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어느 어둠 속을볼 수 없는 누군가가,눈을 감고 다른어둠 속을 들여다 본다.그는 잠자는 사람들 가운데깨어 있는 사람.그의 소리로 그를 알라.초조하게 긁는연필, 부스럭대는종이, 작고 쉼없는 두드림소리, 한 영혼이 미세하게질겅거리는 소리,새롭고 잔인한세기에 자신을탄생시키는 이오래된 시 소리를 들으라.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계 시인 리영리의 시. 시에 따르면 ‘시인’은 “어둠 속을 들여다” 보는 이다. ‘시인’ 또한 “어둠 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기에, 그의 존재는 소리로 알 수 있다. 종이 위에 연필로 무언가를 “초조하게 긁”고 있는 소리로. 그것은 “한 영혼이 미세하게/질겅거리는 소리”다. 이 세기 역시 “새롭고 잔인”한 어둠의 세기, 이 어둠 속에서 “오래된 시 소리”는 저렇게 “자신을/탄생시”킨다. 문학평론가
2024-06-24
다양한 종이 우리를 넘나들지/ 구두 수선공과 친구가 되고/ 새들은 날아오르며 궤적을 남기네너는 내 손을 잡고 문득 흔들었지,/ 우리가 각자 삶의 외로운 구경꾼이자 싸움꾼이었을 때거리의 악사가 되어 떠돌아도 좋아/ 흔적도 남지 않은 음악이 되어나무 위에서 새가 열매를 떨어뜨리자/ 우리 손이 우연히 붉게 물들었다종이 흔들리는 순간을 좋아해/ 지나가는 음악처럼너의 초라함을 좋아해/ 철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린 조형물처럼/ 지나가는 경적처럼우리는 “우리를 넘나”드는 ‘다양한 종’의 존재자들과 마주친다. 하늘에 궤적을 남기고 날아오르는 새들, 구두 수선공, “내 손을 잡고 문득 흔”드는 너의 손, 그리고 “우연히 붉게 물”드는 “우리 손”도. 이 마주침은 삶을 좋아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 “종이 흔들리는 순간”도, “철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신구 같은 “너의 초라함”도 좋다. 시인이 흐르는 음악처럼 떠돌아다니는 거리의 악사가 되고 싶은 이유다. 문학평론가
2024-06-23
그저께는 미세먼지 주의보어제는 비가 몹시 내렸고오늘은 몸이 않 좋아창밖 풍경 바라만 보는 줄봄 냄새 맡으려가까이 다가가 감싸 안았던저 나무들, 멀리서 바라보니실루엣 한결 선명하고 아름답다.나날이 풍성해지는 잎사귀들과짙어지는 연둣빛더 또렷이 느껴진다.너무 오래 가까웠다가시나브로 멀어진 벗이여,만나지 못하더라도 부디편안하고 싱그럽기를….어떤 대상은 멀리서 보았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인다. 특히 가까이 두었던 대상이 그렇다. 팔로 감싸 안기도 했던 나무를 창 밖 풍경으로 보았을 때, 시인은 이를 깨닫는다. 멀리서 본 나무의 ‘실루엣’이 “한결 선명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벗도 그렇다. 언제나 가까이 있었던 벗. 하나 이제 그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하나 “만나지 못하”자 벗의 모습은 더욱 선명해지고 싱그러워지지 않는가. 그리움과 함께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4-06-20
새는 바람이 쓰는 문장울음의 외적 범주에 속합니다아무것도 쥘 것 없는 나무가쓸쓸한 영혼으로 흔들리는 오늘 같은 날은움켜쥔 것을 잠시 내려놓고메아릴랑 미련 없이 돌려보내요(중략)잘 보면 날개 안에 추신이 있는새는 지상으로 띄우는 편지가지들 흔들리는 숲에서아닌 척 눈 감는 나무의 쓸쓸한 영혼이당신께 보내는 바람의 외전입니다새와 나무는 친구,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나무의 마음을 듣고 하늘로 날아간다. 나무는 고독하게 한 곳에 서서 다만 흔들릴 수 있을 뿐이어서, 저기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어도 전할 수 없다. 하나 새가 나무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다. 시에 따르면 나무의 마음은 바람으로 발현되고, 이 바람이 새를 빌어 문장으로 표현된다. 하여 나무의 ‘쓸쓸한 영혼’은 새가 쓴 ‘편지’를 통해 지상의 ‘당신’께 전해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06-19
