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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앵무를 찾아서 - 의기(義妓)의 표본 염농산

염농산(廉嚨山·1859~1946) 여사는 구한말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애국 사회운동가이다. 경상감영의 행수기생 출신인 농산은 ‘앵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한학과 시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능했다. 이태백의 시에 등장하는 앵무와 농산을 이름으로 삼은 것만 봐도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앵무 여사가 주목 받게 된 것은 국채보상운동 덕분이다. 191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의연 활동을 한 여성이 앵무였다. 기생은 돈을 좇을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몸소 실천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앵무는 100환을 먼저 기부했다. “여력에 따라 의연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다.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는 없으니 누구든지 1천원을 출연하면 죽기를 무릅쓰고 따라한다.” 앵무 여사의 담대한 기개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인 서상돈·김광제 등의 각성으로 이어졌고, 전국민을 분발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지에서 고종황제에 이르기까지 국채보상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앵무 여사 같은 솔선수범하는 여성들의 기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생들의 연합인 달성 권번의 대표자로서 기생들을 규합하여 공연회를 개최해 구제활동에 쓰거나 민족운동 후원에도 적극 참여했다.염농산 여사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사를 기리는 빗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성주 나들이를 했다.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빛바랜 비석은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비석과 바로 이웃한 홍영기(81세) 옹을 만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홍수 피해에 시달린 마을 전답을 앵무 여사가 사재를 털어 방천을 축조한 뒤 학춤을 췄다고 한다. 그 공덕을 기리고자 마을에서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은 ‘앵무빗돌’, 방천은 ‘앵무방천’, 논밭은 ‘앵무들’로 불렸지만 이제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대구의 기생이었던 앵무 여사가 하필이면 성주까지 가서 그 큰 토목공사 비용까지 댔을까. 이문기 교수의 ‘대구 의기 염농산의 생애와 성주군 용암면 두리방턴 축조의 의미’라는 소논문에 의하면 방천 앞의 일부 토지가 그녀 소유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단다. 홍수로 유실된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농토를 복구하면서 방천둑을 축조하게 되었다. 먹고 살 만했던 앵무 여사보다, 살기 급했던 마을 사람들이 혜택을 받은 것은 자명했다. 방천 축조에서 염농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제방 축조 후, 국유지로 개척된 농토는 염농산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불하되었다. 시행 주체에게 주어지는 토지 불하권을 마다한 것이다. 여성으로서 당당한 인격권을 외쳤지만 그 권리를 개인의 사욕에 두지 않고, 공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은 그가 국채보상에서 보여준 모범과 상통하는 것이었다.그의 선행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37년에는 교남학교의 부흥을 위해 부동산을 희사하여 민족운동의 당당한 후원자가 되었다. 관기에서 은퇴해 음식점을 경영한 돈으로 후원을 했다. 그의 가게는 노년까지 계속되었다니 의로운 일에 쓰이기 위한 노동을 끊임없이 한 셈이다. 넉넉한 자산은 물질적 선행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살림이 좋다고 누구나 선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대여성으로서 삶의 주체적 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합리적 사고로 나라와 사회를 구제하려 했고, 적극적 행동으로 자립적이고도 평등한 여성을 꿈꿨다.앵무빗돌의 머릿돌은 깨어지고 비석 뒷면은 갈라지고 있었다. 빗돌집을 오르는 계단은 방치되어 잡풀이 돋았고, 뒤쪽 공터엔 쇠락한 집터만이 남아 있어 을씨년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당국에서 앵무의 존재를 알고나 있는지 홍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가끔 취재를 오는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어른들에게 귀동냥한 것을 전할 뿐, 학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뒷받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살로메 소설가앵무 여사가 축조했다는 두리방천은 앵무빗돌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그때의 축조 풍경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방죽을 받치고 있는 돌들 중 빛바랜 것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것이 앵무 여사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애국운동가나 사회사업가 교육사업가로서의 근대적 여성활동가는 드물지 않다. 앵무 여사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뒤에 머물지 않고 나서야 할 때는 의연하게 나섰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평등사상과 민권의식을 고취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했던 사람이 앵무였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다는듯 앵무 방천을 휘도는 바람마저 당당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2021-01-27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1억이 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게 아닌가. 사계절을 건너오며 오르내렸던 감염의 기세가 이제는 꺾이는가 싶었다. 조금씩 내려가던 숫자에 또 다시 충격을 주는 듯 집단감염이 드러나고 있다. 하필이면 교회를 비롯한 종교집단발 무더기 감염이 연일 방역을 힘들게 한다. 코로나19가 사상초유라지만, 14세기 흑사병의 그늘에도 교회가 있었다. 역병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규정하였던 교회들 탓에 오히려 확산세가 불어났다고 한다. 21세기 첨단의료와 방역의 현장에서 팬데믹 현상에 종교적 원인을 끌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 겪는 바이러스의 창궐이 하필 교회 언저리에 들끓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신천지, 인터콥, IEM, TCS. 코로나19의 확산세에 기름을 끼얹은 이들이 하나같이 기독교 관련 단체들이다. 일부 교단들도 방역수칙을 권하는 정부의 노력을 ‘교회탄압’으로 규정하며 거부하는 태도마저 드러내고 있다. 신앙인들에게 믿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신앙을 바르게 지키며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값진 일이다. 모두가 인정하며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집단으로 모이는 일이 방역에 치명적임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평소에 이웃사랑을 강조하며 배려와 섬김을 기준으로 삼던 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의료과학의 눈으로 밝혀지고 방역의 수단으로 설정된 ‘거리두기’를 억압의 방책으로 오해하다니! 신앙을 교육과 버무려 어린 청소년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면, 이는 이웃을 섬기는 일인가 해치는 일인가. 사회 일반은 방역에 집중하는데 교회는 어디를 바라보는가.‘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역기조를 거부하는 교회들을 향하여 일침을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모두가 동참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영국성공회교단과 미국장로교단도 매우 세부적인 권고사항까지 적시하면서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미국 기독인의료협회들도 교회들을 향하여 ‘이웃을 위하여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강권하는 호소문을 내었다. 다른 목소리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회적인 동의가 눈에 뜨인다.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할 태도는 분명한 게 아닌가. 생명처럼 귀한 예배는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으로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모여는 있어도 이웃을 해할지도 모르는 ‘회칠한 무덤’같은 섬김을 누가 기뻐할 것인가.‘네 이웃을 사랑하라.’ 믿음이 높은 곳을 향할수록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혼자만 구원에 이르기보다 남들과 함께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 죽어서 올라가는 게 천국이 아니라 여기서 당겨오는 게 하늘나라가 아닌가. 팬데믹이 얼른 지나가고 함께 교회에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얼른 오도록 오늘은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 탄압이 아닌 방역이 역병을 극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모이지 않고도 믿음의 공동체가 든든해지는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2021-01-27

주식리딩방

주식리딩방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자칭 투자전문가가 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이들은 금융감독원의 규제를 받지않으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송 등을 통해 대가를 받고 단순 투자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된다.주식리딩방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우선 카톡방 회원들의 투자성공담이라며 수익이 난 계좌정보 등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엄청난 투자수익에 귀가 솔깃해진 투자자가 가입 또는 투자 문의를 하면 고액의 회원가입비를 요구하거나 위탁투자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회원 가입비를 요구하는 주식리딩방의 경우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는 가입비를 요구한다. 가입하고 난 뒤 주식리딩방이 지시한 대로 주식거래를 해도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한다. 그제서야 납부한 회비를 돌려달라고 해도 상대방은 환불을 거부한다. 위탁투자를 위해 돈을 보낸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홈트레이딩 시스템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돈을 입금하게 하고 수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인다. 가령 개인투자자가 리딩방이 알려준 주식 사이트로 2천만원을 입금하면 얼마 후 1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투자한 돈과 수익금을 돌려받겠다고 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돈을 환급받으려면 수수로 등으로 인해 오히려 8천만원을 더 내야 환급이 가능하단다. 만약 요구한 돈을 만들어 보낸다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돈을 환급해주기는 커녕 또 다시 “돈을 더 넣어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때서야 사기임을 알아차리지만 때는 늦었다.주식에 왕도는 없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과욕은 패망의 지름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7

나의 작은 동무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중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1월 14일 개봉된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작은 동무(The Little Comrade)’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란 나라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우리는 가끔 ‘발트 삼국’이라는 어휘와 대면한다. 북구와 러시아에 면한 발트해에 자리하고 있는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도상 위쪽부터 거명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서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세 나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1차대전 종결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0년 스탈린의 강제 통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세 나라는 1990년 다시 주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영화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 스탈린 통치 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시골 소녀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전제정치로 자유를 향한 에스토니아 국민의 열망이 짓밟히던 시절. 여섯 살 소녀 렐로는 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교사인 엄마가 소련에 저항하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지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에스토니아 국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엄마 헬무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아빠인 펠릭스는 여러 방면으로 구명 노력을 하지만, 렐로에게 약속한 9월 입학 전까지 헬무스를 빼내지 못한다. 그들 부녀가 만 5년 동안 겪어나가는 눈물겨운 애환이 영화의 얼개다. 약소국 에스토니아가 강대국 소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목과 소련 앞잡이로 등장하는 펠릭스의 친구가 얄밉기 그지없다.영화를 보면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민중과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 앞잡이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특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말로 유명한 의열단장 김원봉이 친일 악질분자이자 이승만의 충실한 하수인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일이 절로 떠올랐다.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던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렐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학년이 올라가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공포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2년 넘는 세월이 흐른 1955년 5월 헬무스는 열차 편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에 도착한다. 엄마를 찾으려던 렐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 아빠를 본다. 조금은 어색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렐로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가 손을 내민다.어린아이에게 만 5년 넘도록 엄마를 빼앗아간 전체주의 통제국가 소련의 운명은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다. 그들도 1991년 12월 31일 종언을 고했다. 철권통치의 끝은 언제나 고약하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나의 작은 동무’는 우리가 잊었던 시절을 일깨우는 소중한 영화다.

