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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수 안경 온라인 판매 추진하는 정부가 비난 받는 진짜 이유

김락현 경북부 최근 정부가 도수 안경 온라인 판매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한안경사협회와 많은 시민들로부터 ‘국민 눈 건강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지난달 9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온라인 안경판매 서비스 등을 ‘한걸음 모델’ 신규 대상과제로 선정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걸음 모델’을 통해 국가전문자격시험을 통과한 안경사가 있는 오프라인 안경점에서만 판매되고 있는 도수 안경을 온라인에서도 살 수 있게 진입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이다.하지만 ㈔대한안경사협회 등의 반발로 현재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 이해당사자 갈등을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사실 정부의 도수 안경 온라인 판매 정책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에도 한번 시도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많은 논란만 일으키고 무산됐었다. 다른점이 있다면 당시는 도수 안경이 아닌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였다.2019년 정부의 온라인 판매 시도 이후 생각지도 못한 상식밖의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현행법상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는 불법이다. 하지만, 해외직구로 구입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다. 정부가 국내 온라인판매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국내에서 온라인 불법판매로 법정에 선 업자가 “해외직구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국내 온라인판매만 처벌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한 상황이다.정부가 경제 논리를 내세워 추진했던 정책이 오히려 혼란과 불법을 부추긴 꼴이다. 그것도 국민의 ‘눈 건강’과 직결된 정책을 탁상행정으로 처리한 것이다.특히, 콘택트렌즈는 BC(곡률), PWR(도수) 등은 메이커나 렌즈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안과 또는 안경점에서 검안과 처방을 받아야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음에도 해외직구를 통해 판매규제가 없어 소비자들만 부작용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콘택트렌즈 해외직구 쇼핑몰은 소비자에게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또다시 도수 안경 온라인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 번 따져봐야 한다.정부는 규제만 푼 것이고, 선택은 소비자가 한 것이니 결국 모든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인가.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져버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kimrh@kbmaeil.com

2021-07-08

대통령 자질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내년 3월의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스무 명을 넘는다고 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말고는 매스컴을 많이 탈수록 좋다는 말도 있듯이, 그 중에는 별로 가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름이라도 알리려고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면면들을 보자 하니 나라와 국민을 위한 봉사보다는 권력욕에 눈먼 자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무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려면 상당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릇된 생각이나 부족한 능력 때문에 나라를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래 지금까지 열두 번째 대통령을 겪고 있다. 10년 이상 장기집권한 대통령도 있고 과도기에 잠시 대통령 직을 맡았던 사람도 있다. 시대와 처지에 따라 대통령의 역할도 다를 수밖에 없을 터인데,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놓고 기반을 다진 두 대통령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는 생각이다.이승만 대통령의 투철한 반공의식과 국제적 식견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을 설득해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도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도 당시의 절대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열악한 조건과 중구난방인 민심을 결집해서 나라의 경제적 기틀을 마련하는데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발휘했다. 공과가 엇갈리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두 대통령의 공로는 어떤 허물로도 다 가릴 수 없는 업적이었다.산업화도 민주화도 상당수준 달성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OECD 국가인 지금은 과연 어떤 대통령이 적당할까. 개혁이나 혁명을 외치기보다는 기왕의 성과를 잘 살리고 모자라거나 잘못된 분은 착실히 개선해 나가는 일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그에 걸맞은 선진국형 지도자가 요구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식의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지는 충분히 절감했다. 나라의 안정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한 상식과 품위 있는 인격의 소유자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다음으로 중요한 덕목은 인재등용의 안목과 공정이다. 사심이나 편견에 사로잡힌 소위 ‘캠코드’ 인사가 민심을 갈라놓고 국정을 망치는 걸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각 분야마다 내편 네편 가리지 않고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재들을 등용해 소신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맡기고 지원해야 한다. 수석이나 보좌관들도 눈치나 보고 아첨하는 자들이 아니라 언제든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 특히 민감한 문제나 나라의 명운이 걸린 사항은 외부 전문가들까지 초청해서 며칠이고 밤샘토론이라도 벌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세계정세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도 갖추어야 한다. 그럴 능력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마음을 열어 놓고 배울 자세가 된 사람이라야 한다. 다행히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들 중에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국민들의 의식과 수준이 문제다.

2021-07-08

올림픽 보이콧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올림픽 보이콧이 정치가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항하여 올림픽을 보이콧 하자는 주장이다. 올림픽 보이콧 역사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에 항의하기 위하여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열린 1980년 하계 올림픽에 미국, 캐나다, 서독, 한국, 일본을 포함한 서방 진영 수십 개의 나라가 불참을 했다. 미국이 불참하면서 서방국가들이 이를 따랐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는 소련, 동독, 알바니아 등 동구권 15개국이 올림픽을 보이콧 하였다. 정치에 의해 스포츠가 희생되고 올림픽 정신이 훼손된 사건이다.최근 들어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앞다투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도쿄올림픽 조직위 조치에 대항해 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분개감은 이해하지만 또다시 정치를 스포츠와 연결시키겠다는 의도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독도를 자기 영토로 주장하는 일본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억울한 심정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어 왔다. 그런 심정이라면 일본과 수교도 끊고 무역도 중지해야 할 것이다. 그 정도로 억울한 심정이다.그러나 불철주야 올림픽의 메달을 향해 질주한 선수들은 어떨까? 개인 자격 참가는 허용하자고 하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대만 역사상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태권도 선수가 대만국기를 가슴에 달지 못하고 시상대에서 쏟아낸 그의 눈물은 잊을 수 없다. 올림픽 메달은 선수에게도 국가에도 영광의 순간이 된다.2018년 2월 9일 평창올림픽에서 도핑문제로 러시아는 국가 단위 참가가 허용되지 않아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참가했다. 이들이 메달을 딸 때마다 시상대에는 오륜기가 게양됐고, 금메달을 따더라도 올림픽 찬가가 연주됐다. 메달을 따고도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울려 퍼지지 않는 그들의 착잡한 모습은 지금도 투영된다.해방 이후 70여 년간 계속된 일본의 독도에 대한 생떼는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 지지를 끌어내려는 속셈이다. 이에 동정적인 국가나 개인들도 세계에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도를 문제 삼아 스포츠 행사를 보이콧 한 적은 없다. 그것은 독도문제의 진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정치와 스포츠를 연결시킨다는 비난을 받을 공산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생떼를 쓴다고 반대로 생각할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올림픽 보이콧 주장은 그 심정은 이해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일본의 독도 소유권 주장에 대한 규탄은 일회성이 아니다. 그들의 부당한 주장을 지속적으로 여러 방안으로 규탄해야 한다.이제 올림픽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구슬땀을 흘리며 고생한 한국선수단의 노력이 이제 빛을 발할 시간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2021-07-08

소설같은 ‘가짜 수산업자’ 사기사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가짜 수산업자 사기꾼 김씨 뉴스와 관련한 최불암 시리즈가 정치권에 회자되고 있다.최불암이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 금동이가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밀었다. 금동이는 아버지의 직업이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 직업을 뭐라고 쓸까요?” 아들의 마음속을 꿰뚫고 있던 최불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놈아, 수산업이지 뭐야. 붕어를 만들잖아” 폭소를 터트려야 할 이 유머에 활짝 웃지 못한 사람들이 수십명에 달하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내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의 시즌이 다가오니 온갖 모사꾼들이 서울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 흘러넘친다. 사기꾼들이 자칫 눈뜨고 코베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곳이 바로 여의도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이번 가짜 수산업자 사건은 전직 언론인의 탐욕을 이용해 소개받은 정치권과 법조계 인맥을 지렛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들여다 보면 사기꾼들이 자신의 주변을 어떻게 포장하는지 알 수 있다. 김씨는 지난 2016년 다른 사기죄로 수감됐을 당시 교도소에서 만난 언론인 출신 A씨(59)를 통해 출소 후 정치권 등 각계 인사들을 소개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방’에서 만난 인맥으로 유력 정치인 가족까지 속여 수십억원을 빼앗는 사기범으로 진화한 셈이다.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로 출마한 경험이 있는 A씨는 오랜 세월 기자로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은 정치인들에게 ‘감방동기’라는 설명없이 김씨를 소개해 줬다.김 씨는 우선 사기행각을 위한 밑작업으로 현직 검사, 총경급 경찰, 언론인 등에게 금품을 뿌렸다. 박영수 특별검사에게는 포르쉐 차량을 제공했고, 박 특검으로부터 소개받은 이 모 부장검사에게는 고가의 시계와 현금 등 수천만원대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수산업자라며 대게, 전복 등 고가의 수산물을 선물로 보내 친분을 쌓는 수법을 썼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총책임자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도 자택으로 수산물을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수산물 매매 사업 투자를 미끼로 116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4월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구속된 김씨가 검찰에 송치되기 전날 경찰에 자신이 검사와 총경급 경찰 간부, 언론인 등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하면서다.경찰은 이 부장검사와 배모 총경,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엄성섭 TV조선 앵커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청탁금지법은 청탁 금지 대상자가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받을 경우 처벌받는다. 지역 정치인 중에서 사기꾼 김씨를 만난 주호영·홍준표·김정재 의원은 모두 그의 말과 행동에 의혹을 느껴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중진의원인 김무성 전 의원의 형이 80여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사기당하는, 소설같은 일이 벌어졌다. 탐욕은 사람의 눈을 가린다.그렇게 보면 이번 사건도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란 세평이 가슴을 울린다.

2021-07-08

무관용 원칙

1982년 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제임스 윌슨이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 이론’은 이후 사회 각 분야의 논리적 근거로 활용되는 등 꽤 높은 반응을 얻었다.이론의 내용은 간단하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작은 무질서 상태를 방치하면 더 크고 심각한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1994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이 원칙을 도입하여 가벼운 범죄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를 선언했다.뉴욕시는 지하철 내 각종 낙서를 지우는 프로젝트를 5년간 꾸준히 전개했더니 뉴욕의 범죄가 50%가량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줄리아니 시장은 노상음주, 방뇨, 구걸, 윤락 등 경범죄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단속을 벌여 우범지역이었던 할렘가의 범죄율도 크게 낮추었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에 인용되던 깨진 유리창 이론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후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뉴욕시의 지하철 낙서 지우기가 뉴욕 범죄율 감소로 이어진 것에 대해 직접적 원인인지에 대한 회의적 반론도 적지 않게 나왔다.그러나 깨진 유리창 이론이 사회 질서 유지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문재인 대통령은 수도권 중심으로 확산되는 코로나 예방을 위해 방역지침 위반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라 지시했다. 위급한 코로나 상황에서 당연한 조치겠지만 당국의 거리두기는 그대로 두고 단속에만 급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단속만 강화하고 사태가 호전되길 바란다면 인디언 기우제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7-08

