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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사이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되는 명망 있는 원로시인이 하루아침에 괴물로 전락했다. 오래 전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시인이 `괴물`이란 제목의 시를 써서 그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소위 `Me too`운동으로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관행처럼 자행되어온 각계의 성폭력 실상이 하나씩 까발려지고 있다. 연극계의 대부로 군림하던 연출가, 유명 배우, 법조계 판사, 천주교 신부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잇달아 치부를 드러낸 채 백일하에 끌려나오는 형국이다. 피해자들이 겪었을 치욕과 고통이 우선이지만, 가해자들 역시 그동안 쌓아올린 지위와 명성과 업적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매도되는 현실에 여간 참담한 심정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비행이 지탄받아야 하는 것처럼 업적과 공로를 인정하는 일도 외면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다. 다만 예술과 지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와 상대의 약점을 악용해서 성적 욕망을 채우려 했다면 뒷골목 불량배들이나 다름없는 파렴치한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라도 기초가 부실한 사상누각이라면 웬만한 지진에도 폭삭 무너지고 마는 것처럼, 외관상으론 대단한 예술가나 법관이나 성직자들이 일거에 패륜아로 전락하는 데에는 뭔가 기본적인 것에 부실과 하자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사람을 다른 말로 인간이라고도 한다. `인간(人間)`이란 한자어는 본래 `사람이 사는 세상`의 의미인 `인생세간(人生世間)을 줄인 말인데, 그것이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영향이라고 한다. 아무튼 지금은 `인간관계`니 인간문화제`니 하는 말처럼 사람이라는 말보다 인간이라는 말이 더 흔하게 쓰이고 있다.`人間`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사이`다.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이라 할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성립한다는 말이고, 인간다운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도 인간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리는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말이 있다.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과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사회성이야 말로 무엇보다 우선이고 기본이다. 학식이든 지성이든 품격이든 그런 기본이 있고난 다음에야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지성과 품격을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조차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는 유치원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무엇보다 우선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치원생 수준의 기본적인 것부터 충실하게 다지는 것이 먼저다. 교육도 예술도 종교도 정치도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 훨씬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기본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훼손하고서는 어떤 교육도 종교도 예술도 이데올로기도 결코 바람직하거나 정당한 것이 될 수가 없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사회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온갖 주장과 논리가 난무하고 이해득실과 시비곡직이 난마처럼 얽히고설켜 혼란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기본을 회복하는 일이다.학벌이나 지위나 재물의 고하를 막론하고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인간은 가장 저급한 인간이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성의와 공감능력이야말로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실과 고통에 누구보다도 민감하고 절실하게 공감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들이 받을 치욕과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제 욕구를 채우는 짓을 자행해 왔다는 것에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겠는가. 사람사이에 있어야 할 기본도 못 갖춘 파렴치한이라는 말 밖에.

2018-03-02

투투쓰리

▲ 김순희 수필가스무 살 시절은 르네상스다. 그래서였나, 그 시절 두꺼비약국 지하에 있던 르네상스 커피숍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커피를 주문하면 머그컵이 아닌 받침까지 얌전하게 딸린 잔에 담겨 나왔다. 탁자 중앙에 설탕과 프림이 미리 놓여있어 티스푼으로 내 간은 내가 맞췄다. 커피를 처음 만난 날은 초등학교 2학년 설쯤이었다. 외지로 돈 벌러 나갔던 고모가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귀향했다. 보따리 중에 유리병 세 개가 든 선물 상자가 제일 눈에 띄었다. 그게 무엇일까 궁금해죽겠는데 보여주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하게 한 엄마는, 마루에 놓인 장식장에 보기 좋게 진열해 버리는 것이었다.호기심 많던 언니와 나는 그 밤을 그대로 넘길 수 없었다. 식구들의 숨소리가 잦아들 무렵 살금살금 마루로 나왔다. 뻘쭘하게 서서 잠든 장식장이 놀라지 않도록 유리문에 손바닥을 밀착해서 열고 천천히 병을 하나씩 꺼내는데 성공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하나는 과일향 가득한 주스가루였다. 시커먼 가루가 든 갈색 병에서는 나무 향 같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냄새가 났지만 하얀색 가루가 든 병은 정체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미숫가루처럼 물에 타 먹는 건가보다. 언니가 대접에 냉수를 한가득 떠오고 나는 밥숟가락으로 세 병에 든 내용물을 모두 한 숟가락씩 물에 탔다. 맛을 봤다. 밍밍했다. 가루 양이 적나싶어 한 숟가락씩 더 넣고 젓고 맛보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병의 3분의 1이 푹 내려가도록 넣고 저어도 달콤해지기는커녕 쓴맛만 더해갔다. 세상에, 고모는 왜 이렇게 맛도 없는 것을 사왔을까.다음날 언니와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끝도 없이 들었다. 엄마는 쓴 커피에 하얀 프리마를 넣고 함께 딸려온 오렌지주스 가루가 아닌 원래부터 집에 있던 설탕을 넣었다. 그러고선 숙모가 시집올 때 장만해온 하얀 사기로 된 잔에 담아 어른들부터 한 잔씩 대접했다. 어린애들은 먹는 게 아니라며 주지도 않았지만 밤새 쓴맛을 본 우린 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장롱 위에 과자세트에 만족했다.오래 커피와 알고지낸 사이지만 입보다는 코와 귀로 만나길 즐긴다. 아들은 별다방 커피가 입에 맞다 하고 남편은 집 앞에 있는 포항이 본점인 곳이 자기 취향이란다. 나는 맛보다는 향기가 더 좋다. 볶은 콩을 사와서 그라인더에 쏟아 부을 때 내는 소리가 더 좋다. 갈색 알갱이들이 금속 재질과 만나 다라랑 거리며 소복이 담기는 순간이 좋고, 뽀지락 거리며 갈리는 소리, 소리와 협연하듯 울려 퍼지는 향은 늘 맛보다 그윽하다.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신 것은 얼마 전이다. 대게를 싸게 먹을 수 있다기에 친구들과 구룡포 항구 끝자락에 자리한 조립식 건물로 갔다. 배가 있어서 직접 잡아 온다는 그 집은 정말 대게만 쪄서 나왔다. 네 사람에 열한 마리이니 넉넉했지만 까서 먹는 재미에 손이 바빴다. 한참을 정신없이 게딱지에 밥까지 비벼먹고 나니 느끼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번듯한 가게가 아니라 후식으로 기대할게 없었다. 모두 커피가 땡기는 눈빛이었다.그때 우리 방문을 열고 “커피 시키신 분?” 이러는 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기에 그 커피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다. 차보자기를 든 아가씨가 가버리고 나니 더욱 커피가 간절했다. 나는 옆방으로 가서 그 다방 전화번호를 물었다. 아가씨가 조금만 기다리라 하더니, 금세 우리에게로 건너왔다. 가져온 양이 넉넉해서 세 잔 정도는 된다며 식성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우린 그냥 알아서 해 달라 하니 보온병의 커피를 종이컵에 따르고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을 넣어 휘리릭 저어 준다. 대게와 너무 잘 어울리는 달콤한 다방커피였다.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이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칙이라도 되는 듯 학창시절 제일 번화가에 `투투쓰리`란 다방 이름이 있을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시커먼 아메리카노가 최고인양 떠들지만 우리에게 커피는 역시 투투쓰리가 정답이었다.

2018-02-23

상대로 젊음의 거리 유감

▲ 강길수 수필가`상대로 젊음의 거리`를 아침저녁 불편하게 오간다. 젊음의 거리 재조성공사가 한창 진행되기 때문이다. 공사는 지난 가을부턴가 본격화 된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해 초여름, 포항시당국에서 `정체성이 없는 음주 유흥거리로 형성된 이 거리를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로 만들기로` 하였다는 보도를 보았었다. 이를 위해 `가로환경개선사업과 유해환경개선사업, 지중화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 무렵, 새로 조성될 `젊음의 거리`에 대한 필자의 희망을 본 칼럼에 쓴 바도 있다.기술자와 작업자, 중장비들이 동원되어 연일 공사가 진행되었다. 새해가 되자, 바뀌어가는 거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도와 인도, 인도와 가로수의 경계석이 교체되고, 보도블록도 새로 깔렸다. 가로수 밑동에 보호판이 씌워지고, 통신과 상하수도의 표시판도 바꿨다. 전선지중화부대시설이 생기고, 도로한복판에도 없던 경계석이 놓여졌다. 공사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드러난 모습이 내 눈엔 전보다 더 모나고 딱딱해 보였다. 또,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드러났다.우선, 소 도로와 이어지는 곳이나 횡단보도부분의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이, 낮은 기존도로와 달리 높게 설치된 점이다. 왜 높게 했는지 모르겠다. 노약자나 어린이들, 음주한 사람들이 소 도로나 횡단보도로 갈 때는 높은 경계석을 내려서야 하는 부담과 자칫, 넘어질 위험도 안게 되었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소 도로로 갈 때도, 횡단보도처럼 내려서 끌고 가야만하도록 되고 말았다. 이곳 인도에서는 자전거를 아예 타지 말라는 뜻인지 모르겠다.다음, 가로수의 경계석과 보호판이 사각형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보호판은 포항시가 표시되어있어 시당국의 주문제작품이다 싶었고, 중간의 무늬들도 모두 사각형이다. 나무 둥치부분의 큰 원형구멍과 네 모서리의 타원형구멍 네 개가, 사각모양과 무늬들의 딱딱함을 다 완화시킬 수 없어 보였다. 인근 다른 도로의 가로수 경계석과 보호판은 원형으로 많이 설치되어 있다.그 다음, 새로 놓는 도로 중앙의 분리경계석은 무슨 용도일까 하는 의문이다. 이쪽 인도에서 건너편 인도로 가지 말라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다 완공되어 봐야 알겠지만 내 눈에는 소통을 막는 설치물로 보였다.인간은 환경적 존재이다. 인간의 환경을 자연환경과 인위적 환경으로 나눈다면, 도시인들은 자연환경보다는 인위적 환경의 영향을 더 받으며 자라나고 산다. 그러기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이곳을 시당국에서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조성공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문화거리`란 어떤 환경이어야 할까. 당국이 애초에 구상하고 설계했던 문화거리가 지금 나타나는 모습이었다면, 실망감이 앞선다. 설계자는 당국과 참여 주민들의 뜻을 가로환경설계에 반영했을 텐데, 위에 열거한 문제점 같은 것들은 사소하다고 무시해버린 걸까. 도형심리학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여러 모양들이 어우러진 이 거리의 환경이 찾는 이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자연처럼 모나지 않는 거리환경이 요구된다.문화는 `소통`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소통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바로 왕래와 친교에서 시작되고, 친교는 모나지 않는 성격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새로 조성되고 있는 `상대로 젊음의 거리`는 소시민인 내 눈에는 오히려 전보다 더 왕래와 친교를 막는 느낌이 든다. 자전거를 타고 진입하기 어려워졌고, 맞은편으로 건너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할 판이다. 또, 새로 설치되는 인도의 기물들은 대부분 사각형이어서 딱딱해 보여 마음이 불편했다.남은 공사에서만이라도 세세한 부분까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정서에 끼칠 작은 영향까지 깊게 고려하여 시행되었으면 참 좋겠다.

