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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호주 최초의 개는 임신한 딩고 한 마리

서라벌대 산학협력단장으로 일할 때 우리나라 교육부에 해당하는 호주의 교육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호주 교육청 앤드류 국장은 업무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호주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주에는 원주민을 기리는 의식이 있는데, 현재 호주인들은 원주민이 살던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 원주민에게 저질렀던 인종 차별에 유감을 표하는 국가적 행사를 매년하고 있는 것이다.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 총독이 시드니 커브에 깃발을 꽂고 영국의 통치권을 선언하게 되는데 이날은 ‘호주의 날’로 기념되고 있지만 원주민들에게 이날은 ‘침략의 날’로 여겨진다.1788년에 양(sheep)과 다른 가축들, 그리고 물품을 실은 최초의 함대가 호주 남쪽 땅에 식민지에서 필요한 짐을 하역했을 때, 이 신흥국가의 경제가 양모산업 위에 세워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호주의 양 목축업계 초기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랫동안 호주의 야생개로서 잘 알려져 있는 딩고(dingo)였다. 순종 딩고는 키가 60㎝ 정도에 체중이 대략 15㎏인데, 호주 본토의 가장 큰 육식동물이며, 하룻밤에 먹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50마리의 양을 물어 죽일 수 있었다. 결국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더 긴, 세계에서 가장 긴(5천321㎞)차단용 울타리가 양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호주 남동부 전체에 건설되었고, 개 울타리 남(안)쪽에서 딩고는 해로운 동물로 선포되어졌다. 딩고 머리가죽 하나 당 미화 380달러까지 현상금이 올라가기도 했는데, 울타리 북쪽에서의 딩고는 합법적인 야생 동물로서 간주되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유럽에서 첫 이주자들이 호주에 도착했을 때에 야생의 딩고들 다수는 진정한 야생이 아니라, 인간 보호자와 함께 살고, 먹고, 사냥을 하였다. 호주 원주민들에게 ‘워리걸(warrigal)’로 불리는 딩고는 가축으로서 매우 중요하였다. 딩고는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고, 캠프를 깨끗게 했으며, 사냥을 돕고, 경계를 서주었다. 딩고는 원주민들의 암각화에서, 호주 원주민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한다. 또한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오리온좌의 두 마리 딩고에게 쫓기는 캥거루의 무리로서 묘사되고 있다.초기 이주자들이 혹심한 호주 기후에 더 잘 적응하는 품종을 얻기 위해 자기들이 데리고 온 목축개와 딩고를 열심히 교배시킨 것을 보면, 딩고는 분명히 개에 속한다. 호주의 목축개인 일명 퀸즈랜드 힐러와 호주 캘피는 딩고와의 잡종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호주 들개인 딩고는 집에서 기르던 개가 야생화된 것인가, 아니면 늑대와 같은 야생동물이 길들여진 것인가? 딩고가 아시아의 일부 가축용 개들과 매우 닮았고, 원주민들과 같이 살았으며, 또한 인간을 제외하고는 호주대륙에서 유일한 큰 태반포유류임을 근거로, 딩고의 선조는 집개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나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 학명도 통일되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딩고는 집개의 아종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1982년에, 일부 분류학자들은 딩고를 늑대의 아종으로 분류할 것을 추천했다. 다른 이들은 딩고를 독립 종으로 불렀다.이동훈최근 유전학은 그 논쟁을 종식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전학에 기초한 연구에 의하면, 딩고는 동남아시아로부터 호주에 들어온 단지 소수의 집개의 후손이 결국 야성화되었다는 믿을만한 증거들이 나타났다. 유전공학적 연구들은 ‘한 마리의 임신한 암컷’이 호주대륙에 건강한 딩고를 퍼뜨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주 본토 자체가 아시아에서 분리되자, 사람들은 보트, 뗏목, 또는 카누로 이동하는 상황이 되었고 딩고는 그 때에 최초 이주자, 또는 이후의 이주자들이 데리고 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주 북부지역의 라라키아부족의 전설에 의하면, 카누로 도착하고 있는 그들의 조상들이 개를 동반하고 왔음을 말하고 있다.호주 캥거루에 기생하는 이(lice)가 인도네시아의 개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단서로 사람의 이동과 대륙의 이동, 캥거루의 이동과 멸종에 대한 다양한 탐색까지 진행되는 연구들이 흥미롭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부소장

2019-02-19

포항시를 진정한 ‘시(市)’로 바꾸자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흔히 노동자는 노무 제공의 대가로 소득을 얻고 사업가는 자본 투입의 대가로 잉여를 얻는데 그것이 바로 경제활동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다. 이 경제주체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합하면 지역단위로는 지역내총생산, 국가 단위로는 국내총생산이 된다. 이것이 전년보다 커지면 경제성장률은 플러스로, 줄면 마이너스가 된다. 지난 10년간 포항경제는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수차례나 겪었다. 지역 가계의 소득이나 기업의 이윤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포항지역 내 각계각층에서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지, 어떤 산업을 발굴 육성해야만 부가가치를 늘릴지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에 앞서 포항지역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워진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는 지금의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기만 하면 그 이전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원하는 소비자 즉 수요는 많은데 그것을 공급하는 생산자는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형태, 색감, 취향, 감성 등을 전혀 고려할 필요도 없는 ‘공급자 우선’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즉 소비자나 고객이 ‘왕(王’)이 아니라 판매자나 공급자가 ‘왕’이었던 것이다. 옛날 ‘시(市)’라고 불렸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에서는 흔히 “깎아 달라”, “밑지고 판다”는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던 것이지만 그러한 흥정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불평등한’ 시장이었다는 이야기다.이와 같은 ‘시(市)’는 교통이 발달하고 유동인구가 모이기 쉬운 당시로써는 비교적 번화한 지역에 형성되었다. 포항은 올해로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한다. 포항은 현재 인구 50만 명이 넘는 지방의 대도시지만 포스코가 들어서지도 않았던 70년 전에도 이미 포항은 시로 승격될 정도로 지방에서는 번화한 대도시였다. 문제는 포스코가 들어선 이후 포항의 인구가 10년마다 2배수로 늘어날 정도로 급격히 팽창하고 우리나라 고도성장기의 경제성장률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는 동안 포항지역 내 음식숙박업, 유통업 등 전 분야에 걸쳐 형성된 ‘시장(市場)’에서까지 모두 ‘공급자 우선’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포항의 소비자들은 적어도 2000년대 이전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철저한 ‘을(乙)’의 지위에 놓여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육해공의 교통물류 인프라가 확충된 지금은 포항의 어떠한 ‘시(市)’에서도 공급자나 판매자가 ‘왕’이 아닌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왕’으로 군림하였던 공급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수틀리면 다른 선택을 하면 그뿐이다. 최근 포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소비자를 ‘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왕자’정도까지는 인식하는 업체들이 나타나 일정한 사업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포항경제가 앞으로 서비스, 관광 등의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늘리려면 이러한 변화에 무조건 순응해야만 한다. 철저한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하고 고객 우선, 소비자 우선이 통하는 진정한 ‘시(市)’로 탈바꿈하여야만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올해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하여 방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기획들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는 그 행사들이 철저한 ‘시(市)’가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준비하는 측의 시각에서 ‘와 보이소!’가 아니라 방문객의 시각에서 ‘가보고 싶네!’, ‘또 와야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취향과 감성을 자극하고 그들을 ‘왕’으로 모신다는 의식을 가져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019-02-19

한 사람의 결심, 바뀌는 세상

1년에 해가 50일 밖에 뜨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전쟁에 패해 영토 대부분을 뺏기고 남은 땅은 척박한 황무지. 사람들은 술과 노름, 다툼과 폭력으로 불행한 날들을 보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한스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공포였어요. 끊임없이 외우게 하고, 시험을 보고, 아이들을 처벌하는 학교는 마치 지옥 같았습니다. ” 덴마크 이야기입니다. 한스는 유명한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앙 안데르센이지요.그로부터 200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유엔 행복지수 조사에서 4년 연속, 세계에서 최고로 행복한 나라로 덴마크가 뽑힙니다. 20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변화의 중심에 시인이자 철학가 한 사람이 있습니다. 30대 초반이었던 이 시인은 잘못된 학교 교육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농촌 마을에 작은 학교를 세우고 ‘폴케호이 스콜레’라 이름 짓습니다. 당시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혁신적인 교육을 시행합니다. 첫째 모든 시험을 없앤다. 둘째 암기 위주의 교육을 철폐한다. 셋째 책과 토론으로 교육한다. 넷째 전 국민을 교육한다.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토론 수업으로 확 바꿉니다. 나아가 교육은 아이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며, 전 국민이 평생 지속적으로 누려야 할 과정으로 인식하고 폴케호이 스콜레를 국민 교육 기관으로 발전시킵니다. 그 시인이 바로 그룬트비입니다. 안데르센,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교류하며 그는 덴마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사람이 깨어 있고, 그가 뿌린 씨앗으로 인해 덴마크는 피폐한 나라에서 울창한 숲으로 가득한 세계 최고 명품 국가로 우뚝 섰습니다.지금 여기, 우리 교육을 돌아봅니다. 여전히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고, 강자의 편에 길들여져 고분 고분 말 잘 듣고 고개를 숙이게 길들이는 일그러진 교육입니다. 사교육 없는 세상이라는 단체를 세운 한 교사의 말이 기억납니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보면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절망의 상황에서 그룬트비는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 외치며 동지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인위쩐은 사막을 보며 꽃 피고 열매 맺히는 숲을 꿈꾸었습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지, 고개 돌리고 자기 문제에만 집착할 때 저 멀리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그대를 존경합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함께 별을 바라보는 이들을 부지런히 찾아 연대하는 일들을 그대가 멈추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19

사랑의 진정한 가치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해 한번쯤은 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지금도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듯 사랑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게 되고, 알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또한 사랑은 사람마다 고유한 특징을 가지며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표현되어진다. 그중에서도 이성간의 사랑, 즉 에로스(Eros)는 강한 정서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연인들의 신체적 매력에 끌려 열정적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젊은 연인들이 서로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기념일을 꼽으라면 단연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Valentine Day)를 떠올리게 된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을 자극하여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기념일은 성탄절 다음으로 단연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를 꼽는다. 실제 일부 여중고생들의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선물들이 점점 과소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고가 선물들이 다량 판매되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정보화, 국제화, 세계화 시대의 개방문화가 조성한 새로운 소비문화이자 신생 소비의식으로 인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세계 미술계에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가를 꼽으라면 필자는 미국의 팝아트의 거장인 로버트 인디애나(1928∼2018)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뉴욕의 중심가에 거대한 조형물로 제작된 ‘Love’라는 작품은 미술을 모르는 일반 관광객이라도 한번쯤은 가까이에서 감상을 하게 되고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한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은 간결하고 문학적 상징이 내포된 기하학적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는 점이다. 문자와 상업디자인을 이용한 그래픽디자인 방식을 이용해 논리적이고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형상화 시켰으며, 극단적으로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표어문자가 주는 문학적 상징성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Love’는 문자라는 추상적 매체를 이용하여 작품을 대하는 관람자들에게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어를 모르는 문맹인이라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알파벳 4개로 구성된 조형물은 색채의 대비에서 오는 강한 인상을 남겨주기에 충분하다.Love라는 단어를 작품으로 처음 표현하게 된 계기는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그에게 크리스마스카드 디자인을 의뢰한 것이다. 당시 단순한 사랑이라는 단어에 강렬한 색채인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 세 가지 색깔로 표현하여 구성된 Love카드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카드 성공에 힘입어 1966년 입체작품으로 ‘Love’를 제작해 뉴욕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며 이후 ‘Love’는 1970년대 미국 내 우표, 포스터, 티셔츠, 머그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면서 미술품이라는 한계를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초기의 디자인에 관한 저작권을 보장받지 못해 ‘LOVE’는 상업적으로 수없이 많이 무단 복제되어버렸고, 경제적 이득은 전혀 얻지 못하는 불운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가장 상업적인 예술가로 혹평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중 “모든 사람들이 나의 작품 ‘Love’를 알고 있지만, 나에 대해서는 모른다. 나는 익명이다.” 라는 의미는 유명 예술품 뒤에 숨겨진 예술가의 고단한 삶의 여운을 느끼게 해준다.밸런타인데이를 보내며 사랑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우리는 Love라는 단어가 갖는 화려함에 빠져 육체적 사랑이 주는 쾌락에만 빠져 있지 않은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분명 Love라는 단어 속에는 에로스적인 의미도 있지만 헌신적인 사랑인 아가페와 정신적인 사랑 필리아, 친구간 사랑인 스토르지 역시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는 나를 살리기도 했지만 아프게도 했다.”는 말처럼.

