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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편의점과 최저임금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무더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1994년의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악몽처럼 재연(再演)된다. 하지만 역동적인 대한민국에는 어제처럼 숱한 사건 사고가 넘쳐난다. 지난 20일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천350원으로 고시했다. 2016년에 6천3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2017년에 6천470원, 올해 2018년에 7천530원으로 올랐고, 2019년에는 8천350원으로 상승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중소기업중앙회는 ‘2019년 적용 최저임금안에 대한 이의제기서’를 고용부에 제출했다. 최저임금 인상액이 과다하고, 인상폭은 너무 크며, 인상속도 또한 지나치게 빠르다는 이유에서다.여기 머물지 않고 소상공인업계는 24일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를 출범하고 연대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운동연대는 소상공인연합회와 외식업중앙회같은 자영업자들과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소공인총연합회 등의 결집체다. 삼성과 현대같은 내로라하는 재벌과 중소상공업자들이 한목소리로 최저임금인상안에 반대하는 형국이다. 나는 뜨악해진다. 시간당 임금이 겨우 820원 오르는 것인데 왜들 이렇게까지 반대하고 나서는 걸까?!요즘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자영업 가운데 하나인 편의점을 생각해보자. 이마트와 씨유(CU), 지에스(GS)와 세븐일레븐 같은 대기업이 앞다투어 개점-경영하는 24시간 편의점. 다른 프랜차이즈와 달리 편의점은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아서 중년 퇴직자와 청년들의 창업 수요가 크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미장원과 분식집만큼 자주 눈에 띄는 것이 편의점이다. 그리하여 2012년에는 250m 이내에는 편의점 출점(出店)을 제한하는 기준이 만들어지지만, 기업영업의 규제를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2014년에 폐지된다.수많은 편의점이 영업하고 있었지만 출점제한이 풀리자 편의점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 늘어난 편의점은 재벌 기업에게 막대한 이득을 제공하지만, 편의점 주인에게는 가혹한 경쟁과 수익률 하락을 야기한다. 편의점 본사는 가맹점만 늘리면 돈이 되기 때문에 편의점 매출과 무관하게 가맹점 확대에 열을 올린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사이윤 극대화에 있다. 반면에 편의점 주인은 낮은 수익률과 높은 임대료 등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게다가 편의점 매출이 늘어난다 해도 수익은 편의점 주인이 아니라 가맹점을 운영하는 재벌 기업에게 돌아간다. 기업은 가맹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건을 납품하면서 일차적으로 수익을 챙긴다. 편의점을 개설하면 본사에서 제공하는 물품을 판매해야 하므로 편의점 주인은 납품원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원가를 내리든 올리든 모든 것은 본사 소관이다.여기 덧붙여지는 것이 로열티라 불리는 가맹수수료다. 편의점 주인이 거두는 수익의 34~35%가 매달 편의점 본사의 이익으로 환수된다고 한다. 그런데 치킨 등 외식 중소 프랜차이즈들은 편의점과 달리 유통이윤만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별도의 가맹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것은?! 재벌기업이 동네마다 골목마다 편의점을 열고 영세한 자영업자인 편의점 주인의 이익을 중간에서 가로채 우려먹는다는 얘기다.사정이 이런데도 보수언론과 경총같은 대기업집단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편의점 수익이 악화하는 것처럼 본말을 호도(糊塗)한다. 편의점 주인과 알바생의 대결로, 을과 을의 싸움으로 몰고감으로써 최저임금의 본질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재벌기업의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이며 무차별적인 수익 빨대는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그려야 할 미래상이다.

2018-07-27

이름의 소중함에 대하여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을 가진 한해살이풀이 있다.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휘감으면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에 분포하는데, 용정과 연길, 백두산 부근에서도 며느리밑씻개를 본적이 있다. 그때 느낀 식생(植生)의 친근한 기억은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생활습관과 언어와 풍습은 적잖게 달라졌으되, 풀과 나무와 꽃은 옛날과 다름없다는 기쁜 확인. 하지만 풀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괴이쩍음은 이내 우울한 심사로 전환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며느리밑씻개는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빼곡하게 달린 줄기를 가진 풀이다. 앙증맞게 생긴 연홍색 꽃잎과 달리 찔리면 날카로운 통증을 유발하는 가시줄기의 며느리밑씻개. 사악한 시어미는 힘없는 며느리에게 정말 그걸로 밑을 씻으라고 했을까?!사전을 보면 북한에서는 이 풀을 ‘사광이아재비’라 부른다. ‘사광이’는 살쾡이, 즉 ‘삵’을 의미하고, ‘아재비’는 아저씨를 뜻한다. 따라서 삵처럼 매서운 풍모(風貌)와 맛을 가진 풀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 ‘사광이아재비’다. 이것을 식민지 조선시기에 일본인들이 악의적으로 며느리밑씻개로 개명(改名)하면서 이름이 일반화됐다는 설이 있다.오늘날에도 위세를 떨치는 고부간의 갈등과 대립은 조선시대에는 더욱 우심했을 터.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을 비하하고 놀리는 의미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혹자는 이 풀이 부인병 치료에 효험이 있어 며느리를 지극히 사랑한 시어머니의 남다른 배려에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유래됐다고 말한다.이름은 인간을 포함한 각종 생물과 무생물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하는 기본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대상과 자아의 관계가 성립돼 유의미하게 전이되어 나감을 드러내는 징표다. 우리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의 이름을 허투루 부르지 않는다. 외려 그런 사람의 이름을 왜곡하거나 부정적인 별명으로 폄하하기를 즐긴다. 어린 시절 맘에 들지 않는 친구들을 악의적인 별명으로 곯려준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언제부턴가 병원에 갈라치면 얼굴이 찌푸려지곤 한다. 간호사들이 ‘아버님’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아버님’이라 불리는 일은 고문(拷問)이나 다름없었다. 정색하면서 아버님 호칭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다. 그이들은 고객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뜻에서 그리 부른 것 같은데, 듣는 나는 영 찜찜하다. 아이들도 이제는 장성했지만, 아직도 ‘아버님’ 호칭은 어색하고도 불편하다. 아직 며느리를 맞을 준비가 아니 된 탓이다.정치의 출발점을 물은 자로(子路)에게 중니(仲尼)는 말한다. “이름을 바로 하겠노라! 必也正名乎!” 실망하는 낯빛의 중유(仲由)에게 공자는 육단논법으로 자신의 사유를 펼쳐 보인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탄치 못하고, 말이 순탄치 못하면 일이 이뤄지지 못하고, 일이 이뤄지지 못하면 예와 악이 발흥하지 못하며, 예와 악이 발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올바르지 못하고, 형벌이 올바르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논어·자로 편)어떤 이는 ‘명(名)’을 명분이나 명분에 맞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되 나는 단출하게 ‘이름’으로 새긴다. 이름은 요긴하고 필수적인 요건이다. 나와 우리를 둘러싼 그대와 당신들 또는 그들의 관계는 대저 이름에서 유래한다. 하나의 대상에 지극한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을 온전히 부르고 소중히 간직하는 것에서 매사(每事)는 출발한다.요즘처럼 한국사회 전반에 거대한 전변(轉變)과 전환의 요구가 빗발치는 시기에 우리는 이름과 명칭 혹은 호칭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만큼의 언어로 불리는 대상과 관계설정이 종요로운 시점이다.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7-20

