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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쾌하게 지내기

며칠 전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요즘 나를 성가시게 하는 일들에 대해 토로하게 됐다. 가만히 듣던 친구가 넌지시 물었다. 그게 너의 평화를 방해할 만큼 큰일이야?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말하니 거추장스럽던 고민이 한순간에 사소한 것으로 변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통화를 마치면서 친구가 덧붙였다. 은강아,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가볍고 경쾌하게 지내자.그 순간 내 안에 중요한 무언가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더운 여름날 살얼음이 낀 맥주를 들이켜는 감각과 비슷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시원하면서 따끔한 기분. 친구는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상태를 딱 들어맞는 언어로 짚어준 것이다.사실 ‘경쾌하다’는 말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러닝머신 위에서 경쾌하게 달려보겠다는 다짐으로 발을 구르고 학생들의 작품을 첨삭하며 조금 더 경쾌하게 진행해 보라는 조언을 내어놓는다. ‘경쾌하다’고 중얼거리면 어쩐지 꽉 막힌 것들이 시원하게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가 아니라 좀 더 상쾌하게 쭉 뻗어가는 느낌이랄까. 힘차게 전진하는 쾌속 열차처럼, 천진한 아이의 쾌활한 웃음처럼.‘경쾌하게 지내기’란 언뜻 들었을 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사람과도 비슷하다. 수중에서 제대로 이동하기 위해선 몸의 정렬을 깨지 않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적당하게 힘을 빼는 것도 중요하고 물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멀리서 보면 우아하고 민첩해 보이나 사실 상당한 체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어떤 준비도 없이 물에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요동치는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허우적대다 가라앉을 수도 있다.부정적인 생각은 물먹은 솜과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그때 그 사람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지? 난 항상 최악의 선택만 하는 것 같아. 생각은 생각을 먹고 더욱 불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억지로 구겨서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쾌하게 나아가기 위해선 먼저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한다.최근 나는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골몰하고 있다. ‘뭐 해 먹고살지?’보다 ‘어떤 자세가 편안하지?’라는 질문에 무게를 두고서. 물론 나는 아직 젊은 나이고 주렁주렁 매달린 고민과 불안이 당연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젊다고 해서 괜한 것을 짊어질 이유는 없다. 필요한 물건 대신 무거운 돌을 가방에 넣는 건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니까.때론 복잡하고 부조리한 세계가 나의 다짐을 방해한다.집 앞 새로 생긴 카페의 레몬 케이크, 너무 맛있어! 일상에서 즐거운 일이 생기면 호된 꾸짖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네가 지금 케이크에 기뻐할 때니? 오늘도 혐오에 기반을 둔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고 지구 반대편에선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어. 그뿐이면 다행스럽게? 자본의 논리 속에 약자는 희생당하기 마련이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이상 기온으로 생태계가 엉망이라고.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마음을 주저앉히기에 효과적이다. 요즘처럼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고 흐뭇해하기가 무섭게 곧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것이라는 악담이 끼어드는 식이다. 이러한 속삭임은 타인의 언어라기보다 내 안에서 작동되는 장치에 가깝다. 그러니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나의 괴로움이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방기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세상을 헤쳐 나가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인생이라는 바다를 헤엄쳐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우리 앞에 거친 파도는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경쾌하게 지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며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살랑대는 보사노바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진한 맥주 한 잔 곁들어도 좋겠지. 그렇게 태평하게 굴다간 무시무시한 태풍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그런 목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대꾸하고 싶다. 알겠어요. 우선 여기 이 레몬 케이크를 먹어봐요. 정말 맛있다고요.

2024-06-10

마무리 큐시

강길수 수필가 뭔가 다르다. 평소에 안 나던 소리가 차 뒤 트렁크 쪽에서 들린다. 어떤 울림 같은 소리다.“차 소리가 이상한데….?”하고 함께 탄 아내에게 말했다. 그녀는 별다른 말은 안 했다. 짐을 잘못 실었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텃밭까지 갔다. 두어 시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과 300m 정도 달렸는데, 차 뒤 오른쪽 바퀴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차를 세우고 살폈다. 타이어 공기가 다 빠졌다. 제법 큰 쇳덩이가 타이어에 박힌 것도 보였다.농로 중간이라 차 세울 자리가 마땅찮아 200m 정도 더 가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세웠다. 비로소 박힌 쇳덩이를 자세히 보았다. 건설공사에서 콘크리트 벽을 칠 때, 쓰는 마감재 부착용 연결쇠였다. 공사 관련자가 길에 떨어뜨린 게 공교롭게 내차 뒷타이어에 박혔다. 앞바퀴였다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어이없다.공사 앞뒤 처리를 말끔히 안 해 엉뚱한 내 차가 피해당했다고 생각하니, 황당하고 분하기도 했다. 일단, 스페어타이어를 끼려 시도했으나 어려워 보험 서비스를 불렀다. 전화하는 내 손이 잠시 떨리기도 했다. 보험 출동 기사는 이런 게 박히는 사례가 제법 있다며 때울 수 없으니, 새 타이어로 바꾸라고 권했다. 결국, 타이어를 앞당겨 바꾸는 불편과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지난 7, 80년대 산업화 시기를 실험실에 근무했다. 당시 대부분의 실험기기 장치는 외국산이었다. 어느 날, 국산 전기 건조기가 처음 들어왔다. 검수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손에 상처가 났다. 모서리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날카로운 금속 돌출부에 손을 베인 것이다. 그때의 실망감과 이 타이어 펑크 사고의 황당함이 궤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실험실에서 품질관리 활동을 하던 때, 미팅에서 한 부서장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품질관리는 마무리 큐시(QC·Quality Control)를 잘해야 해.’라고…. 나는 국산 건조기 생각이 나며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었다. 오늘은‘사람의 활동은 마무리 큐시에 유종의 미가 달렸다’하는 마음이 짙게 다시 들었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과 용역을 내주는 일이 바로 마무리 큐시니까.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가스누출 사고, 세월호 침몰 같은 끔찍한 대형 사고에서부터 오늘 타이어 펑크처럼 사소한 일까지 원인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 요인은 마무리 큐시가 제대로 안 된 탓일 터. 실무자, 감독자, 감리자 등 관련자가 자기 일을 온전히 해냈다면 즉, 마무리 큐시를 제대로 했더라면 큰 사고란 불행은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 사회는 전 분야가 마무리 큐시를 덜 하거나 오롯이 안 하는 것만 같다. 정치인, 공직자, 언론 등이 말로는 ‘국민, 국민’하지만 속은 제 잇속 챙기기 바쁜 비양심적 행태가 뻔히 보이니 말이다. 또, 담배꽁초 처리 같은 기초질서를 제대로 안 지키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라도 사회 온 구성원이 마무리 큐시를 잘 해내도록 이끌고 가르쳐 국민이 안전하고 복된 나라로 바꿔나가기를 간절히 빈다.

2024-06-10

교육 현장의 모순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4년 상반기 대학가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무학과 단일전공’의 실시 여부였다. 의대 정원 확대와 다르게 무학과 단일전공은 대학 관계자 사이에서나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대학 교육의 근간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무학과 단일전공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한 급변하는 사회현실에서 대학생의 선택권 보장과 융합 교육의 필요성을 기치로 내걸며 20년 전에도 시행된 바 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정책임이 증명되었지만, 결국 다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대입 수험생이 매년 줄어드는 현실에서 의대 입학 정원 확대나 무학과 단일전공 시행이 학생들의 특정 전공 쏠림을 가속화 시킨다는 사실과 의대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 비판적으로 제기되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이미 모든 정책이 법적 절차를 통과한 상황에서 더 이상 논란을 만들기보다는 정책이 자리를 잡아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수 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바뀐 정책이 정말 학생들을 위한 것일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학기에 교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우리 학과로 입학한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발생한 서이초 사건으로 꿈을 포기한 것을 다소 후회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생활기록부에 ‘교사’라고 적은 꿈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학생과 이야기하며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대 입시반’이 있었고 선생님들이 1학년부터 진로를 결정하길 권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활기록부에 일관된 기록이 있는 것이 해당 학과 선택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그때야 알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하며 3년 동안 일관되게 국어국문학과 진로를 희망한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행동이 사실은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중ㆍ고등학교의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꿈이 얼마나 다양할까? 결국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편의적으로 생각한 것이다.무학과 단일전공의 시행은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고민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다. 취지만 보면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이상과 현실의 좁힐 수 없는 격차 때문이다.대학 진학을 위해 직업 선택을 강요하는 고등학교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천천히 진로를 생각하라는 대학의 모순을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다시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한다면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 있을까?입시를 위해 하루빨리 진로를 결정하는 고등학교 교육과 다양한 경험을 한 후에 천천히 진로를 정하라는 대학의 모순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비단 교육 현장의 모순은 이것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다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2024-06-10

무서운 아이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작가이자 시인 이상의 최후의 소설 ‘실화’에서 ‘주인공 나’는 진실한 사랑에의 믿음을 잃고 일본 도쿄에 와 버렸다. 이 도쿄 간다(神田)의 하숙방에서 ‘나’는 독백한다.“여기는 동경이다. 나는 어쩔 작정으로 여기 왔나? …. 콕토가 그랬느니라. 재주 없는 예술가야. 부질없이 네 빈곤을 내세우지 말라고.….”여기 등장하는 장 콕토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앙팡 테리블)’을 쓴 작가였다. 이상 소설 덕분에 나는 결국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을 찾아 읽게 된다.누군가 알라딘 서평에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쓴 게 있다. “사회에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세계의 규칙과 자기 안으로 침잠에 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동성애, 근친상간, 자살 등의 소재가 다뤄진다.”이 ‘무서운 아이들’은 그후 세간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나타나는 기린아를 표현할 때 자주 애용되었다. 늘 그렇게 쓰여 왔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이 ‘무서운 아이들’의 새로운 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나는 이 ‘무서운 아이들’이 이미 십 년 전에 우리 사회에 다른 방식으로 출현했다고 믿는다. 이들은 사회에 무관심하다기보다 오히려 철저히 사회에 순치된 존재들이다. 그 방식이 역설적이다. 그들은 이 사회체계 안에서 적응과 성공과 출세를 꿈꾼다. 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올바름도 속으로 버릴 태세가 되어 있다. 원한과 적대감을 품은, 욕망 덩어리 존재들은 자신을 아직 아이로 착각하며 가차없이 자기 욕망을 추구한다.기성세대를 향해 원한과 적대를 품은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빈곤’하다고, 제대로 된 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외친다. 무서운 사실은 이 아이들이 올바름을 가장한다는 사실이며, 그러면서 윗세대뿐 아니라 자신들의 세대 내에서도 온갖 모략과 술수로 무한 투쟁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자를 사정없이 짓밟을 수 있는 역설적인 윤리적 우월감으로 스스로 무장해 있다.이 40 전후의 ‘무서운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이 속한 586세대가 비민주적 체제에는 저항했지만 그 사회적, 경제적 체제에는 철저히 순응했고 그후 그 반쪽짜리 이상을 정당화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무서운 아이들’은 586세대의 다음다음 세대에 해당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악은 진화했고 번성했다. ‘무서운 아이들’의 세대에 이르러 노동, 여성, 정치적 올바름은 도구화, 수단화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늘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외치지만 그 올바름은 마키아벨리즘적인 속성을 보인다.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 진단과 표현은 세대 전체가 아니라 세대의 어떤 전형적인 일부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느 세대든 두드러진 일군의 무리가 사회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들이 주도할 한국 사회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도 따뜻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또, 불쌍한 것은 이 ‘무서운 아이들’의 아래 세대들이다. 그들, 지금의 이십대 후반, 삼십대 전반기의 젊은이들, 이들은 ‘무서운 아이들’ 아래서 힘들게 생존해 가야 한다.

