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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상의 절을 짓다

배문경수필가창밖으로 황룡사지(皇龍寺址)가 보인다. 드넓은 터에 청보리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커피를 한잔 들고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탁 트인다. 너른 들판과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하늘이 높게 보인다. 그 아래 80여m 높이의 탑과 불국사의 여덟 배 크기의 절이 있었다니 그 크기를 상상하기 힘들다.들어서는 길은 보도블록을 깔아두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라고 네 개를 깔고 중간은 비워두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이 필요한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길인지, 자전거라도 지나다니라는 길인지 길게 뻗어있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만들어진 구층 목탑과 사대(四代)의 왕을 거치며 완공된 황룡사는 지금 주춧돌과 초석만이 남아 그 규모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보리밭 중간쯤에 있는 당간지주가 긴 세월을 덩그러니 지킨다.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당간지주 구멍을 지나 세월에 닳은 풍탁소리 들려주는 듯 아련하다. 둔덕으로 오르자 금동 장륙존상이 있던 돌 좌대가 남아있다. 부처님의 실제 크기인 5m 정도로 만든 부처상이 세워졌던 곳이다. 화성 솔거(率居)의 금당벽화가 이곳 어디쯤 있었을 것이다. 먼 이야기 속, 그가 그린 노송에 새들이 날아와 앉다가 부딪혀 어질어질했다지. 자장과 원효가 강설했을 강당도 이 어디쯤 있었을 것이다. 자장이 보살계본을 강설하자 일주일간 감로운무(甘露雲霧)가 내렸다고 전한다.몇 년 전, 이 자리에서 환한 세상을 본 적이 있다. 한창 자란 풀에 발길이 얽히고 사위는 어둑했다.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달빛은 교교했다. 친구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이곳에 한 번씩 온다며 나를 꼬드겼다. 보름달 보며 울부짖는 여우냐며 놀렸지만 걸어 들어서는 길이 달빛을 받아 온통 하얗게 빛났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찬란한 역사의 신라 사람이 된 묘한 느낌이었다. 탑돌이를 하던 선덕과 지귀를 떠올리고 여러 왕을 모신 미실이 떠올랐다. 큰 돌에 앉아 달빛을 받으며 삶의 고달픔이며 모래알 같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점점이 피어오르던 시간의 무게가 어둠살을 키웠고 둥근 달만 두고 그림자를 지우며 우리도 일어섰다.황룡사 9층 목탑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문화사학자 유홍준은 우리의 기술과 나무로는 황룡사 9층탑을 재현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지금 십분의 일로 축소한 탑조차 몇 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홀로그램 같은 기술로 허공에 빛을 쏘아 탑을 만들면 어떨지 제안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고증으로 원래의 모습을 재현했으면 좋겠다.빈터를 걷는다. 신라의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와 절이 된 황룡사를 생각한다. 신라의 중심이었을 이곳에서 빛났던 탑을 고려의 김극기가 노래했다. “층층다리는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하고 수많은 산과 물이 한 눈에 트이네. 돌아보니 동쪽 도읍의 많은 집들이 벌집과 개미구멍처럼 아련히 보이네”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든다. 27층 건물 크기의 탑 꼭대기에 올라 손을 뻗으면 별과 달에 닿지 않았을까. 왕이 살던 반월성과 왕자가 살던 동궁과 월지에서 바라보면 탑은 십자성처럼 빛나며 신라를 지켜준다고 흐뭇했으리라. 성덕대왕신종보다 네 배나 무거웠다는 종소리가 신라를 덮고 더 넓게 중국에까지 울려 퍼지지는 않았을까.우리에겐 상상의 힘이 있다. 기도라는 것도 상상으로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리고 여백은 무한한 가능성이다.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편다면 그 공간은 새가 날아가리라는 무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황룡사지를 거닐며 저마다의 상상으로 자신만의 절을 짓는다면 그 또한 허물어진 내 마음 속의 절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탑곡 마애불상군의 구층탑이 음각으로 새겨진 것을 보고 나는 ‘절없는 절’이라는 글을 썼다. 바위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탑과 절이지만 상상의 탑과 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은 마음속의 그리움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마음속의 것을 정을 두드려 새기면 석가탑이나 다보탑처럼 탑이 되고 남산의 마애불상이 된다. 붓을 들고 채색을 한다면 그것은 탱화가 되고 단청이 된다.황룡사지는 어느 때보다 무한한 상상이 빚어낸 탑으로 빛나고 있다.

2021-04-21

이팝나무에 쌀밥 열리면

봄이 무르익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팝나무가 꽃눈을 터트린다. 이팝나무 가지마다 하얀 꽃이 만발하면 흰쌀밥으로 온통 나무를 뒤덮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팝나무(이밥나무)라고 불렀는데, 옛날에는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어나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인간은 먹이를 찾아 오래도록 떠돌았다. 야생에서 사냥과 채집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먹이가 되는 작물을 경작하면서 한곳에 정착했는데, 인간에게 농경은 삶의 방식에 혁명과 같았다. 양지바른 터에 움막을 짓고 물이 있는 강가에 밭을 개간했다. 그에 맞춰 살림살이를 빚고 농기구를 만들었다. 행동도 논밭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사계절 일상도 농작물의 생육에 맞추었다.쇠스랑, 가래, 써레, 따비, 괭이, 호미, 절구, 맷돌, 도리깨, 망태기, 도롱이, 부지깽이,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품앗이, 깟짓동, 김칫동, 노적가리, 동동초가, 사립문, 영마루, 이엉, 짚신.단군 때, 고시(高矢)라는 신장(神將)이 있었다. 농사와 가축을 관장하던 고시는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불을 얻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한 점 떼어 던지며 ‘고시네’하고 외쳤다. 고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고수레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는 은혜로운 음식을 짐승도 함께 먹자는 베풂이기도 했다.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않고 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는다,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장에 간다, 오뉴월 하루 놀면 동지섣달 열흘 굶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한 어깨에 두 지게 질까, 낫 놓고 기역자 모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늙은 소도 콩깍지 실으러 갈 때는 잰다, 삼사월은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 농번기에는 부지깽이도 쉴 틈이 없다, 메밀꽃 필 때는 동서집에도 가지 마라,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농경문화는 이처럼 많은 속담을 낳았다. 숨은 뜻을 곱씹어보면 생활에 빗댄 해학과 풍자가 은근하고 삶에서 건진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농경에서 따온 동사도 많은데, 그 내용을 보면 참 재미가 있다.사람을 가르쳐 일깨우고 힘과 용기를 준다는 뜻으로 ‘북돋우다’를 쓴다. ‘북’은 초목의 뿌리를 덮고 있는 흙을 말한다. 농작물 밑동의 흙을 긁어 주면 영양분이 잘 스며들고 바람에 잘 쓰러지지 않는다. 이를 비유하여 ‘용기를 북돋우다’, ‘사기를 북돋우다’로 쓴다.사람의 행위가 가볍고 방정맞게 보이면 ‘까분다’라고 한다. ‘까불다’는 ‘까부르다’를 줄인 말이다. 키로 곡식 알갱이를 고르는 행위를 키질이라고 하는데, 키를 아래위로 흔들면 티나 검불이 사방으로 나비처럼 날아간다. 이는 곡식을 까부르는 행위로 그 모양을 빗대어 나비질이라고도 한다.상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는 말로 ‘어처구니 없다’가 있다. 어처구니는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여러 가지 짐승 조각이나 맷돌의 손잡이라고 한다. 궁궐 지붕에 어처구니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맷돌에 손잡이가 없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리하여 일이 뜻밖이거나 기가 막히게 한심한 상황에서 쓴다. ‘어이없다’도 같은 말이다.하던 일을 중도에서 포기한다는 뜻을 가진 ‘팽개치다’는 ‘팡개’에서 나온 말이다. 팡개는 곡식이 여물 무렵 새를 쫓는 데 쓰는 대나무 토막이다. 토막의 한끝을 네 갈래로 쪼개어 가운데 나무를 끼우고 이것을 흙에 꽂으면 틈새로 돌멩이나 흙덩이가 낀다. 새를 향해 팡개를 휘두르면 흙과 돌멩이가 날아갔다. 이러한 행위를 ‘팽개질’이라고 했다.모든 일을 평등하게 한다는 뜻으로 ‘평미레 치다’가 있다. 옛날 싸전에 가면 됫박이나 말에 곡식을 담고 작은 방망이로 그 위를 밀었다. 이 방망이가 바로 평미레이다. 평미레로 밀면 됫박에는 딱 한 되 분량만 남았다. 어떠한 일을 공평하게 하자고 할 때 평미레 치자라고 말한다.운동경기에서 볼 수 있는 행위로 ‘헹가래 치다’가 있다. 농사에서 가래로 흙을 파기 전에 빈 가래로 손을 맞춰 보았다. 일종의 예행연습인데 이 행위를 헹가래질이라고 했다. 사람을 들어 올릴 때 호흡이 중요하다. ‘헹가레’는 여럿이 한 호흡을 맞추어 이겼을 때 이를 서로 치하하는 상징적 행위이다.얼마 전까지 ‘서리’라는 풍습이 있었다. 남의 집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인데,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면 이러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서리를 맞아도 주인은 내 자식이 먹었으려니 생각하고 벌을 내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은 모두 하나이며 남의 자식도 내 자식과 같다는 인식에서 나온 넉넉한 마음이었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4-21

백신여권

백신여권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인증 앱이나 카드를 통해 코로나19 감염 여부, 백신 종류, 접종 날짜를 기록한 디지털 증명서를 가리킨다.지난 1월 아이슬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발행했고, 이스라엘은 두번째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백신여권인 ‘그린 패스’를 발급해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음식점·영화관·스포츠 경기장 등을 이용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질병관리청이 최근 자체 개발한 전자예방접종증명서 애플리케이션(앱)을 공개해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블록체인과 분산신원인증(DID)기술을 적용해 위·변조를 방지하고 QR코드 간편인증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백신여권은 향후 해외 출입국하거나 공공장소를 드나들 때 코로나19 백신접종 여부를 증명하고자 사용될 전망이다. 질병청은 해당 앱을 활용해 예방접종 완료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등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그러나 백신여권 도입에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않다. 백신 접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며,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백신 접종을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백신 접종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QR코드로 백신 여권이 도입될 경우, 경제적 이유 등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등 계층 간 격차 및 계층 소외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다. 백신 여권은 코로나 백신 접종 여부를 놓고 차별을 두는 모양새여서 보편적 인권 원칙에서 어긋날 수 있다.따라서 백신 여권이 식당, 공공시설에서의 인증 등 일상생활에 파고드는 것은 인권차원에서 매우 위험하다. 백신여권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제도로서만 작용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21

