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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결혼 10년을 맞이한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부부 사이가 매우 좋아서 겉으로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되는 사람이 랍비를 찾아와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랍비도 그 부부를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설마 이들 부부 사이가 불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이혼의 이유인즉, 이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어 친척들로부터 이혼할 것을 강요받아왔다는 것이었다. 유태의 전통에 의하면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 아이를 얻지 못하면 이혼 조건이 성립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헤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친척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랍비를 찾아와 의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두 부부가 함께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랍비들은 이혼 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들이다. 왜냐하면,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재혼하여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착한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하더라도 아내에게만은 굴욕감을 주지 않고 평온한 가운데 헤어지기를 바라고 지혜를 구하기에 랍비가 ‘탈무드’에서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먼저 아내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거기에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면서 보여준 아내의 훌륭했던 점을 자랑하고 아내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인사말을 하도록 하였다. 이들 부부는 서로 싫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명백하게 밝히려는 뜻이었다. 랍비는 그에게 해야 할 말을 귀띔해주어 도와주었다.남편은 이제 헤어져야 할 아내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 선물은 아내가 헤어지고 난 후에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랍비는 남편에게 잔치가 끝나면 아내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청중 앞에 약속하게 하였고, 아내에게도 똑같이 그 약속을 믿고 가장 귀한 것을 구하도록 권유하였다. 잔치가 끝나자 남편이 아내에게 가장 귀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을 하나만 말하라고 하였다.그때 아내는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한 가지만 요구하게 되었다. 아내의 요구는 자신이 평생 가장 귀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은 곧 ‘남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헤어지지 않았고, 그 후 아이까지도 낳게 되었다고 한다.지금 당신의 삶에 주어진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그 귀중함을 모른채 어리석게 있다가도 없어질 것에 맘을 두고 때론 목숨을 걸고 살지는 않습니까?

2021-02-17

자리

배문경수필가복수초(福壽草)가 피었다.노란꽃잎이 하늘을 향해 ‘영원한 행복’의 꽃말처럼 빛난다. 오래전 설악산 겨울 등반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꽃잎 위의 눈을 녹이던 복수초를 인터넷으로 다시 보니 반갑다. 겨울 눈 속에서 추위를 이기고 봄을 알리기 위해 피어난 강한 꽃이다.노란색을 유난히 좋아하던 딸이 집을 떠난 지 달포가 되었다. 딸은 학교를 졸업한 후 공무원시험을 치겠다며 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첫해 석 달 동안의 공부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 나오며 그동안의 공부와 시험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은 것 같았다.책상 앞이 딸의 자리였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내가 잠든 동안,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사이 눈비가 내렸고 바람도 불었지만 안중에 없었다. 합격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시험에 사활을 거는 것이 사는 길임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았다. 딸은 책과 문제집, 인터넷 강의에 몰입했다. 지독한 각오가 보였다.인내의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나는 딸을 위해 기도했다. 어머니의 염원처럼 아니 모든 어머니가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겠지만 두 손을 모았고 엎디어 절을 했다.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고서야 출근했다. 눈비가 내리고 천둥이 쳐도 상관없이 그 길을 걸으며 한 해를 보냈다. 답이 그 끝에 있었다. 합격이란 말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다. 요즘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데, 모지락스러워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듯 했다.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창틀에 화분들이 오종종 놓여있다. 햇빛을 받는 화분은 잘 자라고 그늘에 둔 화분에는 꽃이 잘 피지 않거나 색이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한 번 씩 자리를 바꾸어주고 기름진 흙을 사와서 기존의 흙과 섞어 화초들을 정리한다. 작은 화분에 있던 식물의 뿌리는 둥글게 엉켜진 채 화분 크기만큼 자라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이러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옹골차게 만들어 나갈 힘이 있다.집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딸이 스물 중반까지 제 방을 오가며 울고 웃던 모습을 늘 지켜봤다. 떠난 뒤 자리는 적막하다. 벽에 남아있던 포스트잇도 다 사라지고 쓸모가 없어진 시험문제집이 밖으로 나갔다. 웬만한 짐은 꾸려서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 이제는 남은 가족들이 조금씩 당겨 앉으며 벌어진 자리를 메운다.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바깥풍경이 보고 싶어 창문을 맞은편에 두었다. 나는 이제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원하던 책을 읽고, 인생의 본질과 가치를 더듬어 보리라 맘먹고 있다. 추억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나를 찾아보려한다. 또 그것을 기록하며 깨알 같은 의미들을 찾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고자한다. 지금 이 자리는 나만의 꽃을 피우는 자리가 될 것이다.법구경에는 득생인도란(得生人道難) 말이 있다. 만물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난 사람의 삶이 녹록치 않다. 사는 일이 막막할 때, 나는 제우스의 노여움으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하는 시시포스를 떠올리곤 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 형벌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다.지금 이 자리를 가장 좋은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수많은 인생성공을 거론한 자기 개발서도 대신해 줄 수 없다.삶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드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할 때이며 자기 자신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가 떠오른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2021-02-17

딱한 실정 뼈저리게 느끼니 - 구휼과 교육에 앞장서다, 장홍모 여사

경주 외동의 괘릉초등학교 운동장 양지바른 곳에 빗돌 하나가 서있다. 우뚝 선 돌엔 ‘아산 장씨 홍모여사 시혜 불망비’라는 비명이 선명하다. 정문 노거수 아래 잡초와 덤불에 묻혀 있던 것을 단장해 현재 장소로 옮겼다. 뒷면 비석문 내용의 일부를 옮겨본다. ‘…. 어린이가 멀고 위험한 곳을 눈비와 추위에도 지칠 줄 모르고 오늘도 늦을세라 종종 걸음 치면서 학교에 다니던 그 딱한 실정을 뼈저리게 느끼시고 교사 일동과 부지를 기꺼이 희사하시어….’ 학교 부지와 본관동을 희사한 장홍모 여사의 덕을 기려 1965년에 주민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뜻있게 살다간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안, 이 학교 박정재 교장선생님의 초대로 장홍모 여사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여사가 기거했던 종가 수봉정도 함께 둘러보게 되었다.장홍모 여사 생전 모습.장홍모 여사(1890-1968)는 수봉 이규인(秀峯 李圭寅) 선생의 손부이다. 경주 유금의 아산 장씨 가문에서 괘릉에 터전을 잡은 명문 수봉가로 출가했다. 일제강점기를 건너던 수봉 선생의 철학은 개인의 입신양명이 아니라 부의 축적을 통한 사회 환원에 있었다. 이용후생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의식주가 해결된 이상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는 신념으로 이웃과 겨레에 도움이 되는 삶을 추구했다. ‘이수봉정’(李秀峯亭)이라는 재단을 설립해 빈민구제와 의료 사업에 힘썼고, 밖으로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수봉 선생은 홍모 여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했다. 홍모 여사가 수봉가의 안살림을 이어받았을 때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학교 뒤쪽 언덕 너머 들 한가운데에 기품 서린 저택이 보였다. 수봉정 안채에 들러 선생의 6대손인 젊은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어린 딸을 넓은 자연 품에서 키우고 싶어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종가댁으로 들어왔단다. 수봉정은 학당과 의국으로 이루어진 수봉정과 사저로 구분되어 있다. 사저 회랑 입구에는 잠시 수봉정에 머물렀다던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들었다는 돌이 보이고, 무해산방과 열락당이란 사랑채가 차례로 보인다. 이곳 사랑채에서 수봉 선생은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의료 혜택을 구상하고, 독립운동 자금 후원을 실천했다. 그 너머가 수봉 선생을 모시며 홍모 여사가 살림을 꾸려나간 안채이다.당시 일제의 수탈로 배고픈 과객들이 넘쳐났다. 당시 수봉가를 드나들던 객들은 하루 평균 오십여 명이었다. 과객과 상주객 그리고 집안 식구들, 그 많은 입들의 하루 세 끼를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한 사람이 홍모 여사였다. 여사의 숨결과 손때가 가장 많이 배었을 곳간채에 자연스레 눈길이 머물렀다. 이 곳 말고도 서너 채의 곳간이 더 있었다고 하니 살림 규모와 구휼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음식 장만처와 객들의 기거처를 분주히 오갔을 홍모 여사와 집안 여성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수봉정 옆 고샅길을 따라 기와집들이 나란하다. 한때 수봉가가 친족을 이뤄 살던 곳이란다. 정원을 잘 가꾼 한 집으로 들어간다. 코가 크고 혈색이 좋은 이상돈 어르신 역시 수봉가의 후손으로 홍모 여사의 시종조카라고 했다. 홍모 여사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느냐고 여쭈었다. 큰 키와 수려한 용모를 지닌 여장부에다 역사에 밝은 독서가였다고 한다. 객들이 들어찰 때는 쌀 몇 가마니, 소다리 몇 개씩을 찢어 곳간 하나를 내주며 직접 해먹으라고 할 만큼 통이 큰 분이셨단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낳았을 때 ‘코쟁이가 어린 코쟁이를 낳았네’하시며 미역꾸러미를 내놓던 일이란다. 추억과 회한에 젖은 어르신은 몇 번이나 울먹거리신다.김살로메 소설가수봉가의 핵심 사상 중의 하나가 교육사업이었다. 일제의 탄압을 견디면서 경주중학교를 설립한 수봉 선생은 끝내 개교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삼 년 간 병구완을 하던 홍모 여사가 개교를 지켜본 셈인데, 이때 벌써 육영정신이 계승되었을 것이다. 괘릉에 초등학교가 없어 먼 길을 다녀야한다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홍모 여사는 기꺼이 학교 부지와 교사동을 희사했던 것이다.현재 괘릉초등학교는 장홍모 여사 관련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사의 캐릭터를 공모해 제작에 들어갔고 그에 관한 여러 스토리텔링 작업을 기획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홍모 여사의 정신이 동심에도 스며들기를 바라본다. 수봉 선생을 도와 가난한 주변을 돌보고,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교육 사업에 앞장선 홍모 여사의 활동이 심도 있는 학술서로 재조명되기를 바라면서 괘릉 마을을 떠나왔다.

