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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과 북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지난 9일 남과 북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회담을 진행했다. 오전 10시에 전체회의가 시작되어 저녁 8시 42분까지 모두 여덟 차례의 접촉을 경과함으로써 회담을 마무리한 것이다. 회담을 마친 남북은 북한 대표단의 평창 올림픽 방남,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당국회담 개최, 남북선언 존중의 3개항에 합의하고 공동 보도문을 발표했다. 북한은 다음 달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 선수단은 물론이고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 대규모의 방문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한다. 좋은 일이다. 상당기간 지속된 남북과 북미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완화될 조짐이 보인다. 참 좋은 일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남과 북의 문제는 당사자인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서 풀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른바 4대강국의 힘겨루기나 기싸움의 들러리가 되는 것은 한사코 피해야 한다.어리석고 용렬하며 이해 타산적이고 패권적인 전임 수구정권들의 어처구니없는 대북정책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괴로워해야 했던가?! 잘 나가던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고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바보짓을 하면서도 `통일대박` 운운했던 권력자와 그 졸개들의 면면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일본의 아베에게는 앞 다퉈 무릎 꿇고 말도 안 되는 `위안부협상`을 하고, 아랍 에미리트와는 비밀군사협정을 맺어 유사시 한국군 파병(派兵)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래도 되는가?!전임 대통령들의 이런 황당하고 패륜적인 행태를 우리는 `적폐(積弊)`라 부른다. 다수 국민은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국민을 `궁민(窮民)`으로 만든 수구세력의 적폐를 말끔하게 씻어내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1세기 역사발전에 거대한 걸림돌이자 장애물로 작용하는 적폐세력을 청산하지 않으면 눈부시게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도한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시대를 선도(先導)하지는 못할망정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는 자들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영화 `강철비`에서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는 말한다. “국민들은 분단 자체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분단을 이용하는 자들 때문에 더 고통 받는다!” 툭하면 안보, 안보, 안보를 떠들던 자들을 생각해보시라. 그자들이 말하는 안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곰곰 돌이켜보시라. 국가안보는 국민들의 믿음과 나라 사랑에서 출발한다. 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사랑과 믿음은 국민을 향한 최고 권력자와 지배세력의 사랑과 지혜에서 나온다.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는 “넉넉한 식량(足食)과 든든한 군대(足兵), 백성들의 믿음(民信之矣)”이라 답한다. 세 가지 가운데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이냐고 자공이 묻는다. 공자는 군대라고 말한다. 남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입니까, 하고 자공이 다시 묻는다. 공자는 단숨에 식량이라고 대답한다. “자고(自古)로 모든 사람은 죽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믿음이 없다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고 공자는 논거를 제시한다.마지막 말이 가슴을 울린다. “백성들의 믿음이 없다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그것을 일컬어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한다. 예전의 백성을 오늘날엔 국민 혹은 시민이라 부른다. 호칭이 어찌 됐든 우리는 안보를 팔아서 장사해먹은 정치가와 정치세력을 믿지 않는다. 남과 북이 얼굴 맞대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논한다니까 3개 야당 대표들이 득달같이 달려 나온다. 오죽했으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그들에게 꿀밤이라도 놔주고 싶다고 했을까?!세계가 광속(光速)으로 질주하고 우리 국민들의 의식도 지난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해있는데, 오직 적폐세력의 우두머리들만 19세기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다. 군사적 긴장완화뿐 아니라, 이산가족상봉과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도 조속(早速)히 가능한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안보 팔아 장사해먹는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 적폐세력의 농간질도 이제는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8-01-12

2018년 무술년을 맞으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다시 해가 바뀌었다. 불과 몇 시간을 경계로 지난해와 새해가 갈린다. 시간과 달력의 유희다. 아쉬움과 기대감 사이에서 우리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생각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인과율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생로병사의 필연적인 수순에 갇힌 바둑돌처럼 허우적거리다 종점에 다다르는 것이 인생이다. 모든 생명체가 `지금과 여기에` 함몰(陷沒)되어 살아가지만, 인간만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 미래에 기대를 건다. 미래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채 살아간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과거는 물론이려니와 현재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필연적인 숙명인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하는 말을 주술(呪術)처럼 되뇌면서 각오를 피력한다. 거기에는 금연, 영어공부, 다이어트, 취직 같은 희망사항이 담겨있다. 국가적으로 요약하면 한국에서는 영어, 미국에서는 다이어트 열풍이 해마다 불어온다. 결과는 예외 없이 언제나 실패!그래도 한국인들은 해마다 1월 1일이 되면 바다와 산과 고지대(高地帶)를 찾는다. 꼭두새벽부터 명당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분투가 뜨겁다. 그들은 환하게 떠오르는 신년벽두의 첫 번째 태양을 바라보며 내밀하게 소원을 탄원(歎願)한다. 그들이 우러르는 태양은 어제도 떠올랐고, 내일도 뜰 것이지만 1월 초하루 태양은 뭔가 다른가 보다. 오래전 중3때 외갓집에서 맞은 새해 첫날의 태양을 향해 소원을 빈 적이 있다. “좋은 학교 보내주세요?!”`뺑뺑이`로 경기에 들어갔지만, 대학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라는 형극(荊棘)의 길을 걸었다. 3년 전 환했던 아버지 얼굴은 잿빛으로 어두웠고, 나는 죄인처럼 슬프고 우울했다. 그 이후로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 것은 서른 살 신혼여행 때였다. 아내는 가정의 행복과 나의 건강을 빌었고, 나는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했다. 강릉 앞바다에 찬연하게 떠오른 태양은 네 가지 소원 가운데 어느 하나도 온전하게 들어주지 않았다.그 후로 나는 태양을 향해 소원을 비는 소박함을 버렸다. 간절한 소원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 탓이기도 하지만, 태양과 나의 소원은 전혀 무관했던 때문이다. 그저 느긋하게 정월 초하루를 맞이하고 마음 놓고 늦잠을 청한다. 지난날을 반추하되, 다가올 날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접는다. 기대와 설렘과 희망과 꿈은 모두 청춘의 몫이다. 나이든 축들이 그런 것들을 소원하는 행위는 속되고 비천하다. 청춘의 밑거름이나 되면 다행이라 생각한다.그러하되 2018년 무술년, 내게는 몇 가지 바람이 있다. 거시적(巨視的)으로 보면 남북관계 정상화, 경제민주화와 청년실업 해소, 그리고 개헌이다. 수구정권이 비열하게 악용해 최악의 사태로 치달린 남북관계 복원은 전쟁방지와 평화구축과 직결된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육신과 영혼을 치료하는 경제민주화, 3포 세대를 구원할 청년실업 해소도 중차대한 문제다. 여기 덧붙여 87체제의 종식(終熄)과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는 개헌 또한 종요롭다.숱한 화제를 뿌리며 언론을 장식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구시대의 유물인 적폐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적폐의 온상이자 적폐를 양산한 장본인들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우리의 발목을 끈끈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은 필지(必至)의 사실이다. 촛불민심이 권력자와 정당에게 부여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와 민족의 유일무이한 생명선이다.지난 1월 1일 일출은 대단히 청명하고 화사했다. 그날 저녁에는 아주 크고 맑은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다. 자연에게 소망을 빌지는 않지만, 그런 전조(前兆)에서 무술년의 웅비(雄飛)를 독서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남북이 적대적 공존관계를 벗어나고, 돈 때문에 죽어가는 이웃이 줄어들며, 미래세대를 위한 따뜻한 개헌이 2018년에 꼭 이뤄졌으면 한다.

