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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39번

▲ 김순희수필가이상한 처방전을 받았다. 발목이 아파 걷지도 못하겠다는 나에게 한의사는 지금 생각나는 사람의 이름을 발로 써보라고 했다. 통증을 참으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보이자, 침도 맞지 못할 정도로 기가 약하니 입에 맞는 음식 먹고 틈 날 때마다 발목에 힘을 주어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하루에 스무 번씩 쓰라는 숙제를 내 줬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한의원을 나오며 소개했던 친구에게 약도 안 지어주니 돌팔이 같다며 다녀온 이야기를 떠벌리자, 남편 이름 열심히 쓰면서 몸을 보하라며 웃었다. 남편 가족끼리 손도 잡는 거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무슨 소리하냐고 눈을 흘겼다. 내가 쓴 세 글자는 남편도 아들 이름도 아닌 다른 남자라고 하니 친구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바람난 여자 보듯 말이다. 하루에 몇 번씩 되뇌려면 좋아하는 걸 넘어선 ‘사랑’이어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사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지는 사람이라야 ‘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겐 그런 남자가 있다. 그이의 이름을 오늘만도 수십 번 발을 들어 허공에 긁적거렸다. 즐거운 숙제다.나는 몰래 이 남자를 지켜본다. 이 사람은 훔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도루를 하기 위해 1루 베이스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마운드의 투수를 노려보는 등번호 39번의 눈빛은 매력적이다. 투구 폼을 먼저 읽고 뛸 타이밍을 노리느라 가끔 눈에서 불꽃이 떨어질 듯하다. 2루 베이스를 점령하기 위한 그의 발놀림은 마치 투우사에게 달려가기 전 성난 황소의 그것이다. 견제구가 날아 올 때마다 슬라이딩을 한다. 1회 말 공격이 끝날 때쯤이면 그의 유니폼은 흙투성이가 된다.이 선수가 가장 빛날 때는 수비할 때이다. 외야수 중에서도 가장 수비 범위가 넓은 중견수가 그의 포지션이다. 딱! 배트에 정확히 공이 맞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달리기 시작해서 있는 힘껏 몸을 날려 글러브와 함께 잔디위로 미끄러진다. 슈퍼세이브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수비라고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인다. 몸을 사리지 않는 탓에 부상이 잦다. 몇 해 전에 동료선수와 부딪혀 턱이 부러져 수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허슬 플레이는 멈추지 않는다.늘 달리는 이종욱 선수라 팬클럽 이름도 ‘런투유’이다. 팬클럽에 가입해서 응원을 하고, 길가다 39번 거리라는 표지판을 발견해도 인증샷을 찍는다.서울에서 팬미팅이 열렸다. 몇 천 명 회원 모두가 참석할 수는 없고 등급이 높아야만 했다. 운 좋게 나도 스태프에게서 초대를 받았다. 화면으로만 보던 선수를 같은 공간에서 본다는 기쁨에 시댁 김장하는 날임에도 교육 간다는 핑계를 대고 팬미팅에 갔다. 만나면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막상 눈앞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떨려서인지 앞에 놓인 음식도 넘어가지 않고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39번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휴대폰으로 투샷을 찍으리라 마음먹었지만 집에 돌아올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진 한 장도 못 찍고 나왔다는 걸 알았다.올해는 특히 이 선수에게 중요한 해이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더 이상 경기장에서 그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나이인 서른아홉이라는 숫자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한 시간이다. 어제 경기, 3점 뒤진 채 9회 말 만루 찬스에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전 타석까지 병살에 땅볼에 역전찬스를 날려버린 그였기에 투수는 앞 타자를 포볼로 거르고 이종욱과 승부를 내기로 한 것이다. 보는 사람도 떨리는 순간이었다. 딱! 맞는 순간 만루 홈런이었다. 그가 한 손을 들고 경기장을 돌 때 나도 같이 뛰어 올랐다. 아프던 발목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열심히 쓴 덕분이다.사랑의 힘이다.

2018-07-27

지형지물

▲ 강길수수필가“1조, 공격 앞으로!”보도블록 위를 걷는데, 왜 이 말이 불현듯 생각났을까. 숱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있다니…. 그랬어. 저 작은 무리가 내 기억창고를 클릭하여 불러낸거야. 뒤따라 그 옛날, 군에서 훈련을 받던 때의 한 장면이 마음스크린에 비추어진다.내 눈은 보도(步道)가장자리 보도블록 위에 멈추었다. 작은 애집개미들이 집을 파고 있다. 모두가 바지런하다. 가까이 다가가 작업광경을 살핀다. 어떤 개미는 제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모래알을 물고 나온다. ‘내가 개미라면 아마 100 킬로그램이 넘는 돌을 운반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이 작은 존재가 나보다 위대해보이기도 한다. 한데, 이 개미들은 왜 하필 보도블록 밑에 집을 만들까. 모래 나를 때나 먹이 구하러 다닐 때,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을 위험성을 모르는가. 일어서서 개미집들의 분포를 다시 살핀다. 개미들은 위험성을 감지하는 듯도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개미집짓기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피해 가장자리 보도블록 밑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길 따라 생각도 이어간다. 그래. 본능일거야. 개미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의 위험성을 천부적으로 느끼고 알기에, 발길이 잘 닫지 않는 곳에 집터를 잡은 거다. 보도블록은 돌처럼 단단해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에 안성맞춤이고, 그 사이는 출입구내기가 쉽다. 또, 밑이 모래여서 파내기도 좋다. 그러니 이 작은 개미들도 지능을 가진 게야. 어쩌면 인간이 ‘본능’이라고 치부하는 생명체들의 유전자엔 설계자의 지능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길어야 몸이 3밀리미터 미만으로 보이는 애집개미들. 맞아. 이 작은 존재들은 본능이든, 지능이든 제 능력으로 보도블록이란 멋진 ‘지형지물(地形地物)’을 집짓기에 이용하고 있는 거다. 따져보면 어릴 때 자연에 뛰놀면서 많이 보았던 곤충, 새, 동물의 집들도 다 지형지물을 이용토록 마련된 자연의 섭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 어떤 생명체든, 먹이를 구하고 살 곳을 마련해야 하는 틀 속에 있다. 우리 생태계의 이 엄연한 진실이, 개미들이 집을 지으며 만들어지는 조그마한 모래둔덕 너머로 시신경을 자극하며 가슴 속을 후벼 판다. ‘내가, 우리 국가사회가, 나아가 인간사회가 이 애집개미들보다 나을 게 뭔가’ 하는 물음이 하늬바람으로 마음에 불어오기 시작했다. 군대시절 훈련을 받을 때,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폐, 엄폐를 잘 해야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고 귀가 따갑도록 교관과 조교들로부터 사전에 들었다. 하지만 막상 공격훈련을 시작하면, 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고통회피행동이 더 우선된다는 사실에 맞닥뜨리던 때의 헷갈리던 감정도 되살아난다. 한데, 이 작은 개미들이 지형지물을 주저 없이 잘도 이용하고 있다니…. 지형지물은 말 그대로 땅의 모양과 물체들을 말한다. 군에서는 유형물 곧 언덕, 구렁, 바위, 나무 같은 자연물과 건물, 구조물 등 인조물도 지형지물에 포함된다고 배웠다. 인간생존에 필요한 지형지물은 유형물은 물론, 무형물도 많다고 본다. 국가사회의 규범, 법규, 국가 간의 조약, 협정 같은 것들이다. 고로, 지형지물 이용은 군대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그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일이 된다.우리 사회는 남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있는 지형지물에 대한 갈등이 있어 보인다. 한미동맹을 유지 발전시켜야만 자유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는 주장과, 그보다 우리민족끼리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다. 지형지물이용이란 시각에서 보면, 우리사회는 지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헌법, 교육정책,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국가사회의 중요한 지형지물은 그 명운을 가름할 근본이기에 섣불리 손대어서는 안 된다. 애집개미가 보도블록을 지형지물로 삼아 그 밑에 안전하게 살 집을 짓듯, 우리 사회공동체도 유용한 지형지물을 함께 지키고, 개선하며,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2018-07-20