2021-02-17

일그러진 기억과 무너진 신사도

장규열 한동대 교수학교는 무엇일까. 아침마다 나서는 등굣길은 어떤 느낌인가. 믿고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있고 반갑게 만나는 선생님이 있다. 밤새도 그리웠던 친구들이 있고 떠난 후에도 그리운 교정이 있다. 가르치고 배운 기억이 한 가득이며 나누고 함께 했던 시간으로 늘 돌아가고 싶다. 그러니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했던’ 마지막 날을 기억하면서,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라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런 학교의 모습이 일그러졌을까. 모든 비겁함들 가운데 가장 천박하고 저열한 것이 ‘폭력’이 아닐까. 학교폭력, 그것도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 문제가 되어 어른이 된 운동선수가 여론의 도마에 오른다. 사라져야 하는 학교폭력, 그것도 가장 신사도를 발휘해야 할 스포츠를 물들인 폭력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유네스코(UNESCO)는 학교폭력을 수많은 아동과 학생들의 기본적인 학습권을 부정하는 범죄로 규정하며 그 퇴치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폭력으로 물든 학교 환경에서 어느 학생이 긍정적인 배움과 배려를 경험할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든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의사표시도 하기 어려우며 능동적인 학습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된다. 하물며 그것이 날마다 겪어야 하는 일상이라면 그가 가지게 될 학교에 대한 기억은 어떠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보다 적극적인 학교폭력 근절에 나서야 한다. 사건이 불거지고 언론에 보도되면 그제야 사후약방문격의 관심을 보이면 괴물같은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숨을 죽일 뿐 사방에서 또아리를 틀고 다시 설치게 마련인 게 아닌가.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위원회 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혹 사후 처리에만 그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살펴야 한다.스포츠폭력은 또 무엇인가. 공정하고 건강해야 할 운동정신이 저열하고 비겁한 폭력행태와 만난 일이 아닌가. 경기력 향상을 핑계로 삼는다지만 두려움 앞에 발휘되는 그 무엇도 자랑삼을 바가 되지 못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와 관련된 그 어떤 폭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든 국가는 폭력의 존재와 퇴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폭력의 그늘은 오래가기 마련이다. 얻어맞고 억눌렸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피해당사자가 겪는 아픔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해자의 진정성있는 사과와 주변의 공감어린 배려가 있어야 조금씩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터이다.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때에만 실질적인 기량향상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세상이 변해간다. 과학과 기술만 변화를 이끄는 게 아니다. 남을 향한 인식과 이해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강할수록 약한 이를 배려하고, 누구든 서로 격려하며 함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무시하고 배격하며 폭력으로 처단하며 무엇인가 이루려던 어제는 잊어야 한다. 벌어진 폭력에나 반응하던 태도를 바꾸어, 절대로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폭력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폭력은 범죄일 뿐이다.

2021-02-17

차등의결권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자가 경영권에 대한 위협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서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복수의결권·복수의결권주식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1주(株) 1의결권’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쓰인다.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의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주인 포드 집안이 소유한 지분은 7%이지만 차등의결권에 따라 4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또 스웨덴의 발렌베리 집안은 발렌베리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트사의 지분 19%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41%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하면 1주에 2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차등의결권을 채택하고 있다.이 제도는 적은 지분으로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지만, 적대적 MA와 무관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1주 1의결권’의 상법 규정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쿠팡이 지난 1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위해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청서류에서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보유하는 주식에 차등의결권을 부여,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2018년부터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언해왔고, 총선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기 때문. 벤처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과 재벌의 세습의결권에 악용될 것이란 우려가 맞서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2-17

상아탑은 없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월 한 달 내내 마음이 어수선하다. 졸업식과 명절을 집어삼킨 코로나도,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정치인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때문이다.“아빠, 이제 설날 없어지는 거 아니야? 추석에도 못 갔는데, 할아버지 어떻게 해?”설날임에도 할아버지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둘째 아이의 걱정 가득한 말이 잠시 잊고 있던 명절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었지만, 필자는 거실에 쌓여가는 상자의 무게에 눌려 아이의 말을 금세 잊어버렸다. 한동안 집 안은 한숨 소리로 가득했고, 한숨에 어지럼증이 났다.상자 주인은 서울살이를 준비하는 첫째 아이이다. 대학 합격 소식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수도권 코로나19 발생 상황은 기쁨의 반대 감정을 더 빠르게 불러왔다. 2020년 대학 신조어 중 하나는 “코로나 휴학”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필자도 아이에게 권하고 싶었다.교육의 대전제는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만남은 배운 내용을 내면화하여 더 큰 지혜로 바꾸어 주는 힘의 원천이다. 특히 대학교에서 만남이 주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그 힘을 얻으러 대학을 가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코로나19는 그 기본을 앗아갔다. 기본이 사라진 교육계엔 공허한 온라인 영상만이 흉물처럼 자리 잡았다. 말 짓기 좋아하는 정부는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들어 위기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무조건 따르라고 윽박이다. 무한 재생하는 영상에 영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영혼 없는 영상에 학생들의 선택은 학교를 잠시 접는 것이었다.2020학년도 대학생들에게 대학다운 대학 생활은 없었다. 코로나 정국에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캠퍼스의 추억보다 학생들의 대학 감성이다. 최근 들어 대학교가 취업 공장이 되면서 대학 감성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나마 있던 것까지 모조리 없애버렸다. 대학생들의 감성은 낭만을, 낭만은 꿈을, 꿈은 포부를, 포부는 도전을, 도전은 열정을, 열정은 창조를, 창조는 더 큰 감성을 낳았는데, 그 고리들이 완전히 끊겼다.그런데 2021학년도 또한 많은 대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을 공지하고 있으니, 강의실엔 대학생들의 창조 감성 대신 먼지만 수북이 쌓이게 생겼다. 비대면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어대는 시대에 지금과 같은 대학교의 존재 이유는 뭘까?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을 키우는 아이를 보면서 필자는 ‘상아탑’을 떠올렸다. 비록 지금은 상아탑 대신 취업탑이 자리했지만, 대학이 상아탑이라고 불리던 그때 대학생들에겐 진리연구의 뜨거운 피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살기 위한 취업 전쟁만 남았다.설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늦은 세배를 위해 부모님 댁으로 가다가 씁쓸한 가로펼침막이 눈에 들어왔다.“주소 갖기 운동으로 포항 사랑 실천해요.” 곧 서울로 주소를 옮길 아이를 보았다. 어수선한 마음이 결국 길을 잃었다.

2021-02-17

설 명절, 고향 잃은 사람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실향민(失鄕民)은 분단된 북쪽 고향을 잃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쪽에도 고향을 잃은 사람이 많다. 코로나의 광풍이 고향길까지 막는 서글픈 시절이다. 고향도 일가 친지도 가족도 찾지 못하는 설 명절이 되어 버렸다.‘거리는 멀어도 마음만은’이라 하지만 거리가 멀면 마음도 자연히 멀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동요 ‘까치의 설날은 어제께 지만 우리들의 설날’은 오늘이 아닌 기약 없는 내일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비대면의 암울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그 옛날 고향, 설, 친구들이 그립다.달포 전 고향 마을을 다녀왔다. 어느 시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더니 산천도 어릴 때의 그 산천이 아니었다. 물이 콸콸 넘치던 개천도 사라져 버리고, 가파르던 산에도 도로가 나 있었다. 소먹이 가서 동무들과 놀았던 큰 바위는 무척 작아져 버렸다. 어릴 때 첫 새벽부터 동네 사람들의 육성으로 외치던 동장어른, 스피커도 확성기도 없던 시절 그 어른의 걸직한 목소리만 귀에 맴돌고 있다. 한학 공부를 많이 하여 우리가 무척 따랐던 그 어른도 세상 뜬 지 오래되었다. 당시 대학 진학한 자랑을 입버릇처럼 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어릴 때 집성촌의 어른, 친지, 친구들마저 사라진 고향은 내 고향은 아니었다.설 명절이 오면 고향의 세시풍습이 무척 그립다. 섣달그믐 저녁부터 준비한 합동 세배도 없어진 지 오래다. 어릴 때 나는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쉰다는 풍설을 믿었다. 밤 새워 동서로 나누어 윷놀이를 했다. 모두가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합창도 하였다. 당시 동지섣달 긴긴 겨울 밤 우리는 매일 친구 집 사랑방에 모였다. 관솔불을 밝히면서 메주 냄새 쾌쾌한 친구집을 찾았다. 쌀밥에 김치 한쪽뿐인 밤참이 그렇게도 맛있었다. 호롱불 기름 닳는다는 친구 어머니의 성화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올 수 없는 그리운 풍경이다.드디어 눈이 소복이 내린 명절 아침이다. 달포동안 장만한 음식들이 차례상에 올랐다. 우리 마을 제사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함께 지내니 제관은 20여 명이 훨씬 넘었다. 명절 제사는 단잔을 올렸지만 음복과 떡국을 나누다 보면 정오쯤 제사가 모두 끝난다. 함께 했던 고향 설날 제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설날 아침부터 오랜만의 기름진 고기와 막걸리에 취해 다투던 어른들의 모습도 자주 보았다. 설날 오후부터는 동네 어른들을 찾아 빠짐없이 세배했던 일이 어제일 같이 떠오른다. 아름답던 그 정월의 고향 풍습은 어디로 갔을까.이제 고향마을 어딜 가나 전기불이 들어와 있다. 어느 집 마구간에도 경운기가 버티고 있고 마당에는 자동차가 서 있다. 우물가의 두레박도,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도 더욱 찾아 볼 수 없다. 가재 잡던 도랑도 없어지고 물맛 좋던 옹달샘마저 없어져 버렸다. 허리 굽은 소나무와 대나무 숲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동네 어귀 그네를 매던 키 큰 참나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들의 팽이 놀이, 썰매 타기는 동네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사람도 풍습도 사라져 버린 고향은 어릴 때 내 고향이 아니다. 고향 잃은 자들의 슬픔은 나만의 슬픔이 아닐 것이다.

