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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삭막해지는 캠퍼스의 추억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캠퍼스의 추억들이 삭막해져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졸업앨범에 새겨져 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 졸업앨범이 유일한 추억이었고 앨범을 뒤져가면서 친구들 얼굴, 선생님들 얼굴을 떠올리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교사 10명 가운데 7명이 학생 졸업앨범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는데 불안감을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교사들은 졸업앨범에 들어간 사진이 범죄나 학부모들의 평가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졸업앨범에 교사 사진이 들어가는 것에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졸업앨범 사진 탓에 피해를 본 경우를 접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0% 가량이 “직접 피해를 경험했거나 다른 교사가 피해를 본 사례를 들었다”고 답했다고 한다.졸업앨범을 안 만드는 학교도 늘어가고 앨범을 사지 않는 학생은 과반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가 너무 쉬워 학창시절 사진이 차고 넘치니까 앨범에 대한 필요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삭막해지는 학창시절의 추억의 일환이라고 생각이 들어가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졸업식 전에 하는 사은회도 없어지고 있다. 40여 년 전 필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 사은회는 제자와 은사 간의 큰 잔치와 같은 것이었다. 여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남학생들도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교수님들에게 큰절을 하는 행사였다. 졸업생들도 교정을 떠나는 아쉬움과 스승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떠나는 제자를 축하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런 자리였다.스승과 제자 사이가 예전만 하지 못하고 또 사은회의 참석률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사은회가 없어진 대학도 꽤 있다고 들었다. 졸업식도 마찬가지이다.많은 국내의 대학 졸업식에는 대학원생만 자리에 앉고 학부 학생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사진만 찍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졸업식에 와서 사진만 찍는다면 졸업에 대한 감회와 기억이 남아있을까. 서구의 대학에서 졸업식은 엄숙하면서도 온 가족이 참석해 화기애애하게 치러진다. 모든 졸업생을 단상으로 불러 학위를 수여하고, 식이 길어져도 자리를 이탈하는 졸업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몇 년 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시작했던 졸업식 길거리 퍼레이드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졸업식에 모두 참가하여 그 타운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고 정겨웠다. 그러나 그 행사도 코로나19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함께 나오는 앨범의 전통도 지켜지고 사은회의 아름다운 모습도 지켜지고, 졸업식도 좀 더 화기애애하면서도 모두 참가하는 그런 잔치로 치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이지만 캠퍼스의 추억의 모습들이 잘 보존되었으면 한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가 아날로그 시대의 전통이 지켜지면서 삶의 큰 보람으로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2020-04-30

임사체험과 양자물리학

김병래시조시인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에 의해서 지동설이 확립되고, 뉴턴이 물리학적 체계를 정립하면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계의 과학적 이해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현대인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물리적 현상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거시적 현상이나 미립자와 같은 미시적 현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이론과 법칙이 발견되어 뉴턴의 역학은 한계를 드러내었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중력장으로 인한 공간과 빛이 휘어진다는 새로운 물리법칙이 증명되고, 원자(atom)의 구조와 같은 미시적 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은 물리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였다. 원자가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라는 건 중학생이면 배우는 상식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입자가 아니라 원자핵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전자의 자기장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리처드 파인만의 말처럼 물질계의 기본이 되는 미시현상은 인간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의식(意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임사체험(臨死體驗)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사체험이란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라고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장이 멎고 뇌기능이 정지된 상태를 사망으로 보는데, 요즘은 심폐소생술이 발달하여 일시적인 사망상태에서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1982년에 행해진 갤럽조사에서는 미국에서만도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임사체험자들의 증언에는 보통 몇 가지 패턴이 있다. 밝은 빛을 본다든가 자신의 삶을 순간적인 파노라마로 보는 것, 시공을 초월한 의식의 무한한 확장 등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한히 밝고 가볍고 안온하고 모두가 하나인 상태를 경험하고 나서 모든 집착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례도 있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한 무한한 영적세계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임사체험 연구가 종교적 영역이 아닌 수백 건이 넘는 학문적 보고서와 논문이 제출된 의학의 한 분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대다수 임사체험자들의 일관된 증언은 우리가 과학적 사유로 인식하는 물질계 말고도 영계와 같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과 육신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지 않는 의식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사체험을 하고 난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불필요한 욕심이나 이기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늘어나며,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는 등 상당히 고양된 의식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과 연구자들의 견해는 우리의 의식이나 사유가 과학이라는 고전물리학적 프레임에 갇혀서 너무 형편없이 찌들고 쪼그라든 게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2020-04-30

무재칠시(無財七施)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얼핏 쳐다 본 TV에 ‘김정은 사망설’이란 자막이 보여 깜짝 놀랐다. 요즘은 워낙 가짜뉴스가 넘치는 터라 웬만한 뉴스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고 마는데, 북한의 소식에는,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고에 관한 뉴스에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사망설, 중태설, 식물인간 상태 등의 설들이 난무하는가 하면 근거 없는 뜬소문이라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내부의 특이 동향 없음”을 공식화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김정은의 안위에 대하여 몇 차례나 언급했지만, 분명한 건 폐쇄국가인 북한의 수뇌부 사정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이다.돌이켜보니, 학창시절에는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인하여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해마다 열린 반공웅변대회에서 연사들은 치를 떨며 북한을 성토했고, 주적인 북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학교 교육과정에도 ‘교련’이란 교과를 편성하고 학도호국단을 조직하여 군사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그러나, 오늘날은 갈등과 대립 구도의 반공교육이 아니라 상생의 통일안보교육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남북 간의 평화 공존을 위하여 남북정상이 마주 앉았고, 특히 한반도의 비핵화를 기대하며 판문점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퍼포먼스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남북 철책의 상징적인 시설물이 철거되기도 하여 높기만 하던 남북 간의 장벽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 하였으며, 은둔의 왕국이던 북한의 30대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호감도가 아주 높아지기도 했다. 북한 지도자에 대한 호감의 팔할은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였겠지만, 그의 활짝 웃는 모습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믿는다. 독특한 헤어스타일, 비대한 몸집, 너무 젊은 나이 등이 절대 권력자의 면모와는 영 매칭이 되지 않았으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이 모든 것을 너끈하게 덮었고, 오히려 호감까지 느끼게 하였던 것이다. 석가모니의 ‘화안시(和顔施)’가 따로 없을 듯하다. 이후 북미협상의 교착으로 로켓을 연신 쏘아대는 그의 모습은 딴 판이 되고 말았지만.어떤 이가 석가모니에게 물었다.저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으니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요?그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라 남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그렇지 않느니라. 무재칠시(無財七施), 가진 것이 없다 해도 남에게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있는 법이다. 첫째는 화안시,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대하는 것이요, 언시, 심시, 안시, 신시, 상좌시, 찰시이니라. 이 일곱가지를 늘 행해서 습관으로 굳히면 네게 행운이 따르리라.종교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여 신심을 말하기는 부끄러우나 절실하면 저절로 기도가 됨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막내 동생이 원인불명의 질환으로 생사까지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을 때 난생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가 되었고, 큰 슬픔에 빠졌을 때 보경사 법당을 찾아 삼배를 올림으로써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경험이 있으므로.이제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의 가피가 온 세상에 가득히 깃들기를.

2020-04-28

족발정치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먹지도 않은 족발사진을 SNS에 올린 국회의원 당선자가 사과를 하고 사진을 삭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족발가게들로 유명한 선거구 지역에서 서민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당선되면 1주일에 한 번씩 들러 족발을 먹겠다’는 공약을 성급히 이행하려다 자초한 망신이었다. 물론 직접 그 족발 가게에 들러 음식을 먹었지만 해당 사진은 보좌관의 보고를 믿고 남의 사진을 올렸다며 정중히 사과했다.역시나 정치는 쇼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직장인이나 서민에게 사랑받는 족발이 얼떨결에 본의 아니게 정치에 소환된 것 같다. 서울의 장충동 족발은 한국 족발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원조의 원조 경연이 이어지고 있는 장충동 족발골목. 한국 전쟁당시 피난민이었던 분이 북한의 족발과 중국의 오향장육 조리법으로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실향의 아픔과 그리움을 족발 한 점으로 달랬을 것으로 생각하니 손발 잘린 돼지의 아픔(?)보다 더 짠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새우 장에 찍은 족발 고기 한 점을 상추쌈에 말아 꼭꼭 씹어 삼킨 뒤 소주 한잔으로 입을 가시는 소소한 식도락 일상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재료로서 손색이 없다. 임산부들의 모유분비를 촉진시키고 여성의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장수를 비는 국수와 건강을 비는 족발로 생일상을 차린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맥주와 즐겨 먹는 삶은 돼지정강이 부위 고기인 ‘아이스바인’이 우리의 족발과 흡사하다.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서 강력형사들의 시간은 분주해진다.사건관계인, 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형사들은 용의자 추적, 상부보고 등 끼니를 거른 채 밤을 지새우기 십상이다. 어느 경찰서 강력반 사무실. 밤늦은 시간에 야근으로 끼니를 거른 부하직원들을 위해 형사반장이 검정 비닐봉투 하나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선다. 늦은 시간 반장의 출현에 형사들은 피곤한 눈총을 쏘며 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막내 형사가 반사적으로 비닐봉투 꾸러미를 받아든다. 그리고 봉투를 벌린다. 야근하는 부하를 위해 야식을 챙겨온 상사에 대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동료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 외친다.“반장님 웬 족발입니까?” 머뭇거리던 반장이 한마디 던진다.“글쎄, 왼쪽발인지 오른쪽발인지 잘 모르겠는데 맛은 있을거야”반장의 썰렁한 한마디에 장내는 족발 같은 구수한 웃음과 함께 밀려오던 피곤을 잠시 떨치게 되었다. 정치가 오른쪽, 왼쪽과 같은 편 가리기에 너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념논쟁 속에 정작 국민의 가려움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할까 걱정이다. ‘왼쪽발인지 오른쪽발인지 모르겠지만 맛은 있을 거야’라고 했다는 형사반장의 말이 자꾸 되뇌어진다. 어떤 이념도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것보다 앞설 수 없다. 퇴근길에 족발 하나 사가야겠다. 소주 한잔 곁들여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제 혼자 지나가는 봄바람 붙들고 세상다리 건너가는 얘기나 나눠야겠다.

