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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짜? 가짜?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내 지인 중에 L이란 위인이 있다. L은 모 대학 정교수인데, 행동이 차분하고 말솜씨는 조곤조곤하며 성격도 유한 편이라 사람들마다 그 인품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심지어 주위로부터 이 시대의 ‘선비’, ‘양반’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터였다. 그런데 유독, 이 L을 가까이서 한 10년 이상 알아 온 Y만큼은, 사람들이 칭찬할 때마다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나중에 L이 교육자로서 해선 안 되는 불미한 사건으로 경질되어, 주위 사람들을 경악케 했을 때, Y만큼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혀를 차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쯧쯧. 비슷한 건 가짜인데 그것을 다들 모르고.’옛말에,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이 있다. 겉으론 양 머리를 걸고서 뒤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말로,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빗댄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이 본인은 여인들의 남장을 좋아하여 궁중에서 몰래 행하면서 온 나라에는 금지시키자, 당대 유명한 사상가 안자(晏子)가, “이는 곧 문에는 소머리를 걸고서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라 한 데서 비슷한 의미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전하게 된 고사이다.사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많은 성현들이 극도로 경계했던 바이다. 겉, 속이 다른 선비를 특히 향원이라 했는데, 이는 비슷하지만 아닌 것, 곧 사이비(似而非) 선비를 일컫는다. 공자는 ‘논어’에 “자색이 적색을 망침을 미워한다”라고 한 바 있고, 맹자 또한 충직하고 신실한 듯(似忠信), 염치 있고 고결한 듯(似廉潔)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이비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그러면서, 사이비들은 마치 논두렁에 있는 ‘피’와 같다고 했다. 피는 벼와 흡사하게 생겨 뒤엉켜 자라며 벼의 성장을 방해하기에, 노련한 농부가 아니면 다 자라 열매 맺을 때까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이러한 향원을 극도로 싫어한 인물로는 또 연암 박지원이 있다. 그는 스무 가지의 환희(요술)를 구경하고 글 하나를 남겼는데(‘환희기’), 핵심은 눈에 보이는 요술로 눈속임하는 것보다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술 곧 겉으로는 덕 있는 체 하면서, 온갖 교묘한 말로 위로는 임금을 아래로는 백성들을 눈속임하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눈속임’이야 알아서 피하면 될 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눈속임’은 간파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요즘,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진실이 중요한 이 마당에, 겉으로는 진실한 척,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척, 뒤로는 ‘감춤’, ‘거짓’을 밥 먹듯 하는 종교인들이 많다. 또 다가온 선거철, 표심에 눈멀어 겉으로는 국민을 생각하는 ‘척’, 뒤로는 또 다른 꿍꿍이를 꿈꾸는 정치인들도 많다. 다들 이 시대의 향원들이자, 사회를 좀먹는 벌레들이다. 눈 감아야 코 베가던 세상이, 이제 눈을 빤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 되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실상 코로나바이러스보다도 향원 바이러스가 더 무섭게 된 이 세상에, 다들 벼와 섞여 있는 피를 잘 솎아내는 노련한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3-15

기발한 드라이브 스루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국에서 최초 선보인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방식의 선별진료소 도입이다.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선별진료소를 도입키로 한 배경에는 미국 내 확진자가 속출한데 따른 비판여론 때문이라 한다. 대구에서 처음 시작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대량으로 발생하던 코로나 확진자 검체에 획기적 성과를 냈다. 30분이나 걸리던 한 사람의 검사시간을 10분으로 단축했다. 진료, 수납, 검체까지 종전보다 3배나 빠르게 진행했을 뿐 아니라 감염 위험성도 현저히 낮췄다.1940년대 미국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된 드라이브 스루는 소비자가 구입할 메뉴를 즉석 주문하고 차안에서 물건을 받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도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많이 활용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패스트푸드점은 대인 접촉이 없다는 이유로 드라이브 스루를 통한 판매가 되레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영국의 BBC 특파원은 “한국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했다”는 보도를 통해 한국인의 코로나 대응력을 크게 칭찬했다.코로나19가 사람의 활동을 크게 제약하자 일부 도서관에서도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한 책 대출이 등장했다. 이용자가 사전에 빌려볼 책을 예약하고 차량을 몰고 가 책을 대출받는 방식이다. 포항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양식어업인을 돕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생선회 판촉전에 나섰다. 호미곶 광장에 설치한 판매대는 즉석에서 잡은 생선회를 드라이브 스루로 판매한다. 궁하면 통하는 법일까. 한국인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3-15

종교의 정치개입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종교와 정치영역은 구분되는 영역이다. 종교가 영혼 구원이 목적이라면 정치는 국리민복이다. 상호 존중해야할 영역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보았고, 철학적 인간학의 시조 막스 셀러는 종교적 인간을 중시하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현상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전광훈 목사의 한기총(CCK)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과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종교를 앞세운 정치 집회는 정당화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종교의 정치개입 행태부터 짚어보기로 한다.우리 역사에서 고려조에는 불교가 호국 불교라는 명분으로 조선조에서는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영향을 미쳤다. 종교가 정치와 분리 되지 못한채 상호 야합한 결과이다. 임란 시 일본의 조선 침략에 가톨릭 종군신부까지 동원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해방 후 한국의 독재 정권하에서는 종교가 현실 정치를 옹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정권이 종교를 정치에 교묘히 방편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종교가 특정 정치 세력에 기생하고 권력에 비위를 맞추는 행태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신천지와 정치권력과의 관계도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해방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종교는 정치권력에 비판적 입장을 표출하였다. 시민사회의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 종교가 비판적 기능을 대행한 셈이다. 특히 가톨릭교회의 정의사제구현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반정부적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보수층에서는 종교단체의 이러한 역할을 비판하였고, 진보 측에서는 이를 적극 지지하였다. 여기에는 남미의 해방신학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여하튼 당시 성당, 교회, 사찰은 반정부적 인사들의 보호처가 되기도 했다.그러나 최근 한기총의 광화문 집회와 같은 정치행위는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극우의 입장인 한기총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탄핵집회는 종교의 과잉 정치 참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시민사회의 입장은 그에 대한 평가는 처한 입장에 따라 상반된다. 결국 광화문 집회의 주역인 전 목사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대통령의 탄핵 주장뿐 아니라 극우 보수 정당 창당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들은 신학자 본 훼퍼의 ‘미친 자에게 운전을 맡길 수 없다’는 표어를 내세우며 현직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정치 개입 행위는 기독교 종교내부 뿐아니라 시민 사회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결론적으로 한기총의 정치 개입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기독교의 교리 상에도 하느님의 권력과 나라와 세상의 권력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일부 급진 기독교에서 예수를 ‘혁명가’로 묘사하기도 한다. 예수가 당시의 유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는 반기를 들었지만 행위의 본질은 사랑이다. 물론 정치는 종교와 자유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결국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생하고 안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종교의 정치에 관한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기총 식의 과잉 정치 개입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만 야기할 뿐이다.

