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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팔공산 깃대종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12월 ‘당사국총회 COP28’이 개최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다녀오면서 사 온 선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중동의 대표적 동물인 낙타 모양의 귀여운 인형이었다.만약 호주로 여행을 갔는데,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캥거루나 코알라를 사정상 볼 수 없었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고 첨단화되는 핸드폰, TV나 자동차를 선호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함없이 인간과 함께해온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 같은 동물들에게도 열광한다.이처럼 인간이 일부 동물을 좋아하는 사례는 인간의 감성적인 필요성 일부이지만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 그리고 식물, 곰팡이 그리고 심지어 미생물까지 망라되는 생명체들이 그 다양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태를‘생물다양성’이라 하는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량, 신선한 물, 목재 등의 자원을 풍부하게 받을 수 있고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고 물을 정화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생물다양성’은 경제적 가치도 높여주는데, 특히 농업과 관광, 의약품, 생명공학 산업은 ‘생물다양성’에 크게 의존한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식물과 동물로부터 신약을 개발하는 데 유리하고 생태 관광도 유리하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문화적으로도 풍부해지는데, 많은 문화에서 특정 동식물은 신성하게 여겨지거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된다. 이는 그 지역의 ‘생물다양성’이 문화적 유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인류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기후위기에 ‘생물다양성’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그로 인한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준다. 다양한 유전자와 종으로 구성된 생태계는 기후변화나 질병과 같은 특정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증진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보존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우리나라에는 50000여 종 이상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한국의 고유종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산림, 습지, 해양, 하천 등에서 다양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림은 국토의 약 64%를 차지하며, 생물다양성의 중요한 보고이다. 정부는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여러 법적, 정책적 조처를 하고 있다.예를 들면, 멸종위기종 보호 및 복원을 위한 활동,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국립공원 확대 등이다.4월 17일 국립공원공단은 지난해 5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팔공산의 생태·문화·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깃대종’으로 ‘담비’와 ‘국화방망이’를 선정했다. 전문가 의견과 국민 참여 선호도 조사를 통해 선정된 이들 ‘깃대종’은 대구·경북 시도민의 관심과 사랑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2024-04-22

온몸의 이행, 세월호 세대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Pixabay 기울어진 선체가 캄캄한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고작 52시간은 수십 년처럼 막막하고, 차가운 바다에서 학생들이 죽어갈 동안 땅의 어른들이 헛되이 버린 골든타임 72시간은 억겁처럼 까마득했는데 10년은 참 빨리도 갔다. 너무 빨리 지난 10년이 섬뜩하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안개가 자욱한 바다 위에 섬인지 유령선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검은 형상이 어른거리는 꿈을. 회색 바다 위로 뒤집힌 배의 구상선수 부분만 떠 있는 이미지는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상징이 됐다. 그것은 곧 어른들의 탐욕과 국가의 부재, 세계의 부조리함을 지시한다.작년 9주기 때 희생자 이영만군의 형은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영만아, 밖은 아직도 차고 깜깜하다. 시간이 갈수록 잊혀가는 것 같아 무섭다. 9년 동안의 다짐이 모두한테서 희미해지는 것 같아 너무 무섭다”고 했다. 1년이 지나 이제 10년이다. 10년은 기억과 기념의 단위다. 하지만 세월호는 희미해지고 잊혀졌다. 물밑에 잠겨 있던 선체가 인양됐지만 다시 침몰하고 있다. 이쪽에서 아무리 새기고 기억하려 해도 저쪽에서 지우고 덮고 그만 하라 한다. 그만 하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10년 동안 세월호는 어떻게 다시 가라앉았나.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이 탄핵됐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한 새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진상 규명은 불충분하고, 국가 책임자 중 처벌 받은 이는 단 한 명뿐이다. 현 대통령은 10주기 기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사 표현이다. 대통령의 빈자리는 뒤집힌 배의 구상선수처럼 오히려 불쑥 솟아 있었다. 그 배는 이미 재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침몰했다.그만 하라고, 지겹다고, 해상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다른 고귀한 죽음들을 기억하라고 윽박지르는 말들이 너무 드세고 거칠어 기가 죽는다. 세월호가 희미해지는 건 이런 드센 말들이 중심 없거나 여린 다수의 마음을 흔들어 여론이라는 걸 잘못 만든 까닭이다. 단원고에 다니는 이윤지 학생은 말한다. “어떤 어른들은 이제 잊으라고 해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세월호를 떠올릴 거예요. 그래야 더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테니까요”라고. 우리 사회의 집단 망각 아래서부터 악착같이 세월호를 띄워 올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은 아니다. 어른들이 MZ라 부르는 세월호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얼마 전 한 기업의 채용공고에 ‘모집인원 0명’이라고 적힌 문구가 화제였다. 10명 이내 한 자리수를 채용하겠다는 통상적 의미다. 이게 갑자기 문해력 논란으로 번졌다. 0명을 정말 ‘0명’으로 이해해 문제 삼은 누리꾼들을 향해 어른들은 “모르면 배울 생각을 하라”고 충고했다. 충고로 시작해 비난으로 끝난다. 어른들은 MZ세대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혀를 찬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이 없다고.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의 20대들은 10년 전 친구들이,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잘 들어서 죽은 걸 생생하게 봤다. 승객들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이 팬티 바람으로 제일 먼저 탈출하는 걸 똑똑히 봤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국민을 어떻게 버렸는지, 사회라는 곳이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매몰찼는지 다 지켜봤다. 그런데 말을 들으라니, 책임감이라니, 감히 공동체라니.계몽과 훈육이라는 자기도취적 우월감으로 ‘MZ’ 비아냥거림을 일삼는 어른들이여, 세월호를 정치 이데올로기의 화두로 만들어 욕보인 이들이여. MZ세대가 아니다. 세월호 세대다. 당신들의 위선과 거짓, 무능력, 탐욕이 가득한 세상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들 중에는 진로를 바꾼 이들이 있다. 유아교육과에 가려다 응급구조사가 된 장애진씨도 그중 한 명이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캄캄한 바다에 다시 들어갔을 때 너무나 무서웠다고 한다. 몸서리쳐지는 트라우마와 맞서서 끝내 이겨낸 힘은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하늘나라의 민지와 민정이에게 다짐한 바로 그 약속이다.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응급구조사로서 열심히 일을 한다”는 애진씨는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한다. 세월호를,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얼굴과 이름을, 그들과의 약속을, 그 약속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김수영)임을.

2024-04-22

동그란 사랑

혼자 사는 집의 동거인이 된 반려 식물. 혼자 살던 집에 동거인들이 생겼다. 바로 작고 작은 반려 식물들이! 하나 둘 씩 모으던 식물이 점차 수를 늘려가며 벌써 다섯이 되었다.집안일을 다 끝낸 무료한 주말엔 집 근처 식물 가게에 간다. 처음엔 분명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이지만 왜인지 나올 땐 식물이 하나씩 손에 들려 있다. 아마 식물 가게 주인의 엄청난 영업 실력 덕분이지 않을까.내가 제일 처음에 들인 식물은 스파티필름이다. 어린잎이 하나둘씩 자라더니 갓 파마를 마친 할머니 머리처럼 바글바글 풍성해졌다. 현재는 꽃차례에 하얀 불염포를 피우고 있는데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어린 아이의 말랑한 손가락을 보는 것만 같아 신기하고 설렌달까.그 뒤로 들인 식물은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홍콩야자, 스킨답서스 실버리안이다.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는 솜털 같은 형태의 보송하고 가느다란 잎을 머리카락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홍콩야자는 우산 모양의 초록 잎이 길게 자란다. 그 중 애정하는 스킨답서스 실버리안은 벨벳 재질 형태의 잎과 은은한 실버 색상이 눈에 띄는 독특한 식물이다. 다행히 세 식물 다 우리 집 환경이 잘 맞는지 어린잎을 계속해서 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내가 보지 않는 시간에도 반짝반짝 잘 자라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식물을 애정으로 키우게 되는 이유이지 않을까.가장 최근에 데려왔지만 골머리를 앓게 하는 녀석은 유주나무다. 작은 귤과 흰 꽃이 달리는 과실나무라 계속해서 벌레가 꼬이는데다 햇빛 양이나 물주기가 잘못된 탓인지 살짝 건들기만 해도 잎이 우수수 덜어진다. 힘없이 축 늘어진 잎을 보면 얼마나 눈길이 가는지. 영양제도 꽂아보고 뿌리 파리 벌레를 물리치는 트랩이나 각종 약을 뿌려도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이라 겨우 빛이 집 안에 드는 시간대면 유주나무의 자리를 빛이 드는 곳으로 옮겨 둔다. 인터넷 글을 보니 누군가는 이년 내내 아픈 유주나무를 보살피다 어느 샌가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하던데, 넉넉한 시간은 물론 정성과 관심이 없으면 참 어려운 일이다.앞 식물과는 달리 유주나무는 돌봄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 하루라도 빛과 바람, 물주기를 신경써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시들해진다. 조금만 눈을 떼면 금방이라도 죽기 쉬운 식물이라 참 애간장을 녹이는데, 또 작은 귤 열매가 새롭게 맺힌 것을 볼 때마다 만 평 대지에 흉년이 든 것처럼 기쁘다. 아직 초보 식집사라 그런지 내게 유주나무는 아픈 손가락이지만 그래도 요즘 나를 바삐 움직이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랄까.일주일에 한 번, 물주기가 비슷한 식물을 모아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 내고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천천히 물을 준다. 이제 막 물을 주어 싱그러운 식물을 따라 편안하고 천천히 호흡해본다. 조금씩 시간이 느려지고 상기되었던 얼굴도 누그러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러다 최근 갑작스레 돌아가신 지인분이 불현듯 떠올랐다. 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의 메모장을 본 적 있었는데, 그곳엔 온통 불교 경전의 말씀이 가득했다. 필사는 왜인지 긴박히 서두르는 듯 보였고, 특이하게도 ‘ㅇ’ 모음마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덧대어 그려져 있었다. 왜 ‘ㅇ’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고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을 수 있겠으나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려내며 각지고 날카롭고 뾰족한 마음을 둥글고 부드럽게 다듬고 싶었던 걸까. 동그라미의 틀, 동그란 잎의 식물들, 둥그런 화분의 입구, 동그란 유주나무의 열매, 둥글둥글해지는 마음.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세시 정도였고, 일요일의 오후가 조금 더 남았다는 것에 안심하며 끼니를 챙겨 먹기 위해 천천히 일어섰다.조금씩 빛이 드는 자리에 앉아 마음의 파동을 일으키는 대상을 가만히 생각해보는 것이 내겐 사랑이고, 이 사랑으로 채워진 시간이 오롯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함을 안다.평온함의 오후, 물 빠진 식물은 다시금 제자리에 돌려놓고 유주나무는 한 번 더 벌레가 기어 다니지는 않는지 체크한 뒤 놓아준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내내 눈길이 가고, 떨어져 있을 때면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괜찮은 건지 생각하며 저릿하고도 무력한 마음 같은 것이 나는, 사랑이라 믿는다.

