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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은퇴 나이’

우리나라에서 법적 정년이 모든 사업장에서 60세로 늘어난 것은 불과 2년 전 일이다. 그 이전만 해도 회사마다 정년 나이는 들쭉날쭉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12년도에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정년은 58.6세로 조사됐다. 정년제도란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노사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직장이나 연공서열식 관념이 강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 고임금, 고연령 근로자를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인사의 신진대사를 확보하는 정책으로 적절했다.그러나 국민의 수명이 늘고,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다. 모든 직장에서 법적 정년이 60세로 확대된 배경에는 노령화 현상에 대한 대책이 주된 이유다. 이로부터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법적정년 65세 연장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법원도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 상한선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끌어올렸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가 사회경제적 분위기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는 현상이다.한 취업포털 회사가 설문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정년 연장에 대해 긍정 답변을 했다. 지금의 60세 정년이 65세 정년으로 미뤄지더라도 수긍한다는 뜻이다. 금융기관을 포함 이미 우리 기업 곳곳에서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 이런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이 자국의 기업들이 종업원들에게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자 일부 장노년층에서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다.노령인구 증가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은 2013년부터 기업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했다. 그러나 또다시 70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자 일부 노인층 사이에서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느냐”식의 푸념적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은 당연한 사회적 흐름이지만 일을 멈추고 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노인도 적지 않다. 무한정 정년을 늦출 수만 없다. 적절한 은퇴 나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19-06-09

문산호의 기억

문산호는 장사상륙작전을 수행한 유일한 배다. 이 배는 1943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건조된 2천366t의 전쟁용 수륙 양용차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쟁을 수행하다 1947년 한국 정부가 수송용으로 사들인 배다. 우리나라에 와서는 대한해운공사에서 수송용으로 사용했으며 전쟁이 나자 군사용으로 전환됐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단행된 전투다. 6.25 전쟁사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다. 작전이 치열한 첩보전 속에 비밀리에 진행 되어야 했고, 참가자 대부분이 학도병 등 민간이어서 기록도 거의 없다.1997년 3월 경북 영덕군 장사리 앞 바다에서 전쟁 당시 좌초됐던 문산호가 해병대 1사단 대원에 의해 발견된다. 47년 만에 바닷속 갯벌에서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문산호의 발견은 장사상륙작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장사상륙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숨은 공로자임이 제대로 알려지고 이를 계기로 역사적 기록도 조금씩 밝혀졌다. 장사상륙작전이 일반의 기억에 남는 전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유엔군과 해군 군함, 수백 척의 배 등이 동원됐으나 장사상륙작전에는 민간 선박인 문산호 1척이 다였다. 동원된 군사도 우리지역 출신 10대 학도병 772명과 해병 56명이 모두다. 임무는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새벽에 감행된 장사상륙작전은 때마침 찾아온 태풍과 적의 포격으로 해안에 도달하기도 전에 배가 침몰한다. 가까스로 육지에 도달한 병사들은 적의 공격으로 많은 희생을 치르고 끝내는 보급로 차단에 성공한다. 139명이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장사전투는 한 노병의 끈질긴 추적으로 최근에 문산호에 승선했던 선원 11명의 민간인 명단이 밝혀졌고 그들에게 화랑무공훈장도 수여하게 됐다. 늦게나마 그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호국의 달. 국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달이다. 전쟁에 대한 기억이 옅어져 가는 요즘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던졌던 그들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새롭게 다져볼 시간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6-06