2020-03-15

위기의 사후 대책과 선제 대응

불과 몇 개월 뒤면 열릴 일본 도쿄올림픽의 개최가 코로나19 사태로 불투명해졌다. 취소 또는 연기 여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아닌 세계보건기구(WHO)의 손에 달린 듯하다. 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은 지난 2월 14일과 27일 두 차례 모두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이긴 하나 7월 24일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이 예정대로 개최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3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WHO에서는 코로나19를 ‘세계적 대유행(pandemic)’으로 선언하였다. 3월 13일 오전 2시 현재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국가는 116개국, 확진자는 13만1천460명, 사망자는 4천923명에 달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동안 잠잠하였던 아프리카 전역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하였고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사망자도 나왔다. 결국,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3월 13일 독일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준비는 계속한다면서도 도쿄올림픽 개최를 WHO가 중지할 것을 권고한다면 이에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거기에 3월 13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리오 버라드커(Leo Varadkar) 아일랜드 총리와의 회담 직전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 개최를 1년 연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아베 총리에게 권유하지는 않겠다’면서도 ‘관객이 없는 경기장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는 이 발언에 대한 비난 여론도 적지 않다. IOC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거둬들인 총수입 약 5조9천억 원 가운데 약 80퍼센트에 가까운 4조7천억 원 정도가 미국 NBC 방송국의 중계권 수수료라며 관객이 없으면 방송국 즉, 미국의 수입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라며 꼬집었다. IOC는 WHO의 권고에 따른다고 하기는 하였으나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아니 일본 정부의 최종적인 판단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소비세율 인상과 같은 악재에 코로나19사태로 일본 국내 스포츠 경기들이 연기되면서 경제적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과연 일본 정부가 재빨리 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그러면 우리의 입장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만일 WHO가 올림픽 개최를 중지 내지는 연기할 것을 권고하고 IOC가 받아들인다면 각국은 이에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JOC나 일본 정부가 끝까지 강행한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어쩌면 도쿄올림픽은 그대로 개최하되 올림픽 참가 여부는 각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다. 현재 일본이 코로나19사태를 빌미로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사태가 수습되고 오히려 일본이 확산 경향을 계속 보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여전히 다른 국가에서는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고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할 것인가. 이번 코로나19사태가 일으킨 도쿄올림픽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그동안 우리는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슬기롭게 사태를 수습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동안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들은 형태나 방식, 그 규모에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과정은 거의 같았다. 어느 지역에서 화재, 폭발, 태풍, 지진 등과 같은 인재, 천재를 불문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재난지역을 선포한다. 그리고 재해의 조기 복구와 정상화를 위해 특별예산을 편성하고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 대책도 마련한다. 각종 세금의 납부 기한을 연기해주거나 특별 재정자금을 편성하여 이자 부담을 경감시키는 등 금융지원도 뒤따른다. 이번 코로나19사태도 이와 비슷한 위기 대책의 수습 과정이 그대로 적용되었다.하지만 당장 다가온 총선 문제, 수개월 뒤로 다가온 일본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논의는 아직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지금은 국가의 모든 힘을 코로나19사태의 예방과 방역, 마스크 5부제 실시 등과 같이 사태 수습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당장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의 취소 또는 연기와 관련한 문제는 한일 양국 간에 얽혀있는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매우 민감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사실 올림픽의 취소 또는 연기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은 일본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선수단과 관광객 등은 올림픽 기간동안 참가를 위해 여행사, 항공 티켓, 호텔 등 숙박업소의 예약에 이르는 모든 준비는 이미 완료한 상태일 것이다. 만일 일본 정부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개최 시기에 임박해서 중단 또는 연기 결정을 하게 된다면 경제적 손실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선수단이나 관련 단체, 선수 가족과 일반 관광객 등이 예약 일정에 가까운 시점에 취소할 경우 과연 현지 일본의 사업체가 아무런 페널티도 받지 않고 사전 지급한 예약금이나 선결제한 대금을 환급해 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올림픽 특수에 대비하여 수년간 설비투자를 진행한 사업체 중에는 예약자금을 이미 사용하여 환급 처리 과정에서 파산하는 곳이 생길 수도 있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미리 검토해둘 필요가 있다. 도쿄올림픽의 중단 내지는 연기가 WHO나 IOC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특히 각국의 의사결정에 따라 결정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충분한 검토와 협상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물론 JOC나 일본 정부가 한국의 참가 여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성공적인 도쿄올림픽을 위해 최대한 많은 나라의 참가를 바랄 것이다. 앞으로 상황 변화에 예의주시하면서 올림픽 문제를 경색된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도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앞으로도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던 제2의 코로나19와 같은 또 다른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강력한 전염병이 다시 발생할 경우를 염두에 둔 대책, 포항지진과 같은 재해,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의 환경 속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경우 등 새로운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가 필요해지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은 분명하다.하지만 적어도 지금 포항에는 이처럼 다가올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 가능한 두 가지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바이오신약과 로봇 관련 연구개발이다. 어쩌면 좀 더 빨리 바이오신약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시작하였다면 이번 코로나19사태에 포항에서 개발된 백신이나 치료제 등이 활약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포항은 국내 6대 로봇 연구기관이면서 국내 최고의 실용 로봇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가지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역, 감염자 발견과 진단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지능형 로봇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앞으로의 새로운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인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이나 지금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활약할 수 있는 로봇이 포항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포항산 로봇이 진단한 감염자를 조기에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포항산 바이오신약과 함께./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3-15

18세 유권자의 선택, 말이 통하는 사회로의 첫걸음

김한석 군위군선거관리위원회 지도홍보계장최근 Kobaco에서 제작한 ‘상호존중과 통합, 대한민국 듣기평가’라는 공익광고에서 ‘말이 통하는 사회, 듣기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그 60초의 영상에는 ‘부하직원의 의견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직장 상사’, ‘엄마의 관심과 배려를 거부하며 귀를 막는 딸’,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토론회에서 상대방의 발언조차 막아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토론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이 단편적인 모습들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소통이 필요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소리에 우리의 고개가 끄덕여 질 수밖에 없다.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다.대화와 토론을 통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앞서 언급한 모습에서처럼 우리사회는 아직 참된 민주주의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조차 쉽지 않은 것이 바로 투표이고, 민주주의인 것이다.작년 12월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내용 중 오랫동안 논의되었던 참정권 확대인 선거권 연령도 만 18세로 하향됐다. 이제 18세면 누구든지 선거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오는 4월 15일에 치러지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18세 유권자는 50만 여명 정도로 전체 유권자의 1.2%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18세 유권자는 당당하게 국민의 한명으로서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성세대인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18세 유권자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바로 선거와의 ‘소통’이다. 단순히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정치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는 소통을 할 수 없다. 소통을 하려면 우선 선거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선거를 알려고 하면 나 자신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소통의 상대방인 정당이나 후보자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유권자로서의 목소리 또한 낼 수 있어야 한다.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앞으로 30여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4월 15일,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결정된다. 대한민국을 ‘말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유권자로서 ‘투표’라는 소통을 통해 선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2020-03-12

코로나19, 그리고 이재명

코로나19는 바야흐로 ‘팬데믹’, ‘세계적 대유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국장의 선언은 벌써 늦었다는 비판과 함께 뉴욕증시를 다시 한 번 폭락시켜 버렸다. (이 분 국적은 에티오피아라던가. ‘다음’ 포털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은 국적이 그렇게 궁금했던 모양이다.)이 와중에 한국은 다 알 듯 벌써 확진자 8천 명을 넘겼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걷잡을 수 없는 상황, 일본과 미국의 ‘검사 안 하기’ 전략과는 달리 열심히 방어하고 있는 중이다. 진단 숫자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고 사망률도 다행히 아직 1퍼센트 미만이다.일본이 한국을 향해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아베가 얼마나 무능한지, 한국을 자기 통치의 값싼 도구로 삼는지 보여준다. 언론에서는 일본이 알려진 것보다 열 배는 더 많을 것이라고들 한다. 올림픽은 세계 잔치니 잘 되어야 하겠는데, 이 상태에서는 장담할 수 없다.이래저래, 이번 선거는 아예 ‘코로나 선거’다. 코로나19, ‘신천지’, ‘마스크’, ‘확진자’, ‘추가경정예산’, ‘입국 금지’ 같은 말들이 숨 가쁘게 언론에 오르내린다.정치는 어떻게 될까? ‘만주 정치평론가’의 시선에 이번에는 이재명이 보인다.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신속하게 ‘신천지’를 급습해서 명부를 내놓으라고, 안 내놓으면 큰일 날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놨다.그가 ‘원하던 대로’ 지지율이 크게 용트림을 했다. 한 주마다 하는 여론조사, 나는 신임하지 않지만, 암튼, 이번 코로나19에 득 본 사람은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등이라고 했다.여러 가지 세평들이 교차하지만 이재명 하면 뭣보다 뚝심, 행정력 같은 말이 떠오른다. 직설적 언사도 온갖 풍파 거치면서 한결 제련되었다. 그나저나 그 여자 영화배우 어디로 갔는지? 그 여성작가는 또 어디로 갔고? 왕년에 장관 지낸 분은 왜 그렇게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는지?사실 이재명 목숨은 아직도 ‘간당간당’이다. 벌금 300만원의 ‘죄’라는 게 우습기 짝이 없건만, 그래도 대법원이 그의 ‘명줄’을 쥐고 있다.그런데도 그 ‘뭣이냐’ 비례연합당이라는 걸 비판하고 나섰다나? ‘통합당’ 비례당이든 ‘민주당’ 비례연합당이든 나도 사실은 고개 갸웃이다. 도대체 어쩌자는 말이냐는 말이다.코로나19도, 정국도, 미세먼지 날씨처럼 뿌옇다. 어서 좋은 날 오기만을 기다릴 뿐./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3-12

아부와 조롱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중국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한 격언을 인용했다. 한국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그리고 몇일 후 완전히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니까 중국의 일부 지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14일 격리기간을 요구하고, 한국인을 기피한다고 한다. 오히려 중국이“정치 외교 논리보다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다”라고 했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탄식이 나온다.상황초기 한국의 의료진들이 중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한 입국금지 내지는 입국컨트롤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또 시진핑의 방한계획에 차질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골든타임을 놓쳤다.그런 결과 급속도로 한국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중국은 상항이 가라앉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보내 준다고 조롱기 섞인 제의도 한다. 이런 현상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국민들의 눈에 이 정부는 북한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아부를 하고 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대꾸도 못한다. 온갖 욕을 듣고도 그저 김정은 친서 하나에 감동을 받는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겉도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공공연한 한국 원망과 비난에 길들여지고 있다. 결국 아부하여 돌아온 건 조롱과 멸시뿐이다.적지 않은 국민들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무시한 채 정치적 논리로 정책을 펼치는 현 정부의 정책에 절망한다.탈원전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보았다는 한 편의 영화, 상상력으로 그려진 허구의 픽션으로 과학자들의 줄기찬 주장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추진했다. 선거공약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논리와 북한과의 관계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무력을 강화하는데 우리만의 일방적 화해 조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과학자들은 알지 못한다.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한심한 착각과 중국 비위를 맞추면 평화가 올꺼라는 대중국 굴종외교 등 모두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 아니다. 한미 한일 동맹에 금이 가고, 중국에 냉대 받고, 북한에 모욕당하면서 국격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여전히 전문가들 과학자들은 정부의 정치적 논리에 밀렸다. 의사협회·감염학회 등이 ‘중국인 차단’을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정부는 끝내 거부했다. 오히려 중국이 우리 입국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사태까지 왔다.‘아부와 조롱’, 이건 붙어 다니는 단어이다. 아부는 당장은 상대가 고마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부를 듣는 상대는 당신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아부하지 않고 정치적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당당히 펼 때에 오히려 상대는 당신을 존중하고 조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우리 정부만 이런 간단한 논리를 모르는 것일까?

