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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가위가 더 기다려지는 이유

▲ 김동헌시인 한가위를 앞둔 9월말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분주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문중에서 벌초 공지가 왔다. 이제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문중의 고문으로 벌초에서 자유로워지셨다. 우리 가문에 아버지께서 최고의 연장자라는 말이다. 몇 년 전이었던가 문중 어르신들께서 벌초하시다가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이제 다음 차례는 아버지다”고 하셨는데 그 때는 농담 반 진담으로 들어서 그런지 별 대수롭게 않게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도록 그 말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는 그날 이후로 문중 모임에도 벌초에도 더 이상 오시지 않으신다. 성경에 다윗 왕이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유언에서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라는 말이 열왕기상 2장 2절에 나온다.모든 사람들은 모두 이 길을 갔고, 지금도 가고 있고, 앞으로도 갈 것이다.이 길에서 예외 된 인생은 아무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게 될 아버지를 위해 오래전 계획해 놓았던 추모동영상을 만들었다. 먼저 아버지의 팔십평생을 인터뷰하고, 함께 해 오신 어머니의 삶을 조금 곁들였다. 일상에 바쁜 삼형제들도 모두 약속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부재중이었다. 마치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속에 부재중이듯…. 아버지는 내 유년의 사진작가였다.터울이 5년씩 가지런한 삼형제는 아버지의 치밀한 가족계획 덕분에 성장하면서 위계질서가 확실하여 싸울 일이 별로 없었다. 인터뷰 속의 아버지는 삼형제가 살아온 연수만큼의 공평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아버지를 회상하는 기억 속에서 장남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의 굴곡을 겪기도 했으나, 삼형제는 모두 아버지라는 프리즘을 통해 유년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그때를 그리워하고 가족의 의미를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름다운 소풍 같은 가을날의 한나절을 보냈다.빛바래 오래된 흑백사진 속에 부모님은 내가 결혼할 때보다 더 새로운 신랑 신부의 모습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는 함께 해온 5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함께 해온 쉰 다섯 해의 세월을 되돌아본다. 높은 산과 깊은 강을 함께 건너온 부부이기에, 한결같은 사랑으로 동행해온 세월이기에, 함께 해온 세월만큼의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어 지천명에 이르고 보니 부모님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가장 사랑했을 때는 `차마 사랑한다` 고 말하지 못했던 그 시절이 지나가고, 아버지라는 말,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가슴 한 켠에서 밀려온다. 살아가면 살아갈 수 록 더욱 그러하다.이번 포항문학 44호 기획 특집 `작가의 어머니를 찾아서`를 진행했다. 지역 작가 6인의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시인, 동화작가, 소설가로서 그들이 글 마당에서 노닐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어머니였을 것이다. 가장 기대고 싶었던 이름, 기대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머니였다.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의 생애가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 알 수 없듯이, 앞으로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한가위도 몇 번이 더 남아 있는지를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남은여생을 되돌아 볼 수 있듯이, 이번 추석은 가족들과 더불어 의미 있는,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추석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떨까?이번 추석을 더 기다려온 이유는 유난히 길어진 연휴 기간이어서도 아니고, 세상사는 일이 갈수록 만만치 않아서도 아니다. 비록 연로하시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며, 사랑하고 공경할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2017-09-29

오빠와 사는 와이푸들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텔레비전을 보다가 출연자들이 `와이푸`라는 말을 연발하면 채널을 돌려버리게 된다. 사석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에서도 공공연히 쓰이고 심지어는 탈북자들까지도 와이푸라는 말을 예사로 한다. 한때는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더니 요즘은 너나없이 `오빠`라고 한다. 외국 사람이 들으면 한국인들은 대다수가 가족끼리 결혼을 하는 줄 알 일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대한민국 표준어규정에 의하면, 이제는 당연히 `아내`나 `남편`이란 말 대신`와이프`나 `오빠`를 표준어로 정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교양이 있는`이라는 단서에 중점을 두어서 서울 사람 대다수가 교양이 없다는 전제를 하지 않는다면, 남녀 배우자를 일컫는 말로 `와이프`나 `오빠`를 표준어로 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아내`라는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왜 대다수 남성들이 자기 배우자를 와이푸라고 하는 걸까. 아마도 아내란 말은 왠지 촌스럽고 와이푸라고 해야 세련된 식자층에 든 것 같은 사대(事大)적 열등의식의 발로이거나, 남들이 와이푸라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서 하게 되는 부류가 대다수일 것이다. 어느 쪽이거나 우리말에 대한 일말의 긍지나 자부심도 없기는 마찬가지일 터이니, 모국어를 그렇게 천시하고 홀대하는 사람들을 어찌 기본적인 양식이나 교양을 갖춘 국민이라 할 수가 있겠는가.누가 뭐래도 나는 우리의 말과 글을 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꼽는다. 고유한 언어가 없었다면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에도 불구하고 과연 수천 년 동안이나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올 수가 있었을까?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던 유대민족이 다시 뭉쳐서 독립된 나라를 세우면서 민족의 말이었던 히브리어를 복원하는 일을 우선으로 했던 것도 동족으로서의 유대와 동질성을 일깨우고 유지하기 위한 일이었다.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말과 글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말과 글을 못 쓰게 한 것도 그것이 곧 우리 민족의 얼이요 문화와 전통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민족이 비록 간난과 치욕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동질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언어의 힘이라는 걸 누가 부인하겠는가?말이 곧 사람이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불량배들은 불량배의 말을 하고 사기꾼들은 사기꾼의 말을 한다. 물론 선량한 사람은 선량한 말을 하고 진솔한 사람은 진솔한 말을 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학벌과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걸핏하면 막말을 하거나 저속한 말을 내뱉는다면 그는 분명 천박한 인성의 소유자일 뿐이다.쓰레기나 오폐수는 자연환경을 오염시키지만 함부로 뱉는 말은 정신환경을 오염시킨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우리말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 정신상태의 현주소이기도 한 것이다.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사는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터넷에 난무하는 말의 오염과 파괴는 결국 우리 사회를 폭력과 선정과 비리로 얼룩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욕설과 비속어뿐만 아니라 바른 말인 줄 알고 잘못 쓰는 경우도 말의 왜곡과 오염의 한 원인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하지 못하는 말버릇 등이다. 올바른 언어생활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모국어를 아끼고 가꾸는 일인 동시에 심성과 사고를 순화하고 바르게 하는 일이다.사회를 바꾸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을 바꾸려면 말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서 `바르고 고운말 쓰기 운동`을 벌이도록 제안한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2017-09-22

무인 건빵가판차량

▲ 강길수 수필가유리알 향수(鄕愁) 한 봉지를 샀다. 길을 가끔 다니면서 건빵 파는 차를 보았었다. 화물칸 뒷문을 열고 파는 건빵을 쌓아둔 밴 가판(街販)차량이다. 좌회전하여 무심코 달리다가 건빵가판차량이 갑자기 보이면, 위치상 차 세우기가 어정쩡하여 지나치곤 했었다.가판차량을 지날 때마다 옛 건빵 추억이 유리알처럼 향수를 자극했다. `다음엔 꼭 사야지!`하고 생각하며 달려가지만,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그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지나치며 건빵을 사지 못했다. 오늘은 다행히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건빵 생각이 나서 차를 멈추었다.건강에도 좋다는 보리건빵이다. 나는 아예 비상식량이란 구실을 달아 큰 종이포대에 든 건빵을 사고 싶었다. 생산자, 생산일자, 원재료 등을 내가 확인하는 동안 주인 만나러 운전석 쪽으로 갔던 아내가,“어, 이 차 사람이 없네요. 무인가판차량인가 봐요!”라고 말했다.“아! 그래?”하고 대답하는 순간, 저절로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아내가 우선 작은 것 한 봉을 사 먹어보고, 또 사든지 하자고 해 그러기로 했다.투명 비닐에 포장된 건빵 한 봉을 손에 들고 쳐다본다. 낱개는 옛날 건빵 보다 조금 작고 얇아 보였으나, 모양은 그대로다. 입에 군침이 돈다. 우리 차에 돌아와 얼른 건빵 한 개를 입에 넣었다. 바로 옛 맛이다. 입 안에서 `아삭!`하고 부서지는 건빵의 담백함을 타고, 마음은 이내 옛 까까머리 때로 뛰어갔다.6·25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이 휴전된 후,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를 해마다 넘으며 살았다. 산골 아이들에게 과자나 빵 같은 주전부리는 먼 꿈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건빵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며 자랐다. 한 해 한두 번에 그쳤지만, 건빵 주전부리하는 며칠간은 정말 행복한 나날이었다.삼촌 두 분이 6·25 참전용사로 군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촌들은 휴가 올 때 마다 건빵을 제법 여러 봉 선물로 가져왔다. 후일 내가 군에 입대한 뒤에야 안 일이지만, 그분들은 본인에게 지급되는 건빵을 조카들을 위해 아껴 모았다가 휴가 때 가져온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군에 가면 마음대로 건빵을 먹으며 사는 줄 알았다.군에 입대해서 처음 건빵을 받았을 때도, 어릴 적 건빵추억이 떠올랐었다. 삼촌들이 비로소 고마웠다. 담배를 못 피우던 나는, 군에서 지급되는 화랑담배 대신 건빵을 받았다.동료들보다 건빵이 많아 주로 신참병들과 늘 나누어 먹었다. 건빵 받은 신참병들은 봉지 안에 든 별사탕을 또 나와 나누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사탕은 고된 병영생활의 샛별이었다.무인 건빵가판차량을 놓아둔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들판 한가운데나 다름없는 곳에서, 차량 무인가판을 할 마음을 어떻게 먹었을까. 소득과 지식수준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불신이 깔린 우리사회다.아내는 무인카메라라도 있을 거라 했지만, 추측일 뿐이다. 사람이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건빵과 돈을 훔치기라도 한다면, 도둑을 찾기가 쉽지 않을 현실을 주인도 모를 리 없을 터. 그런데도 그는 무인 건빵가판차량을 가져다놓았다. 아마도 주인은, 우리사회를 굳게 믿었으리라. 믿음에 희망을 걸고, 믿음과 희망을 사랑이란 밭에 심고 가꾸어내며 사는 분이리라.무인 건빵가판차량을 만난 것은, 나에겐 또 하나의 행운이다. 유리알 같은 건빵향수를 만난 기쁨에다 믿음, 희망, 사랑이란 사람의 세 덕(德)을 무인 건빵가판차량으로 묵묵히 실천하는 샛별이웃을 만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마음에도 샛별이 내려앉은 기분이다.며칠 후, 우리부부는 건빵 한 포대를 더 사서 아이들과 나누었다.세상은 살펴보면 살만한 곳이 아닌가.

