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없이 태어나 어린 코끼리는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커다란 귀 너펄거리는 할머니 코끼리를 따라 밀렵꾼이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아프리카 긴 가뭄 속으로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처럼 걸어가야 한다 상아 없이 태어나 …… 상아는 코끼리의 존재증명과 같은 의미를 가졌을 터, 상아 없는 코끼리는 “아무 쓸모 없는 가죽나무”와 같은 존재다. 부모로부터 버려져 할머니에 의해 키워지는 아이처럼 저 상아 없이 태어난 어린 코끼리는 “할머니 코끼리를 따라” “걸어”가고 있다. 이러한 ‘슬픈 진화’는 가뭄을 일으키는 환경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 코끼리는 밀렵꾼들이 호시탐탐 저들을 누리고 있는 벌판을 가야 한다. <문학평론가>
2026-01-12
아침에 눈사람이 왔다 북쪽을 돌아서 온 사람 같았다 기침을 한다 따뜻한 모과차를 타 주었다 숨 막히는 흰 손으로 잔을 잡는다 저녁에 눈사람이 왔다 입이 녹아버려 말이 막힌 그가 손이 없는 장갑을 비빈다 (중략) 새벽에 눈사람이 갔다 목도리를 한 그는 입이 굳은 어둠을 데리고 갔다 흐르는 무릎을 껴안고 들여다보면 한때는 공중을 돌고 돌아온 물을 닮았다 다른 눈이 내리던 새벽이었다 ….. 시인을 찾아온 위의 시의 눈사람들은 어딘가 슬퍼보인다. 아침에 온 눈사람은 심하게 기침을 하고 저녁에 온 눈사람은 입이 녹아버렸다. 이들은 삶의 슬픈 운명을 전해주기 위해 온 손님들일까. 어쨌든 이 눈사람들도 새벽엔 다시 떠나야한다. 무릎부터 녹으면서 “입이 굳은 어둠을 데리고” 말이다. 그 “흐르는 무릎을 껴안”은 시인은 눈사람이 세월처럼 “한때는 공중을 돌고 돌아온 물”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문학평론가>
2026-01-11
동인천역 지하상가 계단 아래 모자를 거꾸로 붙잡고 든 사내 바닥과 하나 된 자세로 엎드려 있다 누군가 동전을 넣자 모자 속으로 다보탑이 사라졌고 누런 벽 이삭은 고개를 숙인 채 떨어졌다 또 누군가 두루미가 새겨진 동전을 넣자 사내의 손이 날아가는 두루미 목을 잡고 주머니 속으로 얼른 집어넣었다 (중략) 밤의 밖으로 밀려난 그림자들 슬픔의 동업자들 서로 떠나온 역을 등지고 앉아 구부러진 그림자를 파먹는 그림자들 빛이 모두 빠져나간 원형 광장에서 각자의 자세로 영혼을 재운다 매일 다른 밤이 같은 내일을 데려온다 ……… 우리는 새해를 맞아 덕담을 나누지만, 여전히 추위를 견디며 노숙하는 이들도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하여 시는 위의 시처럼 사회의 빛 이면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한다. “역을 등지고 앉아”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슬픔의 동업자들”은 큰 역에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을 터. 하지만 이들의 영혼은 “각자의 자세”로 “다른 밤이” 데려오는 “같은 내일”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시는 말해준다. <문학평론가>
2026-01-08
우리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 있겠어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요 (중략)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봄 짧디짧은 봄 우리 그저 바라보기로 해요 그뿐이라면 이번 봄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 새해가 열렸다. 우린 또 얼마나 다짐을 하며 새해를 시작하는지. 다짐은 마음에 짐을 얹는 일. 위의 시를 읽으며 위안을 얻게 되는 건 그 때문일 테다. ‘봄’을 새해로 바꾸어 읽어본다. ‘비장’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지 말고, “앞날에 대해 침묵”하며 “작은 약속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이와 그저 서로 바라보며 새해를 맞이하라고 시는 권한다. 그럴 때 적어도 “나쁘지는 않”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리라는 것. <문학평론가>
2026-01-07