느티나무는 그늘 궁전을 만들고

고향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는 시원하고 그늘이 많아 사람들이 자주 모였다. 농사일이 바빠도 틈틈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어머니들만의 사랑방이었다. 그늘 따라 놓인 평상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있었다. 구수하고 달달한 삶은 옥수수, 하얀 분이 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는 아이들을 나무 아래로 불러들였다.느티나무는 적게는 수백 년, 많게는 천 년을 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다. 수령이 천 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 시간을 어찌 견디며 살아내고 있을까. 궁금해 길을 나섰다.천 삼백 년 동안 사는 나무를 한 시간 만에 만났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고속도로에 차를 얹으니 금방이다. 도착했다는 안내 음성에 따라 농로 갓길에 주차했다. 아, 저기 저 나무가 느티나무구나, 늘 티를 내는 나무라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마음이 급해진다. 먼저 나선 걸음이 마음을 챙겨 한걸음에 다다랐다. 숨을 고르며 나무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몸을 낮춘다. 나무는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자라고 있었다. 천 삼백 년이라는 숫자 앞에 내가 움츠러들었다. 어깨를 펴고 나무를 올려다본다. 느티나무의 모든 줄기는 초록 물이 터질 듯 줄기차게 자라고 있었다.벤치에 앉아 나무를 향했다. 느티나무의 품은 어른 대여섯 명이 안을 만큼 널찍하다. 천년하고도 사십삼 년을 산 나무의 몸통이 참으로 옹골차고 매끈하다. 나무는 천 삼백 년 동안 땅속에 뿌리를 내려 끊임없이 물길을 찾았을 테고, 그런 다음에는 크고 작은 줄기에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바빴겠다. 사방으로 뻗은 느티나무의 가지와 이파리들이 단정하다. 잎잎이 사분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디서 불어온 바람이 슬렁슬렁 이파리를 휘감고 툭툭 치며 건드린다. 이렇게 흔들리며 뿌리를 내리고, 그늘을 만들며 오늘을 건너는 중이다.마땅히 놀 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 동네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아침부터 나무 아래서 술래잡기를 했고, 그러다 심심하면 나뭇가지를 잡고 그네를 탔다. 개구쟁이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는 수십 번 생가지를 부러뜨렸고, 우리들의 팔과 다리는 숱한 날 피멍이 들었다. 그런데도 느티나무는 우리가 숨을 곳을 만들어주었다. 그곳은 벌레들이 나무를 갉아 썩어 구멍이 생긴 곳이다. 어둑하고 좁고 눅눅했다. 웅크리고 앉으면 세상의 소리마저 잠들고 어린 마음에 일었던 잡다한 것들이 평온해졌다.넉넉한 그늘을 만들며 줄기를 뻗는 나무 아래 있으니 어머니 품에 든 듯하다. 느티나무는 가지가 마음껏 자랄 수 있게 햇볕을 모으고 바람을 불러들인다. 때로는 옹이가 생기는 상처가 나더라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감내하는 인고의 세월에도 제 줄기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낸다. 우리네 어머니가 그렇다. 자식의 상처를 보듬고 새살이 날 수 있게 보듬는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주고도 무언가를 더 내어 줄 게 있는지 팔을 뻗는다.나무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가지 따라 내 눈길도 느릿하게 따라간다. 느티나무 몸통 한 부분에 멈춘다. 싱그럽고 푸른 나무에 거무튀튀한 색깔의 상처가 생뚱맞다. 썩어 구멍이 난 자리에 무언가를 가득 채워놓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것이 생각났다. 가로수의 썩은 곳을 메꾸는 작업이었다. 주로 시멘트나 건축용 자재로 쓰이는 우레탄폼을 넣어 부풀렸다. 이곳 느티나무에도 우레탄을 넣어 수술한 흔적이 있다. 이순혜​​​​​​​수필가 한참을 나무 아래 머물렀다. 이쯤이면 벌레들이 내 몸을 괴롭힐 만도 한데 오히려 몸이 가뿐하고 머리가 맑다. 느티나무 그늘엔 모기가 살지 못하고 해충들이 적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나무 아래 아이들을 재워놓고 어머니들은 느티나무 사랑방에서 눈물, 콧물 흘린 시집살이를 견뎠다. 느티나무는 우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맵디매운 시집살이 고달픔을 듣고 함께 아파하느라 속울음 했을 나무에 벌레조차 항복했나 보다.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이 손짓한다. 빽빽하게 뻗은 줄기는 엎치락뒤치락하며 한낮의 햇볕을 막아준다. 천 삼백 년 동안 나무가 기록한 숱한 이야기가 풍경에 그득하다. 이파리 하나하나를 탐독하며 나무의 시간을 읽는다. 넉넉한 그늘을 일부러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니 궁전처럼 넓고 시원한 그늘이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기 위해 기록한 수많은 이야기를 다 읽지 못하고 띄엄띄엄 넘어간다.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던가. 흔들리지 않고 자라는 나무 또한 없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흔들리지 않은 삶은 가슴이 뛰지 않음이다.

2021-07-07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다

양태순수필가 이삿날을 잡았다. 날은 자꾸 가는데 마음만 분주할 뿐 몸이 선뜻 움직이질 않는다. 창고를 열어보고 방마다 기웃거린다. 자리를 차지한 물건을 보고 엄두가 안 나서 다음으로 미룬다.창 너머 펼쳐진 바다를 본다.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점점이 하얀 돛이 남실댄다. 푸른 바다와 흰 돛이 어우러진 풍경은 나를 먼 나라의 호수로 데려간다. 햇살은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고, 백조가 솔솔바람이 수면을 미끄러지며 만든 물결을 타는 모습이 숨 막히도록 고요하다. 곧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고대하며 지켜본다. 자꾸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마른다. 마른 침을 넘기며 제발, 제발 하는데 소음이 귀를 때린다. 환상을 깨트리는 제트스키의 우렁찬 출발 소리다.나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고 있다. 이집을 첫눈에 반한 이유가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과 구름의 변화무쌍함을 잘 담아내는 바다다. 때로는 바다가 파랗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검푸른 날이 있고 너무 반짝여서 투명하게 보이는 날이 있는가 하면 파랗고 파래서 손톱에 물이들것 같은 날도 있었다. 오늘같이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로 데려가는 날도 있다. 멀리서 작은 물결이 물기둥을 밀어 올려 하얗게 해안으로 달려와 모래를 데려가는 날이면 나도 따라가고 싶어 들썩이기도 했다. 그 어떤 모습도 다 좋았다.집을 떠나려니 미련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이사 와서 이십 년 넘도록 살았다. 해와 달을 넘기며 나쁜 일도 있었지만 기쁜 날이 더 많았다. 십 년 동안 이삿날을 기념하며 작은 파티를 했고 불빛축제에 넋을 놓았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슈웅’ 올라가 펑펑 터지며 바닥을 향해 뿌려지는 형형색색 빛의 아름다움에 와, 와 감탄사를 나누었던 시간이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같이 한 집, 언제나 가족과 단란했던 순간들로 남아 있을 집이다.마음을 다잡아 안방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을 꺼내 남길 것과 버릴 것을 분류했다. 옷을 들고 달막거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몇 무더기 쌓이며 끝이 났다. 다음은 서랍 속 물건들을 꺼냈다. 옷보다는 수월하게 정리되고 있었는데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앞에서 손이 멈췄다. 결혼식과 아이들 유치원 재롱잔치를 녹화한 것이었다. 이것이 여기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말랑해졌다.하던 것 버려두고 비디오를 돌렸다. 화면에 나온 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원복치마가 살짝 들려서 속옷이 보일락말락 한다. 그저 귀여워 웃음이 났다. 짧은 동요를 연주하는 내내 리듬을 타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기계음을 낸다. 저 때부터 저랬구나, 잘 웃지 않고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했구나. 지금껏 변하지 않은 딸에게 미안했다. 나는 크면서 변할 줄 알고 끊임없이 격려하고 끌어당겼다. 조금만 연습하면 나아지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어설픈 엄마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남은 것은 나중에 보려고 주섬주섬 상자에 담았다.마음이 무거워 몸을 일으켰다. 커피를 마시며 둘러보니 난장판이다. 다른 곳은 다음으로 미루고 봉투에 쓰레기가 된 물건들을 담아 분리수거장으로 내리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며칠 동안 창고와 아이들 방, 부엌을 정리하는데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한두 번 손이 가고 다시 찾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언젠가는 쓰겠다고 모아둔 본품에 딸려온 사은품이 생각보다 많았다. 쓰레기로 전락한 물건들이 꼭 필요했을까? 저 많은 쓰레기가 마음속에 고여 있는 욕심의 크기인가 싶었다. 민낯을 보인 내 모습이 부끄러워 손부채질을 했다.요즘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아마도 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것, 기본적인 것이 단출할수록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것저것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품을 키우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을 알아버려서다. 나는 이삿짐을 싸면서 버려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했다.바다는 데리고 가야겠다. 이 집에서 엮었던 우리만의 이야기도 겹겹이 싸매서 마음 창고에 담아가기로 한다. 대신 허황되고 헛된 욕심은 버리는 물건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보낸다. 이사한 집에서는 미니멀라이프를 꿈꾼다.

2021-07-07

표리부동 대한민국

장규열 한동대 교수 조심스럽다. 나라에 대해서 생각을 적어 내리는 일은. 보이는 그대로 적는다 해도 세상이 그렇게 읽어주지 않는다. 사회가 이념과 성향에 따라 두 쪽으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나름 긍정적이라 해도, 소모적인 언쟁과 피곤한 정신소비에 이르기 일쑤다. 누구를 만나도 살피게 되고 무엇을 이야기해도 편하지 않다. 당신이 어느 편인가 늘 궁금하고 끼리끼리만 모이게 된다. 사회적 통합은 멀어만 가고 패거리 문화만 춤추고 있다. 우리만 그런가 궁금했더니, 바다 건너 사정도 엇비슷한 모양이다. 인간의 본성일까 배워박힌 습관일까.칸느영화제를 우리 봉준호 감독이 열었다. 한국영화가 글로벌은막을 물들이는 중이다. BTS는 빌보드 수위를 6주째 달리고 있다. 음악과 의미로 세계를 매료시킨다.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가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그룹으로 승격했다. 193개 유엔 회원국 만장일치였으며 이런 승격은 유엔 최초였다고 한다. 지구와 환경을 살리자는 녹색미래성장회의 P4G를 국내에서 열었다. 나라는 세계의 신뢰와 신용을 쌓는 중이다.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사뭇 앞서가고 있다. 밖에서는 그렇다 치고,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나라는 갈등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다. 싸우며 자라는 이치가 있지만, 그 까닭이 상식을 벗어나 고집에 이르면 보기에도 딱하다. 세대 간 갈등과 성별 간 긴장은 문화적 배경과 경제적 고민이 있어 정책입안에 전문적인 자문이 필요할 터이다. 이념적 차이로 몰고가기보다 사회통합적 접근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쉽게 진영 간 다툼으로 불거져 나온다. 해방 직후 미군정의 성격은 점령군이자 해방군이었다. 이후 전개 과정에서 이념적 충돌이 존재했지만, 이제 와 이념 갈등의 빌미로 삼을 일은 아니다. 소모적 논쟁에 빠지기보다 역사로부터 배울 것을 챙겨야 한다.힘겹게 달려온 끝에 오늘 모습은 어떤가. 오늘까지 오는 길에 모두 기여하였다. 패착이 있었다면 함께 성찰할 일이다. 특정 집단이나 진영이 성과를 독점할 까닭도 없으며 송두리째 비난받을 어느 편도 없다. 보수와 진보가 끝내는 같은 편임을 기억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국민에게는 이념보다 ‘오늘 저녁’과 ‘내 가족’이 중요한 게 아닌가. 이념에 갇히면 삶을 잃어 버린다. 개념으로만 성공한 정치는 없다. 실용에 도움이 되는 방도와 정책을 찾아야 한다.밖에서 보는 만큼 안에서 생각해도 그럴듯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지표로도 발견되고 삶에서도 실감나는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괜찮은 모습을 공연히 비난하여 깎아내리지 말아야 하고, 숫자로만 허장성세를 부리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 겉에서 보거나 안에서 발견하는 살 만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초보운전’ 선진국. 갈 길이 멀다. 표리가 부동한 나라의 상태를 솔직하게 보아야 한다. 이만큼 왔으니, 다시 목표를 정해야 한다. 표리가 일치하는 대한민국을 겨냥해야 한다.