2019-02-19

‘울릉 친환경에너지 자립섬 사업’ 계속돼야

김두한경북부세계 최고의 청정에너지 섬을 만들고자 민·관합동으로 추진됐던 ‘울릉도 친환경에너지 자립 섬 조성사업’이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변화에 따른 경제성 저조와 지열발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주요인이다. 정부는 미세먼지유발, 원전 확산 방지 등을 위해 풍열,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그런데 정부의 정책 변화라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다. 울릉도 친환경에너지 자립 섬 조성사업은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의 대표 섬’으로 울릉도를 만들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발표했다.천연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전기차를 이용해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 섬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 대통령의 의지도 대단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와 대구에서 정윤열 당시 울릉군수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음을 표현하고 예산도 10억 원을 세우는 등 추진 속도를 높였다.울릉군도 의욕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했다. 2011년에는 울릉도·독도를 대한민국 녹색 대표 섬(Green Island)으로 조성한다며 아시아 최초로 국제민간기구인 국제녹색 섬 협회(ISLENET)에 가입하기도 했다.특히 덴마크 삼쇠 섬을 모델로 한다는 계획에 따라 2010년 1월 울릉군수가 관계공무원, 민간회사 전문가들과 덴마크를 방문, 존 미센 삼쇠 시장과 신 재생에너지 협력 증진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지지부진하던 신재생 에너지 자립 섬 시범사업은 2014년 9월 4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 ‘에너지 신산업 대토론회’가 열린 이후 곧바로 경북도와 울릉군, LG CNS, 도화엔지니어링 등은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SPC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했다.이후 ‘울릉도 친환경에너지 자립 섬 조성사업’으로 바꿔 지난 2015년 9월 경북도, 울릉군, 한전, LGCNS, (주)도화엔지니어링 등 5개 민관기관이 공동 투자한 특수목적법인 울릉도 친환경에너지자립섬(주)(이하 울릉에너피아)을 설립했다.이 사업을 통해 도서지역 비즈모델 개발 및 실적 확보를 통한 국내 86개 도서 적용 효과 및 해외 시장 진출 효과 등으로 약 16조8천억 원의 파급 효과 등 총 19조9천억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한다고 했다.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신재생, 친환경에너지의 공감으로 사업이 계속 진행됐다. 회사 설립 후 꾸준히 진행되던 사업이 갑자기 중단됐다.이 사업은 특정 정권이나, 진보, 보수를 떠나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사업이다. 비산먼지 등으로 천연에너지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고 울릉도를 세계적인 휴양 섬으로 만드는 데 필요하다.좌우 진영을 떠나 울릉도의 미래는 물론 우리나라 많은 섬의 천연에너지 보급을 위해서도 울릉도 천연에너지 시범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도 부합한다. 지금까지 투자된 예산도 녹록치 않다. 빠른 시일 내 사업을 재개, 울릉도를 세계적으로 자랑할 천연에너지 자립 섬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울릉/kimdh@kbmaeil.com

2019-02-19

일·가정 양립 문화가 필요한 이유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6년 기준 2천69시간이다. OECD국가 중 멕시코와 함께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OECD 평균인 1천764시간보다 305시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노동생산성은 한국(34.3달러)이 OECD 22개국 중 17위로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라는 위상이 무색할 만큼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OECD, 2016).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1위 아일랜드(88달러)의 38%에 불과하고, 한국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47.8달러)에 비해서도 13달러 이상 낮은 수준이다. 노동시장 내 기업 특성을 고려한 고용환경의 변화가 추진되지 않으면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노동의 생산성은 크게 증대되지 않을 것이다.경북지역 여성은 일과 가정생활을 비슷하게 우선시한다는 비율이 44.5%로 높게 나타나서 남성(33.2%)에 비해 일·가정 양립에 대한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판단된다(통계청, 2017). 또한, 경북지역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는 2천493명으로 남성이 212명, 여성이 2천281명으로 남성비율은 8.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16). 육아휴직의 최대 걸림돌은 재정적 어려움과 직장 동료 및 상사들의 눈치인 것으로 나타났다(인구보건복지협회, 2017). 육아휴직 활용의 다수가 여성들인 이유는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전통적 성역할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직장 내 승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성의 육아휴직은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수용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육아휴직제도는 선진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지만 정작 맞벌이 부부는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젠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데는 신패러다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일·삶의 균형, 일·가정양립지원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일·가정양립제도는 남녀 근로자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충돌을 완화하고자 도입했다. 일·가정양립은 양성평등과 저출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 단계에 접어들었다.현재 일·가정양립제도는 크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대변되는 부모휴가제도와 유연근무제로 구분할 수 있다. 부모휴가제도는 출산(전후)휴가제도, 육아휴직제도, 배우자출산휴가제도, 가족돌봄휴직제도 등이 있는데, 그 영향력과 제도적 개선 가능성을 육아휴직제도를 중심으로 검토되어 왔다. 일·가정양립지원을 위한 다양한 휴가·휴직제도 중 육아휴직이 제도적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그 보편성과 중요성은 물론, 출산휴가와 달리 근로자의 선택에 의해 제도 활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임신, 출산, 자녀 양육기의 모성보호와 경력단절을 방지하여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자녀 양육기의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데 그 초점이 있다. 때문에 공공기관 내 일·가정양립제도의 도입 및 활용은 여성이 경력을 유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일·가정양립은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양성평등 실현이 요구되고 있으며, 개인 및 기업, 국가의 경쟁력 제고나 출산율 등에 있어서 국가운영을 위해 매우 긴요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시장과 가정생활에서의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다양한 휴가시스템을 도입해야 할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 극복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 지역 환경을 마련하려면 일·가정양립 문화 확산이 필수 요인일 것이다.

2019-02-18

역사해석의 다양성

강희룡 서예가역사는 한 국가와 민족의 뿌리이며 줄기이기에 진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로 기록이 돼야 한다지만, 그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시대를 달리하거나 집단이나 계층, 지역이나 개인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E. H 카(1892~1982)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역사가가 해야 될 일은 ‘다만 진실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험주의 지식론을 비판하며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야 의미를 얻는 것이다”라고 했다.중국의 진시황에 대한 재평가의 일례를 보면, BC 241년부터 BC 210년까지 재위 동안 대규모 문화탄압과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킨 중국사에서 최대의 폭군으로 배웠으나,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군현제를 닦음으로써 이후 2천년의 중국국가의 기본 토대를 만든 위대한 업적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서갱유는 재위 34년이 되는 해(BC213)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남월지 정벌 축하잔치에서 부사 주청신과 순우월의 의견충돌 와중에 승상 이사(李斯)가 끼어들면서 일어났다. 이사의 의견은 구제도와 사상은 통일국가에서 혼란만 가중시키므로 진나라 기록이나 유가의 경전, 제자백가 이외의 서책을 전부 없애기를 제안한 것이다. 갱유(坑儒) 또한 진시황 35년(기원전 212년)에 불로초를 찾으러 보낸 방사(方士) 두 사람이 진시황이 권력을 탐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고 비방하고 재물을 사취해 도망가는 사건이 계기가 되어 유생(儒生) 400여 명을 죽였다. ‘사기, 유림열전’에는 이 시기의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면서 ‘술사(術士)를 묻었다’고 언급했다. 술사는 유생과 다르며 방사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 고대에 신선방술을 신봉하던 사람들로 생(生)이라고도 불렸다.조선의 경우는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가 배운 사도세자가 죽은 이유는 당쟁의 희생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도세자가 살인자였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세자의 위치에서 100여명을 넘게 살해한 사례는 동서양 역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한양굿이나 경기도당굿에서는 지금도 사도세자를 별상이라며 모신다.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원혼이 아직도 무속인들에게 신의 지위에 있는 것이다.2차 세계대전의 부산물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반공건국과 경제개발, 민주화로 이어진다. 5·16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후퇴했으나 경제 산업화 면에선 성공해 국민들의 가난을 일소해버렸다. 군사정권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그 통치결과는 IMF경제위기라는 국가를 부도내고 그 고통을 국민들에게 떠넘겼다. 차기정부에서 국민들은 힘을 모아 부도사태는 해결했으나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의 고통으로 남아 있다. 이후 정권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면서 역사교과서는 국정과 검정을 오가며 역대 통치자들의 공과(功過)에 대한 냉철한 평가는 간데없고 지난 정부를 폄훼하며 이념적인 내용만 가득 차 너덜거린다.제1야당 일부 의원들이 내뱉은 5·18 민주화운동 폄훼발언이 이들에게 어떤 정치적 이익이 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도를 넘었다. 하지만 이들이 의구심을 갖는 석연찮은 5·18유공자 선정과정과 명단공개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큰 것 같다. 보훈처는 작년 말 기준 4천415명이라 발표했으나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이러한 사건은 선정과정과 명단을 투명하게 발표함으로써 성숙된 민주사회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여당에서 ‘5·18 왜곡 처벌 특별법’을 추진하려는 황당한 발상은 군부독재의 ‘유신헌법’발상과 별다를 바 없다. 이런 행태는 ‘정치의,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를 민주주의 정치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자세는 국가관과 인간관 그리고 이념체계와 직접 관련되기에 다양한 각도에서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총체적 축적이다.

2019-02-18

바보 만들기

‘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는 존 테일러 게토라는 교사가 쓴 도발적인 책 제목입니다. 게토는 30년 넘게 뉴욕 공립학교에서 우수 교사 표창을 받은 모범 교사로서 어떻게 공교육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침해하고 말살하는지 고발합니다. “학교에서 측정하는 것은 유순함이고, 측정은 상당히 정확하게 이뤄집니다. 학교 존재 목적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위해 묵묵히 따라오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것입니다.”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패배한 프러시아는 어떻게 하면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국민들을 어릴 적부터 한 곳에 모아 철저하게 반복해 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말 잘 듣고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고분고분한 국민을 육성하는 것. 효율적인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길러내는 것이 공립 학교를 세운 프러시아의 당초 목표였습니다. 영국은 즉각 프러시아 공교육에 열광했고 미국은 교육학자들을 대거 프러시아에 유학 보내 공교육 시스템을 베껴옵니다.미국에서 가정과 공동체의 주체적 교육 이념은 묵살당했고 마치 군대에 끌려가듯 학교에 징집 당해 강제로 등교해야만 했습니다. 깨어 있는 미국 지식인들은 거침없이 몰아 부치는 공교육의 폭거에 저항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피 흘리며 투쟁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교라는 제도는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저항의 대상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서열을 위해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의 폭거에 누가 더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가에 따라 미래가 행복할 것 같은 착각을 부추기는 세상이 되어 갑니다. 대한민국에서 책은 교육의 도구에서 멀리 소외된 지 오랩니다. 과연 책을 포기하고, 나 다움을 거세하고 기득권 층의 설계에 놀아나 그들 뜻대로 줄 세우기 경쟁에서 살아 남으면 달콤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일까요?스테판 에셀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외칩니다.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무언가에 분노한다면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젊은이여 분노하라!” 자유를 향한 분노는 ‘생각을 생각하는 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힘은 글을 써야만 길러질 수 있습니다. 생각을 언어로 쏟아내고 문장으로 표현한 내용을 바라보며 한 걸음 떼어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힘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할 때 자유를 항한 위대한 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18

웹사이트 차단정책

음란물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 등 해외 불법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막는 웹사이트 차단정책이 ‘인터넷 검열’이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정부는 그동안 인터넷(IP)주소 목록을 통해 국내이용자들의 해외 불법 유해사이트 접속을 차단해왔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경찰청 등 당국이 국내인터넷사업자(DNS)들에게 요청해 사용자가 특정 유해사이트 접속을 요청해올 경우, 해당 IP주소로 연결해주는 대신 경고창 화면을 띄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해외불법서버 운영자들이 ‘https’ 방식으로 웹사이트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이같은 차단방식이 무색해졌다. ‘https’ 방식은 웹브라우저와 서버간 오가는 패킷을 암호화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불법 도박·음란물이 유통돼도 해당 사이트 접속을 기술적으로 차단할 방법이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불법 유해물로 판정된 웹 게시물 70%가 https 방식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최근 새로 도입한 기술이 바로 ‘SNI(Server Name Indication)’ 차단방식이다. 이 방식은 이용자가 https(보안프로토콜)을 통해 해외 불법사이트에 접속할 때 데이터 패킷 암호화 이전에 해당 서버가 맞는 지 한차례 정보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암호화되지 않는 영역’을 활용한다. 즉, 암호화 이전에 이용자 브라우저와 웹서버간 주고받는 SNI 정보를 활용해 인터넷 서비스 제공 사업자(ISP)가 불법사이트 도메인 접속 여부를 확인하는 원리다.정부는 지난 11일부터 KT를 시작으로‘https SNI(서버네임인디케이션) 필드차단 방식’을 이용해 800여곳의 웹사이트 차단에 나섰다.다만 이 방식은 접속 과정에서 주고받는 주소가 암호화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다는 문제가 있다. 사용자가 어디 사이트에 접속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22만여명이‘보안접속(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글에 동의한 이유다. 불법 유해 사이트 차단, 탈 없이 잘해내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지나가기’ 만큼이나 어려워보인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2-18

