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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울릉도·독도 (上)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2일 밤 11시 반경 한국시인협회 사람들 약 마흔 사람이 창덕궁 돈화문 옆으로 모였다. 한밤에 울릉도를 향해 떠나기로 한 것이다. 대개 2박 3일 일정이면 새벽 세 시쯤이나 출발이라는데, 이 팀은 자정녘 출발을 택한 것이다.시인협회 살림을 맡은 이채민 시인과 김향숙, 김조민 시인들은 일찍 나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수복 회장도, 최동호, 김추인 시인들 모습도 보이셨다. 내 발표에 토론을 맡아줄 비평가 이찬 선생은 커피숍에서 출발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했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한밤 출발 일정표를 보고, 몇번이고 차라리 하루 먼저 묵호에 가 다음날 새벽에 올 버스 일행들을 기다릴까 했다. 실제로 박덕규 선배는 그러신다고도 했다. 나나 이찬 선생이나 다 사정이 허락치 않은 게 문제였다. 새 버스였지만 45인승인 탓에 우리는 모두 빽빽히 들어앉았다. 양평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동해 휴게소에선가 한번 더 쉬고 드디어 새벽 세 시 반의 묵호항. 출발부터 나는, 우리는 기진맥진 상태였다.새벽의 묵호에서 밤의 산책으로 겨우겨우 졸음을 쫓고, 청솔식당에서 황태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우리는 드디어 씨스타 1호 울릉도행 배에 올랐다. 멀미약 키미테를 왼쪽 귀밑에 붙이기는 했지만 나는 은은히 겁에 질려 있었다. 십여 년 전 백령도행 배를 탄 게 마지막 연안 여행이었고, 그때 배멀미를 심하게 한 끝에 위 속의 모든 것을 다 토해 놓았었다. 한밤 서울 출발 덕분이라고나 할까. 좌석도 불편했지만 출항 이삼십 분을 못 가 나는 잠에 떨어졌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도동항에 얼추 도착할 즈음이었다. 그래도 그 마지막 삼십 분 동안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이었다. 넘치는 바다를, 한량없는 크기, 부피를 가진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라 해도 나는 동해 바닷물에 내 지친 영혼을 깊이 적셔 씻어낼 수 있었다.배는 울릉도 입도의 관문 도동항에 가 닿았다. 비 내리는 도동항은 첫눈에도 한반도의 산하와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겨우 항구에 발을 붙이기는 했지만 섬은 바로 앞에서 급한 경사의 언덕들에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로 무척이나 낯선 풍경을 연출했다. 우리는 점심식사가 준비된 울릉호텔로 향했는데, 이 호텔 쪽 언덕에 군청이며 경찰서며 농협 같은 모든 중요 기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도동항으로 나갔는데, 당장 오늘 독도 가는 배를 타지 않으면 내일은 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이제 정말로 독도에 가보는 것이었다.울릉도에서도 독도는 87킬로미터, 배로 한 시간 반 가량 걸리는 곳이었다. 파고가 높아 섬에 접안할 수 없으리라는 안내방송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어찌됐든 배가 뜰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섬이 가까워 오자 우리들 얼굴에는 모두 긴장이 서렸다. 안내방송과 함께 비내리는 일렁이는 바다 바로 저편에 섬이 보였다. 독도였다. 외로운 섬, 애원의 섬, 너와 나를 우리들로 연결해 주는 사랑의 섬이었다.“비바람 속에서 너를 보았다. 비바람 속에서 너를 만났다.”나는 뱃전으로, 이물 쪽으로 나가 비바람 속의 독도를 바라보며 독도, ‘나의 너’를 소리없이 애타게 불러보고 있었다.

2024-07-08

문경새재 케이블카, 관광 품격 높여

신현국 문경시장 문경새재 주흘산 케이블카 조성사업은 한국체육대학교 문경유치, 숭실대 문경캠퍼스 건립과 함께 문경시 3대 중점과제이다.이 사업은 사업비 490억 원이 투입돼 문경시 문경읍 하초리 문경새재 제4주차장 부근에서 주흘산 관봉까지 1.86km(시설면적 6만1060㎢) 구간에 상부와 하부 승강장과 케이블카 삭도 등을 설치하는 사업이다.1년 6개월여 공사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10인승 곤돌라 38대가 초속 5m로 편도 7분의 속도로 운행한다. 시간당 최대 1500명의 관광객을 수송할 수 있어 문경새재의 관광의 품격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22년 9월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용역을 마친 뒤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했다. 23년 8월 주차장을 포함한 도시관리계획시설을 결정 고시했다. 지난 12월에는 행정절차의 가장 큰 산이었던 소규모환경영향평가 절차도 완료했다.올해 1월에는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주흘산 케이블카 조성사업 설명회를 가진 데 이어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한 의지를 다지고자 지난 4월 20일 기공식을 가졌다.문경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족한 관광자원에 케이블카가 더해지면 주흘산의 험한 산세에 그동안 정상의 절경을 감상하지 못했던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케이블카를 통해 아름다운 경치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중국의 장가계, 스위스 알프스에 버금가는 하늘길을 열리게 된다.주흘산 케이블카 조성사업과 연계해 추진하고 있는 중점 사업인 주흘산 하늘길 조성사업이다. 주흘산 관봉 상부 승강장을 하늘길과 잇고자 하는 사업이다. 주흘산 정상 능선인 관봉~주봉 2.3㎞ 구간에 417억 원을 들여 트리탑, 잔도, 클리프 워크, 스카이워크, 전망대 등 명품 숲을 만드는 것으로 지난해 타당성 평가 용역과 기본계획·실시설계 용역을 마쳤다. 이번 하반기에 착공해 내년 말 1차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문경새재지구 관광지 개발도 추진해 문경새재 입구인 문경읍 하초리 일대에 민자 6600억원, 시비 475억원을 들여 워터 리조트와 관광 숙박시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타당성 및 기본구상 용역을 마쳤고 올해 관광지 지정과 조성계획을 승인한 뒤 내년부터 민간 사업 시행 등 본격 개발에 들어간다.주흘산 케이블카, 하늘길 조성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문경시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명품형 산업관광 랜드마크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된다.문경시를 찾는 관광객은 연평균 250만 명 이상이지만 평균 체류시간이 짧고 1인당 소비 금액 또한 턱없이 적은 게 현실이다. 수요가 확실한 문경새재에 주흘산 케이블카 설치는 다양한 연계 자원을 활용해 지역주민 고용증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전망이다.케이블카 사업의 성공으로 체류형 관광객들이 늘어난다면, 지역경제의 전반적 활성화를 위해 이들을 도심까지도 끌어당길 필요가 있다.현재 문경시는 원도심 관광산업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도심 관광의 첫 삽을 뜬 것이 지난달 15일에 준공된 영강보행교이다. 사업비 114억원을 투입해 2021년 11월부터 3년여간 진행됐다. 영강체육공원과 산양 반곡리를 가로지르는 보행교(280m)와 송정산을 잇는 출렁다리(112m)로 구성되어 있다.이 출렁다리를 통해 관광객들은 송정산 산책로를 이용할 수 있으며, 자연미가 넘치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스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영강보행교를 더욱 이색적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다.특히, 인근(반곡리 98-1)에는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포토존 또한 마련했다. 찬란한 꽃밭 속 우뚝 서 있는 문틈 사이로 영강보행교가 보이게 해 색다른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현재 시에서는 이 포토존의 꽃을 제철 꽃으로 주기적으로 바꿔 심을 예정이다.낮에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힐링할 수 있다면, 밤에는 영강 물결이 수놓은 아름다운 경관조명이 일품이다. 긴 데크길을 따라 조성된 형형색색의 다양한 조명들은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높은 수준의 경관조명들은 사업비 10%가량을 관내 업체가 담당하게 해 지역경제에 이바지함은 물론, 태양광 조명으로 에너지비용까지 절감하도록 했다. 특히, 보행교 초입에 설치된 피아노 조명은 보는 즐거움과 듣는 재미까지 주며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의 호응까지 이끌어내며 낮밤으로 이용객이 끊이지 않은 사진 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점촌점빵길 토요장 등의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을 통해 문경을 찾는 관광객들이 점촌 도심 상권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024-07-07

그러니까 시가 뭐꼬?

이희정시인 논에 들에할 일도 많은데공부시간이라고일도 놓고헛둥지둥 왔는데시를 쓰라 하네시가 뭐고나는 시금치씨배추씨만 아는데..................고구마 밭에서밭을 매다가 너무 더워서집에 왔다중복이라서 닭 한 마리사다가 영감하고꽈서 먹고즐거웁게한글학교에 오니학생들이 많이 왔다더운 줄도 모르고 한글수업을 하였다―‘시가 뭐고?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삶창, 2015)그렇다, 시금치씨 배추씨도 아닌 시가 뭐냐고? 시집 ‘시가 뭐고?’는 ‘시’가 아닌 ‘씨’를 쓰는 시인들이 경작한 시집이다. 이 시는 경북 칠곡군에 사는 ‘할매’들이 문해(文解)교육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한글로 손수 쓴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의 표제작이다.이 시집의 묘미는 살아있는 입말(口語)의 경지를 맛보는 것에 있다. 그 어떤 꾸밈도 분장도 없는 소화자 할머니 외 88명의 할매들은 대부분 ‘생애 처음’ 시를 써보았다.아무 생각 없이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들의 조합으로 시를 읽어 보면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틀리고 죄다 경상도 사투리다. 기획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 할매들은 평생을 ‘목소리에 의지하는(verbomotor)’ 문화, 구술성(orality)에 의존한 삶을 살아왔으며, 말을 통해 이해하고, 관계 맺고, 소통 해온 세계에 대한 순한 그리움과 전망이 생애 처음 문자로 새겨 놓았다는 말이 실감으로 온다.이것이 시란 말인가. 의문을 품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은 뒤, 한 행이 그대로 한 연이 된 그 줄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동공이 습해온다. 우리의 눈과 가슴에 새겨진 그 사투리가 대책 없이 아름다워서 혹은 진저리 치게 삶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에. 사실 사투리는 비유나 운율 등의 시적 요소의 측면에서 볼 때 근친성을 갖기도 한다. 국어학자 이상규가 사투리(방언)를 일러 ‘오래된 역사의 주름’이라고 표현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이 시들에서 사투리는 길고 질퍽한 할매들의 생활 한가운데서 터져 나온 육성이기에. 그것은 모든 관념이 지배하는 절제와 성찰을 넘어서는 우리 몸 전체에 박혀 즉각적으로 생생하게 흡수되고 이해되는 물과 같다. 물에도 밀도가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를 물의 밀도를 재어보면 필경 가장 촘촘한 온도가 될 것이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은 수심이 있어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아가미가 호흡하는 삶의 적소로서 말이다.이 세계는 낡은 것들로 가득하다. 두 번째 시편 ‘여름날’에는 즐거운 학교가 있고, 학생이 있어 중복 중에도 “더운 줄도 모르고” 배우는 한글이 있다.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칠곡 할매들이 쓴 배움 시편들은 노년기에 경험하는 역할 상실을 극복하려는 학습의 염이 내연한다. 농촌 지역인 칠곡 할매들이 배우면서 느끼는 존재감은 도시에 사는 노년에 비해 적어도 고독할지언정 고립되지 않음을 “학생들이 많이 왔다”라는 시어를 통해 드러난다.같은 처지의 ‘곁’이 있어 인기척을 느끼며 사는 삶이란 또 얼마나 정겨운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낡은 것은 경시하기 십상인 세계이기에 시집이 환기하는 정서는 소소하지만 사소하지 않다. 그들은 문해 학교에서 글자를 넘어 키오스크를 터치해 햄버거를 주문할 수도 있고, 말로는 전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글로 맺힌 한(恨)을 풀어내기도 한다.삶은 언제나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올해도 대구·경북 문해교육 현장에서 공모한 첩첩의 시편들을 알현하며 시인들에게 묻는다.“인문학, 그기 뭐꼬? 우리가 사는 모습이 인문학이지?”

