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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치찌개와 파스타

인간에겐 누구나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 있다. /언스플래쉬 ‘오늘 뭐 먹지?’많으면 세 끼, 못해도 두 끼는 꼭 챙겨 먹어야 하는 내게 이것은 꽤 중요한 문제다. 이른 아침부터 고열량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인간으로 내가 가진 지론은 바쁜 날엔 더욱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 이렇게 욕심을 부리다간 속이 더부룩해 종일 끙끙거릴 게 분명하지만, 힘이 빠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보다야 낫다. 피치 못할 이유로 한 끼라도 거르게 되는 날엔 회의감에 빠진다. 나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먹는다는 행위는 우리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일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혹은 ‘먹고 살기 참 힘들다.’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는 단순히 영양가 있는 덩어리를 위장에다 모으는 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든지 문학적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생각해 보면 매 끼니를 그렇게 잘 챙겨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세끼를 근사하게 차려 우아하게 먹는 호사스러운 시간은 우리의 일상에 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음식으로 허겁지겁 주린 배만 채우는 것처럼 슬픈 일은 또 없다. 식사 자리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자리한다. 그런 면에서 위장과 영혼은 서로 맞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각자에게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나의 소울 푸드는 김치찌개와 파스타다. 살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을 꼽자면 이 두 가지다. 전국 방방곡곡의 김치찌개 맛집을 찾는다든가, 새로운 파스타 조리법을 유튜브 영상으로 시청하는 것 또한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내가 가장 즐겨하는 요리 또한 이것인데,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필살기이기도 하다.김치찌개는 김치가 맛있는 것이 핵심. 앞다리살 대신 등갈비를 넣으면 조금 더 고급스럽게 변하고 참치나 스팸을 넣으면 더 캐주얼한 맛이 난다. 새우젓과 두부만 넣어 칼칼하게 끓이는 것도 일품이다. 육수도 중요하다. 멸치로 내느냐 사골로 내느냐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다. 무엇보다 김치찌개는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깊어진다. 한 솥 가득 끓여놨다가 다음 날 아침에 비척비척 일어나 후루룩 떠먹는 김치찌개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파스타는 말해 뭐하겠는가. 오일, 토마토, 크림을 베이스로 두는 이 요리는 무엇을 넣고 어떤 식으로 조리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된다. 봄에는 제철 나물로, 여름은 방울토마토와 치즈로 산뜻하게 만들면 한 계절이 내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기분이다. 날이 쌀쌀해지면 여러 가지 해물로 육수를 만든 다음 토마토소스에 고추장을 섞어 맛을 내는데, 한 입 떠먹으면 혈관에 뜨거운 기운이 돌면서 몸이 따뜻해진다. 이것은 해장에도 제격인데, 숙취로 괴로워하는 나를 몇 번이나 구원해 준 아주 고마운 녀석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음식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과 닿아 있다. 밥을 먹으려고 입을 크게 벌리는 순간이 어쩐지 민망해지는 것처럼. 이에 관해 구태여 말하는 게 머쓱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를 쉽게 감동하게 한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한식당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떠올려보자. 고된 여행에 지쳤을 때 먹는 김치찌개 한 입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묘하게 달짝지근하고 심심한 것이 아쉬워도, 이 정도면 괜찮아, 얼추 비슷한 맛이야, 하며 관대해진다. 은은한 감동이 뭉근하게 퍼지면서 마음 어딘가가 풀어지는 기분이다.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도 본토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맛있긴 했지만 내 입맛에 딱 맞진 않았다. 마늘과 페페론치노가 넘치도록 들어갔으면 좋겠고, 고춧가루 팍팍 넣어 느끼한 맛을 잡고 싶고, 아니 여기에 굴소스 한 스푼을 넣으면 감칠맛이 더 돌 것인데… 그런 불온한 생각을 하는 손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업원은 음식이 맛있느냐고 물어왔고 나는 엄지를 척 내밀며 거짓 웃음을 지었다.그러니까 내 부엌에서 내가 만든 음식이 내 입에는 가장 맛있다는 결론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땡초도 실컷 넣고 짠맛도 단맛도 마음껏 조절해 가면서 내 맘대로 만드는 김치찌개와 파스타. 여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 곁들이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누군가가 먹고 너무 싱겁다고, 맵고 달다고 미간을 찌푸려도 뭐 어떠한가. 내가 만들고 내가 먹는 것인데. 다른 곳에선 몰라도 식탁의 주도권만큼은 내가 쥐고 있다. 그게 중요한 거다.

2024-08-05

변변치 못하게 선거 불복까지 따라하나

김진국 고문 ‘탄핵’이 시대의 명제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에는 ‘탄핵’이라는 단어가 금기어였다.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이라 생각했다.요즘은 유행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이후로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이 소추됐다. 또 안동완·이정섭·손준성·이희동·임홍석·강백신·김영철·박상용·엄희준 무려 9명의 검사 탄핵안이 발의됐다. 언론과 검찰을 야당 손에 쥐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청원에 143만 명이 찬성했다. 이를 핑계로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청문회까지 열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문회…. 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 대통령이라고 생각할 법하다. “청원이 있어서…”가 이유다.143만 명이 찬성 서명했다는 것도 놀랄 일이다. 하지만 증오의 정치 시대에 반대자를 모으자면 100만 명이 어려운 숫자가 아니다. 다른 정치인인들 반대서명을 하면 못 모을까. 탄핵 청문회에서 듣도 보도 못한 기행들이 벌어졌다.이런 이벤트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권위를 잃고, 신뢰도 잃어간다. 윤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 나서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건, 아니면 다른 누가 나선다고 해도 경쟁할 상대에서 윤 대통령은 제외된다. 그렇다고 분명한 탄핵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탄핵 놀이’를 즐기는 인상을 준다. 취임 이전부터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민주당만 그런 게 아니다.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통해 한동훈 대표를 선출했다. 당원도, 일반 국민도 63%가 한 대표를 선택했다. 대통령실이 원희룡 후보를 적극 지원한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압도적 승리다. 일반 국민뿐 아니라 당원들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분명히 표시했다.그런데 전당대회가 끝난 바로 다음 날 김재원 최고위원은 방송에 출연해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의사가 다를 때는 원내대표의 의사가 우선”이라고 말했다.김민전 최고위원도 “(채 상병 특검법은) 당대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얘기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당대표 생각이라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렇게 토론을 통해 더 좋은 전략을 세워가는 게 최고위원회의다. 하지만, 이 발언은 한 대표를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전당대회 중에도 ‘김옥균 프로젝트’가 나돌았다. 김옥균의 개화당이 갑신정변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삼일 천하로 끝난 것에 비유한 구상이다. 한 대표가 당선되더라도, 단기간에 낙마시키겠다는 뜻이다. 그 이후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텼다. 과정을 구체적으로 복기하지는 않겠다. 최고위원회의 구성에서 정 의장이 버티면 반(反) 한동훈 성향이 과반수가 된다. 한 대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결국 한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찾아가 만남으로써 해결했다. 그런데도 아직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았다. 여전히 한 대표를 국민의힘 대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력이 많다. 윤 대통령이 ‘당무 개입’이라는 탄핵 핑계를 만들지 않으면서 최대한 의견을 밝혔지만 선뜻 수용하지 않는다.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만남에 대해서도 ‘10분만 만났다’라는 조작한 정보를 흘리며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를 반대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기존 당 간부들이 대통령을 핑계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비친다. 63% 대 19%로 세 배가 넘게 득표했지만, 불복하려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한 대표도 망하는 길이다. 민주당 행태와 다르지 않다. 아니, 집권 2년을 지켜본 민주당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회로 진격하라고 지지자들을 부추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2년 선거 직후 ‘컴퓨터 부정’을 주장하며 백서를 내고, 보라매 집회를 열었다. 최근에는 보수 세력 일부도 선거 부정을 주장한다. 선거가 잘못됐으면 정상 절차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하지만, 무한정 의혹을 확산하고, 불복하는 행태는 민주주의에 독(毒)이다. 집권당이 하다 하다 변변치 못하게 선거 불복까지 따라 하려는 건지 한심하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04

여름에게 안부를

이희정시인 여름아, 반찬이 쉽게 상하는 계절이 되었어이런 계절이 되어서야겨우 답장을 한다 종이와 펜은 넘쳐나는데 마음이 도착하지 않아서겨우의 자리에 많은 것들을 고이게 만들었어겨우의 자리는 어떤 곳일까모든 것엔 제 자리가 있고 그건 결코 슬픈 일이 아니지만어쩐지 겨우는 영원토록 제자리만 맴돌 것 같고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 가까스로….내가 사랑하는 부사들을 연달아 적으며그것들의 겨움을 또한 생각한다여름아, 왜 어둠을 말할 땐 내린다거나 깔린다는 표현을 쓸까어제는 야광운을 찍은 사진을 봤어야광운의 생성 조건은 운석이 부서진 가루와 초저온이래부서짐과 추위의 결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된 것그것들을 아무 죄의식 없이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는 순간이 올까상한 반찬을 버리면 깨끗한 식탁을 가질 수 있을까-안희연,‘야광운’부분 (‘당근밭 걷기’, 문학동네)일기예보는 연일 폭염을 경보한다. 아이들은 연신“더워죽겠어요”라는 말을 쏟아낸다. 온몸에 흐르는 땀처럼 말이다. 해서 답해주었다,“여름이니까.” 그런데 진정 여름을 여름으로만 답할 수 있을까.안희연 시인(1986~)이 호명하는 단어들은 모두 애정어린 겨움을 지니고 있다. “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 가까스로….” 의미심장한 부사어들을 연달아 적으며 겨움의 안쓰러움을 상기한다. 시를 가만히 따라가 보면 유독 언어 표현의 세밀함에 감탄하게 되는데, 한 단어도 허투루 놓인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시인은 여름이라는 대상을 한 존재로 대상화하고 있다. 제목으로 올린 ‘야광운’의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멀리 두는 방식으로 본질에 밀착하는 기예의 깊이를 힘껏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녀가 한 존재, 여기서는 여름이 되겠다. 여름이라는 존재를 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세상 모든 모종을 향해 열려 있으되 충분한 교감이 전제되어야 한다.“절대로, 도무지, 결단코, 기어이, 마침내, 결국….//그런 말들은 다독여 재우고//여름아, 이제 나는 먼 것을 멀리 두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내가 나인 것을 인정하는 사람으로”“안희연의 시는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순간을 통해, 삶이란 한 사람의 것이 아님을 체감하게 만들며, 그러한 연결의 감각이 서로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는 독해를 경유하며 이번에는 ‘절대로’‘도무지’‘결단코’‘기어이’‘마침내’라는 종결의미의 부사어들이 안간힘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힘을 빼고 지나온 겨움의 연약함을 결국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강한 의지가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우리의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다. “상한 반찬을 치운다고 우리의 식탁은 깨끗해질 수”없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직감하고 있다. 보통 밤에는 구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행성에선 밤에도 빛을 향해 하늘을 밝히는 야광운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대기 오염의 결과라고 이것이 주는 불안감은 시인이 열거한 “겨우, 기껏, 고작, 간신히”의 여름과 같은 사실로 귀납된다.여기서 여름은 점점 틈입해 들어오는 경험의 편린이 아니다. 부서지고 쪼개지는 파괴에 힘을 다해 맞서는 저항의 태도이다. 이 시에서 야광운은 공포감을 가졌지만 이어지는 단어들은 치유감을 지녔다.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잊지 않으려 애쓰고 또 애쓴 시어들이 결국 비극의 구멍을 메운다.먼 것은 멀리 두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시에 담긴 감동의 태반(太半)은 안간힘이라는 저항의 겨움이다.

