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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소한 것은 없다

무슨 일이든지 직접 겪고 나서야 공감하기 쉽다. 커피를 즐겨 마셔도 속 쓰리지 않고, 불면에 시달리지 않던 호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언니는 커피를 마실 때면 지나치게 신중했다. 하루에 두 잔 정도 마셨다면 아무리 입맛에 당겨도 더 이상 마시질 않았다. 면도날로 오려내듯 속이 따끔거리는 데다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젊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마셔도 속이 쓰리기는커녕 잠만 잘 잤다. 언니가 별나다고 치부했다.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요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커피를 마시면 속이 콕콕 쑤시고 불면의 밤도 각오해야 한다. 이 오묘하고 불쾌한 경험이 잦아진 뒤에야 언니가 헛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당사자가 겪어 보기 전에는 완전하게 공감하기 힘든 것이다.병적인 징후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고소공포증을 느끼는 부류이다.`바이킹`이란 놀이기구가 처음 나왔을 때 주제도 모르고 올라탔다가 혼비백산을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대둔산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 십 미터 이상 가파르게 뻗은 철제 사다리를 오기 하나로 도전했다가 눈물바다가 됐다. 되돌아설 수도 없는 그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는 심정은 끝없는 지옥 밑바닥을 헤매는 것과 같았다. 허벅지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옥죄어왔다. 공포심의 절대 풍경이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소 공포 체질이 아닌 사람들은 이해를 잘 하지 못한다. 그것쯤이야 한다.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 없으니 공감하기 쉽지 않아서 그렇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세상엔 하찮은 것도 사소한 것도 없다. 아픔은 아픔이고, 공포는 공포일뿐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덜 아프고, 내가 느끼지 않았다고 덜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섣불리 사물이나 대상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사소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으므로./김살로메(소설가)

2012-09-19

세상의 온도

불편해야 진실에 가깝다. 따뜻하고, 다감하고, 온화한 거리엔 희망이 넘쳐나긴 한다. 하지만 그 희망은 대책 없기 일쑤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좋은 생각 가득한 월간 잡지를 읽는다고 세상이 좋은 것으로 넘실대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삶의 실체는 언제나 도덕적, 미적 판단을 유보한 뒷골목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낭만성이나 연민의 눈길을 앞세우지 않은 채 그곳에 발 디뎌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쉽게 생의 뒷골목을 들여다 보려하지 않는다. 구차하고 불편부당한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까지 제 영혼을 구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파랑새를 찾는 틸틸과 미틸처럼 희망이란 아득한 꿈을 찾아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나은 삶이라고 은연중 배웠기 때문이다.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에서도 여전히 세상은 희망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말한다. 너저분하고 적나라한 화면은 트라우마 깊은 감독 내면의 분신처럼 다가왔다. 관람자는 불쾌하고 불편한 화면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평범한 눈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삶의 넌더리를 날 것으로 훑어대는 불친절한 카메라의 눈. 어쩌자고 감독은 저 비루하고 음산하고 가학적인 구원의 세계로 우리를 잡아끄는가.불편하다고 외면할 수는 없다. 지난한 세월, 감독에게 뱄을 상처와 아픔의 철학이 세상을 향해 공명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나온 그가 말했다. `음침하다`는 세간의 그의 영화 선입견에 대해 `영화는 제가 바라본 세계이고, 제가 본 세상의 온도를 표현한 것`이라고.세상은 살아내는 자마다 다 다르고, 그 삶을 바라보는 온도 또한 각자 다르다. 평범하고 미온적인 온도보다 싸늘하고 냉정한 온도가 더 진실에 가깝다는 건 언제나 김기덕이 말하는 방식이다. 불편해도 내가 김기덕 영화를 신뢰하는 이유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18

바위에 새기는 말(言)

사람은 기록의 동물이다. 욕망하고 기원하는 것을 마음에만 새기면 누가 알아 줄 것인가? 맘과 맘으로만 신을 만날 수 있었다면, 인류사를 통틀어 그토록 많은 신을 위한 제단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간절한 약자로서 신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신에게 보낼 그 소망의 말들을 새기는 게 선사시대 사람들의 최대 고충 중 하나였다. 문자가 없던 그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흔적 남기기가 바위에 뭔가를 새기거나 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영원에 호소하고 싶었던 그들은 그렇게 암각화를 우리 곁에 남겼다.볕 좋은 날이었다. 지인들의 안내로 칠포리 곤륜산 기슭 암각화를 보러 갔다. 바위에 새긴 마음의 소리를 대하는 첫 느낌은 `너무 먼 당신`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고래, 거북, 사람 등 실체가 확실한 그림만 상상하다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만 한 그림을 만나는 순간 당황했다. 잠시나마 이 바위그림이 청동기시대 이후 까마득한 시간 여행 중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멀리서 봤을 땐 의자 같아 보였으나 가까이서 보니 방패나 실패 또는 칼자루 모양 같았다. 무슨 그림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기야 조상들이 내던져준 추상의 의미 앞에서 구상적 실체를 의문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림의 숨은 의미 찾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지모신일 거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의 말씀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도 않았다.다만 그 옛날부터 사람은 생각하고, 기록하기를 욕망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 좋고 산 밝은 그 터전에, 하염없이 소원하고 기원하는 실체적 진실로서 우리 조상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숙연해지는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17