2024-07-07

도둑이 몽둥이를 들면 말세다

김진국 고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이렇게 절묘하게 들어맞은 일이 없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었다.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과장된 비유가 아니라, 이 말 그대로의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탄핵당하게 생겼다. 탄핵 전에 그 검사들을 국회로 불러 청문회도 하겠다고 한다. 국회 청문회란 게 어떤가. 호통치고, 모욕주고, 윽박지르고, 사과와 번복을 강요하는 자리다.이 검사들을 불러 추궁하는 법사위원들이 이재명 대표와 그 측근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들이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피의자의 범죄를 변호하던 변호사들이 검사를 불러 앉혀놓고,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라 수사 자료를 내놓으라 호통친다. 왜 집요하게 파고들어 범죄자를 괴롭히느냐고 따지고, 설렁설렁 수사하라고 강요한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복도에 나가 두 팔과 한 발을 들고, 10분간 벌을 서라고 조롱한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고도 공정한 수사가 가능하겠는가.탄핵안이 제출된 4명은 모두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다. 소문까지 끌어다 붙여 탄핵안을 만들었다. 강백신 성남지청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사건을 수사하며 불법 압수수색을 했다는 혐의를 걸었다.지난 대선 때 대장동 사건 주범인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대장동 사건의 주범은 윤석열’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인터뷰 조작 기사를 수사했다. 이 범죄 혐의가 사실이라면 부당한 이익을 본 사람은 이 대표다.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는 김건희 여사에게 봐주기 수사를 하고, 수사권이 없는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하고, 최순실 씨의 딸 장시호 씨에게 위증하게 했다는 혐의다.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에게 위증을 강요한 혐의, 엄희준 부천지청장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위증시킨 혐의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건이다. 어느 것 하나 사상 첫 검사 탄핵의 대상이 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이 모두 이 대표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이라는 사실에서 ‘적반하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미국에서 사법 방해는 중범죄다. 아무리 정치적 경쟁자끼리 이전투구하더라도 시시비비를 가릴 마지막 보루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정글이 된다. 사기협잡꾼만 살아남는다. 누가 승복하고, 다툼을 끝낼 수 있겠는가. 국회 의석을 많이 차지한 것을 기회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사법부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이다.최근 넷플릭스에 ‘돌풍’이라는 시리즈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운동권을 희화화한다는 둥 반응들이 다양하다. 드라마에서 범죄자가 자기들 범죄를 덮기 위해 ‘검찰개혁’을 선거 구호로 내세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상되는 첫 사건 전개도 진보 진영 눈에 거슬릴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이해에 휘둘린다는 설정 자체가 검찰 불신을 담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사회, 진실과 거짓이 서로 뒤섞인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다.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수사 검사를 국회로 불러 수사를 압박하고, 판사에게도 ‘탄핵’과 ‘선출제’를 흔들며 위협하는 것까지 용납되어선 안 된다.탄핵을 추진하면 먼저 수사가 중단된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검사와 판사에게는 압력이다. 야당을 잘못 건드리면 탄핵당할 수 있다는 위협이다. 아무리 강골이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회로 불러 윽박지르면 누가 범죄자인지, 누가 검사인지 헷갈리게 된다. 다른 검사가 사건을 넘겨받아도 시간이 지연된다.총리 측과 부총리 측이 시간 싸움을 벌이는 드라마 ‘돌풍’의 수싸움이 연상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은 헌법 84조 적용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이미 기소된 사건 재판도 중단되느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다. 여당의 주장대로라도 선거 전에 기소하지 못하면 수사도, 재판도 끝난다. 정말 드라마 같은 세상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07

기업에서 리더의 중요성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술의 발달은 각광받던 물건을 한순간에 시간의 뒤편으로 밀어내기도 하고 그 자리를 다른 대체 수단이 대신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비자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상품들과 관련된 산업이 사양산업이다. 사양산업에 들어선 기업들은 업종 전환을 시도해서 성공하거나 대개는 시장과 함께 없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사양 기업’이 있을 뿐 ‘사양산업’은 없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더 싸면서도 편리한 물건이 주는 혜택을 맘껏 누리고 있으나 그것을 만드는 기업이 대체되었을 뿐이다.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거나 한때의 영광은 화려했지만 역사의 뒷면으로 물러난 기업을 보며 발견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기업은 대표가 이해하는 범위 이상으로 절대 크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고객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단순히 인재 채용과 권한 위임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고 상품의 효용과 유행은 더욱 짧아지고 있어 대표의 철학이 반영되지 않은 의사결정은 미래를 절대 담보하지 못한다.아무리 뛰어난 회사라도 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스카우트하여 위임한다고 해도 회사와 조직은 최종 의사결정자가 이해하는 크기를 절대 뛰어넘지 못한다. 그래서 리더는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으로 조직을 돌아보고 시장의 움직임과 지식 시장 도메인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AI가 급속도로 발전하자 비슷한 오류에 빠지는 사람들을 본다. AI가 할 수 있는 스킬을 왜 내가 배우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꼭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유행이 지난 옷가지처럼 버리고 그 자리에 최신의 것을 늘 채우려 한다. 앞으로도 영원히 실력은 품성을 뛰어넘을 수 없고, 이론은 실행을 이길 수 없으며 필요한 인재는 기업이 직접 키우는 것이 본질이 될 것이다. 성공한 기업인과 리더는 공부를 끝없이 한다. 그 어떤 사회 초년생들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연구한다. 이재용 회장도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을 고용하지 못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통역을 거친 언어는 중요한 알맹이가 필터링 돼 전달될 수 있고, 직접 내 두 발을 딛고 내 두 손으로 내 머리로 이해하는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AI(LLM)는 하드코딩보다 최소 100배 비싸다. 하지만 사람보다 최소 100배 싸다. 하드코딩으로 할 수 있는 것을 AI로 대체하는 결정을 내리는 리더들이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 AI가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에게 시키는 것은 더욱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조직의 리더나 기업의 대표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의사결정을 한다면 사양 기업의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사양산업에서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일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정확하게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 기업은 없다’라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2024-07-07

‘우천 시’보다 중요한 것

유영희 작가 오랜만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대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강의할 기관에 이력서를 보내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동안 쓴 경학 연구 논문 제목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하니, 한글로 써도 충분히 알아볼 만한 내용이므로 그냥 보냈다. 나는 유교 사상을 전공했지만, 한자를 노출시켜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자 없이 한자어만 쓰면 일상에서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지난주에 여러 매체에서 인용된 학부모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에도 한자어가 있다.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우천 시, 금하다, 섭취·급여·일괄 같은 단어를 가정통신문에 쓰면 학부모들이 이해를 못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 댓글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사람도 있고, 중식을 중국 음식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고 한다. 여러 주요 언론에서도 이 글을 인용하면서 그 어린이집 교사의 문해력 한탄에 동조하였다.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어린이집 교사가 경력 9년 차라고 하니, 마흔 살이 안 되었을 텐데 그런 단어를 능숙하게 통신문에 쓰는 것은, 공공기관의 언어 습관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문에 ‘비가 오면’,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제공’이라고 쓰면 격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조선 시대의 어휘나 표현법은 소멸했고, 21세기에는 새로운 어휘가 탄생한다.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로서 2018년도에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공중파에서 퀴즈 문제로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기성세대가 언어 순화 운동을 벌인다고 해도 이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관공서에서나 쓰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보다 실정에 맞게 소통하기 좋은 한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문해력 향상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해력 향상을 위한 꿀팁 5가지가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라, 모르는 어휘는 검색해라, 긴 호흡으로 읽는 독서를 많이 해서 글과 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라,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라, ‘한글 또박또박’이라는 맞춤형 웹 기반 학습프로그램을 활용하라고 한다.그러나 ‘한글 또박또박’은 한글을 모르는 초등 저학년 대상 프로그램이라 사회적 문해력 저하 해결책은 아니다. 또 글과 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없어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니, 긴 호흡의 책을 권장하는 것도 넌센스다. 질문 자체를 못 하는데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할 수 없다. 이렇게 체계 없는 정책으로는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다고 독후감 경시대회를 열지만, 평소 지도는 해주지 않으니 사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구호 말고 글쓰기 교육처럼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2024-07-07

뺑뺑이 1회 경기 50년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인간은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의 폭풍우에 내몰리는 경우와 마주하기 마련이다.아무리 강력한 의지와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 해도 어쩔 도리없이 끌려가는 지경에 이르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이것을 우리는 운명이나 천명이라 부른다. 그럴 때 인간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실체에 전율하거나 절망하기 마련이다.지난 7월 3일 자동차를 몰고 서울로 떠난다. 나의 모교 경기고 73회 정기 동창회가 열리는 날이다. 50년 전인 1974년 나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뺑뺑이로 경기고에 입학한다. 공동학군 005로 시작한 남녀 고교는 경기여고와 경기고였다. 그날 나의 선친은 평소의 절반밖에 걸리지 않은 시간에 귀가하셔서 나의 경기고 입학을 축하하셨다.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교 평준화 정책 덕분에 나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꿰찬 인간이 된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이 내게 뺑뺑이 1회 경기 입학생의 비애와 원한 같은 것을 물어왔다. 아주 드물지만, 아직도 그때 감상을 묻는 자도 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뺑뺑이 1회 경기 입학생이자 졸업생으로 여러 가지 유쾌하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1 담임 정휘민 국어 선생은 호된 글쓰기 훈련으로 나의 습관 하나를 결정하셨고, 고3 담임 안성도 영어 선생은 소시민의 작은 행복을 일깨워 주셨다. 두 분 모두 경기고 선배였다. 그런 경기고 입학 5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수요일 구(舊) 우미관(優美館) 자리에서 열린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에 등장하는 명소가 우미관이다.17살 소년들이 50년을 살고 나서 60 중반 나이에 다시 만났으니, 그 감회가 어떠했을 것인지는 짐작 가능하리라. 입학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004년에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40 중반의 혈기방장한 시절이었다. 거기에 다시 20년이 보태지니 그사이 세상 버린 친구나, 투병 중인 벗들도 적잖게 늘어나 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은 반박불가(反駁不可)다.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출신고를 묻는 말에 경기를 말하고, 거기에 뺑뺑이 1회라는 말을 반드시 보탠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연유를 물을라치면, 뺑뺑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밤잠을 설친다고 대답한다. 타고난 결벽증도 있거니와, 사실관계 진술을 얼버무리는 것은 기질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화동 1번지 경기고는 사전에도 없는 ‘정독(正讀) 도서관’이 되었고, 삼성동 91번지 경기고 앞은 왕복 2차로 도로가 16차로 도로가 되었으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다시 만난 벗들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살과 백발 혹은 성긴 머리털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무겁고도 슬픈, 행복하고도 만만찮은 시공간과 인연을 웅변하는 것이었다.고타마 붓다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과 여기를 열렬하게 살라는 뜻이다. 그것을 재삼재사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가 서늘하게 마무리되는 우미관의 밤은 실로 아름다웠다.

2024-07-07

장마철 낙뢰

우정구 논설위원 낙뢰(落雷)를 우리말로 하면 번개다. 번개는 대기와 지표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꽃 방전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번개란 보통 적란운과 함께 나타나는데, 대기 불안정이 주 원인이다. 적란운은 강력한 상승 기류에 옮겨진 수증기에 의해 수직으로 높게 형성된 구름이다. 소나기, 우박, 번개, 토네이도와 같은 강력한 악천후를 동반하는 대표적인 구름이다.기상청은 벼락에 관한 기록을 담은 낙뢰 연보를 매년 발행하고 있다. 재해 경감을 목적으로 기록하는 낙뢰 연보에는 한 해 동안 발생한 낙뢰 현황과 지역별 발생 횟수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연보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7만3341회의 낙뢰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돼 있다.계절별로는 여름철인 6∼8월 사이에 75%가 발생했다. 가장 많은 달은 7월로 전체의 35%다. 또 지역별로는 전국 광역시 가운데 경북이 1만2982회로 가장 많았다.사람이 벼락을 맞을 확률은 2만5000분의 1정도로 매우 낮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청천벽력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다는 뜻을 지닌 속담이다. 그렇다고 낙뢰를 방심해서도 안 된다.지난해 6월 강원도 양양해수욕장에서는 낙뢰가 떨어져 6명이 다치는 희귀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 중 1명은 다음날 숨지는 불행한 일까지 벌어졌으니 드문 일로 방기해선 안 된다. 바닷물에는 전류가 흐를 가능성이 높아 벼락이 칠 때는 물놀이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지구촌의 기상이변으로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잦고 이로 인해 낙뢰 발생도 많아지는 추세다.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낙뢰에 의한 감전사고 예방에도 모두가 신경을 써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7