무시험, 탈경쟁, 비대면

장규열 한동대 교수코로나19가 여러 가닥에서 사람을 잡는다. 방역은 물론 경제는 기초부터 흔들린다.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적 기반이 도태되는가 하면 풍성해야 할 문화적 토양도 척박해졌다. 나라 간 교류가 뒷걸음치고 다니면서 배우는 관광과 여행의 그루터기가 사라져간다. 세상이 변하여 뉴노멀이 들어선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동성과 재미는 희미해진 세상이 기다리는게 아닐까 싶다. 그런 가운데 모두의 미래가 달렸을 교육의 모습은 애처롭다. 대학에서 만나는 신입생들에게서 대학생활을 위한 기초학력과 기본소양 저하가 확연하게 보인다. 무엇이 문제이며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진보적 교육을 실현하기 위하여 초등학교에서 시험이 사라졌다. 즐거운 학교생활이 주어진 반면, 기초학력은 내려가게 마련이다. 학생은 즐기면서 배워야 한다. 구시대적 교육모델이 지나친 경쟁과 시험으로 압박하였다면 오늘 초등학생들은 넘치는 자유로움에만 빠진 게 아닐까. 배우는 길에는 적절한 긴장과 훈련이 있어야 하며, 격려와 채찍도 있어야 한다. 교육에 있어 무시험정책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무시험은 탈경쟁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과도한 경쟁은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지만, 적절한 경쟁의식은 동기를 부여하고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교육이 조장하는 극도의 경쟁적 환경을 없애가면서도 학생들 간에 적당하게 겨루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사회적 소양개발에도 기여할 터이다. 무시험과 탈경쟁이 학력저하를 초래했다면, 코로나19가 가져온 비대면은 사회적 역량을 퇴보시킬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어울리고 부대끼며 위로와 상처를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발전한다. 대학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수업을 동시에 열면, 학생들은 이미 오프라인수업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교수와 만나서 일어나는 교감과 동료 학생들과 어울리며 발생하는 소통이 실종되고 있다. 코로나19가 만들어준 비대면 온라인의 편이성에 몰입하느라 함께 어우러지며 벌어지는 시너지를 망각해 간다.무시험은 정당한 평가를 잃어버리게 했고 탈경쟁은 건강한 비교를 삭제했으며 비대면은 사회적 교감을 몰각할 기세다. OECD 국제학생평가(PISA)에서 한국학생들의 성적이 조금씩 내려간다고 한다. 기초학력저하가 실증적으로 나타난다. 코로나19 전후로 학생들 성적에 중위권이 줄어들고 특히 하위권이 늘어나면서 학력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비대면교육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이 보이는 것이다. 공동체적 생활보다 개인주의적 지향성이 대세라지만, 사회적 역량을 키워야 하는 다음 세대에겐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도입한 무시험과 탈경쟁 기조의 교육환경을 새롭게 살필 필요가 보인다. 코로나19가 던져준 비대면 환경에서 교육적 효과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도 신중하게 살펴야 할 생각거리다. 유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 사이에도 함께 소통하며 고민하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1-04-21

김일성이 태양으로 추앙받는 나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은 조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코로나19로 지난해에 없었던 행사가 재현된 것이다. 김정은은 부인 리설주, 당 조직비서 조용원, 군 총참모장 박정천, 당부부장 현송월, 여동생 김여정을 대동하고 태양궁전에 참배했다. 김일성 광장에서는 남녀가 춤추는 야회가 열리고, 불꽃놀이 행사도 이어졌다. 김정은 부부가 참석한 특별 공연에는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벗고 관람했다.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태양절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대내외 위기를 감추고 인민들에게 자신감을 심기 위함일 것이다.북한 헌법 서문은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메워져 있다. 김일성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며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창건자로 명기되어 있다. 나아가 김일성은 항일 혁명투쟁의 영도자, 불럭불가담 운동과 세계 정치의 원로, 령도 예술의 천재,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혁명가이며 조국 통일의 길을 연 위대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영원한 주석’으로 모셔야 하며, 북한 헌법은 ‘김일성 헌법’이라고 결론지어 그에 대한 우상화 토대를 마련했다.북한은 1974년부터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지정했다. 1997년부터는 김일성 출생연도(1912년)를 기점으로 하여 ‘주체 연호’까지 쓰고 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김정일 생일 2월 16일도 광명성절로 지정하여 경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김 부자의 위대성을 상징 조작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이다. 북한당국은 초중등 교과서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이라는 교과목까지 개설 교육하고 있다. 김일성 부자는 이미 신적 존재로 추앙받은 지 오래다. 종교가 없는 북한 땅에서 김일성은 하느님 대접을 받고 있다. 평양 거리에는 ‘김일성 수령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영생의 표어까지 등장하였다.이같은 현상은 사회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사회주의 창립자 모택동,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가 레닌, 베트남의 호지명, 쿠바의 카스트로도 존경의 대상은 될지언정 김일성처럼 절대적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오래전 내가 만난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까지 북한의 세습체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재산 상속까지 금지된 사회주의에서 권력 상속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 전야의 반봉건주의에도 불구하고 왕조적 3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절 행사는 북한이 사회주의적 모순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를 위해 이데올로기까지 급조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사회 정치 생명체론’도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들의 수령론이나 ‘백두 혈통’ 역시 권력 승계를 위한 반사회주의적 이론일 뿐이다. 북한의 태양절 행사가 지속되는 한 북한의 독점체제는 존속될 것이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로 가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1-04-21

기념일과 시험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잊지 말자고, 잊지 않겠다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몸부림치던 4월 학교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그때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기념일이 야속하다 못해, 원망스럽기 그지없는 4월.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기념일들은 정치인들의 생명 연장 수단이 된 지 오래다. 파란 지붕 집에 들어가는 사람의 색깔에 따라 기념일 색깔도 달라지는 이상한 나라의 기념일! 그런 기념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모든 기념일의 대상은 피해자다. 기념일은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정치가 몹쓸 이유는 그 이유와 원인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것을 조작(造作)이라고 명명했다.한때 조작과 정권은 같이 갔다. 조작 능력은 정권 생명력을 결정했다. 정권은 조작의 달인이 되었다. 조작을 끊기 위한 국민의 외침이 이 나라 기념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만 봐도 이 나라 주인은 분명 국민이다. 그런데 정권은 정의를 외치는 국민의 마음마저 수단시하고 있다.“근원적인 곳에서부터 공정과 정의가 자리 잡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국민은 이 말이 꼭 실현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바람은 언제나 바람뿐이었다.이번 정치인들 역시 공정(公正)과 정의(正義)를 자기들 멋대로 해석했다. 그래놓고 자기들은 이 나라를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떠들어댄다.그들에게 묻고 싶다, 뭐가 정의롭고, 뭐가 공정한지?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필자의 책상 앞에는 대통령 100대 국정과제 목록이 붙어 있다. 그중에서 붉은 밑줄을 그은 곳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교실 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물론 다른 과제도 다 이루어져야 하지만, 필자는 위의 과제만큼은 꼭 이루어지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필자 또한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중이다. 그런데 4월이면 그 힘은 다 빠지고 만다.그 이유는 의미도 없는 학교 시험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시험의 의미는 뭘까?학생들을 암기 기계로 만드는 시험, 학생들을 학교 부적응 학생으로 만드는 시험,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꿈을 파괴하게 만드는 시험, 교사와 학생 간 불신만 높이는 시험, 희망사다리를 송두리째 끊어버리는 시험, 학교에 남은 마지막 희망까지 깡그리 지워버리는 시험!이 이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까! 학교 비극의 주범이 되어버린 시험! 교사들에게 부탁드린다. 시험을 꼭 쳐야 한다면 학생에게 왜 시험을 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학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줄 것을. 특히 자유학년제 최대 피해자인 중학교 2학년 학생에게는 더욱더 자세하게!멀지 않아 새로운 기념일이 만들어질 것 같다. 그날은 의미도 없는 학교 시험에 맞서서 국민이 학교 정의를 외치는 날이 될 것이다.

2021-04-21

백신 보릿고개

보릿고개는 우리 민족에겐 유난히 안쓰럽고 애달픈 말로 다가오는 표현이다. 농사를 천직으로 삼아온 우리의 선조들은 가을 양식이 떨어진 춘궁기에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했다. 말이 초근목피지 풀뿌리나 나무껍질이 먹이가 될 리 만무하다.그래도 굶지 않겠다며 소나무의 연한 속껍질을 삶아 먹거나 진흙 중에서 입자가 고운 백토를 물에 개어 삶아 먹었던 것이 보릿고개 시절의 모습이다. 나무껍질이나 백토가 사람의 몸에 소화될 리 없다. 많은 사람이 배탈이 나고 심각한 변비에 시달렸다.우리 말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보릿고개에 나무껍질과 흙을 먹어 심한 변비로 항문이 찢어졌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보릿고개는 겪어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이 시기(음력 4∼5월)에는 혹독한 배고픔과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나가 죽어갔다. 한 맺힌 보릿고개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의창이나 사창에서 쌀을 빌려주고 추수 때 갚도록 하였으나 기근이 오래가면 나라도 버티지 못했다.보릿고개는 일본이 식량을 수탈한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전쟁을 거치고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 당시 거리에는 오래 굶어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된 부황증 환자를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1960년대 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하면서 보릿고개라는 말도 점차 사라졌다.정부의 백신 공급이 늦어지면서 백신 보릿고개라는 말이 등장했다. 백신접종이 늦어지면서 코로나로 인해 생명 유지가 절박한 상황에 몰린 우리 국민의 딱한 처지를 언론이 보릿고개에 비유한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한국 이미지가 딱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4-20

곡우와 장애인의 날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 푸르른 보리밭길 / 맑은 하늘에 /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이수복 시인은 ‘봄비’에서 비 그친 자연의 짙어가는 푸르름을 ‘서러운 풀빛’으로 묘사하였다. 만물이 잠을 깨는 이른 봄을 지나면 식물들은 활발한 생장을 위해 영양분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물을 요구한다. 이러한 수분 요구의 시기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반갑고 고맙겠는가.풀도 나무도 봄비를 온몸에 받아들이면 서러울 정도로 짙고 깊은 풀빛 나무빛을 세상에 뿜어내고, 이에 화답하여 비 그친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맑게 소리로 봄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그 봄을 흠뻑 만끽하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이 비 그치면 /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라며 봄빛같은 젊은이를 시에 끼워 넣었으리라.4월 20일 어제는 24절기 중의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穀雨)’였다. 한자 뜻 그대로 곡우 무렵에는 봄비가 자주 내려 곡식뿐 아니라 모든 나무와 풀들이 물이 오르고 윤택해진다. 이 때를 기회 삼아 사람들은 나무가 흠뻑 빨아올린 물과 생기를 훔치고자 한다. 나무에 상처를 내어 수액(樹液)을 마시는 풍속이 그것이다. 경상북도에서는 이를 ‘약물마시기’라고 하고, 전라북도에서는 ‘가자수물마시기’, 전라남도에서는 ‘다래물마시기’라고 한다.봄은 만물이 생동하고 부활하는 때이다. 기독교의 부활절도 봄의 절기이고 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와 축제의 신이자 광기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제전 또한 봄에 열렸다. 만물의 생동하는 시기에 다 함께 모여 앞날의 풍년을 기원하며 포도주를 마시고 즐기면서 욕구를 발산하였던 것이다. 이 제전은 평소에는 숨죽여 지냈던 여성들에게도 활짝 열린 축제가 되고 광기까지 허용되었다 하니 지금의 봄 산행, 벚꽃놀이를 뭐라 할 일은 아닌 듯하다.그런데 또 코로나가 문제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 봄을 즐기려는 인간의 욕구를 코로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앗아가 버렸다. 하기야 코로나 또한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마는….절기상 곡우인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1981년 4월 20일에 장애인의 날이 선포되었으니 올해로 꼭 40년이 되었다. 기록을 찾아보아도 왜 이 날이 장애인의 날이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다만 1981년이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이었고,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당시 정권의 정당성과 국민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표방한다는 구색 맞추기에 장애인의 날 선포는 나름 시의적절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 선동)이자 정책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어떠한 탄생 비화를 가지고 있건, 장애인의 날은 오랜 풍속인 곡우만큼이나 우리 시대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아니, 잠재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우리는 육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이 물오르는 곡우 무렵을 내 속의 장애를 걷어내고 장애로 고통받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는, 생기 도는 봄날로 함께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2021-04-20