김기덕의 신발

김기덕 감독이 화제다.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쾌거 못지않게, 수상식 때 입은 옷과 신었던 신발까지 관심을 받는다. 대충 틀어 올린 은빛 머리칼과 소박한 듯 허름한 갈색톤 개량한복은 무척 잘 어울렸다. 사진 기자들이 찍어 올린 낡고 구겨진 신발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김기덕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제 참석용으로 급히 산 그 한복은 이백만 원이 훨씬 넘는데다, 구겨 신은 운동화 역시 스페인 산 유명브랜드로 삼십 만원이 넘는단다. 일견 남루해 뵈는 그의 패션 감각을 동정했던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전 패션이야말로 김기덕을 더욱 김기덕답게 표현했다고 나는 믿는다.영화제는 다가오고 옷은 적당히 입어야겠고, 아무데나 들른 곳이 고가의 옷집이었을 뿐이라고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말한 바 있다. 신발까지 갖춰 신는 게 귀찮아, 이미 내 몸이 된 것 같은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갔을 지도 모른다.`예술가란 언제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기 귀에 들려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 솔직하게 적어놓는 열성적인 노동자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다. 이 말을 김기덕 감독에게도 빗대볼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일관되게 자신에게 귀 기울였으며, 그 마음 한 쪽을 솔직하게 스크린에다 담은 열성적 노동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예술은 누가 뭐래도 사기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사기를 쳐서라도 희망 또는 진실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그 노정에 편하게 구겨진 신발 한 켤레쯤 있어야 되는 건 당연하다. 감독도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도 각자의 영역이 있다. 깨끗하고 반듯한 구두를 신고 시상대에 오를 사람은 많다. 김기덕은 뒤축 접힌 낡은 운동화를 신을 때 제격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14

눈썰미

눈썰미가 없어서 곤란할 때가 많다. 한 마디로 오해 받기 쉽고, 그 때문에 자책하기 일쑤다. 우선 주부로서 보자면, 냉장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겨자 소스나 케첩이 든 칸을 찾아내지 못하고, 캔맥주가 남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매번 나는 헤매고 금세 다른 식구들은 잘도 알아낸다. 딱 보면 아는데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간단다. 사람 보는 눈썰미라고 예외일 리 없다.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한, 몇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 번 봤더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주 본 동네 병원 의사도 가운을 벗으면 알아보지 못한다.오늘도 그랬다. 독서클럽 한 회원이 오래 전에도 나와 같이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더 당황했다. 내 눈썰미 없음이 또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잘 기억해주는 것도 인간관계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같은 상황에서 한쪽은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다른 쪽은 눈치조차 못 챈다면 그보다 민망하고 미안할 데가 있을까.이러니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부터 하게 된다. 다음에 저 사람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강박 관념이 생기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면서, 왜 기억하면 좋은 것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까? 지우고 싶은 것은 지우고 떠올리고 싶은 것만 남기는 마법의 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람이 완벽하면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질질 흘리고, 풀썩 주저앉고, 쩔쩔 매봐야 진정 산다는 것의 숭고함을 알게 된다. 완벽한 일상만 꾸린다면 세상이 제 위주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명민한 눈치 때문에 피곤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어설픈 눈썰미가 가져다주는 자책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위안해보는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13