연못가에서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자주 산책을 하는 마을 앞에 연못이 하나 있다. 먼 옛날 이곳이 미질부성이었을 때 생활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였다고 한다. 오래 방치해서 거의 메워지다시피 한 것을 십여 년 전에 다시 준설하고 주변을 단장해서 주민들이 많이 찾는 휴식공간이 되었다. 몇 해 전부터 빈 못에 연잎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은 아니라는데 해마다 뿌리를 벋고 씨를 퍼뜨려서 지금은 천여 평의 못이 온통 연잎으로 뒤덮여 명실 공히 연못이 되었다. 새로 생긴 연못에는 잎보다 꽃이 더 많을 정도로 개화가 왕성해서 여름 한 철 장관을 이룬다.지난해의 죽은 잎줄기가 거의 다 삭아 내린 유월 중순경에 새 연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먼저 수련처럼 작고 갈색을 띤 잎을 수면에 납작 붙게 띄우고 이어서 잎줄기를 길게 뽑아 올려 너울너울 연잎을 피운다. 연잎이 물 위로 올라올 때는 길쭉하게 양쪽에서 돌돌 말려 있어 마치 무슨 사연이 적힌 두루마리 같다. 못 바닥 진흙 속에 무슨 간절한 사정 있어서 무수히 상소문 두루마리를 밀어 올려 연못 가득 펼치는 것일까. 그 상소가 마침내 상통이 되어서 환하게 웃음꽃이 피는 것이고.여름 연못에는 날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열린다. 흔히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일컫어 야단법석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야외에 설치된 설법의 자리’라는 불가의 용어였다. 활짝 핀 연꽃은 연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을 연상케 하고 넓고 둥근 연잎은 초록 양산 같다. 그런 상상을 일으키는 것은 그 모습보다도 여인들의 분 냄새 같은 연향(蓮香) 때문이다. ‘칠월의 연못에 야단법석 열렸다/ 연분홍 치마저고리 초록 양산 운집했다/ 부처님, 아직 안 오시고/ 분 냄새만 분분하다’- 拙詩 칠월 연못. 하지만 끝내 부처님은 오지 않을 것이다. 쨍쨍한 햇볕 아래 펼쳐진 장관이 곧 화엄(華嚴)이고 법열(法悅)일진데 구태여 설법이 따로 필요하진 않을 테니까.비 오는 날에도 즐겨 연못을 찾는다. 우산을 받고 서서 하염없이 비 맞는 연못을 바라보는 동안은 세상의 시름을 잊게 된다. 넓고 푸른 연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난타의 공연을 연상케 하고, 방울방울 구르는 빗방울을 하얗게 모았다가 슬쩍 기울여서 쏟아내는 연잎은 바라춤 춤사위를 떠올리게 한다.‘넓고 푸른 연잎이 하나도 젖지 않고/ 방울방울 빗방울을 모았다가 무거워지면/ 슬쩍 기울여서 쏟아버리곤 하는 동작은,/ 잎을 두드리는 빗물의 난타에 맞추어 추는/ 바라춤 춤사위였다, 비오는 연못은/ 온갖 번뇌 씻어내는 한바탕 씻김굿이다//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세상 번뇌 씻으러/ 연못으로 갈 테야’ - 拙詩 ‘연못으로 갈테야’ 중에서연못가에는 몇 그루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있다. 경치도 좋지만 여름내 시원한 그늘을 지어서 더위를 식혀준다. 실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능수버들인데 수령은 아마도 내 나이와 비슷할 것 같다. 왕잠자리를 잡으려고 발갛게 익은 얼굴로 이 연못가를 맴돌던 어린 시절엔 큰 버드나무가 없었다. 어린 버드나무가 무성하고 늠름한 고목으로 자라는 동안 못가에서 잠자리를 잡던 소년은 초로의 늙은이가 되었다.버드나무가 주는 것은 멋진 경치와 그늘뿐만이 아니다. 까치가 보금자리를 틀고 뻐꾸기가 와서 울기도 한다. 짝을 부르는 뻐꾸기소리는 초여름의 신록을 한층 더 싱그럽고 그윽하게 한다. 뻐꾸기소리가 그친 칠월 초부터는 매미소리가 배턴을 받아 버드나무 그늘을 청량하게 한다. 매미소리가 없다면 여름 풍경은 마치 무성영화처럼 답답하고 더 무더울 것이다.사람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늘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아름드리나무의 그늘처럼 연륜을 더한 만큼 넉넉해진 품으로 남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면 한결 편안하고 든든한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이 세상에 드리운 그늘은 과연 몇 평이나 될까.

2018-07-13

꽃땡시

▲ 김순희 수필가꽃과 행복은 동의어다. 며칠 전, 남편 차를 타려고 조수석 문을 여니 장미꽃다발이 떡하니 앉아 있다. 향긋한 행복의 냄새가 차 안 가득하다. 먹지도 못 하는 데 왜 좋아하느냐고 투덜거리지만 기념일마다 꽃을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준다.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린다. 차창으로 내다뵈는 푸른 능선이 곱다. 잎이 나기 전까지 산에 서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어설픈 내 눈은 분간을 못 한다. 볼 줄 모르는 수묵화처럼 검은 것은 그냥 나무로 보일 뿐이다. 잎이 무성해진 여름에도 구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하지만 멀리서도 나무 이름이 단번에 튀어 나오는 시기가 있다. 꽃이 필 때이다. 조물주가 계절이란 마이크로 신호를 주면 산은 일제히 멋진 카드섹션을 벌인다. 멀리서도 달콤한 향기가 풍기면 아카시아 꽃이 핀 게 분명하다. 아마 저 하얀 골짜기마다 벌들이 붕붕 대는 소리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 바톤을 이팝꽃이 이어받아 고슬고슬한 고봉밥을 지어올린 다음, 먼 산엔 비릿한 냄새의 밤꽃이 한자리 차지한다. 그럴 때야 저 밤골에 늦가을 즈음 밤 주우러 가면 대박이겠구나 싶어 마음이 설레지만 꽃이 지고나면 어디쯤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푸른 숲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꽃은 사람을 당기는 힘이 있다. 그래서 봄부터 겨울까지 전국에서 꽃 축제를 연다. 튤립 축제에 가면 정원 가득 향기가 난다. 튤립은 별달리 향기가 없는데 말이다. 꽃밭 디자이너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당연히 향기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관람객을 위해 튤립 사이에 향내 진한 히아신스를 심어 두었다. 그것이 어느 꽃의 향인지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저 기념사진을 남길 뿐이다. 소확행을 주는 꽃 지도를 그려보았다.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겠지만 나만의 방법이 더 있다. ‘꽃땡시’, 꽃이 땡기는 시간에 찾아가려고 매년 기록을 추가하며 즐긴다. 올 해 새로 발견한 꽃길이 있다. 5월 중순경에 도음산 산책로를 오르면 오솔길에 별이 가득 떨어져있다. 때죽나무 군락지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내내 하얀 별꽃이 길안내를 담당한다. 산바람이 불면 꽃잎에서 샤라랑 소리가 나는 듯하다. 찔레꽃이 옆에서 향기를 더해 걷는 이의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6월엔 접시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때 보슬비가 오면 금상첨화이다. 경주 첨성대를 원경으로 넣어 찍으면 무조건 인생사진을 얻게 된다. 접시꽃을 접수 했다면 이젠 수국이다. 6월 말부터 7월 초순까지가 수국의 시간이다. 태종대에 자리 잡은 태종사는 절 부근에 온통 수국을 심어 비 오는 날 가면 물빛 머금은 우아한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여름은 배롱나무의 계절이기도 하다. 석 달 열흘 동안 붉게 핀다고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떠도는 이야기로는 선비들이 ‘백일홍 나무’를 아껴 뜰에 심어 놓고 즐겨 보았고, 그 걸 지켜본 머슴들의 귀에 백일홍이 ‘배롱배롱’으로 들려 그리 불렀다고 한다. 나무 백일홍도 멋진 이름이지만 배롱나무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구룡포 해봉사, 죽장 입암서원, 초곡 칠인정, 덕동마을 용계정이 포항에서 배롱나무꽃을 가장 예쁘게 피우는 곳들이다. 멀리 갈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여름방학을 이용해 안동 병산서원으로 달려가 봐도 좋다. 장판각 앞에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백일홍이 책처럼 펼쳐진다. 대청에서 내다뵈는 풍경 한 폭을 읽노라면 선인들이 즐겼던 여유라는 명제가 나를 깨우친다. 더 멀리 눈을 돌리자. 담양에 자리한 명옥헌은 배롱나무가 정자를 둘러싸고 있어 두 개의 연못에 비친 그림자도 온통 배롱나무뿐이다. 물에 떨어진 꽃잎은 빨간 양탄자가 되어 일렁거린다. 스마트폰을 들고 탄성을 지르며 몇 시간씩 셀카 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담양은 가로수도 백일홍이라 한여름에 가면 몸도 마음도 붉게 물들어 돌아오게 된다.비의 계절이다. 여름 꽃이 땡기는 시간이다. 떠나자!

2018-07-06

잘려버린 꿈

▲ 강길수수필가마리안나의 소박한 꿈이 댕강 잘려나가 버렸다. 오늘 동행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함께 왔더라면 그녀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내년 봄 우리 텃밭에서 이루려던 꿈이, 누군가에게 참수 당해버렸으니 말이다.등산가는 길가, 아파트 단지가 생기며 새로 쌓은 높은 담장 아래 틈. 그 틈바구니에 어떤 연으로 보리 한그루가 살고 있었다. 관심 없이 지나다녀 보리가 패기 전에는 그 곳에 보리가 자라는지 몰랐다.사월 중순 오랜만의 부부 주말등산길…. 튼튼한 보릿대 하나가 갓 빚어내어 탐스레 팬 초록보리이삭을 처음 만났다. 그 앙증스런 모습에, 아내 마리안나는 곧바로 새 보리이삭 꿈을 꾸었다.“보리이삭 익으면, 가져 가 내년에 우리 텃밭에 심어야지!”그녀의 꿈이, 갓 세상에 태어난 보리이삭의 싱싱한 꿈이기도 할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며칠 흐른 날, 일찍 퇴근한 김에 오후등산길에 올랐다. 지난 주말 아내와 보았던 보리이삭에 저절로 눈이 갔다. 이게 웬 일인가. 보릿대는 윗몸 절반이 사라지고 없었다. 눈 씻고 다시 봐도 없다. 실망감이 큰 파도로 밀려왔다. 누군가 일부러 잘라 간 게 분명해 보였다. 이삭만 없다면 아이들이 장난으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보릿대도 함께 잘렸으니 누군가 꽃꽂이재료라도 쓰려고 가져 간 것이라 싶었다.보리이삭을 자른 이는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을까. 대보 구만리라도 가야 만날 수 있을 보리이삭을, 도심 담장아래서 발견했으니 말이다. 꽃꽂이재료로 쓰였다면, 보리이삭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느 집이나 다른 어떤 공간에서 꽃들과 어우러져, 폭력에 몸이 잘린 고통도 잊고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데 보람을 느낄까. 아니면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도 아닌데다, 너무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키는 이상한 동물이라고 원망할까.일주 정도 지난 후, 보리그루는 다시 나를 놀라게 하였다. 어리던 다른 두 개의 보릿대가 웃자라, 푸른 보리이삭이 또 패있는 게 아닌가. 하나는 제법 튼실했고, 다른 하나는 가냘팠다. 불과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남은 보릿대 두 개를 열심히 키워낸 보리그루…. 그 힘과 열성이 어디서 나왔을까. 처음 갓 팬 보리이삭 한 개가 잘려버리자, 보리는 얼른 두 개의 이삭을 더 키워낸 것이다. 생명체는 자기가 어디에 있든 환경에 묵묵히 적응하며 굳세게 살아낸다는 사실을, 이 보리그루 역시 팩트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오월이 되었다. 사람에 의해 요절한 형을 대신한 아우이삭 둘은 잘 자라났다. 하지만 아우이삭들도 보기 좋아지자 어떤 사람에게 형 따라 희생되고 말았다. 허전한 내 마음은 신록가지사이로 떠가는 조각구름이 되었다. 구름위로 수년전, 등산로 산기슭에 처음 피어났던 참나리꽃의 일도 떠올랐다. 칠월이면 참나리를 만나러 먼 바닷가까지 여러 해 갔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참나리꽃이 피어났으니, 나는 무척 기쁘고 반가웠었다. 그 행복도 그날뿐이었다. 누군가 나리꽃을 보리처럼 싹둑 잘라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우리민족은 세상 만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상정하고, 경천애인(敬天愛人)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민간신앙이 전통적자연관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고 한다. 단군설화나 풍수지리설만 보아도, 우리 겨레가 생명의 근원이자 터전인 자연을 숭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수질, 대기, 화학 등 환경 분야 관련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해온 내 경험으로 보아도, 우리 선조들의 전통자연관이 타당하고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닫는다.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 국민들은 어떤 자연관을 가지고 살아갈까. 지구촌 최빈국에서 근대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전통자연관은 없어져가는 듯하다. 자연을, 생태계를 대하며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과연 어떤가. 보리이삭이나 참나리의 예에서 보듯, 자연과 생명을 유희의 도구로 삼고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2018-06-29

