만 미래에도 그 가치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먹거리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과 흙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우린 한 때 자기가 사는 땅에서 산출한 농산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외친 적이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공급이 달리면 언제든지 확대공급이 가능하지만, 흙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인간의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없어 흙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청도군은 흙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의 중요성을 오래전에 간파해 농업인에 대한 복지와 경영안정, 농지의 효율적인 이용관리 등에 집중투자하고 필수요건인 농업인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지역의 농업인이 고령화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고자 군은 지난해 1월 귀농귀촌담당을 신설해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젊은 층의 욕구를 해소하며 다양한 정책지원을 하고 있다.귀농인의 정착지원을 위해 농업창업과 주택구매를 지원하고 농지임차료 지원, 정착 장려금, 주택수리비지원 등과 마을주민들과 융화될 수 있도록 교육과 초청행사도 진행하고 있다.청년 창업농을 육성하려고 영농정착지원 등 다양한 지원에 나서고 귀농귀촌·청년 창농인 박람회 참가 등으로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에도 적극적이다.젊고 유능한 농업분야 진출과 건실한 농업 경영체로 성장시키고자 독립경영 1년차 100만원, 2년차 90만원, 3년차 80만원과 창업자금, 기술·경영교육, 컨설팅을 지원하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과 청년 농부 창농기반구축사업 등으로 청년창업농을 발굴·육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덕분에 2018년 390명이던 귀농귀촌인구가 2019년 633명으로, 2020년에는 825명으로 증가하는 등 귀농귀촌의 중심에 서 있다.올해는 귀농지원센터가 운용돼 귀농귀촌 지원 관련 홍보, 교육, 정보제공, 청도에서 미리 살아보기 등 찾고 싶고, 살고 싶은 청도를 만드는데 일조하게 된다. 농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 불법전용농지 지도단속을 강화하고 불법전용농지관리를 전산화해 단계별 행정조치 등 투명성을 높일 예정이다.흙에서 생산되는 먹거리가 중요해도 흙을 경작해야 할 농업인이 대접받지 못하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청도군은 농작물 재해보험과 가축 재해보험을 지원해 기상재해를 대비하고 농가 도우미와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특수건강검진비 지원 등 농업인의 복리증진과 경영안정 지원에, 영농 편의를 위해 농기계를 저렴한 사용료로 임대하고 있으며 새로운 영농기계의 구매에도 적극적이다.농촌자원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자 농산물 안전 분석실 건립과 청년 임대형 스마트 팜 단지 조성, 드론 방제단 운영, 농산물 가공 부가가치 향상, 고품질 과실 생산기반 지원, 신소득 작물 및 특화작물 확대 육성 등 스마트 농업 인프라를 적극 구축하고 있다. 또 통합마케팅 출하조직 육성과 농산물 수출 확대 기반조성, 농축산물 가격안정기금 운용, 농특산물 온·오프라인 마케팅 강화, 친환경 축산경영 지원 등 지속 가능한 농업생태계 기반을 조성해 농업인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 특히 거점세척소독시설을 조기완공 해 AI, 구제역, ASF 등 가축질병으로부터 청정 청도를 유지해 지역의 농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축산농도 보호할 것이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누구나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농업인들의 시간은 더 힘들었다.출하시기를 놓치면 상품가치가 하락하지만, 소비자와의 거리는 멀어 마음고생 할 때 한재미나리, 복숭아 등 농산물 팔아주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흙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인의 수고로움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려면 흙을 보존하고 농업인의 사기진작에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도 흙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의 안정적인 가격형성을 위한 청도군의 행정서비스는 계속된다.