3차 에너지 전환과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세상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거대한 에너지산업은 산업사회의 상징이다. 인류는 수많은 시간을 자연(재생) 에너지에 의존해서 살아왔다. 햇빛과 바이오매스(나무, 풀 등)를 활용한 불에 의존해서 대부분의 문명 생활을 영위해 왔다.1700년대에 들어서서 땅속에서 캐낸 석탄을 에너지로 사용하여 내연기관을 작동시키는 에너지 활용을 통해 ‘1차 에너지 전환’이 이뤄졌고 이것이 1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석탄 에너지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돼 영국과 유럽이 후진사회에 머물고 있던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는 국제질서를 만들었다. 석탄 에너지 사용 유무에 따라 세계는 선진 문명국가와 식민지사회로 갈렸다.19세기에 발견된 석유는 1900년대 전반기 미국에서 ‘2차 에너지 전환’을 이끌며 미국을 새로운 패권 국가로 만들었다. 이처럼 새로운 에너지의 발견과 그에 따른 에너지 전환은 경제산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제관계와 세계질서에도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석탄 에너지와 석유 에너지는 거대한 산업의 발달과 막대한 자본의 축적을 통해 인간의 삶은 물론 국제 경제 질서와 글로벌 정치 질서까지 재편하기에 이르렀다.석유 에너지 바탕의 2차 에너지 전환을 주도한 신흥국가 미국은 현재에도 여전히 세계 총생산의 25%를 넘게 차지하며 글로벌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는 중요하고 에너지의 자립과 에너지 안보는 모든 국가의 사활적 문제이기도 하다.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석탄, 석유, 가스로 대변되는 화석연료를 통해 선진국들은 거대자본을 축적하고 축적된 자본은 새로운 집중 투자를 통해 부와 파워가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치며 세계질서를 유지해왔으나, 어느 순간 화석연료의 파워가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화석연료의 무한정한 사용의 부작용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이 20세기 말부터 나타나다가 이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다.유럽과 선진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체결된 1997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거치며 지구가 이대로 가다가는 100년 이내에 ‘생물 대멸종의 시대’를 맞을 것이며, 인간도 대멸종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이다.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5차 대멸종 이후 앞으로 100년 이내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계의 70%가 대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안으로 나온 것이 햇빛과 바람과 빗물 등 자연에너지만을 사용하는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대전환’의 선언이다.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를 에너지화하기 위해서는 거대자본이 필요하다. 에너지는 말 그대로 산업시대 자본의 집약체다. 하지만, 햇빛과 바람, 빗물을 활용한 에너지화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할 뿐이다. 자본도 물론 중요 하지만 산업사회처럼 자본의 비중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다양한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태양광의 경우 태양이 잘 비추는 곳엔 어디나 마을이나 도시, 산업단지, 논밭이 있다. 이들을 비용을 지불하고 매입해서 발전 시설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토지와 건물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 그리고, 글로벌 재원과 기술이 거대한 협력을 통해서만 탄소중립 사회를 달성할 수 있다.자연(재생)에너지로 새롭게 생겨날 ‘3차 에너지 전환’ 사회는 시민들의 거대한 협력, 에너지의 분산, 경제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구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산업 시대 주요 에너지 원인 석탄, 석유, 가스는 특정 국가와 특정 지역에 편향되어 있어서 대부분 국가는 에너지 자립이 힘들었다. 반면 햇빛과 바람과 빗물과 같은 자연(재생)에너지는 어느 나라든지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각각의 나라들은 그들의 국토와 글로벌 기술, 자본 등 국제적 협력을 통해 각기 에너지 자립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 스웨덴은 수력으로,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은 풍력과 태양광으로, 우리나라도 태양광과 풍력을 바탕으로 에너지 자립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에너지 패권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온다. 모든 나라가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 세상! 에너지 빈부격차가 없는 세상이. 석탄, 석유, 가스의 독점카르텔을 깨고 국가 간에 자연(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경제가 더 민주적인 사회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과 국가 간의 거대한 참여와 협력을 통해서.국내에서도 도시 주변, 산업단지 주변 농지가 농민들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거대한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거듭나게 되어 산업단지에 필수적인 재생에너지 공급원이 되고 농민들은 각자 발전사업자가 되어 농민과 산업이 상호 윈윈 하는 새로운 산업 질서가 형성될 것이다.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분산에너지라고 한다. 작게는 단독주택형 3K/Wh에서 몇 만K/Wh를 넘기 힘든 그야말로 조각조각 분산에너지인 자연(재생)에너지는 미래사회를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로 이끌어 가는 에너지 체계를 제공해 줄 것이다.더 평등하고 더 깨끗하고 더 풍요로운 세상을 자연(재생)에너지 중심 사회가 열어 줄 것이다.

2024-07-07

정신질환에 인식 변화, 포항시민이 선두에 서야

양만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잘 챙기고 있지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때 건강은 큰 병이 없고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 잘 지내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주로 신체건강에 국한하여 일반질환이 없는 상태이고 정신건강까지 나아가지 않는 것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건강의 상식이다.정신건강의 안부를 묻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여전히 편견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에 걸리면,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또는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왕따’를 당할 수 있는 두려움이다.우울증, 강박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다. 평생 동안 열 명 중 세 명 정도가 걸린다. 과거보다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개선되었다는 발표도 있다. 고학력 사회 구조에 따른 변화된 요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여타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지난해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의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대해 우리 사회는 보다 관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질문에 우리국민들이 동의하는 비율이 31%로 29개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이룩한 물질적 풍요로움에 걸맞게 국민정신건강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정부가 정신건강 정책을 적극적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정책 발표내용 중에 관심을 끈 대목이 있다. “예방, 치료, 회복중심으로 정신건강 정책을 대전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정신질환도 일반질환과 같이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정신병을 바라보는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정책에도 큰 비중을 두겠다는 담론이다.유럽정신건강분야에 연구하는 학자들이 2000년에 ‘좋은 정신건강(good mental health)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좋은 정신건강은 개인이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통제력 조절역량을 소유하고, 또 고통과 난관에 직면하여도 생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행복한 상태(a state of well-being)로 규정하고 있다. 좋은 정신건강의 상태로 유지하고 향상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건강의 문해력(mental health literacy)’을 포함한 13가지 핵심요인들을 제시했다.그 요인들 중에 ‘정신질환에 대한 태도’를 두 번째 요인으로 선정했다. 시민들이 정신병을 가진 사람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배제하는 정도를 넘어 낙인을 찍어 차별적 행동을 보이는가. 차별하고 배제하는 정도가 심한 사회적 환경에서는 좋은 정신 건강 상태를 유지하거나 치유하기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시민들이 정신병에 관한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교육과 홍보도 우리 사회 정신건강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포항시민들은 2017년 11월 15일에 지진규모 5.4 촉발지진의 발생으로 주택과 건물이 붕괴되었고, 정신과 신체에도 큰 충격을 가했다.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지진의 충격은 생존기반을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신체적 고통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했다. 여진도 2~3개월 지속되었고, 본진에 이어 여진 지진규모가 4수준까지 발생하였으니 다수 시민들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우울증, 불면증, 어지러움 등의 증세로 트라우마반응을 보였다. 큰 소리가 나면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하면서 지진공포심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영일만 앞바다 석유탐사를 위해 시추한다는 발표만으로 시추에 따른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표출하는 게 포항시민들이다. 포항시민들만이 겪는 집단트라우마의 반응이자 증상이다.지진재난만 아니다. 코로나 재난 발생으로 3년여 동안 감염과 치유의 후유증에 신체, 정신 고통에 피할 수 없었고 2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시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연속·중복재난을 당했다.재난에 따른 집단트라우마에도 포항시민들은 힘을 결집하여 빠른 시간에 남다른 회복력을 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었지만, 연속된 재난 발생에 따른 ‘드러나지 않은 집단트라우마(invisible collective trauma)’도 숨어 있다.포항시민의 정신건강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 지속적 실현되어야 하다. 예방, 치료, 회복을 위한 정신건강프로그램의 개발에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우리 지진트라우마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시민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선도적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2024-07-07

대구간송미술관

우정구 논설위원 간송(澗松)은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1906∼1962)의 아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전형필은 조상 대대로 한양의 종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우리나라 최고 부잣집 아들이었다.당시 전형필 집안의 재산은 논 4만 마지기 정도됐다는데, 지금으로 계산하면 약 800만평 규모 논이다. 여기서 나오는 순수익만 연간 15만원 정도. 당시 서울의 큰 기와집 1채 가격이 10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의 재산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그는 기와집 한 채가 1000원하던 시절 5000원으로 그림 한 장을 사고, 2만원으로 도자기 한병을 샀다. 모두가 집안 살림을 축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으나 오로지 문화보국 정신 하나로 고물품들을 사 모았다. 1938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자 지금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설립한다.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신윤복의 미인도 등 국보 12점과 보물 32점이 보관돼 있다. 비록 사립미술관이지만 소장 중인 유물의 내용과 가치는 어느 박물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잠재적으로 지정 가치를 지닌 일반 문화유산도 많은 것으로 전해져 있다.대구간송미술관이 9월 개장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지역 최초 분관이라는 점에서 시민의 관심이 크다. 9월 초 개관기념 전시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문화유산 등이 상설 전시될 예정인데 대구시의 새로운 명소로도 부상할 전망이다.특히 대구시민에게는 간송 재단 보유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문화혜택의 기회가 생긴다는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4

민주화운동의 다른 얼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산업화와 민주화가 두 축을 이루었다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인정하는 바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당시에는 우리 손으로 이룬 산업화나 민주화의 축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강화도조약 이후 개화기의 서구문물의 유입과 3·1운동을 거치면서 탈전제군주제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국가라는 제도권에 대한 민주화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역사적 실적이 전무한 상태에서 38도선 이북은 김일성의 의해 공산주의체제가 들어섰고, 이남은 이승만의 주도로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민주화운동의 뿌리를 찾자면 동학혁명이나 3·1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반발한 농민들의 봉기나 일제의 국권찬탈에 저항한 만세운동의 정신을 후일 민주화운동의 근원으로 볼 수 있을 터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은 1960년의 4·19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갖는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는 차츰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민주화운동의 한 줄기인 노동운동은,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그의 희생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 차례 법의 개정과 노동조합의 결성 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때의 노동운동과 공룡화 된 지금 노동조합의 행태는 같은 얼굴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리 신장을 위한 운동에서 정치세력화 된 집단으로, 사회를 전복하려는 이념집단의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문재인 정권 시절에 대거 정치판에 유입된 운동권 출신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더 이상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껏 이루어 놓은 민주화를 역행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가 하면 산업화를 폄훼하고 저들의 좌편향 정치이념을 밀어붙이는 독선적인 행태를 일삼았다. 그런 가운데 비리와 부정과 무능도 과거 어느 정권보다 심했다.지금 입법부를 장악한 ‘운동권’ 세력들의 행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화는커녕, 가장 비민주적인 북한의 ‘어버이 수령 체제’를 방불케 한다. 170석의 거대 정당이 철저하게 사당화 되어 당 대표는 독재자를 넘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나 다름이 없는 지위를 갖는다. 산더미처럼 크고도 많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대표를 결사옹위하기 위해 저들이 벌이는 온갖 작태는 광기란 말밖에는 대신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온갖 협박과 탄압에 좌고우면하던 검찰과 사법부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는지 수사와 판결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정황이다. 이재명과 조국을 비롯한 야당의 범죄혐의자들은 결국 시시각각 죄어드는 법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당의‘아버지’ 방탄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저들의 행태가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2024-07-04