2018-01-05

2017년 정유년을 보내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빠르다. 정말 빠르다. 세월은 역시 빠르다. 국정농단 최순실 사태로 탄핵과 촛불집회로 막을 내렸던 2016년이 엊그제 같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고, 5·9 대선을 지나 새로운 정부가 구성된 것이 아까 같다. 그런데 연말이 코앞이다. 그 사이 뭘 하고 살았나, 하여 달력을 뒤적여보니 깨알 같은 글자로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참 별일도 많구나, 싶다. 주어진 책무를 그저 다했을 뿐인데, 365일이 다해가고 있는 것이다.허락된다면 내가 살아온 2017년 기록을 낱낱이 사진기로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장삼이사의 허망하고 남루(褸)한 일상이어서 그렇지만 다들 분망(奔忙)하게 세상과 마주하고 있으리라.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노숙생활을 접고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한 열 서너 분과 함께 했던 시간이 기억에 새롭다. 한 주에 한 번 1시간 반 정도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분들. 그들이 흉중에 가지고 있는 사연들이 아직도 궁금하다.세 번의 자살시도에도 끝내 불귀(不歸)의 객이 되지 못해 이승을 배회하고 있는 외로운 70대 남성. 아무리 죽으려 해도 죽어지지 않았던 육신과 구원의 손길로 생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그. 그는 생의 끄트머리에서 처절한 고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는 게 아무 재미가 없어요.” “재미로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를 찾으셔야죠.” “뭘 해도 그저 덤덤해요….”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냉기 도는 썰렁한 집. 혼자만의 밥과 잠과 일상에서 오는 반복적인 기시감. 어제도 오늘도, 그리하여 내일도 되풀이되고야 말 것 같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무의미한 나날들. 거기서 발원하는 무료함과 무력감. 노숙생활을 접고 시작한 갱생(生)의 일상을 보조하는 사업으로 만나게 된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크고 작은 곡절(曲折)로 점철돼 있었다. 지난 12월 13일 졸업을 하면서 못내 서운했을 그이들.“내년에는 이 사업이 없어져서 저희도 많이 아쉬워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던 담당자 역시 아쉬움을 피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이는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고 사는 중년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말씀들을 안 하시고 천장만 바라보셨는데, 어느 때부턴가 말문이 트여 서로 말씀을 다투세요. 참 외로운 분들입니다. 내년 예산편성에 이 사업이 빠져있다고 합니다. 저도 꼭 살렸으면 하는데, 그게 어디 제 맘대로 되나요?!”대구시가 지원한 `희망 나눔의 집` 사업은 고립 분산적으로 힘들게 살아온 이웃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육신은 물론이려니와 정신마저도 피폐하고 지쳐버린 60~80대 이웃들에게 삶을 되살려주려는 의미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인문학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거점국립대학에 몸담고 있는 나는 잠시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고단한 행장(行狀)을 엿본 셈이다.나는 말하기보다는 듣고자 했다. 이야기 중에 말을 섞는 분이 있으면 가능하면 그 말을 끝까지 경청하려 했다. 다수 참가자는 내가 내건 `노자와 인간`이란 주제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하되 다른 분들은 시비조로 이야기에 제동을 걸거나 딴소리로 김을 빼기도 했다. 약속된 일정이 끝나고 소회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자 다들 서운함과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었다.“저도 여러분과 함께 하게 돼서 뜻 있고 유쾌했습니다. 이런 사업에는 대구시가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내년에 지자체 선거도 있다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모쪼록 여러분의 앞날에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서로 만나 안부 묻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얼굴 붉히지 않고 호형호제 하면서 지내왔던 그분들의 뼈저린 외로움과 기나긴 겨울밤을 생각한다. 탈세와 불법증여와 상속으로 탈루되는 돈이 적지 않다는데, 정작 온전히 쓰이는 세금은 어디로 갔나, 생각하는 세모(歲暮)의 아침이다.

2017-12-29

원숭이가 우물에서 달을 건지다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한 무리의 원숭이가 보름달 환한 밤에 귀로(歸路)를 서두르고 있다. 앞장서서 가던 대장 원숭이가 문득 우물에 빠진 달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가 무리를 멈춰 세우고 말한다. “이제 저 달이 우물에 빠졌으니 우리는 반드시 달을 건져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캄캄한 밤길로 다녀야 할 것이야” 원숭이들은 커다란 나무에 꼬리를 감고 손에 손을 맞잡은 채 우물 속으로 들어가 우물에 빠진 보름달을 건지려다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원숭이가 우물에 비친 달을 꺼내려고 두 손을 담그는 순간 달은 사라지고 만다. 원숭이가 퍼내려던 달은 달이 아니라 물에 비친 달그림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함몰되는 정경(情景)을 설파한 본보기다. 이것을 일컬어 `원후취월`이라 한다. 이것과 유사한 비유가 “달을 가리키니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바라보네!” 하는 구절이다.원후취월을 말한 사람의 의도는 사건의 본령(本領)과 무관한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叱咤)하는 것이다. `격화소양`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이런 일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적잖게 일어난다. 그것은 각자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과도한 욕망이나 기대치에서 발원한다. 아무리 명민한 자라 해도 눈이 흐려지면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쉬이 발생하는 법이다. 남들 눈에는 훤히 보이는데도 정작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벽암록`에 나오는 마조화상과 백장의 이야기를 보자. 어느 날 마조화상이 백장과 길을 가다가 들오리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백장에게 묻는다. “저것이 무엇이냐?”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느냐?” “저리로 갔습니다.” 이때 마조화상이 백장의 코를 힘껏 비튼다. 아픔을 참지 못한 백장이 비명소리를 내지른다. “가기는 어디로 갔단 말이냐?!”불가(佛家)의 서책 가운데 어렵기로 호가 난 `벽암록`의 단편(斷片)이다. 인간의 눈이 추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들오리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한 백장과 그것의 협애함을 일깨우는 마조화상의 가르침. 제한된 시공간을 살아가는 필멸(必滅)의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범주는 매우 협소하다. 우주적인 차원까지는 언감생심, 지구의 경계 안에서 살핀다 해도 들오리의 운동범위는 그다지 크지 않다. `가기는 어디로 갔단 말이냐?`의 함의는 거기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마조화상의 범상함을 간파한 남악회양의 일갈이다. “너(마조)의 가리고 따지는 마음과 취하고 버리는 태도로 인해 부처의 걸음이 뒤뚱거리고 있다!” 마조화상이 아직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정진할 때 남악회양은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갈파(喝破)한다. 크고 작음, 올바름과 그름, 있음과 없음, 밝음과 어둠을 기어이 분별하려는 인간의 누추한 분별심이 지극한 깨달음의 도를 어지럽히고 있음을 나무라는 남악회양.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자가 이것저것 묻다가 갑자기 첫째, 둘째, 셋째를 거명하면서 꼬치꼬치 따지고 누추하게 가르치려 든다. 그가 보기에 세상의 현자는 오롯 그 자신밖에 없다. 정의와 진리와 자율의 전령이자 수호자로서 그는 나 같은 비천한 중생은 안중(眼中)에도 없다. 오랜 시간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출중(出衆)한 한 사람의 지혜보다 어리석은 두 사람의 지혜가 크고 깊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해관계를 초탈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2017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스스로를 돌아보다 홀연 `원후취월`을 떠올린 것은 분명 까닭이 있을 터. 그러하되 검열의 시대를 초래한 권부(權府)의 `블랙리스트`의 상흔(傷痕)이 여전한 까닭에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성서를 읽는 자들이 “제 눈 속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의 티끌”을 문제 삼는 희한한 세태가 조속(早速)히 사그라졌으면 한다.

2017-12-21

절룩절룩 뒤뚱뒤뚱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절룩절룩 뒤뚱뒤뚱`은 사람이나 동물의 걸음새가 한결같지 않아서 불안정하고 상큼하지 않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런 자세는 조화와 균형을 잃어버려 우아함과 세련됨이 부재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와 같은 부조화와 불균형의 원인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을 터. 요즘에는 거리에서도 `절룩절룩 뒤뚱뒤뚱`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차도(車道)에서 부자연스럽고 위태로운 지경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의 대열이 그것이다.전후좌우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채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자동차를 볼라치면 사실 조마조마하다. 두어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비틀대는 승용차가 당신 옆을 달린다고 생각해보시라. 더러는 두 개의 차선(車線)을 점령하고 조금 더 빠른 쪽을 기웃거리는 차도 있다. 택시기사들은 물론이려니와 얌체족 운전자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운전이란 본디 기능(技能)이기 이전에 예의범절임을 모르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명박 정권시절인 2010년 2월부터 교통안전교육, 장내기능교육, 도로주행교육 시간이 모두 감소한다. 이른바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어설프고 위험천만한 운전자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매년 22만 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6천명이 사망하는 나라 대한민국. 매일 600건의 사고와 16명의 사망자를 잉태하는 교통사고. 그런 통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준 운전면허간소화 방안. 이런 얼빠진 `포퓰리즘`이 또 있을까?!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잡고 정치적인 인기를 노린 희대의 사기극. 일이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고 말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운전면허 간소화방안은 2016년 12월 이후 폐지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한국의 운전면허는 중국의 운전면허와 더불어 신뢰도 면에서 바닥을 기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을 그토록 가벼이 여기는 자의 정권이었으니 처참한 결과는 자업자득 아닌가.`절룩절룩 뒤뚱뒤뚱`은 비단 운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국정운영의 난맥상에도 고스란히 적용 가능하다. 이른바 4대강사업, 방위산업비리, 자원외교 예산낭비가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얘기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꼬박꼬박 낸 세금을 제주머니 돈처럼 외국정권과 기업에 마구 퍼준 희대의 사기꾼 정권.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똘똘 뭉쳐 나랏돈을 공돈으로 여겨 `먹튀`로 일관한 싸구려 보수(수구)정권.지난 세월 누적(積)된 각종 폐단과 악습을 철거(撤去)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이른바 `적폐청산` 요구다. 그런데 검찰의 수장은 12월 안에 수사종결 방침을 언명(言明)한다. 누구의 생각이고 누구의 기획인지 그 저의(底意)가 새삼 의심스럽다. 국민의 59.7%, 대구 경북민의 53.5%가 시한 (時限) 없이 적폐수사를 지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가급적 연내(年內)에 마무리하자는 수치(數値)는 국민의 32.3%, 대구 경북민의 38% 지지를 받았다.이참에 적폐의 온상과 근원을 뿌리째 뽑지 않고 온존시킨다면, 그것에 기생(寄生)하는 허다한 폐습이 음습한 장마철 독버섯처럼 자라날 것은 자명하다. `세월호 대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사태는 `절룩절룩 뒤뚱뒤뚱`을 방치하고 키워온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세력과 권력자들의 농간(奸)에서 발원했다. 국민 모두를 상전처럼 떠받들고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정치집단의 행악질이 극에 달해 벌어진 사건들이다.오늘도 팔조령 내리막길을 `절룩절룩 뒤뚱뒤뚱` 거리면서 달리는 숱한 자동차들의 행렬을 목도하면서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한다. 광속으로 발전과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새삼 지난날의 적폐를 확실하게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흐름에 참람(僭濫)하기 이를 데 없는 `절룩절룩 뒤뚱뒤뚱`을 남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7-12-15