2020-03-12

플라시보 효과 vs 노시보 효과

일정기간 한 집단의 환자들에게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을 투약하고 다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기존의 보통 약’을 투약했습니다. 실험 후 환자의 위장 상태를 검사했습니다.‘새로 개발한 특별 약’을 투약한 집단의 위장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았습니다. 문제는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이라는 것이 단순한 영양제였고 기존의 보통 약이란 것도 동일한 영양제였다고 합니다.두 집단이 서로 다른 효과를 낸 것은 환자의 심리적 상태, 즉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던 거죠. 이것을 의학계에서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 부릅니다. 대개 30% 확률로 이런 결과가 나타났습니다.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것도 있습니다.노시보란 ‘해를 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혈액응고방지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처방한 두 그룹에게는 위장관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해 주었고 나머지 한 그룹에게는 주의사항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 그룹의 위 내시경 결과는 차이가 없었으나 부작용 주의를 들은 그룹은 듣지 않은 그룹보다 3배 이상 통증과 부작용을 호소했습니다.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곰 쓸개는 크기가 손바닥 1/5 정도밖에 안 되지만 우리에 30분 정도 가두어 놓고 약을 올리면 쓸개의 크기가 손바닥만큼 커진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곰을 자극하면 즉시 몸이 반응하는 겁니다.사람은 나이 일곱 살 이전에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지 거의 프로그래밍이 완료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수도회에서는 일곱 살 이전에 아이를 자신들에게 맡기면 성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단언하기까지 합니다.일곱 살 이전에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프로그래밍 받은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자각하고 서로를 일깨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긍정의 마음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2

쑥과 냉이

김병래시조시인우수와 경칩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선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형편에다 전염병까지 창궐해 온 나라가 아우성인데, 그런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봄은 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펼쳐 놓을 테니 인간사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자연의 섭리다.봄을 가장 봄답게 하는 것은 무채색의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는 온갖 풀들이다. 그 중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깊이 닿아있는 풀을 하나만 고르라면, 나이든 사람들 중 대다수는 쑥을 들지 않을까 싶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단군신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쑥은 먹을 수 있는 가장 흔한 풀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엔 봄이 오기를 기다려 들에 나가 쑥을 뜯어다가 끼니를 때우곤 했다.쑥은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일 뿐 아니라 약효도 많다. 동의보감에는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복통치료에 좋고, 피를 맑게 하며 살균, 진통, 소염 등의 작용과 냉·대하, 생리통 등 부인병에도 좋다고 한다. 말린 잎을 비벼서 뜸을 뜨는 데 쓰기도 하고 단오에는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간에 걸어두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약효의 원천은 쑥이 가진 왕성한 생명력에 있는 것 같다. 어디든 빈터가 있으면 선착순 뿌리를 내려 소위 쑥대밭이 된다. 더구나 여린 싹이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걸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른 쑥대 하나가 달고 있는 씨앗은 아마 수만에서 수십만은 될 것이다. 늦가을과 초겨울에 하늘 가득 씨앗을 날려 보내니 어느 땅인들 쑥의 영토가 아니겠는가.냉이도 이른 봄에 들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물이다. 산과 들에 봄나물이 많지만 쑥과 냉이가 그중 흔하다. 가을에 싹을 틔워 월동을 하는 냉이도 강인한 생명력으로는 쑥에 못지않다. 겨울 혹한에 얼어 죽은 듯하다가도 날이 풀리면 생기를 띠고 돋아난다. 뿌리째 뽑아서 국을 끓이거나 데쳐서 무쳐 먹는 봄의 별미다. 어려운 시절에야 물론 구황식물의 하나였지만. 식용식물이 다 그렇듯 냉이 역시도 ‘본초강목’에 역을 풀고, 풍을 제거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오장을 보하는 등의 약효가 있다고 나와 있다.오늘 들에 나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다 쑥국을 끓이고 냉이무침을 만들었다. 된장을 푼 물에다 멸치를 몇 마리 넣고 끌이다가 쑥을 넣으면 쑥국이 되고, 끓는 물에 데친 냉이를 다진 마늘과 된장과 참기름을 넣고 버무리면 냉이무침이다. 쌉쌀한 쑥의 맛과 달짝지근한 냉이의 맛은 정서를 편하고 담담하게 한다. 식탐이나 과식을 걱정할 필요 없는 소박한 맛이다. 지금 우리에게 쑥과 냉이는 봄철 입맛으로나 먹는 나물이지만, 기근이 들어 끼니를 잇기 어려운 백성들에게는 지천인 풀이면서 먹을 수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을까. 전염병으로 국경이 차단된 북쪽에서는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니, 쑥이나 냉이로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인들 없겠는가. 아무쪼록 이봄 북녘 들판에 쑥과 냉이라도 풍성하게 돋아나기를 바란다.

2020-03-12

新 보릿고개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란 노랫말의 유행가가 요즘 뜨고 있다. 먹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삼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 모양이다.손자가 뛰는 모습을 보고 행여 배가 빨리 꺼질까봐 뛰지 말라 만류했던 할머니의 애달픈 심정을 담은 이 노랫말은 그들 세대만이 공감할 충분한 소재일 것이다.보릿고개는 지난해 가을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음력 4∼5월이다. 춘궁기(春窮期) 맥령기(麥嶺期) 등으로도 불렸다. 이때쯤이면 서민층은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도 끼니를 이어갔다 하여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생겨났다. 먹을 것이 없는 백성은 걸식이나 빚으로 연명하고, 그마저 못하는 많은 빈곤층은 굶어 죽었다. 예로부터 하늘을 의지해 농사짓는 우리 민족에게 보릿고개는 어쩌면 숙명적 고난의 시기다.“설마”하고 믿고 싶지 않겠지만 보릿고개는 196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오래 굶어 살이 붓고 누렇게 뜬 부황증 증세의 사람도 그 시절은 흔히 만날 수 있었다.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이젠 우리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남의 나라 일이 됐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보릿고개는 할머니 이야기 속의 전설처럼 들릴 뿐이다.얼마 전 매스컴에서는 은퇴 후 5∼10년을 연금 없이 버텨야하는 소득공백기를 신보릿고개라 불렀다. 퇴직 연령은 빨라지고 국민연금 수령은 늦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꼬집는 표현으로 사용했다.지금 대구와 경북은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산업이 멈춰 섰다. 곳곳에서 생존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대판 보릿고개가 대구경북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대책이 절박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2

공천, 그리고 낙화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대구·경북 지역의 미래통합당 현역의원에 대한 공천 칼날이 피를 뿌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3선의 친박계 핵심 출신 김재원 의원, 비박계 3선 강석호 의원, 초선인 곽대훈·김석기·백승주·정태옥 의원과 재선의 박명재 의원까지 컷오프돼 지역구 의원 20명 중 7명이 낙마했다. 이로써 대구·경북지역에서는 20명의 현역의원 중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5명을 포함해 12명이 물갈이 됐다. 특히 지역에서 중진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던 3선이상 정치인 5명 중 주호영 의원을 제외한 4명이 공천에서 모두 교체된 것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선수를 우선시하는 국회의 관례를 생각하면 21대 국회에서 TK지역은 단 한명의 상임위원장도 배출할 수 없는 진용으로 짜여진 셈이다. 3선 이상 정치내공을 쌓아 온 이들 마저 공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컷오프의 수모를 견뎌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텃밭에서 현역의원들을 대거 교체하지 않으면 쇄신이란 모양새를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에다 지금 이대로는 정권교체를 이루기 힘들다는 당내 절박감이 컸기 때문일게다. 또한 텃밭에 안주한 정치인의 경쟁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홍준표 전 대표는 수도권 험지출마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컷오프된 후 대구에 무소속 출마하겠다며 선언해 또 다른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홍 전 대표의 무소속 출마선언을 계기로 곽대훈(달서갑) ,정태옥(북구갑), 강효상(달서병) 의원 등이 무소속 출마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여 TK발 무소속연대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재선의 포항남·울릉 지역구 박명재 의원이 컷오프이후 무소속 불출마 선언을 해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다. 박 의원은 지난 9일 포항KTX역에서 지지자들과 당원들에게 “이번 공천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당과 포항, 대한민국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천결과 수용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의 첫 구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로 말을 맺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 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 아름다운 시를 진흙탕 싸움이기 쉬운 정치적 현실에 대입하는 일은 무척 민망스럽다. 그러나 봄 한철 격정같던 사랑은 어디 갔을까 자문해보자. 이 계절이 지나면 무성한 녹음과 열매맺는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자연의 섭리를 누군들 모르랴.그렇다해도 꽃잎이 지는 낙화의 아픔은 좀처럼 덜어지지 않는 듯 싶다.