2017-09-15

진경산수문

▲ 김순희수필가 그림 한 장을 들고 내연산에 오른다. 겸재의 `내연삼용추`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내연산은 온통 돌산이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에도, 물이 타고 흐르는 계곡에도 제각각의 바위와 자갈로 채워져 있다. 그 옛날 험한 길을 청하의 현감이었던 겸재는 가마를 타고 올랐다고 한다. 가마꾼들은 다름 아닌 보경사의 스님들이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양반 저양반이 하도 자주 가마질을 시키니 스님들로서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지체도 그리 높지 않은 성미 고약한 양반들이 하는 짓이 볼썽사나워, 태우고 가던 스님들이 우연을 가장해 가마를 뒤집어 혼을 내주었다고 한다. 나는 겸재같은 호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니 아픈 무릎을 달래가며 천천히 다시 산을 오른다.흐르는 물소리에 취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관음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폭포아래는 너럭바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물길을 돌리고 있다. 산에 오르던 사람들이 그림 속에 선비들 마냥 바위에 둘러앉아 일행들과 음식을 나누고 있다.여기쯤일까 싶어 그림을 다시 펼친다. 내연삼용추는 겸재가 청하 현감으로 있을 때 그린 여러 장의 그림 중 하나이다. 학소대 위로 계조암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세 개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삼용추는 잠용폭포, 관음폭포, 연산폭포를 아우르는 말이다. 관음폭포 곁으로 쏟아지는 소 옆에 경치를 감상하는 세 명의 선비와 그 수행원들이 그려져 있다. 그 뒤로 사다리가 놓여 있어 그 당시 정선도 연산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가파른 절벽을 올랐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실제로 관음폭포 위로 그림 속 사다리를 닮은 계단이 있고 그 끝에 구름다리가 보인다. 연산폭포는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소리가 먼저 내 몸을 덮친다. 발걸음이 그 기에 눌려 조심스럽다. 폭포아래 서자 서늘한 기운이 바람을 일으킨다. 한참동안 그 아래서 가만히 물보라를 맞는다.고찰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은 경치가 수려해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찾는 명승지였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관광객들이 셔터를 누르듯 옛 사람들도 너나없이 석공들을 데려와 바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 앞에서 우리도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이제 정선이 앉아서 그림을 그렸을 만한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야 한다. 세 개의 폭포가 보이는 곳이니 반대편 바위일 것으로 짐작하고 그 주변을 살펴 자리를 잡는다. 겸재 특유의 도끼로 찍은듯한 강렬한 필법이 돋보이는 맨 아래 잠룡폭포와 그 위에 너럭바위, 소 밑에 사람들, 그 위로 관음폭포와 구름다리가 눈앞에 펼쳐진 경치와 어쩌면 이렇게 일치하는가.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진경산수화답게 모든 것이 손에 든 그림과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절벽에 가린 연산폭포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그 세월 동안 폭포의 물길이 바뀐 것인가. 조금씩 자리를 바꿔 보아도 두 개의 폭포만 보일 뿐 삼용추 중에 제일로 꼽는 맨 위의 연산폭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중국의 화첩을 보고 그리던 화보모방주의시절, 겸재는 명승지를 직접 답사하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어떤 방면에서 무언가 처음 시도한다는 것은 기술을 넘어서는 눈을 가져야 가능해진다. 그는 눈으로만 경치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내연산을 그린 것이 아닐까. 절벽 뒤에 숨은 연산폭포까지 보이도록 구도를 잡아야 내연산의 진짜 절경을 담을 수 있기에 내연삼용추가 가능한 것이다.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연산폭포를 눈에 보이도록 옮겨 그린 것은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압도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사실(寫實)에서 사의(寫意)로의 대전환이었다.가만히 겸재가 머문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삼용추 아래에서 분위기에 따라 깊이와 폭을 달리한 폭포의 연주가 울려 퍼진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2017-09-08

명품족이 되자

▲ 김병래 수필가·시인`명품족`이란 말이 있다. `이름나고 값비싼 의류나 소품을 주로 사서 이용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 게 사전의 풀이다. 어원을 따지자면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는 부유층의 소비행위를 모방하는 미국의 고소득 여피족들을 일컫는 용어인 `럭셔리 제너레이션`을 들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냥 고가의 유명 브랜드를 특별히 선호하는 부류를 통칭해서 명품족(名品族)이라 한다. 우리나라처럼 소위 명품을 선호하는 국민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국제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시장은 2006년부터 매년 12%씩 늘어나서 2011년까지 45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는 통계다. 따라서 세계적인 명품 회사들이 한국을 주요 시장으로 인식하고 앞 다투어 매장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서울대 김난도 교수팀은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4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과시형`을 들 수 있는데, `나는 어중이떠중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체면의식에 서열의식이 더해진 소비형태로 주로 신흥부자들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질시형`은 `나라고 못할 것이냐`라는 선망의식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평등의식이 결합한 경우로, 열등감이 강한 중산층에서 많이 나타나며 무리하게 빚을 내 명품을 사들이기도 한다는 것. 그 다음 `환상형`은 초라한 모습을 사치품으로 감춰보려는 심리로 젊은이들과 유흥업 종사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는 유형이고, 끝으로 `동조형`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집단문화가 부채질한 경우로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김 교수는 이같은 소비유형들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기보다는 물질 문화가 길러낸 소산으로 봐야한다고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고가 명품 열기는 개인이나 계층의 도덕성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국가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아무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값비싼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볼 수 있지만, 명품선호 풍조가 경제적 계층 간의 위화감이나 상대적 박탈감,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개인 경제의 파탄 등 사회 전반에 적잖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에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청소년들까지 유명 브랜드에 현혹되어 불건전한 가치관을 갖게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니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하지만 돈이 없다고 명품족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명품이 어찌 옷가지나 장신구만 있겠는가. 그런 것들 말고도 자타가 공인하는 명품으로 음악과 미술과 문학 등의 예술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명품 중의 명품인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에 심취한다든가 명화를 감상하고 불후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고상하기 이를 데 없는 명품의 분위기에 젖어서 인생을 산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명품족이 아니겠는가.사람이 든 명품에 비할 바 없는 조물주의 작품인 대자연은 또 어떤가. 어떤 찬란한 보석을 밤하늘의 별과 견줄 것이며 어떤 값비싼 옷을 저 온갖 꽃들의 아름다움과 품격에 비기겠는가. 이토록 신비롭고 오묘한 오리지널 명품 속에 살면서 뭐가 아쉬워서 그까짓 옷가지나 장신구 나부랭이에 연연할 것인가.무엇보다 진정한 명품족이 되는 길은 명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명품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고가의 브랜드를 두른다고 사람의 품격이 높아지는 건 아닐진대, 사람자체가 명품이라야 진짜배기 명품족이 아니겠는가. 수백만 원짜리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몇 만 원짜리 비닐백에 시집 한 권 넣어 다니는 것이 훨씬 더 품격이 있는 줄 아는 것이 명품족이란 얘기다.가을이 온다. 세계적인 명품 한국의 가을이다. 이 찬란한 계절에 명품 시를 읽고 명품 음악에 취하노라면 사람도 명품이 되지 않겠는가.

