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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방된 사회’의 새로운 적은 누구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칼 포퍼의 제자인 조지 소로스가 오늘날 21세기 열린사회의 적으로 중국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을 지적하여 화제를 낳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그는 한국을 방문하여 투자처를 찾은 적이 있다. 그는 몇 해 전 한반도의 남북이 화해하고 ‘사실상의 통일’로 간다면 1인당 국민 소득이 8만 불이 넘어 세계 2위가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전 재산을 한반도에 투자할 용의가 있음도 밝혔다. 지난달 그는 또 다시 골프장 사외이사 자격으로 지난달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최근 중국의 시진핑을 열린사회의 새로운 적으로 간주하였다.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사회 철학자 칼 포퍼는 ‘개방된 사회와 그 적’이라는 책을 통해 유명해졌다. 포퍼는 개방 사회를 가로막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공산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를 2대 원흉으로 본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이상국가론에서 자신과 같은 철인이 지배하는 계급사회를 주창하였다. 국가를 보위하는 군인 계급과 생산자 계급이 지도자인 철인을 잘 보필해야 이상국가가 성립된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포퍼는 이러한 통치자, 방위자, 생산자 계급 분담 사회가 불평등 구조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포퍼는 플라톤을 계급주의자로 몰아세워 개방사회의 첫 번째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포퍼는 칼 마르크스를 개방된 사회의 두 번째 적으로 간주하였다.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마르크스는 당시 자본주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계급 없는 공산 사회’론을 제시하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눈물도 한숨도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공산국가는 계급독재를 강화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포퍼는 마르크시즘을 개방된 사회의 또 다른 적으로 간주하였다. 마르크스가 살아 있었다면 무척 화가 나 이에 강력하게 항의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풍요가 시작되는 영국 런던 대영도서관에서 글을 쓰다 생을 마감하였다. 포퍼의 시각에서는 마르크스 이론에 토대한 소련식 사회주의는 전체주의화하여 개방된 적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연장선에서 소로스는 다보스 포럼의 공개 석상에서 중국의 시진핑을 개방사회의 또 다른 적으로 간주하였다.그가 시진핑을 개방된 적으로 규정한 것은 시진핑의 통치 철학과 지도노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사회의 개방화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천안문 시위는 중국 당국에 의해 오래전 좌절되고 말았다.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중국이지만 아직도 당의 통제는 강화되고, 인권의 사각지대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언론과 종교의 자유는 물론 학문의 자유마저 봉쇄되고 시민의 권리는 이중 삼중으로 통제되어 있다. 시진핑의 ‘일대 일로’라는 외교 정책 역시 제3세계에 대한 지원이란 명분으로 지배와 착취를 자행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통제를 강화하는 시진핑은 개방된 사회의 새로운 적이라는 입장이다.이러한 시각에서 포퍼의 ‘개방된 사회의 적’은 언제나 등장할 수 있다. 포퍼나 소로스가 개방 사회에 역행하는 이데올로그들을 적으로 간주한 논리는 정당성을 지닌다. 우리는 인권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개방 사회를 지향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세력은 모두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개방된 사회의 적은 누구일까. 우선 분단 상황에서 분단 고착세력과 북의 개방을 가로 막는 전체주의적 세습체제는 개방된 사회의 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남한 사회에는 과연 개방된 사회의 적은 없는가. 남한의 정치 사회적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을 탄압하거나 권력유지에 혈안이 되었던 세력은 ‘개방된 사회의 적’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 보수와 진보 간에는 이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상대를 개방된 사회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후일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9-03-24

왜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인가?

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730쪽 분량의 두툼한 ‘환동해문명사’가 발간된 게 지난 2015년 8월 말이다. 주강현 현 국립해양박물관 관장의 역저로, 환동해의 모든 것을 담은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한 달 후 당시 제주대 석좌교수였던 주강현 관장이 포항을 방문해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0월 20일 박물관 건립을 위한 심포지엄이, 12월 16일에는 박물관 건립 추진을 위한 간담회가 잇달아 열렸다.그해 공교롭게도 포항에는 ‘환동해’를 무대로 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3월 말 포항에서 열린 제3회 환동해 국제심포지엄에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환동해지역연구센터가 결합하면서 한결 풍성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8월 말에는 지역 숙원사업이던 영일만항 국제여객부두 건설이 확정되면서 영일만항 활성화를 위한 다각도의 논의가 진행됐다. 여기에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 논의가 포개지면서 포항의 미래를 포항의 근본인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해양 담론’이 후끈 달아올랐다. 포항은 산업도시에서 해양문화도시로 전환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환동해의 랜드마크 조성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2017년 4월 28일 박물관 건립 기본구상 연구용역에 착수했고, 일 년 후 최종보고회가 열렸다. 올해 드디어 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용역이 진행될 예정이다.환동해의 품은 넓고도 깊다. 주강현 관장에 따르면 환동해는 “중국 쪽에서 바라본 동쪽 바다, 러시아 연해주의 바다, 오호츠크와 인접한 사할린과 홋카이도의 바다, 일본 북서부 바다, 그리고 다양한 북방 소수민족들이 바라본 바다 등을 포괄한다.” 따라서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이 담아내야 하는 콘텐츠는 다종다양하다.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선다. 환동해 연안의 여러 국가와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명, 그 문명 간의 역동적인 교류사, 그리고 이들 국가와 민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미래 비전을 담아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환동해권 국가와 민족이 소모적인 갈등, 긴장과 결별하고 공동체적 연대감을 가짐으로써 환동해권의 평화와 공동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이 기존의 해양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을 탈피하고, 인류학, 민속학, 역사학 등을 포괄하는 차원 높은 융복합 박물관이 돼야 하는 이유이다.바다를 기반으로 한 문명사박물관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2013년 6월 4일 개관한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이 좋은 참고 사례이다. 유럽과 지중해 문명사를 핵심 테마로 한 이 박물관은 지방의 문화와 경제를 살리려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이 건립되던 해 마르세유는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재도약의 날개를 펴게 됐다.2016년 8월 말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의 기억’ 서문이 떠올랐다.“지중해의 유구한 역사를 곁에서 지켜본 최고의 목격자는 바로 지중해일 것이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중해를 보고 또 보아야만 한다. (……) 지중해는 우리를 위해 과거의 경험들을 재현해내고, 그 경험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이 고색창연한 문장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은 지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국립으로 가야 하기에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치밀한 전략과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뜨거운 성원이 있어야 한다. 인천은 2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립해양박물관유치범시민추진위원회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전 시민적 에너지를 결집한 결과 박물관 건립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큰 꿈을 품은 도시가 큰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포항의 미래는 저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 있다. 깊고 넓은 환동해의 문명을 품은 도시, 포항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자.

2019-03-24

임전무퇴

임전무퇴(臨戰無退)는 화랑정신의 근간을 이룬 세속오계의 계율 중 하나다. 세속오계란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金言)을 청하자 내려준 5가지의 계율을 말한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이 그것이다.나라에 대한 충성과 효도, 신의, 용맹, 자비 등이 함축된 이 계율은 훗날 인재양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랑도의 실천덕목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화랑도의 발전 뿐 아니라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기여한 기조정신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화랑도는 당시 혈족중심의 귀족사회 구조 속에서도 비교적 신분을 떠나 범사회적 조직체로서 활동했다. 젊은이들이 모여 사회공동체로서 훈련도 하고 심신수련과 학업도 익혔다.특히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전쟁터에 직접 뛰어드는 용맹함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장군의 결사대에 맞서 싸웠던 화랑 관창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목숨을 내던진 관창의 용맹스러움으로 신라는 700년 역사의 백제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화랑은 비록 군인은 아니지만 군인 이상의 용맹함과 충성심으로 뭉쳐진 애국 집단이다. 전쟁에 나서면 목숨을 잃으면 잃었지 후퇴란 있을 수 없다.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에게 일침한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도 임전무퇴의 곧은 정신이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고 한 그의 각오에서 군인 정신의 비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대한민국 국군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의 최후 보루이다. 누구보다도 투철한 사명감과 건전한 애국정신으로 무장돼야 함은 물론이다. 국군을 대표하는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서해수호의 날을 두고 “불미스런 남북 간 충돌” 운운하다 야당의원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 국방부 장관의 안보관이 이 정도일까 싶어 새삼 놀랍다. 임전무퇴의 정신이 갑자기 위대해 보이는 요즘 세상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24

‘유승민’과 ‘김부겸’

안재휘 논설위원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누가 뭐래도 대구·경북(TK)의 미래정치를 걸머진 동량지재(棟梁之材)들이다. 두 사람의 역정은 사뭇 다르다. 유승민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출신의 흔치 않은 베테랑 경제통 정치인이다. 보수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박근혜 정권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혁적 보수’의 아이콘이 돼 있다. 김부겸은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정치를 시작, 3당 합당으로 보수정당 소속이 됐다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다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해 일해왔고, 후임 개각 결정으로 국회 복귀를 예정하고 있다.진영논리에 함몰된 척박한 한국 정치의 지형 속에서 두 정치인은 대구 출신이라는 동향(同鄕) 말고는 외견상 도무지 닮은꼴이 아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에게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엄정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기질을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다. 투철하되 조직의 모순과 싸구려로 타협하지 않는 그 기질들은 어쩌면 소중히 지켜야 할 TK의 전통적인 뚝심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했던 유승민은 국민의당과 합당 이후 지휘봉을 넘겨준 뒤 긴 겨울잠을 잤다. 그러던 그가 선거구 협상 과정에서 여야 4당의 한 축으로서 취하고 있는 ‘패스트트랙’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선거법과 국회법은 지금보다 다수당의 횡포가 훨씬 심할 때도 숫자의 횡포(다수결)로 결정한 적이 없다”고 곧은 소리를 던졌다.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불참한 문재인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는 “국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서해 무력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표현한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도 “오늘 무슨 낯으로 영웅들의 영정을 바라봤을지”라고 내리쳤다.유승민이 ‘개혁적 보수’ 기치를 내걸고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낸 바른정당의 ‘중도정치’ 실험은 안타깝게도 성공의 땅에 이르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합쳐낸 바른미래당은 오늘날 ‘보수’라는 말을 던져버린 지 오래고, ‘중도’마저 투철하게 지켜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김부겸은 늘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 정서로 정치를 해왔지만 조금은 달랐다. 어설픈 이념에 발 묶이지 않는 합리적 사고체계를 건강하게 갖춘 정치인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오히려 빛이 바랬다. 장관으로서 김부겸은 전국 산지사방에서 시나브로 터지는 사건 사고 현장에 노란 점퍼 입고 부지런히 나다니는 모습 말고 지역민들에게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지역민들은 하필이면 혹독한 ‘TK 홀대’와 노골적인 ‘TK 패싱’이 자심한 문재인 정부의 행태 때문에 서운한 감정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던 그가 재임 막판 개각 과정에서 드러난 ‘출신지 세탁’ 논란 국면에서 청와대의 처사를 ‘치졸하다’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 도중 정부의 개각 인사 발표 방식에 대해 “늘 하던 방식이 아닌 그런 발상을 정부 내에서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치졸하다고 생각한다”고 작심 발언했다. 개각 때 7명의 장관 후보 출신지를 기존의 출생이 아닌 고교 기준으로 분류한 편법을 겨냥한 것이다.유승민이 긴 동면에서 깨어나고, 김부겸이 국회로 돌아온다. ‘꼴통보수’의 무지막지한 싹쓸이 정치가 빚어낸 TK 정치의 폐해를 씻어내고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를 진화시킬 의무가 그들에게 지워져 있다. 두 사람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교집합 영역을 한껏 넓혀, 건실한 ‘중도’의 땅을 왕성하게 개척해주기를 기대한다. 빈사 상태에 빠진 TK 정치를 다시 일궈낼 막중한 책임이 두 사람의 어깨에 걸려 있다.