2021-01-26

홀로서기에 대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코로나19의 영향일까? 최근 들어 홀로 또는 따로 하는 문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을 우려한 한 줄 칸막이 식사를 한다거나 한 칸 띄어 앉기 등으로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혼자 하는 행위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먹거나 어울리고 활동하는 자체에 많은 제약과 기준의 적용으로 다소의 불편과 움츠림 속에서도 자구책(?)으로 나타난 것이 홀로 하는 문화라 할 수 있다.그러나 혼자 하는 식사나 행동, 작업 등은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의 생활 저변에 나타나거나 스며든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근래부터 1인 가구 혼족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움직이고 생활하는 문화가 늘어나다 보니 혼밥혼술이니 혼행, 혼잠 등의 유행어가 생겨나면서 ‘혼OO’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추세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시대가 변하면서 ‘홀로 생활’은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낯설지 않은 현재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실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나홀로 문화’가 당시 3~4개에서 2018년 39개, 2020년 말엔 65개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여 홀로 하는 세태가 더해지는 듯하다. 최근에 두드러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세된 영향도 있겠지만, 혼자 먹고 입고 놀고 자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일생을 크게 보면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지만, 작게 보면 소소한 개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이른 바 ‘나홀로 문화’란 자발적 고립을 택해 식사, 여가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즉,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혼자만의 일상생활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홀로 밥을 먹거나 여행, 캠핑을 즐기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타인과의 관계 보다는, 혼자의 생활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그 가운데서 자신만의 은밀한 만족을 맛보는 것이다.세상의 무엇이든 바뀌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 우리는 다만 적응의 문제를 간단없이 풀어나가야 한다. 미래의 상황은 환경변화라는 상수 속에 인간 욕망의 변수가 끊임없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희대의 감염증 확산에 따른 주거문화나 식사, 회식, 만남 등의 정서가 분화되고 이질적인 양상을 띄고 있지만, 우리의 고유한 습성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이고 유화적인 측면으로의 꾸준한 변모와 진전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사람은 어차피 홀로서기다. 홀로 태어나서 가족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지내다가 결국 홀로 가게 된다. 외롭고 쓸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는 뼈저릴만큼 혹독한 홀로서기에 달려있다. 그 모질고 처절한 혼자만의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예술작품은 탄생하고 빛 부신 새날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2021-01-26

재갈 물리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유안진 시인의 ‘침묵하는 연습’이라는 시의 첫 두 구절이다. 말의 양과 공허의 깊이가 비례하는가 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해야 뭔가 뿌듯하고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정치판이 대표적 다변의 마당이리라. 서울 시장,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딱히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눌변의 시대가 아닌 다변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아무말’에 다변이기까지 한 정치인 한 사람이 해가 바뀌면서 퇴장하였다. 집권 기간 내내 자기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온통 말과 글로 들쑤셔 놓았던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도 “안녕,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대통령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말을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자신의 개인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로 돌아갔다.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까지 ‘아무말’을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대통령으로서의 특권을 찾아 누렸다.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다’라는 말이 있는데, 트럼프는 뒷걸음질도 옆걸음질도 아닌 마구잡이 행보로 쥐를 잡기는커녕 미국의 정치마당을 끝까지 들쑤셔 놓았다. 결과는 재갈 물리기로 돌아왔다. 트위터는 퇴임을 2주도 남기지 않은 1월 8일에 8천90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같은 날 구글과 애플은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SNS ‘팔러’(Parler) 앱을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퇴출시켰다. 트럼프가 트위터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앱까지도 막아버린 셈이다. 다른 그 누구도 배려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거침 없는 언사, 함부로 된 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공자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 하였다. ‘더듬거리는 말’이란 뜻의 ‘눌언’을 여기서는 더디고 신중하게 하는 말 정도로 풀어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군자로서의 사람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좀더 말과 글에 신중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좀 심한 언사를 일삼던 남의 나라 사람 이야기이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개인의 사회적 소통 계정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침묵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음으로 자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 기업의 재갈 물리기 앞에서 생각이 잠시 멈추어 버렸다. 그 틈을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의 한 구절이 들어와 앉는다.“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2021-01-26

경찰과 거짓말

사실이 아닌지 알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하려는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하얀 거짓말’이라 부른다. 또 뻔히 드러날 만큼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 한다.사람은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예쁘진 않으나 칭찬을 해줌으로써 상대가 희망이나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또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종종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거짓말은 상황에 따라 필요악으로 쓰일 때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고의적 혹은 상습적으로 하면 주변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런 거짓말로 인해 범죄가 성립되는 경우도 흔하다.미국에서는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은 중범죄로 다스린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이 도청보다 거짓 증언 때문에 정치 생명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우리 경찰이 또 한번 궁지에 몰렸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내사종결한 사건의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 영상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경찰의 사건 은폐 의혹이 커진 것이다.경찰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는지는 이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봐 경찰의 증언이 합리적 의심을 받을만한 거짓으로 보인다. 언론도 경찰이 거짓으로 수렁에 빠졌다고 비판한다.거짓말이 영원히 감춰지길 바란다면 오산이다.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 속성이 있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으려 한다면 경찰의 신뢰는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26

조감하는 시선과 책을 읽는 시간

인간의 눈이란 본디 사람의 얼굴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를 향해 있는 그곳에 대한 제한적 시점밖에는 갖지 못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종 망각되곤 한다. 다름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주는,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주는 마음의 눈에 떠오르는 인상을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혼동되기 쉬운 때문이다.인간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기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걸어가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하고 있는 나의 장면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눈이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시점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한계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바로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의 시도였다. 어떤 대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는 착각을 평면 회화에 부여하는 ‘원근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을 회화에 부여하는 예술적 형식 말이다.우리가 하늘 저 위에서 새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조감도’라는 형식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머리에 붙어 있는 답답한 눈이 주는 시각적 답답함을 해방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생활의 관점에서 우리 눈앞에 주어진 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그래서 조감도나 지도 등을 통해 자신이 지금 있는 공간의 형태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가늠하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들어간다.작가 이상(李箱·1910~1937)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 위로 질주하오.”라는 그야말로 기묘한 시작을 기억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연작을 신문에 연재하기 몇 년 전에 일본어로 ‘조감도(鳥瞰圖)’라는 연작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생소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상은 건축을 전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삶의 공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13인의 아해(兒孩)가’로 시작하는 이 ‘오감도 제1호’는 사실 시간이 주는 답답한 12진법에서 해방되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눈이 주는 시각의 답답함과 그리고 조감하는 시선을 어떻게 ‘동시적으로’ 중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때, 지도를 꺼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지도 속에 들어 있는 실제와 연결된 기호들이나 상징들을 통해 조감하는 시선을 확보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니 상당히 편리하다.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갑자기 모르게 되어버렸을 때, 잠시 멈추고 누군가 하나의 시선을 통해 정리해둔 것을 보고서 삶을 조감하는 시선을 참조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시간에 있는지 모른 채 도로로 질주해가는 무서워하는 아해들처럼, 문득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조감의 시선이다. /홍익대 교수

2021-01-25

신라 이전의 역사, 사로국 1

‘기원전 57년,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를 6촌 촌장들이 추대하여 신라를 건국했다.’삼국유사에 전하는 이 짧은 기록은 마치 역사 상식처럼 알려지고, ‘천년 신라’라는 고유명사도 만들었다.그런데 이런 역사 기록이 사실(Fact)이 아니라면? 그렇다. 일반인이 흔히 아는 신라는 이때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경주분지에 터전을 잡았던 사로국이 등장했을 따름이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는 4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성립하며, 그때부터 경상도 일대를 영역화한 고대 국가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신라 이전에 경주에서 성장하고 있던 사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사로국 시기는 대략 기원전 150년(?)~356년으로 추정된다. 400여 년이 넘는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역사 기록은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 더욱이 문헌 기록의 초기 역사는 신화, 설화의 형식을 취하거나 후대에 부풀려지고 연대가 맞지 않아서, 당시의 물질 자료를 분석하는 고고학의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번 칼럼은 신라의 모태인 사로국을 2편에 걸쳐 다루기에 전반부(사로국의 소개와 주변국과의 관계), 후반부(사로국의 특징, 신라로의 전환 과정)로 나눠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사로국의 영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주시 일원으로 추정된다. 그 내부 구조는 비슷한 사회·문화를 공유한 5~6개의 지역공동체가 결합된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지역공동체(구, 군 규모의 행정 단위)를 ‘읍락’이라 부른다. 크고 작은 취락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다시 중심 촌락을 매개로 몇 개의 촌락이 뭉쳐 읍락을 형성했다. 이런 5~6개의 읍락이 결합해 초기 국가로 성장한 사회가 바로 ‘사로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 국가로 조직화된 사로국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흔적을 남겼을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옮겨간다.사로국 사회를 이끈 중심 집단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중국 동북지역이나 한반도 서북지방에서 경주지역으로 유입된 외부 세력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무렵 사회, 문화 속 가장 큰 변화로 ‘목관묘’(널무덤)라고 일컫는 새로운 구조의 무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목관묘 부장품은 멀리 떨어진 선진 지역으로부터 교역을 통해 입수한 제의용 청동기를 비롯해, 철제 무기, 농·공구 등으로 일괄 교체된다. 이런 물질문화의 변화는 이전 시기 거대한 돌을 이용해 ‘지석묘’(고인돌)를 공동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원거리 교역에 기반한 네트워크 사회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결국, 읍락 단위로 내부적 발전을 거듭해 나간 지역공동체에 선진 문화를 가진 외부 세력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정치체인 사로국이 형성되었고, 드디어 역사 무대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던 것이다.장기명학예연구사시간이 흐르면서 사로국은 주변 나라들과 함께 ‘진한(辰韓)’이라는 경제적·사회적 연맹체를 이루게 된다. 진한 연맹체는 점차 한반도와 그 주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낙랑, 대방, 동예, 마한, 왜 등과 교류하며 역사에 본격적으로 흔적을 남겼고, 그 중심에는 진한 연맹의 맹주로서 사로국이 있었다. 이러한 진한 연맹체의 활발한 대외 교역의 결과물로 중국 한나라의 청동 거울과 동전, 왜(일본)에서 생산한 다양한 청동 무기류 등 다양한 외래 문물이 경상도 일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외래계 문물들은 당시 경상도 일대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와질토기(瓦質土器)’로 불리는 회백색 토기 및 다양한 철제 도구들과 함께 사로국의 물질문화를 대표하게 된다.경제적 교역 공동체인 진한 네트워크는 문헌 기록에 남겨진 시점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1세기 중엽부터 확인되며, 4세기 중엽에 소속 국들이 사로국에 의해 신라로 통합될 때까지 오랜 기간 유지된다. 마치 고대 그리스에 자리 잡았던 도시국가 폴리스 동맹체제처럼 각기 고유한 영역을 지니고 상호 간에 화합과 견제를 반복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삼한의 소국들은 활, 창, 방패와 같은 무기를 잘 사용했고, 비록 다투고 전쟁을 하더라도 서로 굴복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라고 기록된 중국의 ‘진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렇지만 당시의 동북아시아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대외적 상황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유동적이었으며, 사로국의 지배 집단과 내부 구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당 시기 초기 국가는 결코 강력한 왕권에 기반한 구조가 아니었고, 국읍이라는 국가 중심지는 고정불변에 가까운 ‘수도’로 볼 수 없었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는 놀라울 만큼 동일한 역사상(歷史像)을 제시한다. 최고 지배자의 호칭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이라 불리는 토착 용어로서 존장자(종교 주관 혹은 나이·덕이 많은 사람)를 의미하였으며, 3성(박씨, 석씨, 김씨) 집단이 교대로 이사금을 배출했다거나 국읍에 의한 읍락의 통제가 어려웠다는 상황이 엿보인다. 실제로 탁월한 무덤이나 거대한 건축물은 한 지점에서만 지속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3~4개 유력 집단이 그들만의 근거지를 기반으로 각축을 벌이는 양상을 띤다.하지만 사람과 권력은 어느 순간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한 상황을 일순간에 변화시킨다. 더 이상, 바깥에서 불어오는 유동적 국제 정세와 안으로부터 국내 기반을 흔드는 견제 움직임은 국가 권력의 풍향을 바꾸지 못한다. 물론, 신라(新羅)라는 고대 국가로 새롭게 일신하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와 내부 구조를 모두 장악할 수단과 정당화 기제가 필요했다. 이런 핵심 키워드를 제공한 것이 ‘철’과 ‘통합 이데올로기’였다. 역사적 시간은 점차 흘러,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2021-01-25