2021-03-28

복지사각지대와 업무 핑퐁

김락현 지역부최근 구미에서 3세 여아 방치 사망사건과 30대 엄마가 원룸 3층에서 6세 딸을 떨어뜨려 중상을 입히는 등 아동학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정확한 현황과 그에 맞는 현실적 대안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일각에서는 사회복지직 공무원 인원 부족이 복지사각지대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원 부족이 복지사각지대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복지직 공무원 정원이 현 정부가 내놓고 있는 복지정책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복지직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복지사각지대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가 없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현재, 각 지자체의 복지업무는 복지직과 행정직이 함께 담당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어가는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전체 직원들의 수가 부족하다고 봐야한다.이는 전체 공무원 정원 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실제, 최근 아동학대사건이 발생한 구미시의 경우 2020년 12월 기준으로 총정원 1천795명의 공무원이 41만6천328명의 인구를 담당하면서 공무원 1인당 주민수가 232명으로 경북도내 전체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포항시 226명, 경산시 210명, 경주시 151명이고, 군단위에서는 칠곡군이 136명으로 가장 높았다. 구미시의 사회복지직 총인원이 포항시와 비교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포항시에는 구청이 2곳이나 존재하기 때문에 구청이 없는 구미시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그렇다면, 복지업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구미 3세 여아 사건과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공무원들의 업무 행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속칭 ‘업무 핑퐁’이다.한 예로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한 행정직 공무원은 복지상담건과 관련해 전문가인 복지직이 맡아서 해야한다며 일을 미루고, 현장 업무로 바쁜 복지직 공무원은 행정직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면 행정직은 복지업무에도 행정업무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행정업무를 하기에도 바쁘다고 둘러댄다.공무원은 시민들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다.최소한 시민들을 위한 복지 업무에서 만큼은 ‘업무 핑퐁’없어 맡은 업무에 충실해 주었으면 좋겠다./kimrh@kbmaeil.com

2021-03-25

‘나’하고 관계 없는 세대가 있다

무척이나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변호사로 이미 명성을 얻은 ‘친구’가 소설을 써냈다. 그냥 소설도 아니고 미래소설, AI가 사람을 죽이는, 문제적인 이야기다.이런 바쁜 세상에서 소설을 쓴다는 건 쉽지 않고, 그것도 시대의 추세를 앞서가는 것도 쉬운 일 아니다. 나 역시 소설을 쓰지만 낡은 시대의 끝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합정동에서 망원동 가는 쪽에 있는 전라도 음식점으로 서둘러 향했다.식당에는 이 장편소설을 펴낸 솔출판사의 임 선배가 이미 와 계셨고, 표지를 그린 오 선생도 함께 합석을 했다. 수년 동안 늘 둘이서만 술을 마시다시피 한, 평론가 이 후배도 미리 와 있다. 섬세한 그가 책을 출간한 작가를 위해 사 온 프리지아 꽃다발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좋은 모임이지만 나는 우리가 모두 나이가 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 평론가가 나보다 11년 후배나 되고 그래도 벌써 사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니 ‘세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셈이다. 무슨 이야긴가 끝에 임 선배가 세상에는 ‘나’하고 관계 없는 세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즉각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솔출판사는 최근에 카프카 전집을 내고 버지니아 울프 전집을 냈는데,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젊은 세대란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 웹툰이며 웹소설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고, 이런 작품들이 영화가 된다.나도 그런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벌써 16,7년이나 된 일이다. 모교에 와서 첫날 강의에 들어간 나는 예기치 않게 심중에 담아 놓은 이야기를 토설하고 말았다. “저는 여러분 세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의 세대의 사연을 그대로 보따리째 싸들고 그냥 살아가다 홀연히 사라지고 싶었습니다.”그 무렵 나는 어떤 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관해 ‘세상’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 책 중에 ‘나의 에고이즘’이라는 것이 있어 꼭 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지금도, 나는 사실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임 선배처럼 나도 나와 관계없는 세대와 ‘함께’ 호흡하며, 한때의 신조를 어기고 때때로 그들에게 나의 세대의 사연들을 노출하고 만다.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세대에서 세대로 경험과 기억을 이어주고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고. 많은 것이 그러는 사이에 잊혀지고 놓쳐지고 거부된다 해도, 그렇게 사람의 삶은 연결되는 것이라고./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3-25