2019-03-24

이쪽 끝에서 저쪽 끝 일부러 찾지 않아도 숱한 ‘망자의 집’ 왕릉과 무덤들

처음에는 날씨 탓을 했다. 월성과 경주 곳곳을 헤매며 느낀 쓸쓸함이랄까 공허함이 한겨울의 회색 하늘과 찬 공기 때문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희뿌옇게 번져가는 입김과 함께 퍼뜩 깨달았다. 유적지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피와 살을 지닌 사람의 온기가 없기 때문이다. 삶이 불공평했을지라도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할지니, 왕후장상부터 필부필부까지 모두가 시간을 따라 사라져버렸다.죽음의 최후 단계는 해골화(skeletonization)다. 살이 썩고 뼈만 드러나는 것이다. 송장이 완전히 해골이 되기까지 온대 기후에서는 대략 3주에서 수 년, 열대 기후에서는 거의 몇 주 내, 극지방이나 툰드라에서는 수 년 이상 걸리거나 아예 미라 상태로 보존될 수 있다고 한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모두가 죽으면 썩어 해골이 된다. 해골 자체로는 성별이나 나이를 분별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그가 숨이 붙어 있을 때 어떤 삶을 살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즐거워했는지는 도무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남은 것은 약간의 기록, 그리고 그 행간을 파고드는 상상력뿐이다. 월성은 왕성이다. 그러니 월성의 주인은 ‘왕’이다. 지금은 텅 빈 언덕, 발굴의 현장인 월성에서 한때 살았던 ‘집주인’들을 찾아보기로 했다.56대 신라왕 중 경기도 연천에 묻힌 경순왕을 제외하면 55기의 왕릉은 경주 지역에 조영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확인되거나 추정되는 무덤이 36기, 나머지 19기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조선 전기까지 전승된 신라 왕릉이 11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원래 11기뿐이었다가 조선 후기 족보 간행과 조상 숭배 사상이 확대되면서 뒤늦게 늘어난 것이다.1730년 경주부윤 김시형은 김씨 문중과 박씨 문중 사람들을 불러 모아 ‘대타협’을 시도한다.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능의 주인을 정하자는 것이다. 김씨와 박씨가 토론을 했는지 혈투를 벌였는지 제비뽑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결과 남산 동쪽에 있는 것들은 김씨 왕릉이고 서쪽의 것들은 박씨 왕릉으로 결정했다는 게다. 이때 17기의 주인공이 새로 정해지고 이후 8기가 추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으니…경주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오락가락하는 동안 일부러 찾지 않아도 숱한 왕릉 혹은 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들과 마주쳤다. 삼릉, 내물왕릉, 원성왕릉, 신문왕릉, 선덕여왕릉, 태종무열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진지왕릉, 진흥왕릉, 법흥왕릉, 문무대왕릉 진평왕릉 등등. 하지만 왕릉에서도 왕을 만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앞서 말한 대로 신라의 왕릉 중 피장자가 확실한 것은 태종무열왕릉과 흥덕왕릉 2기뿐이고, 이러저러한 근거로 미루어 학계에서 인정하는 것은 선덕여왕릉 등 5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다 파보면 안 됩니까? 다 파서 확인해보면 될 것 아닙니까?”경주남산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유적답사에 참가했을 때 동서로 나란한 ‘삼릉’ 앞에서 누군가 해설자에게 따지듯 물었다(그 누군가는 원래의 신청자가 아니고 개인적으로 남산을 오르다가 우리 일행에 끼어 귀동냥을 하던 차였다). 아달라이사금, 신덕왕, 경명왕 등 박씨 왕 3인의 능으로 전하고는 있지만 앞서 말한 바대로 김씨와 박씨 후손 간 ‘대타협’의 결과이니 확신할 수는 없다는 해설을 들은 직후였다.경주에서 그 같은 ‘거친 열정’을 만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 알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집요하고 끈질기게 ‘다 파보자’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인내심 많은 남산 해설자가 끝내 한마디 퉁바리를 던졌다.“다 파봐서 뭐 합니까?”쪽샘 유적 44호분 발굴관에서 만난 신라문화원 해설사도 비슷한 뜻으로 말했다. 다 파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없다고. 1921년 노서동 고분군에서 금관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모두 6개의 신라 금관이 발굴되었다.그런데 그중 주인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땅 파는 걸 일로 하는 두더지도 먹이를 얻기 위해 파고 또 판다. 100년에 걸친 연구로도 주인 하나 제대로 밝히지 못했는데 다 파서 또 무엇을 얻어 무엇을 밝히겠는가? 언젠가 내 무덤을 만들어 줄 아들에게 속살거린다.“내가 무덤의 주인이라면, 목적이 무엇이든 누가 내 무덤을 판다는 건 정말 끔찍할 거야!”무덤은 망자의 집이다. 주인의 허락 없이 무덤을 열고 저세상에서 쓰리라 했던 껴묻거리까지 꺼낸다면 주거침입죄에 절도죄를 물을 만하다. 후손이 벼슬이 아니고 시간이 면죄부가 아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뒤엉킨다. 대체로 갈피를 잡지 못해 가리산지리산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이런 경우엔 좀 더 오래 서성이며 헤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숭배까지는 아닐지언정 예의는 반드시 필요하다.월성이 실질적인 왕성으로 기능한 것이 6세기 초 지증왕 때부터라고 학계에서 추정하는 바, 56명의 왕 중에서 월성의 주인으로 살았을 몇 분을 만나보기로 했다.대릉원의 천마총은 1973년 발굴해 1976년부터 무덤 내부를 공개해왔는데, 2016년에 40여년 만에 재정비해 2018년 7월 다시 개방했다. 무덤 안을 개방하는 경우는 간혹 있다. 나도 몇 번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모스크바의 레닌 묘는 줄이 하도 길어서 포기했고 하노이의 호치민 묘는 줄을 서서 들어갔다. 이른바 마우솔레움(mausoleum), 생전에 유명했던 사람의 장대한 묘에 방부 처리된 시신은 내 눈에 영웅이라기보다 불면증 환자처럼 보였다. 생전의 고단한 삶으로도 모자라 사후까지 잠들지 못하다니, 죽은 자의 모습을 보고픈 산 자들의 마음을 살아서도 잘 모르겠다.리모델링한 천마총은 처음이다. 서늘하고 깊은 집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가만히 방문한다. 천마총에는 미라가 없고 육신이 걸쳤던 관모와 허리띠 등의 장식 모형만 남아있다. 그 주인은 소지마립간 또는 지증왕으로 추정된다.만약 지증왕이라면 ‘삼국유사’의 적나라한 이야기는 과장인 듯하다. 커다란 똥 덩어리의 주인인 연제부인과 혼인한 지증왕의 거대한 1자 5치의 음경은 실물이라기보다 강력한 왕권과 생산력의 상징이리라. 왕이라는 칭호와 신라라는 국호, 우경 도입과 순장 금지, 지방 제도 정비와 우산국 정벌 등등… 지증왕 시절 신라는 가장 많이 변화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천마가 말인지 기린인지 논쟁이 치열하지만 그 상서로운 동물을 잡아타고 훌쩍 도약하고픈 왕의 마음만은 고스란하다.지증왕의 아들인 법흥왕의 무덤은 경주 시내를 벗어나 있다. 신경주역으로 가는 길에 찾은 법흥왕릉은 소박하고 외로운 무덤이다. 주변은 논밭이고 부러 찾아오기엔 좀 썰렁하다. 그러나 법흥왕은 신라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성품이 너그럽고 후덕해 자비의 종교인 불교를 공인한 한편 율령을 반포하고 금관가야를 병합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조영했다는 법흥왕릉이 중요한 점은, 이전까지 월성의 북쪽 평지에 조영했던 왕릉을 서천 건너편의 산록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법흥왕은 죽어서도 일하셨다. 법흥왕릉의 위치는 계획적인 고대 도시를 건설하려는 신라의 움직임을 반영한다.진흥왕릉과 진지왕릉으로 알려진 무덤들은 문성왕릉, 그리고 헌안왕릉과 함께 서악동에 몰려있다. 무덤 앞에 서니 쓸쓸함을 넘어 얼마간 참담했다. 전날 법흥왕릉에 갔다가 ‘철덕(철도 덕후)’이기도 한 아들이 영천의 간이역을 보자고 졸라 시계(市界)를 넘었다. 도중에 야단법석한 절이 눈에 띄어 들렀는데 사찰이라기보다 장지(葬地)였다. 그곳을 장식한 수십만 개의 번쩍거리는 불상을 보고 나니 진흥왕릉과 진지왕릉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나 보다.하지만 나에게는 이 무덤들이 특별할 수밖에 없으니, 무덤의 주인들이 졸작 ‘미실’의 중요한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정복 군주로 살며 전륜성왕을 꿈꾸었던 진흥왕과 왕위를 빼앗기고 ‘살아있는 귀신’으로 유폐되었던 진지왕이 과연 이 작고 둥근 집에 갇힌 것인지, 삶과 죽음의 간극이란 너무도 아득하여 막막하다.선덕여왕릉은 사천왕사지에서 낭산을 따라올라 있는데 기록과 위치가 일치하는 왕릉 중 하나다. 선덕여왕은 드라마의 유명세보다 더 유명해져야 마땅한 왕이다. 삼국시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여왕의 존재 자체도 그러하려니와, 끝없는 도전과 저항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맞선 선덕여왕의 지혜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중요도에 비해 무덤이 초라한 것을 법흥왕 때부터 소박해진 왕릉들을 통틀어 다르게 생각해본다. 거대한 고분으로 권위를 과시하는 대신 국고 낭비를 막고 애민(愛民)을 실천한 게다. 나라나 사람이나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충만하면 스스로를 낮추는데 두려움이 없기 마련이니.태종무열왕릉은 경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천교를 건너면 금세 나타난다. 시내와 가깝고 주인이 분명한 두 왕릉 중 하나라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무열왕릉 뒤로 줄지은 고분군은 김춘추의 조상들로 추측되는데, 어섯눈으로 보기에도 왕을 배출할 만한 명당이다.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내력을 가르치며 태종무열왕 김춘추부터 이야기했는데, 명주군왕 김주원이 무열왕의 6세손이기 때문이다. 김춘추는 최초의 진골 왕이요 삼한통합의 영웅이지만 민족주의 사관을 신봉하는 이들에게 외세를 끌어들인 배신자(?)로 비판받는다. 하지만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20세기 이후 등장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어리석다.642년 음력 8월, 지금의 경남 합천에 있던 대야성이 함락된다. 대야성주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의 남편이었다. 성의 함락과 함께 김춘추의 딸과 사위는 죽어 유골이 백제의 감옥에 묻혔고 신라 백성 1천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이때 김춘추가 받은 충격이 ‘삼국사기’에 생생하다.“춘추는 딸의 죽음을 듣고는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개인의 역사와 거대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는 대저 슬픔이 있다. 분노가 변화를 일으키고 고통이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그때의 사람들과 마음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살았던 집은 이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 버린 월성의 주인들, 그들의 영혼은 천오백 년을 건너뛰어 새롭게 발굴되는 생전의 집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2019-03-24

다시 온 삼월

강길수 수필가다시 삼월이 왔습니다. 삼월은 설렘입니다. 유년시절 삼월이 연록새싹으로 찾아왔었기 때문입니다. 산골 우리 둥지 앞 양지바른 밭두렁입니다. 얼어 죽은 풀잎뿐인 두렁을 삼월 명지바람이 간지럽히면, 해님이 질세라 따사한 손길로 어루만집니다. 어느새 새싹이 옹기종기 땅을 비집거나, 마른 풀잎을 들추거나 혹은, 돌 틈새로 솟아오르지 뭡니까. 올망졸망 해님을 찬미하는 연록새싹들에, 어린 마음은 무턱대고 설렜습니다. 새싹들의 그 무엇이, 그토록 유년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새 생명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풀들의 새싹이기 때문일까요. 갓 부화된 병아리라든가 갓 낳은 강아지와 송아지 같은 가축들과 함께 자랐지만, 그들은 귀엽거나 놀랍기는 해도 마음 설레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풀, 나무 등 녹색식물이 동물이나 미생물, 무생물보다 더 밀접한 무엇이 숨은 걸까요.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런데, 나만 그랬을까요. 올 삼월도 어김없이 내게 찾아왔습니다. 한데, 올 삼월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아니 언제부턴가 삼월은, 내게 시나브로 멀어지듯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변하며 오는 삼월이, 무슨 메시지를 건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유년의 설렘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피부에 다가오는 삼월은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어쩌면 삼월이 이월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세레나. 지난 이월 말일 이틀전날, 퇴근길이었습니다. 양지바른 블록담장아래 민들레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지요. 그 옆엔 민들레관모송이 하나가 솜털과자로 한껏 부풀어 올라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월동했을까요. 근처에 월동한 장미나뭇잎도 보였습니다. 지난 겨우내 살아 버티는 쑥, 씀바귀, 냉이, 클로버, 그리고 이름 모르는 풀들을 학교운동장 한편에 조성한 녹지 곁을 오가며 지켜보았습니다.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유년의 삼월은 긴 겨울잠을 막 깬 자연의 징표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달이었다는 것입니다. 갓 돋아나는 새싹이나, 눈 녹은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가 버들강아지, 따사한 산비탈의 참꽃봉오리와 같은 존재들 말입니다. 그들과 친하다 보니, 저절로 가슴속에 설렘도 싹튼 게 아닐까요. 자연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은 어린 마음이, 주어지는 자연의 징표들과 나름대로 소통하게 된 듯합니다. 산골동네에 대대로 이어지는 삶의 현장은, 필연적으로 식물을 주로 쓰며 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테지요. 식물을 의, 식, 주에 이용하며 사는 방식들은 자연히 도제제도(徒弟制度)가 되어 대물림하고, 내 유년도 그 마당의 구성원으로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여, 중학교 때부터 도시에 살면서도 주위의 식물들을 자주 바라보며 살았지요.세레나. 올 삼월 한반도는,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시작했습니다. 불쑥불쑥 미세먼지 없는 곳으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중국의 공업화 전까지는 미세먼지로 휘달려 본 기억이 없습니다. 황사를 가끔 겪은 일은 있어도, 이렇게 심각한 미세먼지대기오염에 당하지는 않았어요. 과학적으로 충분한 검정 없이 전자파, 하천수질, 광우병 같은 사안들로 온 나라를 어지럽히던 시민단체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기에 미세먼지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을까요. 중국에 미세먼지문제를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은 분통 터집니다.삼월에 새싹을 내던 식물들이 월동하거나 이월에 싹틔우는 기후변화와, 삼월의 심각한 미세먼지대기오염이란 시대징표들 앞에서 우리는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는 삼월의 설렘은, 정녕 부활할 수 없는 걸까요. 조국을, 겨레를, 삼천리금수강산을 마다하고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요.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징표도, 미세먼지징표도 인간이 저지른 카르마이지 싶습니다. 지구어머니의 건강을 조금도 배려않고, 물욕에만 눈 먼 인간의 자업자득 말입니다. 제발 푸른 지구행성을 함께 지켜내어 삼월의 설렘을 간절히 되찾고 싶은, 다시 온 올 삼월입니다.