2021-07-07

장외주식

장외주식이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주식으로 증권시장 밖인 ‘장외’에서 거래되는 주식을 가리킨다.장외 주식은 상장요건을 못채웠거나, 요건을 채웠으나 준비중인 경우가 보통이다. 장외거래 주식은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상장됐을 때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고평가돼 거품이 낀 경우도 있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장외주식은 38커뮤니케이션, K-OTC, 증권플러스 비상장 등 다양한 장외거래 사이트를 이용해 거래해야 한다. 38커뮤니케이션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이트로 거래량이나 종목 수도 많고, 매수 매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직접 가격협상을 진행해야 하고, 공인된 협회나 플랫폼이 아니어서 사기를 당해도 구제받을 수 없다. K-OTC는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개설해 운영하는 곳으로 믿을만한 사이트이지만 거래 가능한 기업 수가 134개 정도로 적다는 게 큰 단점이다. 카카오뱅크나 크래프톤 같은 인기종목은 거의 없다. 장외주식 거래방법은 거래를 원하는 종목을 정하는 게 우선이다. 이후 해당 종목의 시세를 매수가격과 매도가격을 모두 검색하고, 적정 매수가나 매도가를 산출한 뒤 연락을 취해 거래가격과 수량을 협상해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매도자가 먼저 매수자에게 주식을 이체하고, 매수자는 대금을 매도자에게 지불한다. 주식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선입금하면 안된다. 무엇보다 장외주식은 기업분석이나 투자정보를 얻은 뒤 주식가격이 뻥튀기 되지는 않았는 지 면밀하게 분석한 뒤 투자해야 한다.동학개미운동에 힘입어 뜨거운 관심을 받고있는 장외 주식시장 역시 투자에 따른 손실부담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7-07

교육계에도 ESG 정보공시 의무화를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 “지속가능성을 투자의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 (….)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를 달성할 수 있는 사업계획을 공개하라. 기업 비즈니스 모델을 넷제로 경제와 어떻게 결부시킬지(….)”세계 최대 자산운영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투자기업 CEO들에게 보낸 서한 중 일부이다. 래리 회장의 서한은 전 세계 기업의 경영 방향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여기서 넷제로(Net-zero)란 지구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가 균형을 이룬 상태, 즉 탄소중립을 의미한다. 세계 경제계의 큰손인 래리 핑크 회장의 서한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도록 만들었다.그럼 ESG란 무엇인가?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기업이 얼마나 친환경적인 활동을 하고, 또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나아가 지배구조에서 어느 정도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ESG는 개별 기업을 넘어 지구의 운명을 가를 키워드로 부상했다.ESG를 좀 더 쉽게 말하면 지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다. 지금까지 기업은 지속 발전 가능과는 거리가 먼 경영을 해 왔다. 기업은 내가 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그 기술이 기업도 살리고, 또 인간의 삶을 편하게 만들었다. 편함에 길들어진 인간은 더 편한 것을 원했고, 기업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 중심의 기술 개발에 더 박차를 가했다.인간이 기술과 편함의 노예가 되어가는 동안 지구 생태계는 거의 회복 불능의 상태로 변했다. 지구 생태계는 인간 생존과 직결된다. 생태계 파괴는 곧 인간 파멸을 의미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래리 핑크 회장과 같은 이들이 지구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나섰고, 기업들도 이제 ESG 경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의 명운을 걸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ESG 경영을 시작한 기업과는 달리 소비자들의 행동은 굼뜨기만 하다. 그 이유는 그들을 교육하는 교육계의 문제다. 아직도 이 나라 교육은 입시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래리 핑크 회장처럼 경북교육청에서 환경교육에 대해 실질적인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경상북도교육청연구원은 ‘탄소 ZERO’ 실천으로 종이 인쇄물 대신 웹매거진으로 ‘좋은 Gyo6 나눔’이라는 교육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7월 주제는 생태환경교육!다음은 경북교육청에서 환경교육을 담당하는 박경애 장학사의 원고 중 일부이다. “기후 위기는 미래에 대한 기우가 아니라 현재의 재난으로 가시화되고 있으며 이제 환경문제는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류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기후 위기 환경재난에 대한 대처 방안을 경상북도교육청은 환경교육에서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경북교육청이 추진하는 환경교육이 지구를 살리는 ESG 교육모델을 꼭 제시하기를 기원한다.

2021-07-07

대선후보의 ‘공정 사회’ 담론 평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 대선 후보 20여 명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졌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출마 선언은 ‘공정 사회’ 건설에 집약되고 있다. 대체로 대선 후보의 공약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잘 반영해야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여당 이재명 후보는 ‘공정과 성장’을 통한 ‘희망민국’ 건설을 약속했으며 야권의 윤석열 후보는 ‘공정과 상식’을 전면에 걸고 있다.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는 공정의 가치실현을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도에 모아지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사람 우선의 사회’가 공정의 가치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반증한다.10여 년 전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사회 철학자 마이클 샌델 교수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당시 ‘정의란 무엇인가’란 저서로 일약 유명해진 그는 한국 방문길에 우리 대학 초청 특강에도 응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의 ‘공정 사회’ 공약도 결국 정의 문제에 귀결된다. 우리 사회는 성장의 그늘 아래 아직도 ‘불공정’ 관행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내가 하면 공정이고 네가 하면 불공정’ 인 ‘내로 남불’ 사회이다. 아직도 가진 자의 횡포가 계속되는 곳에 공정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정의사회, 공정사회의 담론은 철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롤즈는 자유의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기회 균등과 차등의 원칙을 동시에 충족해야 공정한 사회가 된다는 입장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중과하여 해결한다는 것이다.반대로 가난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는 국가가 개입하여 적극 지원한다는 보상 평등주의적 입장이다. 여기에 더하여 왈저는 공정사회는 경제적 가치와 다른 가치도 존중하는 복합 평등주의를 주창한다. 그는 경제적 가치인 돈이 정치, 문화, 교육, 종교까지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노직은 공정사회는 ‘완전한 자유 경쟁’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롤즈를 비판한다. 개인의 소유권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경쟁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성장을 보장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부자에 대한 과중한 세금을 반대하고 국가의 역할은 시장에 관여하지 않고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다 보니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적극 옹호하는 미국 보수 우파의 정신적 토양이 된다. 미국 공화당 트럼프 같은 미국 우선주의, 극우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출케 하는 배경이다.이 같은 석학들의 공정 담론은 각기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이재명의 억강부약(抑强扶弱)은 평등을 강조하는 롤즈의 복지론에 가깝고, 윤석열의 약탈 정권의 자유 회복은 노직의 보수론에 가깝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보수와 진보라는 퇴행적인 진영 논리에 빠져있다. 우리 공정 담론은 이제 형식적 정치적 담론을 넘어 절차를 중시하는 민생 담론으로 넘어가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공정사회 담론이 공약(空約)이 아닌 실질적 담론이 되길 바란다. 유권자들은 이재명과 윤석열의 공정담론의 진정성과 이행 가능성을 엄밀히 살펴야 할 시점이다.

2021-07-07

편광 사회

강길수 수필가 우리 사회는 편광판(偏光板)이 지배하는 사회로 보인다. 언제부터인지 꼭 집어 말하기 어려워도, 사회가 자연광 대신 편광으로 점철되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편광은 ‘한정된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빛’으로 사전은 정의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빛을 얻기 위해서는 적합한 편광판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니까 편광판을 통과한 빛은 한 방향으로만 간다는 말이다. 과학기술계나 산업계에서는 편광을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전자제품의 디스플레이, 편광안경, 편광현미경 등 용도가 많다.자연광은 모든 방향으로 진동한다고 한다. 자연광 같은 사회가 정상적인 자유 민주주의사회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어우러져 푸른 숲처럼 살아있는 사회가 자연광 사회일 것이다. 일방통행만 있는 편광사회는 어떨까. 생각하기조차 싫은 곳이다. 일방통행식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과 갈등, 싸움으로 번져 서로 불행하게 하는지 우리는 익히 보며 살아간다.내 눈에 비친 우리 사회는, 국민과 상대편을 무시하고 일방으로만 가는 편광이 판치는 사회다. 정치인들은 말로만 국민을 팔 뿐, 자기나 자기편의 이익과 유불리만 따지며 편광판이나 편광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교육계, 종교계, 문화계, 관료, 공공기관 종사자 등 사회 전 분야가 정치판의 편광춤사위의 유혹에 마취당하고 있다 싶다.일례로 국민연금은 적자가 예상되어 손 봐야 한다면서 이미 천문학적 적자가 누적되어 엄청난 액수의 혈세를 보태어 주고 있는 공적연금을 고쳐야 한다는 논의는 근자에 들어본 바가 없다. 오래전 한 대학교수가 ‘본인도 공무원연금 해당자이지만, 적자나 사회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공적연금은 당연히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 글을 보고 얼마나 시원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때, ‘이런 분이 나라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마음이 저절로 외치고 있었다.주류 언론이 편광판 역할을 억척스레 해내는 곳이 또한 우리 사회다. 지난해 총선이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주장과 그 송사가 지역구마다 숱하게 일어나도 주류 언론이 제대로 다루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주류 언론이 편광판 역할만 해대고 있으니 다수의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진실을 알고 균형감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국민은 풍문이나 유튜브 사이트를 찾아 듣고 볼 수밖에 없는 편광세상이다.군사독재만 독재일까. 일방통행 편광사회도 독재가 분명하다. 독재사회는 자유민주사회가 아니다. 양방이동통신 시대를 살아도 국가사회의 의사결정이 한 사람이나 어느 한 편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독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의 편광판은 무엇이며, 몇이나 될까. 좌, 우파 이념일까. 권력일까. 돈일까. 6·25남북분단이나 북한일까. 5·18민주화운동일까. 세월호 사건일까. 헷갈린다.사회를 지배하는 편광판이 뭐기에 침묵하는 다수 국민은 짙어만 가는 사회편광현상에 불안하다. 진정 나라와 겨레를 위해 편광사회를 자연광사회로 돌릴 지혜로운 리더가 그립다. 국민이 공동체로 어우러져 살아갈 희망의 길, 자연광사회의 길을 열어줄 정치 또한 그립다.