이미지와 고독사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배우 이미지가 세상을 버렸다. 만 58세의 그녀는 혼자 지내던 오피스텔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소식이 닿지 않은 남동생이 방문한 역삼동 오피스텔에서는 악취가 등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서울의 달`과 `전원일기`, `파랑새는 있다`, `태양인 이제마`, `거상 김만덕` 등의 드라마에서 조연(助演)으로 이름값을 톡톡히 했던 이미지.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쓸쓸하기 그지없는 오롯 혼자만의 황망(慌忙)한 길이었다.`고독사(孤獨死)`는 문자 그대로 삶의 끄트머리에서 홀로인 상태에서 맞는 죽음을 의미한다. 고독사가 발생하는 1차적인 원인은 1인가구 증가에 있다. 2015년 기준으로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구비율은 32.3%, 1인가구는 27.2%에 달한다. 부부가구가 15.5%,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구는 10.8%다. 전체가구의 4분의 1 이상이 1인가구란 얘기다. 2025년도에는 1인가구의 비중이 31.9%로 다른 가구형태를 압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2006년 1인가구의 비중 14.4%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고독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趨勢)다. 2011년 고독사 인구가 693명이었으나, 작년에는 1천232명으로 집계되었다. 문제는 통계의 허상(虛像)이다. 1억2천700만 인구의 일본에서 해마다 보고되는 고독사(무연사(無緣死)) 수치는 3만2천을 넘는다. 한국의 인구가 5천만이므로 산술 계산으로 어림잡아도 해마다 1만명 이상이 고독사로 세상과 작별한다고 봐야 한다.사회안전망이 일본보다 낫지 않은 우리 처지에서 일본의 상황은 타산지석이다. 거품경제의 붕괴와 잃어버린 20년 동안 부패하고 무능한 자민당 정권의 무분별한 토건과 건설경기 의존이 야기한 일본경제의 퇴락은 대량의 실직자를 낳는다. 여기에 이혼율 급증, 비혼(非婚) 풍조와 개인주의 확산 등이 일본의 고독사를 늘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4대강사업과 자원외교, 방위산업 등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예산이 떠오르지 않는가. 거기에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한 최고 권력자와 권력집단, 특정정파의 검은 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았던가. 오늘날 우리가 적폐라고 부르는 부패와 부조리와 타락의 양상 가운데 하나인 `국정원 특별활동비`가 날마다 전파를 타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사회안전망 확보에 소용되는 예산을 어디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40, 50대 1인가구의 비중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고독사의 급증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사회는 물론이려니와 가정에서도 소외되고 떨려나오는 중장년 남성들의 우울한 행렬이 눈에 밟히고 또 밟힌다. 경제적 무능력과 사회적 고립을 견뎌내지 못하고 알코올과 담배에 의지하면서 하루하루 버티다가 끝내 맞이하는 완벽한 고독 속의 죽음이라니. 이런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아니 완전히 병든 사회라고 할밖에 없다.전체 노동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청년실업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소규모 창업자들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나라 대한민국.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청년세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난하고 훈계하는 얼빠진 기성세대가 권력을 주무르는 나라. 가문과 지역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민족과 대의명분을 들먹이면서 무조건적인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는 후안무치한 정치세력이 지역을 볼모로 잡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중견배우 이미지의 고독한 죽음이 불러오는 언짢은 연쇄반응이 장마철 먹구름처럼 우리를 감싼다. 시대의 애환을 전했던 유명배우의 격절(隔絶)하고 신산(辛酸)했을 마지막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리의 어린것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조용히 반추하는 한겨울 아침이 소리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2017-12-08

시인과 인터넷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얼마 전에 가까운 친구가 `텔레그람`으로 동영상을 보냈다. 음악이 동반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제목의 시와 윤동주 시인의 이름자가 들어 있었다. 우리가 아는 `서시(序詩)`의 시인 윤동주. 그런데 시 제목이 낯설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일찍이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학부 1학년 시절 `윤동주 평전`을 탐독하고 그의 시편(詩篇)을 기억하곤 했다.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 시절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시인들”이었으므로.동영상 끄트머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구절이 덧보태져 있었다. 오호, 이건 정말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텔레그람`으로 그런 생각을 전했고, 시를 전공하는 친구가 요즘 인터넷 상으로 떠도는 유령(幽靈)의 실체를 밝히는 블로그를 연결해줬다. 사달의 출처가 어딘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쓴 자작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 윤동주의 시처럼 둔갑해서 가상공간을 떠돌아다닌 지 제법 된다는 것이었다.다량의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이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인이라면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위작(僞作)으로 허름한 시편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적잖은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이태백이나 두보, 러시아의 아흐마토바, 일본의 마쓰오 바쇼, 영국의 바이런, 프랑스의 랭보, 이탈리아의 페트라르카를 참칭(僭稱)한 작품이 인터넷을 유령처럼 배회(徘徊)한다면 어쩔 것인가?!1948년에 출간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의 시가 윤동주 시인이 남긴 거의 모든 시작품이라고 한다. 이준익 감독의 흑백영화 `동주`에서 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와 함께 살아난 아름다운 시인이 위작소동을 알게 되면 섭섭해 할 듯하다.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45년 2월 16일에 세상 떠난 시인 동주. 28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지상의 빛과 만났던 시인 윤동주. 그가 `인생의 가을` 운운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겠는가?!해마다 6월 6일이 되면 러시아 전체가 축제로 들썩거린다.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계관시인 푸쉬킨의 탄생 기념일이 6월 6일인 때문이다. 유럽으로 열린 창(窓) 페테르부르크에서부터 태평양에 면한 캄차카까지 푸쉬킨을 기리고 추억하는 축제가 온종일 열리는 것이다. 러시아인에게 러시아어로 러시아의 영혼과 습속, 문화와 종교, 사유와 인식, 역사와 철학을 설파했던 푸쉬킨. 시와 소설, 희곡과 평론에 이르기까지 그는 러시아 문학 자체였다.하지만 우리 한국인에게는 그런 시인이 없다. 시인이 없다는 말보다, 그런 시인을 기리는 한국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물어보라. 윤동주나 이육사, 김소월과 한용운 시인의 생몰연대 가운데 하나라도 알고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되는지 확인해보라. 뭐, 그런 게 대수냐고 손사래 치는 분들이 많을 것은 불문가지. 하기야 부모형제의 생일이나 기일(忌日)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주류가 된 세상이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그럼에도 나는 특정종교와 결합하여 윤동주를 욕보이는 사람들이 언짢다. 사실관계조차 온전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인터넷으로 `인생과 가을`을 퍼 나르는 사람들이 우울하다. 그것은 한국의 대표시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서 발원한 것이로되, 같은 이유로 그이를 훼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끼고 기리는 시인이라면 그의 생애는 물론이려니와 작품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리라 믿는다.선의(善意)로 보내진 동영상에서 뜨악함을 느낀다는 것은 우울한 노릇이다. 시와 문학이 사라져가는 차가운 세태에 시를 동반한 동영상 송출은 찬양받을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수능시험에 나오는 몇몇 시들만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남루한 세대가 조속히 소멸하고, 시와 시인을 가까이하는 털북숭이 인간들(자마틴의 소설 `우리들`의 인물들)의 조속한 도래를 기원한다.

2017-12-01

포항을 생각하며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학부지난 15일 오후 2시 29분에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시를 엄습했다. 작년 9월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에 이은 천재(天災)다. 그날 경북대 대학원동에 있던 나는 건물의 강력한 동요에 화들짝 놀라 밖으로 튀어나갔다. 학과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운동장 부근에서 담소(談笑)한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나 오랜 세월 지진과 무관하게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작년과 올해의 지진은 매우 낯설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포항 지진 이후 죽도시장에 손님들 발길이 뜸하다는 보도에 한숨이 났다. 경북대 수련원이 자리한 구룡포에 갈 때마다 죽도시장에 들러 푸짐한 횟감을 마련했던 일이 새삼스러운 탓이다. 어디 그뿐인가. 영덕과 울진 사이에 있는 칠보산 자연 휴양림에 갈 때에도 죽도시장에 들르곤 했다.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지만, 고래 고기를 처음 맛본 곳도 죽도시장이었다. 사람처럼 지능지수가 높고 아이 키우듯 새끼를 기르는 고래를 먹는다는 것이 찜찜했던 탓이다.나한테 포항은 바다를 처음 보았던 곳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 가기 전에 해병대 1일 입소를 위해 들렀던 곳이 포항이다. 어느 해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너르고 맑은 모래사장과 바닷바람, 그리고 짠맛의 바닷물은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민물과 확연히 다른 냄새가 났지만, 얼마나 짠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두 손에 바닷물을 움켜쥐고 맛을 보았던 것이다. 정말로 짠맛이 느껴지는 순간, 그것은 경탄(驚歎)으로 다가왔다.해병대 1일 입소를 마친 우리는 포항제철을 견학했다. 버스 한 대마다 선배들이 올라타서 포철의 역사와 신화를 자랑스레 선전했다. 대학 졸업하고 오면 100만원 상당의 캐비닛 크기 쇳덩어리를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들. 그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세월이 물 흐르듯 지나고, 포항은 경북대와 함께 다시 나를 찾아왔다. 경북대 구룡포 수련원과 뗄 수 없는 포항. 그리고 노문학과 엠티로 찾은 내연산과 보경사, 칠포 바다는 언제나 아름다웠다.언젠가 구룡포 수련원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2박 3일 일정의 여름휴가 동안 그이들을 유쾌하게 인도한 것은 강구의 홍게였다. 대게는 철이 아니어서 구할 수 없었지만, 홍게는 냉동고에 넣어 두고 한여름에도 판매하고 있었다. 게를 좋아하던 어머니는 “야야, 이렇게 맛있는 게는 처음이구나. 꽃게만 먹어보았으니 말이다.” 살이 꽉 들어찬 홍게를 그리 좋아하시던 어머니. 그 후로 강구 갈 일 있으면 대게와 홍게를 보내드리곤 한다.작년 초에는 장성한 아이들을 데리고 구룡포 근대골목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구룡포에 거주한 일본인들의 집과 생활상을 돌아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생선회와 대게를 안주거리 삼아 아들들과 지난날과 다가올 날을 추억하고 기획하는 일은 뿌듯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포항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기억으로 남은 곳이다. 나아가 앞으로도 인연을 맺을 곳이기도 하다. 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포항의 도시 인문학 사업도 그 하나다.최백호의 `영일만 친구`와 호미곶 일출로 널리 알려진 포항이 자연재해로 신음하고 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분 가운데 지진으로 집이 파손되어 지인(知人)의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뭐라고 위로할 말을 찾기도 어렵다. 포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한시바삐 전폭적인 지원을 해드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태무심하고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우리의 안전 불감증도 돌이켜볼 일이다.경북매일에 매주 금요일 `파안재에서`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필자에게 포항지진은 남의 일이 결코 아니다. 포항시민 모두 용기를 내서 재난을 서둘러 극복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복귀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17-11-24