2019-03-21

스러져 가는 것들에 대해

△이력-나다이력은 신발을 뜻하는 ‘리(履)’와 역사를 의미하는 ‘역(歷)’이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그러니 이력은 말 그대로는 “신발을 끌고 다닌 내력” 정도다. 그래서 ‘이력’은 발자취 곧 ‘족적’이다. 이 단어는 흔히 ‘나다’라는 동사와 결합한다. ‘이력(이) 나다’는 버릇처럼 익숙해지는 행동을 뜻한다. 이때 이력은 ‘이골’이라는 단어와 맞바꿀 수 있다.하여, 이력은 나의 행적이자 족쇄이기도 한 셈이다. 어떤 일을 통해 이력을 쌓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일에 이력이 날 수도 있는 법이니까. 이력이라는 단어는 이런 식으로 분화하여 벌어질 수 있을 만큼 벌어진다. 이력서의 이력이 한 극점이라면 이력이 나다의 이력이 또 다른 극점이 된다. 그 극점을 지나는 원이 ‘이력’이라는 단어가 살아갈 수 있는 생존 영역이 된다. 단어는 그렇게 하나의 도시를 가진다.△도시세계적 도시란 그 지역적 특수성이 모두 소멸된 공간일 것이다. 서울은 서울만의 냄새가 없고, 서울의 음식은 독특함이 없다. 그러기에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으며, 특정한 냄새가 없기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철제와 유리로 된 건물에 우리의 흔적이 스미지 않는 것처럼, 냄새 없는 음식은 우리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진다.흔적은 경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햇살이 내뿜는 빛줄기가 흰빛을 띠는 것은 모든 빛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그러한 빛과 같이 모든 문화와 인간을 삼켜버렸고 그런 이유로 텅 빈 공간이다.이것이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모든 문화와 인간을 삼켜버린 사람이라면, 그리하여 너무 배가 불러 지쳐버린 자라면, 그 대단한 식욕으로도 포만감을 누릴 수 없는 거식증의 환자라면, 그의 존재적 양태 역시 텅 빈 공간과도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 안에서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손나의 손이 가장 무용하게 느껴질 때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길을 걸을 때, 혹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우산을 쓰고 갈 때,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나란히 붙어 앉을 때다. 손은 그녀의 어깨 혹은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나의 손은 무용하다. 그녀의 몸에 스치기라도 하고 싶어 일부러 과장된 행동을 할 때, 그 때는 특히 외롭다.아무런 소품도 주어지지 않은 배우의 팔을 볼 때 나는 자꾸 외롭다. 칠레의 피노체트가 지배할 당시 의문사를 당했거나 실종된 사람들을 다룬 ‘과부들’이라는 연극에서 대위는 지휘봉을 들거나 총을 든다. 시체를 기다리는 소피아에게 어울릴 만한 소품은 없다. 그녀는 늘 빈손이며, 그녀의 손은 손의 사용 용도에 가 닿지 않는다. 손이 사물과 결합할 때 완전해진다는 것을 조각가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빈손의 조각상을 찾기는 그만큼 어렵다. 그러므로 연출은 배우의 손에 소품을 쥐어주어야 한다. 그들의 손이 완전해질 수 있도록….△형광테이프막과 막 사이에는 어둠이 있고, 그 어둠 속에는 형광테이프가 있다. 형광테이프의 쓸모는 극장의 발전과 관련된 것이므로 그것 역시 연극의 일부다. 저 자리에는 어떤 배우 혹은 어떤 소품이 놓이게 될 것이다. 연출은 공간의 쓸모를 고민하는 반면, 배우나 소품은 그 공간을 소진하여 자리 잡힌 공간을 빈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공간의 쓸모가 다 했을 때 비로소 다른 막으로 넘어갈 수 있다. 연출은 빈 공간을 채우려 하고 배우는 찬 공간을 비우려 한다. 이 긴장 속에서 연극은 다음 장으로 막으로 넘어갈 수 있다. 채움과 소진의 변증법, 그 사이에 형광테이프가 있다. 형광테이프는 정확히 빈 공간에 있다. 이 말은 얼마나 부정확한가? 형광테이프가 빈 공간에 있다면, 그것은 이미 빈 공간일 리 없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빈 공간 속에 놓여 있다. 공간의 일부라고도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은 연극 속에서 연극이길 거부한다.△세계세계를 창조하지 않고선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세계 속에는 낱낱의 세계가 꼼꼼하게 박혀 있다. 세계를 창조하는 일은 그 세계 속에 자리잡은 낱낱의 세계까지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많은 낱낱의 세계들. 낱낱의 세계는 서로에게 무관심하지만, 그 어떤 의무적이고 의식적인 관심보다 더 치밀하게 관계한다. 그러니 세계와 낱낱의 세계는 다를 뿐 거기에 위계는 없다. 크리슈나의 입속에는 우주가 있고, 더 더 들어가면 입을 벌리게 한 크리슈나의 양어머니 역시 그 입속에 있다. 시작과 끝,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꼬리를 삼키는 우로보로스의 뱀. 세계의 유일한 진리, 순환 논증.△순환논증가령 이런 대화를 생각해보자. 당신이 나에게 “이게 뭐지”라고 묻는다. 나는 “응, 컵이야”라고 답한다.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아, 이것은 컵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에게 답을 들은 당신은 이제 ‘이것’에 알게 되었을까? 자, 이렇게 분절해서 생각해보자. 인식 주체 즉 ‘나’는 ‘이것은 컵이다’라고 했다. 이 발화에서 ‘이것’은 인식 대상이며 ‘컵’은 인식 내용이다. 그런데 가만, 당신이 ‘컵’을 보고도 ‘나’에게 ‘이것’이 무엇인지를 당신은 ‘컵’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인가. 당신이 바보가 아니라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이것’을 ‘컵’이라고 규정했을 때, ‘이것’은 컵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컵의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컵과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일까? 컵은 인식 대상의 형태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 기능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인식 주체는 인식 대상의 전체가 아닌 부분만을 규정한다. 인식 대상은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인식 대상은 인식 주체의 입을 빌려서만 말 되어지기 때문에 인식 대상은 훼손된다. 인식 대상과 인식 주체 간의 간격을 어떻게 건너뛸 수 있는가. 아마 최선의 방법은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순환 논증은 오류가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명징한 언어일 것이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고 한 어느 노승의 말은 온 삶을 통해 깨달은 최상의 말하기 방식이었을 것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영원의 탕진결단이든 결심이든 단 한 순간에 이뤄진다. 숙고는 그 뒤를 메워 결단을 추진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결국 우리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사후적으로 합리화한다. 우리의 결단은 순간 속에서 이뤄진다. 아무리 중요한 결단조차 순간 속에서 이뤄진다. 순간에 이뤄진 결단이 우리를 영원히 지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원을 지배하는 것은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러한 순간을 아니 영원을 어제부터 오늘까지 주구장창 탕진 중이다. 영원히 탕진해도 탕진할 수 없는 것이 ‘영원’이라 참 다행이다.

2019-03-21

미세먼지 나라

몇 년 전에 일본 도쿄 같은 곳에 가보면 공기가 아주 멀쩡한데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처음에는 감기 걸린 사람인가 했고, 그 다음엔, 아, 일본 사람들 중에는 폐쇄적인 사람이 많아 저렇게 자기 얼굴을 안 드러내려고까지 하나, 했다.공기가 한국에 비해 결코 나쁠 수 없는 나래기에 사람들 기질 탓으로, 더 예민한 족속들이라고 오해를 한 것이다.이제 한 가지 추측을 더 보태면 일본에서는 더 일찍부터 미세먼지를 경고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아마도 나는 공기에 아주 민감한 체질을 타고 난 게 아닌가 한다. 옛날에 자동차 꽁무니를 따라 다니면 배기 가스 냄새를 맡아 보려던 아이들이 있던 시절에도 나는 질색 팔색을 했다. 배기 가스 냄새를 조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던 것이다.조금 커서는 폐렴을 앓는 바람에 아버지가 병원에서 주사제를 처방해 와 매일 엉덩이에 꽂아 주시기도 했다. 열두 살, 폐렴이 무서운 질병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스무 살 때 두 살 위 권영석한테 담배를 배웠는데 심할 때는 하루에 한 갑 반까지 태우다 서른일곱 살에 일주일만에 끊기고 말았다. 뻐끔담배는 아니었는데, 더 태우다가는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요즘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스크 쓴 사람 천지인 것 같다. 마스크도 일반 마스크 아니라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니 ‘일회용’이라도 값이 싸지 않다. 그래도 거리의 마스크는 날마다 늘어난다.그러고 보니 서울시는 어제도 오전 초미세먼지 경보를 발령했다 하는데, 벌써 닷새째 계속 발령 중이라고 한다. 낮에 뭔가 삑삑 울렸고 휴대폰 열어보니 미세먼지 경보였다. 그런가 보다 하고 닫았는데 그게 벌써 닷새나 됐다니.공기 상태에 그렇게 예민하면서도 뜻밖에 의식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어지간히 둔한 나다.언젠가부터 눈이 빡빡해서 꽤나 비벼댔는데 필경 노안이 심해졌나 했다. 지난 해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기 시작해서 심봉사 될 지경, 안과를 찾아가니 노안에 백내장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니 나이 든 탓이려니 했고, 소문 난 루테인이라는 걸 먹으면 진행을 좀 지연시킬 수 있으려나 했다.급기야 이번 겨울에는 눈을 비비다 못해 눈병에 걸려 또 안과를 찾아야 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다 미세먼지 때문이다.처음에 미세먼지 경보가 울렸을 때, 이번 정부는 할 일도 참 없나 보다 했다. 이제는 매일 같이 울려도 타박 주려는 엄두는 나지 않는다. 나도 결국 마스크를 몇 개씩 산 지 오래인 때문이다.옛날에 황사는 모래바람이라도 이렇게 불쾌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는 몸에 들어와 나가지를 않는단다. 머리 속으로까지 들어와 교란을 일으킬 수도 있단다. 수명을 줄어드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한당하다하다 이제는 사람이 살아서 먼지 인간이라도 되는 걸까? 참, 하수상한 시절이다. 이거, 누가, 언제 걷워가 주나?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3-21

이제 교가까지 바꾸는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과중고교 교가는 지금도 한가할 때는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른 곳을 다녔던 필자는 두 개의 교가를 모두 잘 외우고 있고 가끔 불러보기도 하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동창모임에 가면 끝날 때 어김없이 부르는게 교가이다. 그만큼 중고교 교가는 10대 성장기의 정서를 키워주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노래요 노랫말이다.지금 느닷없이 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인물이 작사·작곡한 교가는 바꿔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지은 건물은 다 부숴야 한다는 논리와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그 친일인명사전이란 것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고 기준의 객관성이 그리 투명한 것도 아니다. 평생 애국하다가 일본의 공갈협박으로 잠시 굴복한 것을 친일인사로 꼭 분류해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지난달부터 ‘친일 교가 청산’작업이 전국에 퍼지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0곳의 교육청이 직접 나서서 교가 작사·작곡자 이력을 전수 조사하거나 적극적으로 바꾸도록 권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광주제일고다. 이 학교 교가를 지은 이흥렬(1909~1980)은 애창곡 동요 ‘섬집아기’와 애창 군가 ‘진짜사나이’를 남긴 대표적인 20세기 한국의 작곡가이다.이흥렬 씨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이고 많은 애창곡을 작곡했지만, 일제 말기 강요에 의해 군국 가요를 연주·반주·지휘했다는 이유로 좌파 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수난을 겪은 작곡가이다. 광주제일고는 조만간 동문·학생·학부모 등으로 교가 교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하고,‘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동문에게 새 교가를 맡기는 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광주 시내 중·고교 13곳과 대학교 4곳이 현제명·김동진·김성태·이흥렬 등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작사가나 작곡가 4명이 지은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10곳 넘는 중·고교가 교가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학교들은 입학식 때 교가를 부르지 않고 있다고 한다.좌파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4천389명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광복 직후 반민특위가 가려낸 친일 인사보다 6배가 많은 숫자이다. 그리고 이 인명사전을 근거로 지금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인명사전은 6·25전쟁 때 북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오른 반면, 일부 친일 논란이 있는 좌파 인사는 빠진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발간 당시부터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문제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한 가지만으로 ‘이 사람은 친일, 저 사람은 반일’이라고 100년 전 역사를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삶의 한 단면만 보고 ‘친일’이라고 낙인찍기 힘든 이들이 더 많다. 을사늑약 때 ‘시일야방성대곡’ 사설을 쓴 위암 장지연도 이 사전에 따르면 친일 인사다.광주제일고 동문들은 교가 교체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동문들은 “우리 동문 4만명은 이흥렬 선생이 지은 교가를 자긍심을 갖고 불러왔다”면서 “전교조와 일부 역사학자들이 작곡가들을 친일로 몰아 교가까지 없애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과연 좌파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오랫동안 불러온 교가를 하루 아침에 교체해야 하는지는 큰 의문이다.필자가 부르는 중학교, 고교 교가에는 민족정서와 민족정기가 배어 있다.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 반드시 선진국가로 나아가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이 서려 있다. 이념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런 교가를 근거가 확실치도 않은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교가를 바꾸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그 교가에 서려 있는 수만명 동문들의 추억과 회한을 한번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2019-03-21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손재주가 뛰어나 뭐든 뚝딱 만드는 소년이 있습니다. 4학년에는 가슴에 장인 공(工)자를 함석으로 오려 붙이고 다닙니다. “난 공학 박사가 될 거에요!” 핀잔을 주는 선생님들에게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스물이 되자 해방을 맞습니다. 의사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홀로 공부에 매진합니다. 물로 배를 채우며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지요.52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소년은 82세의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광화문의 주상복합 아파트 연구실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합니다. 야구 배트, 철판, 나무 판자 등 헤아릴 수 없는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합니다. 버려진 스키를 주워 손으로 뚝딱 조립해 만든 책꽂이를 비롯, 고철에 나무나 쇠 막대기를 덧대어 만든 책상에 남이 쓰다 버린 털조끼를 방석으로 만들어 앉습니다. 노인의 이름은 류근철(1926~2012) 대한민국 한의학 박사 1호입니다.46세에 침술로 제왕절개 수술 마취에 성공해 세계적 명성을 얻습니다. 환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지요. 큰 돈을 법니다. 병원 부지가 급등하는 바람에 재산이 크게 불어납니다. 이때 류 박사는 결심합니다. “아! 이 재산은 내 것이 아니구나.” 노력과 상관없이 재산이 불어나기 시작하자 더욱 검소하게 생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2008년 그는 평생을 모은 재산 578억원을 KAIST에 전액 기부합니다. 부인 명의의 아파트 1채만 남겨두고 골동품으로 가득한 광화문의 연구실을 포함, 자동차까지 모두를 쾌척하지요. 578억원 등기서류 전달식에서 류 박사는 눈시울을 붉힙니다. “셋째 딸은 아직도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데…”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다섯 자녀들과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다는 사연도 있습니다.세습 반대 교수모임이 지난 가을 발표한 격문(檄文) 제목이 떠오릅니다. “한국 교회를 위해 목 놓아 우노라!” 초대형 M교회에서 온갖 편법을 동원, 아들에게 위임목사 자리를 물려준 사건이 발단이 된 거지요. 간디는 일곱가지 악(惡)을 말합니다. 철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경제,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윤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예배.돈이나 명예, 권력의 획득 수단으로 고전이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이미 그 책은 문제집이나 학습지에 불과합니다. 삶 전체를 갈아 엎고 우리의 굳어진 얼어붙은 지성을 깨우는 도끼여야 고전이라 할 수 있지요. 세교모 격문을 보고 함께 우는 지도자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21