4·19와 ‘진달래’

김규종 경북대 교수올해도 어김없이 4·19가 돌아왔다. 요즘은 4·19 혁명기념일로 부르지만, 내게는 4·19가 익숙하다. 마치 5·18 광주 민중항쟁이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보다 5·18에 친숙한 것처럼. 벌써 61년 전 일이 된 4·19. 나처럼 나잇살 먹은 인간에게도 60년 세월은 무겁게 다가온다. 하물며 요즘 20~30대 청춘들이야 무슨 말을 더하랴!어떤 친구가 4·19 무렵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와 ‘노찾사’ 가수 김은희를 소개한다.“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맷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戀戀)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이호우 시조시인의 여동생이자 현대시를 썼던 이영도. 훗날 유치환과 주고받은 연서로 세상에 알려진 시인. 경북대 교수 몇 사람과 청도에 있는 두 시인의 고택을 찾았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허리춤까지 자라난 무성한 풀과 허물어져 가는 벽체와 달려드는 모기떼 등쌀에 쫓기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으니 말이다. ‘새마을운동’의 출발지를 자랑하는 일 말고는 문화와 예술에 담을 쌓고 살아가는 청도군수와 주민들….여하튼 이영도의 ‘진달래’와 김은희의 노래는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 후로 해마다 4·19가 오면 ‘진달래’를 틀어놓고 지내기 일쑤였다. 오늘 그 일이 다시 생각나 김은희 공연 실황을 찾아보았다. 1992년 ‘학전 소극장’에서 김은희 ‘진달래’는 시퍼렇게 살아서 극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처연하고 애절하여 우리의 내장 깊은 곳을 파고드는 김은희의 놀라운 가창력!다시 세월이 흐른 2013년 12월 ‘윤선애와 친구들’ 공연에 동참한 김은희의 ‘진달래’를 들어본다. 20년 세월 지나간 시간의 흔적과 무게를 가까스로 견디고 앉은 김은희 ‘진달래’는 그저 단아한 소품으로 고요했다. 그렇다! 모든 것을 무화(無化)하는 거대한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 김은희의 처절한 통곡은 여유로운 노랫가락으로 쓸쓸하고 허무하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하기야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시간 아니었던가! 그래서일까, ‘패왕별희’의 정접의(程蝶衣)가 40년 가까이 변치 않는 목소리로 우희(虞姬)를 노래함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이 먹은 김은희를 이제는 조용히 놓아 보내기로 한다. 1960년이든, 1992년이든, 2013년이든, 2021년이든 혁명은 언제나 청정하고 청청(靑靑)해야 하기에. 세월과 더불어 늙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혁명과 변혁의 사변뿐이리.어김없이 찾아온 4·19를 맞자니 흘러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스럽게 솟구친다. 그러나 그리움이 퇴색하지 않으려면 그것을 현재화해야 한다. 4·19에 새겨진 영혼과 정신을 반추하면서 그날 쓰러져간 영령들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4·19를 살리는 길은 4·19와 함께하는 일이 유일한 방도임을 확인하는 아침나절이 깊어간다.

2021-04-20

화해와 공존의 역사가 된 ‘아야 소피아’ 건물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필자가 생활하는 포항의 지근에 자리한 경주는 992년 동안 통일신라시대의 수도였었다.1천년 여 동안 한 국가의 수도로 보낸 도시는 세계사에도 그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1천200여 년 동안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이탈리아 로마와 중국의 전한, 당, 수나라 등 세 나라의 수도였던 시안(장안)과 함께 터키의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가장 긴 세월동안 수도로 보낸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로 정평이 나 있다.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서기 330년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이스탄불을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장장 1천600여 년 동안 3개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이스탄불은 십자군 원정, 이슬람 세력의 침공 등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그러나 이스탄불이 긴 역사적 배경과 지형적인 특수성만으로 유명세를 탄 도시로 기억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이곳엔 한 도시를 오랜 시간동안 화해와 공존의 상징으로 만든 한 건축물이 있는데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가진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가 그것이다.서기 360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콘스탄티누스 2세가 총주교좌가 있는 ‘아야 소피아’를 목조지붕으로 창건했지만 화재와 반란으로 두 번이나 소실되는 아픔을 겪은 후에야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가 537년 직경 22m 거대한 돔을 가진 역사적 건축물로 다시 중건하였다.‘아야 소피아’가 로마제국이 세운 건물이어서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적지 않다.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봉쇄된 바닷가 길을 포기하고 72척의 함대를 해발 60m의 갈리타 언덕으로 이동시켜 난공불락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사흘간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해도 좋지만 ‘성 소피아 성당’만큼은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이후 많은 그리스도 교회가 모스크로 개조되는 우여곡절 속에서 ‘아야 소피아’도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는 것을 피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성화 모자이크와 코란을 새긴 원판이 보존되고 있는 독보적인 문화유산으로 존중받아 왔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최근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이 핵심지지 기반인 이슬람 강경보수층 지도자들이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아야 소피아’를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지난 3월 초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시스코 교황이 이라크를 방문하여 이슬람 주요 지도자들을 만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복잡한 종파분쟁과 테러위협으로 강한 반대가 있었지만 두 종교의 갈등과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화합의 차원에서 방문을 강행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아야 소피아’의 이슬람 사원으로의 회귀로 교황의 숭고한 뜻을 퇴색시키고 말았다.자기 가치만 고집하고 상대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 시대에 문명의 다양성을 배우고 역사적 화해를 실천하는 학습장으로 공존해 왔던 두 종교의 상징성 이야말로 1천600여 년을 묵묵히 견뎌온 ‘아야 소피아’의 미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그 판단은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긴 채 오늘도 역사는 쉬지 않고 흘러갈 것이다.

2021-04-20

20대가 선생이다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들에 압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영선 후보에 57.5대 39.18로, 박형준 부산시장은 김영춘 후보에 62.67대 34.42로 이겼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비록 1년여의 짧은 임기지만 우리나라 수도와 제2도시의 시장을 배출했다. 이번 선거가 내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임을 감안하면, 여당이 국회 180석을 차지한 압도적 여대야소 정국에서 야당의 대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지난 9년 동안 박원순 3선 시장이 재임한 서울은 유권자들의 진보 성향이 강한 도시다. 작년 총선에서 지역구 총 49곳 중 41곳에 민주당 깃발이 꽂혔고, 2030세대가 몰표를 주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2030세대의 표심이 야당을 향했다. 특히 20대 남성의 72퍼센트가 오세훈을 선택했는데, 진보 진영은 문재인 정권의 여성우대정책에 ‘이남자(20대 남자)’들이 분노한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지식인들도 거기 편승해서 20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한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그렇게 어리석으니 선거에서 진 것이다. 어리석은데 교활하다. 20대 남성들을 여성에 열등감과 질투심이나 갖는 졸장부로 만들면서, 남성과 여성을 갈라치기해 지지 세력을 다지려는 속셈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지역감정을 정치에 끌어들인 김기춘과 뭐가 다른가? ‘저쪽이 그랬으니 우린 안 그래야지’가 국민들이 민주당에 기대한 상식인데, ‘저쪽이 그랬으니 우리도 그런다’로 화답했다. 이게 패배의 이유다.20대 남성들은 왜 야당을 지지했을까? 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여당을 심판한 것이다. 20대 여성들의 51퍼센트는 박영선에게 표를 줬다. 20대 여성들은 왜 여당을 지지했을까? 여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야당을 심판한 것이다. 20대는 진영에 투표한 것이 아니라 정의에 투표했다. 최선도 차선도 없고 최악과 차악만 존재한 선거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차악에 표를 던진 것이다. 20대 남성들이 보기엔 국민의힘이 차악이고, 여성들이 보기엔 민주당이 차악이었을 뿐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세월호 참사 당시 또래들의 죽음을 보면서 기성세대의 무능한 민낯을 똑똑히 목격한 세대다. 몇 개의 계절 동안 “진실을 인양하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박근혜 국정농단에 맞서 추운 겨울 내내 촛불로 광화문을 밝혔다. 군복무에 성실하고, 여성의 주체성 확장과 소수자 연대, 동물권 신장, 저탄소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세대, 그러면서 학점관리하고 영어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고시 준비하며 스펙을 쌓는 세대, 이처럼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더불어 사는 것을 실천하는 세대, 하지만 취업도, 결혼도, 작은 방 한 칸도 감히 꿈꿀 수 없는 세대, 다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20대다.20대는 자기 밥그릇이 위태로워졌다고 분노한 게 아니다. 어른들이여, 특히 40대 ‘젊은 꼰대’들이여, 20대 청년들은 당신들과 다르다. 20대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세대라 폄하하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20대는 밥그릇을 두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게 만든 불공정과 불합리, 비상식에 분노한 것이다. 조국 전 장관 부부의 자녀 입시비리 문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변창흠 국토부장관의 노동자 비하 발언, 거듭된 주거 정책 실패와 김의겸, 김상조, 박주민, 손혜원 등 고위공직자 및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논란,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당시 나타난 ‘국가’라는 이름의 전근대적이고 낡은 감수성,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의 성추문과 피해자에게 가한 2차 가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사태까지…. 진보와 개혁을 외치는 세력이 그래선 안 된다고, 이번 선거는 20대가 부끄러운 어른들을 준엄하게 꾸짖은 ‘기성세대 각성’의 교실이다.그러니 부디 20대에게 배우라. 철부지들이 아니라 당신들의 선생이다. 케케묵은 진영논리 대신 공정과 정의, 양심을 선택하는 세대, 보수와 진보 따위 이데올로기 대립 너머 상식과 올바른 가치를 위해 그 무엇과도 싸울 수 있는 세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아무리 캄캄해도 오직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정직한 노력들로 자기 생을 밝히며 저마다의 간절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세대, 개인의 주체성과 자기감정을 분명히 나타내면서도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는 세대, 앞선 세대가 이루지 못한 성숙하고 세련된 근대 시민…. 모두 20대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이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2021-04-19