금수저 세상

사회 양극화 현상이 커지면서 우리사회 상류층을 빗댄 거지부자의 이야기가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다리 밑에서 잠을 자던 거지 부자는 다리 위로 윙윙 거리며 달려가는 소방차 소리에 잠을 깼다. 아들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 우리는 집이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불이 나도 위험하지 않지요” 아버지가 답하길 “그게 다 아버지 덕이다”.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돈 없고 빽 없는 아버지들의 푸념으로 오랫동안 유행했다.우리나라에 금수저론이 사회이론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4∼5년 전 일이다.수저 계급론이란 이름으로 많은 공감을 얻은 이론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설명이다. 외국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영어 표현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유럽의 귀족층은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는 풍습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가난하고 배고픈 서민들의 이야기야 지구상 어디 간들 없겠는가.모차르트가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나 금수저를 물고 나온 재력가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천부적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면에서 비슷하다.그러나 천부적이라고 해도 그들이 살면서 일궈놓은 평생의 과업에 따라서는 평가가 달라진다. 다른 사람을 위한 공헌도가 중요한 잣대의 하나라 볼 수 있다.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사회활동 인식조사’ 결과가 눈길이 간다.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출세를 하려면 부유한 집안 출신이어야 한다”는 물음에 85%가 긍정적 답변을 했다고 한다. “한국은 높은 지위에 오르려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물음에도 응답자의 66%가 긍정적 답변을 했다. 우리 사회의 평등성과 공정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반증한 조사다. 대다수 국민은 금수저 이론에 대해 여전히 공감한다는 결과여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것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유하고 있는 것 등이 우연한 결과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04

아프리카 돼지열병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주로 감염된 돼지의 분비물인 눈물, 침, 분변 등에 의해 직접 전파되는 돼지전염병이다.돼지과(Suidae)에 속하는 동물에만 감염되며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기 때문에, 한번 발생할 경우 양돈 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잠복 기간은 약 4∼19일로, 이 병에 걸린 돼지는 고열(40.5~42℃), 식욕부진, 기립불능, 구토, 피부 출혈 증상을 보이다가 보통 10일 이내에 폐사한다.이 질병이 발생하면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발생 사실을 즉시 보고해야 하며, 돼지와 관련된 국제교역도 즉시 중단된다.바이러스는 병원성에 따라 보통 고병원성, 중병원성 및 저병원성으로 분류된다. 고병원성은 보통 감염 1~4일 후 돼지가 죽는 심급성과 감염 3~8일 후 돼지가 죽는 급성형 질병을, 중병원성 균주는 감염 11~15일 후 돼지가 죽는 급성이나 감염 20일 후 돼지가 죽는 아급성형 질병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적이 없으며, 현재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제1종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이 질병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국 여행 자제 및 양돈장 출입 금지, 돼지 잔반 급여 금지, 야생동물 접근 차단 등 국내에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해당 병의 확산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주로 1920년대부터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왔으며, 유럽의 경우 1960년대에 처음 발생했다가 포르투갈은 1993년, 스페인은 1995년에 박멸됐다. 그 이후 2007년에 조지아에서 다시 발병하면서 현재 동유럽과 러시아 등지에 풍토병으로 남아 있다.최근에는 2018년 8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아시아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 중국 전 지역으로 확대됐다. 지난달 30일 북한이 압록강 인접 지역인 자강도 우시군에 있는 한 협동농장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했다고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보고했다.정부는 경기·강원도 접경지역 10개 시·군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정하고, 긴급 방역에 나섰지만 양돈농가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03

슬픔에 잠긴 다뉴브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만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를 관통하는 다뉴브 강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곡이다.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가 실의에 빠진 비엔나 시민을 위로키 위해 요한 스트라우트에게 요청해 만든 곡이다. 다뉴브 강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희망찬 가사와 흥겨운 왈츠 리듬으로 조합된 이 곡은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탄 세계적 명곡이다,우리 국민에게도 일찍부터 친숙한 음악이다. 오스트리아인인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만든 곡이지만 다뉴브하면 대개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먼저 떠올린다. 부다페스트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유럽 3대 야경의 하나다. 아름다운 다뉴브 강이 흐르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 우리나라에서 동유럽 여행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가장 핫한 도시로 떠오른 곳이기도 하다. 동유럽지역 대표적 여행지인 부다페스트는 밤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도시의 모습이 파리나 프라하와는 다른 화려함과 강렬함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다뉴브 강의 야경은 필수 코스다. 다뉴브 강의 총 길이는 2천850km다. 유럽의 10개 나라를 통과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만나는 곳이 부다페스트라 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는 강을 기점으로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으로 나누어 별개의 도시로 발전해 왔다. 부다 지역은 왕과 귀족이 거주하는 상류층의 구역이었고, 페스트는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1849년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현수교인 세체니 다리가 건설되면서 두 지역을 양분했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1873년 하나의 도시로 통합, 지금에 이른다.낭만과 역사적 격랑이 꿈틀였던 도시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인 관광객 26명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국의 계속된 노력에도 아직 실종자에 대한 수색작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낭만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넘쳐야 할 다뉴브 강이 지금 슬픔으로 잠겼다. 해외여행 자유화에 매달려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달려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안전한 해외여행에 경각심을 일깨운 가슴 아픈 사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02