한국당, 죽어야 산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한국당 의원들이 벌이고 있는 ‘정치코미디’는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도 한국당이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하여 당대표에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친박이 아니라고 옥중정치를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은 한국당을 ‘정신이상자 집단’으로 만들고 있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유로 당대표 경선 연기를 주장했던 후보자들과 당 선거관리위원회의 충돌은 현재 한국당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한국당의 ‘자해(自害)소동과 정치코미디’에는 공통점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국민과 당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당이 누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 옥중정치로 당대표 경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때 국가원수였던 정치지도자로서 그를 선택했던 국민들의 참담한 심경(心境)을 생각한다면 옥중에서라도 최소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한편 대법원은 이미 5·18에 대해서 ‘전두환 일당의 국헌문란의 내란 행위’라고 최종 판단을 내린 바 있는데, 공당(公黨)인 한국당 의원들이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5·18 유공자들을 ‘괴물집단’으로 폄하함으로써 당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제명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국민적 비판에 부딪치자 뒤 늦게 당 지도부가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습은 한국당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안이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자해적 행위는 한국당에 대한 ‘보수꼴통’의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최근 상승세를 보이던 당 지지율을 다시 떨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당대표 경선에 나온 후보자들과 당 선관위의 갈등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 후보자들의 선거 연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선관위의 설명도 명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선거를 보이콧하는 후보자들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이처럼 한국당 내부에는‘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잠재된 폭탄들’이 많다. 그 이유는 한국당에는 ‘보수’라는 정치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꾼’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개혁가 클라크(James F. Clark)는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시대의 일을 생각하지만, 정치꾼(politician)은 다음 선거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하였고, 프랑스 전 대통령 퐁피두(G. Pompidou)는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였다. 한국당에 이러한 정치꾼들이 득세하고 있는 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재기는 불가능하다.따라서 이제 한국당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처방은 ‘죽어서 다시 사는 길’이다. 진정한 보수에게는 성실함과 겸손함이 있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국민은 보수에게 걸맞은 품격과 책임지는 정도(正道)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부터 죽겠다’는 각오가 절실한데 모두가 ‘나만은 살겠다’고 아우성이니 한국당의 미래가 암담하다. 누구를 위해서 옥중정치를 하고, 누구를 위해서 5·18을 폄훼하며, 누구를 위해서 당권투쟁을 하는가. 이기적인 정치꾼들이 권력을 가지려고 발악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정치생명은 더욱 단축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한국당 의원들은 ‘정치가’로서의 꿈을 잊어버리고 언젠가부터 ‘정치꾼’이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9-02-18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갑자기 바뀐 날씨에 한동안 입지 않았던 옷을 꺼내 입고 나왔더니, 이전까지는 보이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눈들이 신경 쓰인다. 색이나 모양이나 어쩐지 지금 유행하고 있는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것만 같아 자꾸만 나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눈을 몇 번이고 보게 된다.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온전한 내가 되기도, 군중 속에 들어가 버리기도 어렵다.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는 ‘파리의 우울’에 실려 있는 ‘군중’이라는 시에서 군중 속에 잠기는 행위, 나아가 자기 자신도 남도 될 수 있는 행위를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재능이 아닌,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시인이 아니고서야 군중 속에 잠겨 ‘나’를 잃어버리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보들레르가 말한 사색에 잠긴 고독한 산책자처럼 되는 재능을 발휘하기에 현대 사회는 너무 빠르고, 너무 시각적이다.생각해보면, ‘나’를 잃어버리는 일은 ‘나’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교환이 일상화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누구도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온전하게 혼자가 될 수 없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 온전한 ‘나’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처럼 생각된다.우리는 결국 ‘나(我)’를 갖지 못한 채, ‘나 아님(非我)’과 ‘나 아님(非我)’의 사이를 오가면서 ‘미아(迷我)’의 상태로, 관계와 관계 사이를 떠다니기를 반복할 뿐인 것이다. 특히 전통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후 또 다른 사회로 옮겨가고 있는 와중인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역사상으로 볼 때, 인간이 ‘나’를 갖는 문제에 가장 예민했던 것은 특히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들이었다.작가들에게 있어서 그가 쓰는 언어가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언어 속에 어떻게 온전한 ‘자기’가 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적어도 작가에게는 필사적인 문제였다.서가를 둘러보다가 이미 몇 번이나 책꽂이에서 꺼냈던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1882~1941)의 ‘자기만의 방’을 또 다시 꺼내 든다.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픽션(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요청받아 여러 대학에서 한 강연들을 모아 놓은 강연집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러 강연들을 모은 책인 만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이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에 글쓰기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기를 지켜냈던 작가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어쩌면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버지니아 울프만큼 필사적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해 글을 썼던 작가를 달리 또 찾기는 어렵다. 누구든 당연하게 ‘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시대에, 그 당연한 것을 가지고 지켜내기 위해 여성으로서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조용히 귀 기울여 경청하지 않으면 안 되는 힘이 있다.“위대한 작품이 작가의 마음에서 완전하고 총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거스르는 것들이 도처에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물적 환경이 그것에 적대적이지요. 개들이 짖을 것이고 사람들이 방해할 것이며 돈을 벌어야 하고 건강은 악화될 겁니다. 게다가 이 모든 곤경을 가중시키고 더욱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세상의 악명 높은 무관심입니다. (중략) 여성들에게 이러한 시련은 무한히 가중된다고 나는 텅 빈 서가를 보며 생각했지요. 우선 조용한 방이나 방음 장치가 된 방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자기만의 방’, 민음사, 2016, 83쪽.버지니아 울프에 따르면, 작가의 마음속에 떠오른 위대한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언제든 글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온전히 혼자가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글을 쓰려고만 들면, 이따금 개가 짖는 소리와 사람들이 방해하고 또한 돈에 대한 압박과 건강의 악화, 그리고 세상의 무관심이 그 영감을 글로 옮기는 것을 막는다. 게다가 여성 작가에게 있어서 그러한 방해와 시련은 무한히 가중되는 것이다.누구나 예술적 창작의 영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누구나 그것을 실현할 수는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질적인 조건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방’은 적당히 넓고 잘 잠기는 열쇠장치가 되어 있는, 진짜 ‘방’을 가리키는 것이다.사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작가되기를 막는 방해들은 어느 것이나 거창한 것이기보다는 꽤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고백이야말로 어떤 작가들에게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기에 가치가 있다. 힘들었던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성공하지 못한 작가들의 고백은 잊혀져 버린다.작가가 위대한 글쓰기가 아니라 돈이나 건강의 결핍, 무관심에 대한 공포를 고백하는 것이 촌스럽거나 작가답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시대의 밀폐된 공기가 그것을 쉽게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한편,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단지 물질적인 공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나’ 내지는 ‘문학’의 메타포(비유)이기도 하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편으로는 글을 읽고 쓸 물질적인 공간이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사유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예술적 사유는 그 방과, 그의 서가와 밀착되어 형성되고 확장된다.예를 들어, 남미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1986)는 무려 ‘무한의 도서관’을 자신의 창작 공간으로 삼았다.식민지의 작가였던 그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연 사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자유로운 작품을 쓸 수 있었던 배경은 물질적인 방을 넘어서는 무한한 사유의 방을 얻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자신의 방과 서가를 갖지 못했던, 울프나 그 이전 시대의 여성 작가에게 있어서 그러한 ‘작가’나 ‘방’에 대한 메타포조차 사치였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울프에 따르면, 당시는 남성 작가들이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소네트를 전유하고 있던 시대였고, 시는 여전히 소설보다 가치가 높았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1775~1817)부터 조지 엘리엇(George Eliot·1819~1880) 등 영국의 여성 작가들이 ‘시’가 아니라 심지어 여성이라는 이름을 감추고 ‘소설’을 택했던 것은 여성으로서 받을 수밖에 없었던 방해 때문에, 필사적으로 좀 더 유연한 형식인 허구적인 소설 창작에 매달린 결과였다는 것이다.그렇게 여성 작가들은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 온갖 물질적인 조건들과 악전고투를 하면서, 이전까지는 텅 비어 있던 서가를 차곡차곡 채워나갔다.울프에게는 필사적으로 얻어내고자 했던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와 습성’은 이제 그를 읽는 작가들에게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500파운드라는 돈이 얼마쯤 되는 것인지, 버지니아 울프가 꿈꾸었던 창작실이 얼마나 되는 크기인지는 짐작도 할 수 없지만, 누군가 고투해왔던 물질적 조건들이 이후의 작가들에게는 작가의 상징이 된 것이다.사실 이 문제는 작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문학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보편에 대한 공감의 가치를 통해 우리의 감정에 친밀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그것이 문학의 본령이다. 공동의 거실에 머물렀던 우리 모두는 잠시 그 거실에서 나와 ‘자기만의 방’에서 읽고 쓰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온전한 ‘나’가 되는 일이자, ‘나’의 언어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주는 울림이란 바로, 여기에 있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2-18

바보 성자(聖者)

바보란 뭔가 모자라는 구석이 있어 정상적 생활이나 판단을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바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가 사용하기에 따라 느낌이 다를 때가 더러 있다. 바보보다는 천진난만함을 표현하고 우직스러운 이미지를 줄 때도 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은 우직함을 표현한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바보처럼 한우물만 파서 큰 성과를 낼 때 이런 말을 쓴다.대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김수환 추기경의 별명이 바보다. 2007년 그는 모교였던 동성중고교 100주년 기념전에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을 출품했다. 크레파스로 아주 간결하게 스케치한 자화상 아래에는 “바보야” 라고 직접 쓴 글을 남겼다. 당연히 화제가 됐다. 이 그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때부터 그에게는 바보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녔다.그의 선종 1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주말 전국에서 추모 미사와 함께 열렸다.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이자 성직자로서는 드물게 종교를 넘어 많은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10주기 행사는 사회적 반향도 적지 않았다. 특히 우리지역과의 깊은 인연으로 이곳에서의 그에 대한 추모 열기는 남달랐다.그는 1922년 대구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기 시절은 군위군 용대리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냈다. 1951년 사제 서품 후 안동천주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56년 독일로 유학 가기 직전까지 대구 경북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그가 선종하며 남긴 자신의 각막도 안동의 한 노인에게 기증됐다.그는 스스로를 바보라 낮추었으나 오히려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일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로하는 삶을 살았으며 민주화, 인권,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늘 앞장섰다.2009년 그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 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선종하던 날 명동성당에는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의 각막 기증 소식에 사후 장기기증자가 갑자기 줄을 섰다고 하니 일종의 신드롬을 느끼게 한 일이었다. 그의 사랑과 나눔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 주말이었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2-17

‘신공항’ 망국론

안재휘 논설위원윤흥길의 ‘완장’은 권력의 횡포가 심한 우리 사회를 풍자한 대표적 소설이다. 무위도식하며 건달로 살다가 보잘것없는 저수지 감시인으로 채용된 ‘임종술’은 완장을 차고 으스대며 행패를 부린다. 낚시질 온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까지 단속하다가 해고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완장을 차고 저수지 지키는 일에 몰두한다.기형적으로 성장해온 이 나라 포퓰리즘 민주주의의 행태가 기가 막힌다. 이제는 다 잦아든 줄 알았던 ‘동남권 신공항’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놀랍게도, 10여 년 만에 가까스로 잠재운 영남권 지역갈등의 막장드라마를 다시 무대에 끌어올린 이는 대통령이다.문 대통령은 부산사람들 앞에서 “부산·울산·경남의 타당성 검증 결과를 놓고 5개 광역자치단체의 뜻이 하나로 모아지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만약 생각이 다르면 총리실에서 검증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업이 표류하거나 지나치게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가속페달까지 덧붙였다. 바로 읽으나, 뒤집어 읽으나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목을 맨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단체장들에게 힘을 실어준 발언이다.그래놓고, 청와대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따분한 해설만 거듭한다. 5개 광역단체의 뜻이 하나가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 ‘총리실’은 왜 동원하는가. 5개 단체가 합의되지 않으면 그만두면 될 일이다. 수많은 논란과 갈등과 소모전을 치른 끝에 겨우 봉합한 이슈를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도 되는 건지 참으로 궁금하다.온 국민이 ‘신공항’ 건설을 지역발전의 도깨비방망이로 여기게 만든 것은 득표를 위해 ‘국익’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내팽개친 뭇 정치인들이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에 “부산에서 5석만 더민주에 주면 박근혜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신공항을 착공하겠다”고 말했다. 예타(예비타당성심사)면제 사업으로 결정된 ‘새만금 국제공항’도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다음 전북권 10명의 국회의원들이 발 벗고 나선 결과물이다.외국의 전문가들은 좁은 국토에 공항 유치경쟁에 날 새는 줄 모르는 우리네 풍토를 비웃는다. 기존 국내공항들만 해도 이미 골칫덩어리다. 경제 논리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 논리로 만들어진 결과다. 현재 우리나라엔 국제공항 8개와 국내공항 7개 등 모두 15개 공항(군용공항 제외)이 있다. 지난해 전국 10개 지방공항의 적자를 모두 합친 금액은 무려 797억 원이다.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이라 개선의 여지도 적다. 지난해 최악의 적자를 낸 무안공항은 텅 빈 활주로에 인근 주민들이 수확한 고추를 말리는 장면으로 화제가 돼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도 유명하다.‘신공항’ 경쟁은 나라 말아먹을 병폐다. 4대강 사업을 질타하며 정부의 토목공사를 죄악시하던 문재인 정권이 느닷없이 ‘가덕도 신공항’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은 어이없는 반전이다. 경제정책 실패를 만회할 방안으로 그토록 경멸하던 ‘토목사업’을 답으로 찾아내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방을 다니며 토목 공약을 더 퍼부을 심산이라면 참 서글픈 일이다. 정권이 바뀔 적마다 나랏일을 뒤집어엎는 국가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소설 ‘완장’에서 기고만장한 종술에게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사람은 뜻밖으로 술집 작부 부월이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그녀의 일갈은 전율을 부른다. ‘국익’을 팽개치고 완장질에 여념이 없는 우리 정치권을 향해 제대로 된 권력의 지혜를 가르칠 부월은 정녕 없는가. 권력은 마구 휘둘러 뒤집어엎는 게 아니라, ‘공감’하는 정책으로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라는 계시임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2019-02-17

건물이 무너지면 짓고 또 지었던, 사람들의 600년 삶의 터전 ‘월성’

