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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힘내라, 방송!

장규열한동대 교수안 그래도 어렵다. ‘혼돈의 시대’라 여겨질 만큼 오늘 현실은 소용돌이친다. 세기를 건너오며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라는 단순한 구조를 가졌던 미디어환경이 급변하였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과 라디오였는데 어느 틈에 매체환경이 폭발하더니 이제는 모두 디지털 온라인으로 수렴해 간다. 4차산업혁명으로 향하는 길목에 터진 코로나19의 현실은 미디어의 역할을 더욱 증대시켰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뉴노멀의 사회환경은 기대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비대면 기조의 사회활동, 재택근무로의 업무환경 변화, 온라인으로 전개되는 교육과 문화, 인공지능이 몰고오는 직업구조의 격변. 정보전달과 여가활동에 있어서 더욱 확장될 온라인과 디지털 소통은 미디어가 가질 영향력의 지평을 한층 넓혀갈 터이다.방송은 특별하다. 다른 전통미디어들이 기존의 틀을 대체로 유지한 채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방송은 존재형식과 시스템구조 자체가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기술진보와 함께 다변화된 방송구조는 광고시장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 수익성 확보에도 진통을 겪는다. 내용면에서 허위조작정보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의 범람을 막아내는 일에도 방송의 할 일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방송을 향한 국민적 기대는 여전하여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길에 특별재난방송을 끊임없이 전개하는 등 사회적 기여를 멈추지 않는다. 주요방송사가 시행한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52.4%의 국민들이 방송을 통하여 전달받고 있다고 한다. 격변과 기대 가운데 ‘방송의 날’을 맞는다. 기념하기보다 숙고해야 할 일이 숙제로 다가오는 오늘이 아닌가.방송은 공공재다. 사회적으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전달할 책임이 있고 그에 따른 문화적 영향력도 지대하다. 영국 BBC의 토니 홀 사장은 ‘소셜미디어와 가짜뉴스가 분열을 만들어내며 극단적 대립을 추동한다’면서 ‘방송의 공공적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여야 한다’고 하였다. 수익성의 확보와 함께 공익에 기여하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다 큰 기대와 과제를 안게 된 미디어, 특히 방송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소명이 주어졌다. K-방역과 함께 향상된 국격을 안팎으로 확인하고 알려낼 과제도 방송이 맡아야 한다.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K-콘텐츠가 차지할 몫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방송의 형태와 시스템, 법령과 규제, 콘텐츠와 글로벌지향 등 어느 한 영역도 멈춰서지 않는다.변화를 읽어야 한다. 뉴노멀은 노멀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따라가기보다 앞서가는 방송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 코로나19가 앞당긴 다른 세상에서 더욱 높아진 미디어에 대한 도전과 기대 앞에 우리 방송이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방송소비자 국민들도 방송을 통한 ‘콘텐츠주권’을 지켜내기 위해 눈에 불을 밝혀야한다. 정부는 방송이 나라와 국민에게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여야 한다. 방송과 미디어가 당면한 과제와 기회 앞에 미래를 당겨올 다짐을 해야 한다.

2020-09-02

낭만에 대하여

배문경 수필가가을은 축제가 많은 계절이다. 축제기간 동안 경주는 능위에 늙은 느티나무가 멋진 봉황대에서 여러 행사가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가수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연다.이번 초대 가수는 최백호다. 그가 온다는 광고는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달력에 큼직하게 표시하고 함께 갈 동생과 약속도 해두었다. 기다리는 며칠 동안 여고생이라도 된 듯 설렘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나를 누가 보았다면 발이 10센티는 붕 떠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리라.당일, 봉황대로 향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런 비에 놀란 사람들이 제법 긴 줄을 서서 편의점에서 나처럼 우의를 샀다. 이런 큰 공연을 앞두고 비라니, 그만 힘이 쏙 빠졌다.도착했을 무렵 사람들이 천막 안과 빗속에서 우의를 입은 채 기다렸다. 멋진 공연을 기대해서인지 비를 핑계 삼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가 나타날 무대를 응시했다. 무대에는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개그맨이 싱겁게 시간을 메우느라 너스레를 떨었다.초록의 능, 비로 짙어진 봉황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순간 환상이 펼쳐졌다. 굽은 나무와 어우러진 왕릉을 배경으로 나타난 반백의 사내, 그는 오랫동안 보아온 지인처럼 자연스런 모습으로 등장했다. 박수와 함성이 쏟아지고, 가을비도 쏟아지고, 이전의 음악에서보다 더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가 관객들의 머리 위로 축복같이 쏟아졌다.얼굴에 내리는 것이 빗물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깊은 노래의 울림을 통해 빚어진 눈물은 무수한 감정들의 찌꺼기들을 녹아내리게 했다. 날마다 차곡차곡 쌓여 무게를 가늠할 수 없던 스트레스와 인연이 만든 희로애락이 더 짙은 애수를 자아냈다. 이후 점점 가벼워지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뜨거운 빗물이 흘러내렸으니 노래의 힘은 대단했다. 삶의 부스러기들이 한꺼번에 잘게 부서져 공중분해 되는 느낌이었다.그는 트로트가 대세였던 시절에 포크 록발라드로 인기를 끌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며 우리에게 다가왔고, ‘영일만 친구’로 가수상을 받았다. 싱어송라이터가 드물던 시절에 독특한 창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노래를 읊조렸다. 라디오 DJ로도 활동범위를 넓힌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그는 정규교육에서 썩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 잘한 친구들은 지금 퇴직해서 놀고 있다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초로의 사내. 스스로 노래 속에서 새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워지는 그를 보았다. 무대가 끝나갈 즈음, 빗물이 그의 눈에도 흘러 들어간 모양이다. 그가 천막의 기둥에 슬쩍 기대서서 간주곡 사이사이에 먼 곳을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가 외로운 것처럼 그도 비 오는 날, 그림자조차 없이 하나로 서있었다.청바지가 아직도 잘 어울리는 일흔의 그가 아흔에도 노래를 부르겠단다. 박수가 쏟아졌다. 가수에 대한 응원이자 나의 내일에 대한 응원이다. 내 나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낭만적이다. 마지막 곡은 역시 ‘낭만에 대하여’였다. 그의 노래 위로 꽃가루가 흩뿌려졌다. 도라지 위스키의 알싸한 향기가 우리 주위를 감쌌다.낭만, 그것은 영화이거나 음악이거나 답답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그 어떤 것이다. 다양한 악기가 내는 미묘한 울림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달콤함, 이 모든 것이 낭만이었다. 나이만큼 어쩌면 우린 잃어버린 과거, 잊혀 진 과거의 추억, 인생이 뭔지 알 나이가 된 사람들의 낭만이었다.오늘 낭만에 대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짧은 단상과 그의 팔짱을 끼고 옆자리에서 한 컷 찍는 영광도 얻었다. 무르익은 가을밤의 축제에 감사했다. 궂은 비 내리던 날,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느껴보는 낭만이다.

2020-09-02

고봉의 사랑

어릴 적 기억 하나. 명절 끝, 큰댁에서 돌아온 엄마의 할머니에 대한 유일한 뒷담화는 ‘밥 많이 퍼라’라는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엌으로 연결된 안방 쪽문 앞에 자리한 할머니는 큰엄마를 비롯한 며느리들이 밥상을 준비할 때면 매번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밥 많이 퍼라.” 쌀이 귀하던 그 시절 손님을 대하는 안주인의 진심은 고봉밥이 대신 말해주었겠지요. 정 많은 할머니식 그 말씀이 엄마와 큰엄마는 그렇게 듣기 싫었답니다.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인데, 매번 부엌문 앞에 바투 앉아 ‘밥 높이’를 관장하시니 성가신 맘이 없지 않았겠지요. 알고 있는데 자꾸 말하거나 좋은 말도 되풀이 하면 잔소리가 되니까요.며느리였던 엄마의 푸념이 이해가 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할머니의 그 포지션에 더 정감이 가 슬며시 미소 짓곤 합니다. 내남없이 가난하던 시절 밥 인심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안주인의 결연한 의지 같은 게 보인다고나 할까요. 살짝, ‘밥 많이 퍼라’의 그 대상이 누구였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십중팔구는 할머니의 사위들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시집 간 딸을 둔 엄마에게 가장 반갑고 귀한 손님은 사위였을 테니까요. 사위에게 야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친정엄마는 없을 것입니다. 밥심으로 살던 시대였으니 오죽했을까요.이제 밥심이 아니라 다이어트심(?)으로 살아가는 게 더 효율적인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럼에도 귀한 손님에게 고봉밥을 푸는 그 정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할머니 연세를 훨씬 넘긴 엄마도 당신 사위들이 오면 밥을 봉두(峯頭)로 푸십니다. 할머니처럼 잔정 깃든 잔소리만 하지 않을 뿐 그 옛날의 할머니가 원했던 것처럼 밥공기 가득 주걱 놀림을 하십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봅니다.아이러니하게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위가 오는 날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집니다. 평소 남편과 아들에게는 바쁘다는 핑계로 라면밥이나 해주고 시중 김밥으로 때울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딸내미 내외가 온다는 소식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영끌’해서 없는 솜씨를 발휘합니다. 며느리든 사위든 내 집에 든 귀한 손님이라는 생각에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은 거지요. 보통 때는 그리 즐기지 않던 고기 메뉴에다 밑반찬까지 신경 씁니다. 밥그릇은 기존의 미니 밥공기가 아니라 좀 더 큰 그릇으로 세팅합니다. 당연히 고봉밥을 담습니다. 혹여 체면치레라도 할까봐 처음부터 가득 푸는 거지요.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집니다. 그 옛날 할머니의 ‘밥 많이 퍼라’라는 말씀이 DNA처럼 대물림 되는 것이지요.그렇게 밥을 푸다보면 한쪽에선 또 다른 말씀들이 들립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제발, 밥 좀 적게 퍼라.” 여분의 밥을 옆에 두면 더 깔끔하다나요. 착하고 눈치 빠른 사위는 적당히 배불러도 그 밥을 더 덜어먹겠지만 어쩐지 그건 제 방식은 아닙니다. 아들까지 남편 편입니다. “엄마,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제가 결혼해서 처가에 가서 밥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면 엄마 맘이 편하시겠어요?” 많으면 덜거나 남기면 되지 그게 고통일 것까지야 싶은 맘에 순간적으로 욱합니다. 하지만 아들 말에 의하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네요. 생각해서 주신 건데 즉각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고통을 당한다? 이 부분에서 심장이 덜컥합니다. 얼마 전 교육방송에서 본 강의 장면 하나. 사랑의 관점에 대해서 생각게 하는 부분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두 공기, 세 공기, 한 됫박, 한 말이 아니랍니다. ‘한 공기’면 충분하답니다. 상대가 원치 않는 넘치는 사랑은 타자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요지였지요. 한 됫박이나 한 말의 사랑을 주고 싶은 것은 나의 입장이지 상대의 입장은 아니랍니다. 상대는 소박하게 담은 단 한 공기의 밥이면 족한데, 주는 이는 고봉밥으로 두 공기, 세 공기 아니 한 됫박을 주고 싶어 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만큼을 감지하지 못한 채 오버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나요.김살로메소설가맞는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이후에도 고봉밥을 푸는 마음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밥이라면 고봉밥이어야지요. 밥주걱 든 입장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겁니다. 줄 게 마땅찮으니 밥이라도 따뜻이 먹이고자 하는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상대도 그 마음을 알고 최선을 다해 밥상 앞에 앉는 거지요.‘밥 많이 퍼라’시며 부뚜막을 내려 보던 할머니도 사랑이고 말없이 밥을 봉두로 푸신 엄마도 사랑입니다. 물론, ‘밥 적게 퍼라’고 말하는 남편과 아들도 사랑이고 그걸 재바르게 접수하지 못하고 앞선 두 여인을 따라하는 제 마음도 사랑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불편까지는 헤아릴 겨를이 없는, 상대가 원할 것만을 짐작하는 ‘찐’ 사랑입니다.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그 모든 것을 고봉의 사랑이라 명명하겠습니다.