나는 왜 영화를 보는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리치오토 카누도가 영화를 `제7의 예술`로 명명한 이후 만화와 텔레비전이 영화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러하되 영화의 질적-양적 우세는 여전하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우세한 문화예술 장르를 거명한다면 단연코 영화다. 그야말로 한국인들이 첫손에 꼽을 만큼 친근하고 일상적인 문화와 예술의 향수품목 1위는 영화라 말할 수 있다. 인구 5천만의 나라에서 1천만 관객 영화가 심심찮게 출현한다는 것은 좋은 반증일 것이다.우리는 물론 충무로의 극단적인 명과 암을 안다. 절대다수의 영화계 인사들이 최저 생계비에도 턱없이 부족한 임금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그들은 오늘도 묵묵하게 인내하며 현장을 지킨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피와 눈물과 땀을 떠올리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 자문(自問)한다. 영화가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지고,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객석은 어느새 텅 비어있다.`국제시장`이나 `명량`같은 `국뽕`영화도,`7번방의 선물`이나 `최종병기 활`, `덕혜옹주`같은 어불성설 영화도 무명(無名)으로 헌신한 분들의 노고가 없다면 성립 불가능하다. 그분들이 역사적인 사실 왜곡이나 허무맹랑한 희망사항의 관철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되, 수백수천의 노고와 투신(投身)으로 한 편의 영화는 만들어진다. 그럴진대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차장으로 질주하는 군상(群像)의 태무심과 냉정함은 우울하기 그지없다.영화가 촬영된 장소는 어디고, 어떤 곡이 영화 음악으로 사용됐는지, 누가 도움을 주어서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음미할 시간적 여유는 필요하지 않을까. 더욱이 상당한 고민과 심혈을 기울인 영화가 대중의 취향과 정서에 부합하지 못해서 흥행에 실패할 경우 그 문제점을 잠시나마 돌이켜보는 일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한다. 영화보다 기술집약적이고 자본 중심적인 예술형식은 아직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매표구에서 현찰로 지급되는 입장료가 곧바로 생산현장과 연결되는 흥미로운 유통구조를 가진 영화. 그곳에서 감독과 배우의 성공과 실패가 일목요연하게 확인 가능한 예술장르 영화. 그런 까닭에 적잖은 인텔리가 영화에 손사래를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업성과 예술성이 교묘하게 결합하여 야누스의 형상으로 대중을 바라보는 모순적인 예술형식을 가진 영화.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영화의 진화 가능성은 더욱 확장될 수밖에 없다.영화계를 주름잡는 양대 세력이 여전히 유럽과 미국인 까닭이 거기 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여타 지역은 소박하게나마 결전 가능성을 타진(打診)할 것이다. 해마다 미국과 유럽에서 거행되는 각종 영화제에 관심을 가지는 까닭은 세계영화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이나 질적인 도약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달하고 있는 기술적-정신적 깊이와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얼마 전에 김훈 원작의 `남한산성`을 보러 갔다가 열패감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200석도 넘는 영화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영화를 본 것이다. 아, 이것은 아닌데! 그런 생각이 자꾸만 나를 엄습했다. 상당히 짜임새 있고, 치밀한 구성과 이야기 얼개를 가진 영화`남한산성`이 이렇게 냉대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침울해졌다. 어쩌면 실패한 역사, 패배한 역사적 사건에 냉담하게 등을 돌리고 싶은 20~30대가 많을지도 모른다.2017년 가을 한국사회의 일상 자체가 우울과 짜증과 분노와 절망으로 점철돼 있어서 영화에서마저 신산(辛酸)한 그림자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패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말한다. 처절하게 깨지고 토악질 날 정도로 무너져버린 역사에서 패배와 절망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붕괴의 최후지점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다시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멸망은 그런 사유와 인식의 부재에서 싹트지 않았던가?!

2017-11-17

연탄의 추억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예년과 달리 따사로운 가을햇살이 지속되고 있다. 아침저녁 한기(寒氣)만 아니라면 화사한 봄처럼 느껴지는 시절이다. 그러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나면 겨울은 문득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도 도둑처럼 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래 전에 겨울이 왔던 것처럼 시끌벅적하리라. 여태 경험한 적 없는 맹추위가 찾아온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것이다. 그렇게 계절은 가고, 다른 계절이 오는 법이다.겨울이 가까우면 옛일이 생각난다. 산림녹화를 명분으로 박정희 정권은 연탄을 대체재로 제시했다. 무작정 상경한 50년 전 겨울, 서울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했다. 언제나 모자랐던 저녁을 먹고 나면 엄마는 “가자!” 하고 형과 나를 재촉했다. 엄마는 커다란 고무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우리는 양은 세숫대야를 들었다. 어른은 세 장, 아이들은 한 장씩 연탄을 공급받았다. 그렇게 하루저녁 다섯 장 연탄을 운반함으로써 하루일과를 마감하곤 했다.연탄은 탄광에서 캐낸 석탄으로 만든다. 탄광에서는 크고 작은 매몰사고가 일어난다. 지난 6일 전남 화순 광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23시간 만에 진화(鎭火)됐다. 천만 다행으로 교대 대기시간 중에 일어난 불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전남 유일의 화순탄광 일평균 석탄 생산량은 750t으로 작년에 22만4천t을 채굴했다고 한다. 여기서 생산한 석탄은 전국의 화력발전소와 연탄공장으로 공급된다.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우리는 전기와 가스를 생각한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60%를 넘어섰고, 여기에 다세대와 연립주택을 더하면 75% 정도가 난방연료로 가스를 쓰고 있을 듯하다. 노년들은 전기장판과 담요를 필수품으로 여긴다. 그런데 전기를 만드는 주력으로 석탄을 빼놓으면 안 된다. 석탄 발전비율은 액화천연가스 32%에 이어 2위인 30%다. 원자력은 21%로 3위에 머물러 있다.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10곳의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는 시의적절한 조치다. 중국발 황사나 미세먼지도 문제지만, 석탄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가 과도하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청정한 대기를 제공하는 것 역시 복지정책의 일환이다. 지난 세기 60, 70년대 연탄가스 중독이 떠오른다. 해마다 수백의 인명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이승과 작별했던 우울한 기억.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문제가 언론에 회자됐다. 어젯밤에 전국적으로 몇 사람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일상화되었으니 말이다. 날씨가 흐리거나 눈비로 인해 기압이 떨어지고 바람이 잦아드는 때면 언론은 앞 다투어 연탄가스 중독을 조심하라는 보도를 내야했다. 그러하되 가난하고 헐벗은 대다수 궁민(窮民)들은 속절없이 저승차사의 손에 이끌려 이승을 하직해야 했던 것이다.나 역시 저승문턱을 세 번 넘게 다녀왔다. “아침잠 적은 네 아버지가 일어나시다 비틀하면서 식구를 깨웠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런 말씀을 하고 팔순 노모는 여적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기억력이 과히 나쁘지 않았던 나 역시 예전 같지 않은 총기(聰氣)를 생각하며 우스개를 한다. “그때 연탄가스 안 맡았으면 아이큐가 세 자리는 될 텐데!” 하기야 대학 다닐 때까지 구공탄을 난방연료로 써야 했으니 당연지사 아닌가.화순탄광 화재사건을 보면서 어린 시절 연탄과 연탄가스를 생각한다. 별과 달을 보고 낑낑대며 구공탄을 날랐던 까까머리 소년. 가난했지만 여섯 식구가 밥상에 머리 맞대고 킬킬거렸던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구공탄으로 겨울을 나야하는 이웃이 있다. 겨울 가까운 때에 그이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법하다.

