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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울릉공항 건설, KDI 사업비 검토에 달렸다

김두한경북부울릉공항 건설의 걸림돌 중 하나인 동해상 항공로 문제가 최근 해결됐다. 이로써 울릉공항 건설은 한국개발연구(KDI)의 총사업비 적정성 검토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겨두고 있다.바다를 메워 건설되는 울릉공항은 그동안 매립석 해결과 항공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매립석은 일부 케이슨(시멘트 구조물) 대체 및 육지 반입 등으로 해결됐고 항공로는 박명재 의원과 울릉군이 국방부 등을 방문해 결실을 거뒀다.포항~울릉 간 직항로는 군사 훈련 공역과 중첩된다며 군 당국에서 반대했다. 이는 애초 말이 안 되는 논리였다. 특히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군이 있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항공로에 대해 훈련 공역이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 집단 이기주의나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군의 가장 큰 정신인 국가관이 결여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무엇보다 울릉공항은 영토 수호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건조비는 물론 운영비 등 연간 수조 원이 들어가는 항공모함을 동해 한 가운데 띄워 놓은 것과 버금갈 만큼 중요한 군사 시설이다. 울릉공항건설을 반대한 군의 생각이 애초부터 탁상 행정에서 나온 것이란 지적을 받았다.이제 남은 문제는 KDI 총사업비 적정성 재검토다. 이 검토에서 정적성이 나오지 않으면 문제가 또 복잡해진다. 울릉공항은 애초 적정성 용역결과 건설의 필요성이 충분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사업비가 추가되자 총사업비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KDI용역에 들어갔다. 추가 사업기가 총 사업비의 20%가 넘지 않는다.이에 따라 애당초 5천755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던 울릉공항 건설비는 기본설계 용역결과 6천300여억 원으로 늘났다. 기획재정부는 늘어난 550여억 원에 대해 지난해 7월 KDI에 총 사업비 적정성 재검토를 요청했다. 당초의 울릉공항 건설비 5천755억 원도 이미 몇 년 전 산출된 금액이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추가된 550억 원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용역으로 시간을 끌 경우 또다시 수백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울릉공항은 울릉군민의 정주기반 개선은 물론 국가로서도 중요한 안보적 요충지이자, 일본의 독도 영토 수탈야욕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경제성 논리에 얽매여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하루속히 울릉공항이 착공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kimdh@kbmaeil.com

2019-02-12

염색가공산업, 제조공정 혁신과 친환경 기술만이 살 길이다

최진환 다이텍연구원 원장한국의 섬유산업은 선진국과 중국 등 개도국 사이의 포지셔닝 트랩(Positioning Trap) 상황 속에서 원부자재가 상승 등 생산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글로벌 환경 기술규제 강화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섬유산업 시장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성장 중에 있다. 특히 산업용 섬유는 자동차, 에너지, 의료, 건축, 토목 등 전 산업 분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이는 선진국들이 섬유산업을 포기하지 않고 소재·부품산업으로 육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섬유산업에서 염색가공은 의류생활용과 산업용에 관계없이 제품의 상품가치 향상을 위한 필수적인 공정이지만, 인건비 의존도가 높고 대량의 물과 화학염료가 사용됨에 따라 폐수를 대량으로 발생시키는 공해산업으로 지목됐다.세계적으로 염색가공 산업에 있어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수요자 중심의 환경규제 강화이다. 에너지 과소비에 따른 지구 온난화와 유해화학물질 범람에 의한 생태계 파괴, 인체 유해성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환경 기술규제는 선진국의 새로운 보호무역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시행되는 바이어들의 품질·안전·환경에 대한 규제대상품목(RSL)들이 본격 발효되고 있어 이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할 경우 경제활동 위축과 더불어 심각한 산업 경쟁력 저하로 연결될 것이다. 이에 물과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한 친환경 고부가 공정기술로의 전환이 중요하며, 디지털날염(DTP)과 초임계유체 염색기술 등 비수계 첨단기술의 상용화와 경제성 확보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대구시와 산업부가 2017년부터 지역 기업들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물 없는 컬러산업 육성사업’은 이러한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또한 염색가공 산업의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국내 노동환경의 변화이다. 인건비 상승, 주 52시간 근무,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한 청년 인력 근무기피 등 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산업자체의 위축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4차 산업혁명을 이용한 제품의 고부가화와 제조공정의 자동화, 지능화이다.이를 통해 고품질의 제품을 신속하고 저렴하게 생산이 가능하게 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례로 한솔섬유 GD(베트남공장)는 스마트 팩토리 레벨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독일 SETEX사는 염색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를 보유해 관련 시장을 리드 중에 있다. 최근 주위에서 ‘경기가 좋지 않다, 회복될 기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고 있는데 이는 전통 제조업 분야 전 산업에 모두 해당되는 상황이다.선제적으로 준비해 온 기업들은 급격한 산업환경 변화가 오히려 성장의 새로운 기회가 되지만, 준비가 부족한 기업들은 어려움에 그대로 노출돼 심각한 양극화 형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진 제품 대비 비교우위가 있는 기술 중심의 품질 고도화와 생산성 개선, 불량률 최소화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염색가공 산업은 제조공정 혁신과 친환경 기술 중심으로의 질적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이다.

2019-02-12

봄의 전령사

봄의 전령은 누가 뭐래도 매화(梅花)를 첫 번째로 꼽는다.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휴애리에서는 벌써 매화축제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남해나 거제, 창원 등 남부지방 곳곳에서도 매화꽃이 봉우리를 맺기 시작해 매화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전령사로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매화는 장미과의 갈잎, 중간 키 정도의 나무다. 꽃을 강조할 때는 매화라고 부르며 열매를 강조할 때는 매실나무라고도 부르고 있다.군자(君子)의 기품에 비유한 네 가지 꽃(사군자) 가운데 하나다. 매(梅) 난(蘭) 국(菊) 죽(竹)순으로 표현되어 매화는 사군자 중에도 으뜸이라 한다.매화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이름도 갖가지다. 일찍 핀다하여 조매(早梅), 추운 날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고도 부른다. 색깔에 따라 백매, 홍매 등으로 나뉜다. 중국에서는 음력 2월을 매화를 볼 수 있는 달이라 하여 매견월(梅見月)이라 특별하게 부른다고 한다.매화는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 위에서 고운 꽃을 피운다. 온갖 꽃들이 미처 피기도 전에 먼저 꽃을 피워야 하기에 그 기개가 가상하다 할만하다. 옛 선비들이 매화를 특별히 좋아한 이유도 이처럼 추운 날씨에도 굳은 기개로 피어나는 늠름함에 있다. 우리나라 근대 수필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김진섭은 매화찬(梅花讚)이란 글에서 적설(積雪)과 찬 기운 속에 고요히 피는 매화에서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를 느낀다고 표현했다. 그는 일반 꽃들과 대비되는 매화의 특성을 선구자적 모습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매화가 핀다는 것은 이제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아무리 추워도 자연의 섭리 앞에는 그 누구도 불복을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봄에 들어선다는 입춘도 막 지났다. 매화꽃이 조금씩 봉우리를 피우면서 우리를 추위에 떨게 했던 겨울 한파도 곧 물러 설 것으로 보인다. 봄의 전령 매화꽃의 만개 소식과 더불어 겨우내 움츠려왔던 우리들의 가슴도 이제 활짝 기지개를 펴보자./우정구(논설위원)

2019-02-12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야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경북도가 최근 대형 국책사업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면서 경북민 뿐아니라 최고 수장인 이철우 도지사의 심적 고민이 커 보인다. 경북도는 최근 예타면제 사업에서 당초안보다 크게 뒤진 동해중부선 단선철도안 4천억원 확보에 그쳤다. 물론 김천~거제노선인 남부내륙철도안에 경북구간이 30% 이상 포함됐다지만, 경북으로서는 실망스럽다. 그마저 경북구간 35㎞에는 신설 역사가 한 곳도 없는 용역보고서가 드러나면서 이게 과연 경북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소리가 무성하다. 과거 김관용 지사 시절부터 공을 들여온 원자력해체연구센터도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아직 공식발표는 안됐지만 부산·울산지역으로 거의 굳어지는 분위기라 경북에서는 눈 위에 서리까지 맞은 모양새다. 지금 경북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마냥 슬퍼하거나 분노할 수 없는 다급한 실정이다. 훨씬 더 중요한 국책사업결정이 목전에 닥쳤기 때문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것이 SK하이닉스의 구미 투자유치다. SK하이닉스는 향후 120조원을 들여 반도체특화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으로 유치만 된다면 경북형일자리가 성공을 거두는 것 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유치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경북도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현재 도백의 위치를 보면 ‘노력해도 결과가 뒤따라 주지않는 뻘속에 갇힌 형국’이다. 다가오는 사업들이 녹록지 않아, 이리저리해도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그러나 이런때 일수록 평정심을 갖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SK하이닉스 투자유치는 죽어가는 구미경제를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다. 이를 유치하기 위해 감정을 앞세우는 동정론은 피해야 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대기업인 만큼 사회적 책무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냉혹한 기업논리를 많이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을 설득할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하이닉스가 구미에 오는 것이 보다 유리하다는 유인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할 당시 미국은 거의 무상이나 다름없는 부지를 대여한 것을 비롯, 현대차가 투자하는 비용 정도를 현지에서 투자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졌다.또 통합공항도 있다. 가능한한 빨리 부지라도 선정해 불필요한 소모성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프로젝트로 지역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 사업 면면이 경북의 100년을 만들 거대 프로젝트지만 한번 손에 넣기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비난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경북도는 이러한 비난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대형프로젝트를 감내할 ‘컨트롤 타워’ 조직도 만드는 등 보다 이성적인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적임자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인재풀을 만들고 삼고초려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경북도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지는 않는지도 되짚어 봐야 한다. 최근 정부 여당의 한 실세는 사석에서 “현재 경북도는 대형국책사업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는 등 최악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사가 그냥 양반으로 있으면 안 된다. 청와대 앞에서 삭발시위라도 하든지 아니면 도의원들과 함께 상경투쟁을 하는 등 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번 곱씹어 봄직하다. 또 지사는 우선순위가 낮은 것은 실무자들에게 과감히 이양하고, 보다 큰 문제에 올인하는 선택과 집중도 필요해 보인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어 소소한 일에 신경쓰면 큰 일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지금 당장은 외롭고 힘들지만 인내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생산해야 한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기해년 경북도의 건승을 기원한다.

2019-02-12

경북 수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세계 각국이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높이 세우고 있어 우리 산업들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경북 경제를 견인하였던 구미와 포항 지역경기도 여전히 흐린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가계,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은 불투명한 시야에 갑갑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야가 밝아졌을 때 주저 없이 달릴 수 있도록 체력관리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약점이 무엇인지 진단하여 철저히 보완하는 한편 장점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개발과 혁신을 하나하나 준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그러한 의미에서 경북 수산업도 앞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철저하게 영세성을 탈피하고 기업화를 위한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어가들은 지금이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수입적인 성과가 다른 지역 어가보다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도 경북 어가 가구의 어업종사원 1인당 연간 생산금액은 1억3천533만2천원으로 전국 어가가구의 어업종사원 1인당 평균 생산금액인 8천454만3천원의 1.6배 수준에 이른다. 금액기준으로만 보면 높은 생산성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사실 어획량이 감소하여 수요를 맞추지 못하면서 가격이 폭등한 결과에 불과하다. 일례로 오징어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산물 중 특종 어종의 가격 급등현상은 장기간 지속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잡히지 않아 공급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어디에서건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갈치, 홍어, 고등어 등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우리 식탁이 국제화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때문에 생산금액의 높낮이는 절대적인 경쟁력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그렇다면 물량적인 수치는 어떠한가. 결코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북 수산업을 책임지는 어가 수는 2017년 기준 2천898가구, 어가종사원수는 4천 3백33명으로 1997년 대비 어가 수는 -57.2%, 종사원수는 -51.1%로 20년간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전국도 마찬가지지만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어가수와 종사원수는 각각 -47.1%, -49.4%로 경북보다는 나은 편이다. 어선 수도 2017년 3천3백87척으로 20년 전에 비해 30.0%가 줄었는데 이는 전국의 -17.6%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었다. 어획량이 감소한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어선 수가 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폭 감소하였는데도 2017년 어선 1척당 평균생산량은 전국 49.1t, 경북 33.9t이고 같은 기준 어가 1가구당 생산량도 전국 62.1t, 경북 41.0t으로 물량적인 경쟁력은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경북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생산인력, 생산자본(선박) 모두 현재의 감소추세를 고려한다면 앞날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물량면의 부족한 수치는 경북 어가의 고령화와 어선의 노후화가 동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경북 수산업이 생존하고 지속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젊은 피를 수혈하면서 보다 최신형의 어선도 함께 갖추어야만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잡는 어업에 그치지 않고 기르는 어업도 함께 육성시켜야함은 물론이다. 또한 청년 어부를 확보하고 활어중심에서 벗어나 이를 가공 식품화하고 유통판매는 물론 수출까지 염두에 두는 경북 수산업의 6차산업화가 시급하다. 하루하루 어획량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지역별 어가들이 힘을 합쳐 회사나 조합형태의 법인화를 통해 생산, 가공, 유통, 판매까지 책임지는 수산분야의 서플라이체인 일원화를 지금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만 한다.