2018-02-09

청빈(淸貧)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옛날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헌 나무통을 집으로 삼고 몸에 걸친 누더기 한 벌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양지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데 알렉산더대왕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한 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기도 했던 알렉산더는 그리스에 훌륭한 철학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였지요. 그런데 막상 거지꼴을 하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보자 존경심보다는 우선 딱한 생각이 들어서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좋은 옷과 편히 살 집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어서였겠지요.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자기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알렉산더대왕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은 지금 내가 쬐고 있는 햇볕을 가로막고 섰으니 옆으로 좀 비켜나 주시오. 내 소원은 그것뿐이오.”그제야 알렉산더는 자기가 디오게네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만일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이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장면입니까? 천하를 손아귀에 쥐고 호령하던 영웅 알렉산더의 권세와 위용도 디오게네스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비폭력 불복종의 저항으로 대영제국의 식민통치를 인도에서 몰아낸 마하트마 간디 역시 유산으로 남긴 거라고는 손수 실을 잦던 물레 하나와 걸치고 다니던 옷 한 벌, 안경과 필기구 정도가 고작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간디의 위대성이 재물이나 권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청빈함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20세기의 성녀로 추앙받는 테레사 수녀도 그 자신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 전 세계의 수많은 고아들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힐 수가 있었던 것이었고요.우리나라에도 청빈의 전통이 있었지요. 조선조 초기 명제상으로 알려졌던 황희는 거의 평생을 관직에 있었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의 자리에만도 18년이나 있었지만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새는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울타리도 없이 초라한 그의 거처를 방문했던 세종대왕이 그의 그런 생활을 몹시 부러워했다는 일화도 있는 걸 보면, 그의 가난함이 결코 그를 옹색하거나 초라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지요.지금 우리는 물질만능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재물은 많이 가질수록 좋고 돈이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풍조는 전염병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고 자라나는 아이들까지 이미 감염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평수가 능력의 척도가 되고 자동차의 크기가 인격을 대신한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통념이지요. 그래서 많이 가진 사람들은 기고만장하고 못 가진 사람들은 기죽고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합니다. 그러니 부와 권세를 잡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지요. 권모술수와 부정부패를 능력으로 생각하고 불법과 무질서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때 부와 권력을 누리고 휘두르던 사람들이 줄줄이 적폐세력으로 엮여서 철창으로 들어가고 돈 때문에 자행되는 끔찍한 패륜 사건들을 보면서도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요.청빈(淸貧)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성품이 깨끗하고 살기가 가난함`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동서고금의 성인현철들이 한결같이 청빈을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실천한 것은, 그저 단순한 안빈낙도나 자기수양을 위한 방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청빈한 삶이 어째서 시대착오적인 현실도피나 패배주의가 아니라 부패하고 혼탁한 시대를 준열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가장 아름답고 참된 삶의 덕목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파멸로 치닫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지속 가능한 것이 되게 할 유일한 길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깨닫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2018-02-02

가는 날은 장날

▲ 김순희 수필가포항에는 오일장이 열리는 곳이 많아서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주말이면 장기에 있는 시댁에 자주 가게 되는데 집을 나서며 2일·7일이면 흥해장, 4일·9일이면 안강장, 5일·10일이 들어간 날이면 반드시 오천장에 들른다. 오늘은 드라이브도 할 겸 빙 둘러가는 길을 택했다. 3일이니 구룡포 장날이다. 잘 뚫린 영일만도로를 타고 가다 미끄러지듯 내려서면 푸름한 바닷내음이 가득한 항구가 나타난다. 고깃배들이 우리보다 먼저 달려와 일렬로 서 있는 부둣가 주민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시장이 가깝다.입구는 조금 더 가야 나오지만 나는 샛길을 좋아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어깨가 맞닿아 비켜서기도 힘든 지름길로 가는 것이 더 재미지다. 그 좁은 골목길로 살곰살곰 들어가면 시장의 중간쯤이 나타난다.오늘은 운이 좋다. 넓은 어시장이 있는 죽도시장에 가서도 시간이 맞아야 볼 수 있는 개복치 해체 작업을 구룡포에서 보게 된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가려던 길도 잊은 채 아예 붙어 서서 보았다. 우리 마음을 아시는지 뭘 살거냐 묻지도, 가라고 떠밀지도 않고 능숙하게 칼질 삼매경 중이다.아주머니에게 우리가 먹는 하얀 묵이 살로 만든 것인가 묻자 내 얼굴을 힐긋 보더니 “껍질을 묵지. 살은 조안에 따로 비지요?” 두툼한 살인가 했던 것이 껍질이란다. 참 얼굴도 두꺼운 녀석이다. 언뜻 보면 머리뿐인 개복치니 말이다. 관광객인지 모녀가 지나가며 “고래를 잡나보다”하고 중얼거렸다. 개복치라고 고쳐 말해주니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처음인 물고기라며 이름을 다시 묻는다. 개.복.치.남편은 아버님이 기다리니 그만 장을 보러가자고 재촉이다. 한 봉지 사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구룡포장에 가면 우리가 꼭 들르는 곳은 국수공장이다. 가게 안쪽 마당에서 해풍에 노랗게 말린 국수를 주인할머니가 아들과 썰고 계셨다. 구경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그러라 한다.할머니 시집살이만큼 오래된 기계에서 뽑은 면은 대나무 발에서 바람과 햇살을 받아 바싹 마른다. 마른 국수발은 두툼한 전용 칼로 쓱싹 눌러 자르는데 국수 부스러기가 투두둑하고 떨어진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내가 이건 버리느냐고 물으니 다 쓸데가 있단다. 새 키우는 사람들이 가져가 사료로 쓴다고 한다. 때 마침 참새가 발밑에 떨어진 국수를 쪼으러 포르르 날아들었다. 이 집 국수가 맛있는 건 하늘 위에서도 잘 보이나보다. 마트에서 파는 국수보다 삶아 놓으면 쫄깃한 맛이 일품인 `제일국수`는 할머니의 오랜 손맛과 해풍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몇 해 전에는 물려 줄 자식이 없어서 나 죽으면 문 닫는다 하셨는데, 오늘은 아들이 일을 배우기로 했다며 웃으시는 입가에 자랑스러움이 잔뜩 묻어난다. 예전에 장날에만 국수를 만들어 판다던 말이 생각나 여쭈니 “무신날에도 한데이~”하며 허리를 펴신다.시장 입구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며 건어물가게에서 코다리 두 두름을 흥정해서 4천원 깎았다. 값을 치르며 시장의 가게이름들을 보니 구룡포인데 장기 기름방, 오천 떡집, 영주 한약방 같이 다른 고을이름을 달고 있다. 거스름돈을 거슬러주시며 다들 고향이 그곳들이라 붙인 거라고 했다. 철규 분식처럼 자식 이름을 붙인 가게도 여럿이었다. 떠나온 곳이 그리운 이는 나고 자란 고향을 머리에 이고서 그리워하고, 집 떠난 자식이 보고픈 이는 자식 이름을 걸어놓고 치열한 삶을 살며 그리움을 달랬다.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지헌이엄마가 된지 25년. 아들이 기숙사로, 원룸으로 살림을 난 지 5년이 넘었다. 현관문에다 지헌이네집이란 팻말을 달아야 할까보다.구룡포 시장에서 찬거리를 두 손 가득 샀다. 그리움을 덤으로 얹어서 그런지 더 푸짐했다. 오일장에는 흔한 바코드 대신 오래 묵은 흥정이 있다. 내가 오일장에 자주 가는 이유이다.