2024-08-04

울릉 100년 미래의 초석 다진다

남한권 울릉군수 ‘반추하다’는 원래 ‘동물들이 먹은 것을 되새기는 행위를 의미’하나, 우리 일상에서는 ‘되풀이를 음미하고 생각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된다.민선8기 2주년 울릉군정이 반환점을 돌고 있다. 앞선 2년 동안 성과 및 과오를 되짚어 보며 성과는 더 발전시키고 과오는 문제점이나 원인을 파악해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울릉 100년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 기간이 돼야 할 것이다.민선8기 공약사항은 7개 분야 70개 과제 76개 세부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분야별 세부 현황을 살펴보면, 일자리가 있는 인구교육 정책에 13건, 관광과 경제성장 기반구축에 12건, 주민안전 의료복지 실현에 12건, 잘 사는 일등 울릉 건설에 11건, 문화가 있는 친환경섬 건설에 8건, 울릉 발전 전략 기반 마련에 10건, 소통을 통한 혁신 행정 구현에 10건이다.현재까지 완료 11건, 정상추진 47건, 일부 추진 12건, 미착수 4건이며 공약 이행률을 산정해 보면 45.57%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실적은 울릉도 등 먼섬 지원 특별법의 제정과 울릉도 브랜드 개발 그리고 도동학생체육관을 활용한 358억원 규모의 울릉 다이음터 건립사업 확정이다.무엇보다도 지난해 12월 말 울릉군 도약의 전환점이 될 ‘먼 섬 지원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같은 해 3월 법안을 발의했을 당시에는 정주생활지원금과 대학입학 특별전형의 혜택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관계 부처에서 제도적, 재정적 부담을 표명, 특별법 제정이 불발될 수도 있어 지속적인 중앙 부처와 협의 하에 부처별 이견이 있는 조항을 삭제, 대안으로‘울릉도·흑산도 등 국토 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물론 먼 섬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울릉군민의 정주여건을 개선할 수 있어 환영할 일이지만 군민들이 피부로 와 닿을 만한 정주생활지원금과 대학입학특별전형 혜택이 빠져 아쉬움이 있었지만 국민의 힘 이상휘(포항 남·울릉)의원이 ‘서해5도 지원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원 규정으로 인해 울릉도 등 해당 섬 주민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질 수 있어 개정법안을 대표 발의한 상황이다.법안 내용에도 있듯이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돼 있는 이유가 바로 시행령 제정과 종합발전계획의 수립을 위한 것이다. 시행령을 통해 법에 명시된 여러 사항들의 세부적인 지침이 마련돼야 하고 종합발전계획을 통해 구체적인 사업들이 제시가 될 것이다.또한, 국토외곽 먼 섬지원 특별법을 기반으로 울릉도를 싱가포르처럼 발전시키기 위해 기관 업무 협약 체결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울릉도와 같이 한정된 토지에도 불구 도시디자인과 경관이 우수하게 조성됐다.특히 우수한 대학교의 교육과정, K-U시티 사업과 변환경제 사례를 통해 울릉도 신사업을 발굴하고, 창이공항을 비롯 여러 도시정원을 통해 울릉공항 개항 이후의 운영방법, 도심형 케이블카과 트램, 버스 등 도서 교통 순환 체계 및 울릉군이 표방하고 있는 친환경 생태관광섬을 실현하고 울릉도형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구상중이다.해상교통의 다양화와 일주도로의 완전한 개통, 항만시설의 현대화와 더불어 울릉공항 개항과 같이 지리적 고립의 한계가 해소된다면 100만 관광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마냥 긍정적인 효과만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관광 인프라의 부족도 문제지만 지난해 언론에 대거 보도되었듯이 불친절, 식당 혼밥 불가, 고물가, 패키지 여행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외부의 부정적 인식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이런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친절도 향상, 바가지요금 근절, 청렴도 개선 등의 인식변화를 위해 ‘에메랄드 캠페인’을 시작했다.에메랄드 캠페인은 지난해 새롭게 선보인 도시브랜드 ‘에메랄드 울릉도’를 활용한 방안으로 세이브(SAVE) 에메랄드-에메랄드 빛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친환경적으로 자연 자원을 개발 및 활용한 관광정책을 추진한다.스마일(SMILE) 에메랄드-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친절한 웃음으로 관광서비스를 혁신적으로 개혁하고 관광 도시 이미지 개선하는 것이다. 체인지(CHANGE) 에메랄드는 당당하고 청명하게 변화된 공직문화를 바탕으로 밝고 활기찬 울릉의 미래 변화를 꾀한다.혼재된 각종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군민들이 알기 쉽고 응집된 힘을 얻기 위해 3대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다. ‘다시 찾는 새울릉’이 헛된 모토가 되지 않게 혁신적 의식변화가 있어야 하겠다.가장 우선은 특별법에 의한 종합발전계획의 수립이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약 1년간 올바른 방향성과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사업안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주민들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묻고 또 물어서 합해진 중지들을 통해 5개년 청사진을 잘 그려내야 한다.관 주도적이 아니라 군민들이 주도하는 그래서 군민들의 숙원해소와 가려운 곳을 시원히 긁어드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민선8기 이제 반환점을 돌아 2년여가 남아있다. 2년밖에 안 남았다는 부정적 인식보다 군민 모두 2년이나 남아있어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일을 더 도모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식을 가질 시기다.

2024-08-04

포항시, 다음 지속가능한 정책은 무엇

양만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포항은 그야말로 ‘핫한 도시’가 아닌가요.”서울언론사의 한 피디가 나에게 한 말이다. 영일만의 해역에서 석유가 매장되었다는 뉴스. 채상병 사망 사건과 박정훈 대령, 모두 포항과 무관하지 않다. 주요 뉴스의 진원지가 포항이니 그럴 만도 하다.중앙과 지방의 언론매체를 타고 연일 조명을 받고 있다. 며칠 전에는 대구 TBC, KBS도 가세했다. 국제전시컨벤션센터를 본격 건립하여 포항시가 ‘글로벌 MICE중심도시’로 도약한다며 이강덕 포항시장과 생방송을 했다. 동아일보도 편승해 포항시가 철강도시에서 ‘이차전지 산업’ 도시로 만들겠다는 이시장의 메시지가 뉴스의 한 면을 차지했다. 포항시의 주가를 연일 상한가로 언론사들이 띄우고 있다.다음은 무슨 주제라는 궁금증도 생길만 하다. 이차전지·바이오· 수소 등 신성산업 육성을 위한 ‘기회발전특구도시’, 포항이 등장할까. 포항은 제철중심의 ‘제철보국’의 도시에다 ‘2차전지’의 도시로 경합하여 성장·발전하는 회복력이 강한 도시로…. 4차 산업생태계의 변화에 순응하여 탄탄한 고용시장을 선점하려는 첨단기업의 유치정책 수립과 집행에 방점을 두었다. 2차전지의 주력업체인 에코프로를 비롯한 여러 기업을 포항에 진입시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지진과 힘남노 태풍의 재난에 회복력탄력성을 실현시킨 포항시.재난의 역경에도 도시경제 성장 동력의 확보에 필요조건을 포항시가 갖췄다. 제철보국에 이어 전지보국에 토대를 둔 위대한 포항시대의 장을 여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필요조건은 되어도 충분조건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국에서 가장 매력적이며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 받으려면 함께 가동시켜야할 ‘부스터’가 있어야 한다.도시 전문가들의 주장을 빌려 보자. 미국의 뉴올리언즈는 풍부한 역사, 번창하는 문화, 훌륭한 요리, 흥미로운 건축물을 가진 도시이지만, 여전히 탄탄한 경제성장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도시 발전의 부스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일본 후쿠오카는 안전한 도시로, 의료와 보육에 더해 저렴한 집값에다 고숙련 노동자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오늘날 ‘운 좋은 소수’의 부자만 아닌 ‘다수 일반시민들’이 함께 살기 좋은 도시는 경제 성장의 동력이외에도 4가지 엔진들이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 사교육비 많은 들지 않은 ‘공정한 교육 제공’, 주거비용이 급상승하지 않는 ‘안정된 주택확보’, 값싼 대중교통비로 ‘편리한 대중교통의 확충’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질 좋은 ‘의료 서비스의 충족’을 들 수 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4가지 인프라를 잘 갖추긴 어렵다. 하지만 50만 포항시가 경제 성장동력과 함께 가세시켜야 할 ‘부스터’가 필요하다.특별히 덤으로 추가하자. 이미 이강덕 시장체제가 출범하면서 시작 했다. 부담도 작고 효능감도 거두고 있는 ‘그린웨이 프로젝트’이다. 2016년부터 시작하여 축구장 95개 달하는 67㎡의 녹지공간을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현재 진행형 사업이다.도시의 녹지프로젝트가 왜 중요한가? 포항시민이 평안한 휴식과 건강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고,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을 통해 힐링하려는 관광객 유치와 ‘맨발 걷기 좋은 도시’로 명성을 얻기 위해서. 맞다. 더욱 중요한 요인도 있다.도심의 녹지공간은 시민의 정신건강과 아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도시에 녹지공간이 많을수록 도시의 자동차와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을 정화하여 공기의 질을 높인다는 사실이다. 또한 도심의 녹지가 많으면 도심의 열섬을 완화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녹지가 소음을 흡수하여 생활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기능도 있다. 녹지가 많은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수면의 질도 높고 푸른 숲을 바라보는 시각적 효과로 편안함을 안겨 준다. 삭막한 도심의 중심부를 가로지는 ‘철길’에 숲을 조성하고 시민들에게 야외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그린웨이 프로젝트는 10여년 동안의 결실이다.포항시민들이 명실공히 자랑할 만한 그린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녹지공간에서 걷고 뛰고 운동하며 수다를 떨면서 친화력을 높일 수 있으니, ‘스트레스의 해방구’로 부를 수 있겠다. 숲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분위기가 조성하는 편안함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건강증진에 효과가 있다. 맨발로 숲길을 걷는 포항시민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도심 녹지와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녹지공간에 근접해 사는 사람은 이웃 사람들과의 상호관계를 촉진할 수 있는 환경요인 때문에 그들은 쉽게 만나 대화를 할 수 있기에 외로움도 적고 심리적 안정감도 높일 수 있다. 그렇다. 그린웨인 정책은 포항시민들에게 정신건강지수를 높였다는 점에서 성공한 프로젝트로 평가받을 만하다. 도심에 녹지가 풍부한 도시일수록 범죄발생률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포항시가 미래 발전을 위해 역점을 두어야 할 지속가능한 정책에 대한 해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2024-08-04