2019-02-12

한국 대기업, 우리의 멋진 맏아들 되기를 바라며

박준섭변호사제일모직은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대구 침산동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모직공장이다. 지금은 이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서 있다. 여기는 작지만 컨벤션센터도 있고 혁신가를 키우는 강의실과 사업장도 있다. 야외에는 공연장과 꽤 근사한 식당과 카페도 있다. 창조경제 혁신센터의 한 부분에는 오래된 건물이 리모델링돼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바로 제일모직 기숙사로 사용되던 곳이다.여직원의 기숙사는 이병철 회장이 제일모직 공장을 지으면서 특별히 관심을 둔 곳이다. 그는 1천명이 넘는 여직원을 위해 모든 기숙사에 스팀난방을 하고 목욕실, 세탁실, 다리미실, 휴게실도 만들도록 했다. 복도에는 오래된 소나무인 회나무를 깔았다. 좋은 나무를 사다 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연못과 분수도 만들었다. 공장 전체를 마치 잘 다듬어진 정원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훗날에는 여직원의 가족이 면회오면 기념촬영을 하도록 전속 사진사까지 따로 두었다고 한다.이병철 회장이 제일모직의 기숙사를 만들면서 이처럼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와세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여공애사’라는 책 때문이다.‘여공애사’는 말 그대로 여공의 슬픈 생활을 그린 것이다. 호소이 와키조가 쓴 이 책은 1925년 출간되자마자 일본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 일본의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12시간 노동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잔업도 했다. 작업장의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해서 공장 안은 옷감을 다리는 스팀으로 숨이 턱턱 막혔고, 온종일 서서 일했다. 작업도중에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한 사람에게 마련된 기숙사의 공간은 다다미 한 장 크기였다고 한다. 그녀들의 식사는 밥에 된장국과 채소반찬이 전부였고 점심은 비료로 쓰던 정어리와 청어였다. 그들은 가혹한 노동과 영양부족으로 병에 걸려 죽거나 대부분 폐병에 걸렸다. 도망가던 여직원은 다시 잡혀왔고 일부는 투신자살했다.우리의 젊은 세대는 우리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을 축적하면서 정경유착, 관치금융, 노동착취 등을 통해 대기업이 왜곡된 부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구는 은과 노예의 삼각무역,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지지배, 전쟁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고 오늘날의 선진국이 됐다.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일본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제일모직 기숙사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어떤 마음으로 직공들을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포스텍의 이진우 교수는 우리의 대기업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볼 때 국민의 맏아들과 같은 의미라고 했다. 우리의 윗세대는 맏아들이 잘되면 온 가족이 잘될 것으로 생각했고 맏아들을 우선 교육시키고 지원했던 시절을 살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대기업도 정부가 지불보증을 서고 온 국민이 적극적으로 희생하며 집중 지원한 맏아들이었다. 그것은 맏아들이 잘되면 국민이 잘되게 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대기업이 맏아들 역할을 하고 빚을 갚아야 할 시기가 왔는데 IMF사태가 터졌다. 대기업의 재산은 세계로 팔려나갔고 주식은 세계의 자본이 나눠 가졌다. 맏아들인 대기업은 맏아들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세계화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지금 우리의 대기업은 모순과 혼돈 속에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우리의 맏아들이다.지금 현대자동차가 수소자동차를 혁신의 주력으로 삼겠다고 한다.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국가와 국민은 우리나라 전체가 수소자동차의 테스트베드가 되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상응해 현대자동차의 오너와 노동조합은 기업이 독립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과 세계에 동시에 걸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속을 해야 한다. 그것은 최고의 혁신기업이 돼 모든 열정과 지혜를 다해 맏아들의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2019-02-12

마음의 원을 넓히려면

고대 그리스에 기묘한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있습니다. 길바닥에 누워 일광욕을 하며 사색에 잠깁니다. 명성을 듣고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옵니다. “내가 지금 당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나는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을 걸세.” 디오게네스는 대답합니다. “그렇습니까? 제발 폐하 몸을 좀 비켜 주셔서 그림자가 저를 덮지 않도록 해 주시겠습니까?” 알렉산더는 길을 떠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텐데…” 디오게네스와의 만남 이후 알렉산더는 자신의 마음을 정복한 땅보다 크게 넓힙니다.참모들에게 묻습니다. “장병들이 더 용맹하게 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향에 남은 가족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도록 전쟁에 나가기 전에 조치해 주시면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국가의 토지와 재산을 병사들 가족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더 이상 나눌 재산이 없자 마지막에는 왕실의 재산마저 남김없이 나누어 줍니다. 그러자 한 장수가 묻습니다. “대왕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남기시렵니까?” 알렉산더는 크게 웃으며 말합니다. “세계가 다 내 재산이오.”알렉산더는 죽은 후 자신의 손을 관 밖으로 내 놓아 보이게 하라는 독특한 유언을 남기지요. 어리둥절한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천하의 알렉산더도 죽을 때는 빈 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에드윈 마크햄은 노래합니다. 그는 원을 그려 /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 부으면서 / 그러나 나에게는 /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 지혜가 있었다 /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마음의 원을 넓게 그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삶의 정수를 제대로 마주하게 해 주는 지혜가, 내 얼어붙은 마음을 도끼처럼 내리칠 때 그 전율은 우리 원을 순식간에 넓혀줍니다. 내 원 지름이 10만㎞쯤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 우리를 원 밖으로 밀어내려 시시각각 다가오는 두려움, 소외, 비난, 멸시, 조롱, 무시 따위가 결코 우리를 원 밖으로 밀어낼 수 없습니다. 지상에 10만㎞ 원을 그려낼 만한 땅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내면의 원이 내가 정복한 영토입니다. 이 영토는 절로 넓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커다란 원을 가진 인류의 스승들을 만나 내 안이 환하게 밝아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대와 제 마음의 원이 날마다 넓어져 지구를 품고 저 우주로 확장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12

개는 어떻게 개가 되었는가

‘늑대로부터 가장 좋은 친구로’의 저자인 마크 데르(Mark Derr)는 어떻게 인간이 늑대를 가축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그는 커다란 늑대 집단에서 고립된 소수의 일부 늑대가 인간에 의해서 키워지면서 개-늑대 개체군을 가지게 됐고, 이들은 서로 교배됐으며 그들이 번식할 때 유전적으로 특이한 개체들이 생겨났는데, 특이한 개체들은 개체군의 부분이 됐다고 설명한다.즉 돌연변이가 작은 개체군에서 발생했는데,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번식시키지 않았고, 사람이 그 특이성을 원하면 계속 번식해서 다양성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개의 특이성은 돌연변이에 의해서 처음 나타났고, 돌연변이에 의한 특이한 형태나 모양은 그것을 가진 개들을 서로 교배시킴으로써 하나의 뚜렷한 개 혈통 안으로 모여지게 됐다는 것이다.언뜻 들으면 데르의 이야기가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2009년 바이오에세이(Bioessays)지에 게재됐던 한 획기적인 연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인위적으로 여우가 길들여질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았다.여우는 개 종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여우는 코요테와 교배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여우 모피 농장을 이용한 실험은 약 50년동안 진행되었고, 많은 세대에 걸친 자료를 만들어냈다. 연구자들은 공격성이 가장 약한 여우들을 선택했고, 그들을 교배시켰다. 인간에 대한 복종 또는 유순함을 가질 수 있는지, 길들여질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최초의 부모 세대로서 100마리의 암컷과 30마리의 수컷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장 온순하고 길들여진 상위 10%의 후손들을 다음 세대의 부모로 선택했고, 동일한 선택과 번식이 수십 세대동안 계속됐다. 이러한 철저한 선택의 결과로, 공격적이고 사람을 두려워 피하는 반응을 보이는 후손들은 실험 개체군으로부터 단지 2~3세대 만에 제거됐다. 단지 3세대면 가능했다. 그리고 단지 6번째 세대에서 여우 새끼들은 사람의 접촉을 열심히 구하고, 꼬리를 흔들며, 개가 하는 것처럼 보채고 낑낑대며 핥아댔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길들여진 여우는 많은 가축화된 동물들에서 공유된 일련의 습성들을 빠르게 획득했다. 가축화된 동물들이 대부분 가지는 늘어진 귀, 말려진 꼬리, 얼룩이 있는 털가죽, 다양한 털 길이와 질감, 변화된 번식 시기, 현저히 다른 골격 크기와 비율 등을 길들여진 여우가 가지고 있었다.가축화된 여우의 변화를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의 결과로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연구자들은 결론내린다. 이 연구를 통해 볼때, 개는 단순한 선택적 교배에 의해서, 단지 3세대 만에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고 개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형의 출현은 오랜시간이 필요한 돌연변이의 축적결과라기 보다 단시간에 나타날 수 있는 유전자 조절 변화의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개과동물의 공통조상, 즉 개 종류의 동물은 늑대, 자칼, 코요테, 개 등과 같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개과동물 ‘종’들로 단기간에 급격히 다양화됐을 것이다.이동훈이들은 상호교잡과 인간에 의한 선택적 번식이 동시에 이뤄졌다. 오늘날 개과동물들이 서로 잡종번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같은 원래의 개 종류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늑대라는 종이 오랜시간 돌연변이의 축적으로 진화해 다른 종인 개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 존재했던 늑대와 개의 공통조상이 사람의 선택 여부에 의해 선택받아 가축화 되면 개로, 그렇지 않았다면 야생의 상태인 개과동물로 다양하게 분화된 것이다.중동지역의 회색늑대는 현재의 소형견들과 유전자정보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다.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 용이했던 작은개들은 사람과 함께 이동한 각 지역의 환경과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각기 특색 있게 다양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개들은 자연선택과 인공선택을 통해 각 지역별로 특색있는,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부소장

2019-02-12

봉화, 최고의 겨울 관광지

엄태항봉화군수겨울철 대표 관광지 분천역 산타마을 !!한국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봉화는 지역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분천역 산타마을, 승부역 눈꽃열차 등 차별화된 관광자원을 개발해 겨울철 대표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예전에는 봉화라고 하면 오지마을이란 단어가 떠올랐으나 요즘 봉화는 많은 이들이 찾고, 즐기고, 행복해 하는 관광도시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산타클로스는 아이에서 어른까지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전설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산타클로스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한 성 니콜라스의 미담을 17세기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이 산테 클라스라 불러 자선을 베푸는 전형으로 삼았다. 이 발음이 그대로 미국어화했고,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는 상상의 인물이 되어, 어린이들이 정답게 부르다가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된 것이다.산타클로스가 사는 마을은 노르웨이 오슬로를 비롯해서 전세계 여러 곳에 있으나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마을이 가장 인정받고 있다. 여기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보내온 편지를 12개 국어를 구사하는 비서들이 산타클로스를 도와 일일이 답장을 해주며 동심의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기억하게 하는 서비스를 실시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우리나라에도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클로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전후 며칠만 기억되고 다시 잊혀 진다.하지만, 봉화는 잊혀진 산타클로스를 되살려 2014년부터 봉화군, 경북도, 코레일이 같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산타마을을 조성해 요즘 표현으로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산타마을은 이름에 걸맞게 산타와 연상되는 다양한 인프라를 시설을 갖추고 있다. 눈썰매장, 산타레일바이크, 산타풍차방, 이글루터널 산타소원지, 루돌프 포토존, 산타 시네마 등의 특색 있는 기존의 시설과 2018년도에는 산타우체국, 풍차놀이터를 새롭게 운영하면서 관광객들에게 동화 속 산타클로스 마을에 온 것 같은 신비스러운 광경을 선사한다. 또한, 산타마을 주변 향토음식점에는 곤드레밥, 산채비빔밥, 수수부꾸미, 메밀전, 봉화 전통막걸리 등 전통음식과 대추, 수수, 차조, 녹두, 호두, 산나물 등 지역주민이 직접 재배한 청정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이러한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지난 2015~2018년 4회에 걸쳐 한여름 산타마을도 운영하여 무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한여름 산타마을은 기존 산타마을에 산타 슬라이드, 레일썰매, 안개분수 등 여름에 어울리는 각종 인프라 시설을 확충해 관광객들에게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이처럼 봉화의 산타마을 시리즈는 총 9회 414일간 78만5천명(하루 1천896명)이 방문하며 수십억원의 지역경제 파생효과를 거두는 성과를 나타내며 지역주민들의 농가소득 향상에도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분천역 산타마을의 성공은 비단 산타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와 연계한 여러 관광자원도 한 몫을 하고 있다.먼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백두대간협곡열차이다. 2013년 4월 처음 개통한 백두대간협곡열차는 국내 최초 개방형 관광열차로 운행구간은 분천역을 시발역으로 하여 강원도 철암까지 오고간다. 봄, 여름, 가을에는 백두대간협곡열차로 운행되지만 겨울에는 산타마을과 연계해 산타열차로 운행된다. 산타열차 내부에는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연상케 하는 각종 장신구들로 꾸며지고 승무원 역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여 열차를 타면 진짜 산타마을로 가는 열차로 생각이 될 정도다. 그 다음은 낙동강세평하늘길이라는 트레킹코스이다. 이 코스는 분천역~승부역까지 12㎞로 낙동강과 협곡, 철로를 따라 낙동강의 숨은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힐링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으며 매년 약 2만5천여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이러한 산타마을의 인기는 국내 겨울여행지 선호도 조사에서 매년 상위권을 유지했으며 지난 2016년 12월에는 한국관광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내 최고 권위의 2016년 한국관광의 별(창조관광자원)에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며 국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편 2018~2019 산타마을은 2018년 12월 22일~2019년 2월 17일(58일간)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우리 봉화는 분천역 산타마을이 국내 관광발전의 공을 인정받아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는 모두 산타마을 운영에 함께 노력한 지역주민과 관광객 여러분들의 큰 애정과 관심이 만들어낸 결과라 생각된다. 이러한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분천 산타마을의 대폭적인 인프라 확충과 특색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제적인 겨울 관광지인 겨울왕국 체험랜드로 변모시켜 나가겠다. 또 봉화만의 특색 있는 관광자원을 잘 개발하고 발전시켜 제2, 제3의 한국관광의 별이 선정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이를 통해 전국을 넘어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2019-02-12

적폐(積弊)와 적폐(敵廢)