2018-01-26

앙상한 가지

▲ 강길수수필가 세레나!설밑과 설 무렵에는 앙상한 가지와 함께 사는 행복이 있습니다. 낙엽수가 못 사는 지역이나 열대지방 또는,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행복일 것입니다.앙상한 가지가 무에 그리 행복감을 주느냐고요. 그러게요.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요. 예전엔 앙상한 가지를 보면 상실감과 허무감이 온몸에 스며들곤 했었는데, 왜 그리 되었는지 꼭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앙상한 가지와 함께 살며 한해를 보내고 맞이한 연륜이 깊어져 서로 길든 게 아닌가싶어요.언제였던가요. 꿈 많던 고교시절 한해를, 우린 학생회 활동으로 함께 보냈었지요. 설밑에 헤어져, 삼 년만엔가 군에 가며 잠시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이었잖아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설밑 거리의 앙상한 가지 아래에서, 까까머리시절과 세레나가 떠오른 건 웬 조화일까요. 사람의 마음은 무엇이기에 제멋대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고 하는 걸까요.사람의 마음도 나이가 드는지, 안 드는지 헷갈립니다. 시대와 세월이 탄환보다도 빠르다 싶을 땐 마음도 나이가 드는 것 같고, 앙상한 가지로 인해 옛날이 오늘 같을 땐 마음은 나이가 들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나이가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심사를 세레나도 헤아릴 테지요.세레나.앙상한 가지가 내겐 결코 작지도, 좁지도 않았습니다. 칼바람 막을 옷 모두 벗고 당당히 겨울을 이겨내는 앙상한 가지 사이로, 새봄 기다리는 가지의 눈 위로 하늘과 해와 달과 별, 산과 바다와 들과 강을 다 담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크기와 씀씀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을 세레나도 알리라 믿어요.낙엽수는 가을이 오면 잎을 떨구어 겨울을 준비합니다. 어릴 때부터 무수히 보았기에, 나무에서 왜 낙엽이 져야하는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먼 길을 오고 말았지요. 머리가 희어져서야 낙엽과 앙상한 가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무 연구자들은, 물이 부족해지는 겨울에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낙엽이 진다고 합니다. 살기위해 오히려 버리는 지혜를 선택한 앙상한 가지….두 주체가 서로 길들여지면, 상대방을 자기처럼 알고 느끼며 살게 되는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물론, 사람과 사물사이도 같다 여깁니다. 앙상한 가지와 길들여지는데 많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아둔한 나는 겨울방학 때 산에서 땔나무를 하는 등, 앙상한 가지와 함께 숱하게 살아내면서도 그 가지에서 새봄을 느끼지 못하며 자랐습니다.그저 나무와 풀, 자연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남들 따라하며 지냈지요. 아직 잔설이 응달에 남은 이른 봄, 진달래 개나리가 피기 전부터, 동네 뒷도랑 가에 핀 버들강아지를 따 먹고,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놀았습니다. 동무로 놀면서도 버드나무가 목마르게 새봄을 기다리는 사실을 그땐 왜 느끼지 못한 걸까요.세레나!어찌하겠습니까. 머리에 서리가 내린 후에야 사람의 삶도 앙상한 가지의 삶과 다를 바 없어야 한다는 걸 알아채고, 길들여져 가니 말입니다. 이제라도 길들여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요. 고맙습니다. 타령 같은 이 말을 받아주니까요. 동 서양의 여러 선각자, 성현들이 설파하거나 보여준 삶이, `사람도 앙상한 가지같이 한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면 누가 될까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가정과 가정 사이, 단체와 단체 사이, 지방과 지방사이, 정파와 정파사이, 나라와 나라사이도 앙상한 가지 같이 버릴 것 버리고, 새봄을 향해 서로 길들여지면 참 좋겠습니다.설밑과 설 무렵엔, 앙상한 가지사이로 올 아지랑이새봄의 행복을 함께 누립니다.

2018-01-19

겨울 보리밭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겨울 보리밭을 보러 간다. 보릿고개와 함께 보리밭도 거의 사라져서 이제는 보기가 쉽지 않다.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겨울이면 온 들판이 다 보리밭이었다. 밭은 물론 벼를 베어낸 논에까지 이모작으로 보리를 심었다. 혹한의 겨울에도 끝내 푸른빛을 놓지 않고 견디었다가 봄이면 제일 먼저 생기를 띠고 자라나서 이 땅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던 보리밭. 가냘픈 보리 싹이 얼어붙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월동하는 보리밭이 내게는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보다도 훨씬 더 마음에 와 닿는 세한의 풍경이다.이 땅에 살아있는 생명들은 모두 겨울이 닥치기 전에 월동준비를 한다. 풀들은 서둘러 씨앗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고 나무들은 잎을 다 지우고 수액이 얼지 않게 몸 안의 수분을 줄여 최대한 빙점을 낮춘다. 잎을 지우지 않고 겨울을 나는 상록수들도 두꺼운 잎이나 바늘잎으로 단단히 채비를 하고. 동물들도 털갈이를 하거나 땅속에서 동면을 한다. 곤충들은 대부분 알을 남기고 생을 마친다.그런데 보리는 거꾸로 가을에 싹을 틔우고 벌거벗은 아이처럼 어리고 여린 잎으로 겨울을 난다. 땅마저 어린뿌리에 서릿발 칼날을 들이대는데 보다 못한 하늘이 눈이라도 내리면 차가운 눈을 솜이불인 양 덮고 삭풍을 피한다. 흔히들 서리를 맞고 핀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고, 겨울에도 잎이 푸른 송죽(松竹)의 기상과 절개나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동백과 매화의 단심과 고결을 찬양하지만 어찌 저 겨울보리의 막무가내에 비길 것인가. 절개니 품격이니 하는 수사가 오히려 사치스러운 저 어처구니없는 맹목은 무엇이란 말인가.한 사발의 보리밥이 무엇보다 절실하던 시절이 있었다. 멀건 나물죽으로도 가파른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면 아직 다 여물지도 않은 보리를 베어다 풋바심을 했다. 설익은 보리 이삭을 솥에 쪄서 말렸다가 절구에 찧으면 풋바심한 보리쌀이 되었다. 그걸로 밥을 지으면 껍질이 말끔히 벗겨지지 않아 입안 감촉이 좀 껄끄럽고 보리풋내가 나긴 하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엔 더 바랄 게 없었다.반세기가 넘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풋바심한 보리밥의 맛과 감촉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다. 보리밥 한 사발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때의 그 소박하고 왕성한 식욕은 왜곡되고 변질되지 않은 원초적 건강성이었다.겨울 보리밭 앞에서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들까.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몰래 가져오기 전에는 백성들이 무엇을 입고 겨울을 났을까. 귀족들이야 비단이나 수입품으로 얼마든지 겨울옷을 지어 입었겠지만,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은 목화솜과 무명천도 없이 어떻게 겨울을 났을까. 짐승의 털가죽이라도 구하지를 못하면 삼베옷으로만 겨울을 나지 않았을까. 저 겨울보리처럼 헐벗은 채 막무가내로 겨울을 나다가 숱하게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세계 십위권의 경제대국에다 국민소득 3만 불에 육박하는 대한미국은 이제 헐벗고 굶주림에서 한참을 벗어났다. 영양실조 대신 비만을 걱정하고 먹고 남긴 음식쓰레기가 골목마다 넘쳐나고 못다 입고 버린 옷가지들이 산더미 같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 잃은 것은 없을까. 자살자가 늘어나고 함부로 남의 목숨도 해치는, 심지어는 제 자식까지도 죽여서 태연히 암매장하는, 이 극에 달한 패륜과 생명경시 풍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겨울 보리밭 앞에서 오래 발길이 머문다. 얼어붙은 땅에서 가냘픈 잎과 뿌리로 혹한의 계절을 견디는 저 겨울 보리가 보여주는 생명이란 얼마나 경이롭고 엄연한 것인가. 나도 덕지덕지 껴입은 미망과 허위의 옷가지를 벗어버리고 살을 에는 삭풍의 채찍 앞에 서고 싶다.

