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한국형 레몬법

한국형 레몬법은 한국에서 내년부터 시행되는 자동차 교환 환불제도를 가리킨다. 레몬법은 미국에서 1975년부터 시행됐으며, 결함 있는 신차를 환불·교환해주는 소비자보호법이다. 법 이름이 레몬법(Lemon Law)으로 지어진 데는 유래가 있다. 흔히 영미권에서는 결함 있는 불량품을 ‘레몬’으로 지칭한다. 즉, 오렌지인줄 알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오렌지(정상자동차)를 닮은 신 레몬(하자발생 자동차)이었다는 말에서 유래한다.한국형 ‘레몬법’은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정부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기 때문이다. 본 시행령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 신차 인도 후 1년 안에 중대한 하자가 2회 발생하거나 일반 하자가 3회 발생해 수리한 뒤 또다시 하자가 발생하면 중재를 거쳐 교환·환불이 가능해진다. 레몬법 적용에는 하자 발생 이외에도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우선 신차로의 교환·환불의 보장 등이 포함된 서면계약에 따라 판매될 것, 하자로 인해 안전우려, 경제적 가치 훼손 또는 사용이 곤란할 것, 하자차량소유자가 중대한 하자는 1회, 일반하자는 2회 수리 후 하자가 발생한 사실을 자동차제작자등에게 통보할 것 등이다. 교환·환불 신청 요건을 충족한 하자차량 소유자는 국토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하고, 위원회는 3인의 위원으로 중재부를 구성, 중재는 중재위원 전원 출석으로 개의하고, 구성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또 중대한 하자에 해당하는 장치의 범위에 법에서 정한 원동기, 동력전달장치, 조향·제동장치 외에 △주행 △조종 △완충 △연료공급 장치 △주행 관련 전기·전자 장치, 차대 등을 추가했다. 다만 단순히 운행 중 엔진경고등이 뜨거나 편의장치 작동 오류 등 일반 하자는 레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이제 한국형 레몬법이 도입된 데는 국내 및 해외 자동차 메이커들의 하자보수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가 촉발요인이 됐으리란 짐작이다. 외국에 비해 늦어도 너무 많이 늦게 도입된 레몬법, 이제부터라도 자동차 소비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지켜줄 수 있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03

‘레이와(令和) 시대’

일본은 우리와 어떤 관계의 나라로 볼 것인가. 멀고도 가까운 나라일까. 조선시대 우리를 침범했던 임진왜란이나 36년의 강점기 등 과거사를 되돌아보면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두 나라의 관계다. 그러나 두 나라는 지난해 852억 달러 규모의 무역을 할 정도로 경제적 교류가 왕성하다. 양국을 오가는 국민의 숫자가 연간 1천만 명을 넘는다. 국민적 감정만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지금도 양국 사이에 벌어진다.일본이 오는 5월 1일부터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즉위하면서 새로 쓸 연호를 ‘레이와’(令和)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아키히토(明仁) 현 일왕이 30년 사용해 왔던 ‘헤이세이’(平成) 연호는 이날부터 사라진다. 레이와는 평화와 조화의 뜻을 가졌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 개개인이 희망의 꽃을 피우라”는 의미라고 풀이했다.연호는 원래 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연차(治世年次)에 붙이는 칭호다.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 사용됐던 것으로 사료로 확인된다. 고구려 광개토왕이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것이 비문으로 확인됐다. 일본은 서력(西曆)과 함께 연호를 함께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관공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연호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정부가 발행하는 신분증과 여권 등은 서기를 사용하지만 지방자치단체나 경찰 등이 발행하는 각종 증명서에는 연호를 사용한다.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연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단군기원을 공용 연호로 사용했다. 1961년부터 국제 흐름에 따라 서력 기원을 공용연호로 사용 중이다. 일본의 연호 사용은 자국민의 불편함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645년 다이카(大化)라는 연호를 채택한 이래 오늘까지 사용되고 있다. 일본인들의 독특한 국민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어쩌면 국수적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을 읽어 볼 수도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크게 불편해진 지금이다. 새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의 ‘레이와 시대’가 이름처럼 양국 간에 새로운 협력관계의 전기가 될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02