경제와 심리

같은 물건을 하나 더 사면 그 상품은 50% 할인해 주는 판매 행위를 ‘로스 리더 마케팅’(loss leader marketing)이라 부른다. ‘로스 리더’란 원가보다 싸게 팔거나 일반 판매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상품을 말한다. 우리 말로는 미끼 상품이라 표현한다. 고객은 미끼 상품을 사러 왔다가 다른 물건도 사고 가기 때문에 매장으로 봐서는 싸게 판다고 해도 손해볼 게 별로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경제는 심리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잘 될거 라고 소문나면 잘 되고 잘 안될 것 같다고 소문이 나면 부진해지는 것이 경제다. 어떤 야채가 “건강에 좋다”고 TV에 소개되고 나면 그 다음날 그 야채는 시중에서 품귀현상을 빚는다. 식품 값이 인상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 가수요가 발생하는 것 역시 소비자의 심리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TV에 등장하는 간접 광고도 소비자의 심리적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효과를 노린 기획 광고물이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에서 주가가 연속 상승하는 현상은 결국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는 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다.특히 심리적 경제 현상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잘 두드러진다. 정부가 무조건 규제를 하고 억누른다 해서 폭등하는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일시적 하락은 있으나 규제에 의한 가격 하락은 언제나 반등의 기회를 노린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방어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전쟁에서도 심리전은 매우 중요하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전략으로 고도의 심리전술이 많이 활용된다. 한나라 유방이 칼 한번 쓰지 않고, 화살 한번 쏘지 않고 적장 항우를 굴복시킨 것이 바로 심리전 때문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최근 한국의 기업경기와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고 한다. 우리경제를 불안해하고 비관적으로 보는 국민도 부쩍 많아졌다. 잘 될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정부가 희망적 메시지를 많이 주어야 한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30

번아웃 증후군

번아웃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ㆍ정신적인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가리킨다.미국의 정신분석의사 H. 프뤼덴버그가 처음 사용한 심리학 용어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지면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일이 실현되지 않을 때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극도로 쌓였을 때 나타난다.즉, 일과 삶에 보람을 느끼고 충실감에 넘쳐 신나게 일하던 사람이 보람을 잃고 돌연히 슬럼프에 빠지는 현상이다. 주로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번아웃 증후군은 다 불타서 없어진다(burn out)고 해서 소진(消盡) 증후군, 연소(燃燒) 증후군, 탈진(脫盡) 증후군이라고도 한다.번아웃 경고 증상에는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들고,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리고,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지인이나 배우자 혹은 회사에 멘토를 두어 상담을 하거나 되도록 정해진 업무 시간 내에 일을 해결하고, 퇴근 후에는 집으로 일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운동, 취미 생활 등 능동적인 휴식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번아웃 증후군은 우울증, 불안 장애, 적응 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 증상의 일종인지, 이를 질병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burnout)증후군’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기술했지만 의학적 질병으로는 분류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자’로 판단했다.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해진다. 옛말은 틀린 법이 없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9