2017-09-01

두 얼굴

▲ 김주영 수필가거울을 본다. 마치 사진이 인화되듯 내 인식의 세계에 선명히 그려지는 이미지다. 사람들 얼굴은 대부분 좌우 면이 다르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의식적으로 왼쪽 얼굴이 많이 나오게 포즈를 잡곤 한다. 오른쪽보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서서 찍은 사진이 실물보다 더 예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거울로 보던 이미지보다 예쁘게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얼마 전의 일이다. 얼굴 사진을 가지고 대칭하는 놀이를 해보았다. 콧잔등을 중심으로 좌우를 구분하여 나눈 다음 왼쪽 면을 복사해서 오른쪽 면에 붙여서 얼굴형을 만드는 놀이이다. 내 얼굴사진의 왼쪽 면을 복사해서 오른쪽에 붙였다.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의 오른쪽 면을 다시 대칭해 보았다. 한번쯤 뉴스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내 얼굴의 한쪽 면으로 만든 모습인데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다. 얼굴은 좌우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을 대칭해 보았을 때와는 달리 얼굴을 이용한 대칭이미지는 의외로 낯설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이 놀이는 인간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을 함께 보고 기억하기에 한쪽 면만 가지고 대칭시킨 이미지가 낯설게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누군가를 생각하면 그 사람의 눈이며 코, 입 등 기호화된 이미지가 인식의 세계에서 얼굴을 불러오듯 떠오른다. 얼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과 기억의 이미지로 작용하고 모든 관계맺음의 시작이 된다.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기억하다는 말과 같다. 첫인상이 기억에 오래남고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 쓰기도 한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내면을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을 통해서 상대방의 성격이나 내면을 가늠해볼 수도 있다. 이미지 관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좋은 모습이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사람과의 관계 맺음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마음과 달리 의식적으로 좋은 인상과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쓴 것처럼 행동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스위스 심리학자 융은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하고 주변세계와 상호 관계를 맺는다고 했다. 페르소나(persona)는 고전극에서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웃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나에게 주어져도 해야 할 때도 있다. 연극을 하는 셈이다. 그런 모습을 가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려는 연극은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 화가 날 때는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 본다. 두 얼굴이 거울 안에 있다. 웃고 있는 나를 찾아본다. 내가 임의로 만든 자아는 가장 밝은 모습으로 타인에게 보이지만 결국 나 자신도 밝은 모습으로 변화됨을 느낄 수 있다.생각이 곧 마음이 되듯 긍정의 생각은 얼굴에 나타난다. 오른쪽과 왼쪽 얼굴을 대칭했을 때 또 다른 모습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나일까 아닐까 고민을 하는 것처럼 화가 나더라도 억지로 웃는 모습도 자신의 모습이다.화가 난 마음을 걷어내고 그곳에 웃음을 얹어보자. 의식적으로 화가 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보면 화가 난 원인에 대해서 객관화된 생각을 얻을 수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한 내면의 지혜로운 생각은 객관화시킨 마음에서 만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만든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꾸며져 웃는 그 모습 또한 그 자신의 일부이며 전부이다.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늘 좋은 생각을 선물한 결과라 생각해도 된다. 당신의 진짜 모습은 지금 거울 안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 늘 좋은 생각을 하고 활짝 웃는 바로 그 모습이다.

2017-08-25

어떤 텔레파시

▲ 강길수 수필가무척 덥다. 마른 장마철이어서 더 더운 기분이다. 마실 물을 페트병에 부어 주머니에 넣고 나선 등산길이다. 산 초입인데 벌써 얼굴에 땀이 난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길가 이암 틈새에 작은 명아주 몇 포기가 가물에 시들어가고 있다. 손수건으로 얼굴 땀을 훔치며 별 생각 없이 전처럼 걷는다. 평탄한 길로 접어들자 목이 말라왔다.무조건반사 같은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고 물을 마시려 고개를 쳐들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뭉게구름 한 송이가 외롭게 떠 있다. 저 송이로 많은 구름이 몰려와, 빗님이 목마른 땅을 푹 적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물병을 입에 대었다. 그때, 조금 전 만났던 명아주가 떠올랐다. 비를 갈망하는 명아주의 이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이 물이라도 나누어주었더라면 명아주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 물을 남겨 돌아오는 길에 꼭 나눠주자`고 마음먹으며 한 모금 마셨다. 한참동안 걸어가면서도 그 생각이 마음을 맴돌았다.반환점에 도착했다. 운동기구가 있는 곳이다. 늘 하던 대로 거꾸로 매달리기 운동부터 하였다. 두 아주머니가 오더니 가까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운동을 마치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다른 의자에 앉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천도복숭아가 세 개인데, 아저씨 한개 드세요”하면서 가져다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은 것을 먹기 시작했다. 말랑하게 익어 참 맛있다. 가까운 등산길이어서 물 이외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하여 이 산에서 무얼 얻어먹는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기에 참 고마웠다. 먹는 사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산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먹을 것을 잘 나누지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천도복숭아를 다 먹었다. 새콤달콤한 뒷맛에 입이 개운하다. 복숭아물 묻은 손이 끈적대어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물병을 드는 순간, 아까 본 시들었던 명아주가 또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앉은 바로 앞에 가뭄에 시든 풀 한포기가 보였다. 속으로 감탄하며 손 씻은 물이 이운 풀에 가도록 하였다. 시든 잎이 물을 머금으며 금방 생글생글 웃는 것만 같았다. 고맙다고 온몸으로 인사를 하구나 싶기도 했다.보이지 않는 소중한 비밀을 알아챈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서 나아가 우주 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존재들 사이에는 언제나 이적(異蹟)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하는 자각(自覺)이 그것이다.이어 이런 느낌들이 이어졌다. `아까 가뭄 타는 명아주 앞에서 내가 보낸 연민의 마음을 명아주가 느끼고, 명아주는 텔레파시로 아주머니 마음에 전달한 거야. 그 결과 나에게는 천도복숭아라는 선물을 가져다주면서, 또 다른 시들어가는 풀을 되살리게 했을거야. 때문에 명아주는 내가 돌아가는 시각에, 자기에게 물을 나누어 주리라는 사실을 느끼고 기다리고 있을 게야.`어떤 이들은 텔레파시 곧, 정신감응(精神感應)현상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지, 사람과 동식물사이의 일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굳이 전문서적 내용을 들추지 않더라도,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식물도 인간과 정신교감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돌아갈 때 갈증에 극도로 시달리는 명아주에게 남은 물을 꼭 주어야 한다. 명아주의 갈망을 저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명아주에게서 거짓 마음장이라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손에 든 병에 조금 남은 물을 확인하며 일어선다. 길 가 이암 틈새에서 가물에 잔뜩 이운 채, 목말라 서있을 명아주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린다.발걸음이 빨라진다.

2017-08-18

반려동물

▲ 김병래 수필가·시인인류가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말부터라 한다. 늑대 새끼를 데려다 길들인 것이 개의 시초일 거라는 추측이다. 가축으로 길러진 개는 사냥을 돕거나 침입자를 막고 썰매를 끄는 등 지역과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인류에게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인명을 구조하거나 마약을 탐색하고 맹인을 인도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들이 많다. 옛날 우리나라 시골의 개나 고양이는 소나 닭처럼 그냥 가축이었다.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으라고 고양이를 길렀고, 집을 지키고 새끼를 많이 낳아 살림에 보탬을 주는 것이 개의 역할이었다. 먹이로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나 보릿겨 따위가 고작이었고, 어린 아이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누면 기다렸다가 냉큼 먹어치우기도 했다.개나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불린 것은 사람들의 주거환경이 도시화 되어 실내에서 함께 살면서부터였다. 마을 전체가 이웃사촌이고 한 집에 너댓 명 이상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대가족 집안에서는 애완동물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른들은 일에 바쁘고 아이들은 어울려 놀기에 바빠서 주변에 얼씬거리는 개들은 걸리적거린다고 걷어차이기 일쑤였다. 핵가족과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치열한 경쟁사회가 도래하면서 삭막하고 소원해진 인간관계가 애완동물에 집착하고 의존하는 성향을 만든 것 같다. 걸핏하면 속이고 배신하는 이기적인 인간들과는 달리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언제나 반겨주고 오로지 제 편이 되어주는 동물들에게 애착이 가는 건 일견 당연한 일로 보인다.애완동물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주인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체내에 옥시토신의 분비를 활발하게 하는가 하면 심장병 발병 위험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반면 2009년 8월 스칸디나비안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애완동물이 행복감을 높이거나 우울증상을 낮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인간관계의 회복에 대한 노력이나 문제의식이 없이 단지 애완동물을 통해 소외감을 해소한다는 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천만을 넘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개인적 취향을 넘어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애완동물 관련 산업도 성장일로에 있어 연간 시장의 규모도 2조원을 넘었다는 통계다. 애완동물에 드는 비용과 정성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못지않다고 하니 명실상부 가축이 아닌 가족인 셈이다. 그래서 애완동물 문제는 이제 정치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의 관리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애완동물이란 명칭도 반려동물로 격상이 되었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 관계를 주제로 하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그 가치성을 재인식 한다는 취지로 제안된 `companion animal`이란 명칭을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인 거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제멋대로 꾸미고 길들이는 대상을 마치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반려라고 하는 것은 가당찮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하는 경우는 고작 12%에 불과하고, 싫증이 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내다 버리는 유기견이 하루에도 250여 마리나 된다고 하니 반려동물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명칭이야 어떻든 애완동물을 병적으로 애착하고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소음과 냄새에다 털을 날리고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동물로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사람도 적지가 않아서 가족 간, 이웃 간의 불화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분쟁의 소지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동시에 애완동물에 대한 보다 성숙한 문화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7-08-11