돌아온 외팔이와 21세기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옛날 영화를 보는 일은 유쾌하다. 오래된 일기장이나 편지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우연히 얻어걸린 색 바랜 흑백사진 같다고 할까?! 희미한 추억 한 자락 만날 단서(端緖)라도 찾게 되면 그야말로 ‘유레카’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범물동에 있는 ‘가락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가락.얼마 전 모임에서 나는 하반기에 보고 싶은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얼떨결에 맡은 영화보기모임 방장(房長)자리는 흥미롭지만 조금 부담스럽다. 한 달에 두 번 상영하는 자리에 꼬박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대화를 위해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방장이 영화를 선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회원들이 만나고 싶은 영화를 추천하는 방식이다.이런저런 영화가 거론될 때 기타리스트이자 극장장이 스치듯 말한 영화가 ‘돌아온 외팔이’다. 젊은 시절 그이는 대구의 대도극장 근처를 서성였던 모양이고, 그때를 대표하는 추억의 영화가 ‘외팔이’라 한다. 내게도 친숙한 영화지만, 실제로 그 영화를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주저 없이 ‘외팔이’를 상영목록에 첨부했다. 헌데 ‘카카오톡’으로 극장장이 난색(難色)을 표한다. 추천한 게 아니라 한다. 필름도 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그래서일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못된 심사일까?! 어느 저녁나절에 인터넷을 떠돌다가 ‘외팔이’를 검색한다. 홀연 동영상이 얼굴 내민다. 1969년 흑백으로 제작된 102분짜리 ‘돌아온 외팔이’가 천연색 필름으로 9∼10분 내외의 여러 단편(斷片)으로 이어져 한 편의 완결된 영화를 구성한다. ‘쾌재’를 부르며 영화와 대면한다.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외팔이’의 주제는 강호를 떠난 절대고수가 실현하는 권선징악이다. 무협영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왕우가 전설의 외팔이를 연기한다. 사악한 무림고수 8인이 패거리를 모아 평화롭던 강호에 살겁(殺劫)을 몰고 온다. 졸지에 사형과 사부 혹은 아버지를 잃은 군소문파의 연소(年少)한 청년들이 외팔이에게 구원을 청한다. 어쩔 것인가?!강호와 절연(絶緣)하고 아내와 함께 촌부(村夫)로 살아가기로 약조한 외팔이. 정의로운 사내 외팔이는 강호에 불어닥친 피바람을 외면하지 못한다. 어쩔 도리없이 강호로 다시 나아가는 절정고수 외팔이. 사정이 이쯤 되면 명민한 독자는 ‘셰인(Shane)’을 떠올릴지 모른다. 1953년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셰인’ 말이다. 나이 어린 꼬마 조이가 영화 말미에 ‘셰인’ 하고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 되어 울리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표표히 떠나가는 셰인.그런 틀을 가진, 여기저기 피가 흥건하고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영화 ‘돌아온 외팔이’. 넘치는 피범벅 때문에 혹자는 ‘마카로니웨스턴’ 창시자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연작’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레오네 감독에게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세상의 혼탁한 양상을 그대로 재연하는 편이 소중했을 터. 그 점에서 그는 동양의 무술영화와 거리를 둔다.정의를 실현하되, 그것을 강제한 현실과 작별하는 셰인과 외팔이. 그러하되 객석의 볼거리를 위해 뿌려지는 다량의 선혈과 허다한 죽음. 이런 영화를 고요한 저녁, 컴퓨터 화면으로 홀로 들여다보는 것은 축복이리라. ‘아랑곡(餓狼谷)의 혈투’(1970)를 보면서 소학교 끄트머리를 다녔던 상고머리 소년이 초로의 사내가 되어버린 세월의 반추!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주인공이 나타나면 그 시절 영화관에는 요란하게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정의는 결코 죽지 않으며,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는 공식을 확인해주었던 추억의 무협영화. 그런 정의가 우리의 시공간에도 아직 살아있는지 궁금하다!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7-13

시간의 색깔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세상 모든 것에는 색깔이 있다. 색깔은 가시광선이 사물과 작용해 만들어내는 오묘한 현상이다. 우리는 빛과 색을 동일시(同一視)하지만 부가혼합과 감산혼합이 말해주는 것처럼 색과 빛은 다르다. 빨강 노랑 파랑의 세 가지를 합하면 검정색에 접근한다. 색은 더할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감산혼합이라 한다. 이와 달리 빛의 세 가지 근원인 빨강 녹색 파랑을 합하면 흰색에 접근하며, 이것을 일컬어 부가혼합이라 부른다.인간은 색을 감각중심에 두고 대상을 감촉하며 사유한다. 십인십색이나 오방색 내지 색맹 같은 말은 전통적인 표현이되, 색깔론 같은 악의적인 조어(造語)는 수구 적폐세력의 전유물이다. 언젠가 적폐세력의 본산이 붉은 색을 자당(自黨)의 색깔로 결정했을 때 뜨악함을 넘어서는 공포감을 느낀 적도 있다. 저토록 색의 본질에 무심하고 무식한 자들이 모여 색깔론을 내세운 것은 권력욕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까?!길을 걷다가 더러 시간의 색깔을 본다. 어린아이의 초록 초록한 시간과 청춘남녀의 새파란 색깔과 늙은이들의 죽어버린 무채색 시간을 본다. 너무도 퇴색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아파트 벽면 같은 노년의 우울한 색깔. 그래서일까. 늙다리들은 빨갛고 노랗고 파란 천연색 옷차림으로 중무장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노년의 색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반면에 청년은 검정색으로 치장하면 훨씬 돋보인다. 청춘의 강력함과 약동하는 힘을 강조하는 무채색의 본성이라니!언젠가 서울에서 동대구 오는 길에 창밖의 사위가 어두워지는 색감의 무게로 켜켜이 덮여지는 현장과 만났다. 시속 300㎞의 고속열차가 선사하는 시간의 촘촘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내면에 자리한 예감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시간의 색깔이 어둠으로 서서히 채색되는 광경은 지금도 선연하다. 중환자실에서 기약을 모른 채 누워계신 부친의 안위로 인해 동요했던 자식의 심사가 문제였을까, 돌이킨다.하나둘씩 어둠이 아래로부터 차곡차곡 쌓여 눈높이까지 차오르는 광경은 실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아, 저것이 시간의 운동이며, 시간의 색깔이로구나. 그런 경이로운 장면과 대면한 이후로 나는 색깔과 시간을 명백하게 분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시간이 색깔이고, 색깔이 시간이라는 의식이 홀연 나를 찾아든 것이다. 내가 의식하고 다가서고 소중하게 아끼는 색깔이 있고, 꺼리고 던져버리고 경원(敬遠)하는 색깔도 있다.프랑스 국기에 담긴 세 가지 색깔은 파랑, 하양, 빨강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형제애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깔을 국기에 담아낸 프랑스가 대표하는 근대세계의 표상은 얼마나 진지하고 아름다우며 인간적인가. 색깔에는 아주 많은 상징과 실제가 내재한다. 하늘의 푸름과 대지의 붉은색과 순백(純白)의 눈을 국기에 담은 러시아는 또 어떤가. 몽골의 국기에도 대지와 하늘의 조화와 공존이 담겨있다고 한다.요즘 청춘들은 무슨 색깔을 좋아하고 어떤 색과 거리를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색깔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 놀라운 일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특정한 목표의식과 꿈이 실종된 지 오래다. 그저 지금과 여기의 닫힌 공간과 오늘의 제한적인 시간이 그들 몫이다. 왜라는 문제에 무심하며 ‘먹방’과 게임과 유희에 탐닉한 채 색과 빛, 그리고 거기 담긴 무한성과 영원에 태무심(殆無心)하다.시간을 의식하는 지구별 유일자로서 색의 본령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군상은 두려운 존재다. 시간에 담긴 색깔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 대중의 그로테스크한 담대함이 장마철 눅눅함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언젠가 생명의 종언이 찾아오는 날, 홀연히 알게 되리니, 시간과 색깔의 일원론적인 의미를!

2018-07-06

지능지수(IQ)와 소설 읽기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얼마 전에 인터넷에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197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의 지능지수가 그전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낮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라그나르프리쉬 경제연구소의 로게베르크 부소장에 따르면, 75~95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는 이전 40~75년에 태어난 세대보다 지능지수가 평균적으로 7 정도 낮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이 속한 동북아지역의 지능지수는 여타지역과 달리 지능지수가 하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우리는 도이칠란트와 이스라엘 사람의 머리가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대인은 어릴 때부터 탈무드로 영재교육을 시킨다고 부러워하며, 세계적인 석학과 철학자들을 배출한 게르만의 명성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런데 지능지수 통계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동북아 지역의 한국과 일본, 대만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능지수가 인간능력의 모든 것을 대변(代辯)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일정정도 믿을만한 근거는 있다.내가 주목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평균적인 지능지수가 높다고 해서 걸출한 천재나 위대한 과학자가 양산되는 것은 아니다. 상위 1% 내지 0.5%가 담당하는 지적-정신적 능력과 책임성 같은 것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다. 평균적인 지능지수에서 세계 최상위에 있는 한국이 자연과학과 예술, 인문학 영역에서 지금까지 도달한 수준은 그다지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실용실안에 만족하고 안주해온 관성 때문에 우리는 세계최고를 만들어내지 못했다.한국이 주도하는 학문영역은 전무(全無)하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공학, 의학 어느 하나의 분야에서도 우리가 만들어내고 인도하며 쥐락펴락하는 독자적인 영역은 없는 것이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저 베끼고 조금 고쳐서 개량하는 것에 익숙해왔다. 오랜 세월 중국에서 수입한 제도와 학문에 의지했고, 그 후에는 일본과 미국의 것을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이 천석고황으로 자리 잡았다.요즘엔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학생들이 소설 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장편소설은커녕 단편소설 읽는 것도 손사래를 친다. 호흡이 긴 글에 대한 두려움과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영상매체에 익숙해진 세대여서 그런지 독서 삼매경(三昧境)의 청춘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책을 읽다가 모르는 어휘나 구문이 나오면 사전 찾아가며 온전한 뜻을 새겨야 할 터인데,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그러니 책은 점점 더 멀어지고 이해능력은 급전직하(急轉直下)다!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1984’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인간이 마주하는 세 가지 시제(時制)에서 현재가 주도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빅브라더가 대중을 통치하는 수법은 현재에 기초하여 과거를 수정하고, 현재에 터를 잡아 미래를 기획한다는 얘기다. 모든 것이 지금과 여기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런 삶의 양태가 요즘 청춘들의 생활양식이다.어제와 그제는 이미 멀어진 지난날이고, 1년 혹은 10년 뒤의 삶을 설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여기는 젊은이들의 세태가 소설 읽기를 멀리하게 만들고 있다. 긴 호흡으로 작가의 사유와 인식, 정서와 역사의식을 추적하는 유쾌한 지적 여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지능지수 높은 우수한 머리는 내던져두고 동영상과 게임에 몰두한다. 역사에서 배우고, 미래에 기초하여 현재와 과거를 재단하려는 노력은 실종됐다.우연히 마주친 지능지수 기사는 분단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지만, 청춘의 대오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이 여름 ‘희랍인 조르바’같은 소설을 읽어봄은 어떨까.