봉준호 감독과 한국 정치

문화는 워낙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콕 찍어 “이것이다”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의 culture는 원래 경작이나 재배의 뜻을 가졌으나 이후 교양, 예술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고 한다.막연히 문화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높은 교양이나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없다.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 설명했다.그러나 이것 역시 포괄적 의미로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문화는 집단이나 구성원에 따라 성격의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인식한다. 동양과 서양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에 따라서, 좁게는 가문에 따라서도 다름이 여실히 나타난다.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현대인들도 수준 있는 문화생활을 매우 중시 여기는 성향이 늘었다.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품격 있는 라이프 스타일로 마음의 여유와 양식을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한다.때마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 최고 수준급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올렸다. 이번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류로 높아진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더 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도 크다. 특히 한국 영화를 사랑해 온 많은 국민에게 이보다 자랑스런 경사는 없을 것 같다.그러면 문화의 카테고리 안에서 바라본 우리의 정치문화는 과연 어느 수준에 있을까 궁금하다. 정치 혐오현상이라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문화가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나쁜 정치행위에 대한 산물이다. 문화가 품격을 향상시키고 지적인 활동 영역을 확대해가는 과정이라면 우리의 정치는 아직 한참 먼 거리에 있다.5월 임시국회가 무산된 가운데 6월 국회도 개점휴업일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평행선을 달리는 여야는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 타협과 포용, 협치의 문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 영화 100년에서 일궈낸 봉 감독의 쾌거를 계기로 한국의 정치문화도 좀 바뀌어져야 할 것 아닌가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8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

인터넷 전문은행은 모든 금융서비스를 온라인 상에서 제공하는 은행이다.오프라인 지점을 토대로 하고 있는 기존 은행과 달리 인터넷 은행은 물리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1990년대 IT 발전과 함께 인터넷 이용률이 증가하고, 음반·영화 등 전 산업에 걸쳐 온라인 채널 혁신이 일어나면서, 은행 산업에서도 인터넷을 주 영업채널로 활용하는 인터넷 전문 은행이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은 ‘SFNB(Security First Network Bank)’로, 1995년 10월 미국에서 설립된 이후 유럽·일본 등 전세계로 확산됐다. 2000년 말까지 미국에서만 40개 이상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됐다. 2014년 9월 말 총자산 기준으로 미국 50대 은행에 6개 인터넷 전문은행이 순위에 올랐으며, 일본의 SBI(Sumishin Net Bank)는 일본 인터넷 전문은행 최초로 예금규모 3조 엔을 달성하며 일본 은행 전체 37위(105개 지역은행 기준)를 기록하는 등 위상이 증대됐다.국내에서는 2008년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금융실명제법 및 자금 확보 문제, 은산분리 규제 등에 의해 무산됐다.특히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정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걸림돌로 작용했다.2014년 금융위원회는 30대 그룹과 상호출자제한 대상 그룹에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제한하고, 나머지 기업에 참여 기회를 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가했다.즉,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30대 그룹 계열 제조사, 금융회사는 설립이 제한되며,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의 기업은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이에 따라 2017년 4월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7월에는 카카오뱅크가 영업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제3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인가 신청을 키움뱅크와 토스뱅크 컨소시엄으로부터 받았으나 두 곳 모두 심사에서 탈락했다.그러나 IT와 금융시장 환경의 급변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7

남성도 양산을 쓰자

예년보다 9일 빨리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5월 중순 들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이 30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를 보이고 있다.특히 지난 주말은 경북 울진과 영천, 경주 등의 기온이 35도를 넘겨 전국 최고를 기록하면서 대구경북지역은 아열대 현상과 더불어 사실상 초여름 날씨를 맞고 있다. 유난히 더운 대구경북의 올 여름 날씨가 얼마나 뜨거울지가 벌써부터 관심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역대 최대 폭염 일수를 기록할 만큼 무더웠다. 그동안 최고 기록을 유지해왔던 1994년의 폭염일수가 지난해 여름에 의해 기록이 무너졌다.지난해 여름 폭염 일수 31.3일로 폭염관측 이래 최고 일수를 기록했던 1994년(31.1일)보다 높았다. 기상청은 올해도 우리나라 여름날씨는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했다.우리나라 기상 재해 통계를 살펴보면, 태풍이나 집중호우보다 폭염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집중 발생하는 시기는 7월과 8월이다. 여자보다 남자한테서 온열질환자가 2.7배나 더 많이 발생한다. 유럽의 사례지만 2003년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 미국 시카고에서도 40도가 넘는 살인적 더위가 5일간 연속되면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사상자의 대부분이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고 하니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있어야겠다.최근 일본정부는 올여름 폭염대책의 하나로 ‘남자 양산 쓰기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양산을 쓰면 3~7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고 땀은 17% 정도가 감소돼 열대병 예방효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본에서의 아버지날인 6월 16일에 아버지에게 양산을 선물하도록 하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폭염 예방을 위한 남자들의 양산 쓰기 운동은 관습적인 거부감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 해볼 만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26