보복소비와 양극화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며칠째 60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의 초기 단계로 들어섰고 경기 침체는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지만 이와 다르게 명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최근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2조40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프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거나 뛰는 행위)을 해야 겨우 제품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적지 않은 언론매체가 이런 현상을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TV나 냉장고 등 값비싼 가전제품의 구입 또한 전년도 대비 눈에 띄게 늘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에서 9조3천억 원의 예상 초과의 실적을 기록했다. 중고차 판매와 수입차 판매량 또한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최근 여의도에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많은 인파가 몰렸다. 개장 1시간 전부터 인근 도로가 정체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백화점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는 풍경이 연출되었고, 잇단 감염자 확진에 입장객을 감축하는 방안이 세워지기도 했다.이에 비해 마트에서는 최저가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창고형 할인 매장에 인파가 몰리고, 온라인 유통업계 또한 최저가 경쟁과 신규 회원 이벤트 등을 펼치며 나서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생활비 절약이나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노하우 영상이 조회수 1.9만을 기록할 정도다. 생필품 시장에서는 최저가를 선호하며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계속되는 고용난과 실업자 증가로 인해 심각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 집 근처에 있던 가게도 하나 둘 씩 문을 닫거나 때에 따라 영업을 하지 않는 날도 늘었다. 일용직 일자리센터를 지나갈 때마다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청년 취업난으로 인해 자격증 학원에 몰리는 젊은 인파를 보며 이와는 반대로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거나, 유명 관광지나 꽃나무 주변에 너나 할 것 없이 돗자리를 펴고 5인 이상 모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급여와 일자리가 유지되는 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의 양극의 차별은 더욱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MZ세대의 ‘플렉스(flex)’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기이한 문화 현상도 눈에 띈다. 플렉스는 힙합 문화 중 하나로 자신의 성공이나 귀중품을 과시한다는 의미로,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값비싼 소비로 이어지는 현상이다.한국은행과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의 재무적 목표에 대한 질문에 답변자들은 61%의 선택으로 주택 구입을 위한 재련 마원을 꼽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청년 고용 불안정과 고용난, 부동산 자산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 상실감으로 인해, 청년들은 ‘플렉스 문화’에 눈을 돌려 명품 구입이나 단순 소비 욕구를 택하고 있다.유행처럼 번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과 욜로(YOLO)문화 또한 현재의 만족감과 개인의 행복에 의미를 둔다. 주택 구입, 취업, 결혼 등 미래의 불투명함을 생각한다기보단, 일상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즐겁게 살려는 욕구에 치중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소비형태는 교묘히 바뀌어 점심시간 포장 용기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유행에 맞춰 계절마다 구입하는 옷, 시즌마다 구입하는 텀블러와 리유저블 컵, 패션 아이템으로 전락한 에코백, 손쉽게 허기를 채우는 배달음식 등 단순하고도 빠른 소비 형태로 이어진다. 손쉬운 소비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코로나로 인한 플라스틱 용기 사용 증가와 일회용 마스크 증가는 이미 심각한 환경 문제로 대두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이한 문화 현상으로 인해 전염병이 확산되었지만, 개인위생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과 마구잡이식 보복소비로 인해 또다시 심각한 환경오염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이상 기후 현상은 전 세계 곳곳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 사하라 사막은 수년간 눈이 내리는 이상 기후를 겪고 있다. 아열대 기후인 대만은 급작스러운 한파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처 대처하지 못하여 피해를 입은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이 멈출 수 없는 굴레에 인류가 있다. 인류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이제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2021-04-19

신라 왕궁, 성벽을 쌓다

경주 월성(月城)은 신라의 최고지배계층이 사용한 왕궁 유적으로 2000년 유네스코에 의해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월성지구로 등재·관리되고 있다.월성의 총면적은 193,845㎡(약 59,000평)이며, 길이는 동서 890m 남북 260m 바깥 둘레 2,340m다. 월성 내부는 전체적으로 북쪽이 남쪽보다 높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평탄한 지형이며 가장자리는 평탄면보다 2~7m 더 높은 성벽이 남아있다.월성의 남쪽에는 자연하천인 남천이 흘러 방어에 용이하고, 경주 선상지 남쪽에 위치하여 경주 분지를 조망할 수 있는 입지적 장점을 지닌다.월성 관련 기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사서, 실록, 지리서, 문집 등 문헌자료에 남아 있고, 고려시대 대표적인 사서인 ‘삼국사기’에 월성의 축조나 수리와 관련된 기사가 확인된다.“파사왕 22년(101)에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월성 또는 재성(在城)이라고 하였다. 신월성 북쪽에 만월성, 동쪽에 명활성, 남쪽에 남산성이 있고 시조 이래로 금성에 거처하다가 후세에 이르러 두 월성에 많이 거처하였다.”“소지마립간 9년(487) 가을 7월에 월성을 수리하였고, 소지마립간 10년(488) 봄 정월에 왕이 월성으로 옮겨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월성 성벽 조사는 성을 쌓는 방법과 과정, 쌓은 시점을 파악하기 위해 2015년부터 현재까지 성벽 서쪽과 남쪽 일부구간을 대상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월성 성벽은 흙을 주된 재료로 쌓은 성토구조물로 흙 이외에도 회가 발린 건축폐기물을 재활용하거나 불에 탄 흙(燒土), 볏짚을 태운 재(灰), 점토덩어리, 자연석(石)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다양한 재료의 사용은 성질이 다른 재료를 번갈아가며 쌓아 재료들 간의 접착력을 높여 성벽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성벽을 쌓는 과정은 성벽을 쌓을 공간에 연약한 지반을 개량하고 땅을 단단히 다져 기초를 만드는 기저부 조성공정과 그 위에 본격적으로 성벽을 쌓아 올린 성벽 성토공정으로 구분된다.기저부 조성공정에서는 식물의 잎이나 줄기 등 식물성 재료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공법과 흙의 밀도를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의 말목지정, 목재구조물 등이 확인된다. 부엽공법은 흙의 인장력과 지지력을 높이고 지하수의 배수를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성벽 성토공정에서는 수평 방향으로 흙을 층층이 쌓아 사다리꼴 모양의 성벽 중심부를 만들고 중심부의 경사면에 따라 소토, 벽체편, 점토덩어리 등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가며 쌓고 정상부와 외벽에는 자연석을 놓아 흙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순서로 성벽을 쌓은 것이 확인된다.성벽을 쌓은 시점은 성벽을 쌓는 각 단계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제작 시기가 가장 늦은 유물을 기준으로 성벽이 쌓인 시기를 파악하고 있다.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의 출토양상으로 보아 월성 성벽은 대체로 5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성벽을 만들어서 6세기대에 증축한 것으로 추론된다.박정재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성벽의 기초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성벽을 쌓기 직전에 성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제사의 제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확인된다. 국내에서 다수의 성벽이 조사 되었지만 성벽 기초부에서 인골이 확인된 것은 월성이 최초의 사례다.인골의 머리 방향은 북동향이며 2구가 나란히 누워 있다. 한 구는 정면을 바라보며 팔다리를 가지런히 하여 누워 있는 신장 166㎝의 50대 남성이고, 다른 한 구는 얼굴이 남성 인골을 바라보며 몸을 약간 튼 채로 있는 신장 153㎝의 50대 여성이다. 머리를 중심으로 몸 전면에 풀과 나무껍질이 덮여 있고, 뼈에서 외상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죽은 상태에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남성 인골의 발쪽에서는 인골과 동시에 놓인 것으로 보이는 토기 4점이 확인되며, 토기 이외에도 인골 주변에서는 동물뼈, 목재, 씨앗 등 유기물과 골각기편 등이 다량 확인된다. 인골 발쪽에서 확인된 토기가 제작되고 유행하는 시기를 분석하여 인골이 묻힌 시점을 유추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현재까지 진행된 성벽 조사는 월성의 일부 구간에 대한 조사만 진행되어 성벽을 쌓는 방법과 과정, 쌓는 시기의 전모를 밝혔다고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향후에도 월성이 만들어지고 사용될 당시의 모습을 밝혀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2021-04-19

꽃이 피고, 다시 꽃이 지고 : 봄날의 책읽기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1902~1934)은 평북 출신으로 오산학교에서 김억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고, 인생의 봄인 스무 살 무렵에 꽃다운 시들을 다수 창작했다.문득 눈을 들어보면, 어느새 세상이 꽃 천지였는데, 잠시 마음을 흘러가게 두고 나니, 그새 그 많던 꽃들이 다 사라지고 나무마다 푸르디푸른 잎들이 솟아올라 있다. 바야흐로, 봄날이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다.사람들의 삶이 흘러가는 것이나 그것에 대한 인식 여부와 상관없이 계절의 시간은 그렇게 나름대로 흘러가고 있다. 한창 문학을 공부하던 무렵에는 옛사람의 시구들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 풍경 각색이 변하고 있는 것이 입에 물려, 그때 사람들이 오죽 심심했으면 계절의 변화나 살피면서 시를 썼을까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웬걸,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계절이 변하면 어김없이 꽃들이 오밀조밀하게 핀 것이나 나무 끝에 싹이 간질간질하게 터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어, 그래, 이것 말고 노래할 만한 것이 달리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싶게 된다.요즘은 모두 바쁘게 자기의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기의 삶의 리듬을 연결하기에 바쁜 세상이지만, 가끔 걸음을 멈추고 공원에 머물러 그곳을 채우고 있는 언젠가는 꽃이었던 나무들을 보고 있을 기회가 있다면, 누구든 분명 그 꽃잎, 나뭇잎 하나하나가 어쩜 그렇게 어엿하게 자기 모습을 하고 있는가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봄노래를 하나쯤 흥얼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아무리 흘러가도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이렇게,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척박한 바닥 위를 기어코 올라와, 매년 나무 가득 꽃을 피운 뒤, 이제는 온통 푸르게 변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나무를 보면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을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어김없이 변화하는 계절이라는 감각, 매해 그맘때쯤 변화하면서 순환하고, 또 해가 지나갈수록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에 대해 노래하고 싶지 않았을까? 또, 태양이 전하는 온기가 서서히 길어지며 그에 반응해가며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그 질긴 생명의 힘을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삶의 태도에 비유하기도 했으리라. 벌써 비슷한 시 몇 구절이나 노래 가사 몇 구절이 머리를 맴돌고 있으니.하지만, 봄날은 노래 하나쯤 흥얼거린다면 모를까, 책을 읽기에 그리 좋은 날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기나긴 서사로 된 소설을 하나 읽을라치면 몰려오는 향기들이 마음을 간질여서 금세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봄날 퇴근한 이후의 밤 시간이 유달리 짧았던 것은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며 물리적인 시간이 짧아져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너무 많은 향기들에 이끌리고 있다는 징후일지도 모른다.당연히 이런 날 책을 읽는다면 얇은 시집이나 가벼운 에세이 정도가 좋을 것이다. 마음이 열리고 감정이 솟아올라 공상하기 좋은 봄날에는 문자가 가득해서 빼곡하게 타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으로 머리를 채우기보다는 몇 줄 안 되는 문자들을 바탕으로 한없는 공상을 할 수 있는 글이 어울린다. 이미 져버린 꽃이나 아직 남아 있는 꽃에 대해 노래했던 시들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시에 대한 교육이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긴 하지만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같은 시집은 오히려 차분히 시집 전체를 읽으면 새로운 발견의 재미가 있다. 가락을 붙여 흥얼거리며, 진달래꽃 사이에 켜켜이 들어 있는 감정의 진폭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으리라. 혹은, 요즘 우리에게 꽃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인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찬찬히 읽으며 꽃과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꽃이 피고, 다시 꽃이 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멈춰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툭, 하고 꽃이 피는 소리도 잎이 자라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봄날 밤이란 결코 길지 않은 것이다. /홍익대 교수