내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맞은편 교회 앞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 나서 무릎을 꿇는다 맞은편 교회 앞에서는 볼 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울고 있는 여자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껴안고 있는 연인들 교회에서 와이파이를 끌어다 쓰는 십대들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나는 비가 오면 하늘을 만나네 …. 엘스파스는 1995년 생 독일의 젊은 여성 시인. 위의 시가 보여주듯, 정말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이들을 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들의 모습은 마음을 찌르는 슬픔을 준다. 저기 “울고 있는 여자”나 너무나 외로운지 “껴안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그렇다. 삶의 비극적인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느낌을 주는 것. 하나 비가 올 때면 하늘과 만날 수 있다는 시의 기막힌 마지막 구절이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문학평론가>
2026-01-06
바야흐로 히어로 과다의 시대이다 기꺼이 악당이 되기를 자처하면서도 정의사회를 수호하는 다크 히어로 다크와 히어로를 동시에 지닌 존재에게 대중이 열광하고 있는 건 사적 복수가 가능한 영웅이기 때문일까 히어로의 이름으로 행하는 과격한 응징 때문일까 악인이 악인을 단죄하고 악당이 악당을 처단하는 장면이 주는 희열 완벽하지 못한 히어로를 마주할 때 느끼는 우월감 죄의식 없는 악당의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를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영웅의 범법행위 그들이 넘나드는 경계선을 밤마다 훔쳐보듯이 위기의 순간마다 다크 히어로를 찾는 집단 카타르시스 그 틈 어딘가에 우리도 있을 것이다 …. 왜 대중은 ‘다크 히어로’를 찾는 것일까. 그 요청은 법만으로는, 선만으로는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일 테다. 하나 시는 이 또한 카타르시스를 찾는 ‘우리’의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적 복수’를 단행하고 싶은 원한으로부터 비롯되는 바, 죄의식으로부터 도피하고 ‘자의식 과잉’을 즐기려는 욕망이라는 것. 즉 범법자를 단죄한다는 구실로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법에서 일탈하려는 욕망. <문학평론가>
2026-01-05
밤기차를 기다리는 발간 눈 속 계단 밑으로 새까맣게 내려가는 눈발 속 절벽 같은 빼곡한 빌딩 속에 불 환한 구멍들 깍깍거리며 드나들고 있는 새들도 띄었다 대합실 청년이 앉았다 일어선 의자 위에도 절벽이 내려선다 몇 번씩이나 눈이 내린 층층서랍 같은 졸음 속엔 고향역 전봇대가 쏠리고 있다 빵빵한 고동색 천 가방, 그 삶엔 지금 단서가 없다 …. 용산역 대합실 의자에 앉았다 일어선 저 청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용산역 주변에 늘어 서 있는 고층 빌딩과 자신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했을까. 시는 도심 빌딩을 “절벽 같”다고 말한다. 저 높은 빌딩은 숱한 이들의 실패와 절망을 통해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리라. 고향을 떠나온 청년은 위압적인 ‘절벽-빌딩’에 둘러싸여 살아온 서울의 삶이 피로하다. 절벽이 그의 삶에 언제나 드리우고 있기 때문에. <문학평론가>
2026-01-04
우는 아이 이현승 소년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고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려 소년의 소매를 적시고 있다 우리는 거리에서 노래하고 거리에서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마시고 거리에서 사랑을 하고 잠을 자고 그리고 거리에서 죽는다 서로의 몸속을 보여줄 만큼 거리는 이제 아주 사적인 공간이므로 투명인간들이 활보하는 거리에서 소년은 눈물을 훔친다 책상에 앉은 채 소변을 보았던, 그러고는 곧 학교를 떠났던 그 소년처럼 길에서 우는 아이 얼음 조각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아이 이 길 위에서 사라질 아이 ……… 통상 가면을 쓴 ‘군중 속의 고독’이 논해진다. 한데 위의 시는 이와 달리 거리의 군중은 ‘투명인간들’이라고 말한다. 거리는 “사랑을 하고 잠을 자”는 우리의 삶 자체가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려 울고 있는 아이는 어떤 투명한 슬픔을 보여준다. 그것은 “책상에 앉은 채 소변을” 봐서 학교를 떠나야했던 소년의 슬픔처럼,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사라져야 하는 존재자의 비애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2026-01-01