꽃 같은 잡초들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벌써 7월. 장맛비라며 슬쩍 다녀간 빗줄기 덕분인지 들판에는 온갖 풀꽃들이 가득하다. 갑자기 닥친 더위에 한참 만에 들린 시골집에도 생각 밖의 초록색 막이 덮여있다. 그런데 그 속에 하얀 꽃 노란 꽃들이 피어있어 밉지 않은 꽃밭에 들어온 느낌이다.방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바꾸어 놓고 뒤뜰까지 둘러보니 풀들이 너무 무성하고 앞뜰의 키 낮은 정원수는 아예 밑둥치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아, 가지 정리를 좀 해야겠구나’하고 전지가위와 톱을 꺼내 들고 가까이 가보니 쑥의 무리와 예쁜 개망초꽃 탓이다. 개망초는 심지도 않았는데 재작년부터 흰 국화처럼 피던 꽃이라 그냥 두어온 것인데 알고 보니 온 들판에 피어 퍼드러지는 잡초라는 것이다.잡초는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식물 외의 것을 말하며 야초(野草), 즉 들풀인데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할 뿐 아니라 수명이 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여 햇빛과 바람을 막아서 다른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잡풀, 풀떼기라고도 한다. 집 주위를 둘러보니 토끼풀은 대문 앞 잔디밭에 애잔스럽게 꽃피우며 깔려있고 담장 밑 명아주는 자주색 열매를 맛보게 하여 그냥 두었지만 잔디 마당의 방동사니와 바랭이는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고 있다. 그러나 개망초는 들판을 지나다 보면 하늘하늘 무리 지어 춤추고 있어 아름답고, 뜰에도 예뻐서 그냥 두었는데 올해는 너무 많다. 아내는 꽃이 예쁘니 그냥 두자고 했지만 허리 높이까지 자라고 비바람에 쓰러진 듯한 모습이 보기 싫어 몇 포기를 남기고 모두 뽑아버렸다.개망초는 좀 늦게 피는 망초보다 꽃이 크고 예쁜데도 앞에 ‘개’ 자가 붙었고 달걀꽃, 계란프라이꽃이라는 이름대로 꽃 가운데가 노랗게 둥근 예쁜 잡초다. 그런데 왜 ‘망초’일까? 밭을 망친다고…? 망초류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귀화식물인데 구한말인 1905년 전후로 전국에 만발한 탓에 ‘나라를 망치는 꽃’ 망국초라 하여 ‘망초(亡草)’가 됐다는 사연이다. 어린잎은 한방재료로 쓰이며 소화불량, 설사, 장염뿐만 아니라 감기와 학질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꽃말이 ‘화해(和解)’처럼 다른 잡초들과 화해를 해야겠구나.쑥 무리도 다 뽑으려고 한다. 모양새가 국화 같아서 처음엔 놔두었는데 번식력이 워낙 강해서 화단석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줄기를 밀어 올린다. 약쑥은 봄에 쑥떡도 해 먹고 인진쑥은 약효도 많고 5월 단옷날 뜯어서 말려 걸어두면 집에 귀신이 못 들어온다고 해서 두고 있지만 이것 역시 화단에서는 잡초이니 뽑아낼 수밖에…. 그러나 잡초라고 해서 다 못된 것이 아니고 생태계에서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잡초가 없으면 병충해가 농작물을 공격하거나 익충의 보금자리가 줄어들 수 있겠다는 것이다.요즘 우리 국회를 보자. 이제 아름다운 국가 정원을 꾸며야 하는데 정치하는 인간, 즉 정치인 속에도 그들만의 잡초들이 보여 여의도 꽃밭이 일그러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몇몇 특검법, 방송4법 또 검사 탄핵안 등으로 인해 약 10여만 평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국회의사당 뜰에 개망초가 피지 않기를…. 전국을 뒤덮던 생태교란종 ‘노란 코스모스’ 금계국은 이제 지고 없다.

2024-07-04

저출생 극복은 대한민국 미래세대에 대한 책무

김정재 국회의원(국민의힘·포항북) 대한민국이 ‘멸종위기 국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인구 감소 때문이다. 전망되는 2024년 합계출산율은 0.68명. 이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출산율이 1이 되지 않는 국가는 머지않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년 간 저출산 정책에 380조 원을 들였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결국 막대한 예산만 날린 셈이 됐다.초저출생이 가져올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미 많은 지방도시가 소멸 위험에 직면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이 10명도 되지 않는 초등학교가 전국에 1587개나 된다. 향후 경제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 퇴보와 자산 가치 하락, 병력 축소로 인한 안보위협, 사회안전망 약화는 불 보듯 뻔하다.원인은 무엇일까?초등학교부터 자행되는 선행학습과 사교육,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떠안게 되는 학자금, 캠퍼스의 낭만도 모른 채 시작되는 취업경쟁, 이제는 월급만 모아서는 이룰 수 없는 내 집 장만의 꿈, 어렵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 이런 현실을 직접 겪은 2030들의 결혼 기피, 출산 기피가 요인으로 꼽힌다. 이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선진국처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실질적인 무상 교육을 도입하고 대학 교육비를 대폭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사교육을 경감할 사회 주도의 교육 혁신이 있어야 한다. 학원 교육이나 인터넷 강의를 능가하는 동영상, 메타버스, 디지털 트윈, AI 도우미 강사 등을 융합한 디지털 AI 무료 교육 시스템을 도입, 공정한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특히 결혼은 물론 출산과 육아 계획에 가장 큰 요소인 안정적인 주거 확보 대책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신혼가구를 대상으로 주택구입자금과 전세대출 자금을 확대 지원하고, 대출한도와 부부합산소득기준 상향, 상황기간 연장 등 혁신적인 정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사회도 아동 친화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부모 중 한 명 이상과 동반하는 자녀는 14세까지 기차 요금이 무료다. 또 17세까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도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36개월 이상이면 성인에 버금가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 아닌가. 앞으로는 다둥이와 한 자녀 관계없이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요금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저출생 극복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정부와 국민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문화도 개선해야 가능하다. 이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계획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고 부처 간 조정자 역할을 맡아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이에 발맞춰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도 ‘저출생 대응 특별위원회’를 만들었고, 본 의원에게 위원장 소임이 주어졌다. 현재 활발하게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음을 전한다. 저출생 극복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어젠다인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2024-07-04

정치는, 역동성을 회복하라

장규열 고문 정치에 있어 역동성은 정치의 변화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다.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선한 아이디어와 충만한 에너지가 늘 필요하며, 이는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를 통해 확보될 터이다. 정치가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정치인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미국정치 현장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의 최근 대선토론에서 나타난 정치지도자 노쇠현상은 우리에게도 사뭇 경고가 된다.첫째, 세대교체는 새로운 시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국정치에서 고령의 정치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종종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다. 젊은이들이 최신 기술과 경제, 사회적 트렌드를 잘 이해하여 이를 바탕으로 훨씬 혁신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도출할 수 있다. 디지털 산업과 경제에 관련된 정책이나 노동과 복지, 환경과 인구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방식은 젊은 정치인들이 더 잘 다룰 터이다.둘째, 정치의 세대교체는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한다.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는 다양한 세대의 목소리를 고루 대변해야 한다. 현 정치구조에서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청년정치인들이 더욱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불비례를 해소하고 모든 세대가 공정하게 대변되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셋째, 정치적 세대교체는 정치 참여를 북돋우며 정치적 효능감을 증대시킨다.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까닭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데 있다. 젊은 정치인들의 활약으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의견이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신뢰와 기대를 가지게 될 터이다.넷째, 세대교체는 정치에 있어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젊은 정치인들이 기존 정치의 비효율과 부패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인식하여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질 터이다.정치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게 하여, 정치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인 신뢰를 회복할 것이다. 정치의 질을 높여가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터이다.우리는 정치적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미국 정치에서 목격한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선 토론에서 양측 모두 낡은 이미지를 드러내면서 정치적 역동성의 부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아니었을까.두 후보의 토론은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시민의 정치 무관심을 부추겼으며, 정치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하였다.이는 한국정치에도 긴요한 시사점을 제공하여,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를 통해 정치적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명제를 강력하게 부각시켰다.결론적으로, 정치가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세대교체가 필수불가결하다. 정치가 노쇠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정치가 젊어져야 나라에 힘이 솟는다. 국민의 기대를 정치로 다시 모으기 위하여 우리 정치가 젊어져야 한다.

2024-07-03

미국 대선 ‘노인들의 전쟁’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미국의 60번째 대통령 선거가 곧 열린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막강한 군사 시스템을 갖춘 부정할 수 없는 지구 위 최강대국의 새로운 수반이 결정되기까지 4개월 남았다.이번 미국 대선에 후보로 나선 사람은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그런데, “이들의 나이가 대통령 업무 수행에 지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바이든의 나이는 여든둘, 트럼프는 일흔여덟.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적은 나이는 분명 아니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조롱하는 일부 옐로우 저널은 미국 대선을 ‘노인들의 전쟁’이라 비꼬기도 했다.그렇다면 세칭 ‘주요 선진국’으로 불리는 다른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들은 몇 살일까?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쉰셋,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마흔일곱이다. 둘 모두 조 바이든의 쉰네 살 차남 헌터 바이든보다 젊다. 트럼프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1977년생으로 마크롱과 동갑.바이든이건 트럼프건 대통령이 돼 정상회담에 나선다면 아들뻘과 일정을 함께하게 될 터다.세계엔 젊은 대통령과 총리가 적지 않다. 몇 가지 스캔들로 인해 명예롭게 물러나진 않았지만 전임 핀란드 총리인 산나 미렐라 마린은 겨우 서른넷에 국가 원수 역할을 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바이든이나 트럼프의 손녀뻘.노령이라고 모두 무기력하고, 청년이라고 전부 에너지 넘치는 건 아니다. 시인 고은은 “뒷방에 눌러 앉아 제 할 일을 찾지 못한다면 스무 살도 노인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단풍 물들 가을. 미국인들이 ‘에너지 가득한 청년 같은 노인’을 선택할 수 있을지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03

선거홍보판과 그라피티 독일여행기(下)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마침 우리가 갔던 때가 유럽의회 의원선거기간이었던가 보았다. 독일의 튀빙겐, 슈튜트가르트, 뮌헨,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비엔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도 선거홍보판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었다. 처음엔 하나같이 웃는 얼굴의 그 사진이 무엇인지 몰랐다. 동생이 선거홍보판이라고 했다. 모조지 2절 정도 크기의 빳빳한 종이에 선거에 출마한 사람의 얼굴이 크게 박혀있고, 당명과 당의 선거구호가 쓰여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홍보판이 길가 가로등에 묶여 있었고, 어떤 곳엔 가로수 밑둥에 네 면으로 둘러 묶어붙인 것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현수막에 비해 훨씬 사이즈가 적었다. 평소에도 우리의 현수막을 도시의 흉물로 여겨 보기 싫어하는 나였기에 유럽의 홍보판은 훨씬 간소해서 도시의 미관을 그다지 해치지도 않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몇 년 전 미국에서의 경험도 비슷했다. 어떤 집의 정원에 사람의 얼굴이 크게 박힌 피켓이 꽂혀져 있어 매우 궁금해했다가 그것이 선거홍보판이라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었다. 개인의 정원에 저렇게 꽂아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꽂은 것인지 궁금해 하는 내게 돌아온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그 정원의 주인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피켓을 자발적으로 꽂는다는 거였다. 선거는 겉으로는 조용하고 깨끗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치열하게 치러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두 대륙에서 받았다. 우리의 선거홍보물을 ‘도시의 붕대’라고 불리는 현수막에서 저런 좀 더 자그마한 부착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귀국 후 유럽의회 선거 후의 판세를 분석하는 뉴스기사를 봤다. 우리가 버스를 탈 때마다 봤던 튀빙겐의 그 환한 미소의 여성 후보는 당선되었을까 궁금하긴 하다.그러나 그 아름다운 도시의 미관을 심히 거슬리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라피티(graffiti)였다. 그라피티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길거리 여기저기 벽면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한다. 공공장소의 벽면뿐만 아니라, 상가의 벽면, 대학 건물, 지하철역 벽면과 지하철과 기차의 표면에도 빈틈만 있으면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주로 검은색의 페인트로 크고 작은 글씨를 쓰거나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린 정도여서 그라피티를 예술이라 명명해야 한다면 이는 그림이 아닌 낙서였다. 어느 도시 건 어떤 건물이든 분별없이, 가차없이, 빼꼼한 데 없이, 함부로 휘갈겨 놓은 거니, 낙서였다. 독일의 그 고풍스러운 거리,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물, 비엔나의 오래되고 아늑한 골목의 작은 가게 벽에까지 그려진 낙서엔 화가 치솟을 정도였다. 그라피티를 운운할 때면 예술이냐 범죄냐로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선 엄연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얼마 전 경복궁의 담장을 훼손한 낙서로 온 국민이 분노한 적도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그라피티를 거리의 예술로 대접하여 공공장소의 개성있는 벽화로, 또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그라피티까지도 있다고 들었다. 또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로도 인정하고 21세기의 문화현상으로 여기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현장을 목도해보니 예술로 용인하긴 힘들었다.