노키즈존

노키즈존(No Kids Zone)은 음식점, 카페 등에서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의미하는 대한민국의 신조어로, 2014년 7월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키즈존이 처음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등을 통해 9살난 아이가 한 여성에 의해 끔찍한 화상을 당했다는‘국물녀’왜곡사건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아이가 무방비한 상태로 뜨거운 국을 들고 뛰어다니다가 여성에게 직접 부딪혀 발생한, 전적으로 아이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부모가 언론을 왜곡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극성 부모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노키즈존을 이슈로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은‘스타벅스 오줌컵’ 사건이다. 한 부모가 스타벅스 매장 내에서 공용으로 사용되는 머그컵에 아이의 소변을 받는 사진이 널리 퍼지면서 큰 이슈가 된 사건이다. 부모는 머그컵을 씻어쓰면 되니 문제가 없다는 듯 반납구에 머그컵을 올려놓고 가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켰다.노키즈존은 가게도 가게주인의 사유공간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비상업 목적의 민간 주택지나 토지 등의 경우 어린이는 물론 일반인의 출입을 전면금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일부 가게 주인들은 사유지에 대한 권리행사는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키즈존에 반대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가게주인을 폭행하거나 영업방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린애들일 뿐인데 애들 장난 등을 가지고 노키즈존을 지정한 것은 차별 및 인권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동’이라는 특정 집단을 잠재적인 위험, 민폐 집단으로 간주하고 사전에 차단하는 함으로써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2017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에 대한 일부 부모 및 주부층들의 제소안을 심의한 결과 노키즈존은 명백한 인권상의 차별행위라고 권고하기도 했다.어쨌든 노키즈존은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교육에 관심없는 부모들의 과도한 아동옹호적인 태도가 사회적갈등으로 떠오른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려온 한국의 전통문화에 흙탕물을 끼얹는 신조어요, 신문화라 그저 씁쓸할 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01

영덕 장사상륙작전

2010년 상영된 ‘포화 속으로’는 6.25 전쟁에 참여한 학도병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학도병 71명이 인민군 유격대대의 공격을 11시간 반 동안 막아낸 ‘포항여중 전투’가 영화의 배경이어서 우리에겐 매우 흥미로운 소재로 관심을 끌었다. 불과 2주 정도의 훈련을 받고 전투에 투입된 학도병 2개 소대가 장갑차와 기관포로 무장한 북한군에 대응해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투를 벌인 이 작전 때문에 포항시민과 피란민 20만 명은 형산강 이남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후방의 국군도 반격을 위한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포항여중 전투에서는 47명이 전사하고 6명이 부상, 4명은 실종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상 모두가 전멸한 거나 다름없다. 포항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은 그들의 희생정신과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이다. 기념관 앞에는 당시 16살의 학도병이었던 한 학생의 옷 안에서 발견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을 비문에 새겨 전시해 두었다. 어린 학생이 감내해내기 어려웠던 전쟁에 대한 놀라운 심정을 글로 남겨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갑작스런 북한군의 침범으로 6·25 전쟁이 나자마자 대한민국은 붕괴 직전 위기로 몰렸다. 남쪽에 있던 학도병의 군 입대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징집 혹은 자원 형식의 전쟁터 투입이었으나 군인으로서 올바른 대접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훈련도 없었고 계급도 군번도 없었다. 그들은 오직 고향의 부모형제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전쟁터에 나섰던 것이다.인천상륙작전의 양동전략으로 실시됐던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이 영화화 된다고 한다. 인천상륙작전보다 이틀 앞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은 북한군의 눈을 돌리는데도 성공했지만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데도 성공한 전투다. 놀랍게도 이 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학도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벌어진 학도병 참여전투가 영화화되면서 우리 고장의 호국정신이 또 한번 빛나게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31

소비자와 친환경 자동차

자동차 업계는 자율 주행차 시장이 이르면 2020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율 주행이란 운전자가 핸들과 가속 페달,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지 않아도 위성항법 시스템(GPS) 등 차량에 부착된 각종 센서가 주변의 상황을 살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하는 시스템이다.거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자율주행차가 내년부터 우리의 현실로 나타난다고 한다.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선봉에 전기차가 있다. 휘발유와 디젤 등 기존의 자동차 연료가 공해문제로 배척당하면서 앞으로는 전기차가 대세를 이룰 것이란 전망에는 이론이 없다. 공해가 없을 뿐 아니라 연료비 지출이 거의 없다. 정비할 것도 거의 없으며 차량 소음도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배터리 수명과 충전 인프라 확충 등 몇몇 문제점만 개선되면 전기차 시장은 무한대로 뻗어 나갈 것이 확실하다. 미세먼지와 같은 공해 문제도 지금보다 크게 개선될 것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디젤차를 타는 것도 지금 우리의 세대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다.전기차의 시작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율주행차의 급속적인 발전을 의미한다. 마치 휴대폰이 처음 등장했던 때처럼 자동차 패러다임의 획기적 변화가 예상된다. 처음에는 통화가 목적이었던 휴대전화가 지금은 휴대용 컴퓨터로 변했다. 휴대전화가 아닌 스마트 폰이어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카메라, 게임, 인터넷, 영화, 쇼핑 모든 생활의 도구들이 이 안에서 해결되는 세상이다.자율주행차의 등장은 자동차가 수송 수단을 넘어 스마트 플랫폼이 된다는 뜻이다. 전기차로 넓어진 차내 공간에 운전이 필요 없는 시간이 주어짐으로써 자동차 안은 또하나의 스마트 플랫폼을 창출한다.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일환으로 LPG 자동차 구입을 일반인에게도 허용했다. 기존 차량을 LPG차로 개조하는 것도 가능케 했다.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함에 따라 소비자의 관심도 높다고 한다. 그러나 전기차로 가는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인다. 지금부터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시작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28

