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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 아름다운 아인슈페너

아침에 한번씩 꼭 들르는 곳이 하나 생겼다. 이름하여 아인슈페너를 파는 커피 전문점. 그렇게도 아이스커피를 즐겼건만 몸이 다 식으니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만 마시게 되었는데. 이 뜨거운 커피 위에 흰 크림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 파는 곳을 알게 된 것이다.그런데 이 흰빛의 크림 맛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것이랄까. 점원께 물어보니 이곳만의 수제, 직접 만든 것이란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차가운 크림 온도는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한 냉장에서 온 것일 터.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의 날카로운 대조미가 입안의 감촉을 생생하게 만든다.더욱이 이 크림은 뱃속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편할 수 없다. 토핑 크림 얹은 것이 속을 더부룩하게 하고 입안에서도 눅진한 느낌 남아 있는 경우 얼마나 많던가. 이 집 크림은 그런 속된 맛과는 거리 멀다고 벌써 며칠째 아침마다 마시며 감탄에 감탄.하, 그러고 보면 커피라는 것을 참 어지간히도 마셔왔다.처음 커피 맛을 본 것은 중학생 때 어머니가 손님 오셨을 때만 타 내오시는 ‘코히’ 맛을 본 것. 그때 수입산 커피가 수준 있었더랬다. 대학 와서 5동 앞 자판기 앞에 서서 나한테 담배 가르쳐 준 권영석과 같이 싸구려 믹스 커피 마시며 담배까지 태워 뱃속이 노랗게 변하던 기억도. 아이스커피도, 뜨거운 커피도 연한 맛에 꽤 오래 길들였던 것도 같은데, 한참 나중에 드디어 스타벅스 별다방 커피가 상륙했더랬다. 그 맛이 어찌나 쓴지 혀가 떨어져 달아날 지경.24시 편의점에 원두커피 천 원짜리가 등장하자 비로소 4천 원, 5천 원짜리 커피가 무섭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목에 신분증 패용하고 체인점 커피 하나 사들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규직의 자부심이라나, 어쩐다나. 그래도 비싼 느낌 어쩔 수 없다.그렇게 나 또한 커피는 하루 세 잔 네 잔도 사양 않는 중증 중독 환자건만. 기가 막힌 커피 맛은 언제 맛봤는지 기억에도 없었거늘. 이제 향미 가득한 아인슈페너 한 잔 앞에 놓고 이것이야말로 커피 중에서도 커피가 아니더냐 한다.아인슈페너(Einspnner)란 사전 보면 비엔나 커피의 한 종류, 오스트리아 것이란다. 원래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를 가리킨다던가 하고. 또 “오스트리아 빈의 마부들이 추위를 이기고자 크림과 설탕을 얹은 커피를 마신 것에서 유래”했다 한다.아하, 오스트리아, 빈. ‘꿈의 노벨레’였던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또….단념, 체념을 익히면 더 불행하지 않아도 되느니. 나는 어제 한 가지 미련, 애착을 단단히 끊어냈느니.아인슈페너 이 아름다운 커피 한 잔만으로도 한껏 행복을 만끽할 수 있나니./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20

국민과 정치

김병래시조시인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아테네와 같은 ‘폴리스’를 최종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로 보고 그 속에서 의식주의 자급자족은 물론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이룰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사람과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을 터이다.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는‘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있다.그러나 구성원 모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민주제가 아니라 선거 등의 절차로 대표를 선출해서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범법(犯法) 등의 결격사유가 없는 한 만 18세가 되면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지방단체장,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 교육감에 대해서는 자질이 불량할 때 투표로 파직할 수 있는 주민소환권도 가진다.하지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정치참여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참여의 하나이다. 그들의 국가경영 성패는 곧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권의 잘잘못에 대한 심판은 선거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기에, 여러 경로로 감시하고 평가하여 다음 선거 때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까지 국민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훌륭한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해서 부강해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를 망친 경우도 적지 않다.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은 전쟁으로 패망했고, 김일성을 선택한 북한과 차베스와 마두로를 선택한 베네수엘라는 결국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도 정부수립 이후 70여 년간 어느 정권도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다. 임기 중에 쫓겨나거나 시해를 당한 대통령도 있었고, 가족이나 본인의 비리로 교도소에 가거나 자살을 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가 나중에 사형선고를 받은 대통령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공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정부를 수립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한 대통령과 혁신적 산업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진 대통령, 민주화에 기여를 한 대통령들은 역사가 특별히 기억할 것이다.국민들 각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때 나라는 안정되고 부강해질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우 우선 지양해야 할 것은‘패거리의식’이다. 이념이나 성향으로 편을 갈라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 데서는 올바른 판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자기편은 무슨 짓을 해도 용인을 하고 상대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폄훼하고 반대하는 것은 국력을 소모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패거리들과는 거리를 둔 냉철한 이성을 가진 국민이 많을수록 나라의 근간이 튼실해진다. 현 정권이 크게 우려스러운 것도 바로 이 패거리정치 때문이다.

2020-08-20

반일 친일로 다툴 때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광복회장이라는 김원웅씨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다” “안익태는 민족반역자”이므로 그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일부 여당의원들이 추진 중인 친일인사 파묘법도 주장하고 있다. 이어 연단에 올라온 원희룡 제주 지사는 미리 준비했던 경축사 원고를 접고 우리 국민 대다수와 제주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를 기념사라고 광복회 제주지부장에게 대독하게 만든 이 처사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하고 제주도지사로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상 김일성 공산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려고 왔을 때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과 국민들이 있고 그 분들 중에는 일본 군대에 복무했던 분들도 있기에 나라를 잃은 국민에게서 무슨 죄를 묻겠는가는 것이 원 지사의 주장이다.필자는 원 지사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자기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친일을 했다면 그건 비난 받아야 하지만 나라를 잃은 백성이 일본의 폭압속에서 강제로 일어난 일을 친일이라는 프레임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 군인, 지식인들은 일본의 폭압 속에서 특히 그것을 감내해야 했고 어쩔 수 없는 협력도 있을 수 있었다. 그건 그들이 원해서 한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후에 국가를 위해 행한 공을 생각하여 그 공이 충분히 칭송 받을 만하다면 그것으로서 존경 받아야 한다.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그 공을 우리가 보면서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며, 대한민국을 만든 데에는 많은 분들의 공이 있었고, 과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광복회장 그 자신은 어떤가라는 비판도 있다. 정치 입문은 자신이 ‘친일’이라고 비판하는 민주공화당에서 이뤄졌고 사무처 공채에 지원해 당료로 근무하면서 정치권에 들어섰고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당료로 근무하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한다. 그 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져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진보진영으로 넘어갔고 진보진영의 프레임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를 두고 재향군인회는 16일 성명에서 김 회장을 향해 “자기 이익에 따라 정당을 바꾸는 철새정치인”이라고 비난했는데 김 회장은 “나는 생계형”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생계형이라면 자기가 비판하는 친일 인사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 비판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생계형을 훨씬 넘는 생명형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 친일 반일로 다시 분할되어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일을 청산하자고 하지만 그 기준은 그저 마음대로 그들이 정한 잣대일 뿐이다. 생계형이라면서 과거의 철새행태를 옹호하면서 생명형이었던 애국지사들을 매도할 수 있을까?광복 75주년을 맞은 이때에 이편저편 나누어서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되어야 한다는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조각내고 우리 국민을 다시 편가르기 하는 그런 시각이 맞는 것인가? 여권이 지지도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친일 프레임을 꺼내 든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20-08-20

화불단행(禍不單行)

설상가상은 본래 “쓸데없는 참견”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눈 내린 곳에 서리가 더 내려봐야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 “환란이 거듭된다”는 말로 바뀌게 된다.설상가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을 찾아보면 여러 개 있다.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생긴다”는 병상첨병(病上添病)과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전호후랑(前虎後狼)이란 사자성어도 있다.우리 말 속담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과 “갈수록 태산”, “산 넘어 산”, “하품에 딸꾹질” 등이 같은 뜻이다. 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도 있다. 일본에서는 “밟혔다가 차였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설상가상에 반대되는 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있다. 이때 금은 비단 금(錦)자를 쓴다. 비단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물건인데 그 위에 꽃을 수놓았으니 좋은 일이 겹친다는 뜻이다.요즘 우리나라가 겪는 상황을 보면 설상가상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긴 장마와 500mm의 집중 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에 잠겨 아직 생채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가운데 폭염이 덮치더니 이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난 2월 발생한 코로나19로 이미 우리나라는 큰 쇼크를 입은 마당이라 마치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처럼” 두려움이 앞선다.그도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 집중돼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다.옛말에 “복은 겹쳐 오지 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禍不單行)고 했다. 이 말의 뜻은 “재앙이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으니 매사에 조심하라”는 것이다. 국가적 위기다. 정부와 국민 모두 엄중함이 절실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20

코로나19의 교훈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가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일련의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 코로나19는 절대자가 인류에 내리는 일종의 종교적 고난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엄청난 전파속도와 치사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를 대하는 종교지도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대범한(?) 행보를 보여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나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의 얘기다.이만희 총회장의 경우 당초 코로나에 감염된 신도들의 명단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오히려 검사를 받지말라고 독려했다가 방역지침 위반과 방해 의혹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전염속도가 빠르고, 치료약도 없는 치명적인 질병의 감염을 방조하는 행태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역시 코로나19의 2차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교회에서 마스크도 쓰지않은 채 설교를 하고, 광화문 집회를 주도해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전 목사를 포함한 목회자들은 지난 9일 사랑제일교회 예배 현장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신도들로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고, 80여 분간 설교를 했다. 평소 야외에서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며 마스크를 벗고 다녔던 전 목사는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에서도 “나는 열도 안 올라요. 나는 병에 대한 증상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전광훈 목사를 격리대상으로 정했다고 통보했다, 이놈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는 가차 없었다. 결국 본인 뿐만 아니라 밀접 접촉자인 부인과 비서진, 측근들까지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고 말았다. 신도들도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밤샘기도, 금식기도, 광복절 집회 준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합숙 생활을 마다치 않았다. 그 결과 사랑제일교회발 확진자는 전국 80여개 시군구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쏟아졌다. 사랑제일교회 측이 방역당국에 일부가 누락된 출입자 명단을 제출하거나 교인들의 진단 검사를 고의로 지연시킨 정황도 드러났다.신천지 사태 이후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은 역학조사를 방해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벌금을 내도록 처벌이 강화됐다. 여기에 국가가 부담한 복구 비용이나 치료 비용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배상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이런데도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측은 20일 대국민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방역 지침상 접촉자가 아닌 국민을 상대로 명단 제출과 검사, 격리를 강요하는 행위는 직권남용”이라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바쁘다. 신도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종교지도자로서 적절치못한 행태이자 책임회피다.종교적인 맹종은 어리석어서 두렵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최소한의 행동양식마저도 저버리게 한다. 생명존중의 신앙과 종교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에게 평화로운 삶과 안식을 약속한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져준 또 하나의 교훈은 생명존중이란 종교의 본질과 맞닿은 새로운 성찰이다.

