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노숙인과 비둘기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인과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했던 날입니다. 식사 후 식당주변 커피 집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골목 어귀에 앉아 컵라면을 먹던 노숙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뒤섞인 차가운 공기에 온기가 가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 같았습니다. 노숙인의 초라한 행색과 비린 체취에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가던 행인들을 피해 비둘기 한 마리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노숙인은 물끄러미 비둘기를 바라보더니 라면 몇 가락을 던져주었습니다. “이거 먹어”라며 비둘기에게 채근하였습니다. 경계심으로 머뭇거리던 비둘기는 던져진 라면 몇 가락을 쪼아 먹고 슬그머니 그의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길바닥 식탁과 바람을 반찬삼아 노숙인과 비둘기는 거나한 오찬(?)을 즐겼습니다.돌아오는 차안에서 둘의 식사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지난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몇 년을 해오던 구호단체 기부금을 끊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적은 액수였지만 퇴직 후 씀씀이를 줄인다는 계획의 일환이었습니다. 몇 권의 책을 내면서 인세를 기부하며 으쓱해 했던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남을 도우는 일은 결코 풍족할 때 하거나 폼을 잡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숙인은 컵라면 한 개를 쉽게 구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의 주린 배가 다가온 비둘기에게 눈길을 돌리게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먹이를 찾아온 비둘기를 외면치 않았습니다.고궁이나 광장에서 한가로이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기념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들이 던지는 모이는 자신들이 꼭 먹어야하는 양식도 아니고 없어도 되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쉽사리 던져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먹는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좋아라 합니다. 제가 했던 어쭙잖은 기부행위가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지는 행위나 다름없었던 것 같습니다.매월 일정액 기부나 책 인세기부 같은 것들이 저 자신을 위한 폼 잡기용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남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내게 남아도는 것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의 사람에겐 더욱 간절하게 필요한 것일지 모릅니다. 노숙인은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에도 부족할지 모를 컵라면을 먹으며 주린 비둘기에게 쾌척(?)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못한 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남을 도울 수 있음에 생의 의미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알량한 소액의 기부금조차 끊어버린 저의 처사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남을 도우는 일은 내가 쓰고 남아서 하는 것은 고궁의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나라 안이 이런저런 일들로 을씨년스럽지만 컵라면 몇 가락을 던져주던 노숙인의 어깨 뒤로 겨울햇살 한줄기가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다시 구호단체에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해야 되나?’

2020-02-04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신종 코로나가 나타났다. 전자현미경 없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이 자기보다 몇 천 만 배 더 큰 인간들을 상대로 맹위를 떨친다. 첨단의 21세기에 아직 치료제는커녕 정확한 감염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 스스로 이동 능력조차 없는 그들은 인류가 만든 교통수단에 무임승차하여 대륙을 넘나들며 팬대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다.2016년 국민 안전체감도 조사 결과, 자연재해, 교통사고, 시설물 붕괴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신종전염병이 체감위험도 1위를 차지했었다. 사스(SARS), 신종플루, 메르스(MERS) 등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2~3년에 한번 꼴로 창궐한 직후였으니, 신종전염병이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 건 당연했다. 뼈아팠던 메르스의 교훈 이후 의료계는 병원 내 2차 감염을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응급의료체계와 병문안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2019년에는 위험도 1위가 환경오염으로 바뀌고 전염병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우리 관심이 미세먼지로 옮아간 사이, 바이러스는 조용히 변이를 거듭해 더 독하고 강해져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바이러스 패닉이 시작되고 보니, 지난번 소를 잃었을 때 쏠렸던 범국민적 관심에 비해서는 외양간 고치기가 너무 기본적인 정비에만 그친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무엇보다 역학조사를 개인 기억이나 설문조사, 의료기록, 신용카드 결제 이력 등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지만,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마련해 뒀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 상업 목적의 스마트 디바이스 데이터가 유사시에 제대로 활용만 되었더라도 지역사회를 지키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의료진과 관련기관으로 개인의 건강·의료 기록, 여행·방문이력 등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즉시 일괄 제공하거나, 접촉자의 수와 소재 파악 등 역학조사 전 과정에 스마트 기술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하므로, 개인 데이터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둘 수 있었을 것이다.바이러스의 공격은 호흡기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성 하에서의 막연한 공포심과 그로 인한 폐쇄적 태도를 유발하여, 마치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정치와 경제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일부 확진 환자가 자유롭게 지역사회 활동을 했다고 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니 나라 문을 닫아걸자는 여론으로까지 번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혹시 나도?’하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과민하다 탓할 수만은 없다. 미세먼지 앱처럼 오늘 내가 다닐 경로는 안전할 거라는 ‘좋음’ 표시 같은 거라도 하나 있었다면 사람들 마음이 좀 놓이지 않았을까.

2020-02-04

백악관 견학기

초등학교 교사인 저스티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백악관을 견학했습니다. 백악관 전체를 볼 수는 없었고 단체 방문객들을 위해 개방된 일부분만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둘러보았습니다. 일행은 나라에 중대한 일이 생길 때마다 국무회의가 열렸다는 회의실도 들어가 보고 초기 미국 대통령들이 좋아했다는 조각상도 구경했습니다. 기자 회견실도 보고 백악관을 장식하고 있는 건축 양식도 살펴보았습니다.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저스티스는 아이들 전체에게 백악관에 다녀온 소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스티스는 아이들이 제출한 기행문 숙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백악관이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거나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던 것을 직접 보게 돼서 매우 기뻤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는지 몰랐다거나, 백악관에도 자기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가구를 보고 반가웠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중간쯤에 엉뚱한 기행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맨 위에 달랑 한 줄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을 다녀왔다.” 정해진 분량을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저스티스는 도저히 그 아이를 야단칠 수 없었습니다.“꿈만큼 당신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미국의 유명한 잡지에 실린 광고 제목입니다. 그 광고에는 우주선이 발사하는 모습을 어린이가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 아래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정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성장은 따르게 마련입니다.”꿈이 사라져가는 시대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꿈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꿈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정신은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다음 세대의 가슴에 불을 지를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4

골든타임

심폐소생술의 골든타임은 4∼5분 정도다. 심정지 상태가 시작되고 4∼5분이 지나면 뇌에 혈액공급이 끊기면서 뇌손상이 급격히 진행된다. 혈액공급이 차단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뇌손상은 심각해지고 급기야 사망에 이른다.골든타임은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긴박한 시간대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어떤 일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시간을 지칭하는 말로도 자주 사용된다.예컨대 항공기나 선박사고가 났을 때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간대도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대개 생명을 잃게 되거나 사고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모든 일에는 완급이 있는 동시에 사태를 수습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기 마련이다. 골든타임은 놓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절묘한 타이밍을 찾는 일이 문제 해결의 키포인트다. 골든타임을 기적의 시간이라 부르는 이유다.방송계의 골든타임은 의료 등 긴급재난에 사용하는 골든타임과는 의미가 다르게 사용된다. 우리말로 황금시간대를 말한다. 시청률이 가장 치솟는 시간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밤 8시∼11시 사이가 골든타임이다. 영어로는 프라임타임, 골든아워라고도 한다. 광고비가 가장 비싼 시간대다.어쨌거나 골든타임은 이를 사용하는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대를 뜻한다. 이것이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면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영향력은 또한 대단한 것이다. 한국의협이 우한 폐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전역을 입국금지 대상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당국에 주문했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며 이를 놓치면 메르스와 같은 실패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한 거와 같다. 정부 당국이 지금을 골든타임으로 볼 것인지가 주목되는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04

태산(泰山)과 바이러스(病毒)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큰 사건이 터진 후 뒤처리가 어정쩡하고 미흡하게 보일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회자되는 이 말은 쥐띠해인 2020년 올해에는 더더욱 탐탁스럽지 않게 들린다. 그런데, 쥐와 비교할 수조차 없이 작은 바이러스가 새해 벽두부터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바이러스는 온전한 생명체가 아니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측정 단위가 마이크로미터(1백만분의 1m)인데 비해 바이러스는 그 단위가 나노미터(10억분의 1m)이다.바이러스(病毒)에 태산명동(泰山鳴動)! 고성능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 태산이 울고 있다. 중국 온 나라가 질병의 재난 속에 휩싸여 있다. 중국 우한(武漢)이라는 도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병의 확산은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떨게 하고 있다. ‘갈수록 태산’이고 ‘걱정이 태산’ 같다.우한의 834킬로미터 북동쪽에 태산이 있다. 중국에서는 옆 동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태산은 우리 산들과 비교해도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최고봉의 높이가 1천535미터로 지리산의 한 봉우리인 토끼봉과 얼추 비슷하다.(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높이는 1천915미터이다.) 그런데도 태산은 중국 오악 중 하나로, 중국 최고의 산으로 대접받아 왔다. 공자도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게 보이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고 하였다.이러한 태산의 위용을 앞세우고 ‘메이드 인 차이나’를 지구촌 구석구석에 전파하며, 자본주의로 무장한 미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세계화에 앞장서던 ‘큰나라’ 중국이 작디작은 바이러스로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것이다.1973년 독일의 경제학자 E. 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성장지상주의를 경계하였다. 경제 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온다고 하여도 환경 파괴와 인간성의 파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성장지상주의는 맹목적인 수용의 대상이 아닌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지적하였다. 성장보다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통한 환경과 인간성의 회복을 주창하였다.그러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라는 말은 세계화의 거대한 파도에 밀려 그저 아름다운 한 문장으로 박제화 되다시피 하였다. 인터넷과 항공망에 의해 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물적 인적 교류는 슈마허의 지적을 비웃듯이 나날이 거대화되고 있다. 세계화, 거대화는 이미 부인의 단계를 넘어섰지만, 부작용 또한 어마어마하다. 연결된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 질병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중국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병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성장과 세계화의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듯이 보이던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작은 것이 두렵다(Small is Fearful)! 중국이, 한국이,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가 참이 되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마스크를 쓰며 옷깃을 여미고 겸허해질 시간, 지금이다.