2024-06-10

밀양 여중생 성폭행… ‘죄와 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았지만, 사건 당시의 놀라움과 대중의 분노는 크고 높았다.2004년. 밀양 지역 남자 고교생들이 여중생 한 명을 성폭행했다. 후안무치한 범죄에 가담한 학생들이 자그마치 44명이라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18세였던 성폭행 가해자들은 밀양의 여러 고교에 재학 중이었다. 범죄의 잔인성 탓에 밀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여론의 돌팔매를 맞았다.14세에 불과한 어린 여학생을 유인해 돌아가며 성폭력을 저지른 건 물론, 때리고 협박했으며, 돈까지 뺏은 고교생들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은 당연지사 엄한 벌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죄를 저지른 고교생 중 10명만이 기소됐고, 20명은 소년부 송치로 마무리됐다.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론이 났다. 수사 결과를 접한 이들은 “참을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했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사건은 잊혀져갔다. 가해자들은 18세 고교생에서 38세 성인이 됐다.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다. 그들이 최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 유튜버가 “밀양 성폭행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이미 몇 명의 신상이 알려졌고, 얼굴과 직업이 공개된 가해자가 다니던 인기 좋은 식당은 문을 닫았고, 직장도 이들의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공적 처벌이 아닌 사적인 단죄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견해가 있으나, ‘그때 제대로 받지 않은 벌을 지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라스콜리니코프가 주인공인 소설 ‘죄와 벌’그리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숨을 곳이 없다”는 공자의 말이 떠오르는 오늘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0

문인수의 ‘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오늘 내가 좋아하던 경북 성주에 살던 문인수 시인이 파랑새처럼 하늘로 날라 갔다고 한다. 늘 불그스레한 황혼빛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아름다운 시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지난 어느 날의 내 일기장에서 눈에 띈 짧은 글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쓸쓸하고 마음이 무겁다. 시인과는 고등학교 선배라는 인연도 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따뜻했다. 마침표도 없이 앞뒤로 이어지는 시 화법을 구사한 그의 상상력은 따라잡기 난해한 부조리한 시어 문법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편하게 가슴에 다가선다.‘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창비, 2015)는 시집 제목부터 문법 일탈이다. 이 생뚱맞은 제목 자체가 독자를 곧 바로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은 내가 존재할 곳이 못 된다는 말이다.‘굵직굵직한 골목들’의 “작고 초라한 집들이 거친 파도 소리에도 와르르 쏟아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혀 고부라진 골목의 팔심 덕분인 것 같다.”에서는 파도에 의지한 가파른 언덕 섬마을의 모습, 금방 쏟아져 내릴 듯 언덕배기 섬마을을 버티게 해주는 꼬불꼬불한 길을 “질긴 팔심”에 비유한다.시인은 스스로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비범한 시인이라는 꼿꼿함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실제로 문인수 시인이 범속한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다. “굵직굵직한 동아줄의 기나긴 골목”에서 한국어 조사 ‘-의’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의’는 ‘-와 같은’과 동일한 직유의 기능을 하고 있다. 가파른 섬 언덕에 조개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붉은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난 골목길을 질긴 팔뚝과 동아줄로 유추한 비유는 탁월한 시적 상상이다.“해풍의 저 근육질은 오랜 가난이 절이고 삭힌 마음인데”에서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해풍의 근육질로 비유한다. 시인은 철부지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변덕도 심하다. 골목길을 질긴 팔로, 또 동아줄로 비유하다가 이젠 끊임없이 세로로 일어서는 해풍의 강한 근육질로 눈길이 옮아간다. 이러한 자연의 긴장감, 팽팽히 당겨진 인력은 곧바로 그 섬마을에 삶의 거처를 둔 섬사람들의 끈질긴 생을 이야기하는데 성공한다.문인수 시인에게 사투리는 한 시절의 추억이 유적이 되어 쓸쓸히 서녘 서방정토에 묻혀 있다.‘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요엄창큰비바리야냉바리야’, 서정시학, 2007)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자동기술적으로 튀어오른다. “낫살이나 먹은 사람들의 몸엔 묵은 된장냄새 같은 말씨가 숨어 있다./귀에 쟁쟁, 목구멍 속에 오소리길처럼 파묻힌 말뜻이 있다.”라고 했다.방언은 시인의 인식 내부 깊숙이 냄새, 소리, 목구멍으로 숨어 있 있다. 방언이 시학의 미적 가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에는 또 다른 액면 구성의 방식으로 시인의 목소리이면서도 마치 타자화한 토박이 방언인 듯 경상도 방언이 실려 있다.“약삐야 덕삐야 살 꺼 없다. 디비가미 애믹이다. 심청머리. 곡식을 까부리다. 아망시다. 양발궂다. 모지락시럽다. 해찰궂다. 까리적다. 야무락지다. 자부럽다. 건성시럽다. 메메 문때다. 짜매다. 허퍼. 개얀타. 쌔비릿다. 넌 갓따리다. 잘 까바지다. 글마가 절마가. 알아서 미미이 잘할까. 각중에. 먹보. 얌새이 시염이다. 통시이. 여불떼기. 수굼포. 호메이. 깨이. 후치이. 써리. 그케. 뺀대기 쌔리다. 가릇부치다.” 이렇게 값진 방언 시어들이 시의 궤적에서는 전혀 일탈되지 않으면서도 정답게 시의 행간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다.문인수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투들은 거칠지만 얍삽하지 않다. 양단간에 곧잘 앗사리 뿔랐뿐다.”라고 방언시에 사용된 방언 낱말의 정의를 바로 내린다.낮은 여항의 일상의 말씨가 결이 곱지는 않지만 솔직한 유민들의 심정을 전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혹가다’(우연찮게) 머리에 떠오르는 모어가 아니라 연속의 불연속, 불연속의 연속으로 방언으로만 쓴 시의 한계치를 뛰어넘는다.울림일까 주문일까? 그러나 경상도 사람 외에는 독해할 수 없는 배타성을 감추기 위해 메시지는 철저하게 감춘다. 이해해 달라는 의미일까? 시인 문인수는 뛰어난 서정 시인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직관력과 순간순간 변하는 눈길로 풀어놓은 변덕스러운 시적 긴장감이 시의 맛깔을 한껏 돋운다.

2024-06-10

니가타항을 떠난 사람들

2024년 2월 23일 니가타현립대학에서 한국근대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발표와 토론으로 녹초가 되다시피 한 저희 일행은, 저녁에 니가타 시내로 이동하여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이날의 만찬은 이광수 연구의 권위자인 하타노 세츠코 선생님이 주최하신 것인데요. 니가타 전통 요리를 파는 그곳의 음식은 하나같이 정성스럽고 맛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한밤중까지 이어진 심포지엄 뒷담화로 2월 23일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 갔습니다.24일은 오전 11시에 비즈니스 호텔 로비에서 만나 해산하는 것이 유일한 일정일 정도로, 여유로운 날이었는데요. 아침 일찍 조식을 먹은 저는 니가타 시내와 바닷가를 산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연구년을 맞아 도쿄의 센슈대학에 와 있는 K대학의 A교수가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는데요. 저희는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인 시나노가와의 강변을 걷기도 하고, 그 강 위에 놓인 아치 여섯 개의 아름다운 반다이바시를 건너기도 했습니다.니가타가 한국문학 전공자에게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대목 중의 하나는, 니가타가 북·일간의 교류에 있어 일본측 창구였다는 사실입니다. 재일교포 북송사업 당시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지상낙원의 부푼 꿈’을 안고 북송선을 탔던 곳이 바로 니가타입니다. 오늘날 북송사업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려던 북한의 이해와, 재일교포를 부담스러워하던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2006년 7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이유로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이 금지된 이후에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니가타항과 북한을 오고 가는 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그래서일까요? 북송사업의 현장지휘소 역할을 하던 조총련 니가타현 본부 및 조국왕래기념관을 찾아갔을 때, 그곳은 셔터가 내려진 채 거의 폐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그 풍경은 현재 북·일간의 삭막한 관계를 대변하는 듯 보였는데요. 1959년부터 시작된 북송사업은 1984년까지 총 186차례에 걸쳐 9만3340명이 이주한 그야말로 대사업이었습니다. 과연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벅찬 꿈을 안고, 니가타항을 떠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북한에서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한 이경자의 장편 ‘세번째 집’(문학동네, 2013)은 북송교포들의 후일담을 전해주는 귀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김성옥으로 이어지는 김씨 3대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100여 년에 걸친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펼쳐낸 역작인데요. 할아버지(정남), 아버지(대건), 성옥의 삶을 대표하는 단어는 각각 ‘조센징’, ‘귀국자’, ‘탈북자’입니다. 정남은 징용을 당해 후쿠오카 탄광에 보내졌는데요. 해방 이후 일본에 남아 가정을 이뤄 대건을 낳습니다. 대건(가네다 다이켄)은 와세다대까지 졸업한 엘리트지만 일본 사회가 부과한 ‘조센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 1967년 니가타항에서 북송선을 타는데요. 안타깝게도 김대건은 북한에서 ‘조센징’이라는 굴레를 벗는 대신 ‘귀국자’라는 새로운 굴레를 뒤집어쓰고 맙니다. 대건의 딸로 북한에서 태어난 성옥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하여 남한에서 ‘탈북자’로 살아갑니다.‘세번째 집’에서는 성옥 가족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콧김을 쐰 경험”을 의미하는 ‘귀국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북한 사회에서 받는 고통과 차별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실수로 동네에 불이 났을 때도, 성옥은 보위부에 끌려가 “토대가 나빠서, 성분이 안 좋아서 어린아이가 남의 소먹이를 다 태운 거”라는 얼토당토 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성옥은 “귀국자라는 말이 얼마나 지독한 덫인가를” 인민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귀국자’라는 말만 들어도 지겨울 지경에 이릅니다.대건은 평소에 “오리는 오리끼리 만나야 한다”며, 성옥에게 연애 상대로 “귀국자를 만나라”는 말을 습관처럼 해왔는데요. 실제로 보위부장의 아들인 철이와 성옥은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결국 철이 부모의 반대로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이후에도 성옥은 도자기 공장 작업반에 다닐 때, 아버지가 비행군관학교 교수인 토대 좋은 남자의 청혼을 받기도 하는데요.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찾아온 남자에게 대건은 “자네 아버지에게 허락받고 와. 그럼 내가 허락해주지”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합니다. 대건의 예상대로 그 남자의 아버지는 “귀국자에 비당원의 자녀와는 혼인할 수 없다”며 성옥과의 결혼을 분명하게 반대하는군요. 결국 북한에 온 초기에는 ‘사회주의 조국 건설’을 위해 성실하게 생활하던 대건도, 귀국자에 대한 차별로 인하여 술만 찾는 냉소적인 인물로 변하고 맙니다. 물론 대건과 그 가족의 삶이 10만 여명에 이르는 모든 북송교포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수많은 자료와 증언들은 북송교포들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00여 명의 동포를 싣고 북한의 청진항을 향해 니가타항을 떠났던 1959년 12월 14일의 바다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을 테지만,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이날의 바다는 너무나 조용하여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06-10

임시 청도읍사무소의 근무환경 개선 필요

심한식 경북부 지난 2020년 12월부터 시작한 청도읍사무소의 더부살이가 앞으로 수년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임시 청도읍사무소에 근무하는 공직자들을 위한 환경개선이 요구된다.지난 1977년에 준공돼 지역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던 청화로 137번지 청도읍사무소는 군이 추진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위한 생활혁신센터를 위해 2021년 3월 철거됐다.군은 청도읍 주민을 위해 청도 신기길 83-7, 구 둥지웨딩 건물 1~2층으로 청도읍사무소를 임시 이전했다.하지만, 청도읍사무소를 비롯해 공용 지하 주차장, LH 공공임대주택(행복주택), 어울림·영상미디어·건강증진센터 등이 입주할 생활혁신센터가 착공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시공을 맡았던 J건설이 자재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면서 사업부지는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생활혁신센터의 사업 주체인 LH는 직접 시공으로 가닥을 잡고 원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자 행복주택을 축소하는 등의 설계 변경안을 마련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책임부서인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요청키로 했다.이러한 연유로 아무리 빨라도 12월쯤에야 생활혁신센터의 착공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간 1억여 원이 넘는 임차료로 지급하며 사용하고 있는 임시 청도읍사무소는 애초의 건물이 예식장으로 설계돼 층높이는 높으나 일부만 개폐되는 프로젝트 창문 구조로 원활한 공기의 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1억여 원의 임차료는 2025년 8월이면 다시 갱신해야 해 물가 상승의 요인으로 임차료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어 지지부진한 청도혁신센터의 착공은 곧바로 청도군의 혈세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그럼에도 청도읍사무소 직원 27명이 근무하고 있는 1층 사무공간의 넓이는 341㎡ 정도에 근무자들은 문서고 등 부대시설과 가까운 곳은 1m 남짓에 그치며 6대의 공기청정기로 공기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어 활기 넘치는 행정서비스 제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애초 생활혁신센터의 준공이 2023년 말로 예정돼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청도읍사무소이지만 앞으로 수년간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근무자들, 스스로 불평을 토로할 수 없는 공직자의 속 사정을 헤아리는 군정 추진도 필요하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06-10