2018-01-12

번와

▲ 김순희 수필가밤마다 그림 같은 달을 뱉어 낸다는 죽장 토월봉 아래 입암서원이 앉아있다.말 그대로 서있는 바위인 입암으로 오는 길은 세 갈래이다. 안동에서 청송을 지나오는 북쪽 길, 포항 영천을 거쳐 오는 길은 남쪽이다. 죽장에서 동쪽으로 난 상옥 하옥으로 가는 길이 세 번째인데 이 길은 비포장이다가 이제는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 드나들기 편해졌다. 등짐장수들이 오랫동안 걷고 걸어서 낸 그 길에 기대어 조금 더 넓은 길을 냈다. 어딘가 의지할 데가 있다는 것은 아는 길을 가는 것과 같이 마음이 푸근해진다.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선바위가 우리를 반긴다. 서원의 문지기인양 늠름한 모습에 떠들던 일행의 발길이 다소곳해진다.조선 중기 장광 여헌 선생께서 입암으로 오신 것은, 따르는 제자들의 권유를 받기도 했고 난리를 잠시 피하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마을에 와 보고는 진심으로 이 마을을 사랑하셨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떠나 있을 때도 몹시 그리워하다 마침내 당신이 돌아가 누울 자리로 여기를 택했다. 선현이 사신 곳이니 명예롭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곳이어서 더욱 뜻 깊은 곳이다.서원 앞 들이 농부가 구름을 간다는 `경운야`이다. 구름 속에 가려진 산비탈에서 소를 모는 농부의 목소리가 구름을 뚫고 들려온다. 농부는 밭을 갈다가 흥에 겨워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마저 갈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서원 앞 들이 비에 젖었다. 물안개 자욱한 저 들에 여헌 선생은 무슨 씨를 뿌렸을까 궁금해졌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보는 이의 마음이 아름다움을 낳는 것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느낀다.서원의 마당에 섰다. 가만히 지붕을 올려다보자니 대부분 새기와 인데 중간 몇 골의 기와에만 이끼가 얹혀 있다. 번와를 한 모양이다. 번와란 기와를 뒤집어 새로 간다는 뜻이다. 기와를 새로 잇는 작업을 할 때는 아무리 낡아도 전부 다 새것으로 갈 순 없다고 한다. 원기와를 십 분의 이 이상을 남겨야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서까래든 기둥이든 전통건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보수를 할 때 이 원칙을 꼭 적용한다고 했다.번와장이는 지붕 위에서 네 발로 기다시피 일을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서 장기를 두 듯 일을 한다면 기와 골의 이가 제대로 맞는지 금세 알 수 있지만 지붕 위에 엎드려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기와를 얹기엔 너무 번거로운 과정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솜씨 좋은 번와장이 우리나라에 흔치 않다고 한다.번와에서 살아남은 몇 골의 기와를 보니 더 정이 갔다. 오래 써서 낡은 것이지만 먼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경험치를 인정받은 것 같다. 새로 자리를 옮겨 앉은 기와들이 혹여나 제자리 못 찾고 낯설어서 들뜨기라도 할까 봐 중간에 앉아 군기를 잡고 있어 든든하다.이끼 긴 기와를 보니 어머님이 생각났다. 살림의 고수답게 서투른 나를 늘 일깨워 주셨다. 긴 투병 끝에 어머님을 여의고 얼마 전 49재를 지냈지만, 그제 증조부 제사를 지낼 때 삼색 나물을 삶는 내게 늘 무르게 데치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간장독이 바닥을 보인다는 동서의 말에도 메주 만들어 달며 짚으로 매듭짓는 방법을 꼼꼼히 일러주던 말씀이 새록새록 새겨졌다. 어제는 지인이 건네는 쑥떡을 보면서도 어머님이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 즐겨 찾던 음식인데 싶어 목이 메었다.건물을 깁는 일보다 새 건물을 세우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번와 할 때도 모두 새 기와일 때 더 보기에 깔끔할 것이다. 하지만 원래 것은 그 자리에서 바람과 비를 견뎠고, 그 곳에 살다간 이들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있다.비에 젖은 마을의 둘레 길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다 문득 돌아보니, 새로 들어온 새기와가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이끼 낀 오랜 기와가 힘을 보태고 있는 입암서원의 지붕이 훤해 보였다.

2018-01-05

설밑

▲ 강길수 수필가올해도 열흘이 못 남았다. 설밑이다. 이달 초까지도 살아서 꽃피우던 까마중도 몇 차례의 강추위에 얼어 말라가고 있다. 자연의 섭리, 계절이 강제로 까마중의 생명을 걷어갔다. 해마다 설밑이면 `또 한해가 갔구나!`하고 파고드는 생각에, 세월과 가장 밀도 높게 서로 마주대하며 살아왔다. 웬일인지 올 설밑엔 까마득한 옛 생각이 떠오른다. 봄을 맞으며 군에서 제대하고, 한해를 고향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취업준비로 보내게 되었다. 때마침 어떤 인연으로 한 아가씨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펜팔이 된 것이다. 글 쓰는 취미를 가진 그녀의 편지는, 농사일과 취업준비란 부담을 가지고 지내는 내게 요새 유행말로 `사이다`였다.그해 설밑이 되었다. 나는 `세모(歲暮)`란 서툰 시 한 수를 답장에 써 보냈다. 어찌해서 그리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공교롭게 그 시의 세 번째 연이, 올 설밑 내 마음과도 닮아 보인다, 어쩌면, 많은 이들의 설밑마음도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세모야/ 냉랭한 별빛 속에 이어지는/여로처럼/네 꿈과/네 삶이 남긴/자국은/숲 속 오솔길의/옛이야기 같이 남았는가?”세월 곧, 시간이란 무엇일까. 나와 무관하게 흐르는 것 같은 시간 앞에 서면, 실상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존재라는 것을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 나란 실존은 만물과 함께 시간의 큰 수레에 실려 싫든, 좋든 어디론가 강제로 가고 있다는 사실. 설밑만 오면 덧없이 가는 세월이 더 진하게 사람의 가슴을 물들이는 것이다.백과사전의 `시간`을 열람해본다.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 특수 및 동시상대성이론 등이 적혀있다.또 철학과 종교들에서 말하는 시간의 개념들도 많고, 융의 동시성이론도 요약되어 있다. 그럼에도, 결론은 아직 `수수께끼`란다. 전문가들이 그럴 진데, 범부인 내게는 시간이론들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바람(風)같다.왜 시간은 한 방향 즉,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만 가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대로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대로 젊어지기도 하고, 늙어지기도 하며, 태어나기 전에도 가보고, 먼 미래도 가볼 수 있는 세상. 상상만 해도 신나지 않은가….타임머신이란 기계도 시간의 한 방향성 때문에 사람이 상상한 유토피아의 하나일 거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란 현존 앞에서 대립과 타협, 희망과 절망, 무관심과 기도를 번갈아 체험하면서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또 살아갈 것이다.인간도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이 유한한 생명임을 아는 한, 시간이란 절대자 앞에서면 마음 비우지 않을 수 없다는 진실을 만나는 설밑….시로 편지의 답장을 쓴지 강산이 몇 번 바뀐 세월이 흐른 설밑을 맞아, 내 마음 안 판도라의 상자에서 되살아 나온 시 `세모`….지금 다시 보니 풋풋한 스무네 살 청년의 싱싱함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때도 요즈음 못지않은 청년취업난에 위축되어 살았기에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꿈꾸며 살고 싶어 네 번째 연과 마지막 연은 이렇게 맺고 있다.아가씨는 그때 이 시를 어떻게 보았을까.“세모야/만추의 황혼 속에 낙엽 져/소망하는 가지처럼/꿈꾸는 제야의 종소리/퍼지면/진홍 태양과 함께/찬란한 원단이/밝아오고야 말리니…. /자,/세모야/우리 함께 노래하자꾸나”

2017-12-29

청둥오리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겨울 들판에 청둥오리들이 내려앉는다. 내몽골이나 시베리아 어디쯤에서 덜 추운 곳으로 월동을 하러 온 철새들이다. 충남 아산의 곡교천에 날아온 청둥오리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해보니, 3월 말경에 700km 거리인 중국 랴오닝성 선양으로 날아가서 약 2주일간 머문 뒤에 다시 670km를 날아서 서식지인 내몽골 힝간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11월 말에 다시 내몽골을 출발해서 갈 때와는 달리 중국 지린성과 압록강을 거쳐 12월 초순에 아산의 곡교천으로 돌아온 여정도 알 수가 있었다. 청둥오리는 오로지 맨몸 하나로 살아간다. 옷도 입지 않고 집도 없고 돈도 신분증도 지닌 것이 없다. 조금 덜 추운 곳에서 겨울을 나려고 수천 리 먼 하늘을 날아 여기까지 왔다. 잡식성이라 풀씨나 곤충 등을 먹이로 한다지만 그 많은 무리가 이 얼어붙은 땅에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놀라운 일이다. 요즘은 볏짚조차 소 먹이로 다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들판에 떨어진 이삭도 별로 없을 것인데, 맨몸으로 혹한을 견디는 것도 그렇고 더없이 열악한 생존 환경임에도 비관하고 좌절하거나 우울해 하는 기색이 없이 다들 참 씩씩해 보인다. 수십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녀도 영토나 먹이를 두고 싸우는 걸 본 적도 없다.겹겹이 옷을 껴입고 겨울 들판에 서서 청둥오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야 더 안심이 되고 행복할 거라는 강박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쟁과 성과를 위해 소모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대단한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되었는지. 그래서 어떤 비전과 보장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인지.이사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군더더기가 많은지. 사람이 사는데 온갖 생활용품이며 옷가지들은 왜 그렇게 쌓이는지. 우리나라 보통 사람 하나의 의식주에 드는 물품과 비용이면 아프리카 난민 수십 명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것이다. 더구나 그 모두가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산물이 아니던가.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행복을 싫어하고 불행해지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땀 흘려 일을 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것도 다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그래서 얼마나 더 행복해 졌는가. 국민소득이 수십 배나 높아지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왜 자살자가 늘어나고 범죄는 날로 흉포해지는 것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일인가.절대빈곤을 벗어나 경제대국의 반열에 든 우리나라에서는 욕심을 버리면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가 있다.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욕심과 어리석음에 눈이 멀어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비관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슨 일에든 성실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의식주를 해결할 수가 있지만 사람이 어찌 밥으로만 살겠는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위해서는 여가생활도 있어야 하고 요즘 한창 인구에 회자되는 인문학적인 콘텐츠도 필요하다. 그것 역시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돈을 들이지 않고도 최고의 음악과 문학과 미술을 향유할 수가 있는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수가 있고,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도 영상으로 볼 수가 있다. 관심과 열성만 있으면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도 마음껏 누릴 수가 있다. 예술과 철학과 종교와 역사 등 어느 분야든지 최상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길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 방안에 앉아서 세상 구석구석의 풍물을 구경할 수도 있게 되었다.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그런데도 무엇을 더 가지려고 아득바득하는지를 저 겨울 들판의 청둥오리들이 돌아보게 한다.

