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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로나19 지원 대책, 서민 생계지원이 먼저다

주낙영경주시장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온 국민이 건강에 대한 불안과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무심하게도 봄은 다시 찾아와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머지않아 경주는 다시 화사한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상춘객이 얼마나 올지 걱정이다. 관광객이 예년의 30% 수준도 채 되지 않아 대부분의 상가가 철시를 했고, 그나마 문을 연 식당들도 개점 휴업상태다.한동안 수그러드는가 싶었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월21일 현재, 한꺼번에 5명이 추가되어 경주에서만 3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인근의 다른 지자체보다는 상황이 다소 나은 편이지만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지난달 20일, 경주시는 코로나19의 지역 확산에 대비해 정부보다 한발 앞서 대응체계를 위기경보단계에서 심각단계로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일 경주지역에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경주시는 곧바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비상체제로 전환하여 총력 대응에 들어갔다.전염병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의 공유가 중요하다. 하루 두 차례 일일대응자료를 배포하고 시장이 직접 언론브리핑과 홈페이지·SNS 채널을 통해 경주시의 대응상황과 확진자 관련 동선, 자가격리자 현황, 검체 의뢰실적·결과 통계는 물론이고 중국인 유학생 입국·관리현황을 상세하게 파악하여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했다. 또한, 경주시에 소재하는 신천지 집회시설 8개소에 대해서 신속하게 방역을 실시하고 관련 시설을 모두 폐쇄했다. 동시에 전담 상황반을 편성하고 신천지 교인 전원에 대한 검사를 완료했다.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어려움 속에서 천년고도 경주시민의 역량은 빛났다. 병상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대구시민들을 위해 국가지정 생활치료센터를 2개소나 수용하여 600명이 넘는 경증환자들을 받아들였다. 동국대 경주병원은 음압격리병상을 갖추고 타지에서 온 중증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처음에는 관광도시인 경주에 이런 기피시설이 들어서는데 대해 적지 않은 반감과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확진자들의 쾌유를 기원하는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내걸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 우리 경주도 함께 힘을 보태겠다는 넓은 아량과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이뿐 아니다. 마스크 부족 사태를 이겨내고자 ‘사랑의 마스크 나누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면마스크를 만들어 취약계층에 나누어주고 있다. 출향인사와 독지가들의 성금과 격려물품도 줄을 잇고 있다. 일부 건물주가 시작한 임대료 인하운동도 요원(720E原)의 불길처럼 확산되고 있다. 일찍이 나눔과 배려의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천했던 교촌 최부자댁의 ‘DNA’가 재현되고 있는 모습이다.연대와 응원, 격려와 협동의 아름다운 정신이야말로 이 위기를 극복할 원동력이다. 하지만 정신력으로만 극복될 수 없는 게 경제요, 생계의 문제이다. 경주는 관광객 급감으로 많은 시민들이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을 느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5일 대구시와 경북의 경산, 청도, 봉화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피해복구비의 상당액을 국비로 지원받게 되었다. 일정한 기준이 있었겠지만 실제 코로나19로 피해를 입고 있는 곳이 이들 지역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있다. 또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어봤자 법상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다.지난 17일에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11조 7천억 규모의 긴급 추경예산도 편성되었다.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정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나 일용직 근로자, 차상위계층에 대한 대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하루빨리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생계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가가 제대로 못한다면 지방정부라도 나서야한다. 경북도와 시군이 예산을 분담하여서라도 생존 위기에 처한 차상위계층에 대한 긴급 생계지원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0-03-22

내가 희망하는 숫자는?

오지은 공무원희망이란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하고 싶은 ‘생각’이 선행해야 하고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마음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반복하는 3대 국민 결심은 금연, 다이어트, 영어공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새롭게 결심하지만 쉽게 이루지 못한다.희망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무언가를 결심하고 야심 차게 시작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성과에 실망하고 좌절한다. 결국 이런저런 합리적 핑계를 만들어 포기하고 만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목표를 잘게 쪼개 우선 임계점까지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잘 설계하면 작은 성취감을 즐기며 희망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희망’이라는 것은 태고로부터 인간이 극한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고안해낸 일종의 자기 최면 기술은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유명한 역사학자가 말했다. 샤먼이 생겨나고, 그것을 구심점으로 사람들은 모여 협업할 수 있었으며, 이런 행동 양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에 있도록 만들었다. 희망도 그런 맥락에서 인류를 움직인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인생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내게는 욕망의 숫자가 있다. 그 숫자는 95 그리고 800이다. 95는 내가 욕망하는 티셔츠 사이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평균 몸무게였던 적이 없었던 나는 100이라는 숫자 아래의 티셔츠를 입어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95는 번번이 실패하는 다이어트에 대한 내 희망의 숫자다. 올해로 오십에 도달한 나는 800이란 숫자를 갈망한다. 800은 내가 받고 싶은 토익 점수다. 토익 900점이나 만점자도 넘쳐나고, 토익 스피킹, 오픽 같은 말하기 시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토익 800점이 내 욕망의 숫자일까? 필자가 대학생이던 90년대 초반에는 이 점수가 요즘 토익 900에 해당하는 꿈의 점수였기 때문이다. 토익 800점은 열심히 살지 않고 무심히 흘려보낸 내 젊은 날에 대한 후회를 치유해 주고 싶은 숫자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희망을 이룰 수는 없을까? 나는 선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무엇인가 반복하는 행동에 쉽게 싫증을 낸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날씬한 몸으로 바뀌어 있고,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희망하는 일을 이루려면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희망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희망의 시작은 나 자신이다. 최초의 희망은 내 머리에서 싹이 트고 내 가슴 속 열정이 싹튼 희망을 계속 품을 수 있게 한다. 결국 내 생각이 가장 중요한 희망의 씨앗이다. 훌륭한 생각을 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벤치마킹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았던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지혜로운 옛사람의 길을 따라가고, 내 삶에 녹여내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는 나는 고전을 손에 붙잡고 살아간다.고전은 우리에게 선뜻 답하기 어려운 난감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사고는 조금씩 넓어지고 유연하게 변한다. 가장 강한 자는 힘 있는 자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자도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유전공학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4차 산업혁명의 벽두에 선 우리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유연한 사고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연습을 멈추지 않기로 결심한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고전 읽기가 아닐까?

2020-03-22

피장파장의 오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피장파장의 오류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인신공격의 오류’의 일종이다. 상대방의 특정 발언에 대해 ‘발언 자체의 내용에 하자가 없는지’를 안 따지고 갑작스럽게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위선을 논거로 꺼내 상대방의 적격성을 갖고 논점을 흐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의사가 말한다. “음주와 흡연은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할 수 있으니 조절하십시오.” 환자가 반박한다. “에이, 의사선생님도 술, 담배 하시잖아요.”환자는 의사가 주장하는 사실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지적했지만 이는 음주와 흡연이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반박이 아니므로 피장파장의 오류가 된다.정치판이 이같은 피장파장의 오류로 시끄럽다. 여야의 위성정당 창당을 둘러싼 논란이 거대양당을 속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 미래통합당의 경우 위성정당 창당을 옹호한 논리가 바로 ‘위성정당’존재의 정당성이 아니라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배제된 선거법 개정에 대한 비판뿐이었다. 쉽게 말해 ‘다른 당들이 먼저 도의를 어겼으니 자유한국당도 편법을 써도 된다’는 논리였다. 이는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다. 제도나 그 절차 문제는 차치하고 ‘미래한국당’은 선거에서 의석 추가 확보만을 위한 비정상적 위성정당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더구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서 모(母)정당의 뜻과 다른 후보를 공천하는 바람에 더욱 모양이 우스워졌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미래한국당을 향해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작심 발언해야 할 정도였으니 참으로 곤혹스러웠으리라.황 대표가 그동안 법적으로 엄연히 별개인 미래한국당의 공천에 개입한다는 논란을 피하려 직설적 표현을 피해왔지만, 통합당 영입 인재를 외면한 공천을 접하고선 어떤식이든 제대로 손보지 않고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선 듯하다.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어떻게 둘러대더라도 꼼수정당이라는 도의적, 정치적인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범여권이 동의할 수 없는 잘못된 게임의 룰을 일방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위성정당 창당으로 선거법의 허점을 드러내고, 추후 잘못된 선거법을 고치겠다는 게 미래통합당의 입장이다.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4+1협의체 역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을 배제하고 선거법을 뜯어고친 뒤 위성정당을 추진하면서 피장파장의 오류를 정당화의 논리로 차용해 쓰고 있다. 말 그대로‘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만큼 민의의 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도 위성정당 창립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재미있는 것은 궁색한 핑계아래 추진되는 위성정당 창당과정이 순탄치 못하다는 것. 친문(친문재인)·친조국 성향의 ‘시민을 위하여’를 비례연합정당 플랫폼으로 선택해 신생 원외정당 등과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출범시켰지만 시민사회계 원로들이 참여한 정치개혁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 쉬운 게 없지만 사람들의 모임인 정당이 마음먹은 대로, 뜻한대로 움직일리 없다는 순리가 눈에 밟힌다.

