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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메기의 날’을 만들자

얼마 전 젓가락 같은 과자를 들고 다니는 사람부터 거의 장대 같은 과자를 직접 만들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던 ‘빼빼로의 날’이라는 11월 11일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과 직접 기다란 과자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부모나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떤 것이 좋을지 가게 앞에서 심각하게 고르는 학생, 젊은 직장인들이 아니라면 이날이 무슨 날인지를 기억하고 매출로 연결하려고 신경을 쓰는 곳은 아마도 편의점이나 마트를 경영하는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하지만 중국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원래부터 달과 날이 겹치는 중일(重日)을 귀하게 여기고 양수인 1월, 3월, 5월, 7월, 9월에는 각각 1일, 3일, 5일, 7일, 9일이 양수(陽數)로 겹치는 날이어서 명절처럼 지내기도 한다. 그동안 11월의 중일은 큰 의미가 없었으나 1이 싱글을 뜻하는 숫자이기도 하고 무려 4개나 겹치기에 중국의 한 대학생이 이성 친구가 있는 이들이 기념하는 ‘밸런타인데이’에 대항하는 뜻으로 ‘독신의 날’ 또는 ‘독신자의 날’로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착안하여 비즈니스로 연결한 곳이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이었다. 알리바바그룹은 이날을 ‘온라인쇼핑의 날’로 삼고 판매행사를 기획하였다. 그러자 중국의 다른 대형 쇼핑플랫폼들까지 이벤트에 동참하여 이제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비행사인 ‘솽스이(雙11· Double 11)’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는 2009년에 시작한 ‘솽스이’가 11번째다. 그동안 중국 소비자들은 이날 0시부터 12일 0시까지 이루어지는 이벤트에 대비하여 미리 사고 싶은 물건들을 상거래사이트의 ‘쇼핑카트’에 담아두었다가 이벤트가 개시와 동시에 가장 먼저 클릭하여 구매하는 경쟁 심리까지 생겨났다. 실시간으로 이 이벤트를 중계하는 곳도 생겨나 주목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11월 11일 오전 0시부터 개막한 ‘솽스이’에서 알리바바그룹의 쇼핑사이트인 티엔마오(天猫·Tmall)가 원화 환산(1위안 169원 기준) 약 1조6천900억 원에 이르는 100억 위안의 거래액을 기록하는 데는 96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작년보다 29초가 빨라졌다. 이 이벤트에서 티엔마오가 12일 오전 0시에 폐막하기까지 24시간 동안의 거래액은 무려 2천684억 위안(약 45조3천596억 원)이었다. 중국 상무부가 14일 발표한 11월 1일부터 11일까지 중국 온라인소매판매액은 사상 최대인 8천700억 위안(약 147조300억 원)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7%가 증가한 수치다. 11일 동안 하루 평균 13조3천553억 원어치의 매출을 기록한 셈이다.이와 같은 세계적인 판매전에 각국이 손을 놓고 있을 리 만무하다. 이날 알리바바가 달성한 거래액은 일본 최대 상거래사이트인 라쿠텐(697D天)의 1년 매출액보다 많다. 일본 교토 통신에 따르면 알리바바 플랫폼에서 솽스이 행사 개시 1시간 만에 1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한 곳으로는 중국업체 외에 애플, 나이키 등 미국기업, 파나소닉이나 시세이도와 같은 일본기업도 있다고 한다. 특히 올해 중국의 솽스이 이벤트에서 매출 규모가 10억 위안(약 1천690억 원)을 넘긴 기업은 15개사였는데 거기에 일본 유니클로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솽스이 이벤트에 일본기업들은 일찍부터 참여해왔다. 솽스이에서 팔린 외국 브랜드 매출액 순위에서 일본이 4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는데 가오(花王)의 일용품, 시세이도의 화장품, 야만의 미용기기는 특히 중국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식품저장 용기 회사가 이곳에서 큰 매출을 일으킨 적도 있다.전자상거래로 유명한 아마존도 중국의 왕성한 구매력을 그냥 두지는 않았다. 올해 솽스이에 참여한 곳은 아마존 미국 외에 영국, 일본, 독일이 특별 코너를 만들어 인기 있는 국제브랜드 60여 개 이상 품목을 특별할인하는 행사를 하기도 하였다.중국의 온라인상거래 이벤트이기는 하나 말 그대로 온라인세상에 넘지 못할 국경은 없다. 이 엄청난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솽스이에 전 세계 기업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해에는 총 25만 개에 이르는 브랜드를 가지고 500만 개의 업체가 티엔마오에 진출하였다. 올해 처음 진출한 해외브랜드만 2천600개가 넘는다. 38만 개에 이르는 중국 지방기업들도 이번 행사를 통해 판로를 새로 개척하였으며, 이번 이벤트에서 팔린 물품을 유럽 각국으로 배달하기 위해 참여한 중국 택배회사만해도 400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입이 절로 벌어질 뿐이다. 그동안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이 세계의 시장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지만 명실공히 세계의 시장 중국의 구매력을 이번 행사에서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포항에는 신선한 농수산물이 많고 제법 명성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해외는 별개로 치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온라인상거래를 통해 꾸준히 팔 수 있는 최종제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특정 시기에 생산되는 농산물, 수산물 등이고 이것을 2차, 3차로 가공하여 연중 판매하고 맛볼 수 있는 식품으로 고부가가치화한 상품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 솽스이의 판매실적을 그냥 보고만 있자니 속만 아프다. 우리도 무슨 수라도 내어야만 한다. 싫든 좋든 이제 11월 11일은 세계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중국의 ‘독신자의 날’을 적극 비즈니스로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 야후쇼핑에서는 11월 11일에 ‘좋은 쇼핑의 날 캠페인’을 하고 있고 라쿠텐에서는 아예 ‘독신의 날’로 한정시킨 대규모 판매촉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어떠한 것도 지나치는 법이 없다. 조금이라도 특이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은 모두 비즈니스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11월 11일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11월 11일은 공식 기념일로는 ‘보행자의 날’, ‘농업인의 날’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빼빼로 데이’라는 말도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적어도 ‘독신자의 날’을 탄생시킨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면 포항에서도 이날을 새로운 ‘날’로 삼을 수 있지는 않을까 싶다. 꽁치든 청어든 반을 갈라 내장을 훑어내고 깔끔하게 나란히 늘어트려 덕장에서 기름이 빠질 때까지 얼렸다 녹이면 쫀득하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건강식품인 ‘과메기’로 탄생한다. 11월 11일이라는 숫자에서 과메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고 우길 수 있지 않겠는가. 포항에서는 다소 무리가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11월 11일을 ‘과메기의 날’로 정하였으면 한다. 앞으로 매년 11월 11일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빼빼로’를 직접 만들거나 사서 선물하면서 즐거운 ‘빼빼로 데이’를 즐기더라도, 소비자들은 ‘과메기’를 대대적으로 판매하는 포항만의 ‘과메기의 날’로 활성화하였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숫자를 이용한 판매촉진은 과메기 외에도 있을 수 있다. 포항이 자랑하는 돌문어도 날짜를 잡을 수 있다. 문어의 다리는 8개다. 8월 8일이라면 ‘팔팔한 문어’를 먹는 ‘문어의 날’로 삼기 좋다. 오징어의 다리는 10개다. 중국의 쌍십절(10월 10일)은 다소 정치색이 있지만 우리는 ‘울릉도 오징어의 날’로 삼아도 좋다./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1-22

초병렬 독서법

김현욱 시인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책 여러 권을 쌓아두고 손닿는 대로 읽는 버릇이 생겼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문학과 비문학이 절묘하게 섞여있다.이장근 시인의 시집 ‘당신은 마술을 보여 달라고 한다’와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고전 ‘시경’을 같이 읽는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은 옳다’와 손훈영 작가의 ‘그 여자의 자서전’을 번갈아 읽는다. 이화정의 ‘북 코디네이터’와 메리 파이퍼의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를 함께 읽는다. 책 대 여섯 권을 날마다 조금씩 꾸준히 함께 읽어나간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 어떤 책은 잘 읽히고 많이 읽히는데, 또 어떤 책은 몇 줄 읽다가 보기 싫은 사람처럼 덮기도 한다. 아무렴 어떠랴. 누구 보라고 책 읽는 게 아니다. 내가 좋으면 그뿐. 서로 다른 장르의 책을 여러 권 번갈아 읽다보니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물과 현상들이 서로 ‘융합’되는 기이한 경험을 종종 한다.‘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의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한 권씩 감질나게 읽지 말고, 대범하게 동시에 열권을 읽어라. 읽되, 지혜롭게 읽어라. 가급적 서로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극단적으로 다른 책들을 골라 최대한 몰입해서, 읽어야 할 곳과 읽지 말아야 할 곳을 선택해 가며 신속하게 읽어라.”고 주장한다. 일명 ‘초병렬 독서법’이라고 하는데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쌓아두고 다양한 책을 동시에 섭렵하는 방식을 말한다. 화장실, 거실, 침대, 식탁 곳곳에 여러 권을 책을 놓아두고 동시에 읽는 것이다. 장르가 다른 책을 읽으면 뇌의 다양한 부위가 활성화되고 의욕과 긴장감이 살아나 예기치 않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겨나고 때론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한다.손훈영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주 밑줄을 그었다. 이를테면, “글을 쓰면서 살아가겠다는 것은 결국 재능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 “진실로 ‘문학’을 하고 싶지, ‘문학 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다.”, “행복에는 강렬함이나 활활 타오름이라는 요소가 없다. 내가 원하는 건 행복이 아니라 강렬하게 집중된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몰입과 집중이 모자라서다. 집중된 시간을 뚫고 흘러나오는 다이아몬드의 광휘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빛나는 문장에 마음을 벼리고, ‘시경’을 펼쳤을 때 지루하기만 하던 ‘시경’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채로 다가왔다. 거기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나 ‘코스모스’같은 책을 펼치면 광활한 우주에 시와 에세이의 무늬가 어른거린다. 인문학과 과학이 어떤 독특한 접점을 이루는 것을 목격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시구가 떠올라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시한 책은 읽다가 얼른 덮고 다른 책을 찾을 수도 있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선동적이지만, 핵심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자유롭게 오가며 색다른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2020-11-22