‘신춘문예’ 생각

매년 그렇듯 이번 1월 첫 주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며 보냈다. 이른바 ‘신춘병’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1월 1일이면 가슴께가 아리다. 떡국 대신 열등감과 좌절감, 분노를 끓여 먹었던 새해 첫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12월 초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마감 시즌이 되면 원고를 들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편 사고가 일어날까봐, 혹 시인을 꿈꾸는 집배원이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써진 내 등기우편을 열어보고는 감탄하며 자기 이름으로 바꿔 낼까봐 우체국도 못 믿고 직접 갖다 주느라 그랬다. 그때부터 한 열흘 기대와 희망, 불안과 초조함을 마구 널뛰며 지냈다. 당선소감을 써보기도 하고, 신문에 실릴 사진을 고르기도 하고, 학교에 현수막이 내걸리는 상상도 하고, ‘20대 얼짱 시인’으로 유명해져 방송에 출연하는 망상에도 빠지곤 했다.12월 20일쯤부터 당선통보 전화가 가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전에는 모든 당선자가 확정된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던져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1월 1일, 당선작들을 읽기 전 심사평부터 찾아 봤다. ‘예심은 통과했겠지’, ‘내 작품이 거론됐을 거야’… 눈 씻고 봐도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했다. 한 며칠 술만 마시며 지냈다. 내가 쓴 시들이 다 쓰레기 같았다. 삼성 계열사인 중앙일보에 본명으로 응모한 게 탈락 사유일 거라고 ‘음모론’을 써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심사평과 본심진출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걸 10년 동안 했다.10년 동안 1월 1일에는 남들 박수나 쳐줬다. 2004년 동아일보 김성규 시인, 문화일보 김지훈 시인은 가까이서 보던 선배들, 그저 경외감만 들었다. 2005년 한국일보 신기섭의 ‘나무도마’는 넋 놓고 감탄했던 시, 행간에 스민 죽음의 냄새가 시인에게도 비극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시인은 신춘문예에 당선한 그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를 동시 석권한 이윤설 시인은 정말 대단했다.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불가리아 여인’은 지금 읽어도 세련됐다. 이윤설 시인도 지난해 가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2007년에는 경향신문 신미나 시인, 조선일보 김윤이 시인, 2008년에는 경향신문 이제니 시인, 동아일보 이은규 시인이 돌아가며 내 마음을 폭행했다. 퍽, 퍽, 퍽, 절망과 감탄, 질투가 피멍처럼! 2009년엔 김은주, 민구, 정영효, 이우성 등 훗날 주목받게 되는 시인들이 나란히 나왔다. 2010년에는 동아일보 유병록 시인, 2011년에는 조선일보 신철규 시인, 2012년에는 동아일보 안미옥 시인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2013년에는 동아일보 이병국 시인과 그간 수십 번 최종심에서 떨어진 ‘불운의 아이콘’ 이해존 시인의 경향신문 당선이 기억난다.그리고 2014년, 박세미, 최현우, 이소연 시인이 화려하게 데뷔하는 걸 지켜보며 나는 신춘문예를 내려놓았다. 연말에 ‘시인수첩’ 신인상에 투고했고, 떨어지면 이제 시 안 쓸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운 좋게 당선이 됐다. 그 후 열심히 작품 발표도 하고 시집도 냈다. 이제는 12월과 1월의 우울, 증오, 오기, 좌절, 망상, 마음 졸임, 초조함, 술병, 억지웃음, 거짓축하, 겨우 뱉어내는 괜찮다는 말, 눈물 같은 것들과 모두 작별했지만 내가 이루지 못한 꿈 ‘신춘문예’는 여전히 아름답다.몇 해 전부터 문학계에서 등단 제도의 불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때마다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등단 제도라는 상징성을 지닌 신춘문예의 폐지가 논의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중앙일보는 정말로 신춘문예를 폐지했다. 앞으로 등단 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지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피와 땀과 눈물어린 꿈이라면 신춘문예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꿈을 이룬 2021년 당선자들 축하합니다. 정말 부러워요!

2021-01-25

경계에 선 사람들

무대에 선 한 가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호등이 바뀔 때 빨간색과 초록색 불빛 사이의 노란 불빛이 3초간 빛나는 모습을 보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빛내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학력이나 소속사 대신 ‘63호 가수’라고 소개했다.JTBC에서 방송되는 ‘싱어게인’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명가수를 대상으로 출연자의 정보나 배경을 배제한 채, 익명성을 부여하여 출연자의 무대만을 조명한다.30호 가수는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며 소개한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재능이며 자신을 전형적인 실력 없는 사람임을 덧붙인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기에 경계를 서성이고 있는 사람이라 칭하며 언뜻 불안감을 내비치지만, 조명이 꺼지고 노래가 시작되면 그간 숨겨 왔던 내밀한 경계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지나치게 감정이 고조되어 어색하고 불안정하지만 반면 그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이고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연이은 실패와 소외 속에서 꿈을 부르는 간절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이해의 시도와 용기와 강인함을 준다. 다시 한 번 무대를 갖게 된 그들의 노래는 열렬했고 자유로워 보였다. 실패와 흠으로 꾸준히 엮었을 경계는 예리하면서도 단단한 테두리가 되어 보였고, 완전함보다는 온전함에 가까웠다.윤여진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실험적이고 독보적인 물결을 일으킨 존재는 자신의 불안정함을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아 새롭게 탄생한다. 63호와 30호 가수는 심사위원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놀라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63호 가수는 투박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음색과 연주로 방송 첫 화 최고의 1분 시청률을 기록했다.30호 가수는 이효리의 댄스곡인 ‘치티치티뱅뱅’을 새로운 록 장르로 재해석하여 ‘장르가 30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곡을 그의 색깔을 입혀 재해석해 30년 전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는 심사위원의 극찬이 이어지기도 했다.그들이 노래라는 경계를 서성이고 확장하는 것처럼 나 또한 다양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무수한 경계도 있고, 때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의 경계, 무지에서 비롯되는 부끄러움의 경계, 읽기와 쓰기와 사랑으로부터 빚어지는 경계도 있다.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면 하루 중 불쾌한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늘 사람으로 가득 찬 퇴근길 지하철에선 어쩌다 부딪친 사람에게,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정류장 앞 오밀조밀 만들어둔 눈사람을 보았을 때나 일몰을 구경하던 이와 눈이 마주칠 때에 서로의 연한 경계가 드러나듯, 잠시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경계는 사물이나 기준을 나누는 한계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을 구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경계하여 지키는 것이 있고, 반대로 확장하여 새로운 세계와 자아를 발견하는 경계도 있다. 불교에서는 경계를 인과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받는 과보라 칭한다. 다시 주어진 무대를 묵묵히 그리며, 살아가며, 꿈과 현실로 행하는 이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약간의 운과 불운을 생각한다. 무엇을 경계 안에 두느냐에 따라 경계는 단단한 테두리가 되기도, 철조망이 되기도, 화단이 되기도, 무성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운에 가까워지며 조금 더 명징해질 것이다.

