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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당해산의 역사

청와대 국민청원에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해산 청원이 올라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 8조 4항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즉,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는 불순세력이 정당의 형태를 조직해 활동할 경우, 헌법에 정해진 바 정부가 헌재에 해산을 제소하게 된다. 다만 우리 정당 역사에는 위헌정당 해산제도 적용 없이 정당이 해산된 사례도 있다. 진보당 사건으로 해산된 조봉암의 진보당이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1960년 위헌정당해산제도가 헌법에 들어왔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의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4년 이내에 총선 혹은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만 하면 강제해산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2% 이하의 득표를 할 경우에는 정당등록이 취소됐는데, 이 부분이 위헌결정이 나오면서 득표율 부진의 이유로 정당은 강제해산 될 수 없다. 위헌정당해산제도는 민주주의와는 모순되는 야당 탄압용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어 적용이 쉽지않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위헌정당 해산심판에서 해산된 통진당의 경우에도 해산 청구를 한 박근혜 정부에 비민주적이란 비판이 많았다.청와대 국민청원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해산청원이 올라온 것은 2019년 4월 22일이었는데, 순식간에 100만명을 뚫어 주위를 놀라게했다. 이번 청원은 선거법과 개혁입법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폭력사태 등 자유한국당이 상대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상황을 연출한 탓인지 5월 1일 오후 4시 기준 156만여명으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더불어민주당 해산청원을 올렸으며, 등록한지 48시간이 되기도 전에 청와대 답변 기준선인 20만명을 넘겼다. 어쨌든 100명이 넘는 현역의원을 가진 제1야당을 정부여당이 해산절차를 밟는 무리수를 놓을 리야 없지만 자유한국당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1

대구의 랜드마크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대표적 상징물인 건물이나 문화재 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징물은 그 나라나 도시를 널리 홍보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그곳의 관광산업 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여신상, 런던의 타워 브릿지 등은 그 나라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시드니하면 오페라하우스를 연상하듯 이런 상징물들을 우리는 ‘랜드마크’라고 부른다. 랜드마크는 원래 여행가들이 어느 지역을 여행하면서 처음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둔 것을 가리켰으나 지금은 건물이나 조형물 등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란 뜻으로 통한다. 한때는 63빌딩이 서울의 상징이 된 적도 있다. 지금은 제2 롯데타워가 그 이름을 대체하고 있다. 세계 5위 높이의 롯데타워는 대한민국 서울의 역동적인 현대 문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건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세계 10대 도시라 일컫는 서울만 해도 도시를 상징하는 이와 같은 건물과 문화재는 수두룩하다.고속 성장한 중국도 이젠 건축물만으로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24명의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며 머물렀던 자금성은 베이징의 대표적 상징이다. 세계 5대 궁의 하나로 손꼽힌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상하이 푸둥 지구에 있는 동방타워 역시 건물의 높이나 웅장함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광저우 타워, 텐진의 영락교와 선전의 지왕빌딩 등도 한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만한 건축물들이다. 도시의 대표성만큼이나 관광자원으로서 홍보와 효과도 뛰어난 건물이라 할 수 있다.인구 250만 명이 살고 있는 대구는 어떤 상징물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퍼뜩 떠오르는 상징물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구시가 시청 신청사 건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고 한다. 최고의 정성을 들여 대구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늦은 걸음이라도 괜찮다. 100년 대구를 내다본 신념이 담긴 건축물로 탄생하였으면 하는 게 시민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30

전기차 vs 수소차

전기차는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 등의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나 전동기와 내연기관을 같이 장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와는 달리 순수히 전기만 사용해 구동하는 자동차를 의미한다.전기자동차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시기인 1830년대에 최초로 개발됐다. 심지어 100㎞/h를 처음 돌파한 것도 전기자동차였다. 그러나 당시의 전기자동차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성능 향상이 지지부진했고, 비싼 가격, 심하게 무거운 배터리, 너무 긴 충전 시간 등의 문제가 있었다. 결국 전기자동차는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90년 이후 화석연료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본격적 개발은 21세기의 눈부시게 향상된 전력전자 기술과 우수한 반도체 등의 첨단 기술에 힘입어 내연기관 차량이 100년에 걸쳐 쌓아올린 내연기관의 성능을 고작 10년도 안 돼서 쫓아오는 데 성공했다.최근 정부가 지원을 약속한 수소차 역시 전기차의 일종이다. 다만 기존 가솔린 내연기관 대신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를 이용한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를 말한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전기를 이용해 모터를 구동한다는 구동방식에서는 똑같다. 다만 전기 충전 방식이 다르다. 전기자동차는 일반적으로 관공서, 아파트, 개인주택에서 전기 충전기를 설치해야 충전이 가능하고, 충전 시간이 급속 기준으로 40∼50분 걸려 상대적으로 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수소차는 수소를 충전하므로 충전 시간이 매우 짧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내 수소 충전소가 많지 않고, 충전소 시설비용도 수십억원으로 비싸 운영이나 충전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이 많다.어떻든 전기차든 수소차든 향후 충전 인프라만 충분히 구축된다면 점유율이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친환경자동차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만큼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차나 수소 자동차가 대중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친환경자동차시대가 다가온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9