2020-09-02

온라인 수업 시스템 수준은(下)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데자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지난 주초 내내 이 나라는 초강력 태풍을 경고하는 언론의 몰이식 방송 때문에 매일 긴장 속에서 보냈다. 다행히 국민 마음을 아는 태풍은 어용 언론의 보도 내용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말부터 언론은 재방송이라도 하듯 또 태풍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언론 보도 내용대로라면 어느 정도의 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올해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첫 태풍이라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아니래도 힘든 국민을 위해 이번에도 태풍이 꼭 비켜 가길 기원한다.이미 국민은 친정부 언론들이 내보내는 편향성 뉴스에 넌더리를 친지 오래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바른 역할을 못 하는 나라에서 어느 분야인들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있을까마는 그중에서 제일 심한 곳이 교육과 언론이고, 이와 버금가는 곳이 법 관련 부처이다. 참된 뉴스는 국민의 눈과 귀다. 그런데 어용 언론들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물론 이 나라 정치인들의 눈과 귀를 완전히 가렸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벌거숭이 임금(정치인)이라고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애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뉴스는 되도록 보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뉴스 채널을 지워버린다.지난 주말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완전히 TV 화면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필자를 구한 건 아이들이었다. 화면에는 유명 방송인 요리사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요리 프로그램이길래 저러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그런데 분명 많은 것이 달랐다. 그중에서 필자의 시선을 오래 잡은 것은 바로 세트장 구성이었다.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 같았다. 많은 화면이 있었고, 화면 속에는 제각기 다른 사람이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더 놀란 것은 스튜디오의 요리사와 화면 속 인물이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내용을 보니 요리에 서툰 일반 시청자들이 쌍방향으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생방송이라는 것에 필자는 더 놀랐다. 모두를 너무 즐거워했다.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는 실시간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온라인 수업 시작부터 많은 교육 관료와 교사들은 학교에서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안 된다고만 했다. 왜 안 되느냐고 물으면 오로지 핑계를 대기에 바빴다. 대표적인 핑계가 수업을 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결책을 제시해도 그들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릇된 신념”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의사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대통령의 표현은 의료계가 아닌 교육계에 더 적합한 말이다. 분명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편의 중심의 원격수업은 학생들에게 도움은커녕 독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마음이 학교에서 더 떠나기 전에 지금 각 방송사가 진행하는 쌍방향 방송을 교육 관료들과 교사들이 꼭 보길 추천한다. 혹여 온라인 수업 때문에 바빠서 TV 프로그램을 모른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핑계를 댈 교육 관계자들을 위해 잠시 프로그램을 안내하니 꼭 챙겨 보시길 바란다.“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 트롯신이 떴다, 코미디빅리그”

2020-09-02

파업하는 의사들에게!

김규종경북대 교수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점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정계와 종교계 인사들이 목청껏 독재를 주장한다. 진정한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이 권좌에 앉아 있을 때, 저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세계적인 유행병의 추상같은 위협 아래 근근이 살아가는 시민들 보란 듯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한다. 의사들은 이것을 ‘파업’이라 부른다.파업은 사회적 약자가 노동조합 같은 조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행동을 가리킨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권이 제법 신장한다. 군부독재 시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익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높아졌다.그러나 노동현장에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국민의 정부’를 자처한 김대중 정권은 2000년 6월 3천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롯데호텔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파업 당시 대테러 임무를 담당하는 경찰특공대를 파업 현장에 투입하고, 다목적 발사기,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도 사용한다. 경찰은 헬기 6대로 유독성 최루액 20만ℓ를 노동자들에게 투하하기도 했다.반면에 2000년 봄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 국민의 정부는 전전긍긍으로 일관한다. 의사들은 2000년에만 최소 세 차례의 전국규모 파업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찰의 물리력이나 폭력이 행사됐다는 기록은 없다. 국가 공권력이 사회적 약자와 정치-경제적 강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본보기다. 오늘날 의약분업 체계를 부정하는 의사는 없다. 필수 불가결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정부가 의료 서비스의 지역 불균형 해소, 필수의료 강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8월 21일부터 대학병원 전공의와 전임의가 파업을 시작했다. 의사들은 9월 7일부터 전면파업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 2000년 봄날 경북대 도서관 앞에서 마주친 의대생이 생각난다.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전단지를 내민 학생에게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1980년 서울의 봄과 대구의 봄에, 1987년 6월 항쟁 때 자네 선배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을 알고 있나?! 파업은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생존권을 주장하는 거야.” 의사의 파업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확연히 다르다. 노동자는 자신의 지위와 목숨을 걸고 파업하지만, 의사의 파업은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의사는 환자와 함께해야 한다. 정부의 의료정책이 성에 차지 않아도 최고 지성인답게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해야 한다. ‘제네바 선언’에 기초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가운데 한 문장만 인용한다. “종교나 국적,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그만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오시라!

2020-09-02

월트 디즈니의 인생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농촌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하였지만 늘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다.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이사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남몰래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에게 만화는 보석같은 꿈이었고, 자존심이었다.소원대로 소년이 자라 신문사의 만화가가 되었지만 이 젊은이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날마다 평가절하하며 퇴짜를 놓았다.“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두는 게 어떨까?”늘 이런 소리를 듣던 그는 급기야 어느 날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곳에서 명예퇴직을 당하였고 돈도 벌지 못하여 생계를 위해 트럭 운전수로 제1차 세계대전을 겪기도 했다. 실의에 빠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다가 다시 농촌으로 내려갔다. 농촌에서 한 교회의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잡일을 하기 시작했다.지하창고의 어둠은 바로 자신의 암담한 모습이었다.그러나 그 지하창고가 보물창고로 변하는 일이 생겼다.상처를 받고 절망했던 그는 창고를 뛰어 다니는 징그러운 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예쁘고 친밀감 있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쥐는 더이상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으며 흉물스러운 쥐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히니 오히려 다정한 말 벗이 되었다.이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 이다.그 젊은이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오늘날 ‘디즈니랜드’의 주인이다. 젊은이는 미키마우스를 만든 다음, 메리 포핀스, 신데렐라, 피노키오, 피터팬 등과 같은 만화 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오늘날 디즈니라는 이름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와 1920년대 처음 등장한 ‘월트 디즈니’ 는 그 상업적 성공이 말해주듯 가장 많은 수의 캐릭터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 중에서도 미키마우스의 존재감은 월트 디즈니의 거대한 성공과 동의어로도 여겨진다. 디즈니에게는 쥐가 득실거리고 참혹했던 지하창고는 오히려 아이디어 창고가 되어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해주었다. 암울하고 어려운 시기가 오히려 창조와 기회의 계기가 된것이다.폐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 65세의 일기로 숨을 거둔 그는 사망하기전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기억하기 위해 장례식을 치르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공동 묘지에 안장 되었다.월트 디즈니의 인생에서처럼 현재의 어려운 처지나 미운 동료, 싫은 친구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다면 내일은 밤하늘의 찬란한 별처럼 밝게 빛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보물창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2020-09-02

혼자만의 시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수많은 이변 속에 ‘동동팔월’이 지나갔다. 긴 장마에 폭염과 태풍, 코로나19 재확산과 비토 세력 집회 등으로, 되풀이되는 자연 재난의 상흔은 깊어졌고 국민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동동거리며 계속되고 있다.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자연 앞에서는 더욱 겸손한 자세로 지혜를 모으고 인간사회에서는 다양성의 조화 속에 배려와 신뢰의 마음을 재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번잡하고 요동치는 가운데서는 무슨 생각을 모으거나 어떤 일들을 도모하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아전인수격의 우격다짐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자칫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한다.세상이 복잡하고 주위가 시끄러울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루 종일 해야할 일들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수두룩한데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란 좀처럼 쉽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선 정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마음의 평온함과 함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지기도 할 것이다. 가령 혼자서 들길을 거닌다거나 산이나 강, 바다나 언덕을 찾아 조용히 사색을 하며 관조(觀照)하듯이 명상에 잠기다 보면 한결 마음이 넉넉해지고 개운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실제로 1년에 두 차례 ‘생각 주간(Think Week)’을 정해 혼자 조용한 곳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그러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잡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또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칭하는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화가 폴 세잔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을 정리해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그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깊은 사색을 통해 전통적 회화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제시한 곳도 미술의 변두리였던 한적한 프로방스 지방이었다고 한다.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고 일들이 많아선지 스스로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선뜻 내주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틈만 나면 TV를 본다거나 하루 종일 SNS를 통한 소통을 하며,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이 소외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과 정보나 화제를 놓칠 것 같은 강박감으로 잠시라도 혼자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이른바 ‘포모현상’에 찌들어가는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을 안보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평균 50초라 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가는 길은 요원하기만 한 듯하다.시대가 각박할수록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조용히 앉아 마음을 살피는(獨坐觀心) 일이 중요하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진지하게 돌아보며 반성하고, 현재의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미래에 있을 법한 일들을 심사숙고하다 보면 마음의 고요 속에 뭔가 비춰지고 발견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고요는 평정심(平靜心)이며 홀로 조용히 있을 때만이 자신의 중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0-09-01