2024-04-22

허수경의 ‘진주 저물녘’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허수경 시인은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했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고대동방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허 시인은 유적발굴을 위해서 1년의 절반 이상을 이집트와 시리아와 이라크로 떠돌며 살아왔다.유목민같은 삶을 살다가 독일에서 얻은 암으로 이승을 떠났지만 그녀는 자신의 시를 오래된 유적처럼 이 땅에 남겨 두었다. 녹슨 청동 구릿빛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를 기리는 이는 더 늘어날 것이다,허수경은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 그의 꿈을 소리와 문자로 새겨두고 우리곁을 떠났다. 시집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진주 저물녘’이라는 시에서 그는 서쪽 바람이 일으켜 놓은 황혼의 고향을 시의 그물로 당겨놓았다. 이 시에는 경남 진주의 토박이말이 걸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경상도 전역에서 두루 쓰는 방언인 ‘문디’를 만나니 반갑기도 하다.방언은 추상화된 보편 언어가 아니다. 관념과 같은 무중력의 언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방언은 현실 세계에서 지역에 따라, 계급에 따라, 그리고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파생되고 갈라지다가 그 ‘곳’에 자리를 차지한 민들레 씨방과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 방언은 공동체 안에서 그들끼리만 소통함으로써 내부적 결속을 강화해주기까지 한다. 표준화된 무채색의 언어인 표준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대상과 사건의 신비로운 숨결까지 방언에 깃들어 있다.“기다림이사 천년같제 날이 저물셰라 강바람 눈에 그리메 지며 귓불 부콰하게 망경산 오르면/잇몸 드러내고 휘모리로 감겨가는 물결아 지겹도록 정이 든 고향 찾아올 이 없는 고향/문디 같아 반푼이 같아서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우는 남녘 가시나/주막이라도 차릴거나/승냥이와 싸우다 온 이녁들 살붙이보다 헌출한 이녁들/거두어나지고/밤꽃처럼 후두둑 피어나지고”, -허수경 ‘진주 저물녘’허수경은 스스로 “남녘 가시나”라고 고백한다. 가난에 쫓겨 어디 주막의 작부노릇이나 할까보다고 생각하다가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운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송기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허수경을 두고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에게 버림받고, 그렇게 버림받아 자유로운 몸이 되어, 드디어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을 제 살붙이로 여기는 진주 남강이나 혹은 낙동강 하류의 어느 가난한 선술집의 주모를 떠올렸다”고 표현했다.좀 더 깊이 성찰해 보면 일본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 물에 뛰어든 정열의 기생 논개를 연상하다가 진주 남강 너른 강 같은 마음에 기다림의 불씨로 그 망상을 손질한 것일 것이다. 진주 시가지를 휘돌아가는 남강과 일본의 침략군 적과 싸우다 죽은 숱한 양민들의 피가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든 진주성의 저물녘과 역사성이라는 그물의 코로 이어있다.가끔은 폐병에 걸린 남성과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내면적 충동을 시로 쓴 ‘폐병쟁이 내 사내’에서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라며 20대 젊은 여성의 내면적 욕망을 변주하고 있다.“산가시나가 되고 백정집 칼잽이가 되어 폐병에 효험이 있다는 뱀과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후, 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선한 물같이 맛깔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어디 내 사내뿐이랴”에서는 눈빛이 타오를 듯 고혹적인 사내를 위해 헌신한 우국충절의 논개가 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나의 어머니, 아니 나의 할머니부터 나에게 이어 내려온 강렬한 정념을 포효하고 있다.폐결핵이 걸린 사내라도 잎차같이 함께 눕고 싶어한다. 후후 불어 더운 보양국물 먹여 가며 그 사내가 흘린 식은땀을 후후 마시고 싶다. 그 여인 슬픈 눈길로 사내를 내려다보며 땀과 눈물 닦아줄 것이라는 환영에 빠진다.

2024-04-22

도미노게임-민족의 대이동

‘인간은 너머의 세상을 동경한다. 그러나 방향 잃은 패자의 역습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기원전 2세기 초, 흉노의 이동은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국과 인도의 역사까지 바꾼다. 거대 국가를 이룩한 흉노는 한나라 고조 유방을 포로로 잡는 쾌거를 올리고,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해 장장 2,500여 ㎞를 흐르다 아랄해로 스며드는 아무다리야강 근처 대월지를 점령한다. 흉노로부터 남쪽으로 쫓겨난 대월지 사람들은 그곳의 ‘대하’, 즉 박트리아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인도로 쳐들어가 ‘쿠샨왕조’를 세운다. 도미노 게임의 시작이다.기원전 141년, 흉노족은 한무제로부터 시작해 후한에 이르기까지 몇백 년에 걸쳐 서서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대략 200년이 흐르고, 카스피해 북쪽에 훈족이 나타났다. 모습이 흉노와 똑 닮았고, 흉노와 발음도 비슷한 이들이 유럽에 입성하자 유럽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강력한 훈의 침략은 게르만족 일파들을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했다. 이탈리아 서로마 멸망을 앞당겼으며 프랑크왕국을 탄생시키고, 훗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발전하는 초석을 다진다.9세기 말, 우리가 흔히들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노르만족의 유럽 유린은 또 한 번 판도를 뒤집는다. 유럽의 북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살던 북방민족 노르만족이 여름이 짧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추위와 척박한 땅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따뜻한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그들이 남으로 이동해 노르망디공국을 세우고,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는가 하면, 영국의 서북쪽 아일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지중해를 뚫고 들어가 시칠리아, 나폴리왕국을 건설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동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 중 한 무리는 러시아에 도착해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슬라브족을 몰아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간 무리는 현재 러시아의 기원인 키예프를 점령하고, 블라디미르 공국까지 손에 넣는다.노르만족으로부터 쫓기듯 밀려난 슬라브족은 남하해 발칸반도에 자리 잡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세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톨릭에 흡수된다. 그 당시 발칸반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이들 역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대번에 뽑아버리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폭력과 희생의 토대 위에 나라를 세웠다. 민족 이동은 순차적이거나 평화적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폭력과 약탈이 동반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쫓기듯 도망치면서도 그 와중에 저지른 살인과 약탈과 방화는 또 다른 민족의 이동을 불렀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한 패자의 역습! 아니, 패자의 화풀이다.고등학교 역사부도 머리글에 ‘민족 대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가 쓰여 있다. 얼핏 읽으면 매우 평화롭고 한가로운 민족의 이동으로 환희에 찬 신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살육과 방화, 약탈은 기본이었다. 머리를 돌에 부딪쳐 죽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끌고 가 노리개나 노예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되짚어야 할 의무가 있다.몽골의 칭기즈칸과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해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와 유럽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와는 질이 다르다. 이 셋은 단순한 이유가 바로 목적이 되는 그들의 공통된 용어, ‘정벌’을 앞세운 살육자였다. 항복 아니면 도륙이라는 무시무시한 몽골군은 유럽인 눈에는 그저 하늘에서 보낸 악의 군대이자, 신의 채찍이었다. 사회 질서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자 하느님이 보낸 응징을 위한 군대였다. 사람의 머리로 탑을 쌓기를 즐겼다는 티무르는 그냥 할 말을 잊는다. 알렉산드로스 역시 페르세폴리스에서 보듯 그가 지나는 자리에 불타고 허물어진 건물잔해, 하늘에 울리는 인간들의 절규만이 남았다.세계를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벌이는 욕망의 화신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유럽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영웅이고, 유럽을 짓이겼던 티무르는 왜 죽음을 부르는 악인가? 훈족 희대의 영웅 아틸라는 왜 ‘신의 재앙’으로 불려야 하는가.마치 도미노 게임처럼 벌어졌던 인류 이동의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지금의 세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탈자 그 이상도 아닌 폭력적인 인간을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은 마치 후대의 성스러운 의무가 되었다. 이를 넘어 어떤 민족에게는 저항의 힘으로 작용하고, 또 어떤 민족에게는 이웃에 대한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단언컨대 통치제도는 통치자를 위한 것이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국가에도 질서와 통제를 위한 세력은 어떻게든 존재하기 때문이다.스스로 선진문명인들이 살아가는 서구 유럽이라는 개념 역시 이 과정을 거치며 생겨났다. (기실 폭력의 역사만 두고 보았을 때 문명보다 야만에 가깝지만) 일찍이 유럽이라 하는 지역 개념은 아시아를 타자화하면서, 유럽과의 대비를 통해서 형성되었으며, 그 기조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4-22

비운의 순종황제 동상

홍석봉 대구지사장 순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다. 대구 중구는 순종이 1909년 1월 남쪽 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일을 재현해 지난 2017년 달성공원 정문 앞 일대를 테마거리로 만들었다.어가길에 담긴 치욕을 ‘다크 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역사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낙후된 골목 개발과 원 도심 재생 및 관광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길이 2.1㎞의 어가길은 국비 35억원 등 70억원이 들어갔다. 동상 건립과 함께 차선을 줄여 교통섬 등이 들어섰다.사업은 구상단계부터 친일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일제가 반일 감정 무마를 위해 순종을 대구와 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스러운 역사라는 이유였다.어가길과 동상 조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대례복 차림의 순종 동상이 군복을 입고 다닌 당시 모습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대를 무릅쓰고 건립을 강행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어가길 조성 이후 달성공원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교통 혼잡 등 민원이 빗발쳤다. 보행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졌다. 결국 중구는 ‘순종황제 어가 길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순종의 후손들은 “황제를 욕되게 하지마라”며 동상 기증을 요청했다. 의미 있는 장소로 이전하자고 했다.역사 왜곡과 친일 논란까지 애써 무시하고 다크 투어리즘으로 포장한 채 세워진 대구 ‘순종황제 동상’은 고작 7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조선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했던 것만큼 서글픈 운명이다.동상 건립비와 원상 복구비로 11억원이 들어간다. 지역사회와 논의조차 제대로 않고 추진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금낭비와 행정력만 소모했다. 10년 앞도 못 내다본 우리 행정의 현주소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2

성난 민심을 어떻게 받들 것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108 대 192’, 국민은 윤석열 정권을 무섭게 심판했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에 성난 민심의 폭발이었다. 이미 6개월 전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강력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으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대통령은 이번에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무엇을, 어떻게 쇄신하겠다는 것인가? 병은 원인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다. 대통령은 참패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검찰 중심의 측근 인사는 불통의 상징이었고, 대통령이 내쳤던 이준석·안철수·나경원은 모두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돌아왔다. 이태원·오송 등 대형 참사에서 보여준 무책임, 해병대 채 상병 사망수사와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의 처리에서 보여준 오만한 태도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의 성찰·반성·변화가 시급한 까닭이다.대통령이 민심을 받들려면 국민, 여당 및 야당과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인데, 그것은 바로 ‘언론과의 소통’을 의미한다.대통령은 총선 참패에 대해 언론 앞에서 직접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국무회의 비공개회의에서 간접적으로 사과했다고 한다.“참모 뒤에 숨지 않고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고 한 대통령은 어디로 갔나? 분노한 민심에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다음으로 당정(黨政) 소통을 위한 양자관계의 재정립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의 주류가 합리적·개혁적 보수로 교체되어야 한다. 수구적인 보수, ‘윤심’만 살피는 보수는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변화와 혁신을 추동할 수 없다.여당은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이 되어야 한다. 검찰문화에 습관화된 상명하복의 정치행태는 불통만 키울 뿐이다.마지막으로 야당과의 소통이다. 정쟁을 중단하고 정치를 복원하라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이다. 향후 대통령의 잔여 임기 3년은 가시밭길이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대통령의 레임덕만 재촉할 뿐이다. 이재명과 조국의 범죄혐의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사법부에 맡겨두고, 대통령은 정치적 대화를 통해 국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여소야대의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이처럼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요구하고 있다. 취임 이후 반복되어온 표리부동과 언행불일치, 선택적으로 적용해온 공정과 상식을 반성 없이 변명만 하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병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데 야당을 탓하고 참모들을 질책해서 될 일이 아니다. 권력에 취해 초심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 아닌가.민심을 받드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은 대통령이 변하는 것이다. 오만과 불통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소통·대화·타협의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2024-04-22