극한 대결 정치를 종식하려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극한 대결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다간 나라의 장래가 위태로울 것이다. 극한 대결 정치에서 여야 어느 쪽도 양보할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어느 쪽이나 양보는 곧 굴욕이고 패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야는 상생의 정치, 타협의 정치를 외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상대를 부정하는 대결의 정치를 지속하고 있다.여야는 정치적 현안이나 정책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해법까지 투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정작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소외되고 정치는 여야의 정쟁 수단화된 지 오래다.윤석열 정부의 임기도 이제 3년이 채 남지 않았다. 집권 여당은 아직도 자신들의 실정을 지난 정부와 야당 탓으로 돌리고 있다. 야당은 압도적 의석을 토대로 대통령과 정부를 탄핵하려고 한다. 이런 극한 대결의 정치는 어느 한 쪽이 완전히 항복하거나 소멸되어야 끝날 수 있다. 극한 대결 정치의 책임은 여야에 반반씩 있다. 그 해법이 보이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윤석열 정부는 출범 시부터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치 않았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빌미로 야당을 범죄 집단 시 하였다. 지난 총선에서도 여당은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이·조 심판’을 전면에 걸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집권여당은 108:192로 패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집권여당은 아직도 반성은커녕 야당의 폭주와 횡포를 비난하고 있다.총선 참패 후 간만에 여야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재명 대표의 선전포고식 발언과 윤 대통령의 특유의 주장과 설득이 독차지했다. 이후 여야의 협상은 단절되고 여야의 격돌정치는 더욱 강화되었다.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벌써 16회나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거부한 인사를 대부분 장관으로 임명해 버렸다. 총선 후 여당 당선자 축하연에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테니 소신껏 일하라고 격려하였다. 이런 정황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타협의 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야당 역시 총선의 압승을 계기로 정부 압박 정치를 강행하고 있다. 야당은 정부 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넘는 공세적 정치를 펼치고 있다. 거야는 여야 간 조율도 되지 않은 ‘25만원 지원법’ 등 포퓰리즘적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고 있다. 여당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를 저지하려 하지만 역부족한 현실이다. 야당의 수적 우세는 인사 청문회 등 각종 위원회에서 엄청난 증인을 소환하고 증인에 대한 망신주기 등 불합리한 독주행태가 계속되고 있다.이러한 야당의 강공 드라이브는 법률안의 일방적 통과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지나친 거부권 행사가 궁극적으로 대통령 탄핵의 명분을 쌓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야당의 집권 여당에 대한 강공만이 능사일까.야당의 지나친 의회 독단과 독주가 야당 지지율 저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아직도 30%대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야당 선호도가 여당보다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한 대결의 정치는 결국 비생산적 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측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주권자인 국민들이다. 극한 대결의 정치는 결국 팬덤 정치에 기반하고 있다. 팬덤 정치는 적대적 프레임 정치를 수단으로 활용한다. 여야는 친윤과 친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팬덤 정치로 나갈 수밖에 없다. 야당은 선거전야의 수박논쟁에서 열혈 친명인 개딸들이 장악하고, 여당에서는 윤핵관에 이은 친윤들이 당권을 수직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서라도 우세한 팬덤에 편입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소선거구제의 승자 독식의 제로섬게임은 여야의 프레임 정치를 더욱 부추긴다. 정치권의 대결이 언론, 시민 단체, 여론의 편 가르기로 이어지고 있다. 대결과 팬덤, 진영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결국 극한 대결 정치는 당내 민주주의를 가로 막을 뿐 아니라 강성 지지층만으로 생존하는 악순환 구도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이러한 극한 대결의 정치는 하루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현재로서는 빠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오기의 정치·격노의 정치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여전히 갈 데까지 간다면 국민들이 심판한다는 오기의 정치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여야 공히 상대를 비이성적인 악마 집단화하는 프레임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잡다단하게 얽힌 뫼비우스의 고리를 어디에서 먼저 풀 것인가. ‘미워도 다시 한 번’유행가처럼 여야 간의 진정한 대화부터 시도해야 한다. 집권 여당과 대통령부터 야당과의 진정한 대화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은 정파의 책임자가 아닌 국정의 총체적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실정의 책임을 야당에게 돌리는 것은 하수의 정치이며 구태의 정치이다.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공정과 상식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만이 능사가 아니며 야당 역시 입법 독주만이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김건희 여사를 포함한 권력주변의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 가야 한다. 여기에는 야당의 협력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2024-08-04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깨진 유리창의 법칙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1982년에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Q. 윌슨과 조지 L. 켈링에 의해 소개되었다. 사소한 무질서와 범죄가 방치될 경우 큰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무질서의 상징인 하나의 깨진 유리창이 수리되지 않고 방치되면, 이는 주변 환경에 대한 무관심과 무질서의 수용을 의미하는 신호로 작용하여 더 많은 유리창이 깨지게 되고, 결국에는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사회적 이론이다. 도시 안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조그마한 불법적 행위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기업 내에서도 직원이 비윤리적인 행동이나 불안전한 행동을 방치하면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작업자의 실수나 관리자의 방관 그리고 경영층의 무관심은 경쟁력 저하의 보이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자.2000년대 초 도요타 자동차는 초기의 작은 부품 결함을 방치했다가 가속페달의 작동 불량이 야기되었고 운전자 전체 가족의 사망사고가 발생하였다. 결국 전무후무한 1000만대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이어지면서 경영위기가 발생하였고 도요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는 사소한 제조상의 문제가 큰 경영상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오늘날 우리사회의 공원이나 거리에서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수거하고 청결과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등 시민 자율적인 모습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더불어 방치된 건물이나 공터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면서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성과 질서를 향상시키는 모습을 경험하고 있다.필자는 이러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성숙한 제조 현장의 관리와 기업경영에 적극 적용하기를 기대한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작은 결함이 발견되면 이를 무시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작은 결함이 발생했을 때 이를 즉시 수정하고 예방하는 전원의 노력으로 제품 품질을 유지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사소한 문제라도 신속하게 처리하고 직원들에게 적절한 행동과 피드백을 보여주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만약 설비나 주변환경의 사소한 오염이 방치되면 설비고장 빈도의 증가와 직원들의 근로의욕 및 마인드도 함께 오염되어 결국 기업의 평판과 성공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소한 일을 미리 처리하지 않고 방관하거나 미처 대응을 못해 결국 큰 힘을 들이게 된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문제라도 구성원이 함께 협력해 해결하고 개선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단순히 범죄와 무질서의 예방적 조치나 엄격한 관리라는 소극적 해석에서 벗어나 사회질서와 규범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문화의 구축과 지속 가능한 기업경영 그리고 행복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고있다.

2024-08-04

주택조합 앞에 멈춰 선 민주주의를 보며

유영희 작가 집에 대한 욕구는 식욕에 버금가는 인간의 생존 욕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 집 마련에 인생을 건다. 거주가구수에 비해 주택재고가 충분한지 판단하는 주택보급률로 보면, 서울 2022년 전국 기준으로 102.1%라고 하니, 전국적으로는 집이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표인 1000명당 주택수로 판단하면 그렇지 않다. 1000명당 주택수는 2022년 전국 기준으로 430.2호이다. 2020년의 418.2호에 비해서는 늘었지만, 2020년 OECD의 평균 주택 재고 462호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이런 실정이니 지역주택이니 소규모재건축이니 가로주택이니 하는 여러 주택조합이 설립되고 있다.나 또한 60이 넘어 생애 처음 산 집으로 주택조합에 가입하여 새 집이 지어질 날을 3년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올여름 임원 선출을 위한 총회 진행 과정에서 이상한 일을 목도하고 있다. 창립 때 선임된 임원들이 자기 이외의 다른 이사 유임을 찬성하는지 투표하여 전원 유임 결의를 한 후 후보자를 확정한 것이다. 총회에서 찬반 투표를 한다고는 하지만, 부결되면 총회를 다시 해야 하니 조합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찬성해야 하는 상황이라 통과 가능성은 거의 100%이다.기존 임원이 이렇게 진행하는 법적 근거는 2009년 대법원 판례인데, 이 판례는 추진위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애당초 추진위원회의 운영 규정은 조합의 정관과 달라서, 위원장만 주민총회 의결 사항이고 다른 임원은 추진위원회 단위에서 유임 결정을 할 수 있다. 주택조합 전문 변호사 김조영은 이런 규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추진위원회 존속 기간이 짧아 이런 판례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판례를 받아들인다 해도 이것을 이미 창립된 조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조합 정관에는 임원 선임이 총회 의결 사항이고, 연임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조항은 임기 만료된 임원이 재입후보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이사회가 연임 후보를 확정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관할 시의 표준선거관리규정 제3조에서는 연임도 선거라고 규정하고 있고, 선거 60일 전에 선관위를 구성하여 기존 임원도 모두 후보자 등록하게 되어 있다. 법무법인강산에서는 이 규정에 의거하여 기존 임원도 입후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임제를 채택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만 봐도 이 해석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선뜻 문제 제기하기가 어렵다. 조합원들이 절차의 적법성보다는 사업 진행의 효율성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절차의 합법성보다는 결과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일이 주택조합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소리 내지 못하고 소리 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사람이 위법을 저질렀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는 사회가 발전하지 못한다. 공정한 법질서가 자리잡게 하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2024-08-04

초열대야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달은 역대 가장 무더운 7월로 기록됐다. 지난 달 전국의 열대야 평균 일수는 8.8일로 평년 2.8일의 3배나 된다. 1973년 기상 관측이래 7월 기준으로 최대 일수다.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 최저기온이 25℃를 넘으면 열대야라 부른다. 열대야보다 기온이 더 올라가 밤사이 최저기온이 30℃를 넘게 되면 초열대야라고 한다.여름이 되면 열대야는 흔히 겪는 일이지만 초열대야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8월 강릉에서 밤사이 최저기온이 30.9℃를 기록해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초열대야 현상이 발생했다.이후 2018년 8월 서울서도 초열대야 현상이 발생했으나 초특급 더위로 일컬어지는 초열대야가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올해 강릉에서는 초열대야가 5일째 이어져 밤잠을 못 이룬 주민들이 한밤중 바닷가 등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강릉에서 이처럼 지독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바람이 산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기온이 오르는 푄현상 때문이라고 풀이를 하는데, 전문가들은 초열대야가 앞으로 강릉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경고를 한다.“올여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더운 해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측이다. 지난 주는 울산에서 열리기로 했던 프로야구 경기가 폭염으로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초열대야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낮에는 숨이 콱콱 막히듯 덥고 밤에는 한낮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아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무더위도 태풍과 다를 바 없는 재난이다. 날로 지독해지는 무더위에 대응할 지혜가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4

사사로움과 욕심을 줄인다면?!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몹시 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예견된 더위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덧붙일 것이 없을 지경이다. 문제는 이런 무더위의 기세가 쉽게 숙질 것 같지 않다는 난감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트럼프 같은 정치인과 기업주들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자연 생태계 파괴에 눈과 귀를 막고 있다.더위와 정면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비겁하지만 피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을 검토하다가 후자를 선택한다. 젊은 날 나는 학생들이 덥다고 볼멘소리하면, 주눅 들지 말고 더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라고 일갈하곤 했다. 아름답고도 당찬 그 시절이 어느새 작별을 고하고, 백발 성성한 지경에 이르니 더위에 꼬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나의 피서지는 ‘청도 도서관’이다. 집에서 6㎞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도서관에서 대학입시에 여념이 없는 청소년들과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것이 나의 피서법이다. 요즘 읽고 있는 서책은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노자 타설’, ‘우주의 구조’, ‘모든 순간의 물리학’, ‘1417년 근대의 탄생’ 등이다.움베르토 에코가 편집한 방대한 서양 철학사가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이며,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의 저명한 이론가 남회근의 ‘도덕경’ 해설서가 ‘노자 타설’이다. 브라이언 그린이 집필한 ‘우주의 구조’는 지난 세기와 금세기 물리학이 도달한 인식의 지평을 알려주고, 카를로 로벨리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얇지만, 짜임새 있게 현대 물리학의 다채로운 성과를 요약한다. 르네상스 시기의 책 사냥꾼 포조를 중심인물로 두고 오래전 잊힌 로마시인 루크레티우스의 ‘만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서책이 ‘근대의 탄생’이다.나는 요즘 왼손으로 ‘도덕경’을 외워서 쓰는 작업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지금까지 ‘도덕경’ 81장 가운데 23장까지 기억해서 쓰는 형편이다.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좋은 구절이 있어서 일부를 소개한다. “견소포박(見素抱樸) 소사과욕(少私寡慾)” 바탕을 드러내고 소박함을 지니며, 사사로움과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노자는 위정자와 지식인들의 탐욕이 불러오는 전란(戰亂)의 참화를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函谷關) 너머로 표표(漂漂)히 사라진 인물이다.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를 살았던 노자마저 두 손을 놓아야 했던 암울했던 시기를 경계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 5000자로 이뤄진 동양사상의 정수가 ‘도덕경’이다.‘도덕경’ 곳곳에 기막힌 명구(名句)가 자리하는데, 그 가운데서 요즘 정치인들이 명심할 만한 구절이 ‘견소포박 소사과욕’ 아닐까 한다. 각자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욕망을 적절한 색깔과 향기의 포장지로 꾸며대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정치판이 날로 가관이다. 그런 맥락에서 오직 백성의 평안과 평정한 일상을 염원한 노자의 사유가 잘 드러난 표현이 견소포박과 소사과욕이다. 개인적인 야망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내세우는 기망(欺罔)의 정치는 그만두고 남루하고도 냉엄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치열하게 마주했으면 한다.