불안한 시장 속에서 찾는 바이오

김학주한동대 교수세계 정치권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한 신호들을 강하게 보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도 물가조절 기관인지 경기부양 기관인지 혼동스러울 정도로 우호적인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경기가 꺾였고, 정책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증거로 보여진다. 정치인들의 너그러운 약속 덕분에 증시는 정상을 되찾았지만 앞으로 어떤 응급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투자자들은 일단 이런 시장의 불확실성에 엮이기 싫어한다. 따라서 시장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개별적인 성장 스토리를 갖고 있는 테마로 쏠리는 경향이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이오 산업이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꽃을 피우지 못하는 바이오 기업들도 많다. 즉 주의할 점이 있다는 이야기다.많은 투자자들이 신약의 성공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논문상의 기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약의 효능에 의외로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신약을 환부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신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이론적인 과정은 대부분 하자가 없고, 약효를 결정하는 요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고형암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암세포가 퍼져있어 일일이 겨냥(target)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세포에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쉽게 찾도록 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혈액에 주입하면 죽는다. 설령 암세포까지 살아 가더라도 암 덩어리가 딱딱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침투가 어렵다.당뇨병성 궤사를 치료하기 위해 주사를 몇 십 번씩 찔러야 하는 것도 환부를 겨냥하기 어렵다는 증거다. 또한 기적의 치료제로 알려진 핵산도 환부로의 전달이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창조주께서 외부 항원이 우리 몸 안으로 쉽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설계하신 것처럼 인간이 개발한 약을 인체 내로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따라서 바이오 투자를 검토할 때 신약의 작동 원리보다는 환부로의 전달 기술과 면역세포가 활동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기술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한편 최근 문제가 심각해지는 미세먼지도 바이오 투자를 자극하고 있다. 미세먼지를 흡입하면 호흡곤란, 천식 등이 연상되지만 초미세먼지는 기관지 섬모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혈관으로 유입될 수 있다. 이 경우 면역세포가 외부물질인 미세먼지에 달라 붙어 덩어리를 만들고 혈류를 방해하게 된다.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로 인해 면역체계가 예민해지면 면역이 과발현되어 정상세포까지 죽이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성인 가운데 아토피환자가 급증하는데 이런 영향으로 의심된다.미세먼지는 암도 유발할 수 있다. 우리 몸의 세포분화 과정에서 DNA가 메틸화되어 형질을 발현하는데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오염물질이 이 과정에 간섭할 수 있다. 그래서 DNA 염기서열은 같아도 형질이 다르게 나타나고, 돌연변이 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것이 암세포로 발전할 수 있다. 심지어 이렇게 변형된 DNA 메틸화 과정이 유전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를 후생 유전학이라고 한다.또한 미세먼지를 대기오염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수질 오염도 심각하다. 미세먼지로 인해 오염된 물을 마시면 면역체계가 예민해져 장내 유용미생물을 죽인다. 그런데 면역세포의 70% 이상이 사람의 장 주변에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장 내 미생물의 불균형은 면역력 약화로 이어져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한국처럼 미세먼지가 심각한 경우는 생수를 통해 미네랄을 섭취하는 것보다 정수기로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중국의 산업화 이후 환경은 본격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류는 노령화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지고 있어 견디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은 더 많은 바이오 기술을 요구하고 있고, 에너지원이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넘어가는 과정을 단축시킬 것이다.

2019-03-21

젊은 리더십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1980년생이다. 올해 만 39살이다. 30대 젊은 대통령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보다도 3살이나 젊다.1990년 정계에 입문, 2017년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를 맡았고 그해 총리로 선출됐다. 1856년 이후 여성으로서는 뉴질랜드 최연소 총리가 된 인물이다. 총리 재임 중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출산 휴가를 한 최초의 여성 총리다.작년 4월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다.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 좌파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진보인사 중 한 명이다.다만 이민문제에 대해선 보수 우파적 면모가 강하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우파인 국민당이 오히려 이민에 대해 긍정적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젊은 여성인 아던 총리가 갑자기 세계인의 시선을 모았다. 테러사건으로 그녀에게 시선이 쏠린 게 아니다.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무슬림 총기테러보다 테러에 대응하는 그녀의 대응 리더십에 세계가 주목을 한 것이다.테러 행위에 대한 즉각적이면서 단호한 태도뿐 아니라 침착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그녀의 대응방식에 많은 이가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특히 히잡을 쓰고 충격과 공포에 빠진 무슬림 공동체를 찾아간 그녀가 무슬림을 안고 함께 아파했던 모습을 두고 세계 언론은 ‘훌륭한 지도자’ ‘진정한 영웅’이라는 표현을 썼다.테러에 대한 분노와 증오보다 공감 있는 언어 구사와 행동으로 무슬림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들의 편에서 지지를 보낸 그녀의 용기 있는 리더십에 대한 칭찬이다. 최고의 공감 리더십이라 평가했다.한 나라의 총리로 국정 전반을 다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기 때 보여주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 나라 국민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 그의 리더십이 국민의 정서와 부합할 때 국민이 느끼는 만족감도 크기 때문이다. 30대 젊은 여성 지도자를 총리로 뽑은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그녀가 보인 리더십은 충분한 만족감이 아니었을까 싶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9-03-21

다시 보는 포항지진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는 정부지진조사연구단의 발표결과가 나오자 범시민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조사연구단을 향해 큰 절로 고마움을 표했다.그는 취재를 하러 온 기자들과 결과 발표를 보러 온 300여 명의 포항지역민들을 향해서도 큰 절을 올렸다.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에 의해 촉발됐다는 지역주민들의 읍소와 하소연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 지진은 전년 9월 경북 경주(규모 5.8)에 이어 한국 지진 중 두 번째로 강한 지진이었다. 135명의 인명피해가 났고, 공식 재산피해만 850억 원에 달했다. 이 지진으로 비틀려 부서진 필로티 건물 기둥과 통째로 기울어진 아파트를 보며 지역민들은 엄청난 지진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지진 발생후 9일이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포항지진’피해 현장 점검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액상화 문제가 얼마나 위험성 있는 것인지 잘 살펴보고, 지열발전소가 지진에 미치는 영향도 중앙정부와 함께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도 지열발전소가 지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셈이다.하지만 당시 대통령의 지진피해 현장 방문을 주선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지진피해 수습과 예방대책에 열심이었던 김부겸 의원은 지열발전과 포항지진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포항의 지열발전소가 지진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상용화된 지열발전소가 아니다. 규모가 제법 큰 지진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100만t 이상의 물을 쭉 주입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3천t 정도 물을 주입했을 뿐이다.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 전국에 진동이 전달될 만큼 그런 큰 지진을 유발했다고 보기엔 상식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지역에서는 “대구 출신 국회의원이자 행정안전부장관인 김부겸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포항지열발전소가 지진과 관계 있다’는 학계의 주장을 부정한 것은, 정부의 무대책을 옹호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지난 해 9월에는 ‘지열발전과 관련한 국가배상책임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을 내린 정부 내부보고 문건이 자유한국당 김정재(포항 북구) 의원에 의해 공개돼 지역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김 의원이 공개한 문건은 ‘포항 지열발전 관련 국가배상에 대한 법률자문 보고’라는 제목의 한 장짜리 산업부 내부보고 문건이었다. 이 문건에서는 △직무집행 △고의 또는 과실 △법령 위반 △인과관계 등 4가지 국가배상 요건에 대한 검토를 통해 “국가배상책임 요건 중 일부 요건의 불인정 가능성이 높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내리고 있었다. 정부조사단의 조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런 내부문건이 나도는 데 대해 지역민들은 크게 분개했다. 정부가 조사단에 가이드라인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긴 사건이었다. 이런 우여곡절속에 정부지진조사연구단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정부가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을 영구 중단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원상 복구하기로 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선 것은 평가할만 하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포항지열발전이 정부기관에서 추진한 사업인 만큼 정부 배상책임을 묻는 질문에 “현재 국가를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고 밝혀 피해보상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포항지진의 발생과 피해수습, 원인조사 과정 등을 짚어보노라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목도하게 된다.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2월 당시 산업부에서 예산을 지원한 국가 연구개발(RD)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포항지열발전소가 포항지진을 촉발했다니 말이다.포항지역 출신 대통령이 ‘선물’로 안긴 지열발전소가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으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으랴. 사려깊지 못한 국가정책의 강행은 국가적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반면교사다.

2019-03-21

최정호식 증여

증여는 당사자의 일방이 재산을 무상으로 친족 또는 타인에게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하여 성립하는 낙성·무상·편무(諾成·無償·片務)의 계약을 말한다. 또한 타인으로부터 채무의 면제·인수 또는 제3자에 대한 변제를 받은 자는 그 면제·인수 또는 변제로 인한 이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며, 현저히 저렴한 가액의 대가로 재산을 취득한 경우에도 시가와 대가와의 차액에 상당한 금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증여세부과대상이 된다.국회에서 열리는 인사청문회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추천된 최정호 후보자가 이른바 ‘최정호식 증여’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집 2채를 갖고 있던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서울 잠실의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았다가 경기도 분당 아파트를 먼저 딸에게 증여했다. 최 후보자 부인이 소유한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는 분양가보다 10억 원 넘게 올라 현 시세는 15억 원 선. 경기 분당에도 아파트가 있는 최 후보자가 다주택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잠실 아파트를 팔면 다주택자라 한 채 때보다 훨씬 높은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최 후보자는 장관후보자 지명 직전 분당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해 1주택자가 됐다. 세무사를 통해 분석해 보니 양도소득세만 4억 원 상당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실제 최 후보자가 내야 할 비용은 증여세 1억5천만 원이다. 다주택자였던 최 후보자가 1주택자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세금 2억5천만 원 정도를 아낀 셈이다. 현 정부는 그동안 주택 공시가격을 인상해 보유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팔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정작 집을 팔려고 하면 다주택자는 양도소득세 중과세 부과 대상으로 고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결국 다주택자들 사이에서는 “세금폭탄 맞을 바에야 차라리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심리가 발동, 중·저가 아파트 증여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 공시가격이 적용되는 다음달까지는 절세 목적 증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절세를 위해 매매 대신 자식에게 물려주는 ‘최정호식 증여’는 빈부의 양극화가 가져온, 웃지못할 풍경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20

이게 사회냐

장규열 한동대 교수오늘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워 지금 내가 된 것일까?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고 집에서 부모에게 익히며 친구들, 선생님들, 지인들과 전하고 나누며 새기고 다져진 결과물이 오늘 나의 모습이 아닐까. 세상의 온갖 소식들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언론과 미디어가 호기심과 알 권리를 채워주는 덕에 배우고 깨닫는다.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뉴스와 익힐 거리들의 의미를 전해 들으면서 배우고 깨우친다. 배우고 익혔던 대로 펼쳐지는 일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 현실에 절망하기도 한다.바람처럼 일어나 지금도 번져가고 있는 ‘미투(Me-too)’현상은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 주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성인지 감수성’의 실체를 보여 주었다. 상대가 누구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며 상대를 그 어떤 도구로도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우치고 있었다. 성희롱, 성폭력 등 민감한 성적 이슈에 대하여는 지극히 조심하여야 하며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기 어려울 것임을 배우고 있었다. 이를 비웃기라도 했었을까. 버닝썬, 장자연, 김학의 사건으로 불리는 뉴스들이 알려지면서 그 모든 운동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에게 있어야 할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공적인 기대는 듣고 배웠던 것과는 어쩌면 이렇게 멀리 있었던 것일까.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되면 저토록 무너진 인성을 보란 듯이 발휘해도 되는 것인가. 배경 든든한 공권력도 얼마든지 내 편 만들어 바람막이로 쓸 수 있는가. 권력은 결국 자기들끼리 한 편이 되어 버리는가. 언론도 때로는 돈과 힘을 따라가는가. 아직도 여성은 남성의 폭력에 힘없이 무너지는가. 이런 판에 피해자가 궁금한 당신은 또 누구란 말인가. 지위가 높았으면 이 정도 드러나도 별 일없이 지낼 수 있는가. 등장인물 저들은 과연 공인인가 마귀인가. 대통령이 나서야 겨우 손볼 만큼 가벼운 일인가. 이런 일로 우리는 공소시효를 따져야 하는가. 이런데도, 아직 뒤에 숨어있는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고민할 일인가. 이게 이념의 오른쪽 왼쪽을 가릴 일인가. 함께 보고 있는 다음 세대에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숨길 길은 없다. 그들이 무엇을 배우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는가.사람은 배운 대로 자라지 않는다. 사람은 본 대로 자란다. 하염없이 가르쳐도 한 순간에 날아간다. 앞에 선 이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따라오는 세대에겐 치명적이다. 예절과 격식을 배웠어도 성욕과 폭력이 앞설 터이다. 성실과 진심을 가르쳐도 힘과 돈으로 살아갈 터이다. 정직하게 살자고 하면 눈가림으로 막아설 것이다. 실력을 쌓자고 하면 폭력을 길러내지 않을까. 좋은 친구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면 권력의 실세들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면 패거리 문화건설에 집착하지 싶다. 이성을 배려하자고 하면 여성을 범할 궁리만 하고 있을까. 병든 사회를 바꾸어 보자면, 당신이나 잘하라는 빈정거림으로 돌아오지 않을까.겨우 대통령이 나서는 것으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갈 것으로 기대하는 저 냉소가 보이지 않는가. 오늘의 심대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결연히 ‘사회문제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 미래로 당당하게 나아가기 위하여 좌도 우도 없이 모두 나서야 한다. 노인은 당신의 지혜로 앞서야 하며 청년은 당신의 패기로 나서야 한다. 못난 정권에 ‘이게 나라냐’며 일어섰던 기개를 일그러진 사회에 다시 던져야 한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2019-03-20