2020-02-04

데카메론의 기억

강희룡 서예가13세기에 남러시아에 성립한 몽골왕조를 금장한국(金帳汗國)이라 한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바투는 몽골 서정군의 총수가 되어 러시아 및 동유럽과 남러시아를 장악해 킵차크한국의 기초를 구축했다. 1347년 무렵 이 킵차크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해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쏘아 보냄으로써 유럽에 페스트를 전파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 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나병과 흑사병을 얻어 왔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그때부터 순식간에 퍼져나간 흑사병은 불과 수년 동안 이탈리아,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중부를 거쳐 3년여 만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전 유럽인구의 1/3 내지 1/4이 사망했다고 기록된다. 숫자로는 약 2천500만에서 6천만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당시 흑사병이 가져온 유럽인들의 공포와 사고의 변환을 잘 보여 주는 문학 작품이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가 1348년에서 1353년까지 쓴 소설들을 묶은 단편 소설집 ‘데카메론’이다. ‘열흘간의 이야기’란 뜻의 이 작품에는 피렌체에 창궐한 흑사병을 피해 시골의 한적한 별장에 몸을 숨긴 청년 셋과 처녀 일곱 명이 열흘간에 걸쳐 차례로 이야기한 기록, 즉 10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단테의 ‘신곡(神曲)’과 견주어 이 작품을 인곡(人曲)이라 할 만큼 근대소설의 선구자가 탄생된 것이다.흑사병의 공포는 유럽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로 예술이 후퇴한 것이다. 예술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창의력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난 후 그 자리를 메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호하던 여행까지 금지가 되었으니 운이 좋아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그릴 만한 것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인 페스트가 남긴 공포뿐이었다.다음으로 나타난 현상은 사회계층의 급격한 변동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은 지주의 파산으로 이어졌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급격히 상승했다. 게다가 금은보화는 아무리 쥐벼룩이 공격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재산이 할당되었다. 이 시대만큼 졸부(猝富)가 급격히 출현한 시대도 드물 것이다. 이 졸부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식을 머리속에 채우기보다는 겉치레만 신경 쓰는 유행으로 인해 패션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 우한지방에서 발생된 신종역병으로 인해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어떻게 확산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정부는 중국 눈치 보며 강력한 대책에 미온적이다가는 ‘설마가 사람 죽인다’는 속담을 상기해야 될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이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한 명 발생하자마자 70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바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02-03

쥐의 사랑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올해는 경자년, 쥐의 해이다. 작년엔 ‘황금 돼지’띠라며 난리였는데, 올해는 흰 쥐띠라고 곳곳에서 ‘화이트’ 마케팅이 한창이다.하얀색의 크림치즈볼이 통째로 들어간 ‘폴인크림치즈징거버거’(KFC), ‘해피 치즈 화이트 모카’(스타벅스커피코리아), 하얀 크림치즈 아이스크림인 ‘우리끼리’(배스킨라빈스) 출시 등 흰색 잔치 한 바탕이다. 이는 경자년의 ‘경(庚)’이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申壬癸) 중 7번째로, 음양오행설에 따라 흰색을 상징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흰 쥐가 모두 ‘먹거리’와 관련된 것은 재미난 현상이다. 사실 ‘쥐띠는 평생 먹을 걱정 없는 띠’란 말이 있다. 천지창조 신화에는, 미륵이 태어나 물/불의 근원을 모를 때, 쥐가 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대가로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이와 관련 있어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쥐는 사실 먹거리와의 관련성 외에도 우리의 고전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사람으로 둔갑해 주인 행세를 하거나 인간사의 부조리를 비판하는가 하면(‘서동지전’), 달리기 시합 중 소 등에 타고 가다 결승점에 와서야 소등에서 뛰어내려 1등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그 대표적이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밤을 상징하기도 하고(인도), 파멸·죽음을 상징하기도 했던(그리스) 쥐,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재미, 재치, 얌체의 동물이자 풍요, 다산, 번영의 동물로 인식되었다.그런데 문학 속의 이러한 쥐는, 사실 알고 보면 모성애가 매우 강한 동물이다. 어미 쥐는 새끼를 낳으면 열심히 핥아 주는 습성이 있다. 열 마리의 새끼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어미 쥐와 함께, 다른 그룹은 어미 쥐로부터 떼어 놓았더니, 전자의 그룹은 모두 성장했고 성장 호르몬 수치 또한 높았는데, 후자의 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어미 쥐의 혀처럼 생긴 붓으로 붓질도 해 보고, 성장 호르몬을 주입해 보았어도 별 효력이 없었다.이처럼 어미 쥐의 사랑은 경탄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때론 이 사랑이 지나쳐 자식을 죽일 때도 있다. 얼마 전 학회 일로 신년교례회에 참석했더니, 마침 원로 교수 한 분이, 쥐의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쥐가 모성애가 강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새끼 쥐가 몸에 상처가 나 피가 나면 그것이 애처로워 어미 쥐는 계속 핥다가 결국에는 상처가 아물 틈이 없어 마침내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는 것이었다.내 편만을 극히 감싸고돌고, 네 편은 백안시하는 게 다반사가 된 세상이다. 하지만 자기 자식만 귀한 줄 알고, 내 편만 감싸고 편의를 봐주고, 상대편은 괄시, 무시, 배척하곤 하다가 결국엔 서로 생채기만 남기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렇게 핥아대다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것을. 바야흐로 올 경자년에는 상업적인 ‘화이트 잔치’도 좋고, 풍요와 다산, 쥐의 재치를 꿈꾸어 보는 것도 좋지만, 지나친 ‘쥐의 사랑’이 결국,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죽이고 고스란히 나의 ‘상처’로 남게 된다는 사실 또한 한번쯤 되새겨 보면 어떨까 싶다.

2020-02-03

하루 3만보를 걷는다고?

마스터즈 달리기가 전통인 미국에서는 재밌는 기록이 많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 ‘러너스월드’에 실린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28년 시차를 두고 같은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화제의 주인공은 당시 53세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테리 스탠리(Terry Stanley)’씨입니다.그는 1977년에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펜실베이나 주 프레스크아일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3분으로 우승했던 적이 있습니다. 28년 후 53세의 나이로 다시 도전해 2시간46분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스탠리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8∼10km 정도를 달리고, 저녁에 11∼14km 정도를 달리는 습관을 강조합니다. ‘하루에 두 번’ 훈련을 완벽하게 삶의 습관으로 정착시킨 결과입니다.영화배우 하정우씨도 최근 ‘걷는 인간’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그는 하루에 평균 3만보 정도를 걷는 습관이 있습니다. 출근할 때는 2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가고, 어지간하면 차를 타지 않습니다. 부득불 지방 촬영 때문에 차를 탈 경우 책을 읽습니다.하정우씨도 스탠리 교장과 비슷한 말을 합니다. 하루 3만보를 한꺼번에 걸으려면 1교시, 2교시, 3교시로 세 차례로 나누어 걷는다고 합니다. 1교시는 일어나서 바로 러닝 머신에서 50분을 걷는 일입니다. 몸 상태가 좋으면 10분 쉬고 바로 2교시에 들어가고, 일정이 바쁜 날은 2교시를 낮에 기회만 나면 걷습니다.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1교시 2교시를 연달아 수행하지요. 3교시는 일상에서의 걷기라고 합니다. 이런 습관을 통해 하루 평균 3만보라는 믿기 어려운 걷기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건강을 위해 걷거나 뛰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리한 목표보다 하루를 1교시, 2교시, 3교시로 나눠 쪼개서 도전해 보는 지혜는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3

아름다운 천 년의 고독… 경주 분황사(芬皇寺)

인적 없는 분황사에 겨울비가 내린다. 나무들의 젖은 손짓이 기도하듯 평화로운 날, 명절 연휴의 분황사는 더없이 적막하고 스산하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염없이 내린다. 그 너른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불국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분황사는 선덕여왕의 숨결이 살아 있는 절이다. 여왕이 즉위할 때 당나라 태종이 모란꽃 그림을 선물하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 없는 꽃임을 눈치 챈 후, 당 태종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에 빗대어 향기 나는(芬) 황제(皇)의 절(寺)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날씨 좋은 어느 봄날 황룡사를 찾았을 때 사람들로 붐볐다. 지혜로운 여왕의 이미지나 원효대사의 깨달음은 바람결에 스치는 언어가 되고 마음은 봄날에 들떴다. 조용한 분황사를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분황사에 가면 달아났던 언어가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절문을 들어서자 국보 제 30호 모전석탑(模塼石塔)이 비를 맞고 서 있다. 신라 최초의 석탑이며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신라로 들어올 당시 중국에는 흙으로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이 유행했다. 하지만 벽돌 만들 환경이 여의치 않던 신라인들은 자연석을 일일이 깎아 모전석탑을 만들었다.유학파 스님들이 만든 모전석탑은 창건 당시 7층이나 9층으로 추측되지만 임진왜란 때 반이 파손되고 지금은 3층만 남아 있다. 기단의 각 모서리에는 사자상 네 마리가, 일층 네 개의 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왕상 여덟 구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모습으로 탑을 지키고 서 있다.근육질 사내의 분노에 찬 표정과 불끈 쥔 주먹, 금강역사상이라 불리는 인왕상은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사찰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탑의 꼭대기까지 연꽃장식을 만들 정도로 절과 탑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선덕여왕과 신라인의 불심이 드러나는 걸작이다. 하지만 오늘은 1300여 년을 견뎌온 석탑의 위용조차 무색하다.두 눈 부라리며 지켜온 사리 장엄구는 백 년 전에 발견되어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있다. 그런데도 인왕상은 여전히 분노에 찬 표정을 내려놓지 못한다. 신라인의 불심과 예술혼을 대변하는 특유의 감각들이 살아 있는 저 정교함도 언젠가 흐물흐물 눈물처럼 내려앉을 것이다. 세월은 끊임없이 서 있는 것들을 공격하지 않는가.담장 너머에는 신라 최고의 사찰, 황룡사가 있었다. 한때 서라벌을 밝혔을 당당한 자태의 두 절은 어디 가고, 모전석탑 홀로 반쪽짜리 키로 담장 너머 황룡사지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탑을 바라보는 나의 한 쪽 가슴도 기운다. 황무지가 되어버린 절터에는 무심히 겨울비만 내리는데….머지않아 유채꽃 피는 봄이 오고 또 다시 메밀꽃 부케 같은 여름 찾아와 온몸이 아득해지기도 하겠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욱신욱신 슬개골 쑤셔와 스스로의 무게조차 버거울 텐데 저 흔들림 없는 눈빛은 무엇인가? 모전석탑을 지켜온 것은 네 마리의 사자상도, 여덟 구의 인왕상도 아닌 천년의 고독 속에 감추어둔 질긴 그리움인지 모른다.사진을 찍을 때마다 출입문 근처를 지키고 서 있는 음료자판기가 눈에 거슬린다. 무채색 분황사 겨울 풍경이 원색의 자판기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잠시 탑의 고독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 비 그치고 나면 다시 관광객들 찾아와 예찬하고 탑은 기품 넘치는 모습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기억되리라.조낭희 수필가분황사를 적시는 쓸쓸함 사이로 애잔함이 흐른다. 아무도 없는 절, 마당에 고여 있는 빗물을 조심스레 피해 다니며 모전석탑을 돌고 또 돌아보지만, 천년의 저쪽, 신라의 향기는 까마득히 멀기만 하고 탑은 미동도 않은 채 찬란했던 한때의 시공(時空)을 더듬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영원히 붉은 꽃은 없다 했던가.바람에 날리는 겨울비가 내 옷자락을 적신다. 우산을 든 손도 시리다. 나는 작고 아담한 보광전으로 향한다. 빗속에서도 어간문은 활짝 열려 있다. 유난히 커 보이는 약사여래입상이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약함을 든 손과 넙적한 얼굴, 너그럽고 수더분한 인상은 여느 부처님보다 편안하다.그 옛날 희명(希明)이 앞 못 보는 자식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천수대비 부처님 앞에 설 때의 심정을 생각하니, 나의 작은 소원조차 사치다. 빗속을 뚫고 분황사를 달려올 수 있는 건강과 여유가 주어짐에 감사하자. 문 밖에는 겨울비가 소리없이 내리며 갈 길을 막고, 법당은 안온하다.혼자 법당을 차지하고 비 오는 겨울풍경에 젖어들 때, 젊은 불자 한 분 마당을 가로질러 법당으로 들어선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다. 자리를 비켜주고 나오는 내 뒤로 절을 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유난히 간절해 보인다. 모전석탑의 고독한 뒤태를 닮은 그녀의 기도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겨울비가 자꾸 허무감을 부추긴다. 이런 날은 저자거리를 돌며 춤추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던 원효대사의 유현한 일생이 그립고 그립다.

