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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제와 심리

같은 물건을 하나 더 사면 그 상품은 50% 할인해 주는 판매 행위를 ‘로스 리더 마케팅’(loss leader marketing)이라 부른다. ‘로스 리더’란 원가보다 싸게 팔거나 일반 판매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상품을 말한다. 우리 말로는 미끼 상품이라 표현한다. 고객은 미끼 상품을 사러 왔다가 다른 물건도 사고 가기 때문에 매장으로 봐서는 싸게 판다고 해도 손해볼 게 별로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경제는 심리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잘 될거 라고 소문나면 잘 되고 잘 안될 것 같다고 소문이 나면 부진해지는 것이 경제다. 어떤 야채가 “건강에 좋다”고 TV에 소개되고 나면 그 다음날 그 야채는 시중에서 품귀현상을 빚는다. 식품 값이 인상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 가수요가 발생하는 것 역시 소비자의 심리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TV에 등장하는 간접 광고도 소비자의 심리적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효과를 노린 기획 광고물이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에서 주가가 연속 상승하는 현상은 결국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는 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다.특히 심리적 경제 현상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잘 두드러진다. 정부가 무조건 규제를 하고 억누른다 해서 폭등하는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일시적 하락은 있으나 규제에 의한 가격 하락은 언제나 반등의 기회를 노린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방어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전쟁에서도 심리전은 매우 중요하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전략으로 고도의 심리전술이 많이 활용된다. 한나라 유방이 칼 한번 쓰지 않고, 화살 한번 쏘지 않고 적장 항우를 굴복시킨 것이 바로 심리전 때문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최근 한국의 기업경기와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고 한다. 우리경제를 불안해하고 비관적으로 보는 국민도 부쩍 많아졌다. 잘 될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정부가 희망적 메시지를 많이 주어야 한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30

번아웃 증후군

번아웃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ㆍ정신적인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가리킨다.미국의 정신분석의사 H. 프뤼덴버그가 처음 사용한 심리학 용어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지면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일이 실현되지 않을 때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극도로 쌓였을 때 나타난다.즉, 일과 삶에 보람을 느끼고 충실감에 넘쳐 신나게 일하던 사람이 보람을 잃고 돌연히 슬럼프에 빠지는 현상이다. 주로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번아웃 증후군은 다 불타서 없어진다(burn out)고 해서 소진(消盡) 증후군, 연소(燃燒) 증후군, 탈진(脫盡) 증후군이라고도 한다.번아웃 경고 증상에는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들고,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리고,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지인이나 배우자 혹은 회사에 멘토를 두어 상담을 하거나 되도록 정해진 업무 시간 내에 일을 해결하고, 퇴근 후에는 집으로 일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운동, 취미 생활 등 능동적인 휴식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번아웃 증후군은 우울증, 불안 장애, 적응 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 증상의 일종인지, 이를 질병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burnout)증후군’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기술했지만 의학적 질병으로는 분류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자’로 판단했다.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해진다. 옛말은 틀린 법이 없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9

봉준호 감독과 한국 정치

문화는 워낙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콕 찍어 “이것이다”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의 culture는 원래 경작이나 재배의 뜻을 가졌으나 이후 교양, 예술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고 한다.막연히 문화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높은 교양이나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없다.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 설명했다.그러나 이것 역시 포괄적 의미로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문화는 집단이나 구성원에 따라 성격의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인식한다. 동양과 서양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에 따라서, 좁게는 가문에 따라서도 다름이 여실히 나타난다.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현대인들도 수준 있는 문화생활을 매우 중시 여기는 성향이 늘었다.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품격 있는 라이프 스타일로 마음의 여유와 양식을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한다.때마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 최고 수준급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올렸다. 이번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류로 높아진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더 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도 크다. 특히 한국 영화를 사랑해 온 많은 국민에게 이보다 자랑스런 경사는 없을 것 같다.그러면 문화의 카테고리 안에서 바라본 우리의 정치문화는 과연 어느 수준에 있을까 궁금하다. 정치 혐오현상이라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문화가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나쁜 정치행위에 대한 산물이다. 문화가 품격을 향상시키고 지적인 활동 영역을 확대해가는 과정이라면 우리의 정치는 아직 한참 먼 거리에 있다.5월 임시국회가 무산된 가운데 6월 국회도 개점휴업일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평행선을 달리는 여야는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 타협과 포용, 협치의 문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 영화 100년에서 일궈낸 봉 감독의 쾌거를 계기로 한국의 정치문화도 좀 바뀌어져야 할 것 아닌가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8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