2020-08-20

모두의 책임이다

장규열한동대 교수말복이어서 그랬을까. 광복절이 뜨거웠다. 국권을 찾았던 뜨거운 감격을 기념하는 한편,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광장을 채웠다. 문제는 코로나19. 겨울 끄트머리에 찾아왔던 감염병은 봄과 여름을 건너 가을을 넘보고 있다.전세계 188개국에서 하루에 20만명도 넘게 감염시키면서 2천만을 상회하는 확진자를 낳고 80만에 육박하는 사망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리한 터널을 언제 통과하려는지 아무도 모른다. 광복절 광화문집회가 촉발한 감염확산 위험은 이전의 경우보다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의 건강이 경각에 달렸다.코로나19가 몸을 다치게 하겠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사회의 건강도 이만저만 해치는 게 아니다. 미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는 까닭은 국민의 건강문제를 정치적 담론으로 몰아온 대통령의 실수로 보인다. 정치적 격론 속으로 빠져든 감염병을 대통령 본인은 물론 미국의 정치권도 도무지 건질 바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타산지석이 아닌가. 코로나19가 정치적 편가르기의 소재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소동이 다 지나고 혹 결산에 이를 때에 공과 과를 가늠할 일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방역에 집중하여야 한다. 백척간두에 섰을 방역당국의 심정은 어떤 모습일까.틀린 말은 아니다. 교회가 문제다. 신앙의 본질보다 정치적 담론으로 물들이며 집회를 주도한 목사의 책임이 크다. 부적절한 주장과 언변으로 신자들을 오도하고 호도해 온 목사와 교회에 대하여 분명한 판단과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던 한국교회에도 책임이 있다. 교회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웃을 돌아보고 사회의 건강을 살피는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믿는 이들의 신앙적 성장을 도우며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게 되면 오늘 이 사건은 교회의 건강도 회복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방역은 정치가 아니다. 오른편 왼편으로 갈라 다툴 일인가. 코로나19를 막는 길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다가도 모두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등장하는 ‘국난극복 DNA’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념의 차이를 딛고 국난을 헤쳐왔던 기억을 되살리면, 편갈라 싸웠던 이슈들은 오히려 헐거운 과제들이었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 앞에 겨레는 언제나 하나가 되어 솟아오른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K-방역’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지나는 난관이 또 하나의 결실이 되는 역사를 남겨야 한다.모두의 책임이다. 모두에게 닥친 코로나19이며 함께 지나가야 할 관문이다. 누구를 탓하여 무엇을 얻으려는가. 차이를 극복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좋은 시험대이다. 대선을 앞두고 헤매는 미국이 있다. 총선을 거뜬히 치러낸 한국이 있다. 이겨내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구호와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생각에 따라 편갈라 다툴 일은 따로 또 많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뒤에는, 겨레의 마음도 건강해 지지 않을까. 세계가 보고 있다.대한민국, 파이팅!

2020-08-19

경견완증후군 주의보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 앞에 긴시간 앉아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경견완증후군 주의보가 내렸다. 경견완증후군은 온종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등 상체를 이용해 반복된 작업을 지속했을 때 나타나는 목, 어깨, 손목의 통증을 가리킨다.흔히 ‘오십견’으로 불리는 유착성 관절낭염, 테니스·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호소하는 팔꿈치 관절 주위의 통증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내외상과염, 잘못된 자세로 오래 자판을 치게 될 경우 겪게 될 수 있는 ‘손목터널증후군’을 가리키는 근막통증증후군과 수근관증후군 등이다. 주로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등에 무감각, 통증, 뻣뻣함 등을 유발하는데, 1주일 이상 지속하거나 한달에 한 번 이상 이런 증상이 보이면 경견완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다. 특히 경견완증후군은 X선, MRI(자기공명영상)를 촬영해도 원인을 알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치료는 스트레칭, 약물,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통증이 심한 경우 주사치료를 하게 된다. 치료가 쉽지않은 경견완증후군을 예방하려면 구부정한 자세를 피하고, 바른 자세를 갖는 게 좋다. 증후군 예방을 위한 올바른 자세는 허리는 곧추 세워 등에 골이 만들어지게 하고, 가슴과 어깨는 활짝 편 채 턱을 당기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땐 무릎의 위치가 엉덩이보다 높지 않게 하고, 엉덩이와 허리의 각도를 90도로 만든다. 소파처럼 푹신한 곳에 앉을 때는 작은 쿠션을 소파와 허리사이에 받치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모니터 중심이 사용자의 코앞에 오도록 조절한다.무엇보다 오랜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피하고, 중간중간 휴식과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는 게 긴요하다. 건강한 삶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9

살아내기

강길수수필가얼마나 아팠을까. 나 같으면 까무러쳐 깨어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연녹색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의젓해 보인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억척스러운가.며칠 전 땀을 훔치며 이 곁을 지나갈 때다. 방금 풀을 베었는지 향긋한 풀냄새가 팔월 상순 대낮의 더위를 봄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날려버렸었다. 이 녹지 곁을 하루에 두서너 번은 지나다닌다. 출퇴근과 점심 먹으러 갈 때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엔 주로 자전거로 오가지만 그 외의 철엔 걸어서 지나간다.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을 초지로 만든 곳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과 푸른 녹지가 잘 어우러져 저절로 관심을 끌었다. 지금 팔월 초순인데, 내 기억엔 올해 벌써 두 번째 전체 풀베기를 하였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는지 학교 관리가 아니라면 해당 행정기관의 배려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늦봄, 오월 하순께도 풀을 베어냈었다. ‘아직 가을은커녕 채 여름도 되지 않았는데, 웬 벌초인가. 이상하다.’고 그때 생각했었는데 두 달여 만에 또 베어냈다.풀베기를 시킨 이들은, 녹지를 더 깔끔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잎과 줄기가 한해살이인 잔디, 쑥, 클로버, 민들레, 개보리 그리고 이름 모르는 외래종들로 어우러진 풀밭이다. 내 생각엔 베지 않고 그냥 한해를 다 살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기도 좋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어릴 때 산골에서 자라나며 겪은 삶은 그야말로 있는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었다.풀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순간 땅 위 몸이 댕강 잘려 나갔다. 그 고통과 상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풀들은 몸을 여미고 재기(再起)를 시작한다. 잘린 경계면 아래 잔디 잎은 끝이 조금 마르며 그대로 자라나고, 곁엔 봄 새싹 같은 순이 다시 돋아난다. 지난 늦봄 벌초를 당했을 때도 풀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곧바로 녹지에 정갈한 연록 새봄을 연출하였었다. 오가는 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쉬는 사람들, 나아가 날아드는 참새, 까치, 비둘기, 애완견까지 즐겁게 해 주고도 남았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새 고사리손마다 동녘햇빛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앙증스레 쥔 풀들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생명의 본모습을 만나는 행운의 시간이다.한여름에 몸 잘린 풀들은 또 하나의 새봄을 이 녹지에 공연하려는 준비가 한창이다. 새싹이 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낼지 모르지만, 몸을 여미는 모습을 보노라면 틀림없이 한여름의 새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리되면 나는 한 해에 세 번의 봄 새 생명을 만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터다. 비록 날씨 탓에 이슬 머금은 모습은 못 만날 지라도 한여름에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한데, 왜 풀들의 고통 앞에서 내 마음이 달떴던 것일까. 호모사피엔스 이래, 조상 대대로 연연히 풀을 먹으며 살아온 사인인 까닭일까. 제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결정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예초기의 무서운 날에 몸이 반 토막 난 상황. 그 황망함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애쓰지 않지 않았는가. 내가 풀이라면, 두 번씩이나 몸이 잘려 나간 처절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고해의 세상에 무에 미련이 있어, 또다시 살아가려 한단 말인가.마음의 눈에 풀들이 다시 살기 위해 새마을사업이라도 하듯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땅속 물을 빨아들이고,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몸의 탄소동화작용 공장을 가동한다. 설비에서 연록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잎은 모양을 갖추며 고사리손이 된다. 손은 땅을 솟아오르며 새봄을 부른다. 공장 가동 소리가 아카샤 기록(Akashic records) 동영상으로 이렇게 저장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들은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낸답니다.”라고…. 그랬구나! 풀들이 아름다운 것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살아내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몸이 몇 번을 잘리거나 훼손당해도 또 일어서고, 새로 태어나는 삶을 바지런히 살아내고 있었던 거야.올여름 녹지에 태어날 새봄 고사리손엔, 아마도 하늘 빗물이 송골송골하겠지….

