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가슴을 밟고나뭇잎은 진다허공의 벼랑을 타고새들이 날아간 후,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그곳을 따라서나뭇잎은 날아간다허공을 열어보니나뭇잎이 쌓여 있다새들이 날아간 쪽으로나뭇가지는,창을 연다새들은 허공을 여는 존재다. 허공 속으로 나뭇잎은 날아가 “새들의 가슴을 밟고” 허공에 쌓인다. 나뭇가지는 그 새들이 연 허공을 향해 창을 열어, 쌓인 나뭇잎과 접속한다. 이 허공의 나뭇잎이 거름이 되어 나무를 키우게 될 것이다. 시인은 물구나무서서 보듯 하늘이 마치 나무가 뿌리내린 땅인 양 묘사한다. 그러나 그 변형된 모습이 정결하고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고전적인 단아함을 느끼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3-15
나무가 제 높이를 무너뜨려 피워올린불꽃처럼, 새는날개 밑에 층층이 석양을 쌓아 올린다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해도죽지 않는 바람, 오늘은남포에서 조개를 굽는다(중략)눈먼 자만이 날개를 달리라 처음 불 앞에 선 것처럼가장 환한 곳부터 까맣게 타서둘러 캄캄해지는 먼눈으로장님의 걸음만이 바다를 건너리니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하는여기 바람의 화장터,어디에서 저물어도밤은 허물밖에 내주지 않는다(부분 발췌)석양은 죽음의 운명을 향해 바다 건너로 날아가는 새들이 자신을 불태우며 마련한 불꽃이다. 그리고 바람은 “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한, 죽은 자를 불태우며 불타고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흐른 후인 밤에는 허물밖에 남지 않지만, 바람은 뭇 생명들을 죽음으로 이끌면서도 정작 자신은 “죽지 않는”다. 죽음과 삶의 겹침을 통해 이어지는 바람은 시간에 주름을 만들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3-14
아침이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이파리들자고 나면 잠자리에 수북이 이파리가 쌓여몸 여기저기에 물빛이 고였다여러 차례 물빛을 머금는 사이다가오는 이별의 시간도 마음으로 받아들여 순응하게 됐다모든 잎들이 떠나자 겨울나무처럼 나는 다시 앙상하고 소슬해졌고이슥토록 눈만 서늘히 망연해지다 보니몸 안 깊숙이 오롯한 물줄기 하나 생겼다마음 숲 속에 들어앉아 물소리에 잠겨서 흐르는 날들모르는 사이 어쩌면 나무의 몸 나무의 마음이 되어이 생에서 저 생으로 건너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분 발췌)저 푸르렀던 잎들의 죽음, 그 이별의 시간에 순응하면서 시인은 “앙상하고 소슬해”지지만, 뜻밖에도 그는 물줄기 하나를 몸 안에 갖게 된다. 이 물줄기는 소멸되어가는 그의 삶을 다시 소생시킬 ‘나무’가 되는 삶을 그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나무되기’로서의 삶이란 죽음의 긍정을 통해 뿌리의 힘을 키워 대지의 힘과 접속하는 삶이다. 시듦을 수락하면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더욱 깊은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3-13
늙은 소나무 마른가지가 목탁을 친다삼성산 망월암 극락전 앞다 늙어빠진 여자가대웅전 문고리를 잡고 흔든다거기 누구 없는가이젠 아무 소용 없는가평생 푸르기만 하던 여자입에 쳐진 거미줄조차 걷어내지 못하고저 혼자 스스로다비식을 한다다 말라버린 자궁만한 입 가득저녁노을을 물고 있다저 저녁노을은 ‘소나무 그 여자’의 삶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궁은 어둠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그 노을을 냉큼 무는 것이다. 자궁은 자신의 안으로 들어온 노을로부터 새로운 삶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이러한 자궁의 이미지는 죽음으로 향해 가는 늙어버린 생명체와 이에 반해 더욱 강렬해지는 삶의 처절한 의지 사이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며 농도 짙은 긴장을 창출한다. 문학평론가