호미반도 둘레길을 걷다

윤영대수필가지난 일요일 산행을 하려다 산불경계령으로 입산금지됐다는 귀띔에 발길을 돌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갔더니 마침 포항시 랜선 걷기축제가 진행되고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2코스를 같이했다.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2017년 개통된 25km 해안길로 네 코스로 나뉜다. 이 둘레길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도록 바다 위로 데크로드가 만들어져 있고 자연경관을 훼손치 않고 그곳 지형지물인 백사장과 몽돌밭, 갯바위 등을 이용해 다양하다. 임곡, 입암, 마산, 흥환, 발산, 대동배를 지나며 작은 포구의 삶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1코스의 임곡리에 들어서니 낮은 방파제와 담벽에 그려진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길게 이어져 이야기를 보여 준다. 작은 항구를 지나 청룡회관을 올려다보며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으로 올라갔다. 포항시 마스코트 ‘연오와 세오’가 반갑게 맞이하기에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축제 기분을 냈다.2코스 ‘선바우길’ 시작점인 일월대 앞에서 ‘360도 회전 영상촬영’도 체험하고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 입암항에 내려서니 멸치 말리는 냄새가 코끝에 살랑댄다. 마을 끝에 우뚝 선 선바우 앞에서 둘레길이 본격 시작된다. 네 코스 중 데크가 가장 길게 놓여있는 길이며, 조용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물 위를 걷듯 걸으면 연보라색 해국이 피어있는 형형색색 바위들이 신기한 해안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남근바위, 폭포바위, 여왕바위, 소원바위는 자연의 조각품이고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도 새겨 놓았다. 킹콩바위는 갯가에 앉았다. 하얀 바위벽 힌디기를 지나 하선대에 서면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파란 바다가 멀리 포항제철의 영일만 신화를 들려주듯 찰랑인다. 몇 번 걸어 봤지만 그때마다 감탄하는 둘레길이다. 몽돌 길을 걸어 먹바위를 지나 마산리 쉼터에서 막걸리도 한잔했다. 작은 항구엔 엄마아빠를 따라온 아이들도 낚시를 드리우고 건너 방파제엔 텐트도 즐비하다. 비문바위 지나 예쁜 아치형 데크 위에서 미인바위를 보고 전망대도 올라보고 흥환리 해수욕장에 들어서니 캠핑을 하는 부부와 연인들이 행복해 보인다.3코스는 ‘구룡소길’. 발산리와 대동배를 지나는 이 산책로에는 데크는 별로 없으나 바닷물에 발 적시듯 호젓이 걷는 맛이 좋다. 장기목장성비를 보고 바닷가를 한참 따라가다 보면 장군바위가 위엄있게 서 있다. 다시 발산리 항을 지나 자갈길을 가다가 계단을 올라가면 봄에는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를 볼 수 있는 숲길로 이어진다. 좁은 산길이 끝나는 전망대에서 비밀에 싸인듯한 구룡소를 내려다보고 대동배까지 걷는다. 이따금 국도로도 걸어야 된다.다음날 늦게 4코스 ‘호미길’을 돌았다. 까꾸리개 언덕 길에는 서상문 시비와 호미숲 해맞이터 기념비가 있고 독수리바위는 일본실습선 조난비를 염려하듯 날아오를 듯하다. 바다새들의 배설물이 하얗게 덮인 대보항 방파제 따라 갈매기 떼 울음소리 요란한 해변 길 돌며 호미곶등대 소나무숲 속 이육사 청포도 시비와 영일노래비를 읽노라면 어느덧 ‘상생의 손’이 반긴다.해안둘레길이 끝나는 호미곶해맞이광장에 서서 새천년기념관 뒤로 붉게 물든 해넘이를 향해 두 손 모아 나라의 안녕을 빌어 보았다.

2020-11-22

코로나 음모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가 빨리 잡혀야 할텐데….”하루에도 몇번씩 중얼거리는 혼잣말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300명으로 넘어가고, 수도권과 강원도는 1.5단계로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됐다. 이대로라면 또 다시 2단계로 강화될 듯 싶다.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실시되면 식당이나 커피숍, 스크린골프장, 노래방, 당구장 등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니 그들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고통을 받아온 영세소상공인들의 한숨과 고통이 더 깊어지면 그들이 무슨 희망으로 버티어낼까.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우리의 삶과 생활을 옥죄도록 용인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정부여당은 K방역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세계가 한국의 방역체계를 배워가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다른 나라의 코로나 확산상황과 대처방향 등을 짚어보니 어느 정도 사실과 부합하는 듯하다. 하루에 1만5천 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지는 독일만 해도 올해초 1차 셧다운에 이어 최근 확진자가 급속히 늘면서 11월초부터 11월말까지 2주간 2차 락다운이 선언됐다. 락다운 기간에는 관광목적의 호텔 숙박이 금지되고, 바, 클럽, 술집, 디스코텍 등과 레스토랑은 문을 닫으며, 테이크아웃과 배달운영만 가능하고, 극장, 오페라, 콘서트 하우스 등 여가시설은 모두 문을 닫는다. 피트니스, 개인스포츠시설, 수영장, 물놀이시설, 영화관, 박람회, 놀이공원도 닫고, 학교와 유치원은 방역조치와 함께 조심스럽게 운영한다. 상점은 입장객 조정과 방역용품, 대기줄을 조정하면서 제한적으로 운영토록 한다. 물론 실내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고, 이를 어겼을 때는 벌금 5천유로(한화 658만원)를 물린다. 한국의 코로나 대처방법과 비슷하고, 마스크 미착용시 벌금은 더욱 무겁게 물린다. 이런데도 미국이나 유럽의 상황에 비해 훨씬 경미한(?) 수준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나치게 국민들을 겁박하며, 위기감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며 코로나 음모론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정부가 있지도 않은 코로나 환자를 긴장감 조성을 위해 늘렸다 줄였다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 등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실 코로나 음모론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 기반을 둔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의 일부란 설에서부터 미국 CIA가 만든 생물학무기라는 설까지 여러가지다. 그러나 이같은 음모론은 낭설로 드러났다. 한때 안면마스크가 코로나 예방의 효과가 없다는 가짜뉴스 역시 전세계에서 코로나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니 얼추 사라졌다.정부가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코로나 음모론은 터무니없는 망상일 뿐이다. 하지만 음모론은 언제나 사람들의 의심병에 들러붙어 순식간에 세를 불린다. 그러니 정부는 하루빨리 코로나치료제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준비해 코로나 공포에서 국민을 해방시켜주길 바란다.

2020-11-19

김장문화

김치는 그 유래가 고구려나 백제의 생활문화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이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처음 등장한다. 순무김치는 여름철에 먹기가 좋고 소금에 절인 김치는 겨울 내내 반찬이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김장김치는 ‘겨울의 반 양식’이라 할 정도로 한국인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장기간 보존이 힘든 채소를 김장이라는 방식을 통해 겨울부터 봄까지 3-4개월간 먹을거리로 보관해 놓는 방식이다.배추와 무를 주재료하고 미나리, 갓, 마늘, 파, 생강과 같은 부재료를 사용해 간을 맞춘다. 이때 사용된 재료들이 자연스럽게 발효되어 김치의 맛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영양식으로 건강에도 좋다.추운 북쪽지방에는 김장의 간을 싱겁게 하고 양념도 담백하게 해 채소의 신선감을 살린다. 남쪽지방에서는 기후관계로 짜게 담는다. 젓국을 많이 쓰고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을 많이 넣는다. 젓국은 김치가 지나치게 삭는 것을 막아 준다.2013년 한국의 김장문화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위원회에 등재됐다. 강강술래, 판소리, 종묘제례 등과 함께 당당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세계에 알렸다.유네스코는 매년 겨울철만 되면 온 가족과 이웃이 모여 김장을 매개로 한 공동체 연대감과 사회공동체가 문화전승의 담당자라는 사실에 주목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의 90%가 아직까지 직접 김장김치를 담그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한다.김장은 대체적으로 입동을 전후해 가정에서 시작한다. 지금이 김장하기 꼭 알맞은 시기다. 그러나 젊은 세대 중심으로 사먹는 김치가 크게 성행하면서 김장담그기 문화가 예전만 못한 것은 아쉬움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19

낙엽을 밟으며….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늘 걸어다니던 캠퍼스 길이 사라졌다. 수북히 쌓인 낙엽으로 사라진 길 사이로 빨강색, 노랑색으로 물들은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느려진 발걸음 속도는 낙엽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린색의 녹음을 놓으면서 변한 낙엽의 색깔은 여전히 멋있다. 마무리가 한창인 나무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자연도 사람도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바이든이 승리한 가운데 트럼프 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지만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미국이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결정될 정도로 타락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오바마 전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가 주목을 끈다. 그 언론 인터뷰는 트럼프에게 오바마가 개표 다음 날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4년 전 전체 투표에서는 지고도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인 주별 선거인단 선거에서 어렵게 이긴 그리고 그러한 주별 선거인단 선거도 주요 주에서 불과 1% 마진으로 이겨 선거인단을 가져간 트럼프에게 흔쾌히 축하 전화를 했다는 내용이다. 오바마는 그 인터뷰에서 “President is a temporary occupant and public servant”( 대통령은 임시직이며 공직 봉사자 일뿐이다) 라고 말한다. 시간이 되면 직을 물려주는 게 당연하며 그것을 자기 것이라는 욕심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사실 한국 정치의 불행한 역사는 이 오바마의 대통령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지키지 않은데서 시작 되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지금 정치는 큰 위기에 처해있다.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온라인 상의 잘못된 정보 확산이 국민의 분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런 정치적 분열로 국민의 분열이 심각할 정도이다.‘진실의 쇠퇴’(Truth decay) 라는 책도 나왔지만, 진실의 쇠퇴가 한국이나 미국의 분열을 극대화한 원인이라고 봤다. “사실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조롱거리로 여기는 ‘진실의 쇠퇴’가 분열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면서 그러면서 분열을 치료하기 위해선 ‘사실’부터 바로세워야 한다. 사실과 의견 사이의 경계가 흔들려 의견을 믿게 하려고 사실을 조작하고, 사실의 출처에 대하여도 믿지 않고, 오직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출처만 믿으려고 하는 그런 현상이 만연되고 있다.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4년 전 트럼프의 모함에 엄청 억울했으나, 미국 민주주의 상징인 평화적인 정권 이양 작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히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누구의 자존심보다도 훨씬 크다”고 했다. 바로 “민주주의가 개인의 이기심과 자존심 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린 깨달아야 한다.‘낙화(落花)’라는 시에서 작가 이형기는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점을 우리는 이 시에서 배워야 한다.