2018-06-29

예멘난민을 수용하라!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부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난민 수용거부’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온다.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사람들의 난민신청을 거부하라는 것이다. 이 글은 나흘만에 16만의 동의를 얻는다. 가히 폭발적이다. 그런데 국민청원에 동의하는 분들은 예멘이 어디에 있고, 어떤 나라이며, 어떤 역사적인 경로를 거쳐 난민이 발생했는지 아시는지 궁금하다. 예멘은 지금 내전 중이다. 52만㎢의 땅에 2천800만 주민이 거주하는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쪽, 오만의 서쪽에 위치한다. 예멘 건너편은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가 있는 아프리카다. 일찍이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았던 예멘을 1839년부터 영국이 남북예멘으로 나누고, 남예멘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오스만제국의 1차 대전 패배로 북예멘이 1918년 독립하고, 1967년에는 남예멘이 소련의 도움을 받고 독립한다. 북예멘은 이슬람의 종교적 권위에 의지해 국가를 경영했지만, 남예멘은 소련식 사회주의 정책을 국가경영 전략으로 채택한다. 그 결과 남북예멘은 1972년과 1978년 두 차례의 내전을 겪지만, 1990년 무혈통일에 이른다. 1994년 남예멘의 연방탈퇴를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무력으로 진압한다. 2011년 아랍의 봄이 닥치자 남북예멘은 다시 내전에 접어들게 된다. 시아파를 중핵(中核)으로 하고 미국에 적대적인 후티 반군은 수도인 사나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수단, 쿠웨이트, 카타르, 모로코, 바레인과 연합군을 형성해 후티 반군과 맞서고 있다. 수니파의 총궐기에 대항해 시아파의 맹주(盟主)인 이란이 후티 반군을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정황(政況)으로 예멘난민이 발생한 것이다.유엔은 예멘을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 위기국가로 규정했지만, 확실한 지원이나 개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난민들은 비자없이 입국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로 이동했지만, 2018년부터 말레이시아도 난민수용에 난색(難色)을 표하고, 3개월만 체류허가를 해주고 있다. 체류연장이 불가능해진 549명의 예멘난민들이 말레이시아를 경유(經由)하여 제주도에 도착한다. 제주도를 떠난 일부난민을 제외하면 제주도에 남아있는 예멘난민은 486명에 이른다.제주당국은 직접적인 물적 지원보다 어선과 양식업, 요식업 일자리 같은 취업연계로 난민을 돕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402명의 난민들이 일자리를 구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예멘난민들은 지구촌 곳곳을 떠돌아야 할 운명이다. 주지(周知)하는 것처럼 유럽 각국은 아랍의 봄 이후로 중동 곳곳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수용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오늘날 중동의 바둑판같은 국경획정은 1916년 제국주의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시원(始原)이다. 오스만제국의 분할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맞추려다보니 아프리카 지도처럼 중동지도 역시 줄자로 그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예멘의 분할과 분단과 내전의 근저에도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배가 자리한다. 남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을 도륙(屠戮)하고,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신음하게 만든 유럽 제국주의의 본령(本領)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미군 장교가 그은 38선으로 민족분단을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우리도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7위의 수출입 대국이자 15위 이내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지금과 여기는 국민들의 피땀어린 분투노력에 힘입은 것이지만, 세계 전역의 원조와 방책도 기억해야 한다. 도움받은 기억을 되살려 이제는 도움을 주는 성숙하고 아량있는 대한민국과 그 시민으로 우뚝 서기를 희망한다.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6-22

기분 좋은 날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부지난 12일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기막힌 장면을 보여준 덕분이다. 북한은 유일하게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나라다. 중국은 1979년 미국과 수교했으니, 내년이면 중미수교 40주년이다. 20세기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 불린 베트남 전쟁 당사국인 베트남도 1995년 미국과 수교했다. 베트남 전쟁 종결 20년 후의 일이다. 쿠바 역시 지난 2014년, 단교 53년 만에 미국과 수교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올해까지 68년 동안 북한과 미국은 적대적인 관계였다. 특히 작년에는 전쟁까지 가나 싶을 정도로 양국관계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었다. 북한이 자위(自衛) 목적으로 핵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반감이 원인이었다.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자국의 동맹이나 우방들의 핵무기 개발은 용인하고, 적대적인 북한의 핵은 용인하려 하지 않았던 터다.더욱이 수감 중인 전직 수구 대통령들의 어리석고 무모한 대북 적대 정책으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는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2016∼2017년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함으로써 평화의 서광이 깃들기 시작한다. 불과 몇 달 전의 풍전등화같던 상황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게 된다.서울에서 개성까지 버스로 50분 거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영화 ‘강철비’에 등장하는 파주의 산부인과 의사는 북한 최고 지도자 이름을 모른다. 남한 최고학부를 다닌 의사가, 그것도 접경지역 파주에서 밥 벌어먹고 살아가는 지식인이 북한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도 파주가 나온다. 대낮에도 대남방송이 온종일 들려오는 파주.북한에도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2천500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산다. 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백두산 천지를 가본 사람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와 같은 식생과 기후, 언어와 음식이 마음을 따사롭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어떤 동질감과 친밀감이 느껴진다는 얘기다.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철책이 철거되어 통일이라도 될 것 같은 들뜬 마음을 지울 길 없었다. 그날 이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21세기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 구도를 깨뜨리는 일대 사변이다. 북한과 미국이 회담에 임하는 동안 한반도 남단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의 선언은 단비처럼 다가온다.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입으로는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모순의 극치다. 우리에게 장사치로만 소개된 트럼프의 왜곡된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로잡히는 기현상(奇現象)이 벌어지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웃음이 아니 나올 수 있는가?! 일찍이 한반도가 좋은 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두 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세력의 반북-친일-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 아니던가?! 미국 외교가에서 나왔다는 ‘존경할 만한 적, 경멸할 만한 우방’은 얼마나 우울하고 불쾌한가?! 역사적인 사건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현대사의 중차대한 일획(一劃)이 그어지는 시점에 살고 있다. 천운이다. 정말로 기분 좋은 날들이다.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6-15