인터넷 전문은행은 모든 금융서비스를 온라인 상에서 제공하는 은행이다.오프라인 지점을 토대로 하고 있는 기존 은행과 달리 인터넷 은행은 물리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1990년대 IT 발전과 함께 인터넷 이용률이 증가하고, 음반·영화 등 전 산업에 걸쳐 온라인 채널 혁신이 일어나면서, 은행 산업에서도 인터넷을 주 영업채널로 활용하는 인터넷 전문 은행이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은 ‘SFNB(Security First Network Bank)’로, 1995년 10월 미국에서 설립된 이후 유럽·일본 등 전세계로 확산됐다. 2000년 말까지 미국에서만 40개 이상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됐다. 2014년 9월 말 총자산 기준으로 미국 50대 은행에 6개 인터넷 전문은행이 순위에 올랐으며, 일본의 SBI(Sumishin Net Bank)는 일본 인터넷 전문은행 최초로 예금규모 3조 엔을 달성하며 일본 은행 전체 37위(105개 지역은행 기준)를 기록하는 등 위상이 증대됐다.국내에서는 2008년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금융실명제법 및 자금 확보 문제, 은산분리 규제 등에 의해 무산됐다.특히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정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걸림돌로 작용했다.2014년 금융위원회는 30대 그룹과 상호출자제한 대상 그룹에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제한하고, 나머지 기업에 참여 기회를 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가했다.즉,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30대 그룹 계열 제조사, 금융회사는 설립이 제한되며,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의 기업은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이에 따라 2017년 4월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7월에는 카카오뱅크가 영업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제3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인가 신청을 키움뱅크와 토스뱅크 컨소시엄으로부터 받았으나 두 곳 모두 심사에서 탈락했다.그러나 IT와 금융시장 환경의 급변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7

남성도 양산을 쓰자

예년보다 9일 빨리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5월 중순 들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이 30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를 보이고 있다.특히 지난 주말은 경북 울진과 영천, 경주 등의 기온이 35도를 넘겨 전국 최고를 기록하면서 대구경북지역은 아열대 현상과 더불어 사실상 초여름 날씨를 맞고 있다. 유난히 더운 대구경북의 올 여름 날씨가 얼마나 뜨거울지가 벌써부터 관심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역대 최대 폭염 일수를 기록할 만큼 무더웠다. 그동안 최고 기록을 유지해왔던 1994년의 폭염일수가 지난해 여름에 의해 기록이 무너졌다.지난해 여름 폭염 일수 31.3일로 폭염관측 이래 최고 일수를 기록했던 1994년(31.1일)보다 높았다. 기상청은 올해도 우리나라 여름날씨는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했다.우리나라 기상 재해 통계를 살펴보면, 태풍이나 집중호우보다 폭염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집중 발생하는 시기는 7월과 8월이다. 여자보다 남자한테서 온열질환자가 2.7배나 더 많이 발생한다. 유럽의 사례지만 2003년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 미국 시카고에서도 40도가 넘는 살인적 더위가 5일간 연속되면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사상자의 대부분이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고 하니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있어야겠다.최근 일본정부는 올여름 폭염대책의 하나로 ‘남자 양산 쓰기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양산을 쓰면 3~7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고 땀은 17% 정도가 감소돼 열대병 예방효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본에서의 아버지날인 6월 16일에 아버지에게 양산을 선물하도록 하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폭염 예방을 위한 남자들의 양산 쓰기 운동은 관습적인 거부감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 해볼 만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26