“책임감? 월성만큼 크고 무겁습니다.”그 또한 경주에서 나고 자랐다. 1970년에 그가 태어난 황남동은 경주 시내의 주택 밀집지였다. 현재 천마총부터 황남초등학교를 거쳐 황리단길로 이어지는 지역이다. 무덤 위에 지은 삶터, 그의 동네와 그의 집 아래도 전부 신라 무덤이었다.지금 왕성이라고 이야기하는 월성도 학창시절 즐겨 찾던 소풍 장소였을 뿐이다. 유적과 사적은 특별한 관심거리라기보다 공기처럼 익숙한 공간이었다. ‘어쩌다 보니’ 정해진 길을 따르는 듯, 경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뒤 경북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이후 학예연구사로 문화재청에 입사해 조사제도와 관련된 부서에서 일했다. 대전에서 근무하다 경주로 돌아온 것은 2015년이었다.처음에는 월성전담연구관으로 내려왔다가 2017년 연구소장에 취임했다.돌아온 고향 경주에서 월성의 무게감만큼이나 큰 책임감으로 일하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종훈 소장(50)을 신라월성학술조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니 담당한 일이 매우 다양합니다. 월성뿐 아니라 쪽샘 지구, 황룡사지,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 등 연구소가 하는 일이 많은데, 소장님이 월성전담연구관이었던 만큼 월성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시나요?△연구자인 동시에 경주 사람으로서 관심도 있고 애정도 있습니다. 신라 왕경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 왕이 거주하는 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라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궁궐이 가장 중요한 까닭은 궁이라는 곳이 당시의 문화와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왕성, 왕경, 궁성이라는 표현이 혼재되어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하나요?△저희는 ‘빛의 궁궐 월성’, ‘신라 왕궁 월성’ 등으로 궁궐과 왕성이라는 표현을 모두 씁니다. 왕궁과 궁궐은 같은 표현이고, 궁성은 성벽에 대한 문제로 이견이 있긴 하지만 문헌에 궁성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대궁(大宮)이라고 표현할 때는 남궁과 동궁, 전랑지의 북궁까지 모두 묶어서 씁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논쟁이 있지만 편하게는 왕궁도 좋습니다.- 월성의 특별한 의미를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월성은 다른 어떤 유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다 떠나가고 했던 게 아니라 그 공간에서 건물을 짓고 무너지면 또 짓는 과정을 반복하며 600년 동안 살아왔으니까요. 경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월성을 중심으로 도시 계획이 만들어졌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어떤 유적도 600~700년의 시간을 하나에 함축적으로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일본 나라에 가면 평성경(平城京·헤이죠쿄)이라고 있는데 그건 기껏해야 10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사용했던 성입니다. 월성은 그의 몇 배에 이르죠.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곳입니다.- 월성 발굴조사 작업은 언제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주변부가 아닌 월성 내부에 대한 전면적이고 본격적인 발굴은 2014년 12월 12일에 개토제(開土祭·고유제)를 지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12월이 되면 꼬박 5년이 되는 셈이지요.- ‘월성이랑’을 통해 설명을 들었는데,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935년 신라 멸망기의 유구와 유물이라더군요. 시간적으로 가장 후대의 것인데, 그 아래를 또 파볼 수 있나요? 그런데 밑을 파내면 위가 훼손될 텐데….△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발굴 중에도 밑의 것을 확인만 하고 다시 덮습니다. 전공자로서의 욕심으로는 다 파보고 연구 성과를 남기고 싶지요. 하지만 그것을 우리 당대에 모두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게 저희의 판단입니다. 1979~1980년에 해자를 조사하며 동물 뼈와 씨앗 등을 발견했는데, 기록으로는 남겼지만 그때 기술로는 환경 식생 보고를 할 수 없었고 지금처럼 식생환경을 복원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20년에서 30년 전의 일인데 그사이 기술이 월등하게 발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앞으로는 확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당대에 모든 걸 다 한다는 건 과욕이고, 욕심을 부리는 것 자체가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수많은 과거를 우리 손으로 지우는 일이 되어버립니다.경험은 상상을 제한한다. 834년 동안 신라의 왕궁이었던 월성의 가치는 지금 우리가 아는 지식과 정보로 가늠할 수 없다. 신라가 삼한을 통일할 즈음이 되면 규모가 있고 화려한 건물들은 동궁이나 북궁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통일 전까지 월성 내부에 머무르며 안전성을 추구했다면 통일 후에는 보다 개방적으로 왕성을 확장했던 게다. 그래서 2017년 가을 현장 공개한 ‘가’ 지구(동궁과 월지 근처로 화장실과 수세식 변기가 발굴됨) 건물에 비하면 월성 내 C지구 건물의 기초부들은 규모와 수준면에서 격이 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 중심이 이동한 건가요? 지하레이저로 C지구가 가장 큰 건물지라서 발굴을 시작한 게 아닌가요?△중심이 이동했을 수도 있고 우리가 발굴한 지역이 중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요. 지하레이저로는 중심으로 보였는데 막상 파 보니 생각보다 격이 높은 건물이 아니고 관청 정도의 건물지가 확인된 것입니다. 왕이 여기서 기거했는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성의 효용성이 다한 것은 아닙니다.- C지구가 아니더라도 월성 내 어딘가에 왕의 침전이나 정전 같은 게 있을 텐데요?△그걸 확인하려면 월성이나 주변부에 대한 조사가 앞으로 10년 이상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마음은 빨리 하면 좋겠지만 그런 욕심들이 제대로 조사를 못하게 하니까 현재 수준에서 최선의 조사를 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 데이터를 최대한 만들어두고 후대에 연구하게 돕는 거죠. 미래에 어떤 기술이 나와서 어떤 걸 알 수 있을지 모르니까.- 2025년 기한은 폐기되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발굴조사는 어떻게 진행되나요?△시민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대에 보고 싶은 마음도 잘 압니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으니 월성의 속살을 조금씩 공개하면서 이해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예전처럼 동시다발로 한꺼번에 막아놓고 하는 게 아니라 경주 시민들이 이 공간을 쓸 수 있고, 관광객들 또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옮겨가며 진행할 예정입니다.앞으로 ‘월성이랑’ 옆의 개방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 C지구도 다시 덮어서 정비하고 발굴 결과를 이해할 수 있게 일정 정도 공원처럼 꾸미고 조사 지역을 이동할 것입니다.아득해진다. 시간이 팽창되는 느낌이다.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이 시대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구나!’는 생각이 든다.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의 밑을 더 파볼 수도 있지만, 지금 발굴하는 층을 모두 끝내고 그에 대한 연구와 합의가 완결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이상은 후대의 몫…. 현재에서 과거의 비밀을 파고들지만 미래 또한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이 역사 연구자들의 자세다.월성 발굴조사의 고민은 여러 시기의 유구들이 중복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조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부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터이니 ‘어느 시기의 유구를 중심으로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고민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다른 한편으로는 개발론을 비롯한 외풍과 개별적인 연구자의 욕심에 맞서 중심을 잡고 ‘버텨야’ 한다. 학계와 시민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게 국가기관의 일일 터이니.- 월성 발굴조사의 특이점은 다양한 행사를 포함해 대중적인 홍보나 공유 작업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뜻인가요?△실제로 저희의 고민 중 하나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발굴조사는 당연히 학술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쉽게 다다갈 수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주의 경우 워낙 유적이 많다 보니 저를 비롯해 경주 시민들은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발굴 작업을 보고 자랍니다. 지금도 그런 공간이 제법 있지만 현장이라는 곳에 담장을 쳐놓고 들여다보지도 못하게 하다 보니, 경주 시민들은 불신과 함께 발굴조사가 지역 경제에 걸림돌이 된다는 오해 내지는 잘못된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관광지도 실제로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을 정비하고 차후 관광지로 활용하게 된 것입니다.예를 들면 안압지, 지금 동궁과 월지라고 칭하는 지역의 복원도 학술적 논란은 있지만 발굴되고 연구되어 관광 상품으로 쓰이는 순서를 거쳤습니다.그것을 보기 위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발굴 자료들이 역사로 서술되고 교과서에 실리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때로는 못 하기도 하고 안 하려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이 문화 공간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형태의 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발굴조사 현장을 개방하는 겁니다.- 일반 공개 프로그램은 언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월성 발굴조사가 시작되던 2014년 기본 계획을 세우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2016~2017년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술행사와 별개로 교육과 강연, 체험과 탐방, 전시 등을 꾸준히 진행합니다. 2018년까지 3년 동안 사진촬영대회 3회, 야간 탐방인 ‘빛의 궁궐, 월성’ 3회, 강연 행사인 ‘대담신라(對談新羅)’는 4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상시적으로 ‘월성이랑’도 운영하고 있고요.- 경주문화재연구소 인원 150여 명, 월성학술조사단 60여 명으로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경주를 여행하는 동안 줄곧 중얼거렸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지? 이걸 어떻게 다 하지?”(웃음)△경주가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하는 일도 많습니다. 경주가 가진 문화유산은 한국에서 단연 최고이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습니다. 경주와 교토를 비교하면서 관광객이 교토만큼 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하지만 비교와 별개로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천만이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문제는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경주에서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불국사나 석굴암 같이 고정된 게 아니라, 신라 문화를 보다 직접적으로 체험할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월성 발굴조사 작업이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월성 발굴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입니까?△2015년 3월 기자간담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비도 오고 발굴된 것도 거의 없었던 시점인데, 기자들이 40명 이상 와서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월성이 갖는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야 학술적으로 월성이 중요하니 조사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월성의 의미가 받아들여지고 있구나 생각하니 책임감과 함께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월성 발굴조사가 앞으로 50년이 걸릴지 100년, 200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하셨는데…. 소장님은 여기 계속 계시나요?△저는 계속 있고 싶은데 공무원이라…(웃음) 월성이 가진 무게감만큼 저도 연구자로서 개인적으로 책임감이 큽니다.

2019-02-17

한국의 제3당의 존립은 어렵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제3당은 대의정치에서 의석수에서 제3위를 차지하는 정당을 말한다. 현재 국회의원 29석인 바른미래당은 제3당이다. 바른미래당은 1년 전 국민의 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하여 2018년 2월 13일 창설된 정당이다. 이들은 진보를 내세운 집권당 더불어민주당과 보수를 앞세운 자유한국당의 양당구도에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앞세워 제3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한 명도 내지 못하고 겨우 10% 미만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당내의 심각한 노선 갈등을 겪으면서 창당 1주년 기념식에는 유승민 등 당내의 중진들마저 참석하지 않았다. 당 내분은 계속되며 또 다시 제3당은 당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한국 정치에서 제3당의 존립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도 양당의 대결 구도에 익숙한 민심은 중도적인 제3정당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이후 촛불 세력과 태극기 세력의 극한적인 대결 구도에 제3당은 정체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권민주당이 30∼40%, 제1야당의 지지율이 20∼30%대 지지에 육박하는데도 제3당이 8%대로 외면 받는 이유이다.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흑백의 여론은 제3 중간 지대를 회색지대로 간주하고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의 양극의 정치판에서 어정쩡한 중도는 기회주의자로 몰려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여야의 진영논리가 지배하고 합리적 타협론자를 배신자나 기회주의자로 몰아가는 정치풍토에서 제3당은 존립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또한 제3당은 제도적 측면에서 한국의 패권적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 하에서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서구의 내각책임제 하에서는 다당제를 가능케 하여 제3당이나 군소정당도 존립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10여 개의 군소 정당이 착근하고 유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서구에서는 제3당은 대부분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거나 연립정부의 중요 파트너 역할을 한다. 이처럼 서구의 다양한 정당은 서구인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내각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공산당이나 극우정당까지 가끔 제3의 정당의 역할을 수행한다. 서구의 내각제와 정치적 관용문화는 다당제를 수용할 수 있지만 우리의 대통령 중심제는 양당제만 선호할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제3의 정당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과거 김종필의 자민련과 정주영의 통합국민당도 반짝하다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과거 이인제, 정몽준, 문국현, 안철수의 대선 전야의 급조된 신당은 대선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 지금 제3당인 바른미래당이 위기를 맞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당의 정체성 면에서도 당내의 중도 우파는 우측으로 중도 좌파는 좌 클릭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 위기 앞에 양당의 통합에는 선뜻 합의했지만 당의 노선은 여전히 동상이몽 격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보수정당의 개혁을 외치고 진보 정당의 합리성을 주장하는 당의 노선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형의 현실정치에서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확고한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제3당 바른미래당은 내년 총선까지 버티기도 어려운 입지이다. 바른미래당의 일부는 자유한국당으로 일부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내년 총선 공천을 전후하여 한국의 제3당은 또다시 이합집산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이 나라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제3당의 정착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한국의 정치적 현실은 이를 허용치 않고 있다. 서독은 통일 전 분단된 상황에서도 정치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를 의사당 벽면에 걸어 두었다. 당시 서독에는 공산당과 극우 파시스트 정당도 공존했다. 정치적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무지개의 7색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우리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2019-02-17