바른말 고운말

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 등을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따라하는 행동을 일컫는다.상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 세일즈 마케팅 등에 많이 활용된다. 아이가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 표정까지 따라하는 것도 일종의 미러링 효과다.생후 6개월 이후의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 한다고 한다. 부모의 행동과 말, 작은 습관이 어린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심리적 효과를 말한다.바른말 고운말을 쓰야 하는 것은 개인 간이나 집단 간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른말 고운말은 상대 인격에 대한 존중의 출발점이 됨으로 원만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최고다.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밝게 해 커뮤니티 내의 문제점을 푸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은 말을 가려서 잘할 때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돋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은 말하는 당사자 생각의 또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으로부터 듣게 되는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것이 모두 이런 연유에서 생긴 말이다.말이 많으면 화(禍)를 면하기 어렵다. 반대로 과언무환(寡言無患)이라 하여 말을 줄이면 근심도 줄어든다고 옛 성현들이 가르쳤다.서양의 격언에도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한다. 동서양 사람들이 가지는 말에 대한 신중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말이 젊은 세대들에 의해 행여 잘못 사용되기 십상인 요즘이다. SNS를 통한 신조어나 줄임말 등이 한글의 훼손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막말이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올라 국민을 언짢게 한다. 여야 구분 없이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내로남불’식 막말로 경쟁하듯 다투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 경쟁 이제는 끝낼 우리의 나쁜 문화다. “말이 도리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명심보감의 말씀을 되새겨 봐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3

갈라파고스 신드롬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만든 상품이지만 자국 시장만을 생각한 표준과 규격을 사용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다윈이 발견했던 고유종들은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섬에서 독자적으로 진화를 거듭했는데, 일본 휴대전화 역시 최고의 기술을 가졌지만 세계시장 흐름과는 동떨어진 상황을 나타낸다.일본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의 개발자인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가 맨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일본 통신산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인터넷, 모바일 TV 등이 상용화됐으며, 휴대전화 기술은 1999년 이메일, 2000년 카메라 휴대전화, 2001년 3세대 네트워크, 2002년 음악파일 다운로드, 2004년 전자결제, 2005년 디지털TV 등 매년 앞선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 내 3세대 휴대전화 사용자가 2009년 들어 미국의 2배 수준인 1억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커다란 내수시장에 만족해 온 일본은 국제 표준을 소홀히 한 탓에 경쟁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어 차세대 스마트폰 생태계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정부와 의회가 각종 규제로 생태계를 보호했지만 이종 생태계가 진입하자 연약한 생태계는 그대로 파괴되고 말았다.이같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우리 사회 주변에도 널려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다. LED 조명, PC 제조 등에 대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함에 따라 삼성과 LG의 제조와 생산은 막았지만 필립스, 레노버 등 글로벌 업체를 막을 수 없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 인터넷은행, 자율주행차, 카풀 규제 등도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하나다. 못된 규제임을 인식하지만 시민단체와 택시기사들의 표를 의식해 눈을 감는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해법은 승차공유 규제는 풀되, 예측 가능했던 삶이 무너진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이미 자율주행차 시대로 굴러가는 시대의 수레바퀴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도가 붙고 있는 데,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정치권과 업계 눈치만 살피고 있어 걱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2