2024-08-04

치산치수(治山治水)

우정구 논설위원 산과 내를 잘 관리하고 돌봐서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을 치산치수라는 말로 표현한다.오로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빛, 기온 등 기후에 의존해 농사를 짓던 옛날에는 치산치수를 잘하는 왕이 바로 성군 대접을 받았다.고대 중국에서는 황제의 가장 큰 덕목의 하나가 치산치수 능력이다. 황하강처럼 큰강이 많은 중국은 홍수로 범람이 잦아 완벽한 치수가 곧 민심을 얻는 일이었다.고대 중국에서 치산치수를 잘한 임금으로 소문난 왕은 우(禹)임금이다. 우임금은 순(舜)임금 밑에서 치수를 잘해 순임금으로부터 임금의 자리를 물러 받았다. 우임금은 13년동안 치수를 하면서 한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천수답 위주로 농사를 짓던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왕이 기우제를 올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똑같다. 가뭄이 계속되고 농작물이 말라 죽어가고 굶어죽는 사람까지 생겨나니 기우제를 지내지 않을 왕이 없다.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데 이를 인디언식 기우제라고 한다.우리나라 산지와 하천은 가파르고 짧아 상류지역에서 물이나 토석의 유출이 하류지역의 물 이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국토의 63%가 산지여서 적극적인 산지 관리가 필요한 지형이다.환경부가 전국에 14개의 기후대응댐을 조성하기로 했다. 지구촌의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자는 것이 조성 취지다. 치산치수 측면에서 바람직하나 자연환경 파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숙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1

초선의원 좌충우돌 여의도 생활기

임미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 여의도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여가 조금 지났다. 지방에서 올라온 의원들은 충청권 까지는 출퇴근을 하고 그 밑으로는 여의도 인근에 방을 얻어 소위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충청권이 이제 수도권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지방에서 올라간 의원들에게는 ‘金歸月來’가 생활 패턴화 돼 있다. 금요일에는 지역으로 돌아가서 주민들을 만나고 월요일 새벽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여의도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2006년 군의원으로 정치를 처음 시작한 이래 나는 늘 ‘소수’였다.13명 군의원 중에서도 민주당 계열의 의원은 나 혼자 뿐이었다. 도의원을 할 때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아져 정원 60명 중 민주당 소속이 9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상임위에 들어가면 10여 명의 상임위 의원들 중 혼자였다. 그래서 ‘소수파’정치인이 의회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예산심의를 하는 중 잠시 정회키로 하고 방망이를 두들겼는데 약속된 속개 시간을 어기고 나만 빼고 일찍 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원안통과 시켰다. 너무 황당한 일이라 거세게 항의했지만 동료의원들은 미안하다를 연발하며 피해 싸움이 되질 않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름 깨우친 것이 있었다.‘의결하기 전에는 최대한 나의 의사가 무엇인지 상대에게 알리고 적극 설득하라. 설사 표결 결과가 안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니 너무 상처받지 말라. 여러 의회 직에 배제된다 하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서러워하지 마라, 그건 인성평가에 대한 결과가 아니니 ‘다수파’의 호의나 배려 없음을 비난한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걸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매우 길었고 그 비용은 눈물로 치렀다.그런데 총선이 끝나고 국회에 가니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다수당이 되었다. 오, 살다가 이런 경험을! 예상은 했지만 첫 상임위 회의부터 다수의 힘을 실감했다. 여당의원들의 항의도 힘이 없었다. 느낌상 그들은 이미 포기했는지 기대하는 게 없어 보였다. 전투력 또한 바닥이고 끈질김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국회에 온 지 이제 두 달여, 아직은 낯선 것이 더 많다. 지방의회에서는 상임위 끝나면 함께 밥도 먹고 차도 한 잔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시간이 꽤 있었다. 그 자리에선 감정들도 털어내고 주장을 하더라도 상대를 건드리지 않는 등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차렸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그것을 찾기 어려웠다. 오직 내편, 상대편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가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면 남는 건 주장뿐이다. 그게 오늘의 국회 모습이다.무제한 토론을 한다고 국회가 밤새 불을 켜고 의원들이 장시간 토론에 나서지만 그 발언에 설득이 된다거나 타협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열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언제까지 이 모습이 지속될 지 안타깝다.기초의회 광역의회 모두 국회의 운영규정을 따라 만들어졌고 지방의회 운영과정에서 헷갈리는 게 있으면 국회 운영규정을 살펴보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작금 국회가 이러니 지방의회에 할 말이 없다. 선진국회가 되었으면 한다.

2024-08-01

묵정밭 여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묵혀둔 논밭이 더러 보인다. 한 뼘의 땅도 놀리지 않던 시절과는 달리 농지에 대한 애착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물론 땅을 농토로 보는 것과 부동산으로 보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 순수한 농지로서의 땅은 이제 효용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 옛날에는 논 열 마지기만 있어도 밥 굶을 걱정은 없었는데, 지금은 열 마지기(2000평) 쌀농사 지어봐야 순수익이 고작 378만원 정도라고 한다.대신 열 마지기 벼농사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못자리부터 추수까지 전 과정이 기계화 되어 사람 손이 직접 닿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대신 소득도 적어서 농사짓기를 달가워하지 않아 직불금이라는 것까지 주면서 장려를 하는 형편이다. 우리의 주식인 쌀의 재배가 자꾸 줄어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 나중에 식량난에 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지를 소유하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경작을 하지 않으면 강제매각 등의 벌칙이 가해진다.아무리 옥답이라도 한 해만 묵히면 길길이 풀들이 자란다. 바람에 날아온 풀씨, 물에 떠내려 온 씨앗 등이 제초제의 박멸이 없어 발아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풀씨 중에 가장 이동이 자유로운 것이 쑥, 망초, 민들레 같은 국화과 식물이다. 씨앗에 솜털이 붙어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다. 벼과 식물 중에도 억새나 갈대처럼 씨앗을 바람에 날리는 종이 있지만 묵혀둔 땅에는 쑥이나 망초가 선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에 떠내려 온 피나 둑새풀 씨앗이 논을 점령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묵정밭의 식물 종은 다양한 생태계를 형성한다.내가 지나다니는 들길 가의 묵정밭은 벌써 여러 종의 풀들이 어우러져 있다. 쑥과 망초, 개망초, 명아주, 고들빼기, 민들레, 지칭개, 보리뺑이, 여뀌, 피, 미국쑥부쟁이, 토끼풀…. 눈에 띄는 대로 세어도 십여 종이 훨씬 넘는다. 묵정밭에서는 주종이 따로 없다. 모두가 잡초의 누명을 벗고 당당하게 제 이름으로 산다. 영토 경쟁을 하면서도 결국엔 무성한 풀밭을 이룬다. 가장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인 셈이다.인간의 손길을 벗어난 해방구인 풀의 공화국 앞에 가끔씩 발길이 머문다. 지금도 농부의 눈길로 보자면 마땅치 않겠지만 배고프던 시절에는 저렇게 묵혀둔 전답을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지청구를 했다. 당장 허기가 지면 멀리 내다볼 겨를이 없게 마련이지만, 지금은 배가 불러서 벼들이 잘 자란 논보다도 이렇게 묵혀둔 논에 더 눈길이 간다. 자연생태계니 환경보호니 하는 말들도 절대빈곤 앞에서는 무색해지는 것이다.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도 이 묵정밭 같으면 좋겠다. 각양각색의 풀들이 공존하지만 계절이라는 대의에 수렴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모습일 터이다. 통탄스럽게도 우리 국회는 전횡과 독단에다 횡포를 일삼는 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범법자들의 방탄을 위한 폭력배들의 소굴에 민생 따위가 안중에 있을 리 없다. 국민들의 자업자득이다.

2024-08-01

우리는 동이족(東夷族)의 후예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파리 올림픽이 연일 뜨거운 폭염에 지쳐있는 우리 국민의 마음에 시원한 승전보를 전해주며 한밤의 열기를 날려주고 있다. 파리 세느강을 따라 태극기를 휘날리며 들어왔던 우리 선수단은 이름도 틀리게 불렸지만 21개 종목 143명의 선수들은 개막 사흘째에 벌써 ‘활·총·칼’에서 금메달 5개를 목에 걸며 영광스러운 시작을 알렸다.펜싱 사브르의 오상욱은 금빛 찌르기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고, 여자 10m 공기권총의 오예진은 8년 만에 사격의 금메달을 명중시켰다. 그리고 파리 레쟁발리드 양궁장에서 임시현 전훈영 남수현 세 여궁사가 쏜 화살은 황금빛 과녁을 뚫고 우리 양궁의 역사를 새로 썼다. 88서울올림픽부터 시작된 여자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후 40년간 10번이나 연속 금빛 화살을 쏜 것이다. 다음 날 열린 남자양궁 단체전에서도 김우진 김제덕 이우석 세 명궁들이 ‘텐텐텐’을 기록하며 프랑스를 이겨 3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고 남녀동반 3연승까지 이루어 냈다. 그리고 여자 공기소총에서는 19세의 반효진이 하계올림픽 100번째의 금메달을 안겨주어 잠시 메달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자정을 넘기며 중계방송을 보는 긴장감에 잠은 달아났다. 여자양궁은 대만과 네덜란드를 이기고 중국과의 결승에서 전훈영 선수가 첫발을 10점에 꽂고 슛오프까지 갔었지만 마지막 3발을 모두 10점에 명중시켜 10연승 양궁의 신화를 썼다. 이 10승 중 중국과는 다섯 차례나 이겼다. 남자팀도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프랑스와의 결승에서 직경 8cm의 과녁을 연이어 적중시킨 ‘텐텐텐’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맏형 김우진의 마지막 화살이 10점에 적중했을 때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활솜씨가 가슴 가득 차올랐다.예부터 우리 조상은 말 잘 타고 활을 잘 쏘았다고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다. 아시아의 대륙을 깔고 앉은 중화민족은 사방의 이민족을 자신들 보다 미개하다고 생각하여 동이서융(東夷西戎)과 남만북적(南蠻北狄)의 오랑케라고 불렀다. 동이의 이(夷)자는 큰 활(大弓) 이라는 의미의 문자로서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이고, 서융의 융(戎)은 창 과(戈)자가 섞여있으니 창을 잘 쓰는 민족이었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남만의 만(蠻)은 벌레 충(蟲)자가 들어있고 북적의 적(狄)에는 개 견(犬)자가 붙어있으니 너무 멸시한 것 같다. 그리고 중국의 고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도 우리를 ‘동방의 큰 활을 쓰는 어진 민족’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 웅대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가진 우리는 작은 오랑캐 민족이 아니다. 이제 큰 활을 들고 강대국으로 일어서야 한다.나무의 탄성을 이용하여 화살을 날려 보내는 활은 총기류가 나오기 전까지는 중요한 무기였다. 활쏘기는 신라 때 관료를 뽑는 기준이었고, 조선시대에는 무과 실기 7개 중 4개가 국궁의 실력을 시험했다. 이러한 동이족의 인물 중에 동명성왕 주몽은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고 이성계와 정조 대왕도 명궁의 설화를 가지고 있다.이러한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동이족 후예들이 앞으로 많은 세계대회에서도 금빛 과녁을 쏘아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4-08-01

미안한 무게

피귀자 수필가 결 고운 순수가 가득한 곳, 품 넓은 수더분한 사람을 닮은 강원도 인제에서 온 화분(花粉) 한 병. 벌이 완성한 보석 한 숟가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황갈색과 암갈색, 노르스름한 빛을 띤 가벼운 알갱이들이 사르르 녹는다. 엄나무 피나무 도토리 꽃 다녀온 족적의 흔적이다, 일벌들이 온몸을 바쳐 모은 화분, 인제의 흔들리는 꽃가루가 목을 간질여주는 맛 달콤 쌉싸름하다.하루 종일 팔랑팔랑 이리저리 꽃 피는 식물을 찾아 꽃가루를 수집하는 일벌들. 화분은 일벌이 자신의 타액과 미세한 꽃가루를 뭉쳐서 만드는 것으로 타액에서 분비되는 소화 효소와 섞어 벌화분(beepollen)으로 알려진 화합물을 발가락에 묻혀 벌집으로 가지고 온다. 이 물질은 꽃가루와 꿀, 효소, 밀랍 등이 혼합된 천연 성분이라고 한다. 꽃가루의 성분은 꿀벌이 모은 식물에 따라 달라지지만 달콤한 꽃 맛이 들어 있다. 또 화분에는 아미노산과 무기질,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제를 포함하여 250개 이상의 활성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니 신비할 뿐이다.꿀벌은 꽃에서 꿀을 모으는 동안 그들이 방문하는 식물의 남성 생식 기관에서 꽃가루를 묻힌다. 꽃 속을 누비다 몸의 털에 달라붙은 이 꽃가루를 한 꽃에서 다른 꽃으로 건너뛰면서 주변에 퍼뜨려 다양한 식물의 암술이 수정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런 벌들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벌에게 치명적이라고 하는 살충제의 남용과 밀원의 감소와 월동 실패 등으로. 한 마리 한 마리가 내는 작은 기쁨의 파동이 자연을 살찌게 하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거룩한 일이 아닌가.앉아있는 사람보다는 서있는 사람이, 서있는 사람보다는 걷는 사람이 더 건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풍겨 나오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듯, 일벌에게 더 마음이 가고 움직인 만큼 건강은 보장되리라.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듯이. 꿀과 화분을 모아 아이 키우고 집안정비는 물론 여왕벌을 받들며 쉴 새 없이 움직여야하니 일벌은 웬만한 사람보다 더 바쁜 것 같다.이 시대 우리들의 뇌는 지나친 자극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지는 많은 정보들이 끊임없이 뇌를 움직이게 만든다. 쉴 새 없이 나오는 정보를 받아들여 분류저장 처리하느라 뇌는 쉴 여유가 없다. 뇌도 쉼표가 필요한 때, 벌이 만든 화분의 생리활성 물질이 뇌건강과 면역력을 키우고 혈액의 흐름을 좋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분을 주문했던 것이다.아름다운 여백이 존재하는 맑은 곳, 인제의 화분을 받고 보니 이렇게 신비한 화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졌다. 검색을 하다가 벌이 화분을 수확할 수 있는 날은 연중 며칠 되지 않고 비가 오거나 기온이 낮으면 수확량도 줄어드는 귀한 것이라는 내용에 이어, 생각도 하지 못했던 화분 채취기 방식에 가슴이 오그라들었다.권위에 복종하고 억울해도 참아야 하는 많은 사회적 약자들처럼 다리에 묻혀온 화분을 채취기에 털리고 마는 을의 처지 벌. 애써 모은 화분을 다리에 붙여 집으로 돌아오는 지친 벌 앞에 화분 채취기라니. 벌은 통 앞에 둔 자신의 몸 크기만 한 구멍이 뚫린 채취기를 통과해야만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며, 그때 애써 모은 화분이 자동으로 탈탈 털리도록 만든 구조라는 것이다. 벌통 아래에 화분을 모으는 서랍이 있어 그곳에 화분이 자동으로 모인 것, 그것이 우리가 먹는 화분이라는 것이다.꽃피는 봄이 오면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꿀벌은 아주 바빠지는 시기다. 꽃이 핀 곳이면 어디든 날아가서 서로 힘을 모아 꿀을 따고 화분을 만들고 로얄젤리를 만들어 여왕벌을 섬기고 양식을 만드는 그 작은 벌들. 벌의 성장에 꼭 필요한 고단위 영양제, 그들의 양식이라는 용도에서 의도치 않게 변경되어 내게로 온 화분. 벌의 족적이 기록된 알알 화분 1kg, 그것은 일벌에게서 강제로 뺏은 미안한 무게. 한 발 한 발 끌어 모은 벌을 생각하는 감정이 수북해져서 입안이 더 쌉싸름하다.