2022-03-10
흐린 날 뱃고동소리 없는 포구 속으로둔탁한 밀물이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기어 들어온다게으른 갈매기 서너 마리 느리게 공중회전하며아침 사냥에 나섰지만 싱싱한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버려진 물고기들의 시체 앞에서 허기를 채운다개펄에 코 박고 누워 있던 낡은 목선들은제 발로 걷지도 못하고 밀려오는 파도에등 떠밀려가며 하루의 삶을 연명한다허물어진 방파제 돌무더기에는 따개비들만이 떼 지어 앉아좁은 주둥이를 하늘로 향한 채 비릿한 세상을 흡입한다(….)이 시는 스산한 장고항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시지만, 단순한 풍경 묘사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뱃고동소리도 없는 장고항. 이곳에서 갈매기는 싱싱한 고기를 얻지 못해 “버려진 물고기들의 시체”를 먹는다. 목선들은 새 것으로 교체되지 못하고 낡아버렸다. 생명력이 박탈당한 세계. 이 생명력 잃은 항구의 모습은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닫혀 있는” 현 우리 사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평론가
2022-03-09
꿈과 현실 사이의 아득한 거리. 당신과 나 사이의 멀어짐과 가까워 함이 함께하는 막막한 거리. 밤새 숲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새 한 마리처럼, 내 안에서 잠들지 못하는 당신.저 아래에서 도란도란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축축한 구두와 올 빠진 양말 알이 밴 종아리가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까지 가야하는 지를 모르는 물처럼 흘러갑니다.떠나오기 전에 부친 엽서가 천지간을 떠돌다 수취인이 없어 돌아와 문전 발치에 놓여있을 것을 생각하면서 별빛에 질려 있는 흰 물결 같은 밤길을 하염없이 걸었습니다.사랑은 꿈처럼 아득하게 멀리 있어서 ‘당신’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음을 알기에 시인은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 저 새들처럼 ‘당신’은 ‘나’의 마음속에서 항상 지저귀고 있기에. 시인이 부친 엽서는 당신에게 가 닿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집 “문전 발치에 놓”일 것이다. 하나 당신은 여전히 유령처럼 시인의 눈앞을 어른거릴 것이어서, 시인은 밤길을 ‘하염없이’ 헤매 다녀야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3-08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사원을 끼고 도는 바그마티 강, 그 다리 옆 화장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산 자의 행렬, 앞의 주검을 태우던 장작이 강 위를 부유하면 뒤의 산 자는 자신의 몸을 태우기 위해 타다 만 젖은 장작을 건져내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마른 장작과 젖은 장작 반 개비 차이일 뿐.내 뒤에 죽을 자가 타다 만 장작 쪼가리 하나 건지지 못할 때 타다 만 내 주검이 그의 주검을 태울 젖은 장작이 되어도 좋을 아침, 손만 씻으려 수도꼭지를 틀건만 머리 위로 불보다 더 뜨거운 찬물이 쏟아진다일상 속에서 화장되어 주검이 될 수 있는 삶이란 시를 쓰는 삶일 테다. 시란 자신의 존재를 태워 얻어내는 것일 테니까. 그 불씨를 안고 있는 시는 타인의 삶 역시 태울 수 있는 장작이 될 수 있다. 삶을 태운다는 것, 죽인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것, 화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장은 저승에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육신을 태우는 일이기에.(*‘파슈파티나트’는 네팔에 있는 힌두교 최대 사원이다.) 문학평론가
2022-03-07