2021-07-06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7월 1일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1921년 7월 초하루 상해에서 13명의 대표와 50여 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중국 공산당이 100년의 역사를 맞은 것이다. 2021년 7월 중국 공산당에는 9천200만의 당원이 가입돼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정치집단이 중국 공산당이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72년째 중국을 지배해오고 있다.1949년 이후 공산당은 지도자들에 따라 세 시기로 나뉜다. 모택동이 대표하는 첫 번째 시기는 1949년부터 1976년까지다. 영국을 뛰어넘어 미국을 잡겠다는 구호를 내세웠던 시기다. 하지만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진행된 대약진운동으로 최대 4천만에 이르는 인민들이 굶어 죽었다. 아울러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대혁명으로 150만에 이르는 사람이 죽고, 360만의 박해자가 나온 참담한 시기였다.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주창하면서 시작된 두 번째 시기는 ‘도광양회’로 표현된다.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권력의 사유화를 방지했던 시기다. 등소평의 뒤를 이은 강택민과 호금도 역시 은인자중 힘을 길러갔던 개혁과 개방의 시기다. 이 시기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우주선 신주(神舟)와 우주정거장 천궁(天宮)의 발사 성공과 2008년 북경 올림픽이다.2013년부터 권력 최고봉에 오른 습근평의 시대가 세 번째 시기다. 습근평은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여 2018년 국가주석 3연임 금지를 헌법에서 삭제하여 황제 등극을 기정사실로 만든다. ‘도광양회’ 대신에 그가 도입한 외교정책은 ‘전랑(戰狼)외교’로 불린다. ‘늑대 전사’라는 의미를 담은 전랑외교에 따라 중국은 힘을 앞세워 다른 나라들을 상대하고 있다.습근평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인 2049년에 ‘중국몽’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의미하는 중국몽의 실현 방도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제시된다. 21세기판 실크로드로 중화민족의 야망을 세계 전역으로 확산하려는 것이 ‘일대일로’의 핵심이다. 홍콩의 민주화운동 억압과 신장-위구르와 티베트의 무자비한 탄압도 같은 맥락을 가진다.이 시점에서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 ‘중화 민족주의’의 발흥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뚝한 민족으로 중국 민족을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 중화 민족주의 고갱이다. 민족주의는 수세에 몰리는 때에는 해당 민족을 구원하고 독립을 쟁취하는 토대로 작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공격적이고 약탈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면 주변 세계와 불화와 반목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극단적인 대립과 충돌 양상을 불러온다.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주의와 제3 제국이 불러온 2차 세계대전과 그 참상을 돌이켜 보라.중국이 요즘 미국과 벌이는 일련의 대결과 충돌 양상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 1위 자리는 타민족들과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임을 중국 공산당과 습근평 주석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2021-07-06

희망의 청포도 익히는 칠월을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장맛비 그친 하늘 위에 / 구름꽃 둥둥 피어나고 / 풀벌레 소리높여 노래하는 // 할머니 모시저고리보다 / 햇빛이 더 짱짱한 칠월 // 피자두 적포도 청포도 복숭아 / 한입 물면 새콤달콤한 달 /바람이 인색하게 불어도 /넉넉하게 살찌우고 가는 칠월”‘현대 시인 중에서는 흔치 않게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시의 계보를 이어간다고 평가받는’(이 평가는 책소개에서 그대로 인용하였다.) 이수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녀 초승달 따다’(2008, 북스토리)에 실린 시 ‘7월’에서는 넉넉한 7월을 풍요롭게 그려주고 있다.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절반을 시작하며 희망과 소생을 새롭게 다지는 달이 7월이다. 보통은 6월 중하순 경에 시작하는 장마가 7월 중순이면 끝나고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에 풀들은 더욱 짙은 빛을 띠고, 각종 열매는 영글기를 시작하는 달이 7월이다.그런데, 올해는 예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6월에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가 7월 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7월에 시작되는 ‘지각 장마’는 39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6월에도 비가 잦았지만, 올 6월의 비는 장맛비가 아니라고 하니 문외한인 나로서는 기상 전문가가 말하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겠다. 눅눅하고 꿉꿉하게 7월이 시작된 것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은 희망의 전령사 역할을 하였다. 백신 접종이 원활하게 진행됨에 따라 방역 당국에서는 7월이 되면 사회적 거리두기도 조금 완화할 예정이었는데, 변이 바이러스라는 암초에 걸려 다시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연을 제맘껏 누리는 것을 넘어 훼손시키고 파괴하였던 인간들에게 자연은 아직 더 깊은 반성과 낮아짐을 요구하는 것이리라.세계적으로도 7월은 많은 나라들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준 달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160여 개 나라의 독립기념일 또는 건국기념일이 열두 달 중에서 가장 많은 달이 7월이다. 1월에는 네 개 나라에 독립기념일이 있어 가장 적고, 7월과 8월이 각각 23개 나라로 독립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 이 두 달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7월에 있고(4일), 베네수엘라(5일), 아르헨티나(9일), 콜롬비아(20일) 등의 남미의 국가나 르완다(1일), 소말리아(1일), 알제리(5일), 라이베리아(26일)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기념일이 7월에 있다. 그런데 독립기념일 또는 건국기념일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실제 독립이나 건국 또는 국가적인 새로운 전환을 기념하는 날인 캐나다의 날(7월 1일), 프랑스 혁명기념일(7월 14일)을 포함하면 7월이 25개 나라로, 열두 달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의 독립기념일이 7월에 있는 셈이다.눅눅하고 축축한 장마로 시작된 7월에 변이종 바이러스가 다시 엄습한대도 꿉꿉한 마음으로 있지는 말자. 희망을 놓지 않을 일이다. 그럴 때에 7월은 이육사 시인이 ‘청포도’에서 노래한 것처럼,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힐 것이다.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하여 알알이 희망의 포도송이 가득 쥐는 7월을 만들어 가자.

2021-07-06

추로지향의 도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지역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다.우리나라에서는 경북 안동 도산과 영주 순흥을 이 표현에 적합한 도시로 손꼽는 이가 많다. 영주는 고려 때 성리학을 중국으로부터 처음 도입한 안향 선생의 고향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 세워진 곳이다. 안향 선생의 성리학은 조선시대 통치사상으로 이어지며 퇴계 이황에 이르러 학문의 절정을 이룬다.당시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사학과 같이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안향의 학문적 영향이 살아 숨쉬는 영주가 지금도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안동은 조선 최고의 사상가이자 교육자, 정치가인 퇴계 이황의 고향이다. 동양의 주자라는 퇴계는 율곡 이이와는 쌍벽을 이루는 조선시대 대학자다.조선조 정조가 퇴계의 치적을 말하며 그의 고향 안동을 추로지향이라 불렀다. 또 공자의 77대 종손인 공덕성이 도산서원을 방문해 추로지향이란 글을 남긴 것도 그의 학문적 위업을 알게 하는 내용이다.안동시는 2006년 7월 4일 안동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정하고 특허 등록을 했다. 안동이 가진 다양한 역사와 문화유산이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중심에 있음을 표방하고 그 정신을 온 국민과 함께 공유하겠다는 의지로 만든 도시 브랜드다.안동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앤드류 왕자의 방문과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의 부자 방문 등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외국 국빈 방문이 잦은 곳이다. 안동이 가진 문화적 특성이 외국인의 눈에는 가장 한국스럽게 보였을지 모른다.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를 표방한 지 15년이다. 경축할 만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7-06

월지를 통해 본 신라의 조경과 경관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는 1974년 경주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연못 준설을 포함한 주변 정화사업을 시행하던 중 못 내에서 다량의 와전류와 함께 호안석축이 일부 확인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준설공사를 중지하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을 결성하여 1975년 3월 25일 본격적으로 발굴조사에 착수하였으며, 1976년 12월까지 총 2년에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총 면적 15,658㎡에 이르는 큰 연못과 그 안에 있는 3개의 섬, 연못 안으로 물이 출입하는 수구시설, 그리고 연못의 서편과 남편에 총 31동의 건물지가 조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후 1977년부터 3동의 건물을 포함한 건물지와 연못의 호안석축 복원 및 조경 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그렇다면 동궁과 월지에 조성된 연못은 어떻게 축조되었을까? 연못과 섬의 외곽에는 돌을 여러 층 쌓아 벽을 만들었는데, 이를 호안석축(湖岸石築)이라고 한다. 호안석축은 각 부분의 자연 지형과 용도를 고려하여 축조되었다. 연못의 동쪽과 북쪽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곡선으로 축조되었으며, 서쪽과 남쪽은 직선으로 축조되었다. 그중 직선으로 축조된 서안석축에서는 총 5동의 건물지가 석축과 연접하여 축조되었는데, 현재는 3동의 건물지(제 1·3·5건물지)가 복원되어 있다.호안석축은 자연석과 가공석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각 부분마다 축조방식의 차이가 있다. 특히 물에 잠기는 부분과 물 위에 노출되는 부분의 축조방법을 달리하여 조경 효과를 주었다. 먼저 건물지와 연접해 있는 서쪽 호안은 연못의 물에 잠기는 부분은 자연석으로 면만 맞춰 쌓았으며, 수면 위에 노출되는 부분은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축조되었다. 다음으로 건물지와 연접해 있지 않은 서쪽 호안과 3개의 섬은 장방형의 가공석으로 축조하였고, 석축의 아랫부분에 굄돌을 배열하였다. 그 외의 부분은 물에 잠기는 부분은 가공석으로 쌓았으며, 수면 위에 노출되는 부분은 조경용으로 자연석을 드문드문 배열하였다.또한 연못의 서쪽 호안석축은 이중으로 축조되었는데, 단이 낮은 아랫부분에는 화단을 설치하여 조경 효과를 주었다. 이 외에도 각 건물들의 축조 위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연못의 서쪽 호안과 인접해 있는 건물들은 일렬로 축조되지 않고 각각 사선으로 축조되었다. 따라서 어떤 건물에서도 월지의 조망을 해치지 않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연못에는 외부의 물을 연못 안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입수구(入水溝)와 연못 안에 있던 물을 다시 외부로 배출시키는 출수구(出水溝) 시설이 있다. 입수구는 동안석축과 남안석축이 만나는 지점에 있고, 출수구는 북안석축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먼저 월지의 외부에 있던 물이 입수구를 통해 연못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연석과 가공석으로 만들어진 수로와 석조유구, 그리고 작은 연못을 지나면서 불순물이나 토사가 걸러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화된 물은 계단 모양으로 된 폭포시설을 거쳐 최종적으로 연못 안으로 들어간다. 이 때 입수구 근처에 있는 큰 섬으로 인해 폭포시설을 거쳐 거세진 물의 유압을 억제하여 완만하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연못 안에 물이 가득 차면 출수구를 통해 연못 밖으로 물을 내보낼 수 있다. 2단으로 쌓은 장대석 중앙에 약 15cm의 구멍을 뚫어 나무로 만든 물마개를 꽂아 물의 양을 조절하였다. 또한 출수구를 통해 외부로 흘러 나가는 물의 위치를 고려하여 바닥에는 장대석을 깔았는데, 이는 바닥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출수구에 우진각형 지붕돌을 씌워 의장까지 고려하여 조경 효과를 주었다. 황지수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하지만 월지의 수구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많이 오거나 물이 장기적으로 고여 있어 녹조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연못의 배수 문제가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가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당시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 잡지 직관조에 월지의 조경과 관리를 담당했던 부서로 추정되는 ‘월지악전(月池嶽典)’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관리 시스템이 갖춰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연못의 물은 월지 북쪽 기찻길이 있는 곳에 당시 신라의 인공천인 ‘발천(撥川)’을 통해 남천으로 흘러갔을 것으로 연구자들 간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월지와 그 주변이 개발되는 시기에 궁궐인 월성에서도 배수 시설이 없던 해자에 석축을 쌓아 정비했다는 점이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월지와 월성을 포함한 이 지역 전체의 배수체계도 계획적으로 정비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이처럼 동궁과 월지의 경관 조경은 각 공간마다 의미를 부여하여 축조되었다. 특히 연못과 연못에 인접해 있는 건물지 및 섬의 축조 위치에 따라 개방성과 폐쇄성이 반복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막힘과 열림의 효과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동궁과 월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연못과 연못 주변의 건물지를 중심으로 둘러보는데, 연못이나 건물들의 축조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고 관광한다면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2021-07-05