2021-01-25

UAM(도심항공 모빌리티)

UAM은 Urban Air Mobility의 줄임말로 도심항공 모빌리티란 뜻이다. 즉, 드론, 로봇택시, 플라잉카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으며, 하늘을 떠다니는 운송수단들을 가리킨다.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궁극의 교통수단이지만 머지않아 현실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당초 취미용 드론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도심항공 모빌리티 기술은 점차 적재하중을 높여 택배용과 화물용 배달서비스로 진화했고, 안전성과 효율성이 검증되면 일부 노선에 한정된 고가의 이동수단으로 승객용 도심항공 모빌리티로 시작, 점차 택시요금 수준까지 요금이 내려가면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사람과 건물, 자동차가 뒤섞인 복잡한 2차원 공간에서 더이상 효율을 높이기 어려워 3차원 공간을 이용하는 UAM은 메가시티 교통문제를 해결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수직이착륙 형태의 UAM은 활주로가 필요없고, 최소한의 이·착륙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비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현재 주로 취미와 영상용 소형 드론은 가성비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국이 앞서 있으며, 최첨단 기능 장착 및 적재하중 높은 고가 군용드론은 미국, 유럽, 이스라엘이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엔진, 모터의 회전력, 프로펠러 비틀림각에 의한 양력, 앞으로 빠르게 나가는 추진력에 기반하는 산업의 특성상 세계 각국의 전통 항공제작사부터 전기차 기술을 축적한 자동차 업체까지 UAM사업에 뛰어들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그룹의 미래 방향성으로 자동차 50%, 도심항공모빌리티(UAM) 30%, 로보틱스 20%를 제시해 관심을 끌고있다. 미래의 대중교통수단이 될 UAM, 인류에게 또 하나의 산업혁명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5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전략과 한미동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바이든(J. Biden)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부활이다. 동맹과 협력하여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북한의 비핵화 전략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우리의 외교가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트럼프(D. Trump)와 바이든의 외교안보전략은 그 기조(基調)가 다르다. 트럼프의 외교가 동맹을 고려하지 않는 ‘미국우선주의와 거래주의’였다면, 바이든은 동맹을 중시하면서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주의’를 역설한다. 국제협상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탑다운(top-down)’방식이었지만, 바이든은 실무협상을 토대로 한 정상외교, 즉 ‘바텀업(bottom-up)’방식을 선호한다.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전략은 한미동맹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우선 미·중 패권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반중(反中)전선 참여를 더욱 압박할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 승리 후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안보와 경제의 핵심축(linchpin)”이라고 했다. 이는 ‘쿼드(Quad)’와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한국의 참여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게다가 바이든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문재인정부가 추구해 온 미·중 균형외교, 즉 ‘전략적 모호성’의 유지와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한편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도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은 “김정은이 핵능력 축소에 동의할 경우에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협상과 압박이 병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좋은 친구’라고 했지만, 바이든은 그를 ‘폭력배(thug)’라고 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정상회담 쇼’가 완전히 실패했으며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 폐기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북한이 신형 ICBM과 SLBM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함으로써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보다는 ‘제재와 압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때문에 싱가포르선언을 토대로 또 다시 북미대화를 주선하려는 정부의 중재외교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이처럼 바이든 시대의 한미동맹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맹은 ‘가치와 위협’에 대해 인식을 같이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외교적 수사로서의 동맹’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동맹’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현실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김정은이 제8차 당 대회에서 지시한 ‘전술핵’ 개발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미동맹이다. 미·중 균형외교와 북·미 중재외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적 동맹외교를 시급히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2021-01-25

해양기후변화와 울릉도(독도)의 대응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겨울 울릉도는 고립의 섬으로 변한다. 겨울철에는 잦은 해양기상악화로 육지로 오고 가는 뱃길의 통제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10년 동안(2011~2020년) 겨울철(12~2월) 한 달 평균 결항 일은 15.4일이었다.한 달에 절반 넘게 결항한 것이다. 울릉도를 오고 가는 400~600t급 미만의 소형 여객선만으로 겨울 파도를 이기기에는 너무 벅차다. 설령 여객선이 운항하더라도 뱃멀미로 승객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울릉도 항로상에 발령된 기상청 풍랑특보는 지난 20년(2001~2020년) 동안 연평균 84.3일이 발령됐다. 이런 기상악화에 따라 울릉도 항로는 연간 100일 내외의 통제일을 보인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 10년(2011~2020년) 들어 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는 연간 89.7일로 이전 10년에 79.0일에 비해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증가 추세는 최근의 겨울철 기상악화 증가와 관련된다.연구자들은 동해의 겨울철 기상과 관련된 시베리아 고기압 세기에 영향을 미치는 북극진동의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기후변화와 관련된 간접적 영향인 셈이다.기후변화와 관련된 영향은 울릉도(독도)의 바다 표층 수온 변화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울릉도(독도)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지난 100년간 1.3℃ 증가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 수역 중 가장 높은 표층 수온 증가율이었다.바다의 여름이랄 수 있는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로 보면 더욱 분명히 수온 증가가 체감된다. 울릉도 연안에서 지난 1966년부터 관측된 표층 수온 자료에 따르면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는 1960년대 약 70여 일에서 최근 120여 일로 약 50일가량 증가했다.바다의 여름이 두 달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25℃ 이상의 연간 고수온일 수는 2010년대 들어 20일 이상으로 고수온 일수가 이전에 비해 매우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표층 수온 10℃ 미만일 수는 과거에 비해 감소 추세에 있다. 바다의 더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이러한 바다의 아열대화 증가에 따라 울릉도(독도) 연안의 아열대종 출현 비율이 증가하거나 출현 시기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지난 12월 울릉도 연안 조사에서 열대어종인 파랑돔의 서식을 확인한 바도 있다.해양기후변화는 울릉도(독도) 주변해역의 오징어 어획량 및 어획시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상 동해에서 오징어 주 어장은 동해 남쪽에서 북상하는 따뜻한 해류와 동해 북쪽에서 남하하는 차가운 해류가 만나는 수온 전선역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두 해류가 만나는 수온 전선역에서 수렴류에 의한 오징어의 먹이 생물인 플랑크톤이 축적된 이유로 고려되고 있다. 최근 울릉도 어획량은 199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1/10 수준으로 매우 감소하고 있다.예전에는 수온 전선역이 울릉도 주변에 형성돼 울릉도 주변이 오징어의 좋은 어장이었다면, 해양기후변화에 따라 동해 남쪽에서 따뜻한 해류가 강하게 확장하면서 수온 전선역이 동해 북한 수역으로 점차 이동, 상대적으로 울릉도 주변은 예년과 비교하면 오징어 어장 형성의 환경적 조건이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늦가을 혹은 초겨울이 되면서 동해 남쪽에서의 따뜻한 해류는 약화하고 동해 북쪽에서의 차가운 해류는 강화되면서 다시 울릉도 주변에 오징어 어장이 형성되지만,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해상기상 악화로 출어 일수가 감소, 자연스럽게 어획량 또한 감소하고 있다.2004년부터 북중어업협정에 따라 중국어선의 동해 북한수역 오징어 어선 진출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수온 전선역이 예년에 비해 동해 북한 수역으로 북상한 이유와도 절대 무관치 않다.해양기후변화로 겨울철을 중심으로 한 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 일수 증가, 표층수온의 아열대화, 오징어 어장의 변화와 어획시기의 변화 등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이에 따라 능동적 대처가 필요하다.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 일수 증가에 대비하려면 울릉도 항로상 대형 여객선의 취항이 필수적이다. 섬 주민에게 육지와의 교통 환경 개선은 최고의 복지이다. 최근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서 8천t급 이상의 대형 여객선 취항을 위한 여객선 공모가 진행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안정적 운항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여름철 바다와 관련 관광이 증가 추세에 있고 이와 관련해 해양레저관광의 다변화를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단순히 보는 울릉도에서 체험하는 울릉도로 적극적 모색해야 한다. 오징어 어장의 변화와 관련해 남북해양수산협력의 적극적 모색과 중국어선의 북한 수역입어에 따른 우리 어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해양기후변화의 시대, 울릉도(독도)의 다양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독도를 부속 섬으로 둔 울릉도와 대한민국 섬이 보다 가고 싶은 섬, 살고 싶은 섬, 지속가능한 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2021-01-24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는 무엇인가?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1981년 대구시와 경상북도로 행정이 분리된 이후 인구는 정체, 지방소멸 위험이 심각하게 진행 중이다. 2018년 기준으로 대구·경북 인구는 전국 10% 밑으로 하락했고 경제적으로는 대구·경북 지역 내 총 생산이 전국 비중 1985년 이래 1/4로 하락했으며,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3년 이래 최하위, 경북은 1993년 5위, 2019년 6위를 했으나 2014년 이후 빠르게 하락 중이다.대구경북행정통합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대구경북행정통합이나 공론화에 대한 정보가 없어 궁금해 하고 있다. 행정통합은 수도권집중, 지방소멸, 경제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해결 방안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를 하나로 합쳐 더 큰 자치권과 자원을 가지는 대구경북특별자치정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대구경북행정통합 추진과 공론화는 다른 개념이다. 현재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는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위원회가 아니고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 의견수렴을 통한 공론조사를 하고 이 내용을 시·도지사에게 전달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일각에서 위원회가 추진위원회로 오해도 하고 있지만, 이는 공론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보이며 앞으로 공론화가 진행되면서 시·도민 의견수렴을 활발히 하게 되면 오해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공론조사는 행정통합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는 이해관계자, 전문가, 시·도민 등의 다양한 의견을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수렴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으로, 여론조사보다는 다양한 정보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여론 수렴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1988년 미국의 제임스 피시킨 미국스탠퍼드대 교수가 제안한 방법론으로 1994년 영국을 시초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실시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8.31 부동산 정책 공론조사, 2013년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 2017년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론화위원회, 2018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를 들 수 있다. 대구·경북에서도 대구시신청사건립공론화위원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전 숙의형 시민의견 조사위원회를 통해 공론조사에 대한 경험을 한바 있다.대구경북행정통합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될 계획이라고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시·도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론과정을 수행하는 시·도민 공론형성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의 최종의견을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통합된 대구·경북의 지위, 특례 등이 포함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결국 대구경북행정통합은 특정인들의 결정이 아닌 시·도민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시·도민 의견수렴에 한계가 있지만,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비대면 온라인 시·도민 열린 토론회가 진행됐고 이 외에도 숙의공론화조사, 여론조사, 빅데이터 조사, 홈페이지,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의견수렴을 진행할 계획임으로 성과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가 행정이 통합되면 대구경북광역특별시, 대구경북광역자치도 등 행정단위간의 상하문제로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는 특별지방정부라는 명칭을 쓰고 있지만, 국내에 이런 명칭을 쓰는 광역지자체는 없다. 광역단위의 지자체가 통합한 예는 국내에는 없고 해외에도 드문 사례여서 어려운 문제이지만 대구·경북이 하나가 되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형태나 명칭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경제적 파급효과나 행정효율성, 지역균형발전, 청사 위치 등 다양한 쟁점들이 논의 중이지만 결국은 시·도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설정이 중요하다. 행정통합 이후에도 일자리가 없고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행정통합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통합된 대구·경북은 인구 510만과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국제공항과 항만을 가진 지자체가 된다. 이와 함께 구미, 포항 등의 산업과 경주, 안동 등 문화·관광 콘텐츠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만 가지고는 시·도민들에게 통합된 대구·경북 경쟁력을 이야기하기엔 많이 부족함이 많다.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비전과 정책목표가 설정되고, 시·도민들의 의견수렴이 충분히 반영되는 행정통합 공론조사가 되어야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공론조사에 대한 대표성, 평등성, 공정성 등의 비판적 견해가 있지만, 시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주민투표과정이 있기 때문에 공론조사의 한계도 극복되며 대구·경북 전체 시도민의 결정이 된다.앞으로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의 경험은 우리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다른 광역지자체에서도 행정통합의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고 대구경북행정통합의 과정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행정통합에 대한 대구·경북 시·도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의견 제시를 통한 참여가 필요하다.