선상출장소 명칭 변경은 주민의견 수렴이 먼저

김락현 경북부 구미시 선산출장소에 대한 명칭 변경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구미시가 조직개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의원들이 선산출장소의 명칭을 농정국으로 변경하는 안을 제안했기 때문이다.시의원들은 출장소라는 명칭보다 농정국이라는 명칭이 구미시 전체의 농업산업을 총괄하는데 더 낫다고 판단했다.예산 확보나 사업설명을 위해 중앙부처를 방문하더라도 선산출장소 보다는 구미시 농정국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에 시의원들의 이러한 제안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하지만, 선산이라는 지역적인 특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이 합쳐지면서 설치된 선산출장소는 단순히 구미시의 조직이라기보다 ‘선산’이라는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구미와 선산이라는 두 지역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보더라도, 당초 선산군에 속했던 구미읍은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1978년 2월 15일 칠곡군 인동명과 합쳐지면서 구미시로 승격됐다. 이후 선산군까지 포함하면서 지금의 도농복합도시 구미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선산지역에는 아직까지 선산이라는 지명을 구미시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다른 지역에서도 출장소 명칭변경을 두고 지역민들의 반발을 산 경우가 있다. 경남 양산시는 지난 2020년 조직개편을 진행하면서 웅산출장소를 양산동부출장소로 변경하려 했으나, 지역민들이 ‘정체성 상실’등의 이유로 반대하면서 무산됐었다.당시 주민들은 명칭 변경 반대 현수막 수십개를 거리에 걸고, 항의 집회까지 열면서 한때 지역사회가 크게 술렁이기도 했다.선산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장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것보다 선산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재도약을 위해 갈 길이 먼 구미가 명칭 변경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4-04-22

윤석열·이재명은 협력할 부분이 많다

김진국 고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총선 중에 “3년은 너무 길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을 다 채우기가 지겹다는 말이다. 임기 중간에 탄핵하든지,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 야당이 국정을 휘젓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홍역을 치렀다. 가장 힘있게 임기 중 할 일을 기획할 중요한 시기를 날려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해 맥없이 정권을 넘겨줬다.이미 윤 대통령은 날개가 꺾였다. 법이고, 예산이고, 야당의 승인 없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전공의 파업도 야당 태도가 큰 변수다. 의사 증원은 원래 민주당이 추진한 정책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어깃장을 놓으면 증원 계획을 백지화할 때까지 의사단체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바랄까. 총선의 기세를 몰아 바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비명횡사’로 민주당을 완전히 ‘이재명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윤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기 위해 탄핵이든 개헌이든 하려면 결국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건 큰 모험이다. 빨리 대통령이 되고 싶어 헌정질서를 중단시켰다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아무리 윤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이라도 후폭풍을 각오해야 한다.인기가 바닥을 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탄핵소추 이후 후폭풍이 거셌다. 심지어 대구·경북에도 역풍이 불었다. 탄핵안이 발의된 날 한국갤럽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의견이 60.6%(필요 없다 30.1%)였지만, 탄핵 반대는 65.2%(찬성 30.9%)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천막당사를 치고, 사과를 거듭하며 겨우 선거를 치렀다. 더구나 국회에서 다수의 힘으로 탄핵소추를 한들 헌법재판소 통과가 쉽지 않다.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대표 재판이 더 빠를 수 있다.야권 사정도 만만하지 않다. 이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몰빵’을 강조했다.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도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 위성정당)’이라는 말이다. 조국혁신당의 ‘비조지민’(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지역구는 민주당) 주장을 누르려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금버금하다. 위성정당이 26.69%를 얻어, 지역구 후보도 없고, 번호도 뒤쪽에 있는 조국혁신당(24.25%)과 비슷했다. 더 심각한 대목은 민주당의 대권 향방을 결정하는 호남(광주·전남·북)에서 모두 조국혁신당에 밀렸다는 점이다. 광주에서는 47.72% 대 36.26%, 전북에서는 45.53% 대 37.63%, 전남에서는 43.97% 대 39.88%로 확실하게 졌다. 공무원들이 많은 세종시와 조국 대표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민주당이 졌다.그러니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을 벌이면 거저먹을 상황이 아니다. 막상 대선 국면이 되면 공천 과정에 불만이 많은 비명 세력이 조국혁신당으로 뭉칠 수 있다. 그렇다고 당내 세력 구도를 고려해 민주당에 유리한 단일화를 요구하다가는 과거 김영삼·김대중 씨처럼 쪼개질 수도 있다. 당대의 선거공작 전문가인 엄창록 씨가 1988년 노태우 후보 측의 영입 제안을 받고, “어차피 이긴 선거이니 내가 필요 없다”라며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양김 단일화가 안 된다고 확신한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주중 만나자고 제의했다. 사실 두 사람은 ‘너만 아니면 돼’(Anything but You)라며 사생결단으로 싸울 이유가 없다. 선거 때 공격하는 것은 정치인의 일상사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러 가지 수사도 사실 민주당 내부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윤 대통령이 수사해 감옥에 넣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세 번이나 만나 화해했다.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것은 문재인 정부다.이 대표도 정치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 정치권에는 “대통령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순 없어도, 안 되게 할 힘은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면 국리민복을 위해 협력할 일이 많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21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2주 전부터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서 자살 예방 특강 영상을 릴레이로 올리고 있다.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를 필두로, 우울증을 앓는 아내를 7년간 돌본 최의종 작가, 뇌과학자 장동선과 김용 전 세계은행총재가 출연하여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 자살하고 싶은 사람을 돌보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다 조회수가 많지만, 최의종 작가 영상은 77만회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이다.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20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에 가면, 자살자의 연령별, 성별, 직군별 등 다각도로 분석된 통계를 볼 수 있다. 2022년 한국 자살률은 24.1%로 OECD 평균 10.7%의 두 배가 넘는 부동의 1위지만, 그나마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세라 다행이기는 하다. 2012년 한국의 자살률 30.3%보다 6%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살률 감소는 세계적인 흐름이고, 2012년 한국과 비슷하게 30.1%였던 리투아니아가 10년 후 18.5%로 줄어든 것을 보면 마냥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 경제적 곤란, 치료가 어려운 질병 등 자살의 원인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한국이 이토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과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살률을 낮추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긴급한 화두다.눈에 띄는 것은 연령별로 자살 원인이 다르다는 것인데, 고령층의 자살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질병이다.‘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건강’(23.7%)과 ‘경제적 어려움’(23.0%)이라고 하는데, 의료비 지출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하는 큰 요소이다. 그러니 80대 이상이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리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이 117.9%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자살은 남은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혼자 외롭게 고통스럽게 죽는 일이지만, 안락사는 가족의 합의를 얻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평화로운 죽음이다. 오남용의 여지는 제도적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에서는 아버지가 선택한 안락사를 가족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까지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네덜란드는 삶의 질 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국민의 4%가 안락사로 죽음을 맞는다는데, 올해 1월에는 병을 앓던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를 선택했다. 최근에는 중증 치매 환자의 안락사도 허용했다고 한다.극단적인 저출생 현상과 함께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살률은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 얼마나 나쁜가를 보여준다. ‘세바시’ 영상처럼 우울증 치료도 중요하지만,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안락사 허용은 필요하다. 그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2024-04-21

측정 수단의 진화와 활용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관리는 측정 불가능한 것에도 적용해야 하고 조직 내부에는 중요하지만 정량화할 수 없는 사안도 존재한다. 우수한 인재를 붙들어 두지 못한 나머지 사양길에 접어든 기업이나 산업이 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불량률 등 눈에 띄는 수치보다 훨씬 중요한 기업의 생존 지표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발생한 과거의 것이다. 여기에 미래에 관한 것은 없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관한 것이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과거에 측정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현실에 적용하여 개선의 효과로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실시간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로 고쳐 불러야 되지 않을까 한다’최근 웨어러블을 통해 내 몸의 상태를 측정한 데이터를 살피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달리기에 매료되어 현재 달리는 속도가 얼마인지 심박수는 몇 구간인지를 눈으로 보며 체력을 가늠하고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며 실력이 느는 만큼 측정의 중요성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웨어러블을 통해 측정된 데이터를 휴대폰 디바이스를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달릴 때 좌우 비대칭 정도와, 지면 접촉시간은 어떤지 수직진폭은 좋아졌는지 수시로 확인하여 훈련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데 스마트 기기는 아주 유능한 휴대 가능한 코치이다.실시간으로 측정된 달리기 정보를 볼 수 있으니 오버 페이스 염려가 없어 마라톤 풀코스 같은 장거리 달리기도 완주 확률을 현저하게 높여준다. 주자의 신체적 능력에 맞게 데이터를 정보의 형태로 가공하여 실시간으로 제공하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이렇듯 측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때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보이지 않는 신체적 징후를 가시화된 형태로 피드백 받아 관찰하다 보니 웨어러블의 다른 데이터들도 관심 있게 보게 되는데 두 가지가 특히 유용하다. 하나는 수면의 질에 관한 것이고 스트레스 레벨에 관한 것이다. 수면을 잘 취하는 것이 혈당이나 심박수 등 몸의 컨디션에 큰 영향을 주고 조금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와 심박수가 오른다는 것들이 놀랍게도 명확하게 표시된다.인공지능과 IoT가 이제 현실이다. 웨어러블은 그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간단하지만 너무도 유용하면서 확실한 효과를 제공한다. 배를 침몰 시키는 것은 배를 감싸고 있는 바닷물이 아니라 그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도록 놔둔 구멍 때문이다. 배가 구멍 없이 견고하다면 바닷물도 그저 배가 떠 있는 곳일 수 있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진 배라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과 떠 있는 조건에 따라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구멍이 생기기 전에 알 수 있어야 징후를 측정할 수 있어야 바다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