가장 멀리 떨어져야가장 멀리 날아가는 건활시위와 화살의 사이다과녁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자지러질 때까지그리하여 만물이 선명해질 때까지충분히 기다려야멀리서 온갖 꽃봉 터지는 소리 들린다그대와 나의 사랑의 역설처럼그리움이 사무쳐서 자지러져야 화살은 멀리 날아갈 수 있으며 ‘꽃봉’은 터질 수 있다. 사랑이 지금 이루어진다면 활시위와 활 사이의 거리와 같은 긴장의 강렬성은 약화될 터, 사랑이 강렬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은 도리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 시인은 “그대와 나의 사랑의 역설”이라고 표현한다. 그리움을 증폭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뜨겁게 만들어야 사랑의 아름다움-꽃봉-이 터질 수 있다는 역설. 문학평론가
2022-03-06
골목 꿈속까지 밝히던 보안등과장마철 하수도를 역류해 스멀스멀 차오르던 미류나무수만의 잎 흔들어 머리속 하얗게 지우던 미류나무썩는 냄새와 붕붕거리던 왕파리와몸 부벼 속삭이던 낮은 풀들과골목 한가운데 눈 까뒤집고 넘어진 쥐기어이 웃음 하나씩 켜 들던 이름 모를 꽃들과약 먹은 쥐 먹고 개거품 물며 나뒹굴던 고양이가끔씩은 이것들의 얼굴 어루만지던 바람과그 여름끝 며칠만에 발견된 망뚱 할매의 여비 없이 떠난 하늘행당신과 함께였던 한 여름 그곳재개발이 한창이더군요하지만 내 마음 아득 생생한 변두리는어떤 기계도 허물지 못할 것입니다“당신과 함께였던” 추억의 장소는 현재 재개발 중인 도시 변두리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더러움과 죽음이 ‘미류나무’, “속삭이던 낮은 풀”, ‘기어이’ 핀 꽃, ‘가끔씩은’ 불던 바람과 대비되면서 공존한다. 이 대비 때문에 “당신과 함께였던” ‘그곳’에서의 시간은 우울하면서도 아름답고 숨 가쁜 것으로 기억되는지 모른다. 시인은 이 장소가 허물어지더라도 마음 속 추억의 공간만은 허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03-03
당신의 명징한 총성과 내 포효(咆哮)가 맞닥뜨려 침엽수림들의 따가운 비명이 쓰러지고 쌓인 눈 더미들이 하얗게 겁에 질릴 날은 올 것입니다. 숨가쁜 입김이 눈사태처럼 헝크러져 꼭 한번은 그대와 내가 그 눈 더미 속에 함께 묻힐. 그대 가슴의 살이 파헤쳐지고 내 가슴의 핏톨이 흩어져 눈더미 속에서 우리 서로의 가슴을 부둥켜안을 그런 굶주린 화약(火藥)같은 날이. (부분 발췌)이 시인에게 사랑은 폭발하는 것, 과격하고 두려운 그 무엇이다. 사랑의 갈구는 이 “굶주린 화약”이 터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 화약이 터질 때, 사랑하는 그대와 나는 서로를 죽이면서 해체되어 용해되고 섞여버릴 것이며, 너와 나의 구분도 없어질 것이고, 결국 함께 묻힐 것이다. 죽음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불러오는 것, 삶의 찬란한 폭발-사랑-을 불러오는 것이 이 시인의 과격한 사랑법이다. 문학평론가
2022-03-02
나무들이 마주서서 악수를 한다얼어붙은 겨울 강을 건너왔느냐고반갑다고수많은 가지와 가지들이 손을 마주잡고 흔드는4월 윤중로에는말없는 말들이 하얀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르고구경나온 발걸음도 뭉게구름봄날이 쏟아낸 군상들, 더러는 둘이 너댓이 모여앉아싸목싸목 봄을 베어 먹는다스피커가 토해내는 비발디의 봄이짤랑짤랑 은방울 소리 꽃길을 가고내 속에 잠들었던 홍매화 꽃망울 하나꿈틀꿈틀 기어 나와늙은 벚나무 가지 위에 올라앉는다새로운 생명을 출산하는 자연의 생성력은 자연물들이 무조건적으로 서로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 생성력은 위의 시에서처럼 도시의 일상 풍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겨울을 견뎌낸 나무들이 악수를 하고, 나무의 가지들도 서로 손을 잡는다. 봄의 생명력이 ‘윤중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구경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에도 생명력이 지펴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홍매화 꽃망울 하나’가 ‘꿈틀꿈틀’ 태어난다. 문학평론가
2022-03-01