2020-04-28

비우며 살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18년 만에 이사를 했다. 대학 임용 후 한 방에서 지금껏 지내다가 같은 층의 북쪽방에서 남쪽방으로 향만 바꾼, 방 한 칸짜리 연구실 이사였다. 면적이 반 평 정도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짐을 줄여야 했다. 책과 서류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내놓았다. 한 권 한 권 떠들쳐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볼 수도 있는데, 들인 책값이 얼마인데….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욕심에 불과했다. 18년 전 처음 연구실에 가져 오고 한 번도 안 본 책이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결국은 학회지 등 정기 간행물을 포함하여 버린 책들이 1천권이 넘었다. 책장도 4개나 버렸다.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다는 저장강박증이 나에게도 있었나 보다.‘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고양시의 90세 독거노인 이야기가 방송이 된 적이 있다.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이 할머니를 여러 날 동안 설득한 끝에 2013년 10월에 열 평도 안 되는 집에서 100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치울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3년도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에 그 집에서 다시 치운 쓰레기가 5톤 트럭 4대 분량이었단다.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정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일본인 곤도 마리에의 집정리 노하우가 전 세계에 정리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 바로 1년여 전인 2019년 1월이었다. 그러나 이 열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람들은 모으고 채우고 쌓기를 거듭하다가 코로나를 만났다.코로나19로 인류는 세 달여 기간 동안 의도치 않게 멈추고 비우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국민 격리 조치로 자동차의 운행은 줄어들었고 소비의 급감으로 곳곳에서 공장의 가동은 멈췄다. 그러자 지구별에 뜻하지 않는 변화가 일어났다. 오염원의 배출이 급격히 줄어들자 이 짧은 기간에 대기질이 확연히 좋아졌다. 인간의 발길이 멈춘 곳에 원래 살던 동물이 돌아왔다. 인도의 루시쿨야라는 해변에는 관광객과 그들이 버린 쓰레기 대신 거북이 80만 마리가 돌아왔고, 영국 북웨일즈의 휴양지 란두드노에서는 야생 염소떼가 사람으로 번잡하던 거리에 나타났다고 한다.지구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욕망을 채우면서 지금까지 거침없이 달려왔던 사람들은 코로나19로 그 욕망의 질주를 강제로 멈추게 됐고, 어쩔 수 없이 욕심을 비워야만 했다. 그러나 이 비움의 작업이 얼마나 오래 갈까. 고양시의 저장강박증 할머니 경우처럼 코로나가 잦아들면 또다시 질주를 시작하고 비웠던 욕망의 집 욕심의 방을 이전보다 더 꽉꽉 채우려는 보상심리가 작동할지 모르겠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비움은 다시 채움으로 환원된다.성경 마태복음에도 더러운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나갔다가 그 살던 집(몸)이 비고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게 됐다는 말씀이 나온다. 비우면 채우고 싶어진다. 비우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인가, 코로나는 인간이 스스로 비우지 못한 욕망을 강제로 비우게 만들고 있다.어떻게든 비우며 살 일이다.

2020-04-28

북한의 폐쇄성

철의 장막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을 중심으로 떨어져 나간 공산국가진영의 폐쇄성을 풍자한 표현이다.1946년 영국 윈스턴 처질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극단 체제로 인한 냉전시대를 빗대어 철의 장막이란 표현을 쓰면서 더 유명해진 말이다. 실제로 종전 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졌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도 국경을 장벽으로 서로가 막아섰다.1989년까지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누어져 팽팽한 긴장과 대립관계를 견지했다.중국을 죽의 장막으로 표현한 시절이 있었다. 중국 공산주의의 폐쇄성을 중국 명산물인 대나무와 비유해 쓴 표현이다. 90년대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대외적으로 내세울 때까지 중국은 죽의 장막에 가려진 나라였다. 그 이후 중국은 경제 개방정책에 힘입어 지금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지난 40년 동안 중국은 국내 총생산이 155배가 증가했고, 8억 명이 넘는 사람이 빈곤에서 탈출했다.공산주의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장막 속에 가려진 나라를 치면 북한을 손꼽을 수 있다. 북한은 그 오랜 폐쇄성으로 권력세습을 통한 체제의 유지가 가능했다. 70년 동안 3대에 걸친 세습은 지구상에서 유일하다. 하지만 폐쇄성으로 인해 정보와 사람이 오가지 못해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빈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둘러싼 건강 이상설이 2주째 난무하고 있다. 지난 15일 태양절(김일성주석 생일)에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에 불참한 이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해 억측도 가지가지다. 사망설에서 뇌사상태, 식물인간, 중국의료진의 진료설과 건재하다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체제의 폐쇄성이 보여준 북한의 또다른 진면목이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8

신조어로 본 현실

강희룡서예가코로나19로 인해 10여 년 만에 미국의 일자리가 70만개가 사라졌다 한다. 통계적인 수치이기에 현재는 아마도 더 악화된 상황으로 예상된다. 호텔과 서비스업 제조 건설 등 3월에만 70만개의 일자리가 공중분해가 됐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자체들마다 주말이면 외출과 집단모임 등 감염에 취약한 행동이나 모임은 자제하라고 계속적인 주의사항을 국민들에게 전달한다.대부분의 국민들은 힘들지만 빨리 코로나19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의 권고사항을 따르며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을 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온라인 구매가 중가하면서 택배 회사들의 호황과 전자상거래 매출이 고공성장을 하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든 사업장에서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제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실행하기에 부적합한 사업장은 무급휴가나 강제퇴사 등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결국 기업으로서는 존폐위기에서 직원들의 자리를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요즘 우리사회는 청년들이 실감하는 고용절벽을 빗댄 신조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공감하는 1위 신조어는 ‘이퇴백’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퇴사해 다시 백수’가 된 사람을 뜻한다. 입사 1년 미만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조기퇴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무리 취업이 어려워도 회사가 본인과 맞지 않으면 조기퇴사도 불사하는 밀레니엄 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위는 ‘백수’로 생계유지와 취업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취업에 ‘100번을 도전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긴 구직기간 동안 생계비를 벌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취업준비생의 애환이 담겨 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현상인 ‘자소서 포비아(공포증)’는 3위였다. 구직자들의 스펙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차별화된 자기소개서 작성이 요구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구직자들이 많은 것이다. 신입 구직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자소서 작성에 막막함을 느낀다고 했으며 이들이 꼽은 가장 까다로운 문항은 지원동기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구직자 49,7%는 자소서의 공포증으로 입사지원을 포기했던 경험으로 나타났다.이 외에도 ‘청년실신시대’로 ‘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학자금 대출 등으로 청년신용불량자가 증가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31살까지 취업을 못하면 절대 취업을 못한다는 ‘삼일절’, 새벽 등교를 줄인 ‘새등’, 가축처럼 일만하는 직장인을 ‘사축(社畜)’, 사축은 회사에서 길러지는 가축처럼 일만하는 직장인으로 긴 노동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단어이다. ‘월급로그아웃’은 월급이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로 월급이 들어와도 월세, 카드 값, 세금 등으로 다 빠져나가 실상 월급이 들어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는 직장인의 슬픔을 담고 있는 신조어이다. 불확실성의 현실 속에서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기에 자신의 결정에 긍정과 확신을 가진다면 보람찬 삶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2020-04-27

나를 멈추게 한 힘

스칸디나비아반도나그네쥐 레밍은 개체 수가 급증하는 경우 집단적으로 질주하기 시작합니다.맨 앞 쥐들이 뛰기 시작하면 따르는 쥐들이 덩달아 뛰기 시작합니다. 뛰다 보면 왜 뛰는지 이유를 더 이상 묻지 않고 뛰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맨 끝에 절벽이 있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뛰어내리다 모두 죽습니다.디즈니에서 만든 하얀 광야(white wilderness)라는 다큐멘터리는 1958년 아카데미상을 받습니다. 레밍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포착해 화제가 되었지요.우리 사회는 유독 이런 쏠림 현상이 심합니다. 어떤 업종이 잘 된다고 하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일이 흔합니다.98년에는 조개구이, 2001년에는 찜닭 열풍이, 연이어 저가형 참치 전문점, 시들해지면 닭강정이 유행합니다. 2010년 불어닥친 카페 열풍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만 6만 개의 카페가 영업 중입니다.먼저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질주하는 인생. 기득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대중들의 모습입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가슴 설레는 진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누리지도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질주의 끝은 허무하고 황당한 결말인 경우가 많습니다.시인 반칠환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 나를 멈추게 한다 (중략) / 나는 언제나 /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 다시 걷는다.”질주하는 삶에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시인은 일침을 가합니다. 디테일은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코로나로 전 인류적인 브레이크를 경험한 2020년,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에 밝은 면도 없지 않았으면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7