2017-11-10

1517년, 1568년 그리고 2017년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1483~1536)는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다. 반박문의 핵심은 교황청이 판매하는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것이었다. 교황청은 11세기 말부터 면죄부를 판매해왔다. 면죄부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죄를 용서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고 발행한 증명서`로 그 심장부는 교황청이었다. 루터가 반박문을 내건 16세기에는 면죄부를 사면 그것을 구입한 사람은 물론, 이미 연옥(煉獄)에 있는 가족도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등 면죄부 폐해가 극대화되기에 이른다. 이에 루터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교황청의 상업성, 즉 돈을 받고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계의 장삿속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약관 34세의 성직자가 면죄부를 팔아 부(富)를 축적하는 로마 교황청과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고, 교회의 부패상을 고발한 것이다.16세기 이후 유럽이 `지리상의 발견`과 자본주의로 근대를 열어나갈 때 교회는 과거의 유습에 허우적대고 있었고, 그 정점이 면죄부였다. 유럽의 근대를 생각할 때 종교개혁을 떠올리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불의하고 부패한 종교 세력에 대한 개인의 저항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가 권력과 불화하고 민(民)의 이해관계를 시종일관 대변했던 것은 아니다.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1811)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에 등장하는 루터는 영주의 부당한 통행세 징수에 거부하고 봉기한 마상(馬商) 콜하스를 지지하지 않는다. 종교개혁의 대의를 실천한 루터가 민중봉기로 심기가 불편한 왕가와 권력자에게 부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소설의 루터가 현실의 루터와 얼마나 가까운지, 하는 것은 논외로 하자. 그럼에도 1568년은 루터와 종교개혁에 관하여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죽음을 목전에 둔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브뤼겔(1527~1569)은 `장님의 우화(1568)`라는 그림을 그린다. 벼랑 위에 나있는 좁은 길을 장님 여섯 사람이 허위허위 걸어간다. 첫 번째 장님은 벌써 구덩이에 빠졌고, 두 번째 장님도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다. 하지만 세 번째 장님은 아직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평온한 얼굴이다. 그 뒤를 따르는 세 사람의 장님 역시 태평한 얼굴이다.마을 한복판에 큰길이 있지만, 장님은 그 길을 걸어갈 권리가 없다. 그들은 어쩔 도리 없이 위태로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로 보건대 계절은 여름으로 치달린다. 하지만 장님들은 두터운 겨울옷과 작별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 구덩이에 빠지리란 것은 자명하다. 그러하되 대로 뒤편에 서있는 교회는 침묵하고 있다. 장님들의 고단한 운명과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이다.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사회적 약자의 권리는 신장된 것이 없다는 브뤼겔의 통찰이 아프게 다가오는 그림이다. `마태복음`에서 화제(畵題)를 따왔다는 `장님의 우화`는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면 모두가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내용을 함축한다. 잘못된 지도자가 대중을 파멸로 인도한다는 것이되,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교회의 수수방관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작년 10월 28일 시작된 촛불집회로 2017년 대한민국은 전기(轉機)를 맞이하고 있다. 연인원 1천600만이 참가한 촛불집회로 드러난 시대의 갈망이 정권교체로 확인되었다. 정권교체 이후 종교세 도입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천주교와 불교계의 일각은 종교세 도입을 환영하고 있지만, 대다수 개신교 쪽에서는 수용할 태세가 아닌 듯하다.한국사회의 성역 가운데 하나가 종교계다. 부자세습도 모자라 삼대세습을 일삼고, 부정과 불의가 일상화돼 있는 공간. 세상의 변화와 담 쌓고 성채(城砦)에 갇혀 사는 자들은 1517년 루터의 외침과 저항, 1568년 브뤼겔의 장탄식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7년 한국교회가 한번쯤은 성찰해야 할 사건과 인물들 아닌가 한다.

2017-11-03

국정감사 유감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해마다 가을이 오면 분주해지는 국가기관이 있다. 국회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이 대한민국의 국가구성 요소의 핵심이라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국회는 각종 법안을 제정하는 기관이지만, 행정부를 견제-비판하는 구실도 한다. 현대국가처럼 행정의 권한이 과도하게 비대해진 경우 국회가 수행해야 할 책무 가운데 하나는 올바른 비판과 균형 잡힌 견제의 기능이다. 이런 점에서 가을에 진행되는 국정감사는 심대한 의미를 가진다.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감사란 “법적 권한이 있는 기관이 단체나 조직의 업무상황을 감독하고 조사”하는 것을 뜻한다. 법적 권한을 가진 대표적인 감사기관은 감사원이다. 그러하되, 감사원장의 임면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반면에 국회는 다수당에서 의장후보를 내고 국회의원들이 찬반투표를 통해 의장을 선출한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 국정감사는 감사원 감사와는 그 형식과 내용을 달리 하지 않을 수 없다.지난 23일 경북대와 경북대병원, 강원대와 강원대병원 등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가 경북대에서 실시됐다. 경북대는 홈페이지를 이용해 감사실황을 생중계함으로써 정보소통과 공개에 노력한 바 있다. 그날 두 시간 남짓 진행된 국회의 국정감사는 실망스러웠다는 게 중론이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도 그렇거니와 국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경북대와 강원대를 대상으로 한 국감의 중요성을 의원들이 자각하지 못한 듯하다.자유한국당 아무개 의원은 할애된 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강원대병원 문제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같은 당 소속 아무개 의원은 대학병원의 누적적자를 질타하는 호의를 보였다. 국감의 스포트라이트는 경북대 총장문제로 한정됐다.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총장후보 1순위자가 아니라, 2순위자가 총장이 된 연유를 묻는 질문이 거푸 나왔다. 집권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연이어 쏟아낸 질문의 요체는 2순위자의 교육부와 청와대 청탁여부였다.전임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최 아무개와 경북대 총장의 지연과 학연을 물고 늘어지는 구태마저 머리를 내밀며 적폐를 연출했다고 한다. 2순위자가 총장에 임명된 지 어언 1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우리는 2014년 9월부터 2016년 10월 하순까지 이어진 경북대 총장 부재사태를 기억한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5년 5월의 태양 아래 세종시 정부청사 교육부 앞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연좌 농성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당일 국회를 방문했을 때 문제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던 의원들을 우리는 낱낱이 기억한다. 그러나 1년여 세월이 흐른 뒤 문제해결의 돌파구는 교육부와 경북대 교수회 양자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의 종착점은 느닷없는 2순위자 낙점이었다. 지난 국감의 초점은 어떻게 2순위자가 1순위자를 떨어뜨리고 총장자리에 올랐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북대 총장에게 진지하게 물은 국회의원들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생각한다.사태의 핵심은 총장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결정을 내린 교육부와 청와대에 있지 않을까?! 정말로 경북대 총장선임 과정에 의구심이 있다면 당시 교육부장관과 정무수석 그리고 대통령에게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국립대 총장부재와 2순위자 낙점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거덜 내고 있는지, 대안은 없는지, 그것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총장 궐위사태가 해결되고 난 이후 경북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진정 국립대 총장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해결을 위해 국회의원들은 지난 3년 넘는 세월 무슨 노력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감사의 핵심은 당해 기관의 오류와 실패를 질책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데 있다.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나 높이고,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재삼재사 삿대질이나 하는 구태의연한 적폐감사는 바로 잡아져야 할 것이다. 이번 경북대 국정감사 실황을 보고 들으면서 느낀 소회다.

2017-10-27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요즘 정치권의 현안(懸案)은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 하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장구한 세월 쌓이고 쌓인 폐단을 이참에 말끔하게 해소하고 나아가자는 주장이 적폐청산이다. 반면에 `왜 하필 지금이냐`면서 보수(수구)정권의 패악(悖惡)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소산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정치보복이다. 전임정권의 실정이나 부패가 아니라, 대권 상실에서 원인을 찾으면서 청산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정치보복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우리가 선거를 치르고 일정기간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민의를 최대한 반영해 나라와 백성의 정신적 물질적 복리를 증진하라는 명령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되, 그들의 천부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를 비롯한 권력집단은 권력을 이양한 국민의 입장과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봐야 한다. 특정한 개인이나 정파 혹은 지역을 위한 패거리정치는 필연적으로 각종 해악을 양산해내기 때문이다.가까이로는 세월호 대참사, 백남기 농민 살해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블랙리스트 등을 거명할 수 있다. 조금 멀리로는 4대강 사업, 방위산업 부정비리, 자원외교 국고낭비, 언론장악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문제에는 공통점이 자리한다. 특정개인과 정파의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民)의 생명과 재산을 경시하고, 뼈아픈 역사를 외면한 채 희희낙락 국가재산을 쌈짓돈처럼 주물럭거린 것이다.보수권력의 부정, 부패, 타락, 패거리주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오죽하면 티케이 피케이 같은 지역붕당 별칭이 생겨났겠는가. “우리가 남이가?!” 그 말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는 정치 모리배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압살한 것이 하루 이틀 일인가. 그자들은 정치적 입지강화와 음성적인 돈벌이와 대를 이은 권력 장악을 위해 최소한의 양심과 체면을 던져버린 하이에나에 다름 아니다.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이 땅의 민초들을 압살(壓殺)해왔는가. 서해 페리호 침몰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참사사건, 대구 지하철 방화 살인사건,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 무엇인가, 이것은. 수십 수백의 인명을 앗아간 대형사고가 이어지고 또 이어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사건사고는 되풀이되고 반복됐다. 이것을 일컬어 `적폐`라고 한다. 이런 누적된 폐단을 철거하고 걷어내야 한다.얼마나 많은 생명이 4대강 사업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가. 죽어가는 강이 신음하듯 내뱉는 녹조라테는 어찌할 것인가. 방위산업이란 미명으로, 자원외교란 허명으로 허공중으로 사라져버린 그 많은 예산은 누구 주머니를 강탈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자원외교, 방위산업이었는가?! 이런 적폐를 덜어내지 않는다면, 그것을 입안하고 실행한 자들의 부정과 부패, 타락과 패거리주의를 척결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이 나라가 전진할 수 있는가.추악하게 오염된 얼굴을 분칠하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을 장악하려고 만들어낸 `방통위`와 그 하수인들의 농단은 또 어떤가. 불과 5년짜리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통치권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둘러댄 정치꾼들과 폴리페서들의 더러운 욕망과 그것의 분출을 근절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백년대계를 설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정치보복이라 읍소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지역주의에 매달리는 자들이야말로 적폐의 온상(溫床) 아닌가.“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아니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꺼리는 곳에 자리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8장)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의 본성이 이 나라 정치판의 오염과 타락을 말끔하게 씻어내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특정개인과 집단, 정파와 지역을 위한 살생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살려내는 상생과 공영의 정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보복이 아닌 진정한 청산의 마당을 열어가는 역사적인 첫걸음이기를 바란다.