바른말 고운말

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 등을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따라하는 행동을 일컫는다.상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 세일즈 마케팅 등에 많이 활용된다. 아이가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 표정까지 따라하는 것도 일종의 미러링 효과다.생후 6개월 이후의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 한다고 한다. 부모의 행동과 말, 작은 습관이 어린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심리적 효과를 말한다.바른말 고운말을 쓰야 하는 것은 개인 간이나 집단 간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른말 고운말은 상대 인격에 대한 존중의 출발점이 됨으로 원만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최고다.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밝게 해 커뮤니티 내의 문제점을 푸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은 말을 가려서 잘할 때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돋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은 말하는 당사자 생각의 또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으로부터 듣게 되는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것이 모두 이런 연유에서 생긴 말이다.말이 많으면 화(禍)를 면하기 어렵다. 반대로 과언무환(寡言無患)이라 하여 말을 줄이면 근심도 줄어든다고 옛 성현들이 가르쳤다.서양의 격언에도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한다. 동서양 사람들이 가지는 말에 대한 신중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말이 젊은 세대들에 의해 행여 잘못 사용되기 십상인 요즘이다. SNS를 통한 신조어나 줄임말 등이 한글의 훼손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막말이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올라 국민을 언짢게 한다. 여야 구분 없이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내로남불’식 막말로 경쟁하듯 다투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 경쟁 이제는 끝낼 우리의 나쁜 문화다. “말이 도리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명심보감의 말씀을 되새겨 봐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3

갈라파고스 신드롬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만든 상품이지만 자국 시장만을 생각한 표준과 규격을 사용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다윈이 발견했던 고유종들은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섬에서 독자적으로 진화를 거듭했는데, 일본 휴대전화 역시 최고의 기술을 가졌지만 세계시장 흐름과는 동떨어진 상황을 나타낸다.일본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의 개발자인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가 맨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일본 통신산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인터넷, 모바일 TV 등이 상용화됐으며, 휴대전화 기술은 1999년 이메일, 2000년 카메라 휴대전화, 2001년 3세대 네트워크, 2002년 음악파일 다운로드, 2004년 전자결제, 2005년 디지털TV 등 매년 앞선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 내 3세대 휴대전화 사용자가 2009년 들어 미국의 2배 수준인 1억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커다란 내수시장에 만족해 온 일본은 국제 표준을 소홀히 한 탓에 경쟁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어 차세대 스마트폰 생태계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정부와 의회가 각종 규제로 생태계를 보호했지만 이종 생태계가 진입하자 연약한 생태계는 그대로 파괴되고 말았다.이같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우리 사회 주변에도 널려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다. LED 조명, PC 제조 등에 대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함에 따라 삼성과 LG의 제조와 생산은 막았지만 필립스, 레노버 등 글로벌 업체를 막을 수 없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 인터넷은행, 자율주행차, 카풀 규제 등도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하나다. 못된 규제임을 인식하지만 시민단체와 택시기사들의 표를 의식해 눈을 감는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해법은 승차공유 규제는 풀되, 예측 가능했던 삶이 무너진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이미 자율주행차 시대로 굴러가는 시대의 수레바퀴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도가 붙고 있는 데,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정치권과 업계 눈치만 살피고 있어 걱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2

트램의 부활

프랑스 파리와 홍콩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램(노면 전차)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선보일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하는 저상트램 연구개발 과제 공모에서 부산광역시의 ‘오륙도선’이 선정돼 우리나라 1호 트램은 이르면 2021년부터 부산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갈 것 같다는 소식이다.원래 전기트램의 발명은 독일 지멘스가 먼저 했으나 보급되는 실용화 단계는 미국에서 완성된다. 기존의 기차보다는 압도적으로 싼 시설비와 높은 수송능력 덕분에 트램은 불과 10년 사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된다. 1920년 기동성이 뛰어난 버스가 보급되면서 전기트램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트램을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899년 서울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트램이 처음 개통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던 1968년을 기점으로 트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트램은 전기를 사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오염배출이 적은 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장점 때문에 최근 또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또 지하철이나 경전철보다 공사비가 월등하게 저렴하고 노약자 등 교통약자의 이용이 용이한 점도 트램 부활의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이어 울산, 대구, 인천, 대전 등 전국의 16개 지자체가 트램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층 구조의 홍콩 트램이 도시의 상징성을 나타내듯 트램을 도시의 이미지로 각색하려는 도시들의 움직임도 노골화되고 있다.최근 대구에서도 “트램, 새 교통수단으로서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트램 도입 여부를 묻는 정책포럼이 열렸다. 트램 설치는 원래 권영진 대구시장의 공약 중 하나여서 대구에서의 트램 설치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하겠다. 대구시는 동대구 역세권과 서대구 역세권을 잇는 도심 순환선과 달성선 등 몇 가지 노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시의 신교통 수단인 트램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본격화 될 것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1