2021-01-24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

윤영대수필가좋은 의도로 내놓은 의견이나 정책이 예상 밖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때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고 비난을 받는다. 즉 바로 눈앞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에 예상되는 결과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검토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그 정책의 수혜자라고 생각되는 국민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것, 즉 이익을 둘러싼 숨겨진 계산법을 잘 모른 탓이다. 또 자연에 관한 일이라면 그 환경을 끌고 가는 자연의 법칙을 간과한 결과이다. 이러한 근시안적 정책은 결국은 본말이 전도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이러한 예로는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인도의 델리에서 숲의 코브라가 많아 주민들의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코브라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처음에는 줄어들다가 이상하게도 자꾸 보상금을 받아가는 일이 있어 조사해 보니 사육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즉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키운 것이다. 이에 보상금 제도를 폐지했더니 주민들이 야산에 버려서 다시 코브라가 증식했다는 사실이다.또 베트남 하노이의 ‘들쥐꼬리 현상금’도 같다. 하수구 들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꼬리를 가져오면 현상금을 주었는데 하수구의 들쥐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꼬리만 자르고 그냥 방사했다는 것인데 다시 새끼를 낳아 번식해야만 또 꼬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이러한 측면으로 ‘풍선효과’도 들 수 있겠다. 바람 넣은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풍선을 잘 못 눌러 창피를 당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다.중국 마오쩌뚱의 참새 박멸 지시다. 스촨성 방문 때, 참새가 먹는 곡식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듣고 없애라고 지시하자 국민들이 열심히 잡아 죽였는데 참새가 줄어들자 오히려 그 먹이였던 메뚜기가 창궐하여 들판을 황폐시켜 국민 절반이 굶어 죽었다는 사건이 있다. 또 프랑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후 국민들이 우유를 많이 먹을 수 있도록 우유값을 반값으로 내렸더니 낙농업자들이 생산을 포기하고 소를 도살하여 고기로 팔았다. 사료값도 안된다는 말을 듣고 사료값을 또 내리니 이번에는 풀들을 모두 태워버려 소를 못 키우고 오히려 우유값이 폭등했다는 역사가 있다.이러한 즉흥적인 정책은 자연과 인간과의 고리와 시장경제를 인식하지 못한 강제적 졸속 행정이다. 숲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숲이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 삶과 자연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은 좋은 발상이었으나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들의 윤리와 가치관이 해이해지고 사회갈등이 심화된 경우를 많이 보고 듣는다.우리도 풍선을 잘못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그럴싸한 말을 바탕으로 택한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는 오히려 소상공인들의 몰락으로 저임금, 알바 등의 일자리가 줄었고 서민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 풍선도 스무 번도 더 눌렀지만 오히려 집값을 폭등시켰다.단순한 인위적인 정책으로 사회의 근본적인 힘을 제재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무를 가꾸려면 나무는 물론 그 숲을 유지하고 있는 흙과 물과 바람도 깊이 살펴야 한다.

2021-01-24

국민통합이 필요하다

박창원수필가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운 현 정부 들어서 전직 두 대통령이 구속됐고, 그들은 아직도 옥살이를 하고 있다. 힘센 여당이 각종 개혁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국회의 생명인 ‘협상’은 실종돼 버렸다. 지금도 여야는 이런 저런 정치 이슈로 피 튀기는 싸움질을 하고 있으니, 지지하는 성향에 따라 국민도 편이 갈려 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이 갈등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치명적이다. 사사건건 진영 간 싸움으로 번져 버리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아무리 논리가 옳더라도 그 주장을 하는 이가 우군이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적의를 드러낸다.보복은 보복을 낳는다고, 다음 선거에서 정권이 바뀌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벌써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어떻게 정치보복이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국민 중 최소 30%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부정하진 못한다.이대로는 안 된다. 힘이 센 거대 여당이라면 자기편의 정치적 목표 달성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반대편에 있는 30%의 목소리를 외면하고서는, 이들을 적으로 돌려놓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 당을 국민이 부여한 정치 파트너로 인식하고 협상을 복원해야 한다. 때로는 통 큰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한다.새해 벽두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두고 우리 사회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여당 대표가 먼저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고, 여당 내에서, 야당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사면권자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아직 말할 때는 아니며, 적절한 시기 되면 더 깊은 고민을 통해 결정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하고 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웠다.여당 대표는 여당 대표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셈법이 있겠지만, 꼬여 가는 정국을 푸는 해법으로서 사면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국민통합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서 초췌한 얼굴에 수의를 입은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의 상당수는 그에게 내려진 죄의 경중을 떠나 몹시 안타까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앞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기구로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설치했다가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아무런 실적도 남기지 못한 채 해산되고 만 적이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실패한 그 위원회를 다시 설치하자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민통합의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념으로, 지역으로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새로운 가치로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가 아닌가. 대통령은 모름지기 갈등의 중재자여야 하기 때문이다.2021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이즈음에서 우리 정치는 숨을 한번 고를 필요가 있다.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타협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안해진다.

2021-01-24

바이든의 메시지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다. 인구의 60% 정도가 백인이지만 히스패닉, 흑인,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인 분포도 40%에 달한다. 미국 역사를 말하면서 인종차별의 역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남북전쟁은 그 대표적 사례다.남북전쟁 이후 인종 문제는 표면적으로 많이 개선되기도 했지만 미국내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사회 문제가 쉼없이 발생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 정책으로 인종차별의 문제를 정치 쟁점화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인종차별의 문제는 아직도 미국내 남은 뿌리깊은 숙제다.미국의 18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희생을 감수하고 흑인을 노예에서 해방시켰다. 그는 1863년 1월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면서 “내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면 그것은 이 조치 때문일 것”이라 말했다. 링컨은 건국 정신을 지키려다 암살이라는 불운 겪었으나 그가 서명한 노예해방선언이 있은지 140여년 지난 2008년 미국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이 탄생했다.미국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취임사에서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메시지로 ‘통합(unit)을 내세웠다. 그는 취임사에서 통합을 11번, 우리(we)를 106번 언급했다고 한다. “미국의 통합에 영혼을 끌어모아 하나로 뭉치겠다”고 말했다. 인종과 종교, 정치적 성향에서 서로 다른 사람끼리 배척하는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통합으로 이끌겠다는 뜻이다.민주주의가 다양성을 장점으로 하지만 다양성을 통합으로 이끌 때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 갈등과 분열로 갈라진 지금의 우리 정치도 통합의 정신이 절실하다. 우리 정치권이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24

국민의힘, 또 ‘실패의 마법’에 걸렸나

안재휘 논설위원‘지는 것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상대방에게 거듭 지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습관성 패배’를 의심해봐야 한다. 패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붙는다. 습관적으로 패배하는 자들은 대개 경우 ‘남 탓’이나 ‘핑계’를 달고 산다. 패배하는 습관의 결정적 이유는 뜻밖으로 간단하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번번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또다시 ‘실패의 마법’에 걸려든 징조가 농후하다. 서울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밑도 끝도 없는 ‘단일화’ 논쟁 속에 기류가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다. 다 이긴 줄 알고 화려한 폭죽 준비에 여념이 없던 부산 선거판마저 정당지지율에서 순식간에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야권 후보들끼리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네거티브 선거전이 유권자들의 체머리를 흔들도록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집권당의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면서 야당이 다소 유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보선은 철저하게 조직력 싸움이다. 서울에선 구청장 25명 중 여당이 24명, 국회의원 41명 중 여당이 35명이다. 부산지역 전체 구청장 16명 중 1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여론과는 상관없이,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도 유리한 구석이 없다.국민의힘은 지난해 총선참패의 원인을 잊은 채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여론이 기울었으니 ‘누워서 떡 먹기’일 거라는 오판이 똑같이 지배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능한 민주당은 더 밀어주기 싫다. 그런데 국민의힘을 선택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는 게 민심의 요체다.듣기 불편한 예감이겠지만, 이렇게 가면 더불어민주당이 또 크게 이긴다. 말썽이 나거나 말거나 민주당은 뭐라도 자꾸만 내놓는다. ‘가덕도 신공항’을 승부수로 띄우고 부울경 민심을 들쑤시는 전략은 대성공이다. 당 대표와 대통령이 짜고 친, ‘전 대통령 사면’ 논란도 영남 갈라치기를 노린 독약 묻은 먹잇감이다. 최대 이슈인 코로나19 대책을 놓고도 도무지 솔깃한 ‘대책’ 하나 선도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이슈파이팅 점수는 빵점이다.제1야당의 꼬리를 암팡지게 물고 통째로 삼키려는 안철수의 야망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국민의힘도 놀랄 정도로 과감한 ‘중도개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꼴통보수’의 관성으로부터 확실하게 탈출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 못지않은 영남지역 중흥 비전을 당 차원에서 내놓고 설득해야 한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감동적인 정책들을 선도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무조건 실패한다.여당 물어뜯기만으로는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국민의힘을 왜 찍어야 하지?”하는 유권자들의 근원적인 질문에 만족할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수구꼴통’의 악취에 자꾸만 발목이 잡히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집권당에 대한 비난에만 목을 매는 작금의 전략으로는 어림도 없다. ‘실패의 마법’을 끊어낼 극적인 반전이 필요하다.