이른 새벽 장터, 땔감 팔던 장사치들의 탁배기 한사발과 술국

해장, 해장국은 없었다.술꾼들의 ‘뜨악’할 얼굴이 눈에 선하다. 무슨 소리? 어제도 과음을 했다. 이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지금도 속이 쓰리다. 점심에는 뭘 먹고 속을 풀까라고 벼르고 있다. 뭐? 해장, 해장국이 없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런 표정들이 눈에 선하다.방송 ‘먹방’ 프로그램에서도 ‘해장국’은 단골 메뉴다. 비타민이 많고, 미네랄이 많다고 야단법석이다. 멀쩡한 한의사, 의사들까지 해장국 예찬에 한몫 거든다. 신문, 잡지, 개인의 블로그,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 대한민국은 ‘해장천국’이다.◇ 대갱과 화갱우선 검색부터 해보시길. ‘해장’이라는 한자 검색을 해보면 원하는 ‘解腸’은 나타나지 않는다. ‘解腸’ 즉, ‘속을 푼다’는 뜻의 한자어는 없다. ‘解’는 맺힌 것을 푼다는 뜻이다. ‘腸’은 말 그대로 장기, 창자를 뜻한다. 해장, 속을 푼다. 그럴 듯하지만 이런 단어는 없었다. ‘解腸’은 우리 시대가 만들어 사용하는 급조어다. 뜻도 불분명하고 억지 느낌이 든다.‘해장(解腸)’의 역사는 100년도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말기에도 없었다. 미디어마다 “예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해장을 했다”고 말한다. 엉터리다. ‘전통 해장국’은 코미디다. 조선시대 어떤 문헌에도 ‘해장(解腸)’은 없다. 드디어는 외국의 ‘해장음식’까지 등장한다. 우유 해장, 바나나 해장이다. 억지 코미디다. ‘해장’은 일제강점기 신문에 처음 나타난다.술을 마시면 속이 쓰리다. 간이 미처 알코올을 해독하지 못해서다. 알코올 처리 용량을 넘어서니 장기가 아우성을 친다. 알코올 분해물질에도 독성이 있다. 속을 아프게 한다. 술을 마신다고 속이 꼬이지는 않는다. 장이 꼬여서 아픈 게 아니다. 진짜 장이 꼬이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푼다는 것인지?‘해장’을 원한다면 ‘해장(解醬)’이 맞다. 속을 푸는 장국이다. 장국은 된장, 간장 등 ‘醬(장)’을 뜻한다. 제대로 만든 전통 된장, 간장 등은 속을 풀어준다. 소화효소도 풍부하다. 장기들이 원활하게 움직이게 한다. 장국의 힘이다.우리 음식의 바탕은 국물이다. 국물은 ‘국[羹, 갱]’이다. 갱은 두 종류다. ‘대갱(大羹)’과 ‘화갱(和羹)’이다. 대갱과 화갱 모두 한자 검색을 하면 자동으로 단어가 나타난다. 원래부터 널리 사용했던 단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대갱은 국물의 으뜸이다, 쇠고기는 귀했다. 쇠고기 수육을 만들면 국물이 나온다.수육은 ‘숙육(熟肉)’이다. 삶은 것이다. 고기를 물로 삶으면 국물이 나온다. 서양음식은 고기 삶은 국물을 취하지 않는다. 일부 사용하지만 대부분 버린다. 우리처럼 돼지 뼈까지 고아서 국물로 취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귀한 쇠고기 국물을 버렸을까? 버리지 않았다. 이 국물을 그대로 내면 바로 대갱이다.소금이나 매실 양념도 하지 않은 것이다. 제사상에도 마찬가지. 밥과 국이 있고 탕(湯)이 있다. 어린 시절, 제사를 모실 때 국이 있는데 또 탕이 있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밥에는 국이 있어야 하고, 귀한 제사상에는 고기 국물인 탕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탕은 귀한 고기를 곤 국물이었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귀하니 제사상에 올렸다. 예전에는 소금과 조미 매실이 최고의 기본양념이었다. 이마저도 넣지 않은 국물을 으뜸으로 쳤다. 바로 대갱이다. 국물의 으뜸이다. 오늘날 곰탕의 시작이다. 경북지방에서 ‘사골곰탕’이란 표현을 널리 쓰는 것은 이유가 있다.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쇠고기를 구해서 쓸 수는 없다. 뼈라도 넣고 귀한 ‘곰국’ ‘곰탕’을 만들어야 한다. 바로 사골이 들어간 곰국, 곰탕이다. 화갱은 소금, 매실 등을 넣고 양념한 것이다. 채소도 넣는다. 소금 대신 간장, 된장, 매실 대신에 각종 양념을 넣으면 화갱이다. 장이 들어가면 장국이다. ‘된장 푼 국물’이다. 여기에 시래기를 넣으면 시래기 국이고 간장과 무를 넣으면 무국이며, 선지를 넣으면 선지해장국이다. 칼칼한 고춧가루 넣으면 주당들이 좋아하는 수백 수천 가지의 해장국이 탄생한다.◇ 해장(解腸)인가 해정(解9172)인가?오늘날 우리가 먹는 해장국은 화갱이다. 양념, 채소 등이 들어간 장국이다. 시작은 역시 개장국[狗醬, 구장]이다. ‘된장 푼 물+개고기’다. ‘창자를 풀어주는 국물’이 아니라 ‘된장(간장) 푼 물’이 해장국의 기본이다.‘해정’은 일찍부터 있었다. ‘노걸대(老乞大)’는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든 통역사 교재다. 몽골어, 만주어, 중국어 교본이 있다. 여러 종류의 통역교재를 통틀어 ‘노걸대’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노걸대’에 ‘解9172(해정)’이 나타난다. 모 방송국에서 ‘해장’이 ‘해정’에서 시작된 것 아니냐고 해서 꼼꼼히 살펴본 적이 있다. ‘9172(정)’은 숙취다. 해정은 “숙취를 푼다”는 뜻이다. 해장과 음이 비슷하다. 해정에서 해장이 비롯되었다. 제법 그럴 듯하다.조선 초기인 1478년(성종 9년) 문신 서거정 등이 엮은 ‘동문선’ 제3권에 여말선초의 유학자 목은 이색(1328~1396년)의 ‘설매헌부(雪梅軒賦)’가 있다. 여기에 ‘해정’이 나타난다.“(전략) 대방을 열고 바람 난간에서 굽어보며/방석 깔고 가부좌하여/노아 차를 끓여 해정하면서/주시의 재도(載塗)를 읊고 (후략)”‘해정’은 ‘정신을 맑게 하고’라는 뜻이다.문을 열었다고 했다. 바람을 쏘인다는 뜻이다. 가부좌는 바른 자세다. 차를 마신다고 했다. 향기롭고 따뜻한 찻물로 몸을 적신다. 따뜻한 국물은 몸속 장기를 원활하게 돌게 한다. 재도(載塗)는 시경에 나오는 문구다. ‘우설재도(雨雪載塗)’는 ‘비와 눈이 와서 질척거리는 길’이다. 바른 자세로 앉아서 바람을 쏘이면서 차를 마시고, 시경을 읽는 것이 바로 해정이다. 술을 진탕 퍼마시고 다음날 해장국을 들이킨다는 뜻이 아니었다.숙취를 푼답시고 뜨거운 사우나탕에 앉아 있거나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해정과 해장은 다르다. 여말선초부터 해정은 있었으나 해장은 없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성주석(醒酒石)’이 자주 나타난다. ‘술 깨우는 돌’이다.성주석의 시작은 당나라의 이덕유다. 그는 평천장이라는 대저택을 짓고 각종 나무, 꽃, 돌 등을 옮겨 두었다. 성주석은 이 정원에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하면 늘 이 돌에 앉아서 술을 깨우곤 했다고 전해진다. ‘성주(醒酒)’는 술을 깨운다는 뜻이다. 설마 돌이 해장을 시켰을 리는 없다. 바람이었다. 정원, 돌 주변의 바람이 술기운을 날렸으리라. 다산 정약용도 ‘바람’을 해장국 대용으로 썼다.다산은 “찰랑찰랑 물결은 뱃전을 치고, 스치는 바람이 술을 깨운다”고 했다(다산시문선).가벼운 과일로 술기운을 깨운 이들도 있었다.조선 전기 문신 삼탄 이승소(1422~1484년)는 ‘삼탄집’에서 “포도의 효능은 여럿 있지만 술을 깨우는 공로가 가장 크다”고 했다. 고려 문신 이규보도 과일로 해장을 했다. “서왕모에게서 훔쳐온 복숭아로 입맛을 돌게 하거나 술을 깨게 한다”고 했다(동국이상국전집).1499년 발간된 의서 ‘구급이해방’에는 술병[酒病] 치료법이 있다. 과음으로 구토, 손발 떨림, 정신 어지러움, 소변 불편이 나타나면 갈화해정탕을 권한다.‘갈화(葛花)’는 칡꽃이다. 칡꽃, 인삼, 귤껍질 등 여러 약재를 넣고 달인 물을 먹으면 술병이 낫는다고 했다. 이 치료법의 끝부분은 술꾼들이 새길 만한 내용이다.“갈화해정탕은 다 부득이해서 쓰는 것이지, 어찌 이것만을 믿고서 매일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우리 선조들은 해장국을 먹어야 할 정도의 음주는 ‘병’이라 여겼다. 병은 탕(약)으로 다스렸다.◇ 술국이 해장국으로 바뀌다경북 안동 중앙신시장에는 유명한 선지해장국 집이 있다. ‘옥야식당’. 메뉴는 딸랑 선지해장국 하나다. 전국적인 맛집이다. 대구는 육개장의 도시로 이름을 얻었다. 50년 이상 80년 된 식당도 있다. 경주 팔우정거리에는 해장국 골목이 있다. ‘팔우정해장국’에서 시작한 묵해장국은 메밀묵과 머리를 뗀 콩나물을 넣는다. 조미료 없이 모자반으로 시원한 맛을 낸다. 모두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었다.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이문설렁탕’은 종로 피맛골 뒷골목에서 시작했다. 나무꾼들이 이른 새벽 한양도성 부근 남양주 등에서 나무를 지고 온다. 지게를 내려놓은 다음, 한숨 돌리고 요기를 했다.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천황식당’도 마찬가지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 이곳의 이름은 ‘나무전’이었다. 땔감을 내려놓고 팔던 곳이다. 식당의 주 고객은 나무꾼과 땔감을 사러온 성내 사람들, 시장 보러 온 이들이었다. 모두 시장 통이거나 도심의 번화가다. 해장국은 ‘술국’에서 시작되었다.이른 새벽 장터에 땔감을 팔러 온 이들의 요기다.간단한 국밥과 막걸리 한 사발 마실 술국이 필요하다. 술을 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실 때 더불어 마실 술국이다. ‘탁배기 한 잔’에 김치 한 쪼가리. 그리고 더불어 입을 헹굴 뜨듯한 술국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희석식 소주가 전국을 휩쓴다. 감미료, 조미료가 가득한 소주 아닌 소주. 조미료, 감미료가 과한 음식은 과식을 부른다. 조미료, 감미료 가득한 술은 과음이다. 과음에는 해장국이 필수다. 다산의 ‘바람’이나 복숭아, 포도, 성주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술국이 그립다. 목젖이 꼴딱꼴딱 할 때, 술국 한 모금을 넘긴다. 불콰한 얼굴과 더불어 입술을 훔치던 거친 손매가 그립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3-20

‘시’를 보다 ‘시(詩)’를 생각하다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이창동 감독은 과작(寡作)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97년 ‘초록 물고기’로 데뷔했으니 2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그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연출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관객동원 면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한다. 2007년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덕에 160만 관객이 들었을 뿐, 여섯 편 관객이 340만이 안 된다. 자고 나면 천만 영화가 나오는 세상에 희귀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얼마 전에 윤정희가 주인공으로 나온 ‘시’(2010)를 다시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치매 초기 단계의 초로(初老) 여인 미자가 어린 시절 꿈이던 시 쓰기에 도전한다. 동네 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시 강의에 떼를 쓰다시피 해서 수강하는 미자. 강사인 김용탁 시인은 ‘시는 일상 곳곳에 있으며, 시상(詩想)을 구하려면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애정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시상을 찾아 헤매는 미자는 아름답다.문제는 미자의 일상이 녹록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창동 영화가 그렇듯 미자에 관한 정보는 전혀 넉넉지 않다. 이혼하고 홀로 부산에서 살아가는 딸이 하나 있고, 그녀 소생(所生)의 외손자를 데리고 사는 66세의 미자. 중3 종욱이는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게 하나 없는 천둥벌거숭이다. 게임과 전화기와 늦잠과 짜증에 익숙한 종욱. 그런 연장선 위에서 종욱은 친구들과 함께 같은 학교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다. 여기서부터 ‘시’는 종잡기 어려운 길을 간다.‘시(詩)’는 문자 그대로 절집의 언어다. 절제와 은유와 깊이와 혜안(慧眼)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시 쓰는 일이 가능해진다. 빛나던 20대 청춘 호시절에 나도 시를 쓰고자 했다.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으되,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대상(對象)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도 없었고, 깊이 있는 사유와 인식에 이르는 독서도 태부족했다. 무엇보다 시를 쓰고자 하는 욕망의 최종지점이 부재했으므로, 물러섬에 거리낌이 없었던 탓이 크리라.시는 혁명가의 몽상과 더불어 창공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져버린 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시인들의 평전과 시집을 언제나 품고 다녔다. 그들의 시를 읽고 여러 번 고쳐 읽으면서 시를 기억하려 노력했다. 소설가 정한숙 선생은 “시는 기억하지 않으면 제맛이 안 나!”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일까?! 난 적잖은 한국시와 시조(時調)와 한시(漢詩)를 기억한다. 특이한 것은 러시아 시인들의 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아흐마토바의 ‘저녁에’와 예세닌의 ‘귀향’, 기피우스의 ‘바느질하는 여인’ 같은 시편을 즐겨 읽으면서도 오래 기억하지 못함은 무슨 연유일까?! 그렇지만 러시아 시인들이 보여주는 섬세함과 애틋함, 안타까움과 의식의 전변(轉變) 같은 것은 독자인 나를 언제나 격동(激動)시킨다. 참 잘 쓰네,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아마도 내가 시를 쓰지 못한 결정적인 까닭은 재능이 없어서일 것이다.영화에서 시인은 말한다. “요즘은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요. 아무도 시를 읽지 않고, 시집을 사지도 않잖아요?!” 시를 읽지도, 시집을 사지도 않는 시대에 청춘들은 무엇으로 세월과 만나는지, 언제나 그것이 궁금하다. 술도 안 먹고, 책도 읽지 않고, 시는 못 본 척하고, 시대와 역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무엇이 21세기 우리의 청춘들을 설레게 하는가! 취직인가, 성적인가, 게임인가, 영화인가, 사랑인가. 종잡을 수가 없다.2500년 전에 중니(仲尼)는 ‘불학시 무이언’이라 설파했다.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쓸 말이 없다는 얘기다. 시를 통째로 기억해 자신의 언어로 삼았던 고대의 선비들은 그것을 길잡이 삼아 평생을 살아갔다. 곧 4월이 오면 이영도의 ‘진달래’가 시나브로 떠오를 것이다. 매화가 채 지기도 전에, 벚꽃이 아직 피기도 전에 나는 ‘진달래’를 그리워하고 있다.