초록 유월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정자나무 그늘에 앉아 유월의 산과 들을 바라봅니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은 착근을 한 벼들이 초록을 더해가고 녹음 우거진 숲에서는 뻐꾸기소리 들립니다. 올해는 봄비가 잦아서 초목이 더 무성하고 녹음이 짙습니다. 인공구조물을 제외하고는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초록입니다. 바야흐로 초록제복의 군대가 이 땅을 점령했습니다. 여름 한 철 의무복무를 하는 뭍 생명의 수호자들이지요.녹색식물의 엽록소가 물과 공기와 햇빛을 합성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는 걸 생물시간에 배웠지만, 정작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대부분 그러하듯 생물선생님은 그 광합성이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지구생태계를 유지하는 동력이라는 걸 강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엽록소의 광합성이라는 자연현상의 과학적 이해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는 삶의 의미와 중요성까지를 깨우치는 교육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지요.인류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 온갖 첨단무기들을 개발하고 심지어는 핵무기까지 보유할지라도 저 녹색군대의 힘과 역할에 비한다면 한갓 부질없는 짓에 불과하지요. 생명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불모의 땅에서는 국가니 안보니 하는 개념조차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인류 역시도 생태계의 일부로 존망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까먹을 때가 많지요. 울울창창한 녹색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 이 땅의 생명전선은 올해도 이상이 없습니다.초여름의 햇볕은 따갑지만 잎이 무성한 정자나무 그늘은 쾌적하게 시원합니다. 인동꽃 향기를 실어오는 훈풍과 적막한 뻐꾸기소리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앉아 있노라면 세상에 아무것도 더 바랄 게 없는 무욕(無慾)의 상태가 됩니다. 지나간 것을 괴로워하고 다가올 일을 근심하는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으면 이 땅의 유월은 얼마든지 밝고 평화롭고 생기가 넘칩니다.요즘은 치열하고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명상’을 하기 위해 사찰이나 수련원 등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가 많은 현실로부터 몸과 마음을 떼어 놓음으로써 긴장을 풀고 밖으로 향했던 마음을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하여 마음의 정화와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지요. 무엇을 얻겠다는 목적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도 없이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명상의 첫 단계라고 하고요.‘멍때리기 대회’라는 것도 있더군요. 현대인들의 지친 뇌를 쉬게 하자는 취지로 2014년부터 개최된 대회인데, 대회의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 대회의 첫 우승자는 의외로 아홉 살 소녀였지요. 자기 아이가 그렇게 ‘멍때리기’나 하고 있으면 대다수 부모는 왜 공부를 안 하고 멍청하게 있느냐고 꾸짖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멍하니 있는 것이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는 뇌의 기능을 더 활성화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네요. 정작 부모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멍때리기’하는 아이가 아니라 잠시도 멍하니 있지를 못하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얘기입니다.나는 따로 명상이라는 걸 해본 적도 없고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선정(禪定)의 경지가 어떤지도 알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녹음 우거진 초여름 한나절 정자나무 그늘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다른 어떤 경지도 궁금하지가 않습니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다// 초여름의 눈부신 태양과 녹음/ 인동꽃 향기 실어오는 훈풍의 한나절// 부귀와 권세와 명예/ 또 무슨 의미와 보람을 위해/ 촌음을 아껴야 할 황금 같은 시간에// 그 무엇으로도 바꾸려고/ 애쓰고 안달하지 않고, 멍하니/ 내가 그냥 그 시간 속에 앉아 있다” - 拙詩 ‘인동꽃 향기’

2018-06-15

눈치 없는 기 잉가이가

▲ 김순희 수필가오래전 일이다. 결혼하기 전이니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케케묵은 일이다. 남편(아직은 남자친구였던)이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퇴근 후에 만나러 갔다. 대학 동기라며 경주가 집인데 포항 근처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조용한 말투의 남편과 달리 키가 크고 걸걸한 목소리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헤어스타일은 주변머리만 있는 편이라 친구라기보다는 한참 선배 같았다. 하지만 두런두런 농담도 잘 건네고 식성도 좋은 것이 사람 참 좋아 보였다.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남편이 계산했다. 그러자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며 일어섰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로마’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남편은 녹차를 시켰고 그 친구는 커피를 시킨 것 같다. 그때 난 카페인이 맞지 않는지 커피를 못 마셨다. 마시면 볼은 홍조를 띠고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티백만 띄워주는 녹차는 돈 주고 마시기 아까워서 파르페를 시켰다.남편은 자꾸만 파르페는 맛없다며 녹차를 마시란다. 싫다, 난 녹차 싫어해. 파르페 먹고 싶다니까. 아이스크림에 과자도 올려져 있는 파르페 꼭 먹을 거야하며 우겼다. 한숨을 쉬며 종업원에게 녹차와 커피, 파르페를 주문했다. 차가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학창시절 이야기며 전국에 흩어진 친구들 근황을 늘어놓았다.잠시 후 화려한 장식의 파르페가 나왔다. 보트모양의 그릇에 아이스크림이 얌전하게 담겼고 작은 초코과자가 흩뿌려졌다. 웨하스가 돛대처럼 꽂혔고 그 옆에 빼빼로는 덤이었다. 작은 스푼으로 예쁜척하며 맛을 보았다. 즐거운 대화가 계속 되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가끔씩 미소를 지어주며 파르페의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파르페보트가 바닥을 보일 즈음, 경주로 가는 차시간이 되어 일어서기로 했다. 주섬주섬 일어서는데 남편은 나부터 먼저 밖에 나가 기다리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문밖에서 기다렸다. 한참 후 친구가 터미널을 향해 길을 건너갔고 우리도 차를 타고 출발했다.집에 바래다주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부터 밖에 나가 있으라 하고 뭐 한 거냐고. 아무것도 아니란다. 뭐가 아무것도 아냐. 뭐했는데, 뭐 있잖아, 어서 말해봐.“ 마, 그냥 녹차 먹지. ”남편이 어렵게 입을 뗀다. 으잉?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녹차를 마시지 않은 게 잘 못한 일이란 말인가?자초지종은 이랬다. 교사발령 기다리다 경력도 쌓고 용돈도 벌 겸 대학에 시간 강사로 나선 친구였다. 대학 강사는 허울만 좋지, 적은 강사비로 포항까지 왔다갔다 차비 빼고 만원도 안 되는 돈이 남는데 내가 녹차 아닌 파르페를 먹는 바람에 경주 갈 차비가 몇 백 원 부족해진 것이다. 남편에게 차비를 빌리지 않으면 경주로 갈 수도 없는 상황. 서른의 어른 남자가 처음 만난 한참 어린 내게 그런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지금도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그때의 나 또한 가난한 20대였다. 다 같이 어려운 시기였다. 아르바이트해서 힘겹게 공부하느라 성적장학금을 못 받은 우리는 눈물겨운 FM(Father, Mother)장학금으로 어렵게 졸업했기에 집에서 놀며 공밥을 먹는 다는 것은 죄악이었다. 줄줄이 비엔나처럼 뒤따라오는 동생들을 부모와 함께 돌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그런 내가, 눈빛만으로 녹차를 마시라는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였어야 하는데도 기어이 먹고야 말았다. 떼써서 파르페 먹었으면 조용히 입 다물고 집에나 가지. 뭘 자꾸 캐물었는지. 눈치 없는 기 인간이가.