닭개장

지인과 무슨 얘기 끝에 닭개장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얼큰한 그 국을 먹어 본 지도 까마득하다. 그 시절을 불러내고파 `닭개장`이라고 자판을 치는데 자꾸 빨간 줄이 쳐진다. 표기법이 잘못 되었나? 내친 김에 옳은 표기법을 찾아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 `닭계장`이 아니라 분명 `닭개장`이라고 국립국어원에서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육개장, 닭개장이라고 말 할 때 `개장`은 개장국에서 온 말이다. 개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국이 개장국인데,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으면 육개장,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이 되는 것이다.어렸을 때 시골에서는 개장국이 흔했다. 여름한철 집집마다 키운 누렁이는 그 국의 원재료가 되어 가마솥 속으로 사라졌다. 개장국을 못 먹는 어린 영혼을 대신해 엄마는 닭 모가지를 비틀고 털을 뽑아 닭개장을 끓여주었다. 그 때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잘게 찢은 닭살과 푹 곤 우거지, 고사리 등이 어우러져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내던 국. 손수 키우던 가축을 잡아 먹거리로 만든 행위는 같았건만, 어린 입맛은 개장국은 거부해도 닭개장은 허락했다. 동네 어귀, 껍질 벗겨진 채 장대에 매달려 있던 개들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지금도 나는 소위 보신탕은 가까이 하지 못한다.이른 나이에 도회지로 나온 뒤로는 그 국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닭개장은 내게 그렇게 시골생활과 어울리는 음식으로만 남아 있다. 내친 김에 지인들이랑 유명하다는 국밥집을 찾았다. 애석하게도 메뉴엔 닭개장이 사라지고 없었다. 잔품이 많이 들고 수익도 신통찮아 메뉴를 바꿨단다.닭개장을 대신한 `온밥` 앞에서 옛 시간을 돌려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닭개장 맛 자체가 아니었다. 걸쭉하고 매콤했던 그 추억의 시간을 한 숟갈 깊이 떠먹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12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관련 재판 과정이 점입가경이다. 그 책의 절도 혐의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자신의 억울함만 풀면 피고는 책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단다. 앞선 민사 재판에서 책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원고 역시 책만 돌려받으면 기증하겠다고 서약서를 쓴 바 있다. 책은 피고가 꼭꼭 숨겨 두고 내놓지 않고 있다. 실물 없는 상황에서 나온 양측의 주장과 재판부의 판결이라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제가 된 상주본 말고도 한 부가 더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 때 안동에서 발견된 것인데, 전형필 선생의 노력으로 현재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보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을 만큼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다. 개인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문화재를 지켜온 선생에게 귀하지 않은 유물이 있었을까만 6·25전쟁 피난 때도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어 갈 만큼 아꼈다. 전문가들 역시 해례본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국보 중의 국보로 여기고 있다.크게 보아 훈민정음은 해례본과 언해본이 있다. 1446년 간행된 해례본은 쉽게 말해 한자로 된 풀이서인데,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의미, 사용법 등이 소개되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어준다. 우리가 학교 때 열심히 외웠던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의 훈민정음 서문은 월인석보에 수록된 한글 해설서인데 세조 때 간행된 언해본이다.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주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그 책이 하루 빨리 공개되고, 더 이상 훼손됨이 없이 문화유산으로서 제 가치를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상고심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피고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시민으로서 초조하고 안타깝기만 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11

재봉틀

발판 달린 재봉틀 하나 마루에 놓여 있다. 이른 햇살이 창 넓은 동쪽 집 마루 깊숙이 내려앉는다. 햇발 곧게 받은 재봉틀의 돌림바퀴가 투명하게 빛난다. 몸체를 받치는 테이블 위에는 자투리 꽃무늬 천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 순서에 맞게 더듬더듬 실을 꿴 엄마는 돌림바퀴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장방형의 페달을 밟는다. 앞뒤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발판 위의 엄마 발. 시공간을 넘어 잠시 아련한 기억의 창가로 떠나게 하는 건 순전히`히다리 포목점`때문이다. 히다리 포목점은 엄마의 재봉틀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다다다다, 소리를 내는 재봉틀 발판 곁을 주인공 마리오는 안식처로 생각했다.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타는 느낌으로 혼자만의 황홀한 시간 여행을 한다. 순한 모리오와는 달리 그 시절 나는 격자무늬 엄마의 재봉틀 페달이 창살 같다고 생각했다. 숭고한 노동의 다른 이름인 쉼 없이 돌아가는 그 소리에 동조 없는 연민으로 일관했다. 엄마의 삶이, 한 가계의 일상이 좀 더 환한 꽃무늬로 피어나기를 바랐다.상처 많은 청년 모리오는 엄마가 죽은 뒤 가보 같은 재봉틀을 자신의 아파트로 옮겨온다. 그리곤 엄마처럼 바느질을 한다. 스커트 만들 꽃무늬 천을 찾아 몇 시간이나 헤맨 끝에 검은고양이 `사부로`씨의 안내로 히다리 포목점에 이른다. 모리오가 아닌 나는 그런 시간이 오면 엄마의 재봉틀을 소중히 간직하게 될까? 재봉틀의 기본조차 모르는 나는 바느질은커녕 모리오처럼 꽃무늬 천을 찾아 오래된 섬유 거리를 헤매지도 않을 것이다.다만 꽃무늬 천으로 만든 엄마의 다양한 베갯잇을 보면서 재봉틀 페달을 돌리던 엄마 발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모리오가 제 엄마의 꽃무니 스커트를 재현할 때, 나는 가만 엄마의 베갯잇에 얼굴을 묻고 히다리 포목점 그 치유의 골목을 꿈속에서나 기웃거려 보는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10