국제기본단위 재정의

‘세계측정의날’인 20일부터 우리가 흔히 쓰던 질량의 단위 킬로그램(㎏), 전류의 기본 단위 ‘암페어(A)’, 온도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낸 ‘몰(㏖)’ 등의 4개 단위에 바뀐 표준이 적용된다. 이날부터 전 세계 산업계와 학계는 새롭게 정의된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기본단위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표준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국제기구 약속에 따라 20일(세계측정의 날)자로 시행한다고 밝혔다.과거에는 기본단위가 실물을 기반으로 해서 변형(질량·kg, 물질의 양·mol)이 생기거나, 특정물질에 의존하여 불안정(온도·K)했다. 애매한 표현의 사용으로 혼란을 야기(전류·A)했다.바뀐 단위 기준은 우리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마이크로 수준의 오차도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기업 연구소에는 영향을 미친다. 독성 조절 등 초정밀 측정기술을 필요로 한 제약업계나 정밀 측정이 필요한 산업계에선 일부 설비 보완이 필요한 사건이다.국제 도량학계는 1889년 백금 90%, 이리듐 10%로 구성된 높이, 지름 각각 39㎜인 원기둥 모양의 원기 일명 ‘르그랑K’를 1㎏의 국제 기준으로 정한 뒤 파리 인근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해 왔다.그러나 르그랑K가 130년이 다 되어 가면서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최대 100㎍(마이크로그램ㆍ100만분의 1g) 가벼워졌다. 이에 따라 도량학계는 물리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로 질량을 정의했다. 플랑크 상수는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상수이자 전류 및 전압의 강도를 토대로 중량을 재는 특수저울 ‘키빌 저울’로 측정할 수 있는 불변의 자연 상수이다. 이번에 ㎏뿐 아니라 암페어(A), 켈빈(K), 몰(㏖)도 같은 물리상수인 아보가드로 상수, 기본 전하(e), 볼츠만 상수를 이용해 재정의했다.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봉서와 함께 도량형 통일을 위한 ‘유척’을 지니고 다녔다니 도량형의 중요성을 앞서 깨달은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못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0

대구 도동서원

미술사학자 유흥준 교수는 말의 마술사처럼 책을 낼 때 한마디씩 던진 말이 히트를 쳤다. 대표적인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우리의 문화재를 익히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감동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그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100만권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가 유행시킨 이 말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다른 분야에서도 폭넓게 쓰이는 표현이 된다.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도 그가 지어낸 말이다. 역사를 보아도 인생을 살아보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생 도처에는 여러 고수(高手)들이 존재하며 그 고수들로 인해 비로소 그 가치가 밝혀진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필부들이 상수”라고도 했다.문화를 직접 보고 배우며 체험하면서 느낀 인생철학의 화두 같은 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잘 인용하는 표현이 됐다. 그는 “국토가 박물관이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그만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말로 여겨진다. 한 때 영남대에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쳐 지역과도 인연이 닿은 학자이다.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소재한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대구로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처음 있는 일이라 경사가 난 셈이다.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소중한 문화재산이겠지” 정도 여겼던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올랐으니 대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유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도동서원의 최대 특징을 미적 탁월함에 있다고 해설했다. 서원 곳곳에 조각을 가미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한 곳은 도동서원에서 밖에 볼 수 없다고 극찬했다. 특히 도동서원을 둘러싼 기와돌담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물(제350호)로 지정,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문화재라 했다. 도동서원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된다면 대구의 가치를 알리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충분한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9