경북 농업의 힘

얼마 전 농림식품부가 ‘2018년 귀농귀촌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귀농인은 귀농 결심 이유로 ‘자연환경이 좋다’(26.1%) ‘귀농비전과 발전 가능성’(17.9%) ‘도시생활의 회의’(14.4%) 등을 차례로 손꼽았다. 특히 귀농인의 60.5%가 만족한다고 말했다. 불만스럽다는 7%였다. 32.5%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또 귀촌 가구의 19.7%가 귀촌 이후 5년 이내에 농업으로 유입됐고, 귀농 준비에 평균 27.5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조사됐다. 귀농 5년차에 들어 평균 소득이 3천896만원으로 올라서 농가의 평균 소득을 웃돌았다고 한다.베이붐 세대의 귀농 행렬에 이어 최근 심각한 취업난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도 귀농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해동안 귀농귀촌 인구가 51만 명을 넘어섰다.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농촌 현실에 귀농인구 증가는 반가운 소식이다. 각별히 주목되는 것은 40세 미만 청년 귀농가구가 전체 귀농가구에 차지하는 비율도 해마다 증가세에 있다는 점이다.본래 귀농은 농촌을 떠나 제2차 3차 산업에 종사했던 사람이 농촌으로 환류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불황에 의한 노동력의 환류나 은퇴노동자의 복귀가 대부분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농촌의 귀농 사정이 이랬다. 그러나 최근 젊은 엘리트의 귀농도 부쩍 늘어난다 한다. 고학력자나 전문직 종사자의 귀농은 귀농 현상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가능성을 보이게 한 낙관적 변화다.경북도가 14년간 귀농 1위 지역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귀농귀촌 통계에서 전국 가구의 18.3%가 경북에서 이뤄졌다. 1960년대 이후 오랫동안 경북도를 웅도(雄道)라 불렀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제1의 도시란 뜻이다. 웅도의 위세가 많이 쇠퇴한 측면이 있으나 경북은 여전히 전국 최고의 위용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농축산물의 생산과 판매는 최고다. 다양한 고소득 작물과 선도농가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귀농 1등 경북은 ‘경북의 농업’의 매력을 의미한다. 전통 경북 농업의 힘이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28

약령시

약령시(藥令市)에 명령을 뜻하는 영자가 들어간 것은 관(官)의 명령에 따라 시장이 열렸기 때문으로 해석한다.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온 약재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중국에서 들어온 약재를 당약(唐藥), 당재(唐材)라 불렀다. 중국 약재와 구분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향약(鄕藥)이라 부른다. 중국산 당약은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하므로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힘든 약재다. 그래서 값싼 약재의 손쉬운 구매를 위해 조선 세종 때는 향약 생산을 장려하는 기구와 정책을 펴기도 했다.국내 약재의 주요 산지로는 예로부터 경상도와 강원도, 전라도를 손꼽았다. 특히 대구와 원주, 전주는 주변에서 반입되는 약재의 집산지로 잘 알려져 있었고, 이곳은 관할 관찰사의 명에 따라 약령시가 열렸다고 한다. 약령시는 음력 2월과 10월 1년에 두 번 열린다.약령시가 열리면 관리가 나와 중국에 바치는 약재(조공약재)와 우리나라 조정에서 필요한 약재를 먼저 매입했다고 한다. 약령시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채취자, 상인과 약재 수요자가 몰려 시장은 성시를 이뤘다. 약령시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이 대구약령시다. 대구약령시는 1658년 효종 9년에 시작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의 약령시에는 단순 거래와 교환 외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와 약령시 개설을 알리는 각종 행사도 열었다고 한다.따지고 보면 올해가 대구약령시 개장 361주년 되는 해다. 이 만큼 긴 역사를 가진 축제도 잘 없다. 한국기네스위원회는 2001년 대구약령시를 한국 최고(最古)의 약령시로 인증을 했다.또 2004년에는 대구약령시 일원이 한방 관련 분야 최초로 한방특구 지정도 받았다. 귀중한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인정된 셈이다.대구약령시 한방축제가 5월2일부터 5일간 약전골목 일원에서 열린다. 거리극단, 한방미용체험, 정성탕 나누기 등 각종 행사도 덩달아 펼쳐진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던 전국 최대의 약령시 축제가 이제 현대적 축제로 발전,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 힐링감을 느낄 수 있는 한방축제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25