전광훈 목사에 관한 비판적 시각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반정부 집회의 주역이 된지 오래다. 지난 4·15 총선 전의 태극기 집회는 서초동 조국의 지지 집회보다 수적으로 많았다. 지난 8·15 광복절 집회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사전 치밀히 준비한 집회임이 드러났다. 그는 집회 시 마다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반정부적 집회는 찬반양론이 있다. 극우 보수층에서는 그의 집회를 지지할지라도, 중도 진보층은 그의 정치 행위를 맹렬히 비판하는 입장이다. 그에 관한 부정적 시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전 목사는 집회 시 독일 신학자 본 훼퍼를 자주 들먹인다. 루터교 목사인 본 훼퍼는 독일 나치 체제하에서 독재자 히틀러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다 처형된 사람이다. 신학자인 그는 히틀러 암살단에 연루되어 체포되고 1945년 교수형에 처해 진다. 1906년생인 그는 39세로 생을 마감한다. 전 목사는 본 훼퍼의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는 문구를 문 대통령 퇴진 표어로 사용한다. 당시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의 광기는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고 유태인 수만 명을 학살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독재자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전 목사는 목회자의 범주를 이탈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극우 후보를 지원하고 총선에서는 자유통일당 후보를 냈지만 의회진출에 실패했다. 자유국가에서 목사도 정치에 관한 주장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제일교회의 담임 목사이며 보수 종교 단체의 회장이 반정부 투쟁에 앞장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의 입장은 남미 해방 신학자들의 주장도 아니고, 한국 정의 사제 구현 단 사제의 입장과도 거리가 멀다. 그의 입장은 신앙적 입장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진정으로 정치하고 싶다면 목사직 사퇴 후 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전광훈 목사의 정치 행적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도 비판이 많다. 그는 광화문 집회에서 ‘모세 5경만이 성경이고 나머지는 성경의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자들 앞에서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주장하다 무언가 어색했는지 ‘내가 하나님과 이렇게 친하단 말이야’로 변명했다. 교회 개혁 실천위원회에서는 전목사의 언행을 ‘이단’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교계의 손봉호 교수는 그의 주장은 ‘이단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였다. 목사의 허위나 추측성 발언이 대중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코로나 2차 감염 확산 시점의 그의 8·15 광복절 집회는 많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는 방역 당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마스크를 벗은 채 ‘나는 열이 없는데도 정부가 나를 격리조치 하려 한다’고 선동하였다. 그는 집회 후 감염자로 확인되었고 사랑제일교회 감염자는 1천여명을 넘었다. 그의 교회는 경찰의 조사에도 일체 불응하였다. 정부는 그의 행위를 ‘방역체계 도전’이라 보고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였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의 그의 이러한 행위와 처신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2020-09-01

음서제 논란

고려 18대 왕 의종 때 일이다. 문신 한뢰가 유흥놀이 끝에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문신의 권력 놀음에 지쳐있던 정중부 등 무신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킨다. 이것이 무신정변(1170년)이다.고려시대는 문벌 중심의 귀족사회다. 문신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경제적으로는 대토지를 경영하고 심지어 군대를 지휘 통수하는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 무인은 귀족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 수준으로 전락, 불만이 많았던 때다.고려시대 음서제도는 문벌귀족 사회임을 입증하는 대표적 제도다. 5품 이상 관리의 자제는 과거를 보지 않고 관리로 채용되는 제도다. 조상의 음덕으로 자자손손이 벼슬에 올라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당시 음서제는 날로 폐단을 더하여 수혜 범위가 관리의 아들, 손자, 외손자, 사위까지 확대됐다. 전체 관리 중 음서 출신자가 과거급제자보다 많아 나라 살림이 제대로 관리될 리 만무했다. 결국 무신정변으로 문벌귀족사회는 몰락하고 종국적으로는 고려가 망하는 원인이 됐다.예나 지금이나 제도가 공정하지 않으면 민심 이반이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그것이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이다. 조선시대에도 음서제는 이어졌다. 그러나 수혜 폭이 많이 줄어들면서 관리를 희망하는 양반 자제들은 자연 과거 시험으로 몰려들어 벼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고 한다.정부의 공공의대 설립을 둘러싼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 국민 청원판에는 “공공의대 게이트에 대한 진상규명”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국민이 납득할 정부의 명쾌한 답변이 해결책일 것 같다. 국민은 공공의대 설립 목적과 과정이 평등하고 공정한 쪽으로 손을 들어줄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01

새 모자는 가시 면류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우울한 마음 / 어두운 마음 / 모두 지워버리고 /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이해인 수녀는 시 ‘9월의 기도’에서 9월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그렇다, 숨죽이며 9월이 왔다.3월이 되면 어김없이 비발디의 ‘4계’ 봄 악장 선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 8월이 가고 무더위가 잦아드는 9월이 오면 또 어김없이 ‘4계’ 가을 악장의 밝고 경쾌한 음악이 귓가를 돌아 가슴에까지 닿았었다.그런데, 올해는 아니다, 봄 노래를 들은 기억이 없고, 아직 이르긴 하지만 가을 음악을 듣지 못하였다. 아마도 봄 가을의 전령같은 음악이 전파를 타고 흘렀을 것이다. 방송 진행자들마저 계절이 오고가는 것에 무감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음악이 흐른들 그 선율에 몸을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를 가진 이가 지금 몇이나 될까. 이 겨를 없음을, 아니 처절한 무딤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뉘라서 뭐라 할 것인가.코로나19가 시작된 중국에서는 이 바이러스 전염병을 신관폐렴(新冠肺炎)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이 마치 왕관 모양의 돌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라는 이름 또한 라틴어로 왕관을 뜻한다고 하니 무지막지한 힘을 휘두르는 바이러스에게 붙여진 새로운 모자라는 뜻의 신관(新冠)이 꽤 그럴 듯해 보인다.왕관 쓰기를 싫어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미관말직의 감투일지언정 오매불망 기다리다 넙죽 받아쓰려는 이들이 하고많지 않던가. 사람이란 존재가 원래 그런가 보다. 그러나 누구든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관이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쓰셨던 가시면류관이 바로 그것이다.나는 올 초에 ‘고래와 쥐구멍’이라는 제목의 첫 칼럼으로 연재를 시작하였다. 그 글 말미에서 “올해는 열심히 칭찬거리를 찾아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세워보면 어떨까.”라는 어쭙잖은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두 달도 채 못 되어 코로나는 세계를 뒤덮고 사람들 몸과 마음을 들쑤셔 놓았다.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고 칭찬하기로 마음 먹자고 했지만, 아무도 높이고 세우고 싶지 않았던 왕관 모양 코로나는 사람 속에서 사람을 휘어잡고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사람 사이를 가르고 찢어놓고 있다.일부 그릇된 집단의 일탈 행위에서 비롯된 교회발 질병의 확산을 빌미로 코로나는 비기독교인의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가문 날의 들불처럼 번져가게 만들었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마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가시면류관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르러 오신 예수 한 분으로 족하며 또 그리스도 그 분밖에 쓰실 수 없다. 그러니 아귀다툼하듯 서로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우려는 일은 이제 그만 했으면 싶다.안도현 시인은 “9월이 오면 / 9월의 강가에 나가 /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이라고 노래했다. 나태주 시인은 “기다리라 오래 오래 /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 지루하지만 더욱 /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하였다.따뜻한 온기를 우리 사이에 돌게해 코로나를 빨리 물리치면 좋겠다.

2020-09-01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킹덤’은 조선시대 좀비물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오랜 기근에 굶주린 백성들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솥에 고아 나눠먹으면서 역병은 시작된다. 카니발리즘에 동참한 이들은 사지가 뒤틀리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가 밤이면 좀비로 변해 산 사람들을 문다. 좀비에 물린 이들은 좀비가 되어 또 누군가를 물고…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는 역병은 최초 발생지인 경남 부산을 넘어 경북 상주와 문경을 완전히 집어삼키더니 결국 한양까지 지옥으로 만들고 만다.어떤 계시적 직관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전파 경로가 겹치는 건 흥미로운 우연성일 뿐이지만 ‘킹덤’의 좀비 역병과 코로나19 사이에는 근원적인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욕망을 숙주 삼아 자라난다는 것이다. 굶주림을 못 견뎌 인육을 먹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던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박쥐를 잡아먹은 사람들의 몬도가네에서부터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최초 확진자가 나타난 후 물류센터와 콜센터 등 노동조건이 취약한 생계의 현장에서 전염병이 집단 유행했다. 먹고사는 일의 엄혹함 앞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무용하고 무력했다. 정부가 방역 체계를 완화하고 대체공휴일 지정 및 소비 쿠폰과 외식 환급금 지원 등 내수경제 활성화를 선택한 것 역시 ‘먹고사니즘’ 때문인데, 소비가 적극 장려된 8월 황금연휴 동안 사람들은 밀집했고, 밀접했고, 밀폐된 공간에서 경계심을 풀었다. 당연한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는 2차 대유행을 앞두고 있다.전염병이 특정 집단 세력에게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 역시 드라마와 현실이 닮아 있다. ‘킹덤’에서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왕비와 영의정이 좀비 역병을 은폐하려 하고, 나아가서는 일부러 퍼뜨리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천지와 보수 개신교가 코로나19를 폭발적으로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었는데, 이들은 종교 활동을 빙자한 정치 개입을 위해 방역당국이 금지하는 대규모 집회와 소모임을 강행했다.종교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신도들은 감염 사실을 은폐한 채 사회시설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고, 이만희와 전광훈 등 종교지도자들이 전염병 확산의 책임을 회피하며 ‘음모론’과 ‘종교 탄압’을 주장하자 예배 자제를 당부하는 방역 지침을 ‘사탄의 거짓말’로 여겼다.‘킹덤’에서 왕비는 결국 좀비가 되고 마는데,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도 드라마틱하다.코로나 2차 대유행 국면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상이 종교인들에게서 나타났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사탄이 형님이라고 하겠다”는 세간의 조롱이 나돌 만하다. 이웃에 대한 희생과 헌신, 사랑을 실천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세상에 혐오와 갈등, 분쟁의 씨앗을 퍼뜨리고 있다.“목숨 걸고 현장 예배를 드리겠다”는 외침은 마치 결사항전을 각오하는 군인처럼 서슬이 퍼랬는데, 결국 침과 비말 등 타액과 섞인 통성기도는 신에게 닿는 대신 선한 이웃들의 폐혈관 속으로 침투해 이 땅에 수백, 수천의 지옥을 확장하고야 말았다. 보수 개신교가 보여준 종교이기주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의미, 나아가 신의 위상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교회에 갔다. 좋아하던 이성친구가 교회에 다녔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웃는 얼굴 외에는 모든 것이 따분했지만, 날이 갈수록 중고등부 예배와 소모임, 수련회가 즐거워졌다. 부모와 자주 떨어져 지내던 나는 공동체에 속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 형제자매들의 중보기도와 따뜻한 환대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신을 본 것도 같았다.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종교 활동은 점점 그럴듯한 신앙의 모습을 갖춰서, 20대 시절 나는 제법 큰 장로교회에서 성가대와 주일학교 교사, 청년부 회장으로 신을 섬겼다. 그때 눈을 감고 두 팔을 높이 든 채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났다.내가 교회를 떠난 것은, 바리새인식 형식주의, 신앙을 패션인양 걸치고 과시하려는 속물근성, 비신앙인들에 대한 도덕적 우위 주장, 종친회 또는 향우회 모임이나 다를 바 없는 떼거리 문화, 수능 입시 기도회를 열거나 복을 내려달라며 산에 가 나무를 붙잡고 기도하는 등 예수가 아니라 무당이나 점쟁이를 바라는 기복신앙과 신비주의에의 맹목적 집착이 싫어서였다. 장로와 권사들은 자기 자식에겐 고시 공부나 취업에만 전념하라고 하면서 남의 자식에겐 봉사와 사역, 일꾼으로서의 헌신을 강요했다. 교회 내에서 비밀 연애를 하다 들킨 한 연인은 교회 어른들에 의해 강제로 갈라졌다.그런 모습들을 목격하면서, 찬송을 부르며 흘리던 내 눈물이 종교적 파토스의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깨달았다. 진리와 구원, 아가페적 사랑, 종말론이라는 신비주의가 극적인 장치를 지닌 음악과 결합할 때, 내 안에서 요동친 것은 신에 대한 순전한 믿음과 사랑이 아니라 이해가 결여된 비이성적 정념이었을 뿐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원사이즈 기성복처럼 선택이 배제된 채 얌전히 입었던 기존 교리를 벗고, 신과 알몸으로 마주앉아 합리적 이성을 통해 그를 내 방식으로 이해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파토스에 가려졌던 교회의 민낯이 보였다. 한국교회가 기득권 집단임을 고발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신은 죽었다”던 니체의 선언 이후, 이제 사람들은 ‘죽은 신’(슬라보예 지젝), ‘침묵하는 신’(엔도 슈사쿠),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날 신이 몰락한 데에는 사회 공동체의 실재감 상실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에밀 뒤르켐은 종교와 사회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며, 종교는 결국 교회라는 도덕적 사회 공동체를 원천으로 삼는다고 말했다.사람들은 교회에서 초월적인 신의 현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포용’과 ‘연대’라는 공동체적 감각을 통해 희미하게 표상된 신의 이미지를 추종하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교회는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고 공동체를 해체하는 데 앞장섰다.이처럼 교회라는 도덕적 교사의 타락은 신에게서 위로와 연대의 감각을 마비시켜버렸다. 코로나 이슈뿐만 아니라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교회가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취했는지, 성소수자와 미혼모, 팔레스타인 난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떠올려보면 대한민국에서 종교는 집단유대의 유지라는 사회적 기능을 상실했음이 더욱 자명해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교회가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내리라 믿는다.“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찬송을 부르면 아직 눈물이 난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 어떤 계명보다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우리는 바이러스보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혐오와 더 오래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타자 윤리가 마비된 곳에서 창궐하고, 분노와 혐오, 갈등도 거기서 비롯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던 예수의 가르침은 곧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 레비나스가 말한 비대칭적인 관계의 한 모범이다. 드라마 ‘킹덤’에서 좀비 역병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백성을 살리려 한 세자와 의녀,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 이름 없는 영웅들에 의해 종식된다.김학중의 시 ‘요셉의 서’에서 신은 말한다. “인간은 아직도 인간을 사랑하지 않”기에 “나는 아직도 신이어야 한다”고.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때 비로소 신은 그 존재의 당위를 초월하여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알 수 없는 이름으로 호명되고, 아무도 모르게 간절한 기도들의 수신자가 되고, 마주보는 사람의 얼굴에서 반짝이는 어느 아침빛이 될 것이다. 부활과 구원, 천국은 오직 사랑으로만 닿을 수 있다고… 나는 사랑을 믿는 유신론자다. 이 시대의 이웃들과 같은 종교에 속해 있다.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0-09-01