콜센터 선생님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사스(2002년)에서 신종플루(2009년)까지 8년, 신종플루에서 메르스(2015년)까지 7년, 메르스에서 코로나 19(2019년)까지 5년! 코로나19에서 다음 바이러스가 유행하기까지는?”이 글은 ‘학생 중심 온라인 수업 모델 개발의 필요성’이라는 필자 글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글에서 보는 것처럼 바이러스 유행 시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의료와 방역 시스템을 비롯해 바이러스 유행을 막기 위해 많은 사회 체제들이 정비되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대한 시급히 정비되어야 할 것이 교육시스템이다.필자는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기 시작한 2월 중순부터 온라인 수업 일지를 적고 있다. 또 다른 학교의 온라인 수업에 대한 분석도 진행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몇몇 온라인 수업 유형은 절대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다음은 어느 교사들의 대화이다. 이야기 전에 이 글은 전문 직업으로 콜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함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쪽 학교는 온라인 수업 어떤가요?” “과제를 많이 내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뭣합니까?” “단체로 교무실에서 전화로 학생들의 출석 등을 확인합니다. 콜센터 선생님 같습니다.”콜센터라는 말에 대화에 참여한 모든 교사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피었다. 교실에서 수업해야 할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단체로 전화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란? 그런데 이런 낯선 모습이 연출 된 것은 많은 교사가 온라인 수업 유형 중에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과제 수행 중심 수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들 수업에는 학교 수업 교사는 없다. 학교 교사 자리에 EBS 강사와 과제가 들어갔다. 이것이 교사들이 분필 대신 전화기를 들게 된 이유이다. “수학이 계산한 암울한 미래 ‘가을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뉴스대로라면 사회적 거리 두기를 느슨하게 하면 올해 가을에는 2차 코로나 대유행이 온다. 그럼 그때도 온라인 수업을 할 것이 뻔하다. 과연 그때도 지금과 같은 교사 출근용 온라인 수업을 할 것인가?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특히 교육계에서는 더 그렇다. 필자가 신규 선생님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의 첫 수업이 선생님의 정년 퇴임 때의 마지막 수업이 될 수 있습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지켜본 건 결과 학교의 처음은 대부분 그대로 틀로 고정된다. 대표적인 것이 수행평가이다. 수행평가가 처음 도입된 2000년대와 현재의 수행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교사 중심의 일방적인 수행평가는 지금이 훨씬 심하다.온라인 수업에 갈팡질팡하는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이 있다. 이양연의 야설(野雪)이다. “눈을 뚫고 들판을 지나갈 때/모름지기 이리저리 어수선히 가지 마라/오늘 아침 내가 간 발자취는/결국 뒷사람이 따라갈 길을 만드는 것이니!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迹 遂作後人程)”5월에는 콜센터 선생님 대신 학교 선생님이 교실에서 수업다운 수업을 하길 기원해본다.

2020-04-27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에는… 달성 용연사(龍淵寺)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 비슬산 가는 길은 벚꽃이 지기가 무섭게 화려한 영산홍들이 길을 연다. 비슬산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으며, 명산답게 이름의 유래도 다양하다. 나는 인도의 힌두교 신 ‘비슈누’를 한자로 음역한 비슬노(毘瑟怒)에서 왔다는 설을 좋아한다. 왠지 먼 나라의 신화를 떠올리면 평범하던 산은 더 깊고 신비로워 보인다. 8대 적멸보궁으로 이름난 용연사가 그 안에 있다.5대 적멸보궁에 건봉사, 도리사, 용연사를 넣으면 8대 적멸보궁이다. 용연사는 912년(신덕왕 1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이 절터에 용이 살던 곳이라 용연사로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3년에 사명대사의 명을 받고 인잠, 탄옥, 경천 등이 재건하였다. 1650년에 일어난 화재로 보광루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으나 다시 중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비슬산 용연사 자운문(琵瑟山 龍淵寺 慈雲門)’ 일주문 현판은 여느 사찰보다 이색적인데 그곳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없다. 살짝 돌아앉은 일주문은 제 구실을 못하고,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보물 제539호 석조계단(石造戒壇)이 있는 적멸보궁 가는 길, 우측으로는 극락전을 비롯한 많은 당우들이 기다리고 있다.용현사의 백미는 적멸보궁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대부분 우측길로 접어든다. 극락교를 지나 천왕문을 통과하는데 수많은 염원을 담은 문구들이 철재 난간에 빼곡히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사업 성취, 의대 합격, 글씨체만큼이나 다양한 소원들, 재미삼아 걸어놓았을 소원들이 승자독식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듯 치열하다. ‘우리 아빠 아침에만 출근하게 해주세요.’ 어린 아이의 비뚠 글씨체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내게 간절한 소원 하나 있다면 함부로 발설하지 않으리라. 마음속에서 기도를 먹고 자라는 소원은 눈빛과 행동으로도 그 완곡함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미끄러지기를 좋아하는 언어에 나의 간절한 마음을 싣고 싶지는 않다. 영험함을 경험하고 싶다면 몰래 하는 사랑처럼 은밀하고도 진중하게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누하진입식으로 안양루를 지나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극락전을 지키는 삼층석탑 난간에도 수많은 소원종이 댕강거리며 맞는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삼층 석탑의 우아한 자태와는 달리 고만고만한 소원종들의 아우성으로 마음은 심란하다. 세상의 모든 바람이 이곳에 모여 든 것 같다.보물 제 1813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극락전에서 불자들이 기도를 할 때도 소원종은 쉬지 않고 저만의 방식으로 기도를 한다. 바람이 거칠어지면 소원종의 호흡도 벅차다. 많이 펄럭일수록 그들의 기도가 간절히 전해진다고 믿는 히말라야 산기슭의 룽다와 타르쵸처럼, 그들은 경쟁하듯 시끄럽다.다시 극락교를 건너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자연석 계단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딴 세상처럼 한적하다. 오래된 나무들의 미소 사이로 보이는 벤치에는 4월의 고요가 뒹굴고 숲은 싱그럽다. 크고 작은 돌탑들도 보인다. 강한 바람에도 누설되지 않을 돌탑의 소원이야말로 궁금하다.적멸보궁은 용연사를 떠나 그 안에 섬이 되어 또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파른 계단 위로 보광루가 보이고,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둔 보물 제 539호 금강계단(金剛戒壇)을 향하는 마음이 자꾸 앞서 걷는다. 계단은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여하는 식장으로, 승려의 득도식을 비롯한 여러 의식이 행해지는 성스러운 곳이다.조낭희 수필가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적멸보궁 문은 일시적으로 잠겨 있다. 유리문에 얼굴을 대고 법당을 훔쳐본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세계 하나가 창문 너머에 존재한다. 아득하게 멀어 보이는 그곳,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면 가까이 갈 수 있을까.뜰 앞을 거니는 내게 담장 너머로 연분홍 철쭉들이 사랑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저 여린 나뭇가지 끝에도 무한한 애정을 쏟는 신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 철쭉은 꽃의 이미지를 벗고 유순하고, 금강계단 주변은 온통 4월의 기도로 평화롭다. 이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감지하며 나는 비슈누 신을 떠올린다.우주의 질서와 인류를 보호하는 신, 두루 꽉 차다는 뜻을 지닌 비슈누를 ‘깊은 내부에서 우주 전체를 들고 있는 신’이라 괴테는 표현했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금강계단을 향해서인지 숲을 향해서인지 분명치는 않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들과 신화에 대한 경의였는지 모른다.마당 건너편에 있는 보광루 법당에 올라 백팔 배를 하는 동안 사리탑이 내 안으로 성큼 들어와 앉고 마음은 철쭉빛으로 물든다. 천왕문 난간에 매달려 있던 소원글들이 또 다시 비집고 들어온다. 작은 흥밋거리로 치부했던 나의 무례함을 사죄한다. 어쩌면 그들은 어둠의 변두리를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신산한 언어들의 보챔을 잠시라도 외면했던 순간을 반성한다.그리고 기도한다. 떨어지는 햇살 속에도, 참새의 작은 부리 끝에도,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과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2020-04-27

포스(Force)와 함께한 42년의 대서사시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일단락 됐다. 1977년 시작돼 2019년까지 이어졌던 42년의 장대한 대서사시가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3대에 걸쳐 오래전 언제인가 알 수 없는 은하계를 종횡무진했던, 과거로부터 전승돼왔던 이야기의 마무리였다.총 9편이 제작된 ‘스타워즈’시리즈는 1977년 오리지널 시리즈 3부작과 1999년부터 오리지널 시리즈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3부작을 선보인다. 그리고 디즈니가 루커스필름을 인수한 2015년에 오리지널 시리즈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시퀄 3부작을 시작해 ‘2019년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로 막을 내린다.42년의 시간은 인간의 나이로 중년을 맞는 시기다. 이 시간 동안 제다이와 시스, 제국과 반란군의 이항대립으로 전형적 신화의 연대기가 이어져왔다. 그 속에 성장의 과정과 출생의 비밀이 삽입되며 선과 악의 선택 기로에 선 주인공이 빠짐없이 등장했다.영화 ‘스타워즈’의 뼈대를 이루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조는 ‘포스’라는 힘의 근원에서 출발한다. 제다이와 시스가 스타워즈 세계의 대립항이지만 이들은 ‘포스’라는 하나의 힘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제다이는 은하의 균형과 평화를 위해 ‘라이트 사이드 포스’를, 시스는 포스의 어두운 면을 통해 스스로의 욕망을 성취하는데 ‘다크 사이드 포스’를 사용한다.포스를 사용하는 제다이가 다크포스에 물들어 타락하면 ‘시스’, 다크제다이가 된다. 하나의 힘에서 나와 그 힘의 어느 면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은하계에서 그의 행보가 달라지고 행해야할 임무가 달라진다. 은하계의 평화를 위할 것인가 나의 욕망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평화와 열망의 선택에 의해 하나의 힘이었던 포스는 갈라진다.이렇게 볼 때 ‘포스’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돼 전승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불안정한 것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위치가 달라진다. 제다이에서 시작해 시스로 전이되는 과정이 영화 ‘스타워즈’ 9부작의 시리즈마다 등장한다. 간단하게 영화 ‘스타워즈’의 42년은 포스에서 시작된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요약된다. 이 대결구도 속에서 ‘스타워즈’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출생의 비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선의 상징인 제다이가 악의 상징인 시스를 처단하는 과정 속에서 선과 악의 혈연관계가 드러나고 종국에 가서 그 꼬이고 꼬인 선과 악의 연대기가 혈연의 관계 속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늘 영화 ‘스타워즈’는 은하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 영화 속에서 은하계는 그 일부며, 포스의 어느 쪽에서 서 있지 않은 대부분이 은하계를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속에서도 은하계는 넓고 넓은 다양한 존재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 넓고 광대한 은하계에서 포스의 밝고 어두움과 상관없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채로운 존재들이 잠깐씩 등장하곤 했었다. 제다이와 시스가 머물다 간 자리마다 황폐해지거나 폐허가 됐다. ‘평화’와 ‘욕망’이라는 명분을 위해서 그들의 기나긴 우주전쟁이 이어졌지만 광활한 은하계에서 그 사건은 자잘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3대에 걸친 연대기는 제다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푸른 광선검과 붉은 광선검의 싸움에서 푸른 광선검은 명맥을 유지하며 계승을 이어가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며 히어로와 빌런을 탄생시키며 시리즈를 확장하는 영화들의 행보가 아니더라도, 포스의 활용에서 기인한 불안정성이 늘 존재하기에 그 불안정성에서 탄생할 존재들이 언제든 출연할 것임을 알고 있다.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자아가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는가에 따라서 포스의 밝음과 어둠이 존재하는한 ‘스타워즈’시리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때 당신에게 ‘포스가 함께 하시길.’/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2020-04-27