2018-06-08

태극이의 큰 메시지선물

▲ 강길수 수필가첫 손자 태극이가 큰 메시지를 선물했다. 우리 가족의 품으로 온지 아홉 달을 막 지날 때였다. 돌아보면 두 달이 되기 전에도 주었는데, 내 미련이 늦게 알아챈 것이다. 메시지선물이 바로 태극이인 듯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녀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을 즐겁게도 하고, 놀라게도 하며, 애간장을 태우게도 하였다. 난지 두 달을 며칠 앞둔 날. 할머니가 “맘마 먹었어?”하고 어르는 말에, “응!”하며 대답하기에, “맘마 먹었어요?”라고 또 물으니, “응!” 하고 다시 대답하였다. 세 번째도 같은 대답을 해 식구들을 감탄케 했었다.석 달이 될 무렵 녀석 엄마가 찍어 보낸 동영상. 엄마는 어르고, 녀석은 힘찬 고성반응으로 서로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러 번 소리 질렀다. 끝부분에는 성질부리는 얼굴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 ‘요놈이 천의 얼굴을 가졌구나!’하고 드는 생각에 놀라면서도 기뻤다.다섯 달을 넘길 때. 예방접종과 감기가 겹친 후유증으로 경기(驚氣)를 일으켰는지 몸에 열은 높은데, 피부가 파래지며 녀석이 까무러졌단다. 처음 혼자 당한 아이의 위급사태에, 엄마는 아빠에게 급히 알린 뒤 아이를 꼭 감싸 안고 울 수 있을 뿐이었다. 급보에 황급히 달려간 할머니가 손가락을 따고 주무르는 등, 민간응급처치요법을 하며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작은 발에 주사바늘 호스를 달고도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는 마음을 더 아프게 했었다.아홉 달이 막 지나는 한 날. 녀석의 삼촌과 숙모가 오랜만에 조카 집에 가 형제, 동서지간의 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단다. 녀석 삼촌이 짧은 동영상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이 동영상이 커다란 메시지선물로 다가올 줄을 처음엔 몰랐다.동영상은 비록 반분정도로 짧았지만, 작품급이었다. 동영상을 보는 어른, 아이들도 다 보고 웃게 했으니까. 동영상은 태극이가,“아빠, 아빠, 아빠아아!”라고 삼세번 부르며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장면이었다. 할머니도, 나도 하도 신기하고 기특하여 보고, 또 보곤 했다. 며칠 지나면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영아가 왜 아빠를 삼세번 불렀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고, 물음은 메시지로, 선물로 변신하여 찾아왔다.‘태극이’는 제 부모가 지은 태명이다. 그래서 일까. 돌아보면, 생후 두 달이 채 안되었을 때, 할머니와 옹알이를 나누며 ‘응!’하고 삼세번 대답했다. 또, 아홉 달 무렵에도 누가 묻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빠!’를 삼세번 불렀다. 영아인 태극이가 ‘삼세번’이란 메시지를 선물한 이유는 무엇인가. 삼세번은 우리겨레는 물론, 하늘이 사람에게 내리는 소명이 아닐까.삼세번과 연관된 겨레의 풍습이나 사상, 표상은 많다. 삼세번은 겨레의 삶에 스민 천부적인 문화란 마음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어 난지 두 달 및 아홉 달 밖에 안 된 태극이가 삼세번을 대답하고, 삼세번 아빠를 불렀을 리가 없지 않은가.우리겨레의 삶에는 ‘삼세번문화’가 서려있다. 국회를 비롯한 지자체, 단체 등의 회의 때엔 의사봉을 삼세번 친다. 만세삼창, 운동시합의 삼세판, 잘못도 삼세번은 용서해주는 풍습이 있다. 이렇듯, 삼세번은 바로 우리겨레가 사는 양식(樣式)이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그리스도교의 신앙대상인 하느님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신이다. 또 힌두교에도 창조신 브라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의 삼신일체설이 있다. 이런 종교들의 신조도 삼세번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진다.흑백논리로 치닫기 쉬운 이원론문화보다, 천지인삼태극사상이 뿌리내린 우리겨레의 삼세번문화가 사람의 소통과 화합에 더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꼬여가는 지구촌에 삼세번 문화가 퍼져나가, 꼬인 매듭을 푸는 지구공동체가 되면 참 좋겠다.맏손자 태극이의 삼세번 메시지선물이, 그 따사한 아가 손으로 가슴에 스며온다.

2018-06-01

오월의 노래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오월이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입니다. 앞의 두 소절을 부르면 나는 단박에 오십년 세월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달려가곤 하지요.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면 식구들은 모두 들일 나가고 외양간 누렁이만 목을 빼고 나를 기다렸지요. 보리밥 한 덩이 우물물에 말아 먹고는 누렁이를 몰고 나가는 게 내 몫의 일과였어요. 풀이 많은 산자락에 누렁이를 놓아주고 나는 망태기 가득 꼴을 베지요. 여남은 살 소년이면 벌써 낫질이 익숙해져서 망태기 하나쯤 금방 채울 수 있었지요.꼴을 다 베고 나면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누렁이는 어쩌느냐고요? 요령(워낭)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멀리 가지는 않았네요. 요령소리가 가물가물 멀어지면 그 때 쫓아가서 붙잡으면 되니까요.잔디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의 후반처럼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랐’거나 ‘즐거워 즐거워 노러를 불렀던 것 같지는 않네요. 그냥 멍하니 미루나무 끝에 걸린 구름이나 쳐다보았던 것 같네요. 뻐꾸기소리 요령소리에 귀를 열어 놓고요.“보리밭 물결을 스치며 부는/ 오월의 훈풍이여 우거진 신록이여/ 푸를 대로 푸르른 하늘 저 편에/ 하얀 구름이 꿈처럼 인다.”봄이면 들판이 온통 청보리 물결이었지요. 논이건 밭이건 놀리는 일 없이 보리나 밀을 심었거든요. 그러고도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월은 보리가 패고 익어가는 계절이지요.초록 물결 넘실대는 보리밭 귀퉁이에는 샛노란 배추꽃이나 밤송이 같은 파 장다리꽃이 피기도 했지요. 그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가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풍경은 미술시간에 즐겨 그렸던 소재였지요. 그 때 그렸던 그림이야 남아있지 않지만 그 풍경의 기억만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네요.시골 소년에게 오월의 보리밭은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었지요. 머지않아 보리 베기와 타작이라는 고된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보리를 베고 타작하는 일은 농사일 중에서도 그중 고된 일이지요. 하지만 산천이 짙푸르게 녹음으로 짙어가는 오월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은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기대만큼이나 선명한 빛깔이었습니다.꽃으로 치자면 오월은 아카시아꽃의 계절이지요. 장미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안개처럼 산자락을 온통 뒤덮는 아카시아꽃을 당할 수야 없지. 멀리서는 그저 뿌옇게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카시아꽃은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고 향기도 진하지요.마침 찔레꽃까지 거들어서 꽃향기 가득한 오월의 동구 밖 과수원길 저 끝에서 단발머리 여학생이 오고 있네요. 남녀 공학인 시골 중학교에 같이 다니는 이웃마을 소녀지요. 까까머리 소년은 길모퉁이에 숨어서 소녀를 기다렸다가 스무 걸음쯤 다가왔을 때 앞서서 걸어가지요. 소년이 아무리 태연하게 우연인 척을 해도 사실은 아침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소녀가 모르지 않지요. 그렇게 날마다 저만치 떨어져서 등교를 하면서도 끝내 둘이는 말이 없었지요. ‘얼굴 마주 보고 싱긋’ 웃었다면 그것은 대단한 사건이고 친밀감의 표현이지요.아아, 눈부신 생생초록 오월은 다시 왔지만 그 때 그 시절은 저만치 더 멀어져 가네요.“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먼 하늘만 눈에 차누나.”

2018-05-25

짜장면과 파도소리

▲ 김순희 수필가혼자 하는 것보다 친구와 같이 하면 더 좋은 것들이 있다. 깻잎무침 접시에서 젓가락으로 한 장 떼어낼 때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눌러주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보고 나서 꽁냥꽁냥한 연애에 대해 폭풍 수다 떨기, 두껍고 버거운 책 못다 읽고서 ‘너도 그랬어?’ 하며 공감해주기, 택배 박스에 섞여온 뽁뽁이 터트리며 남편 흉보기, 그 중에 최고는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이다. 햇살이 좋은 날, 약속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도소리 들으러 가자고 말을 건네니 두 말없이 따라나섰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운전대 잡은 사람 마음대로 하라며 웃었다. 장기 읍내를 지나 바닷길로 접어들다가 양포항을 만났다. 함께 간 친구들이 이 어여쁘고 조그만 항을 못 보았다기에 미리 둘러본 내가 소개해주고 싶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먼저 화장실에 들렀다. 여자 화장실에 조그만 소변기가 나란히 있다. 남자 아이 손잡고 온 엄마를 배려하는 거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났다.가족단위의 방문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원은 인라인이나 킥보드도 탈 수 있고, 동네와 인접해 있어 여러 가지 샤워 시설이나 식수대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조금만 나가면 바다를 만질 수도 있고 모래를 밟으며 놀이를 즐길 수 있으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에 섞여 왔다. 항구의 북쪽에는 길이 700m의 긴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가 시작되는 곳에 작은 숲도 있어서 아이들과 놀기에 좋고 텐트를 칠 수도 있어서 캠핑족들이 찾기도 한다.요트 계류장도 있는지 폼 나는 배들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었다. 갈매기 모양의 가로등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산책길 끝에 공연장이 있다. 오늘은 파도소리만 예약되어 있을 뿐 다른 공연이 없어서인지 낚시꾼 몇 명과 갈매기들이 사이좋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가로등 기둥마다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치킨과 중국집 전화번호였다. 바닷가에서 먹는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던 우리 일행은 두 그릇만 시켜 보자고 입을 모았다. 가방엔 준비해 간 김밥과 커피가 있었으니까. 배달의 기수답게 통화한 지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철가방 사나이가 나타났다. 낚시꾼에게 먼저 다가가 물어보다가는 “짜장면 시키신 분?” 외쳤다. 설마 여자 셋이 시켰을까 싶은지 우리가 손짓을 하자 그제서야 달려왔다.나는 짜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입이 짧기도 하고 기름끼 있는 음식이 비위에 맞지 않기도 해서이다. 그래서 늘 무엇을 시킬까 망설이는 식구들 틈에서 자신 있게 짬뽕을 시키고는 아들의 짜장면 접시에서 한 젓가락 얻어먹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오늘도 맛만 봐야지 싶었다.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더니 면 두 접시에 젓가락도 두 개만 딸려왔다. 하는 수 없이 한 개의 젓가락을 둘로 나눴다. 키가 작아진 나무젓가락 때문인지 짜장이 손에 묻고 입가에도 흔적을 남겼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서야 웃음이 났다. 그것도 모르고 먹을 만치 맛난 점심이었다. 안도현 시인은 중국집 앞을 지날 때는 침도 삼키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늘 냄새와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고 시를 썼다. 까만 짜장면에 코를 박고 비벼 먹던 아이적의 추억이 코를 잡아당기니 이길 수가 없다고 말이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음식에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을 이 곳에서 맛보았다. 아마 시인이 이 바닷가에서 일 인분 시켜 먹고 나면 새로운 시를 한 편 쓸지도 모른다.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배 한 척이 수평선을 그으며 지났다. 후식으로 항구를 돌아보기 위해 방파제로 향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파도소리를 들으니 배불렀던 짜장면은 금방 소화가 되어버렸다. 짜장면은 파도소리에 비벼먹어야 제맛이란 걸 양포항이 알려주었다.