이러고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까

김진국 고문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야당이 단독으로 의장을 선출한 것은 의회 사상 처음이다. 11개 상임위원장도 10일 단독으로 선출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과 논란을 벌인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겠다고 한다.국민의힘이 합의를 거부하지만 일사천리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뺏기면 국민의힘은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 두 가지를 나눠서 맡는 게 관행이었다. 국회 의석 비율이 비슷했던 21대에서도 후반기에는 법사위를 국민의힘에 돌려줬다. 관행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다.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임기 2년 만에 벌써 일곱 번째, 법안으로는 14번째 거부권 행사다. 현행 헌법이 개정된 1987년 이후 가장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7번,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번으로 모두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그때는 건국 초기와 전쟁의 혼란이 있어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은 다르다. 물론 그 책임을 윤 대통령이 혼자 떠안을 순 없다. 민주당도 협상이나 타협 가능성에 문을 닫아걸었다. 22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탄핵’을 떠드는 형편이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특검법만 줄줄이 내밀었다. 그것도 윤 대통령 내외를 겨냥한 특검법이다. 결국 대통령 흔들기나 궁극적으로 탄핵을 겨냥한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국회는 제1당이 폭주하고, 대통령은 방치하다 거부권을 휘두른다. 양쪽 모두 합의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장 선출은 국민의힘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법대로 하자”라고 말했다. ‘어차피 합의는 어렵다. 시간을 끌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의도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민주당은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22대 국회는 이런 외통수 정치를 반복할 게 뻔하다.다수결이 민주주의 원리다. 그렇지만 다수결에만 의존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다수의 횡포 속에 다양한 의견들이 다 죽는다. 오직 하나의 의견만 존중받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 협상하는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소수파의 의견을 끌어안는 포용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원주의인 이유다.윤 대통령도 외골수다. 총선 직후 이재명 대표를 만나고는 끝이다. 대통령은 권력자다. 그런데도 야당을 설득하지도, 국민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다시 총선 전의 모습이다. 심지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에게는 대통령 거부권을 협상카드로 써먹으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제1야당도, 대결만 생각한다. 지지세력만 믿고 정치한다.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하는 팬덤 정치다. 선거 때마다 ‘비호감’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민주당은 의사 증원을 주장해 왔다. 국민의힘이 자기 지지기반인 의사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개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극 지원할 만하다. 하지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야당 협조를 고려도 안 했다. 선거에 이용한다는 오해만 불렀다. 초당 외교는 불문율이다. 요즘은 완전히 어깃장이다. 주변 강대국에 줄을 댄 대신들이 서로 싸우던 구한말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정말 저 정치인이 저런 생각이었는지, 경쟁 정당에 반대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이런 상황에서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국정 표류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양보하고, 설득해야 마땅하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무조건 양보가 능사는 아니지만 일이 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 야당도 국정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정치를 왜 하는가. 명분과 염치를 팽개쳐서는 안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09

지방소멸 위기 대응할 지역활력타운

박남서 영주시장 영주시에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지역활력타운이 들어선다.2024년 지역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 최종 승인과 영주댐 준공에 따라 산업, 문화, 레저 등 다양한 부분에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영주시의 미래를 밝게하는 청신호다. 전국 240여개의 지방자치단체들 중 광역 및 인구밀집 도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비슷한 환경의 농축수산업과 지역 문화, 관광자원, 산업기반, 교육 자원을 갖고 있다.각 지자체는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책으로 적극 추진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그러나 이번 영주시의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 선정은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지역활력타운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8개 중앙부처가 합동으로 청년층·은퇴자 등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주거·문화·복지·일자리 등을 복합 지원해 살기 좋은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과 영주댐 준공에 따른 산업, 문화, 관광 레저 기반이 확충되면서 이를 뒷받침 할 정주여견 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의 필요성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역활력타운 선정은 영주시로서는 미래 성장 예측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성과물이라 할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지역민들과 자치단체 공무원, 자치단체장, 의회 등 다양한 기관들의 협조와 협력이 필요하다. 성장 조건이 형성되더라도 지역에 맞는 미래 성장 가능한 부분을 어떻게 지역특성과 행정에 접목시키느냐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영주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역활력타운이 부각 되는 것은 지난해 준공된 영주댐과 첨단베어링국가산업단지 최종 승인과 맞불려 있다는 점이다.이번 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은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활력 플랫폼을 구축, 영주의 새로운 생활거점을 조성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필수 생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신거점으로 만들어 나가게 된다.지역활력타운은 총사업비 693억원을 투입해 하망동 514번지 일원 4만3088㎡에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연립형 타운하우스 70세대 주거단지 조성과 복합커뮤니티센터, 실내스포츠복합시설, 열린공원 등 다양한 기반시설을 조성한다.이를 통해 영주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대규모 추가 투자 등으로 유입되는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을 유인하고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를 제공을 위해 영주시의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다.영주시의 미래를 위해 청년층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낙후된 구도심 발전을 위한 획기적 계기 마련, 현재 지역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사업들과 더불어 지역을 떠난 청년들을 유입해 도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영주 발전을 전략적으로 실현해 나갈 것이다. 이번 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은 영주시가 구상하고 있는 지역 균형 발전과 세대간 원활한 교류를 바탕으로한 사회적·문화적 소통의 장을 조기에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영주시는 지역의 정체성인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서의 경쟁력과 차별화된 면모를 갖추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방침이다. 지방자치시대가 되면서 주민들의 요구와 그 다양성도 전문화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동시다발적인 숙원사업의 요구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주민 요구는 지방재정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한 해소책은 생산성 있는 지역의 발전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우리 시는 사업의 연계성과 종합적인 성과를 도출하고자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현장 요구 해소를 위해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조속한 사업의 완료보다 끈기 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진중하게 바라보는 행정 중심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도시, 미래를 준비하는 영주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갈 것이다.미래를 꿈꾸는 영주시, 열정적인 영주시, 적극적인 사고의 영주시가 되도록 더욱 정진할 것이다.

2024-06-09

이따위, 종이쪽지에도

물이 스미지 않을 적엔 스스럼없이쉽게 떨어졌지만그 몸에 물기가 점점 번져들자 종이 두 장은마주 달라붙어, 서로를 견인하게 되었다축축해진 두 몸이 혼신으로 밀착하여한 쪽을 떼어내자면 또 다른 한 쪽이사생결단,먼저 자신을 찢어놓으라는 것이다.이따위 종이쪽지에도 이별은고통 없이는 없나 보다.- 이수익, ‘이따위, 라고 말하는 것들에게도’전문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천년의 시작) 이희정 시인 아프다, 지극히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낭만을 종이 두 장이 견인하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의 구체적 체험을 재현한 서술 한 줄 없이 흡사 뼈와 근육만으로 이뤄진 것처럼 사건의 이미지에만 힘을 주고 있다. 마치 그들이 어떻게 찢어지는가를 두 눈 똑바로 뜨고서 보라고 하는 듯하다.그러니까 이별은 사랑이라는 마술적 전제에서 비롯된다. 그 마술은 꼭 그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우연을‘물’이 스밈으로써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하는 운명으로 바꿔버렸다. 혹은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할 때 연인들은 가볍게 해체될 것이다.이 시에서 종이 두 장은 이별의 분위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오브제다. 여기에 담긴 것은, 왜 어떤 연인들이 절박한 이별에 직면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좋은 러브스토리는 가장 유별난 연애담을 다루는 듯 보여도 실은 지극히 사소한 장면으로 확인됨으로써 현대의 그 많은 연인의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이별은 그 자체로 운명적이면서 예외 없이 허망하다.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평화가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진술은 새롭지 않다. 너무도 자주 반복되었기에. 하지만 그런 삶의 지혜는 이수익 시인이 말하는‘이따위’라는 사소하고 흔한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우리 주변에서 ‘이따위 것’으로 불리는 대상은 대체로 하찮고 비루한 것들이기 십상이다. 시인이 묵도한 풍경은 하찮은 종이쪽지 두 장이 우연히 물기에 젖어 달라붙어 있는 풍경이다. 회자정리, 생자필멸이라는 삶의 기본 원리를 떠올리면 문득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평론가 장영우) 함부로가 넘쳐나는 세상이지 않은가. 너무 쉽게 버려지고 너무 쉽게 잊히는 풍속 가운데 시인은“이따위 종이쪽지”의 붙음과 떨어짐의 사건에서 집착과 이별이 초래하는 삶의 근원적 비애를 읽고 있다.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어떠할까. “이별에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면 뒤통수를 치고 떠나야 한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는 현대인의 가벼운 세태를 조롱하고 있는 듯하다. 뒤통수란 곧 어느 한쪽의 잔인한 배신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것은 실연한 사람의 기억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에 반해 이별 후에 남는 것이 뒷모습이라면 로맨스에 가까울 것이고, 결국 로맨티시즘과 리얼리즘의 줄다리기가 연인들의 영원한 숙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시가 다루는 것은 연애라는 알고리즘, 사랑의 생과 멸 그 자체다.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두 장의 몸은 단지 이별의 정조를 만드는 피사체로만 기능하지 않고, 몸과 몸이 이끄는 사랑의 현재 위치를 가장 적실하게 지시하는 좌표 역할을 한다. 몸과 몸이 사랑의 심리를 긴밀하고도 절박하게 교직하는 시인의 재현이 놀랍다. 계절의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시간이 끝난다고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이별에는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마주 달라붙어, 서로를 견인하게 되었다”고, “축축해진 두 몸이 혼신으로 밀착하여” 있어 “떼어내자면 사생결단 먼저 자신을 찢어놓으라는”것이다.이따위, 라고 말하는 것들은 슬프다. 견딜 수 없이 서늘한 정도로 성숙한 존재들이다.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놀랍도록 철학적이다. 만일 이 시가 아무렇지 않다면 당신은 어쩌면 진정한 러브스토리를 가져보지 못했거나 사랑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이따위 종이쪽지에도 이별은 고통 없이는 없나 보다.”

2024-06-09

장의차를 보다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퇴직 이후 융합 전공이나 교양 교과목을 강의하는 시간강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 배운 도둑질이 오직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그것을 대중과 공유하는 한 가지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일주일에 두 번 출강하여 학생들과 대면함은 유쾌하기도 하고, 나의 청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고마울 따름이다.얼마 전 이른 아침에 가창 인근 사거리에서 장의차가 느릿느릿 장지(葬地)로 나아가는 장면이 눈에 밟힌다. 적절한 햇살과 바람과 기온을 보면서 ‘참 좋은 때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찾아든다. 지상에 오는 일과 마찬가지로 가는 일 또한 우리의 의지나 바람과 무관하다.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이니 새삼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장의차가 달리는 거리에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꽃이 모두 떨어지고, 작은 열매가 앙증맞게 매달려 있다. 봄꽃은 다 사라져 천지에 자취 하나 찾을 수 없다. 하기야 청도 누옥(陋屋)의 마당에도 붓꽃과 작약, 튤립은 전부 사라지고, 낮분홍달맞이꽃과 자주달개비 정도가 한여름을 맞고 있다. 이 모든 게 시간의 유장한 흐름과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장의차를 보노라니 오래전에 맞이했던 친구 어머니의 죽음이 떠오른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속절없이 세상을 버려야 했던 황망한 죽음과 장지의 낯선 풍경이 환각처럼 다가온다. 그 후로 이런저런 죽음과 마주하면서 생의 허무함 혹은 느닷없음에 적잖게 괴로워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 오늘에 이른 것이니, 아득한 세월이 지나간 셈이다.가로수의 녹음이 짙어지면 매미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한여름의 불청객(不請客) 모기가 인간의 혈액을 탐하게 되리라. 하지만 꽃이 진 자리에 하나둘 열매가 들어서고, 거기서 생명의 이어달리기가 진행될 터다. 하나의 소멸이 다른 생명의 문을 여는 것이니, 생과 사의 거리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열두 살 먹은 고타마 싯다르타는 ‘농경제’에 나갔다가 농부의 삽날에 반토막으로 잘린 벌레와 그것을 낚아채 가는 새와 그 새를 커다란 발톱으로 움켜잡고 날아가는 독수리를 보며 경악했다고 전한다. 다정다감한 소년 싯다르타는 비정한 ‘먹이 사슬 구조’에 전율하고 깊이 괴로워한다. 이것이 어쩌면 훗날 그의 출가를 결정하는 계기였는지 모른다.자연계의 순환구조를 약육강식의 인식으로 수용한 소년의 맑은 영혼이 손에 잡힐 듯하다. 우리가 항용(恒用) 일용할 양식으로 수용하는 온갖 먹을거리의 가혹한 운명을 돌이키면 유구무언이다. 30년 수명의 닭이 각종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으로 범벅되어 고작 3주 만에 식탁에 오르는 게 현실이고 보면 가공(可恐)할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셈이다.장의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아가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언젠가 나 역시 저 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니 망연해진다. 고작 100년 인생을 천년만년 살 것처럼 갖가지 행악질하면서 권력과 돈에 탐닉하는 군상을 돌이키매 눈앞이 아득해진다. 하늘이여, 유한한 삶에 큰 빛을 내리소서!