트램의 부활

프랑스 파리와 홍콩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램(노면 전차)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선보일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하는 저상트램 연구개발 과제 공모에서 부산광역시의 ‘오륙도선’이 선정돼 우리나라 1호 트램은 이르면 2021년부터 부산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갈 것 같다는 소식이다.원래 전기트램의 발명은 독일 지멘스가 먼저 했으나 보급되는 실용화 단계는 미국에서 완성된다. 기존의 기차보다는 압도적으로 싼 시설비와 높은 수송능력 덕분에 트램은 불과 10년 사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된다. 1920년 기동성이 뛰어난 버스가 보급되면서 전기트램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트램을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899년 서울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트램이 처음 개통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던 1968년을 기점으로 트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트램은 전기를 사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오염배출이 적은 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장점 때문에 최근 또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또 지하철이나 경전철보다 공사비가 월등하게 저렴하고 노약자 등 교통약자의 이용이 용이한 점도 트램 부활의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이어 울산, 대구, 인천, 대전 등 전국의 16개 지자체가 트램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층 구조의 홍콩 트램이 도시의 상징성을 나타내듯 트램을 도시의 이미지로 각색하려는 도시들의 움직임도 노골화되고 있다.최근 대구에서도 “트램, 새 교통수단으로서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트램 도입 여부를 묻는 정책포럼이 열렸다. 트램 설치는 원래 권영진 대구시장의 공약 중 하나여서 대구에서의 트램 설치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하겠다. 대구시는 동대구 역세권과 서대구 역세권을 잇는 도심 순환선과 달성선 등 몇 가지 노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시의 신교통 수단인 트램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본격화 될 것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1

국제기본단위 재정의

‘세계측정의날’인 20일부터 우리가 흔히 쓰던 질량의 단위 킬로그램(㎏), 전류의 기본 단위 ‘암페어(A)’, 온도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낸 ‘몰(㏖)’ 등의 4개 단위에 바뀐 표준이 적용된다. 이날부터 전 세계 산업계와 학계는 새롭게 정의된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기본단위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표준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국제기구 약속에 따라 20일(세계측정의 날)자로 시행한다고 밝혔다.과거에는 기본단위가 실물을 기반으로 해서 변형(질량·kg, 물질의 양·mol)이 생기거나, 특정물질에 의존하여 불안정(온도·K)했다. 애매한 표현의 사용으로 혼란을 야기(전류·A)했다.바뀐 단위 기준은 우리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마이크로 수준의 오차도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기업 연구소에는 영향을 미친다. 독성 조절 등 초정밀 측정기술을 필요로 한 제약업계나 정밀 측정이 필요한 산업계에선 일부 설비 보완이 필요한 사건이다.국제 도량학계는 1889년 백금 90%, 이리듐 10%로 구성된 높이, 지름 각각 39㎜인 원기둥 모양의 원기 일명 ‘르그랑K’를 1㎏의 국제 기준으로 정한 뒤 파리 인근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해 왔다.그러나 르그랑K가 130년이 다 되어 가면서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최대 100㎍(마이크로그램ㆍ100만분의 1g) 가벼워졌다. 이에 따라 도량학계는 물리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로 질량을 정의했다. 플랑크 상수는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상수이자 전류 및 전압의 강도를 토대로 중량을 재는 특수저울 ‘키빌 저울’로 측정할 수 있는 불변의 자연 상수이다. 이번에 ㎏뿐 아니라 암페어(A), 켈빈(K), 몰(㏖)도 같은 물리상수인 아보가드로 상수, 기본 전하(e), 볼츠만 상수를 이용해 재정의했다.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봉서와 함께 도량형 통일을 위한 ‘유척’을 지니고 다녔다니 도량형의 중요성을 앞서 깨달은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못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0

대구 도동서원

미술사학자 유흥준 교수는 말의 마술사처럼 책을 낼 때 한마디씩 던진 말이 히트를 쳤다. 대표적인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우리의 문화재를 익히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감동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그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100만권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가 유행시킨 이 말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다른 분야에서도 폭넓게 쓰이는 표현이 된다.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도 그가 지어낸 말이다. 역사를 보아도 인생을 살아보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생 도처에는 여러 고수(高手)들이 존재하며 그 고수들로 인해 비로소 그 가치가 밝혀진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필부들이 상수”라고도 했다.문화를 직접 보고 배우며 체험하면서 느낀 인생철학의 화두 같은 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잘 인용하는 표현이 됐다. 그는 “국토가 박물관이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그만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말로 여겨진다. 한 때 영남대에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쳐 지역과도 인연이 닿은 학자이다.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소재한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대구로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처음 있는 일이라 경사가 난 셈이다.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소중한 문화재산이겠지” 정도 여겼던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올랐으니 대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유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도동서원의 최대 특징을 미적 탁월함에 있다고 해설했다. 서원 곳곳에 조각을 가미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한 곳은 도동서원에서 밖에 볼 수 없다고 극찬했다. 특히 도동서원을 둘러싼 기와돌담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물(제350호)로 지정,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문화재라 했다. 도동서원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된다면 대구의 가치를 알리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충분한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9