2021-02-17

청하읍성, 복원돼야 한다

박창원수필가지난해 12월 11일, 청하읍성이 있는 포항시 북구 청하초등학교 북쪽 도로변에서 포항시 주관으로 회의가 열렸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보행로 개설공사 관련 발굴조사 설명회였다. 여기에는 포항시 관계자, 발굴조사업체 전문가, 문화재위원을 지낸 심정보 박사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발굴 현장 설명을 듣고, 청하읍성을 둘러본 심정보 박사는 두 번 놀랐다고 했다. 문헌상으로만 보던 청하읍성이 이렇게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처럼 잘 남아 있는 청하읍성이 국가사적은 물론, 지방기념물로도 지정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참석한 포항 사람들은 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기록에 의하면 청하읍성은 처음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쌓았고, 조선 세종 9년(1427)에 청하현감 민인이 석성으로 쌓았다고 한다. 2012년 포항시에서 용역기관을 통해 작성한 ‘청하읍성 기본조사 및 복원타당성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청하읍성은 구릉형 자연지형에 남북 180m, 동서 140m의 장방형으로 축조되었으며, 현재 잔존율이 약 53%에 이를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그러나 보고서가 나오고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려다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후 9년 간 청하읍성 복원문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청하읍성은 잔존율 못지않게 1733년부터 2년 간 청하현감으로 재임했던 겸재 정선이 그린 청하성읍도(淸河城邑圖)로 인해 유명하다. 청하성읍도는 겸재 자신이 근무하던 읍성의 모습을 조감도처럼 세밀하게 그려 남긴 작품이다. 여기에는 읍성의 형태와 건물의 배치, 향교를 비롯한 읍성 주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겸재의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청하읍성은 복원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겸재는 청하읍성에 근무하는 동안 내연산 폭포를 탐승하면서 내연산 폭포 그림을 여러 점 그렸는가 하면, 한국 회화사에 길이 남을 금강전도 같은 명작을 그려 남겼다. 그래서 혹자는 겸재의 청하현감 시절을 진경산수화의 발현기라 하기도 한다. 청하읍성은 그런 곳이다.조선시대 포항지역에는 흥해, 청하, 연일, 장기에 읍성이 있었다. 이 중 장기읍성과 청하읍성은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특히 장기읍성은 20여 년 전부터 수백 억 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기초조사와 발굴조사,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미 포항시의 명소가 되었다. 청하읍성도 복원된다면 포항시 북부 지역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다.포항시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청하읍성 보존 및 복원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지장물이 없는 부분에 대한 발굴을 서둘러야 하고, 발굴 결과에 따라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해야 한다. 읍성 내 관공서 이전도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복원사업을 벌여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절차는 인근 주민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배려해야 하며, 또한 읍성 복원으로 생기는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청하읍성도 살고, 청하도 산다. 청하읍성은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

2021-02-16

인공지능의 두 얼굴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IT 업계를 술렁이게 한 일이 있었다. 어느 스타트업이 만든 인공지능(AI) 챗봇이 사용자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 소위 ‘AI 챗봇 윤리성 논란’ 얘기다.20세 여성의 인격으로 태어나 인간의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었던 AI 챗봇은 검은 마음의 사용자들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다. 잘못된 학습 환경에 노출되어 버린 AI 챗봇은, 사용자들이 가르친 나쁜 생각을 그대로 배워,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나 차별적인 발언까지 쏟아내었다. 건강하게 성장해주기를 바랬을 개발자의 기대와는 달리, 인간의 다정한 친구가 되기는커녕, 모두에게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논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개발 과정상에서도 일부 직원들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수집한 데이터 속에 개인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던 문제 등이 드러나 논란이 이어졌다. 결국 개발사는 공식 사과와 함께 데이터베이스를 폐기하고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내놓은 10대처럼 말하는 AI 챗봇 ‘테이’는 사용자들의 조작으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SNS에 게시하고 16시간 만에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2018년 아마존이 개발한 AI는 채용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발견되어 폐기되었고, 2020년 구글 AI 윤리 기술 책임자가 구글의 AI 기술이 성적·인종적으로 편향되었음을 지적해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패턴처럼 반복되는 AI 윤리성 논란의 과정을 지켜보는 공학자의 마음은 불안하고 부끄럽고 초조하다. 개발사에 비난을 쏟아붓는 우리의 모습 속에, 원인을 개발자들의 문제로 돌려버림으로써 우리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은 외면하고 회피하려는 속내가 읽혀 불안하다. AI 챗봇 논란은 개발사의 책임을 떠나 우리 사회가 감추고 있던 어두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란 생각에 부끄럽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숨어서 음란물을 즐기는 인간의 검은 얼굴이 그대로 비친 거울을 보는듯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논란이 자칫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사회 전체의 혐오와 기피로 잘못 번질까하는 노파심 때문에 초조해진다.십인지수 난적일구(十人之守 難敵一寇·열 사람이 한 도둑 못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SF 영화 속에 나오는 사이코패스 악당들처럼 아무리 좋은 기술도 나쁜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꼭 있다는 것을 개발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세상에 내어놓기 전에는 언제나 만에 하나 생길지도 모르는 악의적인 사용을 막을 수 있는 ‘악용 방지책’에 대해서도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일단 악용이 시작된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 사회 전체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킨 서비스를 폐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제 곧 닥쳐올 데이터 경제와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성 문제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21-02-16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1년 2월 15일 새벽 백기완 선생이 세상과 작별했다. ‘회자정리’라는 말도 있지만,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로 여겨짐은 비단 나만의 소회는 아닐 성싶다. 그렇다 해서 내가 선생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선생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들어온 두 가지만 회상하고자 한다. 인간사는 작은 기억과 그것의 누적이 희로애락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바 크기 때문일 것이다.1987년 1월 초 ‘민중문화운동연합회(민문협)’ 새해맞이 행사인 단배식이 열렸다. 당시 한국의 민중운동은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이 주도하고 있었다. 민문협은 민통련을 구성하는 단체였고, 백기완 선생이 의장이었다. 민통련 의장은 1994년에 고인이 되신 문익환 목사였다. 모임 장소에는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청춘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활기가 돌았다. 백 선생은 그런 우리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문 목사님 오셨습니다!”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백 선생은 우리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하면서 자리를 문 목사께 넘기고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기실 민중민주 운동판에서 보면 백 선생이 연배는 어리지만, 연륜은 문 목사보다 윗길이었다. 여하튼 그날 문 목사는 한복 두루마기 곱게 입고, 돼지 대가리가 차려진 고사상에 절을 하고, 돼지주둥이에 만원 짜리 몇 장을 꽂아 넣었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내게는.1980년대 한국 민중운동의 두 기둥을 모신 민문협 새해 단배식 자리는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향한 뜨거운 기운이 분출했다. 어쩌면 그런 열기가 하나로 모여 1987년 평화대행진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2014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나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세월호 대참사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유진 학생 부친 김영오씨가 단식하던 곳이다. 그이의 단식에 동조하는 단식을 하려고 2박 3일 여정으로 광화문에 갔더랬다. 마지막 날인 8월 15일 우리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백 선생을 뵙게 됐다.여든 살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거리에 나선 백 선생의 거동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동행한 친구 말로는 당뇨와 신장이 불편하여 일상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국가 환란을 맞이하여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과 구호를 외치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 이가 백기완 선생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백 선생을 뵙지 못했고, 그저 들리는 말로 선생의 안부를 듣곤 했다.백 선생 부음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문장으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나와 함께했던 1980년대부터 2021년까지 어디가 됐든 고통받고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백기완 선생이 계셨다는 자명한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토록 열망한 통일을 보지 못하고 눈 감으신 백 선생의 영면을 기원한다.

2021-02-16

지진 왕국

지금 일본은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13일 밤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규모 7.3 지진의 여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지에 대한 불안감이다.일본 국민은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국민적 지진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당시 도후쿠 지방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규모 9.1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지진으로 기록됐다. 1만5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지금도 2천5백여 명의 행방이 묘연하다. 30만명 이상이 피난살이를 해야만 했다.동일본 대지진은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해 6천여 명의 희생자가 난 한신 대지진(규모 7.3)의 180배 위력을 보였다고 한다. 히로시마 원자력 폭파의 위력이 지진 6.0규모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할 것이다.일본은 왜 지진이 잘 일어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1년에 크고 작은 지진이 50만번씩 일어난다고 한다. 그 중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지진은 10만번 정도다. 지리적으로는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90% 이상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하면서 네 개의 지각 덩어리 접점에 위치해 있다. 지진 발생 빈도나 강도면에서 일본이 최고일 수밖에 없다.최근 일본정부 지진조사위는 13일 발생한 후쿠시마 지진은 10년 전 동일본지진의 여파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된 여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국민들이 갖는 지진 공포감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일본은 지난해 코로나로 개최 못했던 도쿄올림픽을 올 7월 개최 예정이나 지진왕국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커지는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2-16

경주 쪽샘 유적과 목곽묘

경주 쪽샘 신라고분 유적은 4~6세기 신라 왕경인들의 집단 무덤 유적이다. 쪽샘 유적은 본래 사적 제512호로 지정된 대릉원(大陵園)과 한 묘역(墓域)에 속하는 곳으로 신라 마립간(麻立干) 시기 집중적으로 축조된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또한 적석목곽묘 외에도 쪽샘 유적에는 목곽묘(덧널무덤), 석곽묘(돌덧널무덤), 옹관묘(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신라 무덤들이 빼곡하게 조성됐음이 밝혀져 신라 고분 연구에 있어 핵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쪽샘 유적은 지리적으로 신라 궁성(宮城)으로 알려진 월성(月城) 북편에 자리하고 있어 신라 왕경 내 고분군의 형성과 전개, 나아가 신라 왕경 경관 복원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쪽샘 유적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다양한 형태의 신라 무덤들이 축조됐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무덤이 바로 ‘목곽묘’이다. 목곽묘는 일반적으로 무덤 묘광을 파낸 뒤 그 내부에 나무로 제작한 곽(槨)을 설치해 무덤주인과 부장품을 함께 묻은 무덤을 말한다. 목곽묘는 영남지역에서 2세기 후반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4세기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다. 한편 몇몇 목곽묘들은 입지의 우월성, 규모의 대형화, 부장품의 대량 매납이 이뤄져 지역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목곽묘는 고대 사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복잡화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 중 하나로 현재 활용되고 있다.이와 같은 목곽묘의 고고학적 특성을 토대로 우리는 신라의 중심 즉 경주에서 ‘사로국’이 어떻게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신라’라는 국가로 발전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경주지역에서는 구정동, 구어리, 덕천리, 황성동 등의 ‘주변’ 유적에서 다수의 목곽묘가 발견돼 보고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라의 ‘중심’ 고분군이 확실한 대릉원과 쪽샘 유적 일대에서는 3~4세기대 목곽묘군이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이러한 자료의 한계는 앞에서 설명한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 연구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그런데 최근 쪽샘 유적에서 4세기에 해당하는 대형 목곽묘가 새롭게 발견돼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쪽샘 L17호로 이름 지어진 이 목곽묘는 전체 묘광 면적이 약 35㎡로 지금까지 경주지역에서 발견된 목곽묘 중 가장 큰 규모다. 또한 더 많은 부장품을 넣기 위해 주곽(으뜸 덧널)과 부곽(딸린 덧널)을 각각 다른 구덩이에 조성한 이혈주부곽식(異穴主部槨) 구조로 축조됐다. 이러한 이혈주부곽식 구조는 김해 대성동 유적과 부산 복천동 유적에서 발견되는 대형 목곽묘와 동일한 모습으로 4세기대 경주지역에서도 김해, 부산과 마찬가지로 최고 지배층의 묘제로 이혈주부곽식 목곽묘가 조성됐음을 알 수 있다.정대홍학예연구사한편 쪽샘 L17호 목곽묘는 후대 건축 등으로 인해 주곽과 부곽이 크게 파괴됐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식 허리띠 장식’, ‘초기 마구류’, ‘다량의 고식 도질토기’ 등이 발견돼 4세기대 경주지역 대형 목곽묘와 부장품 연구에 있어 많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중원식 허리띠 장식은 경주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로 주곽 서쪽 공간에서 크게 2개의 편으로 출토됐다. 이 유물은 허리띠의 장식판과 드리게에 용무늬(龍文)로 추정되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다음으로 마구류들은 모두 부곽에서 발견됐는데 말을 제어하는데 사용하는 재갈, 말 안장을 고정하는 직사각형태의 결속구, 심엽형(하트모양)의 장식 철기 등이 그것이다. 특히 재갈의 경우 그 끝을 S자형의 고사리 모양으로 만들어 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형태의 도질토기들이 발견됐는데 기존 경주지역의 제작기법과 동시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제작기법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당시 경주지역과 주변 지역의 인적·물적 교류의 결과로 이해된다. 특히 발견된 토기 중에 기존 김해와 부산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던 손잡이가 달린 화로모양의 토기등 이 발견돼 앞으로 도질토기 연구에 중요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지금까지 신라의 중심고분군이라 할 수 있는 쪽샘 유적에서 발굴조사된 L17호 목곽묘에 대해서 살펴봤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경주 중심지역인 쪽샘 및 대릉원 인근에서는 4세기대 집단 목곽묘군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곽묘들은 과연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단정적으로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쪽샘 동편의 인왕동 유적 일대가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쪽샘과 주변 유적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에 대한 실체를 꾸준히 밝혀 나갈 다양한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2021-02-15