대구 아가씨, 포항 아지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내가 결혼을 하며 남편 직장을 따라 포항에 온 것은 26살 초겨울이었다. 집, 직장이 전부였던 내가 타 지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는 건 두렵고 설레는 모험이었다. 게다가 신혼집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대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넓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서 너무나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화처럼 설레는 신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지금 생각해보면 그즈음 나는 향수병을 앓았던 것 같다. 호미곶에 큰시누가 살고 있었으나 나이 많은 손위시누가 갓 결혼한 새댁에게 마냥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될 순 없었다. 딸아이 둘을 낳고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작은 보습학원이 자금난에 허덕일 때 함께 살던 시어머니까지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살아보려 발버둥을 쳐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남편은 삶의 의지마저 꺽인 채 몇 달 동안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상실감과 배신감에 포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나고 자란 대구로 가자.그즈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도통 연락이 닿지않자 집으로 찾아왔다.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진 데다 얼굴색마저 형편없으니 여간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듣던 언니는 함께 눈물범벅이 되어 울어주었고, 자기도 넉넉지 못한 형편에 지갑에 있던 7만원을 털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지만, 그 잠깐 동안 나는 어떤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는지 그동안의 응어리가 씻은 듯 사라지는 걸 느꼈다.이제는 남편도 직장을 얻어 안정을 찾아가고, 포항을 떠나려했던 내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생소하기만 하다. 이젠 누구에게나 ‘나는 포항 아지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포항이 싫다고 떠나려했던 대구 아가씨를 말없이 품어 준 그 언니처럼 포항이 이제는 나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유향미(포항시 북구 장흥로)

2020-08-31

아부지

황소처럼 일만 하시다 ‘막걸리 한잔’ 요즘 핫한 노래 가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흥겹게 따라 불렀던 노래가 오늘 따라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내일이 아부지 기일이라 고향인 안동으로 언니와 함께 가는 중이었다.우리 아부지는 자린고비셨다. 절약이 몸에 베이신 분이다. 그런데 나에게만 유독 후하셨다. 오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에는 빠지지 않고 나가셨는데 그날만이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휴일이다. 장에 가시면 해가 앞산 너머로 고개를 떨구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약주를 하시고 볼이 불그스레, 손에는 봉지 하나를 들고 오셨다.나는 아부지는 뒷전이고 손에 드신 봉지에만 관심이 갔다. 안동은 산간지역이라 생선 구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래서 인지 장에만 가시면 간고등어를 꼭 사오셨다. 또 옛날과자도 가끔은 사오시니 봉지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신 아부지는 안방에 누우시면서 나를 부르신다. 머리가 아프시다며 내 작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 달라 하신다. 나는 작은 손바닥에 아부지의 따뜻한 열기를 느꼈고, 그러고나면 동전 몇 개를 손에 쥐어 주셨다. 아부지만의 사랑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언니는 늘 나는 뒷전이라며 투덜거리고 가끔씩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지금도 너 때문에 나는 피해자라며 큰 딸이라고 궂은 일만 시키고 용돈 한번 안주셨다 한다. 언니께 고맙고 미안한 맘이다.한 시간여를 달려 고향집에 도착하니 여전히 마당 가장자리엔 봉선화. 채송화. 백일홍이 살랑살랑 우릴 반긴다. 아부지,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집은 여전히 그때 그 모습이다. 모깃불 피워 놓고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고 은하수강도 건너보려 했건만 추적추적 비가 내리니 밤하늘 별과의 데이트는 바람 맞아 버린 듯 허망하기까지 했다. 아버지생각에 잠시 눈시울이 뜨겁다. 내일 제사상에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간고등어와 문어는 꼭 올려 드려야겠다. 고향집 여름밤은 빗소리와 함께 익어갔다. /박영희(포항시 북구 새천년대로)

2020-08-31

보리굴비

맥문동이 한창인 황성공원을 거닐었다. 지인이 특별히 이 계절에 보라색 향연이 펼쳐진 곳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든든한 소나무 사이사이 맥문동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더위도 잊을 만큼 즐거웠기에 한정식 한상을 대접하기로 했다. 보리굴비가 진수성찬 제일 가운데 놓였다. 이 계절에 가장 좋은 반찬이다.날씨도 무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니 입맛도 없다. 가족들 밥해 먹이는 게 어느 때 보다도 힘이 드는 계절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보리굴비에 콤콤한 비린내가 그리워지는 계절, 보리굴비를 손질해서 맛나게 먹여야 겠다.냉장고가 없던 시절 조상님들의 지혜였다. 싱싱한 조기를 보리겨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숙성시켜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러면 굴비는 엄청 딱딱하고 수분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는 먹을 수 없는데 미지근한 쌀뜨물에 녹차 잎 몇 줌을 넣고 굴비를 넣고 2~3시간 우려 주면 특유의 콤콤함과 비린내가 거의 사라진다.이때 비늘은 긁어주고 가시와 지느러미, 꼬리는 잘라준다. 찜기에 20~25분 중불로 쪄내 주면 먹기에 알맞은 상태가 된다. 일일이 살을 발라 고추장과 버무려 주면 고추장 굴비가 된다. 한 마리씩 호일에 싸서 딤채에 보관해 두고 먹을 때 마다 약한 불에 뚜껑 닫고 데워 먹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된다. 이때 더 맛나게 먹는 방법은, 녹차를 우려내 차가운 얼음을 띄워 그 물에 밥을 만다. 함께 먹으면 보리굴비를 처음 접한 분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귀한 음식이라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어머니가 정성스레 발라서 자식들 밥숟가락에 얹어 주시던 모습이 그리워진다. 정작 본인은 자식들이 먹고 남은 것만 발라 드셨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부쩍 입맛이 없어하는 부모님, 이번 주는 더 늦기 전 보리굴비 손질해 찾아뵙고 싶다. 이젠 어머니 밥숟가락에 내가 발라낸 보리굴비 다정하게 올려 주고 싶다. /이소영(경주시 천북면)

2020-08-31

평온함이 숨기고 있는 것들… 경주 도덕암(道德庵)