2020-03-19

오합지졸

로마 바티칸국의 교황청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은 충성심과 용맹함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루체른시에는 스위스 용병을 상징하는 ‘빈사의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1792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루이앙뚜아네트가 머물고 있던 궁전을 지키다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의 충성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다. 사자가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당시 프랑스 시민이 그냥 도망가라고 권했을 때도 끝까지 스위스 용병의 의무를 다했던 그들의 일화는 스위스 용병의 명예로운 군인정신으로 남아 있다.군기는 군대의 기울이며 생명과 같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군의 질서를 유지하여 전투력을 보존하는 군기는 군인 정신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갑자기 모아 놓은 훈련되지 않은 군사를 우리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 부른다. 우리민족은 언제부턴가 오합지졸을 ‘당나라 군사’에 비유해 사용했다. 왜 당나라 군사가 오합지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유래를 대체로 고구려시대에서 찾고 있다. 비록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했지만 그 전까지 고구려는 당나라 군사를 맞아 큰 승리를 거두었던 때문이라 한다.군인은 전쟁에서 승리가 최고의 명예다.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진 군을 군이라 할 수 없다는 뜻이다.최근 우리 군의 경계가 마치 허수아비 같아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군기지 내 민간인이 무단 침입해 활보하는 사건이 올해만 세 건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걱정이 태산 같은 국민 앞에서 군이 보인 모습은 실망감을 넘어 참담하다. 일벌백계가 있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9

‘호남’의 딜레마

단도직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나가자 호남민들은 깊은 소외감에 사로잡혔다.훌륭한 경세가 DJ의 정신이 응집된 당은 ‘구민주’ 세력과 ‘노통’ 세력으로 분할되었고, 그로부터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오랜 ‘치세’가 이어졌다. 선거가 스물 몇 번 있었는데 분할된 ‘민주’ 세력은 늘 참패를 면치 못했다. 정동영 후보의 ‘어마어마한’ 득표 차 패배는 그 정점을 보여준 것이었다.DJ 민주당의 구민주 세력에게는 버려졌음으로 해서 명분이 있었다. 호남들은 따라서 둘로 나뉘었고 약자에게 기울기 마련인 사람의 ‘통성’은 박지원 의원으로 ‘대표되는’ 세력을 동정하게 했다.이명박, 박근혜 두 전임대통령의 실정은 분할된 ‘민주’ 세력에게 천금의 기회로 작용했다. 현 대통령과 박지원 의원과 새로 등장한 안철수 대표의 불안한 동거는 위태로웠지만 어떤 회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한 번은 세 사람이 합동해서 대통령 선거를 치렀지만 패배했고, 다른 한 번은 중도를 표방한 안, 박 연합과 현 대통령 쪽이 분열된 채 다른 당의 홍준표 대표와 선거를 치렀다.호남민들은 5·18 학살로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보수 세력이 재집권하는 것을 볼 수 없었기에 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열린우리당’이 선사한 소외감과 그로부터 생겨난 동정심에서 안, 박 연합의 ‘국민의 당’을 동시에 떠받쳐 주었다. 그것이 지난 총선거에서의 ‘국민의 당’ 바람이었다.다시 한 번 선거가 치러진다. 코로나19가 중심점이 되면서 다른 모든 접점들은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살아 있다. 이제 호남은 민주당 치세 하에 안철수 대표와 ‘결별한’ 민생당이 생존을 시험하고 있다. 새로운 ‘국민의 당’은 호남을 잃어버렸지만 코로나19 속에서 대구·경북을 새로 얻은 형세다.호남 내부의 심경 세계는, 이 ‘만주 정치 평론가’가 추론해 보건대 아주 착잡할 것 같다. 무엇을,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꿈은 땅에 떨어지고 결코 패배할 수 없다는 논리만 남은 형국이다.무엇을, 누구를 선택해도 개운치 않다. 시원스럽지 않다. 마음속에 그리던 이상은 실현될 가망 없다. 그래도 투표장에 가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다.이번 선거는 이 분들에게 가장 참담한 선택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기사, 언제 이 호남에 바람 잘 날이 있었느냐만은./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3-19

민심의 향방

김병래시조시인‘지구는 북극점을 중심으로 한 원반이고. 원반의 끝은 남극 대륙으로 45m의 얼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늘은 돔 모양이고 해와 달은 지구 표면에서 5000km 떨어진 지름 50km의 구(球)이며 이들이 공전함으로 낮과 밤이 생긴다. 해와 달을 제외한 행성이나 항성들은 인공조명일 뿐이고 중력도 존재하지 않는다’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그들은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도 날조된 음모라고 하고, 아폴로 우주선이나 달 착륙도 우주로켓과 우주정거장도 인정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불과 5세기 전이니 지구 평면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나 할까.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있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은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브루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세계에 산재한 온갖 종교와 전설과 신화가 말해주듯 인류는 곧잘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신념을 가져왔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서사로 엮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찬란한 문명을 낳은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한 살육과 전쟁의 구실이기도 했다. 세상이 하나의 정보망으로 연결되어 그런 신념들이 비과학적이고 서로 상충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 민심이고 이념이다. 오히려 지독한 확증편향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같은 사안을 두고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바로 지금 우리의 정국이다. 단순한 의견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념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철이 되면 좌우의 진영에선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고 감정과 불신의 골은 더 깊어진다. 중도충이라고 더 현명하거나 냉철한 것도 아니다. 자기주장이나 신념이 뚜렷한 부동층(不動層)이 아닌 부화뇌동하는 부동층(浮動層)이 대부분이다.‘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정치인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지만, 중우(衆愚)란 말도 있듯이 민심이란 믿을 게 못 되는 것도 현실이다. 포풀리즘이나 선전선동에 곧잘 휩쓸리는 게 민심이다. 히틀러에 열광한 것도 민심이고 러시아 볼셰비키를 밀고 간 것도 민심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도 민심이고,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망친 차베스나 마두로 같은 독재자들이 장기집권을 한 것도 그 나라 민심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26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민심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 편에서는 나라를 망치고 있는 정권의 심판을 부르짖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권의 사수를 위한 결사항전을 외친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보았다. 우리나라 역시도 70여 년 쌓아온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민심의 향방이 과연 천심을 따를지 두고 볼 일이다.

2020-03-19

공천 파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우리말에 “식은죽 먹기, 누워서 떡먹기, 땅짚고 헤엄치기”의 공통점은 “쉽다”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영남지역에서 보수당이, 호남지역에서 진보당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양상도 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이 지역에서의 공천 파동은 매년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그 당에 공천만 되면 당선이 보장되기에 공천위원회는 그 지역민들의 여론과는 상관없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천한다. 지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누구를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4·15 총선을 한 달여 남긴 지금. 공천으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공공성이 있는 공천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의한 “사천”이라는 말도 나오고, 막나가는 공천이라는 “막천”이라는 말도 나온다.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든 후보들은 그들 정치생명의 사활을 걸고 있고, 여전히 공정한 공천의 길은 멀고 험하다.야당의 상황은 심각하다. 얼마 전엔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사퇴했다. 친문 논란이 일었던 김미균 후보의 전략공천 철회에 책임을 진다는 이유였지만, 황교안 대표가 공개적으로 공천 번복 등을 요구하며 빚어진 갈등이 시발점이었다. 홍준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공천탈락으로 시끄럽다. 홍 전 지사는 당대표와 대통령후보를 역임하였기에 공천에서 탈락하는 순간 퇴로가 차단 당한 상황이다. 퇴로가 없기에 그는 “대구에서 대구 시민들의 시민 공천으로 홍준표의 당부를 묻고, 불꽃선거로 압승해 다시 당으로 돌아가 2022년 정권 탈환의 선봉장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귀순한 태영호 공사를 비판한 것도 화제다. 태 공사의 강남 공천은 매우 획기적이고 신선한 공천임에도 탈북자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분들에 동조하는 발언이었기에 파장이 크다. 그는 북한을 잘 알기에 국회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여당도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인 문석균 숭문당 대표가 무소속으로 경기 의정부갑 출마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4·15 총선 무소속 출마를 공식화 하였다.여당에 많은 공헌을 한 문희상 의장의 입장에서는 다만 그 공헌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역민들의 여론조사에서 앞선 그였기에 경선에라도 참가하도록 배려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해찬 여당 대표는 공천 못 받아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면 영구 제명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고 야당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도대체 이런 논리가 어디 있을까? 공천에 배제되어 무소속으로 당선된다는 것은 공천이 잘못되었고 지역민들의 뜻에 반하는 공천이었다고 오히려 공천위나 당이 무소속 당선자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공천에 사천, 막천은 배제 되어야 한다. 지역민의 뜻에 맞는 그런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 당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아닌 진정 지역민들에 환영받는 사람이 공천 되어야 한다.