2021-04-19

역할과 기여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몇 차례의 꽃잔치에 이어 산과 들엔 잎새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싱그러운 잎새들이 넘실대는 초록세상, 진초록 위에 연초록 잎새가 겹쳐서 피어나고 군데군데 산벚꽃들이 희끗희끗 수놓으며 수채화 같은 자연의 화폭을 드리우고 있다. 신열인듯 환희인듯 울음처럼 복받치는 그리움인듯, 온통 초록의 물결로 일렁이는 4월은 잎새달이라고도 한다. 초록의 농담(濃淡)으로 펼쳐지는 왕성한 신록의 향연이 코로나블루로 지쳐가는 일상에 생기와 활력으로 그나마 위무해주는 듯하다.봄의 싱그러움과 상쾌함은 가까이 다가가면 자세히 느낄 수 있다. 벌들이 잉잉거리며 일년을 준비하는 소리와 꽃송이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모양과 빛깔, 그리고 향긋한 봄의 맛! 꽃과 풀과 나무들의 미세하고 섬세한 순간의 움직임과 순차적인 변화는, 자연의 시간이 흐르는 대지에서 저마다 창조적인 손길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조화와 균제를 이뤄가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즉 구름이 떠돌다가 비를 내리면(雲行雨施)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水流華開) 싹이 돋아나듯이, 자연만물은 때가 되면 시의적절히 제각각의 모양새대로 구실과 기능을 하며 큰 세상을 움직여가고 있는 것이다.대자연이 이럴진대 인간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출생해서 성장하고 성숙, 완숙하여 소멸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수많은 관계와 자리, 역할과 부름으로 필요에 따른 구실을 하거나 공공의 기여를 하게 된다.즉 살아가고 활동하는 것이 저절로 주어지고 당연히 이뤄지는 것 같지만, 생장과 생업, 연명의 과정에는 자의적인 목적과 노력, 타의적인 가치와 요구가 수반돼 자신의 삶이 다채롭게 꾸며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뤄지는 각양각색의 삶이 모이고 더해져서 사회가 조화롭고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마치 연록, 담록, 황록, 진초록의 잎새가 온 산천에 어우러져 잎새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나 하나 꽃피어/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 ‘나 하나 꽃 피어’ 중예전에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오롯이 파고들며 자신과 가정만 잘 꾸려가면 되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차츰 주변의 상황이나 위상, 관록에 비춰서 그에 걸맞는 역할이나 사명을 해야함으로 인식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를테면 사회를 위한 공헌활동이나 재능기부 또는 관변단체나 협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제반활동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진정한 보람과 행복을 찾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기회와 여건은 오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않은 일일 것이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작은 나눔과 베풂, 헌신과 기여로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보다 밝고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섬김과 봉사로 채워가는 정성과 노력의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면 온통 미덕의 향기 가득한 꽃밭이 되리라. 신록의 물결 속에 초록의 언어로 공동선의 편지를 쓰는 고운 봄길을 우러르고 싶다.

2021-04-19

곡우의 ‘씨앗 비’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오늘이 곡우이다. 곡우는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이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는 음력 3월, 양력 4월 20일경이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즉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곡식을 깨우는 비’로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시기를 의미한다.곡우의 곡은 ‘기르다. 양육하다’ 뜻이다. 곡우는 ‘씨앗 비’라는 말과 함께 ‘곡식을 살리는 비’‘곡식을 기르는 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한 치 밖에 있는 봄 구경을 제발 좀 하여라/ 단 하루만이라도 봄빛으로 눈 떠 보아라./ 하늘빛이 시리도록 맑고 흰 눈동자를/ 펑, 펑, 펑 꽃 터지듯 떠보아라.”강우식 시인의 ‘봄 기도’를 보면 청각적으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펑, 펑, 펑 소리가 난다. 탁!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오는 소리다. 어느새 차가운 공기 대신 따스한 훈기가 코끝에 닿는 계절이 돌아왔다. 봄이다.봄이 오면 비슬산 천왕봉에서 대견사 방향으로 걸어가면 멋진 참꽃에 발목 잡혀 참꽃군락지 곳곳을 누비며 참꽃 물결의 비슬산에 정신줄을 놓는다.곡우의 봄이 찾아왔음을 알리고 붉게 피어난 비슬산의 참꽃이 봄의 색으로 채워가고 있다. 대견사 뒤편엔 비슬산 참꽃군락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참꽃 군락지 중간 중간으로 이어진 전망대와 데크길 때문에 아름다운 참꽃의 향연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견사 3층 석탑에서 대견봉까지 참꽃으로 이어진 꽃길은 상춘객으로 어우러지고 참꽃과 하나 되니 더욱 아름답다. 또한 자연 암벽 끝자락에 자리 잡은 대견사지 삼층석탑의 모습이 벼랑 끝 간절한 바람의 기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 끝에서 무언가를 빌어보는 듯하다. 누구의 건강과 안녕과 소원을 빌며 봄을 맞는다. 필자도 건강한 봄을 위해 빌어본다.곡우 때가 되면 조기의 살이 두툼하게 오르는 시기라고 한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 지인이 있다면 조기를 선물하여 마음을 전한다. 또한 곡우 전후에 채취한 녹차 역시 최상품으로 여긴다. 그리고 곡우 물은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는다. 병이 있는 사람이 병을 고치기 위해 그 물을 마신다. 봄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따뜻한 봄은 밝고 희망찬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만큼 나뭇가지의 눈에서 파아란 새싹이 돋아나고 우리의 하루하루도 활기차고 의미 있는 날로 채워진다.2021년 봄은 새싹의 꽃망울이 펑, 펑, 펑 터지는 소리가 더욱 희망차게 들리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얼굴에 그리워진 주름살이 조금이나마 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곡우의 봄비처럼 새로운 ‘씨앗 비’가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도 해 본다.곡우의 ‘씨앗 비’가 희망으로 지금까지의 고난과 역경, 어려움을 잘 극복 해왔던 것처럼 이 위기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고 우리에게 더 아름다운 미래가 있음을 확신한다. 가슴에 조각난 덩어리 모두 씻어버리고 펑, 펑, 펑 꽃 터지듯 새 생명을 꽃피우는 봄과 봄비를 맞는 봄 기도를 하자.

2021-04-19

제주올레, 그 길에서 길을 묻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제주올레! 그 이름만 들어도 옥빛 바다, 정겨운 돌담길, 아름다운 오름이 눈에 선하다. 나는 10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올레 길을 걸었다. 제주올레 26개 코스 425km를 3회 완주하였고, 지금 또 다시 그 길 위에 서 있다.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는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끌려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순(耳順)’을 지나 ‘종심(從心)’의 나이에도 삶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안개 속이니, 이 길을 걸으면서 황혼의 인생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올레꾼들의 65%가 ‘나 홀로 여행자’라는 사실을 보면 그들이 걷는 이유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인생길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다. 소유의 길과 존재의 길, 잘 사는 길과 바르게 사는 길, 이기적인 길과 이타적인 길 등과 마주하게 된다. 올레 길처럼 방향을 알려주는 리본이라도 달려있으면 좋겠지만, 인생길에는 그 어떤 표지판도 없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길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걷는 것이다.길을 걷기에 앞서 자연과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길을 걷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자연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올레 길에서 많은 스승들을 만났다. 제주의 해안·오름·돌담길을 걸었고, 유채·동백·벚꽃·수선화와 만났다. 이념의 광풍(狂風)이 불었던 제주4·3의 비극적 현장도 보았고, 홀로 걷는 석양 길에는 ‘산담’이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봄 꽃길, 가을 단풍 길도 걸었고, 삼복(三伏) 무더위와 혹한(酷寒)의 제주바람에 맞서기도 했다.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이 길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인간 존재와 이성의 유한성을 깨닫고 겸손을 배웠다. 인간은 영겁(永劫)의 시간 속에서 찰나(刹那)에 사는 존재이고, 인간의 능력 또한 매우 제한적이니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모든 것이 한 때일 뿐이니 잘났다고 목에 힘줄 일도 아니고, 못났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다. 인간의 ‘오만과 독선’은 근본적으로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다. LH사태로 정부여당이 궁지에 몰리자 이해찬 전 대표가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이 흐리다”고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았으니 민심은 폭발하고 선거에서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진흙탕싸움을 벌이는 정치인들은 수시로 자연과 마주해야 한다. 초심을 잃어버린 권력의 오만과 독선은 자멸의 길이다. 길을 잃었을 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자연의 질서는 공존과 협력 속에 유지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면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해 중병을 앓고 있는 외눈박이 정치인들이 ‘위대한 스승, 대자연’의 교화(敎化)로 치유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1-04-19

추억의 아이스케키

5060세대와 7080세대를 통틀어 인기를 끌었던 얼음과자, ‘아이스케키’가 돌아왔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으로 식품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불량식품’의 대명사로 치부됐던 데다, 공장 생산 아이스크림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됐던 아이스케키가 60여년 만에 다시 소환한 건 최근 수년간 지속된 ‘레트로 열풍’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추억의 아이스케키를 신제품 ‘아이스케-키’로 출시한 빙그레는 보름 만에 200만개가 팔렸다고 밝혔다. 매출액으로만 5억원. 통상 빙과류 출시 일주일 기준 100만개 이상이 팔리면 ‘초기 반응이 좋은 제품’으로 분류된다. 200만개가 팔렸으니 ‘중박’이상이다. 시장에 나온 ‘아이스케-키’는 사과·레몬·딸기맛 등 세가지 종류의 ‘막대’ 형태 아이스크림으로, 유통업계에서 수년간 유행 중인 ‘뉴트로’(복고를 재해석) 콘셉트를 적용했다.빙그레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아이스케키라는 브랜드를 사용했고, 빙그레의 레트로 캐릭터를 활용해 복고적인 느낌도 살렸다”고 했다.전통적인 아이스케키는 설탕물이나 사카린을 탄 물에 팥가루를 넣은 얼음덩어리째로 통에 담겨 팔렸다.전성기는 1950~60년대 초. 이에 따라 1950~60년대에는 여름철 마다 보건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아이스케키 제조 위생 단속을 실시하느라 분주했다. 아이스케키로 인한 전 가족 식중독 등의 보도도 심심찮게 신문 사회면에 실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1962년 식품위생법이 공포되고, 1968년에 빙과류 식품 규격 기준이 마련된 뒤로는 소규모 아이스케키 업자들이 발붙일 수 없게 되면서 사라졌던 아이스케키다.그 시원하고 달콤했던 아이스케키가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온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4-19

‘법당 뒤를 도는’ TK리더

심충택논설위원대구시 동구 신서혁신도시에는 장기간 빈터로 남아 있는 공공시설 부지가 있다. 1만4천㎡가 넘는 이 부지는 고등학교 설립을 위해 남겨둔 땅이다. 고교설립이 혁신도시 주민들의 최대 숙원인데도 불구하고 왜 대구시교육청은 이 빈터에 학교를 짓지 않을까. 법률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학교 설립이나 학급 증설을 할 때는 ‘학령인구’를 반영해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령인구라는 잣대를 적용하면 출산율 감소로 인해 대구시내에는 혁신도시뿐 아니라 어느 한 곳에도 학교를 지을 수 없다. 대구의 외딴 지역에 자리잡아 교통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혁신도시 주민들은 그래서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이사 갈 생각을 한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정착한 공공기관 직원들도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대구혁신도시 주민들의 이러한 상황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도 전달됐다. 국가균형발전위는 혁신도시 공공기관들의 지역기여도를 체크하는 업무도 하고 있으며, 이 지역 출신 김사열 경북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는 지난해 말 혁신도시를 교육특별지구로 지정해 학교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중인 ‘혁신도시법 일부개정안’과 ‘기업도시법 일부개정안’,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이 그것이다. 이 법률개정안의 발의자는 엉뚱하게도 강원도 원주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다. 원주 기업도시 주민들의 최대숙원이 ‘고교 설립’이어서 이 의원이 총대를 멨다고 한다. 그러나 이 법률개정안 공동발의자 명단에 대구지역 국회의원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니 놀라울 따름이다.문재인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역균형 뉴딜정책을 ‘대통령 아젠다’로 채택해 다양한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는 대구혁신도시 고교설립 문제도 이 과제 안에 넣어 해결책을 찾는 중이다. 부산·울산·경남이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동남권 메가시티’도 뉴딜정책에 근거해 국비를 확보하려는 지역발전 전략이다. 지금 뉴딜정책을 겨냥한 지역 간 초광역협력 논의는 충청권(대전·세종·충남·충북)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지역균형 뉴딜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법률이나 경제성 논리에 막혀 추진할 수 없었던 현안을 국가균형발전 논리로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경제성 논리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에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광역전철이나 광역대중교통망을 구축할 수 없다”고 말했다.지역균형 뉴딜사업 예산을 따내려면 일단 지자체가 지역의 특성·여건을 반영해 창의적 과제를 기획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전국 지자체들이 이 기회를 잡기 위해 해상풍력발전소 건설을 기획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대구·경북만 너무 조용한 것 같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TK 패싱’이라는 정치논리를 ‘자기 보신(保身)’의 도구로 삼아 이 지역의 미래 발전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선거에서 매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다.