2017-12-22

장사꾼과 가재미

▲ 김순희 수필가몇 해 전 이맘때쯤이었다. 지나가던 승용차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아가씨, 길 좀 물어봅시다. 대보파출소가 어디쯤이죠?”차 번호판이 타지인 걸 보니 한참을 헤맨 것 같았다. 여기는 장기면인데 대보면이라면 정반대 방향이라 길을 영 잘못 들었다. 찬바람이 휘감는 쌀쌀한 날씨라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가씨`라고 불러준 말이 내 기분을 한없이 들뜨게 했다. 기분대로라면 대보파출소까지 안내해주고 싶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를 되돌려 가라고 손으로 약도까지 그려 알려준 후,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집에 들어가서 떠들었다. 남편은 또 장사꾼에게 속았다며 웃어넘겼다.요즘은 동안(童顔)이 대세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길 원하는 게 대다수 여자의 바람일 것이다. 동안의 원래 의미는 나이 든 사람의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일컫는다. 최근엔 사회적으로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하였다. 젊다는 말에 노여워할 사람은 없다.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려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화장을 하고, 변장을 서슴지 않는다. 때론 분장의 수준을 넘어 가면을 쓰기도 한다.다음날 죽도 시장에 갔다. 장볼 것이 많다고 어머님과 손위 시누이도 함께였다. 채소 가게를 먼저 들렀다. 주인아주머니는 시금치 한 무더기를 올려놓으며 나에게 눈짓을 곁들여서“아가씨, 덤으로 마이주께.”한다. 이 말에 어머니는 박장대소를 했다.“아이고, 아가 대학생이구만. 옆에 있는 이 아는 아가씨 안 같은교?”어머님의 손길은 시누이를 향했다. 당신 딸이 장성한 아들을 둔 중년인데도 아가씨 소릴 듣기 원하셨고, 어시장 좌판에 문어와 개복치 무게를 달 때도 `젊은 아지매가 야무지네` 라는 소리에 스르르 지갑을 여셨다.늦은 밤, 잠자리에 누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가만히 듣더니 남편은 가재미들의 대화라며 피식 웃었다. 가재미? 장삿속에 늙은 나를 아가씨로 보는 채소 아줌마의 눈이 가재미고, 오십 넘은 딸도 아가씨로 봐 달라는 어머니 눈도 가재미처럼 돌아갔고, 장사꾼 말에 기분 좋아서 낄낄거리는 내 눈도 가재미라고 놀렸다.남편은 옆에서 쉽게 코를 골지만 나는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잡념삼매경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나를 아가씨라 부르는 사람은 남편 말처럼 장사꾼이거나, 나보다 연배가 훨씬 높은 어른들이었다. 장사꾼이야 손님 기분을 맞추려고 거짓말을 보태는 것이고, 나이 든 어른들 눈에야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이 다 젊은이로 보일테니 그저 아가씨라고 불러줬을 것이다.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이나 서로 기분 좋자는 뜻일 게다. 그 생각이 나를 더 잠 못 들게 했다. 잠을 잘 자야 피부가 고와진다는데 말이다.동안의 전제 조건은 젊게 보이는 피부라고 한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칙도 많았다. 물 많이 마시기, 매일 운동하기,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기 외에 잠도 함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옆으로 누우면 눌린 얼굴에 주름이 생기니 똑바른 자세로만 자야 된다. 나는 왼쪽으로 누워야 잠이 잘 오고, 물을 많이 먹은 다음 날엔 몸이 퉁퉁 부어오른다. 그러니 내가 아가씨 소릴 듣는 것은 분명 접대용이다.얼마 후, 친정엄마가 무릎에 인공 관절을 해 넣으셨다. 중환자실에서 꼬박 한 달을 보내며 물리치료실을 오갔다. 오래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 찾아오는 친척이 많았다. 이모부 내외분도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오셨다. 병문안 오신 이모부는 아픈 엄마도 위로했지만, 옆에서 병시중 하는 나를 더 챙겼다. 오랜만에 봐서인지 아이들 안부부터 물으셨다. 둘째가 고등학생이라 했더니,“아직도 아가씨 같은데 아가 벌써 고등학생이가?”아가씨란 말에 옆에 있던 남편이 가재미눈을 뜨고 대답했다.“이모부님도 장사 하는교?

2017-12-15

까마중, 도시빈터를 살다

▲ 강길수 수필가세상에는 알고 보면 겉보기와 다른 것들이 많다. 까마중도 그렇다.지난 봄, 걸어서 출퇴근하는 길옆에 한 주택의 철거작업이 있었다. 중장비가 동원되더니 이틀만엔가 다 헐렸다. 빈터에는 산을 깎은 것으로 보이는 흙이 두툼하게 깔렸다. 새 흙이어서 당분간 풀도 없는 맨땅이겠구나 생각하고 관심 없이 지나다녔다.얼마나 지났을까. 아마도 봄비가 내린 다음 어떤 날이지 싶다. 새 땅에 어린 싹들이 많이도 돋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자라나자 새싹들이 까마중이란 것을 알았다. 신기했다. 까마중은 오륙십 평 되어 보이는 도시빈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였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행운이다! 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까마중을 만나다니, 그것도 도시빈터에서…. 올 한해는 출퇴근길을 까마중이 살아내는 모습 보며 심심찮게 지내겠구나!”그랬다. 시골에서 자라났지만, 한 곳에 이렇게 많은 까마중이 서식하는 것은 본적이 없다.어릴 때 우리 친구들은 까마중을 `개머루`라 불렀다. 아마 누군가 열매가 머루를 닮아 그렇게 부른 것이 이름이 되었지 싶다. 나중에야 표준어가 까마중임을 알았다. 그 외에 가마중, 강태, 깜푸라지, 먹딸기, 먹때꽐, 까마종 등 다양한 이름들도 있다는 것을 온라인으로 배웠다. 뿐만 아니라, 한약재나 나물로도 쓰인다는 사실도 알았다.6·25 전쟁 직후, 보릿고개를 넘던 시골 아이들에게 까마중열매는 감칠맛 나는 주전부리였다. 길가, 밭둑, 담장 밑, 집 뒤란, 도랑 가 등 동네 주위에서 흔하게 만나던 까마중…. 여름부터 가을까지 까만 열매가 동자승머리같이 반질거리면, 아이들은 놀다가 수시로 따먹었다. 입안이 까맣게 변하도록 먹는 날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탐스런 열매가 입안에서 톡 터지면, 맛세포로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이었다. 부주의로 덜 익은 열매가 입에 들어가 으깨질 때면, 온 입안을 콕콕 찔러대던 아릿한 맛이 톡톡 쏘는 사춘기소녀의 매력마냥 지금도 미뢰속에 남아있다.어떤 연으로 도시빈터에 군락으로 살게 된 까마중은, 도회사람들에게는 관심 밖의 존재인가보다. 정면에 철제펜스가 막고 있지만, 옆으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런데도 열매를 따 먹거나, 나물이나 약재로 쓰기 위해 채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 혼자만 비밀스레, 아침저녁으로 낯선 도시빈터에 태어난 까마중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봄, 여름, 가을을 지냈지 싶다. 새 땅에 거름기도 없을 텐데, 까마중은 무럭무럭 잘도 자라났다. 초겨울 까만 열매를 조롱조롱 많이 매달았어도, 할 일이 남았는지 하얀 꽃을 바지런히 피운다. 서리에 잎과 줄기가 검은 빛이 감돌고 일부 잎은 조금 말라도 개의치 않고, 겉보기와 달리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까마중도 우리나라처럼 노령화시대에 접어들어 노후준비가 덜 된 걸까. 아니면 지구촌의 기후변화 때문일까. 길가에 고인 물이 어는 초겨울 날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연약해 보이지만, 여느 풀 못지않게 강인한 까마중. 혼자건, 여럿이건 따지지 않고 의연히 사는 까마중. 외진 곳과 번잡한 곳, 황무지와 비옥한 땅, 양지와 음지,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의 틈새 같은 곳을 묻지도, 가리지도 않고 잘도 살아내는 까마중….까마중은 겸손하고 온유(溫柔)하며, 사랑과 부활을 사는 풀이다. 자신을 다른 생명에게 먹이로 내어주는 사랑을 행함으로써, 자신도 부활하는 삶을 사는 까마중이다.까마중열매 몇 개를 따 입에 넣어본다. 맛이 옛날 그대로다.초겨울 하루. 싸늘한 해가 서산을 베고 눕는 시각에도 까마중 하얀 꽃은, 집 헐린 도시빈터 가득 배시시 웃고 있다.나도 까마중처럼 살면 좋겠다.