2020-03-19

마법사의 폭풍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한 나이 든 프로 레슬러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멕시코는 프로 레슬링이 큰 유행이었는데 이번에 은퇴하는 선수를 보며 사람들은 감동과 벅찬 사랑을 느꼈습니다.레슬러는 ‘마법사의 폭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1975년 프로 레슬링에 입문해 항상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기해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화려한 분장 뿐 아니라 현란한 개인기는 관중을 압도했으며, 위기의 순간마다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23년 동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마법사의 폭풍’ 은 오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현역 레슬러로 활동하기에는 체력과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던 거지요. 그는 끝까지 자신을 아껴 준 팬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마법사의 폭풍’이 링 위에 오르자 관중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로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했습니다. 링 한 가운데 선 마법사의 폭풍은 관중의 박수가 잦아들자 놀라운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23년 동안 한 번도 벗지 않았던 자신의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한 겁니다. 관중들은 그가 준비한 선물에 충격을 받고 숨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교회 신부 세르지오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그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관중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더욱더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세르지오는 23년 동안 가난한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레슬링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3천여 명의 고아들을 돌봐 온 것입니다.나는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멈추어 생각해 보는 새벽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9

인포데믹이라는 재앙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이제 선택할 때다. 공격적인 방역으로 사망률을 낮춘 한국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많은 확진자와 더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는 이탈리아의 길로 갈 것인지”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장인 제롬 애덤스의 말이다. 전 세계가 극찬하는 한국의 의료진들과 방역체계와 함께 칭찬 받아야 할 것은 한국국민의 높은 의식수준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아직도 무분별하게 어깨를 맞대고 모이고, 마스크도 쓰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발 한국 국민들처럼 하시오”라는 호소도 생긴다 한다.그 수준 높은 한국국민의 거의 유일한 예외가 종교집단들이다. 신천지는 기독교 입장에서 보기에 교리적으로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가정을 파괴하고 삶의 기반을 허무는 반사회적 집단이다.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계속 호소해 왔지만, 사회의 여론은 냉담했다. 대형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신천지를 홍보해 주기도 했다.이제 그 부작용의 상당부분을 교회가 떠안아야 하게 되었다. 일부 교회이긴 하지만, 공중보건 차원의 고려 없이 자신들의 종교적 열정만 중요시하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코로나19 전염병 극복을 위한 노력에 모범을 보여야 되려 노력했다. 의료진들을 지원하고, 이 어려운 때에 소외된 계층들을 돌보려 애를 쓴다. 그러나 백 교회, 천 교회가 조심하고 노력해도 한 두 교회가 일탈을 저지르면 교회의 위상이 심하게 흔들리는 형국이다. 수도권의 한 교회에서 감염예방 한다면서 소금물을 분무기로 뿌리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눈을 의심하게 할 만큼 충격이었다.인포데믹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해결책이라고 내 놓는 정보들이 너무 넘쳐나서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 온다는 뜻이다. 소금물이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효과가 있다는 정보들이 카톡을 중심으로 한동안 돌아다녔다. 부끄럽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가짜 정보 유통에 한 몫을 했다. 오죽하면, 어떤 이단보다 무서운 종교가 “카톡교”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근거 없는 정보로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마스크를 쓴 김에 내가 평소에 한 말들이 혹 남에게 상처 주지나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이와 함께 혹 나도 모르는 사이 부정확한 정보 전달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에 일조하지나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못지 않게 무서운 인포데믹이라는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2020-03-18

어떤 안경을 쓸까?

여기 긴 두 문장이 있습니다. 잘 비교해 보세요.미움의 안경을 쓰고 보면 똑똑한 사람은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착한 사람은 어수룩한 사람으로 보이고, 얌전한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활력 있는 사람은 까부는 사람으로 보이고, 잘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예의 바른 사람은 얄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듬직한 사람은 미련하게 보입니다.반면, 사랑의 안경을 쓰고 보면 잘난 체하는 사람도 참 똑똑해 보이고, 어수룩한 사람도 참 착해 보이고, 소극적인 사람도 참 얌전해 보이고, 까부는 사람도 참 활기 있어 보이고, 실없는 사람도 참 밝아 보이고, 얄미운 사람도 참 싹싹해 보이고, 미련한 사람도 참 든든하게 보인답니다.한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큰 싸움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손자 역시 자신에게도 이 싸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추장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 간의 싸움이지.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연민,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둘이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길까요?” 추장은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기 마련이란다.”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안경과 두 마리의 늑대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는 바로 내가 선택하는 법입니다. 후회 없는 선택을 통해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가는 멋진 새벽이시길./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8

노트북과 코로나19, 그리고 학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학교 가고 싶어. 악연이든 인연이든 만나고 싶어. 책가방이 썩는 것 같아.”아이의 매일 같은 성화에 목련이 놀라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때를 아는 자연은 꽃샘추위에도 할 일은 한다.하지만 철을 잃은 인간은 늘 뒷북이다. 교육계가 대표적이다. 가장 분주하고 활기가 넘쳐야 할 3월에 학교는 없다. 학교 부재의 이유는 융통성 없는 교육 관료들 때문이다.전 세계의 화두는 4차 산업이다. 교육계 또한 이를 반영해 2015 개정 교육과정 인재상을 ‘창의융합형 인재’로 정했다.교육계에서는 이를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 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위 문장대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필자는 두 가지를 재확인했다.하나는 교육계의 위선과 경직성. 또 하나는 교육 근로자들의 언행 불일치.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치고 교육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월 말부터 필자는 개학 연기에 따른 준비를 했다.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학부모들은 학교가 대구 경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했다.다른 학교 교사들이 재택근무 계획을 세울 때 산자연중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학습 공백을 최소화할 방법을 연구했다. 첫 번째로 교과서와 학습 도구, 시간표 등이 담긴 학생 개인별 학습 상자를 만들어 2월 27일 전까지 택배로 전국의 가정에 보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들이 학습 결과물을 매일 확인 했다.하지만 오롯이 학생 자율에 맡겨야 하는 온라인 학습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논의 끝에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장비가 문제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도 있지만, 잇몸조차 없을 때의 느낌이란?그래도 해야 했다. 2월 주말을 연구와 회의로 보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노트북이었다. 노트북에 내장된 캠을 생각해냈다. 화질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실시간으로 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는 마음에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3월 둘째 주, 낡은 노트북 한 대로 화상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 학부모의 반응이다.“학생의 그 긴 방학의 생활 패턴을 바꾸셨습니다. 시간 되면 스스로 일어나서 씻고 화면 앞에 앉는 모습에 물어봅니다. (중략) 당연히 EBS보다 재밌고 어떻게 수업이 재미가 없냐며 반문하는데 너무 당연시 여겨요. 어떻게 하시길래요?”왜 꼭 수업을 학교에서만 해야 한다고 고집할까? 또 유초중고가 왜 꼭 같은 날 개교를 해야 할까? 화상 수업은 교사들의 열정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누군가에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교육청은 물론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그래도 전화를 했지만 역시였다. 어떤 이는 분란이라는 말까지 썼다. 필자는 거기서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낡은 노트북 한 대가 만들어낸 교육 기적을 공유하고 싶지만, 일부 교육 근로자들은 들을 생각이 없다. 그들에게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을 전한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2020-03-18

걷기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경북 성주가 고향인 가수 백년설의 대표곡은 1940년에 발표된 ‘나그네 설움’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요즘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면 80년 세월이 무상하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로 시작하는 ‘나그네 설움’은 고향 떠난 자의 한없는 인생역정을 노래한다. 떠돌이로 10년 넘어 반평생을 살아온 나그네는 해거름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인다.태평양전쟁을 목전에 둔 일제강점기 조선의 나그네는 도보에 의지하여 길을 떠돌았다. 식민지 백성 처지에 승용차나 열차는 언감생심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걸어야 했던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이나, 우리는 내막을 알지 못한다. 나도향의 ‘그믐달’에 나오는 야반도주한 파락호(破落戶)일지도 모르고, 최서해의 단편소설 ‘탈출기’의 주인공 도배장이 나운심의 후예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걷고 걸었고 걸을 것이다. 인간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장정 기준으로 30킬로미터 내외가 고작이라는 게 정설이다. 시간당 3∼4킬로미터를 걷는 것이니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과거 보려고 한양 가는 조선의 선비는 편도 보름치 양식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오늘날처럼 탄탄대로나 신작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길과 가파른 산길과 언덕길을 가야 했던 사람들의 행장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그렇지만 당대 지식인들은 자신의 걸음으로 사유와 인식의 지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모사피엔스의 첫 번째 조건이 직립보행 아닌가! 영장류 가운데 인간처럼 직립보행이 일상화된 종은 없다. 오늘날 스마트폰 때문에 인류가 고릴라나 침팬지 혹은 오랑우탄처럼 등이 구부정해지는 것은 별도로 쳐두자. 똑바로 서서 걸으면서 우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종 상념과 기획을 보듬고 걷는다.누구는 건강을 생각하여 일삼아 걷지만, 우리는 걸으면서 과거와 미래, 행과 불행, 관계와 절연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근대 이전의 나그네는 사유 속도와 걷는 속도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특별한 예외가 아니면 그들은 일상의 속도에 맞춰서 걸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사물을 인식하고 관계를 성찰했다. 시속 300킬로미터 가까운 고속철로 이동하는 현대인은 성찰하지도 사유하지도 않는다.걷지 않는 현대인은 똑똑한 전화기를 들여다볼 따름이다. 만물의 창이자 만능소통의 마당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은 사유와 인식, 성찰과 무관하다. 거기서 쏟아지는 숱한 정보와 지식은 이용자를 암담하게 만든다. 급기야 그들은 정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손쉬운 해결책을 찾아낸다. 정보와 지식의 바다에 일엽편주 돛단배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비판적인 정신과 영혼을 사상한 채 한낱 엄지족으로 전락해 버렸다.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려면 정처(定處)가 있어도 걸어야 한다. 구부정한 영장류가 아니라, 직립보행하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걸으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 거리에 봄꽃 한창이다.