2021-04-18

UFO 소동

1976년 10월 14일 서울에서 일어난 UFO격추미수 사건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서울시민은 이날 저녁 상공을 수놓은 십여개의 비행물체를 목격했다. 군은 북한에서 내려보낸 전투기로 오인하고 대공포 사격까지 가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행물체는 맞지도 않았으며 수십분 후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1982년 10월 12일 서울, 대구, 부산, 대전에서 미확인 비행물체(UFO)가 목격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UFO는 특정지역에서 소수 사람에게 목격되는 경우가 보통이나 이번은 비슷한 시간대 여러 곳에서 다수의 목격자가 나왔다. 당시 뉴스에도 크게 취급됐지만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1997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상공에 나타난 미상의 불빛으로 도시는 UFO 소동에 빠진다. 이 소동도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뒷날 이를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졌다.2000년 이전만해도 UFO를 목격했다는 증언과 사진이 곳곳에서 자주 제보되곤 했다. UFO의 목격담은 뉴스 소재로도 충분했고 흥미 있는 사회 이슈였다.그러나 지금은 UFO 소식이 뜸하다. 예전만 흥미도 없다. 고해상도의 스마트폰이 대량 보급됨으로써 이상물체에 대한 정확한 사진 촬영이 가능해진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과거 UFO는 새떼, 유성, 비행기 불빛, 심지어 우주 쓰레기가 지구로 낙하하는 과정에 불타는 모습 등 수많은 종류의 오인 사례가 나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1∼2% 정도는 진짜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미스터리였다.미국에서 최근 피라미드 모양의 UFO가 촬영돼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유포되고 있다 한다. 미 당국이 실체 파악에 나섰지만 과거 예로 보아 실체가 밝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랜만에 등장한 UFO 소동 소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18

인권 친화적인 스포츠 문화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부경대 겸임교수과거 우리 학교체육은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 체육정책과 맞물려 인권 친화적이기보다는 ‘인권 방치’ 또는 ‘인권 침해’ 환경을 조장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학교체육진흥법 제정으로 학교운동부 소속 학생들은 연습과 대회 출전으로 박탈당했던 학습권 보장과 더불어서 과도한 연습, 폭력 등의 신체적, 정신적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가 마련되었다.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학생선수들의 스포츠인권이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제도의 도입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형태와 의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인권 친화적인 스포츠 문화가 정착되려면 학교체육진흥법이라는 제도 아래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체육지도자의 의식 변화와 전문성 제고가 뒤따라야 한다.체육지도자는 학생선수의 인권을 존중하며 교육자, 상담자,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골고루 수행해야 한다.또한 체육지도자는 종목별 특성에 따라 학생선수를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지도법과 전략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 종목의 경우 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연습과 상담을 실시해야 하고 성적 불쾌감을 주는 행동에 주의해야 한다. 단체 종목은 팀원 간에 상호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스포츠맨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기 종목에서는 부상 예방을 위한 대책과 선수시절 체득한 경험에서 벗어나 과학적 근거중심의 훈련 방법의 적용이 중요하며 공격성을 조절할 수 있는 인성교육도 주기적으로 병행해야 한다.아울러 체육지도자는 연습과 경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학생선수를 지도·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시기별 훈련 목표, 내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학생선수가 자기 주도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우수선수뿐만 아니라 비우수선수의 경기력 향상과 동기 부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팀의 규정을 합리적으로 적용하여 부당한 처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경기 전, 중, 후에 상대 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언행을 보임으로써 학생선수들이 체육지도자의 이 같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하도록 해야 한다. 연습과 경기시간 외에도 부상, 학업, 진로 등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건강과 체력상태도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와 협업하여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이같이 인권 친화적 체육지도자는 학생선수들이 경쟁에서 승리보다는 스포츠를 통해 사회성과 도덕성을 기르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특히나 학생선수들을 지도하는 전문체육지도자에게 비현실적일 수 있다. 승리를 통한 보상이 너무나 큰 현재의 체육특기자제도 아래서는 지도자나 학부모 모두가 교육적 가치보다는 스포츠를 통한 진학과 취업, 연봉 획득이 더 중요한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체육지도자들이 승리에 집착하지 않아도 생계를 보장받고 명예로운 직업이 될 수 있도록 처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체육지도자가 안정적으로 지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정 활동기간을 보장하고 그에 합당한 보수 체계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해당 교육기관과 경기단체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적정 활동기간은 보장하되 경쟁을 기본 원리로 하는 스포츠의 고유한 성격에 따라 기대 성적에 이르지 못할 경우 합리적이고 다면적 평가 및 체육지도자 본인의 적극적 소명 과정을 거쳐 필요시 그 활동기간을 정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라도 애초 계약된 기간의 잔여 보수는 지급되어야 한다. 단, 스포츠폭력 등 체육지도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경우는 예외이다.체육지도자의 안정된 일상 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 전문체육지도자의 경우 선수선발 과정, 경기력 저하와 성적 압박, 선수와의 신뢰 형성 부진, 개별 선수의 부상 및 슬럼프 관리, 개별 선수의 동기 부여 및 팀 응집력 향상, 외부의 압력이나 동료들과의 관계, 훈련 시 감정 조절 또는 과도한 감정 표출, 선진적인 코칭에 대한 의욕과 그에 미비한 제반 상황, 은퇴 후 진로 및 사회적 고립감 등 다양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전문체육지도자라는 자부심만으로 신체적 탈진, 과도한 감정 소모, 다양한 심리적 압박을 견뎌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체육지도자의 심리적 안정, 직업 만족도,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이 필요하다. 전문체육지도자의 사회적 관계나 가족 관계 등 그 일상이 건강하게 유지될 때 그들의 지도를 받은 선수들 또한 사회적 고립 없이 심리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훈련과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올바른 스포츠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야말로 학생선수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일을 일선 현장에서 하는 당사자 본인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수용 없이 실질적인 해결이란 불가능하다. 체육지도자를 문제 유발자로 취급하지 말고 문제 해결자로 대우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1-04-18

미세먼지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최근 황사가 심한 날에 사무실 공기청정기를 틀어보니 수치가 200ug/㎥을 넘어서 깜짝 놀랐다.보통 8~9ug/㎥정도의 숫자가 기록되는데 이 정도의 수치라면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할 정도의 높은 수치인 것 같다. 이런 황사나 미세먼지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 이상은 모르는 것이 현실이란 생각이 들었다.매일 쏟아지는 코로나19 관련 뉴스에 가려져 있어 미세먼지 관련 뉴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미세먼지를 2013년 10월 발암물질 1급으로 지정했고 같은 발암물질 1급으로는 석면과 벤젠 등이 있다. WHO는 2014년 한해에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가 700만명이라고 발표를 했으니 2021년에는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위험을 알고는 있지만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 것 이상으로는 신경을 쓰지 않고 보통 사람들은 정부의 정책에도 무관심할 뿐이다.미세먼지(PM, Particulate Matter)는 PM10과 PM2.5으로 나누는데 보통 머리카락 굵기의 1/5~1/7 굵기가 PM10이고 초미세먼지인 PM2.5는 머리카락 굵기의 1/20~1/30 굵기의 입자를 말한다. 크기가 매우 작아 폐 속까지 깊숙이 침투해 인체위해성이 높으며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호흡기계와 심혈관계 질환이 증가하고 조기사망 발생위험이 증가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세먼지가 인체에 들어오면 혈관에 영향을 끼치며 여러가지 부정적인 면역방응을 일으키며 혈관벽을 손상시키고 동맥경화나 주요 혈관질환을 일으켜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미세먼지는 보통 50개 이상의 화학적 성분의 복합 혼합물이며, 다양한 오염원에서 배출되는 입자상 물질을 총칭한다. 탄소화합물(corbonaceous components : 원소탄소와 유기탄소), 미세금속물질(trace metall : 납, 비소, 칼슘), 이온 성분(ionic components : 황산염, 질산염) 등 다양한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적인 발생보다는 인위적인 발생원에서 배출되어 생성되는 오염물질들이 많은 양을 차지해 상당량이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 암모니아(NH3), 휘발성 유기화학물(VOCs) 등의 전구물질이 대기 중의 특정 조건에 반응해 2차 생성된다.미세먼지 발생원과 구성성분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방안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 초미세먼지 구성성분에 대한 건강영향 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연구가 주로 이루어졌으나 최근에는 유럽, 중국, 일본, 한국에서도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결과는 개별 구성성분의 위험도는 지역별, 사망원인별, 계절별로 달라지며 특히 생물성연소, 지역내 난방을 위한 화석연료와 차량 연료의 연소과정에서 생성되는 오염물질들과 2차생성 오염물질들이 건강과 연관성이 큰 것으로 일관되게 보고되고 있다.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보일러는 대기오염에 기여하고 있다. 그래서 환경부와 지자체가 가정용 저녹스 보일러 보급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설치가 불가능한 가정도 많다. 또한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서도 연료는 다르지만 각기 다른 미세먼지를 발생시키고 있다. 산업단지나 공장 등에서는 국가에서 설치비의 90%를 지원해 대기오염방지시설을 교체하려 하고 있지만 기술의 한계와 현장에서의 비정상운영이 계속되고 있어 실효성이 낮은 상태이고 지자체의 관리감독 수준도 아직 낮은 수준이다.정부에서도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2017년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이 수립됐고 2019년 2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으며 2019년 3월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도록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세먼지의 농도와 배출량 저감을 하기 위한 관리만 하고 있고 인체위해성을 기반한 관리방안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환절기에 갑자기 찾아오는 뇌졸중과 심장질환이 개인의 건강 관리문제보다 미세먼지가 주범이라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탁상행정과 복지부동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고 구호에만 그친 미세먼지 대책은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지역별, 계절별 상황에 따른 조사연구를 먼저 실시하고 심도 있는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대책이 마련되어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각 지자체별로 대책을 실행할 때 국민은 안심하고 생활을 할 수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세먼지를 조심해야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존과 나아가 인류의 생존이 직접 관련 있기 때문이다.