같은 주제 다른 해석: 미술사 속 ‘최후의 만찬’

미술사를 즐기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거장들의 생애를 쫓아가며 대표작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고 미술사에 여행을 곁들여 보는 것도 좋다. 세계 주요 미술관들을 방문해 오리지널 작품의 아우라를 만끽하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다. 고대신화를 읽어가며 미술가들의 상상력에 푹 빠져보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미술사를 즐기는 또 다른 흥미로운 방법을 추천하자면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 각 시대 대표작들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다. 동일한 주제를 달리 해석하는 미술가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술사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양미술사에 자주 등장하는 기독교 도상으로 ‘최후의 만찬’이 있다.최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바로 전날 열두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저녁식사를 가리킨다. 예수는 제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빵은 예수의 몸을,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린 그의 피를 상징한다. 예수는 타락한 인류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을 당했고, 죽음을 이기고 사흘 만에 부활해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처럼 최후의 만찬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신학적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예수의 생애라는 큰 주제 속에서 자주 나타난다. 최후의 만찬이 특히나 자주 그려진 곳은 수도사들의 식당 레펙토리움(refectorium) 벽면이다. 그 이유는 어렵잖게 짐작이 된다. 최후의 만찬이 지닌 신학적 의미를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수도사들의 매 끼니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이라는 현재성을 불어 넣기 위함이다. 이탈리아의 고도 라벤나의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벽면은 6세기경 제작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예수의 행적을 묘사한 모자이크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다. 말발굽처럼 생긴 식탁 주위로 예수와 제자들이 촘촘하게 앉았다. 등장인물들의 의상에서도 그렇지만 비스듬히 기댄 모습이 고대로마의 풍습을 따르고 있다. 식탁 위에는 빵과 포도주 대신 물고기가 나타난다. 물고기에는 여러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항구 도시 라벤나 사람들의 식탁에 주로 올랐을 친근한 현지 음식이기 때문에 그려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1320년경 화가 피에트로 로렌체티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아시시의 산 프란체스코 교회 천장에 그려져 있는데 화가는 둥근 식탁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인물배치는 물론이고 공간암시에 특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흥미롭게도 시중드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화면 좌측 별도의 공간에는 설거지하는 인물들도 나타난다. 미술가의 상상력이 슬쩍 묻어나는 것을 보면 중세적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르네상스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벤나와 아시시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을 감상했다면 이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앞 선 두 그림과 르네상스 거장의 걸작을 비교해 보면 이것이 화면구성, 공간묘사, 인물표현, 행위묘사, 심리암시 등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미술작품의 미술사적 가치와 평가는 항상 상대적이다. 우열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비교를 통해서 작품의 고유한 특징이 분명하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에도 또 그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최후의 만찬이 그려졌는지 모른다. 이들을 채취해 종적, 횡적으로 위치시켜 보면 성서에 기록된 하나의 사건이 시대와 미술가에 따라 얼마나 달리 해석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표현과 해석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해 보면 미술사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다./미술사학자

2021-07-05

잘못은 할수록 쉬워진다

좋아하는 연예인 한 명이 프로포폴 불법 투약혐의로 처벌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과거 마약류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었던 연예인이라 실망이 컸다. 실망감이 더욱 큰 이유는 그의 불법약물 투여가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상습적이었다는 것이다. 처음 한 두 번은 몰라도 언젠가부터는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범죄를 행했을 것이다. 과거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지탄받고 있는 쌍둥이 배구선수에 대한 비판의 날이 더욱 날카로운 이유도 그들의 학교 폭력 행위가 한두 번 실수가 아니라 상습적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흉기까지 들고 언어폭력을 가했을 만큼 죄질이 나빴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그러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소한 폭력행위에 익숙해지다보니 점점 더 가혹한 학교폭력을 저지르게 되었을 것이다.얼마 전 예전에 친했던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거의 십 년 만의 기별이었다. 참 좋아했던 형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백수야, 잘 지내? 형이 통 연락도 못해서 미안하다.”“아니에요 형, 이래저래 사느라 저도 연락 못드려서 죄송해요. 형은 잘 지내세요?”“응 잘 지내고 있었는데 최근에 일이 좀 있었어. 설명하자면 좀 긴데...”그때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형의 다음 말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혹시 너 돈 가진 것 좀 있니? 일이십 만원이라도 좀 빌려줄래?”멀쩡히 회사 잘 다닌다고 들었던 형이 돈 일이십 만원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십 년이나 연락하지 않은 내게 연락이 왔다는 것도 놀라웠다. 매달 따박따박 월급 받으며 살았던 사람이 무슨 사정이 있어 일이십 만원이 없단 말인가. 그리고 나에게까지 연락을 했다면 도대체 자기 주변에서는 돈을 얼마나 꾸고 다닌 것일까. 그때 그 형의 기질 하나가 떠올랐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해도, 당구장에서 당구를 쳐도 형은 꼭 1, 2만원씩 내기 하기를 좋아했다. 섣부른 추측이지만, 이 모든 정황들을 봤을 때 형은 이런 기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했을 때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은 도박에 손을 댔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1, 2만원 내기를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더 큰 내기가 하고 싶었겠지. 아마 한두 번 재미를 봤을 거다. 그러나 도박이란 다 잃어야 끝나는 게임. 깨달았을 땐 너무 늦어있었을 거다.아니나 다를까, 그 형이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패가망신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합법을 넘어 처음 불법의 영역에 닿았을 때는 형도 아마 손이 떨렸을 거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 잘못은 하면 할수록 쉬워져서 나중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동반하지 않게 된다.습관이 된 잘못. 내게도 경험이 있다. 예전에 한 일간지에 격주로 음식과 관련된 내용의 에세이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 첫 화에서 나는 나름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에 대해서 썼다. 대학시절 잠시 고시원에 살 때 공용 냉장고에서 남의 반찬을 조금씩 훔쳐서 라면에 넣어보다가, 콩나물 무침을 넣었더니 라면이 맛있더라는 내용이었다. 남의 것 훔친 이야기를 남들 다 보는 일간지 칼럼에 쓸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었다.사실 처음엔 내 반찬에 다른 사람들이 손을 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가 나서 그랬었다. 나도 아껴먹던, 할머니가 싸주신 장조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유력한 용의자라 생각했던 사람 반찬통에서 어묵볶음을 훔쳐 먹었다. 그때는 행여 누가 볼세라 가슴 졸이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 번 그렇게 먹고 나니 그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그 다음부터는 남의 반찬통에서 반찬을 집어먹는 일이 쉬워지고 말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린 나머지 나는 그것을 농담의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스스로 대중매체에 그 이야기를 써내고 만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다음 날 포털이 난리가 났다. 하필 그 글이 양대 유명 포털의 메인에 올랐고, 양 사 합쳐 천 개가 넘는 비난 댓글이 달렸다. 그날 맞닥뜨렸던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과 두려움은 이제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반성이 되어 기억에 남아있다. 잘못이 잘못인 것조차 잊어버리다니, 정말이지 멍청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한 번 쯤 괜찮겠지 생각하는데, 그것이 한 번으로 안 끝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고 과대평가다. 한 번 할 때는 어려웠던 잘못이 두 번째에는 쉬워지고,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지며, 결국에는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된다.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오명을 뒤집어썼을 때는 이미 늦다. 애초에 잘못이다 싶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2021-07-05

참을 수 없는 소유의 무거움

아무 일도 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오지 않는 청탁 전화만 기다리다가 하루가 끝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일 년에 두어 편의 소설을 발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먹는 일도 고심했었다. SNS에 접속하면 가까운 친구들의 소식이 와르르 쏟아졌다. 먼 나라로 여행을 간 친구, 결혼식을 준비하는 친구, 성과급으로 명품 가방을 산 친구, 바쁜 일 때문에 정신이 없다는 친구. 나는 그들의 숨 가쁜 시간을 바라보며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나의 일상을 돌아보곤 했다.그날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었다. 마음이 베이듯 쓰린 순간이 찾아와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일어서게 했다. 글을 쓰는 데는 대단한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밑창이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매일같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노트에 끼적였다.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홀가분하기도 했다. 뭔가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큰 것을 얻고 싶어 안달 내지 않았다. 넘쳐흐르는 시간을 오직 읽고 쓰는 일에만 썼다. 도서관 휴게실에 앉아 꼭꼭 씹어 먹던 도시락과 근처 공원에서 만끽하던 바람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다.지금은 어떠한가. 그때와 비교하자면 삶은 훨씬 안정되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일정한 돈이 있고 쾌적한 오피스텔에서 머물고 있으며 내 명의의 자동차도 생겼다. 고민 없이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며 고마운 지인에게 선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당장 내일의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이러한 일상에 만족스러워하면서도 또 다른 걱정을 느끼고 있다. 오로지 나를 위해 쓰이던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매일 바쁘게 이런저런 일에 치이면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소유하는 물건들도 많아졌다.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들이 생겼고 그것을 감당하는 것조차 내 역할이 되었다.사람들을 만나면 주식이나 코인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집 한 채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온종일 직장에서 일해 봐야 남는 건 하나도 없다고. 이제 겨우 남들만큼 돈을 벌기 시작한 나는 의문한다. 정말 그런가. 건강한 노동으로 벌 수 있는 돈이 제한적이라면 우연에 기댄 일확천금을 노려야 하는 것밖에 답은 없는 것일까.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는 말은 그만큼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냉소적인 농담을 곱씹어본다. 물건뿐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조차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요즘 사회에 만연한 듯하다.일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현대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마주한다. 대표적인 것이 프리터족이다. 자발적 프리터족은 특정한 직업 없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간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자신을 구성한다. 기성세대의 걱정처럼 그들은 단순히 게으른 젊은이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남들만큼 살아가는 것에 두지 않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골몰한다. 유한적인 삶을 그저 노동에 묶인 채 살아가지 않겠다는 신념에 가까운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동시에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좁아져야만 하는 세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타인에게 나눠주는 다정함을 포기하는 것,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대신에 허기를 채우기에 급급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단단한 자존심이 무너져 내려야만 하는 것.나는 이 모든 일을 경험했었다. 가볍고 자유로운 만큼 고독하고 불안해지는 삶과 다양한 것을 누리고 무거워지는 만큼 책임과 구속이 늘어나는 삶.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어제는 내 실수 때문에 자동차 범퍼가 망가졌다. 수리 센터에 가는 내내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까 전전긍긍하며 자책했다. 수리 기사님은 차 상태를 보더니 혀를 쯧쯧 찼다. 그리곤 나를 향한 위로의 한마디를 던졌다. “괜찮아요. 차 끌고 다니려고 돈 버는 거죠, 뭐.” 수리를 맡기고 나오면서 나는 씁쓸한 뒷맛을 삼켰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했고 자의든 타의든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어깨가 무거워졌다.