2020-08-19

때론 혼자의 시간

때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피치 못해 사회적 관계망에 부대껴야 하는 현대인들. 무리에 섞인 단독자의 자아는 덜컹거리고 욱신거립니다. 한시 바삐 정돈된 자기만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롯한 혼자를 느낄 때의 해방감과 안온함이란! 다수의 무관심이라는 횡포에 방치된 자아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말한다면 무리에서 탈출해 자발적 유폐를 지향하는 자아를 ‘군중 밖의 희열’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요.우양미술관 소장품전에서 본 그림 한 점을 떠올립니다. 독일작가 요르그 임멘도르프의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Dinner with friends)’. 별 생각 없이 전시작들을 둘러보다가 그 그림 앞에서 발길이 멈춘 적이 있습니다. 가로 5미터가 넘는 유화 작품은 카툰의 성격이라기엔 어딘가 무거워 보이고 일러스트라기엔 풍부한 얘기가 들어있었습니다.어두운 초록빛 배경 속, 긴 식탁을 중심으로 아홉 명의 친구들이 앉아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이를 테면 정치가, 사업가, 협잡꾼, 기자 등등의 타이틀을 단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모임인지라 만찬 테이블이 화려합니다. 재떨이, 꽃병 등 소품 하나하나까지도 신경 쓴 흔적이 보입니다. 고급한 음식과 포도주 위로 정치적 찌라시들이 날아다닙니다. 그래서일까요. 만찬 자리가 그리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자세히 보니 노동자 차림의 붉은 모자를 쓴 사내도 보입니다. 유일한 불청객일까요? 둘 곳 없는 시선을 제 앞의 음식에만 가두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옆 사람들은 붉은 모자에게는 말조차 건네지 않습니다. 저 건너편, 영향력 있는 두 사람의 논쟁에 귀를 열어 두느라 손에 든 담배조차 잊을 지경입니다. 그 둘은 그들만의 이슈에 빠져 나머지 친구들에게 눈길을 줄 여력이 없습니다.정치인 친구의 속절없는 야심을 보면서 사업가 친구는 줄을 댈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허풍과 위선을 일삼아 온 고급 룸펜은 정치인 친구에게 맞장구를 칩니다. 모두들 눈동자 굴리기에 바쁩니다. 친구들과의 저녁식탁은 하염없이 겉돌 뿐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는 어디에 있는지, 포도주 맛은 신지 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동상이몽이란 사자성어를 배운 임멘도르프가 회화적 기법으로 그 뜻을 알리려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여기서 그치면 클라이맥스 없는 스토리가 되겠지요. 하단 오른쪽, 관람자를 응시하는 듯한 표정의 화가 자화상이 보입니다. 그림의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현장성을 증명하기 위한 작가의 의지로 읽힙니다. 입을 벌린 채 의자를 뒤로 빼서 앉은 화가는 이 만찬의 내레이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화가는 저녁식사 자리의 처음과 끝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마다 낀 금반지와 과장된 당나귀 귀로 자신을 희화화해 만찬 자체가 우스꽝스런 퍼포먼스임을 암시합니다.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의 환상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는 것이지요. 그림 속 화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니들 알아? 관계는 때로 피로하다고. 손가락에 낀 화려한 반지만큼이나 불편하다고.이 작품에서 자화상은 낭만적 방관자가 아닌 위트 있는 고발자로서 기능합니다. 붓 터치의 적나라한 은유를 통해 사회적 얼개의 위선과 부질없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무리 속의 자아가 겪는, 어찌할 수 없는 혼돈에 대한 알레고리와 풍자로 이만한 그림이 있을까요. 2차 세계대전 전후 작가가 겪은 개인적 트라우마나 사회적 경험이 이런 통렬한 비판 의식을 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원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림 속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같은 상황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초록실 밀실로 표현된 그 공간은 현대인의 낭만적 관계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매개물로 보입니다. 예민한 눈썰미로 세세한 것까지 포착해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작가는 어쩌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민 서린 그 녹색 분위기를 통해 깊은 성찰로써 관계망 속에서의 스스로를 재조명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덜컹거리고 욱신거리는 찌꺼기가 남는다면 그것을 끊어낼 배짱이라도 발휘하라고 조언하는 것 같습니다.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친구들과의 저녁 식탁에 초대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의미한 자리라면 그 사람은 애꿎게도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거나 진주 귀걸이가 달린 귓밥이나 문지르고 있겠지요. 일부러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채 위악을 떠는 임멘도르프의 통찰을 흉내 낼 수 없거나, 그 자리를 스스로 성찰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그 자리를 벗어나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도 좋겠지요. 가까운 숲 모퉁이를 돌아들면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를 해설하는 임멘도르프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0-08-19

종교와 과학

김규종경북대 교수K-방역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찬사의 대상이었던 대한민국에 코로나19 대유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8월 4일부터 17일까지 2주 동안 신규 확진자 1천126명 가운데 65%에 이르는 733명이 지역 집단감염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 그동안 해외유입 사례는 190명 17%에 불과하다. 8월 12일 서울시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는 19일 낮 12시 기준 623명이다. 대구·경북의 최근 사랑제일교회 방문자는 80명이며, 대구에 주소를 둔 시민은 33명이다. 이 가운데 서구와 달성군 주민 2명이 확진자로 드러났다. 경북도민 가운데 교회 방문자는 47명이며, 상주, 포항, 영덕 거주자 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8·15 광복절 집회에 대구·경북에서는 최소 수백에서 최대 1천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집단감염이 가시화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보수 기독교 단체로 알려진 일군의 교회가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어기면서까지 집단감염을 자초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과학의 발전과 비호 없이 종교의 융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48년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되었다. 신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려고 유럽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유대인학살과 마녀사냥이었다. 1450년부터 1550년까지 독일에서만 10만 명의 마녀가 화형을 당한다.신의 은총과 사랑으로 흑사병을 극복하려고 교회에 모여 기도했던 숱한 사람이 집단감염으로 죽어 나갔고, 그 후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과학은 자신의 이론이나 방법론이 잠정적이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 예상하며, 그것이 완벽하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에는 나만 옳다거나 나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도그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 반복-검증된 결과를 토대로 잠정적인 진실을 주장한다. 종교는 예배 공간과 교리 그리고 개인의 도덕률을 전제로 성립한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예배 공간이 있다. 그곳은 대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으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종교의 교리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차이를 드러낸다.개인의 도덕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지만, 그 고갱이는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다수 공동체가 희생을 감내하고 죽음조차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타자의 파멸과 죽음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철회해야 마땅하다.종교와 과학은 인간 생활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과학에 기초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고려하면서 이제 종교도 타자와 공존하는 법을 심도 있게 숙고해야 할 때다.

2020-08-19

8월 학교 운명은?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2학기부터는 매일 등교하래요.”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중학교 1학년 자녀가 필자를 보더니 도저히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필자의 놀람에 아이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선생님, 만약 우리가 코로나에 걸리면 국가가 책임 져 주나요? 학교에 가면 수행평가밖에 하지 않는데 왜 학교에 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아이는 정말 진지하게 말하였다. 그 어조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이를 만나기 며칠 전 필자는 아이의 놀람이 담긴 공문을 보았다.“현재 감염병 위기 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전제로, 지역사회 여건 및 기초학력 보장 등을 위한 대면 수업 확대 요구를 반영하여, 전교생 매일 등교수업을 권장함.”이제는 매일 등교수업이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또 교육청에서 등교를 권장하는 시대라니 필자는 너무도 낯선 지금의 상황에 코로나 멀미가 날 지경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하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학부모와 학생 중 코로나19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일명 코로나 트라우마로 등교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매일 등교가 낯선 것은 분명 학생들만이 아니다. 과제 학습에 익숙해진 교사들은 낯섦을 넘어 짜증이 날 것이다. 걱정보다는 편함을 반납해야 하는 그 심정은 어쩌면 짜증을 넘어 화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 화가 부디 학생들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지금까지 원교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낸 그 많은 과제를 교사들은 평가했을까? 물론 학생 개인별로 피드백을 해준 교사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제를 정리하여 책으로 만든 교사도 필자는 안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아이 중 학교에서 과제에 대해 정확하게 피드백을 받았다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피드백 대신 벌점을 받은 아이들을 필자는 알고 있다.익숙해진다는 것의 방향은 늘 자기 쪽이다. 그 방향은 익숙함의 정도에 정비례한다. 익숙함이 강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혹 누가 뭐라고 하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 앞에 적대(敵對)라는 말이 붙는다. 그것은 학생도, 교사도 마찬가지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댓글을 잘 읽어보고 답을 좀 해대라는 메시지가 왔다. 지인은 “교육부 2단계에도 교사는 출근 이후 등교·원격수업이 원칙”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말하고 있었다. 필자는 댓글을 모두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광복절 기념 축사를 다 듣지 못하고 구역질 때문에 채널을 돌린 그때의 느낌과도 같았다. 교사와 일반인으로 편이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리고 직감적으로 이제 이 나라 교육도 문을 닫아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가 학교 기능을 하지 못한지가 오래이지만, 그래도 좋든 싫든 학생들과 교사들은 학교에는 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자율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8월 학교 교육도 글렀다.

2020-08-19

집 사서 부자 되는 사회를 살아가며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내겐 가장 큰 낙이었다. 신해철 노래처럼 ‘고흐의 불꽃같은 삶’이나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에 대해 이야기 한 건 아니지만 설익은 머리로 쥐어짜낸 개똥철학을 나누는 게 좋았다. 아니면 재밌게 본 영화 얘기, 재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 이야기, 야구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냥 영양가 없는 우스갯소리들. 그렇게 다채롭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좋아 그렇게 술을 마셔대곤 했다. 그런데 서른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술자리의 재미가 뚝 떨어져버렸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밤새워 침 튀어가며 떠들던 이야기들이 머물던 곳에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량주니 잡주니 하는 주식 이야기, 누구랑 누구의 팔자를 고치게 해 주었다는 가상 화폐 이야기, 그리고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 이야기. 어제 만난 친구들도, 그 전에 만난 친구들도 한참을 부동산에 대해서 떠들었다.친구 A가 무리한 은행 대출로 집을 사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를 말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더 큰 집이 필요해질 텐데,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서울 집값이 설마 더 오르겠냐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비웃듯 집값은 폭등했고, 친구는 그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A 본인에게는 성공신화일지 모르겠으나 자리에 있던 나머지들에게 그 이야기는 다소 허탈했다. 늘 그랬다. 가상화폐 투자로 누가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어디 어디 주식을 사서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나는 무언가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투자가 성공신화로 다가올 때, 대부분에게는 그때 빚을 내어서라도 했어야 하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해 원통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한창 잘 나가던 30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아버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차라리 잠실 쪽에 아파트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강백수 ‘타임머신’ 중.사회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대개는 비약적인 경제적 성취를 사회적 성공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노동이나 자영업, 소규모 사업 같은 행위를 통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는 어떤 때는 주식이었고, 어떤 때는 가상화폐였으며, 언제나 부동산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작은 ‘사업만 너무 열심히’하다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하며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우리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도 글 쓰고 노래를 지어 부르는 노동을 통해 언젠가는 대단한 부는 아니더라도 가족들 번듯하게 건사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 나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현재를 버텨나갈 수 있는 동력과 미래에는 현재보다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일이 아버지에게는 작게나마 사업이었고, 내게도 어설프게나마 대중예술이다.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한 동력으로서도 위태롭기만 한 직업인데, 지금보다 미래에 상황이 비약적으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언제나 희박하기만 했다. 그나마 ‘좋은 직업’이라 여겨지는 안정적인 직업들을 가진 친구들 역시 현재를 살아나가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까마득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노동으로 삶이 나아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방법은 오로지 투자, 부동산일 수밖에 없다.정부는 8월 4일,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이 대책이 정말 새로운 대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포털사이트에 ‘부동산 대책’이라고 검색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8.4 부동산 대책만 있는 게 아니라 7.10부동산 대책이 있었고, 6.17 부동산 대책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까지 현 정부는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을 내어놓았다는 것. 현 정부만 그랬을까, 여태까지 어떤 정부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막아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친구들은 누구도 이번 대책이 부동산 폭등 현상과 투기를 훌륭하게 막아낼 거라고,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될 거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현실화 할 거라고, 20년 넘게 이루지 못한 숙원을 정부가 이루어낼 거라고 믿지 않는다.나라의 똑똑한 분들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나라고,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동풍에 나부껴 눕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떼기 같은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 와중에 헌법에 적혀있는 것처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도 정보랍시고 주고 받아야 하고, 집 잘 사서 부자 된 친구들을 칭송하며 그들로부터 뭐라도 비결이 있을까 기웃거려야 하고,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빚을 져서라도 내 인생을 역전시킬 집 한 칸을 살 궁리를 해야 하고, 그 조차도 어렵고 어두운 나 같은 애들은 멍한 얼굴로 그렇게 재미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술자리에서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나 하며 지루함을 견딜 수밖에.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여러 정부를 거치며 많은 분들이 개선을 위한 노력이야 해 오셨겠지만, 나는 진실로 이러한 현실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발 빠르게 집을 얻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은 사회 구조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동산을 비롯한 투자정보가 풍요롭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이들이 제 자리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하는 것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풍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겁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누군가가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하며 ‘불안한 맘’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모두가 투자, 혹은 투기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 모든 일들은 과연 가능할까.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겠지. 나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부동산과 주식과 가상화폐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인 이들이 꼭 그렇게 해 주리라 한 번 더 믿어보며.