소음(騷音)에 관하여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러시아 문학에서 신성불가침으로 수용되는 두 사람이 있다. 계관시인 푸쉬킨과 문학평론가 벨린스키다. 10월 혁명 이후에도 이들은 19세기의 권위를 온전하게 향수(享受)한다. 그런데 벨린스키는 별스럽게 두 가지를 싫어했다. 보드빌과 몰리에르. 양자의 공통점은 웃음과 희극이다. 니콜라이 전제(專制)와 대적(對敵)한 벨린스키였으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산 아파트에 살다가 청도로 이사한 이유 중 하나는 층간소음이다. 범어동에서도 층간소음으로 시달렸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청소기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불쾌와 불안과 불면을 야기(惹起)했다. 몇 차례 올라가 이야기했으나 “내 집에서 내 발로 다니고, 청소하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하는 짜증섞인 대답이 돌아왔다.경산에서는 떡을 해서 윗집을 찾아갔다. 이사왔다는 말과 함께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이내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주말이면 밤낮 가리지 않고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가 천장을 부술듯 울려댔다. 참다못해 올라간 내게 아이 엄마는 정색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애들이 다 그렇지, 별 걸 가지고 다 올라오시네!”한국의 어린애들이 아파트 거실에서 공을 차며 자란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아들의 발걸음을 단속하면서 소음을 경계했던 나는 그런 일반화를 처음 들었다. 어찌됐든 소음은 지속(持續)됐고,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 법’이라 했던가?! 나의 농촌 이주는 그렇게 촉발됐다.아침 일찍 태양이 얼굴을 내밀고, 저녁 늦게까지 석양의 그림자가 어둠과 맞서면서 농촌의 시간은 유장하게 흘러간다. 자연의 소리와 소와 닭 우는 소리 아니면 연중 사위(四圍)는 적막하다. 고요에 익숙해진 탓인지 도회지 소음은 임계점까지 온듯하다. 휴대전화로 통화내용을 행인들에게 시시콜콜 알려주는 청춘남녀부터 노년에 이르는 인간군상. 목소리라도 청아하다면 모를까, 까막까치 능가하는 째지는 소리로 주변을 소음으로 가득 채우는 무리. 여기저기 계단을 오르내리는 슬리퍼와 하이힐과 샌들의 공격적인 딸가닥 소리. 삼삼오오 짝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박장대소와 가가대소(呵呵大笑)!6월 13일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엔 트럭을 동원한 도우미와 자원 봉사자들의 목청이 대기(大氣)를 찢어버린다. 듣는 사람 하나 없건만 그들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선거 벽보 붙이고, 공보자료로 정당과 후보자의 주장을 알리면 충분하지 않은가?!베를린이나 쾰른에서 대규모 유세차량을 동원해가며 선거운동 하는 것을 본 적 없다. 국영 텔레비전을 포함한 방송과 신문 매체가 평소에 정당의 주장과 활동상황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통지한다. 시민 유권자는 그런 자료를 통해 지지 후보와 정당을 결정한다.6월 12일이면 거리와 광장과 주택가를 소음과 불면으로 채운 소음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무고한 유권자들은 참아야 한다.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숱한 말과 공약(公約)과 후보자들과 그들의 행장(行狀)을 선전하는 도우미들의 소음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시절이다. 선거철이면 넘쳐나는 소음과 공약(空約)과 트럭이야말로 적폐 아닌가. 이런 적폐 역시 우리가 청산해야 할 과제는 아닐까.

2018-06-08

장자(莊子)와 오현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26일 속초 신흥사에서 무산당 오현 스님이 승랍 60년, 세납 87세를 일기(一期)로 입적했다. ‘벽암록’이 아니었다면 나는 오현 스님을 모를 것이었다. 우연찮은 계기로 주워들은 ‘벽암록’이 스님의 노고를 거친 서책이었다. 주지하듯이 ‘벽암록’은 선가(禪家)의 대표적인 공안(公案) 1천700가지 가운데 100편을 골라 본칙, 수시(垂示), 송(頌)과 함께 엮은 것이다. 우리는 공안 대신 화두(話頭)라는 표현을 쓴다. ‘벽암록’에 기술된 내용은 여러 번 읽어도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篇意自現)’이 불가능하다. 까까머리 양주동은 ‘몇 어찌’라는 단문(短文)에서 ‘기하(幾何)’의 뜻을 알고자 100번 넘도록 읊조렸지만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쓴다. 읍내에 살던 수학선생을 찾아가 뜻을 얻은 소년 양주동. 그처럼 ‘벽암록’은 나같은 천학비재가 아무리 되풀이해도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격절(隔絶)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오현 스님은 ‘사족’으로 난해의 장벽을 허물어버린다.신흥사와 백담사 조실을 지낸 고승이지만 그는 시조시인이기도 했다.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 만찬장에서 즉흥적으로 시조를 지어 낭송하여 좌중(座中)을 놀라게 한다.“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생사의 경계를 자유자재 넘나드는 호쾌한 정신과 유한한 인생살이에 대한 도저한 성찰이 공존한다. 죽음에도 즐거움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은 범부(凡夫)의 상념으로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기어다니는 벌레로 스스로를 낮추면서 다음 생의 모습을 투영하는 자세는 압권이다. 누구나 꿈꾸는 극락왕생과 대치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약여하다. 사람의 모습으로 왔지만, 후생에서는 숲속의 새 먹이가 되리라는 고집스러움에 묻어나는 결기가 매섭다.이럴진대 삶과 죽음을 초탈했다고 일컬어지는 장자가 떠오를 수 밖에. 장자의 아내가 죽자 친구인 혜시(惠施)가 위로하러 장자를 찾아온다. 뜻밖에 장자는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한다. 깜짝 놀란 혜시가 자초지종을 묻는다. 장자의 대답은 이러하다.“아내는 본디 생명도 형체도 없었다네. 그 뒤 언젠가 양기와 음기가 모여 형체가 되고 생명이 되어 생겨난 것이지. 지금 아내는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 것뿐이라네. 마치 사계절의 순환과 같다고나 할까. 아내는 태어난 곳에서 편히 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네.”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를 설파하는 장자의 목소리.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왔지만, 유는 무에서 나온 것이다.” 무에서 생겨난 아내가 유의 세계를 거쳐 다시 무의 세계로 돌아감은 자연의 이치와 동일한데 무슨 슬퍼할 겨를이 있단 말인가?! 장자는 그렇게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불가와 도가의 친연성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우리는 지금과 여기에 포박되어 있으면서도 다가올 날들의 성공과 영광을 기대한다. 오늘의 고통과 피로와 분노가 언젠가 천만 배 아름답고 따사롭게 보상받으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다. 우리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지금과 여기에 포박되지 아니하고 미래의 도래를 믿는 까닭은. 하되 장자와 오현 스님은 애당초 그런 기대는 눈곱만큼도 없다.누구나 오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되, 가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스님의 열반을 접하면서 2천300년 전 세상 버린 장자가 홀연 떠올라 일필휘지로 두 분 기린다. 평안하시기를!

2018-06-01

적과(摘果)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청도로 거처를 옮긴 후 매년 봄날 하루는 복숭아 과수원 적과로 보낸다. 옆집 농가는 칠순을 바라보는 부부가 열 살배기 손녀를 거두며 살아간다. 그들은 복숭아와 감을 기르는 과수농사에 집중하되, 쌀농사를 포함한 온갖 작물을 자급자족하는 자영농이다. 나는 첫해부터 지금까지 그이들에게 적잖은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실감날 만큼.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부는 지난 일요일 아침나절, 그들을 찾아 야트막한 야산 등성이를 오른다. 동네를 배회(徘徊)하는 들개를 쫓을 양으로 들고 간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느릿하게 걸음을 옮긴다. 볕이 잘 드는 중턱에 묘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언젠가 마을을 지키며 살았던 분들의 영원한 쉼터다. 그분들은 죽어서도 마을을 내려다보며 동리 주민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영면(永眠)의 축복 있기를!중턱의 한우농장을 지나 7부 능선에 이르러서야 일하는 사람들의 모양이 눈에 잡힌다. 옆집 양주(兩主)야 익히 아는 얼굴이되, 낯선 아낙 서넛이 사다리 위에서 일손을 재게 놀리고 있다. 머릿수건을 두르고 입마개를 하고 있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아낙들. 오랜 세월 적과를 해온 품새가 역력하다. 나도 사다리 하나 얻어 적과에 착수한다.4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도화(桃花)가 마을과 과수원 곳곳을 분홍색으로 물들인다. 도연명이 그려냈다는 ‘도화원기’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 즈음부터 마을에는 생기가 완연해진다. 봄기운이 자연과 인간의 사위(四圍)를 물들이기 시작하는 때문이다. 촌에서는 계절이 바뀌었다는 느낌은 벚꽃이 아니라, 도화와 더불어 오는 법이다.적과는 단순한 노동이지만 그만큼 고되기도 하다. 줄기 가득 매달려있는 작은 열매들 가운데 두어 개만 남기고 모조리 따내는 일이 적과의 본령(本領)이다. 문제는 선택이다. 어느 가지에는 어린애 주먹만한 열매가 대여섯 개 달려 있고, 어떤 가지에는 부실한 녀석들로 만원이다. 인간세상의 불공정과 불평등이 자연계에도 어김없이 베풀어져 있는 셈이다.적과를 하거나, 전지(剪枝)할 때면 나는 언제나 독재자를 떠올린다. 완전한 수동자세로 나의 손가락이나 가위에 전신을 내맡기고 침묵하는 열매와 가지들. 살리고 죽이는 일, 자르고 남기는 것이 오직 나의 순간적인 판단에 달려 있다. 전지가위를 들고 다니다보면 모든 대상이 잘려야 할 것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여기서 독재가 나온다.잠시 숨 돌리고 올려다본 하늘에 먹장구름이 가득하다. 가까운 곳에서 뻐꾸기 울음소리 크게 들린다. 장끼가 까투리 부르는 소리도 장단을 맞춘다. 당당하게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까마귀의 자태마저 어여쁘다. 간간이 들려오는 물소리는 바람이 몰려와서 데려가는 참나무 이파리들의 아우성이다. 코끝을 스쳐가는 춘산(春山)의 아련한 향기가 추억을 소환한다.“점심 하러 가입시더!” 하는 안주인의 목소리 들린다. 그이들을 태우고 경운기가 여유롭게 앞장선다. 서둘 이유도 없어 게으른 걸음걸이로 뒤를 따른다. 길가에 하얗게 피어난 찔레꽃이 내년을 기약하듯 나긋나긋하게 꽃잎 떨군다. 농장의 송아지들이 낯선 길손을 궁금한 눈길로 응시하고, 어미들은 누군가 하며 경계하는 낯빛이 완연하다.길가 양옆에 심어진 고구마 어린순도 우쑥하고, 마늘과 상추도 생장(生長)에 여념 없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내 누옥(陋屋)의 붉은색 지붕이 오히려 정겹다. 뒷집 멍멍이는 오늘따라 침묵하고, 단아하게 피어난 데이지가 나를 반긴다. 성가시게 짖어대던 옆집 누렁이마저 새삼 자세 낮춘다. 봄날이 물처럼 흘러간다. 하염없이 봄날이 간다, 들뜬 꿈도 없이!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5-25