도덕암은 해발 702m밖에 되지 않는 도덕산 안에 숨어 있다.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지나 비포장길을 달릴 때도 나는 참나무숲에 일렁이는 바람을 노래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다시 차가 포장길을 달릴 무렵, 소형차는 진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막아선다. 사륜구동이 아닌 차로 오를 수 있을지 잠시 막막하다.걸어서 오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용기를 내기로 했다. 가파른 급경사를 몇 구비 꺾을 동안에도 절은 보이지 않고 식은땀만 흐른다. 수많은 산사를 찾아다녔지만 이토록 험난한 오르막길은 처음이다. 내려오는 차라도 마주치면 난감하다. 담력 테스트를 하듯 진땀을 빼며 아슬아슬 도덕산을 오른다.드디어 절벽 위에 암자가 보인다. 산그늘에 싸인 오후의 절은 평온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첩첩 산중, 푸른 생명의 기운만 가득하다. 결코 외롭지 않은 한가로움들, 폭우와 폭염으로 이어졌던 여름의 끝자락이 보인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도덕암은 고립이 주는 절경을 홀로 누리고 있었다.도덕산은 신라 선덕여왕이 찾아왔다하여 두득(덕)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중기 회재 이언적에 의해 도덕산으로 바뀐다. 도덕암 역시 정혜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경덕왕(742년~765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국보 제 40호 정혜사지 13층 석탑을 보면 정혜사는 꽤 큰 사찰인 것 같다. 12개의 부속암자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도덕암, 창건 당시에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이언적이 도덕산이라 고쳐 부른 후 도덕암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한다.이토록 가파른 곳에서 명맥을 유지해온 암자가 대견하다. 불자들의 정성어린 불심보다 좌선을 위한 몇몇 스님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나 지금이나 쉽게 들락거릴 수 있는 암자는 아닌 듯하다. 산문도 없이 절은 어떤 격식이나 형식도 거부하며 자유로워 보인다. 오로지 소박함만을 성찰한다.작은 대웅전과 요사채, 그 뒤로 낡은 공양간도 보이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흔한 석탑 대신 꽃 진 수국 하나 쓸쓸히 대웅전을 지킨다. 스님은 출타 중인 듯하다. 마당에는 키 작은 풀들이 자라고 등받이 없는 나무 벤치 두 개와 네 개의 플라스틱 의자가 일렬로 앉아 그 쓰임을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앉지 않은 의자의 눈빛에서 간간이 외로움이 잡힌다.가진 것이 많지 않은 암자, 산 그림자도 무료해 성큼성큼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작은 감나무 한 그루가 절을 지킨다. 암자는 한없이 몸이 가벼운데 나는 가진 것이 많아 이것저것 생각이 많다. 마당 끝에 서보지만 시선은 더 이상 산을 넘지 못한다. 멀리 몇 개의 고압선 철탑이 보일 뿐 문명의 이기는 한참이나 돌아 앉아 있다. 묵은 티끌들이 쓸려 나가고 몸과 마음이 고요해져 온다.이곳에서는 모든 존재가 크게 보인다. 뒤늦게 대웅전 법당을 지키는 부처님이 떠오른다. 작은 법당 안의 석가모니 삼존불은 도덕암 풍경보다 더 쓸쓸하다. 낡은 비닐 장판 위에서 좌복 없이 삼배를 드린다. 허리 통증 때문에 스스로 세운 백팔배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씁쓸한데, 가난한 절의 부처님이 큰 품으로 안아 주신다.법당 문을 죄다 열어놓고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 겹겹이 펼쳐진 숲과 허공 속에 마음을 싣고 싶다. 주인 없는 빈 절이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법당 문을 닫는다.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빠삐용이란 이름을 가진 작은 나무의자가 생각난다. 책에서 만났던 빠삐용은 불일암을 찾았을 때, 묵직한 풍경이 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조낭희 수필가이곳에도 그런 소박한 나무의자 하나 있으면 좋겠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고 해거름 비탈길을 서둘러 내려가는 산 그림자를 배웅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의자. 그런 무욕의 사치를 즐기고 싶어 스님이 출타할 때마다 나는 암자를 들락거릴지 모른다. 저 긴 벤치에 홀로 앉으면 더 쓸쓸해질 것만 같다.목탁대사가 새벽 일출을 화두로 삼고 참선하여 득도했다는 산신각 쪽으로 향한다. 편평한 바위가 허공을 안고 새 주인을 기다린다. 산신각 앞으로 펼쳐지는 풍광 앞에서 좌선의 충동이 인다. 나는 잠시 바위 위에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는다. 그토록 평온하던 마음이 깊은 산중에 홀로 있음을 상기시킨다. 순식간에 무서움이 엄습한다.난생 처음 산신각에 들러 삼배까지 올리던 그 여유로움은 어디로 갔는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정체들과 헛기도로 이어지는 산사 순례, 모든 노력들이 재가 되어 허물어져도 좋다. 산 그림자가 몸집을 부풀리며 돌아갈 시간을 알린다. 막 경내를 벗어나는데 차 한 대가 힘차게 올라온다. 출타 중이던 스님이 열린 창문으로 손을 흔들며 지나가신다.어떤 스님인지 뵙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다. 도덕암이 버려진 암자가 아니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산속 깊은 암자를 홀로 지키는 일, 어쩌면 그 자체가 수행이다. 내려오는 길은 기분 탓인지 한결 쉬웠다. 옥산 저수지를 돌며 하산의 뿌듯함을 즐기는데 몸의 여기저기가 가렵다. 그때서야 밝혀지는 도덕암의 숨은 진실 하나, 그것은 모기보다 더 독한 스님이 계신다는 점이다.이 시간 모기떼와 사투를 벌일 스님께 뒤늦게 합장한다.

2020-08-31

우리 마음속 어떤 ‘하이드’를 위하여

요즘 우리 주위의 공기는 ‘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무른 땅을 피하고 단단한 땅만 딛으며 살고자 하는 욕망들이 어디에나 떠다니고 있다. 물론 어느 시대건 그 시대의 주류들이 갖고 있는 것들을 확고한 형태로 영영 지속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이야 계속 반복되어온 것이었으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삶이나 소통, 미래와 자본 등 인간이 불확실한 상황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 단단한 돌만을 딛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모를 일도 아니다. 또한, 사회 전반에서 불필요한 ‘신화’가 사라지고, 서로의 확고한 입장을 바탕으로 좀 더 실용적인 논의가 전개될 수 있는 것은 ‘개방 사회’를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변화일지도 모르겠다.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근간은 바로 인간이 가진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실성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마치 서구 근대 철학의 시작점인 르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통해 도달했던 ‘코기토(cogito)’, 즉 여기 시공간 속에 우리가 실재로 존재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이 자기 의식과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인간이 그렇게 자기 생각과 언어의 주인이 되고 난 뒤, 쌓아올린 사상과 과학은 인간 사회 속에서 어둠 속에 싸여 있던 불합리와 불확실을 어둠 바깥으로 내모는 계몽의 도구가 되어왔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미답의 영역은 그렇게 인간이 추구해온 ‘확실성’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탈신비의 대상으로 바뀌어 간다.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꿈이든, 환상이든, 모든 신비한 영역이 과학의 공리들과 설명하는 언어로 가득 차 버렸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이런 시대에도 분명 어떤 불안들은 스멀스멀 살갗 아래로부터 올라오곤 하지 않는가. 어쩌면 우리의 주변이 ‘확실성’에 대한 바람들로 가득 차 버렸기 때문에야말로 더욱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공포 내지는 불안 혹은 애착이 더 커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 1894)이 쓴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 담겨 있는 공포는 이런 것이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내재된 선악 양면성을 발견하여 궁극적으로는 윤리성에 대한 재확인으로 귀결되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사회속에서 인정받는 박사인 지킬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 불확실한 존재, ‘나’를 두고 주인됨을 경쟁하는 숨겨진 ‘하이드’에 대한 공포이다.이 ‘하이드’는 인간이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온전하고 확고하게 점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의식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근대적인 공포를 일으킨다. 인간은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기억에 없는 행동을 했다는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 속에 무언가 다른 존재의 개입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가장 끔찍한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한 공포는 시대가 흐른다고 해도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상상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공포에서부터이다. 내가 잠을 자는 사이에 내 안의 하이드씨가 출현하여 사회적인 금기를 깨는 행동을 하고, 나아가 그 존재가 ‘나’를 두고 주도권을 경쟁한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매혹이 공존하는 독특한 ‘하이드’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아분열, 몽유병, 기억상실, 도플갱어, 정신착란 등 인간이 자기 존재의 유일성과 확실성을 의심하는 이야기가 여전히 나오고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공포를 건드려 겁에 질리게 하면서도 실눈을 뜨고 계속해서 보도록 하는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여전한 상상의 여백인 것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0-08-31

옥(玉)이라는 새

김현욱 시인대표적인 우화(寓話)로 ‘이솝이야기’가 있다. 동식물이나 사물을 주인공으로 삶의 의미를 풍자하거나 암시적으로 나타낸다.동양의 철학자들도 우화를 즐겼다. 장자(莊子)가 특히 그렇다. 장자 ‘지락(至樂)’편에 나오는 ‘바닷새 이야기’를 소개한다.“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들려주고, 소 돼지 양을 잡아 푸짐하게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사람의 자리에 ‘나’를, 새의 자리에 ‘너’를 넣으면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너를 길들이려 한 것이지, 너의 방식으로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그것이 생명의 모태(母胎)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타적이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利己)와 이타(利他)의 어디쯤에 서야 우리는 행복해질까?그림책 ‘내 친구 꼬마 벌’(엘리슨 제이, 국민서관)에는 소녀 데이지와 꼬마 벌이 등장한다. 데이지는 갑자기 나타난 꼬마 벌을 무서워하지만, 지친 꼬마 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돌봐준다. 그러면서 데이지가 하는 행동이 의미심장하다. 책을 좋아하는 데이지는 꼬마 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벌에 관한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한다.나는 이 장면에서 노나라 임금을 떠올렸다. 바닷새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노나라 임금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장자의 ‘바닷새 이야기’에 데이지가 등장했더라면, 아마도, 데이지는 바닷새를 우선 쉬게 하고, 바닷새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공부(대화)했을 것이다. 그러면, ‘바닷새 이야기’는 결말이 달라졌을 것이다. 엉성하지만 나도 우화 한 편을 썼다. 여기서 어떤 의미를 짚어낼 지는 자신의 몫.“옛날에 옥(玉)이라는 새가 살았다. 아름다운 자태와 매혹적인 노래로 뭇 나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옥(玉)이라는 새는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마(火魔)에 그을린 이팝나무를 보았다. 크고 힘센 나무에만 잠시 내려앉았던 옥(玉)이라는 새는 이팝나무가 가여웠다. 난생 처음으로 지켜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옥(玉)이라는 새는 이팝나무 곁에 머물며 벌레를 잡아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기운을 차린 이팝나무는 쌀밥 같은 하얀 꽃송이를 피어 올렸고, 옥(玉)이라는 새는 그 모습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옥(玉)이라는 새는 정주(定住)하여 둥지를 트는 것이 두려웠다. 이팝나무는 옥(玉)이라는 새가 멀리 날아 가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이는 각자의 본성(本性)과 순리(順理)를 따르지 않고, 사랑이라는 미혹(迷惑)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2020-08-31

토착왜구는 누구인가!

강희룡 서예가토착왜구(土着倭寇)는 자생적인 친일 부역자를 뜻하는 사어(死語)였다가 최근 들어 여당 정치인들에 의해 다시 활성화된 표현이다. 구한말의 유학자로 일제 강점기에 남원지역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이태현 선생의 산문집인 ‘정암사고’에 토착왜구는 ‘토왜’라는 말로 친일부역자란 뜻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이태현은 이 말의 창안자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서 자주 쓰다 보니 지식인의 문집에 등재된 것으로 추정된다.이 토착왜구라는 표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토왜천지라는 글이 실려서 토왜를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로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으로 규정하고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첫째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 둘째로 일본의 침략 행위와 내정 간섭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언론인, 셋째로 일본군을 믿고 각 지방에 출몰하여 남의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자들, 넷째로 애국지사를 모함하고 왜구를 원망하면 거짓말을 날조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독을 퍼뜨리는 자들로 정리하고 있다.구한말 개혁의 반대편에 섰던 고종의 개화파제거와 국고는 탕진되고 청의 세력으로 권력을 쥔 민비의 매관매직행위와 그 일가의 5민(五閔) 척족정권은 이미 망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니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됨으로서 국권은 피탈되고 조선은 한반도에서 사라져 36년이라는 일제강점기를 맞이하게 된다. 단발령과 창씨개명 등으로 일본어사용이 강요되고 일체 집회가 금지되어 한국의 민족문화는 말살되었다. 당시 기득권층은 국내에서의 항일운동이 어려워지자 상당수 항일민족운동자들은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기 위해 만주나 시베리아 등지로 이주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 지금의 한국과 북한은 이들 항일독립투사들의 투쟁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게 무릎을 꿇자 어부지리로 탄생된 신생국가이다. 여당의 이개호 의원은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건강문제로 사의 표명을 한 것을 두고 우리나라 친일파와 토착왜구들의 상실감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라고 했다. 야권을 토착왜구로 특정 짓고 던진 말이다. 이렇게 보수야권에게 씌운 토착왜구 프레임으로 정치적 이득을 많이 본 진보여당의 친일 기준은 일본과의 외교나 무역을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 행위는 무조건 친일이고 일본과 적대시하거나 등을 돌리는 행위라야 민족의 반역자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 참여정부시절 대대적인 친일청산 작업 중 당시 홍보수석이던 조기숙의 증조부가 조병갑으로 밝혀지는 사건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신기남, 이미경 의원 등 부친은 일본헌병이었으며,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에 앞장섰던 김희선 의원 부친은 일본비밀경찰로 독립군을 체포하고 고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수립 이래 보수 진보 없이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이나 관료들 부모가 친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해방된 지 75년 이 시점에 부질없이 친일척결을 외치는 한심한 정치인들의 적폐행위를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 거덜 내는 정치세력이 바로 토착왜구인 것이다.