2024-07-31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지 않는다

장규열 고문 솔직하자. 우리는 회의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결정을 앞둔 사안과 주제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할 때, 관련 내용과 조건 등을 사려깊게 확인하면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면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회의가 아닌가. ‘회의’라고 이름붙인 모임에서 그런 과정이 있었는가. 별 준비없이 모인 사람들 앞에 누군가 이미 정리하고 결정한 내용을 전달하고 이를 확인하면서 형식적인 최종결정에 이르기만 할 뿐 치열한 숙고와 토론은 보이지 않는 게 우리들의 ‘회의’가 아니었는지. 담론주제에 대하여 개인들이 가진 생각이나 느낌이 없지도 않을 터인데 어째서 우리의 회의 모습은 이렇게 빈약해 진 것일까.교육환경에서 천천히 생각할 거리와 충분히 즐길 거리를 풍성하게 마련해 주지 못한 문화의 척박함을 돌아보아야 한다. 일과 경쟁으로만 내몰아 온 우리 사회의 허점과 패착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제라도 누구라도 여유롭게 즐기고 누릴 놀이문화를 길러내야 한다. 누구에게나 탈출구가 필요하다. 누구든 삶의 긴장으로부터 다소간의 해방을 즐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치열한 일상의 연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만끽하는 기회가 허용되어야 한다. 경쟁의 악다구니뿐 아니라 공동체의 푸근함도 느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적자생존과 무한경쟁, 추격과 탈취의 목표만 떠오르는 곳에 여유로운 사색과 문화의 향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견제와 긴장의 차가운 다짐을 풀고 포용과 관용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한다.경쟁적 이념구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조화로움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돌아보면, 공동체적 놀이문화가 우리 문화에도 숨어있었다. ‘가무에 능한 민족’이었으며 함께 즐기는 놀거리가 우리문화 안에는 풍성하였다. ‘우리의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어째서 사라졌을까. 우리의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까닭모를 열등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우리의 옛모습과 전통, 오늘 우리가 선 자리 등에 관하여 더욱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오늘보다 따뜻해져야 한다. 다툼과 질시, 경쟁과 추격의 대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포근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즐기고 누리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줄다리기와 쥐불놀이, 숨바꼭질과 땅따먹기에는 함께 누리는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때로는 다투고 겨룰지언정 언제나 서로를 인정하는 눈길이 숨어있었다. 의식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어 끊임없이 다투기만 하는 비생산적인 긴장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당히 맞서서 이기기도 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함께 즐거운’ 여유가 살아나야 한다. 문화적으로 강하려면, 문화가 공동체를 지지하는 지평을 품어야 한다. 문화를 전통과 구습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오늘을 사는 세대들이 모두 함께 누리는 튼실한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가 일상이 되어 즐길 거리가 우리 안에서 솟아나야 한다. 건강한 지적(知的)훈련이 가능하여 치열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뿌리깊은 지성이 자라날 여유부터 확보해야 한다. 회의를 회의답게 하려면 비울 공간을 찾아야 한다.

2024-07-31

88년 세월… 손기정과 반효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88년 전 오늘인 1936년 8월 1일. 베를린 올림픽이 열린다. 그때 독일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 맹위를 떨치던 시기.나치 당수 아돌프 히틀러는 “향후 모든 올림픽은 오로지 독일 제3제국에서만 열리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히틀러와 제3제국은 9년 후 세계 역사에서 사라진다. 오만 욕을 다 들으며.어쨌건, 그 올림픽에 마라톤 선수 손기정이 참가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탄해 강점하던 시기였기에 우리식 이름이 아닌 ‘손 기테이(そん きてい)’라는 성명을 사용해야 했다. 한국이 아닌 일본의 국가대표.그는 2시간 29분 19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지만, 그건 자신의 나라가 아닌 일본의 영광으로 기록됐다.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에선 손기정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웠다는 이유로 특정 신문과 그 신문 관계자들이 혹독한 수난을 겪었다. 나라 뺏긴 설움은 스포츠에서도 다를 게 없었다.그로부터 흐른 긴 세월. 일본 군국주의의 그림자는 이제 이 땅에서 싹 걷혔다. 일본을 카피하는 수준에 그쳤던 한국의 대중문화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거듭해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은 물론 서양 젊은이들까지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누구도 가소롭게 볼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손기정으로부터 88년. 열여섯 한국 고등학생이 선명한 태극 마크를 달고 ‘10m 거리에서 가장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지구 위 최고 여성 총잡이’ 지위에 올랐다. 대구체고 2학년 반효진. 손기정 할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장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었을 게 분명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31

일상을 이벤트같이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일정을 적어두고, 달력에 빈칸이 있으면 왠지 불안했다. 해야 할 일을 놓친 건 아닌가 자책까지 했다. 학교 강의시간표를 기본으로 학회 발표, 교내외 각종 회의 등 요청이 있으면 되도록 참여했다. 거절할 줄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 나였다. 그러다 보니 나의 시간은 많지 않았고 자연 가족은 희생해야 했다. 매년 남편과 아들의 생일에 팥밥과 미역국을 식탁에 올렸으나 외식하고 선물이나 하는 정도였다. 가족 대신 일 중심으로 살면서 이게 맞나 의심 한 번 없었다. 온갖 이벤트를 만들어 학교를 위해 헌신했다. 그렇게 일벌레로 살았다.정년을 몇 년 앞두고, 서서히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하자, 비로소 가족이 눈에 밟히고 가슴으로 들어왔다. 습관은 버리지 못하는가 보았다. 달력에 빼곡하게 뭔가를 적어두는 버릇은 여전해서 수첩과 종이달력이 아닐 뿐, 휴대폰의 달력에 가족들의 생일을 먼저 표시했다. 그 사이 네 명의 가족은 열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친정식구, 사촌언니들, 안사돈, 오랜 친구들의 생일까지도 색깔을 달리해서 표시해 두고 인사라도 하려 애썼다.가족들의 생일파티를 가장 먼저 챙겼다. 서울의 큰아들네는 선물이나 축하문자로밖에 못할 때가 많지만, 누구든 생일 앞뒤로 대구에 오면 꼭 챙겼다. 외식으로 때우는 대신 집에서 파티를 준비했다. 이벤트 무대를 학교에서 집으로 옮긴 격이다. 그렇게 요 몇 년, 해마다 손주들의 생일파티를 기획했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이벤트 과정이 있을 뿐 뭐 별 건 없다. 손주들의 식성에 맞는 음식과 생일상을 화려하게 장식해 줄 폼 나는 음식을 장만했다. 색감 풍부한 어린이용 생일상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흉내냈다. 준비하면서 즐겁고, 손주들의 웃음소리에 행복하고 사진으로 남아 흐뭇한 이벤트가 바로 손주들의 생일파티였다.작년엔 아들과 며느리 생일을 집에서 준비했다. 마침 내외의 생일이 하루 사이인지라 한 번 장식을 해두면 두 번 쓸 수 있어 더 편하다. 손주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로 기획(?)했다. 미리 장만한 음식들을 접시에 담고, 상 위에 올리고, 상차림을 하는 모든 과정에 저희들이 함께해서 즐기도록 했다. 포스트잇에 문구를 맘대로 쓰라고 했다. 아빠, 엄마, 사랑, 해요, 건, 린 ♡. 이렇게 한 장씩 써서 미리 달아놓은 풍선과 가랜드에 붙인다. 미리 준비해 둔 꽃과 케이크를 아빠 엄마에게 주라고 했다.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를 전달하고, 꽃다발 전달 후 둘이 붙어서서 머리 위 큰 하트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해서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저희끼리 미리 연습한 듯, 이벤트 즐기는 할머니의 유전자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특별한 날만 하는 게 이벤트가 아니라는 게 요즈음 드는 생각이다. 손주들과 함께 있으면 일상이 이벤트다. 해마다 자라고, 다달이 다르고, 나날이 새로워서 행복하니 이것이 이벤트다. 지금은 방학이벤트가 성업 중이다. 극장, 어린이세상, 교통랜드를 거쳤고, 오늘은 박물관으로 간다. 며칠 후 서울 손녀들이 오면 더 큰 이벤트가 있어야 할 것. 우리가 사는 육신사 일원에서 행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묘골 시간여행을 맛보다’라는 체험행사에 참여할까 일찌감치 예약해두었다.

2024-07-31

달릴 때 아픈 무릎 통증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러너스 니(runner’s knee)라는 질환이 있다. 장경인대 마찰 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달리기 할 때 많이 발생하는 질환이라서 러너스 니라고 한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달리기나 자전거를 탈 때 혹은 등산 같은 무리한 운동을 해도 많이 생긴다. 흔히 무릎 바깥쪽이 아파서 무릎관절의 통증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확히는 관절 통증이 아니고 장경인대가 무릎 외측부를 지나 경골에 부착하는 부위와 그 주변의 마찰로 인해 염증이 생기고 인대의 손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평소에 조금 불편함을 느끼다가 운동이나 무리한 동작 후 통증이 심해져서 내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통증이 심해지면 걷는 것이 불편해진다. 일상생활은 괜찮으나 달리기나 등산 등 특정 운동이나 일을 하면 아픈 경우도 있다. 대부분 며칠 쉬면 통증이 줄어드나 다시 달리기를 하거나 등산 등의 운동을 하면 바로 심해진다.증상이 생기면 운동은 즉시 멈추고 집에서 냉찜질을 한 후 근처 한의원에 내원을 하는 것이 좋다. 한의원에서 사혈을 하고 약침을 맞고 침을 며칠 맞으면 통증이 줄어드나 운동은 쉬었다가 하는 것이 좋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으면 초음파 약침으로 장경인대와 부착부 주변이 유착된 것을 풀어주고 3일 후 다시 운동을 한다. 통증이 발생 하겠지만 그 전보단 통증의 강도가 줄어들게 되는데 적당한 통증에서 운동을 중지 후 다시 치료를 한다. 치료와 운동을 반복하면 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늘어나는데 꼭 중간에 3일 정도는 운동을 쉬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 무시하고 운동을 하면 몇 달 운동을 못할 수도 있다.무릎 통증이 불편한 것을 방치하면 무릎 측부 인대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무릎 인대의 손상은 무릎 관절의 불안정성을 만들고 결국 연골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쇄적으로 내측 측부인대와 고관절까지 병변이 확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장경인대는 대퇴근막장근과 이어져 있는데 무릎 외측 통증이 있는 사람은 허벅지 고관절 바깥뼈를 꾹꾹 눌러서 확인하면 아픈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대퇴근막장근과 허벅지 대전자 사이의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리다. 불편한 자세로 지속된 일과 운동을 해서 고관절의 문제까지 생기는 경우니 무릎 바깥과 허벅지를 같이 치료를 해야 한다. 이런 경우는 무릎만 치료해선 잘 낫지 않고 치료를 해도 무릎 통증이 반복된다.운동 혹은 직업적으로 무리가 가는 일을 해서 발생하는 질환이라 예방이 쉽지가 않다. 통증을 발생시키는 동작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살을 빼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치료는 무조건 빨리 하는 것이 좋으며 시간을 지속적으로 끌게 되면 장경인대 부착부에 골극이 생겨 지저분해지고 유착이 생긴다. 만성으로 진행되면 치료를 오래해야 하고 치료가 되어도 재발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신발을 가볍고 편한 것으로 신는 것이 좋고 무겁고 답답한 신발과 샌들 종류는 신지 않는 것이 좋다. 무릎과 허벅지 주변 근력을 강화 시키면 도움이 되니 무릎 통증이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하체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2024-07-31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장미의 꽃을 기억하다