68혁명 50주년에 부쳐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마지막 황제’ 등으로 친숙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2003)이란 영화가 있다. 68혁명의 소용돌이가 휘감고 있는 파리를 찾아온 미국 대학생이 경험하는 혁명과 사랑을 담고 있다. 스무 살 청춘들의 육신과 영혼을 통해 지난 세기의 위대한 사건을 추억하는 ‘몽상가들’. 에바 그린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한 영화였지만 불과 4만의 한국관객을 불러모으고 조용히 사라진 ‘몽상가들’.수많은 사회학자, 정치학자,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영감과 두뇌를 자극했던 68혁명. 기성세대의 속물근성과 탐욕, 부패와 타락을 비웃으며 “상상력에게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68혁명. 동유럽을 제외한 유럽 전역을 강타하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진출한 68의 물결은 급기야 태평양까지 돌파한다. 1969년에 결성된 일본 적군파와 전공투를 기억한다. 예일대 석좌교수인 임마누엘 월러스틴은 ‘유럽적 보편주의’에서 사회과학의 혼란과 부진의 시원(始原)을 68혁명에서 찾는다. 혁명의 발발원인과 경과, 그것이 실현하고자 했던 목표지점마저 온전히 해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과학의 득세와 인문학의 정체, 사회과학의 무기력증이 21세기의 지배적인 흐름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추세의 원년을 68에서 보고 있는 월러스틴은 우리 시대의 과제로 세 학문의 통합을 주장하기도 한다.각설하고,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프랑스와 도이칠란트의 위대한 대학교육과 무상교육은 68혁명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정치적인 후각과 활동성에서 첨단을 달리는 프랑스의 선택은 소르본느를 포함한 파리의 모든 대학을 숫자로 표기하는 것이었다. 특권의식과 엘리트 교육에 반대했던 당대 20대의 열혈투쟁이 야기한 대학서열 철폐!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위계질서에 순종하지 않고 새로운 지배질서와 담론을 창출해낸 20대의 혈기방장과 미래기획!68혁명은 좁디좁은 현해탄을 건너지 못하고 일본에서 장렬하게 산화한다. 김신조로 대표되는 1·21사태와 실미도 부대로 알려진 684부대 창설, 그리고 ‘1968년 대통령 박정희’로 끝나는 국민교육헌장과 3선개헌 준비 등으로 한반도 남단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우리에게 68혁명은 언감생심,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였다. 그러다가 불쑥 닥쳐온 80년 서울의 봄과 87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어쩌면 그것은 68혁명의 아련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혁명은 언제나 세상과 역사의 혈관을 맹렬하게 뛰게 한다. 혁명은 답답하게 막혀있던 혈로를 뚫어줌으로써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혁명의 근원은 언제나 청춘이었다.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 혹은 문화 권력을 탐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청춘은 불의하고 부당하며 폭력적인 기성질서를 대번에 전복시킨다. 그들의 불타는 눈동자와 탄탄한 육신과 목울대의 팽팽한 긴장은 신질서의 태동을 예비한다. 혁명이 없는 세상과 역사는 좀스럽다. 혁명의 약동을 경험하지 못하는 청춘은 이미 푹 늙어버린 젊음에 지나지 않는다. 20대 얼굴과 육신에 80대의 영혼과 무기력이 꼴사납게 얹혀 있는 형상이다. 2018년 시점에서 한국의 청춘은 우울하다. 미래기획과 야망이 사라진 자리를 일자 걱정과 최저임금과 학점이 대신한다. 전면전을 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예외라는 허망한 희망을 붙들고 있다.장미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5월. 눈보다 희고 피보다 붉고 창천(蒼天)보다 푸르른 5월. 해마다 그 5월을 매메한 최루탄으로 보내야 했던 인간 암모나이트. 그 시절 자유롭지 못한 영혼이나마 치욕과 자의식으로 숱한 밤을 지새운 청춘들의 머리에 어느새 무서리가 내렸다. 그렇게 세월이 세상이 관계가 추억이 하나둘 멀어져간다. 그러하되 5월이 오면 언제나 68과 나의 지나가 버린 5월들이 아릿한 추억과 함께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 5월이여!

2018-05-18

200살 마르크스가 보는 세상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5월 5일 어린이날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세상에 태어난 지 200주년 되는 날이었다. 근대세계를 움직여온 거인으로 우리는 마르크스를 빼지 않는다. 호사가들은 지난 3세기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 마르크스의 ‘자본’(1867),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1929) 세 권을 거명한다. 여기에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을 덧붙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에스파냐 사회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세 나라로 영국, 프랑스, 도이칠란트를 거명한다.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정치혁명, 도이칠란트의 정신혁명으로 현대세계의 근간(根幹)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지구촌이라 부르는 글로벌 시대를 되뇌게 된 데에는 이들 세 나라의 성과가 근저에 자리한다. 만일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 나라를 꼽으라면 여러분은 어디를 거명하시겠는가?!각설하고, 마르크스가 대면한 19세기 유럽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횡행하는 불평등의 시공간이었다. 내다팔 것이라고는 육신 하나밖에 없는 임노동자의 삶은 신산(辛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대표저작은 ‘자본과 임노동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를 잉여가치의 관점으로 풀어낸 역작으로 수용된다. 근대유럽이 세계에 선물한 두 가지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라면, 마르크스는 21세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하다.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인 1988년 봄, 석탄연기 자욱한 알렉산더 광장에서 거대한 동상과 대면한 일이 있다. 앉아 있는 이는 마르크스였고, 서 있는 사람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였다. 헝가리를 필두로 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사회주의 첨단을 달린다는 동도이칠란트까지 흔들리던 시점에 만난 그들. 무표정한 얼굴의 두 사람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한지를 물었지만 그들은 끝내 말이 없었다.동도이칠란트 전역에서 ‘탈주자’들이 줄을 잇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을 다시 찾는다. 동상에는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라고 적힌 종이쪽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도이칠란트는 분단 45년 만에 재통일된다. “하필이면 우리나라 개천절에 통일될 게 무어람” 하는 볼멘소리를 기억한다.1867년 베를린에서 출간된 ‘자본’이 성황리에 발매된 곳은 러시아였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이자, 가장 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제정 러시아에서 1870년 번역-출간된 ‘자본’은 불과 1주일 만에 초판 2천부가 매진된다. 베라 자수리치 (1851∼1919) 같은 여성 혁명가의 뒤를 이은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레온 트로츠키(1879∼1940)가 사회주의 10월 혁명을 완수한 1917년은 ‘자본’ 출간 50년이 흐른 뒤였다.그러하되 우리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소련의 몰락 및 자본주의 회귀현상을 목도했다.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가 서둘러 도입한 신자유주의가 세계전역을 강타하고 그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대체재를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으며, ‘사민주의’라도 감지덕지(感之德之)라는 심정으로 일상을 영위한다.오늘날에도 자본과 임노동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는 의구하게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삼성과 한진 같은 재벌의 행악질이 언론을 장식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이럴진대 눈감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5-11

