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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知)적 쿠테타, 경험해 보셨습니까?

20세기 전반 유럽 최고의 지식인으로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를 꼽습니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산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늘 지중해가 어른거립니다. ‘좁은 문’ 작가 앙드레 지드와 둘도 없는 친구이며 독일의 대시인 릴케와도 친분이 두터웠습니다.13세에 이미 시를 짓기 시작했고, 고전과 문학 서적을 탐독했습니다. 19세에는 혜성과 같이 등장한 젊은 시인으로 명성을 날립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폴 발레리는 세 가지 사건을 겪습니다. 첫째 랭보와 말라르메 두 사람의 천재성에 압도되어 열등감에 빠진 일, 둘째 R부인과의 연애에 실패, 셋째 데카르트가 경험한 ‘지적 쿠테타’를 온몸으로 경험한 일입니다. 지적 쿠테타란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충격적인 지적 결단, 결심입니다. 폴 발레리는 이후 일체 활동을 중단하고 오로지 자신의 지적 능력을 키우는데만 몰입하죠. 죽을 때까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갖습니다.20년 동안 폴 발레리는 사색하고 노트에 생각을 정리하고 시와 문학과 과학 영역에까지 사고를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인정과 존경, 박수 받는 일을 멀리하고 오로지 내면과 사상을 갈고 닦는데 자신을 바칩니다. 노트가 3만 페이지에 달합니다. 40대에 이르러 폴 발레리는 20년의 은둔을 깨고 ‘젊은 파르크’를 출간하며 프랑스 대표 시인으로 등극합니다.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법 서설’ ‘까이에’ 등의 과학이론서를 발표함으로써 존경해 마지 않았던 데카르트와 흡사한 시와 과학, 철학을 섭렵하는 화려한 지적 탐구 여정을 순례합니다.그대는 생의 어느 한 순간, 벼락에 맞은 것처럼 지적 쿠테타를 당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모든 방어 기제를 무력화하고 홀랑 내면을 발가 벗긴 채, 눈물 왈칵 솟구치고 뼈에 사무치는 고통과 호흡조차 곤란한 극도의 아픔 가운데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 군대가 쳐들어와 우리 삶을 온통 휘젓고 뒤집어 놓아, 도무지 이대로 살 수 없다는 항복의 백기를 들고 세상의 달콤함을 떠나 골방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경험 말입니다.폴 발레리는 말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찔한 이야기입니다. 생각을 마비시키고 그저 느낌으로 살아가는 일에 점점 길들여 가는 우리 시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길들여지지 않을 그대가 있기에 가슴 뿌듯한 새벽입니다. 오늘 하루도 반듯하게 생각을 정비하고 언어의 씨앗을 뿌리는 멋진 날이길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2019-02-06

캐슬의 반격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어머니 뜻대로 분칠하는 바람에 제 얼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르고 근 50평생을 살아왔잖아요? (중략) 그깟 병원장이 뭐라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허깨비가 된 건 같다고.”‘캐슬’의 절규 중 하나이다. 50대 잘 나가는 의사의 절규. 비록 ‘캐슬’은 종료 되었지만 아직도 허깨비라는 말이 메아리가 되어 귓가를 맴돈다. 의사이면서도 성공에 눈멀어 자신의 딸을 죽게 한 마마보이의 절규이지만, 그 절규의 깊이는 남다르게 보였다. 그 절규가 필자의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흔들어 깨웠다.“당신 얼굴이 뭔데요? 어머니 아들, 예서 아빠, 내 남편, 주남대 교수. 그거 말고 당신 얼굴이 뭐가 더 있는데?”“강준상이 없잖아, 강준상이!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캐슬 부부의 대화이다. 앞의 말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전형적인 이 나라 부모의 마음이다. 그리고 뒤의 말은 드디어 자아정체성에 대해 눈뜬 외로운 영혼의 모습이다. 정말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한서진(예서 엄마)처럼 대답할지 모른다.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누구의 아들, 누구의 엄마 아빠로 산다면 우리는 가까운 시일 내에 강준상(주남대 교수)이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울부짖는 다음의 절규를 똑같이 들을지도 모른다.“어머니랑 제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요.”유명 대학 병원의 차기 병원장 후보라면 외형적으로는 분명 성공한 인생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강준상은 울부짖음으로 말하고 있다. 분명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그리고 외형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사회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런데 불편한 진실은 그런 사람들보다 성공 도착증(倒錯症)에 빠져 사람으로서 가져야 될 기본 소양도 못 갖춘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강준상의 절규를 인용한 이유는 잘못된 인생을 사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부모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과연 나는 어떤 부모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니면 자식들로부터 강준상보다 더 큰 원망을 들을 지도 모른다.“당신도 욕심내려 놔. 예서 인생하고, 당신 인생은 다른 거야.” 울부짖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강준상이 아내 한서진에게 한 말이다. 필자는 지난 주 거리(距離)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부모, 그 중에서 학부모가 되는 순간 거리감각을 잃어버린다. 특히 자녀와의 거리 관계에서는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 해버린다. 그래서 자녀의 의중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녀를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 한다. 그러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로봇이 되어 부모가 입력한 명령어대로 움직인다. 아이들이 자신의 말대로 완벽하게 원격조정될 때 부모들은 자신들이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강할수록 아이들의 개성은 빠른 속도로 죽어간다. 그리고 결국엔 빈껍데기만 남는다. 그 모습을 드라마는 놓치지 않고 극적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혹 아이들의 절규가 들리는가!“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어머니가 의대 가라고 해서 의사 됐고, 어머니가 병원장 되라고 해서 그거 해보려고 기를 쓰다가 내 새끼인지도 모르고 혜나 죽였잖아요. (중략) 날 이렇게 만든 건 어머니라고요. 지 새끼도 몰라보고 출세에 눈이 멀어 그까지 병원장이 뭐라고. 낼모레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어머니가….!”위의 절규는 필자가 뽑은 캐슬의 최고의 절규이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고 심장이 멎는 듯 했다. 과연 필자의 아이들은 물론 학생들이 필자에게 이렇게 따지고 들면 필자는 과연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캐슬의 절규가 곧 현실이 될 것 같은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2019-02-06

영화와 현실의 거리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그거 소설 아니야, 정말 극적(劇的)이네, 같은 말과 동의어로 떠오르는 것은 영화 같네, 일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발생 가능한 사건을 두고 우리는 문학과 예술을 끌어들여 표현한다. 일찍이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고, 세계는 극장이다!”라는 공식에 충실한 극작가였다. 모든 것이 열려 있고 가능해진 르네상스 시대를 연극무대로 실현한 인물. 그래서인지 모르되 그의 드라마에는 예기치 못한 발견과 급전(急轉), 희귀한 살인과 배신이 난무한다.영화관에서 ‘가버나움’을 보다가 문득 현실과 영화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작년에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가버나움’은 무거운 문제를 제기한다. 열두어 살 난 소년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 것이다. 소년은 여동생 남편을 칼로 찔러 복역(服役)하고 있던 터. 범죄자 아들을 두었다고 괴로움과 고통을 호소하는 부모. 부모에게 아이를 그만 낳으라 일갈(一喝)하는 소년 자인. 무엇인가, 그의 속내는?!우리는 자인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 동네 약국을 전전하면서 거짓말로 약사를 속여 마약 성분이 함유된 약을 구하는 자인. 그것이 그들 가족의 든든한 생존담보가 된다. 시리아 난민으로 6년 넘도록 베이루트에서 살아가는 자인의 가족. 하지만 자인의 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도 우리는 모른다. 얼마 전에 생리를 시작한 여동생 사하르. 그녀에게 생리대 구할 돈이 있을 리 없다. 속옷으로 생리대를 만들어주는 자인.불편한 걸음걸이로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사하르.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잡아내는 영사기. 그토록 어리고 여린 소녀를 동네 점방 주인에게 팔아넘기는 자인의 부모. 사하르의 절망적인 거부와 자인의 맹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건장한 사내에게 넘겨진다. 딸아이를 팔아서라도 목구멍에 풀칠해야 하는 자인의 부모. 자식을 낳아 팔아버리는 비정(非情)한 부모를 인정할 수 없는 자인. 그들의 대결 구도로 영화는 진행된다.‘가버나움’을 보면서 의외의 사실에 문득 놀라게 된다. 1982∼1983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80년대 말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베이루트. 영화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내전 시기에 발생한 현대판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선연하게 재연한다.가출한 자인이 케냐에서 온 불법 체류자 라힐과 만남으로써 영화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객석을 인도한다. 거액을 주어야 얻을 수 있는 여권을 손에 넣으려는 라힐. 그녀의 어린 아들 요나스를 돌봐주며 생계를 잇는 자인. 그들의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동거가 냉엄한 현실과 맞닥뜨림으로써 자인은 오갈 데 없는 요나스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 관객은 자인이 언제 요나스를 포기할 것인지에 집중한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익숙한 현실이므로!베이루트에는 불법 체류자들의 아이를 사들여 외국에 내다 파는 인신매매단이 성행하고 있다. 자인은 말도 하지 못하는 젖먹이 요나스를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한다. 자신의 경험과 타고난 심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인. 그가 보여주는 영웅적인 투쟁과 인간애에 우리는 가슴 먹먹해진다. 그는 사하르를 포기한 부모와 확연히 다른 인간이다. 너무 이른 나이의 혼인과 임신으로 인한 사하르의 비극적인 운명과 자인의 칼부림이 영화를 극적인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출생기록도 없는 소년이 법정에서 소리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생물적 욕구로 자꾸만 아이를 낳는 자인의 부모. 그것에 반기(反旗)를 든 소년 자인. 천륜이 무너지는 세상을 아침저녁으로 확인하는 21세기 한국사회가 그나마 나을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안도. 어쩌면 그런 안도감으로 영화관을 맥없이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막장을 애써 외면하는 부실한 인간의 자화상을 확인하면서!….

2019-02-06

설날생각

장규열한동대 교수새 해를 맞는다. 신정을 보내고 다시 맞는 설이라 낯익고 반갑다. 날마다 똑같은 날들이었을 것을, ‘새 해’라 부르며 매듭을 짓고 새롭게 시작할 생각을 어떻게 하였을까. 살아가는 동안 세파에 쌓여가는 주름과 시름을 훌훌 떠나보내고 새 날을 맞는 다짐으로 다시 시작하는 일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개인도 나라도 회사도 학교도 설 명절 몇 날을 보내며 새 기운을 다지고 싱싱한 각오를 새롭게 채운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네 삶이 기름져 가고 풍성해 지기를 모두 기원하며 새 해를 맞는다. 서로서로 다들 모든 일들이 잘 풀려가기를 소원하며 덕담을 나눈다. 나라가 잘 되고 개인이 행복하며 사업도 번창하기를. 적폐라 부르며 딛고 일어서기를 원했고 새 날이 오면 모든 게 잘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였다. 올 한 해도 무엇이든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터이다. 하지만, 왠지 자신이 없다. 왜 그러는 것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갈수록 나아져야 하는데, 갈수록 서 있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우리 집만 그런 것일까. 이게 나라냐 물으며 밝혔던 촛불이었는데, 바로 잡혀 모든 게 좋아졌는가 물으면 돌아오는 답들이 신통치 않다.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수많은 사람들을 묶어서 부를 적에 ‘대중’이라 표현하였다. 큰 무리의 사람들을 통칭하여 부르면서 좋은 리더 한 사람이 멋진 생각을 던지면 모두 함께 따라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실제로 한 때는 그러기도 하였다. 일치단결과 국민총화를 던지고 많은 사람들이 화답하기도 하였으니까. 하지만, 그 시절 그들이 놓쳤던 생각은 ‘민중’이었다.대중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이에 희생하고 억눌리며 빼앗기고 힘든 백성들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를 새기면서, 천천히 가도 모두 함께 가자는 생각으로 ‘민중’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소수의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아져 가기를 기대하였다. 더불어 잘 살아본다는 생각이 뿌리내릴 것으로 설레기도 하였다. 다시는 소외와 차별을 겪지 않으며 함께 성과와 결실을 나누기를 꿈꾸었었다. 이끄는 리더들이 민중을 섬기며 낮은 자리로 내려올 것이었다. 덜 가진 사람들을 향한 배려와 나눔이 풍성해 질 터이었다. 보통사람들이 어깨를 펴는 날이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하였다. 조급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 세상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새 해는 나아질까 기대도 하고 혹 희망고문이면 어떻게 하나 우려도 된다. 이념의 방향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세상의 좋은 생각들을 폭넓게 담을만한 큰 그릇이 필요하다. 지극히 소수의 극우와 극좌를 빼고 나면, 보통 사람들은 모두 오른켠과 왼켠 사이의 어디쯤에 있다. 안보에 관해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 교육에 관해서는 매우 진보적일 수 있지 않은가. 아니, 그 한 사람도 한 가지 이슈에 대하여 한 때는 보수적이었다가 시류에 따라 얼마든지 진보적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정치권이 사람들을 이념의 틀 안에 가두는 일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그래서 쓰이는 표현이 다중(Multitude). 끈끈하고 든든한 연결고리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SNS 등의 약한 연결을 가진 사회집단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대중 또는 민중처럼 구심점을 공유하지 않으며 특정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함께 행동하면서,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며 존재한다. 촛불에 동참했던 이들은 다중이 아니었을까. 적폐와 구습을 몰아내는 일에 불꽃처럼 함께 하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그러니 쉽지 않을 터이다. 평등과 자율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다중을 우리의 리더들은 어떻게 섬겨야 할까. 새 해에는, 이념으로 재단하지 말고 능력으로 증명하시라. 탕평(蕩平)과 대동(大同)은 오늘 필요한 생각이 아닌가.