2017-10-20

양과 바늘과 수레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현동 정동유(1744~1808) 선생이 1805~1806년 어간(於間)에 지은 `주영편(晝永編)`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조선의 졸렬한 세 가지 풍속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조선에는 바늘과 양, 그리고 수레가 없어서 옹색하다”는 것이다. 소, 말, 개, 돼지, 닭과 함께 양은 육축(六畜) 가운데 하나다. 대륙에서는 일찍부터 소와 더불어 희생 제물로 널리 보급된 가축이 양이다. 현동 선생은 그런 양이 조선에 없는 것을 한탄한 것이다. 양은 조선의 자연지리적인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바늘과 수레의 부재는 뜻밖이다. 불과 200여 년 전 조선에 바늘과 수레가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 가능한지 궁금하다. 순조 어간에 유씨 부인이 썼다고 알려진 `조침문`에서 사태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다. 청나라에서 가져온 바늘을 27년이나 쓰다가 문득 부러뜨린 안타까운 심사를 담은 글이 `조침문`이다.“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연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과 원근일가에 보내고, 비복들도 쌈쌈이 낱낱이 나눠주고, 그 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영구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치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조침문`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세간(世間)의 필수품인 바늘 하나를 조선에서 만들지 못했다는 대목이다. 반가(班家)의 아낙 유씨는 시삼촌 덕에 바늘을 얻어 친정과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지만, 일반 백성들은 어찌 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동지섣달 설한풍을 견뎌낼 든든한 옷차림의 출발이 촘촘한 바늘땀이었을 것은 자명한 이치. 장구한 세월 조선의 민초들은 긴긴 겨울날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하는 우울한 소회가 찾아든다.일찍이 연암 박지원(1737~1805) 선생은 “조선의 백성이 가난하고 굶주리는 까닭은 선비 탓”이라고 일갈했다 한다. 수레 같은 초보적인 운송수단마저 19세기 초 조선에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원전 20세기 무렵 `안드로노보`인이 발명한 전쟁용 전차(戰車)가 역사기록에 등장한 것이 기원전 1274년 람세스 2세의 이집트와 철기문명의 선두주자 히타이트가 맞붙은 `카데시 전투`였다. 수레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다.조선의 허다한 선비와 식자들이 독파했을 `논어`와 `맹자`, `도덕경`과 `장자`에서 수레를 찾는 것은 다반사(茶飯事)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독서행위 자체에 함몰되었을 뿐, 경세제민에는 태무심했다. 그저 과거에 응시하여 환로(宦路)에 나아가 가문의 영광을 현창하는데 급급했을 따름이다. 개인의 영달과 집안의 광영을 위해 일로매진한 갸륵한 뜻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 탓에 민초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조선에 물레방아가 최초로 설치된 해가 1792년이었다고 한다. 연암 선생이 1780년 동지사 사절에 동행했다가 안의마을 현감으로 나아간 해에 물레방아를 시설한 것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에 근거하여 우주운항의 법칙을 밝힌 `프린키피아`를 출간한 연도가 1687년이었다.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시점에 비로소 조선의 작은 마을에 처음 설치된 물레방아. 서세동점이 아니라 해도 조선의 멸망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오늘날이라 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많고 많은 전문가들은 권력자의 부름을 얻고자 동분서주 하지만 정작 그들의 쓰임새와 민초를 바라보는 시각은 물음표로 차고 넘친다. 민생과 민권과 민을 위한 후생복지를 구두선(口頭禪)으로 되뇌는 정치가는 많지만, 이용후생의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허명과 출세에 급급한 지식인이 줄어들지 않는 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지 않다. 현동의 `주영편`과 연암의 `열하일기` 독서가 절실한 가을날이 깊어가고 있다.

2017-10-13

추석을 맞으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1991년 9월 21일, 추석 전날 일이다. 베를린 자유대학 유학생이었던 나는 영화출연 제의를 받는다. `모든 게 사기(Alles Luege)`라는 제목의 희극영화 단역에 나가보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도이칠란트는 재통일된다. 그 이후에 유럽에 몰아닥친 극우 민족주의와 파쇼의 광기는 위험천만한 것이었고, 영화는 그런 분위기에서 제작됐다.희곡과 연극을 공부하던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촬영장소가 구(舊) 동도이칠란트의 국회의사당 격인 인민궁전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출연료도 적잖게 배정돼 있어서 맞춤한 아르바이트였다. 온밤 내내 비가 내리는 속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나와 몇몇 한국인 유학생은 중국인으로 출연했고, 중동에서 온 친구들은 쿠바의 카스트로를 모방한 멋들어진 수염을 달고 있었다.명민한 독자는 알아채셨겠지만,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경제적인 면에서 정상의 지위를 점했던 동도이칠란트의 허위와 허세를 비웃는 것이 `모든 게 사기`의 내용이었다. 한국 유학생 하나가 “아인 운트 츠반치히 운트 아인 할베스 프로젠트?!” 하는 대사를 맡았다. “21.5퍼센트?!” 하는 도이치어다. 주연배우가 자꾸만 실수하고 대사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촬영은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아침나절이 돼서야 끝났다.영화사 측은 애초 예정된 급료만 지급하려 해서 우리는 연합시위에 돌입했다. 일을 시켰으면 시킨 만큼 추가비용을 지급하라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었다. 요구가 관철되어 추가수당을 더 지급받고 우리는 인민궁전을 빠져나왔다. 동베를린에는 아침햇살이 환하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간밤에 언제 비가 왔었느냐, 하는 새삼스런 눈길로 나를 비추던 찬란한 햇살이 지금도 기억에 삼삼하다. 그때 내겐 동행(同行)이 있었다.정치학을 공부하던 81학번 친구였는데, 그와 함께 서베를린 동물원역 부근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한형, 앞으로 좌파 운운하는 인간들 있으면 그냥 놔두지 않을 거요!” 함부로 좌우를 이야기하고, 편을 가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망한 것인지를 깨우친 밤샘이 나를 그렇게 인도한 것이다. 반쯤 빨개진 눈과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욱신거리는 육신과 영혼이 나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우울한 추석아침이었다.추석 무렵이 되면 그날의 일을 추억한다. 민족의 명절로 일컬어지면서 한민족 대이동을 세계만방에 떨치도록 하는 추석. 하지만 내게 추석은 2차 대전의 추축국 도이칠란트가 분단을 넘어 통일로 접어든 시기로 다가온다. 하필이면 그들은 `개천절`에 다시 뭉친 게 아닌가. 우연치고는 아주 고약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무관했던 나라는 여전히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는데, 전쟁주역 국가는 히죽 웃고 있는.1991년 겨울 훔볼트 대학에서 있은 지도교수 강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약속도 미뤄놓고 `1991년 겨울 베를린`이라는 우울한 단시를 썼다. 거기서 나는 히틀러의 제3제국과 다시 시작되는 제4제국의 불길한 예감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 앞에 내던져진 시대의 야유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Wir haben keine Schuld!)”를 기록했다. 그리하여 무너진 역사와 시작하는 역사를 생각했다.한 세대가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그날을 돌이키자니 가슴이 먹먹하다. 짧지 않은 시간대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아온 것일까. 스스로 돌아보아도 쓸쓸함과 우수와 한숨만 허옇게 색 바랜 머리털과 벗할 뿐. 한반도에 전쟁의 암운이 감돌고, 미국과 북한은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데, 초로에 접어든 사내는 한낱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책. 제 몸 하나 온전히 추스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부나방 같은! 하되, 달 밝은 추석명절이다!