나무 잎사귀 사이로하늘 한 자락 만져본다한 송이 솜털구름그리움인양 서럽다차가운 새 한 마리솜털구름에 문양을 남기며나뭇잎 속으로 숨는다마음에 머문새의 잔영푸드득,사랑이 날아왔다촉각을 통해 시인과 세계는 육체적으로 교통한다. 그 교통은 몸에 새겨진 기억들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늘을 만지니 보드라움이 느껴진다. 그 하늘엔 ‘솜털 구름’이 떠 있기에. 솜털 구름의 촉감은 당신 몸의 부드러움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 이젠 당신의 몸을 만질 수 없기에, 그 그리움은 서러움을 낳는다. 그때 새 한 마리가 “나뭇잎 속으로 숨”으며 구름에 남긴 문양이 “새의 잔영”으로 시인의 마음에 머문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깨달음! 문학평론가
2022-02-27
벌레 먹은 자리 먼저 타올라붉어진잎맥 푸른 언저리여운처럼 가슴에 남아아득히 푸른 길 따라가 보면아직도 그 체온 잔잔히내 손에 남아 있다바람이 불어와 그 사랑 흙에 묻히고메마르게 부서져 흩어지기 전에푸르렀던 꿈금빛으로 뿌리는 오후의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시인은 사라지고 있는 낙엽들의 꿈이 금빛이라고 믿는다. 삶의 막바지에서 찬란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시인은 잎들을 떨어뜨리는 나무처럼 사라지는 기억들과 사랑을 찬란하게 발산하며 사라지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 시인 역시 아직 파괴되지 않은 꿈들을 찾아 기억하고 시화(詩化)하여 빛내고 싶은 것이다. 이제 살 힘이 소진되어 낙하하지만 푸른 꿈들을 간직하면서 금빛으로 화하는 낙엽처럼. 문학평론가
2022-02-24
멀리 선 나무가 평화스러워 보여도몸을 만지면 상처투성이이네.바다가 멀리서 태평한 듯 보여도발을 디디면 파도가 그의 상처이네.강물이 조용히 명상에 든 것은굵은 비가 울고 간 후이고갈대가 하얗게 꽃을 흔듬은밤새 찬바람과 싸운 끝이네.자연은 슬픔을 꽃으로 피우네.사람만이 슬퍼서 병이 나네그리고 병이 깊을 때,그의 영혼은 그늘의 새순 같은 詩가 되네.자연은 평화롭게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투성이 나무, 바다의 상처인 파도, 굵은 비의 울음, 찬바람과 싸우는 갈대, 이 모두는 중생의 삶처럼 슬픔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사람과는 달리 병나지 않는다. 슬픔을 꽃으로 승화시키기에. 반면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아픈 영혼은 ‘새순 같은 시’를 낳는다. 그리고 그 시는 사람이 꽃 피우는 나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새순-을 틔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2-23
이보리 외투에 금빛단추가 반짝인다오랫동안 묵혀 있던 지친 희망이옷장 문을 열 때면 빛을 보낸다외투 군데군데 좀이 슬고단추를 채우던 기억도 잊혀졌지만아이보리색 외투는 옷장 한쪽을 지키고 있다어둠 속에서도 떠날 줄 모르고내게 가끔씩 20W의 빛을 보낸다이젠 통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재활용 할 수도 없는데온 몸으로 햇살 받기를 꿈꾸고 있다내 속으로 끌어안고 있는타오르는 그리움설레이는 사랑이란 단어처럼분리되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는 이 미련들20와트 희망의 빛을 보내는 금빛단추. 이 단추를 달고 있는 외투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여러 기억들을 안고 있다. 그리움이나 설레는 사랑과 같은 정념들. 포기되길 강요당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정념들. 이 정념들을 품고 있는 기억들이 단추의 빛을 만든다. 그 단추를 단 이 기억 상자-외투-는 사랑과 그리움이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기다리며 ‘햇살 받기’를 꿈꾼다. 모든 기억과 정념들을 밝게 드러낼 햇살을. 문학평론가
2022-02-22