좀 천천히

류영재포항예총 회장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라인이 2023년 개통을 목표로 올 봄에 착공될 예정이라 한다. GTX는 지하 40m 깊이에 터널을 뚫어 시속 180㎞로 달리는 광역지하철이다. A라인은 경기도 최북단 파주에서 서울 도심을 지나 화성시에 이르기까지 80여㎞를 운행하는 구간이다. 파주에서 서울역까지 20분 정도 소요될 것이라니 이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사업이다. 수도권 주변 지역 주민의 숙원이었지만 반발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반발의 이유는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당초 한강을 중심으로 계획했던 노선을 더 짧게 하려고 주택지와 열병합발전소의 지하를 통과하는 것으로 변경했다는데, 안전이 우려된다는 논리다.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가치다. 터널을 뚫자면 발파의 진동으로 지반침하 우려가 있고, 도심에는 상·하수도관, 가스관, 전기·통신망 등의 라이프 라인이 거미줄처럼 엮여있음은 물론이고 기존의 지하철도 복잡하게 얽혀있으니 터널공사가 얼마나 위험한가. 더더구나 A노선은 열병합발전소와 아파트 지하를 통과한다니 ‘싱크홀’이나 건물 균열 등을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잘 알고 있으며, 여기에 인재까지 더해진다면…. 훗날의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반추할지 두려운 일이다. 우리 지역의 지진도 자연현상인지 지열발전소가 원인인지 정확히 규명되진 않았지만, 그것이 자연현상이거나 문명의 폐해이거나 간에 위험을 인지했으면 안전을 위하여 최선의 예방책을 마련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좀 천천히 가면 안되나?필자가 인문계고등학교에 재직하던 시절, 고3 교실의 벽에 걸려있던 ‘재수 없는 해’라는 급훈이 기억난다. 어느 학급은 ‘2호선을 타자’였다. 재수생 없이 단번에, 지하철 2호선 구간에 밀집해 있는 명문대학에 합격하자는 간절함은 이해하겠으나 단체가 추구해야할 가치로서의 품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급훈들을 보며 재수를 경험해본 필자는 그 시간이 내게 준 성숙의 과정을 곱씹어 보았다. 재수면 어떤가? 명문대 졸업이 담보하는 기회라는 것이 이 사회를 얼마나 치열하고 각박하게 만드는가를 너무도 잘 알면서 그것을 종용하는 기성세대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좀 천천히 가면 안될까? 좀 못하면 안될까? 이미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내가 어른인 세상은 동네마다 유치원은 줄고 요양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명을 늘리고, 인간들은 대책도 없이 오래 살게 되었다. 그도 복이라면 복이겠지만 그렇게 오래 사는데 왜 그리 급하게 일할까? 그 복잡한 서울 시내를 통과하여 수도권 어느 지역을 가는데 20분밖에 안 걸린다고 업적을 자랑하는 이들은 다음에는 또 무엇을 만들려고 그럴까? 인간의 삶은 환경과의 타협과 조율 과정이다. 평균수명이 80을 넘은 이 시대에 무엇이 급하여 남의 집 방바닥 밑으로 굴을 뚫어 괴물 같은 기차를 쏜살같이 지나가게 할까? 그 시간의 단축이 주는 경제적인 이익은 고스란히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발전일까? 오직 목적만을 위한 ‘필요악’ 같은 말은 이제 시대착오적 용어로 사전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이젠 좀 천천히 앞도 뒤도 살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최근 도쿄 여행 중 신칸센(新幹線)을 기다리며 동행한 선배님이 들려준 등소평의 일화가 문득 떠오른다. 일본을 방문한 등소평에게 신칸센의 속도를 자랑하기 위해서 시승을 권하고, 그 소감을 묻자 ‘그리 넓지도 않은 나라에서 뭐 그렇게 빨리 갈 필요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니 그 함의(含意)가 다르므로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황금돼지해 기해년에는 좀 천천히 주변도 살피며 스스로의 내면을 살찌우는 지혜를 가지자.

2019-02-17

생각을 생각하는 힘에 대해

개에게 먹이를 주던 조교가 허겁지겁 뛰어와 보고 합니다. “박사님. 이제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침을 막 흘리기 시작합니다.”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새로운 실험에 착수하지요. 첫째, 주기적으로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줍니다. 타액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먹이를 줄 때 종소리를 들려줍니다. 먹이가 도착하는 것과 종소리를 연결시키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에는 종소리만 들려줍니다. 개는 이제 종소리만 듣고 침을 줄줄 흘리게 되지요. 파블로프 실험입니다.고전적 조건형성(classical conditioning)실험으로 심리학에서 대단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교육학 등 다른 학문에도 큰 영감을 선물하지요. 적절한 조건을 형성해 주면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자극-반응 모델을 만들어 냅니다.미국의 스키너는 한 발짝 더 나갑니다. 특정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필요한 자극이 무엇인지 설계하는 조작적 조건형성(operant conditioning)이라는 모델을 발표합니다. 학자들은 열광합니다. 스키너는 “내게 갓난아이 12명을 주면, 원하는 인간형 12명을 만들어주겠다”라는 과감한 발언도 합니다. ‘월든 2’라는 책에서는 1천명의 작은 국가를 세우고 자신을 지도자로 만들어 주면 거뜬히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이 실험들을 시작으로 대중들이 특정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고도의 기획과 설계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유 의지대로 선택하고 행동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은 그 누군가의 치밀한 설계에 반응을 보이면서 살아온 결과가 지금 내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오싹하지요.하지만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그 원리는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구요? 그 실험은 우리를 개 취급하는 실험이기 때문이지요. 대중을 개, 돼지로 치부하는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설계자들의 전제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과 사람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이 하는 생각은 본능에 따른 반응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생각을 생각하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메타 인지(Metanoia)능력이지요. 이 능력을 발휘할 때 사람은 비로소 개, 돼지와 구분될 수 있습니다.내 생각이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1미터쯤 공중 부양 상태 시선으로 생각하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며 관찰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17

돈키호테와 공학

△돈키호테의 에피스테메‘돈키호테’(Don Quixote)는 17세기경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에 살았다. 그는 당대에 유행하던 기사 이야기에 매료되어 스스로 기사 수련을 떠난다. 이 얼빠진 기사가 풍차를 거인이라고 생각하여 돌진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나 무모한 도전을 일삼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그런데 왜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한 것일까? 푸코는 돈키호테를 ‘유사성의 에피스테메Episteme’와 ‘새롭게 발현되는 에피스테메’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이 말은 어렵게 보이지만 사실 간단하다. 절대왕정 시대의 사람은 자연물을 왕에 비유하곤 했다. “짐이 곧 국가다”로 유명한 루이 14세가 ‘태양왕’이라 불린 이유는 그가 태양과 닮았다고 생각해서이다. 비록 태양은 아니지만 태양처럼 빛나는 왕이라 생각하자, 그가 태양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당대의 인식체계이며, 푸코는 이것을 에피스테메라 부른다.그러니까 돈키호테는 세계를 기사 이야기로 환원해서 보았던 것인데, 기사 이야기가 곧 돈키호테의 에피스테메였다고 할 수 있다. 기사처럼 용맹하게 싸울 대상을 찾던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대한 괴물로 착각하며, 공주를 구하여 기사작위를 받고 싶었던 마음에서 수도사를 기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특정한 인식체계에 붙들리면 그 대상의 실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식체계가 만들어내는 왜곡된 상을 보게 된다. 이것을 푸코는 ‘표상’이라고 부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나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은 이를 잘 드러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처해 있는 상황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몸담고 있는 세계의 체계다.그런데 이 소설의 끝에서 돈키호테는 자신이 본 것이 환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키호테가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좌충우돌 모험 덕분이었다. 돈키호테는 환상에 빠진 자신을 확인하고, 그런 자신을 구하려고 모험을 떠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모험이 없었다면 그는 환상에 머물러야만 했을 것이다. 무모한 모험이 돈키호테를 괴짜로 만들었지만, 그 모험 덕분에 돈키호테는 스스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모험하지 않고 안주하기만 바란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인식체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돈키호테의 정신이 필요하다.△콜라 초깊이 시추공 프로젝트지구의 반경은 약 6천378km다. 지구 내부가 궁금하다. 지진은 왜 일어나며,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한 광물은 어떻게 땅속에 묻혀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기면 사람은 호기심을 해소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지구 내부가 궁금했던 구소련의 과학자들은 정말 땅을 파보았다. 이 프로젝트가 일명 지구속 ‘콜라 초깊이 시추공Kola Superdeep Borehole’이다.그 결과는? 지하 9㎞까지 내려갔으나 예상치 못한 200℃ 이상의 고온으로 시추를 중단해야 했다. 콜라 초깊이 시추공은 1970년 5월부터 진행되어 20년 걸려 1989년 1만2천262m에 도달했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는 1만3천500m를 돌파하는 것이었으나 땅속 온도가 180℃까지 올랐고, 이러한 온도에서 드릴을 냉각시킬 수 있는 기술이 없어 1992년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다시 2005년 새롭게 시추를 시작, 8천578m를 굴착했으나 예산문제로 끝나게 되었다. 지금 이곳은 폐허가 되어 방치돼 있다.콜라 초깊이 시추공은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쓸데없는 프로젝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발칙하고 무모한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지구 내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각의 물리화학적 조성과 지구 내부의 열체계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땅밑에 수소가 다량 있다는 것도 처음 확인했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지진파의 불연속이 나타나는 모호로비치칙Mohorovicic 불연속면에 대한 것이었다. 그동안 지질학자는 이 불연속면이 나타나는 원인이 화강암에서 현무암으로 암석 물질성분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한 결과 화강암이 변성암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온 때문에 화강암이 품고 있던 물을 분출하는 것을 밝혔다. 그래서 지구 내부에 수소뿐 아니라 많은 양의 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질학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었는데 25억여 년 이상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시생대(始生代)의 바닥에 도달하여 당시의 지구상의 생태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이 기술은 석유나 천연가스 시추에 응용된다. 예전에는 개발이 불가능했던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석유자원의 시추에 필요한 핵심기술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우주탐사2015년 7월, 미항공우주국NASA은 ‘행성 사냥꾼’으로 불리는 케플러우주망원경으로 지구와 유사한 환경에 있는 케플러-452bKepler-452b를 찾아냈다. 이 행성과 지구와의 거리는 1천400여 광년으로 중력은 지구의 두 배 정도일 것으로 추측된다. 지구보다 60% 정도 크고 다섯 배정도 무거워서 ‘슈퍼지구’라고 불리는 이 행성은 태양과 비슷한 항성주위를 385일 주기로 공전하며, 지구처럼 표면이 딱딱한 암석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케플러-452b가 주목되는 이유는 여기에 생명체가 살 수 있어서다. 자연환경 조건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생명체가 존재할 개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구를 닮은 행성을 처음 찾은 것이 아니라 이것이 여섯 번째다. 도대체 우주는 얼마나 넓으며, 이 우주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일이 펼쳐지고 있단 말인가? 우주는 끝이 있는 유한한 공간일까, 아니면 끝이 없는 무한한 공간일까?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인간은 오만하고 편협하여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지구 수준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은하계, 나아가 우주 전체 수준에서 보자면 인간은 한낱 먼지처럼 미약하다. 인간은 미립자차원에서 보면 텅 비어 있다. 미립자 세계는 99.999%가 텅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몸 역시 한낱 허상이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도 텅 비어 있긴 마찬가지어서 블랙홀 같이 막강한 중력 속에서 이 꽉찬 것 같은 지구도 탁구공 수준의 크기로 수축된다. 지구와 같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행성이 그 정도 크기로 줄어든다면 우리 몸은 얼마나 작아질까. 우리는 정말 티끌, 티끌만도 못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이 티끌만도 못한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찾아 헤맨다. 날씨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날씨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연구, 우주에 태양광발전소를 세워 지구로 송전하려는 프로젝트, 우주에 정거장을 설치하고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화성식민지 개척 계획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설사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날씨에 대해서 그리고 우주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공학은 실패를 밑거름 삼아 성공으로 간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공학에는 실패는 있어도 성공은 없고, 나아가 성공도 없지만 실패도 없다. 공학 속에 실패도 성공도 없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인간, 결국 남는 것은 인간이다. 무수한 실패 속에서도 인간은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사 실패가 불가피하더라도 우리는 배우게 될 것이다. 무모하면 무모할수록 그 무모함을 감당할 수 있는 실제적 공학기술이 점차 보완되어 완전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2019-02-14

봄소식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입춘 날 들에 나가/ 봄까치꽃 핀 걸 본다// 몸 낮추고 눈 맑아야/ 겨우 찾아 보이는 꽃// 그 곁에 쪼그려 앉아/ 봄소식을 듣는다” - 拙詩 ‘봄소식’입춘이 지났지만 들녘은 아직 겨울입니다. 지난 여름의 무성한 초록과 가을의 황금물결은 다 어디로 갔는지 메마르고 삭막한 무채색의 풍경입니다. 그 풍경 속으로 자주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하기에는 산속 오솔길도 좋지만 사방이 탁 트인 들길이 더 좋습니다. 경정리로 곧게 뻗은 들길은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걷다보면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것보다도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아마도 흐르는 물에 몸을 맞기고 떠내려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논둑길 양지쪽에는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월동하는 풀빛이 있습니다. 풀들은 대개 씨앗을 남기고 죽거나 뿌리만 살아서 월동을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만 되어도 산 채로 겨울을 나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견 황량한 겨울 들판에도 귀 기울이면 인동하는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둑길 밑 검불 사이로 적갈색이 된 풀잎이 보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다가 오소소 소름이 돋습니다. 놀랍게도 봄까치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직은 한파가 더 닥칠지도 모르고, 벌 나비가 날기에도 한참이나 이른 계절인데 왜 하마 꽃을 피운 걸까요. 세상에 무의미한 존재나 현상이란 없을진대, 얼핏 보아서는 무모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이 봄까치꽃도 분명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테지요.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갈수록 실업자가 늘어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넘어 증오와 적개심이 팽배한 사회입니다.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돌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은 상당히 풍족한 나라입니다.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가깝지요. 세계 십위권의 경제대국답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염려는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행복지수는 낮고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과분한 욕심을 분모로 놓는 한 물질적 소득이 행복지수를 높이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사람들이 비관하거나 좌절하는 이유 중 대부분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가 남들에 비해서 열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생존의 문제가 걸린 절대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열등감이기 때문이지요. 나보다 잘나고 많이 가진 사람들과 구태여 비교를 하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겨울 들판에 피어있는 봄까치꽃이 매화나 동백에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의식주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는 나라에 산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자 축복입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의식주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생태계의 법칙이니까요.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나 호랑이도 쉽사리 먹잇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공평한 섭리입니다. 남보다 가진 것이 적다는 것은 결코 기죽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 이상의 탐욕이 자신과 지구생태계를 해치는 일이라는 각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좌절하거나 자괴감을 갖는다는 건 한갓 어리석은 엄살에 불과합니다. 생명은 사는 데까지 살아있는 것으로 완성이고 희열이기 때문에, 생명현상 그 자체를 우선하는 명분이나 목적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몸을 낮추고 눈이 맑아야 찾을 수 있는 곳에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기쁨이 있습니다. 저 겨울 들판의 봄까치꽃이 전하는, 어떤 경전의 말씀보다도 더 생생한 전율로 다가오는 메시지입니다.