2019-02-06

명절 증후군

명절 증후군은 대한민국에서 명절을 보내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현상을 말한다. 실제 병은 아니며 심한 부담감과 피로감이라는 증상을 호소한다. 여성의 경우 명절에 필요한 음식 장만 및 뒷처리와 같은 가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 되며, 남성의 경우 명절 동안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발생하는 운전자의 피로와 장시간 차량에 탑승하면서 발생하는 멀미, 정신적 스트레스까지도 포함된다. 직장인의 경우 기존 일상 생활과 다른 긴 연휴로 인해 생체 리듬이 깨진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특히 설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이는 행사에서는 며느리들이 마음고생이 심하다. 힘든 명절 준비는 물론 말로 상처받아도 당장 내색하기 어렵다. 한번 우울감에 빠져들면 명절이 지나도 한동안 지속되며, 설을 전후로 높아진 우울감이 해소되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번진다. 이처럼 겨울에 우울감이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계절성 정서장애’로서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 설 명절인 겨울에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건강한 사람이라도 뇌의 기분조절 충추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한다. 팔, 다리가 무겁고 몸을 움직이기 싫어진다. 평소 하던 집안 일도 귀찮아진다. 이럴 경우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기 쉽다. 식사량이 많아지고 단맛을 좋아하게 되며, 평소보다 수면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계절적 정서장애, 일명 ‘겨울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오전에 20분 정도 밖에 나가 걷는 게 좋다. 햇볕은 우리의 눈을 통해 뇌로 들어와 ‘행복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생산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 친구나 가족들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아내의 명절증후군이 심하면 남편도 모른 척 하지말고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격적인 우울증으로 빠져들 수 있다. 우울감이 인간관계나 직장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반드시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우울증은 주위의 도움말이나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처방에 따라 꼭 약을 먹어야 낫는 병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2-06

소풍이 즐거우려면

수행을 통해 높은 인격에 도달한 스님 한 분이 있습니다. 사심과 물욕 없는 고결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분 소유는 딱 하나. 난초였지요. 소박한 거처에 생명이라고는 자신과 난초뿐, 온 정성 다해 돌봅니다. 여름이면 그늘을 찾아 부지런히 옮겨 주고 겨울에는 떨면서도 실내 온도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난초들은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과 연둣빛 꽃을 피워 스님을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상 청청했습니다. 다래헌을 찾은 손님들은 한결같이 난을 보고 좋아했지요.여름 날 잠시 외출한 스님. 눈부신 햇볕이 쏟아져 내리고 개울물의 소리와 숲의 매미들이 목청을 한없이 돋우는 순간 깨닫습니다. 난초를 뜰에 내 놓은 채 그냥 외출해 버렸다는 것을.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지고, 난초가 어른거려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만남도 허둥지둥 마치고 급히 돌아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난초 잎은 축 늘어져 있습니다. 급히 샘물을 길어 축여주니 겨우 고개를 들었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날 밤. 스님은 깨닫습니다. 집착이 괴로움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난초에 집착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결심하지요. 이 집착에서 벗어나기로. 산방에 올라온 친구에게 이 난초를 맡깁니다. 횡재에 친구 얼굴이 환해집니다. 스님 마음도 환하게 밝아옵니다. 아쉬움 보다 해방감을 느낍니다. ‘무소유’로 잘 알려진 법정 스님 일화입니다. 스님은 이 사건 이후 하루에 한 가지 자신의 소유를 버리겠노라 다짐합니다.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는 사사키 후미오 씨는 1년 동안 자신의 소유물 95%를 처분합니다. 11년 정든 집을 팔고 6평 조그만 원룸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삿짐을 싸는 데 30분 걸렸다고 하죠. “물건이 줄어드는 것만큼 마음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어요. 소유물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책 읽기도 글쓰기도 훨씬 더 많은 시간 할애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신기한 일입니다. 이제 이삿짐 꾸리는 시간을 15분으로 줄이는 게 제 목표입니다.”끊임없는 덧셈만이 삶의 지름길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과잉 소비 조장 풍조에 속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을 일절 소유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소박한 행복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은 반가운 현상입니다. 소풍은 두 손이 가벼워야 행복합니다. 인생 소풍이 진정 아름답기 위해 올해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대와 함께 고민하는 날 많아지기를! /인문학365 대표

2019-01-31

내가 하면 괜찮은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내로남불이란 단어는 이제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내로남불의 정부의 정책이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최근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이 “취업되지 않는 학생들을 왕창 뽑아서 태국·인도네시아에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라며 “아세안(ASEAN) 국가는 ‘해피조선’이다”라고 밝혀 비난 여론에 휘말렸다.사실 김 위원장의‘해피조선’발언은 몇 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동 발언과 유사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동 4개국 순방의 성과 등을 설명하면서 국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는 여기대로 하면서 청년들이 지금이라도 빨리 해외에서라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면 한다라며 “대한민국 청년이 다 어니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라고 말했다.그 당시 그 발언으로 박 대통령과 정부는 큰 홍역을 치루었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고 상처난 곳을 아프게 한다고 당시 정부를 심하게 공격한 바 있다.그런데 똑같은 발언이 현 정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물론 김 보좌관이 즉각 사임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 현 정부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더 당황스럽게 만든 발언은 그는 “지금 50~60대는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 인도로 가라”라고 발언했다. 꽤 충격적인 발언이다.할 일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국민의 책임인가? 그리고 험악한 댓글이 왜 달리는 것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또 갑자기‘예타’라는 단어가 언론을 강타하고 있다. ‘예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말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정부가 23개 지역 사업에 예타 면제를 한다고 한다. 총 24조원의 엄청난 규모이다.명분은 균형발전이다. 지역경제의 활력이 저하되고 수도권과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지역의 자립적인 성장 발판 마련을 위한 국가의 전략적인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라는 것이 명분이다.동해선전철화, 울산외곽순환도로 등 동해안 발전을 위한 몇 개의 프로젝트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의 대형 프로젝트도 있다. 경북·포항지역엔 아마도 희소식일 수도 있다.문제는 이명박 정부시절 4대강 사업을 두고 당시 야당이었던 현 여당은 예타 면제를 받은 프로젝트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한 적이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대표 시절 22조원을 낭비한 이유가 바로 예타면제였다고 예타면제를 공략한 적이 있다.예타 면제를 반기는 지역들을 위해서 좋은 소식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이나 또는 예산 전체 관점에서는 예타면제는 결국 내로남불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지자체들이 신청한 사업에 우선순위가 밀려 정작 필요한 사업이 예타 면제를 받지 못할 위기에 있다면 이도 큰 문제 일 수 있기 때문에 예타 면제는 신중해야 한다.또한 SOC 사업에 대한 예타면제를 비판하며 경기부양책으로 SOC 카드를 꺼내지 않겠다던 현 정부는 결국 SOC 카드를 꺼내 들었다.결국 “내가 하면 괜찮다”는 모습이다.모든 정책에서 내불남불이 적용되면 어떨까? “남이 하면 안 되는 건 내가 해도 안 된다”는 공평한 정책을 펼날을 기다려 본다.

2019-01-31

올바른 투자와 윤리

김학주 한동대 교수투자수익률을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시장 평균을 따라가는 지수(index) 수익률을 베타수익률이라고 부른다. 즉 시장 내 모든 자산에 분산투자하여 얻은 수익률이다. 반면 사람이 유망한 자산만을 선별하여 투자한 수익률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 수준이 시장평균 수익률보다 높을 것으로 기대할 것이고, 그 초과분을 알파수익률, 또는 초과수익률이라고 부른다.지난 23일 인덱스 펀드의 선구자인 뱅가드(Vanguard)의 존 보글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투자전략의 철학은 무엇일까? 그는 평균이상의 수익률을 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즉 개별종목에 집중하지 말고 잘 분산된 인덱스에 투자하라고 권고한다. 즉 알파수익률보다는 베타수익률을 추구하라는 것이다.결국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자는 자세다. 단기적으로는 사람이 재주를 부려 높은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실수를 하게 되고, 초과수익을 반납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기대했던 초과수익률은 얻지 못하고, 쓸데없는 거래 수수료나 수익률의 변동성같은 비용만 지불하게 되므로 이런 무모한 행위는 지양하자는 것이다.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존게임(survival game)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유기체이므로 이를 반영하는 주가도 부침은 있을지언정 성장하게 되어 있고, 거기에 참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종목에 집중 투자하여 타격을 입었을 때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위험을 피하자는 측면에서는 존 보글 회장의 주장에 동의한다.그러나 신성장산업은 분명히 초과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지금처럼 부의 불균형이 심각한 가운데 이런 기회조차 활용하지 못한다면 ‘없는 자’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투자수익률이 의미를 가지려면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만의 유니버스(universe)가 필요하다. 유니버스란 자신이 90% 이상 알고 있어 남들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그래서 실수를 덜할 수 있는 투자자산들의 집합을 말한다. 그 안에서만 투자하면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믿을 수 있는 수익률을 얻게 된다.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초과수익을 원한다. 점을 보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귀신의 힘을 빌어 자신에게 걸맞지 않은 결과를 원한다. 한편 펀드매니저들은 보아서는 안될 기업 내부 정보를 보고 싶어한다. 이런 불법을 통해 그 당시에는 짜릿한 성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내부정보에 중독된 펀드매니저가 공부를 할까? 그에게 실력이 쌓일까? 이것이 귀신이 원하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사람을 넘어뜨리는데 있기 때문이다.가끔 투자자분들이 전화를 걸어 와 투자 자산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종목을 추천해줘도 따라 사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충분한 이해가 없이는 매수를 결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따라 샀다고 해도 팔지를 못할 것이다. 적정가치에 대한 이해력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자산을 골라 주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이해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다.지속 가능한 수익률을 얻는데 있어서도 윤리는 도움이 된다. 단순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좁은 의미뿐 아니라 자신의 투자원칙을 만드는데 있어 윤리는 필요하다. 미국 재무분석사(CFA)를 비롯한 투자 및 재무 관련 각종 시험에 윤리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뛰어난 펀드매니저가 가끔 감옥에 가는 것을 본다. 그가 지켜왔던 투자원칙과 유니버스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인간은 나약해서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넘어서는 안될 선을 윤리가 제공해 줄 것이다.