조현병 논쟁

최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방화·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현병 환자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조현병은 정신질환의 하나로,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하지만 부정적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악기의 현을 고르다’는 뜻의 조현병(調絃病)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악기의 줄처럼 이어진 뇌의 신경구조가 잘 조율되지 않아 정신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현병의 주된 증상은 환청, 망상, 이상 행동 등의 증상과 감정이 메마르고 말수가 적어지며, 흥미나 의욕이 없고, 대인관계가 없어진다. 환자들은 흔히 환각을 경험한다. 어떤 환자들은 이런 환청과 대화를 하기도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환각과 함께 망상은 정신분열병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과 연관지어 개인적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망상, 나를 감시하고 있다거나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피해망상, 내가 구세주이거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종교망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망상은 합리적인 설득이나 논쟁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의사들은 망상이나 환각, 환청, 이상한 행동 등이 6개월 이상 지속하면 조현병으로 판단한다. 조현병 환자가 전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 환자들은 공격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전문가들은 보건 당국, 경찰, 지역 사회 등이 나서서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사회 안전망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는 피의자와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드는 강력 범죄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따라서 기초수급자 등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어려운 조현병 환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공의료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고위험군 환자는 방문 확인을 하는 등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또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나 현재 유명무실화된 치료명령제도를 활성화해 국가·지자체 차원에서 환자들을 관리해야 한다. 조현병 환자가 불특정다수를 향한 강력 범죄 피의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4

신문고(申聞鼓)

신문고는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북을 쳐서 임금에게 알리는 옛날 왕조시대의 민원 상소 제도다. 조선시대 때 태종이 이 제도를 도입해 백성의 억울함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신문고는 원래 당나라 태종이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설치한 등문고(登聞鼓)가 최초인데 이것이 조선으로 유래한 것이다.역사가들은 백성의 뜻을 잘 살핀 조선 태종(이방원)과 당나라 태종(이세민)은 닮은 데가 많다고 해석하고 있다. 우선 태종이란 묘호를 쓴 게 같다. 태종이란 묘호는 본래 건국 후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가의 기틀을 다진 왕들에게 붙여주는 명칭이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대표적이다.조선의 이방원과 당나라의 이세민은 둘 다 개국 군주의 아들이다. 둘 다 장남이 아니면서 권력의 실세였고 왕자의 난을 치르며 권력의 정상까지 오른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건국초기의 나라 기반을 굳건히 세운 공로자라는 점에서도 같다.당 태종은 중국 역대 황제 중 최고의 성인(聖人)으로 통한다. 그는 농민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나눠주고,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등용했다. 등문고를 설치, 백성의 억울함을 살피는 등 국가와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푼 황제다.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조선 태종도 사실상 조선의 창업군주라 불린다.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개국 공신일 뿐 아니라 아버지를 이어 국가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세운 그의 공로는 대단하다.1401년 조선 태종이 설치한 신문고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왕이 직접 듣고 풀어주기 위한 제도다. 억울한 백성은 대궐 밖 문루에 올라가 북을 두드리면 임금이 직접 이를 챙겼다고 전한다. 지금으로 보면 청와대 게시판과 같은 역할을 한 제도다. 이용하는 백성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조시대에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한 왕의 발상이 놀랍다.‘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지금의 국민청원은 곧 조선시대 신문고와 비슷한 취지의 정책이다.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이 21만 명을 넘었다. 정치권이 풀지 못하고 있는 포항시민의 요구에 이제 청와대가 답할 차례다. 어떤 답을 줄지 사뭇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23

위기의 ESS

ESS(Energy Storage System)는 태양광·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나 값싼 심야 전기를 배터리처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이에 쓰이는 장치를 축압기라고 하고, 더 넓은 범위의 시스템 전체를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라고 부른다.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건전지나 전자제품에 사용하는 소형 배터리도 전기에너지를 다른 에너지 형태로 변환하여 저장할 수 있지만 이런 소규모 전력저장장치를 ESS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수백kWh 이상의 전력을 저장하는 단독 시스템을 ESS라고 한다.에너지 저장방식에 따라 크게 물리적 에너지저장과 화학적 에너지저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물리적 에너지저장으로는 양수발전과 압축공기저장, 플라이휠 등을 들 수 있으며, 화학적 에너지저장으로는 리튬이온배터리, 납축전지, NaS전지 등이 있다. 배터리 형식의 ESS를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ESS라고 하면 BESS를 말한다.문제는 우리나라에 설치된 ESS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잦아 가동이 중지되는 등 업계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ESS 화재는 지난 2017년 8월 전북 고창변전소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올 1월까지 전국에서 21건이 잇따랐다. 이 가운데 15건(71%)은 태양광·풍력 발전에 연계된 ESS에서 일어났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ESS 가동 중단을 권고했고, 지난 1월부터 ‘민관 합동 ESS 화재 사고 원인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하고 있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곳에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산업통상자원부가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4월 12일 기준으로 전국에 설치된 ESS 1490개 중 747개가 가동 중단 상태다. 화재가 잇따르자 전국 ESS의 절반은 가동중단 조치됐고, ESS 신설 역시 중단됐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이 지연되면서 신규 ESS 설치 계약 물량도 끊겨 ESS 산업 생태계도 무너지고 있다.신재생에너지 시대를 맞아 관련 기술의 선제적 개발과 적용 노력이 아쉬운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2