2024-04-21

아스팔트 위의 생명

김규종 경북대 교수 봄날의 변덕스러움은 짐작하기 어렵다. 곡우(穀雨)이자 혁명일이었던 4월 19일, 반팔과 반바지 차림의 청춘들이 길을 메우고, 하늘엔 옅은 황사가 찾아들었다. 창문 열고 질주하는 차량 행렬에서 가까이 다가온 여름 냄새가 짙어진다. 가슴과 등판을 서서히 적셔오는 땀방울이 교정(校庭)에 환하게 피어난 이팝나무 꽃망울과 엇박자로 교차한다.오후 7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다가오는 황혼이 하루해를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내보낸다. 거기서도 최소 30분 이상 기다려야 까만 어둠이 지상에 깔리기 시작하고, 옅은 어둠은 조금씩 짙어져 마침내 대기가 깊은 침묵에 휩싸인다. 그제야 밤이 시작된다. 불과 두 달 전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 날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경이로운 시간이 우리 곁에 있다.그렇게 화사하고 화려한 날들이 토요일 급변하더니 드디어 가느다란 이슬비가 내린다. 아주 느릿하고 가느다란 빗줄기가 서서히 대지를 적신다. 오는 듯 멈춘 듯 봄비는 오락가락 춤춘다. 탱고나 람바다 혹은 루뭄바가 아니라 우아한 왈츠로 봄의 정령(精靈)들을 적셔주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그네는 우산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것이다.늦은 하오 장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대문 근처에서 헉, 하는 소리가 폐부에서 절로 밀려 나온다. ‘아니, 저게 말이 되는 거야?!’ 혼잣말한다. 장에서 사들인 물품을 대충 내려놓고 사진기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대문의 좌우 담벼락에는 오래전부터 민들레며 지칭개, 광대나물 같은 봄풀 무리가 이리저리 뒤얽혀 살아왔다. 그런데, 이것은?!작년인가, 차고 넘치는 아스팔트를 대문까지 발라준 청도군의 선심 행정이 무색하게 뽀리뱅이가 돌연 얼굴을 내밀고 빗속에 우아하게 서 있다. 두툼하게 깔리는 아스팔트를 보면서 농촌에서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우점종(優占種)이 되다니, 하며 혀를 끌끌 찼더랬다. 그런데 저 여린 뽀리뱅이는 어떤 연고(緣故)로 아스팔트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단 말인가?!사람이든 동물이든 풀과 나무든, 모든 생명은 최적의 장소와 시기를 만나야 적절한 생장(生長)과 대물림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불가(佛家)에서는 ‘시절(時節) 인연’이라 한다. 우연히 만나 인연을 엮는 것도 시절 인연이지만, 가장 적절한 시공간에 두 대상이 마음을 열고 화합함으로써 최상의 인연을 맺는 것을 ‘시절 인연’이라 부른다.그런데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아스팔트 위의 뽀리뱅이에서 시절 인연을 읽어내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생명의 놀라운 자생력과 놀라운 끈기와 투쟁력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런 식으로 계절이 바뀌고 다시 가을과 겨울이 지나면 녀석은 색깔과 형태와 향기를 잃고 스러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본디 목표 지점 가운데 하나인 종족 보존에는 성공할 것이다.아스팔트에서 솟아난 뽀리뱅이를 보면서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80억 호모사피엔스를 잠시 떠올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절 인연을 맞아 환하고 아름답게 나름의 운명과 우주와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봄비 속의 상념이 깊어가는 봄날이 고요하게 지나가고 있다.

2024-04-21

담배와의 전쟁

우정구 논설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밝힌 한국의 흡연율은 15.9%(2022년)다. OECD 평균과 비슷하다. OECD국가 중 흡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튀르키예로 28%다. 흡연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아이슬란드로 7.3%다.한국은 남성 흡연율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남성은 27.8%인데 반해 여성은 3.9%다. 남성 흡연율로만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8번째다. 우리나라는 2015년 2500원하던 담뱃값을 4500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당시 OECD 평균보다 높은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조치라 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다소 논란이 있다.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감소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데 별반 이론이 없다. 그러나 소비자 물가가 오르면서 지속적 효과보단 반짝효과에 그친다는 견해가 더 많다. 그럼에도 흡연율을 줄이는 데 각국은 담뱃값 인상을 유효한 정책으로 활용한다.지금 세계는 흡연과의 전쟁이 치열하다. 담배의 유해성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는 나라로 멕시코가 꼽힌다. 멕시코는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하고 있다. 광고는 물론 가게에 담배를 진열하는 것도 금한다. 가정집과 같은 사적 공간에서만이 흡연이 가능할 정도다. 영국이 이보다 더 강한 금연법을 추진해 화제다. 2009년생부터 평생 담배를 못사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 법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간섭한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아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담배의 심각한 유해성에 반해 아직 담배를 금한 나라는 없다. 담배와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1

지방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강영석 상주시장 20·30대가 교육, 일자리, 기회를 쫓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방은 고령화 문제에 직면했다. 젊은 농부가 없는 농촌에는 농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도권 쏠림 현상과 저출산 문제로 지방소멸이 가시화 되고 있다.경북도는 올해를 ‘K-U시티 프로젝트 실행의 해’로 정하고, 청년 지방 정주 시대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상주시도 ‘K-U시티 프로젝트’에 동참을 선언했다. 상주시는 시의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인 이차전지를 특화 분야로 지정하고 지난해 12월 경상북도와 관련 업무 협약을 맺었다.경북대, 한국폴리텍대, 상주공업고, 상산전자고는 인력 양성 교육기관으로, SK머티리얼즈그룹포틴과 새빗켐, 아바코 등 이차전지 기업들은 지역 특화 기업으로 ‘상주시 이차전지 U시티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이와 연계해 청년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기업 투자와 인력양성, 그리고 안정적인 정주 여건을 마련코자 관련 사업들을 추진 중이다.기업 투자 부분에서는 청리일반산업단지 인근을 확장, 60만 평 규모의 이차전지 클러스터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인력 양성 부분에서는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와 상산전자고등학교, 상주공업고등학교와 연계한 지역인재양성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SK머티리얼즈그룹포틴과, 새빗켐, 아바코 등 이차전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맞춤형·일체형 인재를 연간 131명씩 2032년까지 1,230명 이상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경상북도교육청과 함께 추진 중인 상주형 미래인재 교육플랫폼도 조성한다. 상주시는 시의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자료실, 인문학 카페, 실내스포츠실, 자전거 공방, 야외쉼터 등을 갖춘 ‘온마을 아이들 3in1 스테이션’을 조성할 계획이다.예비 귀농 청년을 위한 지역 탐색·교류 프로그램 운영 및 청년 복합문화거리를 조성해 청년들의 문화·사회 커뮤니티 활동 기회를 확대해 나간다.지역에 정착하려는 청년들에게 거주 시설을 단기 제공해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는 청년드림하우스도 신축한다. 특히, 지역 현안 해결과 지방소멸 대응방안으로 ‘리빙랩(Living lab)’을 접목하고 있다.현재 우리나라는 각 지역에서 다양한 리빙랩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일터와 삶터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생산성 강화, 안전강화, 생활편의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신규사업 발굴과 그에 따른 성공사례들이 속속 공유되면서 리빙랩은 ‘현장기반 문제 해결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상주시도 마을리빙랩 사업 추진을 위한 지역 리더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청년 인구감소, 저출생, 고령화로 대두되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에 대한 해법을 지역사회 내에서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주민주도형 마을리빙랩’을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이미 상주시 내 24개 읍면동에서 각 2명씩 48명의 마을활동가 교육생 모집을 마무리했고, 이번 달 12일 교육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12개월 과정으로 단계별 교육을 진행한다.이렇게 양성된 마을활동 전문가에게는 마을사업 추진을 적극 지원한다. 상주시는 교육 전 과정을 이수한 마을활동가 중 20명을 선발해 우수마을 10개소에 각 마을별 사업아이템 발굴 및 분야별 전문가 컨설팅을 제공, 마을활동 전문가들의 사업계획을 구체화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사업화 자금 2억원을 투입한다. 기존의 주민자치회와 마을리빙랩을 결합해 2025년에는 마을리빙랩을 정착·확산할 방침이다.상주시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여긴다면, 시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청년들의 정착과 생계, 활력을 돕는 중장기적 청년 정책으로 청년들의 꿈을 지원 사격하기 위한 씨앗을 뿌렸고, 이제 싹을 틔웠다.마을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마을리빙랩은 마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상주시의 혁신을 이끌 수 있다.이 같은 실험은 앞으로 상주시 곳곳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며, 이것이 지방소멸에 대응할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2024-04-21

기막힌, 암호

“딩동”휴대폰 벨이 울리자 아흔의 아버지 얼굴이 환해진다. 돋보기를 끼고 휴대폰 문자를 읽더니 고개를 들어 거실 벽을 쳐다본다. 아버지는 웃음을 띤 얼굴로 휴대폰 자판을 누른다. 더듬더듬 글자를 찍어 넣는 아버지 손이 분주하다. 도대체 누구에게서 온 문자이기에 아버지 낯빛이 저토록 밝아진단 말인가?“나도 1번이다”아버지에게 나는 늘 1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또 다른 1번이 생겼단 말인가. 아버지는 문자를 발송하고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잠시 후, ‘딩동’하고 벨이 또 울렸다. 이번엔 ‘2번이에요’라고 들어온 문자에 찍힌 이름을 보고, 나는 눈물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결혼 후에도 음악학원을 하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냈다. 몸과 마음이 피로에 지쳐있을 즈음, 아이까지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면 동화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리라 다짐했던 각오는 먼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가 20개월 쯤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 보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머니, 아이가 너무 울어요. 오늘은 그냥 데리고 가셔야겠어요.”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아이를 억지로 떼어내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는 조금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날마다 내 마음을 찢어 놓았다. 그날 나는 아버지께 부탁을 했다. 아이를 보고만 온다던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놀고 있는 많은 원아들 가운데 아무리 찾아도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구석구석 다니며 찾아보니 혼자서 벽만 쳐다보고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내 이제부터 경로당에 안 가고, 니 새끼 봐 줄 테니 걱정 말고 일해라.”아버지는 그날부터 아이를 돌보았다. 장기도 가르치고, 화투도 가르치고, 자전거도 가르쳤다. 함께 고구마를 심었고 구워 먹기도 했다. 강나루에 업고 가서 돌 던지기도 하고, 기차도 타러 가고, 함께 버스를 타고, 동물 시장에 가서 토끼도 사 왔다. 뻥튀기를 사서 들고 공원으로 가서 비둘기에게 던져주는 것도 가르쳤다. 아이와 할아버지, 둘 사이에는 놀이가 하나씩 둘씩 늘어갔다. 놀이에 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다.“오늘은 1번 하고 놀까?” “아니 3번”1번은 자전거 타기고, 3번은 비둘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삶의 무료함을 아이를 통해 달랬고 아이는 아버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그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집에 온다. 그런데 아흔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하더니 청각 장애 판정을 받았다. 아이가 아무리 많은 말을 큰 소리로 해도 다 못 알아들으신다. 할아버지와 소통하고 싶었던 아이는 칠판을 하나 사들고 와서 무언가 적어두었다. 김경아 작가 1. 사랑해요. 2. 보고 싶어요. 3. 진지 맛있게 드세요. 4. 자전거 타실 때 차 조심 하세요. 5. 이번 주 토요일에 갈게요.아이는 어릴 때, 놀았던 기억을 더듬어 할아버지와 소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연구했던 것이다.“딩동” “할아버지, 2번이에요.”아이가 아버지께 보낸 문자를 보고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손자와 할아버지의 기막힌 소통, 그것은 숫자를 이용한 문자 메시지였다. 1번부터 5번까지 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문자가 올 때마다 칠판을 확인했다. 아버지는 더듬거리며 ‘나도 2번이다’라고 찍어 넣고 있는 중이다.노인 냄새난다고 아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들려오는 요즘이다. 예사로 보았던 칠판의 숫자들, 아버지에게 휴대폰 문자는 손자를 곁에 두고 어루만지는 것만큼 기쁜 일이 되어 있다. 그새 또 문자가 울린다. 5번이란다.