2020-03-18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위기가 멈춰서는가 싶다. 단정하기 어렵긴 해도 지난 한 달 급하게 치닫던 확진자 증가세가 사뭇 안정되었다.에볼라(Ebola)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를 휩쓸던 무렵, 놀랍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Bill Gates)가 ‘앞으로 지구상에 수천만 명이 한꺼번에 죽어 나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핵전쟁 때문이 아니라 감염병의 만연에 따른 일일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예견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오늘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놀라울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상황이 앞으로도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세계가 만난 코로나19 광풍은 아직도 거세다. 국내 지역감염의 위험은 여전하다. 신천지교회가 끼친 심대한 어려움이 잦아들면서 이제는 일반 교회들이 집단으로 모여 예배하는 일이 생각 거리가 되었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는 믿음은 소중하고, 신앙의 자유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성경과 교리는 ‘안식일’을 잘 지킬 것도 명시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방역을 위하여 다중이 밀집해 모이는 일을 자제하여 줄 것을 권고한다. ‘방역의 필요’와 ‘신앙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일까.학생없는 학교, 손님없는 극장, 불꺼진 무대, 한산한 길거리, 쓸쓸한 음식점, 차없는 도로들, 온라인 강의실…. 모두들 힘들지만 비정상을 견디는 까닭은 오직 한 가지. 코로나19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아닌가. 주일도 지키고 예배도 성심껏 올리시라. 다만, 치명적 감염의 위험을 피하자는 국민의 요청이 그렇게 부담이 되시는가. 누구도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 아무도 종교의 진정성을 배척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사람의 목숨과 사회의 안정을 해칠지도 모를 집단적 회합에 어쩌면 그렇게 목숨을 거는가.전쟁 못지않게 병균이 인류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했음을 기술하였던 제러드 다이어몬드(Jared Diamond)도 ‘바이러스의 가공할 공격에 적극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대비하여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앞으로도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더욱 거세질 모양이다. 의료진과 연구진의 끊임없는 노력이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대응책 두 가지가 손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가. 학교와 일터가 구체적으로 서로 돕는데, 교회가 오히려 사회적 감염을 만들어 낸다면! 경제적 어려움이 실천에 장애가 된다면, 이를 사회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모색하면 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삶을 위협하고 일상을 어지럽게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힘이 되고 격려가 되어 등불을 밝히는 교회가 그립다. 말씀 가운데 칼날이 보여 섬뜩해지는 일은 그만 만나고 싶다. 함께 이기고 일상을 회복하려면, 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위기를 뚫고 일어서는 길에 예외는 없다.

2020-03-18

카톡문화

카카오톡은 2010년 3월 18일 첫 서비스를 시작, 1년 만인 2011년 4월 이용자 수 1천만명을 돌파했고, 이듬해 3월 4천만명을 넘어 10년만에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용하는 SNS서비스가 됐다.이제 하루 평균 송수신 메시지 110억건에 달하는 카카오톡은 소통 방식을 넘어 일상생활 전반을 바꾸는 카톡문화를 이뤄냈다. 카톡문화는 선물, 송금, 공과금 납부 방식변화를 불러왔다.우선 2010년 12월 첫선을 보인 ‘카카오톡 선물하기’서비스는 2017년 1천700만명이 사용해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넘겼고, 지난해 거래액은 3조원으로 추정된다. 2018년 스타벅스는 연간 1천200억원대 매출을 각각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5월 친구 생일을 표시해주는 기능이 더해지면서 선물하기 서비스는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카카오톡 송금기능은 2016년 생겼다. 2015년 정부가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을 폐지하는 걸 계기로 내놓은 간편송금 서비스인 ‘카카오페이’는 상대방 계좌번호를 몰라도 카카오톡 아이디만 알면 채팅방에서 바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카카오페이 가입자 수는 지난해 기준 3천만명을 돌파했고, 상반기 거래액은 22조원에 달한다.이외에도 카카오는 각종 고지서나 티켓, 업체 공지 등을 카톡으로 받을 수 있는 ‘알림톡’, 로밍 없이도 얼마든지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할 수 있는 ‘보이스톡’ ‘페이스톡’, 대화 중 궁금한 게 생겼을 때 곧바로 채팅창에서 검색해볼 수 있는 ‘샵(#) 검색’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카카오톡이 국민들의 삶에 미친 여러가지 변화들이 이른바 ‘카톡문화’로 자리잡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8

우리 안의 불안과 탐색: 신종 바이러스의 위기와 안전망

대구와 경북 일부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3월의 중반이 지나갔다. 우리를 조이던 긴장의 끈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한풀 꺾인 확진자 수에 잠시 안도하다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투명한 전망과 불안은 다시금 우리의 덜미를 잡아챈다. 우울이 과거에 대한 반추와 관련되어 있다면 불안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관련되어 있다. 우울이 부정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주의적 시각일 수 있다는 역설을 가진 것처럼, 불안은 오늘을 감내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하는 추동력을 준다. 이는 위기 속에서 생존해온 종으로서 우리가 얻은 획득 형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안의 감정은 일상이 멈춘 이질감 속에서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혼란스러운 일상의 정보를 조직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탐색해 보는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를 집이라는 물리적 테두리에 머물게 한다. 집안에 묶인 가족들은 온라인을 통해 생필품과 기호품을 구매하고, 변화된 일상의 하나는 문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의 뉴스를 발견한다. 12일 새벽, 안산의 한 배송 노동자가 계단에 쓰러진 채 사망한 것이다. 40대의 그는 입사 4주차로 시간에 쫓겨 쉬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승강기도 없는 건물에서 배송 업무를 하던 중 쓰러졌다. 쌀과 물 등의 무거운 생필품 주문이 늘어나면서 폭증한 물량을 아침 7시까지 로켓 배송하려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문 앞에 놓인 물품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접고 들어와 집안을 살펴보자. 변화들이 보인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변화는 더욱 클 것이다. 어린이집도,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는 아이들.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늘 밖으로 나돌던 아이들의 동선이 집안으로 묶여진 것은 큰 변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양육과 교육의 상당부분을 맡아오던 기관과 장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장시간 양육과 교육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가정 내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에 가족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매우 현실적일 것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 묶인 학부모들의 심리적,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관리하려는 교사들의 바쁜 움직임과 온라인 학습을 독려하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양육과 교육의 책임을 돌려받은 학부모들의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맞벌이, 한 부모 가정을 비롯한 취약가정의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발생한 급식지원의 공백, 복지관과 지역아동센터의 휴관으로 인한 양육 공백과 식사를 제때 공급받기 어려워진 아동들의 현재 상황은 가족에게 재부과된 양육 기능의 기본적 작동에 난관이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는 그간 우리가 간과해온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먼저 폭주하는 배송물량에 쓰러진 그의 죽음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예기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규직, 노멀 비정규직, 라이트 비정규직, 플렉스와 프리맨에 이르기까지 고용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 업무 구조는 그를 사람이 아닌 로켓 경쟁의 수단으로 보아왔고,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 내에 90%가 그만둔다는 열악한 노동 조건은 그를 이미 오래 전부터 벼랑 끝으로 밀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또한, 전국 30만명을 넘는 결식위험아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조금만 빗나가면 끼니를 챙길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그간 감내하며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셈이다.뒤늦게나마 구멍 난 안전망을 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의 선포와 함께 실시되는 생계지원, 각종 감면 혜택, 그리고 전국의 취약가정을 대상으로 한 가족돌봄비용의 지급 등이 그것이다. 또한 배송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잔인한 새벽 배송을 비판하며 ‘늦게 배송 와도 괜찮다’는 소비자들의 반성과 위로. 결식아동들의 안타까운 사정 앞에 자발적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을 챙기는 지역아동센터의 직원들. 성금을 모으고 도시락을 전달하는 이웃들의 진심어린 노력은 안전망이 뚫린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우리의 잠재된 힘일 것이다.코로나19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의 일상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일부의 변화는 바로 사라지겠지만, 일부의 변화는 흔적을 혹은 장기적 변화를 남길 것이다. 가령, 이제 집 앞에 놓일 배송물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사태가 안정된 후에도 온라인을 통한 구매의 증가와 배송경쟁의 심화는 지속될 것이고, 이윤을 앞세우는 경쟁논리는 인간다운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를 다시금 묵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소비자로서 물건을 빨리 받고 싶은 욕구와 로켓 배송경쟁에서 희생될 배송 노동자의 노동조건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다시금 선택을 내려야할 순간을 맞을지도 모른다.그리고 전염병에 의한 전 세계적 위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원격학습의 확대를 가져올 것임에 분명하다. 이에 학습동기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온라인 학습 콘텐츠의 개발과 보급은 교육계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학습의 독려와 모니터링의 책임이 각 가정에게 맡겨지기에 돌봄이 가능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간의 차이는 큰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고, 교육계는 이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변화보다 우려되는 흔적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급증했던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수입원의 감소, 그리고 집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가족 내 잠재적 갈등요인들은 폭력적 형태로 분출될 수 있다. 여기에 물리적,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은 무기력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국내 아동학대 신고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이는 국내 아동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교와 상담현장에서 실제 아동학대 사례들은 많은 경우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부담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 신고자에게 가해졌던 공공연한 위협, 아동보호시설의 부족 등이 신고의무자들의 신고율을 높이는데 걸림돌로 작용해 온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국내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율은 30%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수의 증가와 함께 아동학대 확인사례 건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국내 아동학대실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격리된 집 안이 사적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양육과 교육의 책임이 가족 내로 되돌려진 오늘의 일상에서 가족 내 폭력은 신고 되지 못하고 다시 조용히 묻힐 수 있다. 그러나 가정 내 폭력과 학대의 경험은 학교와 교실에서 아이들의 우울, 잦은 자해와 자살시도, 혹은 학교폭력의 형태로 치환되어 드러난다. 사적 공간의 폭력이 공적 공간에서 보다 파괴적 형태로 파급력을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정부와 사회의 안전망 확보를 위한 지원과 가정 내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 흔적은 내일 우리에게 더욱 큰 비용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김은영 경북대 교수