2020-02-03

도시와 역사를 기억하는 기념조형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둘러싸인 베벨광장(Bebelplatz)이 있다. 이 광장이 조성된 것은 아직 독일이라는 나라가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던 18세기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의 명에 따라 궁정건축가 게오르그 벤첼스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가 만들었다. 광장주변에 있는 왕립오페라극장, 성 헤드비히 대성당, 현재 훔볼트 대학 본관으로 이용되는 하인리히 왕자궁과 옛 왕립도서관도 이때 함께 지어졌다.그렇다면 광장의 이름 베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베벨은 독일 사회주의 정치인의 이름이다. 원래 이 광장은 오페라하우스 광장(Platz am Opernhaus)으로 불렸는데 1947년부터 베벨의 이름을 따 베벨광장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벨광장 정중앙 바닥에는 가로 세로가 120cm나 되는 꽤나 큰 규모의 유리창이 나있다. 유리창 아래로 비어 있는 공간이 나타나고 벽면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얀색의 책장들이 설치돼 있다. 도대체 이게 뭘까?발아래 텅 빈 공간과 비어 있는 책장들은 1933년 5월 10일 늦은 밤 이 곳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조형물이다. 나치는 정권을 장악한 이후 ‘비독일적인’ 예술과 사상에 대한 대대적인 말살정책을 폈다. 그날 밤 나치즘에 경도된 수천 명의 대학생들은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불태웠고,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유대인 학자와 저자들의 책들과 나치를 비판한 지식인들의 저서들도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졌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상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의 정신도 책들과 함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나치의 잔인한 정신 학살이 자행되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 야만적 행위를 조롱하는 ‘분서(die Bucherverbrennung)’(1938)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어떤 시인이 태워질 도서 목록에 자신의 책이 빠진 것을 보고 분노하며 포함시키라 항변하는 역설적인 내용이다. 브레히트의 시는 실화에 근거를 둔 것으로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1894∼1967)라고 하는 작가가 실제로 분서사건이 있은 후 자기의 책들이 금서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분노하여 ‘나를 불태우라’(Verbrennt mich)는 탄원의 글을 신문에 기고한 일이 있다.책들이 화염에 싸여 잿더미로 변한, 다시 말해 인류의 정신이 광적인 이념에 유린당한 현장에 기념조형물을 설치한 사람은 유대인 미술가 미햐 울만(Micha Ullman)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신의 울만은 오가는 사람들이 발아래 유리창을 통해 잿더미로 변해 땅 속에 묻혀 사라져 버린 정신을 텅 빈 공간, 텅 빈 책장으로 표현했다. 작품의 제목은 ‘도서관’이다. 어둠이 깔리면 땅 속 비어 있는 ‘도서관’으로부터 하얀 불빛이 마치 나치의 그날 밤을 피어올랐던 불길처럼 흘러나온다. 책은 불에 탔고 지식인들은 추방을 당했다. 남은 것은 정적과 침묵뿐이다.울만의 ‘도서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념조형물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보통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들은 웅장한 모습을 뽐내며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하지만 울만의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드러나기 보다는 조용히 도시 속에 침전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상징성과 호소력은 더욱 강하다. 울만의 작품 가까이 바닥에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쓴 비극 ‘알만조르(Almansor)’의 대사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책을 태우는 자, 사람도 불태울 것이다. (Wer Bucher verbrennt, verbrennt auch Menschen)”/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20-02-03

코로나 바이러스의 폭주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이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감염성 병원균의 돌연변이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도 안정된 생태계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있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나올 만큼 우리 사회를 무력하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생태적 위기는 모두에게 무차별적인 듯 보인다. 많은 국민들은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상당한 복잡성과 이질성,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는 ‘메르스’와 ‘에볼라’ 사태처럼 사실상 누구든 위험대상으로 만들 만큼 강력하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중국으로의 출입국 제한조치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분석할 때 ‘위험’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였다. 테러, 사건 사고의 불확실성, 재난의 국제화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요인이 연계되어 작용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가 되었다. 생태 위기로 인한 질병목록이 증가되고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위기는 국가 단위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다. 불가예측적인 위험의 속도로 한 국가의 권능에 의탁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위험사회에서 특히 ‘위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을 분리하고 분열시킨다는 점이다. 우한지역에 사는 교민들을 전세기편으로 입국시키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련의 사태가 그것이다. 감염자는 사회로부터 격리조치 당하고 각자의 안전을 위해 서로를 불신하는 징후가 곳곳에 잠복되어 있다. 이에 정부에게만 기대거나 정부 주도의 하향식 거버먼트(government)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시민들도 문제해결과정의 주체가 되는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하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을 바라보거나 방관하지 않고, 공익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는 ‘아래로부터의’ 자율적 연대가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다.시민사회 안전을 위해 종합적인 전략과 대안이 요청된다. 바이러스가 발생할 때마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 씻기, 옷소매로 가리고 기침하기”와 같은 예방수칙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위생문제로 단순 치환하기보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반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요청된다. 잠재적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계층에 대해 ‘우리’ 문제라는 인식하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위기 상황은 정부 권력이나 영웅적인 지도자가 해결할 수 없다. 위기가 위험으로 빠지지 않고 문제해결의 기회가 되려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2020-02-03

디지털 아이디시대

디지털 아이디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원 인증 시스템으로, 사용자가 이름·나이 등 자신의 개인 정보를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우리가 실제 주민등록증을 자기 지갑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것처럼 디지털 아이디는 개인 블록체인 지갑에 내 정보를 담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개인 키(비밀번호)를 입력해 자신의 정보를 활용한다. 특정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휴대폰 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해당 사이트에 일괄 제출하는 것과는 반대다. 일련의 복잡한 본인 확인 과정을 간소화하는 일명‘디지털 아이디’로 불리는 분산 아이디(DID, 탈중앙화된 신원식별 시스템)가 머지 않아 공인인증서와 주민등록증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특히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입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경우 결국 ‘아이디 찾기’를 눌러 휴대전화 인증을 거쳐 아이디를 찾아야 하고, 같은 과정을 반복해 비밀번호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개인마다 가입한 사이트가 100개가 넘는 현실을 감안하면 매번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아이디는 향후 인감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대체하는 신원인증시스템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최근 대학들은 DID를 활용해 출석 체크를 하거나 학생증을 발급하려는 시도를 하고있고, 자동차 산업에서는 차량 소유주 인증에 DID를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DID는 위·변조가 어려워 보안성이 높고 사용자가 간편하게 본인인증을 할 수 있어 차세대 신분증으로 각광받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단일화한 디지털 아이디가 가져올 긍정적 변화를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03

몬도가네 음식문화

혐오성 식품을 먹는 비정상적인 식생활을 두고 ‘몬도가네’식이라 한다. 1962년 전세계의 엽기적 풍습을 소개한 이탈리아 다큐 영화 몬도카네(Mondo Cane)에서 따온 말이다. 이 영화는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살상행위와 엽기적 음식문화 등을 소개해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었다.15억 명의 인구와 56개 소수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중국은 음식요리에 관한한 천국이다. 넓은 면적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희귀한 음식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음식문화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버무려져 수많은 요리들을 개발했다. 그들은 요리를 끼니의 해결 차원이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하는 전통이 있다.중국식 요리의 재료가 다양한 것은 이런 전통적 음식문화에 기인한다. “중국 사람은 책걸상 빼고는 다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식재료의 폭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문제는 전갈, 도룡뇽, 곰발바닥, 모기 눈알, 악어, 뱀 등 그들이 선택하는 재료의 엽기적 행태가 늘 화제라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그야말로 몬도가네가 따로 없다.우한 폐렴의 진원지로 알려진 우한 수산시장에서도 박쥐, 오소리, 여우, 사향고양이, 악어 등의 야생동물이 산채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특히 박쥐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로 지목돼 중국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다시한번 도마에 올랐다.사스 때도 박쥐를 잡아먹은 사향 고양이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고 메르스 때도 박쥐를 통한 낙타가 중간 숙주 역할을 했다.음습한 곳에서 생활하는 박쥐의 몸에는 200개나 되는 각종 바이러스가 기생한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박쥐까지 잡아먹겠다는 몬도가네식 인간의 식문화가 자초한 불행이라 하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2-02

‘진중권’과 ‘윤석열’