2021-04-18

공황에 휩싸인 당신, 내면 아이를 돌보라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기 이전에는 우울, 불안,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없어야만 좋은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도 인간의 적응에 필요해서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몸도 환경에 맞게 적응해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공황증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상담센터에 와서 공황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은 우울, 불안, 분노를 호소하는 내담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다. 그것은 아마도 약물치료를 좀 더 선호해서일 수도 있고, 처음엔 신체질환으로 오인해서일 수도 있다. 가슴의 답답함이나 통증, 심장박동의 빨라짐, 손발의 떨림, 질식할 것 같은 느낌, 죽을 것 같은 공포 등 심한 불안과 관련된 증상이 4개 이상이고, 이런 강렬한 불안을 한번 겪은 뒤 또 겪을까 봐 두려워하고 회피하면 공황장애로 진단된다.공황증상, 즉 불안이 심한 사람들은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고, 신체적 이상으로 오해하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공황(panic)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도 그렇고, 원인도 알 수 없으며, 갑자기 증상이 왔다가 사라지기에 본인이나 보호자들도 이런 공황 증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며 당황할 수 있다.나의 심리상담 경험을 돌아보면 공황 증상과 관련해서 두 명의 내담자가 떠오른다.상담경험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 만난 분과 최근에 만난 분이다. 초보 심리상담사 시절에는 공황 증상을 호소하는 내담자를 만났을 때, 그에게 심리학 교재에서 배운 대로 명상을 적용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 내담자는 불안과 공포가 심한 상태로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어하여 명상도 잘 통하지 않았다.최근에 만난 분은 최면기법을 적용했다. 그녀는 이성과의 이별 이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가빠지고 쓰러지게 되면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병원에서는 신체적인 이상이 없다고 해서 정신과의 약물치료 이후 나를 찾아왔다.그녀는 나중에 회복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는데, 그녀의 갑작스러운 공황의 원인은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와 관련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부모는 맞벌이했고 할머니 손에서 성장했다. 착하게 행동해야 부모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할머니와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을 잘 표출하지 못하고 참고 또 참았다. 부모가 오면 방긋방긋 웃다가 부모가 가면 다락방에서 숨어서 혼자 숨죽여서 울었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 공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었다.우리가 두려워하는 공황, 그것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적응기제인 불안 증상의 하나로, 심해지고 오래 지속되면 마음의 도둑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의 빗장을 열어 원인을 알아차리고,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치료될 수 있다.공황으로 힘들어하는 그대여!마음속 깊은 속에서 당신의 내면 아이가 울고 있다. 그 아이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위로해 주라.

2021-04-18

시내버스를 타고 보니

윤영대수필가어제저녁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지인과 만난 유강마을 끝 주점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 몇 잔 하였기에 대리운전을 부르려 했더니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보자고 해서 길 한편에 주차해 두고 밤의 시가지를 편안하게 구경하며 왔었다. 서쪽 유강 언덕에서 동쪽 두호 바닷가까지 꽤 먼 거리였다.이른 아침 7시 반, 주차해 둔 차를 가지러 조금 걸어서 가까운 버스정류소에 갔더니 ‘216번 14분 후 도착’이라는 알림이 떠 있다. 시내버스 배차시간이 15분 정도라는데 방금 지나간 모양이라 아쉬워하며 긴 의자에 앉았다. 눈앞으로 쉴새 없이 차들이 지나간다. 초록색 좌석버스와 파란색 일반버스가 왔다 가고 통학버스인 관광버스도, 각 회사의 출근 버스도 줄줄이 지나간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활기찬 아침 풍경이다. 승강장 내의 TV 화면 같은 안내판을 보니 그곳을 지나는 5~6개 노선버스의 정보가 반짝인다. 버스노선번호, 현재 위치, 도착예정시간 등 지금 어디를 통과하고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시시각각 알려준다. 새삼스레 버스 정보시스템(BIS)이 훌륭해 보인다. 포항시는 지난해 7월 25일부터 버스 노선을 개편하고 119개 노선에 263대의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으로 전환하여 주요관광지를 연계하고 친환경 버스를 도입했다. 새로 증설된 63대는 모두 전기 버스인데 미세먼지를 줄이고 대기오염을 방지하자는 대책이다.커다란 시내버스 통합노선도에는 5개 방면 노선이 색깔별로 잘 그려져 있고, 노선별로 통과하는 정류소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전광판을 흘낏흘낏 쳐다보고 있는데 이윽고 파란색 216번이 도착했다. 가끔 타본 시내버스이지만 익숙한 듯 카드를 단말기에 대었다. ‘삑’ 소리와 함께 1천200원이 찍혔다. 현금이면 1천300원이고 좌석버스이면 1천600원이다.육거리를 지나 중앙로에서 승객들이 많이 내리고 뒷자리에 빈 좌석이 보이기에 가서 앉아 밖을 보니 아름다운 간판의 시가지 풍경이 낯선 듯하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안내방송을 해주고 LED 문자판으로도 알려준다. 가끔 외국어가 섞여 있는 듯해서 귀를 기울여 보니 죽도시장과 포항시청 앞에서는 영어, 중국어 그리고 일본어로도 안내한다. 외국여행객들을 위한 서비스인 모양이다.죽도시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싱싱한 채소랑 나물, 과일들을 펼쳐놓고 팔고 있는 노점들도 정겹다. 보따리를 들고 타신 할머니가 뒤쪽으로 와서 머뭇거리니 옆의 아가씨가 말없이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양학동을 지날 때 길옆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기에 출근버스를 기다리는구나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농협과 신협 앞이라, 포항사랑상품권이 나오는 날이란 것도 알았다.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무리 지어 등교하는 어린이들도 귀여웠다.효자동 지나서는 혼자였고, 유강 종점에 내려 시계를 보니 1시간이나 걸렸다. 길가에서 밤을 보낸 내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가능한 그 버스 길을 따라 와봤다. 아침나절에 시티투어를 한 셈이다. 다음에도 시내버스를 타고 포항시를 한 바퀴 둘러보면 좋겠다.

2021-04-18

첫 예산 5천억원과 재정자립도의 의미

이희진 영덕군수영덕군이 올해 사상 처음으로 예산 5천억 시대를 맞았다. 2018년 4천억원을 돌파한 이후 3년 만에 이뤘다. 2012년 예산 3천억원 이후 4천억원까지 6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성과이다.지방세, 세외수입, 지방교부세 등이 모두 줄어든 가운데도 영덕군이 국·도비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결과이다. 100년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재생에너지융복합단지 지정부터, 농업·농촌을 위한 공익증진직접지불제, 낙후된 어촌 환경 개선을 위한 어촌뉴딜300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공직자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업무에 임했고 그 결과 예산 5천억 시대를 만들게 되었다. 국·도비 보조금은 전년보다 12.6% 증가한 1천810억원을 편성했으며 증가한 보조금 대부분은 국비이다.우리는 올해 예산 5천억원으로 신재생에너지 등 100년 미래 먹거리를 준비할 수 있게 됐으며, 낙후된 농촌과 어촌 환경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또, 수돗물 공급 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는 스마트관망관리도 가능하게 됐다.생활환경도 크게 개선 될 것으로 보인다.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생활SOC 사업은 실시 설계 시작으로 본궤도에 오르고, 관광 활성화를 위한 덕곡천 친수공간조성, 바다문학관 건립, 해안누리워라밸로드조성 등도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예산과 관련해 꼭 따라 붙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재정자립도’ 이야기다. 재정자립도가 낮다, 하위권이다 등 연례적으로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가 그렇다. 재정자립도란 전체 세입결산총액(자체수입, 보조금등의 전체 합)에서 자체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수입이 줄면 재정자립도는 낮아지지만 보조금 등 국비확보 규모가 커져도 재정자립도는 낮아진다.영덕군은 재정자립도가 낮다. 2018년 13.24%, 2019년 12.65%로 하위권에 속했다.겉으로 보기엔 재정자립도가 낮아져 살림이 어려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체수입은 2018년(312억원)보다 2019년(326억원)이 오히려 늘었다. 다만, 세입결산총액은 이보다 더 큰 규모로 증가했다. 국·도비 보조금이 증가한 것이다. 즉, 겉으로 보기엔 살림이 안 좋아 진 거 같지만 실제 영덕군의 살림은 좋아졌다.혹자들은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도비 확보 노력 없이 있는 재정 그대로 운영하면, 재정자립도는 분명 높아진다. 하지만 자체 수입만으로 군민들이 원하는 복지 실현과 생활 SOC 사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우리군은 자체수입 증가를 위해 세무조사, 탈루세원 발굴, 체납세 징수 등 세수증대를 위해 적극 노력할 뿐 아니라, 각종 사업과 복지실현을 위한 국·도비 확보에도 적극 임하고 있다.재정자립도라는 하나의 가치만 쫓았다면 결코 예산 5천억원 시대를 열 수 없었을 것이다. 예산 5천억원 시대는 군민 복지와 생활환경 개선, 미래 먹거리 만들기라는 목표 아래 모두가 힘을 합친 결과라 할 수 있다. 올해도 영덕군은 재정자립도라는 목표만을 쫓지 않고, 군민 복지, 생활환경 개선이라는 목표 아래 뛸 생각이다. 이미 지난 2월 국가지원예산 확보 전략 회의를 갖고, 벌써부터 내년 국비확보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아울러, 예산 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산 집행이다. 신속 집행이 화두인 가운데, 영덕군은 모든 사업에 예산이 문제없이 집행 될 수 있도록 한 발 한 발 걸어 나갈 생각이다. 올해도 공모사업에 적극 나서 예산 5천억원 시대를 유지하고, 더욱 키워나가는데 중점을 두겠다. 적극적인 민자유치도 중요하다. 중앙 정부의 예산이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의존하는 지방 정부의 관행을 탈피해 새로운 영덕군을 만들고자 한다.군민들과 함께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걸어 예산 5천억원에 걸 맞는 영덕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21-04-18