조감하는 시선과 책을 읽는 시간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법학학사를 받고 보험회사에 취업했으나 평생 문학 창작을 소망하여 혼자 창작을 해나갔고,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1924년 사망하기 전까지 발표 없이 습작 형태로만 ‘변신’,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심판’, ‘성’등의 작품을 남겼다.인간의 눈이란 본디 사람의 얼굴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를 향해 있는 그곳에 대한 제한적 시점밖에는 갖지 못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종 망각되곤 한다. 다름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주는,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주는 마음의 눈에 떠오르는 인상을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혼동되기 쉬운 때문이다.인간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기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걸어가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하고 있는 나의 장면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눈이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시점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한계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바로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의 시도였다. 어떤 대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는 착각을 평면 회화에 부여하는 ‘원근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을 회화에 부여하는 예술적 형식 말이다.우리가 하늘 저 위에서 새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조감도’라는 형식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머리에 붙어 있는 답답한 눈이 주는 시각적 답답함을 해방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생활의 관점에서 우리 눈앞에 주어진 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그래서 조감도나 지도 등을 통해 자신이 지금 있는 공간의 형태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가늠하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들어간다.작가 이상(李箱·1910~1937)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 위로 질주하오.”라는 그야말로 기묘한 시작을 기억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연작을 신문에 연재하기 몇 년 전에 일본어로 ‘조감도(鳥瞰圖)’라는 연작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생소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상은 건축을 전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삶의 공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13인의 아해(兒孩)가’로 시작하는 이 ‘오감도 제1호’는 사실 시간이 주는 답답한 12진법에서 해방되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눈이 주는 시각의 답답함과 그리고 조감하는 시선을 어떻게 ‘동시적으로’ 중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때, 지도를 꺼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지도 속에 들어 있는 실제와 연결된 기호들이나 상징들을 통해 조감하는 시선을 확보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니 상당히 편리하다.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갑자기 모르게 되어버렸을 때, 잠시 멈추고 누군가 하나의 시선을 통해 정리해둔 것을 보고서 삶을 조감하는 시선을 참조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시간에 있는지 모른 채 도로로 질주해가는 무서워하는 아해들처럼, 문득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조감의 시선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1-02-15

나의 증조할머니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디서 기원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역시 증조할머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내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며 나의 자의식을 구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를 키웠고, 엄마를 키웠고, 나를 키웠다. 그녀는 1920년에 태어나 굴곡진 한국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노라면 그녀는 쪼글쪼글하고 거친 손으로 톡 튀어나온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다정한 손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증조할머니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들이 가장 귀했다. 자신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다며 양아들을 들일 정도였으니까.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오빠와의 경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백 점짜리 시험지를 가지고 와도 무심했으며 오히려 그것이 오빠의 기를 죽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할머니의 논리는 단순했다. 오빠는 증손자, 나는 증손녀. 할머니에게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부당하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게 되었으며 내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가 서운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나는 “그건 잘못된 거야”라며 항변했다. 그러자 내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거대한 힘으로 작동하던 할머니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생겨난 집 밖의 세상은 언제나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지나온 과거는 아둔해 보일 뿐이었다.할머니와 멀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할머니부터 생각나던 어린 시절은 끝나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고, 이런저런 병을 진단받았으며,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요양원에서도 할머니는 꼬장꼬장한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병동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너희 할머니는 대체 왜 그러냐”는 말을 하면, 내심 ‘그래도 아직 우리 할머니의 더러운 성격은 건재하군’ 하고 안심했더랬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배식 받은 음식을 이불 밑이나 베개 속에 감춰놓았는데, 그 이유는 “자는 사이에 누군가가 먹을 것을 훔쳐 갈까 봐 그런다”는 것이었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그 모습을 보자 익숙한 기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꼭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을 벽장에 감춰놓았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물 한 잔도 내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벽장을 열고 먹을 것을 꺼내서 “이건 은강이 너만 먹어라” 하면서 주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부끄러웠고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소설을 쓰면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자주 복기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니까. 어느 순간 그녀는 나의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한 명의 인물로 구성되어 눈앞에 나타났다.그녀는 위안부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열다섯에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 사람, 징용에 끌려간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던 사람, 남편과 핏덩이 같은 어린 자식 두 명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던 사람, 여자의 몸으로 홀로 전후 시대를 지나오며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버텨온 그런 사람.스스로가 그토록 조소하던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고 느껴지면 나는 나의 증조할머니를 떠올린다. 이제 할머니는 통제된 요양 시설에서 2021년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견뎌내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새해 인사조차 무색한 지금, 나는 어떤 태도로 우리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녀 앞에만 가면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투정만 부리는 어린아이가 된다. 언제나 모자라고 어리석은 당신의 증손녀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모르겠노라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2021-02-15

사과의 골든타임

나는 스포츠 관람 마니아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구, 겨울철에는 농구와 배구까지. 어지간한 구기종목 프로 스포츠는 다 챙겨보는 편이다. 요즘 특히 재미있게 보고 있는 종목은 배구인데, 최근 들어 포털 사이트 배구 기사란에 참담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배구 선수들의 ‘학폭’논란이 그것이다. 논란은 여자부 리그에서 시작되었다. 며칠 전 한 게시판에 한 누리꾼이 현재는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들에게 학창시절 당했던 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해당 구단과 선수는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지만 누리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남자부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건이 일어나 구단과 선수가 사과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잇따른 학폭 논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의 그늘 아래 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7교시 종이 울리면 눈앞이 캄캄해져모두가 웃으며 가방을 싸는데나는 고갤 숙인 채 화장실로 가야 해그곳엔 너희가 기다리고 있어공처럼 온 몸을 웅크린 채주먹과 발길질을 받아내면서더러운 바닥을 나뒹굴었지화장실 창문 밖에 빛나는태양과 구름은 저리도 예쁜데왜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강백수 ‘나쁜 노래’ 가사 중2013년 발매된 1집 앨범의 수록곡인 ‘나쁜 노래’의 노랫말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나는 동급생 몇몇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하곤 했다. 불과 몇 달 정도 겪었던 일인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느꼈던 참담한 감정들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아직 그들 대다수를 용서하지 않았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딱 한 명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이가 있었으니 그는 이제는 내 친구가 된 H다. H는 세월이 흘러 이십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 SNS를 통해 나를 찾았다. 그가 만나자고 했을 때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그는 나를 만나 고개를 떨구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이 철이 없었다고. 나이를 먹고서야 그때의 행동들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알게 되었다고.굳이 나를 찾고, 만남을 청하고, 안 하고 살았어도 상관없었을 사과를 하는 H가 나는 참 대단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그의 사과 덕분에 어느 정도는 씻겨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이제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해 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를 용서할 테니 이제는 나와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다. 이제 H는 언제라도 불러내어 함께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H가 내게 했던 사과의 말과 그리고 스타 배구선수들의 사과문을 번갈아 떠올린다. 그 둘을 똑같은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과오가 만천하에 드러난 뒤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한 사과를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선수들이 진정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뉘우침에는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사과를 하는데 있어 진정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사과의 시기인 것이다. 이러한 폭로와 논란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뉘우치고 사과했어야 했다.선수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뉘우치고 사과했어야 할 시기를 놓친 것 역시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일이다. 소속 구단과 협회 차원에서의 무거운 징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과오가 있는 다른 모든 이들 또한 이 사과의 골든타임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21-02-15

나이듦에 대하여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었다. 새해 차례상이나 밥상에 올리는 여러가지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떡국이다. 새해가 밝은지 두 달째지만, 세시음식인 떡국을 먹음으로써 진정 한 살 더 나이가 든다고 한다.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하는 떡국은 단순히 나이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가래떡처럼 재산이 길게 늘어나고 엽전모양으로 동그랗게 써는 떡은 돈이 많아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한 떡국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으면서 새해 덕담도 나누고 일년 신수가 훤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해마다 대하는 떡국이지만 올해는 그저 단출하기만 하다.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 감염증의 방역지침에 따라 이동과 모임을 자제하거나 최소화해서 설 명절 가족 간의 따스한 만남이 두드러지게 성글어진 것이다. 한 살 더 먹는 것도 서러운데(?) 가족이나 친지를 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씁쓸히 먹는 병탕(餠湯) 속에는 만두뿐만 아니라 여타의 생각이 섞이게 됨은 필자만의 과민일까?떡국을 먹지 않더라도 나이는 먹게 되고 시간은 나그네처럼 끊임없이(光陰百代之過客) 지나간다. 그러한 세월에 버물려 과세(過歲)를 하고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길어도 일년이 짧다고 여겨짐은 세월에 대한 조바심일까? 호기심 많던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데, 젊음과 늙음의 중간지대쯤에서는 삶의 수레가 천천히 굴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풀어낼수록 더 빨리 돌아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무게감이 덧대어진다는 뜻이다. 나이듦은 가정이나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며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고 이치와 순리를 밝혀주는 연륜이 깊어 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를 값으로 매기기는 모호하지만, 나이를 존중하고 적어도 나이값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술적인 나이의 숫자만 보태는 것이 아니라 원숙함을 더해가고 농밀하게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누구나 곱고 건강하게 나이듦을 바랄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면 결국 무채색 같은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지만, 노화는 모든 생명체가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나이듦이 달갑지 않고, 늙어감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늙었다는 실감이 들 때는 암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노년기의 풍부함과 가능성으로 얼마든지 유년기나 성년기의 다양성을 누릴 수 있다.꼰대 기질 같은 아집을 버리고 젊은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며 눈높이와 공감의 소통으로 움직이고 어울릴 때 생체나이를 얼마든지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나이라도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늙고 병약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을 가꾸고 다루기에 따라 외양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꿈꾸는 삶과 노력하는 집념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속적인 건강비법과 생활습관으로 젊게 나이 드는 것이 축복이 되는 연년익수(延年益壽)를 추구해보자.