2019-03-20

포용국가는 인성교육부터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들판마다 논밭갈이가 한창이다. 겨울을 갈아 봄을 마중하는 농부들의 부지런함에 자연은 봄꽃으로 화답하고 있다. 초미세먼지 등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은 시간이 다르게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연의 꽃 잔치와 들판의 흥겨움은 바로 봄의 에너지이다.에너지가 충만한 봄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여러 사건들로 에너지가 방전되었다. 이번 주말 필자는 지인들과 진지하게 토론을 하였다. 내용은 뉴스의 필요성! 필자는 뉴스가 절대 필요없다고 했고, 지인들은 사회 돌아가는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뉴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토론이었지만, 세 가지 공통점은 도출했다. 첫째, 뉴스가 국민들의 힘을 빼놓는다는 것! 둘째, 뉴스만 보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다는 것! 셋째, 뉴스가 뉴스의 본연의 기능인 객관적 보도에서 확실히 벗어나 편향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것!필자는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볼 때면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혹시나 뉴스가 나올까봐. 어쩌다가 뉴스가 나오면, 그 내용이 서로를 비방(誹謗)하며 싸우는 정치 관련 뉴스이거나, 또는 정말 끝없이 재방송되는 것처럼 보이는 북쪽 관련 뉴스이면 필자는 아이들의 눈치부터 살핀다. 아이들의 표정은 금방 굳어 버린다. 그 표정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불쾌감, 불신감, 혐오감 등이어서 필자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그런 아이들을 두고 필자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영천에 소재한 학교로 향한다. 필자가 있는 산자연중학교는 기숙사 학교이다.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학생들은 일요일 밤이면 서울, 인천, 강원, 대전, 부산 등지에서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영천으로 온다. 그래서 필자를 비롯하여 산자연중학교 선생님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이 번 주도 필자는 평소와 똑같이 일요일 오후에 학교로 왔다. 출근길에 어느 학교 정문에 걸린 “3월 인성교육 캠페인 2013 인성이 힘”이라는 가로펼침막을 무심결에 보았다. 순간 헛웃음부터 나왔다. 그리고 이 나라 학교에 인성교육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학교가 아니라 이 나라에 인성(人性)이라는 단어를 붙일만한 곳이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그런데 없었다. 필자가 모르는 어디선가 인성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성교육진흥법이 태어난 국회와 국회의원들에게는 이 인성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학교 현장과 우리 사회에서 인성교육이 헛도는 것은 인성교육을 출발시킨 국회의원들부터 인성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들부터 법의 내용과 관련해서 최대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데, 어느 누가 그 법을 지키겠는가! 분명 인성교육진흥법은 국회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인성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무너진 이 나라의 인성을 어떻게 하면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방법은 어떨까? 국회, 정부, 법원, 경찰, 학교, 공공기관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부터 해마다 인성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면 어떨지! 그러면 최소한 이 나라가 지금과 같은 낯 뜨거운 사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시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는 인성조차 책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다음은 얼마 전 교육부에서 “제2차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사회관계장관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보도 자료를 낸 내용 중 일부이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건강한 성장이 곧 가정의 행복이자 건강한 사회의 출발점”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 앞서 국회의원들은 물론 사회관계 장관들부터 바른 인성을 가지겠다는 선서식을 하면 어떨까!

2019-03-20

나의 삶, 나의 죽음에 대해

타이타닉은 10억 달러 매출로 세계 영화 신기록을 깼습니다. 남녀의 사랑을 중심으로 그렸지만 침몰 중 알려진 이야기 중에는 감동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구조담당 승무원 중 살아남은 찰스 래히틀러는 17쪽 분량의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애스터(Astor)는 세계 최고의 갑부로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 보트에 혼자 태워 보내며 강아지를 안고 시가를 피우며 외칩니다. “사랑해요. 여보!” 선원이 애스터씨도 보트에 타라고 권유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하지요. “사람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철강 갑부 벤자민 구겐하임은 화려한 턱시도로 갈아입고 말합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답게 죽겠소!” 구명조끼마저 거부하고 신사의 품격을 지킨 그는 당당합니다. 후손들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립하지요. 메이시(Macy) 백화점을 세운 백화점 왕 슈트라우스씨는 세계 2위의 부자였는데 그는 사랑하는 아내 로잘리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구명보트에 태우려 애씁니다. 로잘리는 남편을 두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지요. “당신이 가는 곳에 언제든 함께 했어요. 끝까지 함께 갈 거에요.” 부부는 팔을 꼭 잡은 채 최후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브롱크스 메이시 백화점에는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이라 새긴 부부의 기념비가 있습니다.배가 급격히 기울고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칩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찰스 래히틀러는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후 기록합니다. “타이타닉의 마지막 순간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조차 그 위대함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타이타닉호에는 일본인 탑승객도 있었습니다. 호소노씨는 잽싸게 여자로 변장한 후 10번 보트에 몸을 구겨 넣습니다. 귀국 후 이 사실이 드러나고 모든 일본 신문과 여론은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지요. 10년 뒤 수치와 후회로 가득한 삶을 마감합니다.내가 만약 타이타닉 최후 승객으로 후회 없이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내적 원동력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죽지만 결코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그리고 나 자신. 후회없이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며 배우는 오늘 하루였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꿉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주위 사람들과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20

복마전(伏魔殿)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를 두고 복마전이라 부른다. 보통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나 비리의 온상지를 이렇게 비유해 말한다.복마전은 수호지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북송시대 인종 때 일어난 일이다. 나라에 전염병이 돌자 왕의 심부름으로 산중에서 수도 중인 도사의 기도를 부탁하러 갔던 신하가 도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복마지전의 문을 열게 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부하는 그 안에 있던 비석(碑石)을 들추게 된다. 그러자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마왕 108명이 뛰쳐나왔다. 뒷날 이들은 나라에 큰 소동을 일으키며 백성들을 불행하게 하는 후환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동양에 복마전이 있다면 서양에는 판도라 상자가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진흙으로 빚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한 인물이다. 판도라는 어느 날 온갖 불행과 질병, 고통이 담긴 상자의 뚜껑을 열게 된다. 판도라가 호기심으로 연 상자에서 세상의 불행이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인류의 모든 재앙은 이 상자를 열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클럽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유명 연예인의 일탈행위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마치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은 정말로 요지경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부정과 비리, 음모와 결탁, 불의가 난무하는 현실 등 온갖 추잡한 세상 일들을 모두 이곳에 한꺼번에 모아 둔 것 같다. 복마전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사태의 확산을 두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 부르는데, 맞지 않는 표현이다. 좋은 일이 거듭될 때 점입가경이지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점입추경(漸入醜境)이라는 말이 옳다.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며 갈수록 추악해진다는 뜻이다. 마치 막장세상 같다. 그들에겐 얼마나 호사스러운 세상인지 모르나 그들의 놀아나는 모습을 보면 막장 인생이 따로 없다. 버닝썬 사태를 단순히 유명 연예인의 일탈로 보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혼탁하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사고 정말로 경계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19

뉴질랜드 청년은 여행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홍성식 특집기획부장5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 다친 사람 중에도 중상자가 적지 않다니 희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 사람의 ‘엇나간 순혈주의’와 ‘이주민에 대한 편견’ 탓이다.스물여덟 살 뉴질랜드 청년 브렌턴 태런트는 인종과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에 휩싸여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댔다. 평화로운 마을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성당에서였다. 피와 살점이 튀고 비명이 울렸다. 그 장면이 SNS로 생중계됐다.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비극에 세계가 통탄하고 있다.그럼에도 태런트는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변호사까지 해임하고 스스로 제 행위의 정당성을 법정에서 다퉈보겠다며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진정한 성인은 세상 어떤 곳도 고향으로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진술은 타의에 의해 강제된 고통과 수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낭만적 세계 해석’이 아닐까. 다수의 인간에게 고향이란 돌아가고 싶은 이상향에 다름없다.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향에서의 삶을 포기한다. 무엇 때문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엔 먹고살기 힘들어서다.익숙한 이웃과 소통 가능한 언어 곁을 떠나 다른 나라, 낯선 공간에서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삶을 이어가는 ‘이민자’는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그들의 종교가 비단 이슬람교만은 아니다. 불교도와 기독교도, 힌두교도 또한 뉴질랜드를 포함한 지구 곳곳에서 그 나라 원주민과 섞여 살아가는 게 2019년 오늘. 그렇기에 ‘더불어 사는 다문화주의’란 지역을 불문하는 21세기의 미덕이 되고 있다.죄 없는 이민자들에게 총구를 겨눈 태런트가 북한과 터키, 파키스탄과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키웠다는 내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가 한국을 지목해 “단일민족 국가는 다문화를 배격함으로써 지배적 국가로 성장했다”고 말했단다.그 조악한 견강부회(牽5F37附會)에 끌탕이 나온다. 결혼과 구직, 학업과 사업 등의 이유를 가지고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이 이미 200만 명에 가깝다. 이들은 한국인과 똑같이 납세 의무를 지키고 있고, 한국인과 결혼이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앞으로 국방의 의무까지 이행할 게 분명하다.한국인이 꺼려하는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이주민 수십만 명까지 언급할 것도 없다. 한국은 이제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단일민족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그는 이 사실을 몰랐다.비단 태런트의 테러가 발생한 뉴질랜드만이 아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민자 혐오 범죄’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복지와 인권 보호가 최고라는 서유럽. 목숨을 위협하는 정치적 박해와 허리가 꺾어지는 가난을 피해 거기로 옮겨온 이주민들. 저임금으로 일하며 차별까지 받았던 아프리카와 중동 이주민의 일상이 위협받는 건 심각한 문제다.이주민들이 오로지 자신의 뜻만으로 고향을 떠나 낯선 국가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것일까? 과거 유럽이 식민통치의 편의성과 이윤 추구의 극대화를 위해 제3세계에서 행한 민족분열책과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이주의 이유 중 하나는 아닐까?여행은 삶의 스승이다. 여행을 좋아했다는 태런트가 위고의 진술을 뒤집어 “기쁨과 고통을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면 지구 위 모든 나라가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 딱하다. 인종과 종교, 태어난 국가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증오하는 청맹과니의 총질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모두에게 위험한 별이 될 것이다.

2019-03-19

고향에서 새로 배운 것

김주수의성군수미래 지방소멸 1위라는 고향 의성의 불명예는 군수(郡守)라는 자리에 있는 당사자로는 참으로 곤혹스런 말이다. 전국적으로 가장 고령화 지역임을 알고 있었고 또 그런 정책을 나름대로 준비해 왔지만 정작 중앙일간지에 떡하니 그런 기사가 나가고 보니 왠지 마음이 섭섭하고 슬그머니 주눅이 드는 것이다. 군수에 취임하고 군민에게 새로운 힘을 드려보고자 “활력 넘치는 희망 의성”이란 구호를 내걸었지만 이것이 뭔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활력 넘치는”이란 말은 어떻게 해 볼 자신이 있었지만 “희망 의성”이란 말은 뿌리없이 외치는 먼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심경에 처해있던 내가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많은 인구소멸 위기의 지역들이 그렇듯이 의성도 한때는 인구 25만의 대형 농촌이었다. 그 당시 자식들은 대도시로 나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큰 출세의 기회처럼 받아들여지던 때였고 그로 인해 농촌사회는 점차 피폐해 지면서 젊은 인구가 줄어가고 말았다. 육남매를 둔 우리 식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도시로 도시로 자식들 유학(?)을 시키셨다. 그로 인해 당신은 금새 할머니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어린 내 눈에는 가끔씩 들르는 고향 모습까지 정말 초라해 보였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으신 어머니는 그나마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으시지도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하셨듯 그저 헌신과 희생으로 점철된 일생을 사셨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이가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어머니가 그때 갑자기 나의 머리에 생각난 것은 ‘희망’이란 단어의 뜻 때문이었다.우리에게 희망이란 절망의 반대말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말처럼 희망이란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말일까. 절망의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힘없는 손처럼 막연히 기대하고 바라는 덧없는 형이상학적 용어에 불과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희망이란 말은 그렇게 무기력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나라는 생명이 잉태된 순간부터 누군가의 기대와 희망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삶의 보람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는 동물조차 목숨을 바쳐 지키는 분명한 본능이며 이유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희망이란 존재에 앞서는 것이며 인류가 이제껏 달려온 역사의 방향이며 미래로 가는 지시등과 같은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잠시 왔다가 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겨둘 수 있는 영원한 말이며 영원한 가치가 아니겠는가.그런 생각이 들자 잠시나마 기사를 보고 우울한 기분이 든 자신에게 슬그머니 울화가 났다. 지금은 인구가 줄어 휑하니 보이는 이 고향에서 부모의 희망을 안고 그렇게 고향을 떠난 수십만의 의성향우들이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해 손마디가 굽도록 농사를 짓던 어버이들이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 있는데 정작 군수란 자가 ‘희망’이란 뜻을 제 맘대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로운 성 즉 의성(義城)이란 지명을 만든 홍술장군이 백성들과 함께 결사의 항전으로 사수한 것도 결국 이곳의 ‘희망’을 지켜내기 위함이었고, 어머니가 그토록 힘들게 헌신하며 자식들을 바라지한 것도 ‘희망’이란 간절함이 그 속에 있었던 때문이 아니었던가. 즉 ‘희망’이란 단어는 지방소멸 1위라는 절망스런 단어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가치와 힘이있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후로 나는 ‘희망’이란 말을 군민 속에서 찾기 시작했고 더 적극적으로 지방소멸 1위라는 부정적인 말과 싸워나가기로 했다. 운이 좋았던 때문인지 우리 지역에서 귀농 귀촌이 대폭 늘어났고, 자랑스럽게도 컬링으로 올림픽의 큰 스타들도 우리 지역에서 나타났다. 최근에는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지방소멸 극복을 위한 사업지로 선정받게 되었고 이웃사촌 청년시범 마을 사업 유치와 함께 통합 출산 지원센터까지 개설하게 되었다. 정말 의성에 필요했던 젊은 사람들의 집단 귀농을 가능하게 하고, 그간 문제점이었던 출산과 보육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부정적이던 바로 그 지방소멸 1위라는 말이 되려 새로운 ‘희망 의성’의 돌파구가 된 셈이다.또한 ‘희망’이란 말은 1+1=2라는 산술적 값이 아니라 방향과 크기가 있는 벡터값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마치 신앙인들의 기도처럼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어떤 것을 간절하게 바라는 노력하는 힘이며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심어주는 행복 바이러스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 남겨진 마지막 말이 아니라 우리 곁에 항상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우리 스스로 당연시 해버려 뒤늦게야 깨닫는 어머니의 마음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흔히 희망이란 결과에 치우쳐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목표에 비유하여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란 결과적인 모습이 아니라 과정적인 노력의 뜻을 지닌 단어라고 생각한다. 김광규 시인은 ‘희망’이란 시에서 희망이란 어떠한 순간에도 항상 절망에 앞서는 것이며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 것이라는 표현을 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어 ‘희망’이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향 의성에서 고향 사람들에게서 새로 배운 귀중한 의미의 단어인 것이다.