우리 시대 선비정신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선비란 대체로 이렇다. 지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신으로 많은 사람이 선비정신을 들고 있다. 유교적 철학을 바탕으로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청빈낙도의 삶을 사는 조선의 지식인을 선비 상으로 보는 것이다.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 군자(君子)와는 조금은 다르다. 그러나 학덕과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역사학자 가운데는 조선 왕조가 500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조선 왕조가 힘에 의한 패도(覇道)정치가 아닌 명분과 포용의 왕도(王道)정치를 한 결과라는 것이다. 법치보다 덕치를 우선하는 성리학적 철학이 숨은 배경이라는 의미다.경북을 흔히 선비의 고장이라 부른다. 유교적 전통과 관습이 강하게 흐르고 양반 사회를 대표하는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신청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4군데가 경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입증한다. 특히 경북 영주는 선비의 고장을 도시 브랜드로 이미지화하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선비마을을 테마로 선비문화축제 행사도 매년 열고 있다. 선비의 정신이 현대사회에 와서도 추앙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이란 의미를 떠나 선비정신이 가지고 있는 청렴성과 도덕적 모범성 때문이다.특히 남을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과 정치를 할 때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지 않는 선비의 자세가 시대를 초월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이다.영주시가 고귀한 선비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선비대상 후보자 공모에 나섰다고 한다. 선비사상 구현과 선비정신 실천 등에 공이 큰 사람에게 상을 준다. 물질만능에 치우쳐 상실돼 가는 우리의 도덕성 회복에 각성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6

귀 건강 지키기

전 국민이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이나 뉴스를 듣는 시대에 자칫하면 귀건강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이어폰을 통한 잦은 음악 감상은 고막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이어폰을 끼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소음성 난청’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전화 통화를 비롯해 음악 감상, 동영상 시청 등을 떼놓고 하루의 일상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게 문제다.그렇다면 ‘60·60 법칙’을 지키며 이어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이는 WHO(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방법으로 이어폰 이용을 ‘최대 음량 60% 이하’, ‘하루 60분 정도’로 지키는 것이다. 큰 소리에 장시간 노출될수록 청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급적 작은 음량, 단시간으로 이어폰을 이용해야 한다. 청력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통해 청력 관리에 신경을 쓰고, 이상을 느끼면 즉각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큰 소음을 피하는 것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 이어폰으로 30분 이상 음악을 들었다면 5∼10분간 이어폰을 빼고 쉬는 것이 좋다.또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은 후에는 바로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헤어드라이어나 선풍기의 찬 바람으로 귀를 충분히 말려 건조하게 유지해야 외이도염을 방지할 수 있다.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도 외이도염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이때는 이어폰 사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고무 패킹이 달린 ‘커널형(밀폐형) 이어폰’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고무마개가 귓속 깊숙이 파고들어 완전히 밀폐되게 만들어 세균성·진균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무마개를 자주 교체하고 소독용 에탄올을 활용해 닦아주는 것이 귓병 예방에 좋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막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기 때문에 소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헤드폰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은 이어폰 하나에 귀건강이 달렸으니 주의사항을 숙지해 사용할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5

세종대왕 탄신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을 설문조사해 보면 대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손꼽는다. 그 중 세종대왕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성군(聖君)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시대 4대 국왕이며,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선왕 3명(태조, 정조, 태종)이 모두 고려왕조에서 신하로 일하다 왕위에 올랐으나 세종은 조선시대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첫 임금이다.세종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우리민족 역사에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왕으로 평가된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을 펼쳤다. 측우기 개발 등 농업과 과학의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우리민족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왕이다.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자를 그는 만들었다. 세계인이 극찬하는 과학적 원리의 글자이다. 특히 “어리석은 백성들로 하여금 쉽게 글을 익혀 편안하게 사용하고자 함에 있다”고 밝힌 그의 한글 창제 배경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신에 있어 한글 창제의 의미가 더 값져 보인다. 이 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종의 이름을 딴 명칭이 우리나라 곳곳에 사용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을 세종대왕함이라 명명했다. 1만 원권 지폐에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실려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름에도 이 분의 이름을 사용했다.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올해로 622돌이다. 이 날은 바로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 탄신일로 잡은 것은 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만이 공자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삼은 것과 비슷한 경우다. 세종이 성군일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가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왕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백성에게 자주 은전을 베풀고 노비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 애민의 정신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성군 세종의 애민정신을 모두가 되돌아보는 일은 퍽 의미가 있는 일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14