2019-01-31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저는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못 뵙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께서도 아버지 젊어서 돌아가셨다 합니다. 계모님 밑에서 자라난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늘 외로워 보이시고 저도 그런 아버지를 닮았음을 나이가 들고서야 깨달았습니다.대신에 외갓집에는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당당히 계셨습니다.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 전부 학교 선생님한테 시집 장가 보내서 가난한 외손자 외손녀들이 방학 때마다 달려들어 하나뿐인 외숙모를 어지간히 괴롭혀 드렸습니다.겨울에도 외할아버지는 늦게 일어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외손자들끼리 건넌방에 진을 치고 엉겨서 늦잠을 자다 보면, 대빗자루로 앞마당 썩썩 쓸어대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젊어서부터 늘 부지런만 하셨던 외할아버지는 대놓고 혼내지는 않으시면서도 뭐라고 궁시렁 궁시렁 불만 섞인 소리를 하십니다. 눈 비비며 일어나야 합니다. 더 화나시면 큰일이니까요.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보다 더 건강하셨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초파일 앞두고 우물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다 뇌출혈인가로 돌아가시고 나서도 외할머니는 오래오래 삶은 돼지고기 즐겨 드신 덕분에 몸에 살이 다 빠지도록 구순이 다 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말년이 되셔서는 손자들이랑 화투 치는 걸 좋아하셨는데요, 한 판 한 판 돌 때마다 어찌나 진지하게 몰입을 하시는지 제가 그만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니까요. 젊어서부터 한 번도 ‘경우’ 빠지는 일은 안 하시던 분인데 저랑 화투 칠 때만 그 경우가 가끔씩 빠졌습니다.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벌써 설날이 가까웠나 봅니다. 설날 가까우면 돌아가실 때 공교롭게도 두 분 다 찾아뵙지 못한 제 못난 날들 생각이 납니다. 외할아버지 때는 머리에 ‘미친바람’이 들어 집에 연락도 끊고 돌아다니고 있었고 외할머니 때도 또 다른 ‘미친바람’으로 사람 아니었습니다.두 분 살아계시던 북문리 생각이 납니다. 눈이 펑펑 내려 어린 무릎까지 쌓이고 논두렁에 얼음이 얼고 물 가둔 방죽에 썰매 타는 아이들 신이 납니다. 외손자, 외손녀가 두 분 아래로 자그마치 열아홉, 친손자 손녀까지 합하면 자손이 스물 하고도 둘이나 되었습니다. 신나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뵐 것을, 후회 막심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라도 계셔서 다행천만이지요. 일가붙이 하나라도 아쉬운 세상입니다.눈도, 흰떡국도, 백설기도 모두 하얀 설날이 옵니다. 하얀 사랑이 그리운 때입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권정찬한국화가

2019-01-31

어불성설(語不成說)

“세 번을 신중히 생각하고 말을 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교훈은 몇 백번 되새겨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이란 본래 완벽하지가 않아 누구나 실수를 범하기가 쉽다. 특히 말로 하는 실수는 돌이킬 수가 없기에 세 번을 생각하고 한번을 말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공인(公人)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중국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의 기준으로 삼았던 신(身) 언(言) 서(書) 판(判) 네 가지 중 말씨(言)가 포함돼 있다. 용모와 글씨와 판단력과 함께 관리가 지켜야 할 품격으로 언변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말에는 신중함과 품위, 정직함이 있어야 하므로 관리가 될 사람의 덕목으로는 당연하다.말을 잘못하여 어려운 일을 겪게 되는 경우를 구설수(口舌數)에 오른다고 한다. 설화(舌禍)는 혀를 잘못 놀려 당하는 화라는 뜻이다. 또 사람의 언변이 좋을 때 비유하는 말로 삼촌설(三寸舌)이라는 표현을 쓴다. 세 치의 혀라는 뜻이다. 모두 사람 입안에 있는 혀를 두고 나타낸 표현들이다. 비록 세치의 짧은 혀지만 잘 간수하고 신중하게 놀려야 한다는 의미다.“혀 밑에 도끼가 있다”는 우리 속담은 말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은 쓰기에 따라 돌아오는 반응도 여러 갈래다. 서양 격언에도 침묵이 금이다”고 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말에 대한 신중함을 경고한다. 불교에서는 구업(口業)이라 하여 사람이 입으로 저지르는 죄업을 이렇게 불렀다. 남을 욕하거나 속이는 말이 이에 해당하며, 남을 이간질을 하거나 요망한 말로 현혹시키는 것도 구업이라 한다.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구설수에 올라 사표를 내고 말았다. 사표라지만 사실상 문책성 인사로 보인다.그가 조찬 모임에서 던진 말이 기 막힌다. “50, 60대는 조기 퇴직했다고 할 일없이 산에만 다니지 말고 동남아로 떠나라”란다. 도대체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사람의 발언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이런 때 쓰는 말이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요 인격이라 했다. 삼사일언의 교훈을 되새겨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1-31

판도라의 상자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알아 봤자 좋을 게 없거나 위험한 비밀을 가리키는 말이 ‘판도라의 상자’다. 그 유래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다. 신들의 우두머리였던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불을 준 것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를 이용해서 인간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로 했다.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진흙으로 여자를 빚으라고 명령했다. 그 여자에게 제우스는 생명을,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헤르메스는 말솜씨를, 아폴론은 음악의 재능을 주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 바로‘판도라’였다. 판도라를 본 에피메테우스는 첫눈에 반했다. “신들이 주는 선물을 좋아하지 마라. 반드시 뭔가 꿍꿍이속이 있을 거야.” 형 프로메테우스가 이처럼 주의를 주었지만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아내로 맞이했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보내면서 작은 상자 하나를 주었다. “이것은 신들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절대로 열어 보면 안 된다.”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판도라는 문득 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절대 열어 보지 말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궁금했다.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연 순간, 욕심, 시기, 원한, 질투, 복수, 슬픔, 미움 등의 재앙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상자 뚜껑을 닫았을 때 그 안에 남은 것은 딱 하나, 희망이었다. 그것을 안 판도라는 희망을 꺼내 주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희망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유래로 사람들은 알아 봤자 좋을 게 없거나 위험한 비밀을 가리켜 ‘판도라의 상자’라고 부르게 됐다.정치권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으로 비견될 만한 사건이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1심에서 징역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이 모두 발칵 뒤집혔다.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따라서 이날 1심 판결이 상급심에서 확정되면 김 지사는 지사직을 잃게된다. 김 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 무렵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당선 등을 위해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특검팀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9일 드루킹이 운영하는 느릅나무 출판사를 찾아 ‘킹크랩’초기버전의 시연을 본 뒤 본격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승인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킹크랩을 이용한 드루킹 일당의 조직적인 댓글조작을 충분히 인식했으며, 더 나아가 작업할 기사목록, URL 등을 주고받으며 댓글 조작을 지속적으로 승인·동의했다고 판단했다.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일명 ‘촛불혁명’으로 새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가 댓글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현 정권의 정당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야권은 벌써부터 특검을 요구하며 정국주도권을 휘두를 태세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였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31일 자신이 최대 피해자임을 웅변하면서 드루킹사건 추가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 추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에 김 지사는 판결 직후 변호인을 통해 “재판장이 양승태와 특수관계”라며 “진실을 향한 긴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말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판결을 내린 재판장을 ‘사법농단 세력’으로 규정하고, 일각에서는 판사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가뜩이나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등으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국정지지도가 낮아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드루킹 사건은 결코 열려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가 느닷없이 열린 꼴이 됐다.

2019-01-31

물루와 시지프

송귀연 수필가물루의 걸음걸이는 도도하고 아름답다. 턱을 약간 쳐들고 ‘S‘ 라인의 몸매를 유지하는 폼은 거의 환상적이다.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시키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백조의 호수’의 발레리나다. 식사할 때도 고급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귀부인처럼 우아하다. 아무리 맛좋은 음식이라도 금방 달려드는 일이 없다. 천천히 다가와선 혀로 조금 맛을 본 후 잠시 뜸을 들였다 느긋하게 먹는다.반면 남편이 좋아하는 시지프는 수컷이다. 정확한 혈통을 알 수 없는 호랑이 무늬 빛으로 치장한 녀석이다. 시지프는 우둔하다 못해 미련스럽다. 물루와 시지프가 어떻게 동일한 고양이 과(科)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애교를 떨며 시도 때도 없이 내 곁으로 와서 교태를 부린다. 교양 없이 함부로 날뛰고 걷는 모습은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다. 음식을 주면 게걸스럽게 다먹어치우곤 배탈이 나서 병원신세를 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암컷인 물루는 청회색 빛 털이고운 미모의 러시안 블루이다. 물루의 도도함은 훌륭한 혈통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싫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주인인 내가 가까이 가려해도 언제나 거리를 둔다. 마치 속만 태우는 짝사랑 같다. 새침데기이고 깐깐해서 여간해선 정을 주지 않는다. 물루는 조금만 수가 틀려도 발톱을 세우고 나를 할퀸다. 요즘의 내 몸에 난 상처는 모두 물루의 짓이다. 물루는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결코 인간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아니 인간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루의 그런 교만이 좋다.물루와 시지프는 작년 여름,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다. 외국으로 나가게 된 딸이 같이 데리고 있던 녀석들을 강제로 떠맡긴 것이다. 그때까지 짐승을 키워보지 않았던 터라 거절했지만 키워보면 정이 들 거라며 막무가내로 두고 간 것이었다. 처음엔 먹이를 챙겨주랴 목욕시키랴 병원에 데려가랴 성가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물루와 나는 많이 닮았다. 나는 성격이 깔끔하여 매사가 반듯하고 내성적이라 쉽게 다른 사람과 친화하지 못한다. 그런 탓에 친구도 별로 없고 바깥나들이도 자주가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두루뭉술하다. 대인관계가 원만해서 친구도 많을 뿐 아니라 매사가 낙천적이다. 도대체 남편은 고민이 없는 사람 같이 보인다. 부부싸움을 하려고해도 남편이 먼저 웃고 말아서 싸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은 두 녀석이 장난치다 문갑위에 놓인 어항을 건드려 깨뜨린 적이 있었다. 방안에 물이 넘쳤고 어항속의 금붕어가 방바닥에 파닥거렸다. 내가 달려갔을 때 물루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두어 발짝 물러나 예의 그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시지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종아리를 파고들었다. 물루는 어항을 깨뜨린 것에 대해 반성도 하지 않고 또,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던진 걸레를 슬쩍 피하기까지 하면서.심한 독감을 앓은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다보니 비몽사몽,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제법 헛소리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문득 깨어나니 발치에 물루가 앉아 있었다. 시지프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는 물루가 제 주인이 아프니까 측은지심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녀석을 껴안아 주려고 가만히 다가갔다. 그러나 물루는 한 발짝 물러서며 포옹을 허용하지 않았다. 얄미운 녀석! 못이기는 척 한번 안겨주면 어때서.오늘도 두 녀석은 방 안을 뛰어다니며 저희들끼리 재미있게 논다. 어쩌면 세상은 한 가지 색깔로만 살아지진 않을 것이다. 교향악처럼 여러 다양한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배려할 때 아름다운 공동체는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물루는 여전히 도도하고 시지프는 우직하다.