2018-05-18

아카시아궁궐

▲ 강길수수필가사월 하순 중간 날. 일터의 대체휴일이라 오랜만에 가까운 야산등산에 나선다. 휴일이면 거의 오르던 이 등산길을 올 봄엔, 다른 일들로 오래 오지 못했었다. 사월의 꽃들이 삼월에 피고, 오월의 꽃들도 사월에 피는 기후변화시대를 또 절감한다. 하늘을 이고 갓 피어난 아카시아꽃이 뿜어내는 향기가 저절로 마음메모리칩을 검색한다. 기억모니터에 ‘아카시아궁궐!’이 클로즈업된다. 젊은 날의 자작 합성어다.돌아오는 길…. 마지막 쉬는 곳의 벤치에 무심코 앉으려는데, 벤치 옆에 까만 비닐봉지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산에 오신 여러분, 쓰레기를 소중한 자연에 버리지 말고, 이 봉지에 담아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어느 고마운 마음이 서린 봉지다. 비닐봉지를 어떻게 벤치에 걸었는지 살펴본다. 벤치 지지대 사이의 공간을 장식하는 무늬조각물을 이용,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게 걸었다. 훌륭한 아이디어다.나도 전에 등산로를 걷던 중 버려진 비닐봉지를 주워서, 이 벤치 곁의 나뭇가지에 쓰레기봉투로 건 적이 몇 번 있다. 벤치 주위에 담배꽁초가 많았고, 과자 껍질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가 보면, 바람에 비닐봉지가 돌돌 말려있어 쓰레기 넣기가 쉽지 않거나 아예 날아가 버린 적도 있었다. 바람을 고려하여 비닐봉지를 걸 튼튼한 가지를 골랐는데도 그랬다. 이 봉지는 그런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하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나는 그때 왜 의자는 살펴보지 않았던지 모르겠다. 눈은 잘 보라고 있는 보배인데 말이다.‘나보다 한 수 위를 사는 분이구나!’ 벤치에 앉으며 든 마음이다. 이어서, ‘나는 이 방법을 왜 찾아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가슴을 톡 친다. 젊은 날부터 직장에서 실험, 연구, 품질 등을 다루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랬기에 문제를 찾아내고, 연구하고, 해결하는 데는 나름대로 안목을 가졌다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한데, 오늘 그 믿음에 흠 하나를 더 보탠 것이다.벤치 장식무늬에 쓰레기봉지를 건 눈을 가진 이는 어떤 분일까. 그는 분명 나보다 한 수 위를 사는 분 같다. 우리사회에서 요즈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적폐청산을 제대로 하는 분을 오늘 만난 기분이다. 한편에서는 적폐라 규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는 일 같은 것들은 원칙으로 보나, 상식으로 따져도 칼자루 쥔 측의 사법처리 대상은 될지언정 적폐라 볼 수는 없다 싶다.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 같이, 만인이 다 고쳐야한다고 하는 것들이 진짜 적폐일 것이기 때문이다.벤치쓰레기봉지가 나비효과를 낸 때문인지, 벤치주위가 전보다 많이 깨끗해졌다. 옥에 티 같은 담배꽁초 몇 개를 주워 봉지에 넣었다. 손끝으로 봉지 건 분의 따사한 마음이, 가물에 대지를 적시는 빗줄기로 전해져 왔다. 봉지에 쓰레기가 차면 그분은 쓰레기봉지를 회수해 처리하고, 다시 새 봉투를 걸 것이다. 우리사회의 숨은 적폐청산가 중의 한분이 그가 아닐까.해가 서산에 걸터앉기 시작한다. 일어나 집을 향해 걷는다. 아카시아꽃 향기가 더 짙게 후각세포를 파고든다. 쳐다본 파란 하늘에 아카시아꽃들이 모자이크로 박힌다. 꽃을 맴도는 꿀벌들도 덩달아 모자이크가 된다. 저 꿀벌들은 이 시각에도 하루 꿀 수확량이 모자란 걸까. 무엇 때문에 저리도 열심히 일할까. 일벌들이 가져간 꿀과 화분으로 여왕벌과 수벌도 먹고 살 텐데 억울하지도 않고, 적폐란 생각도 안 드나보다.그 옛날, 고향집 정경이 어느새 파노라마 되어 마음 스크린에 비춰진다. 남쪽 삽짝 곁에 서서 살던 아름드리아카시아나무. 봄이면 엄청 많은 꽃을 피워 향기를 온 사방으로 뿜어댔다. 온갖 벌, 나비들 찾아와 한 가족으로 살던 곳. 내가 지은 이름 ‘아카시아궁궐’로 손색없던 보금자리. 온 가족이 꿀벌 되어 제 할 일 묵묵히 하며 살았기에, 적폐가 무엇인지 모르던 우리 집….오늘따라, 지금은 사라진 아카시아궁궐이 사뭇 그립다.

2018-05-11

어린이날에

▲ 김병래시조시인·수필가‘학원에 가기 싫은 날은 가장 고통스럽게 엄마를 씹어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눈깔을 파먹고 이빨을 다 뽑아 버리고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고 마지막으로 심장까지 먹고 싶다’는 내용의 열 살짜리 여자아이의 글이 항간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 부모의 말로는 특별히 문제가 있는 아이는 아니라고 하니, 대다수 요즘 아이들 정서와 사고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물론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아이를 그 지경으로 만든 어른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고, 그런 글을 동시(童詩)라고 입에 피 칠을 한 채 심장을 먹고 있는 그림과 함께 책으로 만들어낸 어른들의 일그러진 심성에도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더욱 기막힌 것은, 그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저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지만 아이 얘길 듣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엽기물이나 괴담만화에 익숙해진 초등생들은 잔인하기보다는 재밌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육십 평생을 살면서 세상의 온갖 험한 꼴을 본 나 같은 사람에게도 소름끼치는 말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재미있게 들린다는 것이다. 하기야 이제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쯤은 별로 놀라운 뉴스거리도 아닌 세상이니 미구에는 오락삼아 부모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요즘 아이들은 동심(童心)을 잃었다고 한다. 하늘을 찌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인 아파트 단지를 옮겨 다니면서 학원과외에 찌들고 컴퓨터오락에 빠진 아이들에게는 동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동심을 잃은 아이들이 동요인들 좋아할 까닭이 있겠는가.‘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과 보고 듣고 접촉하는 것이 온통 인위적 환경인 이들의 정서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결코 ‘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라거나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날리며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같은 동요의 가사와 가락에 가슴이 뭉클하고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세대일 수가 없는 것이다.고향과 추억이 담긴 동요가 생소하고 따분한 대신 인기 가수들의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노래에는 열광을 하는 아이들, 동심의 시절이 생략된 소위 신인류(新人類)의 모습이다.요즘 아이들은 옛날과는 비교도 되게 풍족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때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혹사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태교다 원정출산이다 조기교육이다 과외다 해외연수다, 가능한 수단은 무엇이든 다 동원하게 되고, 그래야만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 정성과 헌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그래서 얻게 되는 부나 권세나 명예가 과연 어린 시절에 동심으로 누려야할 자유와 즐거움을 대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사람은 물론 많지가 않은 것 같고.소파 방정환의 색동회가 어린이날을 제정한지 9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의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건강해지고 행복해졌는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어린이날 하루 아이들에게 무얼 사주고 어디로 데려갈까를 걱정하는 것이 부모나 어른의 구실은 아닐 터이다. 온갖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무질서하고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갈수록 정체불명의 인종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우려와 경각심을 가지기는커녕 어른들이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일이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2018-05-04

헌길

▲ 김순희 수필가어린 시절, 학교로 가는 길은 두 갈래였다. 과수원 사이를 지나는 새길과 논을 옆에 두고 가는 헌길이다. 통학버스가 다니기 위해 새로 만들어 놓은 길은 차 전용이었고, 자전거가 마주와도 한 쪽은 내려서 길가로 비껴서야하는 헌길은 걷는 사람 전용이었다. 두 길 모두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30분이면 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주로 다닌 곳은 헌길이었다. 헌길엔 도랑이 바짝 따라 붙으며 길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물빛에 내 그림자를 비춰가며 개멀구를 따먹고, 산 밑까지 내려오다 냇물을 건너지 못한 칡덩굴이 향긋한 냄새를 풍겨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지금도 오래된 길을 좋아한다. 포항에서 출발해 영천에 가는 길은 고속도로와 국도도 있지만 오늘 가 볼 길은 이 두 길이 태어나기 전 이용했던 헌길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길이라 자세히 설명하고 귀담아 들어야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다. 일단, 연화재를 지나 고속도로 빠지지 말고 청송·기계 방향으로 튼다. 강동면 새마을로를 달려 달성네거리에서 직진신호를 받아 달릴 때쯤 네비게이션은 서포항IC로 차를 올리라고 재촉하겠지만 우린 그냥 지나친다. 봉계리란 이정표가 나오면 고지교라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좌회전 한다. 이제 촌길로 들어선다. 과수원 사잇길로 직진하며 가지에 하얗게 열린 사과꽃을 구경하다보면 운주사, 영천CC라고 조그맣게 써진 이정표가 나온다. 이 길이 아닌가싶게 좁은 길이다. 망설이지 말고 구불길로 들어서라. 길은 굽어지는 동시에 가팔라지니 속도는 저절로 느려져 이제부터는 산이 뭐라 말하는지 들이 무엇을 키우고 있는지 귀에 눈에 넣기 좋아진다.산 아래 동네에는 지난주에 꽃잎을 다 떨구고 연두 잎을 내기 시작한 벚나무가 윗동네인 산골에는 이제사 연보라 빛으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나무들도 따뜻한 기운에 한껏 물을 올리느라 연두연두해지니 입장료도 한 푼 내지 않고 구경하는 우리 마음도 말랑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차의 속도는 더 느려진다. 산을 다 오르면 여기서부터 영천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다. 동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올봄에 비가 잦아서 저수지에 농사지을 물이 가득한 수성2리를 지나다 보면 마늘밭에 올마늘의 키가 제법 크다. 들에는 밭을 살찌우려는 경운기 소리가 가득하다. 오래전 폐교가 된 수성초등학교에 지금은 아이들 대신 군인들이 숨어서 훈련 중이다. 조금 더 가다보면 강물인가 할 만큼 너른 임고저수지가 보인다. 오늘은 바람이 없어서 연둣빛 봄산이 저수지에 몸을 비춰 매무새를 다듬기 좋다. 저수지 물을 끌어다 복숭아를 키우는 금대리는 봄 내내 분홍 천지라 낚시터 이름도 무릉도원이다. 마을버스가 지나길 잠시 기다렸다 자두밭 배밭을 지나 임고면에 접어든다. 임고면 황강길에 남강 정사가 자리한 연못이 오늘 여행길의 압권이다. 벚꽃이 질 무렵에 이곳에 가면 연못은 하얗게 꽃잎으로 뒤덮인다. 그러다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떠다니던 잎들이 연못 한 귀퉁이로 몰려와 하얀 레이스 천을 덮어 놓은듯하다. 꽃은 폈을 때도 곱지만 지고 나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군자는 대로행이라며 다니던 길만 고집하던 내 운전습관을 보더니 친구가 정해진 길로만 다니니 토끼길 운전이라 했다. 그 길이 그 길이면 그날이 그날이라 권태라는 올무에 걸리기 십상이다. 짧은 시간을 길게 늘리는 방법은 다양한 길을 가보는 것이라는 충고에 처녀길도 과감히 나서고, 가던 길도 빙 둘러 가 봤다.길의 사계절이 보이기 시작했다. 촌길 끝에 임고초등학교가 있다. 가장 아름다운 숲을 가진 학교로 뽑힌 곳으로 운동장 가득 플라타너스가 둘러섰다. 비 오는 아침, 노을 지는 해거름녁, 널따란 플라타너스 잎이 수북이 쌓여 바스락 거리는 늦가을, 언제든 가도 좋은 곳이다. 헌길을 찾아 나서는 이유가 거기 있다.