안재휘 논설위원명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자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선생은 명문의 후예답게 선비로서의 기상이 높았다. 이승만 정권의 국정농단을 보다 못한 그는 1951년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 뒤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홀연히 권부를 떠났다.이시영의 성명서는 신랄하다. “정부 수립 이래 지금까지 고위 직위에 적재적소 인재가 등용된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탐관오리가 가는 곳마다 날뛰어 국민 신망을 상실하고 정부의 위신을 훼손하고 국가의 존엄을 잃어 신생 민국의 장래에 암영을 던지고 있으니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나랏일이 틀려도 시비를 거는 자조차 없다”권력 핵심을 향해 촌철살인의 명검(名劍)을 휘두르고 있는 진보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살아있는 권력에 예리한 법치의 창끝을 들이밀다가 코너에 몰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고난이 깊다. 좌파 인사들은 대체로 두 사람에게 ‘배신자’ 이미지를 덧칠하기에 여념이 없다.우리 역사 속에서 자신을 발탁한 임금을 향해 ‘곧은 소리’를 펼치다가 수난을 당한 참 선비는 드물지 않다. 때로 그들은 역적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역사는 그 인물에 결코 ‘배신자’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나라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선비의 길, 공직의 길이 어찌해야 하는지는 역사에 다 나와 있는 셈이다.진영을 불문하고 진중권의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의 말에는 뭇 지식인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엄정한 선비의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에는 천박한 패거리 의식에 찌들어 자기가 신봉하는 진영에 맞춤식 궤변을 줄기차게 상납하는 비겁한 곡학아세(曲學阿世) 무리와는 확연히 다른 뭔가가 있다.법을 집행하는 검사 윤석열을 향한 진보 진영의 ‘배신자’ 논리는 사람에 충성해온 케케묵은 구시대적 폐습의 시궁창에 인식의 뿌리를 드리우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한다. 현직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2위를 했다는 뉴스는 착잡하다. 구상유취한 진영논리 뻘밭 속에서 얼마나 우리 국민이 답답하고 갑갑했으면 그를 대안으로 떠올렸을까 짠한 심정마저 든다.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의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나오는 거의 모든 참상이 나라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절에 진중권과 윤석열을 함부로 ‘배신자’로 낙인찍는 일은 가당치 않다. 비난하는 자들이야말로 비겁한 지식인이요, 민주주의의 배신자요, 역사의 죄인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신봉해온 사상이 오류로 판명 날 때, 소속한 집단이 끔찍하게 오염될 때, 제왕적 권력을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황제적 권력을 휘두를 때 ‘좌충우돌’하면서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을 역사는 결코 ‘배덕(背德)’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법을 수호하려는 검찰총장이 매일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퇴근해야 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2020-02-02

바닷가 카페, 새로운 일상이 되다

조현명 시인포항 칠포리에서 오도리까지 해안 길을 따라가노라면 가장 뜨거운 장소가 카페들이다. 높은 곳일수록 경치가 좋다. 낮아도 갯바위와 파도소리 그리고 수평선이 보이면 충분하다. 시원한 망망대해를 굽어보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열린다. 거기에 갯바위와 갈매기 그리고 햇살이 부서지는 파도라니 평온함이 커피 한 잔과 함께 몸에 충만해진다. 단연 공기와 향기 또한 좋아서 오래 머무르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경치 좋을만한 곳곳에 새로운 카페가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나는 특히 이 해안 길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거의 갈매기처럼 한 바퀴 휘휘 도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도심에서 먼 곳까지 사람들이 많이 올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신혼의 남녀나 한참 연애중인 남녀나 할 것 없이 이상하게 젊다. 간혹 중년이 끼어있긴 하나 그들은 곧바로 자리를 뜨고 카페에 오래 앉아 풍경 속에 살기나 하듯 소일하는 것은 젊은 부부다. 하도 이상해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어보기까지 했다. “집은 좁은데 여기는 넓고 시원하고 좋잖아요. 주말이라 할 일도 없고 아이와 남편같이 시간 보낼 겸 나왔어요.”, “사진 찍을 데가 많잖아요. 이런 곳에 왔다고 자랑도하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랬다. 새로운 트렌드인데 내가 그걸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특별히 겪고 있는 결핍이란 문제를 가려서 해소해주려 한 것이 카페가 성업인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의 결핍, 내속에 오래 전 자리 잡았던 동경하던 분위기 그리고 환상과 꿈에 대한 결핍, 꼭 가지고 싶었지만 잠시만 누려도 기분 좋은 그런 것들…. 한마디로 꿈과 환상을 잠시 동안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카페라면 누구에게라도 대환영일 것이다. 거기다 평소에 풀어놓지 못한 수다라니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가볼만한 곳이 된 것이다. 심지어 아저씨들도 술보다 커피를 마시며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늘어나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풍경 속에 앉아 웃고 떠들며 시간 속을 거닌다는 것은 왠지 삶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 같다. 아니 모든 결핍을 잊게 해주는 힐링의 시공간이 열리는 것 같다. 아이들과도 같이 앉아 이것저것 나누면서 햇살과 바람을 즐기듯 앉아있는 젊은 부부와 곁눈으로 흘낏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남녀들,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별 의미는 없겠지만 끝없이 해안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떠드는 사람들, 바닷가 카페에 가면 그것이 새로운 일상이 된다. 한마디로 일상을 즐긴다는 표현이 맞지 싶다. 그러다보니 신종 매니아도 생겨났다. 요즈음 카페를 순회하면서 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폰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는 SNS가 늘어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이 있다. 그것을 이용해서 유혹하든지 말든지 나는 이 동화 같은 바닷가 카페에서 작은 꿈을 수평선과 파도에 실어 놓고 놀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2020-02-02

윤석열 총장 누구를 향한 충성인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검찰 총장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상반된다. 청와대를 향한 그의 칼날을 극찬하는 사람도 있고, 그의 기소를 정치 행위로 매우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에 이어 울산시장 선거개입 혐의로 청와대 비서관 등 13명을 전격 기소하였다. 윤석열 총장의 과묵한 언행과 뚝심은 포청천을 연상시키면서도 정무적 판단력을 상실한 고집불통의 이미지로 비쳐지기도 한다. 어느 여론 조사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차기 대권 후보 2위까지 급상승했다는 보도도 있다. 권력 핵심부를 향한 그의 기소권 행사를 보는 시각도 양분되어 있다.강경 보수층과 제1야당은 윤석열 총장의 검찰권 행사를 적극지지 옹호하는 입장이다. 특히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반문 태극기 세력들은 ‘윤석열 검찰 총장을 지켜내고 문재인을 끌어내자’는 광고까지 내 걸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총장이 이 시대 정의의 징표임으로 그를 지켜 ‘국민혁명’(?)을 완수하자고 주장한다. 결국 윤석열 총장의 청와대 권력 핵심에 대한 수사범위 확대와 기소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의 부당성을 공수처 폐지와 윤석열 보호라는 명분을 적극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반면 집권 여당과 진보층에서는 청와대를 겨낭한 윤석열 총장의 수사권 행사는 상도를 벗어난 탈선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며칠 전 검찰청에 출두하면서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기획된 정치적 수사’라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여당 대표도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한 행사는 국민의 인권 침해라고 경고한바 있다. 결국 이들은 윤석열 총장의 조국 교수 가족에 대한 수사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기소에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총장의 기소권 남용은 검찰의 기득권 보호 차원이며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우리는 이 상반된 입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선 윤석열 총장에 대한 평가는 진영논리에서는 탈피해야 한다. 그는 취임식에서 ‘개인에 대한 충성이 아닌 조직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대통령도 ‘살아 있는 권력’에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하였다. 그의 권력 핵심부를 향한 기소권 행사를 항명이나 청와대와의 대결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충성은 임명권자를 향한 충성이기 보다 검찰 조직을 위한 충성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조직에 대한 충성이 자칫 검찰의 기득권 유지나 집단 이기주의로 연결될 때 그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윤석열 총장의 기소권 행사 문제는 현재로서는 판단을 유보해야한다. 그것이 정쟁의 수단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그의 기소권 행사가 ‘조직에 대한 충성’도 ‘정치적 행위’도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도 조직에 대한 맹목적 충성보다는 정의 실현의 기수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는 타협이 통하지 않는 강직한 검사, 원칙론자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검사 윤석열은 과거 자신의 원칙과 소신 때문에 전 정권에서 좌천(左遷)된 적도 있지 않는가. 그는 현 상황에서 사퇴할 수도 없고, 사퇴해서도 안 된다. 그의 행적은 임기 후 정확히 평가되길 바란다.

2020-02-02

변화의 문을 여는 방법

1997년 미 해군 전투함 벤포드호(USS Benfold)의 함장 이취임식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전임 함장이 인사말을 마치자 병사들의 야유와 휘파람소리가 난무했습니다. 벤포드호는 당시 가장 군기가 엉망이고 형편없는 부대로 유명했습니다.새로 취임한 아브라쇼프 함장은 그 모습을 보며 몇 년 후 자신의 이임식을 상상했습니다. 부대원들의 존경 어린 눈동자, 감동적인 이임 연설과 우레 같은 함성, 절도 있는 경례를 받으며 함선을 떠나는 모습이었습니다.그는 ‘경청’을 시작했습니다. 몇 달간 모든 장병과 대화를 나누며 가장 큰 불만이 무엇인지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깡깡이’라고 하는 배 밑바닥 청소와 페인트칠 작업과 수천 개의 녹슨 나사를 교체하는 일이었습니다. 바다의 신사라고 해군에 입대했는데 한 달이 멀다 하고 배 밑으로 내려가서 망치를 두들기거나 녹슨 나사를 뺐다 끼웠다 하는 일만 하니 사기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습니다.함장은 곧바로 나사를 녹슬지 않는 알루미늄 나사로 교체하고, 깡깡이 작업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병사들이 해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독은 장병들에게 함포 사격과 출동 훈련 같은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결국, 벤포드호 부대원들은 그 이듬해 전투력 측정에서 미 해군함 중 최고 점수를 얻는 영예를 차지했고 장병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으로 변했습니다.귀 기울여 듣는 일은 이처럼 거대 조직에도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지도자가 부하의 신뢰를 얻으면 조직은 살아나기 마련입니다. 메를린 퍼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변화의 문고리는 손잡이가 안쪽에만 달려있다. 그 누구도 논리적 설득, 감정적 호소로 그 문을 밖에서 열 수는 없다.”조용히 귀 기울이며 다가갈 때 비로소 변화의 문이 딸각 열리는 마법의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2