2020-03-18

‘좋아요’를 누르고 싶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2002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마크 주커버그는 2003년에 재학생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누가 더 매력적인지를 투표하도록 하는 ‘페이스매쉬’(facemash)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생활과 지적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대학 당국은 곧바로 사이트 차단에 나섰고, 주커버그는 근신처분을 받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이렇게 장난처럼 시작되었다.2004년에 만들어진 페이스북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커버그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고 지금은 세계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이자 소셜 미디어가 되었다. 2020년 1월 통계자료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월간 이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2억4천여만 명에 이르고 미국 성인의 71%가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SNS 앱은 페이스북이며 2019년 5월 한 달 간 총 46억분의 시간을 페이스북에 쏟아부었다고 한다.일상의 삶에서 우리말을 잘 가꾸어 쓰자는 생각을 가진 나는 2012년부터 얼굴(사진과 동영상)과 얼(정신과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책장이라는 뜻에서 페이스북을 ‘얼책장’으로, 흔히들 ‘페친’이라고 부르는 페이스북 친구를 ‘얼벗’으로 뒤쳐 부르고 있다.얼책장을 통해 얼벗들의 밝은 얼굴을 보고 생각을 읽고 삶을 엿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얼벗들이 제공하는 자료들을 통해 지식을 쌓기도 하고 좋은 정보를 얻기도 하니 이로운 점도 상당하다. 그들이 올려주는 글과 사진 등을 보며 ‘좋아요’를 지긋이 눌러주는 것은 ‘소확행’의 하나이다. 내가 올린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리고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면 ‘관종’(관심종자-타인의 관심과 이목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얼책장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마음을 잇는다.하지만 슬프고 힘든 일, 나쁜 소식을 전하는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마뜩잖은 일이었다. 2016년 2월부터 얼책장에는 ‘좋아요’ 외에 ‘최고예요’,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등 여섯 가지 그림기호가 생겼다. 공감 반응의 다양성이 확보되었지만, 가장 많이 누르는 것은 역시 ‘좋아요’이다.그런데 요즈음 ‘슬퍼요’나 ‘화나요’ 기호를 누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삶의 현장에 힘겨워 하는 많은 이들의 글, 사람의 발자취가 사라진 썰렁한 거리를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그 내용이 아무리 공감이 되고 좋아도 ‘좋아요’보다는 ‘슬퍼요’에 손이 멈춘다. 슬픈 이야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가짜 뉴스는 보고 싶지 않다. 이 와중에 거짓된 정보나 가짜 뉴스를 전하는 글을 보면 맨 구석에 있는 ‘화나요’ 기호를 굳이 찾아 누르게 된다.코로나19는 소셜 미디어에서의 감정 표현마저도 이렇게 바꾸어 놓고 있다.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좋아요’를 마음껏 누르고 싶다.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2020-03-17

진풍경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우리사회에는 지금껏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한 진풍경들이 속출되고 있다.마스크 대란이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부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하고 그나마 한 사람이 두 장만 구매가 가능하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재고가 동나 그것마저 살 수가 없다. 국민소득 3만달러 나라에서 마스크 사려고 줄 설 줄은 아무도 몰랐다. 버스나 지하철은 손님이 없어 한달 째 텅 비었다. 어떠한 자리에도 마스크를 써야 소통이 가능하다. 마스크를 낀 채 행사를 하고 사진도 찍지만 진작 웃는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웃픈 세상이다. 관공서 구매식당에는 난데없는 칸막이가 등장했다. 식사도 일렬로 앉아서 먹는다. 밥맛이 영 아니다. 오순도순 이야기를 해야 밥맛도 나는 법인데 코로나19가 동료 간 식사도 밥맛도 갈라놓았다.홍콩에서는 마스크를 사러 1만명이 줄을 섰다. 중국의 한 결혼식은 10분만에 초고속으로 끝냈다는 소식이다. 인기 스포츠 경기나 공연도 줄줄이 연기가 됐다. 세계 최대 부국인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생필품 사재기가 빚어진다고 한다. 진풍경이다.한국은행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0%대로 금리를 인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한다. 효과는 미지수다.온 국민의 신경이 코로나19에 집중되다보니 어느덧 총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코로나19를 눈가림으로 하고 꼼수 정치까지 판을 친다. 여야의 공천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코앞에 다가온 총선을 두고 유권자는 후보도 공약도 모르고 깜깜이 선거를 해야 할 것 같다.이 같은 진풍경들이 국민에겐 코로나19 우울증으로 덮쳐온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가 엄청 늘었다. 이것 또한 진풍경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7

가장 값진 보물은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들 틈에 남루한 랍비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배는 순풍에 돛 달고 목적지를 향해 기분 좋게 항해하고 있었지요. 손님들은 모두 자기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내 소유의 토지는 얼마나 넓은가 육안으로는 그 끝을 누구도 볼 수 없지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지지 않고 한 마디 덧붙입니다. “우리 저택에서는 늘 파티가 열리는데 한 번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도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소.”모두 껄껄 웃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 가난한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바로 나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가진 것을 당신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어 안타깝소.”부자들은 랍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비웃습니다. “랍비여, 당신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요.” 모두 그를 보며 비쭉거렸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합니다. “두고 보시오. 내 말이 맞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거요.”그때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적이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자기 보물들을 간수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그들은 자랑하던 보물을 해적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겨우 목숨만 구한 채 항구에 도착했습니다.가난한 랍비는 마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같은 배에 탔던 부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파산해 거지처럼 살고 있었지요. 그들은 랍비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님의 말이 옳았어요. 빼앗길 염려도 없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지식이야말로 가장 값진 보물임이 틀림없어요.”지혜로운 사람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정성껏 돌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지식과 교양은 가장 값진 보물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7

청년 일자리, 해법을 부탁해!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2000년 중반 이전은 결혼과 노후 문제에 관해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논의하였다.한편, 2000년 중반 이후는 청년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결혼관, 경제관, 가족관, 사회적 가치관이 주로 제시되었다.결혼을 선택하는 과정이 점점 더 신중해진다는 연구 분석 결과가 제시되었으며,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경향도 함께 나타났다.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일·가정양립 실태조사에 의하면 ‘남녀고용차별개선 및 직장내 성희롱예방’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혀 고용유지와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고용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기업의 열악한 근무환경, 낮은 임금은 청년실업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중소기업 역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부모와 함께 동거하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문제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취업을 하여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일자리가 있는 지역에서 머물면서 경제생활과 여가활동을 할 것이다.청년이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먼저, 취업 및 진로 상담이 필요할 것이다.세분화 그리고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인 현재, 청년들의 진로 혹은 취업을 선택하기 이전에 자신의 타고난 성격이나 가치관 등이 어떠한 직무에 적합한지 확인해 보고 구체적인 진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개인의 실제 적성과 시장에 있는 일자리의 괴리에서 나올 수 있으므로 진로탐색이나 상담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적성검사 혹은 심리검사를 통해 적합한 진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20대 초반 취업준비자, 중고생대상 조기상담 등 대상별 진로설계를 지원한다.진로설계 전문상담 센터를 지정하여 경력관리를 지원하고, 직업역량 강화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취업연계를 위한 직장 체험, 개인 취업관을 반영한 맞춤형 취업정보 제공, 다양한 직종에서서의 기업 연계망을 확대해야 한다.두 번째, 고용환경 개선을 주력하여 일자리 창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취업 시 여성을 기피하는 현상이라든가 직장 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성차별적인 고용환경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때문에 유연근무, 재택·원격 근무 등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유연한 근무 제도를 기업에 도입 및 확산하여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일·가정 양립 고용환경을 조성하여 남녀가 모두 평등하게 일하고, 직장과 가정을 원만하게 양립하여 청년이 노동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무엇보다도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재정지원이라든가 조세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아울러 가족친화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일과 가정의 균형, 청년여성근로자의 모성보호, 근로자의 출산 및 육아, 유연한 근로시간 및 방식 등의 모듈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청년에게 많은 지식, 정보보다 구체적 경험 및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2020-03-17

색깔 이야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봄이 성큼 다가왔다. 코로나19도 봄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벚꽃, 개나리 꽃망울들이 봄의 전령사를 자처한 듯 꿈틀거리더니 어느새 만개하고 있다.연푸른 나뭇잎 사이로 새색시 볼 같이 피어오르는 분홍 빛깔에 쑥스럽게도 중년의 가슴이 살며시 설렌다. 병아리 속 털 같은 노란빛 꽃들을 보노라면 코로나19 시름마저 잊게 해준다. 머지않아 형형색색의 꽃 잔치가 펼쳐질 것 같다.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심리적 고립감을 동네 주변 봄꽃들을 보면서 탈출해봄직하다. 봄가을 꽃이나 낙엽의 색깔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런 고운 색깔을 내는지 궁금해진다.사람이 보고 느끼는 색깔은 물질이 가진 근원에 굴절된 빛이 시신경을 통해 뇌가 인식하는 구조라고 한다. 그렇게 인식되는 색들은 자연에서 내뿜는 본연의 색은 아닐 것이다.어떤 뛰어난 화가도 자연의 천연색을 담지 못한다고 한다.인상파 화가들도 자연의 색을 담지 못한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색과 빛을 창출한 것 아닐까 싶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들게 된다. 하지만 색깔에 이념이 채색되고 있다.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퇴색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색이 원치 않는 편 가르기에 동원되었다. 열정과 사랑의 상징이었던 붉은색은 공산주의자의 피의 혁명을 상징했다. 자유진영에서 거부감을 가진 적이 있다.이를 꼬집고 이야기하면 색깔논쟁으로 비화된다. 희망과 따뜻함을 나타내던 노란색이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던 정당의 상징색이 된 적이 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반감을 갖는 색으로 된 인식의 변질도 있었다.오랫동안 보수성향 정당이 누리던 파란색이 진보성향 정당의 상징색으로 채택되는 아이러니도 경험하고 보니 색에 덧칠해진 이념은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색깔을 통한 소속과 정체성 알리기가 더욱 가열되고 있다.경선에서 탈락하고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후보자는 이전 소속 정당 색의 근사치 색으로 덧칠한다. 정체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색(?)들의 전쟁이다. 그래서 선거철에는 자리에 따라 옷차림조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속칭 ‘깔맞춤’(색깔맞춤)을 해야 한다. 남자들은 넥타이 색깔 고르기까지 신경을 써야한다고 하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색의 상징화가 권력투쟁의 치열한 도구가 되었다. 색으로 이념을 세뇌시킨다.자연이 준 순수한 아름다움에 취할 행복감을 박탈하는 결함을 가진다. 색으로 편 가르기 하는데 휘둘려 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코로나19로 거리의 색이 변하고 있다. 현란한 채색의 도심이든 시골의 한적한 동네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직사각형 작은 흰색이 움직이고 있다.순결과 청결을 상징하는 흰색이다. 중환자들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착용하던 마스크를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 온통 중환자들이 거리를 다니는 것 같다. 흰색에 대한 혐오증을 불러일으킬까 걱정된다.우울감이 더해간다. 고생하는 흰색에게 순결과 청결의 고귀함을 빨리 찾아주고 싶다. 마스크 앞면에 스마일 표시라도 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씨익’ 눈웃음이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2020-03-17

