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시인은문 열어라 꽃아, 독백을 중얼거렸고다른 시인은문 열어라 하늘아, 은산철벽 앞에 서 있었다이제 우리는 가라앉아 있는 것들과 마주하기이미 지나간 일이라 말하는 자들과 대치하기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이 아닌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보여주어야 한다문 열어라 마음아마음아 문 열어라꽁꽁 얼어붙은 바다 아래꽝꽝 선언하는 광장 향해 (부분)“가라앉아 있는 것들과 마주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을 듣고 모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 이제 시인인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라고 이은규 시인은 ‘선언’한다. 그것은 광장이 된 “바다 아래”-세월호가 가라앉았던-에서 표명되는 선언들을 듣고 그 선언들을 시의 선언으로 변환-채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래전 시인”의 길을 따라 “마음아 문 열어라”라며 바다 아래 광장을 향해 귀를 열고 서 있어야 한다. 문학평론가
2022-06-09
가눌 길 없는 슬픔에 잠겨창가에 기대섰던 어느 밤드넓은 저수지를 건너던 어둠은우뚝 멈춰선 검은 옆구리에한사코 손톱만 한 불빛 몇 점을 걸어두었다옛날이거나 미래인 어느 밤내면의 불빛 모두 꺼진 당신 하염없이창밖을 응시할 때당신으로부터 머나먼 나의 창 또한그런 불빛 한 점내가 다시 울고 있는 밤일지라도저 어둠의 ‘옆구리’에서 빛나는 불빛, 그 불빛을 응시하는 당신을 비추는 창,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의 창”은 서로 희미한 불빛을 주고받고 있는 중이다. 이 주고받음은 “옛날이거나 미래인 어느 밤”에 이루어진다. 과거의 열렬했던 사랑 역시 저 멀리서 불빛을 반짝이고 있을지 모를 터, 현재가 이 불빛에 화답할 때, “나의 창”은 미래에 도래할 사랑의 재점화를 향해 반짝이는 “불빛 한 점”이 될 수 있으리라. 문학평론가
2022-06-08
꽃은 꽃을 떠났다 스스로 뿌리 없는 꽃이 되었다허공의 꽃이 되었다 바다의 꽃이 되었다한세월 훅 지나가버린 어느 날뿌리 없는 꽃이그리움에 돌아와 꽃을 찾았다그러나 꽃은 이미 시들어 그 흔적조차 없었다그렇게 영영 허공의 꽃이 되었다- ‘나비’(부분)지상에 붙어 있는 꽃의 일부였던 ‘나비’는 그 꽃을 떠나 허공의 꽃이 되었는데, “한세월 훅 지나가버린 어느 날” 그리움에 다시 지상의 꽃을 찾았지만 그 꽃은 시들어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나비는 “영영 허공의 꽃이” 되어서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자신의 근원을 찾을 수 없게 된 것. 사랑을 영영 놓쳐버리고 외롭게 이 세상의 바다를 날아가야 하는 나비, 시인은 사랑을 잃은 자신을 그런 나비라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2022-06-07
사람을 보면 우울하다 걸어 다니는 물이다뛰어다니는 물이다 작은 우물이다가라앉는 물이다바다에 비가 내리면 몸속에 새 물이 돋는다울먹이는 사람도 물이다우물이다 문이 닫힌 우물이다입으로 물이 쳐들어와 우물우물 말할 수 없는 우물이다 (부분)‘우울-우물-울먹-우물우물’로 이어지는 말의 유희는 의미를 말 아래로 미끄러트린다. 그래서 재밌게 읽히지만, 이 시를 관통하는 정동은 우울이다. 시인의 마음에 비가 내린다. 그 비는 마음에 고여 우물이 되고, 그 우물은 우울이 되며, 우울의 물은 입까지 ‘쳐들어와’ 시인은 “우물우물 말할 수 없”게 된다. 하여, 우울로 가득 한 마음은 시인이 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시인을 이끌게 만드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6-06