2017-09-29

마광수와 동성동본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지난 5일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승에서나마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기 바란다. 1991년 `즐거운 사라`로 이듬해 강의 현장에서 체포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마광수. 그에게 부여된 죄목은 `음란문서 유포죄`였다. 주지하는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 사라는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는 20대 여대생이다. 그녀는 성별도 노소도 하룻밤 사랑도 가리지 않는다. 일찍이 한국문단에서 그려진 바 없는 사라의 성생활은 문란하기 짝이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소설은 판금(販禁)됐고, 작가는 구속됐으며, 1995년 대법원 확정판결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마광수는 연세대 교수직에서 쫓겨난다. 거기서 발원한 우심(尤甚)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그를 자살로 인도했다고 전한다.세월이 흘러 2011년 마광수는 `돌아온 사라`를 출간한다. `즐거운` 사라보다 한층 담대하고 상큼하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돌아온` 사라.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런 `사라`를 눈여겨보거나 인구에 회자시키지 않는다. `사라`든 `팔라`든 `자라`든 `졸라`든 젊은 여성의 성생활에 개입하려는 검찰도 법원도 경찰도 가부장도 모권도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엇일까?! 불과 20년 만에 한국의 성풍속도가 급변한 근저에 흐르는 것은 무엇인가?!한국사회에서 전근대의 미망(迷妄)이자 시대착오적인 퇴행으로 꼽혀온 것이 `동성동본 혼인금지법`이었다. 그로 인한 자살자가 해마다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가 동성동본이란 이유로 자살을 선택해야 했던 적막한 살풍경! 그런 엉터리 악법의 효력이 중지된 것은 1997년 7월 헌재의 `헌법불합치판정` 이후였다. 하지만 2005년 3월 31일 민법 제809조가 개정된 후에야 비로소 `동성동본 혼인금지법`의 법률적 효력은 완전 소멸된다.1991년 1995년 1997년 2005년 2011년, 이런 20년 세월에 한국사회는 국가권력의 선무당 칼춤 아래 신음했다. 즐거운 사라가 한국사회,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진 중년 남성들의 이중적인 성도덕을 질타하자 국가권력이 개입한다. 법질서와 미풍양속의 수호자를 자처한 권력은 비평과 독자의 판단 이전에 작가를 현행범으로 체포·구금한다. 국가가 정작 지켜야했던 것은 `동성동본 혼인금지법`을 폐지해 무고한 청춘남녀의 자살방지 아니었을까?!소설가 마광수가 내다본 성도덕과 풍속도의 급변을 감지하지 못한 채 `지금과 여기`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일관한 검찰과 법원. 1992년 10월 강의실에서 전격적으로 체포된 마광수의 흉중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엄근진` (엄숙, 근엄, 진지) 3자로 무장한 이 땅의 허다한 이중인격자들과 도덕가들과 권력자들을 성적(性的)으로 질타한 마광수. 그의 자살은 그래서 적잖은 불편함과 미안함을 불러일으킨다.`돌아온 사라`에서 마광수는 이렇게 쓴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지독한 패러디이자 조롱과 힐난이다. 진리와 자유의 자리를 뒤바꿈으로써 한국인과 한국사회가 얼마나 부자유하고 진리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지 폭로하는 일갈. 자유(自由)라는 한자어에는 개인에게 사유와 행동의 시작과 결과를 끝까지 추궁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궁극의 책임을 원인제공자 스스로가 감당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2017년 시점에 젊은 여성들의 성적 결정권을 시비하거나 함부로 운위하는 자들은 전원 사멸했다. 술자리 뒷담화로나 떠돌법한 소설을 준엄한 법의 잣대로 평결해 죄수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은 작태. `동성동본 혼인금지법` 같은 악법은 살려둔 채 음란문서 운운했던 권력자들과 그에 기생한 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극의 자유`를 주장한 마광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대를 앞서 간 그의 명복을 재차 기원한다.

2017-09-22

블랙리스트와 예술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경북대 인문학술원의 `릴레이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의 하나로 내가 실행한 강연제목이 `블랙리스트와 예술가`다. 주지하는 것처럼 지난 박근혜 정권은 문화-예술계 인사 9천473명에게 불온한 좌파 예술가란 딱지를 붙이고 사갈시(蛇蝎視)하며 조직적으로 관리해왔다. 정권과 재벌에 순종하지 않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인사들에게 재정지원 중단이나 방송출연 금지 같은 불이익을 강제한 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작성한 블랙리스트.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혐의(?)가 흥미롭다. 2016년 12월 26일 에스비에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야당정치인을 지지한 사람,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항쟁을 다룬 사람, 국가보안법을 비판하거나, 박정희 부녀의 정권을 풍자한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 시위를 지지하거나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불온한 사상을 가진 진보좌파 진영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 블랙리스트다.4·19 이후 자신의 시세계를 급변침한 김수영 시인은 “모든 문화는 근본적으로 불온하다!”고 일갈했다. 문화-예술인들의 의식 저변에는 불온한 저항과 반역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현실의 정치 권력자들과 재벌들, 그들에게 기생하는 언론과 문화의 권력자들과 대형교회와 사찰의 부패한 관리자들을 겨냥하는 예술가의 영혼과 정신은 부패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충만해야 한다.2013년 9월 3일부터 15일까지 국립극단은 고전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 `구름`, `새`를 3부작 형식으로 묶어서 상연했다. 그 가운데 `개구리`를 2013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삼아 그분(노무현)과 풍운(박정희)의 이념적-역사적 대결로 각색한 박근형 연출가가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정부의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더욱이 `개구리`상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문체부 예술정책국장이 승진에서 탈락했다고 한다.그분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풍운을 비판적으로 다룬 박근형 연출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권력을 가진 쪽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게 예술”이란 주장을 전개한다. 후임정권의 조직적인 모욕으로 죽음에 이른 노무현을 관대하게 다루고, 풍자의 날카롭고 쓴 웃음으로 당대정권을 매섭게 몰아친 연출가의 의도는 적중했다. 왜냐면 `개구리` 상연이 최고 권력자와 그 수하(手下)들의 심기를 거스름으로써 블랙리스트 작성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2014년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주도한 블랙리스트 작성은 2016년 인터넷상에서 `설(說)`로만 돌아다니는 형국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26일 박영수 특검팀이 김기춘-조윤선 등의 집과 집무실, 문체부 예술정책국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언론에 보도된 권력자들의 편향되고 왜곡된 사유와 인식은 놀랍다. “문화-예술계의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진보 예술인들을 말려 죽여야 한다.”`좌파`와 `진보`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살기 넘치는 발언을 거리끼지 않았던 자들이 권력의 심장부에 포진하고 있었다. 새가 좌우의 두 날개로 나는 것처럼, 사람도 좌우의 두 다리로 걷는다. 한쪽 손이나 눈, 귀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좌우의 균형적인 발달과 대칭이 인간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삼척동자도 이해한다. 우리의 사유와 인식도 좌우가 고르게 발달해야 온전하게 작동한다.진보는 보수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꿈꾸고, 보수는 진보가 엄두내지 못할 사업도 구상한다. 좌와 우는 이항대립이 아니라, 상보적이고 협력하는 관계다. 그래야 나라의 백성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언제까지 `좌빨`과 `수꼴` 타령을 할 것인가?! 21세기 시간과 공간이 광속으로 날아가고 급변하는 시점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냉전의 시각과 작별할 때 우리는 지구촌 일원으로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기획하게 되리라.

2017-09-15

행복의 유예(猶豫)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언젠가 교정에서 불문과 교수 두 분과 마주쳤다. 나를 포함한 노문과 교수는 3인. 기막힌 가을날이었고, 오후에는 강의도 외부일정도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 밖으로 나가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최종순간 불문과 교수가 “나중에 가죠!” 하고 말을 비틀었다. 노불전쟁이니, 노블하게 한잔 하자더니. 마음을 바꾼 것은 갑작스런 회동이 부여하는 부담이리라 싶었다. 예정에 없는 돌발행동이 야기하는 심정적 무게랄까.“지금 아니면 안 될 겁니다!” 나의 말에도 결국 그날 행사는 무산됐다. 그 후로 그이는 “기회 닿는 대로” 혹은 “언젠가”, 내지 “조만간” 등등의 어휘를 구사하면서 무산된 기약을 허망하게 확약하곤 했다. 작년에 퇴임한 그분의 동정(動靜)을 아는 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정언명령처럼 내뱉은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일갈(一喝)의 정확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 것이다.흔히들 “다음에!”라고 말한다. 이런 약속이나 행복의 유예는 일찍이 한국인들이 입에 달고 살아온 익숙한 것이다.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학부모들은 수험생의 희망사항을 대학입학 이후로 유예한다. “대학 가면 해라!” 그런데, 어디 그런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들은 취업의 덫에 걸려든다. 부모의 어휘는 자동적으로 바뀐다. “취직하면 해라!” 최소한 4~5년의 유예가 젊은이들을 옥죈다. 그렇다면 `취직`이 최종관문일까?“결혼하면 해라!”로 텍스트가 변경된다. 결혼하고 나면 다시 “집을 장만하면”으로, 집은 다시 “보다 큰 아파트 평수”로, 아파트는 다시 “미래를 위한 부의 축적”으로 전환된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지금과 여기의 행복과 약속은 어김없이 미래의 그것으로 유예되기를 반복해왔다. 이런 상황 탓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게 바라는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고 살아온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그런데 시간의 본질은 언제나 `현재`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본원적인 층위는 지금과 여기에 기초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지금과 여기가 결석하는, 나의 현존재가 부재하는 과거와 미래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단출하게 말하면, 어째서 미래를 위해 지금과 여기의 행복을 유예해야 한단 말인가. 행복의 완결판은 죽어서야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과장일까?!만일 오늘 먹고 마시지 못한다면 우리 몸은 시나브로 약해지고, 그것이 중첩되면 사멸할 것이다. 행복이나 약속을 자꾸만 유예한다면 영혼도 육신도 조갈증에 시달려 쇠하고 말리라. 행복을 유예함은 현재를 미래에 저당 잡힌 채 사는 것이다. 지금 구할 수 있는 행복과 지금 실현할 수 있는 약속을 자꾸만 뒤로 미루는 것은 노예의 철학이다. 아무런 기약도 할 수 없는 막연한 미래와 기대에 의지하는 허망(虛妄)의 노예.언젠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제시한 `현재의 삶에 충실해라!`는 의미의 라틴어 구절. 혹자는 `오늘을 즐겨라`로 누군가는 `오늘을 포착하라`로 번역하는 `카르페 디엠.` 어쨌거나 그 말의 핵심은 행복이나 약속을 먼 훗날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정말 절실하고 소중하면 그것을 미루면 안 된다. 지금과 여기가 배제된 먼 미래의 행복과 만족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그날 우리는 결국 팔공산에 가지 못했다. 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거나 서운한 것이 아니라, 막연한 미래로 넘겨버린, 이행 불가능한 약속이 새삼 구차한 것이다. 길지 않은 인생행로에서 우연찮게 마주한 짧은 여정의 선물을 뒤로 하고 얻은 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우리는 인생의 소중한 약속과 행복을 조금씩 갉아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가을햇살이 찬란한 시절의 들과 산과 바다가 여러분을 손짓하는 시절이다.