2019-02-14

상투스 당구장 없는 설날

설 날 때 만날 친구는 어떤 친구가 좋은가? 돈 많은 친구인가, 힘 있는 친구인가?옛날에는 그랬을지 모르겠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기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는 게 나의 체험적 진실.돈 있는 친구, 그는 왜 돈 많게 되었는지 깨닫게 해줄 만큼 돈이 굳다. 자기 돈 불리게 해 주는 친구 아니면 상대도 잘 안 해 주는 경우가 많다.힘 있는 친구, 그는 자기를 더 힘 있게 해줄 사람 찾아다니기 바쁘다. 그 힘 가져다 힘없는 사람 도와주는 데 쓰는 법이 어지간히 없다.그러니 무엇이든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끼리 친구 삼는 게 참 좋다. 살다 보면 돈 많고 힘 있어 생기는 근심 걱정도 보통은 넘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 아니 할 말로 누구는 그 많은 돈 다 쓰고 갔나? 짊어지고 갔나? 힘도 그 힘이 꼭지까지 오르면 내려가는 비탈이 가파르기 짝이 없고.자부심 섞어 말하면, 나는 참 변함도 없는 친구다. 어른 되고 나서도 삼십 년 가까이를 설날 때 한가위 때면 꼭 같은 친구들만 만나고 다니니 말이다. 하기사, 그 친구라는 친구들도 멤버가 어느 한 번도 변할 때가 없었으니 무던하다면 어지간히 무던하다고나 할까.만나는 곳도 늘 대전 옛날 중구청 자리, 지금은 우리들 공원인가가 되었지만, 그 옆에 상투스 당구장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야 당구라는 걸 쳐본 나는 워낙 삼각함수를 못하다 보니 지금도 고작 백이나 놓을 처지다. 하지만 두 친구는 경우가 다르다. 감사원 다니는 정 모는 이백오십은 놔야 하는데 늘 이백이고, 무늬만 출판사 대표 최 모는 삼백 오십은 놔야 하는데 꼭 삼백이다. 재작년인가부터 우리 사이에 끼어든 내 동생 방 모도 삼백을 놓으니 ‘사회 당구’ 치고는 실력파들이라고나 할까.-거기서 보지, 네 시에.말 안 해도 거기가 어딘지 다 아는 상투스 당구장. 그런데 이게 웬 일. 시간 넉넉히 맞춰 먼저 올라가 있으려고 가보니, 없다. 사라진 것이다. 명절 때만 되면 무슨 당구회 멤버들끼리 늘 모여 행사까지 치른다고, 플래카드 걸어 놓은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송두리째 없다.돌이켜 생각하니, 지난 몇 년간 손님들이 어지간히 줄어들기는 했었다. 젊은 사람들 가는 당구장도 아니고, 전통적인 녹색 당구대에 당구알도 어지간히 크고 무거웠는데, 세월 따라 이곳도 묻혀버린 것이다.어떻게 해서 근처 다른 곳에 가기는 갔는데, 영 뒷맛 씁쓸하다. 옛날에 상투스라는 커피숍이 브라암스 다음에 생겼고 그 커피숍 이름 따라 당구장도 상투스였다. 가만 있자. 상투스가 무슨 뜻이던가.상투스. 라틴어. Sanctus. 미사의 성찬 전례 때, 감사의 노래 다음에 부르는 기쁨의 노래.그랬나 보다. 그래서 옛날 친구들 만나 어지간히 기쁘게 한 세월 보냈었나 보다.상투스 당구장 주인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2-14

길빵 금지법

담배를 많이 피우고도 장수한 사람을 든다면 영국 총리 윈스턴 처질을 말할 수 있다. 하루 10개 정도의 시가(궐련)를 피웠다. 하루종일 입에 시가를 물고 있다. 평생 그가 태운 시가 수가 25만 개라고 소개되고 있으니 애연가임에 틀림없다. 90세까지 장수했으니 담배가 그의 몸에 해롭다는 말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장수에 대해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가를 피웠는데도 90세까지 살았던 것이 아니고 시가를 피워서 90세 밖에 못 살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의 말년이 뇌졸중 등 담배 후유증으로 인한 질환과 고통으로 보냈으니 말이다.어쨌든 담배는 현대 의학이 인정하는 건강 유해물이다. 흡연은 자살행위와 같다는 말에 이의를 달 수 없다. 담배에서 발생하는 수백가지의 화학물질이 니코틴과 함께 인체를 공격한다. 세계적 통계로 매년 담배로 사망하는 사람이 400만 명이다. 2020년에는 그 수가 1천만 명을 넘을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서도 한해 4만2천 명의 사람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다.지금은 담배의 유해성이 많이 알려져 국내 흡연율도 많이 떨어졌다. 지난 10년간 4.2%포인트가 줄어 현재 우리의 흡연율은 21.2%다. 남성 흡연율이 39.3%로 처음으로 30%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흡연율은 여전히 OECD국가 중 상위권이다. 담배 유해성을 알리는 광고와 흡연 제한 등으로 애연가들의 입지가 많이 좁아진 가운데 보행 중 담배를 제한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이다. 간간히 국민청원을 통해 길거리 흡연에 대한 제재 목소리가 나왔으나 법으로 제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간과 구역 중심의 규제에서 흡연행위에 대한 규제로 강화됐다는 점에서 법안 처리가 주목된다.애연가들은 금연구역에 비해 흡연구역이 턱없이 부족해 흡연자의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를 낸다. 그동안 정부가 담배를 팔아서 번 돈이 얼마인데 흡연 공간 확보에 너무 인색했다는 반응이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길빵이라 부른다. 앞으로 길빵 단속이 가능해질지 자못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2-14

균형발전과 예타면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예타면제로 알려진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투자사업은 결코 선심성 사업이 아니다. 이 좁은 나라에서 군산·전주에서 포항으로 어떻게 가는 지 아나. 무주·진안·장수에 막혀 못넘어간다. 포항에 경조사 있어도 못 간다. 강릉에서 목포로 바로 가는 길이 없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지난 12·13일 이틀동안 전북 전주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국가비전회의’에 참석한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송 위원장은 또 “수도권에서 돈의 사용량 80%, 저축의 65%, 고용의 65%가 이뤄지고, 인구의 절반이 서울에 몰려있다. 어떤 후진국도 인구의 절반이 수도에 몰려있는 곳은 없다”고 수도권 집중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어 “지역이 비면 서울도 불쌍해진다. 서울시민들은 무슨 죄가 있나. 혼잡한 교통, 치솟는 아파트값을 시민들이 감당해야 한다”면서 “이런 부분을 제일 잘한 곳이 독일인 데, 못사는 도시가 잘사는 도시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헌법으로 제정돼 있다. 그래서 동독이 오늘의 서독 수준으로 빨리 (경제수준이)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위원장은 “바로 이런 재정조정 역할을 우리는 예타면제로 한다”고 설명한 뒤 “인구가 없으면 예타가 안된다. 사람이 없으니 수익성이 없다. 수익성을 맞추라면 말이 안된다. 그래서 예타를 울고 울어도 못넘는 벽이라 해서 통곡의 벽이라고 한다”고 예타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제도 고치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제도를 고치기 전에 각 시도마다 꼭 필요한 사업을 먼저 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게 바로 예타면제사업의 취지라는 설명이었다. 끝으로 송 위원장은 “이번 공공투자사업은 지방에 주는 선물이 아니라 아프고 힘든 사람을 위한 처방”이라면서 “예타면제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2차, 3차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실제로 지난달 29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발표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대상에 대해 경북지역에서는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경북도가 요청한 동해안고속도로(7조원)와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4조원)사업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2순위로 신청한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사업을 축소한 단선전철화사업으로 생색만 내는 정도에 그쳤고, 사업비도 4천억원으로 줄었다. 경북도는 경남도의 김천~김해간 남부내륙철도 사업(4조7천억원)의 일부 구간(고령~성주~김천 60㎞)의 사업비 1조6천억원을 확보한 셈이어서 선방했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놨지만 지역민심은 싸늘했다.그 와중에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지역별 예타면제 사업 선정을 두고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사업이 아니냐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14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 김두관 의원) 주최로 ‘2019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는 정부가 예타면제사업을 선정 발표함에 따라 시도별 의견수렴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역혁신의 성장판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였다.이날 토론회에서 발제한 김영수 산업연구원 지역발전연구센터장은 “균형발전을 목표로 하는 사업들을 선별해 균형발전차원에서의 예타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처럼 예타면제사업을 일회성으로 할 게 아니라 정례화하거나 절차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이날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필자는 경북지역의 경우 경북도가 예타면제사업으로 신청한 사업이 모두 무산되고, 4천억원 규모의 단선전철화사업만 선정돼 민심이 들끓고 있다고 전했다. ‘성공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실패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고 했다. 지역소멸의 위기에 처한 경북지역에도 균형발전을 목표로 한 제2, 제3의 예타면제사업이 선정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9-02-14

한전공대 꼭 필요한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5·16이 일어난 다음해인 1962년, 서울 마포에 2년제 수도공업초급대학이 세워졌다. “국가의 자주 독립을 고수·발전시키고 인류 평화 건설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한다.” 는 구호 아래 한국전력이 만든 대학이다. 이 대학은 2년후 4년제인 수도공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한국전력은 흩어진 전력회사들을 통합하면서 전문인력 공급이 절실했다. 그래서 세운 것이 수도공대였다.당시 수도공대 인기는 대단했다. 전교생에게 기숙사와 장학금을 지급하고 취업률도 좋아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 인재들이 몰렸다. 하지만 수도공대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국가로부터 재정조달이 줄고 한전의 보조금도 줄어들면서 수도공대는 인기를 잃었고, 결국 1971년 홍익대에 이양됐다. 한국전력은 두 번째의 공대 설립을 시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서부의 포스텍을 표방하는 한전공대의 부지가 최종 확정되면서 한전공대 설립이 본격화 되고 있다. 명분은 에너지기술의 육성이라는 것이다.지금 한국엔 수십개의 종합대학교 공대가 있고 특성화 공대가 5개나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하여도 국토와 인구수의 규모에 비해 특성화 공대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더구나 고교졸업생의 감소가 예상되어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4년제, 2년제 대학을 합쳐 350개의 대학숫자는 어떤 선진국가보다도 인구비례로 많은 숫자이다.지금 대학 설립 주체로서 자금줄이 돼야 할 한국전력이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운영비 일부 지원을 약속한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도 문제다. 한전은 6년 만에 4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앞두고 있고 운영비 등의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 할 전남도는 재정자립도가 30%대로 17개 광역시 중 꼴찌 수준이어서 원활한 재정 지원이 가능하지가 않다.또한 설립에 약 5천억원이 필요하고 설립 후에도 매년 운영비로 약 1천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한전에 있는 것인가.이런 와중에 한전공대는 2022년 개교를 6개 학과에 학부생 400명, 대학원생 600명, 교수 100명으로 혜택이 파격적이다. 등록금 전액 면제에 기숙사까지 무료로 제공은 기본이고 특히 눈길을 끄는건. 교수들에게 다른 특성 과기대의 3배 이상의 연봉을 준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올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해 진다. 다른 대학교수의 3배 이상의 연봉을 주어 우수교수들을 빨아들이겠다는 발상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큰 혼란만 초래할 것이 예상된다.연봉 3배는 즉흥적 발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여진다.과거 정보통신부와 산하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민간 KT 등이 공동으로 설립해 1998년 개교한 사립대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는 정권이 바뀌고 ICU는 국가나 공공기관은 사립학교를 설립할 수 없음에도 규정을 어기고 국비를 지원받았다는 감사원의 지적(2004년)을 받고 결국 카이스트에 통합되었다. 정권이 바뀌면 한전공대 설립이나 운영이 난항을 겪을 것은 자명하다. 현재 한전공대 설립은 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는 이유 외에는 뚜렷한 명분을 찾을 수 없다.내세운 에너지 연구는 국내 수많은 공대 특히 5개 과기특성화 대학에서 이미 많은 연구를 하고 있고 만일 부족하다면 이러한 기존의 공대를 한전이나 정부가 지원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고 지역을 고려 하더라도 광주의 지시트의 에너지 관련 연구 교육을 강화하면 된다.지금 우리는 정치적인 논리로 세워지는듯한 인상을 주는 한전공대 설립이 진정 국가백년대계에 필요한 것인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2019-02-14