반소매 아래 하얗고 가는 팔을 가진, 네이비 블루진 아래 탱탱한 허벅지를 가진, 물고 싶은 송곳니와 물리고 싶은 목을 가진 젊은 영혼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심야 독립 영화 상영관 앞에서 탑골 공원까지, 동대문 상가에서 대학로까지, 남산에서 한강대교까지 나는 무엇을 갈망하는지 몰라서 피에 탐닉한다. 피에 물든 달을 꿈꾼다. 검붉은 노래와 울음과 시를 입 안 가득 머금고, 겁에 질려 말을 잊은 골목길 모퉁이에서 앞머리 늘어뜨린 창백한 얼굴로, 텅 빈 눈과 깨물어 붉어진 입술로 우두커니 선다. 갈 곳을 잊은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 위 시의 젊은 흡혈귀는 도시를 살고 있는 젊은이의 전형적인 모습이겠다. “무엇을 갈망하는지 몰라서”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텅 빈 눈”으로 ‘우두커니’ 서는 젊은이. 하나 갈망 자체만은 강렬해서, 그 흡혈귀 청년은 이 갈망으로 인해 “갈 곳을 잊”고 그림자를 잃어버린 자신의 운명에 대해 “겁에 질려 말을 잊”게 되는 것, 이 비극적 운명이 그를 “검붉은 노래와 울음과 시를 입 안 가득 머금”은 시인이 되게 할 테다. <문학평론가>
2025-12-30
바람아 기억하는가 한때 나는 날개를 갖고 있었네 허공을 날며 사랑을 나누다 절정의 순간 몸이 터져 죽어버리는 수개미의 날개를 그러나 어느 날, 내 날갯짓의 에너지였던 사랑은 태양의 지평선을 따라 사라지고 난 지금 암흑의 대지에 갇혀 떠나간 사랑에 대해 쓰네 이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날개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생의 나머지를 견디네 …… 우리도 이카루스와 같은 경험을 해본 일이 있을 테다.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면. 사랑은 “절정의 순간 몸이 터져 죽어버리”더라도 우리를 날게 해주고, 태양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하나 사랑이 지평선을 넘어가는 태양을 따라 사라지고, “암흑의 대지에 갇혀”버린 현재는 더 슬프다. 날개는 쓸모없어지고, 비상의 기억만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떠나간 사랑에 대해 쓰”면서 나머지 생을 견디는 삶이니. <문학평론가>
2025-12-28
동네 산책길 자그마한 풀잎 하나가 발등을 툭툭 건드리며 말을 건넵니다 기우뚱, 중심을 잃기라도 하면 까르르 웃느라 잎사귀가 뒤집힙니다 이름조차 모르는 나에게 수줍게 말을 거는 작고 여린 것들 어찌 보면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세상에서 동거하는 처지인데 이름조차 모르는 내가 무심합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조용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 시인에게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물들은 말을 건네는 존재자다. 위의 시에서의 자그마한 풀잎도 그러하다. 화자는 홀로 사는 외로운 사람인 것 같다. 저 웃기 잘하는 풀잎도 외롭게 세상에 존재하기에, 화자의 외로움을 안다는 듯 말을 건네는 것일 터, 이에 화자는 더 나아가 깨닫는다. 풀잎의 말 건넴엔 “먼발치에서” 화자를 바라보는 존재자의 “조용한 마음”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그 존재자란 신 아닐까. <문학평론가>
2025-12-25