2019-03-19

개 세계의 점잖은 거인 아이리쉬 울프하운드

미국 로키 산맥으로 보내진 아이리쉬 울프하운드가 1892년 “한 해 겨울 동안 혼자서 늑대를 사십 마리나 죽였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큰 놀라움을 준 적이 있었다. 늑대나 다른 큰 동물들을 사냥하는 개로 이름을 날렸었지만, 최근에는 “개 세계의 점잖은 거인”으로 불리면서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반려견으로 잘 길러지고 있는 아이리쉬 울프하운드는 어떤 개 일까?아이리쉬 울프하운드(Irish wolfhound)는 개 품종 중 초대형견에 속하는데, 지면에서 어깨까지의 높이인 체고가 70~100㎝, 몸무게 40~82㎏ 정도로 알려져 있다. 체고가 1m가 넘는 것들도 있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체장이 2m가 넘는 개체도 있다. 이 개는 아일랜드의 국견(國犬)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서쪽 아일랜드 섬 대부분을 통치하는 섬나라로, 면적은 대한민국의 70% 정도이다. 유럽 대륙과 브리튼 섬에서 로마인, 게르만족 등에 밀려난 켈트족이 마지막까지 버틴 지역이다.아이리쉬 울프하운드는 고대 로마 시대의 기록에도 남아 있을 만큼 아주 오래된 견종이다.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라는 로마 집정관에 관한 기록을 보면, 393년에 그가 자기 형제에게 아이리쉬 울프하운드 일곱 마리를 로마로 보내 준 데 대해 감사를 전하는 편지를 쓴 내용이 나온다. 심마쿠스는 그 편지에서 “모든 로마 사람들이 경탄스러워하는 눈으로 그 개들을 보면서, 그 개들이 틀림없이 쇠우리에 갇혀서 여기까지 운반되어 왔을 것이라고 상상하더군”이라고 쓰고 있다. 로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그 개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이 개들은 사실 고대 아일랜드의 전투견 후예인데, 아일랜드의 쿠 쿨린 전설에 나오는 맹견이 아이리쉬울프하운드의 선조이다(쿠 쿨린의 ‘쿠’가 고대 전투견들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주로 늑대와 엘크 사냥에 이용됐던 초대형 수렵견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시대 전쟁 때 말에서 적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유럽의 설화나 전설과 무용담, 이야기 등에 자주 등장했으며 시인들의 작품에도 종종 묘사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아일랜드의 왕과 귀족들만 아이리쉬 울프하운드를 가질 수 있는 법률까지 만들었을 만큼 상류층에서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1500년대에 크롬웰이 아이리쉬 울프하운드의 수출 금지령을 내렸던 기록이 남아 있다.아이리쉬 울프하운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하운드는 사냥개를 뜻한다) 아일랜드라는 섬나라의 늑대를 사냥하기 위한 견종이었는데, 전투력과 덩치로 늑대 멸종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아일랜드에서의 늑대 멸종으로 인해 필요성이 없어져 기피되기도 했었다. 아일랜드의 늑대와 엘크의 멸종이 시작되며 아이리쉬 울프하운드 역시 1800년대 초에는 살아있는 아이리쉬 울프하운드를 거의 보지 못할 정도로 멸종위기가 있었다. 1862년 영국의이동훈군인 조지 그레이엄에 의해 견종 표준이 만들어지고, 그레이엄 선장이 일생동안 이 혈통을 회복시키려 노력하여 아이리쉬 울프하운드가 다시 만들어 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코티시 디어 하운드와의 개량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전투견과 늑대사냥개로서의 공격성이 크게 순화되어 현대의 아이리쉬울프하운드는 젠틀 자이언트로 불리는 온순한 개가 되었다. 아이리쉬 울프하운드는 최고의 속도와 힘을 겸비한 경주견이기도 한데, 경주용 개들과 하운드 그룹 중에서 가장 큰 개다. 생김새는 그레이하운드를 닮았지만 마스티프나 불독과 싸워도 지지 않을 만큼 강인한 기질을 지니고 있다. 덩치는 크지만 공격적이지 않기 때문에 반려견으로도 적당하다.아이리쉬 울프하운드는 몸과 다리 머리 털이 거칠고 뻣뻣한 편이다. 모색은 회색, 붉은색, 검은색, 황금색이나 흰색등이 있으며 수명은 8년정도로 다른 개에 비해서 조금 짧다. 아이리쉬 울프하운드는 짖는 일이 별로 없으며 강인하고 조용한 타입이다. 하지만 짖을 때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굵고 우울한 소리를 낸다. 아이리쉬 울프하운드가 걸리기 쉬운 질병으로는 고관절 형성 장애와 백내장 등이 있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3-19

이제 새로운 한 발자국을 내딛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2017년 11월 15일 포항의 역사에 하나의 선을 그은 포항지진이 발생한지는 불과 1년 4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체감하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직도 지진에 따른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포항지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오랫동안 생고생을 하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였던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수험생들은 어쩌면 자신의 예상과 다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포항지진을 겪고 난 이후 불안에 떨면서 포항과 인연을 끊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위기는 기회이고 이참에 부동산가격이 하락한 것을 계기로 포항을 은퇴지로 삼아 이전해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그로 인한 작용과 반작용이 각자 처한 상황과 인식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아마도 오늘 예정대로 정부합동조사단에서 포항지진의 발생 원인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지진이라는 것은 지층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에너지의 축적과 계기로 인해 지각에 영향을 주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하는 보고서에서 자연적인 발생이냐 아니면 어떠한 사유로 인해 그것이 인위적인 영향으로 인한 유발지진이냐 하는 데 대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포항시민은 물론 지질학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는 또 다시 활발한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학자들의 입장에서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하나의 현상에 대해 새로운 지식적인 데이터를 입수하여 학문적 성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물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에도 이 원인규명이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도 있기 마련이므로 이번 정부의 발표로 인해 당분간 포항 시내가 들썩일 가능성은 크다.지진발생의 원인은 반드시 규명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한계와 그 책임의 소재에 대한 논의도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철저한 규명과 앞으로의 대처방안을 마련하여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나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포항을 어떠한 도시로 만들어나갈 것인지, 포항은 과연 지진이 발생하였던 도시였는지 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면목을 일신해야만 한다. 지금 포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후손의 미래를 위해 충분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할 시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제 우리 모두 한 발자국을 더 내딛자. 그렇게 수많은 지진이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는 이웃 일본의 경우에는 매년 해외에서 방문하는 관광객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어떤 지역은 지진이 발생하는 상황을 진도별로 체험하는 체험관을 운영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용감한 동물인 셈이다. 단순히 지진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건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건 그 원인을 불문하고 지진과 무관하게 전혀 다른 시각에서 포항 전체의 도시 분위기를 일신하는데 노력하여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전후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전쟁의 아픔과 고통, 슬픔에만 잠겨있었다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은 물론 우리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내국인 외국인 모두 편안하게 포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고 돕는다면 마찬가지로 포항지진의 아픔과 피해에서 우리 모두 탈출하여‘형산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19-03-19

망각(忘却)에 대한 성찰

서수백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기억력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하던 나도 어느 시기부터 망각하는 것이 늘고 기억해 내는 데 힘이 든다. 그만큼 뇌가 노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어느 자연인은 인생의 참담함을 경험한 후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지난날의 모든 것을 잊고 사니 병도 없어지고 삶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망각의 이중성이다.20년 전쯤이었다.나는 ‘설에서 보자’라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설? 설날을 앞둔 시기였으니 ‘설날에 보자’라는 말인가?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설’은 ‘서울’이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재미있다는 생각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처럼 이제 ‘설’ 정도는 옛말이 되었고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수없이 만들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 정체 모를 신조어들을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고지식한 사람이 돼 버린다. 물론 그 언어들 속에는 시대의 아픔이 담긴 웃을 수 없는 단어들도 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언어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이다.사람들은 정상적인 우리말글은 망각한 것인가? 언어에 대한 망각이 현실의 비정상적 행동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게 하는 것인가?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 한국어 종결어미는 ‘~삼’, ‘~당’이 판을 치고 대답하는 말도 ‘넹’을 쓴다. 유성음이 종성으로 들어가니 어감이 친근하고 귀여운 느낌은 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쓰는 양상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아이들과 혹은 젊은 세대들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듣기 거북한 비속어들을 스스럼없이 쓰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느 공포 영화 못지않다.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수평적 호칭제’라는 미명 아래 학교 구성원 간의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통일하자는 방안을 내 놓았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 ‘~쌤’이라고 부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발표되자마자 곳곳에서 반발이 일어났고 교육감은 “최근 교권 추락이 크게 우려되는 현실 속에서 수평적 조직문화 개선 정신이 충분히 부각되지 않고 호칭 문제만 제기되어 안타깝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이 방안은 교직원 간의 호칭으로만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또한 찜찜한 결론이다.현재 복수표준어인 ‘멍게’와 ‘우렁쉥이’가 처음에는 ‘우렁쉥이’만 표준어였고 ‘멍게’는 비표준어였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표준어 ‘우렁쉥이’에 비해 비표준어 ‘멍게’가 음절수나 모음 발음에 있어 경제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하였고 이에 따라 ‘멍게’는 공식적으로 ‘비(非)’를 떼고 ‘표준어’가 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멍게’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단어들을 살피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리하여 2011년에는 그렇게 논란이 많았던 ‘짜장면’을 비롯해 지금까지 69개의 비표준어가 표준어 목록에 올랐다. 우리는 이러한 공식적 언어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리라 본다. 단순히 많이 사용하고 의사소통에 편리하다고 하더라도 언어 사용으로 인한 국민 정서에 대한 고려가 먼저 세밀히 있어야 할 것이다.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우리의 문자를 만듦으로 민족의 자존감을 세웠고,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은 우리말글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여겼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우리말글을 물려주었다. 자연환경 때문이든 생활환경 때문이든 우리는 많이 잊어 가고 있다.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의 병도 겪는다. 그러나 잊는다는 것에 너무 무뎌 있지는 않는가? 사라질 뻔했던 대구 방천시장은 ‘김광석길’을 만들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야 할 때다.

2019-03-19

눈에 보이는 게 없어 두려울 것 없는 남자

폭발 사고가 일어납니다. ‘번쩍’하는 섬광이 스물 한 살 그가 마지막으로 본 빛입니다. 시력을 잃은 절망 끝에 저수지에 몸을 던지기도, 철길에 누워 기차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귀가 번쩍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대학생인데 시각 장애인이라는 사연이 흘러나옵니다. 전화를 걸어 주인공을 만납니다. 시각장애인 대학생은 청년에게 점자 읽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한 페이지 읽는 데 4시간이 걸리는 고된 훈련입니다. 손끝 감각을 예민하게 하려고 사포로 문질러 살갗을 벗겨내고 피를 닦아 가며 점자를 읽습니다. 대학 공부하기. 결혼하기. 컴퓨터 배우기. 이 목표를 이루는데 28년 걸립니다. 남자의 이름은 송경태.다음 목표는 마라톤입니다. 안내견과 춘천마라톤 5㎞ 코스를 완주합니다. 10㎞, 하프, 결국 울트라 마라톤까지 성공하지요. 시동이 걸린 남자는 멈추는 법을 모릅니다. 미 대륙 4천㎞를 달려서 횡단하는데 성공합니다. 사하라 사막, 고비 사막을 완주했으며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남극대륙까지 모조리 횡단해 버립니다. 다 합치면 1천㎞가 넘는 사막코스 그랜드 슬램 기준을 장애인 최초로 돌파하지요.히말라야에 도전합니다. “안나푸르나 정상 부근에서 셀파 배낭 잡고 따라가는데 일행이 펑펑 우는 거에요. 폭 30㎝ 구간에 양쪽 절벽이 600m인 구간을 기어서 갔더라구요. 눈이 뵈는 게 없으니 아무 것도 모르고 간 거죠. 안 보이는 것이 이럴 때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때로는 보이는 것이 두렵게 만들거든요.” 끝없는 모험 가운데서도 그는 1년 평균 100권을 읽습니다. 해마다 한 권의 책을 씁니다. 2000년 석사, 2011년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다음 생에도 시각 장애인으로 살 수 있겠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답합니다. “예! 받아들일 겁니다. 이 시련이 없었다면 저는 도전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 내 삶에 감사합니다.”인생 여정에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덮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 어떠하든, 그 상황 가운데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결정권은 오직 내가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승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의 조건을 발견하고 패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의 이유를 찾아냅니다.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용암같은 뜨거운 열정으로 승리의 조건을 찾아 담대히 도전하는 그대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9