2021-01-24

택중유화(澤中有火)로 울진 발전 위해 최선

전찬걸울진군수2020년 초에 시작된 코로나19는 한 해를 통째로 집어 삼키고 한 해의 문턱을 넘어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하지만 700여 공직자와 군민 모두는 한마음이 돼 청정 울진을 반드시 지켜 낼 것이다. 2021년 군정운영방향을 ‘군민과 함께 여는 미래 울진’으로 정해 완공된 대형 관광인프라와 체육시설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점하고자 한다.미래 울진의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의 3대 핵심전략은 미래 신산업 육성, 치유·힐링관광 기반조성, 스포츠·레저산업 활성화이다.이러한 핵심전략을 뒷받침하는 6대 역점시책을 추진하겠다. 먼저, 국가시책에 맞춘 울진형 뉴딜사업 개발과 해양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산업을 통한 ‘미래 먹거리 창출 경제울진’을 건설하겠다. 기존의 전략자산인 경북해양과학연구단지와 지난해 개관한 ‘국립해양과학관’을 중심으로 ‘환동해 심해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수중글라이더 핵심장비 기술개발, 무인 선박산업 기반 조성사업 등을 추진해 해양 관련 신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울진형 뉴딜 종합계획 용역을 통해 지역에 맞는 맞춤형 사업을 발굴하고, 해양관광진흥지구 지정 및 투자선도지구 지정을 통해 기업유치와 고용창출에 노력하겠다.둘째, 온천·숲·해양치유를 결합한 ‘머물고 싶은 힐링울진’을 완성 하겠다. 울진은 천혜의 자연과 대규모 관광인프라 및 풍부한 체육시설 확충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셋째, 따뜻하고 세심한 복지정책으로 ‘더불어 잘 사는 복지울진’을 만들어 가겠다. 저출생 고령화 사회 극복을 위해 공공산후 조리원 운영을 활성화하고 셋째아 출산장려금 증액과 출생축하기념품을 지원하겠다. 후포 어린이집 이전 신축과 공동육아나눔터 및 다함께돌봄센터를 확대 운영해 나가겠으며, 사회취약계층 생활민원 기동처리반 운영과 저소득층 맞춤형 싱크대 설치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하겠다.넷째, 새로운 판로 확보와 시책추진으로 ‘풍요로움이 가득한 활력울진’을 만들어 가겠다. 축산경쟁력 확보를 위한 스마트축산 ICT한우단지조성 시범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행정절차를 마치고 올해에는 부지조성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대도시 바로마켓 직거래를 활성화하고 로컬푸드 지역농산물 직거래장터와 소비자 초청 도·농교류 직거래장터를 운영해 농업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과 6차 산업 활성화에 힘쓰겠다. 농기계 임대사업을 확대하고 농촌인력지원단과 농작업기계화 영농지원단을 운영하여 고령화 인력 부족을 해소하겠다.다섯째, 재해위험지역 개선과 깨끗한 생활환경 조성으로 ‘안전하고 행복한 쾌적울진’을 만들겠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재해예방을 위해 울진, 월변, 평해, 후포지구에 추진중인 배수펌프시설 4개소에 대해조속히 사업을 추진하고 추곡교(호월), 구미교(행곡) 등 자연재해 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을 추진해 각종 재해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마지막으로, 군민과 함께하는 ‘소통행정, 현장군정’을 실천하겠다. 2021년은 친절운동 정착에 중점을 두고 상·하반기 베스트 친절공무원 선발 등을 통해 공직내부에서 친절문화 정착을 선도하겠으며, 친절 조형물, 7번 국도 빌보드 친절 홍보 등 경관마케팅을 활성화 하고 숙박, 음식점 등에 대한 친절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마련하여 친절분위기 확산과 정착에 노력하겠다.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길이 결코 어둡지 않은 것은 700여 공직자가 있고 5만 군민이 함께하기 때문이다.택중유화(澤中有火)라는 말이 있다. ‘화합하는 가운데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만들자’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 울진 발전을 위해 군민과 군의회, 공직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겠다. 저를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급변하는 시대에 긴장감을 가지고 군민의 공복으로서 약속했던 군민 모두의 행복과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2021-01-24

나만의 낱말 사전

거리두기 하는 시기라 보드게임도 비대면으로 모였다. 줌이라는 앱을 누르니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오늘 함께 할 게임은 라온 확장 편, 내게 주어진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낱말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던 것을 먼저 다 클리어 하면 승리한다.1분 안에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 60초. 두 번째로 내가 할 차례가 돌아올 때는 다른 사람이 만든 낱말과 내가 가진 자음 모음을 합쳐서 만들어야 하니 1분이 1초 같은 긴박감이 차올랐다. ㅂ이 두 개 보여서 얼른 ‘비바리’를 외치니, 그런 단어도 있냐고 세 명 모두 물어 본다. 한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고서야 넘어갔다. 고교, 교기, 코로나 같은 예전부터 사용하던 낱말들을 30대 그녀들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고교얄개’라는 영화가 히트를 쳤고, ‘고교생 일기’라는 드라마가 하는 날에는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기도 했었는데 이들은 처음 듣나보다. 코로나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사용하던 낱말인데도 평소에 잘 쓰지 않아서인지 뜨악해했다. 새로운 낱말이라며 따로 적어두기까지 했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쓰는 말들도 함께 나이를 먹는구나 싶었다.동아리 회원이 비바리를 발견해서 신나하는 모습에 내 어린 시절의 낱말이 겹쳐졌다. 중1 어느 날, 책에서 ‘흐드러지다’란 표현을 처음 읽었다. 도라지꽃이 흐드러진 풍경을 묘사한 장면을 보고 그 새로운 낱말에 반했다. 그날 이후 흐드러지다를 써먹고 싶어서 친구와 수다 떨다가도, 일기장에도 마구 끼워 넣었다. 흐드러지다에 어울리는 문장을 만들어 연습장에 적어두었다가 아무 때나 꺼내 썼다.며칠 전 군위로 가족여행을 갔다. 연구실에만 박혀있던 큰아이가 달리는 차안에서 간만에 수다를 떨었다. 방을 옮기는 선배의 원룸을 함께 보러 갔다가 그전에 머물던 이가 두고 간 침대와 옷걸이 같은 가구가 있는 것을 보고 얼른 계약하라고 부추겼다고 했다. 듣고 있던 남편이 “침대 허른 거 아이가?” 큰아이는 킥킥대며 침대가 혓바닥도 아니고 헐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허른’이라는 말을 나는 값싼 침대로 들었는데 한 세대를 넘어가니 첨 듣는 낱말이 되어버렸다.김순희수필가도착해 겨울 산수유가 흐드러진 돌담길을 걸었다. 한밤마을이라고 찾아갔는데 밤나무는 눈에 띄지 않고 집집마다 빨간 산수유가 쪼글해진 채로 매달려있었다. 돌담을 따라 자연스럽게 돌아들어가니 현재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라 아무집이나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었다. 그 중 남천고택이 열려 있었다. 너른 마당에 들어가 인증샷을 찍었다. 가까이 있는 문화재 대율리 대청도 담장이 없으니 누구나 구경해도 되는 곳이었다.아들이 갑자기 군위가 무슨 뜻일까요 한다. 다니러가면서도 그 뜻까지 헤아리지 않았던 터라 검색찬스를 썼다. 군위(軍威), 군의 위력, 위신이라고 나온다. 방을 같이 쓰던 선배가 포항이 무슨 뜻이냐고 묻더라고 한다. 자신은 이과생이라 그런지 지명에 대해 풀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그 선배는 문과생이면서 교차 지원해 공대에 온 특이한 경우였다. 포구 포(浦)에 항구 항(港)이니 포구항구에서 왔구나 하며 풀이해주더란다. 사실 우리가 사는 포항(浦項)은 그 항구 항(港)이 아니라 항목 항(項)을 쓰는 줄 큰아이의 선배는 몰랐나 보다. 그래도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는 젊은이가 있다니 기특했다.‘미식예찬’이란 책에서 작가는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말해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당신이 어떤 낱말을 사용하는지 적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얇은 낱말책의 신세대인지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책을 간직한 쉰세대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낱말 책이 저절로 두꺼워지진 않는다. 수집해서 입으로 되뇌고 또박또박 마음에 적어 넣어야 두툼해진다.아들이 사용하는 말과 동아리회원들이 알려주는 새 낱말도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주워 담는다. 순발력도 재치도 앞서는 신세대들과의 다음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쉰세대의 안간힘이다.

2021-01-24

귀 큰 임금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신라 제48대 임금인 경문대왕은 귀가 나귀의 귀처럼 길었다. 왕은 왕관속에 귀를 숨겨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했으나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만은 예외였다. 평생 비밀을 지키던 복두장은 죽음이 임박하자 도림사의 대나무숲에 가서 목청껏 외쳤다.“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 데, 경문대왕은 그 소리가 싫어서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 커다란 임금님의 ‘귀’는 왕의 허물을 뜻한다. 아무리 지엄한 왕의 허물이라도 끝내 숨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어떤 정부나 국가지도자도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선의를 갖고있다해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권위적인 정권은 다른 의견에 대해 집권세력을 방해하기 위한 공격으로만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반대의견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경직돼있다.현 정부가 어느때부턴가 잘못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근로자의 소득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올림으로써 나라 전체의 소비를 진작시켜 성장을 이끌어내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해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소상공인들의 반발을 불렀다. 어느덧 소주성 정책은 슬며시 사라졌다. 부동산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 집값상승을 막으려면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고 대출규제, 세금폭탄 등 규제정책을 잇따라 내놨지만 수도권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제서야 공급위주 정책으로 바꾸겠다면서도 정책실패로 고통받은 국민들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사과가 없다. 후안무치다.‘정관의 치세’로 태평성세를 구현한 당 태종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생김새를 볼 수 없듯이 신하들의 간언이 없으면 정치적 득실에 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먹줄이 있으면 굽은 나무가 바르게 되고, 기술이 정교한 장인이 있으면 보옥을 얻을 수 있듯이 시세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진 신하의 충언은 군주를 바로 서게 할 뿐 아니라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충성스런 간언을 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 18일 각본없이 질문을 받겠다며 시작한 신년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가진 조·중·동은 물론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 울산 등 영남권 언론은 단 하나도 지명하지 않았다. 그저 정부에 우호적인 논조의 일부 신문과 인터넷언론·해외언론 등에 질문권이 주어졌다. 그저 눈가림식이다. 이래선 안된다. 임금님의 귀가 크면 어떤가. 큰 귀로 민초들의 얘기를 더 듣자.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고, 고치면 될 일이다. 귀 큰 임금님의 큰 귀는 허물이 아니다.