안개 속잠이 덜 깬다물도요강을 들고갯가에 나온할머니요강 비우는 소리에기지개를 켜는배들니야오니야오암구호를 주고받는갈매기들안개가 물러나니알몸을 드러내는갯가할머니의 “요강 비우는 소리”가 바로 아침을 불러들인다. 배들은 “기지개를 켜”고 갈매기들은 날이 밝았다는 것을 서로에게 알려주는 듯 “암구호를 주고받는”다. 이에 호응하여 “안개가 물러나니” 갯가가 선연히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연의 만물은 자력에 이끌리듯이 서로 화답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이 힘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자연 속에는 사랑의 힘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6-02
가난하다는 것은높은 산을 휘감는 구름과 하늘바람의 냄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산의 밑둥에서부터흙과 돌멩이와 풀들의 소근거림을제 몸에 녹여만남과 헤어짐의 꽃 같은 몸살 길을따라 걸으며우물의 깊은 뿌리 근처에서온몸을 침수시켰다는 것이다본향의 향기에 가까워질수록작열하는 노을의 옷을 입고 날갯짓 하는가난하다는 것은 (부분)본향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 깊숙이 존재하는 행복의 기억과 관련된다. 행복이란 세계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저 행복했던 시간-본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사랑”하는 것이며, 본향에 닿기 위해 “우물의 깊은 뿌리 근처에서/온몸을 침수시”키는 것이다. 시인에게 시 쓰기란 본향의 향기에 이끌려 ‘작열’하듯이 ‘날갯짓’하며 마음의 근본에 다가가는 행위다. 문학평론가
2022-06-01
올 겨울 제일 춥다는 소한(小寒)날남수원 인적 끊긴 밭 구렁쯤마음을 끌고 내려가항복받든가아니면내가 드디어 만신창이로 뻗든가몸 밖으로 어느 틈에 번개처럼 줄행랑치는저눈치꾸러기 그림자.시인은 마음과의 싸움을 선언한다. 싸움의 1라운드는 제일 추운 날로 선택한다. 살을 에는 추위가 정신을 번뜩 차리게 해줄 것이기에. 싸움의 장소는 “인적 끊긴 밭 구렁쯤”으로 정한다. 마음과의 싸움은 고독하게 해나가야 하기에. 하지만 마음과의 싸움을 해보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그림자 마음은 벌써 눈치 빠르게 도망쳐버린다. 마음을 붙잡으려고 하자마자 그 마음은 금방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5-31
빠르게 당신의 목숨을밟고 지나가는부지런한 죽음이 일을 하고 있다아주 사소한늘당신이 걸어왔던닳고 닳아 꼭 닫히지 않은문지방을 넘어 가는부지런한 집개미를 밟으며아주 가볍게죽음이그 흔한일을 하고 있다“당신의 목숨을/밟고 지나가는” 작업은 죽음에겐 사소하고 흔한 일이다. 마치 우리가 개미를 밟고 지나가듯이 죽음 역시 우리를 밟고 지나간다. 저 “부지런한 집개미”는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동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가리킨다. 사실 노동시간과 자살률이 OECD 국가에서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저렇게 죽어나가고 있지 않는가. 부지런한 노동은 “부지런한 죽음”에 짓밟히는 삶이다. 문학평론가
2022-05-30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빈 벌판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속에말없이 서 있는흠 없는 혼하나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마음도 떼어버리고문패도 내렸습니다.한 시적 영혼의 궤적장석주론369그림자하나길게 끄을고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시인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를 원한다. 그 시간은 마음의 시간이어서, 잎사귀 떼듯이 “마음도 떼어버”릴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빈 벌판”의 저 겨울나무는 그 경지에 다다른 존재자다. 시인은 동일시를 통해 “당분간 폐업”하는 저 겨울나무처럼 “들끓는 영혼을” 잠시 떼어버리고, 시간의 흐름 바깥에서 “깡마른 체구로” 존재하려고 한다. 그것은 삶을 내면에 응축하고자 하는 열망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2022-05-29