2020-11-19

불확실성시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작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폐렴이 일 년이 다 되도록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선언을 했다.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 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WHO가 나눈 전염병 경보 6단계 중 마지막 등급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세계 191개국에서 5천400여 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서 130여 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 된 이번 팬데믹 상황은 앞으로 얼마를 더 지속할지 불확실한 상태다.불확실성(不確實性)이란 미래에 전개될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거나 어떤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명확히 측정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엔트로피증가법칙처럼 세상이 복잡다단해질수록 불확실성도 따라서 증가한다. 표준화된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화시대에는 미국이 국제정치, 국제금융, 국제무역에서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의 예측 가능성을 어느 정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였다. 그런데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진행되고 ICT 혁명이 기술적으로 가세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다. 그것은 동시에 불확실성도 가중시켜 미국 버클리대 아이캔그린 교수는 “세계가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선언할 지경에 이르렀다.농경사회에서는 주로 자연현상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불안의 요소였다. 화산이나 지진 같은 직접적인 재해는 물론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농사를 망치게 되면 생계가 어려워지므로 어떻게든 기후변화를 예측해 보려는 노력을 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하늘의 뜻으로 알고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과 정성으로 불안을 덜고자 했다.‘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기업을 죽이고 빚과 세금만 늘리는 포퓰리즘 경제정책의 향방도 오리무중이고, ‘내로남불’의 이중 잣대로 법치를 파괴하는 망나니 춤의 전망도 예측을 불허한다. 억지와 거짓말, 적반하장, 후안무치가 정의와 상식을 대신하는 천박한 사회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김정은의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거짓 평화쇼의 끝은 어디인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소위 ‘대깨문’으로 불리는 극렬 친문세력 등 국내 정치에 번진 팬덤문화는 불확실성을 넘어 헤어날 수 없는 늪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아니라 무엇보다 상식이 통해야 한다. 잘못이 들통 나면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하고, 억지나 파렴치도 정도껏 해야 한다. 철면피 후안무치가 오히려 큰소리치는 무법천지가 되어서는 확실성을 보장할 데가 어디에도 없어진다. 합리와 불합리, 정상과 비정상이 구별되지 않는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어떻게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겠는가. 역사는, 극도의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여 나라를 불확실성의 나락으로 몰고 간 것을 이 정권이 국민들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으로 기록할 것이다.

2020-11-19

교회와 절에는 무엇하러 가는데?

장규열 한동대 교수사람에게 종교는 무엇일까. 살아가는 나날이 버겁고 힘들어 숨구멍이라도 찾는 마음이 아닌가. 힘들게 하는 세상에 눌리고 지쳐 피난하듯 찾는 게 아니었을까. 일상에 쫓기며 살다가 그래도 그 한순간 하늘이 내게 찾아오는 기쁨을 맛보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종교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세상이 쫓는 욕심을 벗어야 하고 세상이 재촉하는 경쟁도 그만 두어야 한다. 사찰과 교회는 모두의 피난처여야 하고 평화와 기쁨이 솟아오르는 샘터여야 한다. 종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늘을 향해야 하고 이 땅의 버거움을 이기고도 남아야 한다. 무소유를 다짐하고 날마다 내려놓아도 이웃을 생각하며 넉넉한 심정이어야 한다.한동안 서점가를 풍미하였던 베스트셀러 ‘긍정의 힘’을 쓴 미국 목사가 있었다. 열심히 믿으면 당신도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번영신학’은 교계의 대표저술이 되어 성전 마당을 가득 채웠다. 어느 스님이 세상의 평균을 넘는 안락한 처소를 자랑하며 미디어에 등장하였다. 푸른 눈의 다른 스님이 그 모습을 정면으로 공격하다가 이내 생각을 돌이켰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본 것일까. 사찰과 교회를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어느 자락에서 세상과 다른 선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웃과 세상을 위하여 덕이 되고 복을 끼칠 다짐은 어디서 해야 하는 것인지. 세상을 딛고 일어서 성공에 이를 욕심을 종교에서 배운다면, 어려운 이웃과 세상은 어디에 기대를 걸고 희망을 찾을 것인지.종교는 달라야 한다. 세상과는 반대편에 있어야 한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위로가 있어야 하고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용기를 얻어야 한다. 지고도 이길 힘이 생겨야 하며 이웃을 바라보는 배려와 공감을 배워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거두는 성공을 겨누기보다 어려워도 함께 누리는 평화에 길들여져야 한다. 세상을 향하여, 꼭 그리 살지 않아도 풍성한 천국과 극락을 경험하는 기쁨이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내려놓고 나누며 살아도 집착하고 경쟁하며 사는 일보다 풍성한 날들이 가능함을 배워야 한다. 불가는 ‘오욕락(五欲樂)’, 즉 인간의 욕심을 충족하여 누리는 즐거움을 경계하였다. 어차피 시시각각 변하여 정신을 병들게 하고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는 게 아닌가. 기독교가 돈을 ‘일만악(一萬惡)의 뿌리’라고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번영신학과 기복불교는 종교의 본질에서 한참 어긋나 있다.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며 이웃과 함께 애쓰고 노력하는 가운데 선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즐거움을 깨우치고 싶다. 그리하여 개인의 삶에도 미움과 시기는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가 피어오르는 여정이 찾아왔으면 한다. 개인의 성공만 바라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상생을 흡족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한 사람 영웅의 성공 서사를 기다리기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호흡하는 마을이 돌아와야 한다. 본질을 회복한 종교가 험한 세상에 다리를 놓아주기를 고대한다.

2020-11-18

구독경제 플랫폼

구독경제는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하는 것처럼 일정액을 내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신개념 유통서비스를 말한다.국내에는 2010년대를 전후해 도입되기 시작, 초반에는 화장품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점 생활용품, 홈쇼핑, 식음료, 명품의류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매달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정해진 몇몇 차량 중 원하는 차량을 골라 바꿔가면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생겼다. 소비자 입장에선 전문지식을 갖춘 구매담당이 소비자 대신 우수한 제품을 선정해 전해주기 때문에 상품을 고르기 위해 쓰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공급자 입장에서도 사용자의 요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공유경제의 뒤를 잇는 경제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더구나 포털업체인 카카오가 카카오톡 채널을 기반으로 상품구독 서비스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구독경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해 화제다. 공유 경제에 이어 구독경제로 변화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에 발맞춘 행보다.카카오톡에서는 렌탈, 정기배송 등의 방법으로 상품을 구독하는 방식으로 구현되며, 제품 설명·방문 예약·구매 결정·계약서 작성 등 기존 오프라인 기반으로 운영되던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들이 카카오톡에서 빠르고 편리하게 간소화된다. 이용자는 관심있는 브랜드의 카카오톡 채널에서 상품 정보를 얻고 회원가입부터 신용조회, 전자서명 및 계약, 결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몇번의 클릭으로 처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 렌탈을 시작으로 연내 바디프랜드, 아모레퍼시픽, 위닉스, 한샘 등의 렌탈·정기배송 상품을 구입하거나 렌탈할 수 있다. 구독경제 플랫폼은 이미 우리 삶에 깊이 들어와 있는 듯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18

정치적 올바름에 관하여

요즘 젊은 사람들 비평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이라고들 한다.그러니까 이 사조는 1980년대 미국에서 먼저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 이 말은 말의 표현, 용어 사용 같은 언어적 문제에 먼저 적용되어 사용된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 또는 비평계에서 이 말은 그런 시작 단계의 의미에서 상당히 ‘멀어져’ “전통적 관념을 교정하기 위해 새로운 규범을 따르는 태도”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또 그러면서 다문화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같이 첨예한 문제를 둘러싼 비평적 경향을 ‘반드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다소 ‘강제적인’ 가치관념을 가진 입장들을 두루 사용하는 말로도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근에 프랑스에서 이슬람교, 알라,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수업 활동을 열었다가 난데없이 ‘광신’에 가까운 18세 청년에 의해 교사가 참수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서만 사태가 끝나지 않고 또 바다를 건너와 여러 사람의 인명을 살상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여기에 다시 말레이시아의 오래된 지도자 마하티르 모하맛은 얼핏 보편적 휴머니즘에 어긋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그런가 하면 태평양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지금 새로운 대통령 선거가 벌어져 트럼프와 바이든이 ‘생사를 건’ 경쟁을 벌이다 마침내 바이든이 어렵게 승리를 거두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상대방이 미국사의 재앙이라도 되는 듯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나 자신의 정치적 선호와는 별도로 과연 어느 쪽이 옳은가를 지금 간단히 판별할 수만은 없다고도 생각한다.서로 대립하는 두 세력이 커다란 힘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또 그들 모두가 역사의 진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해서, 그들 중 어느 한 쪽은 반드시 ‘정치적 올바름’을 담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더 나아가 나는 이 ‘정치적 올바름’의 지나친 요구가 한편으로는 사회적 교류와 교섭, 타협을 어렵게 하고 유머라는 점이지대를 소멸시키며 시민들을 모범답안 내기 쪽으로 몰아붙일 위험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들만의 군림, 그들에 의한 통치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 않은 것이다.사회는 확실히 더 나아져야 하고 우리가 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를 위해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관대해지는 것, 적대하지 않는 것,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적 유대감일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18

흥정

정미영수필가이사를 가기 위해 살던 집을 내놓았다. 마땅한 임자가 나서기를 바라며 아파트 게시판에 올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집을 보러 왔다.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다는 아주머니였다. 맞벌이 하는 딸의 양육을 돕고 싶어, 본인 집 가까이에 딸네가 살 집을 구한다고 했다. 꼼꼼히 둘러보면서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매매 가격을 조금 더 깎자고 말했다. 하지만 곤란했다. 집을 빨리 팔기 위해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기 때문이다.아주머니는 흥정에 능숙했다. 조금 더 받겠다고 기다리다가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내 손을 잡고 자분자분 말했다. 두 달 남은 이삿날도 딸네 전세 기한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니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며 나를 설득했다.슬슬 조바심이 났다. 아주머니 말대로 지금 기회를 놓치면 늦도록 임자가 나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가격에 집을 팔았다.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면서 친정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딸자식을 친정 가까이 살게 하려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결정적이었다. 집을 팔았다고 했더니 너무 싸게 팔았다며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아쉬워했다. 손해를 보긴 했어도 집이 안 팔렸을 때 생기는 마음고생은 면하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내가 아는 사람 중에 흥정을 잘하는 이가 있다. 그에게 흥정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값을 깎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기도 한단다.언젠가 포항에 놀러온 그를 데리고 죽도시장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떠밀리듯 오가며 어시장을 둘러보니 그날따라 물 좋은 생선이 많았다. 횟감을 뜨려고 함지박에 담긴 생선을 구경했다. 돔 한 마리에 만팔천 원 한다는 아주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흥정에 들어갔다.“아지매, 보소, 내가 이태 전까지 배 타던 사람 아이가. 만 오천 원에 주소.”“그라믄 더 잘 알 텐데 값을 깎노. 주위를 둘러봐도 이 정도 좋은 놈은 없다.”돔을 건져 보이며 아주머니는 목청껏 말했다.하지만 나는 옆에서 말 한 마디 거들지 못했다. 정작 값을 깎는 당사자는 태연한데 내가 왜 그리도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 귀로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눈은 벌름거리는 생선의 아가미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손사래 치는 아주머니에게 그는 기어이 값을 깎았다. 내가 너무 했다는 듯 쳐다보자 씨익 웃을 뿐이었다. 횟감 봉지를 손에 든 그의 발걸음이 비거스렁이에 나들이하는 것처럼 가벼웠다.그는 흥정을 위해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을 지어냈다. 옷을 사러 가면 예전에 옷가게 사장이었다고 하고, 가구점에 가면 가구 공장을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너무나 진지해서 나조차도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꼭 그랬을 것만 같다. 가게 주인들은 믿는 척 속아주는 척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은 가자미처럼 눈을 흘기면서도 값은 깎아 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다.오늘 모처럼 가을 준치가 생각나 죽도시장에 들렀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먼저 달려와 반기더니, 곧바로 비릿한 생선 냄새가 온몸을 덮쳤다. 싱싱한 준치와 큼직한 전복 등을 실컷 구경하고도 건어물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신명나게 구경했다. 그랬더니 요 며칠 지쳐있던 내 몸에 시장의 활기찬 역동성이 재빠르게 스며들며 기운이 솟았다.집에 돌아오려고 다시 어시장에 들러 준치를 사려고 했다. 젊은 상인들을 제쳐두고 한쪽 귀퉁이에서 준치를 팔고 있는 할머니께 다가갔다. 사면서 값을 깎으려니 주인은 지청구를 늘어놓았다.“젊은 사람이 늙은이 고생한 걸 생각해야지….”얼른 셈을 치르고 왔지만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는 아직도 흥정에 익숙하지 않나 보다.