2021-02-15

장모님, 우리 장모님!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장모님! 제가 누구인지 알아요.’ ‘누구세요 몰라요.’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만다. 6남 1녀의 유일한 사위 권서방을 몰라본다. 지금까지 권서방! 권서방! 했던 장모님이 치매라는 판정을 받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필연적으로 치매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치매는 고령화 시대의 숙명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현재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엄청 빠른 속도이다.칠십대 후반인 큰형님이 장모님을 모시고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계시는 형님은 치매인 장모님이 혼자 집에 계실 때 가스로 인해 여러 번 어려운 일이 생기고 집에서 150m 근처의 아주 가까운 노인 요양센터에서 생활을 하시게 됐다.2020년은 코로나19로 요양센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것으로 인해 방문을 못하는 어려움이 생기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k방역으로 대면서비스가 제한됨에 따라 요양센터를 방문하지 못하게 되면서 치매 환자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인지력·기억력 저하로 개인위생을 지키기 어려운 치매 환자는 치매 악화와 코로나19 감염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한 달에 두 번은 찾아뵙고 있었는데 방문 자체를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됐다. 한 번은 창문을 열고 3분정도의 얼굴만 바라보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한없는 한숨과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이러한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했다. 2월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런 글이 올랐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요양병원 환자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이다. 뇌졸중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연이 절절했다. 가족 중 치매를 가진 사람이나 요양병원에 가족이 있으면 인지상정으로 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치매 환자는 인지기능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지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자와 교류가 중요하므로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나 가까운 사람을 통해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장모님께서 요즘은 요양센터에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래서 조카가 옆에서 도와주어서 영상통화를 한다. 퇴근 후에 할머니에게 와서 통화를 할 수 있게 배려를 한다. 참 고맙다.‘장모님, 장모님! 제가 누구인지 알아요.’ ‘권서방이지.’ 미소를 지으신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픈 곳은 없으세요, 사위 보고 싶으시죠,’ 등 수다를 떤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시다. 말이 없고 잔잔한 미소와 잠뿐이시다. 가슴이 아프다. 97세의 고령이었지만 늘 ‘권서방!, 권서방!’ 하셨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 사랑이라고 하였는데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나 권서방만의 아픔이 아닌 사회의 아픔이다.오늘도 병실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 해본다. 장모님을 불러본다. 장모님, 우리 장모님!!

2021-02-15

자화상들 그리십시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4년 전 이맘때 연필로 인물화 그리기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른 수강생들은 배우자, 자녀, 손자, 아니면 친구를 그리는데, 나는 주야장천 내 얼굴만 그렸다. 문득 그때가 떠오르면서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자화상의 비밀’의 저자 로라 커밍에 의하면, 초상화든 자화상이든 인물화는 역사적으로 하위 장르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자화상은 초상화보다 더 하위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화가가 자기 모습을 그릴 때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대로 그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릴 때 대담하게 변칙을 했기 때문에 실제 모습과 많이 달라서, 그의 실제 모습은 다른 화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린 초상화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따지고 보면, 남이 그려준 초상화라고 해서 사실대로 그려진다는 보장은 없다. 조정래의 ‘어느 솔거의 죽음’이라는 중편 소설에서는 성주가 어느 화가에게 자기 초상화를 의뢰했다가 화가가 성주의 비열한 내면까지 표현하자 그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후원자나 권력가 같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인물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기를 그린 자화상보다는 다른 사람을 그린 초상화가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은 많다.그렇기에 로라 커밍이 자화상의 가치를 강조하는 지점은 사실 여부가 아니다. 자화상은 다른 종류의 진실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무리 못 그린 자화상이라도 이미지로 전환되기 이전의 인물과 마주하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그의 자화상에서는 쉴 새 없이 바뀌는 변덕스러움, 하루하루 경험에 따라 수없이 바뀌는 인물의 성격과 같은 심층적인 진실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그린 초상화에서는 표현될 수 없는 진실이 표현되어 있다.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린다고 해서 명예를 얻거나 돈을 만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화상은 대부분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나 감사, 사랑 등 내밀한 표현 욕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화가들의 표현 욕구는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가 무엇을 표현했는가 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러고 보니, 4년 전 내가 그렇게 자화상을 그려댄 것은 세상과 어떤 모습으로 소통할까 고민 중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남의 자서전을 대필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진욱은 자서전 대필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스스로 쓰는 진솔한 자서전만이 영혼과 성찰을 담고 있다면서 결국 모든 대필 의뢰를 거절한다. 물론 자화상처럼 자서전도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자서전으로 우리는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이해한다.70이 넘어 처음 배운 한글로 삐뚤빼뚤 쓴 편지 한 장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훌륭한 자서전이 되듯이 나를 전혀 닮지 않은 서툰 자화상도 세상과 소통하는 멋진 통로가 된다. 그러니 우리 신축년에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세상과 만나기 위해 ‘자화상들 그리십시다.’

2021-02-15

유튜브 ‘공방’

유튜브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중계하는 ‘공부방송’, 일명 ‘공방’이 인기를 얻고 있다.공방은 영상 속 인물이 몇 시간씩 조용히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 필기구로 종이에 뭔가를 적는 소리만이 들릴 뿐 별다른 미동도 없다. 어떤 경우는 공부하는 이의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공방의 인기는 해외에서도 뜨겁다.미국 뉴욕에 사는 의사 제이미가 의학도 시절 시작한 공방은 현재 구독자 40만6천명을 자랑한다. 인도의 한 의학도가 개설한 공방은 구독자가 17만명이고, 네덜란드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또 다른 인도인의 공방은 구독자가 1만9천명이다.유튜브 미국 본사는 최근 문화와 트렌드에 관한 분석을 내놓는 웹사이트 ‘컬처앤드트렌드’를 통해 “공부 장면을 중계하거나 녹화해 보여주는 영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콘텐츠”라며 “2019년까지 비슷한 영상들이 2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공부방송을 하는 공부 유튜버는 대체로 교사 임용고시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례로 지난해 임용고시에서 한 차례 떨어졌던 A 씨는 올해 긴장감을 갖고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유튜브 공부 방송을 시작했다.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을 땐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부하는 A씨의 모습을 수십, 수백 명의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보고, 방송 후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녹화 영상은 매번 500명 안팎의 시청자가 본다.시청자들은 실시간 채팅창에 “오늘도 출석했다” “취업준비생들끼리 함께 힘냅시다” 등 격려 글을 올리며 소통한다. 힘든 공부를 함께 하는 느낌을 주는 공부방송은 또 하나의 비대면시대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2-15

설 같지 않은 설날

윤영대수필가설 연휴도 지났다.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설을 설 같지 않게 보내고 나니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말에 주소지가 다를 경우라고 해서 아들 내외도 딸도 오지 않았다. 그들의 직장에서 에둘러 고향 가지 말라고 하는 듯해서 오지 말라고 했었다.아들이 오면 같이 목욕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얘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평소에도 목욕탕 감염 우려에 가지 말라고 자식들이 말렸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와서 우리 부부 둘이서만 설 차례상을 준비했다. 뭔가 허전했다.섣달 그믐날 까치설날엔 어린이들은 설빔으로 갈아입고 어른들은 묵은세배 한다며 이웃들을 찾아다녔으나 올해는 갈 곳도 없다. 또 ‘그믐날 밤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에 졸면서 밤샘하려 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늦게까지 휴대폰으로 보내오는 연하 인사에 나 또한 비대면 감사말을 보낼 뿐이었다.‘설’은 ‘낯설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여태 살아오면서 올해와 같은 이런 분위기의 설날은 처음이다. 참으로 낯설은 날이다. 또 ‘선날’ 즉 ‘새로 시작하는 날’의 뜻도 있다 하며 음력 정월 초하루를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초(歲初)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맞는 새해의 첫 아침에 마음 정결히 하여 현관 바닥을 쓸고 닦고 문 바깥도 말끔하게 청소하여 새롭게 마음을 세우고 한 해의 다짐을 해보았다. 신정-구정의 오랜 실랑이도 있었지만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내려오는 세시풍속은 버릴 수 없어 30여 년 전 ‘설날’로 정착하여 3일간 휴일을 즐기고 있다.‘설’은 또 ‘삼가다’의 옛말 ‘섧다’에서 어원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신일(愼日)이라고 하는데 코로나 역병의 창궐로 온 나라가 걱정 속에 모이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신일의 이름 그대로 몸을 삼가고 사리며 잘 지키고 있는 셈이다.새 옷으로 갈아입고, 자식들이 오리라 생각하고 며칠 전부터 장만했던 음식들을 많이 줄여 정갈하게 차례상을 차렸다. 혼자서 향 피우고 술 따르고 떡국 한 그릇 올려 조상께 절을 하니 가가례(家家禮)의 절차다. 예년 같으면 차례 끝내고 음복하고 세배를 받으며 덕담하고 세뱃돈을 주었으나 올해는 오지 못한 자식들과의 스마트폰 영상통화로 세배를 받았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세뱃돈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언택트 설명절 보내기, 참 희한한 풍속도다.민속놀이도 점점 그 맥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데, 세상의 변화로 많은 세시풍속이 퇴색되거나 단절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어릴 때의 추억을 더듬어 보면 꽹과리 두드리며 마을을 도는 지신밟기며 들판에서 손수 만든 연날리기도 했었다. 연을 날리며 즐기다가 대보름 전날에 연줄을 끊어 날려버리곤 했는데, 코로나는 태양 표면의 불꽃 이름이니 흰 꼬리연에 크게 그려 태양을 향해 ‘액막이 연’이나 날려볼까. 널도 같이 높이 뛰어도 보고, 여럿 모여 윷놀이도 즐기고, 복조리도 걸어두어 한해의 행운을 담아보고도 싶은데….설날의 적적함에 가족의 정을 맛보려고 남아있는 떡국을 아내와 둘이서 나눠 먹으며 ‘설도 설 같지 않은 설’을 보내는 참 낯선 명절을 보내었다.