2018-04-27

라일락꽃내음

▲ 강길수수필가세레나!좋아하는 봄꽃들이 사월초순에 다 졌습니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 살구꽃, 목련꽃이 그들입니다. 사월에 필 꽃들이 삼월에 피었으니 일찍 진 것은 당연한데, 마음이 개운치 않으니 웬일일까요? 그나마 겹벚꽃과 라일락꽃이 피어 아직은 꽃피는 봄이라 일러줍니다. 그 곳은 어떤가요? 아마도 비슷할테죠.오늘아침 출근길에 불현듯 ‘내가 뭐하고 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척에 라일락꽃을 두고도 자주 가지 않는 방향이라고 내음 한번 제대로 느껴보지 않고, 또 이 봄을 소진하는 한심한 존재’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보고 느낄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봄꽃들에게 문을 닫고 산 게지요.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고 언젠가부터 생각하고 다짐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세레나.라일락꽃 앞입니다. 실로 한해 만에 맡아보는 진한 라일락꽃내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아카시아꽃내음이나 인동초꽃내음, 치자꽃내음과는 또 다르게 후각세포를 막 일깨웁니다. 마음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탔나봅니다. 그 옛날, 신혼시절로 바로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이른 봄날 같던 늦겨울 2월에 결혼하고, 몇 달을 우리는 주말신혼부부로 살았지요. 직장 때문이었습니다. 군청에 근무하던 새색시가 어떤 마을에 출장 갔다가, 라일락묘목을 얻어 시가 댁 마당에 심었습니다.첫 며느리를 얻은 시아버지는, 새아기에게 하듯 소중하게 라일락나무를 돌보았습니다. 라일락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며 봄마다 온 집안을 함께 사는 향기로 감쌌습니다. 부모님은 라일락나무를 멀리 사는 맏아들 집처럼 여기고 사신 듯합니다. 마루 가까이 심은 것이며, 며느리가 가져 온 나무라고 애지중지 하시는 걸 종종 보았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라일락나무에다 자식과 며느리, 손주들을 그려 넣고 바라다보며 그리움과 기다림을 달래면서 살았다 싶습니다.세월은 강물처럼 잘도 흘렀습니다. 라일락나무도 어느새 고목이 되어갔지요. 그 사이 아버지가 먼저 하늘나라 가시고, 어머니도 몇 해 후 뒤따라가셨습니다. 고향집에는 늙은 라일락나무만 동그마니 지키게 되었습니다. 물론 배롱나무나 향나무, 화초 몇 본과 함께였지만 내 눈에는 라일락나무가 외로워만 보였지요. 그나마 동생부부가 고향집 지키며 사는 것이 고맙고, 다행이라 여기며 지냈습니다. 어머님 제삿날이 초파일이어서 갈 때마다 라일락꽃내음이, 부모님의 향기로 다가오곤 했습니다.세레나.그러던 어느 해 가을이었지 싶습니다. 아버님 제사 지내려 고향에 갔는데, 라일락나무가 베어지고 밑둥치만 남았지 뭡니까. 동생에게 라일락나무를 왜 베어 냈느냐고 물었더니, 고목이 되어선지 진딧물이 많이 끼어 그랬다 했습니다. 속으로 안타깝고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날, 고향집 라일락나무는 내 마음속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새댁 아내와 뛰놀던 아이들과 함께, 수채화로 그려져 스며있기에 더 향기로운 라일락나무로 말입니다.‘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행복의 집에 살 수 있다’는 진실을, 이 아침 라일락꽃내음에서 또 느낍니다. 생활이란 핑계를 멍에로 걸고, 오늘도 걷고 있는 자신도 또다시 만납니다. 삶이 비록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사인곡선일지라도, 그 길목에서 가끔은 라일락꽃내음도 즐기며 걸어가야 한다 싶습니다.부디 라일락꽃내음 향기로운 봄을 맘껏 누리기 빕니다. 세레나….부디 라일락꽃내음 향기로운 봄을 맘껏 누리기 빕니다. 세레나….

2018-04-20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봄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겨우내 움츠렸던 아이들이 봄 햇살 아래 나와서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할 때쯤이면 노래에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제비가 돌아왔다. 해마다 그렇게 삼짇날을 전후해서 제비들이 돌아오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남쪽나라로 날아갔던 제비들은 생사를 건 긴 여정 끝에 고향집에 돌아온 감회가 벅찬지 마당의 빨랫줄에 앉아 한동안 숨가쁘게 지저귀곤 했다.제비는 철새임에도 유달리 귀소성이 강하다고 한다. 지난해 머물렀던 곳이나 태어난 집을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암 수 한 쌍이 2회에 걸쳐 서너 마리씩 번식을 하니 가을이 되어 남쪽으로 떠날 때에는 다섯 배가 넘게 식구가 불어나는 셈이다. 그러나 오가는 이동 중에 절반가량이 죽고 늙어서 더 이상 번식을 할 수 없는 제비들은 오지를 않아서 매년 일정한 수를 유지했던 것 같다.제비들이 오고 가는 날이 매년 일정한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흔히들 삼짇날(음력 3월 3일)에 와서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떠나는 거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길한 숫자로 꼽는 3과 9가 겹치는 날에 제비가 오고 간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길조요 영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오십여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제비가 둥지를 틀지 않는 집이 거의 없었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아닌 야생조류가 사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간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언제부턴지는 몰라도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제비와 한 가족처럼 살아온 셈이다.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면 사실 귀찮은 점이 없지 않다. 새끼들이 깨어나면 적잖이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수시로 떨어지는 배설물을 치우는 일도 쉬운 노릇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날짐승일지라도 사람을 의지하고 찾아든 것을 박절하게 내치지는 않는 것이 우리네 옛 인심이었다.‘곡식에 제비’라는 말이 있듯이 텃새인 까치나 참새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과는 달리 제비는 오히려 농사에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어서 사람들에게 보은을 한다. 새끼를 가진 암수 한 쌍이 하루에 수백 회나 벌레를 잡아 나른다고 하니 그 수가 실로 적지 않은 것이다.이제는 시골에서도 제비를 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 몇 십 년 사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제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지금은 90% 이상이나 감소되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얼마를 못 가서 아예 제비를 볼 수 없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제비가 줄어드는 이유로는 농약이나 각종 공해로 인한 먹잇감의 감소에다 사람들의 주거환경이 제비가 깃들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대부분의 인심들이 더 이상 제비를 반기지 않는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제비가 하등 이로운 존재도 아닐 뿐더러 현대화된 가옥구조에 제비가 날아들어 둥지를 트는 것은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것이다. 농작물의 해충쯤이야 농약으로 간단히 해결이 될 것인데 집안을 어지럽힐 뿐인 제비를 반길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물론 제비들과 함께 살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나 정서가 없는 세대로서는 당연한 반문이다.제비가 날아들어 보금자리를 틀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가난한 시절에서 국민소득 3만 불에 육박하는 시대로, 우리나라는 참 눈부시게 발전을 했다. 하지만 그래서 얼마나 더 행복해 졌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제비들이 더 이상 살수 없게 된 땅이 사람들에게는 과연 행복한 세상일 수가 있을까.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제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멀리 남쪽하늘을 쳐다본다.