수만 번의 헛기도로 이어지는… 충주 석종사(釋宗寺)

충주 금봉산(金鳳山) 자락에 석종사라는 절이 있다. 그리 멀지 않지만 내게는 낯설고 생경스러운 도시를 혜국 스님의 말씀 하나 잡고 찾아 나선다. 휴일이 무색할 정도로 고속도로는 한산한데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한 석종사에는 뜻밖에 봄기운이 완연하다.일주문을 지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문패처럼 내건 곳에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죽장사라는 절이 있던 폐사지를 봉암사에서 수행하던 혜국 스님이 현몽을 꾼 뒤 찾아와 석종사를 세웠다. 스님은 갈 곳 없는 연로한 스님들과,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대웅전 창건을 시작으로 혜국 스님의 상좌들이 직접 중장비를 운전하고, 신도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대대적인 불사를 이루었으니 불심의 깊이가 제대로 살아 있는 절이다.크고 작은 당우들이 널찍하게 거리를 둔 경내는 인적 없이 고요하다. 천척루를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늙은 어머니와 딸인 듯한 모녀가 봄꽃 같은 미소를 피우며 반긴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두려움 없는 민낯의 온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려 때 만들어진 오층석탑은 멀찍이 서서 홀로 참선 중이다. 결코 쓸쓸하지 않은, 환한 평화가 넘실거리는 경내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석종사는 웅장한 외형만큼 내재된 힘을 자랑한다. 군장병을 위한 템플스테이와 출가한 승려만을 위한 공간을 지양하고 재가자(在家者)도 사찰에 머물며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찰은 그리 흔하지 않다. 진지하게 명상에 잠긴 불자들의 모습은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가는 내게 고무적일만큼 서늘하게 다가왔다. 육신의 눈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습은 참으로 경건해 보였다.누하진입식 천척루를 지나 마당보다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감로수에 손을 씻는다. 대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마당, 눈부신 햇살, 잘 생긴 나무들,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참선 중이다. 지독히도 그립고 그립던 봄이 오는 풍경이다. 신선한 설렘과 전율들을 뒤로 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마스크를 벗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나와 신음 소리를 내며 물러서는 햇살의 만남이 어색하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계단을 오른다.대웅전 팔작지붕은 툭 트인 산야를 향해 날아오를 듯 힘차고 웅장한데 너른 뜰 위로 수많은 좌복들이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이색적인 사찰의 봄맞이 풍경이다. 풍수에 문외한인 내게도 명당 터라는 게 느껴진다. 가부좌가 아닌 편한 자세로 대웅전 뜰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가지런히 전지를 한 나무들처럼 탐욕과 집착으로 멍든 마음 깨끗이 잘려나가고 고착된 습은 봄볕에 녹아 재가 될 것 같다. 고만고만한 종류의 반성과 다짐이 되풀이 될 때마다 겪어야 했던 자괴감들, 행동은 마음을 따르지 못해 자주 괴로워했다. 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천하의 법도로 삼을 만큼 한결 같은 ‘하나’, 그것이 부재인 채로 나는 육신이 끄는 대로 살아왔다.게으름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마다 맞닥뜨려야 했던 순간들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새해 첫날의 다짐처럼 오래지 않아 기도는 무질서 속으로 함몰되었으며, 감정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사찰과 말씀들이 든든한 위안처가 되어 주었다.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며 대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법당에 끌리듯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그들도 나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하듯 청소를 하고 열린 어간문 앞을 서성대던 햇살이 나를 안내하고 처마 끝의 풍경도 울지 않았다. 삼배의 예를 갖추자 한결 마음이 정갈해진다.조낭희 수필가큰 절은 무언가로 꽉 차 흐른다. 삼라만상 실개성불(森羅萬象 悉皆成佛).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것들이 모두 부처를 이루었다는 부처님 말씀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아우성으로 가득한 이 어수선한 봄날, 둘러보니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 실눈을 뜨는 나무와 바위, 높다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시선 닿는 곳마다 생명이 숨 쉰다.대웅전 뜰 위에 서서 내 안을 응시한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맬 때마다 어김없이 손 내미는 분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번에는 혜국 스님의 말씀이 봄꽃처럼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모든 건 필연이다. 어둠 속에서 만나는 한 줌의 햇살, 뒤이어 따라오는 수많은 전율들, 인생은 결코 고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혜국 스님의 말씀을 따라 햇살 속을 걷는다. 한 번의 참기도는 수만 번의 헛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나는 언제나 조급했다.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걸 간과했었다.서둘러 피었다가 이내 이울더라도 다시 그렁그렁 눈물 같은 꽃눈을 달고 헛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언젠가 이승을 떠날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지지 않도록, 더 이상은 두렵거나 쓸쓸하지 않을 미지의 세계를 위해….삶은 수많은 출발들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2020-03-16

보이지 않았던 세계에 대한 공포

주제 사라마구코로나19로 인해 사회에 공포가 만연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균과 바이러스의 영역을 발견해 낸 것이 위생의 영역에 있어서 인류가 이룬 가장 큰 진보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존재하되 여전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속에 공포를 만들어낸다.우리 마음속에 불길과 같이 일어나는 공포는 비가시적인 존재에 대한 가시화된 상상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맺고 있던 인간적인 관계들과 매일 생활하는 공간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을, 위험한 존재들에 대한 상상을 통해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뀐다. 공포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자신이 영위하는 시공간의 형태를 바꾼다.세계 속에는 인간이 공포를 느낄 만한 대상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지만, 비가시적인 대상에 대한 공포만큼 본질적인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나 전쟁처럼 명확하게 타자화될 수 있는 공포의 대상과 달리,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공포는 인간이 살아가는 전제 조건에 대한 믿음을 흔든다. 언제나 붙잡고 기대 있던 손잡이의 명확한 감각도, 내가 의지하고 믿고 있던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도, 늘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집이 주는 안온함도,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그 모든 것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현상이었다.어쩌면, 이러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바깥 세계와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라는 점에서 문학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곤 했다. ‘페스트’를 통해 인간 사회에 흘러 넘쳐 있는 비인간성이라는 징후를 파악했던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1947)’가 그렇고, 콜레라를 사랑의 열병에 비유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고통 받는 것에 대해 긴 호흡으로 담아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이 그러하다.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00E9 de Sousa Saramago·1922~2010)의 ‘눈먼자들의 도시(1995)’는 그 중에서도 인간의 시각의존성과 전염되는 질병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직조되는 인간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의사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자신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의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눈이 멀게 되고, 그는 이것이 원인을 알 수 없이 전염되는 백색 질병임을 당국에 알리고, 역시 전염되는 상황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눈이 멀지 않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격리된다.눈이 먼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격리되면서 그들에게는 전문가의 권위나 윤리, 이성적 판단 같은 인간이 인간됨을 규정해왔던 여러 가지 기준들이 사라지고, 일용품과 식품에 대한 약탈을 넘어 인간에 대한 약탈이 시작된다. 이 ‘눈먼자들의 도시’속 인간들은 시력이 상실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표현할 줄 모르는 채 공포에 자신을 내맡긴 인간들의 세계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 역사에 대한 우화이다. 눈이 보이는 자들은 남의 것을 훔치고,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은 길바닥을 기어가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한 먹을 것에 매달린다.이 소설에서 함께 하고 있는 무리들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비인간적인 상황을 목도하고 있던 의사의 아내는 아이와 어른을 씻기고,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며,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 노력이 단지 숭고하다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그는 맹목적 폭력을 막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그것에 대처하면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공포는 종종 절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가진 인간은 공포 속에서도 그것을 절망으로 바꾸지 않을 힘을 갖고 있다. 모든 것보다 가장 인간다운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0-03-16