2020-11-18

저마다의 답

시골뜨기인 저는 오학년 때 대구로 이사했습니다. 이층집도 수세식 화장실도 한 번 본 적 없는 깡촌 아이 앞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도회의 파노라마는 차라리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그 어린나이에 결코 원한 적 없던 묵언수행을 감행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웃지 못 할 시절이었지요. 제 생애에 우울기가 있었다면 그때가 시초였을 거예요.크고 작은 여러 체험을 겪었습니다. 그 중 의아스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으’와 ‘어’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이에요. ‘이층으로 올라간다’라고 하면 될 것을 ‘이청으로 올라간다’라고 하거나 음악 시간이라고 하면 될 것을 ‘엄악’ 시간이라고 발음하는 것이었지요. 멀쩡하고 예쁜 이름인 이은진도 ‘이언진’이라고 바꿔 불렀습니다. 심지어 ‘언진(은진)이가, 언진이가?’하면서 제가 듣기에는 똑같아 뵈는 발음으로 그들 식의 ‘으, 어’ 발음을 구별하기까지 했습니다. 생경하고도 기이한 일이었습니다.시골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두 음절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철이 들고 난 뒤 그것이 단순한 언어습관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투리가 그렇듯 윗세대가 그렇게 발음하니 아랫세대도 별 뜻 없이 그렇게 배운 것뿐이었지요. 원래 인간은 자기 울타리 안에서 자기 식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존재니까요.오랜만에 전국구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무슨 말 끝에 ‘thanks to’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생스투’라고 제가 발음하자 나머지 친구들이 동시에 웃었습니다. 왜 웃는지 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 발음을 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이 좀 전보다 더 넘어갔습니다. ‘땡스투’로 말해야지 ‘생스투’라는 말은 너무 어색하답니다. 한 번도 그렇게 말하는 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적이 당황했습니다. 어차피 영어 발음으로 할 것도 아닌데 생스투나 땡스투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게 이상하다는 거지, 하며 저는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소심한 저는 ‘thanks to’를 우리말 식으로 어떻게 발음하는 것인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검색 상으로는 ‘땡스투’나 ‘생스투’나 그게 그거였습니다. 비슷한 비율로 검색되는 걸로 보아 그 말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땡스투냐 생스투냐의 차이가 아니라, 제 발성법에 문제가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경상도식 사투리 발성에서 오는 특이함 때문에 친구들이 웃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마치 어릴 적 ‘으’ 와 ‘어’를 구분하지 않고 -그들 나름으로는 구분을 했겠지만- 발음하던 도회지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처럼 친구들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저로선 이상했듯이,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 제겐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역시 그들에겐 이상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지요.북 토크 진행을 한 뒤, 제 음성이 녹음된 파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염 섞인 어색한 음색에다 사투리 높낮이가 선명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꺼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더 충격적인 면을 발견했습니다. 저 역시 미세하게 으, 어 발음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경상도식 특유의 발성법이 굳어져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히 ‘으, 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요. 그제야 왜 친구들이 제가 ‘생스투’라고 내뱉었을 때 웃었는지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발성 자체에 사투리 버전이 녹아있으니 표준어를 구사하는 입장에서는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요.김살로메소설가어떤 이의 말과 행동은 스스로 한 것이되 스스로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발설하는 순간부터는 그것은 상대자의 것, 즉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 되는 것이지요. 당사자는 궁궐을 지어도 상대는 초가를 볼 수 있습니다. 전하는 자는 열매를 전해도 받는 자는 씨앗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전하는 자의 말은 해석하는 자의 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진실과는 상관없이 내 의도와 상대의 해석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어떤 배우의 무대 인사가 생각납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 되어도 괜찮다. 관객들이 느끼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것은 순전히 상대에게 달렸습니다. 언행의 전부를 상대가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욕심입니다. 나는 말하고 상대는 해석하는 것, 이것이 세상 이치니까요. 세상엔 수많은 밥이 있고, 그 밥을 먹는 방식은 입맛마다 다릅니다.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한 그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습니다.오늘의 교훈,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도 타자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2020-11-18

왕가위와 ‘동사서독’

김규종경북대 교수‘아비정전’(1990)이나 ‘중경삼림’(1995) 같은 영화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당대 동아시아 영화 관객들의 우상으로 군림한 왕가위. 그는 1995년 ‘동사서독’으로 엇갈린 남녀의 인연과 애증을 무협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한국 관객이 기억하는 그의 대표작은 ‘화양연화’(2000)일 것이다. 21세기 들어 왕가위는 ‘2046’(2004),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8), ‘일대종사’(2013) 같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그의 영화 가운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동사서독’은 허무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몽환적인 장면묘사가 곳곳에 나오고, 인물들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긴 했는데, 무슨 영환지 모르겠다고 하는 관객도 적잖다. 왕가위 사단이 대거 등장하는 ‘동사서독’의 고갱이는 부차적인 인물들의 몫이다.해마다 복사꽃 필 무렵 서독 구양봉(장국영)을 찾아오는 동사 황약사(양가휘). 그는 절친인 맹무살수(양조위)의 아내 도화(유가령)을 사랑한다.서독은 고향 백타산에 두고 온 여인 자애인(장만옥)을 잊지 못한다. 그의 형수가 되어 아이까지 있지만, 자애인 역시 서독을 그리워한다. 객잔에 모룡연(임청하)이 찾아온다. 모룡연은 황약사와 술을 마시며 담소하다가 어느 사품엔가 그의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망각하는 황약사.사막에 자리한 서독의 객잔은 이들 등장인물이 모여들어 각자의 사연과 인연을 풀어놓는 간이역 같은 공간이다. 이름만으로도 관객의 심장을 뛰게 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 ‘동사서독’. 그래서 관객은 감독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배우들의 광휘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배경에 취해버리는 어리숙한 관객의 면모가 약여(躍如)하다.그들을 전경(前景)에 두고 홍칠(장학우)과 그의 아내, 당나귀 소녀(양채니)가 등장한다. 동생의 원수를 갚고자 하지만, 가진 것이 달걀 몇 알과 당나귀밖에 없는 소녀. 고향에서 남편을 찾아와 함께 가기를 고집하는 촌스러운 아내를 둔 살수 홍칠. 그는 소녀의 원한을 풀어주고 아내와 함께 사막을 건너 길을 떠난다.오래전에 자애인이 듣고자 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고향을 등진 서독은 홍칠이 떠난 다음 독백한다. “오래도록 사막에 살았지만, 나는 사막을 보지 못했다.” 서독의 독백에 사태의 핵심이 있다. 자애인이 죽은 다음 객잔을 불태우고 표표히 길 떠나는 서독.우리는 화려하고 은성(殷盛)한 사랑 이야기에 넋을 놓고 영화에 빠져든다. 왕가위는 위장막에 은폐된 사랑의 본질을 말한다. 당신을 좇는 인연에 따르라는 단출한 가르침이다. 소녀의 애끓는 호소를 물리치고, 아내와 함께 장삼이사의 길을 가는 홍칠.아마 그것이 왕가위가 바라보는 사랑의 종착점일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엇갈리고 애달파하면서 고통과 한탄, 연민과 그리움으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것을 놓아버리라고 왕가위는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붙잡을 수 없는 계절이 한사코 겨울로, 겨울로 달려간다.

2020-11-18

고등학교에서 대입(大入) 비대면 면접 촬영을!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입동이 지났다.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분주함이 마치 축제와 같다.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잎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잎 또한 그 선택에 기꺼이 동의하고 기쁘게 진다.축제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연과는 달리 인간은 최악의 겨울 속으로 돌진 중이다. 그 돌진이 무서운 이유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가속력에 세계는 이미 공황 상태이다. 멈출 것 같으면서 멈추지 않는 코로나19의 광란 질주에 미국의 의사는 다음처럼 말했다.“미국이 이번 팬데믹의 최악 속으로 향하고 있다. 마치 불에 휘발유를 붓는 것과 같다.”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암흑의 겨울”이라고 했다. 우리도 최근에 전개되는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숫자 단위만 다를 뿐 우리도 암흑의 겨울 앞에 서 있다.그런데 코로나19도 문제지만 진짜 암흑을 맞은 것은 대학교 입시이다. 정말 2021학년도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최악의 대입’에 힘듦을 넘어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수시가 끝나자마자 고등학교 3학년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돌리는 학교의 작태에 재학생 수험생들은 학교에서 수능 도움을 아예 포기했다.이를 알기라도 하듯 일부 학교 교사들은 수능은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학교 밖으로 학생들을 등 떠밀고 있다. 학교 밖 고등학교 3학년이 갈 수 있는 곳은 딱히 없다. 학원 아니면 유흥시설이다. 학원을 가는 학생은 그나마 학원에서 학습과 생활 지도의 도움을 받는다. 안타까운 것은 그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수 고등학교 3학년은 학교 지도의 사각지대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유흥 지역에 가보면 갈 길을 잃고 비틀거리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쉽게, 또 많이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다른 업무로 학교가 바쁘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코로나19로 혼돈을 겪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 고등학교가 먼저 나서서 비대면 면접을 봐야 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면 어떨까!다음은 어느 대학교의 비대면 면접 방식과 유의사항이다.“(면접 방식) 사전 공개된 면접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을 수험생이 영상으로 직접 녹화하여 본교 시스템에 제출(업로드)한 후 제출된 녹화영상을 통해 (….) 만점과 0점(불합격)으로 평가합니다. (유의사항) 업로드된 동영상의 영상과 음성의 품질이 저조하여 본인 식별 및 정상적인 평가가 어려운 경우 불합격 처리될 수 있습니다.”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비대면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영상을 찍어야 한다. 과연 학생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영상을 촬영해야 할까? 코로나19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그래서 비대면 면접을 고등학교에서 촬영할 것을 제안한다. 학교에는 그나마 방송실, 방송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 방송시설을 이용한다면 학생들은 분명 비대면 면접에 대한 부담을 들고 면접 내용 준비에 더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11-18