코로나의 역설

전세계를 감염병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오지만 인간에게 피폐해진 지구에겐 코로나가 백신이 되고 있다. 이를 ‘코로나의 역설’이라 부른다. 코로나19라는 치명적인 감염병이 인간문명앞에 가려져 있던 자연의 본래모습을 되찾아주고 있다는 것이다.가장 두드러진 건 깨끗해진 공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본격적인 측정에 나선 이래로 지난달 미 북동부 지역의 이산화질소 농도는 가장 낮았다. 중국의 대기중 이산화질소 농도 역시 2월에 30% 감소했다. 베이징하늘은 ‘베이징 블루’를 되찾았다. 이산화질소는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다.3월이탈리아에선 40~50%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재택근무, 개학연기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한 3월 초미세먼지 농도가 지난해보다 46% 줄었다.세계 최악의 미세먼지로 뿌연 대기에 휩싸였던 인도에서 맨눈으로 히말라야를 볼 수 있게 됐다.공기만 맑아진 게 아니다. 세계적 관광지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가 맑아졌다.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녹색에 가까웠던 강물이 투명해져 작은 물고기떼까지 볼 수 있게 됐다. 베네치아 운하는 연간 2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인 데, 지난 달 17일 이탈리아 전 지역 봉쇄령이 내려진 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호주 애들레이드에선 캥거루가 길거리를 뛰어다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코요태가 금문교 인근을 거니는 장면이 목격됐다.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퓨마가 도심을 활보하고, 웨일스의 휴양도시 란디드노에서는 난데없이 산양무리가 나타나 도로를 가로지른다.코로나19는 어쩌면 지구가 잠시 쉬자며 지르는 비명일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27

조삼모사 고사가 놓친 것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조삼모사는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한 교훈적인 이야기다.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화내자, 순서를 바꾸어 아침에 네 개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좋아했다는 내용이다. 이 고사는 주인의 교묘함을 비난하는 이야기로 보기도 하지만, 주로 원숭이를 조롱하는 이야기로 인용된다. 어차피 똑같이 일곱 개인데, 아침 저녁 순서를 바꿨다고 좋아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이다. 이 고사의 교훈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오다가 최근에 한 가지 일을 겪고 나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지난 4, 5년간 건강이 좋지 않아서 조심하며 살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컨디션이 나아져서 작년 11월부터 운동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스쿼트 10번으로 시작했는데, 한 달만에 60번씩 하게 되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겨 스쿼트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실내자전거를 타고 스쿼트를 해보니 잘 되어, 훌라후프를 추가했다. 훌라후프, 실내자전거, 스쿼트 순으로 운동을 했다. 그런데 스쿼트가 잘 안 된다. 몸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고 실내 자전거, 스쿼트, 훌라후프로 순서를 바꿔보았다. 그러자 스쿼트 하기도 쉽고 훌라후프를 더 많이 돌려도 거뜬했다.어떤 사람에게는 이 정도는 운동도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정도의 운동도 엄청난 사건이 될 수 있고,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발견까지 한다. 실내 자전거를 타고 스쿼트를 하면 스쿼트가 더 잘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흥미진진했지만, 운동 같지도 않은 훌라후프 때문에 스쿼트 하기가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마치 과학적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러자 조삼모사 고사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훌라후프를 먼저 돌리느냐 나중에 돌리느냐에 따라 스쿼트 60번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동작이라도 순서를 바꾸면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 원숭이 역시 똑같은 도토리 일곱 개라도 아침저녁으로 세 개 네 개 순서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도토리 효용이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은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같을 수도 있지만, 원숭이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넓은 생각도 덤으로 얻었다.한때 아침 식사를 안 해야 건강에 좋다는 조식 폐지 주장이 대세인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한 것 같다. 어쩌면 원숭이들이 일찌감치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사족 하나, 아침을 얼마나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에도 여전히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아닌 것 같다. 1일 1식이나 간헐적 단식을 하면서 아침을 안 먹는 사람도 있고 저녁을 안 먹는 사람도 있다. 획일적으로 어느 방식이 옳다고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2020-04-27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김두한경북부해운법 제1조(목적) 이 법은 해양운송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며 해운업의 건전한 발전과 여객·화물의 원활한 운송을 도모함으로써 이용자의 편의를 향상시키고 국민경제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이 법이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이하 포항해수청)의 존재 이유다. 이 법을 통해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울릉도 여객·화물 운송 형태를 보면 국민을 위해 일한다가 보다 업자 편에서 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먼저 여객운송을 보면 포항~울릉 간 정기 여객선 썬플라워호가 2월29일 선령만기로 운항이 중단된 후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면 지도 감독, 명령을 통해 울릉주민의 발길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직자의 책무다.하지만, 지금까지 대책마련을 커녕 오히려 울릉군과 선사에 미루고 있다. 해운법 제14조(사업개선의 명령)에는 운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공공복리증진을 위해 대체선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또한, 화물운송도 국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다. 지난 2018년 3월, 5천t급 대형화물선 미래 15호가 포항서 월, 수, 금요일 오후 출발, 울릉도서 화, 목, 토요일 오후 출발하도록 허가받아 운항에 들어갔다.,그런데 같은 해 6월 금강해운의 2천t급 대형화물선이 같은 노선에 취항했다. 하지만, 미래15호와 같은 날, 같은 지역, 거의 같은 시각 운항하도록 허가했다. 이렇게 허가하면 울릉주민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대형 화물선 미래 15호가 화물이 없어 3분 1도 못 채우고 운항 중인 가운데 추가 취항하는 화물선을 같은 날, 같은 지역서 운항하도록 허가, 이틀에 한 번씩 운항하게 됐다.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한 척이 포항서 출발하면 같은날 다른 한 척은 울릉도에서 출발하도록 허가해야 했다. 그래야 매일 운항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공식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운항하면 선사로서는 큰 이해득실이 없지만, 울릉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선사는 그날, 그날 화물에 따라 많이 실을 수도, 적게 실을 수도 있어 궁국적으로는 같다.그런데 이용자들은 매일운항에서 이틀에 한번 운항으로 바뀌게 된다. 울릉주민들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화물선을 여객선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화물선은 화물 승·하역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 매일 운항 불가능하다.그런데도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앞다퉈 출항하도록 허가해 울릉주민들을 위한 공공복리 증진은커녕, 공정한 경쟁 및 운송질서, 이용자의 편의를 저해하는 등 해운법 1조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포항해수청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울릉도 상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여객·화물의 원활, 이용자 편의, 공공복리 증진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선사의 애로, 불편을 들어주는 느낌마저 든다.포항해수청은 하루빨리 해운법에 따라 포항~울릉 간 여객선 썬플라워호 대체선 처리는 물론 화물선도 사업 개선 명령을 통해 이용자의 편의에 맞도록 국가기관으로 국민을 위해 전력을 다해 주기 바란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0-04-27

재난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대구경북의 힘

라정일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재난안전연구소 부소장4월 10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0명으로 떨어졌다.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52일 만이다. 물론 언제든지 다시 대폭발로 이어질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다.사회재난인 감염병으로는 처음으로 대구와 청도·경산·봉화 등 경북 일부 지역에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됐다. 또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대구·경북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대구시내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자 전국에서 약 1천200명의 의료진이 달려왔다. 국민 성금 역시, 사회재난으로는 최대인 약 2천500억원이 모아졌다. 재난구호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도 국민과 기업이 943억원이라는 소중한 돈을 기탁했고 현재까지 마스크, 손소독제, 생필품·식료품·의료진 키트 등 다양한 구호물품 약 460만점을 지원하고 하고 있다.코로나19 구호대상자는 사망자, 확진자, 자가격리자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긴급구호지원 중심에서 중장기적인 지역 회복과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대구·경북을 통해 그 첫 시도가 이루어졌다. 대구지역아동센터, 대구척수장애인협회와 골목식당을 연계한 도시락 지원사업과 지역자율방재단과 함께한 대구·경북 다중이용시설 방역작업, 대구·경북 봉제기업들과 연계한 경북형 면마스크 지원 등은 지역 공동체 상생협력 모델로도 손색이 없다. 약 193억원의 상품권 지원을 더해 마비수준인 지역경제에 마중물이 됐다.또한 희망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역사회의 위로와 돌봄이 필요하다. 작년 4월 산불 피해가 컸던 강원도 속초 영랑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가을에 ‘산불피해 치유를 위한 주민화합 행사’를 열었다. 이재민, 자원봉사자, 주민, 관계기관 모두가 스스로 및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리가 됐다.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와 국민에게 받은 무한한 지원과 응원을 발판 삼아 대구·경북은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이제 개인, 시민단체, 구호기관, 지역사회, 지자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재난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대구·경북 시민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