2024-06-09

경북도 행복기동대

우정구 논설위원 일본에서는 고독사, 자살, 살인사건 등으로 사망자가 나온 집을 ‘사고물건’이라 부른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이런 사고물건이 늘면서 사고물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동산 업체까지 생겼다고 한다. 사고물건은 시세보다 10∼50%까지 낮춰 팔고 있으나 선뜻 나서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한다.고독사라는 말은 1990년대 일본에서 나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우리나라도 저출산, 고령화, 이혼율 증가 등 복잡한 사회적 요인에 의해 고독사 숫자가 늘고 있다. 2017년 2412명이던 고독사가 2021년에는 3378명으로 1000명 가까이 늘었다. 그중 50∼60대가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마처 세대’라는 신조어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생(55∼64세)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한 복지단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마처 세대’ 3명 중 1명은 자기 자신이 고독사 할 것을 우려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우리나라 1인 가구는 이제 1000만 가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혼자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시대의 흐름 속에 외부와 단절된 집에서 고독사하는 일이 더 빈번해질 것 같다. 노년층의 고독사뿐 아니라 장기불황에 의한 실업과 SNS를 통해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청년층에서의 고독사도 증가세에 있다.고독사는 이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경북도가 고독사 예방 활동을 하는 행복기동대를 발족했다. 지역사회 활동가 등으로 조직한 인적네트워크다. 맹활약을 기대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9

상식과 절차를 지키는 정부를 원한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월, 지자체에서 공모한 독서동아리 활동비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 뇌과학책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도서관에서 30만 원을 받아 뇌과학 박사를 초청해서 특강을 들었다. 전문가 역량에 비해 강사료를 너무 적게 드려서 민망하던 차에 올해는 지자체에서 5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기에 신청한 것이다.두 달이 지난 4월 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채택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서관에서 집행하는 30만 원은 사서가 처리해주었는데, 지자체 보조금 사업은 동아리 대표가 보탬e이라는 사이트에 사업 내용을 다 등록하고 영수증 처리 내용도 올리고 세금까지 직접 세무서에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올해부터 등록 방식이 더 복잡해졌다며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결국 노트북을 들고 두 번이나 공무원을 찾아가서 해결했다. 집행 방식은 더 복잡해서 결국 담당자가 동아리 대표들을 소집하여 교육을 해주었다. 예산 변경은 반드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너무 번거로워서 내년에는 지원 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행정 기관에 믿음이 갔다.그런데 정부에서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 세금 최소 5000억 원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 업체 선정에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와의 계약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액트지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한다. 문제는 액트지오는 2017년에 설립한 후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으며, 대표의 거주지를 회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영세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이다. 50만 원 지원금 사업에도 집행하기 석 달 전에 공고하고 서류 내고 두 달 동안 심사를 거쳐서 합격자를 발표했다. 관공서에서 시설 공사를 계약해도 4억 원이 넘으면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엄청난 세금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에 경쟁 입찰은 했는지, 누가 입찰에 참여했는지 깜깜이다.액트지오가 매장 가능성을 언급한 지역은, 이미 세계적인 석유개발 회사 우드사이드가 15여 년간 조사하고 시추까지 하고서도 미래가치 가능성이 없다고 작년 3월에 철수한 곳이다. 그런데 우드사이드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액트지오를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선정했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드사이드 철수 후 나왔다는 한국석유공사의 추가 자료라는 것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정부는 액트지오와 주고받은 공문서가 모두 기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 증원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회의록도 없었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정부는 경쟁 입찰 과정과 액트지오 전문성이 세계 최고라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세금 쓰는 상식적 절차다.

2024-06-09

올바른 직장인의 삶, 가치관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인디언 부족이 ‘원숭이를 잡는 법’이란 영상이 있다. 인디언은 원숭이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손이 들어갈 만한 조그만 굴을 파서 그 안에 볶은 콩을 넣어 두고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던 원숭이가 그 굴에 손을 넣어 음식을 집을 때 인디언은 그 원숭이를 잡으러 간다.그런데 원숭이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을 보고도 도망가지 못하고 잡히고 만다. 그 이유는 손에는 볶은 콩을 꽉 움켜잡고 있었기 그 때문에 그 굴에서 손을 빼지 못했기 때문이다.우리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눈앞에 작은 것에 얽매여 미래의 더 큰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장인이 현재 자신만의 편안함을 위해 ‘기본의 실천’을 하지 않으므로 큰 사고가 발생하여 모두의 불편함을 겪는 사례를 현장에서 종종 본다.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더욱 큰 그림을 그리고, 그 모습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이 바로 조직 경쟁력이고 이를 위해서는 현재 꽉 움켜쥐고 있는 작은 편안함을 펴야 할 때라고 본다. 항아리에 모래, 자갈, 큰 돌을 넣어야 한다면 무엇부터 넣어야 하는가. 물론 큰 돌을 넣고, 자갈을 넣고 모래를 넣아야 큰 돌의 작은 공간을 채워 가능한 한 많이 넣을 수 있다. 큰 돌을 우선 채우기 위해서는 바른 가치관(價値觀)으로 넓게 보아야 한다.가치관이란 어떤 행위가 옳고 어떤 행위가 틀린 것이냐 하는 판단과 어떠한 상태가 행복하고 어떠한 상태가 불행한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판단가치에 대한 관점 또는 의식이라 한다.관(觀)자는 96B9(새추)자 위에 큰 눈과 눈썹을 그린 것으로 96DA(관)자는 황새를 표현한 글자이다. 이렇게 관(觀)자에 見(견)자를 결합한 관(觀)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황새처럼 넓게 ‘보다’라는 뜻이 있다. 즉, 가치를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로 보면 개인에서의 가치관은 자아실현을 위해 ‘오늘보다는 내일, 올해보다는 내년에 조금씩 성장하기 위해 학습하는 삶이다.” 조직에서의 가치관은 “안전하고 깨끗한 행복한 현장 만들기를 위해 끊임없이 개선하고 실천하는 삶이다.”교육학자 브라멜드(Brameld)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라 했다. 이를 실천하듯 훌륭한 경영인은 직원 개개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Project)를 부여하여 자아실현의 장을 마련해 주고 성과에 대한 경제적인 포상과 더불어 칭찬과 격려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사람은 저마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면 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가 무엇 덕분에 행복한지, 내가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이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어디에 많이 쓰고 있는지 관심이 적을 수는 있어도, 가치가 없는 것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는 것은 낭비라 생각한다. 바른 가치관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나침반과 같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관계를 맺을 때, 어떤 목표를 세울 때, 바른 가치관이 있는 사람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볶은 콩 한 줌을 못 놓은 원숭이처럼 우리가 작은 것에 집착하여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보길 바란다.

2024-06-09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보복 전쟁의 부당성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전쟁은 어느 전쟁이나 비참하다. 곧 끝날 것 같은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보복 전쟁이 8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인 인질사건이 전쟁을 촉발시켰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역 북쪽에서 최남단 도시 라마까지 점령하였다. 현재는 중부 부레이 난민촌과 병원까지 포격을 퍼붓고 있다.어린이가 연일 피를 흘리고 난민 100여 명이 매일 죽어가고 있다. 이집트를 통한 구호품마저 제대로 지원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투하되는 배급을 타기 위한 아비규환의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법 재판소뿐 아니라 세계의 여론이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의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탱크를 앞세워 하마스를 끝까지 추적 박멸하겠다는 의지만 보이고 있다. 이집트, 카타르, 미국 등의 중재 노력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 전쟁의 부당함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본다.먼저 이 전쟁은 이스라엘 대통령 네타냐후의 정권 유지라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전부터 국정의 난맥으로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신뢰는 무너져 있었다.하마스의 이스라엘 축제장의 인질 납치사건은 총리에게 가자지구 침략의 명분을 주었다. 그는 즉각 하마스의 체포 명분으로 전쟁개시를 선언하였다.이스라엘은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가자지구 전역에 전면적 공격을 단행하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종전권유마저 뿌리치고 확전을 계속하고 있다.후진국의 독재정권은 대체로 이런 안보 위기를 국내 정치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삼는다. 우리나라 과거 권위주의 정권도 소위 ‘북풍’등을 정치적 위기 극복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보복 전쟁도 네타냐후의 정권 유지 수단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죽어가는 이 참혹한 보복 전쟁은 하루 빨리 끝나야 한다.둘째, 역사적으로 보아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은 정당하지 못하다. 중동의 기원전 역사를 보더라도 팔레스타인은 유대인 야곱의 12지파와는 달리 별도 나라도 존립했다.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의 처 사라의 여종의 몸에서 태어난 이스마엘 후손들이다.이스라엘 서남부 지중해 연안의 가나의 520여만 명의 팔레스타인들은 1994년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다. 가나의 이스라엘의 정착촌은 이미 철수되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장벽을 쳐서 이들의 이스라엘 진출을 막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영토인 골란고원과 요르단 쪽의 서안지구도 점령하였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도 요르단에서 탈환하였다.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 인접 영토를 확장하여 주변 인접국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란 등과도 전쟁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이스라엘이 기원전부터 엄연히 존립했던 팔레스타인을 인정치 않고 점령하려는 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스라엘이 1948년 국가를 수립하고 인접국가에 대한 전쟁을 일삼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셋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과 침략행위는 그들의 종교적 교리에도 어긋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부분 유대교와는 다른 이슬람을 신봉한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정착하든 구약만을 따르고 탈무드를 그들의 생활 지침서로 삼고 있다. 유대인들은 동족인 예수까지 배척하고 구약의 모세나 예언자들의 말씀만을 신뢰한다.사실 따지고 보면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도 아브라함의 후손 형제들의 종교이다. 유대교 교리 어디에도 팔레스타인인이나 인접국에 대한 잔인한 보복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이스라엘의 인접 이슬람 국가에 대한 전쟁은 그들의 종교 계율에 배치된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보복 행위를 반복할 때 세계인들은 유대인들을 비난 저주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다시 그 땅에서 쫓겨나 디아스포라의 험난한 길을 걸어갈지도 모른다. 이러함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보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유대인들은 두뇌가 좋고 결속력이 강한 우수한 민족으로 정평이 나있다.이번 전쟁에서도 전 세계의 유대인들은 흩어져 있지만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을 돕는 데는 일치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금융시장 월가를 장악했으며 프랑스에서도 유대인들은 언론재벌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노벨상을 휩쓸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의 정치도 좌지우지하고 있다.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올브라이트에 이어 현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도 유대계 인사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거대한 힘이 인구 900만 명의 이스라엘의 국력으로 작동한다. 그들은 어딜 가나 돈을 잘 벌고 생활력이 강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들의 힘이 반드시 정의가 될 수는 없다. 현재 전 세계의 여론은 이스라엘 편에 서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보복 전쟁을 즉각 멈추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피는 다시 피를 부른다는 역사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2024-06-09