2024-07-03

무릎 통증의 원인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체 몸무게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큰 관절이 무릎이다. 자연스럽게 걸어 다니고 서있어도 지속적으로 무릎은 부하를 받는다. 처음엔 주변을 잡아주는 근육이 뭉치고 힘줄에 염증이 생긴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고 무릎을 계속 사용하면 무릎 뼈와 뼈를 잡아주는 인대에 문제가 생긴다. 내측 외측 측부인대가 늘어나고 염증이 생기고 손상된다. 관절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연골이 반월판과 부딪혀 닳거나 찢어지는 경우도 있다.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런 과정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으나 젊은 사람도 무리하게 사용하면 무릎에 손상이 온다. 무리한 운동으로 급격한 힘을 주면 전방십자 인대나 후방십자인대 손상이 오는 경우도 많다.대부분 무릎 통증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측 외측 후방 혹은 대퇴골 쪽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무릎 전체를 둥그렇게 만지면서 아프다고 표현을 많이 한다. 사실 무릎뿐만 아니라 관절이 아프면 보통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정확히 찾아보면 아픈 위치가 있다. 내측측부인대 혹은 외측측부인대쪽 통증이 많고 슬개골과 대퇴사두근 부위가 아픈 경우도 있다.통처를 정확히 파악해야지 정확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픈 위치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릎이 아프면 대부분은 무릎 연골이 닳았다고 생각하나 실제론 인대와 힘줄 쪽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이가 있는 사람도 관절이 많이 닳지 않았다면 인대와 힘줄의 정확한 치료로 큰 효과를 본다. 많이 닳은 경우라도 오랜 시간 주변 인대와 힘줄 근육을 꾸준히 치료하면 많이 개선되는 것을 보인다. 부어 있지 않으면 치료가 잘 되는 편이고 부어 있으면 치료가 오래 걸린다. 무릎뿐 아니라 모든 인체 부위에 공통적으로 적용 되는 사항으로 부어 있으면 붓기가 빠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부어 있는 자체가 주변 신경이나 인대 등의 구조물을 압박하기 때문에 치료가 오래 걸린다. 부어 있는 경우는 주변 조직이 압박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관절과 반월판의 손상이 빨리 오고 연골이 빨리 닳는다. 부어 있는 경우는 빨리 확실히 치료를 해야 된다.많은 인대와 근육 인대들이 결속해서 무릎 관절을 지탱하고 보호를 하고 있는데 무릎은 특히 깊은 쪽 구조물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 일반적인 침과 약침 부항 등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초음파로 깊은 위치의 문제를 직접 보면서 약침으로 근막을 분리하고 압박된 신경을 떨어뜨리면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달리기를 많이 한 젊은 사람이 무릎 바깥쪽이 아픈 경우는 장경인대가 무릎에서 마찰 돼서 생기는 것이 원인이다. 초음파 약침으로 통처의 부착부를 떨어뜨리고 영양 공급을 해주면 빨리 통증이 개선된다.무릎은 운동보단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고 통증이 있는 동안은 운동을 쉬는 것이 좋다. 운동은 무릎 주변 대퇴근을 강화시키는 스쿼트 같은 운동을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해주는 것이 좋고 근육을 만들어 주는 고기나 생선 등의 단백질 섭취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좋다.

2024-07-03

ㅏ와 ㅓ 사이에

정미영 수필가 초록 바람소리가 쏟아지는 여름의 해질녘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다시 읽었다. 돌아가시기 한 해 전에 출간되었기에.‘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또한 노후에 흙을 주무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도 큰 복이다.’라고 책머리에 말씀하셨다.마당을 돌보는 일은 선생님께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산문집을 발간하는 데에 있어 글감으로도 한몫 거들었다. 나도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글을 쓰고 싶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그러려면 건강을 챙겨야지. 아무렴, 먼 훗날 내 몸이 노쇠하더라도 총기를 유지해야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출판할 수 있겠지.땅거미가 뉘엿뉘엿 내려앉은 탓인지 눈이 침침했다. 그래도 눈을 비벼가며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요즘 들어 책을 얼굴 가까이에 대면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고 멀리 거리를 두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인다. 내 눈의 노화현상을 체감하는 진행형인지라, 독서가 눈의 피로를 높이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알곡만을 골라 밥을 지으려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내려 가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좋은 글은 책을 읽는 나의 안목에 따라 매번 감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예전에 밑줄을 쳤던 문장이라도 연필로 선의 굵기를 달리하며 덧입혀 긋기를 반복했다. 또한 새롭게 감흥을 주는 글귀가 나오면 별표나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정독했다.‘친절한 나르시시스트들’에는 선생님의 일본 여행담이 일부 나왔다. 그 중 삿포로 역전 서점 기노쿠니야에서 ‘맛있는 카디건 뜨기’라는 뜨개질책을 읽으시는 대목이 나왔다. 출판사의 뜻인지, 저자의 뜻인지, 책 제목이 독특하고 참신한 것 같았다. ‘멋있는’이라는 상투적인 제목이 아니라 ‘맛있는’이라고 짓다니. 글을 쓰고 난 뒤에 제목을 짓는 일로 심사숙고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제목 짓기의 어려움을.누군지도 모르는 일본 작가와 출판사의 작명 실력에 감탄하며 박완서 선생님께서 몇 장에 걸쳐 쓰신 뜨개질에 대한 추억을 읽었다. 선생님은 이삼십 대에 자녀를 위해 뜨개질을 많이 하셨단다. 그때 어렵게 구한 일본 뜨개질책은 꿈의 교본이었는데, 책에 나와 있는 대로 게이지를 내고 치수를 맞춰 코 수를 계산해서 뜨면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았다는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환하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나지막이 웃었다. 한국에 돌아와 때때로 꺼내보기 위해 책을 구매해 오셨다는 문장을 읽고, 책 제목을 내 마음에 담기 위해 앞 장을 넘겼다.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제목이 ‘멋있는 카디건 뜨기’였다. 내 눈에 ‘맛있는’으로 읽혔던 글자가 원래 ‘멋있는’이었던 것이다. ㅏ와 ㅓ 사이에, 내 눈의 노화 현상인 원시(遠視)가 숨어 있었다. 인생시계에서 마음은 생동감 넘치는 봄의 푸른 계절에 마냥 머무르고 싶은데, 어느덧 신체는 가을로 기울어졌으니 시력 저하로 원근의 조절이 약해지는 것 또한 노화 현상의 자연스러운 섭리가 아니겠는가.그래도 원시(遠視)로 인한 착각이 일상생활에서 낯익은 풍경이 될까봐 야속했다. 나는 인생의 늦겨울에서조차 내가 쓴 작품집의 퇴고는, 내 눈으로 직접 완벽에 가깝게 하고 싶은 바람을 항상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혈을 쏟아부은 노력의 결정체로 탄생한 내 수필에서만큼은 ㅏ와 ㅓ 사이에, ‘정상 시력’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일까.그나저나 박완서 선생님처럼 필력을 오래 유지하려면 내 눈 건강부터 신경 써야겠다. 건강을 위해 마당 있는 집을 구하기는 당장 어려운 일이니, 나는 궁여지책으로 며칠째 눈에 좋다는 결명자차를 주전자 한 가득 끓이는 중이다. 유감스러운 원시(遠視)가 더디게 오기를 소심하게 염원하며.

2024-07-03

경주를 담은 건물들, 경주 엑스코대공원

옛 신라의 중심지였던 경주는 수많은 고분이 있고, 불교와 관련된 유적이 있으며, 당시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들이 즐비하다. 신라만의 고유한 유물이 있는가 하면, 로만글라스(지중해)·황금보검(카자흐스탄)·인면 유리구슬(로마)·원성왕릉 무사상(서역인)처럼 동서 교류를 한 흔적도 발견된다. 또한 전통적인 기와집과 초가집이 마을을 형성한 곳도 있고, 한눈에 보아도 현대의 뛰어난 건축가들이 솜씨를 발휘한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도 찾아볼 수 있다. 경주는 남겨진 문화재와 오래된 역사가 현재의 삶과 어우러져 독특한 도시공간을 형성하고 있다.경주의 독특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잘 담아낸 것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 중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의 건축물도 손에 꼽을만하다. 지역의 이미지와 자연환경, 유구한 역사와 관광 도시로서의 면모가 건축물에 잘 드러나 있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의 여러 건축물 중에서 이타미 준(유동룡)의 ‘경주타워’, 쿠마 겐코(Kuma Kengo)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승효상의 ‘솔거미술관’이 유명한 편이다.엑스포대공원의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건축물이 있다. 일반 빌딩처럼 생긴 네모난 건축물의 안쪽을 목탑의 실루엣으로 파내었는데, 멀리서 보면 황룡사 9층 석탑을 표현하여 신라의 찬란했던 문화를 상징적으로 담은 것을 알 수 있고, 가까이서 보면 건축물의 아래쪽 골조가 노출되어 있어 해체주의적 스타일이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82미터나 되는 이 ‘경주타워’는 가장 높은 층에서는 미디어 전시를 감상하고, 65미터의 유리 커튼월 공간에서는 보문 일대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경주타워’는 이타미 준이라는 재일교포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작품이다. 그는 한국의 고건축·문화·예술을 사랑하였고, 한국에도 여러 건축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연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고유성과 인간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건물을 디자인했는데, 특히 땅의 물성으로 자연의 이치를 밝히며, 건축을 통해 드러나는 세계를 표현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 또한 반영하기를 원했다고 한다.‘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은 정문에서 왼쪽 끝에 위치하는데, 신라 고분과 경주의 주상절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빛을 가려주거나 비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하는 노란 철제 구조물이 지붕과 기둥으로 기념관의 영역을 규정하고 회랑을 형성하여 이동 동선과 방향을 알려준다. 철제 구조물이 뒤덮인 지붕 일부는 돔 형태로 봉긋 솟아올라 고분의 모양과 닮아있다. 또한 주건물의 마당 부분에는 독특한 분수대가 있는데, 마치 분수대의 바닥이 서서히 하늘로 치솟듯이 둥글게 말린 형태다. 하늘로 길이 열리는 듯한 이 수공간은 건물 안의 동선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둥근 유리 커튼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의 돔 형태를 따라 전시관의 내부 천정도 돔 형태로 되어 있고, 주상절리를 닮은 방사형 판재들이 전시 공간의 동선을 만들어 조형미를 더한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터널, 세계 유산을 미디어로 홍보하는 살롱 헤리티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문자가 새겨진 스테인리스 미러 기둥, 경주에서 열렸던 역대 엑스포를 문의 형태로 만든 ‘세계의 문’은 전시 자체로도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세계 속의 경주’의 상징도 내포하고 있다. 이 건축물을 디자인한 쿠마 겐코는 건축물이 자연과 융화되고, 지어질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는 건축을 추구한다. 제주도에서 지붕의 재료로 제주도를 대표하는 암석 현무암과 스테인리스 그물망을 접합한 재료를 활용한 바도 있다.‘솔거미술관’은 진정으로 자연 속의 건축물로 지어진 느낌인데, 언덕 위의 연못가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으며 땅의 높낮이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지어졌다. 황토로 된 벽은 경사진 언덕에 맞게 뼈대가 세워졌으며, 미술관 내부의 동선도 높고 낮은 본래의 지형에 따라 작은 공간들의 이어짐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작품은 평면이 아닌 둥근 곡률로 전시되어 있어 독특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며, 특히 제 3전시실의 통창은 자연조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3월에 완공된 후 통일신라의 대표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따 미술관의 이름을 지었으며,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승효상 건축가는 빈자의 미학을 건축에 잘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술관의 동선을 따라 거닐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그의 건축 철학이 미술관 곳곳에서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지는 곳곳에 보이는 자연·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전시물은 물론 자연조차도 하나의 작품으로 삼은 이 미술관은 그 생김새조차도 하나의 자연물처럼 보인다.신라의 옛 중심지 경주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지역성과 역사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도시에 속한다. 도시 곳곳에 수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미학적인 건축물도 경주를 제대로 담았다고 생각된다. 경주를 담은 건축물을 돌아보며 과거의 경주와 현재의 경주 그리고 세계 안의 경주를 느껴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7-03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이것은 복권이야기