2020년 포항경제의 5대 과제

2020년 포항경제는 2019년보다는 희망적일 것이다. 세계 경제 상황이 급변하지 않는 외부요인이라고 가정할 경우 포항 지역경제 전망을 살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철강생산은 세계 교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전년 수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지역 제조업 설비투자도 기존 설비의 유지보수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고용도 은퇴 인력의 빈자리를 메꾸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건설투자는 지진복구 등에 대한 기대감과 저점을 확인한 아파트 등 부동산경기 회복 기대감 등으로 전년보다는 나아질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소비심리도 다소 회복하고 도쿄 하계올림픽 등에 따른 가전특수 등으로 미약하나마 회복 조짐을 보일 것이 기대된다. 따라서 종합적인 경제지표는 적어도 전년과 비슷하거나 미약한 우상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절대 수치 자체는 낮을지라도. 이러한 전망하에 포항은 과연 2020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현실을 직시한 상황에서 어떠한 이벤트에도 포항이 대처 가능한 탄력적인 체질을 갖추어야만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아래의 5대 과제만큼은 적어도 유의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지진복구사업의 로드맵을 5월 말까지는 완성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해 끄트머리에야 겨우 지진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모든 사업이 법만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에서 ‘예산’이라 부르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산’이라는 것은 미리 정한 대로 지출하는데 일반적으로 그해 사용할 돈은 그 전해 7월이면 정해진다. 아쉽게도 지진 특별법 자체가 연말에나 통과되었다. 이는 중앙정부가 특별히 선심을 쓰지 않는 한 특별법에 기반한 예산집행이 2020년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포항은 시행령이니 규칙이니 하는 세부적인 절차 마련에 적극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 부문에 어떤 사업을 얼마의 예산으로 언제까지 투입할 필요가 있음을 중앙정부에 주장하기 위한 최종사업계획의 청사진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두어야만 한다. 구체적인 견적까지 포함한 계획서를 늦어도 5월말 정도까지는 예비해두어야만 긴급 예비비라도 올해 당겨쓰거나 늦어도 2021년에 필요한 ‘돈’을 확보할 수 있다.앞으로 중장기 포항발전방안을 순조롭게 추진하기 위해 총선 이후 ‘4자회담’을 통해 지역 주요 사업에 대한 우선순위를 7월 말까지는 확정할 필요가 있다. 포항경제라는 물레방아가 정상작동하려면 일반적으로 3개 축이 필요하다. 포항경제라는 물레방아로 물길을 유도하는 홈통과 마지막 방아머리를 조절하는 역할은 ‘행정’이다. 물레방아의 핵심인 물레바퀴가 ‘포스코’라면 이와 연동되어 작동되는 방아굴대와 눌림대는 지역 기업들이 모인 ‘상공회의소’다. 평상시에는 이 ‘3자’에 의해 지역경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올해는 4월 21대 총선이 있다. 선거법 개정 등으로 포항 정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포항의 대표선수로 중앙정치에서 활약할 21대 국회의원은 지역 현안이 무엇이고 그 완급과 시한에 대해 충분히 지역경제의 ‘3자’와 공감하고 결정하는 데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포항경제라는 물레방아가 지속 정상작동할 수 있게 된다. 총선종료와 동시에 지역에서는 반드시 포항경제의 앞날에 대한 중요 핵심사안과 우선순위를 ‘4자회담’을 거쳐 확정하였으면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4자의 대표선수가 바뀔 때마다 포항의 앞날을 위한 전략을 새로 짜내느라 세월만 허비하기 쉽다.영일만관광특구는 포항상륙작전 70주년의 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포항이 낙동강 방어선의 격전지로서 포항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형산강전투로 대반격에 나선 증거는 지금도 포항의 전적비, 전승기념관 등에 생생히 살아있다. 방문자가 즐겁지는 않더라도 전쟁과 평화, 한국전쟁 당시를 되새기며 호국 정신을 일깨우는 포항만이 가능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포항의 숭고한 관광자원이다. 마침 2020년은 포항 상륙작전을 포함한 기계 안강전투, 형산강 전투, 비학산 전투로 이어지는 한국 아니 포항 전쟁 70주년이다. 대대적으로 관광방문객들에게 호국 도시 포항을 영일만 관광특구와 연계, 홍보한다면 포항 관광의 새로운 콘텐츠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왕이면 세계 각국에서 포항전투에 참전했던 참전용사 가족들까지 초청하는 행사도 나쁘지 않다.국제크루즈의 오아시스 농수산식품 가공유통센터 조성계획을 10월 말까지는 확정하자. 포항이 오랫동안 바랐던 영일만항의 국제여객부두와 터미널공사도 올해 마무리된다. 하지만 국제크루즈산업은 단지 항만에서 크루즈선이 출항하거나 기항한다고 절로 관련 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고용을 확대하는 경제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크루즈 관광객들이 도착한 항구도시에서 먹고, 자고, 사고, 즐기는 데 기꺼이 그들의 지갑을 열어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포항에 그들이 돈을 마음껏 쓰고 싶어도 이를 수용할 ‘소비기반’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게다가 특급호텔, 면세점이나 카지노, 고급음식점 등 소비기반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은 대안 마련에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영일만항의 장점인 냉동 냉장 컨테이너 처리능력과 궁합이 맞고 지역 농수산물을 활용한 식품 가공산업은 안성맞춤이다. 이왕이면 가공은 물론 식품전시 및 판매까지 모두 갖춘 ‘농수산식품 가공유통센터(가칭)’를 항만 배후단지에 만들면 좋겠다. 게다가 웰빙 시대에 맞는 ‘햇섭(HACCP)’이나 ‘할랄(HALAL)’인증까지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센터는 관광객에게 보고, 먹고, 사는 것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게다가 언제든지 페리선, 컨테이너선, 크루즈선 할 것 없이 그들에게 식료품을 공급하는 기지도 될 수 있고 대북경협사업의 한 꼭지도 될 수 있다. 이는 사막과 같이 끊임없는 망망대해를 거친 선박이 보급품까지 조달하는 국제크루즈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엔 최소한 조성계획만이라도 확정하였으면 한다.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한 시나리오별 실리적 지역참여전략을 마련하자. 모두 남북 또는 북미 간 정상회담만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이후다. 유엔제재가 풀려야만 비로소 남북 간의 경제협력사업이 정상 가동될 수 있다. 물론 순식간에 실현될 수도 있다. 때가 되면 지역마다 대북경협사업을 선정하니 누가 나설 것이니 하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어쩌면 미국, 일본 등은 준비를 마치고 그들의 ‘국익’ 극대화를 위한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포항의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고 대북 전진기지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리부터 지역 산업계 모두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대북사업이 개시되었을 때를 대비해야만 한다. 대북관광사업프로그램, 북한의 철도현대화와 러시아-북한-남한으로 이어지는 가스파이프라인의 바람직한 공급노선계획과 지역 철강업계의 참여 가능성 등 모든 분야에 대해 치밀하게 주판을 튕겨둘 필요가 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2-02

울릉공항 착공, 2020년 울릉 도약 원년

김병수 울릉군수다사다난했던 2019년을 보내고, 꿈과 희망의 2020년 경자년이 시작됐다. 한해를 돌아보면 감격스럽고 기쁜 일도 있었지만, 평생 가슴에 묻고 기억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먼저, 2019년 한해도 우리 울릉도가 한층 더 도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한 해였다. 오랫동안 모든 군민의 숙원으로 남아있던 울릉 일주도로가 지난해 3월 완전히 개통됐다.한 시간 이상 갔던 길을 되돌아왔던 북면 지역이 20여 분으로 단축되면서 주민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일본의 수출규제 경제전쟁에 따른 국민적 노 재팬 운동과 울릉도 섬 일주도로 완전 개통과 맞물려 울릉도 관광객이 증가하는 계기가 됐다.바다를 메워 활주로를 건설하고 산을 깎아 여객선터미널을 만드는 울릉도 개척이래 최대 공사 금액 6천633억 원 규모 울릉공항 건설의 시공사가 선정됨에 따라 올해 착공에 들어간다.서울은 물론 전국을 울릉도와 1시간대로 연결하는 획기적인 공항건설은 울릉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물이 맑고 풍부하고, 공기 좋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세계 최고의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래서 관광객들로 넘쳐날 것이다.공약 1호인 대형여객선 유치 사업의 협상대상자로 (주)대저건설이 선정됐다.건조비 500억 원을 들여 총톤수 2천125t, 정원 932명, 최고속력 41노트 재원의 여객선을 내년 초 발주할 계획이다. 역대 국내 여객선 중 최고의 성능을 보유한 여객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 여객선은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어떤 경우에도 15% 이상 기울지 않는 카타마란형(쌍동선) 여객선이다. 2021년 취항을 위해 최대한 노력 하겠다.5천t급 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울릉(사동) 항이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지난해는 하늘길, 땅길, 바닷길을 열고자 염원했던 울릉 주민의 소망에 한 걸음 더 나아서는 뜻 깊은 한해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독도 인근 해상에서 소방헬기가 추락, 온 국민을 비통하게 만들었다. 대형 화재로 인해 15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다.울릉도는 오징어 수산업으로 가장 발달한 섬이다. 그런 울릉도가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싹쓸이 조업에 오징어 씨가 말라 버렸다. 정부차원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새롭게 시작한 2020년은 과거를 거울삼아 한 걸음 더 전진하는 군정을 이끌어 나가겠다. 꿈이 있는 친환경 섬 건설을 위한 군정 기조를 바탕으로 2030년 미래 울릉에 대비한 군 전체를 아우르는 중·장기 종합발전계획과 전략계획을 수립·실천하겠다.울릉도·독도와 동해에서는 우리나라 수천 척의 어선이 조업하고 외국 어선도 많이 조업하고 있다. 울릉주민은 물론 동해에서 조업하는 선원들의 1차 응급처치를 울릉군보건의료원이 담당하고 있다. 응급헬기를 운영할 수 있는 울릉소방서 유치를 통해 응급, 화재 진압 헬기를 상주배치,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한 울릉을 건설하겠다.계층별 세대별 맞춤형 주민 복지를 추진해 군민 모두의 행복 구현을 위해 노력하겠다.울릉도의 주산업인 관광산업과 아울러 농어업 인구의 고령화와 섬 지역 특수성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는 농·축산, 임업, 수산업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서로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울릉도를 잘 보존하고 친환경적으로 개발해 울릉도를 군민 모두가 행복하고 살고 싶은 섬으로 건설하겠다. 물론, 전 세계와 함께 누릴 수 있는 꿈이 있는 친환경 생태 관광섬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경자년 새해는 새로운 울릉 도약의 원년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섬 독도와 태고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울릉도를 더 잘 가꾸고 보존할 것을 다짐한다.모든 국민들이 꼭 한번 울릉도를 방문해 주길 소망한다. 독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2020-02-02