2020-03-12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근식 포항침례교회 담임목사암흑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빛 같이 산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최초로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고 강영우 박사다. 강 박사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1968년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아내 석은옥씨와 미국으로 유학해 3년 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장애인이 받은 최초의 박사학위였다.그의 어린 시절은 얼룩이 많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키퍼를 하다가 친구가 찬 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8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이미 3년 전 돌아가셨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 누나는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다. 13세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9세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가 갈곳은 없었던 차에 맹인재활센터로 버려지듯 가야 했다.훗날 강 박사는 “제가 살아온 인생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일 때문에 내 삶엔 더 좋은 일이 생겼다. 저는 나쁜 일이 생기면 미래에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긍정적인 가치관, 생각으로 늘 살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남겼다. 강 박사에겐 긍정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고통과 시련에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그거라고 했다.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 박사는 긍정적인 가치관만으론 안 되고 “섬김과 나눔의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의 230년 전 건학 이념이 ‘Not for Self(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공부를 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강영우 박사의 기뻐하고 긍정하는 삶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지금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마치 대양에 휘몰아치는 폭풍과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갈 곳을 잃고 떠가는 돛단배의 모습이다. 지금 당장 퇴로가 보이지 않지만 곧 길이 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이며 희망이다.어릴 때 동네 구석진 모퉁이에서 삼삼오오 모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래가 들리면 모두 술래를 피해 숨었다. 잡히면 술래가 되기 때문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라고 목을 조이기도 한다. 요즈음 코로나19와 숨바꼭질하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다. 특별히 국가 간 관계가 깨어지고 이웃의 개념이 더 흐려지는 이때 함께 뒤얽혀 즐겁게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020-03-11

언론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엄마가 널 사랑한다고? 그거, 확인해!’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지 본사 복도에 걸린 현수막이다. 누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저 현수막은 언론이 하는 일 가운데 ‘확인하고 확인하는 일’ 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는 걸 강조한다. 생각 속에 그 어떤 확신이 있다고 해도, 사실로 확인하지 않고는 보도하지 말라는 것이다.‘확인은 모든 언론행위의 본질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언론 관련 이슈들을 다루는 니먼재단(Nieman Foundation)이 보고서에 적은 한 줄이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런저런 실수들이 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확인’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 언론인들에게 요청되는 바이다.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옥스퍼드대학의 언론연구소가 38개국 국민들의 언론신뢰도를 조사했다. 한국은 겨우 22퍼센트의 국민들이 언론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하여 최하위를 차지했다. 한국인의 거의 80퍼센트가 언론보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언론을 믿지 못하겠으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독자의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하는 언론이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날마다 시간마다 보고듣는 언론보도를 시민들이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언론이 누리는 ‘언론자유’지수는 향상되고 있다는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한 영국인 프리랜서 기자는 ‘한국언론이 형편없다’는 혹평을 하면서, 부실한 출처확인을 지적하였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에도 확인부실이 보인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겠는가.언론뿐일까. 확인없이 쓰고 읽고 나누고 소통하는 일. 생각없이 받아들인 책임은 독자에게도 있다. 살피지 않고 나누고 마는 대중에게도 책임은 있다.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수동적으로 보도를 수용하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언론이 또 다른 권력임에 틀림이 없으므로, 견제와 균형은 언론에도 적용해야 한다. 신문에 났거나 방송에서 보았으므로 그대로 믿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기관이 독자 대중의 눈과 귀를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과 온라인의 도래는 심대한 도전으로 다가와 바뀌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다. 소문과 확신으로 써 내리는 기사는 사라져야 한다. 양심을 빙자하여 진영논리에 갇힌 기사는 그만 보고 싶다. 공정하고 투명하여 사안의 넓은 지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확인에 들인 노력을 확인하고 싶다.길은 본질에 있다. 언론은 독자의 신뢰를 먹고 산다. 힘있는 자들을 향한 매서운 감시와 분명한 견제를 실행하려면, 언론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며 우리 언론이 보는 시각과 해외 언론이 평하는 바가 어떻게 비교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확인을 생명으로 한 언론 보도와 느낌을 배경으로 한 소설 쓰기는 다를 수 밖에. 확인을 토대로 우리 언론이 시퍼렇게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확인이 사라지면 언론이 아니다. 언론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2020-03-11

유튜브 선거전

유튜브가 선거운동의 주요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구글이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로, 사용자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시청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당신(You)과 브라운관(Tube·텔레비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지난 2005년 2월 페이팔(PayPal)의 직원이었던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조드 카림이 캘리포니아 산 브루노에 유튜브사를 설립했다.유튜브의 시초는 세 명의 창립 멤버가 친구들에게 파티 비디오를 배포하기 위해 ‘모두가 쉽게 비디오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해낸 데서 시작됐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일종인 유튜브가 선거운동에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천재지변인 코로나19 사태가 계기가 됐다. 대면접촉 위주의 기존 선거운동이 막히면서 유례가 없는 ‘유튜브 총선전’이 벌어진 것.여야 각 후보들은 유튜브를 통해 출마를 선언하거나, 활동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있다. 또 각당 역시 공식 채널을 통해 표심에 호소하고 있다. 특히 21대 총선 최대 관심사인 서울 종로 선거전은 유튜브가 선거운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야를 대표하는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당대표가 맞붙은 이 지역 선거운동 역시 각각 이낙연TV·황교안오피셜을 개설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과거 선거운동은 군중·길거리 연설에서 문자·이메일 홍보로 진화했다. 2010년 전후엔 트위터·페이스북 등이 SNS 선거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7년 대선부터 대선후보 1인에 집중된 유튜브 선거가 치러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을 유튜브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최초의 ‘전국 단위 선거’로 평가한다. 환경의 변화가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현장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1

코로나19 재난 계기로 지역 회복력을 강화하자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우한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올해 1월 30일을 기해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월 11일 현재 전세계 80개 국가에서 확진환자수 9만5천24명, 사망자수 3천281명이다. 전염병(epidemic)이 전세계로 퍼질 때 이를 판데믹(pandemic)이라 하는데, 이미 중국, 한국, 이란, 이탈리아, 미국 등 전 대륙으로 퍼지고 있으므로 코로나19 확산은 이제 판데믹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이번 코로나19는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에 이어 3번째의 중증폐렴 유발 감염병 재난을 일으킨 바이러스가 되었다. 많은 전문가는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가속화로 이러한 대형 바이러스 감염병 재앙은 계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블랙스완(Black Swan)이란 지극히 예외적이어서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일컫는다. 우리 대구·경북지역 시도민 입장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은 블랙스완과 같은 대형재난이며, 앞으로도 완전히 차단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블랙스완형 대형재난에 대응력을 높이는 지역사회 리질리언스(Resilience, 회복력) 강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그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대구·경북지역 감염병 안전지수등급 16개 특·광역시 중 최하위 수준크고 작은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오늘날 안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책무라고 할 수 있다.최근 10년간(2008~2017)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사망·실종 등 인명피해 1천97명(사회재난 945, 자연재난 152), 재산피해 12조9천174억원(사회재난 9조3천850억, 자연재난 3조 5천324억)이 발생하였다. 이중 자연재난에 대한 복구액은 총 7조3천658억원 소요되었다. 경상북도는 자연재난 재산피해액이 3천563억원, 피해복구액은 8천45억원으로 전국 4위 수준으로 매우 높으며, 대구광역시는 상대적으로 자연재난 피해가 적은 지역이다.2003년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구지하철사고에 이어 2016년과 2017년 국내관측사상 최고치의 진도를 기록한 경주, 포항 지진 이후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에서는 재난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대구경북연구원내에 재난안전연구센터를 개소하는 등 재난재해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지역안전지수등급은 행정안전부가 국민 개개인이 생활주변 위험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정보들을 통합하여 지도 위에 표현한 서비스인 생활안전지도 홈페이지(http://www.safemap.go.kr/main/smap.do)를 통해서 안내하고 있는 안전수준이다. 이 지도에 제시된 대구광역시의 지역안전지수 등급 결과를 살펴보면, 감염병이 5등급으로 가장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화재와 자살이 4등급, 교통이 3등급, 범죄와 생활안전은 2등급으로 평가되었다. 경상북도의 지역안전지수 등급 결과를 살펴보면, 감염병과 교통이 4등급으로 가장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생활안전과 자살이 3등급, 화재가 2등급, 범죄는 1등급으로 평가되었다. 이 결과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사고 이전에도 우리 대구경북지역이 감염병 안전도가 전국 1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전세계 재난 회복력 증대 캠페인에 4천317개 지자체 참여UN의 재해감소국제전략기구(UNISDR)는 세계 각국의 지방정부가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장려하기 위해 재난에 강한도시 만들기(MCR, Making Cities Resilient)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UNISDR은 MCR 캠페인에 가입한 도시 중 회복력 향상을 위해 모범이 되는 도시를 선정하여 Role Model City 자격을 부여한다. MCR 캠페인은 지방정부만 가입할 수 있고, 추진방법은 UNISDR이 제시하는 10대 핵심사항을 실천하는 것이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125개국 4천317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175개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으나 전세계 Role Model City로 인증 받은 지자체 49개 중 우리나라 지자체는 인천광역시가 유일하다.이 캠페인의 주된 목적은 지방정부 및 도시 규모에서 그들 각자가 직면한 위험을 인지하여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요청함으로써 회복력 도시 조성을 장려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도시들 간의 정책 공유 및 협력, 정부 관계자들에서부터 도시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직면한 위험을 인지시킨다.MCR 캠페인에 참가한 지자체는 지역의 회복력을 측정하기 위해 Score Card를 작성해야 한다. Score Card는 재난 회복력을 위한 조직구성 및 이행 준비, 현재와 미래의 위험 시나리오 분석, 이해, 활용, 재난 회복력을 위한 재정적 역량 강화, 회복력에 강한 도시개발과 설계 추구, 자연생태계가 제공하는 보호기능 강화를 위한 자연완충재보존, 회복력을 위한 기관역량강화, 회복력을 위한 사회적 역량이행 및 강화, 사회기반시설의 회복력 강화, 효과적인 재난 대비와 대응력 확보, 신속한 복원과 더 나은 재건 등을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코로나19 대응한 ‘사회적 거리두기’ 성공은 지역 회복력 강화의 원동력울산발전연구원 윤영배 부연구위원은 ‘울산시 도시회복력(Resilience) 강화방안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6가지 주요 정책사업을 제안하였다.회복력 개념을 도입한 도시안전 최상위 기본계획인 ‘도시안전전략계획’을 조례개정을 통한 5년 단위 계획으로 수립한다. 비상사태나 재난으로 인해 공공기능의 운영이 중단되었을 때 정부의 핵심적인 기능을 보호, 유지하고 연속할 수 있도록 ‘기능연속성계획’을 수립한다. 침수흔적도, 재해정보지도 등 재해관련 공간데이터 구축 및 도시안전도 향상을 위한 재난정보 모니터링 등 재해예방데이터를 구축한다. 과거 피해사례 극복, 방재시설물 설치시 재해 취약성 고려, 피해저감형 토지 이용 등을 위한 회복력 개념을 도입한 도시(재)개발을 추진한다. 협력적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위한 도시안전연구센터를 설립하며, 안전정보 공유, 활동가 육성을 통한 주민활동 유도 및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대회개최 등을 통한 주민참여 소통 활성화사업을 시행한다.이들 사업은 대구경북에 그대로 반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지역특성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여 추가 보완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서울 내러티브연구소 최남희 소장은 ‘재난을 뛰어넘는 지역사회 리질리언스’라는 특집 기고문(열린충남 겨울호, 2016)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 하였다. 그러한 믿음의 밑바닥에는 재난대응이 국가의 책무이고, 전문가들이 알아서 대처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형 참사나 재난은 국가적 차원의 전략만으로는 부족해서 재난에 대한 대응과 책무가 국가나 행정기관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은 여럿이 힘을 모으고 일상적 행동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수월하게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지금 당면한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을 극복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국민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서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한 성공이 우리 지역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큰 동력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2020-03-11