국회는 응답하라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의혹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공직자 재산등록 결과가 발표돼 서민들의 소외감을 부채질 하고 있다.인사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25일 행정부 소속 정무직, 고위공무원, 국립대학총장, 공직유관단체장, 지방자치단체장 등 재산공개대상자 1천885명의 정기 재산변동사항 신고 내역을 공개했다. 공개 대상자의 평균 재산은 14억1천297만원으로 집계됐고, 종전에 신고한 재산 평균보다 약 1억3천112만원 증가했다.고위공직자의 약 80%는 지난 1년간 재산이 늘어났다. 재산이 늘어난 것은 주택·토지의 공시지가 및 주가지수 상승, 비상장주식의 평가방식 변경으로 실물자산 가치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대구·경북지역 공개 대상인 시장·부시장·시의원·구청장·군수 등 고위공직자 42명의 2020년 신고 재산 평균은 13억3천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역시 공개자 중 64.3%인 27명은 이전 신고 때보다 재산이 늘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해보다 1억1천500만원이 증가한 19억2천900만원을 신고했고,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해 말 기준 전년보다 4천299만5천원 줄어든 15억2천810만8천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부동산 광풍이 불어닥친 수도권과 달리 대구·경북지역의 공직자 재산은 그리 크게 요동치지 않은 셈이다. 21대 국회의원의 경우 298명 가운데 신고총액이 500억원 이상 2명을 제외한 296명의 신고재산액 평균은 23억 원대로 나타났다. 또한 10명 중 8명꼴로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이 와중에 국회는 지난 24일 본회의를 열고 LH 5법 중 3개 법안을 처리했다. LH 등 부동산 관련 업무나 정보를 취급하는 모든 공직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는 공직자윤리법,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50억원 이상의 투기 이익을 거둘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는 공공주택특별법, LH 임직원뿐 아니라 10년 내 퇴직자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거래가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얻은 이익의 3∼5배 벌금을 부과하는 LH법 개정안 등이다. 문제는 이날 통과된 법안은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연루된 LH 직원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리상 소급적용은 위헌소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체제 아래 부를 추구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죄악시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공직에 있으면서 획득하게 된 정보를 이용해서 토지나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며, 공직윤리에 어긋나는 범법행위다. 이런 공직자들을 엄단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분을 정치권은 반드시 해소해줘야 한다. 특히 투기이익을 거둘 경우 엄벌에 처하도록 한 ‘LH법’은 소급적용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소급입법 조항이 비록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사안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공직자들의 투기에 분노한 국민의 공분을 풀어줘야 한다. LH투기 의혹에 분노한 국민들에게 국회는 응답하라!

2021-03-25

미국의 콤플렉스

지금 미국은 계속된 총기 사고로 매우 흥분돼 있다. 애틀랜타에서 총기 사고로 8명이 숨진 뒤 바로 엿새만에 22일 콜로라도에서 또 10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미국 사회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백악관도 총기규제에 대한 행정명령과 입법조치 등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총기 규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그간의 조치를 보면 흥분된 만큼 실효적 결과를 낸 적이 없다.총기사고에 대한 강력한 대응조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총기사용을 규제하고 총기를 회수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국민의 정서가 다르다. 법률적으로 총기를 규제할 방법이 없는데다 총기 규제에 관한 찬반양론이 극렬히 맞서고 있는 모순된 상황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인에게 총기 휴대는 일상적 생활의 한 부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총기 다루는 법을 배운다. 미국에서 총기를 사는 것은 술을 구입하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한다. 우리에겐 황당한 얘기로 들리지만 30개주에서 초등학생이 총기를 보유해도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다.미 연방수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민간인이 보유한 총기 수가 국민 1인당 1정에 가까운 2억7천만정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날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다. 링컨이나 케네디와 같은 대통령에 대한 총기 암살사고가 일어나는 곳이 미국이다. 백주에 총을 든 범인과 경찰이 대치하는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총기 사고도 종종 목격된다.총기휴대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는 정서적으로 많이 다르다. 총기를 회수하는 것 자체를 개인 사생활 침해로 생각하는 나라다. 총기휴대 문제는 미국의 딜레마이자 콤플렉스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3-25

대통령 사저(私邸)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이정규 스웨덴 주재 대사가 SNS에 올린 타게 엘란데르 전 총리에 대한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23년간 총리를 하면서 각계각층의 인물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대화와 타협을 했다. …. 총리 관저에서는 공식 집무만 보고 거주는 임대주택에서 했다. 막상 총리에서 퇴임하자 살 집이 없었다. 이를 안 국민들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별장을 지어주었다. …. 55년간 해로한 부인 아이나도 검소했다. 남편이 총리였지만 고등학교 화학교사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편이 퇴임한 후 한 뭉치의 볼펜을 들고 총무 담당 장관을 찾아가 건네주었다. 볼펜에는 ‘스웨덴 정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총리 때 쓰던 볼펜인데 이제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 ” 엘란데르 전 총리는 관용차 대신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출근했으며, 총리시절 입었던 양복은 색이 바랜 것이었고 신발은 여러 겹의 밑창을 대고 신었다. 그런 검소함은 부인도 닮아서 23년 동안 국회 개원식 때 입은 정장은 한 벌뿐이었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다. 노타이에 낡은 통바지, 싸구려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칼로 유명한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월급의 90%를 기부했고, 관저는 노숙자에게, 별장은 시리아 난민 고아들에게 내주었다. 정작 대통령 자신은 쓰러져가는 시골 농가에 살며 낡은 차를 직접 몰고 출퇴근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재임 기간에도, 또 퇴임 후에도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 물은 우물에서 길어다 쓰고, 빨래도 직접 한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프로필에 ‘농부’라고 적었다는데 마당에는 무히카 부부가 오랜 기간 가꾼 꽃과 화초가 무성하다. 이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그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고“나는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절제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에 거처할 사저를 짓기 위해 경남 양산에 부지를 매입한 과정에 석연치 못한 점이 있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 중 일부가 농지라서 농사를 지을 목적이 아니라면 살 수 없다는 것과, 9개월 만에 대지로 형질을 변경한 것이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다. 농지법 6조에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형질을 변경해 사저를 지을 목적이었으니 명백히 농지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는 문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부동산 대책과도 맞지 않는, 누가 보아도 공정한 과정이나 정의로운 결과로 볼 수는 없는 처사인데, 정작 본인은 사과는커녕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좀스럽고 민망한’ 짓을 그만하라고 나무라는 글을 올려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타게 엘란데르나 호세 무히카 같은 세계가 칭송하는 청렴하고 소박한 지도자는 아닐지라도, 불법과 편법까지 동원한 퇴임 후 대책은 부끄러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문재인 보유국’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소위 ‘대깨문’이라는 자들이 적지 않은 것은 여간 씁쓸한 노릇이 아니다.