착한 식당

세상사 돌아가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은 먹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오죽하면 `먹거리 X파일`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을까. 식자재를 살피고, 식당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며, 때로는 조리 과정의 충격적인 실상을 고발하기도 하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먹거리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 프로그램 중 `착한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주변 제보를 바탕으로 철저한 검증을 거쳐 타당성이 있을 경우 해당 식당을 착한 식당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암행 취재에 재검증 과정 등,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나름 유익한 프로그램이다.가끔씩 친구들과 가는 짜장면집이 있다. 여름내 덥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다가 오늘 드디어 그곳에 들렀다. 그 집에서 차려지는 건 짜장면과 단무지만이 아니다. 티끌 하나 없는 정갈한 분위기, 무뚝뚝한 주인장을 대신하는 잔잔한 음악, 안으로 다져 둔 주인의 정성까지 만나게 된다.손수 채취해서 덖은 수국차가 전식으로 나오고, 짜장면이 끝나갈 즈음이면 자연산 감자튀김과 즉석에서 갈아낸 커피가 후식으로 나온다. 짜장면 한 그릇 시켰을 뿐인데 황후의 밥상이 따로 없다. 혀에 착착 감기는 맛집이 아니니 바쁘지 않아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주인의 마음 씀이 천성으로 고운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텃밭에서 가꾼 호박잎과 고추까지 덤으로 싸주는 주인장을 뒤로 하며 착한 식당에 대해 생각한다. 그 짜장면집이야말로 내가 선정한 내 맘대로 착한 식당이다. 식재료와 조리과정에 거짓이 없고, 서비스와 위생 상태가 좋은데다 적정한 가격을 유지한다면 객관적으로 착한 식당의 합격점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착한 식당의 제 일 조건은 음식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주인이 담백하면 그 음식에 거짓이 낄 리 없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07

당신 곁의 공

피지 모누리키 섬에 가야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기억해내기 좋은 오후다. 완전한 고립을 즐길 맞춤한 시간이다. 아파트 너머 강 물결은 잔잔하고 담장 밖 거리의 차 소리조차 새어들지 않는다. 그 섬에 가서 희고 둥근 공인 윌슨과 하룻밤을 지새우리라. 피범벅이 된 손바닥을 그 몸에 찍어 사람 얼굴을 그려 넣으리라.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고립감이 찾아오면 맘껏 튕겨 울적함을 달래보리라. 피지의 모누리키 섬이 배경인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개봉한지 십년이 넘은 영화는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무인도에 갇힌 남자는 같이 떨어진 소포꾸러미 중 윌슨 상표가 붙은 배구공을 윌슨이라 이름 짓고 친구 삼는다. 삶에 대한 열망과 운명에 대한 원망이 혼재된 4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남자는 제 자리로 돌아온다.원시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해서 우리 삶이 온전할 것인가. 영화 제목처럼 산다는 건 저마다 망망대해에 버려져 표류하는 것과 같다. 살아갈 희망이 사라진대도, 어긋난 사랑이 부서진대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다.이제 남자는 새로운 삶의 지표를 설정해야 한다. 황량한 사거리에 한장의 지도를 든 남자. 저쪽으로 가면 텍사스고 이쪽으로 돌면 캘리포니아지요. 낯선 아가씨의 익숙한 친절을 뒤로 하고 담담히 지도를 접는 남자. 하늘색 티셔츠 안으로 꿈꾸듯 바람이 일고, M자로 벗겨진 남자의 이마 위로 생에 대한 호기심이 얼비친다. 오른쪽으로 입 꼬리를 자주 올리는 남자가 독백을 한다. `살 만한 게 인생이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솟을 테고, 그 세파에 무엇이 실려 올지 어떻게 알아?`결말을 알 수 없는 그 여정에도 빠져서는 안 될 게 있다. 윌슨이란 이름의 배구공 하나. 소통과 위안을 주는 그 어떤 소품도 남자의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06

자식보다 가까운 이웃

전화를 자주 하느냐 안 하느냐로 효·불효를 따진다면 나는 불효자에 속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속은 그렇지 않겠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한다고 엄마는 애써 위안하신다. 연세에 비해 건강한 축이기도 하고 자식들 전화에 애면글면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걸로 효도를 대신하는 셈이다. 며칠 전 태풍이 왔을 때야 걱정이 돼 전화를 드렸다. 형제 중 가장 늦게 안부를 물어 온다며 듣기 좋은 투정을 부리신다. 별 일 없으셨느냐는 의례적인 인사에 그럴 리가 있었겠냐고 기다린 듯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다른 형제들에게 몇 번이나 쏟아놓았을 그 황망했던 사건은 이러했다.성당에서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는데 초로의 사내가 마당에서 서성이더란다. 뉘신가 했더니 엄마 소맷자락을 붙잡고 지붕으로 올라가더란다. 맙소사!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사내가 보여준 장면은 반쯤 허빈 기와로 만신창이가 된 지붕이더란다. 아침나절부터 몰래 지붕에 올라가 장난감 기와를 만지듯 한 장 한 장 뜯어냈던 모양이었다.이웃집 도움으로 경찰이 달려왔다. 안면부지인 사람이 남의 집 지붕은 왜 뜯었냐니까 태풍에 비샐까 손봐주려 했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예전에 지붕 개량 일을 한 적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우발적 소행으로 잠정결론이 났단다. 오뉴월 닭이 오죽하여 지붕에 올라갈까, 라며 엄마는 사내에게도 사정이 있을 거라며 연민했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기도 잠깐, 지붕 허빈 사내를 위해 며칠 째 기도하는 중이라 했다.해프닝을 지켜본 이웃과 성당 사람들이 합심해 지붕을 도로 덮어 주시더란다. 팔순을 훨씬 넘긴 엄마가 송수화기 너머로 하는 말 - 이웃은 자식 보다 가깝고 늙을수록 믿는 데가 있어야 한데이. 자식 말고 의지할 데가 있는 엄마의 삶이 감사할 뿐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05