2020-08-18

코로나와 트로트, 한국 정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루한 장마같이 코로나의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기를 끌었던 방송 프로는 트로트 열풍이었다. 어느 종편에서 시작한 여성 트로트 경연은 여러 방송으로 확대되어 방송가를 뒤흔들었다. 뒤이은 남성 트로트 경연은 더욱 인기 프로그램이 되어 여러 명의 신인 가수를 배출했다. 그간 젊은 세대들이 거부하고 인기 없었던 트로트가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의 비극이 이 땅에 트로트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코로나 시대 트로트를 들으면서 한국 정치의 파행을 생각한다. 방송가에서 트로트가 다시 각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트로트는 한동안 뽕짝으로 불려지며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 받았다. 우선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문화가 가족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코로나라는 비극적 상황이 트로트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초래한 결과이다. 트로트 특유의 슬픔과 이별, 한이 서린 노래 가사는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제가 되었다. 트로트에 심취한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트로트가 힐링 수단이 되고도 남았다. 전쟁과 비극, 가난과 보릿고개, 이별과 달뜨는 저녁, 봄바람과 연분홍 치마는 자신의 희망봉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파행적인 정치 현실은 아무런 위안도 희망도 주지 못했다.트로트 가수는 시청자들에게 노래로서 마음을 위로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민초들의 희망마저 빼앗아 가 버린다. 트로트는 민초들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묶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가슴에 불만 지르고 갈라놓았다. 검찰 개혁, 부동산 정책, 비리 수사 등은 본질에서 멀어져 국론 분열만 조장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여전히 이념 과잉과 진영 대립, 지역적 틀에 묶여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이번 트로트 경연은 연줄이나 배경보다는 공정한 룰을 통해 신인을 과감하게 선발하였다. 나이, 연령,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승패를 갈랐다. 내공과 실력을 쌓은 무명 가수도 판정단의 공정한 심사와 일반 관객의 투표로 선발되었다. 솔직히 트로트 경선 방식은 한국 정치의 대선 후보나 당대표 선거과정 보다 공정성이 담보되었다. 우리 정치도 이제 패거리 정치, 마타도어, 흑색선전 정치를 탈피해야 한다. 우리 정치도 이제 트로트 경선처럼 배경과 힘없는 흙 수저가 등판하여 성공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우리 한류는 이제 곳곳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코로나의 ‘K 방역’도 세계적 모범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우리 경제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의 정치도 이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로 재탄생해야 한다. 경선을 마친 트로트 가수들의 상호배려 하는 정신이라도 배워야 한다. 아직도 우리 정치는 상호 비방과 폄훼를 일삼고 승자 독식, 패자 거부의 저주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 트로트 계에는 존중받는 원로들이 여럿이지만 우리 정치계에는 아직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 한 명 없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2020-08-18

저 이런 사람입니다만….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파악하는 일이란 만만찮다. 예고된 만남인 경우에는 직장, 지위, 세평 등 여러 정보를 가지게 되어 상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우연한 만남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상대에게 자신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것, 상대방이 인내하며 듣고 있을 리 만무하고 예의도 아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oo물산 대표 홍길동’, ‘ oo부 국장 아무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 직위,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명패 교환이 이루어진다. 눈길은 순간 상대의 이름 앞에 새겨진 수식어에 먼저 가게 된다. ‘기업대표군’,‘꽤 높은 나랏일 하는 사람이네’,‘쳇, 월급쟁이잖아’, ‘오잉, oo사!, 전문직 고소득자’ 짧은 시간 안에 인간상품 등급이 매겨진다.허름한 차림과 어눌한 말투 탓에 가볍게 대접받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름 앞 수식어 때문에 순식간에 상대로부터 겸양의 말과 상석을 양보 받는 간사한(?) 리액션이 펼쳐진다.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 직업으로 등급 매겨진 인간역사는 유구하니까. 누구나 이삼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100여명에게는 족히 뿌릴 수 있는 명함이 사회생활 기초용품이 된 지 오래다.명함이 어느 날 벼랑 끝에서 갈 길을 잃게 된다. 이직, 실직, 퇴직이 되면 이름은 있는데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날아가게 된다. 명함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슬픈 눈동자의 소녀처럼 유폐된 자신을 바라보는 일상에 사람 만나기가 꺼려진다. 막상 알지 못하는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구차해진다. ‘한 때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과거형 문장이 왠지 어색함을 넘어 비굴함마저 든다.퇴직한 선배와 조우한 적이 있다. ‘oo기획 감사 왕선배’ 새로 취업했다며 명함을 건넨다. 새로운 일자리로 뒷방노인 신세를 탈출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런데 명함 뒷면에 노안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읽기 힘든 빽빽한 활자가 가득 차 있었다. 현역시절 본인의 화려한 경력이 이력서처럼 빼곡히 순차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제법 거물로서 활동했던 이력이 맨 위에 올라 있었다. 지금은 이런 일하지만 한때 ‘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메마른 성대로 최대한 힘을 주어 웅변을 내뱉는 것 같았다. 그의 빛바랜 투혼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잊혀져가는 자신을 소개하는 친절한 방법을 구사하는 재빠른 재사회화의 기법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명함에 새겨진 이름 앞의 수식어로 사람을 오롯이 등급매기는 세태가 현실이기 때문이다.‘oo엄마’의 실종된 명함은 어쩔건데? 전업주부들의 항의가 귓전에 아른거린다. 앞면에 ‘위대한 대한민국 전업주부 ooo’. 뒷면에는 ‘아들 둘 모두 현역병에 차출시킨 위대한 애국엄마, 찌질이 남편을 대기업 사장반열에 올린 내조의 여왕, 동네방네 정보수집과 밑바닥 민심을 샅샅이 꿰차고 있는 열혈 아줌마 등등’, 전업주부로서 화려하고 찬란한 직책과 이력을 새겨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습니까?(급 존대어를 쓰게 된다)

2020-08-18

제국과 코로나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남긴 이 충무공의 말이다. 이 유언은 승정원일기와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적에게’라는 말은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유언을 남긴 사람이 또 있다.몽골제국의 기틀을 다졌던 칭기즈 칸이다. 그는 서하 정복을 앞두고 낙마사고 끝에 병사하면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적이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절대로 곡을 하거나 애도하지 말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날짜가 1227년 8월 18일, 바로 어제였다.몽골제국.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나라이다. 몽골제국의 영토는 최대 3,300만㎢에 이르러 유럽과 중근동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6.6배나 되었다고 한다.고려는 칭기즈 칸 사후인 1231년에 첫 침공을 받은 후 1257년까지 몽골과 아홉 차례의 전쟁을 치른 끝에 결국은 패배하여 몽골의 간섭을 받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삼별초의 대몽 항쟁과 같은 끈질긴 저항과 협상을 통해서 명목상으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경기도 강화 고려궁터, 용인 처인성, 제주도 항파두리 토성, 그리고 경상북도 상주 백화산성 등 우리나라 곳곳의 항몽 유적지는 몽골의 침략과 간섭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고 또 고려의 민중들이 얼마나 거세게 저항하였는지를 엿보게 해 준다.전 세계를 말발굽 아래 초토화시켰던 몽골제국은 1271년 국호를 원으로 개칭한 후 100년도 되지 않은 1368년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몽골이라는 이름만 겨우 이어받은, 러시아와 중국의 사이에 위치한 영토도 경제력도 미약한 나라로 쪼그라들었다.우리나라에는 여성 한복의 족두리, 신부의 뺨에 찍는 연지 등의 풍습과 ‘송골매, 보라매, 가라말, 조랑말, ~아치’ 등 몽골어의 흔적만을 남겨 놓았다.몽골제국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던 로마제국도 사라지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었던 대영제국도 찬란했던 빛을 잃어버린 오늘날, 코로나가 지구 전체를 휘감은 채 세계인을 위협하고 있다.2020년 8월 18일 낮 3시 현재, 코로나는 2천2백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78만2천여 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며 세계 214국에 퍼져 있다. 가히 코로나제국이라고 할 만하다. 창칼과 총도 없고 기마대도 탱크도 비행기도 없는 코로나 군단은 조용히 그러나 세차게 전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 그 강하고 무서운 힘을 우리는 지금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잦아드는가 했던 우리나라의 코로나도 최근 다시 확산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칭기즈 칸은 죽었지만, 코로나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과 몽골제국과 대영제국이 사그라든 것처럼, 14세기 유럽에서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이 종식된 것처럼 결국에는 코로나제국도 사그라들 것이다. 그렇다고 피해를 빤히 바라보면서 사그라들 때까지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방역 당국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은 더 철저한 방역과 재난 극복의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지금은 함께 할 때이다.