2020-08-31

혁신적인 암치료법, 중입자치료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혁신적인 암치료법인 중입자치료시스템이 도입될 전망이다. 중입자 치료는 암세포 살상능력이 가장 뛰어난 탄소입자를 선형가속기에서 1차 가속하고, 원형가속기에서 2차 가속해서 암세포에 조사해 암세포의 유전자고리를 끊어 파괴하는 방법이다.기존 방사선치료에 사용되는 엑스선이나 감마선은 피부를 뚫고 체내에 들어가면 살상능력이 크게 줄어들어 치료효과가 적고, 정상세포를 파괴하는 부작용이 적지않다. 그러나 중입자치료는 암세포에 정확히 방사선을 투사해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부작용이 적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치료효과도 뛰어나 기존 방사선 치료 시 2~3주에 걸쳐 수십차례 치료해야했으나 중입자 치료는 초기 폐암의 경우 단 1회만으로 치료하는 등 치료횟수가 통상 12회 이내로 줄어들었다. 검사시간은 30분 내외며, 실제 치료시간은 이보다 짧은 3분 내외다. 치료중에도 사회활동을 하며 통원치료가 가능한 첨단 암치료법이다.특히 두경부암과 뇌암과 같이 방사선치료를 받아도 재발이 쉽거나 암치료가 어려운 부위, 폐암, 간암, 췌장암, 재발성 직장암, 골육종 등 주요 고형암에 효과적이다. 중입자 치료 시 폐암 5년 생존율은 15.5%에서 39.8%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고 보고돼있다.중입자치료의 핵심기기인 중입자가속기는 탄소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빔을 암세포에 조사하는 치료기기로, 현재 전 세계에서 단 12개 센터만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22년 연세의료원에 중입자가속기가 구축될 예정이고, 2024년 말에는 부산 기장에도 중입자치료센타가 운영될 예정이라니 암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희소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31

내 방 여행을 꿈꾸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한 달 전쯤 금, 토, 일에 걸쳐 48시간을 혼자 지내게 되었다. 48시간의 중간쯤인 토요일 오후, 집을 나섰다. 이웃 동네에 있는 카페 겸 작은 책방으로 향했다.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책방은 대형 서점에 비해 책 종류는 많지 않지만 대형 서점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책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에세이였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다. 18세기 중반에 태어난 작가는 법으로 금지한 결투를 했다가 42일간 가택 연금형을 받았는데, 그 기간에 자기 방을 여행하기로 한다. 작가는 내 방 여행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며 그래서 부자들도 환호할 만한 여행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문장도 재치있고 흐름도 경쾌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 몇 년간 수천 권을 처분하고 나니 책 사는 것에 매우 신중해졌는데, 이 책은 덥석 샀다.내 방 여행은 여행길을 미리 정해놓지 않아도 된다면서 작가는 상념을 좇아간다. 탁자에서 벽에 걸린 그림으로, 문 쪽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가 침대로 간다.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흉상도 관찰 대상이다. 눈길이 가는 그림을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그 물건에 얽힌 사연을 떠올리기도 한다. 때로는 인간은 영혼과 동물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라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두 요소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한다.이 책을 읽노라니 내 방을 여행하고 싶어졌다. 지난주부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작은 책방 나들이마저도 꺼려지는 있는 지금은 절반은 가택 연금 상태다. 넷플릭스라는 흥미진진한 오락거리도 있지만 내 방 여행도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내 방을 둘러본다. 내 방에도 그림이 걸려있다. 명화는 아니고 8년 전에 직접 그린 유화다. 책상에는 멋진 조각상 대신 버리려다 고쳐서 쓰는 오래된 노트북이 충전을 기다리고 있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한 칸씩 탐색해갈 수도 있겠다. 서가를 여행하는 것은 평생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던 메스트르의 말처럼, 책에는 정말 무수한 사연이 있다.내친김에 내 마음 여행도 좋겠다. 내 마음 어딘가에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이 엎드려 있을 것이다. 내 몸 여행도 좋겠다.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냄새 맡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는 것도 꽤나 시간이 드는 일이다.혼자 있으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흥밋거리를 찾아 밖을 헤맨다. 괜한 상념에 두렵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내 방도 여행하고, 내 마음도 여행하고, 내 몸도 여행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몰라보게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른다.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없다면, 일부러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도 좋겠다. 48시간, 24시간이 어려우면 하루 한 시간이라도, 아니 하루 15분이라도 내 방과 몸과 마음을 여행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뜻밖의 재미를 발견하게 될 것만 같다.

2020-08-31

수신료로 만들어진 KBS의 ‘시간의 문’

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앙드레 말로와 자크 랑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문화정책은 유럽연합의 다른 회원국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문화생활 향유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시간의 문(Les portes du temps)’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방학을 이용하여 각 지역에 소재한 문화 관련 기관의 후원을 받아 주요 문화유산을 생생히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우리 포항시에서도 청소년재단 주최로 포항·경주·울산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해오름동맹 청소년문화교류캠프’를 작년에 운영하며 세계 최강인 포스코의 철 생산과정을 견학하고 한국로봇융합원에서 로봇 조립 체험 기회를 갖는 등 도시 특성에 맞게 산업적 관광자원을 중심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제공하며 호평을 받았다.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한 후에 프로그램이 재개되면 참가 학생들이 넉넉한 시간을 갖고 장기읍성의 유배문화체험촌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그리고 포스코야경 등을 포함한 ‘포항 12경’을 방문해 수백 년을 넘나드는 시간의 문을 열게 되기를 기대한다.포항에 12경이 있다면, KBS포항방송국에는 지난 60년 간 포항권역의 방송 송출을 믿음직하게 책임지고 있는 12개의 송신시설(송신소와 무인 TV중계기인 TVR)이 있다. 1961년에 호출부호 HLCP로 덕수동에서 첫 전파를 쏜 이후 해도동을 거쳐 현재의 상도동 시대에 이르기까지 포항시(포항국 사옥 방송탑, 영일·조항산 송신소, 구룡포·도음산TVR), 경북 울진군(현종산과 온정TVR), 영덕군(축산·영덕TVR), 울릉군(울릉·가두봉TVR)과 독도(독도TVR), 그리고 경북 일원의 시청자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수신료로 최고의 방송기술 전문가들이 설치 및 유지, 관리해 온 포항방송국의 12개 송신시설이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처럼 지상파의 하늘을 떠받치며 전파 수신 음영지역이 없도록 주어진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1975년에 문을 연 KBS울릉중계소와 1996년에 신설된 독도TVR은 자체 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포함한 TV, 라디오와 DMB 전파를 울릉도 주민과 동해에서 조업하는 어민들뿐만 아니라 독도경비대 및 방문객들에게 수신 가능케 함으로써 일상적인 방송 서비스는 물론 각종 재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는데 기여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파주권을 독도 반경 50Km 범위로 확대하며 굳건히 지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포항방송국에서는 자체 케이블망도 운용하고 있는데, 북구 기북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난시청지역인 관계로 조항산 송신소의 방송전파를 포항방송국 직원들이 설치한 케이블망을 통해 약 500세대에 달하는 주민들께 제공하고 있다.이처럼 시청자들께서 주시는 소중한 수신료로 만들어진 KBS의 프로그램과 방송시설은 세대와 세대, 공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잇는 시간의 문이 되어 무료 지상파 방송 수신권으로부터 소외되는 시청자가 한 명도 없도록 앞으로도 맡은 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

2020-08-30

엘리트냐? 이리떼냐?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 · 전 경북지방경찰청장말장난이 개그소재로 유행한 적이 있다. 썰렁하다면서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 너나없이 한마디씩 했던 것 같다. 영어가 원래 우리말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썰렁 개그 한 번 해보자. 상을 당하면 상주들이 곡(哭)을 한다. 대부분이 ‘아이고’라며 울먹인다. ‘I go’(나는 간다)는 영어 표현이 된다. 저 세상을 떠나는 망자의 말을 연상시킨다. 어느 지역의 말투는 거의 영어다. ‘왔시유’(What see you). ‘인식하다’(acknowledge)는 ‘아이쿠 알지’ 머 이런 식이다. 우리말의 우수성을 설파하며 영어의 기원은 우리말이라며 책을 쓴 사람도 있으니 문화 자존감의 엉뚱한 발상이지만 그리 기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비슷한 발상으로 최근 우리 사회 여러 현상을 겪으며 ‘엘리트(elite)’라는 말도 우리말 ‘이리떼’에 어원을 두고 있거나 이웃사촌 쯤 관계가 있는가 싶다. 문헌을 보면 엘리트란 말은 17세기경에는 ‘고급 상품’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우월적 사회집단을 뜻하는 말이 되어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나타낸 집단, 어떤 형태든 높이 평가된 사회적 가치를 가진 집단을 엘리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파워 엘리트’,‘ 창조적 소수자’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선택된’이란 뜻의 라틴어 ‘electus’에서 유래되었단다. 엘리트가 지나친 특권과 독점으로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늘 급진주의자와 무산자의 정치적 타도대상이 되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역사 발전에서 엘리트의 역할과 기여를 부정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우리 사회 곳곳에서 엘리트 죽이기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교육현장에서 폐해만 부각되어 엘리트 교육이 멸종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남보다 우수함을 위한 노력과 땀에 대해 경의와 찬사를 보내기 보다는 배경을 의심하거나 기울어진 운동장, 금수저 논란으로 폄하시키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우수한 인재의 확보와 양성은 최고 회수율을 보이는 투자임에도 하향평준화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우리가 내세울만한 세계적 엘리트 기업들도 부도덕과 부패의 상징이 되어 휘둘리고 있다. 엘리트를 죽여서는 미래가 없다. 시민의식이 투철한 건전한 엘리트로 양성해야 한다.코로나 바이러스의 광기 속에 의사들의 파업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밥그릇 작아질까봐 파업을 한다고 몰아친다. 국민건강권을 인질로 잡았다며 반인륜적 범죄행위처럼 프레임을 짜고 있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법률서비스의 특권을 깨겠다며 도입한 로스쿨이 오히려 사다리를 걷어찬 결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더 좋은 의료혜택을 주는 정책이라는 주장에 앞서 질 저하를 우려하는 젊은 의사들의 쉰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을 떼로 몰려다니며 건강권을 뜯어먹는 이리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엘리트들이 오히려 진짜 이리떼에게 뜯어 먹히는 지경이 될 수 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체육 등 엘리트들을 사납게 뜯어 먹은 이리떼들이 결국 먹을 것이 없어 서로 뜯어먹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그 땐 토끼만 더 떨게 될 것이다.