피어날 때 오라

봄꽃들이 이어달리기 중이다. 매화가 첫 스타트를 끊자마자 살구꽃도 바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누군가 골목길에 하얀 꽃잎이 떨어져 있어서 벌써 목련이 피었나 싶어 달려가 보니 프링글스였다고 해서 웃었더니 며칠 뒤 목련이 담장 위로 새처럼 날아올랐다. 그 뒤를 이어 벚꽃이 뭉싯뭉싯 길거리를 누비는가 했는데 사과꽃이 뒤를 쫓았다.봄꽃 이어달리기의 최고 유망주는 참꽃이다. 그 꽃을 품은 곳, 몇 년을 벼르다 또 코로나가 느닷없이 닥쳐 며칠 더 고민하다 찾아간 곳이 비슬산이었다. 산 정상이 참꽃 군락지라 우리 동네 뒷산의 진달래보다 몇 주는 늦게 핀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매일 올라가 보면 피기 시작하는 것도 절정일 때도 다 볼 수 있지만, 마음을 내서 가야 하는 거리라 가장 아름다운 날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맘때면 되겠지하며 나선 길이다.2020년 4월 셋째 주말, 도심에서 벗어나 산 입구부터 연두의 물결이다. 차창을 열고 산의 냄새를 맡으며 달리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참꽃이 목적이지만 그냥 이렇게 찾아가는 길까지 드라이브 코스부터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게 했다. 한참을 봄빛에 취해 오르니 주차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정상까지 모두 차를 끌고 가지 말고 중턱에 놓고 가란 뜻이다.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정상까지 오르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걸어서 천천히 산을 훑으며 오르는 것, 다음은 셔틀버스와 전기차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표를 예매하니 벌써 우리 앞에 많은 손님이 있어서 한 시간 후에 표가 최선이었다. 표를 사놓고 공영주차장 옆으로 난 등산로를 둘러보기로 했다. 연달래가 이제 왔느냐고 몇 잎 남은 꽃으로 아쉬운 눈인사를 했다. 지난가을 떨어져 쌓인 나무들의 비늘이 만든 푹신한 길을 걷다 보니 훌쩍 시간이 지나 전기차를 탈 시간이었다.셔틀버스도 좋지만 우린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전기차를 탔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 때마다 짙은 분홍빛의 참꽃들이 골짜기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함께 간 언니의 탄성을 들었는지 봄의 물을 올려 새순을 틔운 나무들도 몸을 흔들었다. 어느덧 차는 산꼭대기에 자리한 대견사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절 마당 가장자리는 너럭바위로 이어진 절벽이었다. 그 위에 파란 하늘을 이고 삼층탑이 앉았다. 뭉게구름 한 점 탑에 걸어놓고 인증샷을 마구 찍었다. 어느 방향이나 절경이다.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걸 준비했나 싶은 맑은 날씨였다.절 뒤로 난 계단을 올랐다. 올라서자마자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산정상에 찐분홍 참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큰 나무들은 자리를 양보하고 오로지 키 낮은 참꽃들만 어깨를 맞대고 있어서 하나님이 비슬산 정상을 칠하실 때에 분홍 물감 하나만 준비해도 되어 좋았을 것 같다. 마음껏 꽃분홍물을 흩뿌리셨다. 그 사이로 등산객들을 위한 나무 데크길이 나 있어서 분홍 물결 사이를 헤엄쳐 다녔다. 한껏 참꽃의 분홍향을 들이마셨다. 두어 시간 꽃밭에 노닐다 보니 볼이 발그레해진 기분이 들었다. 좋다 좋아 읊조리며 이 좋은 풍경을 매년 보러 오자는 다짐을 했었다.밤새 비가 나린다. 하루하루 꽃 피는 모습이 다른 요즘, 빗소리에 꽃이 질까 잠을 설쳤다. 올해는 달성군에서 비슬산의 참꽃 군락지에 CCTV를 설치해 매일 더 피어나는 꽃송이들의 질주를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붉은 것이 주말에 다니러 가면 절정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밤새 올봄 마지막 한파가 닥쳤다. 눈뜨자마자 유튜브를 켜서 참꽃이 어찌 되었나 살피니 붉던 산자락이 희끄무레하다. 아무리 화무십일홍이라지만 그렇게 붉던 어제의 꽃들이 추위를 못 견디고 다 스러지다니. 목적지를 잃어버렸다.지난해보다 일주일 이상 다른 꽃들이 피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말이다. 올봄은 한발 먼저 온다고 다른 꽃들이 귀띔하는 걸 귀담아 마음 담아 들었어야 했다. 스러진 참꽃이 CCTV 화면을 통해 내년에 다시 오겠노라 작별 인사로 까만 손을 흔든다. 필 때 오라니깐 하며. /김순희(수필가)

2021-04-18

마스크 벗는 날

중국인에게 복숭아는 영적인 힘을 가진 과일이다. 다산, 생명력, 장수의 상징이다. 또 악령의 침입을 막고 깨끗한 신의 영역을 나타낼 때도 복숭아가 반드시 등장한다.무릉도원(武陵桃源)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숨겨진 낙원이다. 도원이란 복숭아 꽃이 만발한 평화스런 장소를 의미한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도 복숭아 밭에서 이뤄진다. 중국 전설에 의하면 3천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를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신선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한다.지난해 2월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피로감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벗는 날을 학수고대한다. 만약 지금이라도 마스크를 벗고 모두가 파티를 즐길 수 있다면 아마 그곳을 무릉도원이라 부를 것이다.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백신접종 상황이 속속 드러나자 나라마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4월, 미국과 영국은 6월쯤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올해 독립기념일(7월 4일)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야외에서 바비큐를 해 먹으면서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때 코로나 감염상황이 최악이었던 영국도 여름 휴가 동안 자국민이 안전하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의 리스트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공격적인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 확산세를 꺾고 자축 분위기다. 접종률 1위의 이스라엘은 군부대가 훈련기간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는 시험에 들어가기도 했다.11월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한 우리나라는 겨우 2%대의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부작용으로 당초 계획했던 접종 스케줄의 대혼선이 예상된다고 하니 우리의 무릉도원은 언제쯤 나타날지 갑갑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4-15

민심의 바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출발은 남달랐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비워진 자리에 촛불민심의 압도적인 지지로 세운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총선에서 과반수가 넘는 180석을 얻은 여당은 야당과 협의해 나눠 맡던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채 여당 단독으로 개혁입법들을 처리하는 위세도 보였다. 그랬던 정부여당이 하루아침에 민심이반으로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도도한 흐름은 정부여당에 큰 충격을 줬다. 급기야 지난 13일에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범국민 촛불집회에 앞장섰던 종교계와 시민사회 재야인사들마저 4·7 재·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문재인 정권의 철저한 반성과 쇄신을 촉구하고 나섰다.이날 긴급성명서를 발표한 정지강 재단법인 희망제작소 이사장 등 100여 명으로 구성된 ‘쇄신과 촛불 개혁을 위한 범시민전국연대’ 면면을 보면 모두 촛불민심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뼈를 깎는 반성과 읍참마속으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겸손과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회전문 인사, 내 편 인사, 5대 중대비리 인사는 안 된다”라며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청렴, 강직하고 개혁적인 새 인물을 발탁해 배치해야 한다”고 강도높은 인적 쇄신을 주문했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현 정부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를 물은 여론조사에서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불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폭발한 공정성 위기’, ‘내로남불식 태도와 오만함’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와 공정성 위기를 지목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문빠’들도 현 정권의 정책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뻗대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일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과 관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택시장이 2월 중순부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기존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여당은 규제 일변도 정책이 무주택자·1주택자·다주택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진단하고, 정책 방향의 전면 혹은 일부 선회를 꾀하고 있으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획기적인 인적쇄신이 그마나 민심을 되돌릴 절호의 기회이지만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더욱 가파르게 하락할 게 뻔하다.촛불민심에 힘입어 일어선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민심은 바다와 같다. 바다는 거대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단번에 침몰시킬 수 있다. 민심의 바다에 위태롭게 떠 있는 임기말 문재인 정부가 안쓰러워 보인다.

2021-04-15

민들레, 제비꽃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이 땅 어디나 민들레의 영토 아닌 곳이 없다. 갓털(冠毛)을 달고 날아올라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정착해 꽃 피우는 민들레는 누가 뭐래도 이 땅 이 봄의 주인이다. 만화방창 온갖 꽃들과 신록이 저마다 제 영토임을 주장하지만 민들레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시멘트 옹벽 틈새든 시궁창 옆이든 가리지 않고 환하게 꽃을 피운다. 해바라기처럼 큰 키를 갖지 못한 앉은뱅이 꽃이지만 해바라기보다 더 꼿꼿이 해를 쳐다보며 피는 꽃이다.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세상 어떤 꽃보다 밝고 확실한 존재감으로 자족하는 꽃이다.제비꽃은 이름도 많고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자주색 꽃이 제일 많고 제비꽃이란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민들레처럼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낼 수도 없고 누가 옮겨 심는 것도 아닌데 널리 퍼져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작고 흔한 야생화지만 시골 학교에 전학 온 도시 계집애처럼 어딘가 새초롬한 데가 있다. 꽃이 지고 씨방이 여물면 그 안에 자잘한 씨알이 들어있다. “ - 덜 여문 건 하얀 쌀밥/ 다 여문 건 누런 보리밥/ 배고파 칭얼대는 어린 동생 풀밭에 내려놓고/ 아홉 살 누이가 보여주던 제비꽃 도시락” - 졸시 ‘제비꽃’중에서비싼 돌과 나무로 조경을 하고 잔디를 깐 정원에는 민들레도 제비꽃도 골칫거리 불청객 잡초일 뿐이다. 방치를 했다간 얼마 못 가서 그들이 제 영토를 주장할 터이니 품삯을 주고서라도 일삼아 뽑아낸다. 그러나 여기, 민지네 집에는 그런 차별이 없다.“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정희성 시인의 ‘민지의 꽃’이라는 시다. “꽃이야”하는 다섯 살 배기의 한 마디가 40여 년 시를 써온 시인의 입을 다물게 한다. 언어의 달인이라 할 시인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시인은 그것을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라고 한다. 시란 이렇듯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도 감동시키는 말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현란한 말재간도 이 한 마디 앞에서는 무색한 군더더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꽃과 잡초를 구별하는 따위의 분별지(分別智)로는 천지와 소통할 수가 없다. 인간들이 언어로 쌓아올린 온갖 인식체계가 실은 유치원 어린아이의 수준에도 영 못 미치는 예를 흔하게 본다. 예수님도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아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난삽하고 황당한 허위의식으로 점철된 비문(非文)들을 마치 고도한 정신세계의 표출인 양 호도하는 논리들에 현혹되는 세태에도 민지의 말이 필요할 것 같다. “꽃이야!”

2021-04-15

동국대 경주캠퍼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동국대 경주캠퍼스가 ‘경주’라는 지역명을 딴 이름을 더이상 쓰지 않기로 하고 미래 발전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캠퍼스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최근 캠퍼스에서 지역명을 빼거나 교명을 바꾸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경희대는 수원캠퍼스를 ‘국제 캠퍼스’로, 건국대는 충주캠퍼스의 이름을 ‘GLOCAL(글로컬) 캠퍼스’로, 연세대도 원주 캠퍼스를 ‘미래 캠퍼스’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부산권의 영산대도 캠퍼스를 와이즈유(Y’sU)라는 닉네임으로 부르고 있다.이러한 교명 변경은 학교 위상을 올리는 효과가 있고, 신입생의 질이 상승되는 효과도 있다.교명 변경으로 경쟁력에서 큰 성공을 거둔 대학은 서울과기대와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이다.서울과기대는 원래 서울산업대였는데 교명을 서울과기대(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Technology)로 바꾼 이후 국제무대에서 인지도가 상승하고 학교 위상이 올라갔다. SNU로 시작되는 영문명이 국제적 인지도를 높인 것이다.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는 더 절묘한 명칭 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이다. 에리카(ERICA)는 진달랫과의 상록 소관목을 가르키는 이름이다. 잎은 좁고, 꽃은 겨울에서 봄에 걸쳐 피는데 연분홍색이거나 흰색으로 피어난다.한양대는 2009년 안산캠퍼스를 과감하게 ERICA(에리카) 캠퍼스로 바꿔 부르고 있다. ERICA는 ‘Education Research Industry Cluster Ansan’의 줄임말로 산학협력을 바탕으로 한 이 캠퍼스의 성장 전략을 나타낸 것이다.꽃 이름 에리카와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영문 두음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상징적으로 다가온다.에리카 캠퍼스는 이런 효과로 국내 랭킹에서만 10위 이상 상승했다.동국대 경주캠퍼스가 기왕 교명 변경을 추진한다면 에리카 캠퍼스 이름을 벤치마킹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이번 교명 변경이 최근 논란이 된 경주캠퍼스의 수도권 이전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재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캠퍼스 이전에 대한 지지도는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경주 지역민들은 당연히 캠퍼스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경북, 경주의 토양으로 자라난 대학이 수도권으로 간다는 건 지역민 정서에 맞지 않는 건 당연할 것이다.한국은 카이스트, 포스텍 같이 특성화 공대를 제외하고는 톱10 대학에 들어가는 지역대학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은 수도권이 아닌 대학들이 톱10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한국도 지역에 있으면서도 유명한 대학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그런 측면에서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교명 변경은 의미가 있게 느껴지면서도 캠퍼스 이전은 장단점을 잘 분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