2020-08-18

민심무상(民心無常)

민심은 말 그대로 백성의 마음이다. 통치자 입장에서 보면 대중의 심리를 이르는 말이다. 통치권자가 법보다 대중의 요구를 중시하게 되면 국가의 통치기능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심이다.국민정서법도 이런 배경의 용어다. 실정법에는 어긋나지만 국민의 법 감정에 호소하여 법보다 우선하여 판단하는 경우다. 법 경시 풍조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국민정서법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민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예로부터 민심을 천심이라 불렀다. 세상 민심이 곧 하늘의 뜻이란 말이다. 민본주의나 민주주의의 민(民)은 백성을 말한다. 맹자가 민본사상을 주장한 것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민(爲民)정치가 같은 말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같은 의미다. 헌법 1조에 표기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민심무상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다(民心無常). 군주가 선정(善政)을 베풀면 사모(思慕)하고 악정(惡政)을 하면 앙심(怏心)을 품는다”고 했다. 불교에서 무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민심무상은 백성의 마음이 혜택을 주는 쪽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민심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여론이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에 줄곧 뒤져왔던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으로 여당을 앞섰다. 100년 집권을 운운하던 여당에 비상이 걸리고 야당은 야당대로 민심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예로부터 민심을 물에 비유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정치권이 민심무상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18

때로는 말씀보다 무거운 침묵으로… 영동 영국사(寧國寺)

산세가 빼어나 충청북도의 설악산이라 불리는 천태산, 그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영국사를 찾아 내비게이션에 하루를 맡긴다. 차는 산길을 한참 올라 화전민들이 살았을 법한 평평한 고원지대로 들어서고, 한 때는 밭이었을 것 같은 평지와 드문드문 몇 그루의 호두나무들이 보인다.영국사는 법주사의 말사로 527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했다. 그 후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해 절을 국청사라 부르고 지륵산이던 산 이름을 천태산이라고 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원 마니산성에 머물며 이절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 국태민안이 찾아와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천연기념물 제 223호인 영국사 은행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반길지 내심 기대가 컸는데 첫 만남이 실망스럽다. 축대 아래에 자리를 잡은 터에 700년 된 고령의 은행나무는 나이에 비해 어딘지 왜소해 보인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 내어 운다는 나무, 불교가 전래되어 들어올 때 같이 들어 왔다는 설로 수령이 부풀려지기도 하는 은행나무가 사진과는 많이 다르다.절 앞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하고, 만세루는 보수 중이라 분진 방지막을 두른 채 어수선하다. 고령의 은행나무와 절 사이에 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먼 길을 달려왔지만 나무와 나는 어떤 교감도 나눌 수 없다. 축대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서자 나무의 웅장함이 비로소 보인다.또 하나의 길이 계단 아래로 이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일주문 쪽의 광경이 그제서야 잡힌다. 나는 두 갈래의 길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힘이 빠진다. 어떠한 노력이나 수고로움도 없이 무례하게 절의 옆구리를 박차고 들어온 셈이다.한참 동안 나무를 올려다보지만 그의 시선은 먼 곳을 응시할 뿐이다. 쉽게 얻은 것일수록 감동은 적고 쉬이 잊혀질 수밖에 없다. 편리함에 중독되어 가는 현대인들의 난치병과 우리가 잃어야 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마음을 씻으며 일주문을 들어설 때의 감회와 고령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나무는 품격이 넘치지만 미동도 않고, 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언어 이전의 언어를 애타게 불러본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산중에 밤이 찾아오면 달과 별들 모두 내려와 은행나무에 깃들리라. 새벽을 여는 도량석 목탁소리에 밤새 피안에 들었던 나무는 또 하루를 열 것이다.양산 팔경 중 일경에 속한다는 곳, 영국사를 찾는 방문객은 의외로 많았다. 그에 비해 절은 소박하다. 마당을 지키는 단아한 수형의 단풍나무가 눈길을 끌고, 그 옆에는 오래된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보물 제 533호인 삼층 석탑을 지킨다. 그 석탑은 또 대웅전을 지킨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시선은 오로지 한 곳으로 모아져 있다. 나만 홀로 무언가를 찾아 절간을 두리번거린다.바깥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대웅전 법당에서 바라보는 한여름 풍경은 여유롭다. 낯설고 어색한 마음을 가라앉힐라치면 모습을 감춘 만세루의 정경이 안타깝게 아른거린다. 오늘따라 부처님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법당에 앉아 정신없던 한 주를 돌아보고 싶은데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다.경내는 약속이나 한 듯 침묵 속에 잠겨 있고, 7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도,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백팔 배를 올린 부처님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다시 먼 길을 돌아갈 생각에 마음만 초조해져 온다. 법당을 나와 천태산 주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간 곳에 있었다는 옛 절터를 멀리서 더듬어 보다 발길을 옮긴다.또 다른 보물이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오른다. 개발을 서두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말을 걸어온다. 당신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고. 보물 제 534호 원각사비와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보물 제 532호 팔각원당형 승탑조차 감흥 없이 둘러본다. 한여름의 태양을 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산길을 무작정 걷고 싶다.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나를 석종형 승탑이 지긋이 바라본다. 내 앞에는 높은 곳을 향해 모든 것을 버렸을 맑은 생 하나 말없이 서 있다.조낭희 수필가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나는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음에도 단호히 뿌리치지 못했다. 절 기행은 자연히 뒤로 밀려났고 나는 시간을 다투며 절을 찾아 나서야 했다. 어쩌면 영국사의 침묵은 예고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모든 일에는 과정의 무게가 따르는 법, 그것을 기꺼이 짊어질 용기도 없이 섣불리 절 문을 두드렸다.솔밭에서 만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끊어진 길 앞에서 홀로 서성이고 있는 나, 그 모습은 장마가 할퀴고 간 상흔보다 더 남루했다. 영국사의 침묵은 그런 나를 향한 엄중한 경고였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내려오는 길에 대웅전을 향해 두 손 모을 때 내 안에 길이 보인다. 희미하게 영국사도 보인다.

2020-08-17

거대한 풍경에 놓인 정물(사람)의 삶

‘2천년의 도시가 2년만에 잠겨 버린 곳’ 샨사는 차오르는 댐의 수위와 함께 떠나가고, 잠기고, 무너지는 과정을 겪는다.영화 속 모든 풍경은 잠긴 것과 잠길 예정인 것, 무너져 내리는 것들과 그 위에 새롭게 건설된 것들의 연속이다.이러한 풍경 속에서 사람은 댐의 수위에 따라 떠나가고 이동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어느 누구도 감격스러워 하거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자가 말한 물의 이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 속 산샤에 들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간은 댐의 수위가 차오르는 과정까지의 시간이며, 그 시간 속에서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긍정과 부정이 없으며, 기쁨과 분노가 모두 차오르며 흘러가는 물을 닮은 사람들.‘스틸 라이프’는 산샤댐 건설의 과정과 피해, 개발에 밀려 황폐해져가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새롭게 건설되는 것보다 무너지고 잠기는 것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곳에서 과거에 묶여, 혹은 그 과거를 확인하기 위해 산샤를 찾거나 산샤에 머문다.산샤(三峽)로 한 남자가 스며든다. 16년 전 떠난 아내가 남긴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들고 아내를 찾는다. 이미 그 주소는 수몰지역이 되었으며, 철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휴일이면 아내를 찾아 나선다.소식이 끊긴지 2년 째 남편을 찾아 산샤로 찾아든 또 한 명의 여자. 그녀 역시 산샤의 풍경을 배경으로 남편을 찾아 산샤를 떠돈다.지아 장 커 감독의 영화 ‘스틸 라이프’는 산샤라는 공간, 하루 하루 모습을 달리하는 그곳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이 배경이 되고 은유가 되어 풍경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가는 인생들을 배치시킨다.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가 16년의 공사를 거쳐 단 2년만에 물에 잠겨 버린 곳으로 16년전 헤어진 아내를 찾아 2년 째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산샤를 찾아 온 것이다.샨샤가 변화를 거친 기간과 그곳으로 스며든 이들의 시간이 나란히 병치된다. 지폐속에 남은 산샤의 아름다웠던 풍경을 이야기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화면에 놓는다. 그 속에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이주했으며,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했던 장소가 어떻게 수몰되어갔는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아름다웠던 과거의 풍경과 아름다운 지금의 풍경이 교차된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인간이 만든 풍경이다.자연이 만든 풍경이 물 속에 잠겨 갈 때, 인간이 만든 풍경은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을 허무는 과정에 드러나는 폐허의 아름다움이며, 그 폐허 위에 장엄하게 건설된 다리와 댐의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스스로가 만들어 낸 아름다움 위에서 인간은 춤을 춘다.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그저 지금, 이 영화의 시간 속에서 제3기 수위가 차오르기 직전인 2기와 3기 사이의 한정된 시간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풍경에 둘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놓인다. 짧게 등장하고 퇴장하는 이들의 모든 사연은 깊이와 넓이가 있겠지만 카메라는 그 속에 머물지 않는다.그렇게 영화는 끝까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 개의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그렇다고 불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현재의 모습이 불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다.철거의 과정에 유적이 나와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이들과 철거 현장에서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이들과 그 위에 거대한 공사를 완성한 이들 모두가 산샤댐 수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다. 거대한 공간(혹은 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인간은 영화의 제목처럼 하나의 ‘정물’로 머문다.그 ‘정물’은 댐의 수위에 따라 위로 이동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갈 것이다. 영화 속 풍경과 정물 속에서 UFO가 하늘을 날고, 창밖으로 보이던 건물이 갑자기 로켓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놀랍거나 당황스럽지 않다.그것은 영화 속 풍경(산샤)에 놓인 정물(사람)의 삶이 어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놀랍지 않은 모습으로, 역사가 수몰되고 새로운 건설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문화기획사 엔진 42 대표

2020-08-17

공인의 봉사활동

강희룡서예가공자가 제시한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은, 먼저 그 행위를 보고, 다음은 어떤 동기에서 그런 행위를 했는지를 살펴보고, 진정으로 기꺼운 마음에서 한 행위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사람이 어찌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하지만 드러난 행위 이외에 그 동기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측은지심이나 즐거워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늘 남의 행위에 대해 의심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것이 위선자가 선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면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그럴듯하게 궤변으로 포장해서 남의 이목을 속이려 드는 행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게 되고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특히 공인의 경우에는 국민들은 더욱 화가 치밀게 된다. 예컨대 2017년 7월 봉사활동을 위해 청주 수해 현장을 찾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황제 장화 논란이다. 당시 홍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 불참하는 대신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수해현장을 찾았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준비된 장화를 신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장화를 신은 게 아니라 관계자가 허리를 숙여 신겨줬다. 봉사활동 시간도 45분 늦게 현장에 도착해서 실제 작업한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날 자신의 봉사활동을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해 보는 삽질이라 서툴렀지만 흡족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피해를 당한 주민들에게는 봉사로서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친 것이다.올해 장마는 유난히도 길고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져 그 피해가 엄청나다. 정의당 대표 심상정 의원이 경기도 안성의 한 수해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허나 수해복구를 도왔다기엔 옷차림과 신발이 누가 보아도 너무 깨끗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정의당에서는 심 대표가 보여주기식 봉사를 한 게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긴급복구 현장에 실질적 도움이 못되면서 민폐만 끼친 예견된 결과가 입증된 것이다. 또한 청와대가 ‘문의가 많아 알려드린다.’며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수해 복구 현장 봉사활동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이 사진을 두고 여당 인사들이 김 여사 ‘예찬경쟁’에 나섰다. 정청래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 ‘그 어떤 퍼스트레이디보다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썼으며, 민주당 8·29 전당대회 최고위원에 출마한 노웅래 의원이 김 여사와 2017년 허리케인 하비의 상륙으로 멜라니아 여사가 하이힐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한 재난패션을 비교하며 ‘클래스가 다르다’는 찬사를 보냈다. 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도 김 여사의 ‘진짜 봉사’라고 칭찬했고,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는 ‘진정성과 순수함을 느끼게 된다며 측은지심을 구비한 분에게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어떤 이들이 청와대에 김 여사 봉사를 문의해서 사진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눈치 살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얄팍한 아부성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행위에 국민들은 혀를 내두른다. 봉사는 음덕(陰德)의 일종이다. 누구라도 봉사활동을 여러 통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이미 ‘봉사’로서의 가치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2020-08-17