2020-08-30

빗나간 일기예보

나비효과란 본래 기상예측 모델 연구에서 유래한 말이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상변화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소수점 이하의 작은 수치가 결과적으로 완전히 다른 기후패턴으로 나타난 것을 두고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과학이 발달하기 전 옛날 사람들은 구름이나 동물의 움직임 혹은 피부로 느껴지는 기온의 변화로 내일의 날씨를 점쳤다. 중국 스찬성 대지진 직전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대이동했다는 것을 두고 지진의 전조로 보는 것 등이 그런 사례다.우리 속담에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모기나 잠자리 등 곤충들은 습기가 많아지면 날개가 무거워서 낮게 날게 된다. 곤충을 잡아먹는 제비도 자연 낮게 날게 되므로 비올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개구리가 크게 울면 비가 온다”는 속설도 마찬가지다. 공기 중 습도가 많아지면 개구리의 호흡량이 늘어 울음소리가 커진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동물적 본능을 일기와 연관 짓는 것은 흔한 일이다.신라시대에 이미 천문기상 관측소인 첨성대를 세웠던 것이나 세종대왕이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발명한 것 등으로 보아 일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민적 중요 관심사임에 틀림이 없다.올여름 내내 폭염이 예상된다던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면서 기상 불신이 심하다.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빗나간 사례가 한두 번 아니지만 올 여름 유독 기상청은 고개를 들 면목이 없어 보인다. 여름 내내 폭염이라던 예측과 달리 역대급 장마가 이어지고 수해 발생이 빗나간 일기 탓이란 항의가 연일 이어졌기 때문이다. 또 해외 사이트에서 국내 일기를 확인하는 이른바 기상 망명족까지 늘어났다고 하니 기상청의 체면이 말이 아닌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30

‘공수처법’과 찐빵

안재휘논설위원소문난 명품 찐빵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좋은 밀가루를 골라서 쓰고 비법을 발휘한 반죽 기술이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찐빵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반죽 안에 들어가는 팥소다. 항간에 실속 없는 일이나 사건, 물건을 일러 ‘앙꼬(팥소의 일본어) 없는 찐빵’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불량한 팥소가 들어있는 찐빵을 놓고 명품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지난 20대 국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이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떠올랐다. 공수처라는 조직은 많은 국민이 걱정하듯이 운용하기에 따라서 최고 권력자의 강력한 독재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 위험성 때문에 국민은 공수처장 선출규정에서부터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는 완전한 장치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21대 국회가 시작되고, 통합당의 비협조에 민주당은 안달이 났다. 지난해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밀어붙일 적에 야당과 국민을 설득한 가장 중요한 논리는 “절대로 여당이 일방적으로 뽑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통과된 공수처법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구성에서 여당 교섭단체 2명, 야당 교섭단체 2명 추천이고, 후보 결정은 추천위원 7분의 6 찬성으로 돼 있다.국회의장이 거듭 후보추천위원 선정을 요구했지만, 유령 취급 당하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공수처법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한 만큼 결과가 나온 뒤에 하자는 주장을 펴 왔다. 민주당이 몇 차례 공수처법 개정을 을러대더니 정말로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예상대로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인사를 공수처장에 임명하고, 수사관들도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채울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법사위 소속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를 여야 구분 없이 국회가 추천하는 4명 등 7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또 공수처장 후보 추천 조항도 5명 이상만 동의해도 되도록 바꿨다.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완전히 제거한 것이다.공수처 수사검사 인원도 현행 공수처법에서 정한 25명에서 ‘최대 50명’으로, 수사관은 40명에서 ‘최대 70명’으로 늘렸다. 수사검사 자격도 ‘10년 이상의 변호사’ 에서 ‘5년 이상’으로 대폭 낮췄다. 3년이었던 수사검사 임기는 7년으로, 최대 3회까지만 허용한 ‘연임 제한’ 조항은 아예 삭제했다. 법조계에서는 “젊은 민변 변호사들의 진입허용 노림수”라는 해석이 나온다.안 되면 법을 바꿔서라도 강행하는 여당이 다시 무슨 수상한 작전에 돌입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핵심 중립성 담보 조항을 제거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입법과정에서 국민을 완전히 속이고 배신한 게 돼 버린다.좋은 재료를 넣기는커녕 팥소를 아예 빼버린 찐빵이 어떻게 명품이 되나. 아니, 맛있는 팥소는 제거하고 먹어선 안 되는 독소(毒素)를 잔뜩 넣은 찐빵으로 대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또 얼마나 죽일 작정인가, 걱정스럽다.

2020-08-30

미국 정권의 향방과 지역의 대응전략

최근 미국 정계가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는 11월 3일 치뤄질 제46대 미국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부통령을 지냈던 조 바이든(Joe Biden)씨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공화당 측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공화당 전당대회 이전부터 미국 연방정부 직원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해치법(Hatch Act) 위반 논란이 있었는데도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남편을 지지하는 연설을 강행하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동 순방 출장 중인 가운데 영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였다. 뉴욕타임스지는 현직 국무장관의 특정 정당 지지연설은 7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이는 국무부 내규에도 어긋난다고 보도하였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서 승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앞으로 미국 정계에 어떠한 변수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여론조사결과 등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면서 백악관의 초기대응 미흡, 이로 인한 미국경제의 급격한 감속과 실업률 급증 등이 얽히면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전국 여론조사결과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미국 대선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고 알려진 접전지역에서조차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우세를 나타내고 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각 여론조사회사의 질, 시기적 근접성, 조사 수를 고려하여 평균한 데이터를 발표하는 미국의 정치분석 전문매체인 파이브서티에잇(538.com)에 따르면 8월 13일 현재 2020년 46대 미국 대선의 최대접전 지역인 6개 주(미시간, 팬실베니아, 위스콘신, 플로리다, 아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모두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6개 주는 사실 지난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 트럼프 후보가 모두 우세를 차지하였던 지역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전국 집계치에서 현직 트럼프 대통령은 42.4%의 지지율에 그쳤지만 바이든 후보는 51.0%의 지지를 받으며 8.5포인트나 앞섰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그 이후 조금씩 추격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전하지는 못한 상태다.하지만 지난 2016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에서 뒤졌던 트럼프 대통령을 역전시켰던 ‘감춰진 트럼프지지자(hidden Trump voter)’가 이번에도 활약할 수는 있겠지만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져 역전시킬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접전지역이었던 라스트벨트로 불리는 디트로이트나 클리블랜드 등 자동차와 철강산업 중심 지역에서 트럼프 후보가 경기 부양을 통한 고용개선을 주장하며 역전 득표에 성공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개정하고, 중국, 한국 등에 대한 철강 관세를 인상하며 ‘관세맨’으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정계에 몸담은 사람이 아닌 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궁금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현 미국 대통령이 던진 관세 폭탄으로 큰 피해를 겪고 있는 포항의 철강업계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미국 대선 결과 대통령이 바뀐다면 과연 포항지역 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무역정책의 기조는 사실상 민주당 강경파의 무역정책 기조와 흐름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급격하게 감속한 미국경제의 조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현행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쉽다. 정책수단이야 관세보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경제블록을 통한 간접적인 보호무역을 따를 수도 있겠지만.대통령선거와 같이 치뤄질 미국 통상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연방의회의 선거결과에 따른 영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는 민주당의 압승이 예측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누르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제46대 대통령으로 바뀌거나, 연방의회에서 민주당이 절대적인 의석을 차지한다고 해서 포항의 철강업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절로 벗어나게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의 통상정책에서 중국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중국산 철강제품에 적용하는 강력한 제재조치의 여파는 고스란히 포항 철강업계에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든,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든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가격경쟁력만을 무기로 내세워서는 미국의 장벽을 넘기 어려운 현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 철강업계가 미국 시장에 침투하여 생존하려면 신제품, 신기술 등 고부가가치의 품질경쟁력을 내세운 제품, 그것도 세계적인 수준이 아닌 세계 유일의 철강제품이어야만 전천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능할 일도 있다. 지역 철강업계가 노릴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국내시장이며, 이 또한 지금까지와는 획기적인 전략전환이 필요하다.우선, 암묵적으로 국산 강재를 이용하는 광범위한 비관세장벽을 관련 업계가 함께 높여야만 한다. 저성장 기조에도 건설, 투자는 이루어진다. 문제는 빌딩, 아파트, 공장, 도로 등 인프라구축 등에 원가절감 등을 이유로 중국산 등 저가의 수입제품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등에서는 최대한 자국 철강을 위해 표준품셈, 주요 설계기준 등 보이지 않는 내부규칙을 이용하여 자국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교묘하게 장벽을 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각국 모두 대문을 잠그는 데 우리만 열어두는 것은 어리석다. 국내산업의 쌀인 철강이 정상 작동하여야만 여타 기계, 금속, 자동차 등도 상호 간에 동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철강업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서야만 한다.그리고 철강과 수요산업 간 전략적 제휴도 시급하다. 그동안 철강업계는 철강재를 만들어 놓기만 하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전방수요업계가 자신에게 적합하게 다시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하지만 독점적 공급자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손이 가는 고가의 국산 철강재를 사용할 수요자는 없다. 이제는 장사꾼처럼 고객이 어디에, 무슨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지까지 알아서 입에 떠먹여 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그들의 신제품에 적합한 소재를 맞춤 제공하여 두 업체가 함께 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적 연대를 확대해야만 한다.앞으로도 세계의 정치지도는 바뀔 것이고 그 변화의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의 수출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포항 철강업계가 앞으로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외충격에서도 흡수 가능한 내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국내 수요 산업과의 끈끈하고 질긴 공급망의 치밀한 연결을 이어나가야만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30