덕진 연못에 가면오색천으로 옷을 기워 입은 사람이 단소를 분다크고 작은 천조각을 아무렇게나 이어붙였다명주천에 무명천, 두꺼운 모직천도 보인다얇고 두꺼운 천들을 모아 붙여 울퉁불퉁하다흠집을 한 실이 동아줄이니 더욱 편편하지 않다듬성듬성한 바늘 땀으로 실밥마저 늘어져 있다꽃잎이 조금씩 열린다차차로 물 위에 연꽃이 뜬다봉오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누더기, 남루.천지를 끌어안은 사람이 단소를 분다물 위에서 연꽃이 고요하다.“천지를 끌어안은 사람”이 부는 단소 소리는 물을 깨운다. 물은 연꽃을 띄우고 그 꽃잎을 조금씩 열게 한다. 모두가 부처인 새로운 세상이, 대동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희희낙락거릴 수 있는 세상, 자유로운 세상이 장엄하게 도래하기 시작한다. 선재동자처럼, 물은 온갖 버려진 존재들이 굴러다니는 세상을 돌면서 어루만지고는, 저기 연못이 되어 ‘연꽃-화엄 세상’을 새로이 열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02-21
우리나라의 기운이서로부터 시작하여대관령에서 불끈 솟았다가동해로 내리닫는 곳봄은 아련함이 아니다노곤함도 아니다바람이다청록색 바다,이빨 드러낸 파도다힘과 힘의 부딪힘이다대관령과 동해가 온 몸으로 부딪혀미친 듯이솟구치는 것이다.시인은 대지에서 태어나는 생명의 탄생에서 소나무의 어떤 뒤틀림을 투시한다. 이 시인에겐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움을 창출하려는 의지와 이를 억제하려는 세상 사이에 벌어지는 강렬한 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봄’은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의 끝에 다다르는 생명의 기운과 영동 바다 사이의 “힘과 힘의 부딪힘”으로 인해 거대하게 “이빨 드러낸” 파도가 “미친 듯이” 솟구치는 계절이다 문학평론가
2022-02-20
두터운 표피 속에 모든 가능성을 깊이 저장하고순수의 알몸 하나로겨울을 버틴다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벗들의 마음을이웃들이 보여주던 따듯함을지난해 보았던 크고 작은 슬픈 이야기들을마음의 갈피에 갈무리한다푸른 가지 위에 날아와 쉬어가던 산새들어딘가로 떠나버린 산골에서안으로 외로움을 삭이노라면 더욱 단단해지는 갑옷그 속에서 값진 꿈을 빚어빛나는 모습으로 부활하려 한다나무는 외로움을 삭이는 중에 “더욱 단단해지는 갑옷”을 만들고 더 나아가 “값진 꿈을 빚어”낼 줄도 안다. 거기에서 시인은 “빛나는 모습”을 발견하고 ‘부활’의 모습을 인지한다. 시인은 나무가 내뿜는 빛 속에서 부활하는 법을 배운다. 외로움을 삭이고 꿈꾸고 상상하기. 시 쓰기는 부활을 위한 실천이다. 나무와 시인이 시 쓰기를 통해 동화될 때 시인의 존재 전화는 이루어지기 시작하며, 그는 새로이 부활한다. 문학평론가
2022-02-17
지금 내게 바람은바짝 마른 파동파동치는 고통이다세상은 바짝 마른 굉음으로 가득하다유리창과 문짝과 지붕과 벽들이공중에서 부딪친다바람의 일격! 바람의 이격! 바람의 삼격!부러진 굴뚝이 부서진 책상 위에 쓰러져 있다나는 두 눈 벌겋게 뜬 채쩍쩍 갈라져 해체된다해체되어바짝 마른 해일 속을 떠다닌다우수도 갈망도 없이이 시에서 황사는 고통의 상태를 의미한다. 시인에게는 그 상태가 세상이다. 바람이 가지는 가벼운 이미지, 상승 이미지는 여기에서 찾을 수 없다. 황사가 지나가면 날카로운 망이 지나가는 것처럼 만물은 분쇄되며, 결국 ‘나’마저 황사에 의해 “쩍쩍 갈라져 해체”되어 “우수도 갈망도 없이” 떠다니게 된다. “바짝 마른 해일”로 뒤덮인 이 세상에서 “부서진 책상 위에 쓰러져” 쓰는 시란 ‘공포의 기록’과 같으리라. 문학평론가
2022-02-16
떨리는 먹물 한 방울로 내 미망을 점안하였습니다.삼라만상엔 없는 형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그렇게 미망의 불을 하나 만들었습니다.표적이 없는 내 마음을 향하여 불의 활을 당겼습니다.드디어 강물은 흐르고 불길은 타오릅니다.배는 떠나고 끊어진 밧줄도 먼 바다로 떠나고내가 찍은 먹물 한 점에서 불의 날개가 퍼덕거립니다.내가 그린 바위는 깨지고 물소리는 부서집니다.내가 쓴 글씨는 목청을 떨고 있습니다.마음 한 자리엔 시퍼렇게 서슬이 피어 오릅니다.어둠 속에 버렸던 개울 물 소리가 돌아와 빛납니다.아 버렸던 내 마음이 무명에서 돌아와흐느끼고 있습니다.미망의 불 한 점, 점안 하나를 통해 모든 것이 불타오르지만 결국 고요 속의 개울물 소리만 남는다. 어떤 미지의 형상 하나―점안 하나―의 발견은, 저 무명 세계로의 추락을 통해 튀어 오르는 불꽃들을 만들 것이다. 그 불꽃들은 모든 현상들을 휩쓸어갈 터, 시의 위력은 이렇듯 막강하다! 하지만 타고 있는 그 불꽃들이 다 소진될 땐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만 들릴 것이다. 그리고 흐느끼는 마음. 문학평론가
2022-02-15