진보와 보수

▲ 김규종경북대 교수 노문학부작년에 ‘문학과 영화 그리고 나’를 수강한 사회대 학생이 어느 날 내가 왜 진보인지, 묻는다. 내가 진보야, 하고 되물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는 되물음이 돌아온다. 글쎄, 상대적인 개념 아닐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질문의 고갱이는 나이든 축은 보수로 회귀한다는데, 왜 당신은 그 나이 되도록 진보를 고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진보와 보수의 경계는 모호하여 명확한 선을 긋기 어렵다. 평가대상에 따라 천양지차가 가능한 것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분법이다. 예컨대 나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용어에 반대한다. ‘노동절’이라는 표현이 좋다. ‘근로’가 오래전부터 통용되었다는 사실도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외려 일제강점기의 ‘근로정신대’와 ‘근로보국대’ 같은 용어가 생각난다. 여기에 박정희 철권통치시기에 만들어진 ‘근로자의 날’에 대한 거부감이 덧대진 탓이다.방송보도에 따르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5월 1일은 ‘노동절’로 수용되었다고 한다. 이승만 독재가 횡행했던 1950년대에도 ‘노동절’은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그러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1963년에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대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967년까지는 ‘노동절’이 더 많이 통용되었다 한다. 요약하자면 박정희가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하고, 684부대를 만들면서 이른바 ‘3선 개헌’을 준비하던 1968년부터 ‘근로자의 날’이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나는 ‘노동절’에 찬성하지만 교수노조에는 가입하지 않는다. 교수가 지식 노동자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노조를 만들어 활동해야 한다는 당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권익과 천부인권을 실현하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교수처럼 사회·경제적 신분이 안정된 자들이 노조를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소회(所懷)가 내게는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판단은 오롯이 나의 주관적인 기준이다. 언젠가 이런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여기라는 시공간에서 나의 판단은 그러하다. 여기서 진보와 보수개념이 뒤섞인다. 노동절을 선호하는 진보의 입장과 교수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보수의 입장이 혼재한다. 아마도 이런 혼융과 혼재양상은 세상사 모든 일에 적용 가능하리라 믿는다. 따라서 진보냐 보수냐, 하는 질문은 사태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죽을 때까지 나는 진보의 편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이유는 보수라 함은 지키고 또 지키겠다는 것인데, 내게는 지킬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야. 돈도 명예도 사랑도 권력도 가지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지. 두 번째 이유는 삶이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죽음이 찾아오는 최후의 순간까지 존재이유를 찾아서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 아니겠니?!”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설왕설래가 차고 넘친다. 나는 회담 당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반도가 아닌 섬에 갇혀 산 지 70년 세월! 그 세월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민족사의 새로운 명운이 다가서는 환희의 술잔을 비우고 또 비운 게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변화와 새로운 시대가 끔찍하게 싫은 모양이다. 지금과 여기에 만족하고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은 제자리걸음하면서 지키고 또 지키고 싶어서일 것이다. 돌궐의 건국자 돈유곡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25쪽)

2018-05-03

암모나이트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암모나이트는 고생대 데본기에서 중생대 백악기 사이에 생존했던 두족류(頭足類) 생물이다. 백악기가 1억4천400만년부터 6천600만년 사이이고, 데본기는 4억1천600만년부터 3억5천920만년까지의 기간이다. 암모나이트는 최장 3억5천만년 생존했던 기록을 가진 고생물이다. 오래 전에 멸종한 암모나이트 얘기를 꺼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요즘 학생들은 나처럼 늙은 사람을 암모나이트라 부른다. 범접은커녕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나이 먹은 인간이라는 뜻의 호칭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나를 ‘틀딱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를 일이다. 뒷담화 자리에서 ‘틀딱충’이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든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 가운데 ‘틀딱충’은 매우 모욕적이다. 이런 은어는 한국사회가 중증(重症)의 세대갈등을 경험하고 있음을 반증한다.)각설하고, 나는 ‘원화’와 ‘환화’를 모두 본 세대의 사람이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2년 6월 10일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환을 원으로 바꾸면서 화폐가치를 10대 1로 절하해 10환이 1원이 된 것이다. 경제혼란과 경제침체만을 야기한 화폐개혁은 실패로 끝난다. 그 결과 1960년대에는 환과 원이 상당기간 공존하게 된다. 하나의 화폐에 두 개의 표기가 병기된 이상야릇한 현상을 어린 시절 경험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나는 서울역에서 동대문까지 다녔던 전차(電車)를 타본 세대다. 1899년부터 시작하여 1968년까지 운행된 서울의 전차.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윤동주 시인의 산문 ‘시는 종이요, 종은 시다’는 글도 ‘서강벌’과 동대문 사이를 왕복하던 전차에서 발상한 것이다. 올해가 2018년이니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진 지 반백년 세월이 흘렀다. 호롱불 아래서 책을 보았고, 보리밥과 늙은 오이로 허기진 배를 채웠던 시절도 있었다.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어린 날의 사건은 놀라운 것이다. 열 살 되던 해 1월 매서운 추위가 감돌던 점심나절. 길을 가던 나는 20대 청년이 열려진 대문으로 어느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본다. 그는 빨랫줄에 널린 붉은색 스웨터를 움켜잡더니 냅다 거리로 달려 나간다. 잠시 후 ‘도둑이야!’ 하는 고함소리가 나고, 청년은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붙들린다. 그의 눈에는 평온과 고요가 맴돌았다.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 어린 나이였지만 왜 그런 표정일까, 짐작해본다. 그는 뜻한 바를 성취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 가면 옷도 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술도 가르쳐주었으니 말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20대 장정(壯丁)이 축내는 식사량은 결코 작지 않을 터. 입 하나 덜 요량으로 백주대낮에 도둑질을 감행한 것이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공허한 눈길과 맥없는 걸음걸이로 일관한 청년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조카들은 먹음에 충실한지요?!”하는 인사말로 시작되던 외삼촌 안부편지는 그 시절의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입증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나이를 먹고 말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별똥별을 헤아리고, 반딧불을 잡아서 호박꽃 대궁에 넣어 플래시 삼아 뛰어놀던 시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새삼 그때가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세태격변은 경악스러울 때도 있다.10억 준다면 감옥살이 1년은 견디겠다는 대학생이 51%에 이른다는 세태가 그렇다. 돈이 인격과 교양을 대신하고, 돈이 무한 ‘갑질’을 가능하게 하고, 돈이 능력으로 환원되는 세상. 그런 세상 살면서 암모나이트 소리 들어도 지나온 시공간이 아쉽지 않다. 봄날의 불장난과 초여름의 아련한 아카시아의 향기와 단풍잎 찾아다니던 가을의 서정과 눈 내리는 밤길 홀로 걷던 청년시절이 외려 그리운 게다. 그래서일까, 내가 암모나이트라 불리는 것은?

2018-04-27

새우냐 돌고래냐?!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 강자들이 싸우는 통에 약자가 중간에 끼어 피해를 입는다는 말이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와 일본은 1885년 천진조약을 체결한다. 그것은 ‘조선에 변란이나 중대사건이 일어나 청-일 어느 한쪽이 파병할 경우에 그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릴 것’ 등을 내용으로 한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 고종은 ‘민자영’의 척족세력 우두머리 민영휘의 조언을 받아들여 청나라 ‘원세개’에게 구원병을 요청한다. 천진조약에 따라 청나라 군대보다 먼저 경복궁에 입성한 일본군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켜 8월 초에 아산, 공주, 성환 등지에서 청군을 격파한다. 여세를 몰아 9월 중순 평양에서 청군을 패퇴시킨 일본군은 조선내정에 깊이 개입한다. 자주적인 통치능력과 기반을 상실한 조선왕조는 동학농민군을 비적(匪賊)으로 규정하고 외국군대를 들여와 척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0만여 농민군이 장렬하게 전사한 우금치 싸움은 오늘도 인구에 회자된다.조선을 둘러싼 양대 세력인 청과 일본 사이에서 처절한 죽음을 맞았던 동학 민초들의 비애가 아프게 다가온다. 호사가들에 따르면 한반도는 역사 이후 대륙과 섬으로부터 900여 차례의 외침을 겪었다 한다. 고구려와 수당전쟁, 몽골침략과 고려의 항쟁,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기억하시라. 임란과 을사늑약, 경술국치로 이어지는 일본의 침략도 잊어서는 아니 될 일.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우리는 대륙과 섬으로부터 끝없는 침탈을 받아왔다. 그래서 자연스레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17일 ‘사이버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는 한국사를 왜곡하는 외국의 사례를 시정하는 작업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반크는 ‘아시아소사이어티’나 컬럼비아 대학교 등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한국을 ‘중국과 일본, 러시아 같은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묘사하고 있어서 이것을 바로잡는 동시에 긍정적인 한국사를 알려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 세 나라에 미국을 더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이른바 4대 강국이 제 모습을 갖추는 형국이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 한반도의 정치-경제적인 지형과 2018년 한반도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명-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했던 조선왕조와 21세기 대한민국은 전혀 다르다. 세계 15위 내외에 포진한 경제 강국이자, 문화와 정보통신으로 세계인의 입길에 오르는 나라. 분단을 둘러싼 혼란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와 상생을 열어가려는 국민과 정부의 노력이 진행되는 나라. 재벌로 대표되는 부도덕한 기득권 세력을 청산하려는 열망이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역동적인 대한민국.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우리만 모른다. 우리가 더 이상 새우가 아니라, 최소한 돌고래 수준이라는 것을!” 그것은 장구한 세월 대륙과 섬으로부터 잦은 외침과 수탈을 일상적으로 겪어온 비운(悲運)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온 천형(天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하되 이제는 그런 부정적인 인식과 자괴감을 던져버려야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큰 나라 눈치 보는 관습은 패대기칠 때도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2차 대전 이후 성립된 신생국 가운데 정치적인 민주화와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유일무이한 국가의 국민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래서다. 데모랍시고 성조기 흔들며 굽실거리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수치심이 그토록 역겨운 것은. 돌고래 수준의 정치제도와 실행절차, 자부심 넘치는 역사의식과 미래기획이 한반도에 넘실거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것이 위대한 4·19 혁명 58주년을 맞이한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2018-04-20