2020-04-26

김종인과 ‘TK 정치’

안재휘논설위원골동품 수준의 기계부품들로 가득한 낡은 공장 하나가 있다. 지붕까지 새고 기둥과 벽에 금까지 가 있는 데다가 기계들은 잇달아 고장 나고 부서지고 수시로 멈춰 서곤 한다. 구닥다리 생산품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한 지 오래됐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능한 관리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금씩 사주는 일부 소비자들을 믿고 공장 경영권에만 매달린다.총선에서 참패를 당해 초토화되다시피 한 당을 추스를 구원투수로 지명된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을 놓고 미래통합당이 시끌벅적하다. 김 전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무기한·전권’ 요구를 시사하자 반발하고 있다. 논란 확산에 김종인은 “임기, 언제든 그만둘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전쟁터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다선의원들을 중심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 권한을 용납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당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은 순정, 제1야당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 속에 ‘자기 정치’ 욕심의 발로는 정녕 추호도 없을 것인가.경남에서 대구로 날아와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대표가 거품을 물었다. 비대위 카드를 찬성하던 그는 김종인이 자신을 겨냥해 “시효가 끝났다”고 잘라 말하자 표변했다. 홍준표는 지난 1993년 동화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 전 위원장의 전력을 소환해 수사 당시의 장면까지 시시콜콜 묘사하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역설적이게도, 홍준표의 구상유취한 행태는 미래통합당이 왜 이대로는 안 되는 건지, 그 퀴퀴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종인이 던지는 화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하다 싶을 수 있지만, 그 메시지는 대단히 적확하다. ‘70년대 생 경제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상징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그냥 자기들끼리 해보겠다는 통합당 일부 중진들의 심사는 도대체 뭔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통합당 득표율에서 민주당과의 차이가 고작 8%라고 우쭐대는가.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62%를 훌쩍 넘고, 민주당 43%·통합당 22%로 나타난 갤럽의 지지도 조사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참인가. 오해하지 마시라. 41%, 그거 통합당 좋아서 찍은 표 아니다.굳이 김종인이 아니더라도 미래통합당은 ‘창조적 파괴’ 말고 길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TK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꼴통보수 본산’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품고 있는 ‘중도실용 정치’에 대한 갈망에 주목해야 한다. ‘보수’가 살길은 ‘중도실용’으로 재무장하는 외길뿐이다. ‘TK 정치’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지난 4·15총선은 ‘보수’와 ‘TK’가 이제 대한민국의 주류가 아님을 충분히 증명했다. 담대한 설계도를 놓고 ‘보수정치’의 낡은 공장을 철저히 때려 부숴야 한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시간이 왔다.

2020-04-26

코로나 2차 대유행 경고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아직 그 기원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그해 초여름 미국의 한 병영캠프에서 독감환자가 발생하면서 시작했다. 특별한 증상이 없어 별 주목을 끌지 못하다 그해 8월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세상의 이목을 모았다고 한다.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본국으로 귀환하던 미국 병사의 병영캠프가 전염원이 됐을 것으로 본다. 캠프에 모여 각지로 귀향한 병사가 전파자 되어 전 세계로 번졌을 것이란 짐작이다. 이 독감은 다음해까지 창궐하면서 2년 동안 적게는 2천500만 명에서 많게는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았을 것으로 본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전사자가 900만 명이었던 사실과 비교해 보면 독감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 최대 재앙이다. 내용으로 보면 미국독감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러나 당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언론이 독감에 대해 대서특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란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무오년 독감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는 당시 조선인 인구의 거의 절반인 742만 명이 감염됐고 13만9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중국에 거주한 김구 주석도 이 독감에 걸려 간신히 회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미국 식품안전국(FDA)은 코로나19가 오는 11월쯤 다시 발생해 내년 3월까지 유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국 정부도 2차 대유행에 대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4월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20만 명을 육박한다. 엄청난 인명피해로 전세계는 충격에 빠져 있다.의료계의 2차 대유행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2년에 걸쳐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을 떠올리게 한다.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6

포항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성

지난 4월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WEO)을 발표하면서 1월 시점 전망치를 대폭 낮추었다. IMF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봉쇄(Great Lockdown)’가 확대되어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성장하면서 내년까지 세계 GDP에서 9조 달러가 증발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는 기타 고피너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밝힌 것처럼 일본과 독일 양국의 GDP를 합한 큰 규모다. 그만큼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IMF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세계 경제가 2/4분기까지는 심각하더라도 후반기부터는 점차 회복할 것으로 전제하면서도 지난 1월 전망 당시 상정하였던 세계 경제의 성장경로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크지 않다고 전망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1.2%로 보는 등 선진국, 개도국 모두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내리면서 올해 세계 경제는 -3.0%의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에 더하여 IMF는 기본 시나리오 외에 3개의 리스크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하였다. 첫째, 기본 시나리오보다 감염사태 수습 기간이 50% 더 길어질 경우. 둘째, 내년에도 감염이 재발하여 올해 수준의 약 2/3 정도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셋째, 앞의 두 개 위험이 모두 발생하는 경우다. 그만큼 코로나19의 감염 확산 방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일반적인 과거의 충격과 달리 노동 공급 감소와 사업장 폐쇄 등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생산성 하락 등의 연쇄효과로 인해 전염병 발생지역의 산업 활동과 소매업, 고정자산 투자 등 실물 경제가 빠르게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였다.이상을 고려할 때 IMF가 전망에서 채용한 기본 시나리오가 그대로 적중되더라도 올해 2/4분기까지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으며 하반기 이후에나 회복 조짐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의 수석경제해설가 마틴 울프는 ‘지금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The world economy is now collapsing)’라는 4월 15일 자 칼럼에서 IMF가 ‘대봉쇄’라고 했으나 ‘대차단(Great shutdown)’이라 보아야 하며 봉쇄로 세계 경제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며 IMF의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물자의 적극적인 국제 교류의 중요성과 함께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물류 흐름을 차단하는 행위가 세계 경제 회복을 저해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그의 말대로 IMF의 전망이 낙관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포항경제는 더 정도가 심할 것임은 분명하다.게다가 IMF의 예측대로라면 글로벌금융위기 당시보다 그 진폭이 크고 회복속도는 더 느려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포항경제도 당연히 주요 지표는 마이너스였다. 포항경제의 주력인 철강산업만 보더라도 피해가 컸다. 당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2009년 연간 조강생산량은 전년 대비 3.9%가 감소하였다. 철강 공단의 생산액과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13.5%, 8.8% 감소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철강(제1차금속) 부분만 추출하여 살펴보면 하락 폭이 더 컸다. 철강 공단의 제1차 금속부문 생산액과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17.3%, 21.7%가 감소하였다. 당시 포항시 전체 수출액은 23.8%나 감소하였다. 이외에도 지역 건설과 운수업 등과 연관성이 높은 투자지표인 건축허가에서는 상업용과 공업용 건축 허가면적이 2008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전체 허가면적이 전년 대비 22.0% 감소를 기록하였다. 결국, 올해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성장률을 기록하는 동안 포항경제의 3대 천왕인 철강, 운수, 건설 등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내지는 그 이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따라서 포항경제가 정상적인 성장경로로 최대한 빨리 회복하여 주력 기반산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지역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재정자금을 투입하여 전국적으로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대책과는 별개의 지역 독자적인 방책이 있어야 한다. 포항경제가 지금의 위기를 조기에 극복해 나가려면 다양한 사업을 광범위하게 펼쳐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왔던 종전방식과 달리 굵직한 몇 개 사업을 선택하고 거기에 모든 역량을 일시에 쏟아부어야만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공황에 버금가는 지금의 위기상황에서는 미래의 신성장동력보다는 당장 지역 기반산업이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만 한다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따라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포항의 경제대책에서 최우선순위는 지진복구사업이어야만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지역 경제의 다양한 분야가 과거와 달리 위축되었던 최대원인은 포항지진이었다. 그동안 포항지진의 원인 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이 지연되면서 커졌던 불확실성이 지역 경제주체의 소비, 투자심리를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지난해 말 포항지진 관련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지진 특별법에서는 다양한 부분을 다루겠지만,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부 예산을 배정받아 집행할 수 있는 복구 재건사업이다. 지역에 자금이 풀리고, 지역기업이 참여하여 제대로 경제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 복구 재건사업을 추진할 때도 사업의 추진 방침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사전에 설정해 두어야만 한다. 반드시 지역기업, 그중에서도 철강 공단에서 생산하는 철강 자재를 듬뿍 사용하는 건축물 등의 설계와 시공을 채택하고,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진복구 재건사업을 일괄적인 단일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사업주에게는 경제성과 효율성은 높겠지만 최대한 소규모 단위사업으로 분리하였으면 한다. 사업 전체 조감도는 당연히 한 장의 청사진에 담아야겠지만, 공사 시행 구간과 단계를 최소 단위로 분리하여 지역 건설업체들이 건설 도급순위 등의 규모나 실적에 밀려 해당 사업에서 원천 배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주력 기반산업인 철강, 건설, 운수가 아예 독과점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특혜를 주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지역경제의 조기 회복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지금은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시의회나 도의회에서도 한시적인 제한을 두더라도 지역업체에 우선권을 주는 특별조례를 제정하여 이를 뒷받침해 주었으면 한다. 다른 지역이라면 없는 사업이라도 만들어야 할 이때 포항에는 당연히 해야 할 복구사업, 재건사업 등 현안 사업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방역 관계로 즉각적인 건설사업 착수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태가 종식되는 즉시 복구 재건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둘 필요는 있다. 최대한 많은 철강, 건설, 운수업종의 지역업체들이 밤낮없이 지진복구, 재건사업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전준비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이들 3대 업종의 지역업체들이 지역 내 사업에 참여하여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피해가 컸던 지역 소상공인, 골목상권 등의 경기는 지난 수십 년간 그래왔듯이 저절로 생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의외로 포항경제는 빠르게 회복할지도 모른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26