신냉전과 원자력

김학주 한동대 교수세계적으로 원자력을 혐오하는 분위기다. 잘못 관리해서 재앙을 부를 수 있고, 또 평화를 위협하는 물질로 간주되곤 한다. 과연 원자력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일까?영국에서는 발전시설을 선택함에 있어 신재생과 원자력을 놓고 논쟁이 붙었다. 둘 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신재생이 원자력보다 싸졌다는 주장이 있었다. 영국에서 1MWH당 발전비용이 해상풍력은 76달러인데 비해 원자력은 122달러라는 것이다.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첫째, 원자로는 발전용량의 90% 가량 전기를 얻을 수 있다. 1GW의 전기를 얻기 위해 1.1GW정도의 발전 설비를 갖고 있으면 되는 셈이다. 반면 신재생은 발전용량의 50% 정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똑 같은 1GW의 전기를 얻기 위해 2GW의 발전 시설이 필요하다.둘째,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발전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배터리를 비치해야 한다. 그런데 예상외로 오랜 기간 발전이 안되면 배터리로 전기를 모아도 부족할 수 있고, 이 경우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보조 발전원이 필요하다. 쉽게 켰다 끌 수 있는 천연가스 발전기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도 원자력이 신재생보다 비싸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물론 신재생 기술이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및 머신러닝 기법을 통해 미래 발전량을 예측할 수 있다면 보조발전원을 없앨 수도 있다. 그런데 원자력도 발전소 건설의 공기를 단축시키는 등 발전 단가를 낮추고 있다.일본처럼 화산, 지진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경제성을 떠나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지역, 특히 중국, 중동 등 경제성장을 위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지역에서 원자력이 기저발전원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원자력 기자재 제조 업체들은 이미 도산했거나 쓰러진 상태다. 어느 업체가 어떻게 회생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차라리 우라늄 가격의 반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 투자에 있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한편 군사적으로도 세계는 비핵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1987년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잠정 중단했다. 핵무기 개발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이 조약을 먼저 위반했다고 밝혔으나 미국이 조준하고 있는 대상은 러시아가 아니라 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 조약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미국과 달리 아직 핵미사일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해군 및 공군 군사력 확장에 예민하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이 조약을 파기한 것으로 보인다.세계적으로는 이렇게 신냉전 분위기로 접어드는 반면 미국이 북한에 우호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미국은 중국 핵 확산을 걱정하고 있는데 만일 북한 핵이 중국의 통제 아래 놓인다면 골치아플 것이다. 북한에 적당한 보상을 주고 북핵을 삭감 또는 제거할 수 있다면 큰 성과일 것이다. 따라서 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대화의 결과가 원하는 방향과 다를 때 기대는 증오로 돌변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남북경협주에 일방적인 낙관은 금물이다. 즉 이벤트가 있을 때 단기 트레이딩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세계적으로 신냉전 기류가 흐른다면 보잉, 록히드마틴, 제너럴 다이나믹스 등 미국의 국방관련주에 관심이 간다. 이들 주가는 리먼사태 이후 급등했었다. 저성장, 유동성 장세에서 안정성장주로서의 프레미엄이 극대화됐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트럼프의 무리한 재정정책으로 인해 미국 국방예산이 감축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주가가 하락했지만 신냉전 추세가 구조적이라면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므로 조정시 매집이 바람직해 보인다.

2019-02-14

죽음의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

그는 비엔나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기차에 탑니다. 깨끗하고 푹신한 의자 대신 지푸라기가 깔려 있고 오줌 냄새와 파리 떼가 들끓는 화물칸입니다. 숨쉬기도 곤란할 만큼 사람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떨굽니다. 기차에 탄 1500명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들이지요.1942년. 남자는 동료 유대인 6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나치의 조직적이고 능률적인 살인 공장의 세계에 끌려갑니다. 1500명 중 1300명이 하루 밤 만에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비교적 건강하고 노동력이 있어 보이는 200명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요. 남자는 극적으로 삶의 대열에 몸을 옮깁니다.남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첫 책으로 펴내기 직전 끌려왔습니다. 품 안에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원고 뭉치가 있습니다. 나치는 가차없이 생명처럼 품고 온 원고를 빼앗아 불타는 소각장에 던져버립니다. 형편없는 강제 샤워를 마친 후 주어진 낡은 옷 한 벌. 그 허름한 옷의 비밀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네 혼과 힘과 마음을 다해 야훼를 사랑하라.” 유대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며 늘 애송하는 쉐마 이스라엘(Shema Israel)의 유명한 귀절을 만난 남자는 눈물이 핑 돕니다. 원고 뭉치와 메모 한 장을 맞바꾸었다 생각하며 삶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수용소 생활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루 배급받는 물 한 컵을 반은 마시고 반은 아꼈다가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위해 세수하고 면도하는데 사용하지요.남자의 이름은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e). 세계 100대 유명인사들이 가장 영향받은 책 1위로 선정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바로 그분입니다. 사람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자신의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 주도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 빅터 프랭클은 규정합니다. 사회적 날씨 따위가 결코 우리의 존엄을 짓밟을 수 없고 삶을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언제 어떻게 가스실로 끌려갈 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빅터 프랭클은 세상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진정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요.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삶입니다.사회적 날씨에 휘둘리지 않는 주도적인 삶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오늘도 묵묵히 삶의 현장에서 어떤 환경에도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그대의 용기에 박수를 드립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14

교육위기 체감 지수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SKY캐슬의 위력이 대단하다. 광고계는 물론 각종 토크쇼까지 캐슬 출연자들이 점령했다. 대박 드라마의 파급 효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SKY캐슬처럼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은 단순하게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다룬 사회 문제가 현실에서는 꼭 해결되기를 바라는 주술 같은 기원을 담고 있다.특정 정치인들의 골수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규모를 떠나 모두 죽을힘으로 버티고 있다. 그런데 그 힘도 거의 소진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이 나라도 무너진다. 위기 체감 지수라는 것이 있다면 그 수치는 이미 최대치를 넘어섰다.그럼 교육위기 체감 지수는 어떨까? 단언컨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월등히 높다. 이를 증명하듯 “공교육은 죽었다. 학교는 죽었다.”라는 말들이 더 이상 소설이나 연구논문의 주제가 아닌 일상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SKY캐슬과 같은 드라마가 만들어졌다.교육위기 체감 지수를 계산할 항목들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나 필자는 교육의 본질과 교육과 사회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추출해 보았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지속도, 공교육의 사회 기여도, 사회 변화 반영도, 공교육에 대한 교육 수요자의 기대와 신뢰도, 교육 공급자들의 교육 의지 및 유연성 정도! 각 항목들의 점수는 얼마일까?그 답은 우주가 말해준다. 우리 교육은 우주를 비롯해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다.“엄마, 아빠 실은 책상에 앉으면 공부가 다 되는 줄 알았어요. 성적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줄 알았으니까요. (중략) 성적, 대학, 이런 거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았어요. (중략) 이렇게 귀한 시간을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모른 채 성적이나 올리자고 문제나 풀어대면서 낭비할 순 없어요.(중략) 힘은 아빠, 내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보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뭘 위해 사는지, 그게 선명할 때, 그게 뚜렷하고 확실할 때 나오는 거 아니에요?”우주가 학교를 그만 두기로 결심하고 부모와 나눈 이야기다. 우리는 우주의 물음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그런데 비록 드라마이지만, 어느 교사는 이렇게 답을 했다.“니들은 인간이기 전에 학생이야, 고3이라고! 대학갈 생각을 해야지 학교를 관둬! 자아탐구 좋아하시네. SKY 못가면 뭐라고? (학생들 - 사람대접 못 받는다.)”드라마는 끝났지만 학벌주의 사회는 더 공고(鞏固)해지고 있다. 학교 교육은 명문대를 가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가 되어버렸고, 명문대 진학을 성공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교사들은 명문대라는 올가미로 학생을 겁박(劫迫)하고 있다.또 학부모들은 말로는 배려니, 희생이니, 양보니, 참교육이니 떠들면서 속으로는 내 자식만의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물론 모든 교사와 학부모들이 이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위선자들로 가득한 우리 학교 교육에 정말 희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나 할까?드라마나 영화가 무서운 것은 그 내용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 장면들이 가까운 시일에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 배우들의 절규가 헛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절규가 주는 경고를 똑똑히 기억하고 교육 현장을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교도, 교사도, 학부모들도 알기는 알지만 실천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오늘도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학교를 나올지 학원에서 고민하고 있다. 연중 내내 환하게 불 밝힌 학원과 겨우내 불 꺼진 학교, 참 아프다.

2019-02-13

웃음과 눈물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거나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하면 평정심과 분별력이 쇠해진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무고(誣告) 수준으로 꾸며대며 음해하는 자나, 자명한 사실마저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와 대면할 경우가 그러하다. 그런 지경에 이르면 장삼이사들은 분노하거나 대경실색하기 십상이다. 음모와 불의를 참지 못하는 다혈질인 사람이 창졸간(倉卒間)에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면 크게 노하여 붉으락푸르락하기 마련이다.웃음에 관한 서책을 읽다가 혼자 미소짓는다. ‘현자들은 무엇을 보고 웃나’하는 부제(副題)를 가진 ‘웃음의 철학’이 던지는 문제의식에 공감한 것이다. 서양철학의 근간이라 거명되는 플라톤은 철학에서 웃음을 추방시킨 인물로 호가 나있다고 한다. 이성과 덕을 논의하는 자리에 웃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피력한 플라톤. 어쩌면 소크라테스가 부박(浮薄)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선고 판결을 받은 사건이 그를 웃음과 격절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플라톤의 뒤를 이은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의 일정분량을 웃음과 희극에 할애한다. 스승과 결이 다르게 웃음을 바라본 셈이다. 하지만 ‘시학’의 본령이 서사시와 비극에 자리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 역시 웃음에 많은 하중(荷重)을 부여한 것 같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은 웃음에 관한 유의미한 저작이다. 형사추리소설 형식으로 웃음과 희극을 다루면서 ‘시학’제2권을 추적하고 있으니 말이다.“만물의 근원은 원자와 공허다. 다른 모든 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념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을 내세운 철학자가 데모크리토스다. 특정한 공간을 채우는 가장 작은 단위이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물질적인 요소가 원자다. 그런 원자와 원자로 채워지지 않은 공간, 즉 공허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 데모크리토스. 우리는 그것을 ‘원자론’이라 부르고, 그것은 무신론과 직결된다. 원자와 공허의 세상에 신을 위한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과도한 운동이나 지나친 정숙을 경계하고 알맞은 정도(metron)를 추구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웃는 철학자’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인간과 세상사를 유쾌하게 웃은 인물이었다. 그가 명랑함을 기질적으로 타고 났는지, 혹은 동시대인들의 어리석은 광대놀음을 비웃었는지 알 도리는 없다. 그러하되 그가 남긴 명언은 음미할 만하다. “바보들만 삶에 대한 기쁨이 없다.” 지나친 진지함과 엄숙함을 경계하는 경구 아닐까?!반면에 ‘침울한 현자’로 알려진 헤라클레이토스는 유명한 인간혐오자로 타인과 교제를 끊고 산에 들어가 외롭게 살았다.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부도덕으로 인해 분노상황에 직면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그런 행위를 하는 인간의 비참함을 애도했던 비관주의 철학자가 헤라클레이토스였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은 분노하지 않고, 웃음이나 눈물로 분노를 극복한 셈이다. 그들은 끝내 분노하지 않았던 것이다.흥미로운 점은 헤라클레이토스가 60세로 세상과 작별했다면, 데모크리토스는 100세에 이르러 고통 없이 태연하게 죽음과 대면했다는 사실이다. 웃음의 힘은 눈물의 그것을 능가하는 모양이다. 한국인들은 자칭 의사이자 우심한 건강병환자로 평생 살아간다.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대할 때마다 우국충정과 지역사랑으로 분노와 울분과 흥분으로 밤잠 설치는 분도 적잖다. 무병장수를 희구하는 그들에게 ‘웃고 사시라!’는 조언을 전하고 싶다.분노는 분노로 해결되지 아니하고, 복수는 복수로 마감되지 않는 법. 분노를 야기하는 대상의 본질을 통찰하고 시원하게 웃음보를 날려 보내는 것이 자신과 세상에 유익한 선택일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훼손하고 모욕하는 모리배(謀利輩)들에게 분노하기보다는 풍자(諷刺)의 매서운 웃음으로 제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2019-02-13

사실과 해석

장규열한동대 교수시카고의 유력일간지 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 본사 편집국에는 커다란 현수막에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거 확인해!’ 라고 적어 걸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라도 언론사 기자는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한 마디일 터이다.실제로, 일선 기자들이 취재와 보도를 위하여 기사작성에 나설 때에 상급자로부터 가장 흔하게 듣는 소리가 ‘확인했어?’인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 그를 토대로 글을 적었는지를 묻는다. 일이 벌어진 현장에 가서 손수 확인을 하든지 아니면 믿을 만한 복수의 소스를 근거로 분명히 확인을 한 다음에야 책임있는 기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이 흔들리면 기사를 읽는 독자는 심각한 혼란에 빠질 위험에 처한다.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녹음이 우거진 숲 속에서 벌어진 어느 사무라이의 죽음을 놓고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이 모두 서로 다른 증언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사실에 분명히 근거하지 아니하고 상상과 해석이 앞서고 자기 생각이 버무려 질 때에 벌어질 수 있는 혼돈과 혼란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모든 담론은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여야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각과 의견이 사실에 앞서 개진되어 두드러질 때에 토대가 되어야 할 사실은 그 힘을 잃고 진실에 이를 방도는 사라지게 된다. 그런 끝에 허무맹랑한 주장과 고집이 판을 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에 머물 것이면 몰라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담론의 전개가 필요한 사안들에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며 그 확인은 필수인 것이다.어느 공당의 대표가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해석이 정말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지 확인되어야 한다. 혹 그 사실이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확인되지 않았다면 그를 토대로 한 해석은 모두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혹 ‘사실확인’에 관하여 철저하지 않은 채, 섣불리 해석으로 나아간다면 벌어질 수 있는 그 모든 오역과 오해는 어찌할 것인가. 듣자 하니, 그가 언급한 사안은 이미 여러 각도에서 확인된 바 언론과 법원 등의 검증이 이미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덜 확인된 채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되는 일이 이제는 없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이미 정리되고 정돈된 마음에 혼란과 분노를 더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현대 언론에 있어 기사작성은 이제 객관적인 사실의 기계적인 전달과 공정한 보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안과 사건에 대하여 기사와 논평은 얼마든지 기자와 저자의 양심과 양식에 따른 해석과 담론의 전개를 가능하게 한다. 책임있는 의견의 개진과 분명한 주장의 표출도 현대 언론에게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기본은 그 모든 생각과 표현이 ‘확인된 사실’에 근거한 것이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출처가 중요하고 근거가 필요하며 확인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그래서 위험하다. 언론이든 정치든 우리 사회에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사라져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상의 자유가 물론 소중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개진함에 있어서는 꼼꼼하고 신중한 사실의 확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다.개인 독자로서 기사와 담론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읽고 접하는 글과 생각들이 과연 ‘사실’에 근거한 담론들이었는지 살피며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디지털문명은 현대인의 삶에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져왔지만, 정보의 더미 속에 자칫 ‘사실확인’에 소홀하게 만드는 위험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해석에 앞서 사실을 살펴야 한다. 사실을 토대로만 해석할 일이다.