공이 형산을 지나는 중이었다. 낙동을 따라 내려오는 길, 동쪽 끝에 포(浦)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강과 바다가 만나고 너른 들판이 있는 곳이니 능히 사람을 낳고 기르기 적당한 곳이며 넉넉함과 모자람 모두 없으니 인, 의, 예, 지를 갖춘 이들이 모여살기 좋은 곳이라 들었다. 공은 포에서라면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을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공의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스승님, 이번 일정은 무척 서두르시는 것 같습니다.”공의 뒤를 따르던 제자가 물었다. 많은 제자들을 내보낸 뒤 오직 한 명, 따르길 허락한 제자 기였다.“이번 길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구나. 그러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다. 힘드냐? 여기서 조금 쉬었다 가자.”공과 제자 기는 회화나무 그늘에 앉았다. 언덕 아래 형산 옆으로 흐르는 강이 내려다보였다. 기가 봇짐을 풀어 건포를 꺼내 공에게 올렸다. 공은 건포의 반을 떼어내고 남은 것을 기에게 건넸다. 둘은 건포를 우물거리며 그늘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즐겼다.“시원하구나.”“네. 그런데 물기를 품은 바람인 듯합니다. 강을 지나온 바람인지, 그렇지 않으면 곧 비가 오려는지. 포라는 땅에 도착하려면 아직 많이 남았을까요?”“글쎄다. 나도 초행이니 답해줄 수가 없구나. 마침 저기 누가 오는 구나. 한 번 물어보자꾸나.”언덕 아래에서 한 사내가 수레를 끌고 올라오고 있었다. 여름인데다 해를 가리는 그늘이 없는 길이었다.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사내의 뺨과 등을 타고 흐르는 땀이 보이는 듯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기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 수레의 뒤를 잡고 밀었다. 사내는 잠시 멈칫 하다 이내 미소를 보이며 묵례를 했다. 수레는 크지 않았으나 수레에 담긴 것은 꽤 무거웠다. 거적으로 덮어 놓은 것이었는데 기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언덕을 다 오르고 난 후 물어볼까, 혹시 요기할 만한 것이면 조금 나누어 달라 말해볼까 생각하며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두 팔로는 힘껏 수레를 밀었다.수레가 언덕위로 거의 다다랐다. 공은 두 팔을 들어 얼른 이리 오라 손짓을 했다.“이쪽이오, 이쪽. 그늘 아래로 와 쉬시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이니 조금 났겠지만 다리가 풀리면 수레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 터이니 쉬었다 가시오.”사내는 그늘 아래에 수레를 세운 뒤 공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그늘이 내 것이 아닌데 무엇이 감사하단 말이오. 그나저나 수레에 든 것이 무엇이기에 이 더운 여름날 땡볕 아래 언덕을 오르고 계셨소?”회화나무 기둥에 기대 땀을 훔치던 기는 먹을 것들의 이름이 나오길 기대하며 사내의 입을 보았다.“시신입니다. 지난 밤 명을 다한 한 노인의 시신입니다.”사내는 시신을 언덕너머 내리막 길 옆 계곡 아래에 버리기 위해 옮기는 중이라 했다.“아니,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명을 다한 지 하루 만에, 그것도 장례를 치르지 않고 깊은 계곡 아래에 버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오? 포의 풍습이 그러하오?”“사연이 있지요. 죽은 지 하루만에, 계곡 아래에 버릴 만한 사연이 있습니다.”사내는 고개를 들어 중천에 뜬 해를 가늠하고는 시신을 버리고도 마을로 돌아갈 시간이 충분하다며 공에게 시신의 사연을 들어보겠는지 물었다. 공은 시신과 사내의 사연을 듣고 나면 굳이 포로 발걸음 할 이유가 없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말해보시오. 들어나 봅시다.”시신의 주인은 교(交)라는 사람이었다. 교는 포에서 태어나 70여 년을 지낸 뒤 전일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가업으로 이어오던 의업을 물려받았다. 이미 약관에 침술에 있어 근방에서는 따를 자가 없었다. 또한 대대로 물려받은 약제에 관한 방대한 비방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비교적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세상사에 대한 식견 또한 낮지 않아 인근의 여러 사람들이 질병이 아닌 다른 문제가 생길 때에도 찾아와 상의를 하고는 했다. 식견에 못지않게 의협심이 깊었고 긍휼의 마음은 넓었다.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여럿의 제자를 두고 의원을 확장하여 ‘지민원(志民院)’이라 이름을 붙인지 서너 해가 지난 즈음이었다. 이미 전 년부터 흉년이 들었던 데다 가뭄으로 그 해 농사도 곡식의 수확이 적어 다른 이유가 아닌 먹을 것이 없어 쓰러지고 엎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는 자신의 곳간을 열고, 지민원의 자리를 내어 사람들을 구제하려 했으나 자신만의 힘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교는 지역의 부호인 저(猪)를 찾아갔다. 교가 저에게 말하길, 가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했으니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곤경에 처한 이들이 곧 어르신의 이웃이며 어르신 부의 원천이 아닙니까? 일단 이들이 살아야 어르신과 어르신의 일가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창고를 열어 인정을 베푸시길 청합니다. 낮으나 명확한, 겸손하나 추상같은 교의 말을 못 들은 척 할 수 없었던 저가 답하기를, 교의 말이 틀리지 않으이. 내 창고를 열어 곡식을 풀도록 하지. 다만 공으로 나누어 줄 수는 없으니 빌려간 곡식의 3할을 이자로 받아야 하지 않겠나. 저의 말을 들은 교는 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 뒤 이렇게 다시 말하였다. 어르신의 뜻이 그러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다만,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나니 문득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알고계시겠지만 저희 지민원의 모든 힘을 다하여 사람들을 돕고 있어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하여 저 어르신의 일가와 식솔들이 행여 아프거나 질환으로 고통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저희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주십시오. 혹 그런 일이 생기게 되면 조금 멀겠지만 저기 형산 넘어 있다는 작은 의원을 불러 스스로를 돌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제서야 이 사람 교,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게. 3할은 받아야 하나 인정상 또 어찌 그렇게 하겠나. 빌려간 만큼만 돌려받을 테니 모쪼록 상황이 힘들더라도 우리 일가와 식솔의 고통을 외면하지는 마시게. 하였다. 사람들은 넉넉하지는 않으나 큰 피해 없이 그 해를 넘길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화타나 편작이 살아온다 해도 그리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교를 칭송했다.“그런 훌륭한 이의 시신을 깊은 골짜기 아래에 버리려 한단 말씀이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소.”기가 사내를 보며 큰 소리를 내었다. 공이 손을 들어 말리지 않았다면 기는 아마도 사내와 드잡이를 했을 것이다. 사내가 기에 못지않은 큰 소리로 말했다.“그 훌륭함이 30년을 가지 못했다 이 말입니다.”“그건 또 무슨 말이오. 어서 말해보시오.”약관에 의술을 시작한 교가 마흔이 되었을 즈음, 교의 의술은 더욱 깊어졌고 그를 따르지 않는 의원이 없었다. 인근 삼백 리 내 모든 의원은 지민원의 분점이 되었다. 그때 교가 변했다.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으나 교가 가졌던 의협심과 긍휼함은 사라졌다. 환자의 상황에 맞추어 받던 치료비와 약값을 일괄하여 거두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환자의 여력을 살펴 그가 치료비나 약값을 제대로 낼 수 없다 판단이 되면 환자를 거두지 않았다. 손을 대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대로 된 대가가 없다면 움직이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환자의 치료를 맡기는 일이 잦아졌고 그만큼의 시간에 저와 저의 친구들과 함께 하며 놀고 마시고 처자를 희롱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교에게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믿었고 교의 변화와 관계없이 존경의 마음으로 교를 대했다. 그러던 어느 해였다. 포에 역병이 돌았다. 이전에도 역병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지만 포의 사람들은 역병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교가 있었고 지민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병이 발생하면 교는 지민원의 의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환자를 찾아 치료하고 환자가 아닌 자들이 환자가 되지 않도록 힘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교는 저와 저의 친구들의 일가, 식솔들을 불러 지민원을 채운 뒤 지민원의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울부짖으며 도와달라 하였지만 교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미 환자로 꽉 차 더 이상 받을 수가 없으니 알아서들 잘 대처하라는 글을 내걸었을 뿐이었다. 포의 사람 태반이 역병으로 사라진 뒤에야, 더 이상 역병 환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교는 지민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역병으로 죽은 이들의 가족들로부터 그들의 토지를 싼 값에 사들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민원(志民院)을 지민원(地泯怨)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교(交)는 교(狡)가 되었다. 이후 지민원은 가파른 내리막을 향했다. 제자들과 의원들은 지민원을 나와 자신들의 의원을 열었고 지민원은 결국 문을 닫았다. 교는 사두었던 토지를 산 가격보다 더 싼 값에 넘겨 그 돈으로 식솔들의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교는 이후 죽을 때까지 젊은 날의 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갈 기회를 그 누구도 주지 않았다.“남아 있는 식솔들은 죽은 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지요.”포의 사람들은 교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두고 회의를 했다.“논의의 결론이 계곡에 버리는 것이란 말이오? 그게 옳소? 비록 그가 뒤에 와서 사람답지 않게 살았다고는 하나,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기는 하나 그 이전에 마을 사람들을 위해 행한 선한 일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기가 다시 사내에게 물었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불만이 섞여 있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비록 역병에 태반이 죽었지만 젊은 날의 교 덕분에 그 만큼이라도 살았고 살아남은 사람도 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가 없으니 교의 죽음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장례를 나누어 치르기로 했습니다. 지금 마을에서는 교의 오일장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계곡에 버려질 이 시신은 마흔 이후의 교입니다. 마을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은 젊은 날의 교를 위한 것이고. 아이고, 늦었습니다. 저도 이것 빨리 버리고 돌아가야겠습니다. 허기도 지고.”사내가 언덕을 넘어 수레를 끌고 내려갔다. 기는 도와줄까 어쩔까 망설이는 눈으로 공을 보았지만 공은 묵묵히 형산 아래 강만 볼 뿐이었다.“스승님, 어찌할까요?”기가 물었다. 공이 답했다.“장미의 꽃을 기억하는 곳이구나, 이곳 포는. 좋다, 좋아.”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7-30

‘TK 3대정신’은 지역민의 자존심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박정희 산업화를 ‘TK(대구경북) 3대정신’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이 지역은 역사적인 고비 때마다 항상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선거철만 되면 ‘올드한 보수도시’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걸려, 자존심이 상하는 사례가 잦았기 때문이다.‘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됐다.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회를 이끌던 서상돈과 김광제가 불씨를 지폈고, 국민운동으로 확산됐다. 당시 의연금을 낸 상당수는 TK지역 서민들이었다.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여성도 남성과 다르지 않다’고 호소하며 은장도, 은비녀, 은가락지를 내놓았다. 1907년 2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이천만 민중이 3개월 기한으로 금연하고, 그 대금으로 매인(每人)에게서 매월 20전씩 거둔다면 1300만원이 된다”고 호소했다. 안중근 의사와 이준 열사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은 외신을 통해 해외에 알려졌고,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외채보상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대구시는 지난 3일 새로 단장한 두류공원 광장을 ‘2·28자유광장’으로 명명하는 행사를 열었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맞서 대구지역 8개 고교 학생들이 주도해 일으킨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이다.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2·28현장을 보도하면서, ‘대구는 일제 때부터 독립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자유당 주도권에 제동을 걸어 왔으며, 저항의 역사를 기록하는 도시’라고 했다. 홍 시장은 “2·28자유광장 일대는 자유, 민주, 정의를 외친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대구시는 현재 동대구역 광장(박정희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상 제작과 설치를 위한 작가 공모에 들어갔다. 대구시의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관련 예산을 통과시켰다. 대구시는 남구 대명동 미군기지 반환 부지 내에 건립 중인 대구대표도서관 공원에도 박정희 동상을 건립한다.지금은 도시간의 경쟁이 국가간 경쟁 못지않다. 지방정부 역량에 따라 해당 도시의 품격과 경제적 수준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벌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선단체장들에겐 해당 도시를 대표하는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홍보작업이 중요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주시가 오래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이름을 곳곳에 네이밍해 도시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다.대구시가 홍 시장 취임 이후 관문(공항이나 역)이나 광장명칭을 새롭게 브랜드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홍 시장은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대구의 폐쇄성과 기득권 카르텔을 언급하면서, 대구사회가 외부세계와 단절돼 있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 앞으로 TK지역 이미지가 ‘보수꼴통 도시’가 아니라, 국채보상운동이나 1960년대 민주화운동, 1970년대 산업화의 주역도시로 대체되길 기대한다.