청음(淸陰)과 지천(遲川)의 국가관

강희룡서예가서인(西人)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이 원인이 되어 국호를 청으로 고친 후금으로부터 침략당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 패해 군신의 의를 맺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한다. 당시 청과의 전쟁과 화의를 주장하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 중심에는 청음과 지천이 있었다. 청음 김상헌(1570∼1652)은 조선의 역사에서 주전론(主戰論)을 바탕으로 한 척화파의 절개와 지조의 한 상징이다. 그의 82년에 걸친 긴 생애동안 왜란과 호란을 모두 겪었던 조선의 가장 험난한 격동기를 통과했음을 알려준다. 지천 최명길(1586∼1647)은 당시 청과의 전쟁을 피하고 화의를 모색해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주화론(主和論)의 대표학자로서 척화론 일색의 조정에서 홀로 강화론을 폈다.시국에 대한 이 두 학자의 대립원인은 이들의 학문과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조선 전기의 주자학은 이기론(理氣論)의 이론전개에서 철학적 우주론보다는 윤리적인 심성론인 사단칠정에 더 중점을 두며 의리사상으로 발전시키는 또 하나의 성리학 특징을 이뤘는데, 이것이 17세기에 이르러 양란(兩亂)을 거치는 동안에 구체적으로 발현됐다. 도학정신을 바탕으로 의리정신의 위치를 확고히 한 조선중기 사림의 맥이 바로 청음의 의리정신이다. 이 의리의 실천은 소학(小學)을 근거하고 있으며 ‘대신(大臣)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고 불가하면 그만둔다.’라는 논리로, 의리를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는 도학정신의 사생관(死生觀)과 사명의식을 보이고 있다. 청음의 사상은 병자호란을 통해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구현된바, ‘대신은 의를 따르는 것이지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사군자의 진퇴는 오직 의(義)일 따름이다.’라고 하여 그는 자신의 진퇴가 오직 의에 달려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는 정명사상(正名思想)이다. 이 이론은 공자가 당시 사회의 혼란스러움을 명(名)을 바로잡음으로써 구제하고자 주장했던 사상이다. 이 사상은 춘추(春秋)정신으로 이어지게 되며, 춘추란 군신간의 명분을 중시하며 의리를 숭상하고 보편화하며 인(仁)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대의명분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줬던 것이다. 이후 송시열 등을 중심으로 민족과 국가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한 북벌사상의 근간이 된다. 조선 중기부터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사상적 흐름과는 달리 또 한 줄기의 사상이 나타나게 됐으니, 바로 실용주의 학문인 양명학(陽明學)이다. 명종시대에 들어온 양명학은 공맹사상을 그 시대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 적용한 사상으로 주자학을 비판하고 보완하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전래 당시부터 유학의 정통이 아니라고 배척당하여 줄곧 이단시되다가 17세기 초의 혼란한 상황을 해결하고 타개해야 하는 현실적 반성과 자각이 대두하자 양명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며 실심(實心)과 실득(實得)을 강조하고 실용을 추구하면서 최명길이라는 학자의 현실의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당시 척화를 주장하던 주자학적 의리학파 사이에서 최명길이 본심에 바탕을 둔 양명학적 사고에 입각해 홀로 강화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명길은 ‘비록 만고의 죄인이 될지라도 임금이 망할 줄을 알면서도 차마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 오늘날 화친은 부득이한 것이다.’라면서 척화파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화의를 주장했던 것이다.지천이 지은 조선 측의 강화문서를 청음이 읽고 찢으며 통곡하니 지천은 이를 다시 주워 모으며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 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백발이 되도록 청나라 심양에서 함께 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방법이 달랐을 뿐, 나라 위한 마음은 같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화해를 했다. 두 선비의 국가관을 잘 나타내주는 역사적사건이다. 정치철학 없이 패거리지어 다투는 지금의 우리 정치판에 시사하는 바 크다.

2019-03-18

청년 예술가들의 창업활동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청년실업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취업의 대안으로 창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몇 년간 지속된 청년실업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직면한 우리사회의 새로운 문제이며 시급히 시정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공식적인 실업통계에 잡히지 않는 구직단념자들을 꼽을 수 있다. 지역 문화·예술계 역시 이러한 청년 실업문제에서는 별다른 해결책 없이 청년실업률을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예술가 지망생들은 구직활동과는 거리가 먼 창작활동을 통해 1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예술가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창작 활동이 부가가치가 높은 노동 생산성을 추구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늘 부족하고 궁핍하다.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취업자 수는 2623만2명으로, 2018년 1월보다 1만9천명 증가했으며, 실업률은 4.5%로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몰아친 2010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한다. 체감 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 역시 13.0%로, 1년 전보다 1.2% 상승했다. 그리고 청년층 고용보조지표 역시 1.4% 상승한 23.2%이다.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 시대라고 하지만 상대적 격차를 개선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성장이 둔탁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며 문화·예술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통계를 문화·예술계를 통해 정확히 작성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지역의 예비 예술가들은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부단한 자기 노력을 가져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예술인들에게 취업이나 창업에 관한 고민은 어제와 오늘의 일은 아니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관심사이기도 하다.20세기 오스트리아 빈 미술계의 대표 화가이며, 황금색 작품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어린 시절 작품 활동과 함께 창업을 통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유명했다. 가난한 보헤미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부터 빨리 돈을 벌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었다. 빈 장식공예학교에 다니는 동안 어려운 집안 사정을 돕기 위해 학교에서 받아온 일거리로 푼돈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곤 했다.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해 학생의 신문으로 두 살 아래 동생 이었던 에른스트와 친구 프란츠 마치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를 결성하게 됐다. 소위말해 청년창업을 시작한 셈이다. 1879년 당시 오스트리아 빈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명으로 링슈트라세를 중심으로 장대한 공공건물이 완공되기 시작한 시기로 도시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 신축건물들은 하나같이 섬세하고 화려했으며 고답적인 실내 장식들을 요구했었다. 이러한 왕실의 요구사항을 성실히 충족시켜 나가며 클림트의 ‘예술가 컴퍼니’는 서서히 링슈트라세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빈의 국립극장인 부르크 극장의 실내 장식과 벽화를 성공적으로 제작하며 빈 예술계에서 명실상부한 창업의 신화를 이뤄 나갔다.그는 회사운영을 위해 본인의 작가관에 메여 고민하기 보다는 그만의 독창적 화풍을 이용해 벽화 제작 등 다양한 실내장식을 접목시켜 창의력을 부각시키는 조형 활동으로 펼쳤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예술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충분히 활동해 창작활동과 더불어 창업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오늘날 우리주변을 되돌아보면 근본적으로 대기업의 성장잠재력은 한계에 달해 있으며, 중소기업 중심의 글로벌 강소기업을 발굴 육성이 더욱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에 우리의 청년예술가들도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처럼 예술을 응용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도전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19-03-18

대기권을 돌파하면

단치거와 레바브는 2011년 이스라엘 직업 재판소의 심리 및 판결에 대해 흥미로운 조사를 진행합니다. 이 연구는 판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석방 판결을 내리는가를 밝혀내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연구자들은 10개월 동안 8명의 판사들이 내린 1천112건의 가석방에 관한 판결을 분석하지요.기운 넘칠 때 심리한 ‘아침 첫 사건’과 ‘점심식사 이후의 첫 사건’에 가석방 비율이 65%로 가장 높습니다. 반면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티타임 직전이나 점심 먹기 직전의 사건은 15∼20%로 뚝 떨어집니다. 가석방의 판단 기준이 법적 논리나 사건의 정황 증거가 아니라 놀랍게도 판사들의 ‘정신적인 피로감’에 의해 좌우되고 만다는 것을 밝혀낸 겁니다. 피로가 심한 시간에는 가석방이라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보수적인 쪽으로 결론짓고 있음을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지요. 이 실험 역시 인간의 의지력이 한정적 자원이므로 얼마나 쉽게 고갈되는 지를 알게 해 줍니다.우주선이 대기권을 돌파하려면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대기권을 돌파한 후에는 태양열 접지판 미량의 에너지로 수십년 임무를 수행하지요. 습관 만들기 또한 우주선 발사의 원리와 비슷합니다. 지구의 중력처럼 우리 정신적 시스템은 의지력의 고갈을 불러옵니다. 이 장벽을 뛰어 넘으려면 초기 에너지를 집중 투자해야 하지요.숀 코비는 말합니다. “나는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당신의 가장 훌륭한 도우미이지만, 때로는 가장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끝없는 실패의 나락으로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당신의 행동 90%가 나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나는 당신의 행동을 빠르고 정확하게 결정짓습니다. 나는 위대한 사람들의 하인일 뿐 아니라 실패한 모든 이들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를 길들여 주십시오. 부디 나를 훈련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습관입니다.”어제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여러 행위들은 의지력의 고갈을 불러옵니다. 운동하기가 작심삼일로 쉬 끝나는 것은 운동하러 신발 끈을 묶기까지 의지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일기나 글쓰기 연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 등은 모두 의지력의 소모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초기에 강렬한 에너지를 투자해 습관으로 길들이는 것입니다. 2019년, 그대가 어떤 습관을 만드는 데 성공할 지 궁금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3-18

‘부끄러움’이라는,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감정

인간의 마음은 마치 잔잔한 바다 속 깊이 감춰진 물결처럼 빠르게 흐른다. 걷거나 뛰고, 일하고 사랑하는 그 순간에도 마음 속에는 생각이 물결처럼 계속해서 빠르게 흐르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바다 속 물결의 흐름을 읽어내기 어려운 것처럼, 타인인 우리가 그 사람을 보아도 그 마음속에 어떤 거친 물살이 흘러넘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흐르고 있을까 하는 갖지 말았어야 할 호기심은 나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자신이 쓴 철학서인 ‘존재와 무(L‘00EAtre et le n00E9ant, 1943)’에서 타인 내지는 타자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에 대해서 궁금해 문에 귀를 대고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본다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한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 뒤늦게 깜짝 놀라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물론 내 숨어 있는 모습을 들킨 것이 아니니, 숨어 있던 사실을 남에게 들켜서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질투에서든, 호기심에서든 내가 타인에 대해 마음을 품고 그를 궁금해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깨워져 부끄러운 것이다. 그가 그 즈음 쓴 희곡 ‘닫힌 방(Huis clos, 1944)’에서 버젓이 ‘타인은 지옥’이라고 선언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인간됨이라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신 앞에 선 똑같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하나의 마음을 강요받았던 신화의 시대 이래로, 바벨탑 아니 그보다 한참 뒤에 모든 인간들이 각자의 인격을 갖고 자기가 창조한 마음 속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인간들은 이제는 서로의 마음 속에 흐르고 있는 생각을 알 수 없어 괴로워하고, 그것을 궁금해 했다는 사실 때문에 한 번 더 부끄러워한다. 사르트르에 의한다면, 지금 시대의 인간은 영원히 타자의 시선이 빚어내는 부끄러움 속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그러기에 부끄러움이란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라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가 타인을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축복이면서 또한 저주이다.이러한 시대에는 아마도 언어만이 타인의 내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지금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어른들이 수다를 떨고, 편의점 구석에서 고등학생들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궁금해 하는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마음이다. ‘그날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이상하고 낯선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봤을까.’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해본들, 답이 나올 리 없다. 그것은 온전한 타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두려운 감정만큼은 사라진다. 분명 돌아오는 길 어름에는 이 모든 것들이 또 다시 부끄러워지겠지만, 타인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만큼은 위안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누군가와 타인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이리라.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우리 시대의 소설이 대부분 타인의 내면을 다루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내면에 비교적 온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언어를 다루는 작가가 예민하게 포착해낸 누군가의 속마음이 소설 속에는 오롯하게 들어 있는 것이다. 인물에 대한 묘사며, 시점이라는 장치며, 어느 것이나 독자로 하여금 소설 특유의 타인의 속마음으로 들어가는 기술을 극대화하는 방법일 것이다. 바로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쉽게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소설은 타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가 아닐 수 없다.이런 생각을 하며, 서가의 책들을 둘러본다. 사춘기 시절, 설명하기 힘든 기분에 빠져 있던 나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던 책들이 여전히 그대로 서가에 꽂혀 있다. 기형도와 김승옥, 카프카와 손창섭…. 그때 나의 세계의 전부였던 것들은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부끄러운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설을 통해서야 겨우 내게 찾아온 타인의 감정에 대한 갈망을 비슷한 언어로 정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분명 아무래도 알 수 없는 타인의 내면에 대한 자기에 대한 사랑과 자기에 대한 혐오와 부끄러움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갖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이다.어쩌면, 일본의 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라는 작가는 그러한 인간이 가진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작가가 아닐까. 그의 대표작 ‘인간실격’을 꺼내 든다. 그 속에서는 낯선 표정으로 세상과 마주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소설 ‘인간실격’은 1930년 무렵 ‘요조’라는 주인공이 쓴 세 편의 수기를 누군가로부터 받은 작가가 이를 소설로 꾸미면서 앞과 뒤에 이야기를 덧붙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기를 남긴 요조는 비교적 부유한 가족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세상은 모두 낯설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요조의 수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라는 자기고백의 시작은 단지 특별한 인간의 자기고백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라면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근원적인 부끄러움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요조는 세상과 타인에 대해 깊은 감수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그렇듯이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 그 사이에서 근본적인 불일치를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 너무 일찍 자신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불협하다는 것을 이해해버린 것이다.“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김춘미 옮김, ‘인간실격’, 민음사, 2004, 16쪽.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그것,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지 않을 수 없는 근본적인 불일치일 것이다. 이 소설은 섣불리 타인의 이해나 앎을 말하기보다는 담담하게 바로 그 아픈 저주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 ‘인간실격’은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간됨조차 어떤 개인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라는 불안의식을 최초로 선언하여 낙관주의의 언어를 통해 은폐된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과 공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비록 소설 속 요조는 익살로서 인간을 가장하거나, 동반자살에 실패하고, 폐병과 정신병을 앓으며 인간으로서의 하찮은 인생을 마치 광인처럼 살아간다. 그가 순수하거나 세상이 더러워서가 아니다. 세상에 던져진 그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것조차 갖지 못한 낯선 인간이었던 것이다.마찬가지로 우리가 그의 수기를 읽으며 어떤 위안을 얻는 것은 결코 우리의 삶이 그의 삶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되기조차 어려워했던 그가 갖고 있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실은 가장 인간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모두 잊어버렸던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가 이 소설 속에서는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화해되기 어려운 인간과 저 바깥 세계 사이의 간극을 다루는 가장 소설다운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0년대 초에 김승옥은 다시, 다자이 오사무를 읽자, 는 제안을 하면서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출판하고자 기획했었다. 어린 시절 김승옥의 소설을 읽으며 타인에 대한 부끄러움을 읽어냈던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읽으며 한 번 더 그에게 공감한다. 이 탁월한 작가는 인간이 낯설었던 인간을 통해 우리 모두가 이미 한참 전에 잊어버렸던 것들을 불현듯 다시, 슬쩍 건네고 있는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