매스게임

의미 있는 사진전 하나가 개최된다. 서울 안국동 한 갤러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라는 타이틀로 이달 말까지 전시한다는 소식이다. 일간지 정치부 사진 기자 출신의 최재영 사진가의 엄선된 작품을 모았다. 역대 일곱 명의 대통령과 당시 대선에 도전한 후보 등 사십여 점의 모습을 담고 있단다. 전시회를 알리는 소식 중 유독 눈길이 가는 한 컷의 사진이 있다. 전국체전 개막식 스탠드 매스게임에서 연출된 전두환 부부의 얼굴상이다. 카드섹션이라 불리는 그 작업은 그 시절 흔히 행해진 권력자를 향한 강제된 퍼포먼스였다. 몇 컷의 장면을 얻기 위해 주로 1천명 이상의 고등학생이 동원됐다.그 시절 학창 시절을 보낸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서로 다른 학교에서 모인 남녀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내용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매스게임 연습에 매달려야만 했다. 대형에 맞춰 훌라후프를 던졌다, 감았다를 수도 없이 하는 사이 여름이 깊어갔다. 이성을 가까이 접할 수 있고, 수업을 빼먹는다는 기쁨만으로 힘든지도 모르고 뙤약볕을 즐기던 시절이었다.애국이란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던 사회, 집단의 힘을 과시하던 사회, 권력자 개인을 추앙하게 만들던 사회, 그런 억눌림이 일상화되었어도 절실하게 자각하지 못했던 사회. 이런 일이 불과 삼십 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이 사진전이 갖는 일반적인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못지않게 그 사진들을 보면서 자신만이 겪은 아련한 땀 냄새를 되불러내는 일, 이것도 사진전이 베푸는 중요한 감흥이 되어 준다.철 지난 매스게임 한 컷 사진을 통해 시대가 주는 보편적 정서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개별자로서의 특별한 심상이 떠오르는 일. 사진이 주는 최대의 매력이다. 고린내 나던 운동화를 말리며 매스게임 연습을 하던 그 때의 검은 눈동자들, 풀풀 날리는 먼지처럼 운동장을 떠도는 아침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04

그릇된 욕망

성폭행 사건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아동성폭행 범죄도 증가일로에 있단다. 이번엔 나주에서 7세 어린이가 이불째 보쌈 당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린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법적,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되는가 싶었는데 별 소용이 없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강압적인 신체접촉이나 성적학대 등을 소아성폭행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껏 보도된 대부분의 사실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는 안면이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또한 가해자가 정신질환이나 범법자 등 특수 상황에 처한 경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평범한 사람일 경우도 많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한 마디로 이웃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롤리타`에도 소아성애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어린 롤리타와 성인 험버트는 각각 유혹하는 적극적 피해자와 유혹당하는 수동적 가해자로 설명될 수 있다. 정황상 상호 교감이 전제된 롤리타의 언행에 비해 일반적으로 성폭행 피해자는 자기 의사에 반해 오롯이 육체적, 심리적 무참함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나보코프가 어린 소녀를 등장 시켜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색이었지 성폭행범을 위한 변명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20세기가 인정하는 문학작품의 목록에 끼지도 못했을 것이다.소설 롤리타로 인해 생긴 `롤리타 콤플렉스`는 오욕에 찌든 남성들의 순수에 대한 열망이자 환타지를 대변한다. 예술의 범주 안에서 허용되는 인간을 탐구하는 자유로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양심이란 게 있어 스스로 인간 행동 양식을 제어한다. 언제나 그것을 벗어날 때가 문제다. 인면수심의 욕망을 분출하는 대상으로 어린 영혼이 감당해야할 고통은 너무 크다. 열등감의 발로가 현실에서 잘못 변용될 때의 나쁜 예를 지켜보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9-03