탐해 3호 포항항 취항에 거는 기대

김규한 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6860t급 거대한 해양탐사선 탐해 3호가 지난해 7월 부산항에서 진수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환동해 프론티어 해양 탐사 활동을 위해 지난달 31일 환동해 해양탐사 전진기지인 포항항에 입항하였다.탐해 3호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이 새로 구축한 3D/4D 물리탐사와 최첨단 해저지질 탐사 장비를 갖춘 지구 해양 물리탐사 연구선이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친환경 K-수소 미래 경제도시 건설을 지향하는 포항에 2016년 포항지질자원실증연구센터 개소와 함께 해양탐사선 2000t급 탐해 2호의 해양탐사 활동을 포항항 전용부두에서 이미 해고 있다.연구센터는 동해 심해 머드를 활용한 화장품 개발과 포항지역 특산 벤토나이트 점토광물 의약품 개발의 큰 성과도 내고 있다. 포항항 출항 탐해 3호는 동해, 황해, 남중국해 등 한반도 주변 해양뿐만 아니라 남북극권, 태평양, 대서양을 향한 범지구적 해양자원 탐사 개발의 국책 임무를 수행하는 핵심 탐사선으로 국민적 기대감이 대단히 크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지리 지형학적으로 해저 지질, 지형, 해양 수로, 해양자원 등 해양환경에 큰 지배와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석유공사가 동해 울릉분지 동해가스전에서 경질유와 천연가스 자원을 생산하여 세계 95번째 산유국이 되었다.일본은 동해(日本海) 전지역의 해저 지질조사와 수많은 시추 탐사 연구를 선점해 왔다. 도야마 항 부근 조에쓰 분지(上越盆地)를 중심으로 가스하이드레이트 부존을 확인하고 최근 15년간 탐사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해저지형 지질조사와 석유 천연가스, 가스하이드레이트 등 해저 에너지 광물자원 탐사활동이 동해에서 한-일간에 경쟁적이다. 동해는 한반도의 정원 같은 바다로 북극항로 개척 중심 항로이자 환동해 해양탐사 요충지다.국립지질조사소(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전신)는 1964년 작은 민간 어선을 임차해 탐양호라는 이름으로 소연평도 근해 철광체 해저 연장 확인을 위해 해상 자력탐사를 우리나라 최초로 하였다. 탐양호를 이용 동해 포항-묵호 연안 해상 탄성파탐사 활동을 1971년까지 이어갔다. 1976년 해양탐사선 170t급 탐해호가 처음 건조되어 처음 대륙붕 해저지질도 작성과 대륙붕 6, 7광구 탄성파탐사가 실시되었다. 1996년 노르웨이 울스타인(Ulstein) 조선소에 2000t급 탐해 2호를 수주 인수해 동해 울릉분지 남서측 해역 물리탐사와 가스하이드레이트 부존 탐사, 독도해역 해저 지질도 발간, 한반도 연근해 대륙붕 해저 지질도 작성 등 많은 해양탐사 활동이 이루어져 왔다.이번 순수 우리기술로 건조된 거대한 최첨단 해저 물리 탐사선 탐해 3호 포항항 출항은 국가적 경사이자 큰 자랑거리다. 해양 강국 일본은 그동안 동해 해저 지질, 시추 탐사 등 동해 해저 연구를 주도해 야마토 해령(大和海嶺), 쓰시마해분(對馬海盆), 오키추(隱岐推) 등 우리에게 낯설은 일본명 해저 지형명을 여러 곳에 붙혀 놓았다.더 나아가 가나자와 대학에서는 1967년부터 동해 해저지질, 지질구조, 고환경, 지사 등 연구 내용을 담은 日本海(일본해)라는 연구저널까지 출판하고 있다.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있는 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에서는 지구심부시추선 치큐(地球)와 해양조사 연구선 5000t급 가이레이호, 심해탐사 잠수정 신카이 6500등 세계 최강 탐사장비를 갖추고 난카이 트러프(南海 trough) 시추와 지진연구를 해오고 있다. 세계 최대규모 시추선 치큐는 해저 7,000m 굴착 가능한 국제심해과학굴착계획(IODP)의 주력선이다. 지구 심부를 굴착 시추하여 거대 지진 발생 메커니즘 규명, 지구 규모 환경 변동, 지하 생명권연구, 새로운 해저자원 탐사 등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탐사 연구 활동을 선도하고 있다.이번 KIGAM의 탐해 3호 진수와 포항항 취항은 한국이 해양 강국 새로운 진입과 함께 환태평양을 중심으로 세계를 향한 해저 지형, 지질과 자원탐사 연구 시작을 알리는 미래 희망도시 포항발 신호탄이다. 탐해 3호가 한반도 연근해를 벗어나 남북극해, 심해저, 해령 등 지구의 전 해저의 탐사영역 확장과 미지의 해저 지형연구로 아리랑 해령, 한국해구와 같은 한국어 해저 지형명 탄생을 보고 싶다. 일본 주도 동해 해저탐사 연구에서 한국으로 주도권 전환과 일본 미국, 영국 등 해양 선진국과 국제공동연구의 주도적 참여를 기대한다. 동해 해저의 정밀 지질조사로 해저에 매장된 석유, 천연가스, 메탄하이드레이트, 수소 등 에너지 광물자원 확보와 배호분지 동해형성 과정의 수수께끼가 풀어졌으면 한다.동해 해저에 발달한 활성단층 조사와 해저 정밀 지질조사로 포항지역과 한반도 지진 및 재난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포항 영일만 앞바다 8광구 해저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이 높다는 빅뉴스가 탐해 3호의 포항항 출항과 탐사역할의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해양탐사 연구 성과 극대화를 위해서 탐사선의 우수한 인프라구축에 맞추어 전문 연구인력 확충과 탐사 지원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024-06-09

유전으로 대박 난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금세기 최대 유전 발굴로 벼락부자가 된 나라는 남미의 가이아나다.가이아나는 남아메리카 동북단에 위치한 인구 80여 만명의 작은 나라로 과거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966년 독립국가가 됐다.사탕수수와 쌀농사 등 1차산업 기반의 빈국이었으나 가이아나 앞바다서 석유가 발견되고부터는 일약 부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됐다.가이아나의 석유 발견은 단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거의 100년 가까이 탐사작업을 벌였으며 실패를 거듭한 끝에 거머쥔 행운이다. 2019년 가이아나 앞바다서 8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이 확인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국제사회는 2020년대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남미의 가이아나를 꼽고 있다. IMF는 가이아나의 1인당 GDP가 5년 내로 4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도 한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가이아나의 회원가입을 권유하는가 하면 원유생산 능력이 알려지면서 유엔안보리 비상임 국가에도 진출하는 등 국가의 위상도 올라섰다.그러나 한편 IMF는 제조업 육성을 경시하고 석유로 번 돈을 마구 쓴다면 베네수엘라처럼 자원의 저주를 받을 것이란 경고도 함께 보내고 있다. 실제로 석유개발과 건설 붐으로 일자리가 늘고 있지만 정작 원주민보다 외지인이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고도 한다.경북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표로 산유국 진입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다. 아직은 넘어야 할 문턱이 많아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가이아나의 실체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살펴볼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6

미래세대를 위한 희생

홍석봉 언론인 아이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공부가 하기 싫어 농땡이 친 기억이 있을 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자신의 일과 업무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다. 심지어 자신의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공부는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공부를 해야 만 자신의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고 스스로 길을 헤쳐나갈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선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유치원부터 과외를 하는 때도 있다. 억지로 하는 공부다.하지만, 이러한 공부가 장차 성공의 초석이 된다.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공부다.국민연금 개혁 및 의료개혁, 전기료 인상은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다. 늦추면 우리 사회의 부담은 물론, 미래세대에게도 짐이 된다. 무조건 해야 한다.국민연금법 개혁은 국민이 모두 시급성을 인식하고 있고 동의하는 부분이다.하지만, 정작 연금 요율 조정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주저앉고 말았다. 연금 개혁의 핵심은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2055년이면 기금이 고갈된다. 저출생,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주 요인이다. 미래세대에겐 심각한 문제다. 현 세대의 평안을 위해 후손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연금은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면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연금 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막 첫발을 뗀 22대 국회지만 개원과 함께 연금 구조개혁과 재정 안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야는 연금 개혁부터 추진해야 한다.의료개혁도 의사 증원 문제를 두고 심각한 의정 갈등을 겪었지만 큰 틀에서의 증원 문제는 문턱을 넘어선 셈이다. 당장 정부가 선언한 2000명 증원 선에는 못 미치지만 곧 1500명이 2025학년도부터 증원된다. 물론 의사집단의 반발은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의사 인력난 역시 그냥 두면 미래세대에는 부담이다.전기 및 가스료 인상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와 가스 공급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한전과 가스공사의 이자만 4조~5조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말 현재 양 공사의 총 부채는 250조 원. 사상 최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위기 여파다. 2022년 이후 원가 이하로 전기 등을 공급했다. 한계에 이르렀다. 늦출수록 경제부담만 커진다. 조기 인상 외엔 방법이 없다.정부는 공공요금 인상, 기업의 생산비 증가, 수출입 감소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요금 인상 시기를 재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싼값에 에너지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추가 인상분은 미래세대의 부담이다.6월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애국충정을 기린다. 그들과 산업전사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국민연금 등 개혁은 현 세대의 희생이 필요하다. 하기 싫고 힘들어도 해야 한다. 22대 국회가 출범했다. 정부와 여야는 이번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등 시대 과제를 조기 마무리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할 때다.

2024-06-06

정원을 잘 가꾸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5월의 들판을 달려보면 갖가지 풀꽃들이 밝은 계절을 노래하고 있다. 노란 꽃들이 유난히 많다. 그중에서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는 금계국은 황금색 깃털이 아름다운 금닭(金鷄)을 비유한 듯한 국화과 식물인데 너무나도 소담스러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살펴본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지 않았던 꽃들이 요즈음은 길섶과 비탈에 풍성하게 널려있다. ‘사랑의 망각’ ‘상쾌한 기분’이라는 꽃말과 함께 강인한 번식력으로 봄의 들판을 차지하고 있다.풀꽃은 원래 존재감이 별로 없지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흥얼거리며 시골집 골목길로 들어서면 노란 돈나물(돌나물) 꽃도 눈길을 끈다.오늘은 시골집의 소나무 순치기를 하려는 날이다. 5월 하순부터 6월까지가 적기이다. 그동안 노란 꽃가루를 마루에 흩뿌려 귀찮게 하던 새순들이 쑥쑥 자라서 다른 모양새를 보이고 있고, 그대로 두면 잎들이 햇빛을 가리거나 바람을 막고 수형(樹形)을 망칠 수 있기에 불필요한 가지도 잘라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걸 놓치면 다음 계절, 여름과 가을을 기다려야 한다.정원에는 몇 그루 낮은 소나무가 꽤나 근사하게 자라고 있는데 수형 관리를 위해 매년 가지치기를 해주고 있다. 검붉은 나무둥치가 드러나도록 자르며 나무 끝부분이 강하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순을 따서 가지 세력의 균형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소나무 종류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나무의 외모를 고려하며 큰 가지부터,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쪽으로 전지(剪枝)를 한다. 말라죽은 가지, 병든 가지를 먼저 자르고 쑥 뻗은 도장지와 아래쪽으로 쳐진 가지, 둥글게 굽어있는 가지, 교차하는 가지를 자른다. 뭉크러져 있던 잔가지가 잘려지면 바람도 시원하게 통하고 갖가지 모양의 굵은 가지가 영험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소나무는 절개와 의지, 충정과 지조 등의 가르침을 주듯 우리의 애국가에도 철갑을 두른 듯하다고 하지 않은가. 소나무 꿈을 꾸면 벼슬할 징조이고 소나무를 그리는 꿈은 만사형통을 이룬다고 하니 잘 키워야 하겠다.5월 30일부터 22대 국회가 열렸다. 여의도 국회 정원에도 가지치기를 한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지역구 253명과 비례대표 47명 등 총 300명의 국회의원 중 초선 의원은 131명이다. 지난 21일 국회 박물관에서 가진 ‘초선 의원 의정 연찬회’에 모여 국회 조직과 기능 및 주요 의정 지원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앞으로 4년간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국회에 반영하여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나무에 기둥 쪽 108개 가지와 밖에서 둘러싸고 있는 175개의 가지가 서로 엉키거나 햇빛을 가리고 혼자서 쭉 뻗는 행위로 여의도 소나무를 훼손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는 옛날에는 가축을 키웠다고 하니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도록, 여의도의 여의(汝矣)를 ‘여의주(如意珠)’라고 해도 좋을 정치·금융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해서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 정원을 잘 가꾸어 나가길 염원하는 바이다.