2019-01-31

관념의 무게

△관념: 생각의 틀우리는 너무도 쉽게 생각의 틀에 갇힌다. 파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 바깥으로 나가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바깥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뿐이다.우리는 저마다 사물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관념이나 개념을 그냥 대상에 대한 이미지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면 쉽다.사과를 떠올려보라. 어떤 사과가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빨갛게 익은 탐스럽게 생긴 사과를 떠올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연초록색의 사과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개념과 이미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상에 대한 개념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감자의 실종백수린의 소설 ‘감자의 실종’은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실제의 세계가 아니라 언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감자(potato)라는 단어를 강아지(puppy)로 오해하고 살아온 여주인공이 있다. 그녀는 어느 날 회사 동료가 “나 오늘 감자 삶아왔어”, “우리 오늘은 감자탕 먹을까?”와 같은 말에 경악한다.그녀는 동료가 ‘강아지’를 먹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감자’가 ‘강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인공은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감자’를 ‘강아지’로 오해했다면 그동안 그녀가 알고 있었던 ‘강아지’는 무엇일까?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는 ‘강아지’를 ‘신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감자’를 ‘강아지’로, ‘강아지’를 ‘신념’으로 알아왔다면 ‘신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단어공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할 정도로 혼란한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말 전체를 의심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결국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에 이르고 만다.‘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글자는 기호일 뿐이다. 강아지라는 실체적 대상과 ‘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기호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글자가 강아지라는 대상을 지칭하게 된 데는 어떤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1857∼1913)는 이것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불렀다. 만약 ‘ㄱㅏㅇㅇㅏㅈㅣ’와 실제 강아지가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감자와 강아지를 헷갈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ㄱㅏㅇㅇㅏㅈㅣ’와 실제 강아지는 꽉 맞물려 있어 ‘ㄱㅏㅇㅇㅏㅈㅣ’라는 글자를 강아지인 것처럼 느낀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곧 실제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겨우 이런 글자나 말이다. 그것도 자의적이며 우연적이기까지 한 그런 언어에 기대어 정신을 함양한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나약하고 연약하다. 그런 것 위에 세워진 정신이라고 불리는 관념은 또 얼마나 초라한가?△나약하지만 동시에 견고한 관념에 대해관념은 강하지도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다. 그런데도 관념을 신봉한다. 리차드 트레비식은 제임스 와트보다 수십 년이나 일찍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만들었지만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고방식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은 생물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증기기관차는 인간이 창조해낸 말(馬)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라는 불안, 그런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사람은 이것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꺼렸다. 실제로 기관차가 널리 사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우리의 관념은 강하며 실제 생활에서 물리적 힘을 발휘한다.사과는 처음부터 빨간 것이 아니라 꽃에서부터 시작해서 녹색이 었다가 점점 붉어진다. 그것도 특정한 사과가 그럴 뿐, 익어도 녹색인 사과는 얼마든지 많다. 자신이 알고 있는 관념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위험해진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살색이 황색이나 살구색에 가깝다는 것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면 검은색 같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때부터 인종에 대한 편견이 생겨난다.이러한 차별의 극단에 히틀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게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하고 위대한 민족이라는 관념을 심었다. 이러한 관념이 심겨지자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부하가 되기를 자청하며 전쟁터에 나가 장렬히 전사했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했다. 관념은 미약하고 볼품없는 언어를 기반으로 그보다 더 별 볼일 없는 우리의 인식 속에 싹을 틔우지만 그것이 자라나면 그 관념은 튼튼히 뿌리내리고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여기게 만든다. 자신의 관념을 믿고 거기에 의지할 때 그리하여 그 관념 속에 안주하고 평안을 누리고자 할 때 엄청난 폭력을 낳게 되고, 그 대가는 자멸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관념: 한계이자 자유왜 인간은 자신이 가진 관념이나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왜 잘못된 관념을 쉽게 깨뜨리지 못하는 것일까? 뇌과학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기존의 관념을 고수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른손에 20kg 짜리 아령이 묶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가급적이면 왼손을 사용하고자 할 것이고, 왼손으로 할 수 없는 일에만 오른손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우리의 뇌에도 이러한 아령, 즉 관념에 묶여 있어서 새로운 생각을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다고 한다.그렇다고 해서 관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대상에 대한 아무런 관념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장소에 가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물을 보거나,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음식을 먹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가. 이런 것에게서 무서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이 무서운 이유는 그 속에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다.이처럼 정말 무서운 것은 알 수 없음에 있다. 관념은 대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인식이 설령 왜곡된 것이라 해도, 그 왜곡을 딛고 대상에 대한 앎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핵심은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간파하는 것이다. 관념을 가질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겨난 관념을 신봉할 때 모든 문제가 생겨난다.관념은 우리의 생각을 가두고 사물의 특정 부분만 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 때문에 대상에 대한 인식과 정보를 모을 수 있다. 관념은 기회이자 동시에 자유다. 관념을 잘 이용하여 세계를 인식하기도 해야겠지만 그렇게 사용된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관념을 슬기롭게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한다.

2019-01-31

SKY 캐슬의 질문 없는 배움

김현욱 시인지난 25일은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한국과 카타르의 8강전이 열린 날이다.동시에 JTBC 드라마 ‘SKY캐슬’ 최종회가 결방된 날이기도 하다. SNS에서는 축구 때문에 ‘SKY캐슬’이 결방된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왔다. 도대체 ‘SKY캐슬’이 뭐길래?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SKY캐슬’과 관련된 글들이 부지기수였다. ‘SKY캐슬’의 ‘SKY’가 뭘 의미하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학창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공부. 정작 공부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도올 김용옥 선생에 따르면, ‘공부(工夫)’는 영어 ‘to study‘의 번역어로 ‘도움을 주어서 공을 이루다’라는 의미다. 공부(工夫)의 어원은 ‘공부(功扶)’와 같은 것으로 ‘공(功)’은 ‘힘을 더해 이루어 내다’라는 말이고, ‘부(扶)’는 ‘돕다’라는 뜻으로, 이를 합치면 ‘성공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돕는다’라는 의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에서 ‘스스로 돕는’것이 바로 공부다.그동안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공부 좀 하란 말은 ‘스스로를 도와라!’는, 엄청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앞으로 자녀와 학생들에게 ‘공부해라!’하지 말고 ‘스스로를 도와라!’라고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했으면 좋겠다. 심오한 뜻이 잔소리로 들리지 않게 말이다.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질문 없는 배움’에 대해 일깨워 준다. 장면은 이렇다. 성균관 유생들의 첫 수업 시간, 요강을 든 정약용이 교실로 들어선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맨 먼저 나온 질문이 ‘성적 처리’다. 정약용은 기다렸다는 듯 “내 수업 시간에 불통이 다섯이면 낙제, 수업이든 활동이든 성균관에서 낙제가 셋이면 출재와 동시에 청금록영삭(유생의 명부에서 삭제되는 일)인 건 알고들 있을 테고……. 그래서 준비했다.”면서 요강을 내밀고는 뇌물을 요구한다. 성적이라는 말에 긴장한 유생들은 금반지와 가지고 있던 돈을 요강에 넣지만 이선준이라는 유생은 문제를 제기할 기회를 엿본다. 정약용은 돈을 걷은 뒤에 요강에 든 색색의 천을 꺼내고 불꽃을 일으키고 사과를 꺼내 유생들에게 던져 주는 등 신기한 광경으로 유생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때 이선준 유생이 문제를 제기한다.“그만두십시오. 지금은 논어재 시간입니다.” “이런, 못난 스승이긴 하나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네.” “한데 어찌 서역의 잡기로만 귀한 상유들의 시간을 탕진하십니까?” 그러자 정약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들고 있던 요강을 떨어뜨려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리곤 이선준의 질문에 답한다. “논어 위정편, 군자불기에 대해 강했네. 군자는 한정된 그릇이 아니라, 진리를 탐하는 군자라면 갇혀 있는 그릇처럼 편견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강했네. 서역의 잡기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는 건 무슨 고약한 편견이며 정약용이란 놈이 서학을 좀 했다 해서 고전을 싫어할 거라는 무지몽매함은……. 참 용감하기도 하군.”(이하 중략)서슬 퍼런 정약용의 말에 누워있던 문재신마저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적 발표. 이선준만 통을 받고 모두 불통. 당혹해하는 다른 유생들의 질문에 정약용은 이렇게 말한다.“그래서다. 이 엉터리 수업에 불만을 제기한 유일한 학생이니까. 진리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 준 세상은 사라지고 없다. 스승이란 이렇게 쓸데없는 존재들이다. 허나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이선준이 통인 이유다.”

2019-01-30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청소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스톡홀름에서 패션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출산 후 프리랜서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녀는 최근 가까운 친정과 시댁 어머니 두 번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하지요. 가족들과 집을 정리하다가 친정 어머니 물건에 메모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버릴 것, 벼룩시장에 내다 팔 것,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 등 꼼꼼한 요청이었습니다. 연달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물건 정리가 다 끝난 후 그녀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왜 죽은 다음에 물건을 타인이 정리해야 하는 거지?” 살아 생전 스스로 데스 클리닝을 해 보리라 결심합니다.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 병 초기 증세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브렌다이스 대학 동료 교수가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힘겹게 장례식에 다녀온 후 모리 교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야! 다들 고인을 칭찬해 주었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으니 말이야.” 자신도 병이 깊어지고 더 이상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모리 교수는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떠올립니다. 부랴부랴 몇 군데 전화를 걸지요. 날을 정해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어느 쌀쌀한 일요일 오후 집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입니다. ‘모리 슈워츠의 생전 장례식’.죽은 뒤에 치를 장례식을 미리 앞당겨서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치른 것이지요. 참가자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하며 모리 교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 환하게 웃는 사람, 시를 손수 지어와 읊어준 사람. 모리 교수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습니다. 가슴에 묻어만 두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모리 교수는 이날 다 쏟아냅니다. 생전 장례식은 모두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삶을 어지럽히고 복잡하게 만드는 물건들, 관계들, 경험들. “만약 내일 내가 죽는다면?”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자세로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면, 우리 눈이 밝아져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분별하며 살 수 있겠지요.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계속 질문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다르지 않습니다.1월의 마지막 날, 한 번 팔 걷어 부치고 함께 묵은 것들을 비워내는 대 청소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버려지고 소멸되는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앞당겨 대 청소를 시작하며 인생을 돌아보는 지혜가 그대와 나의 삶을 한 뼘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요? /생각학교ASK 대표

2019-01-30

예타면제와 균형발전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1월 29일 정부는 사업비 24조원에 이르는 23개 사업의 예비타당성 (예타) 조사를 면제했다. 예타조사는 국가예산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공공사업이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사업실행여부를 평가하는 사전조사를 뜻한다. 그것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개인과 정파의 자의적인 국가예산 오남용을 방지하는 최소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촛불로 출범한 정권이 지난 정권들의 그릇된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정부가 내세운 예타면제 근거는 국가의 균형발전이다. 경제부총리는 “수도권과 여타지역의 격차가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 오기 전에 균형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예타면제의 일차적인 목적이며, 경제 활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말한다. 이런 논조는 1월 24일 대통령의 지적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우리가 경제성보다 균형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도 예타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지자체 사업이 많아 예타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효율적인 예산집행을 위해 국가가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라 전체를 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이라면 쌍수 들어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러하되 예타면제 대상사업 선정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은 면밀히 들여다볼 구석이 없지 않다. 우리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4대강 사업이나 경인 아라뱃길 사업 같은 대표적인 혈세낭비 사례 때문이다.200만 년 넘게 흘러 자연스레 조성된 강을 마구잡이로 파 뒤집고 시멘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강을 죽이는데 불과 2년 만에 24조원의 거액을 탕진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4대강 사업.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과 얼추 비슷한 시기인 2009년 중국은 ‘항주오 (港珠澳) 대교’를 착공하여 2018년 준공한다. 홍콩과 주해, 마카오를 바다 위로 연결하는 세계최장의 기념비적인 다리로 길이가 55km에 이르며, 해수면 다리길이만 해도 23km에 이른다.왕복 6차선 다리로 홍콩과 마카오를 연결함으로써 그동안 자동차로 4시간, 배로 1시간이 소요되던 홍콩-마카오 운행시간이 30분대로 단축됐다. 우리가 일쑤로 얕잡아보는 중국의 저력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중국을 사회주의 통제사회라고 하지만 그들은 국가경제와 인민의 복리민복을 위해 22조원 예산으로 세계건설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자연을 파괴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탕진한 4대강 사업과 천양지차가 아닐 수 없다.예타면제는 예산낭비 우려와 아울러 정치적 판단을 고려해야 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 중요한 선거를 목전에 두고 권력을 장악한 정권이 예산을 전횡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 예타조사다. 따라서 24조원이 투입될 공공사업의 예타면제는 ‘이하부정관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瓜田不納履)’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여기저기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 시점이다. 그런 연유로 청년 일자리 창출과 사회 저소득층의 사회적 안전망확충 같은 사안이 절박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토건사업에 거액의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시간과 더불어 예타면제 사업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지 여부가 드러날 터이나, 무엇인가 찜찜한 생각이 고개를 내밀고 있음은 진지하게 부정하기 어렵다.예타면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칙에 입각하여 원칙을 지키고 원칙에 따라 평가받겠다는 현 정권의 정치철학이 훼손되지 않을지, 하는 우려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이 내세운 금과옥조(金科玉條)인 ‘원칙’을 타협하고 한 걸음 물러섬은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자세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예타면제를 재삼재사 숙고하여 국가예산의 효율적인 집행과 나라 전체의 균형발전을 이뤄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9-01-30

사회적 대화의 함정

사회적 대화는 경제주체들이 한데 모여 경제, 사회, 복지 등 다양한 쟁점을 논의한 뒤 포괄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보통 노사정 대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서 노사정은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를 축약한 말이다.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대타협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적 대타협의 대표적인 사례는 네덜란드 노사정 대표가 1982년 체결한 바세나르협약이다. 당시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임금인상 자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분배를 통한 고용 창출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 78개 사항의 협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하고, 시간제 고용 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식을 도입했다. 그리고 정부가 재정 및 세제로 이 협약을 지원한 결과, 네덜란드는 재정안정과 고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우리나라에서는 탄력근로 확대, 최저임금 개편, 국민연금 개혁,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과제들이 산적해 사회적 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개혁과제를 다루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민노총이 경사노위 불참을 결정하고, 한국노총도 31일 경사노위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로부터 대화 거부의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경사노위가 삐걱 거리면서 사회적 대화 무용론과 함께 폐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즉, 현재의 사회적 대화는 국민의 결정이 아니라 경사노위 합의를 빌미로 정치투쟁을 선동해 국가의 정잭결정 과정이 왜곡되고 결국 사회적 갈등도 해결할 수 없고, 지난 20여년 동안 성과도 미진한 만큼 이제 폐지를 생각해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게 당사자들의 자발성과 필요성이 없으면 성공한 사례가 없는데 지금껏 투쟁으로 모든 걸 얻어온 노동계가 협상으로 주고받는 사회적 합의에서 뭘 내놓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 대화에 집착하면 오히려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게 사회적 대화의 함정이 아닌가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1-30