뗏목에서 그물 깁는 할아버지 옆에서 싸리나무 낚싯대로 복어를 낚던 아이가 할아버지가 잠시 조는 사이 잘피에 걸터앉은 해마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은빛 물고기 떼 헤치고 나아가는 물개의 헤엄이 그리는 곡선처럼 날렵하고 아리따운 단발머리 처녀가 짝다리 총각과의 혼인을 반대하는 어미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 전주 이씨 일가의 쟁기질 써레질을 도맡아 하던 아재가 메콩강 상류를 누비는 카누처럼 단단하고 순박한 외팔이 아재가 가랑비 오는 날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바닷가 언덕 포구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 안타까운 죽음들이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이들의 죽음. 망각에 저항하는 시는 위의 시처럼 이들의 죽음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복어를 낚던 아이가” “해마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물속에 빠진 일, “짝다리 총각과의 혼인”이 ‘어미’ 때문에 좌절하여 “농약을 마신” 처녀의 죽음, 양반집 일을 도맡았던 “외팔이 아재가” “목을 매”단 일 등을 위의 시는 기록한다. 이 죽음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문학평론가>
2025-12-23
오래 전부터 가장 메마른 땅을 가로질러 나를 실어 가는 이상한 배 위에서 얼굴들은 고통을 받고 말들은 메아리가 없다 불면이 깊숙이 파고들어 폭풍우는 거대하고 푸르다, 오래 전부터 난 내 水深을 의심했다. 지나친 재난을 확신했다. 이 세상의 水路나 입구가 그리웠다 가로질러 가듯이, 눈을 감고 난 스며든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건넌 고장은 죽어 간다 그리하여 사나운 키가 이끄는 대로 내버려둔다 오래 전부터 모든 희망과는 반대로 난 항구를 희망한다 ; 난 알고 있다, 내 잠 밖에서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별에게는 고통과 힘과 쓰라린 살갗의 경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 프랑스 현대 시인 장 주브의 시. 시인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배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상한 배를 타고 삶을 항해했다는 것, 자신의 “수심을 의심”하며 “재난을 확신”하고는, “사나운 키가 이끄는 대로” “희망과는 반대로 난 항구”를 향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하나 그는 “단 하나의 별”이 남아 있다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그 별을 위해서는 고통과 경련을 겪을 각오를 한다. 그 별은 ‘시’를 의미할 테다. <문학평론가>
2025-12-22
사람들은 현실에서 현실에서 행동하듯 행동하지 않아. 사람들은 더 느릿하고 대기의 수동적인 변화들을 기록하지. 아니면 스스로를 초록색 페르시아 개 그리고 새로 바꾸기도 하고. 누가 그러는 걸 보면 너는 알게 되지 세상은 억지로 짜 맞춘 거란 걸. 진부한 세상인 거지. 사람들은 가난해. ….. 미국의 현대 시인 크릴리는 위의 시에서 현실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억지로 짜 맞춘 거” 같은 진부한 세상의 현실. 이 현실에서 사람들은 “현실에서 행동하듯/행동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사실 “대기의 수동적인 변화를” 느릿하게 기록한다든지 스스로를 개로 “새로 바꾸기도” 하며 이 바쁜 현실을 비현실적인 행동으로 몰래 보내고 있는 것. 삶을 가난하게 하는 현실의 진부함을 이겨내기 위해. <문학평론가>
2025-12-21
당신, 날 버렸지요 불빛 하나 없는 쓸쓸한 빈집에서 홀로 쓰러졌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슬픈 짐승이 되었지요 달이 뜨면 언어의 심장을 파먹으며 허기를 달래다 다시 아침을 맞아야 하는 생을 동정했어요 슬픔은 상처에서 온다지요 상처밖에 없는 나는 빈털터리, 텅 빈 늦가을 같아요 ….. 한국 최초 서정시는 실연에서 비롯됐다. 실연은 서정시의 변함없는 주제. 위의 시는 실연당한 이의 마음이 도달한 극한을 보여준다. “쓸쓸한 빈집에서” “슬픈 짐승이 되어”가는 이. 그는 밤마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언어의 심장을 파먹으며” 글을 쓴다. 하나 고통스러운 아침은 다시 오고, 이러한 나날이 반복되면, 상처에서 오는 슬픔도 없어진다. 그 자신이 상처만 남은, 늦가을 같은 빈털터리가 되기에. <문학평론가>
2025-12-18
바다는 날마다 원고를 고친다 해변엔 마감이 없다 겹쳐 쓴 어제를 지우고 남길 것만 남기는 파도 제멋대로였던 문장은 퇴고할수록 매끈해진다 운율을 살려 행을 바꿔주는 바람 발자국의 궤도를 따라 끝내 우리는 둥근 행성이 된다 ……….. 시인이 자연의 움직임을 투시하고 시를 쓴다면, 자연도 시 쓰기에 가담하는 주체 아닐까. 자연도 시인 아닐까. 위의 시에서 바다는 시를 쓰고 있다. 마감 없이 영원히 계속되는 시 쓰기. 파도는 “겹쳐 쓴 어제를 지우”며 퇴고하고, 바람은 “운율을 살려 행을 바꿔”준다. 바다가 찍어주는 “발자국의 궤도를 따라”가며 ‘몽돌’처럼 둥글어지는 우리는 ‘끝내’ “둥근 행성이” 되고, 이렇게 자연의 시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문학평론가>