2021-03-25

코로나로 일어난 변화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마스크가 일상화 된 모습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겨울 독감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마스크를 종종 잊고 나가 애를 태우던 시대에서 이제는 마스크를 안 쓰면 무언가 불편하게 느껴 외출을 못하는 이상한 시대로 바뀌었다. 줌(Zoom)이라는 온라인 미팅 프로그램이 세계의 각종 학회나 회의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다.요즘 대부분의 미팅이 줌으로 진행되고 대학에서의 강의나 세미나도 줌으로 하고 있다. 각종 행사의 형식도 많이 간소해졌다. 리셉션이나 행사만찬이 없어지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악수도 생략되고 주먹으로 인사하고 식당에 가면 띄어 앉는 게 일상이다.대학은 교무회의를 온라인으로 하기 시작했다. 수업도 온라인이나 동영상으로 진행되어 캠퍼스는 텅 비어 있다. 학생이 없는 캠퍼스 모습도 처음 보는 풍경이다.접촉이라는 컨택트(Contact)가 아닌 비접촉이라는 언택트(Untact)라는 신조어를 부상시키며 비대면·비접촉 소비 등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도 생겨났다. 쇼핑시장은 온라인 쇼핑으로 대폭 바뀌면서 택배업체와 배달업체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 학원, 취미강습 등을 다니지 못하면서 화상통신을 이용한 원격교육, 온라인 요가, 요리강습 등이 강세를 보이면서 아예 온라인으로 체험을 하는 환경이 집집마다 구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여행 산업도 크게 위축 되었다. 필자도 대학에서 대외협력 일을 맡으면서 거의 매달 나가던 해외 출장을 공적인 일로는 작년에 한번도 해외 출장을 가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국제회의가 실시되기도 하지만, 또한 귀국 후 자가격리라는 기간이 너무 일상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해외 가족 결혼 때문에 출국 시 보았던 인천공항의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붐비던 인천공항의 주차장은 거의 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어 있다. 수천명의 탑승객이 붐비던 공항 출국대도 사람 몇 명이 왔다 갔다 할 정도다.문제는 언택트 시대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변할까 하는 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SNS 같은 온라인 소셜미디어가 더 활성화 될 전망이다. 그래도 성이 차지는 않을 것이고 우울감은 심화될 수 있다.코로나 블루가 걱정이다. 상호단절된 상황 속에서 우울감을 증폭시키면서 코로나 피로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가 걱정이다. 백신접종이 전세계적으로 시작되었다. 백신을 통해 코로나가 종식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이제 인간은 독감처럼 코로나와 함께 생존해야 한다는 예측도 있다.BC, AD는 예수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연대 계산 방식이다. BC는 예수 탄생 이전이라는 의미이지만 아마도 미래에는 코로나 이전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농담만은 아닐 것이다. C가 예수가 아니라 코로나가 될것이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지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속에 살고 있다. 이 변화의 끝이 어디가 될 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2021-03-25