역사의 기억

장규열한동대 교수‘평생 누구에게도 정을 주어보지 않았어.’ 김복동 할머니가 한 인터뷰에서 토로했던 고백이었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섰던 길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었을 것이니 어찌 그러지 않았을까. 세상에 누구를 믿으며 누구와 살가운 정을 나눌 수 있었을까. 그가 살아온 세상이 얼마나 미웠을까. 그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랬던 그가 한 자락 소원도 풀어보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고 말았다. 함께 아픔을 나누었던 이들에게 마지막 남긴 한 마디가 ‘끝까지 싸워주시게.’였다고 하니, 남은 우리는 모두 숙연해 질 수밖에 없다.1970년 12월 7일, 폴란드의 무명용사 묘지를 방문했던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예정에 없었던 이 돌발행동을 두고 시사지 슈피겔(Spiegel)은 ‘무릎꿇을 필요가 없었던 그가 정작 무릎을 꿇어야 할 용기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무릎을 꺾었다’고 적었다. 2차대전에서 독일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나라를 대표하여 진심어린 사과를 전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은가. 이후 독일 내부에도 여러 목소리가 있었겠지만 유럽 각국 간 분위기는 오늘 일본을 대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에는 여전히 전쟁과 폭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 입에는 “미국을 믿지 말고 로씨아에 속지마라. 일본은 일어난다”가 아니었던가.목포로 간 손혜원 의원 덕이었을까, 아니, 탓이었을까. 도시에 일본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즐비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지역 구룡포에도 일본사람들이 살다간 집들이 여러 채 보존되어 ‘근대문화역사거리’가 조성되었다. 들리기로는 군산과 인천, 그리고 서울에도 유사한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나전칠기가 목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몰라도 그보다는 저 일본식 옛 집들을 어찌 할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구룡포의 옛 모습을 우리가 되새기는 의미는 무엇인가 다시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 옛 공간을 그저 물리적인 존재로만 바라보고 그리움과 향수를 자아내기만 할 것인가. 아니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으로부터 과거 일본의 기억을 다시 새기고 오늘 일본의 모습을 잘 살필 수 있도록 적절한 긴장과 경계심을 만들어 내는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견제와 균형은 국가 간에도 필요한 것이다.일본 정부와 아베 수상은 일본 내 보수여론을 결집해 가면서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과 북미가 대화와 외교를 통하여 평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일을 일본은 위험한 진보라고 본 모양이다. 과거 힘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새롭게 일어설 기회를 만들어 갈 틈을 엿보는가 싶다.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함정 주변을 낮게 비행하는 일은 보통 사람이 보아도 전에 없이 위협적이며 우리를 시험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는 우리 안에서 너끈히 세워갈 것임을 반듯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일본은 우리에게 영원히 갚지 못할 무거운 빚이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들도 일본이 그리 진솔하지 못함을 자각하여야 한다.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이었으면 한다. 역사의 기억을 말끔히 씻을 때에 그리 될 수 있을 터이다. 역사는 상처깊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둘러보면 어두움으로부터 일어선 좋은 기억도 함께 새기고 있다. 일본에게 무릎꿇을 용기가 없다면 독일 역사에서 배우길 바라고, 어린 소녀들에게 가한 고통을 혹 잊었다면 김복동 할머니 영전에 가 보길 바란다. 우리는 일본이 남기고 간 흔적에서 역사를 기억하여야 한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

2019-01-30

20세기 초반 대구·경북에서 대중화된, 개장국을 대체한 손님맞이 음식

대구, 경북은 육개장으로 유명하다. 흔히 ‘대구 육개장’이라고 말한다.육개장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경부철도가 뚫린 후 사람들이 대구의 여러 시장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구의 시장터에서 육개장을 팔기 시작했다.” 이게 다수설이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질문을 더한다. “그런데 왜 육개장에는 벌건 고추기름을 사용할까?”답은 “붉은 색은 벽사(8F9F邪)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삿된 귀신을 쫓기 위하여 붉은 고추기름을 사용한다”이다. 식당에 느닷없는 삿된 귀신? 이상하다. 이 표현은 틀렸다. 가정도 마찬가지. 요즘 초상집에서 가장 편하게 내놓는 것이 육개장이다.‘초상’은 돌아가신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행사다.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잘 모셨다가 잘 보내드리는 행사다. “붉은 색으로 삿된 귀신을 쫓는다?” 아무리 재 봐도 엉터리다.제사를 모실 때 지방(紙榜)을 쓴다. 벼슬을 하지 않은 경우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다.‘현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다. ‘신위(神位)’는 신(神), 곧 돌아가신 조상이 앉아 있는 자리다. 조상을 모신 자리다. 지방을 써서 조상을 모시고 절을 하는 판에 육개장의 붉은 색으로 귀신을 쫓는다? 이상하지 않은가?대구는 분지(盆地)라서 춥다. 그래서 고춧가루를 많이 쓰고 육개장이 붉은 색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말도 우습다. 육개장은 대구에서 ‘시장화’한 것이지 대구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대구 바깥 지역에도 육개장은 있었다. 육개장은 경상좌도, 오늘날의 경북에서 널리 유행했다. 그중에는 분지가 아닌 곳도 많다.추운 곳이라서 매운 것을 먹는다면, 평양냉면은 고춧가루 범벅을 할 판이다. 따뜻한 호남의 매운 양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귀신 쫓기, 분지=맵고 붉은 육개장’은 엉터리다.◇ 육개장, 초상집의 손님맞이 음식이다초상집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서양의 경우, 종교의식을 치르고 묘지에 간다. 적절하게 조의를 표하고 끝이다. 밤을 새며 고스톱을 치며 음식, 술을 먹는 나라는 거의 없다. 상가 음식도 천편일률적이다. 육개장과 전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장례를 보며 참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지금은 굶주림의 시대가 아니다. 여전히 초상이 나면 ‘병원상가’에서라도 육개장 등 음식을 내놓는다.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전도 나온다. 희한하지 않는가? 왜 전과 육개장일까? ‘봉제사접빈객’의 손님맞이다. 관혼상제의 손님맞이 상차림이 지금도 남은 것이다.국수가 불가능하고 육개장이 없던 시절에는 어떤 음식을 내놓았을까? 개장국[狗醬羹, 구장갱]이었다.‘개장국’은 ‘개[狗]’+‘장(醬)’+‘국[羹]’이다. ‘된장 푼 물에 개고기 넣고 끓인 국’이다.육개장에 고춧가루, 억센 대파, 마늘 등을 많이 넣는 것도 개장국의 흔적이다. 개장국은 고기 비린내가 심하다. 도축기술도 좋지 않았다. 고기 냄새를 지우려고 고춧가루, 마늘, 대파 등을 많이 넣었다. 개장국의 대타인 육개장에 매운 양념을 많이 넣는 이유다.관혼상제의 손님맞이에 많은 공력을 들였던 지역이다. 손님맞이의 주요 품목은 음식이다. 20세기 초반, 육개장은 이미 대구와 경북 전역에서 시작되었다. 개장국의 대체 음식으로.◇ 사람은 육축(六畜)을 먹는다유교에서는 사람이 6가지 가축, 육축(六畜)을 먹도록 규정했다. 육축은 소, 말, 돼지, 개, 양, 닭이다.소는 금육(禁肉)이다. 소는 농사의 주요 도구였다. 식용으로 소를 불법 도축하는 것은 중대범죄였다. 왕족이 불법 도축으로 귀양을 갔다. ‘불법도살 초범’도 곤장을 때리고 유배를 보냈다. 몰수한 죄인의 재산을 신고자에게 넘겨줬다.농사도구인 소를 잡는 것은 식량 생산에 차질을 주는 주요범죄였다. 18세기 이후 농작물 생산량이 늘어나고 소의 생산도 늘어났다. 쇠고기 식용은 비교적 흔해진다. 영조대왕 무렵에는 엄격했던 ‘금육’이 정조대왕 시절에는 얼마간 느슨해진다. 그래도 쇠고기 식육은 쉽지 않았다.말은 교통, 통신의 주요 도구다. 귀하게 여기고 먹지는 않았다. 돼지는 먹이를 두고 인간과 다툰다. 사람이 먹는 식재료를 먹는다. 사시사철 먹이 준비가 어렵다. 식용 이외에는 사용처도 없다. 그저 먹고 살만 찐다.한반도는 돼지 키우기에 적합한 풍토도 아니다. 돼지는 덥고 습기가 높은 곳에서 잘 자란다. 한반도는 비교적 춥고 건조하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대관령목장의 양은 관광용이다. 닭은 개체가 너무 작다. 가족들이 먹기 적절한 양이지 행사나 주막에서 다루기는 너무 작다.만만한 게 개다. 인간과 먹이를 다투지도 않는다. 평소에는 집 지킴이로 적절하다. 산에서 늑대가 출몰하던 시기다. 외진 산길을 가려면 넉넉한 동반자가 된다. 복날 개를 먹는 것은 오랜 풍습이었다. 크기도 적절하다. 주막에서 다루기 좋은 크기다.정조대왕 즉위 1년(1777년) 7월28일(음력), ‘정조 암살미수 사건’이 일어난다. 영화 ‘역린’은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것이다. 범인들의 공초문(供招文, 수사기록) 중 일부다.“7월 28일 밤에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 이르러 강용휘가 전흥문에게 3문(文)의 돈을 주어 ‘개장국(狗醬)’을 함께 사 먹고 대궐 안으로 숨어들어가 별감 강계창과 나인[內人]월혜를 불러, 귀에 대고 한참 동안 속삭였다.”이야기는 이어진다. “암살시도가 실패한 후, 범인 전흥문은 흥원문(경희궁)으로 빠져나와 달아났고, 강용휘는 금천교 방향(창덕궁)으로 달아난 후, 이튿날 공범 홍상범 등과 ‘개 잡는 집’에 다시 모였다.”앞의 ‘대궐 밖 개 잡는 집’과 이튿날 모인 ‘개 잡는 집’은 다른 곳이다.18세기 후반 한양에는 군데군데 ‘개 잡는 집’과 밤늦게 문을 여는 ‘개장국’ 파는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고기는 일상적으로 먹는 상식(尙食)이었다.18세기 후반까지도 개장국 파는 주막들은 흔했다. 왜 일제강점기 대구의 시장에서는 개장국이 아니라 육개장을 팔았을까?◇ 중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더라육개장은 ‘육(肉)+개장국’이다. ‘육’은 쇠고기다. 쇠고기로 개장국 같이 끓인 음식이 육개장이다. 대구가 경부선의 주요 기차역이 되었다. 교통요지다. 시장이 선다. 많은 사람들이 대구 시장에 모여들었다. 사람이 모이면 식당이 필요하다. 시장 상인이나 시장 손님 모두 끼니는 이어야 한다. 식당 손님들 중에는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도 있다.주막의 주요 메뉴는 개장국이었다. 개장국이 1910년대 대구의 시장에서 육개장으로 바뀐다. 왜 갑자기 개고기를 피하는 사람들이 생겼을까?‘개고기’에 대한 다른 내용, 시각의 기록이다. 하나는 ‘개고기 식용’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개고기 식용은 야만’이라 여기는 내용이다.“연경(북경)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을뿐더러 개가 죽으면 땅에 묻어준다. 심상규(1756~1838년)가 북경에 갔을 때 경일(庚日, 복날)을 맞아 개고기를 삶아 올리도록 하였다. 북경사람들이 크게 놀라면서 이상히 여기고 팔지 않았다. 심상규가 그릇을 빌려 삶았는데 그 그릇을 모조리 내다버렸다. (황해도)장단의 이종성(1692~1759년)은 잔치에 갔다가 개장국을 보고 먹지 않고 돌아와 말하기를,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달랐다.”이유원(1814~1888년)의 ‘임하필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필자 이유원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그가 듣고 보고, 기록한 내용들은 19세기 후반, 고급 관리의 시각으로 본 것들이다.심상규는 이유원보다는 앞선 시대의 사람이다. 정조대왕의 초계문신이었고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이다. 심상규가 성절사로 북경에 간 것은 1812년이다.이종성은 이유원, 심상규보다 더 앞선 시대의 사람이다. 이종성은 이항복의 5세손으로 영조대왕 시절 영의정을 지냈다.이종성과 심상규의 ‘개고기 식용’에 대한 입장은 정반대다. 흥미롭다.17세기 중반 조선은 청나라에 처절하게 당한다.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1637년)을 겪으며 조선은 견디지 못할 치욕과 약탈을 당한다.숱한 이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노예가 되었다. 삼전도의 비와 ‘환향녀(還鄕女)’도 이때 생겼다. 원한이 깊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내심 ‘오랑캐 청나라’를 증오, 멸시했다.시간이 흘렀다. 중국으로 간 조선사신단들은 발전한 서양의 문물을 중국, 북경에서 본다. 북학파도 생긴다. 중국, 청나라에 대한 호기심, 호감이 생긴다.청나라는 개고기 식용을 피한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개의 지위(?) 때문이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수렵, 기마민족이다. 개는 사냥의 동반자이자 목숨을 지켜주는 동료다. 농경민족의 개와는 지위가 다르다. 동반자, 동료를 먹을 수는 없다. 청나라가 개고기 식용을 피한 이유다.청나라(후금)를 세운 이는 누르하치(Nurhachi, 努爾哈赤, 1559~1626년)다. 개는 누르하치의 생명을 두 번이나 구해주었다고 전해진다. 건국 태조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한 개를 식용할 수는 없다. 통치자 만주족들이 개를 먹지 않자 피지배자인 한족들도 따른다.중국을 드나들던 조선의 사대부 중에는 ‘문명개화된 중국’이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본다. 이를 따른다. ‘개고기 비식용 파’가 생긴다. 1910년대 한반도에는 ‘개고기 식용vs비식용’이 나뉘어 있었다.1712년 사신단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문인, 화가 노가재 김창업(1658~1721년)은 ‘연행일기’에서 “평안도 가산의 가평관에서 이민족(오랑캐)에게 개고기와 소주를 대접받았다”고 했다. 1791년 사은사 일행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문인 김정중(1742~?)은 ‘연행록’에서 “중국인들은 비둘기, 오리, 거위 등을 먹지만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조선 후기 이미 개고기 식용, 비식용은 뒤섞였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대구의 시장에도 개고기를 피하는 이가 있었다. 쇠고기도 비교적 흔해지고 금육도 풀렸다.육개장은 개장국 대용품이다. 주막에서 팔던 개장국을 닮은, 쇠고기 국이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1-30