독수리 바위의 꿈

▲ 김주영 수필가동해에서 보는 일몰은 황홀경이다. 포항 호미곶은 해맞이 장소로 유명하지만 해넘이 명소로도 손색이 없다. 해가 질 무렵 호미곶 서쪽 해안 길을 가다보면 동해바다의 낙조를 볼 수 있다. 호미곶 `상생의 손` 광장에서 호미곶길을 지나 해안가 구만길로 3km정도 가다 만나는 작은 포구, 구만 2리에 있는 구포(鉤浦)다. 사람들은 이곳을 `까꾸리개`라 부른다. 까꾸리는 갈퀴의 경상도 방언이다. 끝이 뾰족하고 ㄱ 자로 구부러진 모양도 `까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해안의 여느 포구와 달리 바닷물이 얕고 갯바위가 많다. 물이 얕아서 바위 주변으로 갈매기들이 많다. 예전에는 갯바위 언저리까지 청어 떼가 밀려와 까꾸리로 긁어 담았다하여 `까꾸리개`라 불렀다. 포구 옆에는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바위에 앉아 바다를 굽어보는 독수리 형상이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매일 매일 꿈을 꾸는 바위. 해넘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다보면 독수리의 꿈을 보는 듯하다. 미동도 없이 웅크려 앉아 바람소리며 파도소리를 꾹꾹 눌러 자신의 몸속에 시간을 축적시키며 날아오르기 위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풍화의 힘을 빌어 날개의 근육을 키우고 있는 바위의 시간이 느껴진다. 새의 꿈을 꾸는 독수리바위는 파도와 바람에 날개를 매만지고 있다. 저 바위에 앉아 바라본 해넘이는 얼마나 될까? 몇 번의 노을을 더 보내야 날아오를까?1월의 매서운 겨울바다에서 새해 소망을 담아 호미곶 일출을 보았다면 이글거리는 여름바다에서는 꿈을 담아 독수리바위의 일몰을 본다. 호미곶의 양력 8월은 일몰풍경이 절정이다. 해가 지는 방향과 각도가 독수리의 부리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붉은 해가 독수리 입안에 잠시 머무를 때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 같다. 순간, 독수리가 하늘로 날 것만 같고 실제로 바위가 꿈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독수리바위에서 보는 일몰은 또 다른 설렘이 있다. 포구를 중심으로, 월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미바다에 달이 뜨면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포스코쪽 하늘에는 해가 진다. 바다를 풍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해와 달이 푸른 바다위에서 떠있는 장면은 자연이 그려내는 한 폭의 일월도이다. 비록 반달이지만 경이로운 풍경이다. 물때와 보름날을 잘 맞추면 멋진 일월도를 볼 수 있기에 구름이 없는 날은 늘 이곳을 그리워한다. 어떤 날은 월출과 일몰의 시간 간격이 넓고, 바닷가 날씨가 그렇듯 어떤 날은 갑자기 구름이 끼어서 볼 수 없지만 올 8월에는 그 풍경을 꼭 보고 싶다. 호미곶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곳을 호미바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이곳을 일월바다라고 부른다. 해가 독수리의 품안에 머무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다. 바다의 생명력과 해와 달의 기운을 모두 담은 사진을 찍고 싶은데 눈으로 보는 감동을 사진으로 고스란히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내 솜씨의 부족함을 새삼 느낀다.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람에 조각되는 독수리 날개를 보며 바위가 축적하는 시간을 호흡해본다. 어느 날 아침 이곳을 찾아오면 무한천공 어딘가로 날아가고 바위의 흔적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구포포구의 일몰을 좋아하는 것은 독수리가 꾸는 꿈을 볼 수 있어서다. 그 꿈을 보면서 나도 접었던 꿈을 다시 꾼다. 반복되는 일상과 계획한 일들의 실패에서 마음이 허약해질 때 자연은 늘 치유의 새 힘을 준다.서해안에서 낙조를 보면서 혼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비움`을 배웠다면 동해의 독수리바위에서는 다시 솟아오르는 `비상`을 배운다. 꿈이든 일이든 열정만 가지고는 다 이룰 수 없다.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와 고독을 견디는 일이다. 바로 자신에게 내재된 시간의 힘이다. 삶에서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내심임을 비상을 준비하는 독수리에게서 배운다. 나도 언젠가 푸른 하늘을 비행하는 한 마리 독수리가 되리라.

2017-08-04

젊음의 거리

▲ 강길수 수필가밤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거리를 오가며 출퇴근 한다. 포항 `쌍용사거리`에서 구룡포 쪽으로 난 거리다. 가로 양쪽 가게는 대부분 주점들이다. 내 기억에 오래전 이 거리에는 음식점들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하나, 둘 술집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났고 자연스레 젊은이들의 거리로 되었다. 밤에 이곳을 볼일로 지나다닌 적은 있으나, 술을 마신 적은 없다. 이곳에 가끔 오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기성세대처럼 음주와 유흥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음주와 유흥은 우리 민족에겐 정신유전자로 전승되어오는 것인가. 민족 고대국가라는 부여의 `영고(迎鼓)`만 보아도 음주와 유흥은 우리 겨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틀림없다. 추수를 마치고 제천의식과 함께, 연일 음주와 가무로 신명나게 축제를 벌였다는 것이 영고 연구자들의 말이다. 영고는 백성이 모여 하늘에 추수를 감사드리고, 내일을 향한 희망과 결의를 다지는 신명나는 축제였을 것이다.지난 늦가을 어느 날 아침, 이른 출근길이었다. 평소에는 말끔하던 거리가 이날은 유흥업소 전단지들이 바람에 나뒹굴고 담배꽁초, 마시다 버린 음료 잔 등으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였다. 저절로, `무슨 젊은이의 거리가 이래?`하는 속말이 나왔다. 실망감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어젯밤에 신나는 큰 행사라도 했었나보다고 이해하며 지나갔다.며칠 뒤 아침마다 거리가 말끔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건장한 두 청소원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밤 내린 가을비로 보도블록 위에 붙어버린 홍보전단지들을 생고생하며 긁어내느라 청소시간이 길어져 나는 그들을 만났다. 평소 출근시간이 청소를 끝낸 후여서 늘 말끔한 거리를 걸었던 것이다. 실상 이 거리는 계절, 요일 등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매일 밤 젊은이들이 버린 쓰레기로 지저분해지고 있었다.얼마 전 당국이 이 거리를 `상대로 젊음의 거리`로 지정하였다는 뉴스를 보았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지만 `정체성이 없는 음주 유흥거리로 형성된 이 거리를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로 만들기로` 하였다는 보도다.관련 구간에 `가로환경개선사업과 유해환경개선사업, 지중화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단다. 또한 시의 역점시책 `그린웨이(Green Way) 프로젝트`와 `도시재창조 프로젝트`를 연계한단다. 연계를 통해 시민들에게 `문화공간, 여가공간을 제공하는 문화와 자연 그리고 인간이 어우러진 복합체 도시로의 변모`를 꾀한다고 한다.`젊음`이란 무엇일까. 나도 젊은 시절을 지나왔지만 한마디로 꼭 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국어사전은 젊음을 `나이가 적고 혈기가 왕성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혈기는 몸의 피와 기운 뿐 아니라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젊음은 싱그럽고 풋풋함 뿐 아니라 희망과 열정, 패기와 끈기 등을 통해 푸른 꿈을 꾸는 것이 아니겠는가.젊은이들이 꿈을 향해 모여 희망으로 나서야 할 `상대로 젊음의 거리`…. 이 거리가 앞으로도 소모적인 음주와 유흥,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가 계속된다면 새로 만들어질 `문화거리`가 무색해지지 않을까. 대화와 소통의 장,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위한 희망을 재충전할 곳이 되레 활력의 소진과 후회, 절망의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늦은 감이 있지만, 당국이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로 만들기로 한 것은 잘 된 일이다. 부디 용두사미가 되지 말고, 처음 계획대로 이루어 내면 좋겠다. 그리하여 `상대로 젊음의 거리`가 젊은이들의 음주, 유흥의 분위기도 하나로 보듬어내어 온 시민들이 꿈과 힘을 되찾는 미쁜 곳, 깨끗하고 밝은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2017-07-28