리디노미네이션

리디노미네이션은 한 나라에서 통용되는 모든 지폐나 동전에 대해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를 말한다. 이는 인플레이션, 경제규모의 확대 등으로 거래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숫자의 자릿수가 늘어나면서 계산상의 불편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다. 예를 들면, 100원을 1원으로 하는 것이다.리디노미네이션은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진전에 따라 경제량을 화폐적으로 표현하는 숫자가 많아서 초래되는 국민들의 계산, 회계 기장, 또는 지급상의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실시된다. 장점은 국민들의 일상 거래상의 편의 제고 및 회계장부의 기장처리 간편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억제, 자국통화의 대외적 위상제고 등을 들 수 있다.반면 단점도 있다. 화폐단위 변경으로 인한 불안정과 새로운 화폐의 제조에 따른 화폐제조비용, 신·구 화폐의 교환 및 컴퓨터 시스템 등의 교환 등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는 소득이나 물가 등에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체감지수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물가변동 등 실질변수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물가는 전쟁 전의 1.3조 배여서 담배 한 갑 사는 데 보스턴백 가득히 돈을 담아가야 했다. 그래서 0을 12개(1조) 떼어 내 구마르크를 신마르크로 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헝가리는 구화폐에서 0을 30개나 떼내야 했다. 이것이 세계 최고기록이다. 그 다음은 1922년 제정러시아가 4년에 걸쳐 3번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는데, 5억 구루블이 1신루블로 낙착됐다.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2월 및 1962년 6월 신·구 화폐의 환가비율을 각기 100 대 1과 10 대 1로 리디노미네이션한 사례가 있다. 원이 환으로 바뀔 때(1953년), 환이 다시 원이 될 때(1962년) 0이 각각 2개와 1개가 떨어져 나갔다.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입장을 밝혀 3번째 리디노미네이션이 시행될 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27

인사와 청문회

우리나라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노라면 가끔 궁금증이 생긴다. 선진국도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고위공직 후보자 신상에 관한 의혹들이 우리나라처럼 많이 쏟아져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다. 이번 주부터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국회에서 시작됐다. 이번에도 여야 간에 난타전이 예상된다. 장관후보 대상자 7명 모두가 각종 결격 사유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된 인물이기 때문이다.후보자들은 청와대가 엄격히 관리하겠다며 자체 설정한 7대 인사기준에 모두가 미달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7대 기준에 5개 분야가 해당된다고 한다. 7대 기준이란 병역기피, 세금탈루, 불법적 재산 증식, 위장 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 성범죄 등이다.미국도 인사 청문제도가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2천여 명의 공직자는 연방 상원에서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인준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는 극히 일부다. 전체의 2% 정도라고 한다. 청문제도가 물렁해서가 아니다. 검증자가 까다롭지 않아서도 아니다. 우리보다 더 많은 청문시간과 검증항목이 있다.다만 백악관 등 사전 검증과정이 엄격해 인준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 이유다. 고위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독단적 인사를 견제하고 도덕심이 강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제도다. 특정한 제도가 사회적 기능을 이끌어 가는 시스템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요즘이다. 사람보다 법과 제도에 의존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 탓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사 문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시스템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할 일이다. 인사청문회가 시스템적이라면 후보를 추천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라는 뜻이다.“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인사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인사가 잘 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의미도 있다.인사청문회에 등장한 장관 후보자의 비리 의혹 논란도 제도의 문제보다 사람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인사청문회가 정파에 따라 한쪽은 무조건 찬성, 한쪽은 무조건 반대라면 그 근본 원인은 사람한테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26