2025-12-17
밤새 투명 유리창으로 무장한 당신의 가슴을 두드리던 눈송이들 금세 쫓기듯 백담 계곡을 지나 미시령 쪽으로 연이어 넘어가고 미처 넘어가지 못한 얼음의 시간들이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며 용대리 황태덕장 주변을 검은 까마귀 떼로 떠돌고 있다 물기 젖은 침엽수 이파리마다 수정의 고드름이 피어나는 겨울 오후 제 힘으로 어쩌지 못할 거대한 눈보라의 풍경을 저 문밖에 세워두고 거기에 저항하거나 포기할 수 없기에 파괴될 수 없는 절대의 윤리. 뼛속까지 말라붙은 기억의 육질마다 황금빛 속살이 차오르고 있다 ……….. 문밖에 눈보라 휘날리고, 이를 응시하는 시인은 “파괴될 수 없는 절대의 윤리”를 생각한다. 그 생각은 눈송이들이 그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유인되었다.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는 “얼음의 시간들”이 떠올려진 것. “까마귀 떼로 떠돌고 있”는 시간들이니, 그것은 죽음과 관련된 기억일 테다. 그 죽음에 대해 절대의 윤리를 드러내는 눈보라는 시인의 “말라붙은 기억의 육질”을 “황금빛 속살”로 채우기 시작한다. <문학평론가>
2025-12-16
흰 눈이 내 꿈을 덮으며 읽어 내릴 때 길 위에 잘 있어, 라고 쓰면 밤새 네가 다녀간 것 같다. 이파리가 줄기에게 고요한 것은 말이 없어도 끄덕이게 되는 마음, 쌓이다가 만 입술을 허문 말, 마음의 뒤편은 늘 멍빛으로 젖어 있다. …. ‘너’와 작별하고, 그리운 네가 꿈에 나타난다. 그 꿈을 눈이 덮어 읽을 때, 시인은 길 위에 “잘 있”으라는 글을 쓴다. 그러면 “밤새 네가 다녀간 것” 같고, 멍든 “마음의 뒤편은” 푸른색으로 젖어든다. 이 아픈 마음은 “이파리가 줄기에 고요한” 수국의 모습 같다. 아픔이 쌓여서 “입술을 허”물었기에 말이 없는 이파리. 작별을 경험한 이들은 고요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학평론가>
2025-12-15
조국의 시간들은 달콤하리 - 태양은 따스한 빛을 내리비추는 땅! 초원을 지나가는 산들바람은 우리의 인생, 바람 한 점 없는 정적은 죽음, 가장 부드러운 미풍은 우리의 사랑일지라. 어머니의 얼굴 아래 잠이 깰 때, 우리는 뜨거운 키스로 삶을 노래하고 어머니를 안으려 두 팔을 내밀 때도, 어머니를 올려보며 두 눈이 웃을 때도 그러하리니. 조국을 위해 죽는다는 건 얼마나 달콤한가 - 나의 땅 위에는 태양이 따스한 빛을 비추나니 ; 죽음은 조국과 어머니가 없고 사랑을 못 가진 자에게 미풍과도 같은 것. …… 리살은 19세기 후반 스페인 치하의 필리핀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 1896년 스페인 당국에 의해 35살 나이에 처형당했다. 위의 시는 죽음을 불사한 그의 조국애를 보여준다. 조국을 위한 죽음은 조국 없는 이에게는 미풍과 같다. 조국은 어머니 같아 조국 없는 이는 “사랑을 못 가진 자”인 것. 하나 여전히 “나의 땅 위에” “태양은 따스한 빛을 비추”고, 이 땅을 되찾기 위한 죽음은 산들바람이 되는 일이라는 것. <문학평론가>
2025-12-14
호두가 어구똥지게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감자가 덕지덕지 몸에다 흙을 처바르고 있는 것, 다 자기 자신이 물집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다 터뜨리면 형체도 없이 사라질 운명 앞에서 좌우지간 버텨보는 물집들 딱딱한 딱지가 되어 눌어붙을 때까지 生이 상처 덩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래서, 나도 물집이다 불로 구워 만든 물집이다 나도 아프다 ……….. 우리는 터져버리면 ‘생’이 무너져버릴지 모르는 상처를 품고 살지 않는가. 시인은 더 나아가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 상처-물집-라고 말한다. 생 자체가 ‘상처 덩어리’라는 것. 하여 그 물집이 터지면 생 자체도 사라질 수 있는 것, 상처가 우리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는 물집이 터지지 않도록 호두처럼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거나 감자처럼 흙을 처바른다. 상처가 딱지가 되어 아물 수 있을 때까지. <문학평론가>
20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