상품화 시대

▲ 김병래 수필가·시인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의 수입이 일반서민들의 수백 배에 달하는 것은 상품성 때문이다. 그만큼을 주고도 돈벌이가 된다는 얘기다. 당시에는 팔리지도 않았던 고흐의 그림이 이제 와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것도 예술적 가치보다는 상업적 가치가 더 큰 이유일 것이다. 21세기를 특징짓는 글로벌시대니 정보화시대니 하는 것도 물론 상업주의의 일환이다. 도대체 상업성이 없다면 누가 앞다투어 신소재를 만들어내고 정보의 경쟁에 박차를 가하겠는가. 한 마디로 상업주의야 말로 이 시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인 것이다. 상업주의가 갖는 속성 중 우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경쟁의 논리`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지금, 보다 나은 상품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경쟁은 그야말로 사활을 건 전략이요 투쟁이 되었다. 이제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상업적 경쟁력이 없이는 살아남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그런데 이런 경쟁이란 진보와 발전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과도한 경쟁으로 야기되는 부작용이 더 큰 후유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경쟁에는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게 마련이고, 소수의 승자들이 얻게 되는 이득보다는 대다수의 패자들이 떠안게 되는 손실과 불이익이 인류사회에 훨씬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승자 역시도 그 부하(負荷)를 떠맡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결국에는 승자든 패자든 공멸로 가는 것은 시차의 문제일 뿐이다.상업주의가 가진 속성의 또 하나는 `가치관의 전도(顚倒)나 왜곡`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삼라만상에다 모조리 가격표를 붙여 놓고 그 값의 고하에 따라 일과 사물의 등급이나 순위를 매기고 싶어 한다. 상품으로서의 가치, 즉 경제적 가치야말로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고 최상위의 가치개념이 되는 세상에선 사물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게 마련이다. 산이나 들은 부동산이 되고 계절이나 기후까지도 관광 상품이 된다. 자연 생태계 역시도 생태계 그 자체의 중요성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먼저 따지게 된다.상업주의의 속성 중에서 `광고효과`라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다. 상업주의란 물론 상품의 생산을 근간으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받고 파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상품의 판매를 위해서는 광고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광고의 효력이 아니고는 아예 어떤 상품도 제대로 가치를 가질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그리고 기왕의 상업주의를 끊임없이 부추기고 가속화시키는 것도 바로 이 광고의 힘이다. 광고라면 먼저 각종 매스컴이나 전단, 벽보, 간판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상품 그 자체가 이미 구매욕을 자극하게끔 고안된 광고물인 셈이다. 옛날에는 편리와 기능이 위주인 상품이면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결코 경쟁력을 가진 상품이 될 수가 없고, 소비자로 하여금 좀 더 강한 구매충동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디자인이나 포장에 오히려 더 많은 공력을 쏟아야 할 형편인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이 광고효과란 것이 단순히 상품의 판매량을 늘이는 것에만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란 데 있다. 물론 광고효과에 의한 소비촉진이 결국에는 자원의 고갈과 공해의 발생 등으로 자연환경을 황폐화시킨다는 것이 일차적인 폐해가 되겠지만 그것이 인간성까지를 파괴하여 비인간화(非人間化) 한다는 것에 더 큰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지금의 대다수의 인류는 태어나자마자 각종 광고물이 내놓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게 된다. 그 정보들은 상업적 목적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과장 되고 왜곡되거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정보들이 하나의 거대한 가상 현실이 되어 끊임없이 인간을 자극하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 태어난 아이들이 과연 어떤 가치관과 인격을 형성해 갈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17-07-21

송도에 부는 바람

▲ 김주영 수필가파도는 바다의 깊은 호흡이다. 들이쉬고 내뱉는 파도 끝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에서 거대한 생명의 시작과 끝을 읽는다. 거칠게 포효하는 바다의 뜨거운 숨소리를 듣노라면 내 삶도 파도의 한 겹이 되는 듯하다.아홉 살 때 여름이다. 포항으로 이사를 온 첫 해, 가족들과 피서를 간 곳이 송도다. 송도는 물이 맑고 모래가 곱기로 유명하였다. 전국에서 찾아온 피서객들로 붐볐고 돗자리를 펴려면 자리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물이 맑고 모래가 고와서일까? 조개가 참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사람들은 큰 자루 가득 조개를 잡아가기도 했다. 어린 내발목이 잠길 정도의 물에서도 조개를 잡을 수 있었다. 트위스트 춤을 추듯 모래를 비비면 조개가 잡혔다. 발가락에 닿은 조개의 느낌, 지금도 바닷물에 발을 담글 때면 모래를 비벼보기도 한다. 조개를 넣고 끓여먹었던 엄마표수제비는 추억의 한순간이 되었다.환경변화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변화시킨다. 공장들이 들어서고 해수오염이 심각해지면서 피서객이 급감하고, 1983년 해일 이후 지속적인 모래유실로 해수욕장은 폐장되기에 이르렀다. 연기가 올라오는 공장굴뚝들 너머로 해변의 길이가 3km쯤 되었던 시작과 끝을 가늠해본다. 해일에 밀려간 것은 모래만이 아니라 그 많던 횟집과 사격장, 오락실 등이 문을 닫고 떠났다. 빈집들은 흉물스럽게 변했다.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몇 해 전부터 해안이며 골목길을 다니게 되었다. 흘러간 시간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다. 내 카메라 렌즈는 더듬이가 되어 골목골목을 살핀다. 정지된 시간은 떠나간 시간과 미래 사이, 현재의 순간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숨결을 찾아서 사진에 담다보니 비오는 날 친구 집에서 웃고 놀았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남아있는 시간의 화석들은 추억을 불러오기도 한다.골목 안 빈집 앞에 놓인 낡은 의자에 잠시 앉아 쉬어간다. 카메라가 낯설었는지 줄곧 나를 따라다니던 길고양이 한 마리도 곁에 앉는다. 골목 끝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 몇 줄을 메모지에 적는다.“좁고 길다란 문을 넘어/ 우주를 떠돌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이쪽과 저쪽을 생각하네/탯줄마냥 늘어진 전깃줄이 바람에 엉켜/ 푸른 별빛으로 흔들리는 송도동/ 수수천년/ 뜨거운 울음소리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 모든 숨구멍은 짧은 골목을/ 찰나에 지나갔네/ 빈집/ 빈 의자/ 나는 초저녁별이 뜨도록/ 잠시/ 쉬었다가네”글을 쓰다 보니 옆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무료했는지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바닷가에 형성된 마을들 대부분은 해변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있다. 송도 해안가 골목길을 좋아하게 된 것은 길 끝에 아스라이 바다가 보여서다. 마치 이쪽과 저쪽 두 세계를 이어주는 미로를 걷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낙후된 건물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나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폐허가 된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들이 생겨나지만 신축 건물에 가려 바다가 보이는 골목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송도동 일대의 변화과정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인간의 이용가치 중심으로 환경이 변화되는 것을 바라본다. 동빈 운하가 개통되어 수로가 생겨나고 유람선이 다니게 되었다. 포스코 야경과 밤바다가 새로운 명소로 바뀌면서 해안가에는 찻집들이 생겨나고 있다.밀물과 썰물처럼 변화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송도에 다시 바람이 분다. 새로운 구조물들이 생겨나고 이용자중심으로 개발이 되겠지만 자연의 미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송도로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7-07-14

보도블록 위

▲ 강길수 수필가보도블록 위를 걸을 때는, 조심하는 버릇이 있다. 먹이 찾아 헤매는 작은 생명체를 밟지 않기 위함이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 한 여름날, 산에 소 먹이러 갔다가 소나무 아래 누워 단잠이 든 적이 있다. 그 작은 생명체가 온 몸을 탐험이라도 하는지, 사타구니까지 기어들어가 다니며 간지럽히는 바람에 꿀잠을 깼다. 다행이도 물거나 쏘는 종(種)이 아니어서 툴툴 털고 일어났다.중년기에 생명과 생태계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어느 날, 인도를 걷는데 웬일인지 보도블록 위를 바지런히 돌아다니는 작은 생명이 새롭게 눈에 보였다. 그전에도 숱하게 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다시 말하면, 그날 비로소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환경 분야에 오래 일한 경험으로 비롯된 생태계에 대한 애정과 종교적 취향, 문학에 대한 미련 같은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 싶다. 그 작은 생명은 바로, 개미였다.산골에서 자라나며 개구쟁이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려 놀 때는, 개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었다. 가재, 개구리, 뱀, 새, 물고기 같은 비교적 작고 자주 만나는 동물이 바깥 놀이의 주 대상이었다. 또, 잠자리, 나비, 매미, 풍뎅이, 하늘소 같은 잡기 어려운 곤충들도 장난감으로 삼은 존재들이었다.그러던 개미가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마음에 새롭게 자리 잡았다. 어릴 때 보던 개미와 같은 것인데, 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보도블록 위를 기어다니면 언제 사람의 발에 밟혀 죽을 줄도 모르는데, 먹이 찾아 헤매는 개미가 꼭 굶주린 하이에나였다. `저렇게 바지런히 먹이 찾아다니다가 느닷없이 내 발에 밟힌다면, 저 개미의 한 생은 얼마나 슬프고 허무할까`하는 생각이 화살같이 가슴에 박혔다.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날 자연 속에서 놀이의 대상이든 아니든 동물이나 곤충들과 함께 자란 세대는 산업화, 도시화 이후의 장난감세대 어린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누렸다 싶다. 그 축복의 내용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세상은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나무, 풀, 곤충, 동물 등 식물과 동물, 인간이 어우러져 산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자라난 것이 그 첫째다. 둘째는,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함께 걸어가야만 할 어떤 길이 있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명체들에겐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을 바라보며 산 일이 그 셋째다. 끝으로, 자기 삶은 어떤 모습으로든 스스로 책임지고, 참으며 살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정의한다.그렇다면, 영장답게 살아왔고, 살며, 또 살아가야한다는 말이 된다. 현대까지 물질문명사회를 이루어 오는 동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까 자연생태계를 마음대로 개발하고, 취하고 쓰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싶다. `기후변화, 온난화, 자원고갈, 자연의 보복, 지구의 악질 바이러스 인간` 같은 용어들이 등장하면서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지구촌 일반 시민들의 소비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물, 화석연료, 전력, 세제(洗劑) 같은 일상 소비생활에서 나부터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등 친환경생활로 개인의 삶을 바꾸는 일이 요구된다. 로하스나 슬로우 시티 같은 삶을 사는 일부 사람들에서 그 본(本)을 보듯,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는 `생태계사랑`이 지구촌 모든 정부들의 정책으로 채택, 수행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갈수록 커진다.우선 보도블록 위를 걷는 사람들부터, 굶주린 하이에나 같이 헤매는 개미를 밟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2017-07-07