창백한 푸른 점

김현욱시인보이저(Voyager) 호는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에 각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무인 우주탐사선이다.8월 20일에 발사된 것이 보이저 2호, 9월 5일에 발사된 것은 보이저 1호다. 보이저 2보다 보름 정도 늦게 출발했지만 보이저 1호는 지름길을 이용하여 1979년 3월에 목성을, 1980년 11월에는 토성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태양에서 61억km 떨어진 지점에서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한 사진을 전송하였다. 그 사진이 바로 칼 세이건(1934~1996·미국의 천문학자)의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다. 당시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았던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동명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저서에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중략)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앨 고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의 마지막에 이 사진이 삽입되었는데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라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했다. 지구 온난화를 지금 당장 멈추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앨 고어는 이 사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상 기후의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창백하게, 두렵다.

2020-08-17

지역 문화예술과 전통공예를 살리자

최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코로나19의 백신 개발에 나섰으나 일단은 러시아가 한발 먼저 내디딘 모습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이 백신이 공인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주요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듯이 과연 러시아 의료산업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백신 개발임을 증명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국익을 우선한 또 다른 웃음거리의 하나로 끝날 것인지도 함께. 이와 별개로 세계 각국의 정책당국자들은 여전히 자국의 경제회복과 고용 창출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어떤 국가나 지역이든지 모든 분야에 걸쳐 총체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지원대상에서 가장 뒷전에 놓이는 분야가 있다.어쩌면 아예 머리에서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음악, 전통공예, 미술, 역사나 국학연구, 문학 등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신문화와 연관성이 깊은 문화예술, 인문분야다. 일반적으로는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야 국악이나 판소리와 같은 민족 예술 공연에 눈을 돌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향토사 등 인문분야를 살펴보게 되며, 전통공예나 현대 작가들의 미술작품 전시회를 둘러보며 소장 욕구를 키우기 마련이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정신문화가 밀리는 것은 그만큼 삶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당연히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경제 전반의 위기상황에서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문화예술 분야가 큰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가나 가계가 부유하더라도 문화예술, 인문분야에 대한 수요는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체질적으로 문화예술의 소비는 사람들이 모여, 접촉하고, 대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인데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이동 자체가 제한되는 이번 사태는 문화예술인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실제 일본의 전통문화예술계는 최근 그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 전국에서 전통공예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367개 사업체 가운데 지난 4월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0% 이상 줄어든 업소가 56%에 이르며, 이들 중 약 40%는 폐업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백화점, 특급호텔 등의 유통망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 더욱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매출 수입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지속되면 경영악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전통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후계자가 부족하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들은 독자적인 판매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경제회복이 지연되면 결국 폐업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사실 우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당장 포항지역만 하더라도 그동안 자생적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젊은 문화예술인들이었지만 후계자를 키울 정도의 여력은 없어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만 있다. 국악, 수묵화, 전통공예, 판소리 등을 이어가고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들도 허다하다. 지역 문화예술인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보다 더욱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소수이긴 하겠지만 지역의 전통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과 애향심만으로 스스로 호구지책을 마련하면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후계자 후보들은 거의 중도에 포기할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포항시가 문화예술교육 거점으로 선정된 것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들에게 작용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포항시가 진정한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지원, 특정 기업의 메세나 활동, 일부 관계자의 기부 행위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문화예술은 돈으로 사면 생산공장이 돌아가면서 활성화되는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문화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경기가 좋고 성장 단계에서 가계의 소득이 지속 증가하던 시기에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경제 성장 단계에서는 축적된 재산을 이용하여 고미술품부터 전통 회화, 전통공예품은 물론 현대 작가의 작품을 불문하고 일종의 투자 등의 목적으로 관련 소비가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도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국악이나 판소리 공연의 관람부터 전통도예가의 작품이나 현대 화가 미술작품의 전시회관람, 작품구매 등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위기에 닥치면 상황은 급변한다. 문화예술의 소비자 가운데 허영이나 과시 목적의 소비계층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다. 기업이나 단체의 메세나 활동을 위한 예산도 경제위기에서는 축소 내지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평소 지역의 정신문화나 인문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뜻있는 애호가인들 도리가 없다. 당장 생계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상이 한꺼번에 몰리면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생각지도 않던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이번 위기를 계기로 지역 문화예술계도 고령화의 진전, 후계자 부족,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유통부문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일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자체나 단체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을 보호하여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 전통공예품, 회화나 조각 등의 소비자와 공급자를 중개할 수 있는 ‘시장’ 예를 들어 온라인중개사이트를 구축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공연이면 공연기관의 포스터나 안내, 전시회면 전시회를 개최하는 미술관의 홍보만이 유일한 시민과의 소통 채널이다. 문화예술인 자신들도 그동안 스스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전통공예작품이나 예술작품을 오직 오프라인의 전시회를 통해 직접 구매자와 대화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공연예술이나 전통공예, 문화예술 서비스는 미술관, 공연장 등과 같은 ‘공간적 장소’를 통해서만 가능한 수준 높고 차원이 다른 예술이라는 자존감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실제 고미술품이나 골동품과 같은 문화재급의 예술작품들도 카탈로그나 화상을 통해 수십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이 경매로 거래되기도 한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작품을 온라인 전시하고 택배 배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문화예술작품이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판매되어야만 수준 높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며, 택배로 주문 판매되는 작품이라고 해서 문화예술작품의 품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화예술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편하게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포항이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행정기관의 지원만 바라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시민 한 사람당 단돈 천 원이라도 들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의 작품 하나를 소장하기로 하자. 비대면 시대인만큼 자기 동네부터 살펴보자. 커피숍에서 모인 시민들이 자신이 최근 구매한 작품이나 만나본 지역 문화예술인의 작품세계를 거침없이 이야기하게 되는 순간 포항은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17

살인진드기병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살인진드기병 주의보가 내렸다. 학술용어로는 중증열성혈소판 감소증후군(Severe Fever with Thrombocytopenia Syndrome·SFTS)으로 불리는 살인진드기병은 제3급 법정감염병으로, SFTS 바이러스에 감염된 참 진드기가 사람의 피부에 붙어 흡혈할 때 인체 내로 바이러스가 주입되어 발생하는 중증의 인수 공통 감염병이다.2011년 중국에서 최초로 SFTS 원인 바이러스가 확인된 이후 2013년 5월 국내에서도 첫 환자가 보고됐다. 진드기의 활동 시기인 매년 4월부터 11월 사이에 전국적으로 발생한다.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발열이 있고, 피로감, 두통, 근육통 등이 동반하지만 구역감과 구토, 복통, 설사 등의 소화기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70세 이상의 고령이거나 다른 만성질환이나 면역저하 질환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 사망할 확률이 높아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아직까지 치료효과가 확인된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따라서 병원에 가더라도 보존적인 치료가 주된 치료가 된다. 대부분 보존적인 치료만으로도 회복되지만 약 20%가량은 중증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작은소피참진드기의 활동 시기인 봄철 4월부터 11월 사이에 산이나 들판에 들어갈 때에는 긴 소매, 긴 바지 등을 입어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고, 야외 활동 시 약국이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기피제를 뿌리는 게 좋다. 특히 풀밭 위에 옷을 벗어 놓고 눕거나 잠을 자는 것은 피하고, 야외에서 활동 후에는 즉시 샤워나 목욕을 하고 옷은 세탁하는 것이 좋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7

외로울 때는 시 쓰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며칠 전 대학원 은사님께서 시집을 보내오셨다. 세 번째 시집이다. 3년 전 첫 시집을 받았을 때는 참 낯설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한평생을 학술 논문만 쓰신 분이 갑자기 시집이라니, 평소 이미지와 조화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앞뒤 표지를 훑어보고 나서 첫 장을 들추니, ‘매화 한 그루’라는 시가 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매화를 찬양하는 시겠거니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난초 한 촉 간수 못하는 / 손길로야 널 어찌 / 보듬겠냐마는 // 벌 나비 올 때까지만이라도 / 나 네 곁에 있어 주면 / 어떨까’얼핏 보면 매화 옆에 있고 싶은 것이 매화를 위한 것인 듯하지만, 사실은 매화가 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후기를 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인과 고독은 동의어처럼 보인다.’정년 퇴임하신 지 20여 년이 지난 데다 몇 년 전 상처하시고 자제들은 모두 분가하였으니 아무리 철학으로 중무장했다 한들 외로움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셨나 보다.‘반가사유상’에서 ‘윤회의 굴레 벗고 / 해탈의 경지로 / 비상하기까지 // 밤하늘의 적막 속 / 외로움 삼키고 빛 뿜는 / 샛별만이 단짝일 듯’이라며 부처님조차도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니 말이다.시를 읽다 보니,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로움과 그리움에 힘들어하시다 93세에 생애 처음으로 ‘思婦曲’(아내를 그리는 노래)이라는 시를 쓰셨다.‘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더라도 /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산 것보다 좋다 // 그것은 / 발로 밟아도 지워지지 않는 공룡 발자국 같은 /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 누군가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며 사는 것도 좋다 // 당신이 떠나기 20일 전 나를 불러 당신이 먼저 죽소 / 그 한 마디는 내 심금을 울렸소.’라시며 어머니를 그리워하셨다.시와는 인연이 먼 나 역시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저절로 시가 써졌다. 천성이 무뚝뚝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데다 외롭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사랑한다는 말에는 더더욱 오글거리는 성격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인간의 조건 앞에서 말문이 터졌나 보다.그 당시 한시를 배우며 이런 시를 썼다. ‘送君’(당신을 보내고)이다. ‘歲晩愁雲滿江城 (세만수운만강성) 세밑에 구름 같은 근심은 강성에 가득한데 // 送君塵外夢難成 (송군진외몽난성) 당신을 다른 세상에 보낸 후 꿈에서도 만날 수 없네.’은사님 시집을 읽다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 선배는 현직 교수인데다 워커홀릭 기질이 다분하여 엄청 바쁜 줄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었다. 선생님 시집을 받았는데 같이 만날까요? 선배는 흔쾌히 약속을 잡는다. 시집 받은 지 세 시간 만에 세 사람이 몇 년만에 만나게 되었다.시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니 외로울 땐 시를 쓰자.