김은 오랜만에 복권을 샀다. 복권 명당이라 불리는 판매소 근처 식당이 약속장소였고 약속시간보다 조금 빨리 도착한 덕분이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던 김은 문득 맞은편 보도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느긋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신호기를 쳐다보며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단거리 육상선수들. 뭐지? 뒤로 돌아선 김은 무려 마흔 두 번이나 복권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복권을 판 수수료만으로 건물을 샀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었다. 그 판매소인가? 보행신호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김은 복권을 살 생각이 없었지만 문득 어떤 의무감, 혹은 조바심 같은 것이 들었다. 자칫하면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 뒤쪽에 서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잖아. 김은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지갑에서 오천 원 권 지폐를 꺼내 손에 쥐었다. 지난 밤 꿈이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나? 꿈에 그녀가 나왔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시내 중심가를 걸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뭔가를 먹기도 했는데, 사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꿈에 나왔다는 것만이 정확한 기억이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어린 여가수의 꿈을 꿨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 주위에 말하지도 않았다. 글쎄, 소주 몇 잔이 들어가면 우스갯소리로 꺼낼 만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복권 판매대 앞에 서니 혹시 하는 마음이 일었다.자주는 아니지만 김은 꿈을 핑계로 가끔 복권을 샀었다. 왕이나 북쪽의 김씨가 꿈에 나오거나 용을 보거나, 팔색조가 노래를 부르거나 똥을 밟는 꿈을 꾸었을 때는 부러 복권판매소를 찾아갔다. 물론 결과는 형편없었다. 왕도 아니고 용도 똥도 아닌데 뭐. 개꿈이네, 개꿈. 그 날 아침, 그녀가 나온 꿈을 되새기던 김이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그랬던 김이 복권을 샀다. 그저 복권 명당이라 불리는 가게 근처 식당이 약속장소였고 약속시간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고 마침 그 날이 그녀가 나온 꿈을 꾼 날이었던 덕분이었다.술을 마시는 동안 김은 복권을 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사내 셋이 어울려 마시다 보니 거나하게 취했다. 흰소리들,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후회와 이렇고 저렇고 하는 한탄과 이렇다면 저렇다면 하는 헛된 희망들이 술잔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박이 대뜸 요즘 아내와 각 방을 쓴다며 한 숨을 내쉬었고 김과 홍은 그러면 그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잤던 거냐며 부러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대단하다는 말을 한 것 같다. 누구도 한 잔 더 하러 가자, 자리를 옮기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박이 술값 계산을 했다. 김은 얼마라도 보태기 위해 지갑을 열다 반으로 접힌 복권을 보고서야 자신이 복권을 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김은 휴대폰으로 꿈에 나왔던 그녀를 검색했다. 이름과 그녀의 히트곡 몇 개의 제목을 알았고 걔 중 한두 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는 있었지만 꿈에 나올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궁금했다. 그래, 넌 왜 내 꿈에 나온 것이냐? 그녀의 사진을 보며 김이 물었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뒤를 보며 대답했다.네? 손님 뭐라고요?아,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김은 검색화면을 덮으려다 그녀 사진 옆 프로필에 쓰여 있는 그녀의 생년월일을 보았다.‘1993년 5월 16일’516이네. 재밌네. 그런데 이거 5, 16 어디서 봤는데. 5, 16. 이거….김은 지갑에서 복권을 꺼내 복권 속 숫자를 살폈다. 5도 있었고 16도 있었다. 19도 9도 3도. 김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을 때 느끼는 그런 달아오름과는 달랐다. 쿵쿵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얼굴은 뜨거워졌다. 동시에 머릿속은 이상한 감각들로 차기 시작했는데 조이는 듯 답답한 듯, 하지만 아프지는 않은 그런 감각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지러웠고 눈앞은 캄캄해졌다가 또 부셨다가.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몇 번 눈두덩을 문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집에 들어선 김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가 지갑에서 복권을 꺼냈다. 읽고 있던 소설책 사이에 복권을 끼우고 책을 덮었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치킨을 먹고 있었다.“많이 먹었겠지만 이리 와서 한 조각이라도 드세요.”아내가 옆 자리를 비우며 말했다. 김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아내의 옆자리에 앉았다.“배불러. 그건 그렇고. 여보, 복권 샀어.”“복권 처음 사는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그게 내가 엊저녁에 아이유 꿈을 꿨거든.”“걔가 왜 자기 꿈에 나와? 당신 아이유 좋아해?”“싫어하는 건 아니지. 꼭 꿈 때문만은 아닌데 아무튼 복권을 샀거든. 그런데 오면서 보니까 아이유 생년월일에 들어 있는 숫자가 내가 산 복권 속에 다 들어 있는 거야. 신기하지 않아? 1등 당첨되면 어쩌지?”아내는 치킨 기름이 묻은 손을 물휴지로 닦고는 손을 내밀었다.“정말? 어디 봐요.”“책에 꽂아두었지. 쫙 펴지라고. 접어서 지갑에 넣었었거든.”김은 전날 밤의 꿈과 횡단보도에서 맞은 편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어떤 의무감과, 조바심,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살 수 밖에 없었던 복권,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확인했던 번호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내는 정색을 하고 마주 앉아 김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은 아내의 볼이 약간 붉어졌다고 생각했다. 치킨을 다 먹은 아이들이 방으로 돌아가자 아내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김의 옆으로 와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당신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복권 1등 당첨이 됐다고 쳐. 그 돈으로 뭐할 거야?”“1등? 하하. 당신도 내 말이 솔깃한가 보지? 사실 나도 긴장되기는 해. 뭐할 지는 당첨금이 얼마냐에 따라 다르겠지. 요즘은 예전처럼 많지는 않더라고.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니지. 토요일 발표니까 아직 삼 일 남았네. 당첨되고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닌가?”“무슨 소리야, 지금 생각해둬야 적어도 삼 일 동안 행복할 거잖아.”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술이 깨는 것인지 의식이 또렷해졌다. 당첨이 되면 뭘 하지? 직장은 계속 다녀야겠지. 1등은 서울까지 가서 당첨금을 받는다던데 하루 연차를 써야겠네. 세금 때문에 1등 당첨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그 사람들은 어디가야 만날 수 있지?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김은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앉았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아내가 돌아누우며 말했다.“자기도 잠 안 오지? 나도 잠이 안 오네. 오늘 이상하네.”아내는 베개를 고쳐 베며 말을 이었다.“당첨되면 말이야, 그걸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사자.”“아파트?”김은 우리가 사는 곳이 P시이고 서울에 살 일도 없는데 서울 아파트가 무슨 필요가 있냐며 되물었고 아내는 꼭 사람이 살기 위해 아파트를 사는 것은 아니지 않냐, 나중에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또 지방 아파트야 몇십 년이 지나도 가격이 그대로지만 서울은 다르지 않냐며 ‘서울 아파트 사자’를 반복했다. 김은 그게 바로 투기라면서 그런 생각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된 것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김은 자신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느꼈지만 굳이 목소리를 낮추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라니, 그것도 서울 아파트라니.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충분히 좋은데 그 큰돈을 달랑 아파트 한 채를 사는데 다 써버리자니. 김은 화가 났다.“복권 사는 것은 투기가 아닌가. 뭐.”“암튼 서울 아파트는 절대 안 돼. 그러느니 차라리 기부를 해버릴 거야. 전부.”“기부? 우리가 기부 받아야 하거든. 암튼, 어찌되건 당첨금 절반은 내 몫이야. 부부니까. 그렇게 알아둬. 전세를 끼는 한이 있더라도 난, 서울 아파트 살 거야. 마음 정했어.” 김강 소설가·내과의 아내는 다시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아니, 당첨이 된 것도 아닌데 벌써 왜 이래? 포항 앞바다에 기름이 나온 것도 아닌데 벌써 부자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랑 똑같네. 똑같아. 기름이 있다 쳐. 그걸 꼭 꺼내 써야 하나? 그냥 좀 두면 안 되나? 그동안 환경이니 미래니 떠든 건 다 뭔데?”김은 아내의 등 뒤에 대고 말을 했다. 아내는 이불을 당겨 덮었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거기서 포항 앞바다 기름이야기가 왜 나오나? 복권이야기 하다 뜬금없이. 할 말 없으면 항상 저런 식이지. 어린 가수 꿈이나 꾸는 주제에. 당첨만 돼봐라. 무조건 절반은 내꺼다. 끝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7-02

여름날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정열과 사랑의 계절 여름이 시작됐다. 어느새 반년이 후딱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과 함께 본격적인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벌써부터 때이른 무더위가 찾아오고, 장마전선의 간헐적인 영향으로 몇 차례 비를 뿌리면서 여름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로 이어지는 듯하다.여름날의 폭염과 폭우, 태풍 등의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해지지만, 그렇다고 여름날을 건너뛸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그저 철저한 대비와 대응으로 무난하고 무탈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여름날의 시련을 겪지 않고서는 과실이나 작물 등의 튼실함이나 풍작을 기대하기가 어렵다.세찬 비바람에도 끄덕없이 휘몰아치는 태풍을 견디고, 작렬하는 태양이나 타는 듯한 가뭄에도 온전히 내면을 채우며 오지게 익어야만 가을날의 풍성하고 알찬 열매를 거둬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고, 대추 한 알에도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들어있다고 노래한지도 모른다.여름은 강렬한 햇볕만큼이나 뜨겁고 활기찬 젊음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꽃들이 피어나고 잎새가 돋아나는 봄날이 화사하고 풋풋한 청춘의 시기라면, 풋과일을 익게 하고 때로는 시원한 녹음을 드리우며 왕성하게 알곡을 살찌워가는 여름날은 청장년의 때가 아닐까 싶다. 열정으로 도전하고 용기와 노력으로 꿈을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멈추지 않는다. 짙푸른 파도마냥 벅차게 용솟음치는 의지로 세상을 활보하는 꿋꿋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여름날은 유난히 낭만과 추억이 많은 때이기도 하다.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더위를 피한다거나, 이열치열로 산행 또는 자전거를 즐겨 타는 등 바깥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그만큼 사연도 많고 추억도 줄곧 어리게 될 것이다. 해변에서 부는 갯내 바람과 쉼없는 파도소리가 가슴 속까지 철석이며 시원함을 더하고, 계곡에서 반기는 새소리며 물소리는 한결 맑고 정겹기만 할 것이다.‘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추억이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여러 곳을 떠돌며/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잠시 숨어들지도 모른다//처음으로 간 곳인데/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 유모토 카즈미 ‘여름이 준 선물’ 중에서경주·영덕·울진 등 동해안 일대의 해수욕장이 개장을 앞둔 가운데 포항시지역의 7개 해수욕장이 이번 주말부터 일제히 개장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출로 해수 방사능 오염 우려나 동해안 해수온 상승으로 인한 상어떼 출몰 등의 긴장 속에서도 많은 피서객들이 바다를 찾을 것이다.해수욕장에서 열리는 해변축제나 볼거리, 먹거리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여름날의 선물 같은 낭만과 추억을 넉넉하게 누리는, 그래서 추억으로 더욱 행복한 여름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02

문화로 가는 혁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문화 혁신은 조직 내의 기존 가치관, 행동양식, 업무 절차 등을 변화시켜 창의적이고 유연한 문화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이나 제품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조직의 근본적인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 등을 습관화 하고 체질화 하여 조직 내 내재화 되어 ‘스스로 개선하는 것’을 혁신문화라고 한다. 그 수준에 따라 글로벌에서 통하는 일류 문화와 이류 문화 등으로 나뉜다. 10년 이상 혁신을 했는데 기업문화로 정착 못한 것은 방향 설정이나 과정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혁신이 문화로 못 가고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문화 혁신의 성공 조건은 첫째, 명확한 비전과 목표 설정이다. 혁신의 방향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혁신활동이 산만해진다. 둘째, 최고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경영진이 혁신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지 않거나 일관성 없이 방향을 변경하면 추진력이 상실 될 수 있다. 또한 변화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혁신이 지연되거나 실패 할 수 있다. 셋째, 직원들의 참여와 소통이다. 모든 직원이 혁신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대화와 토론이 없으면 시너지를 내기는 어렵게 된다. 넷째, 지속적인 교육과 학습이다. 학습을 통한 개인의 성장과 회사 발전을 위한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조직원의 학습을 멈추면 미래가 없고 혁신이 현 수준에서 멈춘다. 다섯째, 평가와 인증이다. 혁신의 진행 상황을 평가하고 올바른 피드백과 포상, 인증 등 동기부여를 반영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특히, MZ세대는 개인화 되어 있고 나에게 유익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필자가 지원하고 있는 포스코 혁신은 20여 년이 되고 있지만 현 주소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여러 요건이 있겠지만 명확한 방향과 단기, 중기, 장기적인 플랜이 있어야 하고 일관된 지속성으로 진화 발전해나가야 한다.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방향과 색깔이 변하면 어려워진다.현장은 혼란스럽고 딜레마에 빠진다. 제조업의 혁신은 일의 속성과 설비 특성, 생산 프로세스의 특징에 맞게 혁신의 툴(Tools)을 선택하고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하여 고유의 혁신 문화로 가야 한다.예컨대, 스마트 제철소로 가는 여정에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급강 생산조건에 필요한 방법론을 개발해 놓고 어렵다는 의견에 노무관리 차원으로 쉬운 칼만 장착하면 혁신의 가치성은 잃게 된다. 마치 닭이 계란을 못 낳는다고 닭을 잡는 꼴이다. 또한 경영 라인의 혁신에 대한 스폰서십을 얻는 일이다. 반대가 되면 동력을 잃게 되며 혁신은 경영진의 관심 속에 자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기업 혁신은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비전을 실현시키는 수단이기에 문제해결 툴 진화와 이를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는 운영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한 기업 고유의 혁신 문화는 인내와 창의성을 기반으로 일관된 방향과 지속성 속에 진화 발전된다.