노트르담 화재 이후

지난 15일 불이 나 첨탑 부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뒷얘기가 무성하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의 정신적 안식처이자 대표적 상징물로서 노트르담 대성당은 화재 진압 후에도 충분한 화젯거리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성당의 오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 등이 후일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가장 관심이 많은 복원과 관련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년 내 재건”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본래 모습으로의 복원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본래의 재료인 참나무를 사용해야 한다면 40년은 족히 걸릴 것이란 전문가의 견해가 나와 복원과 관련한 논란은 쉽게 숙지지 않을 전망이다.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혁명 이전 중요한 정치행사와 왕실의 의전이 대개 이곳에서 진행됐다. 영국과 프랑스 왕가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1804년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가운데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건물의 역사성과 뛰어난 명성에 걸맞게 대성당 복원을 돕겠다는 성금이 줄을 잇고 있다. 화재 발생 하루 만에 8억 유로(약 1조 원)가 모였으니 명불허전(名不虛傳)의 건물임을 실감케 한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 프랑스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창업자가 성당 재건을 위해 2억 유로(약 2천56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전해 왔다. 미국의 애플도 금액은 밝히지 않았으나 기부 의사를 밝혔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긴박하게 대응하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이 긍정적 평가를 얻어 지지율이 3%나 상승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성당의 위엄에 감탄사를 보내야 할 판이다.이곳 대성당을 찾아오는 한해의 관광객 수가 1천40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많은 관광객도 대성당 앞 광장에 별모양으로 새겨진 포앵제로(도로원표)에서 사진 찍은 경험이 있다. 이곳을 밟으면 파리를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을 믿고서 말이다. 대성당의 화마는 아픔과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과거를 추억케 한 사건이기도 했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21

퓰리처상

2015년 대구에서도 퓰리처상 수상작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이날 사진전을 구경한 많은 사람들은 ‘사진의 힘’을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는 이색 경험을 했다.퓰리처상 수상작은 작품마다 한편의 예술을 느낄 만큼의 높은 작품성이 있다. 그리고 역사의 순간과 특종의 순간을 고스란히 담음으로써 사진을 보는 재미가 예사롭지 않다.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 전쟁 관련 사진으로 유명한 ‘소녀의 절규’가 있다. 당시 9살의 베트남 소녀가 네이팜탄의 폭탄 세례로 불이 붙은 옷을 벗어던져버리고 울부짖으며 달리는 모습을 AP통신기자가 카메라에 포착했다. 전 세계가 이 사진 한 장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비극상을 실감했다고 한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이 소녀는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고 훗날 UN 명예대사로 전쟁 피해 아동구호 활동을 펼쳤다. 올해 독일 드레스덴 인권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으니 인생 반전을 일궈낸 셈이다.퓰리처상은 미국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특히 언론계서는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부른다. 1917년 헝거리 출신의 미국 저널리스트 퓰리처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상이다. 언론분야 14개 부문과 문학, 드라마, 음악 등 7개 부문이 시상된다. 매년 4월 수상자를 발표하며 수상자에게는 1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이 상은 권위와 신뢰도가 높으나 미국신문사에 활동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져 미국 내 문제가 주로 다뤄지는 아쉬움은 있다. 시중에는 퓰리처상 사진을 모은 책이 발간되어 일반인도 퓰리처상 수상작을 손쉽게 접할 기회가 있다.올해 퓰리처상 사진부문에 한국인 사진기자가 포함돼 화제다. 로이터 통신의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경훈씨는 미국 국경지대에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모녀의 사진을 잡아 미국 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한국의 일간스포츠지 사진기자로 일하다 2002년부터 로이터 통신 도쿄지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은 그에게 축하를 보낸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18