술 받으러 구멍가게에 갔다 덜컥 개에게 물렸다헐렁한 몸빼의 여주인이 개에게이 계집이, 이 다 큰 계집이,야윈 어미 개를 내 앞에서 큰딸 혼내듯 했다내게 되레 잘못한 일이 있었나 뜨끔했다술을 받아 나올 때 여주인은여태 눈도 못 뜨는 두 마리의 하얀 새끼 개를 들어 보였다따뜻한 배를 각각의 손을 받쳐 들어 나에게 보여 주었다.그 집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겨우 다시 돌아보았을 때에도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에도 모정이 있다. 술집 여주인이 “야윈 어미 개”를 “이 다 큰 계집이”라며 혼내는 건 그 개를 ‘큰딸’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미 개가 시인을 문 이유가 낯선 이로부터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음이 시의 뒤에서 드러난다. 이를 여주인도 안다. 시인에게 “두 마리의 새끼 개를 들어 보”이는 것을 보면, 모정은 동물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는 것, 이 시가 주는 감동이다. 문학평론가
2024-06-18
제가 죽어갈 때, 알게 하소서채찍처럼 얼얼하긴 했지만제가 날리는 눈을 사랑했다는 것을,제가 사랑스러운 모든 것들을 사랑했고그에 따르는 고통마저 명랑한 입술로달갑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제가 온 힘을 다해서, 제 영혼의완전한 깊이와 길이까지, 제 가슴이부서져도 개의치 않고 사랑했다는 것을,아이들이 모든 것이 딱딱 곡을붙여 노래하듯이 저도 노래하며삶 자체를 위해 삶을 사랑했다는 것을.20세기 초 활약한 미국 여성 시인 사라 티즈데일의 시.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를 위해 삶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사랑은 삶의 고통까지도 “달갑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것, “날리는 눈을 사랑”하는 것처럼. 온전한 사랑은 “사랑스러운 모든 것을” “완전한 깊이와 길이까지, 제 가슴이/부서”지도록 사랑하는 것. 아마 노래는 이 사랑으로 부서지는 가슴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4-06-17
두 사람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오후 2시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자마치 멈춰 있었던 것처럼아무렇지도 않게 숟가락을 들고 있다.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오물거리자한 사람이 그러지 말라는 것처럼 눈을 찡그린다.한 사람의 입과 또 한 사람의 눈 사이로사십 년의 오후가 자막처럼 지나간다.중얼중얼 사라지고 있다.한 사람이 입안에 남은 음식을 넘기려다사래에 걸렸는지 연신 기침을 한다.기침을 할 때마다 고개가 앞뒤로 크게 흔들렸지만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쓴다.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가느다란 시간을 건너가고 있다.이 시 속 ‘두 사람’은 ‘민방위 사이렌’이 상기시키는 어떤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자막처럼 지나간” ‘사십 년의 오후’라는 구절을 볼 때, 두 사람은 40년의 세월을 같이 지냈다. 위의 시가 발표된 2016년의 40년 전이면 1986년. 젊은이였던 두 사람은 이때 군부독재에 저항한 격렬한 투쟁을 하지 않았을까. 그 이후 40년은 ‘가느다란 시간’일 뿐, 두 사람이 상기한 어떤 기억을 굳이 말하지 않으려는 것이 이해된다. 문학평론가
2024-06-16
아무 날도 아닌 아무 날에 아무런 생각 없이 당신을 생각한다. 첫사랑도 같고 풋사랑이었던 것도 같은 희미한 기억 속에 당신이 불쑥 떠오르는 아무 날은 아무것도 아닌 기억 하나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아닌 기억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래된 추억의 철로를 복원시키고 수천 일 속의 어제들을 정렬 시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과거 행 열차표를 끊는다. 십 수 년 전 무방비의 마음을 태워 달리다가 경적도 없이 떠나버린 당신에게 이미 나는 아무개일 텐데 번번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억에 자리를 내준다. 아무. 날에나‘아무’는 아무 뜻도 없는 듯하지만, 다른 말들에 달라붙어 다양한 의미를 발산한다. 시인은 그런 ‘아무’ 앞에서 마음 깊이 묻어둔 ‘당신’이 ‘불쑥’ 기억 위로 떠오름을 느낀다. “무방비의 마음을 태워 달리다가 경적도 없이 떠나버린 당신”은 시인과 서로 ‘아무개’가 된 사이가 되었고, 그에 대한 기억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하나 그래서인지 ‘당신’은 더 “아무렇지도 않게” “과거 행 열차”에 나를 태우는 것! 문학평론가