2021-01-21

코로나 1년

코로나 발생 1년 동안 인류가 겪은 삶은 가히 충격적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의 고통과 불편함은 삶의 의욕을 꺾기에 충분했다. 생사를 위협하는 질병 앞에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기도 했다.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우울감을 표현한 신조어다. 최근에는 우울감이 점차 쌓여 폭발상태에 이르는 것을 코로나 레드라 하고, 화병이나 스트레스를 넘어 암담한 상태에 빠진 것을 두고 코로나 블랙라고 부르는 신조어도 생겼다.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조사에 의하면 작년 12월 기준 국민 5명 중 1명이 우울 위험군에 포함돼 전년보다 5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또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비율도 전년보다 크게 증가해 국민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분석된다.또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에서 소비된 주류와 담배 소비지출이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국민이 받은 충격과 스트레스를 단적으로 보여준 통계라 생각든다.코로나 이후의 인류의 생활 패턴을 두고 뉴노멀(New Normal)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신창타이(新常態) 즉 새로운 정상상태라고 한다. 우리 삶의 새로운 기준과 표준이 등장할 것을 예측한 표현이다.지난 20일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었다. 이른바 뉴노멀 시대에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되돌아 볼 시간이다. 세계적 저명 학자들은 지구상의 이상기온 변화가 있는 한 더 심각하고 또다른 바이러스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뉴노멀 시대를 살아갈 인류의 지혜가 절박하게 요구되는 시기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21

미국 대통령 선거 끝나도 안 끝났다

깜빡 잠든 사이에 유튜브에 몇 개 클립이 떴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라는 것을 발동했다고 한다. 이 명령에 따르면 미국에는 행정 주체들의 권한 사용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관행들이 있어 왔으며, 이에 따르는 부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인해 미국 국민 스스로 자신의 대리인을 선택하는 힘이 약화되어 왔다고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년 동안 미국에서 치러진 선거들에 대해 앞으로 120일 동안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명령했다.이 명령은 트럼프 임기가 단 하루만을 남긴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문을 야기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보고하라는 것이냐? 명령을 내린 사람은 플로리다에 내려가고 없지 않겠는가?지금 시각이 미국의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근 하루 앞둔 시점이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 2020년 11월 3일 미국인들이 선거를 치른 이후에도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 온 미국 선거 사태가 시계 제로 상태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11월 13일 밤,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이번 선거의 관건이라고 알려져 온 대여섯 개의 경합주에서 트럼프는 일방적으로 앞서 갔다.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했고 바이든은 늦게 나타나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새벽이 되었을 때 바이든이 예언한 것 같은 현상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 경합주들에서 일제히 바이든이 트럼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는 예기찮게 역전되었고 다음날, 다다음날,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한 선거를 도둑질 당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사기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그리고는 최근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었다. 미국의 빅테크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은 1월 6일의 상하원 합동회의의 바이든 인증 이후, 선거 부정을 주장한 트럼프의 계정을 삭제해 버렸다. 또 선거 부정 운운하는 유튜버들을 향해서는 삭제를 하거나 경고 딱지를 붙이는 일들이 계속되기도 했다.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미국 선거 문제는 바야흐로 새로운 궤도에 진입한 것 같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이미 3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전국 50개주에서 차출, 밀집해 있다. 크기는 서울의 반의 반밖에 안 되고 인구는 60만에 불과한 행정수도에 어마어마한 숫자다. 하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깃발만 수없이 꽂아놓은 플래그 취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이번 선거는 결고 통합적 축제로 기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이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절차가 무엇인지, 어때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지 재확인시켜 준 세계사적 과정이 될 것이다. 그래도 뒷맛은 여전히 쓸 것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1

팬덤의 심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산다는 뜻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바나의 초식동물들처럼 혼자 떨어져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적이나 맹수의 공격을 막기도 쉽고 큰 동물을 사냥할 수도 있으니 그만큼 생존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지금도 고립되거나 소외되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은 아마 그런 습성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무슨 동호회나 팬덤이 성행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이고.팬덤(Fandom)이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 즉 어떤 대상의 팬(fan)들이 모인 집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팬덤이 시작된 것은 가수 조용필로부터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남진, 나훈아 등 인기가수들의 팬 집단이 있었지만, 대규모의 체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것은 조용필의 ‘오빠부’가 시초였다는 것이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1세대 아이돌스타의 등장으로 조직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팬덤의 개념이 대중화됐다. 2000년대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2세대 아이돌스타들이 팬덤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 이전 팬덤은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는 지지자의 역할이 강했다면 이후에는 스타 보호 및 변호, 성공을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서포터(supporter)로서의 역할로 확대되었다.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전역으로 팬덤의 범위가 확산되었고 이는 한류열풍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오늘날에는 가수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같은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팬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고려대 성영신 교수는 팬과 스타의 관계를 ‘심리적 공생관계’라고 했다. 팬들은 스타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되고, 스타는 팬을 통해서 자신의 인정 욕구나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비평가 앤드류 튜더는 팬덤이 되는 과정을 스타와 친해지는 단계에서부터 감정적인 동일시 단계, 스타의 외모를 모방하는 단계, 심리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단계로 나누기도 했다,팬덤활동은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특정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하나의 성취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스포츠나 연예계를 활성화 시키는 등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는 한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한다. 스포츠나 운동선수에 열광하는 팬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라이벌에게 위해를 가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팬덤의 위험성이다. 특정 정파나 정치인의 팬덤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형성되어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팬덤의 심리에는 냉철한 현실인식이나 사리분별보다는 감정적 군중심리나 ‘내로남불’같은 진영논리가 판을 치게 마련이다.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시류에 휩쓸리거나 팬덤 같은 집단에 함몰되기 쉽고, 그런 부류가 많을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팬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잇속을 챙기려는 장사치들이나 정치꾼들의 술수에 부화뇌동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2021-01-21

합동군사훈련을 북한과 협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우방과의 군사훈련을 적과 상의한다?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필요하면 남북 군사공동위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군 통수권자가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을 적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이다.김정은은 강한 군사력을 선언하고 군 퍼레이드를 심야에 열고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언하며 무력에 기반한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핵이 없고 미군과의 연합 훈련 강화만이 북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 아닌 북한과 ‘훈련 협의’를 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싱가포르 쇼’로 각종 연합훈령이 전부 폐지됐다. 김정은 트럼프 쇼는 비핵화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러나 북핵은 오히려 그후 대폭 증강됐다.북한이 돌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세계사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사에서 서로 합의하여 지은 건물을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폭파시킨 예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항의 한마디 못하고 북한의 눈치만 본다. 바보 같은 짝사랑 제의가 계속되고 있다.과거에도 남북단일팀 구성, 올림픽 분산개최, 대북지원 민간단체 방북 등 아무런 답이 없는 북한을 위한 짝사랑 손짓은 계속 되었지만 지금도 금강산 관광, 개성단지 재개, 남북 경협 등 메아리 없는 손짓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심지어 한미군사훈련을 북한과 상의하는 지경까지 왔다. 올 때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왜 우리는 짝사랑을 하는가? 상대는 트집만 잡고 있는데도 계속되는 짝사랑은 국민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을 허용하고 우리가 백기를 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통일은 절대 구걸로 오지 않는다. 북한과의 평화는 우리가 우방과 관계를 공고히 하고 강한 힘을 보여 줄 때에만 가능할 뿐이다.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주도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으로 결정했다’는 논란이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다.이제 한미 훈련마저 북과 사전 협의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인권 표결을 북에 물어보고 정했다는 소식이 믿어진다.한 깡패 같은 친구가 힘이 없는 친구를 매일 괴롭힌다. 힘이 없는 친구는 평화를 위해 돈도 가져다주고 그 깡패 같은 친구가 때려도 참고 웃음을 지으면서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날 힘없는 친구가 주머니에 짱돌을 쥐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깡패를 공격했다. 난투극이 벌어지고 힘없는 친구는 크게 다쳤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부터 그 깡패가 힘없는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끝났다.구걸이나 양보가 아니라 강한 힘으로 대응해야만 깡패의 행패를 종결시킬 수 있다. 우리가 북한에 지금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다.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한다.

2021-01-21

타인의 방

배문경수필가문을 닫자 사면에 갇혔다. 생일을 맞아 카페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냈다. 뒷날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일 전날 코로나양성인 사람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기겁을 한 친구는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해왔다.말로만 듣던 두려운 상황이 내게도 일어났다. 코로나가 나와는 상관없으리란 생각이 여지없이 깨졌다. 잠시 침착하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다행이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사방이 숨조차 쉴 수 없이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도 시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양성일 수 있다는 불안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코로나에 걸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이 직장인 나는 입원환자와 의료진들, 직원들, 진료를 볼 환자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가족들은 또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한 병원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자꾸만 떠올랐다.그 순간 목이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증세가 나타나는 걸까. 두려웠다. 사실이라면…, 종일 마음속 지옥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친구로부터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온통 세상이 깃털처럼 가볍게 와 닿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그 후에도 나는 세 번의 독방을 더 경험했다. 그러는 사이 현관문을 열면 삽시간에 가족들이 사라졌다. 집으로 들어서면 거실은 좀 전까지 텔레비전을 봤는지 요즘 유행하는 미스트 트롯의 멤버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트로트를 열심히 불렀다. 급하게 방으로 모두 들어간 흔적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노래가 어서 오라고 인사한다. 나를 반기던 가족은 모두 타인이 되었다.노크를 하면 곧 첫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될 딸의 예민해진 외마디가 들린다. 방마다 사람은 있지만 벽처럼 단단한 문은 걸쇠를 건 채 여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나의 “퇴근했다”는 인사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리다 바닥에 툭 떨어진다.방문을 닫으면 외롭다.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든 음식을 먹든 함께 하던 시간이 아주 오래전처럼 아득하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처럼 인정받지 못한 내가 웅크리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도 내가 타인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안전하기를 바라지만 고립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버겁다.상황이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고 그때마다 음성이었다. 음성이라는 문자가 올 때까지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음성이 지금 괜찮다는 뜻이지만 ‘다행’이 언제 ‘불행’이 될지 모른다. 그만큼 역병은 내 주변까지 깊게 파고들었다.이러다 어느 순간 나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의 주인공인 그레고리처럼 가족들로부터 잊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을 움직이는 괴물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미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속도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오늘도 현관문을 무겁게 열었다. 식탁 위에 어머니가 금세 끓인 된장찌개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그 옆에는 딸아이가 쓴 예쁜 카드에 며칠 후 출근한다며 엄마의 건강을 걱정했다. 남편이 낮에 직장으로 전화를 했었다. “별일 없제?” 무뚝뚝한 한 마디를 하고 끊었다.긴 시간 적과 싸우며 지친 나를 가족들이 위로한다. 내 곁에는 각각 타인의 방처럼 보이는 곳에 자신을 가둔 가족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마스크를 끼고 거리를 두고 손을 자주 씻는 일이 예방이다. 그것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적을 무찌르는 것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체온을 올리면서 면역을 키워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방마다 고립된 가족 모두가 서로를 염려하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타전하고 있다.