2024-04-21

범죄자들 전성시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4·10 총선 기간 중에 원희룡 후보의 유튜브를 자주 보았다. 소위 험지로 불리는 인천 계양 을 지역구를 자원한 원 후보는 가장 모범적인 선거운동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수능시험 전국 수석을 한 수재답게 선거운동도 점수로 매기자면 만점에 가까웠다. 후원회장을 맡은 이천수 축구선수와 함께 지역구를 샅샅이 훑고 다니는 모습은 적지 않은 감동이었다. 국회의원 3선에다 제주지사를 두 번이나 한 정치경력 중에 한 번도 범법이나 비리에 연루된 적이 없거니와 선거 공약도 시험공부를 하듯 철저하게 준비한 것을 알 수 있었다.반면 경쟁 상대인 이재명 후보는 모든 면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권력과 사법리스크 방탄용으로 국회의원 배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지역의 발전이나 민생 따위는‘하는 척’만 하는 것 같았다. 재판을 받으러 다니랴, 다른 후보들 유세장에 가랴, 자신의 선거에는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4차례나 되는 전과에다 10여 가지 범죄 혐의로 수사·재판 중인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것은 언감생심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계양을 주민들은 이재명을 선택하는,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그런 현상이 비단 그 한 곳 뿐이 아니라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불거진 심각한 문제점이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2년 형을 받아서 당연히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할 사람이 당을 만든 것도 기가 찬데, 2년 형을 받은 사람과 온갖 비리·부정의 연루자들을 영입한 그 당에 표를 몰아주어 12석이나 차지한 것은 여간 경악스러운 노릇이 아니다. 그 밖에도 범죄 혐의로 수사 중인 사람들 다수가 당선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속출했다. 그들은 당선이 되자마자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는가 하면 사법부를 겁박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범죄자들의 전성시대가 된 것이다.대한민국은 엄연히 삼권분립을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다. 입법, 사법, 행정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는데 삼권분립의 목적이 있다. 국회의 다수당이 되었다고 안하무인으로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좌지우지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저들의 만행과 폭주가 더 이상 자행되지 않도록 사법부가 나서서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범죄자들이 더 이상 날뛰지 못하게 지금 수사·재판 중인 사건들은 법에 따라 신속·엄정·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권력과 이념에 좌고우면하면서 엄정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하지 못한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 저들이 남발하는 특검법이나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고, 국회에서 통과하더라도 헌재에서 그 정당성 여부를 판결하는 것이 법치다.국민들이 지도자를 잘못 선택해서 몰락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이 그랬고, 스탈린 같은 공산주의자를 지도자로 선택한 나라들도 모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온갖 비리와 부정에 연루된 범죄자들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짓이다. 국민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2024-04-18

봄날의 새로운 변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이번 봄날씨가 무척 덥단다. 기온은 25도를 넘을 것 같고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영향으로 뿌연 대기는 미세먼지 ‘매우 나쁨’으로 예보되고 있다. 그 치열하던 선거 열풍도 사라지고 난 거리에는 벚꽃도 다 져버렸다.4월의 달력을 다시 살펴본다. 많은 기념일이 있고, 특히 우리들의 기억을 불러내는 큰 사건이 많다. 4·3 제주 사건의 희생자 추념일도 있고 16일의 세월호 사건은 아직도 명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지 못한 채 진도 해상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단원고 학생 등 300여 명의 원혼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19일은 4·19혁명 기념일이다. 1960년 3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의거(義擧), 크게 말해서 민주혁명이다.혁명(revolution)은 사회적 가치체계가 변화하였거나 그러한 변동을 야기시키는 과격한 사회적, 정치적 변동을 의미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해방과 함께 민주주의 교육이 실시되어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변화시켰고 삶의 도시화로 기존 질서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경우가 많아졌다.4·19의거와 같은 반정부시위가 민주항쟁으로 번져서 고교생과 대학생 약 3만여 명이 나라를 제2공화국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큰 선거를 치르고 나면 어디에선가 사회 변화가 꿈틀거릴 수 있다. 이 혁명이란 말은 꼭 정치적인 것에만 쓰는 것이 아니고 산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혁신들을 언급하며 우리의 뇌리에 박혀있다. 요즘 사회는 3차 디지털 혁명을 거쳐 AI와 빅데이터 등 인터넷 기술 발달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며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선거 결과가 마음을 질퍽거려 밝은 길을 달려봤다. 지난 일요일,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에서는 무형문화재 전승공연이 있었다. 포항무형문화재이수자협회가 포항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이화 도화 만발하다’라는 주제로 가야금 병창, 판소리, 살풀이춤, 농악뿐만 아니라 택견까지 우리의 고유문화를 이어 나가는 행사였다. 한여름 한겨울을 빼고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오후에 ‘신라마을’ 잔디밭에서 펼치는 공연이라, 많은 관객이 한옥의 마루에 걸터앉아 흥을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귀비고(貴妃庫)에도 내려가 연오랑세오녀의 전설도 살펴보며 포항시의 축제 활성화 노력을 헤아려 봤다.해안도로를 달려 호미곶 유채밭에 가보니 14만 평의 노란 물결 속에 휩쓸리는 상춘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가득하다. 가을에는 메밀꽃과 해바라기가 아름다운 들판을 만들게 하는 것도 신선한 변화이려니 호미곶광장으로 가서 ‘상생의 손’을 본다. 이번 주말 20일부터 이틀간 제13회 호미곶 돌문어 축제가 열린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활문어 경매 쇼와 문어잡기 체험, 가요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으니 가족들과 함께 호미곶을 찾아 바닷바람 맞으며 유채꽃 향기도 듬뿍 맡아주기를 기대해 본다.호미곶 막걸리 한 병 사서 돌아오는 길, 붉은 저녁노을이 영일만을 가득 채운다. 푸른 동해, 영일만과 호미곶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어 옛 철강 도시 포항의 위상을 뛰어넘는 관광 혁명이 일어나기를 염원해 본다.

2024-04-18

유영하와 대구·경북

홍석봉 대구지사장 먼저 유영하 변호사의 국회의원 당선을 축하한다.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가진 의문 중 하나다. 유영하가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유영하는 대구와 달서구에 과연 무엇인가.그는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달서갑 공천 신청을 했다. 달서갑과는 전혀 연고가 없다. 전형적인 낙하산이고 전략공천이다. 그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시각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유 당선인은 2004년 경기 군포에 출마, 고배를 든 후 2020년 21대 총선까지 매번 국회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법률 참모로 발탁돼 핵심 측근이 됐다. 2016년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변호인을 맡은 후 현재까지 최측근 역할을 해 왔다.그는 202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달성 사저에 둥지 틀 때 함께 따라왔다. 이때부터 대구 정치판과 연을 맺는다. 그해 4, 5월엔 대구시장 경선과 수성을 국회의원 재·보선 경선에 출전, 탈락하는 쓴 맛을 봤다. 하지만,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대구에서 달서갑 공천을 받았다. 결국, 정치 투신 20년 만에 금배지의 한을 풀었다. 7전 8기 끝에 이룬 결실이다.그는 왜 대구에, 달서갑에 공천을 신청했나. 당은 왜 공천장을 주었나. 그는 박근혜와 함께 대구에 왔고 지역 정치권에서 기회를 찾았다. 박근혜 정서에 힘입어 자신의 숙원을 풀었다.국민의힘 공관위 발표에서 공천 배경을 짐작케 한다.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당의 입장이었다. 지역민들도 처음에는 웬 뜬금없는 공천인가 싶었지만, 용산과 당 입장에서 박근혜의 형편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박근혜는 천막당사 시절 신한국당을 지켜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다. 보수를 일으켜 세운 주인공이다. 대구·경북은 국정농단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감옥살이까지 한 그를 보듬고 품에 안았다. 과실도 있지만, 연민을 느꼈다. 지역민의 정서였다.박근혜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이 지역민들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 이 연장 선상에서 달성 사저 안착을 반겼고 마음의 쉼터가 되길 바랐다.유영하는 온전히 박근혜 후광을 입었다. 본인은 발끈할지 몰라도 지역 일각에선 박근혜를 이용,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총선 과정에서도 그는 지역민과 뭔가 겉도는 느낌이었다. 타 지역구 후보 지원으로 눈총받았다. 지역민에겐 ‘밉상’이 됐다.유 당선인은 박근혜와 지역에 대한 의리와 초심을 지켜야 한다. 이를 잃는 순간 평가와 지지가 일순간 돌아설 것이다. 지역 심부름꾼과 나라의 일꾼으로 지역구 및 입법 활동에도 성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지역민과의 스킨십을 늘려야 한다. 유영하가 대구·경북에서 어떤 의미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이제 보여줘야 할 때다. ‘대구의 미래, 달서의 새 희망’이 되겠다는 선거 구호가 빛바래지 않길 바란다.

2024-04-18

봄의 불청객

우정구 논설위원 온갖 봄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봄은 계절의 왕이라 부를만하다. 많은 시인들이 봄빛의 따스함과 형형색색으로 갈아입는 봄날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했다.경주가 고향인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윤사월’이라는 짧은 문단의 시 속에 앳 된 한 소녀의 애틋한 그리움을 4월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려냈다.봄이 밝고 희망찬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처럼 불청객도 있게 마련이다. 봄에 찾아오는 불청객 중에 으뜸은 황사다.중국 내몽골 고원과 고비사막 등지에서 발생하는 모래 폭풍과 흙먼지가 우리나라로 날아와 황사가 된다. 중국서 오는 황사는 우리나라에서는 4월이 가장 많다.특히 모래바람은 중국 전역을 돌면서 다양한 매연과 화학물질, 산성비 등 유독성 물질과 합쳐져 우리나라에 오게 됨으로써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알레르기 질환은 물론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반도체와 같은 정밀기계의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지난 17일 경북에는 황사 위기경보가 발동했다. 중국에서 넘어온 황사로 당분간 대기질이 크게 떨어질 것 같다는 일기 예보다.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황사 폐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에는 황사 일수가 무려 23.1일을 기록한 바도 있다.황사의 역사는 삼국시대 기록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토(雨土)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 때는 한양에 흙비가 떨어졌다는 실록의 기록이 보이기도 했다.봄의 불청객인 황사가 기승을 부릴 시기이다.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실내서는 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창문을 잘 닫도록 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18

봄과 여성 갱년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봄은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새 학기가 시작된다. 많은 것들이 다시 시작된다. 겨울 내내 추웠던 날씨가 풀렸다 다시 추웠다 하면서 인체가 외부의 기온 변화에 대응하기 힘들고 면역이 떨어진다. 일조량은 겨울보다 많이 늘게 되어 급작스러운 일조량의 변화는 사람의 감정을 변화 시킨다. 다양한 주변 상황이 나의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하게 만든다.이렇게 봄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갱년기로 고생하는 여성은 계절 중 봄이 특히 괴롭다. 날씨의 변화가 심할수록 감정도 평온했다 뛰었다 가라앉았다 널을 뛴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열이 훅 오르고 땀이 주루룩 흐른다.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을 쉬게 되고 두근두근 거린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증상은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적은 여성은 덜하지만 증상으로 고통받는 것은 동일하다.갱년기는 폐경 전부터 폐경이 끝난 후까지를 말하지만 갱년기 증상은 월경을 하는 젊은 여성에게도 있고 꼬부랑 할머니에게도 있다. 아직 갱년기가 아닌데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 한다고 한다. 여자들의 갱년기 증상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생기는데 꼭 폐경이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나 면역력 저하 또는 신체 기능의 저하 등으로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면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봄과 같이 계절의 변화가 심하면 인체도 그에 따라 몸과 마음의 변화도 심해진다. 갱년기 여성뿐만 아니라 갱년기가 아닌 여성들도 같은 증상으로 고통 받는다.갱년기 증상을 하나씩 보면 화병의 증상과 다르지 않다. 갱년기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첫 번째로 우선되어야 할 것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여자들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가정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좋든 싫든 남편 혹은 시어머니와의 불화가 가장 많고 이에 가슴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가슴을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남편은 아내를 이해를 해주고 대화를 해야 한다.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고 아내를 챙기고 보살피면 여성들은 갱년기를 편하게 지나간다.둘째는 운동을 해야 한다.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남자들보다 근력이 떨어지고 몸이 약하다. 같은 병이 나도 몸이 건강하고 근육이 많고 튼튼하면 덜 아프고 빨리 회복이 된다. 귀찮고 우울하다고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는다. 상황만 악화 될 뿐이다. 수영 헬스 걷기 달리기 에어로빅 탁구 등등 다양한 운동이 있으니 어떤 것이라도 시작을 해야 한다.셋째 음식의 질을 바꿔야 한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신선한 야채와 고기 그리고 적당한 과일을 섭취하면 좋다. 탄수화물은 밥 두 세 숟갈 정도 먹으면 제일 좋다. 적게 먹으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건강해진다. 인체의 모든 기능이 살아난다.한의원에 방문해 갱년기 보약을 먹거나 그에 맞는 약침 시술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약재들로 구성된 한약을 먹거나 교감신경을 조절하는 한방 약침 시술을 받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모두 다 하면 제일 좋다.