가장 아름다운 말은 감사입니다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나에게 축복이 되는 일이 많았지만 감사하지 못해 축복을 축복으로 받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매사에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틈만 나면 ‘오브리가도’를 외친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오브리가도’라고 한다.미국 사람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땡큐’(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생활 속에서 작은 일에도 ‘땡큐’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중에서도 ‘땡큐’가 28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감사가 몸에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성인이 되면 평균 2만6천개의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중에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물론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언어도 ‘감사합니다’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길들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라는 말도 있다.세상에는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이가 많으나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우리 속담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라는 말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말해 주는 말이다.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에게 각각 바구니를 주고 한 천사에게는 기도를, 한 다른 천사의 바구니에는 감사를 담아오라고 세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 두 천사가 바구니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기도를 담은 바구니는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가득 담겼고, 감사를 담은 바구니에는 겨우 세 개의 감사만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얼마나 감사하는 생활이 없는가를 드러내는 예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감사는 절로 되지 않는다. 감사는 해야 한다.아침에 일어나 새날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며 주일에는 일주일 동안 험한 세상에서 지켜주시고 은혜 베푸심과 자녀들을 돌봐주시고 지켜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혜가 크고 놀라운데 조금 희생하고는 피해의식에 빠지고 원망을 잘한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고 원망과 불평을 할 때 입이 튀어나와 찐 조기가 된다.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아야 하겠다.

2020-11-17

부동산 블루

우울증이란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사람에 따라 그 증상의 원인이 다양해 마음의 감기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잘 관리하지 않으면 큰 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의학적으로는 대개 70∼80%가 상담과 진료를 통해 2개월 이내 완치가 된다고 하나 경우에 따라 자살에 이르는 이도 있으니 가볍게 볼 병은 결코 아니다.보통의 성인도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도 우울증 원인이 된다.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져도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다.연초 시작한 코로나로 우리 사회가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두려워 집콕을 오래 하다보니 어느새 우울증이 생겼다는 사람이 많아졌다.스포츠 경기도 TV로 봐야 하고 즐겨 찾던 영화나 전시회 참석도 여의치 않아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적어진 것이 코로나 블루를 유발하고 있다. 우리 국민 다수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요즘이다.코로나 블루에 이어 ‘부동산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연일 폭등하는 집값으로 좌절감에 빠진 무주택 서민이 겪는 우울감을 일컫는 말이다.최근 서울과 수도권에서 시작한 주택 전세난이 지방도시로 확산되면서 전국 대도시 중심으로 집값이 미친듯 폭등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정부의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주택시장의 소비자 심리지수가 9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또다시 입증되는 모양새다.정부 정책이 수렁에 빠진 듯 오락가락하는 사이 무주택 서민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코로나 블루’에 ‘부동산 블루’가 덮친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11-17

을사늑약과 한국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할 임무가 있으며, 한국 정부는 오늘 이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위 문장은 을사늑약 중 두 번째 조항을 현대식 표현으로 풀어 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인 1905년 11월 17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조약을 맺는다.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은 이 조약의 이름을 한일협상조약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을사년(乙巳年)에 체결됐다고 해서 을사조약 또는 을사협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보호’하는 조약이라고 하여 한때는 을사보호조약으로도 불렸다. 다섯 가지의 불평등한 조약임을 강조해 을사년의 굴레가 되는 약속이라는 뜻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우리의 자주적인 외교권 박탈, 일본인 통감 정치 실시, 일본의 대한제국 보호국화가 조약의 주내용이다. 외국과의 모든 조약을 맺을 때에 일본 정부의 손을 거치라 하고 통감을 두어 외교사항을 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조약은 강제로 체결됐다. 조약의 서명자인 우리 외부대신과 일본 공사의 전권 위임장도 없었고, 고종황제의 비준도 받지 못했다. 따라서 불평등, 부당함을 떠나서 조약 자체가 불법한 것이었다고 한다.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불법적 조약의 체결에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명을 우리는 을사오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을 단죄하고 조약의 불법성을 쟁론할 시간도 없이 5년 뒤인 1910년에는 경술국치를 맞고 국권을 완전히 잃고 만다. 조선의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하고 첫 황제에 즉위한 것이 1897년 10월 12일이었다. 세워진 지 8년도 지나지 않아 외교권을 빼앗긴 나라가 대한제국이다. 애써 ‘황제의 나라’라고 이름 붙이고 황제의 자리를 만들어 앉는다고 나라가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칭제를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정도면 유명무실을 넘어서 허상의 제국이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을사늑약의 조문을 보면 대한제국이라는 공식 이름을 쓰지 않고 한국(韓國)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본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한국이라는 이름이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한자 ‘韓’으로 쓰였지만, ‘한글’의 ‘한’과 같이 ‘큰, 바른, 하나의’ 나라가 한국 아니런가.이제 다시 우리는 대한민국, 한국의 이름으로 서 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방역 선진국으로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오늘, 부끄러운 을사늑약 체결일에 허상의 제국 한국이 아닌,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갈 당당한 한국을 그려 본다.

2020-11-17

트럼프 승복, 빠를수록 좋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바이든의 당선은 사실상 확실하다. 바이든은 비서실장을 임명하고, 당선 후 첫 과제로 코로나 태스크 포스까지 구성하였다. 300명의 정권 인수 위원회가 구성되고, 주요 외국 정상들로부터 축하 전화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선거 패배의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대선 결과는 사기라고 소송까지 제기하였다. 트럼프는 아직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엄지척을 하면서 편 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처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박한 행보이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트럼프의 자업자득이며 스스로 자초한 부메랑이다.트럼프는 대선 초반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누른 선거 슬로건이다. 강한 미국을 지향하는 그의 주장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백인 우월주의적 정책은 곳곳에서 부딪쳤다.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과잉대응 등 차별적 조치는 선거의 결정적 감표요인이 되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정책 역시 트럼프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었다. 국경을 통제하고 외국인 이주를 막은 반(反)이민정책은 라틴계 미국인의 감표요인이 되었다. 그의 정책은 백인 중산층의 지지로 이어졌지만 그것이 선거의 결정적 부메랑이 되었다.트럼프의 코로나 방역 대책은 너무 안이하고 문제의 본질도 파악치 못한 정책이다. 그는 코로나를 감기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마스크 착용까지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혈기를 앞세우고 고집을 부리다 미국이 코로나의 최대 피해국이 되어 버렸다. 결국 그 자신도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미국 대통령의 위신은 여지없이 추락되었다. 투표일 직전 긴박한 유세기간에 5일이나 입원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의 측근 말도 듣지도 않는 독선적인 팬덤정치가 초래한 비극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코로나 백신 개발을 선언했지만 이미 때늦은 선택이다.트럼프는 해외 동맹 정책의 실패도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이란과 맺은 국가간의 핵 협정도 트럼프는 기업 간의 계약처럼 파기하였다. 독일, 한국, 일본 등 미군 주둔 동맹국에도 전례없는 방위비 5배 인상을 압박하였다. 동맹국간의 신뢰를 무시하고 미군 철수까지 언급하면서 방위비 협상을 추진했던 것이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다운 후려치기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바이든이 협박과 회유의 그의 대외 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이다. 이처럼 트럼프는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존경받는 미국 재건’은 트럼프가 자초한 바이든의 선거 슬로건이다.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독선적 행적이 이번 대선의 결과이다. 트럼프는 예상보다 오히려 많이 득표한 셈이다. 선거의 결과가 306대 232로 끝난 시점에서 트럼프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이든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야 한다. 정치인이 정치적 결단의 때를 놓치면 패가망신한다. 민주정치는 결코 그가 좋아하는 ‘화염과 분노’가 아니다. 전 대통령 오바마까지 트럼프의 불복을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평하지 않는가. 그는 미국 대통령의 실추된 명예를 되살려야 살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그는 하루 빨리 승복해야 할 것이다.

2020-11-17

자전거로 누비는 세상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자전거에 매료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거의 출퇴근으로만 이용하던 자전거를 타면 탈수록 그 묘미에 빠져들어 장거리 주행이나 산악라이딩 등으로 즐기니 그 맛이 쏠쏠하기만 하다. 두 바퀴가 굴러갈수록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발길 닿고 눈길 가는 곳마다 감흥이 다르고 경이로움을 더해주고 있으니 어찌 즐겨 타지 않으랴?‘은륜(銀輪)에 몸을 싣고/떠나는 국토종주//바람과 악수하며 날아갈 듯 신나게/강줄기를 누비고 산자락을 돌다 보면/초목이 손짓하고 꽃과 새들이 반겨 맞아/달릴수록 설레고 누릴수록 정겨워/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자리마다/새로움이 피어나고 넉넉함이 펼쳐져/눈과 귀가 밝아지고 가슴마저 뿌듯하니//두 바퀴 굴러가는 곳/행복으로 가는 길’ -拙시조 ‘두 바퀴로 가는 행복’ 전문일상에서 자전거 타는 재미를 한껏 느끼다 보니 새로운 욕망과 도전이 생겨났다. 두 바퀴로 우리나라를 찬찬히 둘러보는 것이다. 이른바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다니며 우리의 산하와 들, 섬을 손수 누비며 국토의 아름다움과 자전거의 위력을 맘껏 누리고,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발동하여 2018년 6월말부터 떠난 국토종주 자전거길, 거기에 대학생 아들도 기꺼이 동행했으니 더욱 설레고 기대되는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인천~부산까지의 4박5일을 시작으로 지난 10월말, 고성 통일전망대를 끝으로 28개월 동안 12박17일 일정으로 2천㎞에 이르는 국토종주 자전거길 그램드슬램을 달성했다.국토종주 자전거길은 2009년 초 당시 정부의 녹색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자전거 인프라 조성, 자전거 이용문화 확산 등을 목적으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 1천853㎞가 개통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별로 호수나 내, 지형의 특성과 역사를 살린 총 10여 개에 이르는 명품 자전거길 등을 만들어 친환경적인 자전거 이용의 편리성과 자전거 문화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자전거길은 아름다운 우리 산과 강을 가까이서 만끽할 수 있고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과 소통의 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길과 길로 이어지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체험과 시련의 현장이다.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새소리와 파도소리에 젖어들고, 꽃향기와 거름냄새를 맡으며 수없이 다가오는 영화 같은 풍경을 접하게 된다. 거기에 그랜드슬램을 인증한다는 것은 험난한 여정을 밟아야 하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몸의 컨디션과 날씨 변화, 자전거 상태 등이 괜찮아야 하고 간혹 비포장 자갈길과 숨이 턱까지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길을 묵묵히 인내로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까칠한 아들과 함께 하기란 오죽할까?사람의 공과는 누구나 있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득과 실이 분명해지고 커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구속 수감되기는 했지만,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자전거길만은 다행스런 치적(?)이 아닐 수 없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면면이 이어지는 자전거길. 그러한 다양한 길을 오가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자연과 교감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역경을 딛고 무한한 희열과 추억을 쌓아나가리라.