2021-07-05

혼주의 변신은 무죄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둘째딸 결혼식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안경을 쓰기 시작한 후로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 때까지 안경을 쓰지 않고 사진을 찍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안경 안 쓴 처음 사진은 당연히 30여 년 전 결혼식 때다. 그런데 이번이 더 특별한 것은 속눈썹까지 붙였다는 점이다.큰딸 때는 스몰웨딩이라 평소처럼 니트에 바지를 입고 안경도 당연히 썼기에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연핑크 치마에 아이보리 저고리를 입고 속눈썹까지 붙인 풀메이크업, 거기에 짧은 머리를 올림머리처럼 부풀린 모습은 도대체가 다른 사람 같다. 아마 이 사진작가를 알지 못했다면, 이런저런 하객의 칭찬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신디 셔면, 그녀는 화가로 시작했으나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아티스트다. 신디 셔먼의 모델은 자기 자신뿐이다. 자기만 찍는다. 그런데 찍는 방식이 독특하다. 미리 설명을 듣지 않으면 한 사람이라고 알 수 없을 만큼 분장이 강하다. ‘버스 라이더스’라는 작품은 버스에 탄 여러 여성 승객을 찍었는데, 사실은 다 신디 셔먼이 분장한 것이다. ‘무제 - 영화 스틸’ 연작은 실제 배우와 똑같이 분장했기 때문에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할 정도지만 그 역시 모두 신디 셔먼이다.그러나 그 많은 인물 중에서 신디 셔먼은 누구인가 묻는 것은 어리석을 것이다. 모든 작품 속에 신디 셔먼이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신디 셔먼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의 작품을 평론가들의 해석은 분분한데, 그런 해석과는 상관없이 내게는 섣불리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모든 작품의 제목이 ‘무제’이다.이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까지 화장하기를 한사코 부끄러워하고 안경 벗을 시도를 해본 적도 없으며 다양한 모양의 신발을 신어볼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나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언젠가 감명 깊게 읽은 헤닝 멘켈의 소설 ‘이탈리아 구두’에는 주인공 외과 의사 벨린이 신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딱 맞는 이탈리아 구두를 신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춘기 때부터 끊이지 않았던,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정체성 확인이라는 절대불변의 ‘딱 맞음’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렇게 딱 맞는 정체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신디 셔먼 같은 시도 한번 하지 않은 채 결정한 ‘딱 맞음’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다. 나에 대해 고정관념을 만들고 그에 갇혀 살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인 양 생각하고 그것이 내게 딱 맞음이라고 착각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신디 셔먼의 분장은 딱 맞음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80세가 되었을 때 더 편안하고 멋진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피해왔던 화장도 해보고 다양한 옷도 입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의 힘은 강하다. 한복에 풀메이크업한 내 모습이 나 같지 않다는 생각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으니.

2021-07-05

N잡러

N잡러는 2개 이상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본업 외에도 여러 부업과 취미활동을 즐기며 시대 변화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전업이나 겸업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N잡러의 대명사라면 MBC TV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에 나오는 유재석 씨를 꼽을 수 있다. 본업은 개그맨 겸 MC지만 본업 외 ‘N잡’으로 트로트 가수, 치킨집 운영, 드럼연주자, 하프연주자, 댄스 가수 등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볼 수 있다.N잡러는 정규직의 직업을 가지면서도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 두 개 이상의 직장에 고용된 사람, 직장에 다니면서도 별도의 사업을 병행하는 사람, 직장인이면서 프리랜서로 다양한 수익 활동을 하는 사람 등 여러 형태가 있다.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회사원이 퇴근 후에는 유튜버로 변신하면서 N잡러의 삶을 살기도 하고,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와 번역가의 삶을 병행하는 N잡러도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만나 진료하는 치과의사로, 저녁에는 웹 소설을 쓰는 웹 소설 작가로 생활하는 N잡러도 있다.또, 크몽, 오투잡, 재능박스, 숨고 같은 재능 판매 플랫폼을 활용해 본인의 재능을 건당이나 시간당 돈으로 환산해 부업으로 진행하는 사람들도 많다.앞으로의 세상은 ‘하나의 직업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는 시대’로 변할 것이 확실하다. 오히려 직업이 하나만 있는 사람이 무능해 보이거나 시대에 뒤처진다고 생각되는 사회가 머지않아 다가올 듯싶다. 세상의 변화에 걸맞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세상에 뒤처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7-05

새벽을 여는 맨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태양이 뜨거워지고 바다나 야외로 떠나는 발길이 잦아드는 7월이다. 여름철에 사람들이 바다를 즐겨 찾는 것은 시원한 파도소리 만큼이나 탁 트인 가슴으로 철썩이는 물결에 몸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름날의 무더위를 피해 강이나 바다, 산이나 계곡 등지로 피서여행을 떠나는 것은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의 활력을 재충전하고 휴식과 휴양을 누리기 위함일 것이다. 더욱이 고질 같은 코로나19의 불안과 시달림에 갑갑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탈출한다는 그 자체가 청량제 같은 설레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피서나 일상의 환기 차원이 아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거의 매일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것도 동틀 무렵에 나타나 맨발로 해변의 모래밭을 걸으며 주변에 버려지거나 파도에 밀려나온 쓰레기를 줍고 일출을 맞이하며 하루를 열어가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이면 약속처럼 어김없이 모여들어 신발을 벗고 삼삼오오로 거닐며 해변의 쓰레기를 주어온지 벌써 500일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이색적이고 주목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시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첫 수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별을 보며 도심 속의 바다로 나가서 마대를 옆에 차고 맨발로 모래톱을 거닐며 쓰레기를 줍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은 일이라도 마음먹기는 쉬워도 실천으로 옮기기는 만만찮다. 개인의 의지나 목적을 떠나 지역과 환경, 건강을 챙기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영일대 맨발 플로깅’은 ESG 관점에서 신선한 자극이고 새로운 희망이 아닐 수 없다. 플로깅(Plogging)이란 걷거나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말한다.지난 주말 필자는 애써 시간을 내 영일대해수욕장 맨발 플로깅을 체험했었는데 느낌이 정말 괜찮았다. 여명 속에 맨발로 걸으니 발바닥을 자극하는 모래의 촉감이 좋았고, 한 발 두 발 옮기며 쓰레기를 주우니 파도마저 추임새로 다가왔다. 더욱이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31년된 500원짜리 동전을 물 속에서 줍는 횡재(?)까지 하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폭죽막대를 비롯한 별의별 쓰레기는 의외로 많았으며 철사 꼬챙이 등은 맨발 걷기나 해수욕장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였다.맨발로 땅을 밟는다는 것은 ‘어머니의 대지’인 지구와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전적으로 땅에 의존하고 있지만, 95%가 지구와 절연된 상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신선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물과 모래의 질감을 맨발로 느끼는 것은 땅과 우주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에 환경사랑까지 실천하며 새벽을 열어가고 있으니, 하루가 얼마나 활기차고 풋풋할까? 작지만 숨은 노력들이 세상을 밝힌다.

2021-07-05

미래의 4차 산업을 준비하자

권윤구 포항 중앙고 교사 4차 산업은 사회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경제 지식 기반 일부를 기술하는 방법으로 상담, 교육, 정보기술, 금융, 기타 서비스를 포함한다.4차 산업의 핵심은 융합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항공기,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첨단 지능정보기술이 기존 산업에 융합되거나 기술 혁신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4차 산업은 융합과 속도이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어 기존의 속도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낼 것이다. 이러한 속도는 경제, 사회, 정치, 교육에 엄청난 변화를 줄 것이다. 미래의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성장이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 사회적 가치에서 멀어지는 성장이 아니라 동반해서 발전하는 성장을 추구할 것이다.우리도 4차 산업의 변화에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직업의 탄생을 받아들이면 4차 산업은 미래산업의 기회 산업이 될 것이다.20년 후 지금의 직업 중 750만 개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없는 직업 중에 250만 개가 새로운 직업으로 부상할 것이다. 그래서 사라지는 직업이 500만 개이다. 엄청난 변화이다. 노동력 과잉으로 일자리 수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인구가 많아지면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는 새롭게 창출하고 증가한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코로나19로 붕괴한 지역 경제를 빨리 되살리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 그리고 인구 감소와 젊은 층 유출을 막기 위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더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경북의 배터리, 수소연료전지, 방사광가속기 이용, 신약개발 등 4차 산업을 이끌 수 있는 분야를 육성해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경북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미래의 산업 4차 산업을 준비하는 것은 교육뿐이다. 4차 산업 시대의 미래 교육 또한 내용과 방법 등 모든 면에서 지금과는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개인 학습과 학교 수업은 인공지능이 사용될 것이다.필자는 교수학습 방법과 관련해서 거꾸로 교실(Flipped Learning)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거꾸로 교실은 혼합형 학습으로, 학생들은 집에서 온라인 비디오 강의를 보면서 새로운 수업 내용을 배운다. 반면 수업 시간에는 교과 내용 전달 대신 숙제로 내던 과제를 교사와 학생이 개인화된 지도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수업을 수행한다. 21세기 교육혁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이다. 거꾸로 교실은 4차 산업을 준비하는 교육으로 대체 할 만한 학습이다. 코로나19의 온라인 수업에 적용 해 볼 만한 방식의 수업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일부 시행하고 있는 수업 방식이다.세상은 변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익숙하던 것에서 점점 이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변해야 한다. 나도 변하고 너도 변하고 우리 모두 변해야 한다. 4차 산업의 속도에 맞추어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낡고 오래돼 사라져 가는 것들을 4차 산업으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2021-07-05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 올해 5월 24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신성장산업인 그린바이오 분야의 벤처·창업 지원을 위한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 구축을 위한 입지 공모계획을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공고하였다. 특히 5대 유망산업인 마이크로바이옴, 대체식품·메디푸드, 종자, 동물용의약품, 기타 생명소재(곤충 등) 분야의 종합적인 창업보육 지원을 위해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바이오산업은 응용분야에 따라 레드, 그린, 화이트 바이오로 분류하고 있으며, 혈액의 붉은 색을 상징하는 레드바이오는 의료와 제약분야, 식물의 녹색을 상징하는 그린바이오는 농업(농생명소재)과 식량분야, 공장의 검은 연기를 하얀색으로 바꾼다는 화이트 바이오는 환경과 에너지 분야를 의미한다.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는 그린바이오에 특화된 연구시설 및 장비, 기업입주 공간 구축 및 창업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그린바이오 분야 유망 벤처기업을 한곳에 집적화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이번에 공모된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 사업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간 총 231억 원의 국비를 투자하여 기업 입주공간과 회의실 등을 갖춘 벤처지원시설, 연구·실험시설, 운영지원시설이 설치된 건물 1개동(연면적 7천66㎡)과 주차장, 휴게시설 등 2만8천㎡ 부지에 조성될 예정이다. 향후 시설은 공공기관(기업지원, 연구지원, 교류협력, 운영지원팀 등 4개 팀 구성)을 통해서 운영될 예정이며 입지 선정 후 운영기관이 결정된다. 7월 9일까지 사업 신청서 및 유치 제안서를 접수한 후, 서류심사와 현장평가, 대면평가로 진행되어 최종 입지선정 결과는 7월 30일에 발표된다.이번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 사업에 많은 지자체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그린바이오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전라북도, 강원도, 경북도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경북과 포항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바이오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바이오산업 전담을 위한 행정조직 신설, 백신 및 바이오산업 육성조례 제정 등 행정적·제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바이오 기업의 창업과 보육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시설을 구축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포항에는 3대 바이오산업 혁신성장 플랫폼인 포항지식산업센터, 세포막단백질연구소,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가 완공 또는 건립 중에 있어 바이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입주 공간, 연구시설 및 장비, 생산지원시설, 기업지원 프로그램 등 기업 유치와 창업보육을 위한 전방위적 지원을 하고 있다.포항은 그린백신(식물을 생산플랫폼으로 활용하여 만드는 재조합 단백질 백신)과 그린바이오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최근 수년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2016년 그린백신 전략심포지엄, 2017년 제1회 식물기반 단백질의약품개발 국제컨퍼런스, 2018년 그린바이오산업 포럼을 개최해 국내외 산학연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18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공모한 식물백신기업지원시설 건립사업에 선정돼 총사업비 165억원을 투입,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를 구축 중에 있다. 특히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는 관내 기업 2개사와 역외기업 2개사가 입주를 앞두고 있으며 향후 포항이 그린백신의 글로벌 거점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화 기반을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또한 2018년에는 그린백신·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산학연관 7개 기관이 상호업무협력 협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2019년부터 5년간 식물기반 바이오의약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을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는 등 유망 바이오기업을 우리 지역으로 유치하고 육성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하고 있다.포항에는 그린백신 분야의 세계적 수준의 원천기술과 상용화기술을 보유한 포스텍과 (주)바이오앱이 있다. 바이오앱은 2019년 세계 최초로 담배를 활용한 돼지열병 그린마커백신 품목허가를 취득하였으며, 코로나19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그린백신을 개발하여 우수한 비임상 결과를 얻었으며 올해 포스텍, 한미사이언스와 함께 코로나19 그린백신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또한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서도 포스텍과 한동대학교의 우수한 연구진과 이뮤노바이옴, HEM 등 유망 벤처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그린바이오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과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그린바이오 분야의 우수한 연구진과 기술력, 연구 및 산업화 기반시설 등을 보유한 포항은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를 지역에 구축하여 국내 그린바이오 스타트업 기업의 집적화, 산학연 기술교류·협력, 인력양성 등 전방위적 지원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그린바이오 산업의 세계적 거점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07-04