부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요양원장코로나19는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하여 거리두기를 하게 됨으로써 단절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는 다양한 백신을 제공하고 있다. 요양원에 생활하고 있어서 일차 백신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통증과 오한의 아픔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길고긴 밤을 느끼며 참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독일 철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사회를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하여 물질적 풍요를 가져 왔으나 다양한 재앙과 위험이 따르는 위험사회라고 하였다. 환경파괴에 의한 생태학적 재앙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일회용품의 피해는 바다의 생물이 고스란히 겪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코로나시대에 더욱 증가하는 일회용품의 사용은 이제 바다생물만이 아니라 인간생태계를 되돌아보게 한다.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연한 사건처럼 다가온 코로나는 역사상 흑사병 이래로 인간 삶의 환경을 흔들어 놓고 있다. 이럴 때 전환의 기회가 필요로 하다. 한 청년이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성인전을 읽으며 삶의 전환을 이룬 로욜라의 이냐시오처럼. 아씨시 지역의 부잣집 한 청년이 흥청망청 젊음을 불태웠고, 기사가 되고자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부상을 겪고 돌아와 병을 앓았고 이 시간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드러낸 프란치스코처럼 각자가 겪고 있는 위험에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이냐시오와 프란치스코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예수님을 새로운 삶의 희망과 의미로 찾는다. 그리스도인이 따르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그리스도는 자신의 삶에서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위험 앞에서 적극적으로 마주하였다. 아울러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고난 앞에서 용기를 내도록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세상을 이겼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대로 새로운 길을 완성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당신의 생명을 바쳐서 우리가 새롭게 걸어갈 수 있도록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완성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길, 부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고난 가운데서 용기를 내도록 격려를 받고 있다. 그래서 다시금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삶의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찾게 된다.

2021-03-24

따뜻한 경북교육 ‘대안학교 1호 체육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수선화예요. 봄까치꽃과 꽃다지도 폈어요. 봄꽃 잔치에요!”한 학생이 아침 급식 지도를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 필자를 불렀다. 운동장이 좁을 정도로 다른 학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운동장에서 활발하게 봄맞이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에너지에 버거움을 느낀 땅이 뽀얀 먼지 숨을 거칠게 토해낼 정도로 활발한 학생들의 모습은 생명을 밀어 올리기 시작한 봄 그 자체였다. 봄에 봄을 닮은 학생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최고다.학생들이 봄인 이유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 농구를 하는 아이들, 그네를 타는 아이들, 드럼을 치는 아이들, 산책하는 아이들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1교시 수업 전 10분의 쉬는 시간을 보내는 50명의 학생은 분명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봄꽃들이다. 그중 필자를 불러세운 학생은 화단에서 키를 한껏 낮추고 봄꽃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수선화 꽃말이 뭔지 아세요? 자기사랑이에요. 그래서인지 다른 봄꽃과는 달리 훨씬 커요.”학생의 말을 들었는지 수선화는 활짝 더 폈다. 수선화조차 춤추게 하는 학생의 따뜻한 마음에 화단에서 잠시 게으름을 피우던 다른 들꽃도 열심히 꽃대를 밀어 올렸다. 필자는 필자의 그림자가 학생과 들꽃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학생보다 더 키를 낮추었다. 그러면서 보았다, 학생과 인사를 하는 더 많은 들꽃을. 그들과 필자도 반갑게 꽃 인사를 나누었다.들꽃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학생이 고마웠다. 과연 학생은 들꽃들과 어떤 인사를 나누었는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학생은 혹시나 들꽃들이 다칠까 봐 조심히 발을 옮겨 화단을 나갔다. 그리고 빠르게 교실로 뛰어갔다. 학생이 떠난 자리가 하도 따뜻해서 그 자리로 가려다가 보았다, 필자가 밟고 있는 들꽃들을. 하지만 학생이 앉은 자리는 움이 돋기 전의 땅이었다. 필자는 필자의 부주의를 깊이 반성했다.학생들이 떠난 운동장을 보았다. 비록 비어 있지만, 운동장은 전혀 쓸쓸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남겨 놓은 웃음들이 들꽃의 응원을 받아 곧 쏟아져 나올 학생들을 위해 운동장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잡히지 않는 코로나-19와 좀스러운 정치인들의 좀스러운 정치 이야기에 한겨울을 사는 필자에게 학생들은 봄을 선물해주었다.봄꽃 소식만큼이나 따뜻한 교육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대안학교 학생들이 받는 교육계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해왔다. 그런데 이제 경북 소재 대안학교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북교육청과 영천시청, 그리고 천주교대구대교구가 공동 투자한 산자연중학교 체육관이 1년 여의 공사를 마치고 드디어 준공식을 열었다.이 체육관의 의미는 민관이 합작하여 지은 경북 소재 대안학교 1호 체육관이라는 것이다. 따뜻한 경북교육을 지향하는 경북교육청이 시작한 교육 불평등, 불공정 깨기가 들불처럼 피어나는 들꽃처럼 교육부, 정부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202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