코로나 진단법 논란

세계적으로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국면에 접어든 코로나19 진단법에는 분자진단법(RT PCR), 배양법, 항원 항체 검사법 등 3가지 진단법이 있다. 분자진단법, 배양법은 바이러스 자체를 보는 것이고, 항원 항체 검사법은 바이러스가 아닌 항원이나 항체를 검사하는 방법이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확진 검사법으로 인정한 것은 RT PCR과 배양법 2가지뿐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고, 전 세계적으로 표준이되는 코로나19 진단법은 RT PCR이다. 검체에 있는 바이러스에서 핵산을 추출한 뒤 이를 증폭시켜 진단 장비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빠르면 3시간 정도면 검사 결과가 나오며, 정확도는 99%다. 또 RT PCR은 바이러스를 기본적으로 죽여서 검사하기 때문에 배양법보다 안전하다. 현재 국내 긴급사용 승인된 5개 코로나19 진단시약은 모두 이 방식을 사용하는 제품이다. 또 다른 검사법인 배양법은 주로 연구용으로 쓴다. 검사에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걸린다. 무엇보다 검사 과정이 위험해 일반 병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최근 미국 하원에서 논란이 된 코로나19 검사법은 항원 항체 검사법이다. 이 검사법은 신속진단법, 또는 간이진단법으로 불리며,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바이러스의 항체를 검사하거나 바이러스의 부스러기 단백질인 항원을 검사하는 면역학법 검사법이다. 독감검사나 임신진단 키트와 원리가 동일해 키트에 항원이나 항체를 떨어트리면 10~15분에 검사 결과가 나오지만 민감도, 즉 환자를 검출하는 비율이 50~70%정도여서 현재의 코로나 사태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폄하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6

관점에 대하여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직업 상 읽기 쓰기 경험을 많이 하는데, 학생들과 텍스트를 같이 읽거나 그들이 쓴 감상문을 보다 보면, 학생들에게 관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수련을 꿈꾸었다’는 수필을 같이 읽을 때다. 작가 김선우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 소년이 구걸하지 않고 꽃을 파는 모습을 보고 쓴 글이다. 가난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면서 그 소년을 더러운 물에서 피는 수련에 비유하는 내용이다.이 글을 보고 어떤 학생은 작가의 감동에 감정 이입하여 캄보디아 소년의 순수함에 매료된다. 그러나 어떤 학생은 수련이 과연 얼마나 더러운 곳에서 피는지 사실을 확인하려 든다. 어떤 학생은 구걸을 금지한 캄보디아 정책 때문에 소년이 꽃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들며 감동을 거부한다. 어떤 학생은 사실과는 별개로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한다. 이렇게 같은 자료를 보아도 반응이 다른데, 그것은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은 오랜 가뭄으로 주인집에서 쫓겨난 하인이 라쇼몽에서 노파를 만난 후 도둑으로 변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내용이다. 이 단편을 읽고 어떤 학생은 가난을 구제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감상문을 쓰고, 어떤 학생은 하인의 부도덕함을 심판하는 글을 쓴다. 이것 역시 작품을 보는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런데 학생들의 그런 관점은 평소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수련이 얼마나 더러운 물에서 피는지 궁금해 하는 학생은 사물을 볼 때 사실을 중시하는 평소 관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캄보디아의 구걸 금지 정책은 경험하지 않으면 관심 갖기 힘든 정보이니, 작품을 볼 때 자신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작품을 보면서 어떤 점이 눈에 띄는 것은 그 부분을 일부러 골랐다기보다는 자신의 관심과 경험에 의해서 그것들이 보인 것이다.관점은 자기가 속한 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형성된다. 동양인지 서양인지, 한국인지 중국인지, 상위 10%에 속하는지 아닌지, 부모가 엄격한지 개방적인지에 따라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심지어 여러 과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적 관점의 경우 타고난 뇌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도 한다. 그러니 관점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렵다.그렇다고 관점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관점을 바꿀거야 해서 바꿀 수는 없지만, 절박한 상황이 되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인생의 큰 시련을 겪으면 종교를 갖게 되거나 개종을 하기도 한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자녀가 있으면 부모도 진보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그러나 그런 경험 역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같이 읽기와 글쓰기가 적절한 도구다.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퇴고를 거듭하다 보면 관점에 변화가 오기도 한다.

2020-03-16

허경영 신드롬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의 일만 진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진리는 누구든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을 이른다. 이를 벗어나면 사이비라 한다. 17세기 지구중심의 우주관에서 갈릴레오의 태양중심설이 그랬고, 잘 사는 남한 실상을 알기 전 탈북민이 그랬을 것이다. 국가혁명배당금당 허경영 대표의 언행이 그처럼 잘못 알려진 것 같다.그는 ‘공중부양’이나 ‘축지법’ 같은 기행들로 시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다만 서민대중과 가까이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나 싶다.그의 자서전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나 유튜브 등을 통해 느낀 필자 나름의 생각을 써본다. 다가갈수록 자애로운 인간미와 통찰력이 번뜩였다. 그에 대한 비방풍문은 사실과 적잖이 달랐다. 정계에 뛰어든 지 수십여 년 동안 대과 없는 처신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테다.그는 우선 국민에게 헌신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 되면 추진하겠다는 33정책은 이미 1996년도에 원형이 제시되었다. 그 중 스무 살 이상 전 국민에게 매월 150만 원씩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는 말은 얼핏 허황된 포퓰리즘으로 들린다. 한데,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입때까지 온 국민의 합심노력 덕분이랄 수 있겠다.그렇다면 주식회사에 해당하는 국가는 주주인 국민에게 그 수익을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고, 이를 ‘국민배당금’이라 하여 별로 어색하지 없다. 국회의원 100명에 무보수 명예직화, 지자체의원제와 정당지원금제 폐지 같은 고비용적 요소를 변혁하면 가용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은 가히 혁명적이다. 변혁과정에 일부층의 기득권이 내려지는 등 동통은 따르겠지만, 별도 국민 세금 징수는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그는 또한 매주말 일반인에게 강연을 해왔다. 현재 토요일 강연이 1천200회가 넘었으니, 그 엄청난 학해는 천이지혜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 강연마다 신선한 충격 속에 가득찬 청중을 매료시킨다.일례로,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은 원래 뜨겁지 않다고 한다. ‘생다이아몬드 탄소덩어리 온도 0도의 자체발광체’란다. 표면온도 6천K, 수소와 헬륨으로 된 불덩어리라는 통상의 태양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아직 사계의 반론을 보지 못했다. 뜬금없는 말 같지만, 논리적인 설명에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삼세(三世)를 꿰뚫으며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넘어선 것 같다. 경계할 일은 석가모니나 예수 같은 성현의 죽음 뒤에는 당시 가까운 인간의 배반과 모함이 있었다는 것, 요즘에도 유념할 일이다.그의 말들마다 구절마다 울림이 있다. 쉬운 듯 아닌 듯 화두로 꽂힌다. 초종교적 언행은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의 그릇을 깨뜨린다. 나아가 세계인을 아우르는 섭리의 정치를 꿈꾼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중국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이때, 허경영 같은 세계적 지도자 감을 주목한다면 헛수고일까. 시조로 읊는다.“동방의 등촉/바람 앞에 등촉이란/꺼지기도 할 터인데/타고르의 그 등촉은/여태까지 타다 남아/이제 곧/본 태양으로/온 천하를 비추리.”

2020-03-16

깨진 꽃병의 비밀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방의 작은 마을에 조촐한 파티가 열렸습니다.한 노부부의 결혼 50주년 기념 파티입니다. 부부는 한 마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왔습니다.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노부부가 한 번도 큰소리치면서 싸우는 것을 본 일도, 술자리에서나 빨래터에서 부부가 서로를 헐뜯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노부부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부였습니다.파티가 열린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실 탁자 위에 깨진 꽃병 하나가 놓여 있었지요. 파티와 어울리지 않는 흉물스러운 꽃병이어서 몇몇 부인들이 치우려 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만류했습니다.이들 노부부가 손님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거실로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대단치도 않은 일로 많이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벌써 50년이나 되었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남편과 제가 이때까지 아무 탈 없이 결혼생활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탁자 위 깨진 꽃병 때문이랍니다. 남편에게 실망을 느낄 때나 여러 가지 고난으로 괴로울 때 저 꽃병이 나를 지켜주었답니다. 51년 전 늠름한 청년이었던 남편이 청혼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던 지 감격한 나머지 이리 저리 집안을 춤추듯 돌아다니다 탁자 위 꽃병을 깨뜨리고 말았어요. 저 깨진 꽃병은 그 날 제가 경험한 감동 바로 그 자체입니다. 그날의 감사한 마음과 감동을 늘 기억하기 위해 꽃병을 저기 50년 동안 놓아 두었던 겁니다.”흉물스러운 꽃병은 이제 사람들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병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네 상처(scar)를 별(star)로 만들어라.” 서양의 유명한 격언입니다.누구에게나 있는 아픈 상처는 우리 삶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고 빛나는 존재로 탈바꿈시켜 별처럼 반짝일 수도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6