연대의 힘

박현미 회사원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상대를 짓밟고 생존하는 정글을 보는 느낌이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거북하다. 이들의 꿈을 지원한다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잔인함은 시청하는 내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기분이다.입시와 취업 등,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매일 서바이벌 게임처럼 살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순으로 자리를 지정하는 순간, 친구는 경쟁 상대로 변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겠다며 끙끙거리다가 대상을 알지도 못하는 분노로 마음이 가득 차기도 했다. 결국 능력 부족, 근성 부족, 체력부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체념하고 말았지만.오디션 서바이벌은 나처럼 뒤처지는 것이 싫어 도망치는 부류가 맘 편히 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늘 경쟁에 져 울고 있는 이들에게 시선이 먼저 간다. 그들이 겪는 좌절이 안타까웠고 잘 털고 일어나길 바라는 무거운 맘으로 지켜봤다.어느 휴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시선이 저절로 갔다. 사회자의 멘트 한 마디가 가슴에 콕 박혀왔다. “여러분은 옆에 친구들이 다 경쟁자라고 느껴지나요?” 참가자들은 어깨를 나란히 걸쳤지만 불안한 눈빛으로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주어지는 팀 미션과 경연은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입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커트라인을 넘겨 전원 생방송 무대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와!”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환성이 터졌다. 기존의 오디션 방식에서 봤던 수없이 딛고 올라야만 하는 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함께 오르는 정상이라니. 왕좌에 올랐다 해도 미안함에 고개만 떨구던 승리자들, 그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야 했던 탈락자들, 기쁨과 좌절, 두 감정으로 얼룩진 현장을 보는 일은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했던가?이번은 달랐다.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린 소년들은 얼싸안고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향해 맘껏 웃는다.나는 이들의 동반성장을 무척 기대한다. 시간이 닿는 한 그들의 발전과 성장 과정을 지켜보려 한다. 승자독식 세상에 오래 함께 가는 것이 진정한 힘이고 바른길임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별 인터뷰에서 벌써 이들은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본인들의 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다 함께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내겠다는 포부가 당차다. 결국에는 이들도 일부만 데뷔하고 각자 다른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를 끌고 당겼던 기억은 살아가는 동안 큰 힘을 주고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며 서로를 지지했던 추억을 오래 간직할 것이다.얼마 전 포항에 이런 연대의 철학을 담은 ‘잉클링스’라는 북클럽이 생겼다. 잉클링스(Inklings)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수들이 만든 문학 토론 모임이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S.루이스와 그의 형 워렌 루이스,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이 주축이 되어 1930년부터 모임을 시작했다. 브런치를 나누며 읽은 책과 쓰고 있는 작품을 매주 1~2회 모여 잡담처럼 나누던 소모임이다. 포항 잉클링스도 전국 각지에 흩어진 멤버들과 책으로 연대하고 동행하는 것을 추진한다. 함께 호흡하며 느슨하게 연대해 서로를 격려한다. 포항 지역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작가연구 소모임’에 참여해 위대한 작가의 작품으로 토론하고 이 결과를 한 달에 한 번 전국 각지의 멤버들과 문서로 공유하고 결국 책으로 출간해 모든 멤버들에게 선물한다. 포항에서 시작하고 전국 각지로 소모임을 확산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지지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큰 용기를 얻는다. 연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한마음이 되어 힘을 합해 추진하면 못해 낼 것 같은 일도 결국 해내게 된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임계점을 넘는 순간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짜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 무수한 경쟁 속 공감받지 못하는 고민과 현실 앞에서 이런 모임 하나 간직하며 연대한다면, 서바이벌 같은 세상도 조금은 살만하지 않을까? 모두 같이 성장하는 원팀(One team)을 상상해본다.

2020-02-02

아버지

한밤에 찾아 들어간 대전 집은 아버지 혼자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가 척추 디스크 수술로 입원하신 지 두 주째다.여러번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는데, 귀가 안 좋아 못 들으신 것이었다. 결국 내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서야 문은 열렸다.간단히 씻고 건넌방에 눕는데 전등 둘 중 노란 보조등 하나만 켜졌다. 발밑 쪽을 비추고 있어 그닥 부담스럽지 않았다.고향에 돌아온 탕자 같은 심정으로 전전반측 이런저런 상념에 시달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새벽부터 건넌방 바로 앞 주방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잠 없어진 아버지가 팔십팔세의 노구를 움직여 밥을 지으시려는 것이었다. 일어나 만류하려다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어머니 입원 하시고는 저렇게 혼자 밥을 지어 드시는 것이었다.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아버지와 아들이 맛없는 아침밥을 먹는다. 아버지는 문득 옛날 옛적 인천에서 공고 다니던 시절에 서울로 대학 입학 시험 보러 가던 이야기를 하셨다. 충남 태안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인천으로 가출을 하다시피 올라온 아버지였다. 나와 아버지는 동창지간이었다.식사를 하고 나서야 제대로 씻고자 하는데 어젯밤부터 욕조에 던져져 있는 속옷 한 벌이 눈에 심히 거슬린다.아버지의 속옷을 난생 처음으로 손으로 주물러 빨았다. 기왕 시작한 것, 덤으로 벽에 걸려 있는 수건 두 장도 함께 빨았다.체육학과를 나오실 정도로 건장하셨던 아버지는 십 년 전에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 나으셨지만 이제는 몸에 뼈만 남다시피 하셨다.체육을 전공하셨어도 아버지는 문학 지망생이기도 했다. 집에 남아 있는 문고판 영소설들, 펄벅의‘북경에서 온 편지’같은 소설책들은 아버지가 대학시절에 보시던 것들이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응모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어보기도 했다.고학생으로 입주 과외를 하며 대학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소설에 당선되지 못하고 대학원에 갈 수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도 못하셨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은 아버지는 홍성, 덕산, 대전, 부여 등지로 전근을 다니다 장학사 시험을 보고 교육청에 들어가 계시다 교감을 거쳐 교장으로 퇴직을 하셨다.지금은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으시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엄청 많이 드셨다. 한번은 겨울밤에 마중을 나갔다 눈길에 쓰러져 계신 아버지를 부축해서 모셔온 적도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못다 이룬 꿈을 약주로 달래신 것은 아니었던가 한다. 딸 하나를 두고 새로 어머니를 만나 아들 셋을 키우면서 당신의 삶은 무언가에 포박 당하신 셈이었다.이제 어머니 계신 병원으로 가야 할 참이다. 이제는 내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없이 깨닫는다. 본래 인생의 순환이 그러한 것이리라./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1-30

뿌리깊은 대나무 키우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대구·경북(TK)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한국당의 물갈이론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형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4·15 총선에서 공천 가산점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고, 원외 인사도 컷오프(공천배제)를 적용하는 방안 등을 밝혔다. 그동안 한국당 공관위가 발표한 안대로라면 최고로 많이 받는 게 50%의 청년 가산점이었다. 여기서 가산점은 절대점수가 아니라 자기가 받은 점수의 50%를 가산하는 방식이다. 가산비율을 받은 점수에서 올릴 게 아니라 절대적인 점수를 올려주는 방식을 채택할 필요성이 있다.정치권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대목은 바로 권역별 컷오프 비율이다. 총선기획단이 현역 의원의 30%를 컷오프해 전체 50%를 물갈이하겠다는 기준을 발표한 바 있는 만큼 현역의원이 많은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은 컷오프 우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무엇보다 컷오프 기준 지역구 여론조사 방식이 대국민 조사와 당원조사로 정해지면서 집단적인 반발움직임도 보인다. 당 지지율이 50%를 훨씬 상회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개별 의원들의 지지율이 이에 못 미친다고 해서 컷오프시킨다면 지역 민심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이렇듯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에 대한 컷오프기준은 어떻게 결정하든 군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다가오는 총선 결과를 미리 예측할 때 쇄신과 보수통합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전국적으로는 그리 신통한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렇다면 전국 각 지역에서 젊고 참신한 인재들을 적극 공천해 새 일꾼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씨를 뿌려 향후 다가올 대선, 또 그다음의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중국 어느 마을에 새로 이사온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마을 농부들의 대나무 키우는 방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농부들이 심은 대나무는 다른 곳과 달리 싹도 나지 않고, 제대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사꾼이 농부들에게 잘 자라지도 않는 대나무를 왜 심는 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두 해가 지나고, 4년이 되었지만 대나무는 여전히 순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농부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이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5년째가 되자 대나무 밭에서 갑자기 죽순이 돋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자 대나무는 무려 15m이상 자라서 빽빽한 숲을 이뤘다. 농부들은 그제서야 대나무를 베어냈다. 깜짝 놀라는 그에게 한 노인이 이렇게 답했다.“모소라는 이름을 가진 이 대나무는 순을 내기 전에 먼저 뿌리가 땅속에서 멀리까지 자란다네. 그리고 일단 순이 돋으면 길게 뻗은 그 뿌리들로부터 엄청난 양분을 얻어 순식간에 키가 자라네. 부질없어 보인 4년이란 시간은 대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준비기간이라네.”우리 정치판에서 민심의 양분을 충분히 받아들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싶다면 이처럼 묵묵히 대나무를 심고 가꾸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해답없는 컷오프 기준에 큰 깨달음을 던져주는 일화다.