익숙한 듯 낯설게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 돋우는 잎새달이다. 진초록 위에 연초록 잎새 겹쳐 피어나면서 나무들은 신음인듯 환희인듯 일제히 잎차례를 벌이고 있다. 혹한의 시련을 이겨낸 인고의 몸짓같은 여린 이파리들이 앙증스럽게 손 흔들며 약동하는 봄날을 환호하는 듯하다.몇 차례의 신열같은 꽃 잔치 속에 온갖 생물들은 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생육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풀과 나무들은 새로운 싹과 잎사귀를 드리우고 곤충과 동물들은 본격적인 먹이활동을 시작하면서 번식과 생장의 사이클에 접어들고 있다. 이처럼 자연만물은 때가 되면 돋아나고 피어나고 나타나 익숙한 듯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은 결코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 것이다. 초목은 차디찬 땅 속에서도 부단히 새봄을 준비하는 일손을 멈추질 않았고, 동면의 겨울나기 속에서도 생명체는 나름의 생존법을 익혀 왔었기에 새로운 싹과 꽃을 피우며 개체를 연명해가는 것이 아닐까?자연은 이렇게 자생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당연하게 이뤄지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온갖 만물의 존속과 조화,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해마다 낡은 것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익숙함을 보여왔었기에 생성과 소멸, 진화를 거듭하면서 현재까지 이르렀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리라. 그래서 새로운 것들은 낡은 것에서 싹트고 희망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 했던가.세상도 자연도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세월이 가고 오고 계절이 바뀌듯이 세상의 모든 유무형의 물질들은 시시각각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자연과 세상은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사이, 작거나 크게, 느리거나 빠르게, 조금씩 변하고 확연히 달라지며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물론 변화하되 변함없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시대나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하고 퇴보함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고 흔히 보아왔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생과 존립, 진전과 확장을 위한 치열한 도전과 생명력 그 자체라고 여겨진다.변화를 두려워하면 성장과 발전이 없다. 최근 들어 걷잡을 수 없는 이변의 소용돌이 속에 고난과 질곡, 파란과 충격의 여파가 만만치 않은 듯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난마같은 코로나19를 탓하고 투표로 나타난 민심의 향배만 안쓰러워 할 것인가. 앞으로 어쩌면 그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최악의 딜레마에 휩쓸릴 수도 있음을 예단하고, 보다 지혜로운 대응과 만반의 조치, 유연하고 과단성 있는 변화의 길목에 나서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종전과 달라진 생활패턴과 새로운 의식의 지향 속에서 익숙한 듯 낯설게 움직이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여, 차별화된 새로움과 확고한 비전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목의 등걸에서도 새순이 돋아나듯이 경험과 시련을 통해 지혜가 자라고 내성이 길러진다. 진정한 변화는 전통의 배제가 아니라, 역사의 무늬가 응축되고 융화되는 그루터기 위에서 싹이 트는 창조적인 혁신인 것이다.

2020-04-26

TK 보수 일당 독점 구도의 회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4·15 선거일 하루 전 대구 수성구 신매광장 유세장, 4선의 김부겸 후보가 ‘새도 양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대구를 경쟁하는 도시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절규했다. 북구 아울렛 광장 네거리에서는 2선의 홍의락 후보가 마지막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모레 아침 언론에 대구의 선거가 온통 핑크 색으로 표시되면 좋겠습니까.’ 국회 예결의원인 자신을 국회로 보내줘야 대구를 살릴 수 있다고 절절히 호소했다. 16일 총선 지도 TK 25석 선거구는 온통 핑크색으로 채색되었다. TK는 다시 보수 일당 독점구도로 회귀하였다.이번 총선의 TK 표심은 한 마디로 문재인 정권의‘비판’을 넘는 ‘분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곳의 표심이 이렇게 기운 심리적 기저는 어디에 있을까. 민주당의 180석이라는 압승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표심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응징으로 집약되었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의 정서에는 TK 정권 기득권에 대한 박탈이 보수정당 지지로 표출되었다. 아직도 이곳 밑바닥 민심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향수가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자성론과 비판론도 있지만 이는 소수일 뿐이다. 이곳 보수 주류는 박근혜 탄핵을 용납지 못하고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고 유승민 등 보수개혁파까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다.이러한 심리적 기저가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적극 지지하였다. 전국적으로 거의 먹혀 들지 않는 문재인 정권 심판도 이곳에서는 설득력 있게 확산되었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외면당했던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나 ‘좌파 독재 종식’이라는 구호까지 이곳 보수층은 적극 지지하였다. 이곳에서는 야당의‘사회주의 개헌론’에 동조하면서 선거 직전 터진 야당의원들의 엄청난 막말도 선거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유시민의 ‘180석 발언’은 TK 주류에게 위기감을 불러와 보수층의 결집을 촉진하였다.사실 대구 경북의 이러한 선거 표심은 곳곳에서 예감되었다. 이곳 장년층의 친목 모임에는 의례히 문재인 정권의 응징이라는 화두부터 등장하였다. TK의 친목 모임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과 비판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옹호나 지지는 좌파 용공세력으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난이나 분노는 카톡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철늦은 ‘친북 좌익 정권’이라는 흑색선전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것이 결국 통합당 공천은 무조건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러한 TK의 분노한 표심은 4선의 김부겸마저 추락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갈량이 와도 이곳에서 민주당 간판으로는 패할 수밖에 없다. 역으로 이곳에서는 통합당 공천만 받으면 누구라도 당선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선거 결과에 TK의 보수 주류는 자존심을 살렸다고 위로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번 총선 결과는 정치의 지역주의 회귀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이곳의 보수 독점 일당 정당구도는 이 지역 발전을 기약할 수도 없다. 중앙 정치와 연결되는 작은 숨구멍마저 막아 버리고 자폐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2020-04-26

눈물의 산악인 (2)

라인홀트메스너는 산을 오르며 사색한 생각들을 정리해 책을 씁니다. 이미 20권 이상의 책을 쓴 문필가입니다. 그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의 일부입니다.“가파른 암벽을 오른다. 숨이 가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온몸이 마비된 듯하다. 싸늘한 텐트 속인 데도 몸에서 땀이 난다. 머리 위로 보이는 엷은 텐트 천에 서리가 엉겨 있다. 혼잣소리를 질러 보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공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무서움 때문에 계속 소리를 지르고 싶다.”저는 한때 히말라야 등반하는 산악인들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굳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그곳에 올라가야 하는가? 좀 더 쉬운 방법은 없을까?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가면 간단할 것을 왜 그리 몸으로 기어올라가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답은 간단하게 나오더군요. 몸이 견디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헬기를 타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은 기상 조건만 허락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정상에 내리는 순간 기압 차이 때문에 이내 허파에 물이 차올라 죽는다고 합니다. 자연은 손쉽게 얻고자 하는 이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 법입니다. 메스너는 고백하지요.“인간이 살지 않는 지구 위의 별천지! 이 오지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과 야생화와 초원의 천국이다. 정상이란 산의 꼭대기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종점,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 만물이 생성하고 그 모습을 바꾸는 지점. 모든 것이 완결되는 끝이며 이곳은 자력처럼 나를 끌어당긴다.”“나는 지금 어떤 산을 오르려 하고 있는가?”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늘 만만한 동네 뒷산에 만족하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계를 긋는 나에게, 마땅히 올라야 할 미지의 최고봉은 어디일지 캐물어 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6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김영체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단칸방에 살던 신혼부부가 신축 아파트로 입주할 때 큰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곧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편리함은 당연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넓고 편리한 새 아파트를 원하기 마련이다. 물질이 주는 행복은 주기적으로 채워 주고 더 좋고 크고 넓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해야 만족감을 느낀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하는 순간 느끼는 행복은 곧 사라지고 말지만 여행을 통한 좋은 경험을 만드는 행위는 행복감을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경험을 통한 행복의 추구도 결국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오프라 윈프리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14세 때 성폭행을 당해 미혼모로 살았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밑바닥 삶을 헤매던 그녀가 그토록 유명한 공인으로 변신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한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감사일기’였다. 그녀는 바쁜 일과 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다섯 개씩 감사할 거리를 찾아 일기를 써 온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감사일지를 쓰고 있다. 쓰기 싫은 날에는 단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쓴 감사일지는 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한다. 혼자만 보면 자칫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감사일지를 써온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 특별한 감사 거리를 찾기 어려운 평범한 날이 내 삶에 더욱 소중하다는 깨달음이다. 이런 날은 평소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 오늘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온종일 아파서 누워있는 날도 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내 몸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생명’인지를 일깨워 주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때로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가 나오지 않고 억지로 꾸며 가짜 감사를 쓰는 날도 있다. 비록 가짜 감사일지라도 매일 글로 쓰면 그 가짜 감사가 모여 진짜 감사로 변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은 독신으로 살기로 했으나 자신이 조각한 아름다운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애틋하게 바라본 신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진짜 여인으로 변신해 사랑의 결실을 보는 이야기다. 플라시보 효과도 있다. 진짜 약과 똑같이 보이는 가짜 약을 먹게 함으로써 환자가 실제 약을 먹었을 때와 같이 병이 치료되는 경우이다. 억지 감사일지라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진짜 감사보다는 그 효과가 덜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짜 감사에도 다소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 아닐까? 물질적 소유에서 찾으려 하는 행복은 분명 한계가 있다. 욕심이 통제하고 스스로 멈출 힘이 있지 않는 한 품질과 성능이 더 좋은 소유를 얻어야 행복할 테니 누가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서민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아무리 갑부라 한들 이런 방식으로 물질만을 추구해 행복을 얻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질에 상관없이 행복을 성취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보다 더 강력한 방법은 단 한 줄이라도 감사일기를 써 보는 것이다. 분명 우리 삶에 행복을 선사해줄 것이다. 미국의 긍정심리센터에서 감사한 일을 찾아 쓰게 한 실험이 있었다. 피실험자에게 감사한 점을 찾아 기록하게 하고 일주일 후 측정해 보니 우울감은 줄어들고 행복감은 증가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 밖에도 감사일기가 행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많다는 연구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필자가 지난 1천658일간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행복을 당신이 가져갈 차례다.