거꾸로 태극기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다. 흰 바탕 위에 짙은 적색과 남색의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싸고 있다.태극기는 1882년 고종이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어기(御旗)인 ‘태극 팔괘도’를 일부 변형해 만들었다. 고종은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 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기를 제작하게 했다.이는 고종이 계승코자 했던 정조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사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깃발은 일본 제국의 국기와 비슷해, 태극 무늬와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려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되도록 했다.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 당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했고, 9월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에도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했다. 1882년에 고종의 명을 받아 처음 제작되고 사용됐던 태극기는 1883년 3월 6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됐으며, 1897년 10월 12일 기존의 태극기를 그대로 대한제국의 국기로 사용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발발하며 전국적인 만세 시위에 태극기가 사용돼 항일 운동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했으며, 1942년부터 한국의 국기를 ‘태극기’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태극기는 해방된 조선의 국기로 인식돼 1946년 1월 14일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에서도 태극기를 조선 국기로서 게양했고,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국기로 공식 제정됐다.대통령 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태극기가 거꾸로 게양됐다고 해 말썽이다. 사실 태극기는 아래위를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우선 건괘가 위쪽이며, 가운데 음양양의를 상징하는 태극마크에서 임금을 뜻하는 붉은색이 위쪽으로 가도록 게양한다는 것만 명심하면 된다. 어쩌랴. 역사를 모르면 국기 게양하는 법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니./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17

백두산(白頭山)의 화산

백두산은 우리민족의 성산(聖山)이자 영산(靈山)이다. 단군 신화를 비롯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설이 흐르는 신비의 산이다. 산의 규모가 워낙 크고 산세도 깊어 산중의 산으로 통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은 그 뿌리가 백두산에서 시작된다. 백두대간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민간에 의한 신앙적 숭배도 유난히 많았던 전설적 산이다.조선시대 최고의 지도인 대동여지도 서문에서 백두산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조선 산맥의 조산(祖山)이니 3층으로 된 높이가 200리나 되고 가로로 퍼져 1천리에 걸쳐 있다”고 했다. 백두산의 웅대함에 대해서는 대동여지도 말고도 조선시대 만들어진 만기요람이나 택리지 등에도 소개가 돼 있다.백두산의 높이는 수준원점의 기준에 따라 남한과 북한, 중국에서의 높이가 서로 다르다. 북한의 원산 앞바다를 기준으로 측량한 높이가 2천750m다. 최고봉은 장군봉이다. 2천500m 이상 봉우리가 무려 16개나 된다.백두산은 또 전형적인 고산기후로 한반도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한 곳이다. 연평균 기온은 6~8도, 최고기온은 18~20도이다.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23도며 연중 겨울 날씨가 230일 정도 된다. 백두산에는 검은담비, 표범, 호랑이, 백두산 사슴, 큰곰 등 희귀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200여종의 조류와 2천7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해 그야말로 자연 생태공원이나 다름없다. 지질학적으로 백두산은 약 200만 년 전부터 화산 활동이 약화되어 지금의 산세를 형성하였다 한다.기록에 의하면 1597년과 1668년, 1702년에 화산이 분출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지금도 백두산 주변 50km 내외에 진도 2~3의 약한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15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백두산 화산과 관련한 토론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특히 주제 발표에 나선 학자들이 백두산의 화산 폭발 가능성을 제기해 충격을 주었다.참석 학자들은 “지금 백두산은 심각한 화산분화 징후가 보이고 있다”고 말하며 만약을 대비해 정밀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백두산의 폭발 가능성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우정구(논설위원)

2019-04-16

제3지대론

제3지대론은 정치권에서 기존 여야를 제외하고, 제3의 지대에서 정치세력을 결집해 정권을 창출하자는 주장이다. 흔히 총선발 정계개편을 앞둔 시점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정치용어다. 실제로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야권을 중심으로 한‘제3지대론’으로 술렁이고 있다.논의의 핵심에는 바른미래당이 자리잡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4·3 보궐선거 참패 후 불거진 손학규 대표 책임론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분당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제3지대론’이 시작된다.손 대표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하태경·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 등 바른미래계는 당 대표 재신임을 묻는 전 당원 투표를 제안하고 손 대표에게 거취를 정리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그러나 손 대표는‘사퇴 불가’입장이다.지난 11일에는“극좌·극우를 표방하는 사람들, 그쪽으로 가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당 안팎에서는 손 대표가 끝내 퇴진을 거부할 경우 강경파가 탈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특히 바른미래당이 흔들리는 사이 민주평화당이 제3지대론에 힘을 실으며 공개 구애에 나섰다.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최근 라디오 방송 등에서 손 대표를 향해“험한 꼴 다 보고 있는데 이 꼴 저 꼴 보지 말고 빨리 나와 집을 새로 짓자”며 탈당을 권유했다.바른미래계가 당을 떠날 생각이 없으니 손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당계가 당을 나오라는 취지다. 박 의원은“진보와 보수, 한 지붕 두 가족 속에서 손 대표의 길이 무엇인가”라며“손 대표가 다시 보수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다고 하면 합의이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박 의원을 비롯한 평화당 내 일부가 정의당과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반대하는 이유도 내년 총선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향후 손 대표 측과‘제3지대 신당’을 모색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평화당 최경환의원 역시 최근 광주에서 열린 민주평화당 개편대회에서 광주시당 위원장에 선출된 뒤“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변화에 앞장서서 건강한 제3지대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해 총선발 정계개편이 제3지대론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15