레깅스 논란

레깅스는 요가나 운동을 할 때 거추장스러움을 막기 위해 몸에 딱 달라붙도록 입는 복장을 가리킨다. 레깅스가 일상복이 되면서 찬반 논란이 미국에서 한창이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지난 3월 가톨릭 계열의 인디애나 노트르담 대학 신문에, 가톨릭 신자이며 4명의 아들을 둔 엄마라고 밝힌 여성이 노트르담 대학 여학생들에게 레깅스를 입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을 기고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엄마는 여학생들이 레깅스 대신에 청바지를 입어달라고 호소했다. 이 글을 읽은 노트르담 학생들은 오히려 반발하면서 ‘레깅스 시위’를 벌였다. 여성의 복장이 남성을 유혹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책임을 여성의 잘못이라고 암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들은 여성들은 자유롭게 의상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남성 때문에 특정 의상을 입지 못한다거나 행동의 제약을 받는 것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국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는 와중에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학교 등에서 레깅스를 착용한 여성의 출입을 금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미 인터넷 매체인 복스는 최근 텍사스 휴스턴 제임스 메디슨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노출이 심한 옷과 여성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레깅스, 깊게 파인 옷 등을 입은 학부모는 학교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겠다’고 공지했고, 일부 학부모들이 “시대작오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여성들이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 자체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동조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의 기고에서는 운동을 할 때 몸에 편하고 활동성이 좋으려면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여성들이 비싼 요가복이나 레깅스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비싼 레깅스를 팔려는 스포츠 의류업체들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여성들이 2007년에는 레깅스보다 정장을 구입하는 데 21억달러를 더 사용했으나 2017년에는 그 차이가 1억5천800만달러로 줄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뜨거운 레깅스 논란이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보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3

민생고(民生苦)

민생고란 일반 국민들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겪는 고통을 말한다. 예로부터 백성한테는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인류의 생존 과정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감히 말해도 된다. 오죽했으면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싶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인간 본능적 욕구를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맹자는 백성의 생활이 얼마나 안정되느냐 하는 것이 통치의 근본이라 했다. “정치가 뭐냐”고 묻는 제(齊)나라 선왕의 물음에 “백성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저절로 열린다”고 콕 집어 설명했던 것이다.조선시대 최고의 개혁적 조치로 평가받는 대동법(大同法)은 먹고 살기에 지친 농민에게 생존의 희망을 준 착한 정책이다. 가구 기준으로 받았던 세금을 토지 기준으로 바꾸면서 소작농을 비롯한 많은 서민이 세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지의 많고 적음이 세금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주 계층인 양반사회의 극렬한 반대가 뒤따랐다.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100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전해지니 당시 양반들의 저항이 만만찮았음을 짐작케 한다.몇 년전 청백리로 칭찬받던 전직 대법관이 민생고 해결을 위해 대형 로펌에 들어가면서 던진 말이 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의 로펌행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보통시민으로서 살아가기에 경제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이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배를 넘는다. 야당의 비판도 경제 실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여당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도 경제 분야다. 먹고 사는 문제가 꼬여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니 이래저래 경제가 골칫거리다.일찍 정치의 요체가 민생이라 했던 맹자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2

안동의 겹경사

20년 전인 1999년 4월 21일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찾은 날이다. 한영수교 116년 만에 영국 국가 원수의 처음 있는 한국 방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뜻에 따라 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가 여왕의 방문지로 선택됐다. 여왕의 안동 방문을 두고 당시 언론은 영국 신사와 한국 선비의 만남이라고 비유했다.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한국 종손의 동양식 환대를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여왕의 모습에서 왕국의 품격을 느끼게 했던 일이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씨족 마을이다.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S자형으로 휘감아돈다하여 하회(河回)란 이름이 붙었다. 600여 년을 한 씨족이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이다.임진왜란 시절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등 많은 고관들을 배출한 양반 마을이다. 한국의 전통적 주거문화가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사회구조의 독특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는 문화적 가치가 인정된 곳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으로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봉황이 날아와 앉았다는 봉정사도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라 고찰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이 이곳에 있다. 당시 여왕은 방명록에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지금 안동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의 이곳 방문을 앞두고 온통 축제 분위기다. 오는 14일 안동을 방문할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가 다녀간 하회마을-농산물도매시장-봉정사 등 똑같은 길을 다녀 볼 예정이다.여왕이 다녀간 20주년에 영국 왕실의 손님까지 다시 맞게 된 안동시는 경사가 겹친 꼴이다. 앤드루 왕자가 걷게 될 길을 ‘로열웨이’라 부르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여왕의 안동 방문으로 하회마을은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신했다. 앤드루 왕자의 안동 방문이 주는 의미 또한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09