2024-04-17

학습루틴 만들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작심삼일은 오랜 나의 루틴이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새 다이어리를 얻어 새로운 계획을 야심차게 적지만 한 달을 채 못 넘기고 끝이다. 새 계획을 적어 벽에도 붙여두지만 작심삼일이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아예 못 지킬 계획을 세웠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며칠 못가 흐지부지된 것만은 확실하다. 까짓 3일만에 다시 작심삼일하면 되지라며 뻔뻔한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바쁜 일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모면하고자 하지만 끈기가 없는 성격 탓을 자책하면서도 좀처럼 고치지 못한 채 살았다.그런 내가 달라졌다. 지난달 첫날부터 시작한 수영과 서예공부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잘 실행하고 있다. 일단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시간 없어 못한다는 핑계를 쓸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나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내어 오랫동안 나의 단점으로 꼽았던 작심삼일 징크스를 깨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수영은 30년 전에도 한 번 시도한 적 있으나 약 석 달 정도 다니고 그만두었다. 수영 시간 앞뒤로 챙길 게 많아 번거롭다는 핑계거리가 있었지만 끈기 부족 탓이 더 컸다. 퇴직 후에 다시 시작해보리라 했으나 코로나로 수영장이 문을 닫아 시작하지 못했다. 최근 집 부근의 수영장이 재개장해서 곧바로 등록했다. 수영을 평생 할 운동으로 꼽겠다는 의지로 매일반으로 등록했다. 옛날 배운 적이 있어 몸이 기억할 것이고, 쉽게 잘할 수 있으리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한 달 이상을 초급반에서 물 먹고 숨가쁘긴 하지만 결석 않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붓글씨 공부 역시 나의 은퇴 후 버킷리스트였다. 마침 대구한글서예협회장이신 최민경 교수님을 만난 고마운 인연으로 작년 7월부터 한글서예를 배우게 되었으나 2주만에 중단했다. 예의 그 못된 버르장머리, 작심삼일이 발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손녀 유치원 등하원, 허리 통증 등 이런저런 핑계가 생겨 버렸다. 그러나 3월부터 작심하고 시작하였다. 1주일 두 시간 공부하고, 집에서 매일 한 장씩의 숙제를 꼬박꼬박 챙기는 습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학습(學習)은 논어의 첫 문장 학이시습(學而時習)에서 나온 말이다. 학습의 반대어는 학문이나 기예를 가르친다는 뜻의 교수(敎授)다. 대학에서 전문학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학습보다 교수하면서 40여 년을 살았다. 물론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야 했지만 학습이 목적이지는 않았다.오로지 나의 몸을 위한 수영을 학습하고, 나의 글쓰기 기량을 위한 학습을 해보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습(習), 익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런던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좋은 습관이 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66일이라고 한다. 물론 개인차가 상당하여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18일만에, 못하는 사람은 254일이나 걸린다고 한다. 이제 시작한 지 달 반이 지났고 아직은 순항 중이다. 내가 평균에 드는 사람이면 좋겠다. 66일이 지나 수영과 서예가 좋은 습관이 되어 평생 가면 더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다. 작심삼일은 훌쩍 지났으니 왠지 조짐은 좋다.

2024-04-17

명태 껍질

피귀자 수필가 ‘여인과 노인’이라는 거장 루벤스의 그림 앞에 섰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가슴을 빨고 있는 부자유스러운 애정 행각에, 먼저 불쾌한 감정을 노출하기 일쑤라고 한다.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반나체의 노인을 통렬히 꾸짖던 사람들에겐 노인과 이성을 잃은 젊은 여인이 가장 부도덕한 인간의 유형으로 비춰졌을 테니 말이다. 삼류 포르노 같은 그림은 알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보게 된다.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가끔 일어나고 그 끝은 대개 아름답지 못했던 까닭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커다란 가슴을 내놓고 있는 그림 속의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이 노인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고 로마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둔 후 ‘음식투입금지’ 명령을 내렸던 것이었다.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딸은 해산한지 며칠 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감옥에 찾아갔던 것이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엔 핏발이 섰으리라.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금 밖으로 사라지려는 아버지. 여인은 가슴을 풀고 불은 젖을 아버지께 물렸다는 것이다. 무엇이 부끄러웠겠는가.마지막 가시는 아버지에게 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의 장면이었던 것이다. 부녀간의 사랑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으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아끼는 그림이라고 한다.부도덕한 작품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도 설명을 듣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감상한다. 사람들은 종종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 옛날 어른들은 종종 본질을 호도할 때 ‘눈에 명태껍질이 씌었나.’라고 나무라기도 하였다.지인 중에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꿀 등을 파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알맞은 값을 받을 판로가 부족하다보니 부탁을 받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려면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고 가끔 물건을 전달해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사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물건을 시중보다 싸게 살 수 있고, 파는 사람들은 가계에 도움이 되니 서로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주 연결을 해주었다. 할 수 있는 한 적극 이어주던 어느 날 깜짝 놀랐다.그렇게 하면서 중간에서 물건을 얻는 등 이득을 취하리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의 겹이 두꺼울수록 그림자의 깊이는 깊어지는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 오해를 받고 보니 사람 마음은 모두 같지 않음이 더 서글펐다. 수십 년 사귄 친구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되돌아 보였다. 사람들은 소개를 위해 입을 떼는 자체를 귀찮아하거나 자신에게 이로움이 생기지 않는 일에는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음도 알게 되었다.생각과 믿음에도 숨이 있다. 어떤 생각에는 숨통이 트이고, 어떤 생각에는 숨이 막힌다. 내가 한 행동처럼 좋은 일 한답시고 나서는 이는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닐까. 한번은 소개를 해주었을 뿐인데 우리 집에 보낸 걸로 착각하는 해프닝으로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말의 독한 상처에 베인 이후로 나서지 않으려고 조심하지만 또 딱한 사정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옛날엔 그냥 버렸던 마른 명태껍질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콜라겐이 많다고 알려지자 기호식품이 되었다. 튀기거나 볶은 반찬은 맛도 괜찮은 편이다. ‘눈에 명태껍질을 발랐나’라고 질책하던 말의 뜻은 아무리 얇을지라도 눈에 막을 치면 사람의 품성이나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이나 사물의 이치, 사람사이의 모든 관계에도 해당되리라. 눈에 불필요한 명태껍질을 떼고 교만과 아집과 편견을 버리면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내뿜는 세상의 향기들이 발을 헛디뎌 사라지지 않도록.

2024-04-17

근대 건축물, 계산성당

계산성당 경상감영과 서남쪽으로 약 600미터 떨어진 약령시장 일대는 대구의 구 중심가이자 근대 종교가 일찍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서상돈 고택·이상화 고택과 같은 근대 건축물이 제법 남아있으며, 지금은 대구 근대골목투어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2개의 종탑이 하늘에 닿을 듯 솟은 아주 오래된 성당-계산성당도 만나볼 수 있다.우리나라에 성당이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886년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된 다음이다. 주로 천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되었으며,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종교적 활동을 위한 기반과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쉽게 말해 자생이 가능한 성소의 마련, 즉 성당 건축에 힘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를 이용하여 한옥 양식으로 지었는데, 이는 소자본으로 기존의 건물을 개조하기 좋으며, 좌식 생활에 익숙한 신도들에게 친근함을 줄 수 있는 편리함이 있었다.지금의 계산성당도 본래는 한국식 십자형 성당(성모성당)이었다. 그러나 1901년 2월 대구에 닥친 강진에 의해 축성 1년 만에 화재로 소실된다. 당시 추위에 얼어버린 성체등(기름등) 대신 촛대를 세워놓았던 것이 화재의 원인이었다. 만약 성모성당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국내 유일의 그리스 십자형 평면에 팔작 기와지붕을 올린 45칸짜리(약 100평) 독특한 근대성당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듬해(1902) 르베르 신부는 신축 성당 건축에 돌입한다.계산성당은 르네상스적 성향이 남아있는 고딕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불린다. 건축양식을 명확히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고딕양식은 ‘뾰족하고 수직적인’ 것이 특징이다. 뾰족한 아치창문, 뾰족한 첨탑, 수직적인 지지대가 하늘에 닿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신이 하늘에서 지상을 바라볼 때 성소가 잘 보이기를 열망하기도 했다.그래서 고딕양식의 교회 평면도는 십자가 모양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스테인드글라스로 경이로움과 성스러움을 더해 종교적 존엄을 표현하였다. 계산성당도 2개의 높고 뾰족한 첨탑과 라틴십자가 모양의 평면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가 반영되어 있다. 반면에 르네상스 양식은 일명 ‘황금비율(1:1:2)’이 특징이다.황금비율은 서양에서는 고대 이래로 가장 이상적인 비례로 여겨지며, 절대적인 미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황금비율이 반영된 르네상스 건축물은 좌우가 대칭적이며 조화롭고, 아기자기한 지붕이나 동글동글한 장식이 건물에 붙어 있다. 계산성당은 전면의 종탑과 측면의 출입구가 모두 1:1의 비율로 정사각형의 안정적인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익랑(십자가 모양에서 짧은 부분) 내부는 황금비율(1:1:2)이다.계산성당은 동서로 긴 건물로 주 출입구인 종탑은 서쪽의 서성로에 인접해 있다. 2개의 종탑 베이에는 각각 반원형의 아치창이, 그 중앙의 박공에는 화려한 장미창이 설치되어 있다.그 아래 출입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서면 삼랑식 높은 천정을 따라 2열의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열주로 인해 중앙의 신랑 부분과 좌우의 측랑(복도)부분이 뚜렷하게 구분되며, 상부의 아치들이 모여 아케이드를 만든다. 건물의 측면에 돌출된 좌우 익랑에는 성가대석과 연주석이 있으며, 건물의 동쪽 끝에는 제단을 두었다. 기둥이 아치 모양으로 세워져 있어 반원형의 주보랑이 생성되었다.이러한 건축양식은 주로 프랑스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당시 르베르 신부와 설계자 프와넬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1918년 계산성당은 정삼각뿔에 가까웠던 첨탑의 지붕을 기존보다 더 뾰족하게 높이고, 동쪽 끝 주보랑 뒤로 오각형 모양의 공간을 더 달아내어 건물을 증축한다. 익랑도 설치하여 일자 모양의 건물이 십자가 모양처럼 보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성당에서 중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설치되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 프랑스 툴루즈의 앙리 제스타의 서명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상 아래에 남아있으며, 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하여 1902년 10월에 들어왔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작품이 설치된 2년 뒤, 프랑스로 보낸 로베르 신부의 편지에 ‘남한을 휩쓴 태풍으로 스테인드글라스 하나가 떨어져 나가 산산조각이 났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계산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유럽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계산성당은 대구근대골목으로 유명한 약령시장에서 서성로에 인접해 있는데, 건물의 동쪽으로는 수녀원과 사제관이, 남쪽으로는 계산문화관과 사무동이, 북쪽으로는 매일신문사가 둘러싸고 있다. 옛 사제관의 모형과 미술가 이인성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인성 나무와 성모동산의 사진들과 로베르 신부의 흉상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역사관에서 오래된 성당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김해 볼 수 있다. 근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약령시장, 그곳에 한때는 대구의 랜드마크였던 계산성당이 오랜 세월에도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4-17