2020-01-30

‘팬데믹’ 경고

팬데믹(Pandemic)은 국경을 넘어 광범위한 지역으로 번지는 전염병을 일컫는다. 우리말로 범유행전염병이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 경고단계를 6단계로 나누고 그중 최고 경고등급을 팬데믹이라 한다.역사적으로 팬데믹으로 지칭된 사례는 여럿 있다. 6세기경 이집트에서 시작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최악일 때 도시인구가 40%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동로마제국의 확장을 멈추게 한 배경이라는 설도 있다. 정확한 병의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페스트 계열로 짐작하고 있다.14세기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도 팬데믹의 사례다. 페스트는 사람의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해 썩는다하여 흑사병이라고도 부른다. 지금까지 발견된 전염병 중 가장 단시간에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 병으로 1억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니 놀랍다.1918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도 2년 동안 5천만명의 목숨을 뺏어간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15만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세계보건기구는 범유행전염병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는 질병으로 2009년 멕시코에서 시작해 세계로 번진 신종플루와 사스, 아프리카 전역에서 유행한 AIDS 등을 손꼽고 있다. 특히 중국 우한에서 이번에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팬데믹의 일종으로 본다.우한 폐렴으로 전세계가 긴장감에 빠져 있다. 발생지인 중국에서는 연일 감염자가 늘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당국의 조치가 거의 속수무책처럼 보여 안타깝다. 빌게이츠는 2017년 뮌헨 안보 콘퍼런스에서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 변화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해 주목을 받았다. 그의 발언이 실감 나는 지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30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한국이 미군 지프차를 해체하여 차를 만들기 시작한 게 50년대이다. 그리고 1960년대 한국에서 차를 생산한 새나라 자동차가 있었다. 그러나 전적으로 일본의 기술과 부품에 의존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외환사정의 풍랑을 겪으며 몇 년을 못 버티고 생산라인이 가동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등장한 것이 신진자동차의 ‘코로나’택시였다.일본 도요타자동차와 기술제휴로 1966년 5월 처음 나온 코로나는 우리나라 도로사정에 알맞게 만들어져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었고 70년대 중반 현대 ‘포니’가 나오기까지 10년 가까이 한국의 도로를 지배했다.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의미로 보면 참 좋은 단어이다. 그런데 그 왕관인 코로나 때문에 지금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정부가 중국을 옹호하기 위해 우한폐렴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러달라고 요청을 한다고 해서 세간의 여론이 분분하다. 동기야 어쨌든 50년 전 인기였던 ‘코로나’라는 단어가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이번엔 아주 악성으로 다가왔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감염 확진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전파속도가 2002년의 사스, 2012년의 메르스 보다 빠르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 사스 메르스 모두 중간숙주가 박쥐라고 한다. 메르스는 중동이 발원지라고 하나. 사스는 중국 광동성에서 발생하였기에 이번 중국 우한의 코로나까지 세 개 중 두 개가 중국발 바이러스이었다.사진에서 보는 중국 음식점 메뉴는 가히 충격적이다. 중국은 박쥐는 물론 일반 쥐까지 각종 설치류를 날것으로도 먹는 지독한 미개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도저히 음식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인간 몸속에서 변이를 일으켜 폐렴같은 것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형성되고 이것이 접촉, 호흡기 등으로 급속히 전파되는 것이다.혹자는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1위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은 장차 세계 1위의 국가의 모습이 전혀 아니다. 물리적으로 1위가 될 수는 있어도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1위가 될 수 없다면 중국은 영원한 후진국일 뿐이다. “도대체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멀리 6·25시절 통일을 방해한 것도 중국 때문이다. 북한이 저리 날뛰면서 핵실험을 하면서 한국을 깔보는 것도 모두 중국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핵실험에 반대하고 유엔의 제재 결의에 찬성하는 척하지만 제재에 적극적이지 않고 개별국가 제재에는 반대하는 등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매캐한 황사와 미세먼지를 발생하는 것도 중국의 근원일 경우가 많다.이제 바이러스 전파로 중국 때문에 난리이다. 그것이 중국의 미개한 음식문화에서 발생하였기에 당하는 한국은 더욱 억울하다. 제발 중국이 정신 차렸으면 한다. 북한의 핵문제에서도, 환경관리에서도 음식문화에서도 이제 큰 나라의 정도를 찾았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영원한 미개국일 뿐이다.

2020-01-30

배움의 자세에 대해

첫 독주회를 갖는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는 무대 위에 오른 순간 온몸이 굳고 말았습니다. 맨 앞 자리에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카잘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저분에게 내 연주는 얼마나 우습게 들릴까?’그는 덜덜 떨면서 연주를 시작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연주가 끝나 있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인사를 하는데, 열렬히 박수를 치는 카잘스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형편없는 자신의 연주를 비웃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피아티고르스키는 자존심이 상한 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그 후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그는 마침내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되었습니다.어느 날 한 모임에서 카잘스를 만났습니다. 첫 연주회를 회상하며 카잘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그날 내 연주는 형편없었는데 왜 그리 열렬한 박수를 보내셨습니까?” 카잘스가 대답합니다. “글쎄요, 그날 연주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기억해요. 그날 밤, 당신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음을 휼륭히 연주해내었소. 바로 이런 자세로.”카잘스는 피아티고르스키가 연주하던 자세를 취해 보이며 말했습니다. “설사 당신의 연주 중 열 가지 음이 엉망이었다고 해도 한 가지 음은 분명히 나보다 월등히 좋았소. 나는 그날 당신의 연주회에 간 덕분에 그 음을 정확히 연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당신은 분명 그런 큰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어요.”피아티고르스키는 카잘스 말에 저절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세계적인 대가는 자신보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에게서도 얼마든지 배울 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21세기 문맹은 읽고 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배울 의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배우려는 자세를 다짐하는 새벽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30

확실한 행복

김병래시조시인살다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하는 일이 잘 풀리거나 분주할 때는 그럴 겨를이 없지만, 삶이 여의치 않아 고달프거나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했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는 각자의 처지와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종교인들이라면 신의 뜻이나 교리에 따라 사는 것을 최선으로 칠 것이고,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을 삶의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로지 재물이나 권세, 명예를 얻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대다수 사람들은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사람들을 롤모델 삼아 그들의 성공전략과 처세술을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한다고 모두가 성공하고 출세하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절박한 질문에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할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고 삶의 명제라는 것이 성인 현철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기에 앞서 왜 사는가를 물어야 한다. 목적이 있고서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왜 사는가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줄이면 ‘행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불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바란다고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못한 것을 비관하고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살아 있는 한 행복해지려는 바람과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막상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아무튼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행의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으로 버려야 할 것은 탐욕이다.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행과 비극은 대부분 탐욕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채울수록 갈증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욕망이란 채울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절제를 할 줄 알아야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버려야 할 것은 타인과 비교하거나 지나치게 남의 눈을 의식하는 버릇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에 비해서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은 것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한다. 나보다 풍족한 사람들과 비교를 하고, 그들의 눈에 초라하게 보일 것을 비관하기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매사에 남과 비교를 하고 남의 이목을 살피기에 급급하다 보면 소위 자아상실의 상태가 된다. 세상을 다 얻고도 자신을 잃어버리면 공허할 뿐이다.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곁에 있다고 한다. 요즘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이라 한다. 주변이나 이미 가진 것 중에서 찾은 행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것이라는 얘기다.

2020-01-30

당신의 오늘을 파괴하라

장규열 한동대 교수세상이 바뀌었다.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디지털과 온라인은 이미 생활이 됐다. 인공지능은 생활의 지평에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불안정과 불확실이 오히려 상수가 됐다. 내일을 예측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태도마저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전통과 관습이 푯대가 됐던 어제와는 결별해 오늘 우리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사이버 세상에는 정답이 실종됐다. 이전의 상식과 누군가의 권고에는 늘 물음표가 달린다. 트렌드의 유효기간이 짧아졌으며 유행의 속도는 상상을 넘는다. 이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 자신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세상이 바뀐 만큼 나는 변화하고 있는가.‘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주창했던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이 최근 별세했다. 방대한 경영 사례들을 통해, 진정한 미래가치를 열어가는 방법이 ‘파괴적 혁신’임을 증명했다. 현대 경영의 모든 영역에서 그런 방식의 변화가 상식이 되어간다고 했다. 조금씩 바뀌어 가는 변화로는 부족하다고 하였다. 정답이 없어진 세상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상식을 거부하고 격식을 파괴하며 새롭게 만들어가는 혁신을 불러와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현대경영의 트렌드는 2010년 이후에는 상식이 됐다고 했다. 파괴의 수준에 이를 만큼 오늘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파괴를 통해 혁신에 이르는 경영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도모해야 한다. 완전히 다른 내일을 만들어 내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치의 계절, 구호로만 변화를 외치는 정당들과 겉으로만 바꾸겠다는 정치인들이 차고 넘친다. ‘새정치’가 뭘 말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새롭다는 외침 가운데 옛 모습이 춤출 뿐, 변화와 혁신이 이처럼 공허하게 들릴 수 있을까. 풍성한 말들이 실제로 무엇을 바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어느 한 자락 바뀔 것으로 아무도 믿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가는데, 우리가 어제의 모습만 반복하고 있다면! 정치가 ‘변화’의 참뜻을 구부리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내일을 맞을 것인가. 이런 고답적인 정치환경이 혹 문화와 경제, 종교와 언론에도 나쁜 영향을 끼쳐, 누구도 진정한 변화를 도모하지 않고 아무도 바뀌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면!변화를 포기하면 내일이 없다. 과거를 반복하면 미래가 없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변하지 않고 살아남을 길은 없다. 변화를 위해 우선 부수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은 경영뿐 아니라 삶의 모든 과정에 적용돼야 한다. 변화하기 위해 부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당신의 오늘을 파괴하지 않고, 내일의 변화를 만날 재간이 없다.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지름길은 먼저 파괴하고 앞서 변화에 이르는 게 아닐까. 당신의 오늘을 파괴하길 기대한다.