노동이사제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근로자이사제’라고도 한다. 이는 노동자를 기업 경영의 한 주체로 보고 노동자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으로, 이사회에 참여한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한다.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편화된 제도다. 독일의 경우 기업 규모에 따라 이사회의 최고 절반까지를 노동자 대표로 채우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2016년, 정원이 100명 이상인 13개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근로자 이사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처음으로 도입, 시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서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를 위해 2018년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이사제는 아직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 가장 먼저 노동이사제의 도입을 추진해온 국내 주요 금융사에서부터 제도 도입이 벽에 부딪쳤다. 이번 주부터 시작해 이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열릴 주요 금융사 주주총회에서 노동이사제는 주총 안건에 포함되지 못했다. 노동계에서는 회사 경영진에 대한 견제 및 노동자 이익 보호 등의 목적으로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사측에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 출범 후 3년여가 지난 현재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 사례는 전무하다.KB국민은행·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노조 역시 사외이사 추천 및 선임을 위해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국민연금 등의 찬성표에도 불구 해당은행 지분구조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갖춘 외국인 주주와 경영진 등이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 선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출입기자단 기자회견에서 노동이사제 시기상조론을 언급해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은 앞으로 상당기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 원장의 발언 하루 뒤 정부가 최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행이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사실상 부결시켰다. 노동이사제의 안정적 도입을 위해선 제도 개선 등 정부 의지가 가장 중요한데, 정부의 의지가 아직도 굳건한가 궁금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25

임전무퇴

임전무퇴(臨戰無退)는 화랑정신의 근간을 이룬 세속오계의 계율 중 하나다. 세속오계란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金言)을 청하자 내려준 5가지의 계율을 말한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이 그것이다.나라에 대한 충성과 효도, 신의, 용맹, 자비 등이 함축된 이 계율은 훗날 인재양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랑도의 실천덕목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화랑도의 발전 뿐 아니라 삼국통일을 이룩하는데 기여한 기조정신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화랑도는 당시 혈족중심의 귀족사회 구조 속에서도 비교적 신분을 떠나 범사회적 조직체로서 활동했다. 젊은이들이 모여 사회공동체로서 훈련도 하고 심신수련과 학업도 익혔다.특히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전쟁터에 직접 뛰어드는 용맹함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장군의 결사대에 맞서 싸웠던 화랑 관창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목숨을 내던진 관창의 용맹스러움으로 신라는 700년 역사의 백제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화랑은 비록 군인은 아니지만 군인 이상의 용맹함과 충성심으로 뭉쳐진 애국 집단이다. 전쟁에 나서면 목숨을 잃으면 잃었지 후퇴란 있을 수 없다.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에게 일침한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도 임전무퇴의 곧은 정신이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고 한 그의 각오에서 군인 정신의 비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대한민국 국군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의 최후 보루이다. 누구보다도 투철한 사명감과 건전한 애국정신으로 무장돼야 함은 물론이다. 국군을 대표하는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서해수호의 날을 두고 “불미스런 남북 간 충돌” 운운하다 야당의원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 국방부 장관의 안보관이 이 정도일까 싶어 새삼 놀랍다. 임전무퇴의 정신이 갑자기 위대해 보이는 요즘 세상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24

젊은 리더십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1980년생이다. 올해 만 39살이다. 30대 젊은 대통령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보다도 3살이나 젊다.1990년 정계에 입문, 2017년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를 맡았고 그해 총리로 선출됐다. 1856년 이후 여성으로서는 뉴질랜드 최연소 총리가 된 인물이다. 총리 재임 중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출산 휴가를 한 최초의 여성 총리다.작년 4월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다.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 좌파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진보인사 중 한 명이다.다만 이민문제에 대해선 보수 우파적 면모가 강하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우파인 국민당이 오히려 이민에 대해 긍정적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젊은 여성인 아던 총리가 갑자기 세계인의 시선을 모았다. 테러사건으로 그녀에게 시선이 쏠린 게 아니다.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무슬림 총기테러보다 테러에 대응하는 그녀의 대응 리더십에 세계가 주목을 한 것이다.테러 행위에 대한 즉각적이면서 단호한 태도뿐 아니라 침착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그녀의 대응방식에 많은 이가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특히 히잡을 쓰고 충격과 공포에 빠진 무슬림 공동체를 찾아간 그녀가 무슬림을 안고 함께 아파했던 모습을 두고 세계 언론은 ‘훌륭한 지도자’ ‘진정한 영웅’이라는 표현을 썼다.테러에 대한 분노와 증오보다 공감 있는 언어 구사와 행동으로 무슬림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들의 편에서 지지를 보낸 그녀의 용기 있는 리더십에 대한 칭찬이다. 최고의 공감 리더십이라 평가했다.한 나라의 총리로 국정 전반을 다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기 때 보여주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 나라 국민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 그의 리더십이 국민의 정서와 부합할 때 국민이 느끼는 만족감도 크기 때문이다. 30대 젊은 여성 지도자를 총리로 뽑은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그녀가 보인 리더십은 충분한 만족감이 아니었을까 싶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9-03-21