共同山은오순도순 가깝게 지내는 넋들이저마다 더운 가슴으로 저를 덮는 山.흰 옷깃 적신 사람들 다 돌아간 뒤에무덤들끼리 둘러앉아 이 세상 굽어보며나직나직 이야기하는 山.드디어 와야 할 것을 미리 알고도억새풀 흔드는 바람에게나 귀띔해줄 뿐눈 비비며 드러눕는 山.고요한 山, 넉넉한 山숨을 죽이고 광주를 지켜보는 山.공동산은 달빛에 젖어서슬픔으로 저를 번뜩이는 山.‘공동산(共同山)’이란 마을 공동묘지가 있는 산이다. 이곳에는 죽임을 당한 자들의 넋들이 “오순도순 가깝게 지내”며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공동산’에 묻힌 주검들은 바로 1980년 군부에 의해 살육당한 자들의 시신일 터, 이 산은 “숨을 죽이고 광주를 지켜보”고 있다. 살육된 자들의 넋들이 “저마다 더운 가슴으로 저를 덮는” 이 마을이야말로 이성부 시인에게는 80년 이후의 “시가 사는 마을”이다. 문학평론가
2022-05-26
귀를 기울여봐요가슴 깊이 오열하는 설움을 안고살짝 전하고 싶은슬픈 얘기가 있어요칼리포르늄에 쓰러져가는만 마리도 넘는 물개들리튬으로 질식해멀어져 가는 바닷새 목소리목청 높여떠들어대지 않아도속삭이고 싶은 사연이 있어요(부분)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흙탕물에 묻혀있던 저 안쪽 깊숙한 곳에서 떠오르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 속삭이는 소리들은 “살짝 전하고 싶은/슬픈”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침식당하고 살해당한 자연의 목소리, 물개나 바닷새의 울음소리다. 시인은 저 고통 받는 것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묻혀 있고 가려져 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자고 말한다. 그 발견은 새로운 삶으로의 길을 비추기 시작하기에…. 문학평론가
2022-05-25
옆집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 같다. 옆집에서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 같다.우리는 늙었으니까 잘못 들을 수 있다.우리는 젊으므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우리는 그의 옆집에서 그의 발소리를 숨죽여 기다린다.급기야 시인들은 서로를 몽둥이로 때리며 점점 분명해지는 옆집의 소리를 외면한다.우리는 계속해서 늙었다.옆집은 그대로다.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남은 음식이 뒤섞인 그릇을 오늘 자 신문으로 덮는다.악마의 행복도 이렇게 치밀하지 못했다. (부분)‘우리’는 “잘못 들을 수 있다”거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핑계를 들어, 옆집에서 살인이 벌어져도 그 비명 소리를 외면하며 살아간다. 세계로 의식과 몸을 열려고 하지 않는 우리들. 세계의 사건들이 펼쳐져 있을 신문지는 남은 중국 음식을 덮는 데 사용될 뿐이다. 이 ‘우리’란 시인들을 지칭하는데, 이를 볼 때 위의 시는 세계의 폭력과 비참을 외면하는 한국의 일부 시 경향을 비판하고자 하는 듯하다. 문학평론가
2022-05-24