트램, 도시교통의 해답이다

장세용구미시장구미의 대중교통은 시내버스가 유일하다. 시장으로 당선되기 전에도, 당선된 후에도 구미 시민들의 호소는 한결같다. 대중교통을 혁신해 달라는 것이다.구미는 산업단지의 발달에 따라 조성된 도시로 첨단산업도시를 표방하지만 그에 비해 교통망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시내버스는 노선이 적고, 배차 간격도 길어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도심지가 분산되어 있다.자가용과 택시의 이용 의존도가 높고, 더욱이 전체 교통수단 중 버스가 차지하는 수송분담률은 20.9%에 불과하다. 자가용 의존도가 50% 이상인 승용차 중심 도시. 이로 인해 교통정체, 대기오염(미세먼지), 교통사고 등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요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인구 43만의 첨단도시를 지향하는 구미시의 시장으로 도시 발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는 교통체계의 획기적인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느꼈다. 때문에 그 대안으로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인 트램의 도입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 그 바탕에는 시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 더 나은 정주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최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무가선 저상트램 실증노선 선정 공고’와 관련해 많은 자치단체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관심에 비해 실제 공모에 응모한 자치단체는 많지 않았지만, 트램에 대한 자치단체들의 굳은 의지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대체 왜 많은 자치단체들이 트램에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트램이 가진 장점 때문이다. 트램은 친환경적이고,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대중교통수단이다. 또한 철도의 정시성과 버스의 접근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트램을 주요 대중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유럽, 일본 등의 도시에 비추어 볼때 도시재생 효과도 탁월하다.반면, 트램이 기존 도로에 설치되기 때문에 도로용량이 줄어드는 문제와 다른 대중교통수단에 비해 과연 비용 대비 효과 혹은 편익이 더 클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부에서는 운송수단으로서 투입되는 비용대비 효과가 미비하고, 재정여건상 시기상조로 시내버스의 서비스 개선에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얼마 전, 구미에서는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트램의 사업성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고조됐었다. 사실과 무관한 불필요한 억측과 의도적인 왜곡으로 한동안 시끄러웠고, 꽤 당혹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구미시는 국토교통부의 ‘신교통수단 선정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략적인 비용을 산정하여 검토하였고, 2019년 예산안에 조사용역비 1억 5천만 원을 편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단체에서 5개 노선 트램 건설비 및 운영비를 각각 합산하여 마치 구미시가 트램 건설을 추진하는 것처럼 발표했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구미시의 트램 도입은 검토 단계일 뿐, 아직 어떤 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우리는 무엇 때문에 교통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쉽사리 트램을 시도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새로운 교통수단에 대해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것일까. 과연 시내버스만이 해결책일까? 시에서는 시내버스 서비스 개선을 위해 매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우회노선 직선화, 배차간격 단축을 위한 증차 등과 같은 시내버스 노선 불편사항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고, 이를 위한 운수업체 재정지원에도 많은 예산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불만이 매년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이젠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신교통수단으로 트램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안된다기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도심을 운행하는 트램은 출퇴근 시간대 교통난 해소와 시민들의 이동 편의를 보장해 도심 재생을 촉진할 수 있다. 또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구도심 상권 활성화는 물론 새로운 관광명소 개발도 가능하다. 관련 산업과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선결돼야할 과제도 있다. 우선 사업타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시민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대중교통 혁신은 민선 7기 시장으로 내세운 공약 중의 하나지만,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이다. 전문기관을 통해 구미시의 도로여건, 사업비용, 이용수요 예측, 경제성 및 재무성 분석을 위한 타당성 검토를 실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주민여론을 수렴해 재원확보 방안을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트램 도입여부를 결정하겠다.우리는 그동안 사람 위주의 교통정책이 아닌 교통시설과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자동차와 도로 중심의 회색빛 도시를 만들어왔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새로운 방향과 가치를 트램에 담아보려 한다. 구미는 기존의 교통정책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친환경 교통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대중교통의 공공성 확보, 도시재생을 통한 구도심 활성화, 정주여건과 도시 이미지 개선을 통해 행복한 구미, 살고 좋은 구미, 기업이 찾아오는 구미를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인 트램 도입을 시민들과 공유하며 소통하고 결정할 것이다. 교통 환경의 변화는 결국 시민의 삶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2019-01-29

개 출생의 비밀

개 출생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개의 생명이 만들어진 실체를 안다는 뜻이다. 개의 기원을 이해하게 되면 현재의 개가 어떻다는 것을 사색할 수 있고 앞으로의 개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탐색할 수 있게 된다. 정기본만사리(正基本萬事理), 즉, 기본이 바로서면 만사가 다스려질 수 있는데 개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개와 관련한 모든 이슈를 다스릴 수 있는 기본이 된다고 본다.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 정보를 읽으면서 개의 기원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시도되어 온 문헌이나 발굴자료의 사료는 유전자 정보를 방증하는 보조자료로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화석 연대측정이나 지역별 단편 사료들로는 실제 사실로의 접근이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의 기원연구, 인류의 태반사 연구들도 단편사실의 나열에 그치거나, 민족주의에 기반한 학자들의 일방적 주장과 역사·문화적 왜곡이 은연중에 있기도 하다. 현재의 개와 그 속에 포함된 개를 찾는 일은 실마리만 제대로 찾으면 유전자 정보를 읽어서 개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고 개와 함께한 사람의 기원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회색늑대와 현대의 개들이 공유하는 유전자 정보 분석으로 인해 회색늑대와 개의 광범위한 교잡과 가축화 과정을 통해 현대개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지난 칼럼에 소개했던 것처럼 중동지역의 회색늑대 DNA가 현생 소형개의 DNA와 가장 비슷하다. ‘중동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개와 회색늑대 공통조상이 현대 개로 종 분화되는 과정, 즉 개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인간과 생활을 시작했는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언제부터 가축화되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분분한데 이는 학자들의 다양한 주장과 발견들 때문이다.독일 막스플랑크 인간역사과학연구소 연구팀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9천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암각화를 발견했다. 암각화에는 인간이 줄에 묶인 개와 함께 사냥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9천년 전에도 인간이 개를 길들여 생활했다는 증거다.이스라엘의 남부 도시인 아쉬켈론에서는 기원전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정성스럽게 매장된 1천 구의 개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과거 페니키아에 속해 있었고 페르시아제국의 식민도시였던 땅으로서 페니키아인들은 여러 신의 상징으로서 개를 숭상했기 때문에 개를 극진히 대접했다. 과거 페니키아인들이 살았던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많은 개 무덤이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흉노·돌궐·위구르·몽골 등 막강한 유목국가들과 함께 고구려는 개를 영혼 인도 동물(저승길잡이)로 여겼다. 몽골어로 보카(boka)는 늑대라는 의미인데 고구려를 이은 발해는 보카(boka)의 왕국, 즉 늑대의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늑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가장 오래된 개 화석은 현재의 독일 지역에서 발굴됐다. 그러나 시베리아 극동지방에서 고대의 가축화된 개 뼈가 발견됐다는 주장 등이 있어 고고학적 기록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상태다. 학자들은 최근 현대 개들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분자계통유전학적 연구들을 진행한 바 있는데, 개의 가축화가 시작된 곳으로 유럽과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등 여러 지역을 제시해 미스터리를 가중시키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개를 길들여왔다는 ‘복수 기원설’이 주장되고 있는 것인데, 2016년 최신 고유전체학 기술을 사용해 아일랜드의 5천년 된 고대 개의 유전체를 효과적으로 분석한 연구를 통해 학자들은 개들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가축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유럽에서 가축화된 토착 개 무리가 신석기 시대의 어느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독자적으로 토착화됐다가 유럽으로 유입된 무리들로 대체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한다. 5천년 전 개 유골에서 세포핵 DNA를 추출해 현생 개 605종과 비교한 결과인 것이다. 연구팀은 지역에 따라 견종이 분리된다고 봤다. 개가 아시아, 중동, 유럽에서 따로 길들여졌다는 얘기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부소장

2019-01-29

숲과 도시

숲의 도시라고 하면 유럽의 도시를 연상하게 된다. 유럽의 왕조시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적 정원문화가 보통 사람에게는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많은 도시가 아름다운 것은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중세 문화 유적이 있기도 하지만 잘 가꾸어진 왕실 정원에서 풍기는 강열한 느낌이 잘 전해진 탓이기도 하다.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숲의 도시라 부른다. 인구 2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도시로, 면적의 28%가 공원이며 17%가 숲이다. 숲속에 주택이 자리를 잡고 숲과 주거지 사이에 포도밭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베토벤이 걸었다고 하는 ‘칼렌베르크 숲’으로 빈은 숲의 도시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영국의 하이드파크는 왕실 소유의 정원이 시민공원으로 개방된 사례다. 80개가 넘는 공원을 보유한 런던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심공원이다. 160만㎡의 광대한 면적 속에 숲과 호수가 있는 평온한 자연의 휴식처다.시민의 휴식처인 하이드파크를 흉내 낸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맨해튼 한가운데 위치한 이곳은 뉴요커들의 힐링 장소다. 언제 어느 때나 여유와 휴식을 즐기는 뉴욕시민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로 미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연간 4천만 명이 방문하는 도심공원이다. 최근 들어 도심의 숲이 뜨고 있다. 여름철에는 열섬현상 방지 효과가 있고, 요즘의 골칫거리인 미세먼지 방지에도 효과가 인증돼 도시마다 도시 숲 조성에 앞 다투고 있다는 소식이다. 산림청도 가로수 수종교체 등을 통해 도심 숲의 자체 정화 능력을 높이기로 하는 등 도심 숲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경북도도 도내 34곳에 도심 숲 조성을 한다고 하니 우리의 도심들도 머잖아 숲으로 덮일까 기대가 된다. 잘 가꿔진 도시 숲은 최고의 공기청정기라고도 한다.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사람에게 흡수되면 인체의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키는 등 산림치유 효과가 크다고 한다. 산림욕이 각광받는 이유다. 선진국의 대공원과 같은 도시 숲이 당장 나오기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도시 숲이 조성된다면 그나마 바람직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1-29