2024-06-13
오늘 밤 물속은 차갑지도 무섭지도 않아요 바다를 수영하기에 적당한 수온, 바다를 건너기에 적당한 파도입니다 검은 밤 망망대해에 나 혼자 떠 있어요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바다와 물결을 비추는 달빛 낯설지 않아요 바닷물은 편안하게 일렁이고 부드럽게 나를 감쌉니다 그런데 왜 나는 두렵습니까 무더운 여름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땀처럼 밤새 수영을 해야만 아침에 닿을 수 있다니 매일 밤 나는 건너가고 있어요 매일 밤 바다를 기어코 건너고야 맙니다 햇빛 아래서도 내가 저체온인 이유를 아무도 모를 거예요‘검은 밤’이 되면 화자는 언제나 “망망대해에 나 혼자 떠 있어”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기에 낯설지도 무섭지도 않다고. 특히 ‘오늘 밤’은 “수영하기에 적당한 수온”에 “적당한 파도” 아닌가. 하나 그는 두렵다. “밤새 수영을 해야만 아침에 닿을 수 있”기에, 이 무한 반복의 필연성이 그를 두렵게 만드는 것. 그런데 ‘밤 수영’이란 시 쓰기 아니겠는가. 낮에도 그가 저체온인 건 이 시 쓰는 밤의 현기 때문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4-06-12
해가 진다원효 대교 남단 끝자락퀵서비스 라이더배달 물건이 잔뜩 실린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우두커니 서 있다가휴대폰 카메라로 서쪽 하늘을 찍는다강 건너 누가 배달시켰나 저 풍경을짐 위에 덧얹고 다시 출발라이더는 알지 못하네짐 끈을 단단히 묶지 않았나강으로 하늘로 차들 사이로석양이 전단지처럼 날린다는 것을위의 시에서 ‘퀵 라이더’는 아마 초고속으로 물품을 배달했을 터. 그는 “원효 대교 남단”에서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어딘가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너무나 아름다운 석양의 풍경이 저 ‘강 건너’ ‘하늘’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무심코 “휴대폰 카메라”로 저 하늘을 찍은 라이더는 예전엔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는다. 세계는 이 고달픈 노동 안에도 아름다움을 “전단지처럼” 날려준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4-06-11
나를 기억해 줘요 내가 사라지면,저 고요한 땅속으로 멀리멀리 가버리면 말이에요당신이 더는 내 손을 잡을 수 없고,나 반쯤 가버려 조금도 머물 수 없게 되면.나를 기억해 줘요 더 이상, 날이면 날마다,당신이 짠 우리의 미래를 내게 말해 줄 수 없게 되면 말이에요.다만 나를 기억해 줘요 당신은 잘 알 거예요이제 도움말을 주거나 기도하기엔 늦었다는 걸.그래도 얼마간 당신이 나를 잊는다 해도훗날에라도 기억해 줘요, 그리고 슬픔으로 마음 아파하지 말아요어둠에 휩싸인 내 부패한 몸이한때 나 간직한 기억의 자취만을 남긴다면,차라리 나를 잊고 미소 지어요나를 기억한 채 슬퍼하지 말고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낭만주의 시인 로세티의 시. 반복되는 “나를 기억해줘요”라는 문장은 절실함이 증폭되면서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시인은 알고 있다. “내가 사라지면” 당신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리라는 것을. 그래서 더욱 ‘당신’의 기억을 요구하는 것. 하나 시인은 당신이 “슬픔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견딜 수 없기에, 그땐 “나를 잊고 미소 지”으라고 말한다. 죽어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것이기에. 문학평론가
2024-06-10
오늘 가던 길 멈추고 왜가리 한 마리가후들후들 떨며 한겨울 넘기라고 물도 빼지 않고 버려둔 -동네 수영장 가 구명대 위에 웅크리고 서서정나미 다 떨어졌다는 눈초리로텅 빈 물을 둘러보는 걸 지켜보았다. 살아 움직이는 건피라미 한 마리도 없는데 이데 도대체 무슨 물이라는 거냐?물처럼 보이지만 물이 아닌물. 저리 뭐가 없으니 공기라고 해도 되겠다.나는 그 느낌을 안다. 나는 왜가리의 그 앎을느낀다. 세상은 협잡이다.내 앞머리가 떨린다. 내 어깨가 웅크러진다. 내 부리는쇠못처럼, 손도끼 날처럼, 날카롭다.그러나 헤엄치는 것도, 번뜩이는 것도, 날 노려보는 것도 없다.내가 살펴보는 연못의 수면 아래엔.현재 활동하고 있는 시인 맥켄드릭의 시. 시인은 세상을 겨울에 “물도 빼지 않고 버려둔” 수영장으로 본다. 그것도 ‘왜가리’의 눈으로. 왜가리 눈엔 수영장 물은 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물에는 살아 있는 그 무엇도 없기에. 연못으로 제유된 세상에도, 헤엄치거나 번뜩이거나 노려보는 것 같은 살아 있는 것이 없다. 오직 협잡만이 있을 뿐. 하여, 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인의 입은 왜가리의 부리처럼 날카로워진다. 문학평론가