네 꿈의 한복판네 온몸의 피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곳그곳에서 나는 눈을 뜰래네 살갗 및 장미꽃다발그 속에서 바짝 마른 눈알을 치켜 뜰래네 안의 그 여자가 너를 생각하면서아픈 아코디언을 주름지게 할래아코디언 주름 속마다 빨간 물고기들이 딸국질하게 할래너무 위태로워 오히려 찬란한빨간 피톨의 시간이 터지게 할래네 꿈의 한복판네 온몸의 숨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곳그곳의 붉은 파도 자락을 놓지 않을래내 밖의 네 안, 그곳에서 영원히돌아오지 못할래“네 꿈의 한복판”에, 즉 너의 몸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살갗 및 장미꽃다발”-에 존재하고 싶은 욕망. 그것은 ‘너’의 숨결이 만드는 “붉은 파도 자락”-“아코디언 주름”-을 붙잡고 싶은 욕망이다. 이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사랑에 대한 욕망은 “빨간 피톨”이 터지는 흥분의 ‘시간’을 요구하면서, ‘피-장미꽃-빨간 물고기-빨간 피톨-붉은 파도’로 흐르는 붉은 색의 이미지를 통해 시 전체를 관능적으로 채색한다. 문학평론가
2022-05-23
가슴 안의 치미는 불덩이꺼지지 않게내 옛사랑 옛사랑 툭툭 분질러던지는 것이니내 옛사랑 옛사랑 따라온저 바람의 날개짓으로자꾸 불타오르는 것이니중심에 오직 하나그 밖에도 오직 하나심장마저 깡그리 깡그리 빛으로 드는 것이니달려온 빛의 등을 빌어 타고그 안으로 안으로 날아가꽂히는 것이니활활 빛을 살라불이 되는 것이니시인은 격정으로 타올랐던 과거의 삶이 지금도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는 가슴 속 불덩이를 꺼뜨리지 않도록, 예전에 타올랐던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땔감 삼아 불을 놓는다. 그러자 사랑으로 벅차게 뛰었던 옛 심장이 불타오르며 빛이 되어 현재에 도달하고, 이로써 과거의 심장은 현재에 재생된다. 이렇듯 들끓었던 격정을 되살리기 위해 백지 위에 과거라는 땔감을 넣어 불을 피우는 것, 이것이 시 쓰기다. 문학평론가
2022-05-22
새지 않으면 소리가 되지 않는다 음악이 되지 않는다 노래가 되지 않는다 구멍으로 새어야 소리가 된다 막히면 끝장이다 한 소식도 들을 수 없다 새는 게 상책이다 새지 않으면 사랑도 되지 않는다 몸을 만들지 못한다 새끼를 만들지도 못한다 막히면 끝장이다 새는 게 上策이다 달도 뜨지 않는 그런 여자 하나가 바다가 출렁대지도 않는 그런 여자 하나가 오지도 않는 보름사리 때를 부르며 슬피 울고 간다 새는 게 上策이다샐 수 있는 구멍이 있어야 소리가, 노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구멍이 없으면 사랑도, 몸도, 새끼도 만들어낼 수 없다. 이 구멍은 온 몸이 뚫려 있어 세상을 다 빨아들일 수 있는 황홀한 상처인 꽃과 같을 것, 그것은 또한 ‘새끼’를 낳는 여자의 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 쓰기란 자신의 몸에 여자의 음문을 파고는, 그 음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어나가게 하여 ‘새끼’를 낳는 작업, ‘여자 되기’의 작업이다. 문학평론가
2022-05-19
가스레인지 위에 눌어붙은 찌개국물을 자기 일처럼 깨끗이 닦아줄 사람은언제나처럼 단 한 사람어젯날에도 그랬고 내일날에도 역시 그럴너라는 나, 한 사람우리 지구에는 수십 억 인구가 산다는데단 한 사람인 그는그 나는별일까진흙일까(부분)‘내’가 ‘단 한 사람’이라는 발견, 그 발견은 찌개국물을 닦는 나의 육체 활동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너’는 나의 육체이다. 이 육체의 지속성이 ‘나’라는 ‘단 한 사람’을 구성할 수 있는 지반이다. 나아가 시인은 묻는다. 이 육체는 어떤 물질인가? 별인가 진흙인가? 이 물음은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다. 삶의 본질은 단독자의 존재로부터의 승화에 있는가, 단독자로서 타인과 뒤섞이는 이 지상의 현실에 있는가? 문학평론가
2022-05-18
허파 가득 햇빛 꽉 채운 물고기가 있었어 냄새나는 쥐오줌 얼룩과 미끈거리는 물이끼 수족관 떠나 넓고 푸른 하늘로 가고 싶어 지느러미 대신 새의 날개 꿈꾸었지 부족한 산소 때문에 석회질 같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폐를 위로하며 허옇게 배 뒤집혀 죽어나간 영혼의 물고기 떼 뜯어먹었어 인공의 산소방울 대신 새털구름 마시며 살고 싶은 그는 어느 날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올라 내장이 터져버렸지 상처를 숨기는 건 마음먹은 것만큼 쉽지 않았어수족관 속이라는 극단적으로 폐쇄된 상황은 병동을 연상시킨다. 화자는 “새털구름 마시며 살고 싶”다는 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반대로 이곳에서 “인공의 산소방울”을 마시면서 “내장이 터져버”리고 만다. 상처는 ‘내장’에 숨겨왔던 무엇이다. 하나 터져버린 내장 때문에 이제 상처는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상처는 상처 입은 자의 환원될 수 없는 고통, 그만이 겪었을 고통의 삶 자체를 드러낸다. 마치 위의 시처럼. 문학평론가