어느 청년의 죽음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4월 8일 세종시의 고교 3년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경위는 단출하다. 1월 초하루 친구와 함께 담배 네 갑을 훔친 죄로 그는 경찰조사를 받는다. 경찰은 특수절도 혐의로 그를 3월 16일 기소의견과 함께 검찰로 넘긴다. 그 후 4월 5일 가정법원의 출석통지서가 그에게 송달된다. 극심한 심적 부담을 느낀 고교생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 세상과 작별한다. 1만8천원 어치 담배를 훔친 죄과(罪過)로 18세 청년이 세상을 등진 것이다.경찰은 그를 조사하고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 부모를 비롯한 보호자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범죄수사규칙’ 211조 ‘보호자와의 연락’에 따르면, ‘경찰관은 소년 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나 조사의 경우 소년의 보호자나 그를 대신할 사람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명기(明記)되어 있다. 나아가 경찰은 소년범죄자 수사의 경우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학교전담경찰관’과의 연계 매뉴얼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한다.죽은 고교생의 아버지가 언론사에 전한 나이 어린 고인(故人)의 번민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한 번의 실수로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죄송해 괴로웠다.” 호기심이든 일시적인 만용(蠻勇)이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더욱이 당사자가 범죄경력이 전무한 고등학생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경미범죄 심사위원회’ 제도다. 그가 이런 제도를 알았더라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경미범죄 심사위원회’는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대개는 전과(前過)가 없는 범법자를 대상으로 처벌 감경여부를 심의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판 장발장 구하기’로 불리기도 한다.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1862)의 주인공으로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19년의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이 제도는 2015년 3월 23일부터 10월 30일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됐다. 그 기간 동안 전국 17개의 경찰서가 시범대상으로 선정돼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운영했다고 한다. 위원회는 경찰관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됐으며 위원장은 경찰서장이 맡았다. 시범운영 기간에 600여 명의 사람이 감형 받았다고 전한다. 경찰청은 2016년부터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라 밝혔다.18세 청소년이 어느 날 범죄자가 되어 경찰조사를 받고, 급기야 검찰로 송치됨으로써 법원의 호출장을 받는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단순한 장난이었든 유치한 영웅심이었든 간에 순간의 실수로 범죄자 낙인이 찍히는 지경에 이른 고교생의 절박한 심경(心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에 부모와 담임교사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주변 몇몇 친구들에게나마 겨우 속내를 털어놓아야 했던 18세 청년의 심사가 자못 아프게 다가온다.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청년을 몰고 간 것은 우리 사회의 낙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절도죄로 고교생을 경찰에 신고하는 주인, 조사를 실행하면서 부모나 담임교사에게 일체 연락하지 않은 경찰관, 친구의 고통을 듣기만 했던 동급생들. 담배 네 갑과 죽음을 맞바꾸기에는 인생이 너무 안타깝다. 생때같은 자식을 느닷없이 잃어버린 부모의 흉중에는 어떤 상념이 차고 넘쳤을까, 헤아리기 어렵다.증평에서 자살한 지 두 달도 넘어서야 발견된 모녀의 시신은 우리를 더욱 절망으로 인도한다. 우울증 때문이든 빚 독촉 탓이든 세상과 완전 격리된 채 끝내 죽음과 대면해야 했을 모녀의 처절한 끄트머리가 처연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말하는 것보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보듬는 세상과 나라를 희망한다.

2018-04-13

봄날에 봄을 보다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며칠 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가 지속되더니 찬바람 불고 비가 뿌린다. 벚꽃 이파리들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공중제비를 돈다. 몇몇 녀석은 차창에 온몸을 부딪치고 시나브로 자취를 감춘다. 미끄러지듯 포도(鋪道) 위로 산화(散華)하는 꽃잎을 보면서 봄날이 이울고 있음을 안다. 봄의 전령이 어디 벚꽃뿐이랴?! 산수유와 매화, 진달래와 개나리, 박태기와 살구, 명자나무도 봄날의 환희를 노래한다. 봄의 함의는 `보는` 것에 있는 듯하다. 단조롭고 칙칙한 겨울의 색이 화사하고 다채로운 색깔로 탈바꿈하는 계절이 봄이기 때문이다. 신록으로 몸단장하는 활엽수를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연초록 새순이 진초록 침엽수와 빛나는 대비를 만들어낸다. 장년의 색깔과 유년과 소년의 색깔이 만나서 이뤄지는 대비만큼 현저(顯著)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봄이 올라치면 나는 은행나무 이파리를 들여다보곤 한다. 어린 녀석들의 작은 손바닥이 서너 갈래로 쪼개져 나오는 모습은 실로 경이롭다. 미래를 대비하는 현재의 꼴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파리. 물론 그 안에는 다른 의미도 내포돼 있다. 그것은 엄동설한을 이겨낸 자의 빛나는 자부심이다. 울안에 한 뼘 남짓한 어린 은행나무가 자란다. 언젠가 던져진 열매에서 제풀에 싹이 터서 자라는 녀석이다. 거기 달린 단 하나의 눈.모질게 추웠던 지난겨울을 찬란하게 견딘 키 작은 은행나무를 보면서 생의 환희와 약동을 느낌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과 더불어 화사함을 뽐내는 꽃잔디와 민들레, 제비꽃과 머위꽃의 합창은 밤을 낮처럼 환하게 한다. 우리는 화려하고 웅장하며 높게 빛나는 꽃을 예찬한다. 그러하되 발치에서 자라나고 피어나는 작고 여린 것들의 몸짓에는 태무심하다. 크고 우뚝하며 장쾌한 것들에 이끌리는 인심이야 인지상정일 것이다.연극이 끝난 뒤 무대인사와 마주할 때 맨 처음 등장하는 이는 으레 단역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배역을 맡은 이들로부터 시작해 조연을 거쳐 마침내 주연배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쯤이면 극장 안에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온다. 그럴 법하다. 공연을 인도한 주역에게 최대의 갈채를 보냄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만들어낸 격언은 이러하다. “단역 없이 조연 없고, 조연 없이 주역 없다!”누구나 주연을 바란다. 최소한 조연이라도 꿈꾸며 사는 것이 인생사다. 하지만 세상일은 언제나 그렇게 굴러가지는 않는다. 허다한 사연과 만남과 인연 속에서 우리는 숱한 단역과 희미한 조연에 만족해야 한다. 주역이 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은 평생 단 한 번 꿈같은 사랑을 경험한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그에게 사랑과 인생의 주역은 부여되지 않았다.아주 희소하고 스치듯 찾아오는 놀라운 환희의 순간이 이번 봄비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하되 우리를 들뜨게 했던 초목들의 향연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꽃이 꽃으로 멈춰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조화(造花)라 부른다. 그것이 생화인 한에서 꽃은 죽어야 한다. 말라 비틀어져 시들고 바람에 날려 대지로 돌아가야 꽃은 생장을 거듭할 기회를 가진다. `한 알의 밀알`에 대한 비유는 거기서 나왔다.곳곳에서 우리는 봄날의 정령들과 아침저녁으로 만나고 있다. 작고 여린 것들에도 따뜻한 눈길을 던져보는 것도 봄을 완상(玩賞)하는 방법이리라. 사위(四圍)가 일리온의 축제의 밤처럼 환한 시절에 봄날의 뜻을 생각한다. 가까운 곳에서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 외려 크게 들린다.