2024-06-09
궁금해/ 사람들이 자신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는지자기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 어떻게 지우는지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다흰색에 흰색을 덧칠/ 누가 더 두꺼운 흰색을 갖게 될까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은/ 어떻게 울까나는 멈춰서 나쁜 꿈만 꾼다어제 만난 사람을 그대로 만나고/ 어제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징그럽고/ 다정한 인사희고 희다/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대체 무엇일까촛불이 세상을 변화시킨 시대. 촛불을 든 사람들은. 시인처럼 “자신의 끔찍함을” 견디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살아야 하는 평범한 이들이다. “흰색에 흰색을 덧칠”하면서 “징그럽고/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희고’ 흰 사람들. 하나 어딘가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그들. “나쁜 꿈만” 꾸는 시인은 그들과 다정한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 인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주고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다. 문학평론가
2024-06-06
보내지 못한 편지를 시간이 지나 다시 보낼 것인가. 지나간 시간 동안 ‘너’의 마음은 달라져버렸는데. 시는 한 발 더 나간다. “편지에 대해 편지를” 새로 쓴다는 것. ‘너’는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편지를 쓰고는, 이 두 편지를 뒤섞는다. 마음과 마음이 뒤엉키는 편지들. 이 편지들 사이의 시차는 시간의 “물성과 상실”을 품고 있다. 이 시차를 읽기 위해선 “오래 눈 감은 채 두 편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문학평론가지나가버린 편지. 이미 쓴 편지. 못 건넨 편지. 너는 훗날 수신인을 되살려내 그제야 편지를 건네려다가도 문득 망설이지. 편지의 내용과 달라져 있는 네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제 너는 그 마음에 대해서 또한 썼다. 편지에 대해 편지 쓰는 사람이 되어서 편지의 편지를. (….) 편지. 너는 물성과 상실에 대해서 생각해. 두 편지를 접어 패를 섞듯 섞었지. 너는 오래 눈 감은 채 두 편지를 바라보았다.
2024-06-04
검은 종이에 무엇을 쓰려고 연필을 들었습니다. 우린 너무 멀리 있군요. 하지만 당신의 숨소리가 나를 재우고 나를 깨우는군요.밤에 하늘은 검은 종이처럼 검고 아침에는 모든 것이 희고 고요하고, 고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나는 그것이 당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얼굴에 무엇을 쓰려다가 그냥 종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검은 밤 속의 당신은 너무 검고 흰 종이 위의 당신은 너무 하얗습니다. 밤의 아이처럼 눈을 감고 검은 종이에 무엇을 쓰려고 연필을 들었습니다만,시인이 무엇인가 쓰는 종이는 밤처럼 검다. 이 ‘밤-종이’의 공간에서 그는 아침의 고요함을 느끼며 당신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 숨소리에서 고요히 드러나는 당신의 희면서도 ‘밤-종이’처럼 먹먹한 얼굴. 무언가 쓰고자 하는 건 당신의 그 얼굴에 글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인 것, 하여 시인은 ‘밤의 아이’가 되어 연필을 들고 그 얼굴에 글을 쓰고자 하지만, 한편으로 그 얼굴은 너무 하얘 차마 글을 남기지 못한다. 문학평론가
2024-06-03