2020-11-17

고양이와 함께 사는 세상

아침 최저기온이 어느 새 0도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겨울이 온 것이다. 겨울은 누군가에게는 첫눈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신년의 설렘을 가득 담은 즐거운 계절일 수 있겠으나 우리 주변의 어떤 이웃들에게는 가혹한 계절일 수 있다. 전국적으로 100만 정도가 살고 있다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겨우내 기갈과 추위와 싸워야 할 이 이웃들의 이름은 바로 길고양이이다. 길고양이는 집고양이와 대비되는 말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길고양이가 애초에 집고양이였거나 그들의 번식을 통해 태어난 고양이들임을 감안한다면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단지 현재 그들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일 뿐이다.길고양이들을 일컫는 말로 ‘도둑고양이’가 있었으나 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 씌워진 말이므로 이제는 권장되지 않는다. 사실 도둑고양이라는 말도 도둑질이라는 범죄와 관련된 말이 아니라 조심조심 움직이며 사람들의 시야를 피해가는 모습에서 유래된 것일 텐데,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의 영역을 거의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길고양이가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아주 자잘하다. 먹이를 찾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찢어놓고, 발정기에 다소 신경 쓰일만 한 울음소리를 내는 정도. 그마저도 적절한 먹이주기와 중성화수술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도 않고 보행로를 배설물로 더럽히지도 않는다. 도둑이라는 별명을 붙이기에는 그들은 너무 무고하다.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 ‘길고양이K’는 이름 없이 살다 가는 길고양이들의 생태를 집중 조명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양이들은 다른 나라의 고양이들에 비해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심하다고 한다. 인간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더 많다는 것이다.실제로 수많은 길고양이 학대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져왔다. 사제 총으로 쇠못을 발사해 고양이들을 사냥한 사건이나 쥐약이 든 먹이로 고양이를 학살한 사건은 실로 충격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꼭 그 정도 수준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가하는 고양이들에 대한 위협과, 부정적인 인식들은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길고양이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길고양이들은 수명이 15년에 이르는 집고양이와 달리 평균적으로 3∼4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가 성체까지 자랄 확률은 불과 30% 정도라고 한다.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스럽게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조정되도록 하는 방법이다.2008년부터 서울시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시행중이다. 길고양이들을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뒤 다시 거리로 돌려보내는 사업이다. 2017년까지 약 6만5천여 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25만 마리였던 서울의 길고양이들은 13만 9천 마리 정도로 급격히 감소했다. 굳이 나서서 고양이들을 내쫓으려 애쓰지 않아도 고양이의 개체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 전망이다.우리가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양이를 사지 않는 일이다. 도시의 많은 길고양이들은 반려동물로서 키워지다가 주인의 책임감 부족으로 방사되어 야생화 된 경우들과 그들이 번식한 경우들이다. 섣부르게 고양이를 들일 것이 아니라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갖고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 다음 반려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유기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일 것이다.그리고 반려묘를 맞이하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구매의 방법보다는 입양의 방법을 선택할 것을 권장한다. 품종묘를 구매하는 일은 품종묘의 무분별한 생산을 부추기는 일이 된다. 반면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것은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이는 일이니 길고양이로 인한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게도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된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입양되는 과정을 알리기 위해 나와 나의 고양이가 만나게 된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내 반려묘의 이름은 ‘삼봉이’. 좋아하는 대하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삼봉 정도전 선생의 호에서 이름을 땄다. 재작년 이맘때쯤부터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실 고양이를 집에 들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보다도 1년 전 정도였다. 꿈속에서 귀여운 고양이를 만나고 처음 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날, 나는 그날부터 1년을 고민의 기간으로 정했다. 한 번 고양이를 들이면 적어도 10년은 함께 지낼 텐데, 10년간의 책임감을 위해서 그 정도의 고민 기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나서도 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고양이를 들이기로 마음먹었다.고민의 기간 동안 나는 유튜브를 통해 ‘고양이를 기르면 안 좋은 점’, ‘당신이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되는 이유’와 같은 영상들을 찾아보며 반려묘와 함께 지내며 겪게 될 어려운 점들을 학습했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1년의 고민 기간을 채우고서야 나는 입양할 고양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기견 유기묘 입양 어플인 ‘포인핸드’를 통해서 수많은 고양이 사진을 찾아보다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동물 보호 단체인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이라는 단체에서 구조하여 한 회원이 임시 보호를 하고 있던 아이였다. 서울에 있는 폐장된 놀이공원인 ‘용마랜드’에서 구조되어 ‘용마’라 이름 붙여진 아이였다.내가 꿈에서 만난 녀석과 비슷하게 생긴 치즈 빛깔 녀석을 입양하기 위해 신청서를 적었다. 입양 신청서에는 입양 올 동물이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과 음식, 의료적 뒷받침을 제공할 수 있는지, 또는 동물을 악용하거나 유기할 사람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한 문항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절차로 보호 단체의 운영진이 우리 집에 방문해 고양이가 자랄 환경을 체크한 뒤, 고양이의 중성화를 위한 보증금을 납부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용마랜드에 살던 길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 집 고양이 삼봉이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값비싼 돈을 주고 품종묘를 사는 대신, 품종묘 못지않게 예쁘고, 오히려 품종묘보다 건강한 유기묘를 입양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길고양이 문제는 빠르게 해소될 것이다.유기묘의 구조와 입양에 힘쓰는 분들에게 경제적 후원을 하는 것도 길고양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를 위한 비영리 단체들이 아주 많이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길고양이들을 조금 너그럽고 친절한 태도로 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길 가는 고양이를 위협한다거나 먹이를 얻어먹으러 오는 고양이를 학대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 추운 날 혹시 자동차 밑이나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위해 보닛을 몇 번 두드려주는 친절, 허기지고 목마른 고양이에게 길고양이 급식소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에 사용되는 노력을 아깝다고 여기지 않는 마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주인이 우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길고양이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 겨울은 그런 것들이 필요한 계절이다.

2020-11-17

미술관 가는 길

좀 걷자고 했다. 혼자는 심심해서 중간고사 3일 앞둔 아들을 꼬셨다. 하루 종일 공부하면 머리 아파 공부가 더 안된다며 데리고 나섰다.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포항시립미술관에 가자고 했다. 아들은 초등학교 졸업 사진 찍을 때 갔었다며 산길로 가자 했다. 차가 지나다니는 보도블록보다 그쪽이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앞장서라 했다.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나처럼 허약 체질에겐 딱 좋은 산책길이었다. 피곤할만 할 때쯤 미술관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보였다. 바람이 숲을 스치는 소리가 오후의 편두통을 사라지게 해줬다. 누군가 내가 산에 갈 때 복장을 보고 나무랐다.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모자도 잘 안 쓰는 편이다. 맨다리가 긁힐 거라는 둥 땀이 많이 나면 면 티셔츠는 체온 유지가 안 되어 해롭다는 둥 유난스럽게 야단을 친다. 나는 에베레스트나 백두산을 오르는 게 아니다. 그저 기껏해야 한 시간 뒷산에 간다. 반바지에 티셔츠로도 충분하다며 손사래를 쳤다.오늘은 작은 배낭 하나에 물도 없이 휴대폰만 넣었다. 어젯밤 멜론에 가입해 이루마와 김광석의 모든 노래를 다운받아 놨기 때문이다. 가을에 딱 맞는 선곡 아닌가.지금 포항시립미술관에는 이종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보고도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자꾸 보다 보면 맘이 편해진다. 미술관 분위기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톤이라 나는 혼자서도 자주 간다. 도슨트가 설명을 해주는 것을 따라가며 듣기도 하고, 어느 땐 기분 나는 대로 어느 그림 앞에 앉아 멍을 때리기도 한다. 미술관 찻집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창으로 난 풍경을 그림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미술관이 내게 주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인다. 이 모든 게 공짜라는 건 안비밀!가는 길은 산으로 갔지만 돌아올 때는 택시를 탔다. 노곤하다. 집에 가서 낮잠 한숨 자야겠다. 일요일이니까. /이은규(포항시 남구 연일읍)

2020-11-16

신라를 찾아서

요즘 역사책에 푹 빠져있는 큰딸 시은이가 신라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재잘재잘 질문이 많아졌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중학교 국사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입담 좋으신 국사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가 할아버지께서 들려주는 옛이야기 같아 수업시간이 늘 즐거웠다. 그런 성향을 큰애가 똑 닮았나 보다. 이참에 관심을 흥미로 바꿔주려고 주말에 경주 문무대왕릉을 보러 가자고 했다. 역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지인 찬스를 쓰기로 했다. 들려주는 추천코스는 경주 읍천항(파도 소리길) - 경주 문무대왕릉 - 감은사지 2013 이견대였다. 늦잠을 자고 있던 남편을 깨우고 간단하게 간식도 챙겨서 경주로 가족 나들이 떠났다.읍천항은 바다에서 솟은 주상절리가 길을 안내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꽃피우고, 간간이 인증샷도 남겼다. 바닷길을 달리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문무대왕릉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훨훨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문무왕 곁을 지켜주고 있는듯했다.차로 5분 거리의 감은사지에 도착했다. 절은 사라지고 탑 두 기만 남아 언덕을 채우고 있었다. 문무왕이 짓기 시작해 아들인 신문왕이 완성하였다. 쌍둥이 석탑을 우러러보았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큰 석탑으로 금당 아래 석축 사이 공간으로 동해의 물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문무왕이 용이 되어 오가던 길이라고 한다. 옛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는 사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두 딸을 불러서, 만파식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고 대견스러웠다.마지막 코스인 이견대로 발길을 돌렸다. 탁 트인 이견대에서 문무왕릉을 바라보면서, 죽어서라도 용이 되어 왜구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알려주려다 내가 더 감동을 얻어 온 하루였다. /엄민재(포항시 북구 삼호로)