문화유산이 밥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안동은 문화재의 보고이자 산실이다. 낙동강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안동댐과 임하댐 등 두 개의 다목적댐이 건설되어 있어 각종 지역 개발 사업이 제한을 받는다. 이런 지역 여건으로 인해 문화자산은 지역 관광산업의 활로를 열어가는 알짜배기 동력일 수밖에 없다.따라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지정문화재 중심의 문화적 자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광산업과 연계해 지역의 성장 동력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안동은 현재 328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경주와 더불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 중 국보는 ‘징비록’을 비롯해 5점, 보물은 ‘퇴계선생문집’ 목판 752매와 김성일 종가 전적 56종을 비롯해 42점이 지정돼 있다.이외에도 구리측백나무숲 등 7곳은 천연기념물, 백운정 개호송과 만휴정 원림은 명승,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2곳은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차전놀이(제24호)와 하회별신굿놀이(제69호)에 이어 지난해 12월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 타운의 삼베짜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됐다.조선 시대 궁중 진상품이었던 ‘안동포’는 마을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생산되고 후대로 전승된 집단적 기술의 산물로 길쌈 문화의 상징이다. 특히 기원전 1세기 낙동강 유역에서 명맥을 이어오던 대마의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안동의 작은 마을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술 전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안동포마을문화보존회가 삼베짜기의 보유단체로 지정된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이뿐만이 아니다. 안동은 500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깃든 오랜 가옥이 지역 곳곳에 있다. 인위적으로 한데 묶어놓거나 마을을 부러 조성한 것이 아닌, 예전부터 있어 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다.더욱이 대부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세계유산의 도시로서 우리 유산의 원형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하회마을(2010년), 봉정사(2018년), 도산서원·병산서원(2019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면서 관광산업을 통해 지역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한층 더 탄탄해졌다.특히 올해는 안동 브랜드가치의 성장을 재촉하는 큰 걸음이 될 것이다. 문화는 곧 도시를 상징하는 매력이 되고 그 매력은 곧 자본으로서 브랜드 가치가 된다.이러한 문화자산이 관광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지역 성장 동력이 되고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이번에 안동이 대한민국 지역관광거점 도시로 선정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대한민국 관광거점 도시 육성 사업은 △하회-로열웨이권역 △원도심권역 △안동댐권역 △도산권역으로 나누어 5년간 17개 사업에 1천억 원을 중앙정부가 투자하는 관광 한국 메가(mega) 프로젝트이다. 관광 안동의 비전과 선정비결의 숨은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안동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문화자산이라 할 수 있다.안동은 이제 대한민국 관광거점 도시라는 바탕 위에 세계유산도시로 도약하는 포부도 당당하게 진행하고 있다.유교책판(儒敎冊版·2015년)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넘어 만인소(萬人疏), 편액(扁額), 내방가사(內房歌辭)까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또한, 올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2022년 최종 등재되면, 안동은 세계유산과 세계기록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 유네스코 3대 카테고리를 모두 완성하는 유일한 지자체라는 명성과 함께 세계유산 8건을 보유하는 유일무이한 도시가 된다.그동안 안동이 문화관광에 중심을 두고 나아가고 걸어간 방향은 옳았다. 재앙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던 안동, 임하댐을 축복으로 전환한 저력만큼이나, 점으로 흩어져 있던 문화유산을 관광이라는 선으로 연결하는 진화적 작업은 분명히 우리 안동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할 것이다.이제 이러한 철학의 방향 위에서 문화관광과 바이오산업, 농업, 교육, 교통, 물 등의 다양한 자원과 기반을 어떻게 밥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더 많은 것들이 새롭게 조합되고 창조되어 위대한 안동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20-03-15

잃어버린 일상을 찾아서

정은숙생각학교ASK 연구원·프리랜서이른 아침, 비 내리는 수목원을 걸었다.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19 사태로 힘겨운 대구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이 누리는 작은 위안이다. 틀어박혀 살아야만 하는 요즘, 산책 한 번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얼마 만에 돌아온 주부의 삶인지 모르겠다. 남편 출근시키고, 설거지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후 모닝 요가로 긴장을 푼다. 시계가 아침 아홉 시를 가리키면 수목원, 화원동산, 수변공원을 요일마다 번갈아 가며 산책한다. 이렇게 바뀐 일상은 낯설지만, 짙은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에서 일상의 자그마한 행복을 한 조각 선물해 준다.사람들의 삶은 멀리서 보면 대략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분리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주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사연과 이유를 갖고 살아간다. ‘수많은 인생들은 과연 자신의 삶에 스스로 얼마나 만족하며 살아갈까?’ 대부분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불평불만에 젖어 막연히 저 멀리 어딘가 감추어진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까?근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예기치 못하게 덮친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고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클 것이다. 불안감 속에 자가격리나 스스로 절제하며 대면 접촉을 기피하는 현재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집단 속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이제는 일상에 대한 절실한 욕구로 옮겨졌다. 나도 그랬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며칠은 마치 휴가를 얻은 것처럼 좋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격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익숙했던 과거를 갈망하는 나를 발견하는 중이다.아침이 밝으면 출근하고, 저녁 어둠이 깃들면 퇴근길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 일상이 지고한 만족감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은 아니다. 손에 붙잡을 수 없는 금지된 일상이기에 어쩌면 욕구가 강렬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큰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런 불편한 현실쯤은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스스로 다독인다.전쟁처럼 바뀐 요즘, 일상의 두려움을 행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자세히 보기’다. 예전까지는 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에도 바빴던 일상이라 무심하게 지나치고 자세히 시선을 주지 못한 것들,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는 일에 집중해 보는 거다. 갑자기 늘어난 산책 시간은 내게 그렇게 ‘자세히 보기’가 주는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의 아름다움을.가냘프게 매달린 앙상한 가지에 조금씩 물이 차오르는 모습, 메마른 땅속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야생화가 움트는 생명력, 소리 없이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활기를 얻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은 고요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고개를 내미는 봄꽃으로부터 위대함과 침착함을 배운다. 그들의 조화로움을 배운다. 나름의 색깔과 다채로움으로 봄이 탄생하듯 사람 또한 각양 색깔과 가치관들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조화롭지 못한 일이 생기는 건 무언가 순리를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왔다. 이겨내야 한다.고통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반성하게 해 준다. ‘평범함’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감사,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감사, 더불어 함께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반성, 집 안 구석구석 내 손길이 필요함을 깨닫는 시간이다. 매일 집안 일정한 공간을 지정해 정리정돈을 시도해 보고,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일을 기억을 떠올려 누려보는 일, 때로는 멍 때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보는 것, 비 오는 공원을 걸으며 구석구석 야생화를 찾아보는 작은 실천이 지친 우리에게 또 다른 행복을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이 또한 지나가리라.” 옛 왕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지금의 힘든 시간은 언젠가 좋은 기억으로 그리움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세히 보기’를 통해 행복을 되찾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 때문이다.

2020-03-15

위로의 백신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설마설마 하던 일들이 우려의 현실로 돼버렸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나라 전역에 후폭풍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다. 감염원 원천 차단을 위한 철저한 통제와 제재로 초동 대처가 유효한 듯 싶었다. 그러나 첫 감염자가 나오고 불과 한 달도 채 안돼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속출하면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작금의 비상사태를 전혀 예기치 못한 변종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봉착하여 온 나라가 오리무중에 휩싸인 듯 하다.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서 사람들은 불안과 조바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가고 있다. 외출과 이동 자제 등 감염을 피하기 위해 거의 두문불출하다 보니 모든 것들이 위축되고 경색돼 가고 있다. 대화와 대문이 닫히고 만남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왕래와 소통이 눈에 띄게 끊어졌는가 하면, 식당이나 시장, 소상공인, 중소기업체 등에게는 생계와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상이 격리되고 사회, 경제적인 엄청난 타격 속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공포가 온 나라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다가 이런 변고가 생겼을까? 당국과 정부에서는 사태가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야기되고 악화를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응당 다했을 것이다. 다만, 현 상황을 놓고 보면 초기의 다각적인 유입 차단과 과도할 정도의 대응, 보다 면밀하고 확고한 선제적 대처가 아쉽게 여겨짐은 비단 필자만의 소견일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잘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되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는 노자 도덕경의 글귀가 생각난다. 중요한 문제를 대수롭잖게 여기고 쉬운 일들을 어렵게 풀려니 자꾸 엇박자가 나고 뒷북만 치는 양상이다. 행정 수반의 혜안, 의료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조언과 긴요한 대안제시, 실무진의 총체적인 검토와 과학적인 대응체계 등을 좀 더 중차대하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항간에 떠도는 ‘대통령의 주치의는 있는데 국민의 주치의는 없다’는 얘기가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그래도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하고 상황대처능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최고의 의료진과 의술, 발 빠른 행정력과 지원체계, 그리고 국민들의 온정과 응원으로 절체절명의 난국을 잘 헤쳐가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으로 다져진 사회적 신뢰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의 장기화 앞에서는 헌신과 열정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스스로 방역의 주체자가 되어, 배려와 이타심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다 함께 슬기롭게 이겨내야 한다.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소소한 행복이었음을 일깨워주는 요즘,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도록 각자가 인내와 절제로 생활 속의 면역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희망을 나누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봉사자들의 노고에 위로의 백신을 보내며, 우리 모두 웃음백신으로 활짝 웃는 봄맞이를 고대해본다.

2020-03-15

15㎝의 위력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척추 마비 장애인이 1천m 암벽에 도전했습니다.29세 마크 웰먼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엘카피딩암벽에 도전해 성공했습니다. 그의 등반은 친구가 암벽에 로프를 걸어주면 팔의 힘만으로 기어오르는 방식으로 여러 날에 걸쳐 이어졌습니다.그는 한 번에 겨우 15㎝만 몸을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무려 9일에 걸친 이 등반에서 그는 39℃가 넘는 폭염 속에서 약 7천 번 로프를 끌어당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등정에 성공했지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한 번에 15㎝만 오르면 됩니다.”누구나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꿈을 품고 살아갑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꿈에 관해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을 봅니다. 첫째 유형은 꿈을 꾸는 사람이고 둘째 유형은 꿈을 이루는 사람입니다.꿈을 꾸는 사람은 그저 꿈만 꾸는 사람입니다. 몽상가지요. 그들은 이런 식입니다. “5개 국어를 하고 싶다. 내가 5년만 더 젊었어도 가능할 텐데.” 그런 사람은 10년 후에 만나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꿈을 이루는 사람은 꿈을 향해 오늘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마크 웰먼이 한 번에 15cm씩 몸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 목표라도 조금씩 잘게 쪼개고 꾸준히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는 그 목표가 자리를 내어주게 마련입니다.샘물을 길어 내면 다음날 새롭고 신선한 물이 솟습니다. 아까워 쓰지 않으면 결국 샘물은 메말라버립니다.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쏟을 때 샘물처럼 다른 에너지가 또 솟구치게 마련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15cm 위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그대의 숭고한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드립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