2020-04-26

6037을 아시나요

백선기 칠곡군수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에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자 매점매석된 마스크는 온라인을 통해서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판매되거나 주문을 넣어도 취소를 알리는 문자가 날라왔다. 일시적인 품귀현상이 수요 폭증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이에 정부는 지난 2월 26일부터 생산과 유통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고 3월 6일부터는 수출금지조치와 함께 마스크 구입 및 유통 비중을 전체 생산량의 80%까지 확대하면서 대한민국의 마스크 수급이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마스크 5부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마스크 수급에 숨통이 트이면서 4월 27일부터는 공적 마스크 구매량을 1인당 3매로 확대하기로 했다.이제는 어려운 이웃 국가를 돌아볼 여유까지 생기면서 6.25 전쟁 참전 국가에 총 100만 장의 마스크를 공급을 검토하겠다는 정부 발표까지 나왔다. 국민의 여론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고통을 겪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22개국 참전국 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낸다는 정부 방침에 이의가 없는 듯 하다. 이러한 정부 발표에 앞서 이미 칠곡군은 지난 22일부터 해외 참전국의 하나인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위해 자발적인 마스크 기부운동에 나섰다.에티오피아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했다. 그것도 일반군이 아닌 황실 친위대 ‘강뉴 부대’였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육사 1·2기 출신의 최고 엘리트로, 한국을 돕기 위해 두 달 동안이나 배를 타야만 했다. 지구 반대쪽 낯선 나라를 돕겠다며 망망대해를 건너온 이들은 늘 최일선에서 싸웠고, 253전 253승이라는 기적과 같은 승전보를 안겼다. 한국땅을 밟은 에티오피아 참전 군인은 총 6천37명이었다. 이 가운데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단 한 명의 포로가 없었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는 셀라시아 황제의 명령을 끝까지 지켜낸 것이다.하지만 1974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을 도왔던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은 핍박을 받기 시작했고,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꽁꽁 숨어 지내야만 했다. 이에 호국과 보훈을 도시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칠곡군은 2015년부터 경제적 지원은 물론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새마을 운동을 에티오피아에 전파하고 2016·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초청해 그들의 무훈을 대한민국에 알리는 일에도 적극 노력했다.또 낙동강세계평화문화 대축전에 에티오피아 홍보 부스를 마련해 전통 문화와 참전용사의 헌신을 전파하고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과 ‘문화·관광·보훈 분야 MOU’를 체결해 외교적 차원의 지원 방안도 모색해 왔다.6,25전쟁 70주년을 맞아 6천37명의 참전용사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기 위해 마스크 6천37장 기부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지난 22일 SNS를 통해 ‘6037을 아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을 위한 마스크 기부 동참을 호소했다. 또 스카프, 수건, 목도리 등으로 마스크를 대신한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의 안타까운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올렸다. 70년 전 6천37명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켰듯이 이제 우리도 정성을 모아 6천37장의 마스크를 보내기 위해서다. SNS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알리고 군청 로비와 8개 읍면 사무소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마스크 기부함’을 설치했다. 장롱 속에 꼭꼭 숨겨두거나 가족을 위해서 아껴 두었던 마스크를 들고 수많은 주민들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에티오피아로 보낼 마스크를 기부한다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칠곡군이 자랑하는 28개 인문학 마을의 주민들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위해 재봉틀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익명으로 마스크 50장을 총무과로 보내는가 하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지체장애인도 330장의 마스크를 들고 군청으로 찾아왔다. 인근 도시인 대구는 물론 서울, 평택, 강화에서도 마스크 기부 동참 의사를 밝히는 분들도 나타났다. 지금 칠곡군민은 70년 전처럼 6천여 명이 함께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6037을 알고 있습니까?

2020-04-26

눈물의 산악인 (1)

평생 산에서 살다시피 한 베테랑이 새로운 등정을 위해 배낭을 꾸릴 때마다 눈물을 흘립니다. 왜냐고요? 무섭기 때문입니다. 공포감에 장비를 풀고, 다시 눈물 흘리며 장비를 꾸리는 일을 반복합니다.라인홀트메스너. 오스트리아 출신 산악인입니다. 그는 단지 산을 정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자며 예술가입니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랑 삼아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산이 좋아서, 산을 오르면서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정상에 올랐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감격이 기뻐서 산을 오르지요.메스너는 최소한의 장비로 셰르파의 도움 없이, 무엇보다 스폰서도 없이 오직 순수한 등반 자체만을 목적으로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며 산에 오릅니다. 게다가 히말라야에서 8천 미터가 넘는 14개의 정상을 모두 등정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혼자 몸으로, 무산소 등정으로 14좌를 완등합니다. 산악인들이 정상을 정복하면 기념 촬영을 하죠. 스폰서 로고와 국기를 펄럭이며 사진 찍습니다. 이때 메스너는 오직 손수건 한 장을 흔들며 사진을 찍지요. “나의 국기는 손수건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산을 오르는 데 무슨 국가 간 경쟁이 필요하냐는 일침입니다.1970년, 메스너는 동생 퀸터와 함께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밟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눈사태로 동생을 잃고 자신도 굶주림과 악천후 속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집니다. 이때 얻은 심한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 6개를 절단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동생을 희생시켰다.’라는 비난과 오해를 오랫동안 견뎌야 했습니다. 7년 후 그는 낭가파르바트로 떠나기로 하며 말합니다. “이 고독감을 그곳에 묻어 버리든지 아니면 고독감이 나를 쓰러뜨리든지 둘 중 하나!”/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3

정치공학

김병래시조시인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167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2018년 현재 75개국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53개국은 권위주의를, 39개국은 혼합된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노르웨이가 10점 만점에 9.87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대한민국은 8.00점으로 21위, 북한은 1.08점으로 꼴찌를 했다. 20세기 말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세계 각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대세이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독재나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이념과 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규모가 커져서 모든 사안에 대해 모든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물을 수는 없는 형편이라 각 지역의 대표를 뽑아서 민의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대의민주제이다. 지역의 대표 말고도 직능별 전문인을 확보하고 사표를 방지하려는 취지로 비례대표제를 겸하는 나라가 많다. 후보자 개인의 능력이나 인품보다는 소속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당락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얼마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정책이나 비전은 실종되고 ‘정치공학’만 난무했다는 느낌이 짙다. 정치공학(政治工學)이란 학문적 뉘앙스와는 달리 권력을 유지하고 국민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론을 말하는 것으로 구소련에서 쓰던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12년 대선을 전후하여 정치권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는데, 주로 ‘유권자들에겐 실질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형식적인 문제를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하는 행위’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말이다. 비례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과 그것에 대응한 자매정당 만들기 등이 바로 정치공학적 술수에 해당한다.정치공학은 일단 백성을 우민(愚民)으로 보는 데서 나온 발상이다. 정책의 진정성이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조삼모사식 꼼수로 진상을 호도하고 위장하는 것으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현대의 선거전에서는 정치공학적 역량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된 계기랄까, 몇 가지 그럴싸한 포장이 될 만한 것을 내세우고 거기다가 금품공세까지 더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넘어가기 마련이라는 걸 실감하는 선거였다. 정부의 무능과 실책, 각종 범법의 피고인 신분인 자들의 후안무치와 적반하장도 정치공학적 포장과 포퓰리즘의 당의(糖衣)에 쉽사리 덮인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방에는 온갖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정치공학의 주요 메뉴다.아무튼 이제 완전히 좌파들의 세상이 되었다. 도처에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자들이 살기를 번뜩이며 설치고 있다. 자신들은 무슨 짓을 하든지 그것이 곧 법이고 정의라는 무소불위와 오만방자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제도권에 밥줄을 대고 있는 사람들은 행여 그 서슬에 베이지 않을까 전전긍긍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국이다.

2020-04-23

김정은 유고?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김정은이 또 안 보인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지난 11일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것이 마지막으로 거의 2주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그가 안보인 적은 가끔씩 있었고 유고설이 있었지만 유유히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김정일 시절에도 있었던 폐쇄된 북한의 특유한 쇼맨십 정치의 일환이었다.그런데 이번은 좀 느낌이 다르다. 김정은이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 기념식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김정은 통치기간 8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고 북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가 태양절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이미지를 닮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온 김 위원장의 설명되지 않은 불참은 아주 이례적인 것이다.또한 국내외에서 위중설이 제기되고 김여정 후계설까지 나오고 있지만 북한 정부 당국과 매체들에서는 반박성명이나 공식 활동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보통 이 정도에서는 반박성명이나 공식 활동 사진이 떠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북한 매체는 최근 태양절 기념 축전을 보내온 시리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답전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답전을 보냈다는 단신일뿐 김정은의 모습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없다.미국의 일부 매체들이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 보도를 흘리고 있다.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태구민 전 북한 런던공사나 국내 탈북단체들도 이번 상황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CNN은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정보기관이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미국이 김정은의 유고에 대비한 광범위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갖고 있다고 미국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김정은 사망 시 수백만 명의 기아가 발생하고 주민들이 대거 중국으로 탈북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에 개입해 상황을 관리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비상계획을 수립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미 외교안보 당국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비롯해 피살된 형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까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후계구도와 관련한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북한이 스탈린 사후 소련처럼 집단 지도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후계자가 나서든, 집단체제가 되든 비상사태가 초래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중요한 건 김정은 유고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비상계획은 항상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과의 평화를 강조하며 휴전선 무장해제 등 해빙무드에 힘을 기울여 왔지만 한미 양국의 전력강화에 의한 철저한 비상사태에 대한 준비와 김정은 유고에 대한 전략적인 준비가 되어 왔는지 의문이다.비정상적인 정권은 언제든 급변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많은 공산정권이 무너졌고 후세인, 카다피 등 독재정권도 결국 무너졌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산독재 정권의 급변사태에 대비하여 우리는 빈틈없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시간은 멀지 않아 보인다.