2017-12-08

불안과 공포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땅이 흔들렸습니다. 모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인간이 땅 위에 쌓아올린 온갖 것들이 한낱 사상누각이었습니다. 사람들, 문을 닫아걸었던 집을 뛰쳐나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서성거렸습니다. 평수를 늘리고 공들여 가꾼 집도 더 이상 아늑한 보금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의 바벨탑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새삼 절감합니다.”작년에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놀란 가슴으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의 일부입니다. 이번에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밑에서 또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호랑이를 보고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을 했는데 또 다시 호랑이를 만나 혼비백산한 격이랄까요.작년보다 진도는 낮다고 하지만 지표에서 얕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이라 피해의 정도나 체감한 충격은 더 큰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되풀이 되는 여진으로 인해 배가된 불안과 공포는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불안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외에도 사고나 질병, 자연재해 등 살면서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없을 수가 없지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요소까지를 포함해서 불안을 갖게 되는 이유를 보통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불안의 요소 중에 가장 저변에는 `소멸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가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여기에 포함됩니다.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절단에 대한 불안`입니다.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불안감이지요.세 번째로는 `자유의 상실에 대한 불안`을 들 수가 있습니다. 마비되거나 갇히거나 제재를 당해서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물리적 차원의 `폐소공포증`을 일컫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네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분리에 대한 불안`입니다. 버려지거나 거부되어서 관계를 상실하는데 대한 불안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존중의 대상이나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집단 따돌림 등이 개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이유입니다.마지막으로 `자아의 죽음`에 대한 불안입니다. 수치심이나 자괴감 등으로 자신감을 잃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겁내고 실패를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안이란 본질적으로 위해한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긴장하고 경계해 위험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심리적 기능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불안이 평균적 일상에 함몰되어 본래성을 상실한 존재의 고유성을 드러낸다고도 보았지요. 하지만 위험의 정도에 비해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불안장애나 공황장애, 강박장애, 심리적 외상 스트레스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지진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불안장애나 우울증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나간 들녘에 청둥오리들이 떼를 지어 내립니다. 덜 추운 곳에서 겨울을 나려고 만 리 길을 날아온 철새들입니다. 오로지 맨몸 하나로 살아가는 저들에게는 지진에 대한 공포 따윈 없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진에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은 인류의 문명일 뿐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걸 알겠습니다.`메멘토 모리`란 말처럼, 지진의 공포와 불안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각성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불안을 덜기 위해선 욕심과 집착을 덜어내고, 보다 겸허하게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삶이기를 다짐하게 됩니다.

2017-12-01

그냥

▲ 김순희수필가 긴머리를 짧게 잘랐다. 다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심지어 부산에 살고 있는 언니는 카톡 대문사진을 보고 놀라서 전화를 걸어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래 기른 것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냐며 맛난 것 사 먹고 마음 달래라고 용돈까지 보내왔다.사실은 별 뜻 없이 어제보다 좀 산뜻한 오늘을 맞이하려고, 무거워서 잠시 쉬어가자는 느낌으로 미용실에 들어갔다. 십여 년 단골로 다녀 내 스타일을 잘 아는 원장님도 짧게 잘라내기 전에 몇 번을 되물었다, 아깝지 않느냐고. 금방 길 것이니 과감하게 가위질을 하라고 하니 그제야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내가 머리스타일을 바꾼 이유는 `그냥` 이었다. 하지만 만나는 이마다 자꾸 명확한 이유를 말하라고 하기에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답을 정해보았다. 새로운 인생관을 가졌다는둥 실연당했다는둥 너스레를 떨어주었다.긴머리 모양을 수십 년 간직하듯, 나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오래 하는 편이다. 수필 또한 그랬다. 시나 소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수필`을 쓰게 되었느냐, 뭐가 그리 좋아서 십 년 넘게 매달리느냐고 가끔 물어온다. 그럴 때 내 대답도 `그냥` 이다.서른 즈음에 시작했으니 내 년이면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뀐다. 그 사이 같이 시작한 친구들과 동인이 되었고, 몇 해 지나고부터는 동인지를 만들어 그 해 공부한 글들을 엮기 시작했다. `포항수필사랑`이라는 멋진 이름표도 달았다. 동인지가 책꽂이에 열 권이 꽂혀있으니 이것도 오래한 여행이다. 잘 쓰기 위해 수필을 배운지도 십 년이 넘는다. 천재적인 소질이 없는 나같은 사람은 그만두지 않고 묵직하게 오래 배워야 한다. 배울 때에는 세 선생이 필요하다. 하나는 앞서 글을 먼저 만난 선배이고 그 다음은 다독과 잘 쓰는 것이다.글을 잘 쓴다고 알려진 작가들이 말하는 노하우는 대부분 많이 쓴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을 정해 컴퓨터 앞에 앉아 A4 용지 한 장을 채운다는 사람, 사물 하나를 정해 그것을 유심히 관찰해서 묘사하기를 매일 반복한다는 사람. 방법은 달라도 다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잘 쓰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쓴 일기장이 한가득이고, 결혼 후에는 등장인물이 몇 명 늘어서 소재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종이에 쓰던 것을 십 년 전부터는 SNS에 기록했다. 장점이라면 글에 사진을 붙여 놓으니 내용이 더 풍부해졌다는 것과 친구들이 댓글로 공감해주는 일이다.오늘도 저녁을 준비하며 하루를 되새김질 한다. 압력솥이 밥 익는 소리를 내느라 칙칙 거린다. 하지만 난 가스 불을 끄지 않는다. 1단으로 줄여 5분정도 더 열을 가한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누룽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나는 잘 된 밥보다 꾸덕꾸덕한 누룽지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나와 남편, 아들 둘 이렇게 네 식구 밥을 풀 때에도 내 밥은 맨 나중이다. 세 공기를 덜고 나머진 밥통에 옮겨 담고 바닥에 붙어 있는 누룽지를 손목에 힘을 주어 긁어낸다.수필은 누룽지와 같다. 쓰기는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눌어붙어 있던 감정들을 박박 긁어내는 작업이다. 급하게 불을 끄고 김을 빼면 글은 미완성이 된다. 눌어붙길 기다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식탁위에 수저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국그릇까지 상에 오른 다음 퍼야 한다.포항수필사랑은 올해로 11집이라는 누룽지 한 그릇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제부터 만나는 이들에게 구수한 누룽지를 배달할 것이다. 하지만 매해 동인지를 받아 읽고서도 나에게 시인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있을 만치 수필은 푸대접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한눈팔지 않고 수필 곁에 `그냥` 머물 것이다.곁에 있는 사람이 왜 사랑 하냐고 했을 때 그냥, 너니까! 구구절절한 이유보다 이런 간단명료한 대답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냥, 수필이니까, 포항수필사랑이니까!

2017-11-24

낙엽이별의식

▲ 강길수 수필가성당 가는 보도(步道)가 이별로 가득하다. 빨간 이별, 노란 이별, 보랏빛 이별, 푸르딩딩한 이별도 있다. 한 가족으로 봄에 태어나 살다가, 때가 차 나눈 이별들이 이처럼 서로서로 다르다니 웬 까닭일까. 이별들의 표, 낙엽을 밟으며 걷는 내 마음창고에 수많은 이별이 켜켜이 쌓인다. 가을이 깊다. 가로등 빛에 기력을 잃은 늦가을 열나흘 달이 벚나무 단풍잎 사이로 외롭다. 세상 만물은 어찌하여 헤어져야만 하는가. 사람은 물론 동식물, 미생물, 무생물, 심지어 행성과 항성, 은하계, 우주까지 이별로 점철되어 있다. 도대체 나는, 너는, 우리는 이 이별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만 하는가.창백한 달 앞에서 신성한 의식(儀式)이 시작되고 있다. 추운 겨울동안 가장(家長), 벚나무를 살리기 위해 잎이 제 몸을 스스로 자르는 낙엽이별의식이다. 빨간 이별인지, 노란 이별인지, 무슨 빛 이별인지 벚나무 뒤에 선 달은 내게 비춰주지 못한다. 슬프고도 결기 찼을 이별의 노래도 귀엔 들리지 않는다.그래도 의식은 준엄하게 진행된다. 낙엽이별노래의 끝소리가 `툭!`했는지, `우지직!` 맺었는지, 아니면 `짱!` 하였는지도 모른다.아무튼, 벚나무 잎 하나가 가지를 떠나는 거룩한 낙엽이별의식은 끝이 났다. 잎은 뒤풀이 이별여행을 가려한다. 이른 봄, 날씨를 착각하고 나타난 나비의 서툰 날개 짓 마냥 팔랑팔랑 하늘을 날아서 먼 길을 떠난다. 하지만, 잎은 저만치 날아 저쪽 벚나무 둥치 옆 땅위에 풀썩 주저앉고 만다. 그래. 갈 곳이라곤 땅밖에 없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이 이별인 게야.저 잎은 제 가장을 떠나 땅에 안착한 느낌이 어떨까. `이제 다 이루었다! 삶에 여한이 없다`싶을까. `대지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다시 돌아왔으니, 이젠 쉬고 싶다`라 할까. 아니면 `봄, 여름 가장을 위해 힘껏 일했다. 가을에도 가장이 겨울에 얼지 않는 영양분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이제 할일 다했다. 그러나 서럽다!`라 여길까.이쪽 벚나무둥치 곁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입을 벌리고 있다. 미화원이 가을 보도를 메운 낙엽을 쓸어 담다 말았나보다. 비닐봉지에 담긴 저 낙엽들에게는 무슨 운명이 다가오는가. 폐기물처리장에 묻히거나, 소각로에서 태워질 것이다. 왠지 비닐봉지 안의 낙엽들이 가엽다. 산야나 들에 앉았다면 다른 생명들로 다시 태어날텐데, 썩거나 불타버릴 운명에 처해졌으니 말이다.벚나무 무성한 성당 가는 길은, 내겐 도시의 옹달샘이다. 진종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채워진 공간에서 살아내기 때문이다. 도시란 제대로 쳐다보면 숨 막히는 공간이다. 편리성을 담보로 자연도, 하늘도, 공기도 제약당한 채 살지 않는가. 아파트와 학교를 등진 성당 가는 보도는, 제법 길고 한적하여 걷기엔 안성맞춤이다. 봄엔 벚꽃에 취하고, 여름엔 녹음을 즐기며, 가을엔 낙엽과 속삭이고, 겨울엔 앙상한 가지 사이로 꿈을 꾼다. 굳이 시간 들여 야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자연을 숨 쉬고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곳이어서 좋다.해마다 낙엽이 본격적으로 날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진한 아쉬움으로 물들곤 한다. 미화원이 낙엽을 자주 쓸어치우기에, 낙엽이별의식을 오래 만나고 느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다. 차도(車道) 등 사람생활에 불편을 주는 곳은 낙엽을 치우더라도, 성당 가는 보도처럼 한적한 곳은, 낙엽이 다 말라 부서질 때까지 그냥 두었다가 후일 치우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삭막한 도시민들이 낙엽을 보고, 밟으며 걸을 수 있게 말이다. 사람들이 자기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결심하며, 위로받고 치유하는 낙엽이별의식을 드리기도 할 테니까.성당 가는 보도의 벚나무들은, 지금도 신성한 낙엽이별의식을 바치고 있다.