강희룡 서예가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충선공 범순인(范純仁)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탓하는 데에는 명석하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흐리멍덩한 법이다. 너희가 다만 항상 남을 탓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라는 교훈이다.조선후기 성리학자 기정진(1798~1879) 선생의 ‘노사집(蘆沙集), 답안윤극(答安允克)’에 ‘성인의 도는 자기를 탓할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은 안윤극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서두에 적은 내용으로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살피고 돌아볼 수 있어야 이른바 전인(全人)의 ‘도’를 실천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것이다. 옛날 임금들 역시 흉년으로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면 수라상 반찬의 가짓수를 줄여가며 스스로 근신했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임에도 임금의 부덕으로 인해서 발생한 소치로 돌리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근심하고 반성했던 것이다.나를 지칭하는 뜻을 가진 한자는 ‘아(我)’와 ‘오(吾)’가 있다. 아는 손(手)에 창(戈)을 들고 있는 형상으로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 과시하고 싶어 하는 뜻인 반면, 오는 남에게 나타내지 않는 진실한 자신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솔직한 나보다 드러내 과시하며 허세를 부리는 나를 더 알아준다. 사회가 이런 풍조로 흐르다보니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솔직한 나보다는 드러내 과시하는 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낼수록 솔직한 나로부터는 멀어지고 가식 덩어리로 변해 불행하게도 진짜 나를 잊고 거짓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조선 제21대 왕인 영조는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소가 있는 고령재사(高嶺齋舍)를 육오(六吾)로 명명하고 팔순의 나이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평생 동안 마음을 지킨 것이 하나는 자긍심을 경계함이며, 하나는 자만을 경계함이다. 또 하나는 지위를 잊는 마음이며, 하나는 물로 씻어서 깨끗이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만일 나의 마음을 알려면 고령 육오당(六吾堂)을 보아라’ 영조가 왕이라는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과시하는 나를 버리고 진실한 나를 찾으려 했던 것은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오천(吾天)에 초점을 두어 나의 본분을 안다면 물질적 풍요를 함부로 구하지 않고 분수에 맡길 수 있으며 사회적 성공을 기필하지 않고 주어지는 기회에 순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벌인 혐의를 받던 경남지사에게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어 법정구속되었다. 이 상황을 놓고 집권 민주당은 경남지사를 구속시킨 판사에 대해 떼를 지어 인신공격에 가까운 공격을 하고 있다. 객관적 물증과 소신을 가지고 내린 이 결과가 과연 적폐판사의 보복성 판결에서 나온 것일까에 대한 해답은 해당 판사의 과거 판결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년 전 성창호 판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을 구속시킨 후, 불과 여섯 달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을 놓고 당시 민주당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인과응보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박수를 쳤다. 그러던 당이 경남지사의 유죄선고 뒤엔 곧바로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를 꾸리고 탄핵까지 추진하겠다고 야단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모두 적폐로 몰아부치는 이런 경우는 적폐(積弊)가 아니라 적폐(敵廢)라 해야 옳다. 여야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땐 박수치고 그렇지 않을 땐 무차별적 비판과 모독적인 발언을 거리낌 없이 일삼는 정치집단의 이런 작태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삼권분립을 유린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 혈세로 호의호식하며 나라 망치는 최악의 적폐집단으로 보일뿐이다.

2019-02-11

최고의 교육

김현욱 시인로베르타 골린코프와 캐시 허시-파섹 교수는 캐나다, 싱가포르 등 전 세계 국가들이 교육개혁을 추진할 때 우선해 자문하는 저명한 교육과학자다. 20여 년 동안 공동 작업을 수행한 두 교수가 최근 출간한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형 인재를 만드는 최고의 교육’(이하 ‘최고의 교육’)에서 미래가 원하는 아이들의 역량을 6C 역량이라고 명명했다. 6C 역량은 협력, 의사소통, 콘텐츠, 비판적 사고, 창의적 혁신, 자신감을 가리킨다.‘최고의 교육’에 따르면, “태어난 순간부터 사회적인 자기 통제력을 발달시키는 방식으로 협력을 배운다면, 의사소통은 협력을 기반으로 구축된다. 콘텐츠는 대상과 사건들의 정보를 습득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통해 거두게 되는 결과다.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미래가 가장 원하는 인재다. 창의적 혁신은 콘텐츠와 비판적 사고에서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도전을 지속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원하는 6C 역량을 가진 미래형 인재”라고 할 수 있다.핀란드는 2001년부터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경쟁력 지수에서 줄곧 최상위권을 지키는 교육 강국이다. 핀란드의 교사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높은 보수와 대우를 받는다. 최고의 전문성과 긍지를 갖춘 핀란드 교사들은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고 교육과정을 함께 설계하고 계획하고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진다. 다른 나라 아이들이 스트레스 속에서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동안 핀란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이 배운 것을 적용하고 응용한다.비즈니스 사상가이자 베스트셀러작가인 다니엘 핑크는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몇십 년은 특정한 생각을 하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의 것이었다. 코드를 짜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계약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변호사, 숫자들을 다룰 줄 아는 MBA 졸업생처럼 말이다. 하지만 왕자의 열쇠는 이제 교체되고 있다. 미래는 매우 다른 생각들을 가진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거의 될 것이다. 창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 패턴을 인식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예술가, 발명가, 디자이너, 스토리텔러와 같은 사람들, 남을 돌보는 사람, 통합하는 사람, 큰 그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최고의 부를 보상받을 것이고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이다.”로베르타 골린코프와 캐시 허시-파섹 교수는 즐거운 놀이 학습을 통해 6C 역량을 키울 것을 주문한다. 우리 사회는 놀이와 공부가 분리되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놀이와 공부는 긴밀한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의 전통놀이인 비석치기를 예로 들어보자. 비석치기를 하는 아이들은 비석치기라는 놀이의 능동적인 주체가 된다. 자유롭지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비석치기를 하는 아이들은 협력하기 위해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비석치기를 하려면 각 단계, 즉, 콘텐츠를 이해해야 하며, 분쟁이 생기면 문제해결을 위한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 비석치기를 잘하기 위해서 또는 이기기 위해서 끈기 있게 도전할 수 있는 인내심과 자신감도 필요하다. 놀이와 공부가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 놀이가 공부고 공부가 놀이다. 놀이는 6C 역량을 키우는 최고의 교육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학생들은 주당 33시간 정도 공부하는데,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주당 평균 70, 80시간을 공부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세계 꼴찌이고 학습효율도 바닥이다.“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 없는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2007년 앨빈 토플러가 우리에게 한 말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게 뼈아프다.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놀이다. 놀이 속에 배움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형 인재를 만드는 최고의 교육은 바로 놀이다.

2019-02-11

꿈보다 깸이 먼저입니다

스무 살 청년 스완은 뜻을 품고 보스톤을 향해 여행 중입니다. 고단한 걸음을 잠시 쉬려 숲 속 나무 아래서 단잠에 빠집니다. 마차가 바퀴 고장으로 숲 옆에 멈춥니다. 산책이나 하자며 마차에서 내린 나이 지긋한 부부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빠진 스완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부인이 말합니다. “죽은 헨리와 너무 닮았어요. 헨리가 살아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네요. 우리 양자로 삼으면 어때요?” 이 부부는 백만장자로 외아들을 잃고 상속할 친척이라고는 문제 많은 조카뿐이라 고민 중이었거든요. 이들은 스완이 스스로 깨어 주기를 바랍니다. 지켜보는 동안 하인이 달려오지요. “주인님 마차가 다 준비됐습니다” 깜짝 놀란 부부는 스완을 포기하고 자리를 떠납니다.어여쁜 처녀가 숲으로 옵니다. 멋지게 생긴 청년이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워 달아나려는데 벌 한 마리가 스완 눈꺼풀에 앉으려 하자 소녀는 손수건을 꺼내 벌을 쫓아내고 청년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잘 생긴 스완의 얼굴에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그렇지만 곤히 잠들어 있는 스완을 깨울 용기는 없었습니다. 소녀는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길을 떠나야만 했습니다.잠시 후 악당이 숲으로 들어옵니다. 번뜩이는 칼을 스완의 가슴에 대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개 한 마리가 달려오고 악당은 놀라서 도망칩니다. 스완은 비로소 잠에서 깨어납니다. 잠든 사이 백만장자의 상속인이 될 뻔한 기회, 예쁜 처녀와 사랑을 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악당들에게 모든 것들을 빼앗길 수도 있었지요.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데이비드 스완(David Swan) 줄거리입니다.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꿈을 설계하기 전에 먼저 모든 종류의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꿈보다 깸이 먼저입니다. 꿈은 꾸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어디서, 누구한테서 꾸어 올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깸은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집단적 몽유는 집단적 각성에 의해서야만 깨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몽유에 빠져 소중한 기회를 자신도 모른 채 잃어버린 어리석은 삶이 아닌 깨어 있어 꿈을 ‘꾸어’올 시간들을 기대합니다. 유럽의 혁명은 카페에서 술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롯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2019년은 나 개인이, 우리 가정이, 이 사회가 긴 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으로 우리의 앞길을 마주하는 한 해이길 소망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11

달라지는 병영문화

문재인 정부 들어 군부대 병사들의 복무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군 복무기간 단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육군·해병대·의무경찰·상근예비역은 군 복무기간이 21개월에서 18개월로, 해군·의무해양경찰·의무소방은 23개월에서 20개월로, 공군은 군 복무기간이 24개월에서 22개월로 줄어든다. 사회복무요원은 24개월에서 21개월로, 산업기능요원(보충역)은 26개월에서 23개월로 줄어든다. 다만 당장 줄어드는 게 아니라 육군을 기준으로 2017년 1월 3일에 입대한 사람부터 군 복무기간이 보름간격으로 하루씩 단계적으로 줄어들어 2020년 6월 15일에 입대하는 사람들부터 육군의 경우 18개월 복무를 하게 된다. 이는 같이 근무하는 병사들의 복무기간에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에 따른 것이다.또 지난 1일부터 병사들의 평일 외출이 허용됐고, 오는 4월부터는 휴대전화도 쓸 수 있게 된다. 국방부의‘병영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일과 후 휴대폰 사용과 장병 평일외출이 올해부터 전면 시행된다. 군인들의 평일 일과 후 외출은 오후 5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4시간이며, 일과 종료 후부터 저녁점호 전까지 자기개발·병원진료·면회 등 개인용무를 위해 개인별 월 2회 이내에서 실시할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8월부터 각 군의 13개 부대를 대상으로 평일 외출 시범운영을 해왔다.4월부터 일과 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병사들이 생활관에서 가족과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휴대전화로 다양한 강좌도 들을 수 있어 자기 계발도 가능해진다. 다만 군 기밀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휴대전화 사용 지역을 생활관으로 한정하고, 카메라 렌즈는 보안 스티커로 완전히 봉해 촬영을 금지했다. 촬영이나 녹음을 못 하게 하는 보안 앱도 병사들 휴대전화에 설치된다. 통화 남용을 막기 위해 평일은 오후 6시부터 밤 10시, 휴일은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예전에 36개월 군 복무한 어르신 왈,“요즘 군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2-11

주마간산(走馬看山) 청도일기(靑島日記)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칭다오에 왔으면 칭다오 맥주지요. 전대광이 박자를 맞추듯 말했다. 칭다오 맥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10대 브랜드중의 하나였다. 술로, 그것도 중국 고유의 술 마오타이나 우량예가 아니라 서양의 술인 맥주로 서양에 수출해서 G2의 경제대국 중국을 대표하는 10대 브랜드에 들었다는 것은 좀 이상스런 일일 수도 있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에 나오는 청도에 대한 구절이 새삼 떠올랐던 것은, 지난 주 한국사고와표현학회 회원들과 다녀온 중국 청도 여정 때문이었다.‘중국속 유럽’이라는 별칭처럼, 청도는 청나라 시기 독일의 조차지로 주황색 기와지붕 건물이 보존된 구도심과,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건축물이 들어서 깔끔하게 계획된 신도심이 대비가 되는 도시였다.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와 쓴 ‘열하일기’처럼 세심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글이면 좋으련만, ‘주마간산’ 인상기처럼 칭다오 맥주박물관, 해천만쇼, 산동대학에서 느꼈던 단상을 나눈다.청도여행을 오면 제일 먼저 방문한다는 칭다오 맥주박물관! 박지원이 청나라 문물이 발달한 이유로 하찮은 ‘기왓조각’이나 ‘버려진 똥’도 활용하는 실용정신을 지적했던 것처럼, 2019년 중국은 1903년 독일이 만든 맥주공장 시설을 재활용하고 있었다. 100여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박물관 공간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입힌 증강현실(AR)로 맥주의 제조공정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또한 맥주를 유리컵에 담아서 시음해 보는 체험공간을 두어 자연스레 칭다오 맥주를 홍보하며 구매까지 유도하였다. 중국 사회주의경제가 독일 식민시기의 유산조차 보존하고 새롭게 재탄생시켜 관광자원화 한 현장이었다.또한 중국 근현대 역사와 문화가 결합한 해천만쇼! 천창대극원에서 관람한 ‘몽귀금도’는 독일인 마술사와 중국인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었다. 사회 정치적 격동기에 굴절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삶의 서사를 인문학적 감성과 상업적 마인드로 잘 결합하여 기대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일제,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역사적 소재를 가미한 러브 스토리에 춤과 음악, 마술, 드라마와 화려한 쇼를 융합한 공연예술의 극치를 선보였다. 중국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사랑과 이별, 재회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한 기획력과 첨단 영상을 활용한 세련된 무대 연출로, 사람들 발길을 이끈 이른바 ‘컬처노믹스’로 문화를 경제와 접목한 사례였다.마지막으로 청도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았던 산동대학교 도서관! 대학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이 함께 떠난 터라 캠퍼스 투어는 더 특별하였다. 천하 인재를 위해 국가 부강을 위해 교육한다는 산동대학교 정문의 교석과 곧장 연결된 중심 위치에, ‘대학의 심장’으로 일컬어지는 도서관이 우뚝 서 있었다. 도서관 로비에서 친절하게 안내 서비스를 해 주던 두 대의 ‘로봇 도우미’는 중국이 한 발 앞서 대학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는 상징처럼 읽혀졌다. 대학사회에도 이미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결합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음을 중국에서 알게 되었다.“중국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중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정글만리’는 ‘14억 인구에 14억 가지의 일이 일어나는 나라’이기에 중국의 변화 양상을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잠깐의 청도 일정에서도, 시진핑이 강조한 ‘중국몽(中國夢)’의 실체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하는 가운데 경제발전과 교육성장으로 구현되는듯 했다. 일견 중국을 잘 아는 듯 말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제라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는 나라, 중국의 저력과 가능성을 목격했던 여정이었다. 중국을 공부하고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청도 워크숍이 내게 남긴 숙제다.