2018-04-06

춘곤증

▲ 배개화 단국대 교수월요일 출근하니 교정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평년보다 기온이 8도 정도 높아서 갑자기 꽃봉오리들이 열린 것이다. 분홍색 꽃들이 가지마다 뭉게뭉게 피어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분홍색 꽃들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다보니 춘곤증도 날아가는 것 같다. 요즘 필자가 춘곤증을 앓는 이유는 지난 학기보다 수업이 한 강좌 늘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 대학원 수업을 하나 더 하는데, 이 수업의 준비와 강의를 하러 가는 일들이 필자를 좀 지치게 한다. 일요일에는 수업준비를 해야 하고 월요일에는 오전에 천안캠퍼스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죽전캠퍼스에서 강의를 한다.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학교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필자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5명인데 다들 늦깎이 학생들이다. 석사생 1명과 박사생 4명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 석사생 한 명을 빼고는 모두 필자보다 나이가 많다. 석사생도 30살이라 그렇게 젊지는 않지만 이들 중에는 제일 어리기 때문에 반장을 맡고 있다. 다른 분들은 모두 50대인데, 40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왔고,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다. 참고로 이분들은 모두 여성들이다.매주, 주교재의 한 장과 소논문 두 편을 읽고 토론하는데 주로 필자의 강의로 진행이 된다. 현재 수업은 소설론 수업인데,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한 명을 빼고는 대학 학부를 국문과를 나오지 않았고 전공도 다들 시(詩)이기 때문에 토론보다는 강의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가 교재의 내용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이 논문 두 개를 요약해 온 것을 읽으면 그 내용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해준다.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그것에 대해서도 답변을 해준다.개강 전에 대학원 세미나에서 이 분들 중 몇 분을 만나서 함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한 분은 현재 활동 중인 시인이라고 하는데,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한다. 이 분의 말로는 자신은 사람들과 만나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만나는 일만으로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고 한다.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다른 한 사람은 공부에 매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 분은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쳤는데, 전공이 국문학이 아니다보니 한계를 느껴서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다 보니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박사과정에도 진학했다고 한다. 가끔 일 때문에 필자가 전화를 하면 전화를 잘 받지 않는데, 나중에 도서관에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문자가 온다. 요즘은 학부 학위를 받는 방법도 다양한 듯하다. 필자의 가장 어린 학생은 원래 생활음악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나중에 평생교육원에서 대학교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 대학 평생교육원이냐고 물으니, 정부에서 하는 평생교육원이라 어느 대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답한다. 요즘은 언론에서 평생교육원에서도 대학교 학위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가 그것인 듯하다. 필자의 학생들을 보면 한국 사회의 학력 인플레 논란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요즘은 많이 드물다고 한다. 사회 전체가 대학 정원을 축소하는 분위기이고, 그와 함께 신규 교수 임용도 위축된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대학교수나 전문 연구자를 목표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부 졸업생들이 많이 준 것이다. 더구나 사회 전체가 인문학이 돈 벌이가 안 되는 학문이라고 천시하다 보니 이쪽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사회전체의 지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인문학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8-04-04

제주 4·3사건과 국가폭력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다음 달 3일은 제주 4·3사건 70돌 되는 날이다. 1948년 4월 3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4·3사건의 불씨는 1947년 3월 1일로 소급된다. 그날 3·1절 기념대회 참가자들의 시가행진을 구경하던 군중에게 경찰이 발포함으로써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로당은 경찰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제주도 직장의 95%에 이르는 민관 총파업이 일어난다. 미군정은 경찰에 반대하는 남로당을 격파하기 위해 서북청년단 같은 극우 단원들을 대거 제주도로 급파한다. 불과 1개월 만에 검속으로 500여 명이 체포되고, 1년 사이에 파업 주모자 2천500여 명이 구금되기에 이른다. 체포와 구금 과정에서 서북청년단은 테러와 횡포를 일삼아 제주도민들을 자극했고, 구금자에 대한 경찰의 고문이 잇따랐다. 1948년 3월 일선 경찰지서에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해 제주사회는 폭발직전의 위기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러다가 4월 3일 제주도 중산간 오름 지역에서 봉홧불이 불타오르고 무장봉기가 시작된다.2000년 제정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주 4·3사건의 시기를 경찰의 발포가 있었던 1947년 3월 1일부터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해제되는 1954년 9월 21일까지 6년 6개월로 잡고 있다. 우리가 제주 4·3사건을 말할 때 그것은 이 시기에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제주 전체도민의 11%에 이르는 2만5천~3만의 제주주민이 학살당한 사건을 일컫는다.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4·3사건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으로 규정해 금기시했으며, `문민정부`를 주장한 김영삼 정권 역시 다르지 않은 궤적(軌跡)을 걷는다. 그러다가 1998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제주 4·3사건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4·3사건의 진상규명과 정부의 공식사과, 희생자 보상 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이 제주 4·3사건의 개략적인 내용이다.해방공간의 극렬한 좌우대립 이후 남북한에 독자적인 정부가 수립되고, 곧 이어 6·25 한국동란이 발생한다. 전쟁을 전후로 한 시점에 이승만은 제주 4·3사건 이외에도 국민방위군 사건이나 보도연맹 사건 등을 일으켜 근면하게 자국민을 살육(殺戮)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가지는 가공(可恐)할 공권력을 동원하여 수십만 자국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자를 혹자(或者)는 여전히 국부(國父)로 숭상하고 있다. 참혹하고 또 참혹한 4·3의 살육현장을 확인하면서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리는 것이었다. 아아, 나의 조국이여, 제주여!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국을 위해 불가리아로 쳐들어가 무고한 민간인을 처참하게 학살한 조르바는 오그레에게 말한다. “조국이 어디든 우리 모두는 한 형제예요. 조국이 있는 한 인간은 짐승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조국의 이름으로 전쟁에 가담해 적국의 시민을 학살한 조르바의 깨달음은 뒤늦은 것이었으나 통렬하기 그지없다. 모든 인간은 조국보다 우선한다. 조국을 내세우며 민간인 학살을 강제하는 정부와 권력자는 죄악이다.올해는 정부수립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두 세대 남짓한 세월,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국가의 이름으로 살해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되 21세기 광명천지에서 국가와 정부, 권력자를 위한 민간인 학살은 반드시 종식(終熄)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그마한 시대정신 하나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2018-03-30

위안부 아베 베트남 문재인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문재인 대통령이 22일부터 공식적인 해외순방에 나섰다. 오는 24일까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고 쩐 다이 꽝 베트남 주석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24일부터 27일까지는 아랍 에미리트를 방문해 모하메드 왕세제와 미래성장 분야의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국가수반이 정상외교를 통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국제적인 위상을 고양하는 일은 그의 고유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그것을 간명하게 함축하는 용어가 `정상외교`다.이미 한국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4월 말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5월 안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5월 초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 등을 마련함으로써 한국외교의 금자탑을 쌓아올리고 있다. 일찍이 없던 한국외교의 위대한 성취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반도의 명운을 움켜쥔 당사자가 미-일-중-러 4대강국이 아니라, 한반도 거주민이라는 `당사자주의`를 확립한 의미심장한 성취이기 때문이다.이런 과정에서 나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초기의 의구심과 미심쩍음을 내던져버렸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대북송금에 관한 특별검사제를 수용했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 때문이다. 사적인 이해관계나 정파적인 목적이 아닌, 민족내부의 고도의 통치행위마저 정쟁의 도구로 활용된다는 안타까움과 우울함이 깊이 자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각설하고,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20세기 `가장 더러운 전쟁`으로 명명된 베트남전쟁은 그들의 통일전쟁이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욕망 때문에 프랑스의 뒤를 이어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 전쟁에 깊숙이 개입한 것이 1964년의 일이었다. 한국은 군사적-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미군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베트남에 파병한다.1965년 10월 9일 청룡부대와 10월 22일 맹호부대가 베트남에 상륙한다. 그리하여 1973년 3월 한국군 전투부대의 완전철수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34만에 이르는 병력을 베트남에 보냈다. 5천의 한국군이 죽고, 2만여 고엽제 환자를 낳은 베트남 전쟁으로 한국은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기록된다. 어린이와 부녀자, 노약자를 포함한 다수의 민간인 학살을 포함해 한국군은 5만여 베트남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음이 드러났다.박정희가 내세운 `조국근대화`를 위해 한국의 숱한 청춘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목숨을 잃고, 무고한 수만의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 언젠가 하노이에서 다낭까지 5박 6일 동안 베트남의 전쟁과 역사박물관을 순방한 적이 있다. 영어로 시작된 자막이 도이치어나 프랑스어가 아니라, 즉시 한국어로 울려 퍼지는 베트남의 전쟁 역사박물관. 얼마나 많은 베트남인들이 통일전쟁의 희생제물이 되었는지를 웅변하는 현장에서 차마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우리는 아베 같은 일본 정치 지도자들에게 종군위안부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그들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만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아베와 그 추종자들은 전임 박근혜 정권과 그 하수인들과 불가역적인 해결방안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정신이 온전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 합의안 아니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입장은 앞으로 더욱 강고해질 것으로 보인다.이젠 우리 차례다. 경제성장과 돈벌이를 위해 미국의 용병으로 파병된 한국군의 만행을 베트남 국민들과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온당한 배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아베와 일본 정객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여, 보았는가?! 우리의 사죄와 배상을 그대들은 똑바로 확인했는가!”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요청한다. “베트남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하십시오!”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