바람 불고 비 스칠 때

바람은 잔잔했고 비는 부슬거렸다. 기상청의 예보가 아니라면 태풍 언저리에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거센 바람의 주요 길목들은 상처가 깊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 강풍의 결이 살짝 비껴갔다. 가을맞이에 좋을 적당한 비바람만 안겨 주고 있었다. 약속을 지키기에 맞춤한 날씨였다.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몇날며칠 고심해서 썼을 그녀 글의 첫 독자가 되는 게 오늘 내가 할 일이다. 그녀가 베푸는 밝고 다사로운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 글의 독자가 되어달라는 그녀의 청은 천 번이라도 내겐 행운으로 여겨질 뿐이다. 혀에 감기는 커피번은 부드러웠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시고 싶었던 캐러멜마키야토는 달콤했다. 비오는 날엔 대화든 미감이든 부드럽고 달콤한 게 제격이다.그녀의 글은 창을 타고 내리는 빗물처럼 시원했고, 숙성된 반죽처럼 차졌다. 젊은 날 우정의 삽화 몇 장과 역사적 현장성을 조합한 노고의 결정체였다. 한 땀 한 땀 기억의 조각보를 글맛이란 바느질로 기워내고 있었다. 쉼 없는 행보를 하는 그녀의 열정이 존경스럽다고 내가 말했다. 세상은 거저 얻는 게 없다고 그녀가 답했다. 바람 불고 낙엽 떨어지는구나, 단순히 이런 느낌만 있으면 늙은 거래요. 그 사람의 물리적 나이가 아무리 젊어도 그건 늙은 거래요. 바람이 부는구나 저 바람 갈라야지. 낙엽 지는구나 저 낙엽 낚아야지. 적어도 이런 감흥이 남아있다면 그건 젊은 거래요. 아무리 나이 들어도 그건 젊게 사는 거래요.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사에 마음이 젊으니 저리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맘 품새를 가졌나 싶다. 그녀의 기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모든 주변인은 멘토가 될 만하다. 바람 불고 비 스칠 때 그런 사람과의 커피 타임은 짜릿하기만 하다. 서로의 부족한 기를 나누는 그 오롯한 맛./김살로메(소설가)

2012-08-31

신 죽란시사 (新 竹欄詩社)

나이와 우정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소통이 되고, 공감하기 쉬우며, 연대하기 좋은 성향끼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연꽃 피고 비오는 날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모임 이름도 고상하여라. 죽란회. 다산 선생이 주도한 친교 모임인 죽란시사를 빌린 것이다. 정조 때 젊은 학자시절 정약용은 `죽란시사`(竹欄詩社)란 사교 클럽을 만들었다. 술 마시고, 시 지으며, 꽃 감상하는 풍류 모임이었다. 딱딱한 학술 단체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친목 서클답게 모임이름이 시적이다. 죽란은 다산 집 뜰의 화단 난간을 이르는 말이다. 지나다니는 하인들의 옷깃에 꽃이 다칠세라 대나무 난간을 꽃밭에 설치했는데 그것을 모임 이름으로 삼았다.십여 명이 넘는 당대의 엘리트 회원들은 정기·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그 규약 또한 참으로 독창적이고 시적이다. 살구꽃 처음 피면 모이고, 첫 복숭아꽃 피면 모이고, 참외 익으면 모이고, 서쪽 못에 연꽃 피면 모이고…. 물론 비정기적 모임도 있었다. 아들 낳거나, 승진하거나, 자제가 과거 급제할 경우였다. 올곧고 치열하게 살았던 다산의 생애에 죽란시사 같은 젊은 날의 삽화가 있었다는 건 큰 위안이었을 게다.다산 선생의 낭만성을 높이 산 지인의 주도로 모임을 가진 지 제법 되었다. 앞선 성현들이 네 살 차 전후의 동년배 모임이었다면 뒤따르는 이들의 나이엔 경계가 없다. 뜰 갖지 않았으니 꽃 망칠까 드리울 대나무 울도 없다. 죽란 없는 죽란회는 죽란시사의 얼을 좇을 뿐이다. 연꽃 흐드러지고 비 스치는 날, 술과 시 대신 커피와 수다가 있었지만 자연 더불어 교감하는 그 정신만은 오롯이 닮고 싶은 것이다.다산 선생의 규약에 나오는 다음 정기모임은 국화꽃 필 무렵이다. 마음 앞서 기다려지는 건 달력을 대신한 선생의 낭만적 화법 때문인지도 모른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8-30