착각은 자유

한 여인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탑승할 시간이 많아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비닐로 포장된 쿠키 한 봉지를 샀습니다. 서점에서 잡지 한 권도 샀지요. 공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이며 커피를 마시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옆 자리에 있던 신사가 옆 좌석에 놓아둔 쿠키 비닐 포장을 뜯고 덥석 하나를 꺼내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인은 무척 놀랐지만 태연하게 자신도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가 상황을 깨닫고 무례한 행동을 그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끗 여인을 한 번 바라볼 뿐, 계속 쿠키를 먹는 것 아닙니까?그냥 물러나면 비행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남자가 물러설 때까지 여인은 꿋꿋이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도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쿠키를 먹습니다. 결국, 쿠키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 쿠키를 절반으로 쪼개 한쪽을 여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여인은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고 여인은 비행기에 탑승해 좌석벨트를 맸습니다. 남자의 뻔뻔한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이륙 후 립스틱을 꺼내려고 핸드백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상상치도 못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카페에서 샀던 쿠키가 봉지도 뜯지 않은 채 들어 있었던 겁니다. 대합실에서 정작 뻔뻔스러운 사람은 본인이었던 거지요.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경영학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틀림없이 진실이 믿는 것이 오류일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경청의 기본적인 태도는 열린 마음으로 내 아집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1

교육 백신 6 - 생기부 기재요령 분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입춘, 우수에 이어 경칩이 지났다. 어수선한 인간 세상은 필자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다.마스크가 없으면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금 마스크만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사람들이 희망, 배려, 양보 등의 가치보다 마스크 한 장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마스크는 인위적이다. 마스크를 통해 숨을 쉴 때마다 필자는 필자의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숨을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필자는 승용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되도록 쓰지 않는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차창을 활짝 연다. 밭일을 열심히 하는 농부를 볼 때면 차의 속도를 줄여 눈으로나마 그들과 함께한다. 그러면 농부의 건강함이 온몸 가득 들어온다. 그들은 절기를 생각하게 한다.“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고 한다.”경칩이 지난 산과 들은 절기를 지키어 만물의 잠을 깨우고 있다. 산은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들은 농부의 부지런함에 봄갈이가 한창이다. 자연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자신 일에 열중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사회는 마스크 안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학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가장 인위적인 것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이다. 학기 초나 말이면 전 교사를 대상으로 생기부 기재요령 연수까지 한다.“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의 표준화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 (기재요령 일러두기 중에서)그런데 아래 유의사항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교육 현실과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다. “학생의 성장과 학습 과정을 상시 관찰·평가한 누가기록 중심의 종합기록. 학교에서 실시한 각종 교육 활동의 이수상황(활동내용에 따른 개별적 특성이 드러나는 사항 중심)을 기재.”오로지 입시를 위한 시험만이 전부인 학교에서는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구차한 말 다 치우고 생기부 기재요령이 나온 직접적인 이유는 입시 때문이다. 특수목적고등학교나 SKY 등에 입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 궁극적인 목적이다.그런데 고등학교야 일류대학교가 아직 존재하지만, 중학교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 정책으로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들이 지위를 많이 잃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과학고뿐이다. 그런데 과학고 입시를 잡자고 지금과 같은 기재요령을 유지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을 죽임은 물론 너무도 큰 에너지 낭비다. 중학교에는 이젠 소용없는 생기부 기재요령 때문에 교사들의 힘을 빼서는 안 된다.교원 행정업무 경감이 교육계 화두이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중학교 생기부 기재요령을 없애는 것이다. 띄어쓰기 때문에 몇 번이고 생기부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기재요령이 나온 목적은 아닐 것이다. 기재요령이 꼭 필요하다면 춘분이 오기 전에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분리하자!

2020-03-11

문제는 손이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코로나19로 ‘마스크 5부제’가 실행 중이다. 차량 5부제는 익숙하지만, 마스크 5부제는 어색하고 떨떠름하다. 고도의 물질문명 세계에서 마스크를 구하려고 5일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기나 가족 몫으로 할당된 마스크를 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쓰임새로 본다면 마스크는 나보다는 남을 보호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마스크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서 침의 분말이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타인의 기침이나 재채기가 날아올 수도 있다. 재채기나 기침할 때는 옷소매로 입을 가리라고 보건당국이 권고하는 까닭은 그래서다.그럴 바에는 마스크를 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마스크 대란(大亂)이 일어난 까닭이 거기 있다.청도 화양읍 토평리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고 앞마당을 배회하는 풍경은 다소 비극적인 데가 있다. 한 달 넘게 폐쇄된 경로당에도 못가고, 아낙들이 마실 오는 일도 없어진 마당에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양상은 우울하다. 5일 장에 나가야 구할 수 있는 마스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처(大處)에서 살아가는 자식들이 보내줬을 터다. 그것은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한 마스크 ‘사재기 광풍(狂風)’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코로나19가 전염되는 경로 가운데 코보다 치명적인 부위는 손이다. 손은 몸 가운데서 가장 활용도가 높고 가장 더러운 부위다. 손을 묶어버리면 우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손으로 만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라. 신발 안에 모셔져 있는 발과는 쓰임새가 천양지차다.영화 ‘컨테이젼’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여러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2020년 코로나19를 빼다 박은 것처럼 닮은 상황도 나온다. 그 가운데서 내가 중시하는 대목은 손이다. 어린 돼지를 다루다가 앞치마에 대충 손을 문지르고 나온 주방장과 악수하는 등장인물. 그녀의 손과 맞닿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간다. 이내 세계 전역으로 감염병이 퍼지고 대혼란이 발생한다.영화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감염병의 근원을 알게 된다. 바나나 서식지를 공격받은 박쥐가 돼지농장에 날아가서 배설한다. 어린 돼지가 박쥐 배설물을 먹고, 돼지는 주방장에게 전달된다.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宿主)로 지목된 동물이 돼지와 박쥐였으니 족집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경로인 손이다.주방장의 손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전파경로는 2020년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지는 세상의 온갖 물건을 통해서 바이러스는 전파된다. 우리는 하루에 3천번 정도 얼굴을 만진다고 한다. 손은 얼굴을 만지기 전에 무엇을 만졌을까?! 명심하시라. 마스크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잘 씻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2020-03-11

두 개의 바이러스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해마다 연말이 되면 방송에서는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해 한해를 되돌아보는 보도를 한다. 2020년은 동일 숫자가 이어지는 인상적인 해인 만큼 ‘올해의 키워드’도 연초부터 드러난다. 한국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과 코로나19의 사태가 2020년 희비(喜悲)의 대표 키워드가 될 것은 분명할 듯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를 긴장하게 하면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헬라어 ‘kor1E53n0113(κορ03CEνη)’에서 유래한 ‘코로나(corona)’는 ‘크라운(crown·왕관)’의 뜻이다. 바이러스의 모양이 ‘로마 시대의 머리 장식’과 비슷한 데서 지어졌다고 한다. 전파력이 이전의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현저히 높은 바이러스다. 신도 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종교단체 ‘신천지’의 신도가 감염됨에 따라 코로나19의 전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제는 이것을 인력으로 막는 데 한계를 느끼기까지 한다. 감염 바이러스에 대한 안일함이 지금의 사태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교육계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졸업식과 입학식 등 정례 행사들을 모두 취소하고 개학 일정도 2주~4주 간 연기하였다. 민생경제는 크게 위축되었고 나날이 늘어나는 감염 확진자들로 의료계는 사상 최대의 혼란과 과로를 겪고 있다. 육아 문제나 기업의 업무 차질에 따른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마스크 품귀에 따른 가격 폭등과 부당폭리, 매점매석 등은 ‘나만’, ‘나 먼저’ 살겠다는 이기심을 부추겼고 마스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에는 취약성만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필자도 이른 아침부터 3시간 반을 기다려 정부에서 공급하는 마스크를 겨우 살 수 있었다. 밀집된 장소를 피하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사려고 몇 시간을 다닥다닥 붙어 늘어선 긴 줄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고 웃프지 않은가.사회 한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성금과 기부가 이어지고 있으나 또 한편에서는 마스크 한 장 나누는 것조차 꺼려하며 위기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까지 한다. 무분별한 혐오와 분노 표출, 별별 가짜 뉴스는 더 큰 공포감을 확산하면서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거짓 감염 확진 신고로 공공기관에 혼란을 주는 행위나 감염 확진자가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 손잡이에 침을 뱉으며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영상 보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환경이 선한 인간을 악하게 하는 것인가, 환경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인가.그래도 인간의 본성은 선(善)일 것이다. 위기 때마다 공멸(共滅)의 바이러스와 공생(共生)의 바이러스는 공존하였다. 그리고 승리는 언제나 공생의 바이러스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바이러스에 대한 분별력으로 차단과 확산의 의지가 절실하다. 코로나19가 우리 안에 또 하나의 바이러스를 만들고 그것이 퍼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공생의 의지를 단단히 해야 한다.