최정호식 증여

증여는 당사자의 일방이 재산을 무상으로 친족 또는 타인에게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하여 성립하는 낙성·무상·편무(諾成·無償·片務)의 계약을 말한다. 또한 타인으로부터 채무의 면제·인수 또는 제3자에 대한 변제를 받은 자는 그 면제·인수 또는 변제로 인한 이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며, 현저히 저렴한 가액의 대가로 재산을 취득한 경우에도 시가와 대가와의 차액에 상당한 금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증여세부과대상이 된다.국회에서 열리는 인사청문회에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추천된 최정호 후보자가 이른바 ‘최정호식 증여’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집 2채를 갖고 있던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서울 잠실의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았다가 경기도 분당 아파트를 먼저 딸에게 증여했다. 최 후보자 부인이 소유한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는 분양가보다 10억 원 넘게 올라 현 시세는 15억 원 선. 경기 분당에도 아파트가 있는 최 후보자가 다주택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잠실 아파트를 팔면 다주택자라 한 채 때보다 훨씬 높은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최 후보자는 장관후보자 지명 직전 분당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해 1주택자가 됐다. 세무사를 통해 분석해 보니 양도소득세만 4억 원 상당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실제 최 후보자가 내야 할 비용은 증여세 1억5천만 원이다. 다주택자였던 최 후보자가 1주택자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세금 2억5천만 원 정도를 아낀 셈이다. 현 정부는 그동안 주택 공시가격을 인상해 보유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팔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정작 집을 팔려고 하면 다주택자는 양도소득세 중과세 부과 대상으로 고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결국 다주택자들 사이에서는 “세금폭탄 맞을 바에야 차라리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심리가 발동, 중·저가 아파트 증여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 공시가격이 적용되는 다음달까지는 절세 목적 증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절세를 위해 매매 대신 자식에게 물려주는 ‘최정호식 증여’는 빈부의 양극화가 가져온, 웃지못할 풍경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20

복마전(伏魔殿)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를 두고 복마전이라 부른다. 보통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나 비리의 온상지를 이렇게 비유해 말한다.복마전은 수호지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북송시대 인종 때 일어난 일이다. 나라에 전염병이 돌자 왕의 심부름으로 산중에서 수도 중인 도사의 기도를 부탁하러 갔던 신하가 도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복마지전의 문을 열게 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부하는 그 안에 있던 비석(碑石)을 들추게 된다. 그러자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마왕 108명이 뛰쳐나왔다. 뒷날 이들은 나라에 큰 소동을 일으키며 백성들을 불행하게 하는 후환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동양에 복마전이 있다면 서양에는 판도라 상자가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 신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진흙으로 빚어 인간으로 태어나게 한 인물이다. 판도라는 어느 날 온갖 불행과 질병, 고통이 담긴 상자의 뚜껑을 열게 된다. 판도라가 호기심으로 연 상자에서 세상의 불행이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인류의 모든 재앙은 이 상자를 열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클럽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유명 연예인의 일탈행위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마치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은 정말로 요지경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부정과 비리, 음모와 결탁, 불의가 난무하는 현실 등 온갖 추잡한 세상 일들을 모두 이곳에 한꺼번에 모아 둔 것 같다. 복마전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사태의 확산을 두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 부르는데, 맞지 않는 표현이다. 좋은 일이 거듭될 때 점입가경이지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점입추경(漸入醜境)이라는 말이 옳다.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며 갈수록 추악해진다는 뜻이다. 마치 막장세상 같다. 그들에겐 얼마나 호사스러운 세상인지 모르나 그들의 놀아나는 모습을 보면 막장 인생이 따로 없다. 버닝썬 사태를 단순히 유명 연예인의 일탈로 보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혼탁하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사고 정말로 경계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19