2022-05-17
뜨거운 김을 쐬고 퇴근 무렵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내 얼굴에 붉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이미 죽음 직전의 표정을 연습하고 있다. 나는 두통을 이기기 위해 투구를 쓴다. 도도한 웃음을 연습한다. 열기를 보았다. 빛이 열기 속에서 반짝반짝 드러났다. 시장(市場)이다. 죽음의 얼굴을 파는 시장이다. 뜨거운 빛 속이다. (부분)도시를 상징화 하는 ‘황하’는 또한 시장이기도 하다. 시장의 “사람들은 이미 죽음 직전의 표정을 연습”하며, 시인 역시 투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도도한 웃음을 연습”한다. 이들이 상대방을 공격적인 눈빛-이 “뜨거운 빛”이 ‘황하-사막’의 열기를 만든다-으로 바라보며 짓는 웃음이란 시장에 팔리기 위한 웃음, 즉 진실한 삶을 죽이는 웃음이다. 시인은 이 죽은 표정들의 흐름을 ‘붉은 물줄기’로 상징화한다. 문학평론가
2022-05-16
넌 몸 돌려 날 돌아보았다.난 너를 새벽 종소리 같은 목소리로불렀기에.황혼이 깃들었을 때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사귀를타이르는 목소리로 불렀기에.난 나를아침 이슬과저녁때 지는 해와저 하늘의 저 양초와눈물 한 방울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거미집 같이 휘날려버리는 바람을 타이르는 소리로 불렀기에…넌 몸 돌려 날 보았다.당장 포플러나무의 솜털이 날라 와나의 손바닥과 너의 손바닥에 하얀 구름으로 앉았다.지금 삶의 황혼에 서 있는 시인은 떨어지고 있는 잎사귀를, 즉 소멸로 다가가는 삶을 타이르듯이 부른다. 그러자 다시 열린 새벽이 시적인 시공간을 열고, 손바닥에 날아온 솜털이 하얀 구름이 되는 시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 구름에는 시인-의 삶을 형성했던 고유한 시간들-“아침 이슬”, “지는 해”, “양초”, “눈물 한 방울”, “어린 시절의 추억” 등-이 담겨 있다. 고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문학평론가
2022-05-15
넓은 들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비가 한바탕 쏟아지자사람이 어디서 나타났다.그 사람이 뛰어 갔다.참 조용하다.미루나무는 서 있을 테지만어디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뛰어간 사람이 여자였을까한 행으로 이루어진 1연이 시의 나머지 부분과는 외따로 떨어져 있다. “넓은 들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처럼. 그로써 고독하게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고 여인일지 모르는 사람이 뛰어간다. 하지만 나무는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고 다만 “뛰어간 사람이 여자였을까”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저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세상을 뜨신 시인 자신임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저 중얼거림이 슬픔을 자아낸다. 그 중얼거림에는 버리지 못하는 그리움이 묻어 있기에 그렇다. 문학평론가
2022-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