세상은 상상력에 목숨을 건다

장규열 고문 세상이 먹먹해 보였던 1970년대 끝 무렵, 소설가 이병주는 ‘행복어사전’에 이렇게 적었다.“파사데나의 젊은이들은 우주정복을 꿈꾸는데, 꽃은 한 번밖에 피지 않는다.” 암울한 현실을 지나고 있었던 당시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바다 건너 청년들은 저 먼 우주를 겨냥하고 있음을 일러주었다. 동시에 꽃은 딱 한 번 필 것임을 경고하였다. 일상이 어둡고 답답하다 하여 코앞의 현실에 파묻힐 게 아니라 상상력을 발동하여 멀리 보면서 내일을 꿈꿔야 한다는 권고가 아니었을까.상상과 창의. 4월 21일은 ‘국제 창의와 혁신의 날(World Creativity and Innovation Day)’이다. 세계인들에게 창의와 혁신을 통하여 지구가 처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로 나아가자는 요청과 염원을 담아 유엔이 지정한 날이다. 공식적인 교과과정이 물론 존재하지만, 이제는 형식적인 교육내용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창의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올해는 사람들에게 창의적 영감을 불어넣으며, 그런 사람들을 연결하고 함께 행동하는 마당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테마로 삼았다고 한다.나라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내일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말하지만, 누구도 교육에 진정을 싣지 않는다. 민생을 돌본다면서 정치는 교육을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세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험한 세상을 헤쳐가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하는 소양은 무엇인가.상상과 창의. 지난 세기 모방과 추격을 거듭하며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상상과 창의로 앞자리를 유지해야 하고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으로 승부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향해 비판적 시선을 던지며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누구도 가보지 않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기존 틀을 깨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도전을 거듭해야 한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결과물을 내어놓아야 한다. 교육은 다음세대를 상상과 비전의 바다로 이끌어야 한다.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국내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협소하지만 다음세대가 걸어갈 활동 무대는 세계시장이다. 시선을 확장해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 나라 안 다툼에 매몰되어 낙심하지 않도록, 나라 밖 환경과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세상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다음세대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상을 바꿔 내도록 부추겨야 한다. 이념의 낡은 틀도 극복해야 한다. 좌와 우로 나뉘어 다투는 구태를 벗어야 한다. 건강한 보수를 충분히 이해하고 진보의 발걸음을 자신있게 내딛도록 일깨워야 한다. 보수와 진보 모두를 끌어안는 넓은 가슴을 가르쳐야 한다.이미 열린 21세기를 자신있게 걸어가는 다음세대를 길러야 한다.앞으로 백년을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기르는 다음세대가 세상을 바꿀 터이다. 교육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대한민국이 살아야 세상이 바뀐다.

2024-04-17

조선 왕실의 ‘검’

홍석봉 대구지사장 조선의 대표 도검 중 하나인 사진검(四辰劍)은 용을 상징하는 주술 목적의 벽사(8F9F邪)용 칼이다. 조선 왕실의 신령한 사진검이 경북 문경 고려왕검연구소에서 최근 다시 태어났다. 용을 뜻하는 진(辰)이 네 번 겹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사진검(四辰劍)은 청룡의 해인 올해(甲辰年), 4월(辰月), 13일(辰日), 오전 7~9시(辰時)에 만들어졌다. 장인이 6개월 정도 작업 끝에 수만 번의 단조작업과 담금질 과정을 이겨내고 완전한 검으로 태어났다. 사진검은 1m 약간 넘는 길이에 한 면에는 벽사 글귀와 용 형상이, 반대편에는 28수의 별자리가 상감기법으로 새겨졌다. 칼자루에는 사진검이라는 글자와 전통문양이 새겨졌다. 조선왕실에서 마를 물리치기 위한 참사검(斬邪劍)의 하나로 만들었던 사진검은 호랑이 기운이 담긴 사인검(四寅劍)보다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이 검은 사인검과 함께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선정된 장인에 의해서만 제작됐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만들어진 수량이 적은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유실돼 현재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다.조선왕실은 또 12년마다 한 번씩 호랑이해에 귀신을 쫓아내고 재앙을 막아준다는 사인검(四寅劍)도 만들었다. 사인검은 왕실의 종친이나 공신에게 하사했다. 조선말 고종황제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하사한 사인검 한 자루가 10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전통 왕실 검은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공도 많이 들어간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칼이다. 사진검 등에 얽힌 일화를 찾고 이야기를 덧입히면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 터이다. 새로운 K-콘텐츠의 탄생을 볼 수 있으려나./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17

울릉도 공무원,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군 공무원의 변화와 혁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의 자세가 너무 안일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실 감각이 떨어져 군이 목표로 하는 100만 명 관광객 유치가 되겠느냐는 시각부터, 설령 100만명을 유치한하고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가 될까하는 이야기가 적잖다.    실제, 요즘 울릉군청 공무원의 행정집행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면 답답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울릉도에서 랜드마크 급의 호텔을 건설하는 시공사 등의 하소연은 그 단적인 예다. 매머드 급 호텔체인을 건설 중인 A사는 울릉도 최고층 규모인 15층 규모의 호텔을 신축하고 있다.오픈하면 261개의 객실을 갖추게 돼 군민들의 기대 또한 크다. 이 시공사는 최근 공정 차원에서 울릉군에 상수도를 신청했다. 그런데 군 담당자들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귀를 의심케 했다. 16mm의 수도관을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가정용 수준이다.시공사는 도대체 상식이 있는 공급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호텔 측에서 16mm로 하겠다면 공무원은 오히려 작아서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텐데, 울릉군 담담 공무원은 261개의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호텔을 가정집 정도로만 여기고 업무를 처리했다. 울릉읍 저동리 관해정 앞 관광객을 승하차시키는 장소도 민원이 잇따르고 있으나 군 담당부서는 태평이다. 이곳은 늘 혼잡해 관광객을 승하차시킬 때는 위험천만하다. 무질서하기도 해 주민들이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책마련을 요구해 왔다.그러나 울릉도 관광객 유치, 안전, 편의 등을 총괄하는 부서 최고 책임자는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우리 부서는 단속 권한이 없고 교통계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정리한다. 관광으로 먹고 산다해도 과언이 아닌 울릉군에서 군청의 홍보 태도 또한 너무 미온적이다.  최근 울릉군과 김포시는 자매결연을 맺었다. 울릉에는 울릉공항이 공사중에 있어 김포공항과는 어떻게 연관될 것인지, 또 몇 편의 비행기가 김포와 오갈것으로 예상하는 지 등이 지역의 이슈가 됐지만 울릉군 자매결연 업무 부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서면 태하동 황토구미 관광지에 낙석을 피하고자 건설한 교량도 자료 공개를 꺼려  논란이다.  물론 위 지적사항이 작은 일 일수도 있고, 억지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실시한 것은 작은 일이라도 주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적극 행정을 펼치라는 전제 아래 시작됐음은 다 아는 부분일 것이다.  남한권 군수는 연일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정작 군의 동맥 부서들은 군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 울릉군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울산시는 3년 걸리는 허가를 1년 만에 끝낸 6급 공무원을 5급으로 승진 시킨 바가 있다.남 군수도 적극 행정에 앞정서는 직원은 우대 발탁하고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직원은 변화 할 수 있도록 주문하고 이끌어야 할 것이다. 울릉군의 행정이 제자리에 머문 상태에서 관광객 100만 명을 맞이한다면 울릉도는 교통, 숙박, 음식제공의 대란이 올 수 밖에 없을터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04-17

상황인식이 조직문화를 바꾼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조직과 기업에 혁신을 넣으면 건강한 조직,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난다.인식에 오류가 생기면 판단 오류가 생기고 판단 오류가 생기면 방향 설정이 틀어진다. A방향으로 가는 길이 C방향으로 틀어지면 기업은 불협화음이 생기고 조직문화가 실패하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경영자와 조직을 이끄는 직책 보임자들의 잘못된 인식에 의한 판단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일본 히로시마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벤다선광공업은 포스코 선재 제품을 사용하여 자동차 링 기어를 만들고 있는 고객사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하고 직원 50명에서 300여 명으로 성장한 전문경영인체제의 일본계 기업으로 TPM 세계경진대회를 출전하기 위해 11개월째 활동하고 있고 생산관리에 자부심이 강한 기업이다.조직과 영업, 생산, 납품까지 진단한 결과와 낮은 활동 수준을 설명했다. 사장과 직책간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 이유를 설명하니 공감은 하는 데 현재 지식수준에서 어렵다고 했다. 생산공정은 선반 가공과 용접, 도금, 검사 공정으로 공기구 보관대는 작업자의 일의 편리성보다 보여 주기식 활동이었고, 생산 공장장과 수주를 받아오는 영업부장과 일의 소통이 어려웠다. 중소기업은 영업에 70% 비중을 둔다고 하지만 116종의 자동차 링 기어를 생산하고 있는 공장은 생산 지시가 수시로 바뀌고 제품 창고의 재고 파악이 잘 되지 않아 고객과 생산 대응에 늘 아교가 있었다.고객이 자동차 링 기어를 주문하면 생산 지시를 내려 생산하고 공급하는 종합 프로세스 개선을 프로젝트로 설정하여 영업부장과 생산 공장장이 매월 미팅을 했다. 영업부에서 고객 마케팅을 할 때 즉흥적으로 주문 받지 않고 납기 15일 표준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주문을 받아 생산 스케줄의 혼란을 줄여 나갔다. 또한 자원관리시스템인 ERP를 도입하여 공정 재고와 완성 재고를 실시간 파악하여 생산 스케줄과 제품 공급을 원활하게 대응하게 했다. 모든 작업장에 필요한 공구나 도구는 인체공학적으로 어깨와 허리 위치에 비치하여 팔을 뻗으면 쉽게 쓸 수 있게 일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높였다.혁신의 성공의 원리는 5가지 벽을 넘어서야 한다. 사실에 입각한 상황 분석으로 올바른 인식의 벽, 정확한 판단으로 결단의 벽, 조직원 모두가 공감하는 방향과 목표의 공유의 벽, 좋은 팀워크로 행동의 벽과 지속적인 실행으로 반복의 벽을 넘어야 비로소 혁신활동을 성공할 수 있다.사장과 영업부장, 공장장 등 의사 결정의 중심에 있는 직책간부들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인식의 오류는 지식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선입견과 상황분석이 미약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첫번째 인식의 벽을 넘지 못하는 기업이 70% 차지한다. 인식이 잘못된 판단으로 가면 조직은 혼란에 빠지고 비효율적인 일의 문화와 잘 나가던 기업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는 경우도 발생한다.혁신 성공과 기업 경쟁력을 갖춰 지속가능 경영으로 가는 길은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상황 분석과 인식 오류, 판단 오류를 예방하는 길이다.