2020-01-29

다크넛지 마케팅

‘다크 넛지’마케팅은 소비자가 비합리적인 구매를 하도록 유도해 기업이 이익을 취하는 행태를 말한다.넛지(nudge)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강요에 의하지 않고 유연하게 개입함으로써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반면 ‘다크 넛지’는 선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로 유도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이 번복하기 귀찮아하는 점을 노려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최저가를 찾아 결제하려고 하면 추가 비용이 생기는 것, 디지털 음원 할인행사 후에 이용권이 자동으로 결제되는 것 등이 대표적인 다크 넛지의 예이다. 온라인에서 자동 결제나 서비스 해지 방해 등도 포함된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구독 결제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50개를 임의로 조사한 결과, 무료 서비스 기간 경과 후 유료로 전환하는 앱 26개 중 유료 전환 3일 전 ‘결제 예정’을 고지한 앱이 2개(넷플릭스, 유튜브뮤직)에 불과했다. 이용약관에 ‘매월 일정 시기에 정기 결제 내역을 고지한다’고 명시한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모바일로 계약했는데도 전화로만 해지 신청이 가능한 곳도 있었다. 모두 다크 넛지 마케팅을 의식한 공급자의 횡포다.온라인 결제에 익숙치 않은 기성세대에게 다크 넛지 마케팅은 소비자의 눈을 속이는 불쾌한 마케팅 기법이다. ‘눈 감으면 코베어가는’세태를 그냥 둬선 안 된다. 한국소비자원이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사업자에게 자율 시정을 권고하고 유료 전환 시점이 가까워져 오면 소비자에게 고지하도록 ‘콘텐츠 이용자 보호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고 관계부처에 건의한다니 모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29

날 선 합리성 속에 우리가 잃어가는 것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근대화가 한참 진행된 후에도 여전히 긍정적 의미를 가져왔던 인정(人情)이나 의리(義理)와 같은 말이 언제부턴가 ‘합리적’이라는 말에 의해 대체되어왔다. 말 자체로 보자면 ‘합리적(合理的)’이라는 수식어는 이치에 맞는, 그에 합당하고 부합하는 것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에 대한 영어의 대응어인 rational이라는 말에는 이성(理性, reason)에 부합하는, 즉 어디에서나 옳고 현실에 부합하는 규범과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가 쓰는 ‘합리적’이라는 말에는 우리 본래의 것이 아닌 앞선 서구에서 들어온 더 발전되고 세련된 태도를 지칭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는 듯하다. 어찌 되었건 이 말은 젊은 세대나 도회적 삶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그리고 이들을 정치, 경제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마케팅 슬로건으로 광범하게 쓰이면서 자신을 전통적인 보수가 아닌 ‘합리적’ 보수로 지칭하는 정치인들도 등장하게 되었다.합리적이라는 말의 현재 쓰임은 뭔가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지거나, 단지 이전부터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통용되는 것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마트에 가면 바로 보게 되는 합리적 가격, 합리적 소비라는 말은, 부풀려져 있거나 그렇게 비쌀 이유가 없는 상품의 유통비용을 줄이고 브랜드 로열티를 없앤 가격에 제공하고 구매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이라는 말이 ‘납득할만한(reasonable)’이라는 의미보다는 조금도 손해 보고 살지 않겠다는 근래에 들어 더욱 강팍해진 한국사회의 분위기, 지고는 못사는 현대 한국인의 메마른 성벽을 비추어주는 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필자는 오랜 유학생활과 수도권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대구에서 또 다른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지 1년이 되어간다. 이런저런 예상과는 달리 대구에서의 삶은 사람들 사이가 조밀하고 서로 밀치고 당기고 문제 삼고 삿대질이 빈번한 수도권에서의 삶과는 다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인구 250만이 넘는 대도시임에도 낯선 이들 간의 만남에조차 인정과 예의가 여전히 상당한 정도로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가장 신선했던 것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서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이웃사촌이나 공동체적 삶 같은 말에 딱히 열렬히 공감해본 적이 없음에도 필자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있는 사람들 간에 서로 우호적인 감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척’이라도 하는 것, 그 정도 ‘수고’를 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은 꽤 중요한 차이(쓸모있는 것을 넘어서)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건전하고 쾌적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기실 눈에 안 보이는 ‘진심’이라기보다는 이런 ‘척’과 ‘제스처’의 관행들, 그리고 사람들이 그에 부여하는 의미라고 믿기 때문이다.김찬호 선생같은 사회비평가들은 한국사회의 사회적 삶이 서로 주고받는 모멸감과 그 과정에서 쌓여가는 원한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필자의 체험으로 보건대 이 점은 수도권 도시에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수도권에서의 삶을 떠올릴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손해 볼까 봐 늘 전전긍긍하고 자신을 문제 삼을까 싶어 먼저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수도권이라는 그 좁은 지역에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 산다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어이없을 정도로 상승해 있는 부동산 가격과 천만 자영업자의 파산을 먹고 사는 높은 월세는 수도권에서의 삶을 강팍하고 성마르게 만든다. 이는 단지 의식변화의 촉구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물질적 조건이지만 사태의 더 본질적인 면은 사회와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적인 태도에 있는 것 같다.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사회는 어느 곳을 가던 어디에 전화하건 똑같은 ‘아기 목소리,’ 걸그룹의 말투를 듣게 되는 곳이었다. 매장에서의 친절은 번지르르하고 표준화되어있고, “2만원 되시겠습니다”라는 표현처럼 돈 액수에까지 경어를 붙이는 이상한 존대법의 인플레가 극에 달했지만 정작 그런 말들에서 조금의 마음도 배려도 느낄 수 없다. 그에 비해 필자의 집 주변에서건 포항에서건 안동에서건 사람들은 악에 받쳐 장사하는 모습이 별로 없다. 애써 호객행위하고 일부러 친절한 척하지도 않으며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판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물어보면 스스럼이 없고 성의를 보이며 응대해준다. 물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상황이나 필자가 이들 속에 이웃이 되었을 때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런 수준과 상황에 국한되서라도 그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사회학자 알랭 뚜렌(A. Touraine)은 현대적 인간(modern man)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짐가방을 들고 이제 낯선 곳으로 떠나려는 여행객의 모습이라고 했고, 뉴미디어의 철학자 삐에르 레비(P. Levy)는 정보화시대로 불리는 오늘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윤리는 ‘환대(歡待)’라고 했다. 현대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일종의 여행객이고 늘 어느 정도 낯선 이로서 서로와 조우하고 세상을 접한다. ‘환대’는 단지 능란한 처신과 체면을 위해 면식있는 이들을 열심히 대접하는 척하고 떠받들어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등한 존엄을 가진 또 다른 동류 인간으로서 낯선 타인을 대접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환대의 전통을 민중적 차원에서 ‘인정(人情)’이라는 말로 간직해 왔다. 공자가 말한 ‘인(仁)’이라는 유교적 덕목은 차마 그럴 수 없다, 인정 상 그럴 수 없다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정서와 정오(正誤) 관념에 의존하는 윤리였다.물론 현대화된 사회, 수많은 산업과 직종, 이질적인 사회계층, 집단으로 분할되고 복잡해진 근대사회에서 이 인정의 윤리는 결코 충분치 않다. 합리적, ‘합리성’이라는 구호는 인정과 의리, ‘인간적인’ 등의 말이 끈끈하고 불합리한 결탁과 부패, 권위주의적 태도와 부당한 기득권의 옹호하는 말에 다름 아닐 때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적 삶은 합리성과 합리적 태도가 퍼지고 우세해지면서 더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것이 되었을 뿐 획기적으로 더 공정한, 무엇보다 더 견딜만한 것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맹목적이고 날이 선 합리성이 발달하는 동안 우리의 삶은 인정이란 말을 통해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었던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를 잃어버린 것이다.인정과 합리성, 이 두 말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혼란스러움은 산업화와 근대화의 선도지역으로서뿐 아니라 전통과 보수의 상징으로도 자천타천 비쳐지고 있는 우리 대구경북지역에서 더 가중되는 것 같다. 서로 갈등하고 있는 양 진영 중 어느 한 편을 맹목적으로 따르기에는 복잡한 현실과 가치의 상태를 ‘양가적(兩價的)’이라고 부른다면 우리가 우리의 정치와 사회, 문화의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 또한 그런 양가성과 복합성에 충실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충분히 그리고 정직하게 의식하면서 한국정치, 대구경북지역의 정치가 갖는 고유한 난맥을 살펴보는 일로부터 우리의 사회적 삶이라는 엉켜있는 실타래를 함께 풀어보기로 하자. /구자혁 경북대 강사(사회학)구자혁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사회학과에서 석사, 미국 Virginia 대학교에서 사회학박사 취득.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역임, 현재 경북대사회학과 강사. 최근의 저서로 꿈의 사회학(공저), 역동적 현대화와 한국인의 ‘우리’: 한국 집단주의의 논리와 역사적 형성이 있다.

2020-01-29

교육 백신 1 - 교사 재교육부터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바이러스의 대공습이 시작됐다.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에 갇혔다. 사스, 메르스 등 과거의 바이러스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예방백신이나 치료 약은 없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못 보던 변종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료 과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인류 과학 기술은 바이러스의 진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그때서야 인간들은 야단법석이다. 우한 폐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다 국가봉쇄령이 내려지지 않을지 이미 바이러스의 공포는 경제성만 따지는 돈벌레 인간을 이겼다.바이러스들이 인간이 가진 단어 중에서 제일 우습게 생각하는 단어는 면역력이다. 이 단어가 사어(死語)가 되기 전에 그 뜻을 적어본다.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에 병원균이나 독소 등의 항원(元)이 공격할 때, 이에 저항하는 능력”. 그런데 적어보니 얼마나 인간 위주의 이기적인 단어인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또 이 말만 보면 인간은 방어만 하는 존재라는 착각마저 든다. 인간이 면역력을 가졌다면 바이러스는 내성(耐性)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과연 이 둘을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강할까? 우한 폐렴만 봐도 내성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이러스가 공포로 느껴지는 이유이다.문제는 지금이 아니다. 인류 문명이 현재처럼 인간 편의로만 흐른다면 가까운 때에 상상도 못 할 바이러스의 대공습에 인류는 초토화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재난 영화처럼 지하로 숨어들어 살아야 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러기 전에 인류는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발전을 멈춰야 한다. 인간 간의 상생을 넘어 자연과의 상생을 위한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교육뿐이다. 교육만이 대위기에 처한 인류의 희망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교육다운 교육을 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인류 생존을 위한 필수 의무사항이다. 교육다운 교육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안다. 인간을 인간답게 키우는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다운 인간이란 인성교육 핵심 덕목에 잘 나와 있다.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교육이 이 덕목들만 학생들에게 잘 인지시키고,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이들만 정확하게 실천한다면 세계는 이토록 혼란치 않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이 나라에는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할 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진지하게 인성 이야기를 한다면 학생들은 어떤 반응일까?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할 교사도 없지만, 듣는 척이라도 해줄 학생은 더 없다. 시험과 성적이 교육 전부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을 학생들은 신뢰하지 않은 지 오래다.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교육이 더 무너지기 전에 교육을 살려야 한다. 그 시작은 교사 재교육이며, 그 방법은 인성교육이다. 과연 이 나라 교사들의 인성 지수는 얼마나 될까? 교사들이 먼저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인성의 사표(師表)가 된다면 교사들에게 등을 돌렸던 학생들도 다시 신뢰의 눈으로 교사를 볼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바이러스가 대공습을 멈추는 시간이다.

2020-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