2020-03-10

박수를 치기 위해

지미 듀란테(Jimmy Durante: 1893-1980)가 참전 용사들을 위한 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바쁜 일정 때문에 단 몇 분밖에 출연할 수 없다고 쇼 기획자에게 말했습니다.쇼 기획자는 당대 미국 최고 연예인인 지미 듀란테를 무대에 세우기만 해도 대성공이라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막상 무대 위로 올라간 지미 듀란테는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수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지미 듀란테의 열정은 더했습니다.쇼 기획자는 왜 그가 마음을 바꿔 그렇게 오랫동안 무대에 서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30분이 지나서야 지미 듀란테가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쇼 기획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몇 분간만 무대에 설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지미 듀란테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그럴 계획이었지만 내가 계속 쇼를 한 데는 이유가 있소. 저기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보시오.”쇼 기획자는 무대 맨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참전 용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둘 다 전쟁에서 팔 하나씩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쪽 팔이 없었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 팔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채 즐거운 표정으로 한쪽 손바닥들을 서로 부딪치며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내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결핍을 핑계로 자기 합리화하며 현실과 세상을 탓하기 바쁩니다. 손뼉을 치는데 반드시 두 손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과 네가 가진 것이 함께 어울릴 때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고 박수 소리를 크게 울릴 수 있습니다.새벽은 자신을 돌보기 좋은 고요한 시간입니다. 온종일 세파에 휘둘려 살다 보면 어느새 내 결핍에 대한 원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고요한 새벽, 맑은 눈으로 내가 가진 좋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삶은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름살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나도 보톡스 좀 맞아야겠어요.”(먼 쓸데없는 소리고?)쌩하고 날아오는 아내의 원망어린 말(言)화살을 한번쯤 맞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녀시절 곱디고운 얼굴이 당신하고 살면서 다 망가졌다며 들이대는 고소장 같은 느낌이 든다. 여성의 경우 나이 들고 있음을 가장 잘 알게 되는 것이 목둘레에 슬며시 찾아드는 주름살이란다. 남자 역시 비갠 날 지렁이 지나간 자국 같은 인생 계급장이 벗겨진 이마 위에 쌓여간다. 남자든 여자든 노화현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할 일인데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 특히 영원토록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여성의 경우에는 더 그런 마음일 것이다. 쌓여가는 주름살을 보노라면 ‘그 동안 멀 해놨지?’하는 회한과 자괴감이 밀려오게 된다. 성형 열풍에 부응하여 주름살을 살짝 제거해 볼까하는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기라는 공자님의 지엄한 말씀에 눌려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살았다. 세계 최고의 성형수술 실력을 자랑하는 이 땅에서 쌍꺼풀, 코, 입 나아가 원판을 갈아치울 수 있는 호시절에 옆지기의 주름살 정도는 지워줘야 할 것 같다. 2+1원 옵션을 받아 슬쩍 같이하면 더 좋을 듯하다. 부작용으로 그나마 있던 밑천(?)마저 탕진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한번 시도해보자고 마음먹는다. 가정의 무궁한 평화를 위해서 옆지기의 손을 잡고 보무도 당당하게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지 다짐해본다. ‘나이 먹으면 얼굴에 주름살 생기고 허리 굽어지는 거 자연스러운 거야.’ 지난 날 어른들의 말씀이 뒷덜미를 잡는다. 오! 자연미, 위대한 철학자 루소도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기합리화를 하고 또다시 물러선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좋게 받아들여질 일이다. 얼굴의 주름살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아름답고 값진 훈장으로 여긴다면 굳이 성형으로 제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며칠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진 주름살을 보게 됐다. 코로나19 전염 차단에 사투를 벌이는 젊은 여성의료인 두 사람의 이마에 생긴 주름살이다.(평소에는 분명 주름살이 없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두 여성 의료인은 장시간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한 탓인지 방호모자의 끈에 눌린 이마에 주름살이 생긴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이마에 강제로 생긴 주름살의 지친모습이었다. 하지만 보톡스를 맞아 어색하게 펴진 세상의 어떤 얼굴보다 아름다고 값진 모습으로 보였다. 대구 경북지역으로 전국의 의료진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갓 임관된 간호장교들이 전부 코로나19 차단 현장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위기 상황에 몸을 던져 희생하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다. 여성의료진의 이마에 맺힌 땀과 주름살 자국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짝! 짝! 짝! 격려박수를 보내본다.“제 주름살도 만만찮은 것이거든요!” 옆지기의 말이다.

2020-03-10

무탄트 메시지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코로나19로 명명된 신종 바이러스가 대구·경북을 강타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자가격리 상태다. 원래 ‘방콕행’(방안에 콕)에는 자신 있는 체질이지만 외출이 제한된, 강제당한 방콕은 갑갑하다.‘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얼마 전 ‘꿈틀로’골목 노점에서 구입한 책 ‘무탄트 메시지’를 읽었다.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이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며 온갖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과연 인간은 지구에게 어떤 존재일까.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고질적인 바이러스가 아닐까?중국 우한에서 비롯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오랜 세월동안 인류의 삶을 위협해왔고, 인간은 아직까지도 감기를 완전히 치료하는 약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백신을 이겨내는 내성을 가지며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오만이 미생물, 그것도 현미경으로 관찰하기도 어려운 바이러스의 공격 한방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핵무기 등의 대량 살상무기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적이고, 극지방의 빙하를 녹게 하는 환경파괴 행위도 가공할 일이지만 정작 인류의 멸망은 정체모를 바이러스의 공격에 의하여 허무하게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이르니 모골이 송연하다. 바이러스는 도대체 왜 생겼을까?코로나 바이러스는 환경에 잘 적응하여 빠르게 변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 야생동물의 식용 등으로 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접근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은 파괴되고, 자연을 훼손하면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도 파괴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이 바이러스는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 것이다. 박쥐나 뱀 등의 동물이 숙주이던 바이러스가 이를 식용으로 한 인간에게 전이되어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마음으로 미래를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무탄트 메시지’는 미국의 의사 말로 모건이 호주 원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사막대륙을 횡단하며 깨달은 바를 기록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참사람들이라는 것을.“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를 당신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떠난다. 당신들의 삶의 방식이 물과 동물과 공기에, 그리고 당신들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깨닫기 바란다. 이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당신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비 내리는 것이 이미 달라졌고, 더위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으며, 동식물의 번식이 줄어드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아직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신비가 세상에 존재한다. 인간은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 존재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분명한 것은 참사람 부족이 전한 말이다.“인간은 산소를 만들지 못하며, 오직 나무와 풀만이 산소를 만들 수 있다.”

2020-03-10

왕따가 된 나라

왕 따돌림에서 나온 ‘왕따’는 인천 어느 여학교에서 처음 유래됐다고 한다. 집단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이 말은 은어로 시작했던 것이 보통 명사화됐다.유래는 일본의 이지메(집단)다. 일본은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무슨 일을 도모할 때면 집단으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집단이 결정한 일에 반대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집단이 대놓고 따돌림을 한다. 일본의 학교에서 발생하는 이지메 현상은 사회문제화가 여러 차례 됐다. 집단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학생도 나왔다.집단 괴롭힘 현상인 이지메를 우리말로 적절하게 표현할 용어가 없어 왕따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접두사 왕은 보통 심하다, 강하다 등 낱말을 강조하는 접목어로 많이 사용된다. 왕초보, 왕고집, 왕회장 등이 그런 경우다.그러나 왕따는 그런 의미와는 다르다. 왕따는 강하다는 뜻보다는 집단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왕따를 모방해 ‘개따’(개인적 따돌림), ‘금따’(금방 따돌림), ‘대따’(대놓고 따돌림) 등의 속어들도 뒤이어 만들어졌다. 인터넷상 카톡방에서의 따돌림을 ‘카따’라 부르고 그런 표현을 보고 ‘카티즌’이란 단어도 쓴다.집단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면 보통 소통이 되지 않고 고립이 된다. 자연 자신감도 상실하게 된다. 학생이면 학교생활을 하는데 있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도 한다.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발생으로 100개국이 넘는 외국 나라로부터 왕따된 처지가 됐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도 무비자 입국제도를 임시 중단했다. 입국하려면 적어도 14일간 격리가 필요하다. 전 세계가 환영하던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으로 신세가 몰락했는지 무능한 정부를 탓할까 한심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0