2024-07-30

인간승리의 명장면들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올림픽은 인간승리의 축제장이라 할만하다.파리 올림픽의 첫 번째 인간승리의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의 팝스타 셀린 디옹이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발작을 일으키는 희귀병을 앓던 그녀가 에펠탑 특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파리 시민은 환호했고 세계는 감동했다.외신들은 파리 올림픽 개회식의 “압도적 최고 무대”라고 극찬했다. 기록을 깨고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투혼처럼 난치병을 딛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 그녀의 모습에서 인간승리를 볼 수 있었다.‘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은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여자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영화. 전국에서 여자핸드볼 선수라고 해봐야 고작 100명 남짓한 숫자에서 뽑은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기적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인간승리가 딴 세상에 있는 일이 아님을 보여준 사례다.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무명의 컬링 여자선수들이 시종일관 파이팅 넘치는 경기로 은메달을 딴 것도 기억에 남는 감동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남자 펜싱 오상욱 선수는 칠전팔기 끝에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으니 인간승리의 멋진 투혼이라 할만하다.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고 10연패 위업을 달성한 우리나라 양궁 여자단체팀의 승리는 국가 명예만큼 값지다. 16살의 반효진양이 사격에서 뜻밖의 금메달을 따내는 등 한국 선수들의 낭보가 더위에 지친 국민을 위로한다. 인간승리를 바라보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지 않은가./우정구(논설위원)

2024-07-30

절제 잃은 권력의 폭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의 ‘이원적 정통성’이 격돌하고 있다. 둘 다 주어진 권력의 정당한 행사라고 강변하면서 절제 없이 폭주하고 있다. 권력의 힘자랑은 오만과 독선에 다름 아니다. ‘문명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의 정치’이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증거다.민주당의 입법권력 폭주는 역대급이다.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여야 협의 없이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당적이 금지된 국회의장 우원식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함에도 노골적으로 민주당 편을 들고, 법사위원장 정청래의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행태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또한 판·검사들을 겁박하기 위해 ‘법 왜곡 죄’의 신설 및 검찰청 폐지 법안까지 추진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법안들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더욱이 민주당은 극히 절제되어야 할 탄핵소추권도 수시로 휘두르고 있다. 방통위원장 탄핵에 이어 판·검사 탄핵을 겁박하고, 심지어 대통령 탄핵청문회까지 열었다. 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에 대한 탄핵은 ‘도둑이 몽둥이를 드는 꼴’이다. 탄핵으로 판·검사의 직무를 중지시키려는 사법방해는 이재명의 대선가도에 방해물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오직 이재명 방탄과 윤석열 정부 파탄에 초점을 맞춘 민주당의 입법권력 폭주는 갈수록 태산이다.한편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절제 없는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도 재고되어야 한다. 물론 거부권은 입법부의 독선을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부여된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입법부의 권력 남용이 문제이듯이 행정부의 거부권도 마땅히 절제되어야 한다. 야당의 권력 폭주를 견제하기 위한 대통령의 거부권이 여당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대통령은 국민 다수가 입법에 동의하거나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경우, 그리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 행사에 신중해야 한다. 특히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어렵기 때문에 ‘특검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여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더욱 절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거부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는 정치환경을 조성하는 것, 즉 여야의 정쟁을 끝내고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정치학자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랫(D. Ziblatt)은 ‘관용’과 ‘자제’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핵심규범이라고 했다. 도덕이 담보되지 않은 권력 행사는 위험하며, 절제할 줄 모르는 권력은 독재의 길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기 때문에 법이 부여한 권력의 행사는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법적 정당성이 있어도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면 권력은 자제되어야 마땅하다.정치의 세계에서 권력은 돌고 돌며, 절제를 잃은 권력은 반드시 무너진다. 정권이 교체되면 권력 폭주는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권력은 성찰과 반성으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을 때 지킬 수 있는 마약이다.

2024-07-29

몽클레어 패딩과 부모 노릇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한국인의 과도한 ‘명품 사랑’이 유럽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프랑스나 이탈리아 명품 판매점 앞엔 한국인 구매자를 대신해 줄을 서주는 아르바이트까지 있다고 한다. 한국 백화점 역시 새로운 명품의 출시가 예고되면 전날 밤부터 백화점 앞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갈수록 심각해지는 ‘명품 사랑의 바람’이 아이들에게까지 불어 닥친 모양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짤막하게 인용해보자.‘경기도 동탄에 거주하는 김OO씨는 4살 딸을 위해 티파니에서 78만원대 은목걸이를 구입했다. 18개월 된 딸을 위해선 38만원대 골든구스 구두를 샀다. 몽클레어 패딩과 셔츠, 버버리 드레스와 바지, 펜디 가운과 신발 등 다른 명품도 다수 구매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결혼식, 생일 파티, 콘서트에 갈 때 초라해 보이지 않길 바란다며…’비단 영국 신문이 만난 동탄의 김씨만은 아닐 것이다. 몇 해 전엔 100만원이 훌쩍 넘는 패딩을 중학교 한 학급의 절반 이상이 입고 다닌다는 기사와 그로 인한 신조어 ‘등골 브레이커(부모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까지 등장한 게 한국이니.중학생 딸을 둔 후배와의 술자리. “친구들은 다 입고 다니는데, 왜 나는 안 사주냐고 우는데…. 부모 노릇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후배의 우울한 얼굴을 마주 보기가 딱했다. ‘몽클레어 패딩’과 ‘부모 노릇’이 그런 방식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차려입은 옷과 손목에 찬 시계,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인간을 판단해선 안 된다. 사람에게 중요한 건 도야된 인품과 고상한 내면’이란 말이 헛소리가 돼버린 2024년 오늘이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9

그저 수업만이라도 제대로 하기를

김규인 수필가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발표했다. 사건 이후에도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다. 교권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는 높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서인지 학교 현장을 떠나는 교사도 늘어난다.초등학교 생활지도를 맡은 한 교사는 쉬는 시간에 학생들 사이에 손톱으로 긁은 사건을 맡아 처리했다. 처리 중 학부모의 진정으로 교육청 등 관련 기관의 조사를 여러 차례 받았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같은 일로 학부모에게 고소당했다. ‘학폭’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이유다. 학교폭력에 학부모가 당연히 알고 협의해야 하지만, 과도한 주장으로 일이 꼬여버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아이의 큰 아픔보다 자기 자식의 작은 손해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교권 침해유형은 모욕과 명예훼손, 교육활동 침해, 상해·폭행이 주를 이루며 성 관련 사건과 협박이 11%를 넘는다. 그 외에 불법 정보 유통도 발생했다.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교권 침해 사례는 더 다양한 형태로 증가한다. 법의 제정 등 현실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그렇다고 관련 기관이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회는 법을 제정하고 교육청은 교권 침해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침해를 당한 교사를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 방송에서 바람을 탄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냥 넘어가던 사소한 일도 관련 교사나 학교를 상대로 고소하는 경우가 늘어난다.이제는 학생들 사이의 싸움 중재도 교사가 아니라 경찰이 나서는 시대가 되었다. 법적인 문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가 성업 중이다. 사건만 발생하면 교사는 관련 기관의 조사에 시달려야 하고 학부모의 항의 전화와 고소 사건에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정작 수업을 받아야 하는 다른 학생들은 수업권을 침해당한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지.이 시점에서 학생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단순 지식만을 배우러 오는 것은 아니다. 또래의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성도 기르고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참된 인간 교육을 받는 게 학교가 아닐까. 친구도 선생님도 없는 나 혼자만의 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성을 배워야 할 시간에 학교폭력과 고소와 상대방에 대한 험담만 늘어나는 곳에서 아이들이 배울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식이 귀할수록 남과 어울리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혼자서 떨어져서 살아가는 자식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왜 사람 인(人) 자가 막대 두 개를 기대어 세운 모양인지 알아야 한다.공교육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학교폭력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본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회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 교사가 제대로 서지 않는 사회에서 진정한 교육도 우리나라의 미래도 기대하기 어렵다. 더 이상 선생에 대한 존경을 바라지도 않는다. 선생은 그저 웃으며 수업하는 너무나 당연한 바람을 가질 뿐이다.

2024-07-29

이차전지 폐수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일차전지는 알카라인 건전지가 대표적인데 1800년대에 개발되어 아직도 TV 리모컨 등 다양하게 사용되나 한번 사용하면 재충전할 수 없다. 반면 이차전지는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리튬 이온 전지와 같이 방전 후에 충전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매우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 이차전지를 개발한 공로로 3명의 과학자가 노벨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는 등 이차전지는 획기적인 새로운 분야이다.이차전지는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과 같은 이동형 정보기기(IT)의 폭발적인 수요와 함께 급격하게 발전했다. 여기에다 친환경 교통수단 수요에 따른 전기자동차(EV) 보급 확대와 2050탄소중립에 대응한 재생에너지 저장시스템(ESS) 수요 증가로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2020년 461억 달러에서 2030년에는 3517억 달러로 무려 8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환경보호와 자원재활용 규제 강화에 따라 EU시장이 중심이 되어 전세계 이차전지 재활용 시장은 2023년 81억 달러에서 2033년 857억 달러로 30% 가까운 높은 성장률이 전망된다.이에 정부는 지난 2023년 7월 용인·평택과 구미에는 반도체, 천안·아산에는 디스플레이, 포항·울산·청주·새만금 등 4곳에는 이차전지를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각각 지정하였다. 지정된 특화단지에는 2047년까지 681조원의 민간투자 계획에 맞춰 공공기관·국비를 통한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집중적 구축, 투자인센티브 제도 확충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들 산업에 다량으로 필요한 용수는 불순물(이온, 유기물, 미생물, 미립자, 기체 등)들을 극히 낮은 값으로 억제하여 이론적 순수에 근접한 물인 초순수(Ultrapure Water)인데 국내의 공급 기반은 아직 취약하다.한편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고 첨단 제조공정의 도입으로 인해 다수의 불특정 오염물질이 다량 포함된 폐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차전지는 양극재(전구체),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전해질) 등 리튬배터리 4대 소재의 제조공정에서 다량의 ‘이차전지 폐수’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차전지 재활용 공정에서도 망초(Na2SO4)와 같은 염이 고농도로 포함된 ‘이차전지 폐수’가 발생한다. 실제 전구체를 연간 100만t 생산하는 시설에는 무려 375만t의 폐염이 발생한다고 하며, 이외에도 유가 중금속, 금속류, 암모니아와 염소이온, 유기물질, 인, 용존고형물 등 다수의 오염물질이 다량 발생한다.이에 ‘이차전지 폐수’는 개별폐수처리시설을 통해 배출허용기준 이내로 처리후 공공 폐수처리시설이나 하수처리시설로 연계 처리하여 방류수 기준 이하로 처리하여 공공수역으로 최종 배출해야 한다. 그런데 방류수 기준에 주요 물질인 리튬, 코발트, 황산이온 등에 대한 배출허용기준이 아직 없고, 이들 물질과 불특정 물질의 복합영향으로 방류수의 생태독성도 우려된다. 따라서 이차전지 특화단지 내에는 생산자와 협력한 ‘이차전지 폐수’ 최적가용처리기술(BAT) 개발과 함께 폐수처리수 재이용 생태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2024-07-29