2018-04-13

어슬렁 숲 탐방

▲ 김순희 수필가林(숲)이란 글자 속에는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있다. 어깨도 서로 맞대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흔들릴 줄도 모르는 빌딩숲에서 넘어지기만 하던 나는 푸른 기운을 받으러 林으로 간다.`어슬렁`이라는 제목에 꽂혀 얼른 신청했다. 지난해부터 기다린 이 모임은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포항시 가까이 위치한 산이나 숲을 천천히 걷는다고 했다. 무릎이 시원찮아 가파른 산은 겁부터 나는데, 한 달에 한 번 숲을 거닐며 나무 이름, 꽃 이름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숲에 사는 동물과 곤충들이 숲과 도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니 어슬렁어슬렁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오늘 갈 곳은 봉좌산(鳳座山)이었다.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에 봉좌암(鳳座岩)이라는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지만 우리는 봉좌산 기도원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거기다 흙보다 돌이 많아 걸을 때마다 돌산에 온 것을 환영하는 돌들의 부딪힘이 소리가 되어 몸에 전해졌다. 산이 오르락내리락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건 계속 오르막뿐이었다. 삼십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턱에 찼다. 힘에 겨운 나에 비해 같이 간 사람들은 힘든 내색 하나 없다. 나 혼자만 얼굴이 벌겠다.더 이상 못가겠다 싶을 즈음 샘이 보였다. 이름이 `참샘이샘`이다. 땔감나무와 풀을 베어 농사를 짓던 시절에 나무꾼들이 쉬던 장소에 한여름에도 얼음이 서려 있어 그곳을 파보니 찬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조롱박 모양의 간이 우물을 만들었는데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가난한 시절이었던지라 모두들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허기를 채웠다고 한다.뒤에 섰다 나도 한 바가지 얻어 마셨다. 가쁘던 숨도 잦아들고 달아오른 몸도 식혀줬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눈치 챈 회원 한 사람이 주위에 핀 꽃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샘가로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에서 잎을 따서 비벼보라고 했다. 비비니 손에서 향긋한 숲 내음이 났다. 저리던 다리를 부추겨 더 올라갈 수 있게 만드는 향이었다. `비목`이라는 나무를 눈여겨 봐두고 또 오르기 시작했다.봉좌산은 봄이면 연달래가 많이 피는 곳이다. 만발한 연달래를 보려면 담주 쯤 올라야 할듯하다. 군락지라는 표시를 뒤로 하고 일행들의 꽁무니만 따르며 오르다 문득 산 아래를 굽어보니 발아래 내가 사는 세상이 있었다. 아침까지 아등바등했던 그 곳이 내가 빠져나온 자리의 흔적도 지운 채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내려오는 길에는 바람이 많았다. 포항의 바람은 모두 이 숲으로 모인 것 같았다. 왜 저리 맑나 했더니 바람이 나무의 손을 잡고 하늘을 열심히 닦은 덕분이었다. 가만히 서서 보자니 바람도 숨이 찬지 한소끔 쉬었다. 그사이 나뭇잎에 힘껏 매달렸던 자벌레 한 마리도 한 뼘 움직였다.오르는 길이 숨이 찬만큼 내려오는 길은 더 가팔랐다. 오르는 속도가 늦은 사람은 내려 올 때도 맨 나중으로 쳐지게 마련이다. 관절이 약한 나는 소심하게 한 발 한 발 내 디뎌야 했다. 그때, 오솔길 양옆으로 도열한 나무들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어 미끄러지는 나를 잡아주었다. 마라톤 코스에서 기록과는 상관없이 뒤쳐져 달리는 선수에게도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는 시민들처럼 나를 지켜주었다. 나무들이 왜 그렇게 손이 많은지 이제 알 것 같다. 나같이 어설픈 등산객들에게 보내는 박수소리를 더 크게 하려고 그렇게 봄이면 잎 같은 손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봄이면 가지 끝까지 물을 퍼 올리느라 숲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다.봉좌산을 내려오니 나는 탐방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다음 모임에 꼭 오라며 흔드는 그들의 손이 나뭇잎을 닮아있었다.

2018-04-06

민들레갓털, 봄바람 타다

▲ 강길수 수필가아침저녁 한 생명의 곁을 지나다닌다. 내겐 봄의 전령사다. 3월 초부터 아가 손 초록 잎을 내밀어 오가는 이들에게 손짓한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찜찜하다. 의문들이 머리를 헤집고 나오기 때문이다. `넓은 들판, 아름다운 시냇가, 따사한 산자락 다 버리고 아가 손은 하필 이 틈바구니에 삶터를 잡았단 말인가. 더구나 도시의 길가 딱딱한 콘크리트 틈에 말이다. 무엇이, 어찌하여 이 여린 생명을 비좁고 오염된 틈에 태어나 살게 했을까.` 마음이 상상의 나라로 날아간다.바람, 그랬다. 봄바람이었다. 어느 봄날, 강 건너 남녘에서 봄바람이 산들산들 푸른 언덕 넘어오다가 한껏 부푼 하얀 갓털송이를 만난 것이다.“갓털아, 너는 왜 솜사탕으로 부풀었니? 너 멀리 떠나고 싶은 게로구나. 날 기다렸지? 내가 널 데려다 줄게. 가는 길에 같이 아름다운 봄 구경도 실컷 하고….”봄바람은 상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갓털 한 움큼을 등에 태웠다. 그리고 살랑살랑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아니다. 그 봄날, 무심한 듯 푸른 언덕을 간질이며 날아가는 봄바람에게 갓털이 말을 건 것이다.“봄바람아, 너는 왜 풀밭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지나가니? 나를 잘 봐! 이렇게 솜사탕 되어 네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단다. 부디 날 저 먼 새 땅에 데려가 달라고 말이야….”온 나래를 활짝 편 갓털은 멋진 패러글라이딩묘기를 부리며 봄바람 등에 살짝 올라탔다. 난생 처음 탄 비행기가 이륙하듯 마음이 들뜬 갓털은 훨훨 하늘로 날아올랐다.둘은 의기투합했다. 봄바람과 갓털 중 누가 함께하기를 청했든, 그런 건 따질 필요가 없었다. 둘은 새 땅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씨앗을 함께 감싸 안고 봄 유랑을 했다. 아지랑이와 어깨동무하고, 발아래 펼쳐지는 신록의 박수갈채에 신 나 종횡무진 꿈나라를 휘저으며 날아갔다. 산 자드락 마을이 발아래 지나가고, 커다란 칼라시트지붕 즐비한 공단을 가로질러 푸른 물 쉬어 흐르는 강도 휘저어 넘었다.어느 순간, 갓털은 기절하고 말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높은 빌딩에 봄바람이 부딪치며 생긴 와류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 것이다. 한참 후 정신이 들었을 때, 또다시 눈앞이 캄캄했다. 도시의 어느 길가 측대 앞에 고인 빗물위에 자신이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갓털은 마음을 다잡고, 무엇보다 몸에 씨앗을 매달고 있는지 살폈다. 씨앗은 물가 작은 콘크리트 틈바구니에 끼어, 되레 자신을 부여잡고 있었다.`다행이다!`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불행일지도 몰라!`하는 걱정도 뒤이어 몰려왔다. 신났던 봄바람도 갑자기 들이닥친 커다란 빌딩에 혼비백산, 온 몸이 일그러지며 도시를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이윽고 철길을 건너 야산에 닿았다.신록이 보이자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갓털 생각이 났다. 어디에 떨어졌는지, 다른 봄바람을 만나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 탓은 아니지만, 갓털에게 미안했다. 어버이를 알기에 통성명도 않고 봄 유람의 벗이 된 갓털이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세상일이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음을 다시 깨달으며, 봄바람은 갓털이 부디 무사하기를 빌며 말했다.“민들레갓털아! 미안해. 부디 네 씨앗이 새싹으로 태어나 잘 살아라. 난 너를 믿는다. 네 꽃말도 불사신이잖아….”내 삶의 길도, 민들레갓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싶다. 산촌에 태어나 무슨 학교 졸업이란 갓털을 달고, 나라의 중화학공업화정책이란 봄바람에 휩쓸려 시험보아 취직했으니까. 또, 직장을 따라 고향 떠나 콘크리트 도시의 한 틈에 뿌리내려 살고 있으므로. 따져보면 학교공부나 취업준비 공부도, 훈련도, 봉사도 모두 새로운 곳에 가 살게 하려고 갓털을 키우는 일이었다.새로운 봄바람, 기술융합시대란 4차 산업혁명시대의 갓털은 또 무엇이 될 것인가.

2018-03-30

봄 마중 가자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동무들아 오너라 봄 마중 가자 /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 / 종다리도 봄이라 노래하잔다”봄이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이 동요의 가사가 맞는지 인터넷에 찾아보니 봄 마중이 아니라 봄맞이란다. 하지만 마중이란 말이 더 좋아서 그냥 입에 익은 대로 부르기로 한다.이 노래처럼 봄을 삶 속으로 맞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앉아서 기다리거나 다니며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가운 가족이나 손님처럼 나가서 마중하던 시절이었다. 가난으로 헐벗었던 시절에는 겨울이 참 춥고 길었다. 그래서 따뜻한 봄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다 마침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새싹이 움트는 삼월이 오면 너도나도 달려 나가서 봄을 맞았다. 달래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서 새 봄의 기운을 식탁에 올리기도 했다.농경사회에서는 동식물만큼이나 사람들도 계절과 기후변화에 민감했다. 해토머리엔 쟁기로 논밭을 갈아엎는 봄갈이를 하고, 봄풀이 돋으면 온종일 보리밭에 김을 매었다. 때마침 봄비가 내리면 물을 잡아 못자리를 만들고 봄채소의 파종을 하는 등 그야말로 신토불이로 계절을 사는 삶이였다.산업사회가 되어 생활과 주거의 환경이 바뀌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많이들 둔감해졌다. 냉난방 시설이 잘 된 실내에서는 바깥의 기후나 풍경을 직접으로 체감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계절의 추이가 그다지 절실하게 와 닿지 않는다. 주말이나 되어 야외로 나가보고서야 봄이 벌써 이만큼이나 다가온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산업화가 삶의 주축이 되면서 경제적인 여유는 갖게 되었지만 자연과는 점점 멀어진 것이다.이제는 먹고살만해졌으니 인문학적인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고들 한다. 아이들에게도 학습능력 못지않게 건강한 정서의 함양이 중요하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틈만 나면 스마트폰에만 코를 박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감성과 정서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늘이 아무리 맑고 푸르러도 쳐다볼 줄 모르고,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도 들여다보지 않고, 새가 울고 벌 나비가 날아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과연 어떤 심성과 정서를 가질 수가 있겠는가. 걸핏하면 자살을 하거나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남을 해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정서의 고갈과 심성의 황폐가 초래한 결과가 아니겠는가.물질만능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찌들고 비뚤어진 심성과 정서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친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로 망가진 사람이 산속에 들어가서 건강을 회복하는 것에서 보듯이 자연에는 병든 심신에 대한 놀라운 치유력이 있다. 인문학 따위를 배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삶의 지혜와 에너지를 얻을 수가 있는 곳도 자연이다.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 구태여 사람들이 북적대는 유명 관광지를 찾아갈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들이나 한적한 시골마을이 더 좋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쑥도 뜯고 냉이도 캐고 진달래꽃도 따먹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밝고 고운 정서의 함양과 튼실한 정신력을 기르는데 더없이 좋은 학습이 될 것이다.친해지려면 먼저 이름부터 알아야 한다. 스마트폰 검색기능을 활용하여 주변의 가장 흔한 풀이름 나무 이름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림으로 그려보거나 사진을 찍어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놓고 그것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 첨가한다면, 예체능 과외학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최상의 자연공부 체험학습이 될 것이다.식물뿐 아니라 곤충이나 새들의 이름도 알아두고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자. 그러면 그 나무와 풀꽃과 곤충과 새들이 한결 새롭고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어떤 인문학 수업보다도 생기롭고 즐거운 공부가 될 것이다.