2021-01-20

삶을 깁고 공그르고

한글은 표현이 아름다운 글자이다. 하지만 외래어와 더불어 국적불명의 언어들 때문에 우리말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돌아보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삶의 각 분야에 녹아 있는 우리말을 김이랑 문학평론가가 찾아 그 아름다움을 들려줄 예정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함께 만물의 공존과 조화, 상생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우리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편집자 주개나 소 등 동물은 털옷을 입고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태어난다. 벌거숭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씻긴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 입히기이다. 그래서인지 언어배열도 의식주(衣食住)라고 썼다. 음식이나 집보다 옷(衣)을 우선시했던 것이다.어릴 적 어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내 호롱불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늘에 실을 꿰어가며 밤늦도록 바느질했다. 구멍이 난 양말, 무릎이 해진 바지, 단추가 떨어진 점퍼, 끈 떨어진 책가방, 이러한 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깁고 호고 홀치고 공글렀다.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옷도 가방도 멀쩡해졌다.바느질할 때, 어머니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천을 덧대고 이으며 한 땀 한 땀 바늘길을 냈다. 어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바늘이 가고 실이 따라갔다. 작은 바늘과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어머니의 손끝처럼 매우 세밀했다.깁다 : 다른 헝겊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박다 : 두들기거나 꽂거나 틀거나 하여 속으로 들어가게 하다.뜨다 : 실이나 끈, 노 따위로 얽거나 짜서 만들다.호다 : 헝겊을 여러 겹 겹쳐 대고 땀을 곱걸지 않은 채 성기게 꿰매다.누비다 : 천을 두 겹으로 포개어 안팎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두어 가로 세로로 줄이 지게 박다.볼달다 : 버선의 앞뒤 바닥에 헝겊을 대어 깁다.홀치다 :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다.감치다 : 실의 올이 풀리지 않게 용수철 모양으로 감으며 꿰매다.시치다 : 여러 겹의 헝겊 조각을 맞대어 듬성듬성 성기게 꿰매다.사뜨다 :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실로 감치다.휘갑치다 :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얽어 휘둘러 감아 꿰매다.공그르다 : 접어 맞댄 양쪽에 바늘을 번갈아 넣어 가며 실 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떠서 꿰매다.징거매다 :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게 딴 천을 대고 대강 꿰매다.송당거리다 : 바늘땀을 다문다문 거칠게 자꾸 호다.바느질이라는 행위 속에 이러한 동사가 있다. 깁고, 박고, 뜨고, 호고, 누비고, 홀치고, 감치고, 시치고, 사뜨고, 휘갑치고, 공그르고…, 우리말은 행위나 상태를 소리로 표현하는 소리글자이다. 하나씩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면 행위와 발음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은 세밀한 동작을 절묘하게 소리로 표현하기 때문이다.땀 : 바늘로 한 번 뜬 자국.솔기 : 두 장의 천을 실로 꿰매어 이어 놓은 부분.매듭 : 실이나 끈 따위를 묶어 마디를 맺은 자리.시접 : 접혀서 옷 솔기의 속으로 들어간 부분.민짜 : 아무 장식이 없는 박음질.곱솔 : 솔기를 한번 꺾어서 호고 다시 또 접어서 박는 일.쌈솔 : 겉으로 시접한 쪽을 0.3~0.5cm 내에서 박은 다음 그 시접으로 접어 한 번 더 박는 일.뒤옹솔 : 바느질한 감의 안을 서로 맞대고 시접을 0.5cm 정도 박은 다음 안으로 뒤집어서 겉쪽의 시접이 보이지 않도록 다시 안에서 박는 일.가름솔 : 여러 천을 겉끼리 맞추어 한 번 박아 솔기를 양쪽으로 가르는 일.마름질 :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뜨개질 : 털실이나 실 따위를 얽고 짜서 옷, 장갑 따위를 만드는 일.박이옷 : 박음질하여 지은 옷.도련박기 : 도련이나 치마의 밑단을 박는 작업.반짇고리 : 바늘·실·골무·헝겊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누비이불 : 누벼서 지은 이불.김이랑수필가이렇게 나열해보니, 바느질과 관련된 명사도 동사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늘로 뜬 자국은 ‘땀’이라 하고 맺은 자리는 ‘매듭’이라 하고 솔기를 곱으로 접는다고 ‘곱솔’이라 한다. 안으로 솔기를 싼다고 ‘쌈솔’이라 하고 뒤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뒤옹솔’이라 한다. 게다가 솔기를 가른다고 ‘가름솔’이라 하고 침을 감는다고 ‘감침질’이라고 하니, 그 모양새가 발음에 그대로 살아있지 않는가.그런가 하면 파생어도 많다. ‘일을 마무리하다’에서 ‘마무리’는 ‘마무르다’에서 나왔다. 옷을 입을 때 끈을 매고 여미고 하는 뒷단속을 ‘매무시’라고 한다. 마무르다, 매무새, 매다, 맺다, 맵시 등은 모두 바느질에서 나온 말이다. 삶에서 옷을 뺄 수 없듯이 바느질 용어가 삶 곳곳에 녹아 있는 것이다.가만히 짚어보면 우리네 삶도 바느질과 같다. 살다가 마음이 해지면 깁고, 느슨해지면 단단히 홀치고, 풀어질 것 같으면 말아서 감친다. 큰일을 앞두고는 마음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이 끝나면 마무리한다. 인연은 맺고 다하면 끊고 하던 일은 매듭을 짓는다. 정착하고 싶으면 말뚝을 박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문학평론가

2021-01-20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 바이든 새 대통령은 ‘회복과 포용을 지표로 삼아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선거는 지난 11월에 있었지만 지나온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군중이 의사 진행 중이었던 의회 건물 안으로 들이닥쳐 소동과 폭력을 휘두른 일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 여부가 문제가 되어 그는 하원에서 탄핵까지 당하였다.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여겼던 미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전 세계가 보고 말았다. 미국은 이대로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회복하려면 미국은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혼돈의 과정에서 미국을 흔들었던 구호들을 살펴보자. ‘다시 위대한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그들의 외침에는 백인우월주의가 숨어 들었다. 건국으로부터 다양한 출신 사람들을 품기로 했던 미국인들이었지만 ‘피부색’에는 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자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라트(D. Ziblatt)는 미래를 걱정하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How Democracies Die)’를 저술했다. 트럼프의 리더십이 백인 중심으로만 진행되면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급기야 선거의 결과도 부정하지 않았는가.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 적이 거의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그런 전통을 세워가기를 기대하였다.미국이 보여줘야 한다. 미국이 먼저 인종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가 외쳤던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부정한 끝에 폭력과 탄핵에 이르는 경험까지 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의 모범은 ‘많은 사람의 생각’을 담는 데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배경.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배격하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이내 막을 내린다.우리는 어떤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나름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달려가는 길목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가 아니면 배척하는가. 편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는 주장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하트만(Michael Hartmann)은 그의 책 ‘엘리트제국의 몰락’에서 ‘소수의 세력이 지배하는 닫힌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포괄적이면서 환대하는 열린 엘리트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엘리트구조로는 민주적 공존을 기할 수가 없다.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고 차별없이 참여하는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구현된다.‘우리는 늘 반대편에 서 있지만, 한 번도 적이었던 때는 없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다. 반대는 더 나은 무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다른 생각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힘으로 하여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해 가야 한다. 새 미국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1-01-20

공매도

공매도는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용어로, 특정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주문을 내는 투자전략을 가리킨다.주로 초단기 매매차익을 노리는 데 사용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A 종목 주가가 1만원이고,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경우 A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일단 1만원에 공매도 주문을 낸다. 그리고 실제 주가가 8천원으로 하락했을 때 A 종목을 다시 사서 2천원의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주식 공매도는 특정 주식의 가격이 단기적으로 과도하게 상승할 경우 매도 주문을 증가시켜 주가를 정상수준으로 되돌려 증권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반면 증권시장에서 시세조종과 채무불이행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투자자 예상과 달리 주식을 공매도한 후에 주가가 급등하면 큰 낭패다. 손실부담이 증가해 빌린 주식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채무불이행이 발생한다. 주식공매도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69년 2월 이며, 2008년 금융위기때 외국인 공매도가 전체 물량의 90%를 넘자 2008년 10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5년간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전면금지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폭락장이 이어지자 2020년 3월16일부터 9월15일까지 6개월간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금지됐고, 이후 2021년 3월15일까지 6개월 연장됐다. 올들어 주식시장이 3천포인트를 넘어 고공행진하면서 3월15일 공매도 재개여부를 결정할 금융위원회의 결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있다.기관투자가들에게 훨씬 유리한 주식공매도 영구금지를 요구하는 동학개미들의 요구가 과연 받아들여질지 관심거리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