후쿠시마 수산물

지난해 말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여론조사를 통해 일본사람이 최근 30년 이래 가장 큰 사건으로 ‘동일본지진’을 손꼽았다고 보도했다.동일본지진은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부지방을 관통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다. 지진 후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시 등 해변도시를 덮쳤으며 도쿄를 비롯 수도권 일대도 건물 붕괴와 대형 화재로 대혼란을 겪어야 했다.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고, 급기야 방사능이 누출되는 일이 벌어졌다.동일본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사상 최대 규모다. 1995년 6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한신 대지진(규모 7.3)의 180배 위력을 보였다. 1960년 발생한 칠레 지진(9.5)과 알래스카지진(9.2), 수마트라지진(9.1)에 이어 1900년 이후 발생한 세계 4번째의 강력한 지진이었다. 사망 및 실종자 수가 2만여 명에 이르렀다. 일본 당국은 피해 규모로 15조~25조 엔대로 추정했다.20m의 쓰나미가 덮친 후쿠시마 원전은 핵원료가 녹아내려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이어 2·3·4호기에서도 수소폭발이 이어져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는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일본 당국은 그해 4월12일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 수준을 레벨 7로 격상했다고 발표했다. 레벨 7은 국제원자력기구가 만든 0~7까지의 국제원자력 사고 등급 중 최고 위험 단계다. 1986년 발생한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동일한 등급이다. 당시 후쿠시마 토양에서는 골수암을 일으키는 스트론튬이 검출됐다. 이 방사성 물질은 바다 건너 한국은 물론 중국과 미국 등지에도 영향을 미쳤다.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후쿠시마현을 포함 인근 8개 현에서 잡히는 28개 어종 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방사능 누출에 대한 식품의 안전성을 우려한 조치다. 그러나 일본이 반발, WTO에 제소하면서 이 문제는 양국 간에 미묘한 무역 분쟁으로 번졌다. 그러나 최근 WTO가 최종적으로 한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식품 안전에 대한 개별 국가의 권리를 폭넓게 해석해 준 판결이다. 식품의 안전은 지나치게 까다로워도 나쁘지 않다는 교훈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14

포항의 강원도 돕기

보원이덕(報怨以德)은 노자(老子)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는 뜻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것이 일반적인데 원한을 덕으로 갚으려하니 얼마나 힘든 과정일까 싶다. 그러나 이것이 선비의 참 다운 길이라고 고전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한지간에 있는 두 집안 자녀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희곡이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두 사람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지만 한편으로는 화해와 용서를 배우게 했다.배은망덕(背恩忘德)은 보원이덕의 반대말 쯤 된다.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배신의 의미다. 우리나라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놓아라 한다”는 말처럼 황당하기도 하지만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괘씸한 행동을 할 때 쓰는 말이다. 또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사용하는 말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있다.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은혜를 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소 과장한 표현이나 고마움에 대한 절절함이 묻어나는 사자성어다.“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결초보은(結草報恩)도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중국 춘추좌씨전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딸의 목숨을 건져 준 은인에게 꿈에 나타나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갚았다는 유래를 갖고 있다. 사람이 해야 할 도리로서 은혜의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싶다.포항시가 강원도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이재민 돕기 성금모금운동에 나섰다. 포항시는 포항지진 발생으로 겪은 아픔과 그때 받은 도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강원도 산불 피해주민 돕기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이 지진으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전국 각지에서 보내준 온정의 손길이 큰 힘이 됐다”고 말하며 고통과 아픔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했다. 포항시의 강원도 산불 피해주민 돕기 성금모금운동이 보여준 보은의 마음이 아름다워 보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11