우리 시대 선비정신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선비란 대체로 이렇다. 지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신으로 많은 사람이 선비정신을 들고 있다. 유교적 철학을 바탕으로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청빈낙도의 삶을 사는 조선의 지식인을 선비 상으로 보는 것이다.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 군자(君子)와는 조금은 다르다. 그러나 학덕과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역사학자 가운데는 조선 왕조가 500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조선 왕조가 힘에 의한 패도(覇道)정치가 아닌 명분과 포용의 왕도(王道)정치를 한 결과라는 것이다. 법치보다 덕치를 우선하는 성리학적 철학이 숨은 배경이라는 의미다.경북을 흔히 선비의 고장이라 부른다. 유교적 전통과 관습이 강하게 흐르고 양반 사회를 대표하는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신청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4군데가 경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입증한다. 특히 경북 영주는 선비의 고장을 도시 브랜드로 이미지화하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선비마을을 테마로 선비문화축제 행사도 매년 열고 있다. 선비의 정신이 현대사회에 와서도 추앙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이란 의미를 떠나 선비정신이 가지고 있는 청렴성과 도덕적 모범성 때문이다.특히 남을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과 정치를 할 때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지 않는 선비의 자세가 시대를 초월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이다.영주시가 고귀한 선비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선비대상 후보자 공모에 나섰다고 한다. 선비사상 구현과 선비정신 실천 등에 공이 큰 사람에게 상을 준다. 물질만능에 치우쳐 상실돼 가는 우리의 도덕성 회복에 각성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6

귀 건강 지키기

전 국민이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이나 뉴스를 듣는 시대에 자칫하면 귀건강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이어폰을 통한 잦은 음악 감상은 고막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이어폰을 끼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소음성 난청’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전화 통화를 비롯해 음악 감상, 동영상 시청 등을 떼놓고 하루의 일상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게 문제다.그렇다면 ‘60·60 법칙’을 지키며 이어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이는 WHO(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방법으로 이어폰 이용을 ‘최대 음량 60% 이하’, ‘하루 60분 정도’로 지키는 것이다. 큰 소리에 장시간 노출될수록 청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급적 작은 음량, 단시간으로 이어폰을 이용해야 한다. 청력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통해 청력 관리에 신경을 쓰고, 이상을 느끼면 즉각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큰 소음을 피하는 것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 이어폰으로 30분 이상 음악을 들었다면 5∼10분간 이어폰을 빼고 쉬는 것이 좋다.또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은 후에는 바로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헤어드라이어나 선풍기의 찬 바람으로 귀를 충분히 말려 건조하게 유지해야 외이도염을 방지할 수 있다.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도 외이도염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이때는 이어폰 사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고무 패킹이 달린 ‘커널형(밀폐형) 이어폰’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고무마개가 귓속 깊숙이 파고들어 완전히 밀폐되게 만들어 세균성·진균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무마개를 자주 교체하고 소독용 에탄올을 활용해 닦아주는 것이 귓병 예방에 좋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막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기 때문에 소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헤드폰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은 이어폰 하나에 귀건강이 달렸으니 주의사항을 숙지해 사용할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5