2019-02-11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유대인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

독일의 수도 베를린. 이곳에는 지난 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도시 곳곳에 그 역사가 녹아 있고, 역사적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베를린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간다. 프랑스 파리에 샹젤리제 거리가 있다면 베를린에는 운터덴린덴 거리가 있다. 직선으로 1천480m나 뻗어 있는 대로이다. 이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그 유명한 브란덴부르크문이 역사를 증언하듯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1791년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1744~1797)의 명으로 건축된 개선문으로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독일 땅에 새로운 로마제국을 건설하겠다는 프로이센의 야심이 승리의 사두마차(Quadriga)에 투영되어 지금도 베를린의 하늘을 달리고 있다. 영원한 승리에 대한 염원도 잠시, 그 아래에서 장차 인류가 재앙보다 더욱 끔찍한 잔혹의 역사를 경험할지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했을까?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짙은 회색의 직사각형 콘크리트 블록들이 펼쳐진 장소가 나온다. 모양은 동일하지만 높이가 제각각이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물결치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하다. 설치된 콘크리트 블록의 수는 모두 2711개. 15㎝의 두께로 특수 제작된 블록의 속은 비어있다. 높이는 다르지만 크기와 배치된 간격은 동일하다. 블록 하나의 길이는 3.38m, 폭은 1m에 조금 못 미치는 95㎝이다. 어떤 것은 높이가 겨우 20㎝ 밖에 되지 않아 무릎보다 낮아 보이지만 가장 높은 것은 보통 사람 키의 두 배가가 훨씬 넘는 4m70㎝나 된다. 가장 무거운 블록의 무게는 무려 11t. 블록과 블록 사이의 간격은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95㎝에 불과하다.이곳은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은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기념공원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유럽의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비’.역사적 비극에 대한 추모비 건립은 정서적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제가 위안부 할머님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경고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할 때마다 가해국이 취하는 태도를 되짚어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독일, 그것도 수도 베를린에서는 가능했던 것일까?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의 추모비 건립에 대한 논의는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들이 이루어지면서부터 이미 시작되어왔다.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1988년인데, 최일선에서 움직인 인물은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저널리스트 레아 로스( Lea Rosh)였다.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기념관 ‘야드바솀’(Yad Vashem)을 방문한 그녀는 독일로 돌아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반인륜적인 대량 학살을 경고하는 기념비를 건립하자는 사회적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와 ‘양철북’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 등이 힘을 실어주면서 기념비 건립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1995년 베를린 주정부는 홀로코스트 추모비 조성을 위한 공모를 진행했고, 1998년 미국 출신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과 미니멀리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조각가 리처드 세라가 공동 제안한 설계안이 최종 선택되었다. 아쉽게도 리처드 세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중에 손을 떠나게 되었지만, 동일한 형태의 기하학적 콘크리트 블록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것은 세라의 미니멀리즘적 접근이 최종 결과물에 끼친 영향으로 읽혀진다. 공사가 시작된 것은 2003년 4월 1일, 일 년 남짓 공사가 진행되어 이듬해인 2004년 12월 15일 완성되었고 개막식 행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되던 2005년 5월 10일에 진행되었다.홀로코스트(Holocaust)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 대량학살을 일컫는 개념이다. ‘전체’를 뜻하는 그리스어 ‘홀로스’(holos)와 ‘타다’는 뜻의 ‘카우스토스’(kaustos)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나치들은 유대인을 상대로 이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일까? 유럽에서 ‘반유대주의’(antisemitism)는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분리되면서 유대인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313년) 그 이후 제국의 국교로 선포(392년)하게 된다.이때부터 유대인들은 각지로 흩어져 유랑생활을 시작한다. 유럽 곳곳에 디아스포라(diaspora)로 흩어져 불안한 뿌리를 내렸던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다. 전통과 교육을 중시했던 유대인들은 상업과 금융업을 통해 큰 부를 쌓아 간다.이런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금전거래로 이익을 챙기는 것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기독교 사회에서 이자를 통해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은 인색하고 부도덕한 민족이라는 편견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왔다. 사회적 위기가 불어 닥칠 때면 언제나 비난의 화살은 유대인들을 향하게 된다. 산업화와 근대화가 진행되어 세상이 바뀌었어도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에 힘을 가지게 되자 반감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1918년)에 패한 독일은 넓었던 영토를 대부분 잃어버렸고, 경제 파탄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자 아니나 다를까 반유대주의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되어 정권을 장악했을 때 잃어버린 민족의 자존심을 끌어올리고 독일 내부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완화할 목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누명을 씌워 민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돌리려했다. 반유대주의 정책이 본격화 되자 유대인들은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급기야 나치는 유대인들을 좁은 게토(Ghetto)에 몰아넣고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다. 이렇게 희생된 유대인들이 적어도 6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베를린에 설치된 유대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기념비의 높은 콘크리트 숲 사이를 걷고 있으면 유대인들이 느꼈을 공포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다. 좁은 통로를 걸으면 바로 눈앞에 무엇이 나타날지 예측도 할 수 없다. 순식간에 무언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끝없이 뻗어 있는 좁은 길과 높은 회색의 콘크리트 벽들 뿐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혼자가 되고, 예외 없이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한치 앞의 운명도 예측할 수 없는 유대인들처럼 말이다.이곳은 무거운 역사에 대한 기억과 반성을 미학적으로 해석해 놓은 공간이다. 장소적 의미에 따른 엄숙함 그리고 희생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감시나 통제는 최소화 되어 있다. 사람들은 높이가 낮은 블록에 앉아 쉬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블록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목격되기도 한다. 여느 공원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미 관광 명소가 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블록과 블록 사이를 거닐며 연신 카메라로 이미지를 담아낸다. 아마 이 곳이 어떤 장소인지 모르고 찾게 된다면 현대미술로 채워진 어느 베를린의 인상 깊은 공원정도로 기억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2-11

트럼프의 ‘비즈니스 정치’를 해부한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정치 행태는 매우 특이하다. 트럼프의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정치는 상식을 뛰어 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에는 정치는(政治)는 정야(正也)라는 공자의 ‘정의 정치’도, 현대적 ‘권위의 배분’이라는 정치도 찾아볼 수 없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협상의 정치만이 보일 뿐이다. 그는 러시아 섹스 스캔들 등 여러 혐의로 곧 탄핵될 것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실리의 정치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민 유입 방지를 위한 멕시코 국경선의 봉쇄, 자기와 뜻이 맞지 않는 관료의 전격 해임, 연방정부의 업무정지 등 그의 ‘비즈니스 정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부동산 재벌인 트럼프의 경력구조와 상인 기질은 ‘비즈니스 정치’의 토대이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이익 창출을 위한 거래정치이다. 그가 쓴 ‘협상의 기술’은 그의 정치관을 대변한다. 트럼프의 ‘비즈니스 정치’는 미국인의 실익을 우선하는 정치이다. 그의 정치는 도덕성이나 공공성을 무시하기에 ‘악의 정치’라는 비난도 따른다. 트럼프의 정치는 전통적인 공화당의 보수 정치도 아니고 진보적 정치는 더욱 아니다. 그는 미국의 국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끝까지 추적해 이익을 관철한다. 트럼프 정치는 킹메이커인 로저 스턴의 ‘정치는 무지한 사람을 끌어 모아 벌이는 쇼 비즈니스’라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스턴은 트럼프 후보를 만난 순간을 기수가 명마를 찾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고 술회하고 있다.트럼프의 비즈니스 정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득정치를 정치의 본질로 본다. 그의 정치는 거래 과정에서 마키아벨리적 권모술수도 용인될 수밖에 없다. 그는 미국의 이익 창출을 위해 협상 상대를 외교적으로 압박하고 회유하기도 한다. 그것이 그가 바라는 정치의 본령이고 최상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미국의 힘을 배경으로 패권정치를 수시로 구사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 협정을 파기하고, 동맹국의 미군 주둔 비용의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경제 대국 중국과의 무역 분쟁도 어정쩡한 타협보다는 압박 정책을 구사한다. 모든 외교도 장사꾼의 흥정처럼 보고 타산이 맞지 않으면 즉각 파기한다. 북핵 문제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 없이는 어떤 대가도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트럼프의 비즈니스 정치는 국내외 여론을 위한 선동 선전 정치도 선호한다. 마치 상품을 과대선전하는 것과 같다. 그의 선거 참모 스턴은 ‘무명 정치인보다는 악명 정치인이 낫다’고 트럼프를 부추겼다. 트럼프의 발언은 종종 진실과는 상관없는 파격적인 언사가 등장한다. 트럼프는 전술적 후퇴도 마다하고 공격적인 선전 정치와 압박 정치를 펼치고 있다. 양보나 사과라는 용어는 그의 정치 사전에는 없다. 그는 방어정치는 실패한다는 스턴의 주장에 따라 상대에 대한 공격의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외교 협상에서 트럼프는 유리한 협상 조건이 나올 때까지 강경 압박 정책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는 북한의 협상 파트너인 김정은에게도 적용하며 북한이 협상만 잘하면 ‘위대한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트럼프의 이러한 비즈니스 정치는 여론의 따가운 비난도 개의치 않고 미국에서는 통하고 있다. 그는 내년 대선에서의 승리도 염두에 둔 듯하다. 그가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렵지만 뚜렷한 민주당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백인들의 누적된 불신이 트럼프식 힘의 정치를 선호한다는 주장도 있다. 솔직히 말하여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최악의 정치’라고 비난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자신들의 역할을 대행해주기를 바란다. 지난 대선 트럼프의 선거 본부장 스턴의 ‘공격적인 흑색선전과 막대한 정치 자금만 있으면 미키마우스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비즈니스 정치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2019-02-10

송도구항 수영대회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그 거리를 떠올리면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수레에 시멘트 포대를 싣고 천천히 이동하는 말들의 행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화물차로 포항역에 도착한 시멘트 포대를 동빈내항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으로 옮겨 싣는 마차(馬車)들이었다. 마차들의 행진이 지나고 나면 남빈동 거리 곳곳에는 말똥이 덕지덕지 놓여 있었다.동빈내항에는 벌거숭이 꼬마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수영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건너편 송도까지 건너가 채마밭에서 서리를 하기도 했다. 남빈동 부둣가와 송도를 오가는 나룻배도 있었다. 송도해수욕장은 꼬마들이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명사십리가 펼쳐져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 그 목가적인 풍경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당시도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그 이전은 어떠했을까? 지역 원로 박이득 선생은 “산업화 이전의 포항은 요즘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도시재생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도시도 흥망성쇠의 기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산업화라는 강력한 동력으로 가파르게 성장한 도시들은 산업화가 한계에 이르자 급격하게 쇠퇴했고, 그 과정에서 숱한 문제를 안게 됐다.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화가 가장 먼저 진행된 영국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일찍 시작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도시재생 뉴딜’의 일환으로 포항에서도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동, 신흥동, 송도구항이 포함됐는데, 송도구항 일원이 규모나 파급력 면에서 가장 크다. 포항시는 ‘ICT 기반 해양산업 플랫폼, 포항’을 주제로 △첨단 해양레포츠 융·복합 플랫폼 조성 △해양MICE 산업지구 조성 △기상방재 ICT 융·복합지구 조성 △복합문화·예술·관광 특화지구 조성 △스마트 생활환경 개선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유럽도 항구도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산업과 교역의 중심인 항구에서 개발이 먼저 이뤄졌고, 쇠퇴로 인한 후유증도 컸기 때문이다. 영국 리버풀, 독일 함부르크, 프랑스 마르세유, 스페인 빌바오, 스웨덴 말뫼·예테보리가 대표적인 성공사례이고, 일본 요코하마도 이 목록에 넣을 수 있다. 이 도시들의 재생사업은 포항으로서는 유용한 참고 사례가 되며, 특히 스페인 빌바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스페인 빌바오 하면 구겐하임미술관을 떠올린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던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빌바오의 랜드마크가 분명하다. 하지만 도시재생 분야의 권위자인 김정후 박사는 페이스북에서 “빌바오 도시재생의 핵심은 미술관이 아니고, 장기적 정책을 수립해 쇠퇴한 네르비온강 주변 수변공간의 ‘공공성’을 회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빌바오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도심을 관통하는 네르비온강이 죽음의 강으로 전락했고, 1984년부터 2006년까지 오염된 강을 정화하고 상하수도관을 교체하는 공사에 10억 파운드가 소요됐다는 사실이다. (김정후, ‘빌바오,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교본’, ‘THE OCEAN 2호’, KMI, 2015)송도구항 일대의 수질도 포항시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도시재생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참에 도시재생의 핵심은 ‘공공성 회복’이며, 수변공간의 경우 수질 개선이라는 기본을 되새겼으면 한다. 2018년 7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 바라보이는 라 살베 다리 위 27미터 높이에서 세계절벽다이빙대회가 열렸다. 구겐하임미술관을 배경으로 다이버가 몸을 던지는 장면은 환상적이다. 송도구항 일대에서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수영대회를 상상해본다. 과거 포항사람들은 하늘빛 닮은 이 강에서 수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체력도 다졌다. 아름다웠던 그 풍경을 미래지향적으로 복원하는 날, 포항은 매력적인 수변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2019-02-10