우주의 깊이, 내면의 깊이

1977년 8월 20일 보이저 2호는 미국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를 이륙해 지구를 떠난다. 돌아올 수 없는 편도행 티켓이다. 목성과 토성, 천왕성을 지나 해왕성을 끝으로 2018년 11월 5일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로 진입했다.기약없는 42년의 여정에 이어 인류가 만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멀리 날아간 것이다.지구로부터 182억km. 빛의 속도로 하루가 걸리는 거리의 어디쯤에서 목적지 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만약 보이저 2호가 감정을 지닌 유정물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42년의 여정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떠한 감정으로 주어진 임무에 임했을까. 깊어지는 우주의 깊이만큼 그의 고독한 내면의 깊이는 어느 정도였으며 어떻게 바라보았을 것인가.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주의 지적생명체를 찾기 위한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를 영웅이라 믿으며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운 미 육군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가 아버지의 생존을 접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찾아 태양계의 끝자락 해왕성으로 향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벌인 위험한 실험이 인류를 위협할 사태를 유발하면서 그를 막아야 하는 임무를 맡게된다.불의의 사고로 동료들이 모두 죽고 로이는 혼자서 기나긴 여정에 돌입한다. 그 여정 속에서 우주의 빈 공간만큼 넓고 깊은 내면의 고독과 마주한다. 그는 그 깊고 넓은 공허 속에서 자신이 지구에 두고 온 것을 되새기고 지나온 모든 삶을 반추한다. 이와 함께 어떠한 결말에 도달할지 모르는 아득한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들을 느낀다.구조적으로 ‘애드 아스트라’는 프란시스 포드 코풀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게 한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미 특수부대 윌라드 대위는 밀림에서 복귀하지 않는 커츠 대령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받고 메콩강을 따라 캄보디아의 길고 깊은 밀림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지옥의 묵시록’의 윌라드 대위는 여정을 따라 참혹한 전쟁의 참상과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사실을 직면한다. 그의 내면에 가득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여정의 끝자락에 당도한다. ‘애드 아스트라’의 로이 소령 또한 두려움과 함께 내면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공허의 공포 속에서 여정의 끝자락에 당도한다.두 영화의 구조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절대자가 있고, 그 절대자를 무너뜨리고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구조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 대령은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온 윌라드 대위에게 “공포와 친구가 돼야 한다. 적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커츠 대령 역시 밀림의 여정에서 느꼈던 공포를 어떻게 다스렸는가를 피력하는 말이다. 그리고 “자네가 날 죽일 권리는 있지. 허나 날 심판할 권리는 없네”라고 말하며 죽음을 받아들인다. 여기까지 두 영화의 구조는 유사하지만 결말은 다르다.“그는 없는 것만 찾았고 눈앞에 있는 건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애드 아스트라’는 절대자였던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의 이면을 본다. ‘아름답고 장엄하며, 경이롭고 신비’롭지만 그 내면이 텅 비어버린 “사랑과 믿음도 빛도 어둠도 없는” 공허의 공간을 목격한 것이다.‘獨樂堂(독락당) 對月樓(대월루)는 /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조정권 시인의 시 ‘獨樂堂(독락당)’ 전문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절대 고독의 경지에 머무를 때, ‘애드 아스트라’는 “이제 소중한 것에만 집중하며 살 겁니다”라고 먼 길에서 돌아와 일상에 안착하는 결말에 이른다.깊고 먼 우주로 들어서는 용기. 우주의 심연으로 들어가면서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는 용기. 외부의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자신을 고독의 심연으로 밀어넣었을 때 찾아오는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애드 아스트라’는 결말이 다른 ‘지옥의 묵시록’의 SF버전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IPTV와 네이버 구글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0-03-09

봄은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올 겨울은 큰 추위 없이 그럭저럭 보냈다. 하지만 끄트머리에서 만난 복병은 위협적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다. 저만치서 창백한 모습으로 주춤거리는 봄을 위해 전원의 삼월은 어김없이 분주하다.텃밭 한쪽에는 상추며 파가 얼어붙었던 계절을 견디고 용케도 살아남았다. 여린 잎채소의 겨울나기처럼 모두가 건강하게 기지개를 켰으면 좋겠다. 긴 겨울이 때가 되면 물러나듯 이 어려움도 머지않아 지나가리라.불안함 속에서도 마음의 근력이 생겨 제법 초연해져 온다. 제2 석굴암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팔공산 계곡, 천연 절벽 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은 7세기경에 조성 되었다.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보다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졌지만 뒤늦게 발견되어 제2 석굴암으로 불린다.신라 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수도전법을 하던 곳이라 ‘아도굴’이라고도 하며, 원효대사가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여 해동 제일의 석굴사원으로서 신라 불교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본존불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석굴은 우연히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주민들의 치성터로 쓰이다, 1962년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 109호로 지정되었다.석굴암에 밀린 두 번째 석굴사원이라는 이미지때문일까. 큰 기대감 없이 들어섰는데 안온한 느낌의 절 풍경이 좋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자 담장너머로 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나무들의 그림자가 담장을 지키고, 절벽의 석굴로 인해 일촌의 역사를 가진 전각조차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불이문을 지나듯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나를 석조비로자나 불자상이 맞은편 마당에서 지켜보고 있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어수선하고 삿된 마음 계곡에 흘려보내면 잠시지만 극락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혼란스럽던 사바의 세계는 더 이상 계곡을 건너지 못한다.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전각과 나무들은 맑고 건강하다.비질 자국이 선명한 마당이 나를 비로전으로 이끌고, 정갈한 마당 위로는 커다란 목련나무 가지가 꽃눈을 밀어 올리느라 정신이 없다. 마당 한쪽에선 특이하게 생긴 모전석탑이 홀로 봄볕에 빛나고, 그 주변을 마스크 쓴 사람들이 느릿느릿 시간을 즐긴다.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봄은 그렇게 어김없이 오고 있었다.화강암 판석으로 만들어진 널찍한 단층기단 위의 4m 높이 모전 석탑은 시간의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크고 작은 상흔들을 이끼 옷으로 감춘, 눈빛 진한 탑이 아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이만큼의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 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같은 계통으로, 삼존상과 비슷한 시기인 7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거라 추정하지만 크게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절벽 동굴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삼존불과 모전 석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수천 년을 함께 해 왔으리라. 훼손을 우려하여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는 삼존불, 나는 지척의 거리에서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둘 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어둠을 안고 있는 동굴 속 삼존불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때문일까. 과거와 현재, 없음과 있음, 묵직함과 가벼움 같은 사유의 공존성이 보인다.목련나무 그늘에 서서 오랫동안 삼존불을 바라본다. 모전석탑은 햇살 속에서 더없이 명랑하고 굴속의 삼존불은 일심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밝음 뒤에 가려진 어둠, 그 묵직한 세계가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힘인지 모른다.문득 빛 읽기의 대가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랄프 깁슨이 떠오른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어둠이 있어 밝음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밝은 쪽으로 쏠리지만 상대적인 어둠은 마음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 그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서 아미타삼존불이 내 안에 들어왔다 또 다시 멀어진다.한결 마음이 차분하다. 절을 빠져나오는데 노점상들이 각종 약재와 채소, 과일 들을 풀어놓고 행인을 기다린다. 하얀 마스크에 가려진 그을린 얼굴, 삶은 때때로 별 것 아닌 모습으로 우리를 싸하게 만든다. 사과를 산 손님이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사고 보니 비싼 것 같다며 오천 원을 돌려달라는 요구였다. 근처에 세워둔 승용차의 엔진소리가 쓸쓸하게 쿨럭인다.조낭희 수필가바이러스의 여파로 여유를 잃어가는 사람들, 빗나간 ‘사회적 거리두기’다. 조금 전까지 얼굴을 맞대고 덤까지 주고받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다. 값으로 셈할 수 없는 것을 그들은 놓치고 있다. 사회가 힘들고 어수선할수록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심리는 본능일지 모른다.어쩌면 저 손님도 비로전이나 아미타삼존불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나오지는 않았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이나 기도만큼 부끄러운 게 있을까. 절을 나서기가 무섭게 우리는 형이하학적으로 채워진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고, 삶은 우리를 자주 시험에 빠지게 한다. 행여 우리는 이상과 현실을 기도로 오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나는 어제와 오늘이, 지난해와 올해가 조금도 성숙되지 않은 채 절집을 찾아 다닌지도 모르겠다. 봄볕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2020-03-09

바이러스의 습격과 영화의 시사성

강희룡 서예가조선은 의학수준이나 구료 대책이 역병에 매우 무력했기에 주민 90% 이상이 살기 위해서는 타 지역으로 대피했다. 한양에서 역병이 돌면 한성부가 역병환자나 죽은 주검을 적발해 성 밖으로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했고 혜민서나 동서활인원에서 역병으로 굶주린 이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후기로 오면서 이 활인원의 의관들은 태만했고 약을 횡령하기 바빴기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다가 결국 1882년에 사라졌다. 당시 극성을 부리던 역병으로는 두창(痘瘡),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으로 가장 피해가 큰 것은 두창과 콜레라였다. 질병사(疾病史)에 따르면 18~19세기 전 세계에서 동시 발생한 전염병에 대해 조선도 국제교역으로 인한 세계역병유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인구밀집이나 잘 씻지 않고 날것을 즐겨먹는 문화, 관습적 측면에서도 그 원인이 있었다.‘마마(5ABD5ABD))’로 불리는 천연두(두창)는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감염되면 대개 죽음에 이르렀고, 살아남는다 해도 얼굴에 흉터가 남아 곰보가 됐다. 전염성도 강해 아즈텍과 잉카문명을 멸망케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 역시 천연두를 하늘이 내린 불가항력의 재앙이라 여기다 종두법의 수입으로 이 병을 이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콜레라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 의료선교사인 에비슨은 1895년에 창궐한 상황을 보고 ‘내가 살면서 본 일 중 가장 절망적이고 무서운 병으로 약도 죽음을 늦출 뿐이고 쓸모가 없다. 독은 단번에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모든 기관을 정지시켰다’고 적고 있다.이로 인해 역병이 한 번 돌면 수많은 사람이 겪고 죽었기에 마을 언덕은 무덤으로 가득 찼다. 중세 유럽사회의 봉건제도를 몰락시킨 흑사병이나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창궐한 20세기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리는 감염병인 스페인독감 역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1976년의 영국의 미생물학자 피터 피옷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발견한 에볼라바이러스를 비롯해 2002년 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병한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을 강타한 메르스 등 이런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휩쓸고 지나간 후 지금 코로나19가 또 다시 세계에 확산됐다. 이런 바이러스의 참상과 공포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에볼라의 출현은 세균의 대유행을 의미하는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를 탄생시켰고, 파멸로 가는 진실인 ‘리트릿’은 공기전염을 통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컨테이젼’은 전염병 확산에 따른 인간의 공포와 사회적 혼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이다.한국을 배경으로 한 ‘감기’는 현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영화로 중국을 발원지로 변종 조류독감이 밀입국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감염원에 의해 급속도로 퍼진다. 100% 치사율을 다룬 영화로 도시폐쇄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보면 바이러스나 곰팡이 등 고대 미 생명체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미래학자들의 의견에 그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런 장르의 영화 역시 인류에게 던지는 바이러스의 공포와 그 심각성에 대한 메시지는 주목해야 할 시사성이 크다고 보겠다.