2021-02-14

떠난 후에 남은 것

최미경동화작가내 이별의 처음은 7살 때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질 않아 외증조할머니 손에 맡겨진 나는 걸음을 떼자마자 할머니가 데리고 다녔다고 다들 나를 할머니 껌딱지라 불렀다. 초등학교 입학을 한 달쯤 남겨둔 어느 날 할머니는 옥상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뎠고 얼마 후 영영 내 곁을 떠났다.요즘도 가끔 내 말투를 들으며 고향이 어디인지 묻는 사람이 있는데 부산에서 왔다고 하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신기해한다. 서울 분이셨던 외증조할머니의 고운 말투를 들으며 유년을 보낸 나에게 내 말투는 그녀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내게 두 번째 이별은 16살 봄이었다. 일요일 아침 고모라며 전화가 왔다. 부모님 결혼식 사진에서 본 게 전부였던 고모는 엄마를 찾았고 엄마가 없다고 하자 내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9살 때 아버지를 처음 본 나는 16살 때까지 그와 함께 있었던 날을 다 꼽아보아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계절에 한 번, 그러다 일 년에 한 번 쯤 아버지가 집으로 온 날은 약속이나 한 듯 엄마가 부재중이었다. 고모와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부엌에 세워져 있던 다리가 네 개인 양철 상을 펴서 반찬 몇 가지와 수북이 담은 밥을 올려 그가 들어간 방으로 들였던 기억이 떠올랐다.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가끔 도루코 칼로 연필을 깎던 아버지 이야길 했다. 가난으로 중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에게 연필을 깎는 시간은 불요했다고 엄마는 말했지만 아버지가 쓰지 못했던 연필은 내 마음에 뾰족이 남아 쓰는 일에 심(心)이 옅어질 때마다 고스란히 묻어났다.그리고 2012년 가을, 셋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질 않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더 이상 카드 값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결혼 전부터 엄마는 나와 동생의 카드를 돌려쓰며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해 학자금대출 받았다 생각하고 개인회생신청을 하자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간암 진단을 받았고 딱 1년 6개월을 버티고 떠났다. 서른여섯, 세 번째 이별이었다. 온전히 슬플 시간도 완벽하게 그리울 시간도 없었다. 내 모자란 경제력이 엄마를 너무 일찍 보냈다는 죄책감에 나는 그저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일만 했다.지금 이 시간, 이 공간, 내 모습 하나하나가 지나온 시간 안에서 부딪히고 스며들었던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부분은 간과할 수 없다. 기로마다 순간마다 오로지 내가 결정한 내 선택의 결과물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 놓은 것이기에 지금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것도 그들이 남긴 것을 안은 것도 버린 것도 나였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렇게 오늘의 나는 어떤 우연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만 그런데 그런데도 말이다. 내 말투며 내 시심(詩心)이며 내 생활력을 부둥켜안고 오늘까지 살아내고 있는 내가 한없이 가없게 여겨 질 때가 있다.떠난 이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이 시간이자 꽁꽁 얼었던 겨울이 봄에 살살 풀리고 있는 이 계절이다.

2021-02-14

국가 해안쓰레기 모니터링과 울릉도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지난 2020년 연말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는 특별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제작했다. 울릉도 연안에 떠밀려온 중국산 플라스틱병 등 각종 해안쓰레기로 제작한 크리스마스트리였다. 울릉도 연안의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방편이었다. 동해안 최초의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동해 최외곽 도서인 울릉도가 해류와 바람에 실려 외부로부터 떠밀려온 해안 쓰레기로 매년 몸살을 앓고 있다.울릉도 주변해역은 대한해협을 통과한 후 동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울릉도로 향하는 해류인 동한난류 흐름 특성상 한반도 연안의 해양쓰레기가 주로 밀려오는 지역이다. 겨울·봄철에는 북서풍의 바람과 동해 북쪽에서 울릉도로 향하는 해류를 타고 동해 북쪽 연안의 다양한 해양쓰레기가 또한 밀려온다. 더욱 심각하게는 2004년부터 북·중 어업협정에 따라 동해 북한수역으로 진출한 매년 수천 척의 중국 오징어 조업 선박이 투기한 중국산 해양쓰레기 또한 울릉도 해안으로 밀려오고, 심지어 독도 해안가에서도 심심찮게 중국산 플라스틱병이 발견되기도 한다.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은 비단 울릉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70억t의 해양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해양쓰레기 감소 노력에도 매년 해양쓰레기 수거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 해양쓰레기 수거량은 2015년 6만9천129t에서 2019년 10만8천644t으로, 2015년 대비 2019년에 1.6배 증가했다.해양수산부는 해안쓰레기의 종류와 양, 발생 원인별 비율변화, 외국기인 쓰레기의 종류와 양 등 해안쓰레기의 객관적 자료 파악을 통해 국가 해양쓰레기의 예방과 관리 정책 수립을 목적으로 2008년부터 전국의 주요 지점을 대상으로 국가해안쓰레기모니터링 사업을 수행 중이다. 2021년 현재 동해안 12개소를 비롯해 전국 연안의 60개소를 대상으로 2개월 간격으로 모니터링이 수행 중이다. 각 조사지역은 대상 해안의 100m 구간 중 5m 구간 4개소를 무작위로 선정해 해안쓰레기의 종류와 양, 그리고 외국기인 쓰레기의 양과 종류 등을 파악하고 있다.울릉도는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의 제안으로 2019년 12월부터 국가해안쓰레기모니터링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사지점은 접근성과 해안 특성을 고려, 울릉도 북서쪽에 있는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 전면 해안 100m 구간으로 선정했고 현장조사는 2개월 간격으로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2021년 1월 26일에 수행된 울릉도 해안쓰레기모니터링에서 5m 구간 4개소라는 짧은 지역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스티로폼 등 플라스틱 해안쓰레기와 함께 목재, 어선 깃발, 외국산 신발 등이 조사되었다. 총 170개의 플라스틱 해안쓰레기가 발견됐고 이 중 15%인 26개가 외국기인 플라스틱이었다. 외국기인 플라스틱의 경우, 대부분 중국 상표가 부착된 플라스틱병이었다. 외국기인 플라스틱을 제외하고, 발견된 플라스틱 중 30%가 스티로폼 형태였다. 이외에도 동해안 울진, 삼척의 명칭이 선명한 어구 깃발, 목재 등이 발견됐다.정해진 조사방법에 의한 조사를 마치고, 조사 구간을 포함한 약 200m에 이르는 해안선에 대한 해안쓰레기 수거작업을 진행한 결과, 약 2.5t 쓰레기 수거차량 3대 분량의 해안쓰레기가 회수됐다. 비록 이날 해안가 청소 작업이 진행됐지만, 며칠 후 해안가는 언제 청소 작업이 있었던 것 마냥 해류와 바람과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로 다시 가득했다. 울릉도 해안쓰레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특히, 울릉도 해안의 경우 서·남해안과 다르게 해안이 모래 해변이 아닌 굵은 자갈 해변으로 이뤄진 지형적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해안쓰레기가 굵은 돌 틈에 박혀 있어 해안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라 돌을 들춰 파내야 하는 실정이라 회수작업이 쉽지 않다. 더불어 실제 수거되는 플라스틱은 크기 5㎜ 이상의 중형 플라스틱이고, 스티로폼 등이 잘게 부서진 형태의 미세플라스틱 등은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해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연안 생태계의 피해 또한 우려되는 실정이다.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플라스틱 쓰레기 제로화를 목표로 해안기인 쓰레기 및 육상기인 쓰레기 발생원 줄이기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해안기인 쓰레기 발생원 줄이기를 위해 친환경부표(스티로폼 부표 대체) 및 친환경 어구(생분해성) 보급 촉진, 바이오플라스틱 어구·부표 개발과 함께 육상기인 쓰레기 줄이기를 위해 플라스틱 사용 규제, 수산물 친환경 포장기술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울릉군도 매년 지역 민간단체와 협력해 수중정화활동, 해양쓰레기 정화사업, 바다환경 지킴이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경북도는 해양쓰레기 청소선인 울릉도(독도) 전용 청항선 건조 또한 추진 중이다. 이러한 해양기인 및 육상기인 쓰레기 발생원을 줄이게 하는 노력과 함께 울릉도(독도)의 정확한 해안쓰레기 실태 파악을 위한 더 정확한 조사가 또한 필요하다.매년 북한수역으로 진출하는 중국 어선의 쓰레기 배출 또한 대응이 필요하다. 동해안 최초의 해양보호구역인 울릉도가 해안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류와 바람의 특성상, 우리나라 해양쓰레기 회수의 최후 보루인 울릉도 해양쓰레기 관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2021-02-14