하루 하루의 위대한 반항

1930년 알제리. 젊은 철학도가 살고 있습니다. 전차를 탈 돈을 아끼기 위해 아침 6시에 출발해 2시간 걸어 출근합니다. 혹독한 날들을 보내던 청년이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일은 글쓰기입니다. 새벽마다 노트를 펴고 생각을 치밀하게 기록합니다. 스물 여섯이던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지요. 유럽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전쟁의 참혹한 모습. 갑자기 돌변한 사람들의 잔인함. 끝없는 증오와 폭력. 삶의 가치가 순식간에 한낱 짐승처럼 격하되고 살육하는 모습들은 청년의 심장을 갈갈이 찢습니다.“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자. 가장 보잘 것 없는 임무를 가장 고귀하게 여기며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그는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 갑니다. 스물 아홉살 청년이 참혹한 전쟁 현장에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작품들은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글로 아로새겨져 인류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알베르 카뮈, 포화 속에서 쓴 책은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 그리고 ‘페스트’입니다. 태양 빛이 너무 강렬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남자 이야기,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부조리한 세상의 추악함. ‘이방인’입니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삶과 대결하는 ‘시지프의 신화’, 연대를 통해 전염병을 극복하는 시민들의 이야기 ‘페스트’. ‘살아가는 것’을 하루 하루의 위대한 반항으로 보았던 카뮈는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우리 발 딛고 사는 2019년 현실은 잔혹한 폭력이 낳은 부조리보다 더 사악하지요. 거대 자본과 권력, 탐욕이 융합해 보통 사람들의 인간성을 굴복시키며 자유를 박탈합니다. 최악의 교육현실, 취업에 전전긍긍하는 청년, 집 한 채 장만하려 허리 휘는 가장들, 알바 자리 얻으려 긴 줄 끝에 ‘당첨’을 기다려야만 하는 고된 행군. 이해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은 부조리한 날들의 연속입니다.카뮈는 말하지요. “누군가 세상에 매여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매여 있다. 자유는 모두를 위해 존재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한 영혼이라도 자유롭지 않을 때,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통찰은 가슴을 때립니다. 고개만 들면 울부짖는 영혼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현실, 우리의 ‘반항’은 까뮈의 치열한 기록을 닮은 것이어야 합니다. 깨어 직시하고 기록하고 생각하며 길들여지지 말아야 합니다. 눈 앞의 달콤함에 타협하지 말고 서로 잠들지 말자, 깨어있자, 격려해야 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10

눈총 받는 공시열풍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공시(公試)열풍으로 들떠 있다.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공무원이 단연 1등이다.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직업도 공무원이 1위를 달리고 있다. 40세 이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공시 재수생이 는다. 일반직장에서도 공시준비에 나서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2017년 8월,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투자자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 회장은 “한국에서 10대 청소년들의 꿈이 빌 게이츠가 아니고 공무원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투자처로서 한국은 매력이 없다. 이래서는 중국 등 신흥국과 맞서 경쟁하기 힘들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공시열풍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시열풍이 식지 않고 있는 것은 공시에서 벗어날 만한 매력적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잘 돌아가 민간분야에서 안정적 직업이 나올 수 있다면 공시열풍을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르나 경제 분야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실업난 해소란 이유로 지나치게 공공부문을 확대해 열어놓은 것도 공시열풍을 부추긴 요인이 된다.미국은 공무원이 우리처럼 인기가 없다. 일반적인 대학졸업자는 실리콘밸리의 유망한 벤처기업을 가려는 것이 보통이라 한다. 창의적인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이 보편적 흐름이다. 그렇게 해야만 경제의 재생산이나 선순환도 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공무원은 경제활동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개발할 수도 없다. 그런 그들이 상류층이 되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생산한 민간기업 직원이 빈곤층이 된다면 경제가 역동성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최근 LA타임스가 한국의 공시열풍을 꼬집어 보도했다. 한국에서 공무원시험 합격률은 하버드대 입학 하기보다 어렵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느려 공공부문에 많이 몰린 탓이라 주석을 달았으나 비정상적 현상으로 비치는 한국의 공시열풍에 대한 따가운 지적으로 들린다. 외국 언론조차도 곱잖게 보는 공시열풍을 멈출 방법은 없는가./우정구(논설위원)

2019-02-10

‘대안부재(代案不在)’의 비극

안재휘 논설위원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이 오리무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한국당 전대는 애초부터 친박(친박근혜계)이냐, 비박(비박근혜계)이냐의 논란을 중심으로 ‘계파 갈등’이라는 고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영입으로 인해 대안(代案)에 목말라 있던 일부 지지자들의 쏠림현상이 감지되면서 다른 주자들의 경계심이 날카롭다. 정치 권력 쟁패에 나타나는 변수는 워낙 변화무쌍해서 예측도 대응도 늘 난제다. 황교안의 등장에 기대는 사람들의 심리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그 바탕을 이룬다. 한국의 민심은 늘 이런저런 경력이 덕지덕지 붙은 기성 정치인보다는 뭔가 있을 것 같은 ‘거물 신인’을 선호한다. 그런 국민성향을 잘 꿰고 있는 정치권은 마땅한 인재만 있으면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그렇게 정치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가 만신창이가 된 인재가 어디 한둘이던가. 한국 정치는 여전히 명망가들의 고약한 무덤이다. 하필이면 제2차 북미회담이 2월 27일로 결정이 나서 한국당이 비상이 걸렸다. 일부에서 음모설까지 나왔으나 무리한 상정(想定)이다. 암중모색에 빠진 전대 출마 후보들을 중심으로 전대 연기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선거대책위원회는 전대 일정을 바꾸지 않기로 정했다. 다들 어쨌든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그런데 설 명절이 지나자마자 자유한국당 안에서 골치 아픈 ‘자살폭탄’ 하나가 터졌다. 김진태·이종명(비례대표) 의원이 극우 논객 지만원 씨를 초청해 이른바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연 것이다. 지만원 씨는 이날도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는 종래의 주장을 거듭했고, “당시 광주 상황을 북한에서 전부 생중계했다”는 말까지 보탰다.공청회에서 김진태, 이종명 그리고 김순례(비례대표) 의원 등은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표현했다. 김성찬·백승주·이완영 의원 등 한국당 주요 인사들도 함께한 자리였다. 이 땅에는 5·18에 대한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시각이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자체가 온전한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돼야 한다. 수백 수천 년이 흘러도 논쟁이 남는 게 역사의 특성이다.그러나 하필이면 이 시점에 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예상대로 정치권이 시끌시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5·18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된 사건”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이런 해프닝이 남기는 이미지 손상의 크기는 가늠조차 어렵다. 결과적으로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콩가루 조직임이 입증됐다.역사적 사건에 대한 합리적인 회의(懷疑)는 지성인의 의무다. 그럼에도 그것이 정치 행위로 나타날 때는 얘기가 다르다. 문재인 정권의 거듭된 실정(失政)과 부조리가 민심을 흔들고 있는 이 시점에 제1야당은 ‘선택과 집중’으로 이슈 몰이를 해야 할 시점이다. 구성원들의 무차별적 전선확대는 정치 초짜들도 안 하는 한심한 ‘뻘짓’이다. 자유한국당은 정말 수구꼴통 주홍글씨의 변함없는 포로인가. 지금 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설 명절 민심을 들어봤다. 집권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이 많이 늘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더라는 말이 무성하다. 그러나 아무도 대안을 말하지는 못했다. ‘자유한국당’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딱히 누군가를 떠올리는 자신만만한 민심도 찾기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은 ‘대안’도 없는 ‘절망’의 늪에서 ‘비극’을 더 오랫동안 견뎌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2019-02-10

축구장 27개 크기 월성, 더 이상 버려진 언덕이 아닌 ‘현장’

월성은 흙으로 성벽을 쌓은 토성(土城)이다. 동서 길이 890m, 남북 길이 260m, 바깥 둘레 2340m로 총 면적은 22만2천㎡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3023척, ‘동경잡기’에는 1023보로 규모가 기록되어 있다. 말하자면 축구장 27개 가량인 셈인데, 한눈에 그 넓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언덕인데다 발굴조사를 진행 중인 지역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여전히 평범한 소나무 숲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천년의 깊은 잠을 자던 월성이 단번에 눈을 뜰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발굴조사가 시작된 후로 변화의 조짐은 분명하다. 월성은 편의상 월정교와 인접한 서편부터 A, B, C, D 네 지구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는 C지구를 포함해 A지구와 해자 등을 발굴조사 중이다. 월성은 더 이상 버려진 언덕이 아닌 ‘현장’이다.4년 만에 월성을 다시 찾은 날, 발굴조사 현장 귀퉁이에 세워진 팻말 하나를 보았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해설 및 교육팀 ‘월성이랑’에서 진행하는 발굴현장 공개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발굴 작업이 동계 휴가에 들어가면서 하루 5차례 이루어지는 정기해설(10:00, 11:00, 13:30, 15:00, 16:30 1회당 30분)도 일시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기사를 쓰고 나서야 전화 통화 중 오해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동절기 발굴조사는 쉬어도 정기해설은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추후에 정식으로 취재 요청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곧바로 다시 전화가 왔다. 정기해설이 아니더라도 요청하면 와서 해설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고 경주도 건조주의보와 함께 최저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진 날이었다. 그런 날 달랑 두 명의 방문객을 위해 해설사가 나오겠다니, ‘일’로만 생각해서는 절대 보이지 못할 ‘열정’에 이미 감복했더랬다.실제로 ‘월성이랑’ 프로그램에 참가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관련된 지역과 유적을 찾고 월성도 세 번쯤 돌아보았지만 혼자 하는 ‘공부’에는 한계가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먼저 보고 오랫동안 흩어진 구슬을 엮어온 길잡이를 따라 쫓으면 더 정확히 풍부하게 볼 수가 있다.경주 곳곳을 다니는 동안 네 차례 해설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모두 무료였고 공짜로 듣기 죄송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동장군도 물리칠 만한 그들의 열정과 헌신성이 나 같은 시큰둥이에게마저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강단이나 연구 논문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생생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의, 그리고 시간의 신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이상이다.2017년 8월 신설한 ‘월성이랑(月城以朗)’은 월성에 순우리말 ‘이랑’을 붙여서 ‘국민과 함께 하는 월성 발굴조사’를 의미하며 ‘신라 화랑(花郞)’의 젊고 활동적이며 진취적인 이미지를 담았다고 한다. 월성 내 석빙고 바로 앞에 작은 사무실이 있는데, ‘월성이랑’ 전체 인원 8명 중 4명씩 교대로 상주하며 해설을 담당한다.이전까지 ‘문화재 발굴 현장’이라면 으레 높은 벽과 천막에 둘러싸인 비밀스러운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일반인의 출입은 당연히 통제되었고 무엇을 어떻게 발굴하는지도 깜깜소식이었다. 그러다가 서울 풍납동 발굴 때부터 현장을 일반에 공개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발굴조사에 지장이 없는 한 현장을 개방하고 조사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애쓴다. 문화재에 대한 마인드가 ‘보호’하는 대상이 아닌 ‘공유’할 가치로 바뀐 것은 우리 사회의 수준이 그만큼 변화 발전했다는 증거이리라.‘월성이랑’은 2018년 한 해 상설 이용자만 3600명, 연간 2회의 대민 행사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수가 이용한 인기 프로그램이다. 발굴조사의 과정 및 성과와 출토 유물에 대한 해설이 주 내용인데, 발굴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정보가 교체되거나 추가된다.게다가 해설자들의 전공과 관심 분야가 각각 달라 언제 와도 새로운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꾸준한 운영에 일주일 간격으로 수시 방문하는 ‘덕후’까지 생겼다니, 주마간산으로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대신 ‘월성이랑’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까?오늘의 해설은 문헌 전공자인 이성문 연구원이 맡아주었다. 그는 ‘월성이랑’ 사무실 옆 소나무 숲의 ‘숭신전지’부터 설명을 시작했다.월성 내 조선시대 흔적은 석빙고와 숭신전지 2곳 뿐이다. ‘고종실록’ 상소에 등장하는 숭신전지는 석탈해를 모시는 사당으로, 1980년에 현재의 탈해왕릉 옆으로 옮겨졌다.그때까지 C지구 남천 쪽으로는 석씨 후손들이 살며 화전으로 농사를 지었다. 월성은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승마장과 국궁장으로 사용되었기에 ‘월성이랑’ 사무실 옆 불룩한 언덕은 신라시대 건물터가 아니라 국궁장 사대(射臺)였다고 한다.파사이사금 때(101) 만들어졌지만 월성이 왕성으로 제 역할을 한 것은 5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가장 큰 곡절은 백제 개로왕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고구려 장수왕은 남쪽으로 세력을 뻗히면서 한강 유역의 백제 위례성을 공격한다. 왕성이 함락할 위기에 이르러 후일 동성왕이 되는 백제 사신이 신라 자리마립간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달려온다. 그러나 구원병이 가던 중 개로왕이 죽음을 맞으니, 백제왕의 최후를 목도한 자비마립간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생생했을 것이다.그때 자비마립간이 명활산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월성은 소지마립간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18년 동안 왕이 없는 왕성이 된다. 월성의 진짜 주인은 신라의 체제를 정비하고 우경으로 생산력을 발전시킨 지증왕으로 추정되는데, 이 무렵부터 월성이 왕성으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신라 흥망성쇠의 중심이 되었다.자리를 옮겨 성벽에 올라 해자를 내려다보며 해설이 이어졌다. 토성인 월성의 성벽에 지금 드러나 있는 돌들은 축성 과정에서 비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허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성벽 해자 바깥의 외부 건물지의 경우 통일신라기 것으로, (육조거리 같은 관청지가 아니라) 내물왕릉 등으로 추측하는 고분들과 가까워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아닐까 추측한다.1979~1980년 시굴조사를 하고 1984년부터 30년 동안 발굴조사를 진행해 완결한 월성 해자는 사뭇 독특하다. 평지성의 해자는 주로 수로(물길) 형태인데, 월성에는 경주국립박물관부터 월정교까지 거리에 수혈(웅덩이)이 6~7개 배치되어 있다. 수혈식 해자의 웅덩이 길이는 긴 것이 150m, 폭은 50~80m에 이른다. 동고서저, 북고남저의 지형을 이용해 수로를 따라 물이 흘러가도록 했으니 월성은 당대의 토목 기술을 총동원한 정교한 성이 분명하다.인간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삼한통합)은 한반도의 정치사뿐 아니라 월성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통일 이후 가시적인 적이 사라지면서 월성의 해자는 방어용에서 조경용, 혹은 부분 매립해 건물지로 쓰는 등 용도가 변경된다. 깔끔하게 석축을 쌓고 꽃도 심는다. 해자에서 대량 발견된 가시연꽃(현재 멸종 위기 식물 2급, 보존 1순위 식물) 씨앗은 전쟁터에서 꽃밭으로 변모한 월성을 상상하게 한다. 마침 월성에서 첨성대에 이르는 길이 경주시에서 조성한 꽃밭이라니, 겨울이라 그곳에 만개한다는 유채꽃과 핑크뮬리는 보지 못했지만 말 그대로 ‘꽃대궐’인 아름다운 월성을 상상함직하다.월성 발굴조사는 성벽과 해자, 그리고 왕궁 건물지 3부분으로 나누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중 건물지의 C지구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전체를 조망하며 해설을 듣기에 맞춤하다.“저 사각형으로 칸칸이 나눠진 구역을 뭐라고 부르나요?”“‘그리드(grid·격자)’라고 합니다.”“저건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놓은 거죠? 저 파란 방수천은 뭐라고 부르나요?”“유물과 유구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둔 게 맞습니다. 속어인데, 현장에서는 ‘갑빠’라고 부르지요.”일정하게 나뉜 ‘그리드’에는 파란 ‘갑빠’가 덮이고 모래주머니로 고정되어 있다. 즉시즉시 떠오르는 궁금증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월성이랑’에 참여하는 즐거움이다.“여기서 뭐가 나왔어요?”“언제까지 발굴해요?”“복원은 어떻게 해요? 왕궁 발굴 복원을 빨리 해서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으면….”복원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과 주로 나오는 질문들이란다. 그에 대한 문답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월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싹튼다.2007년 월성 지하 레이다(GPR) 탐사 결과 14개 구역 내에서 최소 20개 동 이상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발굴조사 결과 중앙부에 자리한 C지구에서만 17개 이상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제일 먼저 드러난 935년 신라 멸망기의 유구와 유물이다. 씨앗과 곡물이 많이 나온 부분은 2개 정도의 창고, 나머지에서는 벼루가 많이 출토되어 관청으로 추정한다.사실 ‘발굴’이라고 하면 ‘보물찾기’로 생각하기 쉬운데, 맨 위층의 통일신라기 유물 유구에 대단한 보물은 없다. 월성에서 발굴된 것들은 대부분 기와편으로 지금까지 40만여 점에 이른다. 이성문 연구원은 문헌전공자답게 월성에 남은 보물이 없는 까닭을 ‘고려사’의 기록에서 찾는다.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항복하러 고려에 갈 때 보물을 실은 수레 길이만 30리가 넘어서 개성 사람들이 모두 구경 나왔다니, 그때 신라의 보물을 깡그리 가지고 가지 않았을까?월성 발굴조사는 2014년 12월 시작해 원래는 2025년으로 기한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한 기한 없이 꾸준히 묵묵히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발굴일수만 따지는데 행정적인 단위로 몇 개년 계획으로 진행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월성이랑’의 해설 대상은 월성을 방문하는 모든 국민들이지만 특히 수학여행, 소풍 등 현장체험학습으로 월성을 찾는 초중고 학생이 많다. 해설자들은 아이들에게 10년쯤 지나 어른이 되어 와도 이 모습 그대로일 수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혹시 관심이 있다면 관련 학문을 전공해서 월성에서 일할 수도 있을 거라고, 월성은 아주 오래 우리 곁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할 테니까.마지막으로 역사 전공자로서, 월성 해설자로서 국민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를 물었다. 이성문 연구원은 진지하게 말했다. “오래 걸릴 거니까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월성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십시오!”