2024-07-02

65세이상은 ‘운전금지·移民’ 요구하는 사회

심충택 논설위원 그저께 서울에서 역주행으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교통사고의 운전자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자 운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운전자는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고령자 운전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 같다.이 사고로 최근 우리사회에 확산하고 있는 ‘노인 이지메(왕따) 풍조’가 더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지금도 찬반논란이 일고 있지만, 지난달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들의 운전능력을 평가해 야간·고속도로 운전금지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정부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8년 개띠’로 표현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지난해부터 노인 범주에 들어가면서 우리사회는 노인인구가 급증했다.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아직 노인이 됐다는 의식이 전혀 없이 열심히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운전은 필수다. 그런데 갑자기 ‘조건부 운전면허 대상’으로 지명 당하니, 사회적으로 고려장을 당한다는 상실감을 지울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더 충격적인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다. 연구원이 매달 펴내는 간행물(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이 보고서에서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노령층이 물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노후를 보내면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을 이민 보내면 ‘비(非)생산 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기가 막힌 보고서다.의식적이든 실수든, 정부와 공공기관이 내놓은 이러한 ‘노인 이지메’ 정책은 시민사회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구 수성구 한 4성급 호텔 헬스장에서 ‘만 76세 이상인 고객은 회원 등록과 일일 입장이 불가하다’는 글이 게시돼 논란이 됐다.정부보다는 연령을 10살 정도 올렸지만, 헬스장의 처사가 “상식이하의 노인차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지난달에는 개그맨 3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을 소개하면서 “여기가 1만 5000명 장수 마을이다.들어본 적이 있냐. 중국인 줄 알았다”며 노인인구가 주류인 자치단체를 거리낌없이 조롱했다. 이 유튜브 출연자들은 영양군에서 젤리를 먹다가 “내가 할머니의 살을 뜯는 것 같다”는 섬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우리 사회가 65세 이상 인구를 노인이라는 범주에 놓고 ‘님비(Not In My Backyard)’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은 오래됐다.최근에는 좌·우 진영싸움과 세대간의 갈등, 부양 부담 등이 이러한 님비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젊은층이 재미삼아 쓰는 실버존, 노인네, 틀딱충, 연금충과 같은 단어들도 노인혐오 분위기를 부추긴다.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순리지만, 오히려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으니 상황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간의 증오심과 갈등을 유발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집단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2024-07-02

공룡의 도시 대구

우정구 논설위원 1억만년 전 대구에 공룡이 살았다면 상상이 될까.대구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1994년 한 시민이 신천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발견해 신고한 것을 비롯, 수성구 욱수골, 남구 고산골, 동구 지묘동, 북구 노곡동 등 여러 곳에서 공룡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최근에는 동구 혁신도시 인근의 초계산 일대에서도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돼 시민의 관심을 모았다. 1억만년 전 백악기 시대 초식공룡의 흔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공룡은 지금으로부터 2억5000만년 전인 중생대 후기 들어 처음 등장하여 6600만년 전에 조류를 제외한 계통 전체가 멸종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육상을 걷는 동물 중 가장 거대한 동물로 공룡보다 거대한 동물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트리케라톱스는 육상에서 제일 큰 포유류인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훨씬 거대하고 무거웠다.보통 500㎏에서 5t에 이르나 큰 것은 크기가 40m에 달한다.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부근에서 공룡의 뼈 화석이 발견되면서 공룡화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이후 경남 하동, 고성 등에서도 발견되고 함안, 통영, 울산 등지서도 수천개의 공룡화석이 발견됐다.대구처럼 대도시 도심에서 공룡화석이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 한다.공룡의 흔적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희소성, 접근성 등을 감안하면 잘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1억만년 전 대구는 거대한 호수였다. 그 옆을 거대한 공룡이 떼지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대구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2

이종암 시인의 우주에 모아놓은 꽃, 별, 총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북 청도 출신 이종암 시인의 시집 ‘꽃과 별과 총’(시와반시, 2024)이 출간되었다.제목은 ‘꽃과 별과 총’인데 내용 배열은 제1부 꽃, 제2부 총(塚), 제3부 별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대지는 세상 만물의 어머니이고 대지에 꽃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 대지의 무덤에는 사람이 묻혀있고 그리고 하늘에는 별이 떠 있다. 하이데거는 우주 만물의 존재론적 상징으로 꽃과 나무, 그리고 하늘의 새와 인간을 얘기했다.이종암 시인은 하이데거를 인식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존재의 무덤을 ‘총(塚)’으로 상징화하였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꿈을 묻어놓은 곳이 무덤이다. 이 시집을 해설한 신상조 평론가는 한 마디로 이종암의 시를 “무구의 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라고 정리하였다. “사월 산길을 걷다, 엉겁결에/한 소식 받아 적는다/저마다, 꽃!”이라는 이 시인의 인식은 사람이 저마다 다 꽃이라는 말이다. 그의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이 시인은 ‘별’을 상징하는 ‘꿈’이라는 시에서 “병든 여든일곱 우리 어머니/어저께 우리 내외 앉혀놓고 하시는 말씀//너거 아버지 세상 버린 지 십칠 년 만에 처음 내 꿈에 왔다 아이가, 집을 새로 다 지어놓았다 하더라, 거기서도 좋은 볏짚은 큰집에다 갖다준 것인지 반쯤 상한 짚으로 지붕을 엮어놓았다고 내가 또 잔소리를 막 하지 않았나, 이 꿈이 뭔공?// (중략) //안돼요, 아버지! 그곳에/ 어머니는 아직 가실 때가 아닙니다.” 이종암의 ‘꿈’에서 아름다운 이 지상의 꽃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이다. 그 한정된 “저마다 꽃인 사람, 연로하신 어머님이 꾸신 꿈에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어머니의 방언 육성으로 전해준다.“입 주변까지 번진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는/ 여든 일곱의 우리 엄마, 손순연/ 37도 무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꿋꿋하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드리니/“우리 선상님, 어데 멀리 외국 나가셨든게?”// 이리 무더운데 요새 뭘 드시느냐 하니/ “내사 하늘의 별 따다 안 묵는게.” 하신다// 면구스러움에 앞서, 그것 참!/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글도 모르는 분이/ 외국 유람은 어찌 알고/ 하늘의 별 따다 먹는 것은 또 어찌 알까?//시인이랍시고 까불락대는/ 헐거워진 내 언어가 다시 탱탱해진다/”. 이종암의 ‘시인의 엄마’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비유와 상징이 시시한 시인보다 더 싱싱한 상상력을 지닌 시인 엄마의 아들이다. ‘시인의 엄마’는 시인보다 더 시적 창조력이 탁월한 ‘시인 엄마’가 아닌가?“내사 하늘의 별 따다 안 묵는게.”, 자주 전화도 안하는 자식에게 “우리 선상님, 어데 멀리 외국 나가셨든게?”는 참 엄중하다. 방언시의 문학적 장치로서 직접화법이 가진 위력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요사이 방언시가 제법 유행을 타자 아무렇게나 사투리로 쓴 하찮은 시들이 얼마나 나도는가? 오만과 독선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폐적 사유를 하는 시인들,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깨닫지 못한 언어의 창조라고 나불락거리는 시인을 질책하신다.시인들이 쉽게 스스로 갇혀버리는 환영의 틀을 초등학교도 나오시지 않은 엄마가 따끔하게 일깨워주신다. 시인은 천상으로 가는 연도에 선 언어의 마술사나 되는 것처럼 “배터리 닳아가는 자동차에게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시인은 위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시라는 건 세상에 말 걸기이다. 수업 끝”이라는 자신의 ‘시론’이라는 작품에서 아주 해학적인 자조로 자신을 관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종암 시인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그는 ‘숙살지다’(청도에 가서), ‘댕강무디’(이총, 댕가무디), ‘우짜든동’(하늘예금), ‘하늘예금’(하늘예금), ‘선상님’(시인의 엄마), ‘안 묵는다’(시인의 엄마), ‘그름감별사’(그름감별사), ‘구름관찰사’(구름감별사)에서처럼 방언도 살짝 빌려오고 새로운 낱말도 창조하는 우주를 관통하는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청정하고 순수하고 맑고 깨끗해서 살갑다.이 시인의 시의 내면에는 인간 존재의 빈자리들 곧 꽃과 별이 총총한 이 우주 공간에서 적멸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삼인해’라는 시에서는 그 심연의 우주에 빈자리 “허공의 옆자리가 그토록 시리고 아프다”라며 꽃과 별의 시인의 인식의 깊이를 가늠케 해준다.

2024-07-01

바예지드 1세와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

발칸반도는 동으로 서쪽으로 끊임없는 수백, 수천 번 외적의 침략으로 전쟁에 시달린 반도이자, 지금도 수많은 민족이 뒤섞인 까닭이요, 끈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는 강인한 민족들의 땅이다. 우리네 한반도와 비슷한 슬픔을 지닌 땅이다.코소보전투에서 승리한 바예지드 1세가 술탄의 자리에 오른다. 여세를 몰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다. 이때 헝가리와 스위스 연합, 제노바공국,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베네치아까지 합세해 마지막 대규모 십자군, ‘니코폴리스 십자군’이 결성된다.1396년 9월, 드디어 헝가리 도나우강가 니코폴리스에서 두 군사가 맞붙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도 바예지드 1세가 승리를 거두면서 세계를 향해 성전의 선봉임을 과시했고, 하늘에 자랑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성공이 실패를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알바니아를 버스로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오금을 저릴 만큼 험준한 산악지형에 아연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알바니아 모레아 같은 험준한 산악지대가 넓게 형성된 곳은 이슬람의 힘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바예지드 1세는 그냥 두지 않았다. 무리한 군사적 행동은 역풍을 감당해야 했다. 발칸반도에 술탄의 신하로서 복종하고 고개 숙이는 에니체리가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도거나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군인이었다. 비(非) 무슬림으로 구성된 기독교계 직업군인을 이용해 무슬림과 투르크 인을 상대로 살육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는 토후국은 물론, 백성의 분노를 샀다. 성전, 전사의 원정대로선 이상과 신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 일은 훗날 오스만제국으로서도 재앙으로 작용한다.이때였다. 1402년이 되자 세계사에 가혹한 정복자로 알려진 티무르가 등장한다. 현재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서정(西征)한 티무르와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티무르, 위대한 약탈자, 폭력의 화신,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하지 않은 무적의 사나이였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비옥한 땅일지라도 풀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평야는 불모지로 변했다. 남녀노소 죽이는 것을 파리 목숨과 같이 여겼다. 사람의 머리로 탑을 쌓았다니 그저 할 말을 잊는다. 진정 악의 화신이라 해도 좋았다.“…. 화려했던 바그다드는 폐허로 남았다. 사원도, 기도하는 신자도 볼 수 없다. 나무들은 메마르고 수로는 막혀 기능하지 못했다. 도시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가혹한 모습이다.”티무르에 침략당한 지 35년이 지난 후 이집트의 모 역사가가 기록한 바그다드 모습이다. 티무르는 오아시스를 주변으로 독자적인 이슬람이 번지면서 자연적으로 스며든 이슬람을 받아들인 경우다. 14세기 후반, 사마르칸트 등 중앙아시아의 비옥한 땅을 평정하고 30여 년에 걸친 정복 사업은 살육을 동반한 가공할 만한 업적을 이룬다. 북쪽의 러시아국경에 걸쳐있고, 남쪽으로는 인도, 동쪽으로는 중국변방까지, 서쪽으로 타슈켄트, 테헤란, 앙카라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서진을 이어가 소아시아에 도착해 오스만제국과 대치한다.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있던 바예지드 1세는 급하게 동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무적의 이슬람군도 티무르에게는 어림없었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예지드 1세가 지배한 토후국 지도자 중 일부가 오스만제국을 배신하고 티무르에게 붙었던 것이다. 비(非) 이슬람군으로 이슬람교도, 혹은 튀르크족을 죽이는 전쟁에 성전이란 이름으로 동조할 수 없었다. 그러자 승패는 불 보듯 뻔했다. 세기의 패자 오스만제국도 티무르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이 전투에서 ‘번개왕’ 바예지드 1세가 포로로 잡힌다. 수치심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던 1402년, 그는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그리고 화려한 문화를 향유했던 바그다드는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때 세르비아 출신 에니체리들이 바예지드 1세를 위해 결사 항전했다고 전한다. 충성심을 잘만 심어 놓으면 이처럼 엄청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각설, 오스만제국을 점령한 티무르는 욕망에 불탄 나머지 역사적 오판을 범한다. 오스만제국으로서는 이만한 다행히 없었지만, 제국을 완전히 무너트리지 않았다. 오스만 군사를 유럽 침략에 선봉을 세우려는 티무르의 욕심이었다. 서구인으로선 천만다행한 일이 또 벌어졌다. 1402년 티무르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를 치기 위해 사마르칸트로 향했다. 세계의 패자가 두 명이 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는 티무르와 일전을 준비했으나 다행(?)히도 무위에 그쳤다. 티무르가 진군 도중 졸지에 열병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그이 나이 69세였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명나라에 대한 원정을 멈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여기서 역사적 가정, 즉 히스토리 이프(History if)란 말이 있다. 만약 영락제와 티무르의 한판 대결이 성사되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스토리텔링 작가