2020-04-23

홍준표의 선택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4·15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민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에 올랐던 게 바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행보였다. 돌이켜보면 대구지역에서는 홍 전 대표의 총선 무소속 출마 자체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홍 전 대표가 출마한 대구 수성을 지역구는 지난 대선 때 이인선 후보가 당원협의회장을 맡아 홍 전 대표에게 대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냈던 곳이다. 홍 전 대표가 이 지역에 출마할 결심을 굳힌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자신을 위해 뛰었던 후보가 공천을 받았는데, 당 대표와 대선후보까지 지낸 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니 홍 전 대표와 맞닥뜨린 이인선 후보 입장에선 배신감이 적지않았으리라. 그래서일까.양측의 선거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총선 하루 전날 선거전이 한창이었던 대구 두산오거리에서 양측 선거관계자들을 만났다. 홍 후보 측은 “홍 전 대표를 국회에 보내야 대구·경북도 차기 대통령 선거에 주자를 낼 수 있을 것 아니냐”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통합당에서 무소속 출마한 후보의 복당을 절대 받아주지않을 텐데 대선후보로 뛸 수 있겠느냐”며 “전황이 어려운 수도권 등지에서 통합당 후보들을 지원함으로써 당에 기여한 뒤 대선에 출마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당시에는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의 ‘탈당자 복당 영구 불허’선언이 나온 상황이었기에 이 후보 측에 무게가 실렸다. 어쨌든 홍 전 대표는 38.5%를 얻어 이인선 통합당 후보(35.7%)를 근소한 차이로 꺾었다.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 180석, 통합당 103석이란 충격적인 성적표가 나왔다. 그는 언론에서 통합당 참패 원인을 묻자 잘못된 공천과 선거메시지 부재 두 가지 때문이라고 신랄한 평가를 내놨다. 우선 당내 통합 공천이 안 되고, 당권 강화 공천을 했다는 것이다. 문 정권과 대적하는 선거인데 마치 당내 무소속하고 싸우는 선거로 변질을 시켰으니까 선거에서 이기기가 어려웠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선거메시지와 관련, “당 지도부가 갈팡질팡했고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된 메시지가 없어 도대체 문재인 정권 심판 선거인지 야당을 거꾸로 심판하는 선거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은 통합당 지도부에게 뼈아픈 질책이었다.필자는 개인적으로 홍준표 당선자의 직설적인 화법에 강골 이미지를 좋아한다. 또 날카로운 정치감각과 상대방의 정곡을 찌르는 혜안, 정세분석능력 등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이 많이 따르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의 단점도 명확하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쏟아내는 특유의 막말논평은 자제돼야 한다. 보수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 당선자는 앞으로 포용과 협치의 리더십을 새롭게 가다듬어 선보여야한다. 복당과정에서 당내 반발세력을 설득하고, 새로 구성될 지도체제와 원활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이미지 변신을 꾀해야 한다. 그래야만 홍준표를 지지한 대구·경북민의 염원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2020-04-23

무관중 스포츠

스포츠 경기에서 무관중 경기는 관중석을 폐쇄해 관객 없이 치르는 경기를 말한다. 극히 비정상적이다. 보통은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 구단에 대한 징계로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2018년 10월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의 크로아티아 홈경기 2개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다. 2015년 6월 열린 UEFA 유로 예선 홈경기에서 크로아티아 관객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한 것이 문제가 돼 무관중 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2005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북한이 이란에게 패하자 관중이 이란 선수단 차량을 가로막는 소동을 벌였다. 북한은 다음번 일본과의 홈경기 개최권이 박탈당했다. 태국에서는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했다. 2019년 10월 평양서 개최된 2022년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전은 29년 만에 남북 대결이 성사됐으나 생중계는 물론 관중도 없이 치러졌다. 이는 징계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북한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무관중 경기였다.선수와 관중은 서비스 산업에서의 판매와 소비 이상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스포츠가 단순한 운동경기를 넘어 문화의 한 영역으로 또는 삶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중 없는 경기는 안하겠다는 어느 유명선수의 말처럼 선수와 관중은 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공동운명체다.미국의 스포츠 매체 ‘이에스피앤’은 코로나19로 올해 전 세계 스포츠 행사의 47%가 취소됐으며 피해액이 67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우리나라 프로야구가 5월 5일 무관중 개막을 한다. 개막 초반 안전한 리그 운영을 통해 단계적으로 관중 입장을 허용할 거라 한다. 프로축구 K리그도 5월 중 개막이 예상되나 무관중 경기일 가능성이 높다.코로나가 스포츠의 판세를 바꾸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23

코로나 선거 독후감

이렇게 큰 사건도 없다면 없다. 정당별 지역구 의석수, ‘더민’이 163, ‘미통’이 84석이다. 비례대표는 더불어시민당이 17, 열린민주당이 3, 합계 20에, 미래한국당은 19란다.지도를 보면 면적으로 보면 핫핑크도 강원도 인근까지 제법 넓어 보이지만 파랑은 인구밀집 지역인 서울과 경기를 전부 도배하고 충청, 호남, 제주까지 ‘일통’했다.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옛날에 민자당이라는 게 생겨서 DJ 호남만 빼고 나머지 전부를 차지했던 일. 나는 충청도 사람이지만 정말 안 좋아 보였다. 이제 근 20년만에 영남만 빼고 나머지 전부를 ‘더민’이 차지한 형세,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 민심의 크기든 정치적 힘의 크기든 너무 큰 것은 두렵게 느껴지게 마련.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면? 그 하나, TBS 뉴스공장 김어준이 내 생각과 꼭 맞는 부분 있었다. 작년에 일본이 수출 규제 나섰을 때,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 했던 것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일본을 ‘넘어선’ 일에 연결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지금의 정부, 그리고 한국의 위상을 재평가 하게 했고, 이것이 표로 연결되었다 본다.또 하나, 역시 코로나19 관련, 경기도 지사를 비롯 현정부가 재난 기본소득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는 판에, 포퓰리즘이다, 근시안이다 하며 반대하고 나선 ‘미통’의 시대착오. 지금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근본적으로 보자, 멀리 보자는 말에 누가 귀를 기울이나? 옛날에 무상급식 파동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물러날 때가 오버랩 되는 상황.이번 선거는 무엇을 의미하나? 너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뭣보다 DJ 구민주당 계보는 ‘정식’ 해체되었다고나 할까? 아니 ‘더민’의 이낙연을 생각하면 너무 노회한 박지원 대신에 ‘열린우리당’과 합친 그를 호남민이 선택한 격이다.또 하나, 중도정치세력이 갈 곳 잃을 지경이라는 것. ‘이성 상실’ 지경의 위성 비례 정당 싸움에 ‘국민의 당’이 겨우 비례대표 3석에 낙착되고 말았다. 지난번 총선의 ‘국민의 당’을 생각하면 호남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말 실감 난다.이제 이 나라 어디로 가나? 북한에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선거 결과를 교묘하게 어떤 형태로든 벌충해 주는 듯한 형국. 코로나에 대응은 이 나라가 제일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닥쳐올 경제위기에 북한의 ‘급변’ 사태는 오리무중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새 이메일 주소를 하나 만들었다. ‘annocovid19’를 넣어서. 원래 서기 몇 년 할 때, 그게 AD, 즉 ‘anno domini’다. 코로나19 ‘이후’는 전과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이 가장 우선이고, 이 기준에 맞추어 모든 것을 새롭게 조정해 나갈 일. 이것이 정치 사회의 기본 되어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4-23

D-day!·V-day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기갑부대를 지휘해 여러 차례 큰 승리를 거둬 ‘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얻은 에르빈 롬멜(1891∼1944) 장군이 있었습니다.롬멜은 2차 세계대전 역사상 매우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독일군 장교였지만 연합국 장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나토 총사령관을 지낸 웨슬리 클라크 대장은 훗날 “외국 장군 중에서 롬멜 원수만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장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사관학교를 거쳐 1912년 소위로 임관한 롬멜은 1차대전 전공으로 프로이센 군 최고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erite)’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대위로 진급한 뒤 34년 고슬라 주둔 당시 에른스트 룀 쿠데타 사건을 계기로 히틀러를 만나 충성을 맹세한 뒤 승승장구 해 40년 중장으로, 42년 6월 독일군 최연소 원수 계급장을 달았습니다.롬멜 장군은 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프랑스 서부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프랑스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지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좋지 않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프랑스 서부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 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다음 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하지 않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불편함과 수고로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시작은 너무나 참혹한 현실 앞에 모든 국민들이 다 환자 아닌 환자 같은 심정으로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와 머물러야할 작은 공간에서 각자 맡은 희생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그런데 그 결과 우리에게도 ‘디데이(D-day)’가 왔고 이제 ‘브이데이(V-day)’도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함께 힘을 보태어 그동안 희생의 값으로 경제 회생의 ‘브이데이(V-day)’를 이루어갑시다.

20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