2019-02-10

가고시마 가고싶구마

김순희 수필가돈 주고 봄을 샀다. 한겨울인 집을 떠나 홍매화가 활짝 핀 곳으로 떠나 두 달이라는 시간을 당겨 봄을 맞이하러 간 것이다. 오래 생각하고 떠났다기보다 얼결에 떠난 여행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저기 가 보고 싶다 하며 옆지기를 향해 웃었더니 휴대폰을 꺼내 주섬주섬 예약을 해버렸다.가고시마행 비행기에 공주고 야구부 학생들이 가득하다. 따뜻한 곳으로 전지훈련간다고 했다. 공항에 내리자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인 봄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길가에 개양귀비가 만발했고, 배추와 무청이 푸른 빛깔을 간직한 채 밭고랑 가득했다. 호텔을 향해 가는 길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한 삼나무 숲이 어디나 흔한 풍경이었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숙소에 짐을 풀자 진짜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이튿날, 여행이라 설레서인지 시차가 극복이 안 되는 것인지 새벽 3시에 깨서 잠이 오지 않았다. 부스럭대다 그냥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로 했다. 해도 뜨기 전 옆 동네인 미야자키로 향하니 구글 맵이 꼬불꼬불 시골동네를 지나가게 했다. 이 동네 농촌마을을 안 가본데 없이 지나다녔다. 덕분에 남편이 운전을 원 없이 했다. 그래도 조용한 시골에서 힐링 하는 기분이라 나쁘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음식도 먹을 만했고 날씨 또한 신이 우릴 위해 준비한 듯 하늘은 맑고 드높았다. 계획 없이 날아온 곳이라 오늘도 무계획으로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우린 이게 여행이지 하며 웃었다. 도깨비 빨랫판이 둘레를 감싼 아오시마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센멧세니치난을 지키고 선 모아이 상 앞에서는 뛰어올라 인생샷을 찍었다. 오비성 안에 삼나무 숲 곁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그 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한참동안 숲을 서성였다. 발에 느껴지는 이끼의 푹신함이 좋아 다음에 도시락 싸서 소풍오자고 다짐도 했다.삼 일째, 화산섬이 첫 코스였다. 갈 때는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 들어갔다가 섬을 나올 때는 페리에 차를 실어왔다. 세월호 생각도 났지만 15분 거리라 경험해보았다. 센간엔은 맞은편의 화산이 제일 잘 보이는 전망 최고의 정원이었다. 그 정원 앞에 근대 건물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콜라보라고 할까, 잘 어울리는 협연이었다. 빈자리가 없을 만치 여행객들이 한 번씩은 다녀가는 곳이다.가고시마에 가면 꼭 가보고 싶다고 내가 주장한 딱 한 곳은 시립미술관이었다. 검은 모래찜질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기에 망설임 없이 미술관을 선택했다. 작은 도시 시립미술관에 모네와 르느와르 그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우리 돈 3천원, 두 화가만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피카소, 칸딘스키, 앤디워홀, 세잔, 로댕, 샤갈, 달리를 비롯한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방안 가득이다. 포항시립미술관에 이런 그림이 올 수 있을까싶어 부러워 배가 아팠다. 다음 일정이 있으니 어여 보고 나가자는 남편의 말에 30분만 더 모네의 ‘수련’ 앞에 있자며 졸랐다. 또 언제 여기 다시 올까싶어 발이 안 떨어졌다.우리가 운이 좋은지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가면 그 곳이 맛집이다. 지인은 대기 줄이 길어서 못 먹고 돌아선 집이란다. 마지막 밤을 보낸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최고였다. 다음 날 돌아볼 여행지가 한눈에 들어와서 더없이 좋았다. 호텔을 설계할 때 창문이 밖에서도 들여다보이게 투명 유리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 여행자들의 들뜬 모습을 보여주려고 환하게 창을 낸다는 것이다. 일상의 반대말이 여행이라는 말이다. 여행은 남는 장사다. 여정 곳곳에서 찍은 사진이 남고, 에피소드 가득한 추억이 남고, 소소하게 샀던 전리품들이 가방 가득이다. 카드로 훅 지르고 간 가고시마이기에 다음 달부터 날아들 할부도 남아있다. 하지만 다른 금액과 다르게 여행경비는 볼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래서 무이자 10개월 할부가 끝날 즈음, 또 지름신이 강림할 것이다. 나는 이미 봄의 한가운데 서 있다.

2019-02-07

공학이 ‘최초’를 부르는 방식

△최초의 발명자앞에서 공학이 시대를 앞지르는 경우와 시대적 요구와 공학이 만나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데 시대가 공학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이것은 공학적 발명품이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의 노력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예컨대 최초의 증기기관을 개발한 사람은 누구일까? 분명히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초의 발명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제임스 와트는 사실 증기기관을 대폭 개선하여 그 사용의 가능성을 확대한 사람이다. 와트보다 먼저 증기기관의 가능성을 타진한 사람은 토마스 세이버리였다. 그런데 세이버리가 만든 증기펌프는 우스터의 에드워드 서머셋(Edward Somerset·1603∼1667)의 발명품 모음집에 실린 증기펌프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최초의 발명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는 1600년경 후반부터 증기기관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 모았으며, 여러 나라의 무수한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증기기관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이르면서 이러한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고, 더 나은 증기기관을 만들려는 경쟁이 유럽 곳곳에서 활발해졌다.그런데 여기서 다시 묻자.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엇비슷한 생각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했던 것일까? 사람의 생각이 ‘텔레파시’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어서일까? 그 이유는 이런 비의적인 것과 관련이 없다. 많은 사람이 인간의 힘의 한계를 깨달았고, 다른 도움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 전체가 증기기관과 같은 동력기관을 원하고 있었다고 해도 괜찮다. 그래서 저마다 증기기관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증기기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비행기도 그랬다. 전보와 전화가 발명되자 먼 곳의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단지 소식만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숱한 사람이 매달렸고 그 결과 비행기가 발명되었다.우리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 몇몇 국가는 자기 나라에서 최초의 비행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코네티컷 주지사는 코네티컷 브리지포트에 거주했던 독일 이민자 구스타프 화이트헤드(Gustave Albin Whitehead·1874∼1927)가 1901년 세계 최초로 비행에 성공했음을 인정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비행에 대한 논쟁은 비행기의 발명이 많은 사람에 의해서 유사한 시기에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누가 증기기관을 발명했는가, 누가 비행기를 최초로 발명했는가를 특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대적 요구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시대적 요구를 읽었고, 많은 사람이 서로 엇비슷한 발명품을 생각하고 고안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대적 요구를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뛰어난 공학자라야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다.더 뛰어난 공학자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실용적이며, 더 정확히 만들어 낸다.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어내기 이전부터 스마트폰의 개념이 적용된 제품이 이미 시장에 출시되어 있었다. 잡스는 이러한 스마트폰의 연관 기술을 긁어모아 보다 더 창의적이고, 간편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혁신했다. 와트가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를 ‘최초’로 기억하듯이, 스마트폰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잡스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공학은 해당 분야를 최초로 개척한 사람, 또 그 분야를 더 실용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확장시킨 사람에게 ‘최초’라는 왕관을 내어준다.△공학은 쓸모를 먼저 생각한다야멸차게 말하자면 공학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멋지고 놀라운 것을 발명한 사람에게 공적을 돌리지 않는다. 공학은 더 효율적이고 더 실용적인 것을 발명한 사람에게 부와 명성을 동시에 가져다준다.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을 개발하여 영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증기기관‘차’를 통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공장에서 일했던 천부적인 발명가 월리엄 머독(William Murdock·1754∼1839)은 철도가 개설되기 40년 전인 1789년에 이미 증기기관차의 설계도를 완성했다. 하지만 와트는 “앞으로도 바퀴 달린 마차가 계속 사용될 것이다” 하면서 머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시대 속에 안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결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증기기관차가 실제로 구현된 것은 1804년이며, 그 주인공은 리차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1771∼1833)이다. 영국 웨일즈Wales에서 첫 선을 보인 이 기관차는 70명의 사람과 석탄차를 포함해 모두 25톤이 나가는 차량을 시속 8km로 이동시켰다. 웨일즈 탄광촌 사람은 말이 아닌 기계가 사람과 석탄을 나르는 광경을 처음으로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하지만 그것 이상의 무엇은 없었다. 증기기관차는 그냥 신기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을 실생활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어야 했고, 더 많은 석탄을 실을 수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속도가 느렸다. 시속 8km라면 말을 이용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트레비식의 발명품은 2,000년 전 증기압을 이용하여 그리스에서 사원의 문을 여닫는데 이용한 헤론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공학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 어떤 기계를 설치하는데 만원의 비용이 든다면 그 만원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절약한다거나, 생산성을 높인다든지, 부대비용을 절약한다든지 등 어떤 식으로든 만원이라는 설치비용에 해당하는 가치 이상을 발생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기술은 사장되고 만다. 이러한 효율성과 합리성을 가질 때 비로소 공학의 상상력이 만든 기술은 우리의 삶속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다. 증기기관차를 쓸모있는 것으로 만든 사람은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1781∼1848)이었다. 스티븐슨은 트레비식의 기관차를 개량하여 시속 39km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당시 발달했던 제철기술을 활용해 기차가 다니는 선로를 개량함으로써 육중한 무게의 기관차가 실생활에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관차는 이제 신기하거나 괴물같이 무서운 기계가 아니라 일상속에서 유용한 기계로 자리잡게 된다.제임스 와트나 스티븐슨은 부와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들보다 앞서 획기적인 발명품을 선보인 파팽은 살해당했으며, 트레비식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역시 사람은 운 때가 맞아야 한다”거나, “닭 길러 족제비 좋은 일 시킨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공학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기초학문은 쓸모를 생각하지 않지만 공학은 쓸모를 생각한다. 그것도 다른 것에 비해 월등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비용에 비해 편익이 더 클 때 공학의 산물은 인간의 삶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