유월의 단상(斷想)

▲ 김병래 수필가·시인# 누가 역사를 예단하는가. 독재자 하나가 함부로 휘두를 수도 있는 것이 한 나라의 역사다. 김일성 일족이 장악한 한반도 북녘의 70년 역사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철저한 압제와 세뇌로 이천수백 만 주민을 모조리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 기막힌 실상을 보노라면 인간의 역사란 것에 회의와 절망감을 금할 수 없다. 절대권력을 세습한 귀때기 새파란 독재자가 틀어쥐고 있는 북녘 땅의 역사는 그야말로 예측을 불허한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야욕이 저지른 민족 최대의 비극이다. 강대국들의 대리전쟁 운운하는 논리가 있지만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가령 김일성이 아닌 조만식 같은 이가 북한의 지도자였더라도 남침을 자행했을까? 전쟁의 원흉이 김일성이라는 증거로 남침을 허락해 달라고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수차례 간청을 한 기록도 있다지 않는가.# 김대중 정권의 소위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된 시기였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김정일의 교활한 술수에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김정일로서는 하등 손해 볼 게 없는 위장된 화해 제스처에 속아서 저들이 체제를 공고히 하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도록 막대한 자금을 갖다 바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핵미사일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꼴이 되었고.햇볕정책의 가장 큰 성과로 6·15선언을 꼽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선언대로 이행이 된다면야 희망찬 성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이 언제든지 뭐라도 트집을 잡아 폐기해 버릴 수 있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다. 어차피 지킬 생각이 없을진대 막대한 이권을 챙길 수 있다면 무슨 선언인들 왜 못하겠는가? 속단할 수는 없지만 그때 만약 햇볕정책 대신 김정일의 목을 죄는데 박차를 가했더라면 오늘의 핵미사일이나 김정은 정권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에 하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선다면 북한은 급속도로 경제와 산업이 발전할 것이다. 남북이 협력하고 공조하는 가운데 통일도 물론 조속히 추진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건재하는 한 그건 한낱 헛된 꿈일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을 모조리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제 목숨은 부지하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속셈인데,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군부를 대표하는 아버지뻘 장성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첨을 하는 판국에 누가 언감생심 그에 반하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인류의 역사에 절대권력의 사악한 독재자가 개과천선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남북의 통일도 북한의 개혁개방도 김정은이 없어져야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다. 한 가지 희망은 북한 인민들이 차츰 눈을 뜨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김일성 일족 독재의 철옹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시작되면서 남북화해의 기대가 되살아나고 있다. 햇볕정책에 관여했거나 옹호하는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기용되고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에 어긋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화해든 협상이든 한 쪽에서만 원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선은 북쪽 김정은의 처지와 의중을 파악하는 일인데, 절대로 핵을 포기하거나 개방을 할 수는 없는 것이 김정은의 한계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일시적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 핵미사일의 완성과 체제의 유지를 위한 돈과 시간을 벌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또다시 천추의 한을 남길 것이다.

2017-06-30

우물재 이야기

▲ 김주영 수필가한 마을의 이름은 그 마을이 흘러온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지명은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그 마을의 특성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주 긴 호흡의 생생한 문장이다.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에는 우물재라는 곳이 있다. 마을 곳곳에 시원한 물이 솟는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는데 참 예쁘고 정감이 가는 지명이다. 동해면에는 약초밭이 많아 약전(藥田)이라 부르고, 우뚝 선 바위가 있다하여 입암(立岩)이라 불리어진 마을도 있다. 발산(發山)이라는 마을은 봄이면 산과 골짜기에 꽃이 가득 핀 모습에서 유래되었다하니 자연과 사람은 긴 세월을 더불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본래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삶의 방식이 재편되고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지명은 그 지역의 특징을 잃었다.우물재의 빈 집터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담벼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있는 장롱들, 살짝 열린 문짝 사이로 길고양이가 들락거린다. 골목을 천천히 걷다보니 사용하지 않은 우물이 하나 눈에 띈다. 집집마다 상수도 시설이 놓이면서 효용성이 사라진 우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우물터에 나와 물을 길으며 서로의 안부도 묻고 웃음꽃을 피웠던 사람들의 추억은 어디로 갔을까? 우물가에 우두커니 선 고목은 자신의 몸에 두레박이 걸렸던 기억만을 허공에 걸어두고 늙어가고 있다.폐허가 된 우물재의 골목에서 근현대사의 아픈 시간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6·25 전쟁이후 인근마을에 미군주둔지가 조성되면서부터 이 마을에는 술집들이 형성되었다. 미군부대는 철수했지만 술집들은 그대로 남아 장사를 하였고 마을은 더욱 낙후되었다. 현재 유흥업소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우물재라는 마을 이름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사창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황석영의 소설 중에 파월역사를 이야기한 단편소설이 있다. 주홍글씨처럼 각인된 우물재의 이름에서 파월이라는 역사의 한 문장을 본다. 베트남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이 참가한 것도 결국 평화의 명분으로 목숨을 담보로 한 약소국의 비애였을 것이다. 전쟁, 인간성 상실과 잔흔들. 우물재의 낙후된 모습도 치유해야 할 전쟁의 상흔 같다.군부대훈련소 옆으로 해안둘레길 공사가 한창이다. 포항시에서는 우물재를 철거하고 공원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한다. 기존의 폐허된 골목을 허물고 또다시 건물들을 지으면 현재의 모습은 변화될 것이다. 광장을 만들고 조형물들을 세울 계획이라 하니 지나온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의 역사가 더해지겠지만 과연 건물들만 철거한다고 아픈 과거도 철거되는 것일까? 공원이 생기면 깨끗한 공간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철거보다 더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다시 되풀이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6·25 전쟁 뒤 미군의 주둔과 철수가 이뤄진 마을들은 우물재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용기있게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물재는 문학작품이 쓰인 배경과 역사적 아픔을 새롭게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물재에서 바다로 나와 걸으니 먹먹하던 마음이 좀 가벼워진 듯하다. 역사와 인문학적 이야기가 담긴 치유의 산책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우물재의 낙후된 모습은 수치스러운 과거가 아니라 약소국의 비애가 담긴 아픈 역사인 것이다.우물재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는 건강한 삶을 만든다. 행복지수가 높을수록 삶은 윤택해질 수 있다. 폐허가 된 공간뿐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치유될 수 있는 우물재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골목골목 새로운 문화가 꽃을 피우고 마을 곳곳에 예술의 영감이 살아있는 건강한 우물재가 되기를 바란다.