패스트트랙

패스스트랙은 국내 정치에서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로, ‘안건 신속처리제도’라고도 불린다. 국회법 제85조의 2에 규정된 내용으로, 발의된 국회의 법안 처리가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고, 법안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다. 경제 분야에서는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리키며, 기업이 은행에 패스트트랙을 신청하면 은행은 기업의 재무 및 경영 상태를 심사해 A∼D 등급을 판정하게 된다. 국제 분야에서는 미국 행정부가 국제통상 협상을 신속하게 체결할 수 있도록 의회로부터 부여받는 일종의 협상특권을 지칭한다. 무역촉진권한(TPA·Trade Promotion Authority)으로도 불린다. 의회가 대통령에게 신속협상권(Fast Track) 권한을 부여한 경우, 의회는 행정부의 협상 결과를 일정기한(90일) 내에 수정 없이 찬반결정만을 하게 된다.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정치분야 패스트 트랙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혁 단일안을 도출하고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고 있어 국회가 시끄럽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은 최근 ‘지역구 225석·권역별 비례 75석 고정·연동률 50% 적용’을 핵심으로 한 선거제 개혁 합의안을 정당별 추인을 거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 개혁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릴 작정이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에 강력히 반발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역시 선거제에는 합의했지만 총선을 앞둔 시기에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데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실제 패스트트랙으로 처리될 지는 불확실하다.당리당략으로 싸우느라 꼭 처리돼야 할 민생법안의 통과가 하염없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민감한 시기에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거제를 바꾸는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그리 현명치 않아 보인다. 국회판 레드테이프를 막기 위한 패스트트랙이 다수결의 독재에 쓰였다는 비판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8

낮잠

매년 3월 둘째 주 금요일은 세계수면의 날이다. 세계수면학회가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2008년 처음 지정한 이후 매년 나라별로 학술행사 등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사람의 수면은 보통 7시간 30분∼8시간 정도가 적정 수면시간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바쁜 생활패턴으로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42%)이 가장 많았다. 다음이 7시간(24%), 5시간(21%)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75%는 수면 부족을 호소한다고 했다. 수면이 부족하면 체내 호르몬 분비가 잘 안 되고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학적 근거도 속속 입증되고 있다.그러면 낮잠은 어떻게 볼까.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수단이 될까. 갈수록 낮잠에 대한 긍정 평가가 많아지는 분위기다. 서울과 도쿄 등에는 낮잠카페가 등장, 업무과로에 지친 직장인의 휴식처로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이솝 우화에서 등장하는 토끼는 낮잠을 자다 그만 거북이에게 달리기 경주에서 지고 만다. 잠꾸러기 토끼는 게으른 사람, 거북이는 성실한 사람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낮잠이 게으름의 상징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적당한 낮잠은 오히려 일의 활력소 내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많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풍습인 시에스타는 이런 측면에서 낮잠이 생활의 활기를 주는 수단임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시에스타는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잠시 낮잠을 잔 뒤 저녁 늦게까지 일하며 일의 능률을 찾는 그들의 생활 습관이다.우리나라도 농사가 주업이던 시절 오수(午睡) 혹은 오침(午寢)라는 이름으로 한낮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겼던 선조들의 지혜가 있었다. 최근 그리스 한 병원 연구팀이 낮잠이 혈압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과거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낮잠은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37%나 낮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낮잠의 유용성이 확인된 결과다. 지나치지 않다면 낮잠을 청해 보는 습관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17

이집트 룩소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이집트왕조가 수립된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시작된 문명이다.피라미드 문화가 있는 우리에겐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문화권이다. 전제군주인 파라오가 통치한 나라다. 정치, 경제, 종교에 걸쳐 파라오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막강한 권력의 상징물로는 언제나 피라미드가 대변한다. 왕과 왕족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그 크기나 건축 과정이 지금의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라 한다. 높이 140m, 2.5t 무게의 돌만 230만 개가 동원됐다. 상상이 되지 않는 자체만 해도 신비와 권위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이집트 룩소르시는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도시다. 나일 강을 따라 동쪽은 웅장한 신전과 궁전이 자리를 잡고, 서쪽은 왕들을 위한 공간으로 왕가의 무덤이 있다. 1천600년 동안 이집트왕국의 중심지로 번창한 도시이자 문화유적의 보고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경주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이나 찬란한 고대 역사도시라는 측면에서는 두 도시는 많이 닮았다. 룩소르시 어느 곳을 가든 파라오가 지은 웅장한 신전과 유적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발길이 닿는 곳곳에서 문화유적을 접할 수 있는 점도 경주와 흡사하다. 1922년 11월 세상에 공개되면서 고고학의 위대한 발굴로 일컬어졌던 투탕카멘 왕의 무덤이 이곳 왕가의 계곡에 있다. 투탕카멘 왕은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왕이다. 1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죽음에 관한 역사는 잘 모른다고 한다.그러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투탕카멘 왕의 묘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황금 마스크와 투탕카멘의 왕좌, 황금 미라, 황금으로 그려진 벽화에 이르기까지 무덤 안이 온통 황금으로 장식돼 있다.경주시장 일행의 이집트 룩소르시 방문이 눈길을 끈다. 역사를 공통점으로 하는 룩소르시와의 교류는 두 도시의 역사 의미를 더하는 재미가 있다. 역사란 언제나 우리에게 호기심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3-14