태풍 볼라벤

며칠 전 도서관 어린이 독서교실에서였다. 한 녀석이 손바닥에 볼펜으로 쓴 `ㅂ, ㄹ, ㅂ` 세 글자 초성을 몰래 보여준다. `초성 게임`에 쓸 자음을 준비해온 것이다. 초성 게임이란 각 낱글자의 자음 초성 정보만으로 출제자가 의도한 낱말을 유추해서 맞히는 게임이다. 수업 막바지는 언제나 이 게임을 하는데 서로 답을 맞히려는 아이들은 저마다 `브라보`라거나 `보리밥`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녀석이 무슨 단어를 말하려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태풍, 이라고 녀석이 힌트를 주었을 때도 제대로 눈치 채지 못했다. 저학년인 아이가 일주일 내도록 고심해 태풍 이름 `볼라벤`을 초성 게임으로 준비해 왔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아직 볼라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이라 사람들 관심 밖일 때였다. 하지만 아이는 초성 게임 하나를 위해 눈과 귀를 온통 뉴스에다 고정시켰던 것이다. 말하자면 게임에 대비해 자신만의 준비를 철저히 한 셈이다. 그날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했으므로 풍선껌 상품은 녀석 차지였다.초강력 태풍 볼라벤이 북상 중이다. 한반도를 향해 북진 중인데 강풍반경이 500km에 달한단다. 보도 매체들마다 앞 다퉈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남쪽 지방에선 피해가 속출하고 휴교령도 내려졌다. 몇 년 전 전 국토를 휩쓸었던 `매미`보다 위력이 세다는데, 동해안 쪽은 살짝 비껴가려는지 아직은 잠잠하다. 수치화된 정보보다 심각하지 않으니 호들갑 떤다고 넘겨짚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자연 재해 대비 앞에서는 차라리 호들갑이 괜찮다. 준비하지 않고 당하는 것보다 부산떨다 다행인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태풍 볼라벤, 동심을 들뜨게 한 단어 정도로만 만족하고, 현상에서는 적당한 비바람으로 그 소임을 다하기만 바랄 뿐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8-29

사진에 대한 단상

오랜만에 네 식구 모였다. 아들 기숙사가 있는 학교 근처에서 소박한 외식을 한다.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는 아들을 따라 사진관에 들른다. 간 김에 가족 이미지 컷도 덤으로 찍기로 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에 관한 노트 덕분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 읽기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긴 책이다. 그 중 `스투디움`과 `푼크툼`에 대한 잔상이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사진 한 컷은 객관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경험의 산물이다. 특정 사진에 대해 떠오르는 공통된 심상, 작가의 의도 등을 스투디움이라 한다면 구경꾼 개별자의 폐부를 찔러대는 정서적 감흥을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평면적이고, 대중적이며, 이해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입체적이며, 개별적이며, 은밀해도 좋은 것이다.단순히 보여 지는 것 이상인 푼크툼은 심연의 창고에서 꺼내는 숨은그림찾기와 같다. 옛날 사진 한 장을 꺼냈을 때 오롯한 나만의 내면 풍경이 떠오르는 상태가 푼크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금파리로 팔뚝을 문질렀을 때 생기는 상처 같은 기억들. 서늘하고 아름다운 그 푼크툼의 세계를 떠올리기 위해 우리는 한 컷의 사진을 간직한다.목덜미에 내려앉던 도시 뒷골목의 후텁지근함, 숯불 연기가 눈을 찔러대던 삼겹살집, 밤이슬 피해 나온 지렁이를 밟아 미안해하던 멈칫거림. 헤어지기 아쉬워 깍지 낀 손을 죄던 힘, 아득한 계단 위로 일렁이며 멀어져가던 실루엣, 그 적막한 밤을 깨워주던 날짐승의 울음소리. 오늘 찍은 한 컷 사진 속에서 이 정서들은 나만의 푼크툼이 되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찰나가 포착한 숨은 풍경을 찾기 위해 지금도 누군가는 셔터를 누른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8-28

비염 유감

기침이 그치지 않는다. 마른 콧물에도 휴지는 쌓이고, 간헐적인 재채기엔 진저리가 따른다. 들숨과 날숨의 콧김, 어디에도 냄새가 섞여들지 못한다. 안과 밖을 드나드는 저 도저한 호흡 주기에 내 후각의 기미는 희미해져만 간다. 잊혀가는 전설처럼 냄새는 코끝에서 아련하고, 비염의 온갖 낌새는 끝내 후각상실이란 후유증으로 수렴되는 중이다. 빗님 오신다. 공중을 떠도는 습기는 떼로 몰려 호흡기에 달라붙는데 비릿한 혐의를 품은 그 어떤 냄새도 내 후각을 풀어놓진 못한다. 무취의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건 중증 비염의 가장 큰 형벌이다. 향을 못 맡으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은 비염을 악화시키고 악화된 비염은 다시 향기를 앗아가고.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이 몸과 마음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책으로라도 품새를 다잡는다.잘못 고른 책일까. 엉너리로 가득 찬 문장은 넘치도록 진열된 청과전의 과일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과잉된 비유야 개성으로 치부하더라도 그 불분명한 문장 앞에서는 실소가 인다. 한데 어느 순간, 주관적이고 불가해한 이미지들이 주는 마력에 이끌려 책장 넘기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진열대에서 떨어진 석류 서른 개쯤 훔쳐 먹은 듯한 불안한 새콤달콤함이 책 속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불협화음이 내는 그 청량감은 감각적이고 부조리한 날 것들을 직감으로만 바라보려는 작가의 뻔뻔하고 자유로운 자의식 덕이었다. 그 뿌리를 헤집느라 데우려던 김치찌개를 다 태워버렸다.가스레인지 위 두 시간의 최강 불꽃에 코팅된 냄비가 주저앉고 온 집안엔 그 청량감의 백만 배나 되는 연기가 자욱했다. 일층까지 누린내 진동했다는 누군가의 초인종이 있기 전까지 내 시야는 온통 혼돈 속에 갇혀 있었고, 후각 안테나는 그 어떤 냄새도 감지할 수 없었다. 비염 앓는 우기에 읽는 책 한 권은 내면의 혼란과 동시에 일상의 두려움을 환기시킨다. 이래저래 심란한 늦여름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8-27