브라운모터

브라운모터는 초미세공간에 있는 비평형 상태의 입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동력장치를 말한다. 나노크기의 분자들은 용액속에서 다른 용매들과 충돌하면서 방향성없이 움직이는 ‘브라운 운동’을 하는데, 이 운동때문에 나노스케일의 초미세공간에서 분자들을 원하는 곳에 선택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다. 이 브라운운동을 제어해 나노입자를 특정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모터, 일명 ‘브라운모터’가 최근 국내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이화여대 김준수 교수 연구팀이 올린 성과다. 연구팀은 나노입자가 DNA를 따라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DNA를 설계하고, 이를 이론 및 계산화학 연구로 증명했다. 음전하의 DNA와 양전하의 나노입자는 정전기적 인력으로 결합한다. 이 때 DNA구조가 유연할수록 나노입자와의 결합에너지가 낮고 결합하기 쉽다. 따라서 나노입자는 DNA의 유연한 부분을 향해 이동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DNA의 유연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구조가 반복되도록 합성했다. 그리고 주변 이온의 농도를 급격히 증가, 감소시키기를 반복했다. DNA와 나노입자의 결합에너지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나노입자가 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증명됐다. 즉 384개의 염기쌍을 순차적으로 합성해 반복적으로 유연성이 변화하도록 설계된 DNA모델과 나노입자와의 결합에너지를 이용했다. 여기서 이온농도가 낮을 때는 반복적으로 비대칭적인 DNA-나노입자 결합에너지를 가지고, 이온농도가 높을 때는 대칭적인 결합에너지를 가진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용액의 이온농도를 주기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비평형상태를 유도하고 나노입자를 일정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됐다.세계적 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된 이 연구로 초미세공간에서 DNA에 결합한 나노입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나노스케일 브라운 모터의 설계 및 개발가능성이 증명됐다. 이에 따라 공상과학에서 등장하던 나노디바이스 및 나노응용기술의 개발이 한 걸음 앞당겨졌다는 평가니 인간의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하는 지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10

‘연봉 킹’

연봉이란 한 사람이 일년동안 받는 봉급의 총액을 일컫는다. 현대사회에서 연봉이 많은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로 통한다. 사람으로 말하면 연봉을 많이 받을수록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게 요즘 세상의 인심이다.모두가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우겨대지만 연봉의 많고 적음이 우리사회 평가의 중요한 척도가 돼 버린 걸 부인할 수 없다. 대기업이나 신의 직장으로 통하는 공기업 등이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연봉이 큰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 스포츠맨이나 인기 연예인의 경우 그들의 인기와 연봉은 정비례한다.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연봉액에 입이 쩍 벌어진다. 연봉이 마치 세상 모든 일의 큰 기준점이 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모든 직업은 그 고유의 역할과 가치를 각기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직업에 따라 천차만별식 연봉을 쳐다보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별로 맞지가 않아 보인다.연봉이 높다고 좋은 직장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으나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해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연봉이 높다는 것은 괜찮은 직장임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돈으로 평가받아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돈 많이 버는 직업의 순위가 발표되고 연봉 높은 인기인의 연봉액도 공개된다. 세인의 관심도 유별나게 높은 게 현실이다.최근 국회의원의 평균 소득이 돈 많이 버는 기업 임원이나 의사보다 높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돼 국민을 허탈케 했다. 정치인도 직업이란 면에서 소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모든 직업인을 제치고 ‘연봉 킹’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많이 번다는 개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정치인의 역할이 ‘연봉 킹’이란 결과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며 그래서 오히려 그 결과가 황당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연봉은 땀 흘려 일한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빛나는 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09

탈코르셋 운동

탈코르셋 운동은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여성 억압의 상징 ‘코르셋’(체형 보정 속옷)을 결합한 말로 다이어트, 화장, 렌즈 등 ‘꾸밈 노동’으로 상징되는 여성 억압적 문화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 운동이다. 탈코르셋을 외치는 여성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에 ‘탈코르셋’을 해시태그(#)로 한 뒤 부러뜨린 립스틱 등의 화장품, 짧게 자른 머리카락, 노메이크업에 안경을 착용한 인증샷들을 올린다.최근 일본에서 유행되고 있는 ‘쿠투(#KuToo)’운동 역시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이다. 일본어로 구두를 뜻하는 ‘쿠쯔(靴)’와 괴로움을 의미하는 ‘쿠쯔(苦痛)’의 ‘Ku’와 ‘MeToo(미투)’의 ‘Too’가 합쳐진 조어다.#쿠투는 지난 1월 배우 이시카와 유미가 트위터에서 여성이 호텔에서 다리를 다쳐가며 일해야 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 게 쿠투의 시작이었다. 이시카와가 아르바이트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 안내를 했는데 5~7cm 굽 길이의 검정 펌프스를 신는 게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해당 트윗은 3만 번 넘게 리트윗이 되며 누리꾼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이후 한 누리꾼이 이시카와에게 ‘#KuToo’ 해시태그를 사용하자는 제의를 했다. 최근 한 여성은 ‘#KuToo’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일본어로 “신오사카(新大阪)부터 5분 걸었는데 피투성이야. 이런 걸 강제로 신게 하는 건 잘못이야”라는 글을 올렸다. 오른발 뒤꿈치에 피가 묻은 사진과 함께였다. 이시카와는 직장에서 하이힐 신는 것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 페이지를 개설했고, 현재 1만6천건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받았다.우리나라 연예계에서도 걸그룹들이 탈코르셋 운동에 나서는 분위기다. 구두를 벗어던진 채 공연을 펼친 걸그룹 드림캐쳐, 화장과 하이힐을 거부하는 가사를 담은 곡 ‘NO’를 공연하고 있는 걸그룹 CLC,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걸그룹 마마무 등의 모습에서 최근 K팝 아이돌그룹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코르셋’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여성의 권리가 크게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얽매이는 관습을 끊어내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08