2020-03-09

일상, 그 가볍고 소중한 시간

최미경동화작가하루에도 몇 번씩 감염예방수칙과 확진자 동선 등 코로나19에 관련된 문자가 들어온다. 도서관 연장 휴관, 미술관의 잠정 휴관, 유치·초중고등학교의 개학연기, 행사 취소, 모임 연기….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이 일상의 문밖에서 꽃눈마냥 웅크리고 앉아 초조하게 새봄이 오길 기다리는 듯 하다.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나에게 주어졌으면 하고 소망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물리적인 이유에서든 정신적인 원인으로든 꼼짝없이 갇히길 꿈꾸었던 것이 불과 한두 달 전의 일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 화장을 하거나 양말을 신었고 차 안에서 김밥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는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내달렸던 모습이 떠오르자 그땐 3일이 주어지면 대체 무얼 하고 싶었던 거지, 라는 의문이 생겼다.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아니,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그 하릴없는 시간 앞에서 맥을 못 추었다. 처음엔 정말 시간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상을 일상 같지 않게 보냈다.그러다 조금씩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바로 아이들이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새롭게 보였다니 스스로도 신기했다.그랬다.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챙기며 첫째의 식성이 지아빠와 참 닮았다는 것을 알았고 밥 먹기 전에 둘째는 꼭 과일 한 쪽을 먼저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셋째는 입에 넣은 음식물을 두 번 이상 씹지 않고 삼킨다는 것을 알았다.정말 그랬다. 일거리가 많은 날이면 집에 와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 액정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셋째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오른쪽 다리를 베고 가만히 눕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이 그토록 오래오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아챘다. 그리고 매번 아이들이 먼저 잠자리에 들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니 수면시간도 비슷해져서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었다. 그럴 때마다 둘째는 가만히 내 왼손을 끌어가 자기 배에 올려두었는데 아이의 들숨과 날숨이 내 손바닥 아래서 따뜻하게 오르내렸다. 그 작은 움직임에 나는 참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가려져 있던 것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듯 했다.찬찬히 들여다보자 첫째의 설거지 솜씨가 나보다 더 나았고 4학년에 올라가는 둘째가 아직 두 자리수 나누기 한 자리수 셈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셋째는 나를 부를 때 엄마, 라고 하지 않고 “엄미”라고 부르고 있었다.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잊고 지냈던 소중한 일상을 본래의 일상으로 비춰주었다.그리하여 나는 코로나19로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을 잠시 문밖에 세워두기로 한다. 다만 초조하지 않게 다만 지치지 않게, 지금 있는 그대로 품기로 한다.일상, 그 가볍고 소중한 시간 안에 나를 그대로 두기로 한다.

2020-03-09

젠틀맨의 우정

수학자 기쿠치 다이로쿠(菊池大麓: 1855∼1917)는 일본에 근대수학을 도입했고 도쿄대 총장, 문부대신, 교토대 총장, 이화학연구소의 초대 소장 등을 역임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했을 때 일입니다.기쿠치는 옥스퍼드대학의 유일한 동양인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시험이 있을 때마다 항상 1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영국학생들은 크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영국학생 브라운은 언제나 기쿠치를 따라잡지 못하고 2등만 차지했습니다.학기말 시험을 얼마 앞두고 기쿠치가 독감을 앓게 되어 학교를 며칠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학교에 퍼지자 영국 학생들은 브라운이 1등 할 기회가 왔다며 몹시 흥분했습니다.어떤 친구는 다가와 “브라운 잘해, 그 원숭이 같은 작은 녀석을 보기 좋게 꺾어주라고!” 하고 격려까지 했습니다. 기말시험을 치르는 날, 기쿠치는 핼쑥한 얼굴로 학교에 나와 시험을 치렀습니다. 며칠 뒤 학교 게시판에 성적이 발표되었습니다.게시판 앞에 와글거리며 모여 있는 학생들 틈에서 누군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런, 또 기쿠치가 1등이야!” 학생들은 모두 한숨을 쉬었습니다.기쿠치가 게시판 근처로 걸어와 서툰 영어로 말했습니다. “내가 병석에 있으면서도 수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브라운 덕분입니다. 그는 매일 내 방에 찾아와 교수님이 하신 강의내용을 전해주었습니다.”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브라운은 쉬 뒤집어질 수 있는 1등 자리보다는 2등 자리에 머물지라도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젠틀맨 정신을 발휘한 거지요.대한민국 중산층 기준은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현금 보유액수로 정해진다고 하지요? 영국인들은 ‘명예롭고 정정당당한 삶’이 중산층 잣대라고 합니다. 한 수 배우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9

드라이브 스루

드라이브 스루는 차에 탄 채로 쇼핑할 수 있는 상점을 말하며, 우리 말로는 승차 구매(점)으로 불린다. 드라이브 스루는 주차하지 않고도 손님이 상품을 사들이도록 하는 사업적인 서비스의 하나이다.스타벅스나 맥도날드의 상호 이름에 DT가 붙어있는 경우, 승차 구매점임을 가리킨다. 통상 마이크로폰을 이용해 주문을 받는 것이 흔하며, 창가에 있는 사람이 물건을 건넨다. 승차 구매점은 여러 방면에서 드라이브 인과는 다르다.드라이브 스루의 경우 한 방향으로 한 줄을 만들어 지키면서 주차를 하지 않지만, 드라이브 인의 경우 차끼리 맞대며 주차를 할 수 있으며, 직원이 차창을 통하여 음식을 건네면 차를 세운 바로 그 자리에 남아 먹거리를 먹을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냈으나 차츰 다른 나라로 퍼져나갔다. 승차 구매점은 대중 문화 속에서 드라이브인을 대신해 왔으며, 지금은 현대의 수많은 미국 패스트푸드 연쇄점은 물론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최근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면서 대면접촉을 피할 수 있어 전염병 확산방지에 유리한 드라이브 스루방식의 이동진료소가 큰 인기를 끌고있다.드라이브 스루 이동진료소는 차량에 탑승한 채로 검사를 받아 감염병 전파를 차단하는 효과가 크다. 심지어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이동진료소’ 운영 노하우를 요청하는 가 하면 독일에서도 한국에서 실시하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검진을 받아들인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범람으로 힘겨운 서민들에게 언제나 따사로운 봄소식이 전해질 지 막막하기만 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09

코로나19, TK 그리고 정부·여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온 국민이 ‘멘붕’에 빠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도 수백 명씩 속출한다. 특히 확산의 중심에 있는 TK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구에서는 입원을 기다리던 환자들이 자택에서 숨지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의 연구실 15층 창밖의 시내 거리는 적막하다. 긴급 출동하는 앰뷸런스의 다급한 사이렌이 대구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불안과 공포 속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시민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눈물겹다.그럼에도 위기관리에 책임 있는 정부·여당은 헛발질만 한다. 감염원의 차단은 방역의 기본이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못해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국민의 생명보다 대중외교를 중시한 결과이다. 베트남은 환자가 16명일 때 중국인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확산을 막았다. 이스라엘은 예고 없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했는데, 정부가 항의하자 “이스라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인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문 대통령에게 돌아온 중국의 조치는 한국인에 대한 격리와 감금이었다. 정부가 항의하자 “자국민의 생명보호는 당연한 조치”라는 훈계만 돌아왔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무능한 정부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여당대변인은 TK 봉쇄를 말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고 사퇴했다. 중국은 봉쇄하지 않고 그 피해자인 TK를 봉쇄하겠다는 정치꾼의 발상이 놀랍다. 외교부장관은 “중국인 입국금지는 실효성이 없다”고 했고, 복지부장관은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 온 한국인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인은 막지 않고 그 피해자인 우리 국민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들은 중국공산당 대변인이거나 중국의 장관들이 아닌지 귀를 의심케 한다.정부·여당의 분별없는 언행은 고통 받는 국민의 상처를 더욱 헤집고 있다.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열린 청와대 ‘짜파구리’오찬에서 보여준 대통령 내외의 파안대소(破顔大笑)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국민을 잊은 것 같다. ‘울고 있는 국민과 웃고 있는 대통령’의 대조적 모습은 “이게 나라인가?”를 묻고 있다.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오판은 국민을 더 큰 고통 속에 빠뜨렸다. 대통령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온 동네를 헤매다가 빈 손으로 돌아서는 시민들의 눈물을 아는가? 1회용 마스크를 3일간 써도 괜찮다는 여당대표는 무식한 것인가 용감한 것인가? 국민에게 강요하기 전에 먼저 대통령과 장관들이 3일 사용을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무능한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교활한 정치꾼들은 국민을 분노케 한다. 방역전문가는 정치꾼이 아니라 의사와 학자이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 온 의사와 간호사들은 과로로 쓰러지고 있는데, 정부·여당은 총선의 이해득실 계산에 바쁘다. 국민이 있어야 정치도 있는 것 아닌가? 권력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은 악조건 속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인들의 숭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배우기 바란다.

2020-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