도둑들

개봉 이십 여일 만에 영화 `도둑들`이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우리 영화사에서 여섯 번째란다. 기록 행진 중인 이 영화를 놓치면 국민 된 도리(?)가 아닐 것 같아 뒤늦게 조조 티켓을 끊었다. 빠른 전개로 지루함을 걷어냈고, 시퀀스마다 시각적 효과를 보탰으며, 적재적소에 감칠맛 나는 대사가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냈다 하더라도 내용상 진일보했으니 그리 큰 흠이 될 것도 없어 뵌다. 대중성을 겨냥한 상업 영화답게 관객들 마음을 제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열 명의 도둑들은 제 그릇 만큼의 영향력으로 서로 얽히고설킨다. 이 진흙탕 싸움에 심리전은 필수요, 배신과 음모 또한 난무한다. 그 많은 도둑들 중 유난히 눈길 가는 캐릭터가 있었다. `씹던껌`. 닉네임처럼 그녀는 누군가 씹다 버린 껌 같은 퇴물 연기파 도둑이다. 국내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홍콩 배우 임달화와 짝을 이뤘는데, 중년의 로맨스와 허망한 죽음이 영화 전개와는 어울리지 않게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바람결을 가르는 외로운 미소, 고급 투피스에 이는 보푸라기 같은 생채기, 거친 대사로 숨기고픈 힘겨운 생의 환멸 등 반생을 넘긴 중년 여성이 품을 수 있는 온갖 비의를 씹던껌은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도둑들의 행태와는 걸맞지 않은 그들의 로맨스가 죽음으로 치달을 때 황망하고 안타까운 건 잠시였다. 어쩜 그들의 죽음이 승화된 로맨스의 다른 길은 아니었을까 하고 감독의 의중을 넘겨짚게도 되는 것이었다.힘들고 외롭다고 눈으로 말하는 여자, 그리하여 남이 버린 꿈을 씹다 버린 껌 줍듯 산 여자, 결국 죽음으로 용도 폐기된 여자. 하지만 끝내 죽어서 사랑을 산 여자. 영화가 끝날 때까지 덜 꿰맞춘 직소퍼즐을 만난 것처럼 허하게 만드는 여자. 클림트 그림처럼 아련한 그 실루엣을 찾아 자꾸만 조각그림을 맞춰보게 되는 것이었다./김살로메(소설가)

2012-08-24

검색 필터링

대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은연중에 그곳으로 관심이 쏠린다. 새누리당은 느긋하게 후보를 확정지었고, 민주당도 싱겁긴 하지만 막바지 후보 경선이 한창이다. 장외 후보인 안철수 교수도 공식 선언만 하지 않았다 뿐 어떤 식으로든 이번 레이스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주자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눈과 귀도 조금씩 예민해져 간다. 이렇다 할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당한 긴장과 느긋한 시선으로 이번 레이스를 관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직 어느 후보도 완결판 공약이나 깔끔한 정책으로 유권자들을 매혹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와중에 느닷없이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검색 논란이 진행 중이다.박근혜, 안철수 두 후보에 대한 민망한 검색어가 실시간 1위로 오르내리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성인 인증을 받아야 검색이 가능한 특정 단어가 대선 후보 이름과 연결되면 그 절차 없이도 곧바로 검색창에 뜨는 어이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특정 후보를 물 먹이기 위한 네이버 측의 꼼수라 여기고, 그 쪽에서는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일축한다. 이슈화 된 검색어 수치가 일정 이상 올라가면 성인인증이 해제된다는 해명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네티즌이 몇이나 될까. 그간 상위에 오른 검색어를 그들 입맛대로 삭제한 경우가 없지 않은데다,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그 문구에 대해서 검색 필터링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불필요한 검색어가 뜨지 않게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포털 사이트 검색어 하나만으로도 네거티브 전략에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장난질에 의해 민심이 흔들릴 수 있다면 이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검색 필터링에 대한 네이버의 명확한 기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야 막론하고 인터넷 상에서 피해보는 후보자는 없어야 한다. 그래야 안심하고 대선 레이스를 지켜볼 수 있지 않겠는가./김살로메(소설가)

201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