남녀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명절을

홍성식특집기획부장다시 설날이 코앞이다. 이젠 세뱃돈을 받는 게 아니라 줘야 할 처지고, 설빔을 얻어 입을 나이도 지났지만 오래 보지 못한 피붙이를 만나는 명절은 즐겁다. 이 ‘즐거움’이 남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할 것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그러나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설과 추석을 포함한 명절에 느끼는 즐거움이란 대부분 남자들만의 것이었다.시장에서 고른 생선을 굽고, 밥을 안치고, 산적을 꿰고, 국과 나물을 준비하는 부엌일은 모조리 할머니와 어머니, 여동생과 누이의 몫이 됐다. 전날 저녁부터 설 아침까지 며느리들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수습할 시간도 없었다.탕국 간이 짜거나, 데친 나물이 시아버지의 입맛에 맞지 않을 때면 떨어질 시어머니의 불호령에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그때 남자들은 뭘 했을까. 주방을 바삐 오가는 여자들의 발걸음을 본체만체 전복구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TV 뉴스를 들으며 “정치가 엉망이니” “경제가 걱정이니” 따위의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설 제사가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 풍경. 여자들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밀려드는 설거지와 수차례 거듭되는 손님상 차리기. 그 시간 남자들은 느긋하게 음복술을 마시며 취기에 젖어가고. 명절에 사용될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도 “여자들은 제사상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으라”는 말에 부엌에 쪼그리고 있던 어머니와 숙모들 모습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다.남자들이 식사를 마친 뒤 식은 밥과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허기를 끄던 여자들. 한 세대 전 여성들에게 설이란 대체 뭐였을까. 허리가 부러지도록 고생하는 날? 남자 수발드는 것으로 일관하는 날?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건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며 불합리한 관행이다.귀족과 농노, 압제자와 민중 사이에 존재했던 지배와 무조건적 복종이라는 시스템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엄존했던 시대. 그것이 여실하게 드러났던 지난날 명절 풍경. 우리는 그 시간을 아프게 지나오며 새로운 시대를 모색했다.평등이란 귀한 가치다. 성별의 차이가 평등을 무너뜨리는 이유가 돼선 곤란하다. “명절 준비는 누구의 몫이다”라는 낡은 레토릭으로 굴종을 강요할 권리는 남성에게도 없고 여성에게도 없다. 평등과 공정이란 가치의 구현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남녀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위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수고스러움을 나누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 또한 평등한 세상,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의 디딤돌로 역할하지 않을까.봉건 군주건, 조선 양반이건, 독재권력이건 지배자의 필요에 의해 불합리하게 유지돼 온 억압의 구조와 부당한 질서에 대한 거부 없인 역사 발전도 없다.인류가 긴 투쟁을 통해 쟁취해가고 있는 ‘남녀평등의 역사’도 마찬가지가 아닐지.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변화 속에서 발전한다. 200년 전을 살았던 독일 철학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이젠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여필종부(女必從夫)를 대놓고 말하는 이들이 드물다. 앞으론 더 적어질 게 분명하다. 이것은 ‘발전하는 역사’인 동시에 재론의 여지없이 바람직한 일.이런 상상을 해본다. 남동생이 누나와 함께 부침개를 굽고, 여동생과 오빠가 사이좋게 밥상을 차리며, 아버지와 숙부가 서툴지만 소매를 걷고 설거지를 하는 명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든 할머니와 어머니의 환한 웃음이 마당과 마루 가득 넘치는 명절.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남녀를 불문하고.

2019-01-29

과메기 그 이상을 만들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 영일만에서 생산되는 가공식품으로서의 청어는 관목청어, 관목어로 불리며 궁중에 진상되기도 하던 포항 지역의 특산품이었다. 효전 심노숭(孝田 沈魯崇 1762-1836년)이 유배생활(1801~1806년)을 기록한 남천일록(南遷日錄)에도 계해(1803년) 2월 24일 김귀선이 관목어 3개를 가져다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효전 선생이 기록으로 남겨둘 만큼 인상 깊은 귀한 선물이었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겨왔던 청어가 최근 다시 어획량이 많아지면서 대체품이었던 꽁치과메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청어과메기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하니 매우 고무적이다. 고 정문기(1898~1995년) 박사가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동아일보 지면(2월 6일~2월 13일)에 6회에 걸쳐 발표한 소논문(바다를 회유하는 청어이야기)에는 포항 영일만에서 잡히는 청어의 습성과 해중생활, 이용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영일만은 청어가 가장 산란하기 좋은 바다지형을 지니고 있어 러시아해역까지 이동하였던 청어들이 일본 홋카이도와 오츠크해역을 돌아다니다가 산란 후 4~5년이 경과하여 산란 가능한 성어가 되면 무리를 이루어 산란지로 회귀하기 위해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영일만에서 한 마리당 약 5만개를 산란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청어의 고향이 포항 영일만인 것이다.청어는 약 4세에서 5세가 되면 22~24㎝ 크기가 되고 11세까지는 35㎝까지 자라는데 연령 20세 정도에 이르면 약38㎝의 대청어가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알까지 밴 25㎝ 전후의 청어 무리들이 영일만에 도래할 때에는 청어의 천적인 상어들도 같이 따라와 그물을 물어뜯고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신라시대부터 포항, 울산, 경주, 경산 등지로 이어지는 상어문화권은 청어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상어 자체는 그 껍질과 뼈를 이용하는 공예품들도 많지만 영일만에서 잡히는 청어의 천적인 상어는 어부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가문의 숙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위험한 상어잡이는 어부들에게는 일종의 전사의 자격증명과도 같았을 수도 있고, 청어 잡이를 위해 필요한 생존과 직결된 사투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지역에서 제사음식에 올리는 상어고기(돔배기)가 갖는 전통적인 의미에는 조상에게 상어를 잡는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 전사가 되었다고 신고하고, 가문의 생업인 청어 잡이의 천적인 상어를 잡아 없앤 증거를 올리니 안심하고 영면하시라는 엄숙한 의식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일제강점기이기는 하나 겨울철에 영일만에서 잡히는 청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상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 박사에 글에 따르면 생선상태 그대로 포항역을 통해 기차로 수백리 도시까지 공급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생선상태 외에도 염장하여 식용으로 제공하거나 천일을 이용하여 건조시킨 건청어, 염장할 때 후추, 정향, 육두관 등의 향료를 같이 더하여 풍미를 깊게 한 후 훈연 건조시킨 것도 있다고 한다.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기술이 많이 발전한 상태인데도 단순히 천일 건조한 제품으로만 생산되고 그것만 전통적인 식품으로 비춰지는 점이 아쉽다. 청어는 풍부한 비타민A, 비타민D 등을 함유한 좋은 식재료지만 지방질이 풍부한 만큼 반건조 상태에서는 비린내도 많이 나 소비자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청어의 고향인 포항이라면 일제강점기에 생산되었던 염장과정에서 향신료를 가한 다음 훈제하여 맛의 풍미를 깊게 하였다는 방식은 지금부터라도 더욱 연구하여 재현하였으면 한다. 이제는 과메기 그 이상을 만들자.

2019-01-29

학부모 관심과 교육 간의 거리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필자는 어려서부터 관계(關係)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야기는 반복 수준을 넘어 세뇌(洗腦)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은 역시 다른 모양이다.필자는 관계는 곧 거리(距離)라고 생각한다. 관계는 대상과의 거리 맺기이다. 거리 조절을 잘 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거리 조절에 실패하면 관계는 어긋난다. 너무도 당연한 이론이지만 우리가 관계에 있어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는 이유는 바로 거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베스트셀러에 빠지지 않는 책이 있다. 바로 ‘관계와 거리’에 관한 책들이다. 처세술, 인생론 등으로 명명되는 이런 책들이 많이 팔리는 현상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계 맺기, 즉 거리 조절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거리를 생각할 때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을 떠올린다. 이 말을 잘 활용한 시가 있다. “다가서면 관능이고/물러서면 슬픔이다./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안 된다/다가서면 눈멀고/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후략)” (오세영 ‘양귀비’)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되는 거리는 얼마일까? 이 거리를 오세영 시인은 “적당한”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답이 바로 “적당한”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거리를 계속 찾고 있지만, 아마 평생 못 찾을 것 같다.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지금 매우 어렵다. 그 해결책으로 요소들 간의 거리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볼 것을 제안한다. 필자는 우리 교육에서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교육계에는 다양한 거리가 존재한다. 학생과 학생 간의 거리, 학생과 교사 간의 거리, 학생과 학부모 간의 거리, 학부모와 교사 간의 거리. 학부모와 학교 간의 거리, 교육과 시대 간의 거리 등! 그런데 혼돈 가득한 지금 교육계의 상황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거리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SKY 캐슬”이다. 필자는 교사이기 전에 두 딸을 둔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부모 관심과 교육 간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교육의 몫을 따지기란 힘든 시대가 되었다. 사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교육의 경계도 많이 허물어졌다. 예전에는 학교가 교육을 담당하는 주된 기관이었다. 그 때는 교육에 있어 학교와 교사의 역할 비중이 매우 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공교육을 훨씬 능가하는 사교육 기관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와 교사의 역할 비중은 상당히 줄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교 교육에 대한 생각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비록 드라마이지만 “SKY 캐슬”에서 보듯 요즘 교육은 학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육과 학부모 간의 거리는 매우 가까운 반면, 학부모와 학교 간의 거리는 매우 멀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거리가 변한만큼 교육에 대한 이상도 변했으면 다행인데, 우리 교육 현실은 여전히 점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점수에 더 안달을 느끼게 되고, 멀어진 학교보다 가까워진 사교육에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교육 기관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다 줘도 전혀 아깝게 생각하지 않지만, 학교에는 단돈 100원을 내도 아깝게 생각하는 게 지금의 교육 현실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교육 당국, 그리고 학교와 교사의 문제도 매우 크다.분명한 것은 교육과 학부모 간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교육은 본질에서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교육 1번지 목동 엄마 따라잡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래서 학부모로서 필자는 교육과 좀 더 헐렁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필자가 빼앗아 간 교육에 대한 거리를 학교와 교사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2019-01-29

약점 때문에 괴로울 때 생각해 볼 일

황당한 농구 시합이 벌어집니다. 선수들 부모는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키도 작은데 한 번도 농구를 해 본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 한 마디로 난쟁이 왕초보 농구 팀입니다. 코치 역시 농구 코트를 밟아본 적이 없는 순수 아마추어입니다. 상대팀은 농구로 잔뼈가 굵은 180㎝ 흑인 소녀들.“플레이볼!” 호각 소리와 동시에 레드우드 팀 소녀들은 밀착 마크를 합니다. 양 팔을 부지런히 아래 위로 휘두르고 폴짝 폴짝 뛰며 공 잡은 선수 앞에서 두 명이 가로 막고 패스를 방해합니다. 키다리 선수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시합을 해 본적이 없었던 거죠. 한 선수가 5초 이상 공을 잡고 있으면 파울입니다. 레드우드의 키 작은 소녀들은 상대 진영을 마구 휘저으며 패스를 못하게 방해하고 당황한 키다리들은 연달아 5초 파울을 범하지요. 난장이 팀은 4대 0, 6대 0, 8대 0, 12대 0으로 앞서 나갑니다. 어떤 경기는 25대 0까지 압도한 경우도 있습니다. 승리 비결을 묻는 인터뷰에서 한 소녀는 말합니다. “훈련의 비결이죠. 정말 막무가내였어요. 아빠는 한 번도 농구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코치 딸입니다.역사학자 아레귄-토프트의 연구에 의하면 강대국과 약소국의 전투에서 약소국이 이길 확률은 28.5%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처럼 강대국 룰을 따르지 않고 접근하면 약소국의 승률이 63.6%까지 급상승합니다. 일만시간의 법칙, 아웃 라이어 등으로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은 약자들의 승리 비결을 파헤칩니다. “약하다고 무조건 불리한 것은 아니에요. 기득권의 룰을 깨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람은 약자들입니다. 내가 약자인 것이 결코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약점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위대함이 분명히 있는 법이니까요, 반면 강자의 강점에는 반드시 숨겨진 나약함과 한계가 있습니다.”한없이 위축되어 한숨 짓는 때가 있으신가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오히려 약점에서 출발해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레드우드 소녀 농구팀은 시합에 나가기 전에 동그랗게 스크럼을 짜고 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원, 투, 쓰리... 애티튜트(Attitude)! 무대뽀 전략을 과감하게 세운 코치는 소녀들에게 강철 체력을 길러 주었고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볼 수 있는 태도를 훈련시켰습니다. 나를 실망시키는 약점이야 말로 바로 내 안에 감추인 보석입니다./조신영 생각학교ASK 대표