2020-08-17

인강에 지쳐가는 캠퍼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많은 이들이 오랜 해외생활을 끝내고 돌아와서 당황하는 건 이해하기 난해한 신조어의 등장일 것이다.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시절 서클(circle)이라고 부르던 말은 동아리라고 바뀌었고 커트라인(cut line)이라고 부르던 말도 입결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엉뚱한 단어로 바뀌어져 있었다. 인강이라는 말도 신조어다. 인터넷 강의를 줄여 쓴 말인데 “인강의 1타 강사”라는 국적 불명의 말도 쓰인다. 인터넷 강의를 최고로 잘하는 강사라는 말이다.캠퍼스가 인강에 지쳐가고 있다.코로나19 때문에 대학가에는 초유의 인강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교과목 강의는 물론 졸업식, 입학식도 각종 세미나나 교내 집단 행사 등이 모두 인강으로 대치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주요 대학들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번 가을 학기에도 온라인강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신입생들이나 지역출신 학생이나 유학생들은 고향이나 본국으로 돌아가 온라인 강의를 듣겠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대학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이나 일본 모두 최근 트위터에선 ‘대학생의 일상도 중요하다’는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확산되고 있고, ‘가을학기도 온라인으로 결정됐다. ‘벌써부터 지친다’ ‘온라인 수업은 대면과 질이 다른데도 학비는 왜 똑같은가?’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는 대학들에 온라인 수업과 대면수업의 병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대다수 대학은 여전히 학생들의 캠퍼스 생활보다 감염 확산 방지가 우선이라며 대면수업에 소극적이다.한국은 제한적으로 교수들의 대면 수업을 허용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교수들의 대처 방안도 다소 신경질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오가는 활기찬 모습이 캠퍼스의 모습이건만 지금 캠퍼스는 학생이 보이지 않는 썰렁한 캠퍼스로 변했다. 학생, 교수, 직원 모두 지쳐가고 있다. 불안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도 암암리에 앓고 있다.코로나19로 빚어진 캠퍼스 대참사로 인하여 캠퍼스는 삭막해져 가고 있다. 일부 교수들은 불필요한 회의나 출장이 크게 줄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교수와 학생, 교수와 교수간의 대화도 사라지고 침묵이 감도는 것이 캠퍼스의 현실이다.아마 캠퍼스는 더 삭막해 질 것이고 지쳐갈 것이다.평생을 살면서 마스크를 6개월 이상 써야 하는 상황을 당해 본 적이 없는 데 지금 우리는 인류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모두들 지쳐 가지만 캠퍼스는 그 정도가 더 심한 듯하다. 인강이 언제 끝날 것인가? 아무도 예측을 못하는 가운데 러시아에서는 백신이 개발되어 출시 되었다고 한다.신규 감염자 제로의 시간이 언제 올 것인가? 꽃이 피었던 캠퍼스는 이제 녹음이 푸르고 싱그럽다. 언제 학생들과 교수들이 캠퍼스로 돌아올지 기약은 없고 이제 곧 캠퍼스에는 낙옆이 쌓일 것이다.지쳐가는 캠퍼스는 언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2020-08-13

개망초꽃 여름

김병래시조시인여름 들녘에 개망초꽃이 지천이다. 누가 뭐래도 여름은 개망초꽃의 계절이다. 아무도 개망초꽃을 피해서 여름을 건너갈 수는 없다. 이 땅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고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 것 같지만, 개망초는 사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라 한다. 그 시기도 구한말쯤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마치 서양문물이 그렇듯 지금은 한반도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번성한 풀이다.개망초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망초란 풀이 따로 있다. 망초도 개망초 못지않게 흔한 풀지만 좁쌀처럼 자잘한 꽃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통은 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면 급이 좀 낮은 걸로 치지만 개망초꽃은 예외다. 망초나 개망초의 이름에 망(亡)자가 들어간 력에는 귀화해서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와 겹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란 원망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후에 우리나라의 부흥과 함께 왕성한 번식력으로 널리 퍼졌으니 이제는 망초가 아니라 흥초로 불러도 되겠다.개망초꽃은 흔하디흔한 꽃이다. 지천(至賤)이란 말이 그렇듯 흔히들 흔한 것은 천한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귀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착각이고 오류다. 세상에 가장 흔한 것이 공기지만 없으면 단 5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이듯, 흔한 것이 값나가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값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의미도 된다. 개망초는 옥토든 박토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기름진 땅에서는 무성하게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는 왜소하게 자라지만 환경이나 조건을 불평을 하거나 비관하는 기색이 없다. 소박한 꽃이지만 결코 초라하지는 않다. 크고 화려한 꽃들에 비교해서 조금도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다. 흔해빠진 들꽃이라고 자기비하를 하거나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우울해하는 건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다. 물론 개망초란 불명예스러운 이름 따위도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개망초꽃을 닮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탐욕과 위선과 비겁과 사악함이 없이 진실하고 소탈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하나라도 무의미한 사물이 있을까마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것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공부도 좋고 몸의 건강을 위한 노력도 좋지만 시시각각 전개되는 대자연의 현상에서 삶의 에너지와 지혜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기본이라는 생각이다.내일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지 75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은 분명 온 국민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축할 일이다.

2020-08-13

길고 긴 장마

1984년 여름 끝에 춘천 하고도 중도라는 섬으로 2학기 개강 앞두고 엠티를 갔다. 같은 과 1학년 학생들끼리 친목을 다져 보자고 선배도, 지도교수도 없는 모험을 감행한 것. 저녁에서 밤까지 재밌게들 놀았고 밤 깊어지자 좁은 농가 주택 둘에 각기 나누어 쪽잠들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 여섯 시도 안 된 참에 벼락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 밖에 나가보니 우리 한편이 자던 집 옆 마당이 물에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일은 그때부터. 밤새 비가 너무 내려 소양감댐 수문을 열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북한강 한가운데 있는 이 섬이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구조하러 온다는 헬리콥터를 목빼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헬리콥터가 날아와 헬리콥터를 타고 문도 안 닫은 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데 아래를 보니 과연 물바다라 할 만했다.그게 바로 엊그제 일 같다. 요즘 기나긴 장마 생각에 옛일이 새로웠다.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강북강변도로. 서울에서 이 도로는 모든 혈액 순환의 중추 역할을 한다. 이 강북강변도로가 불어난 한강 물로 곳곳에 도로가 통제 되면서 동맥경화 현상을 보였다. 평소 일곱 시 반쯤 출근하는 사람이 열한 시 반이 되어도 출근을 마치지 못했더라는 것이다.그런가 하면 장마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임진강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북한에서 황강 댐이라는 것을 남측에 통보도 하지 않고 수문 개방을 한 게 그렇잖아도 큰 피해를 더 키웠다는 것이다. 임진강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분들이 집도 잃고 농사도 망치고, 그나마 군인들까지 나서 복구를 하던 판에 또 비가 퍼부어 모든 수고를 수포로 돌아게 했단다.비는 또 정치에서도 논란을 부추겼다.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내리고 강물이 대범람을 하여 주변 가옥과 농토를 집어삼켜 버리자 4대강 치수 사업 때 해당 안 된 곳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낙동강이 범람하고 여러 지천들이 흘러넘쳐 피해를 키우자 4대강 곳곳에 설치한 보가 오히려 홍수 피해를 키운다고들 했다.강뿐 아니라 유난히 잦은 산사태는 태양광 발전에 엮여 설왕설래를 낳았다. 산에 태양광 집적 시설을 얼마나 세웠는지 알 수 없지만 원자력 대신 태양광을 선택한 정부 정책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2013년에 장마가 그렇게 길었었다는데 올해는 더 길어 장장 오십 일을 넘어가리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가 지긋지긋하다는 말들이 나올 지경, 물난리처럼 마음 심란하고 지치는 일이 또 있을까. 집 잃고 농사 망친 분들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 가눌 수 없다. 난리에 목숨까지 잃은 분들도 여럿이다. 싸우지들 말고 매몰된 새끼를 찾던 어미 개의 마음으로 슬픈 이웃들을 돌봐야 할 때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13

병사의 월급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주는 병사의 월급은 일반 기업의 월급제와는 개념이 다르다. 일한 대가에 대한 보상보다 국가에 대한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감의 개념이 앞선다.국민의 4대 의무인 국방 의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월급은 국가가 형편대로 주어도 된다는 것이 병사 월급에 대한 통상적 생각이다. 병사들도 이런 생각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 그래서 과거 병사 월급이라고는 담배 몇 갑이나 자장면 몇 그릇 사먹을 정도가 고작이다.한 자료에 따르면 병장 기준의 월급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70년도 900원, 1980년도 3천900원, 1990년도 9천400원, 2000년도 1만3천700원, 2010년 9만7천500원이다. 올해 병장 월급은 54만원 정도라 한다. 세월이 흘러 병사 월급도 많이 인상됐지만 아직은 월급이라 하기에는 작은 금액이다.최근 국방부가 국방 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2025년에는 병장 월급 100만원 시대를 연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78%를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병사의 월급이 올라 반갑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방의무 수행자에게 봉급생활자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과 “군대를 복지기관 정도로 여기는 것 아니냐” “포퓰리즘적 발상” 등등이다.현재 우리나라 군 사병이 받는 월급이 적정한지는 기준을 잡기가 어려워 판단이 쉽지 않다. 징병제가 실시되고 경제력 등에서 우리와 비슷한 이스라엘의 병사가 50만 원 정도 받고 있다고 하니 참고는 된다.국방부의 계획대로라면 인건비 비용이 1조원이 더 소요된다. 병사월급 인상이 국방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그러나 군에서는 전투력 증강이 최고의 가치라는 점을 잊고 예산을 짜서는 안 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13