2019-02-13

스마트폰 과의존 증후군

스마트폰 과의존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과의존 증후군이란 일상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가장 우선이고, 스마트폰 이용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워지면서 주변 사람과 갈등을 겪고, 신체적 불편을 느끼며, 가정·학교·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말한다. ‘스마트폰 과의존 척도’를 활용해 평가하며, 점수에 따라 고위험군, 잠재적 위험군, 일반 사용자로 분류한다.문제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양육 탓에 3~5살 유아와 6~9살 아동의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스마트폰·인터넷 이용자 2만8천575명을 가구 방문 면접 방식으로 조사해 내놓은 ‘2018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를 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 중 19.1%가 과의존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0.5%포인트 증가했다.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의 삶의 만족도는 73.7%로 일반 사용자군(78.9%)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인간관계와 건강 등에서 격차가 컸다. 이전 조사와 비교하면 유아와 아동 이용자들의 과의존 위험군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게 눈에 띈다. 2015년 17.9%에서 이듬해 19.1%로 1.2%포인트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20.7%로 다시 1.6%포인트 높아졌다. 조사 대상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 폭을 기록했다. 2017~2018년 사이, 60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12.9%에서 14.2%로 1.3%포인트 증가했고, 그동안 가장 관심이 집중됐던 청소년은 30.3%에서 29.3%로 오히려 1.0%포인트 감소했다.유아·아동 연령대의 과의존 위험군 증가 폭이 커지는 이유로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양육 탓으로 분석됐다. 일찍부터 스마트폰을 통해 교육 콘텐츠 등을 보게 하거나,따로 시간을 갖기 위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영상이나 게임 등을 보게 하는 게 이런 현상을 부른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스마트폰 과의존증후군에도 이제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2-13

19가지 채소와 꿩고기의 조화, 산나물 들나물의 향기가 입안 가득

그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폭군으로 몰려 제주로 유배 갔던 광해군(1575~1641년 7월1일, 재위 1608~1623년). 설마 “음식을 얻어먹고 벼슬을 팔았다”는 지청구를 들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단할 것도 없는 더덕, 김치, 잡채 등을 얻어먹고 국왕이 벼슬을 팔았다는 오명이다.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반정(反正)’에 성공한 이들 혹은 광해군에게 해를 입었던 이들이 ‘광해군일기’를 기록했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 문집에도 기록을 남겼다. 그 내용들을 모두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전략) 계집종이 소리를 지르면서 말하기를, ‘영감이 일찍이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온갖 관청이 다달이 올려 바쳤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염치없는 더러운 자들에게 반찬을 요구하여 심지어 김치판서[沈菜判書], 잡채참판(雜菜參判)이란 말까지 있게 하였소?’ (후략)”-‘연려실기술 , 인조 조 고사본말’광해군의 제주도 귀양살이 중 있었던 이야기다. 광해군을 따라서 제주도 유배지로 온 계집종이 광해군을 ‘영감’이라고 부르며 패악질을 부렸다. 내용 중 ‘잡채참판’이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잡채를 얻어먹고 참판 벼슬을 주었다는 뜻이다.‘연려실기술’은 연려실 이긍익(1736~1806년)이 정조대왕 시절 남긴 기록이다. 야사(野史)의 성격이 짙다.‘연려실기술’의 ‘잡채참판’은 상촌 신흠(1566~1628년)의 ‘상촌집’에서 따온 내용이다. ‘상촌집’은 ‘연려실기술’에 비하여 약 200년 앞선다.상촌 신흠은, 선조가 죽기 전 영창대군의 목숨을 부탁한 일곱 대신 중 한 사람[遺敎七臣, 유교칠신]이다. 계축옥사(1613년) 때 실각했고 영창대군은 결국 광해군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다. 광해군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상촌의 기록이 정확한 지도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잡채참판’이라는 표현이 당시 시중에 널리 나돌았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9년(1617년) 4월의 기록도 재미있다. 제목은 “이충이 병에 걸려 이명으로 하여금 구완하도록 하다”이다. 본문은 짧고, 끝부분 사관의 덧글이 꽤 길다.“이충은 간신(奸臣)인 이량(李樑)의 손자이며 이정빈(李廷賓)의 아들이다. 천성이 흉악하고 험살궂은데다가 조상들의 허물이 있어서 선조(先祖)에서 비록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사판(仕版)에 끼이지 못하였다. (중략) 조석으로 맛진 반찬을 올려 왕이 반드시 그가 올리는 반찬이 도착한 뒤에야 식사를 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시를 지어서 그것을 조롱하였는데, 그 시에 ‘잡채 상서의 세력을 당할 수 없다.[雜菜尙書勢莫當]’고 하였다.”본문의 몇 배에 달하는 ‘덧글’이다. 여기에서는 ‘잡채상서’라고 표현했다. 참판, 상서 모두 당상관이다. 높은 벼슬이다. 이 무렵에는 사삼각노(沙蔘閣老), 김치정승, 잡채상서, 국수감사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모두 보기 드물게 ‘음식+벼슬’이다. 각각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 관직이 정확하게 남아 있다. 사삼은 더덕이다. 사삼각노는 광해군 때 판중추부사를 지낸 한효순(1543~1621년)이다. 잡채상서는 우찬성 이충, 국수감사는 함경도 감사 최관(1563 ~ ?)이다. 역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사관이 토를 단 내용이다. ‘최관의 국수’다.“(전략) 최관은 광해의 총애하던 신하이다. 최관이 별미로 폐군(廢君)에게 아첨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충(李冲)의 잡채(雜菜), 최관의 국수라고 말을 하면서 비난하였다.”이 기록은 인조 2년(1624년) 4월의 것이다. 최관은 광해군 시대를 거쳐 인조 때도 벼슬을 했다. 이 글에도 ‘이충의 잡채’가 나타난다. 광해군의 ‘잡채 뇌물 수수’는 마치 동네북 같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도대체 잡채는 어떤 음식이었을까?◇ 궁중잡채는 허구적 코미디다‘궁중잡채(宮中雜菜)’라는 표현이 있다. 길거리 음식점 혹은 고급 한식집에서도 버젓이 ‘궁중잡채’를 판다. ‘궁중+잡채’는 완벽한 엉터리다. 있지도 않은 ‘궁중잡채’가 잡채를 망쳤다.당면(唐麵)이 들어간, 우리가 흔히 보는 잡채를 두고 ‘궁중잡채’로 포장했다면 완전 엉터리다. 당면은 1919~1920년 언저리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당면, 당면 잡채의 시작이다. 나라는 공식적으로 1910년에 망했다. 10년이 지난 다음 한반도에 당면이 등장한다. 당면은 녹말, 전분으로 만든 국수다. 중국인들이 한반도에 소개했다. 황해도 사리원 등에 당면 공장이 생기기 시작한다.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는 북관(北關)이다. 중국 문물이 들어오는 루트였다.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에도 여전히 북관은 중국 문물을 들여오는 길목 노릇을 했다. 이 길로 당면이 들어왔다.1910년대, 당면은 신문물이었다. 동아일보 1935년 2월의 기사에는 “한반도 당면 생산량이 60만근인데 대부분 일본 도쿄, 오사카 등으로 수출한다. 우리 당면이 중국산 보다 질이 좋다”는 내용이 있다. 해방 후에도 “서울풍국제면소의 당면이 대용식량으로 공급된다”는 내용도 있다(1946년 3월18일, 동아일보). 가히 당면 전성시대다. ‘唐麵(당면)’은 당나라 면 즉, 중국인들이 전해 준 면이다. 나라가 1910년에 망했는데 궁중에서 먹었던 당면 잡채라니, 터무니없는 표현이다.녹말로 만든 국수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국수를 만드는 가장 흔한 재료는 메밀이었다. 메밀은 점도가 약해서 국수 만들기 어렵다. 메밀가루에 밀가루 혹은 전분 등을 섞는다. 아예 전분으로 만드는 국수도 있었다.당면의 등장은 전분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가능해졌다. 대량 생산된 전분이 있으니 국수로 만들었다. 당면이 잡채에 들어간다. 잡채의 주인인 채소를 밀어내고 주인 노릇을 한다. 엉뚱한 ‘궁중잡채’ ‘당면잡채’, 우리가 지금 만나는 잡채는 대량 생산 전분 때문에 가능했다. 원형 잡채와는 거리가 멀다.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 드는 격이다.◇ ‘음식디미방’의 잡채는 아름다웠다‘음식디미방’의 잡채는 ‘채소 모둠 쟁반’이다. ‘잡채(雜菜)’는 표현 그대로 ‘여러 가지 채소 모둠’이라는 뜻이다. 당면은 어디에도 없다. ‘음식디미방’의 잡채는 10여 종류의 채소와 꿩고기를 한 쟁반에 내놓는 음식이다. 여러 가지 채소를 모은 것이 잡채인데 지금 만나는 잡채는 엉뚱하게도 단맛이 강한 ‘양념 당면’이 주인이다. 비틀어진 음식이다. 산나물, 들나물의 향기가 아니라 짝퉁 간장과 조미료, 감미료 범벅의 비틀어진 맛을 취한다.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잡채 만드는 방법 중 일부다.오이채, 무, 댓무, 참버섯, 석이, 표고, 송이버섯, 숙주나물 등은 생으로, 도라지, 거여목, 박고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승검초, 동아, 가지와 꿩고기는 삶아서 찢는다.꿩고기를 제외하고 모두 채소 종류다. 한 쟁반에 채소 종류만 무려 19가지다. 여기에 채소를 붉게 물들인 맨드라미와 양념으로 쓴 생강, 천초(산초), 후추, 참기름 등등을 합하면 족히 20여 종의 나물, 채소, 식물의 씨앗 등이 들어간다. 가히 ‘여러 가지 채소 모둠 쟁반’ ‘잡채’라 부를 만하다. 짝퉁 잡채가 유행하면서 ‘음식디미방’의 아름다운 잡채는 사라졌다.한식의 특질은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 그리고 다양함이다. 잡채에 당면이 들어간 것도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잡채는 한반도의 아름다운 ‘나물’ 문화가 바탕이다. ‘음식디미방’보다 270년 쯤 전인 조선 초기의 기록이다.고운 봄빛 광주리에 가득 차 있고/모락모락 아지랑이 아른거리네지난밤 장단(長湍)에 비 내렸는지/멀리서도 녹음 덮인 그대 집을 알겠구나-송당집 제1권 ‘장단 유 선생이 시와 산채를 보내와 운을 빌려 감사하다’의 일부아름다운 이른 봄날이다. 시의 제목에 나타나는 ‘장단 유선생(長湍 兪先生)’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시를 남긴 이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송당 조준(1346~1405년)이다. ‘장단 유 선생’이 조준에게 산나물과 시를 선물로 보냈다. 여말선초의 문신이었던 조준은 정도전과 더불어 조선의 경제 틀을 짠 고위직 경제 관료였다. 벼슬도 좌정승(左政丞)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높았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봄날에 당대의 실세 관료에게 시와 산나물을 선물로 보냈다.조선시대 반가에서는 오신반(五辛盤), 오신채(五辛菜) 선물이 유행했다. 이른 봄 겨울을 헤치고 나온 햇나물을 옆집과 나눠 먹는 풍속이다. 오신채는 ‘매운 맛의 다섯 가지 나물’이다. 움파, 산갓, 당귀싹, 미나리싹, 무싹 등이다. ‘다섯 가지 잡채’다. 향이 강하고 맵다고 오훈채(五葷菜) 혹은 오신반(五辛盤)이라 불렀다.아래는 ‘음식디미방’보다 약 350년 뒤인 2018년 5월의 경북매일 기사다.관광객 ‘오감만족’ 평가영양군의 대표 축제인 ‘영양산나물축제’에 10만 관광객이 찾아 ‘대박’을 터뜨렸다.(중략) 영양군과 영양축제관광재단은 ‘봄의 기운을 쌈싸 먹어’의 주제로 열린 ‘제14회 영양산나물축제’ 기간 동안(중략) 지역행사를 연계해 산나물을 중심으로 먹거리장터를 만들어 방문한 관광객의 체류시간을 평균 5시간 이상 늘려 영양군의 매력을 듬뿍 안겨주었다.(후략)-영양/장유수 기자1400년 무렵 ‘송당 조준의 나물 선물’ 1670년 무렵 ‘음식디미방’의 잡채, 2018년 5월 경북 영양의 ‘산나물축제’는 모두 ‘여러 가지 나물’로 연결되어 있다. ‘여러 가지 산나물, 들나물 모둠 잡채’다. 산나물, 들나물, 잡채는 반가에서 귀히 여겼다.우리는 향기로운 여러 가지 나물, 잡채가 빠진, 들척지근한 당면이 주인 노릇을 하는 ‘궁중잡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