2017-11-17

나는 누구인가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실제로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양육을 하고, 다른 아이는 공기와 물과 영양을 제외한 어떤 정보도 차단된 인큐베이터 같은 곳에서 길러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둘을 30년쯤 후에 나란히 놓고 본다면 모습은 비슷하게 닮았을지 모르지만 전자는 정상적인 청년인데 비해, 후자는 소위 자아(自我)라는 것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완전한 백치상태의 식물인간이 아니겠는가.우리가 나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 자아라는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입수하게 된 모든 정보의 총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그 정보들에 반응하는 기질적인 성향은 각자가 다르게 타고났다고 해야겠지만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이 예화가 의미하는 것은 그러나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사고체계라는 것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절대적인 기능이 아니라는 것이다.`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신념에 대해서, 의심하고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란 얼마든지 잘못된 정보의 입수에 따라서 그릇된 인식이나 신념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개인적인 불행은 물론 엄청난 역사적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구인들에 의해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말살된 것이나, 히틀러의 나치즘이 2차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이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피의 숙청이 자행된 것 모두가 인간의 그릇된 생각이나 신념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그런 역사적인 사건은 아닐지라도 우리들 개개인의 삶에서 잘못 형성된 자아나 가치관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과오나 어리석은 행동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빈익빈 부익부가 극단화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으로 괴로워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이 차지하고 크게 이룬 사람들의 삶은 그만큼 가치 있고 행복한 것이지만, 못 가지고 이룬 것이 없는 사람들은 저열하고 불행할 뿐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의 삶과 생명을 쉽사리 파괴하기까지 한다.사업에 실패했다고, 시험에 낙방했다고, 애인에게 배신당했다고,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 우리는 조용히 자문해 봐야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를 이토록 괴롭고 절망스럽게 하는 이 생각들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지금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 가치관이나 통념들이 과연 나의 생명과 바꿀 만큼 절대적이고 올바른 것인가.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란 먼지의 먼지의 먼지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지구상에 맨 처음 생명체가 등장한 이래로 수십억 년을 줄기차게 이어져온 것이 바로 나란 존재가 아닌가. 수억 개의 정자 중 선택된 하나라는, 로또복권을 수백만 번이나 연달아 당첨이 된 것과 같은 확률에다 온 우주를 통털어 오직 하나뿐인 기적의 산물이 바로 내가 아닌가.나란 결코 하찮고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들이 자의로 만들어낸 그릇된 관념의 잣대로는 결코 나를 잴 수가 없다. 비록 돈이나 명예나 지위를 가진 것이 없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처지라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비관하거나 절망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엄청나고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그 모든 기준이나 가치관도 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한낱 초개와 같은 것일 수가 있다는 얘기다. 어찌 나뿐이랴. 오늘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수십억 년의 계보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인들 비천하고 하찮은 존재라 할 수가 있겠는가.

2017-11-10

투덜이 스머프

▲ 김순희수필가 시댁에서 내내 남의 편이었던 사람이 친한 척 산책을 가자고 졸랐다. 온갖 전 부치며 박인 근육도 풀 겸 따라 나섰다. 제 방에 누워 휴대폰만 쳐다보는 둘째까지 데리고 말이다. 나서기 전에 다짐을 받았다. 분명 산책이니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거리여야하고 오르막길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월포 포스코 연수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늘 산책할 곳은 `용산`이었다. 밑에서 딱 봐도 오르막이다. 출발하자마자 너무 가파르다고 나는 칭얼거렸다. 남편은 조금만 가면 내리막길이 나온다며 더 가자고 달랬다. 새로 장만한 휴대폰을 펼쳐서 우리가 걷는 동안 칼로리가 얼마나 소모되는지, 몇 미터 왔는지, 속도도 알 수 있다며 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기어이 끌고 올라갈 속셈이었다.미리 다운 받아 놓은 노래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노래가 듣기 좋아 가파른 길을 참아가며 올랐다.헉헉. 이십 분을 올라도 오르막길뿐이었다. “이게 무슨 산책이야?” 힘겹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투덜거렸다. 올라갈 때 힘들면 내려오는 건 쉽지 않느냐며 남편은 나를 다독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산행에 대해 모르는 나지만, 이런 가파른 길은 내려올 때가 더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안다. 무릎에 힘을 주며 조심해서 내려와야 하니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사십 분 정도 오르는 동안 내내 투덜거렸다. 투덜거리는 나를 산이 알아차린듯 이내 쉼터가 나타났다. 소박하게 나무에 매달린 표지판에는 정상이라고 써 있다. 조그맣고 빨간 우체통도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벤치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숨고르기를 하자니 귓가에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올라오는 길에 계곡은 말라있어서 물소리는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말소리 숨소리를 잠잠히 하자 더 잘 들렸다. 파도소리였다! 산 속에서 바다가 만들어내는 음률을 들을 수 있다니. 소리에 취한 나를 보며 남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소리인양 으스댔다.조금만 소리를 따라 나아가니 월포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늘 보는 바다지만 산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감흥이 다르다. 발치에 바다를 끼고 있는 용산의 위엄이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 순식간에 내 몸을 파랗게 채워 버렸다. 조금 더 눈길을 왼편으로 옮기니 이젠 청하면 월포리 평야가 누런빛으로 일렁거렸다. 긴 호흡으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길섶에는 고인돌도 몇 기 보인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풍요를 비는 곳이었을 테고, 때로는 자식의 안위를 빌러 우리의 어머니들이 찾은 곳이기도 했을 것이다.지금은 등산로에서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소풍장소가 될 때도 있다. 청동기인들도 오늘 내가 섰던 곳에서 바다와 평야를 눈에 담았다고 커다란 바위가 묵직하게 알려주었다. 고인돌의 움푹한 곳마다 옛날이야기가 서려있다.올라갈 때는 한 시간이나 걸리던 길이 내려올 때는 순식간이었다. 남편 손을 잡고 나뭇가지에도 의지해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럴 때마다 풍경은 잊어버리고 잔소리만 되풀이 했다. `겸재정선 감사둘레길`이란 길 이름이 무색해졌다.동행하는 이가 남편이 아니었다면 입도 안 떼고 따라 갔을 길이다. `랄랄라 랄랄라` 노래하며 등장한 스머프 만화가 생각났다. 투덜이 스머프는 모든 일에 짜증이며 트집이었다. 오늘 내가 남편에게 보인 모습이다. 나는 엄마를 닮아 처녀 적부터 무릎이 튼튼하지 못하다. 발도 평발이라 오래 걷는 데는 소질이 없다. 엄마는 몇 해 전 인공관절을 무릎에 넣었다. 수술 후 옆에서 돌보는 내내 마음이 아플 정도로 힘들어 해서 나도 그 길을 따라 가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긴 투덜거림에 변명은 더 길어진다.투덜이 스머프도 분명 관절염을 앓았을 것이다.