널뛰는 지지율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더블스코어 차이를 보이던 미래통합당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치다가 마침내 역전되고 말았다.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실시한 8월10일~12일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집계 결과 통합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1.9%p 상승한 36.5%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1.7%p 내린 33.4%였으며, 두 당의 지지도 격차는 3.1%p로 나타났다. 통합당 지지도는 역대 최고치로, 통합당이 민주당 지지도를 추월한 건 창당 이래 처음이다. 특히 4·15총선에서 민주당이 ‘싹쓸이’한 서울에서 통합당(39.8%)이 민주당(32.6%)을 오차범위를 넘어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일단 정부·여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와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다 크고 작은 악재가 잇따르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지지도가 떨어진 결과다.여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부동산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당의 입법독주도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수차례 부동산문제 해결을 자신했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아파트값이 폭등을 거듭한 것이나 청와대와 민주당, 정부의 이중적 행태도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다주택자를 투기수요로 규정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공직자들은 집을 팔지 않고 미적거리다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청와대와 민주당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해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이나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葬)으로 지내면 안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59만명을 넘었지만 강행한 것 역시 무리수였다. 박 시장 사태는 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했던 20·30대 여성들이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그렇다해도 여야의 지지율 역전은 반사이익의 성격이 짙다. 통합당의 선전덕분이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일까. 통합당 역시 탄핵 정국 이후 첫 지지율 역전이란 희소식에도 마냥 기뻐하긴 면목이 없어보인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3일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 등 약 300명과 함께 전북 남원 금지면 수해지원 봉사활동에 나선 자리에서 “우리가 노력한 만큼 국민이 알아준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결산 국회나 정기국회 때 법안이든 예산이든 국민이 아쉬워하고 필요한 것은 여당보다 더 정교하게 잘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라고 다짐했다. 다만 통합당이 새 강령에 5·18 민주화운동을 삽입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사과 의지를 내비치는 등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들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있다.그렇다해도 통합당은 새롭게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에 실망하고 있는 국민에게 성큼 다가설 수 있는 파격적인 정책이나 스토리를 한시바삐 마련해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게 야당으로서, 공당으로서 해야할 일이다.

2020-08-13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이어집니다. 물난리로 전국이 혼란스럽습니다. 7월 장마, 8월 무더위라는 기상 패턴이 무색할 정도로 안타까운 날들입니다. 위험 수위를 넘은 물길은 아량을 모릅니다. 교각을 삼키고 제방을 무너뜨리더니, 순식간에 들판의 경계를 없애고 집들을 고립시킵니다.그나마 이곳은 장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습니다. 점심 약속을 위해 길을 나섭니다. 비 그친 하늘이 가을날을 앞당겨 놓은 것 같습니다. 좀 전까지 떠올린 ‘위험수위’에 대한 단상이 지워질 정도로 산뜻한 풍광입니다. 갓길에 차를 세워 가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빛을 맘껏 담는 여유도 부려봅니다.주유소에 들릅니다. 세차 먼저 하고 주유해도 되나요? 잠깐 갠 날씨 덕에 목소리 톤이 눈치 없이 높았나봅니다. 기름 넣어도 세차 할인은 안 됩니다. 심드렁한 직원의 대답에는 ‘나 귀찮으니 건드리지 마시오’하는 기색이 묻어납니다. 고객에게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을 터이니 그 정도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청명해졌다지만 여전한 고습도 날씨 앞에서 한결같은 친절 모드를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다음이 문젭니다. 단 몇 초 사이, 차창문을 닫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직원은 냅다 차에다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전 제스처도 경고도 없는 돌발행동입니다. 쌓인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고객에게 푸는 모양입니다. 급히 창문을 올려 물세례는 면했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사소한 지점에서 손상 받는 거니까요. 무시당한 게 분명한데 화를 내기엔 미묘한 순간이랄까요.세차기가 돌아가는 동안 크게 쉼 호흡을 합니다. 이어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몇 번 되뇝니다. 십 음절로 된 그 말을 되풀이하다보면 달아오른 얼굴빛이 가라앉고 벌렁거리던 심장도 누그러집니다. 마법의 주문처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찾는 일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을 건너야 할 때 활용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점심 장소인 일식집에 도착합니다. 위로 둥근 손잡이가 달린 육수 냄비를 양손에 든 점원이 테이블로 다가옵니다. 얼마나 조심성 없게 들고 오는지 뜨거운 국물이 넘치는 게 다 보입니다. 어이쿠, 어이쿠 조심하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가까이 앉은 제게 육수를 쏟고 맙니다. 뜨거운 물기가 스치자 놀란 개구리처럼 몸이 절로 솟구칩니다.국물이 원피스 허리춤을 타고 허벅지로 흘러내립니다. 일행들도 놀라 휴지와 행주를 들고 모여듭니다. 한데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점원은 남 일 보듯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가 끝입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난다는 듯 테이블 세팅에만 손길을 놀립니다. 맘에 없더라도 미안함이나 겸연쩍음 정도의 액션을 취하는 게 당연한 순서일 텐데 그럴 기미조차 없습니다. 애써 무시하는 품새에서 무례함만 도드라집니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서운함을 내비치거나 클레임을 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달라질 마음이 없는 자 앞에서 정당한 한 말씀보다 나쁜 충고는 없습니다.차라리 주인이 그렇게 응대했다면 속 시원히 뭔가를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힘없고 스트레스만 많을 ‘을’을 상대해봤자 찜찜함만 남겠지요. 어찌할 수 없는 소심함으로 소탈한 척(실은 허탈하게) 웃었을 뿐입니다. 속절없이 예의 무궁화꽃송이만 피웁니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그렇게 가라앉히다보니 덴 피부의 열감도 숙지고 속도 편안해집니다. 주유소 직원이든, 일식집 점원이든 그들이 보기에 상대가 긴장할 만한 대상이었다면 그토록 투박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위압적인 느낌을 주거나 사회적 지위가 검증된 이들 앞이었다면 한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을 테고, 손님 입장에서 불쾌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도 않았겠지요. 혹여 실수로 그런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금세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함을 표현했겠지요.김살로메소설가큰 것 앞에 작아지고 작은 것 앞에 커지며, 큰 것에 분노하는 일보다 작은 일에 흥분하기 쉬운 게 인간입니다. 들고 일어설 때는 물러나고, 물러서도 좋을 때 일어나는 게 인간의 속성이구요. 삶은 달콤함 못지않은 위험수위의 연속입니다. 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위험수위 근처에 다다른 을의 스트레스가 갑에게 맞닿기보다 엇비슷한 다른 을에게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씁쓸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작은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마음을 다칩니다. 그것이 곧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습하고 연습하는 이유가 될 테지만요.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스스로 하는 무궁화꽃 술래놀이의 필요충분조건은 누가 뭐래도 작고 사소한 세계에 한합니다. 사무치도록 화가 쌓인 경우, 이를 테면 그것이 갑을 향한 것이라면 정공법을 택해야겠지요. 그땐 맞서고 부딪치는 일만이 온당할까요. 날씨 탓이든 상황 탓이든 이 세상 모든 을들이 스트레스 덜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위가 낮아지듯 무궁화꽃 주문을 되뇌는 날도 줄어들겠지요.

2020-08-12

밤바다 산책

윤영대수필가요즈음 중부 지방에는 폭우로 내리붓는 장맛비에 온통 물난리인데 여기 포항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열대야가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코로나19로 답답해진 마음에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바닷가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파트를 나서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골목길 빠져 해변 도로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방학에 피서철이라 발 디딜 틈도 없을 인파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일렁일 텐데…. 멀리 까만 바다 끝에 반짝이는 불빛은 호미곶인지 떠 있는 배들인지 정답게 다가오고, 수평선에 떠오른 보름달은 바다와 거리두기를 하는지 구름 마스크를 쓰고 하늘 높이 떠 있다.넓은 모래밭에는 젊은이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산책길에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의 걸음들이 모두 가볍고 길가에 앉아 서로 속삭이거나 혼자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해변의 낭만이다.사람들과 섞여서 천천히 걷다가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마르고 푹신한 느낌이 좋다. 아예 신고 간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아스팔트 길에 잊어버린 발바닥의 촉감을 찾아준다. 내친김에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히 밀려오는 밤바다의 물결 소리가 종일 TV 소리에 지친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두 발에 전해오는 차가움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의 열기를 식혀준다.바닷물에 세족(洗足)을 하니 생각난다. 8월 4일은 음력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유둣날)이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폭포수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친척들과 떡이나 전을 먹으며 유두잔치를 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병이 없다는 신라 때 명절인데 잊혀져가는 옛 풍습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영일만으로 흘러들어 오는 형산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라 ‘잘 됐구나’ 하며, 오늘 저녁 유둣날의 기분에 한껏 젖어보았다.바닷물에 발 담그고 돌아서서 해변 야경을 보니 알파벳과 외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어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요즘 해외여행이 발 묶여버린 마음에 언젠가 가봤던 기억의 어느 외국 해변 풍경을 그리며 그곳에 와있노라고 상상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모래밭에는 매년 만들어 놓는 모래 작품들도 볼거리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이름난 건축물 조각상 앞에서 흐르는 불빛 따라 즐겁게 사진을 찍는 모습 또한 행복해 보인다. 발의 모래를 털고 다시 길로 올라오면 즐비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포항의 얘기를 들려주는 듯 밤의 산책을 즐겁게 한다.해변 끝에서 높고 좁다란 방파제에 올라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의 씩씩한 발걸음을 따라 끝까지 걸어 가본다. 빨간 등대 불이 깜빡이는 어둠의 배경은 7, 80년대 형산강의 기적을 만든 포스코, 옛날 그 힘찬 용광로의 불꽃은 다 어디로 갔는지 옛 함성을 반추하듯 초대형 전광판의 글자가 길게 늘어져 지나간다. 나는 그 전광판에 새기고 싶다. ‘포항의 영광을 되찾자.’ 그리고 등대 벽에 낙서한 연인들의 마음을 읽으며 통통거리며 들어오는 고깃배의 만선을 빌어본다.돌아오는 길, 200여 그루의 곰솔 숲 앞을 걸으면 풀잎 지붕의 둥근 테이블마다 바닷바람을 쐬며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흥겹다. 그런데 모든 공연이 금지된 버스킹 무대에는 할머니 몇 분이 손주들 재롱을 즐길 뿐이다. 모래밭에 줄지은 천막은 비어있는 듯하지만 길가 술집과 커피숍은 그래도 젊은이들로 북적이는데 실내 금연이라 밖에 모여 피워대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그들이 버린 꽁초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얀 애벌레처럼 밤길에 나뒹구는 광경은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며 밤 산책하고 돌아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영일대 누각에 올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변의 불빛을 가르며 내 달리는 제트보트의 날렵한 질주를 눈에 담고 집에 돌아와 폭포수처럼 틀어놓은 샤워기로 젖은 땀을 씻고 유둣날의 복을 빌어본다. 남은 말복에 더위 먹지 말기를…. 지난 7일이 입추(立秋), 벌써 가을이 오는가 보다.

20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