주목받는 할랄산업

할랄(Halal)의 사전적 의미는 ‘허용된 것’으로, 이슬람교도가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총칭해 할랄이라 한다. 과일·야채·곡류 등 모든 식물성 음식과 어류·어패류 등의 모든 해산물이 이에 해당한다. 육류 중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처리·가공된 염소고기·닭고기·쇠고기 등이 해당한다. 할랄의 반대는 하람(haram)이다. 술과 마약류처럼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이나 돼지, 개, 고양이 등의 동물 고기, 자연사했거나 잔인하게 도살된 짐승의 고기 등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이 이에 해당한다. 할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하람 성분이 들어간 식품은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육류는 할랄 인증을 받은 도축장에서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주문을 외운 뒤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동물의 앞쪽에서 도살하는 이슬람 방식에 의해 도축된 것만 수출할 수 있다. 화장품은 콜라겐 등 동물성 성분과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아야 하며, 의류 패션 분야는 생물체 문양을 이미지화해서는 안 된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무슬림의 특성 때문이다.할랄 산업은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슬람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18억 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식품 위주였던 할랄 시장은 의약품과 화장품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여성을 겨냥한 미용 산업과 무슬림들을 겨냥한 관광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터키, 중국, 말레이시아 등은 오일머니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을 겨냥해 할랄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마련하고 있다.기업들도 할랄 시장 편입을 위해 발빠르게 할랄 인증을 받고 있다. 네슬레는 2010년 말 전 세계 85개 공장과 154개 제품이 할랄 인증을 받았으며, 버거킹, KFC, 까르푸, PG 등도 할랄 제품 개발에 나섰다. 할랄 제품 수출을 주도하는 국가는 태국, 브라질, 호주, 말레이시아 등이다. 이 가운데 말레이시아는 할랄 제품 수출만으로 2012년 11억 5천700만 달러(약 1조 3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의 의미가 할랄산업과 관련된 것이란 걸 미뤄 짐작할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3

“脫 한국”

일반적으로 엑소더스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특정 장소에서 떠나가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말로 굳이 표현한다면 대탈출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 청년들의 일본 기업 취업 움직임이 전례 없이 러시를 이룬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 청년의 일본 유학 및 취업 신청자가 사상 처음으로 2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일단 희망을 찾기 위한 젊은이의 선택이라 보지만 고국을 떠나는 청년의 입장에서는 비장한 각오가 선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한번 발을 들여 놓은 직장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쉽지 않다는 관점에서 쳐다보면 한국 청년의 일본 기업 취업은 고국을 떠나는 엑스더스처럼 보인다. 부모의 입장도 딱하다. 취직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할 말은 못하겠지만 한국을 떠나 혼자 지내야 하는 자식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가 않은 게 사실이다.한국 경제의 심각한 취업난이 낳은 또 하나의 어두운 단면이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한국의 청년 인재를 데려다 가는 일본의 입장과 청년을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은 분명 다르다. 한국 내 취업 사정이 호전되지 않는 한 당분간 이런 현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지난해 한국 제조업체의 해외 직접투자가 전년보다 92.8%나 늘었다고 한다. 금액으로 보면 163억 달러(약 18조 규모)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투자액과 증가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투자 증가는 국내의 낮은 생산성과 높은 임금, 반기업적 정서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한다.같은 기간 한국 내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1.6%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제조업의 ‘탈 한국’ 현상이 아닐까 싶다.최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면서 포털 사이트 이민 카페에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특히 어린아이를 둔 젊은이가 이민 문제로 상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경제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탈한국적 분위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어쩐지 불편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3-12