끝나지 않은 라돈공포

라돈(radon, Rn)은 원자번호 86번의 원소로, 강한 방사선을 내는 비활성 기체 원소다.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성 붕괴 사슬에서 라듐(radium, Ra)을 거쳐 생성되는데, 원소 이름은 원천 원소 라듐에 비활성 기체의 접미어‘on’을 붙여 지었다. 지구 대기 중에는 기체 분자 1천20개당 대략 6개의 비율로 들어 있다.라돈은 미국환경보호국이 흡연 다음가는 주요 폐암 원인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건강에 위험한 기체다. 지난해 5월 대진침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되는 침구류, 온수매트, 미용 마스크 등 생활제품이 꾸준히 발견돼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전기매트와 침구류에서 또 검출돼 비상이 걸렸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삼풍산업·(주)신양테크·(주)실버리치가 제조한 가공제품에서 나온 라돈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서 정한 안전기준(연간 1mSv)을 초과해 해당 업체에 수거명령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삼풍산업은 2017년 3월부터 전기매트‘미소황토’, ‘미소숯’, ‘루돌프’, ‘모던도트’, ‘스노우폭스’ 등 모델 5종에 모나자이트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모나자이트는 우라늄과 토륨이 1대 10 정도로 함유된 물질로, 우라늄과 토륨이 붕괴하면 각각 라돈과 토론이 생성된다. (주)신양테크는 2017년 3월부터 ‘바이오실키’ 베개에 모나자이트를 썼고, (주)실버리치는 2016년 8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황금이불’, ‘황금패드’ 등 침구류 2종에 모나자이트를 사용했다. (주)시더스가 태국에서 수입·판매한 ‘라텍스 시스템즈’ 역시 안전 기준을 초과(연간 5.18mSv)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업체가 2015년 3월 파산해 정확한 판매 기간과 수량을 파악할 수 없어 문제다. 원안위는 방사능이 의심되는 제품은 즉시 생활방사선 안전센터로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원안위는 모나자이트 같은 방사성 원료물질을 넣은 제품의 제조·수출입을 막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을 마련, 오는 7월 시행한다. 국민들을 걱정케하는 라돈공포를 끝낼 수 있도록 정부가 만전의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8

‘개나소나 콘서트’

2009년 청도에서 시작해 작년까지 10회 공연을 가졌던 ‘개나소나 콘서트’가 올해도 열릴 수 있을까 초미의 관심사다.‘개나소나 콘서트’는 반려동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공연으로 지방소도시에서 개최돼 전국적 명성을 날렸던 이색 행사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기획한 이 행사는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을 배려한 음악회라는 점에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고 시작 첫해부터 수천 명의 관중이 몰려올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행사다. 청도군이라는 소도시를 전국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으며, 다른 지자체가 호시탐탐 탐내는 행사가 됐다. 지금도 전씨에게는 지속적인 러브콜이 온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전씨는 최근 10여 년 살아왔던 청도를 홀연히 떠났다. 청도 세계 코미디아트페스티벌(청도 코아페) 개최를 앞두고 청도군과 생긴 갈등이 이유라 했다. 무슨 영문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전씨의 말대로라면 페스티벌 행사와 관련해 “모욕감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주변의 권유에도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했다.전씨는 청도에 이사 오자 재능 기부형식으로 농촌을 활성화해보자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벌여놓은 사업들이 꽤 많다. 복날 희생된 견공들을 위한 개나소나 콘서트 말고도 2011년에는 철가방 극장을 열었다. 웃음을 배달한다는 발상으로 전국 최초의 개그 전용극장을 세운 것이다. 개관 이후 4천400여 회의 공연을 개최했으며, 2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방문을 했다. 또 그는 2015년 청도 세계 코미디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해 한적했던 농촌마을을 전국적으로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이다. 누가 뭐래도 소싸움 도시 청도를 전국적으로 알린 일등공신이다. 그가 떠난 청도에 또다시 그가 기획하는 행사가 열릴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청도군으로서 그의 ‘탈 청도’가 뼈아픈 후회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전씨 지인들의 도움으로 올해는 개나소나 콘서트가 청도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다. 콘서트 상표권을 가진 그의 구두 승낙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가 없는 개나소나 콘서트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07