세종대왕 탄신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을 설문조사해 보면 대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손꼽는다. 그 중 세종대왕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성군(聖君)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시대 4대 국왕이며,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선왕 3명(태조, 정조, 태종)이 모두 고려왕조에서 신하로 일하다 왕위에 올랐으나 세종은 조선시대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첫 임금이다.세종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우리민족 역사에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왕으로 평가된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을 펼쳤다. 측우기 개발 등 농업과 과학의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우리민족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왕이다.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자를 그는 만들었다. 세계인이 극찬하는 과학적 원리의 글자이다. 특히 “어리석은 백성들로 하여금 쉽게 글을 익혀 편안하게 사용하고자 함에 있다”고 밝힌 그의 한글 창제 배경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신에 있어 한글 창제의 의미가 더 값져 보인다. 이 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종의 이름을 딴 명칭이 우리나라 곳곳에 사용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을 세종대왕함이라 명명했다. 1만 원권 지폐에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실려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름에도 이 분의 이름을 사용했다.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올해로 622돌이다. 이 날은 바로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 탄신일로 잡은 것은 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만이 공자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삼은 것과 비슷한 경우다. 세종이 성군일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가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왕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백성에게 자주 은전을 베풀고 노비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 애민의 정신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성군 세종의 애민정신을 모두가 되돌아보는 일은 퍽 의미가 있는 일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14

레깅스 논란

레깅스는 요가나 운동을 할 때 거추장스러움을 막기 위해 몸에 딱 달라붙도록 입는 복장을 가리킨다. 레깅스가 일상복이 되면서 찬반 논란이 미국에서 한창이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지난 3월 가톨릭 계열의 인디애나 노트르담 대학 신문에, 가톨릭 신자이며 4명의 아들을 둔 엄마라고 밝힌 여성이 노트르담 대학 여학생들에게 레깅스를 입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을 기고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엄마는 여학생들이 레깅스 대신에 청바지를 입어달라고 호소했다. 이 글을 읽은 노트르담 학생들은 오히려 반발하면서 ‘레깅스 시위’를 벌였다. 여성의 복장이 남성을 유혹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책임을 여성의 잘못이라고 암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들은 여성들은 자유롭게 의상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남성 때문에 특정 의상을 입지 못한다거나 행동의 제약을 받는 것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국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는 와중에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학교 등에서 레깅스를 착용한 여성의 출입을 금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미 인터넷 매체인 복스는 최근 텍사스 휴스턴 제임스 메디슨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노출이 심한 옷과 여성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레깅스, 깊게 파인 옷 등을 입은 학부모는 학교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겠다’고 공지했고, 일부 학부모들이 “시대작오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여성들이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 자체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동조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의 기고에서는 운동을 할 때 몸에 편하고 활동성이 좋으려면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여성들이 비싼 요가복이나 레깅스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비싼 레깅스를 팔려는 스포츠 의류업체들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여성들이 2007년에는 레깅스보다 정장을 구입하는 데 21억달러를 더 사용했으나 2017년에는 그 차이가 1억5천800만달러로 줄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뜨거운 레깅스 논란이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보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3

민생고(民生苦)

민생고란 일반 국민들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겪는 고통을 말한다. 예로부터 백성한테는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인류의 생존 과정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감히 말해도 된다. 오죽했으면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싶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인간 본능적 욕구를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맹자는 백성의 생활이 얼마나 안정되느냐 하는 것이 통치의 근본이라 했다. “정치가 뭐냐”고 묻는 제(齊)나라 선왕의 물음에 “백성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저절로 열린다”고 콕 집어 설명했던 것이다.조선시대 최고의 개혁적 조치로 평가받는 대동법(大同法)은 먹고 살기에 지친 농민에게 생존의 희망을 준 착한 정책이다. 가구 기준으로 받았던 세금을 토지 기준으로 바꾸면서 소작농을 비롯한 많은 서민이 세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지의 많고 적음이 세금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주 계층인 양반사회의 극렬한 반대가 뒤따랐다.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100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전해지니 당시 양반들의 저항이 만만찮았음을 짐작케 한다.몇 년전 청백리로 칭찬받던 전직 대법관이 민생고 해결을 위해 대형 로펌에 들어가면서 던진 말이 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의 로펌행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보통시민으로서 살아가기에 경제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이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배를 넘는다. 야당의 비판도 경제 실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여당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도 경제 분야다. 먹고 사는 문제가 꼬여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니 이래저래 경제가 골칫거리다.일찍 정치의 요체가 민생이라 했던 맹자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