2024-06-06

시낭송의 매력과 풍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아침 들리는 새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부터 들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 눈을 뜨니, 오늘 하루가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예전에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지만, 요즘은 촌락에서도 닭 울음 소리나 개 짖는 소리가 드물어진 것 같다. 그만큼 삶의 양태가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소쩍새나 부엉이 등 밤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고, 이른 아침 온갖 새소리에 눈을 뜨면 도회지만 어디 산 속에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필자의 우거 주위엔 도로 건너의 야산과 연결되는 작은 언덕이 뒤뜰과 이어지고 있어서 정원의 나무들과 함께 길다랗게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를 비롯 풀들이 자라고 있는 그곳에선 사시사철 수많은 새들이 날아들고 합창이 끊어지질 않는다. 그러한 곳에서 새들의 지저귐을 자주 듣다 보니, 어쩌면 새들의 특유한 대화법(?) 같은 지저귐에도 일정한 패턴이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침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새들의 울음은 서로의 안부마냥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전문싱그러운 녹음과 향기로운 풀잎이 꽃필 때보다 더 아름답다는 유월 아침에,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는 그야말로 자연의 서정시처럼 들린다. 연록의 잎새가 짙어지면서 산과 들에 초록의 서사시를 쓰듯이, 새들의 낭랑한 지저귐은 계절을 찬미라도 하듯 그 자체가 영롱하고 이슬빛 머금은 명징(明澄)한 시편으로 여겨짐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바람결조차 부드러워 새들의 목놓아 외치는 읊조림에 나뭇잎마저 살랑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듯하다.누렇게 물결치며 맥추(麥秋)의 서정을 노래하던 보리를 베어내고 논배미의 행간에 또박또박 글자를 심듯이 모심기를 하는 망종(芒種) 즈음에, 사람사는 세상에도 시와 음악을 품고 즐기는 모습들이 활달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책방이나 한적한 뜰에서 시를 읊거나 시낭송회를 열고, 십인십색의 화음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문인과 독자와의 만남으로 문학과 예술의 얘기꽃을 피워가는 마당에는 풍류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시는 세상에서 가장 정제된 언어로 짧지만 시사하는 의미와 울림이 있다. 아름다운 시어들을 목소리의 음색과 시에 담긴 희로애락을 가슴으로 전하며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시낭송가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활자화된 시를 목소리의 운율과 낭송가의 표정, 몸짓 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이 더해지게 되면 더욱 따뜻하고 풍부한 감동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시낭송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를 이어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시 나눔의 감동을 전달하는 풍류 가인(佳人)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감정과 정서가 메마르고 단절돼가는 현대사회에, 시를 읽으며 시낭송의 매력과 운치를 느껴보는 풍류생활을 즐겨보면 어떨까?

2024-06-06

산사의 풍경소리

탄탄스님(통도사중동분원 서래사주지, 동국대(와이즈 캠퍼스) 출강) 밤 하늘의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칠흑같은 어둠속 저 멀리 산그늘이 더욱 검푸른 곳에서 하루에 두끼만 먹고 어떨때는 일용할 두끼마저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이고 밤참으로는 가끔 왕뚜껑 컵라면 일 때도 있었지만 차리리 속은 편했던 적이 있다. 사람을 만나고 친분을 쌓아올려 수 천명의 지인이 있음 뭣 할런가? 살아보니 다 헛되고 헛된 인연이더라.  세상 살아가며 허무함을 느껴 나락에 빠진 자에게 겨울이면 아프지나 말고 엄동설한 굶지말고 잘 버티라며 쌀 한가마 김치 몇포기 나눠주는 지인 딱 한 명이면 그저 행복한 세상일터.직장생활에 밥줄을 걸고 높은 자,같잖은 자,눈치나보며 비위맞추랴,쥐꼬리같은 박봉에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아가며 사는 꼴이 꼭 여색에 빠져서는 머리부터 아그작 아그작 암컷에게 씹혀 먹히는 줄도 모르다가 최후에는 성기조차 씹혀먹히며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숫컷 사마귀 같은 수 많은 인생도 어지간히 애잔하다. 인간세상이란게 종족번식을 위해서이든, 애욕에 빠져서이든, 짝사랑이든, 또 그 어떴든 간에 숫컷 사마귀처럼 애처롭게 살아가는 이 또한 부지기수다.  갈 곳도,오라는 곳도 없어 하루 온종일 신물이 나오도록 라면으로 연명하지만 이 몸은 자유로운 들개 버금가는 자연인이다. 잠 못이룬 긴긴밤 줄기차게 마셔된 술병이 머리맡에 나부끼고 이를 바라보며 우선 당장 해장할 고민에 머리를 감싸나,그래도 그대는 자유인이자 자연인 아닌가. 여름날 밤에도 온 몸에 모기에 뜯기며 홀딱 깨벗고 잔걸 보면 더욱 그렇다.  이 몸이 아침이면 뱃속이 벌써 여러 해째 영 불편하였다.생률과 생무우를 먹어 보면 어떨까하여 생각만 하염없었지만,밤을 날로 예쁘게 깍어 무우를 밤톨처럼 깔끔하게 까서는 앙징맞은 찬합에 넣어 대령해줄 어여쁜 어느 여인이 있나, 그 번거로운 일을 해 줄 언년이 식모가 있을까나, 마트에 가서 무우 한개 먹자고 한 다발을 사와서 보관 할 곳도 없고 당뇨에는 썩 이롭지 않지만 비타민C가 엄청 풍부하다는 사과나 감조차 혼자 먹자고 깍아 먹는 사소하기조차 한 일도 그렇게 쉽지가 않다. 이토록 혼자 사는 일은 그 모든 것이 수월치가 않다.가끔 자연인 재방을 본다.홀로  날마다 부지런 떨며 깊은 산 속에서  집도 손수 지어 자급자족을하며 사는 모습, 대단한 용기이지 않은가.어디에도 얽메임 없는 자유를 갈망하여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생활하는 그 신념과 용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높이 평가할 만 일이다.  '만사 귀차니즘' 에 빠진 현대인들에게는 죽었다가 여러 번 깨어나도' 언감생심으로 꿈꿀수도 없는 그 신비의 세계, 그 삶도 충분히 인간다운 삶이라는 철리를 깨우쳐 본다.  누군가에게 얻어들은 옛날옛적 이야기 하나 해보자,"어느 골짜기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칡넝쿨을 거두려고 웬 줄을 당겨 붙들었는데, 그것이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다.이런 낭패가 있나,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나무꾼이 깜짝놀라 급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잔뜩 화가 난 호랑이가 나무를 마구 흔들어 대자 놀란 나무꾼이 엉겹결에 그만 손을 놓아 버렸다. 그런데 나무에서 떨어진 곳이 하필 호랑이의 등이었다이번에는 호랑이가 너무도 놀라 몸을 흔들어 대었고,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호랑이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달리기 시작했다.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그런데,한 농부가 무더운 여름에 밭에서 일을하다가 이 호사스런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한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만 하고 사는데,어떤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면서,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는가?”농부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절대절명의 생사의 기로에 있는 나무꾼을 부러워 했다나ᆢ. 때로는 남들을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나만 죽도록 고생하는 것 같다. 나는 뜨거운 뙤약볕에서 일을 하는데 남들은 호랑이 등을 타고 신선 놀음을 하는 듯 하다.그러나,실상을 알고보면 사람 사는 것이 거진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하다.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똑같은 외로움속에서 몸부림치며 생을 영위하고 남과 비교를하면 다들 내것이 작아 보인다.나에게만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들어가 보면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비교해서 불행해 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것이 현명한 삶의지혜가 아닐까 한다. 탈탈털린 영혼이었을때 꼭 한번은 만나보시라고 꼭 강권하고 싶은 경북 영덕군 남정면 골짜기의, 포항에서 제일 높은 스님은 아니지만 젤 높은 곳 내연산 문수암에 가면 저절로 만나지는 스님이 있다.산위에서 산밑을 바라보라.모두 다 아랫것들로 보이더라, 높은곳은 뭐 별천지 더냐?,지역사회에서 명망있는 팔순의 카톨릭 사제를 거주하는 암자의 명예신도회장으로 일방적(?)으로 임명하시고 하루 흙짐 스무지게를 지어 절을 손수 보수 수리하고 일상에서 지옥과 극락교를 마음대로 건넌다는 지론으로 아무런 걸림없이 겸손을 지향하며 내 맘이 가는대로 당나귀하고 염소하고도 벗이 되어주고 가파른 산길에서 지던 짐을 내던지는 당나귀 타박하지 않고 돌려받아 둘러메고는 묵묵히 산길 걷는 포항의 기인스님, 3,000배도 쉽지 않은데 팔굽혀 펴기 3,000회도 끄떡없다더니 몸을 너무도 흑사하며 하나 뿐인 몸을 아끼지도 않더라.남의 사주팔자도 명쾌히 들여다 보고 염생이 밥주려고 청과시장 썩은 과일 수거하러 트럭을 몰고 극락교를 건너 사바로 발길 향하는 작업복도 잘 어울리는 묵설스님이다. 포항에 잠시 살때면 가끔은 통화도 하고는 했지만 더운 날엔 내가잡은 고기는 말고 방금 죽어버린 시원한 물회 한사발을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싶다.'전국의 기인찾아 삼만리'를 취미삼은 내게 경북 영덕군 남정면 회리길499로 좀 오라하시기에 한숨에 달려갔네. 비싼 게 좀 먹자면서 곱게 동여멘 포장끈 녹슨칼로 뚝 끊어서 융슝한 대접도 받았다.그 다음엔 이런 당부의 말씀을 주시었네, '인생이란 강한자와 대적만 하려 말고강한자를 벗으로 두는 속편한 길 가라'다 이루워져서 만족한 다음엔 그 다음에는 반드시 어김없는 허무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리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나 어느정도 성공하여 일가를 이루웠거나 돈줄을 거머 쥔 재벌이거나 유명연예인들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후에 그 공허를 이기지 못해서 도박도 하고 술이나 이성을 찾고 더 나락으로 빠져서 마약으로 그 공허함을 넘을려고 하는 것 같다며, 자신도 수행길 고단하고 외로워서 술마시다가, 아까비라 내청춘도 많이 지난간 거라고 솔직담백하게 할도 해주고 방도 해준다.그러면서 나에겐 한가지 더  한번 더 강조하여 챙겨주는 말쌈이"절대로 강한자에게 덤비지 말고친하게 지내요'두 번을 더 내게 반복 강조를 하더니만, 또 '어떤 일을 하든 아쉬움을 조금 남겨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신다.인간에게는 이성적으로 다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어야 하며, 그래야 호기심을 일으키고 희망을 되살린다고 되뇌이셨다.동물선원 원장직 마다하지 않고 제 갈길 가는 기인(?)이랄까, 수행도 독특한데 니들 맘대로 생각하던 말던멋대로 살아갈테니,괘념치를 않는다네.헤어짐을 앞두고선 사족을 하신 말쌈이 '완벽한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듯 여지를 남기고 감사 할줄도 아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현실에 순응하고 마음의 부족을 채우라고 덧붙이셨다.날 콕찍어서는, 언어를 빨리하면 복이 감한다고 다른 복은 갖추었어도 말을 천천히 하라고 말이 많은 사람들은, 즉 욕구불만이니 말을 줄이는것이 상책이라신다.촌로처럼 허름하게 늙어가지만 어느 관상가 점쟁이 뺨따구 왕복으로 서너번도 더 쳐주는 도인도 훨씬 능가하는 꿰뚫어 명쾌하기조차 한 인생길 조언도 결코 마다하지 않으면서, 예전의 묵설당이 그 포커페이스 고수의 묵설은 온데간데 없고 번듯한 중늙은이의 스님으로 거듭나 내일모레 구순의 신부님하고도 승속과 종교도 초월하고 지옥과 극락도 마음대로 넘나드는 확고부동한 고독한 수행자의 늠름한 모습이었다네. / 탄탄(통도사 포교원 서래사 주지•동국대학교 출강)