2024-07-01

결혼은 미친 짓이다

1985년생 남성 중 절반이 미혼이라고 한다. 1984년생인 나는 또래 열 명 중 아직 장가 못 간 네댓 가운데 하나니 서러울 것 없다. 주변에서 여자 좀 만나라고 한다. 그러면 대답한다. 만나고 싶어도 여자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며 너스레 떨지 말라고들 하는데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여아와 남아의 자연적 성비는 100대 104~107 정도다. 한국에서는 이 성비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심각하게 한쪽으로만 치우쳤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감식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1990년 100대 116.5까지 성비 불균형이 치솟더니 급기야 1994년에는 셋째 아이 이상 성비가 206.9에 달했다고 한다. 딸 하나 태어날 때 아들 둘이 태어난 셈이다.30년에 걸친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오늘날 한국은 합계 출산율 0.66명의 초저출생 사회가 됐다. 나 같이 훤칠한 쾌남마저 여태 짝을 못 찾은 걸 보면 과연 성비 불균형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건 경력 단절, 양육비 부담, 주거 불안, 돌봄 시설 부족 등 사회 제반의 문제다. 젊은 남녀가 결혼과 출산에 회의적인 것은 서로 싫어서가 아니라 서로 좋아 합쳤더니 “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황인숙, ‘움찔, 아찔’)어 버리는 사회 현실 탓이다.엊그제 죽마고우와 영월 김삿갓계곡에 갔다 왔다. 1984년생 노총각 둘이서 물장구치고 백숙 삶아먹고 민물장어와 한우 갈비꽃살 구워먹고 산메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진탕 술 마시고는 한 침대에 등 돌리고 누워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코골며 잤다. 그렇게 2박3일 잘 놀았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낮술 먹다가 “애인이랑 왔으면 재미없었을 것”이라는 의견 일치를 이뤘다.결혼을 생각할 때면 친구나 나나 막막해진다. 막막하고 자신 없는 걸 할 바에야 그냥 이렇게 둘이 놀러나 다니자며 낮술에 취한 채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를 합창했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통계화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미혼 사유는 구체화되며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굳건해진다. 내가 결혼하지 않는(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지만 주변 결혼한 이들을 보면 전부 이상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다들 수면 아래서는 처절한 물갈퀴질 중일까? 나는 아무리 해도 저렇게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발버둥 쳐봐야 안 될 것 같고, 근사하게 살자고 발버둥 치기도 싫다.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로 고쳐본다. 이 가치관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좋겠지만 100대 116.5다. 되겠나?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 아이에 대한 애착이 걱정된다. 교권 간섭, 음식점 추태, 차량 뒤에 붙인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문구 따위 아이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과보호,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의 사례들을 보며 혀를 차다가도 ‘내가 아빠가 되면 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군대에서 자식들이 죽었다. 음주운전에 관대하고 아동 성범죄에 자비를 베풀며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이 잘 사는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고슴도치 부모가 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아이 걱정에 밤잠 설치고 늘 어딘가 곤두선 채로 살게 될까봐, 그리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식에게 정작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할까봐 결혼이 생경하기만 하다.셋째, 혼자서 충분히 행복하다! 이 행복의 울타리 안에 누가 들어오면 함께 더 행복할까? 결혼한 사람들은 왜 결혼하지 말라고 하나. 왜 혼자 살라고 하나. 자기들은 결혼했으면서, 웃긴다 정말. 왜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결혼 생활을 푸념하며 배우자 험담을 하나. 결혼한 친구들 전부 이구동성 “네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럴 거면 대체 왜 했느냔 말이다. 내밀한 사정들은 모르지만 어쨌든 결혼한 사람들의 말과 글과 눈물과 한숨과 자기비하와 방황과 가출과 종교에 귀의와 이혼소송 등을 종합해보면 결혼은 고통이자 만병의 근원이며 악의 축인 동시에 생지옥이다.얼마 전 나는 꿈에 그리던 낚시용 레저보트를 장만했다. 한 선배가 말했다. “이제 보트 같이 탈 여자만 있으면 되겠다”라고. 내가 답했다. “보트를 샀다는 건 평생 독신선언 아니겠습니까?”

2024-07-01

불안을 다루는 법

디즈니·픽사의 대표작 ‘인사이드 아웃2’를 보고 왔다. 9년 만에 돌아온 2편 속 주인공 라일리는 13살이 되어 사춘기를 맞이한다. 행복을 위해 매일 바쁘게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운영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5인방에 의해 본부는 평화롭게 흘러갔으나 라일리가 사춘기를 맞이한 어느 날부터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가 본부에 나타난다.새롭게 등장한 감정인 당황은 많은 사람들 앞에 발표를 할 때나 잘 보이고 싶은 친구들에게 이목이 집중될 때 얼굴이 빨개지며 나타난다. 따분은 어딘가 심드렁해져 스마트폰을 볼 때나 침대 위에 하루종일 누워 뒤굴 거릴 때에 등장하고, 부러움은 멋지게 꾸민 학교 선배들을 볼 때나 근사한 학교 시설을 둘러 볼때 나타난다. 2편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감정인 불안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세어본다. 불안은 라일리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어하며 안정감을 돕고, 이를 지켜보며 불만에 휩싸인 기존 감정들은 새롭게 등장한 감정들과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기존 감정들이 본부에서 쫓겨나게 되고, 다시 본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라일리의 의식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신념 저장소라 불리는 아주 깊은 곳에 다다른다. 의식의 끝인 신념 저장소는 경험으로 만들어진 감정 구슬이 자리하고 있으며, 여기서 중요한 감정 구슬은 신념이라는 끈이 된다. 신념의 끈은 라일리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신조가 되어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잠재의식을 지니게 한다.이러한 잠재의식은 결국 자아가 되고, 라일리를 움직이게 한다.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는 변화를 앞둔 성장기의 불안감, 그리고 정체성 혼란이 찾아온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선호도가 바뀌고 기분 또한 타인에 의해 제어된다. 사춘기와 함께 나타난 불안이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만 가고 결국 라일리의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과는 대비되게 절친이었던 친구들을 외면하고, 거짓말과 그릇된 행동을 하며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여태 자신의 신념이었던 ‘나는 좋은 사람이야’가 무너지게 되고, 내면의 모든 감정과 신념이 한꺼번에 뒤엉키고 폭발하며 자아를 잃게 된다.자아가 파괴된 라일리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한다. 자신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신의 신념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라일리를 제어하던 불안이도 길을 잃는다. 불안이는 오로지 라일리를 나쁜 환경과 선택에서 지켜주고 싶었으나, 지나친 욕심 탓에 라일리의 자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로 돌아온 기쁨이는 불안이를 안아주며 이 모든 걸 다시 돌려보자고 말한다. 때마침 패닉에 빠져 있던 라일리에게 오랜 친구들이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그 순간 라일리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환경과 감정을 받아들인다. 그간 멀리 하려던 불안이란 감정이 받아들여질 때, 불안을 벗어날 수 있고 불안은 금새 기쁨과 슬픔, 우울, 소심, 부끄러움 등 여러 감점을 뒤섞인 페르소나의 형태를 보여주며 무너졌던 라일리의 자아가 회복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 후 라일리에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그녀의 자아는 ‘나는 선한 사람’이지만, ‘때로는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변한다. 또한 감정은 자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뿐, 결국 자아와 신념을 만들어가는 것은 라일리 자신임을 인정하고 깨닫고 나서야 사춘기를 넘어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신념에 의해 인간은 움직이고 살아간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신념 한 가지가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을 하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신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매사에 자신 없는 행동을 보이거나 금방 불안과 우울에 휩싸여 무엇이든 회피 행동을 보이고 만다. 라일리는 기쁨과 슬픔, 불안 등의 여러 감정 중 그 어떤 것 하나도 내세우지 않고,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신념을 가지며, 하나의 자아가 아닌 다채로운 자아를 지닌 사람으로 변하는 성장을 택한다.‘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는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몰아세운다. 그 때문에 커다란 위기가 왔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현재엔 지나치게 불안감이 들 때면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불안을 잠재운다. 여태껏 나를 몰아세웠던 건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 불안이었다는 점과 라일리처럼 불안은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한단 점에서, 불안을 단순히 다루는 법에 대해 오래토록 생각하게 했다.

2024-07-01

‘CCUS 탄소 포집-활용-저장’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이어진 브리핑에서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중 4분의 3이 가스, 석유가 4분의 1로 추정된다”고 했다. 향후 일정은 2028년쯤 공사를 시작에 2035년 정도에 상업적 개발이 시작될 수 있으며, 매장가치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했는데 약 2200조 원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사용량을 기준으로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쓸 수 있는 양이다.이에 대부분의 언론은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되고, 막대한 경제적 가치로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취지로 대응하였다. 그런데 마침 발표 다음날인 6월 4일 이회성 전 IPCC의장을 모시고 개최한 대구탄소중립지원센터의 세미나에서 한 대학생이 이 전 의장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였다. 보도된 대로 동해안의 석유개발을 하면 우리나라는 천연가스와 석유 사용량이 많아져서 2050년까지 약속한 탄소중립이 어렵게 될 것 같은데 방법이 있을까? 라는 취지의 질문이었고, 이 전 의장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CCUS 탄소 포집-활용-저장’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CCUS’는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의 약자로 상당히 생소한 용어이지만, 우리나라가 2020년 전 세계에 굳게 약속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작년 4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수립된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에는 우선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6억8630만t) 대비 40% 감축(4억3660만t)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업(2억370만t), 전환(1억4590만t) 그리고 수송(6100만t) 분야의 순으로 막대한 감축을 해야 하고 산림흡수와 국제감축을 더해 결국은 ‘CCUS’를 적용하여 감축(1120만t)하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국가적으로는 ‘CCUS’를 도입해야 2030년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대구시는 금년 5월에 수립된 ‘제1차 대구광역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 감축목표 45%(2018년 대비)를 달성(556만t)하는데 건물, 수송, 폐기물, 농축산 그리고 흡수원만 적용했고 ‘CCUS’는 감축수단에 없다.이처럼 국가목표에 있는 ‘CCUS’가 아직 대구시와 같은 지방정부의 감축수단으로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관련 국가계획이 구체화 되고, 기술발전과 함께 사업성이 높아지면 지방정부도 감축수단으로 도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정부는 앞으로 ‘CCUS법’ 제정과 동해 가스전을 활용한 실증과 추가 저장소 확보, 원천기술개발과 실증·사업화까지 원스톱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구경북은 동해안 석유·가스 개발 추진에 대응해 ‘CCUS’ 관련 연구개발과 감축 사업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