아침 이슬

‘아침 이슬’이 수록된 음반. 몇 해 전 문예창작과 시창작 수업에서 대학생들에게 노래 하나를 알려줬다. 자꾸만 길어지고 사변적인 근래 한국시의 경향이 마뜩잖아 짧은 문장만으로 아름다움은 물론 울림과 감동까지 빚어내는 글들을 읽히면서 노랫말을 예로 들었는데, “가을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동요 ‘노을’)에 이어 소개한 게 김민기의 ‘아침 이슬’이다. 칠판에 가사를 적었다. 아느냐 물으니 모른다 했다. ‘이 노래를 모른다고?’ 놀랐지만 나도 아침 이슬 세대는 아니다.“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알게 된 노래, 가사를 외우지 않았는데 저절로 외워진 노래다. 유신과 신군부, 민주화운동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부르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는 노래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나는 앞 세대가 엄혹한 시절에 피워낸 불씨의 열기를 자연스레 감각하며 자랐다. 정치의식이라는 게 생길 즈음엔 광화문에 가 “효순이 미선이를 살려내라”고 외쳤는데, 그해 겨울엔 통기타를 치며 김민기의 ‘상록수’를 부른 대통령이 당선됐다. 투표권 없는 고3이지만 감격했다.이전 세대의 확고한 신념 뒤에도, 이후 세대의 막연한 의식 뒤에도 김민기의 노래가 흐른다. 본강의 큰 물줄기가 아닌 바위틈으로 숨어 흐르며 길을 만드는 발원지의 고요한 물처럼, 그 자신은 뒤로 남겨지고 양희은의 목소리를 앞세웠다. “작은 미소를 배운다”는 대목에서는 욕심 없는 겸양이 나타나고, “붉게 타오르고”라는 비유 대신 “붉게 떠오르고”로 덤덤히 묘사한 부분에서는 삿됨 없는 우직함이 나타난다. 노래를 직접 부른 영상이 딱 하나 있는데, 무대 뒤에서 음향기기를 만지다가 그 자리서 기타를 잡았다.스스로 ‘뒷것’을 자처하며 철저하게 뒤에서만 그림자로 살았다. 공단에서 동료 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야학을 열어 달동네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공공 유아원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자 권력의 감시 속에서 목숨 걸고 노래했다. 소극장 ‘학전’을 만들어 가난한 예술가들이 맘껏 연주하고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차렸다. 뒷것인 그가 객석에 나와 있을 때는 늘 아동극이 상연될 때였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는 게 참 행복했다고 한다.소외된 공단 노동자와 달동네 아이들이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고, 학전을 거친 예술가들이 한국 문화예술계의 주역이 됐다. 아동극을 보며 꿈을 키운 아이들은 지금 30대가 되어 사회에 진출했다. 성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열정과 노력을 발휘하며 자기 삶을 가꾸고, 나아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자리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에 김민기가 있다. 아침 이슬은 정말 발원지의 투명한 한 방울 물인 것이다.앞에서 소리치지 않고 뒤에서 읊조렸을 뿐인데 저항의 상징이 됐다. 1975년 ‘아침 이슬’은 시답잖은 이유로 금지곡이 됐고, 김민기의 삶에도 시련과 서러움이 알알이 맺혔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정한 권력자들은 노래가 가진 힘이 민중을 고취시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들이 로르카를 살해한 것도 그의 시가 피눈물 밴 안달루시아의 민중정서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100만 명의 민중이 ‘아침 이슬’을 합창했다. 노래가 만든 거대한 파도에 마침내 독재자가 물러났다. 앞에 나선 그 어떤 사상가, 운동가, 정치가, 지도자도 하지 못한 일을 뒷것의 삶을 통해, 삶을 담아낸 노래를 통해, 노래에 실은 고결한 정신을 통해 김민기는 해냈다.노래가 생소해 멀뚱거리는 학생들에게 ‘아침 이슬’을 불러줬다. 미성으로 꽤 잘 불렀다. 아무래도 나는 뒷것은 못 되는 모양이다. 그때 노래를 들은 학생들이 지금 20대 후반쯤 됐다. 자기 자리서 열심히들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노래엔 신비한 힘이 있다. 그날의 노래를 기억한다면, 각자도생의 비정한 세상에서도 타인과 나누며, 약자를 도우며, 정의로운 쪽에 서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2024년 7월 21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광야로 간 김민기는 아침 이슬로 언제나 함께 있다. 이제 산 사람들의 뒷것으로 우리 마음과 정신을 떠받치면서.

2024-07-29

여름의 책

눅눅히 마음이 무성해지는 여름, 비가 계속 내리는 날씨 탓에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는다면, 저자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꺼내게 된다. 이 책은 생의 충직함, 성실함, 유연함, 지혜로움을 말끔히 엮어 만든, 깨끗한 옷 같은 에세이다. 올곧게 객관화되어 있는 사람의 다정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로, 묘하고도 신비로운 활력을 준달까.스무 살 무렵 늦은 성장통을 겪었다는 저자 무루(박서영)는 세상에 이해받지 못하는 소외감으로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책에서 기쁨과 슬픔의 여러 이름을 발견하며 세상의 부조리와 간극, 소외되는 대상과 존재를 인지한다.비혼, 여성, 집사, 프리랜서, 채식주의자. 이토록 확고하게 자신을 나열함과 동시에 낯선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보지 않은 길로 가기 위해 용기를 낸다. ‘몸의 고립이 마음의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세상 밖을 걷고 머무른다. 외로운 날들이 모두 지나간 어느 때에, 그녀는 관계에 대해 ‘가끔은 한 사람의 손을 잡거나 나란히 걸을 수 있겠지만, 기왕이면 혼자서도 잘 걷고, 두 발로 씩씩하게 걷고 싶다’고 말한다.자신의 결정이 어디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책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그녀는 책 안에서 보고, 듣고, 사유한 것으로 자신을 이루어 타인을 공감하고 포용한다. 세상의 틈마다 그어 놓은 안과 밖의 경계는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고, 가장자리의 존재는 쉽게 배척된다. 하지만 저자는 사이에 놓인 경계를 허무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바로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우리가 믿고, 사랑하고, 그래서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다.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믿는 마음이란 실체와 효용, 현실과 확신을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현실에서조차 세상은 언제나 한 사람의 세계를 거뜬히 넘어서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와 타인에 대한 공감 역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터다.”저자는 그림책을 읽으며 자신의 과오를 인지하며 한계를 정하기도 하고, 계획과 좋은 습관을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자신을 쌓는 어른이라니. 어떤 직업을 삼고,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 낼지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그렇게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지 떠올려 보게 된다. 저자는 ‘작은 기쁨을 풍요롭게 누리는 사람’,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리듬을 가진 노래 같은 삶을 사는 사람’, ‘농부의 손처럼 투박하지만 다정한 사람’ 등, 자신의 모습을 또렷하게 그려내며 먼 미래의 얼굴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앞자리가 바뀐 나이 때문일까. 나는 올해 유독 가만히 있어도 옅게 보이는 입주름이나 안으로 말린 어깨의 모양, 여유로워 보이는 걸음걸이나 손짓 등에 신경 쓰고 있다. 동시에 10년, 20년 뒤 어떤 모습일지 자주 상상해본다. 그럴 때마다 어쩐지 아득한 기분이 든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금처럼 뛰어다닐 수 없을 테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겠지. 몸과 같이 기분마저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면? 생각은 꼬리를 물어 어느새 울적해진 노년의 내가 그려지는 것이다.하지만 이 책을 다시금 꺼내어 읽다 보면 힘없이 늙은 몸을 가진 내가 아닌. 여유를 가진 채 그토록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된다. 당연히 내 옆에 자리했던 모든 것들을 한 번 씩 돌아보며 감사할 줄 아는 삶, 나와 타인의 건강한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빌어주는 삶, 진실로 거짓을 가려내며 거짓 없이 사랑하는 삶 등등. 깊은 내면의 모습을 그러다보면 놀랍게도 미래를 기대하며 기다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일렁이는 내면을 가꾸어온 섬세한 손길이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묻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 더 구체적인 한 사람이 펼쳐진다. 타인의 변덕에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 많은 사람. 요상하고 재미있는 유행어를 많이 알아 젊은이들과도 유쾌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차와 주전자 색색의 실과 뜨개바늘에 둘러싸여 평온하고도 고요한 할머니의 모습. 나의 먼 미래를 웃으며 상상하는 자유로움은 이토록 신비롭고 견고하며 근사하다.세 시간 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책은 이제 등을 내보이며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다. 이럴 때마다 무언가 듬직하게 기댈 수 있는 단단한 벽을 얻은 것만 같아 마음이 평온해진다. 괴괴한 날씨에 영향을 받아 변덕스런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은 이렇게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것이 제일 좋다. 책은 그런 걸 늘 가능하게 한다.

2024-07-29

상희구 시인의 ‘수선화 편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대구경북 방언으로 연작 시집을 완간했던 상희구 시인이 목소리를 상당히 죽여 침묵에 가깝게 속삭이는 새 시집 ‘수선화 편지’(오성문화, 2024)를 펴냈다. 상희구 시인의 방언 시집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시 해설을 겸한 시평도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좀 조심스럽게 시의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할까 한다. 시가 강력한 목적성을 갖게 되면 메시지 전달에 힘을 주기 때문에 문학적 순결성을 상실하게 된다. 진보적인 목적시와 마찬가지로 방언의 자료를 가능한 작품에 많이 담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자칫 시의 전범을 훼손시킬 위험성을 안게 된다. 너무 많은 방언이 시 작품 속에서 누더기처럼 불어나면 조야해진다. 자칫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거나 천박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시 창작을 통해 방언 자료를 끌어 모으겠다는 의도가 오히려 시의 자리를 협소하게 만들 위험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최근 AI기술의 발전으로 거대한 음성자료 클라우드가 구축되고 거의 천문학적인 수량의 방언 자료가 이미 수집되어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많은 방언 자료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목적성 뒤에는 시문학 본질의 문제가 훼손돼 있다는 점을 결코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번의 ‘수선화 편지’에서는 시인 스스로 그러한 위험성을 감지했는지 기존의 시와 다른 상당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기는 하다.‘경상도 사투리 호시뺑빼이란 말의 어원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단 시 ‘수선화 편지 24’를 살펴보자. 과연 시인이 방언 어원을 시작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눈여겨본다. “대개의 경우, 각 지역의 사투리는 표준말에 비하여/어투가 아주 거칠고 투박합니다. 그 이유는 어느 지역/사투리든, 의태나 의성의 의미가 도드라지기 때문입니다./”(상희구 ‘수선화 편지 24’ )은 방언학개론서의 설명도 아니다. 오히려 운문성을 일탈한 서술은 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표현일 뿐이다.문학 작품 속의 방언은 단순히 문화적 원자재다. 방언시는 부정적 차원에서의 변용을 위한 시가 아니다. 표준어로만 영위되던 문학의 외연을 시간적, 지리적으로 넓혀 정체성을 확대시켜 주고, 인종적 소수자나 이민자나 젠더와 같은 계급적 외곽 집단의 목소리를 유입해 역사적 진폭이나 문학 유산을 더 폭넓게 확장할 수 있음에 의미가 크다. 아마도 상희구 시인은 이러한 목적성 때문에 방언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을 가진 것은 아닐까?“…. 얘들아, 그 작은집에 김 서방, 사업이 망해가아, 멀찌감치 야반도주했다 카디이 요새는 우째 사능공?//아이고 백모님, 그런 말씀 마이소, 김 서방이 사업 망한 그 질로 서울로 가가주고, 서울서 집장사로 해가주고, 돈을 엄청 벌어가아, 요새는 호시뺑빼이로 산답니더.”에서는 시와 산문의 경계도 없어 시적 긴장감마저도 없다.이러한 방언으로 쓴 시의 문학적 한계를 아마도 시인도 의식한 듯하다. 이 시집의 2부에서 보여주는 단행 시편들은 앞서와 달리 서정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최근 1행시, 3행시, 4행시와 같은 일본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단행 시들이 유행하고 있다. 단행 시의 전통은 우리의 고전, 전통 시조를 이은 현대시조 장르에서와 같이 고도로 압축된 문학 양식이다.그동안 상희구 시인의 방언으로 쓴 시작의 성과들은 문학 해석학의 범위를 확대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방언시들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번역이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다. 영어권의 소설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에 등장하는 흑인들의 방언, 계급어를 국내 번역 작품에서 녹여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실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들 언어가 함유하고 있는 계급적 문제까지 함유하고 있으니 표준어로만 번역한다면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역으로 한국 방언이 섞여 있는 문학작품의 외국어 번역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상희구 시인의 거작 대구방언시편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나 있을까? 언어학적, 문화적, 지리적 차이와 사회 계급적 방언차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해외에도 알려낼 수 있을까? 문화적 실천으로 연구되고 문학작품이 대답할 수 있는 범주가 넓어졌지만 시대의 이념에 어떻게 조응하고 저항할 것인지 모색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02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