당신이 당신 심장의 포도주처럼 붉은밝은 장미들을 품고 내게 다가왔어요.당신은 그 꽃들을 구부려서 만든 화관으로나를 시장에서 멀찍이 떼어 놓았죠.당신이 연인인 내게 장미 화관을 씌워줬고나는 후광을 두른 채 옆에서 걸었죠.사로잡혀 포위된, 나는 그것을 당신께 바치는내 선물의 자랑스러운 징표로 쓰고 다녔어요.꽃잎들이 점점 창백해지고 오그라들어떨어졌고, 가시들이 뚫고 나왔죠.쓰라린 가시들이 후회의 관을 엮어서나를 당신의 연인이라고 선포했죠.우리는 ‘당신’과의 사랑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하지만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의 원인이 되곤 한다. 위의 시에서 말하는 사랑이 그렇다. ‘당신’은 “내게 장미 화관을 씌워줬”고, ‘나’는 화관을 “자랑스러운 징표로 쓰고 다녔”다. 그런데 그 꽃잎들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사랑이 스러지면서 남긴 것은 가시들뿐. 결국 화관은 “쓰라린 가시들이” 엮인 “후회의 관”으로 변해버린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시. 문학평론가
2024-06-02
새다, 박새 한 마리가 제 다리만큼 가는 가지에 얹혀 크고 작은 포물선을 만들며 무게중심을 찾아가고 있다뿌리까지 뒤흔드는 소요를 견뎌주는 가지잠시 후 서로의 접점을 찾은 새와 가지가 고요하다다시 발걸음을 떼다 숨이 멎는다언제부터인지 피사체를 주시한 채 카메라가 되어버린 그의렌즈 안으로 고요가 흘러들어간다그와 카메라와 새와 가지가 통합되었다, 시간의 한 공간에서!셔터 소리의 여운 그칠 때까지 난, 그들 시간의 그림자였다세상엔 우리가 지나쳐버리는 기적 같은 장면이 벌어진다. 시인은 이를 포착하는 이다. 위의 시에서 “숨이 멎”을 장면은 무엇인가. “제 다리만큼 가는 가지” 위에 사뿐히 앉아 있는 앉은 박새의 모습이다. 박새와 가지 사이의 세미한 접점을 만들어가는 자연의 묘리(妙理)! 그 이치는 고요히 표현되고, 그 고요를 흡수하는 ‘그-카메라’ 렌즈가 있다. 하여, 인간-자연-기계가 “시간의 한 공간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05-29
2024-05-28
한밤중 호수에 던진 돌 다음 날에서야 풍덩, 소리가 났다 아무도 따지 않아 달다 못해 썩은 과일이 떨어지고 호숫가 낚시꾼들이 먹고 버린 육개장 컵라면의 멀건 기름이 표정처럼 뜬다(중략)호수엔 너른 둘레가 있다 한없이 원에 가까운 물가 피었다 죽는 식물과 벌레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검은 깊이를 두려워하고 신성시하고 호수가 갑자기 말라버릴 재앙에 대해서 말한다 호수는 그런 날에도 잔잔하다 비가 많이 오면 넘치고 가뭄이 오래되면 바닥에 가라앉은 백골이 드러난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빛과 자세로 폐가 있던 자리엔 겹겹이 물고기 뼈들이 쌓여 있다“낚시꾼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로 ‘오수’가 되어버린 호수는 우리 세계의 실상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유명한 표현은 이 시에서 패러디되어 전복된다. 어떤 이들은 이 호수의 ‘검은 깊이’를 두려워하며 세계가 “갑자기 말라버릴 재앙에 대해서 말”하지만, 호수-우리의 마음-는 잔잔하기만 하다. 하나 홍수에 가뭄이 들이닥칠 언젠가에는 저 호수의 “바닥에 가라앉은” 죽음-백골-이 만천하에 드러날 터이다. 문학평론가
2024-05-27
다리 밑에는 다리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리만의 풍경이 있다다리 위로 지나가는 전철의 속도보다고요와 정지 속에서 빠르게 변하는 그림이 있다완성되지 않는 그림이 있다한낮에도 다리 밑에는 어둠이 있고그 어둠 속에서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그으며 꿈을 꾸듯이슬픈 그림이 그려졌다 지워진다나는 선사시대 공룡의 다리를 보는 느낌으로거대한 교각들이 소실점을 향해 멀어지다저 먼 건너편에서 아득하게 비밀스런 문으로 남는 것을 본다(중략)단지 하나의 사람으로 문 앞에 다다라,그 너머에서 신화 속의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시인은 다리 아래의 어둠 속에 머물면서 ‘성냥팔이 소녀’가 된다. 성냥을 그으면 ‘슬픈 그림’으로 환영들이 나타난다. 시인은 그 환영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면서, 그의 눈은 저 소실점까지 이르는 ‘거대한 교각들’을 악착같이 따라간다. 그가 결국 다다른 비밀스런 문 너머에서는 “신화 속의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왜 울부짖을까. 그 동물들이 문 안쪽 세계를 인간들에게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 아닐까. 문학평론가
2024-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