낙동강을 식수로 이용할 수 있을까?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낙동강 물을 마실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필자는 단연코 “안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낙동강 가까이에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산업단지가 즐비하기 때문이다.산업단지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은 4만 가지가 넘는다. 기업들은 유해물질을 제대로 처리하지도 않고 산단 내 폐수처리장으로 보낸다. 폐수처리장은 이미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처리된 유해물질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낙동강 수질을 책임지는 환경부는 현재 어떤 유해화학물질이 어떻게, 어느 만큼 낙동강으로 유입되는지 모르고 있다.1991년 1·2차 구미 두산전자 페놀 사고를 비롯해 2004년 1-4 다이옥산 유출, 2006년 퍼클로레이트 사고, 2008년 김천 코오롱 유화 화재로 인한 페놀 사고, 2009년 1-4 다이옥산 사고, 2012년 구미 4공단 불산 가스누출사고, 2018년 과불화화합물 유출 등 지난 30년 동안 낙동강 주변 산단에서 수질 오염사고들이 발생했다.잊을 만하면 터지는 이런 사고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정부의 무능함과 지자체 공무원들의 기업유착, 전문성 부족, 하·폐수시설 노후화, 투자 부족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낙동강 의존율이 높은 부산(88%)과 대구(66%)가 안전한 먹는 물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취수원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낙동강유역물관위원회가 ‘낙동강 통합 물관리 방안(안전한 먹는 물을 위한 수질 개선과 취수원 다변화)’을 심의·의결했다.낙동강 하류인 합천 황강 복류수에서 하루 45만t을 취수하고 경남 창녕군에서 하루 45만t의 강변여과수를 개발해 경남 중동부(48만t) 우선 배분하고, 부산(42만t)에도 공급하기로 했다. 강 바닥 밑 30m 이상 아래에 있는 지하수(강변여과수)를 뽑아내는데만 약 7천 억원이 들고 추가로 유해물질을 처리하는 비용도 발생한다. 또 지표수 수위가 하강할 수 있어 농업용수 부족에 따른 농민들의 피해도 우려된다.상류인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30만t을 취수해 고도정수처리를 통해 28만8천t의 먹는 물을 확보해 대구(57만t)와 경북(1만8천t)에 공급한다. 여기에 7천억원의 예산이 들고 물이용 부담금인상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환경부가 구미시에 매년 100억원을 지원한다. 대구시도 100억 원을 일시금으로 지원한다. 대신 대구 수성구·동구·북구 일부 주민들이 마시고 있는 청도 운문댐 물(7만t)을 울산시에 나눠줄 계획이다.취수원을 구미 해평으로 이전해도 수질 오염사고의 위험은 상존한다. 해평 상류에도 페놀, 퍼클로레이트, 1-4 다이옥산 등을 배출하는 산단이 들어서 있다. 영주에는 대규모 베어링특화단지를 조성 중이어서 특정수질유해물질 배출로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여기서도 수질 오염사고가 발생하면 또 다시 취수원을 상류로 옮길 건가.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다.현재 t당 170원을 부과하는 물 이용 부담금(약 2천500억원)은 환경기초시설 지원, 낙동강 주변 토지매수, 주민지원사업 등에 사용되면서 빠듯한 상황이다. 추가 인상을 위해선 강원, 경북, 대구, 경남, 울산, 부산지역 시·도민들의 합의가 필요한데, 과연 이들이 동의해 주겠는가. 주민 간 또 지역 간 갈등과 반목을 낳을 게 자명하다.청도 운문댐 물을 울산에 나눠준다는데, 갈수기 땐 비상 식수 확보에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운문댐은 2018년 2월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취수를 중단한 적이 있다. 현재도 37.1%의 저수율로 가뭄 주의단계로 진입해 물이 부족한 상태다. 금호강물을 대체 식수원으로 사용한 적도 있지만, 흙냄새를 유발하는 ‘지오즈민’이 검출되면서 심한 악취로 난리가 난 바 있다.운문댐 물을 울산에 주는 것은 낙동강 물 문제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한심한 결정이다. 울산시민의 식수원인 사연댐 안에 있는 반구대암각화(국보)를 보호하기 위해 운문댐 물을 끌어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사연댐 여수로에 수문을 만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무엇보다 현재 운문댐 물을 먹고 있는 대구 수성구, 동구, 북구 주민들을 외면한 결정이어서 앞으로 집단 민원이 우려된다.낙동강 먹는 물 문제에 대해 정부는 낙동강 산업단지의 폐수처리시설의 현대화와 오염원인자부담원칙이 지켜지는 근본적인 해법을 내어 놓아야한다. 먹는 물은 다른 수계와 같이 댐으로 옮기는 것이 낙동강 주변 1천 300만명의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정부는 열린 마음으로 공론과정을 거쳐 국민의 입장에서 하루 빨리 먹는 물 정책방향을 올바르게 잡아나가길 바란다.

2021-07-04

마스크가 大勢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마스크는 우리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으로서 자리를 확실히 굳혔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나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할 수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은 물론 다중이 이용하는 식당이나 행사장에 갈려도 마스크는 필수다.마스크를 선물로 주는 사례도 많이 생겼다. 선물로서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팬데믹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활의 변화다. 마스크는 스페인 독감이 발생하면서 본격 등장했다고 한다. 1918년 등장한 스페인 독감은 2년동안 무려 최대 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류 최악의 재앙이다. 의료진의 마스크 착용도 이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1930년대 와서는 현재와 유사한 부직포 마스크가 대중화됐다.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마스크는 바이러스 감염증을 예방하는 강력한 수단임을 자타가 인정한다. 국제학술지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릴 위험성이 5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특히 무증상 감염이 30%를 웃도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확진자와 동승해 승용차로 1시간을 다녔어도 추가 감염이 없었다” “9천명의 신자가 있는 교회에서 모두 마스크를 썼더니 확진자가 3차례나 같은 예배에 참석했어도 추가 감염이 없었다”는 사례는 마스크 착용의 좋은 본보기다. 마스크의 위력이다.통계청이 소비자 물가지수 조사품목에 마스크를 추가했다. 소비자 물가지수를 개편하면서 서민생활과 연관된 물가 중 마스크도 조사대상 항목에 포함한 것이다. 마스크가 드디어 우리 생활의 필수품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마스크 벗는 날만 학수고대한 우리에게는 별로 반갑지 않은 소식이지만. /우정구(논설위원)

2021-07-04

윤석열, 정당의 인력풀이 필요한 때다

심충택 논설위원 주변을 둘러보면 이제 막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장모 최모씨의 실형선고로 대선행보 동력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아무래도 처가와 관련한 의혹 해명에 집중하다 보면 그의 역량과 국정비전을 알릴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가 빨리 국민의힘에 입당했더라면 훨씬 수월하게 이번 역경을 이겨나갈 수도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윤 전 총장은 지난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입당문제보다는 정권교체가 우선이다”고 밝힌 상태다.국민의힘 지도부는 연일 윤 전 총장의 입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경선버스가 ‘버스’라고 하려면 무조건 정시에 출발해야 한다”며 8월말 당내 경선스케줄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정미경 최고위원도 “빨리 들어와야 한다. 너무 좌고우면하면 안된다”고 했다. 지난 3일에는 권영세 대외협력위원장이 윤 전 총장과 만찬을 하면서 조기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그의 국민의힘 합류를 시간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긴 하다. 권 위원장은 본인의 스케줄도 있겠지만, 윤 전 총장이 입당을 해서 네거티브에 공동 대응하고 대선경선도 같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윤 전 총장은 지난주 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 가치 철학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본인의 선택지가 제3지대가 아니고 국민의힘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윤 전 총장의 사조직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만약 사조직이 법조계나 진보·중도 지식인 등 엘리트 위주로 인선될 경우 대중적인 정당인 국민의힘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윤 전 총장이 명심해야 할 것은 정치는 정당에 들어와서 해야 안정감과 추동력이 생긴다는 것이다.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며칠 전 우려하듯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정당 자체를 무시하거나 회피해선 안 된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캠프는 최소한으로 운영하면서 국민의힘에 들어와 당내 상호검증을 치열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돌발적으로 닥쳐올 여러 가지 위기들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다.윤 전 총장은 현재 대선주자 중 가장 많은 국민 지지를 받고 있지만, 혹시 ‘검사 특유의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을까’라며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중을 기반으로 해야 파이를 무한대로 키울 수 있는 정계에서 소수 엘리트가 참여할 수밖에 없는 캠프의 의사결정에 의존할 경우 정책입안이나 외연 확대, 위기대처 등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기가 어려울 수 있다. 사실 윤 전 총장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거의 대부분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 준 것이다. 앞으로 대통령이 수행해야 할 국정전반에 대한 자신의 역량을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처가 리스크를 비롯해 ‘X파일’에 대한 후폭풍도 극복해야 한다. 다양한 검증 과정을 무사히 거치려면 정당에 몸담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캠프 사조직은 성격상 구성원간의 이해관계가 각기 달라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국정비전과 정책입안을 하려면 정당의 인력풀이 꼭 필요하다.