카톡 청첩장

청첩은 주로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주인이 사람들을 초청하는 글을 말한다. 따라서 청첩장은 혼인 잔치만이 아닌 돌잔치, 회갑잔치 등에 쓰이는 초대장을 가리킨다. 1973년 ‘새가정의례준칙’에“혼례, 수연의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돌리면 안 된다”라는 규정이 생긴 것으로 보아, 1970년대 이전에는 회갑잔치에도 청첩장을 돌리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돌잔치, 회갑잔치 등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혼례식에 초대하는 문서만을 보통 ‘청첩장’으로 부르고 있다.청첩장은 공문서가 아니지만 갖추어야 할 요건을 제대로 갖추어 매우 신중하게 보내는 것이 예의에 맞다. 보통 결혼식의 날짜와 시간, 장소, 예식장에 오는 길과 차편 등을 기록하며, 혼인 당사자의 부모와 당사자의 이름을 명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결혼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뜻이나 신랑·신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의지 등을 함께 표현하기도 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제3의 인물인 청첩인을 내세워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의 청첩장을 보면, 청첩하는 주체는 신랑·신부의 부모, 즉 혼주인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혼인 당사자가 청첩의 주체가 되어 직접 보내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결혼 당사자가 자신의 결혼식에 직접 청첩인이 된 것은 혼주의 역할이 축소됐음을 반영한다.청첩장 안내문의 변화는 결혼이 집안의 행사에서 개인의 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반영하고 있다. 2010년 이후에는 인터넷 통신 및 스마트폰의 발달로 친소관계에 따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간단하게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종이로 된 청첩장을 대신하는 예가 크게 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부고 또는 청첩이 왔을 경우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해 프린트 해놓은 것 만으로도 종합소득세 신고시 비용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결혼 소식을 전하는 데에는 종이로 된 청첩장이 여전히 중요하다. 예의를 다해 손님을 청하고, 대접하는 것이 현대라고 해서 나쁠리 없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6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불교에서 탑(塔)은 무덤을 뜻하기도 한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탑을 세운 뒤 자신의 사리를 이곳에 보관하라고 하면서 탑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초기 불교에서 사리를 안치한 탑 중심의 신앙이 강했던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탑은 나무로 만든 목탑, 돌로 만든 석탑, 벽돌로 만든 전탑, 돌을 벽돌처럼 쌓은 모전석탑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인도나 중국은 전탑이 많고 일본은 목탑 그리고 한국은 석탑이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 석탑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삼국시대 석탑으로 현존하는 탑은 신라 경주의 분황사지 모전석탑과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석탑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에 세워진 석탑인 만큼 모두가 보존 상태가 온전치 못한 건 사실이다.경주에 있는 분황사지 모전석탑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불행히도 원형의 모습은 사라지고 3층까지의 모습만 남아있어 아쉬움이 있다.1915년 일본인에 의해 개축·보수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탑은 처음 만들어진 이후에도 수없이 개축된 것으로 확인돼 신라시대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탑은 멀리서 보면 벽돌로 쌓은 전탑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 보면 돌을 하나하나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탑이다. 전탑이 유행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복원공사가 20년 만에 완공됐다는 소식이다. 백제시대 최대 사찰로 알려진 미륵사 금당 앞에 세워진 이 석탑은 반파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일제 강점기에 파손된 부분을 콘크리트로 덧씌워 탑은 일찌감치 제 모습을 잃었다. 문화재 당국의 노력으로 장장 20년의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사업 사상 최장 기록이다. 석탑의 보수는 국제 수준에 맞게 보수, 정비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석조 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도 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20년을 공들여 온 문화재 당국의 인내와 의지가 놀랍다. 1천380년 전 삼국시대 석탑이 어떤 모습으로 복원됐을까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