2018-03-23

쑥떡

▲ 김순희 수필가겨울 축제가 끝나간다. 우리 어머니들은 대명절인 설날에 칠 일을, 정월대보름에는 오 일을, 마지막 축제인 이월엔 하루를 놀았다. 봄을 알리는 음력 2월 1일 또한 명절이라 이름 붙여 놓고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오늘이 지나면 일뜸질이 시작되니 마지막으로 노는 날이었다. 일꾼들을 위로하는 날이라는 뜻으로 머슴날, 농사가 시작되는 때라 중화절이라고도 불렀다.온갖 떡을 해서 나이만큼 먹는다 해서 나이떡 먹는 날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월에는 윷놀이로 하루해가 저물었다. 마당 가운데 새끼줄을 쳐놓고 네가락의 윷을 던지고 모야 윷이야를 외치고, 말판도 없이 `건궁말`을 쓰다보면 금방 허기가 졌다. 짬짬이 참을 먹어야 했기에 집집마다 한두 가지씩 해 온 음식으로 한상을 차렸다. 쑥떡 옆에는 배추뿌리 삶은 것도 콩가루를 뒤집어쓰고 있고 무나물, 콩나물국, 메밀묵도 한자리 차지했다.이 날은 먹고 노는 날이기에 모든 걸 미리 해 놓는 게 여자들의 몫이었다. 그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쑥떡이었다. 햇쑥은 아직 키를 키우기 전이라 한 나절을 뜯어 모아도 국이나 끓여먹을 정도였다. 양지바른 곳에 소복이 돋아난 것은 작은 칼로 하나씩 뜯어 쑥털털이나 전을 해먹었고, 그러고도 남은 쑥이 키를 키워 늦봄에 억세지면 낫을 들고 가 쓰윽 베어 한 자루씩 집에 가져와 말렸다. 다음해 묵은 쑥으로 떡을 해 먹기 위해서다.쑥떡을 하려면 사나흘은 필요했다. 이월을 며칠 앞둔 날에 먼저 콩을 가마솥에 볶았다. 알맞게 볶은 콩이 완전히 식으면 빻기 힘드니 따뜻할 때 디딜방아에 넣고 찧었다. 고은 채로 치고 다시 빻아서 가루를 만드는데 하루해가 갔다. 다음 날엔 지난해 말려놓았던 쑥을 삶았다. 여린 잎이 아니라 억센 쑥대를 다듬었기에 시래기 삶듯 군불을 지펴서 오래 삶아 물러지도록 했다. 다 삶기면 빨아서 하루 정도 물에 울쿼서 쓴물을 뺐다. 또 하루해가 기울었다.다음 날, 쑥은 물기를 빼 놓고 쌀을 물에 불린다. 불린 쌀을 디딜방아에 넣고 가루를 낸 후 쑥과 섞어서 또 찧는다. 그런 후 솥에 찐다. 떡보자기 째로 넓은 안반에 놓고 떡메로 칠 때에만 남자가 나섰다. 찰지게 떡이 되면 접시로 둥글려 작은 덩이로 나눈 떡에 고소한 콩가루를 묻히면 쑥떡이 완성되었다.영덕에 사는 경숙언니는 떡을 잘 만든다. 어머님이 편찮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쑥떡을 몇 되나 해 보냈다. 봄 내내 새벽기도 마치고 오는 길에 한 자루, 일마치고 남은 해가 기울 때까지 두어 자루씩 뜯어 데쳐 냉동실에 모아두었다가 쌀 양보다 쑥을 더 많이 넣어 향이 진한 진짜 쑥떡을 만들었다. 꽃보자기에 장미꽃으로 장식까지 해서 이바지음식 보내듯 정성으로 쌌다. 펴 보시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고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 데워 요구르트랑 드셨다. 항암치료가 몸에 겨워 입맛을 잃었을 때 자주 찾았던 음식이 쑥떡이었다. 떡집에서 사온 것은 입에 대지 않으셨다. 뜯는데 삶는데 품이 많이 드니 그곳에서 파는 것은 쑥이 장화신고 건너간 듯 모양만 쑥떡을 흉내 내고 있었다. 몸이 성할 때는 아무 말 없으셨던 어머니였지만 입도 속도 내 것이 아니었는지 속내를 다 보이셨다. 입이 써 질대로 써서 다른 음식은 거의 못 드실 때에도 경숙언니 쑥떡만은 맛나게 드셨다.어머님을 여의고 첫 제사가 돌아왔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것을 제사상에 올리고 싶어 경숙언니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두말 않고 쑥떡을 해서 달려왔다. 영덕에서 포항 오는 새로 생긴 기차를 타고 역에 내려서 얼른 떡 상자만 건네고 고맙다는 말도 길게 못했는데 바쁘게 돌아서 갔다. 쑥떡을 올리며 맛나게 드실 어머니 생각에 콧망울이 시큰했다.겨울 끝을 알리는 봄비가 자복자복 내린다. 어머님이 알려주었던 언덕 그 자리에 올해도 뽀얀 쑥이 어김없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소쿠리랑 작은 칼을 준비해 봄 마중을 가야겠다.*건궁말 ㅡ머리속에 윷판을 그려놓고 말을 쓰는 것.

2018-03-16

각자도생

▲ 강길수 수필가도대체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올까. 영하 10도를 오가는 날씨가 며칠씩, 몇 차례가 지나갔는데 속잎이 살아있다니. 더구나 딱딱한 콘크리트바닥과 벽의 틈바구니에서…. 겨우내 저 잎들과 뿌리는 얼마나 떨었을까. 차라리 얼어 죽기라도 했으면 살을 에는 추위의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생명의 어떤 힘이 저 잎을 저리도 처절하게 살아내게 한다는 말인가.어제 저녁, 인터넷을 보다가 믿기지 않는 기사를 만났다. 과학자들이 올겨울 북극의 기온이상 현상에 경악했다는 것이다. 저 겨울민들레는 그 기사가 말하는 기후변화에 온 몸으로 선제대응하며 사는 걸까. 민들레가 살고 있는 온대지방 이곳은 겨울기온이 영하 10도를 넘나든다. 한데, 정작 가장 추워야 할 북극은 영상을 오르내리는 이상기후를 알아채고 민들레는 발열내의라도 챙겨 입었단 말인가.민들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짝 마른 잎을 들춰본다. 추위를 참아내며 사는 푸른 속잎이 내게 물음 화살을 쏘았다.“아저씨, 그런 생각 마세요. 나도 조상들처럼 겨울엔 어머니뿌리 품속에서 편히 잠자고 싶어요. 어쩐 일인지 지금은 세상이 나를 한겨울에도 깨어있게 만들잖아요?”그랬다. 도시 콘크리트 좁은 틈바구니에 묵묵히 둥지 튼 이 민들레는, 기후변화시대를 발 빠르게 알아채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게다. 어디 민들레뿐이랴. 낮은 아파트 담장 위에 고개를 내민 장미꽃나무 가지도 물오른 버들가지같이 초록으로 물들어있다. 봄에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식물들이 실은 이 겨울에도 잠들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식물들이 다투어 시대변화에 맞추어 사는 시대를,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기후와 환경의 변화, 나라와 국제정치, 경제, 안보상황의 변화 등에 대해 머리로 생각하거나 입으로 말만 했지, 저 민들레처럼 몸으로 살지는 못하고 있다. 이 지방에 제법 큰 지진이 두 차례 지나가도, 겨우 인터넷 통해 가정과 차량용 소화기를 샀을 뿐, 생존배낭 하나 마련하지 않고 대책 없이 살고 있다.그뿐 아니다. 나라안보가 위태로워도 걱정만 할 뿐, 주위 사람들처럼 아무 일 없는 듯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웃나라 일본이나, 먼 하와이에서도 핵전쟁 발발시의 대피훈련을 한단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장 다급한 당사자인데도 아무 교육훈련이 없어도 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하나에 끼어 나도 그냥 살아간다.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간이 무생물, 동물, 식물과 다른 점은 바로 이성과 감성적 존재라는 데 있을 것이다. 이성이란 인식하고, 사유하며, 판단하고, 나아가 실천하는 힘이라 여긴다. 또, 감성이란 환경이나 자극에 대해 올곧게 느끼는 마음의 힘이라 생각한다.어떤 이는 민들레는 본능으로 살고 있을 뿐인데, 뭐 그런 걸 이성과 감성으로 사는 사람과 비유하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이 말은 식물과 그 본능은 하찮은 것이란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한겨울에도 민들레 잎이 살아야 하는 기후를 초래하게 되도록 스스로 놔두었느냐고 되묻고 싶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물질문명의 편의성 추구에만 몰두하다시피 살아온 건 아닐까. 그 결과 생물의 종은 급속히 줄어들고 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를 가져왔다면, 인간이 온당한 이성과 감성으로 살아온 존재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내 눈에 비친 나의 삶은, 비좁은 콘크리트 틈바구니에서 겨울 혹한을 억척스레 이겨내는 민들레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각자도생!`그렇다. 한겨울에도 깨어있는 민들레가 내게 보여 준 이 시대의 화두다. 식물들이 기후변화를 알아채고 발맞추어 자라나며 살듯, 우리시대 사람들도 온갖 변화에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야만 하는가보다. 각자도생의 슬픈 길을….

2018-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