2021-07-04

뜨거웠을 용암의 꿈, 주상절리

윤영대수필가 경북 동해안은 지질 명소가 많다. 지질공원의 개념은 2004년부터 유네스코가 지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2010년 제주도가 제일 먼저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정받았고, 환경부가 정하는 국가지질공원 13곳 중 경북은 3곳, 그중 하나가 경북 동해안이다. 원생대의 울진부터 신생대의 경주까지 낙동정맥의 동쪽 해안은 융기로 인한 해안단구와 퇴적암, 화성암 또 바다가 갈라지고 용암이 분출하여 냉각된 흔적인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지구 생성의 꿈을 보여주며 바닷가에도 육지에도 있다.경주로 갈 때마다 신비롭게 보아온 달전리 주상절리가 근래 들어 흔적이 희미해지는 듯하여 계곡을 더듬으며 가까이 가봤다. 이 주상절리는 포스코 단지 매립용으로 석재를 채굴하다가 발견된 곳으로, 천연기념물 제415호이다. 약 200만 년 전 신생대 3기 말에 생성된 현무암의 6각 기둥 주름이 높이 20m 폭 100m 규모로 80도 경사에서 거의 수직에 가깝게 휘어져 병풍 모양으로 둘려진 곳인데 그 틈새에 작은 나무들이 자란 탓이다. 엉겅퀴 꽃이 아름다운 잔디밭에 앉아 옛날 용암이 흘러내렸을 뜨거웠던 이곳을 상상해보며 고개를 들어 고요한 달전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아본다.경주 양남 해안도 주상절리의 야외박물관이다. 드라이브를 즐기며 읍천항으로 가서 조용한 포구 한켠에 주차하고 둘러보니 벽화 그려진 방파제와 빨강 하양 초록의 등대가 곱다. 하서항까지 1.7km의 ‘파도소리길’을 걸으며 신비로운 주상절리를 보기로 한다.입구의 나무 계단을 올라가 조금 걸으니 긴 출렁다리가 걸려있다. 언덕에는 예쁜 펜션들이 바다를 보고 있고 발밑의 파도 소리 들으며 걷노라면 확 트인 절벽 위에 우람한 전망대가 보인다. 1층 전시실을 둘러보며 2017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536호의 이야기를 머리에 담고 4층으로 올라가면 주상절리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로 아래 활짝 편 부채꼴 주상절리가 파도에 씻기며 흥겨운 노랫가락을 들려주는 듯하다. 좌우로 펼쳐진 까만 바위들도 정겹다. 내려와 오솔길을 걷다가 몽돌해변에서 작은 돌탑도 쌓아 봤다. 길섶에 핀 야생화들을 만져보며 1km 남짓한 바닷길을 걸으면 위로 솟아오르고 기울어지고 누워있기도 한 여러 모양의 주상절리가 떡가래처럼 포개어져 있다. 그 위에 기대어 억겁의 시간을 가늠해 보기도 하며 하서항까지 왔더니 긴 방파제 끝에 빨간 ‘사랑의 자물쇠’ 조형물이 있다. 그 안에서 아내와 팔 벌려 하트 모양을 찍고 되돌아오는 길, 솟아있는 주상절리 위에 앉은 흰갈매기 떼는 바닷가에 꽂아둔 하얀 꽃다발 같다.오는 길에 문무대왕암을 보러 백사장에 내려가니 무슨 소원을 비는지 굿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감은사지도 들러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쌍탑을 돌아보고 대종천 어귀의 이견대에 오르니 만파식적이 들리는 듯하고….해거름 무렵 해안도로를 달려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로 갔다. 1억3천만 년 전 화산폭발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한 현무암의 모습이 규모도 크고 좋은데 잘 가꾸었으면 한다. 이 호랑이 꼬리의 뜨거웠을 열기가 우리 한반도에 고루 퍼져 새로운 동북아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빌어본다.

2021-07-04

일과 낭비, 그리고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에게 일은 무엇일까? 일의 의미는 인류역사와 함께 변해왔다. 중세시대에 일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했었다. 그래서인지 계급이나 신분체계가 분명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일이란 그저 괴롭고 싫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틴루터, 칼뱅 등 종교개혁가들이 일을 하나님의 부르심인 ‘소명’으로 격상시켰고, 일은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확산되면서 각 분야에 장인과 전문가가 등장했으며, 일에 대한 보람과 가치를 중요시하는 근대적인 직업관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현대사회에서의 일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에디슨은 ‘나는 살면서 단 하루도 일한 적 없이 모두가 재미있는 놀이였을 뿐이다’라고 했으며, 아인슈타인은 ‘어떤 분야에서건 성공하고 싶다면 일을 놀이처럼 하고, 놀이를 일처럼 하라’고 말했다. 이러한 일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가 산업혁명을 만들어내고 이제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지능화로 상징되는 4차산업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대체로 일은 노력과 땀으로 놀이는 즐거움과 흥미로 여겨지지만, 일터인 직장에서 즐겁게 일하고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자신의 성장을 통해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기업에서의 일은 ‘고객입장에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를테면 생산과정에서 고객의 요구나 주문에 따라 투입한 재료가 변형, 변질, 분리, 결합되면서 바뀌어 가는 과정에 가공되고 있는 제반상태를 ‘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낭비는 ‘고객입장에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정의되며, 생산과정에서 재료가 가공을 하지 않고 이동하거나 정체되는 상태를 말한다. 즉, 가공하지 않는 이동과 정체는 원가상승의 낭비요인으로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우리가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가는 낭비를 어느 정도 줄이는가에 달려있다. 여러 업체에서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도 원가에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은 생산과정에서의 정상과 이상상태 즉, 일과 낭비를 누구든지 현장에서 인지하여 불량과 장애를 줄이고 지속적인 개선을 유발하여 낭비를 최소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하고 유지하는 회사가 필자의 견해로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라고 본다. 1937년 설립하여 84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끊임없는 개선활동을 통해, 최근 10년 이상 20조원 전후의 영업이익 창출과 매년 포츈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일이나 직장은 삶의 척추 같은 것이다. 일손이나 일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보람을 찾으며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거의 매일 일하고 있는 기업의 생산과정에서 일과 낭비를 명확히 인식하고 평소 항상 나아진다는 마인드로 낭비를 줄이고 꾸준히 개선해 나간다면, 일에 대한 열정과 아울러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21-07-04

등대가 부는 피리

무엇이든 오래된 곳으로 가자 하니 잠시 생각하던 남편이 알겠다는 듯 차를 몰았다.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는 감포항이었다. 이 사람이 내 마음을 꺼내 보았나? 어제, 그제 나는 감포항을 그린 그림을 보고 왔다. 경주예술의전당에 화가 손수택이 그린 ‘감포 풍경’이 전시 중이다. 고흐전을 보러 갔다가 맞은편 전시실에 또 다른 전시회가 있다 해서 우연히 옮긴 발걸음 끝에 발견한 작품이었다. 초가지붕이 바닷가 산자락으로 다닥다닥 붙어선 1958년의 감포항이 나를 그림 앞에 한참 머물게 했다. 그때도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던 번성한 항구였구나 싶어 몇 채나 되나 눈대중으로 가늠해보았다.그림 속 초가는 다 사라진 항구에 다다랐다.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란 뜻의 송대말 등대였다. 겉모습부터가 특별한 한옥의 모습이다. 수령이 몇백 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 사이로 기와지붕에 탑 모양의 등대를 머리에 인 등대가 보였다. 포항에 사는 덕분에 등대는 아무 때고 만나지지만 한옥으로 지어진 것은 처음이다. 송대말은 해송 군락지이다. 이곳을 한국관광공사에서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지정했다는 명패 앞에서 나도 사진을 찍었다.등대 둘레에 데크를 따라 바다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오래전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했던 이들의 사진이 붙었다. 1943년에는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이, 1944년에는 검은 제복의 동료끼리, 1972년에는 단발머리 감포중학교 여학생들이 흑백사진으로 이곳에 소풍을 왔었다고 알려준다. 1986년의 등대와 감포항의 모습에는 색깔이 덧입혀져 감포항의 지난 세월을 함께 전해준다.등대 아래에 바닷가는 바위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파도의 간지럼을 타느라 하얗게 까르르 거렸다. 그렇게 밀려온 파도는 바위 사이를 드나들 수 있고, 튜브를 탄 아이들은 안전하게 떠내려가지 않게 막아주는 턱이 놓인 풀장이 있었다. 수년 전 남편은 친구들과 이곳에 와 물놀이를 했다고 했다. 자연 풀장인가 했더니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주상절리 바위와 바위 사이에 시멘트 구조물을 세워 축양장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거기에 어민들이 잡아 온 가자미, 전복, 광어, 고래, 돔 등을 보관했다. 담을 높게 만들어 물개도 키웠고 지붕을 만들어 덮어 뒀다. 축양장 위쪽 바위에는 화양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어 다다미방 열 칸을 만들어 바다와 솔숲으로 이어진 길을 오가며 망망대해를 감상했다. 정자에 앉아 횟감을 골라 먹으며 한국 색시에게 수발을 들게 했다. 그 여인이 ‘아리’라는 여인이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하야시는 해방되자 본국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배가 떠나려는 순간, 그녀의 오빠가 나타났고 아리는 총으로 하야시를 쐈다. 오누이는 독립운동 중이었고 그동안 시중을 들며 번 돈은 독립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아픈 이야기가 이곳에 전한다.일본인들은 축양장 해산물을 일본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선박사고가 잇따르자 암초 위에 등간(燈竿)을 설치했다. 그들이 물러난 뒤 감포 어업협동조합원들은 새로운 등간을 설치했다. 감포항을 이용하는 선박이 날로 늘어나 정부는 1955년 어민들의 안전을 위해 송대말에 무인등대를 점등했다. 2001년 12월에 유인등대로 변경된 후, 해양수산부가 다시 2018년 11월에 무인으로 전환했다. 경주시는 이제 송대말 등대를 해양역사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 중이다. 올 10월이면 사람들에게 개방할 것이라 한다.감포라는 명칭은 지형이 감(甘)자 모양으로 생겼고 또 감은사가 있는 포구라 하여 감은포라 부르다가 음이 축약되어 감포가 되었다. 송대말 등대에서 감포항구를 내려다보면 다섯 개의 등대가 한 눈에 담긴다. 이름의 유래를 담아 항구에 감은사 탑을 음각한 등대를 두 개 세웠다. 하얀 등대에 감은사 삼층탑을 파냈더니 그 속에 파란 바다가 들어앉는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푸른 하늘이 들어오기도 해 구름 떼가 넘실대기도 한다. 뻥 뚫린 삼층탑 사이로 휘익 바람이 지난다. 만파식적의 음파가 송대말 등대까지 들려온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김순희(수필가)

202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