2020-11-16

냉동고 타령

데레사가 소리를 지른다. “여보! 큰일 났어. 냉동실이 고장 났는지 다 녹아내리고 있어. 빨리 와봐.” 달려가 보니 냉동식품들이 해동 중이었다. 냉동실에는 얼어있는 물건들이 많고 단열이 잘 되어있어 문만 여닫지 않으면 하루 이틀은 버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데레사에게 냉장고 문을 절대 열지 말라고 이르곤 A/S 센터에 전화했다.담당자가 이것저것을 묻더니 냉동실 상부 두 군데에 찬바람이 나오는 구멍이 있는데 혹시 얼음으로 막히지 않았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종종 식품이 바람 통로를 막아 냉동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여는 순간 반쯤 녹은 덩어리가 떨어지며 발 등을 때린다. 이것은 냉장고가 아니다. 무슨 창고나 식품상이다. 틈도 없이 꽉꽉이다. 얼음을 제거하고 공기 통로를 열어 놓은 뒤 이틀이 지나 확인해보니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냉동실에 무엇이 들었는지, 언제 넣은 것인 줄 아느냐니까 다 알고 있으니 걱정을 ‘하덜덜’ 말라고 한다. 우리 두 식구 사는 집에 684리터짜리 냉장고와 199리터 크기의 김치 냉장고가 있다. 그런데도 일이 생길 때마다 냉동고 타령을 하며 냉동고 없는 집은 우리 집뿐이라고 한다. 만약 내가 냉동고를 사 준다 해도 반년쯤 지나면 또 꽉 꽉 들어찰 것이고 그때는 업소용 냉동고로 바꾸어 달라고 할 것 같다. 사십오 년 전 결혼 다음 해 12월 보너스 타서 180리터짜리 냉장고를 샀다. 그날 밤 데레사는 얼마나 좋았던지 한밤중 자다 말고 일어나 냉장고를 닦았었다. 그때 그 사람이 맞는가 묻고 싶다.요즈음은 자동차공장에서도 부품창고가 없다고 했다.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공장에서 바로 조립장으로 들여오므로 창고며 부품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비용을 없앴다고 한다. 사용빈도가 높지 않은 식품들은 마트의 신선 코너에 보관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묻고 싶다./류대열(경주시 외동읍)

2020-11-16

꿩에서 얻는 교훈

강희룡 서예가부모자식 관계는 농부와 곡식으로 비유된다. 농부가 곡식을 잘못 가꾸면 결국 굶주림의 환난을 겪게 되고,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필경에는 위험한 화란(禍亂)을 초래한다. 곡식을 잘 가꾸고 자식을 잘 가르치는 법을 어찌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조선 초기 대학자였던 사숙재 강희맹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 훈자오설(訓子五說)을 짓는다. 아비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에 사숙재가 지은 이 글은 오늘날 독자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교술 갈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훈자오설 중 성질이 음탕하고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꿩에 비유한 ‘삼치설(三雉說)’의 내용이다. 수풀에 숨어서 피리로 암컷소리를 내며 미끼로 삼은 수컷을 움직이면 암컷과 함께 있는 것으로 착각한 욕심 많은 다른 수컷이 화를 못 참아 미혹에 빠지는 경우로 닥칠 재앙을 잊고 다가와 단번에 잡히는 경우이다. 이런 유형은 자신의 내면이 이기심으로만 가득 차 있기에 방탕하며 부모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아, 엄히 가르치지 못하고 마땅히 꾸짖을 수 없으며, 부끄러움조차 없기에 죄의식 없이 잘못을 저질러 스스로 죄의 그물에 걸리는 경우로 평생 지혜를 깨우치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두 번째 경우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유혹하면 못 본 척 하다가 같은 행동의 반복에 결국 욕망을 못 참고 미혹되어 미끼 쪽으로 다가오나 미리 경계심으로 방비를 하기에 완벽하게 속여야 겨우 잡을 수 있는 경우이다. 꿩 중에서 조금 영리하여 자신에게 닥칠 재앙을 미리 짐작하고 있는 경우로, 이미 한두 번 미혹되어 고생하고 뉘우치면서도 오히려 그 감정에 빠져 다시 부끄러움을 잊고 전철을 밟아서 마침내 재앙의 그물에 걸리는 두 번 덮쳐서 잡는 부류이다.끝으로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하늘로 날아올라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경계심이 많은 꿩의 경우이다. 욕심이 적고 경계심은 앞서는 까닭에 사람을 꺼려해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온갖 술책을 다 써서 겨우 가까이 오게 했을지라도 그 민첩한 모양새가 마치 신과 같아 어떻게 기회를 잡아 술책을 펼 수도 없다. 꿩 중에서 가장 영특해 해로움을 멀리하는 종류이다. 이런 유형은 품성이 단정하고 굳건해 맑게 갈고 닦음을 좋아하고, 음탕하고 황당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멀리한다.위에서 열거한 세 종류에서 첫 번째 인간형은 내면이 일그러진 욕망으로 가득차서 결국 그로 인해 자신이 미혹에 빠졌다는 사실도 모르기에 부끄러움도 없다. 혹시 있다고 해도 고칠 생각이 없는 극우나 극좌의 진영론자, 죄의식 없는 강력범죄자, 직을 이용한 부패나 비리의 공직자나 위정자들,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스스로 정한 규정을 이익에 따라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부류들이다. 미혹에 빠져 후회하면서 또 다른 유혹에 넘어가는 부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위정자나 관료로서의 자질이 없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끝으로 뉘우쳐 후회할 줄 알기에 유흥을 단절하고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으며 올곧은 선비정신을 좇아 날로 새롭게 갈고 닦아 평생 재앙을 모면하는 이상적인 형이다. 이렇듯 15세기 꿩에 비유한 사숙재의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2020-11-16

패배의 아픔으로 지은 불멸의 건축물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16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두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있다.다빈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 주로 그림을 그렸고,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와 ‘다비드’ 같은 조각을 남겼다. 20여 년의 터울을 두고 활동한 이들은 작품의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수많은 걸작들을 역사에 남긴 상호 존중과 품격의 모드를 갖춘 선의의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배경이 조금 다른 라이벌이 있었으니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로 처음엔 둘 다 조각가였으며 명성은 다소 생소하지만 경쟁과정과 승패의 대립구도는 앞선 라이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렬했다.1401년 유럽인구 3분의 1을 집어삼킨 페스트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을 때 예술의 도시 피렌체는 도시분위기 일신의 차원으로 조반니 세레 당을 치장하는 사업공모를 내걸었다.내로라하는 당대의 미술가들이 공모에 참여했고 결승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22살의 견습 화가 기베르티와 한 살 위인 금 세공사 브루넬레스키 두명 이었고 이들에겐 바로 34kg의 청동판 위에 일년 동안 4엽 장식으로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이삭의 희생’을 표현하라는 오더가 내려졌다.이 숙명적인 세기의 대결에서 유실 왁스기법의 작품을 제출한 기베르티가 최후의 승자로 낙점됐고 승자가 된 기베르티는 1403년 피렌체시와 동쪽 문에 28개의 부조를 만드는 계약을 체결하고 21년 후에 완성했다. 그렇다면 패자가 된 브루넬레스키의 행보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세계의 저명한 건축가들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피렌체 대성당’을 선택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5세기 초에 건립된 작은 교회를 대도시로 성장한 피렌체 시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로 개축하기 시작한 해는 1천296년이었고 1천436년에야 완공됐다.140년 동안 쟁쟁한 건축가들이 건설 현장을 수없이 다녀갔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축가는 단 한 명 브루넬레스키 뿐이다.종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55m 높이의 팔각형 건물 위에 직경 45m가 넘는 거대한 돔 지붕을 얹는 대과업이 그의 집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혼자서 기중기를 개발하여 3만7천여 톤에 달하는 건축자재를 들어올리고 400만개의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스스로 지탱하는 기적과도 같은 돔을 완성했다.그는 죽은 뒤 성인이 아니면 허락하지 않았던 대성당의 지하납골당에 묻혔다. 거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길 때보다 질 때를 더 많이 경험한다. 그러나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다.기베르티에게 패한 다음 그대로 주저앉았다면 피렌체 대성당은 여전히 비가 들이치는 뻥 뚫린 구멍을 간직한 초라한 건축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라이벌 대결에서 패배하여 좌절한 마음을 달래며 로마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마침내 피렌체로 다시 돌아와 세계 건축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불멸의 명작을 남긴 한 인간의 열정과 가슴 뭉클한 인생역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음을 그 흔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2020-11-16

우리의 인연이 다하는 그날까지… 통영 도솔암(兜率庵)