2017-11-03

제비집

▲ 강길수 수필가우리 집 근교 모 마을회관 처마 밑에 추억 하나 달려 있다. 푸른 하늘 신나게 누비던 내 소년의 마음도 담긴 보금자리다. 오랜만이다. 참 반갑다. 언제 지었기에 저렇게 새 집일까. 계절이 지금쯤이면 다 자란 새 생명들이 하늘 향해 날개 짓을 신나게 시도하고 있을 때다. 한데, 웬일인지 주인공들이 안 보인다. 사발 모양으로 처마 밑에 붙어 있는 제비집. 날기만 한다면 언제 어떤 새도,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천장엔 제비가 집을 틀며 튀긴 흙물자국이 선명하다. 한데, 문이 없다. 비단 제비집만이 아니다. 내가 본 새들의 집은 문이 없었다. 엉성한 비둘기집도, 예쁜 종달새둥지도, 입구만 있는 까치집도 문은 없었다. 대문도, 방문도, 창문도 없는 것이다.문이 없어도 새들은 자연과 더불어 잘도 살아간다. 내가 만난 곤충들과 다른 동물들의 집도 문은 없었다. 왜 동물들은 집을 지으며 문을 낼 줄 모를까. 창조주는 원래 문이 없는 집에 생명들이 살도록 마련한 것일까. 사람은 문 없이 살 수 있을까. 원시인처럼 털이라도 많다면 몰라도, 현대인은 문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몸이 변화하는 환경에 지탱할 수 없으므로….인간도 집을 짓기 전까지는 동굴에서 살았다고 배웠다. 처음에는 문을 만들 줄 몰랐다는 이야기다. 변하는 날씨에 대응하려 옷을 만들어 입었을 테다. 다음엔, 기후변화는 물론, 적에게서 생명을 보호하려 집을 짓고 문과 창을 달았으리라.어릴 때 산골 작은 우리 동네 집들은 대문이 없었다.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서면 각 방마다 하얀 문종이 발린 여닫이 출입 살문이 보였다. 방엔 작은 봉창 하나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살문은 짐승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약한 구조였다. 나무로 살을 짰으나 간단한 도구로 쉽게 부술 수 있는 문이다, 그러니 범죄자 방어는 불가능하다. 지금 생각하면 살문은 역설적으로 범죄 없는 마을의 증거물이었다 싶다. 아홉 집 우리 동네는 대문이 없어선지 마치 한 가족처럼 정답게 살았다. 잔치나 제사음식을 꼭 나누어 먹는 것은 기본이고 관혼상제나 농사일도 내 일처럼 함께하며 지냈다.살기 위해 집을 짓고, 문과 창을 만들어 환경 변화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인간. 하지만, 그로인해 이웃과 자연과의 소통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리라.진화를 다루는 학문에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 하는 현생인간. 그가 추구하는 삶이 과연 동식물의 삶보다 썩 나은 것일까. `슬기나 지혜`로 번역되는 `사피엔스`가 다른 생명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질이라면, 그는 왜 생명체들 중에 가장 잔인할까. 혹시 잔인성이 집에 문을 만들어 살면서 생긴 것은 아닐까. 집 문을 닫으며 마음도 함께 닫아버려, 심성이 점점 사악해져 간 것인가.우리 생태계 생명들은 다른 생명이나 물질을 먹어야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살기 위해 타자를 죽이거나 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현실은 권력, 돈, 명예, 오락, 유희, 범죄 같은 것들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거나 취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이 행태는 슬기로운 삶과는 상반된다. 죄악이며, 생존법칙을 거슬리는 일이다. 때문에, 인간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인간이 제대로 된 호모사피엔스라면 적어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미(美)적이어야 한다.동물들이 생존영역싸움을 해도, 그것은 생태계의 생존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인간처럼 환경을 파괴하고, 죄악을 저지를 줄은 모른다. 인간이 정말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면, 제비집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과 동식물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해, 사회와 나라와 지구별에 대해 나도 열린 마음이고 싶다.사람들이 마음 열린 집에서, 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이 그립다.

2017-10-27

이 죄를 어찌할꼬

▲ 김병래 시조시인·수필가도덕적, 법률적, 종교적 규범에 위반되는 모든 행위를 죄(罪)라고 한다. 죄에 대한 사전의 풀이다. 한마디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 죄인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짓을 하지 않는 것도 죄에 속한다. 그런데 `해서는 안 되는 짓`이나 `마땅히 해야 할 짓`에 대한 구분은 사회마다 다르고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다르고 종교적 규범이 다르기 때문이었다.인류에게 죄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것은 아마도 종교의 성립과 뿌리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할 때부터 종교적 규범이 곧 인간 삶의 질서체계였고, 그에 따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나 규정이 생겨났으리라는 추측이다.중세를 지나도록 대부분 문명의 발달은 종교의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윤리적 사고의 발전도 종교적 교리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종교적 규범이 곧 사회질서를 위한 규율이었고 삶의 의미나 지향성에 대한 가치이고 도리였다. 그에 따라서 죄의 개념이나 인식도 확고해져 갔다.근대 이후 과학문명의 발달 등으로 종교의 권위와 세력이 약화되자 각 문명권의 윤리적 규범도 많이 인본주의적이고 보편화 되었다. 기독교나 이슬람은 여전히 신에 대한 숭배를 최상위의 윤리로 삼고 있고 불교에서는 모든 동물의 살생까지를 금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죄의 개념은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잘못`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종교를 떠나서는 선악의 규범을 적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견지해온 가치관이다. 종교적인 계율을 어기는 사람은 종교적인 규제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사회적인 규율을 어긴 범법자는 사회에 의한 제재를 받게 된다. 그리고 도덕적인 죄를 짓는 사람은 죄의식, 즉 양심의 가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고대 사회에서는 자연재해나 질병 등의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종교적인 신념이 그런 재앙들을 직접 막아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불안과 공포로부터의 위안을 받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그런 종교적인 역할은 상당 부분 과학기술로 넘어갔다. 이제 웬만한 자연재해나 질병은 예측, 예방, 극복, 치료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종교의 몫은 따로 남아있기도 하다.21세기에 들어선 오늘, 인류는 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을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직접으로 끼치는 해악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에게 가장 크고 확실하게 위협이 되는 것은 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에 따른 각종 공해의 발생과 그로 인한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서 인류는 물론 자연생태계까지 치명적인 위협에 놓이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지금에 와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보다 인류에게 더 큰 위협이 없으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종교에서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죄라고 하듯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이 시대의 가장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 입고 거처하는 일이 다 죄업이고, 집집마다 골목마다 넘쳐나는 생활쓰레기가 다 죄의 부산물이다. 인류가 구가해마지 않는 찬란한 문명의 성과들이 모조리 죄의 산물이고 문명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안락과 편리가 죄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공기와 물과 토양을 오염시켜 시시각각 인류의 생존환경인 생태계를 훼손하는 온갖 매연과 오폐수와 쓰레기, 이 죄를 다 어찌할꼬.

2017-10-20

호석

▲ 김순희수필가 찻집 창문으로 내다뵈는 능선이 곱다. 어느 왕이 누운 자리인지 알기 힘드니 능이 아니라 총이라고 해야 하나. 멀리 경주남산을 배경으로 한 도시의 풍경은 고개를 돌리는 어디에나 공룡알 같은 능이 엎드려있다. 경주나들이를 할 때면 옆지기가 역사전공이라 늘 가이드와 함께하는 셈이다. 오늘은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해 하자 `나를 따르라`며 능을 보호하는 둘레돌의 변천사를 공부하자고 했다. 도착한 곳은 석탈해왕릉 주차장이다. 포항에서 출발해 경주에 들어서는 길가에 있어서 첫코스로 선택한 듯하다.신라 제 4대 탈해능에는 둘레돌이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들만이 능을 향해 허리를 구부린 채 빙 둘러서있다. 능을 만들기 시작한 초기라서 아직은 호석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나? 학생시절 배운 국사책에 써져 있던 역사조차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낙제생인지라 궁금한 것 투성이다.부족한 학생에게 남편은 호석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우리에게 첨성대를 비롯한 많은 유산을 남겨준 27대 선덕여왕릉이다. 석탈해능에서 차를 타고 10분이 안 되는 거리에 있다.산중턱에 위치한 능까지 오르는 오솔길에 소나무가 만드는 풍경이 사람을 압도한다. 겨우살이 준비하는 청설모가 나무를 오르내리다 가을바람결에 땀을 식힌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놓았지만 비가 내리면 그곳이 물길로 변한다. 거센 빗물에 흙이 쓸려갔는지 뿌리가 다 드러난 것이 마치 고향집을 지키는 늙은 어미의 손등 같다. 되도록 밟지 않으려 애쓰며 발을 옮겼다.길 끝에 놓인 돌계단을 올라 둥긋한 능을 보며 가쁜 숨을 고른다. 애써 쌓아놓은 능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끼워 맞춰 능 주변에 둘러놓았다. 크기도 고르지 않고 돌의 종류도 각각이다. 소박하게 두 단으로 천년 넘는 시간을 버텨준 돌과 눈을 맞추며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본다.산을 내려오다 보면 건너다보일 거리에 31대 신문왕릉이 있다. `뉴스페이퍼킹`이라며 아재개그를 무심히 던지는 남편가이드의 말에 울퉁불퉁한 돌을 신문지처럼 네모반듯하게 깎아서 호석을 둘러놓았으니 썰렁한 농담도 인정해주기로 한다.다섯 단으로 더 올라간 높이, 같은 종류의 돌을 같은 모양으로 다듬었고 단 위에는 얇고 넓적한 돌로 흙을 떠받혀서 마무리를 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여섯 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도 모자랄까 싶은지 둘레를 일정한 간격으로 직각삼각형의 돌로 받혀 놨다. 떡하니 버티고 있다고 해야 한다. 27대에서 31대까지의 세월이 이런 기술을 만들었구나싶어 호석 사이사이의 받침석에 핀 돌꽃을 손으로 한번 어루만져주었다.십여 분 더 울산방향으로 차를 달려 이제 호석의 끝판왕을 만나러 가자. 괘릉이란 별명의 원성왕릉은 능 둘레에 넓은 판을 붙여 12지신상을 새겨 넣었다. 그 걸로 모자라 무인석과 문인석을 입구에 배치해서 구성미를 더했다. 사자 두 마리도 양 옆을 차지해서 능을 지키고 있으니 38대로 내려오는 동안 기능과 멋 모두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아랍인을 닮았다는 무인석 옆에서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 능선이 서라벌을 감싸 안고 가로누웠다. 이제는 느긋하게 쉬어가라고 나를 타이르는 듯하다.처음 호석이 나타난 27대까지 6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31대왕까지 50년 만에 다듬어지고 단단해졌다. 38대 괘릉까지 호석이 발달한 몇 백 년의 시간을 한나절 만에 보려고 경주에서 울산가는 도로를 따라 길가에 위치한 능을 중심으로 일정을 잡았다. 우왕좌왕 하지 않고 한 길로만 달려가면 되니 이런 나들이도 꽤 괜찮은 것 같다.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은 서라벌이 아닌 경기도에 있다. 나라를 지키지 못했기에 고향에 누울 수 없었다. 재미난 역사지식을 알려 준 남편에게 신라시대 왕들도 마셨을 법한 차 한 잔 사주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런거려야겠다.

201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