2017-09-08

단역으로 살아가기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재선 대통령으로 재임(在任)했던 오바마가 퇴임할 때 사진이 인상적이다. 8년 전 젊고 팽팽하며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중늙은이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허옇게 센 머리터럭과 코 양쪽에서 입술 주위로 내리뻗은 굵은 주름살. 햐, 누가 저이를 8년 전의 오바마라 생각이나 하겠는가. 8년 세월이 아무리 긴 시간이라 해도 사람이 저렇게 신속하게 늙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을 곱씹어도 무상(無常)을 넘어 혼란스러워진다.무엇일까. 그이를 장년의 인간에서 중늙은이로 뒤바꾼 동인(動因)이 무엇이었을까. 지구촌 최고의 권력자 노릇 8년에 남은 것이라곤 노년의 돌이킬 수 없는 자취뿐이라니! 냉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이런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은 무엇일까.”1등은 강대국 대통령. 따라서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0년대 가장 힘든 노역(役)을 지고 있었던 셈이다. 2등은 우주비행사. 영화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를 보신 관객이라면 이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무중력의 시공간에서 언제나 죽음과 대면하면서 고독과 싸워야 하는 사람이므로. 3등은 영화감독. 다소 뜻밖일 것이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에 내재한 허다한 공동 조력자를 생각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배우, 음악, 의상, 분장, 미술, 소도구, 대도구, 진행, 스턴트, 편집, 선외 등등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각종 요소를 생각해보시라. 20세기를 대표하는 `제7의 예술`로 자리매김한 영화의 종합적인 성격을 고려한다면 감독의 어깨에 실린 하중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감독이 만든 영화를 우리는 어쩌면 너무 가볍고 값싸게 소비하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字幕)이 끝까지 올라가고 나서야 자리를 뜨는 관객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연극과 영화를 사랑하는 내가 만든 말이 있다. “단역(端役) 없이 조연(助演) 없고, 조연 없이 주역(主役) 없다!” 결론은 단역배우가 없이는 어떤 주연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주연배우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것이 개인사든 확장된 사회관계 내부에서든 우리는 버젓이 주역을 담당하고자 한다. 그저 무명(無名)으로 존재감 없이 묻히기는 싫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양인자는 소리 높여 외친다.“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하지만 인생이란 게 무슨 흔적 따위를 남기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주 미미한 흔적마저도 지워버리고자 진력한 법정 스님의 예화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다. 오바마의 주름살을 보며 떠올린 것이 주역의 고단한 행장(行狀)이었던 까닭은 그것이었다. 한 사람이 이고지고 견딜 수 있는 행장의 최종무게를 과도하게 측량-책정하고 실행한 후과(後果)로 남은 주름살. 하지만 그 알량한 `오바마 케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묻고 싶다.후임자가 하나둘씩 폐기해가는 전임자의 정책에서 권력의 무상함과 헛심을 본다. 도로 아미타불로 전화(轉化)하는 지난 시대의 지난(至難)한 노력의 결실을 보며 오바마의 주름살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허망함일까, 거꾸로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대한 거부감일까. 그도 아니면 무망(無望)한 시도의 종언에서 풍겨 나오는 역겨움에 대한 구토일까. 여하튼 나의 명제는 단출하다. 주역이 되려는 어떤 시도도 상처와 아픔으로 남게 된다는 것.단역의 단출함과 소소함이 선사하는 단아함과 아늑함이 새삼 따사롭게 느껴진다. 허다한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짧고도 짧은 권력의 희롱과 농단이 야기한 기이하고 파괴적인 행각을 얼마 전 우리는 생생하게 목도하지 않았던가. 하되, 다수의 인간은 여전히 주연배우로 무대를 휘젓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잊지 마시라. 그대들을 위한 숱한 단역과 희미한 조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그대들을 가능하게 했다는 자명한 사실을!

2017-09-01

소설을 읽는다는 것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에 내재한 시공간과 인과율(因果律)을 독서하는 행위다. 서정시와 달리 소설은 신문기사처럼 육하원칙에 충실하다.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3요소를 하나로 표현하면 인과율이 된다. 소설은 그런 세 가지 바탕 위에서 주인공들이 맞닥뜨리는 갈등과 사건과 크고 작은 전갈을 포괄하는 복잡다단한 그릇이다.작년 이맘때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 베개`(1906)를 읽으며 상념에 젖어든 일이 있다. `풀 베개`는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념이나 주장도 없다. 다만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과 일본 혹은 중국의 미학과 문학이 소설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필시 그것은 소세키의 영국유학에 터를 두고 있을 것이었다. 1900년부터 1902년 12월까지 그는 유럽의 문학과 미학을 배우러 도영(渡英)했으니 말이다.`풀 베개`에 거명된 인물과 작품을 거명해보면 이러하다. 셸리, 도연명, 왕유, 오자키 고요와 `금색야차`, `파우스트`, `햄릿`, 노, `채근담`, `논어`, `중용`, 이백, 두보, 백거이와 `장한가`, 굴원과 `초사`,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쓰오 바쇼, 히로세 이젠,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만엽집`, 이토 자쿠추, 마루야마 오코, 조지피 윌리암 터너, 살바토르 로사, 고트홀트 레싱, 조지 메러디스, `아테네의 타이몬`, 프레더릭 구달 등등.히로세 이젠의 하이쿠 “봄바람이여, 이젠의 귓가에 말방울소리”나 `만엽집`에 실려 있는 “가을이 되면 그대도 억새꽃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같은 구절은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이런 글줄과 더불어 위에 거명한 인물과 작품 혹은 저작들은 `풀 베개`를 소설 같지 않은 소설로 만드는 치명적인 요소다. 왜 소세키는 `풀 베개` 같은 소설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팽팽하게 찾아드는 것이었다.그것은 명치유신과 신생국가 일본의 근대화가 강요한 지식인의 서구화 내지 서구적인 것의 본령탐구로 야기된 것이 아니었을까. 일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성립한 `위로부터의 개혁` 명치유신과 국가적인 근대화 노선. 그것에 충실했던 지식인 소세키의 내면적인 불화와 저항의식, 그리고 신경증과 추적망상이 끓여낸 섞어찌개가 `풀 베개`아니었을까 한다. 자각한 근대인인자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성을 끝없이 질문했던 나쓰메 소세키.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소세키가 보여준 자신감이 `풀 베개`에 침윤되어 있다. “일본인에게는 일본인의 특성이 있다. 일률적인 서양모방은 문제다. 서양만이 모범이 아니며, 우리도 모범이 될 수 있다. 서양에 이기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이런 사유가 깔린 `풀 베개`는 서양을 따라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서양과 견주거나 대등해지겠다는 명제를 시험한 소설로도 읽힌다. 그러므로 `풀 베개`는 서양에는 없는,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인 셈이다.그의 초기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도련님`(1906) 같은 소설을 읽은 연후 빙허 현진건의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1921), `운수 좋은 날`(1924)과 `불`(1925)을 다시 읽었다. 단편소설이되, 식민지 조선 문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인 빙허의 소설에서 작가가 인식하는 근대와 근대성 내지 조선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식민지 조선의 작가 지망생이자 지식인 빙허의 고단한 내면풍경은 확연하지만, 그 본질을 구성하는 자아정체성은 없었다. 가난한 아내와 나의 눈물어린 교감, 분열된 조선 지식인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 지독한 가난과 조혼풍속에 대한 비판 같은 미덕은 약여하다. 하지만 그것들 너머에서 존재증명을 하고 싶은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 그리고 과거와 미래는 없었다. 오늘날에도 지난 세기 근대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무엇을 독서할까, 궁금해지는 아침나절이다.

2017-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