산성비협약

미세먼지 유발을 둘러싼 한중 갈등 해법으로 1970년대 영국, 서독,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럽 대륙의 산성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맺었던 국제협약인 이른바 ‘산성비협약’이 주목받고 있다. 산성비협약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주관해 1979년 체결한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협약(CLRTAP)’을 가리킨다. 관련 국가들은 4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매년 대기오염 물질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감축방법 및 비용 분담을 논의하고 있다. 처음 협약의 출발은 1950년대 북유럽 국가 호수들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숲이 사라지는 재앙에서 비롯됐다. 유럽이 이 협약을 추진할 때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탓이냐를 따지기보다 큰 틀에서 함께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니 가능해졌다. 실제로 1967년 스웨덴의 과학자 스반테 오덴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아황산가스가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197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과 서독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이 스칸디나비아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두 나라는 지금의 중국처럼 연구결과 자체를 부정했다. 이에 스웨덴이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산성비를 국제 이슈로 제기하는 등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 후 과학적 검증과 국제여론의 도움에 힘입어 영국과 서독이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 OECD 주도하에 11개국이 참여하는 ‘대기오염물질 장거리 이동 측정에 관한 협동 기술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가 축적되면서 UNECE 차원의 협력 방안이 논의됐고, 1979년 UNECE 회원국 34개 중 31개국이 CLRTAP에 서명했다. 협약 이후 유럽대륙은 오염물질 배출량 감소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산성비의 원인인 이산화황 배출량은 오염이 가장 심했던 체코, 독일, 폴란드에서 모두 감소했다. 특히 독일 인근 지역의 이산화황 배출량은 1989년 142만t에서 1996년 59만t으로 크게 줄었다. 국가간 협상을 하려면 서로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법인 데, 우리 미세먼지 대책은 너무 일방통행식은 아닌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3-11

그레이트 스모그

영국은 1년 중 절반이 비가 올 정도로 날씨 변덕이 심한 곳이다. 특히 영국의 짙은 안개는 런던포그라는 애칭이 따를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때로는 낭만적인 영국의 모습으로 ‘런던 포그’가 소개되지만 영국 안개의 이면에는 우울한 이야기도 많다.대표적인 것이 1952년 일어난 런던 스모그 사건이다. 그해 12월 4일 런던에는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날이 이어졌다. 습도도 80%가 넘었다. 당시 영국의 가정과 공장은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 석탄을 대량 소모하면서 발생한 연기는 정제되지 않은 채 런던의 대기 권으로 마구잡이 쏟아져 나왔다. 연기는 짙은 안개와 합쳐져 스모그를 형성했고, 연기 속의 아황산가스는 황산안개로 변하여 런던 시민의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된다.스모그 발생 3주 만에 4천여 명의 시민이 폐질환과 호흡기 질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같은 증상의 환자가 발생해 8천 명이 넘는 사람이 추가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끔직 했던 이 사건을 두고 ‘그레이트 스모그’라 부르고 있다.런던은 오래 전부터 스모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던 도시다. 13세기 무렵에는 석탄을 연료로 쓰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17세기에는 매연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매연 저감을 위한 위생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873년부터 스모그의 영향으로 사망자가 증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쨌거나 영국의 ‘그레이트 스모그 사건’은 전 세계가 스모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탄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다. 2천927기의 석탄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그 규모는 미국의 4배에 달한다. 중국이 또다시 464개의 석탄발전소를 증설하겠다고 한다.미세먼지 문제로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요즘, 중국의 석탄발전소 증설 소식은 또한번 한국 사람의 가슴을 짓누른다. 중국이 증설 예정인 석탄발전소의 상당수가 한국 서해안에 면한 중국 동부여서 한국이 아무리 미세먼지를 줄여 봐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날 묘책은 정말로 없는 것일까?/우정구(논설위원)

2019-03-10

억만장자

조선시대 영남지방에 내로라하는 부자 집안을 손꼽으면 경주 최씨 집안과 청송 심씨 집안을 들 수 있다. 모두 만석꾼으로 통하던 집안이다. 만석꾼이라 하면 곡식을 만섬 가량 거둘 논밭을 가진 부자라는 뜻이다.경주 최씨 집안은 300년간 12대를 이어간 부자로 알려져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최씨 집안은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부자의 윤리를 실천한 집안이다.청송 심씨 집안은 부와 권세가 얼마나 컸던지 조선시대에 정승 13명과 왕비 3명, 부마 4명을 배출했다. 조선 8도 어딜 가도 심부자네 집 땅이 없는 데가 없었다 하여 조선판 ‘해가 지지 않는 집안’이라고 했다.그들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던 99칸의 송소고택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우리의 속담에 “물질 가는데 마음도 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이 풍족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게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투쟁은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지금도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불철주야 돈 벌기에 골몰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돈 버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대학에서는 부자학 개론이 인기를 모으기도 한다.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19년 세계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했다.미국의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작년에 이어 1위(1천31억 달러)를 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965억 달러)이 2위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69억 달러)이 65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81억 달러)이 181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15위 등으로 랭크됐다.포브스는 매년 전 세계 10억 달러(약 1조1천295억 원)이상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를 선정,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포보스 기준 억만장자는 올해 2천153명이다.한국도 40명이 포함돼 있다. 1조원이 넘는 억만장자 그들은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