2017-06-16

숲속 하얀 밥상

▲ 강길수 수필가반환지점에 도착했다. 자주 오는 등산길의 첫 번째 운동시설이 있는 곳이다. 팔 굽혀펴기와 허리 젖히기를 하러 가는데, 저쪽 소나무 밑동 앞에 전에 없던 하얀 것이 보였다. `누가 액운 막으려고 소금을 뿌렸나보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평소처럼 운동을 했다. 마지막으로 허리 돌리기를 하려고 회전판 쪽으로 향하는데, 그 옆에도 소금 같은 흰 것이 놓여있었다.어떤 이가 두 군데나 소금을 뿌렸다 생각하니, 이런저런 의문이 들었다. 가족이 이 운동시설에서 다치기라도 했나. 자기 집 문간도 아닌 산에 소금을 뿌리다니. 산에 소금을 뿌린 것을 본 적은 없는데. 먼 이곳까지 소금을 가지고 온 정성이 지극하네. 소금 뿌리는 풍습도 양밥[禳法]에 포함될 테지…. 회전판이 가까워졌다. 미심쩍어 소금에 다가가 보았다.아니, 이럴 수가! 하얀 것은 소금이 아니라 쌀이었다. 누군가 솔가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하얀 쌀의 성찬(盛饌)을 차려놓았다. 산새들이나 다람쥐 같이, 산에 사는 생명들이 먹으라고 자기 쌀을 가져다 소담스레 차린 숲속 밥상이다. 저절로 혼잣말이 나왔다.“그래.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게야! 이처럼 아름다이 마음 쓰는 분이 함께 살고 있으니까!” 이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은 헛말이 아니었어”라는 속말도 들렸다.회전판에 올라서서 잠시 하얀 밥상을 바라다보았다. 궁금증이 도졌다. 저 쌀은 어느 집 것일까. 아니면, 어느 식당이나 단체의 것일까. 귀한 쌀을 가져와 산에 사는 생명들과 나눈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혼자 사는 분일까, 여럿이 사는 분일까. 아이일까, 어른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아무튼, 숲속 생명들에게 하얀 밥상을 차린 이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 가득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분일게다. 쌀 곧, 먹을거리는 자기 생명이 아닌가.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게 생명이다. 하여, 쌀을 나눈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나누는 일이 된다. 세상에 자기 생명을 나누는 일보다 더한 사랑이 있을까. 모름지기, 나누지 않는 곳에 사랑이 자리할 리 없다.이 숲에 자기 생명을 나누며 사는 분이 함께 오간다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즐거워졌다. 어두운 세상에서 자기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만난 기분도 들었다.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 그 안의 생명들과 먹을거리를 나누며, 행동으로 사랑하는 사람. 그분은 인류애는 물론, 하늘같은 큰 사랑의 나라에 사는 백성이리라. 언젠가 그분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반갑고 기쁠까. 그땐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하며, 가없는 그 마음을 배우고 싶다.부디 이 숲속 생명들이 하얀 밥상 주인의 뜻에 따라, 성찬을 잘 먹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며 산을 내려온다. 나도 모르게 요즈음 우리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과, 소담스런 숲속 밥상이 대비되었다. 지난 반년 동안 이성(理性)이 마비되었던 이 땅…. 미움과 네 탓, 대립과 분열로 달구어졌던 광장의 촛불이나 태극기의 모습은, 이 밥상의 아름다운 모습에 비하면 초라하고, 부끄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 싶었다.능선으로 내려오다가 마지막 묘소 부근에 다다랐다. 묘소 뒤에는 언제부턴가 커다란 죽은 소나무가 뉘어져 있어, 사람들이 통나무의자 삼아 잠시 앉아 쉬곤 하는 곳이다. 누가 버린 사탕 포장지가 보여 주우러 갔다. 그런데, 통나무의자 뒤에도 똑 같은 쌀 밥상이 있는 게 아닌가. 숲속 밥상 주인은 마음이 얼마나 넉넉하기에 여러 곳에다 하얀 밥상을 정성스레 차렸단 말인가. 아마도 내가 가지 않은 먼 여러 곳에도 숲속 생명들의 밥상을 마련했을 터다.더 큰 기쁨이, 하늘로부터 내 가슴을 지나 땅까지 찌르르 흐르는 기분이다. 내 마음은 속삭였다.`맞아! 세상은 들여다보면, 살만한 거야.`

2017-06-09

개구리 소리

▲ 김병래 수필가개구리소리를 들으러 간다. 마을의 불빛과 소음을 벗어나 멀리 들판 가운데로 간다. 모내기철이라 물을 가득 실은 논배미마다 개구리소리가 요란하다. 초여름 밤 무논에서 개구리소리가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한 것이 더없이 반가운 것은 부당한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 탓일까. 개구리소리를 들으러 가는데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초여름 밤의 흥취를 돋우는 데는 아무래도 막걸리가 제격이다. 먹다 남은 오이나 풋고추에 된장 한술, 가다가 가게에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사면 준비 완료다. 벗이 있어 동행을 해도 좋지만 혼자서 쓸쓸함을 벗하는 것도 못지않은 일이다.오늘은 그믐밤이라 아쉽지만, 때마침 휘영청 달이 밝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동서고금에 달을 쳐다보며 한숨짓고 하소연한 사람은 무릇 기하며, 달을 벗하여 술잔을 기울인 사람인들 얼마나 많을까. 그러니까 달은 동서와 고금을 잇는 무선 인터넷인 셈이다. 사람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들 세상 온갖 사연들이 담긴 달의 메모리용량을 어찌 따를 것인가. 그 옛날 이태백의 술벗이었던 달이야말로 마주하고 술잔을 기울이기에 더없는 벗이 아닌가.들판 적당한 곳에 신문지를 깔고 멀리 보이는 마을의 불빛을 등지고 앉는다. 어차피 그믐밤에도 이제는 옛날처럼 칠흑의 어둠이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인공의 불빛을 보지 않는 게 여름밤의 운치를 덜 깨는 일이다. 인기척에 잠시 멈칫했던 개구리소리가 하나 둘 살아나서 갈수록 구성지다. 달이 없는 대신 더 총총하고 영롱한 별빛이 대형 멀티비전 같은 무논에 얼비친다.비록 풋고추 몇 개에 막걸리 한 병의 술자리지만, 나는 시방 어느 왕후장상이나 재벌의 호화찬란한 주연(酒宴)이 부럽지가 않다. 아무리 많은 돈과 기술을 동원해서 연출한 분위기라 한들 이 초여름 밤 들녘의 정취에 미칠 것인가. 나는 지금 저 하늘과 무논의 별빛, 풀냄새 흙냄새를 실어오는 훈풍과 수천수만 개구리들의 코러스에 물아일체로 어우러져서 우주적으로 한 잔 하는 것이다.실의와 방황의 젊은 날에는 개구리소리를 맞으러 다니기도 했다. 삭신이 결리고 찌뿌드드할 때 폭포수 아래로 물 맞으러 가는 것처럼, 밤새도록 들판을 쏘다니면 개구리 소리에 실컷 두들겨 맞곤 했다. 그 시절에는 개구리소리가 참으로 무성하고 우렁찼다. 온 들녘이 떠내려갈 듯 악을악을악을악을…. 악을 써대는 듯한 개구리소리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있으면, 방망이질에 흠씬 두들겨 맞고 찌든 때를 게워낸 빨래처럼 마음이 한결 개운해지는 거였다.개구리소리를 한갓 단조로운 가락의 소음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때론 이 땅이 들려주는 질책의 소리였고 한편으론 더없는 위무의 소리이기도 했다.내가 나약하고 소심할 땐 꾸짖고 나무라는 소리였고 아프고 슬플 때는 다독이고 위로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때론 좌절과 자괴감과 허망과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세상의 온갖 논리와 위세들을 무산시켜버리는 무진설법이기도 했다.초로에 접어든 지금까지 나는 매년 초여름 밤중에 들판으로 나가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걸 연중행사로 해오고 있다. 방황과 고뇌의 젊은 날을 지나 불혹과 지천명과 이순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개구리소리도 많이 달라졌다. 공해 때문에 그 수가 현격히 줄어들기도 했지만 개구리소리를 듣는 내 귀도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이 들판의 개구리소리도 나와 함께 늙어가서 수명을 다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밤공기가 서늘하게 식고 술병도 바닥이 났다. 인생을 이해하려 것이 아니라 취하려 왔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도 오늘밤 막걸리에 취하고 하늘과 들판과 개구리소리에 취한다.

2017-06-02

햇살

▲ 김주영 수필가차디찬 눈밭에 노란 꽃을 피우는 얼음새꽃을 보고 있으면 해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지에 스며든 햇살이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 여린 꽃잎이 언 땅을 뚫고 나와 환하게 피어 대지를 데우며 겨우내 움츠린 봄꽃들을 모두 불러내는 듯하다. 마치 봄의 전령사인 양 얼음새꽃이 피면 햇살 퍼지듯 봄꽃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피기 시작한다. 해를 닮은 얼음새꽃이 겨울잠을 자는 다른 봄꽃들에게 희망의 편지를 쓴 건 아닐까? 희망이 가득한 사람은 웃는 모습도 햇살을 닮았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둡던 마음이 덩달아 환해진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첫인상은 밝은 햇살을 보는 듯했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메모 하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웃음은 봄 햇살이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웃음. 그녀의 웃음에는 노란 꽃빛처럼 밝음이 가득하다. 2004년 이른 봄날에` 그녀의 첫인상을 적어 시집 사이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그녀를 처음 본 것은 구룡포행 시내버스에서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구룡포에서 문학행사가 있어서 가는 길이었다. 빈 좌석이 많았지만 나는 그녀 곁에 앉았다. 힐끔 곁눈질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이 들꽃에 내려앉은 햇살같이 예뻐 보였다. 첫눈에 반했다. 왠지 말을 걸고 싶어 “구룡포 가세요?” 하고 물었다. “예?” 하고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더니 “예~”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버스 안에서 자기의 행선지를 알고 있는 듯 물었으니 놀랬을 것이다.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푼수 같아 보였을까. 그녀도 왠지 나와 같은 모임에 갈 것만 같아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 또한 문학행사에 가는 길이었다.문학을 매개로 한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살아오면서 첫 만남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걸 감안하면 지금도 우리는 그날의 첫 만남을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고 말한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주 많은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서로 동갑내기인 것을 알게 되었고 외모만큼이나 밝고 친절한 그녀는 “우리 앞으로 친구로 지내자”며 손을 내밀었다. 우연치고는 매우 드라마틱하지 않은가.그녀는 늘 따뜻하다. 대화를 할 때는 항상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어준다. “그래, 그래” 추임새를 넣을 때는 판소리의 고수 같이 흥에 겹다. 그녀는 `생각이 곧 마음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소한 일에도 근심걱정이 늘어지는 나와 달리 그녀는 늘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그녀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처럼 모든 일을 다 맡겨버려서인지 그늘이 없다. 그녀는 지혜롭고 현명하다. 가끔 내가 방향을 잃고 판단이 흐려질 때면 그녀를 만나 차를 한 잔 하게 된다.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묵은 먼지를 털어 내듯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그녀를 만나면 늘 긍정의 에너지를 받는다.동갑내기이면서 맏언니처럼 다독여주는 그녀의 마음에서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물가에 꽃이 피는 건 자연이나 사람이나 매 한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예쁜 웃음꽃을 피우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풀잎과 풀잎을 오가는 따뜻한 햇살 같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늘 먼저 안부를 물어온다. 기분이 좋아지고 힘나게 하는 말과 글. 자격지심이 심했던 내가 우울감을 극복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긍정적인 생각과 해맑은 웃음 덕분이다.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그녀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가고 싶다. 내 허물로 인하여 마음을 닫거나 상처받은 이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가면 환하게 웃어줄까? 언 땅에 햇살이 내려 움을 틔우고 꽃이 피어나듯 환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렇게 초여름 나뭇잎에 내려앉은 햇살처럼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2017-05-26