가을날의 하루는 유난히 짧다. 용화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숲은 부산하게 하루를 접고 있었다. 용화사 오르는 반대편으로 넓은 시멘트 길이 시원하게 산으로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걸어서 도솔암을 오르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비탈길에서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숲을 깨운다.지척에 있을 거라 여겼던 도솔암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친구는 지친 기색도 없이 잘도 오른다. 관음암으로 향하는 자동차가 우리 곁을 가볍게 지나칠 때마다 그 편안함이 부럽지만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급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뒤늦게 놓친 것들을 알고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사위어가는 가을 숲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도 크다.‘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목장으로 몰고 가듯 늙음과 죽음은 중생의 목숨을 몰고 간다.’중간중간 비석처럼 서 있는 글귀들이 피곤함을 잊게 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여가 없이 세월에 쫓겨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만나는 글귀들을 주제로 삼아 소소한 마음밭을 일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이끌려 살아온 숱한 시간들을 이 곳에 내려놓고 갔을까. 가파른 길은 겸허해지고 아파오는 다리와 거친 숨소리가 뿌듯하다.관음암을 지나고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과 헤어진 후에야 도솔암이 보인다. 고려 태조 26년(943년) 도솔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는 남방제일선원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도솔암은 한국 불교 선종의 고승인 효봉스님이 6.25전쟁 직후 제자인 구산 스님과 함께 이곳에서 선종의 법맥을 계승하였다.도솔선사가 미륵산 암굴에서 수도할 때 호랑이와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호랑이가 처녀를 업어와 바치자, 선사는 호랑이를 꾸짖고 처녀를 고향으로 데려간다. 처녀의 아버지가 은혜를 갚기 위해 300냥을 선사해 그 돈으로 도솔암이 지어졌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절에나 있을 법한 설화는 신빙성이 없지만 도솔암 위쪽에는 여전히 바위굴이 남아 있다고 한다.절은 조용하다. ‘컹’하고 외마디로 짖던 누렁이의 눈빛도 이내 무심해진다. 가을 앓이를 하는지 조용한 산사를 찾아든 객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꼬리를 흔들며 반기거나 경계심으로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온전히 자유롭다. 그의 이름은 보리이거나 반야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은 출타 중이신 듯하다. 하루치의 낙엽이 가만가만 뜰아래로 모여들고 있다.늦가을 늦은 오후의 정취로 마음이 심산해지는데 도솔암은 통영 앞 바다를 그윽하게 내려다 볼 뿐 흔들림이 없다. 선지식 효봉 스님을 생각하며 절을 둘러본다. 일제 강점기 와세다 대학 법대를 졸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가 되었지만 조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승려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긴 분이다.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여수로 가던 중 뱃멀미가 심해 잠시 통영과 인연을 맺게 된다.마침 용화산 도솔암이 비어 있어서 며칠 쉬었다 갈 요량으로 주저앉다 아주 눌러 살게 되었다고 한다. 효봉 스님은 수행을 시작하면 엉덩이가 짓물러 깔고 있던 방석이 엉덩이에 달라붙을 정도로 꼼짝하지 않아서 절구통 수좌라고 불렸다. 그리고 동료 스님을 고자질하던 제자에게 “너나 잘해라.”고 소리를 치셔서 ‘너나 잘해라’ 스님으로 불리기도 했다.조낭희 수필가편백나무가 울창한 미륵산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의 부도를 본 듯한데 이곳 도솔암에서는 효봉 스님에 대한 어떤 자취나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대웅전이나 동국 선원보다 요사채의 쓸쓸함과 담장 밖에 선 오랜 느티나무가 떠난 스님이 남기고 간 법문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벽속에서 울어대는 겨울 귀뚜라미처럼 절 안에 갇혀 세상을 읽던 그 서슬 푸른 기운은 사라지고, 도솔암의 텅 빈 눈빛 속에는 그렁그렁 그리움이 잠겨 있다.대웅전 가는 길에 ‘말씀은 가만가만’ ‘걸음은 조용조용’ 이란 음각으로 새긴 글자가 맹숭맹숭하게 쳐다본다. 누구를 향한 글귀일까. 성성하게 푸른 기운이 살아 있을 경내, 발소리 낮춰가며 들어섰을 한 때의 도솔암을 그려본다. 수행하는 스님이 신경 쓰여 걸음을 눌러 밟고 숨죽이며 법당 문고리를 당겨 보고 싶다. 가는 절마다 번듯한 선원들이 비어 있듯 쓸쓸하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잠시 대웅전에 들러 기도한다. 남의 시선에 휘둘림 없이 마음의 주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친구는 언제나 내 삶의 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연이 다하는 그날까지 참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어떤 인과 관계에 얽혀 이곳까지 함께 떠나올 수 있었는지 그 오랜 인연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우리가 갖는 순간순간의 생각이나 염원은 우주에 남아 진동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연도 사랑의 파장으로 진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들꽃이 흔들리듯 향기롭고 잔잔했으면 좋겠다.짧은 기도를 끝내고 법당을 나설 때 고목의 느티나무는 여전히 맑은 기운 성성하고, 친구는 마당을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륵산에 얼굴을 묻은 작은 바다 홀로 먼 데를 꿈꾸듯 항해 중이다.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의 도솔암은 하나의 큰 말씀으로 남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2020-11-16

보기에 좋았던 것들이 사라지는 시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았다. ‘흑암’의 깊음 위에서 처음 빛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궁창(하늘) 위와 아래를 물로 나뉘고 하늘을 창조한다. 다시 물을 가르고 땅과 바다를 만들고 이름을 붙인다. 이제 이곳에 생명의 기운들이 돋아난다. 하루에 하나씩 천지를 창조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보기에 좋았더라’고 감탄을 이어간다.창세기 1장 1절 어느 곳에서도 창조의 당위성에 대한 어떠한 이유나 설명 없이 6일 동안 순차적으로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어지’게 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을 취한다. 그 이유를 설명할 존재가 없었으며, 더욱이 안식일 이후에 창조된 인간들에게 그 이유를 알리지 않는다.여호와 하나님은 안식일 이후 천지 만물과 인간을 만들고 자연의 질서를 부여한다. 그리고 아담 이후에 창조된 생물들에게 태초의 인간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을 주게 된다. 물론 그 권한 뒤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금기의 항목이 뒤따른다. 그 금기로 인해 인간은 원죄를 갖게 되고 낙원에서 추방된다. 존재의 이유를 알기 이전에 선과 악의 구분에 눈을 뜨게 됐으니, 이후 인류는 선과 악의 선상에서 길흉화복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인류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제법 많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 한다. 그 와중에 인간과 만물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지금도 에덴의 동쪽에 머물고 있다. 만약 태초의 인간이 하나님의 금기를 어기지 않았다면 신의 뜻에 따라 창조된 모든 것들과 인간의 존재 이유를 들을 수 있었을까.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 ‘토리노의 말’은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명하다. 그러나 그 줄거리가 일반적인 내러티브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내러티브 너머에 있는 근원적 질문에 접근한다.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릴 때, 신이 창조한 그 역순으로 피조물은 소멸돼 간다.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창조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듯이, 벨라 타르 감독 또한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만물의 존재가 소멸돼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인류가 세상만물과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도 전에 순차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상황에 놓인다. 6일간 창조했던 ‘보기에 좋았’던 것들이 사라져버리는 상황에 안식일 이후에 창조된 인간이 마지막 빛이 사라지며 ‘흑암’으로 돌아가는 화면 속에 남는다.146분짜리 흑백영화는 내레이션을 빼면 창세기 1장 정도 분량의 대사만 있다. 세상만물이 특이점을 향해 소멸되어 갈 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이유를 따지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때, 절망과 허무는 가장 늦게 창조되어 가장 늦게까지 소멸되지 않는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여기에 벨라 타르 감독이 안식일 이후에 창조된 인간을 천지창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6일간의 시간에 배치한 이유가 될 것이다. 원죄를 안고 태어나 에덴의 동쪽에 머물던 인류는 ‘구원’에 의해 언젠가는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의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그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천지창조의 이유를 알기도 전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흑암 속으로 잠겨 간다.‘소멸’이라고 했지만 ‘근원으로의 회귀’로 읽을 수도 있다. 예전에 ‘빛의 예술’이라는 사진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흔히 사진을 시간의 예술, 빛의 예술이라고 한다. 창세기에도 나와 있지만 빛은 어둠에서 나왔으니 그 근원은 어둠이 된다. 사진은 빛을 제어하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어둠을 제어하는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의견에 동의한 적이 있다. 음악도 그렇다. 음악은 소리에서 나왔으며, 그 소리는 침묵에서 나왔다. 그래서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침묵을 제어하는 예술이라는 것으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의 예술 세계를 이해했던 적도 있었다.5년여를 주기로 영화를 만들던 벨라 타르 감독은 ‘토리노의 말’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유려한 롱테이크와 물성 가득한 흑백영화를 남기고 그의 영화처럼 절망과 슬픔, 기괴하며 짙은 어둠을 던져주고 근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김규형

2020-11-16

분열된 나라의 대통령들: 미국과 한국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미국 민주주의를 파괴한 트럼프(D. Trump)의 ‘팬덤(fandom)’정치가 막을 내리고 있다. 분열정치에 지친 유권자들은 화해와 통합을 역설한 바이든(J. Biden)을 선택했다. 진영논리에 갇혀 갈라치기하고 ‘선택적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나라를 두 동강 내어 놓고도 잘못을 모르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판박이다.‘탈 진실(post­truth)’ 선동의 주역, 트럼프는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면서 백인과 유색인의 갈등,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지지층 결집을 유도했다. 그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서슴없이 공격했다. 트럼프의 4년 통치로 미국은 남북전쟁 이래 최악의 분열로 대립하고 있다.문 대통령 역시 ‘편 가르기 정치’로 일관해 왔다. 광화문과 서초동, 부자와 빈자, 친일과 반일, 의사와 간호사, 검찰총장과 법무장관 등 ‘여론 갈라치기’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했다. 지지자에게는 관대하고 비판자에게는 냉정한 ‘선택적 인식’을 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보스에 불과했다. 그 결과 ‘두 외눈박이 대통령들’의 공통적인 최대 업적(?)은 ‘증오와 배제의 분열정치’를 통하여 ‘한 나라에 두 국민을 만들어놓았다’는 놀라운 사실이다.바이든은 선거운동 중에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 게티스버그(Gettysburg)를 찾았다. 링컨(A. Lincoln)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는 통합정신을 다시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링컨이 말한 국민이란 내편 네편 구별하지 않은 모든 국민임은 물론이다. 링컨은 연방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전쟁까지 불사한 통합주의자였다. 바이든은 지난 3일 선거승리 연설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당리당략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민주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저서 ‘지켜야 할 약속’에서 “약속은 지켜야만 하며, 정치에 참여하려면 통합이라는 최소비용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신념을 밝힌 바 있다.트럼프의 분열정치와 바이든의 통합정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의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식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대통령은 분열과 대립의 중심에 서 있다. 민주정치의 핵심인 삼권분립이 무너졌으니 모두가 ‘왕(王)이 된 대통령’의 입만 쳐다 보고 있다. 이게 대통령이 말한 나라다운 나라인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심리적 내전상태’에 있는 분열된 나라의 치유에 나서기 바란다.바이든의 승리는 ‘위대한 시민정신의 승리’다. 미국인들은 ‘분열의 리더십’을 거부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선택했다. 우리도 대통령의 ‘편 가르기’와 ‘갈라치기’ 꼼수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국민은 ‘배의 균형을 유지하는 평형수’와 같은 존재이다. 균형을 잃은 외눈박이 대통령의 분열정치를 거부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지지·육성하는 것은 국민의 책임이다.

2020-11-16

번아웃증후군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업이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4명 중 1명은 번아웃증후군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번아웃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갑자기 불이 꺼지는 것처럼 체내 에너지가 방전되는 모습을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병명은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그가 처음‘소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번아웃 경고 증상은 여러가지다.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들고,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리고,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직장인들이 번아웃증후군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뭘까.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대상은 역시 상사다. 직장인 2명 중 1명이 “상사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답했다. 그 중에서 팀원과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상사와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상사가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상사유형으로 꼽혔다. 젊은 직장인들은 야근을 강요하거나 주말에 일 처리를 명령하는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번아웃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직원 상호간 서로 노력을 인정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직장문화를 형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퇴근 후에 집으로 일을 가져가지 않고, 운동, 취미 생활 등 능동적인 휴식 시간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