2024-04-16

자연에서 배우는 협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벚꽃이 폭죽처럼 터지듯 들끓던 민심이 4·10총선으로 표출됐다. 정권 심판론이 우세해서 야당의 압승으로 결판나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그러나 언제까지 폭죽처럼 터진 승리에 도취해 자만한다거나, 참패의 충격에 빠져 낙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듯이(花無十日紅), 금세 벚꽃이 진 자리마다 연둣빛 새순이 손을 내밀고 잎새들의 잔치를 준비하며 생동하는 봄날의 기운이 왕성해지고 있다.봄꽃은 기후나 주변 여건에 따라 조금 늦게 필 수도, 한 해 또는 몇 해 건너 필 수도 있으니, 이번의 선거결과가 여야에 있어서 결코 현재나 미래 모습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듯이(陰地轉 陽地變) 세상에 영원한 것도, 영원히 머무는 것도 없다. 당락이나 성패, 행불행 따위는 끝없이 돌고 돌 뿐이다. 말이 가는데 소도 갈 수 있듯이(馬行處 牛亦去), 기회가 다시 올 때를 대비해 꾸준히 노력하고 추구한다면 성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꽃자리를 내주면서 작은 열매가 맺히거나 잎새를 불려 나가는 나무들은, 꽃이 많이 피거나 열매를 적게 맺음에 상관없이 묵묵히 수액을 길어 올리고 광합성작용을 하며 성장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연초록이나 담록, 진초록 빛깔로 산과 들을 물들이며 연이어 잎새를 드리우는 것은, 어쩌면 대지의 광활한 캔버스에 봄날의 신명난 붓질로 생명의 조화로움을 채색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대립하거나 반목, 질시하는 일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어울리다가 온통 잎새들의 잔치로 초록의 싱그러움을 뿜어 올리고 있다.대화와 타협, 조정의 과정이 생명인 정치판에서도 이 같은 자연의 조화로움이 깃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의 무수한 잎새 같은 정치인들의 온갖 말이 공염불이거나 일방적이고 배타적이며 어불성설이라면 결코 초록동색의 순리적인 조화로움에 근접하지 못할 것이다.과반을 과신하여 횡포나 전횡을 일삼고 소수에 대한 안배와 양보가 없다면 나무와 숲에서 볼 수 있는 상생과 협치의 지혜로움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통과 신뢰, 타협과 협력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거나 민의와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다면 급기야 자가당착에 빠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하지만‘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상황이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수많은 견해나 요구, 변수로 인해 돌연히 변화할 수 있기에 각종 현안에 대한 섣부른 단정이나 취사, 조율을 해나가기가 극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일수록 견제와 균형의 열린 사고로 대화와 소통의 실마리를 찾고, 공생과 공동선의 가치를 기반으로 대의명분과 국익에 보탬이 되는 합일점을 도출하는 통찰력과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주위 사람들과 친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나 부화뇌동으로 편향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야 말로 주체적인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들이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2024-04-16

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한 번쯤은 복수를 꿈꾸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겪는 모든 것에 미숙했던 시기에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상처받고, 때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기도 하고, 가끔 자신이 가진 일부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돈이나 집 같은 유형의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나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은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 같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박탈당하는 것은 더욱 끔찍하다. 하물며 내가 인간임을 유일하게 증명해주는 자존심은 어떤가. 자만심이나 질투에 의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존엄을 침해 당하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그럴 때 찾아오는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복수라는 원한의 감정뿐이다. 그것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없는 자기혐오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인 우리는 누구나 현재 복수를 꿈꾼다. 비록 실행할 수 없거나,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한켠에는 복수에 대한 환상이나 원한의 감정을 가지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를 복수를 느리고 지루하게 진행하고 있는 와중일지도 모른다.복수를 꿈꾸는 원한의 감정이 인간에게 너무나 익숙한 감정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복수라는 테마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문학 작품에서 늘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단언컨대, 복수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행위 중에서 가장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스펙터클한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니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복수는 당연하게도 여러 번 되풀이되어 읊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생존과 존엄을 박탈당할 위기에 내몰린 주인공이 결국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복수를 행하는 서사의 짜릿함은 독자인 우리를 가장 감정적으로 자극한다.그런 의미에서,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00E8re, 1802~1870)가 1845년에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은 복수라는 주제를 구현했던 문학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복수의 서사적 문법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어린 나이로 커다란 배의 선장이 되고,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을 약속하는 약혼식장에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협력해 프랑스 황실에 반역했다는 혐의로 잡혀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는 그를 시기하는 이들의 질투와 탐욕에 의해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명예,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잃어버리게 된다.사실 이 에드몽 당테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1814년에 엘바섬에 유배되었을 때, 그곳에 배를 정박해서 탈출을 도왔다는 명목이었다. 뒤마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등장해서 격변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 위에, 인간의 탐욕과 질투로 인한 누군가의 몰락을, 그로 인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복수를 향한 처절한 여정을 그려냈다.하지만, 복수라는 것은 마음먹기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쉬운 일일까. 에드몽 당테스는 감옥에서 파리스 신부를 만나 탈옥을 할 수 있게 되고, 그가 남긴 막대한 재산을 물려 받아 복수의 대명사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다. 그리고서도 평생에 걸쳐 집요하고 느린 복수를 결국 완성한다.인간은 누구나 복수를 꿈꾼다. 우리가 에드몽 당테스의 복수에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안고 살 수밖에 없는 낯익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4-04-16

낭만을 사는 값

앞산 달비골은 우리들 낭만 놀이터였다. 방학을 맞아 약속한 날짜가 돌아오면 동아리 남학생들은 손수레에 장작을 싣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올랐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날은 동아리 선후배 단합의 장이었다. 오르막을 만날 때마다 무거운 손수레를 미는 건 고역이었으나 후배들이 장작을 나르는 건 전통처럼 되어있었다. 선배들은 읍내 지서에 동아리 모임 허락을 얻은 후 산 중턱에 몇 동의 텐트를 쳐놓고 후배들을 기다렸다. 여학생들은 각자 맡은 찬거리를 싸 들고 흙먼지 이는 길을 걸었다. 누군가의 어깨엔 기타가 걸려있었고 불룩한 주머니엔 하모니카도 들어있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숲은 깔깔거리고 마주 웃었다.신나게 공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다가왔다. 선배 언니들은 카레라이스며 볶음밥, 김치찌개 같은 걸 망설이는 법 없이 척척 차려냈다. 후배들이 어설픈 설거지를 마치면 모두들 숲속 공터로 모였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촛불을 손에 든 우리는 저마다의 꿈을 마음속에 새겼다. 누군가 언덕 위에서 묶인 줄을 따라 불씨를 내려보내면 화들짝 놀란 밤의 골짜기는 갑자기 소란해졌다. 우리는 높이 치솟는 모닥불 앞에서 기타를 퉁겼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으며 신들린 듯 몸을 흔들었다. 타오르는 모닥불과 젊은이들의 열기로 주눅 든 달빛마저 시들해지면 새벽이 뿌옇게 밝아왔다. 꼽아보니 마흔 해가 지난 일이다.지난해 여름 두 아이가 휴가를 받아 함께 내려온다고 했다. 직장이 서로 달라 휴가를 맞추기도 어려울 텐데 각별한 남매의 정이 기특했다. 게다가 나 더러 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정중히 물어오기까지 했다. 기억에 오래 남을 여행을 하고 싶었다. 곰곰이 계획을 짜다가 문득 달비골 생각이 나서 캠핑을 가자고 했다. 종종 전해 듣기로 코로나 이후 아들은 골수 캠핑족이 된 모양이어서 장비 걱정은 없을 듯했다. 더구나 낚시에도 꽤 이력이 붙어서 아들이 낚아 올린 생선회를 맛볼 수도 있을 거라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아이들은 흔쾌히 응했고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 캠핑장도 미리 예약해 놓았다며 지도를 공유해 주었다. 바다 바로 곁에 있는 캠핑장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거느린 근사한 곳이었다. 함께 사는 강아지도 눈치를 챘는지 사방으로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한창때를 지난 평일의 캠핑장은 한산하고 깨끗했다. 어디 한 곳 강아지 배설물이 널브러진 곳도 없었다. 깨끗한 샤워장과 잘 갖춰진 주방, 있을 것 다 있는 매점을 보며 캠핑장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편리함이 추억까지 길어 오진 않는다. 가까스로 부모님의 허락을 얻고 동아리 친구들과 달비골로 향하던 날을 떠올려 보았다. 산짐승 소리만 들리는 골짜기에서 계곡물로 밥을 짓고 서툰 설거지를 하고 밤을 꼬박 새우며 우정을 돈독히 하던 그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두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주로 오토캠핑장을 다녔으므로 캠핑의 불편함이 많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들은 제대로 된 캠핑의 낭만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잘 갖춰진 장비가 낭만을 대신해 준다고 여길지 모른다.짐을 부리고 텐트를 치기 바쁘게 아들은 빤히 보이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겼다. 어릴 적 남해 어디 섬에서 첫 바다낚시의 손맛을 경험한 아들은 그 짜릿함을 온몸에 묻어두고 지낸 모양이었다. 성인이 된 아들은 가끔씩 월척을 낚은 사진을 내게 전송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벼르던 날의 낚시는 성적이 좋지 않은 법이어서 어린 노래미 몇 마리를 낚아 돌려보냈을 뿐이다. 나 대신 장을 봐온 아이들은 소고기를 굽고 와인을 따르고 차돌 된장국을 끓여 저녁 식탁을 차렸다. 자식 키운 보람 같은 게 언뜻 느껴졌다. 저녁상을 물리자 아들은 매점에서 사 온 장작을 준비해 온 화로에 넣고 모닥불을 피웠다. 우리는 깊어가는 여름밤을 ‘불멍’을 하며 보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텐트에서도 당연한 절차라는 듯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백석탄을 낀 신성계곡 물빛이 한꺼번에 핀 봄꽃들로 하여 눈이 부시다. 아직 드문드문 남은 산벚이 사람의 마음을 사무치게 한다. 일 년에 단 한 번 산이 웃는 시기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는 또 목마른 사람처럼 산벚 피는 시기를 기다릴 것이다. 박월수 수필가 가까운 캠핑장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추억을 쌓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뜨거운 봄을 지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우리 가족이 캠핑을 다녀오며 남긴 탄소발자국은 얼마쯤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지구 환경에 너무나 무지한 사람이었다.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양껏 고기를 굽고 와인병을 따고 장작을 지폈다.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건 권할만한 일이다. 해변 혹은 숲에서 온전히 자신을 대면하는 시간은 삶의 소중한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점점 가열화되는 지구를 생각한다면 화석 연료의 사용은 지양해야 옳다. 최소한의 소비가 지구의 수명을 조금 더 연장하는 길이란 걸 기억한다면 아무리 좋아하는 캠핑이라도 현재의 절반으로 줄여보는 건 어떨까. ‘불멍’을 위한 모닥불을 지피기 전에 한 번 더 지구별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보라고 캠핑을 즐기는 아들에게 전화 한통 넣어야겠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202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