맥문동 앞에서 仁을 이루다

해가 지기 전 황성공원 맥문동 군락지를 찾아갔다. 기와가 늠름한 시립도서관 앞에 주차를 하고 산책로로 걸어 들어갔다. 수백 년 된 나무들과 굴곡진 모습의 소나무들 사이로 남은 햇살이 옆으로 드러눕는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 사이로 빛내림이 환상적이다. 그 햇살을 비껴 받은 보랏빛 자태가 곱다.여름의 마지막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보랏빛 맥문동이 8월의 경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것은 맥문동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묵직한 무게감의 굽은 소나무가 산책로 사이를 채우고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더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바람이 불 때는 맥문동이 향기를 내뿜은 듯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황성공원 맥문동 군락지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노을 무렵 방문하면 좋다. 한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고, 사진을 찍기에도 훨씬 좋다. 새벽녘 물안개가 드리워진 모습을 찍으면 금상첨화겠지만 매일 새벽 찾아가도 몇 번 만나기 힘든 장면이다.비스듬히 보랏빛 융단 위로 솟은 소나무가 사람 인(人)자 형상이다.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한 성인들의 말을 대변하듯 굵은 소나무들이 서 있다. 맥문동 군락지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으면 심신이 안정되고 저절로 힐링이 되는 이유는 땡볕아래 꽃만 있어서는 느낄 수 없다. 소나무가 하는 역할이 큰 것이다.첫 날은 오래 사귄 벗과 그 꽃길에 들어섰다. 며칠 지나 두 번째로 갈 때는 새로 사귄 벗들과 함께였다. 친구들과 꽃에 취하고 저녁 어스름에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취해 꽃길을 거닐었다. 사람 둘이 만나서 친구가 되면 仁(인)이 된다. 仁자는 ‘어질다’나 ‘자애롭다’, ‘인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친구가 되어야지만 어질고 인자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이다.황성공원은 원래 신라시대 화랑들의 훈련장이었다. 젊은 청년들이 만나 친구가 되어 호연지기를 키우던 곳이었다. 지금은 경주 사람들의 휴식처이다. 산책로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 운동기구에 앉아 몸을 단련하는 사람,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가족들로 늘 수런거린다. 그 위로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이팝나무·회나무·떡갈나무·살구나무·향나무·상수리나무가 우거져 다람쥐와 청설모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쉽게 만난다.호림정 뒤로 솟아 있는 동산 위에는 높이 16m의 김유신 장군 동상이 서 있다. 공원 안에는 경주실내체육관, 시립도서관, 공설운동장, 충혼탑, 박목월 시비, 국궁(國弓) 궁도장 호림정 등이 있다. 2년에 한 번씩 짝수 해의 10월 초순에 이곳에서 신라문화제가 열리며, 공설운동장에서는 매년 동아마라톤대회가 열린다.경주 황성공원은 이제 전국 최고의 맥문동 성지가 됐다. 2015년부터 심은 맥문동이 약 1만5000㎡에 이른다. 맥문동은 여름철 산과 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길 가다 보면 한두 포기 띄엄띄엄 꽃이 피어 있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맥문동이 군락지를 이루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백합과에 속하며 늘 푸른 여러해살이 식물이다.김순희수필가높이는 20~30cm 정도 자란다. 꽃말도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좋은 ‘기쁨의 연속’이다. 맥문동이란 이름은 뿌리의 굵은 부분이 보리와 비슷하다 하여 맥문(麥門)이라 하고, 겨울을 이겨낸다 하여 동(冬)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잎이 난(蘭) 모양이며 뿌리는 한약재로 가래, 기침 등에 사용된다.가을에 접어들면서 보랏빛 꽃은 눈동자가 까만 열매로 변신한다. 꽃대마다 다닥다닥 붙은 구슬이 또한 볼거리이다. 꽃말처럼 여름부터 가을까지 연속적으로 기쁨을 주는 존재이다. 그늘에서 잘 자라는 본성 때문에 둥치가 굵은 소나무와 궁합이 딱 맞은 듯하다.보랏빛 꽃물결에 흠뻑 젖었다가 숲을 빠져나왔다. 화랑이 거닐던 그 숲에서 좋은 기운을 받았더니 친구들의 얼굴에 보랏빛 웃음이 활짝 피었다. 仁(인)을 이루었다.

2020-08-30

경각심 늦추지 않고 자기주도 방역에 만전 기해야

이강덕포항시장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발생한 이후로 전 국민은 답답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인 것처럼 아득하기는 하지만 ‘코로나19’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년 전의 지금은 푸른 숲이 우거져 나무의 그늘이 깊어지는 자연을 찾아 막바지 여름 휴가철을 즐기던 시기였다.‘코로나19’로 인해 ‘뉴노멀’(new normal)과 ‘비대면’(untact)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했고, 일상에서 마스크 착용, 꼼꼼히 손 씻기, 생활 속 거리두기를 비롯한 개인위생수칙의 철저한 준수를 통한 자기주도 방역의 중요성도 강조되기 시작했다. 밀집(密集), 밀접(密接), 밀폐(密閉)와 같은 3밀(密)을 멀리하면서 정(情)을 기반으로 살았던 우리의 삶이 분명 다른 세계를 맞고 있다.그동안 집단감염 발생 건수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포항시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민·관 합동으로 감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대책반을 구성·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의 확산 차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기본적으로 모임과 행사를 개최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발열체크, 출입명부 작성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조건하에, 실내행사는 50명 미만으로, 실외행사는 100명 미만으로 제한했고, 불요불급(不要不急)하지 않은 외출과 모임, 다중이용시설 출입은 자제하도록 했다.특히 고위험시설과 위험도가 높은 다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핵심방역 수칙을 의무화하고 수시 현장점검을 통해 준수사항의 이행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위반할 시에는 고발 조치 및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입원·치료비 및 방역비 손해배상(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다.또한 교육지원청과의 협력을 통해 학생들의 밀집도를 최소화해 안전한 등교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지역 대학의 경우 해외 유학생과 수도권 등 타지역 출신 학생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노인요양시설과 생활복지시설, 요양병원, 정신과병원 등 집단감염 4대 취약시설 역시 외부인 출입통제와 호흡기 환자에 대해 별도로 격리 조치하는 등 집단감염을 차단하고자 집중관리에 나섰다.이와 함께 불특정 다수가 접촉하는 대중교통 및 카페·음식점 등에 방역컨설팅단이 주기적으로 방문해 예방지침 이행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고, 의료기관별로 감염병 담당자를 지정해 포항시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코로나19’ 모니터링도 한층 강화했다.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가을철을 앞두고 ‘코로나19’의 대유행을 대비해 감염병 전담병원 운영과 함께 격리병상 및 생활치료센터 추가 확보, 민·관 합동 통합선별진료소 설치, 비상용 마스크 및 손소독제 구입 등 ‘코로나19’ 신속 대응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이처럼 지금 우리는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모두에게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만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모두 다 사라지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기게 하는 병(病)이 ‘코로나19’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멀리하는 병, ‘코로나19’. 사회적인 거리를 두더라도 인간적인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무엇보다 스스로 위생안전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자기주도적인 방역이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예방이라고 확신한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서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생활수칙을 준수하는 것만이 최고의 방역대책인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에 의한 봉쇄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동안 우리는 일상이 송두리째 막혀버리고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격려하고 배려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감염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원, 그리고 자신과 싸워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더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태’라고 표현할 만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중한 상황을 만들어버린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숨어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속에서도 성숙한 시민의식과 견고한 방역체계 구축을 통해 그동안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희망의 싹을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이다.

2020-08-30

가을이 온다

김병래시조시인처서 지난 들판에 일제히 벼가 팬다. 이곳은 다행히 홍수 비해가 없어 가을 태풍만 무사히 넘기면 풍년이 들 것이다. 작년 가을에는 벼가 익을 때쯤 두 차례나 태풍이 와서 벼가 눕거나 물에 잠겨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 그래도 식량 수급에 큰 지장이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엔 그만큼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옛날에는 가뭄이나 홍수로 농사를 망치게 되면 굶어 죽는 백성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풍년이 들면 배불리 먹고 흉년이 들면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 농경사회 백성들의 애환이었다. 그러니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행여 하늘이 노할 짓은 삼가는 삶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서 웬만큼 가뭄이나 홍수가 나도 농사를 아주 망치지는 않는다. 이 들녘만 하더라도 인근에 제법 큰 저수가 있고 들판 곳곳에 관정을 뚫어 놓아 지하수를 퍼 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고나 할까.어린 시절에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은 벼가 패는 들판을 바라보는 감회가 무덤덤할 수 없을 것이다. 배를 곯아본 사람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다행한 일이 없다는 걸 잘 안다. 불치의 병이나 큰 사고를 당한 경우가 아니라면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족할 조건이 된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10억이 넘는 인구가 기아에 허덕이거나 아사하는 실정이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자원조건이 나은데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나라도 많다고 하니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얼마나 다행하고 자부심 가질 일인가.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의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더럽고 게으른 나라 중 하나였다고 한다. 민족의 본성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당파싸움에다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백성들은 잘 살아 보려는 희망도 의욕도 잃어버린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통째로 남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식민지가 된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친일파 타령을 하는 것도 같잖은 정치적 수작일 뿐이다.올해도 북한의 홍수피해가 심각한 것 같다. 가뜩이나 식량난이 극심한데 곡창지대가 침수되어 또다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핵폭탄을 끌어안고 백성들을 사지로 몰고 가는 김정은 일당에 대한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포악한 독재자는 어떻게든 제거하는 수밖에 달리는 방도가 없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할 수는 없다면, 암암리에 김일성 일가의 마수(魔手)를 종식시키는 일에 모든 지혜와 역량을 다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이 정권은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처럼 거꾸로만 가고 있다. 저들의 이념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이나 인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김일성 일족의 체제유지를 돕지 못해 안달을 하는 꼴이다. 머지않아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겠지만, 그 때까지 기다리기엔 북녘 동포들의 형편이 너무 참담하고 절박하다. 속절없이 또 가을이 오고 있다.

2020-08-27

포항과 서울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포항의 의대 유치 운동으로 ‘포항과 서울’의 도시 인프라와 미래지향적 관점을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포항에 의과대학을 세우는 일이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경북 지역은 전국 평균 의사 수가 서울의 반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료 서비스라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된다.그런 반면, 포스텍은 과학기술 인용 논문 수 등으로 국내 최강이다. 한국의 고교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대학중 하나이다. 과학기술 연구의 가장 중요한 국내 유일의 방사광 가속기도 포항에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의료연구의 많은 부분이 가속기에 의존하고 있다. 도시 기반 인프라는 부족한데 최첨단의 연구시설과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포항의 실정이다.필자가 90년대 썼던 칼럼들을 한번 들추어 보았다. 90년대 언론들은 포스텍과 서울공대를 비교하는 보도를 쏟아내었는데, 사실상 두 대학과 두 도시를 비교하는 것은 그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구는 20배,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인프라 면에서 앞서는 서울이었다. 그러나 포항은 서울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 간의 싸움처럼 보였다. 포스텍이 “지역에 있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었고 포스텍은 다윗이 들고 있는 물맷돌의 역할을 했다. 사실상 포항의 도전은 지역의 세계화라는 선진국형 개념 정착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결국 한국 전체를 위한다는 점에서 골리앗인 서울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러기에 포항의 도전은 엄격히 말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보다 훨씬 더 명분이 강한 도전장이다. 다윗의 물맷돌이 힘을 발휘하여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다고 한다.포항의 한 개 대학이 서울대라는 골리앗에 도전한 것처럼 포항은 서울에 도전하기 위한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인프라의 확충과 경쟁력이다.포항의 발전은 한국 지역 균형발전의 시금석이 돼 왔다. 포스코의 등장으로 산업화 분산, 포스텍으로 엘리트 대학의 지역 분산 등을 실천하였다. 이제 의과대학 신설과 의료 기반의 확충으로 의료서비스의 포항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필요한 모든 인프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의료 인프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필자는 포항에 도서관겸 조그만 방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너는 언제까지 경상도에 살래?” 친구들이 웃으면서 묻는다. 그들의 눈에는 퇴임 후에도 경상도에 드나들고 있는 필자가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다.세계화의 전제 하에서 각 지역은 각 지역에 대한 강한 긍지를 가지고 지역별 특성을 강조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삶이 중요하다. 그리고 각 지역은 세계로 약진해야 한다. 더 이상 지방은 지방이 아니다. 한국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핵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포항의 서울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진행형을 뒷받침하는 것은 도시 인프라이고 그리고 의대의 신설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2020-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