코로나19 백신(아스트라제네카) 논란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의 고령자에 대한 효과와 안정성에 관해 국내외 안팎으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2월26일부터 의사, 간호사, 병원종사자 등 의료진 5만명에게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고 65세 이상 고령층이 다수인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종사자 등 78만명에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해외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관해서 안정성과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핀란드는 70세 미만,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스웨덴·노르웨이는 65세 미만, 폴란드는 60세 미만, 벨기에는 55세 미만 접종을 권고했고 스위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승인 자체를 보류했다.한국정부는 고령자들에 대한 제한을 두는 유럽 국가들과 달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다른 판단을 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1월 31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아스트라제네카 검증자문단은 안전성 프로파일이 양호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참여 대상자 중 고령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고령자에 대한 투여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어 고령자에 대한 접종을 제한하지 않았다.같은 날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만 65세 이상 고령층에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해서는 안되며 식약처에서 만 65세 이상 고령자 접종 가능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대한의사협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만 65세 이상 접종에 대해서는 자제를 권고한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필자도 매우 우려돼 2월 2일 열린 대구광역시 코로나19극복 범시민대책위원회 19차 영상회의에서 유럽의 상황과 대한의사협회장 의견을 전하며 코로나19 백신 논란에 대해 대구시민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으니 대구시에서도 검증을 통해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대구시 감염병 관리지원단장은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전문가가 아니며 의사마다 전공분야가 다르니 예방접종전문위원회, 백신·예방·감염의 전문의 의견을 따라갔으면 좋겠다”라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답변을 했다.이후 2월 5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효과는 유럽과 동일하게 만 18세 이상으로 하되, 사용상 주의사항에 ‘만 65세 이상의 백신 접종 여부는 효과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를 반영하고 추후 미국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분석 자료를 제출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2월 10일 3차 검증단계인 최종점검위원회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에 대하여 추가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결정했고 사용상 주의사항에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라고 기재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 결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국민은 접종을 하고 안전에 대한 확인은 나중에 하겠다는 점이며 의사가 접종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접종 유무를 판단해 결정하라는 식약처의 입장은 무책임의 극치이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까지 나서서 고령자에 대한 접종을 제한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결정이다.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들 대부분이 이용하지 않는 경로인 코백스로부터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했다. 코백스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공동으로 코로나19 백신의 공정한 배분을 위해 운영하는 기구이다.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대부분 백신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코백스를 통해 1분기에 화이자 백신을 공급받는 국가는 대부분 개발도상국인 것으로 나타났다.태국에서는 코백스를 통한 조달 방식에 대해 비용 대비 효율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코백스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최소 259만여회분, 화이자 백신 11만여 회분 총 271만여 회분을 받게 된다. 코백스 지원이 없었더라면 올해 1분기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접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매우 한심스러운 상황이다.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아랍에미리트 39.95%, 이스라엘 39.59% 영국16.89% 미국 10%인 가운데 한국은 접종 시작은 커녕 아스트라제네카 논란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으며 국제적 망신도 예상된다. 정부는 K방역 자화자찬에 도취되어 있다가 백신도입이 늦어졌으며 거듭되는 코로나19 방역실패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 못하여 이로 인한 고통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 됐다.해외에서는 공항 근처에서 이미 가짜 코로나19검사 진단지가 팔리고 있는 상황이고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이후 백신접종 유무 확인으로 출입국을 제한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현 정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지켜야할지 국민의 입장에서 대책을 내놓아야한다. 안전이 확인 안된 백신으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지 말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단 1명의 국민도 희생되지 않게 지키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존재 이유이다.

2021-02-14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는 왜?

안재휘 논설위원방랑시인 김삿갓이 환갑 잔칫집에 들러 시 한 수로 떡 벌어지게 한 상을 받아먹은 이야기는 ‘아부(阿附)의 힘’을 상징하는 일화다. 잔칫집에 들어선 김삿갓은 ‘저기 앉은 저 늙은이 사람 같지 않구나(彼坐老人不似人)’라고 시운을 뗀다. 노인의 아들들이 분기탱천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태연히 다음 구절을 읊조린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도다(疑是天上降眞人)’ 과장된 찬사에 주인들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냈다던가.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벌어진 웃지 못할 유명한 아부 역사도 있다. 광나루에서 낚시 중이던 이승만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당시 경기도지사 이익흥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고 아첨했다는 기록이 1956년 8월 1일 자 국회 속기록에 남아있다.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1445년(세종 27)에 편찬된 조선왕조의 창업을 송영(頌詠)한 125장에 달하는 서사시다. 한글로 엮은 책으로는 최초인 이 노래는 오늘날 극진한 ‘아부’를 빗대는 부정적 용어로 곧잘 동원된다.얼마 전 전남 신안군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는 전남도청 직원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 문구가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대통령님은 우리의 행복’, ‘왜 이제 오셨어요ㅠㅠ’,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무원들이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손팻말에는 ‘우주 미남’, ‘문재인 별로, 내 마음에 별로’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발적’이라는 전남도청의 뒤늦은 해명이 더 초라하다.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트위터에 올린 “오늘 문재인 대통령님 생신, 많이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라는 글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기사 댓글과 SNS에 조롱 비판이 잇따른다.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단어는 가장 낯간지러운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로 기록될 것 같다.정상적인 정치소통집단이 아니라 정의적(情誼的) 유대관계인 친문(親文) 조직의 확증편향과 절대다수 민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빚어내는 의회독주는 이 나라의 심각한 걱정거리다. 주거안정 붕괴, 탈원전 패착, 일자리 실패…정치사에 기록될 문재인 정권의 실책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팬덤과 진영정치에 기댄 끊임없는 ‘민심 갈라치기’로 권력의 벽을 구축해온 일은 치명적이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을 29명째나 일방적으로 임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킨 오만도 그 역학의 결과물일 따름이다.문비어천가는 친문에 어필하기 위한 강력한 주문(呪文)이 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이 말도 안 되는 정치 수준을 대체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아부는 생사람을 잡을 뿐만 아니라, 군주의 눈을 멀게 해 나라를 망친다”던 소크라테스의 경고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요즘이다.

2021-02-14

기록과 평가

역사가 인류사회의 변천과 흥망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큰 사건만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 전반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역사적 기록으로 남는다.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든지 기록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먼 훗날에는 역사란 이름으로 평가를 받는다.지금처럼 공적 또는 사적 기록물 보관의 영역이 넓어진 시대환경을 생각하면 역사 자료 보존의 공간은 무한대다.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사관에 의해 집필된 정사라면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는 민중에서 나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은 야사다. 두 서적은 정사든 야사든 상관없이 역사적 평가라는 관점에서 지금은 쌍벽을 이루는 역사 유산이다.기록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새로운 놀랄만한 성과나 성적을 세웠을 때처럼 신기록의 의미가 하나요, 다른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정확한 팩트가 중심이어야 한다. 이렇게 남겨진 기록들은 후대에 걸쳐 역사적 자료로 인용되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좀 더 정직하고 정의로운 기록이 남도록 하는 것이 역사 위를 걷는 선배 세대나 위정자가 취할 자세다.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야당 동의없이 29번째 장관을 임명했다. 이명박 정부 때 17명, 박근혜 정부 때 10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다. 청문회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과 문제점과는 상관없이 국회가 보고서를 채택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면 장관직은 시작된다.29번 야당을 패싱하고 임명한 것이 청문회 취지를 못 살렸다며 국민의 반발도 적지 않다. 법률적인 하자가 없다고 정치적 행위가 단순한 기록으로만 남지 않는다. 역사란 기록과 함께 평가가 항상 뒤따르는 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2-14

지방소멸 위기 극복 총력전

백선기​​​​​​​칠곡군수‘지방소멸’이라는 섬뜩한 경고가 화두다.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핵심 과제가 바로 정주여건 개선이다. 정주여건이 개선되면 기관·기업 유치가 활성화되고 인구 및 세수가 증대해 주민 삶의 질이 향상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칠곡군은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산단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등을 통한 일자리창출에 매진해 왔다.이러한 노력의 결과 경상북도 일자리창출 평가에서 8년 연속 수상을 이어가는 등 과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또한 도시재생뉴딜사업, 문화도시, 칠곡U자형관광벨트 사업을 통해 주거·문화·관광 등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한 단계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칠곡군은 주거환경의 개선을 위해 추진한 왜관읍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 2020년 1차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최종 선정됐다.왜관읍 도시재생뉴딜사업의 핵심축은 기존 왜관읍사무소를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행정문화복합플랫폼’으로 조성하는 것으로, 지하 1층에는 스마트 주차장, 지상 1층에는 행정복지센터, 2층에는 작은도서관과 생활체육시설이 마련된다. 또 마을숨길틔우기, 스마트가로등, 쓰레기분리수거함, 골목길 고보조명, 무인택배함, 슬레이트 지붕개량 등의 마을생활환경 개선과 노후주거지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이밖에도 △구상시인이중섭화가 거리조성 △인문학 목공소 운영 △소상공인 교육 및 창업지원 △청년활력공간 조성 △낙동지교사랑방 조성 △지역활성화 콘텐츠 운영 △주민역량 및 주민자치활동 지원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왜관읍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왜관중심지활성화사업, 1번도로 전주·전선 지중화사업 등이 연계해 완료되면 왜관읍 구도심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약목면과 동명면에도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추진하고 북삼읍과 석적읍에는 수영장을 갖춘 군민체육센터를 건립해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이룰 방침이다.칠곡군은 군민 문화생활 향유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예비문화도시에 선정돼 문화관광도시로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예비문화도시를 거쳐 법정문화도시에 최종 선정되면 5년간 15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문화사업 관련 종합적으로 지원을 받게 된다.‘인문적 경험의 공유지 칠곡’을 비전으로 지난 2년간 법정 문화도시 지정을 위해 지역 내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의견을 반영해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의 다양한 문화실험 활동을 통해 내실을 다져왔다. 예비도시 사업기간인 올해에는 문화도시 거버넌스 모델기반 마련하고 문화도시 확산 기반 마련 등 3개 분야 9개 사업으로 법정지정을 위해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칠곡군은 2012년부터 지역 최대 역점 사업으로 칠곡U자형관광벨트를 조성했다. 칠곡U자형관광벨트는 자연과 생태, 호국과 평화, 역사와 문화, 예술 관람과 체험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3㎢ 규모의 메머드급 복합 관광단지다. U자형관광벨트가 완성되면 호국 평화를 테마로 한 맞춤형 체험관광산업을 통해 지역 정체성 확보와 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 지난 9년 동안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칠곡보생태공원, 칠곡보오토캠핑장, 칠곡보 야외 물놀이장, 역사 너울길, 꿀벌나라 테마공원, 향사아트센터, 사계절 썰매장, 음악분수, 칠곡평화전망대 등을 준공했다.또 공예테마공원, 호국평화 테마파크 조성사업 등을 2022년까지 마무리하고 칠곡U자형관광벨트를 완성할 계획이다. 이러한 시설이 들어서면 관광 인프라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너지 효과가 더욱 극대화 돼 관광산업 활성화와 정주여건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칠곡군은 도시재생뉴딜사업, 문화도시, 칠곡U자형관광벨트 사업 등의 삼각편대를 통해 주거·문화·관광 등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한 단계 향상 시켜 지방소멸의 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지역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확신한다.