2019-01-29

측정의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벤자민 잰더(Benjamin Zander)는 1978년 보스톤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설립한 지휘자입니다. 지금도 현역으로 활약하며 그의 TED 영상은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수십 년 지휘자 경험을 바탕으로 통념을 깨는 발상을 합니다. “지휘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요. 아름다운 소리는 연주자들이 만드는 거죠. 지휘자의 뜻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힘과 열정, 사랑을 끌어내야 합니다.”단원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그의 지휘에 대해 평가하고 대안을 요청합니다. 몇 번을 반복하자 비협조적이던 단원들이 조금씩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하고 이 중 좋은 아이디어를 뽑아 연주에 반영합니다. 점차 활발하게 의견이 올라오기 시작하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오케스트라의 분위기가 완전히 능동적으로 바뀝니다. 벤자민 잰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을 실현은 ‘측정의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이동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측정의 세계란 서로 경쟁시킨 후 승리자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세계입니다. 가능성의 세계란 모든 것이 풍족하기 때문에 경쟁이 필요 없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모험으로 가득한 세계입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을 측정의 세계로 몰아 부칠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잰더는 대학에서 가르칠 때 ‘가능성의 세계’를 적용한 사례를 알려줍니다.첫 수업 시간에 선포합니다. “학생 여러분 모두에게 한 명도 예외 없이 A학점을 줄 것입니다.” 학생들의 입이 쩍 벌어집니다. 측정의 세계 그 정점에 학교가 있지요. 아이들에게 지식을 나눠 주고 측정해 등급을 나눕니다. 벤자민 잰더는 학생들에게 생애 최초로 ‘가능성의 세계’를 체험하게 합니다. 학생들에게도 종이 한 장씩 나눠줍니다. “모두에게 A학점을 주는 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편지 한 통을 쓰는 겁니다. 오롯이 내 노력으로 A학점을 받았다고 가정하고 저에게 A학점을 받은 이유를 써 보세요.” 이후 학생들은 학기 중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게 되자 협력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대담하게 사고를 확장시킵니다. 벤자민 잰더의 파격적인 실험은 대 성공으로 결말을 맺습니다.상상하기 어려운 도전이지만,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 내야 할 우리 세대의 중대 과제입니다. 우리 모든 다음 세대들이 측정의 세계가 아닌 가능성의 커다란 우주에서 마음껏 비상하는 날을 꿈꿉니다./조신영 생각학교ASK 대표

2019-01-28

세화(歲畵)와 이모티콘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특히 올해는 재물과 복의 근원을 상징하는 황금돼지해로, 지난 어느 해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새해 첫날이면 우리민족은 지난날 안 좋았던 일은 모두 잊고 한 해를 밝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로 다채로운 세시풍속을 즐겼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서 대대로 지켜 내려온 생활에 대한 습관으로, 일 년을 주기로 철에 따라 되풀이되는 고유한 풍속을 말한다. 의식주를 비롯해 음악과 무용, 놀이 등 문화의 모든 요소가 들어있어 전통문화의 보고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중 떡국과 세화는 새해를 송축하고 무병장수와 재앙을 막기 위한 대표적인 음식과 그림으로 꼽을 수 있다.설날 떡국을 먹는 것은 흰 가래떡에 한 해를 시작하는 시간의 경건함을 담고 있으며, 고대 태양 신앙에서 유래됐다. 나이떡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새해 첫날 떡국을 먹음으로써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희고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떡처럼 한 해를 밝게 보내라는 의미와 함께 순백의 떡과 순백의 국물을 마시며 지난날 안 좋았던 일은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축복의 메시지도 담겨져 있다. 특히 떡국에 사용하는 떡은 가래떡을 얇게 썰어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하는데, 이 모습은 마치 엽전을 연상시킨다. 옛날 화폐인 엽전처럼 생긴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에는 돈도 많이 벌고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고 있다.새해가 되면 세배, 세찬, 설빔과 함께 송축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세화(歲畵)를 즐겨 그렸는데, 이는 왕과 신하들이 서로 주고받던 궁중풍속이었다.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벽사적이고 기복적인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다.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FFFC)라고도 했는데, 농촌보다는 정교한 대문을 가진 서울 등의 도시 주택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풍습화된 세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반 대중적인 성격을 띠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관원들은 대개 도화서에서 그려 올린 세화를 임금으로부터 하사받고, 민가에서는 광통교 일대의 그림 가게에서 구입해 붙였다고 한다. 이 광통교에 나돌았던 세화들은 도화서의 화원들이 그린 것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세화들도 많았다고 한다. 세화의 주 소비층은 처음에는 주로 사대부들이었으며, 그림의 내용은 도교적 인물과 길상의 의미를 지닌 식물 등이 주류를 이뤘다. 이후 서민층까지 확산되면서 서민들이 이를 흉내 내어 해마다 정초가 되면 세화를 사서 붙이거나 그들의 주거 공간을 장식하며 민화로 발전시켜 나갔다. 고문헌을 살펴보면 “설날 대문에 세화를 붙이는데 갑옷을 입고 한 손에 도끼를 들고 서있는 장군상을 그려 붙이며 이를 문배라고 부른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는 밖에서 병을 몰고 오는 역신이나 화재를 일으키는 신, 재앙을 불러오는 신 등 모든 악귀를 쫓아내는 길상과 벽사의 함축적 의미를 담은 세화의 상징성을 의미한다.새해가 되면 액을 막고 복을 바라는 목적으로 성행했던 과거의 세화풍습은 급속한 현대사회의 변화 속에서 주술적 의미가 점차 희박해지면서 연하장이라는 대중문화를 가져왔다. 이제는 IT산업의 발전과 모바일 문화의 변화에서 오는 이모티콘과 특수문자가 대신하고 있다. 벽사적 성격의 ‘문배용 세화’와 길상적 성격의 ‘송축용 세화’ 모두는 인간의 행복과 장수에 대한 기원과 믿음을 바랬던 우리 선조들의 멋스런 세시풍속이었다. 황금돼지해를 맞는 이번 설날 아침에는 축복과 행운이 가득 새겨진 건강한 이모티콘으로 세화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는 친교의 시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2019-01-28

공직자의 윤리

강희룡서예가율곡 이이(1536~1584)의 율곡전서(栗谷全書), 경연일기(經筵日記)에 공직자로서 표본이 되는 한 사례가 기록돼 있다. 이 일화는 명종과 선조 연간에 활동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청백리로 선정된 인물인 이후백(1520~1578)이 이조 판서로 재직했을 때의 일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후백이 전조(銓曹)의 장관이 되어 공론을 숭상하고 청탁을 받지 않으니 정사가 볼 만하였다. 아무리 친구라도 자주 찾아와 안부를 살피면 탐탁지 않게 여겼다’ 전조는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이조와 병조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하루는 일가 사람이 찾아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차에 관직을 구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후백이 안색을 바꾸고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작은 책자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그 책자 속의 이름들은 앞으로 관직에 제수할 사람들이었으며 일가 사람의 이름도 기록 안에 들어있었다. 이후백이 말하기를, ‘내가 그대 이름을 기록하여 후보자로 추천하려고 했었네. 그런데 지금 그대가 관직을 구한다는 말을 하니, 만약 구한 자가 얻게 된다면 그것은 공정한 도리가 아닐세. 참으로 애석하네만,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네.’ 라고 설명하니 그 사람이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이렇듯 이후백은 관직 하나를 제수할 때면 매번 벼슬할만한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폭넓게 물었으며,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잘못 제수했을 경우에는 번번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나랏일을 그르쳤구나.’라고 하였다. 이조는 문관의 인사를 담당한 곳인 만큼 사적인 청탁이 없을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그 어디보다도 공평무사한 덕목을 필요로 한다. 사람의 의사결정에서 공평무사함이란 사사로운 이익에 이끌려서는 안 되니, 몸에 밴 공손함과 청렴하고 검소한 성품이 있어야 가능했던 것이다. 이후백이 이조 판서라는 막강한 지위에서 사심을 배제하고 공정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부귀와 사치를 멀리하고 근검과 절약으로 철저히 선비로서 공인정신을 완성해 나갔기 때문이다. 공직의 직분을 다하고 스스로 단속하여 청고(淸苦)함을 지키니 육경(六卿)의 지위에도 가난하였지만 검소하기가 유생과 같았고 뇌물을 일체 받지 않아 손님이 와도 밥상이 초라하였다고 하니, 청백리로 선정된 이유를 알 만하다. 이후백은 명종에게 ‘검소하면 씀씀이가 자연 번다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임금이 한 번 부국(富國)에 뜻을 두면 세금을 거두는 신하가 으레 먼저 자신의 사욕을 채울 것이니, 자기를 이롭게 하지 않고 부국에 성심을 다할 자가 또한 몇이나 되겠습니까.’라고 아뢰어 임금이 솔선해 검소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선비정신은 의를 실현하고 지조를 지키는 꼿꼿함이라든가 혼자 있는 곳에서조차 흐트러지지 않는 위용 등으로 표현되지만, 그 바탕에는 공손과 검소함이 있다고 보겠다. 이 두 가지가 몸에 밴 사람은 남을 존중할 줄 알며 정도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맹자는 선비를 두고 ‘곤궁해도 의를 잃지 않으며, 성공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던 것이다.요즘 언론을 통해 접하는 우리의 위정자나 공직자들 모습에서 이후백과 같은 청렴함과 공평무사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이나 부를 위해 탈당과 복당을 거듭하고 온갖 허언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또한 강원랜드나 목포 문화재거리의 부동산투기의혹 사건 등 정치인들의 일탈을 보면 ‘애민정신’을 갖춘 바람직한 공직자상은 실종 된지 오랜 것같은 생각이 든다. 올바른 정치이념은 우리사회를 이끌어 가는 근간이다. 우리는 모두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 묶여 있기에 올바른 정치인을 가려서 선택해야하는 의무가 유권자들에게 있기에 그 책임이 크다고 보겠다.

2019-01-28

저온화상

추운 겨울, 얼어붙은 손을 녹이기 위해 핫팩을 쓰거나 전기매트나 온수매트 등 온열기구가 많이 쓰인다. 이런 제품을 사용할 경우 비교적 낮은 온도에 장시간 노출될 때 발생하는 ‘저온화상’을 주의해야 한다. 영하의 실외에서 오랜시간 바깥 활동을 하다가 실내로 들어오면 따뜻한 아랫목부터 찾게된다.몸이 꽁꽁 얼었기에 온도가 높은 곳에 누워도 뜨겁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이때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나른해져 잠이 드는 경우가 많은 데, 피부에 저온화상을 입을 우려가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사람의 피부는 단백질로 구성돼 있어 오랜 시간 열에 노출되면 변형이 일어난다. 끓는 물의 온도인 섭씨 100℃에는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수 있고, 48℃에서는 5분, 50℃에서는 3분, 60℃ 이상에서는 8초 정도 노출되면 단백질이 파괴돼 변형이 일어나게 된다. 저온화상은 술에 취해 잠이 들거나 당뇨, 치매 등으로 몸의 통증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경우 저온에 수시간 동안 계속해서 노출되면서 발생하게 된다. 특히 핫팩은 보통 40℃에서 70℃까지 발열온도를 내는 데, 처음 개봉해서 흔들어 열을 내면 70℃ 가까이 온도가 상승했다가 차츰 낮아져 평균 40~50℃ 사이를 유지하게 된다.이 정도 온도에서는 화상을 입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고 사용하지만 노출시간이 길어지면 문제가 된다. 40℃~50℃의 온도라도 2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피부가 노출될 경우 피부 갚숙이까지 단백질 변성을 일으켜 저온화상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피부손상이 누적되면 홍반, 수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저온화상은 특성상 상처 면적은 좁지만 깊이는 깊다. 이 때문에 저온화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80%가 피부 표피와 진피 모든 층이 화상을 입은 3도화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난다.엉덩이나 허벅지와 같이 전기매트에 접촉하는 부위에 잘 생기고, 피부가 괴사해 하얀 색상을 띠게 된다. 이런 경우 피부이식 수술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노인이나 어린아이의 경우 젊은 사람보다 피부감각이 둔하고 인지속도가 느려 저온화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