2024-06-06

‘보복정치’로는 民心 얻을 수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2대 국회 문을 열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부부 등을 겨냥한 특검법 폭주에 나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민주당은 가장 먼저 ‘채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윤 대통령을 특검 표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던 날 윤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에서는 “탄핵까지 거의 온 것 아닌가”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중앙지검장 시절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최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주가조작 의혹, 허위 경력 기재 사기, 뇌물성 전시회 후원,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인테리어 공사 특혜, 민간인의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 동행,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를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법안 내용을 보면, 자신들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검 후보 2명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더 기막힌 것은 압수 수색, 구속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영장 전담 법관을 따로 지정하고, 재판도 전담 재판부가 심리하도록 한 것이다.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원천배제한 법안이다.조국혁신당은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한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장관 시절 자녀의 논문을 대필했다는 가족 관련 의혹과, 작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설명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일각에선 “조민 아빠의 복수극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조국 대표 가족은 자녀 입시비리로 딸(조민)은 의사면허를 잃고 아내는 3년여 수형 생활을 했다. 조 대표도 유죄를 선고받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조 대표는 “과거 검찰이 내 딸은 일기장과 고교 생활기록부, 체크카드, 신용카드 내역을 조사했다. 그러나 한동훈 딸 같은 경우, 소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검찰의 불공정성을 제기했다.야권은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21%까지 떨어진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오자 입법폭주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든, 민심은 자기편이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22대 국회가 시작부터 복수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장소로 변한 것 같아 충격적이다. 명색이 국민대의기관인 국회가 앞으로 ‘특검정치’라는 어둡고 파괴적인 어젠다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존재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느끼고 있지만, 특검정국은 사법체계와 정부의 행정기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야권이 윤 대통령 부부와 한 전 위원장을 처단대상으로 규정하고, 국회를 ‘복수의 장’으로 만들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시적으로는 증오심에 가득 찬 보복정치가 민심을 얻는다는 착각을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06-04

6년 만에 재개되는 대북확성기

우정구 논설위원 대북확성기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심리전 무기다. 1962년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하자 우리도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시한 것이 대북확성기 방송의 시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 따라 방송이 중단되거나 재개되는 일이 여러번 반복됐다.최근 북한이 오물이 든 대형풍선을 남한으로 살포하는가 하면 GPS 전파교란 행위 등 연쇄적 도발을 일삼자 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를 무기로 꺼내 들었다.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 이후 중단된 지 6년만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압박 수단으로 통하고 있어 북한의 다음 반응에 정부도 긴장감 갖고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대북확성기 방송은 최대 30km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방송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고출력 장비의 무기다. 부도덕한 북한 수뇌부의 실상이 스피커를 통해 폭로된다면 북한군과 인근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 무기로서는 최적격이다.정부는 과거에도 북한이 심각한 도발을 개시했을 때, 대북확성기를 카드로 꺼낸 적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2015년 비무장지대 목침지뢰 사건, 2016년 4차 핵실험 등의 직후다. 특히 그동안 내보낸 대북방송의 내용이 김정은 정권의 세습과 비리 등 북한 내 실상을 폭로한 것이어서 이번 우리측 대응에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이번 대북확성기의 재개로 남북관계의 긴장감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측의 다음 대응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다. 대북확성기의 위력과 함께 유비무환의 정신무장도 갖고 갈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4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닭의장풀

점심을 먹는 동안 소나기가 내렸다. 시원해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습도만 높아졌다. 식당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말갛고 파란 하늘이었다.“아이고 더워라. 여서 뭐합니까? 그늘에 가서 좀 쉽시다. 담배도 한 대 피우고.”검고 붉은 피부를 가진,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크고 깡마른 사내가 내 옆으로 와 섰다. 오늘부터 나와 한 조가 된 사내였다. 우리는 식당 처마 옆 그늘진 곳으로 가 앉았다. 사내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 중 하나를 자기 얼굴에 문지르면서 남은 하나를 내게 건넸다. 냉동고에서 막 꺼낸 생수병이었다. “이 일 한지 오래입니까?”“오래 되고 말고가 있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전기 기술자도 아니고. 어제 처음 해 본 일입니다. 어제 하루 하고 말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오늘 또 나오라 하더라고요.”태양광 발전 패널 설비 공사 현장은 처음이었다. 공사 현장이 집에서 비교적 먼 곳이라 어쩔까 했지만 일당이 나쁘지 않았고, 현장이 산이라 하니 마음이 갔다. 오후 작업을 시작한 후에도 사내는 계속해서 말을 걸거나 자기 이야기를 했다. 손놀림을 멈추거나 쉬지는 않았다. 입을 통해 노동의 무게를 내뱉고 덜어내는 것 같았다.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 컸었는지 공사 감독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잠시 조용하다 싶었는데 감독이 사라지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이거, 이거 이름이 뭔지 압니까?”보랏빛 꽃이었다.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뭉쳐진, 주위를 둘러보니 공사 부지에 지천으로 깔린 풀이었다. 사내가 가리킨 꽃으로부터 눈길이 닿는 곳까지 퍼져나간 보랏빛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아니오, 이름이 뭡니까?”“이게 바로 닭의장풀. 닭장 옆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달개비라고 하면 들어 보셨을라나? 예쁘지요? 봄에 나는 것은 먹기도 했는데.”사내는 꽃을 하나 꺾어 머리에 꽂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이것들이 예쁘기는 한 데 풀은 풀이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보는 족족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엉망진창이 됩니다. 생존력이 엄청 나거든요. 여기 뽑아 놓으면 저기서 나고 저기서 뽑아 놓으면 저쪽 어딘가에서 또 나고 있고. 약으로도 쓰인다 듣긴 들었는데, 그렇다고 이걸 약으로 쓰겠다고 캐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은 없으니.”4, 5일정도 평탄 작업이 끝난 후 콘크리트 작업이 시작됐다. 태양광 패널을 올리고 고정할 자리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설명을 듣고 흩어져 막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보랏빛 꽃이 보였다.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꽃이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쓰였다.“왜요? 무슨 일입니까? 그 잡초 꽃 때문에요? 아이고, 보기보다 마음이 여리시네.”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사내가 삽으로 땅을 내리찍었다.“이 녀석들은 어디서든 잘 살아낸다 했지요. 걱정 마십시오. 죽었나 싶어도 다시 머리를 내밉니다. 자, 하지요. 오늘 좀 많이 파야 하던데.”하지만 한 번 간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능한 꽃을 피해 삽질을 했다. 사내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지만 더 이상 입을 대지는 않았다. 땅을 파는 작업은 그전 작업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오전 일을 마칠 즈음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에 젖은 옷 때문인지 몸이 무겁다 느껴졌다.일주일이 지났다. 전날부터 태양광 전지 패널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넓고 큰, 검은 판들이 땅을 덮었다. 설치는 전문업체의 사람들이 했고 나와 사내는 보조 일을 했다. 주로 장비, 도구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이거나 패널을 고정하는 동안 흔들리지 않게 잡고 있는 일이었는데 검은 전지판에 반사된 빛에 내내 눈이 부셨다. 그날따라 사내는 말이 없었다. 나는 사내가 입을 여는 것을 기다리다 먼저 말을 걸기로 마음먹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싸구려 선글라스라도 하나 가지고 오는 건데. 말이라도 좀 해 주지. 안 그래요?”연철은 부러 툴툴거렸다.“오늘 마치고 한잔 합시다. 술 하지요?”사내가 말했다.일을 마치고 둘은 식당에 남았다. 삼겹살과 소주 몇 병 준비해줘요,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식당 주인에게 부탁을 해놓았었다.“이건 내가 낼 게요.”“아이고, 고맙습니다. 잘 마실 게요. 하하. 자, 한 잔 받으십시오.”사내는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둘은 공사가 얼마나 이어질지, 어느 어느 지역에 열린다는 큰 공사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티브이에 나오는 정치인이나 대통령 얼굴을 보며 욕을 해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문득 사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내가 말을 꺼냈다.“그, 닭의장풀인가 하는 것들 말인데, 패널들이 다 올라가고 나면 햇빛을 못 받을 텐데 괜찮을까요? 오늘 보니 패널 밑은 완전히 응달이던데. 햇빛도 못 받고 비가 온다해도 빗물들이 스며들려면 오래 걸릴 텐데. 쟤들도 꽃이 피려면 해도 보고 비도 맞고 해야 할 텐데.”“글치요. 햇빛을 아주 못 받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받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흘러 내려오거나 땅속으로 흘러든 빗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전만 못 하겠지요. 뭐,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래서 잡촌데. 잡초가 제일 강하다 안 합니까.”“그렇겠지요? 하긴, 우리가 잡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보니. 꽃이 예쁘더군요. 자꾸 보니까.”“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카는 말도 있다 아입니까. 무슨 유명한 시에 나온다 하던데. 하하.”나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오늘 왜 말이 없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었다. 사내는 소주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재건축이 된다고 했다.“오늘 회식은 내가 쏠 일이 아니네. 듣고 보니.”“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입니다.”재건축 이야기는 제법 오래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재건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파트 주민들 중 상당수는 전세나 월세로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었고 자가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막상 재건축을 위해 집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들면 막막했다. 재건축을 위한 투표에서 찬성표는 번번이 60%를 넘기지 못했다.“다들 말만 재건축, 재건축 했지 실제로 벌이지는 못했거든요.”이번에는 달랐다. 외지의 한 부동산 업체가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재건축을 위한 투표 공고가 붙었고 투표 결과 찬성률이 60%를 넘었다. 사내도 찬성표를 던졌다. 재건축조합이 결성되었고, 시행사와 건설사 입찰이 시작되었다.“저야 뭘 압니까. 마누라가 이번에는 꼭 재건축을 해야한다 해서. 그런데 어제 웬 서류가 집에.”재개발 후 지어질 아파트의 대략적인 평수, 호수와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자가 분담금에 대한 안내서가 왔다고 했다. ‘평당 건축비는 천만 원 정도 예상하고 있으며 기존 조합원의 경우 크기별로 기존 아파트의 가치를 산정해서 건축비에서 기존 아파트의 가치, 늘어나는 세대의 분양이 다 된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익을 조합원 수로 나눈 가치 등등을 뺀 금액이 자가 분담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성을 따져보니 아파트 층수를 기대만큼 높이지는 못한다. 이러저러하니 조합의 이익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양해 바란다.’ 는 내용이었다.“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이 열다섯 평인데 작은 것을 고른다고 해도 스물여덟 평이니 거의 두 배가 되는 셈입니다. 그것만 해도 건축비가 이억 팔천이라는 말인데 절반만 낸다 해도 일억 사천을 제가 감당해야 한다. 이런 엿같은 계산이 나오더라 이 말입니다. 시발.”그것 때문에 아내와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마누라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돈 못 버는 제 잘못이지요. 헛바람 불어넣으며 돌아다닌 나쁜 놈들 탓이지요.”사내는 물잔의 물을 바닥에 부어 버리고는 소주를 물잔에 따르더니 벌컥거리며 마셨다.“뭐, 어찌 되겠지요. 안 되면 팔고 또 이사 가면 됩니다. 우리가 한두 번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외지에 나가있으니 마누라하고 나하고 둘이야 어디든 누울 곳이 있겠지요.”불판의 고기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술병은 쌓여갔다. 나는 이것저것 이야깃거리를 찾아 건넸지만 사내는 취한 탓인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일이 많아졌다. 간혹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시발시발 욕지거리만이 분명하게 들렸다. 욕설이 사내의 술버릇이었는지 이번만 유독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슬리지 않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가끔 욕을 따라 하기도 했다. 사내가 시발하면 내가 따라서 시발, 사내가 지랄하면 또 따라서 지랄. 한동안 식당은 시발 지랄거리는 욕설로 가득했다.사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려나 싶었다.“혼자 가도 괜찮겠어요? 넘어질 것 같은데.”사내는 손을 들어 안심하라는 듯 휘휘 젓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나갔던 사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잠이 든 것인지, 비탈을 굴러 아래쪽에 처박힌 것은 아닌지, 잠시 고민을 하다 나는 사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직은 달빛이 남아 있는 밤이었다. 그 달빛을 배경으로 누군가 연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였다. 사내는 대뜸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시발. 쟤들도 살아가는 놈들인데. 햇빛은 볼 수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비도 맞아야 하고. 아이, 시발. 미안합니다. 그라고 이건 선물입니다. 아니다 숙제인가. 볕 잘 들고 물기 많은 곳에 심어 주세요. 거기서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6-04