2019-02-07

도쿄대(東京大)생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

혜시는 왕에게 박씨를 선물받아 뒤 뜰에 심어 엄청난 크기의 박을 수확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부숴 버렸네.” 장자가 묻습니다. “아깝다. 그런 희귀한 박을 왜 깨 버린 건가?” 혜시가 답합니다. “박이 쓸모 있으려면 물 떠먹을 만큼 적당한 크기여야지. 저렇게 큰 박은 아무 쓸모가 없어.” 장자가 지적합니다. “어찌 이것을 바다에 띄워 조각배로 활용할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혜시는 박학능변가로 명가(名家)에 속하는 인물이지요. 명가는 화려한 논리와 수사로 상대의 이론을 굴복시키는 고대 소피스트와 같은 철학자들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저널리스트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일본의 지성계과 사회 전반을 발칵 뒤집어 놓은 책이었지요. 정확한 예를 들어가면서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는 도쿄대학생들이 얼마나 지성이 결여되어 있는가를 따끔하게 지적합니다.일본은 빠른 근대화로 인해 수직적이고 중앙 집권적인 교육제도가 필요했습니다. 도쿄대는 이런 수준의 인재를 충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첫 번째 대학으로, “관료 교육원”의 역할, 즉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목적을 충실히 무비판적으로 빠르고 탁월하게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는 인물들을 대량으로 키워 내기 위한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혜시처럼 세속의 질서에 얽매인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는 머리 좋은 사람들을 대량 생산해 내는 것, 그것이 20세기에 걸맞는 교육일지 모릅니다. 정답을 달달 외워 필요할 때 즉각 쏟아내는 방식으로는 조직이나 국가를 어느 정도까지 끌어 올릴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의 진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모두가 그럴 듯하다 여기는 집단적 사고방식의 익숙함을 깨부수고 낯설고 두렵고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해도 나만의 고유한 시선,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쏟아내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런 힘이 일류국가를 만드는 저력이고, 위대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개인의 고품격 문화인 것이지요.호기심으로 질문하는 능력은 생각의 틀을 넓혀줍니다. 혜시처럼 박이 크다고 폐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장자처럼 건축의 재료나 바닷가 조각배로 사용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지요. 생명력 가득한 삶은 남들이 추구하는 보편성을 추종하는 삶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나의 향기, 나 다움, 내 안의 꿈틀거리는 진정한 나를 밖으로 끄집어 내는 용기를 발휘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07

한국 반도체에 다행스러운 일들

김학주 한동대 교수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아직 바닥을 확인하지 못했다. 어쩌면 올 상반기 실적 쇼크를 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반도체 관련 주가는 최근 반등했다. 그 수익률도 시장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그 배경을 살펴보자.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술기업들에 대한 규제 완화 기대를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기술기업들이 페이스북처럼 가입자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확실한 차별성보다는 시장을 선점했다는 우위를 바탕으로 영업을 한다. 그 동안은 초기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에 핵심경쟁력의 결여가 문제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가입자 성장세가 둔화될수록 진입장벽이 낮다는 한계, 즉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다는 약점이 드러난다. 한 사람의 가입자를 얻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급증하는 것이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과점을 만드는 것이다. 페이스북도 2012년 인스타그램, 또 2014년 와츠앱(WhatsApp)을 인수했다.기업이 비대해지고 머리가 굵어질수록 정권에 대항할 힘이 생기고, 개인정보를 오남용해서 남이 얻을 수 없는 비밀정보까지 만드는 욕심을 부린다. 따라서 정부는 규제를 하게 되고, 특히 해외 기술기업에 대한 접근을 막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도 지역별로 쪼개진다는 스플린터넷 (splinternet)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중국정부가 가장 예민했다. 중국정부는 여론을 감시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방대한 데이터를 국내업체가 선점할 때까지 규제를 통해 시간을 벌고자 했다.그런데 지금의 저성장을 해결하려면 이런 데이터 흐름(data flow)에 대한 규제를 풀고 전자상거래(e-commerce)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도 호주, 일본, 싱가폴이 이렇게 주장했다. 2007년 이후 세계적으로 재화의 교역보다 데이터의 교역이 60%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부의 불균형이 극심해진 지금 저소득층의 경비 절감을 위해 스마트 솔루션을 통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규제완화는 필수적이다. 만일 빅데이터의 교류가 활발해져 글로벌 기술기업들이 투자를 재개한다면 서버(server) 중심의 반도체 수요가 증가한다.한편 장기적으로도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중국을 비롯한 후발주자들의 시장진입이다. 예를 들어 D-Ram은 전압을 이용한다. 그런데 저항을 이용한 R-ram이 도입되거나 새로운 소재의 반도체가 탄생하는 등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뀔 경우 중국 같은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추격하기 쉬워지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며 후발주자들의 시장진입 시기가 뒤로 밀리고 있다.그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 반도체 산업은 고정비 부담이 매우 높은데 지난 몇 년간 사물인터넷 인프라 확충 관련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며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졌고, 그 덕분에 생산원가가 급락하여 가격을 충분히 내릴 수 있게 됐다. 그 만큼 대체기술이 진입할 여유를 주지 않게 된 것이다. 둘째, 기존 선발업체들의 기술은 미세화였는데 더 이상 미세화가 어려워 적층을 시도했었다. 낸드(Nand)는 적층이 가능했지만 D-ram은 쉽지 않았는데 최근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경우 적층 기술이 개발되었다. 여기에 노광장비(EUV)까지 도입되어 기존의 미세화 기술이 더욱 진화하고 있음이 확인됐다.셋째, 인공지능 관련 고기능 반도체로 갈수록 연구개발 비용이 커진다. 여기서 인텔조차 힘들어 하고, 대만의 UMC와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는 포기한 상태다. 그만큼 중국이 따라오기 부담스럽다. 첨단 장비도 삼성을 비롯한 선발업체들이 선약을 한 상태라서 중국이 장비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물론 중국은 언젠가 반도체 시장에 진입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그 시기가 늦어지며 우리에게는 숨통이 트이고 있다.

2019-02-07

제주의 향기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한국의 신혼여행지 변천사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신혼여행지로 60∼70년대는 유성온천이 압도적이었다. 경주도 선택을 받았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부터는 소득의 향상으로 신혼여행지로 제주도가 급부상하였다. 제주도의 인기는 80∼90년대까지 이어진다. 2000년대 이후는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신혼여행지는 해외로 바뀌었다.구정 기간 중 40년 전 신혼여행을 갔던 제주를 찾아보았다. 그간 제주를 회의나 공식적인 일로 여러차례 왔었지만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과거 신혼여행때 찾았던 명소들을 들르며 똑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재미를 가져 보았다. 자연물을 소재로 한 용두암, 천지연 폭포, 외돌개 등등은 옛 그대로였지만 목석원 같은 인위적이었던 명소는 사라졌다. 신혼여행의 최고의 숙박시설로 필자가 묵었던 칼호텔은 이제 중문단지의 5성급 호텔에 밀리는듯 비교적 서민적인 호텔로 변모해 있었다. 명소를 방문하여 40년 전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할 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이들은 아주 흥미롭게 옛 사진을 보면서 사진 찍는 걸 도와주었다.당시 제주밀감으로 유명했던 귤도 한라봉이 나오더니 이제는 천혜향, 레드향 등으로 다양한 고급 귤이 개발되어 있고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들이 있었다.작은 나라 한국은 제주가 있어 참 다행인듯 싶다.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섬이 있고, 산업화되어 숨쉬기도 힘든 도심의 생활을 탈피하여 날씨가 온화하고 자연이 숨쉬는 곳으로 갈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다행인듯 싶다. 그래서 제주공항에 내리면 야자수의 모습과 함께 독특한 제주의 향기가 있다.그런데 제주의 향기가 정치와 함께 흐려질까 걱정된다. 김정은의 외할버지 고경택은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은에게 제주도는 외가라고 부를 만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문 대통령은 작년 9월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며 한라산 정상도 오르자는 대화를 나눈 바 있다. 제주산 귤 수백톤을 북한이 보낸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라고 하면서 김정은에게 보냈다.한때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 장소로도 거론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김 위원장을 한라산으로 공식 초청키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능한 시나리오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한라산을 함께 올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완성된 통일 한반도의 평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또 제주도의회 차원의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에는 상징적인 남북교류 사업인 감귤보내기 사업 재개와 제주 어미돼지 분양, 한라산과 백두산의 생태 환경 보존을 위한 공동협력과 공통의 역사·문화 연구 및 교류를 제안한다고 한다.김정은의 방문으로 제주가 평화의 상징으로 부각되어 진정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행보는 기대와 다르게 흐르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이 진정한 평화일까 아니면 미군철수를 통한 한국의 약화를 통해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있는 북한이 힘의 우위를 점하여 한국을 속국화 하거나 침략하려는 것일까. 김정은이 실제로 제주도를 방문하면 북한은 오히려 ‘백두 혈통’인 김정은이 ‘한라산 줄기’이기도 하다는 선전·선동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우리는 평화조약을 통해 평화가 지켜진 예가 없다는 세계 역사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힘의 균형과 우위를 통해 진정한 북한의 체제변화를 통한 평화의지를 끌어내야만 계속 우리는 제주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2019-02-07

권력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선현(先賢)들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명심하면서 살아야 할 금언(金言)이지만, 특히 정치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손혜원 의원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의 행동이 위법인가의 여부는 검찰에 고발되었으니 수사를 통하여 법원의 판단으로 가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자의 행동이 ‘법적 정당성’은 물론이고 ‘도덕적 정당성’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권력자의 행위가 위법은 아니었지만 매우 비윤리적인 것이었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법원의 무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미 도덕적으로 매장되었기 때문이다.목포의 문화재 사랑에 대한 손 의원의 선의(善意) 여부는 본인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가 없다. 또한 정치인의 행위가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정치쿠테타의 장본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국민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그 선의를 역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 행위가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손 의원의 선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특권과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올바른 처신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손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로서 문체부와 문화재청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남편 재단의 작품을 피감기관에 판매하였고, 그 재단의 이사를 문화재위원으로 추천하였으며, 국립박물관의 인사에도 압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나아가 그가 목포 구도심에 가족·인척·지인의 명의로 사들인 20여 채의 부동산은 이 지역이 근대문화유산 공간으로 지정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었다. 국회 문체위 간사라는 ‘공적 권한’과 본인을 비롯한 친인척의 ‘사적 이익’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혹은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손 의원이 주장하는 ‘문화재 사랑’의 진정성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그의 문화재 사랑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 모든 일들을 ‘사적·비공개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공적·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했었다. 권력자의 진정성은 ‘그가 하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노엄 촘스키는 ‘책임의 윤리’를 논하면서 “책임은 특권에 정비례한다.”고 하였다. 특권이 많은 정치인일수록 그만큼 책임도 무거운 것이다. 모든 권력자는 자신의 특권을 사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져야하며, 그 책임에는 법적 책임은 물론이고 도덕적 책임도 따른다. 만약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정치인이 나라의 정신문화 육성을 말한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목포 부동산 구입을 계기로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손 의원과 친동생 간의 진실공방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떠나서 왜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의 모습을 자주 보아야 하는가? 한 때 도지사 동생은 ‘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더니 이제는 국회의원 누나가 “동생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한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것은 정치인의 개인적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모든 국민들의 불행이기도 하다. 개인적 불행도 슬픈 일인데 굳이 국민적 불행으로까지 확산시켜야 속이 시원한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내로남불’을 주장하는 데는 뛰어난 언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가진 자로서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우리는 언제쯤 품격 있는 정치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

2019-02-07

농촌 살릴 ‘귀농’

귀농(歸農)과 귀촌(歸村)은 엄격히 따지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귀농은 본래 도시에서 살아왔던 사람이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 등을 지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귀촌은 농촌 출신 중 도시에서 살고 있다가 고향 생각이 나 농촌으로 되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농(離農)은 귀촌보다는 귀농의 반대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귀농·귀촌을 통틀어 우리는 귀농 현상이라 부른다.1997년 외환위기(IMF)라는 직격탄을 맞은 우리 사회는 이때부터 농촌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외환위기로 직장에서 쫓겨난 많은 봉급자가 생계를 걱정하며 찾은 곳이 귀농 현장이다. 마땅한 수입원이 없었던 그들로선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의 생활 정착이 새로운 희망의 빛이었다. 이른바 생계형 귀농 현상이다.2000년대 들어서는 은퇴자의 귀농이 늘어난다. 직장 생활을 끝내고 전원풍의 주거생활을 꿈꾸며 나타난 것이 외환위기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머리가 복잡했던 도시생활을 벗어난다는 개념으로 농촌의 전원생활이 로망이 되던 시절이다. 이후 농촌에는 3040세대의 엘리트 귀농이 등장한다. 젊은이의 등장과 새로운 영농기법을 동원한 귀농 현상은 귀농의 경제화와 경영화 바람을 일으킨다.2017년은 우리나라 귀농·귀촌 인구가 50만 명을 처음 넘어선 해다. 2013년 통계 작성 후 가장 많은 귀농·귀촌 인구 증가 현상을 보였다. 연령별로도 40세 미만의 젊은층이 절반가량 차지해 귀농의 긍정적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귀농현상이 고용 증가와 소득 증가 효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귀농현상이 인구 감소로 걱정하던 농촌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각 지자체별로도 귀농 정착을 위한 지원이 크게 늘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8년도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10명 중 3명이 귀농·귀촌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희망자 중 상당수가 구체적 계획은 없었지만 귀농·귀촌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히 높았다.소멸위기에 있는 우리 농촌으로서는 희망적 요소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귀농·귀촌을 이끌 당국의 화끈한 유인책이 필요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2-07