사랑의 묘약

▲ 강길수 수필가향긋한 냄새가 명지바람 품에 안겨 와 후각세포를 쿡 파고든다. 도시에선 낯선 향기다. 가까운 곳에 사람이 없으니 화장품 냄새도 아니다. 대체 어디서 날까. 사월 마지막 금요일 출근길. 반 시간 정도 걸어서 운동 겸, 출퇴근을 한 지가 두 해를 바라보고 있다. 광장을 지나 학교 옆 인도를 걷기 시작할 때, 갑작스레 짙은 풀 향기가 온 몸을 감싼 것이다. 어릴 때, 친구들과 차풀이나 자귀나무 잎을 뜯어 손바닥에 몇 번 치고 나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곤 하던 풀냄새 놀이가 파노라마 되어 비춰왔다. 소꼴을 베면서 맡던 농익은 풀 향기도 물안개로 밀려왔다.그랬구나! 가로수 밑에 조성한 잔디밭을 조금 전 깎은 모습이 눈에 나타났다. 잔디가 채 자라기도 전에 바지런하게도 묘 벌초하듯 깎아버린 것이다. 몸 잘린 잔디 잎들이 바람에 나뒹군다. 잡초가 함께 자라서였겠지만, 내가 보기로는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나았을 성 싶다. 간간이 함께 자라 피어난 노란 씀바귀 꽃들이 연록으로 자라는 잔디들과 어우렁더우렁 보기 좋았었다. 때로는 바지런도 탈이다.웬일인지 보름 전쯤 일이 떠올랐다. 퇴근길에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여느 사람들처럼 건너기 시작했다. 저 쪽에 차가 오기에 습관적으로 뛰었다. 네댓 걸음 뛰었을 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왼쪽 무릎부위에서 `뚝`하는 소리가 난 것이다. 순간, `아이쿠, 무릎 버렸구나!` 하는 속말이 가슴을 툭 쳤다. 심한 통증에 주저앉을 뻔 했으니 말이다. 고통을 참고 절뚝거리며 미련스레 집까지 걸어왔다. 괜히 뛰었다고 소용없는 후회를 했다.한의원에서 몇 차례 치료를 받았다. 두 주 이상 지났는데, 삔 무릎 부위가 그전 같지가 않다. 아직 뛰지는 못해도, 큰 고통 없이 치유되고 있어 불행 중 다행이다. 하늘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무릎 삔 생각 때문인지, 깎인 잔디밭이 수액(樹液)을 흘리며 고통 받는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수수께끼들이 연달아 콕콕 마음에 박혔다. `수액은 잔디의 피가 아닌가. 생명체 잔디가 싹둑 잘려, 남은 밑 부분이나 잘려나간 잎과 줄기 모두 피 흘리며 고통 받거나 죽어가고 있다. 졸지에 몸이 두 동강 난 체 피 흘리는 잔디냄새가 무슨 조화(造化)로 이리도 향기로울까` `생나무가 베어질 때의 향기나, 군불을 땐 후 몸에 밴 나무 탄 냄새가 좋게 느껴지던 일들은 또 무슨 연유란 말인가` 하고….사람들은 식품업이나 농축산업, 어업, 공업, 조경, 원예 등 여러 곳에 풀과 나무 곧, 식물을 원재료로 쓴다. 식물로 만든 제품의 향기는 바로 아로마테라피가 아닐까.식물이 고통당하거나, 죽어가며 내는 수액 냄새가 대체 왜 향기로 느껴지는 것일까. 식물을 먹는 인간과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수액 냄새를 향기로 느끼도록 태어난 걸까. 아니면, 식물이 자기를 바칠 때는 수액 냄새를 내도록 마련된 건가.아무튼, 내가 맡아본 수액냄새는 모두가 향기로웠다. 그렇다면, 하늘은 식물의 디엔에이 설계 시에 두 가지의 향을 `사랑의 묘약`으로 처방한 것이 아닌가. 우선, 다른 생명들의 보존과 번창을 위한 사랑의 묘약이 수액의 향이고 다음으로, 식물 자신의 종족 보존과 번창을 위한 사랑의 묘약이 꽃의 향이 되니까.맞아, 사랑의 묘약! 식물이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과 지체가 잘리거나 부서지며 흘리는 수액 곧, 피의 냄새는 바로 나를 살리는 사랑의 묘약이었던 게야. 자기 몸을 영양소로 바치며, 사랑의 묘약까지 덤으로 내어 주는 식물의 고마움을 나는 여태 제대로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식물을 대하고, 감사히 먹고 마시며 살아가야겠다.깎인 잔디향기가 사랑의 묘약으로, 도시의 아침을 밝힌다.

2017-05-19

자연과 기적

▲ 김병래 시조시인신앙의 유무를 막론하고 살아가면서 한 번도 기적을 바란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불치의 병으로 죽어간다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지경에 처했다거나 하는 등의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 좌절하고 체념하기에 앞서 기적이라도 일어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어떤 일이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즉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奇蹟)`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적이라는 것에는 흔히 종교적 의미가 부여되는데, 자연의 질서에 종교적 가치로서의 `성스러움`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앙하는 초월자(神)의 능력이 자연법칙의 일부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신념이 바로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표방하는 신앙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럴 리야 없겠지만 가상을 해서, 누가 사고로 손가락 하나를 잃었는데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그게 다시 생겨났다고 한다면 종교인은 물론 무신론자들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고 비상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가 그토록 엄청난 기적의 산물이라면, 그 사람의 몸뚱이 전체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인가. 고작 손가락 하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적이요 신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나의 몸뚱이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새로 생겨난 손가락 하나는 대단한 기적이라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통념이다.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는 것은 예삿일이고 호박이나 참외가 열렸다면 신비요 기적이 되는 것이다.기독교 구약성서에는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기독교인들은 하늘의 태양조차도 멈추게 한 야훼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신령스러우냐고 한다.과연 그런가. 태양이 서쪽에서 뜨고 포도나무에 호박이 열리면 위대하고 신령한 기적인가. 그렇게 뒤죽박죽의 혼란과 무질서가 경외할 기적이란 것인가. 태양이 날마다 지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은 과연 하나도 놀라울 게 없는 사소한 일인가. 태양을 향한 지구의 기울기가 조금 기울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여름에는 불볕 더위에 허덕이고 겨울에는 온 천지가 얼어붙는 혹한에 떨어야 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가. 밤하늘에 밀가루를 뿌린 듯한 은하수가 사실은 태양과 같은 항성(恒星)들이 모여서 성운(星雲)을 이룬 것을 안다면, 천체의 그 일사불란한 운행에 우리가 어찌 무한한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 중 단 하나라도 자리를 이탈해서 태양계로 진입해 온다면 이 지구 따위는 한낱 가랑잎처럼 타버리고 말 것이다.우주 삼라만상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불가사의요 무궁무진한 신비에 비한다면, 인간들이 기적이네 뭐네 호들갑을 떨어대는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병적현상에 불과한 것인가.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난리를 칠 대수인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고 태어나는 것이 세상이고 70억 인구가 미어터지게 바글거리는 지구가 아닌가.세상이 혼란하고 인심들이 피폐해질수록 온갖 혹세무민하는 것들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조잡하고 불순한 것들, 병적이고 지엽말단인 것들에 사로잡혀 세상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산천초목 온통 신록의 광휘에 휩싸인 오월이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얼어붙은 땅에 죽은 듯 앙상하던 나무들이 저토록 생기롭고 찬란한 신록을 피워 내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고 신비인가. 그 중에 사람으로 태어난 나란 존재는 또 얼마나 엄청난 기적의 산물인가. 나를 포함한 삼라만상 모두가 기적이고 신비일진대 쉽사리 좌절하거나 괴로워할 일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2017-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