반려견과 현대인의 삶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현대인의 행복지수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안정, 건강, 사회적 관계, 직원 만족도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높은 기대치, 경쟁시대의 압박 등은 행복지수를 낮추게 하기도 한다. 경제 선진국과 후진국, 아프리카 원주민 등의 행복지수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과학기술문명이 가져다 주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은 행복지수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또 다른 면도 있는 것이다.독일, 유럽의 경제 선진국 행복지수는 대체로 높은 편이다. 생활수준, 안정된 소득, 국가 복지제도 등 경제적 안정이 첫번째 이유다. 과학적 의료시스템으로 건강관리가 용이하고 기대수명을 충족시킨다. 또한 사회 보장 제도와 안전한 환경, 다양한 교육기회와 교육수준이 삶의 가치를 높여주고 만족도 상승에 요인이 된다. 반면, 경제 선진국 미국을 보면 불평등, 스트레스, 정신건강의 문제로 우울증과 총기 난사 등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얀마, 네팔처럼 경제 후진국의 행복지수는 낮은 편이다. 소득, 실업률의 경제적 불안정과 낮은 기대수명, 질병, 정치적 불안정, 교육 수준 등도 행복지수를 낮게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행복지수는 문화, 생활방식, 공동체 관계 등이 영향을 받는다. 가족과 공동체의 강한 유대,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문화적 정체성, 자연과 밀접한 생태적 균형 등 다른 각도의 행복지수로 봐야 할 것이다.인간의 삶의 행복지수는 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되는 속성이 있다. 최근에 유럽과 미국, 한국 등은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흐름이 높아 졌다. 초경쟁사회에 정신적 손실과 소외감을 조건없이 배려와 사랑으로 채워주는 반려견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아침 방문을 두드리고 깨워주고 함께 산책하고 거리를 보면 유모차보다 반려견을 태운 차가 많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필자도 5년 전에 대전에서 블랙탄 포메라니안 변려견을 가족의 일원으로 입양했다. 집에 새로운 기운을 달라고 ‘새봄’으로 이름 짓고 우리 가족 막내가 되었다. 경쟁시대 부모의 요구와 사회적 요건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았던 큰 아이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입양을 반대했던 가족도 밥을 같이 먹고 재롱에 웃고 웃는 하루의 생동감을 일으켜 주는 새봄이의 열혈 팬이 되었다. 필자도 새봄이 등장으로 주말 집으로 가는 길이 즐거워졌고 산책 당번이 되어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입양했을 때 4개월 된 3.4kg의 작은 체구지만 빠르고 영리하고 귀여움에 산책길에서도 사랑받는 존재이기도 했다.반려견이 현대인의 삶에 주는 선물은 크다. 생존의 경쟁에서 발생되는 스트레스와 허전함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주고 가족 간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한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현대인의 삶이 풍족해도 스스로 못 채워주는 삶의 공간 때문에 행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 공간을 채워주는 반려견이 늘 곁에 있어 현대인의 삶은 행복해져 가는지도 모른다.

2024-06-04

탄핵의 추억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현직 대통령 탄핵의 추억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게 한 추억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휩쓴 하나의 광풍이었다. 곳곳에 포진 해 있던 반정부 세력들이 세월호 참사로 흉흉해진 민심을 선동해서 대규모 민중시위를 일으켰고, 언론과 과반의석의 야당이 적극 가세하고 일부 여당과 사법부까지 동조해서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 거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그 탄핵을 짜릿한 승리의 성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치욕과 한탄의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탄핵에 대해서는 헌법 제 65조에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고위 공직자의 비리 또는 위법의 혐의가 발견되었을 때 그 수사와 기소를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규검사가 아닌 독립된 변호사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는 제도를 특별검사제(특검)라 한다. 한 마디로 수사의 공정성을 기대·인정할 수 없을 때 도입하는 제도다.특검법안과 탄핵소추의 의결권은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이는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남용을 방지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하는 기능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거듭해서 국회의석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자 걸핏하면 특검과 탄핵이란 말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탄핵으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을 한 것과 적폐청산의 명목으로 특검을 해서 지난 정권의 공직자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한 전력의 재현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겁박하고 방해하는 특검과 탄핵의 남발을 막을 수단이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이다.지금의 야권이 집요하게 특검과 탄핵 정국을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저들이 지고 있는 사법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과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야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민심이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빼놓고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이슈가 없다는 것과 언론과 사법부도 어느 정도는 달라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게 관건인 것은 야권의 구심점을 이루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조국 당대표가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이다.그들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보려던 ‘김건희 특검’은 김정숙· 김혜경과 함께 ‘3김여사 특검’으로 가자는 반격에 머쓱해졌고, 채상병 순직사건 특검도 국회 부결로 일단 무산되었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특검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대통령 탄핵으로 몰아가기는 역부족일 것 같다. 그보다는 그들을 향해 시시각각 죄어가는 사법리스크가 오히려 국운의 향방을 가를 것 같다.

2024-06-04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하자

김진홍 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위원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와 함께 탐사시추 계획의 승인을 알렸다. 석유 문제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리게 된 것은 50년 만이다.당시 많은 언론의 1면을 장식했던 영일만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당시 어디에선가 지하로 스며든 경유가 우연히 올라온 것을 원유로 착각하면서 오해가 커지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1973년 2월 7일 상공부는 포항 앞바다 제6광구 1차 석유 시추 탐사작업의 90%를 완료한 시점에서 석유 발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포항 앞바다의 석유 발견의 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3년 뒤인 1976년 1월 16일에는 포항 영일 일대 석유광업권을 국가서 집행하고 민간인 광구 설정은 불허한다는 결정도 나왔다. 이후로도 포항 앞바다 일원의 석유 탐사는 본격화돼 30개소에 시추작업이 추가로 이뤄지기도 하였다. 결국 1977년 1월 15일 당시 상공부 장관은 재차 포항의 석유탐사는 진전이 없다고 언명하였다. 그 이후 포항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마치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다시 5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불이 붙었다.50년 전보다 더욱 과학기술이 발전한 지금의 물리 탐사 결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기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사실 포항의 지하에 가스전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장 수년 전부터 철길숲의 불의 정원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나중 확인이 되어야만 하겠지만 적어도 영일만 앞바다가 분쟁 수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으로 큰 긍정적인 효과를 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석유제품 수출국이기는 하지만 수출하는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원유를 모두 수입하기에 국가 차원에서 수익이 극대화되기는 한계가 있다.그런 면에서 만약 영일만 앞바다에서 대규모의 원유나 가스전이 발견되어 실제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제품의 가격경쟁력만큼은 크게 개선될 여지가 크다.포항의 경우에는 향후 생산기지가 될 곳과의 직선거리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내륙으로 원유나 가스를 이동시켜 임시로 저장할 시설 등을 해안가 어디엔가 만들 수도 있다. 포항철강공단에서는 이와 관련된 저장장치, 수송장치 등에 필요한 강관이나 관련 설비를 생산하기 위해 모처럼 가동률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로 파생되는 어떠한 형태로든 새로운 고용 창출, 인구의 유입과 그로 인한 소비산업과 서비스업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 겨우 탐사 시추계획을 승인했을 뿐이다. 호들갑 떨 때는 아니다. 앞으로 실제 포항 앞바다에서 석유나 가스가 나더라도 그 소유권은 포항시와 무관하다. 따라서 포항시나 경상북도는 이 사업이 성공할 경우를 대비하여 최대한 그 낙수효과가 포항시, 경상북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2024-06-03

가난이란 무엇인가

최근 타계한 신경림 시인은 ‘가난한 사랑 노래’란 시를 남겼다. /연합뉴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다. 시인은 맑고 뜨거운 눈물의 언어를 우리에게 남기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파장’, ‘농무’, ‘목계장터’ 등 절창이 셀 수 없으나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위의 시다.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가난한 젊은이는 곧 그 자신이기도 하고,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온 민중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젊은 날 광부, 장사꾼, 영어강사 등으로 힘겹게 삶을 이었다.가난을 겪어본 시인이 쓴 이 시는 가난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가난이란 두려워하면서도 기계에 손을 넣거나 용광로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것이다. 가난이란 버릴 수 없는 그리움을 버리고 사랑을 알아도 몰라야만 하는 것이다. 가난은 꿈과 사랑과 그리움을 다 버려야 하는 상태, 개성이며 취향은 물론 희망과 기대까지 모든 게 끊어져버린 막막한 무저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에 흐르는 가난의 구정물 대신 애처롭게 빛나는 가난의 낭만만을 읽는다.신경림 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날, 학생들과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다. 빈민촌에서 사는 ‘나’는 일가족이 자살해 세상에 홀로 남았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이지만 씩씩하게 삶을 꾸리면서 동거남인 상훈과 미래의 알뜰한 행복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상훈이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말한다. “사실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대학생이야. 아버지께서 방학 동안 어디 가서 고생 좀 하고, 돈 귀한 줄도 알고 오라고 해서 너랑 여기서 지낸 거야.”가난을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다. 몇 해 전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며 절규한다. 사람들은 가난에 낭만을 부여하고 서사를 입히기 좋아한다. 같은 성공이라도 자수성가 스토리에 열광하고, 가난해본 적이 있다고 하면 인간적으로 느낀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가 어묵을 먹고, 겨울에 연탄 나르며 흰 얼굴에다 검댕을 처바른다. 연예인들이 빚더미에 앉았다며 생활고를 호소하고, 광고가 끊겼다며 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가난은 대개 상대적 가난이다. 하지만 진짜 가난은 절대적인 것이다. 서로의 가난을 비교하다 그래도 나는 낫구나 싶으면 가난이 아니다. 남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가난이 진짜 가난이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집에서 나와 옷 입고 밥 먹고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과 나는 가난하지 않다. 결핍과 가난을 혼동하지 말자. 정말 가난한 이들을 욕보이지 말자. 가난을 낭만으로 여기지 말자. 가난을 대상화하지 말자”고.돌아보면 나는 결핍을 가난과 착각해 잘 먹고 잘 사는 생활을 애써 남루하게 만든 적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며 삶 자체다.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가난한 계집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난 그 자체를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이다. (…)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그리움을 알고 사랑을 알고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며 더 즐거운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가.

2024-06-03

결혼 이야기

요즘 부쩍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카페에 앉아 가능한 주택 대출제도를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 어딜지 점찍어 보며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찬찬히 둘러본다. 그것만으로 벌써 내게 마음에 드는 집 한 채가 생기는 기분.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동네가 벌써 우리 것이 된 것만 같아 설렌다.결혼이란 뭘까.사실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때때로 결혼이란 상대에게 얽매이는 구속 또는 희생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지레 겁을 먹다보면 현재 내 앞의 행복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8평 짜리 원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자유의 공간.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이곳에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아주 약간 망설여질 정도로 쉽게 내 공간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 협소한 공간 속에서 우린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양보하며 살아가야 할 거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근사한 결혼 생활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던 중 며칠 전 본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LA 출신 여배우 니콜은 연극 감독인 찰리와 결혼을 하기 위해 배우 커리어를 버리고 그와 결혼해 뉴욕에 산다. 니콜은 결혼 생활 중 고향인 LA로 돌아가고 싶지만 찰리와의 결혼 생활 때문에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니콜이 LA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고, LA에 생활하며 찰리에게 이혼 신청을 요구한다.그 와중 그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며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 소송까지 번지게 된다. 이혼 소송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물의 감정선을 극의 절정까지 끌어올리며, 두 인물 모두 서툴고 인간적이며, 본인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 전과 후 분명히 결이 달라진다. 무수히 많은 상황, 환경, 사건이 있겠고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변형되거나, 비틀어지거나, 끈끈해지거나, 단단해질 수도 있다.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건 사랑만으로 완벽한 결혼 생활의 완성을 꿈꿀 수 없다는 점이다. 나와 너는 우리로 묶이지만 어쨌든 다른 개개인의 인간이고, 더군다나 유통기한처럼 소멸하는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영화 속 니콜과 찰리는 웨딩마치 속 화려함이 완벽하게 빼내진 채로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니콜은 찰리와 헤어지는 길에서 그의 풀린 신발끈을 정성스레 묶어준다,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그를 증오하지만 그가 가는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묶어주며 끝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니콜에게 찰리는 ‘우리끼리의 나눈 농담도 다 기억하는 사이’, ‘확신이 없는 나랑은 정반대인,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본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져‘버릴 정도로 내가 깊게 빠져들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대를 답답해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모난 말들만 던지는 싸움 속에서 그간 우리가 쌓아올린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굳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싸움은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고, 감정이 고조되며, 본능적으로 손해를 보기 싫어하니까. 아담과 찰리도 그렇다. 서로를 위해 고상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으로 쌓아올린 믿음까지 부수진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사랑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도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사이를 택한다.파경 후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 이야기’를 보며 나는 오히려 그전까진 알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멸된 애틋한 사랑이었고,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겁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사랑은 자연스레 변할 테지만 함께 사랑해온 시간 속의 믿음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고 연인과의 첫 만남, 우리가 나눈 눈빛,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고 이는 이미 내게 영원한 믿음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202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