2021-02-14

플라타너스가 말을 걸다

플라타너스는 가지가 잘려 나간 자리에 흉터를 만들지 않는다. 안으로 상처를 말아 넣어서 잘린 단면이 사라지게 한다. 흉터를 볼 때마다 떨어져 나간 가지가 생각나 가슴 아플까봐 그러는 것 같다.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듯 플라타너스는 어린 시절 내게 위로가 돼주었다.방송반이던 나는 매일 아침 명상시간에 읽을 내용을 그 전날 한 편씩 일지에 옮겨 적었다. 그날은 담임이 세 편이나 쓰게 했다. 청소 당번 아이들이 검사를 맡고 교실을 떠났고, 친구 미정이만 복도에서 내가 다 옮겨 적고 나오길 기다렸다. 어슬렁거리지 말고 집에 가라는 선생님의 큰소리에 우물쭈물하던 미정이의 발자국 소리가 계단을 울리며 멀어져 갔다.집에 혼자 갈 길이 심심할 것 같아 내 글씨가 점점 휘갈겨졌다. 마지막 장을 옮겨 적을 때, 이층 오학년 교실은 내 연필 긁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선생님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만 쓰고 앞으로 나오라 했다. 한참 전부터 굳게 다문 입으로 서류 같은 걸 살피며 내겐 눈길도 주지 않더니 말이다. 내 책상에서 교탁까지 걷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뭔지는 모르지만 뒷머리에 닭살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그는 내게 다짜고짜 돈은 왜 훔쳤냐 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내 표정에 화를 내며 출석부로 머리를 쳤다. 두려운 마음에 애써 참았지만 눈물이 볼 위로 굴렀다. 뭐지, 무슨 돈, 어디서 훔쳤단 말인가. 숙직실에 걸린 선생님 옷에서 300원을 왜 훔쳤냐 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그는 훔치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다그쳤다. 몇 번인지 때리고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손목시계를 흔들며 뺨도 몇 대나 때렸고 그때마다 나는 교탁에서 멀어졌다 끌려 왔다. 억울함에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300원을 훔칠 정도로 궁하지 않았다. 매를 맞는 간간히 훔칠 이유가 없는 내 사정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들어주지 않았다.그러다가 설핏 고개를 드니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 가장자리의 플라타너스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밖이 환할 때와는 또 다른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열두 살짜리가 혼자 감당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훔쳤노라고 거짓말을 했고, 그는 거친 숨을 가라앉히며 이젠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운동장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을 쳐다보며 수군거리던 아이들의 눈빛이 내 등에 꽂히는 걸 느꼈다. 눈시울 붉은 해가 교실 뒤로 뒷걸음을 치고 플라타너스만이 위로하는 듯 교문 앞까지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나를 따라왔다.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랫동안 울었다. 이불호청이 젖었다 다시 마를 때쯤 할아버지는 대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벌게진 내 눈을 보고 무슨 일이냐 물으셨고 할아버지가 혼내줘요, 난 억울하다고 울먹였다. 한참을 듣기만 하던 할아버지는 “거 참 무슨 일이고.” 달래는 것도 위로도 아닌 그 한 마디뿐이었다. 선생님이란 이름이 부모보다 높았던 시절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날들이 흘러갔지만 나는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오랫동안 혼자였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멀찍이 떨어져 품 넓은 플라타너스 그늘에 숨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나무는 방울 모양의 열매를 떨궈주며 말을 걸어왔다. 버즘같은 껍질을 벗겨내며 잊어버리라고 하는 듯했다.나는 바보같이 나중에 선생님을 찾아가야지 했다. 내게 왜 그랬냐고, 왜 괴롭혔냐고, 궁금한 모든 것을 따지리라 다짐했었다. 사십 년이 흐른 지금 알았다. 나에게는 아직도 노을이 질 때면 가슴이 아리며 잊지 못할 일이지만 늙어버린 그에게는 기억조차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지금도 초등학교 운동장엔 나를 위로해주던 플라타너스가 서있다. 어른 손바닥 같은 잎을 누군가의 발 앞에 떨어뜨리며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김순희 수필가

2021-02-14

설, 복덕방, 제관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세배를 하고, 그림을 주고받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나누었다. 설날에 주고 받은 그림을 ‘세화’라고 하는데 복을 기원하고, 잡귀를 쫓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설날이 되면 이런 그림들을 출입문에 붙여 놓았다.또 우리 조상들은 유달리 제사를 많이 지냈다. 개별적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부락 단위로 제사를 지내는 일도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부락제’라는 책에 의하면 전국의 부락제가 522개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부락제가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당제였는데 설날에 이 당제를 빼놓지 않았다. 특히 설날에는 떡과 술을 빚어 온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그때 나누어 먹었던 음식을 ‘복덕’이라 했고, 복덕을 나누던 집을 ‘복덕방’이라 했다.이 제사의 특이한 점은 제관을 뽑는 일이었다. 보통 가정 제사의 제관은 가장 높으신 어른이 맡아서 했다. 그리고 풍어제나 기후제와 같은 제사는 무속인들이 담당했다. 그런데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제사의 제관은 무속인도 아니고, 마을 이장도 아니고, 마을의 가장 덕망이 높은 어른도 아니었다. 한 해 동안 마을에서 가장 죄 짓지 않고, 부정한 짓을 하지 않고, 가장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뽑아서 제관으로 삼았다. 복을 기원하는 당제의 제관은 반드시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우리 조상들의 마음속에는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죄 없는 사람, 가장 선한 사람, 가장 부정한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이 복을 나누어 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 했다. 그런 사람을 뽑아서 제관으로 삼고, 제사를 주관하게 하고, 제사가 끝나면 복덕을 나누는 일을 하게 했다. 그래야만 그 마을에 한 해 동안 복이 있는 마을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결국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것은 그 마을에 죄 없는 제관이 있으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성경 시편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이라 했다. 우리로 치면 당제의 제관이다. 설날에 가장 자주 듣고 자주 하는 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덕담을 하기에 약간 쑥스럽다. 왜냐면 이 말은 원래 복덕방에서 복덕을 나누어 주면서 제관이 하던 말인데 나는 그런 제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설을 맞이 하면서 내년 설날에는 당제의 제관이 되어 복덕방에서 복덕을 나누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쑥스럽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1-02-09

비대면 세배

민족 고유명절인 이번 설 연휴에는 가족 간 모임이 통제된다. 정부가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한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을 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연장하면서 가족 간에도 4인까지만 만날 수 있게 했다.많은 자녀를 둔 집안의 경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한꺼번에 만나면 방역지침을 위반하게 돼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설에는 72%가 고향방문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아예 귀향을 포기했다고 한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 “설 인사는 영상 통화로”라는 당국의 캠페인성 구호가 곳곳에 나붙어 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고향을 떠난 자식으로서는 1년에 겨우 두 번 있는 명절인데 부모를 만나지 못한다하니 아쉬움이 여간 큰 게 아니다. 일부 집은 방역지침에 어긋나지 않게 시간과 날짜, 사람 수 등을 조정해 부모를 만나기로 했다고도 한다. 또 일부서는 방역지침에도 고향에 오라는 시부모의 말씀에 속앓이 하는 며느리도 있다고 한다.우리의 고유 명절이 어쩌다 바이러스의 침범에 이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인지 안타깝다. 새해를 맞는 설날이 되면 우리는 윗사람에게 세배를 올린다.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예법이다. 윗사람도 아랫사람이 세배를 올리면 “소원성취 하라”는 덕담과 함께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술을 못 마시는 어린아이에게는 세뱃돈을 준다.세배는 집안 어른에 이어 친척과 동네 어른들까지도 일일이 찾아 문안을 드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만약 연초 바빠서 인사를 못 드렸다면 시기가 늦더라도 반드시 꼭 챙겨야 하는 것이 세배 예법이다. 이번 설에는 영상통화나 비대면 인사로 세배를 대신한다고 한다. 아쉬움이 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2-09

손때와 설 명절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동네 집 사이로 난/좁은 계단 길에/부러진 목발 기대앉아 있네요/외로운 얼굴로 기대앉아 있네요//작은 목발이에요/손잡이에 감긴 하얀 헝겊에/뽀얗게 손때가 묻어 있어요/참 작은 목발이에요/부러졌네요”황인숙 시인의 시 ‘골목길’ 일부이다. 시인은 골목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 용산 해방촌의 골목길에 관심과 애정이 많다. 이 좁은 골목길 한 귀퉁이에 용도가 다했거나 과도한 사용으로 부러진 채 목발이 버려져 있고, 시인의 눈길은 목발의 손때 묻은 손잡이 헝겊에 머문다. 손잡이 헝겊에 묻은 손때가 눈에 띌 정도면 엔간히 사용된 목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손때는 목발을 사용했던 이의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애씀이 고스란히 드러난 자국이리라.사전은 손때를 ‘오랫동안 쓰고 매만져서 길이 든 흔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른 단어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건조하지 않고 담담하게 풀이된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에게 손때라는 단어는 이보다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따뜻함과 애틋함 그리고 세월의 눅진한 흔적을 담고 있는 말이 손때가 아닐까.지난 토요일 영등포 쪽방촌 봉사를 가면서 딸과 조카딸이 품고 놀던 인형들을 거둬 큰 비닐 봉투에 한가득 담아 갔다. 인형 나눔을 할 것이라고 진작에 이야기는 해뒀다. 그런데 늘 품고 있던 인형들 몇 개는 기념으로 간직하겠다는 조카의 말을 깜빡 잊고 몽땅 가져가서 기증을 해 버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다음날 때마침 조카는 인형이야기를 꺼냈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증하였다는 소식에 그는 몹시 서운해 했다.혹시라도 남은 인형이 있는가 해서 기증한 곳에 전화했더니 거의 다 가져가고 몇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것이라도 챙겨보려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깨끗하고 비싸고 좋아보이고 비교적 새 것같은 인형들은 이미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고 없었다. 남의 손이 많이 탄 더러운 인형을 가져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같았던 듯, 때가 묻어 꼬질꼬질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인형 몇 개만 남아 있었다.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하릴없이 남은 인형들을 가지고 돌아와 조카에게 보여주었다. 웬걸, 아이의 얼굴에는 대번에 화색이 돌고 기쁨의 미소가 번졌다. 자기가 간직하고 싶었던 인형이 그 중에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고 안고 주무르고 매만져서 더러워진 인형은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손때 묻힌 당사자에게는 애틋한 사랑과 추억의 덩어리이고 고갱이이고 ‘아카이브’(기록 보관소, 자료 저장고)였던 것이다. 아, 손때가 가져온 이 기쁨의 반전이자 역설이라니!곧 설이다. 아무리 모든 것들이 양력 시간으로 흘러간다 하여도, 설은 겨레의 손때 짙게 밴 새해 첫날이다. 한때는 이중과세 논란도 있었지만, 이제는 구정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설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자리잡았다. 온 겨레의 손때 가득 묻은 설 명절을 뉘라서 버리자고 하겠는가.단지 이번 설은 또 한 번의 손때를 배게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향에 두루두루 손때 묻히기는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2021-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