벚꽃 축제

벚꽃 축제가 전국에서 절정이다. 벚꽃은 평균적으로 개화일로부터 약 일주일 후에 절정기를 이룬다. 지금 우리나라 남쪽은 꽃이 활짝 피는 절정기를 이미 넘겼고, 중부 이북지역 중심으로 본격적 개화기를 맞는다. 지난 주말에는 경주의 벚꽃 축제와 대구 팔공산 벚꽃 축제가 상춘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벚꽃 축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서도 꽃구경 맞이 행사로 인기다. 워싱턴DC 벚꽃 축제는 100회가 넘는 미국의 전통 축제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축제 중 하나며 축제기간 동안 다녀가는 사람의 수가 1백50만 명을 넘는다. 워싱턴DC 관광수입의 3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워싱턴의 벚꽃은 1929년 우리나라 침탈기 시절에 일본이 정략적 목적으로 미국에 선물한 3천그루가 그 유래가 됐다고 한다. 지금도 미일동맹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한다.우리나라는 진해 군항제가 벚꽃 축제로는 가장 오래된 축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도 일본이 한국의 강제 점령기에 진해 군항을 지으면서 심었던 벚나무가 유래가 된 것이다.벚꽃은 피어 있는 모습이 화려하지만 피어 있는 모습 못지않게 떨어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꽃잎이 유독 얇고 하나하나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 마치 꽃비가 내리는 것을 연상케 한다. 피는 기간도 짧다. 아름다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곧 푸른 잎으로만 남게 된다. 화려함을 짧게 뽐내고 사라지는 모습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도 한다.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고자 만들었던 팔만대장경 판의 재질이 대부분 산 벚나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벚나무의 재질이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으며 잘 썩지 않아 목판인쇄 재료로 적당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무기였던 활의 재질에도 벚나무 껍질이 반드시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벚꽃의 꽃말은 순결과 절세미인이라 한다. 벚꽃의 간결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에서 취해 온 뜻으로 보인다. 벚꽃 구경으로 전국 곳곳이 상춘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봄이 우리 곁에 왔음을 가장 먼저 전달하는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시기다. 벚꽃의 화려한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보는 것도 봄을 맞는 큰 즐거움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07

가계 빚과 나라 빚

2013년 대법원은 “부부 사이에 남는 게 빚밖에 없어도 나눌 것은 나눠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판결을 했다.부부라면 빚이든 재산이든 공동 책임이 있다는 양성평등 의식을 강조한 판결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빚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을 좀 더 분명히 한 판결이라고도 볼 수 있다.한국 경제에 부채가 빛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말 우리나라 가계 빚은 1천534조 원에 달했다. 2007년 631조 원과 비교하면 무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국민 10명 중 4명이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자본주의 경제에서 빚은 필연적 유통 구조라 한다. “자본주의가 빚을 먹고 산다”는 말은 이런 뜻의 의미다. 은행은 개인이나 기업에 빌려준 돈의 이자로 수입을 올리고, 돈을 빌린 사람은 그 돈으로 재산을 불려나간다.“돈은 빌려 써야 제 맛이 난다”는 것도 이런 유통구조 때문에 생긴 풍자어다.빚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한몫 한다. “빚도 재산이다”라고 한 것이나 “빚지는 것도 능력이다”는 말이 대표적이다.빚이 우리 경제 흐름에 중요한 입장에 있지만 빚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결코 아니다. “빚이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빌린 돈을 얼마나 잘 쓰야 하는데 달려있다.요즘 세상에 집을 사는데 빚내지 않는 사람 있을까만은 빚은 감당할 만큼 쓰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과도한 빚으로 망한 사람이나 기업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빚이 무슨 공짜처럼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생각부터 사라져야겠다.개인이나 국가나 부채가 많다면 그 경제가 건전할 수가 없다. 특히 국가부채는 뒷날 우리 후손의 짐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면 국가 재정 운용은 신중해야 할 일이다. 국가 부채가 사상 최초로 1천7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개인 총 부채보다 조금 더 큰 규모다.공무원과 군인연금 충당분 때문이라는데 당분간 좋아질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옛말에 하늘은 근면 검소한 사람에게 복을 내린다고 했다. 국가나 개인할 것 없이 절제있는 씀씀이가 있어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