태움

태운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며칠 전에 쓰고 나니, 그런 태움 말고 다른 태움을 생각하고 싶어졌다.몇일 전에 쓴 태움이란 무엇이냐 하니, 영혼이 다 타버릴 때까지 괴롭힌다는 간호사 사회의 끔찍한 문화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게 태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 사회만 그런 게 아니요 한국 사회 전체가 태움으로 마치 불타는 집에 들어앉은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쓴 것이다.다른 태움이 있다. 어렸을 때 아이가 귀여워 못 견디겠으면 그 태움이라는 걸 해준다. 아빠가 아이를 등에 올려놓고 방안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태움, 아이를 어깨 위 목에 걸치고 서울 남산을 보이냐고 묻는 태움, 어, 그만 좀 태워, 비행기에서 떨어지겠어, 하고 누군가 잔뜩 칭찬을 받고 기분이 좋아져서 그만 좀 하라고 손사래를 치는 태움, 그런 태움 말이다.생각건대, 우리는 서로 태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 태워주고 또 태워주고 그래서 정말 비행기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스럽게 될 때까지 자꾸 태워주는, 옛날부터 우리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말썽 부리는 손자도 귀여워 못 견뎌, 그래도 저렇게 사지가 튼튼해서 돌아다니니 얼마나 좋아, 하고 없는 칭찬도 만들어 태워주는 문화를 이 메마른 세상에 다시 피워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생각하는 게 농담이다. 우리는 농담을 제대로 못하는 세상에 떨어져 버렸다. 진중하고 무거운 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농담 즐기는 젊은이를 못마땅해 한다. 또 남을 깍아내리는 말을 농담이라고 해놓고 자신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을 유머 감각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뼈 있는 농담, 가시돋힌 농담은 유머가 될 수 없다.유머란 뭐냐 하면, 상대방의 약점조차 관대하게, 따뜻하게 감싸 안은 농담이다. 유머는 풍자와는 용도가 다르다. 풍자는 권위 밑에 숨은 부끄러운 짓, 떳떳하지 못한 짓을 혼내주는 농담이다. 유머는 부족한 사람, 힘든 사람도 부추겨 주는 농담이다. 그렇다. 그런 유머는 바로 태워주는 농담이다.신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사람들은 저마다 부족한 점, 약점, 한계 같은 것을 갖고 있다.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으며, 자신에게 넘치는 것을 누군가들은 응당 못 갖고 있게 마련이다. 타고나기를 운 나쁘게 태어나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러니 누가 남의 탓만을 할 수 있으랴.태워주는 말, 태워주는 행동,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서 잘한 일을 짚어내 부축해 주고, 아랫사람 만나서는 좋은 점을, 윗사람 만나서는 고마운 점을 서로 말해주는 관계, 이런 관계라면 많이 부족해도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지 않나.태우지 말고 태워 주자, 우리 서로서로, 이 풍진 세상을 태워주며 살자./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2-07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지혜로운 밥이자 죽 ‘갱시기’

‘재디기 아재.’“이름도 몰라요, 성(姓)도 몰라”다. ‘재덕’인지 ‘재득’인지 지금 와서 확인할 방법도 없다.그저 ‘재디기 아재’였다. 마흔 살 쯤 되는, 순박한 사내였다. 어머니 표현으로는, “사람이 쪼매 모자라서 그렇지 더할 데 없이 착한 사람”이었다.많이 먹었고, 힘도 장사였다. 고봉밥, 머슴밥으로 네댓 그릇을 먹었고, 장정 열 사람 몫을 해냈다. 동네 힘든 일은 죄다 ‘재디기 아재’ 손을 거쳤다.많이 먹는데도 늘 배가 고프다고 했다. “뭐, 입 쫌 다실 거 없능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한겨울이었다. 동네 어느 집 큰 방에 남정네들 열댓이 옹기종기 모였다. 저녁마다 모여서 라디오를 들으며, 새끼를 꼬고, 음담패설도 해댔다. ‘재디기 아재’도 늘 있었다.사건(?)이 시작된 날.마침 그 자리에 ‘재디기 아재’ 버금가게 많이 먹는, 또 다른 아재가 있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 모였고, 초저녁에 ‘갱시기’도 한 그릇 씩 먹었건만 두어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프다, 뭐, 먹을 것 없느냐는 말이 줄을 이었다.안주인이 “늦은 밤에 뭐 먹을 게 있는교? ‘갱시기’ 쫌 남았네”라며 제법 큰 바가지 두어 개에 먹다 남은 ‘갱시기’를 내왔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었다.‘재디기 아재’와 ‘버금가는 아재’는 얼마 남지 않은 ‘갱시기’를 두고 가볍게 다퉜다. 서로 간에 “일로 조바라(이리로 줘봐라)”라고 다퉜다. 라디오 연속극도 끝났다. 바가지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다들 심심했다. 긴 하품소리도 들렸다. 겨울밤은 지겹다. 누군가가 가벼운(?) 제안을 했다.“봐라, 너그 둘이 싸우지 말고, ‘갱시기’ 먹기 시합이나 한 번 해봐라. 누가 마이 묵노?”금방 시합 룰이 나왔다.“세상에 미련한 기 마이 먹기 내긴 기라. 고마, 갱시기 마이 먹기 시합은 한 솥으로 한정한데이. 큰 솥 있제? 그 솥으로 한 솥도 못 먹고 지는 사람은 우리가 먹는 ‘갱시기’ 값까지 다 내야한다. 두 사람 다 한 솥을 먹으모, 고마, 구경하던 우리가 마카 돈을 다 모다가주고 아지매한테 ‘갱시기’ 값 주께.”2, 3일 후 ‘시합’인지 ‘미련’인지가 열렸다.‘갱시기’ 솥과 시합용 그릇도 준비했다. 한 솥은 어림잡아 30그릇은 될 법했다. 두 사람 모두 10그릇까지는 휑하니 달렸다. 나중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라는 표현을 보면 늘 이날 ‘갱시기’ 먹던 속도가 떠올랐다.어라, 이상했다. 10그릇을 넘기면서 ‘재디기 아재’의 숟가락 속도가 느려지더니 15그릇을 겨우 넘기고 숟가락을 놓았다. 상대는 쌩쌩했다. 한 솥을 다 퍼먹었다. ‘재디기 아재’ 얼굴에 “이럴 리가 없는데”라는 낭패감이 돌았다.오랫동안 ‘재디기 아재 갱시기 먹기 시합 참패’는 동네 사람들 ‘인구에 회자’되었다.허망한 일, 예기치 못했던 일, 실망스런 결과를 받아들면 “재디기 아재 ‘갱시기’ 먹듯 한다”고 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동네 꼬마들이 ‘재디기 아재’ 호칭을 격하했다. ‘재디기’로.얼마쯤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재디기 아재’가 우리 집에 왔다. 무슨 이야기 끝에 ‘재디기 아재’가 ‘갱시기 시합 참패’에 얽힌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그기요, 참 요상하대요. 알잖아요. ‘갱시기’ 한 솥쯤이야 늘 먹어요. 그날도 그래요. 내기 하러 가기 전에요, 저쪽 옆 동네에요, 귀머거리 할매 혼자 사는 집 있잖니껴. 그 할매한테 부탁해서 낮에 한 솥 끼리가 미리 먹어봤니더. 연습 삼아서…. 그때는 더 큰 솥으로 한 솥을 숨도 안 쉬고 먹었더랬어요. 근데 시합을 한께, 그기 요상하대요. 반 솥 쯤 먹은께 마, 배가 딱 불러서 못 먹겠대요. 그거 참 희한하지요. 연습까지 해봤는데….”‘更(갱)’은 ‘다시’ ‘새롭게’ ‘고쳐서’라는 뜻이 있다. ‘갱시기(更食)’가 ‘다시 새롭게 고쳐서 먹는다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라고 믿는다.갱죽은 ‘갱(羹)’+‘죽(粥)’이다. ‘갱’은 국, 국물이다. 국물이 있는 죽이 갱죽이다.◇ ‘갱시기’, 밥이자 죽이다‘갱시기’는 갱죽 혹은 ‘갱식’이다.식량이 부족하다. 게다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밥상에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있어야 한다. 한식의 기본이다. 국거리와 반찬거리는 늘 부족하고 서글프다. 이때 갱죽은 아주 유용하다.김치와 식은 밥은 늘 있다. 멸치를 부숴 넣는다. 곰삭은 김치를 넣고 팔팔 끓인다. 식은 밥 한 덩어리를 넣고 끓이면 끝. 갱죽이 된다.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좋다.‘갱시기’의 또 다른 장점이 있다. 한번 퍼먹고 난 다음, 그대로 둔다. 덥힌 다음, 다시 먹어도 된다.‘更(갱)’은 ‘다시’ ‘새롭게’ ‘고쳐서’라는 뜻이 있다.‘갱시기[更食]’가 ‘다시 새롭게 고쳐서 먹는다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라고 믿는다.갱죽은 ‘갱(羹)’+‘죽(粥)’이다. ‘갱’은 국, 국물이다. 국물이 있는 죽이 갱죽이다. 갱죽이 왜 ‘갱식’ ‘갱시기’와 혼용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갱죽은 ‘따로, 또 같이’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다른가 하면 결국 비슷하다.‘신 김치+식은 밥’은 비슷하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아무 것이나 넣고 끓이는 것은 아니다. 김치는 젓갈을 넣지 않고 담은 것이라야 한다. 젓갈 김치 들어간 갱죽은 맛이 맑지 않다. 김치는 신 것이라야 한다. 갱죽의 핵심은 시큼한 감칠맛이다.일부러 젓갈 없는 김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태백산맥 산줄기 아래에 동네가 있다.동해안 생선, 젓갈은 높은 산이 막는다. 경북 내륙이다. 서해안 생선은 길이 멀다. 배추, 무를 제외하고는 고작 소금 정도가 흔하다. 양력 1~2월이면 김치는 깊은 신 맛을 낸다. 우물쭈물하다가 봄이 되면 군둥내가 날 것이다. 그 전에 해치워야 한다.멸치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산골마을, 생선은 귀하다. 국물용 멸치는 멸치가 아니라 때로는 생선(?)이다. ‘갱시기’ 그릇에 드러누워 있었던, 퉁퉁 불었던 멸치가 떠오른다. 날름 주워 먹으면 말린 생선의 쓴 맛이 입안에 퍼졌다.2003년, 소설가 성석제 씨가 ‘갱시기’에 대한 글을 썼다.‘갱시기’에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먹었다고 했다. 은근히 약이 올랐다. 성석제 씨는 경북 상주 은척면이 고향이다. 그 지역이 부유한 곳인지, 성 씨가 넉넉한 살림살이였는지 모른다. 그저 “나보다는 넉넉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이다.“초저녁부터 발 밑에서 얼음이 서걱거리는 이맘때쯤이면 늘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갱죽’ 또는 ‘갱시기’라고 부르던,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그 무엇이다. 식은 밥과 남은 반찬, 묵은 김치를 썰어 솥에 대충 붓고 물을 넣어서 끓인 음식인데 흔히 말하는 ‘꿀꿀이죽’과 비슷하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거기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 저어 먹기도 했다. 반드시 식은 밥이라야 하고 또 반드시 푹 삭아서 쉰 김치, 남은 반찬이라야 했다.(후략)”‘갱시기’는 태백산맥 언저리가 고향인 이들의 소울 푸드(SOUL FOOD)다. 고명이 좀 더 화려해지면서 갱시기는 진화한다. 계란, 콩나물, 두부, 돼지고기, 가래 떡 등이 등장했다. 그래봤자 ‘갱시기’는 ‘갱시기’일 뿐.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갱시기’는 사라졌다. ‘갱시기’는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라고 여겼다.과연 그럴까? ‘갱시기’는 ‘꿀꿀이죽’ 수준의 음식일까?그렇지는 않다. ‘갱시기’의 핵심은 김치다. ‘갱시기’는 진화, 발전하는 김치가 만들어낸 최고의 음식 중 하나다. 김치가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이가 많다. 아니다. 고유도 아니고, 전통도 아니다.김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시경’이다. ‘시경’에는 울 밖의 열린 오이로 오이지를 담근다는 내용이 있다. ‘지(漬)’도 김치다. 장아찌의 ‘찌’ 가 곧 ‘지’다.일본의 츠케모노[漬物, 지물]도 김치의 일종이다. 서양에는 채소절임인 피클이 있고 중식에도 장아찌와 흡사한 ‘자차이[짜사이]’가 있다. 모두 김치의 일종이다.‘지’에 대한 기록은 퍽 오래되었다.주(周)나라 문공(文公)은 공자(孔子)의 멘토다. 문공이 오이지를 먹으니 공자도 따라했다고 전해진다.고춧가루를 넣은 한반도 김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김치의 위대함은 ‘오래된’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모든 문명국가에는 채소 절임이 있다. 한반도의 김치는 독특하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 진화한다.한반도의 김치는 수백, 수천 종류다. 한반도 김치의 위대함은 진화와 다양성이다.외부에서 전래되는 것은 모두 받아들이고 녹여 넣었다. 산초(山椒)로 매운 맛을 얻다가 고추[苦椒, 고초]로 바꿨다.고운 고춧가루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고추를 절구로 찧다가 기계로 갈아낸다. 고운 고춧가루, 썰어서 사용하는 풋고추, 썬 붉은 고추, 마른고추, 고추씨, 곱게 간 고추씨까지, 한반도의 고추 사용법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고추를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우리는 새로운 식재료가 들어오면 머뭇거리지 않고 음식에 다양하게 적용했다. 김치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갱시기’는 김치를 바탕으로 한 지혜로운 음식이다. 발효제 덩어리인 겨울철 김장김치에 식은 밥을 더한다. ‘갱시기’는 한 그릇에 밥, 반찬, 국물을 고루 갖췄다. 냉장, 냉동고가 없던 시절, 식은 밥은 쉬 상한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서 먹기 힘들다.‘갱시기’는 지혜로운 음식이다. 상하지 않게 하고 냉기도 없앤다. 차리기 편하고, 먹기 좋고, 소화도 잘 된다. 두부, 콩나물, 돼지고기, 가래떡을 넣으면 영양도 그럴 듯하다.‘갱시기’는 밥이면서 죽(粥)이고 한편으로는 국밥이다. ‘갱시기’는 식사 메뉴이면서 간식이다. 변화무쌍한 김치를 바탕으로 지어낸 우리 고유의 ‘갱시기’는 멀티 플레이어다.고려 문신 김부식(1075~1151년)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표현을 남겼다. 한식이 그러하다. ‘갱시기’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우리는 ‘갱시기’가 누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갱시기’를 잊어버렸다.사족. ‘그 후 재디기 아재’ 이야기를 전한다. 입이 싼 내가 시합 뒷이야기를 온 동네에 퍼뜨렸다. 평소 ‘쪼매 모자란 재디기 아재’는 ‘마이 모자라는 재디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럼 그렇지, 진짜로는 재디기가 이겼제?”라고 했다./맛칼럼니스트

2019-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